'업장소멸'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6.10.03 §(783)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 / 업장소멸 / 자기가 자기 마음을 깨달아 해탈도를 증득하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것보다도 더 소중하고 급한 것이다.
  2. 2015.07.16 §(527) (게송)일중산진우일중~ / 본각진심(本覺眞心) 요요상지(了了常知) / 절대로 부처를 찾지 말고, 깨닫기를 바라지 말아! / ‘이뭣고?’ 열심히 하는 것이 최고의 기도.
  3. 2015.05.07 §(세등24) 유루복, 무루복을 겸해서 지어야 / 自利利他 / 飯器已破 / 단전호흡과 화두가 함께 되어가게 /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있는 선방.
  4. 2015.04.27 §(세등24) 화두드는 법 / 최상승법 /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생사(生死) / 불보살,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다 / 중생심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체(體).
  5. 2015.03.05 §(세등10) 화두는 삼재소멸 부적 / 죽은 참선과 산 참선 / 소무공덕(小無功德) / 참선은 ‘내가 나를 깨닫는 길’ / 참선 외에는 다 소무공덕 / 복(福)과 혜(慧) 쌍으로 닦아야.
  6. 2015.02.27 §(353) 출가(出家), 재가(在家)의 뜻 / 탐욕에 대한 일화 / 보시(布施) / 마음의 보시—탐진치 삼독을 버리는 것 / 돈은 열심히 벌고, 잘 쓰고, 보시해야 /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7. 2015.02.16 §(290) 기도는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 /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몸·마음·주변환경이 청정·정숙하고, 기도의 처음과 끝이 여일(如一)한 것 / 삼륜(三輪)이 공적(空寂).
  8. 2015.02.10 §(408) 선원에서 왜 기도를 하냐? / 삼재소멸, 소원성취는 정법을 믿고 참선 정진이 최고 / 기도—참회—마음청정—자비·지혜심 / 불방일(不放逸)이 가장 좋은 정진.
  9. 2014.12.12 §(160) (게송)천강동일월~ / 기도는 업장소멸(業障消滅)하는 것. 업장을 소멸해야 소원을 성취 / 참선은 죄를 짓지 않는 가장 묘한 방법 / 안수정등(岸樹井藤) / 발심.
  10. 2014.12.01 §(055)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 그것은 견성성불할 수 있는 발판 / 부설거사(浮雪居士) / 신통은 성말변지사(聖末邊之事) / 박초선 명창 음성공양(찬불송, 그것도 멍텅구리).
최근 법문2016. 10. 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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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3)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 / 업장소멸 / 자기가 자기 마음을 깨달아 해탈도를 증득하는 것이야말로  세상 모든 것보다도  소중하고 급한 것이다.

 

불도(佛道) 수행을 성취고자 하면 () () (), 삼학(三學) 겸해서 닦아야 하나니, () 그릇이 온당해야 선정(禪定) 물이 담기고, 선정의 물이 맑고 고요해야 지혜의 달이 나타날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로써 스승을 삼으라 하셨습니다.

 

앞으로는 열심히 전강 조실 스님 법문,  아침 6시에 불교방송에 산승의 설한 법문도 나옵니다. 인연이 있으신 분은 그것을  들으시고 이뭣고?’ 열심히 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인생은 정말 허망하고 무상한 것입니다. 다른 것은 뒤로 미루더라도 참선하는 , 내가  마음의 부처를 찾는 이뭣고?’    초도 뒤로 미룰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현재와 과거에 지은 모든 업장을 소멸하고 앞으로는 정말 해탈도로 가기 위해서는  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   밖에는 없습니다.

 

 자리에는 아직 두서너  먹은 어린애로부터서 팔구십 먹은 연세 많은 분이 많이 계십니다마는 정말  세상에서 급하고  해야  것은 내가 나의 마음부처를 찾고 그것을 깨달아서 자기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 그것 밖에는  급한 것이 없습니다. 세속에 살면  벌어야 하고, 취직도 해야 하고, 직장에도 다녀야겠지마는  모든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고 소중한 것이지마는  가운데에서도    초도 놓아서는 안될 것은 이뭣고?’입니다.

 

**송담스님(No.783)—2016 10 첫째일요법회  화두・불명・십선계 수계법회. (용783)

 

(1/2) 약 21분.

(2/2) 약 13분.

 

 

(1/2)----------------

 

(원장 스님께 삼배 올리겠습니다)

오늘은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 수여하는 법요식이 진행되겠습니다.

 

불도(佛道) 수행을 성취고자 하면 () () (), 삼학(三學) 겸해서 닦아야 하나니, () 그릇이 온당해야 선정(禪定) 물이 담기고, 선정의 물이 맑고 고요해야 지혜의 달이 나타날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로써 스승을 삼으라 하셨습니다.

 

대승십선계는 제일에 불살생(不殺生)이니,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

둘째는 불투도(不偸盜),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

셋째는 불사음(不邪)이니, 사음을 하지 말라.

넷째 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다섯째는 불기어(不綺語),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지 말라.

여섯째는 불양설(不兩舌)이니, 이간하는 말을 하지 말라.

일곱째는 불악구(不惡口), 악한 말을 하지 말라.

여덟째는 불탐욕(不貪欲)이니, 탐욕심을 내지 말라.

아홉째는 불진에(不瞋), 성을 내지 말라.

 번째는 불사견(不邪見)이니, 어리석고 삿된 견해를 갖지 말라.

 

  가지 대승십선계는 일반적으로 착한 마음을 가지고 인격적으로 존경 받고 그런 사람은 일부러 지킬라고  해도 저절로 지켜질  있는 그런 계목(戒目)입니다.

그러나 중생의 근기(根機) 천차만별이어서 100%  지킬  있는 사람, 90% 정도밖에  지키는 사람, 80%밖에  지키는 사람, 반밖에는  지키는 사람, 특수한 경우는  가지,  가지밖에는  지키는 사람. 중생의 근기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을 한결같은 자비로 널리 아시기 때문에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가지 계를 설하신 것입니다.

 

  가지 () 보통 사람이면, 보통 착한 사람이고 인격을 갖춘 지혜인은 특별히 계를 받지 않아도 일생 동안을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대승십선계를 특별히 이렇게 설하게  것은 세계가 말세가 되어 가지고 동서남북 모든 세계에 중생의 근기가 천차만별이어서 부처님의 자비의 정신을 본받아서 오늘 이렇게 대승십선계를 특별히 설하게 됩니다.

 

 ()  지키면, 어느 정도  지키느냐는 각자 자기 자신의 근기(根機) 반성을 해 보고 돌아보면 과연 내가 어느 정도 지킬  있는가를 스스로 항상 회고해 보고 반성해 보고,

그렇게 해서 불자(佛子)로서, 대승(大乘) 불법을 믿는 부처님 제자로서 자기를 항상 돌아보고 뉘우쳐 보고 반성하고 살면 첫째, 자기 마음이 편하고 자기 주변에 있는 부모・형제・친구 모든 사람에게 자기로 인해서 피해를 끼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자기로 인해서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있는 그러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지금 세계 50억이니 60억이니 하지만  얼굴 생김새가 똑같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근기와 심성과 모든 것이  다르기 때문에 얼굴도 그렇게 다른 것입니다.

그렇게 다른 성격, 다른 심성, 다른 그런 차별이 있는 그런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평화롭게  세계를 살아가고 운영해 나갈라면은 대승십선계를 항상 마음에 지니고 실천해 나가면 자연히  자비의 정신이 자기의 몸에 배고 자기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비를 본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대승십선계를 받으실 분은 비구니 스님이  분이고, 용화 유아학교 109명이고, 용화 학생회와 청년회가 11명이고, 광주 용화선원이 13명이고, 원효사 경기도 의정부시 효원동 있는 원효사가 71명이고, 승련사 전북 남원시산동면 승련사 대중이 55명이고, 전남 무안군 무안읍 있는 도덕사 50명이고, 충남 금산군 남이면 심우정사에서 13분이고,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 있는 영산선원에서 13명이고, 경북 영천시 청통면 있는 묘적암에서 5.

이렇게 해서 개인적으로는 김씨가 139, 이씨가 95, 박씨가 50. 그밖에 가・강・고・공・곽・구・권・남・두・문・민・방・배・백・부씨가 67, 성씨 별로는 서씨・석씨・손씨・송씨・신씨・심씨・안씨・양씨・엄씨・여씨・오씨・옥씨・우씨・원씨・유씨・윤씨・임씨 이렇게 해서 112분이고. 그밖에 장씨・잭씨・전씨・정씨・조씨・진씨・차씨・채씨・천씨・최씨・피씨・하씨・한씨・함씨・허씨・홍씨・황씨가 이렇게 해서 148명입니다.

 

 인원은 비구니가  분이고, 청신남(淸信男)이 391명이고, 청신녀(淸信女)가 560 이렇게 합해서 954명이 오늘 대승십선계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자상하게 말씀을 드린 것은 낱낱이 호명을 여기서  수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드리니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대승십선계는 이렇게 설(說)하고 같은 장소에서  계(戒) 설하는 것을 듣고 받게 되면  인연으로 무량겁으로부터 내려오면서 지은 모든 ()  업장(業障) 소멸(消滅) 되고, 앞으로는 같은 형제・자매・도반으로서 정법을 믿고 반드시 열심히 참선 수행을 해서 기어코  사람도 누락함이 없이  자성(自性) 깨달아서 견성성불(見性成佛) 하고,

자기 하나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신심(信心) 원력(願力)으로 우주 법계에 많은 다른 도반과 친구와 인연있는 사람들도 다같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해탈도(解脫道) 증득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죽는 사람이 없습니다. 뱃속에서 죽기도 하고 나오다 죽기도 하고, 나와서 한두 살에 죽기도 하고  살 스무  미만에 죽기도 하고, 삼사십・오륙십 많은 사람들은  세도 살고 백이십 세도 삽니다.

많이 살고 오래 사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마는 기왕 사람이 태어났으면은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좋은 일도 하고 행복하게 살고, 나아가서는 정법(正法)을 믿고 자기로 인해서 정법의 종자(種子)가  우주 법계에 번파(繁播)가 되어 가지고 우주 법계의 모든 사람이  정법 문중에 도반이 된다면 그밖에  좋은 일이 어디가 있겠습니까.

 

어피차 한번 태어나면 죽은 목숨이지만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살면 아무리 돈이 많고 학식이 많아도 삼악도(三惡途)를, 윤회를 면(免)틀 못하는 것이고,

정법을 믿고 열심히 참선(參禪)을 하면, 비록  삼악도를 윤회하면서도 정법의 종자가 몸에 있고  정법에 의해서 생활을 해내   공덕으로  우주 법계는 우리의 수행 도량이 되는 것이고, 우주 법계에 있는 모든 중생은 우리의 도반이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해탈도를 증득하게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 개인의 이름은 부르지 않고     이렇게만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각자 자기 이름도 그 속에 하나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시고,

 

이상 설한 대승십계를  지키겠는가?”

(대중)“.”

 

이상 설한 대승십계를 간략히 설했으니 여기에 동참하신 여러분은  지키겠는가?”

(대중)“.”

 

이상 설한 대승십계는 한번 받고  지키겠다고 부처님 앞에 서약함으로 해서 과거에 지은  죄나 작은 죄나 그것이  부처님 앞에 참회(懺悔)가 되었고  그것이 소멸이 되었으니,

앞으로 더이상 악업(惡業)을 짓지 않고 열심히 참선법을 믿고 이뭣고?’ 열심히 하면 여기에 모이신  법당 안팎에 많은 여러분들도 업장이  소멸이 되고 반드시 견성성불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할  있는 그런 부처님 제자가 되실 것입니다.  말씀을 믿는 분은 다같이 대답을 하십시오.

 

 지키겠는가?”

(대중)“.”

 

이렇게 사람이 얼굴이  각각 다르게 생긴만큼,  다르게 태어났습니까? 똑같이 눈과 코와 귀와 입과 머리와 손과 발이 있는데,  각기 모양새가 다르고 형제간도 다르냐 하면은 그동안에 닦아 온 것이 다르기 때문에 그럽니다.

그동안에 무량겁을 살아오면서 어떻게 살아왔느냐한 것이 자기의 생긴 모습과 자기의 태어난 오장육부를  검토해 보면 관상·사주  보는 사람한테 물어볼 것도 없이 자기 자신이 거울을 보고 자기의 얼굴을 보면 내가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가를 짐작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리에 모이신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 남녀노소   없이 오늘  법회로 인해서, 법회에 함께 동참한  인연으로 과거의 업장은  소멸이 되었고, 앞으로 부처님 제자로서 정말 보람있는 일생을  살고, 세세생생에 또 정법 문중에  만나서  참선 수행을 해서 해탈도를 증득하고 나아가서는 우주 법계의 모든 중생을  우리로 인해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해탈도를 증득하게  것입니다.(처음~2051)

 

 

 

 

 

(2/2)----------------

 

 호궤합장(跪合掌) 하십시오. 꿇고 앉아서 합장을 하십시오.

 

인생은 아무리 얼굴이 잘생기고 건강하고 학식이 많고  그래도 한번 태어난 사람은 결국은   몸을 버리고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서 천당에도 태어날 수가 있고, 인간으로 태어날 수도 있고, 아수라로 태어날 수도 있고, 지은 업이 지중하고 악업을 알게 모르게 지은 사람은 축생이  수도 있고, 아귀도  수도 있고,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불행하게도 지옥에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산승(山僧)의 마음으로는  자리에 참석하신 분은  분도 지옥에 가실 분은 없습니다.

 그러느냐?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듣고 그것을  지키겠다고 부처님 앞에서 서약을 했기 때문에 과거에 지은 죄는  소멸이  것입니다. 불보살께서  그것을 이해해 주실 것입니다.

앞으로는 열심히 전강 조실 스님 법문,  아침 6시에 불교방송에 산승의 설한 법문도 나옵니다. 인연이 있으신 분은 그것을  들으시고 이뭣고?’ 열심히 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인생은 정말 허망하고 무상한 것입니다. 다른 것은 뒤로 미루더라도 참선하는 , 내가  마음의 부처를 찾는 이뭣고?’    초도 뒤로 미룰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현재와 과거에 지은 모든 업장을 소멸하고 앞으로는 정말 해탈도로 가기 위해서는  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   밖에는 없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보시 공덕 쌓는 것도 좋고,  학문이 높은 사람은 자기의 학문을 후배들에게 가르키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보시를 하는 것도 대단히 좋은 일이나  많은 좋은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급한 것은 이뭣고?’입니다.

 

‘자기가 자기 마음을 깨달아서 해탈도를 증득하는  그것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것보다도  소중하고 급한 것은 없습니다.

 

자기의 생사 문제는 자기가 해결해야지 불보살(佛菩薩)이 많이 계신다 해도 자기 대신 닦아 주지는 않습니다. 바른 길을 설법하실 수는 있지마는 깨닫는 것은 우리 자신이 깨달아야지 부처님한테 의뢰해 봤자 그것은 헛일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자기를 깨닫는 방법이 그것이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속이 상할 , 기분이 나쁠   일에 끄달려 가지고  생각만 하면 점점 오장육부가 썩어 문드러질 것입니다마는 기분이 나쁠  바로 이뭣고~?’하고 이뭣고?’ 하면  기분 나쁜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니까 정말  세상에 급하고 소중한 것은 내가  마음부처 찾는 이뭣고?’ 것입니다.

 

 자리에는 아직 두서너  먹은 어린애로부터서 팔구십 먹은 연세 많은 분이 많이 계십니다마는 정말  세상에서 급하고  해야  것은 내가 나의 마음부처를 찾고 그것을 깨달아서 자기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 그것 밖에는  급한 것이 없습니다.

세속에 살면  벌어야 하고, 취직도 해야 하고, 직장에도 다녀야겠지마는  모든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고 소중한 것이지마는  가운데에서도    초도 놓아서는 안될 것은 이뭣고?’입니다.

 

, ‘이뭣고?’ 산승에 말을 따라서 열심히 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자기가 알게 모르게 지은 업(業)이 한량이 없습니다. 자기가 잊어버린 것도 있고, 잊어버리지 않은 업도 있으나 업을 짓지 아니한 사람은  사람도 없습니다.

앞으로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할라면은 일단 과거의 모든 죄를 참회(懺悔)하고, 참회함으로 해서 그것을 깨끗이 씻어버려야 합니다. 좋은 약물을 그릇에다 담을라면  그릇을 먼저 깨끗이 씻은 그릇에다가 담아야지, 더러운 때가 낀 더러운 것이 묻어 있는 그릇에다가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업을 참회하는 뜻에서 참회진언을 다같이 외우겠습니다.

 

참회진언(懺悔眞言)  ‘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견지금계불훼범(堅持禁戒不毁犯)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대승십선계를 받고, 과거에 지은 모든 업장소멸 되기 위해서 참회진언을 외웠습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새로 태어난 마음으로 열심히 이뭣고?’ 해서 기어코 우리는 해탈도를 증득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할  있는 부처님 제자가 되기를 맹세했습니다.

 

이상으로써 오늘 대승십선계를  설해 마쳤습니다.(2052~344)()

 

 

 

 

 

---------------(1/2)

 

*십선계(十善戒) ; () () 마음()으로 짓는 10가지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 사견(邪見)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불도(佛道) ; ①불과(佛果).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 무상보리(無上菩提) 말한다. ②불과(佛果) 이르는 방법. 불과를 성취하여 성불하기 위한 인행(因行, 깨달음의 원인이 되는 ) 말한다. ③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는 가르침.

*삼학(三學) ; 깨달음에 이르려는 자가 반드시 닦아야   가지 수행. 삼증상학(三增上學삼승학(三勝學)이라고도 하는데,  계학(戒學정학(定學혜학(慧學)  가지를 말한다. 이것을 증상(增上:탁월하다는 )계학·증상심학(心學증상혜학 또는 줄여서 ··혜라고도 한다.

①계는 악을 저지르지 않고 선을 닦는 계율(戒律), ②정은 심신을 고요히 하고 정신통일을 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하는 선정(禪定), ③혜는 번뇌를 파하고 진리를 증득(證得)하는 지혜를 가리킨다.

*계목(戒目) ; 삼귀의계(三歸依戒오계(五戒십중대계(十重大戒) 등의 () 제목(題目). 조목(條目), 중요(重要항목(項目).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말할 /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간곡할 )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 간곡하게() 말씀하심().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가고, () 집과 ()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 되고 ④자비심(慈悲心)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청신남(清信男)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자 신도,  우바새(優婆塞).

*청신녀(清信女)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  우바이(優婆夷).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장애() 생기는 .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자성(自性) ; ①사물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번파(繁播 많을·성할·융성할 번/뿌릴·펼·널리 퍼뜨림 파) ; 번성해 널리 퍼뜨림. 많이 뿌림.

*어피차 ; 어차피(於此彼).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귀결(歸結 어떤 결론이나 결과에 도달함. 또는  도달한 결론이나 결과)되는 . 또는 이렇게 되든지 저렇게 되든지 귀결되는 .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회(懺悔 뉘우칠 /뉘우칠 )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부끄러워할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 나쁜 행위.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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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궤합장(跪合掌) ;  무릎을 꿇고 앉되, 무릎  허벅지와 상체가 수직이 되게 곧게 일으켜 세우고, 발가락은 세운  손은 합장을 취한 자세.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말라고 하신 것이다.

*참회진언(懺悔眞言) ; 죄업(罪業) 참회하는 진언. '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라는 것은 본래 실체가 없는데[無自性] 마음으로 좇아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마음이 소멸되면  또한 없어진다.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마음도 없어지고 죄도 없어져서  두 가지가 함께 ()해져서 없어져 버릴 , 이것이야말로 진짜 참회이다.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견지금계불훼범(堅持禁戒不毁犯) 제가 지금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에 이를 때까지, 금하는 계율 굳게 지켜 훼범하지 않으리니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바라옵건데 모든 부처님께서 증명해 주소서. 목숨은 차라리 버릴지라도 마침내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원컨대  공덕으로써 일체 중생에게 널리 미쳐서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나와  가족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어지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5. 7. 16. 14:06

§(527) (게송)일중산진우일중~ / 본각진심(本覺眞心) 요요상지(了了常知) / 절대로 부처를 찾지 말고, 깨닫기를 바라지 말아! / ‘이뭣고?’ 열심히 하는 것이 최고의 기도.

 

절대로 깨닫기를 기다리지 마! 밥을 먹으면 밥 먹은 부처님이요, 똥을 누면 똥 누는 부처님이요, 누워 있으면 누워 있는 부처님이요, 앉아 있으면 앉아 있는 부처님이여. 그렇게만 잡드리 해 나가면 결정코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고만 마는 거여.

확철대오 할려고 몸부림치면 그런 동안에는 절대로 확철대오를 못하는 거고, 확철대오 할 생각 말고 화두 하나만을 성성적적하게 여법(如法)하게만 단속해 나가면 결코 그 사람은 깨닫고만 마는 거여. 그게 참 묘(妙)한 거여 이게. 참 이거 묘한 거여.

 

정말 기도를 성취하시고 싶으면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업장(業障)을 소멸(消滅)을 하고, ‘이뭣고?’는 무엇이냐 하면은 이미 지은 업은 소멸을 하고, 앞으로 새로운 업을 짓지 않는 가장 수승한 법이거든.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다가 집안에 꼭 중대한 일이 있으면 그러한 깨끗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시면 정말 기도가 마음먹은 대로 성취가 되는 것이다.

 

**송담스님(No.527)—94년 동안거해제 법회(94.01.15.음) (용527)

 

 

약 19분.

 

 

일중산진우일중(一重山盡又一重)하고  화진산운해월정(話盡山雲海月情)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무일물중무진장(無一物中無盡藏)하야  백화유월유루대(百花有月有樓臺)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중산진우일중(一重山盡又一重)이여. 한 산이 다함에 또 산 밖에 또 산이 있어. 거듭거듭 산이 있다.

 

정진을 해 나가는 데에도, 정진을 하다 보면은 이런 문제가 일어났다가, 그 문제가 겨우 어렵게 애를 써서 좀 가라앉을 만하면 또 다른 문제가 있고,

몸도 여기가 조금 아파서 그거 좀 잘 다스리면 또 저기가 아프고 여기가 아프다, 이가 아프다가 위가 안 좋다가, 기관지가 안 좋다가, 간이 안 좋다가, 쓸개가 안 좋다가, 끝이 없어.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또 정신적으로 그렇고, 인간관계에서도 그렇고,

세속도 역시 마찬가지여. 남편 문제, 아내 문제, 아들 문제, 딸 문제, 학교 문제, 사업 문제, 혼사 문제, 거듭거듭 일이 한도 끝도 없이 끝이 없다 그말이여.

 

화진산운해월정(話盡山雲海月情)이여. 말이 산골짜기에 구름 일어나듯이, 바다에 달빛 같은 이 말이 끝이 없다 그말이여.

 

해제를 맞이해서 여러 선원에서 이렇게 도반들이 모이고 또 여기 백일기도에 동참한 여러 신도님들 또 보살선방의 보살님네들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이 오늘을 기해서 또 다시 흩어질 것을 생각하니까 이렇게 말이 두서없이 이렇게 나오는데, 사실은 한마디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할 말이 없는데 또 이렇게 만나다 보니 이렇게 여러 가지 말이 나오는데, 원래가 무일물중무진장(無一物中無盡藏)이거든. 한 물건도 없는 가운데에 무진장 있는 거여. 없는 것이 없어.

백가지 꽃이 피는데, 오색이 찬란한 꽃이 휘황찬란하게 피는데 그때 마치 쟁반 같은 달이 밝았어. 그런데 터억 오색단청을 한 누각이 있다 그말이여.(百花有月有樓臺)

 

이 세상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정진해 나가는 분상에도 그렇고, 세속 살아가는 데도 그렇고.

 

왜 그러냐? 알고 보면 한 가지도 없어, 한 물건도 없는데, 그런데 없는 것이 없이 다 있어.

 

생각 먹기에 따라서 한 물건도 없는 마음가짐으로 일생을 살 수도 있고, 또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모든 것이 없는 것이 없이 다 갖추어서 살 수도 있어.

우리가 딱! 우리 생각을 거두어 버리면 이 세상에 무엇이 있어? 아무 것도 우리가 집착할 아무 것도 없어.

가져야 할 것도 없고, 버려야 할 것도 없어. 그런데 한 생각을 내면 없는 것이 없이 다 있는 거여.

 

왜 그러냐 하면, 일체 유정(有情)이 다 본각진심(本覺眞心)을 가지고 있어.

 

무시이래(無始以來)로 그 본각진심이 상주(常住)해서 청정(淸淨)해서, 소소영령(昭昭靈靈)하고 불매(不昧)해서 요요상지(了了常知)해.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좋아할 줄도 알고, 뭘 주면 좋아하고, 뺏으면 싫어하고, 때리면 아픈 줄 알고, 얼마나 소소영령하고 분명하냐 그말이여. 

 

‘나는 깨닫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답답하지, 깨닫고, 못 깨닫고 한 것을 따지지를 말어.

 

소소영령하고 요요불매(了了不昧)해.

 

그것을 고인은 체(體)의 입장에서 그것을 표현을 하면 그걸 일심(一心)이라 그러는 거고, 인과(因果)의 인(因)을 잡아서 표현을 하자면 그것을 여래장(如來藏)이라 표현을 해.

인과(因果)의 과(果)로 잡아서 표현을 하면 그것을 원각(圓覺)이라 그랬어. 원각이라 하는 것은 원만한 신령스러운 각성이다, 원각지성(圓覺之性)이다 그말이여.

 

절대로 우리는 부처를 찾지를 말고 깨닫기를 바래지를 말아.

 

일단 견성성불(見性成佛)하기 위해서, 그러한 신심과 원력으로 불법을 믿고, 출가까지 하고 참선을 시작했으면 찾는 생각은 버려. 이미 거기에 다 갖추어져 있는 것이니까. 그것을 찾을라고 하고, 구할려고 그러고, 빨리 찾을려고 하는 생각을 놔 버려야 하는 거여.

 

놔 버리고 ‘이뭣고?’ 하나만을 단속하면 걸음걸음이 그것이 도(道)요, 터억 앉았으면 앉았는 대로 그 자체가 부처님이요, 누워 있으면 누워 있는 대로 그 자체가 와불(臥佛)이여. 깨닫기를 바래고, 기다리고, 못 깨닫는다고 짜증을 내니까 찰라 간에 그거 중생이 되는 거여.

 

그래서 화두를 ‘이뭣고?’ ‘이뭣고?’하라 하지만 ‘이뭣고?’는 똑같은 ‘이뭣고?’인데 그 정진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게 다 다른 거여. 똑같이 ‘이뭣고?’해도 다른 거여 그게.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독로(獨露)하도록만 잡드리 한 것뿐이여.

 

절대로 깨닫기를 기다리지 마!

 

밥을 먹으면 밥 먹은 부처님이요, 똥을 누면 똥 누는 부처님이요, 누워 있으면 누워 있는 부처님이요, 앉아 있으면 앉아 있는 부처님이여. 그렇게만 잡드리 해 나가면 결정코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고만 마는 거여.

 

확철대오 할려고 몸부림치면 그런 동안에는 절대로 확철대오를 못하는 거고, 확철대오 할 생각 말고 화두 하나만을 성성적적하게 여법(如法)하게만 단속해 나가면 결코 그 사람은 깨닫고만 마는 거여.

그게 참 묘(妙)한 거여 이게. 참 이거 묘한 거여.

 

 

오늘 보살선방에 방부들인 보살님, 오늘 다 이불이나 발우대나 그런 걸 싸 가지고 댁에 가시겠습니다마는 댁에 가셔서도 그냥 손자, 아들, 딸, 며느리 모다 만나면 만나는 대로 이야기도 하실 수가 있고 그러나,

가서도 꼭 인자 막 내가 말씀드린 대로 ‘이뭣고?’를 항상 놓치지 않도록 잡드리 해 나가셔! 오랜만에 왔다고 살림 간섭할라고 그런 생각도 마시고, 모든 것은 되아 가는 대로 사시면 됩니다.

 

아들도 여럿이 있으면 잘난 놈, 못난 놈 있을 수가 있고, 일을 하다 보면 잘되는 수도 있고 못되는 수도 있고,

우선은 잘 못된 것 같지마는 나중에 보면 전화위복(福)이 되어서 차라리 무방하게 되는 수도 있고, 우선 잘된 것 같아도 나중에 보면 결과적으로 잘못되는 수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니까,

 

인간 세상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을 인연에다 다 맽겨 버려. 맽겨 버리고 ‘이뭣고? 하나가 이것이 내가 해 나갈 유일한 일이다!’ 그놈 하나만을 열심히 하셔.

 

밥을 먹게 되면 밥을 먹고, 죽을 먹게 되면 죽을 먹고, 국수를 먹게 되면 국수를 먹고, 그런 것도 다 인연에 다 맽겨 버리고 어쨌든지 댁에 가셔서도 열심히 하고, 또 산철에 오실 수 있으면 오시고,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보살님네는, 백일기도를 이 절에서도 아침마다 축원을 잘했어. 반드시 소원을 잘 성취하셨으리라고 생각하고.

 

소원이라는 게 중생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소원이 아니여.

어린애가 하자는 대로 무엇이든지 들어주는 것이 부모가 잘하는 것이 아니여. 어린애가 하고 싶다 해도 막아야 할 일도 있는 것이지, 무엇이든지 해 달라는 대로 해 준 것을 부모 노릇 잘한 것으로 생각하시거든.

 

어린애가 나도 쪼그만 차 하나 사달라고, 쪼끄만 차를 사줬어. 그 놈이 이리저리 운전하고 다니다가 거꾸로 떨어지고 교통사고 나서 죽으면 그거 뭐냐 그말이여.

‘나이 먹거든 사 주마’ 이렇게 되어야지. 아직 운전할 나이도 안 된 애를 돈 있다고 해서 어린애한테 차를 마음대로 사 주고, 권총을 사달라는데 권총을 사 주고, 칼을 사달라는 걸 칼을 사 줘 가지고 마음대로 거 어떻게 되냐 그말이여.

 

그래서 소원도 ‘이번에 꼭 이걸 하겄게 해 주십시오’하고 부처님한테 치성(誠)을 드리거든.

치성드린 대로 되는 수도 있지만, 안 되는 수도 있다 그말이여. 안 될 때에는 안 되는 것이 차라리 무방하기 때문에 안 된 거여.

 

‘이번에 꼭 아들이 대학에 붙겄게 해 주십시오’해 가지고 쌀도 갖다 놓고, 돈도 갖다 놓고, 과일도 사다 놓고, 백팔배 삼천배를 했는데 뚝 떨어져 버렸어. ‘에이, 기도해 봤자 소용없다고. 나 기도 안 한다고’

이 절에 해서 안 되니까 또 어디 절에 가면 기도가 잘 성취된다니까 거기를 또 간다. 그러다 보면 되는 수도 있어. ‘그 절이라야 성취가 되지, 다른 절은 다 소용이 없다’하거든.

 

그게 아니여. 기도를 안 해도 되는 수도 얼마든지 있는 거고, 기도를 해도 안 되는 수도 있는 것이어서,

기도해 봤자 소용없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해서 안 되었다면 안 되는 편이 오히려 낫기 때문에 부처님이 안 되게 하신 거여.

그래서 안 될수록에 더 기도를 열심히 해야지. ‘에이, 기도해 봤자 소용없다’ 그게 아니거든.

 

그래서 백일기도 하신 분은 전부가 정말 성취가 잘되었다고 생각을 하시고 이 다음에도 또 백일기도에 빠짐없이 동참을 잘 하셔야 하고.

 

 

정말 기도는 ‘이뭣고?’ 열심히 하는 것이 최고의 기도여!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모든 과보(果報)를 받게 되고, 거기에다가 자기가 노력하는 것에 따라서 자기의 앞에 모든 일이 하나씩 하나씩 다 결정이 되어 가는 것이지,

복을 짓지 않고 기도해 가지고 느닷없이 큰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그건 잘못된 것이거든.

 

그래서 정말 기도를 성취하시고 싶으면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업장(業障)을 소멸(消滅)을 하고.

‘이뭣고?’는 무엇이냐 하면은 이미 지은 업은 소멸을 하고, 앞으로 새로운 업을 짓지 않는 가장 수승한 법이거든.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다가 집안에 꼭 중대한 일이 있으면 그러한 깨끗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시면 정말 기도가 마음먹은 대로 성취가 되는 것이다.

 

내가 입춘기도 또 정월 신수기도 입제와 또 회향에 여러분 눈에는 참석을 안 했지만 나는 분명히 여기 참석을 해서 같이 기도를 했거든요. 그래서 혹 내가 참석한 것을 보시지 못한 사람이 계실까 해서 이 기도에 대해서 조금 언급을 했습니다. 

 

해제를 하셔서 비록 해제의 날짜는 지냈지만 우리의 공부는 언제나 결제거든.

언제나 결제이기 때문에 방심하고 해태(懈怠)하지 말고, 오히려 방부를 들이고 선방에서 지내실 때 보다 여기저기 다니시는 걸음걸음, 댁에 가시거나 어느 절에 가더라도 항상 우리의 마음을 더 야무지게 단속을 하면서 다시 건강한 몸으로 건강한 마음으로 또 만나게 되기를 기약하면서 법상(法床)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57분59초~76분47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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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화진산운해월정(話盡山雲海月情)’ ; [벽암록(碧巖錄)] 제53칙 설두(雪竇)스님 송(頌) 참고.
*(게송) ‘無一物中無盡藏  有花有月有樓臺’ ; 소동파 시 '백지찬(白紙贊)' 참고.
*유정(有情)산스크리트어 sattva  감정이 있는 모든 생물. 번뇌와 아무런 생각이 없는 멍한 상태를 끝없이 되풀이하는 모든 존재. 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중생(衆生)과 같음.
*본각진심(本覺眞心)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일심(一心), 불성(佛性), 여래장(如來藏), 원각(圓覺)이라고도 한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불매(不昧) ; 매(昧)하지 아니하다. 지혜가 어둡지 않다.
*요요상지(了了常知) ; ‘분명하게 항상 앎—본각진심(本覺眞心, 불성佛性)이 분명하게 항상 앎’
요요상지(了了常知)는 증득하여 아는 것이 아니며, 경계를 반연하여 분별하는 식(識)과 같지 않고, 체(體)를 비추어 요달한 지(智)와 같지 않고, ‘진여의 성품이 자연히 항상 앎’을 말하는 것이다.
[참고]
규봉종밀(圭峰宗密) 스님의 《원인론(原人論)》에서.
直顯真源第三。
五 一乘顯性教者、說一切有情皆有本覺真心、無始已來常住清淨、昭昭不昧了了常知、亦名佛性亦名如來藏。
 《원인론(原人論)》을 해설한 정원(淨源) 스님의 《발미록(發微錄)》에서.
昭昭不昧了了常知者、華嚴回向品云、真如照明為性、故云不昧、此言者、不是證知、意說真性不同虛空木石、故云知也、非如緣境分別之識、非如照體了達之智、直是真如之性、自然常知、故馬鳴菩薩云、真如者、自體真實識知義故、亦名佛性下、是諸佛萬德之源、故名佛性、是衆生迷悟之源、故名如來藏
*여래장(如來藏)산스크리트어 tathāgata-garbha 본래부터 중생의 마음 속에 감추어져 있는 여래가 될 가능성. 중생의 마음 속에 저절로 갈무리되어 있는 여래의 청정한 씨앗. 중생이 모두 갖추고 있으나 번뇌에 가려져 있는 여래의 성품. 모태(母胎)의 태아(胎兒)처럼, 중생의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는 부처의 성품.
*원각(圓覺) ; ‘원만(圓滿)한 신령스러운 각성(覺性)’ 부처님의 원만한 깨달음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원만한 깨달음의 경지인 청정한 본심을 일컬어 원각묘심(圓覺妙心)이라 한다.
일체의 생명에는 본래부터 깨달음[本覺]이 있고 진심(眞心)이 있어서, 체(體)의 입장에서 그것을 표현을 하면 일심(一心)이라 하고, 인과(因果)의 인(因)을 잡아서 표현을 하자면 그것을 여래장(如來藏)이라 표현하고, 인과(因果)의 과(果)로 잡아서 표현을 하면 그것을 원각(圓覺)이라 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 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치성(致誠 이룰•이를 치/정성 성) ; ①하느님 이나 부처님 등 신적 대상에게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정성을 다하여 빎. ②있는 정성을 다함. 또는 그 정성.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소멸(消滅) ; 사라져 없어짐.

*해태(懈怠 게으를 해, 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24) 유루복, 무루복을 겸해서 지어야 / 自利利他 / 飯器已破 / 단전호흡과 화두가 함께 되어가게 /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있는 선방.

참으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나 또는 영원히 생사 없는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느냐 하는 것은 오직 내가 나를 깨쳐야만 됩니다.

복을 짓되 무루복(無漏福)을 지어야 합니다. 유루복(有漏福)만 지으면은 복은 받지마는 윤회(輪廻)는 면틀 못하고, 유루복을 지으면서도 무루복을 겸해서 지을 줄 알아야 해. 무루복이란 무엇이냐? 함이 없는 법, 내가 나를 깨닫는 법이여.

 

단전 호흡에다 화두를 꼭 붙여 가지고 의단이 독로(獨露)하도록, 의단이 순일무잡(純一無雜)하도록 그렇게 해 나가면 몸도 건강하고 마침내는 깨달음에까지 이르른다. 이것이 바로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다.

장소야 어디건 그거 상관이 없어. 한 생각 딱! 챙겨 가지고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선방(禪房)이여. 선불장(選佛場)이여.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있는 선방이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 (세등24)

 

(1) 약 21분.

(2) 약 6분.


(1)------------------

대도(大道)를 성취하는 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반야심경이 좋다니까 반야심경을 읽고, 천수경이 좋다니까 천수경을 냅다 틀어재끼고, 관세음보살이 좋다면 아들을 위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죽은 영감을 위해서는 지장보살을 부르고 아미타불을 부르고, 그러다 참선이 좋다니까 앉아서 참선 흉내 좀 내고, 입춘이 되면은 또 무당집에 가서 5만원 10만원짜리 또 부작을 사고, 좋다는 데는 다 쫓아다니고, 그러다가 결국은 눈 한번 감았다 뜨지 못하고,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내생(來生)입니다.

이리저리 좋다는 것은 다 인연을 맺고 공덕을 지었으니까 악도(惡途)에는 떨어지지 않기를 나도 바래고, 원(願)대로 극락세계(極樂世界)로 가실 것을 나는 다같이 바래기는 하지마는 과연 그분이 극락세계에 꼭 갈 것인가? 나는 보증을 못합니다.

복을 짓고 착한 일을 한 만큼 내생에 천당에도 가고 또 사람이 되더라도 부자도 되고 인물도 잘 태어날 것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나도 믿습니다마는, 참으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나 또는 영원히 생사 없는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느냐 하는 것은 오직 내가 나를 깨쳐야만 됩니다.

복을 짓되 무루복(無漏福)을 지어야 합니다. 유루복(有漏福)만 지으면은 복은 받지마는 윤회(輪廻)는 면틀 못하고, 유루복을 지으면서도 무루복을 겸해서 지을 줄 알아야 해.

무루복이란 무엇이냐? 함이 없는 법, 내가 나를 깨닫는 법이여.

다른 사람에게 이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을 수 있도록 이것이야말로 샘이 없는 복[無漏福]이요, 함이 없는 법[無爲法]이라. 이 복이야말로 영원한 것입니다.
남 보고 하라고만 하고 자기는 안한 사람이 있거든. 자기만 하고 남 보고는 별로 권고를 하지 않은 사람이 있거든.

자리이타(自利利他),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의 법이야말로 이것이 바로 대승법이요, 새에 두 날개가 있는 거와 같고, 수레에 두 수레바퀴가 있는 거와 같아서, 새가 날개 하나만 가지고서는 도저히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수레바퀴 하나만 가지고서는 굴러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리이타, 이 세등선원을 짓는 것도 역시 자리이타를 하기 위해서 짓는 것이요, 이 세등선원을 짓는데 여러 신남신녀가 시주(施主)를 하고 화주(化主)를 하는 것도 이것 또한 자리이타를 하는 것이여.

부처님 출현하신 것도 역시 자리이타를 위하는 것이여. 부처님 경지에 있어서야 원래 생사 없는 본각(本覺)자리에 계시는데 무엇이 다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나실 것이 무엇이 있느냐? 그렇지마는 중생을 위해서 대자비심을 일으켜 가지고 사바세계에 출현하신 것이다.

한 글자도 설할 곳이 없는 곳을 향해서 팔만사천(八萬四千) 법을 설하셨다. 이것이 또한 자리이타를 위하는 것이다.
한 글귀도 설할 곳이 없는 곳을 향해서 역대 조사(祖師)가 많은 어록(語錄)을 남기셨다. 이것이 또한 자리이타를 위한 자비심에서 나오신 소식이다.

오늘 산승이 나와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는 것도 내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수행 과정에 있는 사람으로서 내 시간도 바쁘다. 무엇 때문에 여기에 올라와서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중언부언 두서없는 소리를 하고 있느냐?

부처님께서 다겁(多劫)을 두고 스스로 생사 속에서 윤회하신 그런 뼈아픈 경험이 계셨기 때문에 여러 중생들을 위해서  나오셨어.

저 자신도 선지식의 법문을 듣고 스스로 정진을 해봤기 때문에 선지식한테 들은 말씀, 나의 경험을 통해서 얻은 바를 여러분에게 간곡히 말씀을 드림으로 해서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정진을 잘할 수 있는, 발심하실 수 있는 채찍이 되고 도움이 된다면 하는 그러한 마음에서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진즉부터서 공부를 해서 이런 말을 듣지 아니하고라도 잘 정진을 하신 분도 계실 것이고, 처음으로 공부를 하러 오셔서 이러한 말씀이 꼭 필요한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이미 다 잘 알고 공부를 잘하고 계신 분은 증명을 하시면 되는 게고, 처음 와서 들으신 분은 뼈에 사무쳐서 명심해서 듣고 발심을 해서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 선배 후배 도반들의 그 돈독한 정의가 아니고 무었이겠습니까.


‘참 법문’이라 하는 것은 설할래야 설할 수가 없는 것이여. 따라서 들을라야 들을 것 없는 도리를 알아야 되는 것이여.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쥐는 바로 고양이의 밥인데, 고양이는 쥐를 먹고 사니까 쥐가 바로 고양이 밥인데, ‘쥐가 쥐를 먹었다’ 이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라 일러 가지고 인가(印可)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은 미제(美製) 자물쇠통과 같아서 아무리 것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생겼어도 제 번호가 아니면은 열리지를 않습니다.

체중현(體中玄) 도리에서 본다면 손을 한번 드나, 고함을 한번 치나, 발을 한번 구르거나, 좌복을 한번 들었다가 내동댕이를 치거나, 빰을 한 대 올려붙이거나, 눈을 한번 감았다 뜨거나, 일거수 일투족이 다 맞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방귀를 한번 뀌거나, 부처라고 하거나 똥이거나, 일체가 다 한 소식입니다. 한 맛입니다.

그러나 이 공안은 그러한 체중현 도리, 일체가 텅 빈 도리, 한 맛인 도리로 보아 가지고서는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이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구경(究竟)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여러분들이 어떠한 공안을 가지고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하는 그러한 식으로 따져서 어떠한 결론을 얻을라고 해서는 그것은 공연한 헛수고인 것입니다. 얻었다고 해봤자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맞지 아니하니 다시 일러라”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는데, 무슨 밥그릇이 어떻게 깨져?
이 도리는 우리가 아무리 따져 봤자 알 수가 없는 도리여. 가르켜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도리여. 반기이파(飯器已破) 도리.

여러분이 가지고 하는 판치생모, 또는 정전백수자, 또는 시삼마 이런 모든 공안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따질라야 따질 수 없고, 꽉 맥힌 상태에서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라 했는고?’ 알 수 없는 꽉 맥힌 상태에서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가야지,
‘쥐가 고양이 밥을... 밥...,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뜰앞에 잣나무 잣나무......’ 이런 식으로 해서 이렇게 따지보고, 저렇게 따져보고, 이러한 참선은 이건 ‘죽은 참선’이여. 절대로 그런 참선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덮어놓고 무조건하고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


언제든지 좌선을 해서, 참선 시작할 때에는 준비 호흡으로 숨을 가득 가슴으로 들어마셨다가, 더이상 참을 수 없을만큼 참었다가 입으로 ‘후—’하고 다 내쉬어 버리고 나서, 그렇게 2번을 하고서,
3번째는 가슴으로 들어마시지를 말고 가슴과 윗배는 고대로 놔두고 아랫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불어나도록, 볼록해지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면서 숨을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시되 윗배와 가슴은 약간은 움직이겠지만 거의 가만히 있도록 유지를 하면서 아랫배만 약간 볼록해진다.

들어마시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초, 3초 동안에 스르르르 하니 아주 수월하게 들어마시는 거여.

너무 오랜 시간을 걸려서 들어마실라고 하지를 말고,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셨으면 너무 가득 들어마시지를 말고, 아까 준비 호흡을 할 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지만 인자 본(本) 호흡, 단전 호흡에 들어가서는 배가 터지도록 들어마시면 안된다 그말이여.

8부쯤만 들어마셔. 더 들어마실수 있지마는 8부쯤만 스르르르 들어마셔 가지고, 8부쯤 들어마신 상태에서 약 3초 동안을 머물러.
딱 정지한 상태에서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는데 내쉼에 따라서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이렇게 홀쪽해지도록.

그 홀쪽해지기 시작할 때 그때 ‘이뭣고~?’ 속으로 그렇게 하면서 숨을 내쉬는 거여.

이것은 아주 초보자를 위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보자는 이러한 방법을 써서 하면 단전 호흡과 화두가 함께 되어 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지어 들어가면 머지않아서 단전 호흡도 잘되고, ‘단전 호흡했다’하면 화두도 거기에 붙여서 함께 잘되어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가 익숙해진 사람은 숨을 들어마시거나, 내쉬거나, 밥을 먹거나, 옷을 입거나, 그까짓것도 구애 없이 항시 화두의 의단(疑團)이 항시 목전(目前)에 상주해서, 눈앞에 항시 나타나서 일여(一如)하겠지만, 처음 한 사람은 ‘이뭣고?’해도, 금방 ‘이뭣고?’한 사이에 생각은 동쪽으로 서쪽으로 왔다갔다 하고, 어렸을 때로 날아갔다, 집으로 날아갔다, 야단이거든. 그러다 보면 화두를 놓쳐 버린다.

그래서 다시 또 챙길라면은 힘이 들거든. 그러다 억지로 ‘이뭣고?’ ‘이뭣고?’하다 보면은 모가지만 뻣뻣해 가지고 골만 빠개질라고 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도 안되고, 아! 이러니 할려고 마음은 내는데, 할려고 하면은 잘 안되니 그거 어떻게 하냐?
그래서 과거에 도인(道人)들이 여러 가지로 다 경험을 해 보고 연구를 한 결과 이 단전 호흡을 겸해서 하도록 이렇게 모다 지도를 해 오셨다 그말이여.
그래서 지금 오늘 유독 결제날이기 때문에 단전 호흡하는 법과 화두 드는 법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벌써 넘어서 배가 고파 죽겠는데, 고만 했으면’ 이러시겠지만 굶어서 돌아가시지를 않습니다. 조금 배가 고파야 말이 들어가지 잔뜩 먹고 쌕쌕거리게 되면은 졸음만 오지, 법문이 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금 시장한 다음에 잡숴야 밥이 맛이 있습니다.

숨을 들어마셨다가 3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하면서 내쉬는데, 숨을 들어마실 때 어떻게 들어마시냐 하면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가 불룩하도록 이렇게 하지를 말고, 물론 코로는 들어가겠지만, 우리의 기분으로는 저 궁둥이 뒤에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가 이렇게 볼록해지도록 그런 기분으로 들어마시고,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머물렀다 내쉴 때는 코로 내쉰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내쉴 때도 저리 뒤로 해서—궁둥이 뒤로 해서 저 뒤로 쑤욱 내보낸다는 그런 기분으로 내쉬어 보시라 그말이여.
저 뒤에서 쑤욱 들어마셨다, 들어마신 호흡을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내쉴 때는 저 뒤로 쑤욱 배꼽을 뒤로 잡어당기면서 뒤로 내쉬는 거여.

그런데 절대로 무리하게 억지로 하지를 말어. 너무 억지로 해 가지고는 그냥 한 두어 번만 하면 숨이 가쁘게 이렇게 하시다가 ‘아이고! 그거 되서 못하겠다'고 그러는데 그렇게 하시는 게 아니예요.

아주 수월하게—들어마시는데 3초 걸리고, 3초 머물렀다가 내쉴 때는 한 4~5초 걸리게 조용하게 내쉬고, 이렇게 들어마셨다 내쉬었다 하는 거기에다가 ‘이뭣고~?’하는 알 수 없는 의단을 거기다가—배꼽밑에 배가 나왔다가 들어갔다 하는 거기다가 관심을 두고서 화두를 거각(擧却)해 보시라 그말이여.

백 명이면 백 명, 몸도 차츰 건강해지고 가벼워지고 골치 아픈 병이 있는 사람도 그렇게 하면 병이 낫거든. 가슴이 답답한 증세가 있는 사람도 그게 낫고, 집안에서 무슨 일로 속이 상해서 가슴앓이 속병이 있는 사람도 이것을 하면 그 병이 낫는다 그말이여.

이것을 하면서 화두까지 거기다 겸해서 하면은 결정코 깨달음까지 이르른다 이말이여. 화두는 아니하고 밤낮 고것만 하고 있으면 그것은 병을 고치는 데에는 효과가 있지만 그래 갖고는 그건 깨닫지는 못하는 것이여.

거기에다 화두를 꼭 붙여 가지고 의단이 독로(獨露)하도록, 의단이 순일무잡(純一無雜)하도록 그렇게 해 나가면 몸도 건강하고 마침내는 깨달음에까지 이르른다. 이것이 바로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다.

이렇게 해 나가면 선방에 방부(房付)를 들이지 아니하고 가정에서도 아침 저녁으로 그렇게 하시고 낮에도 시간 있는 대로 그렇게 하시고,

이 공부는 꼭 앉어서만 하는 게 아니라 일하면서, 말하면서, 걸어가면서, 차 타면서, 행주좌와간에 할 수 있는 것이라, 오늘 백일기도에 동참하시고 또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은 모두가 다 이 세등선원에 방부를 들인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다못 장소가 형편상 이 세등선원일 수도 있고, 또 보문사일 수도 있고, 군산일 수도 있고, 또 시내일 수도 있고, 조치원일 수도 있고, 청주일 수도 있고, 서울일 수도 있습니다.

장소야 어디건 그거 상관이 없어. 한 생각 딱! 챙겨 가지고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선방(禪房)이여. 선불장(選佛場)이여.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있는 선방이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한 생각 한 생각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말고, 한 생각 일어나는 그자리에서 숨을 스르르르 들어마셔 가지고 ‘이뭣고?’ 이렇게 단속해 나가. 업장(業障)이 거기에서 봄눈 녹듯이 녹아 없어져. 업장이 녹아지면은 소원성취는 거기에 있거든.(60분26초~80분55초)





(2)------------------

내가 그전에는 얼굴이 아주 시커먼 사람인데, 아! 30년을 참선을 하니까, 내 얼굴보고 검다고 하지 않는다 그말이여.
성질이 아주 불같아 가지고 신경질을 잘내기로 아주 유명하고, 고집이 센 사람인데, 아! 참선을 했더니 나 보고 마음보 고약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 별로 없다.

여러분 가운데도 얼굴이 검어서 고민인 사람, 얼굴에 무엇이 많이 나서 고민인 사람, 또 신경질을 많이 내고 고집이 세다고 욕을 먹고 그러한 평판이 있는 분, 오장육부에 병이 많은—내가 또 병주머니여서 학교를 다닐 때는 1년에 한 달 내지 두 달은 꼭 결석을 했다.

그런데 출가해 가지고 참선을 하니까, 사람들이 나보고 대단히 건강하다고 그런는데, 내가 별로 약도 많이 먹지도 않고, 병원에 가기를 그렇게 죽기보다 더 싫어한 사람이어서 병원에 잘 안 가고 그러는데, 참선을 해서 이렇게 몸도 건강해 진 것 같어.

여러분들도 참선을 열심히 하시고, 제가 금방 이 시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의식주 문제라든지, 일상 생활 속에서 화두를 단속하는 이러한 법을 명심을 해서 실천에 옮기신다면 얼굴도 예뻐질 것이고 오장육부의 병도 다 나아질 것이고,
성격이 고약하다고 평판이 있는 시어머니, 며느리, 스승, 상좌 할 것 없이 다 불보살과 같이—나는 워낙 고약한 사람이라 그렇지, 보통 된 사람이 그만큼 열심히만 하면 틀림없이 금생에 불보살과 같이 될 것을 나는 맹세를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 가지고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아까 몽산 스님한테 책임을 따져야 됩니다. 몽산 스님이 대신 지옥에 간다고 맹세를 하셨거든.
나도 역시 몽산 스님과 똑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 가지고 깨닫지 못한다면 나도 여러분 대신해서 지옥에 간다』고 자신있게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나는 경험을 통해서도 그것을 느꼈고, 이러한 선지식(善知識)들의 법문을 여지없이 믿기 때문에 추호(秋毫)도 나는 의심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이니 오늘 결제일을 기해서 여기에 모이신 출가한 스님네나 마을에 계신 신도 여러분들, 오늘 새로 태어났다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정말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결정코 대도를 성취해 주시기를 간곡(懇曲)히 부탁을 드리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수설운산천만사(雖說雲山千萬事)라도  해천명월본무언(海天明月本無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구름 일어나듯이, 산에 구름 일어나듯이 한도 없이 끝도 없이 천 가지, 만 가지 말을 이렇게 말을 한다 하더라도 저 바다 위에 떠있는 밝은 달은 원래로 말이 없느니라.

마지막 한마디는 끝내 여러분에게 드리지를 못합니다. 이 주장자에게 맡기고 내려갑니다.(80분56초~86분14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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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도(惡道, 惡途) ; 악한 짓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4분 51초)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복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과 무루복이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 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위법(無爲法) ;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dharma) 무위법은 무위의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법·法)를 통칭한다. 또는 그러한 개별 존재(법·法)를 가리킨다.
원래 무위 혹은 무위법은 열반(涅槃)의 다른 명칭.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화주(化主) ; ①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주(主). 부처님를 말함. ②신도들의 집을 돌며 절에 필요한 양식·물건·비용 등의 시물(施物)을 얻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본각(本覺)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어록(語錄) ; 조사어록(祖師語錄).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 예로부터 석취미모(惜取眉毛, 눈썹을 아낄지어다)라고, 경(經)의 뜻을 잘못 해석하여 진리로부터 동떨어진 설법을 하면 미모(眉毛•눈썹)가 빠진다는 말이 전해온다.
그런데 ‘한 물건(一物)’이라 표현하는 진리의 본체는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고 하였으니,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설법을 한다'는 것은 선지식의 중생을 위한 간절한 자비심을 나타내는 뜻이다.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체중현(법문에서) ;

 

체중현(337:2분48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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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2분 48초)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헌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하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할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하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하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체중현(282:2분19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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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 19초)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 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구중현(句中玄)·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체중현(466:2분26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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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❸] 송담스님 법문(No.466)—92년 보살 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2분 26초)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갈라면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체중현(112:2분36초).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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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❹] 송담스님 법문(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에서.(2분 36초)
가끔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 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8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

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 거사(龐居士)의 게송이 아래와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통광 스님 역주 ‘고봉화상선요•어록’ p37,46에서)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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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주머니 ; 갖가지 병이 많은 사람 또는 그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몽산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추호도’, ‘추호의’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간곡히(懇曲- 간절할 간/간절할 곡) ; 간절하고 정성스럽게.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24) 화두드는 법 / 최상승법 /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생사(生死) / 불보살,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다 / 중생심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체(體).

대혜(大慧) 『서장(書狀)』에 보면 공부하다가 어려운 역경계가 나타나는 것이 마장이 붙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한고비 올라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경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생사입니다. 그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사의 연속이 바로 일평생(一平生)이 되고, 그것이 바로 육도윤회(六途輪廻)가 되고, 그것이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이 끊임없이 거듭되는 이 생사의 물결 속에서 바로 생사해탈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그 생각이 슬픈 생각이건, 기쁜 생각이건, 또는 노여운 생각이건, 과거의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일어나는 그 생각을 버릴려고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 생각에서 ‘이뭣고?’하는 것입니다.

 

발심한 사람, 참으로 진발심(眞發心)을 한 사람이라야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고, 선지식을 바로 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하면 그것이 공부인데, 망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부가 안된다고 왜 그러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 ‘안된다’고 생각함으로써 자기로 하여금 ‘공부 안되는 사람’으로 스스로 낙인(烙印)을 찍는 것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떠오르는 그 많은 중생심(衆生心), 번뇌 망상심, 생멸심 그것을 꼭 나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성내는 놈, 슬퍼하는 놈, 기뻐하는 놈, 원망하는 놈, 아퍼하는 놈,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놈, 이것이 전부 다 진여불성으로부터서 일어나는 한 거동이요 모습일진대, 그 거동 그 모습을 버릴려고 할 것이 없어.
바로 그놈을 계기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자기 진여불성을 찾는 가장 가깝고 빠르고 묘하고 간단한 길이다.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놈을 버리고 어떠한 진여불성을 찾아서 깨달으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무량겁을 두고 공부를 한다해도 그 사람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화두 하나만 제대로 들을 줄 알면 그 사람은 갈 곳이 없습니다.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 (세등24)

 

(1) 약 18분.  (2) 약 21분.

 

 

 


(1)------------------

오늘 기미년 삼동(三冬) 결제일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공안법(公案法)—최상승법(最上乘法)에 있어서 공안법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공안법은 이론으로서 따져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공안(公案)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천 칠백 공안이 있습니다.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 칠백 공안인데, 문헌에 오르지 아니한 것을 말하자면 우주법계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전체가 공안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 한 공안, 한 화두(話頭)를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그 한 공안에만 철저하게 실참실수(實參實修) 해 가지고, 한 공안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천 칠백 공안, 무량무수의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그러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최상승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입니다.

뒤에 있는 문을 좀 잠깐 열어서 차운 공기가 들어오게 좀 하십시오. 다들 열어 주세요. 확 열어 주세요.


오늘부터서 석 달 동안 결제(結制)에 들어갑니다.
결제 동안은 부모의 부고(訃告)가 오더라도 그 부고장(訃告狀)을 본인에게 보여주지 아니하고 사무실에 보관해 놓았다가 내년 정월 15일에 해제한 뒤에사 그 부고를 본인에게 전할 만큼, 결제 동안에는 그렇게 규칙이 엄격하게 출입을 금하고 목숨을 바쳐서 정진을 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일단 방부(房付)를 들이면은 그래 가지고 방(榜)을 딱 짜고 정진에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인연을 다 끊고 인사로 왔다갔다하는 것을 다 끊고, 오직 생사대사(生死大事) 하나만을 위해서 대중의 규칙을 자발적으로 지키면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짜면 짠 대로 먹고,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먹고, 맛이 있으면 있는 대로 먹고, 없으면 없는 대로 먹고, 오직 의식주 문제는 인연에다 맽겨.

그리고서 밤 9시부터서 그 이튿날 새벽 3시까지 여섯 시간을 제외하고는 일체 잠을 스스로 허락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9시부터 3시까지 정식으로 잘 수 있는 시간이지마는 그동안에 보면 한 시간이라도 덜 자고 공부하고, 2시간이라도 덜 자고 공부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자는 체하고 누웠다가 가만히 일어나서 10시까지 11시까지 다시 일어나서 혼자 공부하는 분도 있고,

새벽 3시에 일어나는 것이 원칙이지만 2시나, 1시쯤 미리 일어나서 옆의 사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미리 일어나서 공부하는 이도 있고, 이렇게 해서 ‘어쨌든지 금생에 결정코 대도를 성취하리라’ 이러한 결심을 가지고 정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만 그럴 것이 아니라 선원 밖으로 외출하는 것도 ‘시내의 병원에 간다, 무슨 일이 있어서 나간다’ 외출하는 것도, 일주문 밖에 나가는 것도 철저히 옛날에 다 그것을 단속을 했던 것입니다.
시내에 어떠한 신심 있는 단월(檀越)로부터서 공양(供養) 청장(請狀)을 받어도 결제 중에는 가지를 아니 하고,

또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때까지는 대중적으로 특별히 허용될 때를 제외하고는 일체 경전이나 어록(語錄)을 읽고 보고 하는 것도 허락이 되지를 아니했습니다.

9시부터 3시까지 삼경(三更) 외에는 잠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인사로 왕래하는 일체 출입을 금하고, 또 경전 같은 것을 읽고 하는 그런 것도 허락하지 아니하고,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말이 없다시피,
이렇게 철저하게 공부를 해서 3년을 그렇게 해서 만약에 확철대오를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죄로 혀를 빼서 쟁기로 가는 발설여경지옥(拔舌犂耕地獄)에 내가 들어가겠다. 이렇게 몽산(蒙山) 도인께서 맹서를 하셨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한다면 아무리 근기(根機)가 하열(下劣)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3년을 하면 백발백중 공안을 타파해 가지고 견성(見性)을 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증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말씀 가운데에도 화두를 어떻게 들어야 하느냐?
참선이라 하는 것은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화두를 어떻게 드느냐? 오직 그 한 점에 도업(道業)을 성취하고 하지 못하고 한 관건(關鍵)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화두는 이론으로써 교리적으로 따져서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론으로 따져서는 아무리 따져봤자 결론이 없는 것입니다.

설사 자기 나름대로 어떤 결론이 얻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 분별심으로 얻어진 것이라 아무리 묘한 답이 얻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더욱 중생의 번뇌(煩惱) 망상(妄想)만 치성(熾盛)하게 만든 결과일 뿐,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이론으로 따져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따져서 알아맞추는 그러한 참선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이 아닙니다. 그것은 죽은 참선이요, 의리선(義理禪)이요, 그것은 삿된 참선인 것입니다.
차라리 그러한 참선을 할 바에는 관세음보살 또는 아미타불을 열심히 염송(念誦)하는 것만도 못한 것입니다.


‘이 무엇고?’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판치생모(板齒生毛),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판치생모 화두를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를 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가운데 계신 분 가운데에는 조실 스님으로부터 판치생모 화두를 받으신 분이 계실 줄 생각합니다마는 그분은 천하없는 누가 뭐라 해도 끝까지 그 판치생모 화두를 가지고 공부를 하셔야 할 것이고,
또 시삼마(是甚麽) ‘이 무엇고?’ 시삼마 화두를 하신 분은 시삼마 화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하신 분은 정전백수자, 조주의 무(無)자 화두를 하신 분은 조주 무자, 어느 화두를 하던 간에 상관이 없습니다.

무자 화두가 더 좋고, 판치생모가 더 좋고, 시삼마가 더 좋고, 그 공안 자체에 있어서 더 좋고 나쁘고 한 것은 없어.

다못 문제는 자기가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철저히 믿어지는 선지식, 바로 깨달라서 선지식의 인가(印可)를 받은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그 화두를 받기만 했다면 천칠백 화두 가운데의 어느 화두를 타 가지고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어느 화두건 처음부터 한결같이 잘 들리는 화두는 없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잘 들린 듯하다가 얼마 안가서 그렇게 잘 들리지를 아니하고 애를 먹고 그러다가, 그 고비를 잘 넘기면서 공부를 지어가면 또 한결 수월하게 되다가, 그렇게 수월하게 계속 잘되어 갔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얼마동안 가다가 뚝 변해 가지고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고, 몸이 뒤틀리고 시간이 지루하고 도저히 앉어서 참을 수가 없고, 공부가 더 이상 공부를 지속할 수 없을 만큼 그러한 역경계(逆境界)가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부에 마장(魔障)이 붙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분이 있지만, 대혜(大慧) 『서장(書狀)』에 보면 이러한 어려운 경계가 마장이 붙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한고비 올라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경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다가 그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뒤틀리고, 머리가 멍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앉았을 수도 없고 섰을 수도 없고, 화두를 놓을 수도 없고 들 수도 없고, 이렇게 답답하고 어려운 경계에 도달하거든 조금도 걱정을 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자포자기를 하지 말고, 이것이야말로 앞으로 내가 한 걸음 공부가 나아가기 위한 그러한 중대한 지점에 도달했다고 하는 것을 명심을 하고,

그런 때에는 가만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가지고 20미터나 30미터, 일직선으로 코스를 딱 정해놓고서 왔다갔다 한 5분 내지 10분을 하면 저절로 머리가 시원해지고 가슴이 후련해지면서 화두가 성성(惺惺)하게 들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또 자리에 가만히 와서 앉아가지고 허리를 쭈욱 펴고서 성성하게 그리고 적적(寂寂)하게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잘 그 마음을 써 가지고 지혜롭게 그 고비를 넘기면 그 다음에는 한결 공부가 수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라 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것이 없고, 오직 한 생각—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한—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오직 그 한 가지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생사대사, 생사대사, 생사해탈(生死解脫), 경전에나 조사(祖師) 법문에 생사해탈 문제가 대단히 거론됩니다마는 대관절 그 생사(生死)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한 생각 일어나는 것’ 그것이 생(生)이요, ‘일어났던 그 한 생각이 없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음인 것입니다. 생사. 생멸(生滅).

그래서 우리는 ‘부모한테 몸뚱이를 받아났을 때 그것이 생(生)이고, 한평생 살다 죽은 것이 그것이 사(死)’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마는 이 몸뚱이를 표준 할 때는 그렇지만,

우리는 이 몸뚱이를 표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나’ ‘아무개야!’하고 부르면 ‘예’하고 대답하는 그놈, 지금 입을 벌리고 이렇게 말하고 있는 그놈, 이렇게 하는 말을 들을 줄 아는 그놈, 그것에다 기준을 두고 생각해야 합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루 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그것이 바로 생사인 것입니다.


고개를 들고 산승(山僧)의 얼굴을 보십시오. 고개를 숙이고 경건하게 듣는 것도 좋지만, 고개를 숙이고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르르르 잠이 와서, 졸면서 잠을 자면 이것 재미가 없습니다.
눈을 딱 뜨고, 말을 하고 있는 저의 얼굴을 보면서 들어야 훨씬 더 잘 들리는 것입니다. 보기가 싫게 생겼지만 이 시간에는 불가불 좀 봐 주시길 바라겠습니다.(5분17초~23분16초)




(2)------------------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생사입니다.
그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사의 연속이 바로 일평생(一平生)이 되고, 그것이 바로 육도윤회(六途輪廻)가 되고, 그것이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계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무엇이든지 어떠한 물건이 이루어지면 한동안 머물러 있다가 그것이 파괴가 되어 가지고 나중에는 없어집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해도 그렇고, 달도 그렇고, 별도 그렇고, 이 지구도 그렇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지 것도 영원불멸한 것은 없습니다. 다 성주괴공(成住壞空)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습니다. 어머니한테 태어났다가 한 살 두 살 먹다 보면은 늙고, 늙으면 죽습니다. 죽으면 10분이 못 가서 10분 뒤부터서는 오장육부가 버글버글버글 썩기 시작해 가지고 결국은 화장(火葬)을 하거나, 땅에다 묻는다 하더라도 한줌 흙이 되고 없어져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 몸뚱이는 생로병사가 있고, 우리의 마음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습니다.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잠시 그 생각이 머물러 있다가, 다른 생각으로 변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 생각이 꺼져버립니다. 꺼지자마자 또 새로운 딴 생각이 일어났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또 다른 생각으로 발전해 가지고 결국은 또 그 생각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하기를 무량겁을 해 내려왔습니다.

이 몸뚱이 태어나 가지고 오늘날까지도 그 우리의 생각에 생주이멸, 생주이멸, 생주이멸, 생주이멸이 거듭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생사요, 그것이 앞으로 영겁을 두고 육도윤회 할 근원을 장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염기염멸(念起念滅), 바로 그 생사 속에서 생사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은 길이 있습니다.

생사 속에 나를 맡겨버리면 결국은 나도 생사의 물결 속에 무량겁을 두고 윤회하는 떠돌이 신세를 면치를 못할 것이고, 이 끊임없이 거듭되는 이 생사의 물결 속에서 바로 생사해탈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그 생각이 슬픈 생각이건, 기쁜 생각이건, 또는 어떠한 노여운 생각이건, 과거의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일어나는 그 생각을 버릴려고 하지 말고, 없앨려고 하지 말고,
한 생각이 일어났다—여기 앉아서 지금 딸 생각이 났다. 「딸이 지금 잘 있나?」 「애기가 잘 컸나?」 그런 생각이 났다 할 때에—「아! 내가 쓸 데 없는 생각을 했구나」 그런 생각도 하지 말고, 그 생각이 났을 때 ‘이뭣고?’

무엇이 금방 그 딸 생각을 했나? 이거여. 이 딸 생각하는 이놈이 뭣고?

과거에 어떤 친구로부터 배반을 당해서 불현듯 그 생각이 나 가지고 속에서 화가 탁! 치밀어 오를 때, 바로 그 생각을 버리지 말고 그 생각에서 ‘이뭣고?’

이것이 바로 생사 속에서 생사를 해탈하는 아주 묘한 그리고 간단한 방법인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단속하는 사람은 망상이 일어난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망상(妄想)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바로 화두를 들기 때문에 그 망상은 바로 그것이 선지식의 한 법문이요, 경책(警策)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선지식 또는 부처님 또는 관세음보살 하면 32상(三十二相)과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추어서 아주 우리가 법당에 모셔진, 탱화(幀畵)에 그려진 그러한 모습으로 계실 줄 생각하지만 마냥 그렇지를 않습니다.

불보살(佛菩薩)은 천백억 화신(千百億化身)을 나투는 것입니다.

때로는 비구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여자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장자(長者)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거지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강도 도둑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문둥이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철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시어머니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며느리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남편으로 나투기도 하고, 때로는 아내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로 나타나기도 하고, 친구로 나타나서 신의를 지키는 그러한 친구로만 나투는 게 아니라 배반 배신하는 그런 친구로도 나타나고,
아내로 나타나면 아주 현모양처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아주 고약한 악처(惡妻)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좋은 남편으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외도를 일삼는 천하의 색마(色魔)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어떻게 내 마음에 꼭 맞는 그러한 선지식으로만 나타난다면 그 참 그런 좋을 수가 없겠지마는, 불보살은 중생을 하루라도 더 빨리 생사해탈을 하게 하기 위해서 너무나도 자비가 크신 까닭으로 해서 천백억 화신으로 역경계(逆境界) 순경계(順境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발심한 사람, 참으로 진발심(眞發心)을 한 사람이라야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고, 선지식을 바로 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발심을 못한 사람은 선지식을 노상 코앞에 모시고 있으면서, 한 자리에 불보살을 모시고 살면서도 선지식을 알아보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식이 누군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다시 더 분명히 말하자면 『불보살 아닌 사람이 없고, 불보살 아닌 것이 없고,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기가 발심을 했느냐, 못했느냐? 진발심을 했느냐, 못했느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이지, 행여나 선지식이 없을까 걱정할 것 없고, 불보살을 만나지 못할까 근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부터서라도 댁에 가시거든 남편이 나한테 잘해 주건 못해 주건, 며느리가 자기한테 효도를 하건 말건, 시어머니가 자기에게 잘해 주시건 안해 주시건, ‘바로 저분이 선지식이다. 저분이 바로 불보살 화현(化現)으로 나타난 분이다’ 이리 생각하고,

오히려 더 시어머니가 자기한테 잘못할수록에 발심을 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잘못할수록에 더욱 발심을 하고, 사돈이 자기한테 섭섭하게 할수록 자기는 더 발심을 해서,
이렇게 마음을 쓰고, 이렇게 말을 하고, 이렇게 행동에 옮긴다면 거기에서 자기의 과거에 어떠한 두터운 업장이라도 거기에서 다 소멸이 될 것이고, 업장소멸(業障消滅)하면 소원성취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소원을 성취하지 못한 것은 업장이 가로막기 때문에 성취를 못하는 것이니까, 업장만 소멸한다고 하면은 소원성취는 바로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거기에서 성취하는 것입니다.

3일 기도를 한다든지 7일 기도를 한다든지 또는 백일기도(百日祈禱)나 천일기도(千日祈禱), 만일기도(萬日祈禱) 이렇게 합니다마는, 어째서 그렇게 사람에 따라서는 3일 기도를 하고도 소원을 성취를 하고, 백일기도를 하고도 성취를 하고, 만일기도를 하고도 성취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째서 빨리하는 사람도 있고, 더디하는 사람도 있냐?’하면은 업장이 얼마만큼 소멸이 되었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3일 기도만 하고도 마음이 맑아져서 불보살의 마음과 같이만 된다면 3일에도 소원을 성취해.

한번 가서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향 하나를 올리고 절을 하고, 청수(淸水) 한 그릇을 올리고 간절히 절하고 와서 그리고서 소원을 성취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 간절히 향 하나 올리고, 물 한 그릇 올리고 소원을 할 때 그 마음, 부처님 마음과 하나가 된다면 절 한 자리 하는 사이에도 소원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우리의 마음이 맑고 깨끗해지는 것은 꼭 오랜 시간만이 걸려야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어째서 조주는 무(無)라고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생각생각마다 들고 또 들고, 앉거나 서거나 누웠거나 걸어다니거나 차를 탈 때나 행주좌와 어묵동정을 가리지 말고,
속이 상할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일을 할 때나, 누구와 이야기를 하는 그 사이도, 밥을 먹을 때나, 똥을 눌 때나, 소지를 하거나, 밥을 짓거나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 때라고 ‘이뭣고?’

‘하! 공부가 안된다’고, 공부가 안된다고 하는 생각이 그것이 자기로 하여금 공부가 안되게 하는 것이여.

“어째서 안되냐? 무엇을 안된다고 하느냐?”
“망상이 일어나서 안됩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하면 그것이 공부인데, 망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부가 안된다고 왜 그러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 ‘안된다’고 생각함으로써 자기로 하여금 ‘공부 안되는 사람’으로 스스로 낙인(烙印)을 찍는 것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화두를 타 가지고 바로 그때부터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가지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공부가 된다면 어찌 일주일을 넘을 필요가 있느냐.

무량겁(無量劫)으로 지어온 자기의 업(業)이 산과 같고, 바다와 같기 때문에 번뇌와 망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고, 체질화가 되어 가지고 가만히 있어도 별별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누구를 원망할 것이냐.
떠오르는 그 많은 중생심(衆生心), 번뇌 망상심, 생멸심 그것을 꼭 나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진여불성은 모양도 없고, 냄새도 없고, 빛깔도 없고, 그래서 무어라 표현할 수도 없고, 눈으로 볼라야 볼 수도 없고, 코로 냄새 맡을 수도 없고,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지마는, 그놈이 너무나도 신령스럽고 신기하고 묘한 것이라, 때와 인연 따라서 천만 가지 모습으로 천만 가지 빛깔로 그놈이 활동을 하게 됩니다.

때로는 불보살과 같이 착한 마음을 내기도 하고, 때로는 살인강도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천하의 대학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천하의 역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 얼마나 미묘하고 신령스러운 것이라 그렇게 천만 가지 모습으로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성내는 놈, 슬퍼하는 놈, 기뻐하는 놈, 원망하는 놈, 아퍼하는 놈,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놈, 이것이 전부 다 진여불성으로부터서 일어나는 한 거동이요 모습일진대, 그 거동 그 모습을 버릴려고 할 것이 없어.

바로 그놈을 계기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자기 진여불성을 찾는 가장 가깝고 빠르고 묘하고 간단한 길이다.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놈을 버리고 어떠한 진여불성을 찾아서 깨달으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무량겁을 두고 공부를 한다해도 그 사람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생심은 그것이 바로 대승법,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체(體)다. 그 중생심, 번뇌 망상심 그것 때문에 육도(六途)를 윤회한다고 아까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그것 때문에 우리는 성불(成佛)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그 번뇌 망상이 우리에게는 원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큰 은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최상승 활구참선, 이 정법을 믿고 공부한 사람에게는 그 번뇌 망상이 바로 불보살의 손이요, 불보살이 보내주신 반야용선(般若龍船)이지만,
정법을 믿지 않고 활구참선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중생심, 번뇌 망상심 이것이 큰 원수요, 나를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끌고 가는 원수요 도적놈이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이 육적(六賊)이라, 여섯 도적놈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거기에다 두고 하는 말이다.

한 생각 정법을 믿으면 여섯 도적놈이 바로 6대보살(六大菩薩)이여. 나를 극락세계로 불국세계로 인도하기 위해서 반야용선을 가지고 나를 영접하러 온 보살화신이고,
정법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여섯 도적놈이 되어 가지고 눈으로 귀로 코로 귀로 입으로 몸으로 생각으로 여섯 문을 통해서 기회만 있으면 지옥으로 끌고갈려고 엿보고 있다 그말이여.

이러한 최상승법, 활구참선법.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어렵지만 인간으로 태어나가지고 어떻게 해서 이러한 묘한 최상승법을 우리는 만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 나도 희유하고 감사하고 다행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다행한 마음으로 한 생각 한 생각을 ‘이뭣고?’로 돌려서 슬픔도 그놈으로 이겨내고, 노여움도 이 ‘이뭣고?’로 이겨내고, 괴로움도 이 ‘이뭣고?’로 이겨내고, 이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물어볼 것도 없이 결정코 금생에 자아를 자각, 대도를 성취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몽산 큰스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렇게 간절히 3년을 해봐라.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성취를 못하면 내가 네 대신 무간지옥에 가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결제일이기 때문에 조실 스님의 법문도 이 화두, 공안에 대한 법문을 추려서 들었고, 또 산승도 이 공안에 대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하는 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두 하나만 제대로 들을 줄 알면 그 사람은 갈 곳이 없습니다.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23분17초~44분2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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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

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실참실수(實參實修) ; 실답게 참구(參究)하고 실답게 수행하는 것. 공안(화두)을 이론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닌 선지식의 지도 아래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을 말한다.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것.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 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부고(訃告 부고 고,알릴 고) ; 어떤 사람의 죽음을 연고자에게 알림. 또는 그러한 글.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방(榜) ; 용상방(龍象榜)을 말함.
[참고]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 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할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한 것이다.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의 큰 일.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큰 일.
*단월(檀越) ; 시주(施主). dana-pati 의 음역.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공양(供養) 청장(請狀) ; 공양 청첩장. 재가신도가 스님들께 공양(식사)을 드리기 위하여 초청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어록(語錄) ; 조사어록(祖師語錄).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발설여경지옥(拔舌犂耕地獄) ; 또는 발설이경지옥(拔舌犂耕地獄). 犂(밭 갈 리, 밭 갈 려).
사람의 혀를 길게 빼 늘여 놓고, 그 혓바닥을 소 쟁기로 쟁기질을 하는 지옥.
*몽산(蒙山)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하열(下劣 아래 하/못할·낮을 렬) ; (행동이나 생각이) 남보다 뒤떨어짐. 수준이 낮음.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만 말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관건(關鍵 빗장 관,열쇠 건) ; 어떤 일의 성패나 추이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나 요인.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치성(熾盛 성할 치,성할 성) ; 불길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성하게 일어남.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염송(念誦 생각 념,욀 송) ;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생각하고 불경(佛經)이나 진언(眞言) 등을 외움.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대혜(大慧) 스님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62()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역설하였다.

*한고비 ; 어떤 일의 진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어려운 단계나 국면.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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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경책(警策 깨우칠 경,채찍 책) ; 타이르고 채찍질하여 깨우치게 하는 것.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탱화(幀畵) ; 부처님, 보살, 성현들을 그려서 벽에 거는 그림. '탱(幀)'이라고도 한다.
*화신(化身) ;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法身•報身•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변화신(變化身)•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
*악처(惡妻) ; 성품이나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사나운 아내.
*색마(色魔) ; 성행위나 성관계 따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사람을 마귀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낙인(烙印 지질 락,도장 인) ; ①다시 씻기 어려운 부끄럽고 욕된 평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불에 달구어 찍는 쇠붙이로 만든 도장.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 진여(眞如)를 가르켜 말함. 진여의 실체.
진여가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섭한 것을 대(大)라 하고, 일미 평등(一味平等)하여 차별의 모양을 여읜 것을 총상(總相), 수행하는 이의 모범이 되는 것을 법(法), 관하는 지혜가 드나드는 것을 문(門)이라 한다.
*반야용선(般若龍船) ;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반야(船若, 지혜)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건네 주는 반야바라밀의 배[船]를 말한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 (목적)2015. 3. 5. 14:51

 

 

 

§(세등10) 화두는 삼재소멸 부적 / 죽은 참선과 산 참선 / 소무공덕(小無功德) / 참선은 ‘내가 나를 깨닫는 길’ / 참선 외에는 다 소무공덕 / 복(福)과 혜(慧) 쌍으로 닦아야.

 

‘이뭣고~?’하는 골똘한 그리고 간절한 의심의 뭉침이 없다고 하면은 아무리 입으로 ‘이뭣고’를 백 번 천 번을 해도 그것은 입 껍데기로만 하는 것이지, 옳게 화두를 관(觀)할 줄을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삼재의 원인을 소멸하고, 앞으로 삼재를 물리치고 받지 않게 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화두 하나만을 옳게 듣고 옳게 지어 나간다면 삼재, 무량겁 죄업(罪業)도 거기에서 녹아지는 것이며, 사백사병, 팔만사천 마구니도 이 화두 앞에는 머리를 싸매고 도망가거나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지마는 한마디로 요약하면은 ‘니가 너를 깨달어라!’ ‘너의 참마음을 깨달어라’ 이 말씀 외에는 딴 말씀이 없습니다.

 

불교(佛敎)의 ‘불(佛)’자는 인도의 ‘붓다(Buddha)’라 하는 말을 중국에서 ‘불타(佛陀)’라고 음사(音寫)를 해서, 그것이 불타(佛陀)가 한국에서는 ‘부텨, 부텨님, 부텨님’하다가 지금은 ‘부처님’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라고 하는 것은 ‘깨달음’, ‘부처님’하면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닫는 길이다, 깨닫는 가르침이다’ 이런 말씀이여. 그래서 「불교를 믿는다, 부처님 신도(徒)가 된다」고 하면은 「깨닫기 위한 수행」 이외에는 아무것도 다른 것은 다 껍데기입니다.

깨닫기 위한, 나를 깨닫기 위한 참선, 이것 말고 다른 어떠한 훌륭한 일을 하고 어떠한 남의 이목을 끄는 그러한 일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소무공덕(小無功德)’인 것이여.

 

「내가 나를 깨닫는 참선법」 이것이야말로 무량겁을 두고 윤회할 생사의 근원을 끊는 것이여.

 

복(福)과 혜(慧) 두 가지를 쌍으로 닦아야만 내가 도(道)를 닦아가는 데에 장애가 없는 것이고, 도를 성취한 뒤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데에 장애가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10)—병진년 동안거 해제 법어(77.1.17)에서. (세등10)

 

 

(1) 약 21분.

 

(2) 약 10분.

 

(1)------------------

 

참선(參禪)은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것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얼마만큼 철저히 발심(發心)을 해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일념 단속(團束)을 철저히 하느냐 못하느냐 여기에 달려 있을 뿐인 것입니다.

 

출가해서 10년, 20년, 30년을 ‘이뭣고?’를 하고 선방(禪房)에 다니시면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참선을 해도, 나를 깨닫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는 그런 스님들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심성(心性)도 얌전하고 인자하고, 행동도 바르고 깨끗하고, 철저히 참선할라고 그렇게 애를 쓰면서도 10년, 20년, 30년이 되도록 나를 깨닫지 못한 원인이 무엇이냐? 

 

문제는 화두(話頭), 화두를 어떻게 단속해서... (녹음 끊김)... 마음의 눈을 닦느냐?

이러한 구체적인 곳에 들어가서 자기의 정진을 지어 나갈 줄 모르기 때문에 ‘이뭣고 이뭣고’ 입으로만 관세음보살 부르듯이 ‘이뭣고’를 천만 번을 찾아 봤자,

 

그 ‘이뭣고~?’하는 골똘한 그리고 간절한 의심의 뭉침이 없다고 하면은 아무리 입으로 ‘이뭣고’를 백 번 천 번을 해도 그것은 입 껍데기로만 하는 것이지, 옳게 화두를 관(觀)할 줄을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금년은 해·묘·미(亥·卯·未), 돼지띠, 토끼띠, 염소띠 이 세 가지 띠를 가진 사람이 삼재(三災)를 맞는 해입니다.

 

인천 용화사에 신도들이 많이 와 가지고 금년에 삼재가 들었는데 어떻게 해야 이 삼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 가지고 입춘일을 기해서 보통 평상시 오시는 신도 보다도 훨씬 많은 신도들이 와 가지고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불공(佛供)을 올리고 기도를 하고 그리고서 삼재 면하는 부작(作)을 달라고 모다 그럼니다.

 

그러나 다른 절에서는 많이 부작을 모다 찍고 마련해서 나눠 드리기도 하는 절이 많은 모양입니다마는 인천에서는 그러헌 종이로 이루어진 부적(籍)을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전에 조실 스님 계실 때부터서 그런 것을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부적을 드린 것도 신도의 업장(業障)을 소멸(消滅)하고 나아가서 정법(正法)에 발심해서 복과 혜를 닦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方便)이 되는 것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지마는 용화사에서는 그러헌 종이로 된 부적을 나눠 드리지 안했습니다.

 

그리고서 삼재 소멸하는 기도는 조실 스님의 법문을 열심히 듣는 것으로서 삼재 소멸하는 불공 기도를 삼고,

또 앞으로 3년 동안 삼재 액난(難)이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부적은 무엇으로서 드렸느냐 하면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의 화두를 분명히 일러 드렸습니다.

 

이 화두 하나만을 옳게 듣고 옳게 지어 나간다고 하면은 삼재 뿐만이 아니라 무량겁(無量劫) 죄업(罪業)도 거기에서 녹아지는 것이며, 사백사병(四百四病), 팔만사천 마구니도 이 화두 앞에는 머리를 싸매고 도망가거나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삼재는 저 밖에서 뿔 돋친 귀신이 나한테 달라드는 것도 아닌 것이고, 무슨 대가리만 있고 아랫도리는 없는 이상스럽게 생긴 더벅머리가 나한테 달라드는 것도 아닙니다.

 

「삼재는 어디서부터 일어나느냐」 하면은 내 마음으로부터 좇아 일어나는 것이여.

 

설사 병고(病苦)라든지 손재(財)라든지 또는 생명을 잃는다든지 또는 관재구설(舌)이라 하드라도 그것이 전부 과거에 내가 마음으로 지은 그 죄의 원인으로 해서 금생에 받는 것이고, 금생에 내가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한 생각을 단속을 못함으로서 그것이 악한 행동으로 나타났을 때 그것이 앞으로 받을 삼재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지은 삼재의 원인을 소멸하고, 앞으로 삼재를 물리치고 받지 않게 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죄를 지을 수 있는 근원을 다스린다’고 하면은 이 방법 이상 더 좋은 삼재소멸 기도는 없는 것이며, 삼재소멸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부적은 없는 것입니다.

 

 

참선, 참선, 요새 굉장히 승속을 막론하고 외국에까지도 이 참선의 붐이 일어나 가지고 입으로는 아니하는 사람이 없고 말로는 이 참선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참선에는 크게 나눠서 두 가지를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구(死句) 참선—죽은 참선 또 하나는 활구(活句) 참선—산 참선, ‘죽은 참선’과 ‘산 참선’이 있습니다.

 

‘죽은 참선’은 아무리 해봤자 점점 삼재를 불러 일으키고 팔만사천 마구니를 점점 충동이 쳐 가지고 마구니의 권속으로 떨어져 가지고 저 죽고 남 죽이고 불법(佛法)을 망하는 마구니로 떨어지는 길이고,

‘산 참선’—활구(活句) 참선을 해야만 나를 생사로부터 건져내고 다른 사람을 생사의 윤회로부터 건져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영원히 이어 나가는 대도(大道)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죽은 참선’이냐?

이론으로 따져 들어가고, 교리로 따져 들어가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이렇게 자꾸 따져 들어가고 알아 들어가고 더듬어 들어가는, 그리고 차츰차츰 알아지는 것이 있어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무엇이 보이는 것이 있고 이러한 참선은 이것이 바로 ‘죽은 참선’—죽음으로 들어가는 생사윤회로 떨어지는 참선입니다.

 

제가 아무리 경을 많이 읽고 교리에 무불통지(知)하고 일체 철학·문학·과학 그런 학문에 맥힘이 없다 하드라도 어디까지나 그것은 지식이요, 지식은 중생심(衆生心)으로 알아 들어가는 것이요 중생심으로 전해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알았다 해도 그것은 중생심 안에서 있는 일입니다.

많이 알수록 중생심만 더욱 치성(盛)하게 만드는 까닭으로 해서—중생심이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여—생사심을 치성하게 하므로서 생사윤회에 떨어진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인 일에 속하는 것입니다.

 

활구 참선은 알아 들어가고 따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지식이나 교리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에 자기가 보고 듣고 알고 연구해서 얻어져 갖고 있는 모든 지식과 상식, 그러한 것을 깨끗이 버려야 합니다.

그러한 것을 동원를 해 가지고 그러한 것으로 더듬어 들어간다면은 그것은 활구참선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

반드시 믿을 수 있는 그리고 내가 믿어지는 선각자(先覺者)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아서 공부를 시작해야 하고, 공부를 진행해 나가야 하고, 공부를 마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마 스님께서 혈맥론(血脈論)에 말씀하시기를 「도를 닦고자 할진대는 먼저 바른 스승을 찾아라」

 

달마 스님은 인도에서 향지국(國)이라고 하는 나라의 제3 왕자로 태어난 분으로 일찍이 출가해서 대도를 성취해 가지고 140세가 되도록 서인도 천지을 다니시면서 대법(大法)을 선양을 하시다가 인연이 중국에 있는 것을 짐작을 하시고 말년에 중국으로 건너오셨습니다.

 

중국에 건너오셔 가지고 맨 처음에 양무제(梁武帝)라고 하는 천자(天子)가 불교에 신심이 장하다는 말씀을 듣고 양무제를 찾아가 면회를 했습니다.

 

양무제가 달마대사를 향해서 묻기를 “짐(朕)이 많은 경을 인쇄해서 널리 보시를 하고, 많은 절을 짓고 많은 승려들을 득도를 해서 절을 짓고 탑을 많이 세우고 했으니 짐의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

달마대사가 대답하기를 “소무공덕(小無功德)입니다. 조끔도 공덕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가장 성스러운 뜻입니까?”

“확연(廓然)해서 조끔도 성스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은 짐 앞에 서 있는 당신은 누구요?”

“모르겠습니다[不識]”

 

이렇게 대화가 오고 감으로 해서 달마대사는 양무제로부터 푸대접을 받고 그 길로 물러나와서 위(魏)나라 숭산에 소림굴(少林窟)에 들어가서 9년 동안을 사람을 상대하지 아니하고 면벽관심(面壁觀心)을 했습니다.

 

양무제는 그 뒤 훌륭한 의인으로부터서 “대관절 그 왔다간 달마대사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요?”

“그이는 불(佛) 후신(後身)으로서 생불(生佛)과 같은 어른으로 부처님의 심법(心法)을 이어받은 대도사입니다.”

“하 그러냐고, 그러면 그이를 다시 모셔 오도록 하자”

“아닙니다. 그이는 천하의 사람이 다 가서 청한다 해도 그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리해서 양무제는 정말 자기가 그런 대도사를 알아보지 못하고 푸대접한 것을 깊이 뉘우치고 그 뒤로 부터서는 정말 마음으로부터 달마대사를 숭배하고 존경해 마지않았던 것입니다.

 

드디어 달마대사는 그러한 천자의 귀위(歸依)를 받고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마는 그것을 시기하는 다른 율사의 무리들의 무고로 인해서 독약을 여섯 번이나 받았으나 번번이 토해 버림으로서 죽음을 면했습니다.

일곱 번째 독약이 또 왔습니다. 그때는 이미 당신이 인연이 그것인 줄 알고 독약을 토하지 아니 함으로 해서 조용히 열반을 맞이했습니다.

 

그 달마대사께서 중국에 오셔서 어떻게 법을 선양하셨느냐?

달마대사가 중국에 오시기 전에 이미 많은 불경(佛經)이 중국에 들어왔었고 불상(像)도 들어왔었고 많은 강사, 율사들이 건너와서 굉장히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달마대사는 ‘불입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 문자를 세우지 아니하고 바로 그 마음을 가리켜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다’

이 말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그것은 달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달 가리키는 손가락은 어찌 달을 보라고 하는 것인데, 달은 보지 아니하고 손가락만 보고 있다면 그것이 말이 될 말이냐?

 

팔만대장경은 달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못하거늘 어찌 달은 보지 아니하고 손가락만 볼 수가 있느냐? 이것은 불법(佛法)이 아니다. ‘참 불법’은 달을 보는데 있는 것이지 손가락 보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강사(師)들의 비위를 건드렸고, 율사(師)들의 비위를 건드려서 달마대사는 정말 죽음을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이 참선법은 ‘내가 나를 깨닫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많은 경을 읽고 교리에 밝고 지식이 풍부하다고 해서 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경(經)을 많이 보고 교리에 밝은 것은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렇다면은 그 경을 옳게 본 사람이라면은 반드시 나를 깨달을 수 있는 참선을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경을 잘못 보기 때문에 일생을 경만 뒤적거리고 경만 읽고 있지, 경을 옳게 본 사람이면 바로 참선을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참선(參禪)은 내가 나를 깨닫는 길입니다.

‘내’라는 것이 무엇이냐?  “아무개야!”하고 부르면 “예!”하고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 알고, 칭찬하면 좋아할 줄 알고, 꼬집어 뜯으면 아픈 줄 알고, 배고프면 밥먹을 줄 아는 놈!  그것이 바로 ‘나’입니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 일어나는 곳에 ‘나’는 있는 것입니다. 번뇌, 망상, 중생심 이것이 바로 ‘참나’가 있는 증거입니다. 그놈을 버리고 나를 찾아서는 안되는 것이여.

 

큰 강물이 흘러갈 때 그 강물이 대관절 어느 수원(源)으로부터서 그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는가? 그 근원을 알고자 하면은 그 강물을 따라서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그 근원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흘러가고 있는 그 강물을 떠나서 다른 데를 아무리 방황을 해봤자 그 근원은 찾을 수가 없는 것이며, 그 강물을 따라서 밑으로 내려가 봤자 바다 밖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여.

 

그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면 반드시 그 근원을 찾을 수가 있는 것이여.

성냈다·웃었다·근심·걱정·번뇌·망상 일어나는 그것을 강물에다 비교한다면 그 일어나는 곳, 그것이 바로 근원이 ‘참나’요, 그것이 나의 ‘본 성품(本性品)’이요, 진여자성(眞如自性)이요, 불성(佛性)인 것입니다.

 

‘이뭣고?’ 성이 날 때나, 슬플 때나, 근심 걱정이 있을 때나, 언제 어디에서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 일어나는 그 생각을 바로 돌려서 ‘이뭣고?’

 

화두(話頭)에는 천칠백 공안(公案)이 있지마는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먼저 생겨난 것이요, 생겨나기 이전에 노상 있었던 화두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이 출가하시기 이전에도 이 ‘이뭣고?’ 화두는 온 법계에 노상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10분24초~31분1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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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누구보다도 총명하고 지혜스러운 부처님께서는 먼저 어릴적부터서 이 화두에 마음을 쏟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 같이 버리시고 출가를 하셨습니다.

설산(雪山)에 들어가서 12년간을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녹음 끊김)... 납월팔일(臘月八日) 동천(東天)에서 솟아오르는 샛별을 보시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습니다. 

 

그 부처님이 깨달으신 것이 바로 우주의 진리가 아니라, 하늘에 뜬 별의 원리가 아니라, 바로 ‘나’를 발견하신 것입니다.

 

나! ‘나’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 우주의 근본이요, 우주인 것입니다.

나를 떠나서는 우주는 존재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우주라고 하는 것은 나의 그림자에 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없는 허공을 커다란 하나의 거울이라고 생각한다면은 그 거울에 나의 모습이 비추어서 반사해서 돌아온 것이 바로 이 우주의 가득찬 삼라만상(象)인 것입니다.

 

그래서 똑같이 꽃이 피어 있어도 그 마음이 슬픈 자는 그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기보다는 슬픔에 눈물이 흘르는 것입니다.

밝고 밝은 하늘의 달을 보고도 마음이 기쁜 사람은 흥겨워 노래가 나오지만 마음이 슬픈 자는 그 달을 보고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입니다.

 

달은 슬픔도 기쁨도 없는 것입니다. 꽃도 자체가 슬프거나 기쁜 것도 또는 자체가 아름답다고 하는 것도 없는 것입니다. 비단 달과 꽃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요, 일체 사람도 마찬가지여.

 

부모, 자식, 일가 친척, 모든 사람이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이 편안하고 내가 마음이 기쁘고 내 마음이 착하면 모든 사람이 다 착한 법이여. 내 마음이 삐뚤어지고, 내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내 마음이 뒤숭숭하면 그렇게 사랑하던 자식도 귀찮고 뵈기 싫어지는 것이여.

 

정말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여. 내 마음 하나 바르고, 안정되고, 맑게 유지한다고 하면은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고해(苦海)가 아니라 극락정토(極樂淨土)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지마는 한마디로 요약하면은 ‘니가 너를 깨달어라!’ ‘너의 참마음을 깨달어라’ 이 말씀 외에는 딴 말씀이 없습니다.

그 많은 말씀은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서 이렇게도 말씀하시고 저렇게도 말씀하셨을 뿐, ‘니가 너를 깨달어라’하는 그 말씀 외에는 딴 말씀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佛敎)’라고 하는 까닭인 것입니다.

 

불교(佛敎)의 ‘불(佛)’자는 인도의 ‘붓다(Buddha)’라 하는 말을 중국에서 ‘불타(佛陀)’라고 음사(音寫)를 해서, 그것이 불타(佛陀)가 한국에서는 ‘부텨, 부텨님, 부텨님’하다가 지금은 ‘부처님’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라고 하는 것은 ‘깨달음’, ‘부처님’하면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닫는 길이다, 깨닫는 가르침이다’ 이런 말씀이여.

그래서 「불교를 믿는다, 부처님 신도(徒)가 된다」고 하면은 「깨닫기 위한 수행」 이외에는 아무것도 다른 것은 다 껍데기입니다.

 

깨닫기 위한, 나를 깨닫기 위한 참선, 이것 말고 다른 어떠한 훌륭한 일을 하고 어떠한 남의 이목을 끄는 그러한 일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소무공덕(小無功德)’인 것이여.

 

왜 ‘소무공덕’이냐? 절을 짓는데 시주(施主)를 하고, 부처님 금을 입히는데 시주를 하고, 불쌍한 사람에게 돈과 옷을 많이 보시를 하고, 병든 사람 약을 사주고,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물질적인 방법으로 착한 일을 하는 것은 나의 생사(生死)를 끊는 무루복(無漏福)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 자체는 어디까지나 착한 일이고, 그런 착한 일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지 나쁜 일은 아니지마는, 궁극적으로 볼 때에는 그것으로 해서 생사윤회(生死輪廻)는 끊을 수가 없기 때문에 생사윤회를 끊는 대도(大道)를 성취하는 데에는 별로 큰 공덕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소무공덕(小無功德)이다.

 

더군다나 그러한 착한 공덕을 지었다고 해서 ‘나는 이런 좋은 일을 했다’하고 그러한 자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에게 뽐내고 이러한 것은 더군다나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양무제가 경을 그렇게 많이 찍어서 보시를 하고, 절을 많이 짓고 탑을 많이 세우고, 스님네에게 그렇게 많은 공양구(供養具)를 올려서 보시 공덕을 지은 것을 크게 자랑을 세워 가지고,

인도에서 온 달마대사에게 “내가 이러헌 착한 일을 했는데 이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

 

달마대사가 너무나 점잖으셨기 때문에 ‘소무공덕(小無功德)’이라고 간단히 한마디 하셨을 뿐, 참으로 달마대사가 양무제를 정말 자비심으로써 상대를 하셨다면은 그 자리에서 양무제를 가만히 둘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내가 나를 깨닫는 참선법」 이것이야말로 무량겁을 두고 윤회할 생사의 근원을 끊는 것이여.

 

일년 이태 삼년의 삼재(三災),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삼재, 과거의 죄(罪)를 소멸하고 금생의 업(業)을 소멸하고, 영원히 생사해탈(生死解脫)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부적(籍)이요, 불공(佛供)이요, 공덕이 되는 것은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선만 한다’ 해 가지고 다른 어떠한 착한 일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써야 할 최소한도의 액수를 내놓고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아낌없이 보시를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福)과 혜(慧) 두 가지를 쌍으로 닦아야만 내가 도(道)를 닦아가는 데에 장애가 없는 것이고, 도를 성취한 뒤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데에 장애가 없는 것입니다.

지혜만 닦고 복을 짓지 아니하면, 혜(慧)는 밝지마는 너무나 모든 여건이 맞지 안 해서 자기와 남을 생사로부터 건져내는 데에 필요한 여건이 갖추지를 못해서 중생 교화하는 데에 막대한 장애에 부닥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데까지 복도 지어야 하는 것이고 복만 짓는 데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찾는 참선 공부, 활구참선 그것이 오히려 선행(先行)되어야 하고 그것이 밑바탕이 되고 근본이 되어서 그 위에 복을 닦는 행이 따라야 되는 것입니다.(31분19초~41분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 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부작(作) ; ‘부적(符籍)’의 변한 말.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액난(厄難)뜻밖에 당하는 불행한 .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사백사병(四百四病) ; 인체에 일어나는 병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사대(四大)—지(地)·수(水)·화(火)·풍(風)의 부조화로 각 요소에 대해서 101가지 병이 있다고 한다.

지(地)와 화(火)에서 일어나는 열병(熱病)이 202가지, 수(水)와 풍(風)에서 일어나는 냉병(冷病)이 202가지로 구별하기도 하는데, 경전에 그들에 대한 설명이나 해석이 일정하지 않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용화선원刊) p64.
*손재(財)재물 잃어 버림또는  재물.
*관재구설(官災口舌) ; 관가로부터 재앙을 입는 일(官災)과 남이 나를 비방하거나 헐뜯어서 해를 입는 일(口舌)을 아울러 이르는 말.
*혜명(慧命) : 지혜를 생명에 비유한 말.
*무불통지(知)무슨 이든지 두루 통하여 모르는  없음.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생사심(生死心) ;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치성( 성할 치,성할 성) ; 불길 일어나는  같이 성하게 일어남.
*혈맥론(血脈論) ;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다.
문답형식으로 즉심시불(卽心是佛 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 심외무불(心外無佛 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 성불수시견성(成佛須是見性 부처를 이루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한다) 등의 말씀이 있다.
혈맥(血脈)은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도 하며,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주고받아서, 정법(正法)을 상속하는 것. 신체의 혈맥이 서로 연결되어 끊어질 수 없는 것에 비유해서 말함.
[참고] [선문촬요 禪門撮要 上 血脈論] (경허성우 鏡虛惺牛 엮음)에서.
若不急尋師空過一生 然卽佛性自有 若不因師終不明了 不因師悟者萬中希有.
급히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리라. 불성은 스스로 가지고 있으나 스승을 인연하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지 못하니, 스승을 의지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천자(天子) ; 천제()의 아들 하늘의 을 받아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으로, 군주 국가의 최고 통치자를 이르는 우리나라에서는 임금 또는 ()이라고 하였다.
*짐(朕)예전임금이나 군주 자기 이르던 .
*후신(後身) ; 내생(來生)의 몸. 후의 몸. 후세의 생존. 다시 태어난 몸.
*생불(生佛) ; ‘현실로 살아있는 부처님’이라는 의미로, 부처님과 같이 덕이 높은 사람을 존칭하여 부르는 말로 고승(高僧 행동이나 덕이 높은 스님)을 찬미하는 호칭이다.
*심법(心法) ; ①마음. 심왕이라고도 함. 심소법에 대한 심왕. 마음의 본체. ②심소(心所, 심작용. 마음의 움직임. 정신작용. 心所有法의 준말)와 같음. ③마음의 법. 마음의 모습.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강사(講師) ; 경론(經論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經과 그 가르침을 주석·연구·정리·요약한 논論)을 가르치는 스님.
*율사(律師) ; 계()와 율()에 능통한 스님. 일반적으로 계행이 청정한 수행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수원(水源)물이 흘러나오는 근원.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자성(自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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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말함. 석가모니가 수도한 산.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샛별이 뜰 무렵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하(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한다. 일명 성도재일(成道齋日).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삼라만상(森羅萬象)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3개의 세계, 삼계(三界—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살고 있다는 청정한 국토로, 괴로움이 없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라고도 한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공양구(供養具) ; 부처님이나 보살님께 바치는 음식물·향·꽃 등의 물건, 또는 그 물건을 바칠 때 사용하는 기구.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5. 2. 27. 17:48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353) 출가(出家), 재가(在家)의 뜻 / 탐욕에 대한 일화 / 보시(布施) / 마음의 보시—탐진치 삼독을 버리는 것 / 돈은 열심히 벌고, 잘 쓰고, 보시해야 /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출가(出家)라 하는 말은 말을 바꿔서 말하면 ‘크게 버리는 것’입니다. ‘크게 버리는 것’이 그것이 바로 출가인 것입니다.
탐욕을 벗어 버리는 그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은 그것이 바로 보시(布施)인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재산을 열심히 벌고 또 소중하게 관리를 하고, 쓸 때 자기를 위해서도 쓰고, 집안을 위해서도 쓰되 경우에 따라서는 잘 베풀 줄도 알아야 다음 생에 끊임없는 복록(祿)을 또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베푸는 것은 자기의 업장(業障)과 모든 재액(災厄)을 갖다가, 그 물질적인 재산을 버리면서 자기의 업장도 거기서 녹아지는 것이고, 탐심도 거기서 녹아지면서 동시에 그것이 세세생생에 쓰고 남을 복의 씨를 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명예·권리·재산도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되고 가지고 갈 수가 없는 것이라면, 부처님의 법(法)을 믿고 그것을 실천해서 ‘참나’를 깨닫는 것만이 이것이 영원한 것이며, 내가 참나를 찾아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길이다.
 
**송담스님(No.353)—88년 신수기도 회향(88.02.26) (용353)
 
(1/3) 약22분.
 
(2/3) 약 20분.
 
(3/3)약 12분.
 
(1/3)----------------
 
오늘 무진년 정월 초아흐레, 신수기도 회향(廻向) 법요식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순치황제(順治皇帝) 출가 인연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순치황제가 19년 동안 중국의 천자(天子) 노릇을 하다가 무상(無常)을 느끼고 중국 천하와 천자의 높은 지위를 버리고서 출가한 것,
마치 우리 부처님께서 가비라(迦毗羅) 왕국의 태자(子)의 고귀한 지위를 버리고서 출가한 것 또 역대 조사들이 정든 부모와 가정과 청춘을 버리고 출가한 인연, 이 모두가 일맥상통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출가(出家)라 하는 말은 말을 바꿔서 말하면 ‘크게 버리는 것’입니다. ‘크게 버리는 것’이 그것이 바로 출가인 것입니다.
 
출가에도 두 가지 뜻이 있고, 재가(在家)에도 두 가지 뜻이 있는데,
몸뚱이는 세속(世俗)에 있으면서 마음은 출가한—청신사(清信士) 청신녀(清信女)로서 비록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 마음은 모든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을 다 버려 버리고,
청정한 신심으로 불법에 귀의(歸依)해서 항상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그런 분은 바로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한 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속가(俗家)에 가 있는 그러한 출가도 있습니다.
비록 출가해서 염의(染衣)를 입고 머리는 깎았으되 마음이 완전히 오욕락(五欲樂)을 버리고, 탐진치 삼독을 버리고서 청정한 출가인으로서 사문(沙門)으로서 도를 닦지를 못하고,
몸뚱이는 절에 있으면서 마음속에 세속의 명리와 탐심을 버리지 못했다면 이것은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를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몸뚱이도 세속에 있고, 마음도 완전히 세속의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빠져서 일생을 그냥 고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몸뚱이도 마음도 세속에 있는 것입니다.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정말 청정한 사문은 바로 그러헌 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또는 순치황제라든지 역대 조사들은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그러한 모범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많은 거사(居士)라든지, 청신녀 가운데에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신심이 돈독해서 정법을 믿고 수행을 쌓아서 도를 얻은 분도 인도나 중국, 한국, 일본에 많이,
널리 이름이 알려지지 안 해서 그렇지, 정말 훌륭한 그런 분들도 많이 계시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왕사성(城)에 계실 때 아주 부자 집안이 있었는데, 아들을 하나 밖에는 기르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아주 신심이 돈독해서 항상 부처님께 나아가서 부처님 설법을 듣고 집에 와서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그렇게 지내다가 너무 부처님 법문에 감동을 받아가지고,
‘내가 세속에 이렇게 묻혀서 있을 것이 아니라 출가를 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가지고 정말 대도를 성취하리라’ 이런 마음을 먹고서, 아주 마음의 결정을 하고 부모님께 출가할 의사(思)를 표시를 했습니다.
 
그 부모는 ‘우리 늙은이 앞에 자식이라고는 너 하나 밖에 없는데, 네가 출가해 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 도저히 안 된다’ 이렇게 허락을 아니 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도저히 출가할 뜻을 굽힐 수가 없어서 부지런히 일을 하고 그래가지고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래가지고 돈을 갖다가 부모님께 드리면서 “부모님의 뜻을 어기는 것은 대단히 죄송하나 내가 출가해서 도업(道業)을 성취하고자 하는 이 깊고도 큰 뜻을 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동안 번 이 재산을 옴막 드릴테니 이것을 마음껏 잡숫고 싶은 대로 잡숫고, 입고 싶은 대로 입고 그리고서 남은 돈은 보시를 하십시오”
이렇게 간곡히 부탁을 하고서 적당한 날이 돌아오면은 출가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워낙 간탐심(慳貪心)이 많아가지고 그 많은 재산을, 평생 동안 쓰고도 남을 만한 재산을 한푼도 쓰지 않고 땅속 깊이 항아리에다 담아서 묻었습니다.
아까워서 먹지도 못하고, 아까워서 입지도 못하고, 남에게 보시도 못하고서 땅속에다 묻어 놓은 채, 행여나 누가 그걸 손댈까봐 밤낮으로 그걸 지키면서 벌벌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그 부모가 돌아갔습니다.
 
돈 한푼도 쓰지 못하고 마지막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어머니 장례를 잘 지내고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안되기는 안되었지만 ‘드디어 내가 출가할 수 있는 기회는 왔구나’ 이리하고서 가산을 버려 버리고서,
 
부처님께 나아가서 출가를 해가지고 어떻게 폐침망찬(餐)하고—밥먹고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 가지고 대도를 성취를 했습니다.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을 했어.
 
아라한과를 증득을 해가지고서 갠지스 강(Ganges江)—항하(河) 가에다가 암자(子)를 짓고서 거기서 보림(保任)을 하고 있는데, 밤이 으스름해지면 어디서 참 이상한 슬피 우는 그 귀신 소리가 나.
 
그 참 이상하다? 그 소리 난 데를 살살 걸어가서 보니까,
머리를 갖다가 산발을 하고서 그리고서 얼굴은 어떻게 험상궂게 생긴 데다가 손가락 발가락은 앙상해가지고, 마치 불에다가 끄슬러 놓은 것 같이 그렇게 생겨 가지고는 그 통곡을 하면서 운다 그말이여.
 
“대관절 네가 누구길래 내 공부하는 데 가까이 와 가지고 그렇게 밤만 되면 통곡을 하는고?” 물어보니까,
“예,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성자(者)의 어미입니다. 내가, 어미가 죽어가지고 이러한 아귀(鬼)의 꼴이 되었습니다. 성자가 되셨으니 자비로서 이 어미를 갖다가 제도를 해주시오” 간곡히 부탁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성자는 너무 참 기가 막혀.
아라한과를 증득을 했으니 생사에 초월을 하고 무슨 거기에 인간의 얽매임이 있으리오마는 자기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세상에 저러한 아귀도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고 있어.
 
그 아귀가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아귀가 되어 가지고 목이 말라서 물을 먹기 위해서 강변으로 쫓아가면 강은 순식간에 말라 버리고, 배가 고파서 저 먼 데 과일 밭이 보여서 과일을 실컷 먹기 위해서 쫓아가면 순식간에 과일 밭이 쑥대밭이 되어버려.
이렇게 해서 여태까지 내가 물 한 모금 못 먹고, 과일 한 개를 먹지 못하고서 이렇게 피골이 상접해”
 
몸뚱이는 장구통만큼, 이렇게 큰 절구통 같이 배는 크고, 목구멍은 실낱 끝 모가지여. 그래서 아귀의 모습은 ‘장구통 배아지에 실낱 끝 모가지’라고 옛날부터서 전해 내려오는데.
 
그 성자가 말하기를 “어머니께 전생에 보시를 하라고 그렇게 내가 말씀을 드렸는데 어머니께서 그것을 탐심이 과해 가지고 쓰지도 못하고, 남에게 보시도 안 하고 그러시더니 결국은 이렇게 되셨구려” 그러면서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아귀가 부탁하기를 “내가 그때 그 많은 재산을 아까워서 못 쓰고 울타리 밑에다가 묻어놨는데 그것을 파다가 스님네와 부처님, 그리고 여러 대중에게 고루고루 베풀고, 가난한 사람한테도 베풀고 해서 보시를 좀 해주시고,
그리고 부처님께 설법을 좀 해서 내 이름을 좀 불러주면서 나를 좀 천도(薦度)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어.
 
그래서 그 성자는 옛날에 자기가 살던 집을 찾아와 가지고 울타리 밑에를 그럴만한 데를 여기저기 파보니까,
과연 그 항아리 속에 엄청난 금은보화가 들어있어서 그걸 갖다가 널리 보시를 하고 큰 대시회(大施會)를 열어가지고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비롯한 부처님의 제자들이 모두 잘 공양을 하셨는데, 그 아귀가 그 공양 석상(上) 저 갓에 가서 벌벌벌벌 떨면서 울면서, 그 공양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거기 서있었는데,
 
그 공양이 다 끝나자 그 아귀가 엎드려서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절을 하면서,
“석가 세존(世尊)이시여! 이 불쌍한 죄 많은 중생을 위해서 참회를 받으시고 설법을 해서 제도해 주시옵소서” 아주 간곡히 울면서 간청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아드님이신 성자도 또 같이 엎드려서 슬피 울면서 “세존이시여! 원컨대 이 조그마한 공양하는 공덕으로 참회를 받으시고 이 불쌍한 아귀 중생에게 빨리 해탈을 얻도록 해 주시옵소” 이렇게 간청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자비심(慈悲心)을 일으키셔서 방편력(方便力)으로 설법을 하셨습니다.
그 바람에 거기에 운집(雲集)한 모든 대중과 이 우주 법계에 가득한 유주무주(有主無住)의 고혼(孤魂)들까지라도 모두 해탈을 하고, 그 아귀도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워낙 죄를 많이 짓고 간탐이 심해서 해탈도는 증득을 못하고 겨우 아귀의 몸을 간신히 벗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 그 성자가 참선을 하면서 선정(禪定) 중에 ‘지금쯤은 우리 어머니가 어디에 태어나셨나?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하고 가만히 작관(作觀)을 해보니까,
아직도 귀신의 몸을 벗지를 못하고서 고통은 받지는 않는데, 아주 재산이 많은 귀신이 되어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살아있는 사람은 금은보화를 가지고 있지만 귀신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잘 알 수는 없으나 하여간 경전에 아주 부자의 귀신이 되어가지고 그 재산을 또 지키고 있다 그말이여. 
 
사람이 탐심이 많으면 죽어서도 좋은 곳을 가지 못하고, 그 자기의 재산을—자기가 모아놓고 평생에 쓰지 못한 그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귀신이 되어가지고 그 재산을 항상 지키면서 그 애착 때문에 떠나지를 못하는 수도 있고,
 
또 구렁이 같은 것이 되어가지고 그 집안의 용마루 밑에나, 어디 창고 벽 사이나 그런데 가서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여러 해 동안을 그것을 지키면서 있는 것입니다. 그걸 '업'이라고 그러는데,
 
그래서 그 부자 귀신이 되어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성자가 거기를 가 가지고서 “옛날에 어머니가 그렇게 간탐심이 심해가지고 아귀도에 떨어져서 그 고통을 한 것을 벌써 잊었습니까?
부처님의 그 공덕으로 그렇게 고통을 잠시 벗었으면 아주 벗어 버릴 일이지, 어찌 다시 이런 부자 귀신이 되어가지고 또 지금도 간탐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눈물로서 호소를 했으나 “나는 이 재산 없으면 못살어, 내가 이 재산 지키는 재미로 이렇게 살고 있는데 나는 못 버린다”고 아주 그냥 탁 잡아뗀다 그말이여.
 
그래도 아주 여러 시간을 두고 이리 설득하고, 저리 설득하고 해가지고 간신히 무엇을 얻어냈느냐 하면, 백목(白木) 두 필을 겨우 얻어냈습니다.
 
얻어가지고 그것을 가지고 와서 ‘돈으로 바꿔가지고 스님네께 보시 공양을 하리라’하고, 아직은 그 어떤 스님한테 임시로 그것을 맡겨 놨는데 얼마 있다가 그걸 찾아다가 팔려고 가니까 그것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것 이상하다’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자기 어머니가 다시 훔쳐갔구나’ 생각을 하고 다시 어머니한테 가서 보니까 과연 그 백목 두 필이 그 어머니한테 가서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또 설득을 해가지고 또 찾아다가 다시 맡겨놨는데 또 찾아가고, 세 번을 그렇게 찾아왔다가 또 도둑을 맞고, 찾아왔다가 도둑을 맞고, 그러니까 그 맡았던 스님이 진심(瞋心)을 내는 거여, ‘나 앞으로 이거 못 맡겠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걸 팔아서 대중에게 나눠드릴 게 아니라,
아주 이 자리에서 조금씩 잘라서 나눠드릴 수 밖에 없다 해가지고 그 자리에서 그것을 끊어 가지고 스님네한테 전부 다 나눠드려가지고 그 자리에서 모두 옷을 해서 그래가지고 입었습니다.
그런데 아! 그 옷이 또 자고 나면 없어져 버려.
 
그래서 그런 탐심이라 하는 것은, 중생의 탐심이라 하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 탐심 때문에 그 무서운 아귀도에 떨어져서 그 고통을 받고도 정을 못 떼시고,
또 귀신이 재물 부자 귀신이 되어가지고 간신히 보시한 것이 그것이 또 아까워 가지고 세 번을 훔쳐오더니, 네 번째는 옷을 만들어서 입고 있는 것도 잠깐 벗어 놓은 차에 그것도 또 훔쳐 가버린다 그말이여.(처음~21분37초)
 
 

 

 

 

(2/3)-----------------
 
부처님께서 그러한 사실을, '대중이 그렇게 옷을 도둑맞았다'고 하는 그러한 사실을 부처님께서 들으시고서 대중하게 설법을 하시기를,
“탐욕의 불이라고 하는 것은, 그 간탐하는 욕심의 불이라 하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로구나!
길이길이 악도에 떨어져서 무량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 탐욕의 무서운 독이로구나!
너희들은 어서 속히 중생들의 그 탐욕을 때를 빨리 벗어 버릴지니라.”
 
그래서 그 탐욕을 벗어 버리는 그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은 그것이 바로 보시(布施)인 것입니다.
 
보시라 하는 것은 보통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남에게 나눠주는 것을 다 보시라고 생각하고,
재산이라든지, 재산 가운데에는 돈도 있고 금은보화 또는 먹을 거 또는 입는 거 이런 물질 보시를 대충 다 보시라고 생각을 하고,
 
그것을 절에다 시주를 한다든지, 스님네께 공양을 한다든지 또는 양로원이나 고아원 또는 형무소, 그렇지 않으면 가난한 사람에게 그러한 물질을 보시한 것이 바로 보시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생각을 하지만 그것도 보시가 아닌 것은 아니야.
 
그 밖에도 몸뚱이, 신체의 보시가 있어. 몸뚱이를 배고픈 호랑이한테 보시를 한 것. 부처님께서 과거에 인행(因行) 때에 배고픈 호랑이에게 그 몸뚱이를 보시하는 설화가 있습니다마는 그런 거라든지,
또 스님네가 돌아가실 때에 산중에서 돌아가시면은 산중에 사는 모든 산짐승에게 보시를 하고 또 물에서 돌아가시면은 수중의 모든 중생들에게 보시를 하고, 이러한 몸뚱이를 보시하는 것이여.
 
또 이 몸뚱이의 살과 뼈만이 아니라, 이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노력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그 노력을 보시하는 것도 또한 한 보시의 종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보시’가 있어. 마음의 보시는 수행을 해서 탐진치 삼독을 버리는 거여. 그것이 바로 마음의 보시고,
또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것도 하나의—당신이 누려야 할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는 것도 그것도 보시고,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순치황제 출가하신 것도 또한 보시여.
 
수행을 해서 아(我)가 공(空)하고, 법(法)이 공하고, 아공(我空)과 법공(法空), 구공(俱空)하는 것이 그것도 또한 엄격히 말하면 그것도 하나의 마음의 보시라 할 수가 있는 것이여.
 
그리고 법보시(法布施)가 있는데 경전을 인쇄해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시를 한 것, 이것 법보시고,
또 자기가 수행을 해서 깨달은 바가 있던지, 경전을 봐서 부처님의 거룩한 법을 아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인연 있는 사람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법을 믿도록 인도하는 것 이것도 또한 법보시에 들어갈 것입니다.
 
아까 마음의 삼독심을 버리고 아공과 법공 구공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마음의 보시’라 했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 「마음의 보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느냐? 남의 잘못을 용서(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자존심만을 내세우고 남의 인격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항상 저 사람의 입장이 되어가지고 나의 주장을 양보하고 그 사람의 뜻을 따라주는 것, 부부간에도 그렇고, 친구 간에도 그렇고, 형제간에도 그렇고,
자기의 뜻이 옳다고 주장을 하고 자기의 의견만을 내세우면 이것은 마음의 보시가 아닌 것입니다.
 
보시를 하는 것에서 일체 중생을 수순(順)하고, 그것이 바로 육바라밀(蜜) 속에 제일 첫번째 있는 단바라밀(蜜), 보시바라밀이 되는 것입니다.
물질로 보시하고, 몸뚱이로 보시하고 또는 법으로 보시하고, 이 보시를 자꾸 부처님께서 권장하시는 뜻은 보시를 그렇게 함으로서 마지막에 가서는 마음의 보시의 참뜻을 터득하게 하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남을 용서를 못하고, 남의 잘못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공격을 해대고, 미워하고 용서를 하지 아니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보시를 하지 안했기 때문에,
보시를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견을 국집(局執)하는 것은 자기의 재산을 남에게 베풀지 아니하고 항아리에다 담아서 땅속에다 묻어놓고 지키다가 아귀가 되고 구렁이가 된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어.
 
자기의 아만(我慢)과 아애(我愛), 아치(我癡)를 자기의 마음의 재산으로 삼아서 그것에 국집해 가지고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남에게 양보할 줄을 모르고, 자기의 의견만을 주장을 하다가,
결국은 아내와 싸우고, 남편과 싸우고, 부모 자식 간에 싸우고, 친구 간에 싸우고, 모든 이웃과 싸운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해탈도를 증득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세계가 어떻게 그 사회가 복을 받게 되며, 행복한 그리고 평화로운 세계가 이룩되겠습니까.
 
 
이번 무진년 새해를 맞이해서 신수기도를 일주일간 참으로 정성껏 받들었습니다. 새벽부터 법당에 가득 모여서 기도를 했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이렇게 기도에 많은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이 참석을 하셔서 기도하신 것은 대단히 기특하고, 감사하고 참 훌륭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러한 기도를 하느냐 하면은 그 기도를 통해서 보시의 참뜻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 보시, 신체의 보시, 마음의 보시, 법보시 이러한 여러 가지 보시를 그때그때 상대에 따라서, 상황이 따라서, 자유자재로 보시를 할 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보시를 하면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이 되며 소원을 성취를 하냐’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런 재산이라든지, 몸뚱이라든지 또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자존심이라 하는 것이 전부가 업(業) 소생(所生)인 것입니다. 업으로 뭉쳐진 것이여요.
 
탐욕을 가졌기 때문에 그 탐욕의 소산(産)으로 결국은 그런 재산이 뭉쳐졌고, 이 몸뚱이도 탐진치 삼독으로 인해서 이 몸뚱이를 받아나게 된 것이고,
자기의 자존심도 아무리 학식이 높고 이 세상에 제일가는 명예와 권리를 가졌다 하더라고 그 마음속에 자기의 마음을 비우지 못했다면 그런 것들도 전부 탐진치 삼독의 소산일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탐진치 삼독이라 하는 것을 우리는 가까운 그 비근한 예를 들어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꿈을 꾸면 구렁이나 그런 뱀 꿈을 꾸거나 돼지꿈을 꾸면은 재수가 있다 해가지고 그 이튿날 당장 나가서 복권을 삽니다.
 
어째서 구렁이 꿈이나 돼지꿈을 꾸면, 물론 용도 구렁이의 한 종류이기 때문에 마찬가지입니다마는,
‘용꿈이나 구렁이나 돼지꿈을 꾸면은 재수가 있다’해 가지고 그 이튿날 복권을 사면은 1억짜리가 당선된다고 믿고 다투어 그 꿈을 서로 살려고 그러고 그런데, 그 돼지도 완전히 탐욕의 권화신(權化身)인 것입니다.
 
돼지는 욕심이 많아가지고 먹을 것을 보면 제 새끼도 소용없고, 옆에 누가 올까봐서 오면 막 물어뜯어 버리면서 배아지가 터지도록 막 먹어 대는 것입니다.
사람이 식탐이 많은 사람은 먹을 것을 보면 옆에 사람이 있는 것이 보이지를 않고, 잔뜩 먹고 옆구리가 빵빵해져야 “어째서 빨리들 안 먹어?” 자기가 배가 부르기 전에는 옆에 사람 배고픈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게 다 가만히 그 사람 한참 먹고 있을 때 눈을 보면 영락없이 돼지 눈입니다. 돼지라든지 구렁이라는 것이 전부 전생(前生)에 탐심이 많아가지고 그러한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탐심 많은 그 탐착심, 자기가 모아 놓은 재산 먹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꽁꽁 뭉쳐서 땅속에다 묻어놓고 갔다하면은 백발백중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집에 와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헌 집, 묵은 집을 뜯으면 귀 달린 구렁이가 나온다고 그럽니다.
이게 다 그 집안에 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피땀 흘려 모아가지고 그 재산을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물려주고서 그놈 아까워서 어디로 뚝 떠나지를 못하고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그 집에 와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걸 다 ‘업’이라고 그러죠. 그러한 구렁이.
 
그리고 꿈에 똥항에 빠졌다든지, 똥을 옷에다가 쌌다든지, 무슨 똥을 보면 재수가 있다고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똥이라든지 구렁이라든지 용이나 또 돼지 이런 것들은 바로 그것이 재물, 재산과 동격인 것입니다. 그래서 꿈에 그런 것을 보면 재수가 있다고 참 좋아들 합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거느리고 어디를 지나가시는데, 부처님께서 제일 앞에 서서 바리때를 들고 이렇게 가시는데 요리 골짜기를 보시고서 “어이쿠 구렁이 봐라. 독사(蛇) 봐라!” 그리고 부처님 지나가시니까,
그 뒤에 따라가던 사리불(舍利弗), 목련존자(目連尊者), 차츰차츰 제자들도 이리 보면서 “어이쿠 독사 봐라!” 가면서 그러니까, 그러면서 제자들이 쑤욱 다 지나갔는데,
 
저만큼서 풀을 뜯던 사람이 ‘아!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이 저기 독사가 있다고 깜짝 깜짝 놀라면서 지나가시는데 대관절 무슨 무서운 독사가 있기에 그런고’하고 살금살금 가서 조심스럽게 골짜기를 들여다보니까,
 
아따! 금은보화가 찬란하게 번쩍거리는데 ‘참 이상하다, 어째서 저것을 독사라고 지나갔을까! 내 눈에는 저것이 헛보이나 보다’해 가지고,
무서워서 돌멩이를 거기다가 던져보니까 ‘쨍그랑!’하고 소리가 나는데, 저것이 독사 같으면 꿈틀거리고 물러 쫓아올텐데 오히려 그 번쩍번쩍하면서 쨍그랑하고 소리가 나고, 몇 번을 던져 봐도 마찬가지다 그말이여.
그래서 가 가지고는 작대기로 이리저리 쑤석거려 봐도 독사 커녕은 분명히 칠보(七寶)가 분명하다 말이여.
 
그놈을 갖다가 속적삼을 벗어서 탁 쌓아 가지고는 누가 쳐다보나 어쩌나 두리번거리면서 마침 아무도 안 보고 있으니까 그놈을 갖다가 집으로 가지고 와 가지고는 그냥 벌벌 벌벌 떨면서 마당 저 뒤에다가 구덩이를 파고서 항아리에다 담아서 묻어놓고는.
 
아! 그놈을 해놓고는 너무너무 좋아서 잠이 안 오네. 그래가지고는 밤중에면 가만히 가서 뚜껑을 열고 만지작거리다 도로 넣고 넣고, 이렇게 좋은 것을 그냥 묻어만 놔서는 안되겠고,
조금씩 뜯어다가 맛있는 것도 사 먹고 또 집도 고치고, 논도 사고 해서 차츰차츰 인자 심심하면 한덩어리씩 내다팔고 팔고 그랬는데,
 
며칠 있더니 관가에서 지금 같으면 형사대들이 와 가지고는 집을 둘러싸고는 “이놈 나오라”고 고함을 질러서 그래가지고는 무슨 일인고 하고 나갔더니,
“너 이놈” 다짜고짜로 때려 묶어서 끌고가 가지고는 아주 그냥 뒈지게 뚜드려 패서 몰골이 났다 그말이여.
 
“너 이놈 바른대로 대라. 나라의 보물이 잃어버린 지가 여러 날이 되어도 간 곳이 없는데 이놈, 네놈이 훔쳐다 팔아먹어?” “아닙니다, 제가 팔아먹지를 않았습니다”
“이놈, 네가 갔다가 아무데 금방에다가 몇 번을 이러이런 것을 팔아먹지 않았냐?”
“훔치지는 절대 안 했고 골짜기에서 주워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나쁜 놈의 자식, 주워 와? 골짜기에 왜 나라의 창고에 든 놈이 거기에 있어? 이 나쁜 놈, 요놈이 맛을 봐야 해” 어떻게 뚜드려 맞았던지 볼기가 아주 그냥 개떡처럼 뚜드려 맞았어.
그래가지고는 기절을 했다가 찬물을 찌그려서 또 뚜드려 패고 해서 날이면 날마다 뚜드려 맞고, 몇 번을 죽었다 살아나서 아주 그냥 궁뎅이가 말로 할 수가 없어.
 
꿍꿍 앓으면서 “아휴, 그때 부처님이 독사라고 그러더니 정말 이놈이 독사로구나!” 아, 그냥 그 말을 푹 해버렸다 그말이여. 그러니까 그 말을 옥졸이 듣고 가서 보고를 했어. “그놈 잡아오너라”
 
“부처님이 어떻고 어때?” 그러니까,
“예, 사실은 부처님이 지나가시면서 독사라고 그랬는데 내가 아무리 봐도 독사가 아니기에 주워 왔습니다”
 
급히 사람을 부처님께 보내 가지고 “정말 그 골짜기에서 독사를 보신 일이 있었습니까?”
“응, 그걸 봤지”
 
사실이 확인이 되니까, “너 이놈! 아무리 그걸 주웠기로서니 그 많은 보물을 주웠으면 당연히 나라에다 바쳐야 하는 것인데, 네가 숨겨놓고 살살 그놈을 팔아먹은 죄가 마땅히 널 사형을 시킬 일이로되, 부처님과 관련이 되어졌어. 그러니 부처님의 그 공덕으로 봐서 너를 살려준다”해 가지고는 풀어줬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리고 부처님 제자들은 그런 재물을 분명히 그것을 독사로 보셨기 때문에 깜짝 깜짝 ‘이크! 이크!’하면서 지나가셨습니다.
 
부처님이야 그까짓 것이 뭐 금이나 자갈이나 그것가지고 탐내실 분은 아니로되,
만약에 부처님 제자 가운데 좀 아직 확실히 도를 이루지 못한, 조금 어리석은 사람이 있어서, 만약에 그놈을 살며시 훔쳐다가 놓고 팔아먹었다 하면 진짜 그 스님도 독사에 물렸을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마는,
 
부처님과 제자들은 확실히 그것이 독사인 줄 아셨기 때문에 손을 대지 않고 지나가셨으므로 그런 국법에 저촉을 받으시지를 않았습니다.
 
어리석은 나무꾼이 그것을 독사라고 부처님과 제자들이 일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현혹이 되어가지고 그놈을 훔쳐다 놓고 팔아먹다가 그 못 당할 그런 곤욕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21분38초~41분17초)
 
 
 
 
 
 
 
(3/3)----------------
 
그래서 재산이라고 하는 것이 독사요, 똥보다도 더 더럽고 독사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여.
그러나 세속에 살면서는 그것이 나중에 독사가 되었건, 똥이 되었건 우선 그것이 없으면 당장 먹고 살 수가 없고, 집도 재산인데 그것이 없으면 이 몸뚱이를 갖다가 거처를 할 수가 없고, 자녀들도 가르킬 수도 없고, 아무것도 안되어 버려.
 
출가한 스님네는 그저 도(道)만 열심히 닦으면은—도 닦다가 굶어 죽은 일이 없기 때문에 나가서 돈벌이 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하지만, 세속에 사시면서는 천상 돈이 있어야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되어.
어디 나가서 자기 동기 간한테 가서 손 벌려도 잘 주지도 않고, 친구 간한테도—좀 가난해서 돈이 없다고 돈 달라고 하면 당장 그 이튿날부터선 친구도 별로 반가워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돈 있으되 그것을 적당한 방법으로 잘 벌고, 열심히 벌고, 벌어서 요긴하게 쓰고 그리고 또 적당하게 보시도 하면서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은 하되,
그것이 아까워서 먹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땅에다 묻어놓고 벌벌 떨다가 아귀가 된다든지, 구렁이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탓으로, 그렇게 비참하고 불쌍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는 재산을 열심히 벌고 또 소중하게 관리를 하고, 쓸 때 자기를 위해서도 쓰고, 집안을 위해서도 쓰되 경우에 따라서는 잘 베풀 줄도 알아야 다음 생에 끊임없는 복록(祿)을 또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베푸는 것은 자기의 업장(業障)과 모든 재액(災厄)을 갖다가,
그 물질적인 재산을 버리면서 자기의 업장도 거기서 녹아지는 것이고, 탐심도 거기서 녹아지면서 동시에 그것이 세세생생에 쓰고 남을 복의 씨를 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7일 동안 열심히 기도를 해서 마음이 청정해졌고 업장이 소멸이 되었습니다.
 
이 회향날 또 이러한 조실 스님의 법문과 산승의 이런 말씀을 듣고서 ‘참! 과연 옳은 말이다. 내가 그동안에 아까 와서 아낄 줄만 알았지 정말 보시의 참뜻을 내가 몰랐구나!’
이리 생각을 하고 앞으로는 그 재산을 옳게 관리하고, 옳게 쓰고, 옳게 베푼다면—그거 써 버리면 아주 없어질 줄 알고, 늙으면은 간탐심이 굳어져 갖고 보시를 잘 못합니다.
 
젊어서는 또 생기거니 하고, 생길 수도 있고 벌 수도 있으니까 더러 쓰다가, 나이가 한 오십 육십 되면 인자 내가 벌 수도 없고, 누가 잘 갖다주지도 않으니까 ‘이것 떨어져 버리면 내가 인자 꼼짝을 못하겠다’해 가지고,
열 번, 스무 번 꽁꽁 싸가지고는 깊은 데다 넣어 놓고 있다가 결국은 죽어버리면 참 그것 못쓰는 것입니다.
 
이 회향날을 맞이해서 보시(布施)가 마음의 업장을 소멸하고, 나아가서는 「참 보시」는 물질적 보시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그 보시야말로 보시의 참뜻이라 하는 거,
 
그리고 남에게 보시 하되 ‘내가 보시를 했다’하는 생각—상(相)이 있고, ‘내가 이렇게 보시를 했으니까 나한테 그 보답을 해야 한다’고 하는 보답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으면 이것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아닌 것입니다.
 
무주상 보시라야 그 공덕이 무량무변(邊)한 것이지, 유주상(有住相)으로 하면 그 보시가 아주 그 조그마한 한계가 있는 그러한 보시 밖에는 안되고, 그 보시 공덕으로 얻어봤자 유루(有漏)의 복 밖에는 얻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무주상 보시를 해야 무루복(無漏福)을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요  인거황천명재가(人去黃名在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채득백화성밀후(採得百花成蜜後)에  부지신고위수감(不知辛苦爲誰甘)고
나무~아미타불~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요, 기러기는 저 하늘가에 날아갔는데, 기러기 발자취는 모래사장에 남아있고,
인거황천(人去黃)에 명재가(名在家)로구나. 사람은 저 황천(黃泉)으로 떠났는데 그 이름만 자기 살던 집에 남아 있구나.
 
채득백화성밀후(採得百花成蜜後)에, 벌이 일백 가지 꽃에서 꿀을 따다가 놨는데,
부지신고위수감(不知辛苦爲誰甘)이다. 그 벌이 백 리, 이백 리 밖에까지 나가서 온갖 풀과 꽃,
그리고 심지어는 시궁창, 변소, 간장독 또 뱀 썩은 거, 모든 짐승이 썩은 거, 쇠똥, 천 가지, 만 가지 물건에서 꿀이 될만한 요소를 빨아다가 그래서 모아 놓은 것입니다.
 
그 고통이 얼마며 그 벌의 세계에 있어서도 위계질서가 분명해가지고 그 법도가 엄한 것이며, 놀고먹는 벌은 다 물어서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천 가지, 만 가지 고통을 사양하지 않고 모아 놓은 꿀, 자기네들도 함부로 먹지 않고 꿀통에다가 그렇게 일 년 내에 모아 놓은 꿀을, 벌의 그 고통은 아랑곳없는 사람이 그놈을 딱 도려서 따다가 먹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평생 동안 명예와 권리를 위해서 젊어서부터 공부하고 피땀 흘려서 노력을 하고, 밤잠 안 자고 공부해가지고 그래가지고 고시에 합격하고 판사 검사가 되고, 도지사 장관이 되고 그러한 하늘을 찌르는 높은 명예와 권리를 얻었다 해도,
 
마치 기러기 하늘 끝에 날아간 뒤에 발자취만 모래밭에 남듯이, 황천에 한번 떠나 버리면 아무 할 일없이 이름만 얼마동안 세상에 남아 있다가 오래되면 그것마저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평생 동안 피땀 흘려서 모은 재산 아까워서 먹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꽁꽁 뭉쳐놨던 재산, 가는 길에 한푼 가져가지 못하고 그 재산은 엉뚱한 사람이 그것을 먹어 치우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백년을 다 못다 사는 이 무상한 몸뚱이를 가지고 태어났으되 무엇을 위해서 그러면은 이 몸뚱이와 목숨을 바쳐야 하느냐?
 
명예도 헛것이요, 권리도 헛것이요, 재산도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되고 가지고 갈 수가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부처님의 법, 정법(正法)을 믿고 그것을 실천해.
그래서 ‘참나’를 깨닫는 것만이 이것이 영원한 것이며 내가 영원히 참나를 찾아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길이다. 
 
금년에 삼재가 드신 분들은 지난 입춘에 기도를 열심히 하셨을 것이고 또 이번에 신수기도에도 참 열심히 새벽같이 나와서 열심히 하셨을 줄 생각합니다.
 
많이 업장이 소멸이 되고 삼재를 면하셨을 것입니다마는 아주 정말 깨끗이 뿌리째 그 삼독의 악귀를 갖다가 내버리려면,
이웃의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에게 보시하시고 또 절에 불사(佛事)가 있으면 보시하시고 또 병든 스님네가 있으면 보시를 해서 아주 마지막 그 끝마무리를 잘하십시오.
 
이번 한번 뿐만이 아니라 세세생생에 정법에 의지해서 도를 닦으면서 그러한 무주상 보시를 하시는 것은,
세세생생에 삼재팔난(三災八難)을 면하고, 무량무변의 무루복을 증득해서 복(福)과 혜(慧)를 구족(具足)한 그러한 인격완성을 성취하실 것입니다.(41분18초~53분12초)(끝)
 
 
 
 
 
----------------(1/3)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순치황제(順治皇帝) ; 1638년에 태어나 1643년 어린 나이에 황위에 오른 청나라 제 3대 황제. 재위 기간은 1643년~1661년.
*가비라국(迦毗羅國) ; kapila國(카필라).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아버님 정반왕(淨飯王)이 다스리던 나라. 실달다(悉達多) 태자(太子) 곧 석존(釋尊)이 태어난 곳.
*재가(在家) ; ①세속 떠나지 않고 에서 스님처럼  닦음또는 그런 사람. ②사회에서 살아가는 일반 사람.
*청신사(清信士)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자 신도, 곧 우바새(優婆塞).
*청신녀(清信女)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 곧 우바이(優婆夷).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염의( 물들일 염,옷 의) ; 출가자의 옷. 출가하여 속세의 옷을 벗고 법의(法衣)를 입는 것도 염의라 하고,
출가할 때에 머리나 수염을 깎고 염의를 입음으로써 스님이 되는 것을 낙발염의(落髮染衣), 체발염의(剃髮染衣)라고 한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사문(沙門) ;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의 음역. 식(息)·근식(勤息)·정지(淨志) 등으로 번역. 여러 선법(善法)을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을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한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에 들어 도를 닦는 사람.
*거사(居士) ; ①고대 인도에서 상·공업에 종사하던 부호. ②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남자 신도. 출가하지 않고 법명(法名)을 받은 재가(在家)의 남자.
*옴막 ; '전부(全部)'의 사투리.
*간탐심(慳貪心 아낄 간,탐할 탐,마음 심) ; 몹시 인색하고 욕심이 많은 마음.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항하(恒河) ; 갠지스 강(Ganges江, 히말라야 산맥에서 시작하여 인도 북부 가로질러 벵골 ()으로 흘러들 가는 인도 최대 길이 2,510킬로미터).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성자(聖者)모든 번뇌 버리고 진리 깨달은 사람.
*아귀(餓鬼) ; 생전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이르게 된 죽은 사람의 영혼. 몸이 앙상하게 마르고 목구멍이 바늘구멍 같아 음식을 먹을 수 없어서 늘 굶주린다고 한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시회(施會) ; 베푸는 모임.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석상(上)[주로 일부 명사  쓰여]여러 사람 모인 자리.
* ; ‘가(바깥쪽 경계 되는 가장자리 부분이나  부근)의 사투리.
*오체투지(五體投地) ; 불교 신자가 교만을 떨쳐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께 큰절을 올려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방법.
신체의 다섯 부위를 땅에 닿게 하는 절. 먼저 두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한다.
고대 인도에서 행하여지던 예법 가운데 상대방의 발을 받드는 접족례(接足禮)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륜투지(五輪投地)ㆍ오륜착지(五輪着地)ㆍ거신투지(擧身投地)ㆍ투지례(投地禮)라고도 한다.
*세존(世尊) : [범] Bhagavat ; Lokanatha ; Lokajyestha의 음역(音譯)으로 바가범(婆伽梵) 로가나타(路迦那他) 로가야슬타(路伽惹瑟吒)라 하며 부처님 십호(十號)의 하나,
부처님은 원만한 공덕을 갖추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시므로, 이렇게 부르며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방편력(方便力) ; 뛰어난 교화방법. 일을 성공시키기 위한 방법론적 지혜의 힘. 방편의 작용.
중생을 인도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고안하여 세상에 펼치는 지혜의 작용.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고혼(孤魂) ; 문상(問喪)할 사람이 없는 외로운 넋.
*선정(禪定) ; 산스크리트의 디야나(dhyāna), 팔리어 자나(jhāna)의 음역(音譯)인 선(禪)과 그 의역(意譯)인 정(定)이 합하여 생긴 말. 선(禪)은 정(定)·정려(靜慮)·기악(棄惡)·사유수(思惟修) 등으로 의역한다.
6바라밀의 하나. 마음 고요한 내관(內觀). 마음의 번뇌를 가라 앉히는 것. 정신 집중의 수련. 좌선에 의해 몸과 마음이 깊게 통일 된 상태.
*백목(白木)무명실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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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布施) : [범] dana  음을 따라 단나(檀那)라고도 쓴다。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아공(我空) ; 인공(人空). 인무아(人無我).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아집(我執)에 대해,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다고 보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아집(我執)은 번뇌장(煩惱障)이라고도 하는데, 번뇌장은 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열반(또는 해탈)을 가로막아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하게 하는 장애라는 의미이다.
*법공(法空) ; 법무아(法無我). 존재하는 만물 각각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법집(法執)에 대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실체로서의 자아는 없다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법집(法執)은 소지장(所知障)이라고도 하는데, 소지장은 참된 지혜, 즉 보리(菩提)가 발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라는 의미이다.
*구공(俱空) :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의 경지에 차례로 도달한 후, 다시 그 아공(我空)과 법공(法空)까지도 버려 비로소 제법(諸法)의 본성에 계합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수행에 의해 이러한 경지를 증득한 것을 뜻한다.
*수순(順) ; 남의 뜻에 따르거나 순순히 따름.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여섯 가지 수행의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단바라밀(檀波羅蜜)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단()은 산스크리트어 dāna의 음사(音寫)로 보시, 보시(布施)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바라밀(波羅蜜)은 도()•도피안(到彼岸)이란 뜻임.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수행의 법을 말함.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과 같음.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아만(我慢 나 아,거만할·게으를 만) ;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① 오온(五蘊)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신체에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김. 자신을 과대 평가함.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아애(我愛) ; 자아에 대한 애착심.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아치(我癡) ; 자아(自我)를 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똥항(똥缸 항아리 항) : 재래식 화장실(칙간)의 바닥을 파고 이를 묻어 분뇨를 저장하던 것으로 이 항아리에 분뇨가 가득 차면 똥장군 등에 퍼담아 밭에 내다 거름으로 이용하였다.
*권화신(權化身) ; 여러 가지로 변하여 나타난 몸.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라고도 한다.
*사리불(舍利弗), 목련존자(目連尊者)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속적삼저고리  껴입는 적삼저고리 모양 윗도리  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입는 홑옷이다.
*다짜고짜로어떤 일의 내용 자세히 알아보려 하지 않고 덮어놓고 바로.
*몰골 ; 볼품없는 모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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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록(祿 복 복,복 록) ; 타고난 복과 벼슬아치 녹봉(祿俸 예전나라에서 벼슬아치들에게 벼슬살이 대한 보수 주던 곡식이나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는 에서복되 영화로운  비유적으로 이르는 .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재액(災厄)재앙으로 입게 되는 불운.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46)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무량무변(邊)한없이 크고 넓음또는 헤아릴  없이 많음.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 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써,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게송) ‘雁飛天末迹留沙  人去黃名在家’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36 게송 참고.
*(게송) ‘採得百花成蜜後  不知辛苦爲誰甘’[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36 게송 참고. 당대시인(唐代詩人) 나은(羅隱 833~909)의 시 《봉(蜂)》 참고.
*황천(黃泉) ; 저승(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아랑곳없다 ; 어떤 일에 참견을 하거나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삼재팔난(三災八難)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과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삼재(三災) :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팔난(八難) :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①지옥(地獄). ②아귀(餓鬼). ③축생(畜生). ④장수천(長壽天). ⑤변지(邊地). ⑥맹롱음아(盲聾瘖瘂). ⑦세지변총(世智辯聰). ⑧불전불후(佛前佛後).
①,②,③은 고통에 시달려 수행할 수 없기 때문,
④는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여러 천(天)으로, 수명이 길고 편안하여 불법(佛法)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⑤는 북구로주(北俱盧洲)로서, 사주(四洲)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기 때문,
⑥은 눈이 멀고 귀먹고 말 못하기 때문,
⑦은 세속의 지혜는 있어도 그릇된 견해에 빠져 바른 가르침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⑧은 가르침을 설할 부처님이 안 계시기 때문임.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빠짐없이 두루 갖춤.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5. 2. 16. 15:42

 

 

§(290) 기도는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 /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몸·마음·주변환경이 청정·정숙하고, 기도의 처음과 끝이 여일(如一)한 것 / 삼륜(三輪)이 공적(空寂).

 

처음 기도 시작하기 전에는 뚜렷이 목표가 있어야 하지만, 일단 기도를 시작한 뒤에는 그러한 ‘내가 무엇을 바랜다’하는 그런 생각마저도 하지 말고 일심으로 정근(精勤)만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정성스럽게 기도를 하면 우리가 기도 시작하기 전에 바랬던 작은 소원, 큰 소원 또는 유루복(有漏福), 무루복(無漏福)을 따질 것이 없이 모든 것이 다 내가 구하지 아니해도 다 나에게 이르러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기도가 바로 삼륜(三輪)이 공적(空寂)해서—열심히 하다 보면 마침내는 「기도를 하는 내」나 「내가 바라는 부처님」이나 「내가 바랜 바 어떠한 목적」이 셋이 다 공(空)해 가지고 그것이 바로 삼륜이 공적인데,

삼륜이 공적을 한 가운데에 한결같이 정진을—한 생각도 딴 생각[別念]을 내지 아니하고 순일하게 정진을 지어가면 결국은 ‘참나’를 깨닫는 데에까지 연결이 될 것입니다.

 

**송담스님(No.290)—86년 신수기도 입재(86.01.03) (용290)

 

약 13분.

 

 

병인년 정월 초삼일 신수기도 입재 법요식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71년도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기도에 대한 법문을 조실 스님 녹음법문을 통해서 잘 들었기 때문에 ‘기도를 어떻게 하면은 기도의 성취를 할 수가 있는가?’ 기도하는 방법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 기도를 하실 때에는 반드시 어떠한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성취해야 할 소원이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막연하게 아무 소원도 없이 기도를 하시기 보다는 뚜렷한 소원·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이루려는 그러한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기도를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시작하기 전에는 뚜렷이 목표가 있어야 하지만, 일단 기도를 시작한 뒤에는 그러한 ‘내가 무엇을 바랜다’하는 그런 생각마저도 하지 말고 일심으로 정근(精勤)만을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한 말로 말해서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냐?’하면 정성(誠),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 기도를 하는데 정성이 부족하면 그 기도는 성취하기가 어려울 것 입니다.

 

 

대관절 그 정성이라고 하는 것을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을 정성이라고 하느냐?’

첫째는, 안과 밖이 청정(淸淨)해야 해. ‘안’이라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청정해야 하고 ‘밖’은 우리의 몸과 우리의 주변, 환경이 깨끗해야 한다.

 

이 기도를 하면서 입으로는 온갖 잡(雜)된 소리를 하고 망어(妄語), 양설(兩舌), 악구(惡口)를 하고,

또 몸으로는 잡된 행동과 추한 행을 하고, 마음으로는 온갖 탐욕스럽고 삿되고 몹쓸 생각을 하고 이러면 정성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정성을 드릴려면 첫째, 마음도 깨끗하고, 몸도 깨끗하고, 입도 깨끗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정숙(肅)해야 한다. 고요하고 엄숙해야 한다.

기도를 드리면서 시끄럽고 소란하고, 질서가 없고 들쑥날쑥하고 이러면 정성을 다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기도 시간도 엄수해야 하고 기도할 때에 어쨌든지 고요하고 엄숙하고 경건해야 합니다.

 

그리고 처음과 끝이 여일(如一)해야 한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아주 엄숙하고 경건하게 시작해 가지고, 중간에 가면서 흐지부지하니 해이(弛)해져 가지고 끝을 야무지게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끝에 가서는 김이 다 빠진 것처럼 이렇게 되어서는 정성을 다했다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번 시작을 했으면은 중간이나 끝까지 쪼옥 한결같이 해야 하는 것이여.

 

이렇게 기도를 해 나가면, 일심으로 정말 간절하게 이렇게 해 나가면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이 되고, 과거에 자기가 지은 모든 죄업(罪業)이 참회(懺悔)가 될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무 자기도 모르는 하염없는 눈물이 넘쳐 흐른다든지,

그 기도를 하고 나서 과거에 자기가 원망했던 사람, 미워했던 사람, 야속하게 생각했던 거, 유감스럽게 생각했던 거, 모든 그러헌 생각들이 봄눈 녹듯이 다 녹아 빠질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기도는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기도를 하면 우리가 기도 시작하기 전에 바랬던 작은 소원, 큰 소원 또는 유루복(有漏福), 무루복(無漏福)을 따질 것이 없이 모든 것이 다 내가 구하지 아니해도 다 나에게 이르러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오래 살기를 바래서 기도를 하는데 과연 80년 내지 100세를 산다 하더라도 결국은 죽게 되고,

부자가 되기를 바래서 기도를 해서 기도성취를 해 가지고 큰 부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 재산이 내게로부터 떠날 때가 있을 것이여.

 

그래서 이러한 유루복(有漏福)—밖에서 부터서 구하는 샘[漏]이 있는 그러한 유루복이라고 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성취가 되었다 해도 마침내는 내게로부터 떠나고 또 끝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영원성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절에 아들을 낳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 기도를 하고 또 수명장수(壽)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높은 벼슬자리 올라가기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하지만, 이 정법(正法) 도량에 와서 기도를 하면 그런 조그마한 인간적인 소원으로 기도를 하러 왔지만 결국은 무루복(無漏福)—샘[漏]이 없는 영원한 법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최상승법, 참선법(參禪法)을 선양하는 이 도량에서 매년 초삼일부터서 아흐레까지 칠일 동안 신수기도를 봉행(奉行)하는 근본 뜻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참선을 바라고 정법을 원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인간의 몸을 가졌고, 가정을 가졌고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아가려면 영원한 무루복도 필요하지만 우선 당장 유루복도 없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것을 구하기 위해서 기도를 하지만 그 기도를 올바르게 정말 참되게 기도를 하면 저절로 이 무루법(無漏法)에까지 이르르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부탁드리고자 하는 것은 비록 신수기도를 한다 하더라도 정말 올바르게 기도를 하시면 작은 소원은 말할 것도 없고, 정말 ‘참나’를 깨달은 데에까지 이르르는 디딜목이 되리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어쨌던지, 오늘부터 7일간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하셔서 시종일관(貫)해서 기도를 해 가지고,

 

그 기도가 바로 삼륜(三輪)이 공적(空寂)해서—열심히 하다 보면 마침내는 「기도를 하는 내」나 「내가 바라는 부처님」이나 「내가 바랜 바 어떠한 목적」이 셋이 다 공(空)해 가지고 그것이 바로 삼륜이 공적인데,

 

삼륜이 공적을 한 가운데에 한결같이 정진을—한 생각도 딴 생각[別念]을 내지 아니하고 순일하게 정진을 지어가면 결국은 ‘참나’를 깨닫는 데에까지 연결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금년 특히 가족 가운데에 삼재(三災)가 든 분은 더욱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해주시고,

삼재가 안 드신 분도 이 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이 법당에 들어와서 기도할 그 시간 뿐만이 아니라,

 

기도가 끝나고 나가서 공양을 잡순다든지, 차를 타고 댁으로 돌아가신다든지, 또 댁에 돌아가셔서 또 생활을 하는 가운데에도,

이 법당에서 기도하는 그러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일주일간을 쪼옥 한결같이 그렇게 하신다면 틀림없이 소원을 성취하시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소원 성취하시길 다시 한번 간절히 바라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처음~12분34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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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精勤) ; ①쉬거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이나 공부 아주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 힘써 일하는 것. ②기도를 할 때 별념(別念)이 없이 일심으로 불보살의 명호를 염불하는 것.

*정성(精誠)온갖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청정(淸淨 맑을 청,깨끗할 정) ; 허물이나 번뇌가 없이 깨끗함.

*잡(雜)되다 ; (사람이나  언행)조촐하지 못하며 막되고 상스럽다. *조촐하다 : 단정하고 품위가 있다.

*망어(妄語) ; 거짓말이나 헛된 말.

*양설(兩舌) ; 이간질하는 말.

*악구(惡口) ;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정숙하다(肅-- 고요할 정,엄숙할 숙) ; (장소 분위기)아무 소리 없이 조용하고 엄숙하다.

*흐지부지하다(사람 어떤 )분명히 끝맺지 못하고 흐리멍덩하 넘기다.

*해이하다(解弛-- 풀 해,느슨할 이) ; (마음가짐이나 태도 따위가)긴장이 풀어져서 느슨한 상태이다.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소멸(消滅) ; 사라져 없어짐.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 행위.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수명장수(壽命長壽 목숨 수,목숨 명,길 장,목숨 수) ; 수명이 길어 오래도록 삶. 어린아이의 명이 길어 오래 살기를 빌 때에 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봉행(奉行) ; ①뜻을 받들어 행함. ②제사나 의식 따위를 치름.
*무루법(無漏法) ;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 마음 상태. 사제(四諦) 가운데 깨달음의 결과인 멸제(滅諦)와 그 원인인 도제(道諦)에 해당하는 모든 현상.
*디딜목발로 디디기 위하여 놓은 널판(넓고 판판하게  뭇조각)디딜널. 디딜판. 디딤널. 디딤판.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시종일관(貫)처음부터 까지 한결같이.
*삼륜공적(三輪空寂) ; 타인에게 물건을 줄때, 실체가 공(空)한 것을 관(觀)하여 보시에 집착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해, 「시자(施者 베푸는 사람) · 수자(受者 받는 사람) · 시물(施物 보시한 물건)의 3륜(輪)이 모두 본래 공(空)한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함. 삼륜체공(三輪體空), 삼륜청정(三輪淸淨)이라고도 함.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 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5. 2. 10. 14:28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408) 선원에서 왜 기도를 하냐? / 삼재소멸, 소원성취는 정법을 믿고 참선 정진이 최고 / 기도—참회—마음청정—자비·지혜심 / 불방일(不放逸)이 가장 좋은 정진.

 

기도나, 염불이나, 경을 읽는 것이나, 주력(呪力)이나 그런 것도 올바른 방법으로 지극정성(至極精誠)이 하면 참선문(參禪門)과 결국에 가서는 일맥상통(通)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법도 삿된 사람이 설하면 사법(邪法)이 되고, 삿된 법도 정법을 지닌 사람이 설하면 정법이 된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항상 성성(惺惺)하게 화두를 잡도리를 하면 그것이 바로 불방일(不放逸)이고 그것이 바로 정진이여. 몸과 마음을 구속하고, 강제로 어거지로 쪄 누르고 구속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일심으로 바르게 한결같이 기도를 하고 정진을 하면 자연히 마음이 청정해지니까, 인아상(人我相)이 떨어지고 보면 '내'라는 생각이 없고, 전부(部)가 '나'요 '내'가 전부다. 그러니 나를 위해서 남을 해꼬자 할 생각이 있을 수가 없고, 남이 고통 하는 것을 보면 자연히 우러나온 마음은 자비심(慈悲心)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송담스님(No.408)—90년 신수기도 입재(90.01.29) (용408)

 

(1) 약 22분.

(2) 약 8분.

 

 

(1)------------------

 

오늘 경오년 정월 초삼일 신수기도, 7일 기도의 입재(入齋) 법요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의 기도 입재에 대한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경청을 했습니다.  

 

조실 스님의 법문을 오늘 여러분께서 잘 들으셔서 아시겠습니다마는,

기도는, 어떻게 해서 그 기도를 성취를 하느냐?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하는 기도는 정법(正法)을 믿고 정법을 실천함으로 해서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하는 그러한 요지(要旨)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사람에게 거기에는 어떠한 마장(魔障)도 거기에는 붙지를 못합니다.

계행(戒行)을 지키면서 정법을 믿는 사람은 25신장(神將)이, 선신(善神)이 항상 전후좌우로 옹호를 하기 때문에 삼재(三災)와 일체 마장이 거기에는 붙지를 못해.

 

그러니 삼재를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하는 데에는 철저하게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을 하는 것이 최고다. 

 

금년은 해·묘·미(亥·卯·未), 돼지띠와 토끼띠와 또 염소띠, 해·묘·미생이 금년에는 '앉은삼재'여. 작년에는 '들삼재'고 올해는 '앉은삼재'고, 내년에는 '날삼재'인데,

 

이 삼재가 들면 이상하게 여러 가지 일이 자꾸 꼬이고, 뜻밖에 일이 사고가 일어나고 자꾸 무엇을 하면은 장애가 붙고 한다고,

옛날부터서 삼재가 닥쳐온 사람은 3년 동안을 매사에 있어서 조심을 하고 항상 기도를 하고 정성을 들이고, 모든 일에 있어서 근신(愼)을 하고 그러한 것이 일반 사람에게 널리 알려져서 있습니다.

 

그래서 전국 방방곡곡에 크고 작은 사찰에서는 이 정초(正初)에는 꼭 신수기도를 합니다.

우리 용화선원에서도 조실 스님 계실 때부터 쭈욱 정초에 이렇게 신수기도를 하는데, ‘어찌 선원(禪院)에서 기도를 하느냐?’ 이러한 정법을 철저히 믿는 그러한 분들은 혹 그러한 질문을 하시는 수가 있습니다.

 

‘기도는 기복불교(祈福佛敎)에 속한 것이지, 어찌 그것이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권장할 만한 일이겠느냐?’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과연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기도나, 염불이나, 경을 읽는 것이나, 주력(呪力)이나 그런 것도 올바른 방법으로 지극정성(至極精誠)이 하면 참선문(參禪門)과 결국에 가서는 일맥상통(通)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정법도 삿된 사람이 설하면 사법(邪法)이 되고, 삿된 법도 정법을 지닌 사람이 설하면 정법이 된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비록 이 기도도, 삿된 사람이 기도를 하면 그 기도가 사법(邪法)이 되고, 정법을 믿고 정법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 기도를 하면 그 기도도 정법이 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칼이지만 그 칼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외적(敵)에게 휘두르면 그 칼은 국가와 민족을 지키는 정의(義)의 칼이 되는 것이고,

바로 그 좋은 칼이지만, 정의의 칼이지만, 도적이나 악인이 휘두르면 그 칼은 흉기로 변해 버리고마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설사 그동안에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하신 분들도 오늘부터서 7일간, 초아흐레까지 7일간 이 기도 중에는 열심히 기도를 하시되,

첫째, 청정(清淨)한 마음으로 또 바른 마음으로 또 정성스런 마음으로 한결같은 마음으로 해서 7일간을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시면 그 기도는 지혜의 눈을 뜨고 자비를 실천할 수 있는 그런 마음 경계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왜 기도를 지극정성으로 하면 지혜로운 마음, 자비스러운 마음이 우러나냐?’하면, 지극정성으로 하다보면 내 마음이 ‘내다’ ‘부처님이다’ ‘남이다’하는 그러한 인아상(人我相)이 뚝 떨어져 버려.

 

그리고 그러기 때문에 기도를 열심히 하다 보면은 그렇게 하염없이 눈물이 나오는 수가 있어. 왜 나오냐?

자기가 그동안에 지은 죄에 대한 마음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참회의 눈물일 수도 있고, 그동안에 남편을 원망하고 또 시부모를 원망하고 또 다른 친척이나 친구,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그러한 생각이,

 

기도를 함으로 해서 ‘다 그 원인이 자기가 전생으로부터 지은 업(業)으로 인해서 이렇게 된 것이지 어찌 상대방에게 그 모든 허물을 갖다가 전가(轉嫁)시킬 수가 있느냐? 정말 내가 지은 업이 그렇게 깊어서 그랬다’고 하는,

솟구쳐 오르는 뜨거운 참회의 눈물이 나온다 그말이여. 그러고 난 뒤는 그렇게도 원망스럽고 미웠던 사람이 하나도 미운 생각이 없어져.

 

그러한 기도는 바로 참회(懺悔)로 이어지고,

그 참회로 인해서 내 마음이 정말 청정해지기 때문에, 마음이 청정해지면 거기서 나오는 모든 마음은 자비로운 마음밖에는 나올 것이 없고, 거기서 나오는 마음은 지혜로운 마음일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 년에 한번쯤은 우리 법보제자(法寶弟子),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들께서도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신 것도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물론 참선을 해서 여러 해 해가지고, 화두 한번 터억 거각(擧却)을 함으로써 일체 죄업이 거기에 붙지를 못하고 바로 불보살의 청정한 마음과 찰나간에 계합(契合)이 될 정도로 정진이 잘된 사람에게는,

구태여 뭐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아미타불을 부르고 무슨 기도를 할 것이 없겠습니다마는,

 

우리의 정진이 그러한 순숙한 경지에까지 도달하지 못한 분상(分上)에는 일 년에 한번쯤은 정성스럽게 기도를 한 것도 뜻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평소에 착한 마음을 가지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그리고 열심히 또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고 그런데 우연히 넘어져 가지고 팔이 부러졌습니다.

그래서 간신히 치료를 받아가지고 팔이 나으니까 이제는 해소병(病)이 생겨 가지고 까닭 없이 기침이 나오고 해가지고 여러 달을 고생하다가 또 그걸 간신히 나았습니다.

그놈을 겨우 나으니까 이제는 몸이 염증이 생기고 피부병이 생겨 가지고 백약(百藥)이 무효여.

 

그래서 ‘어느 절 훌륭한 스님이 계시다’고 해서 거기를 찾아갔더니, “그대는 전생의 업이 많아서 업으로 인해서 그렇다. 그러니 지장경을 많이 읽고 지장보살을 많이 불러라”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동안에 ‘지장경을 좀 열심히 읽고 그래도 병이 안 낫는다’고 어제 찾아 왔습니다.

찾아와서 “대관절 어떻게 하면 이 병을 나을 수 있으며, 업이 있다니 어떻게 무슨 전생에 무슨 업을 지어 가지고 하필 내가 이런 죄를 받게 됩니까?”

 

“그리고 그 스님 말씀하시기를 ‘좋은 일을 많이 하라’고 그러니 무슨 좋은 일을 해야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을 와서—아주 청년이 얼굴이 부성 부성하니 부어가지고, 온 몸뚱이가 투두룩투두룩 하니 피부병이 생겨 가지고 와서—물었습니다.

 

과연 이 세상에 전생에 업 짓지 않은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선업(善業)도 업이요, 악업(惡業)도 업인데, 선과 악은 종이 한 장의 안팎과 같아서 ‘선(善) 한다’고 한 것이 때와 장소가 바뀌면 악(惡)이 될 수도 있고,

분명히 겉으로 보기에는 악(惡)인 것 같은데, 세월이 지나고 또 그 일을 깊이 검토해 보면 또 그것이 선(善)으로 개념이 바뀌어지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업이나 악업이나, 아상(我相), 유위(有爲)의 상(相)을 가지고 지으면 그것이 바로 장차 새로운 과보(果報)를 받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일을 많이 하라고, 그럼으로써 빨리 그 병이 나을 것이다”(하니까) 그런데,

“무엇이 좋은 일입니까?” 이렇게 질문을 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좋은 일은—물론 방생(放生)을 한다든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고 약을 준다던지, 모다 그런 좋은 일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누구나 알 수 있고 행하기 쉬운 좋은 일이라 하는 것은,

첫째, 남에게 해(害)를 끼치지 말어라.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어라.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한 것이 그것이 바로 좋은 일이다.” 이렇게 일러 주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정진(精進), 정진하는데 가행정진(加行精進)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

정진도 역시 ‘불방일(不放逸)—방일하지 아니한 것’이 가장 좋은 정진인 것입니다.

 

정진을 좀 열심히 하려면 밤잠을 덜자고, 밥을 적게 먹고, 그래가지고 몸뚱이를 갖다가 구속을 하고 알날신심(遏捺身心)해서 이렇게 하는 것으로써 가행정진이라고 생각하고 또 용맹정진이라고 대부분 생각합니다마는,

「가장 좋은 정진은 방일(放逸)하지 않는 것」이여.

 

한 생각, 한 동작,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항상 방일하지 않는—방일(放逸)이란 말은 화두(話頭)를 놓치고 경계(境界)에 팔려 나가고 그래가지고 게으른 생각이 나서 그럭저럭 지내는 것을 보통 방일이라고 하는데,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항상 성성(惺惺)하게 화두를 잡도리를 하면 그것이 바로 불방일(不放逸)이고 그것이 바로 정진이여. 몸과 마음을 구속하고, 강제로 어거지로 쪄 누르고 구속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그래서 선(善)도 남을 해치지 아니하면 그것이 제일가는 선이요,

거기서 조금 더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가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남에게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쓰는 것인데, 몸뚱이로 나의 기력을 써서, 실력을 써서 남을 도와 줄 수도 있고,

말 한마디라도 남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남을 위안을 해주고, 남의 고통을 덜어주도록 말을 자비스럽고 지혜로운 방편으로 말 한마디라도 해주는 것, 그것도 또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여.

 

또 마음으로라도 항상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 마음으로 그이를 위해서 축원 기도를 해주고 잘되기를 빌어주고 또 남이 잘한 일이 있으면 마음으로 같이 기뻐해주고 축복을 해 주는 것, 그것도 또한 좋은 일을 하는 것인데,

또 물질적으로 돈과 쌀이라든지 그밖에 그런 것을 베풀고 그런 것도 또한 착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으나,

 

아까 조실 스님 말씀에 ’모두가 다, 지옥고 받고 있는 모든 중생들도 전부 나의 부모요,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다 나의 가족이요, 전부 동시에 그것이 바로 내 몸뚱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일심으로 바르게 한결같이 기도를 하고 정진을 하면 자연히 마음이 청정해지니까, 인아상(人我相)이 떨어지고 보면 '내'라는 생각이 없고, 전부(部)가 '나'요 '내'가 전부다 그말이여.

 

그러니 나를 위해서 남을 해꼬자 할 생각이 있을 수가 없고, 남이 고통 하는 것을 보면 자연히 우러나온 마음은 자비심(慈悲心)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산천초목 모다 그런 자연까지도 전부가 다 나의 집이요, 나의 가족이요, 나의 몸뚱이, 이러한 심경(境)이 그렇게 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을 한 사람은 또 기도를 한 사람은 항상 모든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내 몸같이 자비로써 모두를 다 돌봐주고 섭수(受)하게 될 수 밖에는 없습니다.

심지어 들이나 산에를 가도 그 들국화가 같은 거, 산에 진달래 같은 거, 아무리 아름답게 피어 있어도 자기집에 있는 꽃병에 꽃꽂이를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을 꺾어 가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 생존시에 조실 스님과 같이 수행하던 용담 스님이라고 계셨는데,

그분은 양양 군수의 아들로, 출가해 가지고 조실 스님이 젊은 나이로 견성(見性)허신 그것을 보고서 굉장히 도반이면서 그렇게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참 존경하고 신(信)하고 그런데,

 

그분은 해방(解放)이 되자마자 선학원(禪學院)에서 「선가귀감」을 번역을 해서 간행한 그러한 공로가 있는 분인데,

‘이북(以北)으로 넘어가서 내가 공산당들을 전부 정법으로 제도를 한다’고 월북(北)을 해서 지금 소식을 못 듣고 있습니다마는 그분과 같이 산에를 놀러가셨습니다.

 

그런데 조실 스님은 젊어서 퍽 부잡(雜)하신 그런 성격도 가지셔서 산에 가면, 친구하고 같이 가면 그저 돌팔매질도 하고 돌도 떠둥글치고 이렇게 하면서 인자 즐겁게 노시는데,

 

하루는 이렇게 돌을 요렇게 뚝 떠둥글치니까, 그 용담 스님이란 분이,

“허어, 자네 견성을 한 도인(道人)이 어찌 그런 돌을 있는 고대로 놓고 보고 자연을 고대로 놓고 요렇게 봐야지, 그놈을 뚝 떠둥글치면 자연이 손상이 될 뿐만 아니라,

그 바위에 의지해서 개미도 살고, 벌레도 살고, 눈에 안 보이는 모든 짐승도 살고 있는데 그것을 떠둥글치게 되면은 그 벌레들이 집을 잃을 것이고 그 바위가 굴러가다가 또 많은 생명도 죽게 되지 않겠는가.

도인이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해야 할 그런 숭고한 사상과 마음을 가지신 도인이 어찌 그러는가.”

 

아! 친구가 그 말을 한 것을 듣고서 ‘어떻게 마음으로 부끄러운 생각을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그 말씀을 하시면서 그 친구가 그렇게도 참 착하고 좋은 도반이였었는데, 그리고 그렇게 나를 신(信)하고 그 정법을 신하고 나를 아껴주던 친구가 이북으로 갔다고 하는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처음~21분32초)

 

 

 

 

 

 

 

(2)------------------

 

우리 도 닦는 사람들은 혹 산에를 가시더라도 행여나 꽃 같은 것을 꺾지 마시고, 무슨 바위 같은 그런 것을 떠둥글치거나 그러지 마시고 자연을 손상하는 그런 일이 없으셔야겠고,

또 가지고 가서 맛있게 잡숫고 휴지조각 같은 거, 깡통 같은 거, 병 같은 거, 더러운 것을 갖다가 거기다 골짜구니에다 함부로 버리거나 쑤셔넣지 말고, 반드시 오실 때는 그것을 싸가지고 오시도록.

 

그 조그마한 일이지만 그러한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 마음이 나아가서는 모든 이웃을 사랑하고, 우리의 겨레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숭고한 생각과 바로 그것이 직결(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오천년 역사를 가진 참 위대한 국민이지마는 그동안에 외침을 당하고 남의 속국 노릇을 많이 하고 식민지 생활하면서 그러한 좋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그런지 고쳐야 할 점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백성들도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느 나라 민족보다도 더 잘할 수 있는 바탕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88년도에 올림픽을 우리가 치러내서 세계 각국에 다 찬사를 받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일 년도 못가서 그것이 다 깨져 버리고 무너지고 다 잃어버리고 잊어버렸습니다.

 

좋은 것은 계속해서 실천을 해나가고 옳지 못한 것은 즉각 그 자리에서 참회하고 소멸해버리는 그런 용기와 지혜를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그 머지않아서 선진국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러한 때를 놓쳐버리고 다시 혼돈과 빈궁의 그런 국가로 전락하게 될는지, 그런 대단히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 나라를 구제하는 길은 바로 온 국민이 내 가족이요, 심지어 지옥고 받고 있는—그 지옥속에 고통받는, 모든 죄짓고 지옥고 받고 있는 중생들이 전부 나의 부모라고 그런 마음이 든다면 자기가 몸담아 있는 그 회사와 공장은 바로 그것이 자기 회사고,

 

또 그 사장의 입장에서는 그 공장에서 일하는 그 많은 직원들 노동자들이 바로 내 아들이요 내 딸이요 내 조카요 내 가족이고 바로 또 내 몸뚱이라고 서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노사분규는 바로 오늘 하루 동안에 전부가 다 끝나고 해결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아니고서는 노사분규는 해결이 되지 아니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90년대에 세계에 일등 가는 국가가 되느냐? 이대로 아주 미개국으로 후진국으로 전락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아까 조실스님께서 말씀하신 그러한 지혜와 자비의 마음을 품느냐 안 품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동참하신 여러분께서는  당장 이 시간부터서 내 식구, 내 몸뚱이, 내 가족 그런 좁은 울타리 안에서의 그런 인아상(人我相)에 떨어지지 말고,

가슴을 활짝 열고 ‘온 국민이 다 내 가족이요, 온 세계가 다 내 몸뚱이요, 지옥 세계도 다 나의 선망부모(先亡父母)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시게 될 것을 부탁을 드립니다.

 

 

7일간 기도를 하고 초 9일날 기도회향이 있습니다마는 그때는 바로 입춘날입니다. 그리고 또 일요법회 날입니다. 일요법회는 오후 2시에 거행을 하는 것이 예입니다마는, 이번 일요법회는 11시에 일요법회와 기도 회향과 입춘법회까지 아울러서 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너무나 뜻 깊고 또 그런 날이기 때문에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보왕삼매론이라고 여러번 번역되어서 널리 모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알려진 글을 제가 한문으로 된 원문을 도서관에서 어렵게 구해 가지고,

 

원문에 입각해서 잘 부족한 점을 보완해서 번역을 잘해 가지고 글씨는 잘 쓰지는 못하지만, 손수 써서 그래가지고 그것을 복사를 해가지고 그날 새해의 선물로 나눠드리고,

또 ‘입춘대길(入春大吉)’이라 한 것도 또 써서 복사를 해가지고 보시를 해드릴까 합니다.

 

그것을 갖다가 다 표구를 해서 보왕삼매론을 걸어 놓고,

이 보왕삼매론의 취지는 모든 역경(逆境)에서—내 마음에 맞지 않고, 나의 뜻에 맞지 않는 그런 어려움 속에서,

거기에서 지혜와 자비로서 그것을 극복하고 나아가서는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그런 아주 적극적인 수행 방법이요, 해탈(解脫)로 나아가는 묘한 법문(法門)입니다.

 

이 신수기도에 동참하시고 또 회향 때, 회향 법회에 참석하신 분께는 한 분도 빠짐없이 다 나눠드리려고 합니다. 그날을 그렇게 기다리시고 일주일 동안을 어쨌든지 열심히 기도를 해서 기도 성취하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21분33초~29분4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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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재(入齋) ; 재(齋)를 시작하는 일. 또는 그 의식.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 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요지(要旨)이나  따위에서 핵심이 되는 중요한 내용.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신장(神將) ;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 채소가 익지 않는 근(), 과일이 익지 않는 황()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〇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 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〇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〇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〇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신수(身數)기도 ; 새해를 맞아 정초에 일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정초(正初 정월 정,처음 초) ; 정월(正月 음력으로   중의 첫째 달) 초승(初生 음력으로 매달 초하루부터 처음 며칠 동안) 해의 처음.
*기복불교(祈福佛敎) ; 복을 구하거나 비는 불교의 한 모습. 복을 구하는 행위나 생각은 종교의 본질적인 것이라 할 수 있으나, '기복'이라는 말을 종교 앞에 붙인 경우에는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인다.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일맥상통(一脈相通) ; 사고방식이나 성질 등이  대상  서로 통하거나 비슷해.
*사법(邪法) ; 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청정(清淨 맑을 청,깨끗할 정) ; 허물이나 번뇌가 없이 깨끗함.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전가(轉嫁 돌릴 전, 떠넘길 가) ; 잘못이나 책임 등을 남에게 떠넘겨 덮어씌움.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계합(契合)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〇분(分) : ①분수(分數-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〇-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해소병 ; 해수병(病 기침 심하게 하는 ).

*유위(有爲) ; (산스크리트어: saṃskrta, 팔리어: savkhata)에서 위(爲)는 위작(爲作) · 조작(造作: 만들다)의 뜻으로, 유위는 만들어진 것, 조작된 것, 다수의 요소가 함께 작용된 것, 여러 인연이 함께 모여서 지은 것, 인연으로 말미암아 조작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킨다.

또는 이렇게 하여 드러난 생성과 소멸의 세계, 즉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의 세계를 뜻한다.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방생(放生) ; 사람에게 잡힌 물고기나 새, 짐승 따위를 산이나 물에 놓아서 살려 주는 일. 불교도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첫째 계(戒)인 불살생계(不殺生戒)보다 적극적인 선을 실천하는 선행(善行)이다.

*불방일(不放逸) ; ①방일(放逸-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해태(懈怠-게으름)하지 않은 것. ②온갖 선법(善法)을 닦는 것. ③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것.
[참고]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 제1권.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에서는 "온갖 선법(善法)에 있어서 방일(放逸)하지 않음, 즉 불방일을 으뜸으로 한다(於一切善法 不放逸為尊)"고 말하면서, 불방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爲斷不善法。爲圓滿善法。常習常修堅作恒作。數修不止名不放逸。
불선법(不善法)은 끊고 선법(善法)은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항상 익히고 항상 수행하며 견고하게 짓고 한결같이 지으며 자주자주 수행하면서 그만두지 않는 것을 불방일(不放逸)이라 한다.
 
[참고] 「불교평론」 (2005년 겨울), ‘붓다의 죽음’(안양규 글) p33에서.
팔리어본 「열반경」에 의하면 붓다는 제자들로부터 ‘불법에 의심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최후의 가르침을 남긴다.
“비구들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제행(諸行)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않고(appamādena) 정진하라.”(디가 니까야, 열반경 D16)
무상한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정진하라는 가르침은 붓다의 유언으로 제자들에게 남겨졌을 법한 내용이다.
 
불방일(不放逸)의 원어는 'appamāda'인데 부정접두사 'a'와 'pamāda'로 이루어진 말이다. 
'pamāda'는 어떤 자극에 의해 정신이 마비된 것을 가리키는 말로 특히 만취한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appamāda'는 마음이 깨어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diligent) 아니라 마음이 또렷이 각성(覺醒)한 상태(vigilance)이다. (Nyānatiloka, Buddhist Dictionary : Manual of Buddhist Terms and Doctrines. Kandy. 1980)

*알날신심(遏捺身心  누를 알,누를 날,몸 신,마음 심) ; 몸과 마음을 억누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잡도리 ;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남을 해치고자 하는 짓.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심경(境) ; 마음의 상태.

*섭수(受) ; ①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거두어 들여서 보살핌. ②관대한 마음으로 남을 받아들임.

*용담(龍潭) 스님 ; 생몰년 미상. 성은 김(金)씨, 법명은 초안(初眼)이며, 용담은 법호이다.

한용운(韓龍雲) 스님의 수제자로, 덕숭산 만공(滿空) 선사의 회상에서 지도를 받아 득의처(得意處)를 인증(認證)받았다. 그 뒤 《선가구감》 연구에 골몰하여 완벽한 번역과 풀이를 위해 정성을 다하였다.
또한 여러 고승들과 함께 「불교혁신총동맹」을 결성하여 불교혁신운동을 전개하였고, 「선학원」 부이사장, 「해동역경원」 부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년 4월19일, 신의주에서 병원을 하고 있던 동생을 만나겠다며 김구 선생과 함께 「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에 참석하러 월북하였으나, 그 뒤 소식이 단절되었다.
—[선가구감] (용담 스님 역주 | 효림) 편역자 소개에서.

*견성(見性) : 성품을 본다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해방(解放)1945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에서 벗어난 .

*선학원(禪學院) ;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절. 1921년 남전(南泉)·도봉(道峰)·석두(石頭) 등 3인을 중심으로 지었다.

선학원은 당시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병합하고 사찰령(令)을 반포하여 한국 불교를 일본 총독부의 관할 아래에 다루게 되었을적에,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어 가는 것을 개탄, 불조(佛祖)의 정맥을 굳게 계승하기 위하여 창설된 선종의 중앙기관이다.

사찰령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절(寺, 庵)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선학원이라 하였다.

그 후부터 한국 불교 선종의 책원지(策源地)로서 은연한 가운데 선객들을 통솔하였으며, 1934년 12월 5일에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으로 발족하여 초대 이사로 만공·한암·적음·남전·성월 스님이 선임되었다. 해방된 뒤에는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정관을 고쳤다.

*이북(以北)한반도 북위 38  위쪽또는 휴전선 북쪽.  북한() 가리킨다.

*부잡(雜)하다어느 한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간섭을 잘 하고 엉뚱한 사고를 치고 거칠다.

*떠둥그치다 ; 떠둥그뜨리다(떠둥그트리다, 물체의  부분을 들고 밀어 엎어지게 하거나 기울여 쓰러뜨리다).

 

 

 

 

 

 

------------------(2)

 

*직결(結)직접적으로 연결됨.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 묘협 스님께서 지으신 『보왕삼매염불직지(寶王三昧念佛直指)』 총 22편 중 제17편 ‘십대애행(十大礙行: 10가지 큰 장애가 되는 행)’에서 여러 구절을 가려 뽑아 엮은 글이다.

우리 중생이 일상 생활이나 수행을 함에 있어서 나타날 수 있는 10가지의 큰 장애가 되는 행동을 정리하고, 중생이 그 '장애 없기'를 구하지 말고 장애 속에 먼저 거처하게 하여, 그 10가지의 장애들이 실제로는 수행을 방해하는 장애가 아닌, 일체 중생의 수행·신심을 더욱 다지고 진작시키는 대선지식(大善知識)이며 또한 일체 중생을 진실하게 돕는 복전(福田)임을 알게 하여, 어리석은 중생이 장애로 인하여 퇴전하지 않고, 장애 속에서 큰 깨달음을 얻게 하기 위해 묘협 스님께서 경전에 의지하여 지으신 글.

*역경(逆境)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계(逆境界),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구경(究竟 궁구할 구, 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해탈(解脫) : [범] Vimoksa ; Vimukta ; mukti  [파]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또는 열반(涅槃)의 딴 이름으로도 쓰인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4. 12. 12. 09:10

 

 

§(160) (게송)천강동일월~ / 기도는 업장소멸(業障消滅)하는 것. 업장을 소멸해야 소원을 성취 / 참선은 죄를 짓지 않는 가장 묘한 방법 / 안수정등(岸樹井藤) / 발심.

온 우주법계는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法身)의 몸이요, 따라서 우리 깨닫지 못한 중생들도 고대로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 삼신(三身)이 고대로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몸뚱이가 바로 법신이요. 우리의 마음자리가 법신이요. 우리의 행동이 고대로 보신입니다.


기도는 첫째 청정한 마음, 정직한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 이 세 가지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만 기도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소원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우리가 달성해야 할 큰 목적은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서 지혜의 눈을 떠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 큰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진을 해 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정법을 믿고 한 생각 한 생각을 올바르게 그리고 간절하게 다져나가면 피와 오줌과 똥과 고름이 가득차 있는 이 추한 육신(肉身)이 진리의 법신(法身)으로 대광명(大光明)을 놓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신심(信心)인 것입니다.


**송담스님(No.160)—82년 신수기도회향 법문(82.2.2) (용160)

 

 

(1) 약 21분.

 

(2) 약 15분.


(1)------------------

천강동일월(千江同一月)이요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종일주홍진(終日走紅塵)하야  실각자가진(失却自家珍)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천강동일월(千江同一月)이요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라.
하늘에 한 달이 중천에 뜨면 천강동일월(千江同一月)이요. 일천 강에 그 한 가지 달이 비치더라.

종일주홍진(終日走紅塵)타가  실각자가진(失却自家珍)이로구나.
종일토록 홍진(紅塵) 세계,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오욕락(五欲樂)을 구하기 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달음박질치다가,
실각자가진(失却自家珍)이로구나. 자기집 보배를 잃어버리고 마는구나.

온 우주법계는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法身)의 몸이요, 따라서 우리 깨닫지 못한 중생들도 고대로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 삼신(三身)이 고대로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몸뚱이가 바로 법신이요. 우리의 마음자리가 법신이요. 우리의 행동이 고대로 보신입니다.

마치 하늘에 둥근달이 하나 떠 있으면 일천 강물에 달그림자가 비추듯이, 법계(法界)에 가득차 있는 모든 중생 두두물물(頭頭物物)에 이르기까지 그 달이 비치지 아니한 곳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로구나. 가난한 집이나 부잣집이나, 권리와 명예가 있는 집이나, 미천한 집이나 어느 집을 막론하고 봄이 돌아오면 다 따뜻한 봄기운을 봄바람을 받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진치와 오욕락을 구하기 위해서 동서남북으로 바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마냥 가난하고 천하고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 가지고 동분서주하다가,
원래 자기집에 평생 먹고 쓰고 남을 진귀한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망각하고, 자기가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이리저리 설치는 동안에 자기집에 있는 보물은 도둑을 맞아 버리게 된다.


오늘은 임술년 정초에 신수기도 회향일입니다. 초삼일(初三日)부터 시작해서 오늘 9일날 회향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 기도에 모다 동참을 하셔서 하루 4분정진(四分精進)을 해왔습니다.
모다 바쁘신 가운데에도 이 기도에 오셔서 직접 정근(精勤)을 하신 분도 많이 계셨습니다. 바뻐서 또 못 나오신 분은 댁에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일주일간을 기도를 하셨을 줄 생각을 합니다.

기도는 첫째 청정한 마음, 정직한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 이 세 가지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만 기도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한결같이 청정하고 정직하고 지성(至誠)스러운 마음으로 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기도는 첫째, 업장 소멸(業障消滅)하는 것입니다. 업장을 소멸해야 소원을 이루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 자리는 바로 부처님의 마음인데,
부처님께서는 팔만사천 무량공덕을 다 성취하셨기 때문에, 모든 지혜와 모든 복덕을 성취허셨기 때문에 마음 한 생각 내시면 한 가지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 없이 다 성취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은 그러헌 진여불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량겁 업장(業障)이, 업이 있어서 그 업의 장애를 받아 가지고 우리의 소원이 바로바로 성취가 아니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서 마음이 청정해지면 그러헌 업장이 소멸이 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바로 부처님 마음과 똑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3일이나 또는 일주일이나 또는 삼칠일 또는 백일 이렇게 날짜를 정해 놓고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그리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기도를 허면은 소원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성취가 되느냐 안 되느냐는 두고 봐야 알겠다. 이번에 기도를 했으니까 그것이 성취가 될는지 안 될는지 두고 봐야 알겠다.’ 혹 그렇게 생각하시고 계시는 분이 계실는지 모릅니다마는,

기도는 ‘기도를 지금 해 가지고 앞으로 성취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기도할 때 이미 성취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그 근본에 있어서는 성취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마치 어떤 서류를 관청에다가 신청서를 내서 관청에서는 이미 다 결재(決裁)가 떨어졌으되 본인에게 그 통지가 오는 것은 시일이 걸리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미 내용적으로는 결재가 다 나서 성취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통지문이 도달할 때까지 잠시 시간이 필요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여러분이 기도한 것은 이미 다 결재가 떨어져서 성취가 되었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그랬다고 해서 우리의 할 일이 다 없어진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는 할 일이 계속해서 있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소원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우리가 달성해야 할 큰 목적은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서 지혜의 눈을 떠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 큰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진을 해 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새로 업을 짓지 아니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일주일간 기도를 해서 업을 소멸을 하고 청정한 마음이 됨으로 해서 조그마한 소원을 이룰 수가 있겠지만 앞으로 우리에게는 큰 소원과 작은 소원들이 끊임없이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헌 소원들, 앞으로 다가올 모든 일들이 차례차례로 우리의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게 할려면 새로운 업을 짓지 아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업(業)을 짓지 않게 되느냐?

‘업을 짓는다’고 하는 것은 행동으로 살생을 하고, 행동으로 거짓말을 하고, 행동으로 사음을 범하고, 행동으로 거짓말을 하고, 보통 다 이러헌 그 나타나는—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그러헌 것을 ‘죄를 짓는다, 업을 짓는다’ 이리 생각을 하지만,
물론 그런 행동으로 짓는 업이 업 짓는 것 아닌 것은 아니지만, 업은 마음으로 짓는 것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어떠헌 행동도 먼저 마음에서 일어나 가지고 그것이 얼굴로 나타나고, 언어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진즉 지어놓은 것이 얼마 동안의 시간을 거쳐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치 화재가 날 때, 불은 몇 분 전에 불이 붙어 가지고 벌벌 타들어 가면 차츰차츰 그 불이 번져서 저 먼 데에서도 불꽃이 보이고 연기가 보일라면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연기와 불꽃이 보이기 전에 이미 불은 붙어서 타들어 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행동으로 죄를 짓는 것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에 우리의 마음에 있어서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학자는 연기와 불꽃이 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훨씬 이전에 '한 생각' 딱! 일어날려고 할 때 거기에서 처리를 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불이 번져서 훨훨 타고 있을 때에는 소방대 차가 동원이 되어 가지고서도 끄기가 어렵고 이미 그때는 많은 가산(家産)을 다 태우고 집을 태우고 사람을 태워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때에사 끌려고 할 것이 아니라, 불이 맨 처음에 조그마한 성냥불이나 담뱃불로 부터서 불이 붙자마자 그때에는 손바닥으로 꺼도 꺼지는 것입니다. 발로 살짝 밟아 버리기만 해도 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짓는 모든 종류의 죄도 한 생각 일어날려고 하는 그 찰나에 딱! 조치를 해 버리면 간단하게 죄짓는 것을 미연에 해결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법은 최상선법(最上乘法) 참선법이 아니고서는 이것은 아니 되는 것입니다.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그 찰나에 그 일어난 그 생각이 커지기 전에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화두를 돌이켜 관조(觀照)하면 자취 없이 소멸되고 말아버린 것입니다.

이 화두로서 모든 죄를 미연에 방지하고 소멸시켜 버리는 이 법은 그 동안에 참선을 해보신 분이면 너무너무 요긴하고 고맙고 미묘하다고 하는 것을 잘 알고 계실 줄 생각을 합니다.

이 참선은 죄를 미연에 방지하고 따라서 앞으로 새로운 죄를 짓지 아니하는데 가장 묘한 방법인 것입니다.

많은 죄를 지어서 그 죄가 자기 몸을 망치고 집안을 망치고 남을 망치고 사회 국가를 망치고 그렇게 된 뒤에사 그것을 소멸을 하기 위해서 용맹정근을 하고 기도를 하고—물론 그렇게 해야 되겠지만,
우리 최상승법 학자는 지나간 업을 기도를 통해서 하려니와 앞으로 새로 짓지 않는 방법으로는 참선을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요긴한 법이라 하는 것을 명심을 하시기를 바랍니다.(처음~20분16초)

 

 

 

 



(2)------------------

세속에 살려면 아들딸들이 잘 자라고 공부를 잘하고 좋은 학교에 입학을 해야 되겠고, 사업도 잘되어서 돈도 잘 벌어야 되겠고, 직장에 직책도 자꾸 위로 승진을 해야만 되겠고, 아들딸들이 좋은 배필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줘야 되겠고 이러헌 등등 수많은 크고 작은 원들이 있습니다.
그러헌 원을 성취해야만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렇게 열이면 열 다 성취가 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의 능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과 모든 성현께 간절히 소원을 해서 그런 성현의 가피(加被)를 입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겠습니다.

‘잘되면 제 공덕이고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만은 잘되고 못되고 하는 것이 전적으로 자기에게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잘못되면 핑계를 꼭 외부에다 대고 다른 사람한테 그 원인을 책임을 전가(轉嫁)합니다만은,
모든 책임은 자기가 져야 하고 모든 원인은 자기에게 있다고 하는 것을 잘 이해를 한다면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책망(責望)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다 부자가 되기를 바라고 모든 일이 내 뜻대로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요 욕심입니다만은,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또는 모든 성현들은 꼭 그렇게 부귀영화를 누리고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된 것만이 좋다고는 하시지 않았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 중생들은 호강하고 부귀하게 잘살고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고 이럴 때에는 즐거움에 빠져서 게을러지고 오만해지고 거만해지고 남을 업신여기게 되고 성현을 존경하지 않게 되고 진리를 믿으려 하지 아니하고 어떠한 종교에 대한 신앙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금생에 자기가 똑똑하고 잘나서 그렇게 부자로 사는 줄 알지만 원인을 알고 보면 전생에 조금 복 지어 놓은 것이 있어서 전생에 복을 지어서 예금해 놓은 것이 있어서 그놈 빼먹느라고 좀 남부럽지 않게 잘사는 것이지 그거 곶감 빼먹듯이 다 빼먹고 나면 별것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남부럽지 않게 좀 잘살고 호강하고 산다고 해서 조금도 남을 업신여기고 뽐내고 으시댈만한 거리가 되지를 못한 것입니다. 잘살아 봤자 잠깐동안 꿈꾼 것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높은 벼슬과 권리를 가지고 큰소리를 쳐봤자 잠깐 그러다 마는 것입니다. 불과 10년 20년이요, 몇 해 안가면 다 그런 것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 그런 허망한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 돈이 없고 가난하고 사업을 해도 잘 안되고 모든 일이 뜻과 같이 되지 않아서 너무너무 속을 상하고 근심걱정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별로 그렇게 걱정할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그러헌 대로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해 가면서 참고 견디다 보면 차츰 일이 풀려나가면서 또 돈을 벌게도 되고 남부럽지 않게 살 날이 또 돌아오고 마는 것입니다.


지난 삼동(三冬) 대단히 추웠습니다. 그렇게 추워서 너무너무 추워서 이렇게 계속해서 추우면 얼어죽을 것 같지만 벌써 새해를 맞이해서 모레면 임술년 입춘(入春)을 또 맞이하게 됩니다.

‘입춘이 지나고 우수(雨水)가 돌아오면 대동강 물도 다 풀린다’ 그럽니다만은,
언제 어떻게 풀린 줄 모르게 동풍(東風)이 불어오고 화신(花信)이 전해오면 여기저기 또 진달래가 피고 산에 산에는 개나리가 벌겋게 피게 필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고생스럽다 하더라도 정법(正法)을 믿고 ‘이뭣고?’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착실하게 보람있게 살아가노라면 금방 봄소식과 함께 우리 가정에도 하나씩 둘씩 우리의 소원대로 되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인생은 어피차 꿈과 같은 것이라고 과거에 모든 성현들이 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잘살아도 꿈이요 못살아도 꿈이요, 허망한 꿈이지만 정법을 믿는 사람은 그 허망한 속에서 허망하지 아니한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무상(無常)하고 허망한 속에서 진실한 것을 발견을 하게 됩니다.

허망한 일생 동안을 영원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불법(佛法)이요 최상승법입니다.

우리의 몸뚱이는 피와 오줌과 고름 이런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추(醜)한 것들로 구성이 되었지만 이 몸뚱이를 주재(主宰)하는 마음자리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그것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정법을 믿고 한 생각 한 생각을 올바르게 그리고 간절하게 다져나가면 피와 오줌과 똥과 고름이 가득차 있는 이 추한 육신(肉身)이 진리의 법신(法身)으로 대광명(大光明)을 놓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신심(信心)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같이 깊고, 산과 같이 동(動)함이 없는 그러헌 굳은 신심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굳은 신심을 갖는다면 우리의 큰 소원은 의심 없이 이룰 수가 있는 것이며 세속에 있어서의 조그마한 소원들도 어김없이 성취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호귀(豪貴)에 득도난(得道難)이라, 호강하고 귀한 데에서는 도를 얻기가 어렵다’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선 배부르고 등 뜨시고 호강하고 귀하니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고 그러기 때문에 구태여 신심도... (녹음 끊김) ...성불이니 하나도 필요로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벌집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그 꿀방울을 빨아먹는 동안에는 꿀의 단맛에 취해 가지고,
시시각각으로 자기가 매달려 있는 그 칡덩쿨이 흰 쥐, 검은 쥐에 의해서 계속 끊겨 들어가고 있다고하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고,
그 줄이 끊어지면 천길만길 우물 바닥에 떨어지면 그 우물 속에서는 독룡과 독사가 입을 벌리고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사실도 망각한 채 꿀물만을 빨아먹고 있는 그러한 형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오히려 도 닦을 마음을 발(發)하는 수가 많다 이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대로 뭔 일이 잘될 때 보다는 우리의 마음대로 잘되지 아니하고 정신적인 육체적인 물심양면으로 장애에 부딪치고 내 뜻과 같이 아니 될 때,
그때 발심(發心)해서 정법을 굳게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삼는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최상승법에 깊은 큰 인연을 심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모든 부귀와 호강을 갖추면서도 그러헌 데에 빠지지 아니하고 겸허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실천한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지옥에 떨어질 수 있는 함정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좋은 일에도 지옥의 함정은 있고, 나쁜 일에도 지옥의 함정은 있고, 동서남북 멀고 가까운 모든 곳에 지옥에 떨어질 수 있는 함정도 있고 천당에 올라갈 수 있는 계단도 있습니다.

우리의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곳에 바로 육도(六道)의 윤회(輪廻)가 거기에 있다고 하는 것을 이 최상승법에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20분17초~35분0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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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千江同一月  萬戶盡逢春’ ; [오등회원(五燈會元)] 권13, 용광인(龍光諲)선사 참고.
*(게송) ‘終日走紅塵  失却自家珍’ ; [인천안목(人天眼目)] 1권—빈주문답(賓主問答)에서 분양(汾陽)선사 참고.
*홍진(紅塵 붉을 홍,티끌 진) ; 탐진치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으로 물든 번거롭고 어지러운 속된 세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홍진세계(紅塵世界).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비로자나(毘盧遮那)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이르는 말. 비로자나는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을 형상화한 것.
*법신(法身) : [범]  dharma - kaya 「법 몸」이란 말인데, 실불(實佛)·법성신(法性身)·진여불(眞如佛)·법계성(

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이며, 「한물건」이라고도 말한다
진여의 본 바탕(眞如本體)을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더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꽉 차 있으되,
네 가지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離四句) 백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수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볼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보신(報身) ; 부처가 전생에 보살로 있을 때 중생을 위해 서원을 세우고 거듭 수행한 결과,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 아미타불과 약사여래가 여기에 해당한다.
*화신(化身) ;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여 때와 장소와, 중생의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나타나 그들을 구제하는 부처님.
석가모니불을 포함한 과거불과 미륵불이 여기에 해당함. 응화신(應化身)·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두두물물(頭頭物物) ; 온갖 사물과 현상.
*수(身數)기도 ; 새해를 맞아 정초에 일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네 번(새벽, 오전, 오후, 저녁)씩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것.
*정근(精勤) ; 노력하는 것. 힘써 일하는 것.
*기도(祈禱) ; 불보살(佛菩薩)의 가피(加被, 중생을 이롭게 하는 불보살의 자비)를 받들어 재앙을 피하고, 복(福)을 더하도록 기도하는 것.
*지성(至誠 궁극 지,정성 성) ; 지극(至極)한 정성(精誠).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소멸(消滅) ; 사라져 없어짐.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혜명(慧命) : 지혜를 생명에 비유한 말.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

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가산(家産) ; 한집안의 재산.
*관조(觀照) ; 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함.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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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피(加被 더할·베풀 가,입을·두를 피)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威神力)을 받는 것.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것. 가호(加護)와 같음.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입춘이 지나고 우수(雨水)가 돌아오면 대동강 물도 다 풀린다’ ;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속담으로 아무리 추운 날씨도 우수와 경칩을 지나면 누그러진다는 말.
*동풍(東風) ; ①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②봄철에 부는 따뜻한 바람. ③골짜기로부터 산으로 부는 바람.
*화신(花信 꽃 화,소식·편지 신) ; 꽃이 핀 것을 알리는 소식.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안수정등(岸樹井藤) ; 어떤 사람이 벌판을 걷다가 성난 코끼리 한 마리를 만났다. 크게 놀라 달아나다가 다행이 우물을 발견하고, 우물 안으로 뻗어 내려간 칡넝쿨을 붙잡고 간신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곳에는 네 마리의 뱀들이 사방에서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고, 또 밑바닥에는 무서운 독사가 노려보고 있었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그는 칡넝쿨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흰 쥐와 검은 쥐가 나타나서 칡넝쿨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였다.  코앞의 칡넝쿨에 벌집이 있었는데, 그 벌집에서 꿀이 떨어져 입에 들어왔다. 순간 그는 모든 위험을 잊고 그 꿀을 맛있게 핥아 먹었다.

여기서 사람은 범부를, 코끼리는 무상(無常)을, 우물은 사람의 몸을, 칡넝쿨은 생명줄을, 뱀은 사람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사대(四大) 요소(地水火風)를,
흰 쥐는 낮, 검은 쥐는 밤, 즉 흘러가는 세월을 뜻하고,독사는 악한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고통의 세계를, 꿀은 사람을 현혹하는 욕망을 뜻한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
생활속 정진(요중선)2014. 12. 1. 09:13

§(055)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 그것은 견성성불할 수 있는 발판 / 부설거사(浮雪居士) / 신통은 성말변지사(聖末邊之事) / 박초선 명창 음성공양(찬불송, 그것도 멍텅구리).

‘참선을 잘한다, 잘 못한다’ 또는 ‘그분은 빨리 도업(道業)을 성취헌다, 못한다’고 허는 판가름 길이 바로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을 어떻게 빨리 돌려서 단속(團束)하느냐』 오직 거기에만 달려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빚 갚으면서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가르켜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참선법인 것입니다.


세속(世俗)에 계신다고 해서 도를 못 닦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마음가짐 하나에 따라서는 오히려 세속이 더욱 발심(發心)을 할 수 있고, 더욱 분심(憤心)을 낼 수 있고, 더욱 용맹정진(勇猛精進)할 수 있는 적극적인 수행도량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정법을 믿는 신도들은 어떠한 것이 정법이고, 어떠한 것이 삿된 법이라고 하는 것을 잘 아셔야 됩니다.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정법은 깨달은 진짜 도인은 설사 그러한 신통법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가지고 있다 해도 중생 앞에 그런 것을 함부로 남용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55)—77년 동안거 결제 법문(77.11.25) (용055)

 

(1) 약 22분.

(2) 약 22분.


(1)------------------

번뇌(煩惱)와 망상(妄想) 때문에, 그놈 때문에 우리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번뇌도 일어나지 아니하고, 망상도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혼침도 일어나지도 아니한다면 그런 사람이 어디가 있다면 그것은 나무나 돌로 깎아서 만들어 논 사람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나무나 돌로 깎아서 만들어 논 사람은 정말 석달 열흘을 잠을 안 자도 잠이 오지 않을 것이며, 석달 열흘을 앉혀놔도 번뇌·망상 한번도 일어날 리가 없겠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고단하면 잠이 오기 마련이고, 며칠을 밥을 안 먹으면 배고프기 마련이고, 때리면 아프기 마련이고, 앉았다 보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일어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혼침·산란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살아있는 증거이고, 살아있는 사람이면 참선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도 번뇌와 망상 일어나는 것을 언짢게 생각하시거나 짜증을 내시지 말고, 이놈 때문에 내가 참선을 못한다고 미워하시지를 말고 『일어나는 그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그 방법만을 잘 아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일어나는 그 생각을 없애거나 누를려고 하지 말고 그 생각을 바로 발판으로 해서 그 생각하던 그 생각으로 「이뭣고?」 이렇게 화두(話頭)를 들어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무슨 생각이 일어나던지 그 일어나는 생각이 다음 생각으로 옮아가기 이전에 퍼뜩 「이뭣고?」
심호흡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기 시작하면서 「이뭣고?」
이렇게 호흡과 화두를 함께 합쳐서 들어나간다고 하면은 백만 번 망상이 일어난다 해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백만 번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그렇게 들어나가면, 일어났던 망상이 나로 하여금 육도윤회를 하게 하는 그러한 고약한 원인이 아니라,
그 망상은 바로 나로 하여금 견성성불할 수 있는 길로 들어서게 하는 좋은 발판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높이 뛴다든지 멀리 뛸려면은 좋은 발판이 있어야 합니다. 발판이 짱짱해야 그 발판을 의지해서 높이 뛸 수가 있고 멀리 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뛰는 그 순간에 마지막 발 디딘 곳이 미끄러지거나 또는 질펑거리거나 그래서는 높이 그리고 멀리 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발판이 좋아야 멀리 뛸 수도 있고 높이 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발판이 없으면 우리는 화두를 들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발판이냐?
무엇을 보던지, 무엇을 듣던지, 무엇을 생각하던지, 느끼던지 간에 그것들이 좋은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좋은 발판이 지옥으로 가는 육도윤회하는 발판으로 사용이 되는 것이고,
정법(正法)을 믿고 참선을 하는 사람은 그 발판이 바로 견성성불할 수 있는 발판으로 잘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娑婆世界)가 정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육도윤회(六道輪廻)하는 생사고(生死苦)의 원인이 되는 그러한 악세지만, 악하고 고약한 오탁악세(五濁惡世)가 되지마는,
정법을 믿는 우리 부처님 제자들에게는 이 시방세계의 어떤 나라보다도 제일 훌륭한 좋은 수도장(修道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모든 도인들은 천상(天上)에 태어나기를 바라지 안했습니다.
천상에 태어나면 아무 괴로움은 없다고 하지만은 너무 편안하고 즐겁기만 하기 때문에 그러한 즐거움과 편안함 속에 빠져서 도를 닦을 수가 없습니다.

혹 그 천상의 즐거움이 영원한 것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괜찮지만 자기가 복을 지은 만큼 다 받고 난 다음에는 다시 인간 세상이나 축생이나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상에 태어나면 그만큼 도 닦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기 때문에 천상에 태어나기보다는 인간으로 태어나서—인간 세계에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섞어져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괴로운 것을 만나고 시련을 받음으로 해서 거기서 진리에 들어갈 수 있는 좋은 계기를 우리는 만날 수가 있기 때문에, 많은 과거의 도인들이 사바세계에 태어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사바세계에 태어나야 정법을 만나 가지고, 내가 나를 깨달라서 나도 성현(聖賢)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수행을 헐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에 어떠한 좋은 인연으로 해서, 훌륭한 수승한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에 사람으로 태어났고, 사람으로 태어났으면서도 또 불법을 만났고,
불법을 만난 후에도 이 정법을 만나서 내가 나를 깨달을 수 있는 그러한 길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매일 무엇인가 보고, 무엇인가 듣고, 무엇인가 외부로부터 충격을 받으면서 성도 내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당하고 있는 그러한 외부로부터 충격, 내부로부터 일어나는 어떠한 느낌, 그 한 가지 한 가지를 결단코 소홀히 지내서는 안됩니다.

그 모든 그러한 것들이 한 생각 우리가 돌리기만 한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나를 깨달을 수 있는 좋은 수도 도장이요 깨달을 수 있는,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발판이기 때문에,

‘참선을 잘한다, 잘 못한다’ 또는 ‘그분은 빨리 도업(道業)을 성취헌다, 못한다’고 허는 판가름 길이 바로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을 어떻게 빨리 돌려서 단속(團束)하느냐』 오직 거기에만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내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운 일들은 나로 하여금 자칫 게으름 속에 무단(無斷)히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그렇게 나를 몰아넣기가 쉬웁고,
나의 육체와 정신을 괴롭게 할 수 있는 그러한 역경계(逆境界)는 나로 하여금 신심을 돈독히 하고 분심을 일으켜서 맹렬히 화두를 단속할 수 있도록 해 주기 좋은 그러한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순경계(順境界)를 많은 사람들은 좋아하고 역경계(逆境界)를 멀리하고 싫어하지만은 정법을 만난 정법학자들은 순경계에 빠져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어떠한 견뎌내기 어려운 역경계라 할지라도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돌이켜 단속하기만 한다면,
그 역경계가 우리에게는 순경계 몇십 배, 몇백 배 좋은 밑거름이요, 발판이요, 불보살의 설법이 되어 주는 것이며, 불보살을 모시고 수행해 나가는 좋은 선방이요, 수도장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석 달 동안 결제에 들어갑니다마는 용화선원에 방부를 들여서 여기서 공부하시는 분이나 또는 어떠한 형편에 의해서 또는 후배들을 위해서 자진해서 댁에서 공부를 허시는 그러한 노보살님이나 누구를 막론하시고,

오늘 아까 조실스님께 들은 말씀 또 제가 부연해서 해 드리는 말씀을 명심을 하시고,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듣거나, 입으로 무엇을 말하시거나, 마음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건간에,
1초 1초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알뜰히 단속을 해 나가심으로 해서 1초 1초가 합해서 1분, 1분이 합해서 한 시간, 한 시간 한 시간이 합해서 하루, 하루 하루가 모여서 석 달이 되는 것입니다.

석 달을 훌륭하게 공부를 허실 분은 ‘한 생각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고,
‘이 한 생각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하는 문제는 바로 내가 금생에 결정코 도업을 성취할 수 있게 허는 요긴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뒤로 미룬다.” 고인이 말씀허셨습니다.

‘아직은 나는 아직 헐 일이 많고, 나이가 젊기 때문에 아들딸들을 키워서 가리켜서 다 결혼을 시켜야 나는 그때사 비로소 참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허신 분들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한 분들은 그래서 ‘나중에 좀 더 일 다하고 늙은 다음에 참선허리라.’

『이렇게 뒤로 참선하는 기일을 뒤로 미루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라』 이렇게 말씀을 허셨습니다.

왜 어리석냐?
그러한 일들을 다 마쳐놓고 늙은 다음에 할려고 하는 생각은 결정코 어리석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남편·아내·아들딸·부모·일가친척·사회·국가 이러한 상황 속에 나도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특수한 사람, 그런 것을 다 청산해 버리고 출가하는 스님네 그런 특수한 스님네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어찌해 볼 수 없는 그러한 인연 속에 놓여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갚지 않고서는 아니 될 그러한 빚을 지어놨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지어논 빚은 갚아야 합니다.
갚지 않고 아무리 피할려고 해도 자기가 지어 놓은 빚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일단 자기가 지어 놓은 빚은 어떠한 노력, 어떠한 괴로움을 무릅쓰고라도 기어코 갚아야만 됩니다.

그러면 일생동안 그것만 갚다가 말면 언제 자기의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느냐?
빚만 갚고 말면은 그것이 다가 아니라 빚 갚으면서 계속해서 또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무량겁을 두고 빚만 갚다가 맙니다.


거기에서 부처님께서는 빚 갚으면서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가르켜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참선법인 것입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딸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열심히 완수해 나가는 그 가운데에 「이뭣고?」 「이뭣고?」 간절한 마음으로 자기의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하면서 화두를 드는 것입니다.

성이 날 때 자기가 자기의 마음을 아무리 진정헐랴고 해도 진정할 수 없을 만큼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그럴 때에도 그 찰나를 놓쳐선 안 됩니다.
심호흡을 ‘후~’ 심호흡을 터억 하면서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갈 때에 먼저 자기의 그 거센 파도가 일어나는 자기의 마음을 안정을 하면서 며느리 노릇, 아내 노릇, 엄마 노릇을 충실히 해 나가야 됩니다.

만약에 잠깐이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완수하지 아니할 때에 사태는 더욱 고약하게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서 점점 자기만 자기의 디딜 땅이 좁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의 발 디딜 땅이 불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호흡을 함으로 해서 혈액순환을 촉진을 시키고, 나아가서 피를 맑게 함으로 해서 정신이 맑아지고 안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선을 하는 사람은 어떠한 정신적 또는 육체적 또는 주위환경에 견디기 어려운 그러한 역경계를 만났다 하더라도,
잘 지혜스럽게 그러한 고비 고비를 잘 요리하고 극복해 나가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완수하면서 그러면서 나의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업장 소멸한다’고 하는 것은 ‘빚을 갚는다’는 얘기와 마찬가지입니다.
빚을 갚으면서 앞으로 새롭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저축을 해 나가는 길인 것입니다.

천하 간단한 한마디요, 한 말씀에 지내지 못하지만,
이 말씀을 깊이 믿고 이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한 달, 두 달, 석 달 가지 못해서 과연 이 법이야말로 내가 무량겁을 두고 만나야 했었던 가장 훌륭한 위대한 길이라고 허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철 한철을 착실히 가정에서 직장에서 또는 선방에서 제가 오늘 말씀해 드린 이 말씀을 잘 명심해서 들으신다면 비단 이 선방에 방부를 들이지 아니하시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생활하시는 그 곳이 고대로 훌륭한 선방이 되어줄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사람에 따라서는 선방에서 규칙적으로 생활하시는 가운데 참선하신 분보다도 훨씬 더 훌륭한 실적을 올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나라에 부설거사(浮雪居士)라고 하는 분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세 분의 스님 가운데에 한 사람입니다. 세 참선하는 스님이 태백산으로 참선을 하러 가시는 도중 김제 만경뜰을 지나시게 되었습니다.

지나다가 어느 집에 들어가서 탁발(托鉢)을 하러 들어갔습니다. 탁발하러 들어갔는데 어떤 예쁜 처녀가 탁발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 처녀가 그 한 스님을 보자마자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말문이 툭 터졌습니다. 본래 그 처녀는 나면서부터서 말을 할 줄 모르는 벙어리였습니다.

벙어리 처녀가 그 탁발하러 온 스님 얼굴을 보고서 어떻게 큰 충격을 받아 가지고 말문이 툭 터져 가지고는,
‘이 스님이 아니고서는, 이 스님하고 기어코 결혼을 시켜달라’고 그 스님을 붙잡고 사정을 하고, 부모가 나와서 그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열여덟이 되도록 말도 못한 벙어리가 말문이 터지면서 스님하고 결혼을 하겠다고 허니 기가 맥힌 사건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부설거사는 그 두 도반이 극구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그 처녀하고 결혼할 것을 승낙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두 도반은 한 도반을 속가에다가 빼앗기고 둘이만 아픈 가슴을 안고서 태백산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떠날 때 부설거사가 그 도반에게 하는 말이 『나는 부득이한 과거의 인연으로 해서—이 처녀가 내가 결혼을 안해 주면 혀를 깨물고 자살을 하겠다고 하니, 내가 부득불 이 처녀 한 사람을 살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자네들과 같이 용맹정진을 하고 있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이 속가에서나마 열심히 정진할 테니 부디 둘이만 가서 열심히 공부를 해 가지고 10년 뒤에 다시 만나서 내가 더 공부를 많이 했으면 그대들이 나한테 배우고, 그대들이 더 공부가 나으면 내가 배우기로 하세』 그렇게 언약을 하고서 이별을 했던 것입니다.

10년 동안 그 처녀와 결혼한 분이 바로 오늘날 전해지는 부설거사라고 하는 분입니다.(16분45초~38분1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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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처녀 이름은 묘화(妙花) 부인이고, 묘화라고 하는 처녀가 부설이라고 하는 분과 결혼을 해서 사는 가운데에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 묘화라고 하는 부인도 스님을 갖다가 자기로 인해서 퇴속(退俗)을 시켰으니 만큼 그 부설거사를 정말 마음으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받들면서 그 스님의 법문을 듣고서 열심히 참선을 했던 것입니다.

참선을 허면서 10년 세월을 지내는 동안, 등운(登雲)이라고 하는 아들 하나와 월명(月明)이라고 하는 예쁜 딸을 낳아서 길렀습니다.
그래서 그 부설거사와 묘화 부인과 등운—등운조사는 출가를 해서 스님이 되었고 또 월명이라고 하는 분도 참선을 해 가지고 네 가족이 전부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가지고 도를 닦아서 다 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분들이 도를 닦던 장소가 어디냐 하면은 변산(邊山)에 가면은 변산에 월명암이라고 하는 절이 있고, 그 근처에 모다 등운암이라든지 모다 같이 (공부)하던 절터가 지금도 남아있고, 월명암은 현재에 사찰로서 남아있습니다.

대둔산 태고사, 장성 백양사의 운문암 또 변산의 월명암, 이 남한의 세 절이 수행하기 가장 좋은 옛날부터 이름나 있는 암자인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월명암인데, 그 월명암이 부설거사의 딸이 수행을 해서 도업을 성취한 그 도량인 것입니다.

세속(世俗)에 계신다고 해서 도를 못 닦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마음가짐 하나에 따라서는 오히려 세속이 더욱 발심(發心)을 할 수 있고, 더욱 분심(憤心)을 낼 수 있고, 더욱 용맹정진(勇猛精進)할 수 있는 적극적인 수행도량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십 년 후에 그 부설거사와 태백산에 들어갔던 두 도반, 세 분이 모여서 법담(法談)을 했고, 오늘날까지 법담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지마는 전설로서 전해 내려오는 법의 도력의 시합이 있습니다.

병에다가 물을 담아 가지고 저 서까래 끄터리에다 매달아 놓고, 병 3개를 떠억 매달아 놓고서 태백산에 들어갔던 두 도반이 차례차례로 몽댕이로 그 물병을 뚜드려 부쉈습니다.
뚜드려 부수니까 그 물병이 깨져 가지고 물이 땅에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부설거사가 몽댕이로 병을 깨니까, 병만 깨지고 물은 병 모양 고대로 뭉쳐 가지고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고 허는 그러한 도력 시합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선을 해서 견성(見性)했다고 해서 물병만 깨지고 물은 허공에 매달려 있다고 허는 그렇게 되야 도인(道人)이다. 이렇게 생각하셔서는 그것은 잘못된 생각인 것입니다.

‘똥을 누면은 그 똥에서 구린내가 나지 아니하고 향내가 나고, 두 눈에서는 캄캄한 밤에서도 자동차 불처럼 훤하게 불을 내뿜고,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이 육신으로 서울로 날아갔다 부산으로 날아갔다 미국으로 날아갔다 이러한 신통(神通)을 부려야만 그것이 도인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은 정법을 잘못 인식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신통술이라 하는 것은 “성말변지사(聖末邊之事)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견성을 해 가지고 오래오래 보림(保任)을 하면은 구허지 아니해도 자연히 그러한 신통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마는 견성했다고 해서 조만(早晩) 그러한 능력이 누구라도 다 얻어진 것은 아닙니다.

또 견성을 전혀 하지 아니한 사람도 어떠한 그 신통술 얻는 그러헌 비법을 알아 가지고 열심히 허면 그러한 신통을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견성(見性)을 허지 못한 사람이 그러한 신통술 갖춘 사람은 외도(外道)가 되는 것입니다.

중생들은 그러헌 신통 부리는 것을 보면 혹(惑)하고 반해 가지고 그 사람이 큰 도인인줄 알고 미쳐서 무엇이라도 재산이고, 명예고, 권리고, 이 몸과 목숨 모든 것을 그 사람한테 다 바칠랴고 그럽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 사람이 견성을 한 진짜 도인으로서 그러한 신통술을 갖춘 분이라면 절대로 중생을 해롭게 할 리가 없고, 중생을 그릇 인도할 리가 없겠지만은,
견성을 못한 사람이 어떠한 특수한 비방을 알아 가지고 용케 그러한 신통술만을 얻은 사람이라 하면 반드시 중생을 그릇 인도하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정법을 믿는 신도들은 어떠한 것이 정법이고, 어떠한 것이 삿된 법이라고 하는 것을 잘 아셔야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정법은 깨달은 진짜 도인은 설사 그러한 신통법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가지고 있다 해도 중생 앞에 그런 것을 함부로 남용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결제일을 맞이해서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함으로 해서 석 달 동안 안거가 정말 알찬 안거기간이 되도록 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결제인 동시에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입재일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참선을 해서 나를 깨달라야하는 동시에 내가 몸담아 있는 나의 가정, 나의 남편, 나의 부모, 나의 아들딸, 사회 국가, 인류가 괴로움 속에서 괴로움을 극복하고 진정한 행복의 삶을 영유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으로는 언제나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기도하고 축원하는 마음을 동시에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한 뜻에서 우리 용화선원에는 삼동 결제와 아울러서 언제나 백일기도를 또 봉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분이 한 분도 빠짐없이 성의껏 기도에 동참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오늘 여기에 참여하신 신도분 가운데 한 분이 우리 인간문화재 5호로 지정된 박초선 여사께서 참석을 하셨습니다. 이 보살님은 예술에 있어서 뛰어난 분이심과 동시에 이렇게 불법에 철저한 돈독한 신심을 가지신 분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기념으로—'판소리'는 세계에 유래가 없는 우리 대한민국만이 가지고 있는 희유한 불가사의한 음악인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동안 우리나라에 이러한 훌륭한 음악이 있다고 하는 것을 40, 50세 이상 된 분들은 인식한 분들이 많았었지만은 40 미만의 젊은 분들은 그것을 깊이 인식한 분들이 대단히 적었었습니다.

그러자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판소리 국악을 듣고서, 세상에 이러한 훌륭한 음악이 대한민국에 있어단 말이냐. 이래가지고 우리나라 사람보다도 훨씬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찬양을 하고 그러므로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녹음 끊김) ...하고 잘하시게 된 것입니다.

국악은 서양 음악과 달라서 아무리 서양 음악이 좋다고 하지만은 서양 음악은 아무리 그것이 명곡이라 해도 그것을 들음으로 해서 우리의 마음이 감동의 물결에 출렁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국악은 그 음악을 들음으로 해서 들뜬 마음이 순화가 되고, 나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게끔 하는 그러한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기왕 음악을 들으실랴면은 우리나라 고유의 국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시고 감상을 해 주시길 바라면서 기왕 이 자리에 참석허신 기념으로 좋은 음악을 한바탕 듣기를 나는 바랍니다.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박수를 해 주십시오.(박수)

그러면은 이어서 우리 법보 영가(法寶靈駕)들의 시식천도(施食薦度)가 있겠습니다만은,
또 올 여름에 법운행 노보살님이 우리 선원에서 일생 중에 처음이자 마지막 석 달 참선공부를 허셨던 그 법운행 보살님이 지금으로부터 약 달포 전에 앉아서, 별 병환도 없으신 가운데에 이 세상을 하직을 하셨습니다.
그 보살님의 네 번째 돌아오는 천도재가 오늘 또 거행이 됩니다.

그래서 이 음악은 산 사람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영혼들에게는 직접적으로 감동을 주고 정신을 순화시키는 그러한 불가사의한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서 재(齋)를 지낼 때에는 영산회상(靈山會相)이라고 하는 그러한 음악을 다 연주를 했던 것입니다.

오늘 박초선 여사께서 올리시는 음악은 우리 부처님께 올리는 음성 공양(音聲供養)이 되고, 우리 스님네와 우리 법보 신도 여러분들에게도 공양이 되고, 또 돌아가신 영가를 위해서도 훌륭한 공양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부탁을 합니다.


< 박초선 명창 음성공양 >

 

좋은 인연으로 좋은 법문 많이 들었습니다.
아까 스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 부처님 음악이 있습니다. ‘영산회상 불보살(靈山會上佛菩薩)’이라고요.
먼저 부처님께 공양 올리겠습니다.

영산회상(靈山會相) (연주 음악)

영산회상으로 우선 조금 올렸구요, 제가 찬불송(讚佛頌)으로 부처님께 올리겠습니다.

찬불송으로,
찰진심념가수지(刹塵心念可數知)야,  온 우주세계에 모든 마음을 다 알고,
대해중수가음진(大海中水可飮盡)가,  큰 바닷물을 한입으로 다 마시고,
허공가량풍가계(虛空可量風可繫)라도,  허공을 헤아려서 바람을 잡아매더라도,
무능진설불공덕(無能盡說佛功德)이라.  부처님의 공덕은 다 말하지 못한다. 다하지 못한다.

이 찬불송입니다.(‘찬불송’ 노래)

조금 더 할까요, 그만 할까요? 네, 이 찬불송입니다.
다음은 제가 말만 우리의 전통 음악하는 한 사람으로서 저는 이제부터는 용기를 내서 다행한 줄로 압니다.
우리나라 말, 우리나라 글, 우리나라 노래하는 박초선으로서 앞으로 부처님 심부름을 제가 성의껏 힘자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많이 협조해서 좋은 음악을 많이 해서 여러 보살님들에게 참 많은 노래를 전하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박수)

말만 길게 하면 노래가 됩니다.
판소리 5바탕을 제가 독창회를 여러 번 가졌습니다만은 몇 시간을 제 시간을 다 해도 저는 얼마나 좋은지 기쁜지요.
이 기회를 제 노래로 다 메꿀 수 없고 그저 말만 길게 하면 노래가 됩니다만은 간단한 노래로, 평생의 교육자로서 저에게 가사를 주시고 가시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제목은 ‘그것도 멍텅구리’입니다. 이 4절만 먼저,
‘온 곳도 모르는 이 인간이 갈 곳을 어떻게 안단 말가, 갈 곳도 모르고 사누노나. 그것도 멍텅구리.
올 적에 빈 손에 온 인간이 갈 적에 무엇을 갖고 갈까, 공연한 욕심만 부르노나. 그것도 멍텅구리.
백 년도 다 못 산 이 인간이 영원히 죽지를 않을 처럼, 천만 년 준비를 허누노나. 그것도 멍텅구리.
세계적 학자라 하는 이들 무어나 모두 다 안다 해도, 자기가 자기를 모르노나. 그것도 멍텅구리.’

네, 진리에서 하는 말입니다.
아뭏튼 제가 전공이 판소리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전통 음악의 얼과 모든 우리 민족의 혼과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5바탕 중의 춘향가, 흥보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하는 것보다,
이 진리에서 나오는 이 가사를 보살님께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

간단히 마치겠습니다.
하기도 쉽습니다. 곡도 아주 쉽게 붙였습니다. 그러니 자꾸 알고, 바로 아실 수 있습니다.
알고 자꾸 행하시고 그러면 좋습니다.

(‘멍텅구리’ 노래)

감사합니다.(끝)(38분15초~60분2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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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煩惱) : 망념(妄念)이라고도 하는데,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정신작용의 총칭이나, 이곳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 이외의 모든 생각을 말한다.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이뭣고(是甚麼)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천상(天上) : 욕계의 육욕천(六欲天)과 색계•무색계의 여러 천(天)을 통틀어 일컬음. 신(神)들이 사는 곳. 신(神)의 세계.
*성현(聖賢) ; 성인(聖人)과 현인(賢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무단(無斷)히 ; 사전에 허락이 없이. 또는 아무 사유가 없이.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 ①‘들(평평하고 넓게 트인 땅, 논이나 밭으로 되어 있는 넓은 땅)’의 사투리. ②전북 김제 지역에서 하천이 실어온 토사가 쌓인 충적평야를 일컫는 말.
*탁발(托鉢 맡길 탁, 바리때 발) ; 도를 닦는 스님이 경문(經文)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수행자의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동시에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 공덕이 있다고 하여 부처님 생존 당시부터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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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世俗) ; 속세(俗世). 불가(佛家)에서 일반 사회를 이르는 말.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법담(法談) ; 선사(禪師)들이 서로 법문을 묻고 대답하는 것.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신통(神通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①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②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③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④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⑤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⑥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여기서는 누진통을 제외한 오통을 가리킨다.
*성말변지사(聖末邊之事) ; 신통(神通, 누진통을 제외한 5신통)은 ‘성인(聖人)의 분상에는 보잘것없는[末] 가장자리[邊]의 일이다.’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조만(早晩) ; 조만간(早晩間). 앞으로 얼마 안 가서.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혹(惑)하다 ; (사람이 어떤 대상에)홀딱 반하거나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다.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본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악업(惡業)을 짓지 않아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방식을 의미하였다가, 점차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리며 그 공덕을 함께하기를 기원하는 불교의식을 일컫는 말로 정착되었다.
또한 법회 때 스님이나 속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근래에는 특히 돌아가신 영가를 위한 천도재(薦度齋)가 널리 행해짐에 따라 보통 ‘재=천도재’로 여긴다.
*영산회상(靈山會相) ; 고려 시대부터 내려오는 속악(俗樂)의 하나로서, 석가여래가 설법하던 영산회(靈山會)의 불보살(佛菩薩)을 노래한 악곡. 영산회상곡(靈山會上曲).
*박초선(朴招宣) ; (1931~2014) 전남 화순군 향천리 출생. 공대일·박록주·김소희·김여란 등을 사사했다.
1963년부터 12년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수석단원으로 활동하면서 깔끔하고 정교한 소리로 한때 소리판을 주름잡았다. 70년 여성 최초로 박록주제 〈흥보가〉를, 75년 정정열제 〈춘향가〉 완창을 발표했다.
1975년 국립국악원에 입단한 박초선 명창은 1993년 미국 스토니부룩 대학교 한국학과 판소리 강의 및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