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장소멸'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6.10.03 §(783)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 / 업장소멸 / 자기가 자기 마음을 깨달아 해탈도를 증득하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것보다도 더 소중하고 급한 것이다.
  2. 2015.07.16 §(527) (게송)일중산진우일중~ / 본각진심(本覺眞心) 요요상지(了了常知) / 절대로 부처를 찾지 말고, 깨닫기를 바라지 말아! / ‘이뭣고?’ 열심히 하는 것이 최고의 기도.
  3. 2015.05.07 §(세등24) 유루복, 무루복을 겸해서 지어야 / 自利利他 / 飯器已破 / 단전호흡과 화두가 함께 되어가게 /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있는 선방.
  4. 2015.04.27 §(세등24) 화두드는 법 / 최상승법 /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생사(生死) / 불보살,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다 / 중생심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체(體).
  5. 2015.03.05 §(세등10) 화두는 삼재소멸 부적 / 죽은 참선과 산 참선 / 소무공덕(小無功德) / 참선은 ‘내가 나를 깨닫는 길’ / 참선 외에는 다 소무공덕 / 복(福)과 혜(慧) 쌍으로 닦아야.
  6. 2015.02.27 §(353) 출가(出家), 재가(在家)의 뜻 / 탐욕에 대한 일화 / 보시(布施) / 마음의 보시—탐진치 삼독을 버리는 것 / 돈은 열심히 벌고, 잘 쓰고, 보시해야 /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7. 2015.02.16 §(290) 기도는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 /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몸·마음·주변환경이 청정·정숙하고, 기도의 처음과 끝이 여일(如一)한 것 / 삼륜(三輪)이 공적(空寂).
  8. 2015.02.10 §(408) 선원에서 왜 기도를 하냐? / 삼재소멸, 소원성취는 정법을 믿고 참선 정진이 최고 / 기도—참회—마음청정—자비·지혜심 / 불방일(不放逸)이 가장 좋은 정진.
  9. 2014.12.12 §(160) (게송)천강동일월~ / 기도는 업장소멸(業障消滅)하는 것. 업장을 소멸해야 소원을 성취 / 참선은 죄를 짓지 않는 가장 묘한 방법 / 안수정등(岸樹井藤) / 발심.
  10. 2014.12.01 §(055)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 그것은 견성성불할 수 있는 발판 / 부설거사(浮雪居士) / 신통은 성말변지사(聖末邊之事) / 박초선 명창 음성공양(찬불송, 그것도 멍텅구리).
최근 법문2016.10.03 13:35


§(783)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 / 업장소멸 / 자기가 자기 마음을 깨달아 해탈도를 증득하는 것이야말로  세상 모든 것보다도  소중하고 급한 것이다.


불도(佛道) 수행을 성취고자 하면 () () (), 삼학(三學) 겸해서 닦아야 하나니, () 그릇이 온당해야 선정(禪定) 물이 담기고, 선정의 물이 맑고 고요해야 지혜의 달이 나타날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로써 스승을 삼으라 하셨습니다.

앞으로는 열심히 전강 조실 스님 법문,  아침 6시에 불교방송에 산승의 설한 법문도 나옵니다. 인연이 있으신 분은 그것을  들으시고 이뭣고?’ 열심히 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인생은 정말 허망하고 무상한 것입니다. 다른 것은 뒤로 미루더라도 참선하는 , 내가  마음의 부처를 찾는 이뭣고?’    초도 뒤로 미룰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현재와 과거에 지은 모든 업장을 소멸하고 앞으로는 정말 해탈도로 가기 위해서는  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   밖에는 없습니다.

 자리에는 아직 두서너  먹은 어린애로부터서 팔구십 먹은 연세 많은 분이 많이 계십니다마는 정말  세상에서 급하고  해야  것은 내가 나의 마음부처를 찾고 그것을 깨달아서 자기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 그것 밖에는  급한 것이 없습니다.

세속에 살면  벌어야 하고, 취직도 해야 하고, 직장에도 다녀야겠지마는  모든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고 소중한 것이지마는  가운데에서도    초도 놓아서는 안될 것은 이뭣고?’입니다.

**송담스님(No.783)—2016 10 첫째일요법회  화두・불명・십선계 수계법회.

(1/2) 약 21분. (2/2) 약 13분.

(1/2)----------------


(원장 스님께 삼배 올리겠습니다)

오늘은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 수여하는 법요식이 진행되겠습니다.


불도(佛道) 수행을 성취고자 하면 () () (), 삼학(三學) 겸해서 닦아야 하나니, () 그릇이 온당해야 선정(禪定) 물이 담기고, 선정의 물이 맑고 고요해야 지혜의 달이 나타날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로써 스승을 삼으라 하셨습니다.


대승십선계는 제일에 불살생(不殺生)이니,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

둘째는 불투도(不偸盜),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

셋째는 불사음(不邪)이니, 사음을 하지 말라.

넷째 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다섯째는 불기어(不綺語),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지 말라.

여섯째는 불양설(不兩舌)이니, 이간하는 말을 하지 말라.

일곱째는 불악구(不惡口), 악한 말을 하지 말라.

여덟째는 불탐욕(不貪欲)이니, 탐욕심을 내지 말라.

아홉째는 불진에(不瞋), 성을 내지 말라.

 번째는 불사견(不邪見)이니, 어리석고 삿된 견해를 갖지 말라.


  가지 대승십선계는 일반적으로 착한 마음을 가지고 인격적으로 존경 받고 그런 사람은 일부러 지킬라고  해도 저절로 지켜질  있는 그런 계목(戒目)입니다.

그러나 중생의 근기(根機) 천차만별이어서 100%  지킬  있는 사람, 90% 정도밖에  지키는 사람, 80%밖에  지키는 사람, 반밖에는  지키는 사람, 특수한 경우는  가지,  가지밖에는  지키는 사람. 중생의 근기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을 한결같은 자비로 널리 아시기 때문에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가지 계를 설하신 것입니다.


  가지 () 보통 사람이면, 보통 착한 사람이고 인격을 갖춘 지혜인은 특별히 계를 받지 않아도 일생 동안을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대승십선계를 특별히 이렇게 설하게  것은 세계가 말세가 되어 가지고 동서남북 모든 세계에 중생의 근기가 천차만별이어서 부처님의 자비의 정신을 본받아서 오늘 이렇게 대승십선계를 특별히 설하게 됩니다.


 ()  지키면, 어느 정도  지키느냐는 각자 자기 자신의 근기(根機) 반성을 해 보고 돌아보면 과연 내가 어느 정도 지킬  있는가를 스스로 항상 회고해 보고 반성해 보고,

그렇게 해서 불자(佛子)로서, 대승(大乘) 불법을 믿는 부처님 제자로서 자기를 항상 돌아보고 뉘우쳐 보고 반성하고 살면 첫째, 자기 마음이 편하고 자기 주변에 있는 부모・형제・친구 모든 사람에게 자기로 인해서 피해를 끼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자기로 인해서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있는 그러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지금 세계 50억이니 60억이니 하지만  얼굴 생김새가 똑같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똑같은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근기와 심성과 모든 것이  다르기 때문에 얼굴도 그렇게 다른 것입니다.

그렇게 다른 성격, 다른 심성, 다른 그런 차별이 있는 그런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평화롭게  세계를 살아가고 운영해 나갈라면은 대승십선계를 항상 마음에 지니고 실천해 나가면 자연히  자비의 정신이 자기의 몸에 배고 자기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비를 본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대승십선계를 받으실 분은 비구니 스님이  분이고, 용화 유아학교 109명이고, 용화 학생회와 청년회가 11명이고, 광주 용화선원이 13명이고, 원효사 경기도 의정부시 효원동 있는 원효사가 71명이고, 승련사 전북 남원시산동면 승련사 대중이 55명이고, 전남 무안군 무안읍 있는 도덕사 50명이고, 충남 금산군 남이면 심우정사에서 13분이고,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 있는 영산선원에서 13명이고, 경북 영천시 청통면 있는 묘적암에서 5.

이렇게 해서 개인적으로는 김씨가 139, 이씨가 95, 박씨가 50. 그밖에 가・강・고・공・곽・구・권・남・두・문・민・방・배・백・부씨가 67, 성씨 별로는 서씨・석씨・손씨・송씨・신씨・심씨・안씨・양씨・엄씨・여씨・오씨・옥씨・우씨・원씨・유씨・윤씨・임씨 이렇게 해서 112분이고. 그밖에 장씨・잭씨・전씨・정씨・조씨・진씨・차씨・채씨・천씨・최씨・피씨・하씨・한씨・함씨・허씨・홍씨・황씨가 이렇게 해서 148명입니다.


 인원은 비구니가  분이고, 청신남(淸信男)이 391명이고, 청신녀(淸信女)가 560 이렇게 합해서 954명이 오늘 대승십선계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자상하게 말씀을 드린 것은 낱낱이 호명을 여기서  수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드리니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대승십선계는 이렇게 설(說)하고 같은 장소에서  계(戒) 설하는 것을 듣고 받게 되면  인연으로 무량겁으로부터 내려오면서 지은 모든 ()  업장(業障) 소멸(消滅) 되고, 앞으로는 같은 형제・자매・도반으로서 정법을 믿고 반드시 열심히 참선 수행을 해서 기어코  사람도 누락함이 없이  자성(自性) 깨달아서 견성성불(見性成佛) 하고,

자기 하나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신심(信心) 원력(願力)으로 우주 법계에 많은 다른 도반과 친구와 인연있는 사람들도 다같이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해탈도(解脫道) 증득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죽는 사람이 없습니다. 뱃속에서 죽기도 하고 나오다 죽기도 하고, 나와서 한두 살에 죽기도 하고  살 스무  미만에 죽기도 하고, 삼사십・오륙십 많은 사람들은  세도 살고 백이십 세도 삽니다.

많이 살고 오래 사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마는 기왕 사람이 태어났으면은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좋은 일도 하고 행복하게 살고, 나아가서는 정법(正法)을 믿고 자기로 인해서 정법의 종자(種子)가  우주 법계에 번파(繁播)가 되어 가지고 우주 법계의 모든 사람이  정법 문중에 도반이 된다면 그밖에  좋은 일이 어디가 있겠습니까.


어피차 한번 태어나면 죽은 목숨이지만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살면 아무리 돈이 많고 학식이 많아도 삼악도(三惡途)를, 윤회를 면(免)틀 못하는 것이고,

정법을 믿고 열심히 참선(參禪)을 하면, 비록  삼악도를 윤회하면서도 정법의 종자가 몸에 있고  정법에 의해서 생활을 해내   공덕으로  우주 법계는 우리의 수행 도량이 되는 것이고, 우주 법계에 있는 모든 중생은 우리의 도반이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해탈도를 증득하게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 개인의 이름은 부르지 않고     이렇게만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각자 자기 이름도 그 속에 하나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시고,


이상 설한 대승십계를  지키겠는가?”

(대중)“.”


이상 설한 대승십계를 간략히 설했으니 여기에 동참하신 여러분은  지키겠는가?”

(대중)“.”


이상 설한 대승십계는 한번 받고  지키겠다고 부처님 앞에 서약함으로 해서 과거에 지은  죄나 작은 죄나 그것이  부처님 앞에 참회(懺悔)가 되었고  그것이 소멸이 되었으니,

앞으로 더이상 악업(惡業)을 짓지 않고 열심히 참선법을 믿고 이뭣고?’ 열심히 하면 여기에 모이신  법당 안팎에 많은 여러분들도 업장이  소멸이 되고 반드시 견성성불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할  있는 그런 부처님 제자가 되실 것입니다.  말씀을 믿는 분은 다같이 대답을 하십시오.


 지키겠는가?”

(대중)“.”


이렇게 사람이 얼굴이  각각 다르게 생긴만큼,  다르게 태어났습니까? 똑같이 눈과 코와 귀와 입과 머리와 손과 발이 있는데,  각기 모양새가 다르고 형제간도 다르냐 하면은 그동안에 닦아 온 것이 다르기 때문에 그럽니다.

그동안에 무량겁을 살아오면서 어떻게 살아왔느냐한 것이 자기의 생긴 모습과 자기의 태어난 오장육부를  검토해 보면 관상·사주  보는 사람한테 물어볼 것도 없이 자기 자신이 거울을 보고 자기의 얼굴을 보면 내가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가를 짐작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리에 모이신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 남녀노소   없이 오늘  법회로 인해서, 법회에 함께 동참한  인연으로 과거의 업장은  소멸이 되었고, 앞으로 부처님 제자로서 정말 보람있는 일생을  살고, 세세생생에 또 정법 문중에  만나서  참선 수행을 해서 해탈도를 증득하고 나아가서는 우주 법계의 모든 중생을  우리로 인해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해탈도를 증득하게  것입니다.(처음~2051)



(2/2)----------------


 호궤합장(跪合掌) 하십시오. 꿇고 앉아서 합장을 하십시오.


인생은 아무리 얼굴이 잘생기고 건강하고 학식이 많고  그래도 한번 태어난 사람은 결국은   몸을 버리고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서 천당에도 태어날 수가 있고, 인간으로 태어날 수도 있고, 아수라로 태어날 수도 있고, 지은 업이 지중하고 악업을 알게 모르게 지은 사람은 축생이  수도 있고, 아귀도  수도 있고,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불행하게도 지옥에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산승(山僧)의 마음으로는  자리에 참석하신 분은  분도 지옥에 가실 분은 없습니다.

 그러느냐?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듣고 그것을  지키겠다고 부처님 앞에서 서약을 했기 때문에 과거에 지은 죄는  소멸이  것입니다. 불보살께서  그것을 이해해 주실 것입니다.

앞으로는 열심히 전강 조실 스님 법문,  아침 6시에 불교방송에 산승의 설한 법문도 나옵니다. 인연이 있으신 분은 그것을  들으시고 이뭣고?’ 열심히 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인생은 정말 허망하고 무상한 것입니다. 다른 것은 뒤로 미루더라도 참선하는 , 내가  마음의 부처를 찾는 이뭣고?’    초도 뒤로 미룰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현재와 과거에 지은 모든 업장을 소멸하고 앞으로는 정말 해탈도로 가기 위해서는  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   밖에는 없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보시 공덕 쌓는 것도 좋고,  학문이 높은 사람은 자기의 학문을 후배들에게 가르키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보시를 하는 것도 대단히 좋은 일이나  많은 좋은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급한 것은 이뭣고?’입니다.


‘자기가 자기 마음을 깨달아서 해탈도를 증득하는  그것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것보다도  소중하고 급한 것은 없습니다.


자기의 생사 문제는 자기가 해결해야지 불보살(佛菩薩)이 많이 계신다 해도 자기 대신 닦아 주지는 않습니다. 바른 길을 설법하실 수는 있지마는 깨닫는 것은 우리 자신이 깨달아야지 부처님한테 의뢰해 봤자 그것은 헛일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자기를 깨닫는 방법이 그것이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속이 상할 , 기분이 나쁠   일에 끄달려 가지고  생각만 하면 점점 오장육부가 썩어 문드러질 것입니다마는 기분이 나쁠  바로 이뭣고~?’하고 이뭣고?’ 하면  기분 나쁜  생각을 발판으로 해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니까 정말  세상에 급하고 소중한 것은 내가  마음부처 찾는 이뭣고?’ 것입니다.


 자리에는 아직 두서너  먹은 어린애로부터서 팔구십 먹은 연세 많은 분이 많이 계십니다마는 정말  세상에서 급하고  해야  것은 내가 나의 마음부처를 찾고 그것을 깨달아서 자기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 그것 밖에는  급한 것이 없습니다.

세속에 살면  벌어야 하고, 취직도 해야 하고, 직장에도 다녀야겠지마는  모든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고 소중한 것이지마는  가운데에서도    초도 놓아서는 안될 것은 이뭣고?’입니다.


, ‘이뭣고?’ 산승에 말을 따라서 열심히 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자기가 알게 모르게 지은 업(業)이 한량이 없습니다. 자기가 잊어버린 것도 있고, 잊어버리지 않은 업도 있으나 업을 짓지 아니한 사람은  사람도 없습니다.

앞으로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할라면은 일단 과거의 모든 죄를 참회(懺悔)하고, 참회함으로 해서 그것을 깨끗이 씻어버려야 합니다. 좋은 약물을 그릇에다 담을라면  그릇을 먼저 깨끗이 씻은 그릇에다가 담아야지, 더러운 때가 낀 더러운 것이 묻어 있는 그릇에다가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업을 참회하는 뜻에서 참회진언을 다같이 외우겠습니다.


참회진언(懺悔眞言)  ‘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견지금계불훼범(堅持禁戒不毁犯)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대승십선계를 받고, 과거에 지은 모든 업장소멸 되기 위해서 참회진언을 외웠습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새로 태어난 마음으로 열심히 이뭣고?’ 해서 기어코 우리는 해탈도를 증득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할  있는 부처님 제자가 되기를 맹세했습니다.


이상으로써 오늘 대승십선계를  설해 마쳤습니다.(2052~344)()



---------------(1/2)


*십선계(十善戒) ; () () 마음()으로 짓는 10가지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 사견(邪見)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불도(佛道) ; ①불과(佛果).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 무상보리(無上菩提) 말한다. ②불과(佛果) 이르는 방법. 불과를 성취하여 성불하기 위한 인행(因行, 깨달음의 원인이 되는 ) 말한다. ③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는 가르침.

*삼학(三學) ; 깨달음에 이르려는 자가 반드시 닦아야   가지 수행. 삼증상학(三增上學삼승학(三勝學)이라고도 하는데,  계학(戒學정학(定學혜학(慧學)  가지를 말한다. 이것을 증상(增上:탁월하다는 )계학·증상심학(心學증상혜학 또는 줄여서 ··혜라고도 한다.

①계는 악을 저지르지 않고 선을 닦는 계율(戒律), ②정은 심신을 고요히 하고 정신통일을 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하는 선정(禪定), ③혜는 번뇌를 파하고 진리를 증득(證得)하는 지혜를 가리킨다.

*계목(戒目) ; 삼귀의계(三歸依戒오계(五戒십중대계(十重大戒) 등의 () 제목(題目). 조목(條目), 중요(重要항목(項目).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말할 /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간곡할 )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 간곡하게() 말씀하심().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가고, () 집과 ()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 되고 ④자비심(慈悲心)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청신남(清信男)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자 신도,  우바새(優婆塞).

*청신녀(清信女)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  우바이(優婆夷).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장애() 생기는 .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 행동··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자성(自性) ; ①사물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번파(繁播 많을·성할·융성할 번/뿌릴·펼·널리 퍼뜨림 파) ; 번성해 널리 퍼뜨림. 많이 뿌림.

*어피차 ; 어차피(於此彼).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귀결(歸結 어떤 결론이나 결과에 도달함. 또는  도달한 결론이나 결과)되는 . 또는 이렇게 되든지 저렇게 되든지 귀결되는 .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회(懺悔 뉘우칠 /뉘우칠 )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부끄러워할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 나쁜 행위.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2/2)


*호궤합장(跪合掌) ;  무릎을 꿇고 앉되, 무릎  허벅지와 상체가 수직이 되게 곧게 일으켜 세우고, 발가락은 세운  손은 합장을 취한 자세.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말라고 하신 것이다.

*참회진언(懺悔眞言) ; 죄업(罪業) 참회하는 진언. '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라는 것은 본래 실체가 없는데[無自性] 마음으로 좇아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마음이 소멸되면  또한 없어진다.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마음도 없어지고 죄도 없어져서  두 가지가 함께 ()해져서 없어져 버릴 , 이것이야말로 진짜 참회이다.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견지금계불훼범(堅持禁戒不毁犯) 제가 지금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에 이를 때까지, 금하는 계율 굳게 지켜 훼범하지 않으리니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바라옵건데 모든 부처님께서 증명해 주소서. 목숨은 차라리 버릴지라도 마침내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원컨대  공덕으로써 일체 중생에게 널리 미쳐서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나와  가족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어지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2015.07.16 14:06

§(527) (게송)일중산진우일중~ / 본각진심(本覺眞心) 요요상지(了了常知) / 절대로 부처를 찾지 말고, 깨닫기를 바라지 말아! / ‘이뭣고?’ 열심히 하는 것이 최고의 기도.


절대로 깨닫기를 기다리지 마!

밥을 먹으면 밥 먹은 부처님이요, 똥을 누면 똥 누는 부처님이요, 누워 있으면 누워 있는 부처님이요, 앉아 있으면 앉아 있는 부처님이여. 그렇게만 잡드리 해 나가면 결정코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고만 마는 거여.

확철대오 할려고 몸부림치면 그런 동안에는 절대로 확철대오를 못하는 거고, 확철대오 할 생각 말고 화두 하나만을 성성적적하게 여법(如法)하게만 단속해 나가면 결코 그 사람은 깨닫고만 마는 거여.

그게 참 묘(妙)한 거여 이게. 참 이거 묘한 거여.

정말 기도를 성취하시고 싶으면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업장(業障)을 소멸(消滅)을 하고,

‘이뭣고?’는 무엇이냐 하면은 이미 지은 업은 소멸을 하고, 앞으로 새로운 업을 짓지 않는 가장 수승한 법이거든.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다가 집안에 꼭 중대한 일이 있으면 그러한 깨끗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시면 정말 기도가 마음먹은 대로 성취가 되는 것이다.

**송담스님(No.527)—94년 동안거해제 법회(94.01.15.음)



 약 19분.



일중산진우일중(一重山盡又一重)하고  화진산운해월정(話盡山雲海月情)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무일물중무진장(無一物中無盡藏)하야  백화유월유루대(百花有月有樓臺)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중산진우일중(一重山盡又一重)이여. 한 산이 다함에 또 산 밖에 또 산이 있어. 거듭거듭 산이 있다.


정진을 해 나가는 데에도, 정진을 하다 보면은 이런 문제가 일어났다가, 그 문제가 겨우 어렵게 애를 써서 좀 가라앉을 만하면 또 다른 문제가 있고,

몸도 여기가 조금 아파서 그거 좀 잘 다스리면 또 저기가 아프고 여기가 아프다, 이가 아프다가 위가 안 좋다가, 기관지가 안 좋다가, 간이 안 좋다가, 쓸개가 안 좋다가, 끝이 없어.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또 정신적으로 그렇고, 인간관계에서도 그렇고,

세속도 역시 마찬가지여. 남편 문제, 아내 문제, 아들 문제, 딸 문제, 학교 문제, 사업 문제, 혼사 문제, 거듭거듭 일이 한도 끝도 없이 끝이 없다 그말이여.


화진산운해월정(話盡山雲海月情)이여. 말이 산골짜기에 구름 일어나듯이, 바다에 달빛 같은 이 말이 끝이 없다 그말이여.


해제를 맞이해서 여러 선원에서 이렇게 도반들이 모이고 또 여기 백일기도에 동참한 여러 신도님들 또 보살선방의 보살님네들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이 오늘을 기해서 또 다시 흩어질 것을 생각하니까 이렇게 말이 두서없이 이렇게 나오는데, 사실은 한마디도 할 말이 없습니다.


할 말이 없는데 또 이렇게 만나다 보니 이렇게 여러 가지 말이 나오는데, 원래가 무일물중무진장(無一物中無盡藏)이거든. 한 물건도 없는 가운데에 무진장 있는 거여. 없는 것이 없어.

백가지 꽃이 피는데, 오색이 찬란한 꽃이 휘황찬란하게 피는데 그때 마치 쟁반 같은 달이 밝았어. 그런데 터억 오색단청을 한 누각이 있다 그말이여.(百花有月有樓臺)


이 세상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정진해 나가는 분상에도 그렇고, 세속 살아가는 데도 그렇고.


왜 그러냐? 알고 보면 한 가지도 없어, 한 물건도 없는데, 그런데 없는 것이 없이 다 있어.


생각 먹기에 따라서 한 물건도 없는 마음가짐으로 일생을 살 수도 있고, 또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모든 것이 없는 것이 없이 다 갖추어서 살 수도 있어.

우리가 딱! 우리 생각을 거두어 버리면 이 세상에 무엇이 있어? 아무 것도 우리가 집착할 아무 것도 없어.

가져야 할 것도 없고, 버려야 할 것도 없어. 그런데 한 생각을 내면 없는 것이 없이 다 있는 거여.


왜 그러냐 하면, 일체 유정(有情)이 다 본각진심(本覺眞心)을 가지고 있어.


무시이래(無始以來)로 그 본각진심이 상주(常住)해서 청정(淸淨)해서, 소소영령(昭昭靈靈)하고 불매(不昧)해서 요요상지(了了常知)해.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좋아할 줄도 알고, 뭘 주면 좋아하고, 뺏으면 싫어하고, 때리면 아픈 줄 알고, 얼마나 소소영령하고 분명하냐 그말이여. 


‘나는 깨닫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답답하지, 깨닫고, 못 깨닫고 한 것을 따지지를 말어.


소소영령하고 요요불매(了了不昧)해.


그것을 고인은 체(體)의 입장에서 그것을 표현을 하면 그걸 일심(一心)이라 그러는 거고, 인과(因果)의 인(因)을 잡아서 표현을 하자면 그것을 여래장(如來藏)이라 표현을 해.

인과(因果)의 과(果)로 잡아서 표현을 하면 그것을 원각(圓覺)이라 그랬어. 원각이라 하는 것은 원만한 신령스러운 각성이다, 원각지성(圓覺之性)이다 그말이여.


절대로 우리는 부처를 찾지를 말고 깨닫기를 바래지를 말아.


일단 견성성불(見性成佛)하기 위해서, 그러한 신심과 원력으로 불법을 믿고, 출가까지 하고 참선을 시작했으면 찾는 생각은 버려. 이미 거기에 다 갖추어져 있는 것이니까.

그것을 찾을라고 하고, 구할려고 그러고, 빨리 찾을려고 하는 생각을 놔 버려야 하는 거여.


놔 버리고 ‘이뭣고?’ 하나만을 단속하면 걸음걸음이 그것이 도(道)요, 터억 앉았으면 앉았는 대로 그 자체가 부처님이요, 누워 있으면 누워 있는 대로 그 자체가 와불(臥佛)이여.

깨닫기를 바래고, 기다리고, 못 깨닫는다고 짜증을 내니까 찰라 간에 그거 중생이 되는 거여.


그래서 화두를 ‘이뭣고?’ ‘이뭣고?’하라 하지만 ‘이뭣고?’는 똑같은 ‘이뭣고?’인데 그 정진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게 다 다른 거여. 똑같이 ‘이뭣고?’해도 다른 거여 그게.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독로(獨露)하도록만 잡드리 한 것뿐이여.


절대로 깨닫기를 기다리지 마!


밥을 먹으면 밥 먹은 부처님이요, 똥을 누면 똥 누는 부처님이요, 누워 있으면 누워 있는 부처님이요, 앉아 있으면 앉아 있는 부처님이여. 그렇게만 잡드리 해 나가면 결정코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고만 마는 거여.


확철대오 할려고 몸부림치면 그런 동안에는 절대로 확철대오를 못하는 거고, 확철대오 할 생각 말고 화두 하나만을 성성적적하게 여법(如法)하게만 단속해 나가면 결코 그 사람은 깨닫고만 마는 거여.

그게 참 묘(妙)한 거여 이게. 참 이거 묘한 거여.



오늘 보살선방에 방부들인 보살님, 오늘 다 이불이나 발우대나 그런 걸 싸 가지고 댁에 가시겠습니다마는 댁에 가셔서도 그냥 손자, 아들, 딸, 며느리 모다 만나면 만나는 대로 이야기도 하실 수가 있고 그러나,

가서도 꼭 인자 막 내가 말씀드린 대로 ‘이뭣고?’를 항상 놓치지 않도록 잡드리 해 나가셔! 오랜만에 왔다고 살림 간섭할라고 그런 생각도 마시고, 모든 것은 되아 가는 대로 사시면 됩니다.


아들도 여럿이 있으면 잘난 놈, 못난 놈 있을 수가 있고, 일을 하다 보면 잘되는 수도 있고 못되는 수도 있고,

우선은 잘 못된 것 같지마는 나중에 보면 전화위복(福)이 되어서 차라리 무방하게 되는 수도 있고, 우선 잘된 것 같아도 나중에 보면 결과적으로 잘못되는 수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니까,


인간 세상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을 인연에다 다 맽겨 버려. 맽겨 버리고 ‘이뭣고? 하나가 이것이 내가 해 나갈 유일한 일이다!’ 그놈 하나만을 열심히 하셔.


밥을 먹게 되면 밥을 먹고, 죽을 먹게 되면 죽을 먹고, 국수를 먹게 되면 국수를 먹고, 그런 것도 다 인연에 다 맽겨 버리고 어쨌든지 댁에 가셔서도 열심히 하고, 또 산철에 오실 수 있으면 오시고,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보살님네는, 백일기도를 이 절에서도 아침마다 축원을 잘했어. 반드시 소원을 잘 성취하셨으리라고 생각하고.


소원이라는 게 중생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소원이 아니여.

어린애가 하자는 대로 무엇이든지 들어주는 것이 부모가 잘하는 것이 아니여. 어린애가 하고 싶다 해도 막아야 할 일도 있는 것이지, 무엇이든지 해 달라는 대로 해 준 것을 부모 노릇 잘한 것으로 생각하시거든.


어린애가 나도 쪼그만 차 하나 사달라고, 쪼끄만 차를 사줬어. 그 놈이 이리저리 운전하고 다니다가 거꾸로 떨어지고 교통사고 나서 죽으면 그거 뭐냐 그말이여.

‘나이 먹거든 사 주마’ 이렇게 되어야지. 아직 운전할 나이도 안 된 애를 돈 있다고 해서 어린애한테 차를 마음대로 사 주고, 권총을 사달라는데 권총을 사 주고, 칼을 사달라는 걸 칼을 사 줘 가지고 마음대로 거 어떻게 되냐 그말이여.


그래서 소원도 ‘이번에 꼭 이걸 하겄게 해 주십시오’하고 부처님한테 치성(誠)을 드리거든.

치성드린 대로 되는 수도 있지만, 안 되는 수도 있다 그말이여. 안 될 때에는 안 되는 것이 차라리 무방하기 때문에 안 된 거여.


‘이번에 꼭 아들이 대학에 붙겄게 해 주십시오’해 가지고 쌀도 갖다 놓고, 돈도 갖다 놓고, 과일도 사다 놓고, 백팔배 삼천배를 했는데 뚝 떨어져 버렸어. ‘에이, 기도해 봤자 소용없다고. 나 기도 안 한다고’

이 절에 해서 안 되니까 또 어디 절에 가면 기도가 잘 성취된다니까 거기를 또 간다. 그러다 보면 되는 수도 있어. ‘그 절이라야 성취가 되지, 다른 절은 다 소용이 없다’하거든.


그게 아니여. 기도를 안 해도 되는 수도 얼마든지 있는 거고, 기도를 해도 안 되는 수도 있는 것이어서,

기도해 봤자 소용없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해서 안 되었다면 안 되는 편이 오히려 낫기 때문에 부처님이 안 되게 하신 거여.

그래서 안 될수록에 더 기도를 열심히 해야지. ‘에이, 기도해 봤자 소용없다’ 그게 아니거든.


그래서 백일기도 하신 분은 전부가 정말 성취가 잘되었다고 생각을 하시고 이 다음에도 또 백일기도에 빠짐없이 동참을 잘 하셔야 하고.



정말 기도는 ‘이뭣고?’ 열심히 하는 것이 최고의 기도여!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모든 과보(果報)를 받게 되고, 거기에다가 자기가 노력하는 것에 따라서 자기의 앞에 모든 일이 하나씩 하나씩 다 결정이 되어 가는 것이지,

복을 짓지 않고 기도해 가지고 느닷없이 큰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그건 잘못된 것이거든.


그래서 정말 기도를 성취하시고 싶으면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업장(業障)을 소멸(消滅)을 하고.

‘이뭣고?’는 무엇이냐 하면은 이미 지은 업은 소멸을 하고, 앞으로 새로운 업을 짓지 않는 가장 수승한 법이거든.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다가 집안에 꼭 중대한 일이 있으면 그러한 깨끗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시면 정말 기도가 마음먹은 대로 성취가 되는 것이다.


내가 입춘기도 또 정월 신수기도 입제와 또 회향에 여러분 눈에는 참석을 안 했지만 나는 분명히 여기 참석을 해서 같이 기도를 했거든요. 그래서 혹 내가 참석한 것을 보시지 못한 사람이 계실까 해서 이 기도에 대해서 조금 언급을 했습니다. 


해제를 하셔서 비록 해제의 날짜는 지냈지만 우리의 공부는 언제나 결제거든.

언제나 결제이기 때문에 방심하고 해태(懈怠)하지 말고, 오히려 방부를 들이고 선방에서 지내실 때 보다 여기저기 다니시는 걸음걸음, 댁에 가시거나 어느 절에 가더라도 항상 우리의 마음을 더 야무지게 단속을 하면서 다시 건강한 몸으로 건강한 마음으로 또 만나게 되기를 기약하면서 법상(法床)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57분59초~76분47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게송) ‘화진산운해월정(話盡山雲海月情)’ ; [벽암록(碧巖錄)] 제53칙 설두(雪竇)스님 송(頌) 참고.
*(게송) ‘無一物中無盡藏  有花有月有樓臺’ ; 소동파 시 '백지찬(白紙贊)' 참고.
*유정(有情)산스크리트어 sattva  감정이 있는 모든 생물. 번뇌와 아무런 생각이 없는 멍한 상태를 끝없이 되풀이하는 모든 존재. 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중생(衆生)과 같음.
*본각진심(本覺眞心)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일심(一心), 불성(佛性), 여래장(如來藏), 원각(圓覺)이라고도 한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불매(不昧) ; 매(昧)하지 아니하다. 지혜가 어둡지 않다.
*요요상지(了了常知) ; ‘분명하게 항상 앎—본각진심(本覺眞心, 불성佛性)이 분명하게 항상 앎’
요요상지(了了常知)는 증득하여 아는 것이 아니며, 경계를 반연하여 분별하는 식(識)과 같지 않고, 체(體)를 비추어 요달한 지(智)와 같지 않고, ‘진여의 성품이 자연히 항상 앎’을 말하는 것이다.
[참고]
규봉종밀(圭峰宗密) 스님의 《원인론(原人論)》에서.
直顯真源第三。
五 一乘顯性教者、說一切有情皆有本覺真心、無始已來常住清淨、昭昭不昧了了常知、亦名佛性亦名如來藏。
 《원인론(原人論)》을 해설한 정원(淨源) 스님의 《발미록(發微錄)》에서.
昭昭不昧了了常知者、華嚴回向品云、真如照明為性、故云不昧、此言者、不是證知、意說真性不同虛空木石、故云知也、非如緣境分別之識、非如照體了達之智、直是真如之性、自然常知、故馬鳴菩薩云、真如者、自體真實識知義故、亦名佛性下、是諸佛萬德之源、故名佛性、是衆生迷悟之源、故名如來藏
*여래장(如來藏)산스크리트어 tathāgata-garbha 본래부터 중생의 마음 속에 감추어져 있는 여래가 될 가능성. 중생의 마음 속에 저절로 갈무리되어 있는 여래의 청정한 씨앗. 중생이 모두 갖추고 있으나 번뇌에 가려져 있는 여래의 성품. 모태(母胎)의 태아(胎兒)처럼, 중생의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는 부처의 성품.
*원각(圓覺) ; ‘원만(圓滿)한 신령스러운 각성(覺性)’ 부처님의 원만한 깨달음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원만한 깨달음의 경지인 청정한 본심을 일컬어 원각묘심(圓覺妙心)이라 한다.
일체의 생명에는 본래부터 깨달음[本覺]이 있고 진심(眞心)이 있어서, 체(體)의 입장에서 그것을 표현을 하면 일심(一心)이라 하고, 인과(因果)의 인(因)을 잡아서 표현을 하자면 그것을 여래장(如來藏)이라 표현하고, 인과(因果)의 과(果)로 잡아서 표현을 하면 그것을 원각(圓覺)이라 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 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치성(致誠 이룰•이를 치/정성 성) ; ①하느님 이나 부처님 등 신적 대상에게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정성을 다하여 빎. ②있는 정성을 다함. 또는 그 정성.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소멸(消滅) ; 사라져 없어짐.

*해태(懈怠 게으를 해, 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24) 유루복, 무루복을 겸해서 지어야 / 自利利他 / 飯器已破 / 단전호흡과 화두가 함께 되어가게 /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있는 선방.

참으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나 또는 영원히 생사 없는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느냐 하는 것은 오직 내가 나를 깨쳐야만 됩니다.
복을 짓되 무루복(無漏福)을 지어야 합니다. 유루복(有漏福)만 지으면은 복은 받지마는 윤회(輪廻)는 면틀 못하고, 유루복을 지으면서도 무루복을 겸해서 지을 줄 알아야 해. 무루복이란 무엇이냐? 함이 없는 법, 내가 나를 깨닫는 법이여.
단전 호흡에다 화두를 꼭 붙여 가지고 의단이 독로(獨露)하도록, 의단이 순일무잡(純一無雜)하도록 그렇게 해 나가면 몸도 건강하고 마침내는 깨달음에까지 이르른다. 이것이 바로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다.
장소야 어디건 그거 상관이 없어. 한 생각 딱! 챙겨 가지고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선방(禪房)이여. 선불장(選佛場)이여.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있는 선방이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


(1) 약 21분.  (2) 약 6분.


(1)------------------

대도(大道)를 성취하는 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반야심경이 좋다니까 반야심경을 읽고, 천수경이 좋다니까 천수경을 냅다 틀어재끼고, 관세음보살이 좋다면 아들을 위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죽은 영감을 위해서는 지장보살을 부르고 아미타불을 부르고, 그러다 참선이 좋다니까 앉아서 참선 흉내 좀 내고,
입춘이 되면은 또 무당집에 가서 5만원 10만원짜리 또 부작을 사고, 좋다는 데는 다 쫓아다니고, 그러다가 결국은 눈 한번 감았다 뜨지 못하고,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내생(來生)입니다.

이리저리 좋다는 것은 다 인연을 맺고 공덕을 지었으니까 악도(惡途)에는 떨어지지 않기를 나도 바래고, 원(願)대로 극락세계(極樂世界)로 가실 것을 나는 다같이 바래기는 하지마는 과연 그분이 극락세계에 꼭 갈 것인가? 나는 보증을 못합니다.

복을 짓고 착한 일을 한 만큼 내생에 천당에도 가고 또 사람이 되더라도 부자도 되고 인물도 잘 태어날 것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나도 믿습니다마는,
참으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나 또는 영원히 생사 없는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느냐 하는 것은 오직 내가 나를 깨쳐야만 됩니다.

복을 짓되 무루복(無漏福)을 지어야 합니다. 유루복(有漏福)만 지으면은 복은 받지마는 윤회(輪廻)는 면틀 못하고, 유루복을 지으면서도 무루복을 겸해서 지을 줄 알아야 해.

무루복이란 무엇이냐? 함이 없는 법, 내가 나를 깨닫는 법이여.

다른 사람에게 이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을 수 있도록 이것이야말로 샘이 없는 복[無漏福]이요, 함이 없는 법[無爲法]이라. 이 복이야말로 영원한 것입니다.
남 보고 하라고만 하고 자기는 안한 사람이 있거든. 자기만 하고 남 보고는 별로 권고를 하지 않은 사람이 있거든.

자리이타(自利利他),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의 법이야말로 이것이 바로 대승법이요, 새에 두 날개가 있는 거와 같고, 수레에 두 수레바퀴가 있는 거와 같아서, 새가 날개 하나만 가지고서는 도저히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수레바퀴 하나만 가지고서는 굴러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리이타, 이 세등선원을 짓는 것도 역시 자리이타를 하기 위해서 짓는 것이요, 이 세등선원을 짓는데 여러 신남신녀가 시주(施主)를 하고 화주(化主)를 하는 것도 이것 또한 자리이타를 하는 것이여.

부처님 출현하신 것도 역시 자리이타를 위하는 것이여. 부처님 경지에 있어서야 원래 생사 없는 본각(本覺)자리에 계시는데 무엇이 다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나실 것이 무엇이 있느냐?
그렇지마는 중생을 위해서 대자비심을 일으켜 가지고 사바세계에 출현하신 것이다.

한 글자도 설할 곳이 없는 곳을 향해서 팔만사천(八萬四千) 법을 설하셨다. 이것이 또한 자리이타를 위하는 것이다.
한 글귀도 설할 곳이 없는 곳을 향해서 역대 조사(祖師)가 많은 어록(語錄)을 남기셨다. 이것이 또한 자리이타를 위한 자비심에서 나오신 소식이다.

오늘 산승이 나와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는 것도 내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수행 과정에 있는 사람으로서 내 시간도 바쁘다. 무엇 때문에 여기에 올라와서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중언부언 두서없는 소리를 하고 있느냐?

부처님께서 다겁(多劫)을 두고 스스로 생사 속에서 윤회하신 그런 뼈아픈 경험이 계셨기 때문에 여러 중생들을 위해서  나오셨어.

저 자신도 선지식의 법문을 듣고 스스로 정진을 해봤기 때문에 선지식한테 들은 말씀, 나의 경험을 통해서 얻은 바를 여러분에게 간곡히 말씀을 드림으로 해서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정진을 잘할 수 있는, 발심하실 수 있는 채찍이 되고 도움이 된다면 하는 그러한 마음에서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진즉부터서 공부를 해서 이런 말을 듣지 아니하고라도 잘 정진을 하신 분도 계실 것이고, 처음으로 공부를 하러 오셔서 이러한 말씀이 꼭 필요한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이미 다 잘 알고 공부를 잘하고 계신 분은 증명을 하시면 되는 게고, 처음 와서 들으신 분은 뼈에 사무쳐서 명심해서 듣고 발심을 해서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 선배 후배 도반들의 그 돈독한 정의가 아니고 무었이겠습니까.


‘참 법문’이라 하는 것은 설할래야 설할 수가 없는 것이여. 따라서 들을라야 들을 것 없는 도리를 알아야 되는 것이여.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쥐는 바로 고양이의 밥인데, 고양이는 쥐를 먹고 사니까 쥐가 바로 고양이 밥인데, ‘쥐가 쥐를 먹었다’ 이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서식묘아반(鼠食猫兒飯)이라 일러 가지고 인가(印可)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한 풀이를 해 주셨습니다.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은 미제(美製) 자물쇠통과 같아서 아무리 것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생겼어도 제 번호가 아니면은 열리지를 않습니다.

체중현(體中玄) 도리에서 본다면 손을 한번 드나, 고함을 한번 치나, 발을 한번 구르거나, 좌복을 한번 들었다가 내동댕이를 치거나, 빰을 한 대 올려붙이거나, 눈을 한번 감았다 뜨거나, 일거수 일투족이 다 맞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방귀를 한번 뀌거나, 부처라고 하거나 똥이거나, 일체가 다 한 소식입니다. 한 맛입니다.

그러나 이 공안은 그러한 체중현 도리, 일체가 텅 빈 도리, 한 맛인 도리로 보아 가지고서는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 이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구경(究竟)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여러분들이 어떠한 공안을 가지고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다’하는 그러한 식으로 따져서 어떠한 결론을 얻을라고 해서는 그것은 공연한 헛수고인 것입니다. 얻었다고 해봤자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여.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맞지 아니하니 다시 일러라”
“반기이파(飯器已破)입니다. 밥그릇은 이미 깨졌습니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는데, 무슨 밥그릇이 어떻게 깨져?
이 도리는 우리가 아무리 따져 봤자 알 수가 없는 도리여. 가르켜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도리여. 반기이파(飯器已破) 도리.

여러분이 가지고 하는 판치생모, 또는 정전백수자, 또는 시삼마 이런 모든 공안은 알래야 알 수 없고, 따질라야 따질 수 없고, 꽉 맥힌 상태에서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라 했는고?’ 알 수 없는 꽉 맥힌 상태에서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가야지,
‘쥐가 고양이 밥을... 밥...,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뜰앞에 잣나무 잣나무......’ 이런 식으로 해서 이렇게 따지보고, 저렇게 따져보고, 이러한 참선은 이건 ‘죽은 참선’이여. 절대로 그런 참선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덮어놓고 무조건하고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면서 ‘이뭣고?’


언제든지 좌선을 해서, 참선 시작할 때에는 준비 호흡으로 숨을 가득 가슴으로 들어마셨다가, 더이상 참을 수 없을만큼 참었다가 입으로 ‘후—’하고 다 내쉬어 버리고 나서, 그렇게 2번을 하고서,

3번째는 가슴으로 들어마시지를 말고 가슴과 윗배는 고대로 놔두고 아랫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불어나도록, 볼록해지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면서 숨을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시되 윗배와 가슴은 약간은 움직이겠지만 거의 가만히 있도록 유지를 하면서 아랫배만 약간 볼록해진다.

들어마시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초, 3초 동안에 스르르르 하니 아주 수월하게 들어마시는 거여.

너무 오랜 시간을 걸려서 들어마실라고 하지를 말고,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셨으면 너무 가득 들어마시지를 말고, 아까 준비 호흡을 할 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지만 인자 본(本) 호흡, 단전 호흡에 들어가서는 배가 터지도록 들어마시면 안된다 그말이여.

8부쯤만 들어마셔. 더 들어마실수 있지마는 8부쯤만 스르르르 들어마셔 가지고, 8부쯤 들어마신 상태에서 약 3초 동안을 머물러.
딱 정지한 상태에서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는데 내쉼에 따라서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이렇게 홀쪽해지도록.

그 홀쪽해지기 시작할 때 그때 ‘이뭣고~?’ 속으로 그렇게 하면서 숨을 내쉬는 거여.

이것은 아주 초보자를 위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보자는 이러한 방법을 써서 하면 단전 호흡과 화두가 함께 되어 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지어 들어가면 머지않아서 단전 호흡도 잘되고, ‘단전 호흡했다’하면 화두도 거기에 붙여서 함께 잘되어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가 익숙해진 사람은 숨을 들어마시거나, 내쉬거나, 밥을 먹거나, 옷을 입거나, 그까짓것도 구애 없이 항시 화두의 의단(疑團)이 항시 목전(目前)에 상주해서, 눈앞에 항시 나타나서 일여(一如)하겠지만,
처음 한 사람은 ‘이뭣고?’해도, 금방 ‘이뭣고?’한 사이에 생각은 동쪽으로 서쪽으로 왔다갔다 하고, 어렸을 때로 날아갔다, 집으로 날아갔다, 야단이거든. 그러다 보면 화두를 놓쳐 버린다.

그래서 다시 또 챙길라면은 힘이 들거든. 그러다 억지로 ‘이뭣고?’ ‘이뭣고?’하다 보면은 모가지만 뻣뻣해 가지고 골만 빠개질라고 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도 안되고, 아! 이러니 할려고 마음은 내는데, 할려고 하면은 잘 안되니 그거 어떻게 하냐?

그래서 과거에 도인(道人)들이 여러 가지로 다 경험을 해 보고 연구를 한 결과 이 단전 호흡을 겸해서 하도록 이렇게 모다 지도를 해 오셨다 그말이여.
그래서 지금 오늘 유독 결제날이기 때문에 단전 호흡하는 법과 화두 드는 법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벌써 넘어서 배가 고파 죽겠는데, 고만 했으면’ 이러시겠지만 굶어서 돌아가시지를 않습니다. 조금 배가 고파야 말이 들어가지 잔뜩 먹고 쌕쌕거리게 되면은 졸음만 오지, 법문이 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금 시장한 다음에 잡숴야 밥이 맛이 있습니다.

숨을 들어마셨다가 3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하면서 내쉬는데, 숨을 들어마실 때 어떻게 들어마시냐 하면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가 불룩하도록 이렇게 하지를 말고, 물론 코로는 들어가겠지만,
우리의 기분으로는 저 궁둥이 뒤에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가 이렇게 볼록해지도록 그런 기분으로 들어마시고,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머물렀다 내쉴 때는 코로 내쉰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내쉴 때도 저리 뒤로 해서—궁둥이 뒤로 해서 저 뒤로 쑤욱 내보낸다는 그런 기분으로 내쉬어 보시라 그말이여.
저 뒤에서 쑤욱 들어마셨다, 들어마신 호흡을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내쉴 때는 저 뒤로 쑤욱 배꼽을 뒤로 잡어당기면서 뒤로 내쉬는 거여.

그런데 절대로 무리하게 억지로 하지를 말어. 너무 억지로 해 가지고는 그냥 한 두어 번만 하면 숨이 가쁘게 이렇게 하시다가 ‘아이고! 그거 되서 못하겠다'고 그러는데 그렇게 하시는 게 아니예요.

아주 수월하게—들어마시는데 3초 걸리고, 3초 머물렀다가 내쉴 때는 한 4~5초 걸리게 조용하게 내쉬고,
이렇게 들어마셨다 내쉬었다 하는 거기에다가 ‘이뭣고~?’하는 알 수 없는 의단을 거기다가—배꼽밑에 배가 나왔다가 들어갔다 하는 거기다가 관심을 두고서 화두를 거각(擧却)해 보시라 그말이여.

백 명이면 백 명, 몸도 차츰 건강해지고 가벼워지고 골치 아픈 병이 있는 사람도 그렇게 하면 병이 낫거든. 가슴이 답답한 증세가 있는 사람도 그게 낫고, 집안에서 무슨 일로 속이 상해서 가슴앓이 속병이 있는 사람도 이것을 하면 그 병이 낫는다 그말이여.

이것을 하면서 화두까지 거기다 겸해서 하면은 결정코 깨달음까지 이르른다 이말이여. 화두는 아니하고 밤낮 고것만 하고 있으면 그것은 병을 고치는 데에는 효과가 있지만 그래 갖고는 그건 깨닫지는 못하는 것이여.

거기에다 화두를 꼭 붙여 가지고 의단이 독로(獨露)하도록, 의단이 순일무잡(純一無雜)하도록 그렇게 해 나가면 몸도 건강하고 마침내는 깨달음에까지 이르른다. 이것이 바로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다.

이렇게 해 나가면 선방에 방부(房付)를 들이지 아니하고 가정에서도 아침 저녁으로 그렇게 하시고 낮에도 시간 있는 대로 그렇게 하시고,

이 공부는 꼭 앉어서만 하는 게 아니라 일하면서, 말하면서, 걸어가면서, 차 타면서, 행주좌와간에 할 수 있는 것이라, 오늘 백일기도에 동참하시고 또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은 모두가 다 이 세등선원에 방부를 들인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다못 장소가 형편상 이 세등선원일 수도 있고, 또 보문사일 수도 있고, 군산일 수도 있고, 또 시내일 수도 있고, 조치원일 수도 있고, 청주일 수도 있고, 서울일 수도 있습니다.

장소야 어디건 그거 상관이 없어. 한 생각 딱! 챙겨 가지고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선방(禪房)이여. 선불장(選佛場)이여.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있는 선방이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한 생각 한 생각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말고, 한 생각 일어나는 그자리에서 숨을 스르르르 들어마셔 가지고 ‘이뭣고?’ 이렇게 단속해 나가. 업장(業障)이 거기에서 봄눈 녹듯이 녹아 없어져. 업장이 녹아지면은 소원성취는 거기에 있거든.(60분26초~80분55초)


(2)------------------

내가 그전에는 얼굴이 아주 시커먼 사람인데, 아! 30년을 참선을 하니까, 내 얼굴보고 검다고 하지 않는다 그말이여.
성질이 아주 불같아 가지고 신경질을 잘내기로 아주 유명하고, 고집이 센 사람인데, 아! 참선을 했더니 나 보고 마음보 고약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 별로 없다.

여러분 가운데도 얼굴이 검어서 고민인 사람, 얼굴에 무엇이 많이 나서 고민인 사람, 또 신경질을 많이 내고 고집이 세다고 욕을 먹고 그러한 평판이 있는 분, 오장육부에 병이 많은—내가 또 병주머니여서 학교를 다닐 때는 1년에 한 달 내지 두 달은 꼭 결석을 했다.

그런데 출가해 가지고 참선을 하니까, 사람들이 나보고 대단히 건강하다고 그런는데, 내가 별로 약도 많이 먹지도 않고, 병원에 가기를 그렇게 죽기보다 더 싫어한 사람이어서 병원에 잘 안 가고 그러는데, 참선을 해서 이렇게 몸도 건강해 진 것 같어.

여러분들도 참선을 열심히 하시고, 제가 금방 이 시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의식주 문제라든지, 일상 생활 속에서 화두를 단속하는 이러한 법을 명심을 해서 실천에 옮기신다면 얼굴도 예뻐질 것이고 오장육부의 병도 다 나아질 것이고,

성격이 고약하다고 평판이 있는 시어머니, 며느리, 스승, 상좌 할 것 없이 다 불보살과 같이—나는 워낙 고약한 사람이라 그렇지, 보통 된 사람이 그만큼 열심히만 하면 틀림없이 금생에 불보살과 같이 될 것을 나는 맹세를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 가지고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아까 몽산 스님한테 책임을 따져야 됩니다. 몽산 스님이 대신 지옥에 간다고 맹세를 하셨거든.
나도 역시 몽산 스님과 똑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 가지고 깨닫지 못한다면 나도 여러분 대신해서 지옥에 간다』고 자신있게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나는 경험을 통해서도 그것을 느꼈고, 이러한 선지식(善知識)들의 법문을 여지없이 믿기 때문에 추호(秋毫)도 나는 의심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이니 오늘 결제일을 기해서 여기에 모이신 출가한 스님네나 마을에 계신 신도 여러분들, 오늘 새로 태어났다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정말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결정코 대도를 성취해 주시기를 간곡(懇曲)히 부탁을 드리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수설운산천만사(雖說雲山千萬事)라도  해천명월본무언(海天明月本無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구름 일어나듯이, 산에 구름 일어나듯이 한도 없이 끝도 없이 천 가지, 만 가지 말을 이렇게 말을 한다 하더라도 저 바다 위에 떠있는 밝은 달은 원래로 말이 없느니라.

마지막 한마디는 끝내 여러분에게 드리지를 못합니다. 이 주장자에게 맡기고 내려갑니다.(80분56초~86분14초)(끝)


------------------(1)

*악도(惡道, 惡途) ; 악한 짓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복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과 무루복이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 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위법(無爲法) ;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dharma) 무위법은 무위의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법·法)를 통칭한다. 또는 그러한 개별 존재(법·法)를 가리킨다.
원래 무위 혹은 무위법은 열반(涅槃)의 다른 명칭.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화주(化主) ; ①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주(主). 부처님를 말함. ②신도들의 집을 돌며 절에 필요한 양식·물건·비용 등의 시물(施物)을 얻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본각(本覺)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어록(語錄) ; 조사어록(祖師語錄).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 예로부터 석취미모(惜取眉毛, 눈썹을 아낄지어다)라고, 경(經)의 뜻을 잘못 해석하여 진리로부터 동떨어진 설법을 하면 미모(眉毛•눈썹)가 빠진다는 말이 전해온다.
그런데 ‘한 물건(一物)’이라 표현하는 진리의 본체는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고 하였으니,
'눈썹을 아끼지 아니하고 설법을 한다'는 것은 선지식의 중생을 위한 간절한 자비심을 나타내는 뜻이다.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체중현(법문에서) ;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헌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하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할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하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하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 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구중현(句中玄)·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참고 ❸] 송담스님 법문(No.466)—92년 보살 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갈라면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 ❹] 송담스님 법문(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에서.
가끔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 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8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 거사(龐居士)의 게송이 아래와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통광 스님 역주 ‘고봉화상선요•어록’ p37,46에서)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2)

*병주머니 ; 갖가지 병이 많은 사람 또는 그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몽산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추호도’, ‘추호의’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간곡히(懇曲- 간절할 간/간절할 곡) ; 간절하고 정성스럽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24) 화두드는 법 / 최상승법 /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생사(生死) / 불보살, 선지식 아닌 사람이 없다 / 중생심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체(體).

대혜(大慧) 『서장(書狀)』에 보면 공부하다가 어려운 역경계가 나타나는 것이 마장이 붙어서 그런 게 아니라 한고비 올라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경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생사입니다. 그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사의 연속이 바로 일평생(一平生)이 되고, 그것이 바로 육도윤회(六途輪廻)가 되고, 그것이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이 끊임없이 거듭되는 이 생사의 물결 속에서 바로 생사해탈하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그 생각이 슬픈 생각이건, 기쁜 생각이건, 또는 노여운 생각이건, 과거의 생각이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일어나는 그 생각을 버릴려고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 생각에서 ‘이뭣고?’하는 것입니다.
발심한 사람, 참으로 진발심(眞發心)을 한 사람이라야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도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고, 선지식을 바로 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그 자리에서 ‘이뭣고?’하면 그것이 공부인데, 망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부가 안된다고 왜 그러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 ‘안된다’고 생각함으로써 자기로 하여금 ‘공부 안되는 사람’으로 스스로 낙인(烙印)을 찍는 것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
떠오르는 그 많은 중생심(衆生心), 번뇌 망상심, 생멸심 그것을 꼭 나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성내는 놈, 슬퍼하는 놈, 기뻐하는 놈, 원망하는 놈, 아퍼하는 놈,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놈, 이것이 전부 다 진여불성으로부터서 일어나는 한 거동이요 모습일진대, 그 거동 그 모습을 버릴려고 할 것이 없어.
바로 그놈을 계기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자기 진여불성을 찾는 가장 가깝고 빠르고 묘하고 간단한 길이다.  중생의 번뇌 망상심 그놈을 버리고 어떠한 진여불성을 찾아서 깨달으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무량겁을 두고 공부를 한다해도 그 사람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화두 하나만 제대로 들을 줄 알면 그 사람은 갈 곳이 없습니다. 결정코 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


(1) 약 18분.  (2) 약 21분.


(1)------------------

오늘 기미년 삼동(三冬) 결제일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공안법(公案法)—최상승법(最上乘法)에 있어서 공안법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공안법은 이론으로서 따져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공안(公案)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천 칠백 공안이 있습니다.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 칠백 공안인데, 문헌에 오르지 아니한 것을 말하자면 우주법계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전체가 공안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 한 공안, 한 화두(話頭)를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그 한 공안에만 철저하게 실참실수(實參實修) 해 가지고, 한 공안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천 칠백 공안, 무량무수의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그러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최상승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입니다.

뒤에 있는 문을 좀 잠깐 열어서 차운 공기가 들어오게 좀 하십시오. 다들 열어 주세요. 확 열어 주세요.


오늘부터서 석 달 동안 결제(結制)에 들어갑니다.
결제 동안은 부모의 부고(訃告)가 오더라도 그 부고장(訃告狀)을 본인에게 보여주지 아니하고 사무실에 보관해 놓았다가 내년 정월 15일에 해제한 뒤에사 그 부고를 본인에게 전할 만큼, 결제 동안에는 그렇게 규칙이 엄격하게 출입을 금하고 목숨을 바쳐서 정진을 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일단 방부(房付)를 들이면은 그래 가지고 방(榜)을 딱 짜고 정진에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인연을 다 끊고 인사로 왔다갔다하는 것을 다 끊고, 오직 생사대사(生死大事) 하나만을 위해서 대중의 규칙을 자발적으로 지키면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짜면 짠 대로 먹고,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먹고, 맛이 있으면 있는 대로 먹고, 없으면 없는 대로 먹고, 오직 의식주 문제는 인연에다 맽겨.

그리고서 밤 9시부터서 그 이튿날 새벽 3시까지 여섯 시간을 제외하고는 일체 잠을 스스로 허락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