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相)없이2014.12.28 16:50

§(330) (게송)허공경계기사량~ / 영랑신선, 불로장생, 일장춘몽, 달팽이 뿔 / 비사왕과 가섭존자 설화 / 도에 들어가는 첫째 단계가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을 버리는 것.


옛날 도인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도(道)에 들어가는 첫째 단계가 그러한 국집을 버리는 것이여.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을 버리는 것이여. 

우리 중생은 아애(我愛), 아만(我慢), 아치(我癡), 이것이 우리 중생 그 제7식(七識)의 본업인데, 그놈에 딱 국집을 해 가지고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내 것이다’  ‘내가 잘한다’  ‘내가 옳다’ 이러한 아애, 아만, 아치, 이것 때문에 도에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어쨌든지 자기의 국집을 버려야 합니다.

**송담스님(No.330)—87년 5월 첫째일요법회(87.05.03)


(1) 약 17분.  (2) 약 20분.


(1)------------------


허공경계기사량(虛空境界豈思量)고  대도청유이갱장(大道淸幽理更長)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단득오호풍월재(但得五湖風月在)인댄  춘래의구백화향(春來依舊百花香)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허공경계(虛空境界)를 기사량(豈思量)고, 허공의 경계를 어찌 사량(思量)할고?

이 허공이, 허공세계가 동서남북 사유(維) 사방으로 끝없이 높고 끝없이 넓은데 그 허공의 경계를 어찌 우리 사량분별로써 가늠을 할 수가 있겠느냐.


대도청유이갱장(大道淸幽理更長)이다. 대도(大道), 큰 도의 맑고 그 깊은 도리는 그 허공만큼 그렇게 멀고도 높고도 길더라.

저 허공도 그 갓을 알 수가 없고, 얼마나 넓고 높은 그것을 알 수가 없거든 하물며 대도의 그 깊고 넓은 이치를 그거 어떻게 사량분별로 알 수가 있겠느냐 이거여.


단득오호풍월재(但得五湖風月在)인댄, 다맛 오호(五湖)의 그 풍월(風月)이 있음을 얻는다면—동서남북의 그 호수가 있고 거기에 풍월이 있으면,

춘래의구백화향(春來依舊百花香)이니라. 봄이 오면 옛을 의지해서 백 가지 꽃이 향기롭다. 산이 있고 들이 있고 호수가 있고 그러면 봄이 오면은 방방곡곡에 빨갛고 노랗고 온갖 백화(百花)가 그 향그럽게 필 것이다.



오늘은 정묘년 5월 첫째 일요법회 날입니다.

방금 우리는 조실스님의 녹음법문을 경청을 했는데 여러분께서 들으신 바와 같이 원효(元曉) 스님 당시 그 야운(野雲) 비구라고 하는 그 스님이 도를 깨닫는 그 기연(機緣)에 대해서 법문을 들었습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영랑신선이라고 하는 신선이 저 동해가 몇 번 말랐다 다시 또 물이 찼다 하도록 그러니까 몇 겁 동안을 죽지 않고 신선으로써 그것을 다 겪고 불로장생(不老長生)하는 인자 그러한 신선이,

다 이 오신통(五神通)이 자재해서 천안통과 천이통, 숙명통, 타심통 모다 이런 신족통, 이 다섯 가지 신통을 얻은 영랑신선이,


아주 신선도 사뭇 몇 겁이 되어 가지고 늙으니까, 아주 원숭이인지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인자 초췌해져 가지고 추워서 못견디니까,

원효스님 토굴에 와 가지고 그 불씨를 찾아가지고 그 불을 쬐고 그렇게 하다가 원효스님한테 붙들려서 그래 가지고 결국은 원효스님의 언하(言下)에 대도를 성취했다고 하는 그런 전설이 전해 내려옵니다. 


여기서 이 설화를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신선도를 닦아가지고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그러한 도리를 터득을 하면 오신통이 다 나고 해서, 중국의 팽조(彭祖) 같은 사람도 칠백 세(歲)를 살았다고 전해오고 그 이후에도 많은 신선도를 닦은 사람들이 뭐 오백 세 삼백 세는 보통 다 살고 그런데,


신선도의 도 닦아 가는 그 요령이 무엇이냐 하면은 순전히 이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해 가지고 단전호흡에 통달을 하면 그렇게 이 몸뚱이를 가지고 장생불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아주 참 계행(戒行)을 지키면서 잘하면 오신통이 난 걸로 그렇게 전해집니다.


그런데 우리 불법(佛法)은 그런 신통 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또 이 몸뚱이를 가지고 장생불사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지를 않는 것입니다.

물론 참선을 하면서 단전호흡을 하기는 합니다만은 단전호흡을 하기는 하되, 신선들이 이 몸뚱이를 가지고 장생불사하고 신통이 나기 위해서 하는 그러한 목적으로 단전호흡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신선도를 잘 닦아가지고 오신통이 나가지고 이 몸뚱이를 가지고 몇 겁을 살았어도 결국 초췌해져 가지고 나중에는 그러한 그 영랑신선처럼 비참한 양상으로 타락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 원효스님과 같은 그러헌 도인(道人)을 만났기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지, 그렇지 않았으면 결국은 가련하게 비참하게 처량한 종말을 맞이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물며 인간 세상에 있어서 부귀영화나 그 오욕락을 자기의 뜻대로 얻어서 그것을 누린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 70년, 높은 벼슬도 해 보고, 큰 부자도 되어 보고, 큰 권리도 써 보고, 예쁜 아내를 얻고, 좋은 아들들을 갖고, 그래 가지고 참 남부럽지 않게 부귀공명을 이룬다 하더라도 잠깐 꿈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오신통과 불로장생법을 얻었어도 결국 끄터리 가서는 그렇거든, 하물며 이 허망한 인간 세상에 있어서의 오욕락(五欲樂)—재산이라든지, 색(色)이라든지, 명예 권리나 안락 그런 것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입니다. 


‘봄날 뜨뜻한 양지에서 잠깐 낮잠을 졸다가 꿈속에서 부귀를 누리다가 퍼뜩 낮잠을 깨고 보니 참! 일장춘몽(一場春夢)에 지내지 못하다’ 이렇게 인간의 부귀영화와 흥망성쇠를 춘몽에다가 고인(古人)들은 다 비유를 했습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실지(地)가 그런 것입니다.


정말 그래서 옛날 도인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현들은 그러한 인간 세상의 부귀영화를 달팽이 뿔에다가도 비교를 했습니다.


달팽이의 그 뿔이라는 것이 잠깐 푹 길게 나왔다가 또 그냥 쑥 속으로 들어갔다가, 또 가만 놔두면 또 쑥 길게 뻗었다가 또 살짝 건들면 또 쑥 들어갔다가,

부자가 되었다가 가난해졌다가, 무슨 권리를 누렸다가 또 권리가 없어졌다가, 이러한 것이 달팽이 뿔따구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데 사람들은 그 달팽이 뿔따구 보다도 더 허망한 부귀공명을 위해서,

그 받기 어려운 사람 몸, 만나기 어려운 이 세상에 몸을 받아 나 가지고 그 달팽이 뿔따구와 같은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 몸과 목숨과 시간을 거기다 다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추구한 만큼 마음대로 얻어지기도 어렵지만, 얻어 놓고 보면 ‘아! 이것이 아니다’고 하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는 것이고,

얻어 놓고 보면 참다운 행복이라 하는 것은 이러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겪은 뒤에사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한 번 두 번 겪어보면 퍼뜩 그것을 깨닫게 되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일생 동안에 수없이 그러한 부귀공명이라든지 흥망성쇠가 허망하다고 한 것을 수십 번을 겪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다 해보고 겪어보고 그래 가지고 마지막 죽을 때에사 ‘하! 인생이라고 한 것은 참 허망한 것이었구나’ 죽을 때에사 겨우 깨닫게 되고,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숨 끊어지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미련과 원망과 한을 품고서 숨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 비사왕(鞞肆王)이라고 하는 임금님이 있었는데, 그때 가섭(迦葉)이라고 하는 큰 도인이 계셨습니다.


그 비사왕이 그 가섭존자를 만나 가지고 묻기를,

『불교에서는 착한 일을 하면 천상에 태어나고, 악한 일을 하면 내생에 지옥에 간다고 모다 그래 쌌는데, 나는 그 소리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디가 내생이 있고, 어디가 무슨 지옥 천당이 있겠습니까?


그건 허무맹랑한 소리고 사람들을 속이는 소리고, 괜히 악한 짓 하지 말고 착한 일 하라고 그렇게 그 권선징악을 하기 위해서 공연히 사람들을 겁을 주는 소리지,

어디가 그 뭐 내생이 어디가 있고, 숨 한 번 끊어져서 죽어버리면 그만이지 무슨 내생이 있겠느냐고.


그런 명색이 도인이고 성인이라고 한 사람들이 멀쩡한 소리를 가지고 혹세무민을 한다, 세상을 속이고 모다 그런다 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 머리 위에 떠있는 해와 달은 그러면 금세(今世)를 위해서 있는 것이요? 내생(來生)을 위해서 있는 것이요?』하고 가섭존자가 물었습니다.


물으니까 비사왕이 『그런 소리 물어봤자 나는 내생은 도저히 있다고 믿을 수가 없다』고,

『해야 오늘을 위해서 떴건, 내일을 위해서 떴건 그것은 가만 놔둬도 떴다 졌다 하는 것이지 무슨 거기다 대고 금생 내생을 따지느냐? 나 그래도 그런 것은 내생은 나는 안 믿는다』고.

『인과(因果)도 안 믿고 내생도 그런 것도 안 믿는다.』 그러니까,(처음~17분9초)



(2)------------------


〇가섭존자의 천당, 지옥 비유.


『그러면 어째서 그렇게 안 믿소?』 그러니까,

『내가 잘 아는 사람, 아주 일생 동안을 착한 일만 하고 그런 사람보고 그 사람이 죽을라고 할 때,

‘당신은 일생 동안을 좋은 일만 하고, 마음씨를 착하게 하고, 행동을 착하게 하고 그랬으니 당신은 틀림없이 천당에 갈 거요.

만약에 천당이라고 하는 곳이 사실 있다면 당신은 천당에 갈 것이니, 천당에 가걸랑 바로 와 가지고 나한테 천당이 이렇게 이렇게 생겼고, 실지로 있다고 한 것을 나한테 보고를 해 주시오’하고 신신부탁(託)을 했는데,

그 사람이 한번 죽어가더니 천당에를 갔는지 어디로 꼬꾸라졌는지 다시는 와서 말 안하더라 이거지요.


또 자기가 안 사람 가운데 천하에 고약한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은 사기협잡에다가 사람을 많이 죽이고, 온갖 못된 짓을 다하고, 참! 인간으로서는 그럴 수가 없는 짐승만도 못한 그런 못된 놈이 내가 잘 아는 사람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어서,


내가 그래도 마지막 죽게 된다고 그래서 그 문병을 안 갈 수가 없어서 가 가지고,

‘참, 죽어갈라고 하는데 말하기는 미안하지만 당신은 틀림없이 죽으면 지옥에 갈 거요. 지옥에 갈 건데 제발 지옥에 가거든, 나한테 와서 그 지옥이 사실로 있는 고대로 그 본대로 와서 얘기를 해달라’고

그러면서 신신당부를 했는데, 그 사람이 한번 죽더니 다시는 오지 않더라. 그러니 어찌 그 지옥도 있다고 내가 믿을 수가 없고, 천당도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안 믿는다.』 그러니까,


그 가섭존자가 『참, 그 대왕 말씀을 들으니 일리가 있는 것 같은데 내 말을 한번 들어보시오.

어떤 사람이 똥구덩이에 빠졌다가 겨우 거기서 나와 가지고 깨끗이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몸에다 향수를 치르고 그랬던 사람이 어찌 다시 똥항에 들어가라고 하면 들어가겠소?


그와 같아서 인간세상에 모다 그 죄 많은 이 고해에 있다가 착한 일을 한 그 공덕으로 천당에 한번 갔으면 거기 가서 보니깐 너무너무 좋고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 사람이 인간세상에 당신한테 그 소리 할라고 여기를 오겠습니까?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이 대왕이 역적을 한 놈을 잡아가지고 취조를 하는데 그 죄인이 ‘내가 마지막 이렇게 죽어가니 내 부모형제와 고향을 한번 가서 다 둘러보고 하직 인사라도 하고 그러고 올 테니 나를 좀 놔 주시오’하면은 당신이 놔 주겠습니까?』


『나 안 놔 주지요.』

『그와 같습니다. 죄 지어가지고 지옥에 한번 갔으면 저는 쇠사슬에 묶여서 고문 받느라고 볼 일을 못 볼 텐데, 누가 당신한테 가서 지옥고 구경한 것 얘기하라고 지옥에서 놔 주겠습니까?


그러니 천당에 한번 올라가면은 갔다 왔다고 보고한 사람도 없을 것이고, 지옥에 한번 떨어진 사람이 지가 무슨 그 권리가 있어서 와서 그것을 보고를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거지. 천당이 없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지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존자가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으나 그런 소리 쯤 가지고 내가 인과를 믿을 사람이 아니여.』 그래 가지고 아주 인과를 막 부인을 하고,

『그런 소리는 하나의 비유는 될지 모르지만은 나는 그래 지옥이니 천당이니 그따위 소리를 나는 믿을 수가 없다.』



〇새끼 타래와 은전, 금전의 비유.


『그러면 내가 또 하나 비유를 들어서 얘기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둘이 여행을 가는데, 둘이 다 가는데 좋은 새끼를 꽌 타래가 있으니까 둘이 그놈을 짊어질 만큼 가득 짊어졌다 이것입니다.

‘이건 참, 집에 가지고 가면은 농사 짓는데도 필요하고, 뭘 묶는데도 필요하고 그러니 우리 이것 임자도 없고 버린 것이니까 우리가 짊어지고 가자’


짊어지고 가다가 얼마쯤 땀을 흘리다 가니까, 아! 뭔 주머니가 하나 있는데 그 주머니를 열어보니까 은이 가득 주머니 속에 들었다 그말이여.

묵직한 은전(錢)이 들어있어서 그 앞서간 사람이 그 은전을 자기가 딱 짊어지고 그 은전이 무거우니까 ‘에이, 이까짓 거’ 새끼 짐은 갖다가 벗어 내동댕이쳐 버리고 얼마만큼 가니까,


또 무슨 주머니가 있어서 그 주머니를 보니까 아! 그 속에는 황금이 번쩍번쩍한 황금전이, 황금이 그냥 그 속에 가득 들었다 그말이여.

이것 자기가 갖고 싶지만 자기는 이미 은전 뭉텅이를 줏었으니까 뒤에 온 사람보고 ‘여기에 금전(金錢)이 있으니 당신 그 새끼 뭉텅이 버려버리고 이 금전 뭉텅이를 당신 가지시오’하니까,


‘아니 나 그것 싫소. 내가 이 새끼 뭉텅이가 이걸 얼마나 필요해서 이것을 여기까지 참! 수십 리를 이놈을 짊어지고 애써서 왔는데, 이것 고향에 가지고 가면 농사짓는데 꼭 필요한데,

이렇게 애써서 짊어지고 온 것을 내가 버리고 그 금전 뭉텅이를 내가 가지고 가겠느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고 기어이 그 사람이 금전 뭉텅이를 안 가지고 새끼 뭉텅이를 가지고 간다고 고집을 하니까,


아! 이 사람은 할 수 없이 그 사람이 안 갖는다 하니까, 은전 뭉텅이를 둘 다 가지고 가면 좋겠는데 너무 무거워서 은전 뭉텅이는 그냥 버려버리고 금전 뭉텅이만 갖다 한 짐 짊어지고 인자 고향에로 오니까,

그 가족들이 모두 그 금전을 그놈을 갖다가 한 닢만 팔아도 논이 몇 마지기요, 두 닢만 팔아도 그냥 고대광실(室) 좋은 집을 짓고 아주 그냥 양식도 사고, 종도 들이고.


또 그 돈이 그리고도 한량없이 남으니까 절에 시주도 하고, 양로원 고아원에다가 또 보시도 하고, 뭐 일가친척 가난한 사람도 노나주고, 돈 없어서 학교 못 다니는 사람, 돈 없어서 병 앓고 있는 사람, 그런 데다 아주 적절히 써서 참 그 사람은 잘살게 되었는데,


아! 새끼 뭉텅이만 잔뜩 짊어지고 간 사람은 짊어지고 가자 집안 식구들한테,

‘아무개는 금전을 가지고 와서 저렇게 잘사는데, 병신 같은 것이 새끼 뭉텅이만 짊어지고 와 가지고 그까짓 것 무엇에 쓰냐’고 막 혼구녕만 났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는 집안 식구한테도 대접을 못 받고 아! 계속해서 가난뱅이 신세를 못 면하는데,


마치 대왕은 그 ‘내생이 없다’하고, 「무슨 착한 일을 하면 천당에 간다.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떨어진다」하는 이런 인과법을 믿지 않는 것으로써 자기의 고집을 삼고,


끝까지 내가 이 성현의 말씀을 해 준데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것은 마치 새끼 뭉텅이 그놈 그것 땀 흘리면서 짊어지고 온 것이 아까워서 그 은전 뭉텅이나 금전 뭉텅이를 보고도 그놈을 취하지 아니하고, 새끼 뭉텅이만 잔뜩 짊어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과 대왕님과는 너무나도 같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대왕님이 말이 꽉 막혔습니다. 



한참을 말이 막혀서, 이것 내가 이 고집을 꺾자니 이 존자 앞에 참 창피하기도 하고, 또 가섭존자의 말씀이 절대로 들어보니 그럴싸하기는 하고,


그래서 『사실은 내가 여태까지 임금 노릇을 하면서 입만 벌렸다 하면은 ‘내생이라는 것은 없다’ 입만 벌렸다 하면은 인과를 부인을 하고 이래 왔는데, 이런 것을 만조백관(滿官)이 다 알고 있는데,

내가 존자 말을 듣고서 그 여러 해 동안을 내가 그 주장을 해 오고 고집을 해 온 이것을 존자한테 설복(伏)을 당했다 한다면 내 임금의 채신이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러니 그것이 참! 딱해서 그럽니다.


그거 그 문제만 아니면은 내가 그냥 그것 참! 존자 말씀이 그것 참! 틀림없는 말인데,

임금으로써, 내가 평민만 같아도 모르겠는데 임금으로써 존자한테 내가 설복을 당했다고 해서야 내가 앞으로 어떻게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나의 고집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〇맷돼지 왕의 똥 갑옷 비유.


『참! 딱합니다. 내가 비유를 하나 더 들어서 얘기를 하지요.

아주 큰 멧돼지가 있었는데, 그놈은 많은 그 작은 멧돼지를 거느리고 사는 멧돼지의 왕인데 왕초인데,

그놈이 그 자기네 부하들을 거느리고 아주 큰소리를 치고, 쪽 자기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은 그 나발대로 받아가지고 그냥 막 혼구녕을 내고 해 가지고 누구고 그 멧돼지 왕초한테는 수백 마리 멧돼지들이 꼼짝을 못하고 그러는데 아! 그렇게 큰소리를 뻥뻥 치다가 호랭이를 만났습니다.


호랭이를 만났는데 인자 그 부하들 보는 데에서 호랭이한테 참 항복할 수도 없고, 정면상대해서 싸우자니 호랭이 그 날카로운 발톱으로 한번 할퀴어서 쥐어 뜯어버리면 꽥 소리도 못하고 죽을 것 같고,


참 딱해서 그 멧돼지 왕이 한참 동안을 꾀를 내다가 호랭이 보고 ‘내가 잠깐 우리 선조 때부터서 내려오는 그 갑옷이 있으니 내가 그 갑옷을 입고 나와 가지고 내가 한바탕 당신하고 해볼 양이니,

내 갑옷 입은 것이 무서우면 당신이 먼저 길을 비켜서 먼저 가고, 나하고 기어코 한바탕 해볼 생각이 있으면 내가 갑옷 입을 때까지 잠깐 기달려 주오’ 그러니까,


호랭이가 지까짓 놈이 갑옷 아니라 별것을 입고 온들 그까짓 것 문제가 없으니까 ‘갑옷 입고 나올테면 입고 나와 보라’고,

멧돼지란 놈이 꿀꿀거리면서 어디를 가더니 사람 똥항 속에 풍 들어가서 허우적허우적하면서 온 몸뚱이에다가 똥을 잔뜩 쳐바르고 나와 가지고는 ‘자 덤빌라면 한번 덤벼보라’


그러니까 호랭이란 놈이 저놈이 갑옷이라더니 어디서 똥을 뒤집어쓰고 나와 가지고,

‘야! 그것이 네 선조 때부터서 내려오는 갑옷이냐?  에이, 더러운 놈의 자석. 나 너하고 싸움 안할 테니까 빨리 꺼져라 이 자식아!’


그래 가지고 그 멧돼지가 그 꾀는 참 비루하고 추잡한 꾀를 냈지만 영락없이 호랭이를 싸우지 않고 물리쳤습니다. 저는 그리고서 부하 앞에서 ‘아! 내가 나의 이 지혜로써 저 건방진 놈을 내가 물리쳤다’고 아주 뻐개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번연히 대왕님의 생각이 틀리고 그 성현의 말씀이 옳고 내 말이 옳은 데도, 그 신하들이 창피하다고 해서 그 자기의 잘못된 소견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 똥을 뒤집어쓰고 나와 가지고 호랭이 보고 물러서라고 한 것과 어찌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니까 임금님이 참 너무 부끄럽게 생각을 하고 이 동곳을 빼고 그 존자 앞에 항복을 했습니다.

이것은 참, 한 설화(說話)입니다만은 이게 중아함경(中阿含經)에 나오는 부처님의 설화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생들에게는 자기 나름대로의 선입관(先入觀)이 있습니다.

정치가나 법률가나 학자나 또는 실업가나 또는 뭐 무역이나 장사하는 사람 모든 사람, 심지어 구두를 닦는 사람은 구두를 닦는 사람, 또 구들을 놓는 사람은 구들 놓는 사람, 목수, 미쟁이 무엇을 하든지,

남 보면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은 자기 자신은 자기 나름대로의 일가지견(一家之見)이 있고 철학이 있습니다.


또 여기에 사부대중이 모다 모이셨습니다만은 당신 나름대로 다 경도 보고, 기도도 해 보고, 염불도 해 보고, 또 주력도 해 보고, 또 참선도 해 보고, 그래 가지고 각기 일가지견이 자기 나름대로 있습니다.


다 해 봐 가지고 「참선은 이러한 것이다.」 「염불은 이런 것이다.」 「불법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다 자기 소견(所見)이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이 비사왕처럼 딱 자기 소견이 있어 가지고 여간해서 그것을 버리지를 않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러한 선입관에 국집(局執)이 되어 가지고 깨달음에 나아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 불법은 깨달음을 얻어가지고서도 ‘내가 깨달음을 얻었다’한 생각만 가져도 벌써 그것이 미(迷)한 것인데,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했거나 수다원(須陀洹)이나 사다함(斯陀含)이나 아나함(阿那含) 이런 성과(聖果)를 얻어가지고서도 ‘내가 이러한 성과를 얻었다’하는 생각을 내면,

벌써 그것이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에 떨어진 것이어서 그것이 참다운 도에 들어간 것이 아닌데,


깨달음에 들어간 것도 아닌 그밖에 다른 생각에 국집을 한다면 그것은 참 언어도단인 것입니다.


도(道)에 들어가는 첫째 단계가 그러한 국집을 버리는 것이여.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을 버리는 것이여. 


우리 중생은 아애(我愛), 아만(我慢), 아치(我癡), 이것이 우리 중생 그 제7식(七識)의 본업(本業)인데,

그놈에 딱 국집을 해 가지고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내 것이다’  ‘내가 잘한다’  ‘내가 옳다’ 이러한 아애, 아만, 아치, 이것 때문에 도에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어쨌든지 자기의 국집을 버려야 합니다.


이 말을 ‘자기의 주관을 버리라’  ‘자기의 주체의식을 버리라’ 이러한 말과 혼동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물론 한국 국민은 한국 국민으로서의 주체의식이 있어야 하고, 내가 어떠한 사업을 하니 무엇을 하는데 있어서도 확고한 주관이 서야지요.


하지만 도에 있어서의 그 선입관, 선입관이 딱 가로막고 있으면 어떠한 선지식의 말을 들어도 먹혀 들어가지를 않는 것입니다.


아까 이 비사왕이 그러한 삿된 소견을 국집을 해 가지고 그렇게 존자가 알아듣겄게 얘기를 해 주어도 거기에 항복을 하지 아니하고 믿지 않을려고 한 것처럼,

다행이 이런 가섭존자와 같은 그러한 참 그 변재(才)가 무궁무진한 그리고 지혜와 자비가 넘치는 이런 훌륭한 도인을 만나서 결국은 항복은 해서 다행입니다마는


우리도 어쨌든지 그러한 사견(邪見)에 빠져가지고 정법에 나아가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17분10초~37분1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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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허공경계기사량~’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야부 게송 참고.

*풍월(風月) ; ①정식으로 배우지 않고 어깨너머로 배운 짧은 지식. ②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를 읊거나 노래함. 또는 그 시나 노래.

*백화(百花) ; 온갖 꽃.

*기연(機緣) ; 어떤 기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因緣).

*오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능력.

②천안통(天眼通)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볼 수 있는 능력.

③천이통(天耳通)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

④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 속을 아는 능력.

⑤숙명통(宿命通)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능력.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선가귀감](용화선원) p94-95 참조.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끄터리 ; '끄트머리'의 사투리.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실지(地) ; ①실제 처지 경우. ②실제 이나 장소.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가 지은 복(福)으로, 복을 지은 만큼 쓰면 다함이 있다.

*삼생(三生) ; 과거와 현재, 미래를 뜻하는, 전생(前生), 현생(現生), 후생(後生,來生)을 아울러 이르는 말.

*비사왕과 가섭존자의 설화 ; 중아함경 제16권  6.왕상응품 (71) 비사경(鞞肆經) 참고.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 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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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신부탁(託)여러  되풀이하여 간곡하게 하는 부탁.

*똥항(똥缸 항아리 항) : 재래식 화장실(칙간)의 바닥을 파고 이를 묻어 분뇨를 저장하던 것으로 이 항아리에 분뇨가 가득 차면 똥장군 등에 퍼담아 밭에 내다 거름으로 이용하였다.

*고대광실(室) ; '높은 누대(樓) 넓은 집'이라는 으로크고  집을 이르는 .

*혼구녕 ; 혼꾸멍나다(魂----  '혼나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

*만조백관(滿官)조정 모든 벼슬아치.

*설복(伏) ; ①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알아듣도록 말하거나 타일러서 긍하게 . ②남의 주장이나 이론 깨뜨려 굴복하게 .

*채신 ; ‘처신(身, 세상살이 대인 관계 대해 가지 몸가짐이나 행동)’ 낮잡아 이르는 .

*호랭이 ; ‘호랑이(虎狼-)’의 사투리.

*자석 ; 자식(子息, 남자를 욕할 때 '놈'보다 낮추어 이르는 말)의 사투리.

*뻐개다 ; 뻐기다. 얄미울 정도로 매우 우쭐대며 뽐내다.

*번연히 ; ‘번히(어떤  결과 상태 따위가 훤하게 들여다보이듯이 뚜렷하고 분명하게)’의 본말.

*동곳(을) 빼다 ;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힘에) 머리를 풀어 항복을 표시한다는 뜻으로, 주장이나 뜻을 굽히고 복종하다.

*동곳 ; 상투를 튼 후에 상투가 풀어지지 않게 꽂는 물건. 금, 은, 호박, 비취 따위로 만드는데, 길이는 약 4센티미터 정도이다.

*설화(說話) ; ①어느 민족이나 집단에 예로부터 전승되어 오는 이야기. 신화(神話), 전설(傳說), 민담(民譚) 등이 있다. ②실제 있었던 일이나 만들어 낸 내용을 재미있게 꾸며서 하는 말.

*중아함경(中阿含經) ; 아함경(阿含經)의 하나. 아함(阿含)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āgama의 음사로, 전해 온 가르침이라는 뜻. 초기 불교시대에 성립된 수천의 경전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
팔리(pāli) 어로 된 니카야(nikāya)가 있고, 여기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sanskrit) 본(本)이 아가마(āgama)임.
이 아가마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 아함경으로 여기에는 ①장아함경(長阿含經) ②중아함경(中阿含經) ③잡아함경(雜阿含經) ④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네 가지가 있다.
(1) 장아함경(長阿含經). 22권 30경. 문장의 길이가 긴 경전을 모은 것.
(2) 중아함경(中阿含經). 60권 222경. 문장의 길이가 중간 정도인 것을 모은 것.
(3) 잡아함경(雜阿含經). 50권 1,362경. 짧은 경전을 모은 것.
(4)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51권 471경. 사제(四諦)·육도(六度)·팔정도(八正道) 등과 같이 법수(法數)를 순서대로 분류하여 엮은 것. 이에 해당하는 니카야는 다음과 같음.

(1) 디가 니카야(dīgha-nikāya, 長部). 내용이 긴 34경을 모은 것으로 3편으로 분류되어 있음. 한역 장아함경에 해당함.
(2) 맛지마 니카야(majjhima-nikāya, 中部). 중간 정도 길이의 152경을 모은 것으로 약 50경씩 3편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다시 각 편은 5품으로, 각 품은 대개 10경 단위로 구성되어 있음. 한역 중아함경에 해당함.
(3) 상윳타 니카야(saṃyutta-nikāya, 相應部). 짧은 경전 2,875경을 주제에 따라 분류하여 배열한 것으로 전체가 5품으로 되어 있음. 한역 잡아함경에 해당함.
(4) 앙굿타라 니카야(aṅguttara-nikāya, 增支部). 2,198경이 법수(法數)에 따라 1법에서 11법까지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음. 한역 증일아함경에 해당함.
(5) 쿳다카 니카야(khuddaka-nikāya, 小部). 법구경·경집·본생담 등 15경으로 구성되어 있음.
*선입관(先入觀) ; 어떤 사람이나 사물, 또는 주의나 주장에 대하여, 직접 경험하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 형성된 고정 관념이나 견해.
*일가지견(一家之見) ; 일가견(一家見). 어떤 일에 관하여 일정한 경지에 오른 안목이나 견해.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수다원(須陀洹) ; 산스크리트어 srota-āpanna 팔리어 sota-āpanna의 음사(音寫). 예류(預流)·입류(入流)라고 번역.
욕계·색계·무색계의 견혹(見惑)을 끊은 성자. 깨달음의 길을 하천의 흐름에 비유하여 그 흐름—처음으로 성자의 계열에 들었으므로 예류·입류하고 함.
이 경지를 수다원과(須陀洹果)·예류과(預流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수다원향(須陀洹向)·예류향(預流向)이라 함.
초기불교에서-성문(聲聞)으로서-해탈하는 길은 ‘성문사과(聲聞四果)’라고 하여, 수다원(須陀洹)·사다함(斯陀含)·아나함(阿那含)·아라한(阿羅漢)의 4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견혹(見惑)—①사제(四諦)를 명료하게 주시하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번뇌. 이 번뇌에는 유신견(有身見)·변집견(邊執見)·사견(邪見)·견취견(見取見)·계급취견(戒禁取見)·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가 있음. 
② 유식설에서, 후천적으로 습득한 그릇된 지식에 의해 일어나는 번뇌, 곧 분별기(分別起)를 말함.]
*사다함(斯陀含)산스크리트어 sakṛd-āgāmin 팔리어 sakad-āgāmin의 음사(音寫). 일래(一來)라고 번역.
욕계의 수혹(修惑)을 대부분 끊은 성자. 그러나 이 성자는 그 번뇌를 완전히 끊지 못했기 때문에 한번 천상의 경지에 이르렀다가 다시 인간계에 이르러 완전한 열반을 성취한다고 하여 일래(一來)라고 함.
이 경지를 사다함과(斯陀含果)·일래과(一來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사다함향(斯陀含向)·일래향(一來向)이라 함.
[수혹(修惑)—① 수도(修道)에서 끊는 번뇌라는 뜻. 대상에 집착함으로써 일어나는 번뇌. 이 번뇌는 욕계에 탐(貪)·진(瞋)·치(癡)·만(慢), 색계와 무색계에 각각 탐()·치()·만()의 열 가지가 있음.
② 유식설에서, 선천적으로 타고난 번뇌, 곧 구생기(俱生起)를 말함.]
*아나함(阿那含)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anāgāmin의 음사. 불환(不還불래(不來)라고 번역.
욕계의 수혹(修惑)을 완전히 끊은 성자. 이 성자는 색계·무색계의 경지에 이르고 다시 욕계로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여 불환(不還)이라 함.
이 경지를 아나함과(阿那含果)·불환과(不還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아나함향(阿那含向)·불환향(不還向)이라 함.
*아라한(阿羅漢)산스크리트어 arhat의 주격 arhan의 음사. 응공(應供)·응진(應眞무학(無學)·이악(離惡)·살적(殺賊불생(不生)이라 번역.
마땅히 공양 받아야 하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따르므로 응진(應眞),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離惡),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殺賊),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 함.
① 성문(聲聞)들 가운데 최고의 성자. 욕계·색계·무색계의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무학위(無學位)로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번뇌는 다하였으며, 해야 할 바를 다하였고, 윤회에서 해탈하여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이 경지를 아라한과(阿羅漢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아라한향(阿羅漢向)이라 함.

② 존경받을 만한 불제자.

③ 고대 인도의 여러 학파에서, 존경받을 만한 수행자를 일컫는 말.

*성과(聖果) ; 성자(聖者)의 지위. 성인(聖人)의 도달경지[果].

성자, 성인이란 무루혜(無漏慧, 번뇌를 끊어내는[無漏] 지혜[慧])의 일부를 성취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도(聖道, 성스러운 길, 성인의 길,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들어선 사람들을 말한다.

수도(修道), 성도(聖道)는 부파불교의 사향사과(四向四果), 대승불교의 보살십지(菩薩十地)를 말한다.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인상(人相)산스크리트어 pudgala-saā  인간이라는 관념·생각.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중생상(衆生相) ; 산스크리트어 sattva-saā  중생이라는 관념·생각. 부처와 중생을 따로 나누어 나 같은 중생이 어떻게 부처가 되고 무엇을 할 수 있으랴 하고 스스로 타락하고 포기하여 향상과 노력이 없는 소견.
*수자상(壽者相)산스크리트어 jīva-saā  목숨이라는 관념·생각. 목숨이 있다는 관념·생각. 생명체라는 관념·생각. 자기의 나이나 지위나 학벌이나 문벌이 높다는 것에 집착된 소견.
*아애(我愛)자아에 대한 애착심.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의 하나.
*아만(我慢 나 아,거만할·게으를 만) ;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① 오온(五蘊)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신체에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김. 자신을 과대 평가함.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의 하나.
*아치(我癡)자아(自我)를 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의 하나.
*말나식(末那識) ; 말나(末那)는 [산스크리트어] manas의 음사로, 의(意)라고 번역.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제6식(第六識)인 의식(意識)과 구별하기 위해서 의(意)라 하지 않고 말나(末那)라고 한다.
마음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8식(八識: 8가지의 식) 가운데 하나로 제7식(第七識), 제7말나식(第七末那識) 또는 말나(末那)라고도 한다.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끊임없이 자아(自我)라고 오인하여 집착하고, 아뢰야식과 육식(六識)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여 끊임없이 육식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으로, 항상 아치(我痴)·아견(我見)·아만(我慢)·아애(我愛)의 네 번뇌와 함께 일어남.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種子)를 이끌어 내어 인식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생각과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작용.
*본업(本業) ; ①주가 되는 직업. ②주로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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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