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선사 일대기2017.12.11 16:32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6호) 안수정등, 한암스님과 법거량.

**전강선사(No.013)—전강선사 일대기 제6호(경술1970년 12월 9일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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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다  소식기시문(消息幾時聞)고
나무~아미타불~
명일(明日)은 추운격(秋雲隔)이다  사군불가견(思君不可見)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다. ’이별 별(別)‘자를 딱 붙여져 가지고 있어.
우리가 다생 겁 중에 얼마나 정법에 인연을 심어 놨길래, 같은 세계에 같은 이 몸뚱이를 얻어 가지고 같이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서로 도반(道伴)이 되아 가지고 같이 도를 닦는 이러헌 지중헌 인연이 있는가.

허지마는 이렇게 모아진 것은 원인이 갈릴 원인이니라. 어쩔수 없이 갈려.
서로 상별(相別)이 앞에 있어서, 인연(因緣)이라 하는 것은 모여졌다가 흩어지는 것이 인연이여. 인연은 취산(聚散)이다. 인연이라 하는 것은 취해졌다가 흩어지는 것이여.

비단 우리 이렇게 모인 우리 정법문중 도반만 두고 헌 말이 아니여.
속가의 가정도 부부가 서로 만나고, 부자가 서로 만나고, 손자 그저 고손자 그저 며느리 그저 모도가 서로 만난 인연이라는 것은 취산헐 장본(張本)이여. 흩어지고 갈려 버릴 장본인데.

사별(死別)이라 하는 것은, 이 몸뚱이 요녀러 것 죽어 버린 뒤에 갈린 것이란 것은 몸뚱이 보고 서로 부부지간이니 자식이니 손자니 며느리니 몸뚱아리, 콧빼기, 눈깔, 고것 보고 알았제. 고놈 와서 받아가지고 내버린 뒤에는 추운격(秋雲隔)이니라.

무엇으로 그놈 증거해서 알 것이냐? 이 몸뚱이 가지고 있는 주인공(主人公) 그 자체는 서로 서로 보지 못헌 것이다.
그 본래면목(本來面目) 낯반대기는 저도 제 낯반대기를 모르고, 제 면목을 모르는디 어찌 하물며 아버지, 어머니, 부부지간이 알리요? 몰라!
추운격(秋雲隔)이니라. 도대체 알 길이 없는 것을 추운격이락 햐.

허니 사군불가견(思君不可見)이요.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도 가히 볼 수 없어.
시방 이렇게 된 것이니, 그 무상허고 허망헌 몸뚱이 요까짓 것으로써서 서로 모여 있다가 서로 갈리게 된 것이 도대체 참 인생의 허망이다.

그러면 용성 스님한테 가서 이렇게 여러 그 법문 모도 답 물어서 내가 답헌 것도 있고, 또 내가 모도 다 해 논 법문을 듣고 묻는 것도 있고 헌 가운데,
지금 요리 늘 헌 법문, 저 고승집(高僧集)이고 늘 헐 때 모도 헌 법문, 그 법문 원인을 또 아침에 얘기...

그 용성 스님께 물어서 내가 또 답헌 것이 있으니깐, 그거 늘 그 전부 몇 번 들은 거지마는 오늘 아침에 인자 이놈을 이 불가불 이번 이 일대기(一代記)에는—뭐 일대기인가, 원 내 역사기인가, 거다가 넣어 달락 하니 이놈을 안 넣을 수가 없어서 원인부텀 얘기를 허는 것이여. 원인도 천 번 들어도 또 듣는 것이여.

이게 우리 불가(佛家)에도 있는 법문이지마는 유가에도 있고, 저 천주교에도 있고, 예수교에도 있고, 다 있어, 이 비유가. 우리 불가에만 있는 것이면 허지만, 전부 다 있어. 공자 공문(孔門)에도 있고.

그러니 뭐, 허지만 오늘 아침에 또 이놈을 또 처음부텀 우리 불가에 갖다 맨들아 논 원인부텀 말을 허게 되니 잘 들어야겄어.


사미과(沙彌科)에, 우리 중 되면은 인자 사미과에 있는 건디, 『치문(緇門)』에.
부업계수신(夫業繫受身)은, 업으로써 이 몸을 받는 것이다. 지은 대로.
금생에 지으면 지은 놈 가지고 내생에 받아 나온다. 금생에 받은 몸뚱이는 전생에 지어서 받아 온 것이다.

여자 될 몸을 지었으니, 여자 될 업(業)을 지었으니 여자 되아 온 것이고, 남자 몸 받을 업을 지었으니 남자 몸 받아 온 것이고, 축생 몸 받을 업을 지었으니 축생 몸 받아 오고, 아귀 될 업을 지었으니 아귀 몸이 되아 오고, 지옥 업을 지었으니 지옥죄 몸을 받아 오고, 전부가 이것은 원인이 업계수신(業繫受身)이다. 업으로써 받아 온 우리 몸뚱이니라.

그러니 업이 다 똑같이 짓지를 못허고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만 명이면 만 명, 다 달러. 똑같이는 못 짓거든. 그러니 똑같이 못 나와.
업으로 대체 받은 몸뚱이기 따문에 명(命)도 질게 받아 온 사람도 있고, 짜룹게 받아 온 사람도 있고, 하루 있다 죽는 사람도 있고, 한 시간에 죽는 놈도 있고, 뱃속에서 내 버리는 놈, 맨 그 업이니라.
왜 그러헌 그 차별이 있는 업을 모도 지었길래 업으로써 이 몸뚱이를 받았느니라.

미면형루(未免形累)니라. 업으로 또 받은 몸뚱이기 따문에 업도 다 달라서 명한(命限)도 다 그렇게 고르지 못허지마는 얼굴조차 모도 생김 생김이 전체가 다 달라. 구랭이 된 놈이 있고, 그저 소 된 놈이...
똑같은 자리인디. 그 주인공 영(靈) 자리는 똑같은디,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똑같은 것인데, 아! 이렇게 그 짓는 업보(業報) 그놈이 달라.

그래서 얼굴이 진 놈도 있고 짜룬 놈도 있고, 큰 놈도 있고 적은 놈도 있고, 모도 못쓰게 된 것도 있고 잘된 것도 있고, 몸뚱이라도, 사람 몸뚱이라도 그저 그만 문둥이 출추신(出醜身)도 있고, 그걸 형루(形累)락 햐.
형루를 면치 못허느니라. 똑같이 좋은 몸을 가지고 오들 못혀, 업 따문에.

품부모지유체(稟父母之遺體)로구나. 부모의, 허나 못허나 그런 몸뚱이라도 또 부모한테 가서 그 유체(遺體)를 받아.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서 그러헌 몸뚱이를 받아 온다 그말이여.

가중연이공성(假衆緣而共成)이로구나. 여러 인연이 또 가자(假藉)해 된다.
이 몸 하나 얻을 때 인연(因緣)이, 몇 인연이 들어? 아버지 인연이 있어, 어머니 인연이 있어, 내 혼백 그놈이 마침 적당헌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서 어떻게 의탁(依託)혀야 되아.

아! 이놈 그 인연이라는 것이 아버지여, 어머니여, 내여.
또 그런 때 인연이 있어. 꼭 적당헌 때에 이 몸을 가서 어떻게 얻어야 되는디, 그놈이 그 인연이라는 게, 여러 가지 인연이 들어 간다. 중연(衆緣)이 아니면 이 몸을 받들 못혀. 그래서 받아 왔는데.
솔찬히 그 어려와. 이 몸뚱아리, 그 추헌 몸뚱이 이나따나 받아 오기가 쉽지 못혀. 균일치 못혀. 어렵단 말이여.

수내사대부지(雖乃四大扶持)로구나. 그러나 저러나 그 가운데에 그 몸뚱이, 한량없는 몸뚱이 가운데에 사람 몸뚱이, 사대색신(四大色身) 몸뚱이 받아 온 것이 무척 또 다행하다. 보통 문제 아니다.

받아오기는 왔다마는 상상위배(常相違背)다. 어긴다.
이놈 몸뚱이가 사대(四大) 가운데 물이 많아도—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로 된 몸뚱이인디 물, 또 그 화(火) 기운, 또 바람 기운, 그 땅 기운, 그 네 가지로 되았는데,
이 몸뚱이에 물, 수대(水大)만 물이 너무 많아도 습기가 많아 못쓰고, 화기가 너무 많아도 홧병 따문에 못쓰고, 그놈 그 토(土)성만 너무 많아도 비대해서 아주 그만 숭악해 메주 단지처럼 못쓰고, 바람 많아도 풍(風)이 막 들입대 풍증이 있어서 못쓰고. 아! 이놈이 모두 이런 어기는 것이 있다.

그래 가지고는 그놈의 몸뚱이는 무상(無常)헌 병이 그만 들어오기 시작할 것 같으면은 몸뚱이는 어떻게 어떻게 이리저리 받아 왔다마는, 그놈 여러 가지가 서로 어겨서 병이 모도 이놈이 몸뚱이 모도 얽히게 된다 그말이여.

조존석망(朝存夕亡)이로구나.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기도 허고, 밤에 있다가 새벽에 죽기도 허고, 이놈의 몸뚱이 생사라는 것은 누가 알 수가 있나. 참 믿을 수 없는 것이로구나.
찰나이세(刹那異世)니라. 잠깐 동안에 이 세상이 그만 죽어버린 뒷세상이 된다. 후세(後世)가 와 버려.
이 몸 가지고 있을 때에는 금생이더니 이놈 턱 내버리면 후생(後生)이 된다. 아! 이런 꼴이 있나.

변시내생(便是來生)이여, 찰나이세다. 찰나, 잠깐 동안 이 몸뚱이 그만 이별해 버리고는 내생이 오는데, 그때 가서는 인자 몸뚱이는 내던져 버렸으니 혼만, 영혼만 내생 떠억 되아 가지고 나타난다.

비여춘상효로(譬如春霜曉露)로구나. 비유컨댄 봄에 서리가 와 가지고 볕 나면 녹아 버리는 것이나 같구나. 새벽 이슬 끝에 맺혀 있는 풀 끝에 달려 있는 이슬같구나. 이 몸을 얻어 와 가지고 이 몸을 내 버린 그 무상한 것이 여차(如此)허다.
숙홀즉무(倏忽卽無)로구나. 금방 이 몸을 받아 왔다마는 금방 그만 내버리게 되는구나.
그만 그거 이것 참, 이놈을 믿다니. 요거 요까짓 것을 믿다니. 숙홀즉무다.

안수정등기능장구(岸樹井藤豈能長久)냐? 새암(샘) 언덕에 칡이 어찌 오랠 수가 있나?
‘새암 언덕에 등칠기(등나무) 줄이 하나 있는디, 그 등칠기 줄이 얼마나 오래 되겠나?’헌, 그 등칠기 줄을 가지고 인자 요거 얘기인디.

웬 사람이 탄탄대로(坦坦大路) 길을 가는데—요거 자세히 이렇게 알어야 되아—뒤에서 뭐가 쫓아온다.
돌아보니까 엄청나게 큰—지금 서울에 그 쾨코리란 놈 키우제 왜, 동물원에—그런 큰 놈이 입을 떡 벌리고 오는디, 입을 떡 벌리고 그 진(긴) 코를 가지고 쫓아오는디, 아 그놈이 그 엄청나게 큰 놈이 그 힘센 놈이 쫓아오는디, 사람이 그놈한테 안 잡혀 먹을 수가 있나.

헐 수 없이 잡혀 먹게 되아서, 잡히게 되아서 급허기는 허고 도저히 전주헐 달아날 근력도 없고,
그때 마침 보니 짚은(깊은) 못이 하나, 샘이 하나가 있는데, 몇백 질 가량 되는 샘이 있는디, 아 새암가에서 등칠기 하나가 써억 거그서 뻗어 새암으로 들어갔다.

그 새암으로 들어간 칠기를 딱! 잡고는 딱 달어 매여 있다. 달려 있다.
아! 이놈 쾨코리란 놈이, 그 미련헌 놈이 칠기를 이렇게 코로 잡아댕겨도 그까짓, 콧심이 약간 세니까 사람 하나 달려 올릴만 하지마는, 그런 꾀가 없어. 허니까, 올라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허니, 사람이 거그 일시에 위급헌 지경을 피해서 있지마는 오래 어떻게 달려 있을 수가 있나?
팔이 그만 달려 있는 팔 힘이 차츰차츰 그만 그 적어져, 힘이 빠져 그 등칠기 줄을 오래 못 잡고 있게 될만 하다. 그 몸뚱이 달려 있으니까.

그러나 못 밑으로 보니 백 질이나 되는 놈의 못 밑에는 독사가 있고, 독룡이 있고, 그 악어가 있고. 사람 꼭 잡아먹는 것, 무서운 그런 모도 물건들이 있다 그말이여.
그놈들도 그저 사람이 달려 있으니깐 이놈들이 어서 떨어지면 먹을라고, 서로 다 따먹을라고 야단들이지.

독룡, 악어, 다 독헌 놈들이 아! 서로 잡어먹을라고 뛰고 있는데, 그 밑에 들어갈 수는 없지.
올라올라니 쾨코리란 놈이 입을 벌리고 있제, 먹을라고. 하! 이거 사람 죽는다.

그때에 마침 못가에 냉기 하나가 나 가지고 그 천년 고목이 있는데, 고목 냉기에다가서 속 빈 고목 냉기에다가 꿀을 잔뜩 실어 놨는디, 벌이란 놈이 꿀을 실어 놨는디, 꿀이 뭉텅뭉텅 떨어진다.
꿀이 떨어지되 그 방울 수가 다섯 방울이 떨어진다. 오적(五滴)이!

한 방울 먹어. 또 한 방울 먹어. 다섯 방울을 받아 먹고 나니 그 배가 불러서 기운이 새삼스럽게 나고, 그래 그만 등칠기를 더욱 붙잡을 만헌 힘도 있고. 족(足)허제.

그러나 흰 쥐 검은 쥐, 두 마리는 나와서 그 칠기를 썰고 있어. 톱으로 썰데끼 아! 이놈을 툭툭 입으로 막 쪼사 떼고 있으니 잠시인들 있을 수가 있나.
그놈만 안 끊으면 좀 어느 지경까장 있겠는데 그놈을 썰고 있으니까 도리 없다.

“그 지경 되아 있을 적에 어떻게 했으면은 살아가겄느냐?” 요렇게 물었어.

그것이 무엇인고?
갓없는 너른 들에 시방 사람이 가다 그랬거든. 갓없는 너른 들은 생사광야(生死曠野)에다가 비유했고, 사람이 났다가 죽었다가 하는 생사광야에다가 비유했어.

우리가 어디 그 생사가 어디 한 번인가? 한 번 나왔다 한 번 살다 죽으면 그만인가?
몇 몇억만 번을 했을까? 고걸 좀 생각해봐.

잠, 눈을 좀 뚝 뜨고 들어! 눈 지긋이 감고 자올지 말고!(처음~21분3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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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道門)에서 도학자(道學者)라고 해 가지고, 뭘 할라고 법문 들어!
법석(法席)에서 눈 지긋이 감고 꾸뿌덕 꾸뿌덕 허면서 자올고 있어.
어느 지경에 있는 걸 좀 알어야지. 사형 무대에서 칼로 탁! 쳐가는 지경이여 이것이.

요까짓 몸뚱이 요걸 믿고 앉어서. 그렇게 업이 중해 가지고, 무거워 가지고 무슨 도를 닦고 있으며, 법문 들어 뭣 혀.
원! 해도 너무허지. 내가 다 보고, 가만히 여그서 다 보이니까 깜박헌 거 다 안다 그말이여.

‘또 본심을 탁 뜨고 그 내 법문 듣고 고대로 똑 닦아야겄구나’하고는, 법문 딱! 듣고는 잘 이대로 똑 예불(禮佛) 젓수고, 이대로 똑 닦아 나가야사 도솔내원궁(兜率內院宮)에 가 피난했다가 내려오는 것이여. 지금 당초에 사바세계(娑婆世界)에 다시 났다가는 큰일나니까.


갓없는 너른 들은 생사광야다. 죽었다가 살았다가 이 중생(衆生)이, 우리 미(迷)헌 이 깨달지 못허고 이 미헌 우리가... 우리, 시방 우리여. 우리를 비유헌 거여.

전생에 어디서 또 살다 또 죽어서 금생에 왔다. 무변광야(無邊曠野)는 생사광야에 비유했고, 쾨코리는 우리를 잡으러 오는 무상살귀(無常殺鬼) 귀신에다 비유했어. 우리 뒤에 시방 이렇게 잡으러 쫓아와.
그 새암이는 삼악도 지옥이여. 지옥에 들어가면은 지옥고(地獄苦) 받는 형상이여. 나찰(羅刹) 귀신이 모도 칼로 찔러다가서 불에 집어넣고, 쇳물에 집어넣고 태우고 찔르고 헌 거다가 비유했어.
독룡 · 독사는 나찰 귀신, 지옥 귀졸(鬼卒)들한테 비유했어. 거그 빠진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새암(샘) 언덕에서 등칠기(등나무)가 나서 그 지옥으로 뻗어 들어간 놈은 그건 우리 생명이여. 우리 명(命)줄.
우리가 지금 며칠이나 살란지 몇 해나 살런지, 고 등칠기 줄이 우리 명줄에 비유헌 것이여.

그 냉기(나무)에서 꿀 다섯 방울 떨어진 것이 오욕(五慾)이여. 부부지간, 아들, 돈, 명예, 여그다 비유했어.

얼마나 묘허게 비유해 놨어.
우리 인생의 우리 사는 이 고해(苦海)에 지금 살고 있는 오탁악세(五濁惡世), 악헌 이 세상에서 이렇게 험악헌 데 지금 걸려 있는 것을 그것 비유헌 것이여.
우리가 그런 악몽을 꾸고 그런 악경(惡境)에 처해 있는 것을 비유해서 말해 놓은 것인데.

딴말 아니여, 이것이! 다! 시방 이렇게 되아 있어. 누구나 막론허고 이렇게 되아 있어.

그러면 그 오욕, 다섯 가지 그 좋은... 꿀이 오직 단가! 부부지간이 좀 좋은가! 아들, 손자, 며느리, 돈, 쌀, 명예가 좀 좋은가!
요놈에 딱 얽혀져서 애착되아 가지고 도(道) 한번 닦지 못헌, 도 못 닦고 무간아비지옥(無間阿鼻地獄)에 이렇게 있다 뚝 떨어져 버리고마는 우리 인생을 비유해서 헌 말이여.
얼마나, 누구 뭐 따로 헌 줄 알어, 이것이?

그러면 그 꿀 딱! 받아먹고 있을 적에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오욕에 꽉 애착된 그 경계를 한번 떼 버리고, 한번 부수어 버리고 애착이 없이 툭! 뛰어 나서 처자고 자식이고 무엇이고 그 불고(不顧)해 버리고.
정반왕궁(淨飯王宮) 모후(母后)니, 뭐, 정반왕궁 아버지니, 정반왕궁 노비 권속이니, 재산, 무슨 싹 한번 내버리고 성(城)을 넘어 설산(雪山)에 들어간 것이, 그것이 모도 애착 애욕을 때려 부수어 버리고 도 닦으러 들어간 장면.

참선(參禪) 하나 척! 해서 대도(大道)를 통해야사만 면(免)허는 것 아닌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만 생사를 면허는 것인데.
성을 넘어 가거나 말거나, 왕궁을 떠나거나 말거나 이것은 거기에는 관계없어.

그 꼭, 꿀 먹고 있을 적에 그렇게 위태로운, 매달려 있는 그 사람이 곧 우리인데.
“어떻게 했으면은 살아가겄느냐? 해탈허겄느냐?”

그것이 공안(公案), 그 공안 하나 탁! 깨달라 버리면은, 생사 없는 지경을 툭! 깨버리면은 툭 뛰어 나는 경계 아닌가. 그러니 거기에 붙어 있는 공안이여, 그것이.

꽉 매달려 있는데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물으니깐.
응? 그, 공안 아니여?

그 공안에서 그래, “말키 참선허는 선객(禪客)들은 한마디씩 일러라” 용성 스님이 전국에다 그 공안을 펴 놨어.

그 등칠기 줄에 매달려 있을 적에 올라가도 쾨코리란 놈이 잡아먹고, 가만히 있어도 흰 쥐 검은 쥐가 그놈 끊고.
흰 쥐, 검은 쥐는 일월(日月)이여. 밤 가면 낮 오고, 낮 가면 밤 가고. 그 그렇게 몇 해 가다 인자 뚝 떨어지면 죽는 것 아닌가.

말키 이렇게 비유해 놨는디, 그보담도 더 위험헌 지경(地境)이 없다 그말이여.
우리 인생이 얼마나 위험헌 지경인가! 이 지경이. 거그서 뭣을 헐 것인가, 생사를 두고!
이러헌 무서운 생사, 죽음을 앞두고 뭘 헐 것이냐 그말이여.

잠깐, 살인 강도가 그만 죄는 지었다 그만 붙잽혀 가지고 사형 무대로 죽으러 가는 길이 우리도 똑같어!
더 무서운 우리 사형선고(死刑宣告)여, 이것은 기한(期限)도 없다.
그건 어느 때 죽는다는 기한이나 있지마는 우리의 사형선고 기한이란, 기한도 없다.

참으로 때없이... 아주 오늘 내일이 있고, 금년 내년이... 아주 그 세월을 다 살 줄 아는구나!

딱! 달려 매여 있을 적에, 꿀 딱! 받아먹을 적에,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공안이 거그 있지 않는가. 그 공안 아닌가.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는 공안이 거그 들어 있어.

그런데 아! 거그서 대체 모도 큰스님네가 다 답 안 했어?

만공 큰스님은 “꿈이니라”
그 다 이(理)와 사(事)가 딱딱 들어맞어야 되니까, 답이라는 게.

“꿈이니라. 꿈에 그런 지경이 있제, 생사야 어디 있느냐” 그 평상화(平常話)제. 이렇게 답해.
좀 잘허셨제. 답이야 아, 그 이상 더 어떻게 해. “꿈이니라. 작야몽사(昨夜夢事)니라”

또 보월 큰스님께서는 “하시(何時)에 입정(入井)가? 언제 누가 새암에 들어갔나?”
새암에 아직 안 들어간, 본래 생사 없는 경계를 답헌 것이여.

다 잘허셨제, 못했어?

고봉 스님은 거그 달려서 그대로 받는 것이다 그말이여.
“아야, 아야!”
그놈 뭔, 뚝 떨어지면 지옥 귀신이 집어 먹는 경계를 그대로 써 버렸다 그말이여.

그거 무슨, 시법(是法)이 주법위(住法位)해서, 이 법이 법위(法位)에 주해서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헌 도리가 그대로 법인디,
중생의 “아이고! 대고!” “아야! 아야!” 생노병사, 중생 환화(幻化)가 개시묘체(皆是妙體)인디, 개시해탈법(皆是解脫法)인디, 뭐 어디가 걸리고 안 걸릴 것이 있나?

달인분상(達人分上)에, 깬 분상에는, 깨달은 분상에는 소도 역득(亦得)이고 개도 역득이고,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이면 무우역무희(無憂亦無喜)인디, 뭔 걸림 있어?
“아야! 아야!” 해탈경계 그대로 써버렸제. 좀 잘 일렀어!


이 법문을 들었다고, ‘밤낮 들은 법문이니깐 또 들어?’ 그런 소리 말어! 그러헌 그 푸딱진 용이심(容易心) 붙이지 말어!
그런게 모도 들은 것 또 헌다 싶어서 용이심이 나고 푸딱진 마음이 나니까, ‘그까짓 것’허는 마음이 나니까 그만 자올고 그러지.
업이 꽉 차 가지고 그놈의 업에 무량겁을 생사고(生死苦)만 받고 와 가지고 법석에서도 졸고 앉었지.

그 얼마나 다행하고 얼마나 만행(萬幸)한가. 척! 집을 여의고 들어와서 이러헌 참, 떠억 그 법보선원에 들어와서 도 닦고 있는 이 지경이 얼마나 다행하고 만행헌 것이여!


자, 그 다음에 왼통 뭐 뭐 한국 혜봉 큰스님으로 훌륭헌 큰스님인데, 그 큰스님은 답을 허시되 “불불능갱작불(佛不能更作佛)이다”

아! 불(佛)이 무슨 다시 부처 되나? 본래 부처가 어떻게 부처가 또 되아? 뭔, 부처가 부처가 되아?
부처도, 본래 부처라 해도 그 패궐(敗闕)이 불소(不少)인디, 거다 또 부처 되아? 그 뭐, 거다 뭘 이를 게 있어?
본래 부처가 어디 무슨, 생사가 무슨 하관(何關)고? 뭐, 어찌 살아 나가는 도리가 무슨 소용이여.
떡! 본분불(本分佛)로 딱 대답을, 본각불(本覺佛)로 딱 대답해. 다, 그 이상 더 이를 수 없어.

용성 큰스님은 그냥 격외(格外), 격외. “표화(瓢花)가 천리출(穿籬出) 와재마전상(臥在麻田上)이니라”
바가지 그 박꽃을, 박씨를 울타리 밑에 심어 놨는디, “그 박이 나 가지고 울타리로 뀌고 울타리 밖에 나가서, 저 밖에 나가 삼밭에 박이 열어 가지고 누웠느니라”
그랬은게 그건 그대로 격외,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도리로 격외 딱 한마디 일러 버려.

다 초월생사여. 생사도 없어! 거그 뭐 죽고 사는 그—안 맞는다는 게 아니여! 다 잘 일르셨어. 그 이상 더 이를 수 없어.

허지마는 나는, 그 쬐끄만헌 내가, 이 용잔허고 조잔헌 그 그때 어린, 아! 내가 말이여,
“큰스님네가 다 이른 법문이 거 용 대가리를 베 버리고 배암 대가리를 이어 붙였고, 용 꼬랑댕이를 모도 베고서는 거다가 모도 딴 꼬랭이를 모도 붙였고, 발을 모도 오리발을 베 버리고 닭발을 이었고,
암만 천하없이 공안이라는 것은 딱딱 그대로 붙어 있는 공안을 그대로 찾어다가 딱 일러야 하는 것이지, 엉뚱헌 놈 갖다가 척척 일러 놔 봤던들 그것이, 아무래도 그것이 큰스님네가 다 암만 잘 일르셨지마는 아닙니다!”
이랬네 내가. 내까짓 것이 이랬단 말이여.

그때 그 법문, 시대 법문해 논 거를 내가 딱 다 했기 따문에 여그 올라와 이런 법문을 허는 거제, 없는 법을 내가 지어서 이렇게 말헐 수가 있나. 생각해 보지. 그건 절대로 못허는 법이여!
그 얼마나 내가 해 논 것이 역사적으로 전통해 왔는디, 내가 여그서 무슨 뭐 변명을 헐 것인가, 뭣헐 것인가. 그때 헌 놈인데.

“그러면 어디 영신(永信) 신수좌는 어떻게 헐텐가?” 내가 그때 영신이니깐.

그래 글쎄, 그렇게 미쳐 가지고 글쎄 옳은 견성인가 그른 견성인가, 글쎄 곡성 동리재 넘어가다가 그 호랭이가 사람 잡아먹은 그놈의 재를 내가—재는 별로 높으지 않는디, 아! 그놈의 재를 바라보고 물 건너 노디를 뛰어 가다가 그만,
“담 너머에 외 따 오니라”

“운무중(雲霧中)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했으면 소를 찾겄는냐?”
그만 그놈이 느닷없이, 내 화두 간 곳 없이 그놈이 들어와 가지고 툭! 그만 무슨 그 견성 경계가 나오는데, 참말로 그 지경을 설향수(說向誰)오. 누구한테다 말헐 꺼여.

그래 가지고는 “이때에 조주의(趙州意)를 묻거드면은...” 무자(無字)를 돌아보니까... 무자에 걸음을 노디를 뛰는디,
“이때에 유인(有人)이 문아서래의(問我西來意)하면, 어떠헌 사람이 나한테 이때 서래의(西來意)를 묻거드면, 각하(脚下)에 녹수(綠水)는 암전거(岩前去)로구나. 내 다리 발밑에 흐르는 물은 다리로 지내가는구나”

아, 이놈을 하나 해 놓고는 그날 그 재를 넘어가서 호랭이, 사람 처녀 먹은 재를 내가 넘어가서 동리산 가서, 태안사 들어가서 그 오도송(悟道頌)을 지었다고 내가 그렇지 않아 저번 다 얘기했지. 저번에 다 헌 놈이제.


“다 아무리 큰스님네가 이렇게 일렀지마는, 거기에 옳은 공안을 이르들 못했습니다”

얼마나 내가 그 견성(見性)을 내가 그때 했다고 했으니, 옳은 견성인지 그른 견성인지 내가 견성했다고 그랬지, 언제 뭐 내 견성(見性)이 진짜로 했다는 거 아니여!

그래 가지고 혜봉 스님한테 찾아가서 탁마(琢磨)했고, 여지없이 인가 받았고.
인가를 받았는디, 그 끝에 가서 그것 참!

“거년(去年) 가난은 비(非)가난인데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가난은 참말로 가난해서 송곳조차 없구나”
세상에! 여기서 “능각(菱角)이 첨첨(尖尖)이나 불사타(不似他)입니다” 아! 이러니 인가해 준다 그말이여. 인가해 주어!
“능각(菱角)이 첨첨(尖尖)이나 타(他)와 같지를 않습니다” 인가를 해.

아니여! 절대 아니라 그말이여! 아, 그런 밝은 어른이 나를 왜 인가해 주었든고 몰라. 그것!
내가 그 뒤에사 아닌 줄을 발견했거든. 아니란 말이여!

“송곳 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에는 송곳조차 없어졌구나. 여래선(如來禪)이라고 여래선밖에는 못되니, 여래선 경계밖에는 안되니, 어떤 게 조사선(祖師禪)이냐?” 아! 묻는디,
내가 그래, “능각(菱角)이 첨첨(尖尖)허지마는 타(他)와 같지는 않습니다”
아! 옳다고, 내가 여지없이 인가를 받았네!

그것 아니라. 거, 아닌 도리인디 ‘거기에서 시방 바로 한마디 일러라’
이것은 내가 이를 수가 없어.

학자(學者)를 위해서 안 일른 공안이 내가 무척 있어.
초당파(燒堂婆 소당파) 법문 내가 죽어도 안 이르고, 이것도 내가 안 일러 주고, 원상(圓相) 법문에 답을 했으되 그 안 일러 주고. 못 혀.

부중선사(不重先師)의 도덕(道德)이요. 선사(先師)의 도덕을 내가 중히 여기지 않고,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다. 나를 위해 설파치 맙소사. 이러헌 법이여. 설파(說破)해 버리면 법이 아니여.

이것도 지금 큰스님네 답헌 게 다 나왔기 따문에 헐 수 없어 내가 일렀제, 이거 안 일르는 공안이여. 나, 이른 놈은 다 기히 듣고 다 아는 거.
다 용 대가리를 떼 버리고, 왜 배암 대가리를 이어 놔? 왜 용 꼬랑댕이를 떼고, 무슨 뭔 닭 꼬랑댕이같은 걸 붙여 놔? 오리발을 베고 닭발을 붙여 놓고. 그렇게 공안이란 된 법이 아니여.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대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깨달라 보아! 그거 어떤 공안이 나왔는가 보라. 그 꼭 조사의(祖師意)에 들어맞는 게 딴 디는 안되아. 조사서래의에 꼭 들어맞어.

조사가 누구인가? 그래 거그 송(頌)에 뭐라고 나왔냐 허면, ‘구세소림자허엄(九歲少林自虛淹), 아홉 해 소림에서 허엄했다’
그 아홉 해 소림은 누가 했어? 그 다 가르쳐 논 말이여. 기여니 딴 놈 갖다가 해 논 법 없어.


나는, 자! 큰스님네가 다 법이 잘못됐다는 게 아녀. ‘잘못했다’ 이 말은 “그 공안을 그대로 찾아 거다 일러야제, 된 법 없습니다”

“어떻게 허겄는가?”
“달다!”

그 뭔 말이여? ‘달다’
“달다!” 아! 꿀 먹어, 꿀 빨아 먹은게 달제. 꿀.
“달다!” 오욕에 꽉 취헌 사람이, 오욕락(五慾樂)에 꽉 취헌 사람이, 꿀 빨아 먹는 놈이 그 “달다!” 

‘달다’ 무슨 도리인가? 응? 공안이 그 어떻게 된 도리인가?(21분35초~43분12초)



(3/3)----------------

그놈 뚝 떨어지자, 제방(諸方) 벌써 선지식(善知識) 스님네가 다 벌써 이렇게 쫙 돔서—아, 수좌(首座) 집안에 잠깐이면 전 주소에 빽 돌아 버리는데—“정영신이가 ‘달다’고 일렀다”
인가 나왔네. 누가 거기에 큰스님네 누가 ‘잘못 일렀다’는 소리 없어.

“옳다!” 한목 인가여. 육대 선지식이고 그때 당시의 수백 명 도 닦는 학자들도 들으면 몰라?
“달다!”헌 데 가서 한목 인가여! 그 통해 버린 것이여.

금봉 스님은 돌아가시드락까장 “그 참말로!”
그때는 인자 ‘전강(田岡)’ 때인게, “전강, 그 ‘달다’는 법문 참, 기가 맥혀!”
아, 늘 평생에 그 “내가 합천 해인사 가서 조실로 가는 것은 똑 전강, 조실 내가 시킬라고 간다!” 이 말 다 했고. 평생 그랬지.

그 공안, 내가 용성 스님이 물어서 용성 스님 묻는 공안을 내가 답했으니까, 여다가 이놈을 넣어 놓아야 허거든, 또.
기위 이거 뭐 내 뭘러도 넣어서, 뭔 책을 하나 만든다니까 여다가 다 넣을 밖에 없어.
아직 멀었나? 어떤 거여? (한 10분, 한 15분 남았읍니다)

그놈 내가 그 답해서, 그 뭐 턱! 그만 육대 선지식한테 한목 인가 다 받아 버렸으니 다시 무슨 내가 어디 뭐 조금이라도 무슨 내가 어디 딴 디 가서, 어디 가서 다시 무슨 법 탁마허고, 뭐 인가 탁마허고 헐 것이 없다 그말이여.

‘인자는 나는 참말로 확철, 내 견성이 진짜 견성이요 옳은 견성이로구나!’ 딱, 그러지마는 그랬다 해서 법 탁마 안 허는 법이 없어.
또 다시 내가 안 본 선지식이 있으니깐, ‘한암 스님 한테를 갈 밖에 없구나’ 한암 스님한테를 갔다 그말이여.

한암 스님으로 말허면은 한국에 참 유명한 선지식인데, 그래도 법은 그 투철치 못허다고 다 이런 평판을 듣고 있는 어른이지마는, 참 계행이 청정하고 동자삭발(童子削髮)로 들어오셔서 강(講) 한번 해서 강사가 되아 가지고 이력(履歷) 다 마치시고,
그런 출가해 가지고는 은사 스님이 석담 스님인디, 석담 스님 앞에 상좌가 되아 가지고 이력 한 벌 다 마치고서는 그러고 평안도로 들어가서, 묘향산 들어가서 희천, 그 무슨 쪼끄만헌 암자에 똑 혼자 사실 데가 들어가서, 바우 틈새기 같은 디서 좁쌀 그저 쬐금씩 뭐 이런 것 생기면 잡숫고, 초기의(草其衣) 목기식(木其食)을 허고 참, 기가 맥히게 토굴 살림을 허되, 그렇게 거룩허게 청정허게 헌 이가 없어.

당시에 한암 스님 유명헌 선지식이여. 그래도 그 법은 학자 가르치는 법이 훌륭허다고는 못 들었어.
그러고, 오도송을 보면은 법량(法量)을 아는디, 그 어른 오도송이 그려. 저번에 내 말씀했지마는.

착화주중안홀명(着火廚中眼忽明)이다  종차고로(從此古路)가 수연청(隨緣淸)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착화주중안홀명(着火廚中眼忽明)이다. 내가 정지에 들어가서, 토굴에 사시니까 밥을 해 잡술라고 부섴에서 불을 부르르르 불다가 눈이 확연히 밝았다. 견성을 했다 그말이여.
종차(從此)로 고로(古路)가 수연청(隨緣淸)이다. 일로 쫓아서 옛길이 인연따라 맑다.

이렇게 했어. 고 밑에,

약인(若人)이 문아서래의(問我西來意)허면  암하천명불습성(岩下泉鳴不濕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을 부엌에서 때서 밥해 먹을라고 불을 불다가 눈이 활연히 밝았는데, 종차(從此)로 고로수연청(古路隨緣淸)이다. 일로 쫓아서 옛길이 인연따라 맑다. 생사가 없다 그말이제. 생사가 통 생사에 관계없다 이말이여.

이때에 만약 서래의(西來意)를 묻거드면, 불법대의(佛法大意), 서래의를 묻거드면은 암하천명(岩下泉鳴)인디 불습성(不濕聲)이라. 바우(바위) 아래 샘이가 울었는디, 바우 아래 샘이가 젖지 않는 소리로 운다. 요렇게 새기드구만.

당최 그 견성구(見性句)가 아니여! 영, 아니여!

그래도 그래도, 그런 도인이기 따문에 참, 이름이 그렇게 나셨제.
나셨는데, 인자 거그 계시다가는 금강산으로 나와서 금강산 지장암에 계신다 해서 우리가 모도 쫓아 가서, 학자가 많이 쫓아가서 한 40명 학자가 모여 지내는디, 내가 쫓아 들어갔다. 절을 척 허고는,

“어디서 온 수좌인고? 이름이 누구인고?”
“예! 그저 소승 이름이 정영신입니다”

“허! 정영신이여. 하! 거, 많이 들었는디”
아! 듣고 말고, 그건 뭐 말할 것 없어. 한암 스님도 우리도 기맥히 듣지마는 아, 남방에 그 야단치고 돌아댕기는 정영신을 모를 리가 없거든.

처억 그 나한테 공안을 묻는데—정영신이 발써 그 육대 선지식이 한목 인가 법문 다 나왔고, 마곡 혜봉 스님한테 그 조사선, ‘어떤 게 조사선이냐?’는 거 다 대답했고, 혜월 스님한테 가 공적영지(空寂靈知) 다 대답했고,
지금 쏴악 다 들어가서, 다 벌쎄 다 소식이 그만 다 알고 계시니까, 정영신이라고 헌께 “허, 그렇겄다” 고 허더니 법을 묻는디,

어디 보통 그러헌 그 『염송(拈頌)』 같은 디 물으면은 내가 다, 그 어디서 다 언제 내가 염송을 봤어? 염송이 그 대교(大敎)인디 새파란 젊은 스물세 살 먹어서 경신년에 갔는데, 그때 경신년이 네 살인가?
아, 그러니 어떻게 내가 그 무슨 답이 어떻게 알 것인가 그것을? 기중 어디 『속전등(續傳燈)』인가 어디 있다는 법문을 묻는데, 그 처음 들었지, 누가 알았나?

‘육조 스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고 한디 바리때를 전헐 수가 없으니 대중은 어떻게 했으면 바리때를 받겠느냐?’ 바리때, 그 바리때가 인가니까 그때는. ‘어떻게 일렀으면 인가를 받겠느냐?’ 이런 법문이 있어.
그래, 그런 공안이 있으니 “그 영신(永信)이 신수좌(信首座), 그놈 한마디 이르게”

“육조 스님 본래무일물이라고 헌 디도 바리때는 전헐 수가 없닥 했고, 어떻게 그러면 일러야 바리때를 받겄느냐? 이렇게 물은 공안이 있으니 거, 답하소”
문제가 있나! 어, 그런 데가 무슨 문제가 있냔 말이여!

아! 그런 데가 걸리면은 뭔 놈의 그 ‘달다!’ ‘달다!’ 답헌...
그 꿀 딱! 먹고 있을 때 ‘달다!’ 그 답 나왔지. 그 이 답이 그렇게 공문에도 있고, 석문(釋門) 우리 부처님 석문에도 우리 불가에도 있고, 예수교에도 있고, 천주교에도 있고, 유교에도 있고, 장자교에도 있고, 다 있대야!
다 있어 답이 나왔는디, 천 답 만 답이 나왔어도 ‘달다!’ 답은 없어. 그러면은 ‘달다같이 그대로 그만 그 나온 답이란 건 없다’ 그때 당시에 내가 답해 논 뒤에 그런 논평이 다 있었어.

아, 그런 답, 거 ‘육조 스님 본래무일물이라 한 디는 인가할 수가 없으니, 어떻게 답을 해사 인가를 받겠느냐?’ 그 답이 당시에 칠백 명이 그렇게 수천 답을 했어도 인가 안 했어. 인가 못 받았어. 그러니 그 공안이 기가 맥힌 공안이여.

그러면 거가서 하나가 인가 받은 공안이 있는디, 인가 받은 공안 답이 딱 붙어 있어.
그러니 딱! 당신이 알고 묻는데 응, 어쩔 것이여?

당장 묻자, 대답을 처커덕 헌게—오히려 더 밝게 했네, 거그 문답보담. 똑, 문답이 더 밝아!
그놈 또 내가 안 일러 주제. 어떻게 했다는 것 못 혀. 내가 답해서 인가 받았단 말만 하지, 뭔 어떻게 답헌 건 내가 안 혀.

물팍을 탁! 치면서 “참! 듣든 말과 같구나! 남방에 정영신이라고, 듣든 것과 같구나!” 그만 그대로 쾌허를 혀.
인자 그래 놨으니 다시 무슨 일이 있나? 일 없어.

그리 허고 그해 여름 그만 거그서 한암 스님 모시고 그해 여름을 떠억 지나고 인자 가을에는—자! 다 보았으니 선지식 스님은 내가 다 인자 한암 스님까장 다 찾아뵙고 내가 탁마 다 했고, 인가 다 받았으니 이제는 만공 큰스님을 찾아갈 밖에 없구나. 인자 만공 큰스님을 찾아 나오는 판이여.

그동안에 한암 스님한테 지낸 것도 다 아시고—내가 인자 만공 큰스님께 처음에 그 도 닦아서 거그서 인자 도 닦고, 두 철만에 닦고는 그러고는 인자 하직허고 나갔었는디 그 안에는 한번도 온 예가 없거든.

만공 큰스님은 정영신이가 발써 거그서 두 철만에 나가더니 견성했다고 해 가지고는 혜봉 스님한테로, 혜월 스님한테로, 제산 스님한테로, 서울 용성 스님한테로, 한암 스님한테로 다 발써 지내서 인가 다 받고 내려온다 소문을 다 듣고 앉어 계셔.

허어! 그래 척 들어가서 만공 큰스님한테 가서 절을 척—그전에 늘 모시고 있던 큰스님인께 가서 척 앞에 가서는 대번에 그래 절을 척 허니, “심마물(甚麽物)이 임마래(恁麽來)인고?”
그래 다시 턱 일어나 절을 처억 했지. 좀 잘했나! 참, 기가 맥히지!

“심마물이 임마래인고?” 절을 헌게, “심마물이 임마래냐?” 절을 했는데, 또 “심마물이 임마래인고?”
절을 떡 했다 그말이여.

허니까, 또 세 번 “심마물 임마래냐?”
절헌 것은 본체만체허고, 세 번을 묻는다 그말이여.

세 번만에는 주먹을 그냥 꽉! 들어 댔단 말이여, 이렇게. 아!
“허어! 실패로고! 갱유야행인(更有夜行人)이냐, 누가 다시 밤 사람 있는 것을 알 수가 있겠느냐?”

아! 그러시더니 영, 그만.
“허! 그동안에 네가 왜 그렇게 분다히 돌아댕기고 야단치고 댕기느냐? 뭣 따문에?” 방맹이를 처내리는디, ‘공연히 나를 꺾을라고 그러신다’ 이 곧이 하나 안 듣켜.
그 망하는 것이여. 큰스님이 옳게 봐 가지고 학자를 다루는데 거그서 믿지 않고 제대로 뿌지러 나가면 그놈 아주 뒈진 것이여. 창자도 못쓴 것이여.

거그서 그만 세 번째.
절 한번 떡 했지. 또 “심마물이냐?” 절 다시 했지. 거까장은 더 헐 수 없는 것이여.

또 “심마물고?” 세 번 묻는디, 주먹을 척!—이것이 죽었다 그말이여.
응, 이것이 말 배때기 바로 들어가고, 나귀 배때기 바로 들어간 것이여!

눈 밝은 학자, 바로 들어! 내 공부헌 학자들은 바로 들으란 말이여!
그놈의 짓을 왜 했냔 말이여, 이거 왜? 저 죽는 놈의 응, 제 모가지 친 거여 그게.

다 했제? 녹음 넣기 위해서... 그렇지마는 이 법문을 들어야 허는 것입니다.

대중 다 법문 듣니라고 애썼소마는, 꼭 들어야 헐 것 아닌가!
꼭 들을 것이 무엇인고? 꼭 듣고 믿어서 헐 것이 무엇인가? 이 법 밖에 또 있어? 부탁합니다.(43분13초~60분28초) (일대기 6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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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금조상별후~’ ; 『청허당집(淸虛堂集)』 ‘送芝師(지사를 보내며)’ 참고.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장본(張本 어떤 일을 벌이다 장/근본·뿌리 본) ; ①어떤 일이 크게 벌어지게 되는 근원(根源). ②장본인(어떤 일을 꾀하여 일으킨 바로 그 사람).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낯반대기 ; 낯바대기('낯—눈·코·입 등이 있는 얼굴의 앞쪽 면'을 속되게 이르는 말). 낯판대기.
*사미과(沙彌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처음으로 배우는 과목이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 『사미율의(沙彌律儀)』 · 『치문경훈(緇門警訓)』 · 『선림보훈(禪林寶訓)』 등을 배운다.
*치문(緇門 검다·검은 옷·스님 치/문·집안·문벌 문) ; 치문경훈(緇門警訓). 불문(佛門)에 처음 든 어린 사미(沙彌)가 공부하는 데 경책(警策)과 교훈(敎訓)으로 삼을 만한 중국 역대 고승(高僧)들의 글을 모아 엮은 책.
치문(緇門)은 치의(緇衣 : 스님이 입는, 회색에 가까운 괴색의 색깔로 물들인 옷)를 입은 스님의 일문(一門)이라는 뜻으로 불문(佛門)을 말한다.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에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명한(命限) ; 목숨의 한도.
*준동함령(蠢動含靈 꿈틀거릴 준/움직일 동/머금을·품을 함/신령·신령할 령)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것). 모든 생물. 중생(衆生).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질다 ; ‘길다’의 사투리.
*짜룹다 ; ‘짧다’의 사투리.
*형루(形累 형상·모양·몸 형/묶다·괴롭히다·근심 루) ; 형(形)은 중생의 형태, 루(累)는 거기에 따르는 고달픈 삶을 말한다. 중생의 몸이 전생의 업에 묶여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하므로 ‘형루(形累)’라고 한다.
*유체(遺體 남길 유/몸 체) ; ①’부모가 남겨 놓은 몸’이라는 뜻으로, 자기의 몸을 이르는 말이다. ②‘시체(屍體)’를 달리 이르는 말.
*가자(假藉 임시·일시/깔다·빌리다 자) ; 임시로 빌림.
*솔찬이 ; 솔찬히. ‘아주 많이. 상당히. 제법’의 사투리.
*몸뚱이 이나따나 ; 몸뚱이 이것이나마.
*사대색신(四大色身) ; 지 · 수 · 화 · 풍(地水火風) 사대로 이루어진 몸.
*사대(四大) ; ①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을 말함. 대(大)란 원소란 뜻.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네(四) 가지 원소(大).
(1)지대(地大) : 굳고 단단한(堅) 것을 성(性)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수(負載) 있고, 또 질애(質礙)하는 바탕. 질애(質礙)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뜻.
(2)수대(水大) : 습윤(濕潤)을 성으로 하고, 모든 물(物)을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 난(煖)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 동(動)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장케 하는 바탕.
②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들입다 ; 세차게 마구.
*뒷세상 ; 내세(來世).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난다는 다음 세상.
*후생(後生) ; 내생(內生). 죽어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삶.
*안수정등 기능장구(岸樹井藤 豈能長久) ;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참고] [치문경훈(緇門警訓)] 《위산대원선사경책(潙山大圓禪師警策)》에서.
夫業繫受身 未免形累  稟父母之遺體 假衆緣而共成 雖乃四大扶持 常相違背 無常老病 不與人期  朝存夕亡 刹那異世 譬如春霜曉露 倏忽卽無 岸樹井藤 豈能長久 念念迅速  一刹那間 轉息 卽是來生 何乃晏然空過

대저 업(業)에 얽매여 받은 이 몸은 형상과 근심을 면치 못한다. 부모가 내려주신 유체(遺體, 父精母血)를 받아 여러 인연을 임시로 빌려 함께 이루었다.
비록 다만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여 견디어내나 항상 서로 어기고 등져 무상(無常)하게 늙고 병들어 가는 것이 사람으로 더불어 때를 정하여 약속하지 않아서,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어 찰나에 세상을 달리하게 된다.
비유하면 봄날의 서리 새벽이슬과 같아 갑자기 없어지니,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순간 순간 빠르고 빨라서 일찰나 사이에 숨이 떨어지면 곧 내생이니, 어찌 편안히 헛되게 지내리요.
*새암 ; ‘샘, 우물’의 사투리.
*등칠기 ; 등칡(등藤나무). ‘칠기’는 ‘칡’의 사투리.
*탄탄대로(坦坦大路 평탄할·평평할 탄/큰 대/길 로) ; ①험하거나 가파른 곳이 없이 넓고 평평하게[坦坦] 큰길[大路]. ②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순탄한 장래를 이르는 말.
*쾨코리 ; ‘코끼리’의 사투리.
*족하다(足-- 충족하다·가득 참 족) ; 모자람이 없이 넉넉하다.
*갓없다 ; ‘가없다(끝이 없다)’의 옛말.
*생사광야(生死曠野) ; 생사의 넓은 들판. 중생이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스러운 윤회의 세계를 광야(曠野)에 비유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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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도학자(道學者) ; 도(道)를 닦는 사람. 수행자(修行者).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법석(法席) ; 대중이 둘러앉아서 설법, 독경, 강경, 법화(法話) 따위를 행하는 자리.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③(사람이 제사를)차려 올리다.
*도솔내원궁(兜率內院宮) ;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무변광야(無邊曠野) ; 끝없이 넓은 들판.
*무상살귀(無常殺鬼) ;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殺] 귀신(鬼神)이라는 뜻. ‘인간존재가 무상하다’는 것의 무서움을 비유한 말.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귀졸(鬼卒) ; 염라국(閻羅國 저승)에 살면서 염라대왕의 명령을 받아 죄인을 다루는 옥졸. 염라졸(閻羅卒), 염마졸(閻魔卒), 염라인(閻羅人)이라고도 한다.
*명줄(命-) ; ‘목숨의 길이’를 속되게 이르는 말.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佛道)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불고(不顧 아니 불/돌아볼 고) ; 돌아보지 않음.
*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말. 눈[雪]을 품은 곳이란 뜻. 설령(雪嶺) · 동왕산(冬王山) · 대설산(大雪山) 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카필라바스투 역시 설산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수도한 산.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말키 ; ‘말끔(조금도 남김없이 모두 다)’의 사투리.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지경(地境 땅·장소·처해 있는 형편 지/지경·경계·경우·상태·장소·처지 경) ; ‘어떠한 처지’나 ‘형편(일이 되어 가는 상태나 경로 또는 결과)’, ‘정도(程度)’의 뜻을 나타내는 말.
*사형선고(死刑宣告 죽을 사/형벌 형/밝힐 선/알릴 고) ; 공판(公判)을 행하는 법정(法廷)에서 사형에 처한다는 판결 내용을 알리는 일.
*기한(期限 때·기간·기한 기/한정 한) ; 미리 일정한 한도(限度)로 정해 놓은 시기(時期).
*때없이 ; 정해진 시간이 없이 아무때나.
*이(理) ; ① 본체. 본성. 원리. ②진리.
*사(事) ; ①현상. 차별 현상. 사물. 대상. 사태. ②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파악된 대상. 직관으로 파악된 대상.
*시법주법위(是法住法位)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 ; 『법화경(法華經)』 권1 제2 방편품(方便品). ‘이 법이 법위(法位)에 주해서 세간상(世間相)이 상주(常住)니라’
*법위(法位) ; 진여(眞如 궁극적인 진리.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의 다른 이름. 진여는 모든 법이 안주(安住)하는 자리이므로 법위라고 한다.
*세간상(世間相) ; 세간(世間 이 세상.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미혹한 세계)의 다양한 차별상.
*세간상상주(世間相常住) ; 세간의 차별상이 변함없이 제 자리에 머문다는 말. 세간상주(世間常住)라고도 한다. 법이 법(法)의 자리[位]에 자리잡고 있듯이 세간의 차별상도 그렇다는 뜻이다. 진여가 상주하듯이 다른 모든 법도 그러하여 그들 법은 있는 그대로 진여와 다르지 않다는 도리이다.
[참고] 『백운어록(白雲語錄)』 (上) ‘흥성사입원소설(興聖寺入院小說)’
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 則一切諸法 當處自眞 當處解脫 當處寂滅
‘이 법이 법위에 머무니 세간의 차별성도 변함없이 머문다’라고 하니, 모든 법은 현재 있는 그대로 진실할뿐이고, 현재 있는 그대로 해탈이며, 현재 있는 그대로 고요한 것이다.
*환화(幻化) ; 환(幻).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이다.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 : 聲聞, 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 : 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이다.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묘체(妙體) ; 묘한 진리의 체(體).
*해탈법(解脫法) ; 해탈의 법. 해탈에 이르는 방법. 번뇌에 묶이는 것에서 해방시켜, 미혹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함.
*달인(達人) ; 진리나 이치에 통달(通達)한 사람[人]. 불법의 도리에 통달한 사람. 깨달은 사람. 달자(達者)와 같은 뜻.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 무우역무희(無憂亦無喜) ; ‘ 흐름을 따라서 성품(性品) 인득(認得) 하면, 성품을  버리면,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을 것이다
『직지(直指)』 (불조직지심체요절 佛祖直指心體節) (白雲和尙 抄錄 | 조계종출판사) 63쪽 마나라(摩拏羅) 존자 게송 참고.

[참고] 송담스님(No 165) - 82 3 첫째 일요법회(82.03.07)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이요 전처실능유(轉處悉能幽)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하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니라
나무~아미타불~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이요 전처실능유(轉處悉能幽).
마음이 경계에 따라 굴르는데, 마음이 모든 밖에 경계에 따라서 마음이 따라서 일어나는데, 전처실능유(轉處悉能幽). 마음 굴르는 곳에  능히 그윽하다. 깊숙하다. 유수(幽邃)하다.
마음은 분명히 경계 따라서 일어납니다. 마음 자체에 성인이 아니라 경계에 따라서 일어나는데,  경계에 따라서 굴르는 곳마다  능히 유현(幽玄)하다.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하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니라.
 흐름을 따라서 성품을 인득(認得)하면, 우리 중생은 경계에 따라서 마음이 일어나고 경계에  흐름 따라가서 같이  경계와 같이 휩쓸려서 넘어가는데,

우리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는 참선하는 사람은 어떠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경계에 따라서 어떠한 생각이 일어난다 하드라도,  생각에 따라가지 말고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나가면 아무리 경계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경계가 나를 끌어갈 수가 없어.
바로  경계로 인해서 나는 나의 본성으로 돌아오는 것이니까. 이렇게 살아가고 이렇게 공부를 해가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는 해탈경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5535~606)
*용이심(容易心 담다·받아들이다·쉽다 용/쉬울 이/마음 심) ; 어렵지 않고 매우 쉽다고 생각함. 경솔한 마음. 등한한 마음.
*만행(萬幸)하다 ; 아주 다행(多幸)하다.
*패궐(敗闕 실패·패할 패/모자람·잘못함·빠뜨림 궐) ; 실패. 결함. 실패하였다. 잘못되었다. 부끄러움을 샀다.
*하관(何關) ; 무슨 관계.
*격외(格外 격식 격/바깥 외) ; 규정되고 고체화된 세간적(世間的)인 척도를 초월하는 것. 즉 분별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실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격(格)은 격식(格式) · 규격(規格) · 법칙 · 규정 등을 말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세간(世間)의 척도라는 뜻이다.
*용잔하다(庸孱-- 보통·어리석다 용/나약할 잔) ; 못생기고 연약하다.
*조잔하다 ; 사람의 마음 쓰는 폭이 좁다.
*노디(노지) ; '징검다리(개울이나 물이 괸 곳에 돌이나 흙더미를 드문드문 놓아 만든 다리)'의 사투리.
*서래의(西來意) ;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초당파 법문 ; 소당파(燒堂婆) 법문.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제30권 1463칙 ‘고목(枯木)’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拈頌說話) 10』 (혜심·각운 지음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428~429.
昔有婆子 供養一庵主 經二十年 常令女子 送飯給侍 一日令女子抱定云 正伊麽如何 庵主云 枯木倚寒嵓 三冬無暖氣 女子歸擧似婆 婆云我二十年 只供養得箇俗漢 遂發起燒却庵
옛날에 어떤 노파가 한 암주(庵主)를 20년 동안 공양하였는데, 항상 딸에게 밥을 보내 시봉(侍奉)을 하곤 했다. 어느 날 딸로 하여금 꼭 껴안고 물어 보게 하였다. “이럴 때, 어떠하십니까?”
암주가 말하였다. “마른 나무가 찬 바위에 기댔으니, 삼동에 따사로운 기운이 없도다”
딸이 돌아와서 노파에게 이야기를 전하니, 노파가 말하였다. “내가 20년 동안 겨우 속한(俗漢)을 공양했구나”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암자를 불질러 버렸다.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45~47.
만공 스님 당시 각 회상(會上)에서 논란된 바 있는 ‘소당파(燒堂婆)’라고 하는 공안이 있는데, 어떤 암주(庵主)가 공부를 하는데 시주 노파 한 분이 그 스님을 20년간 양식을 정성껏 대어드렸다.
20년이 다된 어느 날, 그 노파는 암주 스님의 공부가 얼마나 되었는지 시험해 보려고 자기의 예쁜 딸을 보내면서 말하기를, “네가 가서 그 스님을 꼭 껴안고, <스님!  이러한 때 어떻습니까?>라고 물어보아라” 하였다.

딸은 어머니가 시킨 대로 하였더니 그 암주가 답하기를, “고목이 찬바위에 의지하니 삼동에 따뜻한 기운이 없다.(枯木倚寒岩 三冬無暖氣)”라고 하였다.
딸은 그대로 어머니께 전했다.  노파는 그 말을 듣고는 바로 암주의 패궐(敗闕)을 알아차리고 토굴로 가서 “내가 저런 속한(俗漢)이한테 20년간 양식을 대었구나!” 하고는 암주를 쫓아내고 암자를 태워버렸다.

어째서 그 노파는 그렇게 청정하게 지내온 암주를 속한이라고 했을까?  암주는 어째서 속한이를 면치 못하고 쫓겨나야만 했겠는가, 이 무슨 연고인가?  이것이 공안인 것이다.
여기에 대한 답을 그 당시 큰스님들께서 모두 한마디씩 하셨지만 일일이 다 적을 수는 없고 몇 개만 적어보면, “원앙이 녹수(綠水)를 만났다.” “직접 경계를 쓰겠다.” “배필이 되어 살겠다.” “할을 하겠다.” “방을 쓰겠다.” 등의 답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공안에는 ‘할’도 ‘방’도 소용없는 것이다. ‘방’ 내릴 때 벌써 속인이 되어버린 것이고, ‘할(喝)’ 할 때 계행은 파한 것이다.  위에 적은 어떤 답도 속한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대승계는 부처님께서도 범하지 않고서는 설하지 못하는 법이다.  이 공안이 대승계를 판단하는 공안인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답을 조금이라도 지체하며 찾다가는 벌써 파계승이 되어 버리는 것이니, 함부로 여기에 대해서 입을 열 수가 있을까?  이러한 공안에 눈이 어두워 가지고서야 어찌 중생에게 대승계를 함부로 설하겠는가?

큰스님네께서 이르신 답이 많이 있었지만 나로서는 “아닙니다.” 라고만 하여 왔다.  여러 번 답을 이르라는 요청도 받았지만 답할 것이 따로 있지, 이와 같은 공안에 함부로 답을 할 것인가.  미래 학자들을 살리기 위해서 오늘날까지도 끝내 답을 이르지 않았다.
금봉 스님께서는 돌아가실 때까지 한번 일러 달라고 말씀하셨지만 일러 드리지 않았다.  지금은 금봉 스님마저 돌아가셨으니 누구에게 일러 볼 것인가, 죽어 황천에 가서 염라대왕에게나 일러볼까?
공부하는 학자들이여!  확연(廓然)한 뒤에 한 번 찾아오면 그때는 산승이 더불어 탁마하리라.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 - 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19초)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불위아설파(不爲我說破) ; ‘부중선사도덕(不重先師道德) 지중선사불위아설파(只重先師不爲我說破)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71.
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이요  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故로  古人이  知師恩曰,  不重先師道德이요 只重先師不爲我說破라 하시니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이심이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 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니 배우는 자가 참으로 어떻다고 헤아리거나 더듬을 수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씀하기를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니라.

[참고 ②]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白雲景閑和尙 抄錄 | 원조각성 번역 · 주해 | 현음사) p533~534.
洞山良价禪師가 問雲嵓和尙호대 百年後에 忽有人이 問호대 還邈得師眞不아 하면 如何祗對닛고 嵓이 良久云只這是니라 師가 佇思어늘 嵓이 云承當者个事인댄 大須審細니라

동산 양개 선사가 운암 화상에게 묻기를 “백년 후에 문득 어떤 사람이 묻기를 ‘운암 스님의 모습을 그려서 얻을 수 있느냐?’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됩니까?”
운암 화상이 양구하고서 말씀하시기를 “다만 이것이니라” 양개 화상이 머뭇거려서 생각하거늘 운암 화상이 말씀하시기를 “이런 일을 알아차릴진댄 크게 모름지기 자세하게 알아야 될 것이니라”

師가 猶涉疑러니 後에 因過水覩影하고 大悟前旨하야 乃有偈曰 切忌從他覓이니 迢迢與我踈라 我今獨自往에 處處得逢渠라 渠今正是我요 我今不是渠라 應須恁麽會하야사 方得契如如니라

양개 화상이 오히려 의심이 있었더니 그 후에 물을 건너다가 그림자를 보고 앞에서 운암 스님이 말씀하신 그 뜻을 크게 깨달아서 이에 게송을 하셨다.
간절히 딴데서 찾지 말 것이니 그러면 멀고 멀어서 나와 소원하네. 내가 지금 혼자 스스로 감에 곳곳마다 저를 만나게 된다.
저것이 지금 바로 나이고 나는 지금 바로 저것 아니네.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만 비로소 여여한 도리에 계합하리라.

[참고 ③]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7권 (혜심 ·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ㅣ 동국역경원) 제682칙. ‘지시(指示)‘ p222~223.
洞山이 爲雲嵓諱旦하야 設齋陞座어늘 時有僧이 問하되 和尙이 在雲嵓處하야 得何指示닛고한대 師云하되 雖在彼中이나 不蒙指示로다하니 進云하되 旣不蒙指示인댄 何故爲佗設齋닛고한대 師云하되 爭敢違背佗리요하다 進云하되 和尙이 旣發足南泉이어늘 何故로 爲雲嵓設齋닛고한대 師云하되 我不重先師道德이며 亦不爲佛法이요 只重佗當時에 不爲我說破로다

동산이 운암의 기일(忌日)에 공양을 마련하고 법상(法床)에 올랐는데 어떤 스님이 나와서 말하였다.
“화상께서 운암의 처소에 계실 때 어떤 지시를 받았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비록 거기에 있기는 했었지만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다면 어째서 그를 위해 재를 마련하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그를 배반할 수는 없지 않는가?”

다시 물었다. “ 화상은 이미 남전(南泉)에게서 발심했는데 어째서 운암의 재를 차렸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나는 선사(先師)의 도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며, 불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때 나에게 설파(說破)해 주지 않은 것을 소중히 여길 뿐이니라”

[참고 ④] 『서장(書狀)』 ‘답고산체장로(答鼓山逮長老 : 고산체 장로에게 보낸 답장)‘에서.
若使老漢 初爲渠 拖泥帶水 說老婆禪 眼開後 定罵我無疑 所以 古人云 我不重先師道德 只重先師不爲我說破 若爲我說破 豈有今日 便是遮箇道理也

만약 나로 하여금 처음부터 그를 위해 나 자신을 더럽혀가며(흙탕물을 뒤집어 쓰며) 노파선을 설하였다면 그가 안목이 열린 후에는 틀림없이 나를 비난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고인(洞山良价)이 ‘나는 선사(先師 : 雲嵓)의 도덕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선사가 나에게 설파하지 않았던 것을 중히 여긴다’라 하였고, 또한 (香嚴이 潙山의 은덕을 기리며) ‘만약 나에게 설파해 주었다면 어찌 오늘이 있었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곧 이것이 이러한 도리(道理)입니다.

趙州云 若敎老僧 隨伊根機接人 自有三乘十二分敎 接他了也 老僧這裏 只以本分事接人 若接不得 自是學者根性遲鈍 不干老僧事 思之思之

조주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내가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사람들을 접화(接化)한다면, 응당 삼승십이분교를 가지고 사람들을 접화할 것이지만, 나는 이곳에서 다만 본분사(本分事)로써 사람들을 접화할 뿐이다. 접화되지 않는다면 원래 학자의 근성이 굼뜨고 둔한 것이어서 나의 일과는 상관이 없다’라고 하셨으니 생각하고 또 생각하셔야 합니다.
*선사(先師) ; 돌아가신 스승.
*설파(說破) ;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3/3)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동자삭발(童子削髮) ; 어릴 때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는 것. 동진출가(童眞出家)와 같은 뜻.
*이력(履歷 밟을·행할·겪을 이/지낼 력) ; ①지금까지 거쳐[履] 온 학업, 직업, 경험 등의 내력(來歷). ②어떤 일을 오랫동안 또는 여러 번 겪으면서 몸에 배게 된 태도나 버릇. ③정해진 과정에 따라 경전을 공부하는 일.
*초기의(草其衣) 목기식(木其食) ; ‘가는 풀로 옷을 하고 나무 열매로 음식을 삼다’
*법량(法量) ; ①법의 분량. 법의 크기. ②불상(佛像)을 조성할 때 불상의 크기를 정하는 것.
*(게송) ‘착화주중안홀명(着火廚中眼忽明)~’ ; 한암 스님 오도송.
*정지 ; ‘부엌’의 사투리.
*부섴 ; ①’아궁이’의 사투리. ②’부엌’의 사투리.
*염송(拈頌) ; 선문염송(禪門拈頌).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고려 보조국사 지눌(知訥)의 제자 진각국사 혜심(慧諶) 스님이 1226년 수선사(修禪社, 지금의 송광사松廣寺)에서 화두 1125칙(則)과 각각의 칙(則)에 대한 짤막한 해설과 게송 등을 모아 엮은 30권의 책이다. 염송(拈頌)이라고도 한다.
*대교과(大敎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 · 사집과(四集科) · 사교과(四敎科)에 이어 『화엄경(華嚴經)』 · 『전등록(傳燈錄)』 · 『선문염송(禪門拈頌)』 등을 배운다.
*속전등록(續傳燈錄) ; 36권. 명(明)의 원극 거정(圓極居頂, 미상~1404) 엮음.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의 뒤를 이어 혜능(慧能) 문하 10세부터 20세까지, 불법(佛法)을 계속 이어온 선승(禪僧)들의 계보와 행적, 법어(法語), 문답 등을 정리한 저술.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 ‘본래 한 물건도 없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나오는 혜능선사의 게(偈)의 한 구절로 범부와 성인, 깨달음과 미혹, 생사와 열반 등 모든 대립된 차별상이 없는 본래의 모습을 가리킨다.

중국 선종의 5조 홍인(弘忍) 대사가 법을 부촉(咐囑)할 때가 된 것을 알고 대중에게 각자 게송을 지으라고 하자, 대중의 상좌(上座)인 신수(神秀)가 게송을 지어 복도 벽에다 써 놓았다.
몸은 보리수(菩提樹)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다(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 끼지 않도록 하라(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

혜능(慧能)은 동자(童子)가 이 신수의 게송을 외는 소리를 듣고 이 게송은 아직 본성을 보지 못한 것임을 알고, 동자를 데리고 게송 있는 곳으로 가서 별가 스님에게 부탁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 하나를 쓰게 부탁했다.
보리에 본래 나무 없고 명경(明鏡) 또한 대(臺)가 아니네.(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느 곳에 티끌이 있으랴.(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칠(漆)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란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또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이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물팍 ; 무르팍. ‘무릎’의 사투리.
*심마물(甚麽物) 임마래(恁麽來) ;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Posted by 닥공닥정
무상(無常)2015.06.23 16:50

§(세등39) (게송)금오출몰촉년광~ / 안수정등(岸樹井藤) / 생사해탈하는데 있어 신도는 스님네보다 몇십 배 간절히 정진을 해야 /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핑계 안돼!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에 의지해서 지혜롭게 공부를 지어 나가야 마장(魔障)이 일어나지 않고 반드시 도업(道業)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제자에는 머리 깎은 스님네만이 제자가 아니라, 우바새, 우바이, 비구 비구니가 이것이 사부대중(四部大衆)으로 구별을 지어 놓으셨지만 도업(道業)을 닦아 가는데 있어서는 마찬가지여.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 하는데 있어서는 오히려 스님네보다도 마을에 계신 여러분들이야말로 더 간절히 알뜰히 공부를 해 나가야만 될 것입니다.
스님네보다도 몇 배, 몇십 배 이를 악물고 정진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야 업(業)의 구렁텅이에서 해탈(解脫)하시게 되고, 생사윤회의 구렁텅이에서 해탈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39)—임술년 하안거 결제 법어(82.04.17)


(1) 약 17분.  (2) 약 10분.


(1)------------------

금오출몰촉년광(金烏出沒促年光)이요  옥토승침최로상(玉兎昇沈催老像)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수정고어소수(忍受井枯魚少水)허고  영용상핍서침등(寧容象逼鼠侵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오출몰촉년광(金烏出沒促年光)이요. 태양을 금까마귀[金烏]라 그래.
금까마귀가 나왔다 졌다, 아침에는 동천에서 솟아올랐다가 저녁때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이렇게 하면서 세월을 재촉을 한다. 금까마귀는 솟았다 졌다 하면서 세월을 재촉을 하고,

옥토승침최로상(玉兎昇沈催老像)이라. 옥토끼[玉兎]는—달을 보고 옥토끼라 하는데, 옥토끼는 떴다 졌다 하면서 늙은 모양을 재촉한다.
하루 해가 떴다 졌다, 내일도 또 해가 떴다 졌다 하면서 1년이 지내가고, 달이 떴다 졌다, 달이 또 떴다 졌다 하면서 우리를 늙게 만든다 이것이여.

하루 해가 떴다 지고서 거울을 쳐다본다고 해서 별로 늙은 줄을 모릅니다마는, 그 하루 하루가 1년이 지나면 1년 동안에 벌써 흰머리가 많이 불어나고 주름살이 지나가고, 1년 사이에 많이 늙어 버리게 된다. 젊을 때에는 1년, 이태 지내도 잘 모르지만, 사십 오십이 넘어가면 1년이 무섭다 그말이여.

젊다고 해서 어찌 늙지 아니하리요마는 눈에 잘 띄지 아니한 것뿐이지 자라고 있는 것 자체가 늙어 가는 것이고, 늙어 가는 것이 바로 죽음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것인데, 어찌 등한히 할 수가 있나.

인수정고어소수(忍受井枯魚少水)여, 우리의 인생살이가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면은 물웅덩이에 물이 그 삼복더위에 가뭄이 계속 될 때에 물웅덩이에 물이 매일같이 바짝 바짝 바짝 밭아 들어가는데,
그 적은 물속에 송사리떼, 크고 작은 그 고기떼들이 펄떡펄떡 펄떡펄떡펄떡펄떡 뛰면서 물은 거의 다 잦아지고 오늘내일 사이에 완전히 말라버리게 생길 때,

송사리란 놈이 그 웅덩이 속에서 팔딱팔딱팔딱팔딱 정식으로 고기가 서지를 못하고 옆으로 이렇게 드러누워서 팔딱팔딱 뛰고 있다가 벌써 한쪽에서는 맥을 못추리고 늘핀하니 죽어가고 있는 그러한 상황이 바로 우리 인생살이다 이것이여.

세계 도처(到處)가 싸움이 일어나고 있고, 싸움이 일어나기 직전에 있고, 우리도 38선을 놔두고 호시탐탐 남침(南侵)을 노리고 있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언제 어떻게 될는지 모르고 있는,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이러한 상황 속에 있는 것이여.


영용상핍서침등(寧容象逼鼠侵藤)이여. 황야(荒野)를 여행을 하다가 성난 코끼리란 놈이 쫓아옴을 만났다. 도망을 치다가 마치 깊은 샘을 하나 만나 그래서 그 샘으로 피신을 하는데, 깊이 들어가자니 저 밑에는 독룡(毒龍)과 독사(毒蛇)가 우글거리고 있고, 그래 마치 언덕에서 등넝쿨이 떠억 뿌리를 박고 거기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 등넝쿨을 휘어잡고 매달려 갖고 있다 그말이여.

코끼리란 놈은 그 샘으로 들어올 수가 없어서 밖에서 코를 내두르면서 위협을 하고 있고, 저 밑으로 들어가자니 독룡 독사가 있고, 그런데 팔은 아파 죽겠지만,

그러자 그 칡덩쿨 뿌럭지 있는 데다가 벌이 벌집을 지어놓고, 그런데 그 날씨가 더우니까 그 벌집에서 꿀이 넘쳐 가지고 꿀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 처음에는 무엇이 입술에 톡 떨어져서 무의식 중에 혀로 입술을 핥으니까 아! 다디달다 그말이여.

조금 있으니까 또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해서 그 꿀방울을 입을 벌리고 인자 정식으로 똑똑 떨어지는 것을 받아 먹고 있는 것이 너무 달고 좋은 바람에 코끼리가 바로 기다리고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독룡 독사가 저 밑에 자기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마저도 망각을 하고.

그런데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나와 가지고, 칡넝쿨을 검은 쥐가 한번 갉고 나면 흰 쥐가 한번 또 갉고, 흰 쥐가 한번 갉아먹고 나면 검은 쥐가 한번 갉고.

쥐란 놈은 시간만 있으면 무엇을 긁어야 돼. 긁어서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 긁고 가만히 놔두면 송곳니가 길어나 가지고, 웃송곳니는 길어서 아랫턱을 뚫고 내려가고, 아랫 송곳니는 길어나 가지고 웃입바탕을 뚫고 나가가지고 자동으로 죽게 되기 때문에 시간만 있으면 딱딱딱딱 이를 갖다가 갈아야 된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집에서 보면 창고에 공연히 뭘 갉아 가지고 못쓰게 맨들고 하는데 그건 쥐의 자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또 이가 날카로워야 뭘 또 먹을 수도 있고, 그 본능적으로 그런 건데, 해필 그 칡넝쿨 하나에 매달려 가지고 지금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그 칡넝쿨을 지금 와서 긁고 있는 그런 못된 쥐가 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이 사람은 그 얼마 안 가면 뚝 떨어지면 죽게 되어 있는데 꿀 받아먹는 재미로 그것마저도 모르고 있다 그말이여.

고대로 가만히 있자니 칡넝쿨이 뚝 떨어지면 죽고, 올라가자니 코끼리란 놈이 기다리고 있고, 내려가자니 독룡 독사가 혀를 널름거리고 있어.


어떻게 하면은 이 사람이 살아갈 수가 있느냐?

이것이 ‘안수정등(岸樹井藤) 기능장구(豈能長久)냐. 언덕 나무에 있는 등넝쿨에 매달려 있는, 이 등넝쿨이 얼마나 오래 가겠느냐?’
‘안수정등(岸樹井藤)’이라고 하는 공안(公案)입니다. 어떻게 하면 여기서 살아갈 수가 있느냐?

이건 불가(佛家)에 뿐만이 아니라 세속에도 이러한 문제가 있고, 동양뿐만이 아니라 서양에도 이러한 이와 똑같은 수수께끼와 같은 이러한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은 이 칡덩쿨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 살아갈 수가 있느냐?

여러분도 심심하면 한번 이 수수께끼를 풀어 보시고, 가정에 돌아가시면 학교에 다니는 아들이나 손자 딸에게도 이 이야기를 해서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이 살아갈 수가 있느냐?’
이건 공안이라 사량분별심으로 따져서 알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너무 이 공안이 재미가 있는, 우리 인생을 고대로 표현한 공안이기 때문에 세속에서 수수께끼로 풀어봐도 재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코끼리는 무상살귀(無常殺鬼)를—자꾸 이 죽음을 향해서 짧아져 가고 있는 것을 표현한 것이고, 독룡 독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우리가 죽어서 숨이 끊어지자마자 염라대왕이, 저승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축생 아니면 지옥, 육도 생사윤회(六途生死輪廻)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말한 것이고, 달콤한 꿀이 똑똑 떨어진 것은 인생의 오욕락(五欲樂)을 표현한 것입니다.

오욕락은 재산에 대한 욕심, 그 다음에 이성간에 색욕에 대한 욕심, 본능, 그 다음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식욕에 대한 즐거움, 그 다음에 명예와 권리에 대한 욕심, 다음에는 즐겁고 편안하게 놀고 쉬는 그러한 즐거움,
이것을 인생의 오욕락이라 하는데, 재(財)·색(色)·식(食)·명(名)·수(睡), 이 다섯 가지의 오욕락에 맛을 붙여서 살기 때문에 하루하루 세월이 지내가는 것을 망각하고,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는 사실도 망각하고, 무상살귀가 끊임없이 우리를 쫓아오고 있다고 하는 것도 망각하고, 이러다가 뚝 떨어지면은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 삼악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망각하고 있습니다마는,

아무리 그 오욕락에 맛을 붙여서 우리가 망각을 하고 있다 하드라도, 흰 쥐 검은 쥐는 계속해서 칡넝쿨을 쏠고 있기 때문에 칡넝쿨은 결정코 마침내 끊어져 버리고야만 말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만 여기서 우리가 살아갈 수가 있느냐?


앞으로 석달 동안 정진 할라면, 삼복성념(三伏盛炎)에 앉았을라면 그 땀이 흐르고 흘러서 오금쟁이가 진무르고 궁뎅이에 땀띠가 나서 피부병이 생기고, 앉았으면은 그 땀은 등허리에서 줄줄 흘르고,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차릴랴고 해도 혼침(昏沈)이 오고, 그러한 어려운 정진 기간입니다마는, 어렵다고 아니하면 누가 내 대신 공부를 해 줄 것이냐?

날이 더워도 공부는 해야 하고, 아무리 추워도 공부는 해야 하고, 아무리 피로해도 공부는 해야 하고, 아무리 아파도 공부는 해야 하고, 어리석게 하지 말고 지혜롭게 공부를 해 가야 한다. 가행정진, 용맹정진 대단히 좋지만, 어리석게 하면 퇴타(退墮)의 인연이 된다.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에 의지해서 지혜롭게 공부를 지어 나가야 마장(魔障)이 일어나지 않고 반드시 도업(道業)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34분13초~50분43초)


(2)------------------

보살님들도 가정에서 정진을 하시게 되겠습니다마는, 여기 백일기도에 동참(同參)을 하시면 여러 보살님들도 이 안거(安居)에 방부(房付)를 들인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백일기도에 한 분도 빠지지 말고 동참을 하시고 법회가 있을 때엔 꼭 참석을 하시고,

집에서 가정일 돌보시면서 아들딸 가르키면서, 살림하시면서 앉았을 때나, 섰을 때에나, 일을 하실 때에나, 공양을 하실 때에나 또는 어디를 가실 때 차를 타실 때나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항시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한 생각 한 생각을 알뜰히 다그쳐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부처님 제자에는 머리 깎은 스님네만이 제자가 아니라, 재가제자(在家弟子) 우바새, 우바이, 비구 비구니가 이것이 사부대중(四部大衆)으로 구별을 지어 놓으셨지만 도업(道業)을 닦아 가는데 있어서는 마찬가지여.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 하는데 있어서는 오히려 스님네보다도 마을에 계신 여러분들이야말로 더 간절히 알뜰히 공부를 해 나가야만 될 것입니다.

스님네보다도 몇 배, 몇십 배 이를 악물고 정진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야 업(業)의 구렁텅이에서 해탈(解脫)하시게 되고, 생사윤회의 구렁텅이에서 해탈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스님네는 여러 신남신녀(信男信女)가 정성스럽게 바친 보시와 공양에 의해서 도를 닦아가야 할 이 소중한 육체를 보전해 나가고, 그러한 여러분의 신심과 공양하는 공덕으로 도업을 잘 닦아서 스스로 깨닫고 나아가서는 많은 중생을 제도해야 할 중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물질적으로 정성으로 부처님과 법과 스님네를 잘 공양하고 보호하고 받듬으로서 스님으로부터서는 법(法)의 보시(布施)를 받는 것입니다.
물질을 여러분은 스님네에게 보시하고, 스님네는 수행으로써 여러분에게 법보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밤낮 보시만 하고, 스님네는 우리한테 무엇을 보시를 해주나? 법을 보시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숙명통(宿命通)을 얻지를 못해서 전생사(前生事)를 잊어버려서 잘 모릅니다마는, 전생에 여러분이 스님이었었고 우리가 신도였었을런지도 모릅니다.
(전생에) 우리가 신도가 되어서, 스님으로 공부하시는 여러분에게 보시를 해서 그 인연으로 금생에는 우리가 출가해서 스님이 되고, 여러분은 세속에서 신도가 되어 가지고 교대해서 여러분이 우리를 또 이렇게 보시를 하고 잘 공양을 해서 우리를 이렇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이 가운데 혹 숙명통이 열린 분이 보면 틀림없이 그러한 인연 관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보시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금강경(金剛經)에 말씀하시기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야말로 그 공덕이 한량이 없이 크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무주상으로 보시를 하고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해서 스님네가 어쨌던지 영양보충을 충분히 해서 건강한 육체로 건전한 정신으로 정진을 잘해서 결정코 금생에 대도를 성취하도록 잘해 주시고,

그 공덕으로 여러분 가정에는 항시 신심과 기쁨이 넘쳐 흘러서 모든 재앙은 다 물러 나가 버리고,
크고 작은 소원이 차례로 다 성취가 되어서 부처님 제자로서 만복(萬福)을 성취하고 유루복(有漏福)과 무루복(無漏福)을 갖추어 구족(具足)해서,
위로는 보리(菩提)를 구하고, 아래로는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서 모든 사람이 자기로 인해서 부처님께 귀의(歸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인연이 되도록 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

오늘도 강영선 보살이라고 하는 신심있는 보살이 대중공양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공양을 기쁜 마음으로 받으시고 그 인연으로 ‘법(法)의 기쁨과 선(禪)의 기쁨’, 법희선열(法喜禪悅)을 얻으셔서 세세생생에 그 강영선 보살님과 함께—악도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항시 정법문중(正法門中)에 다시 만나서 대도를 성취할 인연이 되기를 부처님께 축원을 합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금생에 만약 이렇게 간절히 일러드리는 말씀을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후생(後生)에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하리라.

후생에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가서 ‘아! 내가 그때 송담 스님이 그렇게 목이 쇠도록 일러준 그 말할 때 공연히 아들 핑계, 딸 핑계, 살림 핑계, 무슨 핑계, 뒤로 미루고 그럭저럭 지내가지고 내가 이런 일을 당하는구나. 어째서 내가 그때 열심히 공부를 안했던가!’
염라대왕 앞에 가서, 저승에 가서 아무리 후회하고 한탄을 해봤자 그때는 이미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참선해 나가는 구체적인 법문에 대해서는 아까 조실 스님께서 녹음을 통해서 너무너무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해주셨기 때문에 생략을 하고 하좌하겠습니다.(50분44초~60분3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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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금오출몰촉년광~’ ; [관음예문(觀音禮文)] (용화선원刊)에 있는 ‘무상게(無常偈)’ p35, p64 참고.
刹那生滅無常法  聚散循環有漏因  金烏出沒促年光  玉兎昇沈催老像
忍受井枯魚少水  寧容象逼鼠侵藤  覩玆脆境早修行  勤念彌陀生極樂

한 찰나에 생하고 멸하는 것이 무상한 법이며,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모이는 것은 번뇌(有漏)의 원인이네. 해는 떳다 지면서 세월을 재촉하고, 달은 떳다 지면서 내 늙음 재촉하네.
우물이 말라 물이 적은 것 물고기는 어찌 참으며, 미친 코끼리에게 쫓기고 쥐는 등넝쿨을 갉나니, 이같이 위급함을 절실히 알아 속히 수행을 하고, 부지런히 아미타 부처님 염(念)하여 극락왕생하세.
*밭다 ; (무엇이) 바싹 졸아서 물기가 거의 없어지다.
*잦다 ; (액체가)졸아들어 밑바닥에 깔리다.
*늘핀하다 ; ‘늘펀하다(여기저기 널려있는 모양)’의 사투리.
*도처(到處 이를 도/곳 처) ; 여러 곳. 이르는 곳.
*38선(三八線) ;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1945년 8월15일 맥아더가 발표한 ‘일반명령 제1호’에 의해 한반도의 38도선 이북의 일본군의 항복은 소련이, 이남의 일본군의 항복은 미국이 접수한, 미·소 양국의 한반도 분할점령 군사분계선.
38선은 1953년 6 · 25 전쟁이 끝나고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된 현재의 군사분계선과 다르지만, 현재까지도 흔히 군사분계선을 삼팔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호시탐탐(虎視眈眈 범 호/볼 시/노려볼 탐) ; 범이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노려본다는 뜻으로,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하여 기회를 노리고 형세를 살피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황야(荒野 거칠 황/들 야) ; 버려진 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거칠게 된 들판.
*뿌럭지 ; ‘뿌리’의 사투리.
*다디달다 ; 매우 달다.
*해필(奚必 어찌 해/반드시 필) ; ‘다른 경우도 있을 텐데 어찌하여 꼭’이라는 뜻으로 마음에 맞지 않거나 서운할 때 쓰는 말.
*안수정등 기능장구(岸樹井藤 豈能長久) ;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참고] [치문경훈(緇門警訓)] 《위산대원선사경책(潙山大圓禪師警策)》에서.
夫業繫受身 未免形累  稟父母之遺體 假衆緣而共成 雖乃四大扶持 常相違背 無常老病 不與人期  朝存夕亡 刹那異世 譬如春霜曉露 焂忽卽無 岸樹井藤 豈能長久 念念迅速  一刹那間 轉息 卽是來生 何乃晏然空過

대저 업(業)에 얽매여 받은 이 몸은 형상의 더러움을 면치 못한다. 부모가 내려주신 유체(遺體, 父精母血)를 받아 여러 인연을 임시로 빌려 함께 이루었다.
비록 다만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여 견디어내나 항상 서로 어기고 등져 무상(無常)한 노병(老病)이 사람으로 더불어 때를 정하여 약속하지 않아서,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어 찰나에 세상을 달리하게 된다.
비유하면 봄서리 새벽이슬과 같아 갑자기 없어지며,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순간 순간 빠르고 빨라서 일찰나 사이에 숨이 떨어지면 곧 내생이니, 어찌 편안히 헛되게 지내리요.
*위산(潙山) : (771 – 853) 법명은 영우(靈祐), 속성은 조(趙)씨。당나라(唐) 대종(代宗) 때에 복건성(福建省) 복주부(福州府) 장계(長鷄)에서 났다。열 다섯 살에 출가하고, 스물 셋에 백장선사(百丈禪師)의 법회에 가서 공부하였다.
추운 겨울에 밤늦도록 방장실(方丈室)에 올라가서 문법(問法)하는데, 화상이 『화로에 불이 있느냐?』고 묻기에, 대강 뒤져보다가 불이 없다고 대답하였다。화상은 친히 화로 속을 깊게 뒤져서 작은 불덩이 하나를 집어 들고 『이게 불이 아니고 무엇이냐?』하는 데서 크게 깨쳤다.
그 뒤에 호남성(湖南省) 담주(潭州) 장사부(長沙府)에 있는 위산에 새로 절을 짓게 되자, 그곳에 가서 사십여 년 교화하여 종풍(宗風)을 크게 떨쳤다。회중이 항상 일천 오백 명을 넘었고, 입실(入室)하여 법을 이은 제자가 사십 일 명이었다。당나라 선종(宣宗) 7년에 입적하니 나이 83세, 법랍이 64세。그의 제자 중에서 앙산(仰山) • 향엄(香嚴) • 영운(靈雲) 등이 뛰어났다。저술로는 <위산경책(潙山警策)> 그 밖에 <어록(語錄)>등이 많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무상살귀(無常殺鬼) ;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귀신(鬼神)이라는 뜻. ‘인간존재가 무상하다’는 것의 무서움을 비유한 말.
*육도 생사윤회(六途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 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 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삼복(三伏) ; ①일 년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②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아울러 이르는 말.
*성염(盛炎 성할 성/불꽃·더울 염) ; 매우 심한 더위. 또는 최고조에 달한 더위.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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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재가제자(在家弟子) ; 집에 있으면서 스님처럼 도를 닦는 사람.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구렁텅이 ; ①깊고 험하게 땅이 움푹 팬 곳. ②헤어나기 어려운 나쁜 환경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해탈(解脫) : [범] Vimoksa ; Vimukta ; mukti  [파]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또는 열반(涅槃)의 딴 이름으로도 쓰인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법보시(法布施) ; 남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불서(佛書)를 베풂.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보시(布施) : [범] dana  음을 따라 단나(檀那)라고도 쓴다。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전생사(前生事) ; ①'전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살았던 삶)'에 있었던 일. ②'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이미 지나간 일'을 일컫는 말.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 - 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만복(萬福) ; 온갖 복.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써,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빠짐없이 두루 갖춤.
*보리(菩提) ; ‘bodhi’의 음사(音寫). 각(覺)•지(智)•도(道)라고 번역. 모든 집착을 끊은 깨달음의 지혜.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듣고 따르는 기쁨[喜]과 선정(禪定)에 드는 기쁨[悅].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게송)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신수기도)2014.12.12 09:10

§(160) (게송)천강동일월~ / 기도는 업장소멸(業障消滅)하는 것. 업장을 소멸해야 소원을 성취 / 참선은 죄를 짓지 않는 가장 묘한 방법 / 안수정등(岸樹井藤) / 발심.

온 우주법계는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法身)의 몸이요, 따라서 우리 깨닫지 못한 중생들도 고대로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 삼신(三身)이 고대로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몸뚱이가 바로 법신이요. 우리의 마음자리가 법신이요. 우리의 행동이 고대로 보신입니다.
기도는 첫째 청정한 마음, 정직한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 이 세 가지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만 기도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소원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우리가 달성해야 할 큰 목적은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서 지혜의 눈을 떠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 큰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진을 해 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정법을 믿고 한 생각 한 생각을 올바르게 그리고 간절하게 다져나가면 피와 오줌과 똥과 고름이 가득차 있는 이 추한 육신(肉身)이 진리의 법신(法身)으로 대광명(大光明)을 놓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신심(信心)인 것입니다.
**송담스님(No.160)—82년 신수기도회향 법문(82.2.2)


(1) 약 21분.  (2) 약 15분.


(1)------------------

천강동일월(千江同一月)이요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종일주홍진(終日走紅塵)하야  실각자가진(失却自家珍)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천강동일월(千江同一月)이요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라.
하늘에 한 달이 중천에 뜨면 천강동일월(千江同一月)이요. 일천 강에 그 한 가지 달이 비치더라.

종일주홍진(終日走紅塵)타가  실각자가진(失却自家珍)이로구나.
종일토록 홍진(紅塵) 세계,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오욕락(五欲樂)을 구하기 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달음박질치다가,
실각자가진(失却自家珍)이로구나. 자기집 보배를 잃어버리고 마는구나.

온 우주법계는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法身)의 몸이요, 따라서 우리 깨닫지 못한 중생들도 고대로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 삼신(三身)이 고대로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몸뚱이가 바로 법신이요. 우리의 마음자리가 법신이요. 우리의 행동이 고대로 보신입니다.

마치 하늘에 둥근달이 하나 떠 있으면 일천 강물에 달그림자가 비추듯이, 법계(法界)에 가득차 있는 모든 중생 두두물물(頭頭物物)에 이르기까지 그 달이 비치지 아니한 곳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만호진봉춘(萬戶盡逢春)이로구나. 가난한 집이나 부잣집이나, 권리와 명예가 있는 집이나, 미천한 집이나 어느 집을 막론하고 봄이 돌아오면 다 따뜻한 봄기운을 봄바람을 받고 있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진치와 오욕락을 구하기 위해서 동서남북으로 바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마냥 가난하고 천하고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어 가지고 동분서주하다가,
원래 자기집에 평생 먹고 쓰고 남을 진귀한 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망각하고, 자기가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이리저리 설치는 동안에 자기집에 있는 보물은 도둑을 맞아 버리게 된다.


오늘은 임술년 정초에 신수기도 회향일입니다. 초삼일(初三日)부터 시작해서 오늘 9일날 회향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 기도에 모다 동참을 하셔서 하루 4분정진(四分精進)을 해왔습니다.
모다 바쁘신 가운데에도 이 기도에 오셔서 직접 정근(精勤)을 하신 분도 많이 계셨습니다. 바뻐서 또 못 나오신 분은 댁에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일주일간을 기도를 하셨을 줄 생각을 합니다.

기도는 첫째 청정한 마음, 정직한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 이 세 가지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만 기도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한결같이 청정하고 정직하고 지성(至誠)스러운 마음으로 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기도는 첫째, 업장 소멸(業障消滅)하는 것입니다. 업장을 소멸해야 소원을 이루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진여불성(眞如佛性) 자리는 바로 부처님의 마음인데,
부처님께서는 팔만사천 무량공덕을 다 성취하셨기 때문에, 모든 지혜와 모든 복덕을 성취허셨기 때문에 마음 한 생각 내시면 한 가지도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 없이 다 성취가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은 그러헌 진여불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량겁 업장(業障)이, 업이 있어서 그 업의 장애를 받아 가지고 우리의 소원이 바로바로 성취가 아니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서 마음이 청정해지면 그러헌 업장이 소멸이 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바로 부처님 마음과 똑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3일이나 또는 일주일이나 또는 삼칠일 또는 백일 이렇게 날짜를 정해 놓고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그리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기도를 허면은 소원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성취가 되느냐 안 되느냐는 두고 봐야 알겠다. 이번에 기도를 했으니까 그것이 성취가 될는지 안 될는지 두고 봐야 알겠다.’ 혹 그렇게 생각하시고 계시는 분이 계실는지 모릅니다마는,

기도는 ‘기도를 지금 해 가지고 앞으로 성취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기도할 때 이미 성취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그 근본에 있어서는 성취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마치 어떤 서류를 관청에다가 신청서를 내서 관청에서는 이미 다 결재(決裁)가 떨어졌으되 본인에게 그 통지가 오는 것은 시일이 걸리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미 내용적으로는 결재가 다 나서 성취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 통지문이 도달할 때까지 잠시 시간이 필요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여러분이 기도한 것은 이미 다 결재가 떨어져서 성취가 되었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그랬다고 해서 우리의 할 일이 다 없어진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는 할 일이 계속해서 있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소원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우리가 달성해야 할 큰 목적은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서 지혜의 눈을 떠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받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 큰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진을 해 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새로 업을 짓지 아니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일주일간 기도를 해서 업을 소멸을 하고 청정한 마음이 됨으로 해서 조그마한 소원을 이룰 수가 있겠지만 앞으로 우리에게는 큰 소원과 작은 소원들이 끊임없이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헌 소원들, 앞으로 다가올 모든 일들이 차례차례로 우리의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게 할려면 새로운 업을 짓지 아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업(業)을 짓지 않게 되느냐?

‘업을 짓는다’고 하는 것은 행동으로 살생을 하고, 행동으로 거짓말을 하고, 행동으로 사음을 범하고, 행동으로 거짓말을 하고, 보통 다 이러헌 그 나타나는—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그러헌 것을 ‘죄를 짓는다, 업을 짓는다’ 이리 생각을 하지만,
물론 그런 행동으로 짓는 업이 업 짓는 것 아닌 것은 아니지만, 업은 마음으로 짓는 것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어떠헌 행동도 먼저 마음에서 일어나 가지고 그것이 얼굴로 나타나고, 언어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진즉 지어놓은 것이 얼마 동안의 시간을 거쳐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치 화재가 날 때, 불은 몇 분 전에 불이 붙어 가지고 벌벌 타들어 가면 차츰차츰 그 불이 번져서 저 먼 데에서도 불꽃이 보이고 연기가 보일라면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연기와 불꽃이 보이기 전에 이미 불은 붙어서 타들어 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행동으로 죄를 짓는 것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에 우리의 마음에 있어서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학자는 연기와 불꽃이 나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훨씬 이전에 '한 생각' 딱! 일어날려고 할 때 거기에서 처리를 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불이 번져서 훨훨 타고 있을 때에는 소방대 차가 동원이 되어 가지고서도 끄기가 어렵고 이미 그때는 많은 가산(家産)을 다 태우고 집을 태우고 사람을 태워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때에사 끌려고 할 것이 아니라, 불이 맨 처음에 조그마한 성냥불이나 담뱃불로 부터서 불이 붙자마자 그때에는 손바닥으로 꺼도 꺼지는 것입니다. 발로 살짝 밟아 버리기만 해도 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짓는 모든 종류의 죄도 한 생각 일어날려고 하는 그 찰나에 딱! 조치를 해 버리면 간단하게 죄짓는 것을 미연에 해결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법은 최상선법(最上乘法) 참선법이 아니고서는 이것은 아니 되는 것입니다.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그 찰나에 그 일어난 그 생각이 커지기 전에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화두를 돌이켜 관조(觀照)하면 자취 없이 소멸되고 말아버린 것입니다.

이 화두로서 모든 죄를 미연에 방지하고 소멸시켜 버리는 이 법은 그 동안에 참선을 해보신 분이면 너무너무 요긴하고 고맙고 미묘하다고 하는 것을 잘 알고 계실 줄 생각을 합니다.

이 참선은 죄를 미연에 방지하고 따라서 앞으로 새로운 죄를 짓지 아니하는데 가장 묘한 방법인 것입니다.

많은 죄를 지어서 그 죄가 자기 몸을 망치고 집안을 망치고 남을 망치고 사회 국가를 망치고 그렇게 된 뒤에사 그것을 소멸을 하기 위해서 용맹정근을 하고 기도를 하고—물론 그렇게 해야 되겠지만,
우리 최상승법 학자는 지나간 업을 기도를 통해서 하려니와 앞으로 새로 짓지 않는 방법으로는 참선을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요긴한 법이라 하는 것을 명심을 하시기를 바랍니다.(처음~20분16초)


(2)------------------

세속에 살려면 아들딸들이 잘 자라고 공부를 잘하고 좋은 학교에 입학을 해야 되겠고, 사업도 잘되어서 돈도 잘 벌어야 되겠고, 직장에 직책도 자꾸 위로 승진을 해야만 되겠고, 아들딸들이 좋은 배필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줘야 되겠고 이러헌 등등 수많은 크고 작은 원들이 있습니다.
그러헌 원을 성취해야만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렇게 열이면 열 다 성취가 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의 능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과 모든 성현께 간절히 소원을 해서 그런 성현의 가피(加被)를 입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겠습니다.

‘잘되면 제 공덕이고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만은 잘되고 못되고 하는 것이 전적으로 자기에게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잘못되면 핑계를 꼭 외부에다 대고 다른 사람한테 그 원인을 책임을 전가(轉嫁)합니다만은,
모든 책임은 자기가 져야 하고 모든 원인은 자기에게 있다고 하는 것을 잘 이해를 한다면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책망(責望)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다 부자가 되기를 바라고 모든 일이 내 뜻대로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요 욕심입니다만은,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또는 모든 성현들은 꼭 그렇게 부귀영화를 누리고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된 것만이 좋다고는 하시지 않았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 중생들은 호강하고 부귀하게 잘살고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고 이럴 때에는 즐거움에 빠져서 게을러지고 오만해지고 거만해지고 남을 업신여기게 되고 성현을 존경하지 않게 되고 진리를 믿으려 하지 아니하고 어떠한 종교에 대한 신앙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금생에 자기가 똑똑하고 잘나서 그렇게 부자로 사는 줄 알지만 원인을 알고 보면 전생에 조금 복 지어 놓은 것이 있어서 전생에 복을 지어서 예금해 놓은 것이 있어서 그놈 빼먹느라고 좀 남부럽지 않게 잘사는 것이지 그거 곶감 빼먹듯이 다 빼먹고 나면 별것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남부럽지 않게 좀 잘살고 호강하고 산다고 해서 조금도 남을 업신여기고 뽐내고 으시댈만한 거리가 되지를 못한 것입니다. 잘살아 봤자 잠깐동안 꿈꾼 것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높은 벼슬과 권리를 가지고 큰소리를 쳐봤자 잠깐 그러다 마는 것입니다. 불과 10년 20년이요, 몇 해 안가면 다 그런 것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 그런 허망한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지금 돈이 없고 가난하고 사업을 해도 잘 안되고 모든 일이 뜻과 같이 되지 않아서 너무너무 속을 상하고 근심걱정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별로 그렇게 걱정할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그러헌 대로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해 가면서 참고 견디다 보면 차츰 일이 풀려나가면서 또 돈을 벌게도 되고 남부럽지 않게 살 날이 또 돌아오고 마는 것입니다.


지난 삼동(三冬) 대단히 추웠습니다. 그렇게 추워서 너무너무 추워서 이렇게 계속해서 추우면 얼어죽을 것 같지만 벌써 새해를 맞이해서 모레면 임술년 입춘(入春)을 또 맞이하게 됩니다.

‘입춘이 지나고 우수(雨水)가 돌아오면 대동강 물도 다 풀린다’ 그럽니다만은,
언제 어떻게 풀린 줄 모르게 동풍(東風)이 불어오고 화신(花信)이 전해오면 여기저기 또 진달래가 피고 산에 산에는 개나리가 벌겋게 피게 필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고생스럽다 하더라도 정법(正法)을 믿고 ‘이뭣고?’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착실하게 보람있게 살아가노라면 금방 봄소식과 함께 우리 가정에도 하나씩 둘씩 우리의 소원대로 되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인생은 어피차 꿈과 같은 것이라고 과거에 모든 성현들이 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잘살아도 꿈이요 못살아도 꿈이요, 허망한 꿈이지만 정법을 믿는 사람은 그 허망한 속에서 허망하지 아니한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무상(無常)하고 허망한 속에서 진실한 것을 발견을 하게 됩니다.

허망한 일생 동안을 영원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불법(佛法)이요 최상승법입니다.

우리의 몸뚱이는 피와 오줌과 고름 이런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추(醜)한 것들로 구성이 되었지만 이 몸뚱이를 주재(主宰)하는 마음자리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그것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정법을 믿고 한 생각 한 생각을 올바르게 그리고 간절하게 다져나가면 피와 오줌과 똥과 고름이 가득차 있는 이 추한 육신(肉身)이 진리의 법신(法身)으로 대광명(大光明)을 놓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신심(信心)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같이 깊고, 산과 같이 동(動)함이 없는 그러헌 굳은 신심을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
굳은 신심을 갖는다면 우리의 큰 소원은 의심 없이 이룰 수가 있는 것이며 세속에 있어서의 조그마한 소원들도 어김없이 성취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호귀(豪貴)에 득도난(得道難)이라, 호강하고 귀한 데에서는 도를 얻기가 어렵다’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선 배부르고 등 뜨시고 호강하고 귀하니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고 그러기 때문에 구태여 신심도... (녹음 끊김) ...성불이니 하나도 필요로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벌집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그 꿀방울을 빨아먹는 동안에는 꿀의 단맛에 취해 가지고,
시시각각으로 자기가 매달려 있는 그 칡덩쿨이 흰 쥐, 검은 쥐에 의해서 계속 끊겨 들어가고 있다고하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고,
그 줄이 끊어지면 천길만길 우물 바닥에 떨어지면 그 우물 속에서는 독룡과 독사가 입을 벌리고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사실도 망각한 채 꿀물만을 빨아먹고 있는 그러한 형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오히려 도 닦을 마음을 발(發)하는 수가 많다 이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대로 뭔 일이 잘될 때 보다는 우리의 마음대로 잘되지 아니하고 정신적인 육체적인 물심양면으로 장애에 부딪치고 내 뜻과 같이 아니 될 때,
그때 발심(發心)해서 정법을 굳게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삼는다면 그 사람이야 말로 최상승법에 깊은 큰 인연을 심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모든 부귀와 호강을 갖추면서도 그러헌 데에 빠지지 아니하고 겸허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실천한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지옥에 떨어질 수 있는 함정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좋은 일에도 지옥의 함정은 있고, 나쁜 일에도 지옥의 함정은 있고, 동서남북 멀고 가까운 모든 곳에 지옥에 떨어질 수 있는 함정도 있고 천당에 올라갈 수 있는 계단도 있습니다.

우리의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곳에 바로 육도(六道)의 윤회(輪廻)가 거기에 있다고 하는 것을 이 최상승법에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20분17초~35분0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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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千江同一月  萬戶盡逢春’ ; [오등회원(五燈會元)] 권13, 용광인(龍光諲)선사 참고.
*(게송) ‘終日走紅塵  失却自家珍’ ; [인천안목(人天眼目)] 1권—빈주문답(賓主問答)에서 분양(汾陽)선사 참고.
*홍진(紅塵 붉을 홍,티끌 진) ; 탐진치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으로 물든 번거롭고 어지러운 속된 세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홍진세계(紅塵世界).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비로자나(毘盧遮那)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이르는 말. 비로자나는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을 형상화한 것.
*법신(法身) : [범]  dharma - kaya 「법 몸」이란 말인데, 실불(實佛)·법성신(法性身)·진여불(眞如佛)·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이며, 「한물건」이라고도 말한다
진여의 본 바탕(眞如本體)을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더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꽉 차 있으되,
네 가지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離四句) 백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수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볼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보신(報身) ; 부처가 전생에 보살로 있을 때 중생을 위해 서원을 세우고 거듭 수행한 결과,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 아미타불과 약사여래가 여기에 해당한다.
*화신(化身) ;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여 때와 장소와, 중생의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나타나 그들을 구제하는 부처님.
석가모니불을 포함한 과거불과 미륵불이 여기에 해당함. 응화신(應化身)·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두두물물(頭頭物物) ; 온갖 사물과 현상.
*수(身數)기도 ; 새해를 맞아 정초에 일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네 번(새벽, 오전, 오후, 저녁)씩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것.
*정근(精勤) ; 노력하는 것. 힘써 일하는 것.
*기도(祈禱) ; 불보살(佛菩薩)의 가피(加被, 중생을 이롭게 하는 불보살의 자비)를 받들어 재앙을 피하고, 복(福)을 더하도록 기도하는 것.
*지성(至誠 궁극 지,정성 성) ; 지극(至極)한 정성(精誠).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소멸(消滅) ; 사라져 없어짐.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혜명(慧命) : 지혜를 생명에 비유한 말.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가산(家産) ; 한집안의 재산.
*관조(觀照) ; 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함.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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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피(加被 더할·베풀 가,입을·두를 피)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威神力)을 받는 것.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것. 가호(加護)와 같음.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입춘이 지나고 우수(雨水)가 돌아오면 대동강 물도 다 풀린다’ ;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속담으로 아무리 추운 날씨도 우수와 경칩을 지나면 누그러진다는 말.
*동풍(東風) ; ①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②봄철에 부는 따뜻한 바람. ③골짜기로부터 산으로 부는 바람.
*화신(花信 꽃 화,소식·편지 신) ; 꽃이 핀 것을 알리는 소식.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안수정등(岸樹井藤) ; 어떤 사람이 벌판을 걷다가 성난 코끼리 한 마리를 만났다. 크게 놀라 달아나다가 다행이 우물을 발견하고, 우물 안으로 뻗어 내려간 칡넝쿨을 붙잡고 간신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곳에는 네 마리의 뱀들이 사방에서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고, 또 밑바닥에는 무서운 독사가 노려보고 있었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그는 칡넝쿨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흰 쥐와 검은 쥐가 나타나서 칡넝쿨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였다.  코앞의 칡넝쿨에 벌집이 있었는데, 그 벌집에서 꿀이 떨어져 입에 들어왔다. 순간 그는 모든 위험을 잊고 그 꿀을 맛있게 핥아 먹었다.

여기서 사람은 범부를, 코끼리는 무상(無常)을, 우물은 사람의 몸을, 칡넝쿨은 생명줄을, 뱀은 사람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사대(四大) 요소(地水火風)를,
흰 쥐는 낮, 검은 쥐는 밤, 즉 흘러가는 세월을 뜻하고,독사는 악한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고통의 세계를, 꿀은 사람을 현혹하는 욕망을 뜻한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