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화선원2016.03.21 21:40

§(081) 심우(尋牛), ‘마음의 찾는 법이 바로 참선법입니다 / 삼처전심(三處傳心) / 내가 나를 깨닫는 진짜 불교의 수행법을 들을 있는 용화사.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만나서 우리에게도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마음의 부처가 우리에게 낱낱이 본래부터 갖추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것입니다. 마음 부처 찾는 , 마음의 찾는 법이 바로 참선법입니다.

참선은 연세가 많고 적은 그러한 것도 상관이 없고, 남녀노소도 상관이 없고, 빈부귀천도 상관이 없고, 지식이 있고 없는 것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배고프면 먹을 알고, 욕하면 성낼 알고 그러한 정도의 생각만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선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선법은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수행 수단입니다.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꽃을 드시는 , 다보탑 전에서 자리를 나누신 , 열반 회상에서 발을 밖으로 내미시는 도리는 경전을 통해서는 진리법은 표현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언어로써 전할 없는 법입니다. 언어로써 전할 없는 법이 바로 참선법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은 경을 읽어 가지고 이해해 들어갈 없는 법이고, 때문에 아무리 49 동안 설하신 팔만대장경을 종횡으로 육두백판으로 외우고 이해를 한다 해도 참선법의 진리는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입니다. 밖에 따로 전하는 법인 것입니다.

아무리 경을 외운다 하더라고 참선에 들어올려면은 자기가 배워서 알고 있는 모든 이론, 모든 이치를 놔버리고 백지(白紙) 같은 마음으로 참선의 문에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경을 많이 읽고 외우고 해서 아무리 진리를 부처님이 설하신 말씀을 이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이 설하실 때에는 그것이 진리법이지마는 중생이 이해하게 되면은 진리법은 이미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맛있는 음식이라도 더러운 그릇에다가 옮겨 담게 되면은 음식은 먹을 없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용화사는 참선법을 여러분에게 가장 알기 쉽게 누구라도 행할 있도록 말씀을 드리는 수도장(修道場) 것입니다.

**송담스님(No.081)—78 4 관음재일 법어(78.04.24.)


(1) 약 6분.  (2) 약 19분.


(1)------------------


무오년 5 24 관음재일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경청을 했습니다.

법문 내용은 참선법(參禪法), 참선법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을 찾는 참선법은 마치 무엇과 같으냐 하면은고삐 없는 소를 잃어 버리고서 소를 찾아나서는 에다가 비유를 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자리는 마치고삐 없는 처럼 한번 놓쳐 버리고 말면은, 놓쳐 버린 고삐 없는 소가 산으로 들로 깊은 숲으로 한번 숨어 버리면 아무리 찾을라고 해도 도무지 어디가 있는지 자취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짜기마다 찾고 찾고 헤매다가 간신히 소의 발자취를 발견하게 됩니다. 발자취를 더듬어서 차츰차츰 가다 보면은 저만치 나무 그늘에 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습을 발견을 하고 있는 데로 쫓아가면은 소는 사람을 보고 두려워서 멀리 달아납니다. 쫓아가고 멀리 달아나고 차츰차츰 그렇게 해서 겨우 어떻게 해서 소를 붙들게 됩니다.

소를 붙들어서 고삐를 잡매 가지고 그래 가지고도 얼마 동안을 ''라는 놈이 도망 다니면은 고삐를 잡고 사람이 끌려다니다가, 그렇게 하기를 얼마 동안을 땀을 흘리고 애를 다음에는 차츰차츰 소도 기운이 떨어지고, ‘사람이 자기를 정말 해칠려고 것이 아니로구나이렇게 생각이 들면서 소가 그렇게 펄펄 뛰고 도망갈려고 하던 것을 덜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차츰차츰 소에게 맛있는 풀도 뜯어 먹이고, 목이 마른 싶으면 물도 먹이고 해서 소가 길이 들게 됩니다.

길이 다음에는 그렇게 들이고 사람이 끌면 소가 따라오고, 소가 가고 싶은 데가 있으면 사람이 따라가 주고, 이리 하면서 아주 소와 사람 사이가 임의(任意)롭게 됩니다.


임의롭게 다음에는 완전히 길이 들게 되죠. 그럴 때에는 고삐를 붙들어 매지 아니해도 사람 가는 데로 소가 슬슬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길이 다음에는 소를 떠억 사람이 타고서 피리 젓대를 불면서 자기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이제는 아주 길을 들여놨기 때문에 소는 노상 고삐를 붙들어 매지 아니하고 집에다 놔두어도 소가 도망가지도 아니하고, 그에 따라서 사람도 소에 대해서는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아니해도 되게 되는 것입니다.


소는 마냥 사람의 관심 밖에서 그저 편안하게 잠도 자기도 하고, 배고프면 풀도 먹기도 하고 이렇게 되어서 나중에는 소도 사람에 대해서 지배를 받을 필요도 없고, 사람도 소에 대해서 신경을 필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렇게 잃어버렸던 소를 찾기 위해서 찾아나서 가지고 갖은 고생 끝에 소를 발견을 가지고 소를 길을 들여서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

이것은 바로 우리가 우리의 마음 언제 잃어버렸는지우리에게도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마음자리, 마음의 부처, 마음 자성 자리를 언제 놓쳐 버렸는지 그것을 잃어 버리고서 무량겁(無量劫) 육도윤회(六途輪廻)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만나서 우리에게도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마음의 부처가 우리에게 낱낱이 본래부터 갖추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것입니다.

마음 부처 찾는 , 마음의 찾는 법이 바로 참선법입니다. 심우(尋牛), 마음 찾는 참선법에 대해서 조실 스님의 간곡한 법문이 계셨습니다.(처음~611)



(2)------------------


오늘은 4 15일에 결제를 하고서 처음 맞는 번째 맞는 관음재일입니다. 오늘이 4 24일이죠? , 번째 맞는 관음재일로써 오늘 오신 여러분 가운데에는 참선을 열심히 하신 분도 계시고,

처음으로용화사에 가면은 좋은 법문(法門) 들을 수가 있다. 그러니 밤낮 기도나 드리고 복이나 빌고 하는 그러한 절에만 다니지 말고, 용화사에 가서 정말 참으로 내가 나를 깨닫는 진짜 불교의 수행법을 들을 있는 용화사로 가라이러한 말씀을 듣고 일부러 어렵게 절을 찾아서 오신 분이 여러 분이 계십니다.

그래서 그런 분을 위하고, 용화사에 진즉부터 나오셨지마는 참선에 대해서정말 금년 여름부터서는 철저히 나도 참선을 보겠다이러한 돈독한 신심(信心) 내신 분도 계시기 때문에 참선하는 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참선은 대단히 간단하고도 누구나 있는 그러한 법입니다.

그렇지마는 철저히 참선에 대해서 믿음이 가지를 아니하고, 그러한 법을 믿기는 해도우리 같은 사람은 해봤자 것이다,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것이다, 또는 말세에 태어났기 때문에 어려울 것이다, 나는 가정을 가지고 살림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러한 참선을 쪼금씩 한댔자 무슨 견성성불(見性成佛) 있겠는가?’


이렇게 해서 스스로 어려운 것으로만 생각하고참선은 가정을 잊어버리고 스님이 되거나 가정일이 별로 바쁘지 아니한 할머니들이나 있는 일이지, 우리 같은 사람은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포자기(自暴自棄) 함으로 해서 아까운 세월만 하루하루 지내가고 그렇게 해서 무상한 목숨은 덧없이 흘러가 버리고, 이제 조금 참선을 있겠다 싶으면은 그때는 이미 어깨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정신은 혼미해지고, 밤낮 누울 자리만 생각이 나고 해서 그때는 이미 때가 늦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참선은 연세가 많고 적은 그러한 것도 상관이 없고, 남녀노소도 상관이 없고, 빈부귀천도 상관이 없고, 지식이 있고 없는 것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배고프면 먹을 알고, 욕하면 성낼 알고 그러한 정도의 생각만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선은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선법은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수행 수단입니다.



부처님께서 지금으로부터 삼천 전에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궁에 태자로 태어나셔서, 부처님을 낳으신 어머니께서마야 부인(摩耶夫人)께서 엿새 만에 세상을 하직하셨습니다. 바로 뒤를 이어서 부처님의 이모이신 대애도(大愛道) 부인께서 부처님의 계모로 들어오셔서 부처님을 양육을 주셨습니다.


계모, 이모이면서 계모이신 대애도 부인께서 부처님을 양육을 주신 덕택으로 부처님은 무럭무럭 자라셔서 어릴 적부터서 그렇게 총명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엿새 만에 낳아주신 생모(生母) 돌아가신 영향을 받으셨음인지 항시 외로움을 느끼시고 조용한 앉아서 묵묵히 무엇인가 인생의 무상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는 그러한 일이 종종 있으셨다고 그럽니다.


그러자 농부들 농사짓는 것을 상감마마를 모시고 나가셔서 구경을 하시다가 쟁기로 논을 가는데 많은 벌레들이 생겨 나오고, 튀겨져 나오면 까막까치가 그것을 쪼아 먹고, 그런 것을 보고,

! 약육강식(弱肉强食)이로구나. 저런 약한 벌레는 강한 짐승에 의해서 잡아먹히는구나. 어째서 사람이라든지 저런 짐승 동물들이 어디서 태어났으며, 무엇하기 위해서 태어났으며, 태어났으면은 서로서로 화목하게 오래오래 일이지, 어떻게 저렇게 해서 보습에 찍혀서 죽기도 하고, 새나 까막까치에 잡아먹히기도 하고, 그러다가 늙어서 병들어 죽는가?’


이런 것을 보고 공연히 심사가 괴롭고 측은하고 인생이 무상한 것을 느끼시고, 결국은 그러한 모든 것들이 동기가 되어서 부처님은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 같이 버리시고, 정든 아내와 귀여운 라후라(睺羅) 아드님을 버리시고, 밤중에 성을 넘어서 히말라야 산속으로 들어가셔서 스스로 머리를 깎고서, 12 동안이라고 하는 세월을 고행 수도를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서 대도를 성취하신 다음에 법을 설하셔서 49년간,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 일생 동안을 당신이 깨달은 진리법을 설하셨습니다.


처음에 21 동안에 걸쳐서 당신이 깨달으신 진리법을 고대로 설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진리법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내가 대도를 깨쳐서 모든 중생들에게 깨달은 진리법을 설했지마는 아무도 이해하는 사람이 없구나.’

그래서 부처님은 드디어차라리 내가 법을 설한들 아무도 이해할 사람이 없을 바에는 차라리 내가 열반에 드는 것이 낫겠다이러한 생각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공중에서 공청(空聽) 있기를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서 옅은 법문부터서 설해 가지고 차츰차츰 중생의 근기가 수승해짐에 따라서 점점 깊은 말씀을 하신 다음에, 마지막에 가서 부처님의 깨달으신 진리를 설하신다면은 많은 중생 가운데에는 반드시 마음의 눈을 떠서 대도를 성취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이러한 공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생각을 돌리시고 아함경이라고 하는 아주 옅으디 옅은 법문부터서 설법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아함경(阿含經) 12 동안을 설하시고, 다음에 방등경(方等經) 8 동안 설하시고, 그리고서 깊은 경전 반야경을 21 동안에 걸쳐서 설하셨습니다. 다음에 그보다도 깊은 진리가 담겨 있는 법화경을 8 동안에 걸쳐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언어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삼처전심(三處傳心)입니다.


영산회상(靈山會上) 백만억 대중이 모였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것은 부처님, 성현 가운데에 제일 높으신 성현이신 석가여래 부처님께서 중생을 위해서 법을 설하실려고 하는 그것을 하늘나라에 있는 제석천왕이옥황상제가 부처님을 찬탄하는 뜻으로 하늘에서 꽃비를 내렸습니다.

송이를 부처님께서는 주워서 대중 앞에 보이셨습니다. 아무도 대중 가운데에 부처님께서 꽃을 드신 뜻을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가섭(迦葉) 존자! 일생을 떨어진 누더기를 입고 날마다 걸식을 하면서 도를 닦으신 부처님의 제자이신 가섭 존자가 부처님께서 꽃을 드신 뜻을 이해를 하고서 비긋이 웃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벌써 많은 백만억 대중 가운데에서 오직 가섭 존자 사람이 진리법을 이해를 했구나.’ 그것을 아시고 부처님께서는 가섭 존자에게 법을 전하셨던 것입니다.


다음에 한번은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시는데 땅에서 탑이 떠억 솟아올랐습니다. 탑이 공중으로 솟아올랐습니다. 그래 가지고 속에서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시니 그것이 너무나도 법이 위대하시고 부처님이 거룩하시니까, 부처님의 설하신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무량겁전 다보불께서 부처님의 설하신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다보탑 앞에서 부처님께서는 누더기를 입고 있는 가섭 존자에게 자리를 반을 비켜 주시면서 가섭 존자로 하여금 자리에 앉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번째 법을 전하신 것입니다.


마지막 번째 법을 전하신 것은 부처님께서 팔십 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열반에 드셨는데 모든 제자들이 사라쌍수(沙羅雙樹) () 부처님 열반하신 석상(席上) 모였습니다.

오직 가섭 존자는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부터서 너무 곳에서 공부를 하고 계셨기 때문에물론 가섭 존자도 신통으로써 감았다 사이에 부처님 열반하신 자리에 참석할 수가 있었지마는 너무너무 부처님을 존경했기 때문에 신통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발로 걸어서 걸어서 부처님 열반하신 자리에 오시느라고 여러 날이 걸렸습니다.


그때 이미 부처님은 칠보로 장엄한 () 속에 () 해서 입관을 모신 뒤였습니다.

그런데 가섭 존자가 오셔서부처님께서는 평소에 법을 설하시기를대도를 성취해서 견성성불을 하면은 생사해탈을 한다 하셨는데 이렇게 열반에 드시다니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이러면서 부처님 발밑에 절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벌써 열반하신 지가 여러 날이 되었건만 부처님께서는 속에서 발을 밖으로 쓰윽 내밀으셨습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전하신 언어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전하신 번째 전하심인 것입니다.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꽃을 드시는 , 다보탑 전에서 자리를 나누신 , 열반 회상에서 발을 밖으로 내미시는 도리는 경전을 통해서는 진리법은 표현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언어로써 전할 없는 법입니다. 언어로써 전할 없는 법이 바로 참선법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은 경을 읽어 가지고 이해해 들어갈 없는 법이고, 때문에 아무리 49 동안 설하신 팔만대장경을 종횡으로 육두백판으로 외우고 이해를 한다 해도 참선법의 진리는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입니다. 밖에 따로 전하는 법인 것입니다.


아무리 경을 외운다 하더라고 참선에 들어올려면은 자기가 배워서 알고 있는 모든 이론, 모든 이치를 놔버리고 백지(白紙) 같은 마음으로 참선의 문에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경을 많이 읽고 외우고 해서 아무리 진리를 부처님이 설하신 말씀을 이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부처님이 설하실 때에는 그것이 진리법이지마는 중생이 이해하게 되면은 진리법은 이미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맛있는 음식이라도 더러운 그릇에다가 옮겨 담게 되면은 음식은 먹을 없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법은 어떠한 법이라도설하신 없이 설하신 이기 때문에 부처님이 설하신 모든 법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진리법 자체인 것입니다.

그러나 법이 이미 중생의 입을 통해서 설해지고, 중생의 귀를 통해서 받아들여질 때에는 이미 법은 김빠진 맥주와 같은 것으로 변해 버리고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전을 통해서 아무리 부처님의 진리법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일려고 해도 중생심(衆生心)으로 받아들여지는 한에 있어서는 그것은 진정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은 부처님의 진리법을 바로 중생인 몸에서 마음에 구현을 시킬 수가 있느냐? 그것이 바로 교외별전이신 참선법입니다.

용화사는 참선법을 여러분에게 가장 알기 쉽게 누구라도 행할 있도록 말씀을 드리는 수도장(修道場) 것입니다.(612~2438)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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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잡매다 ; ‘잡아매다(①흩어지지 않게 한데 매다. ②달아나지 못하도록 묶다. ③꼼짝 못하게 하다)’ 준말.

*임의롭다(任意롭다) ; ①얽매이는 것이 없어 하고 싶은 대로 있다. ②서로 친하여 거북하지 아니하고 행동에 구애됨이 없다.

*젓대 ; ‘(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 일상적으로 이를는 . ()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2)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자포자기(自暴自棄) ; 절망 상태에 빠져 스스로 자신을 내버리고 돌보지 않음.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대애도(大愛道) ; 산스크리트어 mahāprajāpatī  마하파사파제(摩訶波闍波提)라고 음역. 싯다르타의 어머니 마야(māyā) 여동생. 마야가 싯다르타를 낳은 7 만에 세상을 떠나자 싯다르타를 양육하였다. 정반왕(淨飯王)과의 사이에 난타(難陀) 낳았고, 왕이 세상을 떠나자 싯다르타의 아내 야소다라와 함께 출가하였다.

*나후라(睺羅) : 산스크리트어 rāhula 음사. 붓다의 아들.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고향에 왔을 , 사리불(舍利弗) 목건련(犍連) 스승으로 하여 출가함. 지켜야 것은 스스로 지켜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 일컬음.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가섭(迦葉) : [] Mahakasyapa 음을 따라 마하가섭(摩訶迦葉)이라고도 하며, 뜻으로는 대음광(大飮光)• 대구씨(大龜氏) 번역한다。Kasyapa ()이고, maha 크다는 말이니, 다섯 가섭 가운데 맏이를 뜻한다。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분。본래는 바라문으로 석존이 성도한 년쯤 뒤에 부처님께 귀의하였다。그는 제자 가운데서도 주를 극도로 검박하게 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하는 두타행(頭陀行) 제일이었으며 부처님의 의발(衣鉢) 받은 상수 제자(上首弟子)로서 부처님이 입멸한 , 오백 아라한을 데리고 제일 결집(第一結集) 하면서 우두머리가 되었다。부처님 이후의 법통(法統) 말할 때에는 그가 초조(初祖) 된다.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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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정진(精進)2016.03.14 08:06

§(508) (게송)승침상속의선마~ / 상나화수(商那和修) 존자의 방편법과 우바국다 존자 / 심우송(尋牛頌) / 지혜로운 방편.


부모와 부부와 자녀 그리고 세상에 모든 살림살이 속에 있으면서 거기서 벗어나는 길이 그게 활구참선이여. 철저하게 활구 참선법을 믿고, 나도 법을 믿고 여법(如法)하게 실천을 한다면 나도 확철대오(廓徹大悟) 있다고 하는 깊은 철저한 신심.

무상호불(無相好佛)’이라고 칭송을 받을 만한 그러한 대도인(大道人) , 검은 그런 유치원 학생이나 만한 그러한 간단한 방편(方便)법을 가지고 수다원과를 증득했다.

그러면 우리도 대학을 나왔건 또는 사서삼경을 배웠건, 부처님의 여러 경전을 읽었건 간에 자기 나름대로 닦는데 도움이 만한 좋은 방편을 써서 공부를 열심히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깨달음은 비약적인 것이지 차츰차츰 과정을 밟아 올라가서 무슨 학문 하듯이 알아 들어가는 공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모든 일이 지혜로운 방편이 없이는 구경(究竟) 목적지에 가장 바르게, 가장 빨리 도달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송담스님(No.508)−93 6 첫째 일요법회(93.06.06)

(1) 약 20분.  (2) 약 4분.

(1)-----------------


승침상속의선마(昇沈相續蟻旋磨)하고  증애교전상익니(憎愛交纏象溺泥)로구나

나무~ 아미타불~

미긍현애친살수(未肯懸崖親撒手)하고  부지신고대하시(不知辛苦待何時)이리요

나무~ 아미타불~


승침상속의선마(昇沈相續蟻旋磨)하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끊임없이 개미가 마치 맷돌을 돌듯이, 착한 일을 하면 천상에 태어나고 죄를 지으면 삼악도(三惡道) 떨어지고. 천당에 올라갔다가 복이 다하면 떨어지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것이 마치 개미가 쳇바퀴 돌듯 한다 그말이여.


증애교전상익니(憎愛交纏象溺泥). 미워했다가 사랑했다가, 마음에 들면 이뻐하고 뜻과 어기면은 미워하고 그래가지고 애정과 원한이 얽히고설켜서 미워하지 아니하면 이뻐하고, 이뻐하지 아니하면 미워하고.

그것이 마치 그렇게 서로 얽혀 가지고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 늙은 코끼리가 깊은 수렁에 빠져 가지고, 발을 빼면은 다른 발이 빠지고, 발을 간신히 빼면은 다른 발이 빠지고 가지고, 도저히 진흙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거와 같다 그말이여.


인간 세상에는 착한 일을 하면 좋다하고, 나쁜 짓을 하면 모다 미워하고 그러지만,

쪼금 좋은 일해서 좋은 일한 과보(果報) 복을 받는 것이나, 나쁜 죄를 지어 가지고 과보로 축생이나 아귀나 지옥에 떨어진 것이나, 그것이 쪼금 미워했다가 이뻐했다 가지고 인간관계가 얽히는 것이나 그것이 마찬가지다 그말이여.


왼발 빠지고 오른발 간신히 빼고 들어있어 봤자 얼마 가서 다시 오른발이 빠지고, 왼발을 간신히 들어올리나 끝끝내 코끼리가 진흙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고,

좋은 가지고 천상에 태어났다가 복이 다하면 다시 떨어져 가지고 () 지으면은 삼악도에 떨어졌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것이 무엇이 그렇게 다를 것이 있냐 그말이여.


미긍현애친살수(未肯懸崖親撒手), 선과 악에서 ! 벗어나고, 미워하고 이뻐한 그것에서 ! 벗어나 버려야지,

그것을 용기와 지혜로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지신고대하시(不知辛苦待何時). 쓰라리고 괴로운 것에서 언제 거기서 벗어날 것이냐 그말이여.

증애심(憎愛心) 선악 시비(是非)에서 용감하게 ! 벗어나 버려야 하거든. 벗어난다고 하는 것이 대단히 힘이 들어서 정말 투철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시비와 선악, 증애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우선 아까 조실 스님께서 심우도(尋牛圖) 관한 법문과 활구참선(活句參禪) 대한 법문을 주셨는데, 활구참선을 믿고 그것을 열심히 함으로써만이 구덩이에서 벗어날 수가 있어.


갑자기, 위로는 부모가 계시고, 아래로는 아들과 딸이 있고, 옆으로는 모다 형제간도 있고 부부간도 있는데, 그것을 일조(一朝) 끊어버리고 산중에 들어가서 머리를 깎고 () 닦는다고 하는 것은 여간해서 그것은 흉내내기가 어렵고 그걸 따르기가 어렵고,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걸 벗어나기가 어려운 것이고.

속에서 부모와 부부와 자녀 그리고 세상에 모든 살림살이 속에 있으면서 거기서 벗어나는 길이 그게 활구참선이여.


철저하게 활구 참선법을 믿고, 나도 법을 믿고 여법(如法)하게 실천을 한다면 나도 확철대오(廓徹大悟) 있다고 하는 깊은 철저한 신심이 있어야 하고, 자기가 믿을 있는 스승을 찾아서 화두(話頭) 가지고, 되고 되고 하는 것도 따지지 말고 그저 앉아서나 서서나, 걸어갈 때나 차를 때나, 일을 때나 자꾸 화두를 참구(參究) 하거든.


이뭣고?’ ‘이뭣고?’ ‘ 몸뚱이 끌고다니는 이놈이 뭣고?’

그러다가 나중에 걸음 들어가서지금 이뭣고 하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 다그쳐 들어가.


잘되느니 안되느니, 망상이 일어나서 못하느니, 잡념이 일어나서 못하느니, 졸음이 와서 못하느니, 일이 바빠서 못하느니, 시끄러워서 못하느니, 그런 핑계를 필요가 없어. 안될수록에 마음을 가다듬고이뭣고?’ ‘이뭣고?’ 해보라 그말이여.

자꾸 챙기고 챙기고 하다 보면 달을 챙겨, 달을 부셔대, 달을 . 그래도 안되어도 상관 말고 다섯 , 여섯 , 이렇게 하다 보면 나중에는 저절로 화두가 들어진다 그말이여.



부처님 다음에 가섭 존자(迦葉尊者) 부처님의 법등(法燈) 이어받고, 가섭 존자 다음에는 아난 존자(阿難尊者), 아난 존자 다음에는 상나화수(商那和修), 상나화수 다음에는 우바국다 존자(優婆毱多尊者)인데, 우바국다 존자가 상나화수 존자 밑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 상나화수 존자가 돌하고 검은 돌하고지금 같으면은 바둑과 같은 건데, 뭉텅이 하고 검은 뭉텅이를 자루 요렇게 주고서, ‘악심이 일어나면성을 내거나 무슨 하여간 악한 마음이 나거든 검은 돌을 내려 놓고, 착한 마음이 일어나면 돌을 내려 놔라이렇게 가르켰어.


그래서 우바국다 존자가 스승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 검은 주머니를 가지고 다니면서, 그저 악한 마음만 일으키면은 검은 돌을 내려놔. 착한 마음이 나면은 돌을 내려놔.

그렇게 해서 날마다 하루,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그것을 했다. 이틀을 , 사흘을 , 차츰차츰 검은 돌은 줄어지고 차츰차츰 돌이 불어났다. 삼사일쯤 가니까 돌과 검은 돌이 비슷비슷해 . 일주일이 지나니까 칠일이 되니까 검은 돌은 하나도 내려놓지 않고 돌만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런 연유(緣由)에사 상나화수 존자가 제자인 우바국다 존자에게고집멸도(苦集滅道)’—고집멸도를 사성제(四聖諦) 그러는데,

()’라고 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은 괴로운 것이다. 전체가 괴로운 것이다. 몸뚱이도 괴로운 것이요, 세상에 우리 모든 경계를 보고 내가 느끼는 저것은 뭐다뭐다 하고 ! 경계를 만나자마자 마음에서 그것을 받아들인 , 그것도 괴로운 것이다.

받아들여 가지고 그렇게 생각 생각 하는 것도 괴로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이 괴로운 것이다. 이렇게 괴롭다고 확실히 마음에 깨닫는 거여.


다음에()’이라 하는 것은 괴로우냐 하면은 괴로움의 원인이 ()이거든괴로움을 일어나게 하는 것이, 원인이 ()이여.

다음에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 ()이고, 다음에 고집멸도는 팔정도(八正道) 닦으면 열반에 들어서 괴로움이 없어진다 그거거든.


이것이 고집멸도 사성제법(四聖諦法)이라 하는 건데, 사성제법을 상나화수 존자가 우바국다 존자에게 법문을 설해 주셨어. 거기에서 수다원과(須陀洹果) 증득을 했다.

수다원과(須陀洹果) 소승의 사과(四果) 중에 수다원과를 깨달았다. 우바국다 존자는 일만에 , 검은 돌을 내려놓는 그러한 방편을 통해서 수다원과를 증득했다 그러는데,


상나화수 존자는, 상나화수가 아니라 우바국다(優婆毱多) 존자는 어떠한 분이냐 하면은 나중에 상나화수 존자의 법을 이어서 4 조사(祖師) 되는 분인데, 이분은 부처님과 같이 삼십이상(三十二相) 갖추지 못했고, 부처님처럼 팔십종호(八十種好) 갖추지 못했어.

그렇지마는 부처님과 (같은) 삼명육통(三明六通) 팔해탈(八解脫) 증득했어. 모든 점에 있어서 부처님과 조금도 차등이 없을 만큼 그러한 도사가 되셨어.

그래서 우바국다 존자의 별명이 무상호불(無相好佛)이여삼십이상() 팔십종호(), 그래서 상호가 없는, 상호는 갖추지 못했지마는 부처님과 똑같다 해서 무상호불(無相好佛)이라, 별명이 그런데.


그러한무상호불이라고 칭송을 받을 만한 그러한 대도인(大道人) , 검은 그런 유치원 학생이나 만한 그러한 간단한 방편(方便)법을 가지고 수다원과를 증득했다.

그러면 우리도 대학을 나왔건 또는 사서삼경을 배웠건, 부처님의 여러 경전을 읽었건 간에 자기 나름대로 닦는데 도움이 만한 좋은 방편을 써서 공부를 열심히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말이여.


말을 많이 하고 수다를 떠는 사람은 특별히 말을 적게 하리라. 세상에 살면서 아주 말을 수는 없고, 필요한 말만 하되 말을 적게 하는 무슨 기구를 몸에 지닌다든지 그래가지고 말이 여까지 불쑥 나올라고 하면 ! 참고 참고해서, 대신 ! 참으면서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도 좋고.


음식을 보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옆에 사람 보지도 않고 우선 입으로 가지고 가서 배가 불러야 옆에 사람보고, 자셔그런 사람은 음식을 보자마자 대번에 손이 가려고 그러면 거두어들이면서, 숨을 들어마시면서 침을 꼴딱 삼키면서이뭣고?’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돈만 보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갖고싶어 하는 마음이 나는 사람은 돈을 보자마자 손을 주먹을 쥐면서이뭣고?’


칭찬한 것을 좋아하고 잘못을 지적해 주면은 성을 내고 싫어하는 사람은아마 대부분이 그러기가 어렵지마는 그러한 사람은 남이 나를 칭찬해 주면은, 칭찬한 좋아하지 말자.’

잘못을 지적을 해주면 성을 내는 사람은 성이 여까지 올라오려고 하자마자 ! 주먹을 쥐면서이뭣고?’

칭찬해 것은 도둑놈이고, 나의 잘못을 지적해 사람이야말로 정말 훌륭한, 나를 진정으로 위해 주는 사람이다공자님, 성현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해서 생각을 돌이키고 해서, 일상 생활 속에 항상 자기를 돌이키고 반성하고 하루하루를 우바국다 존자가 , 검은 돌로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듯이 우리도 항상 생활 속에서 그런 간편한 방편 법을 가지고 자기의 마음을 화두로 돌리고, 자꾸 일어나는 생각을 거두어서 자꾸 화두를 돌리다 보면, 자연히 탐심(貪心) 줄어지고 진심(瞋心) 줄어지고 어리석은 마음도 줄어질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게 해서 , 이태 일구월심(日久月深) 가다 보면 사람이 달라질 것은 불을 보는 것보다도 명확한 일일 것이다.(처음~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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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십우도(十牛圖), 심우송(尋牛頌) 법문도 역시 첫째는 소를 찾는 거고[심우(尋牛)], 둘째는 소를 찾다가 소의 발자죽을 발견한 거고[견적(見跡)], 셋째는 발자죽 따라가다 보니까 소를 보았다 그말이여[견우(見牛)]. 그리고 넷째는 소를 간신히 붙들었어[득우(得牛)]. 다섯째는 소를 붙들어 가지고 그것을 길을 들인다[목우(牧牛)] 말이거든.


여섯째는 길들인 소를 타고 자기집으로 돌아오는 거고[기우귀가(騎牛歸家)]. 일곱째는 소는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는 거고[망우존인(忘牛存人)]. 여덟째는 인우구망(人牛俱忘)이여, 소도 잊어버리고 사람도 잊어버려, 그러한 경계를 말한 거여. 아홉째는 반본환원(返本還源)이여, 근본으로 돌아가는 거고. 열째는 수수입전(垂手入廛)이여, 떠억 손을 드리워 가지고 모다 거리로 나가는 거다.


그러면 첫째 심우(尋牛) 보리심(菩提心) 발하는 거여, 발심(發心) 하는 단계고. 번째, 번째, 번째, 다섯 번째는 수행(修行)하는 과정이고,

그리고 일곱째, 여덟째는 보리(菩提) 성취하는 거여. 성보리(成菩提), 깨달음을 얻는 경계고.

아홉 번째 반본환원은 열반(涅槃) 경계에 들어가는 거고, 번째는 좋은 방편을 써서 중생 교화하는 경지다 말이거든.


뛰어서여래(如來) 들어가는 ,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하는 것이 최상승법인 활구참선이지만,

그것을 우리 중생으로 하여금 과정을 알아듣게 설명을 하기 위해서 고인(古人)네들은 이런 심우송(尋牛頌)—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하고, 심우도(尋牛圖)라고도 하는 차례차례 과정을 이렇게 시로써 표현해 것인데,


깨달음은 비약적인 것이지 차츰차츰 과정을 밟아 올라가서 무슨 학문 하듯이 알아 들어가는 공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모든 일이 지혜로운 방편이 없이는 구경(究竟) 목적지에 가장 바르게, 가장 빨리 도달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1928~2247)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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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승침상속의선마~’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二十九'에서 '寄同參十首' 게송 참고.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 죽어서 간다는 가지 괴로운 세계.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

*증애심(憎愛心) ;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 애증(愛憎).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심우도(尋牛圖) ; 십우도(十牛圖). 목우도(牧牛圖). 수행자가 발심(發心) 가지고 견성(見性)해서 중생교화하는 데까지 10단계로 나눠서 그림으로 그린 . 게송으로 읊은 것을 심우송(尋牛頌), 십우송(十牛頌)이라 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일조(一朝) ; 주로일조에 꼴로 쓰여, 하루 아침이라는 뜻으로, 갑작스럽도록 짧은 사이를 이르는 .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가섭(迦葉) : [] Mahakasyapa 음을 따라 마하가섭(摩訶迦葉)이라고도 하며, 뜻으로는 대음광(大飮光)• 대구씨(大龜氏) 번역한다。Kasyapa ()이고, maha 크다는 말이니, 다섯 가섭 가운데 맏이를 뜻한다。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

본래는 바라문으로 석존이 성도한 년쯤 뒤에 부처님께 귀의하였다。그는 제자 가운데서도 주를 극도로 검박하게 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하는 두타행(頭陀行) 제일이었으며 부처님의 의발(衣鉢) 받은 상수 제자(上首弟子)로서 부처님이 입멸한 , 오백 아라한을 데리고 제일 결집(第一結集) 하면서 우두머리가 되었다。부처님 이후의 법통(法統) 말할 때에는 그가 초조(初祖) 된다.

*법등(法燈) ; 부처님의 가르침. () 세계의 캄캄한 마음을 없애는 것을 등불에 비유한 .

*아난존자(阿難尊者) : [] Ananda 음을 따라 아난타(阿難陀) 쓰고, 줄여서 아난(阿難) 또는 아란이라 하며, 뜻으로 번역하여 환희(歡喜) 또는 경희(慶喜)라고 하니, 기쁘다 뜻이다。

부처님의 사촌이며 조달(調達) 동생이다。부처님 성도하시던 밤에 났고, 스물 다섯 살에 출가하여 25 동안 부처님의 시자(侍者) 있었으며 십대제자 가운데서도 다문제일(多聞第一) 총명이 놀라웠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가섭존자의 주관으로 왕사성 밖에 있는 필발라굴(畢鉢羅窟 Vaibhara)에서 오백 성승(聖僧) 모여 경전을 결집하는데 아난존자는 때까지 아직 성과(聖果) 얻지 못하였으므로 거기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가, 가섭존자에게 묻기를 『부처님께서 사형(師兄)에게 법을 전하실 때에 금란가사(襴袈裟) 말고 따로 무엇을 전하신 것이 있읍니까?』『아난아』『예?』『문 밖에 찰간(刹竿)대를 꺾어 버려라! 』하였다。그러나 아난은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용맹정진 사흘 만에야 비로소 크게 깨치고 나서, 회의에 참석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대로 외니 하나도 틀림없음을 대중이 증명하여 경의 결집이 완성된 것이다。그 가섭존자로부터 법통(法統) 받았다가 상나화수(商那和修)에게 법을 전하였다.

*사성제(四聖諦) ; 사제(四諦). () ‘sacca’ 번역으로 진리를 뜻함. (, 괴로움) 소멸시켜 열반에 이르는 가지 진리. 사성제(四聖諦,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고도 .

①고제(苦諦, 苦聖諦) : ‘(, 괴로움)’라는 성스러운 진리.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 고다”(상응부)

②집제(集諦, 集聖諦) : ‘고의 원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몹시 탐내어 집착하는 갈애(渴愛) () 일어나는 원인이라는 진리.

③멸제(滅諦, 滅聖諦) : ‘고의 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됨으로써 (-괴로움) 소멸되어 고의 끝남, 열반에 이른다는 진리.

④도제(道諦, 道聖諦) : ‘고의 멸에 이르는 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팔정도(八正道)—정견(正見, 바른 이해) · 정사유(正思惟, 바른 생각) · 정어(正語, 바른 ) · 정업(正業, 바른 행위) · 정명(正命, 바른 생계) · 정정진(正精進, 바른 노력) · 정념(正念, 바른 마음챙김) · 정정(正定, 바른 집중)— 갈애를 소멸시켜,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팔정도(八正道) ;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수행의 올바른 여덟 가지 . 정견(正見),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正定), 정사유(正思惟), 정정진(正精進). 팔성도(八聖道) 이른다.

*수다원(須陀洹) ; 산스크리트어 srota-āpanna 팔리어 sota-āpanna 음사(音寫). 예류(預流입류(入流)라고 번역. 욕계·색계·무색계의 견혹(見惑) 끊은 성자. 깨달음의 길을 하천의 흐름에 비유하여 흐름처음으로 성자의 계열에 들었으므로 예류·입류하고 .

경지를 수다원과(須陀洹果예류과(預流果),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수다원향(須陀洹向예류향(預流向)이라 . 초기불교에서 성문(聲聞)으로서 해탈하는 길은성문사과(聲聞四果)’라고 하여, 수다원(須陀洹사다함(斯陀含아나함(阿那含아라한(阿羅漢) 4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견혹(見惑) : ①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