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精進) 수행2019. 3. 24. 10:40

 
 
§(531) (게송)본참공안몰심사~ / 내비두는 것이 망상 다스리는 법 / 일체 경계가 법문 / 한 생각 단속하는 곳은 언제나 정법시대 / (게송)한산정상월륜고~ / 세 천사, 노·병·사(老·病·死).
 
불법(佛法)이라 하는 것이 부처님과 조사와 모든 보살들이 우리를 위해서 그 자신들은 뼈아픈 육체적, 정신적 고통 고행을 극복하면서 터득한 길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다 그말이여. 우리는 남겨 주신 그 법(法)에 의해서 그 법을 진실로 믿고 열심히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똥 주머니요, 오줌 주머니요, 피 주머니요, 고름 주머니여. 해부를 해서 보면 피와 오줌과 고름과 똥으로 가득차 있어. 그러나 그 속에 불생불멸한 영원한 보배가 들어 있다. 우리는 그것을 확실히 믿어야 하는 것이여.
 
**송담스님(No.531)—94년 5월 첫째일요법회 (용531)

(1/3) 약 19분.

(2/3) 약 16분.

(3/3) 약 15분.

 

(1/3)----------------
 
본참공안몰심사(本參公案沒心思)하면  철벽은산백부지(鐵壁銀山百不知)니라
나무~아미타불~
의래의거의무간(疑來疑去疑無間)하면  고목개화만고지(枯木開花滿故枝)니라.
나무~아미타불~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몰심사(沒心思)하면,
무(無)자 화두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판치생모 화두를 하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뭣고 화두를 하신 분은 「이뭣고?」
이렇게 해서 자기의 본참공안에 철두철미 의심(疑心)을, 의관(疑觀)을 해서 완전히 온갖 마음 생각하는 바가 아주 끊어져.
 
철벽은산백부지(鐵壁銀山百不知)여.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 가지고 타성(打成)이 일편(一片) 되어가는 것이 일체 사량(思量)과 복탁(卜度), 따지고 분석하고 적용하고 더듬고 하는 그런 것이 없는 그 상태가 은산철벽(銀山鐵壁)이여.
깨뜨리고 나갈래야 나갈수록 콱! 맥히기를 은산철벽처럼 되어 가지고 다맛 알 수 없는 의단뿐이다 그말이거든.
 
의래의거의무간(疑來疑去疑無間)이여.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오직 자기의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으로 가고 의심해 와. 그래 가지고 의심이 끊어짐이 없어.
더이상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가 없어. 그렇게 해서 의단이 독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어느 찰나에 어떠한 경우에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돼.
 
의단을 타파하면 마치 고목나무가, 봄이 돌아오면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던 나무에 꽃이 만발해서 가지마다 그 아름다운 꽃이 가득하듯이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된다 이거거든.
 
 
오늘은 갑술년 5 1 첫째 일요일날인데 방금 우리는 전강 조실스님께서 계축년에 설하신 법문을 경청을 했습니다. 법문 내용이 순전히 활구참선을  가는데 우리의 마음가짐, 공부해 나가는데 있어서 구체적인방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요새 참선을 할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고  열심히 할려고 하는  많지마는 그 방법이 바르지 못하면 애만 썼을 뿐이지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은 자기의 본참화두는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아는 것이 아니고, 의리(義理)로 따져서 아는 것도 아니여. 다맛 꽉 혀서   없는 의심으로, 의관(疑觀)으로 참구(參究)를 하는 것이여.
'참구한다' 그러니까, 자기가 알고 있는 온갖 불교의 교리라든지 이론이라든지 철학적으로 이것을 분석하고 따지고 더듬어 들어가서 '아! 이것이로구나'하고 이렇게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여.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라고 하는 데에 의심의 초점을 거기다가 두어야 .
「어째서?」 「어째서 () 했는고?  갈수록  막혀서  수가 없어야지,  가면서 차츰차츰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고,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고, '아하! 이것이로구나' 이렇게 아는 것이 아니여,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온갖 경전을  해석할  알고,  외우고 안다하더라도 참선해 나가는 데에는 그런 것이 도무지 소용이 없어. 그런 것을 가지고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 아니여.
  버리고 오직   없는, ! 맥혀서   없는 의심으로 「어째서 () 했는고? 이렇게만  나가는 거여.
 
 
비불비심비시물(非佛非心非是物)이라  만로피대긱신산(謾勞皮袋喫辛酸)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현전경색청여세(現前境色淸如洗)하야  일일위군세지진(一一爲君細指陳)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비불비심비시물(非佛非心非是物)이여. 이것이 부처라고 해도 아니요, 마음이라 해도 아니요, 어떤 물건이라 해도 아니다 그말이여.
만로피대긱신산(謾勞皮袋喫辛酸)이여. 쓸데없이 이 가죽푸대, 육체를 괴롭혀. 그래 가지고 그 쓰라린 고생만을 한다 그말이여.
 
참선을 하기 위해서 단식을 한다, 생식을 한다, 묵언을 한다,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한다,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하고 일종(一種)을 한다, 산중에 들어가서 벽곡(辟穀)을 한다. 심지어는 저 인도나 네팔이나 태국 같은 데 그런 데에 가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 정진을 할려고 애쓰는 분도 있다 그말이여.
 
어떻게 했으면 부처님 6년 고행(苦行)해서 피골이 상접하시듯이 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갖은 고통을 사서 하면서 바른 깨달음을 얻을까?
물론 목숨을 거기다 바치고 청춘을 바치고 인간으로서의 모든 욕락을 다 바치고서 오직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온갖 고생을 사서 하는 그 신심은 충분히 훌륭한 것이고 찬양을 할만 하지만, 육체를 괴롭히고 갖은 그 육체를 괴롭히고 자기의 모든 자유로운 것을 제한을 하면서 그렇게 한다고 해서 깨달음을 빨리 얻은 것은 아니여.
 
정진을 하되, 어쨌든지 몸에 긴장을 풀고 단정하게 앉되 어깨에 힘을 빼고 목에 힘을 빼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호흡을 하면서 알 수 없는 의심관(疑心觀)을 해 나가야지, 몸뚱이를 못살게 구는 데에다가 주력을 해서는 안 된다 이거거든.
 
현전경색(現前境色)이 청여세(淸如洗)여. 우리 눈앞에 나타나 있는 모든 경색(境色)—산, 물, 나무, 돌, 바람, 산천초목(山川草木)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씻은 듯이 깨끗하다 청청하다 그말이여.
 
요새 자연이 모다 오염이 되어서 공기 자체가 더럽고 물이 더러워지고 그래 가지고 옛날과 같지는 않지만 그 자체는 낱낱이 다 청정한 거여. 그 자체가 '더럽다, 깨끗하다' 그런 생각이 없는 거여.
우리가 사람이 들어서, 내가 들어서 더럽느니 더럽지 않느니 하고 거기다가 분별심을 내는 것이지, 그 자체는 더럽느니 깨끗하느니 그런 생각이 없어. 그래서 있는 그대로 그 자체는 깨끗한 거다 그말이여.
 
일일위군세지진(一一爲君細指陳)이여. 산이면 산, 물이면 물, 바위면 바위, 나무면 나무, 그 자체가 낱낱이 우리를 위해서 자상하게 법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를 해 나가는댄 육체를 너무 지나치게 편하니 해 줄려고 그러고, 너무 잘 먹이고 잘 입히고 편안하게 해 줄라고 할 것도 없고, 너무 지나치게 육체를 달달 볶고 고통을 주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인연 따라서 수용하고, 잘 시간이 되면 너무 지나치게 잠을 많이 자도 안되지만 최소한도로 잘 만큼은 자 주어. 먹는 것도 그렇고, 자는 것도 그렇고, 입는 것도 그렇다 그말이여.
지나치게 호의호식(好衣好食), 호강하는 것도 수행자로서 맞지 않는 거고, 지나치게 너무 가혹하게 하는 것도 공부를 하는데 지장을 초래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은 그 선방, 그 사찰의 형편 따라서 인연 따라서 수용을 하되 한 생각 일어날 때, 눈으로 어떠한 색상이 눈에 들어올 때, 귀에 어떠한 음성이 들어올 때, 코로 어떠한 향내가 들어올 때, 몸에 무엇이 부딪힐 때, 바람이 불고 새가 울고 물이 흐르고 자동차 소리가 나고,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들릴 때,
나를 누가 칭찬하거나 나를 누가 비방하거나 일체처 일체시에 바로 그 크고 작은 모든 사건들과 내가 부딪쳤을 때, 바로 거기에서 두 번째 생각으로 옮겨 가지 말라 이거거든.
 
바로 그 찰나에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아오라 이말이여. 「이뭣고?」
일체 시비 선악과 흥망성쇠에 내가 왜 거기에 말려 들어갈까 보냐. 「이뭣고?」
 
그렇게 해 나가다 보면 반드시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어지게 돼. 알 수 없는 의단이 독로하게 될 때가 온다 그말이여.(처음~18분25초)
 
 
 
(2/3)----------------
 
처음에는 암만 망상을 안 할려고 해도 망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아무리 화두를 간단없이 들려고 해도 1분도 안 가서 딴 생각[別念]이 들어오고 끊어지고, 그러지만 끊어지면 또 들고, 끊어지면 또 들고 망상이 일어나는 것은 내버려 둬 버려. 내버려 두는 것이 망상을 다스리는 법이여.
지나간 생각이 일어나거나 미래 생각이 일어나거나, 좋은 생각이 일어나거나 나쁜 생각이 일어나거나 그냥 일어난 그 찰나에 그냥 고대로 놔두어 버리고 자기 본참공안을 터억 거각을 해 나가.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밥을 숟가락으로 떠 넣으면서도 「이뭣고?」 씹으면서 「이뭣고?」 삼키면서 「이뭣고?」
그렇다고 해서 「이뭣고, 이뭣고」 자꾸 횟수를 따질 것이 없어.
 
한번 「이뭣고?」 했으면,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 동안에는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을 필요가 없어. 들어있는 그 의심을 떠억 관(觀)해 나가는 거여. 의심, 의심으로 관해. 그 의심이 끊어지면 그때 다시 「이뭣고?」
 
밥을 계속 먹으면서도 그 의심이 항상 현전(現前)하도록 밥이 맛이 있건 없건, 국이 짜건 싱겁건, 반찬이 싱겁거나 짜거나 맵거나, 밥 넣고 저분으로 반찬을 입에 넣고 씹으면서 「이뭣고?」뿐인 거여, 그저.
그래서 밥을 먹되 한 알갱이 쌀도 씹은 바가 없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온갖 경계에 부딪치되 눈으로는 본 바가 없고, 귀로는 들은 바가 없어.
 
그래서 아침에 들었던 화두가 점심 먹을 때까지, 점심 먹을 때 들었던 화두가 저녁 먹을 때까지, 저녁에 잘려고 누워서 떠억 들었던 화두가 새벽에 눈뜨자마자 고대로 들어 있어. 이 타성일편(打成一片).
하루를 그렇게,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가다보면 의단이 툭 터지게 되는 거여.
 
빨리 깨닫기를 바라지도 말고, 그래서 이 활구참선 최상승법을 여지없이 믿고 정진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산도 법문이요, 흐르는 물도 법문이요, 하늘에 떠 있는 구름도 법문이요, 부는 바람도 다 법문이요, 개 짖는 소리도 법문이요, 애들이 떠드는 소리도 다 법문(法門)인 거여.
일체 경계에 부딪혔을 때 바로 내가 화두를 드니까, 나로 하여금 본참화두를 들게 해 주니 그것이 법문이 아니고 무엇이냐 말이여.
 
이렇게 한철을 공부하고 두 철을 공부하고, 일 년을 공부하고 이태 삼년을 그렇게 하면 반드시 깨닫게 된다고 모든 선지식이 다 한결같이 보증을 하셨어.
 
 
백세광음여과극(百歲光陰如過隙)이라  하능구주재인간(何能久住在人間)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의수강건수근주(宜隨强健須勤做)하라   생사임시부자한(生死臨時不自閑)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백세광음(百歲光陰)이 여과극(如過隙)이여. 인간이 오래 살아봤자 백년 미만인데, 그 백년 미만의 한평생이라는 것이 조그마한 틈 사이로 말 지나간 것을 보는 거와 같애. 창문 틈으로 말이 달려가는 것을 보면, 잠깐 지나간다 그말이여.
하능구주재인간(何能久住在人間)이요. 어찌 능히 인간에 오래오래 머물 수가 있느냐?
정말 젊었을 때 어렸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떻게 살아왔는지 벌써 육십이요 벌써 칠십이다 그말이여.
 
의수강건수근주(宜隨强健須勤做)하라. 마땅히 이만큼 건강할 때 모름지기 부지런히 정진을 해라 그거거든.
생사임시부자한(生死臨時不自閑)이라. 아직도 살 날이 넉넉하다고 믿고 그럭저럭 지내다가는 금방 죽음이 닥쳐오면은 그때 가서 늙고, 병들고, 죽음이 가까 오면 '아! 내가 젊었을 때 왜 그렇게 정진을 좀 열심히 안 했던고?'
 
그때 가서사 애써서 할려고 하면 여기저기 아프고, 머리 아프고, 소화가 안되고, 가슴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프고 마음대로 안 돼. 그래서 지금 이만큼 건강할 때 정말 열심히 정진을 하시라 이거거든.
이게 다 고인(古人), 고조사(古祖師)들이 다 겪어 본 나머지 우리에게 게송으로써 설해 주신 법문이다 이겁니다.
 
불법(佛法)이라 하는 것이 부처님과 조사와 모든 보살들이 우리를 위해서 그 자신들은 뼈아픈 육체적, 정신적 고통 고행을 극복하면서 터득한 길을 우리에게 남겨 주셨다 그말이여. 우리는 남겨 주신 그 법(法)에 의해서 그 법을 진실로 믿고 열심히만 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은 거성시요(去聖時遙)해서, 부처님 열반하신 지가 벌써 삼천 년이 되어서 성현이 가신 때가 멀다 그말이여. 그러니 지금은 언필칭 '말세(末世)'라, 말세가 되어서 투쟁견고(鬪諍堅固)의 시대가 되었다.
정법시대(正法時代)는 모두가 다 언하(言下)에 모다 대오(大悟)를 한 도인들이 많이 나오고, 상법시대(像法時代)에는 절을 짓는다, 탑을 세운다, 그러한 것으로써 불사(佛事)를 삼았고, 말세에는 투쟁 싸움으로써 일을 삼는다. 그런 말도 있지만.
 
그런 시간에 관계해서 정법 · 상법 · 말법이 있다고 보지 않는 시각도 있다[佛法流行不關時] 그말이여.
즉심변시기성쇠(卽心便是豈盛衰)리요. 곧 마음이 바로 이놈이라. 어찌 성쇠(盛衰)가 있을까 보냐.
 
비록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삼천 년이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 낱낱이 사대오온(四大五蘊), 이 몸뚱이 속에 있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한 물건이 바로 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할 때에는 거기에 무슨 정법 상법 말법이 있느냐 그말이여. 그 자리는 생사가 없는 곳이요, 흥망성쇠가 없는 곳이요.
 
한 생각 돌이켜서 우리 본참공안을 드는 곳에는 말법이 아니여.
한 생각 돌이켜서 본참공안을 거각(擧却)을 해서 그렇게 해서 의단이 독로하도록, 타성일편이 되도록 잡드리해 나가는 곳에는 말세 따질 것이 없다 그말이여.
 
아무리 총무원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도처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세계 도처에서 싸움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정법을 믿고 한 생각 단속하는 곳에는 말세가 없어. 언제나 정법시대여.
조제화락진소식(鳥啼花落眞消息), 새가 울고 꽃이 피었다 지는 바로 거기에 참소식이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정법을 믿고 정진한 사람에게만 생사 속에 생사가 없는 도리가 있는 것을 믿을뿐이여.
 
지자희이(只自熙怡)언정 설향수(說向誰)오. 다못 스스로 기뻐하고 즐길지언정 누구를 향해서 이 소식을 설할까 보냐.
우리는 이 시대에 태어난 업(業)을 같이한 도반(道伴)들입니다. 나라가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을 거듭거듭 만나고 세계 도처에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온갖 시비와 분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실천해 나간다면 생사 속에 영원을 우리는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똥 주머니요, 오줌 주머니요, 피 주머니요, 고름 주머니여. 해부를 해서 보면 피와 오줌과 고름과 똥으로 가득차 있어.
그러나 그 속에 불생불멸한 영원한 보배가 들어 있다. 우리는 그것을 확실히 믿어야 하는 것이여.
 
우리는 죽으면 땅에 묻으면 흙이 되어 버리고, 화장을 하면 재가 되고 그렇지만 그 몸뚱이 속에 불에 넣어도 타지 않고 물에 넣어도 젖지 않고 하는 그러한 값없는 보배가 있다 이거거든.(18분26초~34분2초)
 
 
 
(3/3)----------------
 
한산정상월륜고(寒山頂上月輪孤)한디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가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한산(寒山) 꼭대기에 밝은 달이 휘영청 외로이 떠 있는데,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라. 그 맑은 갠 하늘을 비추어 보니 한 물건도 없어.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여, 정말 귀하고 귀하구나, 이 천연의 값없는 보배가.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다. 사대(四大) 오온(五蘊)으로 뭉쳐진 이 몸뚱이 속에 묻혀 있구나.
 
한산시(寒山詩)에 나오는 게송(偈頌)입니다.
 
'인간이 귀하다'고 하는 것은 이 몸뚱이 속에 있는 값없는 보배가 있어서 그것을 개발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것을 개발을 함으로써 생사 속에 생사를 해탈하는 거여.
그것을 개발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수행자고, 그러기 때문에 수행자는 오욕락(五欲樂), 온통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오욕락이 인간의 목표이고 목적인 것처럼 그놈을 서로 더 많이 누릴려고 싸우고 일생 동안을 그 오욕락을 쟁취하는데 다 바친다 그말이여.
 
다행히 우리 불자(佛子)는, 법보가족은 숙세(宿世)에 깊은 법에 인연이 있어서 이 최상승법을 믿고 활구참선을 하게 되었다.
이 몸뚱이 속에 있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고, 영원히 쓰고도 남고 할 그러한 값없는 보배가 있는 것을 믿기 때문에 가난하게 살아도 불행하지 않고, 부자로 살다가 사업이 여의치 못하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불행해질 수도 없고, 벼슬이나 관작(官爵) 하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그만두고 나온다 하더라도 그까짓 것 아무 미련이 없어.
 
인간의 흥망성쇠는 춘하추동과 같아서 봄이 오면 봄에 맞도록, 여름이 오면 여름에 맞도록, 가을이 오면 가을에 맞도록 살아가는 거여. 겨울이 와서 눈이 내리고 산천이 다 꽁꽁 어는 시기가 오면 또 겨울에 맞춰서 살아가는 거여.
부귀영화도 마찬가지여. 자기가 주어진 인연대로 부자는 부자에 맞춰서 살고, 가난하면 가난한 데에 맞춰서 살고.
 
흥망성쇠와 춘하추동이라는 게 면할 수가 없어. 그러한 상황에 내가 적응을 하고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거기에 맞춰서 살아가되, 자기의 본참공안을 철저히 단속해 나가면 어떠한 고통이라도 그런대로 다 이겨 나갈 수가 있어.
그래서 그 사람은 보통 다른 사람과 같이 생겼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내용이 다른 거여. 남처럼 그렇게 고급스러운 옷을 안 입고 수수하게 입었어도 하나도 창피할 것도 없고, 형편이 넉넉해서 잘산다 해서 남을 업신여기는 법도 없어.
 
부자굴부자고(不自屈不自高)야.
수행자의 마음가짐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목에다 힘을 주고 아만(我慢)을 부리고 남을 업신여기고 그런 법도 없고, 자기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비굴하게 굴(屈)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은 형편 따라서 살아가는 거여.
 
 
『기세경(起世經)』에 '세 사람의 천사가 이 세간(世間)에 와 있다. 집집마다 그 천사가 와서 계시다'
이른바 세 천사라 하는 것은 노(老), 병(病), 사(死), 병들어서 늙어서 죽는 것이 그것이 우리에게 와 있는 천사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악업(惡業)을 지으면 죽은 뒤에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는데,
염라왕(閻羅王)이 그것을 보고 불쌍해서 가책(苛責)을, 꾸짖으시기를 '네가 옛날에 인간 세상에 있을 때 세 천사를 보았을 텐데 어찌 그 천사를 푸대접을 했느냐? 천사가 너희 집에 그렇게 갔는데도 그 천사를 못 본 체했느냐? 그 천사라 하는 것이 바로 네가 늙었고, 병들고, 죽었을 때, 그 노(老) · 병(病) · 사(死)의 현상이 바로 너에게 가신 천사니라'
 
그 천사가 일부러 찾아갔거늘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럭저럭 지냈어. 다른 사람 집에 다른 사람한테 천사가 가서 늙어서 병들어 죽은 것만 그렇지, 자기에게 천사가 올 줄은 모르고 있었다.
그래 가지고 몸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모든 오욕락 속에 빠져가지고 그것을 즐기느라고 천사가 일부러 와 주신 뜻을 망각해 버렸다.
 
여러분 가정에, 또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도 이 천사가 이미 와 계실 것이고,
'아직은 나는 병도 없고 건강하니까 천사가 아직 안 왔다. 그러니까 마음껏 즐기고 마음껏 먹고, 하고 싶은 것 좀 해 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천사는 미리 전화나 통고를 하지 않고 돌연히 찾아오는 것입니다. 찾아왔으되 왔다는 말도 안 하고 가만히 계시거든.
 
천사가 간으로 오기도 하고, 콩팥으로 오기도 하고, 신장으로 오기도 하고, 머리로 오기도 하고, 배로 오기도 하고, 팔다리에 오기도 한다.
와서는 가만히 있어. 나중에 조금씩 조금씩 나타나는데, '내가 천사'라는 말은 안 하거든.
 
속이 엷은 사람이 조금 재산이 생기면은 그것을 남에게 보이고 싶어하고, 조금 무슨 힘이 있으면 남 앞에 그것을 과시하고 싶어하고, 조금 무슨 권리가 있으면 그것을 목에다 힘을 주고 그러지, 진짜 큰 재산, 큰 권리, 큰 학식을 가진 사람은 아무 구태여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고 밖에다 과시할려고 하는 법이 아니여.
 
그러니 여러분은 기세경에 있는 이 세 천사는 정말 나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해 주기 위해서—이 육체는 무상한 것이다.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날을 받아 놓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믿고 어쨌든지 천사가 이미 왔더라도 그 천사를 미워하기보다는 오히려 거기서 지혜의 눈을 뜨고 무상(無常)을 깨닫고 「이뭣고?」를 더 열심히 해서 생사해탈을 하도록 정말 알뜰하게 정진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참선을 하신 분에게 부탁을 드릴 것은 열심히 정진을 하다 보면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소견(所見)이 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언제라도 그러한 소견을 버려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조사(祖師)와 같은, 부처님과 같은 구경의 깨달음이 아니면 정진을 하다 조그만한 지견(知見)이 나고 소견이 났다 하더라도 그것이 구경의 깨달음이 아니면 스스로 그것을 뿌리쳐 버려 버리고 꽉 본참공안을 잡드리해 나가는 그러한 정진을 해야 해.
 
하다가 누구라도 무엇이 알아지기도 하고, 능엄경 53변마장(辨魔障)에 보면 온갖 경계가 나타날 수가 있어.
설사 그런 경계가 아니라도 그건 다 마경(魔境)이지만, 그런 경계가 아니라도 무슨 경을 보면 옛날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었는데 환히 짐작이 가고 또 공안을 보면 옛날에는 잘 몰랐었는데 자기 나름대로 수긍이 가고, 가슴이 답답했었는데 후련하니 자기 나름대로 깨달은 것같이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그말이여.
 
그러나 정말 실참실오(實參實悟), 실다웁게 정진을 해서 실다운 깨달음을 얻어 불조(佛祖)와 같은 경지가 아니면 어떠한 소견 지견이라도 스스로 부인을 해 버리고 구경의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는 정말 알뜰하게 정진을 해야 할 그러한 지조가 수행자에게는 있어야 하는 것이여.(34분3초~49분18초)(끝)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6. 5. 29. 12:02

<핸드폰에서,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에서 34분 9초부터 시작됩니다>

 

§(574) 아자방 부목의 소금 장수, 머슴살이 / 실참실오(實參實悟) / 고인친증처(古人親證處) / 활구참선(活句參禪) 해야 한다.

 

진실한 깨달음,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것은 그건 자기 스스로 그걸 인증을 해선 됩니다. 정말 자기의 깨달음이 고조사(古祖師) 경지가 아니면 스스로 그것을 여지없이 내팽개쳐 버려야 하는 것이여.

 

깨달음이라 하는 것이 우선 자기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을 깨닫게 하고, 그래서 법계가 깨달은 사람으로 가득차게 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가는 것이 그것이 수행해 가는 목적인데, 가짜 깨달음을 얻어 가지고 앞에 뽐내면 그거 어디다 쓰겠습니까?

 

**송담스님(No.574)—96 하안거 해제 법회(96.08.28) (용574)

 

약 17분.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위봉사나 위봉선원, 세등선원 기타 여기저기서 수행하고 있는 도반들이 많이 해제 법요식에 참석을 했고 법보전(法寶殿) 만년위패(萬年位牌) 모신 여러 법보가족(法寶家族)들도 많이 참석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정말 생사 문제,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소금 장수 얘기를 잠깐 비추셨는데, 소금 장수가 다른 사람이 아니고 어느 칠불(七佛) 아자방(亞字房) 옛날에 선원이 있었는데, 아자방에 부목(負木)으로 있던 사람이 여름에 더울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공양 짓는 나무를 대고 그런데,

스님네는 서늘한 방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고, 해다 밥에 편안하게 먹고 저렇게 백판 놀고 있으니, 그걸 은연중(隱然中) 비방을 하고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그러다가,

 

어떤 스님이그렇게 나무하기가 힘들고 그러면 오늘부터서 나하고 바꿔서 내가 나무를 테니 부목이 선방에 와서 참선을 봐라

, 그까짓 내가 못하냐, “ 먹여 주는데 앉아서 끼니때 되면 갖다 주면 먹고, 터억 앉았다가 졸리면 꾸벅꾸벅 졸면 점심때 되면 갖다 주는데 그거 못할 없다, “나도 한다.

 

그래서 갖다가 앉혀 놓으니 평생 앉아보들 않은 사람이 가부좌, 반가부좌를 하고 앉았으니 주리를 틀어서 도저히 다리가 저려서 견딜 수도 없고, 처음에 한나절은 좌우로 꾸벅꾸벅 조는 스님네 구경이나 하고 그럭저럭 견딜 만하더니 이튿날은 영판 못해 먹겠어. 삼일째는 정말 힘들고, 나흘째 닷새째는 견딜 수가 없어. 오금이 펴지도 않고, 변소에 가도 오줌도 나와.

 

그래 가지고는 못하겠다는 말도 못하고어지간히 스님네 흉을 봤어야지그래 보따리를 짊어지고 도망가 가지고, 갑자기 나가니 해먹을 있어야지. 그래서 염전에 가서 소금을 짊어지고 산을 넘어 다니면서 산너머에다가, 요새는 교통수단이 좋지만 옛날에는 낱낱이 사람의 등으로 소금을 날라다가 팔았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지리산이라든지, 전국 방방곡곡에 산을 넘어 다니면서 소금짐을 짊어지고 넘어가는데, 비지땀을 흘리면서 넘어가는데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직업이 여러 가지가 많은데 하필 소금을 짊어지고 더위에 몸으로도 올라가기가 힘드는데, 소금 가마니를 짊어지고 높은 재를 넘어가다니 얼마나 힘이 드냐하니까, “ 마십시오. 선방에서 참선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세상에 못해 먹을 지서리는 참선입니다

 

소금 장수를 하다하다 못하게 생겼으니까, 이제 들에 내려가서 남의 부잣집의 머슴살이를 . 쟁기를 가지고 논밭을 가는데, 소도 힘이 드니까 말을 들어. 후려 때리면서이놈의 소새끼, 선방에다가 참선을 시키리

 

사실 자리에 모이신 분들은 그러한 고비고비를 넘겨서 이제는 시간씩, 시간씩 앉아도 견딜 만하고 대부분 그러시겠지만, 처음 철에 나가서는 여간 견디기가 힘든 아닙니다. 두고두고 그렇게 힘든다면은 누구라도 소금 장수를 하거나 머슴살이를 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마는.

처음에는 힘들지마는 , , 하면 장좌불와(長坐不臥) 하고, 3 결사도 하고, 앉아서 터억 단전호흡을 하면서이뭣고?’ 하면 대안락지묘문(大安樂之妙門)이여. ‘정말 안락한 묘문이라고 고인(古人) 표현을 했습니다.

 

성성적적(惺惺寂寂)해서 시간 가는 모르고, 혼침(昏沈) 산란(散亂) 떨어져 버리고처음에는 망상(妄想) 일어나서 못하겠다 그러고, 다음에는 망상이 만하면 혼침이 와서 견디고, 그래도 끊임없이 중단하지 않고 나가면 다리 절인 것도 없어지고, 허리 아픈 것도 없어지고,

번뇌와 망상도 그냥 스쳐가는 바람처럼 스쳐간 채로 놔두고, 떠억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 거각(擧却)하고 의단(疑團) 거각을 하면 타성일편(打成一片) 되고 순수무잡해서 몸이 세상에 있는 줄도 모르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다맛 속이나 밖이 화두 일념, 의단이 차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처음부터서 그렇게 되는 아니어. 수없는 애를 써야 언제 오더라도 결코 그런 경계가 오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러한 공부를 가면 다맛 다리만 저리고 허리만 아프고, 번뇌 망상만 일고 혼침만 오는 아니라, 많은 병고(病苦) 장애도 일어날 수가 있고 인간의 장애도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나쁜 도반을 가까이하면 사도(邪道) 빠질 수도 있습니다.

 

선지식을 잘못 만나면 구경(究竟) 깨달음이 아닌데도, 일과성(一過性)으로 일어나는 그러한 경계를 바로 깨달았다고 인가(印可) 받을 수도 있습니다.

진실한 깨달음,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것은 그건 자기 스스로 그걸 인증을 해선 됩니다. 정말 자기의 깨달음이 고조사(古祖師) 경지가 아니면 스스로 그것을 여지없이 내팽개쳐 버려야 하는 것이여.

 

옳다! 여역여시(汝亦如是)하고 오역여시(吾亦如是).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그렇다섣불리 남을 그렇게 인가해 가지고.....

 

사람의 그러한 일과성의 경계를 여지없이 쳐부숴 버려야, 그리고서 실참실오(實參實悟) 하도록 몰아줘야 그것이 참다운 선지식이고, 진실한 도반이 아니겠습니까.

 

한소식 했느니, 초견성 했느니, 무슨 지견이 났느니 가지고 자기도 얻었다는 생각을 갖고, 자기도 깨달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리고 앞에 뽐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요새 세상은 가짜가 하도 많아서 보석, 많은 돈을 주고 놓고 보면 대부분 가짜 보석입니다. 가짜 보석은 위조지폐(僞造紙幣)처럼 가짜도 진짜인 알고 서로 주고받고, 팔고사고 하면 가짜가 진짜 노릇을 얼마 동안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재수없는 사람은 걸려 가지고 쇠고랑을 차게 되는 거여.

 

그러나 깨달음이 아닌 가짜 깨달음은 어디다 그것을 쓰겠습니까?

깨달음이라 하는 것이 우선 자기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을 깨닫게 하고, 그래서 법계가 깨달은 사람으로 가득차게 해서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가는 것이 그것이 수행해 가는 목적인데, 가짜 깨달음을 얻어 가지고 앞에 뽐내면 그거 어디다 쓰겠습니까?

 

원래 가짜 보석이라 하는 것은 앞에 과시하는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장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진짜 보석을 함부로 가지고 다니다가는 잃어버리기도 쉽고 도둑맞기도 쉬우니까, 진짜 보석은 깊이 간수해 놓고 비슷하게 생긴 가짜 보석을 귀에다도 걸고 목에도 걸고 손가락에다도 꽂아서 그런 사용으로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재산이 수도 없고 팔아서 값을 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가짜 깨달음은 장식용으로 쓰겠습니까? 명예를 얻기 위해서 쓰겠습니까? 자기 신세도 망쳐서 자기도 지옥에 가고, 그것을 함부로 인가해 가지고 마음 먹고 닦는 사람을 지옥으로 떨어지게 하고 사도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는 불법(佛法)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은, 여러분도 사집(四集) 서장(書狀) 배운신 분은 기억이 나시겠지만,

불오즉이(不悟則已)어니와 깨닫지 못하면 말거니와, 깨달은 즉은 모름지기 직도고인친증처(直到古人親證處)—고인(古人)이라 하면 부처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포함이 것입니다고인이 친히 증득한 경지에 가야만 대휴헐지지(大休歇之地) 삼을까 하노이다. 그래야만 나의 깨달음을 그렇게 삼고자 한다그거거든.

 

차라리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열심히 부르고,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자나깨나 아미타불을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눈을 감아도 아미타불을 부르고, 눈을 떠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때도 나무아미타불, 속이 상할 때도 아미타불을 부르고, 슬플 때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몸이 아플 때도 나무아미타불을 불러서 일심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숨이 끊어지려고 , 터억 반야용선(般若龍船) 타고 영접을 하러 오신다. 무량수경(無量壽經) ! 있다 그말이여. 경을 고지식하게 고대로 믿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 차라리 낫지,

 

참선을 한답시고 참선을 하면서 활구참선(活句參禪) 아니 하고, 의리선(義理禪)으로 따져서 공안을 이러저리 해석을 하고, 그래 가지고는 공안을 나름대로 통과했다고 해서 자기도 한소식 했느니, 견성을 했느니 가지고 그런 것을 자기의 깨달음을 삼아서 되겠느냐 이말이여.

 

  자리에 모이신 도반들은 전강 조실 스님 법문도 많이 들으시고, 벌써 진발심(眞發心) 해서 열심히 수행하는 도반들이라 이러한 노바심절(老婆心切)에서 나온 말은 필요 없을는지 모릅니다마는, 문제가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간곡히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3045~4754)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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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 전당이라는 .
그래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 모셨고,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법보가족(法寶家族) ; [참고] 89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〇여기 (용화선원 법보전)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수가 있습니다.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법당(법보전) 모셨으니 우리가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 의지해서 도를 닦는 도반(道伴)이면서 가족인 것입니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이다.

*아자방(亞字房) ; 방고래(방의 구들장 밑으로 불길과 연기가 통하여 나가는 ) () 모양으로 놓은 . 지리산 칠불사(七佛寺) 아자방이 대표적이다.

*부목(負木) ; 절에서 땔나무를 채취하거나 불을 지피는 소임. 불목한·화목한(火木漢화대(火臺) 등이라고도 한다. 주로 일반 일꾼이 소임을 담당했다.

*백판 ;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대책없이등의 뜻의 사투리.

*은연중(隱然中) ; 남이 모르는 가운데.

*주리(周牢) 틀다 ; 주리 틀다. 예전에, 죄인을 심문할 주리(죄인의 다리를 한데 묶고 다리 사이에 개의 막대기를 끼워 비틀던 형벌) 형벌을 주다.

*영판 ; 아주.

*지서리 ; ‘짓거리('' 낮잡아 이르는 )’ 사투리. *몸이나 몸의 일부를 놀려 움직이는 행동이나 행위를 나타내는 .

*장좌불와(長坐不臥) ; 밤이 되어도 눕지 않고 앉아서 수행 정진하는 .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 상태.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산란(散亂 흩을 /어지러울 ) ; 혼침(昏沈)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 마음이 어지러운 .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이뭣고~?’   ‘ 없는 생각()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어째서 () 했는고?’ 또는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일과성(一過性) ; 어떤 현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실참실오(實參實悟) ; 실답게 참구(參究)하고 실답게 깨달음. () 참선(參禪) 또는 참구(參究). 실참(實參) 공안(화두) 이론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닌 선지식의 지도 아래 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을 말한다.

다만 맥힌 의심으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고, 의단이 더이상 간절(懇切) 수가 없고, 더이상 커질 수가 없고, 더이상 순일무잡(純一無雜) 수가 없어 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 그놈을 타파(打破) 때에 확철대오(廓徹大悟) 하는 것이다.

[참고]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 「서답(書答)답노상서(答盧尙書 노상서에게 답함)’에서.

〇所以古德云 路途之樂 終未到家 見解入微 不名見道 參須實參 悟須實悟 閰羅大王 怕多語 若要實參實悟 須是從前坐禪處得底 經敎上得底 古人語錄上得底 宗師口頭下得底 有滋味寶悟處 一時掃向他方世界 好字細看

 

그러므로 스님은길의 즐거움은 종내 집에 이르지 못하게 하며, 보고 알아 미세한 들어가는 것은 도를 보았다 없습니다. 참구는 진실한 참구이어야 하고 깨달음도 진실한 깨달음이어야 합니다. 염라대왕은 많은 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만일 알차게 참구하여 진실로 깨달고자 하면, 종전에 좌선(坐禪)해서 얻은 것과 경전에서 얻은 것과 고인의 어록에서 얻은 것과 종사의 입을 통해 얻은 등에서 자미(滋味)있고 소중히 여긴 깨달았던 경계를, 한꺼번에 다른 세계에 쓸어 버리고 자세하게 살펴야 좋을 것입니다하였습니다.

*위조지폐(僞造紙幣 거짓 /지을 /종이 /화폐 ) ; 지정된 발권 은행이 아닌 곳에서 만들어 가짜 지폐().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 정법(正法) 명맥(命脈). ②법신(法身)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

*사집(四集) ; 사찰에 있는 강원(講院) 사집과(四集科)에서 배우는 과목, 규봉 종밀 스님의 <도서(都序)>, 대혜 스님의 <서장(書狀)>, 보조 지눌 스님의 <절요(節要)>, 고봉 원묘 스님의 <선요(禪要)> 말한다.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62()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역설하였다.

*친증처(親證處) ; 친히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다) .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휴헐지지(休歇之地) ; 모든 사량분별을 끊어 불성(佛性) 깨닫고 생사의 속박을 벗어난 자리.

*반야용선(般若龍船) ;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반야(船若, 지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건네 주는 반야바라밀의 [] 말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 이런 의리선(義理禪)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노바심절(老婆心切) ; 노파(老婆)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으로 지극히 친절(親切)하다는 .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