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 그것은 견성성불할 수 있는 발판 / 부설거사(浮雪居士) / 신통은 성말변지사(聖末邊之事) / 박초선 명창 음성공양(찬불송, 그것도 멍텅구리).

‘참선을 잘한다, 잘 못한다’ 또는 ‘그분은 빨리 도업(道業)을 성취헌다, 못한다’고 허는 판가름 길이 바로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을 어떻게 빨리 돌려서 단속(團束)하느냐』 오직 거기에만 달려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빚 갚으면서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가르켜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참선법인 것입니다.
세속(世俗)에 계신다고 해서 도를 못 닦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마음가짐 하나에 따라서는 오히려 세속이 더욱 발심(發心)을 할 수 있고, 더욱 분심(憤心)을 낼 수 있고, 더욱 용맹정진(勇猛精進)할 수 있는 적극적인 수행도량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정법을 믿는 신도들은 어떠한 것이 정법이고, 어떠한 것이 삿된 법이라고 하는 것을 잘 아셔야 됩니다.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정법은 깨달은 진짜 도인은 설사 그러한 신통법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가지고 있다 해도 중생 앞에 그런 것을 함부로 남용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55)—77년 동안거 결제 법문(77.11.25)


(1) 약 22분.  (2) 약 22분.


(1)------------------

번뇌(煩惱)와 망상(妄想) 때문에, 그놈 때문에 우리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번뇌도 일어나지 아니하고, 망상도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혼침도 일어나지도 아니한다면 그런 사람이 어디가 있다면 그것은 나무나 돌로 깎아서 만들어 논 사람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나무나 돌로 깎아서 만들어 논 사람은 정말 석달 열흘을 잠을 안 자도 잠이 오지 않을 것이며, 석달 열흘을 앉혀놔도 번뇌·망상 한번도 일어날 리가 없겠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고단하면 잠이 오기 마련이고, 며칠을 밥을 안 먹으면 배고프기 마련이고, 때리면 아프기 마련이고, 앉았다 보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일어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혼침·산란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살아있는 증거이고, 살아있는 사람이면 참선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도 번뇌와 망상 일어나는 것을 언짢게 생각하시거나 짜증을 내시지 말고, 이놈 때문에 내가 참선을 못한다고 미워하시지를 말고 『일어나는 그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그 방법만을 잘 아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일어나는 그 생각을 없애거나 누를려고 하지 말고 그 생각을 바로 발판으로 해서 그 생각하던 그 생각으로 「이뭣고?」 이렇게 화두(話頭)를 들어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무슨 생각이 일어나던지 그 일어나는 생각이 다음 생각으로 옮아가기 이전에 퍼뜩 「이뭣고?」
심호흡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기 시작하면서 「이뭣고?」
이렇게 호흡과 화두를 함께 합쳐서 들어나간다고 하면은 백만 번 망상이 일어난다 해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백만 번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그렇게 들어나가면, 일어났던 망상이 나로 하여금 육도윤회를 하게 하는 그러한 고약한 원인이 아니라,
그 망상은 바로 나로 하여금 견성성불할 수 있는 길로 들어서게 하는 좋은 발판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높이 뛴다든지 멀리 뛸려면은 좋은 발판이 있어야 합니다. 발판이 짱짱해야 그 발판을 의지해서 높이 뛸 수가 있고 멀리 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뛰는 그 순간에 마지막 발 디딘 곳이 미끄러지거나 또는 질펑거리거나 그래서는 높이 그리고 멀리 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발판이 좋아야 멀리 뛸 수도 있고 높이 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발판이 없으면 우리는 화두를 들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발판이냐?
무엇을 보던지, 무엇을 듣던지, 무엇을 생각하던지, 느끼던지 간에 그것들이 좋은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좋은 발판이 지옥으로 가는 육도윤회하는 발판으로 사용이 되는 것이고,
정법(正法)을 믿고 참선을 하는 사람은 그 발판이 바로 견성성불할 수 있는 발판으로 잘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바세계(娑婆世界)가 정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육도윤회(六道輪廻)하는 생사고(生死苦)의 원인이 되는 그러한 악세지만, 악하고 고약한 오탁악세(五濁惡世)가 되지마는,
정법을 믿는 우리 부처님 제자들에게는 이 시방세계의 어떤 나라보다도 제일 훌륭한 좋은 수도장(修道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모든 도인들은 천상(天上)에 태어나기를 바라지 안했습니다.
천상에 태어나면 아무 괴로움은 없다고 하지만은 너무 편안하고 즐겁기만 하기 때문에 그러한 즐거움과 편안함 속에 빠져서 도를 닦을 수가 없습니다.

혹 그 천상의 즐거움이 영원한 것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괜찮지만 자기가 복을 지은 만큼 다 받고 난 다음에는 다시 인간 세상이나 축생이나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상에 태어나면 그만큼 도 닦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기 때문에 천상에 태어나기보다는 인간으로 태어나서—인간 세계에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섞어져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괴로운 것을 만나고 시련을 받음으로 해서 거기서 진리에 들어갈 수 있는 좋은 계기를 우리는 만날 수가 있기 때문에, 많은 과거의 도인들이 사바세계에 태어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사바세계에 태어나야 정법을 만나 가지고, 내가 나를 깨달라서 나도 성현(聖賢)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수행을 헐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에 어떠한 좋은 인연으로 해서, 훌륭한 수승한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에 사람으로 태어났고, 사람으로 태어났으면서도 또 불법을 만났고,
불법을 만난 후에도 이 정법을 만나서 내가 나를 깨달을 수 있는 그러한 길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매일 무엇인가 보고, 무엇인가 듣고, 무엇인가 외부로부터 충격을 받으면서 성도 내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당하고 있는 그러한 외부로부터 충격, 내부로부터 일어나는 어떠한 느낌, 그 한 가지 한 가지를 결단코 소홀히 지내서는 안됩니다.

그 모든 그러한 것들이 한 생각 우리가 돌리기만 한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나를 깨달을 수 있는 좋은 수도 도장이요 깨달을 수 있는,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발판이기 때문에,

‘참선을 잘한다, 잘 못한다’ 또는 ‘그분은 빨리 도업(道業)을 성취헌다, 못한다’고 허는 판가름 길이 바로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을 어떻게 빨리 돌려서 단속(團束)하느냐』 오직 거기에만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내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운 일들은 나로 하여금 자칫 게으름 속에 무단(無斷)히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그렇게 나를 몰아넣기가 쉬웁고,
나의 육체와 정신을 괴롭게 할 수 있는 그러한 역경계(逆境界)는 나로 하여금 신심을 돈독히 하고 분심을 일으켜서 맹렬히 화두를 단속할 수 있도록 해 주기 좋은 그러한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순경계(順境界)를 많은 사람들은 좋아하고 역경계(逆境界)를 멀리하고 싫어하지만은 정법을 만난 정법학자들은 순경계에 빠져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어떠한 견뎌내기 어려운 역경계라 할지라도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돌이켜 단속하기만 한다면,
그 역경계가 우리에게는 순경계 몇십 배, 몇백 배 좋은 밑거름이요, 발판이요, 불보살의 설법이 되어 주는 것이며, 불보살을 모시고 수행해 나가는 좋은 선방이요, 수도장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석 달 동안 결제에 들어갑니다마는 용화선원에 방부를 들여서 여기서 공부하시는 분이나 또는 어떠한 형편에 의해서 또는 후배들을 위해서 자진해서 댁에서 공부를 허시는 그러한 노보살님이나 누구를 막론하시고,

오늘 아까 조실스님께 들은 말씀 또 제가 부연해서 해 드리는 말씀을 명심을 하시고,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듣거나, 입으로 무엇을 말하시거나, 마음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건간에,
1초 1초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알뜰히 단속을 해 나가심으로 해서 1초 1초가 합해서 1분, 1분이 합해서 한 시간, 한 시간 한 시간이 합해서 하루, 하루 하루가 모여서 석 달이 되는 것입니다.

석 달을 훌륭하게 공부를 허실 분은 ‘한 생각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고,
‘이 한 생각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하는 문제는 바로 내가 금생에 결정코 도업을 성취할 수 있게 허는 요긴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항상 뒤로 미룬다.” 고인이 말씀허셨습니다.

‘아직은 나는 아직 헐 일이 많고, 나이가 젊기 때문에 아들딸들을 키워서 가리켜서 다 결혼을 시켜야 나는 그때사 비로소 참선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허신 분들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한 분들은 그래서 ‘나중에 좀 더 일 다하고 늙은 다음에 참선허리라.’

『이렇게 뒤로 참선하는 기일을 뒤로 미루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라』 이렇게 말씀을 허셨습니다.

왜 어리석냐?
그러한 일들을 다 마쳐놓고 늙은 다음에 할려고 하는 생각은 결정코 어리석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남편·아내·아들딸·부모·일가친척·사회·국가 이러한 상황 속에 나도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특수한 사람, 그런 것을 다 청산해 버리고 출가하는 스님네 그런 특수한 스님네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어찌해 볼 수 없는 그러한 인연 속에 놓여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갚지 않고서는 아니 될 그러한 빚을 지어놨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지어논 빚은 갚아야 합니다.
갚지 않고 아무리 피할려고 해도 자기가 지어 놓은 빚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일단 자기가 지어 놓은 빚은 어떠한 노력, 어떠한 괴로움을 무릅쓰고라도 기어코 갚아야만 됩니다.

그러면 일생동안 그것만 갚다가 말면 언제 자기의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느냐?
빚만 갚고 말면은 그것이 다가 아니라 빚 갚으면서 계속해서 또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무량겁을 두고 빚만 갚다가 맙니다.


거기에서 부처님께서는 빚 갚으면서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가르켜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참선법인 것입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딸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열심히 완수해 나가는 그 가운데에 「이뭣고?」 「이뭣고?」 간절한 마음으로 자기의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하면서 화두를 드는 것입니다.

성이 날 때 자기가 자기의 마음을 아무리 진정헐랴고 해도 진정할 수 없을 만큼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그럴 때에도 그 찰나를 놓쳐선 안 됩니다.
심호흡을 ‘후~’ 심호흡을 터억 하면서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갈 때에 먼저 자기의 그 거센 파도가 일어나는 자기의 마음을 안정을 하면서 며느리 노릇, 아내 노릇, 엄마 노릇을 충실히 해 나가야 됩니다.

만약에 잠깐이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완수하지 아니할 때에 사태는 더욱 고약하게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서 점점 자기만 자기의 디딜 땅이 좁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자기의 발 디딜 땅이 불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호흡을 함으로 해서 혈액순환을 촉진을 시키고, 나아가서 피를 맑게 함으로 해서 정신이 맑아지고 안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선을 하는 사람은 어떠한 정신적 또는 육체적 또는 주위환경에 견디기 어려운 그러한 역경계를 만났다 하더라도,
잘 지혜스럽게 그러한 고비 고비를 잘 요리하고 극복해 나가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완수하면서 그러면서 나의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업장 소멸한다’고 하는 것은 ‘빚을 갚는다’는 얘기와 마찬가지입니다.
빚을 갚으면서 앞으로 새롭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저축을 해 나가는 길인 것입니다.

천하 간단한 한마디요, 한 말씀에 지내지 못하지만,
이 말씀을 깊이 믿고 이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한 달, 두 달, 석 달 가지 못해서 과연 이 법이야말로 내가 무량겁을 두고 만나야 했었던 가장 훌륭한 위대한 길이라고 허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철 한철을 착실히 가정에서 직장에서 또는 선방에서 제가 오늘 말씀해 드린 이 말씀을 잘 명심해서 들으신다면 비단 이 선방에 방부를 들이지 아니하시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생활하시는 그 곳이 고대로 훌륭한 선방이 되어줄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사람에 따라서는 선방에서 규칙적으로 생활하시는 가운데 참선하신 분보다도 훨씬 더 훌륭한 실적을 올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나라에 부설거사(浮雪居士)라고 하는 분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세 분의 스님 가운데에 한 사람입니다. 세 참선하는 스님이 태백산으로 참선을 하러 가시는 도중 김제 만경뜰을 지나시게 되었습니다.

지나다가 어느 집에 들어가서 탁발(托鉢)을 하러 들어갔습니다. 탁발하러 들어갔는데 어떤 예쁜 처녀가 탁발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 처녀가 그 한 스님을 보자마자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말문이 툭 터졌습니다. 본래 그 처녀는 나면서부터서 말을 할 줄 모르는 벙어리였습니다.

벙어리 처녀가 그 탁발하러 온 스님 얼굴을 보고서 어떻게 큰 충격을 받아 가지고 말문이 툭 터져 가지고는,
‘이 스님이 아니고서는, 이 스님하고 기어코 결혼을 시켜달라’고 그 스님을 붙잡고 사정을 하고, 부모가 나와서 그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열여덟이 되도록 말도 못한 벙어리가 말문이 터지면서 스님하고 결혼을 하겠다고 허니 기가 맥힌 사건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부설거사는 그 두 도반이 극구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그 처녀하고 결혼할 것을 승낙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두 도반은 한 도반을 속가에다가 빼앗기고 둘이만 아픈 가슴을 안고서 태백산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떠날 때 부설거사가 그 도반에게 하는 말이 『나는 부득이한 과거의 인연으로 해서—이 처녀가 내가 결혼을 안해 주면 혀를 깨물고 자살을 하겠다고 하니, 내가 부득불 이 처녀 한 사람을 살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자네들과 같이 용맹정진을 하고 있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이 속가에서나마 열심히 정진할 테니 부디 둘이만 가서 열심히 공부를 해 가지고 10년 뒤에 다시 만나서 내가 더 공부를 많이 했으면 그대들이 나한테 배우고, 그대들이 더 공부가 나으면 내가 배우기로 하세』 그렇게 언약을 하고서 이별을 했던 것입니다.

10년 동안 그 처녀와 결혼한 분이 바로 오늘날 전해지는 부설거사라고 하는 분입니다.(16분45초~38분1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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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처녀 이름은 묘화(妙花) 부인이고, 묘화라고 하는 처녀가 부설이라고 하는 분과 결혼을 해서 사는 가운데에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 묘화라고 하는 부인도 스님을 갖다가 자기로 인해서 퇴속(退俗)을 시켰으니 만큼 그 부설거사를 정말 마음으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받들면서 그 스님의 법문을 듣고서 열심히 참선을 했던 것입니다.

참선을 허면서 10년 세월을 지내는 동안, 등운(登雲)이라고 하는 아들 하나와 월명(月明)이라고 하는 예쁜 딸을 낳아서 길렀습니다.
그래서 그 부설거사와 묘화 부인과 등운—등운조사는 출가를 해서 스님이 되었고 또 월명이라고 하는 분도 참선을 해 가지고 네 가족이 전부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가지고 도를 닦아서 다 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분들이 도를 닦던 장소가 어디냐 하면은 변산(邊山)에 가면은 변산에 월명암이라고 하는 절이 있고, 그 근처에 모다 등운암이라든지 모다 같이 (공부)하던 절터가 지금도 남아있고, 월명암은 현재에 사찰로서 남아있습니다.

대둔산 태고사, 장성 백양사의 운문암 또 변산의 월명암, 이 남한의 세 절이 수행하기 가장 좋은 옛날부터 이름나 있는 암자인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월명암인데, 그 월명암이 부설거사의 딸이 수행을 해서 도업을 성취한 그 도량인 것입니다.

세속(世俗)에 계신다고 해서 도를 못 닦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마음가짐 하나에 따라서는 오히려 세속이 더욱 발심(發心)을 할 수 있고, 더욱 분심(憤心)을 낼 수 있고, 더욱 용맹정진(勇猛精進)할 수 있는 적극적인 수행도량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십 년 후에 그 부설거사와 태백산에 들어갔던 두 도반, 세 분이 모여서 법담(法談)을 했고, 오늘날까지 법담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지마는 전설로서 전해 내려오는 법의 도력의 시합이 있습니다.

병에다가 물을 담아 가지고 저 서까래 끄터리에다 매달아 놓고, 병 3개를 떠억 매달아 놓고서 태백산에 들어갔던 두 도반이 차례차례로 몽댕이로 그 물병을 뚜드려 부쉈습니다.
뚜드려 부수니까 그 물병이 깨져 가지고 물이 땅에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부설거사가 몽댕이로 병을 깨니까, 병만 깨지고 물은 병 모양 고대로 뭉쳐 가지고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고 허는 그러한 도력 시합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선을 해서 견성(見性)했다고 해서 물병만 깨지고 물은 허공에 매달려 있다고 허는 그렇게 되야 도인(道人)이다. 이렇게 생각하셔서는 그것은 잘못된 생각인 것입니다.

‘똥을 누면은 그 똥에서 구린내가 나지 아니하고 향내가 나고, 두 눈에서는 캄캄한 밤에서도 자동차 불처럼 훤하게 불을 내뿜고,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이 육신으로 서울로 날아갔다 부산으로 날아갔다 미국으로 날아갔다 이러한 신통(神通)을 부려야만 그것이 도인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은 정법을 잘못 인식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신통술이라 하는 것은 “성말변지사(聖末邊之事)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견성을 해 가지고 오래오래 보림(保任)을 하면은 구허지 아니해도 자연히 그러한 신통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마는 견성했다고 해서 조만(早晩) 그러한 능력이 누구라도 다 얻어진 것은 아닙니다.

또 견성을 전혀 하지 아니한 사람도 어떠한 그 신통술 얻는 그러헌 비법을 알아 가지고 열심히 허면 그러한 신통을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견성(見性)을 허지 못한 사람이 그러한 신통술 갖춘 사람은 외도(外道)가 되는 것입니다.

중생들은 그러헌 신통 부리는 것을 보면 혹(惑)하고 반해 가지고 그 사람이 큰 도인인줄 알고 미쳐서 무엇이라도 재산이고, 명예고, 권리고, 이 몸과 목숨 모든 것을 그 사람한테 다 바칠랴고 그럽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 사람이 견성을 한 진짜 도인으로서 그러한 신통술을 갖춘 분이라면 절대로 중생을 해롭게 할 리가 없고, 중생을 그릇 인도할 리가 없겠지만은,
견성을 못한 사람이 어떠한 특수한 비방을 알아 가지고 용케 그러한 신통술만을 얻은 사람이라 하면 반드시 중생을 그릇 인도하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정법을 믿는 신도들은 어떠한 것이 정법이고, 어떠한 것이 삿된 법이라고 하는 것을 잘 아셔야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정법은 깨달은 진짜 도인은 설사 그러한 신통법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가지고 있다 해도 중생 앞에 그런 것을 함부로 남용하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결제일을 맞이해서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함으로 해서 석 달 동안 안거가 정말 알찬 안거기간이 되도록 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결제인 동시에 백일기도를 시작하는 입재일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참선을 해서 나를 깨달라야하는 동시에 내가 몸담아 있는 나의 가정, 나의 남편, 나의 부모, 나의 아들딸, 사회 국가, 인류가 괴로움 속에서 괴로움을 극복하고 진정한 행복의 삶을 영유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으로는 언제나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기도하고 축원하는 마음을 동시에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한 뜻에서 우리 용화선원에는 삼동 결제와 아울러서 언제나 백일기도를 또 봉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분이 한 분도 빠짐없이 성의껏 기도에 동참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오늘 여기에 참여하신 신도분 가운데 한 분이 우리 인간문화재 5호로 지정된 박초선 여사께서 참석을 하셨습니다. 이 보살님은 예술에 있어서 뛰어난 분이심과 동시에 이렇게 불법에 철저한 돈독한 신심을 가지신 분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기념으로—'판소리'는 세계에 유래가 없는 우리 대한민국만이 가지고 있는 희유한 불가사의한 음악인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동안 우리나라에 이러한 훌륭한 음악이 있다고 하는 것을 40, 50세 이상 된 분들은 인식한 분들이 많았었지만은 40 미만의 젊은 분들은 그것을 깊이 인식한 분들이 대단히 적었었습니다.

그러자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판소리 국악을 듣고서, 세상에 이러한 훌륭한 음악이 대한민국에 있어단 말이냐. 이래가지고 우리나라 사람보다도 훨씬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찬양을 하고 그러므로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녹음 끊김) ...하고 잘하시게 된 것입니다.

국악은 서양 음악과 달라서 아무리 서양 음악이 좋다고 하지만은 서양 음악은 아무리 그것이 명곡이라 해도 그것을 들음으로 해서 우리의 마음이 감동의 물결에 출렁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국악은 그 음악을 들음으로 해서 들뜬 마음이 순화가 되고, 나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게끔 하는 그러한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도 기왕 음악을 들으실랴면은 우리나라 고유의 국악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시고 감상을 해 주시길 바라면서 기왕 이 자리에 참석허신 기념으로 좋은 음악을 한바탕 듣기를 나는 바랍니다.
여러분이 원하신다면 박수를 해 주십시오.(박수)

그러면은 이어서 우리 법보 영가(法寶靈駕)들의 시식천도(施食薦度)가 있겠습니다만은,
또 올 여름에 법운행 노보살님이 우리 선원에서 일생 중에 처음이자 마지막 석 달 참선공부를 허셨던 그 법운행 보살님이 지금으로부터 약 달포 전에 앉아서, 별 병환도 없으신 가운데에 이 세상을 하직을 하셨습니다.
그 보살님의 네 번째 돌아오는 천도재가 오늘 또 거행이 됩니다.

그래서 이 음악은 산 사람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영혼들에게는 직접적으로 감동을 주고 정신을 순화시키는 그러한 불가사의한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서 재(齋)를 지낼 때에는 영산회상(靈山會相)이라고 하는 그러한 음악을 다 연주를 했던 것입니다.

오늘 박초선 여사께서 올리시는 음악은 우리 부처님께 올리는 음성 공양(音聲供養)이 되고, 우리 스님네와 우리 법보 신도 여러분들에게도 공양이 되고, 또 돌아가신 영가를 위해서도 훌륭한 공양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부탁을 합니다.


< 박초선 명창 음성공양 >


좋은 인연으로 좋은 법문 많이 들었습니다.
아까 스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우리 부처님 음악이 있습니다. ‘영산회상 불보살(靈山會上佛菩薩)’이라고요.
먼저 부처님께 공양 올리겠습니다.

영산회상(靈山會相) (연주 음악)

영산회상으로 우선 조금 올렸구요, 제가 찬불송(讚佛頌)으로 부처님께 올리겠습니다.

찬불송으로,
찰진심념가수지(刹塵心念可數知)야,  온 우주세계에 모든 마음을 다 알고,
대해중수가음진(大海中水可飮盡)가,  큰 바닷물을 한입으로 다 마시고,
허공가량풍가계(虛空可量風可繫)라도,  허공을 헤아려서 바람을 잡아매더라도,
무능진설불공덕(無能盡說佛功德)이라.  부처님의 공덕은 다 말하지 못한다. 다하지 못한다.

이 찬불송입니다.(‘찬불송’ 노래)

조금 더 할까요, 그만 할까요? 네, 이 찬불송입니다.
다음은 제가 말만 우리의 전통 음악하는 한 사람으로서 저는 이제부터는 용기를 내서 다행한 줄로 압니다.
우리나라 말, 우리나라 글, 우리나라 노래하는 박초선으로서 앞으로 부처님 심부름을 제가 성의껏 힘자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여러분도 많이 협조해서 좋은 음악을 많이 해서 여러 보살님들에게 참 많은 노래를 전하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박수)

말만 길게 하면 노래가 됩니다.
판소리 5바탕을 제가 독창회를 여러 번 가졌습니다만은 몇 시간을 제 시간을 다 해도 저는 얼마나 좋은지 기쁜지요.
이 기회를 제 노래로 다 메꿀 수 없고 그저 말만 길게 하면 노래가 됩니다만은 간단한 노래로, 평생의 교육자로서 저에게 가사를 주시고 가시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제목은 ‘그것도 멍텅구리’입니다. 이 4절만 먼저,
‘온 곳도 모르는 이 인간이 갈 곳을 어떻게 안단 말가, 갈 곳도 모르고 사누노나. 그것도 멍텅구리.
올 적에 빈 손에 온 인간이 갈 적에 무엇을 갖고 갈까, 공연한 욕심만 부르노나. 그것도 멍텅구리.
백 년도 다 못 산 이 인간이 영원히 죽지를 않을 처럼, 천만 년 준비를 허누노나. 그것도 멍텅구리.
세계적 학자라 하는 이들 무어나 모두 다 안다 해도, 자기가 자기를 모르노나. 그것도 멍텅구리.’

네, 진리에서 하는 말입니다.
아뭏튼 제가 전공이 판소리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전통 음악의 얼과 모든 우리 민족의 혼과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5바탕 중의 춘향가, 흥보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하는 것보다,
이 진리에서 나오는 이 가사를 보살님께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

간단히 마치겠습니다.
하기도 쉽습니다. 곡도 아주 쉽게 붙였습니다. 그러니 자꾸 알고, 바로 아실 수 있습니다.
알고 자꾸 행하시고 그러면 좋습니다.

(‘멍텅구리’ 노래)

감사합니다.(끝)(38분15초~60분2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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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煩惱) : 망념(妄念)이라고도 하는데,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정신작용의 총칭이나, 이곳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 이외의 모든 생각을 말한다.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이뭣고(是甚麼)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천상(天上) : 욕계의 육욕천(六欲天)과 색계•무색계의 여러 천(天)을 통틀어 일컬음. 신(神)들이 사는 곳. 신(神)의 세계.
*성현(聖賢) ; 성인(聖人)과 현인(賢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무단(無斷)히 ; 사전에 허락이 없이. 또는 아무 사유가 없이.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된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 ①‘들(평평하고 넓게 트인 땅, 논이나 밭으로 되어 있는 넓은 땅)’의 사투리. ②전북 김제 지역에서 하천이 실어온 토사가 쌓인 충적평야를 일컫는 말.
*탁발(托鉢 맡길 탁, 바리때 발) ; 도를 닦는 스님이 경문(經文)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수행자의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동시에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 공덕이 있다고 하여 부처님 생존 당시부터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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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世俗) ; 속세(俗世). 불가(佛家)에서 일반 사회를 이르는 말.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법담(法談) ; 선사(禪師)들이 서로 법문을 묻고 대답하는 것.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신통(神通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①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②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③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④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⑤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⑥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여기서는 누진통을 제외한 오통을 가리킨다.
*성말변지사(聖末邊之事) ; 신통(神通, 누진통을 제외한 5신통)은 ‘성인(聖人)의 분상에는 보잘것없는[末] 가장자리[邊]의 일이다.’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조만(早晩) ; 조만간(早晩間). 앞으로 얼마 안 가서.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혹(惑)하다 ; (사람이 어떤 대상에)홀딱 반하거나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다.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본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악업(惡業)을 짓지 않아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방식을 의미하였다가, 점차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리며 그 공덕을 함께하기를 기원하는 불교의식을 일컫는 말로 정착되었다.
또한 법회 때 스님이나 속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근래에는 특히 돌아가신 영가를 위한 천도재(薦度齋)가 널리 행해짐에 따라 보통 ‘재=천도재’로 여긴다.
*영산회상(靈山會相) ; 고려 시대부터 내려오는 속악(俗樂)의 하나로서, 석가여래가 설법하던 영산회(靈山會)의 불보살(佛菩薩)을 노래한 악곡. 영산회상곡(靈山會上曲).
*박초선(朴招宣) ; (1931~2014) 전남 화순군 향천리 출생. 공대일·박록주·김소희·김여란 등을 사사했다.
1963년부터 12년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수석단원으로 활동하면서 깔끔하고 정교한 소리로 한때 소리판을 주름잡았다. 70년 여성 최초로 박록주제 〈흥보가〉를, 75년 정정열제 〈춘향가〉 완창을 발표했다.
1975년 국립국악원에 입단한 박초선 명창은 1993년 미국 스토니부룩 대학교 한국학과 판소리 강의 및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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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하안거 해제, 백종2014.08.06 11:13

§(105) (게송)노승부작유인의~ / 활구참선법—일석삼조(一石三鳥)의 법문 / 자자(自恣) / 우란분(盂蘭盆)—대중공양 / 생사해탈하는데 있어서 3가지 요건.

일석삼조의 법문, 왜 그러냐? 활구참선법 하나만을 설하셔 가지고 해제에 관한 법문도 그 속에 들어있고, 우란분에 관한 법문도 그 속에 들어있고, 백일기도 회향에 관한 법문도 그 속에 다 포함되어 있어.
'죽으면 몸뚱이는 흙이 되어버리고 영혼은 그냥 흩어져 없어져 버리는 것' 그렇게 생각하실는지 모름니다마는, 금방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서 새 몸을 받게 됩니다.
아까도 조실스님 말씀에 이만큼 살아있을 때 이만큼 이러헌 여건하에 있을 때 시간을 놓치지 말고 참선을 허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생사대사가 정말 무섭다고 하는 것, 이것을 결정코 요달해야겠다'고 허는 그러헌 간절한 신심이 필요합니다.
**송담스님(No.105) - 1979년 하안거 해제법회(42분)


(1) 약 21분.  (2) 약 21분.


(1)------------------

노승부작유인의(老僧不作留人意)하고  간수간산백수장(看水看山白鬚長)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낙화유의수류수(落花有意隨流水)한데  유수무정송낙화(流水無情送落花)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노승(老僧)은 부작유인의(不作留人意)하고  간수간산백수장(看水看山白鬚長)이라.
늙은 중은 만류하는 사람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산을 구경하고 물을 구경하느라 팔도(八道)를 싸대다가 귀밑에 흰 수염만 길렀구나.

낙화(落花)는 유의수류수(有意隨流水)한데, 떨어진 꽃은 낙화는 뜻이 있어서 흐르는 물을 따라가는데,
유수(流水)는 무정송낙화(無情送落花)라. 흐르는 물은 무정(無情)해서 떨어진 꽃만 흘려보내는구나.

이 게송(偈頌)은 고인의 게송으로 대단히 의미가 심장(深長)한 게송입니다. 도에 관한 도시(道詩)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러한 깊은 뜻으로 보지만 말고, 우리가 이해할수 있는 그러한 평범한 뜻으로 보더라도 대단히 재미가 있는 시입니다.

방금 우리는 기미년 7월 15일 백중날이요, 또 여름 안거 해제날이요, 백일기도 회향날을 맞이해서 조실스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어째서 조실스님께서 해제날인데 해제에 관한 말씀도 안 하시고,
오늘은 백중(百中)날이요 우란분(盂蘭盆)이라, 우란분이란 말은 구도현(救倒懸)-거꾸로 매달린 것을 구해 준다해서, ‘꺼꾸로 매달린다’는 말은 지옥에서 우리의 선망부모가 꺼꾸로 매달려서 한량없는 고를 받고 있는데,
그 고를 풀어주는 날이다 해서, 구도현이라 해서 인도말로는 우란분이라 그러는데, 우란분 날인데 우란분에 대한 말씀도 안 하시고,

오늘은 또 백일기도 회향(廻向)날인데 백일기도 회향에 대한 말씀도 안 하시고 순전히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에 관해서만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이 법문은 일석삼조(一石三鳥)의 법문입니다. 돌 한덩어리를 던져가지고 날아가는 새 3마리를 떨어지게 하는 일석삼조, 보통 일석이조(一石二鳥)니 일거양득(一擧兩得)이니 이런 말을 씀니다마는,
일석삼조의 법문, 왜 그러냐? 활구참선법 하나만을 설하셔 가지고 해제에 관한 법문도 그 속에 들어있고, 우란분에 관한 법문도 그 속에 들어있고, 백일기도 회향에 관한 법문도 그 속에 다 포함되어 있어.

어서 빨리, 지금 지옥의 문이 열려 가지고 영감이 지금 여기에 와 계실텐데, 빨리 물 한 그릇이라도 올려야겠는데 알아듣지도 못한 법문을 저렇게 한 시간이나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시는 할머니가 계신다면은 귀를 번쩍 뜨시고, 침침한 눈을 뚝 부릅뜨시고 저를 쳐다보시면서 제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제 말씀을 잘 들으시면 정말 저 잘 이해가 되지 아니한, 무슨 활구참선이니 공안(公案)이니 ‘알았다고 하면 외도(外道)요, 몰랐다고 하면은 죽은 놈이라’ 대관절 저런 놈의 소리가 무슨 소린가?
할머니는 알아듣지 못하시지마는 이 법보선원 도량에 모인 육도법계의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는 다 그 법문 한마디에 이고득락(離苦得樂)을 하시게 되는 도리가 들어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최상승법이라야 일체 중생을 남음이 없이 이고득락 하게 하는 진리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 업보 중생들의 귀에 솔깃하고 재미있고 그렇다고만 해서 그 법문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실 때 그 근기(根機)에 따라서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설하시기도 하고 대승법(大乘法)을 설하시기도 하고 소승법(小乘法)을 설하시기도 하고 팔만사천 방편법을 설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때로는 방편(方便)을 설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최상승법을 설하시기도 하고 그러셨습니다. 그것은 까닭이 있습니다.

오직 최상승법이 최고라 해서 근기를 살피지 아니하고 최상승법만을 설하시고 만다면,
언제 그 하근기(下根機)가 귀를 기울일 때가 있기가 어렵기 때문에 우선 근기에 맞춰서 우는 어린아이 사탕을 입에 물리면서 병원에서 수술을 받도록 얼르듯이,
달을, 저 하늘에 떠 있는 저 밝은 거울을 따 달라고 우는 어린이에게 노란 단풍잎을 주면서 ‘여기 이게 돈이다 돈이다’ 얼르듯이 방편법을 부득이해서 설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근기가 하열하다고 해서 방편법만 설하실 수도 없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철없어서 운다고 해서 밤낮 사탕만 입에다 넣어주고, 진짜 병이 나을 약은 먹이지 아니하고, 수술도 아니한다면 그 아이의 병은 언제 나을 기약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금방 조실스님께서 최상승 법문을 설하셔서, 여러분 가운데에 수승한 인연을 짓고 수승한 근기를 가지신 분은 더 이상 법문을 더 들으실 필요가 없으실 줄 생각합니다.
너무나도 분명하게 너무나도 간곡하게 그렇게 뚜렸하게 해 주신 법문을 듣고 더 이상 무슨 말씀을 들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러헌 분이라 할지라도 다른 도반들을 위해서 또 옅으디 옅은 방편법을 같이 들어주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해제날입니다. 해제(解制)라 하는 것은,
인도는 대단히 비가 계속해서 쏟아지기 때문에 장마철이라 도저히 산에서 나무 밑에서 한데에서 잠을 자며 공부헐 수가 없습니다.
이러헌 계절에는 모두 국왕이나 또는 뜻있는 신도가 지어드린 정사(精舍), 죽림정사(竹林精舍)라든지 기원정사(祇園精舍)라든지 그러헌 정사에 모여서 다같이 공부를 허는 기간입니다. 이것이 바로 결제(結制), 안거(安居)라 하는 것입니다.

4월 15일에 반드시 결제를 해가지고 7월 15일 90일 만에 해제를 합니다.
해제날에는 온 대중이 한데 모여서 부처님 법문을 듣고 그동안 자기가 공부해 나가는데 있어서 의심나는 점을 부처님께 여쭈어 깨달은 바가 있는 사람은 부처님께 인가를 맡고,

또 밤이 되면 차례차례 자자(自恣)라 해서, '스스로 자기의 죄를 묻는다'해서 대중이 빙 한데 모여가지고,
부처님부터서 한 무릎을 땅에 대고 한 무릎은 세우고서 합장을 허고서 “여러 대중 스님들, 석 달동안 내게 어떠헌 잘못이 있는 것을 보았다면 자비로서 나에게 충고를 해주시오”
이렇게 대중 앞에 자기의 허물을 지적해 줄 것을 간절히 신청을 허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중이 아무 말씀이 없으면 또 다음 차례로 가고 그렇게 해서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달이 넘어갈 때까지,
오늘은 보름날이라 둥근달이 뜨겠습니다마는 초저녁부터서  뜬 그 달이 저 서산(西山)에 넘어갈 때까지 대중이 많을 때에는 그러헌 의식이 아주 진지하게 진행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해제'라고도 하고 '자자일'이라고도 하고 '스스로 자(自)자' '물을 자(恣)자' ‘스스로 자기의 허물을 대중에게 묻는다’해서 자자일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여기저기서 모다 조금 10리 20리 떨어진 선방에서 공부하던 분들도 전부 부처님 회상(會上)으로 전부 모이게 되는 날이어서, 이 날은 그러헌 뜻깊은 날인 것입니다.

우란분(盂蘭盆)이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주발 우(盂)자, 난초 란(蘭)자, 항아리 분(盆)자 그것은 인도말로써,
중국말로 의역을 허면 구도현(救倒懸) '구제한다'고 해서 구(救)자 하고, 꺼꾸러질 도(倒)자, 매달릴 현(懸)자, ‘꺼꾸로 매달린 것을 구제한다.’

우리의 선망부모는 지옥에서 꺼꾸로 매달려 가지고 갖은 고행·악행을 받으면서, 하루날 하루밤에 만번 죽음을 당하고 만번을 살려내가지고 무량겁을 두고 그러한 고(苦)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선망부모가 오늘 하루만은 전부 다 풀어서 지옥문 밖으로 특별 휴가를 보내는 날인 것입니다.

왜 그러냐?
부처님 당시에 목련존자(目連尊者), 목건련(目犍連)이라고 하는 부처님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 제자는 출가하기 전에는 나복(羅卜)이라 이름을 불렀고 그 나복이의 어머니는 청제(靑提)부인이라, 이름이 청제라고 하는 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복이는 이 세상에 없는 착하고 총명하고 효심이 있는 훌륭한 청년이였지만은 그 나복이를 낳으신 어머니 청제부인은 세상에 없는 행실도 좋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마음씨도 좋지 못하고,
남편을 두고서 외간남자와 정통을 하고 그러기 위해서 남편을 독살을 하고 남편이 죽은 뒤에 그 소와 돼지를 잡아서 아주 열녀(烈女)인 것처럼 장례를 거판스럽게 치르고 온갖 못된 짓을 하면서 놀아나다가 결국은 죽었습니다.

나복이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특히 그러한 어질지 못한 많은 죄를 지은 어머니가 대관절 돌아가셨으면 어디에 가셨겠는가? 틀림없이 지옥 아니면 축생이나 그렇지 않으면 아귀도(餓鬼道)에 계실 것이다.
그리 생각을 하고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해서 그 부모가 돌아가신 뒤의 슬픔을 부모 영혼을 구제하는데 정성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명히 그 어머니가 어디에 계신가를 알아야만 어머니를 구제할 수 있으리라 싶어서 여러 방면으로 그 길을 묻자,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가지고 도를 열심히 닦으면 어머니 계신 곳을 안다’는 말을 듣고 출가해서 부처님 제자가 되어서 열심히 도를 닦아가지고 육신통(六神通)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에 목련존자는 '신통제일(神通第一) 목련존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부처님의 왼팔은, 사리불존자는 왼팔이요 목련존자는 오른팔입니다.
두 분이 서로 왼팔 오른팔이 되어가지고 부처님을 받들어 모시고, 불법(佛法)을 선양(宣揚)을 한 공로가 큰 그러한 존자이시지만 그 십대제자 가운데에도 유독 목련존자는 신통제일이라.

신통이 나가지고 육도법계를 관찰을 해보니까 그 어머니가 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를 받고 있어.
특히 그 춥고 배고프고 하는 그러한 지옥에서 탈탈 굶고 장이 찢어지도록 그렇게 배가 고프고 추운 그러한 데서 고(苦)를 받고 계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신통력으로 지옥에를 들어갈 때에 시원한 물과 맛있는 음식을 가지고 들어가서 어머니의 입에다가 떠넣어드렸습니다.
그 어머니가 피투성이가 되어가지고 배가 고파서 몸부림치는대다가 물을 주니까, 어떻게 반갑고 좋은지 그놈을 받아가지고 벌벌벌벌 떨면서 그 물을 받아서 입에다 넣었습니다.

입에 넣자마자 그 물은 불로 변해가지고 훨훨훨훨 목구녕에서 부터서 타 나왔어.
아무리 맛있는 것을 입에다 넣어도 넣기만 하면 그것이 불이 되어가지고 꺼꾸로 기어 나오고, 물을 퍼부어도 그것이 불이 되어가지고 꺼꾸로 나왔습니다.

오히려 물을 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드린다는 것이 어머니로 하여금 더욱 괴롭게만 해드린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다하다 못해서 다시 지옥에서 나와가지고 부처님 앞에 가서 울면서 간청(懇請)을 했습니다.

“부처님! 세존(世尊)이시여. 어떻게 하면—설사 죄는 지어서 지옥에 떨어져가지고 고생을 하고 계시기는 하지마는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이십니다.
아무리 죄 많은 어머니라 할지라도 그 어머니가 아니였으 이 목련이라고 하는 부처님의 제자가 어디서 태어났겠습니까. 부디 이 제자의 얼굴을 봐서라도 그 어머니가 구제될 수 있는 길을 가르켜주십시오” 울면서 간청을 했습니다.(처음~21분10초)


(2)------------------

“네가 아무리 신통이 제일이라 하더라도 너 한 사람의 힘으로는 네 모친(母親)을 구제할 수가 없느니라. 오늘은 다행이 해제날로써 각 지방에서 공부하던 납자(衲子)들이 전부 여기에 모여 있다.
그러니 이날을 기해서 네가 최선을 다해가지고 백가지 음식으로써 맛있는 음식 공양으로써 여기에 모인 여러 스님들을 공양(供養)을 해라.

이 가운데에는 불보살(佛菩薩)의 화신(化身)도 계실 것이고, 이 가운데에는 나한과(羅漢果)를 증득한 도인도 있을 것이고 이 가운데에는 무심도인(無心道人)도 있을 것이고,
겉으로 보기에는 떨어진 누데기를 입고 거지꼴 같이 보이기도 하고, 못난 사람 같이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 가운데는 불보살 화현, 나한과를 증득한 도인, 무심도인, 앞으로 얼마 안가면 대도를 성취헐런지도 모른 그러한 분도 있어.

그러니 차별을 두지 말고 정말 생불(生佛)한테 공양하는 그러한 정성으로 공양을 올려라. 그러면 그분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가지고 관(觀)을 해주신다. 그 공덕으로 너의 모친을 구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그 방법을 일러주셨습니다.

그래서 목련존자는 최선을 다해서 탁발을 하고 동냥을 하고 그래가지고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에게 정성을 다해서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 공덕으로 청제부인은 지옥으로부터 구제를 받고 천상에 태어남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유래가 되서 매년 7월 15일 우란분(盂蘭盆)에는 하루 동안 특별 가석방을 받아서, 우리의 모든 선망부모도 오늘 하루는 어디고 당신을 청하는 곳으로, 인연있는 곳으로 휴가를 나오시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도량에 우리의 눈에는 볼 수 없지만, 무량겁을 두고 이 몸이 태어날 때마다 만났던 우리의 부모들, 우리의 조상들, 우리와 인연있는 영혼들이 이 자리에 가뜩 모여 계신 것을 나는 믿습니다.

청하지 않드라도 인연있는 곳을 찾아오실걸, 하물며 여기에 만년위패(萬年位牌)를 모시고, 또 법회가 시작할 때 법계 축원을 해서 우리의 선망부모를 다 이 자리에 청해 모셨습니다.
그리고서 법회를 시작했기 때문에 틀림없이 이 자리에는 우리의 선망부모 영혼들이 구름같이 천문학적 숫자로도 셀수 없을 만큼 많이 모여 계신 것을 나는 믿고 느낌니다.

그러한 영혼들이 오늘 조실스님의 최상승 법문을 듣고 무량겁 업장(業障)이 봄눈 녹듯이 다 녹아 없어졌을 줄 생각합니다.
하루 동안 잠깐 가석방으로 나왔다가 최상승법을 듣고 영원히 해탈도를 증득할 수 있으리라고 나는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부처님 탁자와 영단에는 여러분의 정성으로 갖다 바친 가지각색의 공양구(供養具)가 바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목련존자가 그 청제부인을 구제하기 위해서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께 공양한 그것이 유래가 되어서 삼천년을 두고 인도나 중국이나 일본이나 한국, 동남아 각국, 아시아 각국에서 이러한 법요식이 면면히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참선(參禪)이 무엇인 중도 모르시고, 이 백중날 ‘돌아가신 영감, 나보다 앞서간 자식 불쌍한 딸 그 위패라도 하면은 좋은 곳으로 간다’ 오직 그 소박하고 간절한 그러한 신심으로 오신 분도 계실줄 생각합니다. 그것도 또한 인연입니다.

그러한 소박한 신앙심이 인연이 되어서 이러한 활구참선법, 최상승법을 듣게 되니 ‘돌아간 영감이 나의 손을 끌어다가 여기다가 데려다 주었구나. 불쌍하게 죽은 딸이 나를 끌어다가 인도해다 여기다 주었구나.’
이쯤 생각하시고 더욱 신심을 돈독히 하시고 돌아간 영감, 아들, 딸, 선망부모에 고마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잘 천도해 주시도록 마음을 쓰신다면 그것도 또한 좋은 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은 4월 15일에 결제와 아울러서 시작한 백일기도가 또 오늘 회향을 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몇 차례의 관음재와 몇 차례의 법회를 가져왔고 그때마다 법문 듣고 공양 올리고 또 간단히 선망부모의 천도를 행해 왔습니다.
오늘도 역시 해제 법요식과 우란분 법요식과 아울러서 백일기도 회향 법요식도 겸해서 거행이 됩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사부대중 여러분은 여기에 참석한 그 인연으로 한 분도 최상승법에서 퇴전(退轉)함이 없이 결정코 금생에 도업(道業)을 성취하셔서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이으시게 될 것을 나는 빌고 믿고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녹음 끊김)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해탈(解脫)하는데 있어서 3가지의 요긴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결정코 이 생사대사를 요달(了達)해야겠다’고 하는 그러헌 간절하고도 뜨거운 신심을 가져야만 됩니다.

이러한 말씀을 들어도 ‘그까짓 생사대사 한번 나면 죽는 것은 정칙인데 안 죽을라고 한다 해서 안 죽을 장사 있나. 그저 우선 영감하고 배불리 먹고 등따시게 살면 그만이고, 자식들이나 그저 빨리빨리 커서 결혼시켜버리면 무슨 걱정이여, 생사고 지랄이고 소용없다.’

지금 별 생활하는데 걱정이 없는 분은 혹 그렇게 생각하실런지 모릅니다만은 생사는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꼭 늙어서만 죽는 것도 아니고 하루 일을 모르는 것이고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그것이 죽음입니다.

'죽으면 몸뚱이는 흙이 되어버리고 영혼은 그냥 흩어져 없어져 버리는 것' 그렇게 생각하실는지 모름니다마는, 금방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서 새 몸을 받게 됩니다.

복을 지었으면 천당에나 또는 인도(人道)에 태어나되 좋은 여건하에 태어나게 되고, 죄를 지은 사람이면 축생이나 아귀나 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苦)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추호(秋毫)도 어김이 없습니다.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는 지극히 과학적 사실인 것입니다. 이건 면(免)할 길이 없습니다.

아까도 조실스님 말씀에 이만큼 살아있을 때 이만큼 이러한 여건하에 있을 때 시간을 놓치지 말고 참선을 하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생사대사가 정말 무섭다고 하는 것, 이것을 결정코 요달해야겠다'고 하는 그러헌 간절한 신심이 필요합니다.

둘째는 세간(世間)의 영욕(榮辱)·득실(得失), 명예와 권리와 오욕락(五欲樂)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허망(虛妄)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됩니다.
명예나 권리나 재산 모다 이런 것들이 세상에 살면서 인간으로 태어나서 필요한 것이기는 합니다. 절대로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허망하다고 해서 대거해버려도 괜찮고 막 내동댕이쳐도 괜찮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필요한 만큼은 부지런히 노력을 해서 그것을 얻어야만 됩니다마는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한 것이라고 믿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영원한 것이 아니요 허망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을 해야 하고,
그것이 허망하고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면서도 열심히 부지런히 바른 방법으로 그것을 획득을 하기 위해서 날마다 노력을 또 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실된 불자의 생활 태도인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둘다 바른 진리인 것입니다. 최상승법을 믿고 열심히 공부한다면 자연히 그렇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일부로 그렇게 할라고 해서가 아니라, 정법을 바로 믿고 열심히 참선을 하면 아까 말씀드린 그 2가지의 마음가짐이 저절로 갖추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셋째는 이 2가지의 생각—'생사대사를 기어코 요달해야겠다는 생각'과 '세상의 오욕락은 허망하다고 하는 생각' —이 2가지의 생각이...
그러니까 '결정코 금생에 도업을 성취해서 부처님의 혜명을 이어받고, 나아가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겠다고'하는 이러한 신심이 영원히 퇴전치 아니한 것.
아무리 그런 신심이 들었다 하더라도 중간에 퇴전해 버리고, 물러서버리고 만다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 3가지 중에 한 가지만 빠진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도(道)를 이루기가 어렵고,
그 가운데 2가지가 빠진다면 그 사람은 도의 문(門)에서 결국 도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고,
3가지가 다 없는 사람이—이 3가지의 철저한 마음이 다 없는 사람으로써 팔만대장경을 육두로 다 외우고 해설하고 대강사·대학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도에 있어서는 마침내 몰교섭(沒交渉)이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죠. '교섭이 없다' '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인연이 영 없는 사람이다.'

이 3가지의 마음이 철저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아무리 글을 잘해봤자 그 사람은 생사해탈은 할 수가 없다 이런 말씀입니다.

이어서 부처님과 보살님과 부처님의 제자이신 성현들께 공양을 올리고 그 다음으로 우리의 선망부모 모든 영가들께 천도법요식(薦度法要式)을 거행하게 됩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만일 이렇게 간곡히 해 드리는 말씀을 듣고 믿고 그리고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내생에 지옥이나 축생이나 아귀도에 떨어져서 그때가서 후회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러한 내용의 게송입니다.

오늘 해제를 해서 댁(宅)에 가시는 보살님네들, 석 달동안 절에서 선방에서 공부하시던 그 마음이 가정에 복잡한 생활 속에서도 흩어지지 않도록 열심히 정진을 하시기를 부탁을 드리고,

조용한 데서 규칙생활을 하다가 댁에 가시면 손자가 떠들어싸코 어쩌고 저쩌고 복잡하고 하니 신경질을 볼쏙볼쏙 내싸시면, 그러시지는 않겠지마는 절대로 그러시면 안됩니다.

‘절에 가서 석 달동안 참선을 하고 오시더니 성품이 더욱 나뻐져 갔고 오셨다’ 며느리나 아들딸이 그렇게 생각이 든다면 그분 한 분으로 인해서 참선법을 비방받게 맨드는 것이 되고, 용화사 이 선방을 갔다가 욕을 얻어먹게 맨드는 결과가 됩니다.

‘아! 그전에는 그렇게 성질이 까끄럽고 고약하시더니 용화사 선방에 갔다오신 뒤 부터서는 뚝! 변해 가지고 세상에 그런 인자하고 자비스럽고 아량있고 그러한 할머니가 되셨다, 그런 어머니가 되셨다.’
아! 이 다음철에는 또 선방에 가시라고 돈도 두둑히 드리면서 아주 또 가시라고 할 것이 아니냐 그말씀이여.
선방에만 갔다오면은 신경질을 더 내면 누가 선방에 가시라고 할 것이냐 이말이여.

그렇게 아시고 댁(宅)에 가셔서 더욱 열심히 참선을 하시고, 더욱 며느리한테도 잘하고, 손자 손녀한테도 더욱 잘하고, 일찍일찍 일어나서 참선도 잘하시고 하면은 그 할머니 한 분으로 해서,
인자는 그 며느리 친구까지도 ‘아! 우리 시어머니는 선방에 갔다오시더니 그렇게 참 훌륭하시게 되았다. 당신도 시어머니 선방에 보내 드리라고’ 이렇게 해서 용화사 방부(房付)를 할머니들이 몇백 명이 모여들게 될것이다 그말이여.

법당이 이렇게 좁아서 이렇게 법당에 다 들어오시지도 못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렇게 햇볕이 따갑꺼나 이렇게 밖에서 모다 계시고 또 저쪽에 법회에 향해서 먼 저 딴 방에서 그렇게 계시니,
기왕이면 얼굴을 보면서 들어야 재미가 있고 그렇지, 저쪽에서 궁둥이를 딴 데를 둘러대고 귀를 아무리 종그릴라고 해도 옆에서 수군거려싸코 법회라고 하는 것이 엄숙해야 되는데,

그래서 내년에는 300여평 큰 법당을 지어서 모든 사부대중이 함께 들어와서 법문도 듣고 같이 참선도 할 수 있도록 할랴고 지금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괴롭더라도 참은 김에 조금만 더 참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처음~42분2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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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老僧不作留人意  看水看山白鬚長’ ; 중국 송나라, 진여의(陳與義)의 시(詩) ‘용문(龍門)’ 참고.
*(게송) ‘落花有意隨流水  流水無情送落花’ ; [선문염송] (혜심 지음) ‘제2권 50칙 견견(見見)’ 죽암규상당거차화운(竹庵珪上堂擧此話云) 참고.
*팔도(八道) ; ①우리나라 전체. ②[역사] 조선 시대, 전국을 여덟 개로 나눈 행정 구역. 경기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를 말한다.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백중(百中)날 ; 음력 칠월 보름날. 석 달간의 하안거(夏安居)를 마치는 날. 하안거를 마친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리어 그 공덕으로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제한 목련존자의 효심을 기원으로 하는, 우리의 선망부모의 영가를 천도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우란분회 盂蘭盆會). 백중(百衆)·백종(百種)이라고도 한다.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고려 시대에는 이날 국가적으로 '우란분회'를 열었으나 조선 시대 이후로 절에서만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재를 올리고, 농가에서는 이날 하루 농번기의 피로를 씻기 위해 머슴을 쉬게 하였다.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이고득락(離苦得樂) ; 괴로움을 벗어나서 즐거움을 누림.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대승법(大乘法) : [범] Mahayana 대승(大乘)이란 큰 수레를 뜻한다。큰 원(願)과 큰 뜻을 세워서 나를 희생하여 모든 중생을 즐겁고 편안하게 건져 주겠다는 보살심(菩薩心) 있는 이들을 위하여, 육도(六度)와 만행(萬行)을 닦아 가도록 깊은 이치를 말씀하신 법문이다.
그 대표적인 경전은 <반야경(般若經)> <해심밀경(解深密經)> <능가경(楞伽經)> <기신론(起信論)> <범망경(梵網經)> 같은 것들이다。이 법문을 요약하여 말하면, 이 세상에 온갖 물질과 일(森羅萬象)이 벌어져 있으나, 낱낱이 현상(現象) 그대로 비어 없는 것이며, 모든 차별된 것이 그대로 다 평등하여 열반인 것이다。따라서 무엇에나 걸릴 것이 없는 것이다.
소승의 열반이 소극적이며 작고 옅은 것이라면 대승의 열반은 적극적이며 크고 참된 것이다。한 중생도 남음이 없이 모두 제도한 뒤에야, 자기가 성불하겠다는 소원이야말로 대승의 보살심인 것이다.
*소승법(小乘法) : [범] Hinayana 소승(小乘)이란 작은 수레란 뜻이다。수레는 사람을 태워서 험한 곳을 지나 안전한 곳에 가게 하는 것인데, 작은 수레는 아이들이나 타게 되며, 옅은 물이나 건널 수 있는 것이다。<법화경>에는 「양의 수레」와 「사슴의 수레」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 처음 인천교를 말씀하신 다음으로 옅고 낮은 이치의 길을 가르쳐, 생각을 끊고 마음을 비게 하여 열반(涅槃)의 고요한 즐거움을 얻도록 하셨다。그 속에는 사제법(四諦法)을 깨치면 아라한(阿羅漢)이 되고, 십이 인연법(十二因緣法)을 깨치면 연각(綠覺)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소승에도 두 가지 길이 있으므로 이승(二乘)이라고도 한다。소승법을 말씀한 대표적 경전은 <아함경(阿含經)> <구사론(俱舍論)> <성실론(成實論)> <사분승계본(四分僧戒本)> <사분비구니계본(四分比丘尼戒本)> 등이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죽림정사(竹林精舍) ; 마가다국(magadha國)의 왕사성(王舍城) 부근에 있던 불교 최초의 사원. 붓다가 깨달음을 이루고 왕사성을 찾았을 때, 칼란다(kalanda) 장자(長者)가 붓다에게 기증한 죽림 동산에 빔비사라(bimbisāra) 왕이 지어 붓다에게 바친 정사.
*기원정사(祇園精舍) ;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정사의 약어(略語). 중인도 코살라국(國)의 수도 사위성(舍衛城:슈라바스티) 남쪽 1.6 km 지점에 있던 기타태자(祇陀太子) 소유의 동산에 지은 절.
이는 ‘기타태자의 동산에 수달(須達:給孤獨長者)이 지은 승원’이라는 뜻인데,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란 ‘고독한 이들에게 보시를 많이 한 부자’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인 법회. ②설법하는 모임. 설법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자리.
*목련존자(目連尊者)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열녀(烈女) ; 죽음을 무릅쓰고 절개(節介 지조와 정조를 깨끗하게 지키는 여자의 태도)를 지킨 여자.
*아귀도(餓鬼道) ; 육도(六道,六途)의 하나. 재물에 인색하거나 음식에 욕심이 많거나 남을 시기·질투하는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곳으로, 늘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괴로움을 겪는다고 함.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①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②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③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④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⑤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⑥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십대제자(十大弟子) ; 석가모니의 제자 중 수행과 지혜가 뛰어난 10명을 이르는 말.
사리불(舍利弗) : 산스크리트어 śāriputr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지혜가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 일컬음. 원래 목건련(目犍連)과 함께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인 산자야(sañjaya)의 수제자였으나 붓다의 제자인 앗사지로부터 그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250명의 동료들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다.
목건련(目犍連) : 산스크리트어 maud galyāyan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원래 산자야(sañjaya)의 수제자였으나 사리불(舍利弗)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다.
가섭(迦葉) : 산스크리트어 kāśyap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 출신으로, 엄격하게 수행하여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일컬음. 결혼했으나 아내와 함께 출가하여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그 모임을 주도함.
수보리(須菩提) : 산스크리트어 subhūti의 음사. 사위국(舍衛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공(空)의 이치에 밝아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일컬음. 그래서 공(空)을 설하는 경(經)에 자주 등장하여 설법함.
부루나(富樓那) : 산스크리트어 pūrṇa의 음사. 바라문 출신으로, 설법을 잘 하여 설법제일(說法第一)이라 일컬음. 녹야원(鹿野苑)에서 붓다의 설법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됨. 인도의 서쪽 지방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하다가 거기에 입적함.
아나율(阿那律) : 산스크리트어 aniruddha의 음사.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아난(阿難)·난타(難陀) 등과 함께 출가함. 통찰력이 깊어 천안제일(天眼第一) 이라 일컬음.
가전연(迦旃延) : 산스크리트어 kātyāyana의 음사. 인도의 서쪽에 있던 아반티국(avanti國)의 크샤트리야 출신으로, 왕의 명령에 따라 붓다를 그 나라로 초청하기 위해 찾아갔다가 출가함. 깨달음을 얻은 후 귀국하여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함. 교리에 밝아 논의제일(論議第一)이라 일컬음.
우바리(優波離) : 산스크리트어 upāli의 음사. 노예 계급인 수드라 출신으로 석가족의 이발사였는데, 아난(阿難)·난타(難陀)·아나율(阿那律) 등이 출가할 때 같이 붓다의 제자가 됨.
계율에 엄격하여 지계제일(持戒第一)이라 일컬음.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계율에 대한 모든 사항을 암송함으로써 율장(律藏)의 성립에 크게 기여함.
나후라(羅睺羅) : 산스크리트어 rāhula의 음사. 붓다의 아들.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사리불(舍利弗)과 목건련(目犍連)을 스승으로 하여 출가함. 지켜야 할 것은 스스로 잘 지켜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 일컬음.
@아난(阿難) : 산스크리트어 ānanda의 음사.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난타(難陀)·아나율(阿那律) 등과 함께 출가함. 붓다의 나이 50여 세에 시자(侍者)로 추천되어 붓다가 입멸할 때까지 보좌하면서 가장 많은 설법을 들어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일컬음.
붓다에게 여성의 출가를 3번이나 간청하여 허락을 받음.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아난이 기억을 더듬어 가며 “이렇게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붓다께서는……”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암송하면, 여러 비구들은 아난의 기억이 맞는지를 확인하여 잘못이 있으면 정정한 후, 모두 함께 암송함으로써 경장(經藏)이 결집됨.
*세존(世尊) : [범] Bhagavat ; Lokanatha ; Lokajyestha의 음역(音譯)으로 바가범(婆伽梵), 로가나타(路迦那他), 로가야슬타(路伽惹瑟吒)라 하며 부처님 십호(十號)의 하나.
부처님은 원만한 공덕을 갖추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시므로, 이렇게 부르며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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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자(衲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
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 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화신(化身) ;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法身•報身•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변화신(變化身)•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나한과(羅漢果) ; 아라한(阿羅漢)의 경지.
*아라한(阿羅漢) ;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응공(應供)•응진(應眞)•무학(無學)이라 번역.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누대기 ; '누더기(해지거나 뜯어진 곳에 다른 천을 대어 누덕누덕 기운 헌옷)의 사투리.
*생불(生佛) ; 살아 계신 부처.
*탁발(托鉢 밀 탁, 바리때 발) ; 스님이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동냥 ; 수행 중인 스님이 시주를 얻으려고 돌아다니는 일. 또는 그렇게 해서 얻은 돈이나 물건.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공양구(供養具) ; 부처님이나 보살님께 바치는 음식물·향·꽃 등의 물건, 또는 그 물건을 바칠 때 사용하는 기구.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퇴전(退轉) ; 불교를 믿는 마음을 다른 데로 옮겨 처음보다 더 밑으로 전락(轉落)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혜명(慧命) : 지혜를 생명에 비유한 말.
*해탈(解脫)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료,통달할 달)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추호도’, ‘추호의’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법요식(法要式) ; 불사(佛事-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를 할 때 행하는 의식.
*(게송) ‘금생약불종사어 후세당연한만단’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종그리다 ; (사람이 귀나 입술 따위를)살짝 내밀거나 세우다. 귀기울여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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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인과, 인연2014.04.02 02:46

§ 3능, 3불능 / 정업(定業)은 난면(難免) /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쓴 것 / 찰나(刹那) 간에 몰록 / 신•분•의(信•憤•疑) 삼요.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써가지고 그 각본에 의해서 우리가 연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업과 금생에 지어가는 업, 그런 것들이 합해 가지고 우리의 미래가 열려 나가는 것이니까, 우리는 이미 과거에 지어버린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나, 그 각본을 우리는 고쳐서 쓸 필요가 있다.
불교는, 인과법은 숙명론(宿命論)도 아니고 운명론(運命論)도 아니다.
명상(名相), 이름이나 모양이라는 것은 환(幻)으로 이루어진 거여.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을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는 거여.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해서 자기의 주인공(主人公)을 깨닫는 방향으로 나가는 사람은 제외하고는, 그렇지 않는 사람은 착하나 악하나 그놈이 그놈이여. 언제 어떻게 변할른지 모르는 거여.
우선 당장 괴로운 일이 있는데 「이뭣고?」만 할 수 있느냐?
괴로운 일 자체가 꿈에 어디 종기를 앓는 거와 같애. 꿈을 꾸는 동안에는 정말 아프지만 꿈을 깨자마자 꿈에 앓던 종기가 몰록 낫어버리는 거여. 차츰차츰 낫아가는게 아니라, 찰나(刹那)간에 몰록 낫아버리는 것이여.
철저하게 믿고 철저하게 신•분•의(信•憤•疑) 삼요소로 나간다면 누가 못 깨닫게 되느냐 그말이여.
**송담스님(No.521) - 1994년 1월 첫째일요법회(94.01.02)에서.

(1) 약 21분.  (2) 약 18분.


(1)--------------------

새해가 돌아오면 토정비결을 본다든지, 어디 또 만신이나 점쟁이한테 가서 신수도 보고 해서 금년 운수가 어떤가? 뭔 일이 좀 잘될란가?

참 답답해서 가시는 분도 있고, 누가 족집게 점쟁이다 잘맞춘다 하니까 호기심으로 따라가기도 하고, 그러다가 그냥 좋다고 하면은 좋아가지고 복채도 많이 주고 돌아오지만,
‘대주(大住)가 금년에 대단히 안 좋다고.. 굿을 몇 번을 해야 하고, 무슨 몇십만 원 짜리 부적(符籍)을 사서 몸에 지녀야 하고..’ 이거 참 겁나는 소리를 하면 그 말을 듣고는 속이 편틀 못하다 그말이여.

아무리 여기서는 이런 말을 들어도 집에 가서 어쩌고저쩌고 하면 금방 생각을 내신다 그말이여. 이건 지식이 있건 없건 여자분은 여간해서 그런 데에 속지 않기가 어렵다 그말이여.
‘남편한테 해롭고 자식한테 해롭다’하는 데에는 어떠한 일이라도 해보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마음, 나 충분히 이해는 하는데, 그것이 별로 그렇게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말이여. 그거 왜 그러냐?

점쟁이는 혹 지내간 일은 더러 맞추는데,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서는 그렇게 잘 못 맞춰. 점쟁이 한테는 삿된 귀신이 잠시 붙어가지고 그 삿된 귀신이 돌아다니면서 봐서 일러주면은 지내간 일은 잘 맞추는데, 귀신도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든. 잡귀는 모르거든.

부처님처럼 삼명육통(三明六通)이 나서 육신통(六神通)으로 보신다면은 과거•현재•미래를 손바닥 안에 보듯 환히 아시지만, 점쟁이는 육신통이 난 게 아니여. 잡신(雜神)이 잠시 붙어가지고 그 잡신의 힘으로 지내간 일 뭘 좀 아는 소리를 하는데, 그것 가지고 미래 일까지는 다 모르거든.
혹 맞추기도 하고 안 맞추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러한 말을 믿고 우리가 중대한 일을 추진을 한다고 하는 것은, 그건 정신병자가 운전하는 차를 탄 거와 같아서 그놈이 언제 어디다 꿀어박을지 모르거든.

우리는 아무리 정법(正法)을 믿고 참선을 해도 살다 보면 좋은 일도 만나고, 슬픈 일도 만나고, 괴로운 일도 만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한테도 3불능(三不能)이 있어. 3능(三能)과 3불능이 부처님한테 있다고 그러는데, 부처님께서 세 가지 능한 것은 무엇이냐?
(첫째는) 일체 상이 다 공(空)해서 그래 가지고 만법의 지혜를 이루시는 것이 부처님이 능하는 일이여.
두 번째는 모든 중생의 성품을 환히 다 알고, 억겁의 모든 일을 다 맥힘이 없이 다 아시는 거여.
세째는 무량 중생을 제도하실 수가 있어. 이것이 부처님이 세가지 능하신 것인데,

그러한 삼명육통과 팔해탈(八解脫)을 증득하신 그러한 부처님도 세 가지 능(能)치 못한 것이 있는데,
당신이 무량겁으로부터서 오시면서 지으신 정업(定業)은 멸(滅)할 수가 없어. 그래 모든 것을 환히 다 아시고 육신통이 자재(自在)하시고 팔해탈이 자재하신데 왜 모든 것을 마음대로 다 하실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정업을 멸할 수가 없다.

두 번째는 인연없는 중생을 제도할 수가 없어.
셋째는 중생계를 다하지 못혀. 이 세상의 한 중생도 없이 다 무량 중생을 제도하실 수는 있으나, 중생계가 완전히 다 없어지도록 하실 수는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의 그러한 법력(法力)과 도력(道力)과 신통력(神通力)으로서도 부처님의 고국인 가비라(迦毗羅) 왕국이 멸망할 때 그걸 번연히 알고 계셨고 보고 계시면서도 그것을 막을 수가 없으신 것이여.
과거의 삼천불, 현겁 삼천불, 미래 삼천불 삼천(三千)의 부처님이 계셔도 중생계는 다하지 못하는 거여.

부처님의 자비는 인연이 있고 없고 간에 다 똑같이 베풀어지지만, 인연(因緣) 있는 중생이라야 제도가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우리는 인연을 부처님과 맺음으로 해서 부처님의 법문을 듣게 되고,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믿게 되고, 믿고서 실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런 부처님께도 그런 삼불능(三不能)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는 부처님께서 능(能)치 못한 3가지도 우리는 또 마찬가지고, 우리는 그보다도 수수 백만 가지가 능치 못한 것이 너무너무 많은데, 우리가 과거에 지은 그런 정업(定業)을 우리가 점쟁이 말 듣고 그것이 면(免)해질 수가 없어.

방법은, 이미 우리가 지어 가지고 받는 것은 도저히 피할 길이 없는 것이고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그것을 받아 넘기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여.

공자님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중국을 이렇게 유행을 하시는데, 관리한테 붙잡혀 가지고 큰 난을 당했어. 그것은 양호라고 하는 악인이 있었는데, 공자님이 그 양호란 놈하고 얼굴이 비슷하게 생겨 가지고 양호인줄 알고 체포를 당해 가지고 참 억울한 어려운 일을 당하다가 간신히 풀려났는데,

그 제자가 묻기를 ‘성현(聖賢)도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할 수가 있습니까?’ 그 제자들은 우리 불자들이 부처님을 숭배하듯이 공자님을 그렇게 숭배하는데, 「어찌 공자님과 같은 성현이 이런 참 어려운 일을 당할 수가 있겠느냐?」 의심이 나서 여쭈어 본 건데,

성현이라고 해서 어려운 일을 안 당하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의 그 마음은 다를지언정 - 중생이나 범부는 어려운 일을 당하면은 당황하고 겁을 내고, 마음이 동요가 되어서 겁에 질려서 자기의 마음을 지닐 수가 없어. 그런데 성현은 당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당한 때의 마음가짐이 다르다.

범부 같으면 당신의 고국이 그렇게 망할 때 신통력으로 그 적군을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때려 부수고 죽이고 물리치고 혹 그런 마음을 냈을런지도 모르는데, 부처님은 환히 알고 그 광경을 다 보시면서도 그런 적극적인 행동을 하시지 않았어.

신통제일(神通第一)인 목련존자(目連尊者)가 그 고국의 사람들이 아주 멸종이 되게 생겼으니까 5천 명을 골라가지고 바리때에다 담아 가지고 저 높은 하늘나라에다 갖다가 잠시 피신을 시켰어.
부처님께서는 『그래 봤자 뭔 소용이 되겠느냐? 한 번 해 봐라.』 그래서 목련존자가 그렇게 했는데 다 난리가 가라앉은 다음에 가서 바리때 가지러 가니까 속에서 다 죽어갖고 있어. 과거에 죽을 업을 지어 가지고 금생에 그걸 받게 될 때에는 피할 길이 없어.

목련존자도 5백 생을 결국은 타살(打殺)을 당했는데 과거에 업연(業緣)으로 그랬는데, 마지막 5백 생도 결국은 당신이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외도(外道)들이 자꾸 불법(佛法)이 흥왕을 하니까,
‘부처님의 왼팔, 오른팔을 끊어야만 되겠다’ 그래 가지고 목련존자가 숲속에서 턱 이렇게 좌선을 하고 있는데, 거기다가 수백 개의 돌팔매질을 해 가지고 결국은 몸이 부서지게 되었다 그말이여.

목련존자의 같은 고향에서 같이 출가한 도반인 사리불(舍利佛)존자가 『왜 그대는 신통이 제일인데 왜 신통술을 어디다 두고 그렇게 맞었냐?』 그러니까,
『신통의 신(神)자도 생각이 안 나더라』 그렇게 경전에 쓰여 있는 데도 있고,  『내가 불자(佛子)로서 인과법(因果法)을 아는 사람이 피해서 되겠느냐』 또 그렇게 된 데도 있습니다마는 두 가지가 다 맞는 말씀이고.

점쟁이 말 듣고 재앙을 면할려고 해서는 안 돼. 그런데 점쟁이가 가끔은 절에 가서 부처님께 무엇이든지 치성(致誠)을 드리라고 그렇게 보내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와서 절에 와서 천도재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런 분도 있습니다.
부처님께 시주도 하고, 치성도 드리고, 또 조상의 천도재(薦度齋)도 지내고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천도재를 지내 가지고 집안에 우환이 없어진 그런 경우도 나는 많이 봤습니다.

많이 보기는 했으나, 정업(定業)은 난면(難免)인 것입니다.
받되 정법(正法)으로써 마음이 딱 기둥이 서면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해도 바른 마음으로, 바른 정신으로, 신심과 원력으로, 지혜와 인내로써 그런 일을 잘 처리해 나가고 그 일을 소화를 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쓴 것>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써가지고 그 각본에 의해서 우리가 연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배우나 탤런트는 각본을 쓴 작가가 따로 있고, 그 각본에 의해서 감독이나 연출이 그것을 연출을 해 가지고 배우나 탤런트를 잘 선정을 해서 그 사람들로 하여금 연극을 하게 하는데, 그것은 배우 자신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어.
각본에 의해서 감독의 지시에 따라서 최선을 다할 길 밖에는 없는 것이고, 배우 지 마음대로 이리저리 못하는 것인데,

우리는 우리의 일생을, 무량겁이라고 해도 좋지만 가깝게 금생 일생 이렇게 사는 것만을 우선 생각을 해 보자 이겁니다.
우리가 어느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어렸을 때를 살고, 어떻게 유치원으로 국민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을 다녀 가지고, 어떻게 누구와 결혼을 했고, 어떻게 이렇게 살아가고 어떤 자식을 낳았냐? 그리고 일생 동안을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어갔느냐?

생로병사 일생만을 생각해 본다 하면 그것이 무슨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제석천왕(帝釋天王)이나, 또 어떤 뭐 염라대왕이나, 어떠한 다른 사람이 그렇게 시켜갖고 되는 일이 아니여.

전부 우리 자신이 그러한 각본을 썼어. 각본을 써 가지고 자기가 그 각본에 의해서 지금 이렇게 태어나 가지고 마지막 죽어갈 때까지 각본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는 거여.
하나도 부모를 원망할 것도 없고, 누구를 원망할 것이 없어. 선생을 원망할 것도 없고, 사회를 원망할 것도 없고, 국가를 원망할 것도 없어. 부부 간에도 남편이 아내를 원망할 것도 없고, 아내가 남편을 원망할 것도 없어.

도둑질하다가 감옥을 가도 검사나 판사를 원망할 것이 없는 거여. 지가 그 죄를 지어 가지고 판결을 받아 가지고 징역을 사는데, 감옥에 들어가서 내나 자기를 잡아넣은 형사를 '내가 나가기만 하면은 그놈의 형사 가만 안 놔둔다'고 이를 갈아붙이는 죄수가 있다면, 그거 어떻게 된 것이냐 그말이여.
자기를 무기 징역을 청구를 하고, 무기를 갖다가 판결을 내리는 검사와 판사를 원망하는 죄수가 있다면 그거 어떻게 된 거냐 그말이여.

가끔 전혀 자기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징역을 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는 자기를 억울하게 그 징역을 살게 하는 형사나 검사나 판사를 정말 중생으로서는 참 원망 안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그것도 역시 원망할 것이 없어. 과거에 자기가 그렇게 사람을 억울하게 그렇게 했기 때문에 금생에 또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이다 그말이여.

과거가 없는 금생(今生)은 없어. 전부가 금생에 우리가 지은 업과 과거에 지은 업이 다 연관성 있게 우리의 모든 것이 전개되어 가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그래서 과거에 지은 업과 금생에 지어가는 업, 그런 것들이 합해 가지고 우리의 미래가 열려 나가는 것이니까, 우리는 이미 과거에 지어버린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나, 그 각본을 우리는 고쳐서 쓸 필요가 있다 그말이여.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면은 거기서 전개되어 가는 것을 보고 야단들이여.
자기 마음에 안 맞으면은 작가한테 막 편지질을 하고 전화질 하고 방송국에다 ‘그렇게 죽여서는 안 된다, 살려야 한다’고 야단들인데, 그렇게 하두 전국에서 들어오면은 처음에 작가의 생각은 죽일라고 했다가도 하도 그래싸면 그거 바꾼다고 그래.

그까짓 TV에 나오는 거 죽이면 어떻고 살리면 어떻고 별 것이 아닌데,
우리 자신이 과거에 지은 업이 있어가지고 금생에 이렇게 불행한 일만 당하게 되었다 하면, 그 각본이 다른 사람이 쓴 것이 아니고 내가 썼기 때문에 금생에 각본을 달리 쓸 수는 있다 그말이여.
달리 써 가지고 어쨌든지 좋은 방향으로 요렇게 틀으면 좀 힘은 들랑가 모르지만, 자기가 쓴 각본을 자기가 방향을 바꿔나갈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왜 그러냐? 미래는 꼭 과거에 지은 그놈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라, 금생에 우리가 해 가는 일까지 합해져 가지고 미래가 열리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은 '운명론이다, 숙명론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어, 불교는.

인과법은 숙명론(宿命論)도 아니고 운명론(運命論)도 아니여.(42분45초~63분35초)


(2)--------------------

미래는 꼭 과거에 지은 그놈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라, 금생에 우리가 해 가는 일까지 합해져 가지고 미래가 열리기 때문에 그래서 이것은 운명론이다, 숙명론이다 이렇게 말할 수가 없어, 불교는.


인과법은 숙명론(宿命論)도 아니고 운명론(運命論)도 아니여.

과거에 지은 업도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지만, 금생에 내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그것까지 합해져 가지고 미래가 열려지기 때문에 우리는 각본을 바꿔쓰면 된다 그말이여.

그러면 어떻게 각본을 쓰고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방향은 바꿀 수가 있다 그말이여.

인과의 법칙을 정말 올바르게 이해를 하고, 올바르게 활용을 해 나가야 한다.
인과법을 잘못 믿으면 완전히 숙명론•운명론에 떨어져 가지고 그러고, 그렇지 않으면 까딱하면 인과법을 믿지 않고, 발무인과(撥無因果) 『에잇 그까짓 거 소용이 없다고!』

못된 짓을 하면 응당 잘 못살아야 하고 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극악무도하고 못된 짓만 하는 사람이 잘사는 사람이 있다 그말이여.
그러고 정직하고 착하고 참 그런데 사사건건이 불운(不運)을 당하고 못살고 억울하게 그렇게 일을 당하는 사람도 있고 그러니, 그런 걸 보면 『그것 인과법 소용 없다고!』 안 믿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아니거든.

금생에 것만 갖고 우리의 앞이 그것에만 있는 게 아니라 과거에 지은 것까지 합해져서 되기 때문에, 과거에 워낙 좋은 복을 지어놓으면 금생에 못된 짓을 해도 우선 괜찮은 사람이 얼마든지 있어요.
금생에 나쁜짓 한 건 또 언젠가는 꼭 받게 되지만, 우선 과거에 지어놓은 것이 워낙 많으면 그것이 금생에 좀 나쁜짓 해도 그럭저럭 잘사는 사람도 있어. 그러나 그것 믿을 것이 못되는 거고.

금생(今生)에 착하고 부지런히 해도 못 당할 일 많이 당하는 것은 전생(前生)에 지은 나쁜 악업이 있기 때문에 금생에 좀 잘해도 별로 좋은 꼴을 못 보는 거여.

그래서 인과의 법칙에 금생에 지어 가지고 금생에 바로 현실적으로 받는 경우가 있고, 금생에 지어 가지고 바로 이 다음 생에 받기도 하고, 금생에 지어가지고 다음 생, 저 다음 생, 몇 생을 건너 뛰어 가지고 가서 받는 수가 있어.
현생보(現生報)•순생보(順生報)•순후보(順後報) 이것이 세 가지 차등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것이지 안 받는 것은 아니여, 언젠가는 다 받게 되는데.

그렇게 지어서 받는 것은 면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전부 우리의 마음으로 지어서 이렇게 벌어지는 일들이라,

그래서 부처님 말씀하시기를 『마음이라 하는 것은 만법(萬法)의 근원이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환상이요 물거품 같은 것이다.』 다 그렇게 말씀하셨어.

그래서 범부(凡夫)는 모든 것이 환(幻)인데 환인 줄을 모르고서 환(幻)의 업(業)에 집착을 해 가지고 거기에 끄달리는 거고.

성문(聲聞)은 모든 환(幻)을 그것을 굉장히 두려워 해. 생로병사를 굉장히 두려워 해가지고 어떻게 하면 - 죽음이 무서우니까, 죽음을 안 당할라면은 태어나지 말아야겠다.
태어나기만 하면 늙어서 병들어서 결국은 고통스럽게 죽어가니까, 죽음이 없을라면은 태어나지 않아야겠다. 그래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 방법으로 멸진정(滅盡定)에 들어가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는다 그말이여.
멸진정은 영원히 아주 정(定)에 들어가 버린 거여. 그러면 태어나지를 않기 때문에 죽음도 없다. 이게 소승(小乘)의 생각이다.

보살(菩薩)은 이 세상의 모든 경계는 환(幻)의 경계여. 본래 없는 것이고 본래 남이 없는 거여.

눈병 든 사람에게 이 허공에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 우리는 눈동자를 옆에서 요렇게 눌루고 보면 해도 둘로 보이고, 달도 둘로 보이고, 뭔 물건도 둘로 보입니다. 여러분 댁에 가서 시험을 해보세요.
그냥 보면 하나인데, 눈동자를 요렇게 눌러가지고 압력을 가해 가지고 보면은 삐뚤어지게 보이고 둘로 보인다 말이여.

눈이 멀쩡한 사람에게는 허공 속에는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 난 사람은 뭣이 이상한 것이 이리 왔다갔다 하고,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도 보이고, 불이 켜진 것처럼도 보이고 모다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는 꽃이 안 보이거든.

눈병이 나기 전에도 없었던 거고, 눈병이 난 뒤에도 허공에는 꽃이 없는 거고,
그러다가 눈병이 나은 뒤에도 - 허공의 꽃은 원래 없는 것인데, 있는 것처럼 눈병 난 사람은 보이니까 그 눈병 난 사람에게는 그 사람은 분명히 있다고 할거라 그말이여. 눈병이 없는 사람에게는 (허공의 꽃이 원래)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명상(名相), 이름이나 모양이나 그런 것은, 귀로 들을 수 있는 거, 코로 냄새 맡을 수 있는 거, 눈으로 볼 수 있는 거,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을 통해서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이 생기는데, 그 육식(六識)에 포착되는 모든 것들은 명상(名相)이여 그게. 명상(名相)!

명상(名相)이라는 것은 환(幻)으로 이루어진 거여.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여 그것이.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을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는 거여.

어린애들은 크레용이나 무슨 연필을 가지면 벼람박이고 어디고 마구잽이 막 그려 젖히거든.
철없는 중생이 우리의 마음으로 일체 경계(境界)를 당해서 온갖 것을 정말 미친 사람이 어떠한 연극에 각본을 쓰듯이 종잡을 수 없이 쓰거든.
죽일라고 했다가 살리고, 살릴라고 했다가 죽이고 그저, 도둑놈을 갖다가 착한 사람을 만들고, 착한 사람을 어떤 때는 또 도둑놈으로 만들고 해 가지고는 종잡을 수 없이 계속 끝이 없는 각본을 써가지.

우리 중생이 하는 짓이 바로 미친 정신병자가 연극 각본을 쓴 것처럼 종잡을 수 없이 우리의 무량겁을 그런 각본을 써 왔고,
앞으로 정법(正法)을 믿고 바른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해서 자기의 주인공(主人公)을 계발하고 그놈을 깨닫는 방향으로 나간 사람은 제외하고는, 그렇지 않는 사람은 착하나 악하나 그놈이 그놈이여.

언제 어떻게 변할른지 모르는 거여. 그래 가지고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해 갈 거다 그말이여.

조금 착한 짓 한 사람은 좋은 곳에 태어날 거고, 악한 짓 한 사람은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질 것이고, 천당에 좋은 곳으로 가봤자 받을 만큼 복을 받으면 또 떨어지는 거고, 삼악도에 떨어지면 그 받는 기한이 길고 길어서 언제 나올 기약 있을는지 모르나, 나와 봤자 또 마찬가지여. 언제 무슨 짓을 또 하냐.

그래서 무슨 소리를 듣던지 「이뭣고?」, 무슨 것을 눈으로 보든지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이뭣고?」를 하시라 그말이여.

우선 당장 괴로운 일이 있는데 「이뭣고?」만 할 수 있느냐?
괴로운 일 자체가 꿈에 등창을 앓거나 어디 종기를 앓는 거와 같애. 꿈이라 하지마는 실지로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정말 아퍼. 무서운 걸 보면 무섭고, 괴로운 것을 보면 괴롭고, 아플 때는 정말 꿈에도 아퍼요.

아프다가, 그렇게 몸부림을 치고 그러다가, 누가 와서 꿈을 깨거나 잠을 깨주면 눈을 뜨고 보면, 깨고 나서도 한참 아퍼. 아퍼도 정신을 차려서 보면 진짜는 안 아픈 거여 그게.
정말 눈 딱 떠서 정신만 차려버리면 그렇게 아프던 종기가 깨끗이 낫어 버리는 거여. 몰록 낫어, 몰록.

세속의 사전에는 ‘몰록’이란 말이 있는가 어쩐가 모르는데, 이 불가(佛家)에서는 ‘돈오돈수(頓悟頓修)’ 이래서 ‘몰록 깨닫고 몰록 닦는다’는 것이,
전기 스위치를 탁 올리면 찰나(刹那) 간에 탁 켜지고 탁 내리면은 찰나 간에 깜깜해지듯이, 그 꿈에 앓던 몸의 종기가 잠을 깨자마자 몰록 낫어버리는 거여. 차츰차츰 낫어가는 게 아니라.

그래서 방편(方便)•점차(漸次)가 없어. 점차(漸次)라고 하는 것이 없는 거여. 차츰차츰 요렇게 낫아가는게 아니라, 찰나(刹那) 간에 탁! 몰록 낫아버리는 것이여.

이궁어시(理窮於是)다. 모든 이치가 여기에서 다해 버린 거여.
그래서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은 차츰차츰 알아 들어가고 차츰차츰 깨달라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뭣고?」를 해 가면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계속 의심으로 참구(參究)를 해 가면, 해 갈수록 꽉 맥혀서 알 수가 없어.

그래 가지고 그 의심이 더이상 커질 수가 없고, 더이상 간절할 수가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면, 우리의 속도 의심으로 가득차고, 온 세계의 무엇을 보나 듣거나 산을 봐도 ‘이뭣고?’뿐이요, 꽃을 봐도 ‘이뭣고?’뿐이요.
‘이뭣고?’를 ‘이뭣고?’들면 있고 놓으면 없어지고 한 게 아니라, 들고 놓고 할 것이 없이 일체처 일체시에 의심이 온 법계에 가득차게 되서 더이상 커질 수가 없을 때는 어떠한 찰나에 툭 터지게 되는 거여.

의단(疑團)을 갖다가 통 밑구녁 빠지듯이 의단이 탁! 터지는 거여. 그러면서 자기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거여.

비록 석 달 만에 깨달은 사람, 3년 만에 깨달은 사람, 30년 만에 깨달은 사람, 마지막 죽을 때까지 못 깨달은 사람도 있을 수가 있으나, 다른 모든 것은 하다가 안 되면 그것은 실패고, 소용이 없는데, 이 공부는 끝까지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해도 깨닫지 못했어도 그것이 헛일이 아니여.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해 놓은 것은 고대로 그 공덕이 거기에 다 있어서 금방 새로운 몸을 받아가지고 그 인연이 있기 때문에 젊어서 정법을 만나게 되고, 그 믿어지게 되고 그것을 실천하게 되면 젊어서 툭 3일 만에 깨닫고, 언하(言下)에 깨닫고, 한철 만에 깨닫는 것이 그 까닭이 있는 거여.
전생에 그렇게 하다가 몸을 바꿔났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툭 깨닫게 되는 거여.

그래서 ‘하! 내가 이렇게 아무리 할라고 해도 안 된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도 ‘그것이 왜 그러냐 하면은 믿음이 적기 때문에 그렇다’ 조실 스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결국은 철저하게 믿고 철저하게 해야 혀. 반신반의(半信半疑)를 하고, 허다가 말다가 하고, 그래 갖고는 언제 그것이 될 거냐 그말이여.

할 때는 정말 철저하게 믿고, 철저하게 믿은 데에서 열심히 하면은 거기서 또 분심(憤心)이 나고, 분심 있는 곳에 신심이 더욱 깊어지고 해서, 그래 가지고 결국은 대의지하(大疑之下)에 대오(大悟)여. 의심이 크면은 크게 깨닫는다.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이 이것이 삼요소(三要素)인데, 이 삼요소로 나간다면 누가 못 깨닫게 되느냐 그말이여.

새해에 우리의 법보 가족은 대분심(大憤心)과 대신심(大信心)과 대의단(大疑團)으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 간에 어떠한 종류의 일을 당하거나, 어떠한 종류의 사람을 만나거나,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신분의(信憤疑) 삼요소로서 단속해 나가기를 우리는 1994년의 첫 번째 법회날을 맞이해서 다 같이 다짐을 합시다.(63분10초~81분1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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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大主) ; ①무당이, 굿하는 집이나 단골로 다니는 집의 바깥주인을 이르는 말. ②여자가 자기 집의 바깥주인을 이르는 말.

*삼명육통(三明六通)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와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2. 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3. 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4. 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5. 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6. 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선가귀감](용화선원) p94-95 참조.
*잡신(雜神) ; 온갖 잡스러운 귀신.
*삼능(三能) 삼불능(三不能) ; 당나라 숭악(崇嶽)의 원규(元珪)가 부처님의 3능(三能)과 3불능(三不能)을 세움.
(1) 3능(三能) - 부처님의 3가지 능한 것.
①일체 상(相)이 공(空)해서 만법을 아는 지혜를 이루는 것.
②모든 중생의 성품을 다 알고, 억겁(億劫)의 모든 일을 막힘이 없이 다 아는 것.
③한량없는 중생(무량중생)을 제도하는 것.
(2) 3불능(三不能) - 부처님의 3가지 능치 못한 것.
①무량겁으로부터서 지은 정업(定業)은 멸하지 못함.
②인연없는 중생을 제도하지 못함.
③무량중생을 제도하실 수는 있으나 중생계를 다 제도하지 못함.
*팔해탈(八解脫)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여덟 가지 선정(禪定).
*정업(定業) ; 과거에 지은 업에 따라 현세에서 받게 되는 과보(果報).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신통력(神通力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힘 력) :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
*가비라국(迦毗羅國) ; kapila國(카필라).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아버님 정반왕(淨飯王)이 다스리던 나라. 실달다(悉達多) 태자(太子) 곧 석존(釋尊)이 태어난 곳.
*석가족의 멸망 ; BC 6세기에 코살라국(Kosals國) 사위성(舍衛城)의 왕인 파사닉왕(波斯匿王)이 석가족 사람과의 혼인을 청해 왔는데, 석가족은 파사닉왕이 낮은 신분 출신의 왕이어서, 왕의 청을 거만하게 생각하여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으나, 파사닉왕의 세력이 워낙 강했으므로 왕족 하녀의 딸을 석가족의 처녀라 속여 파사닉왕에게 보냈다.
이 하녀의 딸과  파사닉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유리(琉璃)태자가 8세 때 어머니의 나라인 석가족의 카필라국(Kapila國)을 방문했는데, 석가족의 사람들은 유리태자를 무시하고 ‘종년의 자식’이라 하며 천대하고 모욕을 주었다. 이에 태자는 원한을 품고 보복하려 마음 먹었다.

한 신하의 계략으로 파사닉왕이 죽고 유리태자가 왕위에 오르자,
지난날 석가족에게 당한 모욕을 보복하고자 출병을 하였는데, 그 소식을 듣고 부처님께서는 유리왕(琉璃王)과 그 군사들이 카필라국으로 가는 길목에-말라 죽은 고목 밑에 앉아 계셨다.
유리왕은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부처님께서는 왜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 앉지 않으시고, 말라 죽은 고목 아래 계십니까?’하고 여쭙자 ‘친족의 그늘은 나무의 잎과 같이 시원하다’고 말씀하시니, 유리왕은 부처님의 뜻을 알고 군대를 돌렸다. 그러나 또다시 석가족에 당한 모욕을 기억하고 카필라국으로 향했다.

이런 중에 부처님의 제자인 목련존자는 석가족을 구하고자 부처님께 나아가 사뢰었다.
‘저의 신통력으로 유리왕의 군대를 타방 세계로 던져버리거나, 카필라국을 허공에다 옮겨 놓거나, 카필라국 위에 쇠그물을 덮을 수 있다’고 하자, 부처님께서 ‘석가족의 전생 인연도 타방 세계에 던져 버릴 수 있겠느냐, 전생 인연도 허공에 옮겨 둘 수 있겠는가, 쇠그물로 전생 인연을 덮을 수 있겠는가’ 되물으시고,
‘지금 석가족들의 전생 인연이 이미 다 익었으므로, 이제는 그 갚음을 받아야 한다.’ 말씀하셨다.
세존께서는 곧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비록 저 허공을 이 땅으로 만들고, 또 이 땅을 허공으로 만들려 해도, 그것은 다 본디 인연에 매었나니, 그 인연은 영원히 안 썩느니라.”
목련존자가 그 석가족 사람들이 아주 멸종이 되게 생겼으니까 5천 명을 골라가지고 바리때에다 담아 가지고 저 높은 하늘나라에다 갖다가 잠시 피신시키려 하자, 부처님께서는 “그래 봤자 뭔 소용이 되겠느냐? 한 번 해 봐라.” 그래서 목련존자가 그렇게 했는데 다 난리가 지나고 나서 바리때 속을 보니 다 죽어 있었다.

이렇게 세 번을 거듭 진군하다 돌아오고 진군하다 돌아왔으나 네 번째에는 부처님이 나타나지 않으셨다.
이리하여 유리왕과 그 군대는 석가족을 잔인하게 짓밟아 죽이는 악행을 저지르고 사위성(舍衛城)으로 되돌아 갔다.

부처님은 비구들과 함께 유리왕과 그 군대가 휩쓸고간 불태워진 카필라국을 보시고 곧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모든 현상은 덧없는 것이니, 한 번 나면 반드시 죽음이 있네. 나지 않으면 곧 죽지 않나니, 이 열반이 가장 큰 즐거움이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사위성 기수급고독원으로 가셨다. 그 때에 비구들에게 말씁하셨다.
“지금 저 유리왕과 그 군사들은 이 세상에 오래 살지 못하고 지금부터 일주일 뒤에는 다 없어지고 말 것이다.”
과연 유리왕과 그 군사들은 일주일 뒤에 강가에서 밤에 비바람이 몰아쳐 물에 떠내려가 죽어 아비지옥에 떨어졌다. 또 하늘 불이 내려와 궁전을 모두 불살랐다.
부처님께서는 천안(天眼)으로 유리왕과 그 군사들이 지옥에 떨어진 것을 아시고 곧 다음 게송을 읊으셨다.
“악(惡)을 행하되 못내 심한 것, 그것은 모두 몸과 입의 행(行)이다. 지금의 몸으로도 고통 받지만, 타고 날 목숨도 짧을 것이다.  만일 집에서 살게 될 때는 그 집은 모두 불에 살리고, 만일 목숨을 마치게 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리라.”

부처님께서는 석가족과 유리왕의 전생 인연을 말씀하셨다.
“옛날 이 왕사성에 한 어촌이 있었다. 마침 흉년이 들어 사람들은 풀뿌리를 먹었는데, 그 촌에 큰 못이 있었고 또 거기는 물고기가 많았다. 왕사성의 사람들은 그 못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그 물고기중 하나가 `우리는 전에 이 사람들에게 아무 허물이 없는데, 이 사람들은 모두 와서 우리를 잡아먹는다. 다음에 원수를 갚자.`하였다.
그 촌에는 어떤 어린애가 있었는데, 물고기를 잡지도 않고 또 목숨을 죽이지도 않았으나 물고기들이 죽는 것을 보고 매우 재밌어하였다.
비구들이여, 알라. 그 때의 그 왕사성의 사람들이 석가족이고, 그 물고기중 하나가 지금의 저 유리왕이요, 그 때에 죽는 물고기를 보고 웃던 어린애는 바로 나이니라.
그 물고기를 잡아먹은 과보로 무수한 겁을 걸쳐 지옥에 떨어졌고 또 지금에 그 갚음을 받은 것이다. 나는 그 때에 물고기 죽는 것을 보고 웃었기 때문에 지금 머리가 아파 돌로 치는 것 같고 또 머리에 수미산을 인 것처럼 무겁다.
이것이 이른바 `이런 인연으로 말미암아 이런 갚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몸과 입과 뜻의 행을 잘 단속하고 범행을 닦는 이를 생각하고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도록 하라. 이와 같이 공부하여야 하느니라.”
*번연하다 ; 어떤 일의 결과나 상태 따위가 훤하게 들여다보이듯이 분명하다.
*삼천불(三千佛) ; 과거세(過去世)의 천불(千佛), 현재세(現在世)의 천불, 미래세(未來世)의 천불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인연(因緣) ;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
*목건련 (目犍連, 目連) ; 산스크리트어 maudgalyāyana의 음사. 대(大)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이라고도 한다. 원명 꼴리따.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사리불(舍利弗)와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사리불이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사리불한테 듣고는,
사리불과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사리불과 함께 불교교단의 중심인물이었다.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고, 탁발하는 도중에 외도(外道)들이 던진 돌과 기왓장에 맞아 고통을 겪는 중에, 사리불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붓다에게 나아가 열반에 들겠다고 말씀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마수촌에서 열반에 들었다.

목련존자의 과거 업연(業緣) ; 먼 과거 전생에 목련(目連)은 늙은 눈먼 부모를 모시고 나이가 들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부모를 봉양하고 살고 있었는데, 부모는 그것이 안타까워 성화를 하는 바람에 그는 젊은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에게 시집온 여인은 처음 며칠 동안에는 별 불평없이 눈먼 시부모를 잘 모시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시부모를 보기만 해도 짜증을 내며 같이 살수 없다고 했으나, 그는 아내의 말을 듣고도 모른 척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외출하여 일을 보러 간 사이에 그녀는 일부러 진흙과 쌀겨와 쌀죽의 찌꺼기를 집안 여기저기에 흩뜨려 놓았다.
이렇게 해 놓고 돌아온 남편에게 눈먼 당신의 부모가 이렇게 해 놓았다고, 자기는 이제 시부모와 더이상 같이 못 산다고 하며 계속 들볶자 그는 아내의 말만 믿고 부모를 버릴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딴 곳에 사는 친척이 부모님더러 한번 오라고 한다고 말하고는 수레에 태워 숲속에 깊이 들어가서, ‘아버지, 이 고삐 좀 잡고 계세요. 황소가 길을 잘 알고 있어서 가만 놔두어도 잘 갈 겁니다. 여기는 도둑들이 출몰하는 곳이니 저는 내려서 살펴봐야겠습니다.’하고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숲속에 들어간 그는 마치 도둑들이 공격을 해오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니까, 부모는 놀라면서 ‘아들아, 우리는 살 만큼 살았다. 우리는 신경쓰지 말고 너라도 어서 도망쳐라’고 하였다.
아들은 소리를 외치며 도적들처럼 다가와 부모를 죽여 시체를 숲속에 버린 뒤 집으로 돌아왔다.

이 악업으로 그는 무수한 세월동안 무간지옥에서 고통을 받았다. 그러고도 악행의 과보가 아직 다하지 않아서 100생 동안 온몸이 가루가 될 정도로 두들겨 맞아죽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과거에 수없이 많은 부처님들을 모시고 열심히 수행하면서 서원을 세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 때 그는 미래 세상에 고따마 부처님께서 출현하시면 자기는 그 부처님 밑에서 으뜸가는 제자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많은 공덕 바라밀을 성취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목련존자의 태어남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었고, 결국 외도들에 희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아라한을 이룬 성자였기 때문에 중생처럼 단순히 죽은 것이 아니라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완전한 적멸(寂滅)을 실현했던 것이다.

이같이 목련존자의 전생과 그에 따른 과보를 말씀하신 다음 부처님께서는 다음의 게송(법구경 137~140)을 읊으시었다.
“죄가 없고 자신과 남을 해치지 않는 자에게, 폭력를 사용하여 해를 끼치면, 참으로 아주 빠르게 다음 10가지 중 하나에 떨어지리라.
①심한 고통을 당함. ②아주 가난해짐. ③몸의 상해(신체적 절단). ④중대한 질병이나 정신이상을 일으킴. ⑤왕의 노여움을 사 모든 재산을 빼앗김. ⑥재산과 명예를 회복할 수 없는 고소를 당함. ⑦가족이 생명을 잃음. ⑧재산이 천재지변 등으로 파괴됨. ⑨집에 벼락이 내리거나 불에 탐. @그런 뒤 그 어리석은 자는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당하리.”
[참고] [법구경-담마파다] (전재성 역주 | 한국빠알리성전협회) p451~454, [법구경이야기 2] (무념·응진 역 | 옛길) p 384~390.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라고도 한다.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의 인연을 부른다.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의 가르침(道). 또는 그 신봉자.
*사리불(舍利弗) ; 산스크리트의 샤리푸트라(śāriputra), 팔리어(語) 샤리푸타(Sāriputta)의 음역(音譯)이며, 추자(鶖子) ·사리자(舍利子)라고도 한다. 원명 우빠띳사.
인도 중부의 마가다왕국 수도 왕사성(王舍城) 근처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목건련과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아 목건련(目犍連) 및 250명의 산자야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다.
부처님도 그를 높이 평가하여, 경전 중에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법한 경우도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10대 제자 중 수제자로, 지혜가 가장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로 칭송되었다고 전한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1년 전, 목건련이 그렇게 외도들의 몰매를 맞고 열반에 들려고 하자, 사리불은 자신이 목련보다 먼저 열반에 들겠다고 하고, 부처님께 자신이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에 들 것을 허락받기 위해 부처님이 계시는 기원정사로 갔다.
사리불은 ‘부처님께서 곧 열반에 드실 것을 알기에, 차마 제 눈으로 부처님의 열반을 볼 수 없어 먼저 열반에 들고자 합니다’하고 간청을 하여 허락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부처님께 귀의하게 한 후 열반에 들었다.
*치성(致誠 이룰 치,정성 성) ; 있는 정성을 다함. 또는 그 정성.
*천도재(薦度齋)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각본(脚本) ; ①[연극][영화] 연극이나 영화, 방송극을 만들기 위해 배우의 대사나 동작, 장면 순서, 무대 장치 등을 구체적으로 적어 놓은 글. ②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사전에 꾸민 계획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제석천(帝釋天) ; 불법(佛法) 지키는 수호신. [天神]들의 제왕[] 샤크라〔釋〕라는 .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 ()씨이며 ()이라 한역하고, ‘제바 ()’이라 한역하며, ‘인달라 ()’ 한역하니  능천제(能天帝)’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32() 통솔하면서 불법(佛法)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  손에 금강저(金剛杵)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도리.
*숙명론(宿命論) ; 세상의 모든 일이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견해나 학설. 같은말-운명론(運命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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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보(現生報) ; 현세(現世)에서 업(業)을 지어 현세에서 받는 과보(果報)를 이른다. 순현보(順現報). 현보(現報).

*순생보(順生報) ; 지금 세상에서 지은 선악에 따라 다음 세상에서 받는 인과응보를 이른다. 생보(生報), 순차보(順次報).
*순후보(順後報) ; 지금 세상에서 지은 선악에 따라 삼생(三生) 이후에 받는 과보(果報)를 이른다. 후보(後報).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성문(聲聞) ; 부처님의 음성(聲)을 들은(聞) 사람이라는 뜻.
① 산스크리트어 śrāvaka, 팔리어 sāvaka.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자. 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사제(四諦)의 이치를 깨달아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자. 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자. ② 성문승(聲聞乘)의 준말.
*멸진정(滅盡定) ; ①마음[心]과 마음작용[心所]을 소멸[滅盡]시켜 무심(無心)의 상태에 머무르게 하는 선정.
②무소유처(無所有處)의 경지에 이른 성자(聖者)가 모든 마음 작용을 소멸시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닦는 선정(禪定).
멸진정은 무색계의 4천 중 제3천인 무소유처(無所有處)의 번뇌를 이미 떠난 상태에서 닦는 선정이기 때문에, 그 경지가 거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적정(寂靜)에 비견된다.
멸정(滅定)·멸진등지(滅盡等至)·멸진삼매(滅盡三昧)·상수멸정(想受滅定)·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 한다.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하므로 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 · 각유정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수행자. ④ 고승(高僧)에 대한 존칭. ⑤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
*육경(六境) ; 육진(六塵).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는 여섯 가지.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을 말한다.
*육식(六識) ; 육근(六根)에 의하여 대상을 깨닫는 여섯 가지 작용. 곧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의 여섯 가지이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점차(漸次) ; 시간이나 차례에 따라 조금씩.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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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비약적인 것입니다. / 똑같은 일을 계속 되풀이하면 습관화, 체질화가 되어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되어진다

**송담스님(No.099) - 1979년(기미년) 신수기도회향(79.1.9.음)(77분)에서.

약 12분.


부처님은 대도(大道)를 성취하시고 육신통을 구족(具足)하셔서, 삼명육통(三明六通)을 다 갖추신 그리고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를 갖추신 그러한 대성인이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은 아무것도 안하고 놀고 계셔도 다 된다. 더 닦을 것도 없으시겠다.’ 이리 생각하실런지 모르지만, 부처님께서는 우리보다 몇천 배 몇만 배의 정진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가끔 한눈을 팔 수도 있고, 해태를 게으름을 부릴 수도 있고 그렇지만, 부처님은 단 1초 동안 한 눈을 파시는 법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단 1분 동안의 게으름도 부리신 일이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언제나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고 계신 증거인 것입니다.

부처님이 그러시거든 하물며 우리의 범부 중생들은 이를 갈아붙이고 이를 악물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우리의 목표를 향해서 꾸준히 닦아가야 할 줄 생각합니다.
그렇게하심으로 해서 재송도인(栽松道人)과 같이 생사에 자유자재 하실 수도 있는 그러헌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헌 위대한 일, 어려운 일이 그렇게 간단하게 성취가 될 것인가? 죄 많은 중생이, 말세(末世)에 태어난 우리가 어찌 그러헌 대도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가망없는 일이다. 다못 인연이나 맺게 그저 법문 듣고 기도나 해보자.

이러헌 생각을 가지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헌 생각은 이미 잘못된 선입관이 우리에게 박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사회의 모든 학문은 점진적이어서 기초부터 차츰차츰 배워서 알아 들어가는 공부요, 외우는 공부요, 속에다 쌓아 올리는 공부는 그것은 점진적인 공부라 하는 것인데, 그러헌 공부는 물론 많은 세월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이 내가 나를 깨달라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이 참선법은 점진적인 것이 아닌 것입니다.

아까 조실스님 법문 속에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번 뛰어서 곧 여래(如來)의 경지에 들어간다’ ‘한 번 뛰어가지고 성불(成佛)을 한다’ 이런 말씀입니다.

다시 바꾸어서 말하면, 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비약적인 것입니다.
엊그제까지 꽉 맥혔던 중생이 찰나(剎那) 간에 툭 터지면은 견성(見性)을 해서 성불(成佛)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깨달음은 차츰차츰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하고 해서 따져가지고 ‘오, 그렇구나!’ 이렇게 해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알 수 없는 의심으로 꽉 맥힌 상태에서 ‘이 뭣고?’, ‘이 뭣고~~?’

아침부터 낮에까지 낮부터 저녁까지, 밥을 먹을 때나, 세수를 할 때나, 소제를 할 때나, 빨래를 할 때나, 설거지를 헐 때나, 차를 탈 때나, 이야기를 할 때나, 어느 때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겉으로 하는 일은 다 허면서도 생각은 ‘이 뭣고?’ 이렇게 단속해나가는 것입니다.

일 헐 때는 그 일에 대해서 정신을 쏟고, 밥을 먹을 때는 밥에 대해서 정신을 쏟고, 말을 할 때는 말에 대해서 정신을 쏟고 그래야지,
일 헐 때 일에는 정신을 쏟지 않고 ‘이뭣고?’를 한다면 그 일이 어떻게 되며,

반찬을 만들 때 그 반찬에 여러 가지 재료•분량과 양념의 종류 이런 것을 고루고루 모두 따지고 영양가도 따지면서 조리를 해야지,
‘이뭣고?’만 허면서 이것저것 함부로 집어넣으면-간장을 잔뜩 붓거나 고추장을 듬뿍 집어넣거나 하면-반찬이 다 못쓰게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걱정을 하시겠지만, 절대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적은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 특수한 경우는 너무 의심(疑心)이 독로(獨露)해서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되어 가면, 채소밭에 잡초를 매면서 잡초는 놔두고, 아껴서 세워두어야 할 채소를 다 호미로 매버리는 경우가 과거에 고인네들에 있어서 가끔 있었다고 전해옵니다.

그런 경우가 더러는 있지마는 그건 특수한 경우고, 화두를 들고서 모든 일을 해 나가면은 처음에는 화두 들라고 하면은 일이 제대로 안 되고, 일에 정신을 쏟으면은 화두가 잘 안 들리고 해서, 두 갈래 길에서 갈팡질팡 잘 안 되는 수가 있습니다마는, 자꾸 익히는 것입니다.

자꾸, 세수허면서 ‘이뭣고?’헌 그 화두를 놓치지 아니하고 세수를 한번 해보세요.
세수를 허러 세숫대야 있는 데까지는 갔고, 세숫대야에다 물을 퍼붓을 때까지도 화두가 있었고, 그런데 손으로 물을 움켜서 얼굴에다 대고 문지를 때 깜박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자꾸 그럴 때에 잊어버리지 않도록 화두를 단속(團束)을 해 보십시오. 그럴 때 한번 단속을 해봐서 세수를 끝내고 다시 수건으로 닦을 때에도 화두가 들어져 있도록,

그렇게 그때그때 잠깐잠깐의 생활 속에서 화두를 단속헌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정진을 빨리 이러한 경지-타성일편(打成一片) 경지에 몰아가는데 대단히 효과적인 것입니다.

발우(鉢盂)를 떠억 필 때까지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밥을 다 넣어두고 진지를 할 때도 (화두가) 있는데, 죽비를 딱딱 세 번 딱 치고 숟가락을 들어서 입에다 넣고 씹으면서 화두가 달아나 버리고,

그래 가지고 옆의 사람을 힐긋힐긋 쳐다보면서 행여 나보다 먼저 먹을까 싶어서 막 잘 씹지도 아니하고, 침도 바른 둥 만 둥 하고 막 삼켜가지고 그런 동안에 단 한 번도 화두를 들어보지 못하고 공양이 끝나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선방에 계신 스님네나 보살님네는 물론이고 가정에서 계실 때에도 공양은 언제나 천천히 잡숫고 잘 씹어서 잡숫고, 그럴려면은 화두를 놓치지 않을려고 노력을 하면서 화두를 들고서 그 드는 상태에서 공양을 잡숫도록 하시면,

저절로 잘 씹게 되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공양을 허시게 되기 때문에 소화도 잘되고 영양흡수도 잘되고 따라서 가장 맛있게 공양을 잡숫게 되는 것입니다.

화두는 공양 잡술 때에 한해서 만이 아니라 모든 일 할 때도 마찬가집니다.

화두를 들고 모든 일을 해야 그 일이 제대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일만 제대로 될 뿐만 아니라 피로를 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종일 일을 허되 일하는 데에 나의 정신을 빼앗기지 아니했기 때문에 정신적인 피로를 느끼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잘 명심을 허시고, 생활 속에 이 참선을 잘 해 나가시도록 정성들여서 단속을 해나가시면은 차츰차츰 이것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똑같은 일을 계속해서 되풀이허게 되면은 거기에서 습관성이라고 하는 것이 생깁니다. 계속 그것이 습관화가 되면 나중에 체질화가 되는 것입니다.

헐려고 안 해도 저절로 되어지는 단계에 도달해서 조금도 무리가 없이 되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우리의 마음과 몸은 혼연(渾然)히 일체가 되는 것이고, 우리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도 바로 나의 살림살이가 되는 것이고, 나의 수중으로 다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내 마음대로 요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우리는 확철대오 할 시기가 도래한 것입니다. 이 공부만이 생사해탈을 획득하게 되는 것입니다.(43분26초~55분1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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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빠짐없이 두루 갖춤.
*삼명(三明)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
①숙명지증명(宿命智證明) 나와 남의 전생을 환히 아는 지혜.
②생사지증명(生死智證明) 중생의 미래의 생사와 과보를 환히 아는 지혜.
③누진지증명(漏盡智證明)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지혜.
*육통(六通) ; 육신통(六神通)의 준말.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2. 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3. 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4. 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5. 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6. 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94~95.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한눈을 팔다 ; 해야 할 일에 마음을 쓰지 않고 정신을 딴 데로 돌리다
*재송도인(栽松道人) ; 중국 선종(禪宗)의 제4조 도신대사(道信大師 580~651)가 제자를 맞아 인증을 하였지만, 제자가 너무 늙어 스승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법을 이을 사람이 없으니 몸을 바꾸어 오도록 하였다. 이에 몸을 바꾸어 후에 다시 만날 때 증거로 삼기 위해 황매산에 소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를 심었다’는 뜻에서 ‘재송도인(栽松道人,栽松道者)’이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5조 홍인대사(弘仁大師 602~675)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여래(如來) ; 여래 십호(如來十號)의 하나. 진여(眞如)의 세계, 곧 열반에 다다른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를 달리 이르는 말이다. 다타가타(tathāgata)의 번역어이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발우(鉢盂) ; 발(鉢)은 (산)patra의  음역어인 발다라(鉢多羅)의 준말로 식기, 우(盂)는 그릇을 뜻함. 음역어와 번역어의 합성어로, 수행승들의 식기를 일컬음.
*혼연(渾然 가지런할•모두 혼,그러할 연) ; 다른 것이 조금도 섞이지 않고 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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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정진(精進)2014.01.03 08:14

§(264) (게송) 묵조시귀굴 문자역조강 약문해하종 방행여우적

**송담스님(No.264) - 1985년 4월 첫째일요법회

약 6분.


묵조시귀굴(黙照是鬼窟)이요 문자역조강(文字亦糟糠)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문해하종(若問解何宗)인댄 방행여우적(棒行如雨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묵조(黙照)는 시귀굴(是鬼窟)이요. 묵묵히 앉아서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이 귀신의 굴택(窟宅)이요.
문자(文字)는 역조강(亦糟糠)이다. 문자•이론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은 이것은 다 찌꺼기더라 그말이여.

참선을 허되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허면서,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독로(獨露)허도록 잡드리를 해 나가야지,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헌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헌 공부는 이것은 묵조사선(默照邪禪)이라 해 가지고, 아무리 평생을 들여다보고 있다 허드라도 이것은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허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입니다.
설사 오신통(五神通)이 난다 허드라도 이것은 정법(正法)이 아니고 외도선(外道禪)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전(經典)이라 하더라도, 경전을 우리의 중생 분별심으로 사량•분별로 이리저리 따져서 해석을 허고 있다면, 그것은 곡식의 바른 알곡을 먹지를 못하고, 그 찌꺼기를 씹고 있는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부처님 경전도 그 경전을 바로 읽고, 바로 봐서 부처님의 참뜻을 옳게 깨달라야지, 그것을 이론적으로 따지고 문자로 그것을 분석해서 그렇게 일생 동안을 경을 읽고 연구를 헌다해도,
그것은 찌께기-엿 국 다 뽑아내고 엿기름 찌께기를, 그것은 돼지나 주는 것인데-그것을 갖다가, 엿 국물은 받아서 구정물 통에 붓어 버리고 그리고 그 엿밥, 찌께기를 먹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약문해하종(若問解何宗)이면, 그렇다면은 묵조(默照)도 아니오 문자를 연구하는 것도 아니라면은, 그렇다면은 그대가 공부해 나가는 종지(宗旨)가 무엇이냐? 그대가 공부해 나가는 것은 어떠헌 공부를 허느냐?
‘무슨 목적으로 어떠헌 공부를 허느냐?’허고 묻는다면은,

방(棒)을 내리기를, 방맹이로 몽둥이질을 허기를 비 쏟아지듯이 몽둥이질을 허리라(棒行如雨滴).
‘그 무슨 공부를 허느냐? 그대가 하는 공부의 지취(旨趣)가 무엇이냐?’고 묻다가 뭇매를 맞게 된다 이것입니다.

어째서 ‘그대의 공부허는 종지가 무엇이냐?’하고 묻는데 방맹이를 맞게 되느냐?
여러분이 참선을 열심히 허시게 되면 이 뜻을 스스로 아시게 될 것입니다.(74분15초~79분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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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묵조시귀굴(黙照是鬼窟)~’ ; [청허당집(清虛堂集)](동국대학교역경원) p63 ‘일선자(一禪子)에게’ 게송 참고.
*굴택(窟宅) ; 거처, 집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묵조사선(默照邪禪)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헌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헌 공부. 이것은 깜깜한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허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이다.
*오신통(五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②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③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④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⑤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94-95 참조.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엿 국물(엿물) ; 곡식을 엿기름으로 삭힌 뒤에 자루에 넣어 짜낸 국물. 맛이 달고 끈적끈적하다. 엿 국물을 고아 굳힌 것이 우리가 보통 먹는 ‘엿’이다.
*엿밥 ; 엿을 만들 때 엿물을 짜낸 밥찌끼.
*종지(宗旨) ; 주요한 뜻.
*지취(旨趣) ; ①어떤 일에 대한 깊은 맛. 또는 그 일에 깃들여 있는 묘한 뜻. ②어떤 일에 대한 기본적인 목적이나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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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