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뭣고 화두2017. 4. 18. 09:54

<핸드폰에서,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에서 24분 29초부터 시작됩니다>

 

 

§(086) (게송)작야삼경월만루~ / 바른 선지식의 지도 / 최초의 화두, 가장 기본적인 화두가 이뭣고?’ / 화두를 관조(觀照)하라 /  공부는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해야만  그러한 .

 

분명 숨은 코로 들어갔다 코로 나오겠지마는, 우리 의식으로는 코로 들어마신다 내쉰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궁뎅이 뒤에서 쑤욱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에 머물렀다가 다시 나갈 때에는  궁뎅이 뒤로 쑤욱 나가는 그러한 기분으로 숨을 쉬어라.

 

몸도 건강해지고 정신도 건전해져서 참선하는 데에는 필요 불가결한 것이  단전호흡법입니다.

 

천칠백 화두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온 화두, 가장 기본적인 화두가 바로 시심마(是甚麽), 이뭣고?’ 화두인 것입니다. ‘이뭣고?’ 바로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목적이 어릴 때부터서  ‘이뭣고?’대한「대관절  인생이란  무엇이냐? ‘내’라는  무엇이냐?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것이냐? 이것을 바로 구체화하고 체계화한 것이 시심마(是甚麽)’ 화두인 것입니다.

 

오직 ‘이뭣고?’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맥힌 의심(疑心)으로 ‘이뭣고?’ 생각하고 관조(觀照)해 나갈 때에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우리의 중생의 분별식(分別識)이 다하고, 번뇌와 망상이 다해서 생각 없는 데에 도달하고, 생각 없는 데에서 다시 한 걸음 나아가서  화두를 타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장독에다가 간장을 가뜩 부어놓은 것을  메겡이로 메쳐서  간장독이 ! 벌어져서 간장이 와르르르 쏟아지듯이 우리 본참화두(本參話頭)를 타파함으로써 무량겁의 칠통(漆桶)이 동시에 타파가 되고, 바로 나의 본면목을 보게 되는 것이고, 불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이고, 우주의 근본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위해서 몸과 마을과 국가와 민족을 잊어야 하고 그렇게 잊음으로써 진리를 체달(體達)하게 되고, 진리를 체달한 사람은 인류와 국가와 민족과 모든 것을 위해서  몸을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86)—78 7 관음재일 법회(78.08.27) (용086)

 

(1) 약 20분.

 

(2) 약 16분.

 

(1)------------------

 

작야삼경월만루(昨夜三更月滿樓)헌데  고가창외노화추(古家窓外蘆花秋)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조도차상신명(佛祖到此喪身命)허니  암하유수과교래(岩下流水過橋來)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게송은 전강 조실 스님께서 견성(見性)을 하시고 오도송(悟道頌)으로 읊으신 게송(偈頌)입니다.

 

작야삼경월만루(昨夜三更月滿樓), 어젯밤 삼경에 달이 다락에 가득했는데, 누각에 달빛이 가득히 비추었는데,

고가창외노화추(古家窓外蘆花秋). 옛집 창밖에는 갈대꽃이 허옇게  가을이로구나.

불조도차상신명(佛祖到此喪身命)헌데, 부처와 조사가 여기에 이르러서 몸과 목숨을 잃었는데,

암하유수과교래(岩下流水過橋來). 바위 밑에 흐르는 물은 다리로 지나오는구나.

 

 게송은 조실 스님께서 깨달으신 경계를 고대로 읊으신 것입니다.

 

조실 스님은 글을 많이 배우신 문장가도 아니시고, 그러시면서 23살의 젊은 어리신 몸으로 경을 쪼끔 배우시다가 너무너무 사랑한 정든 친구가 비명에 비참하게 죽어가는 현상을 보시고 너무 무상(無常)을 철저히 깨달으신 나머지 책을 던져버리고 선방(禪房)으로 가셔서 참선(參禪) 공부를 하시다가 23살의 어린나이로 대도를 깨치셨던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읊으신 게송이 바로  게송입니다.

 

 게송은 어떠한 시인 문장가도  게송의 뜻을 올바르게 풀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각자 깨달은 분은 깨달은 분만이  게송이 내포하고 있는 참뜻을 속으로 느낄 뿐이고  깨닫지 못했을망정 참선 공부를 하시는 분은  게송을 접하므로 해서 뭐라고 표현할  없는 깊은 감명을 받게 되실 것입니다.

 

우리가 철저히 정진함으로 해서  게송의 참뜻을 직접적으로 깊이 계합(契合)이  날이 오기를 바라고, 우리 자신도 반드시 머지않은 장래에 도업(道業)을 성취해서 이러한 진리의 게송을 읊음으로 해서 많은 후인들에게 감명을   있게 된다면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자리에는 처음 오신 거사님도 계시고, 보살님도 계신만큼 참선을 해 가는 데에 구체적인 그리고 기초적인 것을 지도해 달라고 말씀을 하신 분이 여러분이 계셔서 한 분, 한 분에게 그러한 시간을 가질 수가 없어서 법회를 통해서 간단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참선은 첫째, 바른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직접적인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 이것은 필수 조건이 되는 것이고.

첫째는 몸을 바르게 가져야 한다. 둘째는 호흡을, 단전호흡(丹田呼吸)을 바르게 해야 한다. 셋째는 화두를 선지식으로부터 받아가지고 바르게 참구(參究)해 나가야 한다.

 

 

첫째, 몸을 바르게 갖는 것은 가부좌(跏趺坐) 또는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해라. 오른발목을 왼다리 무릎에다가 구부려 올려놓고, 왼발목은 오른다리 무릎 위에다가 올려놓아라.

그리고 허리는  펴고 그리고  발 위에다가 오른손을 얹어놓고  위에다 왼손을 포개서 올려놓은 다음, 엄지손은 서로 배끼리 이렇게  맞대서 세워라. 그래가지고  손을 배꼽  앞에다가 갖다가  대라. 배꼽 앞에 발 위에다 얹어 놔라.

 

그리고 어금니는 지그시 물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 갖다 대라.

 귀는  어깨 위에 수직상(垂直上)에 놓이도록 하고, 코끝은 배꼽 밑에 단전과 수직상에 놓이도록 해라. 이렇게 하면 몸이 단정하게 됩니다. 이렇게 몸을 단정하게  다음에는 몸을 좌우로 서너 번 흔들어서 한가운데에다가  안정을 시켜라.

 

그리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떠서 앉은 자리에서 3미터 지점에다 떨구어라. 3미터 지점에다 눈을 떨구되 의식적으로 어떠한  점을 응시(凝視)해서는 아니되고, 의식적으론 아무것도  바가 없이 그저 평상으로만 떠라. 이렇게 자세를 갖는 것이 몸을 바르게 갖는 것이다.

 

 

그다음 호흡을 바르게 하는 것은 보통 사람은 가슴으로 호흡을 하는데, 아랫배로 호흡을 해라.

숨을 들어마실 때는 배꼽 밑에 단전이 앞으로 불룩하니 나오도록 하면서 숨을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배를 차츰차츰 홀쪽하게 하면서 숨을 조용하게 그리고 길게 내쉬어라.

 

들어마실 때나 내쉴 때나 코로 들어마시고 코로 내쉬되 코로 들어마신다 코로 내쉰다’는 생각은 전혀 갖지를 말고,

숨을 들어마실 때에는  궁뎅이 뒤에서,  뒤에서 쑤욱 궁뎅이를 통해서 들어마신 호흡이 아랫배로 가득히 들어오도록 이러한 기분으로 들어마시고, 들어마신 호흡은  3 동안 정지 상태로 머물렀다가 내쉴 때는  뒤로, 쑤욱  뒤로 내보내는 기분으로 내쉬어라.

 

분명 숨은 코로 들어갔다 코로 나오겠지마는, 우리 의식으로는 코로 들어마신다 내쉰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궁뎅이 뒤에서 쑤욱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에 머물렀다가 다시 나갈 때에는  궁뎅이 뒤로 쑤욱 나가는 그러한 기분으로 숨을 쉬어라.

 

들어마신 시간은  3 동안에 들어마시고, 머무르는 시간  3초 동안, 내쉴 때는  4 ,5 걸려서 내쉬도록. 이렇게 해서 한번 들어마셨다 머물렀다 내쉬기를  10 내지 11 이러한 정도로 시간을 잡어서 하되 절대로 무리하게 억지로 시간을 오래 머무르려 하지 말고, 너무 호흡을 배가 가뜩 들어마시지 말어라.

들어마실 때는  8부(八部) 정도만 들어마셔.  들어마실  있지마는 8부쯤 해서 숨을 멈추고 3 동안 머물렀다 조용하니 내쉬는 이것이 바로 단전호흡입니다.

 

이 단전호흡을 하면은 혈액 순환이 잘되어서 몸안에 머물러 있는 많은 노폐물, 피로의 원인이 되는 독소를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통해서 코로 그리고 혈액 순환을 통해서 밖으로 전부 다 배설하게 됩니다.

그래서 피가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져서 오장육부 기능이 활발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안정이 되고 정신이 맑아져서 그러한 상태에서 참선을 해 나가게 되면은 공부가 잘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몸도 건강해지고 정신도 건전해져서 참선하는 데에는 필요 불가결한 것이  단전호흡법입니다.

 

이러한 호흡법을 모르고서 무턱대고 화두만을 파고들게 되면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기운이 위로 올라가서 골이 아프고 상기병(上氣病)에 걸려서 도저히 참선을 더이상 계속할  없게 되는 것이고, 소화불량 내지 온갖 오장육부에 부작용이 생겨나서 도업은 성취하기도 전에  먼저 앓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옛날부터 수식관(數息觀), 부처님 당시부터 수식관을 권장을 하셨고, 대대로 조사(祖師)들이 내려오시면서  단전호흡을 통해서 더위도 그놈으로 이겨내고, 추위도  단전호흡으로 이겨내고 나아가서는  오는 , 혼침(昏沈)도 그놈으로 이겨내고, 산란심(散亂心)도  단전호흡으로써  제어를 해가지고 나아가서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하기에 가장 편리하도록 그렇게 지도를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단전호흡에 대해서도 직접 하시면서  열흘,  ,  , 직접 해보시면 다시  문의해 보고 싶을 때에 다시  와서 물어보시면 되는 것입니다.

 

 

몸을 바르게 하고  다음에 호흡을 바르게  다음에는 화두(話頭)를 참구를 해야 합니다.

 

화두 가운데는 천칠백(千七百) 화두가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문헌에 오른 것만이고, 문헌에 오르지 아니한 공안, 이 우주세계에 가득찬 것이 바로 공안 아닌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선지식으로부터 주어진 화두  하나만을 철저히 참구를 해서  화두를 여지없이 통과를 해서 타파(打破)를 하게 되면은 천칠백 공안도 동시에  통과를 하게 되는 것이고, 천칠백 공안이 통과가 되면은 우주법계에 가득찬 모든 공안을 현성(現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지식으로부터  하나의 화두만을 받아가지고 철저하게 참구해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자기 멋대로 어떤 화두 하나를 잡아가지고 이리저리 해본다든지  화두  해봤다,  화두  해봤다, 이렇게 해서 그러한 사람은 도저히 바르게 깨달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많은 허송(虛送) 생활을 하게 되고,  안타까운 신세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천칠백 화두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온 화두, 가장 기본적인 화두가 바로 시심마(是甚麽), 이뭣고?’ 화두인 것입니다.

‘이뭣고?’ 바로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목적이 어릴 때부터서  ‘이뭣고?’ 대한「대관절  인생이란  무엇이냐? ‘내’라는  무엇이냐?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것이냐? 이것을 바로 구체화하고 체계화한 것이 시심마(是甚麽)’ 화두인 것입니다.

 

부처님 출현하시기 이전에부터  시심마 화두는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삼천년 전에 출현하시기 이전 몇억만 년 이전부터서  우주가 생겨날 때부터서 우주 자체가 바로  「이뭣고?」의 뭉텡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금 불법(佛法)이 무엇인 줄도 모르고, 참선이 무엇인 줄도 모르는 그러한 사람 가운데에 대관절  인생이라는  무엇이냐?  나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하는 문제에 골몰하고 있는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철학을 통해서 자기 나름대로 시나 소설이나 또는 예술, 과학 모든 자기의 분야에 있어서 결국은 그러한 분야를 통해서 「이뭣고?」라고 하는 것을 해결하고자 노력을 하고 있지 않나 이렇게도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빨리 인생 문제를 해결   있는 방법이 바로 참선법이요, 선지식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아서 철저하게 참선을 해 나가는 길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냐?

 

삼천 년을 두고 내려오면서 역대조사(歷代祖師)들은 오직  문제 하나만을 위해서 정든 고향과 부모 형제와 가족을 버리고 청춘과 인생을  버리고서 오직   문제만을 전문적으로 참구해 왔었던 것입니다.

목숨 바쳐 참구를 해서  일대사(一大事)를 통달하셔 가지고 그것을  제자에게 전하시고,  제자는   제자를 전해서 삼천 년을 내려오면서 77 조사(祖師)가 바로 전강 대종사(田岡大宗師)이십니다.

 

이러한 분명한 법통(法統)을 이어받으신 그런 어른으로부터 참선 지도를 받고 화두를 타고 공부를 해야만  자신도 올바른 깨달음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바른 안목을 갖지 못하고서 남을 바르게 가르킬 수는 도저히 없는 것입니다. 자기는 바로  목적지에까지 가보지도 않고서 남을  목적지에까지 올바르게 인도할  있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번도 가보지도 아니하고 그러한 안내자 없이 올바르게 목적지에 도달할  있다고 하는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기적을 바래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실(實)다웁게 닦아서 실다웁게 깨달아야지, 요행(僥行)을 바랜다든지 기적을 바래고서야 대도를 성취할 가망성은 없는 것입니다.(23분29~4318)

 

 

 

 

(2)------------------

 

‘이뭣고?’

대관절 지금 여러분들이  더위를 무릅쓰고 수백 리 밖에서, 수십 리 밖에서 이렇게 참석을 하셨는데 무엇이 왔느냐?”

내가 왔다

 

내가 누구냐?”

 아무개다

 

 아무개가 누구요?”

나여

 

내가 누구여?”

 아무개여

이러한 대답은 바른 대답이  수가 없습니다.

 

금생에  아무개’지, 전생에는  아무개었을런지 모르고. 금생에 김팔봉’이 이름을 칠봉이라고 지으면 칠봉이고, 삼봉이라고 지으면 삼봉이지, 이름이야 수천 , 수만 개라도 새로 갈아붙일 수가 있는 것이어서 그것은 임시로 붙여 놓은 이름이지 그것은 나’가 아니여.

 

“이 몸뚱이가 나’다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4대(四大)가 뭉쳐져서 임시로 건립되어 있는,  나’가 살고 있는 임시 주택이요,  벌의 옷에 지내지 못한 것이지 이것은 나’가 아니다.

 

 나’는  몸뚱이를 운전하고  몸뚱이를 주재하는 주인공(主人公), 그것은 수십 수백 가지의 이름이 있지마는  이름 붙이기 이전에  참모습이 무엇이냐? 참면목(面目)이 무엇이냐?

이것은 우리의 희고, 검고 하는 것을 보는 눈으로는  수가 없는 것이고, 새소리 닭소리를 듣는  귀로서는 아무리 들을라고 해도 들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오직 ‘이뭣고?’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맥힌 의심(疑心)으로 ‘이뭣고?’ 생각하고 관조(觀照)해 나갈 때에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우리의 중생의 분별식(分別識)이 다하고, 번뇌와 망상이 다해서 생각 없는 데에 도달하고, 생각 없는 데에서 다시 한 걸음 나아가서  화두를 타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장독에다가 간장을 가뜩 부어놓은 것을  메겡이로 메쳐서  간장독이 ! 벌어져서 간장이 와르르르 쏟아지듯이 우리 본참화두(本參話頭)를 타파함으로써 무량겁의 칠통(漆桶)이 동시에 타파가 되고, 바로 나의 본면목을 보게 되는 것이고, 불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이고, 우주의 근본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천칠백 공안은 우리가 나를 깨닫기 위한 나침판이요, 지팡이요, 등불이며 길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잠시도 화두를 떠나서는 우리의 공부는 생각할 수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 간에 화두는 우리의 앞에 역력(歷歷)하고 또록또록하게 나타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하 싱겁고 맛없는 한마디 말이지마는 계속 들고  들고, 생각하고  생각하고—‘생각한다’고 하면은 조금 어폐(語弊)가 있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어 나가는 데에는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못   없는 의심에  맥힌 상태에서 ‘이뭣고?’ 이것을 생각이라고  수가 없습니다.

생각이라 하면 이리저리 따지고 비교하고 더듬어 들어가는 것인데  화두를 생각하는 것은 따지고 더듬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하는 그런 이론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이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인(古人)들은 관(觀)’이라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 ()’.

“화두를 관조(觀照)하라” ‘ ()’. “관(觀)하라 이렇게 본다’고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 말없는 것이고, 재미없는 말이지마는 자꾸 하고  하고 하는 가운.... 또 생각하고  생각해 나가면...(녹음 끊김)

큰방살이가 작은방살이가 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언제가 수백억만 년 옛날에는 참나’가 나의 주인공이였었고, 번뇌 망상은 그때 작은방살이였었습니다.

 

그것이 아는 동안에 차츰...(녹음 끊김) 조국을 찾자는   생각뿐이었던 것입니다. 조국에 모여가지고 모래 위에 흙을 퍼다가 붓고 모래 속에다가 수도 시설을 해가지고 모래땅을 옥토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외국에 유학을  있는 학생들도 조국에 싸움이 일어났다 큰일이 일어났다 하면은 조국에서 부르기 전에 서로 앞을 다투어 조국으로 모여든다고 합니다. 조국을 잃어  사람이 아니면 조국이 얼마나 소중하다고 하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36년간이라고... (녹음 끊김) 근자에 와서 세계 사람이 눈을 부릅뜨고 놀랄 만큼 오히려 선진국들이 우리를 경계하지 아니하고서는 안될 만큼 그러한 수준에 지금 육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질, 경제면에서 세계 사람을 놀라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녹음 끊김) 그러한 내가 참나를 찾는 진리를 탐구하는 그러한 (녹음 끊김) 자칫하면 비참한 구렁텅이에 빠지지 아니한다고 단언할 수가 없습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나라들이 한때 물질면에서 경제면에서 그렇게 (녹음 끊김 ) 지금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살게 되었다고 해서 조끔도 안일에 빠질 수도 없고, 허리띠를 늦출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욱 검박하게 살면서 우리는  물질 이상으로  정신면에 있어서 우리 정신력을 강화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정신력 강화가 바로 참선법보다  좋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참나를 찾는  수행이야말로 부처님을 믿는 신도에 국한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어떠한 종교를 믿는 사람도  참선은 해야만 되고 불교를  믿는 사람도 참선법만은 바로 배워 가지고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 참나를 찾는...(녹음 끊김) 

 

누차 말씀을 드리는 바이지만 이론으로 따져 들어가는 공부가 아니다. 경전에 씌어진 어떠한 경전의 말씀도 ‘이뭣고?’ 참구하는 데에 동원되어서는 아니된다 이것입니다. 다못 바보가 되어서 ‘이뭣고?’  번이고  번이고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3 머물렀다 내쉬면서 ‘이뭣고?’ 초학자는 이렇게 공부를 지어 들어가면 호흡과 화두가 함께 잘되어 가는 단계에 도달할 것입니다.

나중에 익숙해지면 들어마실 때나 내쉴 때나 그것에도 구애받을 것이 없고,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누워서나 일을  때나, 차를  때나  먹을 때나 그러한 것에도 조끔도 상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더라도 ! 인자 되었다. ! 잘되었다 이러한 기뻐하는 마음을 내서는 아니 되고, 공부가 순일하게 잘되어 가더라도 계속 화두만을 더욱 간절하게 들어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공부가   순일하게 잘되어 가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변해가지고  화두가   들리고, 졸음이 퍼오거나 망상심이  일어나거나 화두가 도저히 잘  들리는 경우가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조끔도 번뇌심이나 짜증을 내지 마시고 계속 단전호흡을 하면서 ‘이뭣고?’ ‘이뭣고?’를 계속 들어나간다면 얼마 안 가서 어려운 고비를 넘게 됩니다.  고비를 지혜스럽게 참을성 있게  넘기고 나면 그때 가서는  한결 공부가 수월한 단계에 이르른 것입니다.

 

대혜종고(大慧宗杲) 스님이 「서장(書狀)」에 말씀하시기를  몸이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화두가   들리고 이러한 경지가 절대로 나쁜, 공부가  안되는 마장(魔障)의 경지가 아니라 참으로 한 걸음 올라설  있는 좋은 중요한 계기니까 그것을 놓치지 말고  정신을 차려서 지혜롭게  고비를  넘기도록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공부는  세상에서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해야만  그러한 길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집안을 위해서는  몸을 버려야 하고  몸을 잊어야 하고, 마을을 위해서는 집안을 잊어야 하고, 국가나 민족을 위해서는 마을을 잊어야 한다. 진리를 위해서 도를 위해서는 몸과 집안과 마을과 나라까지도 버려야 하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참선하는 사람은 집안이고  국가도  버려 버려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참선이 국가를 위해서는 아무 이익을 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나라 삼천오백만 민족이 전부 참선을 하게 되면 나라는 누가 지킬 것이냐?’ 혹 이러한 생각을 하실 분이 계실런지 모릅니다마는.

 

‘이뭣고?’하는 동안에는 정말 나의 목숨까지도 바쳐야 하는 것이거늘 목숨 없는 곳에 나라 생각, 민족 생각이 거기에 떠오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말 모든 것을  바칠 , 모든 것을  잊어버릴 때에 도(道)의 문(門)에 들어갈  있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고.

 

그렇게 해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존재냐?

집안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을과 국가 민족은 말할 것도 없고,  인류는 말할 것도 없고, 우주법계에 가득찬 모든 중생을 위해서  사람의 모든 것은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위해서 몸과 마을과 국가와 민족을 잊어야 하고 그렇게 잊음으로써 진리를 체달(體達)하게 되고, 진리를 체달한 사람은 인류와 국가와 민족과 모든 것을 위해서  몸을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팔만대장경을 통해서 우리는  읽을 수가 있습니다마는 부처님의 참뜻을 옳게 이해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한문(漢文)에 통달한 사람은 무슨 경전이든지 맥힐 것이 없다 이렇게 보실는지 모릅니다마는 그렇지를 않습니다. 참선을 통해서 진리를 깨달아야만 어떠한 경전의 쉬운  글귀라도 바로  수가있는 것입니다.

 

부디 덥다 핑계대지 말고, 춥다 핑계대지 말고 아직도 나는  일이 많다. 아들을 위해서 딸을 위해서  일이 많다. 집안을 위해서  일이 많다 그러한 핑계대지 말고,

1분 1초라도  생각을 돌려서 화두를 참구하심으로 해서   이만큼 건강할  반드시 참나를 깨닫도록  자리를 통해서 다짐을 하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4315~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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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작야삼경월만루~’ ; 전강 선사 오도송(悟道頌). 원래는 이렇게 7언이었으나 후에 5언으로 만드심.

〇작야월만루(昨夜月滿樓)  창외노화추(窓外蘆花秋)  불조상신명(佛祖喪身命)  유수과교래(流水過橋來)

*전강 조실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http://emokko.tistory.com/231)’ 참고.

*견성(見性) : ‘성품() 본다()’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 일치하는 정각(正覺)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 진리를 깨닫고  경지 또는  기쁨을 나타낸 게송.

*게송(偈頌) ; (), () ()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 ②선원(禪院).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계합(契合 맺을 /합할 )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들어맞음.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책상다리할 /앉을 ) ; 결가부좌(結跏趺坐) 줄임말.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 발바닥을, ()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 : 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응시(凝視 엉길 /보일 ) ; ①시선을 한곳으로 모아 집중해서 뚫어지게 바라봄. ②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깊이 살핌.

*팔부(八部)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복식 호흡(腹式呼吸) ; 숨을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해서 가로막의 신축에 의하여 하는 호흡. 단전호흡(丹田呼吸).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수식관(數息觀) ; 출입하는 숨을 세어서 마음을 통일하는 . 그것에 의해 마음의 산란을 막음. 호흡을 세어서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법.

*조사(祖師) : 1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 깨달아서이를 전하는 () () 상응(相應)하는 도인.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산란(散亂 흩을 /어지러울 ) ; 혼침(昏沈)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 마음이 어지러운 .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①부처님이 중생 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법통(法統 부처님의 가르침 /거느릴·벼리·혈통) ; 불법(佛法) 물려받음. 또는 대대로 불법을 계승하는 계통. 법맥(法脈) 같은 .

*법맥(法脈) ; 세속에서 조상의 전래 혈통(血統) 밝히고 있듯이, 불교 선종(禪宗)에서는 스승에서 마음을 깨친 제자로 계속 이어져 전해 ,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 법통(法統) 전승을 법맥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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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四大) ; ①지() · () · () · () 말함. () 원소란 .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 가지 원소().

(1)지대(地大) : 굳고 단단한() 것을 ()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負載) 있고,  질애()하는 바탕. 질애()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 (2)수대(水大) : 습윤(濕潤) 성으로 하고, 모든 ()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 () 성으로 하고, ()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 () 성으로 하고 ()성장케 하는 바탕.

②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의 4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 주인옹(主人翁).

*면목(面目  / )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관조(觀照) ; ①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洞察 :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환히 꿰뚫어 봄)함. ②지()로써 ( 모든 차별의 모양. 현상계. 차별 현상. 사물) ( 모든 사물의 본체. 진리) ()하여 바르게 아는 .

[참고] 『돈황본 육조단경』

用智慧觀照  於一切法  不取不捨  卽見性成佛道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觀照] 온갖 법에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나니,  성품을 보아 불도(佛道) 이루느니라.

 

[참고]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보조국사 지눌 스님)

如或世間事務  種種牽纏或病苦所惱  或邪魔惡鬼所能恐怖  有如是等  身心不安  則於十方佛前  至心洗懺  以除重障  禮念等行  消息知時

만일 세상의 일에 가지가지로 얽매이거나 병으로 아프거나 삿된 악마나 귀신에 의해 공포에 떠는  이런 일로 몸이나 마음이 불안함이 있거든, 시방세계의 부처님 전에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여 무거운 업장(業障) 제거해야 한다. 예불과 염불을 아울러 행하고, 업의 장애를 없애고 생각을 비우는 일을 때를 알아서 하라.

 

動靜施爲  或語或默  一切時中  無不了知 自他身心  從緣幻起  空無體性  猶如浮泡  亦如雲影  一切毀譽是非音聲  喉中妄出  如空谷響  亦如風聲

움직이고 그치고 말하고 침묵하는 모든 시간에 나와 남의 몸과 마음이 인연을 따라 허깨비처럼 일어난 것으로 ()하여 체성(體性) 없음이 마치 물에  거품과 같으며 또한 구름이나 그림자와 같아서, 일체 비방하고 칭찬하며, 옳다 그르다는 음성이 목구멍에서 망령되이 []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고 또한 바람 소리와 같은 것임을 환히 안다.

 

如是虛妄自他境界  察其根由  不隨傾動  全身定質  守護心城  增長觀照  寂爾有歸  恬然無間

그와 같이 나와 남이 모두 허망한 경계에서  근본 원인을 살펴, 치우친 행동을 따르지 않고,  몸은 안정하여 마음의 () 굳게 지키어 비추어 보는[觀照] 힘을 증장하면 고요히 돌아갈 곳이 있고 편안하여 끊임이 없을 것이다.

 

當是時也  愛惡自然淡薄 悲智自然增明  罪業自然斷除  功行自然增進

그때에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저절로 엷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저절로 더욱 밝아지며 죄업은 저절로 끊어져 없어지고 공덕의 [功行] 저절로 더욱 나아갈 것이다.

 

煩惱盡時  生死卽  生滅滅已  寂照現前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是爲了事人分上  無漸次中漸次  無功用中功用也

그리하여 번뇌가 다할 때에는 생사가  끊어지고 생멸이 멸하면 () () 앞에 나타나 () 씀이 무궁하여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리니 이것이 이른바  마친 사람의 분상(分上)점차(漸次) 없는 가운데 점차며, 공용(功用) 없는 가운데 공용이 되는 것이다

*분별식(分別識) ; 팔식(八識) 가운데 6 의식(意識) 말한다.  의식은 차별하여 사유하고 판단하므로 이와 같이 말한다.

*칠통(漆桶  / ) ; ①옻칠을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역력(歷歷 겪을·지낼·수를 ·가릴 ) ; ①뚜렷한 모양. 분명한 모양. 똑똑한 모양. ②사물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모양.

*어폐(語弊 말씀 /해어질·쓰러질 ) ; ①적절하지 아니하게 사용하여 생기는 말의 폐단이나 결점. ②남에게 오해를 일으킬  있는 .

*대혜종고(大慧宗杲)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 · 『대혜서(大慧書) · 『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62()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역설하였다.

*마장(魔障 마귀 /장애 )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 [참고]헤살;남의 일이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체달(體達) ;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