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설날차례)2014.01.28 14:13

§(636) 설날차례 / 생사(生死)는 본래 없다. /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

**송담스님(No.636) -  2000년(경진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2000.2.2)(21분).

약 22분.


매년 정월 초하루날 새벽에는 통알(通謁)이라고 하는 의식을 거행해 오고 있습니다.

결제(結制)중이고 그래서 낱낱이 모든 존경하는 어른들께 세배(歲拜)를 다닐 수가 없기 때문에 자기가 있는, 수도(修道)하고 있는 도량(道場)에서 합동으로 세배 올리고자하는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랜 전통으로 그렇게 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용화사에서도 옛날부터서 그렇게 해 오고 있는데, 따라서 여기에 있는 모든 스님네나 보살님네들, 거사님네들도 그렇게 하시고 개별적인 세배를 생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해를 하시고 지금부터 거행하는 통알에 진심으로 정성스러운 세배를 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오늘 새해 설날을 맞이해서 형제, 자매, 도반 여러분, 법보가족 여러분들이 이 법당에 모이셨습니다.

오늘 오신 뜻은 용화사 법보전(法寶殿)에 모신 우리의 선망 부모(先亡父母)와 먼저 가신 가족·친지 영가(靈駕)께 영단(靈壇)에 차례(茶禮)를 젓수기 위해서 모다 참례를 하셨습니다.

일반 가정에서는 옛날부터 조상의 신주(神主), 위패(位牌)를 모시고 차례를 젓수고, 그런데 우리는 이 법보전에 우리의 선망 부모와 조상들의 영가를 모셨기 때문에 여기서 차례를 올리기 위해서 모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전강 조실스님의 ‘생사(生死) 없는 최상승(最上乘) 법문(法門)’을 영가께 들려 드리고 또 우리도 그 법문을 다 같이 경청을 했습니다.

영단(靈壇)에 정성으로 여러 가지 음식과 과일을 올려서 앞으로 법요식을 거행하게 되겠습니다마는,
정말 참다운 차례(茶禮)는 조실스님의 생사 없는 진리의 말씀을 들려 드림으로 해서 우리의 선망 부모와 조상께 참으로 소중한 정성이 담긴 차례를 올린 것이라고 산승(山僧)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아무리 갖가지 음식을 많이 차려놓은들 영가가 얼마나 그것을 잡숫고 생사해탈을 하시게 될는지, 다맛 우리의 정성으로 올린 것뿐이지 그것은 아무도 보증을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마는,

생사 없는 진리의 말씀을 영가께 들려 드림으로 해서, 영가가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벗어나서 생사 없는 해탈도(解脫道)로 가신다고 하는 것은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심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미 차례는 조실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우리의 조상들에 대한 차례는 원만히 다 마쳤습니다. 다만 앞으로 요식 행위만이 남아있습니다.

산승이 여기서 올라 와서 앞에 나와서 여러분께 나온 기념으로 게송을 하나 읊고자 합니다.

월마은한전성원(月磨銀漢轉成圓)한데  소면서광조대천(素面舒光照大千)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연비산산공착영(連臂山山空捉影)하니  고륜본불낙청천(孤輪本不落靑天)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찰나생멸무상법(刹那生滅無常法)이요  취산순환유루인(聚散循環有漏因)이로다
나무~아미타불~
금오출몰촉년광(金烏出沒促年光)한데  옥토승침최로상(玉兎昇沈催老像)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찰나생멸무상법(刹那生滅無常法)이여. 찰나 찰나는 한 생각 속에 구백 생멸(九百生滅)이 있는데, 그 구백 생멸의 단위가 일찰나(一剎那)여.
구백 찰나가 모여서 한 생각인데, 일초에 몇천 분의 일이 될는지,
그 시계가 똑딱 똑딱 똑딱 지내가는 그 사이에 우리의 생명도 그렇고, 모든 중생의 생명도 그렇고, 산천초목도 다 죽음을 향해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모였다가 흩어지고, 한 가족으로 한 부부로 만났다가 생이별 사이별하고, 부모 자식 간에 인연으로 태어났다가도 부모가 먼저 죽고 자식이 먼저 죽기도 합니다.

그렇게 만났다가 헤어지고 헤어졌다가 다시 또 내생(來生)에는 인연 따라서 또 인간 세상에서 만날 수도 있고, 천상에 가서 만날 수도 있고, 축생계에서 만날 수도 있고, 지옥에서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나되-인연 따라서 만나기는 하지마는-한 생(生)을 바꿀 때 깨끗하게 전생사(前生事)를 망각을 해 버리기 때문에 무슨 인연으로 만난지도 모르게 또 만나서 가족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런 것이 유루(有漏)의 인연(因緣)이요 무상법(無常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는 정들었던 부모를 여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들었던 아들과 딸을 여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다 인연 따라서 만나고 인연이 다하면 또 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 가운데에서 생멸(生滅)하고, 취산순환(聚散循環)하는 것이,
금오출몰촉년광(金烏出沒促年光)이요. 해가 동쪽에서 떴다가 서쪽으로 지고 또 달이 떴다가 또 달이 지고 하는 이런 것이 우리의 생명을 재촉하는 북소리와 같은 것입니다.

이미 사형(死刑) 언도(言渡)를 받고 사형장으로 끌려가는데, 북을 치면서 계속 가 가지고 마지막에 사형을 당한거와 같은 그러한 상황에다가 비유할 수가 있고, 현실적으로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죽음이 동시에 판결이 나 있는 것입니다.
다못 어느 날 어느 시에 집행이 되느냐? 그것만 모를 뿐이지, 이미 우리는 죽음을-딱 사형 언도를 받고 있는 처지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정월 초하룻날 왜 이런 생사 문제를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은,
사실은 생사 속에 살고 있지마는 ‘생사 없는 진리’가 있기 때문에, 생사 없는 진리를 확실히 깨달을라면 생사라고 하는 것이 대관절 무엇이냐? 생사의 근본이 무엇이냐?

그 근본을 확실히 우리가 이해하고 확실히 믿고, 그 생사 없는 도리를 바른 공부를 통해서 수행을 통해서 확실히 깨닫고 보면, 분명히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해탈도를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병을 낫을려면 그 병의 근원을 알아야 거기에 따라서 침을 맞고, 쑥을 뜨고, 약을 먹고 물리치료를 받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원인을 모르고서는 병을 낫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월마은한전성원(月磨銀漢轉成圓)이요. 저 달이 하늘에서 돌고 돌다 보면 초승달이 차츰차츰 커져 가지고 보름날이 되면 완전히 둥그런 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둥근 달이-환하게 쟁반 같은 달이 떠 가지고 온 세계를 다 비춥니다. 대천세계를 다 비춘 것입니다.

그런데 잔나비는 어느날 숲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놀다가 숲속에 있는 샘을 들여다보니까 그 속에 둥근달이 비추거든.
그러니까 하늘에 떠 있는 달이 물에 빠졌다고 야단법석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저 달을 건져서 다시 허공으로 돌려보내야지, 저 물속에 잠겨버리면 온 세계가 어두워지니 어떻게 할 거냐?
잔나비의 우두머리가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가 팔에 팔을 연결을 해 가지고 저 물속에 빠져있는 달을 건지자.

이래 가지고 팔에 팔을 연결해 가지고 수십 마리가-한 놈은 나무를 붙잡고 팔을 늘이면 그 다음에는 그 팔을 잡고 또 팔을 늘이고 해 가지고, 간신히 수십 마리가 팔에 팔을 연결해 물에 달락말락 하니까,

그 여러 마리가 매달리니까 그 중에 팔 약한 놈이 손을 갖다가 놔가지고 수십 마리가 물속에 다 빠졌습니다.

그것이 연비산산공착영(連臂山山空捉影)입니다.
산산이가 팔을 연결해 가지고 물속에 있는 달을 건지려고 하나 그것이 건져지겠습니까.

고륜본불낙청천(孤輪本不落靑天)이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원래 그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달빛이 물에 비춘 것뿐이라고 이것입니다.
그것을 안다면 어찌 물속에 있는 달을 건지려고 할 것이냐. 이런 고인의 게송인데,

이건 무엇을 비유해서 한 말이냐 하면은, 우리는 분명히 이 법당 안에 수만(數萬)의 영가가 봉안(奉安)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우리 눈으로 분명히 이승을 하직(下直)한, 이승에 처자 권속과 부모형제를 놔둔 채 저승으로 떠나신 그런 영가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걸 ‘돌아가셨다’ 그러고, ‘죽었다’하고, 교통사고나 뭐 병고로 모다 그렇게, 사실 돌아가셨다고 다 말들을 하는데,

아까 조실스님의 법문 가운데도 있었습니다마는,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죽었다·태어났다 그런 것이지, 생사로 인증(引證)을 하는 것이지,

마치 허공의 달이 허공에 떠 있으면서 달빛만 물에 비춘 거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이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생사가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말씀이지만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그 의단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은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이고, 이 공부를 열심히 함으로써 진실한 법보제자(法寶弟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천도 차례 법요식이 끝나면 떡국을 맛있게 잘 끓여 놨습니다. 법요식이 끝나면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맛있는 떡국을 잘 잡숫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처음~21분20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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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알(通謁 통할 통,뵈일 알) ; 불교의 신년하례식(新年賀禮式)으로 세알(歲謁)이라고도 한다.
새해 첫날 삼세(三世)의 모든 삼보(三寶 불보살·법보·승가)와 호법신중(護法神衆), 대중에게 세배를 드리는 의식이다.
우선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법보와 승보에게도 삼배를 올린다. 또 현재 살아계신·돌아가신 모든 부모, 원근친척 그리고 온 법계의 모든 도반들 또한 함께 참석한 대중들에게 세배를 올리는 것.
결재중이고 그래서 낱낱이 모든 존경하는 어른들께 세배(歲拜)를 다닐 수가 없기 때문에 자기가 있는, 수도(修道)하고 있는 도량(道場)에서 합동으로,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이 우리가 세배(歲拜)를 올려야 할 존경할 만한 모든 성현(聖賢)과 모든 어른과 모든 선지식과 모든 도반들에게 이 자리에 서서 세배를 드리는 의식.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안거(安居)에 들어감.
*세배(歲拜) ; 섣달그믐이나 설 무렵에 웃어른을 찾아뵙고 절을 함. 또는 그 절.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영단(靈壇) ; 영가의 위패를 두는 단(壇).
*차례(茶禮) ;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의 낮에 지내는 제사.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신주(神主) ; 죽은 사람의 위패.
*위패(位牌) ; 죽은 사람의 위(位)를 모시는 나무패.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잡숫다 ; ‘잡수다’의 높임말. ‘잡수시다’가 줄어든 말.
*잡수다 ; ①‘먹다’의 높임말. ②(사람이 제사를) 차려 올리다.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게송) ‘월마은한전성원~’ ; [관음예문(觀音禮文)]에 나오는 게송. 舒펼(서).
*(게송) ‘찰나생멸무상법~’ ; [관음예문(觀音禮文)]의 무상게(無常偈)에 나오는 게송. 促재촉할·빠를(촉), 催재촉할·독촉할(최), 金烏(금오)-'해'를 가리키는 말, 玉兎(옥토)-'달'을 가리키는 말.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지극히 짧은 시간. 순간.
*내생(來生) ; 죽은 후에 다시 맞이한다는 미래의 삶을 이른다.
*전생사(前生事)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생애에 겪은 일.
*유루(有漏); ①누(漏)는 마음에서 더러움이 새어 나온다(漏泄 누설)는 뜻으로 '번뇌'를 말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든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온갖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차별이나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②생존에 집착하는 번뇌.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유루인(有漏因) ; 미혹한 생존의 원인인 번뇌나 그릇된 행위.
*언도(言渡) ; 선고(宣告). 법정에서 판사가 판결의 결과를 알리는 일. 이로써 재판의 효력이 생김.
*잔나비 ; ‘원숭이’의 사투리.
*산산(山山)이 ; 원숭이.
*수만(數萬) ; ‘만(萬)’의 여러 배가 되는 수.
*봉안(奉安) ; 죽은 사람의 위패(位牌), 화상(畵像)이나 시신 따위를 모시어 둠.
*이승 ; 지금 살고 있는 현실 세계나 일생 동안을 이르는 말.
*하직(下直) ; ①먼길을 떠날 때 웃어른에게 작별을 아룀. ②'죽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저승 ; 사람이 죽은 뒤 그 영혼이 가서 산다는 세상.
*인증(引證) ; 글 따위를 인용하여 증거로 삼음.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때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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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