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성적적'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6.04.02 §(세등09)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몽산화상이 총상인에게 보이심) 법문.(송담스님)
  2. 2015.11.07 §(세등59) 용맹정진이란? / 상(相)만 내는 정진이 아니라 속으로 알짜배기 정진을 해야 / (게송)강호춘진낙화풍~ / 부처님·나라·부모·스승·신도 은혜를 갚자.
  3. 2015.10.12 §(423) (게송)수행수시용심진~ / 무자 화두 드는 법 / 전제(全提) 단제(單提) 근제(勤提).
  4. 2015.06.17 §(세등03)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동산 숭장주가 행각을 떠나는 제자에게 하신 법어.(송담스님)
  5. 2015.01.12 §(112) ‘딴 생각[別念]’ 안됨 / 공부가 순일하게 된 때에 잘 다잡이 해야 / 참선은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야 / 새옹지마 / 밝아지면 어두운 것은 찰나에 없어진다.
  6. 2015.01.10 §(112) 법문을 옳게 듣는 길 /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 / ‘딴 생각[別念]’해서는 안됨 / 공부가 순일하게 된 때에 잘 다잡이 해야 / 칠통(漆桶) 타파(打破).
  7. 2014.03.09 §(세등68) (게송)개개면전명월백~ / 의심관(疑心觀) /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
  8. 2014.01.18 §(582) 선방에 나온 수행자라면 말을 많이 해서는 안 됩니다 / 입차문래(入此門來) 막존지해(莫存知解) / (게송) ‘종조난설인장단~’
  9. 2013.11.30 §(088) 자세 / 단전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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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등09)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몽산화상이 총상인에게 보이심) 법문.(송담스님)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 (세등09)

 

(1/3) 약 21분.

 

(2/3) 약 20분.

 

(3/3) 약 21분.

 

(1/3)----------------

 

법문(法門)이라고 허는 것이 입으로 설헐 것이 있고, 귀로 들을 것이 있는 법문은참법문이라고 수가 없어. 그래서 고인이 말씀허시기를 『설() 없이 법을 설해야 하고, 들은 바가 없이 들어야 법문은 옳게 들은 것이 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동안에 대중스님네들이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 자주자주 들으면서 정진을 애써서 오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발심(發心) 해서 열심히 정진을 하고 있기는 하지마는 냉정히 말해서 우리는 중근기(中根機), 하근기(下根機)이기 때문에 법문을 설사 설한 있이 설한 법문이 되었건, 설한 없이 설한 법문이 되었건, 자주 듣고 자주 채찍질을 가함으로서 우리의 마음과 신심을 일깨우고, 나태(懶怠) 빠지지 않도록 계속 채찍질을 가해 나가야 우리의 목적 달성을 단축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정진(精進) 하는데 우리의 마음가짐을 어떻게 써야 하며, 정진을 여법(如法) 나가면은 차츰 우리의 경계(境界) 어떻게 진취있게 나가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겠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열심히 공부를 가지고 좋은 경계가 닥쳐옴에도 불구하고 좋은 경계를 살려 나갈 모르고, 애써서 도달한 좋은 경계를 살리지 못하고서 거기에서 그릇 빗나가 버리는 애석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좋지 못한 경지가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옳은 알고 거기에 집착하는 그러헌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벌써 결제(結制)—어떻게 지냈는지 반살림을 지내고, 앞으로 해제도 20여일 밖에 남지를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 이러헌 말씀을 택해 왔습니다.

 

 

정진은 한마디로 말해서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공안에 의심(疑心) 있어야 한다.

아무리 잠을 자고, 일종(一種) 하고, 말을 하고,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않고 애를 쓴다고 해도 본참공안, 자기에게 주어진 자기의 본참화두에 의심이 없다고 하면은 정진은 옳은 정진이 아닙니다. 자기의 본참공안에 의심이 있어야 반드시 크게 깨달을 수가 있다.

 

우리는 불교의 교리 문제라든지 그밖에 천칠백 공안은 말할 것도 없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루에는 수천만 가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있어서 의심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의심을 허기로 하면은 보고 듣고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의심 아닌 것이 없어. 의심, 의심, 한량없는 의심을 똘똘 하나로 뭉쳐서 자기의 본참화두로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듣고 그러면서 정진을 하는 것도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의 본참화두에 간절(懇切)하고 돈독(敦篤) 의심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법문을 듣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러한 법문을 들으므로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의심이 간절히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법문을 듣는 것이다.

 

법문이 비단 녹음된 조실 스님 법문만이 법문이 아니고 오늘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있는 이것만이 법문이 아니라,

참으로 간절히 발심을 하고 신심을 일으킨 사람은 바람 부는 소리를 들어도 거기에서 자기의 본참공안을 들고, 일상생활 속에 보고 듣고 느끼고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건 또는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흔들어 놓는 일이건, 그러헌 일을 계기로 해서 나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올 있고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을 일으킨다면은 법문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아니한 , 이것이 우리 정진에 있어서 가장 병이다.

모든 인연세속에 대한 인연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대중생활 나가는데 있어서 누가 잘하고 못하고, 시시비비(是是非非) 일체 인연을 놔버려. 누가 잘하건 못허건 그것에 말려들어서는 벌써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잘하는 것을 봐도 나는 화두를 들고, 못허는 것을 봐도 화두를 들고, 누가 아픈 것을 봐도 나는 화두를 들고, 일체 인연을 놔버리고서 앉았거나 누웠거나 섰거나 걸어가거나, 하루 종일 다맛 자기 화두를 들고 들고, 생각[別念] 일어난 알면 생각 버릴려 하지 말고 바로 거기에서 일어난 생각으로 화두를 ! 들면 되는 것이다.

 

앉어서도 하고, 서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걸어 다니면서도 해야 하지마는 있으면은 앉어서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공부를 다져나가는 것이 가장 힘을 얻는 데에 효과적이다.

 

그러면 앉어서 하는 데에는 어떻게 하느냐? 지나치게 눈을 ! 부릅뜨고 억지로 힘을 써서도 아니 되는 것이고, 지나치게 몸뚱이를 억제하고 구속하고 무리하게 몸뚱이를 다루어도 되는 것이다.

공연히 헛심을 들여 가지고 눈을 부릅뜨고 지나치게 몸을 억누르고 구속을 가하면은 혈액이 혈액순환 하는 데에 이상이 생겨서 상기병(上氣病)이라든지 그밖에 혈기(血氣) 고르지 못한 병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에,

 

다맛 단정(端正) 앉을지언정 그리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뜨고 몸과 마음을 지나치게 억제를 한다든지 구속을 한다든지, 무리를 가해서 하지 말고, 단정하게만 허고서 일체 긴장과 억제를 풀어 버리고서 화두를 들되,

지금도 이렇게 여러 차례 말을 했지마는 호흡을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 자연스럽고 부담없이 깊이 들어마셨다가 조용히 내쉬면서 화두를 들되,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이뭣고~?’   ‘ 없는 생각()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 무엇인고?’ 무자(無字) 허는 이는어째서 () 했는고?’ ‘어째서 ()라고 했는고?’ 없는 의심.

 

그렇게 애써서 해가되, 혼침(昏沈) 가지고 꾸벅 꾸벅, 이렇게 혼침이 오면은 정신을 바짝 차려서 (한두 소리내어) 화두를 들고, 그렇게 해도 아무리 해도 날씨는 더웁고 그래 가지고 혼침이 오면은 살모시 이렇게 사람 방해되지 않도록 살모시 일어나서 밖에 가서 왔다갔다 5너무 오래 돌아다니면 못쓰니까, 5 왔다갔다 해서 정신을 차려 가지고 와서 정진을 하고.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가면은 자연히 모든 () 소멸(消滅) 되고. ‘마가 소멸된다 것은 혼침도 그것이 (), 산란심(散亂心) 그것도 () 그말이여. 밖에서 들어오는 (), 안에서 일어나는 (), 모든 것이 (), ()라고 수가 있는데.

 

성성적적하게 화두를 다져 나감으로써 마가 소멸이 되고, 마가 소멸이 되면은 눈이 떠억 안정이 된다 그말이여. 눈이 깜빡 깜빡 깜빡하는 것도 안정이 되고,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도 안정이 된다.

눈이 안정이 되면은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은 몸도 안정이 되어서, 조금도 지루한 줄도 모르고 어떻게 시간이 지나간 줄도 모른다.

 

그러니 ()라는 놈이 북적북적하고 그러면은 눈이 안정이 되는 것이고, 눈이 안정이 되면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은 몸뚱이도 안정이 되아서 괴롭고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말이여.

 

이렇게 해서 눈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고, 몸이 안정이 때에 이렇게 () 들어갔을 때에, 정에 들어간 고요한 것으로서 능사(能事) 삼아서는 안되아. ‘ 좋다. 이러헌 경지가 오래오래 계속 되었으면...’ 이러한 생각이 벌써 바른 생각이 아니다 그말이여.

그렇게 눈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고, 몸이 안정이 되고 해서 말로 없이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 그러한 경지에 들어갔을 때에 화두를 잊어서는 된다. 그럴 때에 화두를 깨끗하게 화두를 들어 나가야 한다 그말이여.

 

만약에 그러한 고요해진 경지에서 화두를 놓쳐 버리면은 그것이 (), 데에 잠기고, 적적한 데에 () 가지고서 아무리 그러한 경지로 오래오래 나간다고한들 깨닫지는 못하는 것이다.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 되는 것이다.

달마스님이 인도에서 오셔서 다맛 직지인심(直指人心),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도리만을 말씀을 하셨지, 이렇게 고요한 () 들어가지고 신통(神通) 나고 하는 그러한 것은 일체 말씀을 하시지 했다.

 

헌들(?) 그래 가지고 오래 지내면은 뭣이 알아지기도 하고 신통도 나고 틀림없이 그런 것은 그렇지마는 견성(見性) 하지 못하고 신통천안통, 천이통, 타심통, 신족통, 숙명통 이러헌 신통이 먼저 나는 사람은 그것은 외도(外道), 그것은 벌써 삿된 길에 떨어진 사람이라, 자기도 생사해탈을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남까지 그르치고 외도 마구니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한목 고요하고 조촐해질 화두를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를 놓지 아니허되,

있으면 앉어서 공부를 다져 나가는 것이 아까 내가 말한 바와 같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앉어서 하루에 사분정진(四分精進) 하고 그밖에 방선(放禪) 시간이라도 시간이 있는 대로 항시 앉어서 단정히 앉어서 공부를 다져 나가고, 그러다 잠이 오면 일어나서 바람 쐬고 들어와서 하고.

그렇다고 해서 혼침에 떨어져 가지고도 계속 일어나지도 않고 앉어서 조는 것으로서 정진을 삼고, 앉아 있는 것에 집착을 가지고 그러헌 정진도 옳은 정진이 아니다.(처음~2051)

 

 

 

 

 

(2/3)----------------

 

이렇게 공부를 나가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도저히 공부가 잘된 같지 아니하고, 계속 몸도 괴롭고 마음도 답답하고 이래서그런데 그럴 때에 공부가 안되는 알고 대단히 번민을 하고 몸부림을 치고 그러는데,

깨끗이 깨끗이 잘되다가 ! 변해 가지고 화두가 들리지 아니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정신이 맑지를 못하고 몸도 뒤틀리고 지루하고 그런데, 그럴 때가 한고비 올라서기 위한 좋은 중요한 고비인데,

좋은 고비를 어떻게 단속해야 하느냐 하는 것을 모르고서 공부가 못된 알고 몸부림을 치고 번민을 하는데, 고비가 한고비 올라서기 위한 막이라 그말이여.

 

그래서 그럴 때에 아까 말한 대로 살며시 일어나서 왔다갔다 해서 맑은 공기도 쐬고 그렇게 포행(布行) 거니는 가운데에 화두를 단속해 나가야 고비를 참으로 올바르게 넘어가는 것이 되지,

공연히 번민하고 화두도 놓쳐 버리고 몸부림치고 공부를 그럭저럭 번민으로써 넘어간다면은 애써 공부해 가지고 참으로 좋은 고비 넘어갈 데에 가서 뒤로 물러서 버린 것이 된다 그말이여.

 

아주 기가 막히게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에우리는 그러한 고비를 수없이 차례를 그러헌 고비를 넘기고 나면은 인자 수월하게,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공부가 되아가.

그렇게 얼마 동안 나가다가 ! 변해 가지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이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때에 선용기심(善用其心), 마음을 가지고 지혜스럽게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서 고비를 넘기고.

 

그래서 공부하는 사람은 성성적적하게 순일하게 된다고 해서 기쁜 마음 내서도 아니 되는 것이고, 답답허고 지루하고 몸과 마음이 덤덤하고 답답하고 멍멍하고 이러헌 고비가 오드라도 번뇌심(煩惱心) 내지 말고 그래야 한다 그말이여. 그것이 공부해 나가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마음 다져가는 방법이다.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는 성성(惺惺)하면서 적적(寂寂)해야 . 성성하기만 하고 적적하지를 못하고, 적적하기만 하고 성성하지 못하면 공부는 옳은 공부가 아니여.

어쨌든지 성성한 가운데에 공부를 나가야 하는데, 성성하게 화두를 잡드리 나가면은 몸과 마음이 고요해 수밖에는 없고, 고요해지면은 그것이 () 드는 것이다.

 

그런데 정에 가서 가지가 있는데삿된 ()’바른 ()’ 있다 그말이여.

삿된 () 화두를 놓쳐 버리면은 그것이 삿된 정이여. 고요하고, 일체 마음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 망상이 끊어진 가운데에도 화두가 성성하게 들려 나가야 그것이 바른 ()이지, 화두만 놓쳤다 하면은 그것은 벌써 삿된 정에 들어가는 것이니 그것을 명심을 .

 

그렇게 성성하고 적적한 가운데에 일체 혼침과 산란심이 끊어져서 그렇게 고요하고 정한 데에 들어갔다가 일어설 때에 몸과 마음이 경청(輕淸)해서, 가볍고 맑아서 일체처에 화두를 들려고 하지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일체처에 공부를 애써서 단속할라고 하지 해도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움직이는 가운데에나, 고요한 가운데에나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

 

그때에 함부로 몸을 거동을 한다든지, 함부로 큰소리로 웃고 쓸데없는 잡담을 한다든지, 이렇게 하면은 지지리 애써서 들어갔던 좋은 경지가 흩어지고 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헌 경지에서 아주 우리의 행동과 마음을 자세히 지혜스럽고 조심스럽게 단속을 나가야 .

 

그래서 언제나 어느 때나 고요하고 조촐한고요 ()’, ‘조촐헐 ()’, 정정(靜淨) 글자를 여의어서는 되는 것이다. 고요한 것이 고요할수록 고요해지면은 결국은 깨닫게 되는 것이고, 조촐한 것이 지극(至極) 경지에 도달하면은 (), 빛이 통달(通達)하게 된다.

 

기운(氣韻) 엄숙해지고 맑아지면은 움직이거나 고요하거나, 움직이거나 가만있거나 동정경계(動靜境界) 우리의 움직임일체 행동, 생활 경계가 마치 뭣과 같으냐 하면은 가을 하늘과 같아서, 새파란 가을 하늘에 구름 없는 상쾌하고 깨끗하고 새파란 맑은 가을 하늘과 같은 그러헌 경지가 오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것이 공부해 들어가는데 있어서 첫째 과정이여. 그러헌 경지에 도달했을 때에 경지를 타서 공부를 단속해 나가야 한다.

 

가을 들에 가면은 농사도 짓고 맑은 물이 출출출출 출출출, 깨끗한 가을 들에 나가면은 가을 들물이 흘러가는데 그러한 가을 들물과 같고, 오래된 사당(祠堂) 향로(香爐)처럼 그러한 경지, 그래서 적적하고 성성해서 우리의 마음길이 끊어진다 그말이여.

일체 번뇌 망상이 저절로 끊어져 버리고, 일체 혼침도 거기에서는 물러가 버리고, 심지어 우리의 육신이... (녹음 끊김)(인간에 있는 것도 모르고 다못 화두만 면면히) 끊어지지 아니하고 화두 하나만이 성성적적하게 들려 있다 그말이여.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은 일체 우리의 중생의 티끌이 쉬어 없어지고 (), 빛이 발하게 된다. 이것이 둘째 과정이다.

 

만약에 이러한 경지에 도달해 가지고 지각심(知覺心) 내면은—‘빨리 깨달았으면...’ 이러한 깨닫기를 기다리는, 생각이라도 그러헌 생각을 일으키면은, 알기를 기대한다든지, 깨닫기를 기대한다든지 이렇게 되면은 순일(純一) () 끊어버린 것이 되어서 ()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화두를 들라고 하지 해도 저절로 들어지고, 이러헌 순일무잡한 경지에 도달했을 때에 지각심을 일으키는깨닫기를 기다린다든지, 뭣이 알아지기를 기다린다든지, 무슨 공안을 가지고 이리저리 따진다든지, 그러헌 지각심만 내지 아니하고,

오직 동정(動靜) 일여(一如)하고, 오매(寤寐) 성성(惺惺)하게 화두가 현전(現前)해서 마치 깨끗한 물에 달빛이 비치면은 아무리 물결이 일어나도 활발발(活潑潑) 달빛이 변함이 없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아무리 흔들어도 우리의 순일한 경계가 흩어지지 아니해.

 

외부로부터 어떠헌 충격을 받드라도 순일무잡한 경계가 흩어지지 아니하고, 어떤 보고 듣고 느끼고 간에 경지가 조금도 지장 없게 되어서, 안으로도 적적해서 흔들림이 없고, 밖으로 아무리 흔들어도 움직이지 아니한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면 이것이 셋째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결국은 우리의 의심이, 의심덩어리가 ! 터지면서 우리는 확철대오(廓徹大悟) 날이 머지않다 그말이여.

 

셋째 경지에 도달했을 때에 자기 자신도 공부 지어 나가는데 있어서 지혜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공부를 나가야 하지마는 주변에 있는 대중들도 역시 사람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 벌써 밖으로 보면은 공부가 순일하게 잘되어 가면은 밖으로도 보면은 아무라도 보면은 아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런 사람을 자꾸 찝쩍거려서 공부해 나가는데 방해가 되도록 하면은 죄가 되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서로서로 서로서로 보호를 하고 아끼고 조심하면서 공부를 닦아 나가야 된다.

 

그러헌 순일무잡한 경지에 도달해서 아무리 아무리 생각을 일으킬라 해도 일으켜지지 아니하고, 밖으로 어떤 충격을 가해도 동요함이 없이, 이렇게 저절로 그렇게 되아 가는 , 그것이 셋째 과정인데, 셋째 과정에 도달하게 되면은 일주일, 오래가도 일주일 가서 결국은 의단(疑團) ()하면서 확철대오 한다.

과거에 고봉(高峰) 스님도 그러헌 과정을 겪으셨고 그밖에 많은 선지식(善知識)들이 그러헌 경지를 거쳐서 깨달으신 분이 많은 것이다.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은 마치 계란이, 닭이 알을 21 동안을 품고 있게 되면은 안에서 병아리가 차츰차츰차츰 거의 병아리가 되었을 때에 기일이 ! 차면은 밖에서 애미가 좃고, 안에서 병아리가 나오기 위해서 좃고 것이동시에 안에서 좃고, 밖에서 좃고 해서 ! 터지게 되면서 병아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맷돌을 무거운 맷돌을 아래짝과 위짝과 맞추는데 있어서 좀해 맞는다 그말이여. 이리 쪼금 맞추고 저리 맞추고 이리저리 이리저리 허다가 찰크닥! 우아래짝이 맞는 거와 같이, 이렇게 해서 자기를 깨닫게 되고 불조(佛祖) 득인증처(得人憎處) 잡아 ()하게 된다.

 

불조(佛祖) 사람 미워한 곳이부처님과 조사는 진즉 내가 나를 깨닫는 일대사(一大事) 해결을 짓고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신 은인이지마는 불조의 허물이 하나가 있다. 허물이 무엇인가를 내가 나를 깨달음으로써 불조의 허물을 우리는 똑바로 깨닫게 된다 그말이여.

내가 나의 본참공안(本參公案) 여지없이 타파(打破)하고 불조의 허물을 여지없이 꿰뚫어 보게 때에 우리는 반드시 선지식을 그때에 친견을 해서 단련을 받고, 깨닫고 뒤에 우리 공부 지어가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친견을 못하면은 지지리 애써서 좋은 경지에 들어갔다가 거기에서 애석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기 때문에마치 제호() 인도에서 가장 영양이 많고 맛있는 음식인데 그런 우유로써 만든 것인데, 제호를 관리를 못함으로써 그것이 변질이 되면은 사람을 해롭게 하는 독약으로 변할 수가 있다 그말이여.

그러한 좋은 맛있는 귀중한 제호와 같은 음식을 얻어 가지고 관리를 잘못해 가지고 독약을 만든다고 해서는 기가 막히게 애석한 일이다.

 

그렇게 애를 가지고 깨달은 경지에 도달을 했다 허드라도 선지식(善知識) 만나서 오후(悟後) 공부 지어가는 구체적인 지도를 받지 못하게 되면은 외도 마구니가 되어 수도 있고, 공부가 지지리 고비에 올라서 가지고 망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선지식을 만나서 지도를 받아야 한다.(2052~4004)

 

 

 

 

 

(3/3)----------------

 

우리가 공부를 해서 어떤 그런 좋은 경지에 올라섰다 하드라도 그것을 ()함을 삼지를 말어야 한다.

 

깨달은 뒤에 만약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은 () 한두 가지가 아니다.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만나서 철저한 지도를 받아야 한다.

반드시 불조기연(佛祖機緣), 일체 공안에 대한 탁마(琢磨) 해야 하고, 불조의 제자를 지도하는 가운데에 문답이라든지, 역대조사(歷代祖師) 출가해서 도를 닦아서 교화하는 모든 기연상(機緣上) 조금이라도 걸림이 있으면은 이것은 깨달은 것이 옅은 것이여. 그래서 현묘(玄妙)함을 다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현묘함을 다하지 못하고서 일기지사(一期之事)—정진한 사람은 열심히 공부하면 반드시 일기지사가 있는데, 그러한 일기지사로써 만족함을 삼고 현묘함을 다하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원만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남까지 해롭게 맨들고 결국은 불법(佛法)까지 망치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깨달은 뒤에 반드시 선지식을 만나서 탁마를 하고 정식으로 인가(印可) 받아서 일체 불조기연상(佛祖機緣上) 맥힘이 없도록 이렇게 다음에 터억 자기의 자취를 감추고 철저히 오후(悟後) 보림(保任) 다음에 유교, 불교, 도교의 그러한 심지어 제자백가지설(諸子百家之說)까지라도 한바탕 거쳐서 보고 그래 가지고 다생습기(多生習氣) 녹여야 한다.

 

그래 가지고 원명무애(圓明無碍)해서그저 밝아서 조금도 맥힘이 없어야사, 높이 그리고 멀리 날을 수가 있어서, 빛이 멀고 그리고 넓게 비추어서 자기 자신도 정말 확철대오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 뿐만 아니라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데에 맥힘이 없어야 비로소 부처님과 역대조사를 욕되게 허지 아니하고 은혜를 갚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를 여법(如法)하게공부를 처음과 중간과 끝을 이렇게 여법하게 단속해 나가지 아니하고 조금 얻은 것을 가지고 족함을 삼고 여법하게 단속해 나가지 아니한다 하면은 반드시 다시 옛날 깨닫기 이전의 그러한 생활로 다시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말할 때에는 깨달은 같지마는 경계를 당하면은 도로 () 버려. 말이 법도가 없이 미친 사람처럼 취한 사람처럼 말이 함부로 나와 가지고 입만 벌렸다 하면은 큰소리치고, 입만 벌렸다 하면은 입에 담을 상스러운 소리로 세월을 보내고,

어찌 보면 미친 사람 같고, 어찌 보면 도인 같고, 어찌 보면 취한 사람 같고, 이렇게 해서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사람을 속이고.

 

불법에는 공공연하게 누구에게라도 말을 있는 면이 있고, 함부로 까발쳐서 말을 해서는 되고 은밀히 때와 장소를 가려서 사람의 근기(根機) 따라서 말이 있고, 주어서는 말이 있는 것이여.

함부로 말해 주어서는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러헌 사람에게는 말해 주어서는 절대로 그러헌 말씀도 있는 것인데, 그것을 가리지를 못하고 함부로 말을 가지고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신심이 떨어지게 맨든다든지, 오히려 의심을쓸데없는, 망설이는, 주저하는, 갈팡질팡하는 의심을, 회의심(懷疑心) 일으키게 하는 그러헌 경우도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이 팔만사천 법문을 말하셨지마는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누구에게나 말해 주어도 이익이 되냐 하면 그런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반드시 근기와 사람의 현재 도달해 있는 경지에 따라서 말이 있고, 주어서는 말이 있는데, 그것을 가리지를 못한다 그말이여.

그것이 깨달은 뒤에 바른 선지식의 철저하고 직접적인 지도를 받지 못하고, 오후(悟後) 깨달은 뒤에 정진를 올바르게 하지 못하고서 잘못 단속을 함으로써 일어나는 폐단이다.

 

철저히 깨닫기 전에 옳은 선지식의 철저한 지도하에 공부를 하고, 깨달은 뒤에도 반드시 안목을 갖춘 선지식의 탁마와 오후(悟後) 지도를 받아 가지고 여법하게 정진을 사람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 가지고 저도 망하고 남도 망하고 불법을 망해. 모르는 사람이 보면아따, 도인이다. 거리낌이 없고 기가 맥힌 도인이라고 잘못 좋게 판단한 사람이 있지마는,

불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높고, 얼마나 깊고, 얼마나 원만한 것이기에 그렇게 방편을 선방편(善方便) 줄을 모르고, () () 가리지를 못하고, 중생의 근기를 살피지를 못하고서 함부로 인과(因果) 갖다가 부정해 버려.

말을 나투어서 말이 있고, 은밀히 해야 말이 있는 것인데 그런 것을 가리지 못해 가지고는 죽고, 죽이고, 불법 망하고, 이것이 얼마나 해가 되는 것이냐 그말이여.

 

, 공부라는 것이 깨닫기 전에도 기가 맥히게 중요한 것이지마는 중간에 공부가 잘되어 때에도 참으로 지혜스럽고 자상하고 조심스럽게 단속을 나가야 하고, 깨달은 뒤에도 참으로 바른 선지식의 알뜰하고 직접적이고 간절한 지도를 받어야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공부인은 , 그것에 대해서 깊이 명심을 해야 .

 

그리고 공부는 () 없는 것이여. 바다와 같아서 깊이 들어갈수록 한량이 없이 드는(?) 것이여.

부처님하면은 부처님은 공부 하고 인자 끝났으니까 아무 것도 하고, 그것으로써 마지막 도달할 데에 도달했으니까 더이상 곳이 없냐 하면 그게 아니라, 부처님도 한량없이 공부를 나가시는 것이여. 끝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도 끝이 없는 것에 공부라 하는 것이여. 부처님이라고 해서 끝났으니까 해도 괜찮은 것이 아니여.

 

하물며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서 확철대오 했다고 해서 그것이 끝이 아니어. 깨달은 뒤에도 한이 없는 것이 우리가 나아갈 공부라, 세계에 육도법계에 중생도 없을 때까지 나도 공부하고 중생 교화하고, 중생 교화 하면서 공부하고, 공부가 자리(自利) 이타(利他) 둘이 아니고, 동시에 중생도 없을 때까지 우리의 공부는 끝이 없는 것이여.

 

달마스님이 말씀하시기를부처님의 마음 깨닫는 도리가 우리가 우리 마음을 깨달으면 부처요, 깨닫지 못하면 중생인데, 깨달은 부처님이나, 마음이나, 우리 깨닫지 못한 중생이 조끔도 차이가 없다

부처님하면 우리와는 동떨어진 전혀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는 그러헌 것이 아니라 부처님과 마음과 우리 중생이 조끔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자성, 본분(本分) 도리(道理) 입각(立脚)해서 보면은 하나도 차별이 없는 것이여. 부처나, 마음이나, 우리 중생이나,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본분 도리에 입각해서는 깨달을 것도 없고 () 것도 없고, () 없고 () 없고, 열반도 없고 조금도 차별이 없는 거여.

우리가 참선(參禪) 하는 것은 차등(差等) 없는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공부하면 반드시 확철대오 있는 능력과 자격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이여. 우리는 그렇게 믿고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금년 겨울에 이렇게 좋은 스님네와 좋은 보살님네들이 모여서 이렇게 처음부터서 열심히 열심히 정진을 허더니마는 중간쯤에 와서 더욱 신심이 돈발(頓發)하고 여법히 정진을 하고 해제가 이렇게 가까워 올수록에 더욱 공부를 잘하고 있다고 원장 스님이나 입승 스님을 통해서 말씀을 듣고, 내가 이렇게 봐도 능히 짐작을 수가 있습니다.

 

흔히 벌써 ()살림 지내면은 공부할 마음이 풀어져 가지고 공부가 되지를 않고, 하루하루가 빨리 해제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지루하고 시간이 가서 애를 먹고 흔히 그러헌 것인데,

금년에 세등선원에 모인 대중은 전혀 그러헌 기색(氣色) 보이지를 않고 날짜 가는 것이 오히려 애닯고 너무 어떻게 시간 날짜가 지내간지 모르게 벌써 이렇게 지내가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것은 그만큼 신심(信心) 분심(憤心)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 간절해서 공부가 여법허게 잘되어간 증거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앞으로 이십 여일 남았는데 하루하루를 더욱 지내간 동안보다도 훨씬 간절하고 알뜰하게 단속을 해서 공부를 잘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진로해탈(塵勞解脫)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라

나무~아미타불~

 

생사해탈(生死解脫) 보통 일이 아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보통 마음으로 보통 수행해 가지고 성취할 있는 그러한 보통 일이 아니다, 쉬운 일이 아니다.

화두(話頭) 정말 알뜰히 간절히 다잽이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정말죽을 ()’자를 이마빡에다 붙이고 정말 철저히 단속을 해서 공부를 지어나가야만 것이다.

 

겨울에 되게 강추위를 해야 매화 몽우리가 열려서 향취가 우리의 코에 들어올 수가 있다. 강추위를 허지 아니하고 그러면은 매화꽃이 피기는 펴도 향취가 없는 것이여. 되게 강추위를 가운데에 모진 추위를 이겨내고 그런 가운데에 피어야 매화꽃이 배나 향기로운 것이다.

우리가 되게, 간절히 그리고 골똘히 애써서 정진한 뒤끝이라야 확철대오 수가 있는 것이지, 그렁저렁 그저 시시비비와 한화잡담(閑話雜談)으로 그렁저렁 지내는 가운데에 어찌 하늘과 땅을 놀래게 하고, 하늘과 땅을 울리게 있는 그러헌 확철대오가 어찌 얻어질 수가 있겠느냐?

 

금생에 만나기 어려운 사람 받아 가지고 금생에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해탈 헐랴면은 그만큼 철저하게 간절하게 발심을 해서 철두철미하게 하루하루를 단속해 나간 데에서 목적 달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 말씀이여.(4005~6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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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나태(懶怠 게으를 /게으를 ) ; 행동, 성격 따위가 느리고 게으름.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그릇 ; 옳지 않고 잘못되게.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어째서 () 했는고?’ 또는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끼만 먹는 .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돈독하다(敦篤-- 도타울 /도타울 ) ; (인정이나 마음이)매우 도탑고 믿음성이 있고 진실하다. *도탑다 ; (정이나 사귐이)깊고 많다.

* 생각 ; 별념(別念).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p164-166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있으면 고인이 말한 「잡독(雜毒)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생각[別念]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외에는, 불법(佛法) 온갖 좋은 일이라도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 취하거나[], 버리거나[], 집착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모두 생각[別念]이니라.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헛심아무런 보람이나 이득이 없이 헛되이 쓰는 .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혈기(血氣) ; ①피의 기운이라는 뜻으로, 힘을 쓰고 활동하게 하는 원기(元氣) 이르는 . ②적극적으로 무슨 일을 하려는 마음속의 뜨거운 기운. ③혈액과 기식(氣息 숨을 쉬는 기운) 아울러 이르는 . 또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

*단정히(端正- 바를 /바를 ) ; 옷차림새나 몸가짐 따위가 흐트러짐이 없이 얌전하고 바르게.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복식 호흡(腹式呼吸) ; 숨을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해서 가로막의 신축에 의하여 하는 호흡. 단전호흡(丹田呼吸).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살모시 ; 살며시(남의 눈에 띄지 않게 가만히).

*() ; 마구니. []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 하고, 줄여서 ()라고만 한다。장애자(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魔軍)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 보고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것이다。옛말에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 하시니라.

*소멸(消滅)사라져 없어짐.

*산란(散亂 흩을 , 어지러울 ) ; 혼침(昏沈)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 마음이 어지러운 .

*() : ①계()•()•() 3(三學) 하나. []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능사(能事 능할·잘할 / ) ; ①잘하는 . ②쉽게 잘해 있는 .

*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 ; 부처는 마음이니, 사람의 마음[人心] 곧바로[] 가리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신통(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없는 것을 헤아림을 ()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이라 한다.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①신족통(神足通)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있는 . ②천안통(天眼通)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 ③천이통(天耳通)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없이 무슨 소리나 듣는 . ④타심통(他心通)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생각하는 바를 아는 . ⑤숙명통(宿命通)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아는 . ⑥누진통(漏盡通)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 닦는 외도(外道)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 읽어도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여기서는 누진통을 제외한 오통을 가리킨다.

*외도(外道 바깥 / ) ; ①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 가르침. 또는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조촐하다 ; ①아담하고 깨끗하다[]. ②행동, 행실 따위가 깔끔하고 얌전하다. ③외모나 모습 따위가 말쑥하고 맵시가 있다.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새벽, 오전, 오후, 저녁)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2/3)

 

*번민(煩悶 번거로울·괴로워할·어지러울 /번민할·마음이 답답할·걱정할 ) ; 마음이 답답하여 괴로워함.

*한고비 ; 어떤 일의 진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어려운 단계나 국면.

* ; ‘울타리 사투리.

*포행(布行) ; 참선(參禪)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

*수월하다 ; 까다롭거나 어렵지 않아 하기가 쉽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지지리 ; ‘기껏(정도나 힘이 미치는 데까지)’ 사투리.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지극하다(至極-- 이를·매우·궁극·극진히 ·깊을 /·다할·막다른 지경·매우 ) ; (마음이나 정성이)더없이 극진(極盡)하다(매우 정성스럽다).

*사당(祠堂) ; 조상의 신주(神主) 모셔 놓은 . 또는 신주를 모셔 놓기 위해 조그맣게 집처럼 만들어 .

*향로(香爐 /화로 ) ; 향을 피우는 쓰는 작은 화로.

*지각심(知覺心) : ①바로 경계로구나 알았다 깨달았다 하는, 그런 마음。 ②빨리 깨달으려는 마음。누가 깨닫게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오매(寤寐 잠이 /잠잘 ) ; 자나깨나 언제나.

*성성(惺惺) ; 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활발발(活潑潑) : 고기가 기운 좋게 위로 뛰노는 모습.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의단(疑團) ()하다 ; 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의 덩어리[疑團]’ 깨지다.

[참고] 송담스님 법문참선법 A’ 에서.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고봉(高峰) 스님 ; ‘고봉 스님 자신의 수행담법문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애미 ; ‘어미 사투리. *어미 ; 어머니 낯춤말. ②새끼를 낳은 암컷의 동물.

*좃다 ; ‘쪼다(뽀족한 것으로 찍다)’ 사투리.

*좀해 ; 좀처럼(여간하여서는).

*우아래 ; 위아래(위쪽과 아래쪽).

*불조득인증처(佛祖得人憎處) ; 부처와 조사의 사람에게 미움받은 . 불조의 패궐처(敗闕處)라고도 하니, 부처와 조사의 허물된 .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3/3)

 

*불조기연(佛祖機緣) : 차별기연(差別機緣) ①중생이 발심하여 구경의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모든 보살이 근기(根機) 단계에 따라 가지가지 방편을 써서 중생에게 작용하는 것。 ②선종에서는 종사가 학자의 근기와 인연에 따라 베푸는 수단으로, 고금(古今) 불조의 언교(言敎)•기연(機緣)•공안 등을 말함.

*탁마(琢磨 / )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②옥이나 따위를 쪼고 .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기연(機緣 기틀·기회·작용· /인연·이유·연줄 ) ; ①시기인연(時機因緣) 준말. 어떠한 기회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동기. ②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부처님 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을 만한 인연, 조건이 되는 . ③가르침을 주고받게 스승과 제자의 인연.

*현묘하다(玄妙-- 검을·깊을·고요할·신묘할 /묘할·신묘할·젊을 ) ; (이치나 기예의 경지가)헤아릴 없이 미묘하다.

*일기지사(一期之事) ; ①한 때의 . 일시적인 . ②당장의 .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오후보림(悟後保任) ;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 습기(習氣) 제하고 ()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공부. 장양성태(長養聖胎).

*제자백가(諸子百家) ; 중국 춘추시대 말기부터 전국시대에 걸친 여러 학자 여러 학파를 통틀어 이르는 . 시대의 사상가들을 제자(諸子) 하며, 학파들을 백가(百家) 부른다. 음양가(陰陽家) 추연, 유가(儒家) 공자와 맹자 순자, 묵가(墨家) 묵자, 법가(法家) 한비자, 도가(道家) 노자와 장자, 병가(兵家) 손자 등이 있다.

*습기(習氣) ; 과거의 인식행위경험학습 등이 아뢰야식(阿賴耶識)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 같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없는 미혹함)하는 .

*공공연하다(公公然--) ; (사실이)거리낌이나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회의심(懷疑心) ; 어떤 일이 올바른지 확실한지 여부를 의심하는 마음.

*선방편(善方便) ; 선교방편(善巧方便). 방편에 정교한 . 뛰어난 수단. 부처님이 () 설함에, 교묘하게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 여러가지 방법·수단을 사용하는 .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과보가 있다는 도리.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신분· )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꿈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대해탈(大解脫)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첫구절에서 말한  일원상(一圓相)’ 이것을 나타냄이다.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입각(立脚 /다리 ) ; 어떤 사실이나 주장 따위을 근거로 삼아 거기에 [] 디딤[]( 입장에 )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차등(差等 어긋날·다를 /등급·같을 ) ; 고르거나 가지런하지 않고 차별이 있음.

*돈발(頓發 갑자기 /일어날·나타날·밝힐 )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 直頓의 , 곧바로.

* ; [주로없다’, ‘않다’, ‘못하다따위의 부정어와 함께 쓰여]아무리 애를 봐도 도무지.

*기색(氣色 기운 /모양··얼굴 ) ; ①마음의 작용으로 인하여 얼굴빛[]으로 드러나는 기운[]). 얼굴빛. ②어떠한 행동이나 현상 따위가 일어나는 것을 짐작할 있게 하여 주는 눈치나 낌새.

*애닯다 ; 애달프다. *애달프다 : (마음이나 사연 따위가) (근심에 싸여 초조한 마음) 닳도록 쓰리고 아프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게송) 진로해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근심할 )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승두(繩頭) : ()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다잽이하다 ; 다잡이하다.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죄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몽우리 ;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아직 피지는 않고 망울만 맺혀 있는 ).

*한화잡담(閑話雜談) ; 심심풀이로 한가롭게 얘기를 나누거나[閑話], 쓸데없이 지껄이는 [雜談].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5. 11. 7. 11:01

§(세등59) 용맹정진이란? / 상(相)만 내는 정진이 아니라 속으로 알짜배기 정진을 해야 / (게송)강호춘진낙화풍~ / 부처님·나라·부모·스승·신도 은혜를 갚자.

 

전강 조실 스님께서나  정혜사 만공 큰스님께서도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헐라면  시간씩을  자라 이런 말씀도 하셨다고 그럽니다.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은 진짜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야 그것이  정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형식적으로 시간만 많이  가지고 형식적으로 정진을 많이 헙네하고 () 내고, 속으로 알짜배기 정진이  된다면은 무슨 도업을 깨달을 수가 있을 거여? 성취할 수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어쨌든지  살림이 튼튼하도록 알뜰하고 짬진 정진을 해서 그러한 훌륭한 수행자가 되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 빈부귀천과 부귀영화와 명예와 권리, 지식의 유무(有無), 인물이 잘나고 못나고,  그게   송이 꽃에 지내지 못하고, 한덩어리의 구름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애착과 분별을  쉬어 버리시고 이만큼 건강했을 때에 어쨌든지 정진  정진을 해서  몸뚱이로 견성성불을 해서 부처님나라부모스승의 은혜를 갚고,   절을 피땀 흘려서 지어 놓으신 주지스님의 은혜를 갚고,  우리의 먹고 입을 것을  마련해  모든 신도의 은혜를 갚도록 합시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59)—병인년 하안거 결제 법어(86.04.17) (세등59)

 

(1) 약 18분.

(2) 약 5분.

 

(1)------------------

 

 도량에 들어오면은 첫째 아상(我相)을 무너뜨려 버리고,  주장을 버려 버리고,  선원의 규칙대로 순종을 하고 적응을 하도록 그렇게 한다면은   동안 장애 없이 공부할 수가 있어.

아무 장애 없이   동안을 정말 온전히 알차게 짬지게   동안을 정진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입선(入禪) 시간만 죽비()를 치고 입선하면은 그때만  앉아서 정진을 하다가, 방선(放禪) 죽비만 치면 치기가 무섭게 벌써 입을 벌리고 잡담을 하고 그렇게 지낸다면 미륵하생(彌勒下生), 56 7천만년 뒤에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선방에서 지낸들 그건 깨달을 기약이 없는 것이여.

 

편의상 대중이 살다보니까 그러한 규칙적인 시간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죽비를 쳐서 입선도 하고 방선도 하고 거기에 따라서 공양(供養)도 하고, 모다 운력(運力)도 하고 그런 것이지,

공부 자체는 죽비와도 상관이 없는 것이고,  앉았거나 섰거나 누웠거나 일을 하거나 빨래를 허거나 밥을 먹거나 똥을 누거나 전혀 그것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방선을  때도 화두(話頭)가 성성적적(惺惺寂寂)해야 하고, 밥을 먹을 때에도 화두가 성성해야 하고, 똥을  때도 화두가 순일(純一)해야 하고,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때에도 바로 그때에도 화두가 성성해야 하고, 목욕을 하면서도 성성해야하고,

일체처 일체시가 그저 입선할 때나 똑같이 화두를 거각(擧却)하고 단속을  나가야 .

 

그래서 겉으로 보면은 모다 대중들이 무슨 감정이 있는 사람처럼 말도 아니하고,  화두가 현전(現前) 때에 보면은 밖에서 봐도 환히  알거든. 경건하고 엄숙한 눈매가 그냥 고대로 있단 말이여. 


그렇게 야무지게 단속을 한다면 9 10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일어났다 하면은 하루 종일이 그냥 그대로,

구태여 밤에 10, 11, 12시까지 잠을 안 자고 앉아서 그렇게 몸부림을 치지  해도 정말    시간 5시간이면 5시간,   시간  자 주고 그리고서   때는 성성하게 정진을  나갈 수가 있어. 그렇게 해야 정말 알찬 공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 밤에 잠을 안 자고 설쳐 놓으면은 잠을 안 자고 애쓰는  뜻은 내가 충분히 인증을 하고 대단히  고맙고 기특하지만,  잠을 안 자 놓으면  이튿날 낮에 정신이 흐리터분해 가지고 밤낮 꾸벅꾸벅 잠을 자는 것인지, 참선을 하는 것인지  수가 없거든.

입선만  놓으면 벌써 그냥 5분도 못되어서 그냥  지르르르 흘리면서 꼬부려 가지고 꾸벅꾸벅... 그렇게  가지고는 정진(精進)이라  수가 없어.

 

그래서  시간, 최소한도 5시간은  자 주고, 그래야  이튿날 깨끗한 정신으로 정진을  수가 있고,  건강도 좋다 그말이여.

잠을 설쳐 놓고 밤이나 낮이나 그냥 그렇게 해놓으면은 건강도  좋고  정진도 정진답지를 못혀.

 

한번  허리를  펴고 정진을 했다 하면은 성성하게 뽑아 나가야지, 노상 끄벅끄벅 벌써 혼침(昏沈)에 빠졌다 하면은 화두가 성성허들 못하는 법이고, 화두가 성성하지 못해 가지고 어찌 그것을 정진이라고 할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께서나  정혜사 만공 큰스님께서도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헐라면  시간씩을  자라 이런 말씀도 하셨다고 그럽니다.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은 진짜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야 그것이  정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그러니 어쨌든지    동안 입선 방선 시간을 어떻게 짰는가 모르겠는데,

접때 들으니까 전국 선방을 입선 방선 시간을 똑같이  정(定)하자 것을  입승 회의에서 결의를 했단 말을 들었는데,

‘전국 선방 규칙을 똑같이 입선 시간을 정하자 뜻을 내가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나, 대단히 좋지 못한 것을 정했다고 생각을 나는 속으로 하고 있습니다.

 

선방마다 법도(法度)가 다른 것이 아까 무방(無妨)하다고 했는데, 입선 시간도 한번 앉았으면  시간씩 하자,  시간씩 하기로 정한 선방도 있고,   시간씩 하기로 정한 선방도 있고,

 아침에 일어나면은 저녁에  때까지 계속 앉아서 정진하자 이런 선방도  좋고,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않고 계속   동안을 앉아서 정진을 하자 이렇게  정한 선방도 있을 수가 있는 것이지,

 

‘세 시간이나  시간을 전국 선방이 똑같이 하기로 결의를 하자 것은  좋은 규칙을 정한  같은데, 사실은 대단히 좋지 못한 법을 정한 것이다 그말이여.

 

사람의 근기(根機)에 따라서  그것이 적절히 맞아야 그것이 좋은 것이지, 근기를 무시하고  여러 가지 여건을 무시하고서 똑같이 정하자고 하는 것은 그것은 정법(正法)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법(邪法)인 것입니다. 지혜로운 법이 아니고 그것은 어리석은 법입니다. 

 

조달(調達)이가 10생을 부처님을 따라 다니면서 갖은 방법으로 부처님을 해꼬자 했는데, 부처님은  조달이의 그러헌 해꼬자 하는 데에 조금도 끄달리지 아니하시고, 더욱 지혜롭게 수행을 하셔 가지고 성불을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삼천  전에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탄생하실 때에 조달이도 부처님 사촌으로 왕궁에 태어났습니다. 부처님이 출가하시자 조달이도 출가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누구 못지않게 용맹정진을 했습니다. 계율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래 가지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만큼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부처님으로부터서 승단의 통솔권을 자기가 인수를 받을랴는 야심을 가졌습니다.

 

부처님한테 “부처님, 인자 연세도 많으시고 그러니까  통솔권을 저한테 넘겨주십시오” 하니까 부처님이 넘겨주지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다른 곳에다가 자기 회상(會上) 하나 꾸몄습니다.

꾸며 가지고 부처님 회상으로  가지고서그때 목련존자  사리불존자와 같은 수제자들이 어디 다른 데로 포교를 하러 가시고 없을 때에  가지고서 대중들에게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계율이 물러서 늙은 사람이나 병든 사람은 고기를 먹어도 좋다고 승낙을 하시고,  병든 사람은  오신채(五辛菜)도 먹을  있다고 하시고,

 어린 사람이나 늙은 사람은 사시공양(巳時供養)뿐만이 아니라, 아침도 먹을 수가 있고 저녁도 약으로 먹을 수가 있다고 이렇게 하셨으니, 이러한 청정한  승단(僧團)에서 이렇게 법도가 물러 가지고 이래 가지고 무슨 견성성불을 할까 보냐?

 

 회상은 늙었거나 어리거나 병들거나를 막론하고 일체 어육을 금하고, 오신채도 금하고, 사시공양 이외에는 절대로 승낙을  한다. 그러니  회상의 법도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를 따라오너라”

 

그러니까 아직 불법(佛法)이 무엇인줄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들,  아직 젊은 사람들은 들어보니까 확실히 조달이의 법이  엄격하고 훌륭한  같거든.

 

그래서 “내 의견이 옳다고 하는 사람은 손을 들으라”고 하니까,  사람 들고  사람 들고 이리 뚤레뚤레 하다가 ~ 하니 거의가  손을 들었다 그말이여.

“그러면 나를 따라오너라”하니까부처님께서도  자리에 앉아 계셨지마는 아무 말씀도  하시고 가만히 보고만 계셨어. 그러니까 조달이가 “나를 따라 오라” 그러니까는 위~ 하니 수백 명이  따라가 버렸어. 

 

따라가서 조달이 밑에서 인자 조달이 법문을 듣고,   추상같은 법도 아래서  그냥 용맹정진 가행정진을 하는데, 처음에는 가서 보니까  이대로만  나간다면은 머지않아서 전부 그냥  견성 도통할  같이 느껴지고 모다 좋았었는데,

 

일주일을 지내,  이 주일을 지내, 삼 주일을 지내다 보니까, 차츰차츰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옳은 법이 아니다’ 그래서 정말 부처님 법이 우리 부처님의 법도가 정말 옳은 법이라고 하는 것을  사람씩  사람씩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목련존자와 사리불존자가   데로부터 돌아왔습니다. 와서 보니까 ! 부처님 회상에  시자  사람하고  사람  남고  어디로 가버렸다 그말이여.

“다 어디로 갔냐?”고 물어보니까, 조달이가 약하약하 해서 전부 다 선동을  가지고 끌고 갔다 그러니까 그길로 조달이한테 쫓아가 가지고는 대중을 모아 놓고 설법을 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대중들아! 아무리 어리석기로서니 정법(正法) 사법(邪法) 분간을 못한다는 말이냐? 늙은 사람과 병든 사람 어린 사람에게 아침을 먹게 하고 저녁을 먹게 하는 것은 근기에 맞추어서 열어주신 부처님의 눈물겨운 자비를 모르고어찌 그것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단 말이냐?

 

병든 사람에게 오신채와 오정육(五淨肉) 허락을 하신 것은 너무나도 넓고 넓으신 부처님의 자비심이지, 어찌 그것이 도업을 깨트리는 잘못된 법일까 보냐? 부처님의 자비가 거룩한   사람은  길로 일어서서 나를 따라오너라”하니까 와~따라서 모다 눈물을 흘리면서 참회를 하고  따라 왔습니다.

 

우리 부처님의 법은 중생의 근기를 맞추어서 팔만사천 방편법(方便法)을 설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계율법이 어찌 엄정허지 아니하리요마는, 계율 자체를 위한 계율이 아니라 도업을 성취하기 위한 계율이여. 그래서 병든 사람에게는 경우에 따라서는 오신채를 허락을 하셨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정육도 허락을 하신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정진 시간을  시간이 좋으냐?  시간보다  시간이  좋고,  시간보다 다섯 시간이  좋고,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24시간을 계속 용맹정진을 허면  좋을  같지마는 그러한 것이 아니여.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는 정진 시간은  시간씩 사분정진(四分精進)으로 하고, 방선 시간도어찌 방선 시간이라고 해서 잡담을 하고 섣불리 지낼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방선 시간도 포행(布行)할 사람은 포행을 하고,  큰방에 앉아서 정진할 사람은 얼마든지 계속해서 정진을 하라 이거여.

 

큰방에서 방선했다고 해서 잡담? 도저히 그것은  .

큰방에는 언제라도 묵언(默言) 구역으로 정해 놓고, 자기가 정진하고 싶으면은 마음껏 정진을 하라 이거여. 누가  어떻게 ?

 

어찌 입선 시간을  시간,  시간 정해 놓고 강제로 갖다가 꿇어앉아 주리를 틀게  필요가 있느냐 그말이여.

 

 시간은 누구라도  수가 있는 것이니까,  시간  정해 놓고  시간은  하고,  시간 지낸 뒤에는 계속해서   있고, 하고 싶은 사람은 계속해서 ! 공양 목탁  때까지 계속 앉아서 정진을 .

 대신 앉아서 꺼벅꺼벅 조는 사람은 나가야 . 나가서 포행을 하고 잠을  가지고 들어와.

 

형식적으로 시간만 많이  가지고 형식적으로 정진을 많이 헙네하고 () 내고, 속으로 알짜배기 정진이  된다면은 무슨 도업을 깨달을 수가 있을 거여? 성취할 수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 내고 속이 곯아 버린다면겉으로만 사치스런 집을 짓고, 속은 빚만 잔뜩  가지고 그러한 부자가 요새 많은데 그러한 것은  부자가 아니여.

겉으로는 수수허게 살되 빚이 없고 속으로 살림이 알차야  것이고, 지식도  소문만 나가지고 속은 실상은 실력이 없는 지식은 그건 진짜 훌륭한 지식이 아니여.

 

계율도 겉으로는 지키는 상이 없지마는 정말 안과 밖이 청정하다면  사람이야말로 율사(律師)  수가 있을 것입니다.

()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지  살림이 튼튼하도록 알뜰하고 짬진 정진을 해서 그러한 훌륭한 수행자가 되기를 부탁을 드립니다.(3051~4854)

 

 

 

 

(2)------------------

 

강호춘진낙화풍(江湖春盡落花風)하고   일모한운과벽공(日暮閑雲過碧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빙거요득인간환(憑渠料得人間幻)하고   만사도망일소중(萬事都忘一笑中)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강호춘진낙화풍(江湖春盡落花風)이요. 강호(江湖)에는 봄이 다해서 바람에 꽃이  지고,

일모한운과벽공(日暮閑雲過碧空)이로구나. 해는 저무는데 한가한 구름이 푸른 하늘로 지내가는구나.

 

빙거요득인간환(憑渠料得人間幻)이요. 그것을 인해서강호에 봄이 다해서 바람에 꽃이   버리고,  저무는 푸른 하늘에는 한가한 구름이 지내간, 그러한 것을 의지해 가지고 인간 세상이 허망한 것을  수가 있겠더라.

 

봄이 돌아오면 꽃이 그렇게 화려하게 피었건만 봄이 다하니 시들어서  보기 흉하게  시들어  떨어져 버리고,  구름 모양을 보면  구름 모양이 별의별 모양이  있어.

사람같이 생긴 구름, 소같이 생긴 구름, 집같이 생긴 구름, 별별 모양으로 생긴  기기묘묘한 구름 모양이 해가 저물어 바람이 불어버리니까  모양이 이리저리 흩어져서 없어져 버리는,

 

 꽃과 구름의 변화해서 없어진 것을 보고서, 인간 세상이 명예와 권리, 부귀영화, 누가  생기고  생기고, 이런 것들이 전부가  허망하고 무상한 것을 깨달을 수가 있어.

 

만사도망일소중(萬事都忘一笑中)이여. 비긋이 한번 웃는 가운데  만사를  잊어버려.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 빈부귀천과 부귀영화와 명예와 권리, 지식의 유무(有無), 인물이 잘나고 못나고,  그게   송이 꽃에 지내지 못하고, 한덩어리의 구름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애착과 분별을  쉬어 버리시고 이만큼 건강했을 때에 어쨌든지 정진  정진을 해서  몸뚱이로 견성성불을 해서 부처님의 은혜를 갚고, 나라의 은혜를 갚고, 부모의 은혜를 갚고, 스승의 은혜를 갚고,

  절을 피땀 흘려서 지어 놓으신  주지스님의 은혜를 갚고,  우리의 먹고 입을 것을  마련해  모든 신도의 은혜를 갚도록 정진을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고 자리에 내려가고자 합니다.(4858~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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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미륵불(彌勒佛) : []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呾麗耶), 매달례야(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불의 5().

*공양(供養) ; ①불()•()•() 삼보(三寶) 음식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

*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이란 우리말 '울력'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 상태.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정진(精進) : []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보살이 수행하는  바라밀(六波羅蜜)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 닦는 () 있어서는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혼침(昏沈 어두울 ,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법도(法度) ; 규칙법칙율법법규결정들.

*무방하다(無妨-- 없을 무, 방해할·거리낌 방) ; (사람이 어찌하여도)거리낄 것이 없이 괜찮다.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사법(邪法) ; 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 가르침.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 음사).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500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남을 해치고자 하는 .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오신채(五辛菜) ; 우리나라 절에서 냄새가 강하고 독특해 음욕과 분노를 일으켜 수행에 방해가 된다 하여 특별히 먹지 않는 다섯 가지 채소. 마늘··부추·달래·흥거. 경론(經論) 따라  종류가 달라 일정하지 않다.

*사시공양(巳時供養) ; 절에서 평소 하루에  한번 오전  사시(巳時 오전 9~11) 하는 공양(식사) 말한다.

*승단(僧團) ; 승가(僧伽). (산스크리트)(팔리) saṃgha(상가)에서 유래하였다. (화합중(和合衆)이라 번역.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사람들의 집단. 화합하고 있는 불교 교단을 뜻한다.

보통은 출가자의 집단을 가르키지만, 넓게는 재가(在家) 신도도 포함한다.

*약하약하 ; 약하(若何)하다—여하(如何)하다의 높임 말. 여하(如何)하다 : 어떠하다(어떻다, 의견·성질·형편·상태 따위가 어찌 되어 있다).

*오정육(五淨肉) ; 스님들이 먹을  있도록 허용된 다섯 가지의 청정한 고기. 오종정육(五種淨肉).

①나를 위해 죽이는 것을 목격하지 않은 (不見爲我殺). ②나를 위해 죽였다는 것을 듣지 못한 (不聞爲我殺). ③나를 위해 죽였다고 의심되지 않는 (不疑爲我殺). ④수명이 다하여저절로 죽은 (自死). ⑤새가 먹다 남긴 (鳥殘).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새벽, 오전, 오후, 저녁)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

*포행(布行) ; 참선(參禪)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

*큰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자리에 모여 참선수행 () 말한다.

*주리(周牢) 틀다 ; 주리 틀다. 예전에, 죄인을 심문할  주리(죄인의  다리를 한데 묶고 다리 사이에  개의  막대기를 끼워 비틀던 형벌) 형벌을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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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강호춘진낙화풍~’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부휴선수) ‘일편한운과벽공(一片閑雲過碧空)’ 참고.

*강호(江湖) ; ①은자(隱者) 시인(詩人), 묵객(墨客) 등이 현실을 도피하여 생활하는 시골이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②세상(世上)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③강과 호수를 아울러 이르는 .

*비긋이 ; 남이 느끼지 못하게 슬그머니.

Posted by 닥공닥정
전제 단제2015. 10. 12. 19:37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 법문에서 16분 06초부터 들으시면 됩니다>

 

 

§(423) (게송)수행수시용심진~ / 무자 화두 드는 법 / 전제(全提) 단제(單提) 근제(勤提).


공안을 분석하고 따져서 아무리 따지고 따져서 들어가 봤자, 그렇게 따져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그럴싸한 결론을 얻었다고 해도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여. 천하 없는 그럴싸한 결론을 얻어서 수긍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중생심(衆生心)으로써 얻어지는 결론이라, 그것은 망상(妄想) 지나지 못한 것이여.

 

어쨌든지 화두는  무엇고?’ 화두를 하던지,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하던지, 조주의 무자(無字) 하던지, 화두를 드는  찰나에 마음길이 끊어져야 되는 거여. 다못 이뭣고?’  의심뿐이여.  생각도 끊어지고  생각도 끊어지고, ‘이것이 옳게 하는가 그르게 하는가?’ 그런 생각까지도 끊어져버리고, 다맛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

 

전제(全提) 단제(單提) 근제(勤提) 적절하게 운용을 해서 혼침과 산란과 간단(間斷) 단절되는 것을 대처해 나가는스스로 그걸  방편을 써서 단속을  나가라.

 

**송담스님(No.423)—90(경오년) 하안거해제  8 첫째일요법회(90.08.05) (용423)

 

약 19분.

 

수행수시용심진(修行須是用心眞)이라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時道易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미오이도단재아(迷悟二途端在我)하고  시비이자막수인(是非二字莫隨人)이어다

나무~아미타불~


수행(修行) 수시용심진(須是用心眞)하라. 수행해 나가는 데는 모름지기  마음 씀을 참되게 해라. 진실하게 해라.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時道易親)이니라. 마음이 만약 참되다면 도는 친하기 쉬우니라.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 지도(至道) 무난(無難)이나 유혐간택(唯嫌揀擇)’이라 하셨습니다.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어. 오직 간택함을 혐의(嫌疑)한다

간택(揀擇), 간택은 이리저리 가리는 거여. 가리고 이것저것을 분석하고 판단하고 가리는 것이 간택인데, “ '간택을 혐의한다'  말이 무서운 간택이라 조실 스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마는,


 도를 수행을  나가는데  마음 씀을 참되게 해라.  마음 씀이 참되면은 도는 친하기가 가깝다. 바로 도에 들어갈 수가 있다.


마음 쓴다 하는 표현이 우리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화두를 들어 나갈 때에 화두(話頭), 화두는 다른 말로 하면 공안(公案)이라고도 하는데,

 공안은 따져사량분별(思量分別) 따지고 분석하고 더듬어 들어가고 이런 것이, 제일 공안을 참구(參究)하는 데에 주의할 것이 바로  따지는 것이거든.


공안을 분석하고 따져서 아무리 따지고 따져서 들어가 봤자, 그렇게 따져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그럴싸한 결론을 얻었다고 해도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여.

천하 없는 그럴싸한 결론을 얻어서 수긍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중생심(衆生心)으로써 얻어지는 결론이라, 그것은 망상(妄想) 지나지 못한 것이여.


어쨌든지 화두는  무엇고?’ 화두를 하던지,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하던지, 조주의 무자(無字) 하던지, 화두를 드는  찰나에 마음길이 끊어져야 되는 거여.

이뭣고?’ 다못 이뭣고?’  의심뿐이여.  생각도 끊어지고  생각도 끊어지고, ‘이것이 옳게 하는가 그르게 하는가?’ 그런 생각까지도 끊어져버리고, 다맛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


 조주(趙州) 무자(無字), 무자 화두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라고 했는고?’ 그뿐이지, ‘어째서 없다고 하는 것이 나은가, 어째서 무라고 하는 것이 나은가?’ 그러한 생각도 거기에는 붙어서는  .

어째서?’ ‘어째서 () 했는고?’


그런데 무자(無字) 화두는 자고로 대단히 논란이 많은 화두여. 논란이 많지마는  무자 화두에 옳게 참해 가지고 참구를 바르게만 하면  무자 화두를 타파함으로써 많은  깨달음을 얻은 도인들이 배출을 하는 것입니다.


몽산 스님께서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이라고 하는 법어도 설하시고  『몽산법어(蒙山法語)』에는 무자 화두가 많이 거론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역시 무자 화두를 가지고 정진하는 분들이 많아서 오늘은  무자 화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몽산 스님의  무자 화두 드는  대해서, 단제(單提) 전제(全提) 있는데, (단제는) 그냥 ()~~~’ 거기는 전혀 의심을 붙이지 않고 ()~~~’

『어느 스님이 조주 스님한테  개도 불성(佛性) 있습니까 없습니까?’하고 여쭈어 보니까, 조주 스님이 ()’ 그러셨단 말이여』


조주 스님이 ()’ 그랬으니 ()’, 그냥 ()’하고, 무슨 망상이 일어나거나 무슨 생각이 일어나거나 무슨 소리가 귀에 들리거나 ()~~~’ 항상 무자(無字) 끊어지지 않도록.

앉아서도 ()’, 서서도 '()’,  먹으면서도 ()’


어째서 ()라고 했는고?’ 그러지 않는 거여, 단제(單提).

그냥 ()’하고 무자(無字)만을 항상 생각하고, 무자(無字)만을 들어서 ()’  가지고  ()’ 관하는 거여. 이것이 단제인데.


전제(全提) 조주의 , ‘조주는 어째서 ()라고 했는가?’하고  조주의 뜻을 의심하는 거여. 


그러면 단제(單提) 어떠한 이익이 있느냐 하면은 항상 ()’하는 무자에다가만 자꾸 정신집중을 하기 때문에 복잡한 생각이 일어날 것이 없어. 그리고 비교적 () 정신집중을 하기가 무난해 그저, 초학자로서.

그런데  무자(無字) 하는데 생각을  군데다  집중하는 데에는  좋은 이익이 있는데, 까딱하면  ()~~’ 그놈만 들여다보다가 스르르르하니 혼침(昏沈) 빠지기가 쉽다 그말이여.


 혼침에 빠지기 쉽냐 하면은 정신집중이 잘된 반면에 생각이 조용한  이렇게 빠져 가지고 스르르하니 잠이 들어버려. 계속  잠이 들다가  일어나서  ()~’

평생 동안 ()하면 정신집중은 비교적 잘되고, 일체처 일체시에 항상 ()’ 하나만을 생각하니까 조금도 어려움이 없고  생각  생각이  일어나고 좋은데, 그렇게  가지고서는 확철대오(廓徹大悟) () 없어.


그저 조용하니 조용한 데에만 집중만 해서  오신통(五神通)까지도  수가 있어.

조용하고 고요하고 고요한 데에 집중을 하다보면 저절로 망상이 끊어져 가지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 가지고 그래 가지고는 아주 무심(無心)경계에 들어가서  오신통은 날른지는 모르나, 확철대오는  수가 없다. 누진통(漏盡通)  수가 없는 것이여.


그런데 전제(全提) 어째서 () 했는고?’ 간절히 간절히 의심을 들다보면 의심을 들어서 정신을 성성(惺惺)하게 하는 데에는 대단히 좋아.

그런데 성성(惺惺) 가운데에도 적적(寂寂)하고, 성성하면서도 적적하도록  참구(參究)하는 묘리(妙理) 얻지 못하면은 공연히 생각이 어지러워.

적적하게 들어가지를 못하고 비교적 성성하기는 하는데 생각이 이렇게 고요해지지를 못하는 흠집이 있어.


그래 가지고  성질이 급하고 그런 양성(陽性) 가진,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은 어째서 () 했는고?’하고 의심을 아주 힘을 써서 간절히 간절히 하다 보면 상기(上氣) 되는 폐단이 있고, 골치가 아파지는 폐단도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몽산 스님은  단제(單提) 전제(全提)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 하고 말씀을 하셨나 하면은,

초학자(初學者) 단제로써 공부를 지어 나가라. 다맛 ()~’하고 단제로 공부를  나가면, 그걸 일구월심(日久月深) 나가면 생각도 가라앉고 망상도 가라앉고,  자리가 잡혀.


더군다나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내쉬면서 ()~~~’ () 길게 이렇게 하면서 숨을 내쉰다 말이여.

숨이  나가면  스르르 들어마셔 가지고 ~~~’ 이렇게 단제로 그렇게 일구월심 얼마동안 정진을  나가면 순숙(純熟)해져서 망상도  가라앉아 버리고 이렇게  다음에 전제(全提) 들어가라 이거여.


단제로 계속하다 보면 너무너무 고요하고 깨끗하고, 편안하고 맑고 좋으니까 계속해서 단제로만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고 망상도 가라앉고 그래서 순숙해지면 그때 가서 전제(全提) 들어라.

(), ()~~~’ 아니라 ()? 어째서 ()?’ 그때 가서 어째서?’에다가 의심의 초점을 두어 가지고 의심으로 들어가라 이거거든. ‘어째서 () 했는고?’ ‘어째서?’


어째서 () 했는고?’까지 처음에는  하다가 나중에 차츰차츰 익숙해지면 ()’라고  소리까지  하고 어째서?’ 그렇게만 해도 벌써 의단(疑團)  나중에는 드러나게 된다 그말이여.


의단이 드러나면—‘어째서?’ 소리도  해도 떠억 어째서 ()라고 했는고?’  의단이 드러나게 된다면,  자꾸 어째서 ()라고 했는고?’ 그런 소리를 자꾸 뜰먹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나 처음에는 어째서 () 했는고?’ 이렇게 해야 .

이렇게 해서 자꾸 의심이 끊어지면  하고, ‘어째서 () 했는고~~~?’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그렇게 길게 여러 글자를  하더라도 의심이 들리면 다못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만 해나가도 된다 그말이여.


 초학자가 단제로써 기초를 다져 가지고, 단전호흡과 아울러서 단제로 기초를 다진 뒤에는 ()?’ ‘()라니?’ 이렇게만 해도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초학자의 단계에서는 단제로  가지고, 기초가 이루어져서 순수무잡(純粹無雜)하게  다음에는 전제(全提)로써 화두를  거각(擧却) 나가면 어째서?’하고 용을 쓰고 이마에다가 힘을 들여서  필요가 없다 그말이여.


기초도 되지도 않고, 되지도 않는 상태에서 어째서?’하고 어거지로 힘을 쓰고 한다면 육단심(肉團心) () 가지고 상기가 일어나고 골치 아픈 병이 생기고, 화두도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의단이 독로하지를 못할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몽산법어집을   몽산 스님의 무자 화두를 관하는 법에는 이렇게까지  자상하게 말씀을 해놓으셨고,

 그렇게  나가되 그래도 정진하다 보면 이렇게 겨울에 문을 닫고 정진을 하면은 30분만 지나면은 사람 콧구멍에서 나오는 모다 탄산가스로 인해서 공기가 탁해지고 방안 온도가 높아지면 아무리 성성하게 잡드리를 해도 혼침에 들기가 쉽고,

 요새처럼 여름에 날씨가 더웁고 그러면 아무리 정신을 차려도 꺼벅꺼벅 졸음이 온다 그말이여.


그럴 때에는 전제(全提), ‘어째서 ()라고 했는고?’ 전제(全提) 단속을 하고  그렇게 하다가도 워낙 산란심(散亂心) 많으면 그때는  단제로 화두를 들어 보라 그말이여. ‘()’ 단제로    보고.


화두가 의심이 자꾸 끊어져. 잠깐 들으면 있다가  끊어지고,  끊어지고 자꾸 이렇게 단절이 되면, 그때는 근제(勤提) 하라. ‘부지런할 ()’, 자주자주 부지런히 화두를 들어라.


그래서 혼침  때는 전제(全提) 들어 보고, 산란심이 일어날 때에는 단제로 한번 대체를  보고, 자꾸 화두가 끊어져싸면 근제, ‘부지런할 ()’ 근제로 단속을 하고,

이렇게 해서 전제(全提) 단제(單提) 근제(勤提) 적절하게 운용을 해서 혼침과 산란과 간단(間斷) 단절되는 것을 대처해 나가는스스로 그걸  방편을 써서 단속을  나가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1451~3338)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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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수행수시용심진~’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二十九 寄同參十首 게송 참고.

*간택(揀擇 가릴 , 가릴 ) ; 사물이나 사람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 따위와  정체를 구별하거나 가려서 알아 선택함.

*혐의(嫌疑 싫어할 /의심할·괴이히 여길·두려워할·의심스러울 ) ; 꺼리고 싫어함.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망상(妄想 망녕될 , 생각 )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 생각() , 또는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이뭣고?’ 화두.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 조주의 무자(無字)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 [몽산법어 蒙山法語]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 말함.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 조주 스님의 무자(無字)’ 화두를 가지고,

참선 수행에 있어서 본참공안에 대해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알수 없는 의심을 일으켜 화두 참구를 하지 않고, 사량분별·알음알이로 공부를 삼는 잘못된 병폐를 10가지로 정리하여  병폐를 알고 극복해 올바른 활구참선을 하기 위한 몽산 스님의 법문.

*혼침(昏沈 어두울 ,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오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없는 것을 헤아림을 ()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이라 한다.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있고 변할  있는 능력.

②천안통(天眼通)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있는 능력.

③천이통(天耳通)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있는 능력.

④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 속을 아는 능력.

⑤숙명통(宿命通)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능력.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94-95 참조.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 닦는 외도(外道)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 읽어도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성성(惺惺) ; 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적적(寂寂) ; 고요한 .

*상기(上氣) ; [한의] 피가 뇌로 몰리는 현상. 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나며, 발한, 두통, 이명(耳鳴), 현기증 따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②얼굴이 흥분이나 수치감으로 붉어짐.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

*순숙(純熟 순수할·온전할 /익을 ) ; 완전히 익음.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수할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수(純粹)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 ; [주로 용을 쓰다 구성으로 쓰여]무리하게 어떤 일을 해내려고 마음을 몰아 애써서 한꺼번에 내는 .

*육단심(肉團心) : [] Hrdaya  4심의 하나。 심장을 말함。 8() 육엽(肉葉)으로 되었다 한다。 의근(意根) 의탁한 .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산란심(散亂心 흩을 /어지러울 /마음 ) ; 혼침(昏沈)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 마음이 어지러운 .

*간단(間斷 ·사이 /끊을 ) ; 계속되던 것이 잠시 그치거나 끊어짐.

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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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등03) 동산숭장주송자행각법어(東山崇藏主送子行脚法語) 동산 숭장주가 행각을 떠나는 제자에게 하신 법어.(송담스님)

 

**송담스님(세등선원No.03)—병진년 하안거 반결제 법어(76.05.29) (세등03)

 

(1/3) 약 21분.

 

(2/3) 약 20분.

 

(3/3) 약 18분.

 

(1/3)----------------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오

나무~아미타불~

 

이 게송은 황벽(黃檗) 스님께서 읊으신 게송으로서,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라.

진로(塵勞)는 곧 그것이 생사(生死)인데,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그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우리가 이렇게 삼복(三伏)에 이 더위를 무릅쓰고 정진을 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생사해탈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고,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해서 설산에 들어가서 6년 또는 12년을 그 고행을 하시면서 수행을 하신 것도 그것도 생사해탈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고,

 

역대조사(歷代祖師)와 무량(無量) 보살이 출현하셔서 애를 쓰신 것도 또한 생사해탈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니, 생사해탈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하라. 긴히 승두(頭)를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해라.

승두는 화두(話頭)다 그말이여. 화두를 터억 잡고서 한바탕 해봐라.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한번 차운 것이 뼛속에 사무치지 아니할진대는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으리오.

매화꽃이 그 눈 속에서 매화꽃이 피는데, 되게 강추위를 한바탕 한 뒤라야, 강추위를 겪어야만 그 매화꽃이 피게 되는데 추위를 지내지 아니하고서는 어떻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칠 수가 있겠느냐?

 

정진을 한바탕 되게 해야 그래야 깨달을 수가 있다.

생사해탈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에 뼛속에 사무치는 그런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이 있어야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가 있다. 그러한 게송(偈頌)이었습니다.

 

 

오늘은 동산숭장주(東山崇藏主)라고 하는 분이 그 제자를 행각으로 내보내면서 해 주는 법문을 말씀하겠습니다.

 

대저 행각(行脚)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목적으로 하는 것이냐?

도로써, 이 도(道)로써 회포(懷抱)를 삼아야 할 것이니라. 생사해탈 하기 위한 수행을 하기 위해서 이 행각을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다고 하면은 그 피땀 흘려서 지은 농사, 농부가 피땀을 흘리고 그 농사짓는 가운데에 얼마나 많은 방생(傍生)들이 피해를 입었냐 그말이여.

요새는 더군다나 농사짓는데 그 해충이 옛날과 달라서 심해서 일 년이면 한번 농사짓는데 몇 번씩을 그 독한 농약을 뿌려서 그 많은 중생을 모다 죽이고 그래 가지고 얻은 그 곡식이다.

 

그리고 그 곡식이 우리한테 올 때까지 그 피땀 흘려서, 못 먹고 못 입고 해서 번 그 돈으로 신도가 시주(施主)를 해서 그래 가지고 우리 입에 먹을 것이 들어오고, 입을 것이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공양(供養)만 받고서—그런 무서운 공양, 그것이 낱낱이 우리가 도업을 성취하거나 못하거나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갚아야 됩니다.

도업을 성취 못하면은 소나 말이나 돼지나 또는 종이 되어 가지고 그 은혜를 갚아야 할 것이고, 우리가 도업을 성취하면은 법(法)으로써 은혜를 갚아야 하는 것이고.

 

그런데 그 무서운 그 공양을 받고서 등한(等閒)히 시간을 보내지 말아라.

 

모름지기 ‘날 생(生)’자 ‘죽을 사(死)’자, 생사(生死) 이 두 글자를 이마빡에다가 딱 못을 쳐서 박어서 붙여 놓고,

열두 때 가운데에, 지금 24시간이지만 옛날 시간으로는 (), (), (), (), (), (), (), (), ()(), (), () 12시간으로, 그것이 옛날 한 시간이 지금 두 시간과 마찬가지여.

 

12시간 가운데에 얼굴 껍데기를 폈다 오그렸다 하면서—그러니까 화두를 들고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이 무엇고?’ 이렇게 화두를 간절히 간절히 화두에 의심하는 거동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얼굴 가죽을 폈다 오그렸다 하면서 이 화두를 타파(打破)해 이거 하나를 밝히기 위해서 간절히 간절히 이것을 밝히고야만 말아야 옳은 것이다.

 

어째서 이 ‘날 생(生)’자, ‘죽을 사(死)’자 두 글자를 이마빡에다 써 붙이냐?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은 벌써 그것이 내생(來生)인데, 우리 인생이 부모 뱃속에 들어갈 때 사형선고를 이미 받아 놓은 사람들이다 그말이여, 우리는.

 

천고(千古) 만고(萬古)에 생겨났다 안 죽은 사람 없으니까, 우리도 조만(早晩)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러한 처지에 있는 것이여. 밤낮 이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또 젊다고 안 죽고, 늙어서만 죽는 것도 아닙니다.

젊은 사람도 천하 허망하게 죽는 것이고 다맛 언제 죽을 중 그 사형집행일만 모를 뿐이지, 우리 언도(言渡)는 다 받아 놓고 있다 그말이여.

 

그러한 처지(處地)에—마치 우리의 처지가 무엇과 같으냐 하면은 여름에 물웅덩이에 있는 물이 거의 다 밭아져서 조금 남은데,

여름에 가물고 비가 안 올 때에는 물웅덩이에 물이 차츰 차츰 차츰 말라 가지고는 거의 물이 다 떨어진 상태에서 그 못 웅덩이 속에 크고 작은 송사리, 붕어 모다 그런 고기들이 호닥호닥호닥호닥호닥호닥호닥,

 

물이 넉넉하면은 그 안에서 물속에서 자유스럽게 헤엄을 치면서 물을 마시고 살 텐데,

그 물이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없기 때문에 목은 마르고 서로 저희끼리 저 물웅덩이 밑바닥에서 바글바글바글바글 호닥호닥호닥 팔닥팔닥팔닥팔닥 뛰면서 그러다가,

완전히 물이 말라질 때에는 그놈들이 시들시들시들 해 가지고는 말라비틀어 죽는데,

 

그 조그만한 웅덩이에서 물이 밭아져 갖고, 그 고기들이 팔닥팔닥팔닥 호닥호닥호닥 부글부글부글 끓고 있는 그러한 상태에, 우리 인생이 그런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몇 조금 안 가면 그날이라도 비가 쏟아지거나 그날이라도 물을 대주면은 그놈이 살아나겠지마는 그날 하루만 불과 몇 시간 안 있으면 그놈이 다 쭉 늘어져서 뻐드러지게 된다 그말이여.

 

우리의 인생의 처지가 꼭 그와 같은 처지다 그말이여.

그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우리가 무슨 정황이 있어서 히히닥거리고 잡담하고 또는 사소한 일에 시비하고,

무슨 니가 잘했네, 내가 잘했네, 잘못했네, 잘 먹었네, 잘못 먹었네, 추호(秋毫)도 그럴 정황(情況)이 없고 여지(地)가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날 생(生)’자 ‘죽을 사(死)’자 생사(生死) 두 글자를 이마빡에다 써 붙이라』 그 말은 ‘그 생사에 대한 그 무상(無常)한 생각이 우리의 머리에 떠나서는 안 된다’

‘그 생사 무상을 철저히 염두(念頭)에 두라’는 뜻이여, 『이마빡에다가 못을 치라』는 말은.

 

염두에 두고, 그저 자나깨나 하루에면 열두 시간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입선(入禪) 시간뿐만이 아니라 방선(放禪) 시간이라도,

정 몸이 괴로우면은 방선 시간에 지대방에서 허리를 잡는다 하더라도 그 시간에도 누워서라도 화두를 간절(懇切)히 들을지언정 방선했다고 해서 잡담을 하지 말아라. 

 

떼를 따르고 떼를 따라서 둘씩 셋씩, 넷씩 다섯씩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려 앉아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잡담을 하면서 헛되이 보내는 사람은 얼마 안 가서 숨 한번 나갔다 들어오지 못하면 내생인데,

 

내생에 가서 염라대왕 앞에 가서 네가 그 무섭고 그 무서운 시주의 밥을 먹고서 도업을 성취하지 못했으니,

‘니 밥값을 내놔라. 니 밥값이 얼마냐?’하고 밥값을 따지는 날이 올 텐데, 그때에 가서 내가 너의 스승으로서 ‘이러한 당부하는 말을 일러주지 않았다’고 염라대왕 앞에서 말을 하지 말아라.

 

스승이 나를 채찍질을 안 해 주시고, 꾸짖어주지 아니했기 때문에—이렇게 ‘그 염라대왕 앞에 가서 그 밥값을 따질 것을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는 이러한 간절한 말을 내가 안 해 주었다고,

스승이 그때 나를 그렇게 해 주었으면 내가 오늘날 이 염라대왕 앞에서 이런 일을 안 당할텐데, ‘스승이 말을 안 해주고 내싸두기 때문에 내가 이러한 신세가 되었다’고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만약 공부를 할랴고 하는 데에는 날마다 자기의 공부에 대해서 반성을 하고 새로운 결심을 해야 할 것이다.

날마다 뿐만이 아니라 시시(時時)로, 그 잡담하다가 히히닥거리다가 퍼뜩 생각을 돌이켜서 ‘앗! 내가 또 속았구나’ 시시때때로 자기를 반성을 하고,

 

시시때때로 타산을 해. ‘이 공부가 옳게 하고 있나? 딴 생각은 하고 있지 않나?’

아침에 도량석(道場釋)을 시작할 때부터서 저녁에 취침할 때까지 잠시도 헛되이 보낸 일이 없이, 그렁저렁 보낸 일이 없이 생각 생각에 자기를 반성하고,

 

‘이게 내가 이 웬일이냐!’ 히히닥거리고 잡담을 하다가도 퍼뜩 돌이켜서 뉘우치고 화두를 들고,

‘내가 이럴려고 여기를 왔던가? 내가 이럴려고 중이 되었든가?’ 퍼뜩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라.

 

이렇게 공부를 해 간다고 할진대는 반드시 집에 이르는 시절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도업을 성취할 날이 있을 것이다 그말이여.

 

 

어떠한 도 닦는 사람, 어떠한 사람들은 참선한답시고 경(經)도 보지 않고, 부처님께 예불(禮佛)도 하지도 않고,

좌복 위에 앉아서 꾸벅꾸벅 그저 졸음이나 자고, 좌복 위에 앉았다 하면은 꾸벅거리고, 꾸벅거리다가 조금 잠이 나가고 정신이 깨끗해지면은 번뇌 망상과 쓸데없는 생각으로 번뇌 망상 속에서 사로잡혀 있고,

 

번뇌(煩惱) 망상(妄想)이 조금 또 가라앉을만 하면 또 꾸벅꾸벅 혼침(昏沈) 속에 빠지고, 혼침이 조금 나가고 정신이 깨끗해지면 그때부터서는 번뇌 망상으로 세월을 보낸다.

 

입선 시간에는 그렇게 하고 또 방선 시간이 되어서 죽비(竹篦)를 치고 방석에서 일어서면은 그때부터서는 또 옆에 사람하고 잡담으로 또 세월을 보내고,

이러한 식으로 지낸다고 하면은 56억 7천만년 후에 미륵불(彌勒佛)이 출세하시게 되는데, 미륵불이 출세할 때까지 참선을 한다고 해도 도업을 성취 못할 것이다.

 

생사해탈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닌데, 과거에 부처님 역대조사들이 그런 식으로 지내 갔고 도업을 성취한 분들이 아니여.

다 공부를 해서 힘을 얻고 다 생사해탈하는 그런 불보살이나 역대조사들이 다 우리보다도 몇 십 배 수승한 근기(根機)를 가지시고 태어나셨건만 생명을 걸고 다 도를 닦은 분들이다 그말이여.(처음~20분35초)

 

 

 

 

 

(2/3)---------------

 

시시때때로 정신을 차리고 또 정신을 차려서 자기에게 주어진 이 화두 하나, 이 한 개의 화두를 들되,

밤이나 낮이나 어디서 무엇을 하거나, 밥을 먹을 때나, 세수를 할 때나, 빨래를 할 때나, 소제를 할 때나, 입선 시간 방선 시간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들고 또 들고,

 

들고 또 들으라 하니까 어떤 분은 ‘관세음보살’ 주력(呪力)하듯이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하신 분이 있다 그말이여.

이 화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뭣고?’ 간절한 마음으로 ‘이것이 무엇이냐?’ 말이여.

‘이것이 무엇인고?’ 그렇게 화두를 한 번 들어 가지고 알 수 없는 생각이 떠억 있는 동안에는 또 들고 또 들고 안 해도 돼. 

 

한 번 든 화두가 2분이나 3분이나 5분이나 그 알 수 없는 의심이 나타나 들려져 갖고 있는 동안에는 안 들고, 들어져 있는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해야 돼.

그러다가 그 화두가 그냥 무력(無力)해진다 말이여. 의심이 또록또록 하지를 못하고, 그냥 스르르 하니 무력해지면은 다시 그때 가서 ‘이뭣고?’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또 화두를 그렇게 들되, 딴 생각이 어느 틈에 들어오는지 딴 생각이 들어와 가지고 이 생각 저 생각 하고 있다가 그런 줄 알면 또 그때 가서 ‘이뭣고?’ 그러고.

 

화두는 들고 있는데 딴 생각이 와서 자리는 잡지 않고, 딴 생각이 슬쩍 그냥 스쳐만 가버린 경우에는 그것은 겁날 것이 없는 것이여.

그건 문제시 하지 말고 계속 아까부터 들고 있던 그 화두만을 간절히, 묵묵히, 골똘히 그 의심을 관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화두를 간절히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할지언정,

방석 위에 우두거니 아무 매카리 없이 화두를 든 것도 아니고, 안 든 것도 아니고, 입선했으니까는 그저 시간만 지키기 위해서 일없이 그렇게 앉아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방석에만 오래 앉아 있는 것으로 장기를 삼어 가지고 노상...

참선이라 하는 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 의심하는 데에 가서 있는 것이지,

화두 놓쳐 버리고 방석 위에 우두거니 앉었거나 또는 졸기만 한다거나, 무엇을 어떻게 지내든지 화두 놓치고 앉었는 것은 그것은 이 공부가 온당하니 옳게 되는 공부가 아니여.

 

될 수 있으면 앉어서 하는 것이 가장 공부 득력(得力)하기가 쉬웁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앉었는 데에만 집착을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입선 시간에는 될 수 있으면 앉아서 하기로 서로 약속을 했으니만큼 앉어서 하되, 입선 시간에도 너무 아무리 정신을 차려도 이 혼침에 빠져 가지고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고,

그런 때에는 살며시 옆에 공부하는 대중께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나가서 한 5분 바람을 쐬 가지고 그리고서 들어와서 공부를 하고,

 

또 방선 시간에도 시간 나는 대로 앉아서 정진을 하되 앉었기로만 작정을 하지 말고,

졸음이 오거나, 정 공부가 깨끗하지를 못하고 몸이 비틀리면서 가슴이 답답하고 해서 도저히 견디기가 어려울 때는 살며시 나가서 너무 오래 돌아다니면 못쓰고 한 5분만 바람을 쐬고서 또 들어와서 공부하고 공부하고,

 

포단(蒲團) 위에 죽은 사람처럼, 이렇게 화두를 간절히 들지 아니하고 우두거니 앉었는 것으로 공부를 삼지 말어라.

 

어쨌든지 공부는 성성(惺惺)하면서 적적(寂寂)해야 하고, 적적(寂寂)하면서 성성(惺惺)해야지,

적적하기만 하고 성성허들 못하면은 그 공부는 옳게 되는 공부가 아니여. 또 성성하기만 하고 적적허들 못해도 그것은 옳은 공부가 아니다. 성성하고 적적한 것이 동시에 겸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 공부를 해 나갈 때 주책없이 잡념이 막 분분(紛)히 일어나.

삼동(三冬)에 눈이 올 때 그 수천 송이, 만 송이 눈이 펄펄펄펄 내리듯이, 또 먼지가 퍼일어나듯이 그렇게 잡념이 일어나서 그럴 때에는,

잡념 그놈을 물리치기 위해서 그 애를 쓰고, 그놈 일어난 것을 짜증을 내고 심술을 내고, 그 일어나는 것에 그 ‘일어난다’고 신경질을 내고 그러는데 그러지 말어라.

 

그놈을 안 일어나게 할려고 그놈하고 싸우고 몸부림치고 짜증을 내고 그러지를 말어라. 그럴수록에 무장 더 일어나는 것이다.

 

그 번뇌와 망상과 혼침이 일어날 때, 그놈 일어나는 놈을 없이 할려고 갖은 애를 쓰고 그놈과 더불어 싸움을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놈 물리칠 줄을 모른다 그말이여.

그놈을 간단하게 물리쳐 버리는 방법이 있는데,

그거 물리칠 줄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병이 생겨 가지고 가슴이 답답한 병, 소화가 안되는 병, 골치 아픈 병, 온갖 병이 그놈 처리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일생을 헛되이 보내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그 분(粉)가루 같이 일어나는 그 천 가지, 만 가지 지내간 과거의 일, 현재 닥치는 일, 앞으로 다가올 일, 또는 지내간 일도 아니요, 현재에 닥치는 일도 아니요, 미래로 닥칠 가망성 일도 아닌 천하에 허무맹랑한 생각까지도 퍼일어난다 그말이여.

지내간 일 생각했다, 앞으로 다가올 일 생각했다, 얼토당토않은 일을 생각하다가,

 

그놈을 어떻게 해야 물리치느냐? 그것만 물리치는 방법만 알면은 공부 안된다고 한탄할 것이 없어.

 

천하 간단한 것이, 일어난 생각 그놈은 고대로 놔둬 버려야 해.

그놈을 없앨랴고 하지를 말고 고놈은 고대로 놔둬버리고 화두만 떡! 들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화두만 척! ‘어째서 무라 했는고?’해 버리면 아까 퍼일어난 생각은 자취가 없어.

화두를 척 들어버리면 아까 그렇게 주책없이 일어난 생각이 어디로 간 곳이 없는데,

 

정 그렇게 해도 화두는 잘 들리지를 않고, 혼침은 퍼일어나 가지고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때는 살며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서 바람을 쐬면서 왔다갔다 포행을 하는 것이 제일인 것이다.

그렇게 하면은 졸음도 달아나고, 그 답답하고 그런 가슴속도 시원해지고 머리도 깨끗해진다 그말이여.

 

그러면 다시 또 방석 위로,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 공부를 하는데,

오른다리를 놓고 왼다리를 거기다 포개 놓고, 손을 오른손을 놓고 왼손을 포개 놓고 하는 것이 보통의 정식이지마는,

 

이 번뇌 망상이 퍼일어나고 혼침이 일어날 때는 그렇게 하지를 말고,

엄지손(가락)을 먼저 오그리고 그 다음에 네 손가락을 그 위에다 포개서 쥐고서, 이 주먹을 엎어서 양 무릎 위에다가 탁 놓고, 그리고서 공부를 해 보라 그말이여. 훨씬 정신이 나고 용기가 솟아오르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서 허리를 쭈욱 펴고, 등어리만 꼬부라지고 허리만 꼬부라졌다 하면은 혼침이 일어나는 것이니까 등뼈를 쭉 펴야 한다.

 

쭉 펴고서, 떠억 심호흡을 하면서 정진을 하면은,

언제든지 떠억 새로 앉아서 정진을 할려고 할 때는 숨을 깊이 빨리 들어마셔 갖고 한동안 참았다가 입으로 다 ‘후—’하고 입으로 쏵 내뿜어.

또 한 번 그렇게 하고, 두 번을 그렇게 하고서 허리를 쭈욱 펴고 앉으면은 정신이 깨끗하다 그말이여.

 

펄펄 끓는 물에다가 차운 물 한 바가지를 퍼부순 거와 같애.

아까 그 졸음과 산란심이 퍼일어날 때에 밖으로 나가서 바람 쐬고 포행(布行) 좀 하고, 그러고 들어와서 떡 두 주먹을 쥐고 허리 쭉 펴고 호흡을 2번을 그렇게 하고 딱 앉어 보란 말이여. 정신이 깨끗해져. 

 

이렇게 처음부터서 쭉 이야기한대로 그렇게 정진을 해 가면은—하루를 그렇게 해, 이틀을 그렇게 해, 열흘을 그렇게 해, 한 달을 그렇게 해,

날이 가고 달이 가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착실히, 간절히, 여법(如法)히 해 가면은 반드시 집에 이르는 시절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타향(他鄕)으로 타향으로, 고향(鄕)을 잃어버리고 타향으로 타향으로 다니면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객지(客地) 생활 하고 있는 그러한 사람과 같애.

 

우리도 불보살(佛菩薩) 역대조사와 똑같은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아지 못하고, 우리의 본성(本性)을 아지를 못하고 무량겁을 두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는 우리의 처지가,

자기의 부모와 형제와 정든 고향을 어떻게 6․25동란과 같은 그러한 피난통에 부모를 잊어버리고, 어릴 때 말이여. 부모를 잃어버리고 고향이 어디인지 모르고 객지 신세로 떠돌아다니는 그러한 신세와 같은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갖은 노력을 하고 백방(百方)으로 알고 수소문(聞)을 해 가지고 자기의 고향이 어디며 자기의 부모가 누구라는 것을 아는 거와 같이,

이렇게 가행정진 용맹정진, 열심히 정진을 한 끝에 결국은 자기의 본성을 깨닫는 것을 집에 이른 데에, 고향에 돌아가는 데에다 비교한 것이다 말이여. 고향에 돌아가는 시절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공부가 잡히지를 않고, 화두가 잘 들리지를 않고, 공부가 된 것 같지가 않다 그말이여. 그러되 번뇌심(煩惱心)을 내지를 말아라.

이게 아주 대단히 중요한 것이여. 공부가 안되면은 누구를 막론하고 번뇌심이 나기 마련이고 짜증이 날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이 옳지 못한 것이여.

 

벌써 번뇌심, 그 짜증이 무엇이여? 그 짜증은 화두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화두를 놓치는 날이면 벌써 마구니에 끌려가고 있는 것이여 그것이.

일체 번뇌 망상을 하다가도 화두 척! 들어버리면은 마구니한테 붙잡혀 있다가 마구니를 뿌리쳐 버리고 도망해 나온 것이여. 안전지대로 오는 것이여.

 

그런데 ‘화두가 안 들린다’고 번뇌심을 내면은 그것은 벌써 마구니한테 벌써 잡혀갖고 있는 것이다. ‘번뇌의 마구니’한테 그것이 잡혀 갖고 있는 것이여. 

 

또 화두가 잘 안 들리고 혼침 산란 속에 빠져 있다가 어떻게 어떻게 해서 공부가 잘되고 화두가 순일하게 잘 들리고, 머리도 쾌청하고 가슴도 후련하니,

아주 몸도 뒤틀리고 괴로운 것이 없어지고 깨끗하니 공부가 잘되어간다고 해서 그렇게 될 때에, 그렇게 된다고 해서 또 환희심(歡喜心)도 내지 말아라.

 

환희심을 내면은 벌써 ‘환희의 마구니’에 끌려가고 있는 것이여. 환희의 마구니가 벌써 마음에 들어와 가지고 그놈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벌써 번뇌의 마구니가 들어와 있거나, 환희의 마구니가 들어와 있거나, 화두 놓쳐버리면 모두가 마구니여.

화두 하나 척! 추켜들면은 일체처가 바로 정진 도량이고, 화두 하나 놓쳐버리면은 아무리 방석 위에 앉았어도 그 자리가 벌써 마구니에 붙잡혀 있는 자리다.

 

그래서 어쨌든지 화두를 들어야 하는데,

그 사실은 ‘이뭣고?’ 또는 ‘어째서 무라 했는고?’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이 무엇인고?’ 말은 한마디에 지내지 못하지만은 이 화두 하나 옳게 들 줄 아는 사람은 공부가 한 걸음 한 걸음 되어가고 있는 사람이고,

화두 하나를 옳게 들 줄을 모르면은 아무리 방석에서 30년 40년을 방석에 앉았고, 그래서 궁둥이로 그 방석을 7개를 방석을 뚫어도 공부 옳게 된 것이 아니다.

 

앉았거나 섰거나, 누웠거나 걸어다니거나, 그 화두 하나만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옳게 딱! 들 줄 아는 사람이면은 그 사람이야말로 참 옳은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20분38초~40분3초)

 

 

 

 

 

(3/3)----------------

 

어떻게 드는 것이 옳게 드는 것이냐?

 

화두는 제일 못쓰는 것이 따지는 것이 제일 못쓰는 것이여.

따져. 이리저리 따져서 들어가는 거.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무자(無字)도 다맛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따지지 말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고렇게만 해야지,

‘없다는 말인가? 있다는 말인가?’ 무자를 가지고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경전에 있는 말, 조사의 어록에 있는 말, 그동안에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는 걸 가지고 그러한 상식 지식을 가지고 이리저리 따져 보고, 파고 들어가고 하는 건 절대로 금물(物)인 것이여.

 

다맛 거두절미하고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이뭣고?’화두 하는 분은 ‘이뭣고?’그저 ‘이뭣고?’여.

‘이것이 무엇인고?’하는 알 수 없는 의심(疑心)! 그거라야지, ‘이것이 불성(佛性)인가? 이것이 자성(自性)인가?’ 이리저리 자꾸 따지면 못쓰는 것이여.

 

따지면 벌써 그 따지는 것도 그것도 화두가 아니요, 따지면은 중생심(衆生心)이여. 중생심만 더 조장(長)을 하는 것이여.

경전에 있는 말씀으로 따지거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으로 따지거나, 그동안에 큰스님네한테 들은 법문 그러한 걸 가지고 따져도, 따지면 벌써 자기 생각이여. 따지는 생각은 자기 생각이여.

자기 생각으로 따진 것은 번뇌 망상이여 그것이.

 

우리가 여기 앉아서 참선 하는 것은 화두 의심(疑心), 그놈을 간절히 들고 또 들어야 공부가 되어 가는 것이요, 마구니의 품안에서 벗어나는 길이요,

내 가슴속에 들어와 있는 마구니를 몰아내는 방법은 화두 드는 데에 있는 것이여.

 

‘화두 놓쳐버렸다’고 하는 것은 배를 타고 항해를 하는데 나침판(羅針판)을 잃어버린 거와 마찬가지여.

항시 그 배 운전대 앞에는 나침판이 붙어 갖고 있는데, 그것이 수시로 그 바늘이 움직이면서 동서남북을 가르키고 있다 말이여.

 

그놈에 의지해서 선장이 운전하는 것이지, 그놈이 고장이 났거나 그놈이 없어졌다고 하면은 그 배는 어디가 동쪽인지 어디가 남쪽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저히 도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화두가 이 생사(生死)의 바다를 건너서 생사 없는 열반(涅槃)의 언덕에 도달하는 ‘내가 나를 깨닫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나침판이여, 화두가.

그래서 그 나침판을 잠시도 놓치는 날에는 어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환희마(喜魔)가 마음에 들어오거나, 번뇌(煩惱)의 마구니가 마음에 들어오거나, 그밖에 병을 잡아내기로 하면은 한량이 없어.

일체 병(病)이 다못 화두 하나 드는 것으로서 일체 병이 물러서는 것이고, 화두 하나 옳게 들면은 병이 들 이유가 없는 것이여.

 

번뇌가 일어나도 또는 신경질이 나거나, 몸이 아프거나, 골치가 아프거나, 일체 망념이 일어나거나, 다맛 화두 하나 척! 화두 한번 들어버리면 그만인 것이여. 그 찰나에 없어지는 것이여.

 

 

‘시시때때로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간절히 간절히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라.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 하루빨리 칠통(漆桶)을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 해 가지고 돌아와서 내 등어리를 밀어다오’

 

‘등어리를 밀어달라’하는 말은 옛날에 그 상좌(上佐)가 나가서 행각(行脚)을 해 가지고 큰 선지식 밑에 가서 공부를 해 가지고 확철대오 해서 돌아왔다 그말이여.

은사(恩師) 스님한테 돌아왔는데, 밤낮 그 스님은 경(經)만 보고 있어. 강사(講師) 스님이라 경만 보고 있어. 그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저 경 보는 것으로써 그저 공부를 삼고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까 그 옆에서 게송(偈頌)을 읊으기를,

방에 들어왔던 벌이 창문이 환하니까, 그 창문 창호지 발라진 환한 데로 나갈라고 툭 부딪쳐갖고 툭 떨어지면 또 다시 자꾸 그 창문 있는 데로만 나갈라고 그런다 말이여.

열어놓은 데로는 나갈라고 안 하고, 창문이 환하니까 그 창문이 나가는 문구녁인 줄 알고 그리 자꾸 부딪쳐갖고 또 확 맥히면 또 그 부딪치고 부딪치고 하니까,

 

“빈 문으로는 나갈라고 하지 아니하고 그 창 발라진 데로 나갈라고 하니, 백 년을 그 구멍을 뚫을려고 그 문에다가 부딪친들 언제 나갈 겨를이 있겠느냐?”하는 내용의 글을 읊으니까,

그 스승이 ‘무슨 소리인고? 참 그 이상한 글을 지었구나’ 그러고.

 

그 다음에 또 목욕탕에 스님이 목욕을 하시는데—목욕탕에 들어가서 등을 밀어드리면서, 등어리를 턱! 한 대 치면서 “법당은 좋다마는 부처가 영험이 없구만” 아! 그런다 말이여.

요리 돌아보면서 “너 이놈, 그 무슨 소리냐?”하고 성을 폭 내니까, “영험 없는 부처가 방광(放光)은 할 줄 아네” 아, 이랬다 말이여. 그 스님 등어리를 척! 치면서.

 

이놈이 어제는 내가 경을 읽고 있는데 이상한 글을 짓더니, 오늘은 또 등을 탁! 치면서 건방진 소리를 한다 그말이여.

‘이놈이 평소에 조벽없는 놈도 아니요, 나가서 공부한다고 그래서 잘 공부하더니 이놈이 미쳤나?’ 암만 생각해도 그냥 둘 수가 없다 그말이여.

 

“너 그동안에 다니면서 무슨 스님한테 가서 공부했냐?”

“아무아무 큰스님한테 했습니다”

“그래서 그 스님 밑에서 공부 어떻게 했냐?”

“약허약허해서 그 스님한테 인가(印可)를 맡어 갖고 왔습니다”

 

“아! 그래야. 네가 정말 그렇다면 아무리 네가 내 상좌라지만은 벌써 도업을 먼저 성취했으니 법을 청해야지”

그래 가지고 법을 정식으로 청해 가지고 그 상좌의 법문을 듣고서 확철대오를 했다 그말이여, 그 스승이.

 

‘단리망연(但離妄緣)하면 즉여여불(卽如如佛)이여. 다만 망연만 여의면 곧 여여한 부처다’하는 그 법문을 듣고서 스승이 상좌의 법문을 듣고 확철대오 한 그러한 역사가 있는데,

‘어서 칠통을 타파하고 확철대오해서 돌아와 가지고 내 등어리를 밀어다오’한 말이 그 출처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이 공부는 나이가 많고 적은 것도 상관이 없고, 참선을 10년 20년 한 사람이나, 1년 이태한 사람이나 오래오래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공부 많이 하고, 출가한 지가 얼마 안 된다고 공부가 미숙하고 그런 것도 아닌 것이여 이것은.

 

어쨌든지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하면은 일주일 만에 깨달은 사람도 있고, 열흘 만에 깨달은 사람, 석 달 만에 깨달은 사람, 3년 만에 깨달은 사람,

그 사람이 얼마만큼 열심히 그리고 올바르게 공부를 하느냐에 따라서 그 시간이 결정되는 것이지,

 

올바르게 하지 못하고 또는 올바르게는 해도 간절하지를 못해 가지고 그렁저렁 한다고 하면은 아까 말한대로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56억 7천만년 뒤에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해도 깨달을 기약이 없는 것이고,

올바르게 하면은 오늘 어떻게 될는지 그건 모르는 것이여.

 

우리는 언제 깨달을는지 모르기 때문에 1분 1초도 헛된 생각을 하고, 헛되이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말 많이 하는 것도 그것도 습관이라, 말을 해야 소화가 되고, 말을 해야 조금 기운이 나고, 나중에는 그렇게 되어서 말을 안 하면 소화도 안되고 답답하고 상태가 안 좋고 이렇게까지 되는 것이여.

그래서 그러한 습관이 되기 전에, 이렇게 생사(生死)가 무상(無常)하고 우리 출가해서 이 자리에 와서 이렇게 지내는 목적이 무엇인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당연히 부모를 모시고, 처자 권속을 거느리고 가정을 이루면서 동시에 사회 국가에도 자기의 기술과 능력껏 봉사를 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이 인간으로서의 보편타당한 생활 태도인데,

 

부모도 모시지 아니하고, 자식도 낳아 길르지 아니하고, 사회 국가에 무슨 봉사하는 것도 없고, 이렇게 농사도 짓지 않고, 그 무서운 시주 밥을 먹고, 시주가 갖다준 옷을 입고 그리고서 도를 열심히 안 닦으면,

무엇을 하기 위해서 머리를 깎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가지 아니하고 일생을 이렇게 지내는 목적이 무엇이냐?

 

하루, 한 때인들, 1분 1초인들 우리가 그렁저렁 지낼 수 있는 그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말이여.

뼈 아프게 느끼고, 뼈 아프게 무상을 느끼고 우리의 처지가 그러헐 처지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정말 깊이깊이 느껴서 열심히 공부 하시길 바랍니다.

 

1초 1초가 모여서 1분 1분이요, 1분 1분이 모여서 한 시간이요,

한 시간 한 시간이 모여서 하루, 하루 하루가 모여서 한 달,

한 달 한 달이 모여서 1년이요, 1년 1년이 모여서 일생이 되고,

그 일생 일생이 모여서 무량겁이 되니까, 그 무량겁 무량겁 하지마는 사실은 1초 1초여.

 

1초 1초가 모여서 무량겁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량겁 생사를 면할려면은 1초 1초 단속하는 길이 가장 요긴한 것이다.

1초 1초, 한 생각 한 생각 단속 잘하는 사람은 무량겁 생사해탈을 하는 것이고,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 아니하는 사람은 무량겁 생사윤회가 있을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이야기 할 때마다 이 말을 내가 강조를 하지마는 너나 할 것 없이,

이건 내가 여러분한테만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나한테 지금 하고 있는 것이여.

여러분은 그 덕분에 듣게 되는 것이지 사실은 이것은 내가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여.

 

내가 무슨 도(道)를 다 성취를 해서 선지식이 되어 가지고 여러분한테 법문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수행의 과정에 있는 사람으로서 내가 나 자신에게 일르는 말을 여러분은 그저 덕분에 듣게 되는 것이니까,

 

너나 할 것 없이 깊이깊이 명심을 해서 오늘 하루를 또 열심히 간절히,

어제까지 잡담 많이 하는 사람 오늘부터서는 그 잡담이 절대로 없어질 것이고, 어제까지 그렁저렁 무상한 줄 모르고 지내던 사람도 오늘 이 시간부터서는 새로운 마음, 새로운 사람이 되어 가지고 간절히 간절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만약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이 말대로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후생(後生)에 당연 한(恨)이 만단(萬端)이나 될 것이다.(40분4초~57분4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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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황벽(黃檗)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삼복(三伏) ; ①일 년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②초복(初伏),중복(中伏),말복(末伏)을 아울러 이르는 말.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무량(無量) ; ①많아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음. ②[불교] 가히 비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화엄경》에 나오는 백이십 수(數) 중 한 수의 이름이다.

*승두(繩頭) : 승(繩)은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두(頭)는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되게 ; 아주 몹시.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장주(藏主) ; 경장(經藏)을 관리하는 직위。 큰 선원(禪苑)에서 대장경을 2부로 나누어 동과 서에 비치하므로 동장주(東藏主)와 서장주(西藏主)가 있다.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회포(懷抱 품을 회/안을 포) ; 마음속에 품은 생각이나 정(情).

*방생(傍生 곁·옆 방/날 생) ; 몸을 옆으로 누이고 다니는 생물. 벌레, 날짐승, 물고기 따위를 이른다.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등한(等閒)히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〇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천고(千古) ; ①아주 오랜 세월. ②아주 먼 옛날.

*만고(萬古) ; ①[‘만고의’, ‘만고에  쓰여]오랜 세월 통해 변함이나 유례 없음. ②매우 먼 옛날. ③아주 오랜 세월 동안.

*조만(早晩 일찍 조/늦을 만) ; 이름 늦음 아울러 이르는 .

*언도(言渡) ; 선고(宣告). 법정에서 판사가 판결의 결과를 알리는 일. 이로써 재판의 효력이 생김.

*처지(處地)당하고 있는 사정이나 형편.

*밭다 ; (무엇이) 바싹 졸아서 물기가 거의 없어지다.

*뻐드러지다(부드럽던 )굳어서 뻣뻣하게 되다.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추호도’, ‘추호의’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정황(情況 사정·형편 정/하물며 황) ; 어떤 사물 처해 있는 조건이나 상태.

*여지(地)없다(무엇)달리  말할 필요 없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염두(念頭) ; 마음속. 마음의 속.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지대방 ;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방. 이부자리, 옷 등의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며, 스님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내싸두다 ; ‘내버리다(관심을 가지지 아니하고 돌보지 아니하다)’의 사투리.

*시시(時時)로 ; 때때로(경우에 따라서 가끔).

*시시때때 ; 시시(時時, 지나가는 시각 시각)를 강조하는 말. 시간이 흐르는 매 순간.

*도량석(道場釋) ; 목탁석(木鐸釋). 절에서, 아침 예불 하기 전에 천지 만물을 깨우고 도량을 청정하게 한다는 뜻으로 목탁을 치면서 주위를 도는 의식. 주로 천수경을 소리 내어 외우거나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 등을 부름.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을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의 미륵이라 한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2/3)

 

*의심관(疑心觀) ;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무력(無力)하다(무엇)위세 영향력 없다.

*우두거니 ; 우두커니. 정신없이 또는 얼빠진 듯이 멀거니  있거나 앉아 있는 모양 나타내는 .

*매카리 ; 매가리. 맥아리. 맥(脈 기운이나 힘)을 속되게 이르는 말.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포단(蒲團) : 좌선할 때 까는 방석.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적적(寂寂) ; 고요한 것.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주책없이일정한 줏대 없이 자꾸 이랬다저랬다 하여 몹시 없이.

*분분히(紛- 어지러울 분) ; ①떠들썩하고 뒤숭숭하게. ②무엇 여럿이 한데 뒤섞여 어수선하게.

*무장 ; ‘더욱, 한사코’의 사투리.

*얼토당토않다 ; ‘얼토당토아니하다(전혀 관계가 없다)’의 준말.

*등어리 ; ‘등’의 사투리.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피난통에 ; 피난하는 판국에. *통: 명사 에서 ‘통에  쓰여어떤 일이 벌어진 환경이나 판국(판局, 일이 벌어져 있는 형편이나 국면)

  나타내는 .

*백방(百方) ; [주로 ‘백방으로’, ‘백방의  쓰여]온갖 방법이나 방면.

*수소문( 찾을 수/바 소/들을 문) ; 세상에 떠도는 소문 두루 찾아 알아봄.

*번뇌(煩惱) : 망념(妄念)이라고도 하는데,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정신작용의 총칭이나, 이곳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 이외의 모든 생각을 말함.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3/3)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만 말함.

*금물(物) ; 해서는 안 되는 일.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조장(長)이나 경향  심해지도록 도움주로 부정적 으로 쓴다.

*나침판(羅針판) ; 나침판(羅針盤). 항공, 항해 따위에 쓰는 지리적인 방향 알아내는 계기 하나.

*열반(涅槃) : [범] nirvana  [파]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라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멸(滅)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어문 ; '딴', '다른', '엉뚱한'의 사투리.

*칠통(漆桶)을 타파(打破) ; 칠통(漆桶)은 옻칠을 한 통으로, 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이므로 칠통에 비유한 말이다.

‘칠통을 타파한다’는 말은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

*상좌(上佐 윗 상/도울 좌) ; 윗사람을 도운다는 뜻. 곧, 한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은사(恩師) ; ①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②자기를 출가시켜 길러 준 스승.

*강사(講師) ; 경론(經論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經과 그 가르침을 주석·연구·정리·요약한 논論)을 가르치는 스님.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귀래위아개배(歸來爲我揩背) : 고령 신찬선사(古靈神贊禪師)가 행각하야 백장(百丈)선사를 만나서 깨달은 후에 돌아오거늘,

은사스님이 목욕하며 때 밀게 하니, 사(師)가 등을 만지며 이르되 ‘좋은 불당(佛堂)에 부처 성스럽지 못하다’하거늘 스승이 돌아보니, 사(師)가 이르되 ‘부처 비록 성스럽지 못하나 능히 방광(放光)하는구나’하고,

 

또 스승이 경을 볼 때에 벌이 창에 와 나가려 하거늘 사(師)가 보고 송(頌)을 읊되,

空門不肯出  投窓也大痴  百年鑚故紙  何日出頭期

빈 문으로 나가지 아니하고 창문에 부딪히니 어리석구나

백 년을 옛 종이를 비벼댄들 어느 날에 나갈 기약이 있으리오?

 

스승이 경을 놓고 묻되 ‘네 행각하야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

사(師)가 이르되 ‘백장화상(百丈和尙)의 가르치심을 받아 이제 스승덕을 갚고저 하옵니다’ 스승이 재계(齋戒)하고 사(師)를 청하야 설법하라 하거늘 사(師)가 좌(座)에 올라 이르되,

 

靈光獨耀  逈脫根塵  體露眞常  不拘文字

眞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영광(靈光)이 홀로 비취어 근진(根塵)을 멀리 벗어나며, 체(體)는 진상(眞常)이 드러나 문자에 걸리지 아니하고,

진성(眞性)은 물듦이 없어 본래 스스로 원성(圓成)하니, 다만 망연(妄緣)을 여의면 곧 여여불(如如佛)이라

하니, 스승이 그 말에 깨달았다.

*(게송) ‘금생약불종사어 후세당연한만단’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후생(後生)죽어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

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15. 1. 12. 13:25

§(112) ‘딴 생각[別念]’ 안됨 / 공부가 순일하게 된 때에 잘 다잡이 해야 / 참선은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야 / 새옹지마 / 밝아지면 어두운 것은 찰나에 없어진다.

 

조금도 ‘딴 생각[別念]’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겁을 내지도 말고, 걱정도 내지도 말고, 좋아하지도 말고, 다못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생각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뿐인 것입니다.

 

참선을 하게 되면 첫째, 지혜의 눈을 뜨게 되거든. 지혜의 눈을 떠서 깨닫기 이전에 참선을 시작할 때부터서 벌써 지혜인이 되는 것이여. 참선을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감정적인 그러한 생각이 자연히 쉬어지기 때문에, 어리석은 생각이 쉬어지면 그것이 지혜로운 거여. 꾸정물이 따로 있고, 말간 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 찌꺼기가 가라앉으면 맑아지거든.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밝아졌다 하면은 어두운 것은 찰나에 그냥 없어지는 것이지, 밝은 것이 오니까 어두운 것이 그냥 꼼짝을 못하고 저 마루 밑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에요.

 

**송담스님(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 (용112)

 

(1) 약 19분.

(2) 약 18분.

 

(1)------------------

 

여러 가지 공안이 있지만 반드시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지도 받은 한 공안에 일여(一如)하게 참구(參究)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곧 잘되어 갑니다. ‘이대로 해 가면 얼마 안 가면은 득력(得力)을 할 수 있겠거니’ 이리 생각하고,

한 철, 두 철을 지내다보면 영 옛날보다도 훨씬 더 공부가 잘 안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번뇌 망상이 더 잘 퍼일어나고 영 자리가 잡히지를 않고 이렇게 해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러한 경우라 하더라도 조금도 번뇌심을 내지 말고 심호흡을 하면서 착실히, 착실히 공부를 다져나가면 그렇게 해서 한 고비를 넘기면은 다시 또 수월하게 공부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수월하게 공부가 화두가 잘 일여하게 들리고 잘되어간다 하더라도 조금도 기뻐하는 생각을 내지 말 것입니다.

기뻐하는 생각 내면 벌써 그것은 이미 화두가 아니기 때문에, 기뻐하는 그러한 번뇌심에 끌려들어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기뻐하지도 말고 또 잘 안된다고 해서 번뇌심(煩惱心)도 내지 말 것입니다. 이것이 공부를 지어나가는데 있어서 아주 요긴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 애를 써서 밀밀면면(密密綿綿)하게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공부를 다잽이를 해나가면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들려고 해도 금방 도망가고, 금방 딴 생각이 들어오고 그랬던 것이,

자꾸자꾸 해가면은 나중에는 헐려고 안 해도 화두가 떠억 들어지게 되면서 시간이 한 시간, 두 시간이 언제 지내간지 모르게 시간이 지내가고,

 

그때는 다리가 저린 것도 없고, 몸이 괴로운 것도 없고, 가슴이 답답한 것도 없고, 정신도 깨끗하고 자기가 지금 어디에 앉아있다고 하는 그것마저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몸뚱이마저도 의식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이 깨끗하고 조용하고 편안하고 싱그럽고 이것은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화두는 그런 가운데 너무 조용하고, 너무 깨끗하고, 너무 편안해서, 까딱하면 화두를 그때 망각(却)을 하는 수가 있습니다. 절대로 그러한 경지에서 화두를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고 한 그 가운데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깨끗하게 독로(獨露)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곳에서 잠깐이라도 화두를 놓쳐버리고 ‘아! 좋구나. 이러한 경지로서 계속해서 나갔으면, 이럴 때 어떤 선지식이 툭 깨닫게 해주셨으면, 이러다가 빨리 깨달았으면’ 이러한 생각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이러다가 내가 까딱하면 미치면 어찌할고’ 별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중요한 고비에서 그 천길만길 되는 길을 간신히 간신히 올라가 가지고, 발 한번 삐끗해 가지고 천길만길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조금도 ‘딴 생각[別念]’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겁을 내지도 말고, 걱정도 내지도 말고, 좋아하지도 말고, 다못 알 수 없는 생각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뿐인 것입니다.

 

 

이러한 경지에서 정진을 하면은 옆에 사람들도 다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하! 저이가 지금 공부가 순일(純一)하게 되어가는구나’ 알게 되기 때문에 대중 가운데에 그렇게 공부가 되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입승(立繩) 스님을 비롯해서 좌우에서 서로서로 잘 보호를 해줘야 합니다.

 

대중 가운데에는 혹 ‘지가 공부한 척 하고 그런다’고 아주 뒤에서 수근수근하고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만은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내가 언제 그렇게 공부가 또 순일하게 되어 갈 때가 있을런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가 순일하게 되어 갈 때 주위에서 잘 보호를 해주고, 자기도 그럴 때에 아주 조심스럽게 그 공부를 잘 보호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렇게 나가면 나중에는 일어서도 화두가 고대로 있고,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고대로 있고, 똥을 눌 때도 고대로 있고,

천만 명이 우글거리는 시장 속에 들어가도 조금도 화두가 흐트러지지를 아니하고, 딴 생각을 일부러 좀 할려고 해도 딴 생각이 되지를 않고 이러한 경지에까지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머지않아서 칠통(桶)을 타파(打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가 그렇게 순일하게 된 때에 잘 다잡이를 해야지,

그때에 조심성 없이 또 좌우에서 방해를 친다든지 보호를 안 해가지고 그러한 경지(地)가 깨져버리면 나중에는 1년, 2년, 3년을 애를 써도 여간해서 다시 또 그러한 경지가 돌아오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여법(如法)하게 알뜰히 정진을 하면 누구라도 반드시 그러한 경지가 오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가 오면 사람에 따라서는 가만히 앉았어도 ‘아, 지금 조계사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구나. 선학원에 어떤 큰스님이 왔구나. 아, 어디 절에서는 누가 죽었구나’ 이런 것이 환히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내일, 아하 누가 오겠구나’ 그런 것도 환히 알아지기도 하고.

 

그러나 이것이 설사 무엇이 알아지고, 무엇이 여기 앉아서 몇백 리 밖에 것이 환히 보이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공부가 잘되어 간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됩니다.

 

이건 너무 식(識)이 맑아지고 깨끗해지니까 그런 것이 혹 보이는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능엄경(楞嚴經)에 부처님께서는 오십 가지에 대한 그런 경지를 낱낱이 자상하게 설명을 해 놓으셨습니다.

 

그러한 경지가 자기에게 나타났을 때에 그거 나타난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닌 것이고 또 꼭 그것을 나쁘다고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한 것이 나타남으로써 ‘아! 그이가 공부가 잘한다’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또 그러한 신기한 경지가 나타나지 아니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또 공부를 잘못한 것도 아닙니다.

 

요(要)는 사람에 따라서 혹 나타나기도 하고, 안 나타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이 그런 것이 나타나느냐? 능엄경에 말씀하시기를 평소에 공부할 때 ‘그런 것이 좀 나타났으면’하고 바램을 가졌던 사람은 그런 것이 혹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 것이 이미 나타났을 때에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

‘조금도 두려워하지도 말고, 싫어하지도 말고, 좋아하지도 말고, 그냥 고대로 놔 버리고서 자기의 본참 수행을 여법하게만 해가면 그것이 조금도 해로울 것도 말 것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사람은 혹 그런 것이 보이거나 나타나거나 하더라도 조금도 좋아하거나, 겁을 내거나, 그것을 물리치려고 하지를 말고 그냥 고대로 나둬 버려.

전혀 대꾸를 말고 다못 심호흡을 하면서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또는 이뭣고를 하신 분은 ‘이뭣고?’ 무(無)자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무라 했는고?’ 이렇게만 나아가면 그런 것이 아무 병이 될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를 못하고 그런 나타나는 것을 보고 신기하고 기뻐서 자꾸 거기에다 관심을 쏟고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사람은 벌써 마구니[魔]에 끌려가게 되어가지고, 잘되어봤자 점쟁이나 무당 밖에는 아니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누구를 만나면 ‘아, 너 석 달 후에 죽겠다. 석 달 후에 니 남편이 죽겠다’ 이런 겁나는 소리를 푹푹 합니다. 해가지고 아! 정말 석 달 뒤에 보면, 딱 딱 들어맞거든.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들은 그 사람이 큰 도인이요, 도사라고 그 사람 앞에 벌벌 메고,

‘돈을 내라’하면 돈을 내고, ‘쌀을 내라’하면 쌀을 내고, ‘절을 지으라’하면 절을 지고, ‘큰 대종을 시주해라’하면 시주하고, 아주 그 사람 앞에는 벌벌 멥니다, 아주. ‘목숨까지 바치라’고 하면 바칠 정도로 그럽니다.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은 자기 생각에도 그런 것을 잘 알고, 신도들이나 사람들이 그 사람 앞에는 장관도 무릎을 꿇고 벌벌 떨고, 장군들도 그 사람 앞에는 아주 벌벌 떱니다.

그래 가지고 톡톡히 도인(道人) 노릇을 하고, 많은 사람을 모다 제자로 삼아가지고 모다 그런 사람 가끔 있습니다, 있는데.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이 끝까지 명예도 탐하지 아니하고, 재산도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이 계율을 지키면서 그리 지내는 사람은, 그리고 그 사람 자신도 불법을 믿고 많은 사람에게 보시를 하게 하고 착한 일을 하도록 이렇게 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별것이 없지만은, 거기서 처음에는 그렇게 지내다가 차츰차츰 욕심이 생기고, 삿된 생각에 불이 붙어가지고 못된 짓을 계속하게 되면 머지않아서 깜깜해져가지고 그전에는 그렇게 환히 다 보이고 알았던 것이 전혀 몰라지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혹 맞기도 하고, 혹 안 맞기도 하고 이렇게 됩니다.

 

그래도 계속 사람들이 자기를 따라다니고 묻고 그러는데, 인자 ‘내가 몰라졌다’고 하기가 챙피하니까,

계속 아는 척을 하고 큰소리를 치다가 영 안 맞는 소리를 해가지고 망신(身)을 하고, 남을 갖다가 망하게 만들고, 나중에는 남한테 맞아 죽거나, 쇠고랑을 차게 됩니다.

 

그이가 도인인 줄 알고 따라다니는 제자들도 같이 망신을 하고, 같이 쇠고랑을 차고 그렇게 되고, 죽어서는 물어 볼 것도 없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쏜살같이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 그런 사람들이 염불을 하거나 기도를 하거나 또는 주력을 하거나 때로는 참선을 자기 나름대로는 목숨을 바쳐서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많습니다.

그러다가 한 생각 잘못해 가지고 그러한 외도 마구니가 되어가지고 자기도 망하고, 남도 망하고, 불법까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참선은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고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가는 길도 처음 가는 길은 가다가 보면 두 갈래, 세 갈래, 네 갈래 길이 나오는데 어느 길로 가야 할것인지 어떻게 알 것이냐?

 

그럴 때 길을 잘 아는 사람한테 물어서 가야 하는데, 가다가 길을 물어보면 요새는 자기도 잘 모르면서 ‘이리 가시오. 저리 가시오’ 대고 일러줘 버린다 그말이여.

‘나는 잘 모릅니다’ 이러면 될 텐데 ‘모른다’고 하기가 창피하거든. 그러니까 알지도 못하면서 ‘이리 가시오. 저리 가시오’  그 사람은 뭣도 모르고 한참 가다보면 얼토당토않는 데에 도착을 하게 된다.

 

눈으로 보고 가는 길도 그렇거든, 눈으로 보이지 아니한 마음으로 닦아가는 이 참선법에 있어서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피차 모르는 길을 가는데 바른 스승의 지도 없이 어떻게 바르게 해 갈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해 가다가, 옛날에 맛보지 못한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싱그러운 그런 경지가 나타나면 천하없이도 ‘아! 참 좋구나. 바로 이것이 바로 그 경지인가 보다.’

 

그러다가 무엇이 이상한 신기한 경지가 나타나서 방안에 앉아서도 벽 밖에가 환히 보이고, 큰 산이 막혀 있어도 산너머 일이 환히 보이고, 이백 리 삼백 리 떨어진 서울이나 부산의 일이 환히 보이고 하면 누가 거기에서 안 미칠 사람이 누가 있느냐. ‘야! 내가 이제 도통(道通)을 했나보다’

 

세상 사람들은 아는 사람한테는 기가 맥히거든, 훤히 아는 사람한테는.

20년 30년 불법을 믿고 다녔던 사람도 답답하면 무당 점쟁이한테 쫓아가서 여지없이 한마디만 탁 맞혔다하면,

그때부터서는 불법(佛法)은 저 꽁무니로 돌려 버리고 이제부터서는 무당을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무당 말이라고 하면 천하없이도 절대 복종을 하고.

 

알아맞혀 가지고 설사 무당 말대로 무엇이 잘되고, 못되고 그렇게 해서 자기의 팔자(八字)가 고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어떻게 될지 몰라도 자기가 지은 업(業)이 있으면 잘되기도 하고, 못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미리 석 달 전이나, 넉 달 전에 미리 알았다고 해서 자기의 업이 면(免)해지지를 않습니다.(9분50초~28분8초)

 

 

 

 

 

(2)------------------

 

어떤 사람이 그 관상(相)을 보니까 호랭이한테 호식(食)을 당할 그런 팔자다 그말이여.

그러면은 언제쯤 호랭이한테 물려가겠느냐? 자세히 사주(四柱)를 봐가지고 뽑아보니까 몇살 때 아무 날 아무 시에 호랭이에 물어가겠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방안에다가 큰 항아리를 갖다놓고 그 항아리 안에 탁 들어앉았고, 온 마을 사람들을 갖다가 수백 명을 초청을 해서 몇 겹으로 싸고 장사(士)를 시켜서 그 밖으로 하고,

또 온 마을에 있는 소를 갖다가 빙 둘러서 다 소로 갖다가 담을 치고 이리해가지고는 모닥불을 피면서 호랑이 범접(接)을 못하게 밤새 지켰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렇게 하고서 날이 샌 다음에 항아리 뚜껑을 열어보니까 아! 처녀가 죽어갔고 있다 그말이여.

 

그 이상하거든. 그래서 보니까 귀에다가 귀 파는 귀후지개를 갖다가 귀에다 꽂고는 죽었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 귀후지개를 가만히 보니까 호랭이 뼉다구로 깎아서 만든 귀후지개였다 그말이여.

그래서 귀를 파다가 잘못해 가지고 귀창이 터져서 죽었는데, 호랭이 뼉다구에 찔려서 죽었다.

 

호랭이한테 물려갈 업을 지은 사람은 아무리 몇백 명을 동원을 해서 막고, 항아리 속에다 담아 놔도 결국은 호랭이 뼉다구에 찔려서 죽는다.

이건 하나의 일화에 지나지 못하지만 그래서 ‘독안에 들어가도 자기의 업은 면하지를 못한다’ 이런 속담도 있습니다.

 

 

점쟁이한테 가서 아무리 미리 합격을 할 것이... (녹음 끊김)

실력을 양성을 하고 자기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마음을 안정하는 법을 알아가지고,

시험장에 나가서 따악 긴장을 풀고서 초조한 마음, 불안한 마음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을 볼 수 있는 그러한 방법을 어디 가서 묻는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중요하거든. 시험을 보러가기 전에 너무 전날 한 장이라도 더 본다고 잠을 설치지 말 것이며,

시험 볼라면은 원기를 회복해야 한다고 잔뜩 고기를 갖다가 삶아 먹여가지고는 배탈이 나가지고 그런 일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음식 조심해야 하고 또 ‘잘 봐야 한다. 잘 봐야 한다’고 자꾸 족치면 아니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못쓰는 것입니다

 

인자 니가 그동안 열심히 공부를 했으니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부담없이 가서 시험을 보도록 해야지,

‘이제 너는 떨어지면 너는 인자 그만이여, 인자’ 자꾸 족치거든 귀에다 대고. 그러면 더 시험을 못 볼 것이 아니냐 그말이여.

 

그리고 일러줄 것은 「심호흡을 하는 법」을 알아야 됩니다, 학생이.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에 부터서 계속 단전호흡을 하다가, 시험장에 들어가서 책상에 앉아서도 계속 허리를 쭉 펴고 심호흡을 계속하면서 해야 합니다.

 

그러면은 그 가슴이 두근두근 두근두근하고 그냥 그 초조하고 불안하고 손이 떨리고 한 거—이거 시험을 봐본 사람은 다 아실 것입니다만은 심호흡을 해야 그 불안한 생각이 이렇게 안정이 되는 것이여.

 

마음만 차분하고 안정이 되고 평탄한 마음으로 시험을 보게 되면 자기 알고 있는 것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죽죽죽죽.. 써나가거든. 이 마음이 긴장을 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하면 아는 것도 못쓰게 되거든.

 

무당한테 가봤자 그것은 없애주들 못한다 그말이여. 그러헌 것을 알아가지고, 자기의 실력을 발휘를 하고 자기가 있는 실력껏 쓰면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시험에 우선 봐서는 꼭 합격하는 것이 좋지만은 일생을 두고 볼 때에는 그 시험에 꼭 합격했다고 해서만이 좋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거기에 합격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안 좋게 되는 수도 있는 것이고, 그때는 그 시험에 떨어져서 모다 섭섭해 했지만은 나중에 두고 보니까 그때 떨어진 것이 차라리 무방(無妨)하게 된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중국에 새옹(翁)이라고 하는 노인이 있었는데, 하루는 어디서 말 한 마리가 좋은 말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온 마을 사람들이 ‘하! 재수가 있어서 좋은 말이 들어왔다’고 그렇게 모다 부러워하고 모다 치하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새옹이라는 사람이 ‘두고 봐야 알지 뭐.’ 그랬거든.

 

그런데 그 집 아들이 그 말을 타고 계속 좋아서 경마(馬)를 하고, 말을 달리고 하다가 떨어져서 다리가 대깍 부러졌어. 온 마을 사람들이 ‘아휴, 다리를 다쳐서 참 안되었다’고 모다 걱정들을 하는데, ‘두고 봐야 알지’

 

얼마 안 있다가 큰 난리가 났는데 마을에 모다 남자들은 전부다 그 전쟁에 끌려가 가지고 다 죽었는데, 그 집은 다리가 부러진 병신이라 끌려가지를 않고, 그 집안의 대를 이어갔다.

 

그래서 얻었다고 해서 좋아하지 말고, 잃었다고 해서 슬퍼하지 말아라. 이것을 새옹지마(翁之馬)라. 새옹의 성(姓)이 새(塞) 씨에요. 「새(塞) 씨라고 하는 할아버지[翁]의 말[馬]」이라 하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저 광주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아들을 독자(子)를 하나 낳았습니다. 그놈을 하나 잘 가르켜서 출세를 시키기 위해서 죽을 고생을 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아들이 하여간 어릴 때부터서 영특(英特)해 가지고 ‘일고(光州一高)에만 합격을 꼭 시켜야만 되겠다’ 이겁니다.

일고에 합격하기 그것만 하기 위해서 참 모든 물심양면으로 애를 써가지고 거기를 목표로 해서 공부를 시키는데.

 

장님 점쟁이가 있습니다. 그 장님한테 가서—그이는 쪽집게 점쟁이라고, 가서 물어봤다 하면 백발백중입니다. 가서 ‘합격을 하겠습니까? 못하겠으니까?’ 사주를 딱 넣으니까, 한참 괘(卦)를 뽑아 보더니 ‘되기는 꼭 되는데, 되면! 당신 집안은 망해요.’

 

‘그 무슨 말씀이오. 나는 죽어도 좋으니까 얘는 일고에다 기어이 넣어야만 되겠소. 되면 좋지, 왜 되면 집안이 망한다 말이 뭔 말이요.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요.’

그래가지고 ‘그런데 안되야만 당신 집안이 잘되지, 이 애가 만약 일고에 합격만 했다하면 당신 집안은 망하는데,  큰일이오!’

 

아! 말이 통하질 안해서, 계속해서 그냥 장님 말은 무시해 버리고 일고를 시험을 보였는데, 얘가 발표하는 날 가서 보니까 딱 자기가 들어있거든.

그래서 이 소식을 아버지한테 알려드려야겠다고 그냥 그 자리에서 주먹을 쥐고 자기 아버지 있는 데로 뛰어갔습니다. 뛰어가다가 교통신호도 무시하고 그냥 막 뛰어가다가 탁 교통사고가 나가지고 직사(直死)를 했거든.

 

그 소식이 자기 아버지한테 가 가지고 아버지가 와서 그 현장을 보고 미쳤습니다. 미쳐가지고는 그냥 펄펄뛰고 그냥 돌아다니다가 그 아버지도 죽었습니다.

아버지가 죽은 걸 보고 할머니가 ‘자식 죽고, 영감 죽고, 내가 무슨 재미로 사느냐’ 약을 먹고 죽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웃을 일이 아니고 실화(實話)입니다. 이것은 실화로서 이러한 예(例)가 얼마든지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그 일고에 들어가도, 그 사람이 참선을 한 사람이었다면 들어가면 들어가는대로 담담히 ‘이뭣고?’를 하고,

또 떨어졌으면 떨어진대로 담담한 마음으로—그럼 그 다음으로 떨어진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 길이 반드시 또 이차적으로 있는 것이니까.

 

이차적으로 또 후기를 본다든지, 재수를 한다든지, 학교를 좀 낮추어서 한다든지, 대학보다는 차라리 전문학교에 가서 기술을 익혀가지고 한다든지.

 

꼭 명문대학만 들어가야만 한다고 하는 그러한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그 유명학교, 명문대학, 명문대학 해가지고 얼마나 많은 아들과 딸들의 신세를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집안까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러한 생각을 말고 그 학생의 성적과 또 소질과 가정 형편과 그런 것을 두루두루 감안해서 담임선생과 잘 본인과 부모가 의논을 해가지고 여러 가지를 고려해가지고 적당한 데에 보낸다면,

다 자기의 적성에 맞추어서, 형편에 맞추어서 가 가지고 다 무난하게 공부도 잘하고 성공도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무리해가지고 공부도 잘 못하는 놈을 일류에만 넣는다고 가정교사를 대가지고 족쳐 가지고는 얘가 정신 노이로제에 걸려가지고 공부고 뭣이고 다 소용없고 그래가지고 탈선을 하게 되고,

 

한번 떨어지면 그 다음엔 조금 잘 알아서 해야 할 텐데, 두 번째 또 거기를 기어이 넣으려고 하다가 또 떨어지고,

두 번 세 번 떨어지다 보면 시간 다 가버리고 애는 학교도 가기도 전에, 해보기도 전에 벌써 못쓰게 되는 것 아닙니까. 이러한 어리석은 일을 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좋은 대학에 갔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출세한 것도 아니고 또 학교에서 성적이 꼭 좋다고만 해서 그 사람이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왕왕이 학교에서는 1등을 해가지고 일등으로 졸업을 해가지고 수재라고 이름났던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 별로 볼 일 없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에는 좀 어리석고 좀 티미하고 그러던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 굉장히 성공을 하고 참 그런 사람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니까,

공부를, 학교에서 모다 영어나 수학은 잘 못해도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그림을 하게끔 해주고 또 음악을 잘하는 사람은 음악을 하게 해주고,

 

또 무슨 자기의 소질 따라서 그것을 살려나가면 그것이 부모도 좋고, 자식도 좋고, 학교 선생님도 좋고 다 두루두루 좋은 것입니다.

 

이런 말을 왜 말씀을 드리는고 하면은 지금 한참 학교의 합격 관계로 해서 부모님이나 학생 다 그저 마음을 놓지를 못하고 불안하고 초조해 계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참고로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제 말씀을 잘 듣고 지혜있게 처리를 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삼도고본인하기(三途苦本因何起)요  지시다생탐애정(只是多生貪愛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도(三途)—지옥, 아귀, 축생 그 삼도의 고(苦)를 받는 근본원인이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이냐?(三途苦本因何起)

 

지시다생탐애정(只是多生貪愛情)이다. 다못 이 다생(多生)에 탐심과 애정 때문에 삼도의 고를 받게 되는 것이다. 탐심, 애정, 이것이야말로 자기를 갖다가 지옥 구덩이로 몰아넣는 낚수밥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이라고 해서 덮어 놓고 성적도 생각지 않고 좋은 학교에다가 넣으려고 하는 것도 탐심입니다.

 

그러한 어리석은 그 탐심과 애정은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하면 어리석은 데에서 일어나거든.

지혜롭게 관찰을 하고, 지혜롭게 판단을 하고, 지혜롭게 처리를 한다면 그러한 괴로움을 미연에 방지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지혜롭게 되는 길이 바로 이 참선(參禪)입니다.

 

참선을 하게 되면 첫째, 지혜의 눈을 뜨게 되거든. 지혜의 눈을 떠서 깨닫기 이전에 참선을 시작할 때부터서 벌써 지혜인이 되는 것이여.

 

참선을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감정적인 그러한 생각이 자연히 쉬어지기 때문에, 어리석은 생각이 쉬어지면 그것이 지혜로운 거여.

 

꾸정물이 따로 있고, 말간 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 찌꺼기가 가라앉으면 맑아지거든.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밤이 따로 있고, 낮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밝아지면 어두운 것은 없어지는 것이여.

 

불 켜버리면 방안이, 캄캄했던 방이 환해지거든. 그러면 어두운 것이 어디 병속으로 들어가거나, 두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에요. 어디로 가고 오는 것이 없는 것이여.

 

밝아졌다 하면은 어두운 것은 찰나에 그냥 없어지는 것이지, 밝은 것이 오니까 어두운 것이 그냥 꼼짝을 못하고 저 마루 밑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에요.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에요.

 

참선을 하면 바로 그 어리석은 생각이 없어지는 것이여, 그 지혜이거든.(28분9초~45분3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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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득력(得力) ; ①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 ②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번뇌(煩惱) : 망념(妄念)이라고도 하는데,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정신작용의 총칭이나, 이곳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 이외의 모든 생각을 말함.
*밀밀면면(密密綿綿) : 면밀(綿密)이란 말을 거듭하여 뜻을 강조한 것으로 길게 계속해서 끊어지지 않는 것。 정밀하게 이어져서 끊어지지 않는 모습.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죔.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칠통(桶)을 타파(打破) ;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식(識) ; 오온(五蘊)의 하나. 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능엄경(楞嚴經) 변마장(辨魔障) ; 능엄경 조도분(助道分)에 있는, 수행도상에 있어 나타날 수 있는, 오음(五陰-색수상행식 色受想行識)이 녹아 없어질 때에 나타나는 50가지 마장(魔障)을 밝혀, 수행자들이 사특한 길에 떨어지지 않게 한 부처님 가르침.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용화선원刊) p64.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망신(亡身) ; 말이나 행동 잘못하여 자기 지위, 명예, 체면 따위 손상함.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 ‘비’는 구()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천하없이(天下없이) 세상에 그런 예가 다시없을 정도.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팔자(八字) ; 사람의 한평생의 운수. 사주팔자에서 유래한 말로, 사람이 태어난 해와 달과 날과 시간을 간지(干支)로 나타내면 여덟 글자가 되는데, 이 속에 일생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본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2)
 
*관상(觀相)수명이나 운명 따위와 관련이 있다고 믿는 사람의 김새얼굴 모습또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의 운명성격수명 따위를 판단하는 .
*호식(食)사람 에게 잡아먹힘.
*사주(四柱) ;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의 네 간지(干支). 또는 이에 근거하여 사람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방법.

*장사(壯士)기개  아주  사람.

*범접( 범할 범,접할 접) ; 가까이 다가가 함부로 건드리거나 접촉함.

*귀후지개 ; ‘귀이개(귓구멍   때, 귀지를 파내는 도구)’의 사투리.

*뼉다구 ; ‘뼈다귀’의 사투리.

*귀창 ; ‘귀청(귓구멍 안쪽에 있는 타원형의 반투명한 로, 공기의 진동을 속귀 쪽으로 전달하여 들을 수 있게 하여 준다)’의 사투리.

*족치다 ; (어떤 사람 다른 사람) 견딜 정도 몹시 괴롭히거나 다그치다.

*인자 ; ‘이제(바로 이때, 지금부터—지나간 와 단절된 느낌을 준다)’의 사투리.

*무방(無妨)하다[연결 어미 ‘-어도 함께 쓰여](사람 어찌하여도)거리낄  없이 괜찮다.

*독자(子) ; ①다른 자식 없이  하나 아들. ②형제자매 없는 사람.

*영특(英特)하다 ; (사람)남달리 똑똑하고 영리하다.

*일고(一高) ; 광주제일고등학교(光州第一高等學校). 광주일고(光州一高)로도 불리우는 호남 지역의 전통 명문 고등학교.

*쪽집게 ; ‘족집게(어떤 사실 정확하게 지적하여 내거나  알아맞히는 능력 가진 사람)’의 사투리.

*괘(卦) ; 점괘(占卦, 을 쳐서 나오는  를 풀이하여 길흉을 판단한다).

*직사(直死) ; 즉사(卽死, 그 자리에서 바로 죽음).

*실화(實話)실제로 있었던  대한 이야기.

*(게송) ‘三途苦本因何起  只是多生貪愛情’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낚수 ; ‘낚시’의 사투리.

*낚수밥 ; 낚시 미끼.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꾸정물 ; 구정물(무엇 빨거나 씻거나 하여 더러워진 물).

*말갛다 ; ①(무엇)산뜻하게 맑고 깨끗하다. ②()맑고 생기 있다. ③(액체)진하지 않고 매우 묽다. ④(정신이나 의식)분명하고 또렷하다.

*두지 ; ‘뒤주’의 사투리.  따위의 곡식 담아 두는 세간(집안 살림 쓰는 온갖 물건) 하나. 나무 궤짝같이 만드는데,  기둥 짧은  있으며 뚜껑 절반 앞쪽  된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문 듣는 법2015. 1. 10. 11:34

§(112) 법문을 옳게 듣는 길 /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 / ‘딴 생각[別念]’해서는 안됨 / 공부가 순일하게 된 때에 잘 다잡이 해야 / 칠통(漆桶) 타파(打破).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조사(祖師) 공안상에 절대로 따져서 알려고 한다든지, 분별심으로 짐작을 한다든지, 더듬어 들어가는 그러한 식의 참선은 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조금도 ‘딴 생각[別念]’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겁을 내지도 말고, 걱정도 내지도 말고, 좋아하지도 말고, 다못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생각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뿐인 것입니다.


**송담스님(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 (용112)

 

약 18분.

 


조실 스님의 법문 가운데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우렁찬 음성으로 최상승 법문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따지고 분별(分別)하고 그렇게 해 가지고는 도저히 이해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아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마치 장님이 코끼리 구경한 것 같고 또 귀머거리가 음악을 감상한 것 같아서,
한 시간을 통해서 들어도 대관절 내가 무슨 얘기를 들었는가? 무슨 법문을 들었는가? 주욱 종합을 해 보아도 도대체 알 수가 없는 그러한 느낌이 들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그 뜻은 이해를 못한다 하더라도, 그 법문을 들어서 귀에만 지내가더라도 그 인연으로 해서 무량겁 업장(業障)이 소멸이 되고,

그 법문을 당장은 이해가 안 가지만 그 법문을 정성스럽게 듣고, 듣는 가운데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이뭣고?’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무엇인고?’
자기의 본참화두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그 화두를 생각 생각이 간절한 의심으로 관조해 나간다고 하면은,

오히려 그 법문 내용을 소상하게 잘 이해를 해서 ‘아하! 이런 말씀이로구나. 이런 말씀이로구나’ 이렇게 이해를 하면서 들은 사람보다도, ‘도대체 무슨 말씀인가?’ 그 뜻을 알 수 없는 그 마음으로 화두(話頭)를 들어가는 사람이 훨씬 더 법문을 잘 들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최상승 법문을 옳게 듣는 길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꽃을 떠억 들어 보임으로서 법을 전하신 ‘영산회상(靈山會上)의 거렴화(擧拈花)’
또 다자탑전에서 자리를, 누더기를 입은 제자 가섭존자에게 자리를 노나서 앉히시는 ‘다자탑전(多子塔前)의 분반좌(分半座), 또 열반(涅槃)하셔서 곽 밖으로 두 다리를 써억 내미시는 ’곽시쌍부(槨示雙趺)‘ 이렇게 해서 3차례에 걸쳐서 법(法)을 전(傳)하신 법문을 하셨습니다.

영산회상에 꽃을 드는 도리나, 다자탑에서 자리를 노나 앉으신 것이나, 또 열반회상에서 곽(槨) 밖에 두 다리를 내보이시는 도리가 아무리 이론적으로 따져서 설명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참 도리'가 아니고,

자기 나름대로 교리적으로 이론적으로 따져서 ‘아! 이것은 이러한 뜻이로구나’ ‘영산회상에서 꽃을 드신 뜻은 이것은 바로 불교의 진여(眞如)의 체(體)를 전하시고 또 분반좌 하신 것은 용(用)을 전하시고, 곽시쌍부 하신 것은, 체와 용을 한목 전하신 것이다.’
이런 등속(等屬)으로 아무리 따져서 수긍(首肯)을 해봤자 그것은 중생의 사량심으로, 오히려 자기 자신의 깨끗한 마음을 더럽히게 하는 결과 밖에는 되지 아니한 것입니다. 하물며 그것이 참다운 진리가 될 까닭은 더군다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조사(祖師) 공안상에 절대로 따져서 알려고 한다든지, 분별심으로 짐작을 한다든지, 더듬어 들어가는 그러한 식의 참선은 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가끔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공부를 해 나가는데 있어서 어서 깨닫기를 바란다든지, 이래가지고서는 공부를 기껏 잘해 나가다 중요한 고비에 있어서 자기의 공부를 그르치는 게 되는 것입니다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여러 가지 공안이 있지만 반드시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지도 받은 한 공안에 일여(一如)하게 참구(參究)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처음에는 곧 잘되어갑니다. ‘이대로 해가면 얼마 안가면은 득력(得力)을 할 수 있겠거니’ 이리 생각하고, 한 철, 두 철을 지내다보면 영 옛날보다도 훨씬 더 공부가 잘 안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번뇌 망상이 더 잘 퍼일어나고 영 자리가 잡히지를 않고 이렇게 해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러한 경우라 하더라도 조금도 번뇌심을 내지 말고 심호흡을 하면서 착실히, 착실히 공부를 다져나가면 그렇게 해서 한 고비를 넘기면은 다시 또 수월하게 공부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수월하게 공부가 화두가 잘 일여하게 들리고 잘되어간다 하더라도 조금도 기뻐하는 생각을 내지 말 것입니다.
기뻐하는 생각 내면 벌써 그것은 이미 화두가 아니기 때문에, 기뻐하는 그러한 번뇌심에 끌려들어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기뻐하지도 말고 또 잘 안된다고 해서 번뇌심(煩惱心)도 내지 말 것입니다. 이것이 공부를 지어나가는데 있어서 아주 요긴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 애를 써서 밀밀면면(密密綿綿)하게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공부를 다잽이를 해나가면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들려고 해도 금방 도망가고, 금방 딴 생각이 들어오고 그랬던 것이, 자꾸자꾸 해가면은 나중에는 헐려고 안 해도 화두가 떠억 들어지게 되면서 시간이 한 시간, 두 시간이 언제 지내간지 모르게 시간이 지내가고,
그때는 다리가 저린 것도 없고, 몸이 괴로운 것도 없고, 가슴이 답답한 것도 없고, 정신도 깨끗하고 자기가 지금 어디에 앉아있다고 하는 그것마저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몸뚱이마저도 의식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이 깨끗하고 조용하고 편안하고 싱그럽고 이것은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화두는 그런 가운데 너무 조용하고, 너무 깨끗하고, 너무 편안해서, 까딱하면 화두를 그때 망각(忘却)을 하는 수가 있습니다. 절대로 그러한 경지에서 화두를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고 한 그 가운데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깨끗하게 독로(獨露)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곳에서 잠깐이라도 화두를 놓쳐버리고 ‘아! 좋구나. 이러한 경지로서 계속해서 나갔으면, 이럴 때 어떤 선지식이 툭 깨닫게 해주셨으면, 이러다가 빨리 깨달았으면’ 이러한 생각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이러다가 내가 까딱하면 미치면 어찌할고’ 별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중요한 고비에서 그 천길만길 되는 길를 간신히 간신히 올라가 가지고, 발 한번 삐끗해 가지고 천길만길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조금도 ‘딴 생각[別念]’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겁을 내지도 말고, 걱정도 내지도 말고, 좋아하지도 말고, 다못 알 수 없는 생각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뿐인 것입니다.


이러한 경지에서 정진을 하면은 옆에 사람들도 다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하! 저이가 지금 공부가 순일(純一)하게 되어가는구나’ 알게 되기 때문에 대중 가운데에 그렇게 공부가 되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입승(立繩) 스님을 비롯해서 좌우에서 서로서로 잘 보호를 해줘야 합니다.

대중 가운데에는 혹 ‘지가 공부한 척 하고 그런다’고 아주 뒤에서 수근수근하고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만은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내가 언제 그렇게 공부가 또 순일하게 되어 갈 때가 있을런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가 순일하게 되어 갈 때 주위에서 잘 보호를 해주고, 자기도 그럴 때에 아주 조심스럽게 그 공부를 잘 보호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렇게 나가면 나중에는 일어서도 화두가 고대로 있고,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고대로 있고, 똥을 눌 때도 고대로 있고, 천만 명이 우글거리는 시장 속에 들어가도 조금도 화두가 흐트러지지를 아니하고, 딴 생각을 일부러 좀 할려고 해도 딴 생각이 되지를 않고 이러한 경지에까지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머지않아서 칠통(漆桶)을 타파(打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가 그렇게 순일하게 된 때에 잘 다잡이를 해야지, 그때에 조심성 없이 또 좌우에서 방해를 친다든지 보호를 안 해가지고 그러한 경지(境地)가 깨져버리면 나중에는 1년, 2년, 3년을 애를 써도 여간해서 다시 또 그러한 경지가 돌아오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여법(如法)하게 알뜰히 정진을 하면 누구라도 반드시 그러한 경지가 오는 것입니다.(처음~17분3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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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지내가다 ; '지나가다'의 사투리.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삼처전심(三處傳心) ; 세존이 가섭(迦葉)존자에게 마음-선(禪)의 등불을 따로 전했다는 세 곳.
세 곳이란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다자탑전분반좌 多子塔前分半座)이 첫째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영산회상거염화 靈山會上擧拈花)이 둘째요,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사라쌍수하곽시쌍부 沙羅雙樹下槨示雙趺)이 세째이다.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
다자탑(pahuputraka)은 중인도 비사리(毘舍離Vaisali)성 서북쪽에 있다。이 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어떤 장자(長者)가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아 이룬 뒤에, 그 아들 딸 육십 명이 아버지가 공부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탑을 쌓았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그 곳에서 설법하실 때에 가섭존자가 누더기를 걸치고 뒤늦게 참석하자, 여러 제자들이 그를 낮보았다。이에 부처님께서 앉으셨던 자리를 나누어 두 분이 함께 앉으셨다 한다.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
범어의  Grdhrakuta를 음대로 써서 기사굴산(耆闍崛山)이라 하고, 뜻으로 번역하여 영취산(靈鷲山) • 취봉(鷲峰) 또는 영산(靈山)이라고만 한다。그 산 모양이 독수리 같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그 산 위에 독수리가 많았던 탓이라고도 한다.
이 산은 중인도 마갈타(摩竭陀 Magadha)의 서울 왕사성(王舍城 Raja-grha) 동북쪽 십 리에 있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이 곳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부처님은 그 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니, 백만 대중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다.
이에 부처님은 『바른 법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언하셨다 한다.
*사라쌍수하곽시쌍부(沙羅雙樹下槨示雙趺) : 사라쌍수 아래에서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심.
부처님께서 북부 인도의 구시라(拘尸羅 Kusinagara)성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Ajitavati)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서 있는 사이에 침대를 놓게 하고 열반에 드시니, 그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그리하여 학의 숲(鶴林, 鶴樹)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부처님의 몸은 금으로 만든 관에 모시고 다시 구리로 지은 덧곽에 모셔 두었는데, 먼 곳에 갔다가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7일 만에 당도한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관을 3번 돌고 3번 절하매, 관곽 속으로부터 두 발을 내어 보이셨다 한다.
*노나다 ; ‘나누다’의 사투리.
*등속(等屬) ; 나열한 사물과 같은 종류의 것들을 몰아서 이르는 말.
*수긍(首肯) ; 옳다고 인정함. 옳게 여김.
*조리(條理) ; 말이나 글 또는 일이나 행동에서 앞뒤가 들어맞고 체계가 서는 갈피.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참고]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헌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허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허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헐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허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허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참고] 송담스님 법문(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그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구중현(句中玄)·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득소위족(得少爲足) ;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을 삼는다.
*공견(空見) ; 공(空)에 집착하여 일으키는 그릇된 견해. 공(空)을 허무론적인 견해로 이해하는 것으로, 이에 따르면 인과(因果)의 도리를 비롯한 모든 것의 존재가 부정된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득력(得力) ; ①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 ②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번뇌(煩惱) : 망념(妄念)이라고도 하는데,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정신작용의 총칭이나, 이곳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 이외의 모든 생각을 말함.
*밀밀면면(密密綿綿) : 면밀(綿密)이란 말을 거듭하여 뜻을 강조한 것으로 길게 계속해서 끊어지지 않는 것。 정밀하게 이어져서 끊어지지 않는 모습.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죔.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칠통(漆桶)을 타파(打破) ;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Posted by 닥공닥정

 

 

§(세등68) (게송)개개면전명월백~ / 의심관(疑心觀) /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68) - 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에서. (세등68)

 

약 21분.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이요  인인각하청풍불(人人脚下清風拂)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타파경래무영적(打破鏡來無影跡)하면  일성제조상화지(一聲啼鳥上花枝)니라
나무~아미타불~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이요. 모든 사람 사람 얼굴 앞에는 밝은 달이 희고,
인인각하청풍불(人人脚下清風拂)이로구나. 사람 사람의 다리 아래는 맑은 바람이 불고 있다.

타파경래무영적(打破鏡來無影跡)하면, 거울을 타파해서 그림자와 자취가 없으면, 일성제조상화지(一聲啼鳥上花枝)다. 한 소리 우는 새가 꽃가지에 오르더라.


개개면전명월백(箇箇面前明月白)  인인각하청풍불(人人脚下清風拂)은
부처님이나 조사나 모든 성현, 우리 모두 범부, 범성(凡聖)을 막론하고 낱낱이 다 본구재 도리(本具在道理), 새로 닦아서 깨달을 것도 없이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갖추어 있는 그 도리가 있다.

그것을 본구재 도리(本具在道理)라고도 하고,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도 하고, 본각대지(本覺大智)라고도 하는데, 본래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자성(自性)의 법신불(法身佛)을 다 가지고 있지마는 왜 우리는 이렇게 중생의 탈을 쓰고서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면서 생사고(生死苦)를 받고 있는가?

까닭 없이 한 생각 미(迷)해 가지고 멀쩡한 탈을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오늘날까지 오면서 그 탈을 바꿔 쓰면서, 여기서 나서 저기서 죽고, 저기서 나서 여기서 죽기를 수없이 해왔어.

그 무량겁을 탈을 바꿔 쓰면서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해오면서, 우리에는 그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한 거울을 가지고 있는데, 그 거울 속에 그 동안에 겪어오는 모든 일들 그 거울 속에 다 녹화(錄畵)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제8 아뢰야식(第八 阿賴耶識)이라 하는 것이여.
아뢰야식(阿賴耶識) 속에는 무량겁을 두고 오늘날까지 오면서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모든 사실들이 터럭끝 만한 작은 일로부터서 이 세계가 파괴되는 그런 큰일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그 속에 다 녹화·녹음이 되어 있는 거여.

그 거울을 타파(打破)해 버려라.
그 거울 속에 녹화되고 녹음이 되어 있는 것이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면서 어떠한 인연을 만나면은 거기서 녹화된 것이 밖으로 이렇게 현행(現行)을 하는 것이여. 밖으로 그것이 이렇게 나와.
행동으로 나타나고, 생각으로 나타나고, 눈을 통해서 나타나고, 귀를 통해서 나타나고, 그 현행을 하면서 동시에 또 새로운 사실들이 또 녹화가 되고 녹음이 돼.

녹화·녹음이 새로 되는 것을 훈습(薰習)이라 그러고, 또 훈습한 것이 밖으로 또 나타난 것을 현행이라 그러는데, 현행(現行)과 훈습(薰習)이 동시에 돌아가는 거여. 이것이 바로 우리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모습이여.

활구참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통해서 공안(公案)을 타파해서 이 거울을 갖다가 여지없이  깨트려버려서 흔적조차도 없어질 때(打破鏡來無影跡), 일성제조상화지(一聲啼鳥上花枝)다, 한 소리 우는 새가 꽃가지에 오르더라.

‘생사 없는 도리’를 간단한 한 구절로 표현을 했지만, 새가 꽃가지에 올라와서 한 소리 우는 것이 그것이 평범한 사실이지만,
깨달은 도리를 말로써 표현할 수 없지마는 표현할 수 없는 바를 이렇게 고인(古人)은 표현을 한 것입니다.

이 평범한 한 구절이 깨달은 사람은 여지없이 그 깨달은 경지를 바로 볼 수가 있지만은, 깨닫지 못한 사람이 볼 때에는 새가 꽃가지에 올라서 소리내어 우는 것이 하나의 평범한 사실에 불과한 것이여.
이 평범한 새 한 마리가 꽃가지에 올라가서 그 우는 것을 여기에다가 사량분별(思量分別)을 붙여서 이러쿵저러쿵 자기의 소견을 붙이고 사량분별을 붙인다면, 그 깨달은 도리를 표현한 이 법(法)이 완전히 죽은 소리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출가해서 스승을 찾아서 바른 깨달음에 이르는 활구참선! 활구참선(活句參禪)에 의해서 이 화택(火宅)으로부터 해탈하는 법문을 고구정녕(苦口叮嚀)한 육성으로 들었습니다.

활구참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본참공안에 대해서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지는 것이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말로 따지고, 또 더듬어 들어가고, 그렇게 해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래가지고 ‘아하 바로 이 뜻이로구나.’ 이렇게 해서 사량분별로 공안을 따지는 거여. 그 '따져서는 안 된다'고 천 번 만 번 법문을 들어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따지고 앉았어.

특히 두려운 것은 한 철,두 철, 세 철 열심히 화두를 참구(參究)를 하는데, ‘이무엇고?’ ‘이뭣고?’ 마삼근(麻三斤)을 하는 사람은 ‘어째서 마삼근이라 했는고?’ 끝없이 끊임없이 일구월심(日久月深) 이렇게 해 나가면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다 보면,
그렇게 번뇌·망상이 일어나던 것이 번뇌·망상은 차츰차츰 줄어지고, 화두를 그렇게 들려고 해도 화두는 잘 안 들렸던 것이 차츰차츰 화두가 들어지기 시작해. 화두가 차츰차츰 들어지는 시간이 불어남에 따라서 망상은 차츰차츰 줄어진다 그말이여.

그래서 몸도 편안하고, 마음도 편안하고, 마음이 고요하고, 깨끗하고,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에서 기쁨을 아니 느낄 수가 없어. 참 그 고요하고, 깨끗하고, 편안한 경계를 무어라고 표현할 수가 없어.

‘아! 이것이 바로 법희선열(法喜禪悅)이라 하는 것이로구나.’ ‘이것이 바로 법열(法悅)이라 하는 것이로구나.’ ‘이것이 바로 도(道)에 낙(樂)이라 하는 것이로구나.’ ‘이것이 바로 완전하게만 된다면은 이것이 생사해탈(生死解脫)이로구나.’ 그래 가지고 이런 상태로 계속해서 그런 상태에 머물러 있기를 바래는 것입니다.

생각을 내서 바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중에 그 고요하고 깨끗한 경지에 빠져서 그 고요하고 깨끗한 것을 스스로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리라 해서가 아니라, 너무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고 그러니까, 그냥 그 고요한 경지에 빠져 들어가서 그것을 떠억 즐기고 있다 그말이여.

거기에서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이 주의할 바는 아무리 고요하고, 아무리 편안하고, 아무리 맑고 깨끗하다 하드라도 '깨끗하다, 편안하다, 맑고 고요하다' 그런 데에 탐착해 가지고 화두를 잃어버리는 사실.
화두를 잃어버린다면 거기에서 벌써 공부는 삐뚤어져 버린 것이여. 거기에서 저 죽을 구덩이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여. 사견(邪見)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여.

그렇게 고요하고 깨끗할수록에 그런 데에는 조금도 생각을 두지 말고, 오직 자기의 본참화두!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그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잡드리를 해 나가야 되는 것이여.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힘을 쓰면서 용을 쓰면서,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허고 막 힘을 쓰면서 허라는 게 아니여.
처음에 공부를 헐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허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허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허고 자주자주 들을 수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 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 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아니 되는 거여.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 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 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일 분의 백천 분의 일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할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처음~20분4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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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개개면전명월백~’ ; [소요당집 逍遙堂集] (한글대장경169, 동국대학교역경원) p100 ‘순 상인(淳上人)에게’ 게송 참고.
*범성(凡聖) ; 범인(凡人)과 성인(聖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육도윤회(六途輪廻) ; 생사윤회(生死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겁(劫) ; (산) kalpa의 음사.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긴 시간.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참고] 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여덟 가지 마음 작용.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팔식(八識)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오식(前五識)이라 하고, 第六 意識, 第七 末那識, 第八 阿賴耶識이라 한다.
*현행(現行) ;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저장되어 있는 종자(種子)가 변화하고 성숙하여 일어나는 인식 작용.
[참고]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훈(熏 연기낄 훈) ; 훈습(熏習 , 薰習) ① 어떤 성질에 물듦. 어떤 기운이 배어 듦. ② 산스크리트어 vāsanā 마치 향 냄새가 옷에 스며들 듯, 몸과 말과 뜻으로 일으킨 행위의 기운과 생각이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잠재력으로 이식되는 현상.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공안(公案, 화두)을 타파(打破)해서 ;
[참고]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사량분별(思量分別) ; 생각하여(思) 헤아려서(量) 종류에 따라 나누어 가름(分別).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화택(火宅) ; 번뇌와 괴로움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불에 타고 있는 집에 비유한 말. 불길에 휩싸인 무서운 세계. 법화경에 나오는 「三界無安猶如火宅」라는 구절에 근거.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기쁨과 선정(禪定)에 들어가 마음이 즐거운 것.
*법열(法悅)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거나 배우는 기쁨. ②진리를 깨달았을 때 가슴에 잔잔히 사무치는 기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이뭣고(是甚麼) / 판치생모(板齒生毛) / 마삼근(麻三斤)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잡드리(잡두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의단(疑團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관조(觀照) ; 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함.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1~62.
〇工夫는  *如調絃之法하야  緊緩을  得其中이니,  勤則近執着하고  忘則落無明하리니,  惺惺歷歷하고  密密綿綿이니라.


공부는 거문고의 줄을 고르듯 하여 팽팽하고 느슨함이 알맞아야 하니, 너무 애쓰면 병 나기 쉽고 잊어버리면 무명에 떨어지게 된다。성성하고 역력하게 하면서도 미세하게 끊임없이 하여야 하느니라。

<註解>
彈琴者曰,  緩急이  得中한  然後에야  清音이  普矣라 하니,  工夫도  亦如此하야  急則動血囊하고,  忘則入鬼窟이니,  不徐不疾하야사  妙在其中이니라.


거문고를 타는 자가 말하기를 '그 줄의 느슨하고 팽팽함이 알맞은 뒤라야 아름다운 소리가 잘 난다'고 한다。공부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조급히 하면 혈기가 고르지 못한 병이 나고, 잊어버리면 흐리멍덩하여 귀신의 굴로 들어가게 된다。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되면 오묘함이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제물에 ; 저 혼자 스스로의 바람에.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 거사(龐居士)의 게송이 아래와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통광 스님 역주 ‘고봉화상선요•어록’ p37,46에서)
*선방(禪房) ; 참선(參禪)하는 방.
*공부처(工夫處) ; 배우거나 수행하는 곳.

Posted by 닥공닥정
하심 팔풍 경계대처2014. 1. 18. 14:08

§ 선방에 나온 수행자라면 말을 많이 해서는 안 됩니다 / 입차문래(入此門來) 막존지해(莫存知解) / (게송) ‘종조난설인장단~’

 

**송담스님(No.582) - 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65분)에서. (용582)

 

약 10분.

 


우리가 가장 주의할 것은 말을 많이 하지 말아야 해.

아무리 신심이 있고 정진을 하려고 해도 말을 많이 하다보면 정진하는 마음이 흐트러지게 마련이고,
화두가 성성적적(惺惺寂寂)하고 밀밀면면(密密綿綿)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이 된 그런 경지에서 무슨 말이 잡담(雜談)이 나오며,
잡담하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걸망을 지고 선방에 나온 수행자라면 수행자답게 말을 많이 해서는 안 됩니다.

뿐만이 아니라 자기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보다 앞서가는 선배도 있을 것이고, 자기보다 뒤따라오는 후배도 있을 것이니,
첫째는 자기 자신을 위하고 선배에 대한 도리를 생각해서도 그렇고, 후배를 위해서라도 말을 많이 해서는 안 됩니다.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우리 선방에서는 교리를 가지고 따지는 곳이 아니고, 무슨 조사 어록(祖師語錄)을 가지고 따지는 곳이 아니고,
하물며 인도 불교가 어떻고, 티벳트 불교가 어떻고, 무슨 불교 뭐 그런 것을 이론적으로 토론하는 세미나가 열리는 그런 곳도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가 불교 경전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건, 조사 어록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건, 무슨 인도 불교나 티벳트 불교에 대해서 일본 불교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 해도, 그러한 것을 여기서 말하는 단계가 아니여.

자기가 포교사(布敎師)가 되어 가지고 어느 절에 가서 신도들을 모여 놓고 설교를 하는 마당에서는 그런 세계 각국의 불교에 대해서 또는 각 종파에 대해서 얼마든지 웅변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용화선원에 와서는 “입차문래(入此門來)된 막존지해(莫存知解)니라.” “이 문중에 들어와서는 지해(知解)를 두지 말아라.”

일단 들어왔으면 전강 조실스님의 녹음법문을 듣고 그 법문에 의지해서 묵묵히 바보가 되어서,
몸은 냄새가 안날 만큼 씻고, 옷도 냄새가 안날 만큼 깨끗이 씻어서 입고, 그리고서는 공양은 인연 따라서 공양을 들고, 그리고 그분 속에는 바보인지, 천치인지, 농판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똑똑한 체하고 잘난 체하려면 세속에 나가서 국회의원도 나가고, 도의원도 나가고, 도지사도 허고, 장관도 하지 이 문중에 들어와 가지고,
부모와 형제와 고향과 가정을 다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이 도(道) 문중에 들어와 가지고,
어디 가서 잘난 체하고 똑똑한 체 할 때가 없어서 여기에 들어와서 입을 벌려 함부로 그러냐.

그래서 어느 선방에 가면 득도자출(得道者出)이다. ‘도를 얻은 자는 나갈지니라.’ 딱 써 붙인 데도 있어.
깨달았으면 중생 교화하러 나가지, 뭣하러 남의 선방에 댕기면서 다른 사람 공부하는데 방해를 치느냐.

절에 들어와서 선방에 들어와서 똑똑한 체 하고 잘난 체 한 사람은 그게 진짜 똑똑한 것이 아니여.

똑똑할 때 가서 똑똑한 체 해야 남이 알아주고 얻어먹을 것도 생기는 것이지,
선방에 와서 똑똑한 체 해 가지고 무슨 이익이 있으며, 누구를 위해서 똑똑한 체 하느냐 그말이여.


종조난설인장단(終朝亂說人長短)타가  경야혼침낙수면(竟夜昏沈樂睡眠)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여차출가도수시(如此出家徒受施)하면  필어삼계출두난(必於三界出頭難)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종조난설인장단(終朝亂說人長短)타가 경야혼침낙수면(竟夜昏沈樂睡眠)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쓸데없는, 누가 잘하고 못하고, 무엇이 옳고 그르고 그런 잡담을 하다가 밤이 되면 잠에 떨어져.

이렇게 출가해 가지고 공연히 시주것만 소모하면(如此出家徒受施),

필어삼계출두난(必於三界出頭難)이다. 반드시 삼도 고해(苦海)에서 해탈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 선방, 비구선방이나 보살선방이나 시민선방에 그러한 사람이 있어서 내가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열심히 정진하신 그런 참 좋은 도반(道伴)들이 이렇게 모여서 지내기 때문에 원장(院長)으로서는 항상 기쁜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행여나 보통 어느 선방이든지 납월 팔일 용맹정진(勇猛精進) 기간이 지내면 벌써 한철이 다 지나간 것처럼 생각이 해이해져 가지고 해제(解制)가 빨리 돌아왔으면, 해제가 돌아오면 어디를 가야겠다, 어디 절에를 가야겠다.

제주도를 갈까, 설악산을 갈까, 오대산을 갈까, 그러한 생각으로 걸망 귀신이 들썩들썩 한다고 그런 말이 옛날부터서 있어 왔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해제까지의 기간을 지내온 기간보다도 훨씬 더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어 가지고 거의 묵언을 하면서 가행정진(加行精進)으로서 이 삼동(三冬) 안거를 알뜰하게 정진해 주실 것을 부탁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 뿐입니다.

이것으로서 납월 팔일에, 원장으로서 여러 형제 자매 도반들에게 노바심(老婆心)에서 우러나와서 간곡한 말씀을 드리고 내려갑니다.(54분41초~64분36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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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밀밀면면(密密綿綿) : 면밀(綿密)이란 말을 거듭하여 뜻을 강조한 것으로 길게 계속해서 끊어지지 않는 것。 정밀하게 이어져서 끊어지지 않는 모습
*의단독로(疑團獨露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때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포교사(布敎師) ; 불교의 교법을 널리 세상에 알리는 스님이나 신도.
*입차문래(入此門來) 막존지해(莫存知解)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220 참고.
〇 神光이  不昧하야  萬古徽猷로다  入此門來에  莫存知解어다
 거룩한 빛 어둡지 않아 만고에 밝고나. 이 문 안에 들어오매 알음알이를 두지 말지어다.

.....(중략) 知解二字는  佛法之大害故로  特擧而終之하니  荷澤神會禪師가  不得爲曹溪嫡子者는 以此也라
지해(知解) 두 글자는 불법에 큰 해독이 되므로 특별히 들어서 끝을 마치니 하택신회선사가 조계의 적자가 못 됨은 이 때문이다.

*지해(知解) ; 참선 수행을 통해 최상의 지혜를 깨달으려 하지 않고, 불교를 이론적으로 연구하거나 지식으로 해석하는 것.
*천치(天癡, 天痴) ; ①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선천적으로 정신 작용이 완전하지 못하여 어리석고 못난 사람.
*농판 ; ‘멍청이(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의 사투리(전남).
*(게송) ‘종조난설인장단~’ ; [초발심자경문]의 ‘자경문(自警文)’ 게송.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가행정진(加行精進) ; 어떤 일정한 기간에 일상생활보다도 좌선정진(坐禪精進)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함.
*납월 팔일(臘月八日) ;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 성도일(成道日).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노바심(老婆心 노파심)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 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 친절심(親切心). 파심(婆心)이라고도 함.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자세 호흡)2013. 11. 30. 17:51

§(088) 자세 / 단전호흡.

 

**송담스님(No.088) - (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용088)

 

약 20분.

 


§ 자세
첫째, 이 참선은 자세를 바르게 가져라.
둘째는, 호흡을 바르게 해라.
셋째는 생각을 옳게 지어 가라.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가부좌. 오른 다리를 구부려서 왼쪽 무릎 위에다가 올려놓고, 또 왼쪽 다리를 구부려서 오른쪽 무릎 위에다가 올려놓습니다.
지금 해 보셔도 좋습니다. 다리가 굳어서 잘 안 되는 분도 있을 줄 압니다만 자꾸 해 버릇하면 차츰차츰 되는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일생 동안 의자 생활만 해서 이 책상다리를 할 수 없을 만큼 굳어져 있지마는 그 사람들도 얼마 동안만 연습하면 가부좌를 우리보다도 더 오랫동안 잘 하는 것을 봤습니다.

가부좌하는 것이 참선의 기본 자세입니다. 자꾸 익혀서 되도록 하면은 그 굳어져 있던 심줄이 서서히 늘어짐으로 해서 건강에도 좋은 것이니까 틈틈이 가부좌를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꼭 가부좌를 해야만 참선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반가부좌를 해도 좋습니다.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에다 올려놓고 하다가 다리가 저리거나 아프면 발을 바꾸어 놓고 반가부좌를 해도 무방합니다.

다리를 그렇게 한 다음에는, 오른 손바닥을 위로 해서 왼쪽 발 복숭아뼈 위에다가 올려놓고, 그 다음에 왼손을 펴서 오른손 위에다가 포개 놓은 다음, 양 엄지손가락 끝을 가볍게 맞댑니다.
너무 힘 주어 맞대려고 하지 말고, 또 떨어지지도 않도록 하되 엄지손의 모습이 아주 곱게 되어야 합니다. 위로 삐쭉 올라가거나 삐뚜러지지 않아야 합니다.

손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지금 그 사람의 생각이 안정이 되었나, 어떤 망상 속에서 곤두박질을 치고 있나, 또는 졸음에 빠져 있느냐, 그런 것을 이 손 모습만 보고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참 딴 생각에 골몰해 있을 때에는 손에 힘이 들어가서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두서없이 이 생각 저 생각하고 있을 때는 손을 가지고 장난하기도 하고, 손이 삐끄러져서 떨어지기도 합니다. 이 손만 보면은 그 사람이 옳게 화두를 들고 있나, 안 들고 있나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손 모습을 잘 갖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앉은 자세가 뒤로 넘어 가거나, 앞으로 기울어지거나, 좌우로 기울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두 귀는 어깨 위에, 수직으로 놓이도록 하고 고개도 전후좌우로 기울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코끝은 단전 위에 수직선상에 놓이도록 합니다. 몸도 바르게 해야 하고, 고개도 바르게 해야 한다, 그 말입니다.

그리고 이는 어금니부터 지긋이 물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가 대는 것입니다.

눈은 평상으로 뜹니다. 너무 뚝 부릅뜨면은 생각이 산만해지기가 쉽고, 너무 가늘게 뜨면은 졸음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성성하고 적적(惺惺寂寂)하며, 적적하면서 성성(寂寂惺惺)해야 하므로 처음 시작할 때부터 눈을 평상으로 뜨고 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합니다.

눈은 평상으로 뜨되, 자기 앉은자리로부터 3미터 전방에다 시선을 떨구면 되는 것입니다. ‘시선을 떨군다’ 하는 것은 보려고 하면은 거기가 보이도록 하라는 것이지 3미터 지점의 어떤 한 점을 의식적으로 응시하라, 그런 것은 아닙니다.

 



§ 단전호흡

우리의 의식은 오직 배꼽 밑에 일촌 삼푼에다가 집중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집중을 하느냐? 보통 가슴으로 호흡을 하지만, 참선하는 사람은 단전(丹田)으로 호흡하는 것입니다.

숨을 들이마시되 너무 가뜩 들이마시지 말고, 8부쯤만 들이마시되, 숨을 들이마심에 따라 단전 부위가 볼록해지고,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단전이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온 의식이 거기에 집중이 돼야 합니다.

너무 무리하게 잔뜩 들이마신다든지, 들이마신 상태에서 너무 오래 억지로 참는다든지 하면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부작용이 일어나는 수가 있으니까 무리가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단전호흡을 잘하면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피로가 회복이 되며 정신이 안정이 되고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깨끗해지는 것입니다(17분16초~36분4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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回 이 법어는 송담(松潭)스님께서 1978년 10월 1일, 「법련사 불일 청년회」의 청법으로 설하신 내용이며, 스님께서 직접 편집하신 것을 『불일회보』(1988년 6. 7. 8월)에 게재했었던 원고임.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 ‘8부쯤만 들이마시되’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