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精進)2015.11.14 08:02

§(500) (게송)춘종동해남비석~ / 용맹정진이란? / (게송)부운부귀비유의~ / 어려운  당했을 ,  맘대로 안될 ,  마음에 거슬릴 , 화두를 들라.


외형적으로 단식을 하고, 묵언을 하고, 오후불식을 하고, 장좌불와를 하고 그보단 훨씬  참다운 용맹정진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앉았거나 누웠거나 걸어가거나 일을 하거나, 행주좌와간에 어묵동정간에 항상  생각을 단속을 해서 간절한 생각으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한 것이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용맹정진이다.

부처님은 집착심이 없는 것이 바로 부처님이라고 하는, 금강경에도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마는,  생각을 정말 간절하게 알뜰하게 단속을 해야지,  생각을 단속하지 않고 외형적인 데에 집착을 하고 공연히  몸뚱이만을 못살게 구는것으로써 용맹정진을 삼아서는  되겠더라.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떠억 정신을 차리고 인과법을 믿고 화두를 철저하게 들어나가면 자연히 지혜가 떠올라서 사리를 바르게 판단하게 되고 바른 해결책이 열릴 것입니다.

**송담스님(No.500)—93 동안거해제  백일기도 회향(93.02.06)

(1) 약 15분.  (2) 약 12분.

(1)------------------


춘종동해남비석(春從東海南飛錫)하고   추향서산우북방(秋向西山又北方)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삼백육순장요요(三百六旬長擾擾)하면   부지하일도고향(不知何日到故鄉)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춘종동해남비석(春從東海南飛錫)하고  추향서산우북방(秋向西山又北方)이다.

봄에는  동해 쪽으로 가고  동해 쪽에서 남쪽으로 가고, 가을에는  서쪽으로 향했다가  다시  북방으로 간다.


여름철에는 남쪽이 더우니까  오대산이나  북쪽으로 가고, 겨울에는 추우니까  해제 때는 이 산에도 갔다가 저리도 갔다가,  남쪽의 뜨뜻한 데로 범어사나 통도사나 그렇지 않으면 송광사,

결제, 해제, 춘하추동 계절에 따라서 걸망을 지고—참 누가 억지로 붙잡은 사람이 있나, 기어이 오라고 하는 사람이 있나, 걸망 걸머지고 동서남북으로 왔다갔다 하는데 재미를 붙여 노면 세상에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지.


걸망을 지고 돌아다니는 청풍납자(淸風衲子)의 입장에서 보면  그까짓 것이 뭐라고  대통령을 하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선거운동   국회의원을 하려고  광풍이 일어나고,

세상에 명예나 권리나 재산이라고 하는 것은 잠깐 꿈속에서 잠깐 좋다가   버리면 천하에 허망하고  그런 것인데, 그런 사람들을 보면  한편으로 딱하고 불쌍하고 우습고 그렇지.


그런데, 그러면서도 걸망을 지고 그렇게 그럭저럭 그렇게 지내다보면 때로는 용맹정진도 하고 때로는 가행정진도 하고, 공부할려고 애쓴 그런  만고의 모범이  만한 그러한 선객들도 많습니다. 많으나,


개중(個中)에는 그냥 그렇게 아무데도 걸림이 없이 여기서  , 저기서   그게 그냥 운수납자(雲水衲子)로 그렇게 그럭저럭 삼백육십 일을 아무 이렇다  것도 없이 그렇게 왔다갔다 하는 그러한 스님네도 없다고  수는 없습니다.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은 가슴에다 손을 얹고 과연 나도 몽산법어(蒙山法語)나  선가귀감(禪家龜鑑)이나  선문경책에 나오는 고조사(古祖師)들, 고인들이 공부하듯 정말로 그렇게 신명을 바쳐서 하고 있는 선객인가?’

‘그럭저럭 그렇게 지내고 있는가? 그렇게 지내 왔는가?’ 냉정히   반성을   필요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겉으로는 열심히 정진한 것처럼 하지마는 진짜 속속들이 정말 철저하게 정진을  오고 있는가? 삼백육순을 그럭저럭 그렇게 지내다가(三百六旬長擾擾)  어느 날에 우리의 본지고향(本地故鄉)에 돌아갈 수가 있을 것인가?(不知何日到故鄉)

  우리 해제일을 맞이해서 우리  같이   생각해  필요가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용맹정진, 가행정진의 말이 나왔습니다마는 흔히 용맹정진하면은 장좌불와(長坐不臥) 또는 묵언(默言) 또는 일종(一種), 오후불식(午後不食) 또는 단식(斷食), 이런 것들을 흔히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도, 물론 ‘기어코 도업(道業)을 성취해야겠다’고 하는 그러한 발심에서 나온 행동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단식을 하고, 묵언을 하고, 오후불식을 하고, 장좌불와를 하고 그보단 훨씬  참다운 용맹정진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앉았거나 누웠거나 걸어가거나 일을 하거나, 행주좌와간에 어묵동정간에 항상  생각을 단속을 해서 간절한 생각으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한 것이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용맹정진이다 이거거든.


장좌불와하면은 장좌불와한 데에 끄달리고, 묵언을 하면은 묵언하는 데에 끄달리고, 생식이나 단식을 하면은 생식하고 단식하는 데에 끄달리고, 일종을 하고 오후불식을 하면 일종 하고 오후불식하는 데에 끄달리고,

‘평생을 누데기  벌만 가지고 입지, 내가 시은(施恩)을  짓겠다’해 가지고 누덕누덕 누더기를 짓고, 멀쩡한  옷에다가 걸레를 찢어서 갖다가 붙여갖고, 그것 누데기에  집착을 하게 되더라.


부처님은 집착심이 없는 것이 바로 부처님이라고 하는, 금강경에도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마는,

 생각을 정말 간절하게 알뜰하게 단속을 해야지,  생각을 단속하지 않고 외형적인 데에 집착을 하고 공연히  몸뚱이만을 못살게 구는 것으로써 용맹정진을 삼아서는  되겠더라.


산승(山僧)도 그럭저럭 10년을 묵언을  봐서 묵언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정말 정진에 묵언을 해야만 된다고 하는 생각은 안 가지고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하고 잡담을 많이 하고 쓸데없는 데 참견하고,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입을 아주 철사로 꿰매버려야  만한 그러한 사람도 있습니다.



너무 말을 많이 하고 잡담을 많이 하고  가지고 자기도 공부를  하면서 남까지 정진을 방해를 하는 그런 사람은 시한부(時限附)로 묵언을 하는 것도 무방(無妨)하다고 생각하나,

10년이니, 20년이니 내지 평생을 완전 벙어리가 되는 것은전혀  공부에 이익이 없다고는  수가 없으나,  반면으로 많은 불편과 손해도 있고 남에게 첫째 불편을 주고, 백에 열이나 이익이 있으면 구십 정도는 손해도 있다고 나는 생각을 .


그래서 장좌불와도 역시 마찬가지고, 묵언도 역시 마찬가지고, 일종도 역시 마찬가지여.


부처님 당시에는 사시공양(巳時供養) 한끼만을 모다 공양을 하시도록 그렇게 되어 있지마는 지금은 중생근기가 약해서 하루 한끼 먹고는 도저히 허기(虛飢)가 져서 공부를  수가 없어.

그래서 아침도 공양을 하고,  저녁도 약석(藥夕)이라 해서 저녁도 공양해서   공양은 하되 과식을 아니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너무 적게 먹어가지고 기운이 떨어져서도  돼고.


잠도 역시 장좌불와를 하고옛날에  그런 조사도 계시고 그런 스님네도 계시지마는,

다섯 시간,  시간 내지9시에 자고 3시에 일어나면 여섯 시간인데아무리 길어도 여섯 시간을 넘지 말고, 아무리 짧아도  시간은 자야 그래도  건강이 유지가 된다.


그래서 고인이 말씀하시기를 의식주,   가지가 지나치게 작아도 퇴타(退墮)의 인연이 된다 지나치게 너무 지나쳐도 좋지 않고, 지나치게 부족해도 못쓴다 이거거든.


해제를 했으니 마음대로 걸망을 지고 선지식을 찾아갈 수도 있고, 도반을 찾아갈 수도 있고  삼동에 너무 정진에 애를 쓰다 보니 기운이 탈진이 되어가지고 어디 적당한 데 가서 쉬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동서남북 어디를 가든지 가는 걸음걸음이 화두를 들고, 어디 가서 쉬더라도 쉬는  자리에 바로 하루를 쉬면 하루 결제했다’고 생각하고, ‘사흘을 쉬면은 사흘 결제했다’고 생각하고,


비록 허리가 아프면 허리를  잡아서 와선(臥禪)을 하고, 다리가 아프면 다리를  뻗는 한이 있더라도 생각만큼은 터억 구속 없는 가운데 화두를 터억 들어보시라 그말이여.

결제 중에  짜인 법규 하에서 죽비를 치고 입선할  보단, 죽비를 안 치고서 터억 부담 없는 마음으로 화두를 들어보면 한결 공부가   되거든.


어느 산중에 계곡을 지나갈  바위 턱에 걸터앉아서 흘러가는 시냇물을 보면서 화두를 들고, 이제 입춘도 지내고 해서 여기서 저기서 산새가  것입니다. 산새를 들으면서도 터억 화두를   들어보시라 그말이여.(3033~4523)



(2)------------------


부운부귀비유의(浮雲富貴非留意)하고   와각공명기득구(蝸角功名豈得求)리요

나무~아미타불~

춘일쾌청춘수족(春日快晴春睡足)한데   와청산조백반성(臥聽山鳥百般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부운부귀비유의(浮雲富貴非留意)요, 뜬구름 같은 부귀영화에 내가 뜻을 거기에 머무르지 않어.

와각공명기득구(蝸角功名豈得求)리요. 달팽이 뿔과 같은 공명(功名), 명예 같은 것을 어찌 내가 구할까보냐 그거거든.


재색식명수(財色食名壽), 재산이니, 색이니, 명예니, 권리니, 부귀공명이라고 하는 것은 뜬구름과 같은 것이고 달팽이 뿔과 같은 거여.

달팽이는 뿔이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수시로 들랑날랑 들랑달랑 하거든. 뜬구름도 하늘에 허연 구름이 뭉게뭉게 있는  보면 금방 바람에 따라서 이리저리 모양이 변해 가지고 저리 날아가 버린다 그말이여. 하나도 믿을 것이 없어.


달팽이 뿔이 나오니까 오래 있을  같지만 금방 들어가 버려. 들어갔다 나왔다.

부자가 평생 부자고 자손만대에 부자일  같지마는 일생 동안에도 유지가 못하고 그냥 가난뱅이가 되기도 하고, 높은 벼슬을 하던 사람도 금방 없어져 버린다.


 부귀공명이니 그런 것이 믿을 것이 못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없어서도  되겠지마는 그걸 믿을 것도  된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런 것은 형편 따라서 하되 그게 집착함이 없고, 그런 것도 함부로 해서는 아니 되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너무 그런데 집착심을 가지는 것은 뜬구름을 믿는 거와 같고, 달팽이 뿔을 믿는 거와 같아서 마음에  상처만 남겨놓고 떠나버릴 그러헌 것들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높은 벼슬을 하거나,  권리를 누르거나,  재산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런 데에 집착함이 없이 정법을 믿고 정말 참선을 해야 한다 그거거든.


춘일쾌청춘수족(春日快晴春睡足)이여. 봄날이 쾌청하고 따뜻하니 앉으면 떠억 졸음이 오는 그런 계절이 돌아왔다.

와청산조백반성(臥聽山鳥百般聲)이다. 졸음이 오다 보면 떠억 눕고 싶고, 누우면은 온갖 산새들의 노래가 들려오기 마련이다.


뜨뜻하니 졸기 좋다고 해서 졸음에 빠지고, 산새 소리가 아름답다고 해서  노래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확철대오(廓徹大悟)한 그런 걸림이 없는 분상(分上)에는 졸음이 오면은 한숨 자고,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한숨 자고, 산새가 노래 부르면 노래 부르는 속에 온갖 것이  갖추어져 있겠지만,


우리 공안을 들고 정진하는 분상에는 졸음이 오는 가운데에도 화두를 들고, 산새의 노래 소리가 들리고 시냇물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도  속에서도 화두를 떠억 간절히 용맹스럽게 거각(擧却)을  나가야 새소리 듣다가  터지기도 하고, 시냇물 흘러가는 소리를 듣다가도  터질 수도 있다 그거거든.



오늘은 백일기도 회향(廻向)일입니다. 그동안에 구순 안거(九旬安居)에 백일기도를 병행해서  왔습니다.

새해에는 모두 여러분의 가정에  어떠한 장애, 어떠한 어려운 일이라도  봄눈 녹듯이  녹아서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시기를 간절히 기도를  왔습니다.


여러분들도 가정에서  그러한 마음으로 염불을 하시고 경도 읽고  참선 공부를 하신 분은 열심히 생활 속에서 ‘이뭣고?’를 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뭣고?’를 열심히 하는 것이 어떠한 기도보다도 가장 소원을 성취할  있는 확률이 많은 그러한 기도법인 것입니다.


앞으로 새해를 이렇게 맞이해서 더욱 신심(信心)을 돈발(頓發)해서 열심히 정진을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세상사라는 것은 마냥 좋은 일만 있으라는 법이 없습니다.

가정적으로도 그렇고  직업상으로도 그렇고, 사업, 일체가  흥망성쇠라고 하는 것이 있어서 흥망성쇠의  파장이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고,  파장과 작은 파장이 엇갈려서 이렇게 섞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이 없다』고 그런 속담도 있습니다마는, 식구가 많다 보면 마냥 사고가 일어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럴  일수록  발심을 해서 신심으로 그러한 문제들을 헤쳐 나가야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에 떠억 정신을 차리고 인과법을 믿고 화두를 철저하게 들어나가면 자연히 지혜가 떠올라서 사리를 바르게 판단하게 되고 바른 해결책이 열릴 것입니다.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은 반드시 25신장(神將)이 항상 옹호를 한다’ 그랬습니다. 선신(善神)이 옹호하는 곳에 무슨 걱정이, 어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지나친 탐욕을 내고, 자기 마음대로  되면은 지나친 진심(瞋心)을 냄으로 해서 선신은 달아나고 악신(惡神)이 모여들기 때문에 재앙은 점점  커지기 마련이고 해결책도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디서 무엇을 하시더라도  마음대로 안될 ,  마음에 거슬릴 , 떠억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으시라 그말이여.

그러다보면 마음이 가라앉으니까 흥분도 가라앉고, 진심도 가라앉고, 미운 마음도 가라앉게 돼. 그러다보면 악신이 붙으려다가 달아나고 선신이 떠억 나를 옹호를 하게 된다 그말이여. 그러니 어찌 일이 풀리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그거거든.


해제와 백일기도 회향을 맞이해서, 형제자매 여러 도반들을 위해서 산승이 조실 스님의 법문 끝에 간곡히  마디 말씀을 드렸습니다.

새해로 소원성취하시고 만복(萬福)이 운흥(雲興)하고  가지,  가지 모든 장애가 여러분을 향상시킬  있는 좋은 밑거름이 되어 주고 채찍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45분24초~57분25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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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춘종동해남비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 ‘行脚僧 게송 참고.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주머니.

*청풍납자(清風衲子 맑을 /바람 /옷을 꿰맴 /자식 ) ; 수행을 하여 맑은 기운을 지닌 스님을 청풍(清風), 맑은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

[참고] 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 () 비유하여 이르는 .

*개중(個中) ; 여럿이 있는 가운데.

*몽산법어(蒙山法語) ; ()나라 몽산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하였다.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몽산법어 있다

*선가귀감(禪家龜鑑) ; 조선 서산대사(휴정, 1520-1604) 경전과 어록 중에서 수행의 지침이 선종(禪宗) 중심으로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부분을 가려 뽑은 불교 개론서.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선가귀감 있다.

*본지고향(本地故鄉) ; 본지풍광(本地風光). 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부처의 성품, 부처의 경지. 본래면목(本來面目).

*장좌불와(長坐不臥) ; 밤이 되어도 눕지 않고  앉아서 수행 정진하는 .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끼만 먹는 .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열두  지나면 먹지 않는 .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누데기 ; ‘누더기(누덕누덕 기운  )’ 사투리.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시한부(時限附 때 시/한정 한/붙을·붙일 부) ; 어떤 일에 대해 일정한 시간의 한계를 .

*무방하다(無妨-- 없을 무, 방해할·거리낌 방) ; (사람이 어찌하여도)거리낄 것이 없이 괜찮다.

*사시공양(巳時供養) ; 절에서 평소 하루에  한번 오전  사시(巳時 오전 9~11) 하는 공양(식사) 말한다.

*허기(虛飢  /주릴·굶주림 ) ; 굶어서 몹시 배고픈 느낌.

*약석(藥夕)절에서 저녁 식사를 이르는 . 원래 계율에는 오후의 식사를 금하였으나 병자(病者) 어리고 늙은 사람을 위해 저녁 식사는 '치료한다' 뜻에서 이와 같이 일컬음.

*퇴타(退墮 물러날 /떨어질·게으를 )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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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부운부귀비유의~’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 ‘朴上舍草堂 게송 참고.

*공명(功名 공로 /이름 ) ; 공을 세워 이름이 세상에 떨쳐짐. 또는  이름.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분상(分上 분수 ,  )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 : 분수(分數-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 : 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 뜻을 더하는 접미사. 추상적인 공간에서의  위치 뜻을 더하는 접미사.

()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 .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구순 안거(九旬安居)수행(修行)하는 스님들이  곳에 모여 외출을 금지하고 도를 닦는 일을 안거(安居) 하는데하안거(夏安居4 15일부터 7 15일까지동안거(冬安居, 10 15일부터 이듬해 1 15까지)  안거 기간이90 이므로 구순 안거(九旬安居) 한다.

*이뭣고(是甚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돈발(頓發 갑자기 /일어날·나타날·밝힐 )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 直頓의 , 곧바로.

*신장(神將) ; 불법(佛法)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운흥(雲興) ; 구름이  듯이 ()하게 일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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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참선(자세, 호흡)2015.07.05 11:45

§(256) 신심, 분심, 의심 / 바른 자세, 단전호흡, 수승화강(水昇火降) / 일관(日觀) / 묘한 의심관(疑心觀) /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觀法)’.

“어째서 화두를 들어도 간절한 의심이 안 나는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진정한 의심이 나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그 점에 있어서 고민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어 볼 것도 없이 신심과 분심이 철저하지 못한 그 까닭이라고 할 것입니다.
자세를 바르게 하는데는 단정하게 몸을 가지면서도 어깨의 힘을 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에 힘도 빼야 하고, 단정하면서도 힘을 빼는 그 요령을 터득을 해야 합니다.
한 생각에서 다음 생각으로 옮기는 그 즈음 새에, 어떤 행동에서 다른 행동으로 옮길 때, 그 중간 경계 그런데서 우리는 화두를 놓치는 수가 많기 때문에 그러할 때 그 경계에 속지 아니하고, 화두를 이어서 관조 할 수 있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부터 수행하는 사람에게 이 수식관(數息觀)을 시키고, 대대로 내려오면서 단전호흡을 익혀서 수승화강을 하게 해서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안정과 청정을 유지함으로써, 도 닦아 가는 데에 부작용—상기병(上氣病), 소화불량이나 혈액 부족한 그러한 병을 예방하고 도업(道業)을 장애 없이 빨리 성취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1) 약 20분.  (2) 약 6분.


(1)------------------

오늘은 초학자(初學者)를 위해서 ‘도 닦아가는 사람이 먼저 바른 스승을 만나야 한다. 바른 스승을 만나서 옳게 공부를 지어나가야 한다’ 옳게 지어 나갈라면, 첫째 바른 사상이 탁! 중심 잡혀져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 바른 믿음, ‘나도 성불할 수 있다. 결정코 나도 도를 이룰 수가 있다’고 하는 신념이 서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과거의 불보살과 모든 선지식들은 진즉 이 문제를 해결지어가지고 대도를 성취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시고 계시는데, 나는 오늘날토록 무엇을 하느라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면서 오늘까지 도를 이루지 못했던가? 그 분심(憤心)이 속에서 솟구쳐 올라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선지식으로부터 간택 받은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해서 대의심(大疑心)이 돈발(頓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심과 분심이 밑받침 되지 않고서는 대의정(大疑情)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심과 분심이 확고하고 불같은 그러한 뜨거운 신심, 분심이 한목 솟구치지 않고서는 화두를 들어도 들 때뿐이고, 금방 돌아서면 없어져버리고 하루는 겨우 한 듯하다가 이틀 사흘 가면 차츰 차츰 풀어져 버리고, 이것이 모두가 다 그 신심과 분심이 철저하게 뒷받침되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어째서 화두를 들어도 간절한 의심이 안 나는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진정한 의심이 나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그 점에 있어서 고민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어 볼 것도 없이 신심과 분심이 철저하지 못한 그 까닭이라고 할 것입니다.


첫째, 그런 신심과 분심이 철저하다면 그 다음에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여.
가부좌(跏趺坐)는 참선을 해 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기본자세입니다. 그래서 대도를 성취한 아라한(阿羅漢) 또 성불하신 부처님 같은 성현도 항시 시간 있는대로 숲속에서, 당신 처소에서, 항시 가부좌를 하셨던 것입니다.

부처님이 무엇을 더 닦을 것이 있고, 무엇을 더 깨달을 것이 있으시리오마는, 그 가부좌를 하고 앉는 자세 그 자체가 훌륭한 것입니다. 일체 마군(魔軍)이 엿보지 못하고, 일체 악신(惡神)이 근접을 못하고, 항시 25선신(善神)이 그 주위를 호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정법을 믿는 사람, 불법을 믿는 사람은 어디 가서 앉던지—차를 타던지, 정거장 대합실에 앉던지, 가정에서나 어디를 가더라도 항시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의자에 앉아서도 의자 위에서 가부좌를 틀기는 조금 어렵겠습니다마는 설사 가부좌는 안 하더라도 항시 허리를 쭉 펴고 머리끝과 회음부(會陰部)가 수직상에 놓여지도록 그렇게 자세를 바르게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세 하나만 바르게 가져도 벌써 정신 상태가 딱! 근엄하게 되는 것입니다. 허리를 꼬부리고 그리고서 턱이 앞으로 나와 가지고 이렇게 앉으면 멀쩡한 사람이 바보처럼 보이고, 농판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허리를 쭉 펴고 앉기만 하면 일자무식(一字無識)일망정 남 보기에 호락(瓠落)하게 보이지 아니하고 아주 그분은 보면은 학문도 많고, 수행도 있고, 인격자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속은 똥만 가득 들어가지고 남 보매 인격자로 보이라고 한 말씀이 아니라, 먼저 자세를 바르게 함으로써 정신이 딱! 차려지기 때문에, 정신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육체를 먼저 바로 잡으라 고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도를 안 닦은 일반 세속 사람도 조금 뭐 한 사람은 다 보면 자세가 훌륭하고, 앉은 자세나, 선 자세나, 자세가 바른 것입니다. 대학자나 또는 장군이나, 대실업가의 두목이나, 다 세속에 아무개 한 사람 보면은 자세가 바르고 늠름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최상승법에 의지해서 도를 닦은 사람이, 바르고 근엄한 정신 생활을 하는 수도인이 자세를 바르게 하지 아니 한다고 해서야 말이 안 될 것입니다.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하고—자세를 바르게 하라니까 너무 어깨에다 힘을 주고 목에다 힘을 주어가지고 그러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정하게 몸을 가지면서도 어깨의 힘을 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에 힘도 빼야 하고, 단정하면서도 힘을 빼는 그 요령을 터득을 해야 합니다.

단정하게 앉으면서도 헛심, 쓸데없는 힘을 뺀다고 하는 것은 조금 어렵지만 자기가 자기를 항시 요렇게 가늠해 보고 살펴보면서 어깨의 힘도 빼고, 목의 힘도 빼.

힘을 빼면서도 단정하고, 단정하면서도 힘을 빼면 그 자세가 너무너무 두 어깨의 선이라든지, 앞에서 보나 옆에서 보나, 뒤에서 볼 때 너무너무 훌륭한 것입니다. 아름답기조차 하는 것입니다. 근엄하면서도 엄숙하고 그러면서도 너무너무 두 어깨의 선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요령을 터득하지 못하고 너무 힘을 주어가지고 뻣뻣하게 앉아있으면 영판 그것이 부자연스럽고 공부하는 데에도 얼마 못가서 피로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르게 앉는 법에 대해서 항시 스스로 잘 살피면서 또 잘 아는 분에게 점검을 받아서 어디가 잘못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교정을 받는 것도 대단히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좌선에 들어갈 때 좌우로 몸을 흔들어서 차츰차츰 한 가운데에다 중심을 잡는 것.

그리고 포행을 한다든지, 방선을 할 때 일어 설 때에도 느닷없이 갑자기 불끈 일어서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좌우로 몸을 흔들어서 준비운동도 하고, 다리도 앞으로 뻗어서 주무르기도 하고, 발목도 이리저리 돌려서 발목운동도 하고, 이렇게 한 다음에, 살며시 이렇게 두 손을 땅에다 짚고서 조용하게 일어나가지고 기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불끈 일어나 가지고는 달음박질을 친다든지, 높은 데서 뛰어내린다든지, 이런 것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조용하게 앉았다가 갑작스런 운동으로 변하게 되면, 피나 심줄이나 근육이 놀래기도 하고, 때로는 발을 헛디뎌서 미끄러지거나 발목을 삐는 수도 있고,

그리고 정진은 앉아서만 하고 일어서면 아니한 것이 아니라, 앉아서 공부하다가 일어서더라도, 일어서서 걷거나, 일을 하더라도 앉았을 때 공부하던 그 의단(疑團)이 고대로 유지가 되도록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랴면 자연히 앉은 자세에서 서는 자세로 옮길 그 한계선이 언제든지 중요한 것입니다.
앉았을 때까지는 잘되다가 불끈 일어서는 찰나에 놓쳐 버리기도 하고, 뭘 가만히 앉았다 무슨 소리가 딱! 들어오는 찰나에 화두를 놓치기도 하고, 뭘 보다가 딱 놓치기도 하고.

그래서 한 생각에서 다음 생각으로 옮기는 그 즈음 새에, 어떤 행동에서 다른 행동으로 옮길 때, 그 중간 경계 그런 데서 우리는 화두를 놓치는 수가 많기 때문에 그러할 때 그 경계에 속지 아니하고, 화두를 이어서 관조 할 수 있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 한 철, 두 철 공부를 해 나가는데 있어서 스스로 터득되어질 일이라 생각을 하고, 자세를 바르게 한 다음에는 호흡을 바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호흡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죽었나 살았나를 볼려면 그 호흡이 끊어졌느냐, 안 끊어졌느냐? 그것을 보면 죽었느냐, 살았느냐를 알 수 있을 만큼 호흡은 바로 생사(生死)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호흡을 뱃속에서는 배꼽을 통해서 숨을 쉰다고 하고, 태어나면 그때부터서 코로 숨을 쉬게 되는데, 숨 쉬기 시작해 가지고 숨을 못 쉬게 되면 그때는 인자 금생(今生)이 끝나는 것입니다.
밥은 하루 이틀 내지 한 달, 두 달, 석 달을 굶어도 안 죽습니다. 그런데 호흡은 3분 내지 5분만 딱 숨을 못 쉬게 하거나 안 쉬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요가라든지 그런 특별한 훈련을 쌓은 사람은 일주일씩도 숨을 안 쉬고, 물속에 가만히 들어앉았다가 나중에 나와도 다시 또 살아나기도 하고, 그러한 특수한 훈련을 쌓은 사람은 그럴 수도 있다고 합니다마는, 일반적으로는 5분 내지 10분만 숨 못 쉬게 하면 금방 죽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호흡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어서 누구나 무심 속에 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호흡을 하지만 올바른 호흡을 한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전부 다 가슴으로 호흡을 하는데, 수행을 하는 사람은 배로 호흡을 해야 해.
마음이 딱 중심이 잡혀서 안정이 되면 저 호흡하는 선이 밑으로 내려가고, 마음이 들뜨거나 중심을 잃거나, 긴장하고 초조하고, 몸에 병이 나거나 열이 있거나, 그러면은 호흡은 차츰차츰 위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편안할 때는 아랫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 호흡을 하다가 갑자기 놀래거나, 분을 내거나, 흥분해서 놀래거나 하면은 배로 호흡을 안 하고 가슴으로 호흡으로 하고, 씩쌕 씩쌕 하면서 가슴으로 호흡을 하는데, 차츰차츰 또 그 분한 생각이 가라앉고 안정이 되면 가슴 벌떡벌떡 한 것이 없어지면서 호흡이 밑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숨을 들어마시면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 배가 홀쪽해지도록 의식적으로 배를 내밀었다 또 홀쪽하니 했다 해서,
계속 호흡 들어마실 때는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쉴 때는 배를 차츰차츰 홀쪽하니 해서 등허리가 딱 붙도록 해서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라’ 이것입니다.

그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데 우리의 의식을 거기다 두고서 호흡을 하면 우리의 생각이 아랫배 단전(丹田) 부위에 우리 의식이 거기에 집중이 되게 되는 것이고, 우리의 의식이 아래로 집중이 되면 우리 몸안에 있는 기(氣), 기(氣)도 밑으로 내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머리로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면 피도 머리로 모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몸안에 있는 기(氣)도 머리로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막 깊이 생각하고 그러면은 상기(上氣)가 되고, 머리가 띵해지고 피로를 느끼게 되고, 눈도 뻘게지고 뒤통수를 만져보면 뜨근뜨근 하고 그러거든.

단전호흡(丹田呼吸)을 30분, 1시간 이렇게 하고 난 뒤에 몸을 만져 보면 아랫배는 뜨뜻하고 뒤통수를 만져보면 시원하거든. 그것은 더운 기운은 밑으로 내려가고 시원한 물 기운은 위로 올라가는 증거인 것입니다.

이 수승화강(水昇火降), 시원한 물 기운은 위에로 올라가고, 더운 불기운은 밑으로 내려가게 하는 것.
물이라 하는 것은 원래 위에서 밑으로 흘러내리고, 불은 밑에서 위로 타오르는 것이 그 원래 가진 성질이지만, 우리가 의식적으로 우리의 정신을 배꼽 밑에 단전에다가 집중을 함으로써 우리의 불기운은 밑으로 내려가서 아랫배가 뜨뜻해지고, 시원한 물 기운은 위로 올라가서 머리가 시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몸을 혈액순환을 활발하게 하고 몸안에 있는 온갖 독소를 그 호흡을 통해서 밖으로 배출해버리고 그래서 몸은 가벼워지고, 정신은 안정이 되면서 맑아지게 하는 그러한 효과를 가져 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당시부터 수행하는 사람에게 이 수식관(數息觀)을 시키고, 대대로 내려오면서 단전호흡을 익혀서 수승화강을 하게 해서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안정과 청정을 유지함으로써 도 닦아 가는 데에 부작용—상기병(上氣病), 소화불량이나 혈액 부족한 그러한 병을 예방하고 도업(道業)을 장애 없이 빨리 성취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그렇게 참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52분2초~72분16초)


(2)------------------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사리불 존자와 아나율 존자의 그 굳은 결심, 우리도 그러한 결심이 투철해야 할 것이고, 또 바른 스승의 지도를 받아서 끝내는 자기 스스로 터득한 그 의심관으로써 자기의 정진의 마지막 고비를 넘긴다면,
누구라도 그만한 결심과 그만한 바른 스승을 만나서 바르게, 그리고 자기의 정신과 육체의 온갖 힘과 정성을 다 바쳐서 다듬어 나간다면 누구라도 자기의 면목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야  화풍탑재옥난간(和風塔在玉欄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한아름 버드나무 가지를 거두어 잡지 못해서, 바람과 함께 옥난간에다 걸어 두노라.
오늘 일요법회 법어를 마쳤습니다.(72분17초~77분45초)(끝)


------------------(1)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본참공안(本參公案) :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아라한(阿羅漢) ; 산스크리트어 arhat의 주격 arhan의 음사.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응공(應供)·응진(應眞)·무학(無學)·이악(離惡)·살적(殺賊)·불생(不生)이라 번역.
마땅히 공양 받아야 하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따르므로 응진(應眞),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離惡),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殺賊),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 함.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회음부(會陰部) ; 사람의 음부(陰部, 남녀의 몸에서 바깥 생식 기관)와 항문 사이의 부위.
*농판 ; ‘멍청이(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의 사투리.
*호락하다(瓠落-- 우수수 떨어질 호/떨어질 락) ; 겉보기에는 커도 소용이 없게 되다.
*헛심 ; 아무런 보람이나 이득이 없이 헛되이 쓰는 힘.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기(氣) ; ①생명체가 활동하는 데 필요한 육체적, 정신적 힘. 원기(元氣)나 정기(精氣), 기력(氣力) 등을 이른다. ②사람이 상대나 주위에 대하여 가지는 기분. ③있는 힘의 전부. ④모든 생명의 근원으로 생각되는, 천지에 가득차 있는 힘.

*상기(上氣) ; ①[한의] 피가 뇌로 몰리는 현상. 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나며, 발한, 두통, 이명(耳鳴), 현기증 따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②얼굴이 흥분이나 수치감으로 붉어짐.

*띵하다 ; (머리가)울리듯 아프면서 정신이 맑지 못하고 멍하다.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저 뒤에서 쭉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쑥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쑥 내쉰다, 내보낸다’ 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수식관(數息觀) ; 출입하는 숨을 세어서 마음을 통일하는 것. 그것에 의해 마음의 산란을 막음. 호흡을 세어서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법.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 기운 기, 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 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해제끼다 ; 헤치우다. (사람이 어떤 일을)빠르고 시원스럽게 끝내다.
*의관(疑觀) ; 의심관(疑心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면면밀밀(綿綿密密) ; 면면(綿綿)하고 밀밀(密密)하게. 끊어지지 않고 아주 빽빽하게 죽 잇따라 있는.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2)

*맷방석 ; 주로 매통(벼를 넣고 갈아서 겉겨를 벗기는 데 쓰는 기구)이나 맷돌(곡식을 가는 데 쓰는 도구) 아래 깔아 곡식을 담거나 방석으로 쓰는 짚으로 만든 물건.
멍석보다 작고 둥글며 전(물건의 위쪽 가장자리가 조금 넓적하게 된 부분)이 있다.
*관법(觀法) ; 마음의 본성을 자세히 살피는 수행. 어떤 현상이나 진리를 마음 속으로 떠올려 그것을 자세히 살피는 수행. 한 생각만 주시하여 한결같이 그것을 잊지 않는 수행.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 덩어리 단, 홀로•오로지 독, 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일관도천(一串都穿 한 일/꼬챙이 관/모두 도/꿰뚫을 천) ;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다.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게송) ‘一把柳條收不得  和風塔在玉欄干’ ;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 제23권 황정견(黃庭堅)거사 게송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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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화두(공안)2015.01.03 14:58

§(406) 쥐 법문(法門)—'화두'라고 하는 쥐 / 용궁(龍宮) 스님 / (게송)탐착몽중일립미~ / (게송)석화광음주~ / 참선 해서 무량겁 생사윤회의 쇠사슬로부터서 벗어나야.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우리의 무명(無明)·업식(業識)·번뇌·망상을 쥐에다가 비유를 한 것입니다. 그 끝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번뇌와 망상을 ‘화두(話頭)’라고 하는 쥐를 시켜서 그놈을 다 잡아먹게 만드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떠한 불보살(佛菩薩)이 나타나셔서 더 좋은 방법을 설하시게 될런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이 활구참선법만큼 훌륭한 깨달음의 길은 없습니다.
참선을 안 하는 사람은 아미타불 불러야죠. 마지막 숨 거둘 때까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부르지만, 활구참선을 한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마지막 죽을 때도 ‘이뭣고?’하면서 숨을 딱 거두도록 이렇게 해야 돼.
인생 일생사가 비록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뭉쳐진 하루살이 인생이지만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활구참선하신다면 정말 소중한 뭄뚱이고 이승에 사람 몸 받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릅니다. 왜 그러냐? 무량겁 생사윤회(生死輪廻)의 쇠사슬로부터서 벗어나서 영원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송담스님(No.406)—90년 1월 첫째일요법회


(1) 약 15분.  (2) 약 13분.


(1)------------------

어떤 사람이 집에 어떻게 쥐가 들끓어서, 그 고양이를 갖다 놔봐도 몇 마리는 축(縮)지지만은 아주 잡을 수가 없고 또 쥐약을 갖다 놓으니까 집에서 키우는 개가 여러 마리 죽고,
도대체 그것 가지고도 안되고 그럴수록에 쥐는 점점 더 무성해져 가지고는 마을에 있는 쥐가 다 모여들고 산에 있는 쥐, 들에 있는 쥐까지 더 모여든다 그말이야.

파리도 파리채나 약으로 자꾸 잡아 싸면 몇 마리는 축지지만은 점점 더 모여든 것입니다.
잡아서 죽여가지고 그런 것을 해결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해 가지고 꾀를 냈습니다.

쥐를 잡아다가—쥐덫으로 쥐를 생포해 가지고 꽁댕이를 짤라 버리고는 그 쥐를 독에다 담아 넣고는 굶겼습니다. 굶겨가니까 이놈이 배가 고파서 못 견딘다 그말이야.

그래서 정 못 견뎌하면은 쥐를 잡아가지고는 쥐 고기를 쪼금씩 떼어서 먹였습니다. 그러니까 배고파서 못 견디는 놈이 쥐 고기를 먹더니 차츰차츰 생기가 나.
그래 가지고 나중에는 조금씩 더 주고 더 주고 해 가지고 완전히 쥐에게 쥐 고기를 먹여가지고 아주 뚱실뚱실하니 아주 건강하게 되었다 그말이야.

그래서 나중에는 산 쥐를 넣으니까 벌써 쥐 고기에 맛들인 놈이라 산 쥐를 탁! 잡아서 그놈을 잡아먹었다 그말이야. 매일 한 마리씩 잡아 넣으면 쥐 고기만 먹고도 아주 잘 살게 되었어.

그런 다음에 그 쥐를 풀어놨습니다. 풀어놓으니까 쥐구멍으로 맘대로 드나들면서 집안에 있는 쥐를 다 잡아먹었다 그말이야. 처음에는 새끼 어린 놈을 모다 다 줏어 먹더니 나중에는 큰 놈도 다 잡아먹어버려.

고양이를 놓으니까 어쩌다 겉으로 나돌아다니는 놈은 잡아먹지만은 쥐구멍 속에 딱 들어가 버리면 못 잡아먹는 데, 쥐를 시켜서 쥐를 잡게 하니까 맘대로 쥐구멍으로 다니면서 쏵 다 잡아먹었다 그말이야.

그전에는 마을 쥐, 들쥐 모다 오더니 그놈들도 신문이 있는지, 그 집에 갔다가는 뼈다구도 못 추린다 해가지고 인자 그 집에는 얼씬도 쥐가 안 와.

행여나 여러분 이 말씀을 듣고 쥐 잡아서 쥐 잡을 생각을 마십시오. 이건 쥐 잡으라고 하는 말씀이 아니고.


우리는 끊임없이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이 일어납니다.
눈으로 보면 망상이 일어나고, 귀로 들어도 망상이 일어나고 또 가만히 앉았어도 망상이 일어나고, 일어나는 생각—좋은 생각이 일어나면은 좋은 생각, 나쁜 생각이 일어나면은 나쁜 생각으로 인해서 나쁜 죄를 또 짓게 되고,

희로애락, 흥망성쇠, 가지가지 생각이 일어나고 말로서 나타나고, 얼굴로서 나타나고, 행동으로서 나타나고 해가지고 업(業)을 지어서 그래가지고 무량겁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게 되는데,
그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우리의 무명(無明)·업식(業識)·번뇌·망상을 쥐에다가 비유를 한 것입니다.

그 끝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번뇌와 망상을 ‘화두(話頭)’라고 하는 쥐를 시켜서 그놈을 다 잡아먹게 만드는 것입니다.


화두는 공안(公案)인데 공안은 불덩어리와 같아서 중생이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질 수가 없어. 거기에 접근해 가지고 뭐라고 따질려고 생각하면 벌써 그 불에 타죽는 것이여.
그래서 사량분별로 화두는 따지면 안 돼. 그건 깨닫기 커녕은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야.

그 화두를 올바른 방법으로 잘 거각(擧却)을 하면 끝없이 일어나는 온갖 번뇌와 망상을 그놈으로 다 잡아먹을 수가 있는 것이야.
쥐를 잘 훈련을 시켜가지고 온 쥐를 다 잡아먹은 다음에 그 쥐 한 마리만 딱 없애버리면은 쥐는 아주 멸종이 될 것이다 그말이야.

화두 하나를 타 가지고 그 화두를 참구(參究)를 거각을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잡드리를 해 나가는데,
더이상 의심이 간절(懇切)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가 없을 지경에 이르러서,

산을 봐도 화두요, 들을 봐도 화두요, 사람을 봐도 화두요, 귀로 새소리를 들어도 화두요, 물소리를 들어도 화두요, 칭찬하는 소리를 들어도 화두요, 나에게 욕을 하는 소리를 들어도 화두요, 밥을 먹어도 화두요, 똥을 눠도 화두요,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만을 거각해서 무슨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즉각 화두로서 떠억 의단을 거각을 한다.

이 화두 앞에는 도무지 천하 없는 망상도 번뇌도 얼씬거리지를 못해. 얼씬거렸다면 화두를 딱 들어버리면 탁 잡아먹어버려.

처음에는 잘 안돼. ‘이뭣고?’해도, ‘이뭣고?’하는 속에도 저 속에서는 할 생각 다 하거든.
‘이뭣고?’하면서도 집안 생각 다 하고, 미국에 가 있는 아들 생각 다 하는데, 그래도 자꾸 하고 하고 또 하고 하면 언젠가는 할라고 안 해도 의단이 저절로 성성(惺惺)하게 들릴 때가 오고 마는 것이여.

더이상 간절할 수 없을 만큼 간절하고 더이상 성성할 수 없을 만큼 성성해질 때, 어느 찰나에 그놈이 탁! 터지게 된다 그말이야. 통 밑구녁 빠지듯이 턱 터지게 돼. 그게 확철대오(廓徹大悟)거든.

다른 공안도 환하거든.
이렇게 되면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자기의 그 깨달은 바가 바른가 그른가에 대한 점검을 받아야 되고,
그 점검을 받은 다음에는 공안을 타파한 뒤에 어떻게 정진해 가야 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이—‘그래, 화두를 드는 것은 망상 없애기 위해서 방편으로 그런 것이지, 뭐 깨달음이 있기는 무슨 깨달음이 있어. 절대로 그렇지 않아’
이것은 조사(祖師)들이 몸으로서 실지로서 우리에게 그 증거를 보여주신 것인데 어찌 이것이 거짓말일까보냐.

앞으로 어떠한 불보살(佛菩薩)이 나타나셔서 더 좋은 방법을 설하시게 될런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이 활구참선법만큼 훌륭한 깨달음의 길은 없습니다.


망상이 일어날수록에 그 망상을 버릴려고 하고 없앨려고 하고 쫓아낼려고 하지 말고 화두만 딱 거각하면 그만이야.
쥐가 나타나면 그놈 쫓아낼라고 하지 말고 그 독에서 키운 그 쥐만 갖다가 그리 풀어 놔버리면 그만이야. 어디로 도망갈 것이냐 그말이야. 도망갈 곳이 없거든.

고양이가 쫓으면 쥐구멍으로 들어가지만 쥐를 내보내는데야 도망갈 곳이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면 이놈도 올라갈 것이고 땅속으로 들어가면 이놈도 들어갈 것이고, 갈 곳이 없거든. 화두만 딱! 거각해 버리면.

부애가 나도 ‘이뭣고?’요, 슬퍼도 ‘이뭣고?’요, 억울해도 ‘이뭣고?’요, 몸이 아파도 ‘이뭣고?’요,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될 때에도 다른 거 생각할 거 없어, 아미타불 생각할 거 없어. ‘이뭣고?’

‘이뭣고?’ 참선을 안 하는 사람은 아미타불(阿彌陀佛) 불러야죠. 마지막 숨 거둘 때까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부르지만,
활구참선을 한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마지막 죽을 때도 ‘이뭣고?’하면서 숨을 딱 거두도록 이렇게 해야 돼.


내가 아는 어떤 노보살님은 그 ‘이뭣고?’하고 가는데 차가 뒤집어졌어. 버스가 뒤집어졌는데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는데 그분은 아무데도 다치지도 않았어.

또 내가 아는 어느 비구니 스님은 화두를 들고 떠억 가는데, 저기 청평 큰 호숫가를 지내다가 버스가 호수로 빠져가지고 그 안에 탄 사람이 몰사(沒死)했습니다.
수십 명이 다 죽었는데, 그 화두를 들고 간 그 비구니 스님은 ‘이뭣고?’를 물에 빠져서도 고대로 ‘이뭣고?’를 하고 있는데 환하니 보여서 그 열려진 문으로 기어나왔다 그말이여.

기어나와 가지고 허부적허부적 헤엄을 치면서 이렇게 나오는데, 다른 사람들은 안 보이고 이제 돌 돌아간 어린 아기가 물위에 떠가지고 허우적허우적하고 있어서 그 어린아이를 끌어안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 애기 하나하고 그 비구니 스님 하나만 살았어.

그래서 그 애기를 갖다가 수양아들을 삼아가지고 그 애가 커서 지금 학교 잘 다니고 있고 한데, 그래서 그 비구니 스님을 용궁(龍宮)에 갔다 왔다 해서 용궁 스님이라고 별명이 붙었는데.

참 이상한 것이 화두를 들고 가다가 배가 침몰해도 그분은 죽지를 않아. 차가 뒤집어져도 죽지를 않아.
어떠한 난세(亂世)를 당한다 하더라도 화두를 들고 정진한 사람은 그 난세를 피하게 되고 꼭 죽게 된 데에서도 살아난다 그말이여.

그것이 왜 그러냐? 항상 이십오 신장(二十五神將)이 옹호를 하고 댕기거든.
보통 착한 마음만 가져도 선신(善神)이 지켜주는데,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하는 사람은 선신 하나 둘이 아니라 25신장이 항상 옹호를 하는 거야. 그러니 교통사고에 살아날 수 밖에는 없는 것이여.

여러분은 숙세에 얼마나 선근(善根)을 심었기에 이러한 활구참선을 믿게 되었고 그것을 또 실천하게 되셨냐 그말이야.(35분28초~49분42초)


(2)------------------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무상찰나실난측(無常刹那實難測)이라  호불맹성급회두(胡不猛省急回頭)오
나무~아미타불~

탐착몽중일립미(貪着夢中一粒米)타가, 몽중에 꿈 가운데에 한 알갱이 쌀을 탐착하다가,
실각금대만겁량(失却金臺萬劫糧)이다. 금선대, 저 금선대에 만겁동안 먹을 수 있는 그 많은 양식을 잃어버리게 되는구나.

무상찰나(無常刹那)라 실난측(實難測)이여. 우리의 이 몸뚱이, 우리의 이 생명은 눈 한번 감었다 뜨지 못하면 내생(來生)이고, 숨 한번 내쉬었다가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내생이여.
참, 그 찰나(刹那)라! 언제 1년 후에 죽게 될런지, 한 달 후에 죽게 될런지, 사흘 후에 죽게 될런지, 1분 후에 죽게 될런지, 우리의 수명은 참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니,

호불맹성급회두(胡不猛省急回頭)오. 어찌 맹렬히 반성을 해서 마음보를 돌이키지 못하는고.


우리는 이렇게 해서 최상승법을 믿고 해탈도(解脫道)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이렇게 엄동설한임에도 불구하고 사부대중이 법회에 참석을 하셨고 또 방부(房付)를 들이고 그렇게 참 고행을 하고 계시는데,

무엇이 우리를 구속(拘束)을 했기에 우리는 해탈(解脫)을 할라고 합니까?
다른 사람이 나를 구속을 한 점 또는 내가 나 자신을 구속을 한 점. 쇠사슬 보다도 더 견고하고 무서운 것으로 우리 자신들을 그렇게 속박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렇게 얽히고, 물질에 얽히고, 명예와 권리와 재산 모다 그런 것에 얽히고, 원한으로 얽히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것으로서 얽히고, 자존심과 체면에 얽히고, 마약 술 그런 것에도 얽히고,
무량겁 지어 놓은 습기(習氣)에도 얽히고, 자기가 자기를 얽히고 또 내가 다른 사람을 얽어매고, 다른 사람은 또 자기 자신을 얽어매고 또 그 사람이 또 나를 얽어매고 해서,

피차(彼此) 서로 많은 머리카락이 서로 얽히고설켜서 뭉쳐 있듯이 인간들이 그러한 형용할 수 없는 무서운 쇠사슬로 서로 얽히고 얽고 그렇게 해서 무량겁을 오늘날까지 이렇게 오고 있는 것입니다.

관성(慣性)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움직이고 있는 것은 계속해서 움직일려고 그러고, 정지되어 있는 물건은 계속해서 정지되어 있을려고 하는 그러한 성질은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관성의 법칙이라 그러는데, 그래서 기차나 전철을 타고 가다가 급정거를 하면 사람이 와르르 넘어질려고 그런거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고,
또 가만히 차에 앉아 있는데 급작스럽게 차가 출발을 하면 사람이 버뜩 뒤로 자빠지려고 그러고 이런 것도 역시 관성의 법칙이고, 옷에 먼지가 있는 것을 탁! 이렇게 털면은 먼지가 떨어지는 것도 역시 그런 관성의 법칙을 이용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뉴월 뙤약볕도 쬐다가 안 쬐면 서운하다’고 그런 구속이라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데, 여태까지 구속되어 있다가 그렇게 풀어준다 해도 그것을 서운하게 생각한다 그말이야.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하면 그 무서운 쇠사슬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다」고 그렇게 목이 마르도록 말씀을 하고, 법문을 들어도 아! 그 무엇이 그렇게 그리운지 그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여간 아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런 법문을 들으신 분은 ‘아! 내가 이제부터서는 그런 쇠사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나도 벗어나고 또 다른 사람 내가 얽어매고 있는 쇠사슬도 풀어주리라.’
그렇게 다 얼굴을 제가 보니까 그런 마음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댁에 가셔서 정말 탁 풀어 버리실런지 그거 또 아까워서 계속 그러실런지 인자 스스로 가서 잘 생각해 보시면 알 것입니다.

어쨌든지 자유가 좋은 것입니다. 탁! 자기도 풀면 좋고 남 얽어맨 것도 탁 풀어주세요. 풀어주면 그 사람도 나한테 더 잘하고.

어떻게 그놈을 서로 얽어매 놓고 한집에서 살면서 그렇게 서로 불편한 관계로 사실 수가 있겠습니까.
탁 풀어주면은 저도 좋고 남도 좋고 그냥 어제까지의 감옥이 오늘은 극락세계로 변할 것입니다.

화두 한번 터억 화두 든 마음으로 쳐다보면 앞에서 봐도 이쁘고 뒤에서 봐도 이쁠텐데, 화두를 놓쳐 버리고 옛날에 품었던 원한심을 가지고 쳐다보면 볼수록 미웁다 그말이여.
그거 미워해 봤자 무엇이 좋을 것입니까. 터억 화두를 들고 풀어줘 버리면은 당장 그날 저녁 밥상부터 달라질텐데.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하고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요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니라
나무~아미타불~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여. 이 세월은 돌과 돌을 탁 부딪치면 불이 번쩍하듯이 그렇게 화살같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 버리는 것이여.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다. 그 젊었을 때 윤기 나고 불그스레한 얼굴이 벌써 머리가 허예져 버린 것이여.

인간(人間)은 백년몽(百年夢)이여. 인간은 백 년 동안 꾸는 꿈이여. 이 몸뚱이는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다. 하루살이 일생사야.
백 년이라고 하니까 굉장히 긴 것 같지만 냉정히 생각해 보면 인생 일생사란 것이 하루살이 신세 밖에는 안됩니다.

비록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하루살이 인생이지만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의해서 활구참선하신다면 정말 소중한 뭄뚱이고 이승에 사람 몸 받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릅니다.

왜 그러냐? 무량겁 생사윤회(生死輪廻)의 쇠사슬로부터서 벗어나서 영원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모든 악업으로 얽혀진 모든 사람들을 다 풀어버리니 일체가 다 좋은 도반(道伴)이요, 형제간이요 자매간이 되어서 온 세계 온 법계가 행복한 한 가정이 되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앞으로 해제도 얼마 안 남았습니다. 선방에 방부들인 스님네 또 보살님네 그 동안도 열심히 정진들 하셨지만 남은 동안을 더욱 알뜰히 정진을 해주시길 부탁을 하고,
또 가정에서 직장에서 생활하신 분들도 방부들이신 분들 못지않게 생활 속에서 열심히 정진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고 법상에서 내려자고자 합니다.(49분43초~62분52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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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縮)지다 ; 축(縮)나다. ①일정한 수나 양에서 모자람이 생기다. ②몸이나 얼굴 따위에서 살이 빠지다.
*꽁댕이 ; ‘꼬랑이('꼬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얼씬 ; 조금 큰 것이 눈앞에 잠깐 나타났다 없어지는 모양.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육도윤회(六途輪廻).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기신론(起信論)>에 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업식(業識) ; ①과거에 저지른 미혹한 행위와 말과 생각의 과보로 현재에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작용. ②오의(五意)의 하나. 무명(無明)에 의해 일어나는 그릇된 마음 작용.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  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  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몰사(沒死 빠질 몰,죽을 사) ; 모두 다 죽음.
*허부적허부적하다 ; '허우적허우적하다(사람이 팔다리를 자꾸 이리저리 내두르다)'의 사투리.
*수양아들(收養아들) ; 자신이 낳지 않았으나 데려다가 기른 아들.
*신장(神將) ;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선근(善根) ; 좋은 과보를 받을 만한 착한 인(因)·행위. 온갖 선(善)을 낳는 근본. 청정한 행위를 할 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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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탐착몽중일립미~’ ; 성철스님 ‘납자십게(衲子十偈)’—'회두(回頭)' 게송 참고.
*내생(來生) ; 죽은 후에 다시 맞이하는 미래의 삶.
*찰나(剎那) : [범]  ksana  지극히 짧은 시간. 하루가 육백 사십 팔만 찰나라 하였는데, 지금 시간으로는 1초의 75분의 1에 해당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해탈도(解脫道)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습기(習氣) ; 과거의 인식•행위•경험•학습 등이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관성(慣性 버릇·익숙하여짐 관,성질 성) ; [물리] 물체가 외부의 힘을 받지 않는 한 정지 또는 등속도 운동의 상태를 지속하려고 하는 성질.
*(게송)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 ; [청허당집(清虛堂集)] (西山 休靜, 朴敬勛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86쪽 ‘세상을 탄식함’ 게송 참고.(石火光陰走 紅顔盡白頭 山中十年夢 人世是蜉蝣)
*불그스레하다 ; (물건이나 그 빛이)곱고 연하게 조금 붉은 데가 있다.
*허옇다 ; (사물이나 그 빛이)정도에 지나치게 희다.
*부유(蜉蝣) ; [동물] 하루살이목에 속한 곤충을 통틀어 이르는 말.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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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복전암26) (게송)다생원채기어친~ / 무연자비(無緣慈悲), 무주상보시 / 지장보살의 원력 / 인과법(因果法) / ‘이뭣고?’는 ‘참나’를 찾는 공부, 자기마음을 바로잡는 법.

남에게 줄 때는 무심(無心) 속에서 주어야 하고 조건 없이 주어야 해. 이것이 부처님의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라 하는 것이여. 금강경을 독송하신 분은 잘 아시겠지.
무주상 보시를 해야 이것이 그 공덕이 영원한 것이지, 유주상으로 준 것은 그것 나중에 꼭 그놈이 나를 웬수로 상대하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큰 죄도 ‘어떻게 해서 그 죄를 짓게 되었는가?’ 그 근원을 살펴보면 꼭 마음 ‘한 생각’에서 그것을 짓는 거여.
쇠고랑도 안 차고, 지옥에도 안 가는 방법은 한 생각 일어날 때 그때 딱! 돌이켜버리면 큰 죄를 안 짓게 되는 것이다.
인과법을 철저히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인과법을 안 믿고 마구잡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다. 모든 죄도 인과법을 안 믿는 데서 저질르게 되는 것이다.
흰머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너 벌써 늙기 시작을 했으니 얼마 안 있으면 너를 데리러 갈테니까 정신 차려라.’ 염라대왕이 우리에게 보낸 편지다.
**송담스님(복전암No.26)—지장기도 천도재 회향 (93년).


(1)------------------

다생원채기어친(多生怨債起於親)하니  막약다생불식인(莫若多生不識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향아불문여광제(向我佛門如廣濟)인댄  무연진개대비은(無緣眞箇大悲恩)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다생원채(多生怨債)가 기어친(起於親)이여, 다생!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웬수와 빚이 친한 데에서 일어난 거여. 
막약다생(莫若多生)에 불식인(不識人)이다, 다생에 웬수가 없고자 하면 사람을 알지 아니한 것만 같지 못하다.

사람을 알고 지내면은 친하게 되고, 친함이 생기면은 그것이 언젠가는 변해서 웬수, 빚쟁이가 된다.
그래서 웬수와 빚쟁이를 안 만날라면 사람을 알고 지내지 아니한 것이 좋다.

이 ‘사람을 안다’고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인연(因緣)을 맺는 것인데,
그 인연으로 인해서 우리가 잠시 한자리에 만나서 얘기하는 인연,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인연, 함께 길을 가는 인연, 한 집에서 사는 인연, 한 마을에서 사는 인연, 한 나라에서 사는 인연, 한 이 지구상에 함께 태어난 인연,

한 집에서 살되 부모 자식간의 인연, 부부간의 인연, 형제 간의 인연, 그 인연이 천 생, 만 생, 몇백 생, 오백 생 그러한 깊은 인연으로 해서 그렇게 만나게 되고,
이렇게 한자리에서 법문을 듣는 그 인연도 몇천 생의 인연으로 이렇게 된 것이다.

유루법(有漏法), 유위법(有爲法)의 인연은 그 인연이 언젠가는 원수로 변하는 것이고.
무위법(無爲法), 무루(無漏)의 인연 — 법(法)을 믿고, 법을 권하고, 법을 듣고, 법을 실천하고, 법에 있어서의 인연이 바로 무위법의 인연이요, 무루의 인연인데.

그런 인연은 몰라도 유루법, 유위의 인연은 전부 다 웬수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부모 자식간은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아낄 것이 없고, 자식을 위해서는 한량없는 죄도 서슴지 않고 짓게 된다 그말이여.
그것이 전생(前生)에 깊고도 깊은 전생의 빚이 있기 때문에 — 엄청난 빚이 있기 때문에 그 빚을 갚기 위해서 금생에 빚 받으러 온 놈이 그것이 자식이다 그말이여. 그러니 전생에 지어논 빚을 안 갚을 수 있는가!

그래서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고 아까운 것이 없어.
자식은 물론 효자도 더러는 있지만은 대부분의 자식이라 하는 것은 빚 받으러 온 웬수거든.
그래서 그놈을 위해서는 아까운 것이 없다 그말이야. 다 주어도 또 주고 싶어.

그렇게 불효막심(不孝莫甚)해도—남이라면은 그렇게 고약한 놈은 탁! 인연을 끊어버리고 안 봐 버리면 되는데, 불효자식일수록에 부모는 더 가슴이 아프고 더 못 잊는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알고 모르게 크고 작은 죄를 짓지마는 자식을 위해서 지은 죄가 엄청나게 많다 그말이여. 빚을 갚기 위해서 그런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지어 놓은 빚은 안 갚을 수가 없으니까 최선을 다해서 빚은 갚을 수 밖에는 없고, 아무리 피할래야 피할 수도 없는 것이니까 빚은 갚되,
그 빚을 갚으면서도 항상 ‘이뭣고?’를 해야지, ‘이뭣고?’를 안하면 계속해서 또 빚은 늘어나고만 만다.

자식은 ‘으레이 부모는 나를 낳았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 생각하고 별로 고마운 생각도 없는 거여.
알뜰히도 빚을 받으면서도 별로 고마운 줄 모르고, 나중에 다 커서는 으레이 부모가 자식을 해주어야 한 걸로 생각한다 그말이여. 그놈이 또 자식을 낳으면 자식한테 또 빚을 갚아야 하고.

그러니 ‘이뭣고?’를 안 한 사람은 무량겁을 그것을 되풀이를 해. 되풀이를 하면서도 정신을 못 차려. 

지금 ‘부정부패 척결’해서 온통 야단이지마는 전부가 다 처자(妻子)·권속(眷屬)을 위해서 저지른 죄다 그말이여. 한도 끝도 없는 것이여.

그래서 우리의 불자(佛子)! 형제자매 여러 도반들은 원수 빚을 안 갚을 수가 없으니까 갚지마는 그 속에서 항상 ‘이뭣고?’를 해야 되야.
‘이뭣고?’를 해서 묵은 빚은 갚지마는 새 빚을 짓지를 말라.


향아불문여광제(向我佛門如廣濟)인댄, 우리 불문(佛門)에 있어서 널리 제도(濟度)를 하는데 있어서는,
무연(無緣), 무연자비(無緣慈悲), 인연 없는 자비 — 인연을 맺지 아니한 것이 이것이... (無緣眞箇大悲恩)

남에게 보시를 하되 인연이 있고 정을 따라서 주는 보시는 참다운 보시가 아닌 거여.
전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은 주어야 할 때는 무주상(無住相)으로 주고 이리 해야지,
유주상(有住相)으로 주어 놓으면 결국은 그것도 빚을 만드는 것이여. 웬수를 맺는 올가미가 되는 것이다.

내가 물심양면으로 많이 그 사람을 구제를 해 놓고 나중에 많이 주어 놨는데, 나중에는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사람이 되는 거여, 그 사람이.
내 것 많이 먹은 사람이 웬수가 되는 것이지, 전혀 나와 인연 없는 사람은 웬수가 전혀 안되는 법이거든.

남에게 보시를 하고 베푸는 것도 대단히 좋은 일인데 완전히 무주상으로 주어야 해.
조건 없이 주고도 잊어버리고 주어야지,
“내가 이것을 너를 주었으니까 너는 정말 나한테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이 은혜를 잊어서는 안되고 나중에 네가 이것을 내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러한 마음으로 조건부(條件附)로 주고,

“이것을 주었으니까 언젠가 너는 나한테 잘해야 한다. 평생토록 내 은혜를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그런한 조건이 있어 가지고 주어서는 그 사람이 받으면서도 겉으로만 ‘고맙습니다’ 그러지, 속으로는 하나도 고맙지도 않고, 많이 받아먹은 놈일수록에 나중에 그놈이 꼭 배은망덕한 놈이 되고, 나를 해꼬지 하는 것이여.

그래서 남에게 줄 때는 무심(無心) 속에서 주어야 하고 조건 없이 주어야 해.
이것이 부처님의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라 하는 것이여. 금강경을 독송하신 분은 잘 아시겠지.

무주상 보시를 해야 이것이 그 공덕이 영원한 것이지, 유주상으로 준 것은 그것 나중에 꼭 그놈이 나를 웬수로 상대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7일 지장기도 회향식인데, 윤달을 기해서 왜 지장기도를 주지스님이 그렇게 원력(願力)을 발했느냐 하면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죄로 자기가 그 과보를 받게 돼.
무량겁을 두고 몸으로 지은 죄가 태산과 같고, 입으로 지은 죄가 저 대해(大海)와 같고, 마음으로 지은 죄가 허공처럼 많다 그말이야.

그 자기가 지은 — 지금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체가 또 내생(來生)에 윤회할 그리고 고통을 받아야 할 그 원인을 만드는 거여.
과거에 지은 죄를 금생에 받으면서 또 금생에 이렇게 살아가면서 내생에 받을 죄를 또 짓고 있거든.

그래서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懺悔)하고 내생에 받을 과보를 받지 않는 참다운 길을 여러분에게 깨닫게 해 드리기 위해서 지장기도를 봉행한 것이다.

윤달에 예수재(預修齋)도 지내고, 윤달에 가사불사도 하고, 윤달에 개금불사도 하고, 참 수많은 불사(佛事)가 있는데 이렇게 지장기도를 한 경우는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닙니다
대단히 주지스님이 원력을 발해 가지고 지장기도를 이렇게 봉행을 했는데 여기에 동참하신 여러 불자, 신남신녀 여러분은 그 지장기도의 참다운 뜻을 잘 인식을 하셔야 할 것이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지옥 중생 — 이 세상에 고통이 제일 심한 곳이 지옥인데.
지옥에는 팔만지옥(八萬地獄)이 있고, 그 가운데 참 무서운 데가 십팔지옥(十八地獄)이 있고, 무간아비(無間阿鼻) 지옥이 있고 그런데.

그 지옥 문전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지옥 중생을 위해서 지옥문에 가 가지고 눈물이 마를 겨를이 없이 그 지옥 중생들에게 고통을 멈추게 해주기 위해서 애를 쓰고 계시다 그말이야.

우리도 지장보살의 대원력을 따라서 「지옥에 들어가기 전에 해탈도를 가는 것」이 그것이 지장보살의 참으로 큰 대원력이여.

이미 지옥에 들어가 가지고 그놈을 벗어나기는 참 어려운 거여.
한번 들어가면 나올 기약이 없어. 거의 영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할 만큼 몇 무량겁을 지옥고를 받게 되는 것인데,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열심히 해둔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

탐진치(貪瞋癡),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은 마음 — 이 세 가지 죄로 지옥, 아귀, 축생의 과보를 받게 되는 거여. 어리석은 마음을 내면 축생보를 받고, 탐심을 내면 아귀보를 받고, 진심을 내면 지옥을 가는 것이여.

물론 중생은 세 가지를 다 고루고루 지어 가지고 축생에 갔다가 아귀도에 갔다 지옥고에 갔다, 그 삼악도(三惡道)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지만은,


그 어떻게 했으면은 탐욕심을 안 내고, 진심을 안 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안 낼 수가 있느냐?

천하에 간단한 것이지.
아무리 탐욕이 과하고, 진심을 성을 잘 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많이 낸다 하더라도 그것이 근본은 마음에서 그것을 짓는 것이지 다른 것으로 짓는 게 아니여.

어떠한 큰 죄도 ‘어떻게 해서 그 죄를 짓게 되었는가?’ 그 근원을 살펴보면 꼭 마음 ‘한 생각’에서 그것을 짓는 거여.
한 생각이 일어나 가지고 그 한 생각이 차츰차츰 이리저리 발전해 가지고 결국은 그런 큰 죄를 짓게 되어.

‘한 생각’이 딱 일어나면 그것이 말로 표현이 되고, 그것이 얼굴에 나타나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 가지고 큰 죄를 지어 가지고 금생에도 쇠고랑을 차게 되고 내생에는 물어볼 것도 없이 지옥에 가게 되는데.

쇠고랑도 안 차고, 지옥에도 안 가는 방법은 한 생각 일어날 때 그때 딱! 돌이켜버리면 큰 죄를 안 짓게 되는 것이다.

지금 장관도 걸리고, 국회의원도 걸리고, 그 별 단 장성들도 모다 걸려 들어가는데 그 죄가 한 생각에서 일어난거다.

산불이, 건조기에 산불이 지난달에 몇천 건이 일어나 가지고 한국의 금수강산이 모다 다 타고 그랬는데, 그 엄청난 불이 처음부터 그렇게 큰불이 난 것이 아니여. 
처음에는 성냥불 하나나 담뱃불 하나가 결국은 번져 가지고 그렇게 큰불이 된 것이거든.

처음에 담뱃불 하나만 탁! 밟아서 잘 껐어도 그런 큰불이 안 날거거든.
담뱃불 하나만 단속을 잘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여. 성냥불 하나 — 그때는 탁! 손바닥으로 눌러도 꺼지고, 발로 탁! 밟아도 꺼지고.

그때 조심을 했으면 될 것인데 그걸 조심을 안하고, 그때 단속을 안했기 때문에 집도 타고 공장도 타고, 저 엄청난 산도 다 탄다 그말이여.


한 생각 일어난 그 한 생각이 무슨 생각이 일어나건 욕심!
아까 그 자식때문에 요새 모다 부정 입학문제도 그 자식이 평소에 공부를 잘해서 실력으로 들어가 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은 그놈이 국민학교 때는 잘하던 놈이 중학교 가면서 조금 떨어지고, 고등학교 가서는 나쁜 친구를 사귀고 그럭저럭 지내다가 대학을 갈라고 하니 되냐 그말이여.

그러니 부모는 돈이 없는 사람은 몰라도 있는 사람은 몇천 만원, 몇억이라도 넣어서라도 들여서라도 입학을 시키고 보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말이여. 그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면은 참 기가 맥히지.

그러나 지가 공부 못한 놈을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킬 것까지는 없는 일이었었다 애당초에.
못하면 못한대로 지가 공부를 안 해 가지고 못한 걸 어떻게 하냐?
전생에 지혜를 닦아 놓지 아니해서 금생에 머리가 나쁘고, 지가 금생에 어려서부터 열심히 했으면 되는데 그렇게 공부를 하라하라 해도 지가 안 한 것을 어떻게 돈을 들여서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킬 것이냐 그말이여.

못하면 못한대로 구두닦이를 하던지, 노동판에 가서 일을 하던지, 신문팔이를 하던지 아주 매정한 마음으로 했어야 한다 그말이야.
부정한 방법으로 입학을 시켜놨다가 1학년, 2학년 대학에 가 가지고 그때사 퇴학을 당하면 그거 어떻게 되는 것이며, 부정한 방법으로 별자리를 올라갔다 그것이 떨어지니 그것이 될 일이냐 그말이여.(19분41초~40분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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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하고 정에 떨어져서는 안돼.
제 자식이지만은 지가 공부 안한 놈은 안 하는대로 해야지, 인정(人情) 정을 써서 해 놓으면 결과가 결국은 그렇게 되고만 만다 그말이야.
설사 부정한 짓을 해서 금생에 잘산다 하더라도, 금생에 쇠고랑은 안 찬다 하더라도 내생에 저 내생에는 반드시..(법문 끊김)

탐욕! — 자기 욕심대로 안 되면은 진심(瞋心)을 내고, 그러기를 무량겁을 두고 그렇게 해 가지고 육도윤회를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어리석은 것도 가지각색이지만 제일 어리석은 것이 무엇이냐?
‘가장 어리석은 것의 근본이 무엇이냐’하면은 인과법(因果法)을 안 믿는 거여.

인과법을 철저히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인과법을 안 믿고 마구잡이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다.

모든 죄도 인과법을 안 믿는 데서 저질르게 되는 것이다.
인과법은 팥 심은 데 팥이 나고, 콩 심은 데 콩이 나.  털끝 만큼도 어기는 법이 없어.

이 세상에 모든 것은 인과법으로 다 이루어지는 것인데, 인과법은 지극히 과학적이고 컴퓨터보다도 더 정확한 것이여. 컴퓨터도 병이 나면 천하 못 믿을 것이 참, 컴퓨터라 그러는데.

진짜 영원히 추호도 어김이 없는 것은 인과법이여.
한 생각 탁! 먹은 것도 벌써 과보(果報)로 나타나고, 말 한마디 나온 것도 과보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우리는 한 생각 일어날 때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로 돌아와야 해.
‘이뭣고?’는 무엇이냐? 내가 ‘참나’를 찾는 공부거든. ‘참나’로 돌아가는 길이여.

우리가 저 진묵겁(塵墨劫) 전에는 우리도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法身佛)이었어. 법신불과 똑같은 존재였어.

그러던 존재가 한 생각 일어나는 그 무명(無明) 때문에 이렇게 '업(業)투성이'인 중생이 되고 말았다 그말이여. 
그래서 지금도 일어나는 한 생각만 잘 단속을 하면 본래의 비로자나불로 돌아갈 수가 있다 그거거든.

이것 말고는 우리의 영원한 행복도 얻을 수가 없고 우리의 가정, 우리의 사회·국가·세계의 평화도 이룰 수가 없는 거여.
근원을 다스리지 않고 어떻게 지엽적인 문제만 가지고 해결이 될 것이냐 그말이여.

지금 부정부패 척결을 해 가지고 새 한국을 건설하자고 새 대통령께서 나와서 저렇게 애를 쓰고, 온 국가가 온통 이것 때문에 그 애를 쓰고 있는데,
대단히 부정부패는 마땅히 척결을 해야 하고 그래야 이 나라가 되어갈 것은 사실이나 법을 엄격히 적용한다고 해서, 근본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이것은 잠시 그러다가 조금 법을 느슨히 느꿔주면 또 마찬가지야.


근본은 각자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는 거여.
일어나는 한 생각을 자꾸 ‘이뭣고?’로 돌이켜서 ‘참나’로 돌아감으로서만이 부정부패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부정부패, 부정부패하지만 알고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지은 죄여, 그게.
각기 자기가 지은 죄가 노출이 되면 여러 사람이 하니까 온 나라가 썩어 문드러진 것처럼 보이나, 나라가 썩기는 무슨 나라가 썩어, 태산이 썩어?

아무 것도 썩은 건 없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잘못 삐틀어진거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만 바로잡어!
어떻게 나무가 삐틀어지면 깎아내고 바로잡는다 하지마는 사람의 마음을 무엇으로 잡어?

‘이뭣고?’가 자기 마음 바로잡는 법이거든.
자꾸 ‘이뭣고?’를 해서 자기로 돌아가. 자기의 본심으로 돌아가.

그것이 바로 자기 마음을 바로잡는 법인데, 마음 하나만 바로잡고 보면 말도 바르게 나오고, 행동도 바르게 나올 것이고, 마음을 바로잡은 사람은 무슨 일을 맡기더라도 그 일을 바르게 할 것이다 그말이여.

서장이 되거나 검사가 되거나 판사가 되거나 장관이 되거나 마음을 잘못 써 가지고 쇠고랑을 차는 것이지, 마음만 바로잡으면 무슨 걱정이 있느냐 말이여.

법을 아무리 무섭게 제정을 해서 엄격하게 다룬다 해도 그때 뿐이여, 중생은.
엄하게 할수록에 더 머리 좋은 사람은 그놈의 법망을 뚫고 또 죄를 저지르고 마는 거다 그말이여.

그래서 성현들은 법을 엄격히 적용을 하는 데에다가 역점을 두지 않고, 각자 마음을 바로잡는 데에다가 역점을 두고 가리키셨다 그거거든.

‘이뭣고?’ 자기 마음을 바로잡는 법이 아닌가!
집안에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으로 인해서 두 사람, 세 사람 온 집안 식구가 ‘이뭣고?’를 하고, 그런 집안이 있으면 또 이웃집 사람들도 또 그 본을 따서 ‘이뭣고?’를 하고, 사돈네도 그걸 하게 되고 해서,

차츰차츰 ‘이뭣고?’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인과법을 믿고 ‘이뭣고?’만 열심히 하면 이 세상이 온통 부처님 세계로 변하는 것이다.

법이 전혀 필요가 없는 거여. 형무소도 필요없이 되어 버리고.
지옥도 텅텅 비어서 지장보살도 지옥에서 좀 나올 때가 된다 그말이여.

‘이뭣고?’을 하지 않고는 온 세계가 법을 무섭게 제정을 해 가지고,
도둑질한 놈은 왼손 자르고 또 한번 한 놈은 오른손을 자르고, 유부녀 간통한 놈은 목 매달아 죽이고 총살을 시키고, 지금도 저 아프리카 어디 가면은 도둑질하면 팔목 자르고 목 매달아 죽이는 데가 있다고 하더만.

그래 해봤자 마음보를 바로잡지 않고 아무리 무섭게 해서 날마다 수백 명씩 때려 죽여봤자 끝나는 날이 없어. 온 세계 사람을 다 때려 죽여도 소용이 없는 거다 그말이여. 죽자마자 또 다시 태어날 것을 죽여봤자 소용이 있나.


그래서 우리 부처님께서는 ‘이뭣고?’ ‘이뭣고?’
가정에서도 속상한 거 부애풀이 해봤자 소용 없고, 떠억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
열 번, 스무 번 하다보면은 스르르르 가라앉거든.

부애난다고 때려 부수고, 부애난다고 술 잔뜩 먹고 와 가지고 막 때려 부숴봤자 무엇이 되는 일이 있냐 그말이여. 집안만 점점 복잡하고 시끄럽고 일은 무장 더 다 안되거든.
‘이뭣고?’를 해야—턱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자, 다 따라서 숨을 들여마셨다가 ‘이뭣고?’ ‘이뭣고?’

부애가 날 때는 좀 큰소리를 내서 ‘이뭣고?’를 하면 더욱 좋다.
그렇다고 해서 만자 중에서 소리를 내서 ‘이뭣고?’ ‘이뭣고?’ 하면 사람들이 모다 쳐다보고 그럴테니까 사람 없는 데서는 그렇게 하고, 사람 있는 데서는 속으로 ‘이뭣고?’를 자꾸 해서,
자꾸 하다 보면 나중에는 저절로 ‘이뭣고?’가 되야.

걸어가면서 ‘이뭣고?’
심심하면 ‘이뭣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이뭣고?’
밥 먹으면서도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변소에 가서 터억 앉아서도 ‘이뭣고?’.

‘이뭣고?’ 저절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항상 ‘이뭣고?’가 끊어지지 않도록.
그 사람은 제발 좀 성을 내라고 해도 성을 안 내고, 제발 좀 탐욕심을 내라고 해도 안 내는 거여.
그 사람이 무슨 도둑질을 하라고 한다고 해서 할 리가 있는가!

자꾸 처음에는 잘 안되고 재미가 없지만은 자꾸 하면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법희선열(法喜禪悅) — 법(法)의 기쁨과 선(禪)의 즐거움이 속에서,

향을 피워 놓으면 향내가, 전단향을 피우면 10리 밖에까지라도 그 향내가 풍기는데,
‘이뭣고?’를 한 사람은 마음의 기쁨이 그렇게 넘쳐 흐르고 얼굴이 환해지거든. 그 사람을 본 사람마다 다 환희심을 내는 것이다.

그 사람이 간 곳에는 항상 선신(善神)이 옹호를 하고, 마음으로 꼭 탐욕심을 안 내더라도 마음으로 꼭 무엇이 필요하다 하면 저절로 그것이 자기한테 이르러 오는 거여.

지상(地上) 사람은 무엇이 먹고 싶으면 손으로 그걸 집어서 입에다 넣어서 씹어서 먹어야 그때사 배가 부르는데, 복이 많은 저 천상(天上) 사람들은 무엇이 먹고 싶다 하면 벌써 배가 불러져 갖고 있는 거여.

지상 사람은 남녀 관계도 몸과 몸이 접촉해야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천상 사람은 마음 한 생각만 내면 벌써 이루어지는 거여.

그래서 중생이나 축생은 입으로 씹어서 먹는 거고, 귀신은 냄새로 먹는 거고, 천상 사람은 생각으로 먹는 거고.

부처님은 견식(見食)이여. 떠억 보기만 해도 벌써 충분히 배가 부르신 거여.
그래서 이 법당 탁자 위에다가 떡이다 과일이다 잔뜩 갖다 놓아도 하나도 줄지를 않거던. 부처님은 보시기만 해도 배가 부르시기 때문에 그런 거여. 부처님은 견식이여.

그래서 ‘이뭣고?’를 열심히 해서 마음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꼭 필요한 것은 저절로 공급이 돼.
왜 그러냐? 항상 선신이 옹호를 하기 때문에,
선신(善神)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선신은 — 대통령이나 모다 그런 사람들은 항시 호위하는 경호원이 따라다니듯이 — 참선하는 사람에게는 선신이 우리의 경호원으로 따라다녀 가지고 항상 지켜줘.

먹을 것, 입을 것 전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열심히 ‘이뭣고?’하면 걱정을 안 해도 항상 그 사람에게는 의식주 문제가 걱정이 없어.

자기 한 사람의 의식주 문제는 그렇게 크게 걱정을 안 해.
사람이 지나친 욕심을 가지고 탐욕심을 가지고 그래 가지고 분에 넘치는 욕심을 내기 때문에 죄를 지어 가지고 부정부패에 걸리는 것이지, 자기가 먹고 입고 살 만큼만 가질라고 하면은 그렇게 큰 죄를, 큰 욕심을 안 내도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이 몸뚱이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금방 30까지는 조금 마디다가, 40이 되면 더 빨리빨리 가고, 50이 되면 더 빠르고, 60이 넘으면 금방 늙어서 곧 꼬부라지는 거여.

우리가 이만큼 젊었을 때 어쨌든지 시간을 아껴서 열심히 ‘이뭣고?’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우리가 이 몸뚱이를 백 가지, 천 가지 방법으로 위하고 해봤자 금방 이 몸뚱이는 허망하게 늙어가.

벌써 여기에 앉아 계신 분들은 대부분 흰머리가 많거나 적거나 간에 다 하나, 둘씩 이상 다 생겼을 것인데,
그 흰머리가 처음에는 곧잘 보기 싫다고 뽑아 내버리지만 나중에는 몇 해 지나가면 도저히 그놈 다 뽑다가는 대머리가 되게 생기니까 도저히 못 뽑고, 나중에는 물을 들이는데 물을 들여봤자 밑에서 하얀 것이 곧 돋아나거든.

얼굴에 주름살 생긴다고 여기를 째고 잡아당겨봤자, 정말 늙어서는 흉직하게 늙어간다 그말이여.

그 흰머리가 다른 것이 아니라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너 벌써 늙기 시작을 했으니 얼마 안 있으면 너를 데리러 갈테니까 정신 차려라.
죄 지은 것 있으면 참회하고, 어쨌든지 ‘이뭣고?’ 열심히 하고, 남에게 욕심내지 말고, 네게 있는 것을 턱턱 털어서 보시도 많이 하고 그렇게 해서 황천에 올 때에는 가벼운 몸으로 오너라.

탐욕심을 잔뜩 탐욕심을 해봤자 너 죄만 짊어지고 오지, 하나도 가지고 오지도 못할 걸, 뭐하러 그렇게 오그려 쥐고,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도 그리고도 만족할 줄을 모르고 한없이 그렇게 죄만 퍼 짓느냐?’
염라대왕이 우리에게 보낸 편지다 그거여, 편지.

여러분 「지장기도 오늘 회향일을 맞이해서 깨끗이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하고 앞으로 남은 여생에 죄짓지 않고 열심히 ‘이뭣고?’ 하겠습니다」하는 뜻으로 참회진언(懺悔眞言)을 외우면서 연비(燃臂)를 받으시겠습니다.(연비 준비하세요)

참회진언을 하고 연비를 받아서 과거 무량겁에 지은 우리의 죄는 깨끗해졌습니다.
새 마음, 새 몸으로 오늘 새로 태어났습니다.

새로 태어난 몸으로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면 우리는 내일엔 오늘과 다르고, 모레는 오늘과 달라서 점점 젊어지고 점점 이뻐지고, 점점 착해져서 다른 사람이 우리를 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볼 때 옛날에 미웠던 사람이 하나도 미운 생각이 없어지고 옛날에 원수로 여겼던 사람이 하나도 웬수로 보이지를 않고 모두가 다 한 식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상에 극락정토(極樂淨土)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중생이 업(業)의 눈으로 보니까 이 사바세계가 악토(惡土)요 악세(惡世)요 고토(苦土)요 예토(穢土)라고 그렇게 보지마는 부처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이 사바세계가 고대로 적광토(寂光土)요 극락세계인 것입니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온갖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흰 눈이 내리는 것이 하나도 지옥세계라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바야흐로 봄이 돌아와서 산천에 푸른 잎이 돋고 온통 울긋불긋 꽃이 피어서 문자 그대로 금수강산(山)이 되었습니다.

나라도 새로운 정부가 섰으니 우리도 새로운 마음으로 우리의 몸도 새로와지고 우리의 가정도 새로와지고 온 세계가 새로운 새 봄으로 새출발을 하는 그러헌 계기를 우리는 오늘로서 마련을 합시다.(19분41초~61분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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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다생원채기어친~’ ;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大愚集述) 제13 소청명부편(召請冥府篇) 게송 참고.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유루법(有漏法) ; 번뇌의 더러움에 물든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온갖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차별이나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사제(四諦) 가운데 미혹의 결과인 고제(苦諦)와 그 원인인 집제(集諦)에 해당하는 모든 현상.
*유위법(有爲法) ; ① 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② 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무위법(無爲法) ; (산스크리트어: asaṃskrta-dharma) 무위법은 무위의 세계, 즉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의 모든 개별 존재(법·法)를 통칭한다. 또는 그러한 개별 존재(법·法)를 가리킨다.
원래 무위 혹은 무위법은 열반(涅槃)의 다른 명칭.
*무루(無漏) ;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번뇌가 사라진 경지.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무연자비(無緣慈悲) ; 무조건의 자비(慈悲). 상대의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일체 평등으로 구제하는 자비심. 일체 평등의 이치를 깨달아 상대의 상(相:모습)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자비.
무연(無緣)이란 진여평등(眞如平等)의 이치를 깨달아 중생의 본체(本體)가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일으키는 자비.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46)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배은망덕(背恩忘德) ; 남에게 입은 은덕을 저버리고 배신하는 태도가 있음.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내생(來生) ; 죽은 후에 다시 맞이한다는 미래의 삶.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예수재(預修齋) ; 살아 있는 동안에 미리 재(齋)를 올려 죽은 후에 극락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의식.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지장보살(地藏菩薩)석가모니불의 입멸 후 미륵보살이 성불할 때까지, 곧 부처가 없는 시대에 중생을 제도한다는 보살로, 그는 모든 중생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보살이기 때문에 대원본존지장보살(大願本尊地藏菩薩)이라고 한다.
특히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사찰의 명부전(冥府殿)에 본존(本尊)으로 모신다.
보통 삭발한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한 손에는 지옥의 문이 열리도록 하는 힘을 지닌 석장(錫杖)을, 다른 한 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들고 있다.
지장보살은 고통받는 이들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윤회의 여섯 세계, 즉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에 상응하는 6가지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팔만지옥(八萬地獄) ; 중생이 지닌 팔만사천의 번뇌로 생기는 여러 가지 괴로움을 지옥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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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 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진묵겁(塵墨劫) ; 티끌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
*비로자나(毘盧遮那)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이르는 말. 비로자나는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을 형상화한 것. 
*법신불(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기신론(起信論)>에 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그 자체를 의인화한 부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기쁨과 선정(禪定)에 들어가 마음이 즐거운 것.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참회진언(懺悔眞言) ;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진언.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살고 있다는 청정한 국토로,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 있는데, 괴로움이 없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라고도 한다.
*악세(惡世) ; ①혼탁하고 악한 세계. ②불법(佛法)이 쇠퇴하여 수행자도 깨달음을 이루는 자도 없는 말세(末世).
*예토(穢土) ; ①중생들이 사는 세계. ②번뇌와 망상으로 가득찬 고해(苦海)인 사바세계.
*적광토(寂光土) ; (=常寂光土) 항상(常) 변하지 않는(寂) 광명(光)의 세계(土). 법신불(法身佛)이 머무르는 정토(淨土)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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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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