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선사 추모재2016. 10. 14.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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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9) 전강선사 30주기 추모재 / 광주 경양 방죽가 하꼬방 장사 시절의 수행.

 

전강 조실 스님은 열반하셨어도 녹음법문을 통해서 생생하게 우리는  법문을 들으면서 정진을   있기 때문에 아침마다 듣고 싶은 대로 법문을 들을  있고, 언제라도 조실 스님 법문 듣고 싶을 들을  있는 그러한 조실 스님은 없습니다. 그래서 열반하신지 30년이 되어도 우리는 조실로 모시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송담스님(No.689)—전강선사 30주기 추모재(05.01.11) (용689)

 

약 15분.

 

갑신년 섣달 초이튿날 오늘 전강영신(田岡永信) 대종사 조실 스님의 30주기 추모재를 맞이했습니다.

 가운데는, 여기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 가운데에는 조실 스님을 직접 시봉하신 분도 계실 것이고  조실 스님을 친견하고  밑에서 정진하신 도반도 계실 것이고  청신사 청신녀 가운데에는 직접 조실 스님을 친견하고   법문을 듣고 그리고 참선을 하신 그러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직접 뵙지는 못하고 조실 스님은 영탱(影幀) 통해서만 친견하고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수없이 법문을 듣고서  조실 스님의 모습을 상상하시면서 정진하고 계신 그런 분도 계실 것입니다.

 

저는  되기  학생 때부터 조실 스님을 가끔 찾아가 뵈옵고 그리고  학생으로서 조실 스님 계신 절에서 참선도 했습니다.

광주 정토사, 계림사, 나주 다보사  무등산의 자운사, 조실 스님이 계시던 남평의 조그마한 봉암사. 그리고 중이  가지고는 해남 대흥사, 구례 화엄사 그런   주지를 하고 계실 때도  밑에서 모시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장 머리속에 남아 있는 조실 스님이 추모가 되는 시절은 광주 계림동에 있는 경양 방죽가에서 하꼬방 장사를   시절이 항상 마음속에 추모가 됩니다.

조실 스님과 저는 양복, 작업복 그런 것을 입고 하꼬방 장사를 했었습니다마는 낮에는 장사도 하고  광주천  공원, 경양 방죽가를 모시고 거닐면서  주시던 법문. 그리고 밤에는  조그마한  평도 못 되는 방에서 모시고 정진을 하고.

 

조실 스님께서는 초저녁에 잠깐 목침(木枕)을 턱에다 괴시고 잠깐 눈을 붙이시고는 11 못 되서 그때부터는 새벽 3시까지 이렇게 앉아서 정진을 하셨습니다.  밤중 정진은 조실 스님께서 평생토록 밤새 정진을 하신 것이 그것이 아주 습관이 되셔서 그렇게 일생을 정진을 하셨습니다.

 

저는 낮에 심부름하고 그러고 밤에 고단해서 자면 잠깐 놔두었다가 무슨 놈의 잠이 그렇게 많으냐 꾸지람을 하시고,  일어나서 정진을  것이 그저 꾸벅꾸벅 졸면 밤낮 꾸중을 듣고 하던,

그래도 해남 대흥사 주지 하실 때나 구례 화엄사 주지를 하실 때나 그밖에 수없이 여러 군데 자자끔한 절을 맡으시기도 하고  내놓기도 하셨는데.

그래도  하꼬방에 지낼 때가, 차라리   주지도  하시고 일생 동안을 하꼬방에서 모시고 살았으면 제가  정진을  잘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 이런 말씀도 여쭸습니다.

하도 절을 맡었다가  자리잡을만 하면은 의논 한마디도  하시고 사표  버리시고  떠나셨습니다. 그러면  뒤치닥거리만 하고서  조실 스님한테 가면은  벌써 절을  하나 맡으셨습니다. “인자 여기는 정진 실컷   있을 것이다 그러셔 놓고는 그럭저럭 자리잡을만 하면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 이런 불효한 말씀을 여쭸습니다. “조실 스님께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절에 주지로 계시면 저는 거기는 조실 스님을 따라가지 않겠고, 무간지옥(無間地獄)에다가 선방을  놓고 조실로 계시면 저는 거기를 모시고 가서 모시고 살겠습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말씀을 드렸고,  어쩐 때는 앞으로 조실 스님께서 주지를 하시면 저는 퇴속(退俗) 하겠습니다 이런 불효한 말씀을  적도 있었습니다.

 

30주기를 맞이하니까 그래도 이것이 추모재지, 무슨 다른 천도재도 아니고 추모재이기 때문에 지나간 그런 생각을 추모를 하게 되니까 이렇게 두서없이 이런 말씀을 하게 됩니다.

 

조실 스님은 엄격하실 때는 추상(秋霜) 같이 그렇게 무섭고, 따뜻할 때는 봄날과 같이 그렇게 따뜻한 그러고 자비스러운 그러헌 스님이셨고, 매사는 너무 급하시고 두서가 없으신 그런 면도 있으셨습니다.

어쩐 때는  엄격한 법왕과 같으신가 하면은 어떤 때는 어린애와 같으시기도 하고 그러한 어르신인데, 선가구감(禪家龜鑑) 이러한 글이 있습니다.

 

오호라, 기위인야(其爲人也). !  사람됨이여. 본래(本來) 무연(無緣)이요 본래무사(本來無事). 본래 인연이 없으며 본래 일이 없어. 기래즉식(飢來卽食)이요 곤래즉면(困來卽眠)이다. 배고픔이 오면  먹고 졸음이 오면  한숨 잔다.

녹수청산(綠水靑山) 임의소요(任意逍遙)하고 어촌주사(魚村酒肆) 자재안한(自在安閑)이다. 연대갑자총부지(年代甲子總不知)한데 춘래의구초자청(春來依舊草自靑)이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마는 바로  시구를 보면 조실 스님이야말로 정말 이와 같이 평생을 사신 그런 분이다. 서산대사의 선가구감에  글이 있으니 여러분도 한번 음미를  보시고 조실 스님의 행장에 대해서 추모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전강영신 대종사, 우리 법보선원에 조실(祖室) 계시고, 수원 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십니다.

열반(涅槃)하셨는데  열반하신 분을 조실로 모시느냐?’ 그런 것에 대해서 물어온 분이 가끔 있습니다.

 

조실 스님은 열반하셨어도 녹음법문을 통해서 생생하게 우리는  법문을 들으면서 정진을   있기 때문에 아침마다 듣고 싶은 대로 법문을 들을  있고, 언제라도 조실 스님 법문 듣고 싶을  들을 있는 그러한 조실 스님은 없습니다. 그래서 열반하신지 30년이 되어도 우리는 조실로 모시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으로 정말 확철대오(廓徹大悟) 하시고 대원력과 대자비를 가지신 그런 분을  만나면 열반하셨어도 전강 대종사를 조실로 모신 것이 무엇이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정말 여기에 모이신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께서도 비록 열반하셨지만 살아 계신 조실 스님으로, 살아 계신 대선지식으로 그렇게 모시고 항상 마음속에 모시고 항상 우리의 곁에서 계신, 살아 계신 줄로 그렇게 믿고 정진하신다면 조실 스님은 언제나 우리가 있는 곳에 엄격하고도  자비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조실 스님은 정말 위대한 선지식(善知識)이시고 영원한 우리의 스승으로 산승(山僧)은 그렇게 믿고 삽니다. 여기에 모이신 여러 도반들, 여러 형제자매 여러분들도 그런 신심과 분심으로 오늘 30주기 추모재를 기해서 마음에 다짐하시면서  같이 목적지를 향해서 정진을 하시기를 다짐합시다.

 

오늘 법요식이 끝난 다음에 정성을 다해서 공양을 준비를 했으니 바쁘신 일이 있으시드라도  분도 빠지시지 말고 공양을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소한, 대한 추위에 갑자기 요새 이렇게 강추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원근에서  추모재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처음~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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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戊戌) 11 16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어젯밤 달빛은 ()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없네.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 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78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송(江松) 백운(白雲)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甲寅) 음력 12 2,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700 시간 분량의 육성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영탱(影幀 그림자 /그림 족자 ,그림 족자 ) ; 불교 종파의 조사나 고승을 그린 그림으로 진영(眞影), 영정(影幀), 정상(頂相), 조사도(祖師圖)라고도 불리운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하꼬방 ; 판잣집(판자로 허술하게 지은 ). 箱房. (상자) 일본어 훈독 ばこ(하꼬)’+() 결합된 .

*목침(木枕 나무 /베개 ) ; 나무토막으로 만든 베개.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 아비(阿鼻) 산스크리트어 avīci 음사(音寫)로서 ‘ (), ‘ ()로서 전혀 구제받을  없다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 아버지를 죽인 , 어머니를 죽인 , 아라한을 죽인 ,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 ,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 죄인의 눈을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퇴속(退俗 물러날·돌아갈 /세상 ) ; 승려가 도로 세속(世俗)으로 돌아감[退].

*선가귀감의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37~38.

吾有一言(오유일언)하니  絶慮忘緣(절려망연)하고  兀然無事坐(올연무사좌)하니  春來草自靑(춘래초자청)이로다

 

내가 한마디 하고자 하노니, 생각을 끊고 반연을 쉬고 단정히  없이 앉았으니, 봄이 오매 풀이 절로 푸르구나.

 

(註解) 絶慮忘緣者(절려망연자)는  得之於心也(득지어심야)니  所謂閑道人也(소위한도인야)라

於戱(어희)라  其爲人也(기위인야)가  本來無緣(본래무연)하며  本來無事(본래무사)하야  飢來卽食(기래즉식)하고  困來卽眠(곤래즉면)하며  綠水青山(녹수청산)에  任意逍遙(임의소요)하고 漁村酒肆(어촌주사)에  自在安閑(자재안한)하야  年代甲子(연대갑자)를  總不知(총부지)하되  春來依舊草自青(춘래의구초자청)이로다  此(차)는  別歎一念㢠光者(별탄일념 회광자)니라

 

생각을 끊고 반연을 쉰다는 것은 마음에서 자득함을 가리킴이니, 이른바  없는 도인이다.

!  사람됨이 본래 얽힘 없고 본래  없어, 배고프면 밥을 먹고 고단하면 잠을 자며, 녹수 청산에 마음대로 오고 가며, 어촌과 주막에 걸림 없이 지내 가리。세월이 가나 오나    아니언만, 봄이 오면 예대로 풀이 절로 푸르구나。이것은 특별히  생각을 돌이켜 반조하는 자를 찬탄함이라。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 집착(執着)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Posted by 닥공닥정

§(026) 바른 스승이란? / 전강 스님의 용맹정진, 만공 스님과의 법거량, 인가 / 추호도 의심없이 공안을 바로 봐야 / 진실로 시간을 아껴서 정진해라.

 

참선을 나가는 데에는 바른 스승을 구해야 한다. 어떠한 것이 바른 스승이냐? 실오실참(實悟實參), 실답게 닦아 가지고, 실다웁게 깨달라서 바른 선지식의 인가(印可) 맞아야 한다.

어떻게 발심(發心) 하고 () 나서 밤이나 낮이나 철봉대를 붙잡고 정진을 하신 가운데(상기병으로 피를 너무 쏟아서 힘이 없어서 앉으면 잠이 오고 정진할 수가 없어서, 안 잘려고 철봉을 붙잡고 정진을 하심),

개천에서무무(無無) 역무(亦無)어떤 도반들이 그런 소리를 지르면서, 가재를 잡으면서 모다 그런 소리가 들려온 것을 보고서 그때 확철대오를 하셨다.

 

우리가 근기(根機) 수승하지를 못해서 중근기, 하근기라 하더라도 바른 스승을 만나 가지고 올바르게 지도를 받고, 그래서 올바르게 수행을 한다고 하면은 누구나 자기에게 있는참나 깨달라서 생사해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나기 어려운 사람의 몸을 받어 가지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 가지고, 만나기 어려운 선지식을 만나 가지고도 바로 믿지 못하고 갈팡질팡, 그렁저렁 하다가 아까운 세월 보내고, 마지막 죽어 때에 천만 가슴을 쥐어뜯고,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를 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공안에 대해서 낱낱이 추호도 의심없이 공안을 바로 봐야 자기의 생사(生死) 면하는 것이며, 불조의 면목(面目) 보는 것이며, 우주의 근본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생사해탈을 해서 불조(佛祖) 지혜목숨, 혜명(慧命) 잇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은 잠시도 머물러지 아니하고 1, 1 이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바로 우리가 사형집행 시간에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잠시도 망각을 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진실로 1, 1 시간을 아끼는 사람이라야 영원한 생사해탈을 기약할 수가 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송담스님(No.026)—76 동지법문 (76.12.22) (용026)

 

(1) 약 21분.

(2) 약 4분.

 

(1)------------------

 

참선을 나가는 데에는 바른 스승을 구해야 한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떠한 것이 바른 스승이냐? 실오실참(實悟實參), 실답게 닦아 가지고 실다웁게 깨달라서 바른 선지식(善知識) 인가(印可) 맞아야 한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목구녕에서 선지피가 덩어리 덩어리 맺혀서 쏟아지도록, 그렇게 말로써 형언할 없는 그러한 고행정진을 하셔 가지고, 급기야 확철대오를 가지고서 한국의 6대선지식으로부터서 법문답(法問答) 가지고 인가를 받으셨습니다.

 

조실 스님께서 받으신 인가는오냐, 옳게 알았다. 니가 견성을 했다이렇게 인가를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선지식과 법문답을 가지고 선지식이 조실 스님의 깨달은 증득한 힘과 역량이 너무나도 투철하시고 확철대오를 하셨기 때문에 어떠한 선지식도 조실 스님의 밝고 투철한 깨달은 경지에 대해서 무릎을 꿇지 않코서는 배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옳다, 니가 옳다하고 말씀하실 겨를 조차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러한 다섯 분의 선지식의 인가를 받어 가지고 마지막에 만공 큰스님한테 가지고 만공 큰스님과 법거량(法擧揚) 하셨는데, 만공 스님께서는 중요한 꼬타리를 ! 붙잡으셔 가지고 조실 스님을 인정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거기에서 처음에는 조실 스님께서는 만공 스님께서나를 떠볼라고, 시험해 볼라고 이러시지 않나?’하고 처음에는 범연(泛然) 그렇게 생각하셨다가 두고 두고 인정(認定) 하시고, 놀리시고, 무시를 하시고, 그러시기 때문에,

선지식이 학인(學人) 그러실 수는 없다.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기 때문에 저러신 것이지, 어찌 선지식으로서 깨달은 학인이 온다면 분명히 깨달은 사람을 깨달았다고 하실 일이지, 절대로 거짓말하시거나, 후배를 농락하실 리는 없다

 

그래 가지고 거기서 생각을 돌이켜 가지고, 철봉대(鐵棒臺) 붙잡고 날새기 공부를 하시면서 그때 하신 화두가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였습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화두를 철봉을 붙잡고 밤이슬을 맞으면서 며칠을 두고 용맹정진을 끝에 확철대오를 하셨던 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철봉을 잡고, 남이야 개천가에서 히히닥거리고 장난을 하거나, 잡담을 하거나 그런 것도 불구하고, 어떻게 발심(發心) 하고 () 나서 철봉대를 붙잡고 정진을 하신 가운데,

개천에서무무(無無) 역무(亦無)어떤 도반들이 그런 소리를 지르면서, 가재를 잡으면서 모다 그런 소리가 들려온 것을 보고서 그때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즉시에 무슨 공안(公案) 도리가 나타났냐 하면은 마조(馬祖) 원상(圓相),

마조 스님이 둥그러미를 땅에다가 그려 놓고서 안에 들어가도 치고,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친다이렇게 어떠한 스님에게 법을 물었습니다. 스님이 둥그러미 안에 뛰어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은 가지고 계시던 주장자로 스님을 방맹이 쳤습니다.

맞은 스님이 말이, 조주 스님을 ! 쳐다보면서스님은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조주 스님은 아무 말씀도 하시고,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공안에 대해서 조실 스님께서는 여지없이 간파(看破)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분이 솟구쳐 나고, 어떻게 말로써 표현할 없는 분이 나던지,

그길로조실로 계시는 만공 스님께서는 이미 보월 스님에게 조실 자리를 물려주시고 당신께서는 금선대(金仙臺) 은퇴하고 계실 때입니다. 증사(證師) 그렇게 금선대에 계시고, 조실에는 만공 스님의 수제자이신 보월 스님께서 조실로 계실 ,

 

조실방에 뛰어 들어가서 보월 조실 스님 앞에다가 원상 떠억 그려 놓고 안에 들어가도 치고, 안에 들어가지 해도 친다고 하셨으니, 말씀 일러주십시오보월 스님께서 원상을 손으로 이리 뭉개버리셨습니다.

그러니까! 천하 선지식으로서 학자를, 이렇게 천하 학자를 죽일 수가 있습니까. 이래 가지고 조실에 앉어 계실 수가 있습니까?” 고함을 지르면서 그러니까, 사람 보소, 사람 !” 그리고 어리둥절하실 ,

 

그길로 금선대에 쫓아 내려가서 만공 스님 앞에 가서제가 조실 스님을 매장(埋葬) 하고 왔습니다! 세상에 조실에 앉아서 천하 학인의 눈을 그렇게 멀릴 수가 있습니까?” 이래 가지고,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셨죠.

 

그렇게 해서 전강 조실 스님은 만공 스님께 정식으로 다시 그렇게 해서어디 안에 일러봐라그러니까큰스님께는 이르겠습니다.”

 

옆에 용담 스님이라고 하는, 여러분이 지금 선가귀감(禪家龜鑑) 번역한 것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마는, 처음에 용담 스님께서 선가귀감을 번역을 하신 것입니다. 그걸 번역을 했던 것을 근본으로 해서 법정 스님이 새로 교정을 가지고 내놓은 것이 요새 발간해 나오는 선가귀감입니다.

처음에 번역했던 용담 스님이 전강 조실 스님과는 아주 다정한 도반이었습니다.

 

마치 용담 스님이 옆에 계시는데, 그러면용담, 자네가 묻소그래서 용담 스님이 원상을 떠억 그려 놓고서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치노라.” 그러니까는 조실 스님께서 거기서 터억 일르셨습니다. 이것은 설파(說破) 되기 때문에 조실 스님께서는 말씀을 하시지 했습니다.

 

그리고 밖에 처음에 만공 스님한테 가서 절을 하니까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전강 스님께서)주먹을 터억 내미니까는허어, 습기를 면치 못했구나. 아니다! 견성이 아니다. 견성이 아니다이렇게 부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스님, 그때 법을 다시 물어 주십시요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니까허허허, 보게.”

 

이렇게 해서 그날부터서는 모든 공안에 대해서 정식으로 탁마(琢磨) 허락을 하셔 가지고, 천칠백 공안 낱낱이 만공 스님과 서로 탁마를 가지고,

결국은 만공 스님께서허허, 학자(學者) 선지식 똥구녁에 들어가기도 하고, 선지식이 학자 똥구녁에도 들어간 것일세이렇게 해서 모든 탁마를 마치시고,

 

그래 가지고 조실 스님을 하직을 하고 팔도에 자유자재로 다니시면서 오후보림(悟後保任) 가지고, 말년에 이르러서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말년 회향을 우리를 지도하시면서 마지막 열반하신 그날까지 법상에 올라가셔서 설법을 주시고 열반(涅槃) 드셨던 것입니다.


그러한실오실참(實悟實參) 가지고 바른 선지식의 인가를 맞아야, 선지식이라야 비로소 우리가 목숨 바쳐 의지해서 공부에, 참선에 지도를 받을 있는 바른 스승이다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지식은, 우리의 도를 지도해 주실 선지식은 무엇과 같으냐? 하면은 목수(木手)에다가 비교할 수가 있고, 도를 배우는 학자는 재목(材木)에다가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재목도 좋은데다가 좋은 훌륭한 목수를 만나야 훌륭한 집을 지을 수가 있습니다. 어떠한 물건을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재목이 좋고 훌륭한 재목이라 하더라도 목수를서투르고, 경솔하고, 지혜롭지 못한 서투른 목수를 만나 놓으면은 아까운 재목을 버리고 말아 버리는 것입니다. 설사 재목이 조금 좋은 재목이라 하더라도 훌륭한 목수를 만나 놓으며는 상당한 효과를 나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근기(根機) 수승하지를 못해서 중근기, 하근기라 하더라도 바른 스승을 만나 가지고 올바르게 지도를 받고, 그래서 올바르게 수행을 한다고 하면은 누구나 자기에게 있는참나 깨달라서 생사해탈을 수가 있는 것이지마는,

우리 근기가 비교적 순수하고, 근기가 수승하다 하더라도 바른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자기는 영원히 깨닫기커녕은 삿된 도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바른 스승은 깨달은 바가 분명하면 되는 것입니다.

 

공자님 말씀에소인(小人) 유재자다(有才者多)이라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소인놈 가운데 재주있는 놈이 많느니라이런 말씀을 공자님이 하셨습니다.

재주가 있어 가지고, 잘하고 똑똑하고, 영리하고 수단 좋고, 이러한 사람이 소인놈 가운데에소인(小人) 유교에서는 군자(君子) 상대말로 사용합니다. ‘군자가 아닌 소인 속에 재주있는 사람이 많다이렇게 공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불가(佛家)에도세지총명(世智聰明),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가 있고, 총명한 사람은 도에 들어오기가 어렵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바른 선지식을 만나냐, 만나느냐, 만나 가지고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서 내가 나를 깨달라서 생사해탈하는 바른 길에 들어갈 있느냐, 없느냐의 판가름이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나기 어려운 사람의 몸을 받어 가지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 가지고, 만나기 어려운 선지식을 만나 가지고도 바로 믿지 못하고 갈팡질팡, 그렁저렁 하다가 아까운 세월 보내고, 마지막 죽어 때에 천만 가슴을 쥐어뜯고,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를 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 남전 스님이 고양이를 칼로 버리는남전참묘(南泉斬猫)’라고 하는 공안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고,

다음에는 부처님께서 열반 하실 때에 제자들을 향해서내가 열반을 했다고 해도 나의 제자가 아니요, 내가 열반을 하지 아니했다고 해도 나의 제자가 아니니, 일러라 하신 가지 공안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째서 남전 스님이 고양이를 죽였냐? 남전 스님 회상에 동당(東堂) 대중과 서당(西堂)—지금 용화사에도 선방에서는 비구 스님네들이 참선을 하시고, 저쪽 작은 선방에서는 보살님네들이 거기서 참선을 하고 계십니다마는 그리고 여기 웃절에도 분이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고 계십니다마는,

 

남전 스님 회상에서도 동당, 서당 노나서 정진을 하셔서 고양이 마리가 있었는데, 동당에서는 고양이가 동당 고양이다 서당 대중들은그것은 서당의 고양이다 가지고, 고양이 마리를 가지고 서로 싸우게 되었습니다.

그때 조실 스님으로 계시는 남전 스님께서고양이를 이리 가져오너라 가지고 고양이 목을 처억 추켜들고일러라! 이르지 못하면은, 한마디 바로 이르지 못하면은 고양이를 죽일 것이다

 

동당 대중, 서당 대중이 전부 고양이를 가지고 싸우다가, 덩둘허니 그걸 쳐다보고는 입이 붙어 버렸습니다. 아무도 한마디도 이르지를 못했습니다. 남전 스님은 고양이 목을 !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자 남전 스님의 제자이신 조주(趙州) 스님우리가 화두로 공부하고 있는 무자(無字) 판치생모가 전부 조주 스님으로부터 나온 화두입니다. 조주 스님이 떠억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니까 남전 스님께서아까 약허약허 해서 고양이를 들고 일르라고 하자, 대중이 아무도 일르지 못했다. 그래서 고양이를 죽였는데, ! 한마디 일러라그러니까 조주 스님이 신고 있던 신을 벗어서 머리에다가 이고서 나갔습니다.

나가니깐 남전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어허, 네가 있었으면 고양이를 살릴 했구나이렇게 내용의 법문을 조실 스님께서는 대중을 향해서 물으셨고,

 

다음에 부처님 열반 시에 부처님이 열반하실라고 하니까, 대중들이 땅을 치고 우는 사람, 땅에다 머리를 짖쳐서 피를 흘리면서 통곡을 하는 사람, 몸부림을 사람,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라 거기에 모였던 코끼리, 짐승까지라도 슬픔에 잠기지 아니한 것이 없었고,

거기에 사라쌍수(沙羅雙樹), 부처님께서는 사라수라고 하는 나무가 나란히 있는 사이에 자리를 펴시고 거기에서 열반에 드셨는데, 나무를 비롯한 근처의 , 파란 이파리가 일시에 백색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학수(鶴樹), 학같이 하얀 나무라, 학수쌍존(鶴樹雙尊)이라고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마는 하늘의 해가 무색해지고, 산에 나무 이파리 흰빛으로 변했고 짐승, 사람 모든 것이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때에내가 죽는다고, 열반에 든다고 해도 나의 제자가 아니요, 내가 열반에 들지 아니했다 해도 제자가 아니니, 일러라 공안을 조실 스님께서는 대중을 향해서 물으셨습니다.

 

이러한 공안에 대해서 낱낱이 추호도 의심없이 공안을 바로 봐야 자기의 생사(生死) 면하는 것이며, 불조의 면목(面目) 보는 것이며, 우주의 근본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생사해탈(生死解脫) 해서 불조(佛祖) 지혜목숨, 혜명(慧命) 잇게 되는 것입니다.(153~3552)

 

 

 

 

(2)------------------


오늘 조실 스님께서 주신 법문(法門) 너무나도 위대하고, 깊고, 기가 맥힌 그러헌 법문을 고루고루 주셨습니다.

동짓날을 기해서 오늘부터서 하루에 1분씩 낮의 시간이 길어지고, 밤의 시간이 짧아지는 것입니다. 내년에 춘분이 돌아올 때까지 그때 가서 비로서 밤과 낮이 가지런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은 잠시도 머물러지 아니하고 1, 1 이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도달을 해야 마지막 죽음의 시간이우리의 목구녁에서 숨이 ! 끊어질 시간이 1, 1 다가오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을 하고 1, 1 지내가는 시간을 어찌 등한히 지낼 수가 있느냐 말씀입니다.

시간이 바로 우리가 사형집행 시간에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잠시도 망각을 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진실로 1, 1 시간을 아끼는 사람이라야 영원한 생사해탈을 기약할 수가 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지금은 백일기도 중간이요, 동안거 결제 기간입니다.

결제에 참여하신 보살님은 말할 것도 없고,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모든 신남신녀 여러분들께서도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오고가는 길거리에서, 언제 어데서 생각, 생각을 돌이켜서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간절히, 간절히 화두를 들고, 참나를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정진을 계속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돌아오는 16 날은 우리에게 그렇게 간곡히 정법을 설해 주시던 조실 스님의 생신일입니다. 조촐히 그날을 추모하는 법회를 갖고저 합니다. 있으면 참여하셔서, 그때 조실 스님의 법문 한편을 듣도록... 음력 16일입니다. 이달이죠!

그러면 오늘은 이만 말씀을 드리고 다음 법요식을 진행하겠습니다.(3553~3916)(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인가(印可 도장 ,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선지피 ; ①선지. 짐승을 잡아 죽여서 받은 . 식어서 굳어 덩어리진 피를 말한다. ②다쳐서 선지처럼 쏟아져 나오는 .

*법문답(法問答) ; 법거량(法擧揚).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객(禪客) 사이에 주고받는 () 대한 문답.

*꼬타리 ; ‘꼬투리(어떤 이야기나 사건의 실마리)’ 사투리.

*범연(泛然) ;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학인(學人) ;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 성자. 수행승. () 닦는 수행승.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철봉대(鐵棒臺) ; 체육 도구의 하나. 기둥 사이에 일정한 높이로 쇠막대를 평행하게 걸쳐 놓은 기구.

*날새기 ; 저녁, 밤을 지나 날이 밝아 때까지 자지 않는 .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 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忿)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 푸른 ,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 참의(叅意)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5 165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스님을 후려치니까, 스님이 말하기를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86 1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그려 놓고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 했습니다. 아무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공안에 스님이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방을 후려치니까 스님이 ()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 소견(所見)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 되는 것입니다.

*마조(馬祖) 스님, 만공 스님, 보월 스님 ; 분류역대 스님 약력참고.

*간파하다(看破--) ; 속내(드러나지 않은 일이나 숨겨진 마음) 꿰뚫어 알아차리다.

*용담(龍潭) 스님 ; 생몰년 미상. 성은 (), 법명은 초안(初眼)이며, 용담은 법호이다.

한용운(韓龍雲) 스님의 수제자로, 덕숭산 만공(滿空) 선사의 회상에서 지도를 받아 득의처(得意處) 인증(認證)받았다. 《선가구감》 연구에 골몰하여 완벽한 번역과 풀이를 위해 정성을 다하였다.

또한 여러 고승들과 함께 「불교혁신총동맹」을 결성하여 불교혁신운동을 전개하였고, 「선학원」 부이사장, 「해동역경원」 부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 419, 신의주에서 병원을 하고 있던 동생을 만나겠다며 김구 선생과 함께 「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에 참석하러 월북하였으나, 소식이 단절되었다.

—[선가구감] (용담 스님 역주 | 효림) 편역자 소개에서.

*선가귀감(禪家龜鑑) ; 조선 서산대사가 경전과 어록 중에서 수행의 지침이 선종(禪宗) 중심으로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부분을 가려 뽑은 불교 개론서.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선가귀감 있다.

*설파(說破) ;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탁마(琢磨 , )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②옥이나 따위를 쪼고 .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

*오후보림(悟後保任) ;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 습기(習氣) 제하고 ()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공부. 장양성태(長養聖胎).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수심결修心訣>에서.

頓悟者  凡夫迷時  四大爲身  妄想爲心  不知自性是眞法身  不知自己靈知是眞佛也  心外覓佛  波波浪走  忽被善知識  指示入路  一念廻光  見自本性  而此性地  原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頓悟也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 범부(凡夫) 미혹했을 사대(四大) 몸이라 하고 망상(妄想)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自性) 법신(法身)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靈知) ()부처인 알지 못하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따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홀연히 선지식(善知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생각 돌이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성품(性品)자리에는 원래(原來) 번뇌(煩惱) 없고, 무루(無漏) 지혜 성품이 본래(本來) 스스로 구족(具足)하여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으니 그러므로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라고 한다.

 

漸修者  雖悟本性 與佛無殊  無始習氣  卒難頓除故  依悟而修  漸熏功成  長養聖胎  久久成聖   云漸修也 比如孩子初生之日  諸根具足  與他無異    其力未充  頗經歲月  方始成人

 

점수(漸修, 차츰 닦음), 비록 본래 성품(本性)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혀온 습기(習氣) 갑자기 모두 없애기는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 점차로 익혀 () 이루어 성인(聖人) () 길러 양성하면, 오랜 동안을 지나 성인(聖人) 이루게 되므로, 점수(漸修, 점차로 닦음)라고 한다.

비유(比喩)하면,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모든 기관(諸根) 갖추어 있음은 남과 다르지 않지만,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므로 제법 세월(歲月)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른(成人) 되는 것과 같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 집착(執着)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덩둘하다 ; ①매우 둔하고 어리석다. ②어리둥절하여 멍하다.

*약허약허 ; 약하(若何)하다여하(如何)하다의 높임 . 여하(如何)하다 : 어떠하다(어떻다, 의견·성질·형편·상태 따위가 어찌 되어 있다).

*사라쌍수(沙羅雙樹) : 북부 인도의 구시성(拘尸城 kuśinagara)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Ajitavati)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있는 것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사라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겨드랑이를 밑으로 해서 입멸하시니,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 그리하여 학의 (鶴林, 鶴樹)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면목(面目 , )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 정법(正法) 명맥(命脈). ②법신(法身)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

 

 

 

------------------(2)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7. 18. 18:18

 

 

§(377) (게송)삼라만상동귀환~ / 선가귀감(禪家龜鑑)-팔만대장경의 골수(骨髓) / 도인 81행-영아행(嬰兒行) / 참선에 요긴한 점-삼요, 무조건 ‘이뭣고?’

생사(生死)가 무상(無常)한 이 세상에 몸을 받아 났지마는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서 금생에 결정코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 하느니라.


참선이란 것은 말 길이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지고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이 끊어져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 가지고 순일무잡(純一無雜) 해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해서 그 의단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견허는 것이 참선이지, 그러헌 그 선(禪)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서 해석허고 잘 안다고 해서 그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점점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가귀감이라는 이 책은 그러헌 책과는 다릅니다. 어쨌든지 바르게 공부해 나가도록, 이 책을 보는 사람에게는 신심이 일어나고 분심이 일어나고 의단이 독로하도록 도와주는 책으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77) - 1989년 2월 첫째일요법회(89.2.5)에서. (용377)

 

(1) 약 21분.

 

(2) 약 22분.


(1)------------------

삼라만상동귀환(森羅萬像同歸幻)한디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허공불시장신처(虛空不是藏身處)라  간취풍전대우송(看取風前帶雨松)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라만상(森羅萬像)이 동귀환(同歸幻)이다. 삼라만상(森羅萬像)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환(幻)으로 모두 다 똑같이 환(幻)으로 돌아간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도 결국은 한줌의 흙이 되고 나중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은 어디로 갔는지 볼 수가 없고,
집도 오래되면 허물어져 버리고, 나무도 오래되면은 죽어서 없어져 버리고,

저 태양도 오래오래 저렇게 발광을 하고 있을 것 같지마는 일초 일초 열이 식어가고 있고 모양이 변해가서 언젠가는 저 태양과 달과 모든 별들도 결국은 다 부서져서 없어져 버릴 때가 오는 거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도 일초 일초 쉼 없이 모양이 변해 가지고 결국은 언젠가는 이것이 없어져 버릴 때가 오는 것이여.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다. 저 새가 저 긴 하늘을 날아가매 날아간 자취가 없어. 그 자취를 찾을 수가 없듯이,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생겨났다 없어진 자취도 또한 찾을 길이 없더라.

그러면 모든 것이 생겨났다 없어져 버리면 결국은 허공으로 돌아가 버리고, 자취가 없으니까 허공으로 돌아가 버리는데,
그러면 그 허공이라는 것이 과연 이 몸뚱이, 나 자신을 거기다가 감출만 하냐?(虛空不是藏身處)
그 허공이라는 곳에 이 몸뚱이와 우리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을 거기다가 떠억 안신(安身)헐 만한 곳이 못 되더라 그말이여.

그러면 어디다가 우리의 이 몸뚱이와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한 놈을 어디다가 갖다가 붙일 것인가?
간취풍전대우송(看取風前帶雨松)이다. 저 바람 앞에 비에 흔들리는 저 소나무, 그놈을 똑바로 들어라.
바람이 불며 비가 그 소나무에 뿌릴 때, 비 뿌리는 가운데에 바람이 소나무에 지나갈 때, 소나무에 그 솔바람 소리가 들리는데, 그 솔바람 부는 거기를 똑바로 보고 알아차려라 이거거든.

오늘, 무진년이 마지막 끝나는 섣달 스무 아흐레 그믐날입니다.
그리고 양력으로는 2월 5일 첫째 일요법회 날인데, 어제는 입춘법회가 있었습니다마는, 오늘 또 이 무진년 마지막 끝나는 날이 하필 또 일요법회와 이렇게 맞섰습니다.

지난 1년 동안 국내외적으로 퍽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그러헌 해였습니다.
세계가 그렇고 나라가 그렇고, 그러헌 커다란 대해에 파도가 치는 속에 우리는 낱낱이 조그마한 조각배를 그 파도 속에 띄우면서 용케도 엎어지지 아니하고 이 해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그 드시고 억센 파도 속에 그놈을 견디어 내지 못하고 그 파도에 덮쳐서 바다 속으로 가라앉어 버리는 그러헌 나라도 있고, 그러헌 회사도 있고, 또 그러헌 사람도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용케도 그 억센 파도를 잘 견디고 극복해서 다시 새해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우리는 부처님의 따스한 자비의 가피(加被)를 입었다고 생각할 때에, 무한히 부처님께 감사헌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리해서 한 해가 저물었으니, 지난 1년 동안에 있었던 모든 몸 아프고 마음 아팠던 그리고 괴롭고 쓰리던 모든 일들, 원망스럽고 미웠던 일들, 다 깨끗이 자취없이 사라져 가는 한 해와 더불어 그런 언짢은 생각, 언짢은 일들도 함께 다 흘려보내 버리는 것이 참 좋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릇 속에 담겨 있었던 좋지 못한 음식, 변질된 음식, 독한 음식, 먹을 수 없는 음식들, 그런 것은 깨끗이 비워버리고 깨끗이 씻어서 아주 더운물에 끓여서 그래서 그릇을 비워놔야 거기에 다른 음식을 담을 수가 있듯이,
지난 1년 동안에 우리의 주변에 일어났던 일, 또 우리 일신상에 일어났던 일, 우리의 마음속에 스쳐간 모든 일들을 깨끗이 다 버려버리고, 허공과 같이 맑고 깨끗하게 허고서 새해 첫날을 맞이해야 또 새해는 싱그럽고 희망찬 한 해가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방금 조실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생사(生死)가 무상(無常)한 이 세상에 몸을 받아 났지마는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서 금생에 결정코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 하느니라.’
이러한 고구정녕(苦口丁寧)하시고 절절한 그런 법문을 다 같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묵은 해가 가고 새해가 돌아올 때 새로 태어날 뿐만 아니라, 날마다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하고, 1분 1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하고, 1초 1초마다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새로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참 축복 받을 만한 일인 것입니다.

오늘 최웅식 동자(童子)가 오늘 백일(百日)을 맞이하는 날로, 그 백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선가귀감(禪家龜鑑)이라고 하는 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의 골수가 똘똘 뭉쳐서 수록되어 있는, 서산대사(西山大師)께서 저술하시고, 우리 용화사에서 84년도에 번역을 해서 간행한 이래로 이번까지 16판을 간행을 했습니다.

이 한 권의 책은 바로 팔만대장경이 바로 이 한 권 속에 축약(縮約)이 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헌 경을 여러분께 법공양(法供養)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동자가 새로 태어난, 정말 어느 집에 어느 아들이라도 새로 태어났을 때에는 집안 식구뿐만이 아니라 온 이웃사람 일가친척 모든 사람들로부터 축복을 받습니다.
사람들만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법계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왜 새로 태어난 동자와 어린 애기를 축복하느냐’하면은,
원래 생(生)과 사(死)가 없는 것이고 또 생과 사가 둘이 아닌 것이지만, 생(生)하고 또 한평생을 살다가 인연 따라서 다시 또 몸을 바꾸고 허는 이러헌 일들이,
낱낱이 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우주의 진리 체(體)인 진여불성이 있기 때문에 그 진여불성을 가지고 있는 증거로서 새로운 생을 받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애기가 태어난 것은 바로 한 부처님이 태어난 것입니다.
물론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에는 생(生)은 바로 그것이 죽음이다, 그러기 때문에 생(生)은 바로 고통이다, 나서 늙어서 병들어 죽는 것 이외에 뭣이 있느냐?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마는,

진리를 깨달은 눈으로 볼 때에는 생(生)도 진리요, 늙음도 진리요, 앓는 것도 진리요, 이승을 하직하는 죽음도 진리의 한 모습인 것입니다.
마치 봄에 잎이 피고 꽃이 피며, 가을에는 단풍이 지고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눈 내리는 춘하추동 사시(四時)가 있듯이, 인생에는 생로병사가 있고 희로애락이 있고,
이런 것이 전부가 다 진리 체의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갓난애기가 태어나는 것은 온 우주법계로부터서 축복을 받고, 저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은 말할 것도 없고 저 하늘나라의 선신(善神)들도 축복을 하고, 저 축생이나 미물(微物)까지라도 축복을 허는 것입니다.
개나 호랭이 같은 그러한 축생도 갓난애기는 절대로 해롭게 허지 않습니다.
어른은 보고 왕왕 짓고 물려고 허면서도 갓난애기는 보고 그렇게 저런 개들도 사랑을 하고, 사람이나 돼지를 막 잡아먹는 호랭이도 갓난애기는 그렇게 애끼고 사랑허는 뜻을 표하는 것입니다.

갓난애기는 순수무잡(純粹無雜)하고 청정무구(淸淨無垢)해서 쪼끔도 물들지를 안 해서, 그래서 그 갓난애기의 마음가짐은 바로 도인(道人)의 경지와 거의 흡사하는 것입니다.

도인의 여러 가지 그 도인의 행에, 도행(道行)에 있어서 81행이 있는데, 81행이라 함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의 좋고 궂은 행위가 다 포함 될 수가 있습니다.
광행(狂行)-미친 행도 있고, 승행(僧行)도 있고, 속행(俗行)도 있고, 남자행, 여자행, 심지어 화엄경에는 창녀-53선지식 속에는 창녀도 있습니다, 마을의 장자(長者)도 있고.

그 창녀(娼女)라 하면은 세속에 빈축을 받는 상대지마는 53선지식속에 창녀가 있다 그말이여.
그 창녀는, 사람이 그 창녀 얼굴만 봐도 마음이 맑아지고, 그 창녀의 손만 한번 잡아도 업장(業障)이 소멸허고, 그 창녀하고 한 번 잠만 자도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허는 그러헌 창녀도 있다 그말이여.

그런 81행 가운데에 어떠헌 행(行)을 최고로 치느냐 허면, 영아행(嬰兒行)을 최고로 치거든.

갓난애기, 아무 철이 들지 아니한 갓난애기.
체모(體貌)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없고, 다못 배고프면 울 줄만 알고, 뜨거워도 울 줄 알고, 너무 추워도 울고, 또 목이 말라도 울고, 다쳐서 아퍼도 울고.

어린 아기의 언어(言語)는 우는 것이 언어여. 어린 아기 우는 것은 그것이 바로 언어이면서 그것이 바로 설법이요, 그것이 바로 예술이고, 그것이 바로 진리다 그말이여. 왜 그러냐?
어린 아이에는 아무 사량분별(思量分別)이 없거든. 완전히 깨끗하고 순수무잡해서 거의 무심(無心) 경계에 들어가는 도인(道人)의 심경(心境)과 같더라.

그래서 그 어린 아이는 우리 집 애기가 아니고, 남의 집 애기라도 애기가 났다고 하면 모두가 다 축복을 하거든.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어야 천국에도 간다’고 하는 그런 말도 있습니다. 이것이 다 까닭이 있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한 동자의 백일을 맞이해서 오늘 이 선가귀감을 공양(供養)을 올리니까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이 책을 받어 가시기 바랍니다.
이 책을 손에 드신 분은 세세생생에 삼계(三界)에 떨어지지 아니하실 것이고 언제나 부처님 불법 문중에 태어나실 것입니다.
왜 그러냐 허면은 이 한 권 속에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팔만대장경과 역대 조사(祖師)가 깨달은 경지에서 설법하신 모든 법문(法門)의 골수(骨髓)가 이 속에 다 포함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선가귀감 속에서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데 대단히 요긴한 점 몇 군데를 설해 드리겠습니다.

참선(參禪)은 모름지기 세 가지 요긴한 것을 갖추어야 할 것이니, 첫째는 대신근(大信根)이요, 둘째는 대분지(大憤志)요, 셋째는 대의정(大疑情)이니라.
만약 그 한 가지만 궐(闕)하드라도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마침내 폐기(癈器)를 이룰 것이다.(처음~20분34초)

 

 

 



(2)------------------

참선을 해 나가는 데는 대신근(大信根), 큰 신심이 있어야 돼. 무슨 신심(信心)이냐?
‘나도 바로 부처다.’ 중생이 바로 부처고, 번뇌(煩惱)가 바로 보리(菩提)요, 생사(生死)가 바로 열반(涅槃)이다.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요, 번뇌와 보리가 둘이 아니요,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라고 것을 철저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바로 부처다.’ 나라고 하는 놈을 내놓고는 부처를 찾을 수가 없다.
부처는 반드시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 그놈을 갖다가 철견(徹見)함으로써 견성성불(見性成佛)한 것이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무슨 경전 속에 문자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여.
앉으나 서나 누우나, 일을 허나 밥을 먹으나, 번뇌·망상이 일어나거나, 진심(瞋心)을 내거나 슬퍼하거나 기뻐하거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몸뚱이의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卽)해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 그 신념이 여지없이 꽉 박혀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대분심(大憤心). 무슨 분심이냐?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성현과 모든 도인들은 진즉 이 문제를 해결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해 가지고 중생을 제도(濟度)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렇게 중생의 탈을 쓰고서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어찌 이래 가지고 잠을 편안히 자며, 편안히 밥을 먹으며, 무슨 한담(閑談)으로써 세월을 보내며, 오욕락(五欲樂)에 빠져서 그럭저럭 이 아까운 목숨을 보낼 것인가?
아~! 속에서부터 넘쳐흐르는 그 대분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입니다.
좋은 줄 알면서도 분심이 없으면 일체 것을 다 털어 버리고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이 몸과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용기가 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셋째, 대의정(大疑情)이 있어야 하느니라. 무슨 의정(疑情)인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한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이 무량겁을 두고 수없는 생사를 거듭허면서 오늘날까지 왔으며, 어떤 분은 진즉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고 어떤 중생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허고 있느냐?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기에.. ‘이 무엇이여?’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이, 지어서 ‘이뭣고?’ ‘이뭣고?’하는 게 아니라, 저 속에서부터 자동으로 의심이 나와서 항상 눈을 뜨나 감으나 눈앞에 환히 현전(現前)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대의심(大疑心). 이것은 셋이 동시에, 3가지의 이 마음이 동시에 일어나야 해.
신심만 있고 분심이 없다든지, 분심만 있고 의심이 없다든지 그런 게 아니라, 의심과 분심과 신심이 이 3가지가 항상 함께 일어나면 화두를 일부러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어있게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잘 안 들립니다.” “자꾸 들면 그냥 이뭣고 뿐이지 정말 간절(懇切)한 의심이 없습니다.” “어떻게 허면 간절한 의심이 나겠습니까?” 이러헌 하소연을 하신 분을 간혹 만납니다.
그건 다름이 아닙니다. 신심과 분심과 의심이 한목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주작(做作)이 되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어지게 되아야지, 그냥 의식적으로 일부러 들면 그때 잠깐 있다가, 들지 아니하면 그냥 달아나 버리고, 이것은 삼요(三要)를 동시에 갖추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 일용(日用)에 인연을 응(應)하는 곳.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생각하고, 냄새 맡고, 맛보고, 춥고 더운 것을 느끼고, 이러헌 일상생활 허는 곳에서 ‘이뭣고?’,
무자(無字)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하신 분은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판치생모 화두를 타신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뭣고?’ 화두를 하신 분은 ‘이뭣고?’ ‘이뭣고?하는 이놈이 뭣고?’

앞도 생각하지 말고, 뒤도 생각허지 말고, 잘되고 못되고 헌 것도 따지지 말고, 다못 그렇게 의심해 가고 의심해 오고 그렇게 화두를 들어오고 들어가란 말이여.
그렇게 애써서 들다보면, 이치 길이 딱 끊어져버려. 뜻 길이 딱 끊어져버려. 그래가지고 아무 자미(滋味)가 없어져버려.

그래 가지고 심두(心頭)가 열민(熱悶)해. 마음이 열민해. 다맛 가슴이 답답할 뿐이라 그말이여.
이것을 공부가 잘된다고 할 수도 없고, 못된다고 할 수도 없고, 도대체가 앞뒷이 딱 끊어져버리면서 가슴이 답답하기만하다 그말이여. 바로 그때가, 당인(當人)이 몸과 목숨을 갖다가 내던질 곳이여.

가슴이 답답허면 그 답답한 것을 이기지 못해 가지고 ‘어이구, 이거 공부를 잘못해 가지고 이런 것인가? 이러다가 이거 내가 상기증(上氣症)이 생길라고 이런 것인가? 이거 어째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할까?’
이것이 무슨 공부를 잘못해 가지고 잘못될라고 이런 것이 아니여. 그런 의심을 하지 말어.

알 수가 없어. 앞도 끊어지고 뒷도 끊어지고, 일체 그 동안에 보고 듣고 배운 것도 다 잊어버리고, 아무 재미도 없어. 그러는 가운데 가슴만 답답…. 바로 그 경계가 몸과 마음을 갖다 내던져 놔버릴 곳이여.
이것이 바로 성불(成佛)하고 조사(祖師)가 될 수 있는 기본이여, 그것이.

이 활구참선(活句參禪)하는 이 일은 마치 모기가 쇠로 된-쇠로 지어 붓어서 만든 소, 소 등어리를 향해서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불문(不問)하고, 몸뚱이 채, 입부리를 갖다가 소 등어리를 향해서 처박고 들어가는 거여.

소 등어리에 앉어 가지고, 입부리를 거기다가 들어간가 안 들어간가 이렇게 박어 보는 것이 아니라, 몸뚱이 채 압량해서 아주 그냥 그 소 등어리로 아주 처박고 들어가는 거여.
마치 수영선수가 높은 데에서 물을 향해서 다이빙을 허듯이 그렇게 소 등어리... ‘쇠로 맨들었나 말았나, 쇠로 되았으니 안 들어갈 것이다’ 그러헌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야.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몸뚱이 채 뚫고 들어가. 그래 가지고 이 몸과 목숨을 갖다가 탁! 거기다 갖다가 내던지면서 뚫고 들어갈 때 바로 그 몸뚱이 압량해서 소 속으로 풍 들어가는 거라.

옛날에 어떤 사람이 산중으로 검술을 배우러 들어갔어. 그 산중에 정말 아주 검술을 통달한 큰 도사가 있단 말을 듣고, 어렵게 어렵게 찾아가서 간신히 그 분을 만났어.
만났는데, “검술을 배우러 왔습니다.” “니까짓 놈이 무슨 검술을 배워?”
“그래도 내가, 선생님이 정말 검술에 통달한 도사란 것을 나는 알고 왔습니다. 절대로 선생님이 아무리 가라고해도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죽어도 안 가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장작이나 패라.”

날마다 나무를 비어다가 하루에 아주 수십 짐씩 장작을 팼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열흘, 한 달, 두 달… 한 삼 년을 두고 장작을 팼어.
처음에는 헛 찍기도 하고 잘 못했지만, 한 3년을 하니까 아무리 큰 나무도 한번 탁! 치면 쩍쩍 갈라졌습니다. 아무리 질긴 뿌럭지 끌통도 그 어디를 찍으면은 이 장작이 쩍 갈라진다고 허는 것을 다 터득을 했습니다.

소나무가 되았건, 참나무가 되었건, 귀목나무가 되았건, 아주 장작 패는데 아주 도가 텄습니다.
하루는 장작을 패기 위해서 저 도끼를 쳐들고 탁! 찍을라고 할 때에, 그 선생이 살짝 뒤에서 숨어 서있다가 냉큼 그 장작 위에다가 크만한 돌멩이를 갖다가 척 놨습니다.

그 사람은 이미 일심(一心)으로 그 도끼를 갖다가 내리쳤는데, 탁! 깨진데 보니까, 장작이 아니라 차돌멩이가 쩍 갈라졌다 그말이여. 깜짝 놀래 가지고,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서로 눈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다른 돌멩이를 하나 놓고 다시 쪼개봤습니다. 도끼날만 뭉그러졌지 돌멩이가 쪼개지질 않았습니다. 몇 번을 해봐도 돌멩이가 쪼개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왜 선생님이 턱! 갖다 놓은 돌멩이는 쩍 갈라졌는데, 자기가 그 돌멩이를 쪼갤라고 하니까 안 쪼개졌겠습니까? 처음에 내리칠 때에는 그것이 돌멩이라고 하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다못, ‘안 뽀개질 것이다. 쪼개질 것이다’, ‘쪼개진가, 안 뽀개진가 한번 해보자’ 그러헌 망상(妄想), 그러헌 사량심(思量心)이 전혀 붙어있질 않았습니다.

다만 내리치는 자신이나 내리치는 도끼나 거기에 놓여지는 돌이나, 그 삼자가 하나가 되았어. 그것을 무심(無心)이라 그래.
무심 속에서 갖다 내려치니까 돌멩이 아니라 쇳덩어리를 놨어도 쩍 갈라졌을 것이다 그말이여.

두 번째 세 번째 시험 삼아서 헐 때에는 벌써 이것이 돌멩이라 하는 것을 자기가 마음속에 먹고 있었고,
‘돌멩인데 또 한번 쪼개진가 한번 해보자’허는 그런 번뇌심(煩惱心)이 발동을 했기 때문에 몇 번을 찍어도 쪼개지질 않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활을 가지고 사냥을 나갔는데, 그 사람도 활 공부를 허는 사람으로서 사냥을 나갔는데, 저 만큼 큰 호랭이란 놈이 떡! 버티고 섰다 그말이여.
그래서 “너 이놈, 저리 비키지 못할까” 몇 번 소리를 쳤지마는 그 누런 얼룩얼룩한 호랭이가 꿈쩍도 안 해.

그래서 활을 댕겨 가지고는, 저놈을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죽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래서 내가 죽느냐 니가 죽느냐, 아주 있는 힘을 다해 가지고 활을 땡겨 가지고 팍 쐈는데 화살이 쏙 들어갔다. 그런데도 그 호랭이가 넘어지질 않고 턱 있다 그말이여.
살살 가까이... 지가 심장에 아주 정통으로 맞아서 화살이 갖다가 쏙 들어갔으니 지가 안 죽고 베길 수가 없을 것이다. 가봤더니, 호랭이가 아니라 바윗돌이였었다.

‘참, 이상하다. 뭔 놈의 바윗돌 속에 화살이 들어갈까?’ 다시 그 자리에 되돌아와 가지고 몇 번 활을 쏴 봤지만은 탁탁 되받아 버리고 화살이 그 바위 속에 백히질 안 했다 그말이여.
이것도 역시 도끼로 차돌을 깬 것과 마찬가지 이치여.

우리의 정신력, 우리의 이 마음자리에서 나오는 정신작용, 정신력이라 하는 것은 사량분별이 동하면 그것이 바로 번뇌요, 망상이요, 생사심이요, 아주 그건 그런 것인데,
앞뒤가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지고, 뜻 길이 끊어지고, 무모색(無摸索)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어.
다맛 이 몸과 목숨을 바쳐서 들어갈 때에는 바위가 되었건 쇳덩어리가 되았건 호랭이가 되았건 무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속가(俗家)의 문구에 ‘정신일도(精神一到)면 하사불성(何事不成)이냐’ 이런 말이 있습니다마는 이러헌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화두를 들을 때, 바로 이렇게 해야 된다 그거여. 한 생각 한 생각을 이렇게 잡두리를 해 나가야 하는 것이여. ‘이뭣고?’

‘내가 중생이다, 내가 여자다, 남자다’
‘내가 나이가 먹어서 늙어서 인자 해봤자 안될 것이다’
‘그 동안에 내가 참선을 안 해보고 염불만 했기 때문에 갑자기 참선을 헌들 언제 될까?’
그러헌 쓸데없는 생각을 허는 것이 아니여.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이뭣고?’ 화두를 탔으면 되고 안 되고 헌 것을 따지지 말어. 다못 무조건 하고 ‘이뭣고?’ 뿐이거든.

요새 일본서 나오는 이 참선에 관한 책들이 많이 번역해 나옵니다.
지식 있는 사람들은 그러헌 '참선이 좋다'고 말은 듣고 또 참선에 대해서 좀 알고는 싶은데, 우리 한국에 큰스님네들이 그 참선에 대한 내논 책은 그렇게 구해 보기가 어렵고,
그러니 일본 책을 많이 사다보고, 그래 가지고 뭣인가 도대체 참선에 대해서 알아야 또 헐 맛이 날 것이다 그래서 일본 책을 많이 보면,
그 공안(公案)에 대해서 무문관(無門關)이라든지 뭐 벽암록(碧巖錄)이라든지 모다 참선에 대한 많은 책들이 일본에서는 번역이 되어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참선을 갖다가 널리 보급을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참선을 허도록 권장허기 위해서 허는 그 뜻은 좋았지만은,
이 참선이라고 허는 것이 그렇게 공안을 풀이를 하고 그래 가지고 그렇게 많이 염송(拈頌)이나 또는 벽암록이나 무문관이나 이러헌 책을 갖다가 많이 읽고, 풀어서 재미있게 얘기처럼 모다 풀어서 해석을 해놨는데,
그걸 읽었다고 해서 절대로 참선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을 닥치는 대로 다 읽어서 다 해석할 줄 안다고 해서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참선이란 것은 말 길이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지고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이 끊어져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 가지고 순일무잡(純一無雜) 해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해서 그 의단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견(徹見)허는 것이 참선이지,
그러헌 그 선(禪)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서 해석허고 잘 안다고 해서 그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점점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가귀감이라는 이 책은 그러헌 책과는 다릅니다.
어쨌든지 바르게 공부해 나가도록, 이 책을 보는 사람에게는 신심이 일어나고 분심이 일어나고 의단이 독로하도록 도와주는 책으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용화사에서는 16판토록 이렇게 간행을 해서 법공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처음~42분1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게송) ‘삼라만상동귀환~’ ; [소요당집 外] (한글대장경 169, 동국대학교 역경원) p71 소요 스님 게송 ‘賽義玄法師(의현법사에게 답함)’ 참고.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다사다난(多事多難) ; 여러 가지로 일이나 어려움이 많음.
*가피(加被 더할•베풀 가,입을•두를 피)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을 받는 것.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것. 가호(加護)와 같음.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 정•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절절한 --> 절절(切切)하다 ; 매우 간절하다.
*선가귀감(禪家龜鑑) ; 조선 서산대사(휴정, 1520-1604)가 경전과 어록 중에서 수행의 지침이 될-선종(禪宗)을 중심으로-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부분을 가려 뽑은 불교 개론서.
*서산대사(西山大師)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법공양(法供養)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생들에게 베풂. ②불서(佛書)를 사람들에게 베풂.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미물(微物) ; 벌레 따위의 하찮은 동물.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순수할 수,없을 무,섞일 잡) 대상 그 자체가 순수(純粹)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정무구(清淨無垢) ; 맑고 깨끗하여 더럽거나 속된 데가 없음.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 ; <화엄경>입법계품에서 선재 동자가 복성의 동쪽 장엄당사라림에서, 문수 보살의 법문을 듣고 남방으로 향하여 차례차례 찾아가서 법문을 들은 선지식(스승).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영아행(嬰兒行) ;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
*체모(體貌) ; 체면(體面).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궐(闕) ; ①마땅히 해야 할 일을 빠뜨림. ②여러 자리 가운데 일부 자리가 비거나 차례가 빠짐.

 

 

 



-------------------(2)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보리(菩提) : [범] bodhi  도(道) • 지(智) • 각(覺)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를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ㄷ —> ㄹ) 「보리」로 읽는다。따라서 「보제」나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할 것이다.
*열반(涅槃) : [범] nirvana  [파]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라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멸(滅)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 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자성불(自性佛)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의 고해苦海)로부터 구하여(濟)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가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불교]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한담(閑談) ; 심심풀이로 이야기를 나눔. 또는 그러한 이야기.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주작(做作) :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억지로 지어서 하는 것.
*무자(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판치생모(板齒生毛), 이뭣고(시심마) ; 분류 ‘화두(공안) 참고’
*당인(當人) ; 어떤 일에 직접 관계가 있는 그 사람.
*상기증(上氣症 오를 상,기운 기,증세 증)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증세. 상기증이 생기면-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증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이 사용된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입부리 ; 새의 부리나 동물의 입을 말하는 ‘주둥이’를 속되게 이르는 말.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잡두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의단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칠석)2014. 7. 4. 18:12

§(272) (게송)불원공명단원산~ / 몽산법어(蒙山法語), 선가귀감(禪家龜鑑) / (게송)불시물혜조병무~.

「선가귀감」을 보면 불교의 팔만대장경의 골수만을 뽑아놨기 때문에 그 한 권의 책을 잘 정독을 하고 또 정독을 하면 불교 팔만대장경의 근본 진리가 무엇인가를 우리는 파악할 수가 있고, 그런 가운데에도 참선(參禪)에 대해서 핵심적으로 법문(法門)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이 「몽산법어」는 순전히 ‘참선을 어떻게 해야 바르게 할 수가 있는가?’에 대한 법문입니다.


**송담스님(No.272) - 1985년(을축년) 칠석법회(65분)에서. (용272)

 

(1) 약 18분.

 

(2) 약 6분.

 


(1)-----------------

불원공명단원산(不願功名但願山)하고  산중채약기년간(山中採藥幾年間)고
나무~아미타불~
심심송뇌연하리(深深松籟烟霞裏)에  일곡지가만경한(一曲芝歌萬境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원공명단원산(不願功名但願山)하고, 세속에 부귀영화 공명(功名)은 원허지 아니하고 다맛 산만을 원했노라. 세속은 다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여, 다 버려버리고 산중에 들어가서 살기를 원하고,
산중채약기년간(山中採藥幾年間)냐. 그래서 산중에 들어가 가지고 약을 캐기를 몇 년이나 했던가.

심심송뇌연하리(深深松籟烟霞裏)에, 깊고 깊은 솔바람 불고 안개 낀 속에
일곡지가만경한(一曲芝歌萬境閑)이로구나. 한 곡 지초 캐는 노래에 일만 경계가 한가하구나.

세속을 다 버려버리고 이 산중에 들어가서 약초를 캐. 당귀도 캐고 백출도 캐고 지초, 요새 영지버섯이라 해 가지고-요새 많이 사람들이 수명장수를 허기 위해서 또 모든 병을 고치기 위해서,
그런데 그 지초(芝草) 지(芝)라고 허는 것이 영지버섯인데 다 신선들이 차로 대려 먹는 약인데, 이 지초 캐는 노래에 일만 경계가 한가해.

지금 여러분들은 이 속가를 다 버리고 산중에 들어가서 약초를 캐 먹고사는 할아버지를 보신 일이 있는가 모르겠습니다마는 산중에는 그 꼴망태를 짊어지고 그 약초캐는 뾰족한 괭이를 가지고서,
그 설악산·오대산 그런 산중에 다니면서 산삼도 캐고 온갖 소중한 약초도 캐고 해서 자기도 다려먹고 그걸 팔아서 양식도 사고 허는 채락꾼(採藥)이 있습니다.

그 채락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그 먹고 살기 위해서 약을 캐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정말 세속에 그런 시비와 공명과 탐욕과 모다 그런 시기와 질투 그런 생각이 다 떨어져 버리고 그 눈빛이 너무너무 맑고 깨끗하고 샛별 같에서, 그 눈빛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수가 있는데,

그 채락하는 그 할아버지의 눈빛을 보면 정말 참선을 하고 무슨 염불을 하고 허는 그런 냄새도 없이,
그렇게 명산(名山)을 다니면서 약초를 캐는 가운데에 마음의 수양(修養)이 되어서 그런지, 얼굴도 맑고 눈빛도 깨끗허고 말을 시켜보면 그렇게 소박하고 그렇다 그말이여.

출가해 가지고 참선하고 도를 닦는 스님네를 지금 약초캐는 그 할아버지한테 비유해서 지금 읊어진 시라고 생각이 됩니다.
깊고 깊은 솔바람 불고 안개가 낀 그 깊은 산중에서 약초캐는 그 한 곡조에 강산이 한가하다 그말이여.

설사 여러분은 세속에 몸을 담아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먹고 살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고 좀더 잘 살아 보기 위해서 밤잠을 안 자고 가슴을 조이면서 사업을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허시는데,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줄 알고 악착같이 그 속에서 일생을 지낸다면,
그것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참사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몸부림치다가 맺힌 한을 풀지 못하고 원망과 원한과 불만만을 가슴에 가뜩 안은 채 이승을 하직(下直)허게 되는데 그렇게 하직을 해가지고 태어날 곳이 과연 어디로 가게 되겠습니까?

다행히 여러분은 세계 50억 인구가 거의 전부가 그러헌 삶을 살고 있는데, 여러분은 불법(佛法)을 만났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났어.

비록 몸은 그런 불구뎅이 속에 담아 있지만, 여러분의 마음은 깊고 깊은 솔바람 불고 안개 낀 그 맑고 신선한 그런 설악산이나 오대산이나 백두산이나 금강산·지리산 이런 명산에 들어가서,
아무 욕심도 없이 도를 닦는 스님네나 약초를 캐는 할아버지와 같은 그러헌 마음가짐으로 여러분은 사실 수가 있게 된 것을 얼마나 흐믓하고 다행스러웁게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너무도 세속이 각박하고 살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깜빡 깜빡 잊어버리고 거기에 정신을 뺏기고 팔리게 되겠지만, 그때 그때 '한 생각'을 퍼뜩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고,
정법 믿는 마음으로 자기 스스로를 청소하고 참회(懺悔)를 통해서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돌이켜 나간다면, 이 자리에는 승속(僧俗)도 없고 남녀(男女)도 없고 노소(老少)도 없는 법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과거의 모든 업장(業障)을 이참(理懺)과 사참(事懺)을 통해서 깨끗이 참회하시고 그래가지고 정법을 믿는 신심을 더욱 돈독히 해서 오늘부터 새로운 각오로 수행을 쌓아 나가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크고 작은 소원을 빨리 성취하는 길이며 모든 장애를 다시는 맞이하지 않고 미연(未然)에 소멸허는 성스러운 길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양력 8월 30일, 음력 7월 15일에는 해제(解制)날이 됩니다.
해제날이며 또 백일기도 회향날이며 그리고 우란분(盂蘭盆)이라 해서 백종(百種)날입니다. 지옥문이 열려서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가 풀려 나오는 날입니다.

그날 이 법보전(法寶殿)에 여러분의 선망부모와 원근친척을 만년위패(萬年位牌)에 모신 분은 말할 것도 없고 설사 모시지 아니한 분도 그날 오셔서 동참(同參)을 하시고 임시위패도 인연따라서 하시고,
그렇게 해서 우리의 선망부모를-지옥에 가신 분도 있을 것이고, 또는 중음신(中陰身)으로 이 허공계에 헤매고 있는 그러헌 영가(靈駕)도 있을 것이고, 원한에 사무쳐서 우리의 주변 우리 가정에 맴돌고 있는 그러헌 영가도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상황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이 백종날을 기해서 그러헌 선망부모와 원근친척의 영가를 위로하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천도재를 올림으로 해서 그 영가도 원한을 다 풀고 업장을 소멸해서 좋은 곳에 빨리 태어나도록 그렇게 발원을 허는 것은 우리 불자로서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참석을 하시고 일가 친척들도 서로 권고해서 오시도록 인도를 허시기를 바라고 또 양력 9월1일에는 일요법회입니다.
9월 첫째 일요법회인데 그때는 어린이 독경(讀經)대회가 있으니 어린이를 가지신 분으로,
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 이 천수다라니를 그날 어린이 독경대회에서 그것을 독경을 해가지고 상을 주어서 표창을 허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 참석할 어린이들은 어쨋든지 열심히 외우고 또 음성도 잘 골라서 공부를 허시면 그날 뽑혀서 좋고 설사 자기보다 더 잘한 사람이 있어서 뽑히지 않는다 허드라도 그것을 외운 공덕으로 업장이 소멸이 되고,
그 자비주(慈悲呪)이기 때문에 그것을 어릴 때부터 외워 놓으면 평생에 액난(厄難)을 면(免)할 것이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불법(佛法)중에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때에 참석을 허기 위해서 열심히 허는 것은 일석이조(一石二鳥)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9월 1일에는 「몽산법어(蒙山法語)」라고 허는 순전히 참선을 올바르게 허는 몽산 스님의 법어를 모은 책을 법보시(法布施)를 허게 됩니다. 이미 이 책이 이렇게 잘 찍혀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날 참석허신 분은 누구를 막론하고 한 권씩을 전부 노나드립니다.

지난 봄에 「선가귀감(禪家龜鑑)」이라고 하는 책을 노나드렸는데 그 「선가귀감」이란 책은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지으신건대, 팔만대장경 속에서 불법에 가장 요긴한 법구절(法句節)을 모아 가지고 그래가지고 한 권의 책을 만들았습니다.

그래서 그 「선가귀감」을 보면 불교의 팔만대장경의 골수만을 뽑아놨기 때문에 그 한 권의 책을 잘 정독을 하고 또 정독을 하면 불교 팔만대장경의 근본 진리가 무엇인가를 우리는 파악할 수가 있고,
그런 가운데에도 참선(參禪)에 대해서 핵심적으로 법문(法門)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이 「몽산법어」는 순전히 ‘참선을 어떻게 해야 바르게 할 수가 있는가?’에 대한 법문입니다.

이 원(元)나라에 몽산 스님이라고 허는 큰스님이 계셨었는데, 그 스님이 허신 법문 가운데에 요긴헌 법문을 뽑아서 만들었는데,
‘누가 만들었냐?’하면은 혜각존자(慧覺尊者)라고 하는-이조때 수양대군 세조대왕이 불법에 신심을 돈발해 가지고 그 왕사인 수미대사(守眉大師)한테 특명을 내려가지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라든지 그 밖에 여러가지 좋은 경을 모다 번역을 하고,
또 참선을 잘허기 위해서 이 「몽산법어」도 뽑아서 번역을 해가지고 간경도감(刊經都監)이라고 허는, 국가의 경(經)을 갖다가 조각을 해서 인쇄해가지고 간행하는 그 간행도감에서 이것을 발간을 한 것입니다.

그때에 한글로 번역된 그 원본이 오늘날까지도 전해 내려오는데 이조(李朝) 기간에 이것이 현재 밝혀진 것만 해도 여덟 차례나 이 「몽산법어」가 간행이 되았습니다.
아직 밝혀지지 아니헌것까지 허면 뭐 열번도 더 넘을랑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 원본-간행도감에서 나오고 또 마지막에 송광사에서 나온 송광사판이 있고 그런데,

그러헌 원본에 입각해서 이것을 용화사에서 현대어로 번역을 해서 또 어려운 낱말에 대해서는 그 주역(註譯)을 붙여서 이렇게 해서 몇 분의 신심이 돈독헌 분의 간청에 의해서 이 책을 인쇄를 해가지고 보시를 허게 되았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양력 9월 초하루 일요법회날 참석을 허시면 이 좋은 책을 「몽산법어」라고 허는 이 책을 노나드리게 됩니다. 이것으로써 오늘 을축년 칠석 법어를 마치고자 합니다.(41분16초~59분16초)

 

 

 



(2)------------------

불시물혜조병무(不是物兮早騈拇)인디  허다명상부하위(許多名相復何爲)리오
나무~아미타불~
관간첩장연라리(慣看疊嶂煙蘿裏)에  무수호손도상지(無鬚猢猻倒上枝)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시물혜조병무(不是物兮早騈拇)여  허다명상부하위(許多名相復何爲)인고,
‘이 한 물건도 아니다’,  ‘이 한 물건도 아니다’헐 때에 이미 '육손이'다 그말이여. '육손이'는 다섯 손가락 밖에 손가락이 하나 따로 붙어있는 그것을 '육손이'라 그러는데, 그것은 군더더기인 것입니다.

그거 하나 붙었다고 해서 글씨를 잘 쓰는 것도 아니고, 뭐 맛있는 걸 잘 집어먹는 것도 아닌 것이고, 남 보기만 흉직허게 생겼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함부로 떼면 안되고 ‘그것이 붙어서 복이 있다’고 해 가지고 평생을 덜렁덜렁 붙은 채 살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마는 요새는 수술법이 발달이 되아서 어릴 때 떼어 버리면 감쪽같은 것입니다마는,

‘이 한 물건도 아니다’ ‘한 물(物)도 아니다’헐 때 벌써 그것이 군더더기 소리다 그말이여.

허다명상부하위(許多名相復何爲)고. 하물며 허다한 명상(名相)은 더군다나 어디다 쓸 것이냐 그말이여.
한 물(物)도 아니라고 해도 그것이 이미 어긋나버린 군더더기인데 하물며 허다한 명상-무슨 이름, 무슨 모양 명상(名相)이야 더 말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야.

관간첩장연라리(慣看疊嶂煙蘿裏)에, 첩첩산중 그 연기 끼고 칡덩쿨 우거진 속에,
무수호손(無鬚猢猻)이 도상지(倒上枝)여. 수염 없는 잔나비가 나무가지를 거꿀로 올라가는 것을 보는구나.

그 깊은 산중에서 수염 없는 잔나비가 나무가지를 거꿀로 올라가는 것을 보는구나. 이 ‘수염 없는 원숭이가 나무를 꺼꿀로 올라간다’니 이게 무슨 도리냐?
‘수염 없는 원숭이가 나무를 꺼꿀로 올라가?’ 이 도리는 말로써 설명할 수가 없고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으로 따져서 이해할 수가 없는 도리인 것입니다.

앞으로 을축년 해제, 칠월 보름날 해제까지 일주일 밖에 남지를 않았습니다.
선방에 정진하는 스님네 또 보살선방에 정진하는 보살님네, 가정에서 또 생활 속에서 정진을 하신 신남신녀 여러분들께서 앞으로 7일 간을 좀더 가다듬어서 끝마무리를 알뜰히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고,

후원에서 애쓰시는 모다 여러 소임을 맡으신 채공·공양주·별좌를 맡으신 불자들도 남은 일주일 간을 뜨거운 신심으로 외호(外護)를 정성껏 허면서 정진을 알뜰히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41분16초~65분13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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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불원공명단원산~’ ; [경허집(鏡虛集)] (명정 역 | 극락호국선원) ‘次採藥商趙氏韻(채약상 조씨 차운)’ p234 참고.
*烟(연)연기,안개,煙과 동자(同字) *霞(하)노을 *裏(리,이)속,가운데 *籟(뢰)퉁소,소리
*공명(功名) ; 공을 세워서 자기의 이름을 널리 드러냄. 또는 그 이름.
*수양(修養) ; 몸과 마음을 갈고닦아 품성이나 지식, 도덕 따위를 높은 경지로 끌어올림.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이참(理懺) ; 진리의 참모습을 관찰하여 참회를 얻는 것. 관찰실상참회(觀察實相懺悔)라고도 한다.
과거와 현재에 지은 죄(罪)라고 하는 것은 자성(自性)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어서, 마음이 본래 공적(空寂)한 것임을 알게 되면 죄도 또한 없어진다(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時罪亦亡).
이 도리를 철저히 믿고 참선을 허면 거기에서 죄가 소멸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죄업의 실상을 관찰하여 죄를 멸하는 것을 이참(理懺)이라 한다.
*사참(事懺) ; 지은 바 행위를 분별하여 그 행위에 대해서 참회하는 것으로서, 몸(身)으로는 부처님께 무수배례(無數拜禮) 절을 하고, 입(口)으로는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偈頌)을 외우며, 마음(意)으로는 부처님의 성스러운 모습을 그리면서, 과거와 현재에 지은 죄업을 참회한다.
법계(法界)의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없는 중생이 부처님의 자비에 의지하여 참회하는 것. 일반적으로 ‘참회한다’하면 이 사참을 뜻한다. ‘수사분별참회(隨事分別懺悔)’라고도 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우란분(盂蘭盆) ; 우란분(盂蘭盆)은 산스크리트어 ullambana의 음사로, 도현(倒懸)이라 번역.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는다는 뜻.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삼보(三寶)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수 없어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의 모친을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동참(同參) ; 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중음신(中陰身) ; 이 생(生)을 끝내고 다음 생(生)을 받을 때까지의 중간 존재 상태.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 ; 「천수경(千手經)」에 나오는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를 말함. 82구(句)의 주문(呪文). 천수관음의 공덕을 말한 것으로, 이것을 외면 모든 죄업이 없어진다고 한다.
대비주(大悲呪), 천수주(千手呪), 천수천안대비심다라니(千手千眼大悲心陀羅尼)라고도 한다.
*악도(惡道) ; 악한 짓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법보시(法布施) ; 남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불서(佛書)를 베풂.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혜각존자신미대사(慧覺尊者信眉大師) ; 본명은 김수성(金守省). 본관은 영동(永同). 아버지는 옥구진(沃溝鎭) 병사였던 김훈(金訓)이며, 동생은 유생이면서도 숭불을 주장했던 김수온(金守溫)이다.

세조 때의 선승(禪僧)인데, 행장은 전하지 않으나 왕실과의 관계 속에서 행해진 불교 중흥의 기록들을 통하여 그 행적을 살필 수 있다. 법주사(法住寺)에 출가하여 사미(沙彌) 시절에 수미(守眉)와 함께 대장경을 읽고 율을 익혔다.

그 뒤 세종 말년에 왕을 도와 불사를 중흥시켰다. 세종은 말년에 2왕자와 왕후를 3년 사이에 잃게 되자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신불(信佛)하였다. 이 때 신미와 김수온은 세종을 도와 내원당(內願堂)을 궁 안에 짓고 법요(法要)를 주관하는 등 불교를 일으키기에 노력하였다. 또한, 세종을 도와 복천사(福泉寺)를 중수하고 그곳에 아미타삼존불을 봉안하였다. 문종은 선왕의 뜻을 이어 그를 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에 임명하였다.

세조 때는 왕사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세조는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그를 경애하였고, 왕위에 오르자 불교의 중흥을 주관하게 하였다. 1458년(세조 4)에 나라에서 해인사에 있던 대장경 50부를 간행하고자 했을 때 이를 감독하였고, 1461년 6월에 왕명으로 간경도감을 설치하여 훈민정음을 널리 유통시키기 위해 불전(佛典)을 번역, 간행했을 때도 이를 주관하였다.
그의 주관 아래 『법화경』·『반야심경』·『영가집(永嘉集)』 등이 언해되었으며, 함허(涵虛)의 『금강경오가해설의(金剛經五家解說誼)』도 교정하여 간행하는 등 불전의 국역과 유통을 위한 막중한 역할을 하였다.

1464년 2월 세조가 속리산 복천사로 행차하였을 때 그곳에서 사지(斯智)·학열(學悅)·학조(學祖) 등과 함께 대설법회(大說法會)를 열었다. 또한, 같은 해에 상원사(上院寺)로 옮겨 왕에게 상원사의 중창을 건의하였고, 이에 왕은 「오대산상원사중창권선문(五臺山上院寺重創勸善文)」을 지어 이를 시행하도록 하였는데, 이 권선문에는 그에 대한 왕의 존경심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세조는 혜각존자(慧覺尊者)라는 호를 내리고 존경하였다.
*간경도감(刊經都監) ; 조선 시대, 1461(세조 7)년에 불경을 번역하기 위하여 설치한 기관을 이르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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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불시물혜조병무~’ ; [경허집(鏡虛集)] (명정 역 | 극락호국선원) ‘題智異山靈源寺(지리산 영원사)’ p226 참고.
*兮(혜)어조사,어조사(語助辭)로 윗말을 완화(緩和)하고 아래의 말을 강조(强調)하는 뜻으로 쓰임. *騈(병) 나란히 하다, 쓸모 없는 것 *拇(무)엄지손가락,엄지발가락
[참고] 騈拇枝指(병무지지)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이 붙어버린 병무(騈拇)나 손가락이 여섯인 육손이(枝指), 쓸모 없는 것, 군더더기란 뜻.
*慣(관)익숙하다,익숙해지다 *疊(첩)거듭,연속하다 *嶂(장)산봉우리 *疊嶂(첩장) 중첩되어 있는 산봉우리. *蘿(라,나)소나무겨우살이,담쟁이덩굴 *鬚(수)수염 *猢(호)원숭이 *猻(손)원숭이 *猢猻(호손)원숭이 *倒(도)넘어지다,거꾸로.
*명상(名相) : 모든 물건이나 일이 다 이름과 형상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이름만 들으면 그 사물의 형상을 생각하게 되는데, 형상이란 것은 바탕과 모양이 있고 없고를 막론하고 공간적으로 있는 형용과 체적(體積)·질량(質量)뿐 아니라, 시간적으로 나타나는 나고 머물고 늙고 죽는 것이나, 시작되고(成) 진행하고(住) 쇠퇴하고(壤) 파멸하는(空)것도 형상이며, 오관(五官)으로 감촉하게 되는 열도(熱度)·소리(音響)·빛(色)·냄새(香)·맛(味) 같은 것도 또한 형상이다.
그러나 이 이름이나 형상은 그 자체가 본래 확실히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망녕된 생각이 지어낸 빈 이름이며, 한 때의 인연을 따라 생겨난 거짓 형상인 것이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별좌(別座) ; 절에서 식사·의복·방석·이부자리 등을 담당하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