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구참선 최상승법2018. 5. 25. 12:58

 

 

§(356) (게송)금강보검의천한~ / 활구참선을 하고 사구참선을 하지말라.

 

깨달음은 생사심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생사심에 즉(卽)해서 의단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잡드리해 나가는 데에서 거기에서 마음 길이 끊어져, 말 길이 끊어지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어. 이리 해야 그것이 바로 참선을 해 가는 거고, 참선을 바로 해 가야 바른 깨달음에 도달을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56)—88년 4월 첫째일요법회(1988.04.03) (용356)

 

약 11분.

 

금강보검의천한(金剛寶劍倚天寒)한디  일휘능최만인봉(一揮能摧萬仞峰)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변계마군종차락(徧界魔軍從此落)하면  유하정매틈기중(有何精魅闖其中)고

나무~아미타불~

 

금강보검의천한(金剛寶劍倚天寒)이다. 금강의 보배 칼이 하늘을 의지해서 서릿발이 치는데,

일휘능최만인봉(一揮能摧萬仞峰)이다. 한번 휘둘러서 능히 만 길이나 되는 봉우리를 갖다가 꺾어 버리더라.

 

변계마군종차락(徧界魔軍從此落),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두루 꽉 차 있는 그 마구니가 이로 좇아 떨어지니,

유하정매틈기중(有何精魅闖其中)고, 무슨 정매(精魅), 도깨비 같은 것이 있어서 그 속을 엿볼 수가 있겠는가.

 

방금 전강 조실 스님께서—갑인년이면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 해인데, 그해 정월에 설하신 법문(法門)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여러분께서 들으신 바와 같이 언제나 조실 스님께서 평생 동안 설하신 법문의 요점은 활구참선(活句參禪)입니다.

 

활구참선!

활구참선은 말 길이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지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어요.

 

요새 참선, 많은 사람들이 참선(參禪)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모두 참선을 알려고 그러고, 참선을 할려고 노력을 하고—그런데 조실 스님께서 평생 동안 그 선양을 하신 그 참다운 활구참선을 허는 사람은 그렇게 흔치 않다 그말이여.

 

공안(公案)을 가지고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분석하고 따지고, 그래서 분별하고 따지면,

아무리 그 공안을 타파해서 생사해탈하는 그러한 공안이라 하더라도 중생심으로 따지고 분석하고 그러면 그 훌륭한 공안이 사구(死句)가 되고 말아버린 것입니다.

 

백 년을 따지고 천 년을 따지고 무량겁을 따져도, 따질수록 점점 공안의 참뜻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이고.

따라서 참 깨달음을 향해서 정진을 해야 할텐데 따지다 보면 깨달음으로부터는 점점 멀어져 가거든.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어져 버리고 말아버리는 것이여.

 

비단 조실 스님 법문뿐만이 아니라 역대조사(歷代祖師)께서 설(說)하신 법이 바로 이 활구참선을 설하신 것입니다.

 

성현이 가신 때가 멀고, 법은 마강법약(魔强法弱), 마구니는 강해지고 법(法)은 약해져.

그러니 부처님의 설하신 법도 중생 나름대로 사견(邪見)을 붙여서 사법(邪法)을 만들고, 조사가 선양하신 활구참선법도 이렇게 말세가 되니까 자꾸 중생의 소견으로 사량분별을 붙이고, 이치 길로 따지고 말 길로 따져서 더듬어 들어가서 자기 나름대로 온갖 삿된 소견을 붙여서 분석을 하니, 그것이 참다운 참선인 줄 알고 전부 후래(後來) 학자들은 그 공부 첫걸음부터 그르쳐 들어가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기가 쉬우냐 하면 활구참선은 말 길이 끊어지니 뭐라고 입을 벌릴 수도 없고, 이치 길이 끊어졌으니 뭐라고 거기 분석을 할 수도 없고.

밤낮 ‘알라야 알 수 없고,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곳을 향해서 의단(疑團)을 거각(擧却)하라!’ 그렇게 한 달을 해보고 두 달을 해보고 일 년을 해보고 이태를 해봤자 해 갈수록 답답하기만 하고 재미가 없어.

 

그런데 일본 책이라든지, 그런 모다 공안을 이리저리 분석해서 따져 논 그런 책을 보면 모두 읽을 맛이 있고 재미가 있다 그말이여. 알아지는 것이 있고 얻은 것이 있고 그러니까.

그러니 책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모두가 다 그런 책을 읽어 가지고, 명색(名色)이 참선을 한답시고 한 것이 모두 의리선(義理禪)만 허게 된다 그말이여.

 

우리 나라에 경허 스님, 만공 스님 이후로 쭉 내려오는 활구참선법은 공안을 그런 식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은 행여나 누가 뭐라고 해도, 어떠한 사람이 뭐라고 말을 해도 사구참선(死句參禪)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어.

설사 10년을 하고 30년을 하고 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아무 소견이 나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잡드리해 갈지언정, 무슨 사량분별을 가지고 어떤 소견이 나기를 바래고 어떤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무슨 가늠이 가고 이러기를 바래지를 말어야 한다.

 

열 가지 공안 또는 백 개, 이백 개 내지 삼백 개, 천이백 공안에 대해서 해석이 내려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중생 소견이라, 중생의 무명업식(無明業識)으로 얻어지는 해석은 생사심(生死心)만을 더욱 조장할 뿐 깨달음에는 나아가지를 못하는 것이여.

 

깨달음은 생사심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생사심에 즉(卽)해서 대의단으로 의단이 독로하도록 그렇게 잡드리해 나가는 데에서 거기에서 마음 길이 끊어져, 말 길이 끊어지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어.

이리 해야 그것이 바로 참선을 해 가는 거고, 참선을 바로 해 가야 바른 깨달음에 도달을 하는 것입니다.(처음~11분1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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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금강보검의천한(金剛寶劍倚天寒)~’ ; 『금강경오가해』 제18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함허 득통 스님의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게송 참고.

*금강보검(金剛寶劍) ; 금강(金剛 : 다이아몬드)으로 만든 견고하고 예리한 보배로운 검. ①모든 번뇌를 자유자재로 끊어 없애는 지혜를 비유한 말. ②진리를 꿰뚫는 선지식의 날카로운 마음 작용을 비유한 말.

*서릿발(이) 치다 ; ①서릿발이 생기다. ②기세가 매우 매섭고 준엄하다.

*서릿발 ; 겨울철에 땅속의 수분이 얼어 성에처럼 되어 기둥 모양으로 뻗어 있는 것. 또는 그로 말미암아 지면이 부풀어오르는 현상.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정매(精魅 도깨비·정령·요괴 정/도깨비·요괴 매) ; 도깨비(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잡된 귀신의 하나).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공안(公案) ; 화두(話頭)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사법(邪法) ; 삿된 법. 이치에 맞지 않고 잘못된 길로 이끄는 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후래(後來) ; ①뒤에 오거나 뒤져서 옴. ②장차 오게 되는 앞날.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명색(名色) ; ①어떤 부류에 붙여져 불리는 이름. ②실속 없이 그럴듯하게 불리는 허울만 좋은 이름.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경허 스님, 만공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업식(業識) ; ①과거에 저지른 미혹한 행위[身]와 말[口]과 생각[意]의 과보로 현재에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작용. ②오의(五意)의 하나. 무명(無明)에 의해 일어나는 그릇된 마음 작용.

*생사심(生死心) ;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만이 생각의 기멸(起滅)을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참고]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7. 3. 27. 22:04

§(014) 모든 지식과 학문, 이론을  잊어버릴수록 오히려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 / 유루복 / 최상승 활구참선은 지극히 쉽다 / 일념단속, 생사심 단속.

 

육도윤회를 하게  원인이 선업, 악업, 무기업,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그것이 행동화 되고,  행동으로 인해서  종자가 우리의 마음속에 저장이 되고, 그래가지고 조금 착한 일을 하면은 천당에 가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가고, 짐승이 되기도 하고,  가지고 무량겁을 두고 쉬지 않고 윤회를 하게 됩니다.

 

최상승 활구참선은 지극히 쉬운 것이요, 하기 쉬운 것이요, 누구라도   있는 법입니다. ‘최상승 활구법문’이라 하니까는 대단히 어려워서 우리 말세(末世)에 태어난 사람, 더구나 여자로 태어난 사람, 더구나 나이 먹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도저히   없는 것으로  자포자기 하실는지 모릅니다마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평상시에 이뭣고?’ 열심히 해 놓지 아니하면 마지막 죽을  정신 하나  차린 것입니다. 손발을 뻐르적거리고, 눈을 뒤집어쓰고 어느 귀신이 어떻게 잡아가는  모르게 뻐르적거리다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어갈 때에 새 배때기,  배때기,  뱃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여. 마지막 죽을  정신 바싹 차려 가지고 ‘이뭣고?   있을 만큼 하려면은 평상시에 공부가 습관화가 되어야 하고, 생활화가 되어서 단단히 단속을 해놔야 그때 가서 써먹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生死)가  칠팔십  살다가 마지막 죽을  그것이 죽음이 아니라, 우리 살아 있을  생각,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생각 일어나면 그것이 ()이요,  생각 꺼지면 그것 ()입니다. 생멸심(生滅心) 바로 생사(生死)입니다. 생사를 해탈하고자 할진대는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生死心) 단속할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법입니다.

 

 자리는 여러분이 많은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들어 가지고  지식을 넓히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여기서 들으신  말씀을 인(因)해서 ‘이뭣고?’ 간절히 들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뭣고?’가 간절히 들어짐으로 해서 거기에서 생사심이 끊어지고, 생사심 끊어짐으로 해서 우리는 생사 없는 보리도(菩提道)를 증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14)—76 2 관음재일 법문.

 

 

(1) 약 21분.

 

 

 

(2) 약 11분.

 

 

(1)------------------

 

금방 전강 조실 스님 법문(法門)을  같이 들었습니다.

 

다달이 관음재(觀音齋)를 기해서 이렇게 신남신녀 여러분께서 이렇게 참집(參集)을 하셔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사부대중이  같이 이렇게 경청을 해서 우리의 신심을 돋구고 그래서 정진하는데 이익을 얻어서 우리의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이렇게 해 오고 있습니다.

 

원래 불법(佛法)은 무슨 경(經)을 많이 보고, 교리적으로 연구해서 지식을 많이 얻어 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전을 보거나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거기에서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을 일으켜 내가 나를 깨닫는 데에 도달하기 위해서 경을 보고 법문을 듣는 것이지, 경을 보고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우리의 지식을 넓혀 가지고 아는 것이 많기 위해서 듣는 것이 아닙니다.

 

경을 많이 보고, 법문을 많이 들어서 아주 아는 것이 풍부해지면은 그 사람이 불교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다’고 이렇게 스스로 자랑을 삼고, 남들도 그러한 이를 부럽게 생각하신 분을 간혹   있습니다마는,  불법은 무엇을 많이 보고 듣고 해서 알고 있는 것이 많다고 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오히려 많이 알고, 많이 듣고 해서 잔뜩 속에 쌓아두고 있는 것보다는 그동안에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있는 것을   있으면 하나라도  많이 잊어버리고, 버리는 데에서 오히려 불법에 공부가  많이 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병에다가 물건을 잔뜩 집어넣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속에 이미 들어있는 것을 자꾸 쏟아서 버려서 깨끗한  병으로 만드는 거와 같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상식, 학문, 학설, 일체 이론은  잊어버릴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리해야 오히려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지금  법보선원에 오신지가 20, 10, 5, 3 또는   아니 되시거나, 오늘 처음으로 나오신 분도 계시겠지마는, 많이 법문을 들을수록에 자기 속에 있는 모든 생각을 비울  있는 그러한 능력이 길러져야 그분이 그동안 법문을  옳게 들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은 오늘 처음 오셨다고 해서 하나도 공부가 되어 있지 않고 초학자(初學者), 오래 전부터서 여기 많이 오셔서 구참(久參)이 되었다고 해서 그분이 공부가 많이 되어 있다고만은 꼭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들으신 것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조랑조랑 이야기할  있다고 해서 그분이 오늘 법문을  들으신 것이라고는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 동안에 걸쳐서  여러 가지 법문을 들었지마는  말씀도 옮길 말씀이 없고, 다못   없는 이뭣고?’ 생각만 속에서 간절히 일어나고 있는 그분이야말로오늘 법문을 누구보다도  들으신 분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리에 오신 여러분은 무슨 경을 많이  가지고 누구한테라도 자랑할  있을 만큼, 자신 있게 이야기할  있을 만큼 무슨 불교에 대한 교리를 알고 싶어서 밤낮 책을 뒤적거리고 그러실 것이 아니라,

 

어쨌든지 ‘이뭣?’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간단한   말씀만에 의지해서 걸어가실 때나, 앉아 계실 때나, 무슨 일을 하실 때나, 또는 식사를 하실 때나, 변소에 가실 그런 때까지라도 생각 생각이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話頭) 들어지고, 화두를 들을라고 노력할 때에 우리는  부처님 제자가 되는 길이 바로 거기 있는 것이고, 영겁을 두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생사고(生死苦)를 여의는 길이 바로   생각 단속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은 대단히 경을 떠들어 봐도 알기가 어렵고,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고, 암만 읽어봐도 읽어볼수록 점점  어렵고 그래서  불교의 현대화가 필요하다. 어쨌든지 경전을 쉽게 번역을 해서 누구라도 읽을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재 오늘날에 불교의 나아갈 길이다’한 것을 종종 뜻있는 분들이 말씀하신 것을 듣습니다마는.

 

아무리 경전을 쉬운 말로 번역을 해서 누구라도 읽을  있도록 자꾸 간행을 한다고 해서 그래가지고 불법이 성황을 이루고 많은 중생이 제도를 받느냐 하면은 그렇다고만은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은 경을 많이 읽어서 부처님이 하신 말씀을 육두백판으로   안다고 해서 그것이 불법이 아니요, 그런다고 해서 생사해탈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어쨌든지 간단한  한마디지마는 이뭣고?’ ‘-하는 놈이 무엇인고?’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아무 재미도 없고, 맛도 없고 하지마는 생각 생각이 이뭣고?’

 번이고,  번이고, 시간 시간이, 일 분 일 분마다, 일 초 일 초마다,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생각이 잡념이 되었건, 번뇌 망상이 되었건, 성을 내건 또는 슬프건, 무슨 생각이 일어났거나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게 되어 있으니만큼,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육도윤회를 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그것들이 전부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8 뢰야식(賴耶識) 속에 고대로  녹음이 되어서 간직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틈만 있으면 움이 터 나오고 있습니다.

 

무를 겨울에 땅속에다가 묻어놓으면 계속 거기서 움이 자라가지고  이듬해 무를 파 보면은 노랗게 싹이  나오고 있듯이,

우리 제팔식(第八識) 아뢰야식 속에, 잠재의식 속에, 무량겁으로 생활해 내려오면서  속에 녹음되어 감춰져 갖 있는, 쌓여져 갖 있는  선(善)과 악(惡), 무기(無記) 한없는 많은  종자(種子)들이 저장이 되어 있는데,  종자가 무슨 기회만 있으면은 그 기회를 이용해서 움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움이  나오면서 그놈이  씨를 결실을  가지고 또다시 거기에  저장이 되고, 저장된 씨에서는 계속 움이  나오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생각 아니면 악한 생각, 그렇지 않으면 쓸데없는 터무니없는 생각, 10년 , 20년 전에 있었던  또는 전혀 보고 듣지도 못한 뿌리도 밑도 끝도 없는 생각들이 잠시도  사이 없이 퍼일어났다 꺼졌다, 퍼일어났다 꺼졌다.

 

 가운데에 울다가 웃다가 몸부림치다가 그래가지고 성내다가 그러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고, 그러는 가운데에 그것이 바로 업(業)입니다. 선업도 있고, 악업도 있고, 무기업도 있고 해서 그렇게 해서 우리의 생각이 끊일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 그것이 근원이 되어서 우리는 육도윤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도윤회를 하게  원인이 선업, 악업, 무기업,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그것이 행동화 되고,  행동으로 인해서  종자가 우리의 마음속에 저장이 되고, 그래가지고 조금 착한 일을 하면은 천당에 가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가고, 짐승이 되기도 하고,  가지고 무량겁을 두고 쉬지 않고 윤회를 하게 됩니다.

 

지금 금생에 우리가 이렇게 태어나서 다행히 사람 몸을 받아 가지고 불법을 만나서  법보선원에 이렇게 모이셨습니다마는, 이만큼 되실 때까지는 여러분들은 과거에 한없는 정법(正法)에 인연을 맺었기 때문에 다행히  자리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자리에 기왕 오셨을 바에는 활구참선법을 올바르게 배워서, 지도 받아서 열심히 공부를 하시면은 금생에 결정코 도업(道業)을 성취하실 것이고,

설사 인연이 무르익지 못해서 금생에 도업을 성취 못하신다 하더라고 올바르게만 공부하신다면은 내생에 다시  바꿔 나  공부를 하시게 되어서 결정코 내생에는 대도사(大道士)가 되어가지고 당신 자신도 생사해탈을 하실 뿐만 아니라,  많은 중생을 제도(濟度)하시게 됩니다.

 

오직  길만이 자신도 해탈(解脫)하고, 남도 생사윤회(生死輪廻)에서 건져낼 수가 있어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있을 뿐이지, 다른 어떠한 착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영원한 생사해탈도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행복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가득찬 칠보(七寶)로써 모든 중생에게 보시를 한다 해도  복이 한량이 없어서 천당에 태어나고, 인도(人道)에 태어난다 해도 오복(五福)을 누릴 수는 있을는지 모르지마는 그러한 상(相)으로, 물질적으로 이룬 그러한 복은 언젠가는 다할 날이 있어서 타락이 있게 됩니다.

 

타락한 날에는   동안 복을 누리다 타락하거나, 억겁(億劫)을 누리다가 타락하거나  타락한  마당에 비참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차라리 본래부터 가난했던 사람은 하루 벌어서 하루 먹으면 별일이 없지마는, 한 삼사십  호강하고 잘살다가 하루아침에 가난해졌을 때의  비참한 것은 말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有漏福)을 짓는 것은 삼생(三生)의 웬수(怨讐)’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세속에서 말한 부귀공명(富貴功名)이 바로 유루복인데, 유루복은  유루복을 닦느라고 죄를 짓게 됩니다.

  짓고    있습니까?   짓고 높은 자리 올라갈  있습니까? 높은 자리 올라가고, 높은  부자를 누릴려고  때에  짓지 않고는 도저히 그런 복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복을 획득하느라고 죄를 짓고,   복을 획득한 다음에   수용 하느라고 죄를 짓게 됩니다. 재산이 많고, 벼슬이 높고 하다 보니 권리도 부려야 하고, 호강도 해야 하고, 없는 사람 업신여기며 없는 사람을 개돼지처럼 종으로 부리면서   누리느라고 죄를 짓게 되고.

마지막에  복을  받아서 망(亡)해 갈 때에   있으면  복이 달아나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복과 귀(貴)와 권리와 명예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갖은 안간힘을 쓰다 보니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얻기 위해서 죄를 짓고, 얻어 가지고 누리느라고 죄를 짓고, 나중에 망해 갈  그놈을  없어지게 하기 위해서 죄를 짓게 되어서 삼생(三生) 웬수(怨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지금  세상에 살아가는 데는 돈도 필요하고, 지위도 필요하고, 명예도 필요하지마는, 그것들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며, 차라리 우리가 무서워해야  만큼 '웬수거리'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은 돈도 웬수고 명예와 권리도 웬수면  소용없고, 그러면   파먹고 살아란 말이냐?’  이러한 의아심(疑訝心)을 가지실런지 모르지마는.

그것이  필요합니다. 필요하지마는 그것만을 위해서 우리가 생명 바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  최상승(最上乘) 활구참선을 하시게 되면은, 하시면서 그러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 노력도 하시고, 그런 얻어진 것을 필요하게 적절히 사용도 하시고  그것들이 인연이 다해서 가게 되더라도 우리는 조금도 불행해지거나 죄를 짓지 아니할 수가 있습니다.

 

 활구참선을 하게 되면은 하는 가운데에 돈도 벌고, 명예도 누리고, 권리도 잡고 하신다면은 그것이 죄가  수가 없습니다.  짓지 않고 얼마든지 유효적절하게 얻을 수도 있고, 사용할 수도 있고, 마지막 그것이 나한테 떠난다 해도 모든 것을 인연에 돌리고.

그것이 떠남으로써 일반 사람은 아주 비참한 불행한 맛을 보게 되지만,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떠날 때에도 오히려 좋은 발심(發心)의 계기가 되어질 수가 있고, 참으로 발심할  있는 법문이 되어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좋은 법이기 때문에 최상승 활구참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최상승 활구참선은 지극히 쉬운 것이요, 하기 쉬운 것이요, 누구라도   있는 법입니다.

‘최상승 활구법문’이라 하니까는 대단히 어려워서 우리 말세(末世)에 태어난 사람, 더구나 여자로 태어난 사람, 더구나 나이 먹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도저히   없는 것으로  자포자기 하실는지 모릅니다마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식해도   있고, 나이가 많아도   있고,  많은 중생일수록에 오히려  하기가 좋습니다.  그러냐?

경(經)을 공부한다든지 무슨 어려운 경책(經冊)을 학문을 한다고 하면은 젊어야 하고, 힘이 있어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고, 시간도 있어야 되겠지마는 이 활구참선은 맨주먹으로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앓아누워 있는 사람은 앓아누워서도  수가 있고, 바쁜 사람은 바쁜 가운데도  수가 있고, 일자무식(一字無識)한 사람도 참선(參禪)하는 간단한 법만 지도 받으면은 어디서 언제라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이 법이 그렇게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것이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고 불러서 대답할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꼬집어서 아픈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배고파서  먹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꼬집어 뜯어서 아픈  알고 “아무개야!”하고 불러서 “예”하고 대답할  알고, 배고프면  먹을 줄만  사람이면은  참선은 능히 하고도 남는 것입니다.

 그러냐? ! 꼬집었을  “아야!”할 줄만 알면  아픈  아는 놈이 무엇인고?’ 이렇게 공부를  가는 것이란 말이에요.(처음~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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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때 어떤 보살님은 이렇게 조실 스님이 고구정녕(苦口叮嚀) 말씀하시고, 제가 기회 있을 때마다 조실 스님의  말씀을  알기 쉽도록 이렇게 말씀을 드리기를 벌써  남짓을 해왔는데,

이러한 말씀들이 전부 스님네나 또는 선방에 앉아서,  큰방에 앉아 계신 보살님만 하는 것이지 그밖에 집에서 왔다갔다 하신 신도 여러분에게는 해당된 일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서 전혀 이런 말씀을 들어도  말씀은 당신한테는 해당된 법문이 아니라’ 이리 생각하고 여태까지 5년 동안을 다니셨다 그럽니다.

그분은 대단히 진실하고, 아주 신심이 돈독한 분으로서 대단히 좋은 진실한 신도님인데, 어떻게  법문을 어디로 들으셨는가? 그것이 당신한테 해당된 말이 아니라 다른 분들한테만 해당된 말이요, 나한테는 해당된 말이 아니다’해 가지고 나도 언제나 저런 공부를  볼꼬?’ 이리 생각하셨다 그럽니다.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그러한 착각을 하신 분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마는, 지금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말씀은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에게 해당된 말씀입니다.

누구라도 고대로만 하시면 되는 것이지, 별도로 따로 지도를 받아야 하거나, 지금 자기에게는 해당된 말이 아니어서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누구라도, 지금 저기 어린아이가 있습니다마는,  어린아이라도 다섯 , 여섯  먹은 어린아이라도  말씀만 조용히 들어서 귀담아듣고 고대로만 하면은 오히려 나이 많이 먹어서 학교도 많이 다니고, 지식도 많은 사람보단 아주 철이 하나도 안 든 다섯, 여섯  먹은 애라도 고대로만 한다면 오히려  어린애가 훨씬  빨리 도업을 성취할  있습니다.

 

광주에서 어느 신도분의 아들이 자꾸 자기 어머니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는 것을 보고서 절에 따라와서 구경하고  자기 집에서도 어머니가 조석으로 관세음보살 부른 것을 보고는,  어린애가 열이 40도가 넘어 가지고  몸부림을 치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대단히 곤경에 빠져 가지고  견디게 되니까,

 어린애가 서서 벽에 붙여 놓은 관세음보살 사진 앞에  가지고는,  다섯  먹은 어린애가 합장을 하고 서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이렇게  가지고   동안을 그렇게 하더니 !  쓰러져 가지고는 쿨쿨 잠을 한숨 자고 나더니 !  40도나 되던 열이 쏴악 식어 가지고.

 

! 병원에서도 얘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고 빨리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해서 데리고  어린애가 그렇게 관세음보살을  십 분 남짓을 그렇게 부르더니 !  감쪽같이  병이 낫은 것을 제가  어린애를 봤습니다.

 

순수무구(純粹無垢)한 마음, 천진한 마음으로  때에는 남녀노소가 없습니다.

그래서 경을 많이  보았다’고, ‘나는 아직 불교에 들어온 지가 얼마  되고 경도  번도  봤고, 그래서  같은 사람은 참선해 봤자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시지 말고, 금방 오셨더라도 조금도 상관이 없으니까 ‘이뭣고?

 

성이  때나 또는 슬픈 생각이  때나 또는 어떤 외로움을 느낄 때나, 가정 문제로 사회 문제로 자손 문제로 또는 내외간 문제로 해서, 어떠한 속이 상하고 슬프고 외롭고 또는 기쁘고 간에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뭣고?’ 지금 당장 -하는 놈이 뭣고?’ 자꾸 생각 생각이 돌이켜서  번이고,  번이고 들고  들고,  생각이 생활 속에 저절로 ‘이뭣고?’하는 생각이 저절로 되어지도록까지 열심히 하십시요.

 

밥을 먹을 때도 ‘이뭣고?’ 똥을  때도 ‘이뭣고?’ 잠을  때도 ‘이뭣고?’하면서 언제 잠이 든  모르게 공부를 하시도록, 이렇게 하시면은 무식할수록  좋고, 철이 안 들을수록  좋고, 연세가 많을수록  좋고.

 

연세 많은 분은 내가 인자 이 세상을, 이승을 하직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항시 간절하게 자기에 부딪치기 때문에 무슨 미련이 있고,  잊을 것이 있어서  생각할 겨를이 있느냐 그말이야. 그 죽음이 코앞에 닥쳐있기 때문에 더욱 간절히 ‘이뭣고?’를  수밖에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노인은 노인대로  공부하기  좋습니다. 젊었을 때는 미련도 있고 생각도 많아서  생각  생각하다가 그러지마는, 벌써 육십 칠십 넘으신 할머니는  좋습니다. 인제 자식 걱정할 것도 없고, 자기들  ()대로 살도록 놔두고, 나는 ‘이뭣고?’  좋아요.

 

마지막 숨질 , 그때 참으로 마지막 5, 3, 2, 1, 1 그때까지도 ‘이뭣고?’하는 생각으로 눈을  감을  있다면은 그분이야말로 바로 도인(道人)입니다. 도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분이 도인이여.

마지막  거둘 때에도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이뭣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생존시에 무슨 일에 애착이 있어 공부를 못하겠습니까. 마지막 숨질 , 참으로  먹던 힘을 다해서 ‘이뭣고?’를 들을  있는 사람이면 도인입니다.

 

마지막 숨질 때,  사람이 병을 이길 수만 있다면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병한테 지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육체적, 정신적 힘을 총동원해도 그놈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에 마지막 죽게 되는 것이니 만큼,  죽는 순간에 화두가 들려지고, 들을  있다면  사람의 공부는 어지간한 공부입니다.

 

평상시에 열심히 해 놓지 아니하면 마지막 죽을  정신 하나  차린 것입니다. 손발을 뻐르적거리고, 눈을 뒤집어쓰고 어느 귀신이 어떻게 잡아가는  모르게 뻐르적거리다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어갈 때에 새 배때기,  배때기,  뱃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여.

마지막 죽을  정신 바싹 차려 가지고 ‘이뭣고?   있을 만큼 하려면은 평상시에 공부가 습관화가 되어야 하고, 생활화가 되어서 단단히 단속을 해놔야 그때 가서 써먹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것이, 그것이 그때그때 화두가 들어질  있는 사람이라야  몸뚱이  거둘  되어지는 것입니다.

 

생사(生死)가  칠팔십  살다가 마지막 죽을  그것이 죽음이 아니라, 우리 살아 있을  생각,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바로  생각 일어나면 그것이 ()이요,  생각 꺼지면 그것 ()입니다. 생멸심(生滅心) 바로 생사(生死)입니다.

 

생사를 해탈하고자 할진대는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生死心) 단속할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법입니다.

 

부처님께서 49 동안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고 하는 방대한 법문을 설하셨지마는 한 말씀으로 줄여서 말하면 일념단속(一念團束)하는 , 생사심 단속해서거기에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 단속해서 생사 없는 이치를  몸에 체달(體達)할  영원한 생사윤회는 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리는 여러분이 많은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들어 가지고  지식을 넓히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여기서 들으신  말씀을 인(因)해서 ‘이뭣고?’ 간절히 들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뭣고?’가 간절히 들어짐으로 해서 거기에서 생사심이 끊어지고, 생사심 끊어짐으로 해서 우리는 생사 없는 보리도(菩提道)를 증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살아가기는 너무나도 험준하고, 복잡하고, 어려워서  세상 살아가는 속에 정신차려 이뭣고?’ 든다고 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니하면 누가 나를 위해서 닦아줍니까?(2027~3044)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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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 조실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관음재(觀音齋) ; 관음재일(觀音齋日). 매월 음력 24.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님께 기도를 드리며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 3(身口意 三業) 깨끗하게 하여악업(惡業) 짓지 않아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일.

*참집(參集 참여할 참/모일 집) ; 어떤 자리에 참가하기 위해 모임.

*돋구다 ; 돋우다(감정이나 기운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다. 정도를 더 높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 부처님의 가르침.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깨달음 ; ().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구참(久參 오랠 /참구할·참여할 ) ; 오랫동안에 걸쳐서 수행한 . 오랫동안 () 닦은 . 또는 그런 사람. 불법(佛法) 귀의한지 오래 되는 . 초학(初學) 상대어.

*조랑조랑 ; (어린 사람이) 계속하여 똑똑하게 글을 외거나 말을 하는 소리.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생사고(生死苦) ; 생사(生死)라는 고통[]. 가장 근원적인 고통이며, 이것에서 벗어나야 해탈을 얻는다.

*생사(生死) ; ①생과 . 살아 있는 것과 죽은 .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송담스님(No.389)—89(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 생각 일어날  새로 태어난 것이고,  번뇌가 꺼질   죽는 ,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것이 바로 생사(生死)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생각이 일어날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 ,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두절미(去頭截尾)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 말함.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뢰야식(賴耶識) ; 아뢰야식(阿賴耶識).

*아뢰야식(阿賴耶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 말함.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종자(種子)저장하고, 육근(六根)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 산스크리트어 ālaya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 산스크리트어 vijñāna 번역. 아뢰야(阿賴耶) 진제(眞諦) a()+laya()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 ālaya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참고] 〇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八識)이다.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 5(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6의식), 第七 末那識(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8아뢰야식)이라 한다.

*무기(無記) : [] Avyaksita ()•()•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 말한다.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 ; ()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 말한다. 그리고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3가지 () ··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 따라 ①선심(善心)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 ②악심(惡心)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 과보를 받는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도사(道士) ; ①불도(佛道 :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 닦아 깨달은 사람. ②불도를 닦는 사람. ③도교(道敎) 믿고 수행하는 사람. ④어떤 일에 아주 익숙하여 잘하는 사람을 이르는 .

*제도(濟度 건널 /건널 ) ; 중생을 미혹의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 이르게 하는[] . () 구제(救濟). ()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건널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

*도탈(度脫 건널 /벗을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 상태. 평온한 경지.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칠보(七寶) : [] Sapta - ranta 일곱 가지의 보배。즉 (), (), 유리(琉璃), 파려(玻瓈), 또는 매괴(玫瑰), 차거(硨磲), 산호(珊瑚), 마노(瑪瑙) 등을 말한다.

*인도(人道) ; 인취(人趣). 인간계(人間界). 인간이 사는 세계. 수미산의 사방에 있다는 동승신주(東勝身洲) · 남섬부주(南膽部洲) · 서우화주(西牛貨洲) · 북구로주(北俱盧洲) 대륙을 말함.

동쪽에 있는 승신주의 인간들은 신장이 뛰어나다 하고, 남쪽에 있는 섬부주는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 서쪽에 있는 우화주에서는 소를 화폐로 사용한다 하고, 북쪽에 있는 구로주는  대륙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 .

*()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오복(五福) ; 인생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

유학(儒學) 오경(五經) 하나인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洪範)편에는 (), (), 강녕(康寧 : 건강), 유호덕(攸好德 : 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 고종명(考終命 : 사람이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음) 말하는데, 청나라  적호(翟灝) 『통속편(通俗編)』에는 유호덕과 고종명 대신 ()함과 자손이 중다(衆多)함을 꼽기도 한다.

*억겁(億劫) ; 무한이 길고 오랜 세월.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 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 복이어서 한도(限度)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복을 쌓는다하드라도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받아버리면 다시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얻었던 것을 결국은  없애면서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 같은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송담스님(No.565) - 1996 설날통알  설날차례(1996.02.19)에서.

()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有漏福) 무루복(無漏福)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 가게 되니까 그래서  유루복은 원수이고,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수도 없고, 생활도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과보(果報) 바래.

공투세를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무루복을 참으로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 열심히 함으로써,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삼생(三生) ; 과거와 현재, 미래를 뜻하는, 전생(前生), 현생(現生), 후생(後生,來生) 아울러 이르는 .

*웬수 ; ‘원수(怨讐)’ 사투리.

*부귀공명(富貴功名) ; 재물이 많고 지위가 높으며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침.

*웬수거리 ; 원수(怨讐)  만한 재료. 웬수는 ‘원수(怨讐)’ 사투리.  법문에서는 , 지위, 명예, 권리 따위를 '원수거리'라고 말씀하셨다.

*의아심(疑訝心 의심할 의/의심할 아/마음 심) ; 의심스럽고 이상하게 여기는 마음.

*최상승(最上乘)=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 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경책(經冊 불경 / ) ; 부처님 말씀() ().

*일자무식(一字無識) ;  글자도 읽을  없을 정도로 아는 것이 없음또는 그런 사람.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2)

 

*접때 ; (명사)오래지 아니한 과거의 어느 때를 이르는 말. (부사)오래 지나지 않은 과거의 어느 때에.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말할 /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간곡할 )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 간곡하게() 말씀하심().

*순수무구(純粹無垢) ; 순수하여 몸과 마음이 때묻지 않고 깨끗함.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일사불란(一絲不亂) ; 한 오리 실도 엉키지 아니함이란 뜻으로, 질서가 정연하여 조금도 흐트러지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

*어지간하다 ; ①(무엇이) 수준이나 정도가 보통이거나 그보다 약간 더한 상태이다. ②(무엇이) 수준이나 정도가 꽤 상당하다.

*배때기 ; ‘배’를 속되게 이르는 말.

*생사심(生死心) ;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 말함.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만이 생각의 기멸(起滅)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있게 한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 달리 이르는 .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말이  많다。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일념단속(一念團束) ; 무슨 생각이든지  생각 났다 하면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 받는데,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

마음 속에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있는데,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체달(體達) ;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달음.

*보리도(菩提道) ; 범어(梵語) bodhi 음역(音譯) 보리(菩提)와 그 한역(漢譯)인 도(道)의 복합어. 보리와 같은 말이다.

*보리(菩提) : [] bodhi  () • () • ()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 지혜를 얻기위하여 닦는 (),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 —> ) ‘보리 읽는다。따라서 보제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

§(402)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법문.(송담스님)

 

**송담스님(No.402)—1989(기사년)동안거 결제 법어(89.10.15.) (용402)

 

약 16분.

 

염기염멸(念起念滅)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것이 그것이 인자 생사심(生死心)이고, 생사심 때문에 육도윤회(六途輪廻) 하게 되는 것인데,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만 잡드리 가지고 화두(話頭) 들고 나가면 그것이 바로 깨달음에 나아가는 길이거든.

 

그래서 방부를 들이고 선원에서 정진하는 스님네와 보살님네는 말할 것도 없고, 백일기도에 동참을 하시거나, 자리에 참석을 하신 여러 신남신녀 여러분들도 가정에서 또는 직장에서 생활하시면서도 항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 생사심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로 거기에 ()해서 화두를 잡드리하시라 그말이여. 그러면은 그게 바로 입선(入禪)이고, 그것이 바로 방부(房付) 들이고 정진하는 것이여.

 

설사 선원에 방부를 들이고 죽비를 치고 입선을 해도,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을 잡드리하지 아니하고 그냥 그럭저럭 지내고, 잡담이나 하고 번뇌 망상 속에서 그럭저럭 지낸다면 방부들인 본의가 하나도 없는 것이여.

문제는 공부를 얼마만큼 잘하냐 하는 것은 앉어서 많이 버티는 데에 있는 것도 아니요, 잠을 자고 장좌불와(長坐不臥)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을 하고 벙어리 흉내만 내는 데에 있는 것도 아니여.

 

일체처 일체시에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심을 얼마만큼 철저하게 잡드리해 나가느냐. 바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생사의 즈음해서 화두를 잡드리를 얼마만큼 열심히 하느냐가, 바로 정진을 얼마만큼 열심히 하느냐 하는 판가름이 나는 곳이여.

그래서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도록. 순일무잡해지면 생사심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기멸심이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여. 기멸심(起滅心) 없어지면 그것이 바로 적적(寂寂)하다 그러거든.

 

적적한 가운데에 화두가 없으면그것이 아무리 적적(寂寂)해서 망상이 끊어졌어도 화두가 없으면, 없는 의단(疑團) 독로(獨露)하지 아니하면 그건 무기(無記) 떨어진 것이거든. 무기에 떨어져 가지고는 몇억 겁을 지내도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어.

기멸심(起滅心) 끊어져서 적적(寂寂) 가운데에도 의단(疑團) 떠억! 없는 의단이 독로해야 하거든.

 

의단이 어떻게 독로하냐?

어째서 ()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어째서」에다가 의심의 눈을 박어야 하되, 힘을 쓰고 용을 가지고, 이마에다가 ()’자를 가지고 그냥 머리에다 힘을 가지고 나가는....

초학자(初學者) 대부분 간절(懇切) 의심을 하라고 하니까간절히 한다 하는 것이 이마에다 힘을 주고 하거든. ‘이뭣고!’ 그러는 것이 아니여.

 

떠억! 몸은 단정하니 하되, 어깨와 목에 힘을 빼고, 눈의 힘도 빼고 평상(平常)으로 눈을 뜨고서 없는이뭣고?’

화두를 단전(丹田), 배꼽 밑의 단전에다가 화두를 거기다가 두고서,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숨을 들어마실 때는 배꼽 밑에 아랫배가 약간 볼록하게 하고, 숨을 내쉴 때는 볼록했던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그래서 호흡에 따라서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것을 느껴야 .

 

느끼되, 화두는 언제 드느냐 하면은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배는 차츰차츰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숨은 스르르르 조용하니 코로 나가는데 나갈 때에이뭣고~?’ 이렇게 하는 거여.

숨이 나가면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시되, 들어마실 너무 빵빵 하니 들어마시지 말고 칠부(七部) 팔부(八部)쯤만 들어마셔요.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내쉬면서이뭣고?’

 

이뭣고 의심이 단전에 가서 있어야 된다 말이여. 이마에 가서 있어서는 . 이마에다가 화두를 두고, 용을 쓰고 했다 하면은 나중에는 골이 아파지거든. 그래 가지고 상기병(上氣病) 일어나는 수도 있고 해서 큰일나는 것이니까.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丹田呼吸) 하고, 화두를 드는 가지를 처음에 그것을 알아 가지고, 그걸 지혜롭게 올바르게 해야 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적적(寂寂) 가운데에도 화두(話頭) 불매(不昧)해여. 화두가 ()하지 않도록 나가면 그것이 바로 영지(靈知)거든.

적적(寂寂) 것은 공적(空寂) 것이고, 신령(神靈)스러운 것은 영지(靈知)거든. 신령스러웁게 알아. 적적한 가운데에도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고, 순일무잡한 가운데에도 적적해야 하거든.

 

적적(寂寂)하고 성성(惺惺)하고 하는성성한 가운데에도 적적해야 하고, 적적한 가운데에도 화두가 순일해서 성성하도록 잡드리하는 . 이것이 바로 공부를 올바르게 지어 가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성성하고 적적한 것이, 이것이 유지가 되어 가면 공부가 불일성지(不日成之). 머지않아서 화두를 타파(打破) 가지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보게 것이다.

 

간략한 보제존자(普濟尊者) 법문(法門) !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 대단히 요긴한 대목이여.

수행자가 법문에 의지해서 공부를 잡드리해 나가면, 아까 몽산(蒙山) 스님께서 설하신 그러한 법규를 지켜나가면서 보제존자(普濟尊者) 법문에 의지해서 공부를 나가면 만무일실(萬無一失)이여. 명이면 도업(道業) 성취하고만 것이여.

 

오늘 기사년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해서 일곱 사람이 계를 받고, 많은 대중이 이렇게 법문을 듣고서 결제를 하게 되니, 앞으로 동안을 정말 알차고 짬진 철이 되도록 간절히 당부 말씀을 드리면서 게송 하나를 읊고 안거 설법을 마칩니다.

 

 

수행수시용심진(修行須是用心眞)하라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時道易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미오이도단재아(迷悟二途端在我)하니   시비양자막수인(是非兩字莫隨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행(修行) 수시용심진(須是用心眞)이라. 수행해 나가는 데에는 모름지기 마음 씀을 진실하게 하라.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是道易親)이다. 마음만 만약 진실하면 도는 친하기 쉬운 것이다. 마음 하나가 진실하고 간절하면 바로 도는 친하기가 쉬워. 바로 도는 거기에서 일취월장(日就月將) 거여.

마음 하나가, 용심(用心) 하나가 참되지 못하면 아무리 걸망을 지고 선방으로 돌아댕겨 봤자, 10 20 30년을 댕겨 봤자, 도업에 성취는 어려운 것이여.

 

미오이도단재아(迷悟二途端在我). ‘깨닫느냐, 깨닫지 못하느냐 가지 단서는 오직자신에게 있어.

시비양자막수인(是非兩字莫隨人)이여. ‘네가 옳다 내가 옳다시비(是非) 글자는 다른 사람을 따르지를 말어라. 시비(是非) 미오(迷悟) 원인은 순전히 자신한테 있어.

 

대중이 모여서 이렇게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시비가 일어날 수가 있어. ! 보살님네가 금년 겨울에 백칠십이 명이 모였으니, 동서남북 미국에서까지 모다 오시고 팔도에서 이렇게 모였으니, 연세는 칠십구 세로부터 삼십 칠십 , 육십 먹은 노보살님들이 대부분 많으시고, 젊은 분도 모다 삼십·사십·오십 모다 계시고 한데.

 

얼마나 자칫 잘못하면은 크고 작은 시비가 일어날 수가 있으나, 시비의 원인이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어.

자기 자신만아까 내가 몽산 스님의 법문과 보제존자의 법문 법문을 설해 드렸는데, 그것만을 듣고 자기 단속만 잘하면 시비가 일어날 까닭이 없거든. 시비만 일어날 뿐만 아니라 공부가 잘되고, 빨리 도업을 성취할 있을 것이다.

 

지금 공사가 끝마무리 단계라 집안 집밖 동서남북 사방이 온통 복잡하게 어지러졌습니다. 그래서 디딜 틈이 없어. 그리고 층계도 많고 모다 도량이 여러 가지로 어지럽고 복잡하니, 모다 보살님네들 새벽부터 저녁에까지 왕래하실 걸음 걸음을 정말 조심스럽게 옮기시고 걸음 걸음 옮기실 때마다 화두를 들고 옮기셔야 .

떠억! 화두를 들고 발부리를 살피면서 옮기셔야지, 건성으로 화두를 놓쳐 버리고 망상 잡념을 하면서 한눈팔면서 걸음 걸음을 옮겼다가는 까딱하면은 다치시고 넘어지고 그럴 것입니다. 그럴 것이니 정말 조심스럽게 걸음 걸음을 옮기시고,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잡드리를 하셔.

 

속에 무슨 생각만 가지고 진심(瞋心) 낸다든지, 원망심을 낸다든지, 불평을 한다든지, 번뇌와 망상으로 화두를 놓치는 상태에서 층계를 오르고 층계를 내렸다 하면 까딱하면 헛디디고 다치실 우려가 있어. 누구든지 넘어졌다 하면은 화두를 놓친 증거가 것입니다.

그러니 어쨌든지 조심을 하시기를 부탁하고, 지금 공사가 마무리 단계라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불편하더라도 그런 대로 이해를 하시고, 그럴수록에 정진을 열심히 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5750~7336)()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위에 하신 법문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원문(原文).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103-104.

〇念起念滅(염기염멸)  謂之生死(위지생사)  當生死之際(당생사지제)하야  須盡力提起話頭(수진력제기화두)호리니  話頭(화두)  純一(순일)하면  起滅(기멸)  卽盡(즉진)하리라

起滅卽盡處(기멸즉진처)  謂之寂(위지적)이라하니  寂中(적중)  無話頭(무화두)하면  謂之無記(위지무기)  寂中(적중)  不昧話頭(불매화두)하면  謂之靈(위지령)이라하나니  卽此空寂(즉차공적)  靈知(영지)  無壞無雜(무괴무잡)하야  如是用功(여시용공)하면  不日成之(불일성지)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라 이르나니, 생사(生死) 즈음을 당하야 모름지기 힘을 다하야 화두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다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이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이라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 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하지 아니하면 ()이라고 이르나니, 공적(空寂) 영지(靈知)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며칠 가서 성취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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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화두(話頭 말씀 /어조사 ) ; 공안(公案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이란 뜻인데, ()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 옛말이 있다. ()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관청의 공문서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장좌불와(長坐不臥) ; 밤이 되어도 눕지 않고 앉아서 수행 정진하는 .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무기(無記) : [] Avyaksita ()•()•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 말한다.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 삼푼 되는 (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 () 뜻하며, '단전'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칠부(七部) 팔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70~80% 정도 만큼.

* ; [주로용을 쓰다 구성으로 쓰여]무리하게 어떤 일을 해내려고 마음을 몰아 애써서 한꺼번에 내는 .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3,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3, 내쉬는 시간은 4~5,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1분 32초)

숨을 들어마실 코로 들어마신다 생각을 하지 말고 뒤에서 들어마셔 가지고,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지고 거기서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내쉰다, 내보낸다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적적(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함.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보제존자(普濟尊者) : (1320 ~ 1376) 고려 스님。 법명:혜근(惠勤) :나옹(懶翁) 당호:강월헌(江月軒) 속성:(),영해(寧海)사람。 20 이웃 동무가 죽는 것을 보고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어른들께 물었으나, 아는 이가 없으므로 비통한 생각을 품고, 공덕산 묘적암에 가서 요연(了然)에게 중이 되다.

요연여기 것은 무슨 물건이냐?”

혜근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왔거니와 보려 하여도 없고, 찾으려 하여도 찾을 없나이다。 어떻게 닦아야 하겠나이까?”

요연나도 너와 같아서 없으니, 다른 스님께 가서 물어라

 

스님은 그곳을 떠나서 여러 곳으로 돌아다니다가 1344 양주 회암사에서 4 동안 좌선하여 깨달은 바가 있었다。 중국 원나라 북경(北京)에서 지공(指空) 뵙고 계오(契悟) 있었고, 2 동안 공부하다。 다시 남쪽으로 가서 평산처림(平山處林)에게서 법의(法衣) 불자(拂子) 받다.

복룡산에서 천암(千巖) 선실(禪室) 들어갔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선지식을 찾은 뒤에,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 지공의 법의와 불자를 전해 받다。칙명으로 대도(大都) 광제선사에 있다가 1358 귀국하여 가는 곳마다 법을 설하고 1360 오대산에 들어가다.

공민왕이 청하여 내전에서 법요를 듣고, 신광사에 있게 하다。 1371 왕사가 되고, 대조계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大曹溪禪教都總攝勤修本智重興祖風福國祐世普濟尊者) 호를 받다。 뒤에 회암사를 크게 중건하여 문수회(文殊會) 열어 낙성(落成)하다。 1376(고려 우왕 2) 왕명을 받아 밀양의 영원사로 가다가 여주의 신륵사에서 입적(入寂) 세수(世壽):57, 법랍:38, 시호:선각(禪覺)。이색(李穡) 지어 세운 비와 부도가 회암사에 있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게송) 수행수시용심진~’ ; 중봉명본 스님의 '天目中峯和尙廣錄卷第二十九'에서 '寄同參十首' 게송 참고.

 

*일취월장(日就月將 /이룰·나아갈 / /얻을·나아갈 ) ; 나날이 다달이 발전하고 성장함.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5. 5. 20. 17:05

§(336) 화두(공안) / 의리선(義理禪) / 활구참선(活句參禪).

우리가 참선을 하고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중생심(衆生心)을 쳐부수고, 중생심을 돌이켜서 ‘참나’로 돌아가는 것이고 깨달음에 나아가는 것이지, 무슨 지식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은 대관절 무엇이냐? 말 길이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지고, 사량분별이 끊어진다.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고 알아 들어갈 것이 없어. 해 갈수록 꽉 막혀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이렇게 잡두리를 해 가는 것입니다.


의심이 독로해서 꽉 막혀야 거기에서 분별이 끊어지고, 사량이 끊어지고, 생사심이 거기서 끊어지는 것이여. 끊어짐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지, 사량분별을 점점 치성하게 해 가지고 참선한다고 앉아서 계속해서 분별로 따지고 앉아 있으면 언제 사량분별이 끊어질 것이냐.


**송담스님(No.336)—87년 8월 첫째일요법회(87.08.02) (용336)

 

약 10분.

 

오늘 화두를 새로 타고 또 불명(佛名)을 타고, 계(戒)를 받으려고 하는 분들은 특별히 마음을 가다듬고 말씀을 들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화두(話頭), 화두는 이 공안(公案)이라고도 하는데 이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법인 것입니다.
그 법에 의해서 관청의 모든 사무를 보고 또 백성을 다스리고 하는 근본법을 갖다가 관공기관의 안(案)이다, 법안(法案)이다. 이래서 공안이라 그렇게도 말하고 또 꼬집어서 화두라고도 하고 그러는데,

이 화두라고 하는 것은 이론으로 풀 수 없는 문제인 것입니다.

세속의 모든 문제, 모든 수수께끼나 문제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상식을 총동원해 가지고 그것을 분석하기도 하고 또는 종합하기도 하고 또 비교하기도 하고 또는 적용해 보기도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어떠한 ‘아! 이것이다’ 이렇게 결론을 얻어내는 것인데,

이 참선(參禪)하는 데에 과제인 이 화두는 그러한 이론이 동원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지식과 상식을 가지고 이리저리 따져서 알려고 하는 그러한 방법은 올바른 참선이 아니고 올바른 수행이 아니고 올바른 참구(參究)가 아닌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께서도 녹음법문을 통해서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마는, 공안을 가지고 자기가 알고 있는 불교의 교리나 어떤 철학적으로 이론적으로 이리 따져서 ‘아하 그렇구나!’ 이렇게 아는 것은 그것은 의리선(義理禪)이라 해 가지고 사량분별(思量分別)이지 그것이 바른 참선이 아닌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따져서 아무리 그럴싸한 결론을 얻었다 해도 그것은 마침내 중생의 번뇌(煩惱)요,망상(妄想)인 것이요, 분별심인 것입니다.
번뇌와 망상과 분별은 우리의 정신을 어지럽힐 뿐이지 깨달음에 나아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선을 하고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중생심(衆生心)을 쳐부수고, 중생심을 돌이켜서 ‘참나’로 돌아가는 것이고 깨달음에 나아가는 것이지, 무슨 지식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근자에 일본식 참선, 그 의리선이 많이 한국에 흘러 들어와 가지고 참 많은 지식인들이 그런 일본 참선에 물들어 가고 있는 안타까운 경향이 있습니다.
공안을 갖다가 의리로 따져 가지고 열 개, 스무 개, 백 개 내지 오백 개, 천 개 이렇게 해서 그 공안을 따져서 자기 나름대로 통과를 하면 그것으로써 깨달음에 나아갔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 의리선(義理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책에서도 보고 또 그 말을 들어보니 일본에서는 그러한 의리선을 오래전부터서 해 오고 지금도 역시 해 가고 있어서 오백 개를 통과를 하면은 법사(法師)로써 참선을 지도할 수가 있고, 천 개 이상을 통과를 하면 조실이 될 자격이 있다 이런 말도 내가 들었습니다마는,

우리 한국의 참선은 그러한 의리선이 아닙니다.
깨달을 때까지 화두 하나만을 가지고 그 화두를 갖다가 타파(打破)함으로써 천칠백 화두가 일시에 툭 터지는, 그래 가지고 자성(自性)을 깨닫고 불조(佛祖)의 면목(面目)을 깨닫는 이러한 참선인 것입니다.

왜 일본에서는 똑같은 중국으로부터서 그 받아들인 참선인데 그렇게 의리선으로 그렇게 나아가냐?
내가 생각해 보니까 일본 사람들은 섬사람들이 되어서 생각이 급하고, 참을성이 없고, 느긋하지를 못해서 빨리 무슨 마음의 얻은 바가 있고, 느끼는 바가 있고, 알아지는 것이 있어야지,

한국처럼 화두 하나만을 가지고 십 년 내지 이십 년, 삼십 년 내지 일생 마지막 숨질 때까지라도 화두 하나만을 가지고 잡두리 해 나가는 그렇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런 의리선이 발달을 되지 아니했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공안을 백 개, 이백 개, 수백 개를 통과한들 그것이 ‘참 깨달음’이 아니라면 그것을 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세속의 어떤 학문은 그만큼 열심히 해서 석사도 되고 박사가 되고 한다면 그것으로써 자기의 일생동안 보람을 거기서 찾을 수도 있고, 그걸 가지고 학자가 되기도 하고, 자기의 그 먹고 사는 방책도 되겠지만,

이 화두는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인데 그것을 다 의리(義理)로 따져서 안들 그것 했다고 해서 어디 취직을 해 가지고 밥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 몇백 개 통과했다고 해서 생사해탈하는 것도 아니요. 그것 했다 해서 불조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은 것도 아니고, 지옥에 가 봤자 그것 몇 개 알았다고 해서 염라대왕이 알아 줄 바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애써서 참선을  해가지고 아무 소용이 없다면 그거 무얼 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래서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아 만났고, 만나기 어려운 불교를 만났고, 불교 가운데에서도 이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은 대관절 무엇이냐?
말 길이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지고, 사량분별이 끊어진다.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고 알아 들어갈 것이 없어. 해 갈수록 꽉 막혀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이렇게 잡두리를 해 가는 것입니다.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인고?’ 해 갈수록 알 수가 없고, 꽉 막혀야 그 공부가 옳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자꾸 해 가면 무엇이 알아지는 것이 있고, ‘아하 그렇구나! 그것이로구나!’ 이렇게 알아지면 중생심이여.

알아지는 참선은 그것은 분별만 조장을 시키고, 사량분별이라 하는 것은 더욱 생사심(生死心)을 갖다가 치성(熾盛)하게 만드는 거여. 불타는 데 기름을 찌틀어 가지고 더 불이 훨훨 타게 만드는 것이지, 그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그말이여.

꽉 의심이 독로해서 꽉 막혀야 거기에서 분별이 끊어지고, 사량이 끊어지고, 생사심이 거기서 끊어지는 것이여.
끊어짐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지, 사량분별을 점점 치성하게 해 가지고 참선한다고 앉아서 계속해서 분별로 따지고 앉아 있으면 언제 사량분별이 끊어질 것이냐 그말이여.

길을 막고 물어봐도 확연한 것이고, 세 살 먹은 어린애 보고 물어봐도 그렇게 해 가지고 깨달음에 나아갈 것인가?(16분4초~26분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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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佛名) ; 불법에 귀의한 남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〇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불조(佛祖) : 부처님과 조사(祖師), 불(佛)은 삼세제불(三世諸佛), 조(祖)는 역대(歷代)의 조사를 말함.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잡두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생사심(生死心) ;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치성(熾盛 성할 치/성할 성) ; 불길이 일어나는 것과 같이 성하게 일어남.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4. 9. 30. 16:52

 

 

§(335) (게송)작야시우치~ / 최상승법 제일구(第一句) 도리는 불조(佛祖)도 엿볼 수가 없는 것 / 내가 정신 차릴 것은 본참공안을 드는 것 뿐.

깨달음은 오래오래 닦아서, 그래 가지고 깨달음에 조금씩 조금씩 깨달아 들어가서, 그래 가지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어젯밤까지는 깜깜한 칠통(漆桶)으로 있던 사람이 하룻밤 새에 툭 터져 버리면 바로 해탈도를 증득을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35)-87년 7월 첫째일요법회(87.07.05)에서. (용335)


약 14분.


작야시우치(昨夜是愚痴)가  금조성준걸(今朝成俊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호개해탈문(好箇解脫門)이여  석무인맹렬(惜無人猛烈)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작야시우치(昨夜是愚痴)가, 어젯밤에 깜깜한 어리석은 멍청이가
금조성준걸(今朝成俊傑)이로구나. 오늘 아침에 갑자기 준걸(俊傑)이 되어 버렸구나.

호개해탈문(好箇解脫門)이여. 좋고 좋구나 이 해탈문이여.
맹렬한 사람이 없는 것이 아깝구나.(惜無人猛烈)

깨달음은 오래오래 닦아서, 그래 가지고 깨달음에 조금씩 조금씩 깨달아 들어가서, 그래 가지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어젯밤까지는 깜깜한 칠통(漆桶)으로 있던 사람이 하룻밤 새에 툭 터져 버리면 바로 해탈도를 증득을 하는 것입니다.

방금 우리는 조실스님의 70년도에 성도재 법문으로, 조실스님의 일대기 법문 속에서 만공 큰스님, 용성 큰스님 그리고 보월 큰스님 이 말세에 대선지식(大善知識)들, 그런 선지식들과 함께 최상승법 제일구(第一句) 도리를 가지고 염롱(拈弄)하시는,
한바탕 거량(擧量)을 해 가지고 그 서릿발 같은 칼을 휘두르면서 맞부딪치는 그러한 장면을 녹음 법문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이 법문 한 구절밖에 다시 무슨 법문을 더 들을 것이 있겠습니까?
이 법문을 듣고 뼈에 사무치고 온 몸에 털이 거꾸로 떨어 서며, 칼날을 목에다 대고 용맹정진(勇猛精進) 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수좌(首座)가 아닐 것입니다.

법문(法門)이라는 게 무슨 경전을 해설을 하고 강의를 하고, 무슨 이론에 대해서 천착(穿鑿)을 하고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무슨 도리인지, 어떻게 된 것인지, 우리의 중생 상량심(商量心)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지만은 그 법문을 듣고 우리가 앞 생각이 끊어지고 뒷 생각이 끊어지며,
다만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이 현전(現前)해서 다시 끊어야 할 망상도 없고, 다시 일으켜야 할 화두도 없으면서, 저절로 의단이 독로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이 몸뚱이가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다맛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채 찰나(剎那)가 끊어져 버려야 할 것입니다.

참선은 지극히 간단한 것이어서  당념(當念)에 생멸심을 잃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당념에 생사심(生死心)이 끊을려고 하지 안 해도 당념에 잊어버려야 하는 것이여.

보고 듣고 하는 것도—산을 보아도 산이 보이지를 않고, 물을 보아도 물이 보이지 아니하고, 수백 만 명 속에 있어도 한 사람도 보이지 아니하고, 별별 소음과 잡음이 있어도 한 소리도 귀에 들리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누가 옆에서 잡담을 하거나, 누가 나를 칭찬을 하거나, 누가 나를 험담을 하거나, 일체 시비·우여곡절이 내게는 해당 사항이 아닙니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내 몸뚱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조차도 모르거늘, 무슨 시비와 흥망성쇠가 내게 무슨 상관이 있어.

방금 조실스님께서 대사자후(大獅子吼)로 설하신 제일구 도리는 술수(術數)가 아닙니다.
배울라야 배울 수 없고 가르칠라야 가르킬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도리는 팔만대장경을 뒤적거려도 나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96종 철학을 통달을 해도 그러한 도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도리는 엄격히 말해서 불조(佛祖)도 엿볼 수가 없는 것이고 귀신도 들여다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도리는 고요할 때에는 수미산(須彌山)과 같고, 한 번 움직였다 하면은 큰 불덩어리와 같은 것입니다.
수미산과 같아서 아무리 움직일라고 해도 끄떡도 아니한 것이며, 큰 불덩어리와 같아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한 생각 움직거리면 그 불덩어리에 타 죽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까이 할 수가 없는 것이여.

온 세계에 하나도 감춘 바가 없이 적나라(赤裸裸)하게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기틀의 땅에서 찾으면 자취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참선은 사량분별로 따져서 알려고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여. 이론적으로 더듬어서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망상을 쉴려고 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망상이 일어나서 참선을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망상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고 호소를 합니다마는 망상을 쉴려고 하는 그러한 생각은 참선을 잘못 인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망상을 끊을려고 하는 생각이 벌써 틀린 것이고, 망상을 쉬고 또 쉬고 해서 망상이 하나도 없이 맑고 깨끗하고 고요하면 참선이 참 잘될 것 같지만은 참선은 그렇게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망상이 일어나고 안 일어나고를 애당초부터 문제시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일어나거나 말거나 상관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 일어나거나, 나쁜 생각이 일어나거나, 과거 생각이 일어나거나, 미래 생각이 일어나거나, 일체 선악·시비·원한·애정 천하 없는 생각도 내가 관계할 일이 아닙니다. 그냥 고대로 놔버려.

다만 내가 정신 차릴 것은 본참공안을 드는 것 뿐이여. 거기에서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될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지.

망상도 일어나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고,
일체처 일체시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몸으로 느끼고, 생각으로 받아들여지는 모든 것이, 내가 그것을 참견을 하고 취하고 버릴려고 하는 데에서 공부가 그릇되게 되는 것입니다.

다맛 알 수 없는 의단만이 독로하도록, 의단만을 자꾸 챙겨서 의단이 현전하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리면 또 챙기고, 잃어버리면 또 챙기고, 더우면 더운대로 챙겨 나가면 더위도 잊어버릴 것이고, 추워도 이놈을 추켜들고 비벼대면 추위도 잊어버릴 것이고, 배가 고파도 이놈이요, 배가 불러도 이놈이요,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이 한 의단(疑團)을 가지고 나아갈 뿐인 것입니다.(처음~13분5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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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작야시우치~’ ; 중봉명본(中峰明本) 스님의 「天目中峰和尚廣錄」 제17권 게송 참고.
*우치(愚癡) ; ①매우 어리석고 못남. ②삼독(三毒, 貪·瞋·癡)의 하나.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이른다.
*준걸(俊傑 준걸 준,뛰어날 걸) ; 재주와 슬기가 매우 뛰어남. 또는 그 사람.
*제일구(第一句) ; [참고] [三句] 삼구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207.
[참고]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염롱(拈弄 집을 념,희롱할·마음대로 다룰 롱) ; 고인의 말을 자유로 다루는 뜻. ‘능정거린다’ ‘잡아 두르다’의 뜻.
*거량(擧揚) ; ①화두, 공안(公案)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불교의 진수(眞髓)를 말하는 것. 불법을 선양하여 사람을 인도하는 것. ②선객(禪客)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수좌(首座) ; 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천착(穿鑿 뚫을•궁구할 천,뚫을 착) ; ①깊이 살펴 연구함. ②공연히 이치에 맞지 않게 이러쿵저러쿵함.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①상인이 물품을 판매할 때, 서로 그 가치를 재서 결정하는 것. ②따지고 헤아리는 알음알이.
*본참공안(本參公案) :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당념(當念) ; 바로 한 생각.
*생사심(生死心) ;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우여곡절(迂餘曲折) ; 여러 가지로 뒤얽힌 복잡한 사정이나 변화.
*사자후(獅子吼) ; 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술수(術數) ;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일을 꾸미는 교묘한 생각이나 방법.
*수미산(須彌山) ; 수미(須彌)는 ‘sumeru’의 음역. 묘고산(妙高山)이라 한역함.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
*적나라하다(赤裸裸--) ; (실상이나 감정이)있는 그대로 다 드러나 더이상 숨김이 없다.
*기틀 ; 어떤 일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의 가장 중요한 밑받침.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Posted by 닥공닥정
대중 생활2014. 6. 29. 08:33

<핸드폰에서, 아래 법문은 위 유튜브에서 35분 58초부터 시작됩니다>

 

 

 

§(269) (게송)종조난설인장단~ / 남의 얘기, 일체 잡담을 하지 말라 / 입방선(入放禪)을 형식적으로 하지 말라 / 이러한 공부하기 좋은 여건이 다시 어느 곳에 있겠는가? / (게송)일파유조수부득~.


이러한 좋은 여건 하에서 공부의 힘을 얻지 못한다면 다시 어느 곳에서 어느 세상에 우리가 생사심(生死心)을 돌이켜서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성취할 수가 있겠습니까?

 

**송담스님(No.269)-85년(을축년) 하안거결제 법회(85.06.03)(46분)에서.(용269)

 

약 11분.

 

종조난설인장단(終朝亂說人長短)타가  경야혼침요수면(竟夜昏沈樂睡眠)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여차출가도수시(如此出家徒受施)인댄  필어삼계출두난(必於三界出頭難)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종조난설인장단(終朝亂說人長短)타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남이 잘하고 못한 것만을 어지러이 말을 하다가—누가 잘하니 못하니, 누가 옳고 그르니, 맨 남의 얘기.

선방에 와 가지고 방부를 들이고 참선을 하면서 맨 집안 얘기 아니면, 남의 집 며느리가 어떻고, 자식이 어떻고, 시어머니가 어떻고, 맨 남의 잘하고 못한 이야기만 죽비(竹篦) 쳐서 방선(放禪)하자마자 시작을 해.


하도 말을 해 쌓어 지대방을 저 별채에다 해서 따로 딱! 띄어 놓고, 인자 큰방에서는 일절 잡담을 하지 말라고 이렇게 해놨는데, 아마 큰방에서는 일체 잡담을 안 하시리라고 생각을 하는데, 워낙 참지 못한 분은 큰방에서도 간혹 혹 하시지 않는가? 내가 항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내가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또 저 별채에서 혹 연세가 많으신 분이나, 인자 그런 분을 위해서 잠시 거기서 좀 허리도 좀 펴고 그러라고 별채를 한 것이지, 거기 가서 맘대로 잡담을 하시라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저 별채에다 뚝 큰방에서 떨어지게 해놨으니까 실컷 좀 얘기 좀 해보자' 그리고 아주 마음먹고 아주 잡담을 시작을...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별채도 널찍허니 해놨으니 아! 거기서도 얼마든지 참선 하실 수도 있고 또 허리가 아프면 허리도 쭈욱 펴고 눕되 누워서도 ‘이뭣고?’ 이렇게 하셔야지, 거기서 얘기를 하면—아! 허리 좀 펴고 좀 그럴라고 가신 분들도 있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잡담을 안 해야 하는데, 이 별채라고 해서 잡담을 하시면 언제 정진을 할 것이냐 그말이여.

지금 뭐 별채라고 해서 생사 무상살귀(無常殺鬼)가 거기는 없는 것도 아니고, 거기도 역시 사면(四面)에서 타 오는 불구덩이 함정이 아닌 것이 아닌 것입니다.


경야혼침요수면(竟夜昏沈樂睡眠)이여. 밤이 되면은 아주 세상 모르고 잠을 자는데.낮에 눈 떠 갖고 있을 때는 시비와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밤이 되면은 온통 내 세상이다 해 가지고 다리를 뻗고 코를 골면서 이 꿈속에서는 온갖 잡스러운 꿈을 꾸면서 그렇게 하다가, 낮에 되면은 또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입방선(入放禪)은 형식적으로 하고.
여차출가도수시(如此出家徒受施)여, 이렇게 출가해 가지고 도를 닦는다고 해봤자,필어삼계출두난(必於三界出頭難)이여. 욕계 · 색계 · 무색계, 이 삼계(三界)에서 뛰어나기는 영판 어려울 것이다, 이것입니다.


여기에 모이신 스님네나 금년에 모다 방부를 들이고 또 이 결제에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결코 그러한 분은 한 분도 없으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공연히 내가 노바심(老婆心)으로 이러한 말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그래도 우리가 결제를 맞이해서 도반(道伴)들에게 해 드릴 말씀은 우리가 서로서로 채찍질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이번 결제는 정말 알차고 짬지게 정진을 해 보자고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은 도반으로서에 참 좋은 것이지 이것을 나쁘게 들으실 분은 안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다 주마가편(走馬加鞭)으로, 달리는 말에는 채찍질을 할 필요가 없지만 더 잘 달리라고 채찍을 흔드는 것입니다.


앞으로 오뉴월 또 삼복더위가 돌아올 것입니다마는 아직은 그렇게 덥지를 아니합니다.어쨌든지 시간을 아끼고 거의 묵언을 하시면서, 묵언(默言)은 벙어리처럼 말을 일체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말은 간단히 한마디로 끝내버리고 그리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 이것입니다.
그리고서 항시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포행(布行)을 할 때나, 또는 화장실에 갈 때나, 세수를 하거나 공양을 하거나, 무엇을 빨래를 하거나, 도량 소지(掃地)를 하거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꼭 입선 시간에 큰방에 앉아서 정진하는 바로 그 마음으로 묵묵히 그러면서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고서 한 시간 한 시간을 지내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지내신다면 반드시 이번 한철 동안에 공부에 힘을 얻으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좋은 여건하에서 공부에 힘을 얻지 못한다면 다시 어느 곳에서 어느 세상에 우리가 생사심(生死心)을 돌이켜서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성취할 수가 있겠습니까?


부디 결제 때 이렇게 간곡히 말씀을 드리고, 여러분의 면면을 내가 살펴보니 전부가 다 숙연한 마음으로, 『정말 이번 한철은 알차게 지내야겠다. 정말 내가 쓸데없는 시비와 잡담으로 단 일분일초라도 지내지 않겠다』고 하는 그러한 각오가 역력히 눈에 얼굴에 나타나 보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석 달 동안 계속해서 흐트러지지 않도록 그렇게 정진(精進)을 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리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일파유조(一把柳條)를 수부득(收不得)하야  화풍탑재옥난간(和風搭在玉欄干)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한아름 버들가지를 휘어잡지 못해서, 바람과 함께 옥난간에 매어 두노라.(35분49초~46분32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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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종조난설인장단~’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지대방 ;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방. 이부자리, 옷 등의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며, 스님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큰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한 자리에 모여 참선수행하는 방(房)을 '큰방'이라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삼계(三界) : [범] trayo-dhā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āma-dhā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②색계(色界 rūpa-dhā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ārūpya-dhā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노바심(老婆心) ; 노파(老婆)가 자식·손자를 애지중지하듯이, 스승이 수행자에게 나타내는 자비심. 친절심(親切心). 파심(婆心)이라고도 함.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짬지다 ; 일하는 솜씨가 여물고 깐깐하다.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소지(掃地) ; ①마당(땅)을 쓸다. ②청소.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생사심(生死心) ;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말함.

*무상대도(無上大道) ; 최고의 큰 깨달음.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게송) 일파유조수부득(一把柳條收不得) 화풍탑재옥난간(和風塔在玉欄干) ;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 제23권 황정견(黃庭堅)거사 게송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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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무상(無常)2014. 6. 28. 12:02

 

 

§(269) (게송)광음승불계~ / 병(甁)속의 새의 꿈 / (게송)시비일침몽~ / 일장춘몽 / 공부해 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사심(生死心)을 깨트리는 것.

이 세상에 무엇이 중대하고 무엇이 중대하고 중대하다고 하지만은 각자 당인(當人)의 생사 문제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습니다. 시간을 진실로 아껴야 하느니라.(光陰良可惜)

 

이 참선법(參禪法)이야말로 인간의 고통을 없애고 생사윤회의 근본을 끊는 가장 간단하고도 가장 빠른 요긴한 길인 것입니다.

 

'만났다 흩어졌다'하는 아무리 깊은 지중한 인연도 일시(一時)의 정(情)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남자(男子), 고추만 달고 나와야 대장부가 아니라, 시비(是非)와 취산(聚散)의 애착심을 돌려 버리고 자기의 분(分)을 알아서 마음을 쉬어버리고서, 발심(發心)해서 도를 닦아나가면 이것이야말로 장부(丈夫) 가운데에도 대장부(大丈夫)라 할 것입니다.

 

생사심(生死心),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데, 그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을 생사심이라 그럽니다. 번뇌(煩惱)니 망상(妄想)이니 이렇게도 말을 허지만 ‘생사심’이라고 표현한 것이 보다 더 적절하다.

 

이 '한 생각'을 가지고 도(道)에 나아가는 첫걸음을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69)-85년(을축년) 하안거결제 법회(85.06.03)(46분)에서. (용269)

 

(1) 약 18분.

 

(2) 약 18분.

 

(1)------------------

 

광음승불계(光陰繩不繫)하고  쇠병약난의(衰病藥難醫)니라

나무~아미타불~

생사중대사(生死重大事)니  광음양가석(光陰良可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광음(光陰)은 승불계(繩不繫)요  쇠병(衰病)은 약난의(藥難醫)라.

흐르는 세월은 노끈으로 묶어 매 둘 수가 없고, 늙어서 노쇠해서 병나는 것은 약으로도 낫을 수가 없다.

 

생사중대사(生死重大事)니, 이 세상에 낳다가 늙어서 병들어 죽는, 그것이 이 한평생만 끝난 것이 아니고 무량겁을 이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이 생사의 이 중대사(重大事).

이 세상에 무엇이 중대하고, 무엇이 중대하고 중대하다고 하지마는 각자 당인(當人)의 생사 문제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간을 진실로 아껴야 하느니라.(光陰良可惜)

 

 

오늘 을축년 4월 15일, 하안거 결제일을 맞이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간곡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산승(山僧)이 더 말씀드릴 것이 없지마는 우리가 서로 마음을 가다듬고 이 석 달 동안을 정말 알차고 짬지게 지내기 위해서, 서로서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 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옛날에 큰 병(甁) 가운데에 새가 한 마리 살고 있는데, 그 새가 꾸벅꾸벅 졸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그 새가 사람이 되었어요.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좋은 집안에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잘 자라서, 그랬는데 기가 맥히게 참 예쁜 여자로 태어났는데, 절세미인(絶世美人)으로 태어나 가지고 벌써 나이가 15,6세 되니까 멀고 가까운 데에 널리 소문이 나서 그래서 여러 군데서 '며느리를 삼겠다, 아내를 삼겠다'해 가지고 청혼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가문도 생각하고 또 여러 가지 형편도 두루두루 다 살펴서 참 일등 신랑감을 골라서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했는데 그 신랑도 또한 훌륭한 대장부라, 높은 벼슬을 해 가지고 참 이 세상에 아무도 부러울 것이 없이 영화와 부귀를 한 몸에 다 안고 모든 사람에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들도 낳고 딸도 낳고 이 세상에 하나도 부족함이 없이 잘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신랑이, 그래 인물도 잘나고 머리도 좋고 또 능력도 있고 그래가지고 승승장구 자꾸 높은 자리에 올라가 가지고 나중에 정승까지 되었습니다.

정승이 되었는데 너무 임금님의 신임을 받고 사랑을 받고 그러니까, 그 정승의 말이라 하면 임금님이 하나에서 백까지 다 들어주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 옳은 말로 적절하게 말씀을 여쭈니까 임금님이 안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임금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고 신임을 독차지하게 되고 그러니까 간신(奸臣)들의 시기와 모함을 받아 가지고 결국은 역적(逆賊)으로 몰려서 귀양살이를 가 가지고 약그릇을 받게 되고 집안은 아주 몰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도 너무너무 억울하고 가슴이 미어지는 그러한 괴로움을 받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남편이 억울하게 죽고 나니 자기도 병을 앓게 되고, 자식들도 모다 역적의 자식으로 몰려가지고 전부 멸종을 당하고 마침내는 자기도 어느 관가에 종으로 끌려갔다가 결국은 죽게 되었습니다.

 

밤낮 남편 생각만 하고 자식 생각만 하고 그 원한에 사무쳐서 그래 가지고는 결국은 큰 병(病)이 나가지고 죽게 되었는데, 마지막 죽을 때에 숨이 딱! 끊어지자 다시 눈을 떠 보니까 병 속에 들어 있는 새로 돌아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기가 사람이 되어서 결혼을 해서 신랑이 그렇게 정승이 되고 그랬던 것은 병 속에서 한 마리의 새가 꾼 하나의 꿈에 지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병 속에서 새 한 마리가 꾼 꿈이—인간 세상에 그 결혼을 해서 남편이 잘되고 자식을 낳고 모든 사람에 선망의 대상이 되고, 그러다가 역적으로 몰려서 남편 죽고 자식들도 역적으로 몰려서 다 멸종을 당하고 자기도 마침내 병들어 죽었는데, 지금 내가 이 이야기를 간단히 줄여서 이렇게 말씀을 드렸지만 이것을 낱낱이 자상하게 모든 것을 늘여 놓자면 큰 소설책이 될 것입니다.

 

한 마리의 새가 병 속에서 꾼 꿈이 이러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한 병 속에 들어있는 새가 꿈속에 지금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남자로도 태어나고 여자로도 태어나고 또 김씨도 되고 박씨도 되고 또 가운데는 출가해서 비구승도 되고 비구니도 되고 그렇게 지내지만, 숨 한번 딱! 거두어 가지고 생각해 보면 병 속에 들어 있는 한 마리의 새가 될 것입니다.

이 육도법계(六道法界)를 ‘하나의 병(甁)’이라고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이해가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육도법계 전체를 하나의 병(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속에 들어 있는 한 마리의 새가 천당에 가기도 하고, 지옥에 가기도 하고, 또 인간에 태어나기도 하고, 축생이 되기도 하고, 아귀(餓鬼)나 수라(修羅)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은 육도에 좋은 곳에 태어나서 낙(樂)을 받고 나쁜 데에 태어나 가지고 고통을 받고, 아무리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부귀와 영화를 한 몸에 독차지를 하고, 천상에 태어나서 한량없는 낙을 받는다 하드라도, 결국은 생사윤회하는 한 마리의 새에 지내지 못하고 '업의 불[業火]'에다가 섶을 집어넣는 그러한 결과 밖에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고 각자 우리 자신들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깊이 이해를 한다면, 정말 인간으로 태어나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 새가 잠깐 꾸는 꿈으로 태어난 이 몸이, ‘헌다면, 정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눈뜨게 되리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부귀영화(富貴榮華)에 눈을 떠야 할 것인가? 남을 미워하고 남을 사랑하는 일에 우리가 집착을 해야 할 것인가? 사소한 일로 '니가 옳다, 내가 옳다' 시비에 말려들 필요가 있을 것인가?

아무리 자기가 잘나고 똑똑하고 모든 사람을 다 디디고 올라서 봤댔자, 정신 차려 보면 병 속에 든 한 마리의 새에 지내지 못한 것을.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출가를 하셔서 대도를 성취해 가지고,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다 괴로우니라. 이 세상에 고(苦) 아닌 것이 없느니라. 몸뚱이를 받아서 태어나는 것도 고(苦)요, 늙어가는 것도 고(苦)요, 병드는 것도 고(苦)요, 죽어가는 것도 고(苦)니라. 이 세상에 고(苦) 아닌 것은 없느니라』

이 중생들은 허망하고 무상(無常)한 것이 그나마 고통의 뭉탱이에 지내지 못한 것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을 하고 거기에 집착을 하고, 그것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고 계속 업(業)에 업을 거듭 지어가고 있으니, 이 세상에 모든 것은 허망하고 무상하며 전체가 괴로운 것뿐이라고 하는 것을 맨 먼저 우리에게 설해 주신 것입니다.

 

왜 괴로우냐?

모든 것에 대한—자기 육체에 대해서, 자기의 재산에 대해서, 명예와 권리에 대해서, 그런 것에 대한 애착(愛着)과 집착심(執着心)을 갖기 때문에 모든 것은 괴로운 것이다.

 

그런데 그 괴로움을 없애야 한다. 괴로움을 없애야만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이며,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길이 바로 그 괴로움의 원인을 없애는 데 있는 것이다.

 

그 괴로움의 원인은 어떻게 없애느냐? 도(道)를 닦아야 한다, 이것입니다,

 

그 도에는 여러 가지 방편(方便)이 있겠지만, 그 도 가운데에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 이 참선법(參禪法)이야말로 인간의 고통을 없애고 생사윤회의 근본을 끊는 가장 간단하고도 가장 빠른 요긴한 길인 것입니다.(처음~17분57초)

 

 

 

 

(2)------------------

 

시비일침몽(是非一枕夢)이요  취산일시정(聚散一時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안분심휴헐(安分心休歇)하면  인간대장부(人間大丈夫)니라

나무~아미타불~

 

시비일침몽(是非一枕夢)이요. 옳고 그른 것, 니가 옳고 내가 그르고, 개인적으로나 또는 단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옳고 그른 모든 시비는 다 한 벼개의 꿈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무궁한 옛날부터서 영원한 미래까지 흘러가고 있는 길고도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잠깐 꾸는 꿈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취산(聚散)은 일시정(一時情)이다. 만났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만난 것. 만난 것은 부모와 자식 간으로도 만나고, 아내와 남편으로도 만나고, 형과 동생으로도 만나고, 친구 간으로도 만나고 한, 이 인간이 만났다 헤어졌다 하는 이 인연(因緣)이라 하는 것은 일시(一時)의 정(情)에 지내지 못해.

금생에 부모자식 간에 인연이라 하면 가장 지중(至重)하고, 부부 인연이라 하면은 참 지중하다고 생각이 되지만 일시(一時)의 정(情)인 것입니다.

 

물론 전생에 다 숙세(宿世)의 인연이 있어서 만나긴 하지만, 전생에 부모 · 전생에 할아버지가 금생에 자기 자식이 되기도 하고, 전생에 친구가 아내가 되기도 하고, 금생에 아내가 내생에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이리저리 만나고 만나졌다 헤어지고 하지만 우리는 전생사(前生事)는 다 잊어버리고 모르는 것이고.

물론 숙명통(宿命通)이 열리면 다 알게 되겠지만, 숙명통이 열리기 전에는 '혹 저 사람이 전생에 나의 남편이 아니었나?' 혹 이런 추측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은 확실한 것이 아니고, 전생일은 다 잊어버리게 마련입니다.

 

전생, 저 전생, 수억만 생이 있어 왔기에 금생에 또 부모 자식으로도 만나고, 처자 권속으로도 만나고 그러기는 하지만 전생일은 이미 잊어버려서 알 수가 없고, 다못 금생에 이렇게 만났다가 잠시 5,60년 내지 6,70년 산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일장춘몽(一場春夢)에 지내지 못해서 잠깐입니다.

그리고 또 헤어지게 되는데, 내생에 또 인연에 따라서 다시 만나게 되리라곤 생각이 되지만 또 확실히 만날지 어쩔지도 알지도 못하고, 또 만난다 해봤자 또 전생일은 또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났다 흩어졌다 하는 아무리 깊은 지중한 인연이라 하드라도 일시(一時)의 정(情)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비(是非)와 서로 만났다 흩어졌다 하는 것, 그러한 것들에 너무 집착을 할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정 · 애정 · 인정, ‘참 저 사람이 정답다, 정이 있다’, ‘그 사람은 무정하다, 매정하다’, 정이 있는 것을 참 좋아하고 다정한 것을 좋아하고 그렇지만, 자식을 기를 때에 있어서도 정에 너무 빠져서 정(情)으로 자식을 가르키면 사실은 업(業)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업을 점점 두텁게 맨든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어찌 부모가 자식이 사랑스럽지 아니하리요마는 그 정은 속에다가 담박(澹泊)허니 놔두고, 항시 바른 마음과 지혜로써 그리고 정(情)보다는 자비(慈悲)로써 자식을 잘 길러 나간다면 그 자식은 참으로 올바르게 잘 자라 나갈 것입니다.

지혜롭지 못하고 자비가 없이 인간에, 그 중생에 애정적으로만 가르켜 놓으면, 자식이 자식이 아니라 업의 뿌리 밖에는 아니되는 것이고 '애물'에 지내지 못해서 피차 서로 얽혀 가지고 후생(後生)의 업을 장만한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안분심휴헐(安分心休歇), 자기의 분(分)을 알아서 마음을 쉬어 버려.

그 정 때문에 본의 아닌 죄를 짓게 되고, 정 때문에 자기의 바른 길을 찾지를 못하는데, 그 정을 돌이켜서 지혜와 자비로 승화(昇華)시켜 나간다면 이것이 바로 자기의 분을 아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분(分)을 알아서 마음을 푹 쉬어 버리면 이것이야말로 인간(人間)에 대장부(大丈夫)라 할 것이다.

 

오늘 결제일을 맞이해서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이렇게 법요식에 참석을 하셨습니다. 용화사 법보선원에 방부(房付)를 들인 스님네도 있고 또 보살님도 계십니다마는 또 경기 일원에 다른 선원에서 정진하시는 비구니 스님네들도 이 법회에 참석을 하셨고, 가정에서 공부를 하시는 신도님네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남자(男子), 고추만 달고 나와야 대장부가 아니라, 시비(是非)와 취산(聚散)의 애착심을 돌려 버리고 자기의 분(分)을 알아서 마음을 쉬어버리고서, 발심(發心)해서 도를 닦아 나가면 이것이야말로 장부(丈夫) 가운데에도 대장부(大丈夫)라 할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우리가 정진해 나가는 데에 아주 요긴한 법문을 하셔서 더 말씀할 것이 없지만,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사심(生死心)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생사심(生死心).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데, 그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을 생사심이라 그럽니다.

번뇌(煩惱)니 망상(妄想)이니 이렇게도 말을 하지만 ‘생사심’이라고 표현한 것이 보다 더 적절하다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왜 생사심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냐 하면, 이 생사심 때문에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그 생각이 이리저리 가지가 뻗고 잎이 피고 해 가지고는 한참 뻗어나가다가 그것이 또 언제 또 사그라져 버립니다. 사그라지자마자 또 '한 생각'이 또 일어납니다.

'한 생각' 일어나가지고 또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이리저리 이리저리 발전을 해 나가다가, 혹 좋은 쪽으로 발전해 나가면 기분이 좋고, 혹 나쁜 쪽으로 발전해 나가면 공연히 속이 상하기도 하고 괜히 그냥 누가 얄미워지고도 하고, 그러다가 또 그 생각이 또 언제 꺼진 중 모르게 또 꺼져 버리면, 또 다시 또 '한 생각' 일어납니다. 그렇게 하기를 하루에도 몇만 건인 것입니다.

 

어려서 철모를 때는 모르지마는 철알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이 생사심의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기멸(起滅)이 끊임없이 계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 한 생각 한 생각이 그러고 말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우리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에 미래의 생사윤회를 위한 씨가 심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현생에 우리가 일어난 '한 생각'이 금방 우리의 8식(八識)에 종자(種子)로써 심어지는데, 그 종자가 이 시간 이후에 적당한 인(因)과 연(緣)을 만나면 거기서 새로운 생사윤회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처님께 3가지 불능[三不能]이 있어서 그 중에 하나가 ‘중생계가 다할 날이 없다’ 이리 말씀을 하셨는데, 그러니 밤낮 태어났다 죽고 태어났다 죽고 육도(六途)에서 천문학적 숫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무수한 중생의 생사윤회의 현장이 바로 이 육도법계인 것입니다.

물론 깨달은 눈으로 보면 그 낱낱이 모두가 불보살(佛菩薩)의 출현이요, 그 불보살의 설법이요, 모든 것이 한량없는 부처님의 경전이요, 바로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의 모습이 되겠지만, 그러한 이치를 깨닫지 못한 우리의 중생에게는 전부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가 생사윤회의 현장에 불과한 것입니다. 생사윤회는 우리를 괴롭혀 주는 것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이것이 바로 생사심인데, ‘이 생사심을 어떻게 하면 이것을 깨트려서 생사 없는 근본으로 돌아갈 수가 있느냐?’ 이것이 우리 불자(佛子)에 나아갈 길이요,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목표인 것입니다. 이 생사심을 깨트리려고 노력하지 아니하면 이 생사심은 영원히 끝날 기약이 없습니다.

이 생사심을 깨트리지 못하면 무상살귀(無常殺鬼)는 일분일초도 쉴 사이가 없이 우리를 핍박하고 우리를 쫓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방팔방에서 온갖 방편과 수단으로써 그 무상살귀는 우리를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한 생각', 이 '한 생각'을 가지고 도(道)에 나아가는 첫걸음을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우리가 성불(成佛)할 때까지 이 생각은 잠시도 놓쳐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마치 훨훨 불이 타고 있는 그러한 함정 가운데 우리가 빠졌을 때 ‘어떻게 하면 이 불이 타고 있는 이 함정에서 살아날 수가 있는 있을까?’

공연히 이리저리 함부로 나부대봤자 불에 타서 죽을 것이고, 우두커니 서 있어 봤자 뜨거워서 결국은 자기한테 불이 달라들어서 죽을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무슨 딴생각을 할 겨를도 없을 것이고, 또 누가 와서 나를 살려 주었으면 그런 생각까지도 할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다못 이러할 때에 ‘어떻게 해야 이 불구덩이에서 살아날 수가 있을 것인가?’

살아나가는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불도 돌아보지 말 것이며, 나의 몸과 목숨도 돌아보지 말 것이며, 누가 와서 나를 구해주기도 바래지 말 것이며, 딴생각—집안 생각, 무슨 자식 생각 뭐 그런 생각할 것도 없을 것이여. 잠시도 우두커니 있지도 말 것이며, 다맛 무조건 하고 밖을 향해서 내닫는 것입니다.

 

사방이 전부가 빼어난 틈이 없이 불이지만, 타 죽을 셈 치고 불도 보지 말고 막 밖을 향해서 나간다면 잠시 불에 몸이 닿을 동안에는 뜨거울는지 모르지마는, 번개같이 뛰어나가면 결국은 그 사람이 살아나올 것입니다.

참선해 나간 사람은 이만한, 이만한! 정신을 가지고 정진을 해 나가야만 할 것입니다.(18분3초~35분4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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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광음승불계~’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18 ‘잡흥(雜興)’ 게송 참고. *繩(승)노끈. *繫(계)매다. 묶다. *惜(석)아끼다. 소중히 여기다.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에 의한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당인(當人 맡다·주관하다 당/사람 인) ; 어떤 일에 직접 관계가 있는 그 사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절세미인(絶世美人 끊다·끝나다·뛰어나다·비할 데 없다 절/세상 세/아름다울 미/사람 인) ; 이 세상(世上)에 견줄 만한 상대가 없는[絶] 아름다운[美] 여자[人].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천당(天堂) ; ①천상(天上)에 있다는 신(神)의 전당(殿堂), 하늘의 세계.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하늘을 통칭하는 말. ②정토교(淨土敎)의 극락세계(極樂世界).

*지옥(地獄) : 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그 과보로 사후(死後)에 가서 나게 되는, 고통이 극한 지하의 감옥을 말한다。 그러나 육신의 사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우리의 마음속에 천당과 지옥이 있는 것이다.

*아귀(餓鬼 굶주림·굶길 아/귀신·아귀 귀) ; 항상 굶주림과 갈증으로 괴로워하는 귀신. 전생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악업을 지은 사람이 죽은 뒤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태어나 고통을 당한다.

아귀의 배는 산과 같이 크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만큼 작다. 먹을거리가 없어 항상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에 있고, 우연히 먹을 것을 얻더라도 입에서 불이 나거나 먹을 것이 화염으로 변하여 고통 받는다.

*수라(修羅) ; 아수라(阿修羅)의 준말. 늘 싸움만을 일삼는 귀신들의 무리.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업의 불(業火) ; ①악업의 힘이 맹렬하게 중생을 태우므로 업(業)을 '불'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불같이 이는 노여움. ③악업(惡業)의 갚음으로 받는 지옥의 맹렬한 불.

* ; 잎이 붙어 있는 땔나무나 잡목의 잔가지, 잡풀 따위를 말린 땔나무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고(苦) ; [산스크리트어] duḥkha [팔리어] dukkha 마음이나 몸이 괴로워 편하지 않음.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어지럽고 불안함. 어지러운 생각에 부대끼고 시달려서 마음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 상태. 미혹으로 일어나는 마음 작용.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이 고다”(상응부)

불교에서는 이를 4고 · 8고(四苦八苦) 등으로 분류한다. 사고(四苦)는 생(生)·노(老)·병(病)·사(死)의 네 가지를 말한다.

여기에 다시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고통(愛別離苦), 원망스럽고 미운 것을 만나야 하는 고통(怨憎會苦),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 오음이 성하는 고통(五陰盛苦)의 넷을 더하여 8고라고 한다.

*사제(四諦) ; 사성제(四聖諦). 제(諦)는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를 뜻함. 고(苦, 괴로움)를 소멸시켜 열반에 이르는 네 가지 진리. 사성제(四聖諦,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고도 함.

①고제(苦諦, 苦聖諦) : ‘고(苦, 괴로움)’라는 성스러운 진리.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이 고다”(상응부)

②집제(集諦, 集聖諦) : ‘고의 원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몹시 탐내어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고(苦)가 일어나는 원인이라는 진리.

③멸제(滅諦, 滅聖諦) : ‘고의 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됨으로써 고(苦, 괴로움)가 소멸되어 고의 끝남, 열반에 이른다는 진리.

④도제(道諦, 道聖諦) :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팔정도(八正道)—정견(正見, 바른 이해) · 정사유(正思惟, 바른 생각) · 정어(正語, 바른 말) · 정업(正業, 바른 행위) · 정명(正命, 바른 생계) · 정정진(正精進, 바른 노력) · 정념(正念, 바른 마음챙김) · 정정(正定, 바른 집중)—는 갈애를 소멸시켜,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애착(愛着) ; 사랑하여 집착함. 애집(愛執).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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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시비일침몽~’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48 ‘준선자(俊禪子)에게’, p47 ‘감흥(感興)’ 게송 참고. *枕(침)베개. 말뚝. *歇(헐)쉬다. 그치다.

*벼개 ; ‘베개’의 사투리.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정(情) ; ①오랫동안 지내 오면서 생기는 사랑하는 마음이나 친근한 마음. ②느끼어 일어나는 마음. ③[불교] 혼탁한 망념(妄念).

*지중(至重)하다 ; ①더할 수 없이 귀중하다. ②더할 수 없이 무겁다.

*전생사(前生事) ; ①'전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살았던 삶)'에 있었던 일. ②'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이미 지나간 일'을 일컫는 말.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비(是非) ; ①옳음과 그름. ②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 또는 옳고 그름을 따지며 하는 말다툼.

*담박(澹泊)하다 ;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애물 ; 애를 태우거나 성가시게 하는 물건이나 사람.

*후생(後生) ; 죽어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삶.

*분(分)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승화(昇華) ; 어떤 현상이 한 단계 더 높은 영역으로 발전함.

*대장부(大丈夫 큰·훌륭할 대/어른·존칭 장/사내·일꾼 부) ; 장부(丈夫).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 불법의 수행이 원숙한 사람. 불성(佛性)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생사심(生死心).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사심(生死心)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데, 그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을 생사심이라 그럽니다.

번뇌(煩惱)니 망상(妄想)이니 이렇게도 말을 하지만 ‘생사심’이라고 표현한 것이 보다 더 적절하다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왜 생사심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냐 하면, 이 생사심 때문에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보제존자시각오선인」 p103~105. (가로판 p101~103)

*普濟尊者示覺悟禪人(보제존자시각오선인) - 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念起念滅을  謂之生死니  當生死之際하야  須盡力提起*話頭호리니  話頭가  純一하면  起滅이  卽盡하리라 起滅卽盡處를  謂之寂이라하니  寂中에  無話頭하면  謂之*無記요  寂中에  不昧話頭하면  謂之靈이라하나니  卽此空寂과  靈知가  無壞無雜하야  如是用功하면  不日成之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生死)라 이르나니, 생사(生死)의 즈음을 당하야 모름지기 힘을 다하야 화두(話頭)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곧 다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이 곧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寂]이라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라 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매(昧)하지 아니하면 영(靈)이라고 이르나니, 이 공적(空寂)과 영지(靈知)가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며칠 안 가서 성취하리라”

 

*보제존자(普濟尊者) : (1320 ~ 1376) 나옹혜근(懶翁惠勤). 고려 스님.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참고.

*화두(話頭) ;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 • 악(惡) • 무기(無記) 3성의 하나。 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제8아뢰야식(第八 阿賴耶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참고] 〇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〇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삼불능(三不能) ; 당나라 숭악(崇嶽)의 원규(元珪)가 말한 부처님의 3능(三能)과 3불능(三不能).

(1) 3능(三能) - 부처님의 3가지 능한 것.

①일체 상(相)이 공(空)해서 만법을 아는 지혜를 이루는 것. ②모든 중생의 성품을 다 알고, 억겁(億劫)의 모든 일을 막힘이 없이 다 아는 것. ③한량없는 중생(무량중생)을 제도하는 것.

(2) 3불능(三不能) - 부처님의 3가지 능치 못한 것.

①무량겁으로부터서 지은 정업(定業)은 멸하지 못함. ②인연없는 중생을 제도하지 못함. ③무량중생을 제도하실 수는 있으나 중생계를 다 제도하지 못함.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 ; 더러움이 없는 청정한 법신,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곧 비로자나불을 말함.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무상살귀(無常殺鬼) ;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殺] 귀신(鬼神)이라는 뜻. ‘인간존재가 무상하다’는 것의 무서움을 비유한 말.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45~147. (가로판 p139~141)

做工夫호대  最初에  要箇破生死心堅硬하고  看破世界身心이  悉是假緣이라  無實主宰호리라. 若不發明本具底大理則生死心이 不破오  生死心이  旣不破인댄  無常殺鬼가  念念不停하나니  卻如何排遣고

 

공부를 짓되 최초에 생사(生死)를 파하려는 마음이 굳세고, 세계와 몸과 마음이 모두 이 거짓 인연[假緣]이라 실다운 주재(主宰)가 없는 줄로 간파(看破)할지니라.

만약 '본래 갖추어진 큰 이치[本具底大理]'를 밝히지 못하면, 곧 생사심(生死心)을 깨뜨리지 못하고 생사심을 깨뜨리지 못했을진댄 무상살귀(無常殺鬼)가 생각생각 멈추지 않으리니, 도리어 어떻게 물리치겠는가?

 

將此一念하야  作個*敲門瓦子호대  如坐在烈火焰中求出相似하야  亂行一步不得하며  停止一步不得하며  別生一念不得하며  望別人救不得이니 當恁麼時하야는  只須不顧猛火하며  不顧身命하며  不望人救하며  不生別念하며  不肯暫止하고  往前直奔호대  奔得出하야사  是好手이니라.

 

이 일념(一念)을 가져 문 두드리는 기와쪽[敲門瓦子]을 삼되, 마치 훨훨 타는 불꽃 가운데 앉아서 나오기를 구하는 것과 같아, 함부로 한 걸음 걸을 수도 없고, 한 걸음도 멈출 수도 없으며, 한 생각이라도 딴 생각을 낼 수 없으며, 남더러 구원해 주기를 바랄 수도 없나니,

이런 때를 당하여서는 다못 사나운 불길도 돌아보지 않으며, 신명(身命)을 돌보지 말며, 다른 사람이 구해 주기를 바라지 말며, 딴 생각 낼 것도 없으며, 잠시도 멈추지 말며 앞으로 곧장 나아가되 내달아서 벗어나야만 이 좋은 수단이니라.

 

*고문와자(敲門瓦子) : 기왓장을 문에다 걸어 놓고 손님이 와서 그 기왓장으로 문을 두드리면 주인이 문을 열어 주는 현대의 초인종과 같은 역할을 한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나부대다 ; 얌전히 있지 못하고 철없이 촐랑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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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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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세등46) 활구참선(活句參禪)이란? / 묘오(妙悟) 요궁심로절(要窮心路) / 활구참선은 참나를 깨닫게 하는 가장 묘한 / 공부는 올바르게 최선을 다해.

 

묘오(妙悟) 요궁심로절(要窮心路)이요. 묘한 깨달음은, 정말 참다운 ()다운 깨달음은 마음길(心路) 끊어져야 하는 것이다. 마음길을 어떻게 끊느냐? 일어나는 번뇌와 망상을 어떻게 하면 그것이 끊어지냐? 끊을랴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여.

이뭣고?’ 화두를 하는 사람은 앉아서나 서서나, 일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무슨 소리를 들을 때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이뭣고?’ 오직 앞도 없고 뒤도 없고, 다못 그렇게만 화두를 의심해 따름이여. 그렇게 가면 망상심(妄想心) 끊을랴고 하지 해도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다.

 

앞으로 부처님과 같은 대성현이 나오셔서 다시 어떠한 우리 중생들에게 맞는 새로운 법을 설하신다면 몰라도 현재까지는 이보다 우리의 중생의 번뇌 망상을 끊어서참나 깨닫게 하는 묘한 법은 없습니다. 활구참선이 아니고서는 세상없이 나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설사 바른 스승을 만나서 올바르게 공부하는 방법을 지도 받아 가지고 공부를 하되,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면 스스로 자기에게 매서운 채찍질을 가하면서 하루 하루를 그리고 시간 시간을, 아니 1 1초를 알뜰히 단속을 해야 것입니다.

 

망상(妄想)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이러한 말은 아직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는 거여. 일어나는 망상은 조금도 성화 필요가 없거든.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나는 화두만을 챙기면, 화두만을 들어버리면 그것이 가장 쉬웁게 번뇌와 망상을 처리하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46)—계해년 하안거해제 법어(1983.07.17) (세등46)

 

 

약 17분.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활구참선이라 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활구참선(活句參禪) 무엇이냐? 참선이면 참선이지, 활구참선이란 대관절 무엇이냐?

 

화두를 어떠한 선지식(善知識)한테 받아 가지고 화두를 갖다가 참구(參究) 하되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고, 사량분별(思量分別) 따져 들어가고, 이리저리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교리라든지 지식이라든지, 상식이라든지 그런 것으로 이렇게 더듬어 들어가고, 알아 들어가고 그러면 그것이 바로 활구참선이 아닌 사구참선(死句參禪)이다.

 

알아 들어가는 참선 아무리 깊이깊이 파고 들어가서 알아 들어간다 하드라도, 그래 가지고 그럴싸한 결론에 도달했다 하드라도 마침내 중생심, 분별심, 번뇌(煩惱) 망상심(妄想心) 여의지 못했기 때문에, 번뇌 망상심이요 분별심은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생사심(生死心)이다. 생사심으로 어찌 생사심이 끊어질 것이냐.

 

미륵불(彌勒佛) 하생(下生) 때까지 찾아 들어가고, 따져 들어가고, 알아 들어간다 하드라도 그것은 종래 깨달음에는 이르지를 못하고 결국은 생사윤회(生死輪廻)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말이여.

 

묘오(妙悟) 요궁심로절(要窮心路)이요. 묘한 깨달음은, 정말 참다운 ()다운 깨달음은 마음길(心路) 끊어져야 하는 것이다. 마음길을 어떻게 끊느냐? 일어나는 번뇌와 망상을 어떻게 하면 그것이 끊어지냐? 끊을랴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여.

 

화두를 올바르게 참구를 하면—‘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 화두를 하는 사람은어째서 무라 했는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를 하는 사람은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이무엇고? 화두를 하는 사람은 앉아서나 서서나, 일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무슨 소리를 들을 때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이무엇고?’ 오직 앞도 없고 뒤도 없고, 다못 그렇게만 화두를 의심해 따름이여. 그렇게 가면 망상심(妄想心) 끊을랴고 하지 해도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다 그말이여.(175)

 

앞으로 부처님과 같은 대성현이 나오셔서 다시 어떠한 우리 중생들에게 맞는 새로운 법을 설하신다면 몰라도 현재까지는 이보다 우리의 중생의 번뇌 망상을 끊어서참나 깨닫게 하는 묘한 법은 없습니다. 활구참선이 아니고서는 세상없이 나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믿는 믿을 있는 바른 깨달음을 이룬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받아 가지고 참선을 하되 처음에는 잘된 같지만, 얼마 보면 의심이 나고 답답하기만 하고 공부가 안되는 것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공부는 처음부터 그렇게 잘될 수도 없고, 갈수록 점점 잘되어 수도 없습니다.

 

선요(禪要) 보면 참선하는 상황을흘러내려 오는 강물을 거슬러서 배를 밀어 올린 에다가 비유를 하셨습니다. 물은 위에서 밑으로 흘러내려 오는데, 배를 갖다가 물줄기를 거슬러서 거꾸로 상류(上流) 향해서 계속 배를 밀어 올릴 얼마나 힘이 들것이냐 그말이여.

겨우 삿대쯤 밀어 올리면은 삿대쯤 흘러내려 가고, 삿대쯤 밀어 올리면 삿대쯤 흘러내려 가고, 흘러내려 오면 다시 거꾸로 밀어 올리고, 있는 힘을 다해서 밀어 올렸는데 다시 흘러내려서 밑으로 십배나 흘러내려 간다.

 

그렇게 해서 밀어 올리면 올린 만큼 몇배를 거꾸로 내려가고, 밀어 올리면 거꾸로 내려가고 가지고 배가 상류로 올라가기커녕은 결국은 배가 바다까지 떠내려갔다 그말이여.

바다까지 떠내려갔지만 그래도 쉬지 않고 계속 상류를 향해서 끌어올릴라고 있는 힘을 다하고, 몸과 목숨을 다해서 끌어올릴라고 때에, 더이상 힘을 쓸래야 없고 기량이 다해서 기진맥진해서 기절을 버릴 지경에 이르르면 확철대오(廓徹大悟) 한다 그랬어.(2052)

 

참선이라는 것이 누구나 제게 있는 것을 찾기 때문에 남녀노소(男女老少) 상관이 없고, 빈부귀천(貧富貴賤) 상관이 없고, 지식(知識) 있고 없는 것도 상관이 없고, 할랴고만 하면세수하다가 만지기 보다도 쉽다이렇게 고인(古人)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실지로 보면 이와같이 배를 물을 거슬러서 밀어 올릴라고 하는 만큼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 위해서는 몸과 목숨을 바쳐야 . 바쳐서 한번 죽었다 깨어나야만, 완전히 죽었다 깨어나야만 확철대오를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 선지식 고인 가운데에는 소시(少時) 그렇게 일찍 깨달은 분도 가끔 있고, 언하(言下) 대오(大悟) 분도 있지만, 그러한 분은 전생(前生) 몸과 목숨을 바치는 그러한 피나는 정진(精進) 있은 인연으로 금생에 일찍 깨달을 있었던 것입니다. 언젠가는 어느 생엔가는 목숨을 바치는 그러한 피나는 정진이 없고서는 일대사(一大事)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금생에 3, 10, 20, 30 내지 일생 동안을 그렇게 고행정진을 해도 마침내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대사를 해결하지 못하고 가는 수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렇다고 해서 일생 동안을 헛되이 보냈냐 하면 그것이 아니여.

올바른 방법으로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은 헛되이 일생을 보낸 것이 아니라, 숨을 마즈막 거둘 때에도 오직 화두 의단(疑團) 독로(獨露)해서 의단이 독로한 가운데 숨을 거둔다면, 사람은 숨을 거두자마자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 해서 다시 정법문중(正法門中)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젊어서 확철대오를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는 바른 스승을 만나서 올바르게 공부를 하되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깨닫고 깨닫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염려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것은바른 스승을 만났느냐, 만났느냐? 올바른 방법으로 공부를 했냐, 했느냐? 그리고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 다하고 있지 않느냐?’ 오직 이것은 항시 자기 자신을 돌이켜 봐야 것입니다.

 

설사 바른 스승을 만나서 올바르게 공부하는 방법을 지도 받아 가지고 공부를 하되,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면 스스로 자기에게 매서운 채찍질을 가하면서 하루 하루를 그리고 시간 시간을, 아니 1 1초를 알뜰히 단속을 해야 것입니다.(2534)

 

그렇게 해서 몸이 안정(安定) 되고, 몸이 안정이 되면 눈알이 안정이 되아야 하는 것입니다. 눈동자가 이리갔다 저리갔다, 눈껍데기가 깜박깜박 그러한 것은 눈이 안정이 되얐다 수가 없는 것이여.

 

눈이 따악 안정이 다음에야 비로소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 앉아서나 서서나, 밥을 먹을 때나, 옷을 입을 때나, 일을 때나 화두가 독로(獨露)해서, 화두를 들라고 해도 터억 의심이 독로하되,

순수무잡(純粹無雜)해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도록, 오직 그렇게만 다잽이를 해가면 망상이 일어나는 것도 걱정 것이 없고, 일어나되 억지로 보낼라고 하지도 말고 누를라고 하지도 말고, 성화를 필요가 없어.

 

다만 화두(話頭)만을 거각(擧却) 버리면, 일어났던 망상은 저절로 자취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서 화두가 독로하되, 그래도 소리를 들으면 그것이 귀로 들어오고 눈으로 뭣을 보면 모양이 눈에 들어오지만, 거기에 내가 끄달리지만 하고 화두만 들어버리면 그런 소리나 모양은 나한테 장애를 주지 아니한 자취가 없어지기 때문에,

망상(妄想)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이러한 말은 아직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는 거여. 일어나는 망상은 조금도 성화 필요가 없거든.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나는 화두만을 챙기면, 화두만을 들어버리면 그것이 가장 쉬웁게 번뇌와 망상을 처리하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요하고 편안하고 맑고 깨끗한 그러한 경계가 나면, 자칫하면 맑고 깨끗하고 고요하고 그런 데에 취해 가지고 화두를 놓쳐 버리는 수가 있는데, 그것은 대단히 주의를 해야 하는 것이여.

 

벌써! 고요하다, ! 깨끗하다너무너무 적적(寂寂)하고 성성(惺惺) 경계(境界) 취해 버리면 화두를 놓치게 되는데,

화두를 들면 행여나 맑고 깨끗하고 고요하고 묘한 경계가 흩어질까 두려워서 화두를 들지 아니하고 고요한 빠지게 되면 이것은 확철대오(廓徹大悟)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여.

 

아무리 고요하고 깨끗하고 그럴지라도 거기에서 화두(話頭) 떠억 챙겨야만 되는 것입니다.(1312~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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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煩惱) ; 나쁜 마음의 작용. 번요뇌란(煩擾惱亂) .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성냄()•어리석음() 있다.

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령될 /생각 ) ; 이치에 맞지 않는 허황된() 생각() . 또는 그런 생각.

*생사심(生死心) ;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마음.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만이 생각의 기멸(起滅)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있게 한다.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 미륵이라 한다.

*생사윤회(生死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선요(禪要) ; 고봉원묘(高峰原妙) 법어로, 간화선(看話禪) 수행의 요의(要體) 적은 .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수할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수(純粹)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자타(自他)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경계.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

*성화(成火) ; ①일 따위가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고 속이 , 또는 그런 증세. ②몹시 귀찮게 구는 .

*성화를 대다 ; 자꾸 몹시 귀찮게 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망상(妄想 망령될 , 생각 ) ; 이치에 맞지 않는 허황된() 생각() . 또는 그런 생각.

*적적(寂寂) ; 고요하고 평온함.

*성성(惺惺) ; 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경계(境界) ;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 ③상태 ④범위,영역 

*확철대오(廓徹大悟 /통할 / /깨달을 ) ; 크게 통한 깨달음. 내가 나를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