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相)'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6.01.01 §(157) 전강선사 7주기 추모재.
  2. 2015.11.07 §(세등59) 용맹정진이란? / 상(相)만 내는 정진이 아니라 속으로 알짜배기 정진을 해야 / (게송)강호춘진낙화풍~ / 부처님·나라·부모·스승·신도 은혜를 갚자.
  3. 2015.09.16 § (1)전강 선사 영가천도 법문(월원불유망~) / 송담 스님 영가천도 법문.
  4. 2015.04.02 §(280) (게송)약인투득상두관~/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법문 / 용화선원의 가풍 / 선재동자의 진실함 / (게송)역력이빈주~ / 대의지하 필유대오.
  5. 2015.01.17 §(113) 전강선사 5주기 추모재 / 조주 스님의 가풍과 무쟁삼매법 / 참선을 잘하는 것이 최상승계를 잘 지키는 것.
  6. 2014.08.12 §(178) (게송)몽리명명유육추~ / 환몽(幻夢) /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교외별전(敎外別傳) / 불방일(不放逸)-최상승계(最上乘戒)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7. 2013.11.18 §(099) 상(相)에 집착없이. 척사현정(斥邪顯正) / 재송도인 / 만공스님, 보월스님 / 상(相)없이 베풀어야 / 본참화두를 들고 행동하면 자연히 상에 안 떨어져.
  8. 2013.10.20 §(세등46) 상(相)없이 정진을 해야 / 다른 종교를 비방 말라 / 관심일법총섭제행 / (게송)청군앙면간허공~ / 여의고 찾지 않고 바로 그놈에 즉해서 화두 들어야.
  9. 2013.10.05 §(414) (게송)견색비간색~ / 거울 속에 나타난 형상은 자기의 얼굴 /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 도에 들어가는 첫 관문은 아상(我相)을 깨트려야.
전강선사 추모재2016. 1. 1. 13:46

 

 

§(157) 전강선사 7주기 추모재.

 

시대가 말세가 되어서 바른 스승 만나기 어렵고, 바른 학인을 만나기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정법을 바래고 원한다면 선지식과 불보살을 육도법계(六途法界) 어디서라도 친견할 수가 있다고 나는 확신을 합니다.

 

**송담스님(No.157)—조실스님 7주기 추모재(81.12.02.)(15) (용157)

 

약 15분.

 

23세에 견성오도(見性悟道) 하시고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 스님을 비롯해서 만공 대선사님의 법맥(法脈) 이으셨습니다.

 

33세에 양산 통도사의 보광선원 조실(祖室) 추대를 받으셨고, 이후로 법주사 복천선원 경북에 수도선원, 해남 대흥사, 망월사, 대구 동화사, 경남 범어사,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 여러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시고,

수원 용주사에는 중앙선원을 개설하시고, 그렇게 조실로서 활구참선법, 언하대오(言下大悟)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선양을 하시다가,

 

여기 주안 용화사에 법보선원을 61년도에 창설을 가지고, 1975 양력으로 1 13일에 열반에 드실 때까지 용화선원에서 정법을 선양을 하시다가 77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열반에 드신 이후 오늘까지 8년간 조실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서 조실 스님의 생존시와 조금도 다름없이 항시 조실 스님께서 도량에 살아서 머물러 계신 똑같이, 믿고 경건한 마음으로 우리 사부대중이 도량에서 법문을 듣고 정진을 왔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원래 모든 불보살(佛菩薩) 역대조사(歷代祖師) 마찬가지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아 증득하셨으므로 당신 분상에는 생사가 없는 것이지만, 인연에 따라서 열반상(涅槃相) 보이신 것뿐입니다.

 

육조(六祖) 스님께서 열반하실 제자의 사람이언제 돌아오십니까?”하고 여쭈니까, “낙엽귀근(落葉歸根)이요 내시무구(來時無口)니라. 나무 이파리는 떨어져서 뿌리로 돌아가고, 오는 때에는 말이 없느니라하셨습니다.

말씀은 비단 육조 스님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불보살과 조사께서는 말씀이 해당이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조실 스님께서내가 뒤라도 용화선원이 영원히 선원(禪院)으로서 운영이 되어가도록 하라 당부를 하시고,

이렇게 도량(道場) 가꾸어서 인연 따라서 자기도 공부하고 다른 사람도 공부할 있도록 나가면 나도 다시 와서 여기서 일대사(一大事) 밝힐 것이고, 너도 갔다가 다시 오고 해서 서로서로 도량을 중심해서 무량겁을 두고 공부하고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간다면 그밖에 일이 무엇이겠느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조실 스님이 언제 오실 것인가?

내가 아무개다하고 몸에다가 글씨를 가지고 오시는 것도 아니고, 그것은 아무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파리는 떨어져서 뿌리로 돌아가고 때에는 말이 없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오실는지 그것은 아무도 헤아릴 수가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하늘에 찬란히 빛나는 태양이 조실 스님의 모습일 수도 있고, 캄캄한 밤을 비추는 휘황한 달빛이 조실 스님의 법문일 수도 있고, 흐르는 , 노래하는 새의 소리가 조실 스님의 모습이요 법문일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신심과 정성을 가진 사람이면, 언제 어디서라도 조실 스님의 모습을 친견할 있을 것이고,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을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비단 조실 스님의 모습뿐만이 아니라 삼세제불과 역대조사의 모습과 법문도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시대가 말세가 되어서 바른 스승 만나기 어렵고, 바른 학인을 만나기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정법을 바래고 원한다면 선지식과 불보살을 육도법계(六途法界) 어디서라도 친견할 수가 있다고 나는 확신을 합니다.

이러한 내용의 말씀, 화엄경을 비롯한 많은 경전들 가운데에 역력(歷歷)하게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이러한 분이 선지식(善知識) 것이다. 이러한 분이 바로 불보살 화현(化現) 것이다자기 나름대로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그리면서 그러한 불보살과 선지식이 자기 앞에 나타나기를 바라고 계신 분이 계실는지 모릅니다마는,

불보살은내가 불보살 화현이다” “내가 선지식이다이렇게 말씀을 하시지를 않습니다.

 

고정된 모습 없이 나타나시고, 우리 중생의 눈으로, 이분이 바로 불보살이다, 이분이 바로 선지식이다알아차리도록 그렇게 오시지를 않기 때문에 그러한 뚝눈으로는 불보살은 바로 자기 곁에 계시고, 자기 집안에 계시고, 일생을 같이 살면서도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불보살과 역대 선지식들은 () 없이 오시고, 상이 없이 가시며, 상이 없이 사시기 때문에 상을 통해서는 친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불보살 화현은 여러분 가정에서 남편이 화현으로 와서 자기와 같이 살고 계실는지도 모르고, 불보살 화현이 오셔서 시부모님으로 계실는지도 수가 없고 또는 아들이나 딸이나 며느리가 불보살 화현으로 자기집에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살고 있는 줄도 수가 없는 일입니다.

 

발심(發心) 눈과 마음으로는 도처(到處)에서 항시 불보살을 친견할 수가 있는 것이고, 발심 못한 사람에게는 일생동안 산으로, 들로, 절로, 속세로 찾고 헤매어도 불보살은 마침내 친견을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평상(平常) 법문하시기를언하(言下) 대오(大悟), 아래 크게 깨달으라하셨습니다.

말은, 선지식이다라고 널리 알려진 그분의 말씀만이 말씀이 아니고 바람소리, 소리, 우는 소리, 흐르는 소리, 우리 귀를 통해서 들을 있는 모든 소리가 불보살의 법문이요 선지식의 법문인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 있는 모든 색상도 불보살의 모습이요, 법문이요, 진리의 표현인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들이 어떻게 얼마만큼 간절히 그리고 철저하게 분심(憤心) 신심(信心) 내느냐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오늘 조실 스님의 7주기를 맞이해서 이러한 최상승법(最上乘法) 우리의 마음을 다지고, 조실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실천함으로써 추모재를 맞는 우리의 마음가짐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상으로서 인사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처음~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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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오도(見性悟道) : ‘성품() 보아() 진리() 깨친다()’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 일치하는 정각(正覺)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 견성오도라 한다.

*법맥(法脈) ; 세속에서 조상의 전래 혈통(血統) 밝히고 있듯이, 불교 선종(禪宗)에서는 스승에서 마음을 깨친 제자로 계속 이어져 전해 ,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 법통(法統) 전승을 법맥이라 한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열반상(涅槃相) ; 부처님의 성도(成道) 중심으로, 부처님의 일생에 있어서의 8가지의 중요한 사항인 팔상성도(八相成道) 또는 팔상(八相) 하나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말한다. 쿠시나가라성 밖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최후의 설법을 마치고 열반에 드는 모습.

*육조 스님 ; 분류역대 스님 약력참고.

*낙엽귀근(落葉歸根)이요 내시무구(來時無口)니라 ; [육조단경(六祖壇經)] 부축품(付囑品) 참고.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도량으로 읽음.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혜명(慧命) ;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 ②법신(法身)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역력(歷歷) ; 훤히 있게 분명하고 또렷함.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는 .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도처(到處 이를 , ) ; 여러 .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5. 11. 7. 11:01

§(세등59) 용맹정진이란? / 상(相)만 내는 정진이 아니라 속으로 알짜배기 정진을 해야 / (게송)강호춘진낙화풍~ / 부처님·나라·부모·스승·신도 은혜를 갚자.

 

전강 조실 스님께서나  정혜사 만공 큰스님께서도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헐라면  시간씩을  자라 이런 말씀도 하셨다고 그럽니다.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은 진짜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야 그것이  정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형식적으로 시간만 많이  가지고 형식적으로 정진을 많이 헙네하고 () 내고, 속으로 알짜배기 정진이  된다면은 무슨 도업을 깨달을 수가 있을 거여? 성취할 수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어쨌든지  살림이 튼튼하도록 알뜰하고 짬진 정진을 해서 그러한 훌륭한 수행자가 되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 빈부귀천과 부귀영화와 명예와 권리, 지식의 유무(有無), 인물이 잘나고 못나고,  그게   송이 꽃에 지내지 못하고, 한덩어리의 구름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애착과 분별을  쉬어 버리시고 이만큼 건강했을 때에 어쨌든지 정진  정진을 해서  몸뚱이로 견성성불을 해서 부처님나라부모스승의 은혜를 갚고,   절을 피땀 흘려서 지어 놓으신 주지스님의 은혜를 갚고,  우리의 먹고 입을 것을  마련해  모든 신도의 은혜를 갚도록 합시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59)—병인년 하안거 결제 법어(86.04.17) (세등59)

 

(1) 약 18분.

(2) 약 5분.

 

(1)------------------

 

 도량에 들어오면은 첫째 아상(我相)을 무너뜨려 버리고,  주장을 버려 버리고,  선원의 규칙대로 순종을 하고 적응을 하도록 그렇게 한다면은   동안 장애 없이 공부할 수가 있어.

아무 장애 없이   동안을 정말 온전히 알차게 짬지게   동안을 정진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입선(入禪) 시간만 죽비()를 치고 입선하면은 그때만  앉아서 정진을 하다가, 방선(放禪) 죽비만 치면 치기가 무섭게 벌써 입을 벌리고 잡담을 하고 그렇게 지낸다면 미륵하생(彌勒下生), 56 7천만년 뒤에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선방에서 지낸들 그건 깨달을 기약이 없는 것이여.

 

편의상 대중이 살다보니까 그러한 규칙적인 시간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죽비를 쳐서 입선도 하고 방선도 하고 거기에 따라서 공양(供養)도 하고, 모다 운력(運力)도 하고 그런 것이지,

공부 자체는 죽비와도 상관이 없는 것이고,  앉았거나 섰거나 누웠거나 일을 하거나 빨래를 허거나 밥을 먹거나 똥을 누거나 전혀 그것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방선을  때도 화두(話頭)가 성성적적(惺惺寂寂)해야 하고, 밥을 먹을 때에도 화두가 성성해야 하고, 똥을  때도 화두가 순일(純一)해야 하고,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때에도 바로 그때에도 화두가 성성해야 하고, 목욕을 하면서도 성성해야하고,

일체처 일체시가 그저 입선할 때나 똑같이 화두를 거각(擧却)하고 단속을  나가야 .

 

그래서 겉으로 보면은 모다 대중들이 무슨 감정이 있는 사람처럼 말도 아니하고,  화두가 현전(現前) 때에 보면은 밖에서 봐도 환히  알거든. 경건하고 엄숙한 눈매가 그냥 고대로 있단 말이여. 


그렇게 야무지게 단속을 한다면 9 10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일어났다 하면은 하루 종일이 그냥 그대로,

구태여 밤에 10, 11, 12시까지 잠을 안 자고 앉아서 그렇게 몸부림을 치지  해도 정말    시간 5시간이면 5시간,   시간  자 주고 그리고서   때는 성성하게 정진을  나갈 수가 있어. 그렇게 해야 정말 알찬 공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 밤에 잠을 안 자고 설쳐 놓으면은 잠을 안 자고 애쓰는  뜻은 내가 충분히 인증을 하고 대단히  고맙고 기특하지만,  잠을 안 자 놓으면  이튿날 낮에 정신이 흐리터분해 가지고 밤낮 꾸벅꾸벅 잠을 자는 것인지, 참선을 하는 것인지  수가 없거든.

입선만  놓으면 벌써 그냥 5분도 못되어서 그냥  지르르르 흘리면서 꼬부려 가지고 꾸벅꾸벅... 그렇게  가지고는 정진(精進)이라  수가 없어.

 

그래서  시간, 최소한도 5시간은  자 주고, 그래야  이튿날 깨끗한 정신으로 정진을  수가 있고,  건강도 좋다 그말이여.

잠을 설쳐 놓고 밤이나 낮이나 그냥 그렇게 해놓으면은 건강도  좋고  정진도 정진답지를 못혀.

 

한번  허리를  펴고 정진을 했다 하면은 성성하게 뽑아 나가야지, 노상 끄벅끄벅 벌써 혼침(昏沈)에 빠졌다 하면은 화두가 성성허들 못하는 법이고, 화두가 성성하지 못해 가지고 어찌 그것을 정진이라고 할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께서나  정혜사 만공 큰스님께서도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헐라면  시간씩을  자라 이런 말씀도 하셨다고 그럽니다.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은 진짜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야 그것이  정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그러니 어쨌든지    동안 입선 방선 시간을 어떻게 짰는가 모르겠는데,

접때 들으니까 전국 선방을 입선 방선 시간을 똑같이  정(定)하자 것을  입승 회의에서 결의를 했단 말을 들었는데,

‘전국 선방 규칙을 똑같이 입선 시간을 정하자 뜻을 내가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나, 대단히 좋지 못한 것을 정했다고 생각을 나는 속으로 하고 있습니다.

 

선방마다 법도(法度)가 다른 것이 아까 무방(無妨)하다고 했는데, 입선 시간도 한번 앉았으면  시간씩 하자,  시간씩 하기로 정한 선방도 있고,   시간씩 하기로 정한 선방도 있고,

 아침에 일어나면은 저녁에  때까지 계속 앉아서 정진하자 이런 선방도  좋고,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않고 계속   동안을 앉아서 정진을 하자 이렇게  정한 선방도 있을 수가 있는 것이지,

 

‘세 시간이나  시간을 전국 선방이 똑같이 하기로 결의를 하자 것은  좋은 규칙을 정한  같은데, 사실은 대단히 좋지 못한 법을 정한 것이다 그말이여.

 

사람의 근기(根機)에 따라서  그것이 적절히 맞아야 그것이 좋은 것이지, 근기를 무시하고  여러 가지 여건을 무시하고서 똑같이 정하자고 하는 것은 그것은 정법(正法)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법(邪法)인 것입니다. 지혜로운 법이 아니고 그것은 어리석은 법입니다. 

 

조달(調達)이가 10생을 부처님을 따라 다니면서 갖은 방법으로 부처님을 해꼬자 했는데, 부처님은  조달이의 그러헌 해꼬자 하는 데에 조금도 끄달리지 아니하시고, 더욱 지혜롭게 수행을 하셔 가지고 성불을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삼천  전에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탄생하실 때에 조달이도 부처님 사촌으로 왕궁에 태어났습니다. 부처님이 출가하시자 조달이도 출가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누구 못지않게 용맹정진을 했습니다. 계율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래 가지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만큼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부처님으로부터서 승단의 통솔권을 자기가 인수를 받을랴는 야심을 가졌습니다.

 

부처님한테 “부처님, 인자 연세도 많으시고 그러니까  통솔권을 저한테 넘겨주십시오” 하니까 부처님이 넘겨주지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다른 곳에다가 자기 회상(會上) 하나 꾸몄습니다.

꾸며 가지고 부처님 회상으로  가지고서그때 목련존자  사리불존자와 같은 수제자들이 어디 다른 데로 포교를 하러 가시고 없을 때에  가지고서 대중들에게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계율이 물러서 늙은 사람이나 병든 사람은 고기를 먹어도 좋다고 승낙을 하시고,  병든 사람은  오신채(五辛菜)도 먹을  있다고 하시고,

 어린 사람이나 늙은 사람은 사시공양(巳時供養)뿐만이 아니라, 아침도 먹을 수가 있고 저녁도 약으로 먹을 수가 있다고 이렇게 하셨으니, 이러한 청정한  승단(僧團)에서 이렇게 법도가 물러 가지고 이래 가지고 무슨 견성성불을 할까 보냐?

 

 회상은 늙었거나 어리거나 병들거나를 막론하고 일체 어육을 금하고, 오신채도 금하고, 사시공양 이외에는 절대로 승낙을  한다. 그러니  회상의 법도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를 따라오너라”

 

그러니까 아직 불법(佛法)이 무엇인줄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들,  아직 젊은 사람들은 들어보니까 확실히 조달이의 법이  엄격하고 훌륭한  같거든.

 

그래서 “내 의견이 옳다고 하는 사람은 손을 들으라”고 하니까,  사람 들고  사람 들고 이리 뚤레뚤레 하다가 ~ 하니 거의가  손을 들었다 그말이여.

“그러면 나를 따라오너라”하니까부처님께서도  자리에 앉아 계셨지마는 아무 말씀도  하시고 가만히 보고만 계셨어. 그러니까 조달이가 “나를 따라 오라” 그러니까는 위~ 하니 수백 명이  따라가 버렸어. 

 

따라가서 조달이 밑에서 인자 조달이 법문을 듣고,   추상같은 법도 아래서  그냥 용맹정진 가행정진을 하는데, 처음에는 가서 보니까  이대로만  나간다면은 머지않아서 전부 그냥  견성 도통할  같이 느껴지고 모다 좋았었는데,

 

일주일을 지내,  이 주일을 지내, 삼 주일을 지내다 보니까, 차츰차츰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옳은 법이 아니다’ 그래서 정말 부처님 법이 우리 부처님의 법도가 정말 옳은 법이라고 하는 것을  사람씩  사람씩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목련존자와 사리불존자가   데로부터 돌아왔습니다. 와서 보니까 ! 부처님 회상에  시자  사람하고  사람  남고  어디로 가버렸다 그말이여.

“다 어디로 갔냐?”고 물어보니까, 조달이가 약하약하 해서 전부 다 선동을  가지고 끌고 갔다 그러니까 그길로 조달이한테 쫓아가 가지고는 대중을 모아 놓고 설법을 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대중들아! 아무리 어리석기로서니 정법(正法) 사법(邪法) 분간을 못한다는 말이냐? 늙은 사람과 병든 사람 어린 사람에게 아침을 먹게 하고 저녁을 먹게 하는 것은 근기에 맞추어서 열어주신 부처님의 눈물겨운 자비를 모르고어찌 그것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단 말이냐?

 

병든 사람에게 오신채와 오정육(五淨肉) 허락을 하신 것은 너무나도 넓고 넓으신 부처님의 자비심이지, 어찌 그것이 도업을 깨트리는 잘못된 법일까 보냐? 부처님의 자비가 거룩한   사람은  길로 일어서서 나를 따라오너라”하니까 와~따라서 모다 눈물을 흘리면서 참회를 하고  따라 왔습니다.

 

우리 부처님의 법은 중생의 근기를 맞추어서 팔만사천 방편법(方便法)을 설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계율법이 어찌 엄정허지 아니하리요마는, 계율 자체를 위한 계율이 아니라 도업을 성취하기 위한 계율이여. 그래서 병든 사람에게는 경우에 따라서는 오신채를 허락을 하셨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정육도 허락을 하신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정진 시간을  시간이 좋으냐?  시간보다  시간이  좋고,  시간보다 다섯 시간이  좋고,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24시간을 계속 용맹정진을 허면  좋을  같지마는 그러한 것이 아니여.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는 정진 시간은  시간씩 사분정진(四分精進)으로 하고, 방선 시간도어찌 방선 시간이라고 해서 잡담을 하고 섣불리 지낼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방선 시간도 포행(布行)할 사람은 포행을 하고,  큰방에 앉아서 정진할 사람은 얼마든지 계속해서 정진을 하라 이거여.

 

큰방에서 방선했다고 해서 잡담? 도저히 그것은  .

큰방에는 언제라도 묵언(默言) 구역으로 정해 놓고, 자기가 정진하고 싶으면은 마음껏 정진을 하라 이거여. 누가  어떻게 ?

 

어찌 입선 시간을  시간,  시간 정해 놓고 강제로 갖다가 꿇어앉아 주리를 틀게  필요가 있느냐 그말이여.

 

 시간은 누구라도  수가 있는 것이니까,  시간  정해 놓고  시간은  하고,  시간 지낸 뒤에는 계속해서   있고, 하고 싶은 사람은 계속해서 ! 공양 목탁  때까지 계속 앉아서 정진을 .

 대신 앉아서 꺼벅꺼벅 조는 사람은 나가야 . 나가서 포행을 하고 잠을  가지고 들어와.

 

형식적으로 시간만 많이  가지고 형식적으로 정진을 많이 헙네하고 () 내고, 속으로 알짜배기 정진이  된다면은 무슨 도업을 깨달을 수가 있을 거여? 성취할 수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 내고 속이 곯아 버린다면겉으로만 사치스런 집을 짓고, 속은 빚만 잔뜩  가지고 그러한 부자가 요새 많은데 그러한 것은  부자가 아니여.

겉으로는 수수허게 살되 빚이 없고 속으로 살림이 알차야  것이고, 지식도  소문만 나가지고 속은 실상은 실력이 없는 지식은 그건 진짜 훌륭한 지식이 아니여.

 

계율도 겉으로는 지키는 상이 없지마는 정말 안과 밖이 청정하다면  사람이야말로 율사(律師)  수가 있을 것입니다.

()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지  살림이 튼튼하도록 알뜰하고 짬진 정진을 해서 그러한 훌륭한 수행자가 되기를 부탁을 드립니다.(3051~4854)

 

 

 

 

(2)------------------

 

강호춘진낙화풍(江湖春盡落花風)하고   일모한운과벽공(日暮閑雲過碧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빙거요득인간환(憑渠料得人間幻)하고   만사도망일소중(萬事都忘一笑中)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강호춘진낙화풍(江湖春盡落花風)이요. 강호(江湖)에는 봄이 다해서 바람에 꽃이  지고,

일모한운과벽공(日暮閑雲過碧空)이로구나. 해는 저무는데 한가한 구름이 푸른 하늘로 지내가는구나.

 

빙거요득인간환(憑渠料得人間幻)이요. 그것을 인해서강호에 봄이 다해서 바람에 꽃이   버리고,  저무는 푸른 하늘에는 한가한 구름이 지내간, 그러한 것을 의지해 가지고 인간 세상이 허망한 것을  수가 있겠더라.

 

봄이 돌아오면 꽃이 그렇게 화려하게 피었건만 봄이 다하니 시들어서  보기 흉하게  시들어  떨어져 버리고,  구름 모양을 보면  구름 모양이 별의별 모양이  있어.

사람같이 생긴 구름, 소같이 생긴 구름, 집같이 생긴 구름, 별별 모양으로 생긴  기기묘묘한 구름 모양이 해가 저물어 바람이 불어버리니까  모양이 이리저리 흩어져서 없어져 버리는,

 

 꽃과 구름의 변화해서 없어진 것을 보고서, 인간 세상이 명예와 권리, 부귀영화, 누가  생기고  생기고, 이런 것들이 전부가  허망하고 무상한 것을 깨달을 수가 있어.

 

만사도망일소중(萬事都忘一笑中)이여. 비긋이 한번 웃는 가운데  만사를  잊어버려.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 빈부귀천과 부귀영화와 명예와 권리, 지식의 유무(有無), 인물이 잘나고 못나고,  그게   송이 꽃에 지내지 못하고, 한덩어리의 구름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애착과 분별을  쉬어 버리시고 이만큼 건강했을 때에 어쨌든지 정진  정진을 해서  몸뚱이로 견성성불을 해서 부처님의 은혜를 갚고, 나라의 은혜를 갚고, 부모의 은혜를 갚고, 스승의 은혜를 갚고,

  절을 피땀 흘려서 지어 놓으신  주지스님의 은혜를 갚고,  우리의 먹고 입을 것을  마련해  모든 신도의 은혜를 갚도록 정진을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고 자리에 내려가고자 합니다.(4858~543)()

 

 

 

 

 

------------------(1)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미륵불(彌勒佛) : []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呾麗耶), 매달례야(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불의 5().

*공양(供養) ; ①불()•()•() 삼보(三寶) 음식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

*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이란 우리말 '울력'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 상태.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정진(精進) : []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보살이 수행하는  바라밀(六波羅蜜)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 닦는 () 있어서는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혼침(昏沈 어두울 ,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법도(法度) ; 규칙법칙율법법규결정들.

*무방하다(無妨-- 없을 무, 방해할·거리낌 방) ; (사람이 어찌하여도)거리낄 것이 없이 괜찮다.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사법(邪法) ; 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 가르침.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 음사).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500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남을 해치고자 하는 .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오신채(五辛菜) ; 우리나라 절에서 냄새가 강하고 독특해 음욕과 분노를 일으켜 수행에 방해가 된다 하여 특별히 먹지 않는 다섯 가지 채소. 마늘··부추·달래·흥거. 경론(經論) 따라  종류가 달라 일정하지 않다.

*사시공양(巳時供養) ; 절에서 평소 하루에  한번 오전  사시(巳時 오전 9~11) 하는 공양(식사) 말한다.

*승단(僧團) ; 승가(僧伽). (산스크리트)(팔리) saṃgha(상가)에서 유래하였다. (화합중(和合衆)이라 번역.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사람들의 집단. 화합하고 있는 불교 교단을 뜻한다.

보통은 출가자의 집단을 가르키지만, 넓게는 재가(在家) 신도도 포함한다.

*약하약하 ; 약하(若何)하다—여하(如何)하다의 높임 말. 여하(如何)하다 : 어떠하다(어떻다, 의견·성질·형편·상태 따위가 어찌 되어 있다).

*오정육(五淨肉) ; 스님들이 먹을  있도록 허용된 다섯 가지의 청정한 고기. 오종정육(五種淨肉).

①나를 위해 죽이는 것을 목격하지 않은 (不見爲我殺). ②나를 위해 죽였다는 것을 듣지 못한 (不聞爲我殺). ③나를 위해 죽였다고 의심되지 않는 (不疑爲我殺). ④수명이 다하여저절로 죽은 (自死). ⑤새가 먹다 남긴 (鳥殘).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새벽, 오전, 오후, 저녁)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

*포행(布行) ; 참선(參禪)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

*큰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자리에 모여 참선수행 () 말한다.

*주리(周牢) 틀다 ; 주리 틀다. 예전에, 죄인을 심문할  주리(죄인의  다리를 한데 묶고 다리 사이에  개의  막대기를 끼워 비틀던 형벌) 형벌을 주다.

 

 

 

 

 

------------------(2)

 

*(게송)강호춘진낙화풍~’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부휴선수) ‘일편한운과벽공(一片閑雲過碧空)’ 참고.

*강호(江湖) ; ①은자(隱者) 시인(詩人), 묵객(墨客) 등이 현실을 도피하여 생활하는 시골이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②세상(世上)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③강과 호수를 아울러 이르는 .

*비긋이 ; 남이 느끼지 못하게 슬그머니.

Posted by 닥공닥정
천도재(영가천도)2015. 9. 16. 16:58
§ (1)전강 선사 영가천도 법문(월원불유망~) / 송담 스님 영가천도 법문.

 

(1) 전강선사(약 6분)

 

(2) 송담스님(약 11분)

 

(1)------------------
 
월원불유망(月圓不逾望)이요  일중위지경(日中爲之傾)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여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월원불유망(月圓不逾望)하고, 달은 그렇게 둥글지마는 보름을 지나지 못해. 보름이면은 그만 쪼끄만해져 버려. 반 조각이 되아 버리고 만다.
일중위지경(日中爲之傾)이로구나. 해도 반일(半日)이 되면은 기울어져.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야, 뜰 앞에 잣냉기(잣나무)여.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로구나. 홀로 또한 사시(四時)에 푸르러 있구나.
 
 
『뜰 앞의 잣냉기(잣나무)니라』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깐 뜰 앞의 잣냉기(잣나무)니라.
 
항상 푸르러 가지고는 그대로 있으니깐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라고 그랬는가?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고 그랬는가?
흥! 거다가 부처님인들 어떻게 쎄(혀)를 댈 수가 있으며, 역대조사(歷代祖師)인들 입을 벌릴 수가 있는가?
 
고불야(古佛也) 임마거(恁麽去)요. 옛 부처도 이렇게 갔고. 금불야(今佛也) 임마거(恁麽去)다. 이제 부처도 이렇게 갔다. 금일영가야(今日靈駕也) 임마거(恁麽去)다. 오늘 영가(靈駕)도 역시 이렇게 간 것이다.
여하시(如何是) 임마거(恁麽去)냐? 어떤 것이 이렇게 간 것이냐?
 
삼세제불(三世諸佛)과 공(共) 십육군생(十六群生), 금일 영가까지라도 임마거(恁麽去)야?
불임마거(不恁麽去)다. 이렇게 가지 않는 것이다. 임마거(恁麽去) 불임마거(不恁麽去) 총부득(總不得)이니라.
 
여하즉득(如何卽得)고? 어떻게 해야 옳냐?
 
임제는 『할(喝)』을 했다. 임제 선사는 할(喝)을 했고, 덕산(德山) 큰스님은 『방(棒)』을 했느니라. 할(喝), 방(棒)이 시야(是也)? 할, 방이 그르냐? 옳으냐?
다 영가를 위해서 한마디씩 일러봐. 우리 도 닦는, 참 이 큰 대도량(大道場) 아닌가? 이 도만 똑 닦는 대도량, 한국 큰스님네가 모여서 도 닦는 여기에 와서 천도(薦度) 받는 영가를 위해서, 여하즉득(如何卽得)고?
 
임제 스님께서는 『임마야(恁麽也) 부득(不得)이요, 불임마야(不恁麽也) 부득(不得)이다. 임마(恁麽) 불임마(不恁麽) 총부득처(總不得) 여하(如何)오? 할(喝)』을 했고, 덕산 화상은 『방(棒)』을 했으니,
할과 방이 시야(是也) 비야(非也), 옳으냐 그르냐? 영가를 위해서 대중(大衆)은 한마디씩 다 일러봐. 일러야지, 바로 한마디씩.
 
영가를 위해서 대중은 다 양구(良久)를 했구나. 양구(良久), 방(), 할(喝)인데 대중은 일시(一時)의 양구를 했다 말이다.   “억!”  (끝)
 
 

(2) 송담스님(약 11분)

 

 

(2)------------------
 
오늘 소청(所請)한 여러 영가(靈駕)들의 천도재(薦度齋)를 이렇게 대중스님네와 여러 보살님네가 참석한 가운데 그리고 재자(齋者)들이 참석한 가운데 천도재를 봉행(奉行)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천도재를 맞이한 여러 영가들은 숙세(宿世)에 깊은 이 정법(正法)의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청정한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참석한 가운데 생사 없는 최상승 활구법문을 듣고서, 무량겁(無量劫) 업장(業障)이 일시에 소멸(消滅)하고, 대해탈도(大解脫道)를 증득(證得)해서 부처님의 나라에 왕생(往生)하시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생사(生死)는 본래 없는 것이다”
생사가 본래 없건마는 중생(衆生)의 망령(妄靈)된 소견(所見)으로 생사가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하고, 온갖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망령된 소견만 여의어 버리면 바로 생사 없는 해탈도를 증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중생을 제도(濟度)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중생들의 망령된 소견—‘생사(生死)다, 열반(涅槃)이다’하는 그러한 망령된 소견을 떼어 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금강경(金剛經)에 『보살도(菩薩道)를 증득(證得)해서, 증득했다는 소견을 갖지 말아라.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했으되, 아라한과를 증득했다고 하는 생각을 갖지 말아라.
그런 생각을 가지면 그것이 벌써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에 떨어진 것이라, 참 아라한이라 할 수가 없고, 참 보살이라 할 수가 없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라한의 성과(聖果)를 증득하고, 보살도를 증득하고, 불과(佛果)를 이루고서도 ‘이루었다’고 하는 상(相)을 가져서는 안되거든,
하물며 우리 중생들이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남을 사랑하고 하는 생각, 그런 애착과 집착심 또는 재산에 대한 애착심, 자손에 대한 애착심, 그러한 애착과 집착심을 가져서는 되겠느냐 이 말이여.
 
성과를 증득하고도 그러한 생각에 집착해서는 안 되거든,
하물며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잠시 왔다가 맺어진 인간관계, 잠시 왔다가 얻은 명예, 권리, 재산 등 오욕락(五欲樂)에 대한 애착심, 어찌 그러한 애착심에 얽매여서 해탈도를 증득하지 못해서 되겠느냐.
 
오늘 천도재를 맞이한 여러 영가와 법보단(法寶壇)에 만년위패(萬年位牌)로 모셔진 모든 영가, 그리고 거량(擧揚)을 통해서 우주 법계에 한량없는 영가가 지금 이 법석(法席)에 초청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이 모든 유주무주(有主無主)의 영가들은 이 세상에 부모형제, 처자권속(眷屬)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밖에 모든 밖에서 얻어진 모든 오욕락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잠시 이 세상에 와서 몸담아 있던 이 육체까지라도 하나도 애착(愛着)을 가질 것이 없습니다.
 
그러한 애착 때문에 해탈도를 증득하지를 못하고, 극락정토(極樂淨土)에도 못 가고,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도 못 가는 것입니다.
만약 오늘 이 천도 법회(薦度法會)를 인연해서 그러한 모든 애착을 버려 버린다면, 그리고 이 몸뚱이—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이 몸뚱이에 대한 애착을 버려버린다면, 영가는 명실공히 대해탈도를 증득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혀 아끼고 받든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이 몸뚱이는 늙어서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어떠한 사고로 인해서 결국은 이 몸뚱이는 버리지 않고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본래 그러한 실다운 것이 아닌 것으로 잠시 인연에 의해서 모여졌기 때문에 인연이 다하면, 이것은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여.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을 망령된 소견으로 집착하기 때문에 슬픔이 있고, 원망이 있고, 괴로움이 있어.
그러한 집착 때문에 헌옷을 벗어버리고도 갈 곳을 가지 못하고, 이 사바세계에 지나간 인연에 얽매여서 자기도 괴롭고, 유족들도 괴로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간곡히 부탁하노니, 오늘 천도재를 맞이한 여러 영가들은 아무것도 애착할 것이 없어. 집착할 것이 없어.
한 생각 놔 버리면, 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처럼 끝없는 극락정토에 왕생을 하실 것입니다.
 
‘한 생각’이 무량겁(無量劫)입니다.
한 생각 놓지 못하고서 무량겁의 감옥 속에 갇혀서 몸부림을 치느냐. 한 생각 놔 버림으로서, 한 생각 돌이킴으로서, 영원한 해탈도를 증득하느냐. 한 생각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일초(一超)에 직입여래지(直入如來地)』라 하셨습니다. 『한 생각에 바로 부처님의 땅에 뛰어오른다』
이 말은 참다운 말이며, 진실한 말이며, 바른 말인 것입니다.
 
용화선원에서 조실 스님께서 이십여 년 간을 설하신 바가 바로 ‘한 생각 돌이켜서 참나를 깨닫는 것’이,
살아 있는 사람이나, 이 몸뚱이를 버린 영가나, 이 사천하(四天下) 삼계(三界)에 있는 모든 중생들에게는 이 한마디를 뼛속 깊이 듣고 실천한다면은 벗어야 할 생사도 없고, 깨달라야 할 열반도 없는 것입니다.
 
‘생사(生死), 열반(涅槃)’의 두 소견을 버리는 것이 바로 해탈도를 증득하는 것입니다.
 
영가를 위해서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을 위해서 사족(蛇足)을 이상으로서 마치고자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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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월원불유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西山 休靜) ‘草堂咏栢(초당영백, 초당에서 잣나무를 읊음)’ 게송 참고.
*반일(半日) ; 하루낮의 반.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임마(恁麽) ; ‘어떤, 그런, 이런’의 뜻으로 어느 것을 가르키거나, 긍정하거나, 의문의 뜻을 나타낼 때 쓰임.
임(恁) : 생각하다. 이러하다. 이같이. 이같은.  마(麽) : 의문 어조사(語助辭). 어조를 고르는 어조사.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군생(群生 무리 군, 날 생) ; 살아 있는 많은 존재, 곧 중생을 말함.
*임제 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할(喝) : 보통  속음(俗音)의 「갈」로는 발음하지 않는다。선종(禪宗)에서 진리를 문답하는데 쓰는 독특한 수단이다.
큰 소리로 『엑 !』하고 꾸짖는 형세를 보임이니, 이것을 처음 쓰기는 마조(馬祖)가 한 번 할했는데 백장(百丈)이 사흘이나 귀먹고 눈이 캄캄하였다는 것이 첫 기록이다。그 뒤로부터 흔히 쓰는데, 임제(臨濟)가 가장 많이 썼다.
*덕산 선감(德山宣鑑) : (780 – 865) 속성은 주(周)씨。호북성 시남부(施南府) 이천현(利川縣)에서 났다. 어려서 출가하여 계율을 숭상하고 모든 경에 밝았으나, 특히 <금강경>을 늘 강설하므로 「주금강(周金剛)」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루는 도반들에게 말하기를 『보살이 육도 만행(六度萬行)을 무량 겁으로 닦아야 성불한다고 하였는데, 이제 남방의 외도들은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단박 성불하게 한다’하니, 내가 그들을 소탕하여 버리겠다』하고 떠나갔다.
 
중도에서 떡집에 들어가서 점심(點心)을 청하자, 떡을 파는 노파가 묻기를 『보따리에 싼 것이 무엇인가요?』『<금강경소(疏)>요』
『<금강경>에, ‘지나간 마음도 얻어 볼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찾아 볼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어 볼 수 없다’고 하였는데, 스님은 점심하신다 하니, 어떤 마음에 점심하시겠읍니까?』하는데 대답을 못하였다.
 
노파의 지시로 숭신 화상을 찾아 용담(龍潭)에 갔다。용담사 법당에 들어가 그는 『용담의 소문을 들은 지 오랬는데, 와서 보니 용도 없고 못도 안 보이는군!』하매, 숭신은 『자네가 참으로 용담에 왔네』하는 데서 또 말이 막혔다.
그곳에 머무는데, 방장(方丈)에 가서 늦도록 있다가 자기 처소로 가려 하니 바깥이 캄캄하였다。도로 들어 갔더니 용담이 초에 불을 켜서 덕산에게 내밀었다。덕산이 받으려 할 때에 그 불을 훅 불어 꺼버렸다。그 바람에 덕산은 크게 깨치고 절하였다.
『자네 무엇을 보았기에 절하는가?』 『이제부터 다시는 천하 노화상들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겠읍니다』이리하여 용담의 법을 받고, 그 이튿날 <금강경소>를 불사르고 곧 떠났다.
 
당나라 무종(武宗) 때에 일어난 불법사태(沙汰)—불교를 파괴하라는 법령—를 독부산 석실(獨浮山石室)에서 겪은 뒤에 낭주(朗州) 덕산에서 크게 교화하였다。그 밖에도 여러 곳에 있었는데, 있는 곳마다 불전(佛殿)을 폐지하고 설법하는 법당만 두었고, 학자를 다루는 데 방망이를 많이 썼다.
의종(懿宗) 함통(咸通) 6년에 86세로써 입적하였다。그의 삼세 백조 지원(白兆志圓)에게서 신라의 혜운(惠雲)선사가 나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꾸짖거나 호통칠 때, 주장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후려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때 토하는 큰소리를 할(喝)이라 함. 방은 덕산 스님에서 할은 임제 스님에서부터 시작.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임마야(恁麽也) 부득(不得)이요, 불임마야(不恁麽也) 부득(不得)이다. 임마(恁麽) 불임마(不恁麽) 총부득(總不得) ; '이러하여도 알 수 없고, 이렇지 않아도 알 수 없고, 이러하여도 이렇지 않아도 모두 알 수 없다.'
*양구(良久) : 한참 말이 없이 침묵하고 있는 것인데, 그 첫 기록으로는 어떤 외도(外道)가 부처님께 묻기를 『말씀하지도 말고 말씀 안 하지도 말고 진리를 가르쳐 주소서』하는데, 부처님은 양구하였다。그러자 그 외도는 깨치고 나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또 유마경에 둘 아닌 법(不二法)에 대하여 여러 보살들이 제각기 말하는데, 유마힐은 양구하여 여럿의 칭찬을 받았다。그 뒤로 종문에서 법담(法談)하는데 이 특별한 수단을 많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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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所請 바 소, 청할 청) ; 다른 사람에게 청하는 바. 남에게 청하거나 바라는 일.
*천도재(薦度齋)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재자(齋者) ; 절에 재(齋)를 올리거나 불공(佛供)하러 온 사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남자 신도), 우바이(優婆夷 여자 신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해탈도(解脫道)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왕생(往生) ; 죽어서 다른 세계에 가서 태어남. 이 세상에서 쌓은 공덕으로 죽어서 정토에 태어남. 염불한 공덕으로 죽어서 극락에 태어남.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함식(含識)• 군생(群生)• 군맹(群萌)•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망령(妄靈) ;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남. 또는 그런 상태.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제도(濟度 건널 제, 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열반(涅槃) : [범] nirvana  [파]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라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멸(滅)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보살(菩薩) :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각유정(覺有情) • 개사(開士) • 대사(大士)등으로 번역.
①성불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②대승교에 귀의, 사홍서원을 발하여 육바라밀을 수행하며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자리 • 이타(自利利他)의 행을 닦으며 51위의 수행계단을 지나 드디어 불과(佛果)를 증득하는 이.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중생상(衆生相) ; 산스크리트어 sattva-saā  중생이라는 관념·생각. 부처와 중생을 따로 나누어 나 같은 중생이 어떻게 부처가 되고 무엇을 할 수 있으랴 하고 스스로 타락하고 포기하여 향상과 노력이 없는 소견.
*수자상(壽者相) ; 산스크리트어 jīva-saā  목숨이라는 관념·생각. 목숨이 있다는 관념·생각. 생명체라는 관념·생각. 자기의 나이나 지위나 학벌이나 문벌이 높다는 것에 집착된 소견.
*성과(聖果) ; 성자(聖者)의 지위. 성인(聖人)의 도달경지[果].
성자, 성인이란 무루혜(無漏慧, 번뇌를 끊어내는[無漏] 지혜[慧])의 일부를 성취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도(聖道, 성스러운 길, 성인의 길,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들어선 사람들을 말한다.
수도(修道), 성도(聖道)는 부파불교의 사향사과(四向四果), 대승불교의 보살십지(菩薩十地)를 말한다.
*불과(佛果) ; 불인(佛因, 부처님이 되기 위한 인因. 즉 모든 선근공덕善根功德)의 대응어. 불도수행의 결과. 불위(佛位). 부처라고 하는 궁극의 결과. 결과로서 부처로 된 상태. 깨달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법보단(法寶壇) ;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인 법보전(法寶殿) 안에 위패를 모신 단(壇).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거량(擧揚) ; ①설법할 때에,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르는 일. ②화두, 공안(公案)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불교의 진수(眞髓)를 말하는 것. 불법을 선양하여 사람을 인도하는 것.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극락정토(極樂淨土) ;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살고 있다는 청정한 국토로,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 있는데, 괴로움이 없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라고도 한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 ‘한 번 뛰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간다’
[참고] 『증도가(證道歌)』 (영가永嘉 스님)에서.
覺卽了不施功  一切有爲法不同  住相布施生天福  猶如仰箭射虛空  勢力盡箭還墜  招得來生不如意
깨닫고 나면 공(功)을 베풀지 않으니 일체 유위법(有爲法)과 같지 않다.
상(相)에 머문 보시는 천상에 나는 복이나, 마치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올라가는 힘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떨어지니, 내생(來生)에 뜻과 같지 않음을 초래하게 되리라.
 
爭似無爲實相門  一超直入如來地  但得本莫愁末  如淨琉璃貪寶月  我今解此如意珠  自利利他終不竭
어찌 무위(無爲)의 실상문에, 한 번 뛰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것만 하겠는가.
다만 근본을 얻을지언정 지엽은 근심하지 말라. 마치 깨끗한 유리구슬 안에 보배 달을 머금은 것과 같네.
내, 이제 여의주를 아나니 나와 남을 이롭게 함에 마침내 다함이 없도다.
*사천하(四天下) ; 사주(四洲).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의 사방에 있다는 네 대륙. ①남섬부주(南贍部洲) ②동승신주(東勝身洲) ③서우화주(西牛貨洲) ④북구로주(北俱盧洲)
*삼계(三界) ;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세 가지 미혹한 세계.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중생의 마음과 생존 상태를 세 단계로 나눈 것.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이른다.
*사족(蛇足) ; 화사첨족(畵蛇添足, 뱀을 다 그리고 나서 있지도 아니한 발을 덧붙여 그려 넣는다)의 뜻으로 '쓸데 없이 덧붙은 것'을 말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5. 4. 2. 16:18
 
 
§(280) (게송)약인투득상두관~/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법문 / 용화선원의 가풍 / 선재동자의 진실함 / (게송)역력이빈주~ / 대의지하 필유대오.
 
온 세계는 그 자체가 낱낱이 자성(自性)이 있어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나의 ‘한 생각’이 발로(發露)해서 그렇게 이루어진 것들인 것입니다.
자기가 한 생각 내 가지고 ‘둥글다, 밝다’ 모두 이리 분별을 내서, 자기가 한 생각 내 가지고 그 한 생각으로 인해서 자기 자신이 구속을 당하고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서 울었다 웃었다 하는 것입니다.
 
몽산 스님께서는 ‘오직 이 한 생각 화두에 대한 의심, 그 한 생각 돈독함을 여의지 아니하고 그렇게 간절히 알뜰히 그렇게 해서 3년을 한다면 반드시 확철대오를 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증을 하신 것입니다.
용화선원 가풍—「누구를 막론하고 이 도량에 일단 방부(房付)를 들이고 같이 정진하게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불조(佛祖)와 같이 되지 못한 이상에는 완전히 초학자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그러한 사상으로 정진을 하자」
 
선재동자가 그러한 무량공덕을 성취한 것은 오직 한 생각 진실한 그것 때문에 그러한 대도를 성취하게 된 것입니다.
“의심이 독로해서 의심이 크면 큰 깨달음을 얻고, 의심이 작으면 작은 깨달음을 얻고, 의심이 없으면 아주 깨달을 수가 없다” 고인이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송담스님(No.280)—85년(을축년) 동안거 결제 법어(85.11.26) (용280)

 

(1) 약 18분.

(2) 약 10분.

 

 

(1)------------------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데는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고
나무~아미타불~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다.

만약 사람이 상두관(上頭關)을 투득(透得)해 버리면 산하대지가 넓음을 비로소 깨달을 것이다.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인댄, 인간의 분별 경계(分別境界)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 같으면,

녹수와 청산에 어찌 구애(礙)를 받을 것인가.(何拘綠水與靑山)

 

중생은 자기 본마음 자리를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에—이 넓고 넓은 산하대지, 삼라만상(森羅萬象)과 두두물물(頭頭物物) 육도법계(六道法界)가 온통 다 자기의 집이요 한 마당이건만,

자기 본 마당, 본 마음자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온갖 자기의 분별 경계에 떨어져 가지고 거기에 취사(取捨)와 집착(執着)이 있어서 발 디딜 곳이 없어. 어디를 가나 편안치를 못하고, 어디를 가나 걸리고 몸 둘 곳이 없어.

 

한바탕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확연히 깨달아버리면 천당과 지옥도 걸릴 것이 없고, 인간의 부귀와 영화와 시시비비(是是非非)에도 거리낌이 없을 것입니다.

 

 

금년 을축년 시월 십오일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했습니다.

청풍납자(清風衲子)가 사방에서 모여서 한철을 한 지붕 밑에서, 한 도량에서 정진을 하게 되었고 또 보살선원에도 경향 각지에서 백 명이 방부를 들이고 고락(苦樂)을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실답게 발심(發心)을 해서 실다웁게 정진을 해 가면 공기가 탁하고, 공장과 자동차에 모든 소음이 이렇게 심하고, 수용이 박하고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다 할지라도 ‘한 생각’ 철저해 버리면 그런 것이 도무지 걸릴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생각 돈독(敦篤)하고 철저하지 못하면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사사건건 걸리게 되고 내가 거기에 끌려 나가고, 사소한 일에도 성질을 내게 되고, 아무 일도 아닌 일에 마음이 동요가 될 것입니다.

 

온 세계는 그 자체가 낱낱이 자성(自性)이 있어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나의 ‘한 생각’이 발로(發露)해서 그렇게 이루어진 것들인 것입니다.

 

하늘에 달이 떴으되 달 자체가 ‘내가 달이다’하는 생각이 없는 것이고, 하물며 ‘나는 밝다. 밝지 못하다’ ‘나는 슬프다. 나는 기쁘다’ 그러한 생각은 더욱이 없는 것입니다.

그 달 자체는 때에 따라서 둥글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 초승달이 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아주 캄캄하게 안보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는 전혀 그런 상(相)이 없습니다.

 

사람이 들어서, 내가 들어서 온갖 분별심을 일으켜 가지고 거기에 대해서 이름을 붙이고, 거기에 대해서 온갖 분별심을 내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생각 내 가지고 ‘둥글다, 밝다’ 모두 이리 분별을 내서, 자기가 한 생각 내 가지고 그 한 생각으로 인해서 자기 자신이 구속을 당하고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서 울었다 웃었다 하는 것입니다.

 

 

백 명 대중이 한 방에 모여서 석 달 동안을 지낼 때에 한 생각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철저히 단속하지 못한다면 그 백 명 대중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그중에 누군가는 마음이 동요가 되고, 한 사람 동요됨으로 해서 그 방에 여러 사람이 속이 불편해 질 것이고 이리해서 바람 잘 날이 없어.

 

그래서 몽산(蒙山) 스님께서 결제 법문에 말씀을 하시기를,

‘만약 이 도량에 와 가지고 함께 이 고요함을 함께 하고자 할진댄, 참선정진을 하고자 할진대는,

세상에 인연을 다 끊어 버리고, 집착과 거꾸러진 그런 생각을 다 제거해 버리고, 진실로 생사대사(生死大事)를 위해서, 생사대사만을 위해서 선원에 규칙을 자발적으로 순종하며,

 

인사(人事)로 왕래하는 거, 인사로 왕래하는 그 인사를 끊어버리고, 모든 수용은 인연 따라서 해. 밥이면 밥, 죽이면 죽, 반찬이 좋으면 좋은 대로, 짜면 짠 대로, 인연 따라서 수용을 하되,

아홉시부터서 세시까지, 삼경(三更) 동안을 제외하고는 수면을 하지 말아라. 그리고 문밖에 거리에 나가지를 말 것이며, 밖에서 어떤 신도가 공양을 청(請)한다하더라도 나가지 말 것이며,

 

확철대오(廓徹大悟)하기 전에는 경(經)도 보지 말 것이며, 대중적인 행사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경도 보지를 말아라.

이와 같이 여법(如法)하게 3년을 정진을 하되 견성(見性)을 하지 못하면 산승이 여러 대중을 대신해서 지옥을 가겠다’ 이렇게 법문을 하셨습니다.

 

3년, 10년 내지 30년을 정진을 하되 확철대오를 못하는 것은...

 

이와 같이 여법하게 정말 생사대사를 위해서 잠깐 동안도 한눈 팔 겨를이 없고, 잠깐 동안도 딴 생각할 겨를이 없어.

오직 이 한 생각 화두에 대한 의심, 그 한 생각 돈독함을 여의지 아니하고 그렇게 간절히 알뜰히 그렇게 해서 3년을 한다면 반드시 확철대오를 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증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3년을 해서 깨닫지 못하면 내가 너희들 대신해서 지옥에 가겠다’한 말씀이 얼마나 목숨을 걸고 보증하신 그러한 표현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용화선원(龍華禪院), 물론 어느 선원이나 다 마찬가지지만, 용화선원의 특이한 노선(線)이라고 할까? 가풍(家風)이라고 할까? 용화선원에서 바라는 용화선원의 특성을 구태여 말을 하자면,

‘불조(佛祖)와 같이, 불조가 깨달으신 바와 같이 그러한 철저한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설사 조그마한 견처(見處)가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그런 것을 인정을 하지 말아라.

 

알았다고 하는 소견(所見), 깨달았다고 하는 소견, 한철 두 철 하다보면 어떤 지견(知見)이 생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마는 불조(佛祖)의 친증처(親證處)에 바로 이르르지 못하면 자기가 깨달았다고 하는 생각을 갖지 말아라.

 

깨닫지 못하면 차라리 말지언정 깨달았다 하면은 불조와 같이 불조 친증처에 이르러야 한다’ 이러한 각오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체중현(體中玄) 도리, 여래선(如來禪) 도리, 공견(空見)을 봤다 하더라도,

그러한 ‘보았다’고 하는 소견을 속에 가지고 있으면, 그러한 지견을 속에 지니고 있으면 공부는 아무리 정진을 한다고 해도 그 이상 진취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완전히 백지(紙) 상태—10년, 20년을 정진을 했다 하더라도 완전히 초학자(初學者)의 마음, 순수한 초학자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하자」 이것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이 도량에 일단 방부(房付)를 들이고 같이 정진하게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불조(佛祖)와 같이 되지 못한 이상에는 완전히 초학자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그러한 사상으로 정진을 하자」 이것입니다.(처음~17분47초)

 

 

 

 

 

(2)------------------

 

『화엄경』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하고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그 문수보살의 지시에 따라서 남쪽으로 일백십성(一百十城)을 향해 가면서 차례차례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을 친견했습니다.

 

한 선지식 친견하고 거기서 법문을 듣고 그리고 또 거기서 마음에 얻은 바가 있어.

그 다음에 그 선지식이 또 그 다음 선지식을 소개를 하면 또 그 선지식을 찾아가서 그 선지식 밑에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승사(承嗣)를 해서 그 선지식의 법문을 듣고 거기서 또 얻은 바가 있어.

 

이렇게 해서 차례차례 53선지식을 친견해 나가는 데 그 53선지식 가운데에는 비구 스님도 있고, 신(神)들도 있고, 외도도 있고, 창녀도 있고, 보살도 있고, 동자도 있고, 온갖 종류의 선지식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의심 없이 위법망구적으로 친견하고 승사를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53선지식한테 깨달은 법문을 한마디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그대로 가슴에 간직을 하고 마지막에 미륵보살(彌勒菩薩)을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미륵보살을 친견해서 미륵보살이 손 한번 탁! 튕기는 바람에 53선지식한테 들은 모든 법문을 일시에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서 “다시 문수보살을 친견을 해라. 맨 처음에 친견했던 문수보살을 다시 친견해라”한 말씀을 듣고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리라’하고 마음을 먹자마자,

문수보살이 저 먼 일백십성이나 멀리 떨어진 그 문수보살이 오른손을 터억 뻗쳐 가지고 선재동자의 이마를 만져주셨습니다.

 

만지시면서 “선재선재(善哉善哉)라, 착하고 착하구나! 네가 철저한 신근(信根)이 없었다면, 53선지식을 그렇게 아무 딴 퇴타심(退墮心)이 없이 그렇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친견할 수 있었으며,

어떻게 조금 얻은 것을 가지고—그렇지 못했으면 조금 얻은 것으로 해서 만족을 삼아 가지고 중단을 했을 것이며, 조금 얻은 것으로서 거기에 집착을 했을 것이며, 오늘날과 같이 해탈과 선지식의 섭호(護)한 바가 되지를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선재동자는 확철대오를 해서 문수보살과 같이 보현보살(普賢菩薩)과 같이 모든 부처님과 같은 경지에 이르르게 된 것입니다.

삼독(三毒)이 삼취정계(三聚淨戒)로 변했으며, 육식(六識)이 육신통(六神通)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이 선재동자가 그러한 무량공덕을 성취한 것은 오직 한 생각 진실한 그것 때문에 그러한 대도를 성취하게 된 것입니다.

 

 

역력이빈주(歷歷離賓主)하고  요요절색공(寥寥絶色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목전분명취(目前分明取)하라  산입백운중(山立白雲中)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역력이빈주(歷歷離賓主), 역력(歷歷), 또록또록하고 분명하다 그말이여.

역력해서 빈주(賓主)를 여의었어. ‘주관 객관, 너다 내다’하는 그러한 마음이 뚝 떨어져 버렸다 그말이여.

 

요요절색공(寥寥絶色空)이여. 적적요요(寂寂寥寥)해서, 고요하고 고요해서 모든 ‘색상(色相)이다, 이것은 진공(眞空)이다’ 그런 색공의 견해도 다 끊어져 버렸다 그말이여.

 

목전(目前)에 분명취(分明取)하라. 우리 눈앞에 형단(形段)이 없으되—볼라야 볼 수도 없고, 만질라야 만질 수도 없고, 알라야 알 수 없는—이놈이 분명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이 알라야 알 수 없는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이 독로(獨露)해.

 

“의심이 독로해서 의심이 크면 큰 깨달음을 얻고, 의심이 작으면 작은 깨달음을 얻고, 의심이 없으면 아주 깨달을 수가 없다” 고인이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큰 깨달음을 얻고자 하면 그 의심이 간절하고 크고 깊어서, 나의 마음과 밖과 온 허공계가 온통 이 알 수 없는 의단(疑團)으로 꽉 찰 때,

우주 법계를 다 삼키고 남을 만한—눈으로 온 세계를 다 삼키고, 온 세계를 콧구멍으로 들어마셨다 뱉을 수 있는 그러한 큰 깨달음을 얻을 것입니다.

 

산입백운중(山立白雲中)이다. 산은 우뚝 백운(白雲) 가운데 섰느니라.(17분48초~27분4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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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약인투득상두관~’ ; ①『석문의범(釋門儀範)』 다비문(茶毘文)—쇄골편(碎骨篇) 참고. ②卍新纂續藏經 제65책 《高峰龍泉院因師集賢語錄》 제13권 ‘涅槃法語門—散灰’ 참고.

*상두관(上頭關) ; 조사관(祖師關).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투득하다(透得-- 통할 투,얻을 득) ; (사람 무엇)막힘 없이 환하게 깨닫다.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청풍납자(清風衲子 맑을 청,바람 풍,옷을 꿰맴 납,자식 자) ; 수행을 하여 맑은 기운을 지닌 스님을 청풍(清風)-맑은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참고] 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道)를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雲)과 물(水)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돈독(敦篤)하다(도타울 돈,도타울 독) ; (인정이나 마음이)매우 도탑고 신실하다. *도탑다 ; (정이나 사귐이)깊고 많다.

*발로(發露) ; 숨은 것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숨은 것을 겉으로 드러냄. 또는 그런 것.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몽산(蒙山)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인사(人事)사람 사이 지켜야  예의 간주되는 또는 그러 예의 키기 위한 행동.

*삼경(三更) : 二경~四경 (밤 9시~새벽 3시)으로 불가(佛家)의 지정된 취침시간.

*공양(供養)을 청(請)하다 ; 재가신도가 스님들께 공양(식사)을 드리기 위하여 초청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경(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문헌.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노선(線)개인이나 조직단체 따위 일정한 목표 향하여 나아가기 위해 따르는 활동 방침.

*가풍(家風) ; 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온 생활 습관이나 규범.

*불조(佛祖) : 부처님과 조사(祖師), 불(佛)은 삼세제불(三世諸佛), 조(祖)는 역대(歷代)의 조사를 말함.

*견처(見處) ; 자기 나름대로 얻은 어떤 생각이나 입장, 견해.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말.

*친증처(親證處) ; 친히 증(證,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다)한 곳.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체중현(법문에서)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2분 48초)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헌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허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허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헐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허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허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 19초)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그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구중현(句中玄)·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참고 ❸] 송담스님 법문(No.466)—92년 보살 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2분 26초)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갈라면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 ❹] 송담스님 법문(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에서.(2분 36초)

가끔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래선(如來禪)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말의 자취가 있고 이치의 길이 남아 있는 선.

*공견(空見) ; 공(空)에 집착하여 일으키는 그릇된 견해. 공(空)을 허무론적인 견해로 이해하는 것으로, 이에 따르면 인과(因果)의 도리를 비롯한 모든 것의 존재가 부정된다.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2)

 

*화엄경(華嚴經) ; 본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이 경은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한 깨달음의 내용을 그대로 표명한 경전이다.

3가지 번역이 있는데, 60권은 동진(東晋)의 불타발타라(佛駄跋陀羅) 번역이고, 80권은 당(唐)의 실차난타(實叉難陀) 번역, 40권은 당(唐)의 반야(般若) 번역임.

이 가운데 40권은 60권과 80권의 마지막에 있는 입법계품(入法界品)에 해당하며, 십지품(十地品)과 입법계품(入法界品)만 산스크리트 원전이 남아 있다.

*선재동자(善財童子) ;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나오는 구도자(求道者). 문수보살의 법문을 듣고 발심(發心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하여 그 보살의 가르침대로 오십삼 선지식(五十三善知識)을 차례로 만나 보살도(菩薩道)를 배우고, 보현보살의 행원(行願 서원을 세우고 수행함)을 실천하여 진리의 세계로 들어감.

*문수보살(文殊菩薩) ;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부처의 완전한 지혜를 상징함. 문수사리는 산스크리트어 만주슈리(mañjuśrī)의 음사. 문수시리(文殊尸利),만수실리(蔓殊室利)라고도 쓴다.

‘문수’는 묘(妙, 신묘하다, 훌륭하다), ‘사리’는 길상(吉祥, 상서로움)의 뜻이다. 묘길상(妙吉祥)·묘덕(妙德)·유수(濡首)라 번역. 석가모니불을 왼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권(經卷)을 손에 든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化身).

≪화엄경≫ 속에서도 문수 보살은 보현보살(普賢菩薩)과 함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양쪽 협시 보살(挾侍菩薩)을 이룸.

*선지식(善知識) ; ①정직하고 덕(德)이 있는 벗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상경(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이. ②남녀•노소•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불연(佛緣)을 맺게 하는 사람. ③지식(知識)•선우(善友)•친우(親友)•선친우(善親友)•승우(勝友)라고도 함.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승사(承嗣 받들 승,이을 사) ; 후임자나 후대가 선임자나 선대의 권리나 의무를 뒤이어 물려받음.

*미륵보살(彌勒菩薩)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을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의 미륵이라 한다.

*신근(信根) ; 신(信, 진리에 대한 확신)의 뿌리. 신념(信念, 어떤 사상이나 생각을 굳게 믿으며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의 기초. 신근의 근(根)은, 나무뿌리와 같이 능히 유지시키는 것과 생기게 하는 것을 뜻함.

[참고] 신(信) : ①진리에 대한 확신。 ②신은 마음을 맑게 하고 해태를 막는 정신작용이다。 마치 수정주(水精珠)가 능히 탁한 물을 맑게 하듯이 마음에 신(信)이 있으면 마음으로 하여금 맑게 하는 것이다.

보살본업경(菩薩本業經)에 「만약 일체중생이 처음에 삼보의 바다에 들어오매 신(信)으로써 근본을 삼고 불가에 머무르거든 계(戒)로써 근본을 삼으라」하시고,

지도론(智度論)에 「불법대해(佛法大海)에는 신(信)으로 능입(能入)을 삼고 지(智)로 능도(能度)를 삼는다」하시며, 화엄경에 「신(信)은 도(道)의 으뜸이 되고 공덕의 어머니가 된다(信爲道元 功德母)」하신 것이다.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섭호하다(護-- 도울 섭,보호할 호) ; (부처님이 중생을) 받아들여 보살피다.

*보현보살(普賢菩薩) ;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맡은 보살. 한량없는 행원(行願)을 상징함.

산스크리트어 사만타바드라(Samantabhadra). 삼만다발타라(三曼多跋陀羅)라고 표기. 보현(普賢), 편길(遍吉)이라 한역. 경전을 수호하고 널리 퍼뜨리며, 불법을 펴는 보살.

연화대에 앉거나 여섯 이빨을 가진 흰 코끼리를 타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오른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보현보살은 또 중생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으므로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모든 보살들은 다 각각 부처님 공덕의 어느 한 부분만을 나타내어 그것이 그의 특징이 된다.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삼취정계(三聚淨戒) ; 대승불교 보살(菩薩)이 지녀야 할 계법(戒法, 부처님이 정한 계율의 법)에 대한 총칭. 삼취청정계, 삼취계라고도 한다. 섭률의계(攝律儀戒)·섭선법계(攝善法戒섭중생계(攝衆生戒)로 나뉜다.

 

①섭률의계는 5계·10계·250계 등 일정하게 제정된 여러 규율위의(規律威儀) 등을 지켜 일체의 허물과 악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지악문(止惡門)이라고도 한다.

②섭선법계는 적극적으로 일체의 선을 지혜롭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수선문(修善門)이라고도 한다.

③섭중생계는 자비심으로 일체의 중생을 제도하는 일체의 이타행위를 말한다. 권선문(勸善門)이라고도 한다.

 

①섭률의계 ②섭선법계는 자리(自利)이며, ③섭중생계는 이타(利他)행위이다. 모든 계법은 그 어느 것이라도 이 3가지에 포함되는데, 청정하기 때문에 정계(淨戒)라고 한다. 취(聚)는 집적(集積)의 뜻.

 

원효대사는 삼취정계 가운데 ①섭률의계는 단()의 덕목(德目)이고, ②섭선법계는 지()의 덕목이며, ③섭중생계는 은()의 덕목이기 때문에, 이 삼덕의 과()를 얻으면 그것이 곧 정각(正覺)을 이루는 길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 삼취정계를 간직함에 따라 중생과 자기의 내심에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여래장(如來藏)·본각(本覺)·불과(佛果)를 볼 수 있게 됨을 강조하였다.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

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2. 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3. 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4. 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5. 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6. 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선가귀감](용화선원) p94-95 참조.

*(게송) ‘역력이빈주~’ ; 『청허집(淸虛集)』 ‘贈道能禪子’ 참고.

*역력(歷歷) ; 훤히 알 수 있게 분명하고 또렷함.

*빈주(賓主 손님 빈,주인 주) ; ①손님과 주인. 객관(客觀)과 주관(主觀). 현상세계와 절대의 진여(眞如). ②수행자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음. 제자(賓)와 스승(主).

*형단(形段 모양 형,구분 단) ; ①형태. 형태로 나타나서 보이는 것. ②모양. 외양.

*의심(疑心) :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Posted by 닥공닥정
전강선사 추모재2015. 1. 17. 11:08

§(113) 전강선사 5주기 추모재 / 조주 스님의 가풍과 무쟁삼매법 / 참선을 잘하는 것이 최상승계를 잘 지키는 것.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과연 「정법이 무엇이며, 불법은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길을 가르켜 주고, 우리는 어떻게 해서 불법을 통해서 자아를 완성하는가」에 대해서 밝은 지침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조실 스님의 생존에 하신 말씀이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지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이 도량을 잘 지키고 나를 기다리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철저한 신심으로 조실 스님의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도를 닦으면서 하루하루를 알뜰하게 살아간다면 반드시 우리는 다시 몸을 받으신 조실 스님을 친견할 수 있고, 살아계신 불보살도 친견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계는 참선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 계는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참 계’를 바로 지킬라면 참선을 하지 아니하고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는 계를 설할 때에 화두(話頭)를 주심으로써 계 설하심을 삼으셨습니다.

 

**송담스님(No.113)—조실스님 제 5주기 추모재(80.01.19) (용113)

 

(1) 약 21분.

(2) 약 13분.

 

(1)------------------

 

오늘은 전강 대종사 제 5주기 추모 법요식일입니다. 날씨는 매우 혹독한데 원근에서 이렇게 참석을 해 주신데 대해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무술년 11월 16일 날 전남 곡성에서 탄생하셔 가지고, 17세에 출가하셔서 갑인년 12월 초이튿날 용화선원에서 77세를 일기(期)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 동안 23세에 견성오도(見性悟道) 하셔 가지고 33세에 양산 통도사에 첫 조실로 취임하셔서 학자를 제접(提接) 하신 이래로 50여 년간을 전국 유명 선원에서 많은 선객(禪客)들을 제접을 하시고,

말년에 15년간을 여기 용화선원 염전(田) 가에 조그마한 토굴에 계시면서 승속(僧俗)에 정법(正法)의 씨를 뿌려 주셨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사부대중(四部大衆)께서는 직접 대부분이 조실 스님을 친견하시고, 법의 은혜를 입으신 분이 많으실 줄 생각합니다.

 

여기에 계시면서 그 어려운 가운데에도 전국의 좋은 절을 많이 놔두고 하필 이 갯벌 가에서 고생을 하시면서, 여기서 우리들을 교화해 주셨던가.

생각해 보면 숙세의 인연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 그렇게 우리들을 위해서 고생을 하시면서 법을 설해 주신 걸로 생각이 됩니다. 

 

맨 처음에 여기 용화사는 저 밑에 보살선원 조그마한 불당(佛堂)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서 조실 스님이 여기 왕래하시다가 그 옆에 선원을 지으시고, 그리고서 신도가 차츰 불어나니까 앞에 법보선원이라고 여기 조실 스님 계시던 벽돌집을 지으시고,

그 다음에 현재 우리가 지금 앉아있는 이 법보전(法寶殿), 법당을 옛날 신사당(社堂) 터에다가 20평 가량 지었습니다. 얼마 안 가서 그 법당(法堂)이 좁아서 다시 또 10여 평을 늘여 가지고 현재의 이 법당이 되었습니다.

 

조실 스님 열반하신 뒤 6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조실 스님의 법(法)은 살아계실 때에도 사자후(獅子吼)와 같은 그러한 생사 없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설해 주셨지만,

열반에 드신 뒤, 오히려 전국 방방곡곡의 사부대중들은 조실 스님의 그 위없는 법에 더욱 감동되고, 신심을 돈발(頓發)해서 조실 스님의 법을 추모하는 사부대중이 나날이 불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국의 어느 선원이나 어느 신도나 심지어는 저 구라파(巴)나 미국에까지도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은 갓 없이 멀고 가까운 곳이 없이 번지고 번져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과연 「정법이 무엇이며, 불법은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길을 가르켜 주고, 우리는 어떻게 해서 불법을 통해서 자아를 완성하는가」에 대해서 밝은 지침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우리 용화선원도 법당이 협착(窄)해서 법회 때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법당에 다 수용을 못하고, 밖에서 추운 겨울이나 더운 뙤약빛 속에서도 밖에서 법회에 참석할 수 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조실 스님의 법이 얼마나 위대하고 거룩한가, 법문을 듣고 또 듣고 여러 번 들으면 들을수록 그 법문이 우리의 ‘참마음’을 두들겨 주기 때문에 그러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법당이 없어서 법을 못 듣는 것도 아니고, 법당이 없어서 법을 설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법문을 들을려면은 들을 장소가 필요하고, 법을 설할려면 또한 법을 설할 만한 설할 수 있는 그러한 도량(道場)이 필요한 것은 현실적으로 어찌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불법(佛法)은 꼭 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온 우주법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 불법 아닌 것이 없지마는,

그래도 우리가 현실적으로 법을 듣고 설하려면은 법당이 필요하고, 닦을려면 또한 선원(禪院)이 필요한 것도 어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이 법당을 늘구실 때에 저는 “법당이 좁은들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신도가 많이 오시면 뜰에서도 듣고, 저 잔디밭에서 들어도 상관이 없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씀도 드린 일이 있습니다마는,

얼마 안 가서 이 법당이 좁아지고, 정말 이 법당을 늘리지 않고서는 어찌할 수가 없는 그러한 상태에까지 왔습니다. 

 

 

지금부터 약 1200년 전에, 중국 하북성에 진주 관음원(觀音院)이라고 하는 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조주(趙州) 스님이라고 하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그 스님은 18세에 출가해 가지고, 120세에 열반을 하신 고불화현(古佛化現)이라고 존경을 받는 그러한 큰스님이십니다. 그 스님은 어려서 견성(見性)을 하셔 가지고 널리 알려져 있는 큰스님입니다.

 

근데 하루는 어느 큰 선방에서 이 조주 스님을 조실(祖室)로 청했습니다.

 

(조주 스님이) 맨 처음에 그 공양주(供養主)에게 명하기를 “개를 한 마리 구해다가 잡아서 마지(摩旨) 솥에다 삶아라.”

그래 공양주는 조실 스님의 명령이니까, 개를 잡어가지고 마지 솥에다 삶아가지고 대중공양(大衆供養)에 개고기 국을 퍼서 들여왔습니다.

 

대중이 공양을 할라고 보니까 기름이 번들번들하고 누린내가 나는 개고기 국이었습니다.

대중은 일제히 바리때를 도로 싸고 ‘이런 외도(外道)한테 우리가 법을 배우다니!’ 분개해 가지고 걸망을 싸 짊어지고 모다 도망갔습니다. 그 때 공양주와 채공(菜供) 두 사람만이 남았습니다.

 

조주 스님은 “무쟁삼매법(無諍三昧法)으로 외도 놈들을 다 내쫓았구나.” 이렇게 선언을 하시고서 그해 여름에 공양주와 채공 두 사람을 데리고 거기서 지내셨습니다.

공양주와 채공은 철저한 신심, 목숨 바쳐서 도를 닦은 까닭으로 해서 그해 여름에 확철대오를 했던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모양을 보고 믿는다든지, 음성을 듣고 추종을 할 경우 열이면 열 다 물러서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하면 시인(是人)은 행사도(行邪道)라.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라.’

 

만약 색(色)으로써 나를 보거나, 색은 모양입니다.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다 갖춘 그러한 거룩한 어른이기 때문에 부처님이다. 그러니까 나는 저 부처님을 '참 성현'으로 믿어야지’ 이렇게 생각한다든지.

 

‘부처님은 원음(圓音)이시라. 그 음성이 사자의 부르짖음과 같고, 한 말씀으로 설하되 육도의 모든 중생이 다 같이 들을 수가 있는 이러한 원음이시기 때문에 석가여래(釋迦如來)야말로 성현(聖賢) 가운데에 성현이다’ 이렇게 믿고 추종을 한다든지.

 

이리해서 ‘모양으로 나를 본다든지, 음성으로서 나를 구하는 자는 이 사람은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이라, 이 사람은 마침내 참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개정국으로써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들을 내쫓고, 법(法)에 의지할지언정 사람에 의지하지 아니한,

법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소견과 자기의 목숨까지도 다 바칠 수 있을 만한 그러한 참된 학자, 공양주와 채공 두 사람을 데리고 그해 여름을 지내심으로써 두 견성(見性) 불자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 조주 스님은 평생에 많은 학자를 거느리고 선방에 지내시기보다는 평생 동안을 한 사람 내지 두 사람 정도 철저한 사람을 데리고 지내셨습니다.

지내신 그 절이 기와가 깨지고, 지붕에 풀이 우거지고, 비가 줄줄 새도, 기와 한 장을 고치지 아니하고 풀 한 포기를 뽑지를 아니하시고, 이쪽 구석에 비가 새면 저쪽 구석으로 피해 앉고 이러시면서 일생을 지내셨습니다.

 

옛 부처님의 화현으로 태어나신 그러한 대도인으로서도 절을 짓는다든지, 큰 절을 가지고 지내신다든지, 많은 대중을 모여서 살려고 하시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수없이 많은 중생을 교화를 하시고, 많은 공안을 조사공안(祖師公案)을 남기신 대도인이십니다.

 

조실 스님께서도 역시 잠깐 잠깐 큰 선원의 조실을 부득이해서 안 맡으신 것은 아니지만 잠깐 지내시다가 내버리고 토굴(土窟)로 들어가시고,

또 토굴에 가 계시면 또 어느 큰 선방에서 조실로 모시면 마지못해서 또 따라가셨다가 한 철, 많아야 두어 철 지내시다 금방 또 토굴로 와 버리시고 이러시다가 제일 많이 지내신 곳이 바로 이 용화사 선원입니다.

 

부득이해서 이런 법당을 이렇게 지으시기는 했지만은 언제나 조실 스님께서는 꼭 조주 스님처럼 그렇게 지내셨습니다.

 

이 송담(松潭)은 그 법에 있어서나 도력에 있어서나, 조주 스님이나 조실 스님의 그런 행을 따를 수가 없지만,

그렇게 지내신 것을 항시 마음에 흠모(慕)하고 ‘내가 장차 그런 법력(法力)과 도력(道力)을 갖춘다 하더라도 조주 스님처럼 그렇게 일생을 지내리라’ 이렇게 생각을 하고 오늘날까지 살아왔습니다.

 

이 용화사가 법회 때 많은 사부대중이 모이시지만 법당이 이렇게 비좁아도 법당을 더 키우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새로 법당을 더 지을 그런 생각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웃채와 아래채 중간에 선방과 창고를 뜯어내고 20미터의 노폭을 가진 큰 길을 내년 봄부터 공사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래 선방, 부인선방, 후원(後院)은 전부 다 뜯기게 되고, 이 웃채에서만 살 수 밖에는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선방도 없어지고, 부인선방도 없어지고, 후원채도 없어집니다.

 

그리해서 부득이 내년 봄에는 선방도 지어야 하고, 후원·요사(舍)채도 지어야 하고, 그럴 수 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선원을 운영해 나가면서 남은 돈을 한 푼 두 푼 모여서 선방을 지을 수 있을 때 지으리라 이리 생각을 하고 왔었는데요.

 

갑자기 이렇게 환율이 인상이 되고 물가가 상승이 되어서 처음에 예상했던 대로 그 준비 가지고서는 도저히 불사(佛事)를 완성시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방이나 법당을 안 지을 수도 없고, 짓자니 여러 가지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마는,

우리가 정법을 믿고 거기에 의지해서 '참나'를 깨달아서 우리의 몸에 진리를 구현할 수 있는 그러한 대원력(大願力)을 갖고서 마음을 합한다면 어떠한 불사라도 이루지 못할 까닭이 없다고 하는 신념은 가지고 있습니다.(처음~20분29초)

 

 

 

 

 

(2)------------------

 

조실 스님께서 15년간 여기에 터를 잡으신 목적이 무엇인가?

한사코 토굴로만 도망갈라고 하는 저를 보시고, ‘사람이 오십이 넘으면 옛날 고인들도 다 죽을 자리를 보는 것인데 밤낮 토굴로만 가서 숨을라고만 하고 그런다’고 노상 걱정을 하셨습니다.

마지막 열반(涅槃)하실 때까지도 저를 기다리시다가 결국은 열반에 드셨습니다.

 

생존에 조실 스님의 뜻을 잘 받들지 못한 송구한 마음, 죄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마는 열반하신 뒤에, 생존에 하신 말씀이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지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이 도량을 잘 지키고 나를 기다리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육조 스님께서 돌아가실 때 열반하실 때, “어느 곳으로 가십니까?” “낙엽이 귀근(歸根)이라. 떨어진 이파리는 뿌리로 돌아가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허셨습니다.

“언제 다시 돌아오십니까?” “내시무구(來時無口)니. 올 때는 말이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과연 조실 스님께서 언제 오실는지,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생사를 해탈한 부처님이나 도인은 원래 생사가 없는 것이어서 다만 우리 범부의 눈에 열반상을 보이실 뿐이지 생사가 없다고 하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마는,

우리의 눈으로 갑인년 12월 2일 이후로는 우리의 눈으로는 조실 스님을 뵈올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녹음법문을 통해서 생존시나 다름없이 그 우렁찬 법문은 들을 수가 있습니다마는 그 모습은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같이 우리의 정성을 모여서 법당을 세우고, 조실 스님의 육성법문을 들으면서 몸과 목숨을 바쳐서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함으로써,

조실 스님의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몸과 마음, 모든 정성을 기울여서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앞길을 위해서 우리의 도업(道業)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불보살(佛菩薩)은 육도법계(六道法界)에 언제 어디서라도 계시는 것이며, 다못 철저한 신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모습을 나투신 걸로 나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철저한 신심으로 조실 스님의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도를 닦으면서 마음을 닦으면서 하루하루를 알뜰하게 살아간다면 반드시 우리는 다시 몸을 받으신 조실 스님을 친견할 수 있고, 살아계신 불보살도 우리는 친견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감히 여러분 앞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은 조실 스님 제 5주기를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손상좌(孫上佐), 손주 상좌 다섯 사람이 새로 계를 받아서 출가를 하게 되겠습니다. 

 

계(戒)는 몸으로 지키는 계와 마음으로 지키는 계가 있습니다.

대승계는 계를 파(破)하지 않고서는 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 계’를 지킬라면 참선(參禪)을 해야 하고, 참선을 해서 바로 깨닫기 전에는 ‘참 계’는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계는 참선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 계는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참 계’를 바로 지킬라면 참선을 하지 아니하고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는 계를 설할 때에 화두(話頭)를 주심으로써 계 설하심을 삼으셨습니다.

 

오늘은 조실 스님의 제 5주기 열반재일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뜻을 받들어서 간략히 그러나 가장 알찬 계를 설할까 합니다.

 

임행자. 불명(佛名)은 성월, 은사(恩師) 스님은 운거 스님.

서행자. 불명은 성화, 은사 스님은 용문사 주지 스님, 우담정환 스님.

황행자. 불명은 성훈, 은사 스님은 도산정몽스님.

문행자. 불명은 성천, 은사 스님은 용주사 총무 정낙 스님.

불명은 성품 ‘성’자 항상 ‘상’자, 성상, 은사 스님은 정명 스님,

 

그리고 완월, 원래는 조실 스님의... 아시는 바와 같이, 오 정월 스님이 계셨습니다.

그 스님은 진즉 돌아가시고 그래서 조실 스님과 인연이 깊고 그래서 준례에 따라서 조실 스님, 노스님 위로 올려붙이는 것이 좋다고 해서 정목 스님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안월이 아니라. 구경‘완‘자 완월. 

 

계는 참선을 잘함으로써 저절로 계가 잘 지켜지도록... 

 

계를 설하는데 대단히 복잡한 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까 드린 바와 같이 최상승계는 참선을 잘함으로써 지키는 상(相)이 없이 저절로 지켜지는 계, 파하고 지키고 할 것이 없는 계, 이 계야말로 최상승계인 것입니다.

 

최상승계를 명실공(共)히 잘 지키기 위해서는 조실 스님의 법에 의지해서 철저하게 참선 수행을 함으로써 ‘참나’를 깨달아서 부처님의 지혜목숨[慧命]을 계승함으로써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상으로써 계를 설해 마쳤습니다. 오랜 시간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어서 조실 스님 추모재를 거행 하겠습니다.(20분30초~33분1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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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오도(見性悟道) : ‘성품(性)을 보아(見) 진리(道)를 깨친다(悟)’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 견성오도라 한다.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승속(僧俗) ; 스님과 스님이 아닌 속인(俗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신사(神社) ; 일본에서 왕실 조상이나 고유 신앙 대상 신(神) 또는 국가 공로  사람 신(神)으로 모신 사당.

*법당(法堂) ; ① 불상을 모신 사찰의 중심 건물. ② 설법하거나 각종 의식을 행하는 사찰의 건물. ③ 사찰에 있는 전각(殿閣)을 통틀어 일컬음.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구라파(巴)유럽(Europe)’ 음역어이.

*협착하다(窄--  좁을 협,좁을 착) ; ①차지하고 있는 자리 매우 좁다. ②처하여 있는 사정이나 형편 매우 어렵다.

*도량(道場) :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늘구다 ; ‘늘이다(수효, 부피, 무게 등을 더 많거나 크게 하다)’의 사투리.

*조주 스님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고불화현(古佛化現) ; 부처님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견성(見性) : 성품을 본다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부처님께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사시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마지 올린다’고 하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摩指摩旨磨旨) ‘손으로 만들어 올린다 혹은 정성스럽게 만든 공양을 올리오니 제 뜻을 감읍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라고도 한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무쟁삼매(無諍三昧) ; ①진리에 안주(安住)하여 다른 것과 다툼이 없는 선정(禪定)을 말한다.
②타인과 다툼이 없는 경지. 다툼이 없는 것은 마음 속에 갈등이 없는 것. 나아가서는 ‘미혹이 없는 것’이다. 쟁(諍)은 번뇌(煩惱)의 다른 이름이니, 무쟁(無諍)은 곧 무번뇌(無煩惱)이니, 이것은 무루법(無漏法)이다.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삼천위의(三千威儀) ; 비구(출가한 남자 스님)의 일상 행동에서 지켜야 할 계율이 250종이어서 이를 ‘비구 250계’라고 한다. 일상생활은 크게 행(行)·주(住)·좌(坐)·와(臥)로 나누기 때문에 이 네 가지에 250을 곱하면 천이 된다. 이를 다시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에 곱하면 3천이 된다.
*팔만세행(八萬細行) ; 부처님의 모든 행동은 원만하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다는 것. 팔만 가지 세세한 행동들이 전부 부처님의 위의(威儀, 훌륭한 행위)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원음(圓音) ; 모든 중생이 제각기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이해하는 원만한 부처님의 가르침.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釋迦牟尼). 석가(釋迦)에 대한 존칭.
여래(如來)는 부처님 10호(十號)의 하나로 범어 Tathagata(다타가타)의 역(譯)이다.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개정국 ; '보신탕(湯, 개장국(--) 완곡하게 이르는 )'의 사투리. 개장국(개고기를 여러 가지 양념채소와 함께 고아  옛날부터 삼복( 또는 병자의 보신을 위하여 를 먹는 풍습이 있었다).
*조사공안(祖師公案) ; 조사가 시설(施說)한 선(禪)의 관문으로서의 공안.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흠모( 공경할 흠,그리워할 모) ; 마음 그리고 우러러 따름.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후원(後院) ; 절에서 부엌을 일컫는 말.
*요사채(舍- 집 료,집 사) ; 사찰 에서 전각이나 산문  스님 생활 관련 건물 통틀어 이르는 .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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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손상좌(孫上佐) ; 제자의 제자를 일컬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불명(佛名) ; 불법에 귀의한 남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
*은사(恩師) ; ①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②자기를 출가시켜 길러 준 스승.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명실공히(名實共-)알려진 내용 실제 내용 똑같게.
*지혜목숨혜명(慧命).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대도정법(大道正法)의 명맥(命脈).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Posted by 닥공닥정
하안거 해제 백종2014. 8. 12. 14:49

§(178) (게송)몽리명명유육추~ / 환몽(幻夢) /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교외별전(敎外別傳) / 불방일(不放逸)-최상승계(最上乘戒)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여. 팔만대장경을 완전히 한데 뭉쳐서 삶아서, 거기에 아주 그걸 농축을 해 가지고 뽑아낸 거여.


진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참다운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불방일’이라 하는 글자 석자를 벗어나지를 않습니다.


모든 불법의 근본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활구참선을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면, 계(戒)의 지키는 상(相)이 없이 저절로 모든 계가 지켜져 버리면 이것을 바로 최상승계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78) - 1982년(임술년) 하안거 해제법회. (용178)

 

(1) 약 16분.

 

(2) 약 14분.


(1)------------------

몽리명명유육추(夢裏明明有六趣)한데  각후공공무대천(覺後空空無大千)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몽리명명유육추(夢裏明明有六趣)러니, 꿈을 꾸고 있을 때에는 분명하게 육도(六道)가 있더니,
천당도 있고, 지옥도 있고, 축생도 있고, 아귀도 있고, 희로애락이 있고 생로병사가 있고 분명히 그 꿈속에서는 그러한 육도가 있더니,

각후(覺後)에는 공공무대천(空空無大千)이로구나. 깬 뒤에는 비고 비어서 대천세계(大千世界)가 없어져 부렀다 그말이여.

꿈속에 돈 뭉탱이를 줏었다. 하! 이런 보배 뭉탱이를 줏었다. 이러헌 좋은 보배를 평생에 갖고 싶었는데 어떻게 이것을 내가 얻었던가.
그렇게 기쁘고 흐뭇하고 어쩔 줄을 모르다가, 꿈을 딱! 깨고 보니까 그렇게 좋아하고 만지작거렸던 그 보물이 간 곳이 없더라.

꿈속에 그 독사란 놈이 물려고 쫓아와서 그 진땀을 흘리고 두려운 공포에 떨었었는데 탁! 눈을 뜨고 보니까 그 혀를 널름거리고 달라들었던 독사가 간 곳이 없더라.
천당과 지옥도 중생의 환몽(幻夢)—환상(幻想)의, 환각(幻覺)의 꿈을 꾸고 있을 때 천당이 있었고 지옥이 있었고 축생이 있었지만, 중생의 그 환몽을 깨버린다면 천당도 간 곳이 없고 지옥도 간 곳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셔 가지고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서 6년의 그 피나는 고행을 하셔서, 마침내 납월 팔일(臘月八日) 동천(東天)에 뜬 샛별을 보시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는데,

확철대오를 하셔 가지고 49년 동안 팔만사천의 법문을 설하셨는데 깨달으신 것이 무엇을 깨달렀냐?
환몽(幻夢)을 깨신 것이고, 설하신 것이 무엇을 설하셨냐 하면 그 환몽을 깨는 방법을 설하신 것이여.

처음에는 바로 그 환몽(幻夢)을 깨는 법을 설하셨지만,
중생의 근기(根機)가 하열(下劣)해서 아무도 알아듣지를 못하니까 알아듣기 쉬운, 행하기 쉬운 방편(方便)을 설하시다가 마지막에 가서 바로 이 깨는 법을 여지없이 설하셨다 그말이여.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여.
팔만대장경을 완전히 한데 뭉쳐서 삶아서, 거기에 아주 그걸 농축을 해 가지고 뽑아낸 거여.

바로 이 활구참선은 팔만대장경 속에는 없어요.
물론 깨달은 분이 보면은 글자마다, 한 말씀마다 바로 활구참선 아닌 것이 없지만, 그것은 깨달은 눈으로 볼 때 그런 것이고 깨닫지 못한 사람의 눈에는 활구참선법은 팔만대장경 속에는 없는 것이거든.

용궁(龍宮)에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모든 법이 한 자(字)도 빠짐이 없이, 한마디도 빠짐이 없이 전부다 용궁에는 용왕에 의해서 그것이 다 보관이 되어 있지만, 그 용궁에 있는 경전 속에도 이 활구참선법은 없다 이것입니다.
교외별전(敎外別傳)이라, 이것은 교외별전이기 때문에 경전에는 없는 것이다 이 말씀이여.

그 경전 가운데에는 없는 이 활구참선법이 달마대사(達摩大師)에 의해서 천오백 년 전에 중국에 전해졌고,
이조 혜가(二祖慧可), 삼조 승찬(三祖僧璨), 사조 도신(四祖道信), 오조 홍인(五祖弘忍), 육조 혜능(六祖慧能) 선사를 거쳐서 오늘날에까지 그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등등상속(燈燈相續)으로 이 활구참선법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활구참선법이라는 게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여.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
‘개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없습니까?’하고 묻는데, 조주스님이 대답하기를 ‘무(無)’라 했으니, ‘어째서 조주는 무(無)라고 했는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문헌에 오른 공안(公案)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여. 천칠백 화두인데 어느 공안이나 좋고 나쁘고 한 것이 없어.

그러나 자기가 믿는,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간택을 받았으면,
공부가 잘되건 못되건 따지지 말고 그 한 공안상에 대의단(大疑團)을 일으켜서, 그 의단 하나만을 간절히 거각(擧却)해 나간다면, 결국은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저절로 들어진 단계가 오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이 공부는 너무 간단하고 너무 쉬웁고 너무 가까와서 그래서 하기가 어렵고, 잘 되어도 잘 된 줄을 모르고 이미 화두가 들어져 갖고 있어... (녹음끊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는 바로 가르켜 줄 수 있는 스승을 자주 만나지 않고서는 올바르게 할 수가 없습니다.

애써서 공부를 해 가지고 중대한 고비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고비를 잘 단속해 나갈 줄을 모르고,
공연히 거기서 스스로 분별심을 내 가지고 공연히 주저하고 망설이고 갈팡질팡하고 스스로 혐의심(嫌疑心)을 내 가지고 아까운 고비를 헛되이 지내버리는 예가 종종 있습니다.

「서장(書狀)」에 대혜(大慧) 스님의 법문을 보면, 화두를 들어도 잘 들리지 아니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부림이 처지고, 나귀를 끌고 우물로 들어가는 것과 같고, 앞도 맥히고 뒤도 맥히고 좌우도 끊어져서 어찌 할 바를 모르는 그러헌 복잡하고 어려운 고비,
이러한 경계에 도달한 것이 이것이 공부가 잘못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앞으로 크게 깨닫게 될 그 이전의 경계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경계에 도달했을 때에 번뇌심을 내지를 말고 짜증을 내지 말고,
두려워서 ‘이것이 내가 이거 잘못 될라고 그런 것이 아닌가’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물러서지를 말고 그러한 고비에서 지혜스럽게 잘 단속을 해서 그 고비를 넘겨라.
‘절대로 물러서거나 공부를 놓아버리지 말고, 잘 그 고비를 넘겨야 한다’고 하는 말씀을 누누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공부를 지어가는 것이 그 고비를 잘 넘기는 것이냐?’하면,
무릎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쩌 눌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터질 것 같고, 이 오목가슴에 무슨 뭉텅이가 생겨 가지고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고 소화도 잘 안되고,

화두를 들어도 머리는 먹먹해 가지고 영 애를 먹을 때에, 그럴 때에는 앉아서 억지로 비울라고 하기 보다는 조용하게 일어나서 적당한 장소에 일직선으로 딱 정해 놓고서,
한 4~50미터를 일직선으로 코스를 딱 정해 놓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왔다갔다하면서 그 가운데 화두를 떠억 들어보라 이 말씀이여.

그러면은 그 답답하고 복잡하고 하는 것이 스르르르하니 그것이 없어지면서 속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 말이여.
그렇게 한 5분 내지 10분을 그렇게 포행을 하고서 시원해지거든 다시 또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허리를 쭈욱 펴고 극히 자연스럽게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떠억 들어보라 이 말씀이여.
아주 개운하고 시원하게 화두가 들릴 것이다.

또 얼마동안 잘되어 가다가 다시 또 답답해지면 앉아서 단전호흡을 몇 번을 하면 또 시원해지면 고대로 시간을 끌고 나가고, 그렇게 해도 공부가 안 되면은 또 조용하게 나가서 포행을 하고,
허기는 여러 대중이 꽈악 짜고 정진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들랑날랑하면 옆에 분들이 미안해서 차마 그럴 수가 없지요.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억지로 앉아서 그 죽비칠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참 대단히 거북하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옆에 분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렇게 허리가 아프던지, 정진이 답답해서 가슴이 미어질라고 하면 조용하게 나가서 지혜롭게 정진을 해 가지고 고비를 넘긴다면, 그러고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한결 정진이 수월하게 된다 그말이여.

그래서 공부가 한 단계 힘을 덜게 되는데, ‘그 힘을 덜게 되는 것(省力)이 바로 정진에 힘을 얻는 것(得力)이 된다’ 이 말씀입니다.

앞으로 산철 동안에는 그러한 규칙에 그렇게 크게 얽매이지 않는 계절인 만큼,
지금 산승이 일러드린 말씀을 십분 참작해서 그 여름 더운 동안에 못다한 공부를 이 산철 동안에 정말 알뜰하게 정진을 해서 그 봉을 빼도록 노력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22분10초~38분7초)

 

 

 



(2)------------------

이 정진(精進)은 한마디로 말해서 불방일(不放逸)인 것입니다.
불방일(不放逸)—아니 불(不)자, 놓을 방(放)자, 편안할 일(逸)자. ‘방일(放逸)하지 않는다.’
‘방일한다’고 하는 것은 ‘놓아 지낸다’ 그말이여. ‘그럭저럭 놓아 지낸다’ 그말인데, 그럭저럭 놓아 지내지 아니한 것이 그것이 '참정진'이다 이 말씀이여.

‘정진을 한다’하면은 꼭 아주 가행정진·용맹정진 그 정진상(精進相)을 지어서 막 이 몸을 갖다가 얽어매고 알날신심(遏捺身心)한 것을 갖다가—몸과 마음을 억지로 구속하고 얽어매 가지고 몸을 못살게 구는 것을 갖다가 가행정진이다 또는 용맹정진이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생각합니다마는,

진짜 정진을 할 줄 아는 사람의 참다운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불방일’이라 하는 글자 석자를 벗어나지를 않습니다.

불방일만 한다면,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바로 화두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서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화두가 들린다면 앉아서도 정진이요 서서도 정진이요, 24시간 간단없이.
장차는 참으로 정진이 익숙해지면 꿈속에서도 화두가 순일하게 들릴 것이고, 꿈도 없고 그 깊은 잠에 들었을 때에도 화두가 순일무잡하게 떠억 들린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용맹정진이 어디 있을 것이냐 이 말씀이여.

그렇게 될라면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마는 그래도 우리 수행인은 거기에다 목표를 두고 계속해서 정진을 다져나가야 할 줄 생각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정진을 다져간다면 무슨 파(破)해야 할 계율이 있으며, 다시 또 무슨 지켜야 할 계율이 어디가 있으며, 무슨 따져야 할 시비가 있으며, 무슨 부족함이 있겠습니까.

죽이면 죽, 밥이면 밥, 떡이면 떡, 국수면 국수 그때그때 공양 시간이 되면 공양하고, 잘 시간이 되면 자고, 울력 시간이 되면 울력을 하고, 소지(掃地) 시간이 되면 소지를 하고, 또 빨래를 할 시간에는 빨래를 하고,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한 생각 한 생각만을 알뜰하고 간절하게 단속해 나간다면,
비구 250계(戒), 비구니 348계, 또는 보살의 십중대계(十重大戒)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이 의식적으로 지킬려고 안 해도 저절로 모든 계율이 지켜져 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승계(大乘戒)요, 최상승계(最上乘戒)라 하는 것입니다.

모든 불법의 근본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활구참선을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면, 계(戒)의 지키는 상(相)이 없이 저절로 모든 계가 지켜져 버리면 이것을 바로 최상승계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조(六祖)스님께서는 「법보단경(法寶壇經)」에 자심(自心),
그 마음 그름이 없는 것이 자성(自性)의 계(戒)요, 마음 어지러운 것·산란한 것 없는 것이 자성(自性)의 정(定)이요, 마음에 그름·허물이 없는 것이 바로 이것이 자성(自性)의 혜(慧)라, 이렇게 설파를 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백일기도 회향일인데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들은 바로 용화사 법보선원에 방부를 드리고 정진하는 보살님과 그 근본에 있어서는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백일기도에 들었기 때문에—백일기도에 들은 그 정성에 의해서 이 용화선원이 잘 운영이 되았기 때문에 여러 스님네들이 정진을 잘 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정성으로 이 선원이 잘 운영되어 가는데 여러분이 무슨 마음을 가지고 그 동안에 살았겠느냐 그말이여.
법회 때 나와서 법문(法門)을 듣고, 법문을 듣고 가셔서 이 참선을 댁에서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참선을 하셨으니 어찌 그것이 이 용화선원에 방부를 들인 것이 아니겠느냐 그말이여.

바로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복(福)과 지혜(智慧)를 쌍(雙)으로 닦으신 분들이다 그말이여.
복을 지어서 선원을 잘 운영해 나갔으니 한량없는 무루복(無漏福)을 닦은 것이고, 또 여러분도 가정에서 참선을 열심히 했으니 최상승법을 닦아서 무루혜(無漏慧)를 닦은 것이 된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서 어느 분이 복(福)과 혜(慧)를 가장 원만히 구족하신 분이냐?’하면 바로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이야말로 천상천하에서 복과 혜, 복혜(福慧)를 원만구족(圓滿具足)하신 어른이다.

그래서 삼귀의(三歸依)를 할 때 ‘귀의불 양족존(歸依佛 兩足尊)’
2가지가 족(兩足)한 최고의 높으신 어른께 귀의합니다.’ 이 2가지가 구족하다는 것은 바로 ‘복(福)과 혜(慧) 2가지가 구족하다’ 이 말씀입니다.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에 의해서 닦아가는 불제자로서 그 2가지를 구족하도록 노력을 하고 정진을 한다면 우리의 정진은 결단코 삿된 데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 백일기도 회향이 바로 오늘입니다.

‘백일기도가 끝났으니까 인자 나는 뭐 닦아야 할 복도 없고, 닦아야 할 혜도 없다’ 그리 생각하지를 말고 산철 동안 열심히 정진을 해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하고, 상(相)에 떨어지지 않는 정진을 해 나가시면,
또 다시 음력 10월 15일이 들면 그때 또 백일기도에 동참을 하시고, 또 가정형편이 허락이 되면 또 여기에 정식으로 방부를 들여서 이 용화사 법보선원에 오셔서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이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그 공덕으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었던 크고 작은 소원이 반드시 성취가 되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고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여. 진로형탈. 티끌 수고로운 거, 생사진로, 생사해탈하는 것이 이 일이 조그만한 보통 일이 아니다.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긴밀하게 승두(繩頭)를 잡아서—화두를 놓치지 말고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지을지니라.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한바탕 이 추위가 뼛골 속에 사무치지 아니할 거 같으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냐.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을 것이냐.

되게 강추위를 한 뒤끝에 핀 매화라야 코를 치는 그러한 향내가 진동을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겨울 날씨가 이상 기온이 되아가지고 뜨뜻해서 강추위를 아니하면 그런 끝에 핀 매화는 향취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매화꽃이 그러듯이 우리가 정말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뼛골에 사무치는 그러헌 간절하고도 알뜰한 정진을 하지 않고서 어찌 고불조(古佛祖)와 같은 확철대오를 할 수가 있을까보냐 이 말씀이여.

이 게송은 황벽 스님께서 우리 후래(後來) 불자를 위해서 일러주신 게송입니다.
수행 납자(衲子)가 하루 한때라도 잊어서는 안될 그러한 좋은 좌우명(座右銘)이라고 생각이 됩니다.(22분10초~51분49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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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夢裏明明有六趣  覺後空空無大千’ ; 「증도가(證道歌)」 영가현각(永嘉玄覺) 선사.
*대천세계(大千世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약칭.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납월 팔일(臘月八日) ;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날을 말함.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하열(下劣 아래 하,못할·낮을 렬) ; (행동이나 생각이) 남보다 뒤떨어짐. 수준이 낮음.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
(5)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説者는  爲教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教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教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教)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6)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教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教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教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教外別傳禪旨)가 되리라.
*면면밀밀(綿綿密密) ; 면면(綿綿)하고 밀밀(密密)하게. 끊어지지 않고 아주 빽빽하게 죽 잇따라 있는.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p53 에서.


[참고] 송담스님(No.246)-84년(갑자년) 추계산철결제 법문(84.08.27)에서.
한 스님이 조주 스님에게 묻기를 ‘여하시(如何是)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어떤 것이 달마 조사가 인도에서 오신 뜻입니까?’ ‘달마 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신 의도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묻는 데 대해서 조주 스님이 대답허기를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 이렇게 대답을 하셨는데,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달마스님이 왜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셨느냐?’하고 묻는 데에 대해서,
‘참선법을 설하기 위해서 오셨다’ ‘내가 내 마음을 깨달라서 견성성불을 허는 법을 가르키기 위해서 왔다’
우리의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에는 그렇게 대답험즉 한데,

또 ‘달마 스님은 부처님으로부터 가섭존자, 가섭존자로부터 아난존자, 아난존자로부터 상나화수, 이렇게 해서 달마 스님까지 28대를 법을 전해 왔는데, 그 28대 조사인 달마 대사가 그 부처님으로부터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내려오는 그 최상승법, 정법을 중국에 전하기 위해서 오셨다’ 이렇게 대답험즉 한데,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아! 이렇게 대답을 해.

‘대관절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을꼬~?’
이것이 바로 공안(公案)이라 하는 것이고, 화두(話頭)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여.
이 화두를 참구하는 데에는, 그 동안에 자기가 배우고 알고 한 모든 지식이 여기에 동원되야서는 아니 되고, 모든 이론이 여기에 동원이 되어서는 아니 되어.

다못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앉아서도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걸어가면서도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밥을 먹으면서도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억울한 소리를 듣고 울화통이 치밀어서 속이 상할 때도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다못 그렇게만 참구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 법당에 계신 많은 신남신녀(信男信女) 사부대중이 ‘이뭣고?’, 이 ‘시삼마(是甚麽)’ 화두를 하시는 분이 많으실 줄 생각을 합니다마는, 시삼마(是甚麽) ‘이뭣고?’ 화두를 하시는 분은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똥을 누면서도 ‘이뭣고?’, 밥을 먹으면서도 ‘이뭣고?’, 차를 타면서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에도 ‘이뭣고~?’
다못 앞도 없고 뒤도 없고 무조건하고 그렇게만 참구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위의 송담스님 ‘판치생모, 이뭣고?’화두에 대한 말씀이 포함되어 있는 음성법문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 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p52~53 에서.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이 무엇고(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혐의(嫌疑) ; 꺼리어 싫어함.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62()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역설하였다.

*바우다 ; 피하다 혹은 견디다, 이겨내다를 의미하는 전라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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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불방일(不放逸) ; ①방일(放逸-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해태(懈怠-게으름)하지 않은 것. ②온갖 선법(善法)을 닦는 것. ③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것.
[참고]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 제1권.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에서는 "온갖 선법(善法)에 있어서 방일(放逸)하지 않음, 즉 불방일을 으뜸으로 한다(於一切善法 不放逸為尊)"고 말하면서, 불방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爲斷不善法。爲圓滿善法。常習常修堅作恒作。數修不止名不放逸。
불선법(不善法)은 끊고 선법(善法)은 원만하게 하기 위하여, 항상 익히고 항상 수행하며 견고하게 짓고 한결같이 지으며 자주자주 수행하면서 그만두지 않는 것을 불방일(不放逸)이라 한다.

[참고] 「불교평론」 (2005년 겨울), ‘붓다의 죽음’(안양규 글) p33에서.
팔리어본 「열반경」에 의하면 붓다는 제자들로부터 ‘불법에 의심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최후의 가르침을 남긴다.
“비구들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제행(諸行)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않고(appamādena) 정진하라.”(디가 니까야, 열반경 D16)
무상한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정진하라는 가르침은 붓다의 유언으로 제자들에게 남겨졌을 법한 내용이다.

불방일(不放逸)의 원어는 'appamāda'인데 부정접두사 'a'와 'pamāda'로 이루어진 말이다.
'pamāda'는 어떤 자극에 의해 정신이 마비된 것을 가리키는 말로 특히 만취한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appamāda'는 마음이 깨어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diligent) 아니라 마음이 또렷이 각성(覺醒)한 상태(vigilance)이다. (Nyānatiloka, Buddhist Dictionary : Manual of Buddhist Terms and Doctrines. Kandy. 1980)

*알날신심(遏捺身心  누를 알,누를 날,몸 신,마음 심) ; 몸과 마음을 억누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울력 ; 함께 힘 모아 일하는 것,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그러나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로 운력(運力)이라고도 한다. 의미와 관계없이 울력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소지(掃地) ; ①마당(땅)을 쓸다. ②청소.
*십중대계(十重大戒) ; 대승 불교에서, 보살이 범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열 가지 계율.
①살생, ②도둑질, ③간음, ④거짓말, ⑤술의 구입 및 판매, ⑥보살 및 비구나 비구니의 죄과를 들추어 말함, ⑦자기를 높이고 타인을 비방함, ⑧베푸는 데 인색함, ⑨화내어 타인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음,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비방함 등을 금하고 있다.
*삼천위의(三千威儀) ; 비구(출가한 남자 스님)의 일상 행동에서 지켜야 할 계율이 250종이어서 이를 ‘비구 250계’라고 한다. 일상생활은 크게 행(行)·주(住)·좌(坐)·와(臥)로 나누기 때문에 이 네 가지에 250을 곱하면 천이 된다. 이를 다시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에 곱하면 3천이 된다.
*팔만세행(八萬細行) ; 부처님의 모든 행동은 원만하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다는 것. 팔만 가지 세세한 행동들이 전부 부처님의 위의(威儀, 훌륭한 행위)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법보단경(法寶壇經) ; 중국 선종의 제6조로서 남종선의 개조인 혜능(慧能:638~713)이 사오관[韶關]의 대범사(大梵寺)에서 행한 공개 설법의 기록을 중심으로 생애와 언행을 제자 법해(法海)가 모았다고 전해지는 책. 본래 명칭은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壇經)이며 약칭하여 '단경'이라고도 한다. '단'은 계단 (戒壇)을 가리키고 '경'은 경전과 같은 권위를 부여하여 붙인 말이다.
'육조법보단경(六祖法寶壇經)'·'육조단경(六祖壇經)' 이라고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무루혜(無漏慧) ; 번뇌로 더럽혀지지 않은 진실의 지혜.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삼귀의(三歸依) ; 삼귀 또는 삼귀례(三歸禮)라고도 한다.
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몸과 마음을 바쳐 믿고 의지함. 즉 석가모니와 그의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에 따르는 교단에 귀의함을 말한다. 귀의불(歸依佛)•귀의법(歸依法)•귀의승(歸依僧)을 말함.
이와 같은 삼귀의는 원시불교 이래 수계식(受戒式) 등 여러 의식에서 실행되어 왔으며, 오늘날에도 남아시아의 불교에서는 팔리어(語)로 "부처님께 귀의하나이다", "가르침에 귀의하나이다", "스님들께 귀의하나이다"를 세 번 합송(合誦)한다.
한문으로는 여러 형식이 있으나, 한국에서는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歸依佛兩足尊)",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歸依法離欲尊)",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歸依僧衆中尊)"의 삼귀의 계문(戒文)을 합송한다.  삼보에 귀의하는 취지는 일체의 고통에서 해탈하고자 함이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46)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850) 게송.
*승두(繩頭) : 승(繩)은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두(頭)는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황벽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후래(後來) ; ①뒤에 오거나 뒤져서 옴. ②장차 오게 되는 앞날.
*납자(衲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
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좌우명(座右銘) ; 늘 자리 옆에 갖추어 두고 생활의 지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

Posted by 닥공닥정
상(相)없이2013. 11. 18. 10:10

§(099) () 집착없이. 척사현정(斥邪顯正) / 재송도인 / 만공스님, 보월스님 / ()없이 베풀어야 / 본참화두를 들고 행동하면 자연히 상에  떨어져.

 

**송담스님(No.099) - 1979년(기미년) 신수기도회향(79.1.9.음)(77분)에서. (용099)

 

(1) 약 8분.

(2) 약 17분.

 

(1)------------------


금방 조실스님께서는 재송도인(栽松道人)의 법문을 허셨습니다. 여러분께서 조실스님이 아주 재미있게 해주신 법문이라 잘 들으셨을 줄 생각합니다.

참선을 해서 생사(生死)없는 이치를 깨닫고 그리고 보림(保任)을 잘하면, 생사에 그렇게 자유자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에 자유자재하다’고 하는 것은, 앉아서 죽고 서서 죽고, 오늘 가고 싶으면 오늘 가고, 며칠 더 있다 갈라면 가고. 옛날 도인들은 떠억 편안히 앉아서 가신 분, 또 걸망을 떠억 지고 지팽이를 집고 어디 행각(行脚)을 떠나는 그런 행색(行色)을 해 가지고, 마당에 나가서 못가에 서서 선 채 딱 열반(涅槃)하신 그런 분도 계시고,

또 등(鄧隱) 조사 같은 이는 열반하실 때 옆에 시자(侍者)보고, “제방(諸方)에 앉아서 돌아가신 분이 계시냐?”

“그런 분은 많이 계십니다.”


“서서 돌아가신 분도 계시냐?”
“그런 분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면 까꾸로 서서 돌아가신 분도 있느냐?”
“그런 분은 아직 없습니다.”
당신은 까꾸로 서서, 선 채 열반에 드셨습니다.

전등록에 보면 까꾸로 선 채 열반에 드셨는데 옷자락, 옷고름, 옷소매까지도 밑으로 처지지 아니하고, 몸 따라서 딱 붙은 채 열반에 드셨습니다. 옆에 대중들이 전부 그분을, 열반하신 뒤에 편안하게 뉘어 드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까딱을 안했습니다. 마치 큰 나무가 우뚝 선 것처럼 아무리 밀어도 넘어지지를 안했습니다.

그래서 애를 먹고 있던 차에, 마치 등 조사의 누이동생이 여승(女僧)인데, 여승이 오빠이신 등 조사가 열반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왔습니다. 와서는 “이 노장(老長)이 평생에 추한 짓을 하더니 죽을 때에도 이런 추한 짓을 하는구나.” 하고  손가락으로 툭 밀뜨려 버리니까 툭 쓰러졌습니다.

과거 인도나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 일본에-이 동양에 걸쳐서 많은 도인들이 이렇게 생사에 자유자재 허셨습니다. 그런 분이 참 많이 계십니다.
그러나 참으로 그 분이 올바르게 깨닫고 못 깨닫고 허는 그 구분을, 돌아가실 때 서서 돌아가셨느냐 또는 앉아서 돌아가셨느냐 또는 누워서 돌아가셨느냐, 돌아가신 뒤에 방광(放光)을 했냐 안했느냐 이러헌 것으로써 그 분의 도(道)가 높고, 높지 아니한 것을 분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공 스님-조실스님의 법사(法師)스님이신 만공 스님에, 맨 처음에 법(法)을 전해 받으신 보월 스님께서 열반하셨을 때에 오색(五色)이 찬란한 방광을 하셨습니다.
그때에 만공 스님께서 보월 스님의 열반에, 그 상서(祥瑞)에 대한 점검을 하시기를 “추한 이 더러운 놈이 죽을 때 추한 짓을 면하덜 못하는구나.” 이렇게 말씀을 허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모다, 아까 등 조사의 까꾸로 서서 움직이지 아니한 것에 누이동생이 와 가지고 그 점검을 하는 말씀이나, 만공 큰스님께서 당신의 수법제자(受法弟子)이신 보월스님의 열반서상(涅槃瑞相)을 점검하신 말씀이, 다 척사현정(斥邪顯正)의 뜻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행여나 중생들이 상(相)에 집착해서 바른 법을 보지를 못하고 삿된 소견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셔서 추상(秋霜)같은 점검을 내리신 것입니다.

근자(近者)에 스님네나 또는 보살님네들이 돌아가셨을 때 화장(火葬)을 한 결과 많은 사리(舍利)들이 여기서 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불교신문에 자주자주 보도가 됩니다마는, 물론 계행을 잘 지키고 수행을 착실히 하고 마음씨를 착하게 먹고 일생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온다면 사리가 나올 수가 있습니다. 또는 나오지 아니할 수도 있습니다.
나온 것을 꼭 나쁘다고 헐 것도 없습니다마는, 사리 나온 것을 가지고 ‘사리가 나왔기 때문에 그 분이 도인(道人)이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고 허는 것을 우리 법보제자 여러분들께서는 잘 알고 계서야 할 줄 생각합니다.

이것을 모르고 사리가 나오고 방광을 헌 것에 대해서 그것을 착각을 해가지고,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이 참 도인이다’ 이렇게 생각하신다면, 정법(正法)을 배우는 불제자(佛弟子)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5분58초~13분28초)

 

 

 

 

(2)------------------

 

재송도인(栽松道人)이 팔십 노인의 몸으로 인가(印可)를 받으러 갔다가 법담을 해서, 법담(法談)은 훌륭하게 해서 분명 견성(見性)헌 것을 인증을 받았지마는 늙은 탓으로 해서, 늙은 사람에게 법(法)을 전해봤자 법을 전하신 스승보다도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법을 그 다음에 누가 있어서 대(代)를 이을 것인가?
그래서 몸을 바꿔 오도록 말씀을 허셨던 것입니다.

몸을 바꾸는데, 처녀의 뱃속에 들어가, 그래가지고 몸을 새로 바꿔 나와서, 어려서 출가를 해 가지고 인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출가하신 재송도인을 떠나보내고 그 어머니-처녀로 애기를 난, 그 재송도인의 어머니-께서는 아들을 찾고 찾아서, 늙발에 아들 있는 곳을 알아가지고 찾아갔습니다. 얼마동안 별당에서 밥을 얻어 자시면서 계셨습니다.
그런데 결국 돌아가실 때에, 별당에다가 가둬서 계시게 하고 밥을 갖다 드리지 아니해서 굶어서 돌아가셨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 내려옵니다.

그때 수백 명의 제자들이 ‘어째서 처녀의 몸으로 당신을 고생 끝에 낳아가지고 길러서 출가를 시켜준 그 어머니를 굶겨서 돌아가시게 헐 수가 있겠습니까? 결단코 도인(道人)이라 헐 수가 없다. 이러한 불효한 사람이 도인일 수는 없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한테 도를 배우느니 차라리 여기를 떠나자’ 이리 해 가지고 대중이 전부 걸망을 싸 짊어지고 그 절을 떠날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그 돌아가신, 재송도인의 어머니 말씀이 들렸습니다. “여러 대중 스님네, 제 말씀을 들으시오. 나는 아들 하나를 잘 둔 공덕으로 지금 나는 천상으로 올라가는 길이오. 그러니 내 아들이야말로 불보살(佛菩薩)의 화신(化身)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신 도인이고, 나에게 가장 효도를 해준 아들이니, 내 아들을 그릇 오해하지 말고 어서 걸망 짐을 풀어놓고 열심히 도를 배우시오.” 이렇게 소리가 울려나왔다고 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대중 스님네들은 다시 걸망을 풀고 그전에 보다도 훨씬 더 목숨 바쳐 공부를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시겠지마는, 이 법(法)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인정(人情)을 써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인정(人情)과 자비(慈悲)는 그 질(質)에 있어서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인정은 우선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좋지마는 결국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것이고, 자비는 겉으로 보기에는 인정과 너무나도 흡사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인정이라 하는 것은, 주는 것이 있고 또 받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주면서 또 받을 것을 또 기약을 헙니다.

그러나 불보살의 무연자비(無緣慈悲), 정말 참된 자비라고 하는 것은 주되 주는 바가 없고, 따라서 상(相)이 없는 것이며, 받을 것을 전혀 생각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 보답을 받기를 바래면서 주는 것은 ‘참보시’가 아니고 ‘참자비’가 아니고, 은혜를 베풀어서 덕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원망과 웬수 빚으로 돌아오는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6.25 동란 때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습니다마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은혜를 베푼 자’에게, 은혜로 보답하지 아니하고 죽음을 갖다 안겨준 그러헌 사례가 방방곡곡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과거•현재•미래에 걸쳐서 언제라도 은혜를 베푸는 것에 덕(德)이 돌아오지를 못하고 그러헌 웬수 빚으로써 보답 받은 예는 너무나 흔한 것입니다.
그 원인이 뭣이냐 하면, 그 배은망덕(背恩忘德)한 그 사람을 다 나쁘다고 합니다마는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되 상(相)이 없이 주라.’ 주되 보답을 바래지 말고 주어야지, 보답을 바래고 주면은 결과적으로는 좋지를 못한 것입니다.(20분29초)

심지어 부모가 자식을 가르키고, 자식을 키우고, 자식을 결혼을 시켜서 자유롭게 해준 그 일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는 그 아들과 딸을 고생고생 하면서 포태(胞胎)를 해 가지고 낳아서 길러 가지고 맛있는 것은 아이의 입에 넣고, 따뜻하고 마른자리는 아이에게 주고 춥고 젖은 자리는 엄마가 눕고, 이러면서 키운 그 자식, 못 먹고 못 입으면서 키운 그 자식이 커서 장가가서 자식 낳고 살면은 부모의 은혜를 거의 망각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너무나도 지나친 불효자식(不孝子息)이 되고, 나중에는 지집 말만 듣고 부모를 웬수같이 생각하고 부모를 내쫓고 부모를 죽게까지 하는 예는 신문에 가끔 보도됩니다.

이건 특수한 예라고 생각허실런지 모르지마는, 자식은 과거의 업(業)으로 인해서 태어난 것입니다. 혹 은혜를 갚기 위해서 태어난 그런 효자도 더러는 있지만, 대다수 자식이 웬수를 갚기 위해서 태어난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고 하는 것을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웬수의 자식이 태어날수록에 부모는 더욱 그 자식이 사랑스럽고 불쌍하고 피라도 빼서 그 놈을 살릴라고 허고 잘 살게 헐려고 하지마는, 그 자식은 점점 부모의 속에다가 불을 묻고 송곳으로 찌르고 고춧가루를 뿌리는 그러헌 짓을 가려가면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웬수가 태어나서 자식노릇을 하고 있는 경우인 것입니다. 그러헌 자식은 태어나지 아니한만 못하건마는 자기가 지어 놓은 업이라 그것을 달게 받을 수 밖에는 없습니다.

지금 세계에 42억이라고 하는 인구가 있지마는, 그 많은 인구가 부모의 몸을 빌리지 않고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많은 수가 얼마만큼 그 부모의 은혜를 알고 부모에 효도를 허는 사람이 있는지, 우리 자신부터 우리들의 주변 사람 가까운데부터서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웬수를 맺지 말아야 할 것을 다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웬수를 맺지 아니헐라면 남에게 악(惡)하게 하지 아니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에게 착하게 허되 보답을 바래지 아니하고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어떤 재산을 베풀고서, “내가 너를 살려주느니, 너는 일생동안 백골(白骨)이 되도록 잊지를 말아라. 그리고 목숨 바쳐서 그 은혜를 나한테 갚아야 하느니라.” 그러헌 말을 입으로도 할 필요도 없고, 그러헌 생각을 마음으로도 가져서는 아니 되것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받은 사람이 당장 부담을 느끼게 되고,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주는 사람 앞에서는 고개를 잘 들지를 못하고 항시 불안을 느끼게 되고, 그 생각이 속에서 쌓이고 쌓여 가지고 준 사람을 싫어하게 되고 꺼리게 되고, 언젠가는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담에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마는, 이것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지 말어라’ ‘은혜 베풀어 가지고 좋은 꼴 보지 못한다’ 막말로 말하면 그런 말이 되겠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뼈저린 가슴 아픈 그런 경험을 통해서 나오는 말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의 힘닿는 데까지 물심양면으로 은혜를 베풀어야 하고 자비를 베풀어야 됩니다. 단, ‘베풀되 보답을 바라지 말고 베풀고, 베풀되 상(相)이 없이 베풀어야 한다’ 이것입니다.

배은망덕한 꼴을 보고, ‘나는 다시는 옆에서 사람이 죽어도, 나는 밥 한술 못 주겠다’ 이건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물에 빠진 놈 건져주니까 보따리까지 내놓으라’, 그 보따리 내놓으라고 할까봐서, 물에 빠져서 곧 죽게 되는데 그것을 건져줄 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져주지 않는다고 허는 것은 이건 말이 되질 않습니다.
한 번 속고 두 번 속고 몇 번을 배은망덕을 당한다 하드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른 일, 착한 일을 내놓고는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허면 보답을 바래지 아니허고, 어떻게 허면 상(相)이 없이 착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뭣고~?’ ‘이 뭣고?’하면서, ‘이 뭣고?‘허는 마음으로 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뭣고?’를 놓치면 중생심(衆生心)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중생심으로 허는 일은 모두가 다 인연(因緣)의 인과(因果)의 올개미에 걸려드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라도, 어떠한 어려운 처지에서도 우리는 본참화두(本參話頭)인 ‘이 뭣고?’, 본참화두를 놓치지 아니허고 행동을 허게 되면, 자연히 상(相)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착한 일을 할 수가 있고,
웬수가 나를 해코지 하러 오드라도 ‘이 무엇고?’로써 상대를 허게 되면은 웬수도 굴복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속을 살아가다보면, 나에게 자비롭게 해 주고 친절을 베풀어 준 사람도 많이 만납니다마는, 까닭 없이 나에게 해롭게 하고 까닭 없이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그런 일을 더러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이렇게 규정을 내리고 미워하고, 그 놈을 언젠가는 혼을 내줄려고 이를 갈아붙입니다마는, 사실은 까닭 없이 나를 해롭게 하는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나에게 잘해 준 것도, 그것도 언젠가 내가 그 사람에게 잘해 준 일이 있어서 내게 잘해 주게 되는 것이고, 나에게 해(害)를 끼치는 사람도, 해를 끼칠 수밖에 없도록 자기가 그 원인을 진즉(趁卽) 다 심어 놓았기 때문에 그러헌 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 사람의 허물은 바로 내 허물이다’, ‘내 허물이 저 사람에게 부딪쳐서 되돌아오는 현상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13분30초~30분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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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송도인(栽松道人) ; 중국 선종(禪宗)의 제4조 도신대사(道信大師 580~651)가 제자를 맞아 인증을 하였지만, 제자가 너무 늙어 스승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법을 이을 사람이 없으니 몸을 바꾸어 오도록 하였다. 이에 몸을 바꾸어 후에 다시 만날 때 증거로 삼기 위해 황매산에 소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를 심었다’는 뜻에서 ‘재송도인(栽松道人)’이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5조 홍인대사(弘仁大師 602~675)이다.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
*행각(行脚) ; 스님이 일정한 거처를 가지지 않고, 스승의 밑을 떠나 참선의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지식이나 좋은 벗을 구해 마치 떠도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처럼 여러곳을 편력하는 것. 운수(雲水)와 같은 의미.
*행색(行色) ; 길을 떠나기 위하여 차리고 나선 모양.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등은(鄧隱) 조사 ; ‘등은봉(鄧隱峰) 선사’를 말함. 복건(福建)의 소무(邵武) 사람. 성은 등(鄧)씨.
어릴 때에는 지혜롭지 못한 듯 했다. 부모가 출가를 허락하자, 처음에는 마조(馬祖)의 문하에서 수행했으나 오묘한 진리를 보지 못하고는 석두희천(石頭希遷)에게로 갔다. 이렇게 왕래하기를 두세 번 거듭하다가, 끝내 마조의 가르침 아래서 계합(契合)하였다.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노장(老長) ; 나이가 많고 덕행이 높은 스님.
*방광(放光) ; 광명을 발하는 것.
*법사(法師) ; ①심법(心法)을 전하여 준 스님. ②불법(佛法)에 통달하고 언제나 청정한 수행을 닦아 남의 스승이 되어 사람을 교화하는 스님. ③설법하는 스님.
*상서(祥瑞) ; 복되고 좋은 일이 일어날 조짐.
*척사현정(斥邪顯正) ; 삿된 것을 거부하여 물리쳐, 불법(佛法)의 진리를 올바르게 나타내 보임.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사리(舍利) ; sarira의 음사(音寫). 신골(身骨)•유신(遺身)이라 번역. 시체나 유골을 뜻함. 그러나 오늘날에는 화장한 뒤에 나오는 작은 구슬 모양의 물질을 가리킴.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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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발 ; 늙어 노인이 된 처지.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법담(法談) ; 선사(禪師)들이 서로 법문을 묻고 대답하는 것.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화신(化身) ; 부처의 삼신(三身:法身•報身•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무연자비(無緣慈悲) ; 무조건의 자비(慈悲). 상대의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일체 평등으로 구제하는 자비심. 일체 평등의 이치를 깨달아 상대의 상(相:모습)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자비. 무연(無緣)이란 진여평등(眞如平等)의 이치를 깨달아 중생의 본체(本體)가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일으키는 자비.
*참- ;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올바르고 진실된’의 뜻을 더하는 말.
*배은망덕(背恩忘德) ; 남에게 입은 은혜를 잊고 배반함.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지집 ; ‘계집’의 사투리. *계집 ; ‘여자’나 ‘아내’를 얕잡아 이르는 말.
*웬수 ; ‘원수(怨讐)’의 사투리. *원수(怨讐) ; 자기나 자기집에 해를 입혀 원한이 맺히게 된 사람이나 집단.
*백골(白骨) ; 죽은 사람의 살이 썩고 남은 뼈.
*한술 ; 얼마 되지 않는 적은 음식이나 그 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숟가락으로 하나의 양.
*올개미 ; ‘올가미’의 사투리. *올가미 ;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한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이 무엇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열가지 병이 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해코지 ; 남을 해치고자 하는 짓.
*혼을 내줄려고 —> 혼내다 ;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매우 심하게 꾸지람을 하거나 벌을 주다.
*갈아붙이다 ; 분함을 억제하지 못할 때나 결심을 굳게 할 때, 독한 마음으로 이를 바짝 갈다.
*진즉(趁卽 좇을 진,곧 즉) ; 과거의 어느 때에 이미.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3. 10. 20. 15:23

§(세등46) ()없이 정진을 해야 / 다른 종교를 비방 말라 / 관심일법총섭제행 / (게송)청군앙면간허공~ / 여의고 찾지 않고 바로 그놈에 즉해서 화두 들어야.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정진을 하되 자기가 정진을 잘한 하고, 아주 의식적으로 자기 정진 잘하는 () 가지고 그러지를 말아라.’ ‘여법(如法) 정진을 하되 () 없이 정진을 해야 것이다.’ 이런 말씀도 계셨습니다.

 

해제를 하면 인연 따라서 걸망을 지고 어느 산천, 어느 계곡, 어느 모퉁이를 가더라도 걸음 걸음 옮길 때마다 염염불망(念念不忘)으로 화두를 거각해 나간다면, () 속이 바로 입선(入禪) 시간이 것이고, 걸음걸음이 바로 선방(禪房) 것입니다.

 

신도 여러분들이야말로 출가한 스님네 보단 () 노력을 더해야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바로 오욕락 속에서 자칫하면 죄를 의식적으로 짓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짓게 되기 때문에 배의 신심을 돈독히 갖지 아니하면 후회막급(後悔莫及) 일을 당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1 1초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상살귀(無常殺鬼) 생각 생각에 우리의 뒤를 쫓아오고 있기 때문에, 생각 늦추면 바로 무상살귀에 따라잡음을 당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46)—계해년 하안거해제 법어(1983.07.17) (세등46)

 

(1) 약 17분.

 

(2) 약 15분.

 

(1)------------------

 

옛날에 공자님이 사서삼경 가운데에논어(論語)’라는 () 있는데, 경의 첫머리에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 배워서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하냐.

유붕(有朋) 자원방래(自遠方來) 불역낙호(不亦樂乎).’ 벗이 있어서 데로부터 나를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이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하되내가 이렇게 공부를 잘하고 도가 있고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아니하되 성내지 아니하면 그것이 군자가 아니냐. 이러한 내용의 말씀이 있습니다.

 

배워서 때때로 익힌다 하는 것은글을 배워 가지고 열심히 읽는다그러한 뜻이 아니라,

마음 닦는 공부를 배워 가지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법희선열(法喜禪悅)! 정진을 가면은 거기에서 말로서 표현할 없는 기쁨이 있어. 그건 유교나 불교나 밖에 모든 예술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내가 공부를 잘하면 물론 깨달음을 얻었으면 말할 것도 없고, 설사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다 하드라도 올바른 방법으로 여법(如法)하게 수행을 하면, 자연히 데서! 그분이 그렇게 정진을 잘한다니 우리도 그분하고 같이 정진을 하자’ ‘그분이 정진을 해서 깨달음을 얻었다니 우리도 그분한테 가서 지도를 받고 공부를 하자이래가지고 데로부터서 많은 도반(道伴)들이 찾아오면 그것이 또한 기쁘지 아니하냐. 이건 유교나 우리 불교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마즈막에 가서,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이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하되 성내지 아니하면 이것이 또한 군자가 아니냐. 유교에 있어서 군자(君子) 하는 말은 불교에 있어서 보살(菩薩)이라고 하는 말로 대치를 해도 좋을 것입니다.

 

내가 정진을 잘하고, 내가 법력(法力) 있고 도력(道力) 있으되,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해.

요새 무엇을 잘하면 알아주기를 바래서 신문에 내고, 무슨 책에다가 발표를 하고, 라디오나 TV 방송을 하고 해서, 자꾸 요새는 자기의 잘하는 것을 만천하에 널리 널리 알려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알아주기를, 알아주도록 이렇게 온갖 수단과 방법을 취하고 있습니다마는,

옛날 성현들은 구태여 자기를 알아 달라고 선전을 하지를 했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해도 조금도 부족함을 느끼지를 했습니다.

 

성현들이 자기가 깨달은 진리법을 자꾸 설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선양(宣揚) 하는 것은 자기를 알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바른 길을 사람이라도 알려서 지혜의 눈을 떠서 생사해탈(生死解脫) 하기 위해서 중생들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 자기 자신을 알아 달라고 그러시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번을 청해야 법을 설하되, 법을 설해 가지고 사람이 알아듣고 받아들인다고 해서 기뻐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깨닫지를 못한다고 해서 언짢게 생각하지를 말어라' 하셨습니다.

그러냐 하면() 없이 ()하기때문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이 마음을 내기때문에, 자기의 () 들은 사람이 알아듣고 깨달았다고 해서 기뻐할 것도 없고, 알아듣고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해서 또한 언짢이 생각할 것도 없다 그말이여.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하되 성내지 아니한다 말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말이 것입니다.(3533)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정진을 하되 자기가 정진을 잘한 하고, 아주 의식적으로 자기 정진 잘하는 () 가지고 그러지를 말아라.’ ‘여법(如法) 정진을 하되 () 없이 정진을 해야 것이다.’ 이런 말씀도 계셨습니다마는, 계행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계행(戒行) 청정하게 지키되지킨다 () 없어야 참으로 사람이 율사(律師) 것이고, 정진을 하되 정진하는 () 없이 다못 여법하게 정진을 하되내가 정진을 잘한다 아주 거만을 빼고 그래서는 그것이 실다웁게 정진을 한다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유교나 불교나 도교나 또는 밖에 어떠한 ()라도 그것이 참다운 길일진댄, 중요한 점에 있어서는 우리는 공통점을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다른 종교를 비방하고 헐뜯고 그러지를 않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외도(外道) 지은 어떠한 신당이나 무슨 탑이나 그런 것을, 불자(佛子) 그것을 헐거나 파괴를 하지 말아라그러셨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비방하고 헐고 뜯고 싸우고 그러지를 말아라하신 까닭은, 눈으로 보면 세계의 모든 법이 속에 포함이 되어 버린 것이며,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법신불(法身佛) 표현이 아닌 것이 없기 때문에 구태여 그것을 때려부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맛 정법(正法) 우리가 믿고, 정법을 실천하고, 정법을 깨달라서, 정법을 선양(宣揚)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치 얼음을 깨고 부시고 그래 가지고 그것을 없앨랴고 것이 아니라, 봄이 돌아와서 태양이 빛나서 날씨가 화창하면 얼음을 뿌시고 칼로 쫒고 불을 피워서 녹일라고 하지 않아도, 제절로 얼음과 눈이 녹아 가지고 물이 되며 그것이 증발을 해서 천하에 잎이 피고 꽃이 피게 것입니다.

 

번뇌와 망상 일어나는 것을 그놈을 물리칠랴고 몸부림을 치고, 그놈을 없앨랴고 이를 악물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터억 화두만을 거각해 버리면은 번뇌와 망상은 자취가 없이 없어지는 것입니다.(3937)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이다하는 말씀이 달마혈맥론(達磨血脈論) 있습니다마는, ‘마음 관하는 법이 모든 행을 섭화한다. 포섭해 버린다.’ 바로 이러한 뜻을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 믿고 행하는 사람은 이렇게 뿌리를 해결지음으로서 가지와 이파리는 제절로 다스려지는 것입니다.

 

나무를 가꿀 때에 뿌리 닿는 곳에 좋은 흙이 닿도록 주고, 거기에 적당한 수분과 적당한 영양을 공급을 주면 제절로 줄기가 크고 가지가 번성을 하고, 거기에 잎이 피고 꽃이 피어서 훌륭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뿌리에는 좋은 흙이 닿지를 못하고 뿌리에는 수분과 비료를 공급해 주지 아니하고, 이파리에만 매달리고 가지에만 매달려 가지고 아무리 그것을 키우고 헐랴고 한들, 뿌리가 썩어들어 간다든지 아무 영양이 없고 수분이 없다면은 잎에다가 아무리 약을 풍기고 손질을 한다 해도, 나무는 결국은 시들어 죽고 좋은 꽃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좋은 열매도 얻지를 못할 것입니다.

 

우리 최상승법참선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달마 스님이 천삼백여년 전에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오시기 전에, 이미 수백 전에 불교가 중국에 들어왔습니다. 모든 경전이 들어오고 불상도 들어오고, 스님네도 들어오고, 그래서 중국에 많은 절도 세워졌고, 많은 강사도 나와서 활발하게 경을 연구하고 했습니다마는, 달마 스님이 백사십 세의 고령으로 중국에 건너오신 것은 바로내가 나를 깨닫는 최상승법을 위해서 들어오신 것입니다.

 

최상승법이 오늘 우리 한국에 면면히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한국에 모든 불자, 모든 한국 사람들에게 최상승법으로 지혜의 눈을 뜨게 하고, 나아가서는 세계에 최상승법을 선양을 해서 부처님의 본뜻이 온누리에 가득차게 되도록 우리는 해야 것입니다.(4319)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천육백 , 동안에 신라·고구려·백제·고려를 통해서 불교가 국교로서 숭앙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믿고 많은 불교문화재를 남기고 오다가, 이조 오백년 동안에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탄압하는 관계로 불교가 침체를 해서 내려오다가,

해방된 차츰차츰 불교를 믿는 사람이 불어나고, 지금 천삼백만을 헤아리고 있습니다마는,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은 가운데 불과 몇백 명을 넘지를 못하리라 생각이 됩니다. 참선을 하되 참으로 올바르게 참선을 하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은 같습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드라도 올바르게 하지 아니하면, 차라리 아니한 것만 같지 못한 것입니다. ‘호리지차(毫釐之差) 천지현격(天地懸隔)이다. 털끝만큼의 차이로 하늘과 땅으로 차이가 벌어져 버린다하는 것입니다.

 

지지리 옳게 가다가 마지막 중요한 고비에 가서 생각 삐끗 잘못하면제호상미(醐上味) 번성독약(翻成毒藥)이요.’

우유로 맨든 음식 가운데에 가장 맛있고 좋은 것이 제호()라는 약인데, 제호상미가 잘못 관리를 가지고 변해 버리면은 사람이 먹고 중독을 일으켜 가지고 죽게 된다 그말이여. 그래서 제호의 상미(上味) 독약(毒藥)으로 변한 거와 마찬가지여.

 

이렇게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 만나서 실천하기 어려운 최상승법을 만나 가지고 실천을 하되, 생각 삐끗하면 사마외도(邪魔外道) 변해 버린 것이다 그말이여.

 

공부를 가지고 화두가 순일(純一)해져 가지고 그럴 때에 생각 더디 의심하면,

거기서누가 나를 깨닫게 주었으면, 이럴 누가 나를 깨닫게 주었으면, 어서 깨달랐으면, 또는 이러한 상태로 영원히 갔으면이러한 생각으로..... (녹음이 끊김)(2954~4633)

 

 

 

 

(2)------------------

 

(게송 처음 구절 녹음이 끊김)

청군앙면간허공(請君仰面看虛空확락무변불견종(廓落無邊不見)

나무~아미타불~

약해전신사자력(若解轉身些子力)하면  두두물물총가옹(頭頭物物總家翁)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쳐다보면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몸을 돌이켜서 아래를 쳐다보면 거기에는 산도 있고 물도 있고, 나무도 있고 바위도 있고, 사람도 있고 짐승도 있고 벌레도 있고, 집도 있고 삼라만상(森羅萬象) 없는 것이 없이 벌어져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달은 하나지만, 땅에 있는 모든 강과 호수와 모든 물에는 달이 수억만 개로 있습니다. 그릇에 있는 달은, 수억만 개의 달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거든. 하늘에 있는 달은 고대로 있으면서 지상에 있는 모든 강물과 호수와 모든 물에 달이 떠있다 그말이여.

 

달을 보고서 우리는 하늘에 있는 달을 수가 있듯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맡고, 입으로 맛보고, 몸으로 느끼고, 생각으로 있는 온갖 경계를 통해서 우리는 볼래야 없고, 알래야 없고, 잡을래야 잡을 없는, 그놈을 깨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는 , 귀로 듣는 , 코로 냄새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감촉하고, 뜻으로 있는, 온갖 희로애락과 행주좌와와 생로병사를심소(心所) 통한 백법(百法), 그놈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윤회(輪廻) 하고 있지만, 그놈을 여의고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최상승법을 실천하는 학자는 여의고 찾지를 말아라. 여의고 찾을라고 데에서 길은 점점 멀어져 버리고, 짜증이 나고 시간은 흘러가는 것입니다.

 

여의고 찾지 않고 바로 그놈에 즉해서 화두를 돌이킨다면 오늘 해제를 했다고 해서 조금도 마음 해이해지지를 아니할 것입니다.

해제를 하면 인연 따라서 걸망을 지고 어느 산천, 어느 계곡, 어느 모퉁이를 가더라도 걸음 걸음 옮길 때마다 염염불망(念念不忘)으로 화두를 거각해 나간다면, () 속이 바로 입선(入禪) 시간이 것이고, 걸음걸음이 바로 선방(禪房) 것입니다.

 

앞으로 돌아오는 석달 동안, 지난 석달 동안보다도 훨씬 알뜰하게 단속(團束) 하고 화두를 거각해 나간다면, 지난 여름 동안 무더웠던 더위 속에서 닦고 닦은 힘이, 돌아오는 석달 동안에 정말 발휘가 되야서 반드시 지혜의 눈을 뜨게 납자(衲子) 생겨날 것입니다.(531

 

여름은 다른 해에 비교해서 후반에 상당히 더웠던 걸로 생각이 됩니다. 더위를 무릅쓰고 그렇게 모다 알뜰히 정진들을 하고, 그렇게 해서 이렇게 한자리에 다시 모다 초롱초롱한 눈동자와 무엇인가 깊은 뜻이 있음직한 그러한 얼굴로 자리에 다시 만나게 되니 기쁜 마음을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여기저기서 우절기에 결제(結制) 하고 안거(安居) 하고 해제(解制) 하면 한자리에 모여서 자자(自恣)회를 거행을 하고, 동안에 공부한 과정에 있어서 여러 가지를 반성을 허고, 서로 충고를 하고, 마음에 깨달은 바를 점검을 하고 이러한 의식이 엄숙히 거행되었던 것입니다.

삼천년 전에 부처님은 열반하셨지만은 거룩한 법은 오늘도 여전히 이렇게 전해 내려와서, 이렇게 한자리에 우리 사부대중(四部大衆) 만나서 최상승법을 설하고 듣고 이런 법요식을 거행하게 것은 이러한 다행스럽고 경행(慶幸) 도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법이 오늘도 면면히 흘러 내려오는 증거며, 부처님의 법신(法身) 오늘도 살아계신 우리의 마음과 법계에 가득차 계신 것을 우리는 확인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건한 마음으로항시 살아계신 부처님과 조사를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의 코앞에 항시 모시고 살고 있다 그러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바로 정법시대(正法時代) 것입니다.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들도 가정에서 공부를 하시되 그러한 마음으로 공부를 가시고 생활을 나가신다면, () 있어서는 승속(僧俗) 없는 법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은 세속에 오욕락(五欲樂) 속에 몸을 담아 있으면서 바로 오욕락을 초월해서 공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요구하는 수행법이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야말로 출가한 스님네 보단 () 노력을 더해야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바로 오욕락 속에서 자칫하면 죄를 의식적으로 짓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짓게 되기 때문에 배의 신심을 돈독히 갖지 아니하면 후회막급(後悔莫及) 일을 당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동안에 공부하는 스님네를 위해서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공양(供養) 올리고 신심으로 받들어 모시고, 그러면서 여러분은 가정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하시니 어깨에 , 내지 짐의 짐을 지고 정진을 하시느라고, 수고를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1 1초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무상살귀(無常殺鬼) 생각 생각에 우리의 뒤를 쫓아오고 있기 때문에, 생각 늦추면 바로 무상살귀에 따라잡음을 당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걱정을 것이 없습니다.

최상승법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불쌍할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다생(多生) 숙연(宿緣) 있어서 최상승법을 만났으므로 다못 생각 생각을 그렇게 알뜰히 단속만 가면 지옥에 떨어져도 겁날 것이 없고, 불구덩이에 빠져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불이 훨훨 타는 가운데에서도이뭣고?’ 것이며, 지옥에 끌려가서도이뭣고?’ 든다면 마침내 최상승법은 모든 마귀(魔鬼) 이겨내고야만말 불가사의(不可思議) 힘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지기량(汝之伎倆) 유진(有盡)이어니와  아지불채시무궁(我之不采是無窮)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여지기량(汝之伎倆) 유진(有盡)이어니와, 너의 기량(伎倆)—너의 온갖 수단과 재주는 끝이 있거니와,

아지불채(我之不采) 시무궁(是無窮)이다, 내가 취하지 아니한 것은내가 너한테 끌려들어 가지 . 너한테 말려들어 가지 아니한 것은 시무궁(是無窮)이다, 영원이다 그말이여.

 

멋대로 한번 나를 유혹할라면 보고, 나를 갖다가 막을라면 막아 보고, 멋대로 해봐라 그말이여.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팔만사천 모든 경계(境界) 두고 하는 말입니다.

나는 상관이 없다 그말이여. 니가 그럴수록에 나는 오히려 화두를 거각할 따름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해제 이후에 정진을 가다듬고 정진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수원 백씨 복순 영가(靈駕) 자리에 초청된 법계(法界) 모든 유주무주(有主無主) 고혼(孤魂)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오늘 법회의 법문을 듣고 이고득락(離苦得樂)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4634~6132)()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마즈막 ; ‘마지막(시간상이나 순서상의 )’ 사투리.

*보살(菩薩) : 보리살타(菩提薩) 준말。각유정(覺有情) • 개사(開士) • 대사(大士)등으로 번역。①성불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②대승교에 귀의, 사홍서원을 발하여 육바라밀을 수행하며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자리이타(自利利他) 행을 닦으며 51위의 수행계단을 지나 드디어 불과(佛果) 증득하는 .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 . ②가르침의 . 불법의 공덕. 보살의 위신력(威神力)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

*선양( 베풀널리 알릴 /오를나타낼 ) ; 명성이나 권위 따위를 널리 떨치게 .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제도(濟度 건널 /건널 ) ; 중생을 미혹의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 이르게 하는[] . () 구제(救濟). ()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건널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 도탈(度脫 건널 ,벗을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일맥상통(一脈相通)사고방식이나 성질 등이  대상 간에 서로 통하거나 비슷해짐.

*()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계행(戒行) ; ①계() 지켜 수행하는 . ②계율과 도덕.

*율사(律師) ; () () 능통한 스님. 일반적으로 계행이 청정한 수행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의 가르침. 또는 신봉자.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법신불(dharma-kaya 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

*달마혈맥론(達磨血脈論) ; 중국 선종의 초조인 달마대사의 법문을 기록한 선어록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공안)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2)

 

*(게송) 청군앙면간허공~’ ; [금강경오가해] 離色離相分 야부 게송 참고. *(넓을 ) *확락(廓落) ; 기개(氣槪) 크고 넓음. *(자취 ) *(적을 )

*가옹(家翁) ; 집안의 주인(主人). 주인공. 진리.

*심소(心所) ; 심작용. 마음의 움직임. 정신작용.

*백법(百法) ; 모든 현상을 가지 요소로 분류한 .

*단속(團束) ; 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납자(衲子 옷을 꿰맴 /사람 ) ; 남이 버린 옷이나 조각들을 기워서 만든 옷을 입은 수행승. 흔히 참선을 하는 스님(禪僧) 자신을 가리킬 사용.

*안거(安居 편안할 /있을 ) ; 인도의 불교도들은 4 15(또는 5 15)부터 3개월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 15일부터 7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 15일부터 다음해 1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서 외출을 금지하고 안주하여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수행에 전념한다. 처음을 결제(結制) 하고 끝을 해제(解制) 한다.

*결제(結制 맺을 /만들법도 ) ; 안거(安居)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 15일에 들어가며, 동안거는 음력 10 15일에 들어간다.

*해제(解制 /만들법도 ) ; (안거)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

*자자(自恣 스스로 /마음대로 ) ; 여름 안거(夏安居) 끝나는 날에 수행자들이 한곳에 모여 자신의 잘못을 고백(告白)하고 참회(懺悔)하는 의식.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 있는 가지 제자.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경행(慶幸 경사 /다행할 ) ; 경사스럽고 다행한 .

*정법시대(正法時代) ; 불법이 바르게 행해져 가르침과 수행자와 깨달음을 이루는 자가 있는 시기.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후회막급(後悔莫及) ; 이미 잘못된 것을 뒤늦게 뉘우쳐도 다시 어찌할 수가 없음.

*공양(供養) ; ①불()•()•() 삼보(三寶) 음식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

*무상살귀(無常殺鬼) ;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귀신(鬼神)이라는 . ‘인간존재가 무상하다 것의 무서움을 비유한 .

*숙연(宿緣) ; 전생(前生) 인연.

*이뭣고(是甚 시심마,시삼마) : ‘ 무엇고? 화두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무엇고?(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찾는 것이다.

*불가사의(不可思議) ; 말로 나타낼 수도 없고 마음으로 헤아릴 수도 없음. 생각이 미치지 못함. 생각할 수도 없는 놀라운 .

*여지기량(汝之伎倆)~’ ; 고봉 스님 [선요(禪要)] 示衆(其二) 천태(天台) 스님의 글로 인용됨.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말이 많다. 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경계(境界) ;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 ③상태 ④범위,영역.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 ()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법계(法界) ; 전세계. 전우주. 모든 장소.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 있거나 없는.

*고혼(孤魂)문상(問喪) 사람이 없는 외로운 .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사람의 선망부모가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 수천만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부모가 바로 사람의 부모고, 사람의 부모가 부모여서,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 하는 것입니다.

 

*이고득락(離苦得樂) ; 괴로움을 벗어나서 즐거움을 누림.

 

Posted by 닥공닥정
거울 법문2013. 10. 5. 19:28

§(414) (게송)견색비간색~ / 거울 속에 나타난 형상은 자기의 얼굴 /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 도에 들어가는 관문은 아상(我相) 깨트려야.

 

우리 앞에 벌려 있는 삼라만상 두두물물 이것이 제법인데, 제법(諸法) 거울 속에 나타난 형상이다 그거거든. 허공(虛空)이라고 하는 끝없이 넓고 넓은 거울 속에 나타난 모양인데, 모양이 모양이 아니고, 산이 나타나되 산이 산이 아니고, 소가 나타나되 소가 소가 아니여.

그러면 소가 아니고 산이 아니면 무엇이냐? 그것이 자기의 얼굴이여! 거울 속에 나타난 얼굴을 보고서 자기의 얼굴을 보는 거여무슨 소리를 듣되 소리 쪽으로 끌려가지 말고,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소리에서 자기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무슨 형상을 보되 형상으로 끌려다니지 말고 보는 형상에서 바로 자기를 보라 이거거든.

 

부처님이 설하신 법만 법이 아니고 우주법계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그것을 제법(諸法)이라 그러는데, 그것을 제법이라고 하냐 하면, 그것을 통해서자기 돌아올 수가 있으니 그것이 어찌 부처님의 설하신 법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말이여.

 

그래서 거울 속에 나타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얼굴이여. 거울 속에 나타난 모습,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 속에 나타난 삼라만상 두두물물을 바로 거기에 즉해서 자기로 돌아올 아는 사람은 바로 그곳이 법왕(法王) 계시는 곳이더라. 법왕성(法王城)이다.

 

정말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 믿는 법보제자(法寶弟子) 『진진찰찰이 부처님이요, 새소리 닭소리 바람소리 일체 소리가 부처님의 설법이요, 일체 색상(色相) 부처님의 몸뚱이다.

그러니 거기에 즉해서 '참나' 깨닫는 화두(話頭) 돌아와야 한다』고 하는 철저한 신심(信心) 가지고 그렇게 공부를 지어나가야 것입니다그러기 때문에이뭣고?’ 한마디에참나 깨닫고, 부처님의 마음을 깨닫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이 어찌 거짓말이겠습니까.

 

닦는데 아상(我相) 깨트리는 것이 깨달음에 나아가는 1 단계다. 그래서 금강경(金剛經) 부처님께서 21 동안 설하신 반야부(般若部) 육백부 경전 속의 권인데, 거기에 21 동안 설하신 법문의 요지가 아상을 깨트리는 것이거든.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했지마는 결국은 아상이여. 아상(我相) 하나를 무너뜨림으로서 ()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에, 21 동안을 설하신 것이다.

 

**송담스님(No.414)—1990 4 첫째 일요법회 법문. (용414)

 

 

(1) 약 16분.

 

 

(2) 약 21분.

 

 

(1)------------------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색성불애처(色聲不礙處)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이요  문성불시성(聞聲不是聲)이다.

우리가 눈을 통해서 있는 모든 색상(色相)—청황적백의 빛깔이나, 크고 작고 짧고 길고 하는 모든 모양이 그것이 () 아니여. 모든 색상이 색상이 아니여. 모든 소리를 듣되 소리가 소리가 아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눈으로 있는 것은그것이 색상(色相)이다. 저것은 집이요, 저것은 나무요, 저것은 바위요, 저것은 자동차다. 저것은 산이고 저것은 들이다 색상으로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고 그것이 푸르다 붉다 희다 검다 이렇게 그것에 대해서 자기 보는 대로, 느끼는 대로 그렇게 생각이 자꾸 생각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색상(色相) 색상(色相) 아니다』 이거거든. 중생은 그걸 보고색상이다하고 색상이라고 보고서 온갖 색상에 대한 알음알이가 일어나는데 색상이 색상이 아니다.

소리를 들으면저건 애기가 우는 소리다, 자동차 소리다, 비행기 소리다, 저건 기계 돌아가는 소리다, 저건 기침 소리다 소리를 듣고서 소리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 생각 생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그 소리가 소리가 아니다』 이거거든.

 

그러면 『색상을 보되 색상이 아니고, 온갖 소리를 듣되 소리가 아니다』하는 말은 무슨 말인가?

 

온갖 색상, 온갖 소리에 걸리지 아니하면(色聲不礙處),

그런데 거기에 걸리거든. 걸려 가지고 그놈에 끌려서보면 보는 대로 끌려 나가 가지고 그놈의 노예가 되어 가지고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무슨 소리를 들으면 소리라고 하는, 소리의 올가미에 걸려 가지고 그놈에 끌려다녀.

 

그런데 그놈에 걸리지 아니하면 친도법왕성(親到法王城)이다. 친히 법왕(法王) 계시는 곳에 도달하느니라.

 

 

우리 앞에 보는 모든 , 눈으로 있는 , 귀로 들을 있는 , 코로 냄새 맡을 있는 , 손으로 만져 있는 , 생각으로 느낄 있는 , 전부가 그것이 제법(諸法)인데,

우리 앞에 벌려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이것이 제법인데, 제법(諸法) 거울 속에 나타난 형상이다 그거거든.

 

허공(虛空)이라고 하는 끝없이 넓고 넓은 거울 속에 나타난 모양인데, 모양이 모양이 아니고, 산이 나타나되 산이 산이 아니고, 소가 나타나되 소가 소가 아니여.

그러면 소가 아니고 산이 아니면 무엇이냐? 자기의 얼굴이여! 그것이. 거울 속에 나타난 얼굴을 보고서 자기의 얼굴을 보는 거여.

 

무슨 소리를 듣되 소리 쪽으로 끌려가지 말고,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소리에서 자기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무슨 형상을 보되 형상으로 끌려다니지 말고 보는 형상에서 바로 자기를 보라 이거거든.

 

정든 사람이 죽으면정든 사람이 죽었다 가지고 울고불고 슬픔에 잠기고 그것에 끝날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일단은 자기의 죽음을 생각하고, 자기의 죽음만 생각할 아니라, 바로 거기서 자기로 돌아올 알아야 한다.

 

그러한 시시각각으로 나타나는 소리와 모양을 보고서 전부 그리 끌려다니고, 일생을 그러고 무량겁(無量劫) 그렇게 내려오기 때문에 생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해.

 

눈으로 보는 모든 색상, 귀로 듣는 모든 소리, 우리의 생각에 떠오르는 온갖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생각들, 그것을 제법(諸法)이라 그러거든.

우리가 ()하면은불법승(佛法僧) 삼보의 법하면은부처님과 법과 거룩한 스님은 삼보(三寶) 일체(一體)그러는데, 부처님이 설하신 법만 법이 아니고 우주법계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그것을 제법(諸法)이라 그러는데, 그것을 제법이라고 하냐 하면,

 

우리 눈으로 보면은 전부가 무상(無常) 것이고 성주괴공(成住壞空) 있고 생로병사(生老病死) 있고 생주이멸(生住異滅) 있어서 전부가 무상하고 허망하고 믿을 없는 뿐인데 그것을 어째서 거기다가 제법(諸法)이라 하냐?

그것이, 바로 그것이 법이기 때문에 법이라 그런 거여. 그것을 통해서자기 돌아올 수가 있으니 그것이 어찌 부처님의 설하신 법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말이여.

 

모든 삼라만상의나나, 이외의 모든 사람이나 동물이나 그런 () 있는 모든 동물, 무정물(無情物)—산천초목, 일월성진 그런 것들이,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그것이.

그것이? 그것은 법신불(法身佛)이기 때문에 그래. 법신불의 몸뚱이요, 법신불의 설법이기 때문에 바로 거기서 자기로 돌아올 있어야 만물지영장(萬物之靈長) 아니냐!

 

그래서 거울 속에 나타난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얼굴이여.

거울 속에 나타난 모습,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 속에 나타난 삼라만상 두두물물을 바로 거기에 즉해서 자기로 돌아올 아는 사람은 바로 그곳이 법왕(法王) 계시는 곳이더라. 법왕성(法王城)이다.

 

 

진진찰찰(塵塵刹刹)— 해나 달이나, 산이나 돌이나, 포기의 이파리나, 우는 새소리 이것이 진진찰찰인데 이것이 법신불(法身佛) 모습이요, 법신불의 설법(說法)이여.

 

그러냐 하면 법신불은 『무설이설(無說而說)인데, 설한 없이 설하신 것』이 법신불의 설법인데 어떻게 설하시냐? 동시(同時) ()하시면서 동시에 듣는 거여.

 

포기의 풀도 간단(間斷)없이 법을 설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모든 설법을 듣고 있어. 한덩어리의 주먹만한 , 좁쌀알 만한 모래알 하나하나라도 바로 위치에서 위없는 법을 설하면서 동시에 법을 듣고 계신 것이여.

설할 따로 있고, 들을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 () 동시(同時).

 

이러한 도리(道理) 우리가 바로 깨달라야 것이다. 이러한 도리는 말이나 생각으로 구할 없는 것이여. 중생의 사량분별로 헤아려서 있는 것이 아니야. 이것은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이라 하는 거여.

 

이러한 법문은 어떻게 하면은 그러헌 도리를 깨달을 수가 있느냐?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소리 듣자마자이뭣고~?’ 눈을 통해서 무슨 모양을 보자마자 바로 거기에 즉해서이뭣고?’

슬픈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기쁜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붉은 것을 봐도이뭣고?’, 파란 것을 봐도이뭣고?’,  좋은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속상한 소리를 들어도이뭣고?’

 

무슨 소리를 듣던지, 무슨 모양을 보던지 그것을 듣고 봄과 동시에 그것을 인연해서 번째 생각으로 번지기 전에 즉시이뭣고?’

이렇게 다잽이를 가면 마침내는 진진찰찰(塵塵刹刹) 설하고 들음이 동시인 법신불의 () 없이 설한 법문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법신불은 우리 중생의 눈으로는 수가 없다. 오직 보신(報身)이나 화신(化身)만이 우리는 수가 있다일반적으로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것은 초보의 단계에서는 그렇게 말할 밖에 없고 그렇게 말을 해야 이해할 있을 것입니다마는,

 

정말 우리 최상승법(最上乘法) 믿는 법보제자(法寶弟子) 『진진찰찰이 부처님이요, 새소리 닭소리 바람소리 일체 소리가 부처님의 설법이요, 일체 색상(色相) 부처님의 몸뚱이다.

그러니 거기에 즉해서 '참나' 깨닫는 화두(話頭) 돌아와야 한다』고 하는 철저한 신심(信心) 가지고 그렇게 공부를 지어나가야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이뭣고?’ 한마디에참나 깨닫고, 부처님의 마음을 깨닫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이 어찌 거짓말이겠습니까.(1633~3231)

 

 

 

 

 

 

 

(2)------------------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에 상관이 없고, 지식의 유무도 상관이 없고, 몸이 아프면 아픈 대로, 지식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지식이 있다고 뽐낼 것도 없고, 재산과 권리가 높다고 남을 업신여길 것도 없고,

공부를 나가는 최상승법에서는 첫째, 내가 지식이 있다고 해서 아상을 갖거나 남을 업신여기는 생각이 없으니도에 들어가는 관문이 아상(我相) 무너져야 하는 것인데, 아상이 어디에 있느냐 그말이여.

 

아무리 권리가 높고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내가 권리가 높다고 권리를 부리거나, 아무리 내가 재산이 많다고 남을 업신여기는 생각이 없는데, 그리고서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이뭣고?’ 화두만을 거각하고, 거각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성실히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데,

어디에 아상(我相) 붙고, 아만(我慢) 붙고, 남을 경멸하는 생각이 잠시인들 어디가 붙을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아무리 팔만대장경을 종횡으로 읽고 외우고, 아무리 박사 학위를 수십 개를 가졌고, 모르는 것이 없이 세상의 학문을 통달했다 하더라도,

내가 잘났다, 내가 제일이다, 아상과 아만을 가지고 남을 업신여기고, 남을 짓밟고이러한 생각이 마음속에 있다면 정말 사람은 존경받을 없는 보잘 없는 인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속담에벼는 익을수록에 고개를 숙인다했습니다. 학벌이 높고 재산이 많고 권리가 높을수록에 아만심(我慢心) 없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는, 남의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다면, 어디를 가나 사람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남을 업신여기고 짓밟은 아만심과 아상이 가지고 목에 힘을 주고 있으면, 가는 곳마다 사람은 미움을 받게 되고, 아무에게도 존경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무엇을 많이 가지고 가야 시집가서 업신여김을 받고 그런다고 부모를 졸라서 기둥뿌리까지 뽑아 가지고 무엇을 잔뜩 가지고 갈려고 그러고, 때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가니까 그러한 정도의 인간으로 밖에는 취급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다고 절대로 귀여움 받고 존경받지 못합니다. 가지고 가는 것은 가정 형편대로 가지고 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무리를 해서 빚을 내다가 가는 것도 옳지 못하고, 형편이 넉넉하면 잘해 가지고 가는 것도 좋지, 형편이 넉넉하면서도 쬐금 가지고 가고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니여. 형편대로 하면 되는 거여.

 

곤란하면 곤란한 대로 가고, 넉넉하면 넉넉허니 가지고 가서 모다 선물도 하고 그게 좋지마는, 첫째는 가지고 사람도 그러려니와, 시댁에서도 그거 많이 것으로서 며느리의 점수를 매겨서 되겠느냐 그말이여.

형편이 어려운데 너무 많이 가지고 오면 오히려 그것을 좋아하지 않고, 미리서부터서 조금만 오라고 이렇게 주어야 하거든.

 

며느리가 누구입니까? 생전 사후에 자기의 부모를 버리고 식구로 사람이니, 바로 호적으로 들어와 가지고 나의 혈통을 이어갈 며느리니, 얼마나 소중하냐 그말이여.

어찌든지 자기 뱃속에서 딸보다도 소중히 여기고 귀엽게 주어야 하거든딸은 자기 뱃속으로 낳지마는 결국은 자기를 버리고 신랑 따라서 사람이니까.

 

며느리는 비록 남의 뱃속에서 나왔지마는 자기 부모를 버리고 나의 혈통을 이어주기 위해서 자식과 일심동체가 되어서 손자를 낳아 며느리니,

어쨌든지 처음부터서 그러헌 마음으로 맞아들이고 그러헌 마음으로 안아주면, 얼마나 시부모를 마음으로부터서 존경하고 친정 어머니보다도 좋아할 것이 아니냐 그말이여.

 

그러면은 아들 마음도 편하고, 시부모 마음도 편하고, 며느리 마음이 편해야 식구 마음이 편하고, 뱃속에서 나오는 손주 손녀도 이쁘고 좋은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말이여.

 

포태(胞胎) 가지고 포태하기 전부터서 썩고 한탄과 원망, 슬픔과 괴로움,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애기를 포태를 하게 되면 애기가 절대로 훌륭한 자식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포태한 뒤에도 계속 썩고 원망하고 슬픔과 원한에 사무치는 마음으로 달을 지내면은 바로 애기가 그런 생각을 먹고 삽니다.

 

낳아 가지고 아무리 잘먹이고 입혀 봤자 뱃속에 있는 동안에 애기의 엄마가 썩고 원망하고 신경질 내고 미워하고 이러한 생각으로 되면은, 애기는 나중에 잘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 태교(胎敎)라고 그러죠.

 

가끔며느리시어머니말씀을 법상(法床) 와서 하게 되는데, 여러 보살님네나 거사님네, 아직 결혼을 청년이나 처녀들, 일단은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면 시부모를 모시게 되고, 자기도 얼마 가면 애기를 포태하고, 애기가 나서 자라면은 며느리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닦는데 아상(我相) 깨트리는 것이 깨달음에 나아가는 1 단계다.

그래서 금강경에도, 금강경(金剛經) 부처님께서 21 동안 설하신 반야부(般若部) 육백부(六百部) 경전 속에의 권인데, 거기에 21 동안 설하신 법문의 요지가 아상을 깨트리는 것이거든.

아상,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했지마는 결국은 아상이여. 아상(我相) 하나를 무너뜨림으로서 ()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에, 21 동안을 설하신 것이다 그말이여.

 

이것은 도에 들어가는 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세속에 사는 데에도 아상 그놈 때문에 부부간에도 싸우게 되고, 며느리와 시부모와도 싸우게 되고, 형제간에도 싸우게 되고, 세계가 아상 그놈 때문에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 마음을 비우고, 피차 자기 마음을 비우면 사람 마음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데, 각자 마음을 주장을 하고, 의견을 주장하고, 내가 옳다고 주장하고, 그런 데에서 남의 의견은 무시하고 짓밟게 되니까, 그래서 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념의 전쟁, ‘공산주의다 사회주의다 민주주의다 자본주의다하는 이념의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를 않고, 앞으로 언젠가는 신앙의 종교의 싸움이 있으리라고 진즉부터 그런 말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그것도 역시 이념의 전쟁이나, 종교 신앙의 전쟁도 한마디로 말해서 아상(我相) 때문에 그런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세계로 도약할 있는 그러한 오천 역사에 처음 맞이하는 그러한 세계에 도약하는 그런 좋은 계기를 맞이했으면서도 아상(我相), 아애(我愛), 아만(我慢), 아치(我癡), ''라고 하는 그것 때문에 그러한 좋은 도약의 계기를 살려나가지 못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대단히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노사의 관계가 공장, 회사의 경영자나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가 어찌 따로따로 남이겠습니까?

사장이 공장을 지음으로 해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거기에 직장을 얻어 가지고 일을 하게 되고, 노동자가 열심히 일을 잘함으로 해서 회사가 잘되어야 사장도 사업이 번창을 것이고, 아무리 노동자가 일을 할라고 해도 회사 자체가 문을 닫고 망해 버리면은 일자리가 없는 것이고,

다같이 피차(彼此) 위해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관계이면서 어찌 자기 쪽만 생각하고 웬수처럼 미워하고, 자기 욕심만 챙겨 가지고서야 어떻게 회사가 잘될 수가 있겠습니까?

 

정부와 백성의 관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부는 백성이 세운 정부이기 때문에 정부는 백성을 위해서 모든 일을 잘해야 것이고, 백성은 정부가 잘되어갈 있도록 모두가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열심히 함으로 해서 나라가 다스려지고, 다스려져야 우리나라가 잘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역시 나라고 하는 아만(我慢), 아상(我相) 놈을 비움으로 해서 그것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필연적으로 남북이 통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아만(我慢) ‘내가 제일이고 내가 나만이 옳다 주장을 하고 상대방의 의사나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화가 통하지를 않을 것입니다.

항상 사람이 얼굴이 다르면 생각도 다르듯이, 해방 40 년이 지낸 동안 똑같은 민족이면서 체제가 다르니 만큼, 교육제도가 다르니 만큼, 이념이 다른 만큼, 많이 차등이 생겼습니다.

 

아무리 이념이 다르고, 체제가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는 단군(檀君) 후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아무리 38(三八線)이라고 하는 선이 가로막혔다 하드라도 남북이 우리 나라인 것입니다. 언제든지 우리는 통일이 되어야만 하고, 다시는 민족끼리 싸우는 일이 없어야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우리는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부터 아만심 먼저 꺾고 아상을 꺾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데에서 상대방을 이해할 있고, 상대방을 도와줄 수도 있고, 대화할 있는 길도 트이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가 옳다. 속담에방에 들어오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나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그러는데, 각자 나름대로의 의견이 있겠지만 자기의 의견만을 주장해 가지고서는 대화는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첫째, 어떻게 하면은 아상(我相) 꺾느냐? 분별심(分別心), 눈으로 무엇을 보아도이뭣고?’ 귀를 통해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도이뭣고?’ 먼저 !

이뭣고?’ 먼저 터억 챙기고 나면처음에는 어렵지만 자꾸 챙기고 챙기고 하면, 나중에는 챙기지 안해도 저절로 챙겨진 때가 오는 것입니다. 무엇이고 항상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체질화가 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집으로 오고, 직장으로 집으로 오고, 항상 그렇게 댕겨 버릇한 사람은 직장에서 나와 가지고 술을 잔뜩 먹고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다시피 그래도 집을 찾아옵니다.

그러냐 하면, 많이 길을 다녔기 때문에 술이 만취가 되어 가지고 전혀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집을 찾아오는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꾸이뭣고?’ 하면, ‘ 된다 하지 말고 된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뭣고?’ 챙겨. 자꾸 챙기고 챙기고 하면은 나중에는 챙길려고 해도 저절로 챙겨지는 거여.

! 눈에 무엇이 들어왔다 하면이뭣고?’ 먼저 나오거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었다 하면은이뭣고?’ 

 

나중에는이뭣고?’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산을 봐도 산이 보이지 않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를 아니해. 수백 수천 명이 북실거리는 시장 바닥에 가서 있어도 아무것도 보여. 하나도 시끄럽지도 않고.

 

그래서 옛날에는 공부하시던 도인들이 일부러 요중 공부(鬧中工夫) 시험해 보고 익히기 위해서 장날이 돌아오면은 점심밥을 가지고 장터에 가서 복잡하고 시끄러운 가서 어디 한쪽에다가 방석을 하나 놓고 가만히 앉아서 정진을 하고, 점심때가 되면 그놈 까먹고, 그러고 저물 때까지 하다가, 장이 파하면은 토굴에 돌아와서 공부하고. 그러한 분들도 있었다고 그럽니다.

 

화두, 아까 조실 스님께서 화두를 하시는 데에 ()자를어째서 무자(無字)라고 했는고?’ ‘어째서 무자(無字)라고 했는고?’ 아주 , 주먹을 부르쥐고 무릎 위에다가 ! 놓고는 아침부터서 점심, 점심부터 저녁, 저녁부터서 밤에 잠도 주무시지도 않고 그냥,

 

그러다가 예불 시간에 예불을 하시면지심귀명례...”하고 엎드려 가지고는삼계대사 사생자부...” 그냥 엎드려서 잠이 들어 버렸어. “시아본사...”해도 일어나는데 일어나시고 엎드린 예불이 끝날 때까지.

옆에서 쿡쿡 찌르면서일어나라 하니까 입승(立繩) 스님이그거 놔두라. “밤잠 자고 정진하다가 엎드려 있는데 잠시 자게 놔두라.

 

처음에는 수군덕거리고 욕하고 빈정대고, 그렇지만 , 달을 열심히 한결같이 나가니까 대중이 모다보통 애가 아니구나!” 대중 가운데 어린 사람이 그렇게 공부한 것을 보고 모두 사람이 따라서 발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모다 가행정진(加行精進) 하고 그랬다고 그럽니다.(3232~5322)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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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견색비간색(見色非干色)~’ ; [금강경오가해] 莊嚴淨土分, 야부 게송 참고.

*법왕(法王) ; 부처님을 찬탄하는 . () 가장 수승하고 자재하다는 . 부처님은 법문(法門) 주인이며 중생을 교화함에 자유자재한 묘용(妙用) 있으므로 이렇게 이름.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울고불고 ; 크게 소리 내어 울기도 하고 부르짖기도 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 부처님의 가르침(法寶)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임.

*법신불(dharma-kaya 法身佛)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

*영장(靈長) ; 영묘한 능력을 가진 우두머리. 인간을 다른 생물과 대비하여 이른다.

*진진찰찰(塵塵刹刹) ; ①티끌 수와 같이 무수한 국토를 말한다. ②미세한 티끌 가운데에도 국토가 있다는 .

진진찰토(塵塵刹土), 찰찰진진(刹刹塵塵)이라고도 한다. 진진(塵塵) 티끌. () 산스크리트어 kṣetra 음사. (), (), ()라고 번역. 국토. 세계. . 장소. 영역.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 꿰뚫고 있는 법칙.

*대총상(大總相法門) ; 진여(眞如) 가르켜 말함. 진여의 실체. 진여가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섭한 것을 () 하고, 일미 평등(一味平等)하여 차별의 모양을 여읜 것을 총상(總相), 수행하는 이의 모범이 되는 것을 (), 관하는 지혜가 드나드는 것을 ()이라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

*보신(報身) ; 부처가 전생에 보살로 있을 세운 서원(誓願) 수행의 과보(果報)로서 받은 . 모든 부처가 법신·보신·화신을 동시에 갖추고 있지만 대표적인 보신불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 약사여래(藥師如來) 등이 있다.

아미타불은 48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성불한 보신불로서 서방의 극락정토(極樂淨土) 건립하여 중생을 교화하며, 약사여래는 12가지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성불한 동방의 유리세계(瑠璃世界)에서 중생을 교화하고 있다고 한다.

*화신(化身) ; 부처의 삼신(三身 : 法身, 報身, 化身)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공안)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2)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아만(我慢 /거만할·게으를 ) ;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오온(五蘊)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신체에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김. 자신을 과대 평가함.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

*금강경(金剛經) ; 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또는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金剛) 단단하고 날카로움을 뜻하는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며, 반야(般若) 지혜를, 바라밀(波羅蜜) 저편 언덕으로 건너는 , 열반에 이른다는 바라밀다(波羅蜜多) 줄임말이다. ‘금강석처럼 견고한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라는 부처의 말씀 뜻하는 것이다.

금강경은 반야경 육백부(六百部) 중에서 577권에 해당되고, 내용이 3백송(三百頌)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삼백송 반야경이라고도 하며, 대략 서기 150~200년경의 대승경전 최초기에 만들어진 경전이라 있다.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으로 전개되어, ()사상에 입각하여 집착 없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일을 중심 내용으로 대승불교의 기본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중생상(衆生相) ; 산스크리트어 sattva-saṃjñā  중생이라는 관념·생각. 부처와 중생을 따로 나누어 같은 중생이 어떻게 부처가 되고 무엇을 있으랴 하고 스스로 타락하고 포기하여 향상과 노력이 없는 소견.

*수자상(壽者相) ; 산스크리트어 jīva-saṃjñā  목숨이라는 관념·생각. 목숨이 있다는 관념·생각. 생명체라는 관념·생각. 자기의 나이나 지위나 학벌이나 문벌이 높다는 것에 집착된 소견.

*아애(我愛)자아에 대한 애착심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아치(我癡)자아(自我) 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단군(檀君) ; 우리 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태초의 임금. 단군 신화에 따르면 천제(天帝) 환인(桓因) 손자이며 환웅(桓雄) 아들로 기원전 2333년경 아사달(阿斯達) 도읍을 정하고 조선(朝鮮),  단국(檀國) 세워 2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38(三八線)2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1945 815 맥아더가 발표한일반명령 1 의해 한반도의 38도선 이북의 일본군의 항복은 소련이, 이남의 일본군의 항복은 미국이 접수한· 양국의 한반도 분할점령 군사분계선.

38선은 1953 6 · 25 전쟁이 끝나고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된 현재의 군사분계선과 다르지만, 현재까지도 흔히 군사분계선을 삼팔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요중 공부(鬧中工夫) ; 시끄러운 가운데 하는 공부.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