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선방 법문2014.04.07 11:17

§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 / 어떤 경계(境界)가 나타나건,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놔둬 버리고, 정신을 챙겨 화두를 들고나가야 돼. / 무기공(無記空).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삼매(三昧)는 ‘오직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참구해 나가는 것’뿐인 것입니다.
‘바른 정(定)’이라 하는 것은 밥 먹을 때 밥을 먹되 한 알갱이 쌀도 씹지 않고, 종일 걷되 한 조각의 땅도 밟음이 없고, 종일 말하되 한마디 말도 한 바가 없어야, 그래야 그것이 진짜 삼매고 바른 정이야.
‘양반 못된 것이 장터에 가서 큰소리 치고, 개 못된 것이 들에 가서 짖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 선방에 와서 자기가 잘난 체하고 큰소리 치고 남을 멸시하고 마구잡이 막 행동을 하고 한다면 그건 수행자가 아니어.
**송담스님(No.524) - 94년 동안거결제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4.02.06)에서.

약 16분.


그리고 주력(呪力)을 하거나 기도를 하다보면 의술(醫術)을 배우지 안 했는데 침도 놓고 또 손으로 요렇게 만져서 지압 같은 것도 하고 또 무슨 약처방 같은 것도 이렇게 일러주는 그런 능력이 생기는 수가 있습니다.
그건 전생(前生)에 의술을 공부를 했거나 또는 ‘내생(來生)에는 내가 의술을 통달해 가지고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리라’하는 그런 원력(願力)을 세웠거나 그런 경우에 금생(今生)에 그렇게 주력을 하다보면, 기도를 하다보면 그런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수가 있습니다.

그걸 꼭 나쁘다고 할 것은 없으나 이 선방(禪房)에 들어와서는 자기 공부 할라고 들어왔지 여기 와서 사람들 병 고쳐 줄려고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만약에 그런 능력이 있어서 이사람 저사람 하다보면 많이 모여 들어가지고 이 선방이 완전히 병 치료하는 병원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제(結制) 중에는 선방 내에서는 그걸 좀 삼가하시는 것이 자기를 위해서도 좋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좋고, 선방을 위해서도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 그런 좋은 능력이 있으면 해제(解制)하고 적당한 자리에서 만나서 병을 치료해 주시는 것은 뭐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참선을 하는데 자꾸 이상스런 어떤 경계(境界)가 나타난다 하면 그 경계가 좋은 경계가 되었건, 무슨 신비한 경계가 되었건 거기에 집착(執着)을 하면 안 돼.
그것은 그대로 놔둬 버리고 정신을 딱 챙겨 가지고 화두를 계속해서 화두를 들어나가야 돼.

천하 없는 신비하고도 묘한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거기에 따라가고 거기에 집착하면 그건 공부가 아냐.
그냥 고대로 물리치려고 하지도 말고 그대로 놔둔 채 똑바른 정신으로 화두만 떠억 들고 나가면 계속 그러면 결국은 그 경계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여.

공부하는 가운데 환상이 나타나거나, 부처님이 나타나거나,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거나 별별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참 경계가 아니야.

그리고 참선하고 있으면 집에서 뭔 일 일어나는 것이 나타나서 미리 알게 되고,
‘집에 누가 죽었다’하면 가서 보면 죽어갔고 있고, ‘누가 올 거다’하면-참선 중에 그것이 그냥 자연히 알아져서-가서 보면 누가 와 있기도 하고 그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스스로 식(識)이 맑아지니까, 그 맑아진 식의 능력으로 그것이 알아지는 수도 있고 또 어떠한 잡신(雜神)이 이런 것을 와서 일러 주기도 하고 그런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식(識)이 맑아져서 알아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도(道)를 통한 것과는 별개의 것입니다, 그것은.
그게 환히 알아지니까 ‘내가 도통(道通)을 했구나!’ 그렇게 착각을 하시면 안 됩니다. 식(識)이 맑아지면 그런 것이 알아지는 수가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도(道), 내가 나를 깨달아서 견성성불(見成成佛)하는 것과는 영판 길이 다릅니다 그게.
그것은 공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고 거기에 집착하면 정말 사도(邪道)로 빠지게 되는 것이니까 집착하지 말고, 그냥 고대로-그걸 사용하려고 하지도 말고, 좋다는 생각도 하지도 말고-그냥 없었던 걸로 놔 버려야 합니다.
놔 버리고 자꾸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으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만을 꾸준히 들고 나가면 그런 것이 있다고 해서 해로울 것도 없습니다.

화두를 놔 버리고 그런 데에 집착(執着)을 하고 그런 데에 빠져 가지고, 그런 거 아는 소리를 하고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정도(正道)하고는 멀어져 버리는 것이고, 잘 되어 봤자 점쟁이 같은 것 밖에는 안 되는 것이니까,
모처럼 이 정법(正法)을 믿고 참선을 하는 사람은 그러한, 말해서 초능력이라고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것은-뭣한 사람은 그런 것을 얻기 위해서 무척 노력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마는-그건 정도(正道)가 아닙니다. 그렇게 이해하시고.

또 예불(禮佛)을 하러 올라가고 내려가고 또는 밤에 정진할 때, 환히 아주 백촉짜리 불을 켜논 것처럼 환히 모든 것이 비쳐,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데 자기 눈에는 환히 그렇게 광명(光明)이 보이는 수가 있어.
그런 것도 역시 그런 거를 좋아하는 마음을 내지 말고, ‘머지 않아서 내가 도통하려고 이런가 보다’고 그러한 생각도 하지마. 집착(執着)하지 아니하면 아무 상관이 없어.

그것이 꼭 나쁜 것이다 좋은 것이다 말할 것도 아니고, 문제는 거기에 집착(執着)하면 그것이 나쁜 것으로 변하는 거고,
집착하지 않고 놔둬 버리고 올바르게 정진을 해 나가면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여. 그렇게 아시기 바라고.

그리고 ‘정진하다 보면 코로 향내가 난다’ 그럴 수가 있습니다. 향내가 날 수도 있고.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는 그런 것이 없어질 때가 올 것입니다. 향내가 정상적으로 나는 향내라면 다른 사람 코에도 다 그 향내가 나야 할 텐데 자기만 느끼는 것이거든.

그러니까 자기가 그 동안에 어떻게 어떠한 공부를 해 왔느냐?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해 왔느냐? 과거에 어떠한 업을 지었느냐? 그런 것에 따라서 그렇게 향내가 날 수도 있고, 캄캄한 밤에도 환히 모든 것이 다 보일 수도 있고, 여기서 수백 리 떨어진 데에서 하는 소리를 여기서 들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경계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능엄경(楞嚴經)에 보면 50가지의 그런 여러 가지 경계에 대해서 소상(昭詳)하게 말씀을 해 놓으신 것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도(道)와는 별개의 것이여.
그런 경계가 나타났을 때,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우리 정법을 수행해 나가는 사람의 주의해야 할 마음가짐이다.
그런 신기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경계가 일어나면-그것에 집착을 했다 하면, 거기서부터 정도(正道)에서는 멀어져 버리는 것이다 하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시기를 바라고.

삼매(三昧)와 선정(禪定)은 다른 것이냐 틀린 것이냐? 같은 말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삼매(三昧)는 인도 말이고, 중국 말로는 정(定)이라 그런 것인데 같은 말이죠.

그런데 무엇이고 한 가지-책을 읽는데 거기에 열중하고 골몰해 가지고 시간 가는 중도 모르고 밖에서 떠드는 소리도 안 들리고 한다면 그것은 ‘독서 삼매’가 될 것이고,
글씨를 쓰는데 열심히 글씨를 쓰다보면 자기가 글씨를 쓴다는 생각도 없고, 잘 쓸라는 생각도 없고, 밖에서 아무리 시끄러워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글씨 쓰는 데만 정신이 통일이 된다면 그것은 ‘글씨의 삼매’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일도 마찬가지여. 일에도 열중하다보면 시간 가는 중도 모르고 거기에 집중을 하게 되면은 그것은 ‘일의 삼매’가 되는 것입니다.

참선도 ‘이뭣고’가 되었건 또는 ‘옴 마니 반메 훔’이 되었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이 되었건, 일심(一心)으로 하다보면 그것도 삼매에 들어가는 것이고, 그것도 정에 들어가는 것인데,
정(定)에는 사(邪)의 정, 삿된 정과 바른 정이 있어. 삿된 정에 빠지면 삿된 결과가 오는 것이고 바른 정에 들어가야 바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니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삼매(三昧)는 ‘오직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참구해 나가는 것’뿐인 것입니다.
바른 정신으로 바른 신심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해 나가야 더이상 의심이 커질라야 커질수가 없고, 더이상 간절할라야 간절할 수 없는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야 해.
그래 가지고  순일무잡해 가지고 나가면은 결국에는 의단(疑團)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인데,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오직 그 길이다.

그리고 참선하다 보면 정말 시간가는 줄 몰라 가지고, 그런데 그러한 상태에서도 화두에 대한 바른 의심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따악 유지가 되어가야지,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무기공(無記空)에 빠지면 그것은 바른 참선이 아니여.
설사 모든 세상을 훤히 알고 신통술이 나와도 그것은 정법이 아니다 그말이여.

그래서 참선하는 사람은 그러한 무기공에 떨어진 것을 삼매에 들었다고 좋아하고 착각을 하고 남에게 자랑을 하고 그런 생각을 갖는다면, 그 사람은 바르게 정진을 한 사람이 아니다.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중이 모여서 선방에 와서 정진을 할 때에는 대중의 법도(法度)에 순응하면서 그 가운데 정진을 잘 잡도리를 해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몇 시간을 꼼짝도 않고 앉을 수가 있다. 나야말로 이 가운데서 제일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다.’ 그런 생각을 속으로 가지고 있고,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은 ‘별 사람들이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들이 아니다’하고 낮잡아보고 멸시하고 그런 것은 정신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여.
24시간을 꼼짝도 않고 앉았다 하더라도 생각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거여.

40년 동안을 꼼짝 안 하고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한 스님이 있었는데, 자기는 한국에서 제일 정진을 잘한 도인이라고 착각에 빠져갖고 있었어. 마곡사에 그런 스님이 있었는데, 그게 40년이 아니라 억겁 동안을 앉아서 꼼짝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법이 아니여.

‘바른 정(定)’이라 하는 것은 밥 먹을 때 밥을 먹되 한 알갱이 쌀도 씹지 않고, 종일 걷되 한 조각의 땅도 밟음이 없고, 종일 말하되 한마디 말도 한 바가 없어야, 그래야 그것이 진짜 삼매고 바른 정이야.

여러분은 일단 이 용화선원에 방부(房付)를 들였으면 용화선원의 법도에 순응하면서 여법하게 정진하되, 다른 사람에게 이만큼도 방해를 주지 아니해야 해.

다른 사람에게 방해를 주지 아니하면서 자기 공부를 안으로 착실하게 해 나가야 한다.
자기 공부 잘한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법도(法度)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마음을 동요하게 만들고 그렇다면, 그 사람은 벌써 바른 마음가짐이 되어 있질 않거든.

그 점에 대해서 어느 선방에 가더라도 마찬가지여. 그 선방에 가면 그 선방의 법도를 지키면서 다른 분에게는 조금도 방해를 주지 아니하면서 자기 공부를 내부적으로 착실하게 다져 나갈 줄 알아야 해.

그러다 보면 말이 필요가 없는 거여. 말을 많이 하고 큰소리를 치고-선방에 와서 자기가 잘났다고 큰소리 치고, 자기 이외에 누가 나만큼 공부한 사람이 없냐고 그런 생각을 갖는다면 그게 될 거냐 그말이여.

‘양반 못된 것이 장터에 가서 큰소리 치고, 개 못된 것이 들에 가서 짖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 선방에 와서 자기가 잘난 체하고 큰소리 치고 남을 멸시하고 마구잡이 막 행동을 하고 한다면 그건 수행자가 아니어.
그 점에 대해서 각별히 명심을 하시기를 바랍니다.(38분54초~54분4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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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呪力) ;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로 하는 기도. 진언(眞言)·다라니(陀羅尼)의 효과.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선방(禪房) ; 참선(參禪)하는 방.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들어가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들어간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식(識) ; ①식별하고 판단하는 마음 작용. 인식 작용. 인식 주관. ②구체적으로 인식된 내용.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능엄경(楞嚴經) ; 본이름은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릉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10권. 당(唐)의 반자밀제(般刺蜜帝) 번역.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세존과 아난(阿難)의 문답으로 시작하여 깨달음의 본성과 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하고 여래장(如來藏)이 무엇인가를 밝힘.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관음신앙이라 하고 능엄다라니(楞嚴陀羅尼)를 설한 다음, 보살의 수행 단계, 중생이 수행하는 과정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번뇌에 대해 그 원인과 종류를 밝힘.
*소상(昭詳 분명할 소,자세할 상) ; 분명하고 자세함.
*불가사의(不可思議) ; 말로 나타낼 수도 없고 마음으로 헤아릴 수도 없음. 생각이 미치지 못함. 생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일.
*삼매(三昧) ; 정(定). [범]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일심(一心) ; ①대립이나 차별을 떠난 평등한 마음. ②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마음. 통일된 마음. ③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천정한 마음. ④아뢰야식(阿賴耶識).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때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법도(法度) ; 생활상의 예법과 제도(制度)를 아울러 이르는 말.
*장좌불와(長坐不臥) ; 밤이 되어도 눕지 않고 늘 앉아서 수행 정진하는 것.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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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