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라만상 두두물물'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5.12.12 §(026) 동짓날 법회를 하는 이유? /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 / 참선을 해야만 무주상 보시를 할 수가 있고, 무루복을 닦을 수가 있다.
  2. 2014.10.11 §(242) (게송)방거화쟁발~ /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 / 이모 코 / ‘이것이 무엇인고?’의 『이것』은 마음의 작용을 일으키는 본바탕을 가리키는 것.
  3. 2014.08.17 §(398)(게송)대호삼만육천경~ / 삼라만상이 다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 / (게송)삼라만상동귀환~ / 백장청규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밝은 데에서 밝은 데로....
  4. 2014.07.18 §(377) (게송)삼라만상동귀환~ / 선가귀감(禪家龜鑑)-팔만대장경의 골수(骨髓) / 도인 81행-영아행(嬰兒行) / 참선에 요긴한 점-삼요, 무조건 ‘이뭣고?’
  5. 2014.03.24 §(445) 진짜 화두 / 포구발심(怖懼發心) / 시삼마(是甚麼)는 가장 근원적인 화두 / 화두 들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 화두를 안 들기가 더 어려운 것이다.
  6. 2014.03.17 §(184) 우리는 어떻게 바른 스승을 만날 수가 있을까? 무엇을 보고 바른 스승을 분별을 헐 수가 있을 것인가? / ‘한 생각’ 돌이키면 ‘한 생각’ 성불(成佛) /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7. 2014.01.01 §(428) (게송) 법법본래무소주~ / 화두 의심이 되고 안되고 따지지 말고 중단없이 한결같이 해 나가면 순일무잡 타성일편이 되어, 의단을 타파해서 본래면목을 깨닫게 된다.
  8. 2013.10.11 §(401) (게송) 흉중하애부하증 자괴인전백불능 제차현성공안외 차무불법계전등 // 현성공안
  9. 2013.10.05 §(414) (게송)견색비간색~ / 거울 속에 나타난 형상은 자기의 얼굴 /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 도에 들어가는 첫 관문은 아상(我相)을 깨트려야.
법회(동지차례)2015.12.12 11:27

§(026) 동짓날 법회를 하는 이유? / 일체(一切) 유심조(唯心造) / 참선을 해야만 무주상 보시를 수가 있고, 무루복을 닦을 수가 있다.


동지가 돌아오건, 입춘이 돌아오건 그것이 무슨 참선해 나가는데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마는, 그러한 우주의 질서, 천지자연의 섭리를 보고서, 그것을 보고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옛날부터서 그러한 계절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법회(法會) 거행해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주의 변화, 대자연의 섭리 이런 것들이 전부가 뭐라고 표현할 없는 물건 발현인 것입니다.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이 우리의 앞에나, 뒤에나, 머리 위에나, 다리 밑에나, 거울이 거울이, 무한대로 거울이 있는데, 거울에 보인 것이 자기의 얼굴이 보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이, 자기의 모습이 거울에 비추어서 반사되어서 자기에게 돌아온 것이다.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얼마 가면은 타락할 있는 복이다. ‘없을 ()’, ‘ ()’, 무루복은샘이 없는 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지은 복이 영원히 타락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무주상 보시를 수가 있고, 어떻게 해야 무루복을 닦을 있느냐? 거기에 가서 참선을 해야만 무주상 보시를 수가 있고, 무루복을 닦을 수가 있다 말씀입니다.

**송담스님(No.026)—76 동지법문 (76.12.22)

약 15분.

이쪽을 요리 두르고 앉아서 얼굴을 보시고 들으십시오.

오늘은 병진년 11 초이튿날 동짓날입니다. 오늘 동지(冬至) 오전 2 35 동지 () 그렇게 됐지마는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시간을 상관하지 아니하고 사시(巳時) 이렇게 법회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동지는 무슨 날인고 하면은 낮의 시간이 제일 짧고 그리고 시간이 제일 날입니다. 그러면 밤이 제일 짧고 낮이 날은 언제냐 하면 하짓날(夏至날)입니다.

하짓날은 낮이 제일 길고서 밤이 짧다가 차츰차츰 하루에 1분씩 낮이 길었던 날이 1분씩, 1분씩 짧아져 가지고, 추분(秋分) 돌아오면은 밤과 낮의 길이 똑같아졌다가 그것이 차츰차츰 반대로 1분씩 짧아져 가지고는 동지가 되면은 하지의 정반대로 낮이 제일 짧고, 밤이 제일 길어집니다.


동지가 지내면서부터 1분씩, 1분씩 낮이 길어지기 시작해 가지고, 이듬해 춘분(春分) 돌아오면은 같아집니다. 밤과 낮이 똑같아졌다가 춘분 이후로 1분씩, 1분씩 길어져 가지고 하지가 되면 제일 길어지고, 이렇게 해서 년을 통해서 그렇게 길어졌다, 같았다, 짧아져 이렇게 됩니다.


지구가 해를 년을 걸려서 자신이 하루에 바퀴씩 돌면서 태양을 바퀴 도는, 일년 걸려서 돌아가지고 다시 제자리에 돌아옴에 따라서 이렇게 낮과 밤의 시간이 차이가 있게 됩니다.


그런데 어째서 동짓날 이렇게 법회를 갖게 되느냐? 다른 절에서는 동짓날 () 새벽에 들었으면 새벽에 팥죽을 쑤어서 올리고 축원(祝願) 하고, 밤에 들었으면 밤에 팥죽을 쑤어서 올리고 축원을 하고 이러느냐?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우주의 모든 질서가 음양(陰陽)으로 노나서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래는 그것이 음양이 없는 것이지마는일단 그것이 본래는 음도 없고 양도 없는 , 뭐라고 표현할 없는 것이지마는,

그것이 아무 바람도 없고, 아무 움직임이 없을 때는 물결이 일다가, 그것이 물결이 일어났다 하면은 물결, 버큼 하나 일어남으로 해서 조용했던 넓은 호수에 파도가 좌악 일기 시작한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물결 일어남으로 해서 일만 물결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본래는 음양도 없지마는 없는 자리에서 음양이 벌어지고, 음양이 팔괘(八卦), 팔괘에서 24, 24괘에서 360도로 이렇게 해서 세계가 벌어지고, 가운데 생로병사(生老病死) 성주괴공(成住壞空) 생주이멸(生住異滅) 벌어져 가지고, 그것을 가리켜서 윤회(輪廻), 결국은 윤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윤회의 물결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자가 가난해졌다가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었다. 부자가 되면 영원히 부자가 것이 아니라, 얼마 동안 가다가 가난해지고 이렇습니다. 한번 부자가 되면 영원히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지마는 시절인연(時節因緣) 도래(到來)하면은 차츰차츰 차츰 가난해지게 됩니다.

가난해져 가지고 영원히 가난하게 살면은 큰일날 텐데 가난한 사람이 차츰차츰 일어나기 시작하면은 국중(國中) 거부(巨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대(當代) 일생 동안 부귀를 누리기도 하고 , 가기도 하고, 대를 가기도 하고, 당신 일대에도 채우지 못하고 금방 말년에 고생을 하는 사람도 있고, 가지 각가지인데,

년에 24계절이 돌아가는 , 그것을 보고서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무상하다 하는 것을 우리는 깨달라야만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지가 돌아오건, 입춘이 돌아오건 그것이 무슨 참선해 나가는데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마는, 그러한 우주의 질서, 천지자연의 섭리를 보고서, 그것을 보고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옛날부터서 그러한 계절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법회(法會) 거행해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주의 변화, 대자연의 섭리 이런 것들이 전부가 뭐라고 표현할 없는 물건 발현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물건이라고도 없는 진여자성(眞如自性) 자리에서 파도가 일어나 가지고 가지가 뻗고, 잎이 피고 하는 것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자기 마음이 바르고, 자기 마음이 편안하고, 자기 마음이 기쁘고 행복한 사람은 하늘을 봐도 희망에 넘치고, 꽃이 피는 것을 보고도 희망에 넘치고, 가을에 단풍이 지는 것을 보고도 조금도 슬퍼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이 고독하고, 자기 마음이 의지할 곳이 없고, 자기 마음이 서글픈 사람은 , 밝고 뚜렷한 가을의 고운 달을 보고도 눈물이 주루루 한숨이 쉬어지고, 곱게 곱게 꽃을 보고도 한숨을 쉬게 되고, 어떠한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도 하나도 아름다운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느냐? 자기 마음과 우주 법계에 삼라만상과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허공이라고 하는 커다란 거울이 있는데, 거울에 자기의 마음이 보인 것이 바로 우리의 눈으로 있는 것들이요, 귀로 들을 있는 것들이요, 코로 맡을 있는 것들이요, 입으로 맛볼 있는 것들이요, 몸뚱이로 촉감으로 감각할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화엄경(華嚴經) 제일게(第一偈)일체(一切) 유심조(唯心造)’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일체(一切) 말은모든 이라 말이예요.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든 것이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마음으로 되았다』 말이예요.

마음으로 되었다 말이 바로 아까 말씀드린자기의 마음이 밖으로 나타나 가지고, 그것이 다시 자기에게 비추어 것이다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이 우리의 앞에나, 뒤에나, 머리 위에나, 다리 밑에나, 거울이 거울이, 무한대로 거울이 있는데, 거울에 보인 것이 자기의 얼굴이 보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이, 자기의 모습이 거울에 비추어서 반사되어서 자기에게 돌아온 것이다.


이것은 여러분이 참선을 하시면서 가슴에 손을 얹고 냉정히 관찰을 보고 반성을 보면 이러한 이치는 분명 여러분이, 과연 그렇구나!’하고 아실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동짓날을 맞이해서 우주 시간, 계절의 변화를 인연해서 자신의, 나의 일신(一身) 따르는 빈부귀천 모든 것이 그와 같다고 하는 이치를 우리는 되돌려서 깊이 뉘우치고, 거기에서참나 발견할 있는 참선법(參禪法) 가일층 정진을 하셔야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조실 스님 법문에는 너무나도 깊은, 그리고 중요한 법문을 여러 가지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 무주상 보시를 해야 사람은 무루복(無漏福) 닦는 것이 된다. 무루복을 닦아야 영원히 타락이 없는 것이다.


유주상(有住相), 내가 누구에게 보시를 하거나, 부처님께 시주(施主) 하거나, 어떠한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희사(喜捨) 하거나, 이것이 보시에 들어갑니다마는,

보시를 하고서내가 이러한 보시를 했다, 이러한 희사를 했다, 이러한 시주를 했다 스스로 마음에 그러한 자랑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장한 일을 했다고 스스로 자부를 하면서, 남에게 자랑을 하고 뽐내고 으시대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은 유주상 보시(有住相布施), 유주상 보시를 하는 것은 무루복이 아니라 유루복(有漏福) 밖에는 되지 않는다.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얼마 가면은 타락할 있는 복이다 그말이여. ‘없을 ()’, ‘ ()’ 무루복은샘이 없는 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지은 복이 영원히 타락이 없다.


우리가 복을 지으면 복의 차이에 따라서  천당에 올라가게 됩니다. 아주 복을 많이 짓게 되면은 아무 괴로움이 없는 천당에 태어나는데, 천당에 태어나면은 영원히 천당에서 살수 있느냐? 하면 그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은 복만큼 복을 누리고 나면은 지상으로 떨어지거나, 또는 축생이 되거나, 또는 그밖의 악도에 떨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루복을 닦은 사람, 무주상 보시를 사람은 천당에 태어나되, 천당에서 복을 누리는 기간이 오래간다 말씀이여.

그런데 무루복 가운데에도 () 없는 복을 닦을려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무주상 보시를 수가 있고, 어떻게 해야 무루복을 닦을 있느냐?

거기에 가서 참선을 해야만 무주상 보시를 수가 있고, 무루복을 닦을 수가 있다 말씀입니다.


금강경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주상(無住相)이라고 것에 대해서 거의 전편(全篇) 걸쳐서 도리를 그렇게 간곡히 말씀을 주셨습니다.

지혜스럽게 닦아야 무주상을 수가 있고, 무루복을 닦을 수가 있어서 영원히 타락이 없는 해탈도에 이르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처음~152)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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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巳時) ; ①지난날에 쓰던 십이시(十二時)가운데 여섯 번째 (). 오전 9시부터 11까지를 말한다. ②지난날에 쓰던 이십사시(二十四時)가운데 열한 번째 (). 오전 9 반부터 10 반까지를 말한다.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 간절히 원하고 .

*음양(陰陽) ; 우주 만물의 서로 반대되는 가지 기운으로서 이원적 대립 관계를 나타내는 . 달과 , 겨울과 여름, 북과 , 여자와 남자 등은 모두 음과 양으로 구분된다.

*버큼 ; ‘거품 사투리.

*팔괘(八卦) ; 중국 상고 시대의 복희씨(伏羲氏) 만들었다고 하는 여덟 가지 (). 양효(陽爻) 음효(陰爻) 이루어진 개의 효를 겹치어 자연 세계의 기본 요소인 여덟 가지의 () 나타내는 것으로 (:, 하늘), (:, ), (:, ), (:, ), (:, 우레), (:, 바람), (:, ), (:, ) 말한다.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4가지 고통. ,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 하는데,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생주이멸(生住異滅) ; 모든 사물이 생기고(), 머물고(), 변화하고(), 소멸함(). 또는 그런 현상.

*윤회(輪廻) ; ①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 의하여 삼계 육도(三界六道) 생사(生死) 세계를 그치지 아니하고 돌고 도는 . ②어떤 사물이 일련의 변화 과정을 단계에 따라 차례로 밟아 가거나 되풀이함.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

*국중(國中) ; 나라의 .

* 물건 ; 일물(一物). 일상(一相). 물건 · 모양이란 불교에서 진여(眞如) 본체를 들어 일컫는 말이다.

*진여자성(眞如自性)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하나. () 머뭄() 없는()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46)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아닌 것이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수보리야, 보살은 () 응당히 머문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복덕은 가히 헤아릴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과보가 다하면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 행할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얻는 복이 시방(十方)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없느니라.


일설에 '()' '(넓다)', '()' '(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 보시(眞布施)' 하며,

일설에는 '()' '' 육진 경계(六塵境界)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돌아가서 만법(萬法)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 없는 것이 선법(善法)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없고, 능소심(能所心)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없느니라.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 의해서 내가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 유루복(有漏福)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시주(施主 베풀 , 주인 )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

*희사(喜捨 기쁠 , 버릴 ) ; 보상을 구하지 않고, 기쁘게 재보(財寶) 베푸는 . 정사(淨捨정시(淨施)라고도 .

*유주상보시(有住相布施) ; 남에게 보시 하되내가 보시를 했다하는 생각() 있고, ‘내가 이렇게 보시를 했으니까 나한테 보답을 해야 한다 하는 보답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는 보시.

이런 유주상보시는 조그마한 공덕 밖에는 안되고, 얻어봤자 유루복(有漏福) 밖에는 얻지를 못한다.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 복이어서 한도(限度)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받아버리면 다시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얻었던 것을 결국은 없애면서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 같은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 설날통알 설날차례(1996.02.19)에서.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 가게 되니까 그래서 유루복은 원수이고,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수도 없고, 생활도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과보(果報) 바래.

공투세를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무루복을 참으로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전편(全篇 온전할·전체 / ) ; 글이나 영화 따위의 작품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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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게송)방거화쟁발~ /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 / 이모 코 / ‘이것이 무엇인고?’의 『이것』은 마음의 작용을 일으키는 본바탕을 가리키는 것.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비로자나 법신불이 벌여 놓은, 비로자나 법신불—진여불성(眞如佛性)으로부터 벌어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전부가 다 비로자나 법신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달마스님이 말씀하시기를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다.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한다’하셨습니다.  ‘마음을 관(觀)한다’하는 것은 참선(參禪) 공부를 하는 것이여.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강의 최초의 수원지를 볼 수 있듯이, 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떻게 거슬러 올라가냐?—‘이뭣고?’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근본 본바탕 마음자리, 자성(自性) 자리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42)—84년 7월 첫째 일요법회(84.07.01)에서.


(1) 약 6분.  (2) 약 12분.


(1)------------------

방거화쟁발(放去花爭發)이요  수래수역류(收來水逆流)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수지번로배(誰知番虜輩)가  개개착피구(箇箇着皮裘)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방거화쟁발(放去花爭發)이요. 놓아 보냄에 꽃이 다투어 피고,
수래수역류(收來水逆流)로구나. 거두어들임에 물이 거꾸로 흐르는구나.

하늘에는 태양이 있고, 별이 있고, 달이 있고, 땅에는 산과 강이 있으며, 숲과 바위와 인간과 동물,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잡화점을 벌려놓은 것처럼, 하늘과 땅에 큰 백화점을 벌려놓은 것처럼 온갖 것이 진열이 되어 있는데,
이것이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法身佛)이, 그 부처님이 가지고 있는 온갖 상품을 온 우주법계를 가게 삼아서 이렇게 벌려 놓았습니다.

그것이 해가 되고, 달이 되고, 별이 되고, 밤에는 달이 뜨고 낮에는 해가 빛나.
봄에는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여름에는 온갖 초목이 무성했다가, 가을에는 단풍이 지며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겨울에는 서리가 내리고 눈이 내리며. 이 춘하추동 사시(四時)가 순회하는 것, 이것도 다 낱낱이 비로자나 법신불의 살림살이를 갖다가 놓아 내보낸 소식이고.

수래수역류(收來水逆流)라. 거두어들임에 물이 거꾸로 흐른다. 그 물이 흐르는 대로 놔두면 흐르고 흘러서 전부 바다로 돌아가는데,
거두어들이는 소식은 무엇이냐 하면은 그 물을 꺼꿀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 최초에 물이 흘러 내려오는 그 수원지(水源地)에 도달할 것이다.

저 신의주 있는 데서 압록강을 거슬러서 계속 올라가면 백두산 천지(天池)로 도달하듯이, 거두어들이는 것은 바로 물을 거슬러서 꺼꾸로 올라가는 거와 마찬가지다.

산천, 하늘과 땅에 온통 벌어져 있는 삼라만상 두두물물을 그놈을 거두어들이면 어디로 돌아가냐 하면은 비로자나 법신불로 돌아가는 것이다. 진여(眞如)의 세계로 돌아간다.(처음~6분5초)


(2)------------------

정법(正法)을 듣고 항시 최상승(最上乘) 법문을 듣고 그러면서 그것을 실천에 옮길려고 노력을 하고, 와서 한번만 듣는게 아니라 녹음테이프를 가지고 가서 계속해서 되풀이 듣고 또 듣고 그렇게 해서 자기의 팔식(八識)에 스스로 암시를 주어서 그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에 정법의 종자(種子)를 심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의 성격이 개선이 되고, 자기의 신심은 정법을 믿는 마음으로 뿌리를 깊이 박고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서 가지가 무성하게 자라고 잎이 피고 꽃이 피면, 깨달음의 결과—보리(菩提)의 과(果)를 수확을 하게 될 것은 너무나 다행한 일이 될 것입니다.

처음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비로자나 법신불이 벌여 놓은, 비로자나 법신불—진여불성(眞如佛性)으로부터 벌어진 것이기 때문에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전부가 다 비로자나 법신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 법(法)을 터득하면 일체법(一切法)이 다 한 법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한 법을 옳게 믿고 터득을 하면 교육 문제나 또는 가정 문제나, 회사 문제나, 사회 문제나, 국가 문제나, 세계 인류 문제나 모든 것이 다 한통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달마스님이 말씀하시기를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다.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한다’하셨습니다.

‘마음을 관(觀)한다’하는 것은 참선(參禪) 공부를 하는 것이여.

참선을 어떻게 하느냐? ‘이뭣고?’
이 가운데에는 너무 너무 잘 아시고 참선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하시고 또 올바르게 실천을 하시는 분도 많으시지만,

절에 법회를 몇 해를 댕겼는데, “대관절 ‘이뭐꼬’라는 것이 무엇인고?  이모의 코? 이모 코가 어쨌다는 거여? 밤낮 가면 ‘이모꼬’하라고 그러는데, 이모 코가 뭣이 어쨌다는 거여.
이모 코는 어떻고 고모의 코는 어떠냐. ‘이모 코’가 좋다는데 어째서 ‘이모 코’가 도대체 무어냐?”하고 이렇게 몇 해를 당겨도 그 말을 못 알아 듣습니다.

그건 웃을 일이 아니고, 그 동안에 처음 듣는 소리이거든.
용화사 가면 좋다니까 오기는 왔는데 갈 때마다 ‘이모 코’만 찾으라고 하니까, 그거 참 '이모 코'가 별난 놈의 ‘이모 코’가 다 있다.

'이모 코'가 아니라, ‘이것이 무엇인고?’ 그말이거든.
‘이것이 무엇인고~?’ 그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뭣고?’거든. ‘이뭣고?’

아하! 『이모의 코가 아니라 ‘이뭣고?’다. ‘이뭣고?’는 ‘이것이 무엇인고?’ 그 말이다』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이것』이라는 게 무엇을 가르키는 말이냐 하면,
지금 산승(山僧)이 이렇게 말을 하는데 여러분이 그 말을 듣고 있습니다. ‘무엇이 듣고 있느냐?’ 그말이여.

‘귀가 듣지 무엇이 들어? 귀가 없으면 못 듣고, 귀를 콱 먹어 버리면 못 들으니까 귀가 듣지, 듣기는 무엇이 들어?’

귀를 통해서 듣는 것이지, 귀가 듣는 것이 아니여.
귀를 통해서 듣는 놈이 속에 있어. ‘귀가 듣는다’하는 말은 맞지 않은 말이고, 귀를 통해서 듣는다 그말이여.

방안에서 창문을 열어 놓고 저 밖에를 보면 창문이 보는 것이 아니거든.
창문을 통해서 보는 것이고, 보는 것은 방안에 있는 사람이 보는 것이여. 이러한 비유도 엄격히 따지면 폐단이 있는 말이지만, 편의상 이러한 비근한 예를 드는 것입니다.

귀가 듣는 것이 아니라 귀를 통해서 들어. ‘귀를 통해서 무엇이 들어?’ ‘마음이 듣지.’

'마음이 듣는다' 그 말이 맞는 말인데  들은 풍월(風月)로 ‘마음, 마음’하지, 실지 '그 마음이 무엇인가?'를 다시 다그쳐 물으면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들은 풍월로 그저 어릴 때부터 ‘마음, 마음’ 그저 속상한 마음, 기쁜 마음, 슬픈 마음.

슬퍼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속상할 줄도 알고 하는 그게 마음의 작용인데, 지금 ‘이것이 무엇이냐?’하는 그 『이것』은 그 마음의 작용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 작용을 일으키는 그 본바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일으키는 작용」을 「마음」으로 착각을 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작용이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작용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등한히 해서는 안됩니다. 일어나는 작용을 통해서 「마음」을 찾어야 하는 것입니다.

슬플 때, ‘무엇이, 그리 슬퍼할 줄 아는 놈이 무엇이냐?’
기쁠 때도, ‘기뻐할 줄 아는 그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괴로울 때도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강의 최초의 수원지를 볼 수 있듯이, 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떻게 거슬러 올라가냐?—‘이뭣고?’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근본 본바탕 마음자리, 자성(自性) 자리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뭣고?’를 찾어도 도무지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참선을 하면 환히 배꼽 밑에 불이 켜지고, 따악 눈을 감고 ‘이뭣고?’를 하면 온갖 것이 환히 천상도 나타나고 지옥도 나타나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이 환히 다 나타난다고, 그래 가지고 자기는 도통을 한 것처럼 그렇게 생각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은근히 자랑을 하고 그러한 노 보살님이 그 전에 있었는데,
지금은 용화사에서 하도 법문을 많이 들어서 그러한 것을 자랑하는 분은 없을 것이고,

설사 그러한 경계가 나타나도 감히 챙피해서, 그런 소리만 하면은 ‘마섭(魔攝)이 되었다. 마구니에 빠졌다.’고 호통을 맞을 테니까 은근히 함부로 말은 안하고, 비밀 은근히 뒷구녘에서 그런 것을 자랑을 해 가지고 자기를 도통한 것처럼 믿게 할려고 공작을 하는 그러한 분이 있다면 이것은 대단히 참 가슴 아픈 일이라 할 것입니다.

찾아갈수록—‘이뭣고?’를 할수록 알 수가 없을 뿐이어야지, 무엇이 알아지거나, 무엇이 나타나거나, 무엇이 보이거나 이러면은 그건 공부가 잘못 되어간 것입니다.

어쩌다가 혹 그런 것이 슬쩍 스쳐가거나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환상(幻相)이지, 그것이 참다운 실상(實相)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그것을 부정을 해 버려야 해.
다시는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려 하지도 말고, 없앨려고 하지도 말고, 그걸 다시 나타나기를 바랄려고 하지도 말고, 그냥 그것은 귀 끝에 스쳐가는 바람처럼 생각해 버리고 다시는 관심을 거기다가 붙이지 말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이뭣고?’  「이뭣고?」한 이놈이 뭣고?’


나중에는 ‘지금 「이뭣고?」할 때, 「이」하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 다그쳐 들어가.
나중에는 그냥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약 3초 동안 정지했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더 깊어지면 ‘이뭣고?’ 소리를 아니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 독로(獨露)하면, 거기다 대고 자꾸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그렇게 덮치기로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알 수 없는 의심이 따악 있으면, 알 수 없는 의심을 묵묵히 관(觀)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알 수 없는 의심이 희미해지거나 딴 생각이 들어와 버리면 그때 가서 ‘이뭣고?~’ 한번 이렇게 챙겨 주면 되는 것입니다.(51분24초~63분17초)


------------------(1)

*(게송) ‘방거화쟁발~’ ; [선문염송] (혜심 지음) ‘제10권 408칙 만법(萬法)’ 해인신(海印信) 게송 참고.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2)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제팔식(第八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보리(菩提) : [범] bodhi  도(道) • 지(智) • 각(覺)이라 번역.
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를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달마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 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풍월(風月) ; ①정식으로 배우지 않고 어깨너머로 배운 짧은 지식. ②아름다운 자연의 경치를 읊거나 노래함. 또는 그 시나 노래.
*마섭(魔攝) ; 마(魔)에 포섭(包攝)되다. 마에게 끌려들어 그의 편이 되다.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용화선원刊) p64.
*환상(幻相) ; 실체가 없는 무상한 형상.
*실상(實相) ; ①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변하지 않는 진리. ③집착을 떠난 청정한 성품.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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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하안거 해제, 백종2014.08.17 17:39

§(398)(게송)대호삼만육천경~ / 삼라만상이 다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 / (게송)삼라만상동귀환~ / 백장청규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밝은 데에서 밝은 데로....

진짜 살아있는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은 우주법계에 있는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그냥 고대로 살아있는 부처님의 경전인 것입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원음을 알아들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화두 ‘이뭣고~?’, 화두를 의심을 해서 그 화두를 타파하므로 해서 그 원음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인생이 70, 80 번갯불 지나가듯이 지나가고 우리도 금방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게 되는데, 이 몸뚱이 있을 때 열심히 정진을 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화두(話頭)를 들고 새로 태어난 셈 치고, 아주 이 몸뚱이 아주 안 태어난 셈 치고 한바탕 공부를 지을지니라.
**송담스님(No.398) - 1989년 하안거 해제·백일기도 회향·백종법회.


(1) 약 19분.  (2) 약 19분.


(1)------------------

대호삼만육천경(大湖三萬六千頃)에  월재파심설향수(月在波心說向誰)오
나무~아미타불~
원음낙처운산진(圓音落處雲散盡)허고  부증대보변환가(不曾擡步便還家)니라
나무~아미타불~

대호삼만육천경(大湖三萬六千頃)에, 큰 호수 삼만 육천 그 물결 이랑.
월재파심설향수(月在波心說向誰)라. 달이 그 파도 속에 있는데, 그 큰 호수에 삼만 육천 파도 이랑 속에 거기에 휘황창 밝은 달빛이 거기에 비추는데, 그 도리를 누구를 향해서 설(說)할고.

원음낙처운산진(圓音落處雲散盡)한데, 원음(圓音) 떨어진 곳에 구름이 흩어져 다한데,
부증대보변환가(不曾擡步便還家)다. 일찍이 한 발도 옮기지 아니하고 문득 고향에 돌아가더라.

이 게송은 ‘심화발명(心花發明)이 어느 곳에 있느냐?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수 있는 곳이 어느 곳인가? 어느 곳에서 확철대오를 하는가?’하는 것에 대한 게송입니다.

대호삼만육천경(大湖三萬六千頃)은 우리가 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코를 통해서 냄새 맡고, 혀를 통해서 맛보고, 몸을 통해서 차갑고·덥고·부드럽고·까끄러운 것을 느끼고, 생각을 통해서 선악(善惡)과 일체 모든 것을 분별하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이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만나서 거기에서 육식(六識)이 일어나서 이렇게 해서 십팔천이 이렇게 끊임없이 돌아가는데 바로 그것이 대호삼만육천경(大湖三萬六千頃)입니다.

큰 바다에 얼마나 많은 파도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그 파도 낱낱이, 하늘에 떠있는 그 달빛이 어느 물결 하나에도 비치지 아니한 곳이 없어.
육근(六根)·육진(六塵)·육식(六識) 이 십팔경계(十八境界)가 돌아가는 바로 거기에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의 그 법신(法身)이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물결 하나마다 달빛이 비추듯이 우리의 일어나는 십팔경계(十八境界),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듣거나, 코로 무슨 냄새를 맡거나, 혀로 무슨 맛을 보거나, 몸으로 차갑고 더운 것을 느끼거나, 생각으로 희로애락, 선악 일체사(一切事)가 우리 의식에 떠오르거나,
바로 그때 그 곳이 바로 우리가 확철대오 할 수 있는 바로 그때다 이것입니다.

원음낙처운산진(圓音落處雲散盡). 원음(圓音)은 부처님의 음성을, 부처님의 말씀을 원음이라.
둥글 원(圓)자, 소리 음(音)자, 원음이라 그러는데, 원음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은 한 말, 한 음성으로 설하시되,
보살은 보살 나름대로 그 법문을 듣고, 나한은 나한 나름대로 그 법문을 듣고, 중생은 중생 나름대로 그 법문을 듣고, 축생은 축생 나름대로 그 법문을 듣고, 지옥·아귀 육도법계 중생 다 그 말을 다 알아 들어.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은 어느 근기(根機)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근기도 그 나름대로 받아들여서 법(法)의 이익(利益)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 부처님의 음성을 원음이라 그런 것이여.

원음 떨어진 곳에, ‘그러면은 삼천년 전에 부처님이 설하시다가 열반하셨으니까 부처님의 원음은 우리가 못들을 것이다’ 그게 아니야.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경계,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 모든 냄새, 모든 맛, 모든 느낌, 모든 생각 있는 곳이 바로 부처님의 원음(圓音)이 울리는 곳이요, 원음이 나타나는 곳이여.

그러기 때문에 그 원음을 접하게 되므로 해서, 그 원음의 뜻을 우리의 마음과 계합(契合)하게 함으로 해서, 한걸음도 옮기지 않고 우리의 깨달음의 고향에 도달할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경(經)이라 하면은 종이로 만들어진 경만이 경으로 생각하고, 한문으로 된 경만이 경으로 생각하고, 법화경이나 화엄경·금강경·원각경 이러한 우리에 내려오는 그 경만이 경(經)인줄 생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물론 그러한 경도,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 그것으로 또 찍어낸 모든 경전, 참 소중하기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나,
정말 영원한 경(經), 정말 살아서 움직이는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은 꼭 종이로만 되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꼭 먹으로만 찍혀 나온 것이 아닙니다.

진짜 살아있는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은 우주법계에 있는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그냥 고대로 살아있는 부처님의 경전인 것입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원음을 알아들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화두 ‘이뭣고~?’, 화두를 의심을 해서 그 화두를 타파하므로 해서 그 원음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삼라만상동귀환(森羅萬像同歸幻)한데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허공불시장신처(虛空不是藏身處)라  간취풍전대우송(看取風前帶雨松)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라만상(森羅萬像)은 동귀환(同歸幻)이요,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다.
삼라만상, 저 해나 달이나 별이나 지구나 산천초목이나 토목 와락이나 풀이나 돌, 기와 깨진 거, 일체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환(幻)으로 돌아가. 영원성이 있는 것이 아니여.

아까 그러한 것들이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이라고 했습니다마는 깨닫고 보면 그런 것이고, 깨닫지 못한 탐진치 삼독으로 가득찬 중생에게는 그러한 원음이 완전히 환(幻)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 좋은 것인 줄 알고, 영원한 것인 줄 알고, 붙잡고 아무리 안 놓을려고 해봤자 뜬구름 잡는 거와 마찬가지여. 영원성이 없는 것이고, 허망한 것이다.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다. 허공에 저 창공에 새가 날아가는데 새가 날아간 자죽과 같은 것이다 그말이여.
눈이 왔을 때 짐승이 지나가거나 사람이 지나가면 발자죽이 남아 있고, 모래 위에 기러기가 놀다가 가면 그 모래 위에 기러기 발자죽이 남아 있어요.
그 보다도 더한 것은 허공에 새가 날아간 자죽과 같다 그말이여.

우리 인생이 태어나서 탐진치 삼독심(三毒心)으로 오욕락(五欲樂)을 탐착(貪着)을 하고, 명예·권리·지위 모다 그런 것을 탐착을 해 가지고, 아무리 그것을 만히 모으고 붙잡고 늘어져 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가지고 가지도 못하고, 자기가 다 쓰지도 못하고, 그것 모이고, 그것 지키느라고, 참 본의 아니게 많은 죄만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허공불시장신처(虛空不是藏身處)다. 그렇다면 그러한 것이 다 허망한 것이고 영원성이 없는 것이라면, 이 몸뚱이를 어떻게 간수하며 어디다 이 몸뚱이를 감출 것인가?
그러면 허공에다 감추어야 할 것인가? 허공도 이 몸뚱이 감출 곳이 못 되어.

간취풍전대우송(看取風前帶雨松)이니라. 바람 앞에 비를 띤 소나무를 똑바로 볼지니라. 비 뿌리면서 바람이 부는데 그 소나무에 스쳐가는 그 소리, 송풍(松風) 솔바람 소리, 그 솔바람을 똑바로 간취(看取)하라.

여기 게송에는 ‘바람 앞에 비를 띤 소나무를 똑바로 보라’했지만, 어찌 그 소나무 하나에 국한 되리오.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거나, 반짝거리는 별을 보거나, 버드나무를 보거나, 복숭아 꽃나무를 보거나, 돌맹이를 보거나, 우주법계에 있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찌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에 한하겠습니까?
귀로 들을 수 있는 솔바람 소리, 낙엽이 다 지고 앙상한 고목나무에 스쳐가는 겨울 바람소리, 흘러가는 물소리, 개 짖는 소리, 새 노래하는 소리, 버스 소리, 비행기 소리, 공장에 기계 돌아가는 소리,
우리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 그 소리도 똑바로 바로 들으면 원음(圓音)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한 소리가 귀에 거슬리고, 그러한 소리가 시끄러워서 공부를 못한다. 이것이 아닙니다.
눈에 이것저것 보아 싸니까, 거기에 우리의 정신이 헷갈리니까 그래 공부가 안된다. 그것이 아닙니다.

그 소리를 우리가 따라가고,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가서 그것을 집착하니까 그것이 망상이요,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이지,
따라가지 않고 바로 그놈을 보고 그놈을 듣는 찰나(刹那)에 그놈에 즉(卽)해서 화두를 떠억 들어보시라 그말이여. 무엇이 시끄러우며 무엇이 복잡할 것이 있는가.

수원 용주사도 군(軍) 비행장이 있어서 노상 제트기가 뜨고 내리고 상당히 시끄러운 곳입니다마는 금년 여름에 많은 대중이 그까짓 시끄러운 것을 문제시하지 아니하고, 아무 장애없이 정진을 잘하셨습니다.

용화사 법보선원도 앞뒤로 불사(佛事) 공사가 일어나 가지고 온통 골이 울릴 정도로 시끄럽고 복잡했습니다마는,
‘그렇게 시끄럽고 복잡해도 상관이 없으니 방부(房付)를 받아 주십시오’해 가지고 7~8분이 그 복잡하고 시끄럽고 먼지 구덩이에서 방부를 드리고 까딱없이 정진을 했습니다.

때로는 벗어부치고 땀을 흘리면서 울력을 하면서 정진을 했습니다. 아마 앞으로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때까지 그 복잡한 속에서 정진한 이 기사년 여름 안거가 인상에 깊이 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보살님네도, 해마다 130명씩 방부를 드리던 보살님네들이 그렇게 시끄럽고 복잡해도 기어이 여기서 정진을 하시겠다고 모다 원을 했지마는,
방을 다 뒤집어 파고 모두 뜯어 제끼고 하는 통에 방이 없어서 방부를 받지 못하고, 저 천안 광덕사 태화선원에 가서 모두 정진들 잘 하시고 또 수원 용주사 그밖에 다른 인연있는 절에 가서 모두 정진들을 하셨습니다.(27분54초~46분50초)


(2)------------------

정진이 꼭 조용한 데만 찾아서 하고, 일 없는 데만 찾아서 하고, 편안한 데만 찾아서 하고 이렇게 해가지고서는 우리는 도업(道業) 성취가 대단히 늦게 되고,
설사 공부에 좀 힘을 얻는다 해도 그러한 소극적 방법, 일 없고 조용한 데만 찾아다니면서 살살하는 공부 가지고서는 대도를 성취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 백장청규(百丈淸規)에도, 그런 회상은 다 1500명, 1700명이 지내는 대회상(大會上)인데,
제일조(第一條)에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다. 하루 울력 작업을 하지 아니하면 하루 먹지 않는다’하는 이러한 법규를 만들어 놓곤,
날마다 한 시간 두 시간씩 이렇게 울력을 해서 채소도 가꾸고 모두 도량을 가꾸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채소를 가꾸면서 잡초를 뽑으면서 도량을 가꾸면서, 어째서 그 속에서 정진이 안된다 이것입니까?
오히려 한가한 속에서 조용한 속에서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 보다는,
울력하면서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하게 정진을 다루어 나갈 때에, 화두를 잡두리 해 나갈 때, 그 속에 어떻게 혼침(昏沈)이 들어오며 그 속에 어떻게 화두 이외의 딴 망상이 거기에 어리댈 수가 있겠습니까?

어느 회상에 가서 정진을 하던지 반드시 울력 시간을 정해놓고, 도량(道場) 청소도 하고, 잡초도 뽑고, 빈터가 있으면 채소도 가꾸면서,
운동도 되고, 채소도 자급자족도 하고, 그 성성하게 정진을 잡두리 한다면 훨씬 더 힘있고, 우리의 정진에 훨씬 더 깨달음을 앞댕길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백장(百丈) 스님과 같은 그런 대도사가 제일조(第一條)에다가 그런 규율을 넣었습니다.

백장 큰스님의 일화, 여러분도 잘 아시겠습니다마는 연세가 많아 가지고 울력하러 나오시기에 대단히 힘들게 보이니까 그 백장 큰스님 방장(方丈)스님께서 쓰시던 연장을 갖다가 감추어 버렸습니다.
그 연장이 없으면 울력에 안 나오시리라 해 가지고 감추어 버렸는데, 백장 스님이 울력 목탁 소리를 듣고 울력에 나오시려고 연장을 찾으니까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없으니까 울력에 참여를 못하셨는데.

그 다음에 공양 시간이 되었는데 공양을 안 나오셔. ‘공양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양 안 나오십니까. 공양하러 가십시다.’
그러니까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니라. 내가 울력을 오늘 못했으니 어떻게 내가 공양을 받겠는냐? 내가 오늘 공양을 하루 굶겠노라’
그래 가지고 그 다음날 어쩔 수 없이 연장을 갖다 드렸다고 하는 일화는 이 선방에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설화입니다.

그만큼 선방에 있어서의 울력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뜻이 깊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도 조실스님께서 울력 시간을 설정을 하셔서 생존 시에도 그렇게 울력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때는 똥도 푸고, 아카시나무도 모두 해서 연료로 사용하고, 밭도 일궈서 닭똥을 썩혀서 주고, 채소를 가꾸고, 엄청난 울력을 하고, 언덕을 파서 앞뜰을 메우기를 얼마를 했습니다.

그때 지내신 수좌(首座) 스님네들은 다 아실 것이고, 또 그때 여기 용화사에 다니신 보살님네·거사님네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참 무서운 울력을 했습니다.

열반하신 뒤에도 좀 할려고 해도 밭도 없어지고, 또 도량소지 청소를 제외하고는 그 밖에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날마다 할 만한 일이 없어서 못하고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일만 있으면 선방 스님네들이 그저 모두 나오셔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마 용주사도 그렇게 했을 것이고, 광덕사나 회룡사도 다 그렇게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출가해서 도 닦는 일—모르는 분이 보면 참 여러 가지로 해석이 다를 것입니다마는—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입니다.

생사해탈 문제, 생사대사를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받쳐서 위법망구(爲法忘軀)로 도를 닦는 일은 그래서 그것이 법희선열(法喜禪悅)—법(法)의 기쁨과 선(禪)의 기쁨, 법희선열이 그것이 '밥'인 것입니다.
씁쓸한 된장찌개, 씁쓸한 나물에다가 그렇게 참 검박(儉朴)하게 생활하지만, 도 닦는 그 맛으로 그 기쁨으로 청춘이 늙어 간 줄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세속에 몸담아 있는 청신사·청신녀 여러분도 비록 인연 때문에 세속에 몸을 담고 계시지만,
여러분도 마음은 우리 출가 사문(沙門)과 똑같은 신심과 마음으로 그 생활 속에서 계율을 지키면서 화두(話頭)를 타고 불명(佛名)을 타 가지고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실 줄 압니다.

또 인연이 허락하신 분은, 사정이 허락하신 분은 결재때 방부를 드리고, 그 연세가 60,70,80 고령에 이르러서도 방부를 드리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그 검박한 음식을 잡수면서 정진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앞으로 겨울철부터서는 방부를 받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선방도 크게 늘리고 또 여러 가지 시설도 부족함이 없이 잘 갖추어서 130명, 150명도 아마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때 오셔서 열심히 정진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앞으로 우란분(盂蘭盆)—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유주무주(有主無主)의 광겁부모(曠劫父母)의 천도(薦度) 법요식(法要式)이 진행이 됩니다.
모두 지극정성으로 참여해 주시기를 바라고, 지옥고 받던 또 아귀도에서 고(苦)을 받던 또 우주 허공계에 방황하던 모든 우리의 선망부모들이 이 법요식에 정식으로 초대되어서 참석하시고 또 이 천도를 받게 되시기 때문에 그런 영가들은 참 너무너무 기쁨에 넘쳐흐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선망부모 영가들이 이 자리에 와서 틀림없이 나의 아내가 또는 나의 아들과 나의 며느리와 나의 손자들이 혹 오늘은 오지 안했는가? 이리저리 모두 찾아보고 계실 줄 생각합니다.
모처럼 이렇게 왔다가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딸, 자기의 며느리, 자기의 손자손녀들이 안 왔다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어떤 사정으로 참석을 못했더라도 이다음 법보재(法寶齋)나 우란분재(盂蘭盆齋)에는 반드시 참석을 해서,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또 청정한 스님네께 공양 올리고, 그리고 우리의 선망부모와 인연있는 영가들을 위해서 정성껏 공양을 올리고, 천도를 한다면 그 얼마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며 보람있는 일입니까?

우리도 머지않아서 또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고 영가(靈駕)의 몸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또 극락세계(極樂世界)나 또는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또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 70, 80 번갯불 지나가듯이 지나가고 우리도 금방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게 되는데, 이 몸뚱이 있을 때 열심히 정진을 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은 뒤에 아들이 효자니까, 며느리가 잘해 줄 것이다. 그때 천도 받아도 될 것이니 실컷 먹고 잠이나 많이 자자’ 이렇게 생각하시지 말고,
기왕이면 살아있을 때 깨달음을 얻어서 스스로 자기를 제도(濟度)하는 것만 같지 못할 것입니다.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여. 생사진로(生死塵勞), 생사해탈(生死解脫)이 이 작은 일이 아니여, 보통 일이 아니다.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다. 긴밀히 승두(繩頭)를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지어라.
정말로 화두(話頭)를 들고 새로 태어난 셈 치고, 아주 이 몸뚱이 아주 안 태어난 셈 치고 한바탕 공부를 지을지니라.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이면, 한바탕 그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아니하면,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칠 수가 있겠느냐.(爭得梅花撲鼻香)

우리 중생은 ①어두운 데에서 어두운 데로 향하는 그러한 사람이 있고, ②어두운 데로부터 밝은 데를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이 있고,
또 ③밝은 데에서 어두운 데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고, ④밝은 데로부터서 밝은 데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①그러면 어두운 데에서 어두운 데로 가는 사람은 어떠한 부류의 사람이냐?
전생에 복(福)을 짓지 못하고 금생에 가난뱅이로 태어났다가 그나마도 부처님도 잘 믿지를 않고 신심이 시원찮고, 마음씀씀이 용렬(庸劣)하고, 베풀 줄도 모르고,
항상 삿된 생각으로 계속 도를 닦지 아니하고, 속심에 가득 찬 그러헌 사람은 전생에 짓지 못해 가지고 어두운 데에서 왔다가 내생에 다시 또 어두운 데로 갈 사람이거든.

②그러면 어두운 데에서 왔지만 앞으로 미래에 밝은 데로 향하는 사람은, 설사 전생에 큰 복을 짓지 못해서 금생에 가난하게 태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난한 가운데에도 불법을 믿고 신심이 있어, 마음씀을 항상 탐진치 삼독에 빠지지 아니하고, 항상 법문 듣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을 해.
가난하지마는 있는 대로 보시를 해. 그리고 항상 계율을 지키고 그렇게 살아간 사람은 비록 어두운 데에서 왔지마는 앞으로는 반드시 밝은 데를 향해서 극락세계에나 도솔천내원궁으로 갈 사람이다 그거거든.

③그러면 밝은 데에서 왔지마는 앞으로 어두운 데로 갈 사람은 어떠한 부류의 사람이냐?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금생에 부자가 되어서 부자로 살지만, 부처님을 믿는 신심이 그렇게 장하지를 못해.
그래 가지고 탐심이 많고, 진심을 많이 내고, 어리석은 생각·용렬한 생각이 가득차 가지고, 보시도 할 줄도 모르고, 사견(邪見)이 꽉 차 가지고, 악한 짓을 많이 해.
그런 사람은 전생에 복을 지어서 밝은 데서 왔으나, 앞으로 사후에는 껌껌한 지옥으로 밖에는 갈 수가 없을 것이다.

④그러면 밝은 데에서 왔다가 밝은 데로 간 사람은,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부자로 태어났어.
신심도 있고, 계행도 지키고, 보시도 하고, 수행도 참선도 열심히 하고, 그래 가지고 사후에는 물어볼 것도 없이 극락세계나 도솔천내원궁에 태어날 것이 틀림이 없고,
다시 또 인도환생을 하게 되더라도 부자로 태어나고, 몸도 건강하고, 신심도 있고, 그래서 내생에 불사(佛事)도 잘하고, 대도(大道)도 성취할 것이다. 그 사람은 바로 밝은 데로부터서 밝은 데로 향할 사람이다.

여러 사부대중(四部大衆)은 스스로 자기 자신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반성을 해보시오.
‘4가지 중에 과연 어느 곳에 어느 부류에 자기가 속한가?’ 생각해서, 반드시 앞으로는 밝은 데를 향해서 가도록 노력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27분54초~65분44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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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大湖三萬六千頃  月在波心說向誰’ ; [금강경오가해] 종경 서(宗鏡序) 참고.
*(게송) ‘圓音落處雲散盡  不曾擡步便還家’ ; [금강경오가해] ‘종경 서(宗鏡序)’에 함허득통(涵虛得通)의 설의(說誼) 참고.
*원음(圓音) ; 모든 중생이 제각기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이해하는 원만한 부처님의 가르침.
*심화(心花, 心華) ; 본래 깨끗한 마음(心性)을 꽃에 비유한 말.
*발명(發明) ; 밝히다. 깨닫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귀(耳根)·코(鼻根)·혀(舌根)·몸(身根)·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육경(六境) ;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십팔계(十八界) ; 계(界, 산스크리트어 dhātu)는 요소를 뜻함. 인식을 성립시키는 열여덟 가지 요소.
불교에서 인간과 그 밖의 모든 존재 속의 인식작용을 18가지 범주로 나눈 것.
육근(六根)·육경(六境)·육식(六識)을 합한 것이다. 육식(六識)을 제외한 12가지를 12처(處)라고 한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법신(法身) : [범]  dharma - kaya 「법 몸」이란 말인데, 실불(實佛) • 법성신(法性身)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 진여의 본 바탕(眞如本體)을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더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꽉 차 있으되, 네 가지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離四句) 백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수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볼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계합(契合)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공안(公案)을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게송) ‘삼라만상동귀환~’ ; [소요당집 外] (한글대장경 169, 동국대학교 역경원) p71 소요 스님 게송 ‘의현법사에게 답함’ 참고.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환(幻) ;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聲聞,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탐착(貪着) ; 만족할 줄 모르고 사물에 더욱 집착함.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울력 ; 함께 힘 모아 일하는 것,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로 운력(運力)이라고도 한다. 의미와 관계없이 울력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2)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백장청규(百丈淸規) ; 당(唐)나라의 백장 회해(百丈懷海)가 선종(禪宗) 사원의 규범을 성문화(成文化)한 것.
당시 선종은 독립된 사원 ·제도 ·의식 등을 아직 갖추지 않았는데, 이때 백장 스님이 법당(法堂) ·승당(僧堂) ·방장(方丈) 등의 제도를 마련하고, 스님들에게는 동서(東序) ·요원(寮元) ·당주(堂主) ·화주(化主) 등의 각 직책을 규정해 놓은 선종의 법규를 정한 것.
이것을 《고청규(古淸規)》라 하는데, 이것이 당 ·송 시대에 이리저리 흩어져서 없어졌으므로, 1335년 원(元) 순제(順帝)의 칙명으로 백장 덕휘(百丈德輝)가 여러 청규(淸規)를 참조하여 소실된 백장 회해(百丈懷海, 749-814)의 청규를 복원하여 전국 선원에서 시행시켰는데, 이것이 《칙수백장청규(勅修百丈淸規)》이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잡두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어리대다 ; 남의 눈앞에서 귀찮게 왔다갔다 하다.
*도량(道場) : 사찰.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백장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방장(方丈) ; ①선원(禪院)의 운영을 주관하는 최고 책임자 스님, 또는 그가 거처하는 방.
②선원(禪院)·강원(講院)·율원(律院)을 모두 갖추고 있는 총림(叢林)의 가장 높은 스님.
*수좌(首座)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진리)를 구하기 위해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기쁨과 선정(禪定)에 들어가 마음이 즐거운 것.
*검박(儉朴 검소할 검,순박할 박) ; 검소하고 소박(素朴)함.
*사문(沙門) ;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의 음역. 식(息)·근식(勤息)·정지(淨志) 등으로 번역. 여러 선법(善法)을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을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한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에 들어 도를 닦는 사람.
*불명(佛名) ; 불법에 귀의한 남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광겁부모(曠劫父母) ; 과거의 지극히 오랜 세월 동안 모든 우리의 부모. 선망부모(先亡父母)와 같은 말.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법요식(法要式) ; 불사(佛事-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를 할 때 행하는 의식.
*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월 16일에 용화사 법보재자(法寶齋者)와 법보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년)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우란분재(盂蘭盆齋) ; 우란분(盂蘭盆). 우란분(盂蘭盆)은 산스크리트어 ullambana의 음사로, 도현(倒懸)이라 번역.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는다는 뜻.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삼보(三寶)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수 없어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의 모친을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850) 게송.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승두(繩頭) : 승(繩)은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두(頭)는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용렬(庸劣 쓸 용,못할·낮을 렬) ; 사람이 비겁하고 좀스러우며 변변하지 못함.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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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분류없음...2014.07.18 18:18

§(377) (게송)삼라만상동귀환~ / 선가귀감(禪家龜鑑)-팔만대장경의 골수(骨髓) / 도인 81행-영아행(嬰兒行) / 참선에 요긴한 점-삼요, 무조건 ‘이뭣고?’

생사(生死)가 무상(無常)한 이 세상에 몸을 받아 났지마는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서 금생에 결정코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 하느니라.
참선이란 것은 말 길이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지고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이 끊어져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 가지고 순일무잡(純一無雜) 해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해서 그 의단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견허는 것이 참선이지,
그러헌 그 선(禪)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서 해석허고 잘 안다고 해서 그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점점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가귀감이라는 이 책은 그러헌 책과는 다릅니다. 어쨌든지 바르게 공부해 나가도록, 이 책을 보는 사람에게는 신심이 일어나고 분심이 일어나고 의단이 독로하도록 도와주는 책으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77) - 1989년 2월 첫째일요법회(89.2.5)에서.


(1) 약 21분.  (2) 약 22분.


(1)------------------

삼라만상동귀환(森羅萬像同歸幻)한디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허공불시장신처(虛空不是藏身處)라  간취풍전대우송(看取風前帶雨松)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라만상(森羅萬像)이 동귀환(同歸幻)이다. 삼라만상(森羅萬像)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환(幻)으로 모두 다 똑같이 환(幻)으로 돌아간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도 결국은 한줌의 흙이 되고 나중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은 어디로 갔는지 볼 수가 없고,
집도 오래되면 허물어져 버리고, 나무도 오래되면은 죽어서 없어져 버리고,

저 태양도 오래오래 저렇게 발광을 하고 있을 것 같지마는 일초 일초 열이 식어가고 있고 모양이 변해가서 언젠가는 저 태양과 달과 모든 별들도 결국은 다 부서져서 없어져 버릴 때가 오는 거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도 일초 일초 쉼 없이 모양이 변해 가지고 결국은 언젠가는 이것이 없어져 버릴 때가 오는 것이여.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다. 저 새가 저 긴 하늘을 날아가매 날아간 자취가 없어. 그 자취를 찾을 수가 없듯이,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생겨났다 없어진 자취도 또한 찾을 길이 없더라.

그러면 모든 것이 생겨났다 없어져 버리면 결국은 허공으로 돌아가 버리고, 자취가 없으니까 허공으로 돌아가 버리는데,
그러면 그 허공이라는 것이 과연 이 몸뚱이, 나 자신을 거기다가 감출만 하냐?(虛空不是藏身處)
그 허공이라는 곳에 이 몸뚱이와 우리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을 거기다가 떠억 안신(安身)헐 만한 곳이 못 되더라 그말이여.

그러면 어디다가 우리의 이 몸뚱이와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한 놈을 어디다가 갖다가 붙일 것인가?
간취풍전대우송(看取風前帶雨松)이다. 저 바람 앞에 비에 흔들리는 저 소나무, 그놈을 똑바로 들어라.
바람이 불며 비가 그 소나무에 뿌릴 때, 비 뿌리는 가운데에 바람이 소나무에 지나갈 때, 소나무에 그 솔바람 소리가 들리는데, 그 솔바람 부는 거기를 똑바로 보고 알아차려라 이거거든.

오늘, 무진년이 마지막 끝나는 섣달 스무 아흐레 그믐날입니다.
그리고 양력으로는 2월 5일 첫째 일요법회 날인데, 어제는 입춘법회가 있었습니다마는, 오늘 또 이 무진년 마지막 끝나는 날이 하필 또 일요법회와 이렇게 맞섰습니다.

지난 1년 동안 국내외적으로 퍽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그러헌 해였습니다.
세계가 그렇고 나라가 그렇고, 그러헌 커다란 대해에 파도가 치는 속에 우리는 낱낱이 조그마한 조각배를 그 파도 속에 띄우면서 용케도 엎어지지 아니하고 이 해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그 드시고 억센 파도 속에 그놈을 견디어 내지 못하고 그 파도에 덮쳐서 바다 속으로 가라앉어 버리는 그러헌 나라도 있고, 그러헌 회사도 있고, 또 그러헌 사람도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용케도 그 억센 파도를 잘 견디고 극복해서 다시 새해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우리는 부처님의 따스한 자비의 가피(加被)를 입었다고 생각할 때에, 무한히 부처님께 감사헌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리해서 한 해가 저물었으니, 지난 1년 동안에 있었던 모든 몸 아프고 마음 아팠던 그리고 괴롭고 쓰리던 모든 일들, 원망스럽고 미웠던 일들, 다 깨끗이 자취없이 사라져 가는 한 해와 더불어 그런 언짢은 생각, 언짢은 일들도 함께 다 흘려보내 버리는 것이 참 좋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릇 속에 담겨 있었던 좋지 못한 음식, 변질된 음식, 독한 음식, 먹을 수 없는 음식들, 그런 것은 깨끗이 비워버리고 깨끗이 씻어서 아주 더운물에 끓여서 그래서 그릇을 비워놔야 거기에 다른 음식을 담을 수가 있듯이,
지난 1년 동안에 우리의 주변에 일어났던 일, 또 우리 일신상에 일어났던 일, 우리의 마음속에 스쳐간 모든 일들을 깨끗이 다 버려버리고, 허공과 같이 맑고 깨끗하게 허고서 새해 첫날을 맞이해야 또 새해는 싱그럽고 희망찬 한 해가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방금 조실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생사(生死)가 무상(無常)한 이 세상에 몸을 받아 났지마는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서 금생에 결정코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 하느니라.’
이러한 고구정녕(苦口丁寧)하시고 절절한 그런 법문을 다 같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묵은 해가 가고 새해가 돌아올 때 새로 태어날 뿐만 아니라, 날마다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하고, 1분 1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하고, 1초 1초마다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새로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참 축복 받을 만한 일인 것입니다.

오늘 최웅식 동자(童子)가 오늘 백일(百日)을 맞이하는 날로, 그 백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선가귀감(禪家龜鑑)이라고 하는 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의 골수가 똘똘 뭉쳐서 수록되어 있는, 서산대사(西山大師)께서 저술하시고, 우리 용화사에서 84년도에 번역을 해서 간행한 이래로 이번까지 16판을 간행을 했습니다.

이 한 권의 책은 바로 팔만대장경이 바로 이 한 권 속에 축약(縮約)이 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헌 경을 여러분께 법공양(法供養)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동자가 새로 태어난, 정말 어느 집에 어느 아들이라도 새로 태어났을 때에는 집안 식구뿐만이 아니라 온 이웃사람 일가친척 모든 사람들로부터 축복을 받습니다.
사람들만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법계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왜 새로 태어난 동자와 어린 애기를 축복하느냐’하면은,
원래 생(生)과 사(死)가 없는 것이고 또 생과 사가 둘이 아닌 것이지만, 생(生)하고 또 한평생을 살다가 인연 따라서 다시 또 몸을 바꾸고 허는 이러헌 일들이,
낱낱이 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우주의 진리 체(體)인 진여불성이 있기 때문에 그 진여불성을 가지고 있는 증거로서 새로운 생을 받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애기가 태어난 것은 바로 한 부처님이 태어난 것입니다.
물론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에는 생(生)은 바로 그것이 죽음이다, 그러기 때문에 생(生)은 바로 고통이다, 나서 늙어서 병들어 죽는 것 이외에 뭣이 있느냐?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마는,

진리를 깨달은 눈으로 볼 때에는 생(生)도 진리요, 늙음도 진리요, 앓는 것도 진리요, 이승을 하직하는 죽음도 진리의 한 모습인 것입니다.
마치 봄에 잎이 피고 꽃이 피며, 가을에는 단풍이 지고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눈 내리는 춘하추동 사시(四時)가 있듯이, 인생에는 생로병사가 있고 희로애락이 있고,
이런 것이 전부가 다 진리 체의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갓난애기가 태어나는 것은 온 우주법계로부터서 축복을 받고, 저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은 말할 것도 없고 저 하늘나라의 선신(善神)들도 축복을 하고, 저 축생이나 미물(微物)까지라도 축복을 허는 것입니다.
개나 호랭이 같은 그러한 축생도 갓난애기는 절대로 해롭게 허지 않습니다.
어른은 보고 왕왕 짓고 물려고 허면서도 갓난애기는 보고 그렇게 저런 개들도 사랑을 하고, 사람이나 돼지를 막 잡아먹는 호랭이도 갓난애기는 그렇게 애끼고 사랑허는 뜻을 표하는 것입니다.

갓난애기는 순수무잡(純粹無雜)하고 청정무구(淸淨無垢)해서 쪼끔도 물들지를 안 해서, 그래서 그 갓난애기의 마음가짐은 바로 도인(道人)의 경지와 거의 흡사하는 것입니다.

도인의 여러 가지 그 도인의 행에, 도행(道行)에 있어서 81행이 있는데, 81행이라 함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의 좋고 궂은 행위가 다 포함 될 수가 있습니다.
광행(狂行)-미친 행도 있고, 승행(僧行)도 있고, 속행(俗行)도 있고, 남자행, 여자행, 심지어 화엄경에는 창녀-53선지식 속에는 창녀도 있습니다, 마을의 장자(長者)도 있고.

그 창녀(娼女)라 하면은 세속에 빈축을 받는 상대지마는 53선지식속에 창녀가 있다 그말이여.
그 창녀는, 사람이 그 창녀 얼굴만 봐도 마음이 맑아지고, 그 창녀의 손만 한번 잡아도 업장(業障)이 소멸허고, 그 창녀하고 한 번 잠만 자도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허는 그러헌 창녀도 있다 그말이여.

그런 81행 가운데에 어떠헌 행(行)을 최고로 치느냐 허면, 영아행(嬰兒行)을 최고로 치거든.

갓난애기, 아무 철이 들지 아니한 갓난애기.
체모(體貌)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없고, 다못 배고프면 울 줄만 알고, 뜨거워도 울 줄 알고, 너무 추워도 울고, 또 목이 말라도 울고, 다쳐서 아퍼도 울고.

어린 아기의 언어(言語)는 우는 것이 언어여. 어린 아기 우는 것은 그것이 바로 언어이면서 그것이 바로 설법이요, 그것이 바로 예술이고, 그것이 바로 진리다 그말이여. 왜 그러냐?
어린 아이에는 아무 사량분별(思量分別)이 없거든. 완전히 깨끗하고 순수무잡해서 거의 무심(無心) 경계에 들어가는 도인(道人)의 심경(心境)과 같더라.

그래서 그 어린 아이는 우리 집 애기가 아니고, 남의 집 애기라도 애기가 났다고 하면 모두가 다 축복을 하거든.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어야 천국에도 간다’고 하는 그런 말도 있습니다. 이것이 다 까닭이 있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한 동자의 백일을 맞이해서 오늘 이 선가귀감을 공양(供養)을 올리니까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이 책을 받어 가시기 바랍니다.
이 책을 손에 드신 분은 세세생생에 삼계(三界)에 떨어지지 아니하실 것이고 언제나 부처님 불법 문중에 태어나실 것입니다.
왜 그러냐 허면은 이 한 권 속에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팔만대장경과 역대 조사(祖師)가 깨달은 경지에서 설법하신 모든 법문(法門)의 골수(骨髓)가 이 속에 다 포함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선가귀감 속에서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데 대단히 요긴한 점 몇 군데를 설해 드리겠습니다.

참선(參禪)은 모름지기 세 가지 요긴한 것을 갖추어야 할 것이니, 첫째는 대신근(大信根)이요, 둘째는 대분지(大憤志)요, 셋째는 대의정(大疑情)이니라.
만약 그 한 가지만 궐(闕)하드라도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마침내 폐기(癈器)를 이룰 것이다.(처음~20분3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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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을 해 나가는 데는 대신근(大信根), 큰 신심이 있어야 돼. 무슨 신심(信心)이냐?
‘나도 바로 부처다.’ 중생이 바로 부처고, 번뇌(煩惱)가 바로 보리(菩提)요, 생사(生死)가 바로 열반(涅槃)이다.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요, 번뇌와 보리가 둘이 아니요,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라고 것을 철저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바로 부처다.’ 나라고 하는 놈을 내놓고는 부처를 찾을 수가 없다.
부처는 반드시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 그놈을 갖다가 철견(徹見)함으로써 견성성불(見性成佛)한 것이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무슨 경전 속에 문자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여.
앉으나 서나 누우나, 일을 허나 밥을 먹으나, 번뇌·망상이 일어나거나, 진심(瞋心)을 내거나 슬퍼하거나 기뻐하거나, 일체처 일체시에서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몸뚱이의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卽)해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 그 신념이 여지없이 꽉 박혀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대분심(大憤心). 무슨 분심이냐?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성현과 모든 도인들은 진즉 이 문제를 해결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해 가지고 중생을 제도(濟度)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렇게 중생의 탈을 쓰고서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어찌 이래 가지고 잠을 편안히 자며, 편안히 밥을 먹으며, 무슨 한담(閑談)으로써 세월을 보내며, 오욕락(五欲樂)에 빠져서 그럭저럭 이 아까운 목숨을 보낼 것인가?
아~! 속에서부터 넘쳐흐르는 그 대분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입니다.
좋은 줄 알면서도 분심이 없으면 일체 것을 다 털어 버리고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이 몸과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용기가 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셋째, 대의정(大疑情)이 있어야 하느니라. 무슨 의정(疑情)인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한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이 무량겁을 두고 수없는 생사를 거듭허면서 오늘날까지 왔으며, 어떤 분은 진즉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고 어떤 중생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허고 있느냐?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기에.. ‘이 무엇이여?’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이, 지어서 ‘이뭣고?’ ‘이뭣고?’하는 게 아니라, 저 속에서부터 자동으로 의심이 나와서 항상 눈을 뜨나 감으나 눈앞에 환히 현전(現前)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대의심(大疑心). 이것은 셋이 동시에, 3가지의 이 마음이 동시에 일어나야 해.
신심만 있고 분심이 없다든지, 분심만 있고 의심이 없다든지 그런 게 아니라, 의심과 분심과 신심이 이 3가지가 항상 함께 일어나면 화두를 일부러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어있게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잘 안 들립니다.” “자꾸 들면 그냥 이뭣고 뿐이지 정말 간절(懇切)한 의심이 없습니다.” “어떻게 허면 간절한 의심이 나겠습니까?” 이러헌 하소연을 하신 분을 간혹 만납니다.
그건 다름이 아닙니다. 신심과 분심과 의심이 한목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주작(做作)이 되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어지게 되아야지, 그냥 의식적으로 일부러 들면 그때 잠깐 있다가, 들지 아니하면 그냥 달아나 버리고, 이것은 삼요(三要)를 동시에 갖추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 일용(日用)에 인연을 응(應)하는 곳.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생각하고, 냄새 맡고, 맛보고, 춥고 더운 것을 느끼고, 이러헌 일상생활 허는 곳에서 ‘이뭣고?’,
무자(無字)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를 하신 분은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판치생모 화두를 타신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뭣고?’ 화두를 하신 분은 ‘이뭣고?’ ‘이뭣고?하는 이놈이 뭣고?’

앞도 생각하지 말고, 뒤도 생각허지 말고, 잘되고 못되고 헌 것도 따지지 말고, 다못 그렇게 의심해 가고 의심해 오고 그렇게 화두를 들어오고 들어가란 말이여.
그렇게 애써서 들다보면, 이치 길이 딱 끊어져버려. 뜻 길이 딱 끊어져버려. 그래가지고 아무 자미(滋味)가 없어져버려.

그래 가지고 심두(心頭)가 열민(熱悶)해. 마음이 열민해. 다맛 가슴이 답답할 뿐이라 그말이여.
이것을 공부가 잘된다고 할 수도 없고, 못된다고 할 수도 없고, 도대체가 앞뒷이 딱 끊어져버리면서 가슴이 답답하기만하다 그말이여. 바로 그때가, 당인(當人)이 몸과 목숨을 갖다가 내던질 곳이여.

가슴이 답답허면 그 답답한 것을 이기지 못해 가지고 ‘어이구, 이거 공부를 잘못해 가지고 이런 것인가? 이러다가 이거 내가 상기증(上氣症)이 생길라고 이런 것인가? 이거 어째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할까?’
이것이 무슨 공부를 잘못해 가지고 잘못될라고 이런 것이 아니여. 그런 의심을 하지 말어.

알 수가 없어. 앞도 끊어지고 뒷도 끊어지고, 일체 그 동안에 보고 듣고 배운 것도 다 잊어버리고, 아무 재미도 없어. 그러는 가운데 가슴만 답답…. 바로 그 경계가 몸과 마음을 갖다 내던져 놔버릴 곳이여.
이것이 바로 성불(成佛)하고 조사(祖師)가 될 수 있는 기본이여, 그것이.

이 활구참선(活句參禪)하는 이 일은 마치 모기가 쇠로 된-쇠로 지어 붓어서 만든 소, 소 등어리를 향해서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불문(不問)하고, 몸뚱이 채, 입부리를 갖다가 소 등어리를 향해서 처박고 들어가는 거여.

소 등어리에 앉어 가지고, 입부리를 거기다가 들어간가 안 들어간가 이렇게 박어 보는 것이 아니라, 몸뚱이 채 압량해서 아주 그냥 그 소 등어리로 아주 처박고 들어가는 거여.
마치 수영선수가 높은 데에서 물을 향해서 다이빙을 허듯이 그렇게 소 등어리... ‘쇠로 맨들었나 말았나, 쇠로 되았으니 안 들어갈 것이다’ 그러헌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야.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몸뚱이 채 뚫고 들어가. 그래 가지고 이 몸과 목숨을 갖다가 탁! 거기다 갖다가 내던지면서 뚫고 들어갈 때 바로 그 몸뚱이 압량해서 소 속으로 풍 들어가는 거라.

옛날에 어떤 사람이 산중으로 검술을 배우러 들어갔어. 그 산중에 정말 아주 검술을 통달한 큰 도사가 있단 말을 듣고, 어렵게 어렵게 찾아가서 간신히 그 분을 만났어.
만났는데, “검술을 배우러 왔습니다.” “니까짓 놈이 무슨 검술을 배워?”
“그래도 내가, 선생님이 정말 검술에 통달한 도사란 것을 나는 알고 왔습니다. 절대로 선생님이 아무리 가라고해도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죽어도 안 가겠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장작이나 패라.”

날마다 나무를 비어다가 하루에 아주 수십 짐씩 장작을 팼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열흘, 한 달, 두 달… 한 삼 년을 두고 장작을 팼어.
처음에는 헛 찍기도 하고 잘 못했지만, 한 3년을 하니까 아무리 큰 나무도 한번 탁! 치면 쩍쩍 갈라졌습니다. 아무리 질긴 뿌럭지 끌통도 그 어디를 찍으면은 이 장작이 쩍 갈라진다고 허는 것을 다 터득을 했습니다.

소나무가 되았건, 참나무가 되었건, 귀목나무가 되았건, 아주 장작 패는데 아주 도가 텄습니다.
하루는 장작을 패기 위해서 저 도끼를 쳐들고 탁! 찍을라고 할 때에, 그 선생이 살짝 뒤에서 숨어 서있다가 냉큼 그 장작 위에다가 크만한 돌멩이를 갖다가 척 놨습니다.

그 사람은 이미 일심(一心)으로 그 도끼를 갖다가 내리쳤는데, 탁! 깨진데 보니까, 장작이 아니라 차돌멩이가 쩍 갈라졌다 그말이여. 깜짝 놀래 가지고,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서로 눈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다른 돌멩이를 하나 놓고 다시 쪼개봤습니다. 도끼날만 뭉그러졌지 돌멩이가 쪼개지질 않았습니다. 몇 번을 해봐도 돌멩이가 쪼개지지 않았습니다.

정말, 왜 선생님이 턱! 갖다 놓은 돌멩이는 쩍 갈라졌는데, 자기가 그 돌멩이를 쪼갤라고 하니까 안 쪼개졌겠습니까? 처음에 내리칠 때에는 그것이 돌멩이라고 하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다못, ‘안 뽀개질 것이다. 쪼개질 것이다’, ‘쪼개진가, 안 뽀개진가 한번 해보자’ 그러헌 망상(妄想), 그러헌 사량심(思量心)이 전혀 붙어있질 않았습니다.

다만 내리치는 자신이나 내리치는 도끼나 거기에 놓여지는 돌이나, 그 삼자가 하나가 되았어. 그것을 무심(無心)이라 그래.
무심 속에서 갖다 내려치니까 돌멩이 아니라 쇳덩어리를 놨어도 쩍 갈라졌을 것이다 그말이여.

두 번째 세 번째 시험 삼아서 헐 때에는 벌써 이것이 돌멩이라 하는 것을 자기가 마음속에 먹고 있었고,
‘돌멩인데 또 한번 쪼개진가 한번 해보자’허는 그런 번뇌심(煩惱心)이 발동을 했기 때문에 몇 번을 찍어도 쪼개지질 않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활을 가지고 사냥을 나갔는데, 그 사람도 활 공부를 허는 사람으로서 사냥을 나갔는데, 저 만큼 큰 호랭이란 놈이 떡! 버티고 섰다 그말이여.
그래서 “너 이놈, 저리 비키지 못할까” 몇 번 소리를 쳤지마는 그 누런 얼룩얼룩한 호랭이가 꿈쩍도 안 해.

그래서 활을 댕겨 가지고는, 저놈을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죽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래서 내가 죽느냐 니가 죽느냐, 아주 있는 힘을 다해 가지고 활을 땡겨 가지고 팍 쐈는데 화살이 쏙 들어갔다. 그런데도 그 호랭이가 넘어지질 않고 턱 있다 그말이여.
살살 가까이... 지가 심장에 아주 정통으로 맞아서 화살이 갖다가 쏙 들어갔으니 지가 안 죽고 베길 수가 없을 것이다. 가봤더니, 호랭이가 아니라 바윗돌이였었다.

‘참, 이상하다. 뭔 놈의 바윗돌 속에 화살이 들어갈까?’ 다시 그 자리에 되돌아와 가지고 몇 번 활을 쏴 봤지만은 탁탁 되받아 버리고 화살이 그 바위 속에 백히질 안 했다 그말이여.
이것도 역시 도끼로 차돌을 깬 것과 마찬가지 이치여.

우리의 정신력, 우리의 이 마음자리에서 나오는 정신작용, 정신력이라 하는 것은 사량분별이 동하면 그것이 바로 번뇌요, 망상이요, 생사심이요, 아주 그건 그런 것인데,
앞뒤가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지고, 뜻 길이 끊어지고, 무모색(無摸索) 더듬어 들어갈 것이 없어.
다맛 이 몸과 목숨을 바쳐서 들어갈 때에는 바위가 되었건 쇳덩어리가 되았건 호랭이가 되았건 무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속가(俗家)의 문구에 ‘정신일도(精神一到)면 하사불성(何事不成)이냐’ 이런 말이 있습니다마는 이러헌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화두를 들을 때, 바로 이렇게 해야 된다 그거여. 한 생각 한 생각을 이렇게 잡두리를 해 나가야 하는 것이여. ‘이뭣고?’

‘내가 중생이다, 내가 여자다, 남자다’
‘내가 나이가 먹어서 늙어서 인자 해봤자 안될 것이다’
‘그 동안에 내가 참선을 안 해보고 염불만 했기 때문에 갑자기 참선을 헌들 언제 될까?’
그러헌 쓸데없는 생각을 허는 것이 아니여.
여하약하를 막론하고 ‘이뭣고?’ 화두를 탔으면 되고 안 되고 헌 것을 따지지 말어. 다못 무조건 하고 ‘이뭣고?’ 뿐이거든.

요새 일본서 나오는 이 참선에 관한 책들이 많이 번역해 나옵니다.
지식 있는 사람들은 그러헌 '참선이 좋다'고 말은 듣고 또 참선에 대해서 좀 알고는 싶은데, 우리 한국에 큰스님네들이 그 참선에 대한 내논 책은 그렇게 구해 보기가 어렵고,
그러니 일본 책을 많이 사다보고, 그래 가지고 뭣인가 도대체 참선에 대해서 알아야 또 헐 맛이 날 것이다 그래서 일본 책을 많이 보면,
그 공안(公案)에 대해서 무문관(無門關)이라든지 뭐 벽암록(碧巖錄)이라든지 모다 참선에 대한 많은 책들이 일본에서는 번역이 되어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참선을 갖다가 널리 보급을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참선을 허도록 권장허기 위해서 허는 그 뜻은 좋았지만은,
이 참선이라고 허는 것이 그렇게 공안을 풀이를 하고 그래 가지고 그렇게 많이 염송(拈頌)이나 또는 벽암록이나 무문관이나 이러헌 책을 갖다가 많이 읽고, 풀어서 재미있게 얘기처럼 모다 풀어서 해석을 해놨는데,
그걸 읽었다고 해서 절대로 참선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을 닥치는 대로 다 읽어서 다 해석할 줄 안다고 해서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참선이란 것은 말 길이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지고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이 끊어져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 가지고 순일무잡(純一無雜) 해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해서 그 의단을 타파(打破)함으로써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견(徹見)허는 것이 참선이지,
그러헌 그 선(禪)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서 해석허고 잘 안다고 해서 그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점점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가귀감이라는 이 책은 그러헌 책과는 다릅니다.
어쨌든지 바르게 공부해 나가도록, 이 책을 보는 사람에게는 신심이 일어나고 분심이 일어나고 의단이 독로하도록 도와주는 책으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용화사에서는 16판토록 이렇게 간행을 해서 법공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처음~42분1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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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삼라만상동귀환~’ ; [소요당집 外] (한글대장경 169, 동국대학교 역경원) p71 소요 스님 게송 ‘의현법사에게 답함’ 참고.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다사다난(多事多難) ; 여러 가지로 일이나 어려움이 많음.
*가피(加被 더할•베풀 가,입을•두를 피)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을 받는 것.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것. 가호(加護)와 같음.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 정•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절절한 --> 절절(切切)하다 ; 매우 간절하다.
*선가귀감(禪家龜鑑) ; 조선 서산대사(휴정, 1520-1604)가 경전과 어록 중에서 수행의 지침이 될-선종(禪宗)을 중심으로-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부분을 가려 뽑은 불교 개론서.
*서산대사(西山大師)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법공양(法供養)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생들에게 베풂. ②불서(佛書)를 사람들에게 베풂.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미물(微物) ; 벌레 따위의 하찮은 동물.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순수할 수,없을 무,섞일 잡) 대상 그 자체가 순수(純粹)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정무구(清淨無垢) ; 맑고 깨끗하여 더럽거나 속된 데가 없음.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 ; <화엄경>입법계품에서 선재 동자가 복성의 동쪽 장엄당사라림에서, 문수 보살의 법문을 듣고 남방으로 향하여 차례차례 찾아가서 법문을 들은 선지식(스승).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영아행(嬰兒行) ;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
*체모(體貌) ; 체면(體面).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궐(闕) ; ①마땅히 해야 할 일을 빠뜨림. ②여러 자리 가운데 일부 자리가 비거나 차례가 빠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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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보리(菩提) : [범] bodhi  도(道) • 지(智) • 각(覺)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를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ㄷ —> ㄹ) 「보리」로 읽는다。따라서 「보제」나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할 것이다.
*열반(涅槃) : [범] nirvana  [파]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라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멸(滅)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 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자성불(自性佛)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의 고해苦海)로부터 구하여(濟)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가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불교]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한담(閑談) ; 심심풀이로 이야기를 나눔. 또는 그러한 이야기.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주작(做作) :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억지로 지어서 하는 것.
*무자(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판치생모(板齒生毛), 이뭣고(시심마) ; 분류 ‘화두(공안) 참고’
*당인(當人) ; 어떤 일에 직접 관계가 있는 그 사람.
*상기증(上氣症 오를 상,기운 기,증세 증)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증세. 상기증이 생기면-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증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이 사용된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입부리 ; 새의 부리나 동물의 입을 말하는 ‘주둥이’를 속되게 이르는 말.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잡두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의단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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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이뭣고 화두2014.03.24 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