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無常)2015.03.03 14:33

§(세등10) 인생 무상, 이미 사형(刑) 언도(言渡)가 내려져 있는 신세 / 몽산 화상 출가 동기 / 생사가 무서운 포구발심(怖懼發心)과 철저한 일념 단속.


우리도 지금은 이만큼 건강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마는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사형(刑) 언도(言渡)를 내려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집행일만을 아지 못할 뿐이지 우리에게는 언도가 이미 내려져 있는 그러한 신세인 것입니다.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그날이 그 시간이 바로 나의 사형 집행일(行日)인 것입니다.

그러한 무상(無常)한, 사형 언도를 받은 그러한 신세로서 무엇이 급한 일이 있으며, 사형 집행일을 코앞에 두고 있는 죄수가 재산이 걱정이 되겠습니까? 명예 권리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참선을 할라면은 그러헌 생사(生死)가 무서운, ‘무상(無常)이 신속(速)해서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죽음이 돌아온다’고 하는 그런 철저한 발심(發心)이 없고서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선은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것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얼마만큼 철저히 발심을 해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일념 단속(團束)을 철저히 하느냐 못하느냐 여기에 달려 있을 뿐인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10)—병진년 동안거 해제 법어(77.1.17)에서.


 약 11분.



오늘 삼동 구순 안거(九旬安居)를 마치는 해제일을 맞이해서 방금 고(故) 전강 대종사(田岡大宗師), 우리 세등선원의 조실 스님으로 계시는 전강 대종사의 법문을 들었습니다.


잘 들으신 바와 같이 몽산 화상(蒙山和尙)의 출가 동기와 중국의 고봉 선사(高峰禪師)께서 3년을 기한을 하고 ‘3년 동안 열심히 도를 닦아 가지고 견성(見性)을 못하면 내가 죽어 버리리라’ 이렇게 결심을 하고,


3년 동안 밥 먹고 옷 입고, 일체 생활을 다못 화두(話頭) 하나 들고 정진하는 것으로서 3년을 하루같이 애를 썼건마는 조그만큼도 공부가 진행이 없어서, 3년 기한은 머지않았는데 도는 성취를 못해서,


‘이제 나는 죽는 수 밖에는 없구나’ 이렇게 앞이 캄캄하고 그러던 차에 꿈에 화두를 얻어 가지고 일주일 만에 대도를 성취한 고봉 스님의 도를 통하신 설화를 말씀을 해 주시고,

그러는 가운데 무자(無字) 화두, 만법귀일(萬法歸一), 판치생모(板齒生毛) 이러한 화두 드는 법에 관해서 자세히 말씀이 계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참선(參禪)을 해야 하고, 조실 스님께서 법문을 하실 때 마다 참선 이야기를 그렇게 간곡히  말씀을 하셨느냐?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머지않아서 우리는 죽음의 마당을 만나지 않고서는 아니 됩니다.

단명한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서 죽어서 나오기도 하고, 나오다 죽기도 하고, 10년 또는 30년 많이 살아 봤자 육칠십세 혹은 칠팔십세까지 살다가 죽는 이도 있지마는,

한번 태어난 사람치고 죽지 아니한 사람은 동서고금을 통해서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도 지금은 이만큼 건강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지마는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사형(刑) 언도(言渡)를 내려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집행일만을 아지 못할 뿐이지 우리에게는 언도가 이미 내려져 있는 그러한 신세인 것입니다.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그날이 그 시간이 바로 나의 사형 집행일(行日)인 것입니다.


그러한 무상(無常)한, 사형 언도를 받은 그러한 신세로서 무엇이 급한 일이 있으며, 사형 집행일을 코앞에 두고 있는 죄수가 재산이 걱정이 되겠습니까? 명예 권리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코앞에 ‘죽을 사(死)’자를 딱 써서 붙여 놓은 이 마당에 사소한 일로 시비, 인간으로 태어나서 크고 작은 어떠한 일이라도 ‘죽을 사(死)’자 앞에는 문제가 될 수가 없습니다.


도(道)를 닦을라면은 철저히 무상(無常)을 느끼고 깨닫지 아니하고서는 그 사람은 도를 성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맨 처음에 말씀하신 몽산 화상도 애당초에는 유교 사상(想)에 철저히 젖어 있는 선비였습니다.


‘불교’ ‘스님’하면은 진절머리를 내고, 절 근처에는 지나가다가도 보지도 아니하고, 목탁 소리가 나면 귀를 막을 정도로, 중을 보면은 어제 먹은 밥이 거꾸로 넘어올 정도로 비위가 상하고 이렇게 불법(佛法)을 비방하고 반대하던 그런 선비였습니다.


그러나 선영(塋)에 성묘(省墓)를 갔다가 오는 길에 비가 쏟아져서 잠깐 절 일주문(一柱門)에서 비를 피하다가, 거기서 절에서 화엄경을 설하는 법문을 한마디 듣고 그리고 집에를 와서 낮잠이 들었다가,


꿈에 어떤 노인이 와 가지고 흰 옷을 입힐라다, 검은 옷을 입힐라다 이러는 가운데에 그런 싱갱이를 하고 있자,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그 노인을 꾸짖으면서 ‘금방 오늘 절에서 화엄경 법문을 들었는데 그 사람에게 어찌 그런 옷을 입힐 수가 있느냐’고 꾸짖어서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깨서 보니까, 그 꿈에 본 그 자리를 찾아가 보니 강아지 새끼가—개가 새끼를 나았는데 흰 새끼가 죽어 있었다.


이러헌 광경을 보고서 ‘아하, 내가 틀림없이 이 흰 강아지로 태어날 것을 오늘 절 일주문에 비를 피하다가 화엄경 법문을 들으므로 해서 그 공덕으로 강아지 보(報)를 받을 것을 면했구나’하는 것을 깨닫고,

그길로 절에 가서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를 만나 가지고 참선법(參禪法)을 배워 그래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했다고 하는 그러한 법문이 계셨습니다.



참선을 할라면은 그러헌 생사(生死)가 무서운, ‘무상(無常)이 신속(速)해서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죽음이 돌아온다’고 하는 그런 철저한 발심(發心)이 없고서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선은 출가(出家)한 스님만 할 수 있는 것이냐?’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속가(俗家)에 있어도 정말 생사가 두려운 줄 깊이 느끼고, 생활 속에서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각만을 올바르게 단속 할 줄만 안다면 어디서나 바로 그 자리가 참선하는 도량(道場)이요,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는 수도장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하더라도 무상을 철저히 느끼지 못하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한량없는 무명(無明), 업식(業識), 번뇌(煩惱), 망상(妄想) 일어나는 놈을 단속할 줄을 모르고,

일어나는 한 생각을 점점 발전시켜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불을 훨훨 피우며 오욕락(五欲樂)에 사로잡혀서 하루하루를 지낸다고 하면은,


아무리 머리를 깎고 먹물옷을 입고 가사(袈裟)를 몸에 걸쳤을망정 견성성불은 막연하고 요원한 것입니다.


참선은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것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얼마만큼 철저히 발심을 해서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일념 단속(團束)을 철저히 하느냐 못하느냐 여기에 달려 있을 뿐인 것입니다.(처음~10분46초)



---------------------


*구순 안거(九旬安居)수행(修行)하는 스님들이 한 곳에 모여 외출을 금지하고 도를 닦는 일을 안거(安居)라 하는데, 하안거(夏安居,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동안거(冬安居, 10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15일까지)의 한 안거 기간이 90일 이므로 구순 안거(九旬安居)라 한다.

*전강 선사, 몽산 화상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고봉 선사(高峰禪師) ; 분류 ‘고봉스님(선요)’ 참고.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무자(無字) 화두, 만법귀일(萬法歸一), 판치생모(板齒生毛)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언도(言渡) ; 선고(宣告). 법정에서 판사가 판결의 결과를 알리는 일. 이로써 재판의 효력이 생김.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진절머리 ; ‘진저리(몹시 귀찮거나 싫증 나서 끔찍할    것)’를 속되게 이르는 말.

*선영(先塋 조상 선,무덤 영) ; 조상의 무덤. 또는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

*성묘(省墓 살필 성,무덤 묘) ; 조상의 산소를 찾아 인사를 하고 산소를 돌봄. 주로 설, 한식(寒食), 추석(秋夕)에 행한다.

*일주문(一柱門) ; 사찰로 들어가는 첫번째 문으로, 한 줄로 세운 기둥 위에 맞배지붕 양식으로 되어 있음.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붓다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붓다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싱갱이 ; 승강이(서로 자기 주장을 고집하며 옥신각신하는 일).

*보(報) ; 과보(果報),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완산정응(皖山正凝) 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일어날 발,마음 심)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출가(出家) : [범] Pravrajita 집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가정 생활을 떠나서 수도와 포교를 전문으로 하기 위하여, 스님이 되는 것을 말함이다.

그러나 몸 출가(身出家)보다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 삼독(三毒)의 불이 늘 붙고 있는 번뇌 망상의 불집에서 뛰어나오는 마음 출가(心出家)를 하여야 한다.

[참고] 송담스님 법문(No.353)—88년 신수기도 회향(88.02.26)에서.
출가(出家)라 하는 말은 말을 바꿔서 말하면 ‘크게 버리는 것’입니다. ‘크게 버리는 것’이 그것이 바로 출가인 것입니다.

출가에도 두 가지 뜻이 있고, 재가(在家)에도 두 가지 뜻이 있는데,
몸뚱이는 세속(世俗)에 있으면서 마음은 출가한—청신사(清信士) 청신녀(清信女)로서 비록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 마음은 모든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을 다 버려 버리고,
청정한 신심으로 불법에 귀의(歸依)해서 항상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그런 분은 바로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한 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속가(俗家)에 가 있는 그러한 출가도 있습니다.
비록 출가해서 염의(染衣)를 입고 머리는 깎았으되 마음이 완전히 오욕락(五欲樂)을 버리고, 탐진치 삼독을 버리고서 청정한 출가인으로서 사문(沙門)으로서 도를 닦지를 못하고,
몸뚱이는 절에 있으면서 마음속에 세속의 명리와 탐심을 버리지 못했다면 이것은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를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몸뚱이도 세속에 있고, 마음도 완전히 세속의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빠져서 일생을 그냥 고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몸뚱이도 마음도 세속에 있는 것입니다.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정말 청정한 사문은 바로 그러헌 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또는 순치황제라든지 역대 조사들은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그러한 모범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많은 거사(居士)라든지, 청신녀 가운데에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신심이 돈독해서 정법을 믿고 수행을 쌓아서 도를 얻은 분도 인도나 중국, 한국, 일본에 많이,
널리 이름이 알려지지 안 해서 그렇지, 정말 훌륭한 그런 분들도 많이 계시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업식(業識) ; ①과거에 저지른 미혹한 행위와 말과 생각의 과보로 현재에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작용. ②오의(五意)의 하나. 무명(無明)에 의해 일어나는 그릇된 마음 작용.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가사(袈裟) ; 스님이 장삼 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으로 걸쳐 입는 의().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싼또샤
발심,자신(自信)2014.05.24 18:12

§(세등58) 생사가 한 호흡지간에 있다 / 우리는 사형(死刑) 언도 받은 몸 / 자포자기(自暴自棄)는 가장 큰 죄 / 당장 여기서부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갖고 정진해야.

사형언도(死刑言渡) 받은-금방 곧 몇 분 후에 사형을 집행받을 죄수와 같은 그런 마음인데....
적적하고 성성하고 맑고 고요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있어야 돼.
전체적으로 결제허는 속에서 다시 또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서, 자기의 결제가 새로 있어야 되거든.
자포자기(自暴自棄)를 헌 것만큼 큰 죄는 없는 것입니다.
사바라이(四波羅夷) 죄를 범허면 불통참회(不通懺悔)라고 그러는데, ‘나는 틀렸어’ ‘나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통참회 커녕은 이건 스스로 자기의 보리종자(菩提種子)를 끊어버리는 것이라, 이 죄(罪)야말로 살불살조(殺佛殺祖)하고 부모를 죽이는 죄보다도 더 큰 죄라고 허는 것을 여러분은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유·무식(有·無識)도 상관이 없고, 남녀노소도 상관이 없어. 당장 이 자리에서부터서 자기도 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고 긍지를 가지고 정진을 허셔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58) - 을축년 동안거 해제 법어(86.01.17)에서.


약 15분.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고 하는 사실만 명심한다면 눈을 감으나 뜨나, 밥을 먹으나, 똥을 누나, 입선(入禪)을 허거나 방선(放禪)을 허거나, 산철이거나 결제거나 전혀 그런 것이 상관이 있을 수가 없어.

원래 결제(結制)라 하는 것은 인도 지방에 비가 많이 오는 계절에 숲속에서 정진헐 수가 없고, 행각(行脚)도 헐 수가 없으니까, 그 비를 피하기 위해서 결제를 허게 되얐든 것입니다.
결제중이라고 해서 공부를 더하고, 산철이라고 해서 비가 안 오는 때라고 해서 공부를 덜허고 그런 것이 아녀요.

겨울에는 워낙 추워서 행각을 못하고, 여름에는 또 너무 더워서 행각을 못하니까, 우리나라는 여름 석 달, 겨울 석 달을 안거 기간을 결제를 허고,
요새는 또 산철 결제라 해서 또 중간에 2달씩을 이렇게 하고 대단히 좋은 현상입니다마는, 그런 것도 우리가 공부하는데 도움은 되겠으나, 실지로 발심(發心)해서 공부하는 분상(分上)에는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 있읍니까.

대중 따라서 결제허게 되면 허고, 대중 따라서 해제 허기는 허겠지만, 각자 개인의 마음에는 언제나 결제고, 언제나 입선(入禪)이여.
누구를 위해서 정진을 헌 것도 아니고, 누구 보라고 헌 것도 아니여. ‘아! 저이 참 정진 잘한다’ 그따위 소리 들을라고 우리가 정진하겠습니까?

전혀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이 눈에 보일 수가 없고, 여러 대중 속에 살면서도 여러 사람이 보이지를 않어.

언제나 자기와 죽음과 맞대결이여.
사형언도(死刑言渡) 받은-금방 곧 몇 분 후에 사형을 집행받을 죄수와 같은 그런 마음인데,
무슨 놈의 결제·해제가 거기 문제가 되며, 뭐 수용이 좋고 나쁜 것이 상관이 있으며, 다른 사람 정진 잘허고 못 헌 것이 상관이 있으며, 분위기가 조용하고 시끄러운 것이 무슨 상관이 있어. 곧 앞으로 몇 분 후에 사형받을 사람이.

해제를 맞이해서 앞으로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해 나간다면 우리에게는 불일성지(不日成之)입니다.
반드시 확철대오(廓徹大悟)는 그 사람에게 멀지 않는 시일에 그 사람은 약속이 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한 생각, 아까 조실스님 법문 속에도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이 그것이 태어난 것이고 생(生)이고, 한 생각 꺼진 것이 그것이 죽음이다. 그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그것이 생사(生死)인데, 우리는 하루 동안에도 수없는 생사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속에도 미세하게 따지자면 구백생멸(九百生滅)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 한 생각 속에 구백생멸이면은 하루 동안에는 천문학적 숫자의 생사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전기가 딱 켜면은 계속해서 환히 밝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계속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켜졌다 한 것이 워낙 빨리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에 계속 켜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와 마찬가진 것입니다.

그 삼세육추(三細六麤)의 그 기멸심(起滅心), 그 생사심이 일어나고 있는 바로 거기에서 화두를 잡드리 해 가는 것이 우리의 정진입니다.
잊어버렸다하면 또 챙기고, 잊어버렸다하면 또 챙기고,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사형언도를 받은 곧 몇 분 후에면 죽을 그 죄수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 한 생각 골똘하므로 인해서 몇 분 후에 사형받을 것도 하나도 두려울 생각이 없어. 목을 쳐죽이거나, 목매를 달아서 죽이거나, 총을 쏴서 죽이거나 전혀 그런 것에 두려운 생각도 없고, 아무 관심이 없어.

다못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그렇게 되어 버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말이여.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허면은 거기에는 망상(妄想)도 끼여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망상도 끼여들지 못할 때에 그것을 적(寂)이라 그러는데, 적적(寂寂)허다. 적멸(寂滅)이라.
적적허다고 그 ‘고요 적(寂)’자를 쓰는데, 그 적적하면 너무나 적적하고 고요하고 깨끗해서 그 경계를 말로서 표현할 수가 없어.
그 경계를 맛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 적적하고 깨끗하고 그 경지에서 너무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고 허다 보니까, 그 맑고 깨끗하고 고요한 경계에서 자칫하면 화두를 망각하기가 쉬우니라.

그러한 경계에서 화두를 들면 오히려 화두를 듦으로 해서 그 고요하고 성성(惺惺)한 경계가 깨질까 두려워서, 화두도 들고 싶은 생각이 없는 수가 있습니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되는 거여.

적적하고 성성하고 맑고 고요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있어야 돼.

그때는 ‘어떻게 화두를 드냐?’하면,
‘이뭐꼬?’‘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막 어거지로 힘을 써 가지고 막 그렇게 드는 것이 아녀.

「알 수 없는 의단」이 있으면 그 의단(疑團)만을 떠억 관(觀) 헐 뿐이지, 자꾸 뭐 ‘이뭣고, 이뭣고?’해 가지고는 그렇게 우악스럽게 그 화두를 드는 것이 아녀.

성성(惺惺)한 가운데 적적(寂寂)하고, 그 적적하고 성성한 가운데 의단이 성성허게-그 고요한 호수에 달이 비추듯이 그렇게 화두가 성성하고 적적하게 의단이 타악 현전(現前)해야 하거든.

그렇게 되면 옆에서 떠들어도 상관이 없고, 밥을 먹어도 고대로 있고, 똥을 눠도 그 화두가 고대로 있고, 어딜 걸어가도 고대로 있고, 울력을 해도 고대로 있고,
뭣헌 이는 옆에서 떠들면 화두가 없어져 버린다고 하는데, 그 아직 덜된 거여. 아직 그것은.

옆에서 떠들어도 상관이 없고, 잡담을 해도 소용없고, 자기는 자기거든. 그렇게 되도록-그건 애를 쓰는 데에서 그렇게 되는 것이지, 그럭저럭 지내는 데에는 생전 해봤자 그렇게는 안되는 것이여.
정말 전체적으로 결제를 허지마는, 전체적으로 결제허는 속에서 다시 또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서, 자기의 결제가 새로 있어야 되거든. 그렇게 잡두리 해 나가는데...

그런 생각도 못쓰는 거여. 깨닫기를 기다리지도 말고, 누가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래지도 말고, 다못 그 성성적적한 가운데에 의단만이 독로(獨露)허도록,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도록만 그렇게 단속을 해 나가면,
일주일을 넘지 못해서 귀로 들리는 어떠헌 소리나, 눈에 들어오는 어떠헌 경계나, 스스로 무슨 발을 잘못 디디거나, 또는 자다가 벼개에서 뚝 떨어지거나, 그러헌 특수한 그런 사건을 만나면 통 밑구녁이 빠지듯이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헌 경계가 나타나면 반드시 그때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점검을 맡어 가지고, 그것이 잘못 되았다 하면 다시 새로 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른 경계면 공안에 맥힘이 없어야 하고.
천칠백 공안에 선지식과 탁마(琢磨)를 해서 맥힘이 없으면 다시 진짜 그때부터서 정진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산중에 들어가서 정말 오후(悟後)에 보림(保任)을 철저하게, 몇백 배 철저하게 정진을 해서 다생 습기(習氣)를 다 소멸하고 그때 가서 경(經)도 사교(四敎)·대교(大敎)를 다 보고, 심지어 유도백가제서(儒道百家諸書)까지 다 간과(看過)를 헌 다음에, 그때 비로소 중생 교화를 허러 나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수한 사람만이 그렇게 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누구라도 정말 ‘죽을 사(死)’자를 써 가지고 바른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여법(如法)히 수행한다면, 누구라도 이렇게 될 수 있는 자격과 가능성을 우리가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성현(聖賢)이나 허지. 특수한 상근대지(上根大智)나 허지’
다른 사람한테 미루고 자기는 이미 될 수 없는 그러헌 존재다. 나는 도(道)는 금생에 못 닦을 사람이다.

자포자기(自暴自棄)를 헌 것만큼 큰 죄는 없는 것입니다.
사바라이(四波羅夷) 죄를 범허면 불통참회(不通懺悔)라고 그러는데, ‘나는 틀렸어’ ‘나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통참회 커녕은 이건 스스로 자기의 보리종자(菩提種子)를 끊어버리는 것이라,
이 죄(罪)야말로 살불살조(殺佛殺祖)하고 부모를 죽이는 죄보다도 더 큰 죄라고 허는 것을 여러분은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유·무식(有·無識)도 상관이 없고, 남녀노소도 상관이 없어.
당장 이 자리에서부터서 자기도 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고 긍지를 가지고 정진을 허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는 우리 사부대중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우주법계의 모든 유주무주(有主無主) 영가(靈駕)들도 다 거량(擧揚)을 통해서 이 법석에 초청이 되야서 참석을 허셨습니다.

특히 경주 김씨 동운 영가도 오늘 이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과 산승의 설을 잘 들었을 줄 생각합니다.
일생 동안 또는 무량겁 동안 지은 모든 죄업이 봄눈 녹듯이 다 녹았을 것이며, 얼키고설킨 다생에 원한이라든지 모든 업연도 봄눈 녹듯이 다 녹아서, 그 동안에 49재를 지내서 다 잘 천도가 되셨을 줄 생각합니다만, 또 산승과 인연이 있어서 이 법석에 참석을 허시게 되았습니다.

미진한데가 있다 하드라도 모든 것을 다 털어 버리고, 어서 바삐 새 몸을 받아 가지고, 우리와 같이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도를 닦아서 확철대오를 해서 무량중생을 제도(濟度)하게 되기를 바랍니다.(37분55초~52분38초)


---------------------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행각(行脚) ; 스님이 일정한 거처를 가지지 않고, 스승의 밑을 떠나 참선의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지식이나 좋은 벗을 구해 마치 떠도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처럼 여러곳을 편력하는 것. 운수(雲水)와 같은 의미.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공부하는 분상에는 ---> 공부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언도(言渡) ; 선고(宣告). 법정에서 판사가 판결의 결과를 알리는 일. 이로써 재판의 효력이 생김.
*불일성지(不日成之) ; 며칠 안 가서 이룬다(성취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삼세육추(三細六麤) ; [대승기신론]에서 말하는 근본무명(根本無明)의 3상(相)과 지말무명(枝末無明)의 6상(相)을 말함. 3세(細)란 그 상(相)의 작용이 미세하므로 세(細)라 하고, 6추(麤)는 거칠고 엉성하기 때문에 추(麤)라 함.
*기멸(起滅) ; 생(生)하고 멸(滅)하는 것. 생겨남과 없어짐. 즉 인연이 화합하면 생하고, 인연이 이산(離散)하면 멸한다는 뜻.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 ‘이뭣고?’ / ‘판치생모(板齒生毛) /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무(無)자’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울력 ; 함께 힘 모아 일하는 것,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그러나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로 운력(運力)이라고도 한다. 의미와 관계없이 '울력'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자가철주(自家鐵柱) ; 자기 스스로 정한 규칙을 쇠기둥(鐵柱)을 세워 놓은 것과 같이, 움직임없이 지켜나감을 이르는 말.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때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탁마(琢磨)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노력하는 것.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습기(習氣) ; 과거의 인식•행위•경험•학습 등이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사교(四敎) ; 조선 중기 이후, 우리나라 스님들이 불경이나 그에 대한 논설 따위를 강론하고 학습하는 곳인 강원(講院)에서 배우는 중급 과정의 네 과목. 곧 《능엄경(楞嚴經)》, 《기신론(起信論)》, 《금강경(金剛經)》, 《원각경(圓覺經)》을 이른다.
*대교(大敎) ; 석가모니가 도를 이룬 뒤 맨 처음 설법한 내용을 담은 경전인 화엄경(華嚴經)을 말한다. 정식 명칭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다.
*유도백가제서(儒道百家諸書) ; 유교, 도교와 여러 학자의 모든 서적.
*간과(看過) ; 큰 관심 없이 대강 보아 넘김.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성현(聖賢) ; 성인과 현인을 아울러 이르는 말.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큰 사람.
*자포자기(自暴自棄) ; 절망 상태에 빠져 스스로 자신을 내버리고 돌보지 않음.
*사바라이(四波羅夷) ; 사중금계(四重禁戒), 사중금(四重禁), 사중(四重).
(1)승단에서 추방되어 비구의 자격이 상실되는 네 가지 가장 무거운 죄.
①사람을 죽임(살생 殺生). ②도둑질함(투도 偸盜). ③음란한 짓을 함(사음 邪淫). ④깨닫지 못하고서 깨달았다고 거짓말함(망어 妄語).
(2)밀교에서 가장 무거운 죄.
①바른 가르침을 버림. ②보리심(菩提心)을 버림. ③가르침을 베푸는 데 인색함. ④중생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행위를 함.
*보리(菩提) ; 불교 최고의 이상(理想)인 불타 정각(佛陀正覺)의 지혜. 올바른 깨달음으로 모든 것의 참된 모습을 깨닫는, 부처의 지혜를 뜻한다. 산스크리트 어 ‘Bodhi’의 한자 음역어이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거량(擧揚) ; ①설법할 때에,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부르는 일. ②화두, 공안(公案)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불교의 진수(眞髓)를 말하는 것. 불법을 선양하여 사람을 인도하는 것.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싼또샤
법회(설날차례)2014.01.28 14:13

§(636) 설날차례 / 생사(生死)는 본래 없다. /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

**송담스님(No.636) -  2000년(경진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2000.2.2)(21분).

약 22분.


매년 정월 초하루날 새벽에는 통알(通謁)이라고 하는 의식을 거행해 오고 있습니다.

결제(結制)중이고 그래서 낱낱이 모든 존경하는 어른들께 세배(歲拜)를 다닐 수가 없기 때문에 자기가 있는, 수도(修道)하고 있는 도량(道場)에서 합동으로 세배 올리고자하는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랜 전통으로 그렇게 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용화사에서도 옛날부터서 그렇게 해 오고 있는데, 따라서 여기에 있는 모든 스님네나 보살님네들, 거사님네들도 그렇게 하시고 개별적인 세배를 생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해를 하시고 지금부터 거행하는 통알에 진심으로 정성스러운 세배를 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오늘 새해 설날을 맞이해서 형제, 자매, 도반 여러분, 법보가족 여러분들이 이 법당에 모이셨습니다.

오늘 오신 뜻은 용화사 법보전(法寶殿)에 모신 우리의 선망 부모(先亡父母)와 먼저 가신 가족·친지 영가(靈駕)께 영단(靈壇)에 차례(茶禮)를 젓수기 위해서 모다 참례를 하셨습니다.

일반 가정에서는 옛날부터 조상의 신주(神主), 위패(位牌)를 모시고 차례를 젓수고, 그런데 우리는 이 법보전에 우리의 선망 부모와 조상들의 영가를 모셨기 때문에 여기서 차례를 올리기 위해서 모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전강 조실스님의 ‘생사(生死) 없는 최상승(最上乘) 법문(法門)’을 영가께 들려 드리고 또 우리도 그 법문을 다 같이 경청을 했습니다.

영단(靈壇)에 정성으로 여러 가지 음식과 과일을 올려서 앞으로 법요식을 거행하게 되겠습니다마는,
정말 참다운 차례(茶禮)는 조실스님의 생사 없는 진리의 말씀을 들려 드림으로 해서 우리의 선망 부모와 조상께 참으로 소중한 정성이 담긴 차례를 올린 것이라고 산승(山僧)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아무리 갖가지 음식을 많이 차려놓은들 영가가 얼마나 그것을 잡숫고 생사해탈을 하시게 될는지, 다맛 우리의 정성으로 올린 것뿐이지 그것은 아무도 보증을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마는,

생사 없는 진리의 말씀을 영가께 들려 드림으로 해서, 영가가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벗어나서 생사 없는 해탈도(解脫道)로 가신다고 하는 것은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심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미 차례는 조실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우리의 조상들에 대한 차례는 원만히 다 마쳤습니다. 다만 앞으로 요식 행위만이 남아있습니다.

산승이 여기서 올라 와서 앞에 나와서 여러분께 나온 기념으로 게송을 하나 읊고자 합니다.

월마은한전성원(月磨銀漢轉成圓)한데  소면서광조대천(素面舒光照大千)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연비산산공착영(連臂山山空捉影)하니  고륜본불낙청천(孤輪本不落靑天)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찰나생멸무상법(刹那生滅無常法)이요  취산순환유루인(聚散循環有漏因)이로다
나무~아미타불~
금오출몰촉년광(金烏出沒促年光)한데  옥토승침최로상(玉兎昇沈催老像)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찰나생멸무상법(刹那生滅無常法)이여. 찰나 찰나는 한 생각 속에 구백 생멸(九百生滅)이 있는데, 그 구백 생멸의 단위가 일찰나(一剎那)여.
구백 찰나가 모여서 한 생각인데, 일초에 몇천 분의 일이 될는지,
그 시계가 똑딱 똑딱 똑딱 지내가는 그 사이에 우리의 생명도 그렇고, 모든 중생의 생명도 그렇고, 산천초목도 다 죽음을 향해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모였다가 흩어지고, 한 가족으로 한 부부로 만났다가 생이별 사이별하고, 부모 자식 간에 인연으로 태어났다가도 부모가 먼저 죽고 자식이 먼저 죽기도 합니다.

그렇게 만났다가 헤어지고 헤어졌다가 다시 또 내생(來生)에는 인연 따라서 또 인간 세상에서 만날 수도 있고, 천상에 가서 만날 수도 있고, 축생계에서 만날 수도 있고, 지옥에서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나되-인연 따라서 만나기는 하지마는-한 생(生)을 바꿀 때 깨끗하게 전생사(前生事)를 망각을 해 버리기 때문에 무슨 인연으로 만난지도 모르게 또 만나서 가족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런 것이 유루(有漏)의 인연(因緣)이요 무상법(無常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는 정들었던 부모를 여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들었던 아들과 딸을 여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다 인연 따라서 만나고 인연이 다하면 또 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 가운데에서 생멸(生滅)하고, 취산순환(聚散循環)하는 것이,
금오출몰촉년광(金烏出沒促年光)이요. 해가 동쪽에서 떴다가 서쪽으로 지고 또 달이 떴다가 또 달이 지고 하는 이런 것이 우리의 생명을 재촉하는 북소리와 같은 것입니다.

이미 사형(死刑) 언도(言渡)를 받고 사형장으로 끌려가는데, 북을 치면서 계속 가 가지고 마지막에 사형을 당한거와 같은 그러한 상황에다가 비유할 수가 있고, 현실적으로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죽음이 동시에 판결이 나 있는 것입니다.
다못 어느 날 어느 시에 집행이 되느냐? 그것만 모를 뿐이지, 이미 우리는 죽음을-딱 사형 언도를 받고 있는 처지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정월 초하룻날 왜 이런 생사 문제를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은,
사실은 생사 속에 살고 있지마는 ‘생사 없는 진리’가 있기 때문에, 생사 없는 진리를 확실히 깨달을라면 생사라고 하는 것이 대관절 무엇이냐? 생사의 근본이 무엇이냐?

그 근본을 확실히 우리가 이해하고 확실히 믿고, 그 생사 없는 도리를 바른 공부를 통해서 수행을 통해서 확실히 깨닫고 보면, 분명히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해탈도를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병을 낫을려면 그 병의 근원을 알아야 거기에 따라서 침을 맞고, 쑥을 뜨고, 약을 먹고 물리치료를 받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원인을 모르고서는 병을 낫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월마은한전성원(月磨銀漢轉成圓)이요. 저 달이 하늘에서 돌고 돌다 보면 초승달이 차츰차츰 커져 가지고 보름날이 되면 완전히 둥그런 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둥근 달이-환하게 쟁반 같은 달이 떠 가지고 온 세계를 다 비춥니다. 대천세계를 다 비춘 것입니다.

그런데 잔나비는 어느날 숲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놀다가 숲속에 있는 샘을 들여다보니까 그 속에 둥근달이 비추거든.
그러니까 하늘에 떠 있는 달이 물에 빠졌다고 야단법석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저 달을 건져서 다시 허공으로 돌려보내야지, 저 물속에 잠겨버리면 온 세계가 어두워지니 어떻게 할 거냐?
잔나비의 우두머리가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가 팔에 팔을 연결을 해 가지고 저 물속에 빠져있는 달을 건지자.

이래 가지고 팔에 팔을 연결해 가지고 수십 마리가-한 놈은 나무를 붙잡고 팔을 늘이면 그 다음에는 그 팔을 잡고 또 팔을 늘이고 해 가지고, 간신히 수십 마리가 팔에 팔을 연결해 물에 달락말락 하니까,

그 여러 마리가 매달리니까 그 중에 팔 약한 놈이 손을 갖다가 놔가지고 수십 마리가 물속에 다 빠졌습니다.

그것이 연비산산공착영(連臂山山空捉影)입니다.
산산이가 팔을 연결해 가지고 물속에 있는 달을 건지려고 하나 그것이 건져지겠습니까.

고륜본불낙청천(孤輪本不落靑天)이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원래 그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달빛이 물에 비춘 것뿐이라고 이것입니다.
그것을 안다면 어찌 물속에 있는 달을 건지려고 할 것이냐. 이런 고인의 게송인데,

이건 무엇을 비유해서 한 말이냐 하면은, 우리는 분명히 이 법당 안에 수만(數萬)의 영가가 봉안(奉安)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우리 눈으로 분명히 이승을 하직(下直)한, 이승에 처자 권속과 부모형제를 놔둔 채 저승으로 떠나신 그런 영가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걸 ‘돌아가셨다’ 그러고, ‘죽었다’하고, 교통사고나 뭐 병고로 모다 그렇게, 사실 돌아가셨다고 다 말들을 하는데,

아까 조실스님의 법문 가운데도 있었습니다마는,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죽었다·태어났다 그런 것이지, 생사로 인증(引證)을 하는 것이지,

마치 허공의 달이 허공에 떠 있으면서 달빛만 물에 비춘 거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이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생사가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말씀이지만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그 의단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은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이고, 이 공부를 열심히 함으로써 진실한 법보제자(法寶弟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천도 차례 법요식이 끝나면 떡국을 맛있게 잘 끓여 놨습니다. 법요식이 끝나면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맛있는 떡국을 잘 잡숫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처음~21분20초)(끝)

---------------------

*통알(通謁 통할 통,뵈일 알) ; 불교의 신년하례식(新年賀禮式)으로 세알(歲謁)이라고도 한다.
새해 첫날 삼세(三世)의 모든 삼보(三寶 불보살·법보·승가)와 호법신중(護法神衆), 대중에게 세배를 드리는 의식이다.
우선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법보와 승보에게도 삼배를 올린다. 또 현재 살아계신·돌아가신 모든 부모, 원근친척 그리고 온 법계의 모든 도반들 또한 함께 참석한 대중들에게 세배를 올리는 것.
결재중이고 그래서 낱낱이 모든 존경하는 어른들께 세배(歲拜)를 다닐 수가 없기 때문에 자기가 있는, 수도(修道)하고 있는 도량(道場)에서 합동으로,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이 우리가 세배(歲拜)를 올려야 할 존경할 만한 모든 성현(聖賢)과 모든 어른과 모든 선지식과 모든 도반들에게 이 자리에 서서 세배를 드리는 의식.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안거(安居)에 들어감.
*세배(歲拜) ; 섣달그믐이나 설 무렵에 웃어른을 찾아뵙고 절을 함. 또는 그 절.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영단(靈壇) ; 영가의 위패를 두는 단(壇).
*차례(茶禮) ;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의 낮에 지내는 제사.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신주(神主) ; 죽은 사람의 위패.
*위패(位牌) ; 죽은 사람의 위(位)를 모시는 나무패.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잡숫다 ; ‘잡수다’의 높임말. ‘잡수시다’가 줄어든 말.
*잡수다 ; ①‘먹다’의 높임말. ②(사람이 제사를) 차려 올리다.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게송) ‘월마은한전성원~’ ; [관음예문(觀音禮文)]에 나오는 게송. 舒펼(서).
*(게송) ‘찰나생멸무상법~’ ; [관음예문(觀音禮文)]의 무상게(無常偈)에 나오는 게송. 促재촉할·빠를(촉), 催재촉할·독촉할(최), 金烏(금오)-'해'를 가리키는 말, 玉兎(옥토)-'달'을 가리키는 말.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지극히 짧은 시간. 순간.
*내생(來生) ; 죽은 후에 다시 맞이한다는 미래의 삶을 이른다.
*전생사(前生事)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생애에 겪은 일.
*유루(有漏); ①누(漏)는 마음에서 더러움이 새어 나온다(漏泄 누설)는 뜻으로 '번뇌'를 말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든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온갖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차별이나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②생존에 집착하는 번뇌.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유루인(有漏因) ; 미혹한 생존의 원인인 번뇌나 그릇된 행위.
*언도(言渡) ; 선고(宣告). 법정에서 판사가 판결의 결과를 알리는 일. 이로써 재판의 효력이 생김.
*잔나비 ; ‘원숭이’의 사투리.
*산산(山山)이 ; 원숭이.
*수만(數萬) ; ‘만(萬)’의 여러 배가 되는 수.
*봉안(奉安) ; 죽은 사람의 위패(位牌), 화상(畵像)이나 시신 따위를 모시어 둠.
*이승 ; 지금 살고 있는 현실 세계나 일생 동안을 이르는 말.
*하직(下直) ; ①먼길을 떠날 때 웃어른에게 작별을 아룀. ②'죽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저승 ; 사람이 죽은 뒤 그 영혼이 가서 산다는 세상.
*인증(引證) ; 글 따위를 인용하여 증거로 삼음.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때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신고
Posted by 싼또샤
화두(공안)2013.11.28 11:31

§(264) 화두(話頭)란 무엇인가? / < ‘유리병 속에 들어있는 오리를 꺼내는’ 화두>

**송담스님(No.264) - 1985년 4월 첫째일요법회(91분)에서.

약 9분.


 이렇게 해서 앉는 자세와 단전호흡을 익힌 다음에는, 정식으로 화두(話頭)를 타서-그 화두라 하는 것은 여러분 잘 아시겠지만, 혹 새로 오신 분도 있고 또 나오신 지가 얼마 안 되는 분이 있어서 간단히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공안(公案)이라고도 하는데, 이 화두라 하는 것은 어떠헌 공부해 나갈 때에 우리의 정신을 갖다가 집중하는데 필요한 어떤 문제라고, 과제라고 이렇게 쉽게 얘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막연허게 이렇게 앉았을 수가 없으니까 무엇인가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 생각허는 문제인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러헌 화두라 하는 것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1700개나 되는데, 이 천 칠백 가운데에 가장 우리가 알아듣기 쉬운 한 문제를 말씀을 허겠습니다.


< ‘유리병 속에 들어있는 오리를 꺼내는’ 화두>

유리병이 있는데, 그 유리병이 주둥이는 조그만 하고 몸뚱이는 툭 퍼져서 크게 되야 있는 그런 유리병이 있는데, 그 유리병 속에다가 오리 새끼 한 마리를 집어넣었습니다.


오리 새끼가 조그만 하니까 그 주둥이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다 물도 넣어주고 먹이도 넣어주고 해서 오리를 길렀는데, 그 오리가 제법 그 안에서 잘 먹고 잘 커서 에미가 되았습니다.

그런데 그 오리를 꺼내야겠는데, ‘유리병도 깨지 아니하고 오리도 조금도 상하지 않고서, 어떻게 했으면 그 오리를 꺼낼 수가 있느냐?’ 이러헌 문제인 것입니다.

이러헌 문제면-이것이 어릴 때 하는 수수께끼와 비슷헌 건데,
‘어떻게 허면은 꺼낼 수가 있을 것인가?’ ‘어떻게 허면은 유리병도 깨지 아니하고 오리도 다치지 않게 아주 통채 그 오리를 밖으로 꺼낼 수가 있을 것인가? '

처음에는 자기가 알고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해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는 이 문제의 해답을 얻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병을 깨지 아니하면-오리를 몸을 쪼가리 쪼가리 띠어 내거나, 억지로 철사로 올가미를 넣어 가지고 목아지를 걸어서 잡어당긴다면 몸뚱이가 푹 퍼졌으니 목아지가 떨어져불 것이고-도저히 아무리 생각해 봤자,
그 유리를 갖다가 불에다 녹여서 주둥이를 키워 갖고 낸다면, 이미 병은 다친 것이 되기 때문에 안 맞을 것이고,

자기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쓸 수가 있을 것입니다만은, 그렇게 해서 한 달을 연구허고 1년을 생각해 봤자 상식적으로는 이 문제는 해결이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허다허다 못해서 지치니까 나중에는 「어떻게 꺼낼 수가 있을까?」 오직 이제는 단순허게 그러헌 의심(疑心)만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앉아서도 「어떻게 허면 꺼낼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꺼낼 수가 있을까?」 밥을 먹을 때도 그렇게 생각하고, 똥을 눌 때도 그렇게 생각하고, 차를 탈 때에도 「어떻게 허면 오리를 꺼낼 수가 있을까?」 일을 할 때도 그렇게 생각하고, 나중에는 잠을 잘 때 꿈에도 그것을 생각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허다가 한 달을 그렇게 생각하고, 두 달을 그렇게 생각하고, 일 년을 그렇게 생각하고, 이태를 생각하다 보면, 나중에는 일부러 그것을 생각헐라고 안 해도 저절로 그냥 그 생각이 언제나 우리의 마음속에 그 생각이 떠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걸 생각허다가도 다른 일을 듣거나 보거나 하다가 깜박 잊어버리고, 다른 일 생각하다 잊어버리고,
그런데 나중에는 잊어버렸다 하면 또 퍼떡 챙겨서 「어떻게 허면 오리를 꺼낼 수가 있을 것인가?」 이렇게 허고 또 챙기고 또 챙기고 허다 보면, 나중에는 챙길라고 안 해도 항시 자나깨나, 언제 어디서 무엇을 허거나 오직 그 생각뿐이 될 것입니다.

‘그 생각만이 되기를 어떻게 되냐’하면은,
칠십 먹은 할머니가 외아들이 여행을 나가 가지고 돌아온다는 날짜가 여러 날이 지냈는데도 돌아오지 아니 했을 때에, 생각 생각이 아들 생각허듯이 오직 「어떻게 허면은 이 오리를 꺼낼 수가 있을 것인가?」

‘이 문제를 석 달 이내에 해결허지 못하면은 너를 사형 언도를 허겠다’ 또는 ‘1년 이내에 이 문제를 해답을 얻어 오지 못하면 너를 갖다가 귀양을 보내겠다’한 임금님한테 이런 문제가 나와 가지고 생명을 갖다가 걸고서 허게 된다고 헐 때에, 얼마만큼 골똘하게 이 문제를 생각하겠습니까?

 이 유리병 속에 들어있는 오리를 꺼내는 이런 문제는, 흡사 이것도 공안이지만-마치 어린이들한테 수수께끼 문제와 같은 그러헌 종류의 공안이지만-이것은 어른들도 한번 생각해 볼만한 일인데,
여러분에게 그 동안에 허던 ‘이무엇고?’ 화두라든지 또는 ‘무자(無字)’ 화두라든지 또는 판치생모(板齒生毛)’나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같은, 이미 들고 있는 화두를 내동댕이쳐 버리고, ‘이제부터서는 유리병 속에 오리 꺼내는 화두로 해야겄다’ 이러라는 것이 아닙니다.
혹 ‘그 참! 재미있다’해 가지고 ‘에잇! 오늘부터서 그것을 해야겄다’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실 필요가 없고, 처음 오신 분을 위해서 그 화두(話頭)라고 하는 것이 어떠헌 것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 해드리기 위해서 내가 그 재미있는 화두를 하나 말씀을 드린 것 뿐이지, 절대로 이 화두를 가지고 오늘부터서 허시면 아니 됩니다.

 이것이 수수께끼와 같은 재미있는 화두지만, 사량•분별로 해결헐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이미 말씀 드렸으니까, 수수께끼 풀듯이 이것을 이렇게 따져 보고 저렇게 따져 보고 허는 것은 헛수고에 지내지 못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아시고,(53분6초~61분30초)

-------------------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통채(통째) ; 나누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덩어리로.
*올가미 ;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한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귀양 ; 고려ㆍ조선 시대에, 죄인을 먼 시골이나 섬으로 보내어 일정한 기간 동안 제한된 곳에서만 살게 하던 형벌.

*이 무엇고(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 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p52~53 에서.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p53 에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신고
Posted by 싼또샤
참선 (목적)2013.11.23 17:01



§(264) (게송) ‘만산홍록개묘체~’ / 참선의 근본 목적은 ‘내가 나를 깨달라서,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것’

**송담스님(No.264) - 1985년 4월 첫째일요법회(91분)에서.

(1) 약 6분.  (2) 약 17분.


(1)------------------

만산홍록개묘체(滿山紅綠皆妙體)하고 유수산조역설법(流水山鳥亦說法)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춘일쾌청춘수족(春日快晴春睡足)헌디 와청산조백반성(臥聽山鳥百般聲)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만산홍록(滿山紅綠)이 개묘체(皆妙體)여. 가득한 산에 붉고 푸른 것, 붉게 피는 꽃과 푸른 이파리가 모두가 다 진리의 체(體)더라.
유수산조역설법(流水山鳥亦說法)이다. 흐르는 물소리와 노래하는 새소리가 또한 전부 부처님의 설법이더라.

'부처님'하면, 삼천년 전에 정반왕궁(淨飯王宮)에 탄생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연상(聯想)을 하고, 또 서방 극락세계에 아미타불을 연상하고, 또 법당에 모셔져 있는 황금으로 개금(改金)을 저순 법당의 등상불(等像佛)을 생각을 합니다마는,

참부처님은 법당에만 계신 것도 아니요, 삼천년 전에 네팔국에 태어나신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하셔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신 그 부처님만이 부처님이 아니고, 온 산에 가득한 붉은 꽃과 푸른 이파리가 낱낱이 다 부처님의 모습이더라 그말이여.


부처님의 설법, '법문'하면은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연상을 하고, 법화경이나 금강경 또는 화엄경 반야심경과 같은 이런 문자로 된 경전만을 생각하기가 쉽습니다마는 부처님의 참설법은 흐르는 물소리와 노래하는 새소리가 그냥 고대로 부처님의 살아있는 설법(說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춘일쾌청춘수족(春日快晴春睡足)헌데, 봄날이 돌아와서 날씨가 화창한데 봄 졸음이 족해. 엄동설한이 지나가고 해동(解凍)이 되어서 날씨가 화창한데, 마루에 앉았으면은 졸음이 오는데,

와청산조백반성(臥聽山鳥百般聲)이다. 졸음이 와서 떠억 비껴 누워서 산새들이 노래하는 그 노래 소리를, 가지가지 산새가 파랑새•노랑 새•큰 새•작은 새가 마치 교향악이 울린 것처럼 그렇게 백 가지 노래 소리가 들려오는데, 떠억 누워서 그 노래 소리를 듣더라 그말이여.

이것은 참선을 해서 확철대오한 깨달은 도인의 한 장면을 게송(偈頌)으로 읊은 것입니다.(5분53초)



(2)------------------

오늘은 을축년 4월 7일 첫째 일요법회날을 맞이했습니다. 그렇게 추웠던 삼동이 지나고 어느덧 4월을 맞이했습니다. 세월은 이렇게 잠시도 쉬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이렇게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가고 춘하추동이 사시절(四時節)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은 하나도 특별할 것도 없고 이상할 것도 없고, 깨달은 경계에서 본다면 이것이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시고 미륵불이 또 출세하신 모습이며,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쉴 사이 없이 상주설법(常住說法)을 하신 모습이지만은,
나를 깨닫지 못한 중생의 경지에서는 이 일초 일초와 이 세월의 춘하추동 돌아가는 것 모든 것이 다 우리의 죽음을 재촉하는 그러한 상황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어째서 깨달은 분상에는 이것이 모다 설법이요, 부처님이요, 바로 이것이 극락세계요 적광토(寂光土)인데,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하루가 지내가면 죽을 날짜가 하루 다가와지고, 해가 한번 떴다가 지면 사형(死刑) 언도(言渡)를 집행하는 날이 하루 다가서고 죽을 날이 가까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깨달은 부처님이나, 깨닫지 못한 우리 중생이나 똑같이 다 깨달을 수 있는 그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면서, 깨달은 분은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진리의 세계에서 극락세계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하루를 갖다가 그렇게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지내는데,

우리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하루하루를 지내는 것을 마치 사형 언도 집행날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그러한 마음으로 하루를 지내게 되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더군다나 오탁악세(五濁惡世) 이 말세(末世)에 태어나서 불법(佛法)을 만나지 못했다면, 정말 우리의 앞길은 암담하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아주 진절머리가 나고 아무 희망도 없고 그럴 텐데,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만나고 정법을 만났기에, 말세에 태어났으면서 이 오탁악세에 태어났으면서,

온통 온 세계가 도처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이 하루에면 몇십 명씩, 몇백 명씩 죽어가기를 파리 목숨보다도 더 참 허망하게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 이러한 때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말 이 허망한 몸뚱이를 이 세상에 이 시기에 받어난 것을 너무 다행하고 경행하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바로 이 ‘생사(生死)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道理)와 하나가 되는 것’이여.

‘생사를 버리고 영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아서 실천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 불법인 것입니다.

산에 봄이 오면 붉고 누런 꽃이 피고 파란 잎이 피고 헌 것이 하나도 특이할 것이 없고, 해마다 돌아오는 봄이면은 꽃이 피고 잎이 피는 것이지만, 깨달은 눈으로 보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출현하신 모습이요, 흐르는 물, 노래하는 새소리가 그냥 고대로 화엄경(華嚴經)이요, 법화경(法華經)이요, 금강경(金剛經)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불법을 만난 김에 기어코 깨달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몸과 목숨을 바쳐서 나의 모든 것을 이 한길에다 바쳐서 깨달음을 얻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에게 자기 자신, 자기의 마음자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삼세제불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번갈아 가면서 출세를 하신 것입니다.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 출현을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말을 하고 그렇게 믿고 있지만, 제도(濟度)가 무슨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듯이 그렇게 건져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중생으로 하여금 우리 중생들이 낱낱이 자기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자기의 주인공, 자기의 마음자리 그것을 스스로 계발(啓發)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가,‘자기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자기의 주인공’ 자기의 마음자리를 확인시켜서, 그것을 잘 갈고 닦도록 하면 그것이 바로 중생을 제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어진 의원과 같고 또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와 같아서, 약을 일러주면 환자 자신이 그 약을 잘 먹으면 병을 낫을 것이요. 길을 일러주면 그 일러주는 길을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어진 의원이라 하더라도 환자 대신해서 그 약을 먹어줄 수도 없는 것이며, 아무리 안내를 잘한다 하더라도 본인이 걸어가야지, 본인이 걸어가지 아니하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실 스님께서 주안 용화사 이 자리에 오셔서 이십 성상(星霜)을 한결같이 대자비(大慈悲)의 문을 열어서 정법(正法)을 선양(宣揚)을 하시고 또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10년을 걸쳐서 이 송담이 여기서 법회를 가져오고 있습니다마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말을 했지만은 언제나 그 핵심은 하나이고 그 돌아갈 곳은 한 가지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할 때에 여러분은 귀를 기울이고 말을 듣고 계십니다마는, 그 듣고 있는 바로 그놈을 스스로 돌이켜 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총력(聰力)이 좋고 머리가 좋아서 화엄경을 육두로 다 외우고, 법화경을 다 외우고, 금강경을 다 외운다 하더라도 그것을 해석하고 외우는 데만 그쳐 가지고서는 그것은 불법을 옳게 믿는 사람이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화엄경과 법화경, 금강경과 같은 그러한 좋은 경을 읽고 해석하고 이해를 해서, 참으로 옳게 이해를 한다면 거기에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참선법(參禪法)은 경(經)을 가르키지 아니하고, 경을 외우게 하지 아니하고, 경을 해설을 해 드리지 아니하면서 언제나 여러분으로 하여금 여러분이 눈을 통해서 볼 줄 알고, 귀를 통해서 들을 줄 알고, 입을 통해서 말할 줄 알고, 생각으로 희로애락을 느끼고 생각하는, 바로 그놈을 돌이켜 찾으라 이것입니다.

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난 근본을 관조(觀照)하라 이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선(參禪)이고 화두(話頭)라 하는 것입니다.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뭣고? 한마디는 삼천 겁(三千劫)을 계율을 지키고 팔만 세(八萬歲) 동안을 경(經)을 외우는 공덕보다도 더 수승하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계율을 삼천 겁을 지키고 팔만 세 동안을 경을 외운다 하더라도, 자기 마음을 돌이켜 찾지 아니하면, 그 계율을 지키고 경을 외우는 그 자체는 목적이 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계율을 잘 지키고 경을 외우되, 바로 참나를 깨닫기 위해서 경을 읽고 계율을 지키는 것이지, 계율을 지키는데 목적이 있고 경을 외우는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경을 잘못 외우는 것이고 계율을 잘못 지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계율이라든지 경은 온전히 자기 자성(自性)을 깨닫게 하기 위한 좋은 방편(方便)이요 길이 될지언정 그 자체가 불법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뭣고?’는 너무 맛이 없는 소리고, 하루 이틀 내지 한 달 두 달 해 봐도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되는 것 같지도 않고 안 되는 것 같지도 않고, 만날 해 봤자 죽 떠먹은 자리와 같아서 무엇이 효과가 좀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이렇다 할 효과도 나타나지 아니하고,

누구에게 ‘나는 이 참선을 해서 이만큼 무엇이 얻어졌다’하고 내보일 것이 있었으면 참 좋겠는데, 1년, 이태, 3년 법문을 듣고 참선을 한다고 해 봤지만 사실은 뭐 내놓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학원에 다니면서 글씨를 배운다든지 또는 사군자를 배운다든지 무슨 음악을 배운다든지 하면 한 달만 배워도 제법 내놓을 것이 있고, 두 달만 배워도 ‘이만한 것을 나는 하게 되었다’하고 긍지를 가질 수가 있는데,
이 참선은 정말 3년, 10년을 했어도 ‘이러한 것을 나는 얻었다’ 이렇게 내놓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 내놓을 만한 게 없는 것이 사실은 공부를 옳게 해 간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마는,

이 참선을 해가지고 밤에는 환히 불이 켜지고, 또 가만히 눈감고 있으면 ‘내일은 누가 나를 찾아오겠다’ 이걸 알고, ‘이 다음에 손자를 낳겠다’ 또는 ‘딸을 낳겠다’ 뭐 그런 것이 알아지고, 이렇게 된다면 그 사람은 참선을 잘못한 것입니다.

정말 올바르게 참선을 하면 무엇이 보이는 것이 있을 수도 없고, 알아지는 것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다가 그러한 알아지고 보이고 신기한 것이 나타났다 하면 그것은 하나의 마경(魔境)이 잠시 스쳐가는 것이어서 그것은 신경을 쓰지 아니해야 하는 것입니다마는.

그러면 1년, 이태, 3년을 해도 아무것도 얻어진 것도 없고, 보인 것도 없고, 나타난 것도 없고, 그러면 무슨 재미로 그것을 하며, 그렇게 하다가 부처님처럼 다행히 확철대오를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 한다면 좋지만,

만날 해도 별로 얻어진 것도 없고 꾸벅꾸벅 졸음만 오고, 그러다가 죽어버린다면은 그거 어떻게 하느냐? 어떻게 그러한 막연한 공부를 갖다가 사람들에게 권고를 하고 자꾸 ‘이뭣고?를 하면 좋다’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 이렇게 생각을 하실 분이 혹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사실은 이 참선은, 근본 목적은 ‘내가 나를 깨달라서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이 참선의 목적(目的)입니다.(처음~22분46초)


---------------------


*(게송) ‘만산홍록개묘체(滿山紅綠皆妙體)~’ ; [청허당집(清虛堂集)](동국대학교역경원) p171 ‘상추(賞秋)’ ‘박상사(朴上舍)의 초당(草堂)’ 게송 참고.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 ; 고대 인도 북부에 있던 카필라(kapila)국의 임금. 석존(釋尊)의 아버지.
*아미타불(阿彌陀佛) ; Amitabha Buddha(無量光佛-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Amitayus Buddha(無量壽佛-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대승불교의 중요한 부처님. 줄여서 미타(彌陀).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싯다르타(siddhartha) ; 목적을 달성한다는 뜻. 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 태자(太子) 때의 이름.
*등상(等像) ; 나무, 돌, 흙 따위로 만든 사람의 형상.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상주설법(常住說法) ; 흐르는 물소리, 노래하는 새소리, 세월이 흘러가고 춘하추동 사계절이 돌아가는 것 모두 그대로가 부처님이 출세하신 모습이요, 쉴 사이 없이 하는 설법이다.
*적광토(寂光土) ; (=常寂光土) 항상(常) 변하지 않는(寂) 광명(光)의 세계(土). 부처의 거처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언도(言渡) ; 선고(宣告). 법정에서 판사가 판결의 결과를 알리는 일. 이로써 재판의 효력이 생김.
*유유자적(悠悠自適) ; 속세를 떠나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로우며 편안하게 삶.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진절머리 ; ‘진저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 *진저리 ; 몹시 귀찮거나 싫증이 나서 끔찍할 때 몸을 떠는 것.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의 고해苦海)로부터 구하여(濟)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으로 건너가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총력(聰力) ; 보거나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하는 힘.
*관조(觀照) ; 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함.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십바라밀(十波羅蜜)의 하나. 보살(菩薩)이 중생을 근본적인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쓰는 묘한 수단을 말한다.
*만날 ; 때를 가리지 않을 만큼 매우 자주.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신고
Posted by 싼또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