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無常)2014. 6. 28. 12:02

 

 

§(269) (게송)광음승불계~ / 병(甁)속의 새의 꿈 / (게송)시비일침몽~ / 일장춘몽 / 공부해 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사심(生死心)을 깨트리는 것.

이 세상에 무엇이 중대하고 무엇이 중대하고 중대하다고 하지만은 각자 당인(當人)의 생사 문제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습니다. 시간을 진실로 아껴야 하느니라.(光陰良可惜)

 

이 참선법(參禪法)이야말로 인간의 고통을 없애고 생사윤회의 근본을 끊는 가장 간단하고도 가장 빠른 요긴한 길인 것입니다.

 

'만났다 흩어졌다'하는 아무리 깊은 지중한 인연도 일시(一時)의 정(情)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남자(男子), 고추만 달고 나와야 대장부가 아니라, 시비(是非)와 취산(聚散)의 애착심을 돌려 버리고 자기의 분(分)을 알아서 마음을 쉬어버리고서, 발심(發心)해서 도를 닦아나가면 이것이야말로 장부(丈夫) 가운데에도 대장부(大丈夫)라 할 것입니다.

 

생사심(生死心),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데, 그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을 생사심이라 그럽니다. 번뇌(煩惱)니 망상(妄想)이니 이렇게도 말을 허지만 ‘생사심’이라고 표현한 것이 보다 더 적절하다.

 

이 '한 생각'을 가지고 도(道)에 나아가는 첫걸음을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69)-85년(을축년) 하안거결제 법회(85.06.03)(46분)에서. (용269)

 

(1) 약 18분.

 

(2) 약 18분.

 

(1)------------------

 

광음승불계(光陰繩不繫)하고  쇠병약난의(衰病藥難醫)니라

나무~아미타불~

생사중대사(生死重大事)니  광음양가석(光陰良可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광음(光陰)은 승불계(繩不繫)요  쇠병(衰病)은 약난의(藥難醫)라.

흐르는 세월은 노끈으로 묶어 매 둘 수가 없고, 늙어서 노쇠해서 병나는 것은 약으로도 낫을 수가 없다.

 

생사중대사(生死重大事)니, 이 세상에 낳다가 늙어서 병들어 죽는, 그것이 이 한평생만 끝난 것이 아니고 무량겁을 이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이 생사의 이 중대사(重大事).

이 세상에 무엇이 중대하고, 무엇이 중대하고 중대하다고 하지마는 각자 당인(當人)의 생사 문제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간을 진실로 아껴야 하느니라.(光陰良可惜)

 

 

오늘 을축년 4월 15일, 하안거 결제일을 맞이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간곡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산승(山僧)이 더 말씀드릴 것이 없지마는 우리가 서로 마음을 가다듬고 이 석 달 동안을 정말 알차고 짬지게 지내기 위해서, 서로서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 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옛날에 큰 병(甁) 가운데에 새가 한 마리 살고 있는데, 그 새가 꾸벅꾸벅 졸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 그 새가 사람이 되었어요.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좋은 집안에 사람으로 태어나 가지고 잘 자라서, 그랬는데 기가 맥히게 참 예쁜 여자로 태어났는데, 절세미인(絶世美人)으로 태어나 가지고 벌써 나이가 15,6세 되니까 멀고 가까운 데에 널리 소문이 나서 그래서 여러 군데서 '며느리를 삼겠다, 아내를 삼겠다'해 가지고 청혼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가문도 생각하고 또 여러 가지 형편도 두루두루 다 살펴서 참 일등 신랑감을 골라서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했는데 그 신랑도 또한 훌륭한 대장부라, 높은 벼슬을 해 가지고 참 이 세상에 아무도 부러울 것이 없이 영화와 부귀를 한 몸에 다 안고 모든 사람에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들도 낳고 딸도 낳고 이 세상에 하나도 부족함이 없이 잘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신랑이, 그래 인물도 잘나고 머리도 좋고 또 능력도 있고 그래가지고 승승장구 자꾸 높은 자리에 올라가 가지고 나중에 정승까지 되었습니다.

정승이 되었는데 너무 임금님의 신임을 받고 사랑을 받고 그러니까, 그 정승의 말이라 하면 임금님이 하나에서 백까지 다 들어주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 옳은 말로 적절하게 말씀을 여쭈니까 임금님이 안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임금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고 신임을 독차지하게 되고 그러니까 간신(奸臣)들의 시기와 모함을 받아 가지고 결국은 역적(逆賊)으로 몰려서 귀양살이를 가 가지고 약그릇을 받게 되고 집안은 아주 몰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도 너무너무 억울하고 가슴이 미어지는 그러한 괴로움을 받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남편이 억울하게 죽고 나니 자기도 병을 앓게 되고, 자식들도 모다 역적의 자식으로 몰려가지고 전부 멸종을 당하고 마침내는 자기도 어느 관가에 종으로 끌려갔다가 결국은 죽게 되었습니다.

 

밤낮 남편 생각만 하고 자식 생각만 하고 그 원한에 사무쳐서 그래 가지고는 결국은 큰 병(病)이 나가지고 죽게 되었는데, 마지막 죽을 때에 숨이 딱! 끊어지자 다시 눈을 떠 보니까 병 속에 들어 있는 새로 돌아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기가 사람이 되어서 결혼을 해서 신랑이 그렇게 정승이 되고 그랬던 것은 병 속에서 한 마리의 새가 꾼 하나의 꿈에 지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병 속에서 새 한 마리가 꾼 꿈이—인간 세상에 그 결혼을 해서 남편이 잘되고 자식을 낳고 모든 사람에 선망의 대상이 되고, 그러다가 역적으로 몰려서 남편 죽고 자식들도 역적으로 몰려서 다 멸종을 당하고 자기도 마침내 병들어 죽었는데, 지금 내가 이 이야기를 간단히 줄여서 이렇게 말씀을 드렸지만 이것을 낱낱이 자상하게 모든 것을 늘여 놓자면 큰 소설책이 될 것입니다.

 

한 마리의 새가 병 속에서 꾼 꿈이 이러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한 병 속에 들어있는 새가 꿈속에 지금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남자로도 태어나고 여자로도 태어나고 또 김씨도 되고 박씨도 되고 또 가운데는 출가해서 비구승도 되고 비구니도 되고 그렇게 지내지만, 숨 한번 딱! 거두어 가지고 생각해 보면 병 속에 들어 있는 한 마리의 새가 될 것입니다.

이 육도법계(六道法界)를 ‘하나의 병(甁)’이라고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이해가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육도법계 전체를 하나의 병(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속에 들어 있는 한 마리의 새가 천당에 가기도 하고, 지옥에 가기도 하고, 또 인간에 태어나기도 하고, 축생이 되기도 하고, 아귀(餓鬼)나 수라(修羅)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은 육도에 좋은 곳에 태어나서 낙(樂)을 받고 나쁜 데에 태어나 가지고 고통을 받고, 아무리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부귀와 영화를 한 몸에 독차지를 하고, 천상에 태어나서 한량없는 낙을 받는다 하드라도, 결국은 생사윤회하는 한 마리의 새에 지내지 못하고 '업의 불[業火]'에다가 섶을 집어넣는 그러한 결과 밖에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고 각자 우리 자신들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깊이 이해를 한다면, 정말 인간으로 태어나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 새가 잠깐 꾸는 꿈으로 태어난 이 몸이, ‘헌다면, 정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눈뜨게 되리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부귀영화(富貴榮華)에 눈을 떠야 할 것인가? 남을 미워하고 남을 사랑하는 일에 우리가 집착을 해야 할 것인가? 사소한 일로 '니가 옳다, 내가 옳다' 시비에 말려들 필요가 있을 것인가?

아무리 자기가 잘나고 똑똑하고 모든 사람을 다 디디고 올라서 봤댔자, 정신 차려 보면 병 속에 든 한 마리의 새에 지내지 못한 것을.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출가를 하셔서 대도를 성취해 가지고,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다 괴로우니라. 이 세상에 고(苦) 아닌 것이 없느니라. 몸뚱이를 받아서 태어나는 것도 고(苦)요, 늙어가는 것도 고(苦)요, 병드는 것도 고(苦)요, 죽어가는 것도 고(苦)니라. 이 세상에 고(苦) 아닌 것은 없느니라』

이 중생들은 허망하고 무상(無常)한 것이 그나마 고통의 뭉탱이에 지내지 못한 것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을 하고 거기에 집착을 하고, 그것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아니하고 계속 업(業)에 업을 거듭 지어가고 있으니, 이 세상에 모든 것은 허망하고 무상하며 전체가 괴로운 것뿐이라고 하는 것을 맨 먼저 우리에게 설해 주신 것입니다.

 

왜 괴로우냐?

모든 것에 대한—자기 육체에 대해서, 자기의 재산에 대해서, 명예와 권리에 대해서, 그런 것에 대한 애착(愛着)과 집착심(執着心)을 갖기 때문에 모든 것은 괴로운 것이다.

 

그런데 그 괴로움을 없애야 한다. 괴로움을 없애야만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이며,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길이 바로 그 괴로움의 원인을 없애는 데 있는 것이다.

 

그 괴로움의 원인은 어떻게 없애느냐? 도(道)를 닦아야 한다, 이것입니다,

 

그 도에는 여러 가지 방편(方便)이 있겠지만, 그 도 가운데에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 이 참선법(參禪法)이야말로 인간의 고통을 없애고 생사윤회의 근본을 끊는 가장 간단하고도 가장 빠른 요긴한 길인 것입니다.(처음~17분57초)

 

 

 

 

(2)------------------

 

시비일침몽(是非一枕夢)이요  취산일시정(聚散一時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안분심휴헐(安分心休歇)하면  인간대장부(人間大丈夫)니라

나무~아미타불~

 

시비일침몽(是非一枕夢)이요. 옳고 그른 것, 니가 옳고 내가 그르고, 개인적으로나 또는 단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옳고 그른 모든 시비는 다 한 벼개의 꿈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무궁한 옛날부터서 영원한 미래까지 흘러가고 있는 길고도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잠깐 꾸는 꿈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취산(聚散)은 일시정(一時情)이다. 만났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만난 것. 만난 것은 부모와 자식 간으로도 만나고, 아내와 남편으로도 만나고, 형과 동생으로도 만나고, 친구 간으로도 만나고 한, 이 인간이 만났다 헤어졌다 하는 이 인연(因緣)이라 하는 것은 일시(一時)의 정(情)에 지내지 못해.

금생에 부모자식 간에 인연이라 하면 가장 지중(至重)하고, 부부 인연이라 하면은 참 지중하다고 생각이 되지만 일시(一時)의 정(情)인 것입니다.

 

물론 전생에 다 숙세(宿世)의 인연이 있어서 만나긴 하지만, 전생에 부모 · 전생에 할아버지가 금생에 자기 자식이 되기도 하고, 전생에 친구가 아내가 되기도 하고, 금생에 아내가 내생에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이리저리 만나고 만나졌다 헤어지고 하지만 우리는 전생사(前生事)는 다 잊어버리고 모르는 것이고.

물론 숙명통(宿命通)이 열리면 다 알게 되겠지만, 숙명통이 열리기 전에는 '혹 저 사람이 전생에 나의 남편이 아니었나?' 혹 이런 추측은 할 수 있지만 그것은 확실한 것이 아니고, 전생일은 다 잊어버리게 마련입니다.

 

전생, 저 전생, 수억만 생이 있어 왔기에 금생에 또 부모 자식으로도 만나고, 처자 권속으로도 만나고 그러기는 하지만 전생일은 이미 잊어버려서 알 수가 없고, 다못 금생에 이렇게 만났다가 잠시 5,60년 내지 6,70년 산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일장춘몽(一場春夢)에 지내지 못해서 잠깐입니다.

그리고 또 헤어지게 되는데, 내생에 또 인연에 따라서 다시 만나게 되리라곤 생각이 되지만 또 확실히 만날지 어쩔지도 알지도 못하고, 또 만난다 해봤자 또 전생일은 또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났다 흩어졌다 하는 아무리 깊은 지중한 인연이라 하드라도 일시(一時)의 정(情)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비(是非)와 서로 만났다 흩어졌다 하는 것, 그러한 것들에 너무 집착을 할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정 · 애정 · 인정, ‘참 저 사람이 정답다, 정이 있다’, ‘그 사람은 무정하다, 매정하다’, 정이 있는 것을 참 좋아하고 다정한 것을 좋아하고 그렇지만, 자식을 기를 때에 있어서도 정에 너무 빠져서 정(情)으로 자식을 가르키면 사실은 업(業)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업을 점점 두텁게 맨든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어찌 부모가 자식이 사랑스럽지 아니하리요마는 그 정은 속에다가 담박(澹泊)허니 놔두고, 항시 바른 마음과 지혜로써 그리고 정(情)보다는 자비(慈悲)로써 자식을 잘 길러 나간다면 그 자식은 참으로 올바르게 잘 자라 나갈 것입니다.

지혜롭지 못하고 자비가 없이 인간에, 그 중생에 애정적으로만 가르켜 놓으면, 자식이 자식이 아니라 업의 뿌리 밖에는 아니되는 것이고 '애물'에 지내지 못해서 피차 서로 얽혀 가지고 후생(後生)의 업을 장만한 것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안분심휴헐(安分心休歇), 자기의 분(分)을 알아서 마음을 쉬어 버려.

그 정 때문에 본의 아닌 죄를 짓게 되고, 정 때문에 자기의 바른 길을 찾지를 못하는데, 그 정을 돌이켜서 지혜와 자비로 승화(昇華)시켜 나간다면 이것이 바로 자기의 분을 아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분(分)을 알아서 마음을 푹 쉬어 버리면 이것이야말로 인간(人間)에 대장부(大丈夫)라 할 것이다.

 

오늘 결제일을 맞이해서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이렇게 법요식에 참석을 하셨습니다. 용화사 법보선원에 방부(房付)를 들인 스님네도 있고 또 보살님도 계십니다마는 또 경기 일원에 다른 선원에서 정진하시는 비구니 스님네들도 이 법회에 참석을 하셨고, 가정에서 공부를 하시는 신도님네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남자(男子), 고추만 달고 나와야 대장부가 아니라, 시비(是非)와 취산(聚散)의 애착심을 돌려 버리고 자기의 분(分)을 알아서 마음을 쉬어버리고서, 발심(發心)해서 도를 닦아 나가면 이것이야말로 장부(丈夫) 가운데에도 대장부(大丈夫)라 할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 우리가 정진해 나가는 데에 아주 요긴한 법문을 하셔서 더 말씀할 것이 없지만,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사심(生死心)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생사심(生死心).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데, 그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을 생사심이라 그럽니다.

번뇌(煩惱)니 망상(妄想)이니 이렇게도 말을 하지만 ‘생사심’이라고 표현한 것이 보다 더 적절하다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왜 생사심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냐 하면, 이 생사심 때문에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그 생각이 이리저리 가지가 뻗고 잎이 피고 해 가지고는 한참 뻗어나가다가 그것이 또 언제 또 사그라져 버립니다. 사그라지자마자 또 '한 생각'이 또 일어납니다.

'한 생각' 일어나가지고 또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이리저리 이리저리 발전을 해 나가다가, 혹 좋은 쪽으로 발전해 나가면 기분이 좋고, 혹 나쁜 쪽으로 발전해 나가면 공연히 속이 상하기도 하고 괜히 그냥 누가 얄미워지고도 하고, 그러다가 또 그 생각이 또 언제 꺼진 중 모르게 또 꺼져 버리면, 또 다시 또 '한 생각' 일어납니다. 그렇게 하기를 하루에도 몇만 건인 것입니다.

 

어려서 철모를 때는 모르지마는 철알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이 생사심의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기멸(起滅)이 끊임없이 계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 한 생각 한 생각이 그러고 말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우리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에 미래의 생사윤회를 위한 씨가 심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현생에 우리가 일어난 '한 생각'이 금방 우리의 8식(八識)에 종자(種子)로써 심어지는데, 그 종자가 이 시간 이후에 적당한 인(因)과 연(緣)을 만나면 거기서 새로운 생사윤회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처님께 3가지 불능[三不能]이 있어서 그 중에 하나가 ‘중생계가 다할 날이 없다’ 이리 말씀을 하셨는데, 그러니 밤낮 태어났다 죽고 태어났다 죽고 육도(六途)에서 천문학적 숫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무수한 중생의 생사윤회의 현장이 바로 이 육도법계인 것입니다.

물론 깨달은 눈으로 보면 그 낱낱이 모두가 불보살(佛菩薩)의 출현이요, 그 불보살의 설법이요, 모든 것이 한량없는 부처님의 경전이요, 바로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의 모습이 되겠지만, 그러한 이치를 깨닫지 못한 우리의 중생에게는 전부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가 생사윤회의 현장에 불과한 것입니다. 생사윤회는 우리를 괴롭혀 주는 것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이것이 바로 생사심인데, ‘이 생사심을 어떻게 하면 이것을 깨트려서 생사 없는 근본으로 돌아갈 수가 있느냐?’ 이것이 우리 불자(佛子)에 나아갈 길이요,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목표인 것입니다. 이 생사심을 깨트리려고 노력하지 아니하면 이 생사심은 영원히 끝날 기약이 없습니다.

이 생사심을 깨트리지 못하면 무상살귀(無常殺鬼)는 일분일초도 쉴 사이가 없이 우리를 핍박하고 우리를 쫓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방팔방에서 온갖 방편과 수단으로써 그 무상살귀는 우리를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한 생각', 이 '한 생각'을 가지고 도(道)에 나아가는 첫걸음을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우리가 성불(成佛)할 때까지 이 생각은 잠시도 놓쳐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마치 훨훨 불이 타고 있는 그러한 함정 가운데 우리가 빠졌을 때 ‘어떻게 하면 이 불이 타고 있는 이 함정에서 살아날 수가 있는 있을까?’

공연히 이리저리 함부로 나부대봤자 불에 타서 죽을 것이고, 우두커니 서 있어 봤자 뜨거워서 결국은 자기한테 불이 달라들어서 죽을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무슨 딴생각을 할 겨를도 없을 것이고, 또 누가 와서 나를 살려 주었으면 그런 생각까지도 할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다못 이러할 때에 ‘어떻게 해야 이 불구덩이에서 살아날 수가 있을 것인가?’

살아나가는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불도 돌아보지 말 것이며, 나의 몸과 목숨도 돌아보지 말 것이며, 누가 와서 나를 구해주기도 바래지 말 것이며, 딴생각—집안 생각, 무슨 자식 생각 뭐 그런 생각할 것도 없을 것이여. 잠시도 우두커니 있지도 말 것이며, 다맛 무조건 하고 밖을 향해서 내닫는 것입니다.

 

사방이 전부가 빼어난 틈이 없이 불이지만, 타 죽을 셈 치고 불도 보지 말고 막 밖을 향해서 나간다면 잠시 불에 몸이 닿을 동안에는 뜨거울는지 모르지마는, 번개같이 뛰어나가면 결국은 그 사람이 살아나올 것입니다.

참선해 나간 사람은 이만한, 이만한! 정신을 가지고 정진을 해 나가야만 할 것입니다.(18분3초~35분4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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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광음승불계~’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18 ‘잡흥(雜興)’ 게송 참고. *繩(승)노끈. *繫(계)매다. 묶다. *惜(석)아끼다. 소중히 여기다.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에 의한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당인(當人 맡다·주관하다 당/사람 인) ; 어떤 일에 직접 관계가 있는 그 사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절세미인(絶世美人 끊다·끝나다·뛰어나다·비할 데 없다 절/세상 세/아름다울 미/사람 인) ; 이 세상(世上)에 견줄 만한 상대가 없는[絶] 아름다운[美] 여자[人].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천당(天堂) ; ①천상(天上)에 있다는 신(神)의 전당(殿堂), 하늘의 세계.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하늘을 통칭하는 말. ②정토교(淨土敎)의 극락세계(極樂世界).

*지옥(地獄) : 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그 과보로 사후(死後)에 가서 나게 되는, 고통이 극한 지하의 감옥을 말한다。 그러나 육신의 사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우리의 마음속에 천당과 지옥이 있는 것이다.

*아귀(餓鬼 굶주림·굶길 아/귀신·아귀 귀) ; 항상 굶주림과 갈증으로 괴로워하는 귀신. 전생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악업을 지은 사람이 죽은 뒤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태어나 고통을 당한다.

아귀의 배는 산과 같이 크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만큼 작다. 먹을거리가 없어 항상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에 있고, 우연히 먹을 것을 얻더라도 입에서 불이 나거나 먹을 것이 화염으로 변하여 고통 받는다.

*수라(修羅) ; 아수라(阿修羅)의 준말. 늘 싸움만을 일삼는 귀신들의 무리.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업의 불(業火) ; ①악업의 힘이 맹렬하게 중생을 태우므로 업(業)을 '불'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불같이 이는 노여움. ③악업(惡業)의 갚음으로 받는 지옥의 맹렬한 불.

* ; 잎이 붙어 있는 땔나무나 잡목의 잔가지, 잡풀 따위를 말린 땔나무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고(苦) ; [산스크리트어] duḥkha [팔리어] dukkha 마음이나 몸이 괴로워 편하지 않음.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어지럽고 불안함. 어지러운 생각에 부대끼고 시달려서 마음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 상태. 미혹으로 일어나는 마음 작용.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이 고다”(상응부)

불교에서는 이를 4고 · 8고(四苦八苦) 등으로 분류한다. 사고(四苦)는 생(生)·노(老)·병(病)·사(死)의 네 가지를 말한다.

여기에 다시 사랑하는 자와 이별하는 고통(愛別離苦), 원망스럽고 미운 것을 만나야 하는 고통(怨憎會苦), 구해도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 오음이 성하는 고통(五陰盛苦)의 넷을 더하여 8고라고 한다.

*사제(四諦) ; 사성제(四聖諦). 제(諦)는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를 뜻함. 고(苦, 괴로움)를 소멸시켜 열반에 이르는 네 가지 진리. 사성제(四聖諦,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고도 함.

①고제(苦諦, 苦聖諦) : ‘고(苦, 괴로움)’라는 성스러운 진리.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이 고다”(상응부)

②집제(集諦, 集聖諦) : ‘고의 원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몹시 탐내어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고(苦)가 일어나는 원인이라는 진리.

③멸제(滅諦, 滅聖諦) : ‘고의 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됨으로써 고(苦, 괴로움)가 소멸되어 고의 끝남, 열반에 이른다는 진리.

④도제(道諦, 道聖諦) :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팔정도(八正道)—정견(正見, 바른 이해) · 정사유(正思惟, 바른 생각) · 정어(正語, 바른 말) · 정업(正業, 바른 행위) · 정명(正命, 바른 생계) · 정정진(正精進, 바른 노력) · 정념(正念, 바른 마음챙김) · 정정(正定, 바른 집중)—는 갈애를 소멸시켜,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애착(愛着) ; 사랑하여 집착함. 애집(愛執).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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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시비일침몽~’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48 ‘준선자(俊禪子)에게’, p47 ‘감흥(感興)’ 게송 참고. *枕(침)베개. 말뚝. *歇(헐)쉬다. 그치다.

*벼개 ; ‘베개’의 사투리.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정(情) ; ①오랫동안 지내 오면서 생기는 사랑하는 마음이나 친근한 마음. ②느끼어 일어나는 마음. ③[불교] 혼탁한 망념(妄念).

*지중(至重)하다 ; ①더할 수 없이 귀중하다. ②더할 수 없이 무겁다.

*전생사(前生事) ; ①'전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살았던 삶)'에 있었던 일. ②'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이미 지나간 일'을 일컫는 말.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비(是非) ; ①옳음과 그름. ②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 또는 옳고 그름을 따지며 하는 말다툼.

*담박(澹泊)하다 ;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애물 ; 애를 태우거나 성가시게 하는 물건이나 사람.

*후생(後生) ; 죽어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삶.

*분(分) : 분수(分數 ;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승화(昇華) ; 어떤 현상이 한 단계 더 높은 영역으로 발전함.

*대장부(大丈夫 큰·훌륭할 대/어른·존칭 장/사내·일꾼 부) ; 장부(丈夫). ①건장하고 씩씩한 사나이. ②대승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 불법의 수행이 원숙한 사람. 불성(佛性)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생사심(生死心).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사심(生死心)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하는데, 그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 생각』을 생사심이라 그럽니다.

번뇌(煩惱)니 망상(妄想)이니 이렇게도 말을 하지만 ‘생사심’이라고 표현한 것이 보다 더 적절하다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왜 생사심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냐 하면, 이 생사심 때문에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보제존자시각오선인」 p103~105. (가로판 p101~103)

*普濟尊者示覺悟禪人(보제존자시각오선인) - 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念起念滅을  謂之生死니  當生死之際하야  須盡力提起*話頭호리니  話頭가  純一하면  起滅이  卽盡하리라 起滅卽盡處를  謂之寂이라하니  寂中에  無話頭하면  謂之*無記요  寂中에  不昧話頭하면  謂之靈이라하나니  卽此空寂과  靈知가  無壞無雜하야  如是用功하면  不日成之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生死)라 이르나니, 생사(生死)의 즈음을 당하야 모름지기 힘을 다하야 화두(話頭)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곧 다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이 곧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寂]이라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라 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매(昧)하지 아니하면 영(靈)이라고 이르나니, 이 공적(空寂)과 영지(靈知)가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며칠 안 가서 성취하리라”

 

*보제존자(普濟尊者) : (1320 ~ 1376) 나옹혜근(懶翁惠勤). 고려 스님.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참고.

*화두(話頭) ;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 • 악(惡) • 무기(無記) 3성의 하나。 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제8아뢰야식(第八 阿賴耶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참고] 〇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〇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8가지 마음 작용.

인간의 모든 마음 활동을 8가지로 분류한 것이 8식(八識)이다.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8식(八識) 가운데 앞의 5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그리고 第六 意識(제6의식), 第七 末那識(제7말나식), 第八 阿賴耶識(제8아뢰야식)이라 한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삼불능(三不能) ; 당나라 숭악(崇嶽)의 원규(元珪)가 말한 부처님의 3능(三能)과 3불능(三不能).

(1) 3능(三能) - 부처님의 3가지 능한 것.

①일체 상(相)이 공(空)해서 만법을 아는 지혜를 이루는 것. ②모든 중생의 성품을 다 알고, 억겁(億劫)의 모든 일을 막힘이 없이 다 아는 것. ③한량없는 중생(무량중생)을 제도하는 것.

(2) 3불능(三不能) - 부처님의 3가지 능치 못한 것.

①무량겁으로부터서 지은 정업(定業)은 멸하지 못함. ②인연없는 중생을 제도하지 못함. ③무량중생을 제도하실 수는 있으나 중생계를 다 제도하지 못함.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 ; 더러움이 없는 청정한 법신,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佛), 곧 비로자나불을 말함.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무상살귀(無常殺鬼) ;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殺] 귀신(鬼神)이라는 뜻. ‘인간존재가 무상하다’는 것의 무서움을 비유한 말.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45~147. (가로판 p139~141)

做工夫호대  最初에  要箇破生死心堅硬하고  看破世界身心이  悉是假緣이라  無實主宰호리라. 若不發明本具底大理則生死心이 不破오  生死心이  旣不破인댄  無常殺鬼가  念念不停하나니  卻如何排遣고

 

공부를 짓되 최초에 생사(生死)를 파하려는 마음이 굳세고, 세계와 몸과 마음이 모두 이 거짓 인연[假緣]이라 실다운 주재(主宰)가 없는 줄로 간파(看破)할지니라.

만약 '본래 갖추어진 큰 이치[本具底大理]'를 밝히지 못하면, 곧 생사심(生死心)을 깨뜨리지 못하고 생사심을 깨뜨리지 못했을진댄 무상살귀(無常殺鬼)가 생각생각 멈추지 않으리니, 도리어 어떻게 물리치겠는가?

 

將此一念하야  作個*敲門瓦子호대  如坐在烈火焰中求出相似하야  亂行一步不得하며  停止一步不得하며  別生一念不得하며  望別人救不得이니 當恁麼時하야는  只須不顧猛火하며  不顧身命하며  不望人救하며  不生別念하며  不肯暫止하고  往前直奔호대  奔得出하야사  是好手이니라.

 

이 일념(一念)을 가져 문 두드리는 기와쪽[敲門瓦子]을 삼되, 마치 훨훨 타는 불꽃 가운데 앉아서 나오기를 구하는 것과 같아, 함부로 한 걸음 걸을 수도 없고, 한 걸음도 멈출 수도 없으며, 한 생각이라도 딴 생각을 낼 수 없으며, 남더러 구원해 주기를 바랄 수도 없나니,

이런 때를 당하여서는 다못 사나운 불길도 돌아보지 않으며, 신명(身命)을 돌보지 말며, 다른 사람이 구해 주기를 바라지 말며, 딴 생각 낼 것도 없으며, 잠시도 멈추지 말며 앞으로 곧장 나아가되 내달아서 벗어나야만 이 좋은 수단이니라.

 

*고문와자(敲門瓦子) : 기왓장을 문에다 걸어 놓고 손님이 와서 그 기왓장으로 문을 두드리면 주인이 문을 열어 주는 현대의 초인종과 같은 역할을 한다.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나부대다 ; 얌전히 있지 못하고 철없이 촐랑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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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무상(無常)2014. 3. 14. 20:29

 §(184) 이 공부를 헐라면 무상(無常)을 철저히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 무명(無明), 삼독, 오욕락.

 

**송담스님(참선법C)(No.184)-1982년 10월 첫째일요법회(1982.10.03)(77분)에서.(용184)


약 12분.

 


첫째, 이 공부를 헐라면 무상(無常)을 철저히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무상이라 하는 것은 ‘덧없다’ 이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영원성이 없어. 잠시도 고대로 있는 것이 없고, 시시각각으로 변해 가지고 결국은 없어져.

우리 눈에 태양은 언제나 한결같이 빛나고 있는 것 같지만 몇억 년 몇억만 년이 지내면은 저 태양도 언젠가는 불이 꺼질 때가 오는 것입니다. 원자현미경 같은 것으로 관찰을 허면 매일 같이 태양의 모양이 변해가고 있는 것을 과학자들은 다 보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저런 태양 뿐만이 아니라 하늘에 번쩍이는 저 수많은 별들, 달, 이 지구도 시시각각으로 변해가고 있고, 더군다나 우리의 몸뚱이도 해마다 어린애는 자라고, 자란 사람은 또 늙어가고 이것이 바로 무상한 증거인 것입니다.
하루하루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죽음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고 표현을 헐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진리에 입각해서 보면, 진리(眞理)를 깨달은 눈으로 보면 생사(生死)는 본래 없는 것이고,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은 하나의 살아있는 진리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마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우리의 ‘참나’를 깨닫지 못한 사람의 눈으로는 그 진리의 살아있는 모습이 바로 생사(生死)요, 그것이 무상으로 느껴지는 것이고, 무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무상(無常)이라 하면 덮어놓고 우리는 나쁘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고, 또 이 무상한 속에서 살면서도 전혀 무상한 것을 모르고 영원한 줄 알고, 우리의 몸뚱이도 영원히 살 줄 알고, 우리 가지고 있는 모든 명예나 권리나 재산 같은 것도 영원히 자기가 누릴 줄 알고, 거기에 빠져서 세월 가는 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마는,

진리의 눈을 떠 가지고 무상 속에서 살면서 무상을 전혀 느끼지 않고 영원을 살아갈 수 있다면은 그런 다행이 없지만,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에 얽혀서 오욕락(五欲樂)에 빠져 가지고 그래 가지고 정신을 못 채려서, 그 무상한 것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헌 나머지 무상한 줄 모른다면 그것은 참 큰일날 일인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지옥과 천당, 수라(修羅)와 아귀(餓鬼), 축생과 인도의 육도윤회(六道輪廻)가 분명한 것이고,
이것은 불법(佛法)에 의해서 ‘참나’를 깨달은 대도를 성취허지 않고서는, 천하 없이도 이 생사(生死)의 고해(苦海)에서 해탈(解脫)헐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불법을 닦을 사람은, 첫째 무상을 깨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정말 괴로운 것이라고 허는 것을 철저히 느껴야 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사제(四諦) 법문(法門)에 맨 첫머리에 있는 고제(苦諦)라 하는 것입니다. 고(苦)라고 하는 진리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한 것이요, 괴로운 것이요. 이 몸뚱이도 무상한 것이요, 괴로운 것이다. 괴로운 것이라고 허는 것을 철저히 느낀다면은 도를 닦을 마음이 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허면 이 괴로움을 면할 수가 있느냐?
괴로운 것을 면할랴면 그 괴로운 것은 어째서 생겨났는가 그 원인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이냐 하면은, 우리의 탐진치(貪瞋痴) 삼독심(三毒心) 때문에 괴로움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아갈라면 어찌 욕심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겠느냐? 돈에 욕심이 있어야 온갖 고생을 허면서도 돈을 벌랴고 허고,
명예나 권리에 대한 욕심이 있어야 공부도 열심히 해서 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도 하고 박사도 되고 또 판사도 되고 장관도 되고 그러지.

욕심이 없으면, '에이 그까지 거 돈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까짓 거 허망한 것' 돈도 벌랴고 허지 아니하고. '무슨 명예나 권리도 허망한 것이라 그까짓 거 소용없다.'해 가지고는 전혀 공부도 헐랴고 허지도 않고 그러면 그렇게 험으로써 무슨 도를 이룰 수가 있겠느냐?

그러니 이 세상을 남부럽지 않게 살아갈라면 첫째 불같은 욕심이 있어야 하고 명예나 권리에 대한 그런 욕심도 있어야 하지,
그러한 것이 없으면 의욕이 없고 희망이 없으니 전부 다 있는 것이나 먹고,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말고, 전 국민이 다 전 인류가 게으름에 빠져 가지고 잠이나 퍼 자고 일도 안하고 그러면 집안이 무엇이 되며 국가가 무엇이 되겠느냐?

이렇게 생각허실는지 모르지만, 정말 철저허게 무상한 줄 깨닫고,
명예나 권리나 또는 재산이나 색(色)이나 모다 그러한 오욕락(五慾樂)이 영원성이 없는 허망한 것이라고 허는 것을 알고, 오히려 그러헌 데에 지나친 욕심을 부리고 탐착을 허면 악도에 떨어진다.

악도(惡道)라는 게 현실적으로는 정신적인 고통을 악도라고 그렇게 생각을 허면 금방 우리는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몸뚱이 살아있을 때에는 육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고통·갈등 이러헌 것이 바로 사후(死後)에는 지옥과 같은 것입니다.
살아있을 때에 정신적인 안온을 얻지 못한 사람, 정신적인 해탈을 얻지 못한 사람은 그 사람은 숨이 끊어지자마자 바로 지옥으로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괴로움의 원인인-육도윤회를 해 가지고 그 고해에서 고통을 받는 그 원인은-우리는 그 무명심, 무명업식(無明業識)으로 탐진치 삼독심의 불이 치성험으로 해서 오욕락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헌 데에서 괴로움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허면은 그 괴로움을 없이 해서 영원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가 있느냐?
그것은 그러헌 무명심(無明心), 탐진치 삼독심, 오욕락 그러헌 마음을 갖다가 없이 허면 된다.

없이 헐라면 어떻게 허면 되느냐? 그것이 바로 여러 가지 염불(念佛)을 헌다든지, 또는 경을 외운다든지, 또는 어떤 주문을 외운다든지, 이러헌 기도를 헌다든지 여러 가지 수행법이 있지만,
그 많은 수행법 가운데에 가장 수승(殊勝)한 수행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참선은 아까 말씀 드린바와 같이 꼭 머리를 깎고 깊은 산중에 들어가야만 되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있건 없건, 나이가 많건 적건, 지식이 있건 없건,
누구라도 일어나는 한 생각을 돌이켜서 「대관절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 무엇고?」 이렇게 한 생각을 돌이키면,
이것이 바로 무명(無明)을 돌이켜서 보리(菩提)로 돌아오는 길이고, 생사(生死)의 고해(苦海)에서 해탈 언덕으로 건너가는 길인 것입니다.(20분52초~32분4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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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수라(修羅) ; 아수라(阿修羅)의 준말. 늘 싸움만을 일삼는 귀신들의 무리.
*아귀(餓鬼) ; 생전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이르게 된 죽은 사람의 영혼. 몸이 앙상하게 마르고 목구멍이 바늘구멍 같아 음식을 먹을 수 없어서 늘 굶주린다고 한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사제(四諦) ; 제(諦)는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를 뜻함. 고(苦-괴로움)를 소멸시켜 열반에 이르는 네 가지 진리. 사성제(四聖諦-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고도 함.
①고제(苦諦,苦聖諦). ‘고(苦-괴로움)’라는 성스러운 진리.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이 고다”(상응부)
②집제(集諦,集聖諦). ‘고의 원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몹시 탐내어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고(苦)가 일어나는 원인이라는 진리.
③멸제(滅諦,㓕聖諦). ‘고의 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됨으로써 고(苦-괴로움)가 소멸되어 고의 끝남, 열반에 이른다는 진리.
④도제(道諦,道聖諦).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팔정도(八正道)-정견(正見,바른 이해)•정사유(正思惟,바른 생각)•정어(正語,바른 말)•정업(正業,바른 행위)•정명(正命,바른 생계)•정정진(正精進,바른 노력)•정념(正念,바른 마음챙김)•정정(正定,바른 집중)-는 갈애를 소멸시켜,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악도(惡道) ; 악한 짓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에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업식(業識) ; ①과거에 저지른 미혹한 행위와 말과 생각의 과보로 현재에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작용. ②오의(五意)의 하나. 무명(無明)에 의해 일어나는 그릇된 마음 작용.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보리(菩提) ; ‘bodhi’의 음사(音寫). 각(覺)•지(智)•도(道)라고 번역. 모든 집착을 끊은 깨달음의 지혜.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입춘기도)2014. 2. 4. 08:36

§(114)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 / 참선법은 무량겁 쌓아 놓은 아뢰야식 속에 () 종자를 돌려서보리(菩提) 종자로 승화시키는 방법.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 ‘마음을 관(觀)하는 한 법(法)이 모든 행(行)을 다 포섭(包攝)을 한다’ 이겁니다.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라는 게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참선(參禪)공부입니다. 참선은 「이 무엇고?」 내가 나를 찾는 공부입니다.


정법(正法)은 그 근원을 바르게 다스려서 영원한 행복을 얻게 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참선을 해서 성과가 눈에 보이고 결과가 나타나서, 남에게 이만큼 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면 재미가 있을 텐데, 남 앞에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한철 내 공부를 허고도 내놓을 수 없는 데에 이 참선에 정법(正法)의 묘미(妙味)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얻을 것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는 거, 이것이 바로 얻은 것인 것입니다.


우리의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하는 업의 자루 속에 담아져 있는, 무량겁을 통해서 그 쌓아 담은 업의 종자를 참선을 함으로써 그것을 녹여 없앴습니다. 그러니 내보일 것은 확 뒤집어 보여 봤자 빈 자루입니다. 빈 자루를 내보였으니 거기엔 아무것도 내보일 것이 없는 것은 사실인 것입니다.


 『이뭣고?』 이 한마디는 부적(符籍) 천 장, 만 장 보다도 더 수승(殊勝)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영원히 업장(業障)을 소멸(掃滅)하고 영원한 행복을 얻는 오직 하나의 최고의 방법입니다.

 

**송담스님(No.114) - 1980년(경신년) 입춘법회 법문(1980.02.05)에서. (용114)

 

(1) 약 21분.

 

(2) 약 22분.

 

 

(1)------------------

 

입춘(入春)일에 이렇게 법요식(法要式)을 갖는 것은 새해를 맞이해서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1년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으면 어떠한 잘못이 있었는가?

그것을 반성(反省)하고 참회(懺悔)하고 그래 가지고 ‘새해부터서는 어떻게 내가 살아가야겠다’ 이러헌 각오(覺悟)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 이러헌 법요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모이신 분들 가운데에는 경신년에 범띠하고 말띠하고 개띠에 든 분은 삼재(三災)가 들었다 해 가지고 입춘에 동참불공(同參佛供)을 허면은 삼재를 소멸할 수 있다.
그래서 일부로 참여하신 분도 적지 아니 많이 계실 줄 생각합니다. 그것도 또한 좋습니다.

삼재를 소멸하기 위해서 오셨건, 백가지 재앙을 소멸허시기 위해서 오셨건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삼재는 범띠허고 말띠허고 개띠가 새해 경신년에 들삼재고, 그렇다 해서 이 대단히 조심을 해야 한다고 그렇게 모다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경험을 통해서 보면은 삼재가 들면 내년부터서 내후년 저내년까지, 3년 동안 들삼재 앉을삼재 날삼재 해서 3년을 갖다가 범띠 말띠 개띠는 삼재가 듭니다마는,
삼재 때 가만히 증험을 해보면 정말 걱정헐 만큼 여러 가지 점에 있어서 병을 앓는다든지, 무슨 관재구설(官災口舌)이 있다던지, 무슨 사고를 당한다던지, 그 재수가 없다든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은 근심·걱정거리가 있어왔다, 그런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삼재가 안 들은 사람은 그러면 전혀 그런 일이 없냐’하면은 그렇지도 않건만은,
‘삼재가 들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당하지 아니했느냐’ 이렇게 생각드는 것도,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있어서 괴로움과 즐거움이 섞여져 있는 그런 생활을 하는 가운데에 느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삼재가 든 사람은 삼재가 들었다고 해서 더욱 조심을 하고, 그것을 어떻게 허면 그러헌 재앙을 미연에 방지허고 혹 그러헌 일을 당하더라도 가볍게 피해를 입지 않고 잘 넘길 수가 있는 방법이 없겠는가?
이리 생각하고 노력을 허는 것은 그건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삼재를 어째서 그 삼재라고 헌 것이 있는 것이냐? 인·오·술 생은 금년 경신년 부터서 3년간 삼재가 드는데, 이러헌 사상은 그 동양의 음양학설, 내나 사주(四柱)도 음양학설에서 나온 것입니다만은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따져서 삼재가 든다.

지금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에 있어서는 이 음양오행을 수천 년 전부터서 그것이 아주 생활 속에 젖어 들어서 사주나 관상이나 모든 점이라든지 그런 것이 전부 음양오행으로 추리해서 그래 가지고 운명을 판단하는 그러헌 방법입니다.

우리 불교를 믿는 사람은 ‘그까짓 거 무슨 소용이 있느냐? 자기가 지어서 받는 것이지, 무슨 그 사주가 아무리 좋은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그러냐.’하고 그런 것을 전적으로 무시해 버리고 그렇게 나가는 분도 있습니다.

정말 정법(正法)을 철저히 믿음으로 해서 삼재가 되었건 오재가 되었건 그런 것을 문제하지 아니하고 궂은일이나 좋은 일이나 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이나,
다못 이 정법 하나 믿는 그 마음으로만 온전히 밀고 나갈 수만 있다면 그 이상 더 좋은 일이 없습니다.

근데 우리의 생활 습관상 또 그런 것이 너무너무 오랫동안 조상 때 부터서 그러헌 음양오행설이 아주 사무쳐 들어와 있어 가지고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무시할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입춘(入春)이면은 한국에 방방곡곡의 모든 사찰에는 그 입춘을 기해서 동참 기도와 불공을 드리고 그리고 업장(業障)을 소멸을 빌고 소원성취를 빌고 그럽니다.

그런데 모든 재앙은 사실 과거에 우리가 어떻게 지었느냐? 그리고 또 현재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우리의 장래가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지금으로부터 1초 전이 전부가 과거에 들어갑니다마는,
그 과거에 우리가 지은 그리고 현재 우리가 생각 생각이 짓고 있는 그것이,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의 팔식(八識) 가운데에 그 지은 업(業)의 종자(種子)가 다 저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제팔식(第八識) 속에, 아뢰야식(阿賴耶識) 속에 저장이 되어 있는, 우리가 지은 업의 종자가 인연(因緣)을 만나면 그 종자에서 싹이 터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앞에 전개되는 우리의 운명이고 우리의 팔자(八字)인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고서-그 원인을 ‘어떻게 해서 나에게 이러헌 팔자가 운명이 전개되는가’를 그 원인을 모르고서, 당장 그것을 없이 하기만을 바래고,
그걸 없이 하기 위해서 점을 친다던지, 갖은 푸닥거릴 한다든지, 또는 돈을 많이 주고 무당한데 그 부적 같은 것을 사 가지고 몸에 지닌다 하더라도,
그 원인을 소멸하지 아니하고서는 그것이 소멸당하지 않기라고 하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내게 그 비린내 나는 생선을 엮던 그 새끼토막 같은 것을 몸에다 두르고 다니면서, 몸에서 비린내 안 나기를 소원해 봤자 그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첫째 몸에 비린내가 안 나게 할랴면 생선을 묶었던 그 새끼를 몸으로부터 풀어서 버리고 그리고 몸을 깨끗이 닦음으로 해서 비린내는 내 몸에서 부터서 안 나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이 나의 마음속에 아뢰야식 속에 저장되어 있는 업의 종자(種子)를 갖다가 정화(淨化)하고 승화(昇華)시키는 그러헌 노력이 없이는, 우리의 앞날에 좋은 팔자와 운로(運路)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 업장을 소멸허는 법이 십선법(十善法)을 닦는다던지 또는 사성제(四聖諦)법을 닦는다던지 12인연법•육바라밀(六波羅蜜)법•염불(念佛)•독경(

讀經)•기도, 얼마든지 우리 불법(佛法) 가운데에는 팔만사천 가지의 그러헌 묘한 법이 있습니다.

어느 법(法)이고 하나도 버릴 법이 없고, 어느 법이고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닦는다고 하면은 우리의 업장을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많은 법을 다 닦는다고 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법이 그 가운데에 좋고 나쁘고 해야 그것을 허지, 다 좋은 법인데 어떻게 어느 법만을 추려서 하고 어느 법을 안할 수가 있겠는가?

한 번 두 번 해 보고 별 효과가 없으면 기대할 만큼 효과가 나타나지 아니하면, 또 그걸 버리고 또 다른 방법을 해 보고, 그걸 좀 얼마동안 해 보았지만 별로 신통치 아니하면 또 그걸 버리고 또 다른 법을 좀 해 보고,

이렇게 해서 많은 세월 동안을 그런 식으로 갈팡질팡을 하면서 혹 뜻대로 되는 일도 있고 안 되는 일도 있고,
되면 좋아하고, 안 되면 낙담(落膽)을 하고 비관(悲觀)을 하고 그러면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해온 분이 적지 아니 계실 줄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용화선원에서는 부적(符籍)도 드리지도 않고, 언제나 다른 법회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 일러드리는 말은 언제나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팔만사천 묘법문(妙法門)이, 다 그것을 한데 모아서 녹여 가지고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골수(骨髓) 법문을 추출을 해낸다면,

그것이 바로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 ‘마음을 관(觀)하는 한 법(法)이 모든 행(行)을 다 포섭(包攝)을 한다’ 이겁니다.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라는 게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참선(參禪)공부입니다.
참선은 「이 무엇고?」 내가 나를 찾는 공부입니다.

‘내가 나를 찾는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은 밖에서 무엇을 찾는 데에는 익숙합니다.
물질적인 것이건 무엇이건 밖에서 찾는 데에는 어릴 때부터 여태까지 무량겁을 두고 밖에서 무엇을 찾아가지고,
자기의 소유를 만들고, 자기의 욕심을 충족을 시키고, 자기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이러는 데에는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구한 것은, 언젠가는 인연이 도래(到來)하면 나로부터서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근데 이 참선법은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구하는 것입니다. 안에서 무엇을 구하느냐?
내가 나를 찾는 공부여.

‘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에 있으며, 무엇인가?
정말 그것은 여러분들이 납득할 만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밖에도 있지 아니하고 안에도 있지 아니하고 그 중간에도 있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래서 ‘찾는다’고 말하는 그 말에도 어폐(語弊)를 면치 못합니다마는 부득이해서 그러헌 말을 빌릴 수 밖에는 없습니다.

나, ‘나’라고 허는 것, 중생들은 ‘나’라고 허면 이 이목구비(耳目口鼻)와 사지(四肢)가 있는 이 육체를 가지고 내 몸이다, 나다, 이리 생각합니다마는,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여 가지고 그래 가지고 이 육체를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연이 도래하면 다시 지수화풍 사대로 흩어져서 없어지고 맙니다.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
때리면 아픈 줄 알고, 욕허면 성낼 줄 알고, 칭찬하면 기뻐하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줄 아는 이놈이 바로 이 ‘나’입니다.
그것은 부모로부터 몸을 받아난 사람은 누구에게나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사실 이 주인공은 부모로부터 받아난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에부터 이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에부터, 언제 생겨난 역사가 없이 존재해 있습니다.
생겨난 때가 없습니다. 생겨난 때가 없기 때문에 멸하는 때도 없습니다. 그러헌 ‘한 물건’이 이 몸뚱이를 주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모로부터 받아난 물질로 이루어진 이 육체의 관리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심을 쏟고 정성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몸뚱이를 주재하는 ‘참나’, 나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너무나 소홀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바로 그것을 찾아서 깨닫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업장을 소멸을 한다.’ ‘재앙을 소멸한다.’ 하지만, 그 방법을 바로 알아야만 그 업장을 소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굿을 하고-아까 조실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말씀이 계셨습니다마는-부적을 몸에 많이 지니고 굿을 하고 푸닥거리를 헌다고 해 봤자, 우리의 업장이 그러헌 방법으로서 소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헌 방법을 사용할 경우 일시적으로는 우선한 것 같이 느낄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또 얼마 시일이 지나면 다시 또 일어나고, 또 많은 돈을 들여 가지고 또 푸닥거리를 하면 조금 우선함을 느끼고, 이렇게 하는 가운데에 점점점점 깊이 말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근본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그러헌 삿된 믿음에 빠져 들어간 사람이면 백이면 백, 다 집안에 재앙이 끊일 날이 없고 잡귀가 득실거리고,
그래 가지고 정신까지도 점점 해를 거듭할수록 삿된 소견에 빠져 가지고 헤어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거기서 나오고 싶어도 무서운 협박과 엄포 때문에 겁이 나서 발을 빼지를 못헌 사람이 상당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정법(正法)은 그 근원을 바르게 다스려서 영원히 그러헌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영원한 행복을 얻게 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나무를 가꾸고자 할 때 그 뿌리에 좋은 흙과 좋은 비료와 기타 수분이라든지 그 충분히 잘 공급을 함으로써, 그 나무는 줄기와 가지와 잎이 무성해져서 결국은 훌륭한 열매를 맺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1분19초~22분2초)

 

 

 

 

 

 

(2)------------------

 

정법을 믿고 우리의 ‘참나’를 찾아서 그걸 닦고 깨닫는다면, 우리의 육체와 우리 주변의 모든 문제는 거기에서 저절로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와의 관계라든지, 부부간에 문제라든지, 형제간에 또는 자식·자녀의 문제라든지, 친구나 일가친척에 관한 건이라든지, 재산이나 명예나 권리에 관한 모든 문제가 그 근원은 나의 마음으로부터 벌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내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하고, 내가 내 마음속에 있는 과거의 업(業)의 종자(種子)를 갖다가 정화(淨化)하지 못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아무리 부모와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부부·형제간의 관계, 일가친척의 문제를 바로잡을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봤자 그리고 원망을 해봤자 그리고 한탄을 해봤자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 우리는 ‘마음’이라는 말을 어릴적부터서 듣고 그리고 그 말을 다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라 하면은 다 각기 자기 나름대로, 마음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그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마음’을 바로 본 사람, 바로 안 사람, 바로 깨달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닙니다. 그 이름만을 알고 쓰고 있을 뿐 그 실상(實相), 그 실체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루-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언제나 그놈이 그놈을 가지고 그놈으로 그놈이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살면서 일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놈을 알 수는 없습니다.

어째서 단 1분•1초도 떠날 수가 없고, 언제나 같이 살고 있으면서도 그놈을 알 수가 없는 것인가?

눈을 통해서 모든 빛깔을 보고, 귀를 통해서 모든 소리를 듣고 분간하며, 코를 통해서 모든 냄새를 맡고 숨을 쉬고, 입을 통해서 모든 것을 맛을 보고 그리고 말을 합니다.
손과 발, 육체를 가지고 춥고 더웁고 부드럽고 까끄라운 것을 다 식별을 합니다.

그런데 대관절 ‘눈을 통해서 보는 놈이 무엇인가?’ 찾어보면 자취가 없습니다.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면서, 왜 보는 그놈을 다시 볼려고 하면 보이지 아니하고 알 수가 없는 것이냐?

여기에 우리가 마음을 닦는다, 도를 닦는다, 불법을 믿는다고 해도, 1년·2년·3년·10년을 절에를 다니고 법문을 듣고 또 참선을 해도, 마냥 제자리걸음이요 답답하기가 그지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보면서, 보는 그놈을 찾으면 자취가 없으니 이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면서도 그놈을 찾으라고 법상(法床)에서 큰스님네는 법문하실 때마다 ‘그놈을 찾으라’고는 하고,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는 아니하고,

<아무것도 얻을 것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는 거, 이것이 바로 얻은 것>
무슨 공부를 해서 차츰차츰 성과가 눈에 보이고, 이만큼 하면은 그만큼 한 결과가 나타나서, 스스로도 흐뭇하고 남에게 이만큼 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면 더욱 신명이 나고 재미가 있을 텐데,

석 달씩-여름 석 달, 겨울 석 달, 집안을 갖다가 떠나서 선방에 가서 석 달씩 그렇게 공부를 허고 와도, 영감님 앞에 또는 아들이나 며느리 앞에 손자들 앞에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가서 공부를 해 가지고 아무것도 내놓을 것도 없으면서, 그리고 그 다음 철에는 또 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만큼 공부를 했다고 내놓을 것이 있으면 아들·딸·며느리·영감이 모두가 다 ‘참, 그 좋다’고 이해를 하고 더욱 가시도록 협조를 하고, 또 그분네들도 보람을 느끼고 또 그분들도 할려고 하시고 그럴 텐데,
맨날 절에만 다니고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절로만 다니시지,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는 마당에야 그 참 딱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한철 내 공부를 허고도 내놓을 수 없는 데에 이 참선에 정법(正法)의 묘미(妙味)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만큼 했다고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유루법(有漏法)이요, 유위법(有爲法)이라 그것은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언젠가는 또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타관(他官)에 가서 고생을 해 가지고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 가지고 와 봤자 그것은 언젠가는 없어지고 마는 것이며 도둑을 맞거나 그렇지 아니면 써버리면 없어지고마는 것입니다.

절에 가서 석 달 내, 자고 싶은 잠도 다 못 자고, 먹고 싶은 것도 다 못 먹고, 그 고생을 하면서 공부를 해서 아무것도 내놓을 것은 없지만은,
그분이 정말 정법을 믿고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참선을 하셨다면, 설사 아무것도 내놓을 것은 없지만은 그분은 영원한 것을 마음 속에서 잘 닦아서 얻을 것은 얻었다고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선을 해서 아무것도 얻을 것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으면 그거 해서 뭐하느냐?

아무것도 얻을 것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는 거, 이것이 바로 얻은 것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제팔식(第八識) 속에 무량겁을 두고 지은 업의 종자를, 그것을 갖다가 순화하고 승화시키는 작업인 것입니다.

밖에 있는 것을 속에다 많이 쌓아 담은 것이 아니라, 제팔식(第八識) 속에 쌓여져 있는 업의 종자(種子)를 소멸을 하고 업의 종자를 승화(昇華)를 시켜서 보리과(菩提果)를 증득허게 하는 거름으로 사용을 했다 이겁니다.

있는 것을 녹여 없앴으니 무엇을 내놓을 것이냐 그말이여.

여기 하나의 빈 자루가 있습니다. 거기에다 밤도 줏어 담고 과자도 줏어 담고 해서, 많이 줏어 담아 가지고 왔으면 그 자루 속에서 그 담아진 것을 꺼내서 보여줄 것이 있겠지만,

우리의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하는 업의 자루 속에 담아져 있는, 무량겁을 통해서 그 쌓아 담은 업의 종자를 참선을 함으로써 그것을 녹여 없앴습니다.

그러니 가서 내보일 것은 확 뒤집어 보여 봤자 빈 자루입니다. 빈 자루를 내보였으니 거기엔 아무것도 내보일 것이 없는 것은 사실인 것입니다.

석 달 동안 공부를 하고 집에를 가서, ‘할머니 가서 공부를 해서 무엇을 얻었습니까?’
빈 자루라도 있으면 탁 까뒤집어 보이는데, 우리의 아뢰야식(阿賴耶識)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자루가 아닙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자루인데 우주법계를 그 속에다 다 담아도 그 자루에는 다 차지도 않습니다. 허공을 그 속에다 다 집어넣어도 그 아뢰야식이라고 하는 자루는 차질 않습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자루인 것입니다.

그러헌 자루를 우리는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루 속에 무량겁을 두고 짓고 지은 선업(善業)·악업(惡業)·무기업(無記業) 이 세 가지 종류의 업으로서 지은, 수확한 종자를 그 속에 다 가뜩 담어 가지고 다닌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 자기 종자에 해당되는 인연을 만나면 그 많은 종자 속에 어떤 종자가 거기서 싹이 터 나옵니다.

수수나 조나 모든 종자가 습기와 적당한 열을 온도를 만나면 눈이 터 나오듯이, 우리의 아뢰야식 속에 쌓아져 있는 선업(善業)·악업(惡業)·무기업(無記業) 종자가 그때그때 터져 나온 것입니다.

눈으로 볼 때, 귀로 들을 때, 코로 냄새 맡을 때, 혀로 맛볼 때, 손과 발 몸으로 감촉할 때, 생각으로 무엇을 생각할 때,
이러헌 육근(六根)이 육진(六塵)을 만나면-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만나면 육식(六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 불능(三不能)이 있는데
인연 없는 중생은 제도(濟度)하지 못한다. 아무리 부처님이 삼계(三界)의 대성현이시고, 신통(神通)이 구족(具足)하신 그러헌 대성현이시지만 인연 없는 중생은 제도할 수가 없다.

둘째는 중생계를 다하지 못한다. ‘중생계를 다하지 못한다’는 말은 중생이 하나도 없도록 중생을 없앨 수는 없다.

중생은 그 한량이 없는 큰, 그 아뢰야식 속에 무량겁을 두고 지은 그 업의 종자가 가뜩 차 있기 때문에, 그것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계속 거기에서는 싹이 터 나옵니다.

좁쌀도 나왔다가, 보리쌀도 나왔다가, 수수쌀도 나왔다가, 그때그때 싹이 트기에 적당한 인연을 만나면-조건을 만나면, 거기 있는 많은 종자 가운데에 그 중에 어느 하나가 나오게 되고,
그 다음에 또 나오게 되고 하는데, 계속 다 싹이 터서 다 발아(發芽)를 해 가지고 다 나가버리면 언젠가는 그 종자(種子)가 동이날 텐데 그러지를 못합니다.

왜 그러냐?
싹이 터 나오면서 새로운 종자를 동시에 갖다가 또 저장허게 됩니다.
업장(業藏) 속에 있는 종자가 싹이 터 나온 것을 현행(現行)이라고 합니다. 현행-나타날 현(現)자, 행할 행(行)자. 종자가 밖에 어떠헌 적당한 조건을 만나면은 현행(現行)을 합니다. 싹이 터 나옵니다.

싹이 터 나오면서 거기에서 속에 있는 어떠한 종자를 갔다가 훈(薰)을 합니다. 그 종자를 갔다가 이 또 찜질을 허는 것입니다.
다시 말허면 종자가 싹이 터 나오면서 다시 또 새로운 종자를 갔다가 저축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눈을 통해서 보거나, 귀를 통해서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혀로 맛을 보거나, 뜻으로 무엇을 생각헌 것은 그것이 하나의 현행(現行)이면서 그때 느꼈던 것이 고대로 아뢰야식 속에 또 녹음이 됩니다.

녹음이 된다고 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종자를 갔다가 수확을 해서 저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리해서 우리의 업의 종자가 한없이 퍼져 나오고 한없이 저장이 되기를 무량겁을 해왔고, 앞으로도 무량겁을 두고 그러헌 작업이 계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도윤회(六道輪廻)가 끊일 날이 없습니다.

지은 복이 있으면 천당에 가고, 그놈이 다음엔 다시 인간에 떨어지기도 하고, 축생으로도 떨어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죄를 지은 바가 많으면 또 지옥에 가기도 하고, 육도윤회를 끊임없이 계속하면서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또 앞으로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가 또 계속이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그러헌 도력과 신통력과 법력으로도 그것을 갖다가 다 없앨 수가 없다 이것입니다.

<무량겁 쌓아 놓은 업(業)의 종자(種子)를 녹여 없애는 참선법>
그런데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그 방법이 바로 이 불법(佛法)이요 참선법(參禪法)입니다.

눈을 통해서 무엇을 보았다. 빨간 꽃을 보았다. 지금 이 탁자 위에도 노란 국화가 화병에 꽂혀 있습니다.
그것을 본 찰나, ‘아! 국화로구나. 이 겨울에도 국화가 피었구나. 좋은 향내가 나겠지. 어떻게 저것을 겨울에 피웠나? 온실에서 재배를 했겠지?’

이런 것을-국화 하나를 봄으로써 우리는 끝없이 생각이 그렇게 번져 나갑니다. 그러다가 과거에 어떤 국화에 관련된-자기와 국화에 관련된-어떠헌 일에 우리의 상념이 도달하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혹 눈물바람을 허기도 하고 혹 과거에 어떤 때를 갖다가 그리워하기도 하고 또 씁쓸한 웃음을 짓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동안에는 우리의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의 국화를 보았다. ‘노랗다. 아름답다.’ 그러헌 두 번째 생각으로 건너가기 전에 국화가 눈에 딱 띄었을 때, 그때 바로 참선을 하는 사람은 ‘이뭣고?’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국화를 보고 ‘노랗다’, ‘아름답다’, ‘송이가 크다 작다’ 이렇게 둘째 생각,셋째 생각, 넷째 생각 그렇게 번져나갈 것이 아니라 국화가 눈에 탁 들어온 그 찰나에 두 번째 생각으로 번지기 이전에 ‘이뭣고?’
‘이뭣고?’ ‘지금 「이뭣고?」 헌 이놈이 뭣고?’ 이렇게 우리의 생각을 그렇게 다그쳐 들어가는 것입니다.

국화를 봤을 때 뿐만이 아니라 귀로 무슨 소리를 들었을 때, 새소리를 들었건, 차 소리를 들었건, 개 짖는 소리를 들었건, 들은 그 찰나에 ‘이뭣고?’ ‘이뭣고?’

어떤 생각이 일어났다-친구 생각이 일어났다, 그 친구와 자기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생각허다 보면,
과거에 그 친구가 자기에게 섭섭히 한 일까지 생각해 가지고 공연히 심사(心思)가 사나와지고 그 끝에 아들이나 손자나 며느리가 옆에서 뭐라고 허면 거기에서까지 신경질을 부리게까지 됩니다.

참선한 사람은 그게 아니라-친구 생각이 났다, 두 번째 생각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무엇을 맛을 보거나, 차겁고 더운 것을 느끼거나, 지나간 일이 생각이 나거나,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 간에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이뭣고?’ 이렇게 다그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량겁을 두고 쌓아 놓은 아뢰야식 속에 업(業)의 종자를 돌려서 보리(菩提)의 종자로 승화시키는 방법입니다.
이미 업의 종자를 보리심(菩提心)으로 승화를 시켰기 때문에 업의 종자는 소멸이 되었다고 표현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은 소멸이라기보다는 승화를 시켰다고 표현헌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편의상 알기 쉽게 소멸을 했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이뭣고?』 이 한마디는 부적(符籍) 천 장, 만 장 보다도 더 수승(殊勝)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영원히 업장(業障)을 소멸(掃滅)하고 영원한 행복을 얻는 오직 하나의 최고의 방법입니다.(23분23초~45분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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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입춘(入春) ;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의 하나.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들며, 이때부터 봄이 시작된다고 한다. 양력으로는 2월 4일경이다.
*법요식(法要式) ; 불사(佛事-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를 할 때 행하는 의식.
*반성(反省) ; 자기 언행에 대해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봄.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각오(覺悟) ; ①앞으로 해야 할 일이나 겪을 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 ②도리를 깨우쳐 앎.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인간에게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을 의미한다. 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이 있으며 십이지(十二支)에 따라 든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날삼재)라고 한다.
*동참불공(同參佛供) ; 여러 사람이 적은 돈이나 물품을 모아 함께 드리는 불공(佛供 부처 앞에 공양을 드림. 또는 그런 일).
*관재구설(官災口舌) ; 관가로부터 재앙을 입는 일(官災)과 남이 나를 비방하거나 헐뜯어서 해를 입는 일(口舌)을 아울러 이르는 말.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사주(四柱) ;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의 네 간지(干支). 또는 이에 근거하여 사람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방법.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 ; 음·양의 2기(氣)와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의 5행으로 자연현상이나 인간·사회의 현상을 설명하는 사상.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팔자(八字) ; 사람의 한평생의 운수. 사주팔자에서 유래한 말로, 사람이 태어난 해와 달과 날과 시간을 간지(干支)로 나타내면 여덟 글자가 되는데, 이 속에 일생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본다.
*정화(淨化) ; 불순하거나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함.
*승화(昇華) ; 어떤 현상이 한 단계 더 높은 영역으로 발전함.
*운로(運路) ; 운길(운이 트인다는 길).
*십선(十善) ; 십악(十惡)을 행하지 않는 일.
*십악(十惡) ;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성제(四聖諦) ; 제(諦)는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를 뜻함. 고(苦-괴로움)를 소멸시켜 열반에 이르는 네 가지 진리. 사성제(四聖諦-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사제(四諦)라고도 함.
①고제(苦諦,苦聖諦). ‘고(苦-괴로움)’라는 성스러운 진리.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이 고다”(상응부)
②집제(集諦,集聖諦). ‘고의 원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몹시 탐내어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고(苦)가 일어나는 원인이라는 진리.
③멸제(滅諦,㓕聖諦). ‘고의 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됨으로써 고(苦-괴로움)가 소멸되어 고의 끝남, 열반에 이른다는 진리.
④도제(道諦,道聖諦).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팔정도(八正道)-정견(正見,바른 이해)•정사유(正思惟,바른 생각)•정어(正語,바른 말)•정업(正業,바른 행위)•정명(正命,바른 생계)•정정진(正精進,바른 노력)•정념(正念,바른 마음챙김)•정정(正定,바른 집중)-는 갈애를 소멸시켜,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십이인연(十二因緣) ; 십이연기(十二緣起).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한 무명(無明)을 근본 원인으로 하여 중생으로서의 인간의 괴로운 생존이 12가지 요소의 순차적인 상관관계에 의한 것임을 설명한 것.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의도적인 행위와 업을 구성하는 형성(行)이 생겨난다.
◎ 형성(行)을 조건으로, 의식(識)이 생겨난다.
◎ 의식(識)을 조건으로, 정신물리적인 현상인 명색(名色)이 생겨난다.
◎ 명색(名色)을 조건으로, 안•이•비•설•신•의 6가지 감역(六入)이 생겨난다.
◎ 감역(六入)을 조건으로, 감각적, 정신적 접촉(觸)이 이루어진다.
◎ 접촉(觸)을 조건으로, 감수(受)가 생겨난다.
◎ 감수(受)를 조건으로, 갈애(愛)가 일어난다.
◎ 갈애(愛)를 조건으로, 집착(取)이 일어난다.
◎ 집착(取)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생겨난다.
◎ 존재(有)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생겨난다.
◎ 태어남(生)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老死)가 생겨난다.
☆ 무명(無明)이 사라지면 의도적인 행위와 업을 구성하는 형성(行)이 사라지고, 형성(行)이 사라지면 의식(識)이 사라지고........마침내 태어남(生)이 없으면 늙고 죽음(老死)가 사라진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보살이 열반(涅槃)에 이르기 위해서 해야 할 여섯 가지의 수행.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를 이른다.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2에서.
〇(52)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 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라. 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  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  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독경(讀經) ; 경(經)을 읽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낙담(落膽 떨어질 락,쓸개 담) ; 너무 놀라 간이 떨어지는 듯하다는 뜻으로, 바라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몹시 상함.
*비관(悲觀 슬플 비,볼 관) ; ①인생을 어둡게만 보아 슬퍼하거나 절망스럽게 여김. ②앞으로의 일이 잘 안될 것이라고 봄.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 ;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포섭(包攝 감쌀 포,당길 섭) ; ①상대방을 끌어들여 자기편으로 만듦. ②어떤 개념이 보다 일반적인 개념에 포괄되는 종속 관계.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도래(到來 이를 도,올 래) ; 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어폐(語弊 말씀 어,해어질·쓰러질 폐) ; ①적절하지 아니하게 사용하여 생기는 말의 폐단이나 결점. ②남에게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말.
*부득이(不得已)하다 ; 마지못하여 할 수 없다.
*사대(四大) ; ① 지(地) • 수(水) • 화(火) •풍(風)을 말함. 대(大)란 원소란 뜻.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네(四) 가지 원소(大).
(1)지대(地大). 굳고 단단한(堅) 것을 성(性)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수(負載) 있고, 또 질애(質礙)하는 바탕. 질애(質礙)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뜻.
(2)수대(水大). 습윤(濕潤)을 성으로 하고, 모든 물(物)을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난(煖)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동(動)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장케 하는 바탕.
② 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우선하다 ; ①병이 좀 차도가 있는 듯하다. ②언짢던 기분이나 감정 따위가 누그러진 듯하다. ③몰리거나 급박한 형편이 한결 나아진 듯하다.

 

 

 

 

 

------------------(2)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과언(過言) ; [주로 ‘아니다’의 앞에 쓰여]정도에 지나친 말.
*자취 ; 무엇이 시간적 혹은 공간적으로 지나가거나 있다가 남기고 간 흔적. 또는 남겨진 흔적.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아무것 ; ①특별히 정해지지 않은 어떤 모든 것. ②[주로 ‘아니다’와 함께 쓰여]특별하거나 대단한 어떤 것.
*유루법(有漏法) ; 번뇌의 더러움에 물든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온갖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사제(四諦) 가운데 미혹의 결과인 고제(苦諦)와 그 원인인 집제(集諦)에 해당하는 모든 현상.
*유위법(有爲法) ; 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참고] 불교에서 일체법(一切法-모든 현상. 인식된 모든 현상)을 분류하는 방식.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으로 분류하는 방식.
유위법(有爲法) -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생성과 소멸의 세계.
무위법(無爲法) -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


유루법(有漏法)과 무루법(無漏法)으로 분류하는 방식.
유루법(有漏法) - 번뇌 또는 고(苦)에 물들어 있는 상태 또는 번뇌를 일으키는 마음 작용.
무루법(無漏法) -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타관(他官) ; 제가 나서 자란 곳이 아닌 다른 지역이나 고장.
*제팔식(第八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승화(昇華) ; 어떤 현상이 한 단계 더 높은 영역으로 발전함.
*보리과(菩提果) ; 깨달음.
*보리(菩提) : [산스크리트어] bodhi  도(道) • 지(智) • 각(覺)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를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ㄷ —> ㄹ) 「보리」로 읽는다。따라서 「보제」나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할 것이다.
*줏다 ; ‘줍다’의 사투리.
*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참고] *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여덟 가지 마음 작용.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팔식(八識)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오식(前五識)이라 하고, 第六 意識, 第七 末那識, 第八 阿賴耶識이라 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까뒤집다 ; (사람이 무엇을)가려져 있던 것을 뒤집어 드러내다.
*선업(善業) ;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착한 일.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의 나쁜 행위.
*무기업(無記業) ; 삼성업(三性業)의 하나. 선업(善業)에도 악업(惡業)에도 속하지 않으며, 선악 중의 어떠한 과보(果報)도 받지 않는 업을 이른다.
*육식(六識) ; 육근(六根)에 의하여 대상을 깨닫는 여섯 가지 작용. 곧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의 여섯 가지이다.
*삼불능(三不能) ; 당나라 숭악(崇嶽)의 원규(元珪)가 부처님의 3능(三能)과 3불능(三不能)을 세움.
(1) 3능(三能) - 부처님의 3가지 능한 것.
①일체 상(相)이 공(空)해서 만법을 아는 지혜를 이루는 것.
②모든 중생의 성품을 다 알고, 억겁(億劫)의 모든 일을 막힘이 없이 다 아는 것.
③한량없는 중생(무량중생)을 제도하는 것.
(2) 3불능(三不能) - 부처님의 3가지 능치 못한 것.
①무량겁으로부터서 지은 정업(定業)은 멸하지 못함.
②인연없는 중생을 제도하지 못함.
③무량중생을 제도하실 수는 있으나 중생계를 다 제도하지 못함.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의 고해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 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삼계(三界) ;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세 가지 미혹한 세계.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중생의 마음과 생존 상태를 세 단계로 나눈 것.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이른다.
*발아(發芽) ; 씨앗에서 싹이 나옴.
*동나다 ; 물건 따위가 다 떨어져서 남아 있는 것이 없게 되다.
*현행(現行) ;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저장되어 있는 종자(種子)가 변화하고 성숙하여 일어나는 인식 작용.
*훈(熏 연기낄 훈) ; 훈습(熏習 , 薰習)
① 어떤 성질에 물듦. 어떤 기운이 배어 듦.
② 산스크리트어 vāsanā 마치 향 냄새가 옷에 스며들 듯, 몸과 말과 뜻으로 일으킨 행위의 기운과 생각이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잠재력으로 이식되는 현상.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윤회(生死輪廻)=육도윤회(六途輪廻).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신통(神通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 :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
*심사(心思) ; ①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일어나는 어떤 감정이나 생각. ②남을 괴롭히려는 고약하고 심술궂은 마음.
*보리(菩提) ; 불교 최고의 이상(理想)인 불타 정각(佛陀正覺)의 지혜. 올바른 깨달음으로 모든 것의 참된 모습을 깨닫는, 부처의 지혜를 뜻한다. 산스크리트 어 ‘Bodhi’의 한자 음역어이다.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 ;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수승(殊勝 특히·유달리 수, 뛰어날·훌륭할 승) ; ①가장 뛰어난 일. ②[불교] 세상에 희유하리만큼 아주 뛰어남.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소멸(掃滅 쓸·제거할 소,멸망할·다할 멸) ; 모조리 쓸어서 없앰.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성도재)2014. 1. 9. 15:33

 

 

§(582) 찬불게 / 팔상성도(八相成道) / 부처님께서 무엇을 깨달으셨느냐? / ‘내가 나를 깨닫는다’ / 간화선(看話禪) / 가리켜서 되는 아니야, 깨달아야지.

 

**송담스님(No.582) - 96년(병자년) 성도재 법어(96.12.08.음) (용582)

 

(1) 약 19분.

(2) 약 14분.

(3) 약 14분.

 

(1)------------------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다

나무~아미타불~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허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로다

나무~아미타불~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다.
하늘위, 하늘아래 부처님과 같은 분이 없고, 시방세계에도 이 부처님께 견줄만한 사람이 없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하되, 세간에 있는 모든 것을 내가 다 보았지만은,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다. 일체 부처님과 같은 그러한 거룩한 대성현(大聖賢)이 없더라.

이 게송은 저 무량겁 전에 저사불(底沙佛)이라고 하는 부처님 밑에 미륵 보살과 석가 보살 - 석가모니부처님이 부처님이 되시기 이전 수행과정에 계실 때 - 두 분의 제자가 저사불 밑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가,

어느 날 저사불께서 두 제자 가운데에 누구를 먼저 출세(出世)를 시켜야 할 것인가? 두 제자를 가만히 관찰을 해 보니까, 깨달은 지혜의 면에서는 미륵 보살이 더 앞서있고, 중생을 교화하는 그러한 면에 있어서는 석가 보살이 더 앞서있다.

왜 그러냐 하면은 미륵 보살은 석가 보살보다도 9겁(劫)을 더 먼저 수행해 간 선배였었어. 그렇기 때문에 미륵 보살이 지혜의 면에서는 앞서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나 저사불이라는 부처님께서 생각하실 때 삼도(三途) 고해(苦海)에서, 생사윤회 속에서 헤매고 있는 저 중생들을 위해서 그 중생들을 자비원력(慈悲願力)으로 제도하는 그 일이 급하기 때문에 석가 보살 제자를 먼저 출세를 시키는 것이 더 낫겠다. 이렇게 생각이 들어서,

“내가 등산을 할 테니 나와 같이 가지 않겠느냐?”
“예,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래서 방석을 가지고 따라갔다.

따라갔는데 어떻게 ‘저사 부처님’이 걸음이 빠르시던지 앞으로 훨훨 가셨어. 부지런히 따라간다고 따라갔는데 중간에서 놓쳤다 그말이여. 그래서 숨을 헐떡거리면서 산으로 올라갔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여기 계신가?' 이리 찾아보고 이 골짜기도 찾아보고 이 봉우리도 찾아보고, 찾아보니까 어느 굴이 있는데 굴속을 이리 가니까 속에서 환히 광명이 비춘다 그말이여. 그래서 아하! 여기 계신가보다.

굴속으로 한 발을 디뎌 놓는데 거기에 저사불(底沙佛)이 터억 가부좌를 하고 앉아 계시는데,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 가지고 온통 온 몸에서 환한 햇빛보다도 더 밝은 광명을 놓으시면서 앉아 계시는데, 그 거룩한 모습이 뭐라고 형언할 수가 없어.

그래 가지고 들었던 발을 내려놓고 또 이쪽 발을 들어서 그래서 걸어서 들어가야 할 판인데, 한 발 들은 채로 칠일칠야(七日七夜)라고 하는 시일이 지나갔다 말이야.
그 칠일칠야 시일이 지나가면서 읊은 노래가 바로 이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이 게송을 찬불게(讚佛偈),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이다'해서 찬불게라 하는데,

1주일 동안을, 이 게송을 합장을 하고 한 발을 들은 채 일주일이 지내도, 일주일을 지낸 시간을 완전히 잊어버린 상태에서 그 저사 부처님의 그 거룩한 모습에  완전히 황홀한 지경에 빠지고 그래 가지고 미륵 보살보다 9겁을 뒤져 있는 처지였었는데,
이 게송을 칠일칠야를 이렇게 읊었는데, 칠일칠야가 1시간이 지냈는지, 30분이 지냈는지 전혀 시간이 지나간 거를 모른 상태에서 이 게송을 읊어 가지고 9겁을 뛰어넘어 견성성불을 하셨다.

오늘 병자년 납월팔일(臘月八日) 석가모니 부처님 성도(成道)하신 법요일을 맞이해서 찬불게를 읊었습니다. 납월팔일 법문은 여러분과 같이 조실스님께서 설하신 녹음법문을 통해서 법문을 잘 들었습니다.

이 납월팔일(臘月八日) 성도재(成道齋), 부처님의 사대((四大) 성스러운 재일(齋日)이,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사월초파일, 그 다음에 출가하신 부처님 출가하신 날, 또 납월팔일에 성도하신 날, 그리고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열반재(涅槃齋), 이렇게 해서 사대 성스러운 날로 우리가 기념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부처님께서 - 어느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다 마찬가지지만 -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실 때는 여덟 가지의 상, 팔상(八相)으로 그래서 팔상성도(八相成道)라.

그래서 여덟 가지의 상(相)으로서 부처님의 일대기를 특별히 표현을 하는데, 그 여덟 가지 가운데,

첫째는 도솔천(兜率天) - 모든 부처님이 출세하실 때에는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계시다가 거기서 사천세가 되면은 시절이 인연이 인자 돌아와서 사바세계(娑婆世界)로 내려오시는데,
내려오실 때 내가 어느 나라의 사바세계도 서양, 동양 세계 각국이 있는데 어느 나라에 탄생하는 것이 가장 좋겠는가? 그걸 다 살펴보시고 또 어느 집에 어떻게 탄생하는 것이 좋겠는가를 관찰해 가지고,
결국은 가비라(迦毘羅)왕국 지금은 네팔이라고 그럽니다마는, 가비라왕궁의 태자로 탄생하셨습니다. 탄생하실 때에 흰 코끼리를 타고서 내려오셨어.

둘째는 입태(入胎)인데, 마야부인(摩耶夫人)의 왼쪽 옆구리를 통해서 흰 코끼리를 타고 들어가셨다. 그것이 둘째 번 입태고,

셋째에 주태(住胎). 태에 머무르신 것인데, 모태(母胎)에 계시면서 하루에 여섯 번을 저 하늘나라에 천신들을 위해서 설법을 하셨다.  태중(胎中)에 계시면서 어떻게 하늘나라의 모든 신들을 위해서 설법을 하셨는가?
그것은 오늘날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우리라 생각이 듭니다.

네 번째는 출태(出胎)인데, 탄생하신 것입니다. 사월초파일 - 갑인년 사월초팔일에 룸비니 동산에서 오른쪽 옆구리를 통해서 탄생하셨다. 들어가실 때에는 왼쪽 옆구리로 들어가셨는데, 나오실 때에는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을 하셨다.

탄생을 하시자마자 눈으로는 사방을 둘러보고, 일곱 걸음을 걸으시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하는 대 사자후(獅子吼)를 하셨다고 경전에 전해 내려옵니다.
어떻게 금방 탄생한 어린 애기가 그렇게 거닐 수가 있었으며,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사자후를 하실 수가 있었을 것인가? 이것도 역시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삼천 년을 통해서 부처님을 믿고 불법을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의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진묵겁(塵墨劫) 전에 확철대오해서 성불하신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방편(方便)으로 사람 몸을 받아서 태어나셨기 때문에,
능히 삼십이상과 팔십종호를 다 갖추고 삼명육통과 팔해탈을 다 갖추신 대성현이 방편으로 태어나셨다고 본다면, 우리 불자로서는 고대로 믿어질 수 밖에는 없는 일입니다.

다섯 번째는 19세 또는 경전에 따라서는 25세에 성(城)을 넘어서 출가를 하셨다. 사문유관(四門遊觀)을 하시고 무상함을 깨달으시고 왕궁을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서 수도를 하셨다.

여섯 번째는 성도(成道)인데, 6년 또는 12년의 고행(苦行)과 낙행(樂行)을 하신 끝에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12월 초팔일-납월 팔일 새벽에 뜨는 그 밝은 별을 보시고서 확철대오를 하셨다.

진묵겁(塵墨劫) 전에 이미 다 깨달으신 부처님이 우리에게, ‘사람이 바른 법에 의지해서 도를 닦으면 확철대오 할 수 있다’고 하는 그것을 시범으로 보여주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일곱 번째는) 확철대오하신 뒤로 녹야원(鹿野苑)에서 교진여 등 5비구를 향해서 사제법(四諦法)을 설하시고,
그것을 필두로 해서 80세에 열반하실 때까지 49년 동안을 아함십이방등팔(阿含十二方等八), 이십일재담반야(二十一載談般若), 종담법화우팔년(終談法華又八年)해서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시고,

(여덟 번째는) 80세를 일기로 사라쌍수(娑羅雙樹) 아래서 열반상(涅槃相)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  여덟 가지 상(相)을 부처님의 팔상이라 팔상성도(八相成道)라 하는데, 어째서 성도(成道)는 여섯 번째 가서 성도인데, 여덟 가지 상에다가 성도를 붙였느냐?

여덟 가지 상(相)이 바로 이 성도(成道)가 그 팔상(八相)중에 핵심이요 중심이기 때문에 - 탄생하셔서 열반하실 때까지의 일생 모든 것이 성도(成道)의 그 과정이 그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 여덟 가지 상, 전부 합해서 팔상성도라고 그렇게 말을 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이 범어(梵語)로 ‘붓다’인데, ‘붓다’라고 하는 뜻이 ‘깨달음’ 또는 ‘깨달은 사람’을 갖다가 붓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탄생하셔서 열반하실 때까지 모든 것이 깨달음이 핵심이요, 전부가 깨달음이다.
깨달음을 위한 것이고, 깨달음에 의한 것이고, 바로 깨달음에 의해서 일생을 사신 것이다 그말이여.(처음~19분4초)

 

 

 

 

 

(2)------------------


그러면 불교학자들은 '과연 (부처님께서) 갑인년 납월팔일(臘月八日) 밝은 별을 보시고 무엇을 깨달으셨느냐?'

학자들은 그 많은 경전을 샅샅이 뒤져서 대관절 그 ‘깨달으신 내용이 무엇이냐?’ ‘무슨 도리(道理)를 깨달으셨느냐? ’ 학자마다 거기에다 초점을 맞추고 많이 연구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현대 학자들은 '십이인연(十二因緣) 법을 깨달으셨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중심사상이고, 그래서 십이인연 진리를 연기법(緣起法)을 깨달으셨을 것이다' 이렇게 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논문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산승(山僧)은 그렇게 보는 것은 학자로서의 소견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아무리 그이가 머리가 좋은 세계적인 석학이라 하더라도, 중생 소견으로 깨달음의 내용의 대해서 '이것이다' 이렇게 말하기는 어려우리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깨달음이라 하고, 깨달으셨다면 이러한 것을 깨달으셨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고,
코끼리를 장님이 배를 만져보고는 '벼람박 같다' 하고, 코를 만져보고는 '구렁이 같다'고 하고, 코끼리 다리를 만져본 장님은 '코끼리라는 게 기둥과 같이 생긴 거다' 이렇게 말한 거와 같으리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을 깨달은 가에 대해서는 산승도 역시 '이러한 이치를 깨달으셨을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각자(各自)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에 의해서, 조사들이 개발해 내놓은 최상승법에 의해서 여법(如法)하게 목숨 바쳐서 수행을 해 가지고 스스로 깨달아 보기 전에는, 알 수도 없고 말하기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일등능속백천등(一燈能續百千燈)이라  심인광통법령행(心印光通法令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연휘열염전분명(聯輝列焰轉分明)이라  천성부전취불멸(千聖不傳吹不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등능속백천등(一燈能續百千燈), 한 등(燈)에 불을 밝히면, 그 한 등의 심지로 인해서 백 등, 천 등, 만 등의 수 없는 등에 그 등불을 붙여서, 수천만 등의 불을 붙여서 온 세상을 다 밝힐 수가 있을 것이다.

심인광통법령행(心印光通法令行)이여, 그 한 등(燈)이라 하는 것은 한 부처님의 깨달음의 등(燈)인데, 한 부처님이 깨달음으로 해서,
많은 제자들 많은 중생들에게 그 깨달음에 이르는 법문(法門)을 설해 가지고 그 법문에 의해서 수행을 해 가지고, 각자가 자기 마음속에 깨달음의 등불을 밝힌 것에다가 빗대서 읊은 게송인데,

그 마음에 심인(心印)에 등불이 환히 한사람 사람마다 다 밝혀서 온 세상에 밝혀진다면, 불법(佛法)의 법령(法令)이 온 세상에 가득할 것이다.

연휘열염전분명(聯輝列焰轉分明)이요, 그래 가지고 온 세상에 한 등불에 의해서 다른 등불에 밝히고, 한 등불이 수천 수만 등에 밝히니 그 수천 수만 등이 다시 또 수천 수만 등에 밝혀 가지고 온 세계가, 삼계(三界)가 깨달음의 등불로 가득 차게 된다면,

천성부전취불멸(千聖不傳吹不滅)이다. 그 깨달은 진리는 아무리 부처님이라 하더라도 그 깨달음을 어떤 등불에 등불을 붙이듯이 각자 이렇게 붙여 주기는 어려운 거고, 깨달음에 나아가도록 법을 설하셔.

진짜 깨닫기는 자기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거든. 그래서 이 ‘참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전할 수가 없는 것이여.

천성(千聖)도 전할 수 없는 이 진리의 등불은 아무리 폭풍이 불어도 영원히 꺼지지 아니할 것이다.

‘이 깨달음의 진리를 전할 수가 없다’고,
전할 수 있고 말로 할 수 있다면 ‘참 진리’가 아니고 ‘참 법’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과거의 모든 부처님은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시고, 역대 조사도 다 수 없는 설법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가리켜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리켜 가지고 되는 것이라면 진즉 우리가 다 성불(成佛)했을 것이고, 이 사바세계에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마는, 가리킨다고 되는 것은 아냐.

가리킨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은, 부처님께서는 49년 동안을 인도 천지를 다니시면서 제자들과 같이 걸식(乞食)을 하시면서 그 많은 설법을 하셨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 이 주안 염전 갯벌 가에다가 용화선원을 창설해 가지고, 77세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오늘 아침에 법문 가운데도 공양을 잘 못 잡수셔서 새벽에 허기가 진 상태에서도 그런 사자후 법문을 하셨습니다.
법문 가운데도 ‘먹은 것이 없어 기운이 없어서 말을 못해 그만 마친다’는 이런 가슴 아픈 말씀이 나왔습니다마는,

말을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은, 끊임없이 말을 해야 하고 가리켜야 합니다.
배워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여.

강사는 강사대로 인연 있는 사람을 위해서 자기가 일생동안 공부한 부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리켜야 하고, 불교학자는 학자대로 일생동안 공부한 것을 학생들에게 교리를 강좌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상 ‘내가 나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가리킬 수도 없고 배워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부처님과 조사들께서 직접 깨달으시고, 그 깨달으신 경험에 의해서 지도하시는 그 방법에 의지해서 우리도 열심히 해야만 되고,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여.

그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이요 활구참선(活句參禪)인 것입니다.

무엇이 최상승법이냐? 내가 나를 찾는 공부여.

화엄경, 법화경, 금강경, 원각경 그런 많은 대승경전이 있고, 소승경전이 있습니다마는,
학자들이 이것은 대승(大乘) 불교다, 이것은 소승(小乘) 불교다, 학자들이  연구상 편의상 그렇게 갈라놓은 것이지,
부처님의 설법에 어찌 분명하게 콩과 팥을 가르듯이 소승, 대승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서, 학자들이 말하는 소승법을 설한다 해도 소승 속에 바로 최상승법이 들어 있는 거고, 대승을 설하시되 대승경전 속에서도 얼마든지 소승불교 교리가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에 집착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마는,

이 최상승법이라 하는 것은 언어, 문자로 연구해서 들어가는 공부가 아냐.
불립문자(不立文字) 견성성불(見性成佛)이야.

학술적으로 이론적으로 연구하고 따져서 들어가는 공부가 아냐.
그래서 이것을 불립문자라 그러는데, 내가 나를 찾는 것이여.(19분5초~32분23초)

 

 

 

 

 

(3)------------------


‘내’라는 게 무엇이냐?

사람들은 ‘내’라 ‘나’다 하면은, 이 사지백체(四肢百體)에 안이비설신의 이목구비(耳目口鼻)를 갖춘 이 육체(肉體)를 기준으로 해서 ‘나’다 그러고,
호적도 역시 아무 날 아무 시에 아무 아버지와 아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 그 사람을 기준으로 해서 거기에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해서 호적에 올리고, 그 사람 하면 바로 그 육체를 기준으로 해서 말하는 것이나, 어찌 그것이 ‘나’ 일수가 있겠습니까?

‘나’라고 하는 것은 육체, 그 육체 속에 들어있는 나의 주인공(主人公)이 있어. 이런 말도 분명히 말하면 어폐(語弊)가 있는 말이지만, 우리는 부득이(不得已) 해서 이러한 방편(方便)으로 말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 육체는 이 주인공이 입고 있는 한 벌의 옷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주인공이 이 속에 있기 때문에 그 주인공이 입고 있는 옷이 바로 이 육체다.
우리는 그 육체 위에 다시 또 여러 가지 옷을 입고 살고 있습니다마는, 우리의 참 나, 우리의 주인공이 이 몸뚱이 속에 들어 있어.

이 옷을 벗으면 우리 육체가 있듯이, 육체 속에는 우리의 주인공이 들어 있는데, 해부(解剖)를 해 봤자 오장육부를 샅샅이 뒤져도 그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나오지는 않지만, 분명히 주인공이 들어있기 때문에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기뻐할 줄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도 알고, 가만히 앉았어도 시간과 공간의 걸림이 없이 왔다 갔다 하네.

10년 전,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어릴 적 일도 생각만 하면 환하고, 몸은 여기 있으면서도 서울역하면 서울역이 환하고, 여러분의 집안을 생각하면 집에도 왔다 갔다 할 수가 있다 그말이여.

천만리 멀고 가까운 곳이 상관이 없고, 시간적으로도 과거, 미래 맘대로 왔다 갔다 해.

그러한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이, 우리 모두 낱낱이 다 주인공이 있다.

그걸 마음이라 하기도 하고, 성품(性品)이라 하기도 하고, 진여(眞如)라 하기도 하고, 불성(佛性)이라 하기도 하고, 이 경전마다 법계(法界)니 진여니 불성이니 여여(如如)니.... 경전에도 경전마다 이름이 다 다르고, 세계 각국에 다 나라마다 말이 다 다르지만,

이름이야 일법천명(一法千名)이여, 한 법(法)에 천 가지 이름이 있어서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볼래야 볼 수도 없고,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지만은, 분명히 소소영령한 놈이 있다 그말이여.
이 육안으로 볼 수는 없어.

그것을 방법에 의해서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에 의해서 그것을 찾는 것이다 그 말이여.

어떻게 찾느냐?
종파(宗派)에 따라서 찾는 방법이-조사(祖師)들의 방편에 따라서 여러 가지 법이 있지만,

그 법 가운데 한국의 선지식들은 임제종(臨濟宗)의 간화선(看話禪)이라는 방법,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함으로써 화두를 타파(打破)해 가지고 자기의 ‘참 나’를,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도록 하셨다 그말이여.

여러 종파가 자기 종파의 방법이 좋다고 다른 종파의 방법을 서로 비난하고 헐뜯고, 과거의 역사에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마는, 우리는 그런 것에 관여할 필요가 없고,

화두를 자기가 믿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지정을 받아 가지고,
화두가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화두가 있고, 문헌상에 오르지 아니한 화두는 이 우주법계에 가득 찬 것이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화두 아닌 것이 없고 공안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멋대로 아무거나 하나 선택해 가지고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래서는 안 될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 멋대로 화두를 선택하면 하다가 좀 잘 안되면 언제라도 자기 멋대로 버리게 되고, 또 다른 화두를 가지고 하고, 이러한 폐단이 있습니다.

우물을 팔 때 조금 파봐서 안 나온다고 장소를 옮겨서 또 파고 또 파고 몇십 군데를 파봤자 금방 나서 나온 물은 그건 건수(乾水)지 참으로 좋은 물이 아닙니다. 장마 때는 꿀꿀 나오다가 가물 때는 끊어져버리는 그런 물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열길, 스물 길, 서른 길, 백 미터, 이백 미터 파고 들어가서 암반이 나오면 그 암반을 뚫고 그 암반 밑에서 나온 물이라야 사시절 가뭄과 장마에 상관없이, 변함없이 좋은 물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뜨신 물이 꿀꿀 솟아나올 것입니다,

화두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자기가 믿는 선지식한테 화두를 타야 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 멋대로 자꾸 화두를 바꿔 싸면 그 사람은 정말 큰 깨달음을 얻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화두를 하나 가장, 선지식이 보아 가지고 이 사람에게는 이런 화두가 적당하겠다. 그 화두를 딱 지정을 해주면,
잘 되거나 안 되거나 정말 이 법을 위해서 자기의 몸과 목숨을 바칠 생각을 해 가지고, 잘 된다고 해서 잘된 데에 빠지지도 말고,
잘 안된다고 해서 번민하고 ‘이 화두가 안 좋아서 그러나? 화두가 나한테 안 맞아서 그러나?’해 가지고 화두를 제멋대로 바꿔 가지고 이 화두로 좀 껄적껄적 해보다 안 되면 저 화두를, 평생을 해 봤자 진정 참 깨달음에는 이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누구고 화두를 타 가지고 정진을 하는데 처음부터서 잘 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아무리 숙세(宿世)에 선근(善根)이 있어서 일언지하(一言之下)에 툭 터지는 그런 사람일 경우는 몰라도, 대부분이 우리가 다 중근기·하근기인데, 처음에는 다 어렵지만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참선법을 믿기 때문에, 최상승법을 믿기 때문에, 이 정법을 믿기 때문에, 그 선지식을 믿기 때문에 한 화두를 가지고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이 한 화두를 가지고 목숨을 거기다가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뭣고?’

한문으로는 시심마(是甚麽)인데, 우리말로는 ‘이것이 무엇인고?’그러는데, 경상도 말로는 “이뭣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그러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놈.
볼래야 볼 수도 없고 알래야 알 수 없지만, 대관절 이것이 무엇이냐?

해 갈수록 꽉 맥혀서 알 수가 없어야지.
해 가다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교리로 따지고, 이론적으로 따지고, 동서의 철학적으로 따져 가지고 분석하고 비교하고 종합해 가지고 적용을 해보고야 ‘아하, 바로 이것이로구나!’ 이렇게 알아들어 가는 게 아니야.

그것은 그럴싸한 결론을 자기 나름대로 얻었다 해도 그것은 ‘안’ 것이지 ‘깨달은’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이론적으로 따져서 결론을 내려서 ‘이런 것이다’하고 할 수 있는 거라면,
그거야 가리킬 수가 있는 것이고 배울 수가 있는 것이지, 무엇이 어려울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부처님도 가리켜 줄 수가 없거든.
가리켜서 되는 거라면 무엇이 어려우며, 문제가 될 것이 있느냐?
가리켜서 되는 게 아니야.

이건 깨달아야지.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 갈수록 맥혀야지.
꽉 막혀서 알 수가 없어야, 그런 상태로 밀고 나가야 하는 거야.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는 그 시간에도 별별 생각이 오락가락하지만, 오락가락하는 망상은 그냥 고대로 나둬.
그 쫓아내려고 하지도 말고, 막으려고 하지도 말고, 그냥 놔둔 채 숨을 들여 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자꾸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자꾸 거기다 또 할 필요는 없어.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따~악 관(觀)하거든.

그 의심이 고대로 있으면 2분, 5분 동안도 그 의심이 고대로 있으면 5분, 1시간 해도 그 의심이 안 없어지면 알 수  없는 그 의심을 관(觀)하는 거야.

‘이뭣고?’
숨을 들어 마실 때는 아랫배가 볼록하게 되는 것을 느끼면서 숨을 들여 마시고, 내쉴 때는 그 배가 차츰차츰 차츰 홀쭉해진 것을 느끼면서 숨을 내쉬는 거여.

그러면서 ‘그 알 수 없는 의심은 아랫배에다 따악 거기다 두고 관(觀)한다.’ 그 말도 알아듣기가 좀 어렵지만,

단전호흡을 하면서 배가 불렀다, 줄었다 하는 것을 느끼면서 ‘이뭣고?’ 하면은, 화두가  바로 아래 가서 자연히 있게 되는 거야.

알 수 없는 의심이 나중에는 의단(疑團)이 되어.

1시간을 해도 그 의단이 흩어지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서 든 화두가 아침 먹을 때까지 있고, 아침 먹을 때 든 화두가 점심때까지 있고, 점심 먹을 때 든 화두가 저녁까지 있고, 저녁에 잘 때 들은 화두가 꿈 속에서도 고대로 화두가 있다면,
이것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요. 오매(寤寐)가 일여(一如)한 건데,

그렇게 타성일편이 되어서 순수무잡해 가지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되면, 어느 날 어느 때 통 밑구녁 빠지듯이 펑! 터진다 그말이여.

툭 터져서, 알 수 없던 공안(公案)을 타파해 가지고 자기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는 거야.

이론적으로 따져서 ‘이것이로구나’ 그게 아냐. 그런 것은 백 번 그런 식으로 알아봤자 소용이 없는 거고.

바르게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놓고 보면, ‘기네 아니네’가 소용이 없는 거야.(32분24초~46분3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시방세계(十方世界) ; 온 세계. 사방(四方 동•서•남•북)과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와 상하(上下)에 있는 무수한 세계.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겁(劫) ; (산) kalpa의 음사.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긴 시간.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〇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〇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삼도(三途•三塗) ; 악한 일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는 3가지 미혹한 생존. 지옥•아귀•축생의 생존.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화광삼매(火光三昧) ; 몸에서 불을 발하는 선정. 불빛에 감싸여 명상하고 있는 것.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납월(臘月) ; 음력 섣달.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성도(成道) ; 깨달음.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됨.
*성도재(成道齋) ; 매년 12월 8일,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날에 행하는 법회.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마야부인(摩耶夫人) ; 싯다르타(釋尊)의 어머니.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내가 가장 높다’라는 뜻으로 싯다르타가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오른손으로 하늘을, 왼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읊었다는 글귀. 이 글귀는 모든 사람의 인간성의 존엄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함.
*사자후(獅子吼) ; 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진묵겁(塵墨劫) ; 티끌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십바라밀(十波羅蜜)의 하나. 불보살(佛菩薩)이 중생을 근본적인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쓰는 묘한 수단을 말한다.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삼명육통(三明六通)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와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팔해탈(八解脫)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여덟 가지 선정(禪定).
*사문유관(四門遊觀) ; 사문출유(四門出遊)라고도 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싯다르타 태자 때에 가비라성의 동•남•서•북 4문으로 나가 다녔는데, 동문 밖에서는 늙은이를 보고, 남문 밖에서는 병든 이를 보고, 서문 밖에서는 죽은 사람을 보고, 북문 밖에서는 출가수행자를 보고, 생로병사의 고통을 해결하려고 출가 수행에 뜻을 두었다.
*고행(苦行) ; 어떤 경지에 이르거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낙행(樂行) ; 싯다르타(釋尊)가 6년의 고행(苦行) 후, 나이란자나강에서 몸을 씻은 다음 수자타가 올린 유미죽공양을 받은 후 보리수(菩提樹) 밑에서 선정(禪定)에 들어간 것을 말함.
*확철대오(廓徹大悟) ; 큰 깨달음.
*녹야원(鹿野苑) ; 붓다가 35세에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교진여(僑陳如) 등 5명의 비구(比丘)를 제도(濟度)하였다. 갠지스강 중류.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에서 북동쪽으로 약7km 지점에 있는 동산.
*사제(四諦) ; 제(諦)는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를 뜻함. 고(苦-괴로움)를 소멸시켜 열반에 이르는 네 가지 진리. 사성제(四聖諦-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고도 함.
①고제(苦諦,苦聖諦). ‘고(苦-괴로움)’라는 성스러운 진리.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이 고다”(상응부)
②집제(集諦,集聖諦). ‘고의 원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몹시 탐내어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고(苦)가 일어나는 원인이라는 진리.
③멸제(滅諦,㓕聖諦). ‘고의 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됨으로써 고(苦-괴로움)가 소멸되어 고의 끝남, 열반에 이른다는 진리.
④도제(道諦,道聖諦).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팔정도(八正道)-정견(正見,바른 이해)•정사유(正思惟,바른 생각)•정어(正語,바른 말)•정업(正業,바른 행위)•정명(正命,바른 생계)•정정진(正精進,바른 노력)•정념(正念,바른 마음챙김)•정정(正定,바른 집중)-는 갈애를 소멸시켜,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아함십이방등팔(阿含十二方等八), 이십일재담반야(二十一載談般若), 종담법화우팔년(終談法華又八年) ; 천태 지의(538-597)스님이 부처님의 방대한 가르침을  설한 순서에 따라 분류(五時)하였는데,
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한 직후 21일간 화엄경을 설하시고(화엄최초삼칠일 華嚴最初三七日),
12년간 녹야원에서 아함경을 8년간 유마경등의 대승경전을 설하시고(아함십이방등팔 阿含十二方等八)
21년간 여러 반야경을 설하시고(이십일재담반야 二十一載談般若),
8년간 법화경을, 입멸 때 1일간 열반경을 설하셨다(종담법화우팔년 終談法華又八年).

 

 

 

 

 

------------------(2)

 

*십이인연(十二因緣) ; 십이연기(十二緣起).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한 무명(無明)을 근본 원인으로 하여 중생으로서의 인간의 괴로운 생존이 12가지 요소의 순차적인 상관관계에 의한 것임을 설명한 것.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의도적인 행위와 업을 구성하는 형성(行)이 생겨난다.
◎ 형성(行)을 조건으로, 의식(識)이 생겨난다.
◎ 의식(識)을 조건으로, 정신물리적인 현상인 명색(名色)이 생겨난다.
◎ 명색(名色)을 조건으로, 안•이•비•설•신•의 6가지 감역(六入)이 생겨난다.
◎ 감역(六入)을 조건으로, 감각적, 정신적 접촉(觸)이 이루어진다.
◎ 접촉(觸)을 조건으로, 감수(受)가 생겨난다.
◎ 감수(受)를 조건으로, 갈애(愛)가 일어난다.
◎ 갈애(愛)를 조건으로, 집착(取)이 일어난다.
◎ 집착(取)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생겨난다.
◎ 존재(有)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생겨난다.
◎ 태어남(生)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老死)가 생겨난다.
☆ 무명(無明)이 사라지면 의도적인 행위와 업을 구성하는 형성(行)이 사라지고, 형성(行)이 사라지면 의식(識)이 사라지고........마침내 태어남(生)이 없으면 늙고 죽음(老死)가 사라진다.
*연기(緣起)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일어남을 이르는 말. 인연생기(因緣生起)의 뜻. 즉 연(緣)이 되어서 결과를 일으킴을 말함.
“만약 이것이 있으면 곧 저것이 있고(若有此則有彼),
  만약 이것이 생겨나면 곧 저것이 생겨난다(若生此則生彼).
  만약 이것이 없으면 곧 저것이 없어지고(若無此則無彼),
  만약 이것이 소멸하면 곧 저것이 소멸한다(若滅此則滅彼).” (중아함경)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게송) ‘일등능속백천등~’ ; [금강경오가해]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 종경스님 게송 참고.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법령(法令) ; 법률(法律)과 명령(命令)을 아울러 이르는 말.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진리)를 구하기 위해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중생이 부처님 가르침인 교법(敎法)을 듣고 제각기 이를 깨달을 만한 능력.
*소승(小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대승(大乘)이라 하고, 전통의 보수파들을 낮추어 일컬은 말.
②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에 분열된 불교 교단의 여러 부파, 곧 부파 불교(部派佛敎)를 말함.
③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수행자, 성문(聲聞)•연각(緣覺) 또는 그들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④열등한 능력이나 소질을 갖춘 자를 위한 붓다의 가르침.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함.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불립문자(不立文字) ; 진리는 문자로 표현 할 수 없는, 개념으로 규정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 선종에서 법(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것이므로, 따로 언어•문자를 세워 말하지 않는데 참 뜻이 있다고 하는 것.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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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폐(語弊 말씀 어,해어질·쓰러질 폐) ; ①적절하지 아니하게 사용하여 생기는 말의 폐단이나 결점. ②남에게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말.
*부득이(不得已) ;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종파(宗派) ; 한 종교에서 교리나 의식의 차이로 나뉜 큰 갈래.
*조사(祖師) ; ①일종일파(一宗一派)-한 종(宗)이나 파(派)를 세워서 그 종지(宗旨)를 열어 펼친 스님에게 붙여지는 칭호. ②후세 사람의 귀의(歸依)와 존경을 받을 만한 스님.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임제종(臨濟宗) ;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에 의해 비롯된 종파.
◎임제(臨濟)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간화선(看話禪)=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숙세(宿世 묵을 숙,인간·시대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세상.
*선근(善根) ; 좋은 과보를 받을 만한 착한 인(因)·행위. 온갖 선(善)을 낳는 근본. 청정한 행위를 할 근성.
*주삼야삼(晝三夜三) ; 밤낮. 밤이나 낮이나.
*이 무엇고(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오매(寤寐 잠이 깰 오,잠잘 매) ; 자나깨나 언제나.
*일여(一如) ;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수 없음.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