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화두불명수계)2017. 10. 21. 05:44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714) (게송)농계유식탕와근~ / 계()로써 스승을 삼으라 / 불자는 철저하게 인과의 진리를 믿어야 / 어리석음과 삿된 견해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뭣고?’ / (게송)호향차시명자기~.
 
불도(佛道) 수행을 성취코자 하면 () () (), 삼학(三學) 겸해 닦아야 하나니, 계() 그릇이 온당해야 선정(禪定) 물이 담기고, 선정의 물이 맑고 고요해야 지혜의 달이 나타날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로써 스승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부처님께서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말씀하시기를 크고 작은 죄는 참회하므로써 깨끗한 청정한 몸으로 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치 중병을 앓든 사람이 약을 먹고 땀을 주르르 흘리고 나면 몸의 병이  소멸이 되고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거와 같다’고 비유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송담스님(No.714)—2007 10 첫째 일요법회 (용714)

 

(1) 약 20분.

(2) 약 18분.

 

 

(1)------------------
 
농계유식탕와근(籠鷄有食湯鍋近)이요  야학무량천지관(野鶴無糧天地寬)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농계(籠鷄) 유식탕와근(有食湯鍋近)이요, 닭장 속에 갇혀서 살고 있는 닭은 때맞춰서 먹이를 주기 때문에 배가 부르다 말이여. 그러나 머지않아서 펄펄 끓는 전골냄비가 가깝고.
야학(野鶴) 무량천지관(無糧天地寬)이다. 들에 날아다니는 학은 아무도 식량을 때맞춰서  사람도 없지마는 동서남북 마음대로 날아다니면서 자유롭게 사는 천지(天地) 너그럽다, 넓다 말이여.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다.
솔바람 불고 칡(덩쿨 사이로) 달이 밝은  아래 들어가서 오래도록 무루(無漏) 조사선(祖師禪) ()하고자 한다. 이러헌 고조사(古祖師)의 글입니다.
 
세속에서 오욕락(五欲樂) 누리면서오욕락은 명예와 재산과 색과,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자유롭게 사는 잠자고 하는 다섯 가지 오욕락을 누리기 위해서 세속에서는 평생토록 공부하고, 사업을 하고, 벼슬을 하고.
그런데 재산이나, 색이나, 명예나, 맛있는 음식이나, 편안하게 자는  오욕락이라 하는 것은 세속에 살아가는 데는  없어도 아니되지마는, 그것을 남보다  월등 많이 가져서 실컷 누리고 산다해도 자기 마음 닦는 공부를 안 하고 오욕락만 탐하고 누리고 살다가는 머지않아서 삼악도(三惡道), 육도윤회(六途輪廻) 기다리고 있어. 그것이 바로 '전골냄비가 기다리고 있다'고 표현을  것입니다.
 
세속의 오욕락에 대한 탐욕심을 버리고 불법을 믿고 정법을 믿어서 자기 마음을 닦는 수행을 하는 사람은, 마치 들의 학(鶴)처럼 검소하게 살고  가난한 듯하니 살고 욕심 없이 살면서 참나를 찾는 수행을 하는 사람은 삼악도에 빠질 걱정도 없고, 육도윤회를 벗어나서 영원한 해탈도(解脫道) 향하는 것이니.
 
지금 오늘  법보전(法寶殿)에 가뜩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은 바로 들 학과 같이 출가해서 도를 닦는 비구・비구니・사미・행자가 있고,
 머리를  깎고 세속에 사신다 하더라도 부득이한 인연으로 세속에 몸담아 있지마는  마음은 출가한 스님네와 같이, 들의 학과 같은 그런 마음으로 오늘 십선계(十善戒) 받고, 불명(佛名)을 타고, 화두(話頭) 타는  뜻이 바로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자리에 오신 것입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대한 법문은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우리가 다같이 경청을 했습니다. 다못  자리에서 산승이 말씀드리고자  것은 십선계에 대해서 조실 스님을 대신해서 여러분께 설해 드리고자 합니다.
 
불도(佛道) 수행을 성취코자 하면 () () (), 삼학(三學) 겸해 닦아야 하나니,
() 그릇이 온당해야 선정(禪定) 물이 담기고, 선정의 물이 맑고 고요해야 지혜의 달이 나타날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로써 스승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오늘 십선계(十善戒) 받고자 하는 분은 호궤합장(跪合掌) 하십시오.
 
첫째, 불살생(不殺生)이니,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 둘째, 불투도(不偸盜),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 셋째, 불사음(不邪淫)이니, 사음을 하지 말라.
 
넷째, 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다섯째, 불기어(不綺語),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지 말라. 여섯째, 불양설(不兩舌)이니, 이간하는 말을 하지 말라. 일곱째, 불악구(不惡口), 악한 말을 하지 말라.
 
여덟째, 불탐욕(不貪慾)이니, 탐욕심을 내지 말라. 아홉째, 불진에(不瞋), 진심을 내지 말라. 열째, 불사견(不邪見)이니, 어리석고 삿된 견해를 갖지 말라.
 
간략히 설명을 하면 처음에 3가지는 몸으로 짓는 ()인데. 산목숨을 죽이고, 남이 주지 않는 것을 마음대로 훔치고, 자기 아내와 남편이 아닌 사람과 관계를 맺는   3가지는 []으로 짓는 잘못이고.
그다음 넷째 ・ 다섯째 ・ 여섯째 ・ 일곱 번째는 []으로 짓는 허물이요. 마지막 여덟 번째 ・ 아홉 번째 ・ 열 번은 마음[]으로 짓는 죄여.
 
이것은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하냐?
모든 사람이나 짐승이나 벌레까지라도  생명을 가지고 있어.  생명은 바로 무엇이냐 하면은 우리와 똑같은 불성(佛性)이고 성품이기 때문에 그런 우리와 똑같은 성품을 가지고 있는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을 그것을 죽이면 우리의 도업(道業)을 성취하는데, 도를 닦어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도를 닦는데,  도를 닦아가지고 중생을 교화할려고 하는 사람이 어찌 산목숨을 죽일 수가 있겠느냐.
산목숨을 죽이지 말고 자비심으로 죽어가는 중생을 살려줘야  것이다.
 
 번째,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 나의 것을 남에게 보시를 하고, 남의 어려운 사람을 도와 주고, 배고픈 사람을 밥을 줄지언정 어찌 내가 도를 닦고자 하는 사람이 남의 물건을 훔칠 수가 있겠는가.
 번째 사음() 하지 말라. 도를 닦는 사람은 몸과 마음을 청정히 가져야 하거늘 어찌 사음을 할까 보냐.
 
그다음 4가지. 거짓말을 하지 말라.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지 말라.  가지 말로 이간(離間)질을 하지 말라. 입에  담을 욕을 하고, 악한 말을 하지 말라.
도를 닦는 사람은 몸도 청정해야 하지마는 말도 자비롭고 인자하고 바르고 엄숙하게 입을 단속해야 하거늘, 입으로 거짓말 하고 욕을 하고 더군다나  가지 말로 이간질을 해서 남을 험담하고 싸움을 붙일 수가 있겠느냐.
 
입은 함부로 놀려도 별로 힘이 드는 것은 아니지마는   치도 못된 혀를 가지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람을 감옥에다 넣을 수도 있고, 사람을 모든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도 있고.
과거로부터서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입을 통해서 많은 사람을 해꼬지하고 죽이고, 정치하는 사람은 입을 통해서 모략 중상을 해가지고 상대방을 짓밟고 자기가 위로 올라설라고 하는 그런 것을 우리는 많이  왔고, 현재도 선거를 앞두고 같은 당끼리, 같은 민족끼리 입에  담을 거짓말과 험담으로써 하는 것을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  듣고 있습니다.
 
우리 불교를 믿는 불자는 말을 거짓말을 하지  것이며, 상스러운 말을 하지  것이며, 이간질하지  것이며, 입에  담을 험악한 말을 하지  것이다.
 
나머지 불탐욕(不貪慾)이니, 탐욕이라 하는 것은 재물에 대한 탐욕도 있고, 명예나 권리에 대한 탐욕도 있고, 물질적인 탐욕, 정신적인 탐욕.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려 그러고,  욕심을 챙길려고 그러고, 자기를 앞세우고 남을 짓밟고 하는 그러한 일생을 살아가는데 그런 사람을 우리는 많이  수가 있습니다.
탐욕을 부리다가  마음대로  되면 진심을 내는 것이 중생의 나쁜 버릇인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자 한 것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도 사바세계에서는 얼마든지 있거늘, 자기 마음대로  되면 부부간에도  싸움을 하고, 형제간에도 마음대로  되면 싸우고, 이웃간에도 싸우고, 친구간에도 자기 마음대로  되면은 진심(瞋心) 내는 것을 우리는  왔습니다.
 
진심(瞋心) 내면 결과적으로는 자기가 자기의 인격을 손상하는 것이고, 진심을 냄으로써 다정한 모든 사람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설사 자기 욕심을 냈다가 안되면 바로 자기를 반성하고 상대방에게 사과하고, 진심(瞋心) 쪼끔 낼라다가도 퍼뜩 생각을 돌이켜서 사과할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번째, 어리석은 마음이라 하는 것은 그것을 평생 동안을 되풀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탐욕심을 내고, 탐욕심을 내서 마음대로  되면 진심(瞋心) 내고, 그것을 거기서 참회할 줄을 모르고 되풀이하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중생의 어리석은 것입니다.
 
마지막에  어리석음, 탐진치(貪瞋癡)의 어리석음 가운데에 제일 못된 것은 인과법(因果法)  믿는 것입니다.
인과법을 믿으면, 인과법을 철저히 믿으면 앞에 말한 아홉 가지 죄도  짓게 되는 것입니다. 인과법(因果法)  믿기 때문에 살생도 하고 도둑질도 하고 사음도 하고, 망어 ・ 기어 ・ 양설 ・ 악구도 하고, 탐욕심도 내고 진심(瞋心) 내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佛子)는 철저하게 인과의 진리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연비(燃臂) 준비해 주세요.
앞으로  () 받고  지키기 위해서 연비를 받게 됩니다, 합장을 하고.
 
이상 설한  가지 ()  지키겠는가?” (대중) “예!”
이상 설한  가지 과목은 불자로서 도업을 성취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그러한 수행자가 될려면은 이상  가지를  지켜야 하나니  지키겠는가?” (대중) “예!”
이상 설한  가지는 우리 불자로서  지켜야 할 바니  지키겠는가?” (대중) “예!”
 
우리는 부처님 앞에 연비를 받으면서  가지를  지키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지심참회(至心懺悔) 원멸(願滅) 사생육도(四生六途) 법계유정(法界有情) 다겁생래(多劫生來) 법보재자(法寶齋者)
탐심중죄(貪心重罪) 금일참회(今日懺悔)
진심중죄(瞋心重罪) 금일참회(今日懺悔)
치심중죄(癡心重罪) 금일참회(今日懺悔)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痴)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참회진언(懺悔眞言)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견지금계불훼범(堅持禁戒不毁犯)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모두 편안하게 앉으십시오.(처음~20분1초)
 
 
 
 
 
 
(2)------------------
 
십선계를 받고 참회진언(懺悔眞言) 외우면서 과거 무량겁으로부터 오면서 지은 크고 작은 모든 죄를  참회를 했습니다. 오늘 십선계를 신청을 해서 받으신 분뿐만 아니라  자리에  법당 안팎에 참석해서 같이 참회진언을 외우신 분은 본의 아니게 과거에 지은 모든 죄가  봄눈 녹듯이  녹았으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우리는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몸으로 짓는 , 입으로 짓는 , 마음으로 짓는 죄가 너 나   없이  한량없이 많습니다. 그런 것을 오늘  법회에 참석하신  인연 공덕으로 우리는 새로 태어난 갓난애기처럼 청정한 , 청정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청정한  몸과 마음으로 오늘부터 새로 발심(發心)한 수행자가 되어가지고 앞으로 열심히 수행하겠다고 우리는 부처님을 증명으로 모시고 서약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말씀하시기를 크고 작은 죄는 참회하므로써 깨끗한 청정한 몸으로 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치 중병을 앓든 사람이 약을 먹고 땀을 주르르 흘리고 나면 몸의 병이  소멸이 되고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거와 같다’고 비유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 이뭣고?’, 조실 스님이나 인연 있는 스님으로부터 화두를 타가지고 바르게 수행을 해나가면 찰나 찰나에 입을 통해서, 몸을 통해서 본의 아니게 어긋나가는 우리의 마음과 몸을 찰나간(刹那間) 바른 곳으로 돌리는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진심(瞋心)이 나거나, 탐욕심이 나거나, 게으른 생각이 나거나 그럴 때에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언제 어디서라도  생각  생각을 그렇게 단속을 해나가면 죄는 없어지고 깨달음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참선(參禪)은 앉아서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떠억 앉아서 기본 자세는 그렇게 하지마는 24시간  앉아서만   없는 것이고.
물론 선방(禪房) 방부(房付)를 들이고  사람은 죽비(竹篦) 치고 사분정진(四分精進) 하게 됩니다마는 사회에서 생활을 하신 분이 어찌  죽비 치고 앉아서만 하겠습니까.
 
일하면서도 이뭣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소지(掃地) 하면서도 이뭣고?’ 빨래를 하면서도 이뭣고?’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가면서도 이뭣고?’ 백화점에 물건을 사러 가면서도 이뭣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항상 돌이켜서 이뭣고?’ 하면, 처음에는 깜빡깜빡 잊어버리지마는 나중에는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는 것입니다.
 
주의할 것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화두를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사구참선(死句參禪), 죽은 참선과  참선은 무엇이 다르냐 하면은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고, 사량분별로 따져 들어가면  참선은 죽은 참선이고, 평생을 해도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없는 의단 이뭣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하신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무자(無字) 화두를  분은 어째서 () 했는고?’ ‘어째서, 어째서?’라고 하는  의심.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없는 의심으로 닦아가야 그것이 활구참선이요, 그래가지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이 되면 거기에서 깨달음에 들어가는 것인데.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빨리 깨달을려고 속효심(速效心) 내거나, 빨리 터지지 않는다고 발버둥을 치거나 그런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올바르게 참선을   모르는 사람인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그렇게 간곡히 하신 말씀이   없는 의심 이뭣고?’   없는 의단으로 나아가야 정진을 옳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없는 의단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것이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체(), ()이다 이론적으로 철학적으로 따져들어갈라면 그건 대단히 어려운 것이고,   없는 의단으로 나간다면 하나도 복잡하지도 않고 어려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뭣고?’   없는 의단으로 나가야 그것이 하기가 쉬웁고 올바르게 하는 것이고. 그것이 수행을 옳게 하기 때문에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자리에 이미 화두를 타고, 불명을 타고, 수행을 하신 분들은 이런 중언부언(重言復言) 말이 필요가 없겠지만,
특히 오늘 새로 십선계를 받고 불명을 타고 화두를 타서 앞으로 철저한 법보제자가 되고자 하시는 분은물론 오늘 신청하신 분만 팔백열 분입니다마는그분은 오늘 새로 태어난 그런 감동을 가지고 그런 신심을 가지고 앞으로 하루하루를 그렇게 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뭣고?’ 화두를 타신 분은 이뭣고?’   따라서  보십시오.
이뭣고?” (대중) “이뭣고?”
이뭣고?” (대중) “이뭣고?”
이뭣고?” (대중) “이뭣고?”
 
'이뭣고' 글자 석 자가 아니라 이뭣고?’했을   뒤에 남는 의심을 그것을 ! ()하는 것입니다.   없는 의심, 의문.
'이뭣고' 글자로 염불하듯이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오늘 내가 이뭣고를  번을 했다, 이천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 화두를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이뭣고?’하는데, 숨을 들어마실 때는 배가 록해지고, 숨을 내쉴 때는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볼록하니 불러졌다가 홀쪽할  거기다가거기가 단전(丹田) 부위인데, 단전에다가   없는 의심을 두고 이뭣고?’ 하신 것이 좋습니다.
 
이뭣고?’ 하고 이마를 찡그리면서 여기다가 의심을 두고 관하면 잘못하면 상기(上氣)가 되는 수도 있으니까, 숨을 들어마셨다 내쉬었다 하는단전이 나왔다 들어갔다 거기다가 화두를 두고 하시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머리가 아프거나 상기가 아니되는 것이니까 그렇게 하시고.
구체적으로 호흡하는 ’, ‘화두 드는  구체적으로 알고 싶으면 사무실에 가면 ‘참선법 A, B, C’ 녹음테이프가 있으니까 그것을 구해가지고 가셔서, 녹음기에다 넣어놓고 항상 가정에서 생활하면서 들으면서 하시고 그러면 많은 도움이 되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십선계를 받으셨고, 불명은  법회가 끝난 다음에 차례차례  노놔 드릴 테니 순서에 따라서  그걸 가지고 가셔서 읽어보시고.
 그것을 액자에다 넣어서  걸어놓고 읽어보시면서 자기가 하루 동안 십선계를  지켰는가 반성도 하시고 그러면서 이뭣고?’ 열심히 하신다면 법보제자로서 보람있게 생활을 하신 것이  것입니다.
 
 가지 중에 마지막 설한 불사견(不邪見)이라고 하는 것은 인과법을 믿는 것이다 그렇게 아까 설명을 했습니다마는 이뭣고?’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해서 어리석음과 삿된 견해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뭣고?’ 철저히 하는 것입니다.
 
앞에 말한 아홉 가지는 이뭣고?’ 철저히 하기 위한 보조 과목이 되는 것입니다.  번째의 어리석음을 벗어날려면은 참선을 해서 자기의 자성(自性) 깨달아야 정말 해탈도를 얻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참선을 열심히 함으로써 아홉 가지가 필요한 것이고,   가지를  지킬라면은 참선을 함으로써 저절로 지켜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불법(佛法)은 팔만사천(八萬四千) 법문(法門)을 부처님께서 설하셨지마는, 팔만사천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편법(方便法) 되는 것입니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일생을 읽어도 다 읽기가 어렵고.
그러나  자리에 참석하셔서 오늘 법회에 참석하신 분은 참선을 열심히 하시면 팔만대장경을  읽지 안 해도 팔만대장경에 설하신 부처님의 법문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하라  백년광영전두비(百年光影轉頭非)니라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호향차시(好向此時)하야 명자기(明自己)하라. 정말 이때, 이만큼 젊었을  자기 자신을 밝혀라.
나는 여자니까, 나이가 많았으니까, 일이 많으니까, 이리저리 핑계 대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고, 뒤로 미루지 말라 이겁니다.
백년광영(百年光影) 전두비(轉頭非). 많이 살아봤자  년인데,  년의 세월이란 것은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고마는 것입니다.
 
금생(今生)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지금 금생에 이렇게 간곡히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고 조실 스님 법문을 들었는데,
이렇게 간곡히 말씀드리는  마음을 철저하게 실천을 아니하면, 그리고서 그럭저럭 지내면 내생에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 가지고 취조를 당할 , 그때 가서 ! 그때  내가 열심히 십계를 지키면서 열심히 참선을 안 했던가 그때 아무리 몸부림을 치고 후회를 해봤자 소용이 없다  말씀입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반드시 오늘부로 철저하게 인과법을 믿고,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열심히 들으면서 참선을  하셔서 내생에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서 다시  만나게 되기를 믿습니다.(20분2초~37분54초)(끝)
 
 
 
 
 
 
------------------(1)
 
*(게송) 농계유식탕와근(籠鷄有食湯鍋近)  야학무량천지관(野鶴無糧天地寬)’ ; 지공 선사(志公禪師) 권세염불문(勸世念佛文) 참고. *鍋 ①한자사전 : 노구솥 (과). 노구솥은 놋쇠나 구리쇠로 만든 작은 솥. 자유로이 옮겨가며 따로 걸고 쓸 수 있다. ②국어사전 : 南鍋(남와) : 냄비.
*(게송)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전골냄비 ; 전골을 끓이는 냄비.
*전골 ; 쇠고기, 돼지고기, 해물이나 내장 따위를 잘게 썰어 양념을 한 뒤, 채소, 버섯 따위를 곁들여 전골틀이나 냄비, 벙거짓골(벙거지를 뒤집어 놓은 모양의 그릇) 따위에 담고, 국물을 조금 부어 끓인 음식.
*무루(無漏 없을 무/샐·구멍·번뇌 루) ; 유루(有漏)의 대칭어. 마음과 몸을 괴롭히는 번뇌에서 벗어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번뇌가 사라진 경지.
누(漏)는 누설(漏泄, 漏洩 흘러나온다)의 뜻으로 번뇌의 다른 이름이다. 곧 육근(六根)과 아홉 구멍(九孔)에서는 항상 부정한 것이 흘러나오므로 누(漏)라 한다. 혹은 누란 누락(漏落)의 뜻으로 중생을 삼악도(三惡途 : 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뜨린다는 뜻이다. 이러한 누(漏)를 동반한 법을 유루, 그렇지 않은 법을 무루라 한다.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서 이치나 일에 걸림이 없는 선.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삼악도(三惡道, 三惡途) ; 악인(惡人) 죽어서 간다는  가지 괴로운 세계.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십선계(十善戒) ;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악(十惡) ;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몸[身] : 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婬 삿된 음행).
입[口] : 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뜻[意] : 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⓪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불도(佛道) ; ①불과(佛果).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 무상보리(無上菩提)를 말한다. ②불과(佛果)에 이르는 방법. 불과를 성취하여 성불하기 위한 인행(因行, 깨달음의 원인이 되는 행)을 말한다. ③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는 가르침.
*삼학(三學) ; 깨달음에 이르려는 자가 반드시 닦아야   가지 수행.
삼증상학(三增上學) · 삼승학(三勝學)이라고도 하는데,  계학(戒學) · 정학(定學) · 혜학(慧學)  가지를 말한다. 이것을 증상(增上 : 탁월하다는 )계학 · 증상심학(心學) · 증상혜학 또는 줄여서  · · 혜라고도 한다.
①계(戒)는 악을 저지르지 않고 선을 닦는 계율(戒律), ②정() 심신을 고요히 하고 정신통일을 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하는 선정(禪定), ③혜() 번뇌를 파하고 진리를 증득(證得)하는 지혜를 가리킨다.
*호궤합장(互跪合掌) ; 두 무릎을 꿇고 앉되, 무릎 위 허벅지와 상체가 수직이 되게 곧게 일으켜 세우고, 발가락은 세운 채 손은 합장을 취한 자세.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  콩이 나고,    팥이 나서,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 • () • () • ()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보응(報應)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즉시로    있는 것은 아니다。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 짓는  즉시에 받지 않고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 있다。이  가지 과보(果報)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多生)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연비(燃臂 불이 타다·불사르다·불을 붙이다 연/팔·팔뚝 비) ; ①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②팔[臂]을 태우는[燃] 고행. 고행의 한 방법으로 팔뚝을 향불로 지지는 일.
연비(然臂 · 煉臂)로도 쓴다. 발원(發願) · 입서(入誓) · 고행(苦行) · 희사(喜捨)의 등의 뜻으로 행한다.
*참회게(懺悔偈)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이제까지 제가 지어온 모든 악업,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痴)  모두가 비롯됨 없는 탐·진·치로 말미암았네.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지었으니,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제가 지금 그 모든 것을 참회합니다.
*참회진언(懺悔眞言) ; 죄업(罪業)을 참회하는 진언.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라는 것은 본래 실체가 없는데[無自性] 마음으로 좇아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마음이 소멸되면 죄 또한 없어진다.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마음도 없어지고 죄도 없어져서 그 두가지가 함께 공(空)해져서 없어져버릴 때, 이것이야말로 진짜 참회이다.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견지금계불훼범(堅持禁戒不毁犯) 제가 지금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에 이를 때까지, 금하는 계율 굳게 지켜 훼범하지 않으리니,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바라옵건데 모든 부처님께서 증명해 주소서. 목숨은 차라리 버릴지라도 마침내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원컨대 이 공덕으로써,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일체 중생에게 널리 미쳐서,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모든 중생들이,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어지이다.
 
 
 
 
 
 
------------------(2)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 후한(後漢)의 가섭마등(迦葉摩騰), 축법란(竺法蘭)이 함께 한역.
고(苦), 무상(無常), 무아(無我), 보시(布施), 애욕의 단절 등 불교의 요지를 42장에 걸쳐 적절한 비유로써 간명하게 풀어 설한 경(經). 최초의 한역(漢譯) 불경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십이장경 ;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5장(第五章)
佛言 人有衆過 而不自悔 頓息其心 罪來赴身 如水歸海 漸成深廣 若人有過 自解知非 改惡行善 罪自消滅 如病得汗 漸有痊損耳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사람이 여러 가지 허물이 있으면서 스스로 뉘우쳐 그 마음을 그치지 아니하면, 죄가 몸에 돌아오는 것이 마치 흐르는 물이 바다로 들어가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과 같다.
만약 사람이 허물이 있더라도 스스로 잘못을 알아서 나쁜 일을 고쳐 착한 일을 행하면 죄가 스스로 소멸하는 것이 마치 병든 사람이 땀을 흘리고 나면 점차 건강이 회복되는 것과 같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찰나간(刹那間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사이 간) ;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네 번(새벽, 오전, 오후, 저녁)씩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것.
*소지(掃地 쓸 소/땅 지) ; ①마당(땅)을 쓺. 또는 그 일을 맡은 사람. ②청소.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무()」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참구(叅究)하는 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라고 하신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없이  소리로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상기(上氣) ; ①[한의] 피가 뇌로 몰리는 현상. 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나며, 발한, 두통, 이명(耳鳴), 현기증 따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②얼굴이 흥분이나 수치감으로 붉어짐.
*참선법(參禪法) A,B,C,D,E ;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 스님께서 하신 모든 법문은 참선법을 핵심으로 설하신 법문입니다. 그 가운데 ‘참선법 A~E’라고 하여 처음 참선하는 분을 위해 송담스님 법문 중에 5개를 선정하여 놓은 법문.
*자성(自性) ; ①사물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게송)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  백년광영전두비(百年光影轉頭非)’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61 게송 참고.
*(게송) 금생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Posted by 닥공닥정
활구참선 최상승법2016. 10. 22. 18:04

 

 

§(630) (게송)당당대도혁분명~ / 육도윤회의 원인은 '한 생각' 어긋진 탓 / 활구참선은 천하에 쉬운 것이다 / 활구참선이라야 올바른 참선.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마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하는 것은 천하에 간단한 것이다. 쉬운 것이다  쉽고 간단하느냐 하면은 생각’을 단속하면 윤회를 끊는 길도 거기서 열리는 거고, 끊지 못하고 계속 생사고해로 얽혀 들어가는 것도   생각’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원래 우리가 본래 원만구족해 갖추어 있는 우리의 본성자리는 부처님과 조금도 차등(差等)이 없어서 옳은 방법으로 열심히만 닦으면 누구라도 자기의 본성을깨달을  있는 것이고, ‘깨달을  있다’고 하는 것을 불보살(佛菩薩)과 역대(歷代)의 조사(祖師)스님네들이 감동의 눈물 없이는 들을  없는, 그렇게 보증을 주신 것입니다.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설명을   수도 없고 설명을  주어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는 바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명예를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요, 남이 알아주기를 바래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자기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하면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도 있고 3일이나 7일에도 깨달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630)—99 10 첫째일요법회(99.10.03) (용630)

 

약 17분.

 

당당대도혁분명(堂堂大道赫分明)하고  인인본구개원성(人人本具箇圓成)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지시연유일념차(只是緣由一念差)  영겁현출만반형(永劫現出萬般形)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당당대도혁분명(堂堂大道赫分明)하고  인인본구개원성(人人本具箇圓成)이다.

당당한 대도(大道)가 밝고 분명한데, 사람 사람마다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고, 본래부터 원만히 성취 이루어져 있다.

 

지시연유일념차(只是緣由一念差), 다맛   생각 어긋진 탓으로,  생각 그르친 탓으로 영겁 동안을  가지 형태를 현출(現出)하는구나. 나타내는구나.

 

우리는 원래 부모님께  몸을 받아나기 전부터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노사나불(盧舍那佛)이나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똑같은 본성(本性)자리를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인데,  생각 어긋진 탓으로 해서 우리는  가지 형태를 받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 세계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오늘날까지, 앞으로도 영겁을 두고 가지가지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육체를 받아나고 그래 가지고 생로병사(生老病死)를거듭하면서 윤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게 되는, 그리고 생사고해(生死苦海)에서 갖은 고통을 받는 원인이  생각 어긋진 탓으로 그랬다.

 

생사윤회를 끊는 것도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생각을 그냥 방치하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끝없이  생각이  생각,  생각으로 번져 나가고 그것이 얼굴에 말로 육체로 표현이 되어가지고 무서운 업(業)을 지어 가지고 점점 생사의 함정에 빠지고, 만사만생(萬死萬生)하는 지옥에도 들어가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금 우리는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마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하는 것은 천하에 간단한 것이다. 쉬운 것이다 그렇게우리는 법문에 들었습니다.

 쉽고 간단하느냐 하면은  생각’을 단속하면 윤회를 끊는 길도 거기서 열리는 거고, 끊지 못하고 계속 생사고해로 얽혀 들어가는 것도   생각’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말이죠.

 

오십오위(五十五位) 점차(漸次)를 거쳐서 그래 가지고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 닦아서 성불(成佛)에 들어간다던지, 십만팔천 국토를 서방으로 가서 극락세계를 간다든지, 부처님의 여러 가지 법문 가운데에는 경(經)마다 도저히 우리 범부(凡夫)로서는 성불은 가망 없는 일이고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말세에 태어나서  육체를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수가 있냐? 그것은 하나의 이상론에 지내지 못하지 감히 어떻게 우리  많은 중생이 더군다나 말세에 태어나서 어떻게 견성(見性)을 하며 어떻게 성불을 하느냐?

 

만나기 어려운 상(想), 현애상(懸崖想)을 지어 가지고 자기를 하대(下待)하고 포기하고 차라리 염불하거나 경을 읽어서 불교와 인연을 맺어 가지고 부처님의 가피(加被)를 입어 가지고 내생에는 최소한도로 악도(惡道)는 떨어지지 말아야겠다 처음부터서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법을 믿고 신행을 하고있는 사람이  많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은 정법(正法)시대, 상법(像法)시대, 말법(末法)시대 그것을 논하는 것이 아니고 근기(根機)가 상근대지(上根大智)냐, 중근(中根)이냐, 하근(下根)이냐 그것도 따지지 않는 것입니다. 남녀와 노소도 따지지 않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가 본래 원만구족해 갖추어 있는 우리의 본성자리는 부처님과 조금도 차등(差等)이 없어서 옳은 방법으로 열심히만 닦으면 누구라도 자기의 본성을 깨달을  있는 것이고, ‘깨달을  있다’고 하는 것을 불보살(佛菩薩)과 역대(歷代)의 조사(祖師)스님네들이 감동의 눈물 없이는 들을  없는, 그렇게 보증을  주신 것입니다.

 

의리선(義理禪), 사구선(死句禪)은 정말 그게 어렵습니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낱낱이 의리로 따져 가지고  공안은 어떻게 되는 공안이다’ 공안을 분류를 하고 그렇게 해서 공안을 하나씩 하나씩을 통과해 나가는 그런 참선이야말로 머리가 나쁜 사람은 도저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참선은 해 봤자, 천칠백 공안을 하나도 남김없이  통과되어 봤자 그것 가지고서는 생사해탈(生死解脫)을 못하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것은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설사 일생 동안에 이뭣고?’ 하나를 통과를 못했다 하더라도 차라리 깨닫지 못하면 깨닫지 못한 채로   없는 의단(疑團)으로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갈지언정, 깨달음이 아닌 의리로 따져서 천칠백 공안을 알면 그것을 어디다 쓰겠습니까?

 

조실 스님의 법문을 열심히 듣고 들으신 분은 구구하게 이런 말씀을  필요가 없겠습니다마는, 활구참선이라야 진짜 참선인 것입니다.

 

용화사에서 설한 법문만이 진짜 불법이고, 다른 절에서 설한 법문은 법문이 아니다. 이러한 뜻이 아닙니다.

어느 절에 가서 법문 듣던지, 어느 스님의 법문을 듣던지, 활구참선이라야 올바른 참선이고, 활구참선을 통해서 바로 자기 본성을 봐야 거기에서 깨달음을 얻을 있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바꾸지 못할 진리인 것입니다.

 

따져서 알아 들어갈  있는 거라면 공안도 해설해서 가르켜 주면  성불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무엇이 그렇게 우리의 몸과 목숨을 바쳐서 공부를  필요가 있으며, 부모 형제와 고향과 처자 권속과 인생과 청춘을 버리고 도를 닦을 필요가 어디에있겠습니까? 머리 좋은 사람은 일찌감치  해설을  주고, 듣고 외우고 배우면  것을.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설명을   수도 없고 설명을  주어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는 바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법은 닦음이 없이 닦아야 하고, 행함이 없이 행해야 하고, 말없이 말을 해야 하며, 증(證)함이 없이 증해야 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참선의 소식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공부 말고는 닦으면 닦을 것이 있고, 말하면 말하는 것이 있고, 행하면 행한 것이 있고, 증하면 증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없는 의단으로, 오직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해  데에서, 행하되 행한 바가 없고, 말하되 말한 바가 없고, 밥을 먹되  톨의 쌀도 씹은 바가 없고, 걸어가되  조각 땅도 밟은 바가 없고, 해 갈수록 의단만 독로하지 보이는 것이 없고, 알아지는 것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갈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하게 되면 의단을 타파(打破)해서 자기의 본성을 바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예를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요, 남이 알아주기를 바래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자기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대사(一大事)를해결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하면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도 있고 3일이나 7일에도 깨달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빨리 깨달으면 좋고, 5년이나 10년 해서 깨달으면 별것이 아니냐? 그것이 아닙니다.

빨리 깨닫고 더디 깨닫는 것은 각자(各自)어떻게 공부를 하느냐? 언제부터 전생에부터서  공부를  뒤끝이냐? 보리심(菩提心)을 발해 가지고 공부 시작한 지가 얼마 안된 사람이냐? 얼마만큼 철저하게 공부하느냐? 근기에 따라서 인연 따라서 그것은 다를 수가 있겠으나 조금도 조급한 생각을  필요가 없습니다.

 

닦음이 없이 닦고, 증한  없이 증해야 한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차지호리(差之毫釐)요 실지수유(失之須臾)니라. 털끝에서 그르치고 찰나 동안에 잃어버린다’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깨달았으면 그만이지 어찌 털끝에 어긋진다, 털끝 사이에서 그르치고 수류(須臾) 동안, 수류(須臾)라고 하는 것은 찰나란 말과 같은데, 찰나 동안에 잃어버린다고 하셨겠습니까?

 

이것은 얻은 바가 있고, 보는 바가 있는 공부가 아닙니다. 벌써 보는 바가 있고, 얻은 바가 있고, 아는 바가 있으면 그것이 바른 수행이 아닌 것입니다.(처음~177)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게송) 당당대도혁분명~’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①진리  자체인 모든 곳에 편재(遍在)하는 법신으로서의 비로자나 부처님.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 같음.

*노사나불(盧舍那佛) ; ①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비로사나불(毘盧舍那佛)의 준말. 또는 보리심(菩提心)의 당체(當體)로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한 부처님과 보살들의 심지(心地)를 가리킨다. ②중생을 위해 서원을 세우고 오랜 수행으로 무궁무진한 공덕을 쌓고 깨달음을 성취하여 장엄된 몸을 가지고 보토(報土 : 부처님께서 과거 인위因位에서 행한 서원행에 대한 보답으로 이루어진 정토)에 계시면서 설법하는 부처님.

삼신불(三身佛)은 (1)영원불변의 진리[法]를 몸[身]으로 삼고 있는 법신불(法身佛), (2)수행에 의해 공덕을 쌓은 과보(果報)로써 온갖 덕이 원만구족한 불신(佛身)인 보신불(報身佛), (3)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身]으로 변하는[化] 화신불(化身佛, 應身)을 이르는 말인데, 노사나불은 이 중 보신불이다.

*석가모니(釋迦牟尼) : [] Sakyamuni 석가문(釋迦文)이라고도 하고, 줄여서 석가(釋迦) 한다. 뜻으로 번역하여 능인적묵(能仁寂默) 또는 능적(能寂)•능유(能儒) 한다。Sakya 종족(種族) 이름이고, muni 존칭이니,  석가 종족에서 나신 거룩한 어른’이란 뜻이다.

서력 기원전 565(<중성점기衆聖點記> 표준한 연대) 중인도 가비라(迦毘羅 Kapila-vastu) 성주 정반왕(淨飯王) 태자로 나시었다。난    만에 어머니 마야 부인(摩耶夫人) 잃고 이모인 파사파제(闍波提)에게 자랐다。어릴  이름은 교답마(喬答摩 Gautama;Gotama) 혹은 실달다(悉達多Siddhartha) 하였다。어려서 온갖 학문과 무예를 고루 배워서 정통하고,  일곱 살에 선각왕(善覺王)  야수다라(耶輸陀羅) 결혼하여  아들을 두었다.

 

 나라의 제도에 종교와 학문을 차지한 바라문족과, 정치와 군사를 차지한 왕족과,  다음으로 평민과 노예족의  가지 계급이 있었으므로, 이것을 개혁할 뜻을  품고 있었다。하루는 농부들이  가는 것을 보고,  같은 사람으로 어떤 이는 불볕에 죽도록 일하고, 어떤 이는 놀기만 하는 것이 옳지 못한 것과, 사람이동물을 학대하는 참혹한 일을 아프게 생각하여, 모든 것이 평등하고 싸움과 슬픔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국가와 사회 문제에 대하여 번민하였다.

다시 인간에는 살아가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이 있음을 느껴, 누구나 다같이 참다운 행복을 누리게  도리를 찾고 있었다。그리고 우주의 온갖 것에 대하여생각하여 갈수록 의문 아님이 없었다.

 

그리하여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드디어  아홉에 왕궁을 뛰쳐나와 산중으로 갔다。처음   동안은 바라문 교도들이 하는 대로 심한 고행(苦行) 하다가, 육체를 괴롭히는 것만이 바른 길이 아님을 깨닫고, 몸을 보살펴 가면서 마음을 닦아 설흔 살에 비로소 우주의 진리를 크게 깨쳐서 마침내 부처님이 되었다。그  49 동안   없이 돌아다니면서 묘한 법을 가르쳐 한량없는 중생을 건지시고, 여든 (기원전 486) 그의 육신은 세상을 떠났다.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생사윤회(生死輪廻).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 가리킴. 생사와  괴로움이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만사만생(萬死萬生) ; ‘일일일야 만사만생(一日一夜 萬死萬生) 하루 밤과 낮에 만번 죽고 만번 다시 태어난다’

지옥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죽었다가 바로 살아나고 또 고통으로 죽었다가 바로 살아나기를... 하루 밤낮에 만번이나 겪는다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표현한 말.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오십오위(五十五位) : 경전마다 조금씩 달리 말하였는데, <능엄경(楞嚴經)> 있는 대로 하면, 처음 간혜지(乾慧地) 지나서  가지 믿음 자리(十信),  가지머무는 자리(十住),  가지 나아가는 자리(十行),  가지 돌이키는 자리(㢠向),  가지  힘쓰는 자리(四加行),  가지 (十地) 낱낱이  지나 올라가야성불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점차(漸次) ; 시간이나 차례에 따라 조금씩.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 ; 도저히 헤아릴  없는  시간을 말한다. 아승지겁(阿僧祇劫) 보살이 발심한  부처님이 되기 위해서 수행하는 아주  시간. 수행의 기간을  부분으로 나누어서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이라 한다.

*성불(成佛 이룰 /부처 )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 얻음.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견성(見性) : ‘성품() 본다()’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 일치하는 정각(正覺)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이라 한다.

*현애상(懸崖想) ; 깎아지른 듯 가파른 언덕[懸崖]을 마주해 스스로 포기하여 ‘나는 도저히 어려워 오를 수 없겠다’는 생각[想]을 하듯이, 자신을 하대(下待)하고 포기하여 ‘불법(佛法)은 어렵고 성불은 아득하게 멀다’고 어렵게만 생각하는 것.

*가피(加被 더할·베풀 /입을·두를 )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威神力) 받는 .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 가호(加護) 같음.

*악도(惡道, 惡途) ; 악한 짓을  중생이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말법(末法  /부처님의 가르침 ) ; 말법시대(末法時代).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교법(敎法)  세상에 존재하는 모습을 시기별로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으로 분류하는데 정법이 쇠퇴한 시대를 일컫는말이다.

처음 정법시대는 교법이 온전히 있음은 물론 닦아 가는 사람도 많고, 닦는 사람은 대개 깨쳐서 성과(聖果) 얻게 되지마는,  다음 상법시대는 교법도 있고 수행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깨치는 사람은 적게 되고,  다음 말법시대는  쇠잔하고 미약한 교법만 남아 있어 수행하고 증득하는 자가 없는 시기이다. 구체적인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지런히 (((() 사염주(四念住) 닦아서 탐욕과 분심을 끊으면 정법은 영원토록세상에 머물러 빛나게  것이나, 수행하지 않게 되면 정법은  소멸하고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여러 경전에도 『누구나 부처님 말씀대로 닦으면  반드시견성성불한다』하였고,

조사들의 말씀에는 『참선하는 이가 견성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처럼 아주 쉽고 당연한 일이다』하였으므로, 누구나 공부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다만 우리는 사학(邪學) 외도(外道) 번성한  시대에 났으므로, 망녕된 알음알이를 내지 말고 줄기차게 정진한다면, 하나도 실패함이 없을[萬無一失]아니라 정법은 영원히 나아갈 것이다.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참고] 송담스님(No.88)—(참선법A) 법련사 불교학생회 청법 법문(1978.10.1)에서.

중생 말세다, 중생 근기가 미약하다, 그러니까 참선법 가지고는 안되고 아미타불을 불러야 한다 이러한 것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마는, 말세라고 하는것은 편의에 따라서 정법 시대, 상법 시대, 말법 시대 이렇게 해서 말씀해 놨지만은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할  있는 사람이면,  사람은 하근기가 아니라 상근기(上根機)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당시에 태어났으되  법을 믿지 아니한 사람은 하근기인 것이고, 지금 삼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 태어났어도  활구참선법을 믿고 열심히 실천에옮긴 사람이면,  사람은 바로 정법 시대 사람이요,  사람은 상근기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참선법을 배우고자 하고, 참선에 의해서 자아를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냈을  여러분은 이미 정법 시대를 만나 것이고, 여러분은 상근기인 것입니다.조금도 그런 염려를 마시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결정코 금생에 참나 자각하도록 도업을 성취하기를 간절히 빕니다.

*차등(差等 어긋날·다를 /등급·같을 ) ; 고르거나 가지런하지 않고 차별이 있음.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 이런 의리선(義理禪)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 푸른 ,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 참의(叅意)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 후한(後漢) 가섭마등(迦葉摩騰), 축법란(竺法蘭) 함께 한역.

(), 무상(無常), 무아(無我), 보시(布施), 애욕의 단절  불교의 요지를 42장에 걸쳐 적절한 비유로써 간명하게 풀어 설한 (). 최초의 한역(漢譯) 불경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십이장경 ;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18장(第十八章)

〇佛言  吾法  念無念念  行無行行  言無言言  修無修修  會者近爾  迷者遠乎  言語道斷  非物所拘  差之毫釐  失之須臾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법은 생각하되 생각함이 없이 생각하고, 행하되 행함이 없이 행하며, 말하되 말함이 없이 말하고, 닦되 닦음이 없이 닦나니, 이 이치를 아는 사람은 진리와 가깝지만 모르는 사람은 더욱 멀어지리라. 언어의 길이 끊어졌으며 물질에 매이지 아니하니 털끝 만큼이라도 어긋나면 잠깐 사이에 잃어버리리라.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이다.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또는 말을 하는  즉시.

*보리심(菩提心) ;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갖추려는 마음.

 

Posted by 닥공닥정
대중 생활2015. 9. 26. 13:12

§(세등34) 죽비 경책(警策) / 득도자출(得道者出), 초학자와 같은 마음가짐 / 참다운 용맹정진(勇猛精進) / 공양하는 법 /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법문.

 

신심과 분심과 의단이 한목 돈발하도록 그렇게 해 나가는 ,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가행정진이요, 용맹정진이다.

밥을 빨리 먹는다고 누가 상을  것도 아니고, 느긋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고 공양을 하고, 공양하면서 화두를 놓치지 아니할 만큼 되어야 하거든!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해 봐! 어째서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인가.  몸뚱이로 반드시 도를 성취하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34)—신유년 하안거 반결제 법어(81.05.29) (세등34)

 

약 21분.

 

과연  날씨는 더웁고 모기는 들어와서 물고, 파리는 들어와서 여기 앉았다 저기 앉고, 저기 앉았다 여기 앉고, 불쾌지수가 나날이 이렇게 높아 가는데 어떻게  기간을 지혜롭게 정진을  가느냐?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

 

죽비()만 치면 5분도  가서 등허리에 땀은 흐르고, 아랫도리에 땀이 배서 중의(中衣)를 적시고, 꾸벅꾸벅 졸음은 오고 더군다나 오후에는  심한데, 어떻게 하면은 그러한 것을  극복을 하면서 알뜰하게 공부를  것인가?

 

정말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대의정(大疑情)이 돈발(頓發)을 해서 하루하루를 알차게 정진을 가다듬도록 해야  것입니다.

 

입승(立繩) 스님이 가끔 가끔 죽비로써 경책(警策)을  해서 대중으로 하여금 정신을 차려서 공부를  하도록 그렇게  해주셨으면 좋을 텐데,

입승 스님이 너무 조용하기만을 좋아해서   있으면 말을 아니하고,   있으면 소리를 안 내기를 좋아해서 남이 졸거나 말거나 내버려두고 그래서는 아니  것입니다.

 

졸고 있는 사람을 한번씩 경책을 해서 정신을 차려서 공부를 하도록 해 주는 것도 자비 가운데는  이상   자비가 없는 것이니, 당신만 혼자 너무 오래오래  졸지를 말고, 다른 사람 조는 것을  깨와 주면 자기 자신의 졸음도 깨와지게 되고, 그렇게 해서 너도나도 같이 공부를 잘하게  것입니다.

 

깨와 주면 모다 신심이 나서 공부를 잘할 텐데깨와 주지 않고 마냥 졸도록 내버려두면—정진이라 하는 것은 성성(惺惺)한 가운데에 적적(寂寂)하고, 적적한 가운데에 성성해야지, 혼침(昏沈) 속에 빠져 가지고는 공부가 성성하다고  수가 없어.

 

어떤 사람은 실컷 졸고, 졸다 못해서 엎드려 가지고 코가 땅에가 닿도록 코를 땅에다   코를 골면서 그렇게 있다가 일어나서도, “뭔 잠을 그렇게 자냐?” 그러면 내가 잠을 언제 자냐?”고.

아야 코를 땅에다 대고   사람이 누구냐?”고. “삼매(三昧)에 들었지, 내가 졸기는  졸아야.

! 이래 가지고 깨우면 깨웠다고 신경질을 내고, “나는 삼매에 들었는데  깨우냐?”고.

 

입승이 되어 가지고 그렇게 해서 방선(放禪) 시간이 되어서 시계는 친 지가 오래 되었는데  죽비(竹篦)를  치고, 오줌은 매려 와서 죽겠는데 죽비는  치고 그래서 깨우면은  내가 삼매에 들었는데 삼매에  사람을 깨우는 죄가 얼마나 큰데 깨웠느냐”고 아주 신경질을 내고.

내가 죽비를 안 치드라도 내가 삼매에  것이니까 깨우지 말고 변소에  사람은 갔다오지  깨우지 마라”고. 이렇게 신경질을 내고 하는 분이 어느 남자스님 구참스님 가운데에 있단 말을 들었는데.

 

삼매도 좋지만 우리가 대중이 서로 이렇게 모여서 사는 데에는 어쨌든지 성성하고 적적하게.

혼자 토굴(土窟)에 가서견성(見性)한 뒤에 혼자 토굴에 가서 보림(保任)을  때에는 앉아서 졸거나, 누워서 졸거나, 도량을 거닐거나, 밤잠을 안자고 돌맹이를 짊어지고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로 댕기거나, 그거야 자기 멋대로 하겠지만.

 

 자리는 득도자출(得道者出)이여. ‘도를 얻은 자는 나가!

도를 얻어서 견성한 사람은 아무데라도 제멋대로 가서 토굴에 가서 살던지, 오장치를 짊어지고 댕기면서 두타행(頭陀行) 하던지, 다리 밑에서 얻어먹고 거지떼 하고 어우러서 살던지그거야 삼천리강산에  곳마다 자기  곳이요, 자기가  곳이요, 자기가 머무를 곳이지만.

 

 자리는 너나   없이    없는 화두 하나만을 거각하고, 규칙에 자발적으로 순응하면서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공양하고, 같은 시간에 정진을 하고, 같은 시간에 운력을 하면서  같이 금방 들어온 초학자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공부해 나가는 그러한 수도원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도량(道場)은 도를 닦아 가는 데에는 가장 이상적인 도량이다. 너나   없이 초학자의 기분으로 도를 닦아 가는 것이다.

나는 구참(久參)이니까 그것을 안 해도 좋고, 신참(新參)이나 그런 것을 해라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구참이  솔선해서  .  숙식 같이 하고 무엇이던지 같이 하면서 오히려 모범을 보이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리해야 신참이 배우기가 좋고, 신참들이 구참 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하기 때문에 버럭버럭 수행인으로서의 자질이 갖추어지는 것이다.

 

 

공부는 다른 것이 아니여.

밤잠을 안 자고 하는 것도 가행정진(加行精進)의 하나요, 오후불식(午後不食)이나 일종(一種)을 하는 것도 가행정진의  방법이요, 묵언을 하고 말을 아니 하는 것도 가행정진의  방법이지만,

말을 아니 한다든지, 잠을 안 잔다든지, 또는 밥을 굶는다든지, 이러한 것은 육체적인 면으로 가행정진이 표시된 것이고,

 

진짜 가행정진, 용맹정진(勇猛精進)은 그런 밖으로 표현되지 아니한 정신적인, 마음으로 다져 나가는 채찍질하는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참다운 가행정진이요, 용맹정진이다.

신심과 분심과 의단이 한목 돈발하도록 그렇게 해 나가는 ,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가행정진이요, 용맹정진이다.

 

억지로 잠을 안 잘라고, 억지로 밥을 굶고 억지로 말을 안하고 벙어리 흉내를 해도, 속으로 온갖 시비(是非)에 참견하고, 온갖 분별심을 내고 온갖 번뇌 망상을 하고 시비에 휩싸이고,

화두는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성성적적하게 들리지는 아니하고, 그러면서 잠만 안 자면 무슨 그것을 갖다가 가행정진이라  것이 있느냐.

 

잠을 안 자는 것으로서 가행정진을 삼는다면 불면증이 있어    사람은 벌써 진묵겁(塵墨劫) 전에 견성을 했을 것이고. 등창이 나서 앉은뱅이는 공부를 누구보다도   것이고,

나면서부터 벙어리로 태어난 사람은 뱃속에서부터 도통(道通)해 가지고 나올 것이고, 위장병으로 밥을  먹는 사람은 일찍 도를 통하겠지만은 그러한 것이 아니거든.

 

밥을 굶는다든지, 잠을  잔다든지, 말을 아니한다든지 그것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분심을 내고 발심을 하고 보다  공부에 보탬이 될까 하는 생각에서 그런 단식이나 오후불식이나 묵언이나 또는  시간  시간을 덜 자고 몸부림을 치고 애를 쓰는 , 대단히 갸륵하고  존경할 만한 일이기는 하지만,

 

근본을 망각하고 형식적인 지엽적인 데에만 치중을 하면 기본축말(棄本逐末)이. 근본은 버리고  지엽 끄터리를 쫓아가는 것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다.

 

물론 뿌리도 튼튼히 하고 가지, 형식도 충실히 한다면 그거야 금상첨화(錦上添花)요,  이상  좋을 수는 없지만,

항시 근본에 대해서  충실할  알면 지엽적인 것은 자동으로 따라가는 것이 최상승(最上乘) 학자의 수행 자세다.

 

 

밥을 먹을   숟갈 떠서 입에다 넣고 그것을 씹으면서 이뭣고?’하며 화두(話頭)가 현전(現前)하도록 하면서 밥을 저작(咀嚼)을 하고,

 오십  내지 팔십  저작을 해서 밥이 완전히 죽이 되도록 씹은 다음에 거기에다가 반찬을  집어넣고   이십  이렇게 씹어서  섞어 가지고 삼키고,

 

 밥을  숟갈 입에다  넣어서  오육십 번, 칠팔십   씹은 다음에 거기다가  반찬을 집어넣고   이십  씹어서 삼키고그렇게 공양을 해 보면 공양을 하면서도 화두가 떠억 들리고, 화두가 들린 상태에서 공양을  수가 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도처(到處)에 선방을 보면 밥을 어떻게 빨리국에다 말아서 반찬 넣어서 뚜적뚜적 섞어 가지고는 그냥 우물우물해서 꿀떡, 우물우물해서 꿀떡 삼키고는 그냥,

다른 사람보다도 행여나 뒤질새라 거뜬거뜬거뜬 그저 집어넣고는 먹고 나서 끅끅 트림을 해쌌고, 한동안 속이 더부룩허니 소화가 안되고 그래 가지고는 항시 그저 소화제를 먹어쌌고.

 

그런 데다가 무슨 간식거리가 생기면은 거기다  간식을 하고, 그래 가지고는 항시 그저 선방에 몇 철만 댕겼다 하면은 위장병이  생긴 사람이 거의 없다.

 

밥을 빨리 먹는다고 누가 상을  것도 아니고, 느긋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고 공양하고, 공양하면서 화두를 놓치지 아니할 만큼 되어야 하거든!

밥만 들어왔다 하면은 허천난 거지 귀신이 붙은 것처럼 그저 막 우닥닥 때려넣고 화두는 어디  곳이 없고. 그래서는 수행인이라  것이 없어.

 

 먹으면서 화두가 들어지도록 그렇게 단속을 해 가고, 변소에 가서도 화두가 들어지도록 하고, 세수를 하러 가면서 화두를 들고 세수를 하면서도 화두가 들어지도록 하고,

일체처 일체시에,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화두가 여일(如一)하게 들어지도록 이렇게 잡드리를 해 가야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찌 공부가 안될 것이냐 그말이여.

 

의심이 간절(懇切)하게 안 들린다하지만 그렇게 다잽이를 하면 머지않아서 순일하게 되는 것이여.

 

그런 사람에게 무슨 시비가 있을 까닭이 없으며, 무슨 잡담이  겨를이 없는 것이며, 공부가 안될라야 안될 수가 없는 거여. ! 그렇게 한철을 지내봐. 얼마나 기가 막힌가.

 

그렇게 공부를 아니하고 형식적으로 죽비 치면 돌아앉고, 돌아앉아서 죽비만 쳤다 하면은 그저 졸고, 방선 죽비만 쳤다 하면 그저 잡담하고 그저 이러쿵저러쿵 해쌌고그런 식으로 해 봤자 3, 4, 10, 30년을 선방으로 돌아댕겨 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여.

 

 

우리가 과거에 무슨 깊은 인연을 맺어서 이렇게  지붕 밑에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이렇게 정진을 하며, 이렇게 최상승(最上乘) 공부를 하게 되었는가?

숙명통(宿命通)이 열리기 전에는  수가 없는 일이지만, 숙명통이  열렸다 하더라도 인과법(因果法)으로 미루어서 보면, 숙명통으로  것이나 다름없이 짐작을  수가 있는 거여.

 

구체적으로는  수가 없지만 반드시 과거에  부처님 밑에서나, 같은 선지식(善知識) 밑에서 같이 공부한 , 두 생이 아니라 여러 생을 그렇게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금생에  우리가 이렇게  회상(會上)에서 이렇게 지내게  것이다.

 

 인연이 깊고 깊은 것을 헤아릴 수가 없어.

이러한 좋은 그리고 깊은 인연이 반드시 견성성불 할  있도록, 그러한 결과가 빠른 장래에 오도록 우리가 서로 밀고 잡아댕기면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공부를 알차게 해 나가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는 공연히 조급한 마음을 낸다고 해서 그건 잘한 것이 아니여.

조급한 마음을 내면마치 거문고 줄을 고를  너무 되게 줄을 땡기면은 줄이 끊어지거나, 끊어지는 소리가 나는 게고,  끊어질까 두려워서 너무 느슨하게 줄을 매면 딩딩 해 가지고  음가가  나올 것이다 그말이여.

 

정진도 너무 급한 마음으로 볶아대도 오히려 병이 나고 부작용만 나지, 도업(道業)은 성취하기가 어려운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늘어져 빠져 가지고 행여나 병이 날까 봐서 노인 장에 가듯이 너무 그냥 몸을 애끼고 새리고 그래도 그것도 못쓰는 게고그걸  알아서 지혜롭게 공부를 다그쳐 나가면 반드시 도는 이루고야만 마는 것이여.

 

부처님께서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말씀하시기를,

“한 나무 끌텅이   상류에서 강물을 따라서 흘러가는데, 가다가 중간에 걸리지 아니하고, 양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가다가 썩지만 아니한다면 그리고서 계속  따라서 내려가면 반드시 바다에 이르르고만  것이다 이러한 비유의 말씀을 하셨는데,

 

도를 중간에 가서 쉬지 않거나 또는  생각으로...(녹음 끊김)  법문이 기가 막히게  요긴하고 핍절(逼切)한 법문이다 그말이여.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해 봐! 어째서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인가?  몸뚱이로 반드시 도를 성취하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수설운산천만사(雖說雲山千萬事)라도  해천명월본무언(海天明月本無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비록 운산(雲山)에 천만사(千萬事)를 말한다 할지라도 구름과 같이, 산과 같이 천 가지 만 가지 말을 한다 할지라도  바다 위에 하늘에 떠있는  밝은 달은 본래 말이 없느니라.(269~4730)()

 

 

 

 

 

---------------------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중의(中衣) ; 남자의 여름 홑바지.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疑情) :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돈발(頓發 갑자기 /일어날·나타날·밝힐 )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 直頓의 , 곧바로.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경책(警策 깨우칠 /채찍·회초리 ) ; 선방에서 대중이 좌선할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스님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깨워 정진을 독려하는 행위. 또는 그때 사용하는 장군죽비를 가리키기도한다.

*장군죽비(將軍竹) ; 보통 죽비()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40~50센티의 불교 용구인데, 장군죽비는 참선할  졸거나자세가 흐트러진 수행자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쫓는  1.5~2m  죽비.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혼침(昏沈 어두울 ,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삼매(三昧) : () ①계()•()•() 3학의 하나。②[]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 말함.

*견성(見性) : ‘성품() 본다()’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 일치하는 정각(正覺)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 보호임지(保護任持)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보호하여 지킨다 뜻이다.

*오장치 ; ‘오쟁이 사투리. *오쟁이 : 물건을 정돈하거나 담아 두기 위하여 짚을 엮어서 만든 작은 (곡식을 담기 위해 짚으로 엮어서 만든 자루).

*두타행(頭陀行) ; ‘두타의 수행 말한다. 두타(頭陀)는 산스크리트어 dhūta(흔들어 떨어뜨린다, 버리다, 씻다 등의 ) 음역(音譯)으로 번뇌의 티끌을 떨어 없애고, 의식주에 탐착 하지 않고 오로지 청정하게 불도(佛道)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두타행에 12종이 있는데, ①재아란야처(在阿蘭若處, 인가人家를 멀리 떠나  숲이나 광야의 한적한 곳에 있는 ). ②상행걸식(常行乞食, 항상 밥을 빌어서 생활한다). ③차제걸식(次第乞食, 빈부를 가리지 않고 차례로 걸식한다). ④수일식법(受一食法,  자리에서 먹고 거듭 먹지 아니한다). ⑤절량식(節量食, 발우 안에  것만으로 만족한다). ⑥중후부득음장(中後不得飮漿, 정오가 지나면 과일즙이나 사탕 따위도 먹지 아니한다).

⑦착폐납의(着弊衲衣, 헌옷을 빨아 기워 입는다). ⑧단삼의(但三衣, 重衣·上衣·內衣 밖에는 옷을 갖지 않는다). ⑨총간주(塚間住, 무덤 곁에서 살면서 무상관無常觀을 닦는다). (10)수하지(樹下止,  때에는 정자나 집을 택하지 않고 나무 밑에서 쉰다). (11)노지좌(露地坐, 나무 아래에서 자면 습기, 새똥, 독충의 피해가 있으므로 露地에 앉는 ). (12)단좌불와(但坐不臥, 앉기만 하고 드러눕지 않는다).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구참(久參) ; 오랫동안 참선한 수행승.

*신참(新參 ·처음 /참구할·참여할 ) ; 단체나 부류에 새로 참가하거나 들어옴. 또는 그런 사람.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열두  지나면 먹지 않는 .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끼만 먹는 .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진묵겁(塵墨劫) ; 티끌이 쌓여 ()  만큼의 오랜 시간.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금상첨화(錦上添花) ;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 뜻으로, 좋은  위에  좋은 일이 더하여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저작(咀嚼 씹을 , 씹을 ) ; 음식물을 입에 넣고 씹음.

*도처(到處 이를 ,  ) ; 여러 .

*허천나다 ; (사람이)몹시 굶주리어 지나치게 음식을 탐하다. ②어떤 일에 염치없이 욕심을 부리다.

*여일(如一)하다 ; (사람의 언행이)처음부터 끝까지  같거나 변하지 아니하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

*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장소.

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새리다 ; ‘사리다(짐승이 겁을 먹고 꼬리를 다리 사이에 구부려 끼다)’ 사투리.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 후한(後漢) 가섭마등(迦葉摩騰), 축법란(竺法蘭) 함께 한역.

(), 무상(無常), 무아(無我), 보시(布施), 애욕의 단절  불교의 요지를 42장에 걸쳐 적절한 비유로써 간명하게 풀어 설한 (). 최초의 한역(漢譯) 불경으로 알려지고 있다.

*끌텅 ; ‘그루터기(풀이나 나무 따위의 아랫동아리. 또는 그것들을 베어 내고   남은 밑동)’ 사투리.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말씀하시기를, “한 나무 끌텅이   상류에서 ...(중략)...반드시 바다에 이르르고만  것이다 ; 『사십이장경』 27번째 장(章), '무착득도(無著得道)'

 

[참고] **송담스님(No.210)—83 칠석법회(83.08.15)에서.

부처님께서 아란 존자를 데리고 무능적국(無能敵國) 들어가셔서 항하(恒河) 강변을 지나고 계실 때에, 마치  수행승이 부처님 곁으로 다가와서 법문을 청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수행승에게 무슨 법문을 해주셨냐 하면은 마치 그때에 갠지스  가운데에  나무 기둥 하나가 떠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기둥을 부처님께서 가리키시면서,

 기둥을 봐라!  나무 기둥이 이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저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중간에도 걸리지 아니하며,  강물의 소용돌이 속에도 들어가서 뱅뱅 맴돌지 아니 하면, 결국은  나무 기둥은 흐르고 흘러서 마침내는  바다로 도달하고  것이니라


그러면 이쪽 언덕에 걸리지 않는다 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뚱이로 감각하고, 생각으로 알고 하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걸리지 아니하는 것을 말하는 게고,


저쪽 언덕에도 걸리지 아니한다 말은 안이비설신의의 상대가 되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바깥 경계에도 집착하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고,


중간에 걸리지 아니한다 하는 것은 눈으로 어떠한 () 보면 속에 안식(眼識)이라 하는 것이 생기고, 귀로 바깥 경계 소리를 들으면 속에 이식(耳識)이라고 하는 것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식(六識) 생기기 때문에  육식에도 걸리지 아니한다고 하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리고 물의 소용돌이 속에 걸리지 아니한다하는 것은 학문이나 경전이나 그러한 것을 보다가 알음알이에 집착을 한다고 하는 데에 비유를  것입니다.


요새 불자 가운데에 지성인 측에서 교리적으로 공부하기를 좋아하고 그러는데,

무슨 경전이나  부처님의 소중한 진리가 담겨있는 법문이기는 사실이나, 그러한 경을 올바르게 보지를 못하고 사량분별로 따져서 알아들어가는 데에 맛을 붙여가지고 그렇게 해서 거기에 집착을 하면,

 나무토막이 강물에 떠내려가다가 뱅뱅 뱅뱅 도는  소용돌이 속에 한번 들어가면 밤낮  자리에서 돌기만하고 거기서 빠져나오지를 못하기 때문에 바다에는 도달을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 이쪽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저쪽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중간에도 걸리지 아니하고, 소용돌이에도 머꾸지를 않는다면 반드시 깨달음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법문을  수행승에게 해주셨습니다.  법문을 듣고  수행승은 깨달음을 얻고 떠났습니다.

부처님의  나무 기둥[大方梁]’ 비유 설법, 목동·두꺼비 인과 설화 ; 대정신수대장경 24 No. 1448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약사(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藥事) 11 참고.

*핍절하다(逼切-- 핍박할·가까이할· /정성스러울·절박할 ) ; 진실하여 거짓이 없고 매우 간절하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