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에서는, 아래 법문이 위 유튜브에서 19분 23초부터 시작됩니다>

 

§(364) ‘이뭣고?’했을 때 그 남는, 알 수 없는 그 의심을 관조해야 / 머리털에 붙은 불 끄듯이 화두를 들어라 / 사량분별로 따져 갖고 알아지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도학자(道學者)는 사량복탁 하는, 사량분별심으로 공안을 따지는 것을 부모를 죽인 웬수처럼 알아 여겨야 헌다. 사량복탁을 아주 부모 죽이는 웬수처럼 생각하고 잠깐 동안도 사량복탁을 허지를 말어라. ‘이뭣고?’ 해 갈수록 알 수 없는 의심, 꽉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참구해 나가.

 

**송담스님(No.364)—88년 8월 첫째일요법회(88.08.07) (용364)

 

약 15분.

 

‘참선, 참선’ 다 좋은 줄 다 알고 참선(參禪)이야말로 우리 불법 가운데에 최고의 수행 방법이고, 참선만 옳게 그리고 열심히 하면 반드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가 있다. 이거 다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것을 다 인증을 하지마는, 견성성불한 사람이 그렇게 우리 눈 앞에 흔치 않은 것은 무엇이냐?

 

그 번뇌(煩惱) 망상(妄想), 그놈을 어떻게 다스리고 그놈을 어떻게 그놈을 타고 넘어서 그 속에 있는 무진장(無盡藏)의 보배를 캘 수가 있느냐?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

 

번뇌 망상,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그 번뇌 망상 그걸 버릴려고 해서는 도저히 안 돼. 그놈을 없앨랴고 해도 안 돼. 그렇다고 해서 그놈에 마냥 그놈에 빠져 가지고 있어도 안 돼.

그 일어나는 번뇌 망상의 끊임없는 그 파도를 잘 타고 넘으면서 거기에서 그 번뇌의 바다 속을 헤쳐 가지고 결국은 거기에서 지혜의 보배를 얻는 것이여.

 

일어나는 대로 나둬. 어떻게 바다에 가서 그 파도를 없앨라고 해봤자 그 없어지겠습니까?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아무리 몽둥이로 팬들 그 파도가 없어질 리가 없어. 오히려 더 파도가 일어날지언정 없어질 리는 없어.

 

일어나는 파도를 고대로 놔두고 거기에 즉(卽)해서 ‘이뭣고?’ 탁! 화두를 거각(擧却)해서 알 수 없는 대의단(大疑團)을 관조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화두를 이 생각을 ‘이뭣고’—화두를 생각하는 것과 화두를 거각하는 것과는 전혀 달러요.

‘이뭣고’ 자꾸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허듯이 ‘이뭣고, 이뭣고’ 자나깨나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일하면서도 ‘이뭣고’ 밤낮 그렇게 허라고 권고는 합니다마는 그 말을 잘 알아들어야 하거든.

 

화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예요. ‘이뭣고, 이뭣고’ 아무 의심도 없이 그냥 막연하게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만 밤낮 생각해봤자, 그것이 백천만 겁을 무량겁을 그놈을 생각허고 있어 봤자, 그것이 어떻게 거기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냐 그말이여.

 

‘이뭣고?’ 알 수 없는 간절한 의심(疑心)으로 ‘이뭣고?’ 그 알 수 없는—‘이뭣고?’했을 때 그 남는, 알 수 없는 그 의심을 관조해야 하거든.

 

그 의심을, 간절한 의심을 관조허는 데에서, 거기에서 그 의심이 점점 간절해지고 점점 의심이 더 깊어지고 그 의심이 점점 커져서 더이상 의심이 커질래야 커질 수가 없고 더이상 간절할래야 간절할 수가 없이, 그래 가지고 화두를 들면 있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은 간 곳이 없어져 버리고 이런 것이 아니라,

자꾸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해서 자꾸 하다보면, 간절히 일구월심(日久月深) 하다보면 화두를 들지 안 해도, 생각을 내서 들라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된 때가 온다 그말이여.

 

그때는 화두를 안 들어도 의단이 턱! 앉으나, 서나, 누웠으나, 일을 할 때나, 차를 탈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의단이 독로허게 되거든. 좀 잊어버리고 딴 생각을 좀 헐려고 해도 안 되는 것여.

이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어떠한 경계에 가서 그놈이 툭! 터지게 되는 것이거든.

 

 

‘도불가수유리(道不可須臾離)니, 도(道)라고 하는 것은 잠깐 동안도 여의지 못할 것이니, 가히 여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니라’ 고인이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도라고 허는 것은 잠깐도 여읠 수가 없는 것이여. 여읜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여.

화두도 의심이 잠깐 있다가 없다가 밤낮 그러면은 그것은 참다운 의심이 아니여. 진의(眞疑)가 아니여. 그것은 주작(做作)이여. 억지로 지어서 들 때는 잠시 있고 금방 의심이 없어져 버리고 이런 것은 그것은 참의심[眞疑]이 아니여.

 

어떻게 허면 참의심[眞疑]이 돈발(頓發)허냐? 신심. 신심(信心)과 분심(憤心). 분심이 밑바탕이 되어야 거기에서 참다운 큰 의심이 거기서 나는 것이여.

 

그래서 어떻게 허면은 그 신심과 분심이 일어나냐 하면은, 마치 이 눈썹에 불이 붙은 것처럼 또 머리털에 불이 붙어서 타고 있을 때처럼.

눈썹에 불이 타고, 불이 머리에 붙어 덩겨 가지고 불이 훨훨훨 타고 있는데, 그런 경우를 만나서 어떤 사람이 그 머리와 눈썹이 타고 있는 것을 놔두고 다른 급한 일을 있다 해 가지고 다른 데에다 생각을 쓸 겨를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자녀가 있다 하더라도 곧 죽는다 해도, 지금 곧 저 방에서 죽어가고 있다 하더라도 자기 머리에 붙은 불버텀 훽 꺼버리고 끄고서 그리 쫓아가지, 자기 불이 훨훨 타는 것을 놔두고 ‘아들 죽을라고 하는 데 먼저 가보자’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있을 수가 없어.

 

도를 닦는 것이, 우리가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할 때에 있어서 마치 눈썹에 불이 덩기고 머리털에 불이 덩근 것처럼 그것을 끄듯이 화두를 들어라.

 

언제 어디서라도 화두를 들어! 화두를 들고서, 간절한 의심으로 화두를 들고서 남편도 생각하고 아들도 생각하고 살림도 생각하고 사업도 생각을 해야 해. 일차적으로 자기 머리털에 불부텀 끄듯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허드라도 화두부터 들고 따져라 이거거든.

이렇게 허지 않고서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자기를 이 생사(生死)의 불구덩이에서 구제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공부허는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해태(懈怠)허지 말 것이니, 중국에 자명초원(慈明楚圓) 선사는 저녁에 잠이 오면은 송곳으로써 무릎을 찌르면서 잠을 깨와 정진을 하고, ‘고인(古人)네는 도를 위해서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대관절 나는 이 무슨 사람이냐?’

‘과거에 모든 선지식(善知識)과 불보살은 진즉 이 생사 문제를 요달해 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 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계시는데, 나는 대관절 어떠한 인간이기에 무엇이길래 오늘날까지도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렇게 그럭저럭 지낼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해서 자기를 꾸짖고 고인에 견주어서 용맹심을 내면서 정진을 했어.

 

이러헌 마음가짐으로 하루 하루를 단속해 나가고 1시간 1시간을 단속해 나간다면 어찌 신심이 돈발하지 아니하며, 어찌 분심이 돈발하지 아니하며, 어찌 대의정(大疑情)이 돈발허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매우 더워서, 여러분은—모두 다 바다로도 가고 산으로도 가고 강으로도 가는데—이 더위에 이렇게 일요법회에 이렇게 많이 법회에 참석을 해주셨습니다.

구태여 이러헌 경책의 말씀을 누누이 해 드릴 필요도 없이 진정 여러분은 이 법당 안에 더운 속에서 더운 줄도 모르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 보잘것없는 사람으로부터 들을 것도 없는 소리를 그래도 열심히 듣고 계십니다. 그러헌 신심이면 반드시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공부를 지어 가는 데 있어서 의근하복탁사유(意根下卜度思惟), 사량 분별심으로 이리저리 공안을 따지고 이치를 따지고 이러헌 것을 허지 말어라.

중생심으로 아무리 이리저리 따져 봤자 그래 가지고 따져 가지고 아무리 그럴싸한 어떠헌 결론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침내 중생의 소견(所見)이지 참다운 깨달음은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량복탁(思量卜度), 공안을 따져.

자꾸 이 선지식이 “일러라!" 어떤 공안을 내놓고 “한마디 일러라! 당장 앉은자리에서 해결을 해야 해. 바로 일러야지, 이르기 전에는 잠도 자지 말어라” 이렇게 막 다그치니까, ‘이걸 한번 이것을 내가 한마디 이르고야 말겠다!’해 가지고 밤새 잠을 안 자면서 사량분별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따져보고.

 

그렇게 사량분별로 따져 갖고 되는 것이 아니야! 절대로 따져서 알아지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여!

 

알아질 수는 있을런가 몰라도, 알아진 것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생 소견이지 깨달음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이 생사 문제가 급허고 이 공안 타파가 급하다 하드라도 급할수록에 바른 방법으로 참구(參究)를 해나가야지, 중생의 사량분별 사량복탁으로써 이것을 따져 가지고 무슨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

따져 가지고서는 공부가 조끔도 나아가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또 참다운 의정도 거기서는 나지도 아니한 것이여. 참다운 의정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깨달음은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유복탁(思惟卜度)하는 이 네 글자는 바른 신심을 막아버리고, 바른 수행을 막아버리고 겸해서 도(道)의 눈[眼]까지도 가리워 버리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도학자(道學者)는 사량복탁 하는, 사량분별심으로 공안을 따지는 것을 부모를 죽인 웬수처럼 알아 여겨야 헌다 그거거든. 사량복탁을 아주 부모 죽이는 웬수처럼 생각하고 잠깐 동안도 사량복탁을 허지를 말어라. 탁! 해 갈수록 알 수 없는 의심, 꽉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참구해 나가. ‘이뭣고?’ ‘이뭣고?’(18분19초~33분3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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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무진장(無盡藏 없을 무/다할 진/감출·곳집 장) ; ①다함이 없는[無盡] 창고[藏]라는 뜻으로 양적 질적으로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 불교에서는 덕(德)이 광대하여 쓰고 또 써도 다함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②배우고 배워도 다함이 없는 무궁무진한 진리. ③무한량으로 많은 재물.

*‘번뇌 망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그 번뇌 망상 그걸 버릴려고 해서는 도저히 안 돼. 그놈을 없앨랴고 해도 안 돼. 그렇다고 해서 그놈에 마냥 그놈에 빠져 가지고 있어도 안 돼. 그 일어나는 번뇌 망상의 끊임없는 그 파도를 잘 타고 넘으면서 거기에서 그 번뇌의 바다 속을 헤쳐 가지고 결국은 거기에서 지혜의 보배를 얻는 것이여 ;

[참고]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구마라집鳩摩羅什 역) 제8 불도품(佛道品)

是故當知  一切煩惱爲如來種  譬如  不下巨海  不能得無價寶珠  如是不入煩惱大海  則不能得一切智寶

이와 같이 모든 번뇌야말로 여래가 되는 씨앗임을 알아야 합니다. 비유컨대 넓은 바다 밑까지 들어가지 않으면 무가(無價)의 보주(寶珠)를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번뇌의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곧 일체지의 보배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현장玄奘 역) 제8 보리분품(菩提分品)

又善男子  譬如有人  不入大海  終不能得  吠琉璃等無價珍寶  不入生死煩惱大海  終不能發無價珍寶一切智心  是故當知  一切生死煩惱種性  是如來種性

또 선남자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폐유리 등의 무가(無價)의 진보(珍寶)를 끝내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생사(生死)의 번뇌라는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끝내 무가의 진보인 일체지에 대한 마음을 일으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체의 생사 번뇌의 종성(種性)이 여래의 종성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 ·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도불가수유리(道不可須臾離)니, 도(道)라고 하는 것은 잠깐 동안도 여의지 못할 것이니, 가히 여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니라’ 고인이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74~175.

道不可須臾離(도불가수유리)니  可離(가리)면  非道也(비도야)요  工夫(공부)를  不可須臾間斷(불가수유간단)이니  可間斷(가간단)이면  非工夫也(비공부야)니라  眞正叅究人(진정참구인)은  如火燒眉毛上(여화소미모상)하며  又如救頭然(우여구두연)하나니  何暇(하가)에  爲他事動念耶(위타사동념야)리요

古德(고덕)이  云(운)호대  如一人(여일인)이  與萬人敵(여만인적)하야  覿面(적면)에  那容眨眼看(나용잡안간)이리요하니  此語(차어)가  做工夫(주공부)에  最要(최요)라  不可不知(불가부지)니라

 

도는 잠시도 여의지 못할지니, 가히 여의면 도가 아니요。 공부를 잠시라도 끊이지 못할지니, 끊이면 공부가 아니니라。 진정 참구하는 사람은 마치 불이 눈썹을 태우는 듯하며, 또한 머리에 붙은 불끄듯 할지니, 어느 겨를에 딴 일을 위해서 마음을 움직이리오?

옛 어른이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만 사람으로 더불어 싸운다면 마주 보고 어찌 눈인들 깜짝임을 용납하리요」하니, 이 말이 공부 지어 가는 데 가장 요긴한지라 몰라서는 안되느니라.

*진의(眞疑) ; 화두에 의심이 끊어지지 아니한 것을 말한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고원상인(蒙山和尙示古原上人)’에서.

話頭上(화두상)에  有疑不斷(유의부단)하면  是名眞疑(시명진의)니  若疑一上少時(약의일상소시)하고  又無疑者(우무의자)이면  非眞心發疑(비진심발의)라  屬做作(속주작)하니라  是故(시고)로  昏沈掉舉(혼침도거)가  皆入作得(개입작득)하리라

화두에 의심이 끊이지 아니하면 이 이름이 참의심[眞疑]이니, 만약 의심을 한 번 잠깐하고 또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眞心)으로 의심을 발한 것이 아니라 주작(做作)에 속하느니라。이런 연고로 혼침과 잡념이 다 마음에 들게 되느니라.

*주작(做作 지을 주/지을 작) ;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억지로 지어서 하는 것.

화두를 들 때 무상(無常)을 느껴 발심(發心)을 해서 의심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의심을 한 번 잠깐하고 또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眞心)으로 의심을 발한 것이 아니고 억지로 한 것이어서 주작이라고 한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버텀 ; ‘부터’의 사투리.

*덩그다 ; '불이 붙다'의 사투리.

*승속(僧俗) ; 스님과 스님이 아닌 속인(俗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해태(懈怠 게으를 해/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자명초원(慈明楚圓) : (九八七 – 一0四0) 속성은 이(李)씨。광서성(廣西省) 계림부(桂林府) 전주(全州)에서 났다。22세에 출가하여 멀리 분양 선소(汾陽善昭)선사의 회상에 갔었다。분양은 욕설과 세속의 더러운 말만 할 뿐이므로 하루는 정성을 다하여 간 하였더니, 크게 성내어 『네가 나를 비방하느냐?』하고 내쫓았다。초원이 무엇이라고 변명하려는데, 분양이 손으로 그 입을 틀어막았다。그 바람에 크게 깨쳤다.

뒤에 석상산 숭승사(石霜山崇勝寺)와 담주 흥화사(潭州興化寺) 같은 여러 곳에서 교화하니, 법을 이은 제자가 50인이나 되었다。자명(慈明)은 54세로써 입적한 뒤의 시호(諡號)이고, 석상화상(石霜和尙)이라고도 한다.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생사대사(生死大事) ; ①삶과 죽음, 생사(生死)의 큰 일. ②수행을 하여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는 큰 일.

*의정(疑情) ; 의심(疑心).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공부를 지어 가는 데 있어서 의근하복탁사유(意根下卜度思惟), 사량 분별심으로 이리저리 공안을 따지고 이치를 따지고 이러헌 것을 허지 말어라’ ;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77.

做工夫(주공부)호대  不得向意根下卜度思惟(부득향의근하복탁사유)니  使工夫(사공부)로  不得成片(부득성편)하며  不能發得起疑情(불능발득기의정)이니  思惟卜度四字(사유복탁사자)는  障正信(장정신)하며  障正行(장정행)하며  兼障道眼(겸장도안)이니  學者(학자)가  於彼(어피)에  如生寃家相似(여생원가상사)하야사  乃可耳(내가이)니라

 

공부를 짓되 의근(意根)을 향하야 헤아리고 따지지 말 것이니, 공부로 하여금 한 조각을 이루지 못하게 할 것이며 의정(疑情)이 일어날 수 없게 하나니, 사유복탁(思惟卜度) 네 자는 바른 믿음을 막고 바른 행을 막는 것이며 겸하야 도의 눈을 가리우는 것이니, 공부하는 이는 이것을 마치 원수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Posted by 닥공닥정
간절 절(切)자2015. 11. 11. 07:58

 

 

§(500)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간절 ()자 / (게송)만의도취일의단~ / 모든 의심을 몰아 본참공안으로 나아가라 / 화두의 힘. 진여불성의 위대한 힘.

 

‘간절 ()’, 간절한   글자는 최친절구(最親切句)여. 가장 정진해 나가는데 그보다  요긴하고 친절한 것이 없다.

 

세상의 모든 의심이 수만 가지 의심이 있겠으나 그러한 의심, 어떠한 종류의 의심이 일어나더라도  의심을  군데로 몰아라.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화두로 나아가라 그거거든.

 

 세상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렵고 혼탁해질수록에 활구 참선객(活句參禪客)은 정말 발심을 하고, 정말 분심을 내서 화두를 드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거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발심한 사람이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어야  공덕으로 나라가, 사회가, 세계가 좋아질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청정한 깨끗한 물이 합해져 가지고  강물이 되어서 바다로 들어가듯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으로 정진해서, 한 마음 한 마음이 깨끗해짐으로 해서 법계(法界)가 깨끗해지는 것이다.

 

 생각 동(動)해 가지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게 되는 것이고,  생각 동해 가지고 지옥에도 가고, 천상에도 가고.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서 나오냐 하면은 진여불성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말이여. 진여불성의  위대한 힘이라 하는 것은 말로써  표현을 할 수가 없는 거야. 우리가 이렇게 볼품없이 생겼고 별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그런 것이 아니여.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렇게 과소평가해서는  . 우리는 부처님과 똑같은 존재라고 하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그렇게  생각 생각을 돌이켜야 한다.

 

**송담스님(No.500)—93 동안거해제  백일기도 회향(93.02.06) (용500)

 

(1) 약 19분.

 

(2) 약 12분.

 

(1)------------------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어다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어다.

생사진로(生死塵勞)! 생사진로를 해탈하는 것이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여. 긴히 승두(繩頭)를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지을 지니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한번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아니할  같으면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으리오.

 

겨울에 되게 강추위를 해야, 강추위한 뒤끝에 매화가 피어야  매화꽃에서 진한 향기가 풍기는 법이여. 겨울 날씨가 이상 난동(異常暖冬)으로 뜨뜻하고  번도 강추위가 없이 매화꽃이 피면 아무 향취가 그렇게 진하지를 못한다 그거거든.

 

생사해탈(生死解脫),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서 생사해탈을 하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여서 가행정진, 용맹정진 해서 정말 철두철미(徹頭徹尾) 정진한 뒤에야사 비로소 확철대오가 있지, 정진을 시원치 않게  놓으면 무슨 소견이 나봤자 아무 매카리가 없다 그거거든.

 

정말 크게 깨닫고자 하는 사람은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여.

의심이 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해서 그놈이 터질 때에는 정말 나의 면목을 투철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황벽(黃檗) 스님의 게송인데,  게송은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데 매우 친절하고 요긴한 게송이라 때때로  게송으로써 경책(警策)을 하면 공부가 자연히 힘이 있고 향상  것이다.

 

 

오늘은 계유년 정월 15일로, 임신년 동안거 구순 안거(九旬安居)의 해제날이여.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해제 법문을 우리가 충분히  들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자리에는 용화사 대중  용주사, 위봉사, 세등선원, 회룡사 그리고  수원 화운사 대중과 여러 사부대중이 해제일에 이렇게 운집을 했으므로 그동안에 삼동(三冬)에 정진하느라고 모다 애쓰고  해제를이렇게 맞이해서 함께 모였으니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에게 불가불 격려의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공부는 밤낮 하려고 애를 쓰고, ‘이 철에는 한번 정말 철저하게 한번  보리라’하고 결제를 합니다마는,

하다가 보면 단단히 몽그린,  이를 악물고 시작을 했어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시일이 지나면 풀어지고, ‘여기서 한바탕  보리라’고 주먹을 쥐어도 1분 2분 3분 지내다 보면 자기도 모른  느슨해지거든.

 

더군다나 우리는 정말 발심(發心)을 해서 오직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해결하려고 출가를 했고,

 신남신녀(信男信女),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도 한바탕 해보려고 가정사를  버리고 이렇게 모다 방부(房付)를 들이고 하기는 했지만, 시일이 지내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느슨해지거든.

 

그래서 박산무이 선사(博山無異禪師)도 우리 후래(後來)를 위해서 이러한 법문을 하셨습니다.

공부를 짓되 ‘ 간절 절(切)’, ‘간절 ()’,  한 자(字)가 가장 요긴하다고 말씀을 해.

 

간절(懇切)한 마음이 없으면 반드시 해태(懈怠)한 마음이 생기고 해태심이 생하면 방일(放逸)하게 된다. ‘방일’이라 하는 것은 그럭저럭 지내는 거여.

그래 가지고 간절한 마음이 풀어져 버리면 결국은 잡담을 하게 되고, 눈으로 보고 듣는 데에 거기에 집착을 하게 되고 거기에 시비심을 내게 된다 그말이여. 그러다 보면은 화두는 달아나 버리고.

 

그래서 정말  생각 간절한 생각이 있으면 방일, 해태가 어디서 나오며 ‘간절 ()’  자만 !  있으면 고인(古人)의 경지에 이르지 못할까 걱정할 것도 없고, 생사를 깨뜨리지 못할까 걱정할 것이 없느니라.

간절한  마음이 ! 있으면 선(善), 악(惡), 무기(無記),  삼성(三性)을 당하(當下)에 초월할 수가 있다. 정진해 나가는데 간절한 마음이  있고 보면 선도 생각할 것도 없고, 악도 생각할 것도 없고, 무기에도 떨어지지 않아.

 

정진을 하다 보면은 망상도 없고처음에는 망상이 일어나서  망상 속에서 화두를 들라고 갖은 애를 쓰고 하는데 얼마 동안 애쓰다보면 망상도 없고, 멍하니 화두도 없고 그런 무기(無記)에 떨어진다 그말이여.

그러면 시간이 가는 중도 모르고 하나도 복잡하지도 않고 괴로운 생각도 없고 편안하고  좋은  같은데, 무기한 경지에 떨어지면 그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아주 막혀버린 거여.

 

화두가 간절하면은 그런 무기공(無記空)에도 떨어지지 않어야. 화두가 시원찮으니까, 간절한 생각이 없으니까 그런 무기의 경지에도 떨어지는 것이다. 혼침(昏沈)도 거기서는 간절한 생각 앞에는, 간절한 의단 앞에는 혼침도 거기에는 없고 망상도 거기에는 일어날 수가 없어.

 

정진하는데 매양 혼침과 도거(), 도거는  생각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도거고, 혼침은 졸음에 떨어지는 건데, 여름에는 더워서 혼침에 떨어지고 겨울에는 뜨뜻한 방에 문을 닫고 여럿이 앉았으니공기가 탁해져 가지고 그래 가지고 혼침에 떨어지는 수가 많다.

그래서 겨울에는 참선하는 방이, 선실(禪室)이 너무 더운 것은 별로 좋지 않아. 약간 산산한 기운이 있어야 혼침에도 떨어지지 않고 정진하기에 좋다.

 

‘간절 ()’, 간절한   글자는 최친절구(最親切句)여. 가장 정진해 나가는데 그보다  요긴하고 친절한 것이 없다.

‘간절 ()’자가 하나가 ! 서있으면 공부해 나가는데 화두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들렸다  들렸다  것이 없어. 간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화두를 들면 있고, 잠깐 지나면  끊어져 버려.

 

간절한 의단이 독로하면 마구니가 틈을 엿볼 수가 없어. 마구니가 들어올 틈이 없다 그말이여.

마구니라 하는  머리에  돋친 그런 무섭게 생긴 귀신을 어릴 적에는 연상(聯想)을 했지마는, 간절한 의심 이외의 생각은 좋은 생각이나 나쁜 생각이나 그게  마구니의  모습이거든.

 

그런 마구니가 모습을 나타날  !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버리면 마구니가  곳이 없어지지만,

일어나는 생각이  생각,  번째 생각,  번째 생각으로 번져가도록 화두를 드는 것을 잊어버리면 정말 마구니의 올가미에 끌려 나가는 것이다 그말이여.

 

 마음이 간절해서 간절한 의단을 추켜들면 사량복탁(思量卜度)— 생각  생각 하고,

심지어는 화두에 대한 사량복탁은 다른 망상보다도  못쓴 것이다 그말이여. 공안을 갖다가 사량분별로 따지고 분석하고 이런 것은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장애가 되는 것이다.

 

번뇌 망상, 보통 세속적인 번뇌 망상보다도 화두에 대한, 공안에 대한 분별로 이리저리 따지고 그런 것은 외도(外道)에 떨어지는 무서운 함정이다. 그래서 우리  공부해 나가는 사람은 간절하게 화두를 드는 것이 그것이 가장 요긴한 것이다 그거거든.

 

공부를 한철,  ,    나가다보면 이상하게 무슨 시(詩)가 저절로 튀겨져 나와.

어떤 경계를 보면은 한문을 모르는 사람은 한글 시가 나오는 수가 있고,  한문을 아는 사람은 한문으로생전 시에 대해서 별로 관심도 없었는데그렇게 시가 자꾸 짓고 싶고 속에서 이렇게 저절로 일어난다 그말이여.

 

그러한 것에  붙여 가지고 시를 짓고 글을 짓고 하면 그것은 수행자가 아니고 그것은 시승(詩僧)이요, 문자승(文字僧)이다. 그런 데에 재미를 붙여서 세월을 보내면은 참선하고는  길이 멀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그런 시를 짓고 글을 짓고 하는 그런 짓을 하지 말아라.

 

역순경계(逆順境界)를 만났을 때에—해제를 하고 나가면은 순경계(順境界)도 만나고, 역경계(逆境界)도 만나고 그러기 마련인데 그러한 경계를 만나서 퍼뜩 돌이켜서 화두를 들도록 하라.

순경계에 만나서 그리 끄달리고, 역경계를 만나서 끄달리다 보면 공부해 나가는 학자에게는  손해가  것이다.(처음~1854)

 

 

 

 

 

(2)------------------

 

만의도취일의단(萬疑都就一疑團)하고   의거의래의자간(疑去疑來疑自看)이어다

나무~아미타불~

수시나룡타봉수(須是拏龍打鳳手)에   일권권도철성관(一拳拳倒鐵城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만의도취일의단(萬疑都就一疑團)하야  의거의래의자간(疑去疑來疑自看)이니다.  가지 의심을  몰아서  의단(疑團)으로 나아가라.

 

세상의 모든 의심나라의 의심, 정치에 관한 의심, 경제에 관한 의심, 교육에 관한 의심, 자식에 대한 의심, 그런 의심. 또는 경전에 있는 부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 조사어록이나 조사의 법문에 대해서 어떠한 의심.

자기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도 여러 가지로 의심이 날 수가 있다 그말이여. 공부해 나가는 방법에 대한 의심, 어떠한 경계를 만났을 때의 의심.

 

의심이 수만 가지 의심이 있겠으나 그러한 의심, 어떠한 종류의 의심이 일어나더라도  의심을  군데로 몰아라.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화두로 나아가라 그거거든.

 

그래 가지고 의거의래의자간(疑去疑來疑自看)이여. 의심해 가고 의심에 . 그래서 화두에 대한 의심 ‘이뭣고?’

‘이뭣고?’ 하다가  『그 이뭣고?’  의심하는 그놈』을 다시  의심을 하라!

 

수시나룡타봉수(須是拏龍打鳳手)하야, 모름지기  용(龍)을 때려잡고 봉(鳳)을 잡는 그러한 용맹한 사람이라야,

일권권도철성관(一拳拳倒鐵城關)이다.  주먹으로 쳐서 쇠로 이루어진 성벽 관문을 갖다가 쳐부술 수가 있을 것이다.

 

눈에 본 대로, 귀로 듣는 대로, 크고 작은 수없는 의심을 낱낱이 그것을 따져서 알라고 그러고, 그러다가 보면 언제 공안을 타파할 것이냐 그말이여.

 가지,  가지의 경계를 당해서 항상 자기의 본참공안을 들어야  것이다.

 

 

 세상이 갈수록 점점 혼탁해지고 복잡해지고 어려워지고, 비관적으로 본다면 정말 나라꼴도 걱정이 되고, 경제 교육 모든 문제가 걱정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세계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 정말 발심을 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최상승(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우리 학자는 그러한 걱정을 낱낱이 다 하고 있을 겨를이 없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복잡하고 어렵고 혼탁해질수록에 활구 참선객(活句參禪客)은 정말 발심을 하고, 정말 분심을 내서 화두를 드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거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발심한 사람이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어야  공덕으로 나라가, 사회가, 세계가 좋아질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참선하는 사람은 무엇과 같으냐 하면은  한강이나 낙동강이나 금강이나 그런 강들이 강물이 어디서부터 나왔냐 하면 차츰차츰 거슬러 올라가면  수원(水源), 원천(源泉)이 있거든.

거기서 부터서 물줄기가 흘러내려 오고, 내려오다 보면  다른 골짜구니에서도 또 물이 내려오고 해서 차츰차츰 합해져 가지고 두만강도 되고, 압록강도 되고, 한강도 되고, 낙동강도 되고, 금강도 되고.

 

참선하는 사람이 여기서 저기서, 스님네는 용주사에서, 위봉사에서, 세등선원에서, 회룡사에서, 화운사에서 각기 자기가 결제한 그곳에서 용맹정진 가행정진을 하고,

 청신사 청신녀들도 선방에 방부 들일 때는 방부 들인 선원에서, 해제를 하고 댁으로 돌아가시면 댁에서 열심히 정진을 하고.  정진함으로 해서 사람이 정진함으로 해서 주변이 맑아지고, 주변이 청정해져.

 

청정한 깨끗한 물이 합해져 가지고  강물이 되어서 바다로 들어가듯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으로 정진을 해서, 한 마음 한 마음이 깨끗해짐으로 해서 법계(法界)가 깨끗해지는 것이다.

 

한 사람이 정법(正法)을 믿고 바르게 정진을 하면 십리(十里) 안통이 맑아지고, 더욱 정진을 하면 백리(百里) 안통이 맑아져. 더욱 정진을 하면 천리(千里) 안팎이 맑아진다 그말이여.

그러기 때문에 『한 마음이 깨끗하면 법계가 청정하다』고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원각경에 말씀하시고, 화엄경에도  말씀을 하셨어.

 

 생각 !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힘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말이여.

 

우리는 이것을 보통으로 생각해서는  .   선지식만이 그런  아니여. 누구라도 어떠한 사람이라도  생각 ! 돌이킬  그러한 엄청난 힘이 나온 것이다.

 그러냐 하면은 우리도 부처님과 똑같은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

 

 생각 동(動)해 가지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게 되는 것이고,  생각 동해 가지고 지옥에도 가고,  생각 동해 가지고 천상도 가고,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서 나오냐 하면은 진여불성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말이여.

 

진여불성의  위대한 힘이라 하는 것은 말로써  표현을 할 수가 없는 거야.

 

우리가 이렇게 볼품없이 생겼고 별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그런 것이 아니여.

!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렇게 과소평가해서는  . 우리는 부처님과 똑같은 존재라고 하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그렇게  생각  생각을 돌이켜야 한다 그말이여.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냥 방일(放逸)해 버리고 그럭저럭 지내면은 그럭저럭한 인생 밖에는 아니 되는 것이다.

정말 사명감을 가지고 ‘불법의 흥망성쇠가   몸에 달렸다’고 하는 그런 사명감을 우리는 가져야 하는 거여. 그렇게 그런 사명감을 가질  우리는 1 1초인들 그럭저럭 지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1857~3028)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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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근심할 )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승두(繩頭) : ()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한바탕 ; 크게 한판(  벌이는 ). 한판 크게.

*뒤끝 ; ①일의  나중이나 . ②어떤 일이 있은  바로 . ③좋지 않은 감정이 있은 다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감정.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공안(公案)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막힌 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12~) [‘참선법 A’ 에서]

 

〇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 [ ‘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철두철미(徹頭徹尾)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고 철저하게.

*매카리 ; 매가리. 맥아리. ( 기운이나 ) 속되게 이르는 .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경책(警策 깨우칠 , 채찍 ) ; 타이르고 채찍질하여 깨우치게 하는 .

*구순 안거(九旬安居)수행(修行)하는 스님들이  곳에 모여 외출을 금지하고 도를 닦는 일을 안거(安居) 하는데하안거(夏安居4 15일부터 7 15일까지동안거(冬安居, 10 15일부터 이듬해 1 15까지)  안거 기간이 90 이므로 구순 안거(九旬安居) 한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삼동(三冬) ; 겨울철의  .

*몽그리다 ; 몽구르다. 어떤 일을 해내기 위해 벼르거나 굳게 다짐을 하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청신사(清信士)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자 신도,  우바새(優婆塞).

*청신녀(清信女)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  우바이(優婆夷).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박산무이 선사(博山無異禪師)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후래(後來) ; ①뒤에 오거나 뒤져서 . ②장차 오게 되는 앞날.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해태(懈怠 게으를 , 게으를 )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방일(放逸 놓을 , 제멋대로 ) ;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삼성(三性) ; 모든 현상을 윤리적 측면에서 (), (), 무기(無記) 나눈 .

*당하(當下)일이 있는  자리또는 그때.

*무기(無記) : [] Avyaksita ()•()•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 말한다.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멍하다 ; (사람이나 그의 머리가)얼이 빠진 것처럼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다. ②몹시 놀라거나 갑작스러운 일을 당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얼떨떨하다.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혼침(昏沈 어두울 ,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매양 ; 번번이( 때마다). 항상.

*도거() : 혼침의 반대인데 산란(散亂)이라고도 한다. 정신을 머트럽고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마음작용.

*산산하다 ; 약간 추운 느낌이  정도로 사늘하다.

*최친절구(最親切句) ; 가장 친절한 .

*마구니 ; (). []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 하고, 줄여서 ()라고만 한다。장애자(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 보고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 하시니라.

*올가미 ; 노끈이나 철선 따위로, 잡아당겨도 매듭이 풀어지지 않도록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어 짐승을 잡는 기구.

*사량복탁(思量卜度) :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외도(外道 바깥 ,  ) ; ①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 가르침. 또는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 붙이다 ; 마음에 당겨 재미와 흥미를 느끼다.

*순경계(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들어맞어 마음이 따르는 경계. ②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경우나 형편.

*역경계(逆境界) ; ①자기의 마음에 반대되어 마음이 언짢은 경계. ②일이 순조롭지 않아 매우 어렵게  처지나 환경. 역경(逆境), 위경(違境)이라고도 한다.

 

 

 

 

 

------------------(2)

 

*(게송) ‘만의도취일의단~’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5) '贈蘭法師' 게송 참고.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선객(參禪客)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법계(法界) ; 모든 현상, 전우주.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안통 ; 안쪽(안으로 향한 부분이나 안에 있는 부분).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자체. 깨달음  자체.

 

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자세 호흡)2015. 9. 25. 11:06

 

 

§(세등34) (게송)임간무사남몽두~ / 사량복탁. 사구선(死句禪) / 올바른 자세. 좌선이 정진에 가장 효과적 / 올바른 단전호흡. 상기병 예방.

 

차라리 참선을 아니하고 염불을 하든지, 주문을 외우든지,  무슨 심경이나 금강경이나 몽수경을 외울지언정 명색이 참선을 한다면서 사량분별심으로 공안을 따져 들어가는 그러한 참선은 하지 말어라.

 

이 정진은 일체처 일체시에 분별이 없이 다못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 간에   없는 화두만을 거각(擧却)할 뿐이여.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기본자세로 정진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가장 힘을 얻기 쉽다. 그래서 고래(古來)로부터 참선(參禪)을 좌선(坐禪)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것이다기본자세로 앉아서 정진한 것이 제일 효과적이고 득력(得力)을 하기가 쉽기 때문에 그래 해 온 것이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34)—신유년 하안거 반결제 법어(81.05.29) (세등34)

 

(1) 약 13분.

(2) 약 11분.

 

(1)------------------

 

임간무사남몽두(林間無事襤頭)허고   영야청소만무회(永夜淸霄萬無懷)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강월명명자상조(江月明明自相照)한데   송풍무단냉표표(松風無斷冷飄飄)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임간무사남몽두(林間無事襤冡頭)하고, 임간(林間)에서, 숲 사이, 선원 숲속에서 일없이 남몽(襤冡), 누데기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누데기를 떠억 몸에 걸치고,

영야청소만무회(永夜淸霄萬無懷)로구나. 긴 밤 맑은 하늘에, 맑은 밤에 만사를  쉬어 버렸다.

 

출가해서  닦는 사람이 부모와 형제와 고향을  버리고, 세상의 오욕락(五欲樂)을  버리고, 인간의 시비를  버렸어. 그리고서 누데기 하나 걸치고 선방에서, 임간(林間)에서   맑은 밤에 무엇을  일이 있겠느냐?

 

강월(江月)이 명명자상조(明明自相照)한데, 강물에 하늘에  밝은 달이 떠억 비추는데,

송풍무단냉표표(松風無斷冷飄飄)로구나. 솔바람은 끊임없이 차웁게 나부낀다. 솔바람이 휘휘 불어 . 발심(發心)해서  닦는 납자(衲子)의 모습을 읊은 게송입니다.

 

 

신유년 하안거도 오늘로 반산림을 맞이했습니다. 과연 지난 한 달 반 동안 어떻게 정진을 했는가?

형식적으로 입선(入禪) 시간에는 죽비()를 치고 앉아서 졸고, 방선(放禪)을 하고는 옆에 사람과 잡담을 하지 안 했는가? 쓸데없는 일에 진심(瞋心)을 내고 시비를 하지는 안 했는가정말 생사(生死)가 무상한 줄을 깊이 깨닫고 1분 1초를 헛되이 지내지 아니 했는가?

 

앞으로 반산림 한 달 반 동안을 보다  알차고 참되게 닦아가기 위해서 오늘 반산림 법회를 갖는 것입니다. 지나간 절반을 돌이켜 보고 거기에서 깊이 다짐을 하고 앞으로 남은 반 철을 철저하게 공부를 지어가야  것입니다.

 

금방 전강 조실 스님 녹음법문 가운데에 공안상(公案上)에 복탁(卜度)을 하지 말아라’ 고인(古人)의 공안자기가 현재 공부하고 있는 본참공안(本參公案)이라든지, 또는 자기 본참공안 이외의 어떤 공안에 대해서 사량복탁(思量卜度)을 하지 말아라.

 

사량복탁을 하는 그러한 참선은 아무리 해봤자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때까지 공부를 한다고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 망가실업(亡家失業)이여. 집안 망하고 자기의 업을 잃어버리는 거여.

 

양가득죄(兩家得罪)여. 속가에서 부모와 고향을 버리고 나왔으니 불효자고, 출가해 가지고 부처님 제자로서 올바르게 수행을 해서 도업(道業)을 성취하지 못했으니 절에서도 부처님의 제자로서 죄를 지은 것이여. 그래서 망가실업이요, 양가득죄다.

 

차라리 참선을 아니하고 염불을 하든지, 주문을 외우든지,  무슨 심경이나 금강경이나 몽수경을 외울지언정 명색이 참선을 한다면서 사량분별심으로 공안을 따져 들어가는 그러한 참선은 하지 말어라. 그러한 요지의 법문이 계셨습니다.

 

 가운데 있는 선객(禪客)이나 신도님 가운데에는 그러한 잘못된 참선을 하고 있는 분은  계시겠지만, 자기는 아니한다고 하면서도 사량분별을 하고 있는 수가 허다히 많다.

 

다못   없는 의심.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무(無)자 화두를 하는 사람은 어째서 ? 어째서 무라 했는고?’ 시삼마 화두를 하는 분은 이뭣고?’  ‘'이'하는 이놈이 뭣고?’ 다못 그렇게만 공부를 지어  것이다.

 

다못  막혀서   없는 의심뿐이어야지만에 하나라도 사량심을 거기다가 붙이고, 분별심을 거기다 붙이고, 이론적으로 어로()로 따져서 , 이런것이로구나 하고 알아 들어가면, 그것이 바로 사량복탁이요, 사구선(死句禪)이요, 죽은 참선이라.

 

화두 하나만 올바르게   알면  사람은 공부를 바로  가는 것이다.

 

다못  맥혀서   없는 의심뿐이어야지그럴 때에는  맥혔으니 답답하고, 어제나 오늘이나  조금도  나아간  같지도 않고 하지만 맥혀서   없는 의심뿐인 사람은 공부를 정말 참되게 옳게 해 가고 있는 것이고, 공부가 옳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어제 오늘  사람의 수좌(首座)로부터 공부에 관한 자문을 받았는데,  정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상관이 없어.

걸어갈 때나,  있을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말을  때나, 말을 아니하고 있을 때나, 움직일 때나, 고요히 있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분별이 없이 다못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 간에   없는 화두만을 거각(擧却)할 뿐이여.(처음~1237)

 

 

 

 

(2)-----------------

 

그렇게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때도 없이, 어떠한 특정한 장소도 없이 다못 일여(一如)하게 화두에 대한 의심을 관조해 나갈 뿐이지만,

그래도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앉아서 기본자세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기본자세로 정진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가장 힘을 얻기 쉽다.

 

그래서 고래(古來)로부터 참선(參禪)을 좌선(坐禪)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것이다.

기본자세로 앉아서 정진한 것이 제일 효과적이고 득력(得力)을 하기가 쉽기 때문에 그래 해 온 것이다.

 

앉아서 다못 화두만을 거각할 뿐인데 기왕 먹는 떡에 살을 박아서 먹어라

 

흰떡을 풍풍 찧어서 그냥 뭉탱이로 만들어 가지고 아무렇게 생겼거나 말았거나, 입으로 비어서  씹어서 먹으면 그만이지만그걸 길게 길게 가래떡으로 늘여 가지고, 그것을  떡살로 눌러서 옴자나 꽃무늬나 그런 모양을 박아 가지고 그렇게 먹는다 그말이여.

뭐하러 그냥 먹으면 좋을텐데  아프고 시간 걸리고 힘들여서 떡살로 박아서 먹느냐 그말이여.

 

그래도 먹는 떡에 살을 박아서 먹으면 접시에다 놓아도 좋고, 봄에도 좋고  먹기도 편리하고 그렇듯이앉아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엎져서도 하고, 걸어가면서도 하고 아무렇게 해도 상관이 없고 그렇지만, 이왕이면 자세를 바르게 하고서,

 

호흡도, 아무렇게 쉬어도 호흡을   쉬고 사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그말이여누웠거나 앉았거나 숨은 전혀 의식을 하지 아니 해도 무의식 중에 콧구멍으로 숨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살게 되어 있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숨을 아무리 쉬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고, 심지어는  잘 때도 스스로 숨을 쉬게 되고, 잠자고 있을 때도 누가 콧구멍을 살며시 막을라고 하면, 무의식중에 손을 ! 때려서 치워 버리고 숨을 쉬는 것이다.

갓난애기도 누가 콧구녁을 막으면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애기도  앞을 갔다가 손으로 집어 쳐 버리고 숨을 쉬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게 숨을 무의식 중에 쉬게 되는데 구태여 무슨 단전호흡(丹田呼吸)이다, 복식 호흡(腹式呼吸)이다  그렇게  필요도 없을  같지만,

그래도 단전호흡 하는 법을  알아서 여법(如法)하게 단전호흡을 하면 혈액 순환이 잘되고, 혈액 순환이 잘되므로서 몸안에 있는 노폐물이  밖으로 배설이 되고, 따라서 정신이 안정이 되고, 정신이 맑아지기 때문에,

 

기왕이면 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하고서 단정히 앉아서 호흡도 안정되게 단전호흡을 하면, 그러면서 화두를 거각하면 정진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첫째, 상기병(上氣病)을 예방을 하고,

까딱하면 이뭣고?’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자꾸 의심을 들고 들고  들고 그렇게 의심을 하다 보면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머리로 상기(上氣)가  우려가 다분히 있기 때문에,

 

항시 의식적으로 숨을 들어마실 때에는 배꼽 밑에 단전이 약간 볼록해진 것을 의식을 하고, 내쉴 때는 약간 홀쪽해지도록 느끼면서 하면은 우리의 의식이 하복부에 집중이 되기 때문에 몸의 기운도 하복부로 기운이 모여지게 되는 것이다.

 

‘기운’이라 하는 것은 현대 의학에서는 전혀 모르는 소리고, 동양 의학이나 음양오행(陰陽五行)에서는 기운’ 소리를 이해를 하고 말을 하고 있지만, 현대 의학에서는 ‘기운’이란 소리를 몰라.

전혀 모르고, 아무리 신체 해부를 해도 그것이 나타나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것이지만, 실지로 우리가 생활을 해 보면, 흥분을 하면 벌거니 위로 상충(上衝)이 되서 얼굴이 붉어지고,

 

참선을 해 보면 머리가 개운하고 상쾌하고 깨끗하게  때가 있고괜히 머리로 기운이 위로 올라가 가지고 얼굴이 약간 붉으면서 골치가 띵해 갔고 맑은 정신이 없어서 아무리 공부를 헐라고 해도   안되는 것같이 기분이 나쁘고 그런 것을 느끼는데, 분명히 그게 상기의 일종이다.

 

그런데 몸을 바르게 단정히 갖고, 그리고서 단전호흡을 올바르게 하면 머리가 자연히 개운해지면서 상쾌하면서 성성(惺惺)하게 정진이 되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항시  단전호흡을 권장을 하고 그러는데,

 

 단전호흡을 잘못하면너무 억지로 힘을 쓴다든지, 너무 숨을 잔뜩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가 고무풍선처럼 터질 듯이 배가 빵빵해지도록 숨을 들이마시고그리고   있으면 오래하기 위해서 얼마 동안을 참으면서 얼굴이 벌거질 때까지 참고 있다가, 내쉴 때는 아주 뱃가죽이 등허리에 붙을 때까지 하고 해서 너무 무리하게 단전호흡을  가지고,

 

그래 가지고는 어깻죽지가 눌린 것같이 느끼기도 하고, 오목가슴이 조여들어서  다음에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면, 숨을 내쉴라고 해도 내쉴  숨도 없고, 들어마실라고 해도 들어마시지도 않고 이렇게 해서  애를 먹고 그러는데, 이것이 모두  단전호흡을 무리하게 잘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차라리 그렇게 억지로 무리하게 해서 부작용이 일어나게  바에는 단전호흡을 아니하고 그냥 호흡에 대해서는 일절 관심을 갖지 말고, 지가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낫다 그말이여. 그리고 그냥 화두만을 자꾸 들면 차라리 그게 나은 것이다.

 

 참선도 불법(佛法)에 여러 가지 수행 방법 가운데에 최고의 방법이지만 참선도 잘못하면아까 사량복탁을 한다든지, 분별심으로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간다든지, 또는 화두도 없이 우두거니 빈곳을 들여다보고 앉았다든지, 이런 식으로 참선을 잘못하면 차라리 참선 아니한 것만 같지 못해.

 

그와 마찬가지로 단전호흡도 올바르게 잘하면 상기병도 예방을 하고, 상기병에 걸린 사람도 이것을 잘하면 상기병을 나을 수도 있고, 위장병이 있는 사람도 위장병이 나을 수도 있고, 소장이나 대장이 좋지 못한 사람도 이것을 하면 그런 병이 나을 수도 있고,

온갖 병을  단전호흡을 하므로서 한 달, 두 달, 석 달, 1년 하는 가운데에 언제 어떻게 낫은 중도 모르게 그러한 병이 자연히 낫게도 되는데, 잘못하면 없는 병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욕득장생(欲得長生)이라가 반치요절(反致夭折)이다. 장생(長生)을 할려고  것이 오히려 생병(生病)이 나가지고 일찍 죽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고인이 말씀을 했습니다.

 

조실 스님 녹음법문 가운데에도 단전호흡에 관해서 가끔 법문을 하셨고, 나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단전호흡에 대해서 말했지만단전호흡을 올바르게 해야지, 잘못하면은 그러한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을 다시 한번 이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1238~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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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납자(衲子) : '납'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 본래 가사(袈裟)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 푸른 ,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 참의(叅意)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사량복탁(思量卜度) :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 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 미륵이라 한다.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화두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사구선(死句禪) ; 사구참선(死句參禪).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거각(擧却  ,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2)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 ; 어떤 특정한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다못 일여(一如)하게 화두에 대한 의심을 관조해 나가는 ().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책상다리할 /앉을 ) ;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 발바닥을, ()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오른발을 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앉는 길상좌(吉祥坐)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고래(古來) ; ('고래에', '고래로' 꼴로 쓰여)옛날부터 줄곧.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안되던 것이 할라고  해도 저절로  되어질 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 ; 떡살로 찍은 무늬.

*떡살 ; 떡에 갖가지 무늬를 찍어 내는, 나무나 사기로 만든 . 또는 그것으로 찍어  무늬.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3,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3, 내쉬는 시간은 4~5,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1분 32초)

[참고] *송담스님(No.118)—80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숨을 들어마실  코로 들어마신다 생각을 하지 말고 뒤에서  들어마셔 가지고,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지고 거기서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내쉴 때도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내쉰다, 내보낸다 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복식 호흡(腹式呼吸) ; 숨을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해서 가로막의 신축에 의하여 하는 호흡. 단전호흡(丹田呼吸).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 ; ·양의 2() ((((() 5행으로 자연현상이나 인간·사회의 현상을 설명하는 사상.

*상충(上衝 위 상, 찌를 충) ; 위로 치밀어 오름.

*생병(生病) ; 무리한 일을 해서 공연히 얻은 병.

Posted by 닥공닥정

 

 

§(118) 조심(調心), 마음을 고르는 법—화두 참구 / 의심(疑心)이란 「알 수 없는 생각에 막히는 것」 / 의리선(義理禪), 야호선(野狐禪), 사량복탁(思量卜度)은 안됨.

믿을 수 있는 스승 또 자기가 믿어지는 스승을 만나 가지고 위법망구(爲法忘軀)적인—법을 위해서는 이 몸을 잊어버리는 그러한 자세로서 지도를 받고 공부를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화두는 어떠한 화두나 천칠백 화두가 다 낙처(落處)는 같은 것입니다. 어느 화두가 좋고 나쁘고 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가장 좋은 화두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주어진 자기의 화두가 가장 좋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화두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냐 하면 의단(疑團), 의심입니다. 의심(疑心)이라 하는 것은 「알 수 없는 생각에 막히는 것」입니다.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공부는 허공보다도 더 크고, 바다보다도 더 깊은 것이어서 해 가면 해갈수록 크고 깊고 위대해서 ‘아! 인제 이것이로구나. 인자 되었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최초의 발심(發心)할 때 그 마음가짐으로 일생을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수행을 해 나간다면 결정코 그런 조그만한 지견을 가지고 만족함으로서 공부가 중단한다고 하는 일이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어(80.03.01) (용118)

 

 

 

 

(1) 약 20분.  (2) 약 4분.


(1)------------------

이렇게 호흡을 잘 익히면서 조심(調心), 마음을 어떻게 가져 나가야 하느냐?
셋째에 가서 마음을 고르는 법을 잘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고르는 데 있어서는 화두를 참구를 해야 합니다.

화두(話頭)는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들었습니다마는 ‘화두는 자기 멋대로 어떤 책에 써 있는 대로 거기서 배워가지고 한다든지, 자기 나름대로 무슨 화두를 하나 설정해 가지고 자기 멋대로 한다든지 이래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그러냐? 책에 써 있는 대로 하건, 어떤 큰스님네한테 타건, 큰스님네한테 탄 사람한테 간접적으로 듣건 처음에 시작한 데에 있어서는 비슷합니다.
별 차이가 없지만 한 달, 두 달, 석 달, 1년 이렇게 해 나가다 보면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그러한 경지가 나타난 것입니다. 어떤 상태가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이것이 바른 경계냐? 또는 잘못된 경지냐? 이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기 멋대로 해 나간 사람은 그때 물어볼 스승이 없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잘못된 경지를 갖다가 ‘아! 내가 이거 공부가 잘되어 간 거구나’ 이렇게 속으로 좋아하면서 그 신기한 경지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집착을 하고 그것을 지켜 나가다가 보면,
십상(十常) 열이면 열, 삿된 데에 빠지거나, 미치거나, 외도가 되거나, 점쟁이 같은 것이 되거나, 잡신 같은 것이 붙어가지고 인간 자체가 폐인이 되는 수가 너무나도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화두는 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스승을 만나서 직접적인 지도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바른 스승을 만나서 바르게 지도를 받아가지고 그래 가지고 믿고 공부를 해 나가야 합니다.

자기 나름대로 또는 시원찮은 데서 배운 사람은 해 나가다가 항시 ‘내가 이거 옳게 하는 것이냐? 잘못하는 것이냐?’ 그 자체에 대해서 망설이고 주저하고 의심하고 해 가지고 공부가 한걸음도 나아가지를 못하고, 어떤 경지가 일어났을 때에도 중요한 고비에 가서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믿을 수 있는 스승 또 자기가 믿어지는 스승을 만나 가지고 위법망구(爲法忘軀)적인—법을 위해서는 이 몸을 잊어버리는 그러한 자세로서 지도를 받고 공부를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 화두는 일단 탔으면, 지도를 받았으면 아무리 공부가 잘 안된 것처럼 느껴진다 하더라도 화두를 ‘이 화두가 나쁘니까 다른 화두로 고쳐야겠다’ 이러한 생각을 내서는 아니됩니다. 안될수록에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한결같이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영 공부가 잘 안되니까 옆의 사람 보고 ‘당신은 무슨 화두를 허요?’
‘나는 무슨 화두를 해요’ 가만히 그 사람 화두를 조금 흉내내 가지고 해 본다. 자기 화두를 할 때는 영 안되는데 잠깐 옆의 사람 화두를 좀 흉내내 가지고 해 보니까 아주 공부가 수월하게 된 것같이 느껴져서 며칠을 그대로 해 본다.

마치 어렸을 때, 오늘은 정월 대보름날 오곡밥을 합니다마는 자기집 오곡밥은 먹어보니까 별로 맛이 없고, 다른 집에서 가져온 것은 굉장히 맛있는 것처럼 느껴진 기억이 있습니다.

화두도 자기 화두는 아무래도 잘 안되는 것 같고, 남의 화두는 아주 좋은 화두같이 느껴져 가지고 이 사람 것 조금 해 보고, 저 사람 것 조금 해 보고 이렇게 하다가 몇 달 만에 와 가지고, “내가 이렇게 되었으니 말 안하고 혼자 할라다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니 내 화두를 그냥 할까요 다른 화두를 할까요?” 이렇게 물어보는 비구 비구니 스님들 또 보살님네들 가운데에도 그런 분이 가끔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화두는 어떠한 화두나 천칠백 화두가 다 낙처(落處)는 같은 것입니다. 어느 화두가 좋고 나쁘고 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가장 좋은 화두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주어진 자기의 화두가 가장 좋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화두가 안되어서 다른 화두를 해 보니까 잘된다. 처음에는 잘되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또 얼마 안 가면 그전에 했던 화두가 자꾸 밟혀쌓고, 먼저 하던 화두를 다시 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 좀 해 보다 저것 좀 해 보다, 이러한 사람은 지조가 없는 사람이여.

우물을 팔라면 한 우물을 파야지, 한 길 두 길 파다가 물이 안 난다고 해서 또 장소를 옮겨서 파고,
또 한두 길 파다가 또 물이 안 나오면 또 저만큼 가서 딴 데를 파고 이러한 사람은 맛있는 좋은 물을 만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한 길 파서 안 나오면 두 길 파고, 두 길 파서 안 나오면 석 길, 넉 길, 다섯 길, 아홉 길, 열 길, 스무 길, 마지막에는 만나는 것이 큰 반석(盤石)을 만나게 됩니다.
‘인자 나는 우물 파기는 틀렸다. 자리를 잘못 잡았다’ 이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반석을 다이나마이트를 사용을 해서 폭발을 하던지 또는 정으로 쪼아내던지 이렇게 해서 그 반석을 뚫기만 하면 반석 밑에서는 아무리 가물거나 아무리 장마가 져도 변함이 없이 10년 20년 30년 백 년을 두어도 변함없이 지하수가 풍풍 쏟아오를 것입니다.

하물며 무량겁으로 생사윤회를 해 온 이 몸이 금생에 화두를 타가지고 한 철 두 철 공부한다고 해서 그것이 금방 목마른 데에 물 마시듯이 그렇게 갈증이 잡히기를 바란다고 하는 것은 무리한 얘기라고 생각이 됩니다.

옛날부터서 크게 깨달은 도인들은 너무너무 공부가 안되어 가지고 목숨을 갖다가 자기 손으로 목숨을 끊을까, 자살을 할까 이러한 정도의 극한상황에까지 이르러서 거기에서도 쉬지 아니하고 마지막 목숨이 끊어질 것을 각오를 하고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 끝에 죽음 직전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한 예는 얼마라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 철 두 철에 공부가 안된다고 포기할 것도 아니고 다못 옳은 방법으로 그리고 열심히만 할 따름인 것입니다.
맨 처음에 말씀드린 다섯 가지의 신심 그리고 세 가지의 법에 대해서 결함이 없도록 다져 나가되,
이 화두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냐 하면 의단(疑團)입니다. 의단. 의심!

의심(疑心)이라 하는 것은 「알 수 없는 생각에 막히는 것」입니다.

‘아하! 이러한 것이로구나’ 이렇게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이렇고 이렇고 이러니까 이러한 것이로구나’ 이렇게 따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따져 들어가고, 알아 들어가고, 스스로 수긍하고, 이리저리 뒤집어 보고 엎어 보고, 분석해 보고 종합해 보고, 비교해 보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인용을 해다가 대조해 보고, 이러한 것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이 아닙니다.

그러한 참선은 도깨비 참선이요, 여우 참선, 삿된 참선이요, 의리선(義理禪)인 것입니다. 이러한 의리선, 야호선(野狐禪), 이러한 도깨비 참선을 해 가지고서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히는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뭣고」를 하신 분은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지금 이놈이 무엇인고?'한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한 이놈이 무엇인고?」
「지금 '이'하고 있는, '이'하는 이놈이 무엇인고?」

계속 알 수 없는 데을 향해서, 알 수 없는 의심을 향해서 화두를 들고, 들어서 또 관조하고 이렇게 해서 조금도 옆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한 생각 한 생각을 그렇게 의단으로 몰고 나가야 돼.
이렇게 의심, 의심 또 의심, 1분 1초 한 생각도 비끌어지지 않도록 여유를 주지 아니하고,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의심으로, 의심을 밀고, 의심에 의심을 거듭해서 추구해 나가면, 갈수록 알 수 없을 뿐인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한다고 해도 「이뭣고?」하고 있는 동안에도 금방 딴 생각[別念]이 침노(侵擄)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금방 저 백리 밖, 이백 리 밖의 일 또는 10년 전, 20년 전 일로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망상이 밖에서 들어오는지, 나의 의식이 밖으로 나가서 헤매고 있는지, 하여간 분명 화두를 든다고 들고 있는데 천 가지 만 가지 생각이 왕래를 하는 것을 참선을 해 본 사람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한 시간 동안에 화두 이외의 다른 생각이 몇 번이나 들고 나갔는가를 한번 장난삼아서 세어본다면 몇천 번이 될런지, 몇만 번이 될런지, 세다가 또 세고 있는 것까지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또 화두를 들고, 또 화두를 들고 퍼뜩 잊어버린 줄 알면 또 「이뭣고?」
성화댈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리 천사상(千思想) 만사량(萬思量)이 퍼일어난다 하드라도 그것을 성화를 내고 짜증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딴 생각이 일어난 줄 알면 동시에 「이뭣고?」 이렇게 할 뿐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해 나가다보면 그렇게 안되던 것이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게 된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책없이 퍼일어났던 망상은 어느덧 차츰차츰 그 기승이 누그러지고 화두가 저절로 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이뭣고?」

화두를 들지 않아도 저절로 알 수 없는—「이뭣고?」 안 해도,  「이뭣고?」하기 전에 벌써 알 수 없는 의심이 항시 있는 것입니다.
미간(眉間)에 있는지, 코끝에 있는지, 가슴 앞에 있는지, 가슴속에 있는지는 모르는데 걸어갈 때나 앉았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항시 의단이 앞에가 있거든.

화두를 들지 않아도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자꾸 거기다 대놓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여.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묵묵히 관조하는 거여.
그러다가 그 의심이 희미해지거나 또 딴 생각이 침노하면 그때 다시 「이뭣고?」 한 번 챙기는 거여. 가끔 한 번씩 챙겨서 그 의단이 성성(惺惺)하도록 또록또록 하도록 그놈을 단속해 나가는 것이여.

공부가 여기에 이르르면 주변이 조금 시끄러운 것도 문제가 안되고, 누가 자기한테 뭐라고 한다 하더라도 그러한 일로 인해서 신경질이 나거나 그렇게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뭣한 분은 '공부가 조금 될라고 하는데 방정을 옆에서 떨어 쌓고 시끄럽게 한다'고 싸움을 하고 신경질을 내고 그러는데, 그렇지를 않습니다.

 

공부가 제대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옆에서 떠들거나 말거나, 싸움을 하거나, 어린애들이 떠들거나 그까짓 것 상관이 없습니다.
하늘을 봐도 의심, 땅을 봐도 의심, 기차 소리가 나도 의심, 닭 우는 소리가 나도 의심, 걸어가도 의심, 앉아서도 의심, 밥을 먹어도 의심, 똥을 누어도 의심,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화두가 이렇게 소소영령(昭昭靈靈)하게 염념불망(念念不忘)으로 이렇게 현전(現前)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조끔도 좋아하는 생각을 내서는 안됩니다. ‘아! 이제 공부가 잘된다. 이러한 상태로 계속해서 나갔으면’ 이러한 생각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조금도 좋아하는 생각을 내서는 안됩니다.

화두가 어느 정도 순일(純一)하게 되어가면 그렇게 마음이 깨끗하고 조용하고 편안하고, 너무 깨끗하고 편안하다 보면 ‘내가 어떻게 해서 이런 불법을 만났던가’ 이러한 희유한 마음이 나고 기쁜 마음이 나서 어찌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 것도 같고 눈물이 하염없이 나오기도 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감상적인 생각에 잠시도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탁! 정신을 차려가지고 다시 화두를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천하 없는 좋은 경계(境界)가 나타나고, 천하 없는 신기한 경계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잠깐도 그러한 일에 우리의 신경을 써서는 아니됩니다.

다못 자세를 바르게 하고 심호흡,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이뭣고?」
그때 가서는 「이뭣고?」 소리도 할 필요도 없죠. 알 수 없는 의단이 나타나면 다못 그것을 묵묵히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뿐입니다.

거기에 있어서 염송(拈頌)이라든지 또는 조사어록(祖師語錄) 이라든지, 전등록(傳燈錄)이라든지, 무슨 경전이라든지 이러한 것을 뒤적거린다던지, 이러한 조사의 언구(言句) 속에 그런 것을 가지고 사량복탁(思量卜度)을 한다든지 이러한 것은 대금물(大禁物)인 것입니다.

한참 곡식이 잘 자라고 (이삭을) 패기 위해서 나날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데다가 뜨거운 물을 찌틀어버린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화두가 순일하게 들어갈수록 계속 한결같이 의단을 관조해 나갈 뿐, 잠깐이라도 조사의 어구에 대해서 그것을 손을 대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아까 다섯 가지 믿음에 대해서—조사의 언구는 하늘에 뻗쳐서 세워져 있는 큰 칼과 같아서 그 옆에 가기만 하면 벌써 목숨이 끊어진다고 하는 사실을 명심을 하시고, 대오(大悟)! 확철대오가 아니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허락해서는 아니됩니다.(48분49초~68분37초)

 

 

 



(2)------------------

차라리 콱 막혀서 알 수 없는 의단만을 관조하다가 죽을 한이 있더라도, 조그마한 어떤 소견(所見), 지견(知見)을 가지고 그것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몸을 망치고 불법을 멸망으로 이끄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조그만한 소견을 가지고 얻었다고 생각하고 만족하면, 그 사람을 추종하는 많은 사람들도 따라서 그러한 정도에 밖에는 이르지를 못하고 결국을 그것을 가지고 만족을 삼으면 그 사람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을 그르치게 되기 때문에 불법을 갖다가 멸망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는 허공보다도 더 크고, 바다보다도 더 깊은 것이어서 해 가면 해 갈수록 크고 깊고 위대해서 ‘아! 인제 이것이로구나. 인자 되었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최초의 발심(發心)할 때, 최초에 발심할 때 그 마음가짐으로 일생을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수행을 해 나간다면 결정코 그런 조그만한 지견을 가지고 만족함으로서 공부가 중단한다고 하는 일이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해제가 되면 추웁도 더웁지도 않는 봄철이 계속이 되는 것입니다. 이 봄철을 가장 충실하게 알차게 공부를 하시기를 다시 거듭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後世)에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68분38초~72분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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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십상(十常) ; ①열에서 아홉일 정도로 확률이 높다는 말. ②'십상팔구(열에 여덟이나 아홉 정도로 거의 예외가 없음)'에서 온 말.
*참구(參究 헤아릴 참, 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낙처(落處) ; 안정된 곳. 결국의 장소. 귀착점(歸着點 최종적으로 끝을 맺을 수 있는 결론). 요지(要旨 핵심이 되는 중요한 내용).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 이런 의리선(義理禪)은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야호선(野狐禪 들 야/여우 호/참선 선) ; ①진실하게 올바로 참선 수행도 하지 않고, 깨닫지도 않았는데 깨달은 것처럼 가장하여 함부로 기이한 언행을 하여 남을 속이는 사람을 들여우에 비유하여 말함.
②말이나 글로 알아 들어가고, 따지고 분석하고 비교해 보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인용해 대조해 보는 것으로서,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다.
*별념(別念) ; ‘딴 생각’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침노하다(侵擄-- 침범할 침/노략질할 로) ; (무엇이 무엇을)성가시게 달라붙어 손해를 끼치거나 해치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염념불망(念念不忘) ; 생각 생각에 잊지 않음. 자꾸 생각이 나서 잊지 못함.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

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염송(拈頌) ; 선문염송집(禪門拈頌集). 고려의 혜심(慧諶) 스님이 1226년 수선사(修禪社, 지금의 송광사松廣寺)에서 화두 1125칙(則)과 각각의 칙(則)에 대한 짤막한 해설과 게송 등을 모아 엮은 30권의 책이다. 선문염송(禪門拈頌)이라고도 한다.
*조사어록(祖師語錄) ;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전등록(傳燈錄)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30권. 송(宋)의 법안종(法眼宗) 천태 덕소(天台德韶)의 제자 영안 도원(永安道原)이 경덕 원년(1004)에 엮음.
과거칠불(過去七佛)에서 서천이십팔조(西天二十八祖)와 동토육조(東土六祖)를 거쳐 법안 문익(法眼文益, 885-958)의 제자에 이르기까지, 선종 다섯 종파의 52세, 불법(佛法)을 계속 이어 온 1,701명의 행적, 스승과 제자의 인연, 깨달음에 대한 문답, 어록을 집대성한 저술.
*사량복탁(思量卜度) :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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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말.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게송) ‘금생약불종사어 후세당연한만단’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금생에 이렇게 여러분께 말씀을 드리는 이 말을 따르지 않으면 후생(後生)에 한(恨)이 만단(萬端)이나 될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