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법 A B C D E2018. 4. 2. 21:38

§(030) 참선법(자세, 호흡, 화두) / 인도 말로 ‘붓다’는 ‘깨달음’ ‘깨달은 분’이라는 뜻. ‘불교(佛敎)’는 ‘깨닫는 가르침’ ‘깨닫는 길’ / 화두는 모든 쥐를 잡어먹는 쥐.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사량분별심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사량분별(思量分別)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닫는 것과 아는 것과의 차이는 사량분별을 사용을 해서 얻어지는 결론은 ‘아는 것’이고 지식이고, 사량분별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생사 없는 이치를 보는 것을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량분별심을 가지고 알려고 하기 때문에 깨달음은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량분별을 놓을 때 깨달음은 저절로 우리에게 딱! 붙어 있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참선은 콱! 맥혀야만 되는 것입니다. 알 수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30)—77년 입춘법회(77.02.04) (용030)

 

(1) 약 22분.

(2) 약 13분.

 

(1)------------------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 가운데에는 진즉부터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많이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하셔서 수행이 참 잘되어 가시는 분도 계시지마는,

근자에 새로 오셔서 말로는 ‘참선법(參禪法)이 좋다’고 하는 말은 몇 번 들었지마는, ‘정말 이 참선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가?’ 구체적으로 알고자 하시는 분이 여러분이 계시기 때문에 이 참선법에 대해서 아주 기초적인 것을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입춘은 다른 날이 아니라—병진년이 아직은 섣달 열이레이기 때문에 앞으로 열사흘이 더 있어야 병진년이 끝나고, 열사흘이 더 있어야 정사년이 시작하는 것으로 달력으로는 되어 있지마는, 이 절후(節候)로 볼 때에는 오늘로써 병진년은 끝이 나고 정사년 새해가 오늘부터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을 기해서 지난 일 년 동안을 냉정히 반성을 하시고 그래서 깨끗하게 다 청산을 하시고, 오늘 부터서 정사년 새해를 맞이해서 새로운 각오로 지난 묵은 삼재(三災)의 마귀를 오늘로써 다 쳐 물리쳐 버리고,

앞으로 새로 새해에 있어서는 그 마귀가 고개를 들기 전에 맥(脈)을 추릴 사이도 없이 그 근본 소굴로부터서 완전히 소탕을 해 버리는 의미로 오늘 입춘 불공(佛供), 입춘 법회를 거행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참선법에 대한, 그 마구니를 소탕하는 묘방(妙方)인 참선법에 대한 구체적인 말씀을 드리는 것이 좋을 줄 생각합니다.

 

‘참선, 참선’하면 대단히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시고,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시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절에 가서 석 달씩 결제(結制)를 해야만—그렇게 해도 잘되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마을에 계시면서 살림하면서 어떻게 그것을 가능할 것인가?

참! 그것은 조금씩 해보지마는 영 번뇌(煩惱) 망상(妄想)만 일어나고 잘 안되니까, 그 들어봤자 소용이 없을 것이다. 되지 않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상당수 계신 걸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참선법은 승속(僧俗)이 없습니다. 승속이 없고, 남녀가 없고, 노소가 없습니다. 빈부와 귀천도 없고, 지혜롭고 어리석고 한 것도 없고, 유식 무식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꼭 조용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끄러운 가운데에서도 능히 할 수 있는 것이고, 시끄러울수록 오히려 더 열심히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언제 조용한 때를 기다려서 할라고 생각하다가는 영영 일생 동안 공부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이승을 하직하게 된다고 하면은 내생(來生) 일을 누가 보장을 합니까?

다시 사람이 되어서 태어날는지, 다시 어느 생에 태어날는지, 이 불법을 내생에도 또 만나게 될는지 아무도 보장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생에 사람 몸 받았을 때에, 불법을 만났을 때에, 이러한 법보제자(法寶弟子)가 되었을 때에, 자기가 어떠한 생활 여건에 놓여 있을망정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불문하고 만난 김에 해놓지 아니하면 금방 우리는 이승을 버릴 때가 코앞에 닥쳐오는 것이고 그때에 가서, 그때에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서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참선은 앉아서도 하고, 서서도 하고, 걸어가면서도 하고, 일하면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있는 대로 앉아서 하는 것이 제일 효과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을 ‘앉을 좌(坐)’자, 좌선(坐禪)이라고 이렇게 일컬리게 된 소이(所以)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왕 앉아서 한다고 하면은 앉은 데에는 앉은 법이 있습니다.

가부좌(跏趺坐), 지금 우리 앞에 모셔진 부처님이 앉아 계신 다리, 오른다리를 왼쪽 무릎에다가 올리고, 그 다음에 왼다리를 오른쪽 무릎 위에다 올려놓은 것, 그렇게 앉은 것이 가부좌입니다마는.

 

가부좌는 습관이 들기 전에는 심줄이 땡기고 아프고 저리기 때문에 한 다리만, 한 발만 한쪽에다 올리면은 그것이 반가부좌(半跏趺坐)가 됩니다.

그렇게 오른발을 왼쪽 다리에다가 올려놓고 그러면 반가부좌인데, 그렇게 해도 다리가 저릴 때에는 다리를 바꾸어서 또 올려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다리를 그렇게 올려놓고서, 오른손을 손바닥을 위로 둘려서 딱 그 발 위에다 올려놓고, 그다음에 왼손을 포개서 엄지손을 이렇게 딱! 배끼리 이렇게 마주대세요.

그렇게 해서 배꼽 앞으로 다가서 딱 놓고, 그렇게 하고 몸을 좌우로 서너 번 흔들다가 한가운데에다 중심을 딱 잡으십시오.

 

그렇게 하고 몸은 너무 뒤로 자지바지하니 너무 잦혀도 못쓰고 앞으로 숙지 않게, 그리고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기울지 않게, 그리고 두 귀가 두 어깨 위에 단정히 놓이도록.

 

이렇게 해서 몸을 단정히 가진 다음에는 이를 딱 물고서 어금니까지 다 물고서, 혀를 위로 꼬부려 가지고 입천장에다 오그려 붙입니다. 입천장으로.

 

그렇게 하고 눈은 너무 뚝! 부릅뜨지도 말고 또 너무 가늘게 감지도 말고 평상(平常)으로 눈을 뜨고서, 자기 앉은 자리로부터서 3미터 전방이 보이도록.

그러되 3미터 전방에 어떠한 일정한 지점을 정해 놓고 그것을 응시(凝視)하는 것이 아니라, 다못 볼려면은 3미터 지점이 보일 정도로 눈을 뜨지, 실지로는 아무것도 본 바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면 일단 몸을 바르게 하는 것이 됩니다.

 

이 참선을 할려면은 첫째, 몸을 바르게 가질 것. 몸을 바르게 가진 다음에는 호흡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호흡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르게 하는 것이냐?’하면은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조용히 내쉬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호흡을 가슴으로 들어마신 호흡이 가슴에까지만 들어갔다 나왔다 이렇게 해서 아주 옅은 호흡, 그리고 빠른 호흡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참선을 할려면은 깊이 들어마셔야 하고 그리고 조용히 쉬어야 합니다. 깊이 그리고 조용히, 이것이 참선하는 사람에 있어서의 바른 호흡법입니다.

 

이 호흡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가슴을 지나서 아랫배까지 그 들어마신 호흡이 들어가도록, 아랫배가 볼록하도록까지 들어마셔 가지고, 다 들어마신 다음에는 2~3초 머물렀다가 조용히 배를 홀쪽이 하면은 그 들어갔던 호흡이 코로 나오게 됩니다. 다 내쉬어 버리면 배가 아주 홀쪽해집니다.

 

다 내쉰 다음에 또 스르르 하니 들어마셔. 들어마시면 또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볼록해진 상태에서 2~3초 머물렀다가 또 조용히 배를 홀쪽이 하면서 코로 숨을 내쉽니다.

이렇게 해서 이 호흡을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이라, ‘배[腹]로 하는 깊은 호흡’이라 해서 복식 심호흡이라고 합니다.

 

이 복식 심호흡을 계속해서 해 나가면은 혈액 순환이 잘되고, 혈액 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에 각 구석구석이 쌓여 있던 노폐물이 전부 밖으로 배설이 되고, 반면에 맑은 피, 영양가 있는 피가 다시 전신으로 돌면서 영양가를 배급을 해 주고.

 

또 호흡을 또 내쉬면은 들어마시면은 또 마셨다 내쉬었다 하는 데에 따라서 피가 아랫배로 모였다 또 아랫배에서 흩어졌다, 그러한 운동이 되풀이되는 동안에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져서,

참선을 안 하는 사람도 이 복식 심호흡을 계속해서 하게 되면은 몸이 건강해지고, 정신이 맑아지고 안정이 되어서 학생들에게도 좋고, 일반 사회 직장에 다니는 분들도 종일 피로를 느꼈을 때 이 호흡을 함으로써 그날 그날 피로를 회복을 시켜서 건강한 육체와 건전한 정신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참선을 하는 사람은 이 호흡을 항시 계속해서 함으로써 몸과 정신이 건강하고 깨끗해지기 때문에 참선도 제절로 아무 탈이 없이 참선이 잘되는 것입니다.

이 호흡법에 대해서는 대단히 간단하지마는 실지로 해 볼려고 하면은 여러 가지 구체적으로 사람 사람에 따라서 그 참선을 해 나가는데 느낌과 일러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보편적으로 이렇게 말씀을 드렸지마는 이러한 방법으로 실지로 해 보시면은 하다가 가슴이 답답하다든지 또는 아랫배에 통증을 느끼신다든지, 또는 기운이 위로 올라와서 골이 아픔을 느낀다든지,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호흡을 무리하게 하거나 또는 너무 힘을 써서 하거나, 잘못함으로써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올바르게 해도 그 과정에서 잠깐 그러헌 것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상한 것을 느끼면은 언제라도 직접 오셔서 문의를 하시면은 더 자세히 말씀을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몸을 바르게 가지고 호흡을 바르게 한, 그러한 위에 생각은 무엇을 생각하느냐?

화두(話頭)를 생각을 해야 합니다.

 

 

무엇이 화두냐?

 

우리는 하루 종일 눈으로는 보고, 귀로는 듣고, 코로는 냄새를 맡고, 입으로는 말을 하고 음식을 먹고, 손으로는 만지고, 발로는 걸어 다니고, 몸뚱이로는 춥고 더운 것을 알고 그럽니다.

그런데 눈이 본다고 하면은 금방 죽은 사람도 눈이 있지마는 아직 몸이 뜨뜻하고 눈이 아직 멀쩡한데 보이지 않습니다. 또 귀가 있다고 해서 누구나 다 듣는 것이 아니라, 금방 죽은 사람은 귀가 분명히 아직 세포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은 사람은 듣지를 못합니다.

 

또 눈으로 무엇을 골똘히 보고 있을 때에는 옆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고 무슨 말을 해도 잘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또는 귀로 무엇을 아주 골똘히 무엇을 듣고 있을 때에는 눈으로 무엇을 보아도 잘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귀로 듣는 놈이나, 눈으로 보는 놈이나, 코로 냄새를 맡은 놈이나 전부가 다, 눈 자체가 보는 것이 아니고, 귀 자체가 듣는 것이 아니고, 입 자체가 맛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놈, 듣는 놈, 맛보는 놈, 만지는 놈, 걸어가는 놈은 별도로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다맛 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입을 통해서 말을 할 뿐이지, 입 자체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눈 자체가 보는 것이 아니고, 귀 자체가 듣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명백히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들어서 볼 줄 알고, 무엇이 들어서 들을 줄 알고, 무엇이 들어서 성낼 줄 알고, 무엇이 들어서 웃을 줄도 알며, 밥 먹을 줄도 아는가?

여러분들은 ‘그것은 마음일 것이다’ 다 속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마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들어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지 ‘그 마음 자체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고인(古人)들이 편의상 ‘마음’이라고 하는 이름을 붙여 놓았을 뿐이지, 그 자체는 마음이 아닌 것입니다.

 

‘마음이다, 성품이다, 자성이다’ 여러 가지 이름은 붙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름에 지내지 못해!

사람도 ‘갑돌이다, 갑순이다’ 이름은 뭐라고도 붙일 수가 있습니다. 또 ‘갑돌이’를 ‘을돌이’라고 이름을 고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은 뭐라고 붙였거나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 자체!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름만 알아 가지고는 우리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대관절 무엇을 ‘마음’이라고 이름을 붙였는가? 대관절 ‘마음’이라고 이름 붙이기 전에 그것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생겼는가?

우리는 아무도 그것을 보는 사람이 없고, 확인을 할 길이 없습니다. 그것이 대관절 무엇인가?

 

그놈이 들어서 볼 줄도 알고 들을 줄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뭘 좋은 걸 주면은 기뻐할 줄도 알고, 아프면은 신음할 줄도 알고, 슬퍼한 일을 당하면 울 줄도 알고, 여기 앉아서도 서울 일을 생각하기도 하고, 미국을 생각할 수도 있고, 지금 오늘 이 시간에 10년 전, 30년 전, 40년 전 일도 생각할라면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대관절 그놈이 어떻게 생겼으며, 무엇이기에 그렇게 조화가 무궁무진(無窮無盡)한 것인가?

 

우리가 오늘날까지 이렇게 살아오는 동안 그놈의 명령에 의해서, 그놈의 조종에 의해서 오늘날까지 지금 이 몸뚱이를 끌고 살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비단 금생뿐만이 아니라 전생, 저 전생, 무량겁을 두고 그놈이 여기서 태어났다, 저기서 태어났다 하면서 사람도 되었다 짐승도 되었다, 천상에도 갔다 지옥에도 갔다, 부자도 되었다 가난뱅이도 되었다, 선량한 사람도 되었다 악한 사람도 되었다 하면서 오늘날까지 이 자리에까지 오신 것입니다.

 

그놈을 잠시도 떠나서는 우리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잠시도 떠날 수 없이 같이 살아오면서 왜 우리는 그놈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을까요?

 

그것을 분명히 우리가 보아 깨닫는다고 하면은 그것이 부처님인 것입니다.

 

‘부처님’이라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붓다(Buddha)’라고 한 말을 중국에서 ‘불타(佛陀)’라고 음사(音寫)를 해서, 그것이 우리나라에 전해오면서 ‘부텨, 부텨’로 되었다가 지금은 ‘부처’ 이렇게 알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라고 하는 것은 인도 말로 ‘붓다(Buddha)’가 삼천 년을 내려오면서 ‘부처’로 그렇게 전해 변해졌다.

 

그러면 인도 말로 ‘붓다’라 하는 말은 무엇이냐? ‘깨달음’ 또는 ‘깨달은 분’ 이러한 뜻인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 가르침’ ‘깨닫는 길’ 이렇게 말씀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 ‘깨닫는다’고 하는 것이 요새 학자들이 연구해서 어떠한 이치를 궁리해 가지고 알아 들어가고 자꾸 따져 들어가 가지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해서 어떠한 결론이 내려지면 그것을 사물에다가 적용을 시켜보고, 그래 가지고 잘 적용이 되면은 그것을 하나의 이론으로써 성립을 시키고 해서 이렇게 차츰차츰 알아 들어가는 그래서 아는 것,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그것은 ‘아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사량분별심을 떠나서—사량분별심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사량분별(思量分別)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닫는 것과 아는 것과의 차이는 사량분별을 사용을 해서 얻어지는 결론은 ‘아는 것’이고 지식이고, 사량분별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생사 없는 이치를 보는 것을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13분13초~34분43초)

 

 

 

 

 

(2)------------------

 

깨닫는다고 하니까, 굉장히 우리의 중생으로서는 전연(全然) 인연이 없는 아주 저 어디 극락세계나 가야 그 깨닫는다고 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렵고, 우리로부터서 먼 데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시겠지마는,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데 있는 것입니다.

 

사량분별심을 가지고 알려고 하기 때문에 깨달음은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량분별을 놓을 때 깨달음은 저절로 우리에게 딱! 붙어 있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을 하는 데 있어서 몸을 바르게 가지고, 그다음에 호흡을 고르게 한 다음에는 화두를 생각을 해라.

 

화두를 생각하는 것은 사량분별이 아니냐?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화두를 의심(疑心)한다’고 하는 것은 분명 엄격히 말하면 생각이 아닌 것은 아니지마는, 이리저리 자꾸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서 따져 들어간다고 하면은 그것은 분명 사량(思量)이지마는.

따져 들어가지 말고, 무조건하고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이 몸뚱이 끌고다니는 놈이 무엇인고?’ 이렇게만 의심을 하신다고 하면은 이것은 사량이면서 사량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참선하는 데는 제일 해롭고, 금지된 것이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버릇, 이것을 제일 엄격히 단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다니는 이놈이 뭣고?’

 

성이 날 때도 ‘이뭣고?’ 무엇이 들어서 성낼 줄을 아느냐?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근심 걱정이 있을 때도 ‘이뭣고?’

 

우리의 생각에서, 우리의 마음에서 쉴 새 없이 일어나는 어떠헌 생각, 또 그놈을 바로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 한다면은—일어나는 생각이 번져 가지고 삼재가 되고, 사백사병(四百四病)이 되는데,

일어나는 생각이 퍼지기 전에 그놈으로 ‘이뭣고?’ 이렇게 한다고 하면은 일어나는 그 생각은 나로 하여금 생사해탈(生死解脫)할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법문(法門)이요, 발판이요, 나의 호위병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말씀이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그 말을 마음속 깊이 새겨듣고, 이 자리에서부터 이 공부를 충실히—생각, 생각 헛되이 날려보내지 말고, 일어나는 생각을 바로 되돌려서 ‘이뭣고?’

 

첫째, 몸을 단정히 하고, 깊은 그리고 조용한 호흡을 하면서 ‘이뭣고?’

차 타고 가면서도 하고, 걸어가면서도 하고, 앉아서도 하고, 밥 먹으면서도 하고, 똥 누면서도 하고, 소지(掃地)하면서도 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이뭣고?’

 

“번뇌 망상이 일어나서 못한다” 그러한 말씀은 아직 참선을 할 줄 모르는 말씀이여.

일어나는 번뇌 망상을 바로 그놈을 버릴려고 하지 말고, 그놈으로 ‘이뭣고?’를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쥐를 잡을려면 고양이로 보통 쥐를 잡습니다마는, 그것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쥐를 잡는 데에는 쥐를 동원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입니다.

 

쥐를 잡아 가지고 항아리 속에다 넣어 놓고는 소고기도 조금—며칠을 굶긴 다음에 소고기를 사다가 조금씩 떼어서 먹입니다.

그러다가 조금씩 조금씩 먹여서 안 죽을 만큼씩만 먹여서 죽지 않을 정도로만 하되 계속 배가 고프게 만든 다음에 다른 쥐를 한 마리를 잡아서 넣어 줍니다. 그러면은 그놈이 어떻게 배가 고프던지, 그 쥐를 기어코 잡어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또 얼마 있다 또 쥐 한 마리를 넣어 줍니다. 또 쥐를 잡어먹습니다. 그래서 쥐가 쥐 잡어먹는데 아주 선수가 되게 됩니다.

그런 다음에는 완전히 쥐를 잘 잡어먹게 될 때에 그 쥐를 풀어서 놔두면은 쥐구멍으로 자유자재로 다니면서 모든 쥐를 다 잡어먹게 되는 것입니다.

 

고양이는 뭄뚱이가 커서 쥐구멍에는 들어가지를 못하기 때문에 구멍 속에 들어가 버린 뒤에는 쥐가 나오기 전에는 잡어먹을 수가 없지마는, 이 쥐는 마음대로 쥐구멍으로 드나들면서 잡어먹는데.

고양이 소리만 나도 쥐는 벌써 알고서 다시는 나오지를 않지마는, 쥐가 다니는 데에는 아무도 그 쥐를 경계하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나오게 됩니다. 나오는 쪽쪽 잡어먹고, 안 나오면 구녁으로 들어가서 잡어먹고 해서, 한 쥐가 모든 쥐를 다 소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농담같은 얘기지마는, 화두라고 하는 것은 모든 쥐를 잡어먹는 쥐라고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화두도 분명 우리의 중생의 사리상량으로 처음에 시작을 하지마는, 옳은 방법으로 자꾸 염념상속(念念相續)으로 화두를 들고 화두를 참구하고 해 나가다 보면은 사리상량이 사리상량 아닌 사리상량으로 되어 가지고,

일체 번뇌망상, 무량겁으로 지어온 모든 업(業)을 이놈이 다 주워 삼키게 되고, 다 주워 삼킨 다음에 배가 툭! 터져서 죽어 나동그라질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 화두 참선법은 달마 스님이 천삼백여 년 전에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셔 가지고 달마 스님 밑에 2조(二祖) 혜가 대사,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선사에 이르러서 비로소 ‘이뭣고?’라고 하는 화두를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하택 신회선사에게 ‘이 무슨 물건이냐?’

“내게 한 물건이 있으니 위로는 하늘을 괴우고 아래로는 땅을 괴우며, 해보다도 더 밝고 옻칠보다도 더 검은데, 대관절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하고 물었습니다.

하택 신회선사가 대답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요, 하택 저의 불성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육조(六祖)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앞으로 공부를 많이 해 가지고 크게 되어 보았자 지해종사(知解宗師)밖에는 못되겠다, 강사밖에는 못되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룻날 남악 회양선사가 어려서 왔습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남악 회양선사는 육조 스님이 물으신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고 물으신 데 대해서 콱! 맥혀 가지고 뭐라고 말씀을 해야 좋을지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길로 “대관절 무슨 물건이냐? 무슨 물건이냐?” 콱! 맥힌 상태에서 8년이 지내갔습니다. 그때는 화두라고 하는 그런 말도 없었을 때입니다.

대관절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고 물으신 데 대해서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꽉 맥혀 가지고 8년만에사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습니다.

 

참선은 콱! 맥혀야만 되는 것입니다. 알 수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머리가 영리해 가지고 퍼뜩하면 자기가 그동안에 보고 듣고, 배우고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을 해 가지고 이리저리 따져서 자기 나름대로 결론을 맺으려고 하고 알아 들어가고, 이것은 참선이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한다고 해도 이것은 생사해탈과는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생사(生死)의 업(業)을 조장하는 데에 그치는 것입니다.

 

지식과 이론으로 따져 들어가는 참선은 56억 7천만년에 뒤에... (녹음 끊김)

 

.... 해탈할 수 있는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정말 열심히 열심히 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첫째, 몸을 바르게 가지고, 그다음에 호흡을 바르게 하고,

세 번째 가서 생각을 바르게 하는데, 이론으로 따지지 말고 ‘이뭣고?’ ‘이뭣고?’

 

계속 ‘이뭣고?’하는 동안에도 호흡은 깊이 들어마셨다가 잠깐 아랫배에다가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는 복식 심호흡이 계속되면서, 복식 심호흡이 계속되는 동안 우리의 아랫배는 앞으로 나왔다 홀쪽해졌다 또 볼록해졌다 그러는데,

그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아랫배 거기에다가 ‘이뭣고?’한, 알 수 없는 화두 의심을 아랫배에다 두고 관조하도록.

 

이렇게 대략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법에 의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시게 되면은 중간에 반드시 ‘내가 이 옳게 하는 것인가?’ 또는 ‘잘못하는 것인가?’ 궁금한 일이 있으시거든 저한테 적당한 기회를 타서 오셔서 문의를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입춘 법회일을 맞이해서 여러분들은 이미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음으로 해서 삼재 소멸하는 입춘 불공을 드리셨고, 삼재와 무량겁 지으신 모든 업을 소멸하고, 앞으로 다가오는 모든 삼재와 마왕(魔王) 파순(波旬)을 물리치는 부작(符作)을 여러분은 다 노나 가지셨습니다.

 

문제는 그 부작을 얼마만큼 잘 활용을 하시느냐? 그것은 여러분의 신심(信心)과 여러분의 정성과 노력에 달려 있을 따름입니다.

이상으로써 말씀을 맺고 이어서 법요식을 진행하겠습니다.(34분44초~47분53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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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절후(節候 철 절/철·절기·기후 후) ;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기후의 표준점. 15일 내지 16일에 한 번씩 돌아온다.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④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인한 육도윤회(六途輪廻)의 재난.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송담스님(No.336)—87년 8월 첫째일요법회(87.08.02)에서. (6분7초)

그러나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또 바람이 불고 한 그러한 재난은 사실은 큰 재난이라고 할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수재(水災)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화재(火災)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팔풍(八風)의 그 풍재(風災), 이러한 재난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수재가 일어나서 육백 명이라고 하는 인명(人命)을 앗아가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훨씬 참혹하고 무서운 재난은 우리 낱낱이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재난,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몰아넣는 그러한 무서운 재난인 것입니다.

 

비가 폭우가 쏟아지고 태풍이 불어서 얻은 재난은 재산을 앗아갑니다. 재산은 또 부지런히 벌면 보충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설사 그러한 수재로 인해서 생명을 잃었다 하드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지옥에 가란 법은 없습니다.

몸을 바꿔서 좋은 데에 태어날 수도 있고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할 수도 있지마는,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화재로 일어난 그 재난은 영락없이 우리를 축생(畜生)이나 또는 아귀(餓鬼)나 지옥(地獄)으로 우리를 밀어붙이고 마는 것입니다.

 

무량겁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마음속에 그 수재와 화재로 인해서 많은 피해를 입어 왔습니다. 그 탐진치 삼독, 오욕락(五欲樂), 팔풍경계에 우리는 잠시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지금 이 폭풍이나 태풍 이런 것은 여름 한때 장마철에 지나가 버리고 며칠간 그러다가 그치면 또 조용합니다. 또 내년에 이맘때 되면은 또 그러한 것이 오겠습니다마는, 그래도 1년에 한 번 정도 오는 거야 우리가 미리미리 취약지구에 대한 대처를 해 나가고 모다 댐이라든지 그런 것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잘 해나간다면 언젠가는 큰 피해를 막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 그건 온 나라의 여러 국민들이 모다 합심을 해서 모다 의연금품을 내고 나라에서도 모다 구제를 하고 그러면 어느 정도 또 상처를 또 아물게 할 수가 있겠습니다마는.

 

우리의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그 태풍과 폭풍, 폭우 모다 그런 것은 아무도 우리 자신을 대신해서 그것을 봐줄 사람이 없습니다.

나라에서도 어찌해 볼 수가 없고, 부모형제라 하더라도 어찌 해볼 수가 없고, 오직 나 자신의 마음의 수재와 화재와 풍재는 나 자신의 수행을 통해서만이, 활구참선을 통해서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대단히 이 마음속에 일어나는 풍재와 화재 또는 수재 이런 것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번에 지나간 그러한 폭풍이 유(類)가 아닌 것입니다. 폭우가 비교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고대로 놔둔 채,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자신을 갖다가 지옥구덩이에 갖다가 처박기도 하고, 축생의 뱃속에—이 사람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독사가 되기도 하고, 호랑이가 되기도 하고, 또 아귀와 그런 악마가 되게 하는 그러한 무서운 것입니다.

 

순전히 ‘한 생각’으로 인해서, 그 한 생각을 자기가 다스리지 못해 가지고 그러한 육도(六途)를 찰나간(刹那間)에 윤회(輪廻)를 하면서 백 년의 꿈을 꾸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입니다.

*맥(脈을) 추다 ; ①(사람이) 잃었던 기운이나 힘을 다시 돌이키다. ②(사람이) 기운이나 힘을 쓰다. ③(사람이) 용기를 내거나 기를 펴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 · 등(燈 )· 꽃 · 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묘방(妙方) ; ①기묘한 방법. ②신묘하고 효험이 뛰어난 처방(處方).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승속(僧俗) ; 스님과 스님이 아닌 속인(俗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내생(來生) ; 죽은 후에 다시 맞이하는 미래의 삶.

*법보제자(法寶弟子) ; [참고] 89년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여기 (용화선원 대웅전 법보단)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대웅전 법보단, 舊 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소이(所以 경우 소/까닭 이) ; 까닭(일이 생기게 된 원인이나 조건).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자지바지 ; 좌선(坐禪)할 때 몸에 너무 힘을 주어, 몸 전체가 긴장으로 인해 뻣뻣하게 되어 있는 모습. 좌선 할 때는 몸을 단정(端正)히 하면서도 긴장과 힘을 빼야 한다.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 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응시(凝視 엉길 응/보일 시) ; ①시선을 한곳으로 모아 집중해서 뚫어지게 바라봄. ②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깊이 살핌.

*제절로 ; ①‘저절로(작위적인 노력없이 자연적으로)’의 사투리. ②’스스로(자기 자신의 힘으로, 다른 것의 간섭이나 영향을 받지 않고 저절로)’의 사투리.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무궁무진(無窮無盡 없을 무/다할 궁/없을 무/다할 진) ; ①수량이 끝도 없고 다함도 없을 정도로 많다. ②끝도 없고 다함도 없음.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2)

 

*전연(全然 온전할 전/그러할 연) ; 주로 부정어와 함께 쓰여 ‘조금도’, ‘아주’, ‘완전히’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그 내용의 정도를 가장 높은 수준으로 강조할 때 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두절미(去頭截尾) ; 말이나 사건 등의 부차적인 설명은 빼어 버리고 사실의 요점(要點)만 말함.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사백사병(四百四病) ; 인체에 일어나는 병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사대(四大)—지(地)·수(水)·화(火)·풍(風)의 부조화로 각 요소에 대해서 101가지 병이 있다고 한다.

지(地)와 화(火)에서 일어나는 열병(熱病)이 202가지, 수(水)와 풍(風)에서 일어나는 냉병(冷病)이 202가지로 구별하기도 하는데, 경전에 그들에 대한 설명이나 해석이 일정하지 않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소지(掃地 쓸 소/땅 지) ; ①마당(땅)을 쓺. 또는 그 일을 맡은 사람. ②청소.

*염념상속(念念相續) ; 생각 생각이 잊지 아니하고 계속 이어 나가다.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달마 스님, 하택신회, 육조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지해종사(知解宗師) ; 참선 공부를 알음알이[知解]로 따져서 해석하고 강론하고 공부해 가는 강사나 이론가를 말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마왕(魔王) 파순(波旬) ; 천마(天魔). 욕계(欲界)의 제육천(第六天) 곧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임금은 곧 마왕(魔王)이니, 그 이름이 파순(波旬)이다. 그는 항상 불법을 파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불도(佛道)를 공부하는 이가 있으면 그의 궁전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누구나 불법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낼 때에 곧 천마가 따르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한 생각 일어나는 그것이 곧 천마다.

*부작(符作) ; ‘부적(符籍)’의 변한 말.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성도재)2014. 1. 9. 15:33

 

 

§(582) 찬불게 / 팔상성도(八相成道) / 부처님께서 무엇을 깨달으셨느냐? / ‘내가 나를 깨닫는다’ / 간화선(看話禪) / 가리켜서 되는 아니야, 깨달아야지.

 

**송담스님(No.582) - 96년(병자년) 성도재 법어(96.12.08.음) (용582)

 

(1) 약 19분.

(2) 약 14분.

(3) 약 14분.

 

(1)------------------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다

나무~아미타불~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허되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로다

나무~아미타불~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이요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다.
하늘위, 하늘아래 부처님과 같은 분이 없고, 시방세계에도 이 부처님께 견줄만한 사람이 없다.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하되, 세간에 있는 모든 것을 내가 다 보았지만은,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다. 일체 부처님과 같은 그러한 거룩한 대성현(大聖賢)이 없더라.

이 게송은 저 무량겁 전에 저사불(底沙佛)이라고 하는 부처님 밑에 미륵 보살과 석가 보살 - 석가모니부처님이 부처님이 되시기 이전 수행과정에 계실 때 - 두 분의 제자가 저사불 밑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가,

어느 날 저사불께서 두 제자 가운데에 누구를 먼저 출세(出世)를 시켜야 할 것인가? 두 제자를 가만히 관찰을 해 보니까, 깨달은 지혜의 면에서는 미륵 보살이 더 앞서있고, 중생을 교화하는 그러한 면에 있어서는 석가 보살이 더 앞서있다.

왜 그러냐 하면은 미륵 보살은 석가 보살보다도 9겁(劫)을 더 먼저 수행해 간 선배였었어. 그렇기 때문에 미륵 보살이 지혜의 면에서는 앞서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나 저사불이라는 부처님께서 생각하실 때 삼도(三途) 고해(苦海)에서, 생사윤회 속에서 헤매고 있는 저 중생들을 위해서 그 중생들을 자비원력(慈悲願力)으로 제도하는 그 일이 급하기 때문에 석가 보살 제자를 먼저 출세를 시키는 것이 더 낫겠다. 이렇게 생각이 들어서,

“내가 등산을 할 테니 나와 같이 가지 않겠느냐?”
“예,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래서 방석을 가지고 따라갔다.

따라갔는데 어떻게 ‘저사 부처님’이 걸음이 빠르시던지 앞으로 훨훨 가셨어. 부지런히 따라간다고 따라갔는데 중간에서 놓쳤다 그말이여. 그래서 숨을 헐떡거리면서 산으로 올라갔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여기 계신가?' 이리 찾아보고 이 골짜기도 찾아보고 이 봉우리도 찾아보고, 찾아보니까 어느 굴이 있는데 굴속을 이리 가니까 속에서 환히 광명이 비춘다 그말이여. 그래서 아하! 여기 계신가보다.

굴속으로 한 발을 디뎌 놓는데 거기에 저사불(底沙佛)이 터억 가부좌를 하고 앉아 계시는데,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 가지고 온통 온 몸에서 환한 햇빛보다도 더 밝은 광명을 놓으시면서 앉아 계시는데, 그 거룩한 모습이 뭐라고 형언할 수가 없어.

그래 가지고 들었던 발을 내려놓고 또 이쪽 발을 들어서 그래서 걸어서 들어가야 할 판인데, 한 발 들은 채로 칠일칠야(七日七夜)라고 하는 시일이 지나갔다 말이야.
그 칠일칠야 시일이 지나가면서 읊은 노래가 바로 이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 시방세계역무비(十方世界亦無比) 세간소유아진견(世間所有我盡見) 일체무유여불자(一切無有如佛者) 이 게송을 찬불게(讚佛偈),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이다'해서 찬불게라 하는데,

1주일 동안을, 이 게송을 합장을 하고 한 발을 들은 채 일주일이 지내도, 일주일을 지낸 시간을 완전히 잊어버린 상태에서 그 저사 부처님의 그 거룩한 모습에  완전히 황홀한 지경에 빠지고 그래 가지고 미륵 보살보다 9겁을 뒤져 있는 처지였었는데,
이 게송을 칠일칠야를 이렇게 읊었는데, 칠일칠야가 1시간이 지냈는지, 30분이 지냈는지 전혀 시간이 지나간 거를 모른 상태에서 이 게송을 읊어 가지고 9겁을 뛰어넘어 견성성불을 하셨다.

오늘 병자년 납월팔일(臘月八日) 석가모니 부처님 성도(成道)하신 법요일을 맞이해서 찬불게를 읊었습니다. 납월팔일 법문은 여러분과 같이 조실스님께서 설하신 녹음법문을 통해서 법문을 잘 들었습니다.

이 납월팔일(臘月八日) 성도재(成道齋), 부처님의 사대((四大) 성스러운 재일(齋日)이,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사월초파일, 그 다음에 출가하신 부처님 출가하신 날, 또 납월팔일에 성도하신 날, 그리고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열반재(涅槃齋), 이렇게 해서 사대 성스러운 날로 우리가 기념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부처님께서 - 어느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다 마찬가지지만 -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실 때는 여덟 가지의 상, 팔상(八相)으로 그래서 팔상성도(八相成道)라.

그래서 여덟 가지의 상(相)으로서 부처님의 일대기를 특별히 표현을 하는데, 그 여덟 가지 가운데,

첫째는 도솔천(兜率天) - 모든 부처님이 출세하실 때에는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계시다가 거기서 사천세가 되면은 시절이 인연이 인자 돌아와서 사바세계(娑婆世界)로 내려오시는데,
내려오실 때 내가 어느 나라의 사바세계도 서양, 동양 세계 각국이 있는데 어느 나라에 탄생하는 것이 가장 좋겠는가? 그걸 다 살펴보시고 또 어느 집에 어떻게 탄생하는 것이 좋겠는가를 관찰해 가지고,
결국은 가비라(迦毘羅)왕국 지금은 네팔이라고 그럽니다마는, 가비라왕궁의 태자로 탄생하셨습니다. 탄생하실 때에 흰 코끼리를 타고서 내려오셨어.

둘째는 입태(入胎)인데, 마야부인(摩耶夫人)의 왼쪽 옆구리를 통해서 흰 코끼리를 타고 들어가셨다. 그것이 둘째 번 입태고,

셋째에 주태(住胎). 태에 머무르신 것인데, 모태(母胎)에 계시면서 하루에 여섯 번을 저 하늘나라에 천신들을 위해서 설법을 하셨다.  태중(胎中)에 계시면서 어떻게 하늘나라의 모든 신들을 위해서 설법을 하셨는가?
그것은 오늘날 과학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우리라 생각이 듭니다.

네 번째는 출태(出胎)인데, 탄생하신 것입니다. 사월초파일 - 갑인년 사월초팔일에 룸비니 동산에서 오른쪽 옆구리를 통해서 탄생하셨다. 들어가실 때에는 왼쪽 옆구리로 들어가셨는데, 나오실 때에는 오른쪽 옆구리로 탄생을 하셨다.

탄생을 하시자마자 눈으로는 사방을 둘러보고, 일곱 걸음을 걸으시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하는 대 사자후(獅子吼)를 하셨다고 경전에 전해 내려옵니다.
어떻게 금방 탄생한 어린 애기가 그렇게 거닐 수가 있었으며,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사자후를 하실 수가 있었을 것인가? 이것도 역시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삼천 년을 통해서 부처님을 믿고 불법을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의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진묵겁(塵墨劫) 전에 확철대오해서 성불하신 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방편(方便)으로 사람 몸을 받아서 태어나셨기 때문에,
능히 삼십이상과 팔십종호를 다 갖추고 삼명육통과 팔해탈을 다 갖추신 대성현이 방편으로 태어나셨다고 본다면, 우리 불자로서는 고대로 믿어질 수 밖에는 없는 일입니다.

다섯 번째는 19세 또는 경전에 따라서는 25세에 성(城)을 넘어서 출가를 하셨다. 사문유관(四門遊觀)을 하시고 무상함을 깨달으시고 왕궁을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서 수도를 하셨다.

여섯 번째는 성도(成道)인데, 6년 또는 12년의 고행(苦行)과 낙행(樂行)을 하신 끝에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12월 초팔일-납월 팔일 새벽에 뜨는 그 밝은 별을 보시고서 확철대오를 하셨다.

진묵겁(塵墨劫) 전에 이미 다 깨달으신 부처님이 우리에게, ‘사람이 바른 법에 의지해서 도를 닦으면 확철대오 할 수 있다’고 하는 그것을 시범으로 보여주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일곱 번째는) 확철대오하신 뒤로 녹야원(鹿野苑)에서 교진여 등 5비구를 향해서 사제법(四諦法)을 설하시고,
그것을 필두로 해서 80세에 열반하실 때까지 49년 동안을 아함십이방등팔(阿含十二方等八), 이십일재담반야(二十一載談般若), 종담법화우팔년(終談法華又八年)해서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시고,

(여덟 번째는) 80세를 일기로 사라쌍수(娑羅雙樹) 아래서 열반상(涅槃相)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  여덟 가지 상(相)을 부처님의 팔상이라 팔상성도(八相成道)라 하는데, 어째서 성도(成道)는 여섯 번째 가서 성도인데, 여덟 가지 상에다가 성도를 붙였느냐?

여덟 가지 상(相)이 바로 이 성도(成道)가 그 팔상(八相)중에 핵심이요 중심이기 때문에 - 탄생하셔서 열반하실 때까지의 일생 모든 것이 성도(成道)의 그 과정이 그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 여덟 가지 상, 전부 합해서 팔상성도라고 그렇게 말을 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이 범어(梵語)로 ‘붓다’인데, ‘붓다’라고 하는 뜻이 ‘깨달음’ 또는 ‘깨달은 사람’을 갖다가 붓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탄생하셔서 열반하실 때까지 모든 것이 깨달음이 핵심이요, 전부가 깨달음이다.
깨달음을 위한 것이고, 깨달음에 의한 것이고, 바로 깨달음에 의해서 일생을 사신 것이다 그말이여.(처음~19분4초)

 

 

 

 

 

(2)------------------


그러면 불교학자들은 '과연 (부처님께서) 갑인년 납월팔일(臘月八日) 밝은 별을 보시고 무엇을 깨달으셨느냐?'

학자들은 그 많은 경전을 샅샅이 뒤져서 대관절 그 ‘깨달으신 내용이 무엇이냐?’ ‘무슨 도리(道理)를 깨달으셨느냐? ’ 학자마다 거기에다 초점을 맞추고 많이 연구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현대 학자들은 '십이인연(十二因緣) 법을 깨달으셨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중심사상이고, 그래서 십이인연 진리를 연기법(緣起法)을 깨달으셨을 것이다' 이렇게 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논문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산승(山僧)은 그렇게 보는 것은 학자로서의 소견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아무리 그이가 머리가 좋은 세계적인 석학이라 하더라도, 중생 소견으로 깨달음의 내용의 대해서 '이것이다' 이렇게 말하기는 어려우리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깨달음이라 하고, 깨달으셨다면 이러한 것을 깨달으셨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고,
코끼리를 장님이 배를 만져보고는 '벼람박 같다' 하고, 코를 만져보고는 '구렁이 같다'고 하고, 코끼리 다리를 만져본 장님은 '코끼리라는 게 기둥과 같이 생긴 거다' 이렇게 말한 거와 같으리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것을 깨달은 가에 대해서는 산승도 역시 '이러한 이치를 깨달으셨을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각자(各自)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에 의해서, 조사들이 개발해 내놓은 최상승법에 의해서 여법(如法)하게 목숨 바쳐서 수행을 해 가지고 스스로 깨달아 보기 전에는, 알 수도 없고 말하기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일등능속백천등(一燈能續百千燈)이라  심인광통법령행(心印光通法令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연휘열염전분명(聯輝列焰轉分明)이라  천성부전취불멸(千聖不傳吹不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등능속백천등(一燈能續百千燈), 한 등(燈)에 불을 밝히면, 그 한 등의 심지로 인해서 백 등, 천 등, 만 등의 수 없는 등에 그 등불을 붙여서, 수천만 등의 불을 붙여서 온 세상을 다 밝힐 수가 있을 것이다.

심인광통법령행(心印光通法令行)이여, 그 한 등(燈)이라 하는 것은 한 부처님의 깨달음의 등(燈)인데, 한 부처님이 깨달음으로 해서,
많은 제자들 많은 중생들에게 그 깨달음에 이르는 법문(法門)을 설해 가지고 그 법문에 의해서 수행을 해 가지고, 각자가 자기 마음속에 깨달음의 등불을 밝힌 것에다가 빗대서 읊은 게송인데,

그 마음에 심인(心印)에 등불이 환히 한사람 사람마다 다 밝혀서 온 세상에 밝혀진다면, 불법(佛法)의 법령(法令)이 온 세상에 가득할 것이다.

연휘열염전분명(聯輝列焰轉分明)이요, 그래 가지고 온 세상에 한 등불에 의해서 다른 등불에 밝히고, 한 등불이 수천 수만 등에 밝히니 그 수천 수만 등이 다시 또 수천 수만 등에 밝혀 가지고 온 세계가, 삼계(三界)가 깨달음의 등불로 가득 차게 된다면,

천성부전취불멸(千聖不傳吹不滅)이다. 그 깨달은 진리는 아무리 부처님이라 하더라도 그 깨달음을 어떤 등불에 등불을 붙이듯이 각자 이렇게 붙여 주기는 어려운 거고, 깨달음에 나아가도록 법을 설하셔.

진짜 깨닫기는 자기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거든. 그래서 이 ‘참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전할 수가 없는 것이여.

천성(千聖)도 전할 수 없는 이 진리의 등불은 아무리 폭풍이 불어도 영원히 꺼지지 아니할 것이다.

‘이 깨달음의 진리를 전할 수가 없다’고,
전할 수 있고 말로 할 수 있다면 ‘참 진리’가 아니고 ‘참 법’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과거의 모든 부처님은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시고, 역대 조사도 다 수 없는 설법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가리켜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리켜 가지고 되는 것이라면 진즉 우리가 다 성불(成佛)했을 것이고, 이 사바세계에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마는, 가리킨다고 되는 것은 아냐.

가리킨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은, 부처님께서는 49년 동안을 인도 천지를 다니시면서 제자들과 같이 걸식(乞食)을 하시면서 그 많은 설법을 하셨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 이 주안 염전 갯벌 가에다가 용화선원을 창설해 가지고, 77세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오늘 아침에 법문 가운데도 공양을 잘 못 잡수셔서 새벽에 허기가 진 상태에서도 그런 사자후 법문을 하셨습니다.
법문 가운데도 ‘먹은 것이 없어 기운이 없어서 말을 못해 그만 마친다’는 이런 가슴 아픈 말씀이 나왔습니다마는,

말을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은, 끊임없이 말을 해야 하고 가리켜야 합니다.
배워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여.

강사는 강사대로 인연 있는 사람을 위해서 자기가 일생동안 공부한 부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리켜야 하고, 불교학자는 학자대로 일생동안 공부한 것을 학생들에게 교리를 강좌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상 ‘내가 나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가리킬 수도 없고 배워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의 부처님과 조사들께서 직접 깨달으시고, 그 깨달으신 경험에 의해서 지도하시는 그 방법에 의지해서 우리도 열심히 해야만 되고,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여.

그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이요 활구참선(活句參禪)인 것입니다.

무엇이 최상승법이냐? 내가 나를 찾는 공부여.

화엄경, 법화경, 금강경, 원각경 그런 많은 대승경전이 있고, 소승경전이 있습니다마는,
학자들이 이것은 대승(大乘) 불교다, 이것은 소승(小乘) 불교다, 학자들이  연구상 편의상 그렇게 갈라놓은 것이지,
부처님의 설법에 어찌 분명하게 콩과 팥을 가르듯이 소승, 대승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서, 학자들이 말하는 소승법을 설한다 해도 소승 속에 바로 최상승법이 들어 있는 거고, 대승을 설하시되 대승경전 속에서도 얼마든지 소승불교 교리가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에 집착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마는,

이 최상승법이라 하는 것은 언어, 문자로 연구해서 들어가는 공부가 아냐.
불립문자(不立文字) 견성성불(見性成佛)이야.

학술적으로 이론적으로 연구하고 따져서 들어가는 공부가 아냐.
그래서 이것을 불립문자라 그러는데, 내가 나를 찾는 것이여.(19분5초~32분23초)

 

 

 

 

 

(3)------------------


‘내’라는 게 무엇이냐?

사람들은 ‘내’라 ‘나’다 하면은, 이 사지백체(四肢百體)에 안이비설신의 이목구비(耳目口鼻)를 갖춘 이 육체(肉體)를 기준으로 해서 ‘나’다 그러고,
호적도 역시 아무 날 아무 시에 아무 아버지와 아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 그 사람을 기준으로 해서 거기에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해서 호적에 올리고, 그 사람 하면 바로 그 육체를 기준으로 해서 말하는 것이나, 어찌 그것이 ‘나’ 일수가 있겠습니까?

‘나’라고 하는 것은 육체, 그 육체 속에 들어있는 나의 주인공(主人公)이 있어. 이런 말도 분명히 말하면 어폐(語弊)가 있는 말이지만, 우리는 부득이(不得已) 해서 이러한 방편(方便)으로 말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 육체는 이 주인공이 입고 있는 한 벌의 옷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주인공이 이 속에 있기 때문에 그 주인공이 입고 있는 옷이 바로 이 육체다.
우리는 그 육체 위에 다시 또 여러 가지 옷을 입고 살고 있습니다마는, 우리의 참 나, 우리의 주인공이 이 몸뚱이 속에 들어 있어.

이 옷을 벗으면 우리 육체가 있듯이, 육체 속에는 우리의 주인공이 들어 있는데, 해부(解剖)를 해 봤자 오장육부를 샅샅이 뒤져도 그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나오지는 않지만, 분명히 주인공이 들어있기 때문에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기뻐할 줄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도 알고, 가만히 앉았어도 시간과 공간의 걸림이 없이 왔다 갔다 하네.

10년 전,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어릴 적 일도 생각만 하면 환하고, 몸은 여기 있으면서도 서울역하면 서울역이 환하고, 여러분의 집안을 생각하면 집에도 왔다 갔다 할 수가 있다 그말이여.

천만리 멀고 가까운 곳이 상관이 없고, 시간적으로도 과거, 미래 맘대로 왔다 갔다 해.

그러한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이, 우리 모두 낱낱이 다 주인공이 있다.

그걸 마음이라 하기도 하고, 성품(性品)이라 하기도 하고, 진여(眞如)라 하기도 하고, 불성(佛性)이라 하기도 하고, 이 경전마다 법계(法界)니 진여니 불성이니 여여(如如)니.... 경전에도 경전마다 이름이 다 다르고, 세계 각국에 다 나라마다 말이 다 다르지만,

이름이야 일법천명(一法千名)이여, 한 법(法)에 천 가지 이름이 있어서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볼래야 볼 수도 없고,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지만은, 분명히 소소영령한 놈이 있다 그말이여.
이 육안으로 볼 수는 없어.

그것을 방법에 의해서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에 의해서 그것을 찾는 것이다 그 말이여.

어떻게 찾느냐?
종파(宗派)에 따라서 찾는 방법이-조사(祖師)들의 방편에 따라서 여러 가지 법이 있지만,

그 법 가운데 한국의 선지식들은 임제종(臨濟宗)의 간화선(看話禪)이라는 방법,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함으로써 화두를 타파(打破)해 가지고 자기의 ‘참 나’를,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도록 하셨다 그말이여.

여러 종파가 자기 종파의 방법이 좋다고 다른 종파의 방법을 서로 비난하고 헐뜯고, 과거의 역사에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마는, 우리는 그런 것에 관여할 필요가 없고,

화두를 자기가 믿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지정을 받아 가지고,
화두가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화두가 있고, 문헌상에 오르지 아니한 화두는 이 우주법계에 가득 찬 것이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화두 아닌 것이 없고 공안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멋대로 아무거나 하나 선택해 가지고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래서는 안 될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 멋대로 화두를 선택하면 하다가 좀 잘 안되면 언제라도 자기 멋대로 버리게 되고, 또 다른 화두를 가지고 하고, 이러한 폐단이 있습니다.

우물을 팔 때 조금 파봐서 안 나온다고 장소를 옮겨서 또 파고 또 파고 몇십 군데를 파봤자 금방 나서 나온 물은 그건 건수(乾水)지 참으로 좋은 물이 아닙니다. 장마 때는 꿀꿀 나오다가 가물 때는 끊어져버리는 그런 물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열길, 스물 길, 서른 길, 백 미터, 이백 미터 파고 들어가서 암반이 나오면 그 암반을 뚫고 그 암반 밑에서 나온 물이라야 사시절 가뭄과 장마에 상관없이, 변함없이 좋은 물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뜨신 물이 꿀꿀 솟아나올 것입니다,

화두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자기가 믿는 선지식한테 화두를 타야 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 멋대로 자꾸 화두를 바꿔 싸면 그 사람은 정말 큰 깨달음을 얻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화두를 하나 가장, 선지식이 보아 가지고 이 사람에게는 이런 화두가 적당하겠다. 그 화두를 딱 지정을 해주면,
잘 되거나 안 되거나 정말 이 법을 위해서 자기의 몸과 목숨을 바칠 생각을 해 가지고, 잘 된다고 해서 잘된 데에 빠지지도 말고,
잘 안된다고 해서 번민하고 ‘이 화두가 안 좋아서 그러나? 화두가 나한테 안 맞아서 그러나?’해 가지고 화두를 제멋대로 바꿔 가지고 이 화두로 좀 껄적껄적 해보다 안 되면 저 화두를, 평생을 해 봤자 진정 참 깨달음에는 이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누구고 화두를 타 가지고 정진을 하는데 처음부터서 잘 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아무리 숙세(宿世)에 선근(善根)이 있어서 일언지하(一言之下)에 툭 터지는 그런 사람일 경우는 몰라도, 대부분이 우리가 다 중근기·하근기인데, 처음에는 다 어렵지만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참선법을 믿기 때문에, 최상승법을 믿기 때문에, 이 정법을 믿기 때문에, 그 선지식을 믿기 때문에 한 화두를 가지고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이 한 화두를 가지고 목숨을 거기다가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뭣고?’

한문으로는 시심마(是甚麽)인데, 우리말로는 ‘이것이 무엇인고?’그러는데, 경상도 말로는 “이뭣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그러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놈.
볼래야 볼 수도 없고 알래야 알 수 없지만, 대관절 이것이 무엇이냐?

해 갈수록 꽉 맥혀서 알 수가 없어야지.
해 가다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교리로 따지고, 이론적으로 따지고, 동서의 철학적으로 따져 가지고 분석하고 비교하고 종합해 가지고 적용을 해보고야 ‘아하, 바로 이것이로구나!’ 이렇게 알아들어 가는 게 아니야.

그것은 그럴싸한 결론을 자기 나름대로 얻었다 해도 그것은 ‘안’ 것이지 ‘깨달은’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이론적으로 따져서 결론을 내려서 ‘이런 것이다’하고 할 수 있는 거라면,
그거야 가리킬 수가 있는 것이고 배울 수가 있는 것이지, 무엇이 어려울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부처님도 가리켜 줄 수가 없거든.
가리켜서 되는 거라면 무엇이 어려우며, 문제가 될 것이 있느냐?
가리켜서 되는 게 아니야.

이건 깨달아야지.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 갈수록 맥혀야지.
꽉 막혀서 알 수가 없어야, 그런 상태로 밀고 나가야 하는 거야.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는 그 시간에도 별별 생각이 오락가락하지만, 오락가락하는 망상은 그냥 고대로 나둬.
그 쫓아내려고 하지도 말고, 막으려고 하지도 말고, 그냥 놔둔 채 숨을 들여 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자꾸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자꾸 거기다 또 할 필요는 없어.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따~악 관(觀)하거든.

그 의심이 고대로 있으면 2분, 5분 동안도 그 의심이 고대로 있으면 5분, 1시간 해도 그 의심이 안 없어지면 알 수  없는 그 의심을 관(觀)하는 거야.

‘이뭣고?’
숨을 들어 마실 때는 아랫배가 볼록하게 되는 것을 느끼면서 숨을 들여 마시고, 내쉴 때는 그 배가 차츰차츰 차츰 홀쭉해진 것을 느끼면서 숨을 내쉬는 거여.

그러면서 ‘그 알 수 없는 의심은 아랫배에다 따악 거기다 두고 관(觀)한다.’ 그 말도 알아듣기가 좀 어렵지만,

단전호흡을 하면서 배가 불렀다, 줄었다 하는 것을 느끼면서 ‘이뭣고?’ 하면은, 화두가  바로 아래 가서 자연히 있게 되는 거야.

알 수 없는 의심이 나중에는 의단(疑團)이 되어.

1시간을 해도 그 의단이 흩어지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서 든 화두가 아침 먹을 때까지 있고, 아침 먹을 때 든 화두가 점심때까지 있고, 점심 먹을 때 든 화두가 저녁까지 있고, 저녁에 잘 때 들은 화두가 꿈 속에서도 고대로 화두가 있다면,
이것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요. 오매(寤寐)가 일여(一如)한 건데,

그렇게 타성일편이 되어서 순수무잡해 가지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되면, 어느 날 어느 때 통 밑구녁 빠지듯이 펑! 터진다 그말이여.

툭 터져서, 알 수 없던 공안(公案)을 타파해 가지고 자기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는 거야.

이론적으로 따져서 ‘이것이로구나’ 그게 아냐. 그런 것은 백 번 그런 식으로 알아봤자 소용이 없는 거고.

바르게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놓고 보면, ‘기네 아니네’가 소용이 없는 거야.(32분24초~46분3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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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세계(十方世界) ; 온 세계. 사방(四方 동•서•남•북)과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와 상하(上下)에 있는 무수한 세계.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겁(劫) ; (산) kalpa의 음사.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긴 시간.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〇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〇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삼도(三途•三塗) ; 악한 일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는 3가지 미혹한 생존. 지옥•아귀•축생의 생존.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화광삼매(火光三昧) ; 몸에서 불을 발하는 선정. 불빛에 감싸여 명상하고 있는 것.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납월(臘月) ; 음력 섣달.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성도(成道) ; 깨달음.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됨.
*성도재(成道齋) ; 매년 12월 8일,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날에 행하는 법회.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마야부인(摩耶夫人) ; 싯다르타(釋尊)의 어머니.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내가 가장 높다’라는 뜻으로 싯다르타가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오른손으로 하늘을, 왼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읊었다는 글귀. 이 글귀는 모든 사람의 인간성의 존엄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함.
*사자후(獅子吼) ; 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진묵겁(塵墨劫) ; 티끌이 쌓여 먹(墨)이 될 만큼의 오랜 시간.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십바라밀(十波羅蜜)의 하나. 불보살(佛菩薩)이 중생을 근본적인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쓰는 묘한 수단을 말한다.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삼명육통(三明六通)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와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팔해탈(八解脫)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여덟 가지 선정(禪定).
*사문유관(四門遊觀) ; 사문출유(四門出遊)라고도 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싯다르타 태자 때에 가비라성의 동•남•서•북 4문으로 나가 다녔는데, 동문 밖에서는 늙은이를 보고, 남문 밖에서는 병든 이를 보고, 서문 밖에서는 죽은 사람을 보고, 북문 밖에서는 출가수행자를 보고, 생로병사의 고통을 해결하려고 출가 수행에 뜻을 두었다.
*고행(苦行) ; 어떤 경지에 이르거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낙행(樂行) ; 싯다르타(釋尊)가 6년의 고행(苦行) 후, 나이란자나강에서 몸을 씻은 다음 수자타가 올린 유미죽공양을 받은 후 보리수(菩提樹) 밑에서 선정(禪定)에 들어간 것을 말함.
*확철대오(廓徹大悟) ; 큰 깨달음.
*녹야원(鹿野苑) ; 붓다가 35세에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교진여(僑陳如) 등 5명의 비구(比丘)를 제도(濟度)하였다. 갠지스강 중류.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에서 북동쪽으로 약7km 지점에 있는 동산.
*사제(四諦) ; 제(諦)는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를 뜻함. 고(苦-괴로움)를 소멸시켜 열반에 이르는 네 가지 진리. 사성제(四聖諦-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고도 함.
①고제(苦諦,苦聖諦). ‘고(苦-괴로움)’라는 성스러운 진리.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이 고다”(상응부)
②집제(集諦,集聖諦). ‘고의 원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몹시 탐내어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고(苦)가 일어나는 원인이라는 진리.
③멸제(滅諦,㓕聖諦). ‘고의 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됨으로써 고(苦-괴로움)가 소멸되어 고의 끝남, 열반에 이른다는 진리.
④도제(道諦,道聖諦).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팔정도(八正道)-정견(正見,바른 이해)•정사유(正思惟,바른 생각)•정어(正語,바른 말)•정업(正業,바른 행위)•정명(正命,바른 생계)•정정진(正精進,바른 노력)•정념(正念,바른 마음챙김)•정정(正定,바른 집중)-는 갈애를 소멸시켜,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아함십이방등팔(阿含十二方等八), 이십일재담반야(二十一載談般若), 종담법화우팔년(終談法華又八年) ; 천태 지의(538-597)스님이 부처님의 방대한 가르침을  설한 순서에 따라 분류(五時)하였는데,
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한 직후 21일간 화엄경을 설하시고(화엄최초삼칠일 華嚴最初三七日),
12년간 녹야원에서 아함경을 8년간 유마경등의 대승경전을 설하시고(아함십이방등팔 阿含十二方等八)
21년간 여러 반야경을 설하시고(이십일재담반야 二十一載談般若),
8년간 법화경을, 입멸 때 1일간 열반경을 설하셨다(종담법화우팔년 終談法華又八年).

 

 

 

 

 

------------------(2)

 

*십이인연(十二因緣) ; 십이연기(十二緣起).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한 무명(無明)을 근본 원인으로 하여 중생으로서의 인간의 괴로운 생존이 12가지 요소의 순차적인 상관관계에 의한 것임을 설명한 것.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의도적인 행위와 업을 구성하는 형성(行)이 생겨난다.
◎ 형성(行)을 조건으로, 의식(識)이 생겨난다.
◎ 의식(識)을 조건으로, 정신물리적인 현상인 명색(名色)이 생겨난다.
◎ 명색(名色)을 조건으로, 안•이•비•설•신•의 6가지 감역(六入)이 생겨난다.
◎ 감역(六入)을 조건으로, 감각적, 정신적 접촉(觸)이 이루어진다.
◎ 접촉(觸)을 조건으로, 감수(受)가 생겨난다.
◎ 감수(受)를 조건으로, 갈애(愛)가 일어난다.
◎ 갈애(愛)를 조건으로, 집착(取)이 일어난다.
◎ 집착(取)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생겨난다.
◎ 존재(有)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생겨난다.
◎ 태어남(生)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老死)가 생겨난다.
☆ 무명(無明)이 사라지면 의도적인 행위와 업을 구성하는 형성(行)이 사라지고, 형성(行)이 사라지면 의식(識)이 사라지고........마침내 태어남(生)이 없으면 늙고 죽음(老死)가 사라진다.
*연기(緣起)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일어남을 이르는 말. 인연생기(因緣生起)의 뜻. 즉 연(緣)이 되어서 결과를 일으킴을 말함.
“만약 이것이 있으면 곧 저것이 있고(若有此則有彼),
  만약 이것이 생겨나면 곧 저것이 생겨난다(若生此則生彼).
  만약 이것이 없으면 곧 저것이 없어지고(若無此則無彼),
  만약 이것이 소멸하면 곧 저것이 소멸한다(若滅此則滅彼).” (중아함경)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게송) ‘일등능속백천등~’ ; [금강경오가해]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 종경스님 게송 참고.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법령(法令) ; 법률(法律)과 명령(命令)을 아울러 이르는 말.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진리)를 구하기 위해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중생이 부처님 가르침인 교법(敎法)을 듣고 제각기 이를 깨달을 만한 능력.
*소승(小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대승(大乘)이라 하고, 전통의 보수파들을 낮추어 일컬은 말.
②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에 분열된 불교 교단의 여러 부파, 곧 부파 불교(部派佛敎)를 말함.
③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수행자, 성문(聲聞)•연각(緣覺) 또는 그들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④열등한 능력이나 소질을 갖춘 자를 위한 붓다의 가르침.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함.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불립문자(不立文字) ; 진리는 문자로 표현 할 수 없는, 개념으로 규정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 선종에서 법(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것이므로, 따로 언어•문자를 세워 말하지 않는데 참 뜻이 있다고 하는 것.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3)

 

*어폐(語弊 말씀 어,해어질·쓰러질 폐) ; ①적절하지 아니하게 사용하여 생기는 말의 폐단이나 결점. ②남에게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말.
*부득이(不得已) ;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종파(宗派) ; 한 종교에서 교리나 의식의 차이로 나뉜 큰 갈래.
*조사(祖師) ; ①일종일파(一宗一派)-한 종(宗)이나 파(派)를 세워서 그 종지(宗旨)를 열어 펼친 스님에게 붙여지는 칭호. ②후세 사람의 귀의(歸依)와 존경을 받을 만한 스님.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임제종(臨濟宗) ;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에 의해 비롯된 종파.
◎임제(臨濟)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간화선(看話禪)=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숙세(宿世 묵을 숙,인간·시대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세상.
*선근(善根) ; 좋은 과보를 받을 만한 착한 인(因)·행위. 온갖 선(善)을 낳는 근본. 청정한 행위를 할 근성.
*주삼야삼(晝三夜三) ; 밤낮. 밤이나 낮이나.
*이 무엇고(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오매(寤寐 잠이 깰 오,잠잘 매) ; 자나깨나 언제나.
*일여(一如) ;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수 없음.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