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입춘기도)2014.06.24 16:16

§(114) 일어나는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 번뇌·망상이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나거든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정말 이 정법(正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생각을 야무지게 단속을 함으로써 ‘참나’를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선은 꼭 절에만 가야만 되는 것이고, 머리만 깎아야만 되는 것이고, 깊은 산중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어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일어나는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번뇌·망상이 저 어디 지옥의 변소간 같은데서 끌어온 것이 아니라, 바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계시는 진여불성에서 나온 것이거든.
그래서 그놈 나온 곳을 더듬어 들어가면 바로 비로자나불이 계시는 진여적멸궁(眞如寂滅宮)에 우리는 들어갈 수가 있다 그말이여.
성이 나면 그 성이 딴 데서 나온 게 아니라 적멸궁에서 나온 소식이거든. 그래서 그놈을 없앨랴고 하지도 말고, 버릴랴고 하지도 말고, 누를랴고 하지도 말고, 일어나는 그 성내는 마음 그놈으로 「이 뭣고?」
**송담스님(No.114) - 1980년(경신년) 입춘법회 법문(1980.02.05)에서.


(1) 약 15분.  (2) 약 20분.


(1)-----------------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무엇을 맛을 보거나, 차웁고 더운 것을 느끼거나, 지나간 일이 생각이 나거나,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 간에,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이뭣고?’ 이렇게 다그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량겁을 두고 쌓아 놓은 아뢰야식 속에 업(業)의 종자를 돌려서 보리(菩提)의 종자로 승화(昇華)시키는 방법입니다.
이미 업의 종자를 보리심(菩提心)으로 승화를 시켰기 때문에 업의 종자는 소멸이 되었다고 표현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은 소멸이라기보다는 승화를 시켰다고 표현헌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편의상 알기 쉽게 소멸을 했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이뭣고?』 이 한마디는 부적(符籍) 천 장, 만 장 보다도 더 수승(殊勝)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영원히 업장(業障)을 소멸(掃滅)하고 영원한 행복을 얻는 오직 하나의 최고의 방법입니다.

녹음 중단·중복(18초간)

하루를 그렇게 살고, 이틀을 그렇게 살고, 한 달을 그렇게 살고, 1년을 그렇게 살아 보십시오.

사실 아까 말씀드리기를 석 달을 해봤자 아들딸·손자·영감님께 아무것도 보일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만은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다져나가고 하루하루를 다져나가고 한 달 한 달을 다져나가면,
자기 스스로 생각헐 때 또는 주위 사람들이 볼 때 모든 점에 있어서 사람이 개선되어 가고 개조되어 가고 승화되어 가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선(參禪)을 하는 사람이 오직 깨달음을 향해서 목적을 하고 닦아가는 것이지만은, 인간으로써 우리가 생활해 나가는데 있어서 가장 빨리 얻어지는 효과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까짓 나쁜 성격이 원만해지고, 옹졸했던 성격이 관대해지고, 이러헌 것이 참선의 목적은 아니지만,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해 나가면, 구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러헌 인간에 있어서 존경받을 수 있고, 평온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성격이 개선되어 간다면 그것도 또한 대단히 소중한 수확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옹졸한 성격, 비열한 성격, 이기적인 성격 때문에 얼마를 자기 스스로를 불행하게 맨들고, 가치 없는 인간을 맨들고, 남으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하고, 그러헌 일이 우리의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를 우리는 생각해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부모로써, 자식으로써, 시부모로써, 며느리로써, 동생으로써, 형으로써, 한 생각 한 생각을 「이뭣고?」 「이뭣고?」로써 생각을 돌려나가는 길을 행하지를 못하고,
사소한 일로 해서 두 번째 생각, 세 번째 생각으로 계속 올바르지 못한 중생심을 갖다가 방자히 해 가지고,
자기 스스로도 불행하고 남까지 언짢게 맨드는 사례가 너무나도 많은 것을 우리는 생활을 통해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이 법회가 끝나자마자 부적(符籍)을 사러 가실 분이 계실는지 모르지만은, 정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면 부적을 몇 장을 사서 가지셔도 괜찮습니다만,
그러나 이 공부를 철저히 하면 그러헌 부적을 한 장도 갖지 않더라도 모든 재앙은 소멸이 되고,

있는 재앙을 소멸허는데 끄친 것이 아니라-소멸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러헌 재앙이 속에서 나오는지 밖에서 다가오는지 그걸 표현허기가 어렵습니다마는,

어떤 부정적인 사건을 만났을 때, 먼데서 가까이에서 만났을 때 그것이 물질적인 문제가 되었건, 정신적인 문제가 되었던, 인간관계에 있어서 문제가 되었건,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그러헌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그러헌 조건을 만났을 때,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보다 더 행복한 데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뭣고?」 한번 함으로써 재앙을 뒤집어서 복(福)으로 맨드는 것입니다.
중생의 번뇌·업식(業識)을 돌려서 보리심(菩提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한 생각, 한 생각이 모여서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1원 1원이 모여가지고 100원이 되고, 1원 1원이 많이 모이면 1000원도 되고 백만 원도 되는 것입니다.

한 생각, 한 생각이 모여가지고 무량겁이 되고, 1초 1초가 모여가지고 한 달·1년·100년·무량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잔돈을 애낀다’고 헌 속담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10원짜리 100원짜릴 돈으로 알지 않고 풀풀풀풀 막 함부로 합니다마는, 참으로 부자는 큰돈은 갖다가 유용하게 몇천 만원씩 희사(喜捨)도 하고 기부도 하고 그렇게 쓰면서 10원 20원 굉장히 피나오게 애끼는 것을 나는 봤습니다.

정말 이 정법(正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생각을 야무지게 단속을 함으로써 ‘참나’를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연히 이 생각, 저 생각,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허면서 별별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내싸두고 삽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해서 하루가 지나가고, 한 달이 지나가고, 1년이 지나갑니다. 그래 가지고 결국은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정법을 믿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단속하는 것이여.
참선은 꼭 절에만 가야만 되는 것이고, 머리만 깎아야만 되는 것이고, 깊은 산중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어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일어나는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성이 날 때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차를 타건, 버스를 타건, 걸어가건, 댁에 돌아가셔서 방을 닦건, 밥을 지으시건, 빨래를 하건, 앉었건, 누었건, 이야기를 하건 상관이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건 간에 그때그때 한 생각, 한 생각을 탁! 돌이켜서 「이뭣고?」
남편이 속상한 소리를 해도 「이뭣고?」  아내가 바가지를 긁어도 「이뭣고?」  자식이 불효한 짓을 해도 「이뭣고?」  「이뭣고?」허는 마음을 근본으로 해서 모든 생활을 지어나가라 이것입니다.

근본이 다 「이뭣고?」로써 중심이 딱 잡힌 가운데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일을 하고, 음식을 먹고, 발로 걸어가고, 이렇게 된 사람은 뿌리가 제대로 박힌 나무와 같아서 그 나무는 싱싱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뭣고?」를 허지 아니하고 밤낮 눈으로 보는 데에 끄달리고, 귀로 듣는 데에 끄달리고, 이 생각 저 생각 자기 딴은 가정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죽도록 애를 쓰고 노력을 한다고 해도,
「이뭣고?」를 아니한 사람은 뿌리는 방치해 버리고, 그 가지에 이파리에 벌레를 떼어주고 소독을 치고 물을 뿌리고 온갖 노력을 다해봤자, 뿌리가 드러나 갖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 나무는 자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을 해서 참선을 열심히 한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고, 일도 안 하고, 착한 일도 안 하고 그래도 괜찮으냐?
그게 아닙니다. ‘불사문중(佛事門中)에 불사일법(不捨一法)이라. 부처님의 이 문중에는 한 법도 버릴 것이 없다’ 이겁니다.

참선을 함으로서 우리 근본 마음을 바로잡고 바로 닦아나간 사람은 해야 할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집안에 가면 집안에서 부모에게 할 일, 남편에게 할 일, 자녀들에게 할 일, 해야 할 살림, 자기 자신을 위한 일, 얼마든지 있습니다.
절에 왔어도 얼마든지 헐 일이 있습니다. 직장에 가면 직장에서도 얼마든지 헐 일이 있습니다.

근본이 서있는 상태에서는 모든 일이 다 불사(佛事) 아닌 것이 없고, 모든 일이 다 좋은 일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근본이 서있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일을 헌다고 헌 것이 제대로 되어지지를 않습니다.
죽도록 헌다고 하는 것이 헛일만 하게 되고, 죽도록 애써서 한다는 것이 속상할 일만 허게 되고, 후회헐 일만 허게 되고, 한탄해야할 일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참선 「이뭣고?」를 열심히 한 사람은 마음속에 업(業)의 원인을 해결을 해 나가기 때문에,
우리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나에게 닥쳐오는 모든 일은 내가 지어가지고 그렇게 당할 수밖에 없도록 지어놓은 것이기 때문에,
나의 마음속에 원인을 잘 다스려 놓으면, 영락없이 재앙으로 나한테 다가져 올 수밖에 없었던 그것이 나에 가까이 오면서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법을 믿고 참선을 열심히 헌 사람이면, 누구나 미묘한 그 법을 스스로 느끼고 정법의 고마움과 신기하고 묘한 것을 뼛속에 사무치도록 느끼신 분이 많이 계실 줄 생각합니다.(43분18초~58분23초)


(2)------------------

부처님 당시에 왕사성에 장사를 하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아주 그 형제는 대단히 합심을 해서 장사를 잘했습니다.
그런데 그 형이 한마을에 사는 아주 가문이 좋은 부자집 따님이요 아주 인물이 좋은 규수(閨秀)허고 눈이 맞아 가지고 약혼을 허게 되었습니다.
약혼을 해 놓고 장사일로 해서 수백 리 멀리 떨어진 도시로 떠났습니다. 가 가지고 사업관계로 해서 여러 해를 고향으로 돌아오질 못했습니다.

지금 같으면 통신이 있어서 편지도 할 수가 있고 전화도 할 수가 있었지만, 삼천년 전에는 그러헌 통신수단이 없어서 그리고 너무 사업에 몰두하고 복잡했기 때문에 연락헐 겨를이 없었습니다.

근데 그 규수 댁에서는 아! 신랑이 먼데로 가 가지고 소식이 없으니 딸은 자꾸 나이만 먹고 너무너무 기다리다가 병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 규수의 부모는 차라리 그 형이 소식이 없으니까 동생을 갖다가 사위로 맞이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냈습니다.
동생이 인물도 더 좋고 성격도 좋고 그러니 차라리 그 동생을 사위로 삼았으면 좋겠다. 이리 생각을 하고 동생한테 사위가 되어 달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그 동생이 말하기를 『그럴 수가 있습니까? 형님이 멀리 가셨다가 지금 사업상으로 못 오시는데 어떻게 제가 형수 될 분하고 결혼을 헐 수가 있습니까? 그건 당치 안합니다. 지금 형님이 살아계시는데 그럴 수가 있느냐?』고 아주 딱 끊어서 거절을 했습니다.
그 참! 그 동생이 허는 말 들어보니 또 말은 옳은 말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또 며칠을 두고 연구를 한 결과, 어떤 그 장사하는 사람을 시켜가지고 돈을 주어서 그 형이 거기서 그 사업을 하다가 사업이 실패가 되어가지고 병이 나서 죽었다.

녹음 중단(8초간)

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한 다음 그 규수의 부모가 동생 찾아가서 『아! 인자 당신 형이 병들어서 죽었으니 인제는 내 사위가 되어줘도 되지 않겠느냐?』
찝찝허니 생각하고 응하지를 않다가 몇 달이 지내갔습니다.

계속해서 사위를 삼기 위해서 정성을 들이고 간곡히 교제를 해 가지고 결국은 그 동생이 형수 될 그 규수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해 가지고 포태(胞胎)를 했습니다.
포태를 했는데 갑자기 그 형이 돌아온다고 허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것 참 큰 야단이 났습니다.
그래서 어떤 산파를 시켜서 배를 이리저리 만져가지고 그 포태된 애기를 갔다가 유산을 시켰습니다.

그래놓고 있는데 그 형이 과연 돌아왔습니다. 돌아오자마자 맨 처음에 그 아내가 될 규수를 찾았는데, 벌써 그때는 형이 근처에 와서 ‘그 규수가 자기 동생하고 결혼을 했다’고 허는 말을 듣고,
당장 그 동생과 그 자기 아내가 될 여자를 갔다가 한칼로 요절을 내서 죽일라고 칼을 가지고 왔는데, 벌써 그런 소문을 듣고 동생은 이웃나라로 피해 갔습니다.

피해 가지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기가 무슨 형수 될 규수가 욕심이 나서 그런 것도 아니고, 형님이 돌아가셨다고 그래서, 참 형님하고 약혼만 해놓고 결혼도 못허고 병이 나서 죽게 된 규수가 딱하고,
동생으로써 그 형이 저지른 일을 수습해야겠다고 허는 어떤 의미에서는 사명감에서 그 규수하고 결혼을 한 것이, 아! 이렇게 형님이 살아오고 보니 변명할 길도 없고 무슨 사과할 수도 없고,
죽인다고 칼을 가지고 찾으러 다니니 그거 기가 맥히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웃나라로 피신을 우선 해 가지고 출가를 해서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스님은 그러헌 상황 속에서 출가를 했기 때문에 정말 생명을 바쳐서 주야불철(晝夜不撤)하고 식음(食飮)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 가지고 도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은 계속해서 그 동생을 찾으러 다녔습니다. 그런 결과 이웃나라에 부처님 제자가 되어가지고 어느 산에서 도를 닦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 가지고 활을 잘 쏘는 포수를 갖다가 매수를 해 가지고 차마 형으로써 동생을 갖다가 더군다나 출가한 동생을 자기 손으로 죽일 수가 없어서, 그 포수로 하여금 그 동생을 죽이면 후한 상을 준다고 해 가지고,
그 포수하고 둘이 가 가지고 포수는 저만큼 숨어 있으라고 그러고, 자기는 동생한테 찾아갔습니다.

동생은 반가워해야 할지, 두려워해야 할지 인간적으로 대단히 딱한 그런 상황이었지만은,
이미 도를 얻은 스님이라 자기의 죄를 억지로 피할라고 하지도 않고 또 웬수로 상대해 가지고 형을 갖다가 상대하지고 않고 순수한 평범한 마음으로 형을 만났습니다.

형은 아주 그 속의 마음을 감추고 반가운 듯이 인사를 하고 『그 동안에 얼마나 고생을 했느냐? 난 처음에는 너를 원망을 했지만 너를 사실은 만나고 싶었다.』
이런 얘기 등등 하고 있을 때 약속을 했던 그 포수가 그 동생을 겨냥해 가지고 활을 쐈습니다.

아! 그 활 잘 쏘는 사람이 활을 쐈는데 그 활이 빗나가 가지고 형 모가지에 맞어 가지고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동생은 그 형을 시체를 거두어서 잘 장례를 지내주고 천도를 잘 해주었습니다.

얼마나 원한을 깊이 먹었던지 그 형은 죽어가지고 독사가 되었습니다. 독사가 되어가지고 그 동생의 공부하고 있는 그 토굴에 문틈 밑에 가서 가만히 숨어서 컸습니다.
그래 가지고 언젠가 몸에 독이 오를 때를 기다려서 독이 몸에 잔뜩 어리면은 그 동생이 문으로 나올 때 탁 물어버릴려고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그 문을 열고 닫고 하는 그 좀에 문에 치여 가지고 독사가 깨져서 죽었습니다.

아! 그 복수를 할랴고 그랬던 것이 그 문에 치여 가지고 본의 아니게 죽게 되니까 더욱 독이 나 가지고 독거미가 되어가지고 천장에 가서 붙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차츰차츰 컸습니다. 커 가지고 아주 독이 올랐을 때 천장에서 내려와 가지고 그 공부허고 있는 동생을 갖다가 물어서 죽게 했습니다.

그 뒤에도 또 그 동생은 어떻게 되고 형은 어떻게 되고 헌 얘기가 장황이 있습니다마는,
이렇게 해서 친구 간에 웬수가 되고, 형제와 부자 간에 웬수가 되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웬수가 되고, 일가친척과 웬수가 되어서, 금생에는 내가 저 사람을 죽이면 내생에는 저 사람은 나를 죽이고,

이렇게 해서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으면, 그 다음에는 그 쥐는 고양이가 되고 그래 가지고 엎치락뒤치락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점점 더 약이 올라가기 때문에,
처음에 바늘 가지고 싸움을 하다가, 다음에는 칼 가지고 싸움을 하다가, 다음에는 도끼 가지고 싸움을 하다가, 다음에는 총질을 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소한 일을 잘못 처리해 가지고 큰 재앙을 맞아드리는 사례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참선한 사람은 작은 일로 해서 큰일로 나아가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 작은 일을 발판으로 해서 큰 깨달음에 이르를 수가 있다 그말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황금을 갖다가 똥처럼 쓰고, 지혜로운 사람은 똥을 갖다가 황금처럼 쓴다’고 허는 말이 있습니다.
똥은 더럽고 냄새나는 것이지만 농부가 그것을 잘 발효를 시켜서 퇴비를 맨들어 가지고 비료로 사용허면은 농사를 잘 지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지혜로운 사람은-우리 중생의 번뇌(煩惱)·망상(妄想)은 똥보다도 더 더러운 것입니다-그러헌 번뇌·망상을 한 생각 한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해 나가면,
그 번뇌·망상이 완전히 승화(昇華)해 가지고 보리심·깨달음을 증득하게 헌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불법(佛法)이 어렵다, 어렵다.
팔만대장경 그렇게 많은 것을 어떻게 다 읽으며, 읽어봤자 아지도 못하고, 한문이 어려워서 아지도 못하고, 알아봤자 그 많은 것을 다 읽을 수가 없다. 아! 불법을 어려워서 못 헌다.
이러헌 분들을 가끔 많이 만남니다만은 불법(佛法)처럼 쉬운 것이 없습니다.

아직 정법(正法)을 만나지를 못했기 때문에, 불법은 막연하게 어렵고 깊고.... 그렇게 겁을 내서 생각하는 것이지, 참으로 이 참선법(參禪法)을 믿고 행할 줄만 알면 불법처럼 쉬운 것이 없습니다.

번뇌·망상은 끝없이 일어납니다. 그렇지만 하나도 겁낼 것이 없습니다.

그 번뇌·망상이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진여불성(眞如佛性)에서 일어나거든.
우리 중생-업(業)이 아무리 많은 중생이라도 낱낱이 다 진여불성을 가지고 있어. 부처님과 똑같은 마음자리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마음자리에서 수없이 한없이 번뇌·망상이 일어난다 그말이여.

그 번뇌·망상이 저 어디 지옥의 변소간 같은데서 끌어온 것이 아니라, 바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계시는 진여불성에서 나온 것이거든.
그래서 그놈 나온 곳을 더듬어 들어가면 바로 비로자나불이 계시는 진여적멸궁(眞如寂滅宮)에 우리는 들어갈 수가 있다 그말이여.

성이 나면 그 성이 딴 데서 나온 게 아니라 적멸궁에서 나온 소식이거든.
그래서 그놈을 없앨랴고 하지도 말고, 버릴랴고 하지도 말고, 누를랴고 하지도 말고, 일어나는 그 성내는 마음 그놈으로 「이 뭣고?」 「이뭣고?」
‘지금 「이뭣고?」 허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 다그쳐 들어갑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나가는 것이 바로 이것이 정법이요, 참선법이요, 최상승법이요,
불에 넣어도 타지 아니하고 물에 넣어도 젖지 아니한 영원한 부적이다 이 말씀이여.

오늘은 입춘날이라 여러분에게 부적을 노놔 드리겠습니다. 다 받으셨습니까? (‘네!’)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여러분은 금방 받으신 그 부적으로 어떠헌 재앙을 만나더라도 그 부적을 내세우십시오.
팔만사천 마군(魔軍)이도 그 부적 앞에는 꼼짝을 못하고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하며, 항복을 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충실한 협조자가 되어줄 것입니다.(43분18초~78분6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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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菩提) ; 불교 최고의 이상(理想)인 불타 정각(佛陀正覺)의 지혜. 올바른 깨달음으로 모든 것의 참된 모습을 깨닫는, 부처의 지혜를 뜻한다. 산스크리트 어 ‘Bodhi’의 한자 음역어이다.
*승화(昇華) ; 어떤 현상이 한 단계 더 높은 영역으로 발전함.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 ;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수승(殊勝 특히·유달리 수, 뛰어날·훌륭할 승) ; ①가장 뛰어난 일. ②[불교] 세상에 희유하리만큼 아주 뛰어남.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소멸(掃滅 쓸·제거할 소,멸망할·다할 멸) ; 모조리 쓸어서 없앰.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업식(業識) ; ①과거에 저지른 미혹한 행위와 말과 생각의 과보로 현재에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작용. ②오의(五意)의 하나. 무명(無明)에 의해 일어나는 그릇된 마음 작용.
*희사(喜捨 기쁠 희, 버릴 사) ; 보상을 구하지 않고, 기쁘게 재보(財寶)를 베푸는 것. 정사(淨捨)·정시(淨施)라고도 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내싸두다 ; '내버리다'의 사투리.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불사문중(佛事門中)에 불사일법(不捨一法)이라 ; 『치문경훈(緇門警訓)』에 있는 영명연수(永明延壽) 선사의 ‘팔일성해탈문(八溢聖解脫門)’에 아래 구절이 있습니다.
〇實際理地, 不受一塵, 佛事門中, 不捨一法. | 實際理地는(眞如자리는) 한 티끌도 받아들이지 않으나, 부처님의 이 문중에는 한 법도 버릴 것이 없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전화위복(轉禍爲福) ; 재앙이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좋지 않은 일이 계기가 되어 오히려 좋은 일이 생김을 이르는 말.


-------------------(2)

*규수(閨秀) ; 혼기에 이른 남의 집 처녀를 점잖게 이르는 말.
*포태(胞胎) ; 아이나 새끼를 뱀.
*주야불철(晝夜不撤) ; 불철주야(不撤晝夜).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밤낮을 가리지 않음.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게송)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
진로를 멀리 벗어나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니 승두(繩頭-화두)를 꽉 잡고 한바탕 지을지어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
한 차례 추위가 뼈골에 사무치지 않으면 어찌 매화가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으리오?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850) 게송.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마(魔) :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선정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 十九, p6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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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346) ‘이뭣고?’ 화두 / ‘알 수 없는 의심’을 관(觀)해야 / 용화선원의 가풍(家風)-평상시가 용맹정진 / 여법하게 정진하는 것이 참다운 불사 / 장애 극복은 정진력으로.

사실 이 ‘이뭣고~?’ ‘이뭣고?’ 이 문제는 불법(佛法)이 생겨나기 이전에, 부처님이 탄생하시기 이전에,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의 커다란 숙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볼라고 동서고금의 모든 성현들이 철인들 철학자들이 이것을 알아볼라고 별별 방법을 썼습니다마는, 오직 이 문제를 깨달으신 분, 바로 깨달라서 바로 지도하신 분은 오직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이시고, 부처님의 그 법을 깨달은 방법이 바로 법(法)이고 그 법을 이어받아서 깨닫고 또 그 제자에게 전하고 하신 분들이 바로 역대조사 선지식들이 아니시겠습니까.
‘이뭣고?’하는 그 글자, ‘이뭣고?’한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했을 때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 그것이 화두에 요긴한 것입니다.
화두가 정말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되는 것은 마지막 깨닫기 한 일주일 전부터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을 하기 위해서, 생사윤회를 아니할라면은, 그런 부처님의 5계(五戒)를 잘 지켜야만 한다.
**송담스님(No.346)(참선법 D) - 88.1.21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


(1) 약 20분.  (2) 약 19분.


(1)------------------

<‘이뭣고?’ 화두>


이 화두, 그 천칠백 화두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요, 동시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가 ‘시삼마(是甚麼)’ 화두입니다.  ‘시삼마’는 우리말로는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그말이여.
‘이것이 무엇이냐?’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가 육조 스님께 딱 찾아가 뵈옵고 절을 하니까, 『십마물(什麽物)이 임마래(恁麽來)냐?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이렇게 물으셨어.

그리고 하택신회(荷澤神會) 선사가 내나 그분도 육조 스님의 제자인데, 하택신회 선사 젊어서 육조 스님 앞에 딱 가서 절을 하니까, 『십마물(什麽物)이냐? 무슨 물건이냐?』하고 물으니까,
하택신회 선사는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요 신회지불성(神會之佛性)입니다.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이 자기 자신 신회의 불성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어.

그런데 남악회양 선사가 떠억 와서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고 육조 스님이 물으시니까,
남악회양 선사는 망지소조(罔知所措)여. 몸 둘 바를 몰라.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말이여.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고 묻는데 꽉 맥혀 가지고 어찌할 바를 몰라. 몸 둘 바를 몰랐어.

그런데 육조 스님께서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고 대답한 하택신회에게는 『네가 나중에 공부를 해서 깨달은 바가 있다 하더라도 너는 지해종사(知解宗師) 밖에는 안 되겠다』
지해종사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불교를 연구하는 그런 강사와 같은 그런 것 밖에는 너는 못 되겠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남악회양 선사는 꽉 맥혀 가지고 그 뒤로 8년 간을 ‘무슨 물건이냐? 그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한 그 의심을 가지고 8년 동안을 그놈을 가지고 앉으나 서나 밥을 먹으나 일을 하나, 8년 동안을 그것을 참구를 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8년 만에사 확철대오를 했어.

그래 가지고 육조 스님한테 『설사일물(說似一物)이라도 즉부중(卽不中)입니다. 설사 ‘한 물건(一物)’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그 깨달은 바를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도리어 수증할 것이 있느냐?』 그러니까, 『수증(修證)은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렴(汚染)은 즉부득(卽不得)입니다. 수증할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마는 오렴은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해 가지고,
『여시여시(如是如是)다.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렇다.』 그렇게 쾌히 인가(印可)를 하신 것입니다.

지금 용화선원에서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 또 제가 말씀을 드린 모든 것이 완전히 그 남악회양 선사가 하던 그 참선법, 그것을 바로 조사선(祖師禪)이라 그러고, 그것을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 그러는데 그 활구참선법, 남악회양 선사처럼 그렇게 해 가도록 항상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물건이냐?’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거거든.

지금 여러분이 이렇게 집을 떠나서 여기에 오셔서 석 달 동안을 고생을 하면서 고행을 하면서 이렇게 와서 계신데, ‘무엇이냐?’ 그말이여.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이 몸뚱이가 여러분이라고 혹 생각하실 분이 계실런지 모르지마는, 이 몸뚱이는 흙 기운과 물 기운과 불 기운과 바람 기운이 뭉쳐서 이렇게 몸뚱이라고 하는 것을 임시 이렇게 이루고 있는 것뿐이지, 몸뚱이 이것이 여러분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늙어가다가 나중에 결국은 이 몸뚱이에서 영혼이 떠나 버리면 그냥 10분 못 가서 내장이 버글버글버글 썩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바람은 바람 기운으로 나가 버리고, 불 기운은 불 기운대로 흩어져 버리고, 물 기운은 물로 돌아가 버리고, 흙 기운은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는 그래서 송장 덩어리인 것입니다.

송장 덩어리를 운전을 하고 있는 놈, 운전하고 있는 그놈을 우리는 찾는 것이거든.

그것을 고인들은 다 ‘자성(自性)’이라 하기도 하고, ‘마음’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영혼’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진여(眞如)’라 하기도 하고 또는 ‘불성(佛性)’이라 하기도 하고, ‘법계(法界)’라 하기도 하고, ‘여래(如來)’라 하기도 하고, 경전마다 그것에 대한 이름을 달리 말씀을 하셨고 세계 나라마다 그것에 대한 이름도 다 각각 다르지만,

그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 우리는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몸뚱이를 바꿔서 태어나면서 이렇게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데, 그 자체를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생사고해(生死苦海)를 이렇게 유전(流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놈을 우리는 깨달라야겠다. ‘그놈을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자’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그놈이 무엇이여?’ 눈으로 볼라야 볼 수 없고, 손으로 잡을라야 잡을 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라야 무슨 냄새가 거기서 나며, 그놈을 ‘어떻게 생겼는가?’ 아무리 생각해 본들 알 수가 없다 그말이여.

사실 이 ‘이뭣고~?’ ‘이뭣고?’ 이 문제는 불법(佛法)이 생겨나기 이전에, 부처님이 탄생하시기 이전에,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의 커다란 숙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볼라고 동서고금의 모든 성현들이 철인들 철학자들이 이것을 알아볼라고 별별 방법을 썼습니다마는, 오직 이 문제를 깨달으신 분, 바로 깨달라서 바로 지도하신 분은 오직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신 부처님이시고, 부처님의 그 법을 깨달은 방법이 바로 법(法)이고 그 법을 이어받아서 깨닫고 또 그 제자에게 전하고 하신 분들이 바로 역대조사 선지식들이 아니시겠습니까.

이것은 그 법을 모르고서는 도저히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지만 법을 모르고서는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불법이요,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는 아무리 따져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과 지식 가지고 따져서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화두를 참구(參究)해 가지고 그 화두를 타파(打破)함으로 해서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 아까 ‘이뭣고?’라고 하는 화두는 그밖에 ‘마삼근(麻三斤)’이라든지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든지 ‘판치생모(板齒生毛)’라든지 천칠백 개나 되지만, 그 많은 화두 가운데에 가장 근원적이고 최초의 화두가 바로 ‘이뭣고?’거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일을 할 때나 속이 상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이뭣고?’


<단전호흡과 화두 의심>


그러면 언제 단전호흡을 하고 언제는 이 화두를 드느냐?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꾸었다가 내쉬면서, 그 내쉴 때 ‘이뭣고~?’ 이렇게 화두를 드는 것입니다.

숨이 다 나가면 또 스르르 하니 들어마셨다가 약 3초 동안 딱 정지했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뭣고?’를 길게 숨 다 나갈 때까지 ‘이뭣고?’를 길게 하시라 그말이여. ‘이뭣고~?’ 또 숨이 다 나가면 또 스르르 호흡을 들어마셔 가지고 또 약 3초 동안 딱 머꾸었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처음 하신 분은 숨을 내쉴 때마다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하시지만, 나중에 차츰차츰 익숙해지면 그리고 ‘이뭣고?’한 뒤에 알 수 없는 생각이 있으면은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疑心)」, 의심이 있는 동안에는 다시 또 ‘이뭣고?’ ‘이뭣고?’ 안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알 수 없는 그 의심’이 흩어져 없어져 버리거나, 딴 생각이 나오거나 하면은 그때 또 다시 ‘이뭣고?’하고 한 번 챙기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그 글자, ‘이뭣고?’한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했을 때 그 「알 수 없는 그 의심」 그것이 화두에 요긴한 것입니다.

의심은 없으면서 「이뭣고?」 「이뭣고?」 밤낮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듯이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를 잠시도 잊어버리지 말고 ‘이뭣고?’를 해라』 그러니까,
아하! 그렇게 생각하고는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이뭣고?’를 마치 ‘관세음보살’하듯이 그렇게 하면은 그것은 잘 모르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이것이 무엇이냐?’한 그 알 수 없는 그 간절(懇切)한 의심, 그 의심이라야 옳게 하는 것입니다. 의심이 있어야.
그래서 입으로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그 ‘대관절 이것이 무엇인고?’한 그 알 수 없는 의심 그것이 있으면 화두를 이미 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무슨 물건'을 가지고 다니다 어디다 놔 버렸는데, ‘아! 그걸 어디다 놨나? 그것이 어디가 있는가? 아! 그거 참 어디가 있는가?’ 그렇게 찾은 것처럼,
‘이거 참!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그 의심이 그것이 화두인 것입니다.

그 의심이 항상 있어야 하고, 그 의심이 있으면 ‘이뭣고?’ ‘이뭣고?’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할 필요가 없어요. 「알 수 없는 그 의심」을 단전호흡을 하면서 그 의심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앉아서도 그 의심, 서서도 그 의심, 이것은 자꾸 안 될수록에 더 열심히 하시면 나중에 언젠가는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현전(現前)하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나, 옷을 입을 때나, 똥을 눌 때나, 입선(入禪)을 할 시간이나 또는 방선할 때나 그 의심이 항상 있어야 하거든.

그래서 ‘방선(放禪)해도 잡담을 하지 말아라.’ 이런 소리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입선·방선이 전혀 상관이 없어요. 공부가 그렇게 되면은....

여러분이 댁에 계시면은 다 편안하고 잘 잡숫고 자유롭게 계실 텐데,
아! 여기 오셔서 백 명 이렇게 많은 수가 사시니 식사도 반찬도 변변치 못하고 모든 이 목욕탕이라든지 화장실이라든지 그런 시설도 다 불편하고, 아침에 좀 늦잠도 자고 싶은데 자도 못하고, 여러 가지로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도 모든 자유가 제한이 되고 그래서 생각해 보면은 참 이러한 고생이 없습니다.

이러한 고생을 무릅쓰고 여기 와서 계시는 것은 순전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기 오신 것인데, 어디에 음식이 맛이 있고 없는 것이 상관이 있으며, 입선·방선이 무슨 상관있습니까?

입선을 하나 방선을 하나, 반찬이 쓰거나 달거나, 밥이 질거나 되거나, 분 따라서 잘 수용을 하고 섭취를 하고 모든 것에 적응을 하면서 자나깨나 우리가 정신 쓸 곳, 신경 쓸 것은 오직 ‘이뭣고?’ 하나 뿐이거든.

‘이뭣고?’ 벌써 화두를 떠억 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 눈매가 달라지고 모습이 엄숙하고 경건하면서 벌써 눈이 왔다갔다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눈이 딱 못박혀 있는 것처럼 눈동자가 따악 박혀 있는 것입니다.
엄숙하고 경건해서 누가 감히 옆에 가서 장난도 칠 수가 없고, 말 붙이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이렇게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입선시간은 말할 것도 없이 하지마는 방선해서 설사 자리에서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시기도 하고 혹 밖에 나가서 포행(布行)을 하신다 해도 각자 자기 나름대로 속으로 ‘이뭣고?’가 따악 자리잡혀 있어야 하거든, 어디 가서 잡담을 하고 히히덕거리고 수군덕거리고 남의 흉보고 그럴 시간이 어디가 있느냐 이 말씀이여.

이 용화선원 조실 스님 열반(涅槃)하신 뒤로 벌써 13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흘렀고 그 동안에 처음에 한 2~30명 하다가 4~50명 하다가 6~70명 하다가 이제는 백삼십이 명까지 방부를 드려서,
참 팔도에서 여러 발심(發心)한 보살님네들이 구름처럼 모여서 이렇게 정진을 하시니 이러한 기쁠 도리가 없고 이렇게 고맙고 감사할 도리가 없고, 또 선방의 규칙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좋아졌으나 아직도 멀었습니다.

물론 여러분 가운데는 참 모범이 될 만한 훌륭한 분도 많이 계십니다마는 아직 오신지 얼마 안 되신 분, 아직도 공부하는 요령을 확실히 터득을 못 하신 분도 계시고, 또 오시기는 오셨지만 아직 불법이 무엇인지, 참선이 무엇인지, 선방이 무엇인지, 좋다고 하니까 오시기는 오셨으나 막상 확실히 모르시기 때문에 좀 그런 분이 계실 줄 압니다마는,

여러분 가운데 발심을 해서 공부하신 분이 계시면 그분의 거룩한 모습을 보고 모두가 다 그 본(本)을 봐 가지고 입선·방선이 상관없이, 입승(立繩) 스님이나 누가 ‘잡담하지 말아라. 떠들지 말아라. 시끄럽게 하지 말아라’ 이러한 말씀 듣기 이전에, 각자 방선 시간에도 주욱 앉아서 정진하시고 또 졸리면 나가서 포행하다가 들어오셔서 하시고 해서,

입선·방선이 상관이 없게 이 큰방을 언제나 묵언(默言) 구역으로 해 놓고, 부득이 해서 할 요긴한 말씀이 있으면 밖에 나가서 간단하게 끝마치고 들어와서 또 정진을 하셔야죠.
이 큰방에 둘씩·셋씩·넷씩·다섯씩 구석구석이 모여 가지고 수군덕수군덕 해 쌌고 그래 싸면 공부를 좀 할려고 한 분까지 공부를 못 하시게 됩니다.(55분5초)


(2)------------------

<용화선원의 가풍(家風)>

오늘부터서 지금 섣달 초하루부터서 8일날 까지는 용맹정진(勇猛精進) 기간입니다.
전국에 선방이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온전히 만 일주일 간을 갖다가, 공양하고 변소에 갈 시간만 내 놓고는 전부가 큰방에 앉아서 다 법복을 수하고 그렇게 용맹정진하는 시간입니다.

조금만 졸아도 죽비를 갖다가 탁탁 쳐서 경책(警策)을 주면서 그렇게 합니다마는, 이 용화선원은 왜 그렇게 용맹정진을 아니하냐 하면은 평상시가 바로 용맹정진이 되도록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비록 잠은 여섯 시간을 자지만 그 밖의 시간은 완전히 용맹정진으로 석 달 동안을 그렇게 하자는 것이 조실 스님의 지도 방법이십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 열반하신 뒤로도 그렇게 주욱 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데 선방은 용맹정진도 하고 잠도 조금씩만 자고, 참선 입선 시간을 (한번에) 3시간씩 이렇게 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 용화선원이 선방이 좋다고 와 보니 맨 잠만 자고 입선 시간도 겨우 8시간 밖에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용화선원의 가풍(家風)을 잘 이해를 못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가풍을 따르지를 못하고 실천을 안 해서 그렇지, 가풍이 무른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 도량(道場)에 들어와서 무슨 잡담을 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그 전에 강월 스님이 입승을 할 때에 지대방이고 어디고 일체 잡담을 못하게 하고, 심지어 화장실에 가서도 말을 못하게 하고, 누구하고도 둘이 마주서서 말을 주거니 받거니 못하게 하고, 몇철 간을 그렇게 한번 해 봤습니다.
그러니까 정진할려고 애쓴 보살님네들은 참 좋다고 그러고 지금도 그렇게 했으면 좋다고 원하시는 보살님들도 상당수가 계십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유치원 학생이 아닙니다. 국민학교 학생도 아니고 중학교 학생, 고등학교 학생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니고 대학을 졸업한 대학원 학생들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대학원 학생한테다가 유치원 학생 다루듯이 해서 되겠느냐 그말이여.
그것은 여러분에 대한 대접도 아니고 도리가 아니기 때문에 특수한 일 아니고선 기본법 외에는 완전히 여러분에게 자유를 드려 가지고 자발적으로 여러분들이 조실 스님의 가풍에 적응하고 순종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셔서 나시면 잘 하신 분은 당신 좋고 여러분에게 모범이 되어서 좋고 또 용화선원의 가풍을 순종을 함으로써 용화선원을 빛내는 일이 되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불법을 빛나게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큰 절을 짓고 돈을 많이 내서 그것이 불사(佛事)가 아니라,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이 도량에 터억 들어서서 여법(如法)하게 참되게 정진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참다운 불사를 이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불법이 일어나는 것이지 큰 절을 몇 억씩 들여서 절만 크게 진다고 해서 불법이 흥왕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물론 그런 불사도 필요하지요. 필요하지만 그보다도 더 근본적으로 중요한 불사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진실한 불자(佛子)로서 수행을 알뜰히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견성(見性)을 하게 되고 견성을 해야 부처님이 탄생을 하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아주 그 동안에 잘 하시는 분은 계속해서 잘 하실 것이고, 그 동안에 혹 그렇게 철저히 잘 못 하신 분은 오늘부터서 아주 완전히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여법하게 해 주실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단전호흡, 화두 의심>


아까 단전호흡을 하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꽉 맥힌 분, 그분은 호흡을 들어마실 때 배를 볼록이 하지 말고 배를 홀쪽하게 하고 또 내쉴 때 배를 볼록하게 하고 해서 반대로 이렇게 하시라는 것과,
숨을 들어마셔서 이리해서 차츰차츰 해서 저 배꼽 밑에까지 쪄 넣을라고 그러한 호흡법을 하시지 말고, 그냥 코로 스르르 하니 숨은 들어마시되 배꼽 밑의 단전, 아랫배만 약간 볼록...


볼록하게 맨들으라니깐 저 개구리 배에다가 바람 넣은 것처럼, 아랫배가 그냥 포대화상(布袋和尙)처럼 맨들라고 애를 쓰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조금 약 2, 3센치 조금만 볼록하게 자기 느낌상으로만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내쉴 때도 너무 뱃가죽이 등어리에 가서 따악 붙도록 그렇게 억지로 헐라고 하시지 마세요. 약간 홀쪽하게 하는 듯만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면 그렇게 답답한 것은 저절로 없어지게 될 것이고.

그리고 ‘암만 화두를 들고 할라고 해도 화두가 잘 순일하게 들리지 않는다. 한 철, 두 철 내지 3년, 4년, 5년째 해도 영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지 않고 자꾸 그런다.’ 그런 것을 호소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화두가 정말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되는 것은 마지막 깨달으기 한 일주일 전부터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순일무잡하게 되어서 화두를 들라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리고, 뭐 놓고 들 것도 없이 그냥 새벽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잠을 자도 꿈속에서도 화두가 고대로, 자다가 눈을 새벽에 딱 뜨면 새로 화두 들 것도 없이 엊저녁에 들고 잠들었던 그 화두가 고대로 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 딱 떠도 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세수를 해도 고대로 있고, 양치질을 해도 고대로 있고, 화장실 가도 고대로 있고, 밥을 먹어도 고대로 있고, 뭐 소지를 해도 고대로 있고, 옆에서 떠들거나 말거나 전혀 상관이 없이 고대로 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지경에 이르르면 일주일이 못 가서 툭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설사 일주일 되어서 안 터지더라도 ‘빨리 터졌으면’ 그러한 생각을 가질 것이 없습니다. 그런 상태로 있으면 일주일을 가도 좋고, 열흘을 가도 좋고, 한 달을 가도 좋고, 계속 고대로 해 나가면은 언젠가는 지가 터지지 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순일무잡하게 되었을 때에 깨닫기를 바래거나, ‘누가 이럴 때에 나를 툭 깨닫게 해 줬으면’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아니 된 것입니다. 고대로 해 나가는 것입니다.

공부 막 좀 될라고 하면 옆에서 떠들어 싸서 못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공부가 진짜 잘된 것이 아니에요. 떠든다고 화두가 달아나 버린다면은 그 화두는 아직도 지금 들렸다 안 들렸다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그래서 이렇게 - 뭐 참선은 집에서는 못할 바 아니지마는, 그래도 여기 와서 조실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또 모두 여러 발심한 도반들과 같이 규칙생활을 하면서 가정의 모든 복잡한 것을 떠나서 이렇게 와서 하신 것이니,
서로 서로 목적이 같을 진대는 서로 서로 여법하게 잘해서, 나로 인해서 다른 분들이 공부를 잘하고, 다른 분들로 인해서 내가 공부가 잘 되도록 이렇게 되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화두가 안 들려도 그걸 성내거나 성화하시거나 번민, 번뇌심을 내실 필요가 없어요. 망상이 일어나면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 오늘 아침에 조실 스님께서 참 아주 요긴한 법문을 해 주셨는데,
망상 일어난 거 그걸 버릴라고 할 것이 아니고 고대로 놔두고, 그냥 다시 화두만 떠억 -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화두만 딱 다시 한번 들은 것뿐이지, 일어나는 망상을 누를라고 하거나 쫓아낼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말이여.

쫓아낼려고 하고 누를라고 하면은 그것이 눌러지지도 않고 화두만 더 달아나 버린다 그말이여.
 


<장애 - 지계·정진력으로 이겨야>


그리고 자기가 지은 업(業)에 따라서 - 전생에 지은 업, 또 금생에 지은 업, 그런 업으로 해서 몸에 자기가 아닌 다른 영혼, 이런 것이 항시 자기 주변을 맴돌거나 자기에게 이렇게 붙거나 그러한 경우가 있습니다.
참선을 안 하신 세속에 사신 분 가운데에도 그런 분들이 상당수가 있고, 또 그것이 남이 보면은 전혀 모르지마는 자기 혼자만 아는 일이죠.

그것이 전생에 어떤 인연있는 영가 - 그것이 원결(怨結)이 있는 영가라든지, 서로 짝사랑을 하던 그런 영혼이라든지, 자기가 너무 그 사람에 대해서 너무 애착을 하고 집착을 하던 그런 영혼이라든지, 또는 무슨 원결이 있어 가지고 나한테 복수를 하기 위해서 나한테 따라붙은 그런 영혼이라든지,
그런 것이 요렇게 붙어서 항상 자기 주변에 이렇게 맴돌며 있는 그런 경우도 있고, 아주 언제나 자기한테 붙어 갖고 다니는 그런 경우도 있고, 뭣한 경우는 계속 귀에다가 뭐라고 계속 소곤대고 명령을 하고,

자기가 이렇게 살고 있지마는 실지는 하나도 자기 마음대로 못 하고, 먹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못 먹고, 그 영혼이 먹으라고 하면 먹고 먹지 말라면 안 먹고, 어디를 가자고 하면 가고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가고, 일체가 다 그 영혼에 - 특수한 그것이 신(神)인지 영(靈)인지 - 조종한대로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애착(愛着)을 갖지 말아라. 물질에 대한 탐착·애착도 못쓰고 사람에 대한 애착과 탐착도 그것이 괴로움의 근본밖에는 아니 된 것입니다.

더군다나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자기의 잇속을 챙겨 가지고 남을 해롭게 하고 남을 갖다가 억울하게 탄압을 하고 심지어는 남을 죽이고 이러한 일은 참 해서는 아니 된 것입니다.
그때는 조금 이익을 얻었을런가 모르지마는 세세생생에 원결이 되어 가지고 기어코 그 앙갚음을 하게 되기 때문에 어찌 우선 조금 이익을 보기 위해서 그런 큰 고통을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 남에게 고통을 주지 말아라.


남의 물건도 훔치지 말 것이며, 남에게 진심(瞋心)을 내지 말 것이며, 산목숨을 죽이지 말 것이며, 또 남을 거짓말하고 속이고 사기를 하지 말 것이며, 또 술을 마시면은 자기의 바른 정신을 놔 버리고 그래가지고 못할 짓 없이 온갖 본의 아니게 못된 행동이 나오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말라’한 것이,
반드시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될, 생사해탈을 하기 위해서 생사윤회를 아니할라면은 그런 부처님의 5계(五戒)를 잘 지키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안 지켜 놓으면은 금생에도 그 과보(果報)를 받는 수가 있지마는, 내생에 두고두고 세세생생에 그런 참 괴로운 과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 금생에 이렇게 발심을 해서 선방에 나오셨지만, 과거에 지은 업연(業緣)으로 해서 그런 영혼이 우리한테 따라붙어 가지고 참선만 할라고 하면은 와 가지고 자기를 직접 간접으로 괴롭히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참선을 안 하고 그럭저럭 지내면은 또 괜찮은데 참선만 할라고 떠억 앉으면은 와서 괴롭히는 수가 있거든.

그건 왜 그러냐 하면은, 참선을 해서 확철대오를 해 버리면 자기가 발붙일 곳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이 참선을 해서 차츰차츰 공부가 잘 되어가면 ‘도고마성(道高魔盛)이다. 도가 높아갈수록에 마군이가 성하게 된다’ 이거거든.

그렇다고 해서 참선을 안 할 수가 있습니까? 그럴수록에 더 신심을 돈독히 해 가지고 자꾸 올바른 방법으로 꾸준히 공부를 해 나가고, 옆에 와서 집적대거나 귀에다 대고 소곤거리거나 말거나, 그것을 가지고 탓을 해서는 안 돼요.
그놈을 탓하고 억지로 떼어 내버릴려고 할수록 그놈은 더욱 꽉 붙잡고 늘어지기 때문에, 떼어 버릴라고 하지 말고 그냥 놔둬 버려.

놔둬 버리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자꾸 화두를 간절히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참구해 나가면, 그렇게 해서 화두가 점점 순숙해져서 순일무잡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그까짓 잡신·영혼이 어디에 들러붙을 것이냐 그말이여.

오직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은 정진력(精進力), 이 최상승 활구참선(活句參禪)으로 밀고 나가는 도리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조금도 조급한 생각내지 말고, 원망하고 한탄하지도 말고, 짜증내고 번민하지 말고서, 오직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을 하면서 화두를 간절히 참구해 나가면,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이틀을 그렇게 지내고 한 달, 석 달을 그렇게 지내고 1년, 이태, 3년을 그렇게 지내고 10년 세월을 그렇게 쪼옥 해 나가면 자연히 그런 원결이 있는 영혼도 거기에 감복(感服)이 되어가지고 그냥 원결을 풀고 좋은 곳으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드릴 말씀이 한이 없지만 오늘은 이만 말을 맺고자 합니다.(35분15초~73분4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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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 화두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남악회양, 육조 스님, 하택신회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십마물 이마래(什麼物伊麼來) : 십마(什麼)는 의문의 말로 '무엇이냐'의 뜻이며, 이마(伊麼)는 임마(恁麼)와 같은 말로 '이렇게'의 뜻으로, 십마물 이마래(什麼物伊麼來)라는 말은 곧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하는 말。
*망지소조(罔知所措) ; 너무 당황하거나 급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고 갈팡질팡함.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고해(生死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한 것을 바다에 비유함.
*유전(流轉) ; 생사 인과(因果)가 서로 끊임없이 이어짐.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마삼근(麻三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판치생모(板齒生毛)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본(本) ; 모범으로 삼을 만한 대상.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묵언(默言) ; 말을 하지 않음.


------------------(2)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경책(警策 깨우칠 경,채찍 책) ; 타이르고 채찍질하여 깨우치게 하는 것.
*가풍(家風) ; 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온 생활 습관이나 규범.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절. 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지대방 ;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방. 이부자리, 옷 등의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이며, 스님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도 하는 곳이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포대화상(布袋和尙) ; 중국 후량(後梁) 때의 스님. 본이름은 계차(契此). 절강성(浙江省) 명주(明州) 출신. 체구가 비대하고 배가 불룩하게 나왔으며, 항상 포대를 지팡이에 걸어서 어깨에 메고 동냥한 것을 그 속에 담고 떠돌아다니면서 수행한 선승(禪僧). 916년에 명주 악림사(嶽林寺)에서 입적함.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애착(愛着) ; 사랑하여 집착함. 애집(愛執).
*앙갚음 ; 남에게 해를 받은 만큼 저도 그에게 해를 다시 줌.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업연(業緣) ; 업보(業報)의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의 인연을 부른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때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감복(感服) ; 마음속으로 감동하여 탄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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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법회(법보재)2014.04.10 16:40

§ 영가(靈駕)를 만년위패에 모신 그 유족(遺族)이나 재자(齋者)의 공덕. / 효도(孝道).

‘사람’이라 하는 것은 ‘육체가 있는 영가’고, ‘돌아가신 분’은 ‘육체가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인과법칙이라 하는 것은 추호(秋毫)도 어김이 없는 것이어서 지극히 과학적인 사실인 것입니다.
화엄경에도 내가 오늘날 이렇게 성불하게 된 것도 순전히 부모에게 효도한 공덕이라고 말씀을 하셨어.
가정이 화평하고 두고두고 좋은 자손만대(子孫萬代)에 행복한 집안을 이룩하려면, 제일 당장 시작해야 할 중요한 일은 ‘이뭣고?’를 하는 일입니다.
부모는 오래오래 살아계신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신 분입니다.
**송담스님(No.549)-95년 법보재 법회에서.

약 22분.


그러면 그런 영가(靈駕)를 이렇게 여기다가 모신 그 유족(遺族)이나 그 복위(伏爲)·재자(齋者)는 어떠한 공덕(功德)이 있느냐?

(첫째는) 집안에 할아버지나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나 또는 가족들 또는 인연있는 사람, 비명횡사(非命橫死)한 그런 영가를 이 만년위패(萬年位牌)에 모셔 드리고, 또 효심으로서 조상을 잘 모셔 드리게 되면, 법보재자가 되고 법보가족이 되었으므로 여기 와서 법문(法門)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최상승 법문을 들으니 역시 참회하고 발심하고 또 이 정진을 하시게 되는 것이고, 따라서 업장소멸이 되니 당장 금생에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는 것이고, 열심히 도를 닦으면 생사(生死)를 해탈(解脫)하게 될 것이 아닙니까.

둘째는 가정이 화평해질 것입니다.
영가와의 관계가 원만하게 해결되기 때문에도 좋고, 또 정법(正法)을 믿고 정진을 하니서로 자기 주장만 내세우다가 싸우게 되는데모든 잘못을 자기에게서 찾고, 하심하고, 남의 의견을 존중히 여기니 가족끼리 싸울 일이 없습니다. 어른과 아이도 싸울 것이 없고, 부부 간에도 싸울 것이 없어.


잘못은 상대방한테다가 책임을 전가하고, 끝까지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주장할 때에 거기는 말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고, 손찌검이 나오게 되고, 집안 가구를 때려 부수게 되고, 심한 사람은 죽이고 죽기도 하고, 자기가 살고있는 집에다 불을 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이 순전히 정법을 듣지 못하고, 정법을 믿지 못하고, 정법을 실천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돌아가신 조상,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가족의 비명에 가신 그런 모든 영가들, 잘 위패에 모셔드리고, 자기도 따라서 법보재자로서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듣게 되면 돌아가신 조상만 잘 모신게 아니라 살아계신 부모에게도 자연히 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라 하는 것은 ‘육체가 있는 영가’고, ‘돌아가신 분’은 ‘육체가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육체라 하는 것은 잠시 입고 있는 옷에 불과한 것입니다. 한평생 살아가는 데에 옷을 입는 거와 같아서 옷이 낡아지면 옷을 벗어 버리고, 또 새 옷을 갈아입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어찌 돌아가셨다고 해서 함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물며 돌아가신 분을 정성스럽게 위패에 잘 모셔드리고, 편안하게 해 드리고, 좋은 곳으로 가시게 해 드릴 그런 마음을 가졌다면, 어찌 살아계신 어른들에게 불효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법보재자에 가입을 하면 살아계신 부모에게도 효도를 하게 되고, 나의 부모에게 효도하는 그 마음이 모든 다른 노인들에게도 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최상승법에 의해서 법보재자에 가입하게 되면 한 마음이 편안하고, 한 가정이 편안하고, 그 편안한 물결이 온 세계에 끝없이 물결쳐 나가는 것입니다.

조금 지성을 가진 사람은 남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남을 해롭게 안 하거든, 하물며 이 몸을 낳아주시고 이 몸을 길러주신 부모와 조부모에게 어찌 악을 행할 수가 있겠습니까?

인과법칙이라 하는 것은 추호(秋毫)도 어김이 없는 것이어서 지극히 과학적인 사실인 것입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심지어는 한 생각이 일어났다 꺼진 그 한 생각마저도, 한번 일으켰다하면은 한데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낱낱이 언젠가는 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여.

따라서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인과(因果)의 법칙을 철저하게 믿게 되고, 인과법칙을 잘 믿고 실천을 해서 나로 인해서 남에게 해가 끼쳐지는 일을 하지를 않게 되는 것입니다.
법률로 이리 맞고 저리 맞고, 처벌하고 감옥에 가두고 사형을 하고, 그러한 제도가 설사 없다 하더라도, 인과법칙만을 철저히 믿으면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남에게 해 끼치는 일은 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마음으로 하거나, 입으로 하거나, 몸으로 하는 일이 반드시 그것이 자기에게 돌아온 사실을 철저하게 증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그래서 이 만년위패 제도는 고(故) 전강영신 대종사(田岡永信 大宗師)께서 대지혜와 대자비심으로 우리를 위해서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창설하신 선방편(善方便)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선방편을 펴셨으므로 우리도 그 부처님의 법(法)을 의지해서 법을 믿고, 법을 실천해서 생사해탈을 하게 되고, 이 사바세계에 육도(六道)법계에 적광토(寂光土)를 창설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끝없는 불사(佛事), 위대한 불사는 앞으로도 우리들에 의해서 계승되어져야 하고, 우리는 그것을 끝없이 추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큰 눈으로 보면 이 만년위패 제도는 종교도 초월하고, 종파도 초월하고, 종교가 있고 없는 것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무슨 종교를 믿건 간에, 종교를 안 믿고 믿고 간에, 부모·조상이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짐승도 마찬가지요, 벌레도 마찬가지요, 산천초목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조상이나 조상에 해당되는 원인에 의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자기의 조상을 괄세하고, 불효하고, 천대하고서 복(福)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 가지고서 가정이 화평할 수도 없고, 행복을 누릴 수도 없고, 살아계신 부모와 돌아가신 조상에게 불효하고 불성실하고서 그러한 세계, 그러한 사회가 평화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조상에 대해서 정성을 다하도록 교육을 하셨던 것입니다.
유교에서도 효경(孝經)이라고 하는 효(孝)에 관한 경전이 있고, 불교에서도 부처님께서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라고 하는 경을 설하셨고, 화엄경에도 '내가 오늘날 이렇게 성불을 하게 된 것도 순전히 부모에게 효도한 그 공덕'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정신, 이러한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는 학교 교육도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해서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순 물질문명 위주로 교육을 하고 이러한 성현의 근본의 가르침을 버린다면 앞으로 재산을 위해서 형제간에 싸울 것이며, 재산 때문에 부모를 해꼬자 하고, 부모를 죽이는 사람이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자기 부모에 불효한 사람이 정치를 한들 올바른 정치를 하겠습니까? 학문을 한들 올바른 학문을 하겠습니까? 무슨 직업을 가진들 성실히 하겠습니까?
이 몸뚱이를 낳아주신 자기의 뿌리인 부모를 괄세하고 불효하고는, 그 사람이 아무리 머리가 좋아서 IQ가 백오십, 이백이 된다 하더라도 그 인간은 자기를 행복하게 하지 못할 것이며, 온 세계를 위해서 아무것도 이바지 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물질문명을 발전시키는 거기다 모든 교육의 초점을 맞히는 한은 그러한 인간에 의해서 발달된 발전된 발명된 그런 기계들은 우선 좀 편리는 제공할지언정 결국은 이 세계를 망하게 하고, 자연계를 망하게 하고, 우리 지구도 사람이 살 수 없는, 생물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소중히 여기고, 조상을 소중히 여기는일시적으로 잘 받들어 모실려면 경제적으로도 돈이 좀 더 들 것이고, 또 거기다 정신을 쏟자면은 몸 공(功)도 들어야 할 것이고, 시간도 거기에 더 들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도 마음이 선량해지고, 자식들도 부모를 소중히 여기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언제가도 말씀을 드렸지만 노인을 괄세하면, 노인이 원한심을 갖고 숨을 거두게 됩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놈!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나한테 그럴수가 있느냐!’ 가슴에 한을 품고 숨을 거두게 되면, 그 노인이 좋은 곳으로 가시게 되겠습니까?

사람으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자기집에 태어나게 됩니다. 불효한 사람의 아들이나 손자나 손녀로 태어나게 되고, 또는 자부(子婦)나 손부(孫婦)로다른 데서 태어나더라도 자기집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 그 자손이 전생에 자기를 괄세한 사람한테 어떻게 효도를 하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누가 효자다’하면 나라에서도 포상을 하고 옛날부터 효자문(孝子門)을 세우기도 하고, 모두가 다 그 사람을 존경합니다. 그런 제도가 지금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효자는 반드시 그 뒤에 자손에 또 효자하고 그 집안을 흥왕하는 좋은 사람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불효한 사람은 그 뒤에 자식이나 손자가 반드시 못된 놈이 태어나 가지고 불효를 하게 되고, 집안을 망하게 하는부모를 죽이기도 하고, 부모를 망하게 하고, 일생 동안을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식이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내가 얼마든지 그런 사람을 봐 왔고 증거를 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효자가 되고 착하라’고 하는 거짓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적 사실이고 여러분도 많이 봐 왔고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다 남의 집 일이지, 내 일이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마는 절대로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닌 것입니다. 내 집안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이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교수, 유학갔다 와서 재산 때문에 부모를 죽이는 그러한 일들이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각성하고 이 법문을 깊이 명심하고 당장 실천하지 않는 한은, 내 집안에 이런 법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대단히 두렵고도 무서운 얘기여서 여러분들은 혹 ‘부모에게 잘하라’고 공갈(恐喝)치는 말로 혹 그렇게 생각하실런지 모르지만 이것은 공갈이 아닙니다.

정말 여러분이, 가정이 화평하고 두고두고 좋은 자손만대(子孫萬代)에 행복한 집안을 이룩하려면, 당장 오늘 들으신 이 법문을 날마다 틀고 또 틀고 해서 이것을 실천에 옮기시는데, 그렇다고 해서 없는 돈 빚을 내서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하시지 말고, 제일 당장 시작해야 할 중요한 일은 ‘이뭣고?’를 하는 일입니다.

‘이뭣고?’ 생각생각이 일어나는 그 한 생각을 자꾸 돌이켜서 ‘이뭣고?’를 하면우리는 대부분의 생각들이 감정을 통해서 생각이 자꾸 일어나는데, ‘이뭣고?’를 함으로 해서 자기의 감정을 자유롭게 이렇게 조정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여.

부애가 나면 상감마마 한테도 욕을 하게 되고, 부애가 나면 부모한테도 욕을 하게 되고, 부모 앞에서도 거치른 행동을 하게 되고, 문을 갖다가 발길로 찰 수도 있는 일이다 그말이여.


그런데 평상시에 참선(參禪)을 해.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생각을 잘 조정을 해서 참선을 하면, 좀 언짢은 일을 듣고 보고 당하더라도, 그렇게 막된 말과 행동이 나오질 않고 즉각 생각을 돌이켜서 지혜롭고 자비로운 말과 행동이 나타난다 그말이여.


부모는 오래오래 살아계신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신 분입니다.

설사 자기 성격에 안 맞는 점도 있고, 자기의 하고자 하는 일에 부모가 협조를 안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불효를 할 수는 없습니다.
잘 공손한 마음으로 설득을 해서 이해하시도록 해서 부모의 허락을 얻어내도록 노력해야지, 자기 뜻에 안 맞는다고 막 마구잽이해서는 안 되거든. 그런 행동은 즉각 자기 자식에게 그것이 또 계승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옛날 어른들은 어려서부터서 글을 배우고, 경(經)마다 효도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27분29초~49분)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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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복위(伏爲 엎드릴 복,할 위) ; 영가(靈駕)의 유가족들이 재(齋)를 지낼 때에 영가의 천도 성취를 공손히 원함. 또는 그 재자(齋者)를 말함.
*재자(齋者) ; 절에 재(齋)를 올리거나 불공(佛供)하러 온 사람.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좋은 과보를 받을 선행(善行).
*비명횡사(非命橫死) ; 뜻밖의 사고를 당하여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음.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추호도’, ‘추호의’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도리.
*선방편(善方便) ; 선교방편(善巧方便). 방편에 정교한 것. 뛰어난 수단.
부처님이 법(法)을 설함에, 교묘하게 잘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 여러가지 방법·수단을 사용하는 것.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상적광(常寂光). 법신불(法身佛)이 머무르는[住] 정토(淨土).
상적광토는 이상(理想)과 현실(現實), 정(靜:寂)과 동(動:光)의 본래(本來:常) 일체(一體)인 세계로 그것은 여기와 저기,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넘어 체득되는 참된 절대계(絕對界)이고, 상주(常住)의 정토(淨土)이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괄세 ; 괄시(恝視)-사람을 업신여겨 하찮게 대함.
*효경(孝經) ; 공자(孔子)와 그의 제자 증삼(曾參)이 문답한 것 중에서 효도에 관한 내용을 훗날 제자들이 편저(編著)한 것. 효가 곧 인간다움과 덕(德)의 근본임을 밝히고 있으며, 사회적 신분에 따른 효의 실천 방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 돈황본 『부모은중경』과 우리나라에서 옛부터 지금까지 널리 유통된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 있다. 내용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부모님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설하고,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가르치는 내용이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에는 부모님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가지가 있는데, ①아이를 배어서 지키고 보호해 주신 은혜(회탐수호은 懷耽守護恩). ②출산하실 때에 고통을 받으신 은혜(임산수고은 臨産受苦恩). ③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으신 은혜(생자망우은 生子忘憂恩).

④쓴 것은 어머니가 삼키고 것은 아이 먹이신 은혜(연고토감은 咽苦吐甘恩). ⑤마른 아이 누이고 젖은 자리 어머니 누우신 은혜(회건취습은 廻乾就濕恩). ⑥젖을 먹여 길러 주신 은혜(유포양육은 乳哺養育恩). ⑦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어주시는 은혜(세탁부정은 洗濯不淨恩).

⑧멀리 걱정하시는 은혜(원행억념은 遠行憶念恩). ⑨자식을 위해서는 모진 하신 은혜(위조악업은 爲造惡業恩). ⑩끝없는 연민으로 사랑해주는 은혜(구경연민은 究意憐愍恩) 등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한량없는 부모의 은덕을 생각하면,

①가령 어떤 사람이 왼쪽 어깨에 어버지를 업고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 살갗이 닳아서 뼈가 드러나고 뼈가 닳아서 골수(骨髓) 드러나도록 수미산을 백천번 돌더라도,

②설사 예리한 칼로 부모님을 위하여 자기의 눈동자를 도려내어 여래(如來)에게 바치기를 백천겁을 하더라도,

③가령 어떤 사람이 부모님을 위해 몸을 심지로 삼아 불을 붙여서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백천겁이 지나도록 하더라도,

④설령 어떤 사람이 뼈를 부수고 골수를 꺼내며, 또는 백천 개의 칼과 창으로 한번에 몸을 찌르기를 백천겁이 지나도록 하더라도, 또한 위와 같은 여러 난행고행(難行苦行) 하더라도 부모님의 깊은 은혜를 갚을 없다고 설하셨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중생을 보니 어리석고 미련하여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공경치 않고 은혜를 저버려 부모님께 어질지 못하고 효성스럽거나 의롭지 못하다. 이같이 부모님의 은덕은 한량없지만 불효한 허물은 이루 말할 없다.

불효한 사람은 죽으면 무간지옥에 떨어져, 감당하고 참기 어려운 무서운 고통을 받아 하루 동안에도 수없이 죽고 다시 태어나기를 겁이 지나도록 조금도 쉬지 않고 받는다.


그리고 부모님의 깊은 은혜를 갚는 갚으려면 음력 7 15일의 우란분재(盂蘭盆齋) 부모를 위해서 삼보(三寶) 공양하고, 경을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고, 부모님을 위하여 죄와 허물을 참회하고, 부모님을 위하여 재계(齋戒) 받아지니고, 부모님을 위하여 보시하고, 복을 닦도록 설하셨다.

그리고 부모를 위한다면 경의 구절, 게송을 받아지니고 읽고 쓰며, 잠깐이라도 보거나 들은 사람은 오역(五逆) 중한 죄라도 영원히 소멸된다고 하셨다.

*자부(子婦) ; 아들의 아내.
*손부(孫婦) ; 손자의 아내.
*효자문(孝子門) ; 효자를 표창하여 널리 본을 보이는 뜻으로 세운 정문(旌門).
*공갈(恐喝 으를 공,꾸짖을 갈) ; ①공포를 느끼도록 윽박지르고 을러댐. ②‘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
*자손만대(子孫萬代) ; 대대로 이어지는 여러 대(代)의 자손.
*이뭣고? ; 분류 ‘이뭣고 화두’ 참고.
*이뭣고? (이 무엇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부애 ; 부아-분하고 노여운 마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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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법회(신수기도)2014.01.31 20:04

§(258) (게송)불불산향만로비~ / ‘ 생각단속이 기도요, 삼재를 막는 / 식신(識神) / 말을 적게 하라 / 수구여병(守口如甁) / 참선으로 근본을 해결해라.


활구참선법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로 잡게 하고, 일부러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되 모든 업은 제절로 소멸이 되고, 우리의 시청언동(視聽言動) 통한 모든 생활은, 보면은 남과 같으되 사실은 하나하나가 성불을 향한 수행이요 불사(佛事) 되는 것입니다.

조실스님의 법문 가운데에도 고구정녕(苦口叮嚀) 말씀을 하셨지만, ()라고 하는 것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여. 우리의 생활 속에서 닦아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생활을 여위고 () 없으며,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바로 자기를 찾는 것이 이것이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온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은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가장 가깝게는 말을 많이 하지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면 거기에서 모든 재앙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무량겁 동안의 모든 () 시비(是非) 바로 조그마한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입으로부터 나온 사실을 명심(銘心) 하셔야 것입니다.

칠일 기도를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하면서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의 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참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원히 삼재(三災)라고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 생사(生死) 해탈(解脫)하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저는 재삼(再三)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58)—1985(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1) 약 21분.  (2) 약 21분.  (3) 약 21분.


(1/3)----------------


불불산향만로비(拂拂山香滿路飛)한데  야화영락초리피(野花零落草離披)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춘풍무한심심의(春風無限深深意)  부득황려설여수(不得黃鸝說與誰)

나무~아미타불~


불불산향만로비(拂拂山香滿路飛)한데, 봄바람에 산에 그윽한 향기가 가득히 휘날리는데,

야화영락초리피(野花零落草離披)로구나. 들꽃이 시들어 떨어지매 풀에서 떠나서 흩어지더라 그말이여.


춘풍무한심심의(春風無限深深意)  부득황려설여수(不得黃鸝說與誰).

봄바람 ()없는 깊고 깊은 뜻은 노란 꾀꼬리가 아니면 누구와 더불어 이야기 수가 있을 것인가.


입춘, 우수가 지나고 이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오늘 을축년 정월 초사흘 날부터 앞으로 7 간을 신수(身數)기도를 봉행하게 되는데, 우수가 지냈는데도 바로 엊그제 눈이 많이 내리고 설풍(雪風) 엄동설한(嚴冬雪寒) 같이 매섭습니다.


그러나 입춘, 우수가 지나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말이 전해 옵니다. 머지않아서 산과 들에는 여기저기 울긋불긋 꽃이 피어서 아름다운 향내가 천지에 나부끼게 되고 나무에는 잎이 피고 가지가 뻗어서 거기에는 노란 꾀꼬리가 노래할 날이 머지 아니할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생존 시부터 정월에는 신수기도를 봉행해 오고 있습니다.

선방에서 참선만을 하지, 신수기도를 할까?’ 그렇게 생각하실 분이 계실른지 모릅니다마는 부처님께서 출세(出世)하셔서 중생을 교화하실 때에 중생의 근기 따라서 소승법·중승법·대승법·최상승법 그리고 교외별전(敎外別傳) 법을 차례로 설하셨습니다.


원래 진리에 입각해서 본다면 선도 없고, 악도 없고, 복도 없고, 죄도 없고, 생사도 없는 것입니다마는,

중생이 진리와 계합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은 업에 따라서 선도 있고, 악도 있고, 죄도 있고, 복도 있고, 남도 있고, 죽음도 있는 것입니다.


이미 확철대오를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 못한 우리 중생에게는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 끝없이 참회(懺悔) 해야 하고 소원을 비는 기도도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실스님께서는 평생 동안을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설해서 중생을 교화하셨지마는, 경우에 따라서는 이렇게 신수기도를 열어서 중생을 널리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앉아 계시는 법당에, 부처님 계신 좌우 벽에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영가(靈駕)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마는 이것도 또한 조실스님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신 대자비의 방편으로 위패를 모시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위해서 법을 설하고 기도 () 열어 주실 뿐만이 아니라, 돌아가신 우리의 선망부모와 형제자매와 원근 친척의 외로운 영가들을 위해서도 편안히 머물러서 항시 법문을 듣고,


위로는 부처님과 조실스님을 모시고 그리고 우리 선방에서 참선하시는 청풍납자(清風衲子)들을 항시 선배로 모시고 그리고 도반으로 모시고, 같이 영가의 위치에서 도를 닦다가 인연이 도래할 때에는 도솔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이나 다시 인도(人道) 돌아와서 정법 문중에서 도를 닦을 있도록 이러한 만년위패(萬年位牌) 제도를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신수기도를 앞으로 7일간 모시게 되는데, 신수기도라 하는 것은 지난 1 동안에 우리가 크고 작은 ()—주로 악업에 해당이 것입니다마는, 그런 죄업을 부처님께 참회하고 새해를 맞이해서 1 동안 무장무애 해서 우리의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중생은 눈만 한번 감았다 뜨고, 입만 한번 열었다 닫고, 손가락 발가락만 움직여도 전부가 () 짓게 되는 것입니다. 모금을 마시고 숟가락을 먹어도 업을 짓는 것이요, 빚을 짓는 것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이 있기 때문에 보아야 하고, 귀가 있기 때문에 들어야 하고, 사지(四肢) 백체(百體) 있기 때문에 운동을, 거래(去來) 모든 행동을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눈으로 보되 죄를 짓지 아니하고, 귀로 모든 소리를 듣되 업을 짓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걸어가고 걸어오며 모든 일을 하고, 나아가서는 장사를 하고 사업을 하면서도 죄를 짓지 아니하면서 최선을 다할 있을 것인가? 바로 여기에 우리의 바로 살아가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식(六識) 통해서 지은 모든 죄가 근본은 마음으로부터 짓게 되고 받게 되는 것입니다.


나무를 가꾸려 때에 뿌리를 북돋우고 뿌리에 적당한 수분과 비료를 공급하면은 나무는 자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뿌리에는 벌레와 균이 침범을 하고 적당한 수분과 비료가 공급되지 아니한 , 아무리 가지와 이파리에 매달려서 손질을 부지런히 한다 하더라도 나무는 건장하게 자랄 수가 없을 것이며 좋은 꽃과 훌륭한 열매를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엽적인 눈을 감고 보지 아니할려고 하고, 귀를 막고 듣지 아니할려고 그러고, 발을 묶어놓고 꼼짝을 할려고 한다고 해서 우리가 () 짓지 않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몸을 움직이고, 눈으로 보고, 귀로 모든 소리를 듣고, 입으로 말을 한다 하더라도 근본 마음이 제자리에 있고 올바르게 된다면, 마음의 발로(發露)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바르게 하고자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르게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을 바로 잡을 것인가?


엄격히 말하면, 바로 잡으려고 마음을 먹을 이미 마음은 흐트러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파도치는 물을 물의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파도를 눌르고 파도에 손을 대면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물건이라 하면 바로 삐뚤어진 것을 바로 놓을 수가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눈으로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가 없어.

마음을 생각으로써 생각을 일으켜서 바로 잡으려고 하면, 일으키는 바로 잡으려는 생각 때문에 새로운 마음의 파도가 일어나서 더욱 혼란을 야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용화사에서 조실스님 생존시부터서 항상 선양해 오고 () 오신 활구참선법.


활구참선법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을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아니하되 제절로 바로 잡게 하고, 일부러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되 모든 업은 제절로 소멸이 되고, 우리의 시청언동(視聽言動) 통한 모든 생활은, 보면은 남과 같으되 사실은 하나하나가 성불을 향한 수행이요, 불사(佛事) 되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스님의 법문 가운데에도 고구정녕이 말씀을 하셨지만 ()라고 하는 것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니여. 우리의 생활 속에서 닦아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생활을 여의고 도가 없으며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바로 자기를 찾는 것이 이것이 최상승법인 것입니다.


신수기도에 대부분그러께 삼재(三災) 들어와 가지고 작년에 머물렀다가 금년 을축년에 삼재가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마는,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 언제나 우리에게 다가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은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마음으로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삼재가 집안에 사람, 사람, 사람, 사람, 이렇게 여러 사람이 있을 경우 집안은 심히 크고 작은 어려운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마는,


대관절 삼재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뱀띠와 닭띠와 소띠는 지금 금년 삼재가 나가게 됩니다마는 사유축(巳酉丑) 생이 그렇게 되고 다음에는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삼재가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항시 3 동안 근신(謹愼)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삼재가 들었다고 해서 그러면 아무것도 아니하고 우두커니 앉아서 개구리가 겨울동안 땅속에 들어가서 동면을 하듯이 그렇게는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도 해야겠고, 관공서나 회사에 나가는 분은 출근을 해야겠고, 생활은 여전히 가되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이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에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은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처음~2040)



(2/3)-------------------


마치 집에 도둑이 침범해 들어온 거와 같아서 집이 문단속을 잘하고 모든 집안 사람이 일심이 되어서 잘해 나가고, 귀중품을 집에 두지 말고 간수를 하고, 모든 생활이 근검절약하고 이렇게 해서...

집안사람들이 문단속도 아니 하고 화목도 하지 못하고, 늦게까지 문을 열어 놓고 있고, 밤낮 싸움을 하고 이런다면 그리고 모든 생활은 사치에 빠지고 한다면 도둑이 엿보고서 침범을 하게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단속을 하고, 절약을 하고, 합심을 하고, 문단속을 잘하고 이렇게 된다면 도적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이며 들어왔다 하더라도 아무 것도 얻어 가지를 못할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문(六門)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문단속을 잘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켜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 것이고,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 것입니다.

팔만사천 마군이를 생각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 생각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 하고 있는 것도 역시 생각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는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생각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학도지인(學道之人) 불식진(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무시겁래생사본(無始劫來生死本)인데  치인환작본래신(癡人喚作本來身)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학도지인(學道之人) 불식진(不識眞)하고  지위종래인식신(只爲從來認識神)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된 것을, 이치를 아지 못하고 다못 종래로 식신(識神) 삼어. 식신을 가지고 자기의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고 그렇게 그릇 인식을 하고 있더라 그말이여.


식신(識神), 부르면 대답할 알고, 눈으로 무얼 보면 ···백을 분별을 하고 크고 작은 것을 알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저것 좋은 향내다’ ‘저것은 독한 가스 냄새다 향내를 분별하고,

손으로 무엇을 만져 보면 부드럽고 까끄러운 것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생각으로 무슨 말을 하면저것은 좋은 일이다 나쁜 일이다’ ‘저것은 예쁘다 밉다그런 것을 분별을 하고, 이러한 것이 모두 우리의 식신(識神) 작용이라 것입니다.


식신(識神)이라 하는 것은 무시겁래(無始劫來) 생사본(生死本)이여. 비롯함이 없는 무량겁 이전으로부터서 오는났다 죽었다. 났다 죽었다하는 생사윤회의 근본인데,

치인(癡人) 환작본래신(喚作本來身)이요. 어리석은 사람은 생사의 근본인 알음알이를 불러 가지고 본래신(本來身)이라 하더라 그말이여.


참선을 하게 되면은바로 눈으로 무얼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할 아는 이놈을 내놓고 어디가 마음이라 하는 것이 있을 것인가? 바로 이놈이 나의 면목이다이러한 착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깨달은 분상에 보면은 눈으로 알고, 귀로 들을 알고, 코로 냄새 맡을 알고,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선과 악을 분별할 아는 그놈을 여의고 본래신(本來身) 없겠지마는,

깨닫지 못한 분상에는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웁고 더운 것을 알고, 뜻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바로 그놈이 바로 부처다. 그놈이 진여다. 그것이 바로 나의 면목이다. 그놈을 여의고 무엇이 있을 것인가? 바로 이놈이다그러한 생각을 내서는 아니 것입니다.


생각 때에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과 거의 같은 표현인 같지마는 천지(天地)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것이 바로 진여불성일 있으나 사람은 영원히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생사의 근본을 그릇 인식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하는 사람은 제일 주의해야 것이! 이것이로구나 생각이 살생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도둑질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음행을 하려는 마음보다도, 무서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하셨지만, 산목숨을 죽이면은 무간지옥(無間地獄) 떨어져서 한량없는 () 받다가 다행히 영겁 뒤에 사람의 몸을 받아난다 하더라고 단명보(短命報) 받거나, 평생에 병고(病苦) 받는다 하셨습니다.


살생(殺生) 그렇게 무서운 죄이지만 식신(識神), 생사윤회의 근본인 알음알이를 나의 본래의 부처라고 착각하는 죄는 영원한 생사(生死) 다시는 헤어나기 어려운불조(佛祖) 출세(出世)하셔도, 삼세제불(三世諸佛) 출세하셔도 구제할 없는 그러한 무서운 죄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살생하는 죄는 참회(懺悔) 하면 용서 받을 수가 있지마는, 생사의 근본인 알음알이를 참나의 면목으로 착각해서 거기에 집착하게 되면은 참회할 길이 없고 구제 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착각에 빠진 사람은 남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공부해 나가는 사람은 식신을 갖다가 자기의 본래신으로 착각하지 것이다.



자리에는 삼재를 소멸을 하고 동안 무장무애하기 위해서 그리고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신수기도에 동참하시기 위해서 자리에 참석하신 분이 대부분이 그러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지극정성으로 사분정진(四分精進) 하게 됩니다마는, 있으면 거기에 같이 참석을 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가장 정성스럽게 기도를 봉행하는 것이 것인가?


가장 가깝게는 말을 많이 하지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면 거기에서 모든 재앙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해서 시비(是非) 하게 되면 거기에서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자기의 마음이 산란해지기 때문에 산란한 마음으로 어떻게 정성스러운 기도가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래서 7 동안의 기도 중에는, 가정에서나 차중에서나, 노상에서나 또는 도량에 들어오셔서나 되도록이면 말을 많이 아니한 것이 기도를 정성스럽게 봉행하는 가장 좋은 방편(方便) 것입니다.


여러분이 비단 신수기도 뿐만이 아니라 강화 보문사나, 양양 낙산사나, 또는 남해 보리암이나, 또는 오대산 적멸보궁 같은 데에 기도를 1년에 한두 차례 이상 가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마는 그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항시 출발할 때부터서 말을 적게 것입니다. 일행이 사람 내지 사람 이렇게 있다 하더라도 있으면은 말을 많이 하지 말아. 가면서도 말을 많이 하지 것이며, 오면서도 말을 많이 아니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도량(道場) 들어서서는 거의 묵언(默言) 하다시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서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시간 맞춰서 기도를 하고, 나머지 시간이 있으면 씻기도 하고, 닦기도 하고, 소지도 하고, 도량을 청결히 하면서 생각 생각이 화두를 들고 정진을 나간다면 기도는 반드시 뜻대로 성취가 것입니다.


기도합네하고 가지고 수선을 떨고, 수다를 떨고, 말을 많이 하고, 오면서 가면서 입씨름을 하고, 그래 가지고 기도가 성취되기를 바란다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고인이 말씀하시기를모든 재앙은 입으로부터 나오고,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가느니라.’ 했습니다.


입으로부터 재앙이 나온다 말은말을 함부로 가지고 때문에 시비와 재앙이 일어나 가지고 온갖 원망과 원수가 거기로부터 이루어진다.’ 이것입니다.

아니할 소리를 가지고 그래 가지고 싸움을 하게 되고 원수를 맺게 되는 예는 우리는 생활 속에서 종종 보고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온다 하는 것은 음식을 잘못 먹어 가지고, ‘잘못 먹는다하는 것은 주로 과식(過食) 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마는,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서 너무 많이 먹는다든지, 절도(節度) 없이 먹는 시간과 먹는 양을 지혜롭게 조절을 못하고서 욕심껏 먹고서 그래 가지고 모든 병을 이루는 경우는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입은 재앙(災殃) 문이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다.


수구여병(守口如甁)이니라. 입은 모든 재앙의 문이기 때문에 입을 지키기를 병마개 틀어막듯이 것이다. 틀어 막아버리면은 음식도 먹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벙어리가 되라는 말인가?


차라리 먹고 병날 바에는 음식을 끼니쯤 먹는 것이 낫고, 말을 가지고 재앙을 불러들일 바에는 잠시 벙어리 노릇을 해야 것입니다.


입이 뚫려 있으니 언제라도 집어넣으면 먹을 수가 있고, 언제라도 입을 벌리고 혀를 내두르면 말이 나올 것입니다마는,

때와 장소와 경우에 따라서 먹어야 때와 먹어야 , 말을 해야 때와 말을 아니 해야 때를 지혜롭게 단속을 하지 못하면, 평생 동안 병을 여읠 수가 없을 것이며, 평생 동안 재앙을 모면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가슴에 손을 얹고 고요히 반성을 해보시면 음식 때문에 병을 얻은 때가 얼마나 많으며, 때문에 부부간에도 시비(是非) 일어나고, 형제간에도 시비가 일어나고, 친구 간에도 시비가 일어나고, 이웃 친척 간에도 때문에 시비가 일어났던 일이 얼마나 많은 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무량겁 동안에 모든 () 시비(是非) 바로 조그마한 입으로부터 들어오고, 입으로부터 나온 사실을 명심(銘心) 하셔야 것입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 모든 역사(歷史) 역시 입으로부터 많은 재앙을 이루기도 하고 복을 짓기도 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적당량을 올바르게 섭취를 하면 몸에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건강을 유지하는 근본이 것이고,

해야 말을 해야 시간에, 해야 상대에게 말을 한다면 한마디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수도 있고, 타락한 사람을 새로운 사람을 만들 수도 있고, 파탄에 이르른 어떠한 사항을 갖다가 새롭게 발전해 나갈 있도록 하는 좋은 채찍이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잘못 섭취를 하고, 잘못 먹고, 잘못 말하게 되면, 평지에 풍파를 일으키게 되고 멀쩡한 사람이 병을 앓게 것입니다.(2040~4123)



(3/3)----------------


삼재(三災) 아까마음으로부터 일어난다했지만,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나오는 구녕은 바로 밑에 있는 구녁으로부터 모든 삼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 자체는 형상이 없기 때문에 눈으로도 출입을 하고, 귀로도 출입을 하고, 코로도 출입을 하고, 입으로도 출입을 하고, 몸뚱이 사지백체와 팔만사천 모공(毛孔)으로도 출입을 합니다.

형상이 없기 때문에 없이도 출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뜻을 통해서, 의식을 통해서 출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놈 단속하기가 심히 어려운 것입니다.


이놈 하나를 지혜롭게 단속을 한다면 삼재는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활구참선(活句參禪)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해버리면 일체 삼재는 나를 옹호하고 받드는 보호 신장(神將) 되어 것입니다. 바로 나의 권속(眷屬) 되고, 나의 제자가 되고, 나의 수호신이 되어 것입니다.


모든 팔만사천의 도적을 나의 명령 하에 움직이는 나의 충직한 군사가 것이며, 나의 제자가 것이며, 나의 권속이 되어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심왕(心王) 다스리는 데에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심왕을 다스리는 법이 바로 참선법(參禪法)이여.


참선은 일어나는 생각눈으로 무엇을 보면 희다, 검다, 누르다, 붉다, 크다, 작다, 저것은 사람이다, 짐승이다, 자동차다, 비행기다, 눈을 통해서 어떤 영상이 비치자마자 그러한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

알음알이가 일어나기 전에눈에 어떤 형상이 ! 비치자마자 거의 동시라고 만큼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마는, 알음알이가 일어나기 전에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에도, 귀는 항시 열려져 있기 때문에 언제나 크고 작은 소리, 멀고 가까운 소리가 우리 귀에는 들려 수가 있습니다.

들려오면 무심코 스쳐가 버리기도 하지만 소리를 듣고서 어떠한 알음알이가 발생을 하게 됩니다. 발생을 하면 잠깐 발생하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으로 가지가 자꾸 벌어져 나갑니다.


가령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하면,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비행기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인가 보다그리 생각하고,

비행기했다 하면은! 언젠가 우리 아저씨가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갔다그리 생각하고, ‘미국에 가서 사업이 잘되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거기서 비약을 가지고, 소련에 의해서 추락한 비행기를 생각하고 추락 비행기가 폭파할 때에 애석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고, 이리 해서 끊임없이 가지에 가지가 뻗고 가지에 가지가 뻗어 가지고 계속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슬퍼지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이것이 이런 식으로 소리 들었을 때에 그럴 뿐만이 아니라, 눈으로 그렇고, 코로 냄새를 맡을 그렇고, 몸에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별별 생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를 평생 동안을 그렇게 하고 세세생생(世世生生) 그렇게 해서,

((무기(無記) 탐진치 삼독심(三毒心) 거기서 이리저리 얽히고 머리카락 얽히듯이 얽히고 설켜 가지고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게 되고, 이렇게 해서 새로운 무서운 () 적극적으로 형성해 나가면서 과보를 받으면서, 받으면서 짓고 지으면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무량겁(無量劫) 오늘날까지 살아오고, 앞으로도 무량겁을 두고 그렇게 살아가게 것입니다. 무량겁의 생사윤회(生死輪廻) 근본적으로 다스리지 않고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정월에 일주일 동안 신수기도 함으로써 우리의 업장(業障) 소멸하고 그리고 모든 소원을 성취하기를 바란다고 하는 것은 우리 중생의 너무나 사려(思慮) 깊지 못한 바람이라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아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칠일 기도를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하면서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우리의 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참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원히 삼재(三災)라고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 생사(生死) 해탈(解脫)하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저는 재삼(再三)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생각 일어날 때에 바로이뭣고?’ 누가 나한테 욕을 해서 ! 귀에 거슬리는 바로 찰나에 다음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이뭣고?’

몸이 아파도이뭣고?’ 속이 상해도이뭣고?’ 배가 고파도이뭣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항상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지금이뭣고?’하고 있는 바로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처음에-’ 소리부터 하는데 -’ 하는 바로 이놈이 무엇인가? 그러한 뜻으로 뭣고?


이렇게 찰나 찰나를 이렇게 야무지게 알뜰하게 단속을 나간다면, 생각 생각의 단속이 쌓이고 쌓이면 그래서 일구월심(日久月深)하면 그것은 철위산(鐵圍山) 무너뜨릴 있는 그러한 무서운 위력을 우리는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도 바로 문제를 이렇게 해결을 해서 그런 대성현이 되신 것입니다. 역대조사도 또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근본을 해결하지 않고서 지엽적으로 일을 해결할려고 하면 복잡하고, 이놈을 막아 놓으면 저기가 터지고, 저놈을 막으면 여기가 터지고, 이놈을 일으켜 놓으면 저놈이 자빠지고, 저놈을 일으켜 놓으면 이놈이 자빠지고, 도대체 어떻게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근원에서 해결하면 지엽적인 문제는 제절로 정돈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고, 어떠한 사업을 하거나 어떠한 사물을 다룰 때에도 항상 근본(根本) 찾아서 근본 문제를 해결을 할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려면은 지혜(智慧) 있어야 . 자기가 지혜가 없으면 지혜 있는 사람의 지도를 받아야 것입니다.


우리는 숙세에 선근(善根) 있어서 최상승법을 듣고 실천할 있는 그러한 길을 금생에 만났습니다. 우리에게는 철저하게 믿고 최선을 다해서 실천을 가는 일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서 잘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공부는 지극히 방법은 간단하지만 너무 맛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맛이 없어서 되는 것인지 되는 것인지, 옳게 하는 것인지 잘못하는 것인지도 확실히 수가 없고, 할려고만 하면 무조건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조금 잘못하면 머리가 아프고, 조금 잘못하면 소화가 안되고, 이리저리 해서 여간해서 처음에 붙이기가 어렵습니다마는,


법문(法門) 자주 듣고, 좋은 도반들과 같이 애를 쓰고 열심히 나가다 보면 차츰차츰 요령을 터득하게 되고, 차츰차츰 공부해 나가는 길을 잡게 됩니다. 그러면은 그렇게 이것이 하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렇게 일양(一樣)으로 맛이 없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차츰차츰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않아도 들어진 때가 많고처음에는 아무리 들려고 해도 금방 생각이 들어오고, 겉으로는 들되 속으로는 의심이 간절(懇切)하지 못하고 생각이 노상 침노(侵擄)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망상(妄想)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그건 고대로 두고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잠간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면서내쉴 때는 배가 차츰차츰 차츰 이렇게 홀쪽하게 하면서 그때이뭣고?’


번이고, 번이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한결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