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佛法)'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5.10.03 §(212) (게송)백운아향만리표~ / 정법(正法)의 위태로움 / 육조 스님의 남악회양 선사 인가. 활구참선 / 네 아내(육신, 재산, 부모형제, 마음)의 비유.
  2. 2015.01.17 §(113) 전강선사 5주기 추모재 / 조주 스님의 가풍과 무쟁삼매법 / 참선을 잘하는 것이 최상승계를 잘 지키는 것.
  3. 2014.07.16 §(181) 칠성불공(七星佛供)-불사동참(佛事同參)-법문(法門)-소원성취 / 요중선(鬧中禪) / (게송)처자권속삼여죽~ / 부모에게 효도(孝道).
  4. 2014.05.11 §(240) 숯쟁이영감 /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으로 인과설을 들으면 그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되는 것 / 인과의 법칙을 인증(認證)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이 불법(佛法)이다 / 숙명론(..
  5. 2014.03.27 §(445)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분부 / 오욕락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 1초도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화두를 드는 것이 용맹정진 / 일념단속.
  6. 2014.02.08 §(099) 신수기도 /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맑아지면은 자기의 소원은 바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7. 2014.01.26 §(287) 극기(克己) / 최상승법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데에 있는 것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8. 2013.11.23 §(264) (게송) ‘만산홍록개묘체~’ / 참선의 근본 목적은 ‘내가 나를 깨달라서,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것’
  9. 2013.11.19 §(140) (게송)야래풍우객문선~ / 불법(佛法)은 나의 문제 / 생활속에서 한 생각 단속이 득력 / 한 생각 일어날 때 그 생각을 돌이켜서 본참화두를 들어야.
  10. 2013.11.06 §(458) 우리는 다행히 불법(佛法)을 만났으니 올바르게 참선을 해야겠다. 믿을 수 있는 또 믿어지는 선지식으로부터 한 화두를 타 가지고, 활구참선을 해서 불조의 지경에 이르기까지 정진해 ..

§(212) (게송)백운아향만리표~ / 정법(正法) 위태로움 / 육조 스님의 남악회양 선사 인가. 활구참선 /  아내(육신, 재산, 부모형제, 마음) 비유.


남악회양 선사 같은 도인(道人)은  숙세에 선근종자(善根種子)로  전생에부터서 많이 닦으신 그러한 도인이 태어나셨겠지만 그래도 8년이라고 하는 장구한 세월이 걸린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 근기(根機)가 박약(薄弱)한 우리 말세(末世) 중생들은 8 아니라 80년이라도 지루한 생각을 갖지 말고 목숨을 바쳐서  화두(話頭)에 대해서 참구(參究)를  나가야  것입니다.

**송담스님(No.212)—83 9 첫째 일요법회 (1983.9.4)

(1) 약 19분.  (2) 약 19분.

(1)------------------


백운아향만리표(白雲兒向萬里飄)한데   종래불망청산부(從來不忘靑山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내하유자부지환(乃何遊子不知還)허고   장재미도축풍파(長在迷途逐風波)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백운아향만리표(白雲兒向萬里飄)한데  종래불망청산부(從來不忘靑山父)로구나.

백운(白雲)이라고 하는 자식이 만리의 바람에 나부끼는데, 원래 백운은 청산에 의지해서 뭉쳐서 있다가 바람이 부니까  바람에 실려서  만리 하늘에 나부껴 날아갔다 그말이여.

종래불망청산부여. 그렇게 바람에 불려서 만리 하늘을 떠내려갔지만  백운은 항시  마음속에는 자기가 본래 놀며 의지하며 살고 있던  푸른 산을 마음속에는 잊지를 않고 있더라 그말이지.


내하유자부지환(乃何遊子不知還)인데, 어째서 무슨 일로  백운은 청산으로 다시 돌아올 줄을 모르고,

장재미도축풍파(長在迷途逐風波)로구나. 길이길이 자기 본래 살던  청산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타향으로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을 이리저리 바람 따라서 물결 따라서 떠돌이 신세가 되어있구나.


우리는 본래는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처럼 본래는 똑같은 본각(本覺)의 경지에 있었습니다.

새로 닦지 아니하고, 닦을 것도 없이 본래 깨달아져 있는 그러한 본각성(本覺性)이었건마는  생각 잘못 일어나는 것이 동기가 되어서 풍파에 나부껴 가지고 무량겁을 동서사방 육도(六途)를 돌고 돌면서 오늘에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래  부처님과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과  집에서  자리에서 기거를 같이 하고 생활을 같이 했건마는 그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이렇게   자리로 돌아갈 줄을 모르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이렇게 돌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 바람이 그칠런지, 바람이 부는 한에 있어서는 동풍이 불면 서쪽으로 날아가고, 서풍이 불면 동쪽으로 날아가고, 북풍이 불면 남쪽으로 몰려가고, 남풍이 불면 북쪽으로 나부껴서 동서사방 정처가 없습니다.


쪼끔 착한 일을 하면 천당에 가고, 악한 일을 하면 지옥에 가고, 축생도 되었다 인간도 되었다인간으로 태어나되   살기도 하고  살기도 하고, 착한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악한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마치 우리의  존재가 청산을 떠난 흰구름과 같이 그렇게 비유를 해서 읊은 게송입니다.



부처님께서 삼천 년 전에 가비라(迦毘羅) 왕국의 태자로 태어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설산에 들어가서 대도를 성취해 가지고 팔만사천(八萬四千) 묘법(妙法) 설하시고,

그래가지고 삼처전심(三處傳心)을 해서 현재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최상승법(最上乘法)이 오늘날까지 이렇게 면면(綿綿)히 전해오고 있습니다마는,


삼천 년이라고 하는  세월 동안에 부처님께서 전하신  정법(正法)은 실오라기처럼 위태로운 썩은 사내끼에 매달려 있는 바윗돌과 같이 언제  썩은 새끼가  끊어져 가지고  바윗돌이 땅에  떨어질른지 모른 그러한 위급한 상황 속에 불법이라고 하는  맥이 놓여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불교가 동양에 여러 나라에 전해 내려오고  경전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번역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불교를 믿고 있지마는,

참으로  불법에 등등상속해서 내려오는  법맥(法脈)이라고 하는 것은 실오라기만큼 그러한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하는 것을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금방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육조(六祖) 스님으로부터 법을 이어받은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의 말씀을 들었습니다마는 육조 스님께서 대중을 향해서 물으시기를,


여기에  물건이 있으니 위로는 하늘을 떠받고 아래로는 땅을 기둥하며,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모냥도 그릴 수가 없다. 항상  동용(動用)하는 가운데에 있으되 동용하는 가운데에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 이렇게 대중에게 물었습니다.


하택신회(荷澤神會) 선사는 제불지근원(諸佛之根源)이며 신회(神會)의 불성(佛性)이로소이다.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고  하택  자신의 불성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육조 스님께서 꾸짖으시기를 뭐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모냥도 그릴  없다고 내가 그랬거늘 어찌 제불의 근원이니, 하택의 불성이니 하고 이름을 붙이는고? 네가 앞으로 커서 공부를 열심히  가지고 설사 네가  스님이 된다 하더라도 너는 마침내 지해종사(知解宗師) 밖에는 되것다


지해종사라 하는 것은이론적으로 불법을 공부하는 학자나 강사 그러한 알음알이로 불법을 해석하고 강론하고 그러한 지해종사 밖에는  되것다 이렇게 점검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남악회양 선사가 육조 스님 앞에 와서 절을 했습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고 물으니까, 남악회양 선사는 망지소조(罔知所措)여.  맥혀 가지고 뭐라고 대답을  수도 없고 완전히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래가지고 물러 나와서 8년 간을 대관절  무슨 물건인가?’    없는 의심이 가슴속에 북받치는데  맥혀서 대관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무슨 물건인가?’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이틀을 그렇게 지내고,  달을 그렇게 지내고 1년 이태 3년을 그렇게 되아 8 만에사 ! 깨쳤는데, 육조스님 앞에를 갔습니다. “제가 깨달랐습니다


깨달랐으면 어디 일러봐라

설사일물(說似一物)이라도 즉부중(卽不中)입니다. 설사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아, 도리어 닦아 증(證)할 것이 있느냐?”

수증(修證)은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렴(汚染)은 즉부득(卽不得)입니다. 닦아 증할 것은 없지 아니하나 더럽히고 물들인 것은 없습니다. 오렴은  얻을 수가 없습니다


육조 스님께서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러니라 이렇게 해서 쾌히 인가(印可)를 하시고 법(法)을 남악회양 선사에 전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 하는 것은 제불의 근원’이니, 무슨 나의 불성’이니 그렇게 이론으로 따지고  길이 있고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있고, 이렇게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공부해서 그럴싸한 결론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알음알이요 사량분별(思量分別)을 떠나지를 못했기 때문에 그것은 깨달음이 아닌 것입니다.  맥혀서 답답해  수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가자니 은산철벽(銀山鐵壁)이 가로막고 있고, 뒤로 물러서자니 천길만길 절벽이라, 나아갈 수도 없고 물러  수도 없고 다못  맥혀서   없어.

 무엇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앉으나 서나 밥을 먹으나 옷을 입으나 이렇게 해서 일체처 일체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정진을 다져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남악회양 선사 같은 도인(道人)은  숙세에 선근종자(善根種子)로  전생에부터서 많이 닦으신 그러한 도인이 태어나셨겠지만 그래도 8년이라고 하는 장구한 세월이 걸린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 근기(根機)가 박약(薄弱)한 우리 말세(末世) 중생들은 8 아니라 80년이라도 지루한 생각을 갖지 말고 목숨을 바쳐서  화두(話頭)에 대해서 참구(參究)를  나가야  것입니다.


그만한 공력과 그만한 끈기와 그만한 노력이 없이는 생사해탈(生死解脫)을 어떻게 기약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해서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 만진 것보다도  쉽다’ 이렇게도 쉬웁기로 말하면 그렇게 쉬웁다고 표현을 하셨지만,


어렵기로 말하면은   말을 갖다가  알씩을  나무 뿌럭지 있는 데서부터서 굴려서   길이나 되는 나무 꼭대기까지 굴려서, 그 나무의 몸뚱이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나씩 하나씩을 굴려서 나무 꼭대기에다 올려다 놓고,

다시 또 내려와서 깨 한 알을 갖다가 뿌리에서부터 굴려서 올려 가지고 저 꼭대기에 갖다 놓다가, 중간에 잘못해서  떨어지면 다시 뿌리부터서 굴려 올리고 그래서  한 말을 굴려 올릴 만큼.


그것이 얼마나 공력을 드려야—그 하나를 평면으로 굴려 올린다면 모르지만, 서 있는 나무에 굴려서 올린다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시라 그말이여. 그만큼 공력과 끈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도를 닦겠다고 출발을 했지만 중도에서 물러서거나 중도에서 쉬어버리거나 또는  길로 빠지거나 이러기가 십상(十常) 쉽고, 끝까지 나아가서 목적을 달성한 사람은 그렇게 흔치를 못하는 것입니다.


까딱하면 중간에 어떠한 유혹에 빠지기도 하고, 해태심(懈怠心)을 내기도 하고 그래가지고 한결같이 쉬지 않고 나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항시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 모시고 법문(法門)을 들어야 하고,  좋은 도반들과 항시 같이 수행을 해 나가야,

내가 혹시 해태심이 나거나  생각을 내더라도 도반(道伴)으로부터 경책(警策)을 받고 선지식으로부터 법문을 들어서 그러한 위기를 면하면서 끊임없이 목적지를 향해서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처음~192)



(2)------------------


옛날에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실   거사(居士)가 있었는데 그때에  거사는  사람의 아내를 데리고 살았습니다.

 사람을그때 당시는 일부다처제로 아마 부인을 첫째 부인, 둘째, 셋째, 넷째  사람 능력 따라서 여러 부인을 거느리고  수가 있었던지  사람의 아내를 데리고 살았었는데,


 사람은 첫째 부인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앉을 때나 섰을 때나, 잠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어디 외출을  때나 일을  때나, 언제 어데서라도 잠시도  첫째 부인과 같이 붙어서 살았습니다그만큼  첫째 부인을 사랑하고 애끼고 좋아하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먹는 것도  먹이고 세상에서 없는 제일 좋은 것은  먹이고,  입히고 누가 조금이나 해꼬자 할까 항시 자기  가까이에 놓고 그렇게 사랑하고 이뻐했습니다.

아마  세상에 아무리 아내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사랑하기는 어려웠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둘째 부인도 첫째 부인만큼은 못해도 너무너무 사랑해서 도대체 다른 사람이  자기 아내를 볼까 두려워서 항시 가둬놓고  아내를 사랑을 했습니다.

행여나 남이 눈독을 들일까  남이 아내를 훔쳐갈까 이래가지고 아내는 도저히 어디 밖에 내보내지도 않고, 마당에도  내보내지도 않고, 항시 자기 방이나 특실에다가  넣어 놓고 쇠통을 채워 놓고 그렇게 아내를 사랑을 했습니다.


너무너무 애끼고 사랑을 하고 심지어는 의처증(疑妻症)이라고  만큼  아내를 밖으로 내놓지를 않고 남이 보는 것을 그렇게 꺼려했습니다. 


셋째 부인은셋째 부인도 애끼는 생각도 있고 사랑하는 생각도 있고 그랬지만마음대로 밖으로도 외출하고 싶으면 하게 하고, 그렇게 날마다 보지는 아니하고 가끔 한번씩 보기만 하고 그저 수수허니 그렇게 살았습니다.


넷째 부인이 있었는데,  넷째 부인은 항시자기(거사)는 그렇게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지마는 넷째 부인은 그렇게 남편을 하녀가 상전 모시듯이 그렇게  따르고  명령을 복종을 하면서 그렇게 했습니다마는,


남편은 여간해서    명절이 되어도 해주도 않고, 그냥  그저  비슷하니 그렇게 취급만 했지 별로 그렇게 아끼지도 않고 따뜻하게  주지도 않고, 그렇게 해서  아내를 그렇게 거느리고 살았습니다. 



그러자  장자(長者)는 하룻날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데로 귀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가면 다시는 돌아오기가 어려울 그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데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첫째 부인을 보고 내가 이렇게 인자 가는데 다시 돌아올런지  돌아올런지  수가 없고, 나는 당신을 여의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그러니 나를 따라서 가자”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러니  마누라는 내가 평생동안 당신을 모시고 살았고, 당신도 나를 끔찍이 애끼고 사랑한 것은 사실이나 나는  따라 가겠다”고.


그럴 수가 있느냐”고 했지만  이상은 죽었으면 죽었지  따라 가겠다하는 것입니다그래  수 없이 이런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여자가 있다 말이냐”고 호통을 치고, 그래도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하는 데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부인한테  말을 했습니다둘째 부인도 당신이 나를 너무 지극히 사랑해서 평생을 참 문밖을 마음대로  나가고 가둬 놓고 키우고 그랬지만 나는 당신을 따라갈 수가 없다 둘째 부인도 거절을 했습니다.


그래 셋째 부인한테  말을 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그동안에 살면서 첫째와 둘째한테만 내가 주로 사랑을 쏟고 당신한테는 그렇게 사랑을  해주고 해서내가  마지막 가게 될런지도 모른   나라를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하기가 미안하나, 어디 그래도 첫째 둘째가 저렇게 배은망덕을 해서 안 가니 당신이라도  같이  수가 없겠느냐?” 사정을 하니까,


평생동안 괄세를 하고 첫째 둘째한테만  빠져 가지고  돌아본 채도 안 해 놓고서 어째 오늘은 나보고 아주 가자고 하냐”고, “그런 철면피(鐵面皮) 같은 소리를  수가 있단 말이냐”고나도 그렇게는  하겠다”고  잡아뗐습니다.


그래 마지막에 넷째 부인한테 부탁을 했습니다. “내가 그동안 당신을 하녀처럼 생각하고    변변히   것도 없고,  한번 내가 따뜻하게 만져주지도 않았는데저렇게  여자들이 저렇게 배은망덕을 하고  따라가니 도저히  혼자 가기는 도저히  수가 없고 천상 당신이 나를  따라가 줘야 하지 않겠냐?”고 하니까,


넷째 부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어피차 나는 일생동안 당신의 종노릇을 하면서 푸대접을 받아도 그것이 나의 팔자거니 하고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당신이 살면 얼마나 산다고 내가 기꺼이 내가 따라 모시겠다 그래 가지고 승낙을 했던 것입니다.


첫째 부인은 국경까지는 바라다 주겠다, 둘째 부인은   방안까지 밖에는  가겠다,  셋째 부인은  마을 밖에까지 밖에는  가겠다이렇게 모다 해서 거절을 당하고 그렇게 인자 마지막 넷째 부인과 길을 떠나게 되었다 이것입니다.



그런데  첫째 부인은 무엇이냐 하면은 우리의 육신(肉身)이라 이것입니다사람이  영혼이  세상에 태어날  육신을 받아서 태어나게 되고  그러기 때문에 일생동안  육신을 떠나서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영혼이 떠나는데 육신이 따라갈 수가 없고, 육신은 결국은 영혼이 떠날  육신은 떨어져서 쓰러지면 땅에다 묻거나 불에 때우거나 하지, 육신이 절대로 영혼을 따라갈 수가 없는 데다 비교를  것이고.


둘째 부인은 재산에다가 비교를  것입니다육신이라 하는 것은 자나깨나 항시 같이 살고 있는 것이지만 재산은 누가 보면 훔쳐갈까, 달라고 할까 두려워서 항시 창고나  속에다 가둬 놓고 쓰기 때문에 둘째 부인은 재산에다가 비유를  것이고,


셋째 부인은 부모나 형제나 처자권속에다가 비교를  것이어서 가끔 만나면 좋고 그저 든든한 맛으로 그저 형제간은 그렇게 살되,  영혼이 죽은다 해서 형제간이 같이 죽어갈 수는 없는 것이죠?


그런데 마지막 넷째 부인은 우리의 마음에다가 비교를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동안 살면서  마음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게 사는 것입니다.


 몸뚱이라든지, 재산이라던지, 부모 형제에 대해서는 온갖 인정을 쏟고 애지중지 하고,  어쩔 줄을 모르고 심지어는  육신을 위해서는 온갖 음식이다 보약이다  좋은 옷이다 화장품이다 해 가지고,

그렇게  정성을 쏟아서  육체 하나를 갖다가  가꾸기 위해서 평생동안 보호를 하고 애지중지 하지만  데로 떠나는 날에는 완전히 언제 봤던가 완전히 배신을  버리고 따라가 주지를 않는 것입니다.


둘째 재산도  재산을 벌기 위해서 그렇게  피땀 흘려서 고생을 하고 밤잠을 안 자고 고생을 하고,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 알고 모르고 지은 죄가 얼마인 줄을  수가 없고 그렇지마는 죽어 가는 마당에는 재산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부모라던지 형제간이라던지 처자권속도 내가 희생을 해 가면서 봉사를 하고 그걸  먹이고  입히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쏟고 하지만,

내가 죽어 갈 때에는 부모도 어찌하지 못하고 형제간도 어찌하지 못하고 심지어 처자와 아내와 자식들도 내가 죽어 갈 때에는 나 대신 죽어  수도 없고 내가 죽을  따라 죽어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넷째에 평생에 괄세를 하고 소박을 했던 넷째 마누라는 바로 우리의 마음자리에다 비교한 것인데 마음자리 마음은 제일 소중하고 애끼고  먹이고  입혀야  넷째 마누라인데,

그것을 등한히 하고 첫째 마누라, 둘째 마누라, 셋째 마누라한테만  빠져 가지고 괄세를 했기 때문에,  셋째까지 먹여 살리느라고 죄만 퍼지었지, 마지막 가는 마당에는  죄만 짊어지고 가게 되고 아무도 따라와 주지 아니한 것처럼,


우리의 본성(本性)을 갈고 닦아서 과거에 지은 업(業)도 소멸하고, 새로 업을 짓지 말아야 극락세계(極樂世界)나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 태어나거나,

또는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되 좋은 가문과 좋은 부모와  정법을 만날  있는 그러한 환경에 태어나서 인물도 좋고 머리도 좋고 인품도 좋게 태어나서 공부도 걸림이 없이 하고   최상승법과도 인연이 있어서 바르게 살아갈  있게 되겠지만,


그것을 괄세를 하고, 불고(不顧) 하고 그랬기 때문에,  마음자리를 괄세를 하고 닦지를 않았기 때문에 악도(惡道)에 떨어져서 그동안에 애끼고 가꾸고  육신이나 재산이나 부모 처자권속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특히 우리나라는 지금 부인을 하나 밖에는 갖지를 못하게 법률이 되어 있습니다마는그러한 이  명의 부인을 갖는다 하는 것은 우리의 육체와 재산과 부모와 형제 처자권속과  우리의 본래부터 타고난  마음자리와   가지를 비유를 했을 ,


사실 우리는 아직도 불법을 믿고, 도를 닦고 이렇게 와서 법문을 듣지만첫째 둘째 셋째만 이뻐하고, 넷째 부인은  겨우 시간이 쪼끔 있으면 형식상으로 쪼끔 들여다본  하고 실재 마음을    있고,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분이 많이 계시다면,

이것은 불법(佛法)위태로운  썩은 새끼에 매달린 불법이위태로운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불법을 그렇게 위태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는 여지없이 배신해 버리고 말아버릴 그러헌 첫째 둘째 셋째 부인한테만  빠져 가지고 정신이 하나도 없고,

진짜 나를 따라가  넷째 부인한테는 그렇게 등한히 하기 때문에 마지막 떠나는 길이 그렇게 처량할 수 밖에는 없는 것처럼,


우리의 자성(自性) 본성(本性) 바로 그놈을 제일 애끼고 사랑하고 돌봐줘야 하고  먹이고  입혀야  터인데 그것을 괄세를 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의 장래우리 자신들의 금생은 말할 것도 없고,  내생 무량겁을 두고 처량한 신세로 객지로 육도윤회를 떠돌이  수 밖에는 없게 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불법의 명을 실오라기처럼 위태로운 지경에까지 몰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193~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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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백운아향만리표~’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게송 참고.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 ; 끝도 없이 아득히 넓고  하늘.

*본각(本覺)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 말함.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 (, 의지에 기초한 행위)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 있다.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 .

①진리  자체인 법신(法身) 형상화한 . ②대일여래(大日如來) 같음."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말이  많다。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묘법(妙法) ; ①심원미묘(深遠微妙) 도리. 특별한 진리. ②바른 이법(理法). ③뛰어난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고귀한 가르침.

*삼처전심(三處傳心) ; 세존이 가섭(迦葉)존자에게 마음-() 등불을 따로 전했다는  .

 곳이란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다자탑전분반좌 多子塔前分半座) 첫째요,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영산회상거염화 靈山會上擧拈花) 둘째요, 사라쌍수 아래에서  속으로부터  발을 내어 보이심(사라쌍수하곽시쌍부 沙羅雙樹下槨示雙趺) 세째이다.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 다자탑 앞에서 자리를 절반 나누어 앉으심.

다자탑(pahuputraka) 중인도 비사리(毘舍離Vaisali) 서북쪽에 있다。이 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는데,   하나는 어떤 장자(長者)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아 이룬 뒤에,  아들  육십 명이 아버지가 공부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탑을 쌓았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곳에서 설법하실 때에 가섭존자가 누더기를 걸치고 뒤늦게 참석하자, 여러 제자들이 그를 낮보았다。이에 부처님께서 앉으셨던 자리를 나누어  분이 함께 앉으셨다 한다.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심.

범어의  Grdhrakuta 음대로 써서 기사굴산(闍崛山)이라 하고, 뜻으로 번역하여 영취산(靈鷲山) • 취봉(鷲峰) 또는 영산(靈山)이라고만 한다。그  모양이 독수리 같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위에 독수리가 많았던 탓이라고도 한다。이 산은 중인도 마갈타(摩竭陀Magadha) 서울 왕사성(王舍城 Raja-grha) 동북쪽  리에 있다.

부처님께서 어느   곳에서 설법을 하시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부처님은  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니, 백만 대중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었다。이에 부처님은 『바른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언하셨다 한다.


사라쌍수하곽시쌍부(沙羅雙樹下槨示雙趺) : 사라쌍수 아래에서  속으로부터  발을 내어 보이심.

부처님께서 북부 인도의 구시라(拘尸羅 Kusinagara) 서북쪽으로 흐르는 발제하(跋提河 Ajitavati) 물가, 사라수 여덟 대가 둘씩 마주  있는 사이에 침대를 놓게 하고 열반에 드시니,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그리하여 학의 (鶴林, 鶴樹)이라고도 하게 되었다.

부처님의 몸은 금으로 만든 관에 모시고 다시 구리로 지은 덧곽에 모셔 두었는데,  곳에 갔다가 부처님이 열반하신  7 만에 당도한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관을 3 돌고 3 절하매, 관곽 속으로부터  발을 내어 보이셨다 한다.

*등등상속(燈燈相續) ; () 중생의 무명(無明)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 비유한 ,  진리의 () 스승이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면면히(綿綿히 ·이어질·연속할 ) ; 역사나 전통 따위가 끊어지지 않고  잇따라.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실오라기 ;  가닥의 .

*사내끼 ; 새내끼. 산내끼. ‘새끼(짚으로 꼬아 만든 )’ 사투리.

*법맥(法脈) ; 세속에서 조상의 전래 혈통(血統) 밝히고 있듯이, 불교 선종(禪宗)에서는 스승에서 마음을 깨친 제자로 계속 이어져 전해 ,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 법통(法統) 전승을 법맥이라 한다.

*육조 스님, 남악회양 선사, 하택신회 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지해종사(知解宗師) ; 참선 공부를 알음알이로 따져서 해석하고 강론하고 공부해 가는 강사나 이론가를 말한다.

*망지소조(罔知所措 그물·근심할·없을 망/알 지/ 바·방법 소/둘·처리할·조처할 조) ; 너무 당황하거나 급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고 갈팡질팡함.

*인가(印可 도장 ,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은산철벽(銀山鐵壁) ; 철벽은산(鐵壁銀山).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

*천길만길(千길萬길) ; 매우 깊거나 높은 모양을 이르는 .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선근(善根) ; 좋은 과보를 받을 만한 착한 (행위. 온갖 () 낳는 근본. 청정한 행위를  근성.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박약(薄弱 엷을 / 약할 ) ; ①의지나 체력 따위가 굳세지 못하고 여림. ②근거 따위가 충분하지 못하거나 모자란 데가 있음.

*말세(末世  ,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 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참구(參究 헤아릴 ,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십상(十常) ; ①열에서 아홉일 정도로 확률이 높다는 . '십상팔구(十常八九, 열에 여덟이나 아홉 정도로 거의 예외가 없음)'에서  .

*해태(懈怠 게으를 , 게으를 )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경책(警策 깨우칠 /채찍 ) ; 타이르고 채찍질하여 깨우치게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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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사(居士) ; ①고대 인도에서 ·공업에 종사하던 부호②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남자 신도. 출가하지 않고 법명(法名) 받은 재가(在家) 남자.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남을 해치고자 하는 .

*의처증(疑妻症 의심할 /아내 /증세 ) ;  이유도 없이 아내의 행동을 지나치게 의심하는 변태적인(變態的, 정상적이지 못하거나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달라진 ) 성격이나 병적 증세.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

*귀양 ; 예전에, 죄인을 고향이 아닌  시골이나 섬으로 보내어 일정한 기간 동안 제한된 곳에서만 살게 하던 형벌을 이르던 .

*끔찍이 ; 정성이나 성의(誠意, 진실되고 정성스러운 ) 따위가 매우 극진(極盡). --극진히 : 마음이나 대접이 매우 정성스럽게.

*배은망덕(背恩忘德) ; 남에게 입은 은혜를 잊고 배반함.

*괄세 ; 괄시(恝視 소홀히 할·푸대접 할 괄/ 볼·대우할 시)—사람을 업신여겨 하찮게 대함.

*철면피(鐵面皮 쇠 철/낯·얼굴 면/가죽 피) ; 철로 만든 낯가죽이라는 뜻으로, 염치(廉恥,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없고 뻔뻔스러운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

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불고(不顧 아니 불/돌아볼 고) ; 돌아보지 않음.

*악도(惡道, 惡途) ; 악한 짓을  중생이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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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전강선사 추모재2015.01.17 11:08

§(113) 전강선사 5주기 추모재 / 조주 스님의 가풍과 무쟁삼매법 / 참선을 잘하는 것이 최상승계를 잘 지키는 것.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과연 「정법이 무엇이며, 불법은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길을 가르켜 주고, 우리는 어떻게 해서 불법을 통해서 자아를 완성하는가」에 대해서 밝은 지침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조실 스님의 생존에 하신 말씀이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지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이 도량을 잘 지키고 나를 기다리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철저한 신심으로 조실 스님의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도를 닦으면서 하루하루를 알뜰하게 살아간다면 반드시 우리는 다시 몸을 받으신 조실 스님을 친견할 수 있고, 살아계신 불보살도 친견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계는 참선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 계는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참 계’를 바로 지킬라면 참선을 하지 아니하고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는 계를 설할 때에 화두(話頭)를 주심으로써 계 설하심을 삼으셨습니다.

**송담스님(No.113)—조실스님 제 5주기 추모재(80.01.19)


(1) 약 21분.  (2) 약 13분.


(1)------------------


오늘은 전강 대종사 제 5주기 추모 법요식일입니다. 날씨는 매우 혹독한데 원근에서 이렇게 참석을 해 주신데 대해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무술년 11월 16일 날 전남 곡성에서 탄생하셔 가지고, 17세에 출가하셔서 갑인년 12월 초이튿날 용화선원에서 77세를 일기(期)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 동안 23세에 견성오도(見性悟道) 하셔 가지고 33세에 양산 통도사에 첫 조실로 취임하셔서 학자를 제접(提接) 하신 이래로 50여 년간을 전국 유명 선원에서 많은 선객(禪客)들을 제접을 하시고,

말년에 15년간을 여기 용화선원 염전(田) 가에 조그마한 토굴에 계시면서 승속(僧俗)에 정법(正法)의 씨를 뿌려 주셨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사부대중(四部大衆)께서는 직접 대부분이 조실 스님을 친견하시고, 법의 은혜를 입으신 분이 많으실 줄 생각합니다.


여기에 계시면서 그 어려운 가운데에도 전국의 좋은 절을 많이 놔두고 하필 이 갯벌 가에서 고생을 하시면서, 여기서 우리들을 교화해 주셨던가.

생각해 보면 숙세의 인연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 그렇게 우리들을 위해서 고생을 하시면서 법을 설해 주신 걸로 생각이 됩니다. 


맨 처음에 여기 용화사는 저 밑에 보살선원 조그마한 불당(佛堂)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서 조실 스님이 여기 왕래하시다가 그 옆에 선원을 지으시고, 그리고서 신도가 차츰 불어나니까 앞에 법보선원이라고 여기 조실 스님 계시던 벽돌집을 지으시고,

그 다음에 현재 우리가 지금 앉아있는 이 법보전(法寶殿), 법당을 옛날 신사당(社堂) 터에다가 20평 가량 지었습니다. 얼마 안 가서 그 법당(法堂)이 좁아서 다시 또 10여 평을 늘여 가지고 현재의 이 법당이 되었습니다.


조실 스님 열반하신 뒤 6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조실 스님의 법(法)은 살아계실 때에도 사자후(獅子吼)와 같은 그러한 생사 없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설해 주셨지만,

열반에 드신 뒤, 오히려 전국 방방곡곡의 사부대중들은 조실 스님의 그 위없는 법에 더욱 감동되고, 신심을 돈발(頓發)해서 조실 스님의 법을 추모하는 사부대중이 나날이 불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국의 어느 선원이나 어느 신도나 심지어는 저 구라파(巴)나 미국에까지도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은 갓 없이 멀고 가까운 곳이 없이 번지고 번져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과연 「정법이 무엇이며, 불법은 과연 우리에게 어떠한 길을 가르켜 주고, 우리는 어떻게 해서 불법을 통해서 자아를 완성하는가」에 대해서 밝은 지침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우리 용화선원도 법당이 협착(窄)해서 법회 때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법당에 다 수용을 못하고, 밖에서 추운 겨울이나 더운 뙤약빛 속에서도 밖에서 법회에 참석할 수 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조실 스님의 법이 얼마나 위대하고 거룩한가, 법문을 듣고 또 듣고 여러 번 들으면 들을수록 그 법문이 우리의 ‘참마음’을 두들겨 주기 때문에 그러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법당이 없어서 법을 못 듣는 것도 아니고, 법당이 없어서 법을 설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법문을 들을려면은 들을 장소가 필요하고, 법을 설할려면 또한 법을 설할 만한 설할 수 있는 그러한 도량(道場)이 필요한 것은 현실적으로 어찌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불법(佛法)은 꼭 절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온 우주법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 불법 아닌 것이 없지마는,

그래도 우리가 현실적으로 법을 듣고 설하려면은 법당이 필요하고, 닦을려면 또한 선원(禪院)이 필요한 것도 어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이 법당을 늘구실 때에 저는 “법당이 좁은들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신도가 많이 오시면 뜰에서도 듣고, 저 잔디밭에서 들어도 상관이 없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씀도 드린 일이 있습니다마는,

얼마 안 가서 이 법당이 좁아지고, 정말 이 법당을 늘리지 않고서는 어찌할 수가 없는 그러한 상태에까지 왔습니다. 



지금부터 약 1200년 전에, 중국 하북성에 진주 관음원(觀音院)이라고 하는 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조주(趙州) 스님이라고 하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그 스님은 18세에 출가해 가지고, 120세에 열반을 하신 고불화현(古佛化現)이라고 존경을 받는 그러한 큰스님이십니다. 그 스님은 어려서 견성(見性)을 하셔 가지고 널리 알려져 있는 큰스님입니다.


근데 하루는 어느 큰 선방에서 이 조주 스님을 조실(祖室)로 청했습니다.


(조주 스님이) 맨 처음에 그 공양주(供養主)에게 명하기를 “개를 한 마리 구해다가 잡아서 마지(摩旨) 솥에다 삶아라.”

그래 공양주는 조실 스님의 명령이니까, 개를 잡어가지고 마지 솥에다 삶아가지고 대중공양(大衆供養)에 개고기 국을 퍼서 들여왔습니다.


대중이 공양을 할라고 보니까 기름이 번들번들하고 누린내가 나는 개고기 국이었습니다.

대중은 일제히 바리때를 도로 싸고 ‘이런 외도(外道)한테 우리가 법을 배우다니!’ 분개해 가지고 걸망을 싸 짊어지고 모다 도망갔습니다. 그 때 공양주와 채공(菜供) 두 사람만이 남았습니다.


조주 스님은 “무쟁삼매법(無諍三昧法)으로 외도 놈들을 다 내쫓았구나.” 이렇게 선언을 하시고서 그해 여름에 공양주와 채공 두 사람을 데리고 거기서 지내셨습니다.

공양주와 채공은 철저한 신심, 목숨 바쳐서 도를 닦은 까닭으로 해서 그해 여름에 확철대오를 했던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모양을 보고 믿는다든지, 음성을 듣고 추종을 할 경우 열이면 열 다 물러서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하면 시인(是人)은 행사도(行邪道)라.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라.’


만약 색(色)으로써 나를 보거나, 색은 모양입니다.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다 갖춘 그러한 거룩한 어른이기 때문에 부처님이다. 그러니까 나는 저 부처님을 '참 성현'으로 믿어야지’ 이렇게 생각한다든지.


‘부처님은 원음(圓音)이시라. 그 음성이 사자의 부르짖음과 같고, 한 말씀으로 설하되 육도의 모든 중생이 다 같이 들을 수가 있는 이러한 원음이시기 때문에 석가여래(釋迦如來)야말로 성현(聖賢) 가운데에 성현이다’ 이렇게 믿고 추종을 한다든지.


이리해서 ‘모양으로 나를 본다든지, 음성으로서 나를 구하는 자는 이 사람은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이라, 이 사람은 마침내 참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개정국으로써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들을 내쫓고, 법(法)에 의지할지언정 사람에 의지하지 아니한,

법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소견과 자기의 목숨까지도 다 바칠 수 있을 만한 그러한 참된 학자, 공양주와 채공 두 사람을 데리고 그해 여름을 지내심으로써 두 견성(見性) 불자를 만드신 것입니다.


그 조주 스님은 평생에 많은 학자를 거느리고 선방에 지내시기보다는 평생 동안을 한 사람 내지 두 사람 정도 철저한 사람을 데리고 지내셨습니다.

지내신 그 절이 기와가 깨지고, 지붕에 풀이 우거지고, 비가 줄줄 새도, 기와 한 장을 고치지 아니하고 풀 한 포기를 뽑지를 아니하시고, 이쪽 구석에 비가 새면 저쪽 구석으로 피해 앉고 이러시면서 일생을 지내셨습니다.


옛 부처님의 화현으로 태어나신 그러한 대도인으로서도 절을 짓는다든지, 큰 절을 가지고 지내신다든지, 많은 대중을 모여서 살려고 하시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수없이 많은 중생을 교화를 하시고, 많은 공안을 조사공안(祖師公案)을 남기신 대도인이십니다.


조실 스님께서도 역시 잠깐 잠깐 큰 선원의 조실을 부득이해서 안 맡으신 것은 아니지만 잠깐 지내시다가 내버리고 토굴(土窟)로 들어가시고,

또 토굴에 가 계시면 또 어느 큰 선방에서 조실로 모시면 마지못해서 또 따라가셨다가 한 철, 많아야 두어 철 지내시다 금방 또 토굴로 와 버리시고 이러시다가 제일 많이 지내신 곳이 바로 이 용화사 선원입니다.


부득이해서 이런 법당을 이렇게 지으시기는 했지만은 언제나 조실 스님께서는 꼭 조주 스님처럼 그렇게 지내셨습니다.


이 송담(松潭)은 그 법에 있어서나 도력에 있어서나, 조주 스님이나 조실 스님의 그런 행을 따를 수가 없지만,

그렇게 지내신 것을 항시 마음에 흠모(慕)하고 ‘내가 장차 그런 법력(法力)과 도력(道力)을 갖춘다 하더라도 조주 스님처럼 그렇게 일생을 지내리라’ 이렇게 생각을 하고 오늘날까지 살아왔습니다.


이 용화사가 법회 때 많은 사부대중이 모이시지만 법당이 이렇게 비좁아도 법당을 더 키우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새로 법당을 더 지을 그런 생각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웃채와 아래채 중간에 선방과 창고를 뜯어내고 20미터의 노폭을 가진 큰 길을 내년 봄부터 공사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래 선방, 부인선방, 후원(後院)은 전부 다 뜯기게 되고, 이 웃채에서만 살 수 밖에는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선방도 없어지고, 부인선방도 없어지고, 후원채도 없어집니다.


그리해서 부득이 내년 봄에는 선방도 지어야 하고, 후원·요사(舍)채도 지어야 하고, 그럴 수 밖에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선원을 운영해 나가면서 남은 돈을 한 푼 두 푼 모여서 선방을 지을 수 있을 때 지으리라 이리 생각을 하고 왔었는데요.


갑자기 이렇게 환율이 인상이 되고 물가가 상승이 되어서 처음에 예상했던 대로 그 준비 가지고서는 도저히 불사(佛事)를 완성시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선방이나 법당을 안 지을 수도 없고, 짓자니 여러 가지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마는,

우리가 정법을 믿고 거기에 의지해서 '참나'를 깨달아서 우리의 몸에 진리를 구현할 수 있는 그러한 대원력(大願力)을 갖고서 마음을 합한다면 어떠한 불사라도 이루지 못할 까닭이 없다고 하는 신념은 가지고 있습니다.(처음~20분2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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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실 스님께서 15년간 여기에 터를 잡으신 목적이 무엇인가?

한사코 토굴로만 도망갈라고 하는 저를 보시고, ‘사람이 오십이 넘으면 옛날 고인들도 다 죽을 자리를 보는 것인데 밤낮 토굴로만 가서 숨을라고만 하고 그런다’고 노상 걱정을 하셨습니다.

마지막 열반(涅槃)하실 때까지도 저를 기다리시다가 결국은 열반에 드셨습니다.


생존에 조실 스님의 뜻을 잘 받들지 못한 송구한 마음, 죄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마는 열반하신 뒤에, 생존에 하신 말씀이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지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이 도량을 잘 지키고 나를 기다리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육조 스님께서 돌아가실 때 열반하실 때, “어느 곳으로 가십니까?” “낙엽이 귀근(歸根)이라. 떨어진 이파리는 뿌리로 돌아가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허셨습니다.

“언제 다시 돌아오십니까?” “내시무구(來時無口)니. 올 때는 말이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과연 조실 스님께서 언제 오실는지,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생사를 해탈한 부처님이나 도인은 원래 생사가 없는 것이어서 다만 우리 범부의 눈에 열반상을 보이실 뿐이지 생사가 없다고 하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마는,

우리의 눈으로 갑인년 12월 2일 이후로는 우리의 눈으로는 조실 스님을 뵈올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녹음법문을 통해서 생존시나 다름없이 그 우렁찬 법문은 들을 수가 있습니다마는 그 모습은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같이 우리의 정성을 모여서 법당을 세우고, 조실 스님의 육성법문을 들으면서 몸과 목숨을 바쳐서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함으로써,

조실 스님의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몸과 마음, 모든 정성을 기울여서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앞길을 위해서 우리의 도업(道業)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불보살(佛菩薩)은 육도법계(六道法界)에 언제 어디서라도 계시는 것이며, 다못 철저한 신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모습을 나투신 걸로 나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철저한 신심으로 조실 스님의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 도를 닦으면서 마음을 닦으면서 하루하루를 알뜰하게 살아간다면 반드시 우리는 다시 몸을 받으신 조실 스님을 친견할 수 있고, 살아계신 불보살도 우리는 친견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감히 여러분 앞에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은 조실 스님 제 5주기를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손상좌(孫上佐), 손주 상좌 다섯 사람이 새로 계를 받아서 출가를 하게 되겠습니다. 


계(戒)는 몸으로 지키는 계와 마음으로 지키는 계가 있습니다.

대승계는 계를 파(破)하지 않고서는 설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 계’를 지킬라면 참선(參禪)을 해야 하고, 참선을 해서 바로 깨닫기 전에는 ‘참 계’는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계는 참선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 계는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참 계’를 바로 지킬라면 참선을 하지 아니하고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는 계를 설할 때에 화두(話頭)를 주심으로써 계 설하심을 삼으셨습니다.


오늘은 조실 스님의 제 5주기 열반재일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뜻을 받들어서 간략히 그러나 가장 알찬 계를 설할까 합니다.


임행자. 불명(佛名)은 성월, 은사(恩師) 스님은 운거 스님.

서행자. 불명은 성화, 은사 스님은 용문사 주지 스님, 우담정환 스님.

황행자. 불명은 성훈, 은사 스님은 도산정몽스님.

문행자. 불명은 성천, 은사 스님은 용주사 총무 정낙 스님.

불명은 성품 ‘성’자 항상 ‘상’자, 성상, 은사 스님은 정명 스님,


그리고 완월, 원래는 조실 스님의... 아시는 바와 같이, 오 정월 스님이 계셨습니다.

그 스님은 진즉 돌아가시고 그래서 조실 스님과 인연이 깊고 그래서 준례에 따라서 조실 스님, 노스님 위로 올려붙이는 것이 좋다고 해서 정목 스님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안월이 아니라. 구경‘완‘자 완월. 


계는 참선을 잘함으로써 저절로 계가 잘 지켜지도록... 


계를 설하는데 대단히 복잡한 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까 드린 바와 같이 최상승계는 참선을 잘함으로써 지키는 상(相)이 없이 저절로 지켜지는 계, 파하고 지키고 할 것이 없는 계, 이 계야말로 최상승계인 것입니다.


최상승계를 명실공(共)히 잘 지키기 위해서는 조실 스님의 법에 의지해서 철저하게 참선 수행을 함으로써 ‘참나’를 깨달아서 부처님의 지혜목숨[慧命]을 계승함으로써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상으로써 계를 설해 마쳤습니다. 오랜 시간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어서 조실 스님 추모재를 거행 하겠습니다.(20분30초~33분1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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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오도(見性悟道) : ‘성품(性)을 보아(見) 진리(道)를 깨친다(悟)’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 견성오도라 한다.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승속(僧俗) ; 스님과 스님이 아닌 속인(俗人)을 아울러 이르는 말.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신사(神社) ; 일본에서 왕실 조상이나 고유 신앙 대상 신(神) 또는 국가 공로  사람 신(神)으로 모신 사당.

*법당(法堂) ; ① 불상을 모신 사찰의 중심 건물. ② 설법하거나 각종 의식을 행하는 사찰의 건물. ③ 사찰에 있는 전각(殿閣)을 통틀어 일컬음.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구라파(巴)유럽(Europe)’ 음역어이.

*협착하다(窄--  좁을 협,좁을 착) ; ①차지하고 있는 자리 매우 좁다. ②처하여 있는 사정이나 형편 매우 어렵다.

*도량(道場) :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늘구다 ; ‘늘이다(수효, 부피, 무게 등을 더 많거나 크게 하다)’의 사투리.

*조주 스님 ;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고불화현(古佛化現) ; 부처님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견성(見性) : 성품을 본다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부처님께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사시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마지 올린다’고 하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摩指摩旨磨旨) ‘손으로 만들어 올린다 혹은 정성스럽게 만든 공양을 올리오니 제 뜻을 감읍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라고도 한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무쟁삼매(無諍三昧) ; ①진리에 안주(安住)하여 다른 것과 다툼이 없는 선정(禪定)을 말한다.
②타인과 다툼이 없는 경지. 다툼이 없는 것은 마음 속에 갈등이 없는 것. 나아가서는 ‘미혹이 없는 것’이다. 쟁(諍)은 번뇌(煩惱)의 다른 이름이니, 무쟁(無諍)은 곧 무번뇌(無煩惱)이니, 이것은 무루법(無漏法)이다.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삼천위의(三千威儀) ; 비구(출가한 남자 스님)의 일상 행동에서 지켜야 할 계율이 250종이어서 이를 ‘비구 250계’라고 한다. 일상생활은 크게 행(行)·주(住)·좌(坐)·와(臥)로 나누기 때문에 이 네 가지에 250을 곱하면 천이 된다. 이를 다시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에 곱하면 3천이 된다.
*팔만세행(八萬細行) ; 부처님의 모든 행동은 원만하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다는 것. 팔만 가지 세세한 행동들이 전부 부처님의 위의(威儀, 훌륭한 행위)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원음(圓音) ; 모든 중생이 제각기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이해하는 원만한 부처님의 가르침.
*석가여래(釋迦如來) ; 석가모니(釋迦牟尼). 석가(釋迦)에 대한 존칭.
여래(如來)는 부처님 10호(十號)의 하나로 범어 Tathagata(다타가타)의 역(譯)이다.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개정국 ; '보신탕(湯, 개장국(--) 완곡하게 이르는 )'의 사투리. 개장국(개고기를 여러 가지 양념채소와 함께 고아  옛날부터 삼복( 또는 병자의 보신을 위하여 를 먹는 풍습이 있었다).
*조사공안(祖師公案) ; 조사가 시설(施說)한 선(禪)의 관문으로서의 공안.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흠모( 공경할 흠,그리워할 모) ; 마음 그리고 우러러 따름.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후원(後院) ; 절에서 부엌을 일컫는 말.
*요사채(舍- 집 료,집 사) ; 사찰 에서 전각이나 산문  스님 생활 관련 건물 통틀어 이르는 .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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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의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과 집착(執着)을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한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손상좌(孫上佐) ; 제자의 제자를 일컬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불명(佛名) ; 불법에 귀의한 남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
*은사(恩師) ; ①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②자기를 출가시켜 길러 준 스승.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명실공히(名實共-)알려진 내용 실제 내용 똑같게.
*지혜목숨혜명(慧命). ①지혜를 생명에 비유하는 말. 대도정법(大道正法)의 명맥(命脈). ②법신(法身)은 지혜가 생명이 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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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법회(칠석)2014.07.16 11:23

§(181) 칠성불공(七星佛供)-불사동참(佛事同參)-법문(法門)-소원성취 / 요중선(中禪) / (게송)처자권속삼여죽~ / 부모에게 효도(孝道).


모든 신앙·방편이 불교에 들어와 버리면, 눈 밝은 도인(道人)들은 그런 여러 가지 방법을 선방편(善方便)으로 자유자재로 사용을 해서, 모든 중생을 최상승법(最上乘法)으로 이끌어 들이는 요긴한 방편으로 써버린다.
보시라 하는 것은 우선 보시하는 그와 동시에 탐착심과 애착심을 버리게 되는 것이여.
법문을 들어야만 어떠헌 것이 정법이요 어떠헌 것이 삿된 길이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이여.
목적지에 도달허기 위해서는 바른길을 알아야 하고, 바른길을 알기 위해서는 법문을 들어야 하고, 법문을 듣기 위한 계기는 모든 불사에 참여를 해야만 된다.
첫째 이 최상승법을 믿을려면 맨 처음에 바른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야 한다.
일에다 핑계를 대고 공부를 안 했다고 해서,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아, 너는 일이 많아서 못했지 신심이 없어서 못한 것이 아니니까, 에이! 너는 공부를 그렇게 못했지만 너는 극락에 보내주마’ 이렇게 되지를 안혀.
냉정히 가슴에다 손을 대고 ‘내가 과연 부모에게 얼마만큼 효심이 있는가, 부모에게 내가 얼마만큼 효도를 했는가’ 냉정히 반성을 해 보셔서....
**송담스님(No.181) - 1982년(임술년) 칠석법회(82.8.25)(62분)에서.


(1) 약 19분.  (2) 약 20분.


(1)------------------

오늘은 임술년 음력 7월 7일 칠석날입니다. 저 신라 이전부터 토속 신앙(土俗信仰)으로, 중국에서부터 7월 칠석에는 칠성불공(七星佛供)을 드리는데,
그래 가지고 오복(五福)을 성취하고 인간으로서 모든 소원을 성취허기 위해서 절에 가서 칠성 불공을 드리고 칠성 기도를 드리고 소원을 빌어왔다 이 말씀이여.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고 우리 나라에 들어와 가지고, 그러헌 토속 신앙이 불교와 합해져 가지고 벌써 삼천년이 되는 오늘날에도 칠석날은 절에서 큰 불공을 드리고 법요식(法要式)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불법(佛法)은 바다와 같아서 동서남북 사방에서 흘러들어온 모든 종류의 물을 다 받아들여.
흙탕물도 받아들이고, 맑은 물도 받아들이고, 동쪽 물도 받아들이고, 서쪽 물도 받아들여서, 일단 그 많은 물을 받아들이면, 그 물이 일단 바다에 도착하면 한결같이 짠물로 변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불법은 도교(道敎)의 것도 받아들이면 그것이 불법(佛法)으로 화해 버리고, 바라문교의 것도 불교에 들어오면 그것이 짠맛으로 변해 버리고, 일반 토속 신앙도 불교에 들어오면 그것도 불법의 한 방편(方便)으로 변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헌 여러 가지의 모든 신앙, 방편이 불교에 들어와 버리면,
눈 밝은 도인(道人)들은 그러헌 여러 가지 방법을 선방편(善方便)으로 자유자재로 사용을 해 가지고, 모든 중생을 최상승법(最上乘法)으로 이끌어 들이는 요긴한 방편으로 써버린다 그 말이여.

칠석날에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고 기도를 허면, 온 가족의 수명장수(壽命長壽) 복덕구족(福德具足)을 빈다.
이러헌 소박한 신앙심이 아니면 방방곡곡에서 모든 할머니와 젊은이들이 어떻게 절로 그날을 찾아 갈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그러헌 소박한 신앙심 때문에 절을 찾아가게 되었고 절을 찾아갔기 때문에 좋은 법문을 듣게 되어 가지고 마침내는 정법(正法)을 믿어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할 수 있는 데까지 이르를 수가 있다 이 말씀이여.

절에는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을 지내기도 하고, 또는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하기도 하고, 또는 보살계산림(菩薩戒山林)을 하기도 하고, 또는 방생(放生) 법회를 하기도 하고, 개금불사(改金佛事)를 하기도 하고, 또는 법당을 짓는다든지 범종(梵鐘) 불사를 하기도 하고 많은 종류의 불사(佛事)가 있는데,
그 많은 불사가 원리에 입각에서 보면 모두가 다 한결같이 한군데로 한 목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말씀이여.

불사(佛事)에 동참(同參)을 하면 보시(布施)를 허게 되니까 보시 공덕을 쌓게 되는데,
‘보시 공덕은 무엇이냐'하면 ‘보시를 허는 그 공덕으로 나중에 복을 받는다’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선후가 있지만, 보시라 하는 것은 우선 보시하는 그와 동시에 탐착심과 애착심을 버리게 되는 것이여.

탐착심 때문에, 탐욕 때문에 결국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허고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는 것인데,
탐진치 삼독심(三毒心)을-물질을 보시 헐 때 그 동시에 탐진치 삼독심을 희사(喜捨)를 해 버리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장차 소원을 성취할 수가 있고 복을 받을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둘째는 보시를 허기 위해서 오고, 공을 드리기 위해서 칠석날이라던지 그 밖에 모든 법회 모든 불사에 동참을 허는데 동참하러 와서 법문(法門)을 듣게 된다 그말이여.

‘법문을 듣는다고 허는 것은 무엇이냐’하면 ‘정(正)과 사(邪)를 간택(揀擇)헐 수 있게 된다’ 그말이여.
법문을 들어야만 어떠헌 것이 정법이요 어떠헌 것이 삿된 길이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이여.

법문을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그 어리석은 생각에 그것이 전부인줄 알고 꽉 집착을 해가지고 영원히 벗어날 기약이 없는데 법문을 들어야 한번 뿐만이 아니라 듣고 또 듣고, 듣고 또 듣고 법문을 들어야만 자기의 선입관 잘못된 생각을 털어 버릴 수가 있어.

잘못된 그릇된 삿된 생각을 꽉 국집(局執)해 가지고 버리지 못하고 그 독 속에 울안에 갇혀가지고,
마치 우물 안에 개구리처럼-우물 안에 개구리는 빤히 내다보이는 그 쪼그만한 것이 하늘인줄 알고 하늘이 넓은 줄을 모른다 그말이여. 또 우물 안에 그 쪼그만한 물 그것이 이 세상에 제일 큰물인줄 안다 그말이여.

우물 밖에 나와 봐야 하늘이 넓은 줄도 알고 또 바닷가에 가봐야 과연 물이라 하는 것이 이렇게 넓은 것이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듯이,
법문을 들어 봐야 어떠헌 것이 바른 것이고 어떠헌 것이 삿된 것이고, 어떻게 믿어야 불법을 옳게 믿을 수가 있다 이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복을 빌되 어떻게 빌어야 참으로 올바른 복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법문을 들음으로써 바르고 바르지 못한 것을 알 수가 있고, 바른 길을 알아야만 그 길을 행해 갈 수가 있어.
목적지가 동쪽에 있는지 서쪽에 있는지 북쪽에 있는지 그 목적지가 있는 방향을 먼저 알아야 하고, 방향을 알아서 우선 어느 길로 가야 한다고 하는 길을 찾아야만 행할 수가 있는 것이여.
길을 바로 잡아서 열심히 가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이여.

그래서 목적지에 도달허기 위해서는 바른길을 알아야 하고, 바른길을 알기 위해서는 법문을 들어야 하고, 법문을 듣기 위한 계기는 모든 불사에 참여를 해야만 된다 그말이여.

‘불사에 참여해야 복을 성취할 수 있다’ ‘복을 받고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모든 불사에 동참을 해야 한다’고 하는 말이 이러헌 까닭으로 해서 그 말이 절대로 거짓말이 아니요, 헛된 말이 아니요, 반드시 근원이 있는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칠월 칠석날인데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까막까치가 은하수(銀河水)에서 다리를 놓아줌으로해서 그 까막까치의 오작교(烏鵲橋)를 건너 가지고 견우와 직녀 두 사모하는 애인이 오늘 만나는 날이다.

그래서 오늘 칠석날에는 이 은하수에 까막까치가 그 오작교를 만들기 위해서 떠나버렸기 때문에 들이나 산에나 까마귀나 까치를 구경할 수가 없다 그러는데 여러분이 돌아가시는 길에 혹 까마귀가 어디가 있는가 한 번 찾아보십시오. 눈에 띄지 아니하면 틀림없이 그 은하수로 오작교를 만들기 위해서 간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 서로 사랑하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지를 못허다가, 오늘 칠석날 저녁에 까막까치의 다리로 인해서 겨우 1년 동안에 단 한번 만날 수 밖에는 없냐.

아마도 우리 탐진치의 삼독과 오욕락(五欲樂)에 얽혀서 그저 명예를 위해서 몸부림치고, 재산을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그러다가,
한번도 나의 부모 보다도 더 가깝고, 형제간 보다도 더 가깝고, 또 부부 간 보다도 더 가까운, ‘참나’-나의 자성(自性) 그놈을 오늘 이 칠석날 법회에 참석함으로써 겨우 비로소 오늘 그 ‘참나’를 깨달을 수가 있다.

‘참나’를 깨닫는 방법을 이 ‘칠석법회라고 허는 오작교’를 인연해서 참나를 깨닫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날 수가 있다. 아마 이렇게 풀이를 해 보는 것도 뜻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칠석날이 아니였으면 이리저리 바쁘다 핑계하고, 법회 참석허기가 어려웠을 텐데 이 칠석날 때문에 법회에 참석하니까, 오작교 때문에 견우와 직녀가 만난 것과 같은 그러헌 이치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 조상들은 정말 그 소박한 토속 신앙으로 칠석날은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해 가지고 쌀을 택미(擇米)를 해서 쌀을 한 자루 담고, 주머니에 꼭꼭 싸서 간직했던 주머니돈을 가지고 머리를 감고 그래 가지고 새 옷을 갈아입고서,
절로 가서 칠석날 칠석불공을 드리고서 아들딸의 수명장수를 빌고 모두 온 집안이 1년 동안 태평하기를 빌고 그렇게 정성스럽게 불공(佛供) 마지(摩旨)를 올리고서 그리고서 그 흐뭇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또 아들을 못 낳는 그런 분들은 생남 불공(生男佛供)을 하고 이렇게 해 가지고 다행이 태기(胎氣)가 있으면 틀림없이 칠성님이 점지해 주신 줄 알고 그 아들을 애지중지(愛之重之)하고 “너는 칠성님이 점지해 주셨기 때문에 절대로 불교를 배반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당부를 하고 유언을 해 가지고,
일생동안 다른 종교의 유혹이 많건만 ‘절대로 나는 칠성님이 점지해 태어났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믿을 수가 없다’해 가지고 대대손손이 불교를 믿어오는 집안이 아마 적지 아니헐 줄 생각합니다.

그러헌 칠석날을 맞이해서 우리는 조실스님의 최상승 법문을 들었습니다. 언제나 조실스님은 최상승 법문을 여의고 설하신 적이 없지만 오늘은 유독 골수(骨髓)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첫째 이 최상승법을 믿을려면 맨 처음에 바른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야 한다. 선지식을 찾지 않고서는 결단코 정법(正法)을 만날 수가 없다.

선지식은 부처님으로부터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전해 내려오는 정법을 가지고 있는 분이기 때문에,
선지식을 의지해야만 정법은 들을 수가 있고 배울 수가 있고, 그 정법에 의지해야 나도 정법을 실천헐 수가 있고 정법을 실천해야 ‘참나’를 깨달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4분53초~23분26초)


(2)------------------

우리는 세속에 태어날 때 많은 일들을 타고났습니다.
속담에 ‘일 다하고 죽은 무덤은 없다’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마는 일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해도 그 다음날 또 일헐 것이 있고 또 그 다음날 또 일헐 것이 있고 1년 열두 달 잠깐도 한가한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 이 말씀이여.

남편을 위하는 일, 아들·손자를 위하는 일, 딸과 며느리를 위하는 일, 일가친척을 위하는 일, 그런 가정일 뿐만 아니라 사회·국가를 위하는 일, 크고 작은 일이 한도 끝도 없는데,
‘그 일을 다 끝내놓고 참선을 해야겠다’허면 영 참선헐 시간이 없어.

그래서 아까 조실스님께서는 요중선(中禪)이다, 조용한 가운데 허는 참선은 정중선(靜中禪)이라 그러고, 시끄러운 가운데 허는 참선을 동중선(動中禪) 또는 요중선이라 그러는데,

‘그 요중선을 헐 줄 알아야 참으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실천헐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조용한 시간과 장소가 있어서 정식으로 죽비를 치고 참선을 헐 수 있다면 그것도 또한 다행한 일이지만 그러헌 시간과 장소는 여간해서 가질 수가 없어.

그래서 이 요중선을 허는 방법을 알아서 요중선을 해야 공부를 성취를 허지,
밤낮 복잡허다고 뒤로 미루고, 일이 많다고 뒤로 미루고, 시끄럽다고 뒤로 미루고, 장소가 없다고 뒤로 미루면, 미루다가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어느덧 10년 20년이 퍼뜩 지내가고 만다 이 말씀이여.

일에다 핑계를 대고 공부를 안 했다고 해서,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아, 너는 일이 많아서 못했지 신심이 없어서 못한 것이 아니니까, 에이! 너는 공부를 그렇게 못했지만 너는 극락에 보내주마’ 이렇게 되지를 안혀.

처자권속삼여죽(妻子眷屬森如竹)하고  금은옥백적사구(金銀玉帛積似坵)라도
나무~아미타불~
임종독자고혼서(臨終獨自孤魂逝)허니  사량야시허부부(思量也是虛浮浮)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처자권속(妻子眷屬)이 삼여죽(森如竹)하고, 처자(妻子)와 권속(眷屬)이 삼대같고 대와 같이 즐비하고,
금은옥백(金銀玉帛)이 적사구(積似坵)라도, 금과 은과 옥과 비단이 산더미같이 쌓여있다 할지라도,

임종독자고혼서(臨終獨自孤魂逝)라. 임종헐 때에는, 숨이 끊어져서 이승을 하직헐 때에는 처자·권속이 자기를 위해서 대신(代身) 가 주지를 못하는 것이고,

금은옥백이 아무리 많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는 돈·금 모다 그런 것이 많으면 그것을 뇌물을 써가지고 면하는 수도 더러있고 그렇지마는,
이승을 하직해 가지고 죽어가는 마당에는 산더미같은 금은옥백이 있다 하더라도 죽음을 면할 도리는 없어.

사량야시허부부(思量也是虛浮浮)라. 곰곰히 생각허니 정말 허망하기가 말 할 수가 없다 이 말씀이여.

조조역역홍진로(朝朝役役紅塵路)하고  작위자고이백두(爵位纔高已白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염왕불파패금어(閻王不怕佩金魚)허니  사량야시허부부(思量也是虛浮浮)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조조역역홍진로(朝朝役役紅塵路) 아침부터 저녁까지 날이면 날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홍진로(紅塵路).
작위자고이백두(爵位纔高已白頭)로구나. 벼슬이 어느 정도 올라가서 이제 참 소원을 이루었다 싶으면 벌써 흰머리가 나 버리고 만다 이말이여.

염왕불파패금어(閻王不怕佩金魚)인데, 세속에서는 무슨 국장이다·장관이다·과장이다 벼슬이 높으면 모다 그 사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우러러보고 그러지만,
염라대왕 앞에 가면 아무리 높은 벼슬·훈장을 차고 가도 염라대왕은 눈도 거들떠보지도 않어. 그러니 생각해보면 이것도 또한 허망허기가 그지가 없구나.

세상 사람들은 처자를 잘 먹이고 잘 입히고 호강을 시키기 위해서 그 헐 짓, 못헐 짓 허다가 죄도 많이 짓고 그러는데, 기왕 본의 아니게 돈을 벌고 벼슬을 하고 명예와 권리를 얻기 위해서 애를 썼으면,
부모를 위해서 그것을 요긴하게 써 보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그말이여.

아내와 자식 그것은 응당 남편으로서 자기에게 따르는 식구이기 때문에 응당 잘 먹이고 잘 입혀야 되겠지만, 분에 넘치게 잘 입히고 잘 먹였다고 해서 나라에서 상을 주거나 누가 비석을 세워 주거나 누가 칭찬한 사람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부모에게 잘하면 효자문(孝子門)도 세워 주고, 설사 지금은 효자문 같은 것을 여간해서 세우는 일이 없지만 그래도 효부상이다, 효자상이다 그런 표창제도가 지금도 다 있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면 부모한테 잘허는 것은 나라에 충성한 것과 똑같이 훌륭한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부모가 없으면 이 몸뚱이가 어디서 태어났냐 이말이여. 부모로 인해서 이 몸뚱이를 받아났기 때문에 이 몸뚱이가 있으므로 해서 하늘도 있고 땅도 있고 나라도 있고 처자 권속도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서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소중허다 하더라도 내 몸이 제일 소중한 거여. 내 몸이 소중한데, ‘이 소중한 내 몸이 있는 것은 어떻게 해서 있어졌는냐?’하면은 부모로 인해서 있어졌다 그말이여.

부모가 아니 계셨다면 이 몸뚱이는 태어나지를 못했고,
부모가 나를 열 달 동안을 뱃속에 그렇게 조심스럽게 잘 태중에서 길러가지고, 그 하늘과 땅이 딱 닿아버릴 정도에 그 무서움과 괴로움을 겪으면서 나를 출산을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 똥오줌 가릴 때까지 그 더러운 줄 모르고, 정말 그 진자리 마른자리를 갈아 뉘시면서 젖을 먹이고 밥을 먹이고, 그래 가지고 키워서 학교를 보내고,

형편이 넉넉한 분은 넉넉한대로 형편이 어려운 분은 어려운대로, 피땀을 흘려서 그 자식을 맥이고 가르켜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가리키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하셨느냐.
생각해보면 자기가 그 자식을 길러보지 않고서는 상상으로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헌 부모에게 효도(孝道)를 헌다고 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정말 그 효도를 허기가 그렇게 어려워.
자식한테 잘한 것은 가르키지 아니해도 스스로 우러나와서 자동적이요 자발적으로 자식한테는 잘해지게 되는데 부모한테 잘허는 것은 큰 마음을 먹어야 해지게 된다 그말이여.

 옛날에 어떤 참 훌륭한 학자 선비가 있었는데 부모가 병환이 났을 때에는 하루 저녁에 세 번을 부모 방에 들어가서 어떻게 잠을 잘 주무시는가, 어떻게 크게 보대끼시지는 않은가.
그래서 세 번을 들어가서 병문안(病問安)을 했는데, 병문안을 하고 나와서는 자기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코을 골고 잤다 그말이여.
한숨 실컷 자고 나와서는 또 갑자기 놀래서 일어나 깨 가지고 또 부모 방에 들어가서 문안을 여쭙고 또 돌아와서는 또 한숨 푹 자고 그랬는데,

자식이 죽을 병이 들어가지고 자식이 병을 앓고 있을 때에는 자식 방에 한번도 가보지도 않고 자기 방에 가서 있어도, 한숨 잠을 못 잤다 그말이여. 그러니 이게 어떻게 된 말씀이냐 이말이여.

부모한테 세 번을 가서 부모 방에 들어가서 문안을 헌 것은 지어서 헌 것이고, 자식이 아픈 것은 진짜 잠이 안 왔다 그말이여. 잠이 안 와.
이것이 오늘 저녁이라도 죽을 것인가, 숨을 거둘 것인가, 다행히 살아날 것인가, 오늘밤을 못 넘길 것인가. 아무리 잘라고 누웠어도 초롱초롱 잠이 안 왔다 그말이여.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걱정허는 것은 이것은 자발적이여. 사람 뿐만이 아니라 짐승도 똑같다 그말이여.

그러니 ‘부모가 자식한테 잘하라, 자식한테 잘하라’란 말은 사서삼경을 다 읽어 봐도 별로 그런 소리 없고,
부모한테 잘하란 말은 사서삼경에 구구절절이 써 있고, 팔만대장경에도 구구절절이 부모한테 잘하란 말이 써 있고,

옛날 중국에서 인재를 뽑을 때에는 모든 시험을 필기 시험도 보고, 구두 시험도 보고, 모다 자격시험을 보지만 마지막에 가서 최종 간택을 헐 때에는 ‘부모헌테 효도를 헌 사람이냐, 안 헌 사람이냐' 그거를 가지고 최종 선발을 했다 이 말씀이에요.

왜 그러냐 하면 부모에게 효도를 헌 사람이라야 나라에 충성을 헐 수가 있기 때문에 그랬다 이 말씀이여.
부모한테 불효한 사람은 아무리 학문이 훌륭하고 능력이 있고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은 역적질을 허거나 사기 횡령을 하거나 국가를 배반허고 말아 버린다 그말이여.
그래서 진짜 인물을 뽑을 때에는 ‘부모에게 효도를 헌가, 안헌가’에 의해서 최후에 분별을 했다 이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처자·권속을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이 세상에 참 부러운 것이 없다’헌 분이 많으실줄 생각하지만,
냉정히 가슴에다 손을 대고 ‘내가 과연 부모에게 얼마만큼 효심이 있는가, 부모에게 내가 얼마만큼 효도를 했는가’ 냉정히 반성을 해 보셔서,

내가 과히 그렇게 부모에게 불효는 헌 일은 없다 혹 그만큼 생각이 든다 하더라도, 부모의 은혜를 갚는데에는 한(限)이 없는 것인 만큼 더욱 효도를 할 것이고,
정말 양심적으로 반성을 해서 불효를 했다고 생각이 드신 분은 오늘부로 깊이 참회(懺悔)를 하고 새 마음으로 부모에게 효도를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4분53초~42분48초)


-------------------(1)

*토속 신앙(土俗信仰) ; 그 지방에 내려오는 고유한 신앙.
*칠성(七星) ;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신격화한 것으로 칠성에 대한 신앙은 특히 중국의 도교에서 발달하여 이후 ①불교에서 칠성은 호법선신(護法善神)의 하나로 수용되었고 ②민간에서는 특히 수명과 재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믿어졌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오복(五福) ; 인생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복. 보통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일), 고종명(考終命-사람이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음)을 이르는데, 유호덕과 고종명 대신 귀(貴)함과 자손이 중다(衆多)함을 꼽기도 한다.
*법요식(法要式) ; 불사(佛事-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를 할 때 행하는 의식.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선방편(善方便) ; 선교방편(善巧方便). 방편에 정교한 것. 뛰어난 수단.
부처님이 법(法)을 설함에, 교묘하게 잘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 여러가지 방법·수단을 사용하는 것.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 ; 죽은 후에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하여 생전에 미리 올리는 재(齋).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본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악업(惡業)을 짓지 않아-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방식을 의미하였다가, 점차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리며 그 공덕을 함께하기를 기원하는 불교의식을 일컫는 말로 정착되었다. 또한 법회 때 스님이나 속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근래에는 특히 돌아가신 영가를 위한 천도재(薦度齋)가 널리 행해짐에 따라 보통 ‘재=천도재’로 여긴다.
*가사(袈裟) : [범] kasaya  범어를 음대로 쓴 것인데, 뜻대로 번역하면 잡색(雜色) • 염색(染色) 곧 순색이 아닌 옷을 말한다。인도는 더운 곳이므로 속인(俗人)들은 모두 흰 옷을 입는데, 출가한 이는 그 옷을 달리하기 위하여 염색하되 검박한 빛으로 하게 되었다.
또한 품질이 좋은 새 옷감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것 저것을 주워 모아서 누더기같이 만들었는데, 크고 작은 세 가지(三衣)가 있어서, 다섯 폭으로 된 것(五條)은 일할 때에 입고, 일곱 폭으로 된 것(七條)은 보통 때에 입고, 아홉 폭(九條)으로부터 스물 다섯 폭(二十五條)까지는 법회와 예식에 입게 된다。그러므로 인도의 승려들은 이 세 가지밖에 다른 옷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가 기후 풍토와 인정 풍속이 같지 아니한 여러 지방에 전파되면서, 가사의 빛도 황색 또는 적색의 보기 좋은 빛으로 변하게 되고, 바탕도 비단으로 하게까지 되었다.
그 모양도 온갖 복덕이 이 법복(法服)으로 말미암아 심어지고 성숙(成熟)되는 것이라 하여, 복을 심는 밭(福田)을 상징(象徵)해서 규모가 반듯하고 법다운 밭두렁과 같은 것으로 하게 되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불교를 신앙하는 여러 나라와 그 종파에 따라 모양도 달리 한다.
또한 북방의 여러 나라에서는 추운 곳이기 때문에, 보통 입는 의복 위에 장삼(長衫)을 입고, 그 위에 다시 가사를 입게 되므로, 가사와 장삼이 함께 법복이 된다.
*보살계(菩薩戒) ; 대승의 보살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 대승계(大乘戒)라고도 한다.
「범망경」에서 설하는 십중금계(十重禁戒)·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와 「선계경(善戒經)」에서 설하는 삼취정계(三聚淨戒)등을 말함.  이 삼취정계 안에는 율의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승계 속에는 소승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삼취정계란 ①부처님이 정한 규율을 지킴으로써 악행을 막는 섭률의계(攝律儀戒), ②한걸음 더 나아가 선행을 하는 섭선법계(攝善法戒), ③중생을 교화하고 그 이익을 위해 힘을 다하는 섭중생계(攝衆生戒)를 말한다.
*산림(山林) ; 절에서 불경(佛經)을 강설(講說)하는 모임. 산림(山林)’의 뜻은 “최절인아산(摧折人我山) 장양공덕림(長養功德林)”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너다 나다 잘난체하는 아상과 교만의 산을 허물고, 공덕의 숲을 잘 가꾸라”는 뜻이다.
*방생(放生) ; 사람에게 잡힌 물고기나 새, 짐승 따위를 산이나 물에 놓아서 살려 주는 일. 불교도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첫째 계(戒)인 불살생계(不殺生戒)보다 적극적인 선을 실천하는 선행(善行)이다.
*개금불사(改金佛事) ; 불상(佛像)에 새로 금칠을 하는 것과 그때 행하는 의식.
*범종(梵鐘) ; 절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사람들을 모을 때, 또는 의식을 행하고자 할 때 쓰이는 종(鐘)을 말한다. 법구사물(法具四物)-범종(梵鐘), 법고(法鼓), 운판(雲版), 목어(木魚)-의 하나.
범종은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고, 법고는 가축이나 짐승을 제도하며, 운판은 공중을 떠도는 영혼, 특히 새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고, 목어는 물고기들의 영혼을 제도한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동참(同參) ; 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보시(布施) : [범] dana  음을 따라 단나(檀那)라고도 쓴다。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희사(喜捨 기쁠 희, 버릴 사) ; 보상을 구하지 않고, 기쁘게 재보(財寶)를 베푸는 것. 정사(淨捨)·정시(淨施)라고도 함.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간택(揀擇) ; 분간(分揀)하여 고름.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까막까치 ; 까마귀와 까치를 아울러 이르는 말.
*은하수(銀河水) ; ‘은하(銀河-천구상에 남북으로 길게 보이는 수억 개의 항성 무리)’를 강물에 비유하여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목욕재계(沐浴齋戒) ; 제사나 중요한 일 따위를 앞두고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을 피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일.
*택미(擇米 가릴 택,쌀 미) 벼를 찧은 쌀(米)에서 돌과 뉘를 가려내는(擇) 것.
* ; 벼를 찧은 쌀 속에 벼껍질이 벗겨지지 않은 채로 섞인 벼 알갱이.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점지 ; 신령이나 부처님이 사람에게 자식을 잉태(孕胎)하게 하여 줌.
*애지중지(愛之重之) ; 매우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골수(骨髓) ; ①마음속 깊은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요점이나 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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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중선(中禪) ; 시끄러운 가운데 하는 참선. 동중선(動中禪)라고도 한다.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게송) 처자권속삼여죽(妻子眷屬森如竹)~ ; 부설거사 사부시(四浮詩) 참고.
*帛(백)비단. 명주. *坵(구)언덕. 구릉. 산.
*처자(妻子) ; 아내와 자식을 아울러 이르는 말.
*권속(眷屬) ; 한집에서 거느리고 사는 식구.
*(게송) 조조역역홍진로(朝朝役役紅塵路)~ ; 부설거사 사부시(四浮詩) 참고.
*役役(부릴 역)-몸을 아끼지 않고 일에만 힘을 씀. *紅塵(홍진)-번거롭고 속된 세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佩(패)차다. 지니다. *金魚(금어)-신라 말기ㆍ고려 시대에, 공신 등 특별히 하사받은 사람이 관복을 입을 때에 차던 붕어 모양의 금빛 주머니.
*효자문(孝子門) ; 효자를 표창하여 널리 본을 보이는 뜻으로 세운 정문(旌門).
*병문안(病問安) ; 앓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병세를 알아보고 위로하는 일.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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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인과, 인연2014.05.11 14:34

§ 숯쟁이 영감 /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으로 인과설을 들으면 그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되는 것입니다 / 인과의 법칙을 인증(認證)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이 불법(佛法)이다 / 숙명론(宿命論).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으로 들으면 인과설을 들어도 그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되는 것입니다.
인과설을 듣고서 거기에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거기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잘못된 자기의 성격을 고쳐 나가고 참으로 이 정법을 바로 믿고 실천할 수 있게 된다면, 인과설이 바로 최상승법이 되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을 똑바로 인식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을 옳게 믿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을 잘못 인식하면 숙명론(宿命論)이나 운명론(運命論)에 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또 인과의 법칙을 인정을 안 하면 그것은 올바른 생각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특히 속이 상할 그때를 ‘더 내가 공부할 때다, 내 공부를 시험할 때이고, 내 공부를 한 계단 더 나아가게 헐 수 있는 좋은 과제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절에 와서 계시는 분 못지않게 가정에서 열심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
**송담스님(No.240)-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

약 21분.


언젠가 그 정승(政丞)을 한 사람이 마누라가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어서 찾어봤더니 저 강원도 산골짜기의 숯쟁이 영감한테 가서 살고 있게 된 것을 발견을 했어.
그래서 그 할머니 보고  ‘왜 와 버렸냐?’고 ‘따라 가자’고 허니까, ‘싫다’고 숯쟁이 영감이 좋으니까 거기서 살겠다고 안 와.

그래서 기가 맥혀서 정승이고 판서고 다 소용없고,
대관절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저 할망구가 나 같은-이 임금님 밑에는 이 나라에서 내가 최고인데-나를 버리고 저 천하에 보기 싫게 생긴 숯쟁이 영감한테 반해가지고 저리 가버렸냐? 너무너무 궁금하고 기가 맥혀서,

그 길로 오대산에 들어가 가지고 스님한테 물어봤더니, ‘그것은 당신이 스스로 참선을 허면 숙명통(宿命通)이 열리면은 그것을 알 수 있을 테니까 어쨌든지 참선을 하라고’

너무너무 분하고, 속이 상하고, 또 의심이 나고 한 바람에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그저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배고프면 한 숟갈 얻어먹고, 그렇지 않으면 말고 허면서 3년간을 죽어라하고 공부를 했는데,

아! 그까짓 것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그런 것 알 생각을 말고 오직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원(願)을 세우고서 공부를 해야 할 텐데,
하도 마누라 도망가 버린 것이 분하고 억울하고 가슴이 아퍼서 마냥 그 생각을 속에다 꼭 가지고서 자나깨나 참선을 했는데,

아! 툭 터져 가지고-터진 것이 누진통(漏盡通)을 한 것이 아니라 숙명통(宿命通)이 터져 가지고 보니까,
전생(前生)에 자기가 그 오대산에서 공부한 스님이었었다 그말이여.
그런데 이 이야기를 그전에 해서 알고 계신 분도 많겠지만, 그 할멈은 무엇이냐 하면 전생에 자기 누데기 속에서 살고 있던 '이'였었다 그말이여.

누데기 속에서 '이'가 되어가지고 사는데, 그놈이-겨울에 누데기를 빨 수가 없어서 한해 겨울을 누데기를 빨지 않고 입은 바람에, '이'가 그 속에서 차츰차츰 큰 것이 상당히 커졌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것을 똑 까서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밖에다 버리면 얼어 죽을 것 같고,
이것도 다 전생의 인연이니까 누데기 속에서 살어라 해 가지고, 가려우면 요리 떠들고 보면 보리쌀만한 '이'란 놈이 거기서 피를 빵빵 빨아먹고 거기서 뻐르적 뻐르적 하는데,

그놈이 새끼를 쳐 가지고 새끼도 여럿 낳고, 그놈을 집어내 놓고 심심하면 지대방에서 씨름도 시키고 달음박질도 시키고 그랬는데 그렇게 한 해 겨울을 지낸 다음에 인자 누데기를 벗어서 빨게 되는데,
그 누데기를 벗어서 빠는데 그냥 갖다가 삶으면 '이'가 죽을 것 같아서 그 마침 개가 왔길래 개한테다 '이'를 다 건너주어 버렸다 그말이여.

‘그 개한테 가서 잘 살어라’ 그러고 보냈는데, 아! 그 개가 숯쟁이 영감이 되었어.
그 스님한테 있는 동안에는 정승·판서 마누라 노릇을 허다가, 그 개한테 건너간 그 시절이 돌아오니까 어떻게 찾어갔는지 그 산중에-서울 사는 그 정승부인이 보따리 하나 싸 짊어지고 그 무작정 걸어간 것이, 그 강원도 산중으로 해서 숯쟁이 영감을 찾어가게 됐다 그말이여.

대번에 숯쟁이 영감 집에 간 것이 아니라, 강원도 어느 장터에 가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까 숯쟁이 영감을 보니 숯쟁이 영감하고 이야기가 되어 가지고 눈이 맞아서 결국은 졸랑졸랑 따러가게 됐어.

가서 보니 생전 처음 만나-그 정승의 부인으로서 얼마나 고귀한 집안에서 호강을 하고 살았겠습니까마는-그 숯쟁이 영감 첫눈에 그냥 그 전에부터서 같이 살던 사람과 같이 그렇게 남같이 느껴지지를 않고 대번에 그냥 따라가는데 조금도 서슴이 없이 따라갔다 그말이여.

이조 때만 해도 남녀가 분명해서 외간남자(外間男子) 하고는 함부로 얘기도 못허고 그러는데, 대번에 첫눈에 그냥 싹 마음에 들면서 기분이 좋다 그말이여.
그래서 따라가 가지고 그 숯쟁이 영감하고 당장 물 한 그릇 떠 놓지도 않고 그냥 사는데, 정승이 자기 본 남편이 와서 그렇게 가자고 그냥 눈물을 흘리면서 손을 잡고 사정을 해도 다 소용이 없고,
팔팔 잡아떼고 안 가는 바람에 영감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억장이 무너져 가지고 울면서 오대산을 찾아가 가지고 결국은 그 전생사(前生事)를 다 알게 됐다 그말이여.

지금 내가 이 이야기는 인과설(因果說)을 이야기하자고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고,
참선(參禪) 이야기만 허면 꾸벅꾸벅 졸고, 어째서 멀쩡허니 앉어서 잡담을 허거나 그럴 때에는 눈이 초롱초롱하다가도 참선 법문만 허면 꾸벅꾸벅,
조실스님 법문에도 ‘그 꼬라지 보기 싫으니까 눈을 감고 법문(法門)을 한다’ 그러셨는데,

‘왜 참선법을 들으면 졸음이 오냐?’허면,
이 참선법을 바로 듣고 바로 공부를 하게 되면 마군(魔軍)이가 자기의 궁전이 흔들리고 자기의 영토가 좁아지고 자기의 모든 것이 다 권속이 멸망이 되니까,
그래서 그 법문을 못 듣게 허기 위해서 온 천하에 마군이는 그 참선 법문 듣는 사람의 눈탱이로 다 올라붙었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눈을 갖다가 잡어 누르는 바람에 아무리 정신을 채리고 눈을 부릅뜰려고 해도 안 된다 그말이여. 손톱으로 허벅지가 멍이 들도록 집어 뜯어도 눈탱이 무거운 것은 안 없어져.

그래서 이 참선법을 얘기하면은 조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가끔 이런 인과설도 얘기하게 되는데,
정법(正法)을 믿는 마음으로 들으면 인과설을 들어도 그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되는 것입니다.

인과설을 듣고서 거기에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거기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잘못된 자기의 성격을 고쳐 나가고 참으로 이 정법을 바로 믿고 실천할 수 있게 된다면, 인과설이 바로 최상승법이 되는 것입니다.

신랑이 멀쩡한 나무랄 데 없이 이쁘고 얌전하고 솜씨있고 한 자기를 놔두고, 한눈을 팔고 첩을 얻거나 외박을 하거나 그러헌 분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이 숯쟁이 영감과 그 정승 판서 부인을 생각해보면 ‘아! 이것이 내가 전생에 지은 업(業)의 인연(因緣)으로 이런가 보다.’ 내가 미웁고 내가 싫어서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전생에 내 몸 안에 살던 '이'를 내가 개한테 건네주었기 때문에 나하고는 비교가 되지 아니 할만큼 그렇게 못 생기고 천한 숯쟁이 영감한테 간 그 정승의 부인을 생각을 해서,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하거나 또는 남편이 좋아하는 그 여자를 원망하고 미워하고 갖은 수단을 써서 기어이 뗄라고 하고,
뭣한 이는 남편의 그것을 알기 위해서 그런 남의 뒷조사 잘하는 그런 데다가 돈을 많이 주고 부탁해 가지고 그 뒷조사를 하다 보니까, 남편의 법에 저촉된 잘못된 것이 드러나 가지고 그 여자 밝혀낼라다가 남편을 쇠고랑을 차게 허는 그런 참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습니다마는,

그런다고 바가지를 긁고 싸움을 한다고 해서 남편이 자기한테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그럴 때 알면서도 모르는 듯 오히려 더 가정에 충실하고 남편에게 잘하고 애들한테도 잘하고 그러면서도 인과법을 철저히 인식을 해가지고 이 참선을 열심히 허신다면,

남편도 용서가 되고 자기도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 없어지면서 참으로 인생을 똑바로 보고 살게 되고, 더 훌륭한 아내로서 가정주부로서 엄마로서 하루하루를 뜻있게 살 수 있고,
오히려 그런 것이 계기가 되어가지고 진실하게 발심을 해서 도를 닦을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가면 남편이 잠시 바람을 피우다가도 다시 내집으로 돌아오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로 인식을 못하고 기다릴 줄을 모르고 계속 강짜를 부려가지고 기어이 아주 죽여서라도 그것을 뗄려고 하면 무장 더 되게 들어붙는 거고,
처음에는 그래도 비밀리 지낼 때에는 가정에 대해서도 남편으로서 최소한도로 의무를 다허고 그러다가,
자기 부인이 정말 그 내용을 확실히 알고 강짜를 부리기 시작허면, 인자 형식마저도 지키지 아니하고 아주 남남이 되고 원수가 될 수 밖에 없게 되고, 나중에 다시 가정에 돌아오지 않고 마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부부 간의 인연이라 하는 것은 전생에 그렇게 맺어서 또 만나게 되는데,
남편이 외도를 허는 것이나 부인이 바람을 피우는 것이나 이러헌 관계가 다 전생에 자기가 그렇게 지어 가지고 그러헌 남편을 만나게 되고, 또 그런 아내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전생에 참 많은 여자를 울리고 그렇게 난잡허게 지낸 사람은 그 사람이 금생에 여자로 태어나 가지고 그렇게 행실이 얌전하고 얼굴도 참 이쁘고 솜씨도 좋고 허면서도 계속 남편한테 소박(疏薄)을 당하는 그러헌 예도 많습니다.

이 세상의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인과의 법칙에 어긋난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든 물질에 이르기까지도 전부 정확한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모든 것이 생성이 되고 변해가고 이렇게 자꾸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과법을 한낱 권선징악(勸善懲惡)하기 위한 하나의 이야기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고, 이것은 팥 심은데 팥 나고 콩 심은데 콩 나듯이 추호(秋毫)도 어김이 없는 것입니다.

내 마음으로 ‘한 생각’ 잠깐 먹은 것도 그것이 한데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런 것까지도 낱낱이 다 현실화되고 마는데, 하물며 내 입을 통해서 밖으로 표현이 되고 행동을 통해서 밖에 표현이 된 것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이 더 구체적으로 실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그러헌 인과의 법칙을 인증(認證)하면서도-철저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인증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이 바로 이 불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을 부정(否定)하고 인증을 아니 한 것이 아니라, 그대로 인증을 하고 틀림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이 바로 이 불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잘못 인식하면 인과를 갖다가 부정해 버리는 그러한 데에 떨어질 수가 있는데,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 인과의 법칙을 잘못 이해하면 거기에 딱 국집(局執)을 해서 구속이 당해가지고 자유를 얻지를 못하는 그것도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을 똑바로 인식하면서도 거기에서 초월하는 길,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을 옳게 믿는 것입니다.

인과의 법을 잘못 인식하면 숙명론(宿命論)이나 운명론(運命論)에 떨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또 인과의 법칙을 인정을 안 하면 그것은 올바른 생각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현대인들은 인과의 법칙을 인정(認定)을 할려고 하지 아니하고 부정을 해버리고 그럽니다마는 그런 사람은 극도의 근시안(近視眼)이 되어 가지고 아직 귀가 맥혀 갖고 있어서-이 과학이라고 하는 것이 지금 매우 유치한 단계에 있는 것이지, 과학이 그렇게 훌륭하게 발달되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정도의 과학은 4천 년 전에 이미 다 발달이 되어 있었고, 만 년 전에는 더 과학이 발달된 때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마야 문명이라든지 모다 그런 것이 지금 땅 속에서 바다 속에서 현대 문명보다도 훨씬 발달된 문명의 자취가 지금 다 발굴이 되어 갖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오늘날 과학이란 것은 별로 바람직하게 발달을 못했고, 또 발달했다는 것이 유치한 단계에 놓여있다.

과학이 발달했지만 인간을 쪼끔 편리하게는 해주었다고 할 수 있으나, 인간을 갖다가 매우 해롭게 허는,
나아가서는 인류를 멸망하게까지 하는 그러한 바람직하지 못한 방면으로 발달이 되어서 매우 우려되는 바입니다마는,
우리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은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참으로 위대한 우리의 살길이 있는 줄을 모르고 그 유치한 단계에 있는 과학에 빠져 가지고, 그나마 그것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꺼떡허면 불교를 미신(迷信)이라고 이렇게 비방을 하고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에, 이 세계는 점점 병들어 가고 살기가 어려운 그러한 세계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불자들은 철저하게 인과법을 믿고 옳게 인식을 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정법에까지 나아가서 실천을 해 나가야만 우리 자신도 바르게 그리고 참되게 살아가는 것이고,
어리석고 불쌍한 인류들을 바르게 살아가고 참다운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줄 큰 그리고 절박한 의무가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고 하는 것을 인식을 하시고,
금년 여름 안거 동안을 보다 더 철저하게 정진(精進)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방부를 들인 보살님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백일 기도에 동참하신 분들도 정신적으로는 방부를 들인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가정에서 생활을 하시는 가운데에 무엇을 하시거나, 앉어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또 속이 상할 때도 ‘이뭣고?’, 괴로울 때도 ‘이 무엇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특히 속이 상할 그때를 ‘더 내가 공부할 때다, 내 공부를 시험할 때이고, 내 공부를 한 계단 더 나아가게 헐 수 있는 좋은 과제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고,

절에 와서 계시는 분 못지않게 가정에서 열심히 정진을 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48분14초~69분2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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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됨.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①신족통(神足通) ②천안통(天眼通) ③천이통(天耳通) ④타심통(他心通) ⑤숙명통(宿命通) ⑥누진통(漏盡通)-이 있는데,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누데기 ; ‘누더기(누덕누덕 기운 헌 옷)’의 사투리.
*외간남자(外間男子) ; 여자가 상대하는, 남편이나 친척이 아닌 남자.
*억장이 무너지다 ; 극심한 슬픔이나 절망 따위로 몹시 가슴이 아프고 괴롭다.
*억장 ; ①‘가슴’을 속되게 이르는 말. ②억장(億丈)으로 '썩 높은 것. 또는 그런 높이.'
*전생사(前生事) ; ①'전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살았던 삶)'에 있었던 일. ②'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이미 지나간 일'을 일컫는 말.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도리.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꼬라지 ; ‘꼬락서니(사람의 모습이나 행색을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눈탱이 ; 눈퉁이(눈두덩의 불룩한 곳을 속되게 이르는 말.)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강짜 ; ‘강샘(결혼한 상대자나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異性)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을 속되게 이르는 말.
*무장 ; 갈수록 더. 더욱. 한사코.
*소박(疏薄 멀리할·거칠 소,엷을·업신여길 박) ; 아내나 첩을 인격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모질게 대함.
*권선징악(勸善懲惡 권할 권,착할 선,혼날 징,악할 악) ; 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징계함.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추호도’, ‘추호의’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한데 ; ①사방, 상하를 덮거나 가리지 아니한 곳. 곧 집채의 바깥. 노천(露天). ②일정하게 정하여진 자리가 아닌 다른 곳.
*인증(認證) ; 인정(認定)하여 증명(證明)함.
*부정(否定) ; ①그렇지 않다고 단정함. 또는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음. ②옳지 않다고 반대함.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숙명론(宿命論) ; 운명론(運命論). 모든 일은 미리 정하여진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일어나므로 인간의 의지로는 바꿀 수 없다는 이론.
세상이나 인생의 모든 것이 숙명(宿命-날 때부터 타고난, 정해진 운명)에 의해 예정되고 절대적으로 지배받는다고 보아 인간의지의 자유와 창조는 인정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무력하다는 주장.
*인정(認定) ; 확실히 그렇다고 여김.
*근시안(近視眼) ; 눈앞의 일에만 사로잡혀 먼 앞날의 일을 짐작하는 지혜가 없거나 소견이 좁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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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발심,자신(自信)2014.03.27 07:05

§(445)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분부 / 오욕락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 1초도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화두를 드는 것이 용맹정진 / 일념단속.


황매산(黃梅山)에서 오조(五祖) 스님이 육조(六祖) 스님한테 아무도 어찌 하지 못할  소식을 분부(分付) 것이 우리도 부처님으로부터 구원겁(久遠劫) 전에 비로자나불로부터서 분부를 받은 것입니다.  분부를 우리는 망각하고 살아갈 뿐이지 우리도 확철대오할  있고 무량 중생을 제도해야  대사명(大使命) 분부 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오욕락(五欲樂) 탐착해  생각 () 탓으로 중생(衆生) 몸뚱이를 받아 가지고 윤회(輪廻) 하는 동안에 보고 듣는 것이 오욕락이거든.

그놈이 어떻게 무량겁(無量劫) 길을 들여 놨던지 그것이 아주 본능(本能)으로 굳어가지고, 인생은 오직 그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로 모든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져 버렸다. 불법을 들음으로해서 우리는 오욕락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1초도 뒤로 미룰 일이 아니여. 다른 것은  미뤄도 이것은 1 뒤로도 미루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지금이거든』 지금. 지금 바로 탁! 이뭣고?’ 챙긴 것이 그것이 공부고, 그것이 가행정진이고 그것이 용맹정진이여. ‘앞으로 내가 3 결사(結社) 들어가서....’ 그런 생각이  너저분한 생각이야.

나라를 걱정하고  우리의 자녀를 걱정하고 세계 인류를 참으로 걱정한다면 일념단속해서  사람이라도  진리의 눈을  사람이 나와야겠습니다. 진리의 눈을 뜨는 사람이 나와야 그것이  부처님의 탄생이요,  부처님이 탄생을 해야 () 많은 중생을 제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송담스님(No.445)—91년 5월 첫째 일요법회.


약 17분.


사수여운일몽신(似水如雲一夢身)  부지차외갱하친(不知此外更何親)이리요

나무~아미타불~

개중불허용타물(箇中不許容他物)이라  분부황매노상인(分付黃梅路上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수여운일몽신(似水如雲一夢身)이여. 물과 같고 구름과 같은  꿈속의 몸뚱이여.

부지차외갱하친(不知此外更何親)이라.  밖에 다시 무엇을 친근(親近)  것인가 아지 못하겠더라.


 몸뚱이는 꿈속에 몸뚱이거든. 실다운 것이 아니여. 잠시 꿈속에서 내가 임금이 되기도 하고, 꿈속에 내가 부자가 되기도 하고,  깨면 임금도  곳이 없고 부자도  곳이 없듯이.

현실적으로 우리 몸뚱이 받아 가지고 있는  아무개,  아무개하는  몸뚱이는 절대로 실다운 것이 아니요 꿈속에 몸뚱이인데, 뭣과 같으냐 하면은 물과 같애.


물이라 하는 것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곳에 따라서 모난 그릇에다 담으면은 물이 모난 모양으로 되고, 둥근 그릇에다 담으면 물이 둥그렇게 담겨지고.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흘러가다가 웅덩이를 만나면은 차츰차츰 채워가지고  차면 넘어가고, 때로는 폭포수가 되었다, 때로는 강물이 되었다, 흐르고 흘러서 바다에 가면은 짠물이 되었다가.


 안개가 되어서 피어 올라가고 구름이 되었다가  기운을 만나면 비가 되기도 하고, 눈이 되기도 하고, 우박이 되기도 하고, 더우면 녹아서 물이 되었다가, 때와 장소와 기온에 따라서 액체가 고체가 되고 고체가 액체가 되었다가, 다시  기체가 되었다 그런 것이다 그말이여.


 몸뚱이도 지은 () 따라서 인간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천상에 태어나기도 하고 축생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지옥에 태어나기도 하고, 인간으로 태어나되 남자로 태어나기도 하고 여자로 태어나기도 하고, 잘생긴 몸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밥맛 떨어지게 태어나기도 하고.

, 이러니 우리  몸뚱이라 하는 것이 업에 따라서 천만 가지의 모양으로 받아난다 그말이여.


 구름과 같애. 구름과 같애 가지고 때로는 흰구름, 먹구름,  구름 덩어리, 작은 구름 덩어리, 구름도 소같이 생긴 구름 덩어리, 말같이 생긴 구름 덩어리, 바람 따라서 동쪽으로 날아갔다 서쪽으로 날아갔다 날아가면서도 금방 소같이 생긴 것이 다시 다른 모양으로 변형되어가.

 산에서  산으로  산에서  산으로, 산에서 들로 들에서 바다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권서자유(捲舒自由). 뭉쳤다 흩어졌다 달아났다 모였다  몸뚱이가  그와 같애.


빈부귀천, 흥망성쇠 속에서 가지각색으로 놀아나거든. 전혀 믿을  없는 것인데 그렇게 살아가. 때로는 건강하다가 때로는 병들었다가 생로병사 흥망성쇠.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