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6.02.23 §(777) (게송)일종위배본심왕~ / 최상승법(最上乘法) / 내가 나의 마음의 부처를 찾는 일보다는 더 급하고 요긴한 일은 없다 / (게송)약인정좌일수유~.
  2. 2014.12.19 §(204) (게송)춘래동견방초록~ / 영지(靈知) 진지(眞知) 망지(妄知) / 원장(院長)이라 하는 굴레 / 불법(佛法)은 많은 말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3. 2014.05.05 §(473) (게송)심춘막수향동거~ / ‘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 / 부처님의 열 가지 은혜[如來十種恩] / (게송)불설일체법~ / 신(信)이 공덕(功德)의 어머니 /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
  4. 2014.04.19 §(세등018) (게송) 승춘고하진선연~ / 팔만대장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은 ‘이뭣고?’ / 내가 나를 깨닫지 못했으면 그것이 ‘중생’이고, 내가 나를 깨달으면 그것을 ‘부처’라 하는 것.
  5. 2014.04.14 §(568) “전생에 부모에게 효도를 한 그 공덕으로 내가 성불하게 되었느니라.” / ‘마음보’ 고쳐야! / ‘이뭣고?’만 열심히 하면 불효한 자식들이 모다 효도를 하게 된다.
  6. 2014.03.27 §(445)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분부 / 오욕락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 1초도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화두를 드는 것이 용맹정진 / 일념단속.
  7. 2014.01.09 §(582) 찬불게 / 팔상성도(八相成道) / 부처님께서 무엇을 깨달으셨느냐? / ‘내가 나를 깨닫는다’ / 간화선(看話禪) / 가리켜서 되는 게 아니야, 깨달아야지.
  8. 2014.01.07 §(099)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점진적인 것이 아니라 비약적인 것입니다. / 똑같은 일을 계속 되풀이하면 습관화, 체질화가 되어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되어진다
  9. 2013.12.22 §(428) 사바세계나 극락세계(極樂世界)나 다 같은 적광토(寂光土) / 화두란 무엇이냐.
최근 법문2016.02.23 09:39




§(777) (게송)일종위배본심왕~ / 최상승법(最上乘法) / 내가 나의 마음의 부처를 찾는 일보다는 급하고 요긴한 일은 없다 / (게송)약인정좌일수유~.


우리는 눈으로 무엇을 보는 데로 쫓아가지 않고, 귀로 무슨 말을 듣더라도 듣는 데에 끌려가지 않고, 코로 냄새를 맡거나, 음식을 먹거나, 속이 상할 때나 기쁠 때나 언제 어디서,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항상 자리를 발판으로 해서 바로 자기를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부처님은 원래 부처님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 자신들이 부처님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혀를 통해서 말하고 음식을 먹고, 몸을 통해서 춥고 더운 것을 느낄 아는 그놈이 바로 우리의 주인공이요, 우리의 마음의 부처인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찾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만 하면 반드시! 자기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유식이나 무식도 상관이 없고, 얼굴이 이쁘고 미운 것도 상관이 없고, 여자나 남자나 전혀 그런 것도 가릴 것이 없습니다. 내가 나의 마음의 부처를 찾는 일보다는 급하고 요긴한 일은 없는 것입니다.

생각 돌이켜서이뭣고?’ 하는 공덕은 이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부처님이 되기 위한 계단을 밟아가는 것이여. 우리가 말세에 태어났어도 최상승법을 만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송담스님(No.777)—2016 동안거 해제(16.2.22)


(1) 약 18분.  (2) 약 9분.



(1)------------------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

나무~ 아미타불~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고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나무~ 아미타불~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

한번 본심왕(本心王) 등지고 나와서 번이나 삼도(三途) 사생(四生) 겪어왔던가!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고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다.

오늘날 번뇌의 모든 생각을 씻어버리고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스스로 본고향에 돌아왔구나.


고인의 게송을 음미해 보면, 고인의 게송이지마는 현대 우리 낱낱에게 해당이 되는 게송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본래, 본래 부처님이었었고 불보살로서 그렇게 지내다가 어떻게 생각 잘못 먹어 가지고 말세에 사람의 몸을 받아났습니다.


사람의 몸을 받아날 때까지 동안에 지옥 아귀 축생과 사람 축생 아귀 그런 생사 윤회를 겪어서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우리는 과거는 태어날 때부터서 잊어버리고 모르지마는 육신통(六神通) 불보살은 과거 이전의 일도 환히 아신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말세에 태어났지마는 좋은 부모를 만나서 사람의 몸으로 태어났고, 부모로 인해서 교육을 받았고 오늘날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 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다행히 불법을 만나 가지고 최상승법(最上乘法) 접하게 되었습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은불교에는 소승, 중승, 대승이 있는데 최상승(最上乘)이라 하는 것은 남녀노소(男女老少), 빈부귀천(貧富貴賤), 유식무식(有識無識) 막론하고 먹고 입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입으로 먹고, 때로는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우리는 이렇게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살게 되고 오늘날 이렇게 불법을 만나서,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을 만나게 것은 바로 몸을 가지고 몸속에 있는 자성(自性) 부처를 깨닫는 것입니다.


밖에 팔만대장경을 읽고 외우고 해석하고 것은그것도 중요한 불교의 부분이지마는 몸뚱이를 가지고 시청언동(視聽言動) 희노애락(喜怒哀樂) 느끼면서 살아가는 자기의 부처를 찾는 것이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무엇을 보는 데로 쫓아가지 않고, 귀로 무슨 말을 듣더라도 듣는 데에 끌려가지 않고, 코로 냄새를 맡거나, 음식을 먹거나, 속이 상할 때나 기쁠 때나 언제 어디서,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항상 자리를 발판으로 해서 바로 자기를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찾는 것은 가장 쉽고 간단한 문제고,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누구라도 수가 있는 문제입니다.

특히 말세는 과학이 발달해서 살기에는 편리하지마는 보통참나 찾는 그러한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점점 줄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찾아서 자기 속에 있는 나의 부처님을 찾는 것보다 급하고 요긴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

밖으로 지식이 많거나, 재산이 많거나, 권리가 많거나 그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필요한 것이기는 하나, 그것 가지고는 우리 생사(生死)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항상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속이 상할 때나, 앉아서나 누워서나 항상 자기를 찾는이뭣고~?’ ‘어째서 ()라고 했는고?’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 가운데 최상승법이요, 가장 깊고도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권리가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살아가는 일시적인 일에 지나지 못하고, 잘못하면 그런 것을 누리다가 죄를 짓고 윤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행히 말세지마는 사람 몸을 받아났고 불교를 믿게 되고 오늘 산승(山僧) 같이 최상승법, 자기가 자기 마음의 부처를 찾는 이야기를 하게 것을 나는 대단히 감사하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라 하는 것은 많이 살아봤자 팔구십, 백세 살고 대부분 안에 육칠십에 죽기도 하고, 뱃속에서 죽기도 하고, 낳다가 죽기도 하고, 이십 안에 죽기도 하고, 삼십 안에 죽기도 합니다.

언제 죽을 모르는 그러한 허망하고도 무상한 몸을 받아 태어나 가지고 이렇게 내가 마음의 부처님을 찾는 이야기를 하게 인연을 나는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이러한 모임을 자주 갖고,


세속에서 살면서세속에서는 흥망성쇠(興亡盛衰) 여의고 수가 없습니다. 흥망성쇠와 빈부귀천은 어느 것엔가는 얽매여서 살고 그것 때문에 몸부림치기도 하고,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기도 하는데, 바로 사바세계라는 것은 그런 세계지마는,

그러한 속에서 마음의 부처를 찾게 최상승법을 이야기하는 이런 도반(道伴) 것을 대단히 다행하고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래 부처님이시면서 어떻게 생각을 잘못해 가지고 본심(本心) (), 본심의 부처를 망각하고 이렇게 오늘날까지 왔는데 안에 겪어온 일은 우리가 상상 이외의 중대한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가 금생에 불법을 만나지 않았고 내가 마음의 부처를 찾는 공부를 모른다면은 우리는 무량겁을 두고도 윤회를 하고 지은 업에 따라서 지옥에도 가고 축생도 되고, 흥망성쇠 속에서 한없는 여행을 하면서 마지막에 지구가 없어지게 되고 그럴 때에는 우리의 신세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금생에 이렇게 사람 몸을 받아서 오늘 자리에까지 것에 대해서 항상 감사하고 다행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면서이뭣고?’ 놓치지 않고 자기 마음의 부처 찾는 일밖에 그밖에 일은 다음다음 일이고,

앉아서나 서서나, 먹을 때나, 눈으로 무엇을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항상이뭣고?’ 도반으로 삼고, ‘이뭣고?’ 자기의 () 직업으로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산다면 비록 말세에 태어났다 하더라고 지금이 바로 정법(正法) 시대요, 부처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원래 부처님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 자신들이 부처님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혀를 통해서 말하고 음식을 먹고, 몸을 통해서 춥고 더운 것을 느낄 아는 그놈이 바로 우리의 주인공이요, 우리의 마음의 부처인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으면서 망각하고 모르고 산다면은 축생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우리가 육도(六途) 중생 가운데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더군다나 말세에 태어나서 불교를 믿고 최상승법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를 하고 듣게 것을 항상 기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1 1초도 화두를 놓치지 않고 화두를 항상 챙기고, 화두를 망각하는 것은 자기의 마음의 부처를 놓고 지낸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는 보통시삼마(是甚)?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때에도이뭣고?’ 귀로 무엇을 듣더라도 그리 쫓아가지 않고이뭣고?’ 슬플 때도 슬픈 데에만 빠져 가지고 자꾸 슬픈 일만 생각하면 점점 슬퍼지는 거고, 속이 상하는 일을 보고나 듣거나 느끼더라도 그것을 따라가면 점점 속이 상하고 슬퍼지고 자기 마음은 점점 황폐해지고 건강도 나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이뭣고?’ ‘ 몸뚱이 끌고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한번 따라서 보세요. ‘이뭣고?’

(대중) ‘이뭣고?’

이뭣고?’

(대중) ‘이뭣고?’


이뭣고?’ 하는 것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이 경상도 사투리로는이뭐꼬(이뭣고)?’입니다. 그래서 참선할 때는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해서이뭣고?’ 옛날부터서 그렇게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 때에 없는 의심!

이것이 무엇인가?’하고 이리저리 이론적으로 따지고 논리적으로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이뭣고?’하고 의문, 의심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따지고 불교 교리적으로 따지는 것은 그것은 참선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교리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이리저리 따지고 분석하고 비교하고 분리하고 그러겠지마는 참선은 이론적으로 따지고 분리하고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슬플 때도이뭣고?’ 앉아서도이뭣고?’ 슬플 때도이뭣고?’ 항상 없는 의심이 앞에이뭣고?’ 없는 의심뿐만으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다 보면 모든 번뇌도 망상도 앞에는 어리대지를 못하게 되고, 그래 가지고 의단(疑團) 독로(獨露) 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그것은 자기가 자기를자기의 마음 부처를 깨닫게 되는 때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찾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만 하면 반드시! 자기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유식이나 무식도 상관이 없고, 얼굴이 이쁘고 미운 것도 상관이 없고, 여자나 남자나 전혀 그런 것도 가릴 것이 없습니다.

내가 나의 마음의 부처를 찾는 일보다는 급하고 요긴한 일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병신년(丙申年) 1 15 해제날인데 그동안에 선방에서 또는 가정에서 정진하던 도반들이 이렇게 나왔으니 내가 정말 마음속으로 여러 도반들에게 해주고 싶고, 같이 얘기에 대해서 깊이 마음속에 새기고자 해서 말씀을 드린 것이니,

그동안에도 열심히 나름대로 정진을 하셨겠지마는 오늘부터서는 정말 새로운 마음으로 그동안에 그럭저럭 그냥 살아오고 지내왔다 하더라도 오늘부터서는 정말 새로운 마음으로 최상승법의 도반으로서 앞으로 열심히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처음~1751)



(2)------------------


약인정좌일수유(若人靜坐一須臾)하면   승조항사칠보탑(勝造恒沙七寶塔)이니라

나무~ 아미타불~

보탑필경쇄위진(寶塔畢竟碎爲塵)이나   일념정좌성정각(一念靜坐成正覺)이니라

나무~ 아미타불~


약인정좌일수유(若人靜坐一須臾)하면  승조항사칠보탑(勝造恒沙七寶塔)이다.

만약 사람이 고요히 앉아서 잠깐 동안 참선을 하면 항하사(恒河沙) 칠보탑을 조성해서 모신 것보다도 공덕이 수승하다 이말이여.


그러느냐? 보탑(寶塔) 필경쇄위진(畢竟碎爲塵)이나 일념정진(一念精進) 성정각(成正覺)이다.

보배로 칠보탑을 조성한 공덕도 대단히 공덕이 되지마는 물질로 이루어진 보탑이라, (보탑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없어지고 티끌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돌이켜서 정진을 하고이뭣고?’ 하면 공덕으로 정각(正覺) 이루기 때문이다. 정각은깨달음을 이루어서 부처님이 된다 것입니다.


그러니 생각 돌이켜서이뭣고?’ 하는 공덕은 이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부처님이 되기 위한 계단을 밟아가는 것이여.

우리가 말세에 태어났어도 최상승법을 만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계 65 인구가 있다 하지마는 최상승법 참선법을 믿고 수행한 사람은 몇천만분의 일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몸을 낳아주신 부모님에 대해서, 불법을 믿게 되게 주신 부모와 스승에 대해서 하루하루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면서 효심(孝心) 일으키고 부모님을 받들면서 자기가이뭣고?’ 열심히 하면 아들과 딸과 며느리들도 여러분의 믿음과 사상을 따라서 불법을 믿고 착한 사람이 되고, 사람의 모범이 되고 말세에 태어났어도 반드시 지옥 아귀 축생의 삼도(三途) 떨어지지 않고, 가문도 발전을 하고 나라도 발전을 하고 세계도 무상(無上) 깨달음의 세계가 것입니다.


앞으로 동안 해제 기간이 되는데 동안을 가정에서, 각각 자기 처소에서 오늘 산승이 이렇게 간곡히 부탁한 말씀을 항상 잊지 말고 열심히이뭣고?’ 하되,

이뭣고?’ 하는 데는 자세를 바르게 해서 가부좌를 하면 좋고, 반가부좌를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침대에 비겨서 그럭저럭 지내거나 그러지 말고, 항상 앉았다 하면은 방석을 깔고 ! 반가부좌를 하면서 복식 심호흡을 하면서이뭣고?’ 항상 그것이 아주 습관화가 되도록 그렇게 하면서 생활을 나가야 잘못된 길로 나아가지 않고 잘못된 생각을 하고 살게 되고, 저절로 몸과 마음이 부처님 제자로서 말세에 태어난 정법학자로서 인생으로 태어난 최고의 행복을 누리게 것입니다.


이제 해제 기간이니까 여행을 하리라그런 생각을 갖게 되고, 때로는결제 동안에 정진하느라고 애썼으니까 자유롭게 지내자여행도 하고, 불규칙한 생활도 하고, 까닥 잘못하면은 해태하고 잡담으로 그럭저럭 아까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산승과 같이 말하고 듣는 기념(紀念)으로 해제 동안에도 결제 동안에 정진하던 정신과 수행을 해제 동안에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더욱 단속을 하면서 수행을 해야 다음철 여름 결제 때에도 정진하는 이어지게 것입니다.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이요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이니다

나무~ 아미타불~   (1752~2613)()



------------------(1)


*(게송) 일종위배본심왕~’ ; [석문의범(釋門儀範)] 관욕(灌浴) 입실게(入室偈) 참고.

*본심왕(本心王) ; 본래 진여불성(眞如佛性).

*삼도(三途三塗) ; 악한 일을 중생이 과보로 받는다는 3가지 미혹한 생존. 지옥아귀축생의 생존.

*사생(四生) ;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가지 (),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이른다.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없는 것을 헤아림을 ()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이라 한다。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있는

2. 천안통(天眼通)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3. 천이통(天耳通)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없이 무슨 소리나 듣는

4. 타심통(他心通)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생각하는 바를 아는

5. 숙명통(宿命通)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아는

6. 누진통(漏盡通)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 닦는 외도(外道)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 읽어도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선가귀감](용화선원) p94-95 참조.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이뭣고(是甚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2)


*(게송) 약인정좌일수유~’ ; 보조 지눌(普照知訥) 스님의 [진심직설(眞心直說] 진심공덕(眞心功德) ()에서古頌으로 인용한 게송 참고.

*항하사(恒河沙) ; [불교] 갠지스 (Ganges)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비기다 ; (무엇에) 비스듬하게 기대다.

*기념(紀念, 記念) ; 어떤 뜻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사건 등을 잊지 않고 마음에 되새김.

*(게송) 願共法界諸衆生  自他一時成佛道’ ; ‘원하옵건대 법계의 모든 중생이 같이, 저희 모두  동시에 성불하여지이다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싼또샤

§(204) (게송)춘래동견방초록~ / 영지(靈知) 진지(眞知) 망지(妄知) / 원장(院長)이라 하는 굴레 / 불법(佛法)은 많은 말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참선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아는 것이 아니다. 사량분별을 통해서 아는 것은 그것은 깨닫는 것이 아니다. 팔만대장경을 다 외우고 해설을 하고 설할 줄 안다 하드라도 그것은 아는 것이지 깨달은 것이 아니다.
중생의 망령된 알음알이로 아무리 공안을 따져서 그럴듯한 결론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침내 망지(妄知)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그 자체가 깨달음이 아닐 뿐만 아니라 깨달음과는 점점 멀어져 버려.
말로써 공부를 할 수가 있고, 말로써 가르켜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지금 육도(六道)를 윤회하고 있는 중생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진리는 찾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진리는 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위해서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그 길을 안내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고, 여러분은 또한 그것을 듣기 위해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04)—83년 6월 첫째 일요법회(83.06.05)


(1) 약 19분.  (2) 약 17분.


(1)------------------


춘래동견방초록(春來同見芳草綠)하고  추지동견황엽조(秋至同見黃葉凋)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지소이이어인(佛之所以異於人)한대  치연작용무기종(熾然作用無其蹤)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봄이 오면 꽃다운 풀이 푸르른 것을 모두가 다 같이 볼 수가 있어.
추지동견황엽조(秋至同見黃葉凋)로구나. 가을이 오면 이파리가 누렇게 단풍이 져서 시들은 것을 누구라도 다 마찬가지로 볼 수가 있다 그말이여.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 눈에도 다 똑같다. 깨달은 사람이 봐도 그렇고 깨닫지 못한 사람이 봐도 그렇고, 지식이 있는 사람이 봐도 그렇고, 지식이 없는 사람이 봐도 그렇고, 누가 봐도 봄에는 파란 풀이 돋아난 것을 볼 수가 있고, 가을이 오면 모든 이파리가 누렇게 단풍이 져서 떨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더라.

불지소이이어인(佛之所以異於人)은, 그런데 부처님은 우리 중생(衆生)과 무엇이 다르냐? 부처님과 우리 중생은 어떠한 점에서 우리 중생과 부처님은 다르냐?

깨달은 부처님은 중생과 무엇이 다르냐 하면 치연작용무기종(熾然作用無其蹤)이여, 치연(熾然)이 작용을 하고 있으되 그 자취가 없어.

중생은 무얼 보면 보는 데에 끄달리고, 무엇을 들으면 듣는 데에 충격을 받고, 무엇을 얻으면 얻는 데에 마음이 흔들리고, 무엇을 잃으면 잃는 데에 실망을 하고, 얻었다고 기뻐하고, 잃었다고 슬퍼하고,

이 세상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잠시도 고대로 있는 것은 없고 끊임없이 변해 가고 생겨났다가 변해져서 또 사라지고, 생겨났다 변해가 가지고 사라지고,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그러는데,
중생은 그러한 경계(境界)를 당해서, 그 경계를 자기가 주재(主宰)를 하지를 못하고, 그 경계의 노예가 되어 가지고 경계에 따라서 끊임없이 끌려다니고, 얽히고 설켜서 희로애락을 통해서 끊임없이 자취를 남기면서 끌려다닌다 그말이여.

그런데 부처님은 자유자재한 육신통(六神通)으로써 잠시도 쉴 사이 없이 치연하게 치열(熾烈)하게 작용을 해. 일체 중생을 제도(濟度)하시고 잠시도 쉴 사이 없이 설법을 하셔. 그렇게 치열하게 작용을 하고 계시되, 조금도 그 자취가 없는 점이 중생과 다르더라.


아까 조실스님 법문에 ‘참선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아는 것이 아니다. 사량분별을 통해서 아는 것은 그것은 깨닫는 것이 아니다. 팔만대장경을 아무리 육두로 다 외우고 해설을 하고 설할 줄 안다 하드라도 그것은 아는 것이지 깨달은 것이 아니다.
참선을 할라면은 사량분별로 무엇을 알려고 하지를 말고, 다못 말 길도 끊어지고 이치 길도 끊어져서 더듬어 들어가서 아는 그러한 것이 없이, 다맛 대의단(大疑團)으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관조(觀照)해야 한다.’

그러한 요지의 법문이 있었습니다마는 경을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은 천상 그 경에 쓰여 있는 말을 분석하고 따져서 대관절 무슨 뜻인가를 해석을 하고 배우고 가르키고 연구하고, 불가불 강원(講院)에 가면 그렇게 공부를 하기 마련이지만, 참선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참선(參禪)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아는 것이 아니여.
경의 뜻도 참으로 옳게 터득을 하려면 마음을 관조해서 그 말 뒤에 있는 말 없는 뜻을 봐야 하거든, 하물며 참선은 처음부터 말로써 공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깨달은 부처님의 경계에도 ‘알 지(知)’자 '안다'고 할 수가 있고, 이치를 깨달은 선지식도 '안다'고 할 수가 있고, 우리 범부 중생의 번뇌 망념으로 아는 것도 그것도 일종의 '안다'고 할 수가 있는데,

부처님이 아시는 것은 영지(靈知)라 그러거든. 영지(靈知). 신령스럽게 아는 거.
영지는 중생의 분별로써는 그 영지의 경계를 뭐라고 짐작을 할 수가 없는 것이여. 부처님 경지에 가 봐야 부처님의 그 영지의 뜻을 알 수가 있는 것이지, 그 경계에 이르지 못하고서는 영지의 그 경계를 짐작을 할 수가 없는 것이거든.

부처님 경지는 아무리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되, 그 자취가 없는 것이여. 자취가 없이 보시기 때문에 그건 영지(靈知)라 그러거든.

도인(道人)이 깨달은 경지는 어떠냐? 그것은 진지(眞知)라.
‘참 진(眞)’자 진지(眞知)라 그렇게 표현을 할 수가 있는데, 그 진지도 공안(公案)을 타파해서 남이 없는 도리, 무생(無生)의 법을 보아야 그래야 그 진지(眞知)의 뜻을 알 수가 있는 것이여.

중생이 번뇌 망상으로 따져서 짐작하고 느끼고 또 그것을 설명해 줄 수도 있고, 설명하는 것을 듣고 터득을 하고 이러한 것은 모두가 다 망지(妄知)에 속한 것이다 그말이여. 망령(妄靈)된 알음알이에 속한다 그말이여.

화엄경이나 법화경이나 금강경과 같은 그러한 대승경전에 쓰여 있는 부처님 말씀이라 할지라도 중생의 망령된 알음알이로 분석을 하고 해석을 하고 그러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설법이라 할지라도 망지(妄知)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말이여.

그런 경전의 말씀뿐만이 아니라 1700 조사 공안(祖師公案)도—이 조사 공안은 용궁(龍宮)에 있는 장경(藏經)에도 없는 교외별전(敎外別傳) 소식이지만,
그 교외별전의 최상승법, 이 공안도 중생의 알음알이로 따져서 『아! 이것이로구나』 하고 알음알이를 붙이면 알음알이로 따지면 공안이 바로, 최상승법이 찰나 간에 망지(妄知)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말이여.

참선에 있어서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은 알음알이로 공안을 따지는 거.
참선을 하다가 알음알이로 어떠한 결론을 얻는 거—얻으려고 하고 또 얻는 것은 모두가 다 모래를 쪄서 밥을 만들려고 하는 거여. 그건 아무리 삶아 봤자 모래지 그것이 밥으로 변하는 법은 없어.

중생의 망령된 알음알이로 아무리 공안을 따져서 그럴듯한 결론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침내 망지(妄知)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깨달음과는 점점 멀어져 버려. 그 자체가 깨달음이 아닐 뿐만 아니라 깨달음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버린 거다 그말이여.


공안을 중생의 사량분별심으로 따져서—「어떤 것이 부처입니까?」하고 묻는데, 「마삼근(麻三斤)이다」  「마삼근이니라」 이렇게 조사(祖師)가 대답을 하셨는데.
「어째서 부처님을 마삼근이라 했는고?」 그것을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하다가 탁! 속으로 어떠한 결론을 얻었어.

『육도법계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전부가 다 비로자나(毘盧遮那) 법신체(法身體)다』 그렇게 경전에 분명히 쓰여 있다 그말이야.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다 비로자나 법신인데 어찌 삼[麻]이라고 해서 부처가 아닐까보냐? 그래서 저 삼[麻]도 바로 부처다.」 이러한 식으로 공안을 따져 가지고 자기도 알았다. 공안을 타파했다.

이렇게 결론을 얻었다면 어찌 그것을 깨달음을 얻었다 할 것이냐 그말이여.

그것은 강사(講師)의 지견(知見)도 못되고, 그러한 식으로 공안을 따진다면 무엇을 처음부터서 ‘하늘 천(天)’ ‘따 지(地)’ 배우듯이 1700 공안을 놓고 다 그런 식으로 해서 배워 버리면 하나도 힘 쓸 것도 없고 간단할 일인데, 뭐하러 그렇게 목숨 바쳐서 고행난행(苦行難行)을 할 필요가 있느냐 그말이여.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뭣고?」 이뭣고 화두를 하는데,
아무리 「이뭣고?」  「이뭣고?」 해 봐도 알 수가 없고, 애를 쓰다 보니까 턱! 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자꾸 하다 보니까, 「이뭣고?」한 놈이 바로 이놈이더라!
그렇게 어떤 사람이 깨달았다 하면, 그거 참 생각해보면 그럴싸하거든. 「이뭣고?」한 놈이 이놈이지, 이놈 말고 무엇이겠느냐 그말이여.

밥 먹고 옷 입은 놈이 바로 이놈이요. 육도윤회를 하는 놈도 바로 지금 「이뭣고?」하고 있는 바로 이놈이요. 성내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놈도 바로 이놈이요. 확철대오해서 깨닫는 놈도 바로 이놈이요. 육도윤회를 하는 놈도 바로 이놈이다. 이놈을 내놓고 무엇이 또 있겠느냐?
그러니 여태 내가 「이뭣고?」「이뭣고?」했는데 바로 「이뭣고?」하는 이놈이더라.

참, 그러한 것을 갖다가 망지(妄知)라 하는 것이여. 망령된 중생의 알음알이다 그거여. 자기 딴은 애써서 했지만 ‘이놈이다’ 할 때는 경전에 있는 말씀과 딱 부합이 되어도, 그것은 벌써 이놈이라 할 때는 그것은 망지(妄知)다 그말이여.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도 '깨달았다'고 하는 소견에 떨어지면 찰나 간에 중생이요, 찰나 간에 윤회에 떨어져버린 것인데, 망령된 소견으로 그러한 결론을 얻었다면 그건 물어 볼 것도 없어. 그것은 참선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니여.

부처님께서 금강경에 『내가 설(說)한 바가 있느냐? 설한 바가 있다고 하면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 되고 설한 바가 없다 하면은 법을 비방한 것이 된다』 그러한 말씀이 있습니다.(처음~19분9초)


(2)------------------


산승(山僧)이 오늘 이렇게 입을 벌려서 영지(靈知)와 진지(眞知)와 망지(妄知)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부처님은 설한 바 없이 설하시고, 치연(熾然)히 작용을 하시되 자취가 없으시건만,

산승은 영지(靈知)도 얻지 못하고 진지(眞知)도 얻지 못한, 범부 중생으로 아무리 좋은 부처님의 말씀을 설하고, 아무리 조사의 법문을 고대로 설한다 하더라고 나 자신이 망령된 알음알이를 벗어나지를 못했어.

‘어찌 망령된 알음알이로 법을 설해 가지고 뭇 중생의 눈을 멀리고 스스로 구업(口業)을 짓느냐?’ 이렇게 책망을 하신다면 나는 입을 막고 고개를 들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망령된 알음알이로 법을 설하는 것은 무엇과 같으냐? 하면 ‘눈먼 장님이 훨훨 타는 횃불을 들고 대낮에 길거리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불을 밝혀 줄려고 하는 거와 같다’  이렇게 옛날 조사(祖師) 스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훨훨 타는 횃불을 밤에 가지고 다닌다면 혹 다른 사람들이 그 횃불의 광명을 받아서 그 밝음을 이용해서 구렁텅이에 빠지지 아니하고 바로 길을 찾아가겠지만,
태양이 환히 빛나고 있는 대낮에 횃불을 들고 돌아댕겨봤자 그 밝음은 아무 소용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밝음을 주지를 못하고, 오래오래 그 횃불을 가지고 돌아다니면 결국은 자기의 손과 몸뚱이에 화상을 입고 말 것이다.

그래서 달마스님도 그 혈맥론(血脈論)에 말씀을 하시기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 법을 설하면 법 설한 사람도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것이요. 깨닫지 못한 사람의 법을 듣는 사람도 그 깨닫지 못하고 법을 설한 사람과 마찬가지다. 깨닫지 못하고 법을 설하는 사람은 마왕(魔王)이요. 깨닫지 못한 사람의 법을 듣는 것은 바로 마왕의 백성이다」 이렇게 무서운 법문을 하셨습니다.

산승이 깨닫지 못한 범승(凡僧)으로서 감히 입을 벌린다고 하는 것은 내가 마왕이 되고 여러분을 마왕의 백성을 만드는 죄과(罪過)가 될 것이고, 내 손에 쥐었던 횃불이 내 손을 불사르고, 내 몸을 불사르고, 그 불이 잘못해서 여러분에게 번지게 되면 여러분이 또한 큰 화상을 입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산승은 깨닫지 못한 사람이면서 어째서 이렇게 법상에 올라와서 이렇게 다달이 법회를 갖고 있느냐?

산승이 전생에 죄가 많고 업이 두터워서 피할라야 피할 수 없는 굴레를 쓰게 되었어.
출가해 가지고 자신의 생사 문제가 급하고 급하거늘, 어느 겨를에 입을 벌릴 그러한 여유가 없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몸을 뺄라야 뺄 수 없이 되었습니다.

노예가 마치 자기 마음으로는 추호도 하기도 싫은 그러한 중노동을 쇠고랑을 찬 채 가혹한 매질을 당하면서 피를 흘리면서 무서운 노동을 강요 당하듯이 '용화선원 원장(院長)'이라 하는 굴레를 조실 스님의 열반시의 명령에 의해서 피할 수 없이 이러한 굴레를 쓰고 법회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불이 내 몸에 번지기 전에 여러분은—그 조그만한 반딧불만도 못한 그런 조그만 불이지만,
여러분은 그 불이 꺼지기 전에, 또 내 몸을 태우기 전에, 또 그 불이 여러분의 몸에 번지기 전에 그 밝은 것만을 빨리 잘 이용을 해서 바른 길을 찾아 가시기를 바라는 그러한 마음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내 소원은 설사 그 불이 내 몸에 덩거서 내가 화상을 입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분에게 그 광명이 비춰져서 여러분의 앞길에 바른 법의 문이 열리기를 바라는 오직 그 한 생각 뿐입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발심을 하고 참으로 정법을 믿고 자비가 있으시다면 그 불이 내 몸에 덩구지 않도록 그것을 잘 보살펴 주시고,
그 불은 오래오래만 가지고 있으면은 횃불이 타다가 결국은 불똥이 나한테 튀길 것은 분명한 것이니까 빨리 여러분이 시간을 아껴서 정말 목숨을 바쳐서 열심히 정진해서 내 손에 있던 횃불을 여러분이 달라들어서 그 불을 빼앗아 가시든지, 그 불을 빼앗아서 위험하지 아니한 곳에 버려 주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피차 이 사바세계에 태어났을 때 숙세(宿世)의 깊은 인연으로 같은 시대에 같은 나라에 태어났고, 같은 종교를 믿게 되었고, 같은 법당에서 이렇게 다달이 만나게 된 것입니다.
숙세의 깊은 인연이 아니면 도저히 한 시대에 태어날 수도 없고, 설사 한 시대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같은 장소에서 만나지들 못하고, 또 한 나라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같은 시대에 태어나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고, 같은 나라에 태어나고, 같은 불법에 만나서 이렇게 서로 생사 없는 진리를 향해서 말을 하고 듣게 된 그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말로써 표현 할 수가 없는 부모자식 간의 인연보다도 수백만 배의 깊은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내 손으로 들고 있는 횃불에 의해서 타서 죽게 되는 것을 여러분은 강 건너 불을 보듯이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것이고, 여러분이 어두워서 구렁텅이에 빠지고, 물에 빠지고, 허방에 빠진 것을 나도 또한 보고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진지(眞知)와 영지(靈知)를 조사와 부처님처럼 그런 '참된 지(眞知)'와 '신령스런 지(靈知)'를 얻지 못한 몸이면서 나의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가 죽을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이렇게 법상에 올라와서 부처님과 조실 스님을 대신해서 이렇게 여러분을 위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많은 말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알음알이를 조장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고, 알음알이를 얻는 데에 불법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래가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말로써 공부를 할 수가 있고, 말로써 가르켜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지금 육도(六道)를 윤회하고 있는 중생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로써는 이 영지(靈知)와 진지(眞知)를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고 사량 분별심으로 들어서 그것을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불보살과 선지식과 모든 스님들이 ‘말로써 설할 수가 없다’해서 입을 다물어 버리고, 우리 같은 그러한 부처님과 같은 확철대오를 얻지 못한 범승이라 해서 법회를 갖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 몸만을 생각하고 입을 다물고 일생을 자기만을 위해서 정진을 하고 있다면,
불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 아직은 불법의 어떠한 점이 좋다고 하는 것에 눈뜨지 못한 사람, 어떤 것이 바른 불법인가에 대해서 분간을 못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서는 누가 말을 할 것이냐 그말이여.

‘원래 '참진리'는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참된 말씀은 입으로 좇아 나오지 않는 것이다’하는 말씀이 있습니다마는,
‘부처님은 그 많은 법을 설하셨건만 한 말씀도 설하신 바가 없다’  ‘무량중생을 제도하시되 한 중생도 제도를 받은 사람이 없다’ 이러한 말씀을 우리는 깊이 마음으로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말로써 설할 수가 없고 귀를 통해서 들을 수가 없지만 그래도 입을 벌려서 부처님은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을 설하셨고, 선문(禪門)에서는 문자를 세우지 아니하고 ‘불립문자(不立文字)하고 직지인심(直指人心)하야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문자를 세우지 아니한다 하시면서도 수없는 조사의 어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입으로 설할 수가 없지만 목숨을 바쳐서 설할 수 밖에는 없고, 중생의 사량분별로 귀를 통해서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지만 목숨 바쳐서 법문을 들어야 하고, 들으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래 자기에게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다 갖춰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찾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와 우리 중생과의 관계입니다.

진리는 찾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진리는 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위해서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그 길을 안내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고, 여러분은 또한 그것을 듣기 위해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출현을 하셔도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부처님도 탄생을 하셨고, 모든 보살님과 모든 조사도 그렇게 해서 탄생을 하셨습니다.

앞으로 우리들도 그만큼 내게 갖춰 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 목숨을 바칠 때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19분10초~35분31초)


------------------(1)


*(게송) ‘춘래동견방초록~’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참고.
*부처님 : [범] Buddha 음을 따라 한자로 불타(佛陀)•부도(浮圖•浮屠)•부타(浮陀)•발타(勃陀)•몰타(沒駄) 등으로 쓰고, 줄여서 불(佛)이라고만 하는데, '깨친다'는 말이다.
'부처님'이라 함은 '깨친 어른(覺者)'이란 뜻이다。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는 이를 말함이니,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함식(含識)• 군생(群生)• 군맹(群萌)•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치연(熾然) ; ①매우 왕성한 상태. ②번뇌의 다른 이름—결(結)·박(縛)·전(纏)·취(取) 등등—가운데 하나이다.
치(熾)는 ‘성하다(盛--, 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맹렬하게 일어남, 횃불이 활활 타오름, 불을 붙여 이글이글 피게 함’의 뜻. 연(然)은 상태를 나타내는 접미사(接尾辭).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주재(主宰 주인 주,다스릴 재) ; ①어떤 일을 중심이 되어 맡아 처리함. ②주재자(主宰者, 어떤 일을 중심이 되어 맡아 처리하는 사람).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2. 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3. 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4. 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5. 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6. 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선가귀감](용화선원) p94-95 참조.
*치열(熾烈 성할 채,세찰 렬) ; 기세나 세력 등이 불길같이 맹렬함.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무생(無生) ; ①생멸(生滅)을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이 없는 도리. 곧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②아라한(阿羅漢) 또는 열반(涅槃)의 번역어. 번뇌를 없앤 경지를 말함.
*망령(妄靈) ;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남. 또는 그런 상태.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
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
(5)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説者는  爲教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教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教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教)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6)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教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教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教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教外別傳禪旨)가 되리라.
*고행난행(苦行難行) ; 난행고행(難行苦行).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2)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혈맥론(血脈論) ;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다.
문답형식으로 즉심시불(卽心是佛-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 심외무불(心外無佛-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 성불수시견성(成佛須是見性-부처를 이루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한다) 등의 말씀이 있다.
혈맥(血脈)은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도 하며,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주고받아서, 정법(正法)을 상속하는 것. 신체의 혈맥이 서로 연결되어 끊어질 수 없는 것에 비유해서 말함.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범승(凡僧) ; 평범한 스님.
*죄과(罪過 허물 죄,허물 과) ; 죄가 될 만한 과실이나 허물.
*덩그다 ; '불이 붙다'의 사투리.
*어피차(於彼此) ; 어차피(於此彼). 이렇거나 저렇거나 귀결되는 바.
*숙세(宿世 지날 숙,세상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의 세상(世).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선문(禪門) ; 선종(禪宗). 문자를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선(禪)을 닦아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체득하는 깨달음에 이르려는 종파.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싼또샤
법회(초파일)2014.05.05 17:26


§(473) (게송)심춘막수향동거~ / ‘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 / 부처님의  가지 은혜[如來十種恩] / (게송)불설일체법~ / () 공덕(功德) 어머니 / 불급심사(不急尋師) 공과일생(空過一生).


부처님께서는 팔만사천(八萬四千) 법문(法門) 설하시고도 마지막에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부처님의 진설(眞說)입니다.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 하는 요점에 의해서 우리가 수행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 바로 참선법(參禪法)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끼친 은혜는 바닷물을 벼룻물로 해서 먹을 갈아가지고 그걸  기록한다 하더라도  기록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대충 부처님의  가지 은혜[如來十種恩]’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그러한 위대한 우리의 스승이시고 우리의 교주(敎主)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3천년이 되는 오늘날뿐만 아니라 삼만 년이 되고 삼백만 년, 무량겁을 두고  은혜에 보답한다 해도  억만 분의 일도 갚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모든 병은 마음에서 나거든. 부처님 말씀에 모든 병은 마음에서  마음이 없으면 몸뚱이가 존재할 수가 없어.  몸뚱이는 마음의 그림자거든. 마음의 그림자여.

〇신심(信心) 하나가 바르고 철저하면 이루지 못할 소원이 없고 이루지 못할 () 없는 것이여.

이뭣고?’ 한마디  것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읽은 공덕보다 낫다」  이뭣고?’ 한마디는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육백만  부른 공덕보다도 더 수승하다」 그 말을 액면 그대로 철저하게 믿고 이뭣고?’ 한다면  사람은 반드시 도업을 성취할 것이다.

바른 신심을 가지고  길을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갈수록 재미가 없고  갈수록 어려워도 믿는 마음 하나만 있다면 한결같이  길로 나아가라 이거거든. 바른 방법으로 그리고 열심히만  가면  되는 법이 없어.

**송담스님(No.473)—92 부처님 오신날(92.05.10) 법문

(1/2) 약 20분. (2/2) 약 20분.

(1/2)----------------


심춘막수향동거(尋春莫須向東去)하라  서원한매이파설(西園寒梅已破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자가옥리천진불(自家屋裏天眞佛)이라  절기구구향외구(切忌區區向外求)니라

나무~아미타불~


심춘막수향동거(尋春莫須向東去)하라. 봄을 찾아서 모름지기 동쪽을 향해 가지 말아라.

서원한매이파설(西園寒梅已破雪)이니라. 서쪽 뜨락에 차운 매화가 이미  속에 피어 있느니라.


봄을 찾아서 동쪽을 향해 가지 말아라. 겨울에는 북풍(北風) 불다가 봄이 돌아오면 동풍(東風) 불거든. 동풍이 불면 봄이 오니까,  봄을 빨리 찾기 위해서  동쪽으로 찾아 나서지 말아라.


너희  서쪽 뜨락에 매화가 이미  속에서 피어 있느니라. 자기집 뜨락에 이미 매화가 피어 있으면 거기에 이미 봄이  있거늘, 자기집 뜰에  봄을 놔두고 어찌  문밖으로 나가서 동쪽으로, 동쪽으로 멀리 봄을 찾아 나서지 말아라 이거거든.


자가옥리천진불(自家屋裏天眞佛)이여. 자기집 안에 천진불(天眞佛) 계셔.

본래부터서 있는 자기 부처님을 놔두고 어찌  밖으로 부처를 찾느냐 이거거든.(切忌區區向外求)



오늘은 임신년 「부처님 오신날」입니다. 불기 2536 그러는데, 부처님이 열반(涅槃)하신 해를 원년으로 해서 금년이 2536년이니까, 거기에다가 팔십 세에 열반하셨으니까 칠십구 년을 보태면은 2615 전에 부처님이 탄생하신 것이 됩니다.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연조(年條) 대해서는 경전에 따라 차등이 있어서 불교 학자들이 많은 학자들이 한데 모여서 여러 가지로 연구한 결과 2615 전에 탄생하셨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팔십 세를 사시다가 열반하셨으니까 금년 열반하신 해를 원년으로 해서 금년이 2536년이다. 이렇게 하기로 합의를 봐서 세계 공통 불기(佛紀) 현재 열반하신 해를 원년으로 해서 2536년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이해를 하시고.


2615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을 하셨다. 역사적으로    그렇게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국의 정반왕(淨飯王)과 마야부인(摩耶夫人) 사이에서 실달(悉達) 태자로 탄생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16세에 결혼을 하시고 라훌라 왕자를 낳으시고 그리고 29세에 출가하셔서 35세에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셔가지고 80세를 일기(一期) 열반(涅槃)에 드셨는데.


35세에 성도(成道)하셔서 45년간 팔만사천 묘법(妙法)을 설하시고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셨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팔만사천(八萬四千) 법문(法門) 설하시고도 마지막에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부처님의 진설(眞說)입니다.


 팔만사천의  엄청난 법문을 설하시고서도 한마디도 설한 바가 없다 하신 바로 그것이 부처님께서 우리 중생들에게 정말 하시고자 하신 요점인 것입니다.

그 부처님께서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 하신  말씀을 올바르게 알아들어야 부처님의 법문을 바로 이해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글자도 설한 바가 없다 하는  요점에 의해서 우리가 수행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 바로 참선법(參禪法) 것입니다.  이뭣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그걸 인연 닿는 대로 읽고  읽어도, 그것은 부처님께서 근기(根機) 따라서 방편설(方便說) 하신 것이기 때문에 한도 끝도 없어. 평생 동안을 () 손에서 놓지 않고 읽어보았자 우리가 부처님의 참뜻을 이해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여.


이뭣고?’ 하면 정말 부처님의 참뜻을 이해하게 되고, 내가 부처님의 참뜻을 이해하고  참뜻에 따라서 수행을 함으로 해서 우리도 참다운 불자(佛子)가 되는 것이고 마침내는 나도 부처님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해마다 돌아오는 음력 4 초파일을 기억을 하고 그날을 그렇게 융숭하게 최선을 다해서 이렇게 절절이 방방곡곡(坊坊曲曲)  , 작은    없이 그날을 이렇게 축하를 하느냐?

 (),  등을 켜고 불공(佛供) 드리고 이렇게 정성을 다해서 그날을 이렇게 축하를 하느냐? 또 우리나라에서는 그날을 공휴일로 제정을 해서 범국가적으로 이렇게 축하를 하느냐?


대관절 부처님은 어떠한 어른이시기에우리에게 어떠한 이익을 주신,  중생들에게 어떠한 이익을 주신 성현(聖賢)이기에 우리는 그토록 정성을 다해서 탄생하신 날을 축하를 하느냐?


정말 똑바로 부처님이 어떻게 위대하고 거룩하신 성현이냐하는 것을 말하라고 하면 구체적으로 들어서 말하기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별로  은혜(恩惠) 주신 것이 없고 이익도 주신 것이 없다면 이렇게 3천년이 되도록  「부처님 오신날」을 우리가 기억하기도 어렵고, 설사  사람이 그것을 기억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세계 각국의 만인(萬人) 그날을 이렇게 기억을 하고 축복을 하고 축하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끼치신 은혜는 바닷물을 벼룻물로 해서 먹을 갈아가지고 그걸  기록한다 해도  기록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대충  가지를 , 대표적인   가지만을 들어서 말씀을 한다면은,


(첫째는) 발심(發心)해서 출가 해가지고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해서 법계(法界)의 모든 중생들에게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발심 출가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은혜.

부처님께서 태자로 태어나  왕자로서 자라가지고 정반왕의 대를 이어서 임금노릇을 하다가 그냥 그것으로서 마치셨다면은 오늘날 우리가 불법(佛法) 무엇인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발심해서 모든 중생에게 은혜를 베푸신 .


둘째는  태자의 고귀한 몸으로 설산에 들어가서  어려운 고행을 하셨는데 금생뿐만이 아니라 과거 인행(因行) 때에 수없는 고행을 쌓으셨어.  얼마나 많은 목숨을 버렸고, 배고픈 호랑이에게는 몸을 던지고, 처자 권속을 버리시고  버렸다 말이여. 그러한 난행고행(難行苦行) 우리 중생을 위해서 하신 것이다.


셋째는 일향(一向)으로 다른 사람, 다른 것을 위해서 사셨어. 예를 들자면은 신명(身命) 돌아보지 않고 일체 중생을 제도(濟度)하는 데에 당신의 모든 것을  버리신 것이여.  생각도 자기를 생각하지를 않았어. 이것이 일향(一向)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은혜.


다른 종교에서는   동안 중생의 원죄를 벗겨주기 위해서 십자가에 매달린  그것 하나만을 가지고서도 온통  은혜가 고마워서 야단들이여.

부처님은 무량겁을 두고 손바닥만한 땅도 중생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어느 ,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인도뿐만이 아니라 세계 방방곡곡, 우주법계  태양계와 같은 세계가 무수로 있는데,  많은 땅들이 부처님께서 중생을 위해서 몸을  희사(喜捨)하신 곳이다 그거거든.


넷째는 육도(六道)  몸을 나투신 거여. 하늘나라에도 나타나시고, 인간 세상에, 수라도(修羅道), 축생계, 아귀도, 지옥도(地獄道)   없이 육도법계에 중생을 위해서, 중생으로 하여금 이고득락(離苦得樂)하도록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중생으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기 위해서 몸을 나투신 거여.


다섯째는 중생이 있는 곳에는 어디라도 중생을 따라서 나타나셔.  그러냐 하면은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를 벗어나서 이고득락하기 위해서 중생을 따라서 몸을 나투신 거여. 그래 가지고 자비를 베푸신 것이다 그거거든.


여섯째 대비심중은(大悲深重恩)’ 중생이 죄를 짓고  고통을 받는 그것을 보시고서는 차마 보실 수가 없어. 중생이 () 받는 것을 마치 당신의 몸을 갈기갈기 찢는 것처럼 그렇게 마음 아프게 생각하셨다. 그래 가지고 중생이 고통받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잠을 자실 수가 없고, 밥을 편안하게 자실 수가 없고 편안하지를 않아.

그래서 중생이 삼악도(三惡道) 떨어져서 고를 받는 그것을 보고서, 너무너무 괴로워서 견디실 수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번이고  번이고 아낌없이  버리신 것이다. 부처님의 대비심(大悲心) 그렇게 중한  은혜.


일곱째는 대승, 소승의 기틀에 따라서  근기(根機) 위해서는  응화신(應化身) 나투시고, 중생의 하열(下劣) 소승 근기를 위해서는 소승에 적합한 응화신을 나투셨다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그릇은  그릇대로 제도하시고, 작은 그릇은 작은 그릇대로 제도를 하셨어.


 여덟째는 은실시권은(隱實施權恩)’ 근기가 하열한 중생을 위해서는 실교(實敎) 잠시 덮어 놔두고  작은 그릇에 따라서 권법(權法), 방편법을 설하셨어.

만약에 부처님께서 방편법, 권법을 설하시지 않고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대로만 가지고 모든 중생을 상대하셨다면,  그릇은 제도를 받았겠지마는 근기가 약한 우리 중생들은  혜택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근기 따라서 자유자재로 좋은 방편법을 설하셨기 때문에 어떠한 하열한 중생도 빠짐없이  불법(佛法) 귀의(歸依) 수가 있게 되고, 우리와 같은 하근기(下根機) 극하근기도 마침내는 정법(正法) 믿고 이렇게 부처님의 진리에 나아갈 수가 있게  것이여.(처음~1959)



(2/2)----------------


아홉째는 부처님께서는 생사(生死) 없으신 분이여.

영원히 진리의 몸이신데 일부러 화신불(化身佛)  세상에 나타나셔서 사람으로—부처님 당시에는 백 세까지 사실 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세(末世) 박복(薄福)한 중생, 박복한 제자들을 위해서 20년간 당신이 누릴  있는 () 말세의 제자들에게 물려주시고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셨어.


그래서 말세의 우리 제자들이 아무리 먹고  먹는다 해도, 부처님의 백호상(白毫相) 억만 분의 일도  먹을 수가 없다 이런 말씀이 () 있습니다.


그런데 열반을  하시고 영원한 진리의 몸으로 계실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반에 드셔서 이 박덕(薄德)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 부처님 살아계실   우리가   발심을 하지 못했던가?’ 그렇게 반성하고 참회하고 발심을 하게 했다 그말이여.


 부처님을 살아 생존 시에 뵙지 못한 말세의 중생들도 부처님께서 남겨주신  () 의지해서 부처님에 감사한 마음으로 발심하고  발심을 해서, ‘부처님 생존 시에 부처님을 친견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을 깊이깊이 명심을 해서 언젠가는 반드시 부처님 생존 시에 만나게 되기를 그렇게 발원(發願) 하도록.


지금 우리가 이뭣고?’ 하고 참선을  것은 삼천년 전에 열반하신  부처님이 비록  육신의 부처님은 친견을 못하더라도,  법신불(法身佛) 우리 자신 속에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닫도록  주신 것입니다.


부모가 살아계실 때는 부모의 은혜를  모릅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모는 으레이 자식을 당신이 낳았으니까 입혀주고 먹여주고 키워주고 가르쳐주고 부모는 으레이 그런 것이 부모의 책임 아니어?’ 조금도 부모 은혜를 모릅니다.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사 정말 우리 부모님의 은혜를 그때서 깨닫게 되고, 자기도 자식을 낳아서 키워 봐야 정말 부모님의 은혜가 얼마나 지중(至重)한가를 그때사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열째는 비념무진은(悲念無盡恩)’ 부처님께서 일체 중생을 자비심으로 호념(護念) 주신  은혜.

아까 말씀드린 너무 중생을마치 부모님이  피땀 흘려서  ,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고, 입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마음대로 입지 않고 그렇게 모은 돈을 자식들 잘살게 하려고 그것을 유산으로 남겨주신 것처럼,


부처님께서는 20년을 앞당겨 열반에 드셔가지고  여복(餘福) 우리 말법 제자와 중생들에게 남겨 주셨고.  삼장(三藏) 교법(敎法)그것이 법재(法財), 법의 재산이죠. 법의 재산을  유산(遺産)으로 남겨 주셔서,

중생들로 하여금 20 여복과 삼장(三藏) 법재를 유산으로 물려주셔서, 부처님만 믿은 사람이면  법의 재산을 유산으로 물려받을 수가 있고, 부처님만 모시고 살면 불상(佛像) 모시고 살면 어느  절이고 작은 절이고 산간벽지라도  의식주 문제가 해결이 .


하물며  법에 의지해서 계율을 지키고 여법(如法)하게 열심히 정진(精進) 하면 영원한  부처님을 자기 속에서 깨달을 수가 있게 .


이러한 대충 부처님의  가지 은혜[如來十種恩]’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그러한 위대한 우리의 스승이시고 우리의 교주(敎主)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3천년이 되는 오늘날뿐만 아니라 삼만 년이 되고 삼백만 년, 무량겁을 두고  은혜에 보답한다 해도  억만 분의 일도 갚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불설일체법(佛說一切法)  도아일체심(度我一切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아무일체심(我無一切心)커니  하용일체법(何用一切法)이리요

나무~아미타불~


불설일체법(佛說一切法), 부처님께서 일체법, 팔만대장경, 팔만사천의 묘법을 설하신 뜻은 우리 중생으로 하여금 일체심(一切心) 제도해. 끊임없이 일어나는 팔만사천의 번뇌(煩惱) · 망상(妄想), 모든  중생심(衆生心) 제도하시기 위해서 팔만사천 법을 설하신 것이다 그말이여.


아무일체심(我無一切心)커니, 내게 일체의 마음이 없거니, 팔만사천의 번뇌 · 망상이 없다면 팔만사천 법이 어디에  것이냐.

끊임없이 일어나는 중생심, 그놈을 제도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셨는데  중생심이 없다면 무슨 일체법이 필요하겠느냐.


약국의 수없는 약이 약국마다 가득차 있고, 수없는 제약회사에서 수없는 약을 세계 각국에서 만들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의 병이  없어진다면  약을 어디에  것이냐? 그런데 병도 가지가지이기 때문에 약도 가지가지거든.


그러나 모든 병이 나오는 것이 어디냐?’하면은, 종합병원에 가면 내과 · 외과 · 소아과 · 부인과 · 노인과 · 정신신경과, 수없는 () 있고  과에 해당되는 병도 수없이 많고.


그러나 한마디로 말해서 모든 병은 마음에서 나거든. 부처님 말씀에 모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