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칠석)2015.08.16 13:36

§(308) (게송)생애여몽약부운~ / 일장춘몽(一場春夢) / 부처님의 감응(感應) / (게송)대지산하시아가~ / 법을 설(說)하고 듣는 것이 동시인 것,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부처님의 자비가 온 법계에 두루 다 미치고, 비추고 있지마는 내 자신이 청정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축원을 하고, 기도를 할 때에 비로소 자기 마음에 부처님의 감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눈으로 무엇을 볼 때, 귀로 무엇을 들을 때, 현재 우리가 발로 걸을 때,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때, 좋고 나쁜 것을 생각할 때, 바로 그때, 그곳을 여의지를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 집착하라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곳에 즉해서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관조할 때에 거기에서 견성성불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진진찰찰(塵塵刹刹)이, 육도법계(六道法界), 이 가없는 우주 법계가 전판 다 부처님의 법문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고, 부처님의 법신(法身)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 모래알 하나, 풀 이파리 하나, 꽃 이파리 하나, 구름 한 조각,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낱낱이 다 끊임없는 부처님의 몸이요,

그 부처님 몸뚱이에는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그 모래알 속에 다 머물러 계시면서 끝없는 법문을 설하시고, 조그마한 풀 이파리 하나에서도 삼세제불이 그 속에서 다 설법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08)—86년 칠석법회(86.08.12)


(1) 약 16분.  (2) 약 18분.


(1)------------------


생애여몽약부운(生涯如夢若浮雲)한데  활계도무절육친(活計都無絶六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유득일쌍청백안(留得一雙靑白眼)이라  소간무한왕래인(笑看無限往來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생애여몽약부운(生涯如夢若浮雲)이라, 인간 생애가 꿈과 같고 또한 뜬구름과 같다.

활계도무절육친(活計都無絶六親)이여. 살아가는 계책(策), 활계(活計)가 도무지 없고, 육친(六親)이 다 끊어져 버렸어.


유득일쌍청백안(留得一雙靑白眼)이라, 오직 가지고 있는 것은 한 쌍의 푸르고 흰 눈 뿐이여.

소간무한왕래인(笑看無限往來人)이라. 한없이 왔다갔다 하는 사람을 웃고 볼 뿐이더라.


인생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부모를 의탁해서 이 몸을 받아 나고, 부모의 그늘에서 음덕(德)으로 자라가지고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고, 이렇게 해서 돈을 벌고, 세속에서 직업을 가지고 살고,

모든 과거에 지은 인연으로 해서 일촌, 이촌, 삼촌, 사촌, 오촌 이렇게 해서 원근(近) 친척과 가문과 이웃이 모다 얼크러져 가지고 이렇게 사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그 생애(生涯)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꿈과 같은 것이고, 뜬구름과 같아.

좋을 때는 형제간이다 친구간이다 모다 그렇지만 내가 높은 벼슬자리에서도 떨어지고, 재산도 없어지고, 병들어 비참하게 되면 그전에 그렇게 드나들고 형님 동생하던 처지(地)도 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다 인연(因緣)이 멀어져 버린 것이여.


그리고 부귀(富貴)와 영화(榮華), 공명(功名)이 아무리 하늘을 찌를 듯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은 간 곳 없이 다 흩어지게 되고, 일생 동안 또는 영원히 그렇게 잘살으란 법도 없어.


그러니 그것이 모두 지내놓고 보면 한바탕 춘몽(春夢)에 지내지 못하고,

저 여름 하늘에 흰구름 뭉텅이와 같아서 그 구름이 뭉개 뭉개 피어오를 때 보면은 호랑이 같기도 하고, 사자 같은 놈도 있고, 코끼리 같은 놈도 있고 또 누각 같은 것도 있고, 사람같이 생긴 것도 있고, 별별 기기묘묘(妙)한 모양이 있지마는,

잠시 지나면은 그 구름이 이리저리 변형이 되어 가지고 그래가지고 흩어져서 간 곳이 없어져 버린다 그말이여.


인생의 부귀영화라고 하는 것이, 빈부귀천 형형색색(色)의 인생살이가 그러한 구름덩어리와 같다.

꿈속에 아무리 천자가 되는 꿈을 꾸고, 재상이 되는 꿈을 꾸고,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리는 그런 꿈을 꿨다 해도 잠을 깨 버리면 자취가 없어져 버려.

그러니 인생살이를 꿈에다가 비유하고 또 구름에다가 비유한 것은 우리는 너무나 타당(妥當) 있는 그러한 비유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활계도무절육진(活計都無絶六親)이여.

그러한 인생살이가 허망한 줄 알고 의지하고 믿을 것이 못 된 줄 알면, 그러한 세속 그 뜬구름과 같은 인연을 한칼로 다 비어버리고 출가해서 도를 닦으니 모든 직업도 다 놔 버리고, 인생의 빈부귀천도 다 내버리고,

오직 일대사(一大事) 문제만을 위해서 남은 목숨을 거기다 바치니 활계(活計)가 무엇이여?


생활해 나가는 대책을 무엇으로 세울 것이냐 그말이여. 아무 계책(計策)이 없어.

그리고 세속의 육친, 일가친척 부모형제 그런 육친의 인연이 다 끊어져 버렸어.


오직 가지고 있는 것은—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과 빈부귀천과 부귀영화 모든 것을 갖다가, 그런 것을 실다운 것으로 믿고 그런 것을 가지고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그러한 속에서 얽매어 가지고 끌려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동서고금의 모든 사람들을,

부귀와 영화에 얽매어 가지고 모다 그러한 것들의 노예가 되어 가지고 제 잘난 맛으로 살고 있는 그러한 인간들을 비긋이 웃으면서 볼 수 있는 그러한 청백안(靑白眼)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오늘은 병인년 칠월 칠석(七夕)날입니다.

저 옛날부터서 칠석날에는 돌아가신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원근 친척과 모다 그러한 영가들을 위해서 이고득락(離苦得樂), 고해(苦海)를 벗어나서 업장(業障)을 소멸해가지고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하기를 축원을 하고,


또 살아 있는 부모, 형제, 자손들의 수명장수하고, 복덕이 구족하고, 자손이 창성하도록 그리고 나라와 민족, 국가 민족이 모두가 다 우순풍조(調)해서 모든 사람이 모다 화합해서 잘살기를 빌고 하는,

이러한 부처님께 칠성님께 공양을 올리고, 기도를 하고 축원을 하는 그러한 성스러운 날로 여겨왔던 것입니다.


지금도 역시 칠석날에는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대소 사찰에서 많은 신남신녀들이 구름처럼 모여 가지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예배를 드리고 축원을 하는 그러한 의식과 풍속이 지금도 변함없이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용화선원의 법보전(法寶殿)에도 많은 신남신녀들이 운집(雲集)을 하셨습니다마는, 선망부모, 현존 사친을 위해서 이 칠석날을 기해서 그러한 소박한 신앙심으로 이렇게 오신 것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참 좋은 풍속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요새 과학 문명(明)이 발달하고 모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을 해서 ‘뭐 그까짓 것 미신이다. 그까짓 것 다 기복불교(祈福佛敎)고, 다 미신에 가까운 것이다’ 이렇게 여겨버리고 그러한 사람들도 있겠습니다마는,


그냥 옛날부터서 내려오는, 천여 년을 두고 내려오는 우리나라 고유의 소박한 신앙을 고대로 전통을 해오고 그러면서도 최상승 불법을 믿는 신심은 오히려 더 돈독해지고,

이런 것은 어떠한 면에서 생각해 보면 대단히 참 아름다운 한 신앙의 면이라고 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속담에도 ‘공든 탑이 무너지랴’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부처님께 발원하고, 참회하고, 기도하고, 축원하고, 이러한 정성스런 신심은, 그러한 공덕은 결단코 헛되지 아니한 것입니다.

내가 그만한 간절한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공을 들이고 축원을 하면 반드시 거기에 감응(感應)이 있는 것입니다.


깨끗한 그릇에다가 맑은 물을 떠 놓고 그 그릇을 고요하게 유지를 하면 반드시 그 그릇에는 하늘에 떠있는 달이 거기에 비추는 것입니다.

하늘에 뜬 달이야, 물그릇에 떠 놓거나 말거나 언제나 모든 곳에 한결같이 비추고 있는 것이지만, 물이 없는 데에는 그 하늘에 뜬 달이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비추지 아니한 것은 아니되, 물을 떠 놨을 때 비로소 그 하늘의 달이 자기 눈으로 확인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자비가 온 법계에 두루 다 미치고, 비추고 있지마는 내 자신이 정성스러운 마음, 청정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하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축원을 하고, 기도를 할 때에 비로소 자기 마음에 부처님의 감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해가 아무리 밝게 비추고 있어도 자기 스스로 캄캄한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커튼을 내리고 앉았다든지 또는 껌껌한 지하실이나 굴속에 들어가서 앉았다면 아무리 저 허공에 태양이 그렇게 밝게 비추고 있은들 자기한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어두운 방에서 커튼을 걷고, 문을 활짝 열어제낄 때 방안에 광명이 비출 것이며, 지하실에서 용감히 뛰쳐나와서 태양이 비추고 있는 넓은 광장으로 나올 때에 온통 그 햇빛을 다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청정한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쌀과 꽃과 과일과 여러 가지 폐백(幣帛)을 가지고 부처님께 나와서 올리고 경건하게 향을 사르고, 절하고 또 이렇게 법문을 들을 때에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와 광명을 그리고 모든 공덕을 우리는 흠뻑 가슴에 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처음~16분5초)



(2)------------------


대지산하시아가(大地山河是我家)인대  갱어하처멱향가(更於何處覓鄕家)오

나무~아미타불~

견산망도광미객(見山忘道狂迷客)이  종일행행부도가(終日行行不到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대지산하(大地山河)가 이 나의 집이여.

갱어하처멱향가(更於何處覓鄕家)오. 다시 어느 곳에서 내 고향집을 찾을 것인가.


견산망도광미객(見山忘道狂迷客)이, 눈앞에 나타난 그 산을 보다가 자기의 길을 잃어버리는 그런 길 잃은 손이,

종일행행부도가(終日行行不到家)로구나. 종일토록 가고 또 가도 집에는 이르지를 못하는구나.


대지산하(大地山河),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이 대지산하가 온통 이것이 다 나의 집이요 나의 고향인데, 그것이 자기 고향인줄을 모르고 자기 고향을 평생토록 찾으러 다녀.

왜 자기 고향에 발을 디디고 자기 고향에서 살면서 왜 고향을 찾고 있느냐? 눈에 보이는 산을, 기웃기웃 산을 보다가 자기의 갈 곳을 잊어버려, 길을 잊어버린다 그말이여.


현실에 자기 발 디디고 살고 있는 그곳이 바로 자기의 고향이요, 자기가 설 곳이요, 자기의 바로 살아 갈 곳인데,

그 자리를 놔두고 저 눈에 보이는 저 먼산을 갖다가 행여나 ‘저기에 내 고향이 있는가? 저 산너머에 내 고향이 있는가?’하고 멀리 찾다가 자기의 진짜 고향을 잊어버리더라 그말이여.


우리 도 닦는 사람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기 위해서 온갖 고행을 극복을 하면서 수행을 하는데,

현재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춥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모든 것을 알고,

이러한 현실 경계를 내놓고 따로 도(道)의 경지를 찾고, 따로 견성할 것을 구하고, 따로 성불할 어떠한 특수한 경지를 구하는 한은 참다운 견성은 이르러 오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지금 눈으로 무엇을 볼 때, 귀로 무엇을 들을 때, 현재 우리가 발로 걸을 때,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때, 좋고 나쁜 것을 생각할 때, 바로 그때, 그곳을 여의지를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 집착하라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곳에 즉해서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관조할 때에 거기에서 견성성불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닥치고 있는 그 일이 자기 마음에 들건 안 들건, 좋건 나쁘건, 기쁘건 슬프건, 그것이 문제가 아니여. 그놈을 여의고 찾지도 말 것이며, 그놈에 집착해서 구하지도 말 것이여.

일체처 일체시에 그렇게 다그쳐가야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여래의 땅[如來地]에 이르는 소식이 있는 것입니다.


항상 법회 때마다 “불법(佛法)을 먼 데에서 구하지 말아라. 불법은 너의 마음속에 있고 지금 이 자리, 이때를 버리고 찾지 말아라”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그것은 방편(方便)이 아니라 그 말이 우리 공부해 나가는 데에 너무 적절하고,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바르게 도를 닦아갈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문이 49년 동안 팔만사천(八萬四千) 법문(法門)을 설하셨는데 그것이 지금 목판으로 새겨져서 해인사 장경각에 봉안이 되어있는데,

그 목판에 새겨진 부처님의 법문은 그 한량없는 부처님의 법문 가운데에 천만분의 일, 백만분의 일도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정말 살아있는 법문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출세(出世)하시기 전 또는 부처님이 80세 동안 이 세상에 머무르시다가 열반하신 뒤, 전혀 그런 것에 상관없이 무량겁으로부터 영원한 미래가 다할 때까지 끊임없는 부처님의 살아있는 법문이 설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진찰찰(塵塵刹刹)이, 육도법계(六道法界), 이 가없는 우주 법계가 전판 다 부처님의 법문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고, 부처님의 법신(法身)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 모래알 하나, 풀 이파리 하나, 꽃 이파리 하나, 구름 한 조각,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낱낱이 다 끊임없는 부처님의 몸이요,

그 부처님 몸뚱이에는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그 모래알 속에 다 머물러 계시면서 끝없는 법문을 설하시고, 조그마한 풀 이파리 하나에서도 삼세제불이 그 속에서 다 설법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삼라만상 그런 현상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뚱이, 언필칭(言必稱) 우리는 중생(衆生)이라 그러는데, 남녀노소 우리 자신들도 물론 불교를 믿는 사람이나 또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나,

동서고금의 모든 사람들이 일체가 다 전부 다 부처님의 화현신(化現身)이요, 바로 우리 몸뚱이 속에 삼세제불이 다 머물러 계셔서 지금도 법문을 설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법문을 듣고 있는 우리는 무엇이냐? 법문을 설하면서 동시에 그 법문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법을 설하는 것과 법문을 듣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산승(山僧)도 역시 설(說)하고 듣고 있고, 여러분도 들으면서 동시에 또 설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산승이 설한 것이 아니요, 여러 사부대중이 설하고 듣는 것이 아니라, 바로 부처님이 설하시고, 부처님이 듣고 계시는 것입니다. 설(說)하고 듣는 것이 동시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어찌 묘하다고 아니 할 수가 있겠습니까.

동시에 설하고 듣고 있는 이것을 어찌 중생의 생각으로 이것을 구할 수 있으며, 어찌 범부(凡夫)의 알음알이로 이것을 헤아릴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이라 하는 것입니다.


칠석날을 맞이해서 우리는 이 돌아가신 선망부모와 형제자매와 원근친척의 영가(靈駕)를 명복을 빌고, 천도(薦度)해 드리고 또 살아계신 부모 형제자매와 자녀들의 수명장수를 빌고, 복덕구족을 빌고,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을 성취하기를 기원하기 위해서 이렇게 이 자리에 모다 운집을 하시고 아울러서 칠석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마는,

그래서 이 대총상법문은 설한 바 없이 설하고, 들은 바 없이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설할 것이 있다면 그 법문은 바른 법문이 아니요. 들은 바가 있다면, 들을 것이 있다면 그 법문은 옳게 들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참 부처는 입이 없어서 설법할 줄을 모르고, 참으로 듣는 것 참다운 들음은 귀가 없거늘 누가 들을 것인가?”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법(法)을 설하고 이렇게 법을 들을 때에, 그 법은 우주 법계에 가득차신 법신불(法身佛)과 우주 법계에 가득찬 일체 중생이 동시에 설하고 동시에 듣게 되므로 온 세계는 불보살(佛菩薩)로 가득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불보살이 따로따로 떨어져서 온 세계에 퍼졌다 해도 떨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가 되었다고 해서 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꽃은 꽃대로 붉게 피어서 아름답고, 풀은 풀대로 파랗게 너울거리고,

김 서방, 이 서방은 각각 아들딸 낳고 장사하고, 농사짓고 그렇게 사는 것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관공리는 관공리대로, 농부는 농부대로, 승려는 승려대로, 신도는 신도대로,

각각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의 분상(分上)에 맞추어서 최선을 다하고 자기의 책무를 완수할 때에 전부가 다 한마음이 되고, 한 불사(佛事)를 이룩하고, 한 불국토(佛國土)를 건설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춧돌과 기둥과 서까래와 대들보, 흙과 종이와 철근과 기왓장, 그런 것들이 모두 다 여러 가지 재료가 합해져서 하나의 훌륭한 집을 짓듯이,

우리 김가, 이가, 박가, 고가, 성도 다르고, 피도 다르고, 모양도 다 다르지만 각각 다른대로 저 나름대로 생애가 있고, 저 나름대로 취미가 있고, 저 나름대로 희망이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마는,


바른 불법, 정법(正法)을 믿고 ‘참나’를 찾는다고 하는 점에서 올바르게 듣고, 올바르게 닦는 것을 우리 모두의 본업(本業)으로 해서 각자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때,

절에 오면은 훌륭한 신도요 법보제자요, 가정에 돌아가면 훌륭한 아내요, 어머니요, 아들이요, 딸이요, 아버지요, 형이요, 동생이요, 자식이 될 것입니다.(16분13초~33분3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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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생애여몽약부운~’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뜬구름 ; ①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②덧없는 세상일 비유적으로 이르는 .

*육친(六親)부모(), 형제(), 처자() 통틀어 이르는 .

*음덕( 덕택 음/ 덕 덕) ; ①조상의 덕. ②부모나 다른 사람이 돌보아 주는 보호나 혜택.

*생애(生涯 날 생/ 끝 애) ; 살아 있는 한평생의 기간.

*처지(地) ; ①서로 사귀어 지내는 관계. ②지위나 신분.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부귀(富貴 재물이 넉넉할 부/귀할 귀) ; 재산이 넉넉하고 지위가 높음.

*영화(榮華 영화·영달 영/빛날 화) ; 몸이 귀하게 되어 이름이 세상에 드러나고 빛남.

*공명(功名 공로 공/이름 명) ; 공을 세워 이름이 세상에 떨쳐짐. 또는 그 이름.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부귀영화(富貴榮華) ; 많은 재산과 높은 지위로 누릴 수 있는 영광스럽고 호화로운 생활.

*타당(妥當 평온할 타/마땅할 당) ; 일의 이치로 보아 옳음.

*한칼 ; 한 번 휘둘러서 베는 칼질.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활계(活計) ; 살아갈 계책(計策). 또는 살릴 계책.

*계책(計策 헤아릴·꾀할 계/꾀 책) ;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꾀나 방법을 생각해 냄. 또는 그 꾀나 방법.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비긋이 ; 남이 느끼지 못하게 슬그머니.

*청백안(靑白眼) ; 지혜의 눈.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이고득락(離苦得樂) ; 괴로움을 벗어나서 즐거움을 누림.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왕생(往生) ; 죽어서 다른 세계에 가서 태어남. 이 세상에서 쌓은 공덕으로 죽어서 정토에 태어남. 염불한 공덕으로 죽어서 극락에 태어남.

*우순풍조(調)비가 때맞추어 알맞게 내리고 바람 고르게  농사짓기에 알맞게 기후 순조롭고 좋다는 으로 르는 이다.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운집(雲集 구름 운, 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과학 문명(明)과학 기술 발전 바탕으로 이루어진 문명.

*기복불교(祈福佛敎) ; 복을 구하거나 비는 불교의 한 모습. 복을 구하는 행위나 생각은 종교의 본질적인 것이라 할 수 있으나, '기복'이라는 말을 종교 앞에 붙인 경우에는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인다.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감응(感應) ; 감응도교(感應道交). 부처님과 수행자의 마음이 교류하는 것. 중생의 신심, 선근(善根)이 모든 부처님•보살에게 통해서 그 힘이 나타나는 것. 중생의 신심이 진실하게 느껴져, 부처님과 보살이 답하는 것.

중생 기감(機感,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뜨거우면 부처님의 응(應)하는 마음도 또한 깊다. 그쪽과 이쪽이 사이를 두지 않음을 도교(道交)라 한다.

*목욕재계(沐浴齋戒) ; 제사나 중요한 일 따위를 앞두고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을 피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일.

*폐백(幣帛 예물 폐, 비단 백) ; ①일반적인 모든 예물(禮物). ②임금에게 바치거나 제사 때 신에게 바치는 물건. 또는 그런 일. ③신부가 처음으로 시부모를 뵐 때 큰절을 하고 올리는 물건. 또는 그런 일.



------------------(2)


*(게송) ‘대지산하시아가~’[소요당집(逍遙堂集)] 게송 참고.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여래지(如來地) ; 불지(佛地). 부처의 지위(地位)·경지(境地). '부처의 상태를 이루었다'는 뜻의 성불(成佛)과도 같은 뜻.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진진찰찰(塵塵刹刹) ; ①티끌 수와 같이 무수한 국토를 말한다. ②미세한 티끌 가운데에도 국토가 있다는 것.

진진찰토(塵塵刹土), 찰찰진진(刹刹塵塵)이라고도 한다. 진진(塵塵)은 티끌. 찰(刹)은 산스크리트어 kṣetra의 음사. 토(土), 국(國), 처(處)라고 번역. 국토. 세계. 땅. 장소. 영역.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법신(法身) : [범]  dharma - kaya 「법 몸」이란 말인데, 실불(實佛) • 법성신(法性身)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이다.

진여의 본 바탕(眞如本體)을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더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꽉 차 있으되, 네 가지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離四句) 백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수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볼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언필칭(言必稱) ; 말을 할 때면 항상 일컫기를.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 본질.
*화현신(化現身)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대총상(大總相法門) ; 진여(眞如)를 가르켜 말함. 진여의 실체.
진여가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섭한 것을 대(大)라 하고, 일미 평등(一味平等)하여 차별의 모양을 여읜 것을 총상(總相), 수행하는 이의 모범이 되는 것을 법(法), 관하는 지혜가 드나드는 것을 문(門)이라 한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참 부처는 입이 없어서 설법할 줄을 모르고, 참으로 듣는 것 참다운 들음은 귀가 없거늘 누가 들을 것인가?” ; ‘眞佛無口, 不解說法. 眞聽無耳, 其誰聞乎.’
[참고] 황벽(黃檗) 스님의 『완릉록(宛陵錄)』에서.
此性縱汝迷時亦不失, 悟時亦不得. 天眞自性, 本無迷悟. 盡十方虛空界, 元來是我一心體. 縱汝動用造作, 豈離虛空. 虛空本來無大無小, 無漏無爲, 無迷無悟. 了了見, 無一物, 亦無人, 亦無佛, 絶纖毫的量, 是無依倚無粘綴一道淸流, 是自性無生法忍. 何有擬議. 眞佛無口, 不解說法. 眞聽無耳, 其誰聞乎. 珍重.

이 본성은 비록 네가 미혹해 있을 때라도 결코 잃지 않으며, 또 깨달았을 때라도 역시 얻는 것이 아니다. 천진스런 이 자성(自性)은 본래 미혹함도 깨달음도 없다.
온 시방의 허공계가 원래 나의 한마음의 본체이다. 비록 그대가 여러 가지 활동을 할지라도 어찌 허공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허공은 본래 크지도 않도 작지도 않으며, 번뇌도 없고 유위도 없으며, 미혹함도 없고 깨달음도 없다.

뚜렷하고 분명하게 보아 한 물건도 없고, 또한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다.
거기에는 털끝만큼도 계량(計量)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의지하여 기댈만한 것도 없고 달라붙을 것도 없는 한 줄기의 맑은 흐름인 것이며, 이것이 곧 자성(自性)의 무생법인(無生法忍)인 것이다. 어찌 무슨 의론의 여지가 있겠는가?
참 부처는 입이 없어서 설법할 줄을 모르고, 참으로 듣는 것(참다운 들음)은 귀가 없거늘 누가 들을 것인가?
자신을 소중히 하여라.
*분상(分上 분수 분, 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본업(本業) ; ①주가 되는 직업. ②주로 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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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306) 화두 / ‘이뭣고?’-효과와 공덕 / 법(法)의 양식(糧食), 심농(心農) / 노정기(路程記) / 법의 기쁨 / 참선은 우리의 본업(本業), 그 밖에 모든 것은 부업.

‘이뭣고?’는 이 한마디 속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번하는 공덕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육백 만번한 공덕보다도 더 낫다.
당신네 농사는 당신 밖에는 배가 부르지 않지마는, 우리 마음의 농사는 우리 스스로도 영원히 배부르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목마르고 배고픔을 면케하는 해탈도를 증득하는 마음의 농사를 짓는 것이요.
‘이뭣고?’는 별로 재미가 없는 것 같지만 자꾸 해 보면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법(法)의 낙(樂)'이 있는 것입니다. '법의 기쁨'이 있어. 해 본 사람만이 느낄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실천하는 학자는 이 참선을 갖다가 본업으로 알고, 그 밖에 모든 것을 부업(副業)으로 알고서 본업과 부업을 열심히 또 충실히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06) - 86년 8월 화두·불명·수계 법어(86.08.03)에서.


(1) 약 14분.  (2) 약 15분.


(1)------------------

지금부터서 그 오계(五戒)를 지키면서 부처님 제자로써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하기 위해서 닦아가는 화두(話頭) 법문을 설하겠습니다.
불명을 이제 타신 분이나, 화두를 타신 분이나, 오계를 받고자 하신 분도 다같이 들으시면 좋습니다.

이 자(字)는 ‘보일 시(示)’자 입니다. 보일 시(示). ‘보인다’ 그말이여.
이 밑에 여러분의 불명(佛名)이 쓰여져 있습니다.
김 아무개에게 보인다. 아래와 같은 공부하는 법을 보여드린다.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하니,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상재동용중(常在動用中)하되, 항상 움직여 쓰는 가운데 있으되, 몸을 움직거리고[動] 정신을 쓰고[用] 하는 그 가운데 이 '한 물건'이 항상 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몸을 움직거리고 정신을 쓰고 하는 그 가운데에 그놈을 찾으면 얻을 수가 없어(動用中收不得).
분명히 소소영령(昭昭靈靈)하게 있는데 그놈을 거두어 찾을라고 하면 얻을 수가 없다.
눈으로 볼라고 해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라고 해도 잡히지도 않고, 생각으로 아무리 그놈을 알라고 해도 알 수가 없더라.

그러니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한문으로는 시삼마(是甚麼). 우리말로는 ‘이것이 무엇인고?’ 줄여서 ‘이뭣고?’

‘아무개야’하고 부르면 ‘예!’하고 대답을 하는 그 대답할 줄 아는 놈. 욕하면 퍼르르 성을 내는데 그 성낼 줄 아는 놈. 칭찬하면 기뻐하는데 그 기뻐할 줄 아는 놈. 다치면은 아픈데 그 아플 줄 아는 놈. 배가 고프면 배고픈 밥먹을 줄 아는 놈.

한 생각 악한 생각이 일어나면 독사와 같은 마음이 나는데-나찰귀(羅刹鬼)와 같고 독사와 같이 되는데, 또 한 생각 탁! 돌이켜서 착하게 먹으며 또 천사가 되기도 한다 그말이여.
찰나(刹那) 간에 독사도 되기도 하고, 찰나 간에 천사도 되기도 하는, 그러한 그 신기하고도 묘하고 소소영령한 놈이 우리 모두 가슴속에 있어.

그놈을 성이 날 때도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 슬픈 일을 당해도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

중생들은 뭐 하나가 기분이 나쁘면 이 생각 저 생각, 점점 더 생각에 생각을 더 펴 가지고 점점 속이 상해 나가고, 또 누가 미우면 조금 잘못한 점이 있으면 과거에 몇해 전에 있었던 일까지 이 생각 저 생각 기억을 더듬어 가지고 점점 그 사람을 미워하고 그러는 법이고,
도(道)를 닦는 사람은, 지혜있는 사람은 언짢은 일을 당하더라도 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으로 다른 생각으로 번지기 전에 냉큼 ‘이뭣고?’ 이래 버리거든.

누가 미운 짓을 해도 냉큼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해 버리면, 구태여 계속해서 그 사람에게 욕을 하고 때리고 속상하는 소리를 해 가지고 그 사람과 다툴 필요가 없는 것이여.

그래서 도를 안 닦는 사람은 사소한 일로 해서 점점 죄를 짓게 되고 웬수를 맨들고 시끄럽게 맨들고 남과 웬수를 맺게 되는 거고, 집안을 결국은 수라장(修羅場)으로 맨드는 거고,

이 도를 닦는 사람은 여간해서 그런 환경에 휩쓸리지를 아니하고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를 하기 때문에 싸울 필요가 없어.
남을 원망할 필요도 없고 언제나 마음속은 항상 부처님을 모시고 사는 또 귀빈을 맞이해서 사는 그런 마음, 항상 천상(天上)이나 극락(極樂)에서 사는 그런 마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노를 젓고 갈 때, 노젓는 사람이 노젓기에 따라서 동쪽으로도 가고 서쪽으로도 가는 거와 마찬가지여.

도 닦는 사람은 자기의 한 생각을 잘 조정 함으로써 자꾸 자꾸 승화되어 가고 도가 깊어지는 것이고,
도를 안 닦은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 눈을 보면 봄으로 해서 죄를 짓고, 뭣을 들으면 들음으로 해서 점점 번뇌(煩惱)의 불집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법은 최상승법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
이 한마디 ‘이뭣고?’는 이 한마디 속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팔만대장경-해인사에 그 팔만대장경 판이 있는데 그놈을 목판에다 찍어보면 수천 권이 되는데 그놈을 읽을 수 있습니까. 읽어도 다 해석도 못하죠.
그러나 ‘이뭣고~?’ 한마디를 하면 팔만대장경을 한번 다 읽은 거와 똑같애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르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부르는 공덕이 다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지만, ‘이뭣고?’ 한번하는 공덕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육백 만번한 공덕보다도 더 낫다.
아미타불을 육백 만번 할라면 백일 동안을 계속 불러야 하는데 ‘이뭣고?’ 한번 하는데 1초도 안 걸립니다.   그만큼 ‘이뭣고?’는 공덕이 장한 것입니다. 왜 그러냐?

‘이뭣고?’는 ‘이뭣고?’할 때에 당장 그 자리에서 부처님의 진리를 바로 실천을 하는 것이 되는 것이여.

노정기(路程記), ‘여기서 어느 목적지에 갈라면은 어디행 기차를 타고 가서 내려 가지고, 그 다음에 버스를 타고 얼마를 북쪽으로 가다가 뭐이 나오면 한다.’
그렇게 적혀있는 노정기만 자꾸 읽고 있는 사람과 직접 그런 것을 다 알아 가지고 당장 한걸음 출발하는 사람과의 관계와 마찬가지여. 밤낮 농사짓는 법을 책으로 연구하고 해 봤자 배가 부른 것이 아닙니다.

당장 논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어서 밥을 지어 가지고 밥을 바로 입에다 떠 넣는 것이여, ‘이뭣고?’는.
당장 밥을 떠서 입에다 넣어서 깨물어 먹으면은 배가 부르지만, 밤낮 책만 펴 가지고 농사짓는 법만 연구해 가지고 언제 그것이 배가 부르겠습니까.

우리 자신이 농사짓는 법을 잘 연구를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농사짓는 법도 있지만,
이미 농사 잘 짓는 법 아는 사람과 같이 그 사람과 같이 농사를 짓고, 이미 다른 사람이 농사를 지어논 놈을 갖다가 밥을 해서 딱 놔주면 입에다 떠 넣어준 것입니다.

‘이뭣고?’하라고 가르쳐 준 것은 밥을 여러분 입에다 떠 넣어준 거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씹어서 삼키기만 하면 되는데, 입에다 이렇게 떠 넣어 주어도 뱉어 버리고 씹지도 않고 삼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힘으로도 어찌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번 해 보세요. ‘이뭣고?’.  ‘이뭣고?’ 한번 할 때마다 여러분은 씹어서 삼키는 거와 같애.
그래서 ‘이뭣고?’ 이것이 ‘법(法)의 양식(糧食)’입니다. 법의 양이여, 도(道)의 양식이거든.

그래서 이 법의 양식을 부지런히 먹고 잘 씹어서 삼키면 여러분은 도를 성취를 하는 것입니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음 심(心)’자, ‘농사 농(農)’자, 심농(心農)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하루는 수행하실 때에 들녘을 지나는데,
어느 불법(佛法)을 믿지 않는 바라문(婆羅門)이 부처님이 탁발(托鉢)을 하시니까, ‘밥을 못주겠다.’ ‘왜 못주느냐.’

‘우리는 피땀을 흘려서 농사를 지어가지고 이렇게 먹지만, 당신네들은 농사도 안 짓고 장사도 안 하고, 밤낮 서늘한 그늘속에 앉아서 있다가 때만 되면 거저 밥을 얻어 먹으러 오니 우리는 공밥 먹는 사람에게는 밥을 줄 수가 없다. 이 피땀 흘려서 농사지은 것을 어찌 당신들한테 줄 수가 있겠느냐.’

부처님 말씀이 ‘당신만 농사를 짓는게 아니라 나도 농사를 지었소. 당신보다도 더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소.’ (바라문) ‘어찌 도를 닦는 사문(沙門)이 거짓말을 허요.’

‘아하, 거짓말이 아니요. 당신네들은 몸뚱이를 가지고 몸뚱이를 먹여 살리는 양식을 가꾸는 농사를 짓지마는, 우리는 영혼을 해탈케하는 도를 이루게 하는 마음의 농사를 짓는다.
당신이 짓는 농사 양식(糧食)으로는 먹어봤자 하루 밖에는 참을 수가 없지만, 우리 마음의 농사는 금생 뿐만이 아니라 영원을 두고 배부르는 그런 농사를 짓는 것이고,
당신네 농사는 당신 밖에는 배가 부르지 않지마는, 우리 마음의 농사는 우리 스스로도 영원히 배부르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목마르고 배고픔을 면케하는 해탈도를 증득하는 마음의 농사를 짓는 것이요.’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바라문은 부처님의 말씀에 감동이 되어서 보리심(菩提心)을 발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농사는 ‘마음의 농사’야.

농사는 짓는 때가 있고 그 때를 타서 열심히 해야지, 씨만 심어놓고 가꾸지를 안하면 그 농사는 폐농(廢農)을 하게 됩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때 맞춰서 땅을 갈고, 모자리를 해서 그놈을 때 맞춰서 심고, 그래 가지고 농약을 주고 비료를 주고 그래 가지고 그 피땀을 흘려서 농사를 짓게 되는데 그걸 등한히 해 보십시오.
벌레가 다 먹어버리고 물을 맞춰서 주지 않으면 말라죽거나 물에 너무 오랫동안 잠기면은 병이 생기고, 그렇게 해서 수확을 거두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가꾸는데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농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농사짓는 모자리의 씨를 심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부지런히 가꾸어서 때 맞춰서 잘 가꾸어 나가야지, 일시라도 등한히 해 버리면 벌레가 와서 침식을 하게 되고 말라죽거나 떠 죽거나 그렇게 해서 못쓰게 되는 것입니다.(32분48초~46분11초)


(2)-------------------

우리의 도(道)도 잠시도 등한히 하면 그렇게 안이비설신의-육근(六根)을 통해서 팔만사천마군(八萬四千魔軍)이가 도를 이루지 못하도록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군이가 왜 우리 도 닦는 것을 방해를 치냐’하면 도인(道人)이 생겨나면 자기네 설 땅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군이의 궁전이 흔들리게 되고 마군이가 소탕이 되어서 마군이 살곳이 없기 때문에, 마군이가 자기 설 땅을 지키고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도 닦는 사람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방해를 놓는 것입니다.

그 마군이를 항상 우리는 잘 대항해서 침범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우리 심왕(心王) 국토를 잘 지켜나가야만 우리는 도를 성취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마군이는 눈을 통해서 들어오고, 귀를 통해서 들어오고, 코를 통해서 들어오고, 입을 통해서 들어오고, 몸뚱이를 통해서 들어오고,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들어올라고 하는 그 찰나에-이미 들어와 버리면 쫓아내기가 어려워, 들어올라고 할 때 딱! 그놈을 문을 닫아 걸어야 되거든.

무슨 생각이든지 일어날 때, 무엇이 눈을 통해서 들어올 때, 어떠한 사물이 귀를 통해서 들릴 때, 코를 통해서 들어오고, 입을 통해서 들어오고, 몸뚱이를 통해서 들어올 때에,
바로 그 즉시 ‘이뭣고?’ 이렇게 한다면, 마군이가 우리의 국토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물러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입니다.

별로 재미가 없는 것 같지만 자꾸 해 보면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법(法)의 낙(樂)이 있는 것입니다. 법의 기쁨이 있어. 해 본 사람만이 느낄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달·두 달·석달·1년·이태 이렇게 열심히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날의 자기가 아닌 딴 사람으로 성장 또 향상되어 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해탈도를 향해서 우리는 정말 부지런히 닦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세속의 다 직업이 있지만, 이 ‘이뭣고?’ 내가 나를 닦는-나의 영혼을 갖다가 해탈케 하는 이 직업이 정말 우리의 본업(本業)인 것입니다.
다른 것은 그저 몸뚱이를 살찌게 하고 또 의식주를 위해서 다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까짓 것들이 우리의 영원한 영혼을 위하는 직업에다 대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실천하는 학자는 이 참선을 갖다가 본업으로 알고, 그 밖에 모든 것을 부업(副業)으로 알고서 본업과 부업을 열심히 또 충실히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가정이나 개인이나 사회·국가에 있어서 정말 충실하고자 하면 이 ‘이뭣고?’사업을 잘해야 그래야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제대로 되어가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정말 훌륭하게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이루어져 봤자 별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정말 우리는 몸과 목숨을 다 바칠 각오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몸 바칠 것은 오직 이것뿐인 것입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 한번 앉아 보세요.
가부좌를 할 때는 몸을 단정히 하되 너무 힘을 주어 가지고 뒤로 자지바지하거나 어깨에다 힘을 주거나 목에 힘을 주어서는 아니됩니다. 단정하면서도 힘은 다 빼야 하는 것입니다.

어금니는 지긋이 물고 또 혀는 위로 꼬부려서 저 입천장에다 꼬부려 붙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은 평상으로 뜨되 자기 자리에서 약 3미터 지점에다 눈을 떨구는 것입니다.
'눈을 떨군다'하는 것은 의식적으로 한 점을 응시(凝視)하거나 주시(注視)하는 것이 아니고, 본다면 그 점이 보이되 의식적으로는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평상으로 뜨되 뜨고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은 좌우나 전후로 기울어지지 않도록 두 어깨위에 두 귀가 수직으로 놓이도록 하고 이렇게 해서 몸을 단정히 한 다음에,

숨을 들어마실 때에는 단전-배꼽밑에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하고, 숨을 내쉴 때는 그 배가 차츰차츰 홀쪽해 지도록,
들어마신 호흡이 그까지 가도록 몰아부치는 것이 아니고, 그냥 숨은 코로 들어가지만 우리의 생각은 배가 볼록하게만 맨들면 되어요. 그냥 배를 요렇게 내밀면 되어.
들어마실땐 내밀고 또 숨을 내쉴 때는 배를 홀쪽하게 잡아댕기면 되는 것입니다.

들어마셔 보세요. 배를 볼록하니 내밀면서 숨을 쑤욱 들어마셔. 들어마셨으면 하나·둘·셋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또 조용하니 숨을 내쉬는데 내쉼에 따라서 배를 등쪽으로 홀쪽하게 맨드는 것입니다.

또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하니 들어마셔. 그래서 들어마시는 시간은 약 3초 동안에 걸쳐서 들어마시고, 들어마셨다가 딱 정지하는데 정지하는 시간은 약 3초, 또 정지했다가 내쉬는 시간이 약 3,4초 조금 긴 듯한 것이 좋은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데, 들어마실 때 너무 배가 가뜩 이렇게 들어마시면 안 되어요. 8부 정도만 들어마시고.
또 딱 정지하는 것도 약 3초 정도만 해야지 너무 오랫동안 참고 있으면 그것도 안되고,
또 내쉴 때에도 약 8부 정도만 내쉬어야지, 뱃속에 하나도 없을 때까지 완전히 뱃가죽이 등어리가 닿을 때까지 다 내쉴려고 하면 그것도 힘이 들고 무리가 가니까 그래도 안 되고,

그래서 들어마신 호흡도 8부 정도 들어마시고, 내쉬는 호흡도 약 8부 정도 들어마셔서 호흡을 하는데 조금도 무리가 안 가도록, 힘이 들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어마셨다가 3초 정지했다가 내쉴 때 ‘이뭣고~?’ 이렇게 하는 거여. ‘이뭣고~?’
‘이뭣고?’할 때 배가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하니 숨을 또 들어마셔 가지고 약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또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에 주욱 하셔 나가면 나중에는 한달, 두달, 석달 이렇게 하다보면 ‘이뭣고?’를 숨 내쉴 때마다 안해도 괜찮게 되어요.
숨은 서너번 할 때에 ‘이뭣고?’ 한번 해 놓고서, 숨은 서너번 들어마셨다 내쉬었다 해도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참으로 익숙해지면 아침에 ‘이뭣고?’ 한번 하고 점심 때까지 ‘이뭣고?’는 들지 안해도 항상 ‘이뭣고?’하는 알 수 없는 의심만 있으면 그만 그것이 화두를 이미 들어...(녹음 불량)
‘이뭣고?’ 딱 챙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챙겨 가지고 또 금방 또 망상에 들면 그때 또 ‘이뭣고?’

망상이 들어오지 않고 ‘이뭣고?’한 알 수 없는 의심이 고대로 딱 있으면, 뭐 구태여 ‘이뭣고?’ ‘이뭣고?’ 자꾸 되풀이해서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미타불·관세음보살은 하루에 십만 독(讀), 이십만 독해서 횟수를 채우기 위해서 염주(念珠)를 부지런히 돌리면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는데 ‘이뭣고?’는 그게 아니어요.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한번 부른 것이 관세음보살 육백만 번 공덕에 해당된다고 그러니까, 이놈을 하루에 오만 독을 하면은 육백만에다 오만을 곱하면 얼마냐? 진짜 이렇게만 하면은 며칠 안가서 툭 터질거다.

절대로 ‘이뭣고?’는 횟수가 문제가 아니고 그 간절(懇切)한 간절한 그 의심, 의심(疑心)이 나중에는 의단(疑團)이 되어.

한번 화두를 들어서 그 '알 수 없는 의심 뭉탱이'가 고대로 있어 가지고 무엇을 봐도 그 의단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무엇을 들어도 흔들림이 없이,
알 수 없는 의단이 눈을 감으나 눈을 뜨나, 앉으나 서나, 일을 하나, 차를 타거나, 누가 옆에서 나한테 욕을 하거나 억울한 소리를 해도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화두만이 떠억 드러나게 된다면 그게 공부가 자리가 잡혀가는 거여. 익숙해지는 거여.

그렇게 해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새벽까지 잠을 자면 꿈에서도 그 의단이 없어지지 않고, 새벽에 눈을 떠도 엊저녁에 들었던 그 화두가 고대로 있게 된다면 그것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 하는 건데,
공부가 익숙하게 되어서 그렇게 되어야 머지 않아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알뜰히 열심히 해야 그런 타성일편 지경이 오는 것인데, 열심히 하지 아니하고 허다 말다가 그저 그래 놓고서,
‘아이고, 참선해봤자 되지도 않고 우리는 근기(根機)가 얕아서 염불이나 해야지, 참선은 좋은 줄은 알지마는 죄 많은 중생이라 못한다’고, 이런 자포자기를 하신 분이 있는데 절대로 그렇지를 않습니다.

열심히 해서 발심(發心)하고 분심(憤心)을 가지고 의심(疑心)을 내서, 대신심과 대분심,
‘어째서 과거에 불보살과 선지식은 이 문제를 해결을 해서 해탈도를 증득했는데 나는 왜 같은 사람으로서 무량겁을 두고 오늘날까지 생사윤회(生死輪廻)를 했는가.’
속에서 분한 생각이 나고 그래 가지고 도를 아니 닦을라야 아니 닦을 수 없는 그런 분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대의단, 대의심,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고?’하는 그 간절한 의심.
이 3가지 요소가 동시에 일어날 때에 우리는 화두를 들랴고 안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는 것입니다. 계를 지킬랴고 안해도 저절로 계가 지켜지는 것이고, 참선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도는 그 가운데에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오계를 받고 또 화두를 타고 또 불명(佛名)을 받게 되겠습니다. 앞으로 스님네가 부르는대로 차례차례 나오셔서 이 불명을 받아 타셔서, 자기의 불명이 무엇인가를 잘 아셔야 합니다.
속에 이와 똑같이 생긴 계문(戒文)이 들어있고 거기에 여러분의 불명이 씌여 있습니다. 한문으로 씌여 있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봉투에는 한글로 씌여 있으니까 자기의 불명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아시고,
가정에서도 내외 간에 서로 불명을 부르시면 더욱 좋고, 형제자매 간에도 불명을 부르고 ‘아무개 엄마, 아무개 엄마’하지 말고 ‘아무개 보살’ 이렇게 해서 불명을 서로 부르면 불명을 부른 사람도 공덕이 되고 부름을 받는 사람도 공덕이 되는 것입니다.

피차 업장(業障)이 소멸이 되고, 불명 한번 부를 때마다 ‘이뭣고?’를 하는 데에 연결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자리(自利)와 이타(利他)가 동시에 되는 것이니만큼,
불명을 잘 스스로 잊지말고 남의 불명도 잘 알아서 서로 서로 불러주게 된다면 우리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또 부처님의 아들로서 도반으로서 좋은 인연이 깊어지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32분48초~60분3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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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계(五戒) ; (산스크리트어 pañca-śīla) 재가(在家)의 신도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
①불살생(不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②불투도(不偸盜).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라.
③불사음(不邪婬).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불음주(不飮酒). 취기(醉氣)가 있는 것에 취(醉)하지 말라.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불명(佛名) ; 불법에 귀의한 남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수라장(修羅場) ; 아수라장(阿修羅場). ①아수라왕(阿修羅王)이 제석천(帝釋天)과 싸운 마당. ②싸움이나 기타의 이유로 혼란에 빠져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된 곳. 또는 그러한 상태.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바라문(婆羅門) ; ‘브라만(Brahman)(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사제 계급)’의 음역어.
*탁발(托鉢 밀 탁, 바리때 발) ; 스님이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사문(沙門) ;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의 음역. 식(息)·근식(勤息)·정지(淨志) 등으로 번역. 여러 선법(善法)을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을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한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에 들어 도를 닦는 사람.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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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근(六根) ; 육경(六境-色•聲•香•味•觸•法)을 인식하고 판단하기 위한 능력이 있는 기관. 눈, 귀, 코, 혀, 몸, 뜻(眼,耳,鼻,舌,身,意)을 이른다.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심왕(心王) : 의식 작용의 본체。객관(客觀) 대상에 대하여 그 일반상(一般相)을 인식하는 정신 작용。여기에 육식(六識), 팔식(八識), 구식(九識)의 구별이 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본업(本業) ; ①주가 되는 직업. ②주로 하는 일.
*부업(副業) ; 본업 이외에 여가를 이용하여 갖는 직업.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계문(戒文) ; 불자(佛子)가 지켜야 할 행동 규범을 조목별로 적은 글.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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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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