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안거 해제, 백종2014.08.17 17:39

§(398)(게송)대호삼만육천경~ / 삼라만상이 다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 / (게송)삼라만상동귀환~ / 백장청규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 밝은 데에서 밝은 데로....

진짜 살아있는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은 우주법계에 있는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그냥 고대로 살아있는 부처님의 경전인 것입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원음을 알아들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화두 ‘이뭣고~?’, 화두를 의심을 해서 그 화두를 타파하므로 해서 그 원음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인생이 70, 80 번갯불 지나가듯이 지나가고 우리도 금방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게 되는데, 이 몸뚱이 있을 때 열심히 정진을 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화두(話頭)를 들고 새로 태어난 셈 치고, 아주 이 몸뚱이 아주 안 태어난 셈 치고 한바탕 공부를 지을지니라.
**송담스님(No.398) - 1989년 하안거 해제·백일기도 회향·백종법회.


(1) 약 19분.  (2) 약 19분.


(1)------------------

대호삼만육천경(大湖三萬六千頃)에  월재파심설향수(月在波心說向誰)오
나무~아미타불~
원음낙처운산진(圓音落處雲散盡)허고  부증대보변환가(不曾擡步便還家)니라
나무~아미타불~

대호삼만육천경(大湖三萬六千頃)에, 큰 호수 삼만 육천 그 물결 이랑.
월재파심설향수(月在波心說向誰)라. 달이 그 파도 속에 있는데, 그 큰 호수에 삼만 육천 파도 이랑 속에 거기에 휘황창 밝은 달빛이 거기에 비추는데, 그 도리를 누구를 향해서 설(說)할고.

원음낙처운산진(圓音落處雲散盡)한데, 원음(圓音) 떨어진 곳에 구름이 흩어져 다한데,
부증대보변환가(不曾擡步便還家)다. 일찍이 한 발도 옮기지 아니하고 문득 고향에 돌아가더라.

이 게송은 ‘심화발명(心花發明)이 어느 곳에 있느냐?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수 있는 곳이 어느 곳인가? 어느 곳에서 확철대오를 하는가?’하는 것에 대한 게송입니다.

대호삼만육천경(大湖三萬六千頃)은 우리가 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코를 통해서 냄새 맡고, 혀를 통해서 맛보고, 몸을 통해서 차갑고·덥고·부드럽고·까끄러운 것을 느끼고, 생각을 통해서 선악(善惡)과 일체 모든 것을 분별하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이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만나서 거기에서 육식(六識)이 일어나서 이렇게 해서 십팔천이 이렇게 끊임없이 돌아가는데 바로 그것이 대호삼만육천경(大湖三萬六千頃)입니다.

큰 바다에 얼마나 많은 파도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그 파도 낱낱이, 하늘에 떠있는 그 달빛이 어느 물결 하나에도 비치지 아니한 곳이 없어.
육근(六根)·육진(六塵)·육식(六識) 이 십팔경계(十八境界)가 돌아가는 바로 거기에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의 그 법신(法身)이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물결 하나마다 달빛이 비추듯이 우리의 일어나는 십팔경계(十八境界),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듣거나, 코로 무슨 냄새를 맡거나, 혀로 무슨 맛을 보거나, 몸으로 차갑고 더운 것을 느끼거나, 생각으로 희로애락, 선악 일체사(一切事)가 우리 의식에 떠오르거나,
바로 그때 그 곳이 바로 우리가 확철대오 할 수 있는 바로 그때다 이것입니다.

원음낙처운산진(圓音落處雲散盡). 원음(圓音)은 부처님의 음성을, 부처님의 말씀을 원음이라.
둥글 원(圓)자, 소리 음(音)자, 원음이라 그러는데, 원음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은 한 말, 한 음성으로 설하시되,
보살은 보살 나름대로 그 법문을 듣고, 나한은 나한 나름대로 그 법문을 듣고, 중생은 중생 나름대로 그 법문을 듣고, 축생은 축생 나름대로 그 법문을 듣고, 지옥·아귀 육도법계 중생 다 그 말을 다 알아 들어.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은 어느 근기(根機)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근기도 그 나름대로 받아들여서 법(法)의 이익(利益)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 부처님의 음성을 원음이라 그런 것이여.

원음 떨어진 곳에, ‘그러면은 삼천년 전에 부처님이 설하시다가 열반하셨으니까 부처님의 원음은 우리가 못들을 것이다’ 그게 아니야.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경계,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 모든 냄새, 모든 맛, 모든 느낌, 모든 생각 있는 곳이 바로 부처님의 원음(圓音)이 울리는 곳이요, 원음이 나타나는 곳이여.

그러기 때문에 그 원음을 접하게 되므로 해서, 그 원음의 뜻을 우리의 마음과 계합(契合)하게 함으로 해서, 한걸음도 옮기지 않고 우리의 깨달음의 고향에 도달할 수가 있다 이것입니다.

경(經)이라 하면은 종이로 만들어진 경만이 경으로 생각하고, 한문으로 된 경만이 경으로 생각하고, 법화경이나 화엄경·금강경·원각경 이러한 우리에 내려오는 그 경만이 경(經)인줄 생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물론 그러한 경도,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 그것으로 또 찍어낸 모든 경전, 참 소중하기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나,
정말 영원한 경(經), 정말 살아서 움직이는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은 꼭 종이로만 되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꼭 먹으로만 찍혀 나온 것이 아닙니다.

진짜 살아있는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은 우주법계에 있는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그냥 고대로 살아있는 부처님의 경전인 것입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원음을 알아들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화두 ‘이뭣고~?’, 화두를 의심을 해서 그 화두를 타파하므로 해서 그 원음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삼라만상동귀환(森羅萬像同歸幻)한데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허공불시장신처(虛空不是藏身處)라  간취풍전대우송(看取風前帶雨松)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라만상(森羅萬像)은 동귀환(同歸幻)이요,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다.
삼라만상, 저 해나 달이나 별이나 지구나 산천초목이나 토목 와락이나 풀이나 돌, 기와 깨진 거, 일체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환(幻)으로 돌아가. 영원성이 있는 것이 아니여.

아까 그러한 것들이 부처님의 원음의 경전이라고 했습니다마는 깨닫고 보면 그런 것이고, 깨닫지 못한 탐진치 삼독으로 가득찬 중생에게는 그러한 원음이 완전히 환(幻)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 좋은 것인 줄 알고, 영원한 것인 줄 알고, 붙잡고 아무리 안 놓을려고 해봤자 뜬구름 잡는 거와 마찬가지여. 영원성이 없는 것이고, 허망한 것이다.

조과장공멱몰종(鳥過長空覓沒蹤)이다. 허공에 저 창공에 새가 날아가는데 새가 날아간 자죽과 같은 것이다 그말이여.
눈이 왔을 때 짐승이 지나가거나 사람이 지나가면 발자죽이 남아 있고, 모래 위에 기러기가 놀다가 가면 그 모래 위에 기러기 발자죽이 남아 있어요.
그 보다도 더한 것은 허공에 새가 날아간 자죽과 같다 그말이여.

우리 인생이 태어나서 탐진치 삼독심(三毒心)으로 오욕락(五欲樂)을 탐착(貪着)을 하고, 명예·권리·지위 모다 그런 것을 탐착을 해 가지고, 아무리 그것을 만히 모으고 붙잡고 늘어져 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가지고 가지도 못하고, 자기가 다 쓰지도 못하고, 그것 모이고, 그것 지키느라고, 참 본의 아니게 많은 죄만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허공불시장신처(虛空不是藏身處)다. 그렇다면 그러한 것이 다 허망한 것이고 영원성이 없는 것이라면, 이 몸뚱이를 어떻게 간수하며 어디다 이 몸뚱이를 감출 것인가?
그러면 허공에다 감추어야 할 것인가? 허공도 이 몸뚱이 감출 곳이 못 되어.

간취풍전대우송(看取風前帶雨松)이니라. 바람 앞에 비를 띤 소나무를 똑바로 볼지니라. 비 뿌리면서 바람이 부는데 그 소나무에 스쳐가는 그 소리, 송풍(松風) 솔바람 소리, 그 솔바람을 똑바로 간취(看取)하라.

여기 게송에는 ‘바람 앞에 비를 띤 소나무를 똑바로 보라’했지만, 어찌 그 소나무 하나에 국한 되리오.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거나, 반짝거리는 별을 보거나, 버드나무를 보거나, 복숭아 꽃나무를 보거나, 돌맹이를 보거나, 우주법계에 있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찌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에 한하겠습니까?
귀로 들을 수 있는 솔바람 소리, 낙엽이 다 지고 앙상한 고목나무에 스쳐가는 겨울 바람소리, 흘러가는 물소리, 개 짖는 소리, 새 노래하는 소리, 버스 소리, 비행기 소리, 공장에 기계 돌아가는 소리,
우리 귀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 그 소리도 똑바로 바로 들으면 원음(圓音)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한 소리가 귀에 거슬리고, 그러한 소리가 시끄러워서 공부를 못한다. 이것이 아닙니다.
눈에 이것저것 보아 싸니까, 거기에 우리의 정신이 헷갈리니까 그래 공부가 안된다. 그것이 아닙니다.

그 소리를 우리가 따라가고,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가서 그것을 집착하니까 그것이 망상이요,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이지,
따라가지 않고 바로 그놈을 보고 그놈을 듣는 찰나(刹那)에 그놈에 즉(卽)해서 화두를 떠억 들어보시라 그말이여. 무엇이 시끄러우며 무엇이 복잡할 것이 있는가.

수원 용주사도 군(軍) 비행장이 있어서 노상 제트기가 뜨고 내리고 상당히 시끄러운 곳입니다마는 금년 여름에 많은 대중이 그까짓 시끄러운 것을 문제시하지 아니하고, 아무 장애없이 정진을 잘하셨습니다.

용화사 법보선원도 앞뒤로 불사(佛事) 공사가 일어나 가지고 온통 골이 울릴 정도로 시끄럽고 복잡했습니다마는,
‘그렇게 시끄럽고 복잡해도 상관이 없으니 방부(房付)를 받아 주십시오’해 가지고 7~8분이 그 복잡하고 시끄럽고 먼지 구덩이에서 방부를 드리고 까딱없이 정진을 했습니다.

때로는 벗어부치고 땀을 흘리면서 울력을 하면서 정진을 했습니다. 아마 앞으로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때까지 그 복잡한 속에서 정진한 이 기사년 여름 안거가 인상에 깊이 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보살님네도, 해마다 130명씩 방부를 드리던 보살님네들이 그렇게 시끄럽고 복잡해도 기어이 여기서 정진을 하시겠다고 모다 원을 했지마는,
방을 다 뒤집어 파고 모두 뜯어 제끼고 하는 통에 방이 없어서 방부를 받지 못하고, 저 천안 광덕사 태화선원에 가서 모두 정진들 잘 하시고 또 수원 용주사 그밖에 다른 인연있는 절에 가서 모두 정진들을 하셨습니다.(27분54초~46분50초)


(2)------------------

정진이 꼭 조용한 데만 찾아서 하고, 일 없는 데만 찾아서 하고, 편안한 데만 찾아서 하고 이렇게 해가지고서는 우리는 도업(道業) 성취가 대단히 늦게 되고,
설사 공부에 좀 힘을 얻는다 해도 그러한 소극적 방법, 일 없고 조용한 데만 찾아다니면서 살살하는 공부 가지고서는 대도를 성취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 백장청규(百丈淸規)에도, 그런 회상은 다 1500명, 1700명이 지내는 대회상(大會上)인데,
제일조(第一條)에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다. 하루 울력 작업을 하지 아니하면 하루 먹지 않는다’하는 이러한 법규를 만들어 놓곤,
날마다 한 시간 두 시간씩 이렇게 울력을 해서 채소도 가꾸고 모두 도량을 가꾸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채소를 가꾸면서 잡초를 뽑으면서 도량을 가꾸면서, 어째서 그 속에서 정진이 안된다 이것입니까?
오히려 한가한 속에서 조용한 속에서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 보다는,
울력하면서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하게 정진을 다루어 나갈 때에, 화두를 잡두리 해 나갈 때, 그 속에 어떻게 혼침(昏沈)이 들어오며 그 속에 어떻게 화두 이외의 딴 망상이 거기에 어리댈 수가 있겠습니까?

어느 회상에 가서 정진을 하던지 반드시 울력 시간을 정해놓고, 도량(道場) 청소도 하고, 잡초도 뽑고, 빈터가 있으면 채소도 가꾸면서,
운동도 되고, 채소도 자급자족도 하고, 그 성성하게 정진을 잡두리 한다면 훨씬 더 힘있고, 우리의 정진에 훨씬 더 깨달음을 앞댕길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백장(百丈) 스님과 같은 그런 대도사가 제일조(第一條)에다가 그런 규율을 넣었습니다.

백장 큰스님의 일화, 여러분도 잘 아시겠습니다마는 연세가 많아 가지고 울력하러 나오시기에 대단히 힘들게 보이니까 그 백장 큰스님 방장(方丈)스님께서 쓰시던 연장을 갖다가 감추어 버렸습니다.
그 연장이 없으면 울력에 안 나오시리라 해 가지고 감추어 버렸는데, 백장 스님이 울력 목탁 소리를 듣고 울력에 나오시려고 연장을 찾으니까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없으니까 울력에 참여를 못하셨는데.

그 다음에 공양 시간이 되었는데 공양을 안 나오셔. ‘공양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양 안 나오십니까. 공양하러 가십시다.’
그러니까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이니라. 내가 울력을 오늘 못했으니 어떻게 내가 공양을 받겠는냐? 내가 오늘 공양을 하루 굶겠노라’
그래 가지고 그 다음날 어쩔 수 없이 연장을 갖다 드렸다고 하는 일화는 이 선방에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설화입니다.

그만큼 선방에 있어서의 울력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뜻이 깊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도 조실스님께서 울력 시간을 설정을 하셔서 생존 시에도 그렇게 울력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때는 똥도 푸고, 아카시나무도 모두 해서 연료로 사용하고, 밭도 일궈서 닭똥을 썩혀서 주고, 채소를 가꾸고, 엄청난 울력을 하고, 언덕을 파서 앞뜰을 메우기를 얼마를 했습니다.

그때 지내신 수좌(首座) 스님네들은 다 아실 것이고, 또 그때 여기 용화사에 다니신 보살님네·거사님네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참 무서운 울력을 했습니다.

열반하신 뒤에도 좀 할려고 해도 밭도 없어지고, 또 도량소지 청소를 제외하고는 그 밖에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날마다 할 만한 일이 없어서 못하고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일만 있으면 선방 스님네들이 그저 모두 나오셔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마 용주사도 그렇게 했을 것이고, 광덕사나 회룡사도 다 그렇게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출가해서 도 닦는 일—모르는 분이 보면 참 여러 가지로 해석이 다를 것입니다마는—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입니다.

생사해탈 문제, 생사대사를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받쳐서 위법망구(爲法忘軀)로 도를 닦는 일은 그래서 그것이 법희선열(法喜禪悅)—법(法)의 기쁨과 선(禪)의 기쁨, 법희선열이 그것이 '밥'인 것입니다.
씁쓸한 된장찌개, 씁쓸한 나물에다가 그렇게 참 검박(儉朴)하게 생활하지만, 도 닦는 그 맛으로 그 기쁨으로 청춘이 늙어 간 줄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세속에 몸담아 있는 청신사·청신녀 여러분도 비록 인연 때문에 세속에 몸을 담고 계시지만,
여러분도 마음은 우리 출가 사문(沙門)과 똑같은 신심과 마음으로 그 생활 속에서 계율을 지키면서 화두(話頭)를 타고 불명(佛名)을 타 가지고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실 줄 압니다.

또 인연이 허락하신 분은, 사정이 허락하신 분은 결재때 방부를 드리고, 그 연세가 60,70,80 고령에 이르러서도 방부를 드리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그 검박한 음식을 잡수면서 정진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앞으로 겨울철부터서는 방부를 받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선방도 크게 늘리고 또 여러 가지 시설도 부족함이 없이 잘 갖추어서 130명, 150명도 아마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때 오셔서 열심히 정진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앞으로 우란분(盂蘭盆)—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유주무주(有主無主)의 광겁부모(曠劫父母)의 천도(薦度) 법요식(法要式)이 진행이 됩니다.
모두 지극정성으로 참여해 주시기를 바라고, 지옥고 받던 또 아귀도에서 고(苦)을 받던 또 우주 허공계에 방황하던 모든 우리의 선망부모들이 이 법요식에 정식으로 초대되어서 참석하시고 또 이 천도를 받게 되시기 때문에 그런 영가들은 참 너무너무 기쁨에 넘쳐흐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선망부모 영가들이 이 자리에 와서 틀림없이 나의 아내가 또는 나의 아들과 나의 며느리와 나의 손자들이 혹 오늘은 오지 안했는가? 이리저리 모두 찾아보고 계실 줄 생각합니다.
모처럼 이렇게 왔다가 자기의 아들과 자기의 딸, 자기의 며느리, 자기의 손자손녀들이 안 왔다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어떤 사정으로 참석을 못했더라도 이다음 법보재(法寶齋)나 우란분재(盂蘭盆齋)에는 반드시 참석을 해서,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또 청정한 스님네께 공양 올리고, 그리고 우리의 선망부모와 인연있는 영가들을 위해서 정성껏 공양을 올리고, 천도를 한다면 그 얼마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며 보람있는 일입니까?

우리도 머지않아서 또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고 영가(靈駕)의 몸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또 극락세계(極樂世界)나 또는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나 또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 70, 80 번갯불 지나가듯이 지나가고 우리도 금방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게 되는데, 이 몸뚱이 있을 때 열심히 정진을 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은 뒤에 아들이 효자니까, 며느리가 잘해 줄 것이다. 그때 천도 받아도 될 것이니 실컷 먹고 잠이나 많이 자자’ 이렇게 생각하시지 말고,
기왕이면 살아있을 때 깨달음을 얻어서 스스로 자기를 제도(濟度)하는 것만 같지 못할 것입니다.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여. 생사진로(生死塵勞), 생사해탈(生死解脫)이 이 작은 일이 아니여, 보통 일이 아니다.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다. 긴밀히 승두(繩頭)를 잡아서 한바탕 공부를 지어라.
정말로 화두(話頭)를 들고 새로 태어난 셈 치고, 아주 이 몸뚱이 아주 안 태어난 셈 치고 한바탕 공부를 지을지니라.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이면, 한바탕 그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아니하면,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칠 수가 있겠느냐.(爭得梅花撲鼻香)

우리 중생은 ①어두운 데에서 어두운 데로 향하는 그러한 사람이 있고, ②어두운 데로부터 밝은 데를 향해서 나아가는 사람이 있고,
또 ③밝은 데에서 어두운 데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고, ④밝은 데로부터서 밝은 데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①그러면 어두운 데에서 어두운 데로 가는 사람은 어떠한 부류의 사람이냐?
전생에 복(福)을 짓지 못하고 금생에 가난뱅이로 태어났다가 그나마도 부처님도 잘 믿지를 않고 신심이 시원찮고, 마음씀씀이 용렬(庸劣)하고, 베풀 줄도 모르고,
항상 삿된 생각으로 계속 도를 닦지 아니하고, 속심에 가득 찬 그러헌 사람은 전생에 짓지 못해 가지고 어두운 데에서 왔다가 내생에 다시 또 어두운 데로 갈 사람이거든.

②그러면 어두운 데에서 왔지만 앞으로 미래에 밝은 데로 향하는 사람은, 설사 전생에 큰 복을 짓지 못해서 금생에 가난하게 태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난한 가운데에도 불법을 믿고 신심이 있어, 마음씀을 항상 탐진치 삼독에 빠지지 아니하고, 항상 법문 듣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을 해.
가난하지마는 있는 대로 보시를 해. 그리고 항상 계율을 지키고 그렇게 살아간 사람은 비록 어두운 데에서 왔지마는 앞으로는 반드시 밝은 데를 향해서 극락세계에나 도솔천내원궁으로 갈 사람이다 그거거든.

③그러면 밝은 데에서 왔지마는 앞으로 어두운 데로 갈 사람은 어떠한 부류의 사람이냐?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금생에 부자가 되어서 부자로 살지만, 부처님을 믿는 신심이 그렇게 장하지를 못해.
그래 가지고 탐심이 많고, 진심을 많이 내고, 어리석은 생각·용렬한 생각이 가득차 가지고, 보시도 할 줄도 모르고, 사견(邪見)이 꽉 차 가지고, 악한 짓을 많이 해.
그런 사람은 전생에 복을 지어서 밝은 데서 왔으나, 앞으로 사후에는 껌껌한 지옥으로 밖에는 갈 수가 없을 것이다.

④그러면 밝은 데에서 왔다가 밝은 데로 간 사람은,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부자로 태어났어.
신심도 있고, 계행도 지키고, 보시도 하고, 수행도 참선도 열심히 하고, 그래 가지고 사후에는 물어볼 것도 없이 극락세계나 도솔천내원궁에 태어날 것이 틀림이 없고,
다시 또 인도환생을 하게 되더라도 부자로 태어나고, 몸도 건강하고, 신심도 있고, 그래서 내생에 불사(佛事)도 잘하고, 대도(大道)도 성취할 것이다. 그 사람은 바로 밝은 데로부터서 밝은 데로 향할 사람이다.

여러 사부대중(四部大衆)은 스스로 자기 자신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반성을 해보시오.
‘4가지 중에 과연 어느 곳에 어느 부류에 자기가 속한가?’ 생각해서, 반드시 앞으로는 밝은 데를 향해서 가도록 노력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27분54초~65분44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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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大湖三萬六千頃  月在波心說向誰’ ; [금강경오가해] 종경 서(宗鏡序) 참고.
*(게송) ‘圓音落處雲散盡  不曾擡步便還家’ ; [금강경오가해] ‘종경 서(宗鏡序)’에 함허득통(涵虛得通)의 설의(說誼) 참고.
*원음(圓音) ; 모든 중생이 제각기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이해하는 원만한 부처님의 가르침.
*심화(心花, 心華) ; 본래 깨끗한 마음(心性)을 꽃에 비유한 말.
*발명(發明) ; 밝히다. 깨닫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귀(耳根)·코(鼻根)·혀(舌根)·몸(身根)·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기능을 뜻함.
*육경(六境) ;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십팔계(十八界) ; 계(界, 산스크리트어 dhātu)는 요소를 뜻함. 인식을 성립시키는 열여덟 가지 요소.
불교에서 인간과 그 밖의 모든 존재 속의 인식작용을 18가지 범주로 나눈 것.
육근(六根)·육경(六境)·육식(六識)을 합한 것이다. 육식(六識)을 제외한 12가지를 12처(處)라고 한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법신(法身) : [범]  dharma - kaya 「법 몸」이란 말인데, 실불(實佛) • 법성신(法性身)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 진여의 본 바탕(眞如本體)을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더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꽉 차 있으되, 네 가지 말로도 설명할 수 없고(離四句) 백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수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볼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계합(契合)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공안(公案)을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게송) ‘삼라만상동귀환~’ ; [소요당집 外] (한글대장경 169, 동국대학교 역경원) p71 소요 스님 게송 ‘의현법사에게 답함’ 참고.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환(幻) ;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聲聞,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탐착(貪着) ; 만족할 줄 모르고 사물에 더욱 집착함.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울력 ; 함께 힘 모아 일하는 것,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로 운력(運力)이라고도 한다. 의미와 관계없이 울력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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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백장청규(百丈淸規) ; 당(唐)나라의 백장 회해(百丈懷海)가 선종(禪宗) 사원의 규범을 성문화(成文化)한 것.
당시 선종은 독립된 사원 ·제도 ·의식 등을 아직 갖추지 않았는데, 이때 백장 스님이 법당(法堂) ·승당(僧堂) ·방장(方丈) 등의 제도를 마련하고, 스님들에게는 동서(東序) ·요원(寮元) ·당주(堂主) ·화주(化主) 등의 각 직책을 규정해 놓은 선종의 법규를 정한 것.
이것을 《고청규(古淸規)》라 하는데, 이것이 당 ·송 시대에 이리저리 흩어져서 없어졌으므로, 1335년 원(元) 순제(順帝)의 칙명으로 백장 덕휘(百丈德輝)가 여러 청규(淸規)를 참조하여 소실된 백장 회해(百丈懷海, 749-814)의 청규를 복원하여 전국 선원에서 시행시켰는데, 이것이 《칙수백장청규(勅修百丈淸規)》이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잡두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어리대다 ; 남의 눈앞에서 귀찮게 왔다갔다 하다.
*도량(道場) : 사찰.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백장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방장(方丈) ; ①선원(禪院)의 운영을 주관하는 최고 책임자 스님, 또는 그가 거처하는 방.
②선원(禪院)·강원(講院)·율원(律院)을 모두 갖추고 있는 총림(叢林)의 가장 높은 스님.
*수좌(首座)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진리)를 구하기 위해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기쁨과 선정(禪定)에 들어가 마음이 즐거운 것.
*검박(儉朴 검소할 검,순박할 박) ; 검소하고 소박(素朴)함.
*사문(沙門) ;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의 음역. 식(息)·근식(勤息)·정지(淨志) 등으로 번역. 여러 선법(善法)을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을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한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에 들어 도를 닦는 사람.
*불명(佛名) ; 불법에 귀의한 남녀 신자에게 붙이는 이름.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광겁부모(曠劫父母) ; 과거의 지극히 오랜 세월 동안 모든 우리의 부모. 선망부모(先亡父母)와 같은 말.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법요식(法要式) ; 불사(佛事-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를 할 때 행하는 의식.
*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월 16일에 용화사 법보재자(法寶齋者)와 법보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년)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우란분재(盂蘭盆齋) ; 우란분(盂蘭盆). 우란분(盂蘭盆)은 산스크리트어 ullambana의 음사로, 도현(倒懸)이라 번역.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는다는 뜻.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삼보(三寶)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수 없어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의 모친을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게송) ‘진로형탈사비상~’ ;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850) 게송.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승두(繩頭) : 승(繩)은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두(頭)는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용렬(庸劣 쓸 용,못할·낮을 렬) ; 사람이 비겁하고 좀스러우며 변변하지 못함.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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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법회(칠석)2014.07.31 12:45

§(337) (게송)원간산색단축장~ / 부자될라면 먼저 보시를 해서 복(福)을 심어야 / 자비심 / 좋은 원(願)을 세우고 남이 잘되기를 바래야 복을 받는다.

물질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또는 법에 있어서 항상 이렇게 보시를 함으로써 거기에서 탐심이 없어지고, 탐심이 없어짐으로 해서 모든 업이 거기서 소멸이 되고, 업이 소멸이 됨으로 해서 모든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이나 부처님이나 우리의 그 마음은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에 부터서 생긴 것이라, 참 신기하고도 묘한 불가사의한 것이라, 무엇이든지 간절(懇切)히 마음으로 원허면 그것이 조만간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 내가 잘될려면 남이 잘되기를 항상 바라고 빌고, 남이 잘되도록 도와주고, 말 한마디 생각 하나라도 남 잘되길 축원을 허고, 남 잘되기를 원해야 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약 22분.


원간산색단축장(願看山色短築墻)하사  욕초호조다종수(欲招好鳥多種樹)니라
나무~아미타불~

원간산색단축장(願看山色短築墻), 저 먼산의 산 경치를 보고자 허거든 내집 담장을 짧게 치고,
좋은 새들을 초대허고 싶거든 정원에 나무를 많이 심어라(欲招好鳥多種樹).

조실 스님께서 참 즐겨 읊으신 게송입니다.
아주 평범헌, 평범헌 게송이지만 평범헌 가운데에 많은 깊은 뜻을 내포허고 있습니다.

사람치고 다 오복(五福)을 다 갖추기를 바랍니다. 또 불법을 믿는 또 최상승법을 믿고 행하는 사람은 다 견성성불(見性成佛)하기를 원합니다.
세속의 오복을 갖추기를 원한다 하드라도 어떻게 허면은 그 오복을 갖출 수가 있는가? 또 이 불법에 있어서 견성성불을 하고자 한 사람은 어떻게 허면은 견성성불을 헐 수가 있는가?

반드시 그 바른 길이 있습니다.
저 먼산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자 허면서 담을 높이 쌓고, 다른 사람이 자기집을 들여다보지 못할 만큼 그렇게 담을 높이 쳐 버리면,
도둑이 들어오지 못한 데에는 유익헐는지 모르나, 자기 자신이 저 먼 아름다운 경치는 볼 수가 없는 것이여.

새소리 아름다운 새를 초대하고자 허면서, 그 나무가 있으니 모다 우중충허다고 나무를 다 때려 비어버리면 오던 새는 다 날아가버리고 오지 아니헐 것입니다.
참으로 새가 자기집에 오기를 바라면은 참 좋은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해. 그러면은 새를 오라고 허지 않아도 온갖 새가 모다 모여들 것이고, 경치를 보고 싶으면 높은 담을 허물어서 얕게 치면 될 것이다 그말이여.

인간의 복도 욕심만 내 가지고 막 되나깨나 움켜쥐고 닥치는 대로 제 것을 맨들라고 헌다고 해서 절대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져서는 안 될 재산을 막 회사 돈이나 관청 돈이나 일가친척 돈도 닥치는 대로 긁어 잡아댕겨서 제 것을 맨들라고 허면 당장 쇠고랑 차고 잽혀 가고, 되겠습니까? 그게.

반드시 부자가 되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자님 말씀은 『버는 돈보다 쓰기를 적게 쓰면 부자가 되느니라.』 그렇게 말했습니다마는 그것은 저축을 허는 간단헌 한 면을 말씀허신 것이라고 볼 수는 있습니다마는,
버는 돈보다 적게 쓴다면 한 달에 돈 10만원 벌어 가지고, 한 9만원만 쓰고 만원만 남긴다고 해서 그거 만 원씩 모아 가지고 언제 부자가 되겠습니까?

만 원씩 다달이 모여 가지고 죽을 때까지 모여 봤다 몇십 만원 그것 가지고 부자라 허겠습니까?
물론 적게 쓰면 저축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또 아무리 많이 벌어도 억만금을 벌어도 쓰기를 번 돈보다 더 쓴다면 진짜 부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정말 부자가 되는 묘법(妙法)이라 헐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허면 많이 벌 수가 있느냐? 일단은 많이 벌어가지고 버는 돈보다 적게 써야지,
벌 수는 없고 밤낮 적게 쓰는 것만 노력을 해 봤자 그것은 인색하기 밖에는 안 될 것입니다. 인색허다고 해서 부자는 안 됩니다.

부자될라면 복(福)을 심어야 되는 것입니다.
복을 심어야 부자가 되는 것이지, 욕심만 내 가지고 자꾸 거머쥔다고 해서 일시적으로 잠깐 거머쥘 수는 있을란가 몰라도, 그러헌 재산은 금방 나가게 되고 써보기도 전에 감옥에 먼저 가는 것이기 때문에 지옥에 먼저 가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와야 부자가 되는 것이지, 불같은 욕심을 내 가지고 닥치는 대로 긁어들인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여.

어떻게 허면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오느냐?
복을 심어야, '복을 심는다'허는 것은 첫째 보시(布施)를 해야 되거든. 베풀어야 돼.
물질로도 베풀고 말로도 베풀고 마음으로도 베풀어. 보통 ‘보시를 해라’허면은 돈이나 어떤 물건만을 생각허지만, 물론 그것도 중요허지만 그것보다 우선해서 더 중요헌 것은 마음이거든.

마음을 항상 자비심(慈悲心)—자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항상 자기 몸보다도 남을 먼저 생각허고 남을 위허는 그런 마음을 가져서 항상 이 자비심으로 베풀면,

자비심을 가지면 자비심을 가진 사람에서 나오는 말이 또한 자비스런 말이 나오게 되고 또 그 사람이 허는 행동도 항상 자비스런 행동이 나오게 되고 또 그 사람이 어떤 돈이나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항상 저절로 남에게 보시를 허게 마련인 것입니다.

마음이 인색하고 마음이 탐심이 꽉 차있고 마음이 자비심이 없으면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또한 자비스럽지 못헐 것이고, 남을 해롭게 허는 말, 남의 오장을 참 상하게 허는 그런 말이 튀겨져 나올 것이고,
그 사람의 행동이 또한 무자비한 행동이 나올 것이고, 그 사람은 남에게 베풀 줄을 모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헌 사람은 우선 재산이 좀 있다 허드라도 그 재산이 오래가지를 못헙니다. 오래가지를 못허고 아무리 거머쥐고 꽉 오그려 쥔다 허드라도 반드시 재앙이 일어나 가지고 돈이 나갈 수 밖에는 없는 그런 상항이 일어나고,
그런 상황은 자기가 어떤 사업을 허다가 못된 수도 있고, 어떤 재앙이 일어나 가지고 없어질 수도 있고, 자식을 잘못 두어 가지고 자식이 그 재산을 탕진허는 예도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육바라밀(六波羅蜜) 가운데에 첫째 보시바라밀을 설했거든.
물질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또는 법에 있어서 항상 이렇게 보시를 함으로써 거기에서 탐심이 없어지고, 탐심이 없어짐으로 해서 모든 업이 거기서 소멸이 되고, 업이 소멸이 됨으로 해서 모든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누구나 소원이 다 있지만 소원이 이루어지지 아니 헌 것은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이라고 허는 장애물이 콱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자기헌테 오지를 못 허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이나 부처님이나 우리의 그 마음은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에 부터서 생긴 것이라, 참 신기하고도 묘한 불가사의한 것이라, 무엇이든지 간절(懇切)히 마음으로 원허면 그것이 조만간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원(願)을 세워도 이루어지고, 나쁜 원을 세워도 이루어지고, 하여간 마음으로 간절히 원허기만 허면 누구라도 이루어지는데, 빨리 이루어진 사람과 더디 이루어진 차이가 있을 뿐인 것입니다.

그 원(願)을 세우면 빨리 이루어진 사람은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가 없기 때문에 빨리 이루어진 것이고,
잘 안 이루어진 사람은 그 장애가 있기 때문에—과거에 지은 업 또 현재의 지은 업, 그런 업(業)의 장애(障碍)가 있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하는데, 그러나 언젠가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두들겨라, 그러면 문이 열린다. 구하여라, 그러면 얻어질 것이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마는,

간절히 원(願)을 세우면 이루어지는데, 어떠헌 원을 세우느냐? 그것이 우리 불자(佛子)로서는 대단히 중요헙니다. 기왕 원을 세울라면 좋은 원을 세워.

미웁다고 해서 그 사람 망하는 그러헌 원을 세운 것-그것을 저주(詛呪)라 그러는데, 남을 저주허면은 그 저주하는 원도 이루어집니다.
간절히 그 미운 사람이 망하기를 원허면 그것도 이루어지는데, 그런 나쁜 원을 세우고 저주를 허면 먼저 자기가 먼저 해롭습니다. 그래서 그런 좋지 못헌 원을 세운 것은 대단히 옳지 못헌 것입니다.

빈대 잡기 위해서 자기집에다 불을 질러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차라리 빈대는 잡지 못헐지언정, 자기가 살고 있는 집에다 불을 지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빈대를 잡을라면은 그 빈대가 없어지는 지혜로운 방법을 강구해서 그 빈대가 자연히 자기집에서 떠나도록 헐지언정 빈대가 미웁다고 해서 당장 불부터 질르면은 자기 재산 다 없어지고, 자기집 다 없어지고, 까닥허면 자기 몸, 자기 식구도 타 죽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절대로 아무리 미워도 다른 사람 망하기를, 다른 사람이 해롭게 되기를 바래서는 아니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저주를 허지 말아라. 웬수를 갖지 말아라. 보복을 함으로써 싸움은 끝나지 아니헌다.』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을 허셨습니다.

정말 내가 잘될려면 남이 잘되기를 항상 바라고 빌고, 남이 잘되도록 도와주고, 말 한마디 생각 하나라도 남 잘되길 축원을 허고, 남 잘되기를 원해야 허는 것입니다.

중생은 평소에는 괜찮은데 너무 억울허고 분허고 오장이 뒤집어지면 까딱 잘못허면 남을 저주허게 되는데, 우리 불자는 그 한 생각 일어날 때, 미운 생각이 일어날 때 탁!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상대방을 용서허고, 그 사람 입장이 되어가지고 또 생각해 보고,

그래서 내가 먼저 이해를 하고 미움을 풀어주고 화해를 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자기의 업이 소멸이 되고 원결(怨結)이 풀어지게 되어야,
앞으로 두고두고 내가 원허는 좋은 원이 성취가 되고 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과 딸이 복을 받게 되고 잘살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원망허고 저주하고 해서, 설사 그렇게 해서 보복을 허게 되면 머지않아서 또 보복을 받게 되기 때문에 서로 죽이고 서로 웬수를 갚고 또 웬수를 되받고 이래 가지고 주거니 받거니 허면서 무량겁을 가봤자,
저도 고통 밖에는 없고 남도 고통 밖에는 없는 오늘날 이와 같은 말세(末世)의 현상이 일어나고야 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멀리 세계를 보십시오. 도처가 싸움이고 도처가 사람을 죽이는 그런 전쟁이고, 우리나라도 여당이다 야당이다 재야세력이다 노사분규다 해 가지고 끊임없는 이러헌 분규와 싸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래 가지고서는 나라꼴도 안 되고 회사도 안 되고 그래 가지고 개인의 부귀와 행복이 이루어지겠습니까? 회사가 망허고 그 직원들이 잘 되겠습니까?

여기에는 화해 밖에는 없습니다. 서로 여당은 야당을 생각허고, 야당은 여당을 생각허고, 그래서 합해서 국가를 생각허고 민족을 생각헐 때 나라 일이 제대로 되고 민주화가 될 것입니다.
또 업주와 노동자가 서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서 가능한 헐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합의를 봐 가지고 하루 빨리 일을 시작해야만 회사가 잘되고 국가가 잘 될 것입니다.

이 길 밖에는 세상없이도 지상의 낙원은 이루어지지 않고 민주주의도 되지 않습니다.
가정의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부모와 며느리와의 관계도 마찬가지고, 부모와 자식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새를 초대허고 싶으면 나무를 심어야 허고, 먼산 좋은 경치를 보고 싶으면 담을 짧게 쳐야 허는 도리가 바로 여기에 적용이 될 것입니다.

칠석날을 맞이해서 우리가 복을 받고 싶으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마음가짐을 쓰고, 그렇게 생활을 영위(營爲)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천불(千佛)이 출세를 허시고 천성(千聖)이 하강을 허신다 허드라도 이 도리는 바뀔 수가 없습니다. 어떠헌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행히 우리 불자는 그렇게 마음을 쓸 수 있고 그렇게 생활헐 수 있는 가장 묘한 한 법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뭣고?」 「이뭣고?」 한마디로써 그것이 가능헐 수가 있습니다.
한 생각을 탁! 돌이켜서 지옥(地獄)에 빠질뻔한 사람이 천당(天堂)으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방법을 알고서도 어찌 아니 허겠습니까?

오늘 이것으로서 칠석의 법어를 마치고자 헙니다. 이 법문을 듣고 당장 이 자리에 부터서 실천을 허십시오.
가정에 돌아가셔서 모든 섭섭한 생각을 다 풀어 버리시고 화해를 하십시오. 그리고 용서를 하십시오. 그날부터 지옥과 같은 가정이 극락으로 변헐 것이고, 웬수가 다 사랑허는 은인으로 바꿔질 것입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허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에 만약 이렇게 간절히 일러드린 말씀을 실천허지 아니허면, 후생에 저 지옥에 떨어져서 한(恨)이 만단(萬端)이나 될 것이다.(49분56초~71분35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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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五福) ; 인생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복. 보통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덕을 좋아하여 즐겨 행하는 일), 고종명(考終命-사람이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음)을 이르는데, 유호덕과 고종명 대신 귀(貴)함과 자손이 중다(衆多)함을 꼽기도 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되나깨나 ;  '도나캐나(하찮은 아무 사람이나. 또는 아무것이나)'의 사투리.
*묘법(妙法) ; 절묘한 방법.
*보시(布施) : [범] dana  음을 따라 단나(檀那)라고도 쓴다。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
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업(業)의 장애(障碍)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이 무엇고(是甚麼, 이뭣고)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지옥(地獄) : 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죄업으로 말미암아 그 과보로 사후(死後)에 가서 나게 되는, 고통이 극한 지하의 감옥을 말한다。 그러나 육신의 사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우리의 마음속에 천당과 지옥이 있는 것이다.
*천당(天堂) ; ①천상(天上)에 있다는 신(神)의 전당(殿堂), 하늘의 세계.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모든 하늘을 통칭하는 말. ②정토교(淨土敎)의 극락세계(極樂世界).
*(게송) ‘금생약불종사어 후세당연한만단’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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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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