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삼요)2017.05.28 22:32

§(627) (게송)일종위배본심왕~ / 중생이  부처니, 바로  자신이 부처니 부처를 밖에서 찾지 말아라. 번뇌가  보리(菩提)이니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이 딴 데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께 최고의 존경과 공경을 바치고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 불공(佛供)을 드리고 합니다마는,  모든 신앙 생활 가운데에 으뜸이 되고 뿌리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철저히 믿는 데에서부터서 시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를 여의고 참선을 할라고 하지를 마세요. 무슨 망상이 일어나거나 번뇌가 일어나거나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는 바로 거기에 즉해서 이뭣고?’.

**송담스님(No.627)—99 6 첫째 일요법회(99.06.06)

약 13분.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

나무~아미타불~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   본심왕(本心王)을 어기고 등지고 떠난 뒤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  번이나 삼악도(三惡途)에 들어갔으며  번이나 사생(四生)을 겪어 왔던가.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을 겪어 왔던가.


삼도(三途)를 수천만 , 태란습화 사생의 몸을 수억만 번을 거쳐서 이렇게 오늘날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말이여.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니, 오늘 번뇌(煩惱)의 생각을 깨끗이 씻어 ()하고 보니,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다.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본고향(本故鄕)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방금 우리는 임자년에, 임자년이라고 하면 전강 조실 스님께서 갑인년 섣달 초이튿날 열반(涅槃)에 드셨는데 임자년은 갑인년보다 3 전입니다. 임자, 계축, 갑인, 열반하시기 3 전에 설하신 법문을 들었습니다.

여러분께서 들으신 바와 같이, 비록 녹음 테이프(tape)를 통해서 들었지만, 금방  법상에 올라오셔서  열렬한 대사자후(大獅子吼)를 우리는 실지로 설하신 것처럼 우리는 감명 깊게 들었습니다.


오늘 일요법회 법문은 조실 스님 법문    들으면 그것으로서 족하겠지마는, 산승(山僧)이  자리에 올라온 것은 여러 도반(道伴)들에게 일요일이라 산으로 바다로 놀러가실 수도 있고 쉬실 수도 있건마는, 날씨도 더움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법회에 나오셨으니 원장으로서 인사 말씀 한마디 하고 우리가  같이 정진을 잘하자고 하는 다짐하고 격려의 말씀을 드리고자  자리에 올라왔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 법문에 내가  찾는 공부, 철저한 신심으로 그것밖에는   없다 하는 요지,  공부해 나가는 구체적인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에 대해서 그렇게 간곡히 말씀을  주셨습니다.


원래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미륵 부처님이나 또는 노사나불(盧舍那佛)이나  같이  근본에 올라가서는 우리도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몸이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 무명(無明)이 동(動)함으로 해서, 이것이 본심왕을 어겼다’고 표현한 것이 바로  말입니다. 본심왕을 어기고 떠났다고 하는 것은,  생각 무명심이 발동함으로 해서 아직까지도 우리는 중생의 탈을 벗지 못하고 삼도와 사생을 돌고 돌면서 갖은 크고 작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어야  일은 우리가 본래 법신불이었다고 하는 사실과 그렇게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으면서도 우리 몸안에 있는 법신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미륵불이나 똑같은  법신불이 우리 안에 역력히 살아 계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은 업연(業緣)에 따라서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고, 아귀도에도 태어나고 그러고 있지마는, 우리 안에 살아 있는  법신불은 조금도 변함이 없이 손상됨이 없이 고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철저히 믿는 것이 정법(正法)을 믿는 것이고 그것이 불법(佛法)을 믿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사월초파일에 이천육백  전에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탄생하신 뜻이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 탄생하셨다 하지만, 어떻게 제도합니까?

‘모든 중생들에게  같이 법신불이 계시다’고 하는 , ‘법신불이 계시다’고 하는 것은 바로 모든 중생, 너희들이 부처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탄생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께 공경을 최고의 존경과 공경을 바치고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 불공(佛供)을 드리고 합니다마는,  모든 신앙 생활 가운데에 으뜸이 되고 뿌리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철저히 믿는 데에서부터서 시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인(古人)이 말씀을 하시기를 중생이  부처니, 바로 내가  자신이 부처니 부처를 밖에서 찾지 말아라’하시는 거고.

번뇌(煩惱)가  보리(菩提)이니, 우리 깨닫지 못한 사람은 눈으로 봤다 하면 거기서 번뇌의 물결이 일어나고, 귀로 무엇을 들었다 하면은 번뇌의 물결이 일어나고, 무슨 생각이 일어났다 하면은 번뇌의 생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없는 끝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번뇌를 여의지 않고 거기에 보리가 있다는보리(菩提)는 깨달음이다. 최고의 깨달음을 보리라고 하는데 번뇌를 여의지 않고 깨달음이 거기에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붙어 있다고 하면  어폐(語弊)가 있을는지 모르지마는, 바로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이 딴 데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이것이 바로 대승법(大乘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알기 쉽게 비유를 하자면은 파도가 일어나고 있을 ,  파도는 물이  인연 따라서 움직거리면 그것이 파도인데, 파도는 물을 여의고 존재한 것이 아닙니다. 파도 있는 곳에는 반드시 거기에 물이 있는 거고, 물이 있으면은 물결이 파도가 일어나게  것입니다.


물결을 버리고 물을 찾는 한에는 물속에 들어앉어서도 물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중생을 여의고 부처를 찾을 수가 없는 거고,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을 구하는 한에는 깨달음 속에 있으면서 깨달음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참선(參禪)을  것은 깨닫기 위해서 한다’하지만 깨달으려고  필요가 없습니다. 참선 해  사람이면 끊임없이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마는,  번뇌를 여의고 참선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몸뚱이가 바로 부처님 몸뚱이고, 우리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수없는 번뇌가 바로 그것이 깨달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상승법에서는 아까 부처님으로부터 달마 스님까지 인도에서 28, 달마 스님이 중국으로 오셔서 육조 혜능 스님까지 6, 그래서 육조 스님까지 해서 33대를 삽삼이라고 합니다마는 삽삼조사(卅三祖師).

 삽삼조사로 육조 스님  화두(話頭)라고 하는, ‘이뭣고?’라고 하는 것이 나왔다고 하는 것을 금방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는, 그것이 오늘날까지 조사들에 의해서 등등상속(燈燈相續)으로 오늘날까지 최상승법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최상승법은 굉장히 어렵고 복잡하냐 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부처도   밖에서 찾지  , 참선도 번뇌를 여의고 찾지  ,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철저히 믿고.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를 여의고 참선을 할라고 하지를 마세요. 무슨 망상이 일어나거나 번뇌가 일어나거나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는 바로 거기에 즉해서 이뭣고?’.(처음~1256)


약 6분.

[참고] 송담스님(No.457)—1991년 11월 첫째 일요법회에서.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여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고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니라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한번 본심왕(本心王)을 배반(背反) 이래로,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이냐.  번이나 지옥, 아귀, 축생의 삼악도(三惡途) 들어갔고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四生)  번이나 겪어왔더냐 그말이여.

몇수십만 번을 짐승이 되었다가 날짐승이 되었다가, 긴짐승이 되었다가, 네발 달린 짐승이 되었다가, 사람이 되었다가 이러면서 돌고 돌아서 금일에까지 왔더냐.


원래는 우리도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똑같은 조금도 차등(差等) 없는 본심왕이었다 그말이여.  본심의 왕을 배반한 탓으로 해서 우리는 삼악도와 사생을 돌고 돌아서 몇억만 겁을 겪어 가지고 오늘에까지 이르렀더라.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고, 오늘 번뇌에 물든  번뇌염을 깨끗이  씻어 버리고,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다.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자.


고향을 떠나서 객지(客地) 객지로 떠돌아다니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떠돌이 신세로써  거러지 신세가 되어 가지고 그렇게 떠돌다가 비로소 자기 고향 갈 길을 찾았다면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기쁘겠느냐.


남북 이산가족(離散家族)들이 몽매지간(夢寐之間)에도 잊지 못할 가족 상봉, 그것참 그러한 경험이 있으신 분이 많이 계시겠지만 정든 사람과 이별하고, 고향과 가족 친지를 이별하고,  나라에 손바닥만한 땅에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한 그런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히지마는,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이 원래 본심왕이였었는데  왕이  본심왕을 갖다가 등져 버리고 떠돌이 신세가 되어가지고 삼악도로 육도윤회(六道輪廻) 돌고 돌면서 가진 고초를 당하고 금생에까지 무량겁을 겪어 왔을 뿐만 아니라 내생(來生)에도 무량겁(無量劫) 두고  그런 것이 거듭될 그런 신세가,

다행히 불법(佛法) 만나고 정법(正法) 만나서 우리가 본심왕의 본위치로 돌아갈수 있게 되었다면 이건  50 인구 가운데 가장 행운아라고 할까, 가장 행복한 삶을 받아났다고 할 것입니다.


 정법,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 하는 것이  생각  생각을 단속하고, 한 걸음 한 걸음을 헛되이 지내지 아니하고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화두(本參話頭)  거각하고 단속하고 회광반조(廻光返照) 함으로써 우리의 본고향(本故鄕)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 이거거든.


고향을 모를 때에는  곳도 없고,  봤자  목적이 없어.

그러니 우선 잘 먹고 보자, 우선  입고 보자, 나중에 삼수갑산(三水甲山) 가더라도 우선 부자로 살아 보자, 좋은 차도 가져 보자, 좋은 집도 가져 보자하지만, 고향이 있는 것을 알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았다면 한시바삐 고향길을 향해서 계속 걸어야 하거든.


입는 것도 얼어죽지 아니하면 족하고 먹는 것도 굶어죽지 아니하면 족하고, 어쨌든지  걸음이라도 빨리 고향을 향해서 게으르지 않게 걸어가는  밖에는 어디에다가 시간과 힘을 허비할 것이냐 그거거든.(2120~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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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일종위배본심왕~’ ; [석문의범(釋門儀範)] 관욕(灌浴) 입실게(入室偈) 참고.

*본심왕(本心王) ; 본래 진여불성(眞如佛性).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생(四生) ;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가지 (),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이른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괴로워할 )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 · 성냄() · 어리석음()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 · 진심(瞋心) · 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 삼도(三道) 설명한다.  번뇌[]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 과보를 받게 된다.

*본고향(本古鄕) ; 본향(本鄕). 고향.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 집착(執着)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녹음 테이프(tape) ; 카세트(cassette)라고 하는 녹음기에 간편하게 장착하여 녹음을 하거나 녹음된 것을 재생하는 카세트테이프(cassette tape : 전용 플라스틱 케이스에 들어 있는 자기 테이프) 말한다.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가지 요건. 첫째는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의심(大疑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없는 생각에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노사나불(盧舍那佛) ; 중생을 위해 서원을 세우고 오랜 수행으로 무궁무진한 공덕을 쌓고 깨달음을 성취하여 장엄된 몸을 가지고 보토(報土 : 부처님께서 과거 인위因位에서 행한 서원행에 대한 보답으로 이루어진 정토) 계시면서 설법하는 부처님.

삼신불(三身佛) (1)영원불변의 진리[] []으로 삼고 있는 법신불(法身佛), (2)수행에 의해 공덕을 쌓은 과보(果報)로써 온갖 덕이 원만구족한 불신(佛身) 보신불(報身佛), (3)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형상[]으로 변하는[] 화신불(化身佛, 應身) 이르는 말인데, 노사나불은   보신불이다.


이들 삼신(三身) 상호관계는 흡사 달의 ()  , 그리고  그림자와 같다고 하며, 이것을 일월삼신(一月三身)이라고 한다.

 법신(法身) 이체(理體) 유일상주불변(唯一常住不變) 것을 달의 () 비유하고, 보신(報身) 지혜가 법신의 이체(理體)에서 생겨 일체를 비치는 것을 달의 빛에 비유하며, 응신(應身) 변화하는 작용으로서 기연(機緣) 따라서 나타나는 불신(佛身)이므로 달의 그림자가 물에 비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念佛三昧寶王論卷中).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①진리  자체인 모든 곳에 편재(遍在)하는 법신으로서의 비로자나 부처님. ②대일여래(大日如來) 같음.

*무명(無明) ; 모든 현상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는 근본 번뇌. 사제(四諦) 대한 무지로서, 모든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 번뇌. 본디 청정한 마음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원초적 번뇌.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업연(業緣) ; 업보(業報)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 열반의 경지)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 마음과 몸을 괴롭게 하는 과보) 인연을 부른다.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 행위[]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 또는 ()이라 . ②연기(緣起) 같음.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으로나 []로나 []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

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제도(濟度 건널 /건널 ) ; 중생을 미혹의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 이르게 하는[] . () 구제(救濟). ()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건널 ) :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

*도탈(度脫 건널 /벗을 ) :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불공(佛供 부처 /이바지할·바칠 ) ; 부처님 앞에 ((·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보리(菩提) : [] bodhi  () • () • ()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 —> ) ‘보리 읽는다。따라서 보제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것이다.

*깨달음 ; ().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어폐(語弊 말씀 /해어질·쓰러질 ) ; ①적절하지 아니하게 사용하여 생기는 말의 폐단이나 결점. ②남에게 오해를 일으킬  있는 .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 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 '타는 '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삽삼조사(卅三祖師) : 삼십삼세 조사(三十三世祖師).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부처님을 대신할  교단(敎團) 어른을  분씩 정하여 내려왔다。그것은 스승되는 어른이  제자들 가운데서 빼어난 이를 선택하여 () 전하고,  증거로써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衣鉢) 전해 주었다.

그리하여 인도에서 1.가섭존자, 2.아란존자, 3.상나화수....이렇게 전승되어 28 되는 달마대사(達摩大師) 중국에 와서 중국의 초조(初祖) 되고, 그로부터 2 혜가, 3 승찬, 4 도신, 5 홍인, 6 혜능대사(慧能大師) 내려왔는데,  33인의 조사를 삽삼조사라 한다.

육조 혜능에 이르러서는 불법을 대중화하기 위하여 정통(正統)으로 내려가는 전례를 폐지하고, 따라서 의발을 전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육조 스님  화두(話頭)라고 하는, ‘이뭣고?’라고 하는 것이 나왔다’ ;

[참고] 송담스님(No.264)—1985 4 첫째 일요법회에서.

흔히 화두하면 이뭣고?’ 시삼마(是甚) 화두를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러냐 하면은 화두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이기 때문에 이뭣고?’ 많이 말씀을 하게 됩니다.


화두(話頭)라고 하는 말은 임제(臨濟) 스님 이후로 임제종에서  화두라고 하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마는, 임제 스님 이전에 육조(六祖) 스님도 화두라고 하는 말은 사용하지 아니했지만,

내게  물건이 있으니, 위로는 하늘을 기둥하고 아래로는 땅을 떠받치며, 밝기로는 해보다  밝고 검기로는 옻칠보다도  검은데, 항상 동용(動用)하는 가운데 있으되, 동용하는 가운데서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을 했습니다.


 하택신회(荷澤神會)라고 하는 제자가 터억 앞에 나와서, ‘그것은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며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며, 신회지불성(神會之佛性)이로소이다.  하택신회, 저의 불성(佛性)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육조 스님이 뭐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도 그릴 수도 없다고 내가 그랬거늘, 어찌 불성이니 제불의 본원이니 하고 이름을 붙이는고. 니가 앞으로 공부를 해서 일가(一家) 이룬다 하드라도 너는 지해종사(知解宗師)밖에는 못 되겠다. 불교학자밖에는  되겠다


 불교()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참나 깨닫는 것이 목적인데, ‘앞으로 니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일가를 이룬다 해도 지해종자(知解種子)밖에는 못 되겠다 이렇게 점검을 하셨습니다.


그리자 남악회양(南嶽懷讓) 왔습니다. 와서 터억 절을 하니까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이렇게 육조 스님이 물으셨습니다.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물음에 대해서  맥혀서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어, 몸을  바를 몰랐습니다.

하택신회는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니, 무슨 하택신회의 불성이니 이렇게 즉각  대답을 했는데, 남악회양은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고 묻는데 대해서, 앞이  맥혀 가지고   바를 몰라.  뒤로 8 만에사 확철대오(廓徹大悟) 했습니다.


8 동안을 대관절 이게 무슨 물건인고?’ 앉아서도  생각, 서서도  생각, 밥을 먹으면서도  생각, 일을 하면서도  생각, 똥을 누면서도  생각, ‘대관절  무슨 물건인고?’ 이렇게 하기를 8 만에사 확철대오를 했어.


그래 가지고 육조 스님 앞에 가서 설사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육조 스님이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 도리어 닦아 () 것이 있느냐?’하니,

수증(修證)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염(汚染) 즉부득(卽不得)입니다. 닦아 () 것이 없지를 않지마는 오염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렇다 이렇게 해서 인가(印可) 받게  것입니다.


 참선법, 활구참선법은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량분별(思量分別) 더듬어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남악회양 선사처럼 대뜸 처음부터서  맥혀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에 기둥에 이마빡을 부딪친 거와 같은, 갑자기 걸어가다가 기둥이나 벼람박에 이마빡을 부딪쳤을  그때 상황이 어떻습니까? 앞뒷이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다못  맥혀 가지고,   없이 이뭣고?’ 그뿐인 것입니다. 이렇게  맥혀서 앞뒷이 끊어져야  공부를 옳게  나가는 것이지,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 이론, 무슨 철학, 불교경전에 있는 부처님 말씀, 그것을 갖다가 아는 대로 끌어다가 이렇게 분석을 하고, 종합을 하고, 비교를 하고, 적용을 하고, 이렇게 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6131~6722)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등등상속(燈燈相續) ; () 중생의 무명(無明)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 비유한 ,  진리의 () 스승이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 ; 인과(因果)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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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정진(精進)2015.07.12 15:04

§(527) (게송)여군동보우동행~ / 십법계(十法界) / 내가 본래 부처, 번뇌가 보리 / 정진은 안락지묘문(安樂之妙門) / ‘한 생각’ / (게송)정체종래절색공~ / 결정적인 신심.

부처를 찾을려고 하지 말고, 번뇌를 버릴려고 하지 말어. 내가 부처인데, 부처가 다시 또 부처를 찾으니까 부처가 보이지를 않는 거고, 번뇌가 바로 보리인데, 번뇌를 버리고 보리를 찾기 때문에 거기에서 공부가 우리를 괴롭게 하고 마는 것이다.
닦을 것이 없는 곳을 향해서 닦아야 하고, 찾을 것이 없는 곳을 향해서 찾아야 하고, 버릴 것이 없는 곳을 향해서 버릴 줄 알아야 해. 그 방법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이다. ‘이뭣고?’
이 세상에 깨닫고, 깨닫지 못한 것은 우리가 따질 필요가 없어. ‘불교는 깨닫는 가르침이다’ 그렇지만 원래 내 자신이 부처이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 단속만 할 줄 알면 그 자체가 바로 부처님인 거여.
‘한 생각’을 좋은 생각을 먹으면 천당으로 가는 거고, 악한 생각을 일으키면은 지옥에 가는 거고, 탐심을 내면 축생이 되는 거고, 진심(瞋心)을 내면 바로 그 찰나에 그 독사도에 들어가는 건데,
일어나자마자 그 생각이 차츰차츰 발전을 해 가지고 결국은 그것이 십법계로 가게 되는데, 일어나자마자 바로 생각을 ‘이뭣고?’로 돌리면 윤회(輪廻)가 바로 거기서 찰나(剎那) 찰나에 끊어지는 거여.
그 ‘한 생각’을 단속할 줄 모르면 평생 동안을 불법(佛法)을 믿어도 헛믿는 거고, 평생 동안을 선방에 와서 앉았어도 참선 헛하는 거여.
우리가 이 공부라 하는 것은 하루 이틀에 후닥닥 해치우고 말 일이 아니거든. 평생을 해야 하는 거고, 영원히 해야 하는 거고. 다맛 자기의 인연 따라서 정진하는 양상이 달라질 수는 있어.
성문(聲聞)은 성문으로서, 연각(緣覺)은 연각으로서, 보살(菩薩)은 보살로서 또 부처님은 부처님으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책무라고 할까, 주어진 일에 따라서 도 닦아 가는 형태는 다를지언정 우리의 공부는 우리의 정진은 영원히 해야 하는 거다.
**송담스님(No.527)—94년 동안거해제 법회(94.01.15.음)


(1) 약 19분.  (2) 약 21분.


(1)------------------

여군동보우동행(與君同步又同行)하고  기좌상장세월장(起坐相將歲月長)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갈음기손상대면(渴飮飢飡常對面)인데  불수회수갱사량(不須回首更思量)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여군동보우동행(與君同步又同行)이여. 그대와 더불어 함께 걷고 또 같이 댕기고,
기좌상장세월장(起坐相將歲月長)이다.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고 같이 앉았고, 이렇게 서로 함께 하기를 세월이 길었어. 무량겁 이전부터서 잠시도 떠나지 아니하고 오랜 겁(劫) 동안을 그렇게 같이 살아왔다.

갈음기손상대면(渴飮飢飡常對面), 목마르면 물 마시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항상 서로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살아왔다.
불수회수갱사량(不須回首更思量)이다. 모름지기 머리를 돌이켜서 다시 사량(思量)하지 말아라.

여기서 그대와 같이 걷고, 같이 행하고, 같이 앉고 눕고, 같이 먹고, 같이 마시고 이렇게 수없는 세월 동안을 그렇게 같이 살아왔다. 우리는 소소영령한 무량겁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때로는 하늘 법계에서 그렇게 같이 살았고, 때로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렇게 같이 살아왔고, 때로는 수라도에, 때로는 지옥도에, 때로는 아귀도에, 때로는 축생도에, 때로는 성문으로서, 연각으로서, 보살로서, 십법계(十法界)를 그렇게 같이 살아왔다.

자기가 짓고 닦은 바에 따라서 십법계를 그렇게 살아왔어. 여읠라야 여읠 수가 없어. 왜 그렇게 여읠 수가 없느냐?

지금도 이렇게 산승(山僧)이 말을 하고 사부대중이 산승의 말을 듣고 있는데,
같이 듣고 같이 말하고, 본래 내 자신이, 본래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이 각각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그렇다.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인연 따라서 지은 바에 따라서 법계(法界)를 돌고 돌지만, 딴 것이 아니야.

그러기 때문에 이 최상승법에서는 부처를 찾을라고 하지 말아라.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부처를 찾을라고 하지를 말아라. 번뇌가 본래 번뇌(煩惱)가 보리(菩提)이기 때문에 번뇌를 버릴라고 하지 말아라.

우리가 깨닫지 못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못해 가지고, 견성성불 할려고 하기 때문에 부처를 찾고 번뇌를 버릴려고 하는데 그 생각 때문에 우리는 괴로운 것이고, 답답하고, 공부가 안되는 것이여.

부처를 찾을려고 하지 말고, 번뇌를 버릴려고 하지 말어.
내가 부처인데, 부처가 다시 또 부처를 찾으니까 부처가 보이지를 않는 거고, 번뇌가 바로 보리인데, 번뇌를 버리고 보리를 찾기 때문에 거기에서 공부가 우리를 괴롭게 하고 마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면 출가해서 계행(戒行)을 지키고 참선을 하는데, 그럴 필요가 뭐 있느냐?
본래 부처인데 부처를 왜 찾으며, 눈만 떴다 하면은 번뇌 망상이 들끓고 그러는데 어떻게 번뇌를 버릴려고 하지 말아야 하냐?
수행도 할 필요가 없이 그냥 고대로 두라면, 뭐 하러 도를 닦으며 출가를 하며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출세(出世)를 하셨느냐?’

그런 생각이 날 수도 있어. 그러나 닦을 것이 없는 곳을 향해서 닦아야 하고, 찾을 것이 없는 곳을 향해서 찾아야 하고, 버릴 것이 없는 곳을 향해서 버릴 줄 알아야 해. 그 방법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이다. ‘이뭣고?’

물을 마실 때는 물을 마시되 ‘이뭣고?’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되 ‘이뭣고?’ 머리를 돌이켜서 다시 사량분별(思量分別)을 하지 말아라.
누기 짜서 사량분별을 하기 때문에 대면천리(對面千里)여. 그냥 거기에 있는데, 얼굴을 맞대고 있는데 천리만리(千里萬里)로 떨어져 버린 거여.

‘이뭣고?’ 다맛 알 수 없는 의심. 빨리 터지기를 바라지도 말고, 확철대오 하기를 바라지도 말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 하는 것뿐인 거여. 절대로 깨달을려고 하지 마라. 절대로 툭 터지기를 바라지도 말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난 그 생각을 버릴려고 하지 말고 그냥 ‘이뭣고?’
‘이뭣고~?’하고 있는 동안에도 별의별 생각이 일어나거든. 일어나거나 말거나 내버려 둬. 귓전에 바람 스쳐가듯이 내버려두고 ‘이뭣고?’만 챙기는 거여.
그렇게 해 나가면 앉아서도 ‘이뭣고?’요, 서서도 ‘이뭣고?’요, 밥을 먹을 때도 ‘이뭣고?’ 걸어갈 때도 ‘이뭣고?’ 소지할 때도 ‘이뭣고?’

‘정진(精進)이라고 하는 것은 안락지묘문(安樂之妙門)이다’ 그랬어. ‘안락의 묘문, 편안하고 즐거운 묘한 문이다’ 그랬어.
이것을 억지로 할라고 하니까 고행이고, 괴롭고 답답하고, 그래가지고 스트레스가 쌓여 가지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삭발일이다, 목욕일이다, 반산림이다 하면은 어디 등산이다, 어디로 왔다갔다 하고 싶고 나가고 싶고,

다못 올바르게 정진 할 줄 알면 자세를 바르게 갖고, 호흡을 바르게 하면서 화두를 여법하게 불급불완(不急不緩)하게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들 줄 알면, 생각이 일어나서 스쳐가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 있어?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나는 ‘이뭣고?’를 해.

죽비(竹篦) 치면 좌선하고 또 방선(放禪)하면 계속해서 앉았고 싶으면 앉았고, 밖에 나가서 바람 쏘이고 포행을 좀 하다가 또 들어와서 정진하고, 석 달이 하루같이 지나가는 거여.
보름 지나가면 못 견디고, 무슨 반산림이니까 등산을 해야 하고, 그건 공부를 제대로 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제대로 하는 법이 무엇이냐? 앉아서는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번뇌 일어나도 일어나거나 말거나 내버려두고, 그때마다 자꾸 화두를 챙겨서 알 수 없는 의단이 독로하도록만 잡드리 해 나가면,

밥 먹고, 양치질 하고, 화장실에 가고, 시간이 되면 취침을 하되 취침을 해도 가만히 일어나서 또 정진하고 싶으면 하고, 누워서도 잠이 언제 들 줄을 모르니까 (잠이) 들을 때까지는 화두를 들고 해서,
주삼야삼(晝三夜三)에 항상 의단이 독로하도록만 잡두리 해 나가면 그것이 그렇게 정진이란 것이 힘이 들고 애를 먹고 그런 것이 아니여.

이 세상에 깨닫고, 깨닫지 못한 것은 우리가 따질 필요가 없어.
‘불교는 깨닫는 가르침이다’ 그렇지만 원래 내 자신이 부처이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 단속만 할 줄 알면 그 자체가 바로 부처님인 거여.

‘확철대오(廓徹大悟)’ 우리는 너무 그 말을 많이 들어와 가지고 확철대오 하기를 항상 우리의 목표로 삼고,
그 10년 20년 되어도 확철대오를 못하면 허송세월을 한 걸로 생각하고, ‘괜히 이거 오평생(誤平生)을 한다’고 이렇게 한탄을 하게 되는데 절대로 확철대오 할라고 할 필요가 없어.
올바른 방법으로 화두를 거각하고 단속해 나가면 깨달을라고 할 필요가 없어.


십법계를 아까 말했지만 십법계가 ‘한 생각’ 일어나는 속에 잉태되어 있는 거여. 처음에 ‘한 생각’ 딱! 일으킬 때 십법계가 거기에 들어 있는 거여.

‘한 생각’을 좋은 생각을 먹으면 천당으로 가는 거고, 악한 생각을 일으키면은 지옥에 가는 거고, 탐심을 내면 축생이 되는 거고, 진심(瞋心)을 내면 바로 그 찰나에 그 독사도에 들어가는 건데,
일어나자마자 그 생각이 차츰차츰 발전을 해 가지고 결국은 그것이 십법계로 가게 되는데, 일어나자마자 바로 생각을 ‘이뭣고?’로 돌리면 윤회(輪廻)가 바로 거기서 찰나(剎那) 찰나에 끊어지는 거여.

참선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무슨 생각이든지 났다 하면은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가지고 거기서 싹이 터 가지고 잎이 피어서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 건데, 일어나자마자 즉각 ‘이뭣고?’로 돌리는 거여.
앉어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밥 먹을 때나, 그러니 그 처음 일어나는 ‘한 생각’이 활구참선을 한 사람과 안 한 사람과는 그렇게 다른 것이다 그말이여.

‘한 생각’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렇게 소중하고 그렇게 무서운 것이여.
그 ‘한 생각’을 단속할 줄 모르면 평생 동안을 불법(佛法)을 믿어도 헛믿는 거고, 평생 동안을 선방에 와서 앉았어도 참선 헛하는 거여.

이것이 머리를 돌이켜서 다시 사량을 하지 말아라.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단속을 해 버리면 공부가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복잡한 것도 아니여.

일어나는 한 생각을 그걸 단속을 못해 가지고 ‘망상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 번뇌 때문에 못한다’ 점점 한 생각 일어나는 놈을 점점 키워 가지고 자기가 그 생각에 구속을 당하고 그 생각에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처음~18분33초)


(2)------------------

정체종래절색공(正體從來絶色空)이라  멱즉지군불견종(覓則知君不見蹤)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묘봉정상일전신(妙峰頂上一轉身)하면  시방무처불봉거(十方無處不逢渠)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체종래절색공(正體從來絶色空)이여, 정체(正體), 바른 진리의 체는 본래로 색(色)과 공(空)이 끊어졌어. 시간과 공간이 끊어졌고 주관과 객관이 끊어진 것이여.
그래서 멱즉지군불견종(覓則知君不見蹤)이여. 시간과 공간이 끊어졌고 주관과 객관이 끊어졌고, 색공이 끊어진 그 자체를 우리가 중생의 사량분별로 찾는다고 하면은 도저히 그 자취도 볼 수가 없다.

색상이 있고, 시간과 공간과 주관과 객관, 그런 것이 있으면 우리가 찾아보면 ‘아! 이것이로구나’ 이렇게 알 수가 있고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이 끊어진 것을 그것을 분별심으로 찾는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볼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묘봉정상(妙峰頂上)에 일전신(一轉身)하면, 묘고봉(妙高峰), ‘묘(妙)하게 높은 봉우리’라는 것은 수미산(須彌山)을 말하는 것인데,

육욕천(六欲天) 가운데에 사왕천이 있고, 도리천이 있고, 제3 야마천, 제4 도솔천, 제5 낙변화천, 제6 타화자재천이 있는데, 두 번째 천(天)인 도리천(忉利天), 거기가 제석천왕(帝釋天王)이 있는 하늘인데, 그 도리(忉利)란 말은 33이란 말이여. 도리천에는 33천이 있어.
그런데 한 가운데에는 제석천왕이 살고 동서남북 사방에 각기 8천(八天)씩이 있어. 그래서 4x8=32에다가 중앙에 제석천이 있는 것까지 합하면 그래서 33천인데,

그 수미산 중턱에는 사왕천(四王天)이 있고, 수미산 꼭대기에 가서 도리천이 있다 그말이여.
그 수미산, 묘고봉 정상에서 ‘일전신(一轉身)을 해라. 한번 몸을 굴려라’ 그거거든.


우리가 참선을 하면 화두를 들고 또 들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어져.
밥을 먹어도 밥맛을 모르고, 산을 봐도 산이 보이지 않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 않어. 걸어가도 걸어간 줄 모르고, 일체처 일체시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돼. 알 수 없는 의단만 독로하도록 해 나가.

번뇌 망상도 버릴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일어나지를 않고, 그러한 경지에 결국은 들어가게 되는데 어떻게 편안하고 어떻게 고요하고 어떻게 깨끗하든지 화두를 들 생각까지도 없어져.
오히려 화두를 드는 것이 오히려 그 고요하고 깨끗하고 편안하고 맑은 경계가 흩어질까 봐 화두 들기조차도 아깝게 되는 거여. 이 대목이 정진하는 사람이 가장 주의해야 할 곳이다.

아무리 고요하고 깨끗하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화두에 대한 의단이 있어야지, 화두에 대한 의단이 없으면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져 가지고 공부를 올바르게 해 가는 것이 아니여.
설사 그 고요하고 깨끗한 경계에 정(定)에 들어가 가지고 몇 겁을 지난다 하더라도 바른 깨달음은 얻을 수가 없어. 설사 오신통(五神通)이 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바른 공부가 아니여, 바른 법이 아니다.

그런 경지에서 화두를 드는 것은 억지로 힘을 들이고 용을 써 가지고 드는 것이 아니여.
몸도 지극히 편한 자세로 힘을 다 빼고 긴장을 다 풀고, 앉았거나 섰거나 걸어가거나 일여(一如)한 가운데에 알 수 없는 의단만 성성하고 적적하게 화두만 들어가는 거여.

억지로 좌(坐)에 탐착(貪着)해 가지고 앉아 있을라고만 할 것도 없고, 앉아 있게 되면 앉아 있고, 일어서야 할 때가 되면 일어서고, 화장실에 갈 때는 화장실에 가고, 세수를 할 때는 세수를 하고, 이를 닦을 때는 이를 닦고,
대중이 같이 소지(掃地)를 하고 운력(運力)을 할 때는 운력을 하면서....

남하고 희희낙락(喜喜樂樂) 잡담하는 것은 절대 금물(禁物)이여. 잡담하고 그런데 끼어서는 안 돼.
다못 비질을 하면서도 그 정진이 여법하게 되어가도록 단속을 해 가는 것이여.

‘묘봉상에 몸을 한번 굴린다’하는 것은 공부를 해 나가다가 그러한 경지가 나타났을 때 그러한 것에 탐착을 하면 못쓰는 거여.

쪼끔 공부가 조용히 잘된다고 해서 그걸 탐착을 하고, 어떠한 자기가 정진해 나가는 데 가장 좋은 지경에 이르르면 그런 경지가 오래 흩어지지 않도록, 오래 그러한 경지에 있기를 바래서 거기에 집착을 하게 되거든.
세속에서도 사업이 잘되거나, 어떤 일이 자기 마음대로 되면 그것이 오래오래 그대로 잘되어 가게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거기에 집착을 하거든.

공부를 해 나가다가 보면 그렇게 순일하게 공부가 잘되어 가는 날이 있고, 또 화두가 암만 들어도 잘 들리지를 않고 자꾸 혼침이 오는 날이 있고, 자꾸 복잡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일어나 가지고 잘 안되는 날도 있고 그런데,

잘된다고 거기에 좋아하는 마음을 내는 것도 그것도 집착이고, 잘 안된다고 안절부절하고 짜증을 내고 번뇌심을 내는 것도 그것도 거기에 끄달린 것이라,
좋은 경지에 집착한 것이나, 안 좋은 경지에 집착한 것이나 집착은 매한가지여.

정진이라 하는 것은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날씨가 나쁘면 나쁜 대로, 그런대로 하루를 지내야지,
날씨가 좋다고 그 날은 좋아서 펄펄 뛰고,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고 해서 아침부터 기분이 나뻐 가지고 짜증을 내고, 그렇다면은 어떻게 사람이 제대로 생활을 할 수가 있냐 그말이여.

우리가 이 공부라 하는 것은 하루 이틀에 후닥닥 해치우고 말 일이 아니거든. 평생을 해야 하는 거고, 영원히 해야 하는 거고. 다맛 자기의 인연 따라서 정진하는 양상이 달라질 수는 있어.

성문(聲聞)은 성문으로서, 연각(緣覺)은 연각으로서, 보살(菩薩)은 보살로서 또 부처님은 부처님으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책무라고 할까, 주어진 일에 따라서 도 닦아 가는 형태는 다를지언정 우리의 공부는 우리의 정진은 영원히 해야 하는 거다 그말이여.

그래서 조금도 조급한 생각을 낼 필요가 없고, 좀 잘 안된다고 해서 짜증을 낼 것도 없고, 잘된다고 해서 그렇게 좋아할 것도 없어. 조급한 생각도 낼 필요가 없지만 잠시도 해태(懈怠)할 수가 없는 일이다.

처음에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부처를 찾지 말아라. 번뇌가 바로 보리이기 때문에 번뇌를 버릴려고 하지 말아라”하는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수미산 꼭대기에서 한바탕 몸을 뒤치라’고 하는 뜻을 우리는 잘 귀담아 듣고 명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수미산 꼭대기에서 한 번 몸을 굴리면 시방무처불봉거(十方無處不逢渠)다. 시방세계 어디에나 그대를 만나지 아니한 곳이 없으리라.


‘공부가 잘 안된다, 암만 공부를 해도 진보가 없다’ 공부 할려고 애쓴 사람은 다 그러한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지난 법회 때 조실 스님께서 “공부가 잘 안되는 것은 신심(信心)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말씀하셨는데, 그 신심이라는 게 3가지 신심과 3가지 불신심이 있는데,

첫째 신심이 순일(純一)하지를 못해. ‘신심이 순일하지 못하다’는 것은 있다가 없다가 하는 거여.
한결같아야 하는데, 있다가 없다, 때로는 있다가, 때로는 없다가, 화두를 드는 사람이 때로는 화두를 들다가 어떤 경계를 만나면은 화두가 없어져 버려. ‘있다 없다’하는 것은 그것이 신심이 순일하지 못한 것이여.

둘째는 신심이 불일(不一)이여. 한결같지 않다 그말이여. ‘한결같지 않다’고 하는 것은 결정적인 신심이 없기 때문에 한결같지 못하는 거여.

이렇게 좀 해 볼까, 저렇게 좀 해 볼까?
신도님들도 ‘금강경이 좋다’하니까 금강경 좀 해 보다, ‘옴마니반메훔이 좋다’하면 옴마니반메훔 좀 해 보고, ‘원각경이 좋다’하니까 원각경을 좀 해 볼까? 한결같지를 못하고 이랬다저랬다.
‘이뭣고?’하다가, ‘판치생모’했다가, ‘정전백수자’를 했다가, ‘조주 무자’를 했다가, 이것도 해 보다 안되면 저거 해 보고, 저것도 해 보다 안되면 이거 해 보고.

안될수록에 한결같이, 한번 화두를 탔으면 잘되어도 한결같이 그 화두를 해 가고, 안되더라도 계속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면서 한 화두를 가지고 해 나가다 보면 또 잘되는 것이고,
잘되어 가다가도 뚝 변해 갖고 또 안돼. 안되더라도 짜증을 내지 말고 또 정신을 가다듬고 계속 한결같이 해 가야 하는 거여.

그래서 태산(泰山)과 같은 그런 무거운 묵직한 그러한 신심이라야지, 쪼끔 잘된다고 그저 좋아서 못 견디고, 조금 안된다고 해서 또 번뇌심을 내 가지고 안절부절 하고, 그래서는 안돼.
안된다고 해서 화두를 바꾸고, 무엇이 잘 안된다고 해서 이리저리 변경을 해서는 안된다.

셋째는 신심이 불상속(不相續)이여. 계속해서 해 가야 하는데 이어가지를 못해. 저절로 순일하게 이어지기를 바라지만 무엇이 그렇게 처음부터서 그렇게 될 것이냐 그말이여.
안되지마는, 번뇌가 나고 망상이 일어나고, 때로는 몸이 상태가 안 좋고, 소화가 안되고 머리가 아프고, 이리저리 수없는 크고 작은 문제점이 있을 수가 있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그럴수록에 계속... 화두가 없어지면 또 챙기고, 없어지면 또 챙기고, 그렇게 한결같이 그렇게 상속(相續)이 되도록 노력을 하면 신심이 결국은 한결같이 되고, 신심이 순일하게 되는 것이여.

여기서 신심(信心)이라고 하는 말을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의단(疑團)이라고 바꾸어서 생각을 해 보면 대번에 이해가 되는 것이여.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결같지 못하고, 한결같지 못하기 때문에 상속이 안되고,
상속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결같지 못하고, 한결같지 못하기 때문에 순수하지 못하고, 꺼꿀로 붙이나 옳게 붙이나 마찬가지여.
왜 그러냐 하면은 부득이 해서 3가지로 분류를 했지만 원래가 하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이것 밖에는, 이 길 밖에는 내가 할 일은 없다’
‘안되어도 이렇게 해 나가야 하고, 되어도 이렇게 해 나가야 하고, 죽어도 이것을 해야 하고, 죽을 때까지 해야 하고, 죽은 뒤에 다시 몸을 바꿔서라도 나는 이 길 하나 밖에는 없다’고 하는 철두철미(徹頭徹尾)한 신심,
첫째 그것이 있어야 정진이 안되어도 안되는 대로 밀고 나갈 수가 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중단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생각 자체가 결정적인 신심, 최상승법에 대한 결정적인 신심이 없고서는 이 공부는 중도(中途)에 그만 두지 않기가 어려운 일이다.
이 공부는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것이지만 결정적인 신심, 그것이 철저하지 못하면 안 된다.(18분34초~39분3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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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여군동보우동행~’ ; [금강경오가해]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야부도천(冶父道川) 게송 참고.
*겁(劫) ; (산) kalpa의 음사.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긴 시간.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〇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〇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십법계(十法界) ; 십계(十界)라고도 한다. 십법계는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 성문, 연각, 보살, 불(佛) 10가지로 중생의 미혹과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분류한 것. 중생의 심리적 상태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십법계 중 앞의 6계는 삼악도(三惡道-지옥, 아귀, 축생)와 삼선도(三善道-수라, 인간, 천상)로 모두 미혹의 세계인 범부(凡夫)의 세계이다. 뒤의 4계(성문, 연각, 보살, 불)는 깨달음의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모두 깨달음의 세계인 성인(聖人)의 세계이다.
양쪽을 합하여 '6범4성'(六凡四聖)이라 한다. 이를 4취(四趣)·인천(人天)·2승(二乘)·보살·불(佛)로 분류하거나 3악도(三惡道)·3선도·2승·보살·불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앞의 6계는 고통으로 가득 차 업에 의해 윤회전생하는 세계이므로 보통 '육도윤회(六道輪廻)'라 한다.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 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보리(菩提) : [범] bodhi  도(道) • 지(智) • 각(覺)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를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ㄷ —> ㄹ) 「보리」로 읽는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대면천리(對面千里) ; 얼굴을 맞대도 천리 같이 매우 멀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 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별의별(別의別) ; 보통과는 다른 갖가지의.
*정진(精進) : [범]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불급불완(不急不緩) ; 급하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죽비(竹篦 대나무 죽, 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주삼야삼(晝三夜三) ; 밤낮. 밤이나 낮이나.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오평생(誤平生 그릇할·잘못 오/평평할 평/살 생) ; 평생을 그르침.
*윤회(輪廻) : 세상의 온갖 물질과 모든 세력(勢力)은 어느 것이나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오직 인과(因果)의 법칙(法則)에 따라 서로 연쇄 관계(連鎖關係)를 지어 가면서 변하여 갈 뿐이다.
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물•수증기•••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업식(業識)도 육체가 분해될 때에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중생들은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므로, 쉴 새 없이 번민과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육신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을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천상 또는 다시 인간으로 수레 바퀴 돌듯 돌아다니게 된다.
그러나 성품을 깨쳐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가 없게 되면 윤회는 끊어지는 것이다.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②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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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정체종래절색공~’ ; [금강경오가해] 離色離相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참고.
*수미산(須彌山) ; 수미(須彌)는 ‘sumeru’의 음역. 묘고산(妙高山)이라 한역함.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
*육욕천(六欲天) ; 욕계육천(欲界六天). 육천(六天). 아직 도덕적으로 불완전하며 욕망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였으므로 육욕천(六欲天)이라 한다.
삼계(三界, 일체 중생이 생사윤회하는 3가지 세계로 욕계·색계·무색계) 가운데에 욕계(欲界, 식욕食欲·수면욕睡眠欲·음욕淫欲이 있는 세계)에 딸린 여섯 종의 하늘을 말한다.
곧 사왕천(四王天)·도리천(忉利天)·야마천(夜摩天)·도솔천(兜率天)·화락천(化樂天)·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다.
이 6천 가운데에서 사왕천은 수미산(須彌山) 허리에 있고, 도리천은 수미산 정상에 있으므로 지거천(地居天)이라 한다. 야마천·도솔천·화락천·타화자재천은 다 허공(虛空)에 있으므로 공거천(空居天)이라 한다.
욕계(欲界)는 식욕(食欲)·수면욕(睡眠欲)·음욕(淫欲)이 있는 세계로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 등 5가지와 사왕천·도리천·야마천·도솔천·화락천·타화자재천 등 육욕천이 여기에 속한다.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 지키는 수호신. [天神]들의 제왕[] 샤크라〔釋〕라는 .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 ()씨이며 ()이라 한역하고, ‘제바 ()’이라 한역하며, ‘인달라 ()’ 한역하니  능천제(能天帝)’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32() 통솔하면서 불법(佛法)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  손에 금강저(金剛杵)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오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능력.
②천안통(天眼通)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볼 수 있는 능력.
③천이통(天耳通)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
④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 속을 아는 능력.
⑤숙명통(宿命通)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능력.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선가귀감](용화선원) p94-95 참조.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탐착(貪着) ; 만족할 줄 모르고 사물에 더욱 집착함.
*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울력'과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소지(掃地) ; ①마당(땅)을 쓸다. ②청소.
*희희낙락(喜喜樂樂) ; 매우 기뻐하고 즐거워함.
*금물(禁物) ; 해서는 안 되는 일.
*매한가지 ; 아주 같은 상태. 또는 완전히 같은 상태.
*성문(聲聞) : 부처님의 음성(聲)을 들은(聞) 사람이라는 뜻. 산스크리트어 śrāvaka, 팔리어 sāvaka.
모든 중생을 널리 다 건지겠다는 큰 원을 세우지 않고, 자기의 공부만을 힘쓰는 가운데 부처님이나 다른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소승의 사제법(四諦法)을 깨쳐서 번뇌 망상을 끊고, 나(我)가 없어져서 열반에 들게는 되지마는, 그 열반은 얕고 작은 ‘나머지 있는 열반(有餘涅槃)’ 곧 '아직 덜된 열반에 들어 있는 이'를 이름이다.
*연각(緣覺) ; 산스크리트어 pratyeka-buddha  팔리어 pacce ka-buddha
①홀로 연기(緣起)의 이치를 관찰하여 깨달은 자.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깨달은 자. 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홀로 수행하는 자. 독각(獨覺)·벽지불(辟支佛)이라고도 함.
② 연각승(緣覺乘)의 준말.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각유정(覺有情) • 개사(開士) • 대사(大士)등으로 번역.
①성불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
②대승교에 귀의, 사홍서원을 발하여 육바라밀을 수행하며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자리 • 이타(自利 • 利他)의 행을 닦으며 51위의 수행계단을 지나 드디어 불과(佛果)를 증득하는 이.
*해태(懈怠 게으를 해, 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태산(泰山 클 태/메 산) ; 퍽 높고 큰 산.
*꺼꿀로 ; ‘거꾸로(차례나 방향 따위가 반대로 바뀌어)’의 사투리.
*철두철미(徹頭徹尾) ;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고 철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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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발심,자신(自信)2014.05.24 18:12

§(세등58) 생사가 한 호흡지간에 있다 / 우리는 사형(死刑) 언도 받은 몸 / 자포자기(自暴自棄)는 가장 큰 죄 / 당장 여기서부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갖고 정진해야.

사형언도(死刑言渡) 받은-금방 곧 몇 분 후에 사형을 집행받을 죄수와 같은 그런 마음인데....
적적하고 성성하고 맑고 고요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있어야 돼.
전체적으로 결제허는 속에서 다시 또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서, 자기의 결제가 새로 있어야 되거든.
자포자기(自暴自棄)를 헌 것만큼 큰 죄는 없는 것입니다.
사바라이(四波羅夷) 죄를 범허면 불통참회(不通懺悔)라고 그러는데, ‘나는 틀렸어’ ‘나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통참회 커녕은 이건 스스로 자기의 보리종자(菩提種子)를 끊어버리는 것이라, 이 죄(罪)야말로 살불살조(殺佛殺祖)하고 부모를 죽이는 죄보다도 더 큰 죄라고 허는 것을 여러분은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유·무식(有·無識)도 상관이 없고, 남녀노소도 상관이 없어. 당장 이 자리에서부터서 자기도 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고 긍지를 가지고 정진을 허셔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58) - 을축년 동안거 해제 법어(86.01.17)에서.


약 15분.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고 하는 사실만 명심한다면 눈을 감으나 뜨나, 밥을 먹으나, 똥을 누나, 입선(入禪)을 허거나 방선(放禪)을 허거나, 산철이거나 결제거나 전혀 그런 것이 상관이 있을 수가 없어.

원래 결제(結制)라 하는 것은 인도 지방에 비가 많이 오는 계절에 숲속에서 정진헐 수가 없고, 행각(行脚)도 헐 수가 없으니까, 그 비를 피하기 위해서 결제를 허게 되얐든 것입니다.
결제중이라고 해서 공부를 더하고, 산철이라고 해서 비가 안 오는 때라고 해서 공부를 덜허고 그런 것이 아녀요.

겨울에는 워낙 추워서 행각을 못하고, 여름에는 또 너무 더워서 행각을 못하니까, 우리나라는 여름 석 달, 겨울 석 달을 안거 기간을 결제를 허고,
요새는 또 산철 결제라 해서 또 중간에 2달씩을 이렇게 하고 대단히 좋은 현상입니다마는, 그런 것도 우리가 공부하는데 도움은 되겠으나, 실지로 발심(發心)해서 공부하는 분상(分上)에는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 있읍니까.

대중 따라서 결제허게 되면 허고, 대중 따라서 해제 허기는 허겠지만, 각자 개인의 마음에는 언제나 결제고, 언제나 입선(入禪)이여.
누구를 위해서 정진을 헌 것도 아니고, 누구 보라고 헌 것도 아니여. ‘아! 저이 참 정진 잘한다’ 그따위 소리 들을라고 우리가 정진하겠습니까?

전혀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이 눈에 보일 수가 없고, 여러 대중 속에 살면서도 여러 사람이 보이지를 않어.

언제나 자기와 죽음과 맞대결이여.
사형언도(死刑言渡) 받은-금방 곧 몇 분 후에 사형을 집행받을 죄수와 같은 그런 마음인데,
무슨 놈의 결제·해제가 거기 문제가 되며, 뭐 수용이 좋고 나쁜 것이 상관이 있으며, 다른 사람 정진 잘허고 못 헌 것이 상관이 있으며, 분위기가 조용하고 시끄러운 것이 무슨 상관이 있어. 곧 앞으로 몇 분 후에 사형받을 사람이.

해제를 맞이해서 앞으로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해 나간다면 우리에게는 불일성지(不日成之)입니다.
반드시 확철대오(廓徹大悟)는 그 사람에게 멀지 않는 시일에 그 사람은 약속이 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한 생각, 아까 조실스님 법문 속에도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이 그것이 태어난 것이고 생(生)이고, 한 생각 꺼진 것이 그것이 죽음이다. 그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그것이 생사(生死)인데, 우리는 하루 동안에도 수없는 생사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속에도 미세하게 따지자면 구백생멸(九百生滅)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 한 생각 속에 구백생멸이면은 하루 동안에는 천문학적 숫자의 생사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전기가 딱 켜면은 계속해서 환히 밝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계속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켜졌다 한 것이 워낙 빨리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에 계속 켜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와 마찬가진 것입니다.

그 삼세육추(三細六麤)의 그 기멸심(起滅心), 그 생사심이 일어나고 있는 바로 거기에서 화두를 잡드리 해 가는 것이 우리의 정진입니다.
잊어버렸다하면 또 챙기고, 잊어버렸다하면 또 챙기고,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사형언도를 받은 곧 몇 분 후에면 죽을 그 죄수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 한 생각 골똘하므로 인해서 몇 분 후에 사형받을 것도 하나도 두려울 생각이 없어. 목을 쳐죽이거나, 목매를 달아서 죽이거나, 총을 쏴서 죽이거나 전혀 그런 것에 두려운 생각도 없고, 아무 관심이 없어.

다못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그렇게 되어 버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말이여.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허면은 거기에는 망상(妄想)도 끼여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망상도 끼여들지 못할 때에 그것을 적(寂)이라 그러는데, 적적(寂寂)허다. 적멸(寂滅)이라.
적적허다고 그 ‘고요 적(寂)’자를 쓰는데, 그 적적하면 너무나 적적하고 고요하고 깨끗해서 그 경계를 말로서 표현할 수가 없어.
그 경계를 맛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 적적하고 깨끗하고 그 경지에서 너무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고 허다 보니까, 그 맑고 깨끗하고 고요한 경계에서 자칫하면 화두를 망각하기가 쉬우니라.

그러한 경계에서 화두를 들면 오히려 화두를 듦으로 해서 그 고요하고 성성(惺惺)한 경계가 깨질까 두려워서, 화두도 들고 싶은 생각이 없는 수가 있습니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되는 거여.

적적하고 성성하고 맑고 고요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있어야 돼.

그때는 ‘어떻게 화두를 드냐?’하면,
‘이뭐꼬?’‘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막 어거지로 힘을 써 가지고 막 그렇게 드는 것이 아녀.

「알 수 없는 의단」이 있으면 그 의단(疑團)만을 떠억 관(觀) 헐 뿐이지, 자꾸 뭐 ‘이뭣고, 이뭣고?’해 가지고는 그렇게 우악스럽게 그 화두를 드는 것이 아녀.

성성(惺惺)한 가운데 적적(寂寂)하고, 그 적적하고 성성한 가운데 의단이 성성허게-그 고요한 호수에 달이 비추듯이 그렇게 화두가 성성하고 적적하게 의단이 타악 현전(現前)해야 하거든.

그렇게 되면 옆에서 떠들어도 상관이 없고, 밥을 먹어도 고대로 있고, 똥을 눠도 그 화두가 고대로 있고, 어딜 걸어가도 고대로 있고, 울력을 해도 고대로 있고,
뭣헌 이는 옆에서 떠들면 화두가 없어져 버린다고 하는데, 그 아직 덜된 거여. 아직 그것은.

옆에서 떠들어도 상관이 없고, 잡담을 해도 소용없고, 자기는 자기거든. 그렇게 되도록-그건 애를 쓰는 데에서 그렇게 되는 것이지, 그럭저럭 지내는 데에는 생전 해봤자 그렇게는 안되는 것이여.
정말 전체적으로 결제를 허지마는, 전체적으로 결제허는 속에서 다시 또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서, 자기의 결제가 새로 있어야 되거든. 그렇게 잡두리 해 나가는데...

그런 생각도 못쓰는 거여. 깨닫기를 기다리지도 말고, 누가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래지도 말고, 다못 그 성성적적한 가운데에 의단만이 독로(獨露)허도록,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도록만 그렇게 단속을 해 나가면,
일주일을 넘지 못해서 귀로 들리는 어떠헌 소리나, 눈에 들어오는 어떠헌 경계나, 스스로 무슨 발을 잘못 디디거나, 또는 자다가 벼개에서 뚝 떨어지거나, 그러헌 특수한 그런 사건을 만나면 통 밑구녁이 빠지듯이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헌 경계가 나타나면 반드시 그때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점검을 맡어 가지고, 그것이 잘못 되았다 하면 다시 새로 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른 경계면 공안에 맥힘이 없어야 하고.
천칠백 공안에 선지식과 탁마(琢磨)를 해서 맥힘이 없으면 다시 진짜 그때부터서 정진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산중에 들어가서 정말 오후(悟後)에 보림(保任)을 철저하게, 몇백 배 철저하게 정진을 해서 다생 습기(習氣)를 다 소멸하고 그때 가서 경(經)도 사교(四敎)·대교(大敎)를 다 보고, 심지어 유도백가제서(儒道百家諸書)까지 다 간과(看過)를 헌 다음에, 그때 비로소 중생 교화를 허러 나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수한 사람만이 그렇게 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누구라도 정말 ‘죽을 사(死)’자를 써 가지고 바른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여법(如法)히 수행한다면, 누구라도 이렇게 될 수 있는 자격과 가능성을 우리가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성현(聖賢)이나 허지. 특수한 상근대지(上根大智)나 허지’
다른 사람한테 미루고 자기는 이미 될 수 없는 그러헌 존재다. 나는 도(道)는 금생에 못 닦을 사람이다.

자포자기(自暴自棄)를 헌 것만큼 큰 죄는 없는 것입니다.
사바라이(四波羅夷) 죄를 범허면 불통참회(不通懺悔)라고 그러는데, ‘나는 틀렸어’ ‘나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통참회 커녕은 이건 스스로 자기의 보리종자(菩提種子)를 끊어버리는 것이라,
이 죄(罪)야말로 살불살조(殺佛殺祖)하고 부모를 죽이는 죄보다도 더 큰 죄라고 허는 것을 여러분은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유·무식(有·無識)도 상관이 없고, 남녀노소도 상관이 없어.
당장 이 자리에서부터서 자기도 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고 긍지를 가지고 정진을 허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는 우리 사부대중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우주법계의 모든 유주무주(有主無主) 영가(靈駕)들도 다 거량(擧揚)을 통해서 이 법석에 초청이 되야서 참석을 허셨습니다.

특히 경주 김씨 동운 영가도 오늘 이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과 산승의 설을 잘 들었을 줄 생각합니다.
일생 동안 또는 무량겁 동안 지은 모든 죄업이 봄눈 녹듯이 다 녹았을 것이며, 얼키고설킨 다생에 원한이라든지 모든 업연도 봄눈 녹듯이 다 녹아서, 그 동안에 49재를 지내서 다 잘 천도가 되셨을 줄 생각합니다만, 또 산승과 인연이 있어서 이 법석에 참석을 허시게 되았습니다.

미진한데가 있다 하드라도 모든 것을 다 털어 버리고, 어서 바삐 새 몸을 받아 가지고, 우리와 같이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도를 닦아서 확철대오를 해서 무량중생을 제도(濟度)하게 되기를 바랍니다.(37분55초~52분3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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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행각(行脚) ; 스님이 일정한 거처를 가지지 않고, 스승의 밑을 떠나 참선의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지식이나 좋은 벗을 구해 마치 떠도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처럼 여러곳을 편력하는 것. 운수(雲水)와 같은 의미.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공부하는 분상에는 ---> 공부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언도(言渡) ; 선고(宣告). 법정에서 판사가 판결의 결과를 알리는 일. 이로써 재판의 효력이 생김.
*불일성지(不日成之) ; 며칠 안 가서 이룬다(성취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삼세육추(三細六麤) ; [대승기신론]에서 말하는 근본무명(根本無明)의 3상(相)과 지말무명(枝末無明)의 6상(相)을 말함. 3세(細)란 그 상(相)의 작용이 미세하므로 세(細)라 하고, 6추(麤)는 거칠고 엉성하기 때문에 추(麤)라 함.
*기멸(起滅) ; 생(生)하고 멸(滅)하는 것. 생겨남과 없어짐. 즉 인연이 화합하면 생하고, 인연이 이산(離散)하면 멸한다는 뜻.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 ‘이뭣고?’ / ‘판치생모(板齒生毛) /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무(無)자’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울력 ; 함께 힘 모아 일하는 것,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그러나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로 운력(運力)이라고도 한다. 의미와 관계없이 '울력'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자가철주(自家鐵柱) ; 자기 스스로 정한 규칙을 쇠기둥(鐵柱)을 세워 놓은 것과 같이, 움직임없이 지켜나감을 이르는 말.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때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탁마(琢磨)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노력하는 것.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습기(習氣) ; 과거의 인식•행위•경험•학습 등이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사교(四敎) ; 조선 중기 이후, 우리나라 스님들이 불경이나 그에 대한 논설 따위를 강론하고 학습하는 곳인 강원(講院)에서 배우는 중급 과정의 네 과목. 곧 《능엄경(楞嚴經)》, 《기신론(起信論)》, 《금강경(金剛經)》, 《원각경(圓覺經)》을 이른다.
*대교(大敎) ; 석가모니가 도를 이룬 뒤 맨 처음 설법한 내용을 담은 경전인 화엄경(華嚴經)을 말한다. 정식 명칭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다.
*유도백가제서(儒道百家諸書) ; 유교, 도교와 여러 학자의 모든 서적.
*간과(看過) ; 큰 관심 없이 대강 보아 넘김.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성현(聖賢) ; 성인과 현인을 아울러 이르는 말.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큰 사람.
*자포자기(自暴自棄) ; 절망 상태에 빠져 스스로 자신을 내버리고 돌보지 않음.
*사바라이(四波羅夷) ; 사중금계(四重禁戒), 사중금(四重禁), 사중(四重).
(1)승단에서 추방되어 비구의 자격이 상실되는 네 가지 가장 무거운 죄.
①사람을 죽임(살생 殺生). ②도둑질함(투도 偸盜). ③음란한 짓을 함(사음 邪淫). ④깨닫지 못하고서 깨달았다고 거짓말함(망어 妄語).
(2)밀교에서 가장 무거운 죄.
①바른 가르침을 버림. ②보리심(菩提心)을 버림. ③가르침을 베푸는 데 인색함. ④중생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행위를 함.
*보리(菩提) ; 불교 최고의 이상(理想)인 불타 정각(佛陀正覺)의 지혜. 올바른 깨달음으로 모든 것의 참된 모습을 깨닫는, 부처의 지혜를 뜻한다. 산스크리트 어 ‘Bodhi’의 한자 음역어이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거량(擧揚) ; ①설법할 때에,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부르는 일. ②화두, 공안(公案)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불교의 진수(眞髓)를 말하는 것. 불법을 선양하여 사람을 인도하는 것.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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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무상(無常)2014.03.14 20:29

 § 이 공부를 헐라면 무상(無常)을 철저히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 무명(無明), 삼독, 오욕락.
**송담스님(참선법C)(No.184)-1982년 10월 첫째일요법회(1982.10.03)(77분)에서.


 약 12분.



첫째, 이 공부를 헐라면 무상(無常)을 철저히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무상이라 하는 것은 ‘덧없다’ 이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영원성이 없어. 잠시도 고대로 있는 것이 없고, 시시각각으로 변해 가지고 결국은 없어져.

우리 눈에 태양은 언제나 한결같이 빛나고 있는 것 같지만 몇억 년 몇억만 년이 지내면은 저 태양도 언젠가는 불이 꺼질 때가 오는 것입니다. 원자현미경 같은 것으로 관찰을 허면 매일 같이 태양의 모양이 변해가고 있는 것을 과학자들은 다 보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저런 태양 뿐만이 아니라 하늘에 번쩍이는 저 수많은 별들, 달, 이 지구도 시시각각으로 변해가고 있고, 더군다나 우리의 몸뚱이도 해마다 어린애는 자라고, 자란 사람은 또 늙어가고 이것이 바로 무상한 증거인 것입니다.
하루하루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죽음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고 표현을 헐 수도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