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강선사 일대기2017. 11. 2. 08:14

 

 

•§• 전강선사 일대기(田岡禪師 一代記) (제2호) 곡성 동리산 대오, 혜봉스님과 법거량.

**전강선사(No.005)—전강선사 일대기 제2호(경술1970년 11월 21일.음)

(1/4) 약 20분.

 

(2/4) 약 17분.

 

(3/4) 약 16분.

 

(4/4) 약 14분.


(1/4)----------------

나를 좀 모두 쳐다 봐.

왜 우리 부처님께서 정각(正覺)을 이루서, 시성정각(始成正覺) 허셔 가지고는 영산회상(靈山會上)에 오셔서 설법하실 적에 왜 이랬어? 첫번이야. 처음, 왜 이래.

이게 삼세제불(三世諸佛)의 면목(面目)이고,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의 본 생명이고,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명근(命根)이고, 금일 대중의 생명, 전 생명, 근본 몸뚱이, 본래 몸뚱아리여.

그러기에 이놈이, 이 주장자(拄杖子)가 뭐 주장자만 되나?
천하에 다 붙여봐. 천하에 명상(名相) 있는 대로 다 붙여봐. 그대로요. 다 붙지.

허공도 여가(여기에) 붙고, 대지도 여가 붙고, 삼라만상도 붙고, 제불열반처(諸佛涅槃處)도 붙고, 제불출신처(諸佛出身處)도 붙고, 최초구(最初句)도 붙고, 말후구(末後句)도 붙고.
뭣이 제일구(第一句)도, 제이구(第二句)도, 제삼구(第三句)도 여가 갖춰져 있고. 그렇지 않아?

그런데, 여의고 보라 그말이여. 여의여 봐.
주장자도 이놈 한번 여의여 보고, 다 붙어 있는 허공대지도 여의여 보고, 일체 삼세제불 역대조사도 여의여 보고, 다 한번 여의여 봐라. 거가 뭣이 붙어 있나?

그러면 한번 그놈 여의고 일러 보라 그말이여. 일러 볼 수가 있지.
못 일러? 언하(言下)에 이를지언, 언하에 이를지언정 못 일러?

불 좀 꺼, 인자. 열이 딱 찼으니까.

기본축말(棄本逐末)을 말고 한번 일러 봐. 이렇게 해도 못 일러?


고와한단침(高臥邯鄲枕)이요  주류만년성(周流萬年城)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고와한단침(高臥邯鄲枕)하고 주류만년성(周流萬年城)이로구나. 무슨 말인고 허니.
고와한단침(高臥邯鄲枕)이다. 높이 누워서, 높이 누웠다. ‘높이 누웠다’는 것은 한량없이 고귀헌 지위, 높고 저 높은 부귀영화. 거, 임금님이던지 호걸 부귀 모도 그 고와(高臥), 높이 누워서 잠자는 것이 오직 좋은가. 편안허니 잠잔다. 한단침(邯鄲枕) 베고, 좋은 단침을 베고 잠을 자고 있다.

아주 한량없이 즐거운 낙 받고 부부지간의 좋은 단침, 한단침을 베고 푸근허니 잠자고 좋은 아들 낳고, 그 옥식금의(玉食錦衣) 속에서 이렇게 산다.

한번 그렇게 산다마는 주류만년성(周流萬年城)이니라. 사방 성(城)은 한량도 없이 높이 싸여 있는 그런 놈의 철위산(鐵圍山) 속에, 악도 지옥 속에 나올래야 나올 수 없는 성 속으로 들어가서 만년 죄고(罪苦)를 받니라.
그 한단침 베고 그 속에서 좀 잠깐 좀 살다 보니 맨 시은(施恩)과 악업(惡業)만 짓고 죄업만 지었느니라.

가는 곳이 어디냐? 그놈의 만년 성 속에 떨어져 들어가서—그 만년이지, 이름이 만년(萬年)이지, 만년인가?
만년 지내면 또 만년이 오고, 또 만년 지내면 또 뒷 만년이 있는데. 만년만 지내고 나오면사 좋게.

잠깐 한평생, 이놈의 평생, 인생 평생이라는 게 거그서 잠깐 동안 한단침 베고 내외, 그 자식 낳고 고것이 악연이여, 숭악한 악연(惡緣)이여.

그 진로(塵勞) 속에서 그 형탈(逈脫)치 못한 이 숭악한 사대색신(四大色身) 사대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인디. 사대 몸뚱이 고놈이 사사(四蛇)여. 독사 네 마리여.
눈으로 보고 모두 색별(色別)을 내서 욕심 · 탐심을 눈으로 보고 턱 모도 거두어들이고 죄업 짓고, 그놈의 뱀이 독사란 놈이 보면 잡아, 팔딱만 뛰어도 잡아먹을라는 마음뿐이다.

이 몸뚱이도 역시 그러허다. 눈으로는 봐서 도둑해 오고, 이놈 몸뚱이로는 가서 몸뚱이로 집어 오고, 욕심 내고 아! 이거, 이뿐이야.

이렇게 잠깐 나와서 악업 속에서 죄업만 지어서 저 만년 성 속에 들어가서 이런 죄고 받는 것만 중생이란 것은 있느니라. 생각해 보아라.


체연개일몽(遞然開一夢)허라  잔월반루명(殘月半樓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체연개일몽(遞然開一夢)하라. 참으로 출가한 학자들이여. 향당(鄕黨)도 여의고, 어머니 아버지도 여의고, 장가들지 않고 척! 한번 끊어 버리고 과연 단신으로 이렇게 척 나와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가지고 도를 닦는 학자들이여.
학자들아, 한번 꼭 이 꿈을 깨라. 이 인생몽(人生夢)을 한번 깨라. 왜 이렇게 깨지 못하느냐?

한번 깨버리면은 본각명(本覺明)이리라. 네 본래면목 해탈광(解脫光)이 그대로 밝아 버리리라.
거가서 뭣이 있겠나. 무슨 생사가 있으며 무슨 만년성이 왜 네 몸뚱이를 얽어 집어넣겠느냐. 왜 염라대왕이 너를 처박어 넣겠느냐. 무슨 죄업이 너한테 있느냐.

깨달라라.
이만큼 홀몸이 되고, 단신(單身) 몸이 되고 그렇게 깨끗한 몸이 되아 가지고 도를 닦으러 들어와서 한바탕 못 닦는다는 말이냐?


금강산에 계시는 추천원 스님이, 추천원 스님이 곡성 동리산(桐裏山)에서 여름 산림을 허고는 해제 후에 곡성 그 태안사(泰安寺) 뒷산을 넘어오는데 산말랭이를 척 넘어오니까, 그 산말랭이가 별로 높지도 않거든. 넘어오니깐 큰 대호(大虎)란 놈이—비린내가 산에 올라오니 왈칵 난다 그말이여.

또 오늘 아침 법문도 또 그저 이렇게 상하(上下)도 없고 아무때나 또 나온 대로 헌다 그말이여.
뭣을 생각해 놨자 법문이 생각헌 대로 안 나와. 늙은 연고인지 웬 연고인지 이렇게 잘 나오들 않으니깐 나온 대로 허는 거여.

재를 넘어오니깐 비린내가 왈칵 나.
아이고, 웬 냄새가 이렇게 나는고 싶어서 아! 이래 사방을 살펴보니까 호랭이란 놈이 큰 황소만헌 놈이 누워서 자빠져 자.
아, 저런 큰 놈이 어째 저렇게 누워 자빠져 자는고 싶어서 그 옆에를 가만히 보니까 사람을 하나 잡아 다가서 다 먹어 버리고 머리빡하고, 손허고 다리허고 사족(四足)만 남겨 놓고는, 머리허고 그것만 냉겨 놓고는 다 먹어 버리고는 똥창사 냉겨 놓고는 그 잔다 그말이여.

그래 가만히 그걸 보니 참 무서운 것도 없고—추천원 스님이라고 도를 여간 닦은 이고 몸이 그렇게 큰 어른이고, 대단히 보통 담대허도 않고.
설사 도를 닦아서 어떠헌 무외(無畏), 무포외(無怖畏) 지경에 갔닥 하드래도, 포외(怖畏) 없는 지경에 갔닥 하드래도 그런 걸 보면은 포외심이 나고 안되는 것이제.

허지마는 그 어른은 무슨 뭐 대오 확철대오 해서 무외를 증하도 못한 이지마는 그만큼 담대하고, 그까짓 그런 것을 보기를 뭐 그저 보통으로 보고 이런 인데.

아! 가서 그걸 보니 그 시체가 처녀여. 하도 얼굴은 깨끗하게 예쁜 처녀인디 머리채를 가조런히 딴 머리채 그대로 있고, 손도 깨끗허니 해가지고 발도 깨끗허니 딱 두고는 이놈이 먹었다 그말이여.
아, 그것을 보니 어떻게 그만 괘씸허고, 그놈을 그냥 그 당장에서 뭣이라도 있으면 때려 모가지를 찔러 패서 죽여 버리고 싶다 그말이여. 저런 악한 놈이 저런 짓을 했으니.

그러지마는 뭐 손에 쥔 것도 없지마는, 그런 큰 대호 무지한 놈을 함부로 건드렸다가 그놈한테 상헐 것이고.
멀찌맥이 나와서 서서, 높은 데 서서—호랭이는 저 높은 디를 무서워 혀. 저보다 높은 걸 무서워 하기 따문에 의심이 많은 놈이기 따문에 골짜구로 안 댕기고, 언제든지 봉대기로 이렇게 산봉대기로 댕기는 것인디.

역부러 그놈 벌써 호랭이 그 심리를 미리 아신 어른이고, 높은 바위 위에 올라서서 작대기 이런 놈을 하나 짚고는 서서 “너 이놈! 고약한 놈 같은 이놈! 요놈 저런 놈을 산신님이 그냥 둔단 말이냐고 저놈을 당장 죽여 달라”고 아, 고함을 냅다 친게.
아, 이놈이 대가리를 툭 털고 들고 보더니, 쳐다보더니 벌떡 일어나더니 착 보고 가더니 쳐다보고는 ‘아함!’ 그러고 입을 딱 벌림서 고함을 지름서 ‘아함!’ 그러거든.

“저놈이 어디서 저런 놈을 저놈을 당장” 고함을 지른게, 눈을 이리 슬므시 감더니 그냥 고개는 들고는 산으로 올라간단 말이여. 이래 돌아보면서 눈을 조끔도 다른 데 팔지 않고 이리 돌아보며 쓱 올라가거든.
아, 그만 기를 안 애끼고 서서 “저놈이 어디로 갈까보냐”고 호령을 헌게 아, 그놈이 산으로 올라 얼마 올라가더니 산봉대기에서 휘딱 자취를 감춰. 간데없어.

그래 거그서 얼마 내려와서 마을집에 가서—응, 거그서 그 당신의 속옷을 이리저리 모두 벗어서 웃옷을 벗어서 그 머리를 두골을 싸고, 수족을 이래 다 손은 손대로 인자 위에다 가운데 놓고, 발은 제일 밑에다 놓고. 그리고 창자는 그만 그 자리에 다 어떻게 해서 끌어 묻고는.

거두어 가지고는, 잘 싸가지고 흔적없이 싸가지고는 한참 그 재를 내려와서 재 밑에 와서 그 조그만한 토굴에, 저 촌사람 그 집, 산촌 산가(山家)에 들어가서 “내가 잠깐 쓸 일이 있으니 그 괭이 좀 빌려 주시겄오” 그런게,
“뭣 하실라고 그리 가시다가 노장님이 그걸 괭이를 달락 하느냐”
“예 나 잠깐 쓸 일이 있으니 좀 빌려 주십시오. 내가 몰리 가져 가지 않을 것이고, 내 보퉁이 여기 좀 두고 좀 봐 주십시오. 내가 산에 뭣 좀 캘 일이 있어서 약(藥) 하나 캘라고 그럽니다”

“그렇게 하시라”고 빌려 주어서 한참 올라가서 파기 좋은 데를 파서, 한 자쯤 두어 자쯤 파고는 그대로 잘 묻어서 꽉꽉 밟아서 그래 묻어 주고는 혼백을 청혼(請魂)을 불러서, “아무쪼록 그저 이고득락(離苦得樂)하라”고 “그 못된 놈한테 과보 당한 줄 알라”고 그러고서는 내려왔다고,
금강산 지장암서 우리가 여름에 지내는디 거기 와서 같이 지낼 때 그런 얘기를 해서 들었습니다.

그 천원 스님이라고 허는 분은 거짓말도 헐 줄 모르고 뭐 그대로...
그 거짓말이나 잘헌 사람 같으면은 그 말을 누가 곧이 듣겄오마는 그대로 참된 이이기 따문에 대중이 다 옳게 들었제.(처음~19분55초)

 

 




(2/4)----------------

내가 그 재를 넘어가는 산밑에서, 고 재를 지금 넘어가는 산 밑에 노지(징검다리)가 이렇게 있어. 그 다리를 이렇게 건네. 내가 여까장 했제, 엊저녁에.

내가 두 철을 그렇게 공부를 허고.
두 철 공부라는 거, 세상에 제 공부 잘했다고 자랑하는 것을 그거 누가 인격적으로 들을 것인가. 발써 그 인격부텀 박멸헐 터이지마는 허거나 말거나 나는 그대로 말한다 그말이여. 틀림없어.

옳게 들으면 옳게 듣고, 자기 자랑헌다고 안 들으면 안 들을 터이제. 내가 거기에 무서워서 무슨 뭐 못혀.
내가 어제 아침 법문할 때 뭐라고 했냐 그말이여. 내 어릴 때부텀 벌써 서모 밑에서 배운 기술이 도둑질이라고 안 했어. 도둑질을 잘했으니 ‘했다’ 하제, 어떡헐 거냐 이말이여.

일곱 살 먹어서 서모 밑에 있어서 그 도둑질, 는 것이 도둑질.
그 도둑질이 무슨 내가 그렇게 넘의 쌀궤 가서 내오고 돈 내온 거 아니라, 서모 밑에서 아! 어찌 살다가 보니 그대로 그 주는 음식만 먹어도 될 턴디 어짠지 그 음식같은 것을 어따 두면은 그만 기어이 돌라먹어, 요런 거.
쌀같은 것도 다 내먹어, 요런 짓. 콩같은 것도 내가 다 구워 먹어, 요런 짓. 그래 놓고는 뒤지게 뚜드려 맞아. 안 먹을락 해도 버릇이 그리 된다 그말이여, 그 이상해야. 그런 짓 했다 그말이제.

아, 뭐 그렇게 천하게 커 나왔다는 거, 그것 무슨 뭐 그 무슨 감출 것이 또 뭐 있나?
그러헌 것도 내가 다 그대로 말을 했는데, 내 잘난 것을 말 안 해? 잘난 것은 더 말하고, 잘한 것은 내가 더 말하지. 안 할 게 뭐 있냐.

척 나와서 첫 철 공부를 그렇게... 내가 말했지.
그 다음에, 첫 철 공부에 그렇게 했는데 왜 그러헌 못된 병, 뱃속에서 막 그러헌 뭐 있는 대로 피가 다 넘어오게 공부를 했냐 그말이여.

왜 내가 그때에 좀 지혜가 있었으면 그러리요마는 대번 처음 나와서 그저 그만 화두(話頭)를 허되 힘써서 허면 된 줄만 알았거든.
그만 억지로 그만 창자가 기어오르게 막 ‘어째서 무(無)‘라고 들입대 해놓으니 육단심(肉團心)이 안 동(動)할 수가 있어야지, 생전 안 허든 놈의 공부를 갖다가 그렇게 해 놓으니까.

하나도 힘 안 들고 요만큼도 육단이 동치 않게, 피같은 것 뭐 이런 것 넘어오지 않게 그 참 잘헐 수 있는 그러헌 도 닦는 데 그러헌 묘방(妙方)이 있고, 그것을 몰랐드라 그말이여.

아, 그 큰스님을 그때 믿고, 그 큰스님 시킨 대로만 했으면은 다시 일이 없을 터인디, 그 큰스님 제산 큰스님이 그 시킨 대로 내가 안 했다 그말이여. 왜 그때 그 20살, 한 20살 먹은 것이 나와서 왜 그 조실 스님을 안 믿었든고.

믿을 수가 없어. 왜 믿을 수가 없나?
들어보면 알아. 암만 처음 나온 사람이라도 가르킨 것 들어보면 안다 그말이여. 그것을 몰라?
발써 그 경중(經中) 가운데, 그 모두 그 몽산 스님의 가르키는 화두법 가운데, 간화결의(看話決疑) 같은 것 가운데, 그런 것 내 그때 다 보지 않았지마는 다 듣고도 알 수 있었는디.

그러면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니라. 크게 의심(疑心)헌 데서 깨달으니라. 불의언구(不疑言句)가 시위대병(是爲大病)이니라. 언구 의심 않는 것이 큰 병이니라.
그저 참선은 큰 대의지하에 큰 대오가 있다. 의심을 허라고 했지. 의심밖에는 다 못 쓰느니라.

의심 밖에 거 무슨 무중무(無中無)를 본다든지, 비유비무(非有非無)를 본다든지, 허무유견(虛無有見)을 본다든지, 그건 다 아무리 광명장(光明藏)을 들여다 보고 아무리 천지미분전(天地未分前)을 들여다 봐도 그것은 다 묵조사선(默照邪禪)이니라. 죽은 참선이니라. 묵조(默照), 묵묵히 비추는 죽은 참선이니라. 다 모도 말 안 해 놨어?

그런디 큰스님께서 화두를 가르키시되 “천지미분전을 보아라” 벌써 틀렸거든. 그 화두를 믿을 수가 있나.
허니,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다. 큰 의심 아래 깨달느니라’했으니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을 일으키다 보니, 척 이놈 일으키기만 일으키제,
거기에 참, 묘법(妙法)이 있는 줄을 화두에 묘관(妙觀)이 있는 줄을 몰랐다 그말이여. 첫 철에 나와서.

그러면 그 스님 말씀은 믿지 않고 들입대 ‘어째 무라고 했노’ 이놈만 어떻게 힘을 써 했든지 그냥 기운이 막 드리 올라와 가지고는 그 코로 입으로 피를 그리 쏟았던 것이여.
그래도 그 철에 그렇게 애를 쓰되 뭐 보통 내가 다 어제 아침 말을 다 했으니 더헐 것 없지.

새로 오신 법안성 보살님이 계시니 어제 아침에 했던 것을 다시 했으면 허련만 여기 다 갖춰져 있고, 본래 또 내가 말을 다 들어 알 수 없고.
법안성 어저께 말씀이 “내가 여러 간디 그 교(敎)에도 모도 들어가 봤고, 또 중간에 내가 그 어느 또 불교라도 들어가 봤고, 그런 데가 다 가르킨 디 가서 내가 들어서 다 알았습니다. 대번에 보니 모도 가르키는디 벌써 말 한마디 한마디 들어보면은 어떤 것이 사(邪)다 정(正)이다 하는 것이 분간이 나드라”고.
그러기 따문에 그렇게 분간헐 줄 알기 따문에 정법문중(正法門中)으로 바로 들어온 것이란 말씀이 틀림없거든.

내가 그 말을 들었어. 용하다 그 말씀이여. 그것이 아니면 들어온 법 없제. 그게 참말로 정견(正見) 학자거든.

그 정견 학자가 이 다음에 그 참, 혹 또 세상에 입태(入胎)에 가서 매(昧)하지 않지마는, 주태(住胎)에 가 매해 가지고 또 출태(出胎)에 가서 매하는 수가 있어. 매(昧)해, 출태에 정법학자가.
출태에 가 매하드래도 더 후래(後來)에 몸을 받아 척 나와서 대번에 벌써 아무리 제견 외도(外道)에, 사견(邪見) 외도에 가서 외도법을 가서 어떻게 배워 보고 다 알고 다시 정견으로 확 들어오는 것이여.

우리 부처님 역시 사바세계 시현(示現)으로 나오셨지마는 설산(雪山)에 들어가서 그 외도를 만나 가지고 벌써 들어보니 알았거든. 틀림없지. 그걸 정견 학자라고 해.

아! 또 다시 말이여. 또 다시 왜 이런 말을 안 해. 왜 이런 말을 안 헐까 보냔 말이여. 왜 감출 것이냔 말이여.

부처님 그 경전 가운데 들어와 ‘어떤 그렇게 상(相)을 내지 말어라. 보시상을 내지 말어라. 네가 보시를 했닥 하드래도 보시상이 있으면은 보시가 아니니라’ 왼갖 말씀 금강경에 다 해 놨지마는 또 보시상을 나툰 디는 또 굉장하네.

‘유기철물(鍮器鐵物)은 신견고(身堅固)요’ 왜 그런 소리를 혀.
‘불양헌답(佛糧獻畓)은 복무변(福無邊)이요. 논을 드리고 밭을 드린 건 복이 한량이 없느니라’ 얼마나 말씀을 했어.
‘창호도배(窓戶塗褙)는 면팔난(免八難)이니라’ 왼통 이렇게 다 나투어 놓고 또 그런 말씀을 했지.

보살님이 이번에 참—이것 뭐 당최, 나 일절 내가 무슨 뭐 ‘얼마 했느니 말았느니 뭘 했느니’ 내 안 했어. 헌 법 없었어, 내 입으로. 허다가 어쩌다가 은근히 그저 알았지만.

이 참 이 처음 시작할 때, 이 집이 이거 시작헐 때 기가 맥힌 집입니다.
내가 여기에 평생에 이렇게 자무반전푼(自無半錢分)으로, 내 돈 한푼 없이 입을 달고 돌아댕기는 나로써서 아, 여기에 와서 어떻게 어떻게 허다가서 아, 여기 무슨 잠깐 잠연이 있어서 있다가 어쩌다가 이 법당 하나를 지을라고 할 때. 아! 이 어떻게 짓냔 말여.

보살님한테 말을 했더니 대번에 그 어떻게 해 주어서 그만 그놈을 가지고 시작해 가지고 이 집을 지었는데, 지어 놓고 나니 이 산꼭대기에 물이 있나. 또 물을 말했드니 모두 수도를 이렇게 어떻게 척 나오게 해 주셨어. 그 인연이 적지 않지.
그 다음에는 이놈 땅이 남의 땅이니 이걸 어찌해야 할까 보냐고 떡 했드니 또 그 땅 사게 되았제. 이런 시은(施恩)이 깊다.

그 다음에는, 이번에는 이거 이래 놨겄당 어떻게 어떻게 허든지 이것을 재단법인(財團法人)을 좀 만들었으면 쓰겄는디, 원 재원(財源)이 그 모지라서 이걸 가지고 이사(理事)를 꾸밀 수가 없어.

어쩌고 어쩌고 했더니 아, 그 보살님께서 그 뭣이 있나? 아무것도 별 것 없지마는 아, 그 무슨 토지를 좀 근근히 좀 장만해 놓은 것을 여가 작고 많은 건 불고허고 그 재단법인에다 붙여서 재단이 되도록 해 가지고,
“적어도 이 말세일수록에 우리 부처님의 정법이 유통되어야 할 터이니 내의 이 몸뚱이는 잠깐 그저 머물다 갈 몸뚱이뿐이여. 어쩠튼지 그런 한 몸뚱이 재원이라도 뭘 재단을 만들어서 정법을 유통허도록 허는 것이 참 좋겠습니다’고,
아, 이렇게 저렇게 원력(願力)을 발해 가지고서는 아! 그 인자 뭐 재단법인이 되도록 이렇게 떡 해놨겄다.

그런디 허나 못 허나 여기 댕김서 불명(佛名)도 받고, 불명도 지었다는 신도가 말허기를 “왜 그런 허망한 짓을 헐까 보냐”고. “왜 그렇게 애써 헌 그런 토지를 부자도 아니고 왜 거그다가 그리 다 드릴까 보냐”고. 아, 내가 그랬다는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을 해 보았어.

그러헌 디 속지 않고, 그러헌 말에 넘어가시지 않고 더욱 더 “아직 그 불법을 모르는구나. 정법을 못 믿는구나” 오히려 개탄(慨歎)을 했다고, 그런 사람의 그 정신을 개탄을 했다고.
아, 내가 이 말씀을 듣고 참 느꼈소. 그래서 여까장 말허는 거요.

그 얼마나 호사(好事)에 다마(多魔)요. 내 할 일을 내가 했느냔 말이다. 그 내 할 일이 어떠헌 일이여?

죽백천추(竹帛千秋)에, 그래도 자 이만큼 그래도 시작해 주셨는디 여가 똑 선방이 되아서 다맛 그 열 명이고 스무 명이고 20명이고 30명이고—대본산, 큰 재원이 뭉텅 있는 데도 학자 몇 데리고 지내도 못하고 빚이 있느니 뭣 허니 야단치지마는,
자 여기에 그저 몇십 명씩 와서 턱 이래 공부를 허고 계시고, 또 보살님도 이렇게 와서 떡 와서 이래 다 공부허시고, 보살님네 당신네 양식 잡순다 하지마는 아, 그 당신네 양식을 잡수드래도 이런 처소가 없으면 되야?

이렇게 불학(佛學)을 배우는, 생사해탈법을 배우는 이 정법 이 법보선원 그 어떻게 죽백천추에 이러헌 선원을 참 창건허리요. 창건해서 유통허겠느냐 그말이여. 그것을 가만히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그 보통 누가 날 것인가마는 말이제.

참으로 ‘호향차시(好向此時)하야 명자기(明自己)다. 좋다, 이때를 향해서 너를 깨달라라’ 이런 말씀도 있지마는.
‘호향차시(好向此時)하야 명작복(明作福)하라’ 이러헌 때를 당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그러헌 무루(無漏) 해탈복을 지을 수가 없다.

이거 그것 저것 조금이라도 어떻게 이렇게 안 해 준다면은 이걸 꾸며낼 수가 없고 이걸 전통 헐 수가 없고, 못하거든.

여까장 어쩌다 보니 말이 나오게 되았습니다. 왔다갔다 아무때나 한다니까. 내 법문이 그렇다 그 말씀이여. 시(始)도 없고 종(終)도 없고 무시무종(無始無終).

우리 부처님은 그렇게 안 설했나? 우리 부처님의 화엄경이 그렇게 설한 경이여.
그런데 그 경이, 화엄경이 우리 부처님 경은 그만 그대로여. 무시(無始)요, 무종(無終)이요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거든.
‘가는[微] 티끌[塵] 수(數) 품’ 그대로 한 품도 설하지 않고 품수(品數) 그대로 딱 되겄다.

화엄경에다가 내가 내 법문을 대해서, 또 좀, 그 좀, 대단히 좀, 그 미안하요. 인격상 좀 불안하요.
허지마는 그대로 내가 설헐 수 밖에 없제.(20분2초~36분38초)

 

 




(3/4)----------------

내가 첫 철을 그렇게 한바탕 공부를 하고, 그 다음 두 철에 와서 죽게 된 몸뚱이 불구허고 떡 공부를 허다가,
인자 거그 와서는 다시 인자 큰스님한테 의심난 고 화두허는 법, 의심을 다루어 나가는, 의심을 거각(擧却)해 나가는 화두를 잘 간택해 가지고 큰스님을 믿고 공부를 턱 해나가는데.

죽거나 살거나 불구허고 그렇게 해나가다가, 중간의 ‘견성했다’고 한번 들어가서 하! 해놓고는 그렇게 대방(大棒)을 맞고 해제를 마치고 떠나 가지고는. 산철이제, 인자 두 철 만에 산철.
죽게 되았거나 걸음도 못 걷고 그만 그 뭐 파리가 날라가도 자빠지게 됐지마는 원청 강한 신심이 백혀 있으니깐 그것 상관 없드구만.

호서를 내려가면서 어느 집에 들어가서 저녁밥 얻어먹고, 하룻밤 자고 아침 얻어먹고 그러고 척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濶) 허고 척 나가다가,
아까 그 곡성 동리, 곡성 태안사 너머로 호랭이 사람 잡아먹은 산밑에를, 그 재를 넘어갈라고 산밑에를 가는디 물 건너는 노지(징검다리)가 있다.

그 노지를 척 아! 건너 한 발 뛰고 두 번 건너뛸라고 허는데.

자지 마시오, 자지 말어, 응. 법문 들을 때 왜 자요. 법문 들을 때 자러 왔어? 법문 들으러 왔지.

한 발대죽 뛰고 또 발대를 건너뛸라고 헐 때인디, 화두는 내 화두는 허면서도—가면서 왜 화두를 안 혀.
앉었을 때만 화두를 허고 누울 때는 화두 못허고 그러는가? 밥 먹을 때는 화두 내버리고 먹고, 왜 똥 눌 때 화두를 내버리고 똥 누어?
이거 무슨 소리여. 화두 좀 해보란 말이여.

화두 허다, 좌선 허다가 척 누워서 화두를 추켜들고 누워 봐. 그대로 화두가 온당허게 자리가 잽혀 가지고는 그거 뭐 알 수 없는 놈만 딱! 나온다. 바로 누우나 옆으로 누우나 화두는 고대로.
잠을 딱 자고 뚝! 깨봐. 잠은 자기는 잤는데 화두는 고대로 나온다.

이것 무슨 소리들이여.
화두를 그 허다 말다가, 조끔 허다가 말다가, 조끔 있다가 없고 말허다가도 없고 쫓아댕기다 없고, 똥 쌀 때는 그대로 싸고 이래 가지고는 10년 20년 미륵하생(彌勒下生)까장 해 봐라. 틀림이 있는가. 소용없는 거여.

두 발대죽을 턱 내딛으면서 처꺽 그 ‘운무중(雲霧中)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해야 소를 찾겠느냐?’
‘구름 벗어지면 소 찾지’ 대방(大棒)을 내루아 버리고는 그 학자한테 나한테 물어라.

‘운무중에 소를 잃었으니 어떻게 해 소 찾겄읍니까?’
‘담 너머에 가서 외 따 오니라’

아, 그 법문이 그만 화두를 해 나가다가 훅 들어오면서 툭!
내가 그래서 법문에 언하대오(言下大悟)라고 논 것이 그거여. 그 언하(言下)에 그만 대오(大悟)를 했네. 내가 대오를 했다 그말이여. 주제 넘게 헌말이여 이것이.
참말로 대오인지 아닌지 알 택이 있냐 그말이여. 나는 대오 했으니께.

척! ‘차시(此時)에 유인(有人)이 문아서래의(問我西來意)하면, 이때에 어떤 사람이 나한테 서래의(西來意)를 묻거드면은 녹수(綠水)는 각하(脚下)에 암전거(岩前去)로구나. 흐르는 물은 내 다리 밑에, 내 발 아래에 흐르는 물은 다리 앞으로 가는구나’
이 말 한마디 턱 일러 놓고는 곡성 그 재를 넘어갔네.

어떻게 넘어간지 모르고, 호랭이가 물어 간 재인지 뭔 이건 모르는 소리고, 내가 그 재를 지금 넘어갔기 따문에 고 이야기를 하나 해놓은 것이여.
뭐 소설도 그렇게 다 현대소설 「해왕성」 같은 거 보란 말이여. 다 그렇게 안 나왔는가.

그 재를 넘어서 태안사를 척 들어갔다. 그때 가서 오도송(悟道頌)을 지어 놨는디 내 오도송 좀 들어봐.
오도송, 밤낮 해 논 놈, 저 내 방에 써 걸어 놨으니 다 알지, 뭐 모를 건 없으되 그놈을 내가 좀 고쳐서 지금은 해 놨지.

자칭 내가 지금 내 오도송이라 한다. 어째 오도송, 나는 도통(道通)을 했으니 오도송이지. 남이야 비웃거나 말거나 나 혼자만 견성했지, 인자 잉. 그렇게 들어 두란 말이여. 그때 처음이니까.
그래도 내가 아직 오도송, 그때 고친 놈 그 글자만 몇 떼 버렸지 그대로여.

그날 밤이여. 그 재를 넘어가서 그날 밤에 태안사를 들어가서 뜰 앞에 떡 그 앞에 누(樓)가 있고, 뜰 앞에 거닐면서 이놈을 진 것이다 그말이여.
내가 무슨 놈의 글을 질 줄 아나. 내가 뭔 글을 얼마나 배우다가 나왔는디, 무슨 놈의 글.

일곱 살 먹어서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 울 아버지 계실 때에는 나도 참 참말로 그런 귀동자가 없었대. 우리 어머니가 나 첫아들 낳아 가지고, 늦게 낳는데 얼마나 그만 사랑하고 예삐 키웠든지 소문이 들썩 나버렸어.
허지마는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서모 하나 들어오신 바람에 우리 서모 밑에서 그런 천둥이는 당최 만고(萬古) 천둥이는 없었다 그말이여.

그래 그 어릴 때 그때, 그 뭐 하늘 천, 따 지, 감을 현, 누르 황, 뭐 배운 것은 그때 배웠지마는 서모 들어오면서부터는 다시 글 한 자 뭐 배워 보지도 못했고는 서모 밑에서 어떻게 나는—서모가 그 뭐 참 괜찮다고 하지마는 그렇게 못되어지데, 사람이.

그러고 나와서는 또 뭐, 그 내가 아까 그러지 않어? 글도 얼마든지 절에 들어와 배울 턴디, 그 같은 친구 동무, 아이 하나 미쳐 죽어서 화장해 버린 뒤에 그것 다 태워가지고 연기는 빙 돌아 떠버리고, 그 응해 스님 글 하나 한 귀(句)에 그만 발심(發心)이 되아버렸어.

수행(修行)은 막대빈모반(莫待鬢毛斑)하라. 뭐 참선을 헐라매 머리터럭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호리신분개소년(蒿裡新墳皆少年)이다. 쑥대 속에 새 무덤이가 소년 무덤이다.

인신일실기시환(人身一失幾時還)이며, 사람의 몸뚱이 한번 잃으면 어느 때 돌아오며,
지옥시장기등한(地獄時長豈等閑)가. 지옥 때가 기니 어찌 등한히 노느냐. 지옥 한번 들어가면 때가 길다. 못 나온다. 어찌 등한히 노느냐. 하는 송구(頌句)에 그만 발심이 되아 가지고는 어릴 때, 통 글이란 건 읽을 수가 없어. 그까짓 놈의 글 배우다 죽어 버리면 뭣이냐.

또 사람이 수명 수한(壽限)이, 죽는 한(限)이 그놈이 때가 정해져 있으면은 어느 때까장 글 배우고 그 다음에는 참선 허겄다마는, 20년을 산다 하면 10년 글 배우고 10년은 공부하겄다마는 조석(朝夕)에 생명을 잃어 버릴 수가 있고,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쉴 때에 잃어 버릴 수가 있는데 어떻게 내가 그 글을 읽고 있어.

허송(虛送), 그놈의 글 읽는다고 허송을 헐 수가 있어?
망후를 혀. 내일 헌다, 모래 헌다 후(後)를 기달라. 어찌 후기(後期)를 내가 만들아.

당체 못 하겠어. 그래 버렸는디 뭐 소용이 있나. 뭔 놈의 그래 글 하나 못 배와 못 읽었어.
쪼금 그 읽는다고 읽었자 뭐 그것 무슨 뭐, 그때 나올 때 놀이 글자 좀 알고, 한 글자 새길 수도 없어. 몰라. 그런 것이 무슨 놈의 글을 질 것인가 말이여.

허지마는 척! 가서 글이 한 수(首)가 나오는디 그 멋지게 나온다 그말이여.
글이라는 것은 염(簾)도 보고 운(韻)도 맞추고 다 이렇게 지은 것이지마는, 염(簾)이야 운(韻)이야 그런 걸 내가 해 보지 않았는데 그건 상당한 글이 있어야 하지, 어떻게 알 것인가.

허지마는 이 글이 염도 좀 맞았네, 염도. 들어 봐.
글이 원청 될 것 같으면 염도 운도 맞는데야. 12염에는 다 안 맞는다는구만. 12번 그 염 보는 데는.

그날 다리를 건너뛰다가 인자 그 견성 했다고 그날 밤에 태안사 청중에 거닐다가 떠억 허니 하나 지은 것이여.


작야삼경월만루(昨夜三更月滿樓)허고  고가창외노화추(古家窓外蘆花秋)니라
나무~아미타불~

작야삼경월만루(昨夜三更月滿樓)다. 어젯밤 삼경(三更) 달은 이 다락에 가득했구나. 내나 그 앞에 어젯밤 삼경 달 이 다락에 가득했구나.
고가창외(古家窓外)에는 노화추(蘆花秋)로구나. 저 밑에 저 옛 고가(古家) 창밖에는 갈대꽃 가을이로구나. 갈대꽃이 모도 피어서 일렁일렁해. 대(對)도 맞았네. 명월과 갈대꽃 대도 맞았어.

벌로 듣지 말어. 무식한 내가 글 진 걸 봐! 견성 했는가, 안 했는가 보라 그말이여.
고렇게 첫 귀는 빠졌다.

어젯밤 삼경 달은 다락에 가득했는데 옛집 창밖에는 갈대꽃 가을이니라.
이것은 최초구(最初句)니, 말후구(末後句)니 붙이들 말고 봐라. 거다가 최초구니 말후구니 여하약하(如何若何)오. 강사들 모도 있은게 강사 지견(知見)을 붙여보라 말이여.

고 밑의 구(句)여.


불조(佛祖)가 도차상신명(到此喪身命)이다  암하유수과교래(岩下流水過橋來)니라
나무~아미타불~

그 후구(後句)여.
불조(佛祖)가 도차상신명(到此喪身命)이니라. 부처님도 불조도 여기에 이르러서 상신실명(喪身失命) 했느니라.
암하유수과교래(岩下流水過橋來)니라. 바위 아래 흐르는 물은 다리로 지내오는구나.

그게 이제 뭣이여.
거기다 오도송을 거다가 붙이는 것이 방(棒) 짊어지고 했지마는, 삼세제불이 누가 방 짊어지지 않고 어디 법담(法談) 허는 수가 있나?

그렇게 척 나 혼자 했다. 설향수(說向誰)오. 누구로 더불어서 말을 할 것인고.
누구, 산이나 더불어 말할까? 뭐 청풍명월(淸風明月)로 대해서 말할까? 할 사람 누가 있나.
독보건곤(獨步乾坤)이제. 수반아(誰伴我)오. 홀로 나 혼자 한번 한 것이지, 누가 그 곁에 뭔 사람이 있나.(36분40초~52분16초)

 

 




(4/4)----------------

척 들어와서 그날 밤을 거그서 어떻게 좋은가 어쩐가, 당최 그 경계는 말할 것 없다. 절을 해도 그 경계. 그 경계는 뭐라고 내가 말해 놓지 못하고 혀.
밥을 먹어도 그 경계, 산을 봐도 그 경계, 어디 절을 해도 그 경계. 절을 해도 절헐 것도 없네. 아, 이것 봐.

날이 겨우 샜는데 아, 이놈의 대중은 인자 겨우 감원(監院)이 일어나서 일찍 일어나서 인자 뭐 갔다왔다 정중(庭中)에 허는데, 그까짓 감원이 있든지 말든지 지랄하든지 아, 그냥 뜰 앞에,
그 정중에 그만 뜰 앞에 오줌간도 아니고, 거다가 오줌을 그냥 철철철철 누어 버린다. 내가. 아! 이런 꼴 좀 봐라.

“아, 저런 세상에 어디서 저런 미친놈이 와서 저런 법당 뜰에다 갖다 오줌을 싸. 저런 놈이 있어?”
내가 그만 “야, 이놈의 중아. 거 오줌 눌 데를 하나 가르켜 내라.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요. 전체가 모도 불체(佛體)인디, 모도 부처님 몸뚱이 불체인디 어느 곳에다 오줌을 누란 말이냐? 말해!”

아, 이러고 대든게, “아, 이놈의 중, 수좌놈들이라니 이런 건방진 저놈들 보소. 아따 저런 것이 중놈으로서 저게 주인인가. 에이 녀석”
아, 그 싸워 노니까 밥도 못 얻어먹었네. 밥이나 얻어먹을 걸. 아, 이런 꼴 좀 보소. 밥을 못 얻어먹어.

인자 그때부터 나는 미쳐 버렸지. 내가 미친 사람이지, 산 사람 아니여.

그런 놈의 그런 경계가 있으니, 사람이 왜 좋게 하고 그 오줌단지 가서 오줌 누고, 상하(上下) 다 알아서 처리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가 분명하고 그려야 할 턴디,
왜 그러면 어째서, 해필 왈 갖다가서 진대지(盡大地) 땅은 땅으로 본 것이 옳을 턴디 왜 땅을 갖다 부처로 보고, 왜 갖다가 그만 아무데나 오줌을 싸고. 그거 되아? 그 미친 놈이지, 뭣이여.
그 미친놈 아니여? 허지마는 그놈의 경계가 참 당해 놓으면 별 도리 없네.

아! 아침밥도—밥을 주어야지. 아침밥도 얻어먹지 못허고 그냥, 밥을 안 준게 어째.
“허 그놈들, 호래아들놈들. 도인을 몰라보고 밥도 안 주는구나, 이 호래아들놈들. 네 이놈들 좀 겪어 봐라 이놈들” 한바탕 냅대 고함을 지른게 나는 미친놈 되아 버렸네.

그래서 그대로 그만 밥도 못... 오히려 쫓겨나다시피 쫓겨났네.
쫓겨나와 가지고는 배도 고프지마는, 배 고픈지 뭔지 그건 소용 없드구만. 그 미친 사람이 달리 어떻게 생리적으로 미쳐도 배고픈 줄 모르는가 보드구만.
참말로 나는 그 생리적으로 멀쩡하고 법으로만 미친 것이여. 법광(法狂)이 되었어.

아, 그 송(頌) 진 것 좀 봐. 그 송을 오늘날까지 큰스님네가 다 찬(讚)헌 송이여. 뭐 두말 할 것 없어.


그래 가지고는 거그서 척 ‘어라, 나는 이길로 갈 데가 어디냐? 불가불 여그서 제일 가까운 곳이 마곡사다. 동리산서 마곡사밖에 가까운 데가 없다. 마곡사를 갈 밖에 없구나. 마곡사에 큰스님이 계시니까 거그를 갈 수밖에 없다’

혜봉 스님, 마곡사에 혜봉 스님이 지혜는 제일 밝다고 소문난 이고, 견성(見性) 헌 후에 마을에 가서 마누라 얻어 가지고 아들 둘 낳고 산닥 하지마는. 그래 가지고 또 패철(佩鐵)을 차고 산에 올라 댕기면서 묏자리나 찾고 이러고 살아.

견성 도인이라도, 견성 척! 헌 후에 아무 한바탕 뭐 견성헌 속에서 보니 아, 중생(衆生)의 환화(幻化)가 개시묘법(皆是妙法)이니, 견성헌 분상에는 마누래 얻어 가지고 아들 낳고 사는 것이 무슨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고. 녹수가 청산에 걸릴 법이 어디 있으냐.

그래서 그만 마을로 가서 그대로 사는 수가 있어. 학자나 제접(提接)허고 가만히 청산(靑山) 한림(寒林) 속에서 아, 이렇게 또 계신 이도 있고.

그것 내가 관계헐 것이 뭣이 있느냐. 마누라 얻어서 아들 낳고 사는 것이 그것이 무슨 내게 무슨 걸릴 것이냐 그말이여.
법당 앞에 저 뜰 앞에다가 오줌도 철철 싸버렸는디, 그것 뭐 마누라 데리고 산다고 거기에 내가 걸려?
거 마누래 얻었다고 도인(道人)이 아니고, 마누래 없다고 도인이여? 고렇게 내가 상견(相見) 학자인가? 일없어.

척! 그만 하나도 무슨 뭐 그건 추호도 없고, 대번에 그만 혜봉 스님을 찾아갔지.
얼마를 걸어서, 그때는 뭐 어디 무슨 탈 것도 없고 내가 또 뭐 돈이 있나, 뭣이 있나. 누더기 하나 입고 가는데.

아, 그 등정(登程)을 해서 얼마를 걸어서, 운수(雲水) 등정을 해서 구공리를 척 당도해서 “혜봉 큰스님이 어느 집에 계시냐?” “저 감나무 집에 계시다”고.
아침에 척 들어—어떻게 좋든지 그 큰스님이 계신다 허니까 척 들어서니까 밑에 실에, 밑에 당신 계신 방 하나 맨들아 놓고 초가에 계시드구만.

척 들어서 가지고서는 혜봉 큰스님이 턱 나오길래 절을 한 자리 척... 어따가 절 할 것인가. 그런 큰스님네한테 절 했지.
내가 절 하다니. 아만(我慢)이 생겨 그런 건 아니지마는 참말로 그렇지.

잠 와? 잠 오면 나도 그만 잠이 와, 눈이. 그만 설(說)헐까?
잠 와요, 모도. 그만 설헐까? 여까지만 둬?
왜 암말도 없어. 자꾸 졸고 남의 법문 신심을 타락시켜. 나는 여그 다 보이거든.

여하약하(如何若何) 말이 없는 걸 보니까 조끔 더 설하라는 말이로구나.
듣기 싫어서 그만 설했으면 싶어서 암말도 안 헌게, 암말도 안 허니까 미워서 좀 더 설한다 그말이여. 밉상맞어서.

게을러 가지고 듣기 싫어서, 어서 가 좀 더 가만히 앉아서 좀 졸고 그랬으면 싶어서.
소용 없어. 소용 없어. 내가 그런 디는 더 설(說)혀, 미워서.


여기에는 참말로 들어야 한다 그말이여. 이게 정말 법문(法門)이니까.
들을 줄 모른 사람은 잠은 더 오고, 마구니 있는 사람은 그놈 마구니가 싫어서 듣기 싫어서 죽어. 그건 마구니 따문에 그려.

척 들어서 가지고는 혜봉 스님한테 법담을 허되, “제가 스님께 무자의지(無字意旨)를 물으러 왔습니다”
“거 그럼, 물어 보시오”
이것 나는 그 사미중이지마는 처음에는 큰스님도 “물어 보시오” 그러더군.

“조주무자의지(趙州無字意旨)를 반(半)만 일러 주십시오”
반만 일러 달라는 것도 벌써 거 그런 말이 없어. “다는 요구허지 않습니다. 반만 일러 주십시오” 허니까,

나를 척 한번 이래 바로 이렇게 눈을 떡! 떠 보더니 “무(無)” 그런다 그말이여.
그래서 “반이 될 이치가 있겠습니까”

“그 나는 반을 못 일렀어. 돌려 묻노니, 수좌(首座)한테 돌려 묻노니 수좌가 무자 반만 한번 일러 보오” 똑 말이 그러시드구만.
나이 그 어른은 한 오십 글썽글썽 허고, 나는 인자 한 스물한 살인가, 두 살인가, 나는 연조도 잘 모르는구만. 지내간 연조 하나도 몰라.

“스님이 물어 주십시오” 또 다시 두 번 그래. “무자 반만 일러 주오”
“무(無)” 내가 이랬다 그말이여.

턱, 참 엄연헌 태도로 나한테 다시 한마디를 묻기를,
“고인의 법문에—고인, 옛 고인 스님, 큰스님의 법문에 ‘거년(去年) 가난은 비(非)가난이다. 지나간 거년 해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 무입추지(無立錐地)니라. 송곳 꽂을 땅이 없었느니라. 금년 가난은 시(是) 가난이여. 금년 가난은 참 가난이다. 추야무(錐也無)로구나. 송곳까장 없구나’허니,
점검을 허되 ‘여래선(如來禪)밖에는 안된다’ 그랬으니, ‘여래선밖에는 안된다’했으니 수좌는 거기에 어떻게 일러사 조사선(祖師禪)을 이르겄느냐” 이놈을 묻는다 그말이여.

무서운 말이여. 선지식(善知識)이 학자 잡드리허는 걸 좀 보아! 무서운 말이여.
여간 견성해서 뭐 오도송 짓고, 뭐 대지가 산하대지(山河大地) 전체 보이는 것이 견성이라도 그런 데 가서 그 공안에 가서 눈이 멀어 버려.

응, 이- 허면 죽는다. 발써 찾으면 죽는다. 무슨 이치냐 죽는다.
고렇게 물을 때 어떻게 답허겄느냐?
어디 살림살이 있으면 하나 내놔 보쇼. 응, 보살님네도 다 살림살이 내놔 봐.
좀 내놔 보란 말이여. 어디 좀 내놔 봐.

아침에 여까장.

내가 이것, 내 인자 사방 돌아 법담 딱! 딱! 해 가지고, 인가(印可) 딱! 딱! 맞은 놈을 내가 탁탁 해놀턴게 보란 말이여.
어디서 아무때나 저 혼자 도 좀 닦다가 나와서 뭐 학자를 속이고 저 죽어? 멋대로 나와서 혀? 우리 부처님 정법이 그러고 말어? 안되아.(52분17초~66분24초)(일대기 2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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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正覺) ; ①깨달음. 부처님의 깨달음. 바른 깨달음. 진리를 깨닫는 것. ②부처님. 여래(如來). 진리를 깨달은 사람. 정등각(正等覺). 등정각(等正覺). 정등보리(正等菩提).
*영산회상(靈山會上) ; ①석가모니께서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던 때의 모임. 또는 그곳에서 법화경을 설하던 때의 모임. ②선종의 삼처전심(三處傳心) 중 하나로 부처님과 가섭이 이심전심으로 주고받은 염화미소(拈花微笑)의 회좌(會座).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얼굴·모습).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석가모니(釋迦牟尼) : sakya-muni의 음역.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육백이십삼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 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오백사십사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명근(命根) ; 목숨과 생명의 근본.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명상(名相) : 모든 물건이나 일이 다 이름과 형상이 있는 것이다。우리는 그 이름만 들으면 그 사물의 형상을 생각하게 되는데, 형상이란 것은 바탕과 모양이 있고 없고를 막론하고 공간적으로 있는 형용과 체적(體積) · 질량(質量)뿐 아니라, 시간적으로 나타나는 나고 머물고 늙고 죽는 것이나, 시작되고(成) 진행하고(住) 쇠퇴하고(壤) 파멸하는(空) 것도 형상이며, 오관(五官)으로 감촉하게 되는 열도(熱度) · 소리(音響) · 빛(色) · 냄새(香) · 맛(味)같은 것도 또한 형상이다.
그러나 이 이름이나 형상은 그 자체가 본래 확실히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망녕된 생각이 지어낸 빈 이름이며, 한 때의 인연을 따라 생겨난 거짓 형상인 것이다.
*출신처(出身處) ; 큰 깨달음을 얻어, 그 깨달음의 편집(偏執 편견을 고집함)이 끊어진 자유의 경지.
*최초구(最初句) ; 최초의 한마디 말. 본래부터 타고난 본성(本性)의 진여(眞如) 나타낸다.
*말후구(末後句) ; ①말후(末後)는 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의 뜻. 구(句)는 언구(言句), 어구(語句), 문구(文句)란 뜻. 크게 깨달아 구경에 이르러서 하는 말. 지극한 글귀. 말후일구(末後一句). ②문장의 맨 끝의 말. ③임종의 말.
*기본축말(棄本逐末 버릴 기/근본 본/쫓다·구하다 축/끝·지엽 말) ; 근본은 버리고 지엽의 끄트머리를 구하다.
*(게송) ‘고와한단침(高臥邯鄲枕) 주류만년성(周流萬年城)’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몽각(夢覺 꿈에서 깨어나)’ 참고.
*한단침(邯鄲枕) ; 한단지침(邯鄲之枕). 한단지몽(邯鄲之夢). 여옹침(呂翁枕). 여공침(呂公枕). 인생의 덧없음과 영화(榮華)의 헛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중당(中唐, 七六六~八三五) 대 전기소설의 대표작인 ‘침중기(枕中記 : 베개 속 이야기, 심기제作)’에 나오는 이야기로, 과거시험에 낙방한 노생(盧生)이 한단(邯鄲)의 여관에서 도사(道士) 여옹(呂翁)을 만나 자기의 곤궁한 신세를 한탄하였더니 여옹이 청자로 만든 베개를 그에게 건네주어, 노생이 그 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다. 이때 여관 주인은 노란 기장을 솥에 삶고 있었다.
노생은 그 베개를 베고는 곧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미인에게 장가들고 과거에 급제하여 고관대작의 부귀영화를 한껏 누리다 그의 나이 80에 병들어 죽게 되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보니 그 모든 것은 꿈이었고, 여관 주인이 삶던 노란 기장은 아직 익지 않고 있었다. 인간 욕망의 부질없음을 깨달은 노생은 여옹에게 감사드린다.
*옥식금의(玉食錦衣 구슬·훌륭하다 옥/밥·음식 식/비단 금/옷 의) ; 금의옥식(錦衣王食). 흰쌀밥(맛있는 음식)과 비단옷이라는 뜻으로,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이르는 말.
*철위산(鐵圍山) ; 철륜위산(鐵輪圍山)이라고도 함. 불교의 세계설에서는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네 대륙과 9개의 산이 있고, 산과 산 사이에 8개의 바다가 있는데, 그 아홉 번째 가장 바깥쪽의 철(鐵)로 된 산을 말한다.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의 나쁜 행위.
*악연(惡緣) ; ①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인연. 또는 맺어서는 안 되는 잘못된 인연.  ②나쁜 일을 하도록 유혹하는 주위의 환경.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①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마음의 티끌. 번뇌(煩惱)를 말한다. 중생의 마음을 더럽히고 생사에 유전(流轉 끊임없이 이어짐)시켜 피로하게 하는 것. ②생사(生死). 생사윤회(生死輪廻).
*형탈(逈脫 멀다·아주 형/벗다·벗어나다 탈) ; 멀리[逈] 벗어나다[脫].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색별(色別 빛 색/나누다·구별 별) ; ①각각의 색 하나하나. 색을 구별함. ②종류에 따라 구별함.
*(게송) ‘체연개일몽(遞然開一夢) 잔월반루명(殘月半樓明)’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몽각(夢覺 꿈에서 깨어나)’ 참고.
*향당(鄕黨 시골·마을·고향 향/마을·향리鄕里 당) ; 자기가 태어났거나 살고 있는 시골의 마을. 또는 그 마을 사람들.
*본각(本覺) :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한바탕 ; 크게 한판(한 번 벌이는 판). 한판 크게.
*산말랭이 ; ‘산마루(산의 등줄기의 가장 높은 곳)’의 사투리.
*무외(無畏 없을 무/두려워할 외) ; ①자신감을 가지고 가르침을 설하므로 누구에게도 두려움이 없음.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어떠한 장애도 두려움이 없음. ②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두려움도 불안도 없는 평온한 마음 상태. 무소외(無所畏)라고도 한다.
*포외(怖畏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외) ; 두렵고 무서움. 화엄경에서는 ①생활의 두려움. ②명예를 잃을 두려움. ③악도(惡道)에 떨어질 두려움. ④죽음의 두려움. ⑤대중 앞에 나섬에 대한 두려움 따위의 다섯 가지 두려움을 이른다.
*봉대기 ; ’봉우리(산봉우리)’의 사투리.
*청혼(請魂) ; 설법할 때에, 영가(靈駕 죽은 사람의 영혼)를 그 자리에 모시는 일. (같은 말)거량(擧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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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노디) ; '징검다리(개울이나 물이 괸 곳에 돌이나 흙더미를 드문드문 놓아 만든 다리)'의 사투리.
*쌀궤(-櫃) ; 뒤주(쌀 따위의 곡식을 담아 두는 세간의 하나). *세간 : 집안 살림에 쓰는 온갖 물건.
*어짠지 ; ‘어쩐지(어찌 된 까닭인지)’의 사투리.
*어따 ; 어디에다. 어디에.
*돌라먹다 ; 훔쳐먹다(몰래 가져다 먹다). ‘속여먹다(속여 이익을 얻다)’의 사투리.
*뒤지다 ; ‘뒈지다(‘죽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들입다 ; 세차게 마구.
*육단심(肉團心) : [범] Hrdaya  4심의 하나。 심장을 말함。 8판(瓣)의 육엽(肉葉)으로 되었다 한다。 의근(意根)이 의탁한 곳.
*묘방(妙方) ; ①기묘한 방법. ②신묘하고 효험이 뛰어난 처방(處方).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 ‘간화선(看話禪)에 대한 의심을 풀어주는 글’. 고려의 보조 지눌(普照知訥) 스님 지음. 화두(공안)에 대한 하나의 큰 의심을 깨트려 곧바로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간화선(看話禪)의 뛰어남을 밝힌 저술.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p52-53.
當於本叅公案上(당어본참공안상)에 有疑(유의)호리니  大疑之下(대의지하)에  必有大悟(필유대오)하리니  千疑萬疑(천의만의)를  倂作一疑(병작일의)하야  於本叅上(어본참상)에  取辦(취판)호리라
若不疑言句(약불의언구)가 是爲大病(시위대병)이니라  仍要盡捨諸緣(잉요진사제연)하고  於四威儀內(어사위의내)와 二六時中(이륙시중)에  單單提箇話頭(단단제개화두)하야  廻光自看(회광자간)호리라

바로 모름지기 본분을 의지하야 법다이 하야사 비로소 옳으리라。 반드시 본참공안상에 의정을 두리니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으리니, 천의만의(千疑萬疑)를 아울러 한 의심을 지어서 본참상에 판단할지니라.
만약 언구(言句,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큰 병이니라。 반드시 모든 인연을 다 버리고 사위의(四威儀)와 열두 때 가운데에 다만 화두를 잡아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라.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묵조사선(默照邪禪)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 나가는 그러한 공부. 이것은 깜깜한 귀신굴(鬼神窟)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는 것이라 해서 영원히 깨달을 분(分)이 없는 것이다.
*묘한 관(觀) ; 묘관(妙觀).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드리 ; ‘마구(아주 세차게, 매우 심하게, 앞뒤를 따지지 않고 아무렇게나 함부로)’의 옛말.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정견(正見) ; ①팔정도(八正道)의 하나. 바른 견해. 연기(緣起)와 사제(四諦)에 대한 지혜. ②있는 그대로 봄. ③바르게 자신의 참모습을 앎.
*팔정도(八正道) ;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수행의 올바른 여덟 가지 길. 정견(正見),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正定), 정사유(正思惟), 정정진(正精進). 팔성도(八聖道)를 이른다.
*정견 학자(正見學者)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알고 바르게 수행하는 이.
*입태(入胎) ; 모태(母胎)에 들어가는 것.
*주태(住胎) ; 모태(母胎)에 머물러 있는 것.
*출태(出胎) ; 태어나는 것.
*매(昧)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후래(後來) ; ①뒤에 오거나 뒤져서 옴. ②장차 오게 되는 앞날.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시현(示現 보일 시/나타날 현) ; 그때마다 적절하게 몸을 나타내[現] 보이는[示] 불보살의 작용. 현시(顯示), 현현(顯現)과 같은 뜻이다.
불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중생의 수만큼 많은 갖가지 몸으로 변화하여 나타나는 시현의 대표적인 예는 부처님의 32상 80종호나 관세음보살의 33신 등이 있다.
*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말. 눈[雪]을 품은 곳이란 뜻. 설령(雪嶺) · 동왕산(冬王山) · 대설산(大雪山) 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카필라바스투 역시 설산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수도한 산.
*유기철물(鍮器鐵物)은 신견고(身堅固)요 ; 유기(鍮器) 철물(鐵物)을 올린 시주(施主), 몸이 견고하여지이다.
*불양헌답(佛糧獻畓)은 복무변(福無邊)이요 ; 불전(佛前)의 공양 위해 논이나 밭을 올린 시주, 복이 무량하여지이다.
*창호도배(窓戶塗褙)는 면팔난(免八難)이니라 ; 창호하고 도배한 시주, 팔난(八難)을 면해지이다.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 • 숙원력(宿願力) • 대원업력(大願業力) • 서원(誓願) • 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개탄(慨歎, 慨嘆 슬퍼할 개/탄식할 탄) ; 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못마땅하거나 분하게 여기어 한탄함.
*호향차시명자기(好向此時明自己) 백년광영전두비(百年光影轉頭非) ; ‘당장 이 때에 마음을 애써 밝히소, 백 년 세월도 순식간에 글러지느니’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61 게송 참고.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이 용궁(龍宮)에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을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본(本)이 있었다.
그 중에 상본(上本)이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은 49만 팔천팔백 게송 천이백 품(品)이고, 하본(下本)은 10만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수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을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또 그것을 간략히 한 약본(略本)이 80권 본, 60권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은 ‘미진수(微塵數 셀 수 없는 무한수)’의 품(品)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그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곧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로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전강선사 법문 275번 참고)

 


[참고] 전강선사(No.18)—전강선사 일대기 8호(경술년 12월 13일)(1971년 1월 9일)에서.
그 참선 공부, 세상에 참선 공부 같이 쉬운 것은 없어.
그렇게 쉽건마는, 낯 씻다가 코 만지기요. 얼굴 씻글 때 코 안 만져지나? 그대로 코 만져지는 것인디. 얼굴 씻글 때 코 만지는 것이여. 허! 그것 참!

천하에 그렇게 쉬웁건마는 어째도 그렇게 모도 안 된다고 야단들이고, 망상 따문에 못 허겄다고 야단이고,
망상 그놈 따문에 참선을 하는 것이고, 망상 따문에 화두가 그놈이 있는 것이지, 망상 없으면 무슨 화두가 있나? 화두가 없어. 망상 그놈 따문에 화두가 딱 그놈이 인자 있지.

그래서 화두 그놈은 망상을 다루는 놈이여. 망상을 잡드리 하는 놈이여. 화두 그놈이 아니면은 망(妄)을 대체 주체할 수가 없어. 일어나는 전체가 망이니까.
깨달지 못했으니 망(妄)이지. 깨달랐으면 전부 그놈이 각(覺)인디. 깨달으면은 망이 없는 것이 아니여. 망(妄) 그놈이 각(覺)이여 그만!
낱낱이 각(覺)이지, 조끔도 뭐 여읠 것도 없고—망상을 여의고 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망상 자체가 각이여! 그대로가 각(覺)이여.

수은(水銀)을 한 뭉치 내던졌다. 이놈이 천 쪼가리—그놈이 조그만한 덩어리가 모도 갈라져서 만 덩어리가 되고 몇만 덩어리가 되아. 쓸어 모으면은 한 덩이여.

망(妄) 역시 그 깨달지 못해 중생 때에는 전부 망(妄)이더니, 깨달라 놓고 보니 그놈이 낱낱이 다 각(覺)이다. 그러니깐 미진수(微塵數) 법계(法界)지. 가는 티끌 수 법계라.
화엄경에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지! 화엄경 품수(品數)가 일사천하미진수품이여. 화엄이란 화엄도리는 다 각인데... 낱낱이 각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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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방(棒) ; 몽둥이. 또는 주장자(拄杖子). ‘방망이 봉’자이지만 불교에서는 덕산방(德山棒) 등의 용례에 따라 ‘방’으로 읽는다.
*방할(棒喝) ; 선가(禪家)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직접 체험의 경지를 나타날 때, 또는 수행자를 점검하며 꾸짖거나 호통칠 때, 방망이나 주장자(拄杖子)를 세우거나 그것으로 수행자를 몽둥이질하는 것을 방(棒)이라 하고, 그러한 때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할(喝)이라 한다.
덕산선감(德山宣鑑)은 방으로 가풍(家風)을 삼았으며, 임제의현(臨濟義玄)은 할로써 지도방법을 삼았다. 이것을 두고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라 한다.
*산철(散철) ; 본철(本철 - 하안거,동안거)가 아닌 시기.
*원청 ; 원청강(워낙, 두드러지게 몹시).
*불탄산고수활(不憚山高水濶) ; 높은 산 깊은 물도 꺼리지 않고. 憚(꺼릴 탄). 濶(넓을 활).
*미륵(彌勒) : 대승보살.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운무중(雲霧中 구름 운/안개 무/가운데 중) ; 구름[雲]과 안개[霧]의 속[中].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서래의(西來意) ;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천둥이(賤둥이) ; ①‘천더기(賤-- : 업신여김과 푸대접을 받는 사람)’의 사투리. ②’천한 둥이’의 준말. 조실부모한 고아나 남의 손에 길러진 아이를 일컫는다.
*만고(萬古 일만·클 만/옛날·예 고) ; ①매우 먼 옛날. ②아주 오랜 세월 동안. ③세상에 비길 데가 없음.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수행막대빈모반~ ; [치문경훈(緇門警訓)] '잡록(雜錄)'에서 '굉지선사시중(宏智禪師示衆)'
宏智禪師示衆(굉지 선사가 대중에게 보임)
蒿里新墳盡少年  修行莫待鬢毛斑  死生事大宜須覺  地獄時長豈等閒
道業未成何所賴  人身一失幾時還  前程黑暗路頭險  十二時中自着奸

쑥대밭에 새 무덤이 다 소년의 무덤이니, 수행(修行)하는데 귀밑을 희기를 기다리지 말아라.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모름지기 깨달아야 하니, 지옥 고통 길고 기니 어찌 등한히 하겠는가.
도업(道業)을 못 이루면 그 무엇에 의지하며, 사람 몸 한 번 잃고 언제 다시 돌아오리. 앞길이 캄캄하고 가야 할 길 험하구나. 하루 어느 때나 마음을 다잡아 도(道)를 구하여라.
*수한(壽限 목숨 수/한정 한) ; 타고난 수명(壽命 생물이 살아 있는 연한)의 한도(限度). 타고난 목숨의 한도.
*후기(後期 뒤 후/기약하다·약속하다·기간 기) ; ①어떤 기간을 둘, 또는 셋으로 나누었을 때, 맨 나중의 시기. ②뒷날의 기약.
*염(簾) ; 한시(漢詩)를 지을 때, 글자의 음의 높낮이를 맞추는 방법. 형식이 여러 가지인데, 가새염이 가장 보편화되었다.
*운(韻) ; ①소리와 음조가 비슷한 시행(詩行)의 끝부분. ②한시(漢詩)에 운(韻)으로 다는 글자.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상신실명(喪身失命) ; ‘몸 죽고 목숨 잃다’
*법담(法談 부처의 가르침 법/말씀·말할 담) ; 불교의 도리에 관하여 나누는 이야기. 또는 그러한 설법(說法). 선사(禪師)들이 본분(本分 : 근본 깨달음本覺)에 대하여 서로 묻고 대답하는 것. 법화(法話)와 같은 말.
*독보건곤(獨步乾坤) ; 건곤(乾坤)에, 천지에 홀로 걸어가는 것. 도리(道理)를 증득하여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것을 나타내는 말.
[참고①] 『무문관(無門關)』 ‘무문혜개(無門慧開) 스님의 서문’에서.
大道無門 千差有路 透得此關 乾坤獨步
대도에 문이 없다. 천 갈래 길은 있으니 이 관문을 꿰뚫으면 천지에서 홀로 걸으리.

[참고②] 『태고집(太古集)』 (雪栖 편,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228. 229. ‘석가 출산상(釋迦出山相)‘ 참고.
巍巍落落兮赤洒洒 密密恢恢兮淨裸裸 春風爛漫水悠悠 獨步乾坤誰伴我 若也山中逢子期 豈將黃葉下山下

높고 높음이여 아무것도 없고, 넓고 깊음이여 있는 그대로네. 봄바람은 난만하고 물은 흘러가는데, 건곤에 우뚝하여 누가 나를 짝하랴.
만일 산중에서 종자기(種子期)를 만났던들, 어찌 누른 잎 갖고 산을 내려왔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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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원(監院) ; 한 절의 사무를 총괄적으로 감독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비로자나(毘盧遮那)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 遍一切處)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이르는 말. 비로자나는 진리 그 자체인 법신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 ; 전신(全身)은 '본질 그대로' '여래진신(如來眞身)'의 뜻으로 ‘비로자나 전신체’는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한다.(조실스님 법문 275번 참고)
*해필(奚必 어찌 해/반드시 필) ; 하필(何必 :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꼭).
*진대지(盡大地 모든·전부의 진/클 대/땅 지) ; 모든 대지. 이 땅 전체를 가리키는 말.
*호래아들 ; 호래자식(배운 데 없이 막되게 자라 교양이나 버릇이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냅대 ; 냅다(몹시 빠르고 세차게. 또는 그런 모양으로).
*법광(法狂) ; 수행의 과정에서 어떤 경계가 나타나서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언행의 절제가 사라져 미친 것과 같은 상태. 식광(識狂)이라고도 한다.
*송(頌) ; 게송(偈頌).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찬(讚)하다 ; (...을) 칭찬하거나 찬양하다.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패철(佩鐵 차다·휴대하다 패/쇠 철) ; 묏자리를 정할 때 풍수설에 따라 묏자리의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지관(地官)이 썼던 나침반(羅針盤)이다. 『주역(周易)』에 기초한 오행과 십이간지 및 육십갑자가 표시되어 있고 방위도 세세하게 구분되어 있다.
*묏자리 ; 뫼(사람의 무덤)를 쓸 만한 자리. 또는 쓴 자리.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환화(幻化) ; 환(幻).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 : 聲聞, 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 : 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한림(寒林) ; ①겨울의 낙엽이 진 숲. ②시다림(尸陀林 : 인도 라자그라하의 북쪽에 있던 시체를 버려두는 숲).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일없다 ; ①필요가 없다. ②걱정하거나 꺼릴 것이 없다.
*등정(登程 오를 등/노정 정) ; 노정(路程)에 오름[登]. 길을 떠남. 등도(登途).
*운수(雲水) ; ①구름과 물을 아울러 이르는 말. ②떠가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같이 정처(定處 : 정한 곳. 또는 일정한 장소) 없음. ③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道)를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雲]과 물[水]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④탁발승(托鉢僧 : 탁발하는 스님)을 멋스럽게 이르는 말.
*아만(我慢 나 아/거만할·게으를 만) ; ①오온(五蘊 :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아(我)를 실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우열의 관점에서 남과 나를 차별하여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는 자아관.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제7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밉상맞다 ; 밉상(-相)은 ‘마음에 들지 않고 거슬리는 데가 있는 미운 모습’을 이르는 말이고, ‘-맞다’는 부정적 의미를 갖는 일부 명사나 어근 뒤에 붙어, ‘그러한 상태에 처해 있거나 그러한 태도를 지니고 있음’의 뜻을 더하여 형용사를 만드는 말.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여래선(如來禪) ; 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말의 자취가 있고 이치의 길이 남아 있는 선.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서 이치나 일에 걸림이 없는 선.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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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산화상시각원상인(蒙山和尙示覺圓上人) (6/8) 몽산화상이 각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25)—08-1. 몽산시 각원상인(6) (72.06.22)

(1/3) 약 20분. (2/3) 약 20분. (3/3) 약 11분.

(1/3)----------------


청천일안몰(靑天一雁沒)이요  벽해삼봉출(碧海三峯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공산풍우다(空山風雨多)허고  화락무인소(花落無人掃)니라

나무~아미타불~


기러기란 놈이  창공(蒼空)에 날아가다가 허공에 빠져 버린다. 허공, 원청 멀리 날아가니, 보면은 빠져 버리지, 허공 속에.

바다를 바라보니 바다에는 망망창해(茫茫滄海)  산이  삼봉(三峰) 솟았구나.


공산(空山)에는 풍우(風雨) 많이 있는데, 꽃이 모도 떨어졌는데 쓰는 사람이 없구나.

도시(道詩).  ,  보고  () 바로 봤지.


 별다른 경계인가? 기러기 날라가다가 공중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빠져 버리고. 바다에는 산이  솟았는디.

공산(空山)에는 바람은 많이 있는데, 꽃은 쓰는 사람이 없어. 모도 그저, 도시(道詩).



재송도인(栽松道人)이 오조(五祖) 스님이신데, 오조 스님께서 어머니를 굶겨 죽이다니!

어머니를 굶어 죽게 맨드니, 굶어 죽게 맨들어 가지고 대도(大道)를 통하게 맨들었으니  도무지   이상 없지마는, 세상 사람들은 어머니를 굶어 죽이다니...’


 도통한 거야 누가  수가 있나? 영원히 도를 통해서 아무리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했다고 할지언정 어머니 굶어 죽였다는 것만 알지, 생사해탈 시킨 것은 모르지.


하지마는  애정, 자식의 애정, 애정 그놈 하나를 가지고는 여의지 못하고 떼지 못하고 거기 들어와서 보살 노릇을 헌들, 오조 스님 어머니 노릇을 오조 스님을 모시고 헌들, 어디 그렇게 성불(成佛)헐 수가 있어야지? 해탈할 수가 있어야지?


그러헌 무서운 동기,  굶어 죽은 동기, 아사(餓死)해서 단식해 가지고 죽은 동기,  동기 속에서 굶어 죽을 때까지 자식의 원망을 얼마나 했는지. 오조 스님이 도인이 아니라 부처라도 얼마나  , 원한이 있을 것이여.

어쩔  없지 .    원청 단식을  놓니깐  죽을  없지.  목숨  끊으면서  애착 ! 떨어지면서 그만 활연대오(豁然大悟) 했어.


활연대오를  가지고는  공중에 중천에 떠서, !  공청(空聽)을 했어.

내가   오조 스님의 덕택으로” 덕택이지! 인자  그런 굶어 죽었지마는, 원수지마는 원수가 아니고  덕택이지.

 단식을 허고 어쩔  없이  죽었는데, 내가 그만  목숨 끊어지면서 확철대오를 해서 나는 대중께 이러헌 공청을 허니 대중은  들어라. 조금도 그런 사견심(邪見心) 두지 말고 모도 배척심 두지 말고  믿어서  확철대오를 해라하고는, 공청을 했다 그말이여.


그게 어떻게 생각하면은 세상에서는 그런 원망이 없지마는 불가(佛家)에서는 무서운 동기여. 그거 후편인데,  책이 나와서 있지는 않지마는 지나(支那) 장경(藏經)에 있어.


지나(支那),  아주 깨낱같은 장경(藏經) 가서 그런 것이 있는데, 나는  책을 보지 못허고 말만 이렇게 들었지마는  책을 가지고 댕기면서  법문허는 수일이라고 그런 이가 있어서 내가 그걸 알고 여까장  것인데.

똑똑히 보지 못허고  것은 내가  의심도 나지마는, 구전(口傳)으로도 이렇게  설법이 있으니까 내가 가끔 여기까장 설법을  두지.



경봉 스님 사건은 세상에  , 그렇게도 역력하게 그렇게도 철저허게—아, 내가  마지막 인자  두타(頭陀) 마치고 통도(通度) 댕겨서 돌아나올 , ! 그렇게 역력스럽게 했건마는  보고 거짓말했다고 했어? .  냈구만 신문에.


그러나 저러나 거짓말이야 했건  아니라 하고, 거짓말이라고 하고.


원상(圓相) 그려 놓고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 했는데, 그때에 원상 그려 놓고 입야타불입야타  ,   먼 데서 부채를 가지고 원상을 쓸어버렸다

그러면  부채를 가지고 원상(圓相) 쓸거나, 손바닥을 가지고 원상을 쓸거나, 발길로 원상을 문태버리거나, 원상을 문태고 옳다 ? 그거 학자는,  있는 학자는 부딪쳐 볼지어다.


! 원상(圓相) 어떻게 뭉캤거나, 원상을 뭉캐 놓고 옳다 ?

그때는 나는 그렇게   했거든.


원상을 뭉캐서뭉캔 형용이지 무슨, 이렇게 내가 원상(圓相)을 그리고는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 한게,  저쯤 앉아서  원상을 뭉캐는 형용이지. 그것이무슨 마찬가지 아닌가?

그래서 그만 “그 자리에 묻어라!” ! 사람이 보광전(普光殿)에  찼고.


‘경봉 스님이 법광(法狂) 나가지고, 법으로 미쳐서 법광이 나가지고 굉장하니   달라’고.

내가 오장치를 짊어지고 들어갔다가 금강당에서...  금강당인가?  공소방, 거기서 하룻밤 얻어먹고 자고 나올라 하니까, 추산 스님이 확실혀.

늙은 노인이 나와 같이 그전에 젊을   처음에 지냈던 노인인데, !  노인이     나와서  경봉 스님이 저렇게 법광(法狂) 났으니   달라”고.


! 하도 그래싸, “내가  봤자   것이여?  들어갔다가 법광 난 사람,  부처도 냅대  버리고  굉장한 것인디.   내가 가서 ,  지견도 아니고 벌써 언제부터 그래 가지고 산중이 요란하게 야단났다는디  내가  것이냐”고.


, 그래도 신(信) 수좌님이  와서  달라”고 ! 어떻게 그래쌌든지. 그래 내가 끌려가다시피 왔어.

가서  보광전  조실 말리(마루)에 거기에 앉었는디, 조실에 있었다는  아니라 앉었는디, 그만 들어서면서 당장에 들어오면서 거량(擧揚) 수밖에 없지.


원상(圓相)  하나 그려 놓고는 “입야타불입야타(入也打不入也打) 들어가도 치고 나가도 치니, 일러라!” 한마디 헌게, 원상(圓相)  뭉캐서, “그 자리에 묻어라!” 냅대 고함을 질렀다 그말이여.

그런게, 한참 앉았더니 “내가 알았다!” 고함을 질러서, 내가 그때는 아무 , 그때는 벌써 눈치가 달러. ‘알았다해도 분수가 있어.


! 들어가서 옷소매를 잡고는 둘이 “나오라”고, 여러이  말이 아니라고. ! 그러고는 옥련봉 밑으로 들어가서 서로 말을 한마디  물은게, 한마디 처꺽 일러.

“어떠냐?” 내가 “어떠냐?”허니, 고개를 끄덕끄덕 점두(點頭)해.  뒤부텀 보광전에 앉어서,  정진허고 앉어서 문밖에 나온 일도 없고,  추담망담(醜談妄談) 개시화엄경(皆是華嚴經)’이란 말 한 바도 없고, ! 그렇다고 말을 했다 그말이여.


그래 내가 그런  들었는데, !  뒤에 나는 오장치 벗어번지고 서봉암에 와서 대구 서봉암에 와서, 포교사로  있단 말이여. 포교사로 있는데 뜻밖에, 청첩장을 자기가 가지고 왔어.

그때  주지가 ... 이름도 알았는디 잊었구마는, 구하 스님 뒤에   주지인디. !  주지 임명장을 나를 아주 초대장을, 거기 청첩장을 가지고 왔단 말이여.


,  갈라고 헌게 손을 끌고 노인이,  경봉당이 와서. ! 그래 내가 가서 조실까장 했단 말이여,  인연으로.

그랬는데 전부  쓸어버리고 거짓말을 했다’ 그랬어. ‘이 거짓말은 나변(那邊) 있냐?’ 이렇게 놨네.


그런디, 그만 그까짓   그만두어. 그까짓 놈의 거짓말을 했거나,  말을 했거나 공안만,

넨장, 부처님이 삼계대사(三界大師)인 부처님이  운문 방(棒)도 입었는디,

삼백년 후에 아유당시(我有當時) 일방타살(一棒打殺)하야 구자끽(狗子喫)이라”고 까장도  드리   양구(良久) () () 한 방을  쓰는 것인디, 그까짓 거짓말 한마디 했다는 것이 무슨 별것이 아니라,


세상에 그때 하던 그대로만  주었으면 그대로가,

원상(圓相)을 보고, “아니다!” 조금 앉어 있더니 “옳다! 내가 알았다!”고 고함을 질러서, 소맷자락을 끌고 가서  물으니깐 대답을 처꺽 해서, “어떠냐?” 점두를 끄떡 끄떡, 그뿐이여.

다시  조끔도 무슨 다른 공안 하나   물어 보지도 않고, 그러고는 나왔다 그말이여.


! 했으면, 오히려   내가 자기보담 나이 떨어지기는  78 떨어졌다 하지마는 나이 상관이 뭣이 있나?

그까짓녀러   나이 ,  가섭은 부처님보담 나이  얼매가  했어도 부처님 제자고, 부처님이 인가하고  그랬는 것인디 .

내가  어디 인가,   법전 하나 그거 했지. 내가 인가라고도  일도 없고.


, 이런 놈의...  어디서 그런 소리가 나오노? 나도 깜짝 놀랬다.


, 이런 놈의  보고 거짓말했다’고 허니, 자기는 그때에 법광(法狂) , 법으로 미쳐서  아무것도 모르고 그만 이러고 있을 때인디, 나는 멀쩡헌 사람인데, 나는 멀쩡해서  그때 젊을  일이라 하나도  잊어버린  없어. 소소(昭昭)허지.

무엇을 내가 어째서 거짓말했다고 이런 나변에 있는가?’  놨네. !  , 속으로.


그러고 그때 나한테 원상(圓相) 묻기를 물어서, 내가 조실 방에 있는  아니라 내가 구하(九河) 스님 어디 구하 스님 , 차사로 구하.. 그럼 구하당(九河堂)한테 내가  하러 갔을 거여?

구하당한테 어디서 내가 원상을 뭉캔게, 부채로 내가 원상을 뭉캤는디 .. ! 이래 놨네.


그래 부채로 원상(圓相) 뭉캤으면  옳은 도리인가?

인자 정말 참말로 가풍이 드러났네.  그럴 수가 있을까? 원상을 뭉캐 놓고 그러고는 마조공안(馬祖公案) 바로 봤을까?


그런디  전에   전에 만공 스님, 혜월 스님, 용성 스님,  선지식 스님한테 공안을 내가 인가  맡았다 그랬고.

선방에 나온 일이 있어야지. 합천 해인사 나와서  마치고 나와서 제산 스님 회상에서   지냈다는 말은 들었어. 내가  밖에는 들은  없어.


그러나 저러나 나는 경봉 스님을 그르다고 거짓말했다허고, 경봉스님은 나를 거짓말했다허고,  그럴 필요 없어. 그까짓 놈의  가지고는  말할 필요조차 없고, 아무  재료 없는 것이고.


원상을 부채로 쓸어버렸어? 원상(圓相) 부채로 뭉캐놓고는 견성했다고 ?

, 인제는 참말로 우습네. , 그래 어제 신문이  왔구만.


나는   헐라고  사실을 주욱 써서   놓는 것은,   경봉 스님과 나와 거량(擧揚) 역사 하나 갖다가  내서 우리 학자들한테다  밝혀 주는  명감(明鑑)이, 귀감(龜鑑)이 될까 해서  해놓은 것이여.


내가 거기에 무슨 ... 그러고  뭣을...

여까장 해두지.  말할 것도 없는 것이고. 그걸 가지고 인자  , 두말할 것도 없고.(처음~19분43초)



(2/3)----------------


화두(話頭) 자연현전시(自然現前時) 있어. 화두를 자꾸  들어갈  같으면은 화두가 자연현전시가 있어.

자연현전시(自然現前時) 있어도 잠깐 현전시(現前時) 있다가 즉무(卽無)허면, 그대로 없으면 그거 현전시가 아니여.


 그저 종일 공부를  나가다가 잠깐 그런 때가 있어.  먹기도 잊어버릴 때가 있기도 허고,  이상스럽게 무슨  말이 밖에서 아무리 듣겨도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화두만 현전헐 때가 있어.


그거는 가다 어쩌다가서  현전할 때가 있지마는, 화두를  나가다가 화두가 자연현전(自然現前) 때가 옵니다.

현전할 때가  가지고는  먹기도폐침망찬(廢寢忘餐)이여, 잠자기도 잊어버리고 잠도 잊어버리고 망찬(忘餐)이여.  먹기도 잊어버려.


폐침망찬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행주좌와(行住坐臥) 잊어버려.

행(行)해도,  행한 것이 아니여. ()해도, 가도  줄을 몰라. (), (), ()해도 주한 줄을 몰라. 능히 주했지마는 가다가 주했지마는.


(), (), 말허고 묵묵허고 () ()에도, 허지마는 잃어버리지. 몰라.

 허는  아니라, 가만히 앉어서  허는 것이 아니라, 직접 행동을 허지마는 몰라. 틀림없어.


그래서  고인들도 역부러 공부를 시험허기 위해서 장(場)에를 갔어.

장(場),  모이는 장에를 가서,  가운데 가서  일용(日用)을 해보면은, 도(道) 공부를 해보면은 하나도 귀에  들어와. 귀에 별별 소리가  워걱워걱 들어오지마는  들어와. 들어와도  들어와.

 소리인지, 그까짓 소리인지  새소리 물소리,  소리, 그까짓 소리가  조금도 관계없어.


시끄럽니 ,  시끄러운 경계가 있고 화두를 자꾸  나간다면은 시끄러운 경계 따로 있고 화두가 있어서, 그놈의 화두에 모도 번뇌가 섞여 시끄러운  경계가 섞여서  화두(話頭) 현전(現前) 아니여. 모두 뒤섞였지. 아닌데.


 복잡한 번뇌 속에 들어가도 화두가 현전일념(現前一念)혀. 확실히 그려. 그러헌 때가 온다 그말이여.

그러면 그러헌 때가 온다는 때가 언제인가? 그런 때가  때가 언젠가 말이여?

언제 올지  수가 있나?


헌디, 화두를 잡드리  가는디, 화두를 다루어 가는데 참! 절대 간절해서, 화두 하나에 간절해서  화두 일념이 행여나 행여나 어디로  버릴까, 화두 일념이 없어져버릴까, 의심이 없을까,

 무척  조심 속에서 화두를 놓치지 않고   없는 의심,  의심을 갖추어사,  대의심을 갖추어 나가사 그런 경계가 오지.


어쨌든지 그저, 그저  일순간이라도  먹을 사이라도,  일향간(一餉間) 동안이라도 화두가 틈이 없어야.


!  먹음서  못혀? 밥을 먹음서도 어디 말로 어디 화두를 허나?  씹는 것으로 화두를 허나?

밥이야 먹건만 입으로 씹지. 씹지마는  뜻은 완연히 그저 판치생모(板齒生毛)?   없는 도리, 조사공안(祖師公案) 하나   없는 도리, 의심 하나뿐이지.

이뭣고?’면 이뭣고?’ 하나뿐이지. 고놈 밖에 뭐가 있어? 뭐가 있을 까닭이 없어.


지극히 절대 발심(發心)헌 사람이야  시간인들 있다가도 없을 수야 있나? 있다가도 그만 돌아와. 그만 챙겨.

어디로  화두가  버리고 없고, 다른 망념이 들어와서 그놈이 있다가도 얼른 돌이켜. 그저 그것만 돌이켜. 돌이켜서 그저 항상 그놈만, 도로 도망가면  돌이켜서 그놈만.


처음에는 밤낮 도망가지. 밤낮 화두는 그만 없고, 망상만 그저 망상에만 밤낮  있지.

자꾸 돌이키지. 자꾸 돌이켜 그저 없어도.  돌이키고  돌이키고 그저 시시(時時) 돌이키고, 자다가도 깨어나 돌이키고,

그러기에 그때는 화두가 득력(得力)이 아니니까, 화두가 현전이 못되니까 들락날락 들락날락 하지. 종일  봤던들 화두할 때는  불과   되도 않고 망상 일어나고, 그럴 때는  한량없지, 때가.


그때는 주작(做作) 공부니까, 주작으로 어쩔  없이 허는 공부니까.

어쩔  없어, 주작으로   돌이켜서 이뭣고?’를  놓으면 도망가 버리기는  시간 가버리고 오도 않고,  생각[別念]  들어오고.

이거 , 마음 심두(心頭)만 점점 어지럽고, 불안하기만 잔뜩 불안허고.  고약허지. 공부가 득력 못되었으니까.


공부는  해야 허겠는데. 공부를 않고 어찌 되겄나? 어쨌든지 그저 금생에 결정코 확철대오(廓徹大悟) 해야겠는데, 어짜꼬 말이여? 이렇게 안 되는고?

그놈의 걱정 속에서 망상 속에서 마음만 잔뜩 그만 시끄럽고 괴롭고.   야단났지.


그럴수록 자꾸 돌이키니까 주작(做作)이여.  억지로 , 억지로  주작이여. 주작 공부여.

지금  철을 했든지,  철을 했든지,  철을 했든지,  철만 해도 순일헌 경계가 오는 공부도 있고, 세 철을 했어도 주작 공부가 있고, 10년을 해도 기름 선, 기름 참선, 항상 그저   모냥이지. 화두가 도무지 독로(獨露)가 없지.


그것은 당인의, 지재당인(只在當人)의 지성스런 마음, 정성스런 마음, 철저헌 마음, 발심헌 마음 가운데에서 그렇게  철에 순일헐 때가 순일헌 공부도 있고.

주작으로 허다가 그거 안되면 그만이지 그것, 억지로 그리 해쌀 것도 없다 그래 가지고는 그만 그저 시대 풍경이나 따라 가지고 그럭저럭 허다말다 허다말다. 되도 않는 것이고, 그건 참선도 아니고, 그건  선이라고 할까?


공연히, 와서 공연히 그저 허송세월이나 하고, 시광(時光)이나 몰(淹沒)허고, 시은(施恩)이나 녹히고, 그렇게 한평생 그저 산중오입이나  것이지.


 절대 발심을 해야 하고, 절대 신심(信心)과 절대 분심(憤心)을 가져야 하는 것이여.


가져서, 그저 불가불 어쩔  없는 주작(做作) 그저  주작이지마는 주작이라도 자꾸 그저 돌이켜. 돌이키고,  돌이키고, 그저 돌이키고, 가나 오나 돌이키고, 그저 행주좌와 어묵동정 이라니까 그래. 이렇게 화두를 참으로  한바탕  봐야 되아.  보되,


부제자연현전(不提自然現前)이다. 나중에는 부제(不提)해도, 부제라는 것은 주작(做作)  해도 말이여. 억지로 헐라고  해도 자연현전(自然現前) 시절(時節) 도래(到來)한다.

 자연현전 시절은 있다 없다   아니고,  그거 주작할라고  것이 없어.

 .  지경이  오는가?


원수, 그놈의 원수를 갚을 마음도 부모를 때려죽인 원수가 있으면 그놈을 갚을 마음도, 한시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여.

 , 혈구 속에 들어가서, 알 마음속에 들어가서 없앨래야 없어지들  , 분헌 마음이. ‘어째야 어째야 그놈의 원수를 갚을꼬?’


 부부지간에 살다가, 천하에 인연 중하게 부부만 믿고 남편만 믿고 살다가  남편이  죽은 뒤에,  남편의 애착이 그만  눈동자 속에 들어와서 환허니 보이지. 남편 면목이, 보고 싶은 남편 면목이 눈앞에 환허지.

‘아이고! 언제나 우리 남편의 , 얼굴을 ? 어디가  때가 있을까?’ 그놈이 어디 끊어져? 끊어지지 않지.


비단 그뿐만 아니라 천하에 없는 보물을 잊어서는 안될 것인디 잊어버렸다. 어따가 놓은 지를 모른다.  도둑놈이 돌라간  아니라.

어따가 내가  보물을 놓았는고?’ 이놈이 끊어져? 그렇게 현전되어야 한다 그말이여.

화두(話頭) 부제(不提)해도 자연현전시절(自然現前時節) 오느니라.


각부득환희(卻不得懽喜)해. 내가 어저께도  거지만 다시   재독(再讀)허는 것이여.

각부득환희(卻不得懽喜)해라. 그렇게 현전 온다고 , 좋다야! 화두가 이렇게  때가 있구나.  내가 이렇게 화두   몰랐구나. 인자  득력(得力)이로구나 좋아서 나부댄다.  마음도 두지 말란 말이여. 그거 안되아.


고것 조금 들어온 바람에 이상스런 놈이 따라 들어오네. 환희마(懽喜魔) 들어와.

 ()라는  이상하지. 환희마란 놈이 그놈이  쬐끔만 생기면 들어온다 그말이여.  환희마를 두지 말아라!


환희마 두니, 안 두니 말할 것도 없어. 그만  현전일념(現前一念), 그저  의단(疑團)만 현전 갖출 것이다.


농담(濃淡) 임타(任他)해라. 화두가 되느니,  되느니,  무슨 그런 농담(濃淡)  나온 것은 임타(任他) 버려라. 저한테 맽겨버려.

망상은 저한테다 맽겨버려. 나거나 말거나 제 게다 두어버려.  마음이 나드래도 그까짓  제 게다 놔둬버려. 간섭 말아라.

  알아듣겄죠? 나거나 말거나, 그까짓  내가 간섭할게 뭐여? 임타해 버려.


그저  경계가, 그저 직여노서(直如老鼠) 교관재(咬棺材)해라.

늙은   , 그놈   늙은 놈이 그놈이 쌀궤에 쌀   알고 쌀궤를 뚫는디, 다시  뚫는   뚫지, 이리저리 고치지 말어라.  뚫는 구녁만 자꾸 뚫어라 그저.


그거 다른 말이 아니여.   없는 의심만 현전해라  말이여. 의단(疑團), 의단만 그저 현전(現前)해라.

의단 갖춘 것이 그것이 노서교관재(老鼠咬棺材) 그말이여. 늙은 쥐란 놈이 쌀궤 뚫듯기  구녁만 뚫어라.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이려. 활구참선법이 뿐이여. 대의단(大疑團) 뿐이여. 분심(憤心)으로 의단 뿐이여. 이걸 정법이라 해.

 밖에 무슨 정법이 있어? 별짓을, 천하 없는 짓을 다해 봤자 그거 정법이 아니여. 방편법이지.


방편(方便)이라는 것은 그건 어쩔  없어서 방편을 모도 천만 방편을 부려서,  가지  가지 방편을 부려서 화두로, 필경 화두 허게 만들려고  것이여.

가명(假名)으로 인도(引導)  것이 그것이 방편이여. 거짓 이름으로 인도헌 것이 방편이다  말이여.


가명인도(假名引導) () 권이미실(權而未實)이다. () 실답지 못허다. 추이미묘(麤而未妙). 추헌 것이 묘허지 못하다.

심상체신(心相體信)커사, 인자 네가 이만큼 참선을 헐라고 마음을 믿은 뒤에사 내시실상(乃示實相)이다. 이에 실상을 보인다. 이에 참으로 인자  정법을 보인다.


보소(寶所)가 재근(在近)허니, 보소가 가까이 있으니 어서 오너라. ? 어서 오너라.

그것 버리고 오너라 그말이여.  방편 버리고 오너라 그말이여.  가지 방편이고  가지 방편이고 버리고 와서, 어서 와서  찾아라. ‘이뭣고?’해라. ‘이뭣고?’를 해라.


그저 쥐란 놈이 쌀궤 물어뜯듯만 해라. 그저 현전일념만 해라. 그저 ‘이뭣고?’ , 그놈 한번 , 연속허고.   , 연속허고  보지.

그놈 이뭣고?’    , 뒤에 치를   생각해. ‘이뭣고?’를,  ‘이뭣고?’를,  ‘이뭣고?’를  줏어 대고, 자꾸 주어  .


고놈이 나중에 모으고  모으고,  해 지고  해 져 가지고, 일념이 되어 가지고 일념 그놈이 풀어지지 않고 그대로 그만 되아 버리네.

그것 그렇게 되면, 의단이 독로되면  깨닫는 법이 없어. 그건  아무리  깰라고 해도   수가 없어.


  자다가 방맹이로 대갈빡을 냅대 한번 때리면 골이  터짐서  깨듯기 한번 깨져야.   수가 없어.(19분49초~39분25초)



(3/3)----------------


  화두라 하는 것은 첫째 좌중(坐中) 득력(得力) 제일 ()허다. 좌중(坐中) 가운데에서 득력이  묘하다.


내가  공부허다가  잠이 오거들랑  잠을 깨우기 위해서 30분만에  번씩이든지,  시간만에  번씩이든지, 일어났다가 살모시 들어와서 앉어서  해라 요렇게  내가 일러주지.

일러주었더니, 가만히 보니  앉으면 일어나 버려, 일어나. 억지로   일어날라고 그런가 어쩐가 몰라도, 이리 보면 일어나. 조금 있다 보면 일어나. 1분도 안되아. 파딱 파딱 파딱 파딱  무엇이여?


그런 사람은 알지. 고렇게  사람은 알지.  들으라고   알지. ‘ 들으라고 이런 말하는구나  아는 것이 대단히 좋은 것이여.


그게 부작방편(不作方便)이다. 그것 ! 조끔  시간이라도 앉었다가 이럴 때가 있다든지, 30분이라도 앉었다가  이럴 때가 있다든지 어찌 그래야지, 고만 앉음서 그만  일어나.  일어나.

 무엇이여?  닦는 사람의 자취여? 그것이 무슨 방정이여. , 방정도 분수가 있지. 고런 놈의 방정이 있어?


이런 , 그런   사람은 들으면은  귀에 거스를는지 모르지마는, 충언(忠言)이 역이(逆耳)나 이어행(利於行)이다. 충성스런 말이 귀에는 거슬리지마는 행에는 좋은 것이여.

화두해 나가는 사람이 이러헌 결점을 봐주는데 싫어? 이게 어떠헌 말인디 싫어? 이거 어따 쓰는 건디 싫냐 그말이여.


제일, 좌중(坐中) 득력(得力) 제일 ()하다.

어좌중(於坐中) 득묘정력(得妙定力)이다. 좌중에서 정력 얻기가 제일 쉽다. 정력(定力) 화두일여(話頭一如).

화두 일념 중으로  쪼꼼도 어디 빈틈없이 일념 하나,   없는 일념 하나, 고놈이 고대로 있는 것이 그거 화두(話頭) 정력(定力)이여.


화두 르고 정력이  따로 있으면 써?

그게 무슨 놈의 ()이여? 그것이. 무슨 ()이여? 그녀러 정이.


  없는 놈이 틈도 없고, 도망도 안 가고 고대로 있는 것이 그것이 화두 정력이여!


정호제시(正好提)해라. 요러   정히  제시() 해라. 알뜰히 알뜰히 닭이란 놈이  품듯기 화두를 보호해라.  기가 맥히게 해라.


세상에 견성성불(見性成佛)이 뭐냐? 견성해서 성불허는 것이 뭣이냐?

견성(見性)이라는 것은 중생성, 중생 죄업(罪業) 녹아지는 것이다. 중생견 없어지는 것이다.


 중생견이라는 것이 사량분별(思量分別) 계교(計較)뿐인데,  사량분별 계교라는 것이 못된 마음, 쓸데없는 마음, 그저 모도 애착심, 애착심 가운데에서  모도 계교심(計較心),

계교심 알아? 계교심이라는  어떻게 어떻게 도둑질이라도 해야겄구나, 무슨 협잡질이라도 해야겠구나, 무슨 어떤 놈을 죽이기라도 해야겠구나’하 모도  계교심, 그런 중생심 떨어지는 것이여. 중생심.


그놈이  견성해 버리면은 계교심이 도리어 사람을 죽일 놈이라도 죽일 마음이 나도, 살리우는 마음이요 그거 해탈심인디 .

없나? 있어. 죽일  죽이지. 죽일  능히 죽이고, 살릴  능히 살리는 것이 해탈심이여.

허되 낱낱이 중생 번뇌 시대와 깨달라서 (覺) 시대(時代) 같나?


활연대오(豁然大悟) 해서 중생의 구백 생멸심(九百生滅心)에다가 견성을     같으면은 부처님의 그저  미진수(微塵數) 법문(法門) 한량없는 그만 해탈 법문이지. 모두 득묘법문(得妙法門)이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여.


정호제시(正好提)해라. 참으로 한번 제시() 해라.


단불용착력(但不用着力)이니라. 거다가서 착력(着力)허지 말어라.

힘을 써서 억지로 , 억지로 허는 법이 있나? 화두가 저절로 제시현전(撕現前)인데, 제시현전 가운데 착력(着力) 있어?


 공연히 힘을 부딪칠 수가 있거든. 억지로 힘을 써서, 그만  그만 착력을, 힘을 .

가운데 간을 힘을 쓰든지, 속에 심장을 힘을 쓰든지, 무슨 육단심(肉團心)을 .

힘을   같으면은 미묘현전(微妙現前) 아니다. 묘한 화두(話頭) 현전(現前) 아니니라.


그저 조금씩  두지. 너무 많이 허니  머리 아프고.


화두  나가는 가운데 한마디씩 들어 두면 그날 화두가 잽혀. 그만 그럭저럭 지내다가도 아침에 화두를 들어 놓으면 그날 공부가 그날날마당   관청에도 조까이(ちょうかい, 朝會)..  옛날에는 조까이 시간(朝會時間)이라고, 왜놈들 시대 때는 조까이 시간이라고 그러지마는, 지금은 모도  시간이 있지 않는가?


허니,  조금씩 이리 들어서 여설(如說),  법문대로 행을   보라 그말이여. 법문대로 법문 듣고 고대로 조금씩  보라  말이여.

 헐라고 아침마다 내가 올라와서,   한마디라도 힘이 잔뜩 든디 이러고 있겄냐 그말이여.


  말세일수록에 어서 부지런히  깨달라 가지고 깨달은 사람이  있어야사  정법 간택을 . 혼자만 옳다고  놓으니 누가 믿어져야지?


우선 원상(圓相) 가지고 말하자 그말이여.  원상을  그려 놓고 여기 들어가도 죽고, 여기 나와도 죽는다

원상(圓相) 뭉캐버리면 되겄냐 그말이여. ‘부채로 원상 뭉캤다 고걸 옳다고 인자 허고 앉었어?


, 세상에! 춘치(春雉) 자명(自鳴)이지. ‘봄 꿩이  울음에 죽는다’고.

! 차라리 그대로 두었으면 쓰건만,  무슨 소리여?  , 의심 . 의심 나 죽겠네.


어쨌든지 하루하루 법문 듣거든, 그날그날 법문대로  ,   .

날이 더우면은  시원헌 데 앉어서도 허고. 화두 없다고  더웁나? 화두에 일념이 되아사 더위도 없어.


오히려 더우면 가만히 앉었구만. 화두만  들고 앉었으면 더위가 없어. 더위가 더운 줄도 몰라.

그런디 괜히 왔다갔다 왔다갔다 왔다갔다, 그래 쓰냐 그말이여.


좌중(坐中) 득력(得力) ()허니,  앉어서  시간 동안에   일어나든지 그러고 도로 가서 자리에  앉고 앉고,  닭이란 놈이  품듯기, 괭이란 놈이  잡듯기   보란 말이여.

!  시킨 대로  해 봐.  철이고  철이고 애만  보란 말이여,  되는가, 되는가?


고인(古人)들 견성헌 스님네가  , 별로 지내가지 않었어. 득력시절(得力時節)  철이 별로  지내가.

 철만 지내가,   지내가면 선(禪)이 기름선이 되어서 못된 놈의 선(禪)이 되아 버려. 매끈매끈혀. 화두가  그만 암만 화두를 들어도 기름 발라  것처럼 미끄러서 도망가 버려.(39분27초~50분4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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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靑天一雁沒  碧海三峯出’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초옥(草屋)’ p85 참고.

*(게송) ‘空山風雨多  花落無人掃’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방적객(訪謫客, 귀양을 사는 나그네를 찾아)’ p85 참고.

*재송도인(栽松道人) ; 중국 선종(禪宗) 4 도신대사(道信大師 580~651) 제자를 맞아 인증을 하였지만, 제자가 너무 늙어 스승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법을 이을 사람이 없으니 몸을 바꾸어 오도록 하였다. 이에 몸을 바꾸어 후에 다시 만날  증거로 삼기 위해 황매산에 소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를 심었다 뜻에서 재송도인(栽松道人)’이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5 홍인대사(弘忍大師 602~675)이다.


[참고]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백운화상 抄錄 | 원조각성 번역 | 현음사) ‘32. 4 도신 대사 · 재송도자’ p202~206 참고. 『직지 강설() (무비 스님번역 | 불광출판사) ‘6 도신·홍인 대사’ p202~203 참고.

四祖  因栽松道者  來相見  語言相契  祖曰汝年已老  改形而來可也  道者  珍重  便行下山至濁港

4 도신 대사께서 재송도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말이 서로 계합하였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나이가 이미 늙었으니 몸을 바꾸어서 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재송도자가 아무  없이 문득 산을 내려가서 탁항에 이르렀다.


見一處女浣衣  遂云我欲借汝家一宿  女云有父母在  道者曰你肯麽  女云去問我父母宿  道者去不遠  於一樹下坐化去  其女  從此有孕  生一男子  被父母訶  及是非不能洗  便將兒子  抛於江水中去  復廻次日見兒  逆流而去  不忍復收養之

 처녀가 빨래하는 것을 보고 드디어 말하기를 내가 그대의 집을 빌려서 하룻밤 자고자 하노라 처녀가 말하기를 부모님이 계십니다 도자(道者) 말하기를 그대는 허락하는가?” 처녀가 말하기를 집에 가서 저의 부모님께 묻고 주무시라고 하겠습니다

재송도자가 멀리 가지 아니하고  나무 밑에서 앉아서 입적하셨다.  처녀가 이로부터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부모의 꾸짖음과 옳고 그름을 씻을  없게 되어 문득 아이를 데리고 가서 강물에다 던져 버리고 갔다. 다시 돌아와서 다음날에 아이를 보니 물을 거슬러 가고 있었다.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다시 거두어 길렀다.


乞食度日  至七歲  携在黃梅  路上  見四祖  祖問曰童子何姓  子答曰姓卽有  不是常姓  祖曰  是什麼姓  子曰佛性  祖曰雖有佛性  汝且不會  子曰非但我不會  三世諸佛亦不會  祖曰爲什麼不會  子曰性空故  祖默識其法器  卽便出家  乃傳衣付法

걸식하면서 세월을 지내다가 일곱 살이 되어서 이끌고 황매산에 갔다.  위에서 4 도신 대사를 만났다. 4조께서 물어 말씀하시기를 동자는 성이 무엇인고?” 동자가 답해 말하기를 성이 있기는 하나  보통의 성은 아닙니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성인고?” 동자가 말하기를 불성(佛性)입니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비록 불성은 있으나 너는 아직 알지 못할 것이다 동자가 말하기를 비단 저만 알지 못할  아니라 삼세제불도 또한 알지 못합니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알지 못하느냐?” 동자가 말하기를  본성이 비었기 때문입니다” 4 대사께서 그가 법기임을 아시고  문득 출가해서 이에 가사를 전하고 법을 부촉하셨다.

*지나(支那) ; 우리나라의 서북쪽, 아시아 동부에 있는 나라. 중국 본토의 다른 명칭.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제5권 165칙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師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그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 대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 - 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을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이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이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그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그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를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한 그 공안에 그 스님이 턱 뛰어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한 방을 후려치니까 그 스님이 그 방(棒)을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히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다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의 소견(所見)을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이 되는 것입니다.

*문태다 ; ‘문지르다, 문대다’의 사투리.

*법광(法狂) ; 수행의 과정에서 어떤 경계가 나타나서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여 언행의 절제가 사라져 미친 것과 같은 상태. 식광(識狂)이라고도 한다.

*오장치 ; ‘오쟁이’의 사투리. *오쟁이 : 물건을 정돈하거나 담아 두기 위하여 짚을 엮어서 만든 작은 섬(곡식을 담기 위해 짚으로 엮어서 만든 자루).

*말리 ; ‘마루(한옥에서 방과 방 사이에 있는 마루)’의 사투리.

*거량(擧揚 들 거/나타낼·밝힐 량) ; 법거량(法擧揚).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나변(那邊 어찌·어느 나/가장자리·곁 변) ; 어느 곳 또는 어디.

*넨장 ; 못마땅한 일이 있을 때 욕으로 하는 말.

*운문 선사의 방(棒) :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석가여래께서 출생하면서 바로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오직 내가 가장 높다(天上天下唯我獨尊)’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여러 조사 스님들이 해석도 하고 칭송도 한 바가 많지마는, 운문 문언선사는 말하기를 『내가 그 당시에 있었더라면, 한 몽둥이로 때려 잡아서 주린 개나 주어 씹혔으면 세상을 태평케 하였겠다! (我當時若見․ 一棒打殺․ 與狗子喫却․ 媿圖天下泰平)』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여러 선지식들은 『아! 운문이야말로 참으로 ‘유아독존’의 뜻을 잘 설명하였다。부처님의 제자답다』하고 모두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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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눈앞에 환히 드러나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

*폐침망찬(廢寢忘餐 폐할 폐/잘 침/잊을 망/밥 찬) : 자는[寢] 것을 폐(廢)하고 밥 먹는[餐] 것을 잊으며[忘] 일에 심혈을 기울임.

*역부러 ; ‘일부러’의 사투리.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주작(做作 지을 주/지을 작) ;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억지로 지어서 하는 것.

화두를 들 때 무상(無常)을 느껴 발심(發心)을 해서 의심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의심을 한 번 잠깐하고 또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眞心)으로 의심을 발한 것이 아니고 억지로 한 것이어서 주작이라고 한다.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심두(心頭) ; 머릿속의 생각. 또는 생각하고 있는 마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시광엄몰(時光淹沒) ; 시간[時光]이 흘러가고[淹沒]. 엄몰(淹沒)은 ‘빠지다. 침몰’의 뜻.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마(魔) :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쌀궤(-櫃) ; 뒤주(쌀 따위의 곡식을 담아 두는 세간의 하나).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 ·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가명인도고(假名引導故) ~ 내시실상(乃示實相) ; 이 구절은 구마라집이 번역한 『묘법연화경』에 해설을 덧붙인 중국 송나라의 계환(戒環) 스님이 1126년에 저술한 『묘법연화경요해妙法蓮華經要解』(제1권)에 나오는 구절.

[참고] 〇妙法蓮華經要解卷第一

.....  但以衆生垢重根器未純。先說三乘假名引導。故權而未實麄而未妙。及乎諸糞既除心相體信。乃示實相會歸一乘。則妙而無麄矣。諸佛能事終畢於是也  ....


*보소(寶所)가 재근(在近)이다 ; 보물(寶物)이 있는 곳[所]이 가깝다[在近].

[참고] 『법화경』 제7 화성유품(化城喩品)에서. 『법화경』 (청량사 | 조인도철 역해), 『법화경』 (시공사 | 이연숙 옮김) 참고.

비구들아, 만일 여래(如來)가 열반할 때가 되면, 또 대중들이 청정할 뿐 아니라 믿고 이해함이 견실하여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이치를 환히 알며 깊은 선정을 성취하게 되면, 여래는 이를 알고 곧 성문과 보살들을 모아 이 가르침을 설한다.

세상에 이승(二乘, 성문과 연각)으로 멸도하는 일은 없나니 오직 일불승(一佛乘)으로써만 멸도(滅度)할 수 있다.

비구들아, 알라. 나는 중생들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그들이 소법(小法)을 즐기며 오욕에 깊이 집착함을 알았기에 방편으로 열반을 설했고, 중생들은 내 말을 듣고는 곧 믿고 받아 지녔다.


예를 들어, 아주 험난한 데다 사람마저 살지 않아 무시무시하며, 길이가 5백 유순이나 되는 나쁜 길[惡道]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진귀한 보물 있는 곳에 가기 위해 그곳을 지나려 한다고 하자.

그때 그들 가운데 한 길잡이[導師]가 매우 총명하여 그 길의 형세를 환히 다 알고 있었기에, 무리들을 이끌고 그 무서운 곳을 지나가고자 했다.

그러나 무리들은 얼마 가지 않아 귀찮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 길잡이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너무나 피곤한 데다 무서워서 도저히 더이상 갈 수가 없소. 게다가 갈 길도 아직 멀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소.’


그러자 갖가지 방편(方便)을 지니고 있는 길잡이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들 참 딱하도다. 어째서 큰 진귀한 보물을 포기하고 돌아가고자 하는가?’ 그리고는 방편을 써서 그 길의 3백 유순 되는 지점에 신통력으로 성(城) 한 채를 만들어 놓고서 무리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두려워 마시오. 그리고 돌아갈 생각도 하지 마시오. 여기 이렇게 큰 성이 있으니 들어가서 마음껏 지내시오. 이 성에 들어가면 편안히 지낼 수 있고, 또 앞으로 더 나아가면 보물이 있는 곳[寶所]에 다다를 수 있소’


그러자 지쳐 있던 무리들은 매우 기뻐하며 기적 같은 일[未曾有]이라고 찬탄하며 말했다. ‘이제 이 험한 길[惡道]에서 벗어나 편안함을 얻었도다.’

그리고 그들은 신통력으로 만들어진 성[化城]으로 들어가, 이미 험한 길 다 벗어났고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그때 길잡이[導師]는 그 사람들이 휴식을 취한 뒤 피로가 다 풀린 줄 알고는, 신통력으로 만든 성[化城]을 없애 버리고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어서 갑시다. 보물 있는 곳이 멀지 않소(寶處在近). 예전에 있던 큰 성은 그대들을 쉬도록 하기 위하여 내가 신통력으로 만든 것이었소.’


비구들아, 여래 또한 이와 같아서 그대들을 이끄는 큰 스승(大導師)이다. 그래서 모든 생사 번뇌와 악도(惡道)가 험난하고도 하염없이 긴 것을 알고 또 응당 떠나고 건너야 할 것임을 안다.

그러나 만일 중생들이 단지 일불승(一佛乘)의 가르침만 듣는다면, 부처님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가까이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기에, 또 ‘부처님 되는 길은 멀고도 머니 오래도록 노력하여야 성불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기에, 또 부처님께서 중생들이 겁 많고 약하고 하열(下劣)함을 알기에 중도에 쉬게 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두 가지 열반을 설했다.


그리고 만일 중생들이 이 두 경지에 안주하면 여래는 곧 다시 이렇게 설한다.

‘그대들이 머물고 있는 경지는 부처님의 지혜에 가까운 경지일 뿐이니, 그대들이 해야 할 일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그대들이 얻은 열반을 잘 관찰하고 헤아려 보라. 그것은 진실한 열반이 아니요. 다만 여래가 방편으로 일불승을 분별하여 삼승(三乘)으로 설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저 길잡이가 무리들을 쉬게 하기 위하여 신통력으로 큰 성을 만들고, 다시 충분히 쉬었음을 알고는 ‘보물이 있는 곳은 가깝소. 그리고 이 성은 진짜가 아니라 내가 신통력으로 만들어 낸 것일 뿐이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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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동(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罪] 행위[業(身口意 三業)].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구백생멸(九百生滅) ; 9백번 생겨나고 멸하는 것. 이것은 1소찰나(一小刹那) 동안에 생멸하는 숫자를 나타낸 것이다.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에 (제2 관공품觀空品) '九十刹那爲一念  一念中一刹那經九百生滅' '90찰나가 한 생각[一念]이 되고, 한 생각 가운데 1찰나에 구백생멸이 지난다'

『인왕경소(仁王經疏) 상권(末)』에 (신라 때 원측圓測 지음) ‘以九十小刹那成一大念  一大念中一小刹那 復有九百生滅...  若生滅合論 卽有九百生滅 別論卽有一千八百’ ‘90소찰나(小刹那)는 1대념(大念)을 이루고, 1대념에 속하는 1소찰나에는 다시 9백생멸이 있다. ... 생멸을 합해서 논하면 9백생멸이 있는 것이고 따로 논하면 천팔백번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미진수(微塵數 작을 미/티끌 진/셀·수 수) ; 세세하게 부수어진 것 같이 수많음. 셀 수 없는 무한의 수. 미진(微塵) : 물질을 분석하여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극소 단위.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육단심(肉團心) : [범] Hrdaya  4심의 하나。 심장을 말함。 8판(瓣)의 육엽(肉葉)으로 되었다 한다。 의근(意根)이 의탁한 곳.

*춘치자명(春雉自鳴 봄 춘/꿩 치/스스로 자/울 명) ; ‘봄철에 꿩이 스스로 운다’는 뜻으로, 남이 충동하지 않아도 스스로 제 허물을 드러내어 화(禍)를 자초(自招)함을 이르는 말. ‘봄 꿩이 제 울음에 죽는다(春山雉以鳴死)’에서 나온 말로, 꿩이 ‘나 여기 있소’라고 스스로 우는 바람에 사냥꾼에게 있는 위치를 알려 죽게 된다는 뜻이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