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상보시'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5.12.12 §(026) 동짓날 법회를 하는 이유? /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 / 참선을 해야만 무주상 보시를 할 수가 있고, 무루복을 닦을 수가 있다.
  2. 2015.06.23 §(세등39) (게송)금오출몰촉년광~ / 안수정등(岸樹井藤) / 생사해탈하는데 있어 신도는 스님네보다 몇십 배 간절히 정진을 해야 /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핑계 안돼!
  3. 2015.02.27 §(353) 출가(出家), 재가(在家)의 뜻 / 탐욕에 대한 일화 / 보시(布施) / 마음의 보시—탐진치 삼독을 버리는 것 / 돈은 열심히 벌고, 잘 쓰고, 보시해야 /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4. 2015.02.16 §(290) 기도는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 /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몸·마음·주변환경이 청정·정숙하고, 기도의 처음과 끝이 여일(如一)한 것 / 삼륜(三輪)이 공적(空寂).
  5. 2014.11.24 §(복전암26) (게송)다생원채기어친~ / 무연자비(無緣慈悲), 무주상보시 / 지장보살의 원력 / 인과법(因果法) / ‘이뭣고?’는 ‘참나’를 찾는 공부, 자기마음을 바로잡는 법.
  6. 2014.08.12 §(178) (게송)몽리명명유육추~ / 환몽(幻夢) /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은 교외별전(敎外別傳) / 불방일(不放逸)-최상승계(最上乘戒)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7. 2014.01.30 §(565) 설날 통알 및 설날차례 / 복(福)을 많이 받으려면,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돈도 벌고, 보시를 하여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아야.
법회(동지차례)2015.12.12 11:27

§(026) 동짓날 법회를 하는 이유? / 일체(一切) 유심조(唯心造) / 참선을 해야만 무주상 보시를 수가 있고, 무루복을 닦을 수가 있다.


동지가 돌아오건, 입춘이 돌아오건 그것이 무슨 참선해 나가는데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마는, 그러한 우주의 질서, 천지자연의 섭리를 보고서, 그것을 보고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옛날부터서 그러한 계절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법회(法會) 거행해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주의 변화, 대자연의 섭리 이런 것들이 전부가 뭐라고 표현할 없는 물건 발현인 것입니다.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이 우리의 앞에나, 뒤에나, 머리 위에나, 다리 밑에나, 거울이 거울이, 무한대로 거울이 있는데, 거울에 보인 것이 자기의 얼굴이 보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이, 자기의 모습이 거울에 비추어서 반사되어서 자기에게 돌아온 것이다.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얼마 가면은 타락할 있는 복이다. ‘없을 ()’, ‘ ()’, 무루복은샘이 없는 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지은 복이 영원히 타락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무주상 보시를 수가 있고, 어떻게 해야 무루복을 닦을 있느냐? 거기에 가서 참선을 해야만 무주상 보시를 수가 있고, 무루복을 닦을 수가 있다 말씀입니다.

**송담스님(No.026)—76 동지법문 (76.12.22)

약 15분.

이쪽을 요리 두르고 앉아서 얼굴을 보시고 들으십시오.

오늘은 병진년 11 초이튿날 동짓날입니다. 오늘 동지(冬至) 오전 2 35 동지 () 그렇게 됐지마는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시간을 상관하지 아니하고 사시(巳時) 이렇게 법회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동지는 무슨 날인고 하면은 낮의 시간이 제일 짧고 그리고 시간이 제일 날입니다. 그러면 밤이 제일 짧고 낮이 날은 언제냐 하면 하짓날(夏至날)입니다.

하짓날은 낮이 제일 길고서 밤이 짧다가 차츰차츰 하루에 1분씩 낮이 길었던 날이 1분씩, 1분씩 짧아져 가지고, 추분(秋分) 돌아오면은 밤과 낮의 길이 똑같아졌다가 그것이 차츰차츰 반대로 1분씩 짧아져 가지고는 동지가 되면은 하지의 정반대로 낮이 제일 짧고, 밤이 제일 길어집니다.


동지가 지내면서부터 1분씩, 1분씩 낮이 길어지기 시작해 가지고, 이듬해 춘분(春分) 돌아오면은 같아집니다. 밤과 낮이 똑같아졌다가 춘분 이후로 1분씩, 1분씩 길어져 가지고 하지가 되면 제일 길어지고, 이렇게 해서 년을 통해서 그렇게 길어졌다, 같았다, 짧아져 이렇게 됩니다.


지구가 해를 년을 걸려서 자신이 하루에 바퀴씩 돌면서 태양을 바퀴 도는, 일년 걸려서 돌아가지고 다시 제자리에 돌아옴에 따라서 이렇게 낮과 밤의 시간이 차이가 있게 됩니다.


그런데 어째서 동짓날 이렇게 법회를 갖게 되느냐? 다른 절에서는 동짓날 () 새벽에 들었으면 새벽에 팥죽을 쑤어서 올리고 축원(祝願) 하고, 밤에 들었으면 밤에 팥죽을 쑤어서 올리고 축원을 하고 이러느냐?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우주의 모든 질서가 음양(陰陽)으로 노나서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래는 그것이 음양이 없는 것이지마는일단 그것이 본래는 음도 없고 양도 없는 , 뭐라고 표현할 없는 것이지마는,

그것이 아무 바람도 없고, 아무 움직임이 없을 때는 물결이 일다가, 그것이 물결이 일어났다 하면은 물결, 버큼 하나 일어남으로 해서 조용했던 넓은 호수에 파도가 좌악 일기 시작한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물결 일어남으로 해서 일만 물결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본래는 음양도 없지마는 없는 자리에서 음양이 벌어지고, 음양이 팔괘(八卦), 팔괘에서 24, 24괘에서 360도로 이렇게 해서 세계가 벌어지고, 가운데 생로병사(生老病死) 성주괴공(成住壞空) 생주이멸(生住異滅) 벌어져 가지고, 그것을 가리켜서 윤회(輪廻), 결국은 윤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윤회의 물결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자가 가난해졌다가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었다. 부자가 되면 영원히 부자가 것이 아니라, 얼마 동안 가다가 가난해지고 이렇습니다. 한번 부자가 되면 영원히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지마는 시절인연(時節因緣) 도래(到來)하면은 차츰차츰 차츰 가난해지게 됩니다.

가난해져 가지고 영원히 가난하게 살면은 큰일날 텐데 가난한 사람이 차츰차츰 일어나기 시작하면은 국중(國中) 거부(巨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대(當代) 일생 동안 부귀를 누리기도 하고 , 가기도 하고, 대를 가기도 하고, 당신 일대에도 채우지 못하고 금방 말년에 고생을 하는 사람도 있고, 가지 각가지인데,

년에 24계절이 돌아가는 , 그것을 보고서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무상하다 하는 것을 우리는 깨달라야만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지가 돌아오건, 입춘이 돌아오건 그것이 무슨 참선해 나가는데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마는, 그러한 우주의 질서, 천지자연의 섭리를 보고서, 그것을 보고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옛날부터서 그러한 계절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법회(法會) 거행해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주의 변화, 대자연의 섭리 이런 것들이 전부가 뭐라고 표현할 없는 물건 발현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물건이라고도 없는 진여자성(眞如自性) 자리에서 파도가 일어나 가지고 가지가 뻗고, 잎이 피고 하는 것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자기 마음이 바르고, 자기 마음이 편안하고, 자기 마음이 기쁘고 행복한 사람은 하늘을 봐도 희망에 넘치고, 꽃이 피는 것을 보고도 희망에 넘치고, 가을에 단풍이 지는 것을 보고도 조금도 슬퍼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이 고독하고, 자기 마음이 의지할 곳이 없고, 자기 마음이 서글픈 사람은 , 밝고 뚜렷한 가을의 고운 달을 보고도 눈물이 주루루 한숨이 쉬어지고, 곱게 곱게 꽃을 보고도 한숨을 쉬게 되고, 어떠한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도 하나도 아름다운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느냐? 자기 마음과 우주 법계에 삼라만상과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허공이라고 하는 커다란 거울이 있는데, 거울에 자기의 마음이 보인 것이 바로 우리의 눈으로 있는 것들이요, 귀로 들을 있는 것들이요, 코로 맡을 있는 것들이요, 입으로 맛볼 있는 것들이요, 몸뚱이로 촉감으로 감각할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화엄경(華嚴經) 제일게(第一偈)일체(一切) 유심조(唯心造)’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일체(一切) 말은모든 이라 말이예요.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든 것이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마음으로 되았다』 말이예요.

마음으로 되었다 말이 바로 아까 말씀드린자기의 마음이 밖으로 나타나 가지고, 그것이 다시 자기에게 비추어 것이다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이 우리의 앞에나, 뒤에나, 머리 위에나, 다리 밑에나, 거울이 거울이, 무한대로 거울이 있는데, 거울에 보인 것이 자기의 얼굴이 보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이, 자기의 모습이 거울에 비추어서 반사되어서 자기에게 돌아온 것이다.


이것은 여러분이 참선을 하시면서 가슴에 손을 얹고 냉정히 관찰을 보고 반성을 보면 이러한 이치는 분명 여러분이, 과연 그렇구나!’하고 아실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동짓날을 맞이해서 우주 시간, 계절의 변화를 인연해서 자신의, 나의 일신(一身) 따르는 빈부귀천 모든 것이 그와 같다고 하는 이치를 우리는 되돌려서 깊이 뉘우치고, 거기에서참나 발견할 있는 참선법(參禪法) 가일층 정진을 하셔야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조실 스님 법문에는 너무나도 깊은, 그리고 중요한 법문을 여러 가지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 무주상 보시를 해야 사람은 무루복(無漏福) 닦는 것이 된다. 무루복을 닦아야 영원히 타락이 없는 것이다.


유주상(有住相), 내가 누구에게 보시를 하거나, 부처님께 시주(施主) 하거나, 어떠한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희사(喜捨) 하거나, 이것이 보시에 들어갑니다마는,

보시를 하고서내가 이러한 보시를 했다, 이러한 희사를 했다, 이러한 시주를 했다 스스로 마음에 그러한 자랑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장한 일을 했다고 스스로 자부를 하면서, 남에게 자랑을 하고 뽐내고 으시대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은 유주상 보시(有住相布施), 유주상 보시를 하는 것은 무루복이 아니라 유루복(有漏福) 밖에는 되지 않는다.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얼마 가면은 타락할 있는 복이다 그말이여. ‘없을 ()’, ‘ ()’ 무루복은샘이 없는 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지은 복이 영원히 타락이 없다.


우리가 복을 지으면 복의 차이에 따라서  천당에 올라가게 됩니다. 아주 복을 많이 짓게 되면은 아무 괴로움이 없는 천당에 태어나는데, 천당에 태어나면은 영원히 천당에서 살수 있느냐? 하면 그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은 복만큼 복을 누리고 나면은 지상으로 떨어지거나, 또는 축생이 되거나, 또는 그밖의 악도에 떨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루복을 닦은 사람, 무주상 보시를 사람은 천당에 태어나되, 천당에서 복을 누리는 기간이 오래간다 말씀이여.

그런데 무루복 가운데에도 () 없는 복을 닦을려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무주상 보시를 수가 있고, 어떻게 해야 무루복을 닦을 있느냐?

거기에 가서 참선을 해야만 무주상 보시를 수가 있고, 무루복을 닦을 수가 있다 말씀입니다.


금강경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주상(無住相)이라고 것에 대해서 거의 전편(全篇) 걸쳐서 도리를 그렇게 간곡히 말씀을 주셨습니다.

지혜스럽게 닦아야 무주상을 수가 있고, 무루복을 닦을 수가 있어서 영원히 타락이 없는 해탈도에 이르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처음~152)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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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巳時) ; ①지난날에 쓰던 십이시(十二時)가운데 여섯 번째 (). 오전 9시부터 11까지를 말한다. ②지난날에 쓰던 이십사시(二十四時)가운데 열한 번째 (). 오전 9 반부터 10 반까지를 말한다.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 간절히 원하고 .

*음양(陰陽) ; 우주 만물의 서로 반대되는 가지 기운으로서 이원적 대립 관계를 나타내는 . 달과 , 겨울과 여름, 북과 , 여자와 남자 등은 모두 음과 양으로 구분된다.

*버큼 ; ‘거품 사투리.

*팔괘(八卦) ; 중국 상고 시대의 복희씨(伏羲氏) 만들었다고 하는 여덟 가지 (). 양효(陽爻) 음효(陰爻) 이루어진 개의 효를 겹치어 자연 세계의 기본 요소인 여덟 가지의 () 나타내는 것으로 (:, 하늘), (:, ), (:, ), (:, ), (:, 우레), (:, 바람), (:, ), (:, ) 말한다.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4가지 고통. ,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 하는데,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생주이멸(生住異滅) ; 모든 사물이 생기고(), 머물고(), 변화하고(), 소멸함(). 또는 그런 현상.

*윤회(輪廻) ; ①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 의하여 삼계 육도(三界六道) 생사(生死) 세계를 그치지 아니하고 돌고 도는 . ②어떤 사물이 일련의 변화 과정을 단계에 따라 차례로 밟아 가거나 되풀이함.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

*국중(國中) ; 나라의 .

* 물건 ; 일물(一物). 일상(一相). 물건 · 모양이란 불교에서 진여(眞如) 본체를 들어 일컫는 말이다.

*진여자성(眞如自性)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하나. () 머뭄() 없는()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46)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아닌 것이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수보리야, 보살은 () 응당히 머문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복덕은 가히 헤아릴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과보가 다하면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 행할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얻는 복이 시방(十方)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없느니라.


일설에 '()' '(넓다)', '()' '(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 보시(眞布施)' 하며,

일설에는 '()' '' 육진 경계(六塵境界)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돌아가서 만법(萬法)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 없는 것이 선법(善法)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없고, 능소심(能所心)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없느니라.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 의해서 내가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 유루복(有漏福)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시주(施主 베풀 , 주인 )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

*희사(喜捨 기쁠 , 버릴 ) ; 보상을 구하지 않고, 기쁘게 재보(財寶) 베푸는 . 정사(淨捨정시(淨施)라고도 .

*유주상보시(有住相布施) ; 남에게 보시 하되내가 보시를 했다하는 생각() 있고, ‘내가 이렇게 보시를 했으니까 나한테 보답을 해야 한다 하는 보답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는 보시.

이런 유주상보시는 조그마한 공덕 밖에는 안되고, 얻어봤자 유루복(有漏福) 밖에는 얻지를 못한다.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 복이어서 한도(限度)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받아버리면 다시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얻었던 것을 결국은 없애면서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 같은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 설날통알 설날차례(1996.02.19)에서.

유루복은 삼생(三生) 원수다.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 가게 되니까 그래서 유루복은 원수이고,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수도 없고, 생활도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좋은 방향으로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과보(果報) 바래.

공투세를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무루복을 참으로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전편(全篇 온전할·전체 / ) ; 글이나 영화 따위의 작품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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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무상(無常)2015.06.23 16:50

§(세등39) (게송)금오출몰촉년광~ / 안수정등(岸樹井藤) / 생사해탈하는데 있어 신도는 스님네보다 몇십 배 간절히 정진을 해야 /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핑계 안돼!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에 의지해서 지혜롭게 공부를 지어 나가야 마장(魔障)이 일어나지 않고 반드시 도업(道業)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제자에는 머리 깎은 스님네만이 제자가 아니라, 우바새, 우바이, 비구 비구니가 이것이 사부대중(四部大衆)으로 구별을 지어 놓으셨지만 도업(道業)을 닦아 가는데 있어서는 마찬가지여.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 하는데 있어서는 오히려 스님네보다도 마을에 계신 여러분들이야말로 더 간절히 알뜰히 공부를 해 나가야만 될 것입니다.
스님네보다도 몇 배, 몇십 배 이를 악물고 정진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야 업(業)의 구렁텅이에서 해탈(解脫)하시게 되고, 생사윤회의 구렁텅이에서 해탈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39)—임술년 하안거 결제 법어(82.04.17)


(1) 약 17분.  (2) 약 10분.


(1)------------------

금오출몰촉년광(金烏出沒促年光)이요  옥토승침최로상(玉兎昇沈催老像)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수정고어소수(忍受井枯魚少水)허고  영용상핍서침등(寧容象逼鼠侵藤)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오출몰촉년광(金烏出沒促年光)이요. 태양을 금까마귀[金烏]라 그래.
금까마귀가 나왔다 졌다, 아침에는 동천에서 솟아올랐다가 저녁때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이렇게 하면서 세월을 재촉을 한다. 금까마귀는 솟았다 졌다 하면서 세월을 재촉을 하고,

옥토승침최로상(玉兎昇沈催老像)이라. 옥토끼[玉兎]는—달을 보고 옥토끼라 하는데, 옥토끼는 떴다 졌다 하면서 늙은 모양을 재촉한다.
하루 해가 떴다 졌다, 내일도 또 해가 떴다 졌다 하면서 1년이 지내가고, 달이 떴다 졌다, 달이 또 떴다 졌다 하면서 우리를 늙게 만든다 이것이여.

하루 해가 떴다 지고서 거울을 쳐다본다고 해서 별로 늙은 줄을 모릅니다마는, 그 하루 하루가 1년이 지나면 1년 동안에 벌써 흰머리가 많이 불어나고 주름살이 지나가고, 1년 사이에 많이 늙어 버리게 된다. 젊을 때에는 1년, 이태 지내도 잘 모르지만, 사십 오십이 넘어가면 1년이 무섭다 그말이여.

젊다고 해서 어찌 늙지 아니하리요마는 눈에 잘 띄지 아니한 것뿐이지 자라고 있는 것 자체가 늙어 가는 것이고, 늙어 가는 것이 바로 죽음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는 것인데, 어찌 등한히 할 수가 있나.

인수정고어소수(忍受井枯魚少水)여, 우리의 인생살이가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면은 물웅덩이에 물이 그 삼복더위에 가뭄이 계속 될 때에 물웅덩이에 물이 매일같이 바짝 바짝 바짝 밭아 들어가는데,
그 적은 물속에 송사리떼, 크고 작은 그 고기떼들이 펄떡펄떡 펄떡펄떡펄떡펄떡 뛰면서 물은 거의 다 잦아지고 오늘내일 사이에 완전히 말라버리게 생길 때,

송사리란 놈이 그 웅덩이 속에서 팔딱팔딱팔딱팔딱 정식으로 고기가 서지를 못하고 옆으로 이렇게 드러누워서 팔딱팔딱 뛰고 있다가 벌써 한쪽에서는 맥을 못추리고 늘핀하니 죽어가고 있는 그러한 상황이 바로 우리 인생살이다 이것이여.

세계 도처(到處)가 싸움이 일어나고 있고, 싸움이 일어나기 직전에 있고, 우리도 38선을 놔두고 호시탐탐 남침(南侵)을 노리고 있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언제 어떻게 될는지 모르고 있는,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이러한 상황 속에 있는 것이여.


영용상핍서침등(寧容象逼鼠侵藤)이여. 황야(荒野)를 여행을 하다가 성난 코끼리란 놈이 쫓아옴을 만났다. 도망을 치다가 마치 깊은 샘을 하나 만나 그래서 그 샘으로 피신을 하는데, 깊이 들어가자니 저 밑에는 독룡(毒龍)과 독사(毒蛇)가 우글거리고 있고, 그래 마치 언덕에서 등넝쿨이 떠억 뿌리를 박고 거기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 등넝쿨을 휘어잡고 매달려 갖고 있다 그말이여.

코끼리란 놈은 그 샘으로 들어올 수가 없어서 밖에서 코를 내두르면서 위협을 하고 있고, 저 밑으로 들어가자니 독룡 독사가 있고, 그런데 팔은 아파 죽겠지만,

그러자 그 칡덩쿨 뿌럭지 있는 데다가 벌이 벌집을 지어놓고, 그런데 그 날씨가 더우니까 그 벌집에서 꿀이 넘쳐 가지고 꿀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 처음에는 무엇이 입술에 톡 떨어져서 무의식 중에 혀로 입술을 핥으니까 아! 다디달다 그말이여.

조금 있으니까 또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해서 그 꿀방울을 입을 벌리고 인자 정식으로 똑똑 떨어지는 것을 받아 먹고 있는 것이 너무 달고 좋은 바람에 코끼리가 바로 기다리고 있는 것도 잊어버리고, 독룡 독사가 저 밑에 자기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마저도 망각을 하고.

그런데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나와 가지고, 칡넝쿨을 검은 쥐가 한번 갉고 나면 흰 쥐가 한번 또 갉고, 흰 쥐가 한번 갉아먹고 나면 검은 쥐가 한번 갉고.

쥐란 놈은 시간만 있으면 무엇을 긁어야 돼. 긁어서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 긁고 가만히 놔두면 송곳니가 길어나 가지고, 웃송곳니는 길어서 아랫턱을 뚫고 내려가고, 아랫 송곳니는 길어나 가지고 웃입바탕을 뚫고 나가가지고 자동으로 죽게 되기 때문에 시간만 있으면 딱딱딱딱 이를 갖다가 갈아야 된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집에서 보면 창고에 공연히 뭘 갉아 가지고 못쓰게 맨들고 하는데 그건 쥐의 자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또 이가 날카로워야 뭘 또 먹을 수도 있고, 그 본능적으로 그런 건데, 해필 그 칡넝쿨 하나에 매달려 가지고 지금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그 칡넝쿨을 지금 와서 긁고 있는 그런 못된 쥐가 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이 사람은 그 얼마 안 가면 뚝 떨어지면 죽게 되어 있는데 꿀 받아먹는 재미로 그것마저도 모르고 있다 그말이여.

고대로 가만히 있자니 칡넝쿨이 뚝 떨어지면 죽고, 올라가자니 코끼리란 놈이 기다리고 있고, 내려가자니 독룡 독사가 혀를 널름거리고 있어.


어떻게 하면은 이 사람이 살아갈 수가 있느냐?

이것이 ‘안수정등(岸樹井藤) 기능장구(豈能長久)냐. 언덕 나무에 있는 등넝쿨에 매달려 있는, 이 등넝쿨이 얼마나 오래 가겠느냐?’
‘안수정등(岸樹井藤)’이라고 하는 공안(公案)입니다. 어떻게 하면 여기서 살아갈 수가 있느냐?

이건 불가(佛家)에 뿐만이 아니라 세속에도 이러한 문제가 있고, 동양뿐만이 아니라 서양에도 이러한 이와 똑같은 수수께끼와 같은 이러한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은 이 칡덩쿨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 살아갈 수가 있느냐?

여러분도 심심하면 한번 이 수수께끼를 풀어 보시고, 가정에 돌아가시면 학교에 다니는 아들이나 손자 딸에게도 이 이야기를 해서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이 살아갈 수가 있느냐?’
이건 공안이라 사량분별심으로 따져서 알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너무 이 공안이 재미가 있는, 우리 인생을 고대로 표현한 공안이기 때문에 세속에서 수수께끼로 풀어봐도 재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코끼리는 무상살귀(無常殺鬼)를—자꾸 이 죽음을 향해서 짧아져 가고 있는 것을 표현한 것이고, 독룡 독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우리가 죽어서 숨이 끊어지자마자 염라대왕이, 저승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축생 아니면 지옥, 육도 생사윤회(六途生死輪廻)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말한 것이고, 달콤한 꿀이 똑똑 떨어진 것은 인생의 오욕락(五欲樂)을 표현한 것입니다.

오욕락은 재산에 대한 욕심, 그 다음에 이성간에 색욕에 대한 욕심, 본능, 그 다음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식욕에 대한 즐거움, 그 다음에 명예와 권리에 대한 욕심, 다음에는 즐겁고 편안하게 놀고 쉬는 그러한 즐거움,
이것을 인생의 오욕락이라 하는데, 재(財)·색(色)·식(食)·명(名)·수(睡), 이 다섯 가지의 오욕락에 맛을 붙여서 살기 때문에 하루하루 세월이 지내가는 것을 망각하고,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는 사실도 망각하고, 무상살귀가 끊임없이 우리를 쫓아오고 있다고 하는 것도 망각하고, 이러다가 뚝 떨어지면은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 삼악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망각하고 있습니다마는,

아무리 그 오욕락에 맛을 붙여서 우리가 망각을 하고 있다 하드라도, 흰 쥐 검은 쥐는 계속해서 칡넝쿨을 쏠고 있기 때문에 칡넝쿨은 결정코 마침내 끊어져 버리고야만 말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만 여기서 우리가 살아갈 수가 있느냐?


앞으로 석달 동안 정진 할라면, 삼복성념(三伏盛炎)에 앉았을라면 그 땀이 흐르고 흘러서 오금쟁이가 진무르고 궁뎅이에 땀띠가 나서 피부병이 생기고, 앉았으면은 그 땀은 등허리에서 줄줄 흘르고,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차릴랴고 해도 혼침(昏沈)이 오고, 그러한 어려운 정진 기간입니다마는, 어렵다고 아니하면 누가 내 대신 공부를 해 줄 것이냐?

날이 더워도 공부는 해야 하고, 아무리 추워도 공부는 해야 하고, 아무리 피로해도 공부는 해야 하고, 아무리 아파도 공부는 해야 하고, 어리석게 하지 말고 지혜롭게 공부를 해 가야 한다. 가행정진, 용맹정진 대단히 좋지만, 어리석게 하면 퇴타(退墮)의 인연이 된다.

선지식(善知識)의 법문에 의지해서 지혜롭게 공부를 지어 나가야 마장(魔障)이 일어나지 않고 반드시 도업(道業)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34분13초~50분43초)


(2)------------------

보살님들도 가정에서 정진을 하시게 되겠습니다마는, 여기 백일기도에 동참(同參)을 하시면 여러 보살님들도 이 안거(安居)에 방부(房付)를 들인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백일기도에 한 분도 빠지지 말고 동참을 하시고 법회가 있을 때엔 꼭 참석을 하시고,

집에서 가정일 돌보시면서 아들딸 가르키면서, 살림하시면서 앉았을 때나, 섰을 때에나, 일을 하실 때에나, 공양을 하실 때에나 또는 어디를 가실 때 차를 타실 때나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항시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한 생각 한 생각을 알뜰히 다그쳐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부처님 제자에는 머리 깎은 스님네만이 제자가 아니라, 재가제자(在家弟子) 우바새, 우바이, 비구 비구니가 이것이 사부대중(四部大衆)으로 구별을 지어 놓으셨지만 도업(道業)을 닦아 가는데 있어서는 마찬가지여.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 하는데 있어서는 오히려 스님네보다도 마을에 계신 여러분들이야말로 더 간절히 알뜰히 공부를 해 나가야만 될 것입니다.

스님네보다도 몇 배, 몇십 배 이를 악물고 정진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야 업(業)의 구렁텅이에서 해탈(解脫)하시게 되고, 생사윤회의 구렁텅이에서 해탈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스님네는 여러 신남신녀(信男信女)가 정성스럽게 바친 보시와 공양에 의해서 도를 닦아가야 할 이 소중한 육체를 보전해 나가고, 그러한 여러분의 신심과 공양하는 공덕으로 도업을 잘 닦아서 스스로 깨닫고 나아가서는 많은 중생을 제도해야 할 중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물질적으로 정성으로 부처님과 법과 스님네를 잘 공양하고 보호하고 받듬으로서 스님으로부터서는 법(法)의 보시(布施)를 받는 것입니다.
물질을 여러분은 스님네에게 보시하고, 스님네는 수행으로써 여러분에게 법보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밤낮 보시만 하고, 스님네는 우리한테 무엇을 보시를 해주나? 법을 보시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숙명통(宿命通)을 얻지를 못해서 전생사(前生事)를 잊어버려서 잘 모릅니다마는, 전생에 여러분이 스님이었었고 우리가 신도였었을런지도 모릅니다.
(전생에) 우리가 신도가 되어서, 스님으로 공부하시는 여러분에게 보시를 해서 그 인연으로 금생에는 우리가 출가해서 스님이 되고, 여러분은 세속에서 신도가 되어 가지고 교대해서 여러분이 우리를 또 이렇게 보시를 하고 잘 공양을 해서 우리를 이렇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이 가운데 혹 숙명통이 열린 분이 보면 틀림없이 그러한 인연 관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보시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금강경(金剛經)에 말씀하시기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야말로 그 공덕이 한량이 없이 크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무주상으로 보시를 하고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해서 스님네가 어쨌던지 영양보충을 충분히 해서 건강한 육체로 건전한 정신으로 정진을 잘해서 결정코 금생에 대도를 성취하도록 잘해 주시고,

그 공덕으로 여러분 가정에는 항시 신심과 기쁨이 넘쳐 흘러서 모든 재앙은 다 물러 나가 버리고,
크고 작은 소원이 차례로 다 성취가 되어서 부처님 제자로서 만복(萬福)을 성취하고 유루복(有漏福)과 무루복(無漏福)을 갖추어 구족(具足)해서,
위로는 보리(菩提)를 구하고, 아래로는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서 모든 사람이 자기로 인해서 부처님께 귀의(歸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인연이 되도록 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

오늘도 강영선 보살이라고 하는 신심있는 보살이 대중공양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공양을 기쁜 마음으로 받으시고 그 인연으로 ‘법(法)의 기쁨과 선(禪)의 기쁨’, 법희선열(法喜禪悅)을 얻으셔서 세세생생에 그 강영선 보살님과 함께—악도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항시 정법문중(正法門中)에 다시 만나서 대도를 성취할 인연이 되기를 부처님께 축원을 합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금생에 만약 이렇게 간절히 일러드리는 말씀을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후생(後生)에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하리라.

후생에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가서 ‘아! 내가 그때 송담 스님이 그렇게 목이 쇠도록 일러준 그 말할 때 공연히 아들 핑계, 딸 핑계, 살림 핑계, 무슨 핑계, 뒤로 미루고 그럭저럭 지내가지고 내가 이런 일을 당하는구나. 어째서 내가 그때 열심히 공부를 안했던가!’
염라대왕 앞에 가서, 저승에 가서 아무리 후회하고 한탄을 해봤자 그때는 이미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참선해 나가는 구체적인 법문에 대해서는 아까 조실 스님께서 녹음을 통해서 너무너무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해주셨기 때문에 생략을 하고 하좌하겠습니다.(50분44초~60분37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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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금오출몰촉년광~’ ; [관음예문(觀音禮文)] (용화선원刊)에 있는 ‘무상게(無常偈)’ p35, p64 참고.
刹那生滅無常法  聚散循環有漏因  金烏出沒促年光  玉兎昇沈催老像
忍受井枯魚少水  寧容象逼鼠侵藤  覩玆脆境早修行  勤念彌陀生極樂

한 찰나에 생하고 멸하는 것이 무상한 법이며,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모이는 것은 번뇌(有漏)의 원인이네. 해는 떳다 지면서 세월을 재촉하고, 달은 떳다 지면서 내 늙음 재촉하네.
우물이 말라 물이 적은 것 물고기는 어찌 참으며, 미친 코끼리에게 쫓기고 쥐는 등넝쿨을 갉나니, 이같이 위급함을 절실히 알아 속히 수행을 하고, 부지런히 아미타 부처님 염(念)하여 극락왕생하세.
*밭다 ; (무엇이) 바싹 졸아서 물기가 거의 없어지다.
*잦다 ; (액체가)졸아들어 밑바닥에 깔리다.
*늘핀하다 ; ‘늘펀하다(여기저기 널려있는 모양)’의 사투리.
*도처(到處 이를 도/곳 처) ; 여러 곳. 이르는 곳.
*38선(三八線) ;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1945년 8월15일 맥아더가 발표한 ‘일반명령 제1호’에 의해 한반도의 38도선 이북의 일본군의 항복은 소련이, 이남의 일본군의 항복은 미국이 접수한, 미·소 양국의 한반도 분할점령 군사분계선.
38선은 1953년 6 · 25 전쟁이 끝나고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된 현재의 군사분계선과 다르지만, 현재까지도 흔히 군사분계선을 삼팔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호시탐탐(虎視眈眈 범 호/볼 시/노려볼 탐) ; 범이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노려본다는 뜻으로,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하여 기회를 노리고 형세를 살피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황야(荒野 거칠 황/들 야) ; 버려진 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거칠게 된 들판.
*뿌럭지 ; ‘뿌리’의 사투리.
*다디달다 ; 매우 달다.
*해필(奚必 어찌 해/반드시 필) ; ‘다른 경우도 있을 텐데 어찌하여 꼭’이라는 뜻으로 마음에 맞지 않거나 서운할 때 쓰는 말.
*안수정등 기능장구(岸樹井藤 豈能長久) ;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참고] [치문경훈(緇門警訓)] 《위산대원선사경책(潙山大圓禪師警策)》에서.
夫業繫受身 未免形累  稟父母之遺體 假衆緣而共成 雖乃四大扶持 常相違背 無常老病 不與人期  朝存夕亡 刹那異世 譬如春霜曉露 焂忽卽無 岸樹井藤 豈能長久 念念迅速  一刹那間 轉息 卽是來生 何乃晏然空過

대저 업(業)에 얽매여 받은 이 몸은 형상의 더러움을 면치 못한다. 부모가 내려주신 유체(遺體, 父精母血)를 받아 여러 인연을 임시로 빌려 함께 이루었다.
비록 다만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여 견디어내나 항상 서로 어기고 등져 무상(無常)한 노병(老病)이 사람으로 더불어 때를 정하여 약속하지 않아서, 아침에 있다가 저녁에 죽어 찰나에 세상을 달리하게 된다.
비유하면 봄서리 새벽이슬과 같아 갑자기 없어지며,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가의 등(藤)나무가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순간 순간 빠르고 빨라서 일찰나 사이에 숨이 떨어지면 곧 내생이니, 어찌 편안히 헛되게 지내리요.
*위산(潙山) : (771 – 853) 법명은 영우(靈祐), 속성은 조(趙)씨。당나라(唐) 대종(代宗) 때에 복건성(福建省) 복주부(福州府) 장계(長鷄)에서 났다。열 다섯 살에 출가하고, 스물 셋에 백장선사(百丈禪師)의 법회에 가서 공부하였다.
추운 겨울에 밤늦도록 방장실(方丈室)에 올라가서 문법(問法)하는데, 화상이 『화로에 불이 있느냐?』고 묻기에, 대강 뒤져보다가 불이 없다고 대답하였다。화상은 친히 화로 속을 깊게 뒤져서 작은 불덩이 하나를 집어 들고 『이게 불이 아니고 무엇이냐?』하는 데서 크게 깨쳤다.
그 뒤에 호남성(湖南省) 담주(潭州) 장사부(長沙府)에 있는 위산에 새로 절을 짓게 되자, 그곳에 가서 사십여 년 교화하여 종풍(宗風)을 크게 떨쳤다。회중이 항상 일천 오백 명을 넘었고, 입실(入室)하여 법을 이은 제자가 사십 일 명이었다。당나라 선종(宣宗) 7년에 입적하니 나이 83세, 법랍이 64세。그의 제자 중에서 앙산(仰山) • 향엄(香嚴) • 영운(靈雲) 등이 뛰어났다。저술로는 <위산경책(潙山警策)> 그 밖에 <어록(語錄)>등이 많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무상살귀(無常殺鬼) ;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귀신(鬼神)이라는 뜻. ‘인간존재가 무상하다’는 것의 무서움을 비유한 말.
*육도 생사윤회(六途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 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 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삼복(三伏) ; ①일 년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②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아울러 이르는 말.
*성염(盛炎 성할 성/불꽃·더울 염) ; 매우 심한 더위. 또는 최고조에 달한 더위.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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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재가제자(在家弟子) ; 집에 있으면서 스님처럼 도를 닦는 사람.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구렁텅이 ; ①깊고 험하게 땅이 움푹 팬 곳. ②헤어나기 어려운 나쁜 환경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해탈(解脫) : [범] Vimoksa ; Vimukta ; mukti  [파]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또는 열반(涅槃)의 딴 이름으로도 쓰인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법보시(法布施) ; 남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불서(佛書)를 베풂.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보시(布施) : [범] dana  음을 따라 단나(檀那)라고도 쓴다。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전생사(前生事) ; ①'전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살았던 삶)'에 있었던 일. ②'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이미 지나간 일'을 일컫는 말.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 - 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만복(萬福) ; 온갖 복.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써,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빠짐없이 두루 갖춤.
*보리(菩提) ; ‘bodhi’의 음사(音寫). 각(覺)•지(智)•도(道)라고 번역. 모든 집착을 끊은 깨달음의 지혜.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듣고 따르는 기쁨[喜]과 선정(禪定)에 드는 기쁨[悅].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게송)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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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법회(신수기도)2015.02.27 17:48



§(353) 출가(出家), 재가(在家)의 뜻 / 탐욕에 대한 일화 / 보시(布施) / 마음의 보시—탐진치 삼독을 버리는 것 / 돈은 열심히 벌고, 잘 쓰고, 보시해야 /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출가(出家)라 하는 말은 말을 바꿔서 말하면 ‘크게 버리는 것’입니다. ‘크게 버리는 것’이 그것이 바로 출가인 것입니다.
탐욕을 벗어 버리는 그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은 그것이 바로 보시(布施)인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재산을 열심히 벌고 또 소중하게 관리를 하고, 쓸 때 자기를 위해서도 쓰고, 집안을 위해서도 쓰되 경우에 따라서는 잘 베풀 줄도 알아야 다음 생에 끊임없는 복록(祿)을 또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베푸는 것은 자기의 업장(業障)과 모든 재액(災厄)을 갖다가, 그 물질적인 재산을 버리면서 자기의 업장도 거기서 녹아지는 것이고, 탐심도 거기서 녹아지면서 동시에 그것이 세세생생에 쓰고 남을 복의 씨를 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명예·권리·재산도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되고 가지고 갈 수가 없는 것이라면, 부처님의 법(法)을 믿고 그것을 실천해서 ‘참나’를 깨닫는 것만이 이것이 영원한 것이며, 내가 참나를 찾아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길이다.
**송담스님(No.353)—88년 신수기도 회향(88.02.26)


(1/3) 약22분  (2/3) 약 20분  (3/3)약 12분.


(1/3)----------------

오늘 무진년 정월 초아흐레, 신수기도 회향(廻向) 법요식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순치황제(順治皇帝) 출가 인연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순치황제가 19년 동안 중국의 천자(天子) 노릇을 하다가 무상(無常)을 느끼고 중국 천하와 천자의 높은 지위를 버리고서 출가한 것,
마치 우리 부처님께서 가비라(迦毗羅) 왕국의 태자(子)의 고귀한 지위를 버리고서 출가한 것 또 역대 조사들이 정든 부모와 가정과 청춘을 버리고 출가한 인연, 이 모두가 일맥상통한 점이 있는 것입니다.

출가(出家)라 하는 말은 말을 바꿔서 말하면 ‘크게 버리는 것’입니다. ‘크게 버리는 것’이 그것이 바로 출가인 것입니다.

출가에도 두 가지 뜻이 있고, 재가(在家)에도 두 가지 뜻이 있는데,
몸뚱이는 세속(世俗)에 있으면서 마음은 출가한—청신사(清信士) 청신녀(清信女)로서 비록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 마음은 모든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을 다 버려 버리고,
청정한 신심으로 불법에 귀의(歸依)해서 항상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그런 분은 바로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한 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속가(俗家)에 가 있는 그러한 출가도 있습니다.
비록 출가해서 염의(染衣)를 입고 머리는 깎았으되 마음이 완전히 오욕락(五欲樂)을 버리고, 탐진치 삼독을 버리고서 청정한 출가인으로서 사문(沙門)으로서 도를 닦지를 못하고,
몸뚱이는 절에 있으면서 마음속에 세속의 명리와 탐심을 버리지 못했다면 이것은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를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몸뚱이도 세속에 있고, 마음도 완전히 세속의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빠져서 일생을 그냥 고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몸뚱이도 마음도 세속에 있는 것입니다.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정말 청정한 사문은 바로 그러헌 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또는 순치황제라든지 역대 조사들은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그러한 모범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많은 거사(居士)라든지, 청신녀 가운데에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신심이 돈독해서 정법을 믿고 수행을 쌓아서 도를 얻은 분도 인도나 중국, 한국, 일본에 많이,
널리 이름이 알려지지 안 해서 그렇지, 정말 훌륭한 그런 분들도 많이 계시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왕사성(城)에 계실 때 아주 부자 집안이 있었는데, 아들을 하나 밖에는 기르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아주 신심이 돈독해서 항상 부처님께 나아가서 부처님 설법을 듣고 집에 와서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그렇게 지내다가 너무 부처님 법문에 감동을 받아가지고,
‘내가 세속에 이렇게 묻혀서 있을 것이 아니라 출가를 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가지고 정말 대도를 성취하리라’ 이런 마음을 먹고서, 아주 마음의 결정을 하고 부모님께 출가할 의사(思)를 표시를 했습니다.

그 부모는 ‘우리 늙은이 앞에 자식이라고는 너 하나 밖에 없는데, 네가 출가해 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이냐? 도저히 안 된다’ 이렇게 허락을 아니 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도저히 출가할 뜻을 굽힐 수가 없어서 부지런히 일을 하고 그래가지고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래가지고 돈을 갖다가 부모님께 드리면서 “부모님의 뜻을 어기는 것은 대단히 죄송하나 내가 출가해서 도업(道業)을 성취하고자 하는 이 깊고도 큰 뜻을 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동안 번 이 재산을 옴막 드릴테니 이것을 마음껏 잡숫고 싶은 대로 잡숫고, 입고 싶은 대로 입고 그리고서 남은 돈은 보시를 하십시오”
이렇게 간곡히 부탁을 하고서 적당한 날이 돌아오면은 출가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워낙 간탐심(慳貪心)이 많아가지고 그 많은 재산을, 평생 동안 쓰고도 남을 만한 재산을 한푼도 쓰지 않고 땅속 깊이 항아리에다 담아서 묻었습니다.
아까워서 먹지도 못하고, 아까워서 입지도 못하고, 남에게 보시도 못하고서 땅속에다 묻어 놓은 채, 행여나 누가 그걸 손댈까봐 밤낮으로 그걸 지키면서 벌벌 벌벌 떨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그 부모가 돌아갔습니다.

돈 한푼도 쓰지 못하고 마지막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어머니 장례를 잘 지내고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안되기는 안되었지만 ‘드디어 내가 출가할 수 있는 기회는 왔구나’ 이리하고서 가산을 버려 버리고서,

부처님께 나아가서 출가를 해가지고 어떻게 폐침망찬(餐)하고—밥먹고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 가지고 대도를 성취를 했습니다.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을 했어.

아라한과를 증득을 해가지고서 갠지스 강(Ganges江)—항하(河) 가에다가 암자(子)를 짓고서 거기서 보림(保任)을 하고 있는데, 밤이 으스름해지면 어디서 참 이상한 슬피 우는 그 귀신 소리가 나.

그 참 이상하다? 그 소리 난 데를 살살 걸어가서 보니까,
머리를 갖다가 산발을 하고서 그리고서 얼굴은 어떻게 험상궂게 생긴 데다가 손가락 발가락은 앙상해가지고, 마치 불에다가 끄슬러 놓은 것 같이 그렇게 생겨 가지고는 그 통곡을 하면서 운다 그말이여.

“대관절 네가 누구길래 내 공부하는 데 가까이 와 가지고 그렇게 밤만 되면 통곡을 하는고?” 물어보니까,
“예,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성자(者)의 어미입니다. 내가, 어미가 죽어가지고 이러한 아귀(鬼)의 꼴이 되었습니다. 성자가 되셨으니 자비로서 이 어미를 갖다가 제도를 해주시오” 간곡히 부탁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성자는 너무 참 기가 막혀.
아라한과를 증득을 했으니 생사에 초월을 하고 무슨 거기에 인간의 얽매임이 있으리오마는 자기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세상에 저러한 아귀도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고 있어.

그 아귀가 말하기를 “내가 이렇게 아귀가 되어 가지고 목이 말라서 물을 먹기 위해서 강변으로 쫓아가면 강은 순식간에 말라 버리고, 배가 고파서 저 먼 데 과일 밭이 보여서 과일을 실컷 먹기 위해서 쫓아가면 순식간에 과일 밭이 쑥대밭이 되어버려.
이렇게 해서 여태까지 내가 물 한 모금 못 먹고, 과일 한 개를 먹지 못하고서 이렇게 피골이 상접해”

몸뚱이는 장구통만큼, 이렇게 큰 절구통 같이 배는 크고, 목구멍은 실낱 끝 모가지여. 그래서 아귀의 모습은 ‘장구통 배아지에 실낱 끝 모가지’라고 옛날부터서 전해 내려오는데.

그 성자가 말하기를 “어머니께 전생에 보시를 하라고 그렇게 내가 말씀을 드렸는데 어머니께서 그것을 탐심이 과해 가지고 쓰지도 못하고, 남에게 보시도 안 하고 그러시더니 결국은 이렇게 되셨구려” 그러면서 같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아귀가 부탁하기를 “내가 그때 그 많은 재산을 아까워서 못 쓰고 울타리 밑에다가 묻어놨는데 그것을 파다가 스님네와 부처님, 그리고 여러 대중에게 고루고루 베풀고, 가난한 사람한테도 베풀고 해서 보시를 좀 해주시고,
그리고 부처님께 설법을 좀 해서 내 이름을 좀 불러주면서 나를 좀 천도(薦度)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어.

그래서 그 성자는 옛날에 자기가 살던 집을 찾아와 가지고 울타리 밑에를 그럴만한 데를 여기저기 파보니까,
과연 그 항아리 속에 엄청난 금은보화가 들어있어서 그걸 갖다가 널리 보시를 하고 큰 대시회(大施會)를 열어가지고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비롯한 부처님의 제자들이 모두 잘 공양을 하셨는데, 그 아귀가 그 공양 석상(上) 저 갓에 가서 벌벌벌벌 떨면서 울면서, 그 공양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거기 서있었는데,

그 공양이 다 끝나자 그 아귀가 엎드려서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절을 하면서,
“석가 세존(世尊)이시여! 이 불쌍한 죄 많은 중생을 위해서 참회를 받으시고 설법을 해서 제도해 주시옵소서” 아주 간곡히 울면서 간청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 아드님이신 성자도 또 같이 엎드려서 슬피 울면서 “세존이시여! 원컨대 이 조그마한 공양하는 공덕으로 참회를 받으시고 이 불쌍한 아귀 중생에게 빨리 해탈을 얻도록 해 주시옵소” 이렇게 간청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자비심(慈悲心)을 일으키셔서 방편력(方便力)으로 설법을 하셨습니다.
그 바람에 거기에 운집(雲集)한 모든 대중과 이 우주 법계에 가득한 유주무주(有主無住)의 고혼(孤魂)들까지라도 모두 해탈을 하고, 그 아귀도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워낙 죄를 많이 짓고 간탐이 심해서 해탈도는 증득을 못하고 겨우 아귀의 몸을 간신히 벗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 그 성자가 참선을 하면서 선정(禪定) 중에 ‘지금쯤은 우리 어머니가 어디에 태어나셨나?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신가?’하고 가만히 작관(作觀)을 해보니까,
아직도 귀신의 몸을 벗지를 못하고서 고통은 받지는 않는데, 아주 재산이 많은 귀신이 되어가지고 있다 그말이여.

살아있는 사람은 금은보화를 가지고 있지만 귀신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잘 알 수는 없으나 하여간 경전에 아주 부자의 귀신이 되어가지고 그 재산을 또 지키고 있다 그말이여. 

사람이 탐심이 많으면 죽어서도 좋은 곳을 가지 못하고, 그 자기의 재산을—자기가 모아놓고 평생에 쓰지 못한 그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귀신이 되어가지고 그 재산을 항상 지키면서 그 애착 때문에 떠나지를 못하는 수도 있고,

또 구렁이 같은 것이 되어가지고 그 집안의 용마루 밑에나, 어디 창고 벽 사이나 그런데 가서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여러 해 동안을 그것을 지키면서 있는 것입니다. 그걸 '업'이라고 그러는데,

그래서 그 부자 귀신이 되어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성자가 거기를 가 가지고서 “옛날에 어머니가 그렇게 간탐심이 심해가지고 아귀도에 떨어져서 그 고통을 한 것을 벌써 잊었습니까?
부처님의 그 공덕으로 그렇게 고통을 잠시 벗었으면 아주 벗어 버릴 일이지, 어찌 다시 이런 부자 귀신이 되어가지고 또 지금도 간탐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눈물로서 호소를 했으나 “나는 이 재산 없으면 못살어, 내가 이 재산 지키는 재미로 이렇게 살고 있는데 나는 못 버린다”고 아주 그냥 탁 잡아뗀다 그말이여.

그래도 아주 여러 시간을 두고 이리 설득하고, 저리 설득하고 해가지고 간신히 무엇을 얻어냈느냐 하면, 백목(白木) 두 필을 겨우 얻어냈습니다.

얻어가지고 그것을 가지고 와서 ‘돈으로 바꿔가지고 스님네께 보시 공양을 하리라’하고, 아직은 그 어떤 스님한테 임시로 그것을 맡겨 놨는데 얼마 있다가 그걸 찾아다가 팔려고 가니까 그것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것 이상하다’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자기 어머니가 다시 훔쳐갔구나’ 생각을 하고 다시 어머니한테 가서 보니까 과연 그 백목 두 필이 그 어머니한테 가서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또 설득을 해가지고 또 찾아다가 다시 맡겨놨는데 또 찾아가고, 세 번을 그렇게 찾아왔다가 또 도둑을 맞고, 찾아왔다가 도둑을 맞고, 그러니까 그 맡았던 스님이 진심(瞋心)을 내는 거여, ‘나 앞으로 이거 못 맡겠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걸 팔아서 대중에게 나눠드릴 게 아니라,
아주 이 자리에서 조금씩 잘라서 나눠드릴 수 밖에 없다 해가지고 그 자리에서 그것을 끊어 가지고 스님네한테 전부 다 나눠드려가지고 그 자리에서 모두 옷을 해서 그래가지고 입었습니다.
그런데 아! 그 옷이 또 자고 나면 없어져 버려.

그래서 그런 탐심이라 하는 것은, 중생의 탐심이라 하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 탐심 때문에 그 무서운 아귀도에 떨어져서 그 고통을 받고도 정을 못 떼시고,
또 귀신이 재물 부자 귀신이 되어가지고 간신히 보시한 것이 그것이 또 아까워 가지고 세 번을 훔쳐오더니, 네 번째는 옷을 만들어서 입고 있는 것도 잠깐 벗어 놓은 차에 그것도 또 훔쳐 가버린다 그말이여.(처음~21분3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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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그러한 사실을, '대중이 그렇게 옷을 도둑맞았다'고 하는 그러한 사실을 부처님께서 들으시고서 대중하게 설법을 하시기를,
“탐욕의 불이라고 하는 것은, 그 간탐하는 욕심의 불이라 하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로구나!
길이길이 악도에 떨어져서 무량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 탐욕의 무서운 독이로구나!
너희들은 어서 속히 중생들의 그 탐욕을 때를 빨리 벗어 버릴지니라.”

그래서 그 탐욕을 벗어 버리는 그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은 그것이 바로 보시(布施)인 것입니다.

보시라 하는 것은 보통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질을 남에게 나눠주는 것을 다 보시라고 생각하고,
재산이라든지, 재산 가운데에는 돈도 있고 금은보화 또는 먹을 거 또는 입는 거 이런 물질 보시를 대충 다 보시라고 생각을 하고,

그것을 절에다 시주를 한다든지, 스님네께 공양을 한다든지 또는 양로원이나 고아원 또는 형무소, 그렇지 않으면 가난한 사람에게 그러한 물질을 보시한 것이 바로 보시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생각을 하지만 그것도 보시가 아닌 것은 아니야.

그 밖에도 몸뚱이, 신체의 보시가 있어. 몸뚱이를 배고픈 호랑이한테 보시를 한 것. 부처님께서 과거에 인행(因行) 때에 배고픈 호랑이에게 그 몸뚱이를 보시하는 설화가 있습니다마는 그런 거라든지,
또 스님네가 돌아가실 때에 산중에서 돌아가시면은 산중에 사는 모든 산짐승에게 보시를 하고 또 물에서 돌아가시면은 수중의 모든 중생들에게 보시를 하고, 이러한 몸뚱이를 보시하는 것이여.

또 이 몸뚱이의 살과 뼈만이 아니라, 이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노력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그 노력을 보시하는 것도 또한 한 보시의 종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보시’가 있어. 마음의 보시는 수행을 해서 탐진치 삼독을 버리는 거여. 그것이 바로 마음의 보시고,
또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것도 하나의—당신이 누려야 할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는 것도 그것도 보시고,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순치황제 출가하신 것도 또한 보시여.

수행을 해서 아(我)가 공(空)하고, 법(法)이 공하고, 아공(我空)과 법공(法空), 구공(俱空)하는 것이 그것도 또한 엄격히 말하면 그것도 하나의 마음의 보시라 할 수가 있는 것이여.

그리고 법보시(法布施)가 있는데 경전을 인쇄해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시를 한 것, 이것 법보시고,
또 자기가 수행을 해서 깨달은 바가 있던지, 경전을 봐서 부처님의 거룩한 법을 아는 바가 있으면 그것을 인연 있는 사람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법을 믿도록 인도하는 것 이것도 또한 법보시에 들어갈 것입니다.

아까 마음의 삼독심을 버리고 아공과 법공 구공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마음의 보시’라 했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 「마음의 보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느냐? 남의 잘못을 용서(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자존심만을 내세우고 남의 인격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항상 저 사람의 입장이 되어가지고 나의 주장을 양보하고 그 사람의 뜻을 따라주는 것, 부부간에도 그렇고, 친구 간에도 그렇고, 형제간에도 그렇고,
자기의 뜻이 옳다고 주장을 하고 자기의 의견만을 내세우면 이것은 마음의 보시가 아닌 것입니다.

보시를 하는 것에서 일체 중생을 수순(順)하고, 그것이 바로 육바라밀(蜜) 속에 제일 첫번째 있는 단바라밀(蜜), 보시바라밀이 되는 것입니다.
물질로 보시하고, 몸뚱이로 보시하고 또는 법으로 보시하고, 이 보시를 자꾸 부처님께서 권장하시는 뜻은 보시를 그렇게 함으로서 마지막에 가서는 마음의 보시의 참뜻을 터득하게 하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남을 용서를 못하고, 남의 잘못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공격을 해대고, 미워하고 용서를 하지 아니한 사람은 자기 자신의 마음의 보시를 하지 안했기 때문에,
보시를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견을 국집(局執)하는 것은 자기의 재산을 남에게 베풀지 아니하고 항아리에다 담아서 땅속에다 묻어놓고 지키다가 아귀가 되고 구렁이가 된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어.

자기의 아만(我慢)과 아애(我愛), 아치(我癡)를 자기의 마음의 재산으로 삼아서 그것에 국집해 가지고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남에게 양보할 줄을 모르고, 자기의 의견만을 주장을 하다가,
결국은 아내와 싸우고, 남편과 싸우고, 부모 자식 간에 싸우고, 친구 간에 싸우고, 모든 이웃과 싸운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해탈도를 증득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세계가 어떻게 그 사회가 복을 받게 되며, 행복한 그리고 평화로운 세계가 이룩되겠습니까.


이번 무진년 새해를 맞이해서 신수기도를 일주일간 참으로 정성껏 받들었습니다. 새벽부터 법당에 가득 모여서 기도를 했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이렇게 기도에 많은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이 참석을 하셔서 기도하신 것은 대단히 기특하고, 감사하고 참 훌륭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러한 기도를 하느냐 하면은 그 기도를 통해서 보시의 참뜻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 보시, 신체의 보시, 마음의 보시, 법보시 이러한 여러 가지 보시를 그때그때 상대에 따라서, 상황이 따라서, 자유자재로 보시를 할 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보시를 하면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이 되며 소원을 성취를 하냐’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런 재산이라든지, 몸뚱이라든지 또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자존심이라 하는 것이 전부가 업(業) 소생(所生)인 것입니다. 업으로 뭉쳐진 것이여요.

탐욕을 가졌기 때문에 그 탐욕의 소산(産)으로 결국은 그런 재산이 뭉쳐졌고, 이 몸뚱이도 탐진치 삼독으로 인해서 이 몸뚱이를 받아나게 된 것이고,
자기의 자존심도 아무리 학식이 높고 이 세상에 제일가는 명예와 권리를 가졌다 하더라고 그 마음속에 자기의 마음을 비우지 못했다면 그런 것들도 전부 탐진치 삼독의 소산일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탐진치 삼독이라 하는 것을 우리는 가까운 그 비근한 예를 들어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꿈을 꾸면 구렁이나 그런 뱀 꿈을 꾸거나 돼지꿈을 꾸면은 재수가 있다 해가지고 그 이튿날 당장 나가서 복권을 삽니다.

어째서 구렁이 꿈이나 돼지꿈을 꾸면, 물론 용도 구렁이의 한 종류이기 때문에 마찬가지입니다마는,
‘용꿈이나 구렁이나 돼지꿈을 꾸면은 재수가 있다’해 가지고 그 이튿날 복권을 사면은 1억짜리가 당선된다고 믿고 다투어 그 꿈을 서로 살려고 그러고 그런데, 그 돼지도 완전히 탐욕의 권화신(權化身)인 것입니다.

돼지는 욕심이 많아가지고 먹을 것을 보면 제 새끼도 소용없고, 옆에 누가 올까봐서 오면 막 물어뜯어 버리면서 배아지가 터지도록 막 먹어 대는 것입니다.
사람이 식탐이 많은 사람은 먹을 것을 보면 옆에 사람이 있는 것이 보이지를 않고, 잔뜩 먹고 옆구리가 빵빵해져야 “어째서 빨리들 안 먹어?” 자기가 배가 부르기 전에는 옆에 사람 배고픈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게 다 가만히 그 사람 한참 먹고 있을 때 눈을 보면 영락없이 돼지 눈입니다. 돼지라든지 구렁이라는 것이 전부 전생(前生)에 탐심이 많아가지고 그러한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탐심 많은 그 탐착심, 자기가 모아 놓은 재산 먹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꽁꽁 뭉쳐서 땅속에다 묻어놓고 갔다하면은 백발백중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집에 와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헌 집, 묵은 집을 뜯으면 귀 달린 구렁이가 나온다고 그럽니다.
이게 다 그 집안에 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피땀 흘려 모아가지고 그 재산을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물려주고서 그놈 아까워서 어디로 뚝 떠나지를 못하고 구렁이가 되어가지고 그 집에 와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걸 다 ‘업’이라고 그러죠. 그러한 구렁이.

그리고 꿈에 똥항에 빠졌다든지, 똥을 옷에다가 쌌다든지, 무슨 똥을 보면 재수가 있다고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똥이라든지 구렁이라든지 용이나 또 돼지 이런 것들은 바로 그것이 재물, 재산과 동격인 것입니다. 그래서 꿈에 그런 것을 보면 재수가 있다고 참 좋아들 합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거느리고 어디를 지나가시는데, 부처님께서 제일 앞에 서서 바리때를 들고 이렇게 가시는데 요리 골짜기를 보시고서 “어이쿠 구렁이 봐라. 독사(蛇) 봐라!” 그리고 부처님 지나가시니까,
그 뒤에 따라가던 사리불(舍利弗), 목련존자(目連尊者), 차츰차츰 제자들도 이리 보면서 “어이쿠 독사 봐라!” 가면서 그러니까, 그러면서 제자들이 쑤욱 다 지나갔는데,

저만큼서 풀을 뜯던 사람이 ‘아!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이 저기 독사가 있다고 깜짝 깜짝 놀라면서 지나가시는데 대관절 무슨 무서운 독사가 있기에 그런고’하고 살금살금 가서 조심스럽게 골짜기를 들여다보니까,

아따! 금은보화가 찬란하게 번쩍거리는데 ‘참 이상하다, 어째서 저것을 독사라고 지나갔을까! 내 눈에는 저것이 헛보이나 보다’해 가지고,
무서워서 돌멩이를 거기다가 던져보니까 ‘쨍그랑!’하고 소리가 나는데, 저것이 독사 같으면 꿈틀거리고 물러 쫓아올텐데 오히려 그 번쩍번쩍하면서 쨍그랑하고 소리가 나고, 몇 번을 던져 봐도 마찬가지다 그말이여.
그래서 가 가지고는 작대기로 이리저리 쑤석거려 봐도 독사 커녕은 분명히 칠보(七寶)가 분명하다 말이여.

그놈을 갖다가 속적삼을 벗어서 탁 쌓아 가지고는 누가 쳐다보나 어쩌나 두리번거리면서 마침 아무도 안 보고 있으니까 그놈을 갖다가 집으로 가지고 와 가지고는 그냥 벌벌 벌벌 떨면서 마당 저 뒤에다가 구덩이를 파고서 항아리에다 담아서 묻어놓고는.

아! 그놈을 해놓고는 너무너무 좋아서 잠이 안 오네. 그래가지고는 밤중에면 가만히 가서 뚜껑을 열고 만지작거리다 도로 넣고 넣고, 이렇게 좋은 것을 그냥 묻어만 놔서는 안되겠고,
조금씩 뜯어다가 맛있는 것도 사 먹고 또 집도 고치고, 논도 사고 해서 차츰차츰 인자 심심하면 한덩어리씩 내다팔고 팔고 그랬는데,

며칠 있더니 관가에서 지금 같으면 형사대들이 와 가지고는 집을 둘러싸고는 “이놈 나오라”고 고함을 질러서 그래가지고는 무슨 일인고 하고 나갔더니,
“너 이놈” 다짜고짜로 때려 묶어서 끌고가 가지고는 아주 그냥 뒈지게 뚜드려 패서 몰골이 났다 그말이여.

“너 이놈 바른대로 대라. 나라의 보물이 잃어버린 지가 여러 날이 되어도 간 곳이 없는데 이놈, 네놈이 훔쳐다 팔아먹어?” “아닙니다, 제가 팔아먹지를 않았습니다”
“이놈, 네가 갔다가 아무데 금방에다가 몇 번을 이러이런 것을 팔아먹지 않았냐?”
“훔치지는 절대 안 했고 골짜기에서 주워 왔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나쁜 놈의 자식, 주워 와? 골짜기에 왜 나라의 창고에 든 놈이 거기에 있어? 이 나쁜 놈, 요놈이 맛을 봐야 해” 어떻게 뚜드려 맞았던지 볼기가 아주 그냥 개떡처럼 뚜드려 맞았어.
그래가지고는 기절을 했다가 찬물을 찌그려서 또 뚜드려 패고 해서 날이면 날마다 뚜드려 맞고, 몇 번을 죽었다 살아나서 아주 그냥 궁뎅이가 말로 할 수가 없어.

꿍꿍 앓으면서 “아휴, 그때 부처님이 독사라고 그러더니 정말 이놈이 독사로구나!” 아, 그냥 그 말을 푹 해버렸다 그말이여. 그러니까 그 말을 옥졸이 듣고 가서 보고를 했어. “그놈 잡아오너라”

“부처님이 어떻고 어때?” 그러니까,
“예, 사실은 부처님이 지나가시면서 독사라고 그랬는데 내가 아무리 봐도 독사가 아니기에 주워 왔습니다”

급히 사람을 부처님께 보내 가지고 “정말 그 골짜기에서 독사를 보신 일이 있었습니까?”
“응, 그걸 봤지”

사실이 확인이 되니까, “너 이놈! 아무리 그걸 주웠기로서니 그 많은 보물을 주웠으면 당연히 나라에다 바쳐야 하는 것인데, 네가 숨겨놓고 살살 그놈을 팔아먹은 죄가 마땅히 널 사형을 시킬 일이로되, 부처님과 관련이 되어졌어. 그러니 부처님의 그 공덕으로 봐서 너를 살려준다”해 가지고는 풀어줬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리고 부처님 제자들은 그런 재물을 분명히 그것을 독사로 보셨기 때문에 깜짝 깜짝 ‘이크! 이크!’하면서 지나가셨습니다.

부처님이야 그까짓 것이 뭐 금이나 자갈이나 그것가지고 탐내실 분은 아니로되,
만약에 부처님 제자 가운데 좀 아직 확실히 도를 이루지 못한, 조금 어리석은 사람이 있어서, 만약에 그놈을 살며시 훔쳐다가 놓고 팔아먹었다 하면 진짜 그 스님도 독사에 물렸을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마는,

부처님과 제자들은 확실히 그것이 독사인 줄 아셨기 때문에 손을 대지 않고 지나가셨으므로 그런 국법에 저촉을 받으시지를 않았습니다.

어리석은 나무꾼이 그것을 독사라고 부처님과 제자들이 일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현혹이 되어가지고 그놈을 훔쳐다 놓고 팔아먹다가 그 못 당할 그런 곤욕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21분38초~41분1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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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재산이라고 하는 것이 독사요, 똥보다도 더 더럽고 독사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여.
그러나 세속에 살면서는 그것이 나중에 독사가 되었건, 똥이 되었건 우선 그것이 없으면 당장 먹고 살 수가 없고, 집도 재산인데 그것이 없으면 이 몸뚱이를 갖다가 거처를 할 수가 없고, 자녀들도 가르킬 수도 없고, 아무것도 안되어 버려.

출가한 스님네는 그저 도(道)만 열심히 닦으면은—도 닦다가 굶어 죽은 일이 없기 때문에 나가서 돈벌이 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하지만, 세속에 사시면서는 천상 돈이 있어야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되어.
어디 나가서 자기 동기 간한테 가서 손 벌려도 잘 주지도 않고, 친구 간한테도—좀 가난해서 돈이 없다고 돈 달라고 하면 당장 그 이튿날부터선 친구도 별로 반가워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돈 있으되 그것을 적당한 방법으로 잘 벌고, 열심히 벌고, 벌어서 요긴하게 쓰고 그리고 또 적당하게 보시도 하면서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은 하되,
그것이 아까워서 먹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땅에다 묻어놓고 벌벌 떨다가 아귀가 된다든지, 구렁이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탓으로, 그렇게 비참하고 불쌍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는 재산을 열심히 벌고 또 소중하게 관리를 하고, 쓸 때 자기를 위해서도 쓰고, 집안을 위해서도 쓰되 경우에 따라서는 잘 베풀 줄도 알아야 다음 생에 끊임없는 복록(祿)을 또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베푸는 것은 자기의 업장(業障)과 모든 재액(災厄)을 갖다가,
그 물질적인 재산을 버리면서 자기의 업장도 거기서 녹아지는 것이고, 탐심도 거기서 녹아지면서 동시에 그것이 세세생생에 쓰고 남을 복의 씨를 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7일 동안 열심히 기도를 해서 마음이 청정해졌고 업장이 소멸이 되었습니다.

이 회향날 또 이러한 조실 스님의 법문과 산승의 이런 말씀을 듣고서 ‘참! 과연 옳은 말이다. 내가 그동안에 아까 와서 아낄 줄만 알았지 정말 보시의 참뜻을 내가 몰랐구나!’
이리 생각을 하고 앞으로는 그 재산을 옳게 관리하고, 옳게 쓰고, 옳게 베푼다면—그거 써 버리면 아주 없어질 줄 알고, 늙으면은 간탐심이 굳어져 갖고 보시를 잘 못합니다.

젊어서는 또 생기거니 하고, 생길 수도 있고 벌 수도 있으니까 더러 쓰다가, 나이가 한 오십 육십 되면 인자 내가 벌 수도 없고, 누가 잘 갖다주지도 않으니까 ‘이것 떨어져 버리면 내가 인자 꼼짝을 못하겠다’해 가지고,
열 번, 스무 번 꽁꽁 싸가지고는 깊은 데다 넣어 놓고 있다가 결국은 죽어버리면 참 그것 못쓰는 것입니다.

이 회향날을 맞이해서 보시(布施)가 마음의 업장을 소멸하고, 나아가서는 「참 보시」는 물질적 보시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그 보시야말로 보시의 참뜻이라 하는 거,

그리고 남에게 보시 하되 ‘내가 보시를 했다’하는 생각—상(相)이 있고, ‘내가 이렇게 보시를 했으니까 나한테 그 보답을 해야 한다’고 하는 보답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으면 이것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아닌 것입니다.

무주상 보시라야 그 공덕이 무량무변(邊)한 것이지, 유주상(有住相)으로 하면 그 보시가 아주 그 조그마한 한계가 있는 그러한 보시 밖에는 안되고, 그 보시 공덕으로 얻어봤자 유루(有漏)의 복 밖에는 얻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무주상 보시를 해야 무루복(無漏福)을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요  인거황천명재가(人去黃天名在家)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채득백화성밀후(採得百花成蜜後)에  부지신고위수감(不知辛苦爲誰甘)고
나무~아미타불~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요, 기러기는 저 하늘가에 날아갔는데, 기러기 발자취는 모래사장에 남아있고,
인거황천(人去黃天)에 명재가(名在家)로구나. 사람은 저 황천(黃泉)으로 떠났는데 그 이름만 자기 살던 집에 남아 있구나.

채득백화성밀후(採得百花成蜜後)에, 벌이 일백 가지 꽃에서 꿀을 따다가 놨는데,
부지신고위수감(不知辛苦爲誰甘)이다. 그 벌이 백 리, 이백 리 밖에까지 나가서 온갖 풀과 꽃,
그리고 심지어는 시궁창, 변소, 간장독 또 뱀 썩은 거, 모든 짐승이 썩은 거, 쇠똥, 천 가지, 만 가지 물건에서 꿀이 될만한 요소를 빨아다가 그래서 모아 놓은 것입니다.

그 고통이 얼마며 그 벌의 세계에 있어서도 위계질서가 분명해가지고 그 법도가 엄한 것이며, 놀고먹는 벌은 다 물어서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천 가지, 만 가지 고통을 사양하지 않고 모아 놓은 꿀, 자기네들도 함부로 먹지 않고 꿀통에다가 그렇게 일 년 내에 모아 놓은 꿀을, 벌의 그 고통은 아랑곳없는 사람이 그놈을 딱 도려서 따다가 먹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평생 동안 명예와 권리를 위해서 젊어서부터 공부하고 피땀 흘려서 노력을 하고, 밤잠 안 자고 공부해가지고 그래가지고 고시에 합격하고 판사 검사가 되고, 도지사 장관이 되고 그러한 하늘을 찌르는 높은 명예와 권리를 얻었다 해도,

마치 기러기 하늘 끝에 날아간 뒤에 발자취만 모래밭에 남듯이, 황천에 한번 떠나 버리면 아무 할 일없이 이름만 얼마동안 세상에 남아 있다가 오래되면 그것마저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평생 동안 피땀 흘려서 모은 재산 아까워서 먹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꽁꽁 뭉쳐놨던 재산, 가는 길에 한푼 가져가지 못하고 그 재산은 엉뚱한 사람이 그것을 먹어 치우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백년을 다 못다 사는 이 무상한 몸뚱이를 가지고 태어났으되 무엇을 위해서 그러면은 이 몸뚱이와 목숨을 바쳐야 하느냐?

명예도 헛것이요, 권리도 헛것이요, 재산도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되고 가지고 갈 수가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부처님의 법, 정법(正法)을 믿고 그것을 실천해.
그래서 ‘참나’를 깨닫는 것만이 이것이 영원한 것이며 내가 영원히 참나를 찾아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길이다. 

금년에 삼재가 드신 분들은 지난 입춘에 기도를 열심히 하셨을 것이고 또 이번에 신수기도에도 참 열심히 새벽같이 나와서 열심히 하셨을 줄 생각합니다.

많이 업장이 소멸이 되고 삼재를 면하셨을 것입니다마는 아주 정말 깨끗이 뿌리째 그 삼독의 악귀를 갖다가 내버리려면,
이웃의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에게 보시하시고 또 절에 불사(佛事)가 있으면 보시하시고 또 병든 스님네가 있으면 보시를 해서 아주 마지막 그 끝마무리를 잘하십시오.

이번 한번 뿐만이 아니라 세세생생에 정법에 의지해서 도를 닦으면서 그러한 무주상 보시를 하시는 것은,
세세생생에 삼재팔난(三災八難)을 면하고, 무량무변의 무루복을 증득해서 복(福)과 혜(慧)를 구족(具足)한 그러한 인격완성을 성취하실 것입니다.(41분18초~53분12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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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순치황제(順治皇帝) ; 1638년에 태어나 1643년 어린 나이에 황위에 오른 청나라 제 3대 황제. 재위 기간은 1643년~1661년.
*가비라국(迦毗羅國) ; kapila國(카필라). 석가모니(釋迦牟尼)의 아버님 정반왕(淨飯王)이 다스리던 나라. 실달다(悉達多) 태자(太子) 곧 석존(釋尊)이 태어난 곳.
*재가(在家) ; ①세속 떠나지 않고 에서 스님처럼  닦음또는 그런 사람. ②사회에서 살아가는 일반 사람.
*청신사(清信士)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자 신도, 곧 우바새(優婆塞).
*청신녀(清信女)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 곧 우바이(優婆夷).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염의( 물들일 염,옷 의) ; 출가자의 옷. 출가하여 속세의 옷을 벗고 법의(法衣)를 입는 것도 염의라 하고,
출가할 때에 머리나 수염을 깎고 염의를 입음으로써 스님이 되는 것을 낙발염의(落髮染衣), 체발염의(剃髮染衣)라고 한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사문(沙門) ; 슈라마나(산스크리트어: śramaṇa, 팔리어: samaṇa)의 음역. 식(息)·근식(勤息)·정지(淨志) 등으로 번역. 여러 선법(善法)을 근수(勤修)하고, 악법(惡法)을 행하지 않으며, 심신을 조어(調御)하여 청정(淸淨)한 깨달음의 길을 지향(志向)하고 노력함을 뜻함.
①인도에서 바라문교의 「베다」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제종교 수행자의 총칭.
②출가하여 불문(佛門)에 들어 도를 닦는 사람.
*거사(居士) ; ①고대 인도에서 상·공업에 종사하던 부호. ②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남자 신도. 출가하지 않고 법명(法名)을 받은 재가(在家)의 남자.
*옴막 ; '전부(全部)'의 사투리.
*간탐심(慳貪心 아낄 간,탐할 탐,마음 심) ; 몹시 인색하고 욕심이 많은 마음.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항하(恒河) ; 갠지스 강(Ganges江, 히말라야 산맥에서 시작하여 인도 북부 가로질러 벵골 ()으로 흘러들 가는 인도 최대 길이 2,510킬로미터).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성자(聖者)모든 번뇌 버리고 진리 깨달은 사람.
*아귀(餓鬼) ; 생전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이르게 된 죽은 사람의 영혼. 몸이 앙상하게 마르고 목구멍이 바늘구멍 같아 음식을 먹을 수 없어서 늘 굶주린다고 한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시회(施會) ; 베푸는 모임.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석상(上)[주로 일부 명사  쓰여]여러 사람 모인 자리.
* ; ‘가(바깥쪽 경계 되는 가장자리 부분이나  부근)의 사투리.
*오체투지(五體投地) ; 불교 신자가 교만을 떨쳐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께 큰절을 올려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방법.
신체의 다섯 부위를 땅에 닿게 하는 절. 먼저 두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한다.
고대 인도에서 행하여지던 예법 가운데 상대방의 발을 받드는 접족례(接足禮)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륜투지(五輪投地)ㆍ오륜착지(五輪着地)ㆍ거신투지(擧身投地)ㆍ투지례(投地禮)라고도 한다.
*세존(世尊) : [범] Bhagavat ; Lokanatha ; Lokajyestha의 음역(音譯)으로 바가범(婆伽梵) 로가나타(路迦那他) 로가야슬타(路伽惹瑟吒)라 하며 부처님 십호(十號)의 하나,
부처님은 원만한 공덕을 갖추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시므로, 이렇게 부르며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방편력(方便力) ; 뛰어난 교화방법. 일을 성공시키기 위한 방법론적 지혜의 힘. 방편의 작용.
중생을 인도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고안하여 세상에 펼치는 지혜의 작용.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고혼(孤魂) ; 문상(問喪)할 사람이 없는 외로운 넋.
*선정(禪定) ; 산스크리트의 디야나(dhyāna), 팔리어 자나(jhāna)의 음역(音譯)인 선(禪)과 그 의역(意譯)인 정(定)이 합하여 생긴 말. 선(禪)은 정(定)·정려(靜慮)·기악(棄惡)·사유수(思惟修) 등으로 의역한다.
6바라밀의 하나. 마음 고요한 내관(內觀). 마음의 번뇌를 가라 앉히는 것. 정신 집중의 수련. 좌선에 의해 몸과 마음이 깊게 통일 된 상태.
*백목(白木)무명실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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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布施) : [범] dana  음을 따라 단나(檀那)라고도 쓴다。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아공(我空) ; 인공(人空). 인무아(人無我).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아집(我執)에 대해,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다고 보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아집(我執)은 번뇌장(煩惱障)이라고도 하는데, 번뇌장은 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열반(또는 해탈)을 가로막아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하게 하는 장애라는 의미이다.
*법공(法空) ; 법무아(法無我). 존재하는 만물 각각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법집(法執)에 대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실체로서의 자아는 없다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법집(法執)은 소지장(所知障)이라고도 하는데, 소지장은 참된 지혜, 즉 보리(菩提)가 발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라는 의미이다.
*구공(俱空) :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의 경지에 차례로 도달한 후, 다시 그 아공(我空)과 법공(法空)까지도 버려 비로소 제법(諸法)의 본성에 계합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수행에 의해 이러한 경지를 증득한 것을 뜻한다.
*수순(順) ; 남의 뜻에 따르거나 순순히 따름.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여섯 가지 수행의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단바라밀(檀波羅蜜)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단()은 산스크리트어 dāna의 음사(音寫)로 보시, 보시(布施)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바라밀(波羅蜜)은 도()•도피안(到彼岸)이란 뜻임.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수행의 법을 말함.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과 같음.
*국집(局執) ; 마음이 확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것. 사리(事理)를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아만(我慢 나 아,거만할·게으를 만) ;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① 오온(五蘊)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신체에 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김. 자신을 과대 평가함.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아애(我愛) ; 자아에 대한 애착심.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아치(我癡) ; 자아(自我)를 바로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똥항(똥缸 항아리 항) : 재래식 화장실(칙간)의 바닥을 파고 이를 묻어 분뇨를 저장하던 것으로 이 항아리에 분뇨가 가득 차면 똥장군 등에 퍼담아 밭에 내다 거름으로 이용하였다.
*권화신(權化身) ; 여러 가지로 변하여 나타난 몸.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라고도 한다.
*사리불(舍利弗), 목련존자(目連尊者)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속적삼저고리  껴입는 적삼저고리 모양 윗도리  배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입는 홑옷이다.
*다짜고짜로어떤 일의 내용 자세히 알아보려 하지 않고 덮어놓고 바로.
*몰골 ; 볼품없는 모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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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록(祿 복 복,복 록) ; 타고난 복과 벼슬아치 녹봉(祿俸 예전나라에서 벼슬아치들에게 벼슬살이 대한 보수 주던 곡식이나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는 에서복되 영화로운  비유적으로 이르는 .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재액(災厄)재앙으로 입게 되는 불운.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46)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무량무변(邊)한없이 크고 넓음또는 헤아릴  없이 많음.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 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써,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게송) ‘雁飛天末迹有砂  人去黃天名在家’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36 게송 참고.
*(게송) ‘採得百花成蜜後  不知辛苦爲誰甘’[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36 게송 참고. 당대시인(唐代詩人) 나은(羅隱 833~909)의 시 《봉(蜂)》 참고.
*황천(黃泉) ; 저승(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아랑곳없다 ; 어떤 일에 참견을 하거나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이 중생을 교화(敎化)하는 일.
*삼재팔난(三災八難)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과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삼재(三災) :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팔난(八難) :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①지옥(地獄). ②아귀(餓鬼). ③축생(畜生). ④장수천(長壽天). ⑤변지(邊地). ⑥맹롱음아(盲聾瘖瘂). ⑦세지변총(世智辯聰). ⑧불전불후(佛前佛後).
①,②,③은 고통에 시달려 수행할 수 없기 때문,
④는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여러 천(天)으로, 수명이 길고 편안하여 불법(佛法)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⑤는 북구로주(北俱盧洲)로서, 사주(四洲)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기 때문,
⑥은 눈이 멀고 귀먹고 말 못하기 때문,
⑦은 세속의 지혜는 있어도 그릇된 견해에 빠져 바른 가르침을 구하지 않기 때문,
⑧은 가르침을 설할 부처님이 안 계시기 때문임.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빠짐없이 두루 갖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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