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精進)2015.06.21 16:11

§(세등39) (게송)황앵상수일지화~ / 무상설법(無上說法) / 일초직입여래지 / 선용기심(善用其心) / 화두 의단타파 확철대오하는 이 도리를 부처님을 모시고 증명합니다.

언제 어느 찰나에 깨달을런지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거각(擧却)하고 성성적적한 상태로 정진을 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공부가 잘 안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지고 애를 먹을 때 그때, 선용기심(善用其心), 잘 그 마음을 잡드리해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지어 나가면 그 고비가 바로 깨달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고비다.
‘철저하게 무상(無常)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도업(道業)을 이루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생사(生死)가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명심을 하셔서 1초 1초를 금쪽같이 아껴서 공부하고,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화두를 거각해서 등한(等閒)히 지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39)—임술년 하안거 결제 법어(82.04.17)


(1) 약 22분.  (2) 약 12분.


(1)------------------

황앵상수일지화(黃鶯上樹一枝花)요  백로하야천점설(白鷺下野千點雪)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야래풍우(夜來風雨)를 객문선(客聞先)헌데  춘산의구초당전(春山依舊草堂前)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황앵(黃鶯)이 상수(上樹)하니 일지화(一枝花)요, 노란 꾀꼬리가 나무에 오르니 한 가지 꽃이요.
백로하야천점설(白鷺下野千點雪)이다. 흰 해오라기가 들에 내리니 천점의 눈이더라.

야래풍우(夜來風雨)를 객문선(客聞先)인데, 밤새 오는 비바람 소리를 객이 먼저 들었는데,
춘산의구초당전(春山依舊草堂前)이로구나.  봄 산은 옛을 의지해서 초당 앞에 서 있구나.

임술년 하안거 결제일을 맞이했습니다.
벌써 4월 17일 입하(入夏)가 지나서 뜰 앞, 뜰 뒤 산과 들은 바야흐로 연록(軟綠)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그 아름다운 꽃들도 지고 모란꽃이 한창 피어 있습니다.

노란 꾀꼬리가 가지에 오르니 한 송이의 꽃이요, 흰 해오라기가 들에 내리니 천점의 눈이로다.
한 송이의 꽃, 노란 꾀꼬리 한 마리가 떠억 나뭇가지에 오르니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이다.

꾀꼬리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오를 때 한 가지의 아름다운 꽃이요.
산과 들과 방방곡곡 금수강산(錦繡江山)에 울긋불긋한 꽃과 잎이 비단에 수(繡)놓은 것처럼 이렇게 싱그럽고 아름답게 장엄(莊嚴)을 하고 있습니다.

범연(泛然)히 보면, 예사로 보면, 봄이 오니까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여름이 돌아오니까 이렇게 무성하게 잎이 모다 피어오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너무나 평범한 일이지만,
깨달은 눈으로 보면 이 평범한 현실이 입으로 설할 수 없고,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최고의 진리를 남음이 없이 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눈을 통해서 보는 모든 색상, 귀를 통해서 듣는 모든 소리, 코를 통해서 맡는 모든 냄새, 혀를 통해서 맛보는 모든 맛, 몸을 통해서 느끼는 모든 감각, 뜻을 통해서 받아 들여지는 모든 의식이 바로 진리를 깨닫게 하는 무상설법(無上說法)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납월팔일(臘月八日) 새벽 동천(東天)에 떠오르는 샛별을 보시고 견성성불(見性成佛) 하셨고,
어떠한 도인(道人)은 복숭아꽃 피는 것을 보고 깨달으시기도 하고, 어떠한 도인은 물 흘러가는 것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어떠한 도인은 닭 우는 소리를 듣고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기도 하고,
어떠한 도인은 시장에서 장사꾼들이 멱살을 거머쥐고 서로 다투고 욕을 하는 그 소리를 듣고 깨달은 분도 있고, 우리도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확철대오를 할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깨달을 때에, 차츰 차츰 알아 들어가 가지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의단,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해서 순일무잡(純一無雜)한 경계에 들어가서,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만 나가고 있으면, 언제 어느 찰나에 의단이 타파(打破)될런지를 알 수가 없어.


예를 들자면 어느날 중대한 뉴스가 발표가 된다. 확실한 시간은 모르지만 오늘 중으로 무슨 중대한 발표가 있다.
이럴 때에 아침부터 라디오나 TV 다이알을 딱 맞춰 놓고—언제 중대한 발표가 돌연히 발표가 될는지 모를 때 딱 다이알을 맞춰놓고 대기하고 있는 것처럼,
벌써 다이알을 맞춰놓지 아니한 채 있다가 지나가 버리면 중대한 발표를 듣지 못하는 거여.

언제 발표될지를 모를 때처럼, 딱 다이알을 맞춰놓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언제 어느 찰나에 깨달을런지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떠억 거각(擧却)하고 성성적적한 상태로 정진을 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번갯불 번쩍할 때에 그 번쩍 하는 그 찰나를 이용해서 바늘귀를 뀌듯이, 깨달음의 눈을 뜨는 그 장면은 마치 그와 같은 것이여.
점진적(漸進的)인 것이 아니고, 비약적(飛躍的)인 것이기 때문에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한번 뛰어서 여래(如來)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 공부는 1분 1초라도 등한히 놓아 지낼 수가 없는 것이여.

다른 공부는 시간을 맞춰서도 하고, 또 공부 아니할 때에는 만사를 다 잊어버리고 즐겁게 놀기도 하고, 먹고 잠도 자기도 하고, 사업이나 무슨 사무 모든 것을 다 놔 버리고 훌쩍 떠나서 저 산이나 바다로 쉬러 가기도 하고,
그렇지만, 우리의 공부는 쉬는 시간이 없습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화두를 들고 먹어야 하고, 세수를 할 때에도 화두를 들고 세수를 해야 하고, 똥을 눌 때에도 화두를 들고 똥을 눠야 하고, 몸이 아플 때에도 화두를 들고 꿍꿍 앓아야 하고,
속이 상할 때에도 화두를 들고 속을 상해야 하고, 다정한 사람이 죽어서 슬플 때에도 화두를 들고 슬퍼해야 하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속이 상할 때나 괴로울 때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단 1초 동안이라도, 찰나 동안이라도 화두를 놔 버리면 그 사람은 진실한 수행인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공부가 마냥 한결같이 잘되는 것이 아니고, 어느 때에는 순풍에 돛 달듯이 화두가 저절로 들리면서 성성하게 잘되어 가다가,
또 어떤 때에는 뚝 변해 가지고 영 답답하고 머리가 개운치를 못하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부림이 쳐지고 어찌해 볼 수 없이 그렇게 애를 먹은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귀를 끌고 깊은 우물로 들어갈라고 하는 것처럼, 되게 고삐를 땡겨서 우물로 들어갈라고 하면 할수록 나귀는 뒤로 버티고 안 들어올라고, 이렇게 공부하기가 어렵고 힘이 든 때도 있습니다.
수월하게 잘될 때 보다도 이렇게 공부가 잘 안되고 힘이 들고, 애를 먹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질 때 그때가 훨씬 중대한 중요한 고비라 하는 것을 잘 인식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서장(書狀)>에도 대혜(大慧) 스님께서 그 점에 대해서 누누히 강조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공부가 잘 안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답답하고 몸부림쳐지고 애를 먹을 때 그때,
선용기심(善用其心), 잘 그 마음을 잡드리해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지어 나가면 그 고비가 바로 깨달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고비다 이 말씀이여.

공부가 한 걸음 나아갈랴면은 그와 같은 경계를 만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고비를 잘 넘기고 나면 그 다음부터서는 한결 공부가 수월하고 힘을 얻게 된다 이것입니다.

흔히 화두가 성성하게 잘 들리면은 공부가 잘된다고 좋아하고,
그러다가 보면 공부가 영 답답하고 잘 안되면 그 안되어서 성화를 내고 거기에서 번뇌심을 내고, 짜증을 내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을 내고, 어쩔 줄을 몰라.
기도를 해볼까? 주력을 해볼까?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허면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산진수궁의무로(山盡水窮疑無路)터니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허면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이라.
꽃다운 풀 우거진 길을 지나가지 아니하면, 꽃 떨어진 마을에 이르기 어렵다.
향기나는 풀이 우거진 오솔길을 지나가야 꽃이 활짝 피고 지고 한 아름다운 고장에 들어갈 수가 있다.

수궁산진의무로(水窮山盡疑無路)터니,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해서 이게 맥혀 가지고 인자 길이 없지 않나? 이렇게 의심했더니,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다. 버들은 그윽히 드리워져 있고, 꽃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또 한 마을이 있더라.(처음~21분37초)


(2)------------------

아무리 화두를 들고 정진 할라고 애를 써도 가도가도 답답하기만 하고, 한 걸음도 공부가 더 나아가는 늘어나는 수가 없어. 작년에 마냥해도 그 택이요, 금년에도 마냥해도 그 택이요. 그 또 몇 해냐?

몇 해를 자기 딴에는 밤잠을 안 자고, 남 구경하고 놀러가도 자기는 구경하고 놀 것을 그만두고 자나깨나 화두를 들고 애를 써서 공부를 한다고 하는데 만(萬)날 해도 죽 떠먹은 자리여.
어디에 내놓을래야 내놓을 것이 있나, 콱 맥혀서 답답하기만 하고.

‘참으로 확철대오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인가?’

‘공연히 이렇게 화두만 꽉 아무 생각 못하게 하고 잡념 못하게 하기 위해서, 풀라야 풀 수도 없고 아무 답도 있을 수도 없는 그런 공안(公案)이라 하는 문제를 주어 가지고 이 사람 골때리는 지서리가 아닌가?’

‘무슨 이거 방편(方便)으로 이 화두를 참구(參究)하게 만들어 가지고 마침내 번뇌 망상 안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조사(祖師)가 방편으로 화두니, 공안이니 하는 것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이러한 생각도 들드라 이 말씀이여.

3년 5년 10년 해봤자 무슨 소식이 있어야지?
해 갈수록 답답하기만 하고 혼침(昏沈)만 오고, 아무리 화두를 들라고 몸부림을 쳐도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망상뿐이고, 망상이 조금 잠잠해질라 하면 그때는 또 혼침이 와 가지고,

얼마나 답답하고 얼마나 지루하고 얼마나 못 견뎠으면 웃옷을 벗어서 방바닥을 치면서 ‘이 조주(趙州)가 뭣 때문에 무자(無字) 화두를 내 가지고 이 사람을 이렇게 골탕을 먹이냐’고 다리를 뻗고 우는 스님도 있었고,
머리를 갖다가 벼람박에나 기둥에다 갖다가 이마를 수없이 들이받으면서 피가 나도록 받으면서 죽어버리고 싶은 이러한 충동을 느끼는 수도 있고,

그러나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남기신 법어(法語)를 보면 결정코 우리를 속이지 않는 사실을 우리는 인증할 수가 있습니다.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으로는 아무리 따져도 해결이 안 되지만,
선지식(善知識)의 바른 지도에 의해서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하면, 그래 가지고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랴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독로하고,

머리를 들어도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고, 머리를 숙여도 땅이 보이지 아니하고, 산을 봐도 산의 빛깔과 모냥에 대해서 보이지 아니하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 아니하고,
걸어가되 걸어가는 줄을 모르고, 앉았으되 앉아있는 줄을 모르고, 천 명 만 명 사람이 있는데 서 있어도 한 사람도 사람이 보이지 아니하고, 밥을 먹고 반찬을 먹어도 짜고 싱거운 줄을 모르고,

이러한 경지에—오직 화두의 의단 하나만이 성성적적하게 독로하고, 이러한 경계에 들어가서도 빨리 깨닫기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누가 나로 하여금 이럴 때 툭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래지도 말고,
다못 이와같이 공부를 지어가야 일주일이 가지 아니해서 반드시 의단이 타파가 되어서 확철대오를 할 것이다.
이것은 속일 수 없는 사실이여. 역대조사가 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셨어.

‘이것이 만약에 거짓이라면은 거짓말한 죄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가겠다’고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도 맹세를 하셨고, 몽산(蒙山) 스님도 맹세를 하셨고,
산승(山僧)도 이 도리를 믿고 여러분 앞에 부처님을 증명으로 모시고 여러분에게 선언을 합니다.

출가한 목적은 오직 이 한 문제!
이 일대사(一大事) 해결하는 일 밖에는 다시 무엇이 있습니까?

부모와 정든 고향을 버리고 청춘을 버리고 인생의 모든 낙(樂)을 다 버리고 머리를 깎고 출가한 우리들입니다. 정말 목숨 바쳐서 정진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인생 칠십이라 하지만 누구나 칠십까지 다 사는 것도 아니고, 하루도 장담을 못하는 것이고, 한 시간도 믿을 수가 없고,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지 못하면 바로 그것이 내생(來生)인 것입니다.

‘철저하게 무상(無常)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도업(道業)을 이루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생사(生死)가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명심을 하셔서 1초 1초를 금쪽같이 아껴서 공부하고,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화두를 거각해서 등한(等閒)히 지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진심(精進心)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오늘부터서는 내가 잠을 안 자고 공부를 하리라. 내일부터서는 묵언을 하고 공부를 하리라. 내일부터서는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하리라. 그래 가지고 말을 아니하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리라’
그렇게 마음을 먹고 정진을 애써서 할려고 하는 그러한 기특하고 갸륵한 수행인이 있습니다.

대단히 기특하고 갸륵하고 매일 같이 자기를 ‘오늘 하루는 어떻게 공부를 했는가’ 반성을 해 보고 ‘내일은 어제보다 더 알뜰히 공부를 하리라’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단속을 하고 또 단속을 하는 것, 참 좋습니다.
단 하루도 등한히 지낸 날이 없고, 하루하루 갈수록 더 알차게 공부를 해 나가는 것, 대단히 좋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 일으키는 그 생각마저도 화두를 간절히 든다면 어느 것이 더 낫겠습니까?

‘게으른 사람은 항상 뒤를 바라보고, 지금의 일찰나(一刹那)를 등한히 한다’ 그랬습니다.

진실한 수행인은 ‘앞으로 잘하리라’하는 생각도 일으키지 말고, 당장 지금 이 찰나에 허리를 쭉 펴고 화두를 간절히 드는 법인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 학자의 수행 자세인 것입니다.
이렇게 1초 1초를 다져 나간다면 그 사람은 그날 하루도 알차게 공부를 하게 될 것이고, 물어 볼 것도 없이 내일 하루도 충실하게 정진이 되어질 것입니다.

1초 1초가 모여서 1분이 되고, 1분 1분이 모여서 한 시간이 되고, 한 시간 한 시간이 모여서 하루가 되고, 하루 하루가 모여서 한 달이 되고, 한 달 한 달이 모여서 1년이 되기 때문에,
1초 1초, 한 생각 한 생각을 알뜰히 단속한 사람이야말로 일생을 충실하게 정진할 사람이고, 나아가서는 억겁(億劫)의 생사 문제도 ‘한 생각’에서 해결이 나는 것입니다.

‘일념(一念)이 바로 무량겁(無量劫)’이라고 하는 법성게(法性偈)의 법문을 보면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일념 일념, 1초 1초를 등한히 한 사람은 무량겁 생사윤회가 끊어지지를 아니한 것입니다.(21분40초~34분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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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黃鶯上樹一枝花 白鷺下野千點雪’ ; [오등회원(五燈會元)] 제15권 《奉先深禪師》 참고.
師曰  ‘古人道白鷺下田千點雪,黃鶯上樹一枝花’ 維那作麼生商量?
*(게송) ‘夜來風雨客聞先 春山依舊草堂前’ ; [매천집 제3권] (매천 황현의 시문집) ‘復至文星齋’ 참고.
[참고] [매천집(梅泉集)](제3권)-시(詩):신축고(辛丑稿)
다시 문성재에 이르러〔復至文星齋〕 - 한국고전번역원- 박헌순(역)
밤에 부는 비바람 소리 나그네가 먼저 듣고 / 夜來風雨客聞先
고개 너머 고향 집이 더욱 아득히 생각나네 / 隔嶺思家轉杳然
첫 찻잎 딸 시기는 이미 제철 지나갔고 / 已過頭番摘茶候
한 뙈기 인삼 밭은 장차 묵밭이 되어 가리 / 將蕪一畝種蔘田
늙은이 회포를 익숙하게 동갑 벗과 주고받고 / 老懷慣與同庚話
시 짓는 비결은 부지런히 후배에게 전해 주네 / 詩訣勤從後輩傳
세상일은 십 년 동안 백번이나 변했지만 / 世事十年驚百變
봄 산은 예전처럼 초당 앞에 우뚝하네 / 春山依舊草堂前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 ; 전남 광양 출생. 한말의 시인, 문장가, 우국지사. 1910년 8월29일 한일합방의 치욕을 당하자, 절명시(絕命詩) 4편을 남기고 9월10일 음독 자결하였다.
*연록(軟綠 연할 연/초록빛 록) ; 연한 녹색. 연녹색. 연한 초록색(草綠色).
*금수강산(錦繡江山) ; 비단에 수를 놓은 듯 매우 아름다운 산천. 함경북도 북쪽 끝에서 제주도 남쪽 끝까지 3,000리가 되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장엄(莊嚴 엄숙할•삼가할•꾸밀 장/엄할•공경할•꾸밈 엄) ; ①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꽃 따위를 부처님께 올려 장식하는 일.
②건립하는 것. 건립. 훌륭히 배치, 배열되어 있는 것. ③장식. 물건을 장식하는 것. 아름답게 장식함. 훌륭한 것. 엄숙하게 장식된 모양, 모습. 장식물.
*범연(泛然)히 ;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무상설법(無上說法) ; 진리를 깨닫게 하는 최고의 가르침.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샛별이 뜰 무렵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하(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한다. 일명 성도재일(成道齋日).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뀌다 ; ‘꿰다’의 사투리.
*점진적(漸進的 점점 점/나아갈 진/조사 적) ; ①점차로 조금씩 나아가는. ②점차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
*비약적(飛躍的 날 비/뛸 약/조사 적) ; ①단계를 껑충 뛰어 아주 빠르고 눈부시게 발전, 향상하는. 정상적인 단계를 차례로 밟지 않는. ②단계를 껑충 뛰어 아주 빠르고 눈부시게 발전, 향상하는 것. 정상적인 단계를 차례로 밟지 않는 것.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 ‘한 번 뛰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간다’
[참고] 『증도가(證道歌)』 (영가永嘉 스님)에서.
覺卽了不施功  一切有爲法不同  住相布施生天福  猶如仰箭射虛空  勢力盡箭還墜  招得來生不如意
깨닫고 나면 공(功)을 베풀지 않으니 일체 유위법(有爲法)과 같지 않다.
상(相)에 머문 보시는 천상에 나는 복이나, 마치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올라가는 힘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떨어지니, 내생(來生)에 뜻과 같지 않음을 초래하게 되리라.

爭似無爲實相門  一超直入如來地  但得本莫愁末  如淨琉璃貪寶月  我今解此如意珠  自利利他終不竭
어찌 무위(無爲)의 실상문에, 한 번 뛰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것만 하겠는가.
다만 근본을 얻을지언정 지엽은 근심하지 말라. 마치 깨끗한 유리구슬 안에 보배 달을 머금은 것과 같네.
내, 이제 여의주를 아나니 나와 남을 이롭게 함에 마침내 다함이 없도다.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62()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 역설하였다.

*(게송) ‘不行芳草路 難至落花村’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66 참고.
*(게송) ‘山盡水窮疑無路 柳暗花明又一村’ ; 중국 남송 세대의 시인, 육유(陸遊)의 시 《遊山西村》 참고.
莫笑農家臘酒渾,豐年留客足雞豚。山重水復疑無路,柳暗花明又一村。
簫鼓追隨春社近,衣冠簡樸古風存。從今若許閑乘月,拄杖無時夜叩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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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정도. 그 만큼. 그 수준.
*만날(萬-) ; ①어떤 경우든 한결같이. ②특정한 시간에 한정되지 않고 어느 때든. ③때를 가리지 않을 만큼 매우 자주.
*골때리다 ; 어이없고 터무니없다.
*지서리 ; ‘짓거리('짓'을 낮잡아 이르는 말)’의 사투리. *짓 : 몸이나 몸의 일부를 놀려 움직이는 행동이나 행위를 나타내는 말.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벼람박 ; ‘바람벽(--壁, 집의 둘레 또는 방의 칸막이를 하기 위해 만든 벽)’의 사투리.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 몽산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등한(等閒)히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낮 열두 시가 지나면 먹지 않는 것.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일찰나(一刹那) ; 극히 짧은 순간.
*억겁(億劫) ; 무한히 길고 오랜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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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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