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입춘기도)2014.02.04 08:36

§(114)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 / 참선법은 무량겁 쌓아 놓은 아뢰야식 속에 () 종자를 돌려서보리(菩提) 종자로 승화시키는 방법.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 ‘마음을 관(觀)하는 한 법(法)이 모든 행(行)을 다 포섭(包攝)을 한다’ 이겁니다.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라는 게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참선(參禪)공부입니다. 참선은 「이 무엇고?」 내가 나를 찾는 공부입니다.
정법(正法)은 그 근원을 바르게 다스려서 영원한 행복을 얻게 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참선을 해서 성과가 눈에 보이고 결과가 나타나서, 남에게 이만큼 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면 재미가 있을 텐데, 남 앞에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한철 내 공부를 허고도 내놓을 수 없는 데에 이 참선에 정법(正法)의 묘미(妙味)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얻을 것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는 거, 이것이 바로 얻은 것인 것입니다.
우리의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하는 업의 자루 속에 담아져 있는, 무량겁을 통해서 그 쌓아 담은 업의 종자를 참선을 함으로써 그것을 녹여 없앴습니다. 그러니 내보일 것은 확 뒤집어 보여 봤자 빈 자루입니다. 빈 자루를 내보였으니 거기엔 아무것도 내보일 것이 없는 것은 사실인 것입니다.
 『이뭣고?』 이 한마디는 부적(符籍) 천 장, 만 장 보다도 더 수승(殊勝)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영원히 업장(業障)을 소멸(掃滅)하고 영원한 행복을 얻는 오직 하나의 최고의 방법입니다.

**송담스님(No.114) - 1980년(경신년) 입춘법회 법문(1980.02.05)에서.

(1) 약 21분.  (2) 약 22분.

(1)------------------

입춘(入春)일에 이렇게 법요식(法要式)을 갖는 것은 새해를 맞이해서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1년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으면 어떠한 잘못이 있었는가?

그것을 반성(反省)하고 참회(懺悔)하고 그래 가지고 ‘새해부터서는 어떻게 내가 살아가야겠다’ 이러헌 각오(覺悟)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 이러헌 법요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모이신 분들 가운데에는 경신년에 범띠하고 말띠하고 개띠에 든 분은 삼재(三災)가 들었다 해 가지고 입춘에 동참불공(同參佛供)을 허면은 삼재를 소멸할 수 있다.
그래서 일부로 참여하신 분도 적지 아니 많이 계실 줄 생각합니다. 그것도 또한 좋습니다.

삼재를 소멸하기 위해서 오셨건, 백가지 재앙을 소멸허시기 위해서 오셨건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삼재는 범띠허고 말띠허고 개띠가 새해 경신년에 들삼재고, 그렇다 해서 이 대단히 조심을 해야 한다고 그렇게 모다 얘기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경험을 통해서 보면은 삼재가 들면 내년부터서 내후년 저내년까지, 3년 동안 들삼재 앉을삼재 날삼재 해서 3년을 갖다가 범띠 말띠 개띠는 삼재가 듭니다마는,
삼재 때 가만히 증험을 해보면 정말 걱정헐 만큼 여러 가지 점에 있어서 병을 앓는다든지, 무슨 관재구설(官災口舌)이 있다던지, 무슨 사고를 당한다던지, 그 재수가 없다든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많은 근심·걱정거리가 있어왔다, 그런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삼재가 안 들은 사람은 그러면 전혀 그런 일이 없냐’하면은 그렇지도 않건만은,
‘삼재가 들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당하지 아니했느냐’ 이렇게 생각드는 것도,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있어서 괴로움과 즐거움이 섞여져 있는 그런 생활을 하는 가운데에 느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삼재가 든 사람은 삼재가 들었다고 해서 더욱 조심을 하고, 그것을 어떻게 허면 그러헌 재앙을 미연에 방지허고 혹 그러헌 일을 당하더라도 가볍게 피해를 입지 않고 잘 넘길 수가 있는 방법이 없겠는가?
이리 생각하고 노력을 허는 것은 그건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삼재를 어째서 그 삼재라고 헌 것이 있는 것이냐? 인·오·술 생은 금년 경신년 부터서 3년간 삼재가 드는데, 이러헌 사상은 그 동양의 음양학설, 내나 사주(四柱)도 음양학설에서 나온 것입니다만은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따져서 삼재가 든다.

지금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에 있어서는 이 음양오행을 수천 년 전부터서 그것이 아주 생활 속에 젖어 들어서 사주나 관상이나 모든 점이라든지 그런 것이 전부 음양오행으로 추리해서 그래 가지고 운명을 판단하는 그러헌 방법입니다.

우리 불교를 믿는 사람은 ‘그까짓 거 무슨 소용이 있느냐? 자기가 지어서 받는 것이지, 무슨 그 사주가 아무리 좋은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그러냐.’하고 그런 것을 전적으로 무시해 버리고 그렇게 나가는 분도 있습니다.

정말 정법(正法)을 철저히 믿음으로 해서 삼재가 되었건 오재가 되었건 그런 것을 문제하지 아니하고 궂은일이나 좋은 일이나 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이나,
다못 이 정법 하나 믿는 그 마음으로만 온전히 밀고 나갈 수만 있다면 그 이상 더 좋은 일이 없습니다.

근데 우리의 생활 습관상 또 그런 것이 너무너무 오랫동안 조상 때 부터서 그러헌 음양오행설이 아주 사무쳐 들어와 있어 가지고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무시할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입춘(入春)이면은 한국에 방방곡곡의 모든 사찰에는 그 입춘을 기해서 동참 기도와 불공을 드리고 그리고 업장(業障)을 소멸을 빌고 소원성취를 빌고 그럽니다.

그런데 모든 재앙은 사실 과거에 우리가 어떻게 지었느냐? 그리고 또 현재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우리의 장래가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지금으로부터 1초 전이 전부가 과거에 들어갑니다마는,
그 과거에 우리가 지은 그리고 현재 우리가 생각 생각이 짓고 있는 그것이, 하나도 빠짐없이 우리의 팔식(八識) 가운데에 그 지은 업(業)의 종자(種子)가 다 저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제팔식(第八識) 속에, 아뢰야식(阿賴耶識) 속에 저장이 되어 있는, 우리가 지은 업의 종자가 인연(因緣)을 만나면 그 종자에서 싹이 터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앞에 전개되는 우리의 운명이고 우리의 팔자(八字)인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고서-그 원인을 ‘어떻게 해서 나에게 이러헌 팔자가 운명이 전개되는가’를 그 원인을 모르고서, 당장 그것을 없이 하기만을 바래고,
그걸 없이 하기 위해서 점을 친다던지, 갖은 푸닥거릴 한다든지, 또는 돈을 많이 주고 무당한데 그 부적 같은 것을 사 가지고 몸에 지닌다 하더라도,
그 원인을 소멸하지 아니하고서는 그것이 소멸당하지 않기라고 하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내게 그 비린내 나는 생선을 엮던 그 새끼토막 같은 것을 몸에다 두르고 다니면서, 몸에서 비린내 안 나기를 소원해 봤자 그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첫째 몸에 비린내가 안 나게 할랴면 생선을 묶었던 그 새끼를 몸으로부터 풀어서 버리고 그리고 몸을 깨끗이 닦음으로 해서 비린내는 내 몸에서 부터서 안 나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이 나의 마음속에 아뢰야식 속에 저장되어 있는 업의 종자(種子)를 갖다가 정화(淨化)하고 승화(昇華)시키는 그러헌 노력이 없이는, 우리의 앞날에 좋은 팔자와 운로(運路)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 업장을 소멸허는 법이 십선법(十善法)을 닦는다던지 또는 사성제(四聖諦)법을 닦는다던지 12인연법•육바라밀(六波羅蜜)법•염불(念佛)•독경(讀經)•기도, 얼마든지 우리 불법(佛法) 가운데에는 팔만사천 가지의 그러헌 묘한 법이 있습니다.

어느 법(法)이고 하나도 버릴 법이 없고, 어느 법이고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만 닦는다고 하면은 우리의 업장을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헐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많은 법을 다 닦는다고 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법이 그 가운데에 좋고 나쁘고 해야 그것을 허지, 다 좋은 법인데 어떻게 어느 법만을 추려서 하고 어느 법을 안할 수가 있겠는가?

한 번 두 번 해 보고 별 효과가 없으면 기대할 만큼 효과가 나타나지 아니하면, 또 그걸 버리고 또 다른 방법을 해 보고, 그걸 좀 얼마동안 해 보았지만 별로 신통치 아니하면 또 그걸 버리고 또 다른 법을 좀 해 보고,

이렇게 해서 많은 세월 동안을 그런 식으로 갈팡질팡을 하면서 혹 뜻대로 되는 일도 있고 안 되는 일도 있고,
되면 좋아하고, 안 되면 낙담(落膽)을 하고 비관(悲觀)을 하고 그러면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해온 분이 적지 아니 계실 줄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용화선원에서는 부적(符籍)도 드리지도 않고, 언제나 다른 법회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 일러드리는 말은 언제나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팔만사천 묘법문(妙法門)이, 다 그것을 한데 모아서 녹여 가지고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골수(骨髓) 법문을 추출을 해낸다면,

그것이 바로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 ‘마음을 관(觀)하는 한 법(法)이 모든 행(行)을 다 포섭(包攝)을 한다’ 이겁니다.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라는 게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참선(參禪)공부입니다.
참선은 「이 무엇고?」 내가 나를 찾는 공부입니다.

‘내가 나를 찾는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은 밖에서 무엇을 찾는 데에는 익숙합니다.
물질적인 것이건 무엇이건 밖에서 찾는 데에는 어릴 때부터 여태까지 무량겁을 두고 밖에서 무엇을 찾아가지고,
자기의 소유를 만들고, 자기의 욕심을 충족을 시키고, 자기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이러는 데에는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구한 것은, 언젠가는 인연이 도래(到來)하면 나로부터서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근데 이 참선법은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구하는 것입니다. 안에서 무엇을 구하느냐?
내가 나를 찾는 공부여.

‘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에 있으며, 무엇인가?
정말 그것은 여러분들이 납득할 만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밖에도 있지 아니하고 안에도 있지 아니하고 그 중간에도 있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래서 ‘찾는다’고 말하는 그 말에도 어폐(語弊)를 면치 못합니다마는 부득이해서 그러헌 말을 빌릴 수 밖에는 없습니다.

나, ‘나’라고 허는 것, 중생들은 ‘나’라고 허면 이 이목구비(耳目口鼻)와 사지(四肢)가 있는 이 육체를 가지고 내 몸이다, 나다, 이리 생각합니다마는,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가 모여 가지고 그래 가지고 이 육체를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연이 도래하면 다시 지수화풍 사대로 흩어져서 없어지고 맙니다.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
때리면 아픈 줄 알고, 욕허면 성낼 줄 알고, 칭찬하면 기뻐하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줄 아는 이놈이 바로 이 ‘나’입니다.
그것은 부모로부터 몸을 받아난 사람은 누구에게나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사실 이 주인공은 부모로부터 받아난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에부터 이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에부터, 언제 생겨난 역사가 없이 존재해 있습니다.
생겨난 때가 없습니다. 생겨난 때가 없기 때문에 멸하는 때도 없습니다. 그러헌 ‘한 물건’이 이 몸뚱이를 주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모로부터 받아난 물질로 이루어진 이 육체의 관리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심을 쏟고 정성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몸뚱이를 주재하는 ‘참나’, 나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너무나 소홀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바로 그것을 찾아서 깨닫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업장을 소멸을 한다.’ ‘재앙을 소멸한다.’ 하지만, 그 방법을 바로 알아야만 그 업장을 소멸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굿을 하고-아까 조실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말씀이 계셨습니다마는-부적을 몸에 많이 지니고 굿을 하고 푸닥거리를 헌다고 해 봤자, 우리의 업장이 그러헌 방법으로서 소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헌 방법을 사용할 경우 일시적으로는 우선한 것 같이 느낄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또 얼마 시일이 지나면 다시 또 일어나고, 또 많은 돈을 들여 가지고 또 푸닥거리를 하면 조금 우선함을 느끼고, 이렇게 하는 가운데에 점점점점 깊이 말려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근본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그러헌 삿된 믿음에 빠져 들어간 사람이면 백이면 백, 다 집안에 재앙이 끊일 날이 없고 잡귀가 득실거리고,
그래 가지고 정신까지도 점점 해를 거듭할수록 삿된 소견에 빠져 가지고 헤어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거기서 나오고 싶어도 무서운 협박과 엄포 때문에 겁이 나서 발을 빼지를 못헌 사람이 상당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정법(正法)은 그 근원을 바르게 다스려서 영원히 그러헌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영원한 행복을 얻게 하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나무를 가꾸고자 할 때 그 뿌리에 좋은 흙과 좋은 비료와 기타 수분이라든지 그 충분히 잘 공급을 함으로써, 그 나무는 줄기와 가지와 잎이 무성해져서 결국은 훌륭한 열매를 맺게 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1분19초~22분2초)


(2)------------------

정법을 믿고 우리의 ‘참나’를 찾아서 그걸 닦고 깨닫는다면, 우리의 육체와 우리 주변의 모든 문제는 거기에서 저절로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와의 관계라든지, 부부간에 문제라든지, 형제간에 또는 자식·자녀의 문제라든지, 친구나 일가친척에 관한 건이라든지, 재산이나 명예나 권리에 관한 모든 문제가 그 근원은 나의 마음으로부터 벌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내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하고, 내가 내 마음속에 있는 과거의 업(業)의 종자(種子)를 갖다가 정화(淨化)하지 못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아무리 부모와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부부·형제간의 관계, 일가친척의 문제를 바로잡을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봤자 그리고 원망을 해봤자 그리고 한탄을 해봤자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 우리는 ‘마음’이라는 말을 어릴적부터서 듣고 그리고 그 말을 다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라 하면은 다 각기 자기 나름대로, 마음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그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마음’을 바로 본 사람, 바로 안 사람, 바로 깨달은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닙니다. 그 이름만을 알고 쓰고 있을 뿐 그 실상(實相), 그 실체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루-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언제나 그놈이 그놈을 가지고 그놈으로 그놈이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살면서 일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놈을 알 수는 없습니다.

어째서 단 1분•1초도 떠날 수가 없고, 언제나 같이 살고 있으면서도 그놈을 알 수가 없는 것인가?

눈을 통해서 모든 빛깔을 보고, 귀를 통해서 모든 소리를 듣고 분간하며, 코를 통해서 모든 냄새를 맡고 숨을 쉬고, 입을 통해서 모든 것을 맛을 보고 그리고 말을 합니다.
손과 발, 육체를 가지고 춥고 더웁고 부드럽고 까끄라운 것을 다 식별을 합니다.

그런데 대관절 ‘눈을 통해서 보는 놈이 무엇인가?’ 찾어보면 자취가 없습니다.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면서, 왜 보는 그놈을 다시 볼려고 하면 보이지 아니하고 알 수가 없는 것이냐?

여기에 우리가 마음을 닦는다, 도를 닦는다, 불법을 믿는다고 해도, 1년·2년·3년·10년을 절에를 다니고 법문을 듣고 또 참선을 해도, 마냥 제자리걸음이요 답답하기가 그지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보면서, 보는 그놈을 찾으면 자취가 없으니 이 노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면서도 그놈을 찾으라고 법상(法床)에서 큰스님네는 법문하실 때마다 ‘그놈을 찾으라’고는 하고,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는 아니하고,

<아무것도 얻을 것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는 거, 이것이 바로 얻은 것>
무슨 공부를 해서 차츰차츰 성과가 눈에 보이고, 이만큼 하면은 그만큼 한 결과가 나타나서, 스스로도 흐뭇하고 남에게 이만큼 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면 더욱 신명이 나고 재미가 있을 텐데,

석 달씩-여름 석 달, 겨울 석 달, 집안을 갖다가 떠나서 선방에 가서 석 달씩 그렇게 공부를 허고 와도, 영감님 앞에 또는 아들이나 며느리 앞에 손자들 앞에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가서 공부를 해 가지고 아무것도 내놓을 것도 없으면서, 그리고 그 다음 철에는 또 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만큼 공부를 했다고 내놓을 것이 있으면 아들·딸·며느리·영감이 모두가 다 ‘참, 그 좋다’고 이해를 하고 더욱 가시도록 협조를 하고, 또 그분네들도 보람을 느끼고 또 그분들도 할려고 하시고 그럴 텐데,
맨날 절에만 다니고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절로만 다니시지,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는 마당에야 그 참 딱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한철 내 공부를 허고도 내놓을 수 없는 데에 이 참선에 정법(正法)의 묘미(妙味)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만큼 했다고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유루법(有漏法)이요, 유위법(有爲法)이라 그것은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언젠가는 또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타관(他官)에 가서 고생을 해 가지고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 가지고 와 봤자 그것은 언젠가는 없어지고 마는 것이며 도둑을 맞거나 그렇지 아니면 써버리면 없어지고마는 것입니다.

절에 가서 석 달 내, 자고 싶은 잠도 다 못 자고, 먹고 싶은 것도 다 못 먹고, 그 고생을 하면서 공부를 해서 아무것도 내놓을 것은 없지만은,
그분이 정말 정법을 믿고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참선을 하셨다면, 설사 아무것도 내놓을 것은 없지만은 그분은 영원한 것을 마음 속에서 잘 닦아서 얻을 것은 얻었다고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선을 해서 아무것도 얻을 것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으면 그거 해서 뭐하느냐?

아무것도 얻을 것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는 거, 이것이 바로 얻은 것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제팔식(第八識) 속에 무량겁을 두고 지은 업의 종자를, 그것을 갖다가 순화하고 승화시키는 작업인 것입니다.

밖에 있는 것을 속에다 많이 쌓아 담은 것이 아니라, 제팔식(第八識) 속에 쌓여져 있는 업의 종자(種子)를 소멸을 하고 업의 종자를 승화(昇華)를 시켜서 보리과(菩提果)를 증득허게 하는 거름으로 사용을 했다 이겁니다.

있는 것을 녹여 없앴으니 무엇을 내놓을 것이냐 그말이여.

여기 하나의 빈 자루가 있습니다. 거기에다 밤도 줏어 담고 과자도 줏어 담고 해서, 많이 줏어 담아 가지고 왔으면 그 자루 속에서 그 담아진 것을 꺼내서 보여줄 것이 있겠지만,

우리의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고 하는 업의 자루 속에 담아져 있는, 무량겁을 통해서 그 쌓아 담은 업의 종자를 참선을 함으로써 그것을 녹여 없앴습니다.

그러니 가서 내보일 것은 확 뒤집어 보여 봤자 빈 자루입니다. 빈 자루를 내보였으니 거기엔 아무것도 내보일 것이 없는 것은 사실인 것입니다.

석 달 동안 공부를 하고 집에를 가서, ‘할머니 가서 공부를 해서 무엇을 얻었습니까?’
빈 자루라도 있으면 탁 까뒤집어 보이는데, 우리의 아뢰야식(阿賴耶識)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자루가 아닙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자루인데 우주법계를 그 속에다 다 담아도 그 자루에는 다 차지도 않습니다. 허공을 그 속에다 다 집어넣어도 그 아뢰야식이라고 하는 자루는 차질 않습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자루인 것입니다.

그러헌 자루를 우리는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루 속에 무량겁을 두고 짓고 지은 선업(善業)·악업(惡業)·무기업(無記業) 이 세 가지 종류의 업으로서 지은, 수확한 종자를 그 속에 다 가뜩 담어 가지고 다닌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눈으로 무엇을 볼 때, 자기 종자에 해당되는 인연을 만나면 그 많은 종자 속에 어떤 종자가 거기서 싹이 터 나옵니다.

수수나 조나 모든 종자가 습기와 적당한 열을 온도를 만나면 눈이 터 나오듯이, 우리의 아뢰야식 속에 쌓아져 있는 선업(善業)·악업(惡業)·무기업(無記業) 종자가 그때그때 터져 나온 것입니다.

눈으로 볼 때, 귀로 들을 때, 코로 냄새 맡을 때, 혀로 맛볼 때, 손과 발 몸으로 감촉할 때, 생각으로 무엇을 생각할 때,
이러헌 육근(六根)이 육진(六塵)을 만나면-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만나면 육식(六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 불능(三不能)이 있는데
인연 없는 중생은 제도(濟度)하지 못한다. 아무리 부처님이 삼계(三界)의 대성현이시고, 신통(神通)이 구족(具足)하신 그러헌 대성현이시지만 인연 없는 중생은 제도할 수가 없다.

둘째는 중생계를 다하지 못한다. ‘중생계를 다하지 못한다’는 말은 중생이 하나도 없도록 중생을 없앨 수는 없다.

중생은 그 한량이 없는 큰, 그 아뢰야식 속에 무량겁을 두고 지은 그 업의 종자가 가뜩 차 있기 때문에, 그것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계속 거기에서는 싹이 터 나옵니다.

좁쌀도 나왔다가, 보리쌀도 나왔다가, 수수쌀도 나왔다가, 그때그때 싹이 트기에 적당한 인연을 만나면-조건을 만나면, 거기 있는 많은 종자 가운데에 그 중에 어느 하나가 나오게 되고,
그 다음에 또 나오게 되고 하는데, 계속 다 싹이 터서 다 발아(發芽)를 해 가지고 다 나가버리면 언젠가는 그 종자(種子)가 동이날 텐데 그러지를 못합니다.

왜 그러냐?
싹이 터 나오면서 새로운 종자를 동시에 갖다가 또 저장허게 됩니다.
업장(業藏) 속에 있는 종자가 싹이 터 나온 것을 현행(現行)이라고 합니다. 현행-나타날 현(現)자, 행할 행(行)자. 종자가 밖에 어떠헌 적당한 조건을 만나면은 현행(現行)을 합니다. 싹이 터 나옵니다.

싹이 터 나오면서 거기에서 속에 있는 어떠한 종자를 갔다가 훈(薰)을 합니다. 그 종자를 갔다가 이 또 찜질을 허는 것입니다.
다시 말허면 종자가 싹이 터 나오면서 다시 또 새로운 종자를 갔다가 저축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눈을 통해서 보거나, 귀를 통해서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혀로 맛을 보거나, 뜻으로 무엇을 생각헌 것은 그것이 하나의 현행(現行)이면서 그때 느꼈던 것이 고대로 아뢰야식 속에 또 녹음이 됩니다.

녹음이 된다고 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종자를 갔다가 수확을 해서 저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리해서 우리의 업의 종자가 한없이 퍼져 나오고 한없이 저장이 되기를 무량겁을 해왔고, 앞으로도 무량겁을 두고 그러헌 작업이 계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도윤회(六道輪廻)가 끊일 날이 없습니다.

지은 복이 있으면 천당에 가고, 그놈이 다음엔 다시 인간에 떨어지기도 하고, 축생으로도 떨어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죄를 지은 바가 많으면 또 지옥에 가기도 하고, 육도윤회를 끊임없이 계속하면서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또 앞으로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가 또 계속이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그러헌 도력과 신통력과 법력으로도 그것을 갖다가 다 없앨 수가 없다 이것입니다.

<무량겁 쌓아 놓은 업(業)의 종자(種子)를 녹여 없애는 참선법>
그런데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그 방법이 바로 이 불법(佛法)이요 참선법(參禪法)입니다.

눈을 통해서 무엇을 보았다. 빨간 꽃을 보았다. 지금 이 탁자 위에도 노란 국화가 화병에 꽂혀 있습니다.
그것을 본 찰나, ‘아! 국화로구나. 이 겨울에도 국화가 피었구나. 좋은 향내가 나겠지. 어떻게 저것을 겨울에 피웠나? 온실에서 재배를 했겠지?’

이런 것을-국화 하나를 봄으로써 우리는 끝없이 생각이 그렇게 번져 나갑니다. 그러다가 과거에 어떤 국화에 관련된-자기와 국화에 관련된-어떠헌 일에 우리의 상념이 도달하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혹 눈물바람을 허기도 하고 혹 과거에 어떤 때를 갖다가 그리워하기도 하고 또 씁쓸한 웃음을 짓기도 하고 그럽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동안에는 우리의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의 국화를 보았다. ‘노랗다. 아름답다.’ 그러헌 두 번째 생각으로 건너가기 전에 국화가 눈에 딱 띄었을 때, 그때 바로 참선을 하는 사람은 ‘이뭣고?’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국화를 보고 ‘노랗다’, ‘아름답다’, ‘송이가 크다 작다’ 이렇게 둘째 생각,셋째 생각, 넷째 생각 그렇게 번져나갈 것이 아니라 국화가 눈에 탁 들어온 그 찰나에 두 번째 생각으로 번지기 이전에 ‘이뭣고?’
‘이뭣고?’ ‘지금 「이뭣고?」 헌 이놈이 뭣고?’ 이렇게 우리의 생각을 그렇게 다그쳐 들어가는 것입니다.

국화를 봤을 때 뿐만이 아니라 귀로 무슨 소리를 들었을 때, 새소리를 들었건, 차 소리를 들었건, 개 짖는 소리를 들었건, 들은 그 찰나에 ‘이뭣고?’ ‘이뭣고?’

어떤 생각이 일어났다-친구 생각이 일어났다, 그 친구와 자기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생각허다 보면,
과거에 그 친구가 자기에게 섭섭히 한 일까지 생각해 가지고 공연히 심사(心思)가 사나와지고 그 끝에 아들이나 손자나 며느리가 옆에서 뭐라고 허면 거기에서까지 신경질을 부리게까지 됩니다.

참선한 사람은 그게 아니라-친구 생각이 났다, 두 번째 생각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무엇을 맛을 보거나, 차겁고 더운 것을 느끼거나, 지나간 일이 생각이 나거나,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 간에 한 생각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이뭣고?’ 이렇게 다그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량겁을 두고 쌓아 놓은 아뢰야식 속에 업(業)의 종자를 돌려서 보리(菩提)의 종자로 승화시키는 방법입니다.
이미 업의 종자를 보리심(菩提心)으로 승화를 시켰기 때문에 업의 종자는 소멸이 되었다고 표현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은 소멸이라기보다는 승화를 시켰다고 표현헌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편의상 알기 쉽게 소멸을 했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이뭣고?』 이 한마디는 부적(符籍) 천 장, 만 장 보다도 더 수승(殊勝)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영원히 업장(業障)을 소멸(掃滅)하고 영원한 행복을 얻는 오직 하나의 최고의 방법입니다.(23분23초~45분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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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入春) ;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의 하나.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들며, 이때부터 봄이 시작된다고 한다. 양력으로는 2월 4일경이다.
*법요식(法要式) ; 불사(佛事-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를 할 때 행하는 의식.
*반성(反省) ; 자기 언행에 대해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봄.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각오(覺悟) ; ①앞으로 해야 할 일이나 겪을 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 ②도리를 깨우쳐 앎.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인간에게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을 의미한다. 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이 있으며 십이지(十二支)에 따라 든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날삼재)라고 한다.
*동참불공(同參佛供) ; 여러 사람이 적은 돈이나 물품을 모아 함께 드리는 불공(佛供 부처 앞에 공양을 드림. 또는 그런 일).
*관재구설(官災口舌) ; 관가로부터 재앙을 입는 일(官災)과 남이 나를 비방하거나 헐뜯어서 해를 입는 일(口舌)을 아울러 이르는 말.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사주(四柱) ;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의 네 간지(干支). 또는 이에 근거하여 사람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방법.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 ; 음·양의 2기(氣)와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의 5행으로 자연현상이나 인간·사회의 현상을 설명하는 사상.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팔자(八字) ; 사람의 한평생의 운수. 사주팔자에서 유래한 말로, 사람이 태어난 해와 달과 날과 시간을 간지(干支)로 나타내면 여덟 글자가 되는데, 이 속에 일생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본다.
*정화(淨化) ; 불순하거나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함.
*승화(昇華) ; 어떤 현상이 한 단계 더 높은 영역으로 발전함.
*운로(運路) ; 운길(운이 트인다는 길).
*십선(十善) ; 십악(十惡)을 행하지 않는 일.
*십악(十惡) ;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성제(四聖諦) ; 제(諦)는 ‘sacca’의 번역으로 진리를 뜻함. 고(苦-괴로움)를 소멸시켜 열반에 이르는 네 가지 진리. 사성제(四聖諦-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사제(四諦)라고도 함.
①고제(苦諦,苦聖諦). ‘고(苦-괴로움)’라는 성스러운 진리.
“태어남이 고다. 노쇠가 고다. 죽음이 고다.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이 고다. 즐거운 것과 갈라짐이 고요, 싫은 것과 같이 함이 또한 고다. 요컨대 집착과 연관된, 존재의 다섯 쌓임(五取蘊)이 고다”(상응부)
②집제(集諦,集聖諦). ‘고의 원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몹시 탐내어 집착하는 갈애(渴愛)가 고(苦)가 일어나는 원인이라는 진리.
③멸제(滅諦,㓕聖諦). ‘고의 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됨으로써 고(苦-괴로움)가 소멸되어 고의 끝남, 열반에 이른다는 진리.
④도제(道諦,道聖諦).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라는 성스러운 진리.
팔정도(八正道)-정견(正見,바른 이해)•정사유(正思惟,바른 생각)•정어(正語,바른 말)•정업(正業,바른 행위)•정명(正命,바른 생계)•정정진(正精進,바른 노력)•정념(正念,바른 마음챙김)•정정(正定,바른 집중)-는 갈애를 소멸시켜, 고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십이인연(十二因緣) ; 십이연기(十二緣起).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한 무명(無明)을 근본 원인으로 하여 중생으로서의 인간의 괴로운 생존이 12가지 요소의 순차적인 상관관계에 의한 것임을 설명한 것.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의도적인 행위와 업을 구성하는 형성(行)이 생겨난다.
◎ 형성(行)을 조건으로, 의식(識)이 생겨난다.
◎ 의식(識)을 조건으로, 정신물리적인 현상인 명색(名色)이 생겨난다.
◎ 명색(名色)을 조건으로, 안•이•비•설•신•의 6가지 감역(六入)이 생겨난다.
◎ 감역(六入)을 조건으로, 감각적, 정신적 접촉(觸)이 이루어진다.
◎ 접촉(觸)을 조건으로, 감수(受)가 생겨난다.
◎ 감수(受)를 조건으로, 갈애(愛)가 일어난다.
◎ 갈애(愛)를 조건으로, 집착(取)이 일어난다.
◎ 집착(取)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생겨난다.
◎ 존재(有)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생겨난다.
◎ 태어남(生)을 조건으로, 늙고 죽음(老死)가 생겨난다.
☆ 무명(無明)이 사라지면 의도적인 행위와 업을 구성하는 형성(行)이 사라지고, 형성(行)이 사라지면 의식(識)이 사라지고........마침내 태어남(生)이 없으면 늙고 죽음(老死)가 사라진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보살이 열반(涅槃)에 이르기 위해서 해야 할 여섯 가지의 수행.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를 이른다.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2에서.
〇(52)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
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라.
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  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  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독경(讀經) ; 경(經)을 읽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낙담(落膽 떨어질 락,쓸개 담) ; 너무 놀라 간이 떨어지는 듯하다는 뜻으로, 바라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몹시 상함.
*비관(悲觀 슬플 비,볼 관) ; ①인생을 어둡게만 보아 슬퍼하거나 절망스럽게 여김. ②앞으로의 일이 잘 안될 것이라고 봄.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 ;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포섭(包攝 감쌀 포,당길 섭) ; ①상대방을 끌어들여 자기편으로 만듦. ②어떤 개념이 보다 일반적인 개념에 포괄되는 종속 관계.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도래(到來 이를 도,올 래) ; 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어폐(語弊 말씀 어,해어질·쓰러질 폐) ; ①적절하지 아니하게 사용하여 생기는 말의 폐단이나 결점. ②남에게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말.
*부득이(不得已)하다 ; 마지못하여 할 수 없다.
*사대(四大) ; ① 지(地) • 수(水) • 화(火) •풍(風)을 말함. 대(大)란 원소란 뜻. 일체의 물질을 구성하는 네(四) 가지 원소(大).
(1)지대(地大). 굳고 단단한(堅) 것을 성(性)으로 하고, 만물을 실을 수(負載) 있고, 또 질애(質礙)하는 바탕. 질애(質礙)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여 다른 존재와 서로 융화하지 못한다는 뜻.
(2)수대(水大). 습윤(濕潤)을 성으로 하고, 모든 물(物)을 포용(包容)하는 바탕.
(3)화대(火大). 난(煖)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숙(成熟)시키는 바탕.
(4)풍대(風大). 동(動)을 성으로 하고 물(物)을 성장케 하는 바탕.
② 신체를 말함. 원래, 신체는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함.
*우선하다 ; ①병이 좀 차도가 있는 듯하다. ②언짢던 기분이나 감정 따위가 누그러진 듯하다. ③몰리거나 급박한 형편이 한결 나아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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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과언(過言) ; [주로 ‘아니다’의 앞에 쓰여]정도에 지나친 말.
*자취 ; 무엇이 시간적 혹은 공간적으로 지나가거나 있다가 남기고 간 흔적. 또는 남겨진 흔적.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아무것 ; ①특별히 정해지지 않은 어떤 모든 것. ②[주로 ‘아니다’와 함께 쓰여]특별하거나 대단한 어떤 것.
*유루법(有漏法) ; 번뇌의 더러움에 물든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온갖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사제(四諦) 가운데 미혹의 결과인 고제(苦諦)와 그 원인인 집제(集諦)에 해당하는 모든 현상.
*유위법(有爲法) ; 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참고]
불교에서 일체법(一切法-모든 현상. 인식된 모든 현상)을 분류하는 방식.
①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으로 분류하는 방식.
유위법(有爲法) -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생성과 소멸의 세계.
무위법(無爲法) - 인연의 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진리의 세계
②유루법(有漏法)과 무루법(無漏法)으로 분류하는 방식.
유루법(有漏法) - 번뇌 또는 고(苦)에 물들어 있는 상태 또는 번뇌를 일으키는 마음 작용.
무루법(無漏法) - 번뇌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타관(他官) ; 제가 나서 자란 곳이 아닌 다른 지역이나 고장.
*제팔식(第八識) ; 팔식(八識) 가운데 여덟 번째인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함.
*승화(昇華) ; 어떤 현상이 한 단계 더 높은 영역으로 발전함.
*보리과(菩提果) ; 깨달음.
*보리(菩提) : [산스크리트어] bodhi  도(道) • 지(智) • 각(覺)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를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ㄷ —> ㄹ) 「보리」로 읽는다。따라서 「보제」나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할 것이다.
*줏다 ; ‘줍다’의 사투리.
*아뢰야식(阿賴耶識) ; 과거의 인식, 경험, 행위, 학습 등에 의해 형성된 인상(印象)이나 잠재력, 곧 종자(種子)를 저장하고, 육근(六根)의 지각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심층의식.
아뢰야(阿賴耶)는 산스크리트어 ālaya의 음사로, 거주지·저장·집착을 뜻함. 식(識)은 산스크리트어 vijñāna의 번역. 아뢰야(阿賴耶)를 진제(眞諦)는 a(無)+laya(沒)로 보아 무몰식(無沒識), 현장(玄奘)은 ālaya로 보아 장식(藏識)이라 번역.
[참고] *팔식(八識) ; 유식설(唯識說)에서 분류한 여덟 가지 마음 작용.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
팔식(八識)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 식(識), 곧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을 전오식(前五識)이라 하고, 第六 意識, 第七 末那識, 第八 阿賴耶識이라 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까뒤집다 ; (사람이 무엇을)가려져 있던 것을 뒤집어 드러내다.
*선업(善業) ;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착한 일.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의 나쁜 행위.
*무기업(無記業) ; 삼성업(三性業)의 하나. 선업(善業)에도 악업(惡業)에도 속하지 않으며, 선악 중의 어떠한 과보(果報)도 받지 않는 업을 이른다.
*육식(六識) ; 육근(六根)에 의하여 대상을 깨닫는 여섯 가지 작용. 곧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의 여섯 가지이다.
*삼불능(三不能) ; 당나라 숭악(崇嶽)의 원규(元珪)가 부처님의 3능(三能)과 3불능(三不能)을 세움.
(1) 3능(三能) - 부처님의 3가지 능한 것.
①일체 상(相)이 공(空)해서 만법을 아는 지혜를 이루는 것.
②모든 중생의 성품을 다 알고, 억겁(億劫)의 모든 일을 막힘이 없이 다 아는 것.
③한량없는 중생(무량중생)을 제도하는 것.
(2) 3불능(三不能) - 부처님의 3가지 능치 못한 것.
①무량겁으로부터서 지은 정업(定業)은 멸하지 못함.
②인연없는 중생을 제도하지 못함.
③무량중생을 제도하실 수는 있으나 중생계를 다 제도하지 못함.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의 고해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 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삼계(三界) ;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세 가지 미혹한 세계.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중생의 마음과 생존 상태를 세 단계로 나눈 것.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이른다.
*발아(發芽) ; 씨앗에서 싹이 나옴.
*동나다 ; 물건 따위가 다 떨어져서 남아 있는 것이 없게 되다.
*현행(現行) ;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저장되어 있는 종자(種子)가 변화하고 성숙하여 일어나는 인식 작용.
*훈(熏 연기낄 훈) ; 훈습(熏習 , 薰習)
① 어떤 성질에 물듦. 어떤 기운이 배어 듦.
② 산스크리트어 vāsanā 마치 향 냄새가 옷에 스며들 듯, 몸과 말과 뜻으로 일으킨 행위의 기운과 생각이 아뢰야식(阿賴耶識)에 잠재력으로 이식되는 현상.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윤회(生死輪廻)=육도윤회(六途輪廻).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신통(神通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 :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
*심사(心思) ; ①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일어나는 어떤 감정이나 생각. ②남을 괴롭히려는 고약하고 심술궂은 마음.
*보리(菩提) ; 불교 최고의 이상(理想)인 불타 정각(佛陀正覺)의 지혜. 올바른 깨달음으로 모든 것의 참된 모습을 깨닫는, 부처의 지혜를 뜻한다. 산스크리트 어 ‘Bodhi’의 한자 음역어이다.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부적(符籍 부적 부,문서 적) ;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종이.
*수승(殊勝 특히·유달리 수, 뛰어날·훌륭할 승) ; ①가장 뛰어난 일. ②[불교] 세상에 희유하리만큼 아주 뛰어남.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소멸(掃滅 쓸·제거할 소,멸망할·다할 멸) ; 모조리 쓸어서 없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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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