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8) (게송)농계유식탕와근~ / 요중선(鬧中禪) / 이판(理判), 사판(事判) / (게송)득지재심응재수~ / 정진을 뒤로 미루지 말라 / 일념즉시무량겁.


필요한 만큼 노력하고 열심히 하는 것은 좋으나, 진짜 정말 내가 목숨 바칠 곳은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여. ‘원컨댄 솔바람 불고 칡넝쿨 사이로 비추는 밝은 밑으로 가서 길이 샘이 없는 조사선(祖師禪) 관하고자 한다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 활구참선(活句參禪)이거든.

이뭣고?’ ! 추켜들면 바로 자리가 송풍나월하(松風蘿月下), 자리가 선방이다 그말이여. 이것이 바로 요중선(鬧中禪)이여.

정법, 참선, 정진에 대한 참뜻을 사람은 뒤로 미루지 않어. 뒤를 기다리지를 . 바로 지금! 현재 들을 , 바로 그때 ! 화두를 들어. 화두를 ! 챙기면 그때 바로 정진에 들어간 거거든.

참뜻을 사람은 모든 기회, 모든 경계에서 바로 잡어서 써야 하는 거거든.(得其源也  機境上  把得便用)

하이고! 무량겁을 닦아야 하는데, 우리가 죽을 날이 얼마 남았는데 언제 짓을 해야하지만,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거든. 생각이 바로 무량겁이지, 생각 놓고는 무량겁이 존재하지를 . 그래서 언제나 생각을 바로 단속을 나가면 그것이 바로 무량겁이여.

이뭣고?’ 해서 화두가 순수무잡해서 더이상 의심이 수가 없고, 더이상 간절할 수가 없어 타성일편이 되면 의단(疑團) 타파(打破) 되어서 바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보게 것이다.

**송담스님(No.478)—1992(임신) 칠석 법회(92.08.05)


(1) 약 20분.  (2) 약 10분.


(1)------------------


농계유식탕와근(籠鷄有食湯鍋近)한데   야학무량천지관(野鶴無糧天地寬)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농계(籠鷄) 유식탕와근(有食湯鍋近)이다. 닭장 속에 갇혀 있는 닭들은 맞추어서 먹이를 주기 때문에 먹을 걱정은 없어. 그러나 머지않아서 전골냄비가 가깝더라. 펄펄 끓는 냄비에 들어갈 시간이 온다 그거거든.

야학(野鶴) 무량천지관(無糧天地寬)이다. 들에 날아다니는 학은 아무도 먹이를 주거나 식량이 없지마는 천지가 너그러워.


그것은 무엇에다가 비유한 말이냐 하면은 인간 세상에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은 집도 좋고 차도 좋고, 먹을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호의호식(好衣好食)하고 좋은 같지마는,

자칫 잘못하면은 본의 아니게 남에게 적악(積惡) 하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탐심과 진심으로서 본의 아니게 크고 작은 죄를 지었으니 삼악도(三惡途)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거거든.


그런 부귀영화를 내던지고 다못 불법(佛法) 위해서 도를 닦는 사람들은 천지가 너그러워.

이건 대표적으로는 출가해서 닦는 스님네를 위시해서, 설사 세속(世俗) 몸담아 살고 있지마는 세속의 부귀영화에 그렇게 탐착심이 없이, 세속에 살면서도 정법(正法) 믿고 정법에 의지해서 항상 도를 닦는 사람, 형편 따라서 모다 좋은 일도 하고 그런 사람들도 들에 ()에다가 비유된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불같은 욕심을 가지고 돈을 벌라고 한다고 해서 큰돈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게 악랄한 생각이 없어도 전생에 지은 복이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하거나 딱딱 인연이 닿아서 잘사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니 잘살고 못사는 것을 금생에물론 노력 따라서 굶을 사람이 밥을 먹고 겨우 먹을 사람이 넉넉히 살고 그러기는 합니다.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부지런히 하다 보면, 그러나 정말 부자는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여.


그것은 속가에서는 하늘이 주어야 한다고 그러지마는, 하늘이 준다는 아니고 과거에 자기가 부자가 만큼 복을 많이 지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지, 자기가 짓지 않는데 때문에 하늘이 것이냐 그말이여.

반드시 부자는 전생에 자기가 부자가 만큼 복을 짓고 닦은 사람이다 그거거든. 전생에 지어 놓은 것이 없는 사람이 금생에 악착같이 노력한다고 해서 부자 아니여.


그러기 때문에 재산이나 명예나 권리나 너무 그것에 연연(戀戀)하고, 너무 국집(局執) 가지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치고, 사람으로서 해서는 일까지 하면서 그런 것을 구할 필요는 없어.


필요한 만큼 노력하고 열심히 하는 것은 좋으나, 진짜 정말 내가 목숨 바칠 곳은원입송풍나월하(願入松風蘿月下)하야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이여. ‘원컨댄 솔바람 불고 칡넝쿨 사이로 비추는 밝은 밑으로 가서 길이 샘이 없는 조사선(祖師禪) 관하고자 한다

장관무루조사선(長觀無漏祖師禪) 활구참선(活句參禪)이거든. 그리고 송풍나월하(松風蘿月下) 깊은 산중만을 가르키는 아니라 여기 용화선원이면 선원, 선원에 가서 참선을 하면 그것이 송풍나월하(松風蘿月下).


설사 형편상 선원에 가서 방부(房付) 들이더라도 자기집에서도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소제를 하면서 살림하면서도 항상 생각 생각이 화두를 들고, 앉아서도이뭣고?’ 서서도이뭣고?’ 차를 타면서도이뭣고?’ 시장에 가면서도이뭣고?’ 밭을 매면서도이뭣고?’


이뭣고?’ ! 추켜들면 바로 자리가 송풍나월하(松風蘿月下), 자리가 선방이다 그말이여. 이것이 바로 요중선(鬧中禪)이여.

시끄러운 가운데 복잡한 가운데에서 자꾸 생각을 돌이켜서이뭣고?’ 하면 속에서 정말 살아있는 () 깨닫는 거여. 조용한 데에 가서 일체사(一切事) 끊고 조용한 가서 가만히 앉아서 공부를 하면 굉장히 잘될 같지만 그렇지도 .


시끄럽고 복잡한 속에서도 자꾸이뭣고?’ 챙기고 하면 속에서처음에는 아무래도 초입 단계에서는 시끄럽고 복잡한 데에는 그런 것들이 귀로 들리고 눈에 띄고 하니까 그것으로 인해서 화두(話頭) 들어가는 데에 약간 장애는 받겠지마는,

그럴수록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화두를 거각(擧却)하면, ! 속에서도 조끔도 시끄러운 것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눈에 들어오지 않고 화두가 들리게 때가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용화사는 비구(比丘) 선방에는 비구 스님들이 팔도에서 모다 모이고, 외국에서도 와서 이렇게 사분정진(四分精進)하고 방선(放禪) 시간에도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고 애를 쓰고 있는 스님네도 계시고,

사무실이나 후원에서는 사무를 보고—‘원주(院主), 도감이다, 별좌(別座)용상방(龍象榜) 소임에 따라서 소임을 철저히 보면서도 속에서도 정진을 하는 그런 스님네도 있다 그말입니다.


선방에서 정진만을 위주로 하는 스님네도 훌륭하고, 사무실에서 온갖 소임을 보면서 속에서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스님네도 또한 훌륭하다 그거거든.


선방에 다니던 스님네들도 과거에는 소임을 보다가 인연 따라서 걸망을 지고 나오는 거고, 걸망을 지고 다니면서 정진을 하다 형편 따라서 원주다, 도감이다, 별좌다 주지다 그런 소임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여.

그래서 이판(理判), 사판(事判) 경우에 따라서 이판이 사판 되기도 하고, 사판이 이판 되기도 하는 것이여. 정말 소임을 볼라면은 이판의 철저한 수행 없이 훌륭한 사판이 나올 수가 없고, 사판을 통해서 () () 갖춰서 닦고, 요중(鬧中)에서 철저한 수행을 쌓지 않고서는 정말 훌륭한 이판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여.


그래서 소임 보면서도 사무실 뒤에 선실(禪室) 들어가서 정진을 하고, 정진을 하다가 나와서 일을 보고, 보고 잠깐 시간 여유가 있으면 들어가서 정진을 하고.

그래서 용화사는 선방 스님네나, 사무실에서 소임 보는 스님네가 서로 괴리감이 없고 서로 위화감이 없이 서로 대중으로서 이렇게 지내고 있으니 이거 ! 대단히 보기도 좋고 좋다 이거거든.


보살선방에 방부 들이고 정진하는 보살님네나 매일 출퇴근하는 보살님네나 출퇴근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정에 생활하시면서 가운데 정진하신 보살님네나, 알고 보면 발심(發心)해서 어느 어느 시라도 항상 화두를 놓치지 않고 챙기고, 염념상속(念念相續)으로 나가면 모두가 훌륭한 법보제자요 활구참선객이다 그거거든.



득지재심응재수(得之在心應在手)하고   설월풍화천지구(雪月風花天地久)로다

나무~아미타불~

조조계향오경제(朝朝鷄向五更啼)하고   춘래처처산화수(春來處處山花秀)니라

나무~아미타불~


득지재심응재수(得之在心應在手), 마음에 본질을 얻으면 손에 (). 정법이 무엇인가를 철저히 인식을 하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터억 화두를 거각하고, 일념이 대의단(大疑團) 현전(現前)하도록 그렇게 잡드리한 사람은 손에 응해.

걸어가거나, 손으로 일을 하거나, 밥을 짓거나, 국을 끊이거나, 빨래를 하거나, 채전(菜田) 가꾸거나, 청소를 하거나 그냥 자체가 바로 정진이거든, 그것이 바로 수행이여.


설월풍화천지구(雪月風花天地久). 겨울에는 밝은 달에 내리고, 봄바람에 아름다운 꽃이 피듯이 천지가 영원무궁토록 그렇게 순환한 것이다 그말이여.

되었다 여름 되었다, 겨울 되었다 가을 되었다 하는 것이 그것이 바로 진리의 순환이요, 진리의 표현이더라 그거거든.


조조계향오경제(朝朝鷄向五更啼). 아침마다 오경(五更), 새벽마다 오경이 돌아오면 닭이 울고, 봄이 돌아오면 곳곳이 울긋불긋 꽃이 피는 도리가 아니던가.(春來處處山花秀)


도가 무엇인지, 정법이 무엇인지, 수행을 어떻게 것인지를 똑바로 모르는 사람은 일용(日用) 생활 먹고 입고 세수하고 누고, 일하고 목욕하고 매고 빨래하고 짓고, 회사에 나가서 사무를 보고, 공장에 가서 일을 하고하는 그러한 일용 생활을 떠나서 따로 생애를 구한다 그말이여.(失其旨也  離却日用  別求生涯)


어디 깊고 조용한 산중에 가서 전혀 아무 일도 상관하지 않고, 속에서 아주 그냥 저녁부터 새벽, 새벽부터 저녁까지 오직 화두만 들고 철저하게 용맹정진 봐야겠다. 그래야 무엇이 되지 이렇게 생활 속에서 이러쿵저러쿵 시비 속에서 도대체가 공부를 한다고 해도 되지를 않고...’ 밤낮 그런 생각을 하게 마련이거든. 그리고 밤낮언젠가 선방에 갈까? 언제나 가행정진, 언제 용맹정진...’


지금 당장에 지금 당장 눈앞에 거기에서 ! 챙겨야 하는 것이지, 어찌 밤낮언제? 다음철에? 내년에?’

보살님네들은, 아들딸 여의어 놓고, 대학에나 보내 놓고 어떻게 볼까?’ 밤낮 뒤로 미루거든. 그런 생각할 바로 자리에서이뭣고?’ 들어가야지, 어찌 지금을 놓고 언제를 기다리고 있느냐 그말이여.


정법, 참선, 정진에 대한 참뜻을 사람은 뒤로 미루지 않어. 뒤를 기다리지를 .

바로 지금! 현재 들을 , 바로 그때 ! 화두를 들어. 화두를 ! 챙기면 그때 바로 정진에 들어간 거거든.


그런 사람이라야 나중에 여러 가지 좋은 계기가 오면은 공부를 잘할 있는 것이지, 지금 시간을 놓치고, 밤낮 시간은 불평 불만하고 게으름 부리고 그리고 언제 좋은 때를 기다리는 사람은 5 후에도 마찬가지고, 10 후에도 마찬가지고, 30 후에도 마찬가지고, 숨이 끊어져서 죽어도 마찬가진 거여.

그게 바로, 불법(佛法)이라는 뒤로 미루는 법이 아니거든. 속담에나중에 보자는 무섭지 않다, 밤낮 나중으로 미루거든. 사람은 나중이 되어 봤자 일이 없어.


참뜻을 사람은 모든 기회, 모든 경계에서 바로 잡어서 써야 하는 거거든.(得其源也  機境上  把得便用)


앉아서는 앉아서이뭣고?’ 섰을 때는 섰을 이뭣고?’ 일할 때는 일할 이뭣고?’ 먹을 때는 먹을 이뭣고?’ 때는 이뭣고?’

누가 자기를 욕하면, 욕할 바로이뭣고?’ 들어. 칭찬하면은 칭찬한다고 흐뭇하고 좋아할 있어.


옛날 성현의 말씀에칭찬하는 놈은 도둑놈이고,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사람은 바로 나의 스승이다

공연히 잘한 없는데 칭찬하면 공연히 입이 찢어지면서 흐뭇하게 생각하고, ‘, 사람 좋은 사람이더라그러거든. 칭찬하는 사람 좋아하지 말어.

나를 험담하고 나를 비방하고 욕하고, 나의 잘못을 똑바로 지적해 주고 사람은 참으로 사람이 고마운 사람이고, 사람이 나의 존경할 만한 스승이여.(2559~4554)



(2)------------------


이렇게 생활을 나가고 이렇게 닦아 가는 사람은두두정묘국(頭頭淨妙國)이요 물물(物物) 상주진신(常住眞身)이여. 모든 것이 극락세계(極樂世界) 선불장(選佛場)이요 도솔천(兜率天)이요, 모든 것이 상주진신(常住眞身)이여. 불보살(佛菩薩) 화현(化現)이더라그거거든.


어디 죽어서 극락에 바라느냐 그말입니다. 생각만 ! 그렇게 돌이켜서 그렇게 살아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부처님이요, 만나는 사람마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요, 만나는 사람마다 선지식(善知識)인데.


일체성시불성(一切聲是佛聲)이요모든 소리는나를 칭찬하는 소리나, 나를 험담한 소리나, 짖는 소리나,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나, 자동차 소리나, 기차 소리 일체 소리가 부처님의 설법이고.

일체색시불신(一切色是佛身)이여모든 눈으로 있는 것들은 부처님의 몸뚱이더라 그거거든.

촉처천진(觸處天眞)이요부딪친 것마다 천진불(天眞佛)이요. 무엇이 좋네 나쁘네 그걸 가릴 있느냐 그말이여. 시비 가릴 필요가 없어.(雌黃無分)


우리는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겠다. 이것이 바로 법보제자의 생애요, 참선법! 최상승법(最上乘法) 믿는 불자(佛子) 태도가 아니고 무엇이던가.


그렇게 닦아 가면 생활해 나가는 데에 얼마나 생기(生氣) 약동(躍動) 것이냐 그말이여.

좋은 일을 당하면 좋은 일을 당한 대로 좋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어려운 일을 당한 속에서 ! 발심을 하거든. 정신을 차리면 아무리 어려운 속에서도 반드시 솟아날 구멍이 있어. 어떠한 어려운 속에서도 반드시 귀인(貴人) 만나게 되어 있어. 귀인이 바로 불보살 화현신이 아니던가.


정말 불법을 믿고 발심을 해서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무엇이 그렇게 부러울 것이 있어? 시기심도 없어져 버리고, 질투심도 없어져 버리고, 모든 사람을 보면 모두가 반갑고, 모두가 고맙고.

그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아가면 모르는 가운데에 정진력이 생기고 수행력이 쌓여서 () () 겸전한 삼십이상(三十二相) 팔십종호(八十種好) 갖춘 부처님이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말이여.


생각 일어날 때마다 생각이 바로 시비에 흔들림을 받지 않고 바로 화두를 드는 정법으로 돌아오는 것이 그것이 바로 삼십이상을 닦는 방법이요, 팔십종호를 구비하는 방법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말이여.

경전에는 무량겁(無量劫) 부처님은 그렇게 닦으셨어. 그래서 삼명육통(三明六通) 구족(具足)하시고, 삼십이상과 팔십종호를 갖추신 것이거든.


무량겁이 무엇이냐?

하이고! 무량겁을 닦아야 하는데, 우리가 죽을 날이 얼마 남았는데 언제 짓을 해야하지만,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거든. 생각이 바로 무량겁이지, 생각 놓고는 무량겁이 존재하지를 . 그래서 언제나 생각을 바로 단속을 나가면 그것이 바로 무량겁이여.


오늘 칠석날, 산승(山僧) 보잘 없는 말씀을 깊이 명심을 해서 부귀영화에 너무 집착하고 연연하지 말고, 형편이 어려워져도 사업이 잘못되어도그까짓 ! 그까짓 것이 무엇이냐! 꿈속에 얻었다가 한번 것이지. 꿈속에 있었던 일이 좋으면 뭣하고 궂으면 뭣하냐. 당장 마당에 찰나를 내가 「이뭣고?」를 하자이렇게 단속을 나가면 그까짓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칠석날이니 목욕재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모다 오셨어. 이어서 법요식이 진행이 되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축원을 하게 되겠습니다.

공덕으로 크고 작은 모든 소원을 성취하고, 성취한 위에이뭣고?’ 해서 대도(大道) 성취하기를 바랍니다.



일행영상막심산(日行嶺上莫尋山)하라   신재해중휴멱수(身在海中休覓水)니라

나무~아미타불~

묘봉정상일전신(妙峰頂上一轉身)하면   시방무처불봉거(十方無處不逢渠)니라

나무~아미타불~


일행영상막심산(日行嶺上莫尋山)이여. 날마다 재를 넘어 다니며 있으니 산을 찾지 마라. 재가 산에 있는데 산을 넘어 다니면서 어찌 산을 찾을 것이 있느냐.

신재해중휴멱수(身在海中休覓水). 몸이 바다 가운데 있으면서 물을 찾을 있느냐. 찾기를 쉬어 버려라 그거거든.


묘봉정상(妙峰頂上) 일전신(一轉身)하면, 묘고봉(妙高峰) 수미산(須彌山)인데, 세계에 최고 높은 산이거든. 수미산 봉우리에서 몸을 굴려.

시방(十方) 그를 만나지 않는 곳이 없으리라[十方無處不逢渠].


이뭣고?’ 해서 화두가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

순수무잡(純粹無雜)해서 더이상 의심이 수가 없고, 더이상 간절할 수가 없어 타성일편이 되면은 의단(疑團) 타파(打破) 되어서 바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보게 것이다.(4556~5517)()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게송) 농계유식탕와근 야학무량천지관 ; 지공 선사(志公禪師) 권세염불문(勸世念佛文) 참고.

*(게송) 원입송풍나월하 장관무루조사선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호의호식(好衣好食) ;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이라는 뜻으로 입고 먹음을 이르는 .

*적악(積惡 쌓을 /악할 ) ; 남에게 () 짓을 많이 [].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속(世俗)속세(俗世). 불가(佛家)에서 일반 사회를 이르는 .

*연연하다(戀戀-- 생각할·그리워할 ) ; 무엇에 집착하여 미련을 가지다.

*국집(局執) ; 마음이 트이지 못하고 어느 한편에 국한(局限), 집착하는 . 사리(事理) 두루 살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관에 얽매이거나 자기의 소견만이 옳다고 고집하여 매우 답답한 모습을 말한다.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요중선(鬧中禪)시끄러운 가운데 하는 참선. 동중선(動中禪)라고도 한다.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이뭣고~?’   ‘ 없는 생각()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비구(比丘) : [] bhiksu  [] bhikkhu 파리어(巴利語) 음대로 것이다。걸사(乞士) • 포마(怖魔) • 파악(破惡) • 제근(除饉) 등으로 번역한다。남자가 출가하여 스님이 되어, 이십 이상 때에 250 되는 비구계(比丘戒) 받은 뒤에라야 비구라고 부른다.

비구에 다섯 가지 뜻이 있는데  1. 사유 재산을 모아 두지 않고 걸식하며 지내는 것。2. 번뇌 망상을 깨뜨려 버리는 것。3. 탐욕과 분노와 우치가 불붙는 번뇌의 집에서 뛰어나는 것。4. 부처님의 계율을 깨끗하게 지키는 것。5. 외도와 악마가 무서워하는 등이다。여승(女僧) 비구니(比丘尼 bhiksuni)라고 하는데, 모든 것이 남승과 같고, 오직 348 되는 비구니계를 지켜야 한다.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새벽, 오전, 오후, 저녁)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용상방(龍象榜) ; 절에서 하안거·동안거 결제 때나, 큰일을 치를 때에 각자 일을 정해 붙이는 명단. 행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사람이 있는 곳에 붙여서 각자가 맡은 일에 충실하도록 것이다. 용상(龍象) 발심해서 불도(佛道) 닦는 훌륭한 수행자를 () 코끼리[] 비유하여 말함. (, ) 대중에게 알리는 게시판.

*이판(理判 도道·다스릴 /판단·맡을 ) ; 불경의 연구와 참선에만 전념하는 . 또는 일을 하는 스님.

*사판(事判 /판단·맡을 ) ; 절의 모든 재물과 사무를 맡아서 처리함. 또는 일을 하는 스님.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염념상속(念念相續) ; 생각 생각이 잊지 아니하고 계속 이어 나가다.

*(게송) 득지재심응재수~’ ; [금강경오가해]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야부도천(冶父道川) 게송 참고.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채전(菜田 나물 / ) ; 채소를 심은 .

*오경(五更) ; ①하룻밤을 초경(初更)에서 오경(五更)까지 다섯으로 나눈 시각을 아울러 이르는 .

②하룻밤을 다섯 시기로 나누었을 때의 다섯째 부분. 새벽 3시부터 5 사이이다.

*곳곳이 ; 이르는 곳마다.



------------------(2)


*頭頭淨妙國  物物常住眞身  一切聲是佛聲  一切色是佛身  觸處天眞 ; [금강경오가해]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 있는 야부(冶父) 스님의 게송得之在心  應之在手  雪月風花  天長地久  朝朝鷄向五更啼  春來處處山花秀 대한 함허 스님의 설의(說誼 이치를 설함).

[참고] 『금강경오가해』 (무비 역해 | 불광출판) p315-316. 『야부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법공양) p314-315 참고.

【야부】  得之在心  應之在手  雪月風花  天長地久  朝朝鷄向五更啼  春來處處山花秀

마음에 본질을 얻으면 손에 (). 겨울에는 밝은 달에 내리고, 봄바람에 아름다운 꽃이 피듯이 천지가 영원무궁토록 그렇게 순환한 것이다. 아침마다 닭은 오경(五更) 울고 봄이 오면 산마다 꽃이 빼어나도다.


【함허】  失其旨也  離却日用  別求生涯  得其源也  機境上  把得便用  麼則  頭頭  淨妙國土  物物  常住眞身  一切聲  是佛聲  一切色  是佛色  觸處天眞  雌黃無分  鷄向五更啼  處處山花秀  可得雌黃

뜻을 잃어버리면 일상생활을 떠나서 따로 생애(生涯) 구하거니와 근원을 얻으면 일체 경계 위에서도 그것을 잡아 씀이니라.

이러한즉 낱낱이 모두 정묘국토(淨妙國土 극락세계), 영원히 머물러 있는 진신(眞身)이로다. 일체의 모든 소리는 부처님의 설법이요, 일체의 모든 물질[] 부처님의 몸이니 만나는 경계마다 모두 천진(天眞)해서 시비[雌黃] 가릴 것이 없도다.

닭은 오경에 울고 산마다 꽃들이 빼어 났으니 여기에 무슨 시비를 가릴 것이 있겠느냐.

*‘자황(雌黃)’ 시비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자황은 황금석(黃金石) 속에 있는 금황색 결정체로 노란색의 채색 재료이다. 옛날 중국에서 오기(誤記) 정정에 자황을 일로부터 시문(詩文) 첨삭(添削)이나 변론(辯論) 시비(是非) 일컫는 말로 쓰인다.

*정묘국(淨妙國) ; 정묘국토(淨妙國土). 정묘토(淨妙土). 청정미묘(淸淨微妙) 국토. 정토(淨土 극락세계) 말함.

*두두물물(頭頭物物) ; 온갖 사물과 현상.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

*선불장(選佛場) ; 부처[] 뽑는[] 장소[]라는 . 부처님을 만들어 내는 장소라는 .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 승당(僧堂). 선방(禪房).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개당보설(開堂普說)’ 방거사(龐居士) 게송이 다음과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無爲)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 급제하여 돌아가네.’ [고봉화상선요어록] (통광 스님 역주) p37, 46에서.

*도솔천(兜率天)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나타나는 .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 번역, 보살(菩薩)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 준말.

세간(世間)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 그의 이름을 부르면 음성(音聲) 듣고()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 왼쪽 보처(補處).

자재롭게 보는 (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천진불(天眞佛) ;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부처님, ‘법신불(法身佛)’ 달리 이르는 .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 화두(話頭) 말이다. 간화(看話)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을본다[]’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화두를 ()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생기(生氣) ; 활발하고 힘찬 기운.

*약동(躍動 /움직일 ) ; 생기 있고 활기차게 움직임.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눈썹 사이에 털이 있다, 발바닥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등등.

*삼명육통(三明六通)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와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삼명(三明)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

①숙명지증명(宿命智證明) 나와 남의 전생을 환히 아는 지혜. ②생사지증명(生死智證明) 중생의 미래의 생사와 과보를 환히 아는 지혜. ③누진지증명(漏盡智證明)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지혜.

*신통(神通 불가사의할 /통할 ) : 수행을 ()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 능력.

*육신통(六神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있고 변할 있는 능력. ②천안통(天眼通)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있는 능력. ③천이통(天耳通)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있는 능력. ④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 속을 아는 능력. ⑤숙명통(宿命通)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능력. ⑥누진통(漏盡通)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구족(具足) : ①갖추고 있는 ②갖추어져 있는 . 빠진 것이 없는 ③원만(圓滿) 같음. 완전.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경의 핵심을 추려서 7 30(210) 게송으로 지은 <화엄일승법계도 華嚴一乘法界圖> 또는 <법성게 法性偈> 나오는 구절.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한량없는 오랜세월이 한생각 찰나요,찰나의 한생각이 무량한 시간이네.

*(게송) 日行嶺上莫尋山  身在海中休覓水 ; [금강경오가해]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 야부도천(冶父道川) 게송 참고.

*(게송) 妙峰頂上一轉身  十方無處不逢渠 ; [금강경오가해] 이색이상분(離色離相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참고.

*수미산(須彌山) ; 수미(須彌) ‘sumeru’ 음역. 묘고산(妙高山)이라 한역함.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자타(自他)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경계.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수할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수(純粹)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싼또샤
정진(精進)2015.07.12 15:04

§(527) (게송)여군동보우동행~ / 십법계(十法界) / 내가 본래 부처, 번뇌가 보리 / 정진은 안락지묘문(安樂之妙門) / ‘한 생각’ / (게송)정체종래절색공~ / 결정적인 신심.

부처를 찾을려고 하지 말고, 번뇌를 버릴려고 하지 말어. 내가 부처인데, 부처가 다시 또 부처를 찾으니까 부처가 보이지를 않는 거고, 번뇌가 바로 보리인데, 번뇌를 버리고 보리를 찾기 때문에 거기에서 공부가 우리를 괴롭게 하고 마는 것이다.
닦을 것이 없는 곳을 향해서 닦아야 하고, 찾을 것이 없는 곳을 향해서 찾아야 하고, 버릴 것이 없는 곳을 향해서 버릴 줄 알아야 해. 그 방법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이다. ‘이뭣고?’
이 세상에 깨닫고, 깨닫지 못한 것은 우리가 따질 필요가 없어. ‘불교는 깨닫는 가르침이다’ 그렇지만 원래 내 자신이 부처이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 단속만 할 줄 알면 그 자체가 바로 부처님인 거여.
‘한 생각’을 좋은 생각을 먹으면 천당으로 가는 거고, 악한 생각을 일으키면은 지옥에 가는 거고, 탐심을 내면 축생이 되는 거고, 진심(瞋心)을 내면 바로 그 찰나에 그 독사도에 들어가는 건데,
일어나자마자 그 생각이 차츰차츰 발전을 해 가지고 결국은 그것이 십법계로 가게 되는데, 일어나자마자 바로 생각을 ‘이뭣고?’로 돌리면 윤회(輪廻)가 바로 거기서 찰나(剎那) 찰나에 끊어지는 거여.
그 ‘한 생각’을 단속할 줄 모르면 평생 동안을 불법(佛法)을 믿어도 헛믿는 거고, 평생 동안을 선방에 와서 앉았어도 참선 헛하는 거여.
우리가 이 공부라 하는 것은 하루 이틀에 후닥닥 해치우고 말 일이 아니거든. 평생을 해야 하는 거고, 영원히 해야 하는 거고. 다맛 자기의 인연 따라서 정진하는 양상이 달라질 수는 있어.
성문(聲聞)은 성문으로서, 연각(緣覺)은 연각으로서, 보살(菩薩)은 보살로서 또 부처님은 부처님으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책무라고 할까, 주어진 일에 따라서 도 닦아 가는 형태는 다를지언정 우리의 공부는 우리의 정진은 영원히 해야 하는 거다.
**송담스님(No.527)—94년 동안거해제 법회(94.01.15.음)


(1) 약 19분.  (2) 약 21분.


(1)------------------

여군동보우동행(與君同步又同行)하고  기좌상장세월장(起坐相將歲月長)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갈음기손상대면(渴飮飢飡常對面)인데  불수회수갱사량(不須回首更思量)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여군동보우동행(與君同步又同行)이여. 그대와 더불어 함께 걷고 또 같이 댕기고,
기좌상장세월장(起坐相將歲月長)이다.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고 같이 앉았고, 이렇게 서로 함께 하기를 세월이 길었어. 무량겁 이전부터서 잠시도 떠나지 아니하고 오랜 겁(劫) 동안을 그렇게 같이 살아왔다.

갈음기손상대면(渴飮飢飡常對面), 목마르면 물 마시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항상 서로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살아왔다.
불수회수갱사량(不須回首更思量)이다. 모름지기 머리를 돌이켜서 다시 사량(思量)하지 말아라.

여기서 그대와 같이 걷고, 같이 행하고, 같이 앉고 눕고, 같이 먹고, 같이 마시고 이렇게 수없는 세월 동안을 그렇게 같이 살아왔다. 우리는 소소영령한 무량겁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때로는 하늘 법계에서 그렇게 같이 살았고, 때로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렇게 같이 살아왔고, 때로는 수라도에, 때로는 지옥도에, 때로는 아귀도에, 때로는 축생도에, 때로는 성문으로서, 연각으로서, 보살로서, 십법계(十法界)를 그렇게 같이 살아왔다.

자기가 짓고 닦은 바에 따라서 십법계를 그렇게 살아왔어. 여읠라야 여읠 수가 없어. 왜 그렇게 여읠 수가 없느냐?

지금도 이렇게 산승(山僧)이 말을 하고 사부대중이 산승의 말을 듣고 있는데,
같이 듣고 같이 말하고, 본래 내 자신이, 본래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이 각각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그렇다.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인연 따라서 지은 바에 따라서 법계(法界)를 돌고 돌지만, 딴 것이 아니야.

그러기 때문에 이 최상승법에서는 부처를 찾을라고 하지 말아라.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부처를 찾을라고 하지를 말아라. 번뇌가 본래 번뇌(煩惱)가 보리(菩提)이기 때문에 번뇌를 버릴라고 하지 말아라.

우리가 깨닫지 못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을 못해 가지고, 견성성불 할려고 하기 때문에 부처를 찾고 번뇌를 버릴려고 하는데 그 생각 때문에 우리는 괴로운 것이고, 답답하고, 공부가 안되는 것이여.

부처를 찾을려고 하지 말고, 번뇌를 버릴려고 하지 말어.
내가 부처인데, 부처가 다시 또 부처를 찾으니까 부처가 보이지를 않는 거고, 번뇌가 바로 보리인데, 번뇌를 버리고 보리를 찾기 때문에 거기에서 공부가 우리를 괴롭게 하고 마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면 출가해서 계행(戒行)을 지키고 참선을 하는데, 그럴 필요가 뭐 있느냐?
본래 부처인데 부처를 왜 찾으며, 눈만 떴다 하면은 번뇌 망상이 들끓고 그러는데 어떻게 번뇌를 버릴려고 하지 말아야 하냐?
수행도 할 필요가 없이 그냥 고대로 두라면, 뭐 하러 도를 닦으며 출가를 하며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출세(出世)를 하셨느냐?’

그런 생각이 날 수도 있어. 그러나 닦을 것이 없는 곳을 향해서 닦아야 하고, 찾을 것이 없는 곳을 향해서 찾아야 하고, 버릴 것이 없는 곳을 향해서 버릴 줄 알아야 해. 그 방법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이다. ‘이뭣고?’

물을 마실 때는 물을 마시되 ‘이뭣고?’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되 ‘이뭣고?’ 머리를 돌이켜서 다시 사량분별(思量分別)을 하지 말아라.
누기 짜서 사량분별을 하기 때문에 대면천리(對面千里)여. 그냥 거기에 있는데, 얼굴을 맞대고 있는데 천리만리(千里萬里)로 떨어져 버린 거여.

‘이뭣고?’ 다맛 알 수 없는 의심. 빨리 터지기를 바라지도 말고, 확철대오 하기를 바라지도 말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 하는 것뿐인 거여. 절대로 깨달을려고 하지 마라. 절대로 툭 터지기를 바라지도 말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난 그 생각을 버릴려고 하지 말고 그냥 ‘이뭣고?’
‘이뭣고~?’하고 있는 동안에도 별의별 생각이 일어나거든. 일어나거나 말거나 내버려 둬. 귓전에 바람 스쳐가듯이 내버려두고 ‘이뭣고?’만 챙기는 거여.
그렇게 해 나가면 앉아서도 ‘이뭣고?’요, 서서도 ‘이뭣고?’요, 밥을 먹을 때도 ‘이뭣고?’ 걸어갈 때도 ‘이뭣고?’ 소지할 때도 ‘이뭣고?’

‘정진(精進)이라고 하는 것은 안락지묘문(安樂之妙門)이다’ 그랬어. ‘안락의 묘문, 편안하고 즐거운 묘한 문이다’ 그랬어.
이것을 억지로 할라고 하니까 고행이고, 괴롭고 답답하고, 그래가지고 스트레스가 쌓여 가지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삭발일이다, 목욕일이다, 반산림이다 하면은 어디 등산이다, 어디로 왔다갔다 하고 싶고 나가고 싶고,

다못 올바르게 정진 할 줄 알면 자세를 바르게 갖고, 호흡을 바르게 하면서 화두를 여법하게 불급불완(不急不緩)하게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들 줄 알면, 생각이 일어나서 스쳐가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 있어?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나는 ‘이뭣고?’를 해.

죽비(竹篦) 치면 좌선하고 또 방선(放禪)하면 계속해서 앉았고 싶으면 앉았고, 밖에 나가서 바람 쏘이고 포행을 좀 하다가 또 들어와서 정진하고, 석 달이 하루같이 지나가는 거여.
보름 지나가면 못 견디고, 무슨 반산림이니까 등산을 해야 하고, 그건 공부를 제대로 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제대로 하는 법이 무엇이냐? 앉아서는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번뇌 일어나도 일어나거나 말거나 내버려두고, 그때마다 자꾸 화두를 챙겨서 알 수 없는 의단이 독로하도록만 잡드리 해 나가면,

밥 먹고, 양치질 하고, 화장실에 가고, 시간이 되면 취침을 하되 취침을 해도 가만히 일어나서 또 정진하고 싶으면 하고, 누워서도 잠이 언제 들 줄을 모르니까 (잠이) 들을 때까지는 화두를 들고 해서,
주삼야삼(晝三夜三)에 항상 의단이 독로하도록만 잡두리 해 나가면 그것이 그렇게 정진이란 것이 힘이 들고 애를 먹고 그런 것이 아니여.

이 세상에 깨닫고, 깨닫지 못한 것은 우리가 따질 필요가 없어.
‘불교는 깨닫는 가르침이다’ 그렇지만 원래 내 자신이 부처이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 단속만 할 줄 알면 그 자체가 바로 부처님인 거여.

‘확철대오(廓徹大悟)’ 우리는 너무 그 말을 많이 들어와 가지고 확철대오 하기를 항상 우리의 목표로 삼고,
그 10년 20년 되어도 확철대오를 못하면 허송세월을 한 걸로 생각하고, ‘괜히 이거 오평생(誤平生)을 한다’고 이렇게 한탄을 하게 되는데 절대로 확철대오 할라고 할 필요가 없어.
올바른 방법으로 화두를 거각하고 단속해 나가면 깨달을라고 할 필요가 없어.


십법계를 아까 말했지만 십법계가 ‘한 생각’ 일어나는 속에 잉태되어 있는 거여. 처음에 ‘한 생각’ 딱! 일으킬 때 십법계가 거기에 들어 있는 거여.

‘한 생각’을 좋은 생각을 먹으면 천당으로 가는 거고, 악한 생각을 일으키면은 지옥에 가는 거고, 탐심을 내면 축생이 되는 거고, 진심(瞋心)을 내면 바로 그 찰나에 그 독사도에 들어가는 건데,
일어나자마자 그 생각이 차츰차츰 발전을 해 가지고 결국은 그것이 십법계로 가게 되는데, 일어나자마자 바로 생각을 ‘이뭣고?’로 돌리면 윤회(輪廻)가 바로 거기서 찰나(剎那) 찰나에 끊어지는 거여.

참선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무슨 생각이든지 났다 하면은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가지고 거기서 싹이 터 가지고 잎이 피어서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 건데, 일어나자마자 즉각 ‘이뭣고?’로 돌리는 거여.
앉어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밥 먹을 때나, 그러니 그 처음 일어나는 ‘한 생각’이 활구참선을 한 사람과 안 한 사람과는 그렇게 다른 것이다 그말이여.

‘한 생각’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렇게 소중하고 그렇게 무서운 것이여.
그 ‘한 생각’을 단속할 줄 모르면 평생 동안을 불법(佛法)을 믿어도 헛믿는 거고, 평생 동안을 선방에 와서 앉았어도 참선 헛하는 거여.

이것이 머리를 돌이켜서 다시 사량을 하지 말아라.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단속을 해 버리면 공부가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복잡한 것도 아니여.

일어나는 한 생각을 그걸 단속을 못해 가지고 ‘망상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 번뇌 때문에 못한다’ 점점 한 생각 일어나는 놈을 점점 키워 가지고 자기가 그 생각에 구속을 당하고 그 생각에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처음~18분33초)


(2)------------------

정체종래절색공(正體從來絶色空)이라  멱즉지군불견종(覓則知君不見蹤)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묘봉정상일전신(妙峰頂上一轉身)하면  시방무처불봉거(十方無處不逢渠)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체종래절색공(正體從來絶色空)이여, 정체(正體), 바른 진리의 체는 본래로 색(色)과 공(空)이 끊어졌어. 시간과 공간이 끊어졌고 주관과 객관이 끊어진 것이여.
그래서 멱즉지군불견종(覓則知君不見蹤)이여. 시간과 공간이 끊어졌고 주관과 객관이 끊어졌고, 색공이 끊어진 그 자체를 우리가 중생의 사량분별로 찾는다고 하면은 도저히 그 자취도 볼 수가 없다.

색상이 있고, 시간과 공간과 주관과 객관, 그런 것이 있으면 우리가 찾아보면 ‘아! 이것이로구나’ 이렇게 알 수가 있고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이 끊어진 것을 그것을 분별심으로 찾는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볼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묘봉정상(妙峰頂上)에 일전신(一轉身)하면, 묘고봉(妙高峰), ‘묘(妙)하게 높은 봉우리’라는 것은 수미산(須彌山)을 말하는 것인데,

육욕천(六欲天) 가운데에 사왕천이 있고, 도리천이 있고, 제3 야마천, 제4 도솔천, 제5 낙변화천, 제6 타화자재천이 있는데, 두 번째 천(天)인 도리천(忉利天), 거기가 제석천왕(帝釋天王)이 있는 하늘인데, 그 도리(忉利)란 말은 33이란 말이여. 도리천에는 33천이 있어.
그런데 한 가운데에는 제석천왕이 살고 동서남북 사방에 각기 8천(八天)씩이 있어. 그래서 4x8=32에다가 중앙에 제석천이 있는 것까지 합하면 그래서 33천인데,

그 수미산 중턱에는 사왕천(四王天)이 있고, 수미산 꼭대기에 가서 도리천이 있다 그말이여.
그 수미산, 묘고봉 정상에서 ‘일전신(一轉身)을 해라. 한번 몸을 굴려라’ 그거거든.


우리가 참선을 하면 화두를 들고 또 들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어져.
밥을 먹어도 밥맛을 모르고, 산을 봐도 산이 보이지 않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 않어. 걸어가도 걸어간 줄 모르고, 일체처 일체시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돼. 알 수 없는 의단만 독로하도록 해 나가.

번뇌 망상도 버릴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일어나지를 않고, 그러한 경지에 결국은 들어가게 되는데 어떻게 편안하고 어떻게 고요하고 어떻게 깨끗하든지 화두를 들 생각까지도 없어져.
오히려 화두를 드는 것이 오히려 그 고요하고 깨끗하고 편안하고 맑은 경계가 흩어질까 봐 화두 들기조차도 아깝게 되는 거여. 이 대목이 정진하는 사람이 가장 주의해야 할 곳이다.

아무리 고요하고 깨끗하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화두에 대한 의단이 있어야지, 화두에 대한 의단이 없으면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져 가지고 공부를 올바르게 해 가는 것이 아니여.
설사 그 고요하고 깨끗한 경계에 정(定)에 들어가 가지고 몇 겁을 지난다 하더라도 바른 깨달음은 얻을 수가 없어. 설사 오신통(五神通)이 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바른 공부가 아니여, 바른 법이 아니다.

그런 경지에서 화두를 드는 것은 억지로 힘을 들이고 용을 써 가지고 드는 것이 아니여.
몸도 지극히 편한 자세로 힘을 다 빼고 긴장을 다 풀고, 앉았거나 섰거나 걸어가거나 일여(一如)한 가운데에 알 수 없는 의단만 성성하고 적적하게 화두만 들어가는 거여.

억지로 좌(坐)에 탐착(貪着)해 가지고 앉아 있을라고만 할 것도 없고, 앉아 있게 되면 앉아 있고, 일어서야 할 때가 되면 일어서고, 화장실에 갈 때는 화장실에 가고, 세수를 할 때는 세수를 하고, 이를 닦을 때는 이를 닦고,
대중이 같이 소지(掃地)를 하고 운력(運力)을 할 때는 운력을 하면서....

남하고 희희낙락(喜喜樂樂) 잡담하는 것은 절대 금물(禁物)이여. 잡담하고 그런데 끼어서는 안 돼.
다못 비질을 하면서도 그 정진이 여법하게 되어가도록 단속을 해 가는 것이여.

‘묘봉상에 몸을 한번 굴린다’하는 것은 공부를 해 나가다가 그러한 경지가 나타났을 때 그러한 것에 탐착을 하면 못쓰는 거여.

쪼끔 공부가 조용히 잘된다고 해서 그걸 탐착을 하고, 어떠한 자기가 정진해 나가는 데 가장 좋은 지경에 이르르면 그런 경지가 오래 흩어지지 않도록, 오래 그러한 경지에 있기를 바래서 거기에 집착을 하게 되거든.
세속에서도 사업이 잘되거나, 어떤 일이 자기 마음대로 되면 그것이 오래오래 그대로 잘되어 가게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거기에 집착을 하거든.

공부를 해 나가다가 보면 그렇게 순일하게 공부가 잘되어 가는 날이 있고, 또 화두가 암만 들어도 잘 들리지를 않고 자꾸 혼침이 오는 날이 있고, 자꾸 복잡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일어나 가지고 잘 안되는 날도 있고 그런데,

잘된다고 거기에 좋아하는 마음을 내는 것도 그것도 집착이고, 잘 안된다고 안절부절하고 짜증을 내고 번뇌심을 내는 것도 그것도 거기에 끄달린 것이라,
좋은 경지에 집착한 것이나, 안 좋은 경지에 집착한 것이나 집착은 매한가지여.

정진이라 하는 것은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날씨가 나쁘면 나쁜 대로, 그런대로 하루를 지내야지,
날씨가 좋다고 그 날은 좋아서 펄펄 뛰고,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온다고 해서 아침부터 기분이 나뻐 가지고 짜증을 내고, 그렇다면은 어떻게 사람이 제대로 생활을 할 수가 있냐 그말이여.

우리가 이 공부라 하는 것은 하루 이틀에 후닥닥 해치우고 말 일이 아니거든. 평생을 해야 하는 거고, 영원히 해야 하는 거고. 다맛 자기의 인연 따라서 정진하는 양상이 달라질 수는 있어.

성문(聲聞)은 성문으로서, 연각(緣覺)은 연각으로서, 보살(菩薩)은 보살로서 또 부처님은 부처님으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책무라고 할까, 주어진 일에 따라서 도 닦아 가는 형태는 다를지언정 우리의 공부는 우리의 정진은 영원히 해야 하는 거다 그말이여.

그래서 조금도 조급한 생각을 낼 필요가 없고, 좀 잘 안된다고 해서 짜증을 낼 것도 없고, 잘된다고 해서 그렇게 좋아할 것도 없어. 조급한 생각도 낼 필요가 없지만 잠시도 해태(懈怠)할 수가 없는 일이다.

처음에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부처를 찾지 말아라. 번뇌가 바로 보리이기 때문에 번뇌를 버릴려고 하지 말아라”하는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수미산 꼭대기에서 한바탕 몸을 뒤치라’고 하는 뜻을 우리는 잘 귀담아 듣고 명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수미산 꼭대기에서 한 번 몸을 굴리면 시방무처불봉거(十方無處不逢渠)다. 시방세계 어디에나 그대를 만나지 아니한 곳이 없으리라.


‘공부가 잘 안된다, 암만 공부를 해도 진보가 없다’ 공부 할려고 애쓴 사람은 다 그러한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지난 법회 때 조실 스님께서 “공부가 잘 안되는 것은 신심(信心)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말씀하셨는데, 그 신심이라는 게 3가지 신심과 3가지 불신심이 있는데,

첫째 신심이 순일(純一)하지를 못해. ‘신심이 순일하지 못하다’는 것은 있다가 없다가 하는 거여.
한결같아야 하는데, 있다가 없다, 때로는 있다가, 때로는 없다가, 화두를 드는 사람이 때로는 화두를 들다가 어떤 경계를 만나면은 화두가 없어져 버려. ‘있다 없다’하는 것은 그것이 신심이 순일하지 못한 것이여.

둘째는 신심이 불일(不一)이여. 한결같지 않다 그말이여. ‘한결같지 않다’고 하는 것은 결정적인 신심이 없기 때문에 한결같지 못하는 거여.

이렇게 좀 해 볼까, 저렇게 좀 해 볼까?
신도님들도 ‘금강경이 좋다’하니까 금강경 좀 해 보다, ‘옴마니반메훔이 좋다’하면 옴마니반메훔 좀 해 보고, ‘원각경이 좋다’하니까 원각경을 좀 해 볼까? 한결같지를 못하고 이랬다저랬다.
‘이뭣고?’하다가, ‘판치생모’했다가, ‘정전백수자’를 했다가, ‘조주 무자’를 했다가, 이것도 해 보다 안되면 저거 해 보고, 저것도 해 보다 안되면 이거 해 보고.

안될수록에 한결같이, 한번 화두를 탔으면 잘되어도 한결같이 그 화두를 해 가고, 안되더라도 계속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면서 한 화두를 가지고 해 나가다 보면 또 잘되는 것이고,
잘되어 가다가도 뚝 변해 갖고 또 안돼. 안되더라도 짜증을 내지 말고 또 정신을 가다듬고 계속 한결같이 해 가야 하는 거여.

그래서 태산(泰山)과 같은 그런 무거운 묵직한 그러한 신심이라야지, 쪼끔 잘된다고 그저 좋아서 못 견디고, 조금 안된다고 해서 또 번뇌심을 내 가지고 안절부절 하고, 그래서는 안돼.
안된다고 해서 화두를 바꾸고, 무엇이 잘 안된다고 해서 이리저리 변경을 해서는 안된다.

셋째는 신심이 불상속(不相續)이여. 계속해서 해 가야 하는데 이어가지를 못해. 저절로 순일하게 이어지기를 바라지만 무엇이 그렇게 처음부터서 그렇게 될 것이냐 그말이여.
안되지마는, 번뇌가 나고 망상이 일어나고, 때로는 몸이 상태가 안 좋고, 소화가 안되고 머리가 아프고, 이리저리 수없는 크고 작은 문제점이 있을 수가 있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그럴수록에 계속... 화두가 없어지면 또 챙기고, 없어지면 또 챙기고, 그렇게 한결같이 그렇게 상속(相續)이 되도록 노력을 하면 신심이 결국은 한결같이 되고, 신심이 순일하게 되는 것이여.

여기서 신심(信心)이라고 하는 말을 우리 참선하는 사람은 의단(疑團)이라고 바꾸어서 생각을 해 보면 대번에 이해가 되는 것이여.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결같지 못하고, 한결같지 못하기 때문에 상속이 안되고,
상속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결같지 못하고, 한결같지 못하기 때문에 순수하지 못하고, 꺼꿀로 붙이나 옳게 붙이나 마찬가지여.
왜 그러냐 하면은 부득이 해서 3가지로 분류를 했지만 원래가 하나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이것 밖에는, 이 길 밖에는 내가 할 일은 없다’
‘안되어도 이렇게 해 나가야 하고, 되어도 이렇게 해 나가야 하고, 죽어도 이것을 해야 하고, 죽을 때까지 해야 하고, 죽은 뒤에 다시 몸을 바꿔서라도 나는 이 길 하나 밖에는 없다’고 하는 철두철미(徹頭徹尾)한 신심,
첫째 그것이 있어야 정진이 안되어도 안되는 대로 밀고 나갈 수가 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중단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생각 자체가 결정적인 신심, 최상승법에 대한 결정적인 신심이 없고서는 이 공부는 중도(中途)에 그만 두지 않기가 어려운 일이다.
이 공부는 지극히 간단하고 쉬운 것이지만 결정적인 신심, 그것이 철저하지 못하면 안 된다.(18분34초~39분3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게송) ‘여군동보우동행~’ ; [금강경오가해]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야부도천(冶父道川) 게송 참고.
*겁(劫) ; (산) kalpa의 음사.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긴 시간.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〇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〇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십법계(十法界) ; 십계(十界)라고도 한다. 십법계는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 성문, 연각, 보살, 불(佛) 10가지로 중생의 미혹과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분류한 것. 중생의 심리적 상태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십법계 중 앞의 6계는 삼악도(三惡道-지옥, 아귀, 축생)와 삼선도(三善道-수라, 인간, 천상)로 모두 미혹의 세계인 범부(凡夫)의 세계이다. 뒤의 4계(성문, 연각, 보살, 불)는 깨달음의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모두 깨달음의 세계인 성인(聖人)의 세계이다.
양쪽을 합하여 '6범4성'(六凡四聖)이라 한다. 이를 4취(四趣)·인천(人天)·2승(二乘)·보살·불(佛)로 분류하거나 3악도(三惡道)·3선도·2승·보살·불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앞의 6계는 고통으로 가득 차 업에 의해 윤회전생하는 세계이므로 보통 '육도윤회(六道輪廻)'라 한다.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 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 함[逼惱, 惱亂] 등의 뜻으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이러한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묶이게 되고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惑-業-苦 三道]
*보리(菩提) : [범] bodhi  도(道) • 지(智) • 각(覺)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를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ㄷ —> ㄹ) 「보리」로 읽는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대면천리(對面千里) ; 얼굴을 맞대도 천리 같이 매우 멀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 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별의별(別의別) ; 보통과는 다른 갖가지의.
*정진(精進) : [범]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불급불완(不急不緩) ; 급하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죽비(竹篦 대나무 죽, 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주삼야삼(晝三夜三) ; 밤낮. 밤이나 낮이나.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오평생(誤平生 그릇할·잘못 오/평평할 평/살 생) ; 평생을 그르침.
*윤회(輪廻) : 세상의 온갖 물질과 모든 세력(勢力)은 어느 것이나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오직 인과(因果)의 법칙(法則)에 따라 서로 연쇄 관계(連鎖關係)를 지어 가면서 변하여 갈 뿐이다.
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물•수증기•••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업식(業識)도 육체가 분해될 때에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중생들은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므로, 쉴 새 없이 번민과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육신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을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천상 또는 다시 인간으로 수레 바퀴 돌듯 돌아다니게 된다.
그러나 성품을 깨쳐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가 없게 되면 윤회는 끊어지는 것이다.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②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2)

*(게송) ‘정체종래절색공~’ ; [금강경오가해] 離色離相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참고.
*수미산(須彌山) ; 수미(須彌)는 ‘sumeru’의 음역. 묘고산(妙高山)이라 한역함.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
*육욕천(六欲天) ; 욕계육천(欲界六天). 육천(六天). 아직 도덕적으로 불완전하며 욕망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였으므로 육욕천(六欲天)이라 한다.
삼계(三界, 일체 중생이 생사윤회하는 3가지 세계로 욕계·색계·무색계) 가운데에 욕계(欲界, 식욕食欲·수면욕睡眠欲·음욕淫欲이 있는 세계)에 딸린 여섯 종의 하늘을 말한다.
곧 사왕천(四王天)·도리천(忉利天)·야마천(夜摩天)·도솔천(兜率天)·화락천(化樂天)·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다.
이 6천 가운데에서 사왕천은 수미산(須彌山) 허리에 있고, 도리천은 수미산 정상에 있으므로 지거천(地居天)이라 한다. 야마천·도솔천·화락천·타화자재천은 다 허공(虛空)에 있으므로 공거천(空居天)이라 한다.
욕계(欲界)는 식욕(食欲)·수면욕(睡眠欲)·음욕(淫欲)이 있는 세계로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 등 5가지와 사왕천·도리천·야마천·도솔천·화락천·타화자재천 등 육욕천이 여기에 속한다.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 지키는 수호신. [天神]들의 제왕[] 샤크라〔釋〕라는 .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 ()씨이며 ()이라 한역하고, ‘제바 ()’이라 한역하며, ‘인달라 ()’ 한역하니  능천제(能天帝)’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32() 통솔하면서 불법(佛法)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  손에 금강저(金剛杵)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오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능력.
②천안통(天眼通)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볼 수 있는 능력.
③천이통(天耳通)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
④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 속을 아는 능력.
⑤숙명통(宿命通)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능력.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선가귀감](용화선원) p94-95 참조.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탐착(貪着) ; 만족할 줄 모르고 사물에 더욱 집착함.
*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울력'과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소지(掃地) ; ①마당(땅)을 쓸다. ②청소.
*희희낙락(喜喜樂樂) ; 매우 기뻐하고 즐거워함.
*금물(禁物) ; 해서는 안 되는 일.
*매한가지 ; 아주 같은 상태. 또는 완전히 같은 상태.
*성문(聲聞) : 부처님의 음성(聲)을 들은(聞) 사람이라는 뜻. 산스크리트어 śrāvaka, 팔리어 sāvaka.
모든 중생을 널리 다 건지겠다는 큰 원을 세우지 않고, 자기의 공부만을 힘쓰는 가운데 부처님이나 다른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소승의 사제법(四諦法)을 깨쳐서 번뇌 망상을 끊고, 나(我)가 없어져서 열반에 들게는 되지마는, 그 열반은 얕고 작은 ‘나머지 있는 열반(有餘涅槃)’ 곧 '아직 덜된 열반에 들어 있는 이'를 이름이다.
*연각(緣覺) ; 산스크리트어 pratyeka-buddha  팔리어 pacce ka-buddha
①홀로 연기(緣起)의 이치를 관찰하여 깨달은 자. 가르침에 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깨달은 자. 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 홀로 수행하는 자. 독각(獨覺)·벽지불(辟支佛)이라고도 함.
② 연각승(緣覺乘)의 준말.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각유정(覺有情) • 개사(開士) • 대사(大士)등으로 번역.
①성불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
②대승교에 귀의, 사홍서원을 발하여 육바라밀을 수행하며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자리 • 이타(自利 • 利他)의 행을 닦으며 51위의 수행계단을 지나 드디어 불과(佛果)를 증득하는 이.
*해태(懈怠 게으를 해, 게으를 태) : 게으름(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태산(泰山 클 태/메 산) ; 퍽 높고 큰 산.
*꺼꿀로 ; ‘거꾸로(차례나 방향 따위가 반대로 바뀌어)’의 사투리.
*철두철미(徹頭徹尾) ;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고 철저하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