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몽산화상시각원상인(蒙山和尙示覺圓上人) (2/8) 몽산화상이 각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61)—몽산04. 몽산시 각원상인(2) (임자72.07.17)

 

(1/3) 약 21분.

 

(2/3) 약 22분.

 

(3/3) 약 17분.

 

(1/3)----------------

 

비환일침몽(悲歡一枕夢)이요  취산십년정(聚散十年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무언각회수(無言却廻首)요  산정백운생(山頂白雲生)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비희(悲喜)가 일침몽(一枕夢)이다. 인생은 비희뿐인데. 슬픈 것이 아니면은 환희스러운 거.

그저 그만 모도 그저 마음에, 심중에 맞지 안 혀. 불안혀. 슬퍼. 슬프고 불안하고 모도 뜻에 맞지 않고. 고것이 아니면 또 즐거운 거, 그 좋지. 좋은 음식을 대해도 좋고, 부부지간에 대해도 좋고, 부자지간에 모자지간에 대해도 좋고. 또 모도 웃음뿐이고, 환희심뿐이고, 좋은 마음뿐이지.

 

고놈의 비희(悲喜)가 우리 인생의 일생 동안에 슬픈 것 가면 즐거운 것 오고, 즐거운 것 가면 슬픈 것 오고, 요놈의 두 가지가 요것이 일침몽(一枕夢)이여. 하룻밤에 부부가 부부지간에 베개 베고 하룻밤 잘 잠자는 것뿐이여. 그것 아닌가?

하룻밤 그 잠자 버리고 나니 뭣혀? 그까짓녀러 것, 자 버린 뒤는 도로 마찬가지지. 떨어지고 갈려지면 도로 마찬가지지.

 

취산십년정(聚散十年情)이니라. 취산(聚散)이, 서로 부부지간에 모이고 자식지간에 뱃속에 나와서 탄생해 모도 나와 가지고는 이렇게 모아 사는 것이 십년정(十年情)이 다 못 되아.

한 십년지간 잘사는 가정에 그 즐거운 가정 한 십년 사는 가정을 말한 거여. 그거 뭐 아침에 그 조금 집안에 무슨 편안한 일 있다가 저녁때 그만 흩어지고 뭐 그런 거, 그런 것 말고 말이여.

 

인생을 통털어 놓고 한 10년 동안 정(情)을 가지고 머물러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말이여.

한 십년 동안 지내가면 그만이여. 더 늙고 뭐 병들고 모도 그저 갈리게 되고 뭐, 가난뱅이 되기도 허고. 한 십년 인생이라는 게 행복스럽게 살면 다행한 행복이다 그말이여.

 

무언각회수(無言却廻首)니라. 그러다가 서로 돌아설 때는 말 한마디 못혀.

“너는 잘 살거라, 나는 간다” 그런 놈의 소리 한마디 없어. 그만 “아이고, 아이고”하다가 “너 잘살거라, 뭐 나 잘 간다” 소리 한마디 못혀.

 

그만 무언각회수다. 아무 말 한마디 없이 서로 그만 참 영별(永別)이다. 그놈의 작별이 언제 만날 작별인고? 고 몸뚱이, 고 얼굴, 고 코빼기 가지고는 다시는 못 만나니까.

뭔 놈의 코빼기를 달고 나올는지, 뭔 놈의 눈깔을 달고 나올는지, 뭔 뿔따구를 쓰고 나올는지, 꽁지를 달고 올란지, 알 수가 있나? 이놈의 사(事)를 좀 생각을 해볼 거 아닌가?

 

산정백운생(山頂白雲生)이니라. 저 산머리에 백운(白雲)이 푸르르르 올랐다가 그만 스르르 흩어져 버린 것이다.

 

이런 것을 좀 깊이깊이 해석적으로 좀 생각을 해 보아라. 눈앞에 보인 이런 것만 인생낙(人生樂)이라고 인생행락(人生行樂)이라고 그렇게 좋아하고 미치고 반하고 헐 것이 없다.

좀 거그서 좀 심각하게 좀 여겨 분석을 좀 해 보아라 인생 일생을. 어떠 허냐? 참, 무상(無常)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옳게 생각했지. 저 어쩌다가 우리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알고는 척 들어와서 믿어 가지고 아침 저녁으로 이렇게 미리서 고행(苦行)을 하고. 괴로운 행을 혀.

도(道)를 닦자니 고행이 아닌가? 즐거울 것이 뭣이 있는가? 세상사에다가 비교해 보면 참 아무것도 아니지.

 

모도 한데 모여서 한데서 모도 잔다고 누워 자니 온당한가? 그 속에서 잘들 그저 나를 못 찾아서 애를 쓰고 그놈을 찾을라고 애를 쓰는 그 고행 정진, 어떠헌가?

먹는 것은 어떠허며, 그렇게 숭악한, 그 참 우리 선객(禪客)들 먹고 사는 거 일무(一無)도 조금도 뭐 영양 가치 없는 거 요런 것이나 먹고, 우리 하루하루 동안을 살아가는 걸 보소. 그와 같은 고행을 해나가는 가운데에서 도를 닦는 학자들이다.

 

호귀(豪貴)에 득도난(得道難)이여. 호귀에는 닦들 못혀.

호귀스럽게 사는 가운데 잘 먹고 잘 입고 배창자 속에 기름기가 꽉 차고, 고기 덤벵이 속이 덤벵이 그놈 먹어 놓으면 맛이 좋지마는, 창자 속에 들어가서는 그놈이 그 삭아지니라고 혼나네. 그놈 다 삭아질 동안에는 “으, 아”하면서 그만, 뱃속이 불안하고 야단이다.

 

(절에)와선 이 영양 그런 그 숭악한 것 속에 기름기 낀 것 그런 거 홱 뽑아 번지고, 그 영양 없는 것 그것만 먹고 있으니깐 속에 모도 속병이 다 낫는 것이여.

 

우리 선객(禪客)들은 항상 그렇게 먹고사니까 운동 부족해서 체기(滯氣)가 더러 생긴다 하지마는, 마을에서 온, 마을에서 그저 항상 잘 잡숫고 계시든 그런 보살님네께서는 와서 좀 그런 걸 빼 번져야 혀. 그러고 그만 빼 번지면 몸이 경청(輕淸)해지고 그만 병이 낫아 버려.

뭐 생리적으로 말한다 하드래도 그것이 옳지, 무슨 뭐 부처님 신력(神力)으로 병이 낫는 것 보담도. 이렇게 고행 정진을 해 나가는 우리 학자들이다.

 

 

먼첨은 재송도인(栽松道人)이 넘의 처녀 뱃속에 들어가서, 뱃속에 가서 글쎄, 도인이 넘의...

그 사람의 그 무슨 환란(患亂)이라 할까? 넘의 좀 형편을 좀 잘 생각해야만 도인일턴데, 아 그렇게도 아무때나 그만 넘의 처녀 배때기 속으로 쑥 들어가 놓으니.

그때는 처녀가 애기만 배면은 그놈이 큰 중대한 사건이 되어 가지고는 쫓겨나던지, 죽여 버리든지 아주 단판이 나는 때라. 그대로 판단이 나는 때여.

 

처녀가 제멋대로 결혼해서, 아니 부부 만나서 자식 낳는 것이 거 뭔 그리 죄(罪)리요? 아, 그거 무슨 당연한 일인데.

지금으로 말하면은 모도 처녀들이 자기끼리 서로 보고 다 마땅해서 합당해서 연애결혼 해 가지고는 아들자식 나 가지고 잘만 살고. 살다가도 서로 결혼해서 육례(六禮) 갖추어 가지고 살고. 아 이렇등구마는, 거 세상은 참 좋은 세상이여.

 

아, 그렇게 하는 것이 어뗘? 그 대자연이지.

그 둘이 부부지간에 맞어야만 서로 사는 것이어늘, 부모 명령하에서 눈이 하나가 없어도 부모가 해 준 것만 가지면 사네. 그러니 평생 소견은 맞지 않지. 시방은 그까짓 것 살다가도 살기 싫으면 이혼 딱! 해 번지고 아 그 멋대로 살고 다.

 

해필 그런 도인이 대도(大道)를 깨달라 가지고는 아! 입태(入胎)까장 매(昧)하지 않고, 출태(出胎) 중에서도 매(昧)하지 않고,

그만한 도를 팔십 노인이 늦게야 깨달랐지마는 그 젊을 시절에 하도 정진을 화두 정진을 몹시 했기 때문에 깨달으면서 그만 그 신력이 다 나서 입태(入胎)에도 마음대로. 가다가 그만, 아 그 몸뚱이 속에.

 

이 몸뚱이를 쓰고 있지마는 그 마음대로 벗을 수가 있나? 마음대로 이 몸을 뭐 옷 벗듯기 벗을 수 있어?

암만 이무애(理無礙)는 되었어도, 이치(理致)로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 깨달랐지마는 사(事)는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여. 이치는 확 깨달랐지. 뭐 여불(與佛)로 무수(無殊)허지.

 

이즉돈오(理卽頓悟)나, 이치는 몰록 깼다마는 사비돈제(事非頓除)여. 사(事)는 몰록 제(除)헐 수 없으니 몸뚱이 속에 든 불성(佛性)을, 그 마음을 마음대로 내던져 번지고 어떻게 옷 벗듯기 벗어 번지고 나와? 그 못하는 것이여. 어디 마음대로 할 수 있나?

 

허지마는 팔십 당년(當年)에 견성(見性)한 재송도인이 사조(四祖) 도신 스님한테 인가(印可)는 맞았지마는 ‘늙은 몸이라 중생 교화는 못 할테니 몸뚱아리 바꿔 오너라’하니깐, 그대로 척 내려가서 빨래 씻는 처녀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단 말이여.

 

승낙을 안 했으면? 승낙도 안 했는데 어떻게 들어갈 수가 있는가? 체면 없이.

못한다고만 거절만 했으면 안 들어갈 것이여. 아, 승낙을 해놓니깐 아 그만 가버렸지.

 

마음대로지. 그 뭐 발이 있나? 발이 있어 걸어 들어가나? 손이 있어 헤비고 들어가나?

뭐 마음대로지. 그건 그냥 그냥 그대로 가서, 가고 옴도 없어. 터럭끝만큼도 맥힘도 없어. 그대로 그만 처녀 그만 뱃속으로 그만 들어가 버렸지.

 

들어가니 그 속에 인자 뭐 껍데기는 인자 생길 거 아니여? 몸뚱아리 껍데기 뭐 그런 것, 눈 코 그런 것이 생길 거 아니냐 그말이여. 배가 떡 불러 가지고 있으니, 아 이놈의 환란을 어떻게 헐 거냔 말이여. 그때 당시에는 사형선고뿐인데.

 

어머니가 가만히 누워 자면서 무남독녀(無男獨女)인데, 딸 하나밖에 없는데, 무남독녀 그것 데리고 늘 자는데, 뭐 일 분도 따로 어디 갔다왔다한 자유가 없지. 어머니 똑 모시고 있고.

 

아, 그런데 뱃속은 아무래도 그 배가 불러오는데 어머니는 다 실감(實感)이 있는 이라, 경험이 있는 이라 알 것 아닌가. 숨 쉬는 것도 들으니 뱃속에 뭐 든 것이 분명하고, 애기가 아니면 자라라도 뭐 들었지 뭐. 안 든 것이 아니여.

 

그래가지고는 뱃속이 들썩들썩 한 대여섯 달 된게, 그 뭐 그런가 어쩐가 누가 아나? 그렇게 모두 성집에 나와 있으니깐 내가 한 말이지.

딸사닥 딸사닥 하고, 암만 해도 밥을 먹으면은 숨소리가 다르고, 아! 배가 완연히 뿔룩허니 다르고. 그러니 그 알 수밖에 없지, 자연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여섯 달 일곱 달 자꾸 되아가니 분명 거 애기가 아니면 자라라도 뭐, 그 든 것이여. 그래도 의심이 자꾸 나. 원, 나 없는 틈에 어디 가서 무슨 부정한 행동을 해 가지고는 요런 일이 있는가 싶고, 별별 마음이 다 나.

그래도 딸한테 그런 말을 묻들 못하고. 아 어쩌! 그래 한 칠팔 개월 되니깐 완연히 들났는디 뭐 어떻게 헐 것이여. 환히 알겠는데 뭐.

 

그래 애기를 깨워 가지고, 잠꼬대를 해 싸면서 못 견디고 그러니깐 물었어. “네가 뱃속에 애기가 든 것 같다. 틀림없이 얼라가 들었다”

처녀는 얼라가 든지, 뭐 든지 알 수가 있나? 뭔 뱃속에서 그 야단스럽고 뜰먹뜰먹 해 쌌고 어쩌고 허지마는 아가 들어 그런지, 뭐가 들어 그런지 알어? 전연 처음 생전 모르지. 경험이 있어야지.

 

어머니가 “분명히 어린아가 들었다. 웬일이냐? 네 말을 좀 해라. 말을 에미한테 안 할 수가 있겠느냐? 에미한테 네가 말을 안 허면 어떻게 될 것이냐? 자, 나는 네 모(母)가 되고 너는 내 딸이 되었으니 기(忌)하지 말고 말 좀 해라. 웬일이냐?”

 

일을 물으니 뭔 일이 있어야지? 아무리 뭔 일이 있어야 뭔 말을 하지?

“뭔 일을 묻습니까? 내가 어떻단 말입니까?”

“네가 수상한 일이 아무래도 있지 않겠느냐?”

 

“무슨 수상한 일이 있겠습니까?” 아! 이건 뭐 당최 뭐 펄펄 잡아떼버리지.

뭐 있나? 없는디 뭐 그대로 말헌 거지. 뭐 떼버렸나?

 

아, 이거 아홉 달쯤 되니깐 뭐 틀림없지. 뭐 보면 다 부인들은 안다드구만. 애기 난 거.

아따, 그놈 모기란 놈이 팔을 오지게 물어뜯네. 아파라.

 

아! 이것 참, 딱! 떼버리니께 뭐 헐 수 할 수 없고. 묻도 못 허고, 더 헐 수도 없고, 뭐.

 

왜 그런 데 가서 태어나 가지고 그 처녀의 못 헐 일을 시키냐 그말이여. 그런 재송 같은 도인이 어디가 못해서, 몸뚱이나 하나 못 얻어서, 고런 데로 들어갔냐 그말이여.

남 부부지간에 사는 데, 부부지간에 그 좋은 부부지간에 사는 데, 그런 데 가서 그대로 몸뚱이를 얻을 일이지, 넘의 깨끗헌 처녀한테로 그만 가서 그냥 그런 짓을 해 놔? 그 도인도 역행(逆行) 도인이 있는가 부여. 그런 역행 짓을 혀?

 

여까지 되아 가지고는 그 자식을 그걸 순산(順產)도 못 하고 그 부모한테도 낳도 못 허고 결국 쫓겨나 가지고는 물에다 갖다 집어넣어서, 물속에다 죽일라고 ‘물에다 집어넣어라’헌 것인데, 다행히 물에 집어넣지 않고 그 살기는 살았으나, 그 처녀가 그 자식을 낳아 가지고 그 기를 때 어쨌것냔 말이여. 그런 역행을 했는데. 

 

요까장 두고. 그거 뭐 길게 얘기를... 그건 뭐 또 언제 나중에 또 잇지, 그걸 다 할 수 없어.

 

‘갖다 물에다 집어넣어라’해서 쫓겨나 가지고는 다행히 죽지 않고 그 자식을 뱃속에다 집어넣고 쫓겨나 그 고생이라는 건 참, 말로 할 수가 없어.

그런 입태(入胎) 출태(出胎)까장도 매(昧)하지 않은 도인이 왜 그러헌 역행을 헐 거냔 말이여. 그 역행 숭악하지.(처음~21분20초)

 

 

 

 

 

 

(2/3)----------------

 

인자 언제 요 편(篇)은 내가 여태까장 후편은 별로 안 했는데, 그 후편에 가서 인자 나와.

그렇게 그 어머니, 그 처녀 고생을 그렇게 시켜 가지고는 후편에 가서 제도헌 것이 나오는데, 그건 내가 이다음에 헐 요량허고, 또 허든 대문(大文)을 해 나가야겄구만.

 

깨달지 못하면은, 이렇게 깨달지 못하면은 이렇게 껌껌하다.

우리가 눈뜨고 보니까 훤허지. 일월 빛도 훤허고, 불빛도 훤허고, 대낮은 훤허고, 가고 오는 길도 훤허고, 다 훤하지. 일체 사람 얼굴도 다 알고, 그 위에 어찌 더 알아. 퍽 훤허지.

 

그거 훤헌 것이 훤헌 것 아니여. 그것이 ‘참 눈깔’이 아니여. ‘참 눈깔’로 뭐 참으로 본 것 아니여.

 

참으로 우리 눈은 멀었어. 우리는 참으로 눈이 껌껌혀. 내 낯빤대기를 바로 봐야 할 턴디, 내 낯빤대기를 보들 못했으니 뭐 그까짓 것 뭐 소용이 있나?

내 낯빤대기, 색상으로 되아 있는 낯빤대기, 콧구녁 눈깔 모냥다리 요따구로 생긴 거 고까짓 것 보는 거, 일체 사람 얼굴 본 것이나 똑같은 거 그것 말고 말이여. 그것이 눈깔 아니여.

 

참으로, 참으로 우리의 본면목(本面目)을 참 내 눈이 본 법이 있어. 그건 어디가 들었느냐 하면은 꼭 공안(公案)에 있어.

그 공안이라 하는 것이 기가 맥혀. 아무리 따져도 따진 걸로는 못 봐. 아무리 재주가 있어도 재주로는 못 봐. 그놈의 것 묘(妙)혀.

 

어쨌든 그놈의 번뇌 망상 망념 그놈이 도무지 없는 놈이지마는 그것 번뇌 망상 그것 없는 곳에 들어가서...

이 중생 호리심(狐狸心)이, 중생의 여시(여우)같은 마음, 요래 저래 요래 저래 고런 놈의 마음 가지고는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말세 화두가 부득이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니라. 크게 의심한 데 가서 크게 깨니라’한 것은,

그 의심(疑心)이라 하는 것이 뭣 때문에 의심이냐 하면은 일체 망상이 붙지 못헌 것을 의심이라 해. 알 수 없는 한 놈이 떡! 나오면 다른 망념이 오들 못하고, 망념이 붙들 못혀.

 

불이 있는데—저 파리란 놈이 태말충(太末蟲)인데, 파리는 태말충인데 태말충 파리 같은 것은 다 붙어. 어디 안 붙는 데가 다 붙어. 붙지마는 불에는 못 붙네. 불 그놈 타니까 못 붙어.

그와 같애서 망상 그놈이 안 붙는 데가 없고, 자최도 없고, 자리도 없이 오는 놈이지마는, 다 안 붙는 데가 없이 붙는데, 의심에는 못 붙어.

 

알 수 없어. 조사관(祖師關)을 알 수 없어.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 알 수 없거든.

 

얼른 따지면 뭐라고 요리 중생견(衆生見)을 붙이면 다 붙지. 판때기는 뭣이고, 거다가서 인자 ‘판때기 판(板)’자, 판때기 이빨에—판때기에 가서 이빨이가 있으니...

판때기가 뭔 놈 뭔 놈의 이빨이가 있어?

‘판때기 이빨이가 없으니 없는 것을 말하니라고 판때기 이빨이라고 했다’ 갖다 무견(無見)을 때려 붙이네.

 

조사관이란 게 그런 게 아니여. 조사관이라는 것은, 더구나 격외(格外) 조사관(祖師關)이라는 것은 고대로 딱! 되어 있어. 여지없이 판때기 이빨이 털 났다는 게 분명히 되어 있어.

 

출처(出處)?

앞이빨 이빨 열기 전에 그르쳤다는 놈을 하기 위해서 앞이빨 털이라고 해? 앞이빨 털이라고 해?

공자님이, 공자님 이빨이 성현(聖賢)네 이빨은 앞이빨이 통니라고 해서 이빨이라고 해?

 

고런 상량(商量)을 해서 붙여 가지고, 내가 ‘판때기 이빨에 털’이라고 하니까, ‘전강 스님은 무식해서 그 자전(字典) 같은 거, 일본 자전 같은 것도 모르고 한 소리다. 일본 자전에 가서 앞이빨 털이라 했다’ 요래 내놨네.

 

고놈 내놓고. 내 고 밑에 내가 그 설해 논 것 많이 있구만. 굉장허게 설해 놨구만!

전강이 무식하니깐? 유무식이 무슨 소용이 있어.

천하 없는 과거에 도인들이 ‘설화(說話)’를 내놨어도 ‘설화’라는 게 모도 공안 분석인데 불태와 버리라는 게여. 불태와 버려! 어디 가서 그런 법이 있어.

 

분명히 ‘판때기 판(板)’자니까 판치(板齒)라고 했지.

‘판때기 판자’라 하는 글자는 두 자로 났어. 판때기 판자라고 나기도 하고, 그 ‘널 판자널 판자, 판때기 판자로 나오고 그랬어. 그 두 가지로 났어. 바로 보면 판단이 딱! 나 버려.

 

옳다! 판때기 판자나, 그만 판때기 판(板)자는 똑같지. ‘널 판자나 ‘판때기 판자나, 널 넣는 판자나 판때기 판자나 같지, 다른 거 뭐 있나?

허지마는 분명히 까닭이 푹 나오지. ‘판때기 판(板)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고 바로 요만큼도 무슨 뭐 비밀로 해 논 거 아니여.

 

요새 모도 그 군(軍)에, 저 모도 군인들 군에 모도 뭐 암호(暗號)가 있지 않어? 암호가 있어. 뭐 조리니 주벽이니 뭣이니, 뭔 그런 암호.

암호도 아니여! 암호가 다 뭣이 암호여. 그대로 탁 해 놓은...

 

그 중생의 의심, 중생의 심리, 중생심으로는 중생의 그 호리(狐狸) 일어나는 마음, 여시같은 마음 고런 걸 가지고는 되들 안 해.

 

그러면 딱! 옳다. 깨달라 버려야지!

‘오, 그런 거’ 고런 거 다 따져 놓고. 그것 아니여. 그런 법이 있나?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허는 공안을 바로 탁 깨야사 바로 깨버려야사 이렇게 껌껌헌 중생, 부목정령(附木精靈)이 아니여. 풀에 붙어살고 돌에 붙어살고 요까짓 몸뚱이, 이 고기 몸뚱이 송장에 붙어살고 이게 아니여.

 

인자 바로 척 나와. 내가, 바로 내가 나와. 내가 나와 가지고 내가 살아야지. 이거 의초부목정령(依草附木精靈)으로 살아 쓰겄는가 말이여.

 

 

이 정법. 이 정법을 어따가 전하리까? 하니까 우리 부처님이 국왕한테 전했어. 국왕, 임금님한테 전했어. 임금님이래야 복을 짓고 나왔고, 참말로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복을 짓고 나와서 임금이 되는 수가 많이 있어.

그래서 정법문중에서 인연을 짓고 복을 짓고 나온 이는 그만 나옴서부텀 임금이 되아도 그 부처님을 그대로 존숭헌 거여. 궁궐에서 뭐 아나?

 

우선, 무슨 스님이지? 무슨 스님? 이름 잊어버렸네. 만날 허든 그 스님, 왜 망건 못 쓴 임금 있지 않나? 그 무슨 스님이지? 아 망건 못 쓴 스님 저번에도 내가 법문인가 말했는데 잊어버렸네.

 

아! 임금이여. 그 임금—그 스님이 계행이 청정허고 도를 잘 닦고 유명하다 하니까,

그 대신(大臣)이 그 스님한테.. 농산 스님! 이름이 농산이여. “농산 스님한테 기도를 드리면은 태자를 얻을까 합니다”하니까,

 

임금님이 나이 육십에 자식을 태자(太子)를 두어사 나라를 전통할 텐데. 그때는 뭔 어디 임금님이 기어니 아들을 낳아야사 그리 인자 참 왕위를 전하는 법인데, 아! 왕위를 전할 수가 있나, 아들이 없으니깐.

그러니 애가 타서 아들을 하나 낳을라고 그 별짓을 다했다 그말이여. 별 약을 다 써서 그 내전(內殿)께 별짓 다해도 그 아들이 되나?

 

그래 조정 대신이 “우리나라에 농산이, 도사(道士)라고 하는 농산이 있으니 농산 스님한테 기도를 드리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

“아 그래야! 그러면 기도를 며칠이나 해야 하나?”

“한 백일쯤 백일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백일기도를 그러지”

 

백일기도를 턱 작정하고는 “농산을 청해라” 농산을 청허니까 농산이 왔지. 청허는데 안 올 수가 있나? 저 양양 땅에서 농산이 와 가지고는 어전에 턱 들어오니까, 농산을 불러서 “농산이 나라를 위해서 한 백일동안 기도해서 태자를 하나 얻게 해 주면은 어떻겄느냐?”

임금님이 말하는데 못한다고 할 수도 없고, 거역할 수도 없는 것이고, 쾌허(快許)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길로 “거 폐백(幣帛)을 얼마나 바쳤으면 부처님께 폐백을 올렸으면 쓰겠느냐?”

“우선간 천 석만 주십시오. 벼 천 석만 주십시오”

 

천 석을 허락했지. 그 천 석뿐인가, 만 석도 좋지마는 천 석을 주니까, 천 석 그놈 가지고.

그때는 양양 어디가 양식이 없나? 임금이 뭣 하나 해주면 다 사방 양식인데, 그 뭐 가지고 갈 것도 말 것도 없고, 양양 땅에 가서 그대로 그만 그 나라에 모도 바칠 그런 양식이 그저 꽉 찼으니깐.

 

그놈 그저 천 석을 갖다가, 한정해 준 천 석 그놈 가지고는 막 때려 쓰는데, 부처님한테 마지(摩旨) 한 불기(佛器) 올리고, 불공(佛供) 한번 한 것 없지. 그대로 갖다가 천 석 갖다가는 마음대로 썼지.

기도법이 그만큼 해야 되는 법이지. ‘내가 천 석을 올렸으니 뭐 허나 안 허나?’ 그것이 뭣일 것인가?

 

임금님은 주어 번지고, 농산은 천 석 얻어다가 그저 불쌍한 사람만 준다. 배고픈 거지 주고, 불쌍한 사람 주고, 옷 해 입히고, 밥 먹이고, 아! 그런다 하니까 그만 그저 뭐 팔도(八道) 거지가 다 모이는데.

뭐 밥 주고, 그저 옷 주고, 쌀 없다고 허면 쌀 주고 그저, 돈 달라고 허는 놈은 돈으로 내 환산해 주고, 아! 이렇게 쓰니 그거 뭐 백일 동안에 그 천 석 다 그까짓녀러 것 며칠에 다 쓸 수도 있는데. 다 써 버리고 없어.

 

또 천 석을 내루라 하니까 또 천 석을 내루아 줘. 또 그놈 가지고 막 그래 쓰고.

 

나중에 조사를 ‘어떻게 기도를 모시는가?’ 나라에서 그 참간(參看)도 할 것도 없지마는, 한 번 믿었으니 성미(誠米) 올렸으면 그만이지 거다가서 무슨 조사를 허리요마는 대신을 보내서 조사를 해 본 즉,

부처님한테 기도헌 건 아무것도 없고, 맨 노상에다 거리거리 쌀 백미 갖다 막 쟁여 놓고, 백미 보시를 모도 불쌍한 사람은 그저 다 몇 말씩 주고, 밥해서 또 끊여 준 데가 있고 그저, 맨퍼서 쏵 그래 버리지.

 

그러고 또 나머지 돈은 이거 모도 시줏돈이라고, 그만 저 육바라밀(六波羅蜜) 가운데—저 뭐 어보(魚布), 밥을 지어서 큰 깊은 강수(江水)에다가서 모두 밥을 띄워서 고기를 멕이고, 괴기를 모도 잡아 가지고 온 (괴기를) 잡아다가서 막 그만 강수에다 모도 넣고,

그 모도 보시(布施) 중 제일이니까, 어별(魚鼈) 같은 것 모도, 미꼬리 같은 것 모도, 괴기 같은 것 막 잡아 갖다 물에다 그만 집어 넣고.

 

그러면 이놈 저놈 모두 억지로 참말로 잡아올까 싶은 게 ‘잡아온 놈은 안 산다’ 그래 놓고는, 끓여 먹을라고 잡아간 놈은 갖다가서 탁 집어넣기도 하고. 이렇게 육바라밀 행을 보시에다가서, 그만 방생(放生)에다가서 막 드립대 헌다 그말이여.

 

아! 그만 기도헌 일은 아무것도 없고 그런 짓이나 하고 있네?

임금한테 사신이 주달(奏達)하니까, 임금이 ‘그 이상하다. 원, 기도를 부처님께 해서 부처님이 그 영험으로 태자를, 저 어떻게 이렇게 기도를 해서 태자 하나를 어떻게 점지해서 낳게 만들 것인데 아, 이런 놈의 짓만 하고 있으니 이상하다. 그러나 저러나 백일을 한(限)해 놨으니깐 백일 한한 날까장 백날까장 지내보자’

 

임금님이니깐, 적어도 점잖하시니까 뭐 그런 것 저런 것에 조금도 마음을 달리 먹지 않고는 백일기도를 딱—그날 밤에 백일인데, ‘오늘이 백일이로구나’하고 작정허고 있는데,

백일 날 밤에 꿈을 척 꾸니까, 아! 농산 스님이 쬐그만한 걸망 하나 짊어지고, 갓은 이만한 놈 하나 뒤집어쓰고 째깐한 노장(老長)이 먹장삼을 입고 걸어 들어오더니, 그 어전(御殿)에 와서 절을 척 허고 ‘소자는 내궁(內宮)으로 들어갑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어전에 절 한 자리 허고는 나와서 내전(內殿)으로 쓱 들어간다 그말이여.

 

그 꿈이 하도 이상스러워. ‘그 꿈, 참 이상하다’ 그래 임금이 짐작이 밝은 임금이니 모를 이치가 없어. 그 내전으로 쓱 들어가서 그 부부지간에 정몽을 이룬 뒤에는 꿈 얘기를 했어.

‘아, 이러저러 혀. 아, 농산이 꿈에 이렇게 들어와서 절하고 내전으로 들어왔다’고 그런게, 아! 내전하께서 또 말씀하기를 ‘소비(小妃)의 꿈에도, 아! 중이 들어와서 품안에 안기면서 소자는 입태(入胎)코저 허니 사랑하라고, 이래서 꿈을 깨니..’ 꿈 얘기를 서로 했지.

 

그 뒤부텀 태기(胎氣)가 있어 아들 낳았네. 아들을 낳았는데 참 비범한 옥동자여. 잘 낳았지. 그 도를 많이 닦고 그랬으니 뭐.

그렇게 몸 받기 마음대로 받아. 마음대로 받는 거여. 뭐 못 받는 거 아니여. 마음대로 받기는 받되, 그 한 이천 석 갖다가서 보시를 해야 되아. 불쌍한 사람 모도 밥 해 주고 옷 해 주고 보시를 했어. 그 보시 그놈을 많이 한 그 공덕이 그것이 복 짓는 것이여. 한량없이 복을 지었어.

 

그 복을 지어사 임금 노릇을 허지. 임금이 되았지마는 복이 없으면은 뭐 어떻게 임금 노릇을 할 수가 있나? 백성들이 임금의 말을 복종을 해 줘야지. 모도 백성들이 농사지어서 모도 나라에 그 모도 바쳐야지.

그러헌 복을 짓니라고 그렇게 헌 것이여. 맘대로 그까짓 거 있으나 없으나 태어나지마는 그렇게 해 가지고 태어났다 그말이여.(21분21초~42분45초)

 

 

 

 

 

 

(3/3)----------------

 

태어난 뒤에는 망건(網巾)을 씌우면은 못 써. 인자 성년이 되아서 관례(冠禮)를 헐라고 망건을 딱 씌어 놓으면은 “아이고! 머리야”하고 확 벗겨 버려.

생전 안 써 버릇헌 게 못 써. 아, 중노릇할 때 망건을 어디 누가 썼나? 머리 쏵 깎아 번지고.

 

그놈만 씌워 놓으면 활딱 벗어 버려. 그 임금 태자로써서 일찍이 관례해서 그 망건 다 쓰고, 다 쥐꼬리 당줄에다가 무슨 뭐, 옥관자(王貫子)를 붙이고 뭐, 그러고 다 있어야 하는데, 임금 아들 임금 태자로써서 활딱 벳겨 버린게 그 쓰겠는가 말이여. 그러지마는 할 수 있나? 못 썼지.

 

그렇게 태어났네.

그러헌 도인도, 아 그런 도인도 다 그렇게 지어서—암만 도(道)는 많이 닦았지마는 도력은 있다하지마는 복(福)이 없으면 또 안 되네. 그러니 복도 닦아야 한다 그말이여. 복도 지어야 한다 그말이여.

 

내가 여다가 이런 말 저런 말 하면은 돈 말하느니, 쌀 말하느니, 뭔 말하느니 헌다하지마는.

아! 설법을 설법대로 들어야지. 거다가 돈, 쌀 얘기허니 내 허물부텀 알라고 한다 그말이여. 들을라고 한다. 그게 법문이여? 그게 법 듣는 사람이여?

 

법이란 게 한 번 들을 것 같으면은 위법망구(爲法忘軀) 속에서 모두가 법이래야 되고, ‘그 모도 나를 알라고 하는 법이니 그걸 알아야 되겄구나’

이렇게 해서 감청(敢請), 그 참 설법을 갖다가서는 정성으로 청(請)을 해서 들어서 설법을 믿어야 하는 것이지, 무슨 그 ‘자기 자랑부텀 헌다. 자기 뭣부텀 헌다. 자기 저 신부텀...’ 그래서야 세상에 설법 듣는 학자라고 헐 수가 있는가?

 

내가 여기서 뭔 말을 하나 헐라 한고 하니, 우리 법보제자(法寶弟子)아닌가? 여그는 법보선원(法寶禪院)이라고 이름을 짓고, 법보제자여.

여기 와서 등록허고 우리 법보제자가 되았으니 우리 법보제자가 이리 가져오던지 저리 가져오던지 시금(施金)이네. 땅을 사던지, 집을 짓던지, 스님네 공양을 시키던지, 뭣을 허던지 이 법보전(法寶殿)으로 성금을 바친 것이여.

 

성금을 가지고 이것도 허고 저것도 허고 모도 복을 지어, 모도 시주(施主)네 복을 다 지어드린 뒤에, 또 거다가도 또 좋은 복이 있으면은 인연복(因緣福)도 지어주고, 별별 복도 다 지어주고.

 

내가 그래서 마침 가다오다 보니 그놈의 어별, 자래, 붕어 뭐 저 가무치, 뭐 미꾸리 어떻게 많이 들어와. 여그는 강.. 뭔 도(島)라드라? 뭐 강화도(江華島)라디야? 강화도. 그놈의 데서 괴기가 산 괴기가 한량도 없이 나와. 아! 이놈의 걸 다 사 넣을라니 돈이 몇천 만원도 부족허겄어.

 

그러지마는 어떤 놈은 살리고 어떤 놈은 안 살릴 수가 있나? 붕어고 그저 무슨 뭣이고 그저, 누가 내가 잡아오라고 했나? 내가 그걸 살라고 갔나?

가다오다가 보니 그것이 앤겨서 한번은 내가 그냥 ‘에이, 그놈 본 김에 사다 넣는다’고. 나 혼자 그놈을 한 30관(貫) 가지고 와, 혼이 났지. 두 차에다가 싣고 와서, 30관이 뭣이여? 근 40관인가 되는데.

 

큰 뭐 까무친가 뭐 그런 것은 몇 마리 안 넣어도 당최 무거워서 못써. 아, 그놈을 사다가 넣었는데, 그놈의 것이 인연이 되아가지고 자꾸 그놈의 데가 뵈인다 그말이여.

아, 그래저래 내가 사다 넣은 것이, 돈이 있는데는 뭔 돈이든지 ‘빌어먹을 놈의 돈, 그건 불쌍한 놈 사다 집어넣으면 그놈이 제일이다’하고는 막 갖다가 내가 사 넣었어.

 

사 넣어서 그 다음에 혼자 못 댕기고 똑 야를 데리고 둘이 댕겼는데, 인자 사십 관을, 사백 관을 사 넣다 했나? 사백 관인가? “네”

사백, 인자 채워졌어 사백 관. 사백 관이면 얼마여? 그놈의 목숨의 수가.

 

야! 내가 우리 법보원 모도 시주들, 모도 여러분들이 모도 돈을 낸 것, 기도헌다고 돈 내고, 뭐 짓는다고 돈 내고, 뭐 산다고 돈 내고, 이 절에 와서 모도 어쩐다고 돈 내고, 양식 팔라고 돈 내고, 이리저리 돈 내.

맨 고놈이 하나도 안 팔아. 내가 미리 다 팔아 놨은게 팔 필요가 없지. 안 팔고 이놈을 두었다가 저런 땅은 사고, 계약금은 걸어놓고 다 내도 못하고, 나뭇값도 해 놓고 내도 못했지만 그까짓 놈의 것 내가 또 어떻게 허든지 말든지 사백 관을 내가 사 넣었어.

 

우리 법보제자들 모도 이러헌 복을 지어야 되겄다. 뭐 돈 낸 이가 복 짓지, 무슨 뭐 일허는 사람이.. 일허는 사람도 복 짓지.

임금은 뭐 가만히 앉어 임금노릇 허지 뭐. 임금 그 나라 쌀도 갖다가서 자기가 막 쓰고 복 안 받았는가? 그 써 준 사람도 복 받지 뭐.

 

내가 그래서 사백 관을 했소. 왜 대중에 털어 내놓지, 그걸 안 털어 내놓고 뭣 할 것이냐 그말이여.

그것이 바라밀 가운데에 육바라밀 가운데 끝에인데, 제일계(第一戒)가 십중대계(十重大戒)의 제일계가 ‘살생 말라’했는데 생명 죽이지 않는 게 제일계인데, 생명을 안 죽인 대신에, 죽이지 않는 대신에 죽을 놈을 살려주는 복이 제일이다 그말이여. 살생 않고 목숨을 살리왔다 그말이여.

 

그러헌 복을 내가 우리 법보원 대중에 내가 지어서 우리 대중 다 장차 권속이 되고, 장차 모도 인연이 되고, 모도 다 인자 설법만 허면은 모도 설법을 듣고 믿고, 모도 확철대오 허고, 그 인연이 아닌가? 그 인연이 나쁘단 말인가?

 

그러헌 좋은 일을 허고, 그런 일을 했으면은 문자견자(聞者見者)가 다 말 한마디에 큰 대복(大福)이 되아. “잘 참 그런 일 잘했다. 그런 복을 지었다. 모도 우리가 이것 참 같은 인연이로구나”

이러면 그 말 한마디에 천하에 복이 되는 것인데, 그런 것을 비방하면은 비방죄가 거 설찬히 많어. 무슨 우리 대중이 비방할까마는 내가 미리서 이런 말 한마디 헌다 이 말이여.

 

그러면 일 찬(讚), 내가 이와 같이 헌 것은 내가 했드래도 내 찬(讚) 내가 해서 대중께 알려드려야 하는 것이지 어쩌. 여까장 해 두고.

 

이런 것은 아무리 많이 허고, 별짓을 별별 계행을 다 지키고 육바라밀을 다 지켜도 내 마음 깨닫는 데는 소무간섭(小無干涉)이다 그말이여.

요런 짓은 백만억 겁을 해 놔도 결국은 복 다 받으면 타락이고, 허지마는 그 복도 지어놔사 내가 확철대오 해서 중생 교화할 때는 복혜양족(福慧兩足)으로 써 나간다 그말이지.

 

말이지마는 생사 면(免)허는 데는 소용이 없어.

이러헌 복을 지어 가지고는 그 복으로써 내생에 임금, 내생에 전륜성왕, 이 몸 후에 제석천왕이 되아, 비비상천왕 다 되아도 그건 다할 때가 있어서, 멸(滅)헐 때가 있어서 타락하는 법이여.

 

의초부목지정령(依草附木之精靈)이다. 요까짓 몸뚱이에 붙어 있는—이 내가 나를 요것을 바로 깨닫지 못하면은 풀에 붙어사는, 돌에 침 뱉으면 돌 침 뱉은 것 빨아먹고 사는, 빗자리 꽁댕이 썩어진 빗자리 꽁댕이에 붙어사는 귀신 영혼이다 그말이여. 혼백(魂魄) 영혼이여.

 

고런 것도, 이놈의 혼백이라는 것이 귀신이 어디 붙어야 놀아나는 것이여. 그래 밤에 도깨비란 놈이 별 지랄 다혀. 불도 내고, 싸움도 허고, 막 사람을 잡아먹을라고 뺨도 치고, 씨름을 하면 도깨비한테 꼼짝 못하고 져.

어쩌다가 기운 장성(壯盛) 센 사람이, 기운 센 사람이 고놈을 그만 잡아서 꽉 때려 묶어서 어따 달아 놔 둬. 뒀다가 아침에 보면 빗자리 꽁댕이라. 귀신이 아니라 빗자리 꽁댕이, 다 썩어진 놈의 꽁댕이 고런 것이여. 요렇게 놀아난다 그말이여.

 

천 가지 만 가지, 복을 백만 가지를 다 지어봤던들 생사는 면치 못혀. 그러니 공안(公案)! 공안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냐?’

‘여하시조사서래의냐?’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판때기 이빨에 털 났느니라’하는 그 공안을 바로 깨달라야 생사를 면한다 이 말이여.

 

그래서 중이 조주 스님께 묻되 “여하시조사서래의입니까?”  “판치생모니라. 판때기 이빨이에 털 났느니라”

 

이 자개(者箇) 화두는, 이 낱 화두는 요렇게 "판때기 이빨 털 났느니라"한 이 화두는 종문중일관(宗門中一關)이다. 이 화두문(話頭門) 가운데 제일이다.

조주(趙州) 무자(無字)가 제일이라 했는디, 나는 판치생모가 제일이라고 헌다 그말이여.

 

조주 무자는 한국 글인데, 한국 글을 지나(支那)에서는 ‘무(無)’허면 그냥 그대로가 없단 말인데, 우리 한국에는 그놈을 새겨야 되니까, 되새기면 “없다” 이 말이다.

허니 “없다” 한국말로 그대로 “없다” 이렇게 화두를 해야지, 무(無)! 그러면 지나음(支那音) 음으로만 무(無)허니 그 안 된다. 용성 스님은 이렇게 가르키는데.

 

경허 큰스님이나, 혜월 스님이나 만공 큰스님은 “무(無)” “무(無)” “무(無)” 이렇게 가르키거든. 음으로만 가르켜. 무(無)!

 

그 무자(無字)가 무슨 무자냐?

불시유무지무(不是有無之無)며, 있다 없다는 무도 아니며, 불시허무지무(不是虛無之無)며, 비어서 없다는 무도 아니며, 불시진무지무(不是眞無之無)니라. 참으로 없다는 무가 아니니라. 대혜 스님 같이 그 밝으신 종장(宗匠)이 이렇게 해 놨거든.

 

그러니 무자절목(無字節目)에 가서, 십절목(十節目)에 가서는 탁! ‘조주는 무(無)라고 헌, 어째 무라고 헌 무(無)만 찾아 나가야 하느니라’ 이래 놨다.

 

그러니 용성 스님도 큰스님, 다 큰스님네인데, ‘용성 스님, 무(無) 없다고 찾아야 하나?’ ‘무(無)라고 찾아야 하나?’ 양 갈래가 되어서 그 화두는 일제히 내가 안 가르켜부러. 안 가르켜부러.

탁! 그만 내가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 다 같은 조사서래의인데 ‘여하시조사서래의냐? 판치생모. 판때기에 털 났느니라’ 내가 이놈을 막 그만 가르켜 버린다 그말이여. 판치생모니라.

 

그 잘 들어야 되아.

 

유심(有心)으로 투부득(透不得)이다. 유심으로 얻지 못한다.

유심으로 얻지 못한다는 것은 판치생모라는 것은 그 사량분별(思量分別) 무슨 있는 뭔, 뭔 마음이든지 모냥이든지 거다가 무슨 견해든지 때려 붙이면은 유심이여.

또 아무것도 없는 무심(無心)으로도 얻지 못한다. 유심(有心) 무심(無心)으로는 통 투부득(透不得)이여.

 

성성(惺惺) 영리한(靈利漢)아, 참 깨끗허고 깨끗헌 영리한 애들아, 직하(直下)에 어찌 흔번(掀飜)치 못하냐? 이 말 아래에 어찌 깨닫지 못하냐?

‘판치생모다. 판때기 이빨에 털 났다’ 어찌 깨닫지를 못하냐? 이 영리자(靈利者)들은 한번 직하(直下)에 깨달을 것이니라.

 

조관(祖關)을 불투(不透)허면 생사(生死) 난면(難免)이니라. 나무~아미타불~ (42분46초~59분54초)(끝)

 

 

 

 

 

 

----------------(1/3)

 

*(게송) ‘비환일침몽~’ ; 『청허당집(淸虛堂集)』 ‘준선자(俊禪子)’ 참고.

*인생행락(人生行樂 사람 인/살다·삶 생/행할 핼/즐길 락) ; 사람[人]이 세상을 살아가며[生] 재미있게 놀고 즐겁게[樂] 지냄[行].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고행(苦行) ; ①천상(天上)에 태어난다든지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주로 단식(斷食)이나 호흡의 제어와 같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②불교 이외의 외도들이 닦았던 수행법으로 깨달음을 얻는데에 목적을 두었지만, 육체에 고통을 줄수록 정신이 더 자유로워진다고 하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하여 육체에 고통을 줌으로써 본능과 욕망을 끊는 것.

③의식주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 12두타(頭陀)의 고행이 여기에 상응하며 정진(精進)의 의미를 포함한다.

④중생을 위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 또한 이에 상응하는 행하기 어려운 수행을 닦는 것을 말한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덤벵이 ; 덤벙이(묽은 액체 따위가 뭉쳐진 덩이).

*신력(神力 불가사의할 신/힘 력) ; 신통력(神通力). 신통(神通)한 힘.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力]. 일반적인 분별로는 헤아릴 수 없는 불보살의 신통력을 말한다. 특별히 부처님의 신통력을 불신력(佛神力)이라고 한다.

*재송도인(栽松道人) ; 중국 선종(禪宗)의 제4조 도신대사(道信大師 580~651)가 제자를 맞아 인증을 하였지만, 제자가 너무 늙어 스승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법을 이을 사람이 없으니 몸을 바꾸어 오도록 하였다. 이에 몸을 바꾸어 후에 다시 만날 때 증거로 삼기 위해 황매산에 소나무를 심었다. ‘소나무를 심었다’는 뜻에서 ‘재송도인(栽松道人)’이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5조 홍인대사(弘仁大師 602~675)이다.

 

[참고]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백운화상 抄錄 | 원조각성 번역 | 현음사) ‘32. 4조 도신 대사 · 재송도자’ p202~206 참고. 『직지 강설(上)』 (무비 스님 번역 | 불광출판사) ‘제6 도신·홍인 대사’ p202~203 참고.

四祖  因栽松道者  來相見  語言相契  祖曰汝年已老  改形而來可也  道者  珍重  便行下山至濁港

4조 도신 대사께서 재송도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말이 서로 계합하였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나이가 이미 늙었으니 몸을 바꾸어서 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재송도자가 아무 말 없이 문득 산을 내려가서 탁항에 이르렀다.

 

見一處女浣衣  遂云我欲借汝家一宿  女云有父母在  道者曰你肯麽  女云去問我父母宿  道者去不遠  於一樹下坐化去  其女  從此有孕  生一男子  被父母訶嘖  及是非不能洗  便將兒子  抛於江水中去  復廻次日見兒  逆流而去  不忍復收養之

한 처녀가 빨래하는 것을 보고 드디어 말하기를 “내가 그대의 집을 빌려서 하룻밤 자고자 하노라” 처녀가 말하기를 “부모님이 계십니다” 도자(道者)가 말하기를 “그대는 허락하는가?” 처녀가 말하기를 “집에 가서 저의 부모님께 묻고 주무시라고 하겠습니다”

재송도자가 멀리 가지 아니하고 한 나무 밑에서 앉아서 입적하셨다. 그 처녀가 이로부터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부모의 꾸짖음과 옳고 그름을 씻을 수 없게 되어 문득 아이를 데리고 가서 강물에다 던져 버리고 갔다. 다시 돌아와서 다음날에 아이를 보니 물을 거슬러 가고 있었다.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다시 거두어 길렀다.

 

乞食度日  至七歲  携在黃梅  路上  見四祖  祖問曰童子何姓  子答曰姓卽有  不是常姓  祖曰  是什麼姓  子曰佛性  祖曰雖有佛性  汝且不會  子曰非但我不會  三世諸佛亦不會  祖曰爲什麼不會  子曰性空故  祖默識其法器  卽便出家  乃傳衣付法

걸식하면서 세월을 지내다가 일곱 살이 되어서 이끌고 황매산에 갔다. 길 위에서 4조 도신 대사를 만났다. 4조께서 물어 말씀하시기를 “동자는 성이 무엇인고?” 동자가 답해 말하기를 “성이 있기는 하나  보통의 성은 아닙니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어떤 성인고?” 동자가 말하기를 “불성(佛性)입니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비록 불성은 있으나 너는 아직 알지 못할 것이다” 동자가 말하기를 “비단 저만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삼세제불도 또한 알지 못합니다” 4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알지 못하느냐?” 동자가 말하기를 “그 본성이 비었기 때문입니다” 4조 대사께서 그가 법기임을 아시고 곧 문득 출가해서 이에 가사를 전하고 법을 부촉하셨다.

*육례(六禮) ; 구식(舊式) 혼인의 여섯 가지 의식.

*입태(入胎) ; 모태(母胎)에 들어가는 것.

*매(昧)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출태(出胎) ; 태어나는 것.

*이무애(理無碍) ; 이치(理致)에 걸림이 없는 지무생사(知無生死) • 계무생사(契無生死)의 경지(境地).

*사무애(事無碍) ; 사물(事物)에 걸림이 없는 체무생사(體無生死) • 용무생사(用無生死)의 경지.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여불무수(與佛無殊) ; ‘부처와 다르지 않다’

[참고] 보조지눌 스님의 『수심결修心訣』에서.

頓悟者  凡夫迷時  四大爲身  妄想爲心  不知自性是眞法身  不知自己靈知是眞佛也  心外覓佛  波波浪走  忽被善知識  指示入路  一念廻光  見自本性  而此性地  原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頓悟也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란 범부(凡夫)가 미혹했을 때 사대(四大)를 몸이라 하고 망상(妄想)을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自性)이 참 법신(法身)인 줄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앎[靈知]이 참부처[眞佛]인 줄 알지 못하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따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홀연히 선지식(善知識)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한 생각 돌이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이 성품(性品)자리에는 원래(原來) 번뇌(煩惱)가 없고, 무루(無漏)의 지혜 성품이 본래(本來) 스스로 구족(具足)하여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으니 그러므로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라고 한다.

 

漸修者  雖悟本性 與佛無殊  無始習氣  卒難頓除故  依悟而修  漸熏功成  長養聖胎  久久成聖  故 云漸修也 比如孩子初生之日  諸根具足  與他無異  然  其力未充  頗經歲月  方始成人

 

점수(漸修, 차츰 닦음)란, 비록 본래 성품(本性)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혀온 습기(習氣)를 갑자기 모두 없애기는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 점차로 익혀 공(功)을 이루어 성인(聖人)의 태(胎)를 길러 양성하면, 오랜 동안을 지나 성인(聖人)을 이루게 되므로, 점수(漸修, 점차로 닦음)라고 한다.

비유하면,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모든 기관(諸根)이 갖추어 있음은 남과 다르지 않지만, 그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므로 제법 세월(歲月)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른[成人]이 되는 것과 같다.

*이즉돈오(理卽頓悟) 사비돈제(事非頓除) ; ‘이치는 몰록 깼다마는 사(事)는 몰록 제(除)할 수 없다’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

夫入道多門  以要言之  不出頓悟  漸修兩門耳  雖曰  頓悟頓修  是最上根機得入也  若推過去  已是多生  依悟而修  漸熏而來  至于今生  聞卽發悟  一時頓畢  以實而論  是亦先悟  後修之機也

 

대개 도에 들어가는 데는 그 문이 많지마는 요약해서 말하면 돈오(頓悟)와 점수(漸修) 두 문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돈오돈수가 최상의 근기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고 하지만 과거를 미루어 보면, 이미 여러 생(生) 동안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혀 오다가, 금생에 이르러 듣자마자 곧 깨달아 한꺼번에 모두 마치는 것이니 실로 말하면 이 역시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근기인 것이다.

 

則而此頓漸兩門  是千聖軌轍也  則從上諸聖  莫不先悟後修  因修乃證  所言神通變化  依悟而修  漸熏所現  非謂悟時  卽發現也  如經云  理卽頓悟  乘悟倂消  事非頓除  因次第盡

 

그러므로 이 돈오와 점수의 두 문은 모두 성인의 길로서, 예로부터 모든 성인들이 먼저 깨닫고 뒤에 닦았으며 이 닦음에 의하여 증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신통 변화는 깨달음에 의해 닦아 차츰 익혀서 나타나는 것이지, 깨달을 때에 곧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경(經)에 말씀하시기를 ‘이치인즉 돈오이어서 깨달음과 아울러 모든 의심이 없어지거니와 일[事]은 곧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차례로 인하여 다한다’고 하셨다.

 

故  圭峯深明先悟後修之義曰  識氷池而全水  借陽氣以鎔消  悟凡夫而卽佛  資法力以熏修  氷消則水流潤  方呈漑滌之功  妄盡則心靈通  應現通光之用  是知事上神通變化  非一日之能成  乃漸熏而發現也

 

그러므로 규봉 스님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뜻을 깊이 밝혀 말씀하시기를 ‘얼어붙은 못이 순전히 물[水]인 줄은 알지마는 햇빛을 받아야 녹고, 범부가 바로 부처인 줄은 깨달았지만 법의 힘을 빌려 익히고 닦아야 한다. 얼음이 녹아 물이 잘 흘러야 물을 대고 씻는 공덕을 나타내고, 망념이 다하여 마음이 신령하게 통해야 신통과 광명의 작용을 나타낸다’고 하셨다.

이로써 실제에 있어서 신통 변화는 하루아침에 능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로 익힘으로써 나타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도신(道信) ; 五八O ~ 六五一.  중국 선종의 제4대 조사(祖師). 기주(蘄州) 광제(廣濟 : 지금의 湖北省 武穴) 출신. 속성은 사마(司馬)씨. 어려서부터 불교의 해탈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스님이 된 후 五九二년(개황12)에 서주(舒州) 완공산(皖公山)에 들어가 중국 선종의 제3대 조사인 승찬(僧璨) 문하에서 공부하여 깨닫고 9년(일설에는 10년) 동안 시봉하였고, 달마대사 이래로 조사의 징표로 전해진 가사와 발우를 전수받아 4조(四祖)가 되었다.

六二四년(무덕7)부터 기주(蘄州) 황매(黃梅 : 지금의 湖北省 黃梅)의 파두산(破頭山)에서 30여 년간 주석하였는데, 이 기간에 홍인(弘忍)에게 법을 전했고, 제자 법융(法融)은 별도로 우두종(牛頭宗)을 세웠다. 또한 파두산은 뒤에 쌍봉산(雙峰山)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므로 사람들이 쌍봉도신이라고도 불렀다.

 

문하의 제자들이 오백여인이 되었는데, 선종사상 이와 같이 많은 수의 학인들이 한 명의 스승 아래서 수행했던 것은 도신에게서 시작된다. 六五一년(영휘2) 윤9월(일설에는 영휘1)에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내리고 세수 72세로 좌선한 채 입적하였다. 동산(東山)의 황매사(黃梅寺)에 탑을 세웠다.

도신이 입적한 후에 제자인 홍인은 쌍봉산((雙峰山)에서 10km 정도 떨어진 빙무산(憑茂山)으로 법문(法門)을 옮겼는데, 사람들이 쌍봉산은 서산(西山), 빙무산은 동산(東山)이라 불렀기에 도신과 홍인의 선법을 병칭하여 동산법문(東山法門) 또는 동산정문(東山淨門)이라 한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기하다(忌-- 꺼릴 기) ; 마음에 꺼림칙하게 여겨 가리거나 피하다.

*역행(逆行) ; 보통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나아감.

 

 

 

 

 

 

----------------(2/3)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호리(狐狸 여우 호/살쾡이·너구리 리) ; ①여우와 살쾡이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②도량이 좁고 간사한 소인배(小人輩)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 p52-53.

當於本叅公案上(당어본참공안상)에  有疑(유의)호리니  大疑之下(대의지하)에  必有大悟(필유대오)하리니  千疑萬疑(천의만의)를  倂作一疑(병작일의)하야  於本叅上(어본참상)에  取辦(취판)호리라

若不疑言句(약불의언구)가  是爲大病(시위대병)이니라  仍要盡捨諸緣(잉요진사제연)하고  於四威儀內(어사위의내)와  二六時中(이륙시중)에  單單提箇話頭(단단제개화두)하야  廻光自看(회광자간)호리라

 

바로 모름지기 본분을 의지하야 법다이 하야사 비로소 옳으리라。 반드시 본참공안상에 의정을 두리니 큰 의심 끝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으리니, 천의만의(千疑萬疑)를 아울러 한 의심을 지어서 본참상에 판단할지니라.

만약 언구(言句,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면 이것이 큰 병이니라。 반드시 모든 인연을 다 버리고 사위의(四威儀)와 열두 때 가운데에 다만 화두를 잡아 빛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라.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격외(格外 격식 격/바깥 외) ; 규정되고 고체화된 세간적(世間的)인 척도를 초월하는 것. 즉 분별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실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격(格)은 격식(格式) · 규격(規格) · 법칙 · 규정 등을 말하지만 넓은 뜻으로는 세간(世間)의 척도라는 뜻이다.

[참고] 『벽암록(碧巖錄)』 (원오극근) 제9칙 ‘조주사문(趙州四門)’ 평창(評唱) 참고.

大凡參禪問道  明究自己  切忌揀擇言句  何故  不見趙州擧道  「至道無難唯嫌揀擇」  

무릇 참선하며 도를 묻는 것은 자기를 밝히고자 함이니, 절대로 언구로 간택해서는 안 된다. 무엇 때문인가? 조주 스님이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것이 없으니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다”라고 한 말을 듣지 못했는가?

 

又不見雲門道  「如今禪和子  三箇五箇聚頭  口喃喃地便道  『這箇是上才語句  那箇是就身處打出語』  不知古人方便門中  爲初機後學未明心地  未見本性  不得已而立箇方便語句  如祖師西來  單傳心印  直指人心  見性成佛  那裏如此葛藤  須是斬斷語言  格外見諦  透脫得去  可謂如龍得水  似虎靠山」

 

또한 듣지 못했는가? 운문 스님이 말하기를 “요즈음 선수행자들은 네댓 명이 머리를 맞대고 입을 떠벌리면서 ‘이것은 재능이 뛰어난 자가 한 말이며 저것은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말이다’고들 한다. 이는 고인이 방편문에서, 처음 배우는 후학들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본성을 알아차리지 못했으므로 부득이 방편으로 언구를 사용하게 되었음을 모른 것이라 하겠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셔서, 심인(心印)을 전하여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直指人心]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하셨는데[見性成佛], 어느 곳에 이와 같은 언어문자가 있었겠는가? 모름지기 언어를 끊어 버리고 격외(格外)에서 참다운 이치[諦]를 보아 투철하게 벗어나야 용이 물을 얻은 것 같고 범이 산을 의지한 것과 같다”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알음알이. 지해(知解).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설화(說話) ; ①말하는 것. 또는 그 말. ②설법하는 것. 주로 상당법문에서 법좌에 올라 하는 말. ③『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의 줄인 이름. 설화는 옛 이야기가 아니고, 『선문염송』의 고인의 화두(話頭)를 선사의 안목에 의해 해석하고 설명(說明)한다는 뜻.

*중생심(衆生心) ; 번뇌에 얽매인 미혹한 존재(중생)가 일으키는 미혹한 마음.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내전(內殿) ; ①중궁전(中宮殿 왕비가 거처하던 궁전). ②안전(안殿 궁궐 안에 임금이 거처하는 집).

*쾌허(快許 쾌할·시원할 쾌/허락할·들어줄 허) ; 남의 부탁이나 청(請)을 시원스럽게 들어줌.

*폐백(幣帛 비단·예물·돈·재물 폐/비단 백) ; ①일반적인 모든 예물(禮物). ②임금에게 바치거나 제사 때 신에게 바치는 물건. 또는 그런 일. ③신부가 처음으로 시부모를 뵐 때 큰절을 하고 올리는 물건. 또는 그런 일. ④혼인 전에 신랑이 신부 집에 보내는 예물. ⑤윗사람이나 점잖은 사람을 만나러 갈 때 가지고 가는 선물.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부처님께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사시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마지 올린다’고 하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摩指, 摩旨, 磨旨) ‘손으로 만들어 올린다 혹은 정성스럽게 만든 공양을 올리오니 제 뜻을 감읍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불기(佛器) ; 부처님에게 올리는 밥을 담는 그릇.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내루다 ; ‘내리다’의 사투리.

*참간(參看) ; 참관(參觀). 어떤 자리에 직접 나아가서 봄.

*성미(誠米) ; 신불(神佛)에게 바치는 쌀.

*시줏돈(施主-) ; 스님이나 절에 바치는 돈.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여섯 가지 수행의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어별(魚鼈 물고기 어/자라 별) ; ①물고기와 자라를 아울러 이르는 말. ②바다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방생(放生) ; 사람에게 잡힌 물고기나 새, 짐승 따위를 산이나 물에 놓아서 살려 주는 일. 불교도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첫째 계(戒)인 불살생계(不殺生戒)보다 적극적인 선을 실천하는 선행(善行)이다.

*주달(奏達 아뢸 주/전달할 달) ; 임금에게 아뢰던 일.

 

 

 

 

 

 

----------------(3/3)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감청(敢請 감히 감/청할 청) ; 스스러움이나 어려움을 무릎쓰고 감히 청함.

*법보제자(法寶弟子) ; [참고] 89년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여기 (용화선원 법보전)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인연복(因緣福) ; 인연작복(因緣作福). 좋은 인연을 짓는 복.

*관(貫) ; 무게의 단위. 한 관은 한 근의 열 배로 3.75kg에 해당한다.

*십중대계(十重大戒) ; 대승 불교에서, 보살이 범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열 가지 계율.

①살생, ②도둑질, ③간음, ④거짓말, ⑤술의 구입 및 판매, ⑥보살 및 비구나 비구니의 죄과를 들추어 말함, ⑦자기를 높이고 타인을 비방함, ⑧베푸는 데 인색함, ⑨화내어 타인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음,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를 비방함 등을 금하고 있다.

*문자견자(聞者見者) ; 듣는 자와 보는 자.

*찬(讚, 贊) ; ①남의 훌륭한 행적이나 서화 따위를 기리어 칭찬하는 글. ②서화(書畵)에 쓰는 시문(詩文)을 통틀어 이르는 말.

*복혜양족(福慧兩足) ; 복(福)과 혜(慧), 두 가지를 함께 온전히 갖추어 충족한다는 뜻.

*지나(支那) ; 우리나라의 서북쪽, 아시아 동부에 있는 나라. 중국 본토의 다른 명칭.

*종장(宗匠 근본·우두머리 종/장인·우두머리 장) ; 수행한 바가 다른 이의 사표(師表)가 될 만하여 법맥을 이어받은 고승(高僧).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 ; [몽산법어 蒙山法語]의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을 말함.

‘몽산화상무자십절목(蒙山和尙無字十節目)’은 조주 스님의 ‘무자(無字)’ 화두를 가지고—참선 수행에 있어서 본참공안에 대해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수 없는 의심을 일으켜 화두 참구를 하지 않고, 사량분별·알음알이로 공부를 삼는 잘못된 병폐를 10가지로 정리하여 그 병폐를 알고 극복해 올바른 활구참선을 하기 위한 몽산 스님의 법문.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영리(靈利) ; 명석한 이해력을 지닌, 두뇌가 민첩한. 또는 그러한 사람. 영리한(靈利漢). 영리(伶利)라고도 한다. 분별에 치우쳐 불도(佛道)로 가는 길에 장애가 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흔번(掀飜 번쩍 들다·치켜들다 흔/번역하다·뒤집다 번) ; 전복하다. 뒤집히다.

*조관불투(祖關不透)  생사난면(生死難免) ; ‘조사관(祖師關, 화두)을 뚫지 못하면 생사를 면치 못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6. 7. 9. 13:57

§(299) 『몽산법어(蒙山法語)』는 참선 공부에 요긴한 / 공부가 답답하고 안되게 느껴지는 때가 계단 진보하려는 / 일상생활 속에서 정진해야.

 

몽산법어(蒙山法語) 구절씩항상 여러분은 선지식(善知識) 만나 뵙기가 어려우니까 공부하다가 가끔 법문을 듣고 싶으면, 몽산법어를 편씩을 떠억 보시면은 선지식 법문 들은 거와 같아서 신심(信心) 돈발(頓發)하고 의정(疑情) 돈발을 해서 참선이 잘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공부가 걸음 나아갈려고 때에 그러한 단계에 이르르면 직전에 공부가 답답하고 안되게 느껴지는 그런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중단하지 아니하고, 물러서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꾸준하게 참을성 있게 지혜롭게 차근차근 공부를 나가면 그래 가지고 고비를 넘기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계단 진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사실 공부는 선방(禪房) 들어와서 죽비() 치고 입선(入禪) 하는 그것만이 공부가 아니고, 언제나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일상생활 속에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지어나가게 때에 공부가 익숙해진 선객(禪客)이라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99)—1986 5 첫째 일요법회(86.05.04) (용299)

 

약 12분.

 

작년에 『몽산법어(蒙山法語)』를 여러분에게 법공양(法供養) 했는데, 아마 대부분 권씩을 받아서 가지고 계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몽산법어는 활구참선법! 활구참선(活句參禪) 하는 데에 관한 법문만을 여기에 수록한 법어집입니다.

여러분이 몽산법어를 받아서 첫째 서문을 읽어보시면 몽산법어라는 책이 어떠한 책이며, 얼마나 공부해 나가는 요긴한 책인가를 여러분 아실 수가 있고.

 

그리고 몽산법어(蒙山法語) 구절씩항상 여러분은 선지식(善知識) 만나 뵙기가 어려우니까 공부하다가 가끔 법문을 듣고 싶으면, 몽산법어를 편씩을 떠억 보시면은 선지식 법문 들은 거와 같아서 신심(信心) 돈발(頓發)하고 의정(疑情) 돈발을 해서 참선이 잘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금방 조실 스님 녹음법문도 몽산법어를 ()하셨습니다마는 몽산법어를 가끔가끔 보시고몽산법어를 보지 해도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고 순수무잡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지경에 들어간다면 구태여 몽산법어도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우리는 공부를 하다 보면 때는 단전호흡(丹田呼吸) 잘되고, 화두도 들려서 의단이 순일무잡하게 들릴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변해 가지고 영판 단전호흡도 안되고, 정신도 청쾌하지를 못하고 의심도 나지를 가지고 그렇게 답답하고 그런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는 억지로 앉아서 시간만을 채울려고 하시지를 말고 가볍게 포행을 하고 와서 정진을 하실 수도 있고,

 

여러분 댁에서 공부하실 때에는 몽산법어도 편씩 떠억 보시고서, 이게 한글로 () 달고 그것을 번역을 하고, 그리고 어려운 말에 대해서는 역주(譯註) 붙여서 놨기 때문에 누구든지 보시면 있게 되어 있습니다.

 

 

참선(參禪) 나가는데 있어서 주의할 것은 공부를 나가다 보면 정말 재미가 없어. 재미가 없어 가지고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뒤틀리고, 도저히 5 10분이 시간보다도 지루하게 느껴지고, 어디 벼람박이나 기둥에다가 이마빡을 갖다가 한번 그냥 피가 나오도록 받아버리고 싶은 그렇게 답답하고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가 번뇌심(煩惱心) 내지 말아라거든.

사실은 그러한 경지가 것이 공부를 잘못해 가지고 그러한 것이 아니고, 공부가 걸음 나아갈려고 때에 그러한 단계에 이르르면 직전에 그렇게 공부가 그러한 답답하고 안되게 느껴지는 그런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르는 분은! 이거 내가 마장(魔障) 들어서 그런가?’ ‘공부를 잘못해서 이런가?’ 그래 가지고 거기서 번뇌심을 내고, 그리고 퇴보심(退步心) 내고, ‘이거 공부를 그만 둘까?’ ‘이러다가 병이 나면 어쩌나?’ ‘이거 공부가 안될려고 이러는 것이 아니냐?’ 가지고 갈팡질팡을 하게 되는데,

 

사실은 바로 그때가 몸과 마음과 목숨을 바쳐야 때다. 그러냐?

공부가 걸음 진보할려고 때에, 계단 올라서려고 때에 그러한 경계(境界) 나타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어떠한 사업, 어떠한 학문, 어떠한 서도(書道) 그림 또는 음악, 어떠한 공부를 하더라도 반드시 그런 것이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잘된다 느껴지고, ‘ 이렇게만 되어간다면은 내가 일취월장(日就月將)하겠다!’하고 그렇게 느껴지는 때가 있는가 하면, 영판 공부가 암만해도 되지를 않고, 전혀 진전하는 기미가 없고, 그래 가지고공부, 이것 차라리 그만두어 버릴까?’하는 그런 생각까지도 나는데.

 

그러한 때에 중단하지 아니하고, 물러서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꾸준하게 참을성 있게 지혜롭게 차근차근 공부를 나가면 그래 가지고 고비를 넘기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계단 진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한 고비를 넘기지를 못하고 번뇌심을 내고 퇴보심을 내고 중단해 버리고 이러면, 지지리 산봉우리 가까이까지 갔다가 그냥 상봉(上峯)에까지 올라가지 아니하고 거기서 그냥 되돌아 내려온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애기를 길러 경험이 있으신 어머니들은 아시겠지만 자라다가 설사한다든지, 머리가 열이 있다든지, 밥을 먹는다든지 이러한 병치레를 하게 때가 있을 것입니다.

병치레를 하고 나서는 하던 재롱을 떨게 되고 귀여움을 부리게 되고, 그러고 말도 전혀 한마디도 못한 애기가 병치레를 하고 다음에는 그냥 말도 한마디씩 하게 되고, 병치레하고 나면 살은 조금 빠진 듯하지만 5센치 이상이 자란 것처럼 자라 버리고, 백만사(百萬事) 그런 것입니다.

 

걸음 나아갈려고 때에는 반드시 그런 경우가 있는 것이니까, 참선할 때에도 역시 그런 것이여. 그럴 때를 극복하고 지혜롭게 공부를 나가면, 그전에 보다도 훨씬 공부가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니 그런 것을 주의를 하시고.

 

가지 주의할 것은 특수한 사람에 있어서는 공부를 하다 보면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경계가 나타나기도 하고, 이상한 것이 보이기도 하고 모다 그럴 수가 있는데, 그런 것들은 전부 허상이여, 환각(幻覺) 작용이여. 일시적으로 일어났다 없어지는 환각 작용이여.

무슨 누가 와서 말을 귓전에 와서 일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든지, 또는 앞에 환하니 무슨 불이 켜진 것처럼 보인다든지, 또는 내일 있을 일이 미리 알아진다든지,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해서 무엇이 알아진다든지 이러한 것들은 전부 허망(虛妄) 경계요, 환각 작용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에 집착을 하지 말고.

 

오히려 성성(惺惺)하게 정신을 차려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눈을 뜨고서 단전호흡(丹田呼吸) 하면서 화두(話頭) 거각(擧却) 나간다면, 그러한 환각 작용에 빠져 가지고 자기가 무슨 견성이나 것처럼 착각을 가지고 헛소리하고 미친 경지에 빠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아주공부한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사실 공부는 선방(禪房) 들어와서 죽비() 치고 입선(入禪) 하는 그것만이 공부가 아니고, 언제나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일상생활 속에서 화두를 들고생활 속에서 성날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슬플 슬픈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속이 상할 속상하는 생각을 버리고 찾지를 말고 바로 생각에 ()해서 화두를 거각을 하도록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그렇게 공부를 지어나가게 때에 공부가 익숙해진 선객(禪客)이라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공부를 지어 가는 사람은 ()에서 생활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 참선이요,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것도 그것이 바로 참선이요.

 

이런 법회에 절에 오실 때에 차를 타시는 것도 참선이요, 차에서 내려서 걸어서 절에까지 오시는 것도 참선이고.

도량(道場) 들어서서 어떠한 스님을 만나면은 노소간(老少間) 합장을 하고 이렇게 배례(拜禮) 하는 것도 참선이요. 신도분을 만나서도 미소를 지으면서 합장을 하고 이렇게안녕하셨느냐 인사 한마디 하는 것도 그것이 모두가 참선 아닌 것이 없다 말씀입니다.(1317~2524)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몽산법어(蒙山法語) ; ()나라 몽산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하였다.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몽산법어 있다.

*법공양(法供養)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생들에게 베풂. ②불서(佛書) 사람들에게 베풂. ③부처님의 가르침을 공경하고 찬탄함. 경전에 · 등을 바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돈발(頓發 갑자기 /일어날·나타날·밝힐 )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 直頓의 , 곧바로.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역주(譯註 번역·뜻을 풀이함 /주해·뜻을 풀어 밝힘 ) ; ①번역한 사람이 붙인 주석(註釋 낱말이나 문장의 뜻을 쉽게 풀이함. 또는 ). ②번역과 주석을 아울러 이르는 .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벼람박 ; ‘바람벽(--집의 둘레 또는 방의 칸막이를 하기 위해 만든 )’ 사투리.

*번뇌(煩惱) : 망념(妄念)이라고도 하는데,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정신작용의 총칭이나, 이곳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 이외의 모든 생각을 말함.

*마장(魔障 마귀 /장애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 [참고]헤살;남의 일이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퇴보(退步 물러날·피할 /걸을·걸음 ) ; ①뒤로 물러나는[退] 걸음[]. 뒷걸음. ②정도나 수준이 이제까지의 상태보다 뒤떨어지거나 못하게 .

*퇴보심(退步心) ; 뒤로 물러나려는 마음.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일취월장(日就月將 /이룰·나아갈 / /얻을·나아갈 ) ; 나날이 다달이 발전하고 성장함.

*상봉(上峯) ; 가장 높은 산봉우리.

*병치레(病치레) ; 병을 앓아 치러 내는 .

*백만사(百萬事) ; 모든 .

*환각(幻覺 헛보일·미혹할·허깨비 /깨달을·느낄 ) ; 외부 사물이나 자극이 실제로는 없는데도 마치 사물이나 자극이 있는 것처럼 느끼는 감각. 환시(幻視), 환청(幻聽), 환미(幻味) 따위를 이른다.

*허망(虛妄 ·공허할 /망령될·허망할 ) ; ①거짓되고 망령(妄靈 말이나 행동이 정상에서 벗어남). ②어이없고 허무(虛無).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이뭣고~?’   ‘ 없는 생각()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 선실(禪室). ②선원(禪院).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선객(禪客 참선 /손님사람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 ·남의 ) ; 남의 집이나 가정을 높여 가리키는 .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도량으로 읽음.

 

*배례(拜禮) ; 절을 하여 예를 갖춤. 또는 .

 

Posted by 닥공닥정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세등09)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몽산화상이 총상인에게 보이심) 법문.(송담스님)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 (세등09)

 

(1/3) 약 21분.

 

(2/3) 약 20분.

 

(3/3) 약 21분.

 

(1/3)----------------

 

법문(法門)이라고 허는 것이 입으로 설헐 것이 있고, 귀로 들을 것이 있는 법문은참법문이라고 수가 없어. 그래서 고인이 말씀허시기를 『설() 없이 법을 설해야 하고, 들은 바가 없이 들어야 법문은 옳게 들은 것이 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동안에 대중스님네들이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 자주자주 들으면서 정진을 애써서 오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발심(發心) 해서 열심히 정진을 하고 있기는 하지마는 냉정히 말해서 우리는 중근기(中根機), 하근기(下根機)이기 때문에 법문을 설사 설한 있이 설한 법문이 되었건, 설한 없이 설한 법문이 되었건, 자주 듣고 자주 채찍질을 가함으로서 우리의 마음과 신심을 일깨우고, 나태(懶怠) 빠지지 않도록 계속 채찍질을 가해 나가야 우리의 목적 달성을 단축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정진(精進) 하는데 우리의 마음가짐을 어떻게 써야 하며, 정진을 여법(如法) 나가면은 차츰 우리의 경계(境界) 어떻게 진취있게 나가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하겠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열심히 공부를 가지고 좋은 경계가 닥쳐옴에도 불구하고 좋은 경계를 살려 나갈 모르고, 애써서 도달한 좋은 경계를 살리지 못하고서 거기에서 그릇 빗나가 버리는 애석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좋지 못한 경지가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옳은 알고 거기에 집착하는 그러헌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벌써 결제(結制)—어떻게 지냈는지 반살림을 지내고, 앞으로 해제도 20여일 밖에 남지를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 이러헌 말씀을 택해 왔습니다.

 

 

정진은 한마디로 말해서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공안에 의심(疑心) 있어야 한다.

아무리 잠을 자고, 일종(一種) 하고, 말을 하고,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않고 애를 쓴다고 해도 본참공안, 자기에게 주어진 자기의 본참화두에 의심이 없다고 하면은 정진은 옳은 정진이 아닙니다. 자기의 본참공안에 의심이 있어야 반드시 크게 깨달을 수가 있다.

 

우리는 불교의 교리 문제라든지 그밖에 천칠백 공안은 말할 것도 없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루에는 수천만 가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있어서 의심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의심을 허기로 하면은 보고 듣고 있는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의심 아닌 것이 없어. 의심, 의심, 한량없는 의심을 똘똘 하나로 뭉쳐서 자기의 본참화두로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조실 스님 법문을 듣고 듣고 그러면서 정진을 하는 것도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의 본참화두에 간절(懇切)하고 돈독(敦篤) 의심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법문을 듣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러한 법문을 들으므로 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의심이 간절히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법문을 듣는 것이다.

 

법문이 비단 녹음된 조실 스님 법문만이 법문이 아니고 오늘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있는 이것만이 법문이 아니라,

참으로 간절히 발심을 하고 신심을 일으킨 사람은 바람 부는 소리를 들어도 거기에서 자기의 본참공안을 들고, 일상생활 속에 보고 듣고 느끼고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건 또는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흔들어 놓는 일이건, 그러헌 일을 계기로 해서 나의 본참공안으로 돌아올 있고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을 일으킨다면은 법문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아니한 , 이것이 우리 정진에 있어서 가장 병이다.

모든 인연세속에 대한 인연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대중생활 나가는데 있어서 누가 잘하고 못하고, 시시비비(是是非非) 일체 인연을 놔버려. 누가 잘하건 못허건 그것에 말려들어서는 벌써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잘하는 것을 봐도 나는 화두를 들고, 못허는 것을 봐도 화두를 들고, 누가 아픈 것을 봐도 나는 화두를 들고, 일체 인연을 놔버리고서 앉았거나 누웠거나 섰거나 걸어가거나, 하루 종일 다맛 자기 화두를 들고 들고, 생각[別念] 일어난 알면 생각 버릴려 하지 말고 바로 거기에서 일어난 생각으로 화두를 ! 들면 되는 것이다.

 

앉어서도 하고, 서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걸어 다니면서도 해야 하지마는 있으면은 앉어서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공부를 다져나가는 것이 가장 힘을 얻는 데에 효과적이다.

 

그러면 앉어서 하는 데에는 어떻게 하느냐? 지나치게 눈을 ! 부릅뜨고 억지로 힘을 써서도 아니 되는 것이고, 지나치게 몸뚱이를 억제하고 구속하고 무리하게 몸뚱이를 다루어도 되는 것이다.

공연히 헛심을 들여 가지고 눈을 부릅뜨고 지나치게 몸을 억누르고 구속을 가하면은 혈액이 혈액순환 하는 데에 이상이 생겨서 상기병(上氣病)이라든지 그밖에 혈기(血氣) 고르지 못한 병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에,

 

다맛 단정(端正) 앉을지언정 그리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뜨고 몸과 마음을 지나치게 억제를 한다든지 구속을 한다든지, 무리를 가해서 하지 말고, 단정하게만 허고서 일체 긴장과 억제를 풀어 버리고서 화두를 들되,

지금도 이렇게 여러 차례 말을 했지마는 호흡을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 자연스럽고 부담없이 깊이 들어마셨다가 조용히 내쉬면서 화두를 들되,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이뭣고~?’   ‘ 없는 생각()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 무엇인고?’ 무자(無字) 허는 이는어째서 () 했는고?’ ‘어째서 ()라고 했는고?’ 없는 의심.

 

그렇게 애써서 해가되, 혼침(昏沈) 가지고 꾸벅 꾸벅, 이렇게 혼침이 오면은 정신을 바짝 차려서 (한두 소리내어) 화두를 들고, 그렇게 해도 아무리 해도 날씨는 더웁고 그래 가지고 혼침이 오면은 살모시 이렇게 사람 방해되지 않도록 살모시 일어나서 밖에 가서 왔다갔다 5너무 오래 돌아다니면 못쓰니까, 5 왔다갔다 해서 정신을 차려 가지고 와서 정진을 하고.

이렇게 공부를 다져 나가면은 자연히 모든 () 소멸(消滅) 되고. ‘마가 소멸된다 것은 혼침도 그것이 (), 산란심(散亂心) 그것도 () 그말이여. 밖에서 들어오는 (), 안에서 일어나는 (), 모든 것이 (), ()라고 수가 있는데.

 

성성적적하게 화두를 다져 나감으로써 마가 소멸이 되고, 마가 소멸이 되면은 눈이 떠억 안정이 된다 그말이여. 눈이 깜빡 깜빡 깜빡하는 것도 안정이 되고,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도 안정이 된다.

눈이 안정이 되면은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은 몸도 안정이 되어서, 조금도 지루한 줄도 모르고 어떻게 시간이 지나간 줄도 모른다.

 

그러니 ()라는 놈이 북적북적하고 그러면은 눈이 안정이 되는 것이고, 눈이 안정이 되면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은 몸뚱이도 안정이 되아서 괴롭고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말이여.

 

이렇게 해서 눈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고, 몸이 안정이 때에 이렇게 () 들어갔을 때에, 정에 들어간 고요한 것으로서 능사(能事) 삼아서는 안되아. ‘ 좋다. 이러헌 경지가 오래오래 계속 되었으면...’ 이러한 생각이 벌써 바른 생각이 아니다 그말이여.

그렇게 눈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고, 몸이 안정이 되고 해서 말로 없이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 그러한 경지에 들어갔을 때에 화두를 잊어서는 된다. 그럴 때에 화두를 깨끗하게 화두를 들어 나가야 한다 그말이여.

 

만약에 그러한 고요해진 경지에서 화두를 놓쳐 버리면은 그것이 (), 데에 잠기고, 적적한 데에 () 가지고서 아무리 그러한 경지로 오래오래 나간다고한들 깨닫지는 못하는 것이다.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 되는 것이다.

달마스님이 인도에서 오셔서 다맛 직지인심(直指人心),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도리만을 말씀을 하셨지, 이렇게 고요한 () 들어가지고 신통(神通) 나고 하는 그러한 것은 일체 말씀을 하시지 했다.

 

헌들(?) 그래 가지고 오래 지내면은 뭣이 알아지기도 하고 신통도 나고 틀림없이 그런 것은 그렇지마는 견성(見性) 하지 못하고 신통천안통, 천이통, 타심통, 신족통, 숙명통 이러헌 신통이 먼저 나는 사람은 그것은 외도(外道), 그것은 벌써 삿된 길에 떨어진 사람이라, 자기도 생사해탈을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남까지 그르치고 외도 마구니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한목 고요하고 조촐해질 화두를 일체처 일체시에 화두를 놓지 아니허되,

있으면 앉어서 공부를 다져 나가는 것이 아까 내가 말한 바와 같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앉어서 하루에 사분정진(四分精進) 하고 그밖에 방선(放禪) 시간이라도 시간이 있는 대로 항시 앉어서 단정히 앉어서 공부를 다져 나가고, 그러다 잠이 오면 일어나서 바람 쐬고 들어와서 하고.

그렇다고 해서 혼침에 떨어져 가지고도 계속 일어나지도 않고 앉어서 조는 것으로서 정진을 삼고, 앉아 있는 것에 집착을 가지고 그러헌 정진도 옳은 정진이 아니다.(처음~2051)

 

 

 

 

 

(2/3)----------------

 

이렇게 공부를 나가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도저히 공부가 잘된 같지 아니하고, 계속 몸도 괴롭고 마음도 답답하고 이래서그런데 그럴 때에 공부가 안되는 알고 대단히 번민을 하고 몸부림을 치고 그러는데,

깨끗이 깨끗이 잘되다가 ! 변해 가지고 화두가 들리지 아니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정신이 맑지를 못하고 몸도 뒤틀리고 지루하고 그런데, 그럴 때가 한고비 올라서기 위한 좋은 중요한 고비인데,

좋은 고비를 어떻게 단속해야 하느냐 하는 것을 모르고서 공부가 못된 알고 몸부림을 치고 번민을 하는데, 고비가 한고비 올라서기 위한 막이라 그말이여.

 

그래서 그럴 때에 아까 말한 대로 살며시 일어나서 왔다갔다 해서 맑은 공기도 쐬고 그렇게 포행(布行) 거니는 가운데에 화두를 단속해 나가야 고비를 참으로 올바르게 넘어가는 것이 되지,

공연히 번민하고 화두도 놓쳐 버리고 몸부림치고 공부를 그럭저럭 번민으로써 넘어간다면은 애써 공부해 가지고 참으로 좋은 고비 넘어갈 데에 가서 뒤로 물러서 버린 것이 된다 그말이여.

 

아주 기가 막히게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에우리는 그러한 고비를 수없이 차례를 그러헌 고비를 넘기고 나면은 인자 수월하게,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공부가 되아가.

그렇게 얼마 동안 나가다가 ! 변해 가지고 시간이 지루하고 몸이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때에 선용기심(善用其心), 마음을 가지고 지혜스럽게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서 고비를 넘기고.

 

그래서 공부하는 사람은 성성적적하게 순일하게 된다고 해서 기쁜 마음 내서도 아니 되는 것이고, 답답허고 지루하고 몸과 마음이 덤덤하고 답답하고 멍멍하고 이러헌 고비가 오드라도 번뇌심(煩惱心) 내지 말고 그래야 한다 그말이여. 그것이 공부해 나가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마음 다져가는 방법이다.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데에는 성성(惺惺)하면서 적적(寂寂)해야 . 성성하기만 하고 적적하지를 못하고, 적적하기만 하고 성성하지 못하면 공부는 옳은 공부가 아니여.

어쨌든지 성성한 가운데에 공부를 나가야 하는데, 성성하게 화두를 잡드리 나가면은 몸과 마음이 고요해 수밖에는 없고, 고요해지면은 그것이 () 드는 것이다.

 

그런데 정에 가서 가지가 있는데삿된 ()’바른 ()’ 있다 그말이여.

삿된 () 화두를 놓쳐 버리면은 그것이 삿된 정이여. 고요하고, 일체 마음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 망상이 끊어진 가운데에도 화두가 성성하게 들려 나가야 그것이 바른 ()이지, 화두만 놓쳤다 하면은 그것은 벌써 삿된 정에 들어가는 것이니 그것을 명심을 .

 

그렇게 성성하고 적적한 가운데에 일체 혼침과 산란심이 끊어져서 그렇게 고요하고 정한 데에 들어갔다가 일어설 때에 몸과 마음이 경청(輕淸)해서, 가볍고 맑아서 일체처에 화두를 들려고 하지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일체처에 공부를 애써서 단속할라고 하지 해도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움직이는 가운데에나, 고요한 가운데에나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

 

그때에 함부로 몸을 거동을 한다든지, 함부로 큰소리로 웃고 쓸데없는 잡담을 한다든지, 이렇게 하면은 지지리 애써서 들어갔던 좋은 경지가 흩어지고 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헌 경지에서 아주 우리의 행동과 마음을 자세히 지혜스럽고 조심스럽게 단속을 나가야 .

 

그래서 언제나 어느 때나 고요하고 조촐한고요 ()’, ‘조촐헐 ()’, 정정(靜淨) 글자를 여의어서는 되는 것이다. 고요한 것이 고요할수록 고요해지면은 결국은 깨닫게 되는 것이고, 조촐한 것이 지극(至極) 경지에 도달하면은 (), 빛이 통달(通達)하게 된다.

 

기운(氣韻) 엄숙해지고 맑아지면은 움직이거나 고요하거나, 움직이거나 가만있거나 동정경계(動靜境界) 우리의 움직임일체 행동, 생활 경계가 마치 뭣과 같으냐 하면은 가을 하늘과 같아서, 새파란 가을 하늘에 구름 없는 상쾌하고 깨끗하고 새파란 맑은 가을 하늘과 같은 그러헌 경지가 오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것이 공부해 들어가는데 있어서 첫째 과정이여. 그러헌 경지에 도달했을 때에 경지를 타서 공부를 단속해 나가야 한다.

 

가을 들에 가면은 농사도 짓고 맑은 물이 출출출출 출출출, 깨끗한 가을 들에 나가면은 가을 들물이 흘러가는데 그러한 가을 들물과 같고, 오래된 사당(祠堂) 향로(香爐)처럼 그러한 경지, 그래서 적적하고 성성해서 우리의 마음길이 끊어진다 그말이여.

일체 번뇌 망상이 저절로 끊어져 버리고, 일체 혼침도 거기에서는 물러가 버리고, 심지어 우리의 육신이... (녹음 끊김)(인간에 있는 것도 모르고 다못 화두만 면면히) 끊어지지 아니하고 화두 하나만이 성성적적하게 들려 있다 그말이여.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은 일체 우리의 중생의 티끌이 쉬어 없어지고 (), 빛이 발하게 된다. 이것이 둘째 과정이다.

 

만약에 이러한 경지에 도달해 가지고 지각심(知覺心) 내면은—‘빨리 깨달았으면...’ 이러한 깨닫기를 기다리는, 생각이라도 그러헌 생각을 일으키면은, 알기를 기대한다든지, 깨닫기를 기대한다든지 이렇게 되면은 순일(純一) () 끊어버린 것이 되어서 ()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화두를 들라고 하지 해도 저절로 들어지고, 이러헌 순일무잡한 경지에 도달했을 때에 지각심을 일으키는깨닫기를 기다린다든지, 뭣이 알아지기를 기다린다든지, 무슨 공안을 가지고 이리저리 따진다든지, 그러헌 지각심만 내지 아니하고,

오직 동정(動靜) 일여(一如)하고, 오매(寤寐) 성성(惺惺)하게 화두가 현전(現前)해서 마치 깨끗한 물에 달빛이 비치면은 아무리 물결이 일어나도 활발발(活潑潑) 달빛이 변함이 없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아무리 흔들어도 우리의 순일한 경계가 흩어지지 아니해.

 

외부로부터 어떠헌 충격을 받드라도 순일무잡한 경계가 흩어지지 아니하고, 어떤 보고 듣고 느끼고 간에 경지가 조금도 지장 없게 되어서, 안으로도 적적해서 흔들림이 없고, 밖으로 아무리 흔들어도 움직이지 아니한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면 이것이 셋째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결국은 우리의 의심이, 의심덩어리가 ! 터지면서 우리는 확철대오(廓徹大悟) 날이 머지않다 그말이여.

 

셋째 경지에 도달했을 때에 자기 자신도 공부 지어 나가는데 있어서 지혜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공부를 나가야 하지마는 주변에 있는 대중들도 역시 사람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 벌써 밖으로 보면은 공부가 순일하게 잘되어 가면은 밖으로도 보면은 아무라도 보면은 아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런 사람을 자꾸 찝쩍거려서 공부해 나가는데 방해가 되도록 하면은 죄가 되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서로서로 서로서로 보호를 하고 아끼고 조심하면서 공부를 닦아 나가야 된다.

 

그러헌 순일무잡한 경지에 도달해서 아무리 아무리 생각을 일으킬라 해도 일으켜지지 아니하고, 밖으로 어떤 충격을 가해도 동요함이 없이, 이렇게 저절로 그렇게 되아 가는 , 그것이 셋째 과정인데, 셋째 과정에 도달하게 되면은 일주일, 오래가도 일주일 가서 결국은 의단(疑團) ()하면서 확철대오 한다.

과거에 고봉(高峰) 스님도 그러헌 과정을 겪으셨고 그밖에 많은 선지식(善知識)들이 그러헌 경지를 거쳐서 깨달으신 분이 많은 것이다.

 

그러헌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은 마치 계란이, 닭이 알을 21 동안을 품고 있게 되면은 안에서 병아리가 차츰차츰차츰 거의 병아리가 되었을 때에 기일이 ! 차면은 밖에서 애미가 좃고, 안에서 병아리가 나오기 위해서 좃고 것이동시에 안에서 좃고, 밖에서 좃고 해서 ! 터지게 되면서 병아리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맷돌을 무거운 맷돌을 아래짝과 위짝과 맞추는데 있어서 좀해 맞는다 그말이여. 이리 쪼금 맞추고 저리 맞추고 이리저리 이리저리 허다가 찰크닥! 우아래짝이 맞는 거와 같이, 이렇게 해서 자기를 깨닫게 되고 불조(佛祖) 득인증처(得人憎處) 잡아 ()하게 된다.

 

불조(佛祖) 사람 미워한 곳이부처님과 조사는 진즉 내가 나를 깨닫는 일대사(一大事) 해결을 짓고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신 은인이지마는 불조의 허물이 하나가 있다. 허물이 무엇인가를 내가 나를 깨달음으로써 불조의 허물을 우리는 똑바로 깨닫게 된다 그말이여.

내가 나의 본참공안(本參公案) 여지없이 타파(打破)하고 불조의 허물을 여지없이 꿰뚫어 보게 때에 우리는 반드시 선지식을 그때에 친견을 해서 단련을 받고, 깨닫고 뒤에 우리 공부 지어가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친견을 못하면은 지지리 애써서 좋은 경지에 들어갔다가 거기에서 애석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기 때문에마치 제호() 인도에서 가장 영양이 많고 맛있는 음식인데 그런 우유로써 만든 것인데, 제호를 관리를 못함으로써 그것이 변질이 되면은 사람을 해롭게 하는 독약으로 변할 수가 있다 그말이여.

그러한 좋은 맛있는 귀중한 제호와 같은 음식을 얻어 가지고 관리를 잘못해 가지고 독약을 만든다고 해서는 기가 막히게 애석한 일이다.

 

그렇게 애를 가지고 깨달은 경지에 도달을 했다 허드라도 선지식(善知識) 만나서 오후(悟後) 공부 지어가는 구체적인 지도를 받지 못하게 되면은 외도 마구니가 되어 수도 있고, 공부가 지지리 고비에 올라서 가지고 망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선지식을 만나서 지도를 받아야 한다.(2052~4004)

 

 

 

 

 

(3/3)----------------

 

우리가 공부를 해서 어떤 그런 좋은 경지에 올라섰다 하드라도 그것을 ()함을 삼지를 말어야 한다.

 

깨달은 뒤에 만약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은 () 한두 가지가 아니다.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만나서 철저한 지도를 받아야 한다.

반드시 불조기연(佛祖機緣), 일체 공안에 대한 탁마(琢磨) 해야 하고, 불조의 제자를 지도하는 가운데에 문답이라든지, 역대조사(歷代祖師) 출가해서 도를 닦아서 교화하는 모든 기연상(機緣上) 조금이라도 걸림이 있으면은 이것은 깨달은 것이 옅은 것이여. 그래서 현묘(玄妙)함을 다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현묘함을 다하지 못하고서 일기지사(一期之事)—정진한 사람은 열심히 공부하면 반드시 일기지사가 있는데, 그러한 일기지사로써 만족함을 삼고 현묘함을 다하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원만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남까지 해롭게 맨들고 결국은 불법(佛法)까지 망치게 되는 것이여.

 

그래서 깨달은 뒤에 반드시 선지식을 만나서 탁마를 하고 정식으로 인가(印可) 받아서 일체 불조기연상(佛祖機緣上) 맥힘이 없도록 이렇게 다음에 터억 자기의 자취를 감추고 철저히 오후(悟後) 보림(保任) 다음에 유교, 불교, 도교의 그러한 심지어 제자백가지설(諸子百家之說)까지라도 한바탕 거쳐서 보고 그래 가지고 다생습기(多生習氣) 녹여야 한다.

 

그래 가지고 원명무애(圓明無碍)해서그저 밝아서 조금도 맥힘이 없어야사, 높이 그리고 멀리 날을 수가 있어서, 빛이 멀고 그리고 넓게 비추어서 자기 자신도 정말 확철대오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 뿐만 아니라 일체 중생을 교화하는 데에 맥힘이 없어야 비로소 부처님과 역대조사를 욕되게 허지 아니하고 은혜를 갚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를 여법(如法)하게공부를 처음과 중간과 끝을 이렇게 여법하게 단속해 나가지 아니하고 조금 얻은 것을 가지고 족함을 삼고 여법하게 단속해 나가지 아니한다 하면은 반드시 다시 옛날 깨닫기 이전의 그러한 생활로 다시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말할 때에는 깨달은 같지마는 경계를 당하면은 도로 () 버려. 말이 법도가 없이 미친 사람처럼 취한 사람처럼 말이 함부로 나와 가지고 입만 벌렸다 하면은 큰소리치고, 입만 벌렸다 하면은 입에 담을 상스러운 소리로 세월을 보내고,

어찌 보면 미친 사람 같고, 어찌 보면 도인 같고, 어찌 보면 취한 사람 같고, 이렇게 해서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사람을 속이고.

 

불법에는 공공연하게 누구에게라도 말을 있는 면이 있고, 함부로 까발쳐서 말을 해서는 되고 은밀히 때와 장소를 가려서 사람의 근기(根機) 따라서 말이 있고, 주어서는 말이 있는 것이여.

함부로 말해 주어서는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러헌 사람에게는 말해 주어서는 절대로 그러헌 말씀도 있는 것인데, 그것을 가리지를 못하고 함부로 말을 가지고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신심이 떨어지게 맨든다든지, 오히려 의심을쓸데없는, 망설이는, 주저하는, 갈팡질팡하는 의심을, 회의심(懷疑心) 일으키게 하는 그러헌 경우도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부처님이 팔만사천 법문을 말하셨지마는 말씀이 모든 사람에게 누구에게나 말해 주어도 이익이 되냐 하면 그런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반드시 근기와 사람의 현재 도달해 있는 경지에 따라서 말이 있고, 주어서는 말이 있는데, 그것을 가리지를 못한다 그말이여.

그것이 깨달은 뒤에 바른 선지식의 철저하고 직접적인 지도를 받지 못하고, 오후(悟後) 깨달은 뒤에 정진를 올바르게 하지 못하고서 잘못 단속을 함으로써 일어나는 폐단이다.

 

철저히 깨닫기 전에 옳은 선지식의 철저한 지도하에 공부를 하고, 깨달은 뒤에도 반드시 안목을 갖춘 선지식의 탁마와 오후(悟後) 지도를 받아 가지고 여법하게 정진을 사람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 가지고 저도 망하고 남도 망하고 불법을 망해. 모르는 사람이 보면아따, 도인이다. 거리낌이 없고 기가 맥힌 도인이라고 잘못 좋게 판단한 사람이 있지마는,

불법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높고, 얼마나 깊고, 얼마나 원만한 것이기에 그렇게 방편을 선방편(善方便) 줄을 모르고, () () 가리지를 못하고, 중생의 근기를 살피지를 못하고서 함부로 인과(因果) 갖다가 부정해 버려.

말을 나투어서 말이 있고, 은밀히 해야 말이 있는 것인데 그런 것을 가리지 못해 가지고는 죽고, 죽이고, 불법 망하고, 이것이 얼마나 해가 되는 것이냐 그말이여.

 

, 공부라는 것이 깨닫기 전에도 기가 맥히게 중요한 것이지마는 중간에 공부가 잘되어 때에도 참으로 지혜스럽고 자상하고 조심스럽게 단속을 나가야 하고, 깨달은 뒤에도 참으로 바른 선지식의 알뜰하고 직접적이고 간절한 지도를 받어야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공부인은 , 그것에 대해서 깊이 명심을 해야 .

 

그리고 공부는 () 없는 것이여. 바다와 같아서 깊이 들어갈수록 한량이 없이 드는(?) 것이여.

부처님하면은 부처님은 공부 하고 인자 끝났으니까 아무 것도 하고, 그것으로써 마지막 도달할 데에 도달했으니까 더이상 곳이 없냐 하면 그게 아니라, 부처님도 한량없이 공부를 나가시는 것이여. 끝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도 끝이 없는 것에 공부라 하는 것이여. 부처님이라고 해서 끝났으니까 해도 괜찮은 것이 아니여.

 

하물며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서 확철대오 했다고 해서 그것이 끝이 아니어. 깨달은 뒤에도 한이 없는 것이 우리가 나아갈 공부라, 세계에 육도법계에 중생도 없을 때까지 나도 공부하고 중생 교화하고, 중생 교화 하면서 공부하고, 공부가 자리(自利) 이타(利他) 둘이 아니고, 동시에 중생도 없을 때까지 우리의 공부는 끝이 없는 것이여.

 

달마스님이 말씀하시기를부처님의 마음 깨닫는 도리가 우리가 우리 마음을 깨달으면 부처요, 깨닫지 못하면 중생인데, 깨달은 부처님이나, 마음이나, 우리 깨닫지 못한 중생이 조끔도 차이가 없다

부처님하면 우리와는 동떨어진 전혀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는 그러헌 것이 아니라 부처님과 마음과 우리 중생이 조끔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자성, 본분(本分) 도리(道理) 입각(立脚)해서 보면은 하나도 차별이 없는 것이여. 부처나, 마음이나, 우리 중생이나,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본분 도리에 입각해서는 깨달을 것도 없고 () 것도 없고, () 없고 () 없고, 열반도 없고 조금도 차별이 없는 거여.

우리가 참선(參禪) 하는 것은 차등(差等) 없는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공부하면 반드시 확철대오 있는 능력과 자격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 것이여. 우리는 그렇게 믿고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금년 겨울에 이렇게 좋은 스님네와 좋은 보살님네들이 모여서 이렇게 처음부터서 열심히 열심히 정진을 허더니마는 중간쯤에 와서 더욱 신심이 돈발(頓發)하고 여법히 정진을 하고 해제가 이렇게 가까워 올수록에 더욱 공부를 잘하고 있다고 원장 스님이나 입승 스님을 통해서 말씀을 듣고, 내가 이렇게 봐도 능히 짐작을 수가 있습니다.

 

흔히 벌써 ()살림 지내면은 공부할 마음이 풀어져 가지고 공부가 되지를 않고, 하루하루가 빨리 해제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지루하고 시간이 가서 애를 먹고 흔히 그러헌 것인데,

금년에 세등선원에 모인 대중은 전혀 그러헌 기색(氣色) 보이지를 않고 날짜 가는 것이 오히려 애닯고 너무 어떻게 시간 날짜가 지내간지 모르게 벌써 이렇게 지내가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것은 그만큼 신심(信心) 분심(憤心)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 간절해서 공부가 여법허게 잘되어간 증거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앞으로 이십 여일 남았는데 하루하루를 더욱 지내간 동안보다도 훨씬 간절하고 알뜰하게 단속을 해서 공부를 잘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진로해탈(塵勞解脫) 사비상(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댄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라

나무~아미타불~

 

생사해탈(生死解脫) 보통 일이 아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보통 마음으로 보통 수행해 가지고 성취할 있는 그러한 보통 일이 아니다, 쉬운 일이 아니다.

화두(話頭) 정말 알뜰히 간절히 다잽이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정말죽을 ()’자를 이마빡에다 붙이고 정말 철저히 단속을 해서 공부를 지어나가야만 것이다.

 

겨울에 되게 강추위를 해야 매화 몽우리가 열려서 향취가 우리의 코에 들어올 수가 있다. 강추위를 허지 아니하고 그러면은 매화꽃이 피기는 펴도 향취가 없는 것이여. 되게 강추위를 가운데에 모진 추위를 이겨내고 그런 가운데에 피어야 매화꽃이 배나 향기로운 것이다.

우리가 되게, 간절히 그리고 골똘히 애써서 정진한 뒤끝이라야 확철대오 수가 있는 것이지, 그렁저렁 그저 시시비비와 한화잡담(閑話雜談)으로 그렁저렁 지내는 가운데에 어찌 하늘과 땅을 놀래게 하고, 하늘과 땅을 울리게 있는 그러헌 확철대오가 어찌 얻어질 수가 있겠느냐?

 

금생에 만나기 어려운 사람 받아 가지고 금생에 확철대오를 해서 생사해탈 헐랴면은 그만큼 철저하게 간절하게 발심을 해서 철두철미하게 하루하루를 단속해 나간 데에서 목적 달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 말씀이여.(4005~6035)()

 

 

 

 

------------------(1/3)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나태(懶怠 게으를 /게으를 ) ; 행동, 성격 따위가 느리고 게으름.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그릇 ; 옳지 않고 잘못되게.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어째서 () 했는고?’ 또는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끼만 먹는 .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정성스런·절박할 )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돈독하다(敦篤-- 도타울 /도타울 ) ; (인정이나 마음이)매우 도탑고 믿음성이 있고 진실하다. *도탑다 ; (정이나 사귐이)깊고 많다.

* 생각 ; 별념(別念).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p164-166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생각[別念] 있으면 고인이 말한 「잡독(雜毒)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생각[別念]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외에는, 불법(佛法) 온갖 좋은 일이라도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 취하거나[], 버리거나[], 집착하거나[], 변화하는[] 것이 모두 생각[別念]이니라.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헛심아무런 보람이나 이득이 없이 헛되이 쓰는 .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혈기(血氣) ; ①피의 기운이라는 뜻으로, 힘을 쓰고 활동하게 하는 원기(元氣) 이르는 . ②적극적으로 무슨 일을 하려는 마음속의 뜨거운 기운. ③혈액과 기식(氣息 숨을 쉬는 기운) 아울러 이르는 . 또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

*단정히(端正- 바를 /바를 ) ; 옷차림새나 몸가짐 따위가 흐트러짐이 없이 얌전하고 바르게.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복식 호흡(腹式呼吸) ; 숨을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해서 가로막의 신축에 의하여 하는 호흡. 단전호흡(丹田呼吸).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살모시 ; 살며시(남의 눈에 띄지 않게 가만히).

*() ; 마구니. []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 하고, 줄여서 ()라고만 한다。장애자(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魔軍)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 보고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것이다。옛말에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 하시니라.

*소멸(消滅)사라져 없어짐.

*산란(散亂 흩을 , 어지러울 ) ; 혼침(昏沈)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 마음이 어지러운 .

*() : ①계()•()•() 3(三學) 하나. []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능사(能事 능할·잘할 / ) ; ①잘하는 . ②쉽게 잘해 있는 .

*직지인심(直指人心견성성불(見性成佛) ; 부처는 마음이니, 사람의 마음[人心] 곧바로[] 가리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신통(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없는 것을 헤아림을 ()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이라 한다.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①신족통(神足通)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있는 . ②천안통(天眼通)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 ③천이통(天耳通)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없이 무슨 소리나 듣는 . ④타심통(他心通)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생각하는 바를 아는 . ⑤숙명통(宿命通)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아는 . ⑥누진통(漏盡通)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 닦는 외도(外道)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 읽어도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여기서는 누진통을 제외한 오통을 가리킨다.

*외도(外道 바깥 / ) ; ①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 가르침. 또는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조촐하다 ; ①아담하고 깨끗하다[]. ②행동, 행실 따위가 깔끔하고 얌전하다. ③외모나 모습 따위가 말쑥하고 맵시가 있다.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새벽, 오전, 오후, 저녁)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2/3)

 

*번민(煩悶 번거로울·괴로워할·어지러울 /번민할·마음이 답답할·걱정할 ) ; 마음이 답답하여 괴로워함.

*한고비 ; 어떤 일의 진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어려운 단계나 국면.

* ; ‘울타리 사투리.

*포행(布行) ; 참선(參禪)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

*수월하다 ; 까다롭거나 어렵지 않아 하기가 쉽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지지리 ; ‘기껏(정도나 힘이 미치는 데까지)’ 사투리.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지극하다(至極-- 이를·매우·궁극·극진히 ·깊을 /·다할·막다른 지경·매우 ) ; (마음이나 정성이)더없이 극진(極盡)하다(매우 정성스럽다).

*사당(祠堂) ; 조상의 신주(神主) 모셔 놓은 . 또는 신주를 모셔 놓기 위해 조그맣게 집처럼 만들어 .

*향로(香爐 /화로 ) ; 향을 피우는 쓰는 작은 화로.

*지각심(知覺心) : ①바로 경계로구나 알았다 깨달았다 하는, 그런 마음。 ②빨리 깨달으려는 마음。누가 깨닫게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오매(寤寐 잠이 /잠잘 ) ; 자나깨나 언제나.

*성성(惺惺) ; 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활발발(活潑潑) : 고기가 기운 좋게 위로 뛰노는 모습.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의단(疑團) ()하다 ; 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의 덩어리[疑團]’ 깨지다.

[참고] 송담스님 법문참선법 A’ 에서.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고봉(高峰) 스님 ; ‘고봉 스님 자신의 수행담법문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

*애미 ; ‘어미 사투리. *어미 ; 어머니 낯춤말. ②새끼를 낳은 암컷의 동물.

*좃다 ; ‘쪼다(뽀족한 것으로 찍다)’ 사투리.

*좀해 ; 좀처럼(여간하여서는).

*우아래 ; 위아래(위쪽과 아래쪽).

*불조득인증처(佛祖得人憎處) ; 부처와 조사의 사람에게 미움받은 . 불조의 패궐처(敗闕處)라고도 하니, 부처와 조사의 허물된 .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3/3)

 

*불조기연(佛祖機緣) : 차별기연(差別機緣) ①중생이 발심하여 구경의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모든 보살이 근기(根機) 단계에 따라 가지가지 방편을 써서 중생에게 작용하는 것。 ②선종에서는 종사가 학자의 근기와 인연에 따라 베푸는 수단으로, 고금(古今) 불조의 언교(言敎)•기연(機緣)•공안 등을 말함.

*탁마(琢磨 / )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②옥이나 따위를 쪼고 .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기연(機緣 기틀·기회·작용· /인연·이유·연줄 ) ; ①시기인연(時機因緣) 준말. 어떠한 기회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동기. ②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부처님 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을 만한 인연, 조건이 되는 . ③가르침을 주고받게 스승과 제자의 인연.

*현묘하다(玄妙-- 검을·깊을·고요할·신묘할 /묘할·신묘할·젊을 ) ; (이치나 기예의 경지가)헤아릴 없이 미묘하다.

*일기지사(一期之事) ; ①한 때의 . 일시적인 . ②당장의 .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오후보림(悟後保任) ;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 습기(習氣) 제하고 ()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공부. 장양성태(長養聖胎).

*제자백가(諸子百家) ; 중국 춘추시대 말기부터 전국시대에 걸친 여러 학자 여러 학파를 통틀어 이르는 . 시대의 사상가들을 제자(諸子) 하며, 학파들을 백가(百家) 부른다. 음양가(陰陽家) 추연, 유가(儒家) 공자와 맹자 순자, 묵가(墨家) 묵자, 법가(法家) 한비자, 도가(道家) 노자와 장자, 병가(兵家) 손자 등이 있다.

*습기(習氣) ; 과거의 인식행위경험학습 등이 아뢰야식(阿賴耶識)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 같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없는 미혹함)하는 .

*공공연하다(公公然--) ; (사실이)거리낌이나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회의심(懷疑心) ; 어떤 일이 올바른지 확실한지 여부를 의심하는 마음.

*선방편(善方便) ; 선교방편(善巧方便). 방편에 정교한 . 뛰어난 수단. 부처님이 () 설함에, 교묘하게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 여러가지 방법·수단을 사용하는 .

*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과보가 있다는 도리.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신분· )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꿈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대해탈(大解脫)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첫구절에서 말한  일원상(一圓相)’ 이것을 나타냄이다.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입각(立脚 /다리 ) ; 어떤 사실이나 주장 따위을 근거로 삼아 거기에 [] 디딤[]( 입장에 )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차등(差等 어긋날·다를 /등급·같을 ) ; 고르거나 가지런하지 않고 차별이 있음.

*돈발(頓發 갑자기 /일어날·나타날·밝힐 )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 直頓의 , 곧바로.

* ; [주로없다’, ‘않다’, ‘못하다따위의 부정어와 함께 쓰여]아무리 애를 봐도 도무지.

*기색(氣色 기운 /모양··얼굴 ) ; ①마음의 작용으로 인하여 얼굴빛[]으로 드러나는 기운[]). 얼굴빛. ②어떠한 행동이나 현상 따위가 일어나는 것을 짐작할 있게 하여 주는 눈치나 낌새.

*애닯다 ; 애달프다. *애달프다 : (마음이나 사연 따위가) (근심에 싸여 초조한 마음) 닳도록 쓰리고 아프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게송) 진로해탈사비상~’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진로(塵勞 티끌·속세 /근심할 )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승두(繩頭) : () 목수가 쓰는 직선을 긋는 노끈이고 () 어조사다。 불조의 계법(戒法) 규칙. 화두.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다잽이하다 ; 다잡이하다.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죄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몽우리 ;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아직 피지는 않고 망울만 맺혀 있는 ).

*한화잡담(閑話雜談) ; 심심풀이로 한가롭게 얘기를 나누거나[閑話], 쓸데없이 지껄이는 [雜談].

 

Posted by 닥공닥정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몽산화상시고원상인(蒙山和尙示古原上人) (2/5) 몽산화상이 고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56)—몽산 01-2. 몽산시 고원상인(2) (임자72.06.11.새벽)
 
(1) 약 20분.
(2) 약 21분.
 
(1)------------------
 
무심운수출(無心雲峀出)허니  유의조지환(有意鳥知還)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노화월백처(蘆花月白處)에  초택창랑사(楚澤滄浪詞)니라
나무~아미타불~
 
화두가—의단독로(疑團獨露)한 화두, 활구 화두, 활구참선, 그 화두가 독로해서, 의단이 독로해서, 필경에 그만 일체처에 독로해서, 뭐 사이가 있나?
무슨 조끔도 빈틈이 없이 화두 의단이 독로되어 그때는 필경 깨달은 수밖에 없으니, 그대로 있들 않거든.
 
필경 그건 깨달라. 불과해야 일언지하(一言之下)인데 뭐.
더군다나 그저 일언지하에, 그저 사흘만에, 7일만에 확 깨달라 버리는 거 그것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이여.
 
뭣을 알아서, 봐서, 생각해서 뭐 그렇게 그런 것이 아니여. 그래 의심(疑心)을 갖춰라.

 

무심(無心)중에 그만 산을 보다가도 툭, 뭘 보다가도 툭, 새란 놈이 돌아와 지저거려도 깨달네, 새소리에도.

 

월백노화처(月白蘆花處)에, 달 떠올라와 노화처(蘆花處)에, 그 달 모도 갈대꽃 사이에 달 비친 데에 툭 깨달라.

그래 초택창랑사(楚澤滄浪詞)라. 일 마쳐 버린다 그말이여.

 

 

이렇게 어제 아침에는 주작(做作) 때문에 안된 것을 억지로,

발심도 안되고, 신심도 갖추지 못하고, 분심도 없고, 그저 사람이면 ‘그저 사람인가 보다, 살다 죽는가 보다’

 

죽는 거 누가 아나? 당장에 그만 곧 숨 떨어질 지경이 앞에 있지마는 그런 것조차 생각할, 그런 것까지도 생각할 겨를도 없는 것이고, ‘이렇게 그저 인생이 몸 받아 나와서 이렇게 사는 것이로구나’

 

‘그 참선이나 좀 어디 선방(禪房)이나 좀 들어가 볼까?’

삼동(三冬)에 선방에 들어와서 그날그날 그저 하루하루 그저 이틀, 남 따라서 그저 그럭저럭 그럭저럭 그렇게 지내는 것, 그것은 발심(發心)을 못한 관계여.

 

참으로 발심을 해서 꼭 할 것이 참선(參禪)뿐이다. 미룰 수도 없고.

언제 시간을 미뤄? 언제 내일 해? 오늘은 이것 해 놓고 내일 해? 금년만 이것 해 놓고 명년부터 해? 그런 식으로는 틀린 거여.

 

직하(直下)에 발심을 해서—한번 그 시간에 발심했거든, 마음을 발했거든, 그때부터 해야 하는 것이여.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꼭 할 것이 참선 밖에는 없어. 그렇지 않어?

 

깨달지 못하면은 그 깨달지 못한 곳에서 그놈의 중생고(衆生苦)를 어떻게 할거여?

우리가 지금 깨달지 못하고 이 몸 뒤집어쓰고 있지만은 그것 편안한 거 아니여.

그 조끔 편안하고 밥 먹고 배부르니까, 아들도 있고 딸도 있고 뭐 그도 어쩌고 어쩌고 이래 있으니까,

뭐 그것이 인생만족, 이만 했으면 족해? 소용없어. 그런 것을 믿고 앉어서, 참선은 않고 그럭저럭 소용없어.

 

발심이 안됐기 때문에 혼침(昏沈) 도거(掉擧)가 개입작득(皆入作得)을 해.

잠 아니면 망상, 그놈의 것 밖에는 없어.

 

어디 참선을 발심을 했어야지. 발심 발심 하니까 어떻게 발심인가?

발심을 못했으니 도거와 혼침뿐이여. 그놈 안 들어오면 할 것이 없어.

앉었으나 섰으나 뭐 그밖에는 들어온 것이 없어. 그래서 그날그날, 그날그날, 그날도 그날, 이렇게 해서 일생 보내 버리는 것이여.

 

발심을 척! 해 가지고는 공부를 한바탕 하고 앉었어 보아라.

그 망상 시간, 혼침 잠자는 시간, 그놈이—이것 참 얼마나 원통하고 그까짓 짓을 하고 앉었는가?

그까짓 짓을 할라면 뭣 할라고 선방에 앉었어? 맹렬하게 다루어라.

 

그 ‘이뭣고?’ 하나, 세상에 ‘이뭣고?’가 ‘나’인데, 내가 나를 그렇게도 몰라. ‘이뭣고?’를 그렇게도 몰라.

부처님이 출세하셔서 그렇게까지 다 말씀을 해 줘도 몰라.

 

그 숭악한 못된 애착, 세상에 모도 그 인연 애착, 그까짓 것이 도대체 뭣이냐 그말이여.

애착 다 끊어버리고 이렇게 들어와서 선방에 와 앉았음에 한바탕 참선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참선을 하는 데는 발심이 그놈이 되어야 하지. 발심도 되지 않고 앉었으니 되어?

발심이 없기 때문에 분심(憤心)도 없고, 분한 마음—나를 내가 알지를 못하고 산다는 것이 뭣이여? 분한 마음뿐이지. 그놈 분한 마음.

그 분한 마음이 없으니 뭐 신심(信心)인들 있어? 콱 믿는 마음인들 어디 있어?

 

첫째, 발심을 해서 화두를 들고 ‘이뭣고?’를 들고, 그 하는 시간을 꼭 일념(一念)을 다루어라.

화두 일념 ‘이뭣고?’ 고놈 하나, 고놈을 다스려 ‘이뭣고?’를 자꾸 계속 해.

 

‘이뭣고?’ 그놈이 없어지기 전에, 도망가기 전에, 그 뒤에 ‘이뭣고?’를 거다가 딱 때려 붙여. 또 때려 붙이고 또 때려 붙이고. 그놈이 일념이 계속해서, 일념이 연속해서 끊어지지 않게 해 나가는 것이여.

 

‘하루를 그날 하루를 공부를 잘해라. 하루 동안을 그놈을 잘해라. 또 내일 하루를 또 다시 더 잘해라’

그럴 것 없어. 하루 동안, 하루 동안 그거 너무 늘어져서 못써.

 

일념 일념을 단속해라.

‘이뭣고?’ 하나 했거든 그 뒷 ‘이뭣고?’가 더 분명하게 때려 붙여야 한다.

‘이뭣고? 대체 이뭣고?’ 아! 이뭣고 그놈이 게을지 않게 틈이 없이 거다 붙여 다루어 해 나갈 것 같으면은 그게 곧 의단독로(疑團獨露) 아닌가? 그 타성일편(打成一片) 아닌가?

 

그놈이 계속해 나갈 것 같으면은 하루가 뭣이여, 이틀이 뭣이며, 일년도 그만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것이고.

 

그놈 하나를 단속 못하고, 그만 한번 하다가는 어디로 도망가 버리고는, 그만 망상심 그 못된 번뇌 거기 쳐박혀 가지고는 그만 몇 시간씩 지내간다. 화두 하는 학자가 이리하여 되어?

 

맨 그래서 혼침(昏沈) 도거(掉擧) 그놈이 개입작득(皆入作得)해 버려. 고놈 생활해 버려.

종일 가야 살림살이가 그놈의 것 뿐이여. 잠 아니면 망상, 망상 아니면 별놈의 생각 다 짓고 앉었다 그말이여.

 

갱요좌득단정(更要坐得端正)해라.

공부할 때에도 아무 때나 앉지 말고—그냥 픽 들어와 앉어서 다리 쭉 뻗고 앉었던지, 허리를 굽히고 그냥 앉던지, 고개를 그만 숙이고 앉던지, 그것 벌써 참선하는 사람 아니여. 좌선(坐禪)하는 사람 아니여.

 

좌선하는 사람은 좌(坐)부터 단정(端正)해라. 단정하게 깨끗이 앉어라.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금강권(金剛拳)을 쥐고 하는 법식에 그런 건 너무 필요 없어.

금강권 쥐고, 무슨 다리 가부좌하고 드리(마구) 앉었다고 다리만 점점 그만 끊어질 것 같지, 그거 그만두고.

 

단정히 앉을 수가 있지 않는가?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허드래도 단정히 앉을 수가 있는 것이고.

딱! 앉어서 어쨌든지 수기척량(竪起脊梁)해라. 척량(脊梁)은 펴라.

 

이거 순전히 참선해 나가는 거 얘기해 주는 거여. 뭐 다른 법문 아니여. 선객(禪客)들이 참선하는데 참선 법문해 주는 거지. 무슨 다른 법문이 있어?

 

좌득단정(坐得端正)해라. 좌를 단정히 하고, 척량(脊梁)은 세워. 등줄기가 굽으면 안되니까, 이걸 세워.

 

딱! 세우고는 앉어서 첫째 ‘이뭣고?’를 해.

화두(話頭)—‘판치생모(板齒生毛)’면 ‘판치생모’, ‘이뭣고?’면 ‘이뭣고?’ 화두를 탁! 챙긴다 그말이여. 그게 첫 조건이여. 그럴 거 아닌가?

 

좌(坐)만 단정히 앉었다고 뭔 소용이 있나? 허리만 굽히지 않는다고 무슨 소용이 있나? 좌득단정도 소용없고, 허리를 척량을 세운다고 소용없어.

 

수기척량(竪起脊梁)을 하고, 척량을 세우고 좌(坐)를 단정히 앉는 것은 ‘이뭣고?’하나 하자는 것이여. 목적이 ‘이뭣고?’여. 참선 화두여.

화두 하나를 역력(歷歷)하게 거각(擧却)을 해라. 그놈을 추켜들어 거각을 해라.

 

그러면은 수마(睡魔)가 어디서 와? ‘이뭣고?’가 그렇게 분명한데 어디서 와? 잠 그놈이 어디서 오냐 그말이여.

발심도 없고, 신심도 없고, 분심도 없고, 공연히 들어와서 남의 시비나 하고, 그러고 왔으니까 그렇지. 그리 해 온 사람이니 그밖에는 올 것 없지.

 

앉으면 잠이나 오고, 망상이나 들어오고, 남은 참선하지마는 어디가 참선한 체 하고 앉아서 망상 번뇌 모도 고런 것만 분석 따지고 앉었지.

이까짓 놈의 경계, 이까짓 놈의 짓을 할라고 들어왔나? 선방에 잠이나 졸고 번뇌 망상이나 할라고 들어왔나?

 

거기서 망상이 들어오던지, 혼침이 들어오던지, 무엇이 오던지, 통(전혀) 고까짓 것을 걱정 근심도 하지 말어라. ‘이뭣고?’만 챙겨라. 오직 ‘이뭣고?‘ ‘시심마(是甚麽)오, 이뭣고?’ 그저 ‘이뭣고?’만.

 

그저 무엇이 올라오든지 말든지 그까짓 것 통 불고(顧)해 버리고,

염기(念起)를 불파(不怕)하고—무슨 망상 일어나는 놈을 두려워하지 말고, 유공각지(唯恐覺遲)니라—그저 이건 ‘이뭣고?’ 깨달으라는 것이여.

 

‘이뭣고?’ 아니면은 ‘판치생모’ 다 배운 대로.

이놈 쪼끔 하다가 또 안된다고 또 저놈 또 쪼끔 하고, 또 저놈 하다가 안된다고 이놈 쪼끔 하고. 그건 화두 아니여. 되들 안 해. 그런 법 없어.

 

똑같은 거니까. 하나 딱! 들거들랑 고놈 하나, 그 화두 일념 일심, 그 화두 하나, 그 참 소중한 거여.

 

한 생각씩 꼭 한 생각씩, 그 첫 생각 그놈이 끊어지기 전에 연속(續)을 해. 뒤 연속을 해. 뒷 생각을 척! 거다 때려 붙이고 때려 붙이고.

‘이뭣고?’ 그놈이 분명할 때 더욱 ‘이뭣고?’. ‘이뭣고?’가 더욱 더 ‘이뭣고?’.

 

그것 해서 그 틈 없이, 사이 없이 그만 해 나갈 것 같으면, 한 시간이 두 시간 되고, 하루 되고 이틀 되고 기맥힌 것이여. 화두정락(話頭定樂)이라니! 화두가 들어와서 그 정락(定樂)! 참 좋다.

 

세상에, 견성(見性)하기를 목적하는 것이 아니라, ‘이뭣고?’ 하나 의단독로(疑團獨露)를 목적해라.(처음~20분4초)

 

 

 

 

 

(2)------------------

 

꺼떡허면 건방지게 들어와서 ‘법담(法談)한다’고 ‘대답한다’고.

당장 쫓아내 버린다 내가. 했어야지! 그걸 옳게 했으면은 왜?

(견성)한 건 벌써 알어. 두말 할 것도 없어. 답할 것도 없고 벌써 알어.

 

그것 못쓴 거여. 그 거짓 견성. 그 뭐할라고, 벌써 자기는 알면서도 그따구 짓 하거든. 천하에 건방지고 못쓸 것이 그거여.

벼락이지. 이번에 그 쫓겨난 아이, 가서 기맥힌 또 편지를 했구만. ‘다시는 그런 버릇없이, 큰스님을 여의고 어디가 하겠습니까’하고 ‘다시 용서해 달라’고.

용서가 무엇이 용서여? 용서할 것이 따로 있지. 용서가 뭣이 용서여.

 

똑 그놈의 데서 올라온 것들은 다 그 모양이여! 웬일이냐 그말이여. 불교가 이렇게 되다가는 큰일나 버리겠어.

“양말 한 짝입니다” 이따구 소리나 하고, 아 이런 놈의 응..

 

견성 벌써 알어. 말할 것 없어.

 

재각안피중(纔覺眼皮重)이다.

이렇게 다루어 갈 것 같으면은—그 ‘이뭣고?’를 하던지, ‘판치생모’를 하던지, 화두를 이렇게만 똑 다루어서 해 나갈 것 같으면은, 화두뿐이여. 아무리 해도 화두뿐이여.

 

그러다가 없을 수가 없어. 점점 그 무기(無記)가 들어와서 잠이 들어오던지, 산란이 일어나든지 하면 조끔 일어나. 그때는 좀 일어나. 좌(坐)에만 착(着)하고 앉었지를 말고 일어나.

한번 척 일어나서 밖에 와서 바람도 쐬고 하되, 화두를 추켜들고 밖에 나온 사람은 그저 벌써 보면 알아.

 

어디를 가고 오던지 전체가 화두가 그대로 딱 벌써—화두가 그 방에서 애써 하든 그 화두 경계가 도망가지 않고 고대로 있어 가지고 나와서, 걸음을 걷고 가고오는 것이 환해.

아무 데나 왔다갔다 왔다갔다 쓰잘 데 없이 이러지를 말고, 어디 가서 한쪽에 조용히 걸음을 걷고 조용히 경행(經行)을 해가면서 잠을 깨 가지고 그 경계(境界)를 깨끗하게 맨들어 가지고 다시 얼른 들어와.

 

너무 그렇게 오래 자리를 비워 놔두면 되아? 항상 그 자리가 참 중(重)하다. 나 앉어 공부한 자리가 그렇게 중하다.

꼭 비유를 하자면은 암탉이란 놈이 알 나 가지고는 알 품고 있듯 해야 해. 그 닭 짐승인들, 고놈의 것이 그 제 새끼를 만들기 위해서 알 그놈, 그 껍데기 속에 든 것, 그거 품고 있는 것 좀 봐.

 

한 이십 여일, 스무 닷새나, 닭 그거 그 방정맞은 것이 한시도—그저 뭐 주워먹기도 하고, 돌아다니면서 그저 헤비고 모도—그 일순간도 참지 못하고 그런 것이,

알만 낳아 놓으면은 고놈을 품고 이십 여일 동안, 스무 닷새 동안, 근 한달 동안을 가만히 앉었네. 닭 같은 것도 보란 말이여. 그래 가지고 거그서 새끼를 만든다 그말이여. 

 

소위 중생이 성불(成佛)하는 법이, 나를 내가 깨치는 법이, 그렇게 쉽고 언하대오(言下大悟)도 있고 하지마는,

그렇게 언하대오도 그 대오가 얼마나 참말로 그 정성스러운 언하대오며, 사흘을 한다 하드래도 사흘이 얼마나 참 기가 맥힌 사흘인가?

 

뻘로 그렇게 될 줄 알어? 아무 때나 될 줄 알어?

그 모도 못된 망념(妄念)이 섞여 가지고는 화두는 그 가운데 한번 쬐끔 있다가 어디로 간 곳도 없고, 번뇌 망념만 꽉 들이차 가지고 앉어서 그 될 것인가 그게?

 

닭이란 놈이 고놈 딱 꼬누고 있을 때, 인자 다 되어가면은 알속에서 그 무슨 동정이 있대야.

따르르.. 딸그르르 소리가 나던지, 뭣이 하나 나면 고놈을 듣고 앉었다가 고걸 톡 쪼사 주어야 입이 톡 터져. 그래 가지고 알을 새끼를 깐다 그말이여.

 

벌레란 놈이, 굼벵이 같은 것이 거름 속 같은 데 가서, 땅속 같은 데 묻혀 있어도,

그놈이 굼벵이 되어 가지고 고거 인자 제 몸뚱이를 둘러싸 가지고 가만 두어야, 가만히 그놈 누가 건들도 안하고—그 건들어 놓으면 못써. 안되어버려.

가만 두어야, 그 딱 몇 달 차면은 아! 고놈이 그 속에서 되어 가지고는 나비가 되어 나온다 그말이여.

 

우리 참선 학자가 참선 화두하는 법이 무엇이 섞여? 무슨 그 잡것이 섞여? 잡독(雜毒)이 입심(入心)해 가지고는 모도 번뇌 망상으로 되아?

생각해 봐! 지극히 화두 한번 해 봐야지.

 

내가 돌아가신 큰스님네 말씀도 많이 듣고, 돌아가신 금오 스님도 그 선지식, 우리 나라에 유명한 이인데,

금오 스님도 당신 몸뚱이에 그와 같은 중풍 같은 거—어떻게 해 그 몸뚱이로 난 거야, 색상(色相)으로 난 병이야, 어떻게 해 도인(道人)인들.

 

‘도인이 저런 중풍 나고 그래?’ 고런 놈의 소리를 하지, 고런 멍청하고 미련한 게 다 있어.

몸뚱이라 하는 것은 별 수가 없어. 밥 먹고 옷 입고 사는 것 똑같으고 병난 것 똑같은 건데,

부처님은 왜 병이 나 돌아가셨나? 색신(色身)을 받어 나면 별 수 없는 것이지.

 

금오 스님 같은 이도 그 병이 들어 가지고 앓고 있다가 그 병중에 하는 말이 “세상에 내가 화두 한번 원 없이—견성 보다도 화두 한번 원 없이, 정진 한번 원 없이 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 한(恨)이다” 내가 그 말을 들었어.

 

이 몸뚱이 건강할 때, 이만 할 때, 이만큼 그래도 이 몸뚱이 가지고 이만 했으면 살지.

거기서 화두 한번 잘해!

 

 

화두에 그만 의심이 뭉쳐서 한덩어리 되어서—무엇이 뭉칠 것인가? 어째 화두가 뭉친다 하노?

 

일체 중생의 번뇌렴이, 중생의 번뇌가 한정이 없으니까. 뭐 구백생멸(九百生滅)이라고 하지만 구백생멸뿐인가? 한정이 없어. 별놈의 것이 다 일어나.

 

고런 놈의 그 먼지 같은, 가루 같은 그 번뇌 망념 그놈이 ‘이뭣고?’만 추켜들면은 전부 한덩어리 돼.

고놈이 없어져 버리니까. 그거 어디 있나? 그거 어디가 있어 그것이?

 

알 수 없는 의심 하나, 그 의심이라 해. 의단독로. 알 수 없는 놈 하나가 딱 하나.

알 수 없는 것이—없는 것 본래 없어 버리면 그만인데—알 수 없는 놈 하나가 있거든.

 

그 천하에 보물을, 그 내 보물 고놈 하나 없으면 나는 그만 죽는 건데 그 보물을 내가 잊었으니,

그놈을 도둑놈한테 잊은 게 아니고, 어디다가 두었다가 내가 둔 줄을 몰라 잊었으니, 어디다가 두었노? 그놈 어디다가 두었노? ‘어디다가 둔 곳을 찾는 거’와 ‘이뭣고?’가 마찬가지니까.

 

이뭣고 이놈이 내 몸뚱이 속에 있어서, 이 몸 가운데 있어서 이 몸을 마음대로 끌고 댕기고, 이 몸을 마음대로 부리고 댕기고, 앞세우고 댕기고, 온통 고놈이 들어서 하지, 뭐 이 몸뚱이가 하나?

 

그놈을 모른다 이말이여, 그놈을. 그놈의 낯반대기도 모르고, 코빼기도 모르고, 눈깔도 모르고, 모른다 그말이여.

 

그놈이 뭐냐 말이여? 도대체 ‘이’한 놈, 이놈이 뭐냔 말이여?

의단이, 의단독로가 안돼? ‘오래오래 해서 3년이나 10년이나 해서 그런 의단이 오리라’ 그것 소용없어. 직하에 의단독로가 되는 거여.

 

어쩌, 화두해 나가는 법을 그렇게 일러주어도 안돼? 안될 이치가 있냐 이말이여.

 

세상에 이놈 하나 안해 놓고는 제가 낯반대기 들고 사람이라고, 사람 뭐 지랄 사람,

사람이면 뭐해? 금생에 코빼기 사람됐다고 그까짓 것, 그 낯반대기 바꿀 때는 벼락인데 뭐.

 

이렇게 의심을 잡드리를 해 나가거라.

그래서 밖에 수십 보 거닐다가 그 청정하고 깨끗할 때가—인자 완전히 다 망상도 그런 것도 없이 화두만 또 더, 앉아서 하던 화두가 거닐 때 더 와서,

따악 그놈이 항상 있는 데 가서, 내 제하일촌(臍下一寸)에, 배꼽 단전 밑에 1촌(寸)에 가서 의심이 탁 박혀서 있거들랑.

 

그렇게 잘 안되어서 하고, 만약 그래도 그놈 잠이 들입다 와서 게을받아서, 그런 사람이 있어.

그놈의 잠이 자꾸 오고, 몸이 게을고, 그만 하기 싫고, 발심이 안되고 이러면 안돼. 그건 천성(天性)이 그 지경 되어서는 틀려.

 

이렇게 정신을 차려서 그놈이 물러간다.

물러가거들랑 화두를 인자 그때 들어와서는 전제(全提)로 한번 해라. 단제(單提)로 말고, 전제로 한번 해라.

 

『세상에, 일체처에 도무지 요놈이 일체처에 도무지 밥 먹고 옷 입고, 가고 오고 그저 무슨 뭐,

아! 이런 놈이 이 소소(昭昭)한 요놈이 분명히 이놈인데 ‘이놈이 뭣꼬?’ ‘시심마(是甚麽)오? 이뭣고?’』

전제로 한번, 전제로 그놈을 주욱 끄집어 가지고 한번 해.

 

한번 해 가지고는 인자 의심이 다시 일어나거들랑 ‘시심마(是甚麽)오? 이뭣고?’만 해. 또 늘 전제를 말고.

 

그러면 수마(睡魔) 그 같은 놈의 것이 안 물러갈 까닭이 있나? 수마(睡魔) 그까짓 놈의 것은 그건 마구니인데,

 

여지기량(汝之技倆)은 유진(有盡)이여. 네 힘은 다함이 있어. 마구니 네 까짓 것 밖에서 들어온 것은 네 다함이 있어. 네가 못 들어올 때가 있고, 안될 때가 있고, 내게 못 와!

내가 아지불채무궁(我之不采無窮)인데, 내가 네 까짓 것 간섭 안 하는데, 잠 네 까짓 걸 내가 환영 않는데, 네 까짓 거 어디로 들어와?

 

의심 ‘이뭣고?’가 있는데, ‘이뭣고?’가 분명한데 어디가 그놈이 들어서냐 그말이여. 

 

가여상좌(可如常坐)하야, 그렇게 턱 물리쳐 버리고는 항상 가(可)하게 상좌(常坐)를 해라.

똑 그대로 여법(如法)히 그저 법다이 또. 삐딱하게 앉지 말고 아까 마냥으로 좌(坐)를 단정히 또 앉어라.

 

그렇게 한바탕 해서도 또 안되거들랑, 그래도 또 금방 앉으면 또 잠이 들어와서 또 마찬가지로 되거들랑,

약불퇴(若不退)면, 물러가지 않고 그놈의 경계가 잠이 오든지, 망상이 들어오든지, 그만 어디 놀러가고 싶던지 이런 망상이 퍼일어나거들랑,

 

불가불 어쩔 수 없다. 하지(下地)해서, 저런 어디 따로 딱 나와서 이런 본 데라도 나와서 거닐되, 왔다갔다 왔다갔다 여 갔다 저 갔다 그렇게 거닐지를 말고, 왔다갔다한 장소를 지정을 딱 해 놓고 거 좀 걸어라.

좀 시간이 있게 걸어. 한 10분이든지 20분이든지 걸어라.

 

오직 고인(古人)도 안되어서 이렇게 말씀을 해 놓았어. 몽산(蒙山) 스님이 고원상인(古原上人)한테다가 이렇게 해 주었어.

몽산 스님도 그렇게 불교를 반대하다가 들어와서 견성(見性)해 가지고는 허! 보니 이뿐이거든. 세상에 이뿐이니 이렇게 자세히 해 놨어. 글도 잘하고 하니까.

 

(수마가) 점점 물러가지 않거든 달리 하지 말고 가만히 나와서 땅을 정해 놓고 갔다왔다 왔다갔다 이렇게 수십 보(數十歩)를 이렇게 행해라.

그래 수십 보를 해라고 했어! 한 수십 보를, 그 화두를 추켜들고 자꾸 수십 보를 하면 고놈이 인자 물러가.

 

그러거들랑 또 거좌(去坐)해라. 또 와서 또 자리에 앉어. 그 자리를 너무 비우지 말고 앉어야 해.

그 자리가 아깝다 그말이여. 내가 공부하는 그 자리가 오래 비어 있으면 아까와.

그 앉어서 공부하는 자리인데 비어져 있으면 쓰는가? 나 있는 그 자리, 닭 알 품고 앉아있는 그 자리인데.

 

좌선(坐禪)이니깐, 좌선하는 사람이니 나 앉는 그 자리를 또 비우지 말고 와서 앉어.

잠깐 수십 보 하지, 오래 너무 비워놓지 말아라. 

 

안두(眼頭)가 깨끗하고 청명(淸明)해도 돌아댕기면 또 못쓴다 그말이여. 그러거들랑 얼른 들어와서 또 앉어라. 또 거좌(去坐)를 해라.

천만조고화두(千萬照顧話頭)해라. 그래 가지고는 천 번이나 만 번이나 염(念)을 계속해서, 똑 계속해서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계속해서 해라.

 

견성뿐이다, 그것이 견성뿐이여.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뿐이여.

이것이 정법(正法)이여, 이게 참선법(參禪法)이고.

 

날마다 와서 도 닦는 사람, 저 법문 들은 사람들, 밤에는 복잡해서 잘 수가 없으니까 밤에 제일 잘 수 없어서 (낮에) 오라고 하는데, 밤에 와 자고,

낮에는 뭐 아무 데라도 공부할 수 있고, 누워 자는 사람이 기다란하게 누워 자면 자리가 많이 없어지지마는, 앉었는 데는 자리가 많이 생기니까 앉어서는 할 수 있고 한데, 밤에는 복잡할 때 자고, 낮에 오고 뭔 짓을 해.

 

밥 먹는 것을 그 뭐 다 자기네가 싸고 댕기는 것이지, 도 닦는데 뭐 제천(諸天)이 여의식(與衣食)인데.

밥 먹는 것이 없어서 나 (이런 말) 한 것 아니여. 여기 대강 지내도—뭐 식량 떨어지면은 탁발(托鉢) 갈라고 작정 딱 해놔도 탁발 한번도 안 하고—먹고 살아가는데.

 

그 뭐 식량으론 여그 못 있겠다는 거 아니고,

밤에 잘 때에 그 너룹게 방 하나 차지하고 다 활발하게 자든 그 어진 보살님네가 오셨다가 도실(道室)이라고 방이 복잡해서 누워 잘래야 잘 수도 없고, 하! 당초에 너무 그만 복잡하니 그래서 내가 할 수 없어 좁다고 내가 그런 거지.

 

그렇게 날마다 저녁에 왔다 자고 아침 때 가고 그럴라면은 너무 길은 멀고 여비는 많이 들고 그럴 것 없으니까,

그만 에지간만 하면은, 정 그래도 여그 요새 늘 와서는 자니까, 그 잘만 하면은 갔다왔다 할 것 없이 해제도 얼마 안 남고 했으니, 여그 앉어서 공부해. 뭣할라고 갔다왔다 할 것 없어. 그렇게 해. 여기까장.

 

천만 번 화두를 조고(照顧)해라. 천 번이고 만 번이고 화두를 연속해 나가거라.

이렇게 않고는 된 법 없어! 절대 된 법이 없어.

 

이 화두는, 이 활구참선, 활구화두라는 것은, 하다가 말다가—참나무로 바로 그 줄로 나무를 뭐 비빈다?

활 비비듯이 이렇게 해 가지고 드리 비벼대. 막 드리 비벼대면 거그서 불이 나듯이 그래야 되는 법이지,

 

하다 말다, 좀 비비다 말다, 불이 나?

된 법이 없어.

 

이 말을 깊이 깊이 잘 듣고, 들은 대로 여설수행(如說修行)하면 되는 것이지. 꼭 그대로 듣고 그대로 법문 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

안되아? 안되는 것을 지금 이리 고인이 말을 해 놨어?(20분5초~41분16초)(끝)

 

 

 

 

 

------------------(1)

 

*(게송) 無心雲峀出  有意鳥知還’ ; [청허당집(淸虛堂集)] ‘次李秀才韻(이수재의 운을 차함), 無心雲出峀  有意鳥知還  儒佛雖云一  一忙而一閑’ 참고.

*(게송) ‘蘆花月白處  楚澤滄浪詞’ ; [청허당집(淸虛堂集)] ‘漁翁(어옹), 月白蘆花處  風淸竹葉時  扣舷歌一曲  楚澤滄浪詞’ 참고.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일언지하(一言之下) ; 한마디 말 끝에.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주작(做作 지을 주/지을 작) ;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억지로 지어서 하는 것.
화두를 들 때 무상(無常)을 느껴 발심(發心)을 해서 의심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의심을 한 번 잠깐하고 또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眞心)으로 의심을 발한 것이 아니고 억지로 한 것이어서 주작이라고 한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도거(掉舉) : 혼침의 반대인데 산란(亂)이라고도 한다. 정신을 머트럽고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마음작용.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단정하다(端正-- 바를 단/바를 정) ; 옷차림새나 몸가짐 따위가 얌전하고 바르다.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금강권(金剛拳) ; 네 손가락으로 엄지손가락을 감싸 쥔 주먹 모양.
*드리 ; ‘마구(아주 세차게, 매우 심하게, 앞뒤를 따지지 않고 아무렇게나 함부로)’의 옛말.
*수기척량(竪起脊梁) ; 척추를 꼿꼿하게 세우다.
*척량(脊梁 등마루 척/대들보 량) ; 등마루의 거죽 부분. *등마루 ; 등골뼈가 있어서 울룩불룩하게 줄진 등의 가운데 부분.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역력(歷歷) ; 훤히 알 수 있게 분명하고 또렷함.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수마(睡魔) ; 참선할 때 어느새 잠이 와 졸음이 쏟아지면 정신 차려 정진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졸음·잠(睡)’을 수마(睡魔)로 일컫는다.
*불고( 아니 불/돌아볼 고) ; 돌아보지 않음.
*불파염기(不怕念起) 유공각지(唯恐覺遲) ;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말고 다만 깨달음이 늦을까를 두려워하라’
[참고] 『수심결(修心訣)』 (보조지눌 스님)에서.
或者 不知善惡性空 堅坐不動 捺伏身心 如石壓草 以爲修心 是大惑矣 故云 聲聞 心心斷惑 能斷之心 是賊
 

어떤 사람은 선과 악의 성품이 빈 것임을 알지 못하고, 굳게 앉아 움직이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눌러 조복하기를 마치 돌로 풀을 누르듯 하면서 마음을 닦는다고 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문은 마음마다 미혹을 끊으려 하지만 그 끊으려는 마음이 바로 도적이다.’라고 하셨다.


但諦觀殺盜淫妄 從性而起 起卽無起 當處便寂 何須更斷 所以云  念起 唯恐覺遲 又云 念起卽覺 覺之卽無
 
다만 살생하고 도적질하고 음행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성품으로부터 일어난 것임을 자세히 관조한다면 일어남이 곧 일어남이 없는 것이라, 그 바탕이 고요한데 무엇을 다시 끊을 것인가. 
그러므로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말고 다만 깨달음이 늦을까를 두려워하라.’하셨고 또 ‘생각이 일어나거던 곧 깨달아라. 깨달으면 곧 없어진다.’하셨다.
 
故 悟人分上 雖有客塵煩惱 俱成醍醐 但照惑無本 空華三界 如風卷煙 幻化六塵 如湯消氷
 
그러므로 깨친 사람의 입장에서는 비록 객진번뇌(客塵煩惱)가 있다 해도 그것은 다 제호를 이룬다.
다만 미혹(迷惑)이란 근본이 없는 것임을 관조하여 알면 허공의 꽃과 같은 삼계(三界)가 바람이 연기를 거둠과 같고, 꼭두각시와 같은 육진(六塵)이 마치 끓는 물에 녹는 얼음과 같을 것이다.
 
若能如是念念修習 不忘照顧 定慧等持 則愛惡自然淡薄 悲智自然增明 罪業 自然斷除 功行 自然增進 煩惱盡時
生死卽絶
 
만일 이처럼 생각생각에 닦고 익히며, 마음을 관조하기를 잊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평등하게 가지면, 곧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자연히 엷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자연히 밝게 드러날 것이다. 
죄업이 자연히 없어지고, 공덕이 절로 늘어나서 번뇌가 다할 때에는 생사도 끊어질 것이다.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霄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근본 무명, 근본 번뇌)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곧 천백억 화신을 나투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뜬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응용이 무궁하여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快樂)해 근심이 없으리니, 이름하여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길(수심결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14.  『수심결』 (지유선사 현토역해 | 도서출판 窓) p83~88 참고.
*견성(見性) : 성품을 본다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2)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경행(經行) ; 산스크리트 cankramana, 팔리어 cankamana의 의역.
대개는 식사를 마친 뒤나 피곤할 때, 혹은 좌선을 하다가 졸음이 오는 경우에 자리에서 일어나 경행을 한다. 현재 우리나라 선방에서는 대개 50분 좌선을 한 뒤 10분 정도 경행을 하는데, 수행자들은 선원 안을 천천히 걸으면서 좌선으로 굳어진 몸을 푼다.
이때에도 계속하여 화두를 참구하기 때문에 좌선에 대비, 행선(行禪)이라고도 한다.
 
경행은 참선의 연장이기도 하지만 보통은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한 산책과 같은 것으로서 〈사분율 四分律〉에 의하면 평상시에 경행을 할 경우, 다음과 같은 이로움이 있다.
첫째, 먼길을 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둘째, 생각을 가라앉힐 수 있다. 셋째, 병을 줄일 수 있다. 넷째, 음식을 소화시켜줄 수 있다. 다섯째, 오랫동안 선정에 머무를 수 있다.
〈대비구삼천위의경 大比丘三千威儀經〉에는 경행을 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다음의 다섯 곳을 들고 있다. 첫째, 인적이 드문 곳, 둘째, 집 앞, 셋째, 강당의 앞, 넷째 탑 아래, 다섯째 건물 아래 등이다.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잡독(雜毒)이 입심(入心)하야 상호혜명(傷乎慧命)이라’ ;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색상(色相) ;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형상.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구백생멸(九百生滅) ; 《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 (제2 관공품觀空品) '九十剎那爲一念 一念中一剎那經九百生滅' '90찰나가 한 생각이 되고, 한 생각 가운데 1찰나에 구백생멸이 지난다'
*벼락 ; ①공중 있는 전기  위의 물체 흐르는 전기와의 사이에서 방전()으로 일어나는현상.
몹시 호되게 나무라거나 꾸짖음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③어떤 일이 매우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비유적으로 이르는 .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촌(寸)길이 단위 나타내는 ()  분의  3.33센티미터이다.
*들입다 ; 세차게 마구.
*게을받다 ; ‘게으르다’의 사투리.
*천성(天性)어떤 사람이나 사물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품성.
*전제(全提) ; 전부분이 들고 일어남(全分提起)의 뜻. 본래 그대로 나타냄. 전부를 그대로 나타내 보임. 전체를 모조리 그대로 들고 나오는 것.
‘무자(無字)’ 화두의 경우, 전제는 ‘조주 스님은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단제는 그냥 ‘무~’하고 아무 일체 다른 말은 없이 ‘무~’만 들여다 보는 것. 분류 ‘전제, 단제’ 참고.
*단제(單提) ; 선가에서 어떤 수단 방편을 쓰지 않고 곧장 가리키는 본분의 참뜻.
*소소(昭昭)하다 ; 사리가 밝고 또렷하다.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여지기량(汝之伎倆)은 유진(有盡)이어니와  아지불채시무궁(我之不采是無窮)이다’ ;
‘너의 기량(伎倆)-너의 온갖 수단과 재주는 끝이 있거니와, 내가 취하지 아니한 것은, 너한테 말려들어가지 아니한 것은 시무궁(是無窮)이다-영원이다. 고봉 스님 [선요(禪要)] 示衆(其二)에 천태(天台) 스님의 글로 인용됨.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46)—계해년 하안거해제 법어(1983.07.17)
우리는 걱정을 할 것이 없습니다. 최상승법을 모르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불쌍할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다생(多生)에 숙연(宿緣)이 있어서 최상승법을 만났으므로 다못 한 생각 한 생각을 그렇게 알뜰히 단속만 해 가면 지옥에 떨어져도 겁날 것이 없고, 불구덩이에 빠져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불이 훨훨 타는 가운데에서도 ‘이뭣고?’를 들 것이며, 지옥에 끌려가서도 ‘이뭣고?’를 든다면 마침내 이 최상승법은 모든 마귀(魔鬼)를 이겨내고야만말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힘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지기량(汝之伎倆)은 유진(有盡)이어니와  아지불채시무궁(我之不采是無窮)이로다.
 
여지기량(汝之伎倆)은 유진(有盡)이어니와, 너의 기량(伎倆)-너의 온갖 수단과 재주는 끝이 있거니와, 아지불채(我之不采)는 시무궁(是無窮)이다. 내가 취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한테 끌려들어가지 안해. 너한테 말려들어가지 아니한 것은, 시무궁(是無窮)이다—영원이다 그말이여. 니 멋대로 한번 나를 유혹 할래면 해보고 나를 갖다가 막을라면 막아보고, 니 멋대로 해봐라 그말이여.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팔만사천 모든 경계(境界)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나는 상관이 없다 그말이여. 네가 그럴수록에 나는 오히려 화두를 거각할 따름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이 해제 이후에 정진을 가다듬고 정진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고인(古人) ; 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조고(照顧) ; 반조(返照)와 같은 말. 생각을 돌이켜 참구(參究)한다는 뜻.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제천(諸天)이 여의식(與衣食) ; 진심으로 도를 닦는 수행인에게는 천상에서 의식(衣食)을 준다, 제석천왕이 의식을 준다.
*탁발(托鉢 맡길 탁, 바리때 발) ; 도를 닦는 스님이 경문(經文)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수행자의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동시에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 공덕이 있다고 하여 부처님 생존 당시부터 행하였다.

 

 

Posted by 닥공닥정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 몽산화상시고원상인(蒙山和尙示古原上人) (1/5) 몽산화상이 고원상인에게 주신 말씀.
 
**전강선사(No.255)—몽산 01-1. 몽산시 고원상인(1) (임자72.06.10)
 
(1) 약 21분.
 
 
 
(2) 약 16분.

 

(1)------------------
 
일신진여행(一身眞旅行)이다  만사개무생(萬事皆無生)이다
나무~아미타불~
금조상별재(今朝相別在)다  사군역불견(思君亦不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우리 이 몸뚱이 하나 얻은 거, 몸뚱이 하나 얻어가지고 가지고 있는 거, 이거 참 허잘 것 없고 생각할 것 없고 믿을 것 없고, 뭐라고 도무지 이걸 가지고.

일신(一身) 그놈, 몸뚱이 그것—그 생겨난 조직체 전체를 한번 생각해 보면은,

 

숨 한번, 바람 한번 들어왔다 나가면 그만인 것이고.

그 모도 조직된 몸뚱이, 그 무슨 줄 같은 거 하나 뚝 떨어져 버리면 그만이고,

구녁 하나 어디 뚫어진 거 맥혀 버리면 그만이고.

 

세상에 허망한 몸뚱이가 이것이 또 나그네 생활을 해. 여행 생활을 해.

내 집, 따뜻한 내 방이라고 뭐 어디 있나? 그냥 이 몸뚱이가 이것이 그대로가 여행 나그네여.

 

내 고향을 내가—영원한 고향, 참된 고향, 이별이 없는 고향, 그 고향을 도무지 내가 찾들 못하고, 어디 나그네로 이렇게 있다 그말이여. 

 

만사(萬事)가 개부운(皆浮雲)이다. 생각해 보건댄 이 몸뚱이 이것 가지고 별별 짓을 다해 봤던들 뜬구름 있다가 휙 달아난 것이여. 구름 한 점 저 태허공에 띄어 있다가 휙 날라가 버린 거와 같해. 이렇게 무상한 이 몸뚱이여.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다. 이별이라는 게 언제 있느냐? 오늘 아침에 있다.

설사 100년을 산다한들 100년을 믿는 것이 그 어리석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여?

내일까장 살겠다고 믿어?

금조여 금조(今朝)! 그만 당장 언하(言下)여. 그저 있다 그만 이것 떠나버려. 구름같이 가버려. 

 

사군역불견(思君亦不見)이다. 아무리 그놈, 가지고 있든 나의 몸뚱이 내 낯반대기 그 내 것이라고, 모도 그저 내 권속. 별것이 다 내게 있다한들 그것이 다시는 못 만나고 다시는 못 봐.

내 낯반대기도, 요 몸뚱이 육신 몸뚱이 요거 얻은 거, 금생 몸뚱이 이거 얻은 거, 다시는 못 봐.

 

이건 또 고대로 생겨 나오나? 뭐가 되어 나올런지, 뭐 대갈빡에 뿔을 쓰고 나올런지, 똥구녁에다가 꼬리를 달고 나올런지, 무슨 뭣을 가지고 나올런지 알 수가 있어야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것이여.

그러니 항상 무상(無常)을—무상한 마음, 허망한 마음 이것을—이 마음을 가져야 된다.

 

무상하고 허망하고, 이것이 참 진짜 발심(發心)이여.

허망한 줄을 모르고 무상한 줄을 모르고 그만 이것 아주 항상 있는 줄 알고, 아주 내가 제일이고, 아상(我相)만 퍼 가지고 있고, 그 뭐여? 그래 될 것인가?

 

 

화두상(話頭上)에, 화두한 위에 유의부단(有疑不斷)이 시명진의(是名眞疑)다.

화두에는 의단(疑團) 하나 있는 것 밖에는 없다. 의심 하나, 알 수 없는 의심 하나.

 

그 꼭 알아야 하겠는데 웬일로 이렇게 알 수 없나? 그저 밥 먹으나 옷 입으나 일체처에 ‘화두 한 생각’ 하나뿐이지, 그 이외에 뭣이 있겠나?

 

화두 위에 또 유의(有疑)가 있어야 한다 그말이여. 화두한 위에 또 의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얼마나 의심 하나뿐인가?

 

시명(是名)이 진의(眞疑)다. 화두 위에, 화두가 있어 가지고 끊어지지 않고 항상 거기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 놈이 그놈이 이름이 진의(眞疑)다. 참의심이다.

 

 

저 홍콩서 온 선사(禪師)가 이걸 알아들어야 할텐데, 당초에 저렇게 와서 한 일주일 있으면서 꼭 설법을 배우고 법을 듣고 가겠다고 왔는데, 어떻게 할 수가 있어야지.

한문도 서로 쓴 것이 달러. 문법이 달러. 그대로 의미는 통하나 문법이 달라서 못하지만은, 나는 필법으로는 해본 예가 없어서 천하없는 외빈(賓)이 와도 필답(答)으로는 못해.

 

늘 묵언수좌(默言首座)가 있어서 해 주고, 그저 누가 있어서 해 주고 이래서 내 말 듣고는 고대로 써서 해 주고 이랬지.

내가 직접 편지 한 장을 써서—편지 한 장을 옳게 못 쓰니까, 평생 그저 자(묵언수좌)가 내가 불러주면 쓰지.

 

한국을 척 나와서 몇 군데 큰절을 가니까 ‘전강 스님을 찾아가 봐야 한다’고 이렇게 왔으니, 당초에 무슨 설법을 어떻게 해줄 수가 있어야 하지.

 

 

이건 들었으면 좋지만은 이 화두 해 나가는 방법.

바로 달마 스님이 동토(東土)로 건너와서 달마 스님 후손, 이 몽산 스님이 몽산법어(蒙山法語) 해 놓은 거, 말세에는 적절하거든. 말세 불법은 이 법 아니면 못해.

 

이것 내놓고는 하지를 못해. 관(觀)이 되야 하지? 관선(觀禪)인데, 그전 달마 스님 때는 그 관심일법(觀心一法)이라 했거든.

관선인데, 관선이 내나 하야 관(觀)이 의단(疑團)이지. 모르면 의심이니까. 알 수 없으면 의심이고.

 

바로 봐 버리면, 뭐 의심이 그 뭐 있나? 무슨 의심이 거기에 있어?

 

화두 해 나가는 법 하나, 이것 만들어 놓은 것이 선문촬요(禪門撮要)인데, 선문촬요 한 권이면 그만이지 뭐 다시 뭐 더할 것이 어디 있나?

 

의단독로(疑團獨露)해서, 화두 위에 의심이 있어 가지고는 끊어지지 않는 것이 이것이 참 진짜 화두다.

아무 것도 없으니까, 화두란 자체가 알 수 없는 것 뿐이여.

 

그 알 수 없는 그것이 왜 ‘안된다’고 할까? ‘안된다’고 하는 원인이 어디 있나? 그 안되는 것이 원인이 어디 있는가 그걸 생각해 봐.

 

무상(無常)한 마음이 없어서 발심(發心)을 못해. 이 몸이라는 것이 금조(今朝)여, 금조(今朝)에 이별이여.

 

 

이렇게도 이 몸뚱아리 생긴 조직체가 피로, 물로, 살덩이로, 이리저리 얽허져 있는 것이 그 모두 그 핏줄이—그나저나 병원에 가보면 그 (신체 모형) 한쪽만 만들어 놓은 것 속에 모든 핏줄 좀 봐.

그 가는 핏줄, 실오리줄 고것 하나만 어디가 똑 떨어져도 그만이여.

 

이까짓 놈의 몸뚱이를 글쎄 뭣을 믿을 것이 있는가 말이여. 아무 것도 믿을 것이 없는 몸뚱이인데.

 

‘그 몸뚱이가 그렇게도 허망하고 믿을 것이 없는 것’을 바로 믿어 버리고, 바로 이렇게 무상을 깨달라 버리면은 화두 밖에 할 것이 더 있나? 화두가 의심이 안 날 수 있나?

 

깨달랐는가 어디? 깨달라야 될텐데.

화두는 아는 것이 아니여. 요렇게 ‘옳지!’ 이거 아는 건, 그건 화두가 아니여. 아는 것은 참선도 아니고.

 

탁! 그만 대오(大悟)가 있어. 반드시 깨달음이 있다 그말이여.

 

 

약의일상소시(若疑一上少時)하고, 만약 처음에 화두를 들어서, 공부를 척 거각(擧却)해 들면은 소시(少時)하고, 잠깐 있고.

(화두를 들고) 있을 때 ‘이뭣고?’,  잠깐 ‘이뭣고?’가 있다가는 금방 없지.

판치생모(板齒生毛)? 판때기 이빨에 털 나? 어찌 판치생모? 금방 (화두가) 없어. 금방 하나 해 놓고는 금방 없어.

 

또 우무의자(又無疑者)여. 이놈을 그만 없애 버린 뒤에는 찾을라고 또 화두를 다시 거각할라고 해도 안돼.

그 망상이 그만 쩔려서, 그 모든 놈의 망상이 그만 심지(心地)에 가서 전면의지(纏綿意地)해서, 뜻에 가서 모도 얽혀서 안돼.

 

화두를 찾을라고만 하면 점점 더 망념이 더 일어난다 그말이여. 이런 놈의 꼴이 있나?

비진심발의(非眞心發疑)다. 그것 진심발의(眞心發疑), 진심으로 발심한 것이 아니어서 그리어.

 

참으로 발심을 해 놓고 봐라. 뭣을 할 것이냐? 할 것이 무엇인가?

친척 여의고, 고향 여의고, 다 떼버리고 단신 몸으로 척 나와서 글쎄 이거 어째? 놀래야 놀 수 있어? 안 할래야 안 할 수 있어?

 

어떻게 조끔만 화두 그만 안 해도 불안해서 못 살아. 화두가 없어도 불안해서 못 살아.

항상 화두 그놈이 자리가 잡혀서 항상 거기에 그 자리에 그냥 그대로 있다.

 

화두가 자리가 잡혀야지? 쪼끔 하다 말고, 금방 하다 말고, 또 앉다가 그만 금방 하다가 그냥 뿡 일어나고, 조끔만 모도 백지(白地) 일어나고, 그저 그만 금방 조끔 하다 갔다왔다,

 

똥구녁이 좀 썩도록.... 7개 포단(七個團)을 뚫었을까? 좌선객(坐禪客)이 되었으니 기위(爲) 좌선을 하러 나왔으니 좌선이 목적 아닌가?

쪼끔 더웁다고 그만 휙 일어나고, 조끔 밖에 그만 뭐 생각이 나서 쫓아 나가고, 이것 그 학자들 흉 본 것 같지마는 참 아무 것도 아니여. 

 

진심발의(眞心發疑)가 되어 그렇다. 참마음을 발(發)해 보아라. 이 무상한 것을 바로 발해 보아라.

 

이 더러운 송장 요것을 몸뚱이인줄 알고는 뒤집어쓰고, 아주 그 살았다고 대갈빡 내두르고, 뭔 겨를이 있어 그저 꺼떡하면 그만 어디 놀러나 가고, 또 돌아댕기면서는 경계나 팔리고.

아무 것도 아니다. 발심(發心)을 못해서 그런 것이다.

 

속주작(屬做作)이다. 요것이 주작선(做作禪)이다. 억지로 한 것이다 그말이여.

화두를 참으로 진심으로 한번 해 보지를 못하고는 속주작이여. 주작을 해. 괜히 껍딱으로만 해본다 그말이여.

 

한철 그녀러 것이 그만 휘딱 달아나 버리지.

모아서 몇 철 지낸다고 지내봤던들—그 석 달에 견성(見性)도 능히 할 것이언만, 석 달 휘딱 달아나 버리지. 해 봐. 마찬가지지.

결제한 날이나 해제한 그날이나 다를 게 뭐 있나? 똑같애.

 

시고(是故)로 요렇게 공부를 하기 땀세, 요렇게 진발(眞發)을 못하고 거짓 그만 주작(做作)을 하기 때문에,

이런고로 혼침도거(昏沈掉擧)가 혼침(昏沈)과 잠. 첫째 앉으면 그만 잠,

앉으면 그만 이러고 자네 이렇게. 앉으면 이러고 자고 앉었어. 단 1분도 안 하고 이러고 자.

 

이것 되겠는가? 무슨 마음으로 출가해서 왜 여기 들어와서 공연히 그 공송세월(送歲月)을 해 나가면서 갖다 준 밥만, 해다 준 옷만 입고, 이렇게 그만 시은(恩)을 짓냐 그말이여.

시주(施主) 은혜가 어떤데? 시주 은혜를 갚을라고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아닌가.

 

아! 그놈 먹을 때 좋으니깐 퍼먹어 놓고는 갚을 때는 생각도 안 해.

아무리 시은을 할애(愛)해서, 그 많이 감해 버리고 할해 가지고 계산을 하드래도 일미(一米)가 칠근(七斤)이다. 쌀 한 냍끼가 그놈이 그 근수(數)가 일곱 근이나 된다.

 

그놈 그대로 도(道)도 닦지 않고는 퍼먹어 놓고는 갚을 때는,

가서 인자 갚아 보지? 그놈 갚을 때는 어쩔 것인고? 돈으로 갚나? 뭐 쌀로 갚나? 이건 몸뚱이 죄고(罪苦)로 갚지.

 

“너 이놈, 그러한 그 시주것을—그 농부가 애쓰고, 소가 땀 흘리고, 일체 짐승이 모도 그 농사질 때에 쌀 한 낱개 될 때에 한량없는 목숨 죽고 그 피 흘리는 살생이 기가 맥혀—그놈 퍼먹고는,

이놈 가만히 앉어서 잠만 자고 망상(妄想)만 부리고, 못된 망상 속에서 별별 거족동념(擧足動念) 죄만 짓고 이놈 갚아야 할 것 아니냐?”

 

“받아라 이놈아. 달게 받아”하고는 그저 그만 쇠 철환(丸)이나 쇳물이나 갖다가 들이붓고 어쩌? 안 그래? 그놈으로 받지 무슨 돈, 쌀로 받나?

 

말만 이러면 듣지, 그만 잊어버리네. 법문으로 알아버리고 들어버리고 말아 버려.

실지가 이런 것을 바로 알아야지.(처음~20분59초)

 

 

(2)------------------

 

그래서 앉으면 혼침(昏沈) 밖에는 들어온 것이 없고, 또 혼침 그놈 조금 나가면은 또 도거(掉擧)란 놈이 들어와서—도거라는 것은 생각이라도 '못된 망상', 그게 도거여. 그 쓸데없는 망상심 모도 고것이 들어온다.

 

개입작득(皆入作得)이여. 한 시간 앉었으면 한 시간 내 그뿐이여. 한 시간에 참선(參禪)은 뭐 어디 1분도 2분도 안돼.

가짜로 하니까 되아? 주작으로 하니까 되아? 그러니 모도 그만 개입작득을 해.

 

들어와서 모도 작득(作得)해 가지고는 아! 이놈이 가만히 앉었으니까는,

그 갔다왔다 하면서 뭐 일이라도 하고 어디 무슨 이러면— 도거가 와서 뭐 거까장 생각할 것도 없고, 그저 금방 생각난 대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지마는,

 

가만히 앉어서, 참선한다고 앉어도 참선은 간 곳 없고 화두는 없고, 도거(掉擧)란 놈이 들어와서 작득주(作得主)를 해 가지고는 별 생각을 다 한다.

 

 

이 서호당 보지. 서호당 역사 내가 어릴 때 내가 다 알고, 지금 내가 화장(葬)까지 다 하고 그랬는데 뭐 말할 거 있어?

 

변산 내소사 절 주지(住持)로 40년 하면서 삼백석지기를 모았네. 거 무척 모았지.

그 내소사 절이 부찰(富刹)이니까는 산에서 생긴 수입이 있고, 불공 수입이 있고, 토지 수입이 있고, 밭에 수입이 있고, 모도 불공 시주 수입이, 재(齋) 들고, 이런 수입을 모아서 삼백석지기를 자기 논 딱! 사 놓고.

 

주지가 떨어졌네. 삼백석지기 그놈 아낄라고—자기가 벌어 놨으니까 그놈 먹고 지내도 넉넉할 테지만은 그놈은 하나도 손도 대지 않고는 자기 앞으로 소유 내 놓고는 백양사 선방(禪房)에 척 들어가서 참선하는데,

참선 하고 앉었으면 뭐 방선(放禪)할 때까지 잠 한숨 안 졸지. 가만히 앉어서 참선을 그렇게 잘 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속에 참선이 그놈이 참말로 화두가 독로(獨露)해서 그렇게 1시간이라도 잠을 안 자고 했으면 하는데,

‘논 삼백석지기 내년에는 지상 수입 그놈, 땅 내면 돈 얼마면 순창 뜰 그 좋은 놈 상토(上土), 그놈 몇 마지기 아무개 것 그놈 내가 사야겠다’

 

요런 놈의 계산하다 보니 1시간이 휙 달아나네, 휙 가고. 언제 뭐 잠잘 겨를 있나?

그 모도 도거(掉擧)란 말이여. 도거! 참선방 앉아 놓으니까 인자 고런 놈이 생각나. 요렇게 한 철을 했다.

 

한 철을 하다가 병이 났다. 병이 나서 죽을 병이 나서 자기 본산(本山)으로 갔네. 본산이 어딘고 하니 순창 구암사인데, 구암사를 가 가지고 병을 앓는다. 천신만고를 앓다가 죽었네.

염라국을 갔다. 가니까 주욱 평생에 그 독(獨)살림 하던 것과 그 모도 돈벌이 하던 것 전체가 저 극장에 필림 돌아간 것 같애. 환하니 찍혀서—염라국이라드니, 저울대라든지 거기에 뭐 일생 지낸 필림같이 조옥 다 있어.

 

그 재산을 가지고 마지(旨) 한 불기(器) 부처님한테 온당 올린 것 없고, 그만 들어오면 그만 이리저리 모도 해서 제 돈만 만들고 한 것이 환히 나타난다.

 

그래 가지고는 “네가 저렇게 죄를 많이 지었으니 네 지옥고가 솔찬히 무겁게 되었다. 10년은 받어야겠다”

그 지옥 10년이면 인간의 몇백만 년이여. 그 10년이 인간 10년이 아니여. 한 10년 그 뭐 징역살고 나오면 마찬가지게? 그거 아니여.

 

“10년을 살테로되 네가 이 선방에를 들어왔다. 참선하는 선방에 들어와서 참선을 한다고 한 것이 참선은 않고, 네 돈 계산만 하다가 시간을 마치고 다 이랬다마는 그래도 그 선방에 좀 들어온 공덕이 있어.

선방에 들어와서 참선한다는 공덕이 있어. 그 참선 공덕으로써 3년을 감해 준다. 3년은 감해 주고 7년을 네가 지옥고를 받아라” 염라대왕의 언도가 턱 내렸다.

 

인자 감옥 7년 지옥고 받으러 옥(獄)으로 인자 들어갈 판인데,

 

“네가 그래도 부처님 앞에서 중노릇을 한다고 그렇게 40년 동안 그 부처님 돈 갖다 네 돈 만들어 놓고 모도 그랬지마는, 그래도 네가 그저 중질한 공덕이 있으니까, 네 이 길로 나가서 지금이라도 발심(發心)을 해라.

그 탐심, 탐착 그 마음을 네가 버리고 발심을 해서 파재간탐(破財慳貪)을 해라. 파재간탐은 네 여태까장 모아서 논 사놓고 밭 사논 놈을 쏵 가서 파재(破財)를 해라.

 

파재간탐을 해서 가난한 사람 이리저리 주기도 하고, 불전헌답(佛前獻畓)도 하고, 부처님한테 모도 헌답해 버리고, 쏵 없이 해 버리고, 그래 그 다음에 들어오니라. 그 다음에 들어오면은 7년 지옥도 감해 줄 수가 있다. 잘 가서 해라”

아! 그런 부탁을 염라국(羅國)에서 역력(歷歷)히 했다. 염라대왕이 바로 해 주고.

 

“그럼 이 길로 가거라”하고 내보냈는데 옥문(獄門) 밖에 나와서 깼어.

깨 가지고 보니까 꿈이지. 그 죽었지만은 꿈이여. 죽어서 열반종(鐘)까장 쳤는데 꿈이여. 대중은 다 '죽었다'고 열반종까장 쳤는데 꿈이라 그말이여.

 

그러면 그 꿈이 아니고 죽었다 살아났으니깐 참 그대로가 실제인데, 그놈 다 팔아서 어떻게 좀 이리저리 방매(賣)할 것 방매해서 보시도 좀 하고, 불전헌답 모도 해서 선방도 좀 맨들고, 아 이렇게 했으면 쓸 것 아닌가?

 

‘아! 이렇게 이번에 내가 이런 꿈을 꾸었는데, 이게 옳은가, 그른가? 이게 참인가, 거짓인가?

또 살아나면은 먹고 살아야 하고 부자가 되야 할텐데, 이거 없애버리면 어떻게 해?’

 

아 그 마음이 들어 가지고 영 그것 꿈으로 알아 돌려보내 버리고는 살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뭐 살기는 뭣을 살아? 그 뒤에 불과해야 며칠만에 돌아가셨어. 죽었어. 그 여지없이 지옥 갔지. 틀림없지.

 

이러한 간탐심(慳貪心), 중노릇을 해도 발심(發心)을 못하고 헛되이,

틀림없거든. 응 틀림없어. 이것 다시 두말 할 거 뭐 있나? 이까짓 놈의 몸뚱이가 금조(今朝)에 잊어버릴는지를 모르니, 당장에 그만 갈 것이니 그 같은 걸 생각할 게 있나?

 

다맛 진심발의(眞心發疑)를 해서, 참마음을 발해서 진심으로 도만 닦아 봐. 천하에 무슨 그까짓 놈의 삼백석이 뭣이여? 어디 제천(諸天)이 여의식(與衣食)인데.

이렇게 어리석다. 그 중생의 어리석은 거, 발심을 못하니 어리석어.

 

주작(做作) 그러니 주작심(做作心) 밖에 없어서 진짜가 아니기 따문에 가짜로 하기 따문에 화두가 들어오들 안 해. 왔다가도 곧 가버려.

도거(掉擧)가 들어오고 혼침(昏沈)이 들어와서 주재를 해 가지고 이 모냥으로, 이것 뭐 한 철 해도 그 모냥, 두 철 해도 그 모냥, 백 철을 하면 뭣 해. 일생을 하면 뭣 할 것이냐.

 

앉는 자리에 좀—얼른 나갔다가도 ‘아이고, 어서 가서 내 자리에 앉어야겠다’—가서 그저 등줄기 땀이 나든지, 똥구녁에 땀이 나든지 그까짓 것도 불구하고 척 앉어서, 안벽관심(眼壁觀心)하고 수기척량(竪起脊梁)하고 정신차리고 앉었다.

 

또 혼미(迷)하면은 일어나서 잠깐 둘러 또 들어와서 앉어서 또 찾고. 이것 좀 자리가 잡혀야지.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화두가 좀 잡히고, 조직체가 좀 화두 하는 모냥다리가 좀 되야지? 이것 뭐, 다시 뭐 참선이여 뭣이여? 좌선객(坐禪客)이여 뭣이여?

 

좌선객 아닌 사람—세상에서 그저 부모 모시고 살면서, 자식 낳고 살면서 한 사람들이야 그 말할 거 뭐 있어? 그런 사람들 하는 것이야.

그렇게 요중선(中禪)하는 사람들이야 그 말할 것 없지 뭐. 근기(根機)도 그런 근기가 없고, 그러면서 대도(大道)를 통한 사람이야 더 말할 것 없지.

 

우리 출가한 승려 분상(分上)에, 우리 선객 분상에야 그럴 수가 있냐 그말이여.

그 경허 큰스님도 칼을 받쳐 놓고는 3년을—이러고 앉어서 3년을.

태고보우(太古 普愚) 선사는 어쨌으며, 우리나라 첫 건너 온 보우 선사는 어쨌냔 말이여. 백일씩을 정해 놓고는 백일만에 또 회향하고 또 하고, 백일 또 그 정진.

 

다 그래서 석가모니불 부처님은 얼마나 용맹스럽게 닦았으며, 고인(古人)의 자취를 좀 봐야 할 것 아닌가.

요새 참선한다고 참선객? 내가 이런 시비를 안 할 수 있어?

 

모도 혼침 도거란 놈이 들어와서 작득주(作得主)를 해 가지고 요 모냥 되어가지고 앉었으니 되는가 말이여. 안된다.

미륵하생(勒下生)까장 해 봐라? 미륵하생이 육억 칠천만년이래야 미륵하생이 오는데 육억 칠천만년을 해보란 말이여. 되는가?

 

앞으로써 한 7천 년만 오면은 삼재(三災) 들어와 버리는데, 삼재 그 속에 빠져 버리면은 다시는 나올 기약도 없다. 언제 나와?

그놈 삼재 속에 들어가서, 뭐 몸뚱이가 있어야 받아 나오지. 인신(人身)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데.

세계가 물 끓고, 불이 끓고 막 그만 뒤집어져 가지고는 뭐 몸뚱이 받아날 수 있나?

 

그 가운데에 몸뚱이만 못 받아 났지, 우리는 없나? 낱낱이 더 있지. 더 있어.

그놈의 몸뚱이 요까짓 육신(肉身)만 없지, 업신(業身)이 있어 가지고 그 업신으로써 몸뚱이 받을 때 없이 돌아다니면서 그 고통받을 것을 생각해 봐.

 

언제 어디가 태어날 것인가? 또 그놈의 삼재 지나간 뒤에는 육억 칠천만년이 닥쳐와서 미륵회상(彌勒會上)이 된다한들 미륵회상에 참례(禮)해? 뭣을 참례해?

 

참례할 공덕을, 참선을 해서 무슨 득력(得力)을 했나? 견성(見性)을 해서 사사무애(碍)도 증(證)했나? 그때 날만한 무슨 공과가 있나?

 

공부를 할라면은 참공부인이 한번 되아버려야 한다.

네가 한번 그저께 읽든 것 읽어라.(21분8초~36분58초)(끝)

 

 

------------------(1)

 

*(게송) 一身眞旅行  萬事皆無生’ ; [청허당집(淸虛堂集)] 2권 ‘送英庵主出山(산을 나가는 영암주를 보내며),  一身眞逆旅  萬事皆浮雲  如見鴟爭鼠  高飛愼不群’ 참고.

*(게송) ‘今朝相別在  思君亦不見’ ; [청허당집(淸虛堂集)] 2권 ‘送芝師(지사를 보내며),  今朝相別後  消息幾時聞 明日秋雲隔  思君不見君’ 참고.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외빈(賓)외부 외국에서 찾아오는 귀한 손님.

*필답( 글씨 필/대답 답) ; 글로 써서 대답함.

*묵언수좌(默言首座) ; 송담(松潭) 스님의 별명. 10년간 묵언을 하며 수행을 해서 '묵언수좌'라는 별명이 생김.

*달마 스님, 몽산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 원(元)나라 몽산 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하였다.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몽산법어’가 있다.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 ;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한다.
[참고] 『선문촬요(禪門撮要)』 (경허선사 編) ‘달마대사 관심론(達摩大師觀心論)’에서.

慧可問曰  若有人 志求佛道 當修何法 最爲省要

師答曰 唯觀心一法 摠攝諸行 名爲省要
問曰 云何一法 摠攝諸行
師答曰 心者 萬法之根本也  一切諸法 唯心所生  若能了心 萬行俱備
猶如大樹 所有枝條 及諸花菓 皆悉因根 栽樹者 存根而始生 伐樹者 去根而必死
若了心修道則 省功而易成 若不了心而修道 乃費功而無益
故知一切善惡 皆由自心 心外別求 終無是處
 
혜가(慧可)가 여쭈었다.
“불도(佛道)를 얻고자 하면 어떤 법(法)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겠습니까?”
달마대사께서 대답하였다.
“오직 마음을 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하나니, 이 법이 가장 간결하고 요긴하다”
 
“어찌하여 한 법이 모든 행을 다포섭한다고 하십니까?”
“마음이란 온갖 법의 근본이요 일체의 법은 오직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면 만행(萬行)을 다 갖추게 된다.
이를테면 큰 나무의 가지와 꽃과 열매 등이 모두 뿌리로 말미암아 있으니, 나무를 가꾸려면 뿌리를 북돋우어야 비로소 살 것이요, 나무를 베려면 뿌리를 없애야 반드시 죽는 것과 같다.
만약 마음을 알아서 도를 닦으면 노력은 적게 들어도 쉽게 이루어질 것이요, 만약 마음을 알지 못하고 도를 닦으면 헛수고만 하고 이익은 없으리라.
그러므로 모든 선과 악은 다 자기 마음에서 생겼으니, 마음 밖에서 달리 구하면 끝내 옳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선문촬요(禪門撮要) ; 한국 선종의 중흥조인 경허성우(鏡虛惺牛, 1849~1912) 선사가 선(禪)을 공부할 때 지침으로 삼을 글들을 모아 엮은 책. 상하 2권.

상권에는 달마대사의 『혈맥론(血脈論)』 『관심론(觀心論)』 『이입사행론(二八四行論)』, 오조홍인(五祖弘忍) 대사의 『최상승론(最上乘論)』,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의 『완릉록(宛陵錄)』 『전심법요(傳心法要)』,
그리고 몽산덕이(蒙山德異) 스님의 『몽산법어(蒙山法語)』, 박산무이(博山無異) 선사의 『선경어(禪警語)』,
하권에는 고려 보조지눌(普照知訥) 스님의 『수심결(修心訣)』 『진심직설(眞心直說)』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 고려 진정국사(眞靜國師) 천책(天頙) 스님의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선문강요집(禪門綱要集)』, 서산휴정(西山休靜) 스님의 『선교석(禪敎釋)』이 있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전면의지(纏綿意地 얽을 전/얽힐 면/뜻 의/땅 지) ; 마음의 밭에 얽히고설켜.

[참고]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보조국사(普照國師)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에서.
無始習熟  愛欲恚痴纏綿意地  暫伏還起  如隔日瘧  一切時中  直須用加行方便智慧之力  痛自遮護  豈可閒謾  遊談無根  虛喪天日  欲冀心宗而求出路哉.
비롯함이 없는 옛적부터 익혀 온 애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마음에 얽히고설켜서, 잠깐 조복 되었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이, 마치 하루 걸러 앓는 학질병과 같으니라.
어느 때에나 모름지기 바로 수행을 더하는 방편과 지혜의 힘을 써서, 간절히 스스로 막아 지켜야 하거늘,
어찌 한가하게 근거 없는 잡된 이야기를 하여 헛되이 세월을 보내고, 마음의 근본을 깨닫기를 바래며 생사 벗어나는 길을 구하고자 하겠는가?
*백지(白地) ; 아무 턱(마땅히 그리하여야  까닭이나 이치)도 없이.
*7개 포단(七個團)을 뚫었을까?’ ; ‘7개의 방석을 뚫었을까?’
[참고] [고봉화상 선요(高峰和尙 禪要)] ‘시중(示衆) (其二十)—20. 대중에게 보임’에서.
嗟乎  末法  去聖時遙  多有一等泛泛之流  竟不信有悟門、
但只向者邊穿鑿  那邊計較  直饒計較得成  穿鑿得就 眼光落地時  還用得着也無、
若用得着  世尊  雪山六年  達摩  少林九載  長慶  坐破七箇蒲團  香林  四十年  方成一片  趙州  三十年  不雜用心  何須討許多生受喫、
更有一等漢子  成十年二十年  用工  不曾有箇入處者  只爲他宿無靈骨、
志不堅固  半信半疑  或起或倒  弄來弄去  世情  轉轉純熟  道念  漸漸生疎  十二時中  難有一箇時辰  把捉得定  打成一片、
似者般底  直饒弄到彌勒下生  也有甚麼交渉。
 
아! 슬프다. 말법에 성현과의 시대가 멀어져서 한결같이 꼼꼼하지 않고 조심성 없는 무리들이 많이 있어 깨달음의 문이 있는 것을 끝내 믿지 않는구나.
단지 여기에서 천착(穿鑿)하고 저기에서 계교(計較)하니, 설령 계교하여 이루게 되고 천착하여 성취되었더라도 눈빛이 땅에 떨어질 때(죽을 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약 소용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부처님이 설산(雪山)에서 6년 고행하시고, 달마대사가 소림굴에서 9년 면벽하시고, 장경 스님이 앉아서 방석이 7개나 헤지도록 좌선하시고, 향림 스님이 40년만에 비로서 일념(一念)을 이루시고, 조주 스님이 30년 동안 잡되게 마음을 쓰지 않으시면서, 허다한 고생을 하였겠는가!
 
또 어떤 무리들은 10년, 20년이 되도록 공부를 하였으되 깨달은 것이 없는 것은, 그가 전생에 선근이 없기 때문이다.
뜻이 견고하지 않고,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며 이럭저럭 세월을 보내니, 세상의 정(情)은 더욱 익어지고, 도(道)에 대한 생각은 점점 생소해져서 24시간 중에 한 시간도 선정에 들어 일념을 이루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놈들이 미륵불이 하생함에 이르도록 제멋대로 공부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기위(爲) ; 이미. 벌써.
*주작(做作 지을 주/지을 작) ; ‘없는 사실 꾸며 만듦’의 뜻으로,
화두를 들 때 무상(無常)을 느껴 발심(發心)을 해서 의심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의심을 한 번 잠깐하고 또 의심함이 없으면 진심(眞心)으로 의심을 발한 것이 아니고 억지로 한 것이어서 주작이라고 한다.
*껍딱 ; ‘껍질, 껍데기’의 사투리.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도거(掉舉) : 혼침의 반대인데 산란(亂)이라고도 한다. 정신을 머트럽고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마음작용.

*공송세월(空送歲月)하는  없이 세월 헛되이 보냄또는  세월.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할애(愛)하다(사람이나 조직 소중한  다른 사람에게나 )떼어 주다.

*일미칠근(一米七斤) ; ‘쌀 한 톨을 생산하기 위해 농부가 흘리는 땀의 무게가 일곱 근이다’라는 말로,

쌀을 비롯한 모든 생산물이 매우 소중하고 귀한 정성이 들어간 것임을 알고, 또 그럼으로써 그것들에 감사하고 아껴야 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거족동념(擧足動念) ; ‘발을 들고(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움직임’이라는 말로, 인간의 몸과 마음의 모든 일상 활동을 뜻한다.

*철환( 쇠 철/알 환) ; 쇠붙이로 잔 탄알같이 만든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

*쇳물높은  녹아 액체 상태  .

 

 

------------------(2)

 

* ; ①‘들(평평하고 넓게 트인 땅, 논이나 밭으로 되어 있는 넓은 땅)’의 사투리. ②전북 김제 지역에서 하천이 실어온 토사가 쌓인 충적평야를 일컫는 말.

*상토(上土)농사짓기에  좋은 조건 갖추고 있는 .

*본산(本山) ; 그 종파에 딸린 여러 절을 총괄하는 한 종(宗)의 근본 도장.

*독(獨)살림 ; ①부모 형제나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아니하고 따로 벌인 살림. ②암자나 작은 절에서 본사(本寺)에 기대지 않고 따로 사는 살림살이. ③대중 공유물인 절 재산을 개인 재산처럼 쓰는 살림살이.

*마지(摩旨) ; 부처님께 올리는 밥.

부처님께 올리는 밥은 대부분 사시(巳時), 즉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 올린다. 이것은 생전에 부처님이 하루에 한 번 그 시간에 밥을 먹은 데서 유래한다.

사시에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마지 올린다’고 하는데, 한자를 풀이하면 (摩指, 摩旨, 磨旨) ‘손으로 만들어 올린다 혹은 정성스럽게 만든 공양을 올리오니 제 뜻을 감읍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불기(佛器)부처님에게 올리는  담는 그릇.

*솔찬히 ; ‘상당히’ ‘제법’ 혹은 ‘아주 많이’를 뜻하는 사투리.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파재간탐(破財慳貪) ; 간탐(慳貪 물건을 아끼고 남에게 주지 않으며, 탐내어 구하면서 만족할 줄을 모르는 마음)으로 모은 재물(財物)을 깨뜨리는(破) 것. 그리고 그 재물을 널리 보시하는 것.

*불전헌답(佛前獻畓) ; ‘불전(佛前)에 전답(田畓)을 바침’으로 사찰에 양식을 공급하기 위한 논밭을 보시하는 것.

*염라국(羅國) ; 염라대왕() 다스리는  저승 뜻한다.

*역력히(歷歷-)자취 낌새 훤히   있게 분명하고 또렷하게.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열반종(鐘) ; 스님이 입적(寂 스님이 돌아가심)  치는 종.

*방매(賣) ; 물건 따위 내놓아 .

*제천(諸天)이 여의식(與衣食) ; 진심으로 도를 닦는 수행인에게는 천상에서 의식(衣食)을 준다, 제석천왕이 의식을 준다.

*안벽관심(眼壁觀心) ; 눈은 벽을 보고, 마음은 화두를 관한다.

*수기척량(竪起脊梁) ; 척추를 꼿꼿하게 세우다.

*모양다리 ;  모양새(-)’ 속되게 이르는 .

*좌선객(坐禪客 앉을 좌/참선 선/손님•사람 객) ; 좌선(坐禪),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요중선(鬧中禪)시끄러운 가운데 하는 참선. 동중선(動中禪)라고도 한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경허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삼재(三災) :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한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참례(參禮) ; 예식, 제사, 전쟁 따위에 참가하여 관여함.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사사무애(碍) ; 현상계의 제사상(諸事象)이 서로 융합하여 방해하는 것이 없는 것을 말함. 일체의 사물이 서로 상즉무애(相即無碍)인 것을 말함.
*증(證) ; ①증득(證得, 산스크리트어: adhigama 또는adhisajbodha). 증오(證悟).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는 것 또는 깨치는 것을 말한다. 수행한 결과로 얻는 과보를 증과(證果)라고 하며, 최종의 증과는 성불(成佛: 부처가 됨)이다.
②증(證)은, 《대승의장》 제 10권에 따르면, 지득계회(知得契會) 즉 앎·증득·계합·깨침을 뜻하는데, 마음이 실성(實性)에 그윽히 잠겨서[冥] 분별을 잊고 실성(實性)에 계합하고 실성(實性)을 깨쳐서 실성(實性)과 평등한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 수행2015. 4. 2. 16:18
 
 
§(280) (게송)약인투득상두관~/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법문 / 용화선원의 가풍 / 선재동자의 진실함 / (게송)역력이빈주~ / 대의지하 필유대오.
 
온 세계는 그 자체가 낱낱이 자성(自性)이 있어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나의 ‘한 생각’이 발로(發露)해서 그렇게 이루어진 것들인 것입니다.
자기가 한 생각 내 가지고 ‘둥글다, 밝다’ 모두 이리 분별을 내서, 자기가 한 생각 내 가지고 그 한 생각으로 인해서 자기 자신이 구속을 당하고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서 울었다 웃었다 하는 것입니다.
 
몽산 스님께서는 ‘오직 이 한 생각 화두에 대한 의심, 그 한 생각 돈독함을 여의지 아니하고 그렇게 간절히 알뜰히 그렇게 해서 3년을 한다면 반드시 확철대오를 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증을 하신 것입니다.
용화선원 가풍—「누구를 막론하고 이 도량에 일단 방부(房付)를 들이고 같이 정진하게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불조(佛祖)와 같이 되지 못한 이상에는 완전히 초학자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그러한 사상으로 정진을 하자」
 
선재동자가 그러한 무량공덕을 성취한 것은 오직 한 생각 진실한 그것 때문에 그러한 대도를 성취하게 된 것입니다.
“의심이 독로해서 의심이 크면 큰 깨달음을 얻고, 의심이 작으면 작은 깨달음을 얻고, 의심이 없으면 아주 깨달을 수가 없다” 고인이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송담스님(No.280)—85년(을축년) 동안거 결제 법어(85.11.26) (용280)

 

(1) 약 18분.

(2) 약 10분.

 

 

(1)------------------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데는  하구녹수여청산(何拘綠水與靑山)고
나무~아미타불~

 

약인투득상두관(若人透得上頭關)하면  시각산하대지관(始覺山河大地寬)이다.

만약 사람이 상두관(上頭關)을 투득(透得)해 버리면 산하대지가 넓음을 비로소 깨달을 것이다.

 

불락인간분별계(不落人間分別界)인댄, 인간의 분별 경계(分別境界)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 같으면,

녹수와 청산에 어찌 구애(礙)를 받을 것인가.(何拘綠水與靑山)

 

중생은 자기 본마음 자리를 깨닫지를 못하기 때문에—이 넓고 넓은 산하대지, 삼라만상(森羅萬象)과 두두물물(頭頭物物) 육도법계(六道法界)가 온통 다 자기의 집이요 한 마당이건만,

자기 본 마당, 본 마음자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온갖 자기의 분별 경계에 떨어져 가지고 거기에 취사(取捨)와 집착(執着)이 있어서 발 디딜 곳이 없어. 어디를 가나 편안치를 못하고, 어디를 가나 걸리고 몸 둘 곳이 없어.

 

한바탕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확연히 깨달아버리면 천당과 지옥도 걸릴 것이 없고, 인간의 부귀와 영화와 시시비비(是是非非)에도 거리낌이 없을 것입니다.

 

 

금년 을축년 시월 십오일 동안거 결제일을 맞이했습니다.

청풍납자(清風衲子)가 사방에서 모여서 한철을 한 지붕 밑에서, 한 도량에서 정진을 하게 되었고 또 보살선원에도 경향 각지에서 백 명이 방부를 들이고 고락(苦樂)을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실답게 발심(發心)을 해서 실다웁게 정진을 해 가면 공기가 탁하고, 공장과 자동차에 모든 소음이 이렇게 심하고, 수용이 박하고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다 할지라도 ‘한 생각’ 철저해 버리면 그런 것이 도무지 걸릴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생각 돈독(敦篤)하고 철저하지 못하면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사사건건 걸리게 되고 내가 거기에 끌려 나가고, 사소한 일에도 성질을 내게 되고, 아무 일도 아닌 일에 마음이 동요가 될 것입니다.

 

온 세계는 그 자체가 낱낱이 자성(自性)이 있어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나의 ‘한 생각’이 발로(發露)해서 그렇게 이루어진 것들인 것입니다.

 

하늘에 달이 떴으되 달 자체가 ‘내가 달이다’하는 생각이 없는 것이고, 하물며 ‘나는 밝다. 밝지 못하다’ ‘나는 슬프다. 나는 기쁘다’ 그러한 생각은 더욱이 없는 것입니다.

그 달 자체는 때에 따라서 둥글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 초승달이 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아주 캄캄하게 안보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는 전혀 그런 상(相)이 없습니다.

 

사람이 들어서, 내가 들어서 온갖 분별심을 일으켜 가지고 거기에 대해서 이름을 붙이고, 거기에 대해서 온갖 분별심을 내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생각 내 가지고 ‘둥글다, 밝다’ 모두 이리 분별을 내서, 자기가 한 생각 내 가지고 그 한 생각으로 인해서 자기 자신이 구속을 당하고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서 울었다 웃었다 하는 것입니다.

 

 

백 명 대중이 한 방에 모여서 석 달 동안을 지낼 때에 한 생각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철저히 단속하지 못한다면 그 백 명 대중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그중에 누군가는 마음이 동요가 되고, 한 사람 동요됨으로 해서 그 방에 여러 사람이 속이 불편해 질 것이고 이리해서 바람 잘 날이 없어.

 

그래서 몽산(蒙山) 스님께서 결제 법문에 말씀을 하시기를,

‘만약 이 도량에 와 가지고 함께 이 고요함을 함께 하고자 할진댄, 참선정진을 하고자 할진대는,

세상에 인연을 다 끊어 버리고, 집착과 거꾸러진 그런 생각을 다 제거해 버리고, 진실로 생사대사(生死大事)를 위해서, 생사대사만을 위해서 선원에 규칙을 자발적으로 순종하며,

 

인사(人事)로 왕래하는 거, 인사로 왕래하는 그 인사를 끊어버리고, 모든 수용은 인연 따라서 해. 밥이면 밥, 죽이면 죽, 반찬이 좋으면 좋은 대로, 짜면 짠 대로, 인연 따라서 수용을 하되,

아홉시부터서 세시까지, 삼경(三更) 동안을 제외하고는 수면을 하지 말아라. 그리고 문밖에 거리에 나가지를 말 것이며, 밖에서 어떤 신도가 공양을 청(請)한다하더라도 나가지 말 것이며,

 

확철대오(廓徹大悟)하기 전에는 경(經)도 보지 말 것이며, 대중적인 행사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경도 보지를 말아라.

이와 같이 여법(如法)하게 3년을 정진을 하되 견성(見性)을 하지 못하면 산승이 여러 대중을 대신해서 지옥을 가겠다’ 이렇게 법문을 하셨습니다.

 

3년, 10년 내지 30년을 정진을 하되 확철대오를 못하는 것은...

 

이와 같이 여법하게 정말 생사대사를 위해서 잠깐 동안도 한눈 팔 겨를이 없고, 잠깐 동안도 딴 생각할 겨를이 없어.

오직 이 한 생각 화두에 대한 의심, 그 한 생각 돈독함을 여의지 아니하고 그렇게 간절히 알뜰히 그렇게 해서 3년을 한다면 반드시 확철대오를 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보증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3년을 해서 깨닫지 못하면 내가 너희들 대신해서 지옥에 가겠다’한 말씀이 얼마나 목숨을 걸고 보증하신 그러한 표현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용화선원(龍華禪院), 물론 어느 선원이나 다 마찬가지지만, 용화선원의 특이한 노선(線)이라고 할까? 가풍(家風)이라고 할까? 용화선원에서 바라는 용화선원의 특성을 구태여 말을 하자면,

‘불조(佛祖)와 같이, 불조가 깨달으신 바와 같이 그러한 철저한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설사 조그마한 견처(見處)가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그런 것을 인정을 하지 말아라.

 

알았다고 하는 소견(所見), 깨달았다고 하는 소견, 한철 두 철 하다보면 어떤 지견(知見)이 생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마는 불조(佛祖)의 친증처(親證處)에 바로 이르르지 못하면 자기가 깨달았다고 하는 생각을 갖지 말아라.

 

깨닫지 못하면 차라리 말지언정 깨달았다 하면은 불조와 같이 불조 친증처에 이르러야 한다’ 이러한 각오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체중현(體中玄) 도리, 여래선(如來禪) 도리, 공견(空見)을 봤다 하더라도,

그러한 ‘보았다’고 하는 소견을 속에 가지고 있으면, 그러한 지견을 속에 지니고 있으면 공부는 아무리 정진을 한다고 해도 그 이상 진취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완전히 백지(紙) 상태—10년, 20년을 정진을 했다 하더라도 완전히 초학자(初學者)의 마음, 순수한 초학자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하자」 이것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이 도량에 일단 방부(房付)를 들이고 같이 정진하게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불조(佛祖)와 같이 되지 못한 이상에는 완전히 초학자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그러한 사상으로 정진을 하자」 이것입니다.(처음~17분47초)

 

 

 

 

 

(2)------------------

 

『화엄경』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하고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그 문수보살의 지시에 따라서 남쪽으로 일백십성(一百十城)을 향해 가면서 차례차례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을 친견했습니다.

 

한 선지식 친견하고 거기서 법문을 듣고 그리고 또 거기서 마음에 얻은 바가 있어.

그 다음에 그 선지식이 또 그 다음 선지식을 소개를 하면 또 그 선지식을 찾아가서 그 선지식 밑에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승사(承嗣)를 해서 그 선지식의 법문을 듣고 거기서 또 얻은 바가 있어.

 

이렇게 해서 차례차례 53선지식을 친견해 나가는 데 그 53선지식 가운데에는 비구 스님도 있고, 신(神)들도 있고, 외도도 있고, 창녀도 있고, 보살도 있고, 동자도 있고, 온갖 종류의 선지식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의심 없이 위법망구적으로 친견하고 승사를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53선지식한테 깨달은 법문을 한마디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그대로 가슴에 간직을 하고 마지막에 미륵보살(彌勒菩薩)을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미륵보살을 친견해서 미륵보살이 손 한번 탁! 튕기는 바람에 53선지식한테 들은 모든 법문을 일시에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서 “다시 문수보살을 친견을 해라. 맨 처음에 친견했던 문수보살을 다시 친견해라”한 말씀을 듣고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리라’하고 마음을 먹자마자,

문수보살이 저 먼 일백십성이나 멀리 떨어진 그 문수보살이 오른손을 터억 뻗쳐 가지고 선재동자의 이마를 만져주셨습니다.

 

만지시면서 “선재선재(善哉善哉)라, 착하고 착하구나! 네가 철저한 신근(信根)이 없었다면, 53선지식을 그렇게 아무 딴 퇴타심(退墮心)이 없이 그렇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친견할 수 있었으며,

어떻게 조금 얻은 것을 가지고—그렇지 못했으면 조금 얻은 것으로 해서 만족을 삼아 가지고 중단을 했을 것이며, 조금 얻은 것으로서 거기에 집착을 했을 것이며, 오늘날과 같이 해탈과 선지식의 섭호(護)한 바가 되지를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선재동자는 확철대오를 해서 문수보살과 같이 보현보살(普賢菩薩)과 같이 모든 부처님과 같은 경지에 이르르게 된 것입니다.

삼독(三毒)이 삼취정계(三聚淨戒)로 변했으며, 육식(六識)이 육신통(六神通)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이 선재동자가 그러한 무량공덕을 성취한 것은 오직 한 생각 진실한 그것 때문에 그러한 대도를 성취하게 된 것입니다.

 

 

역력이빈주(歷歷離賓主)하고  요요절색공(寥寥絶色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목전분명취(目前分明取)하라  산입백운중(山立白雲中)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역력이빈주(歷歷離賓主), 역력(歷歷), 또록또록하고 분명하다 그말이여.

역력해서 빈주(賓主)를 여의었어. ‘주관 객관, 너다 내다’하는 그러한 마음이 뚝 떨어져 버렸다 그말이여.

 

요요절색공(寥寥絶色空)이여. 적적요요(寂寂寥寥)해서, 고요하고 고요해서 모든 ‘색상(色相)이다, 이것은 진공(眞空)이다’ 그런 색공의 견해도 다 끊어져 버렸다 그말이여.

 

목전(目前)에 분명취(分明取)하라. 우리 눈앞에 형단(形段)이 없으되—볼라야 볼 수도 없고, 만질라야 만질 수도 없고, 알라야 알 수 없는—이놈이 분명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이 알라야 알 수 없는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이 독로(獨露)해.

 

“의심이 독로해서 의심이 크면 큰 깨달음을 얻고, 의심이 작으면 작은 깨달음을 얻고, 의심이 없으면 아주 깨달을 수가 없다” 고인이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큰 깨달음을 얻고자 하면 그 의심이 간절하고 크고 깊어서, 나의 마음과 밖과 온 허공계가 온통 이 알 수 없는 의단(疑團)으로 꽉 찰 때,

우주 법계를 다 삼키고 남을 만한—눈으로 온 세계를 다 삼키고, 온 세계를 콧구멍으로 들어마셨다 뱉을 수 있는 그러한 큰 깨달음을 얻을 것입니다.

 

산입백운중(山立白雲中)이다. 산은 우뚝 백운(白雲) 가운데 섰느니라.(17분48초~27분4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게송) 약인투득상두관~’ ; ①『석문의범(釋門儀範)』 다비문(茶毘文)—쇄골편(碎骨篇) 참고. ②卍新纂續藏經 제65책 《高峰龍泉院因師集賢語錄》 제13권 ‘涅槃法語門—散灰’ 참고.

*상두관(上頭關) ; 조사관(祖師關).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투득하다(透得-- 통할 투,얻을 득) ; (사람 무엇)막힘 없이 환하게 깨닫다.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청풍납자(清風衲子 맑을 청,바람 풍,옷을 꿰맴 납,자식 자) ; 수행을 하여 맑은 기운을 지닌 스님을 청풍(清風)-맑은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참고] 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道)를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雲)과 물(水)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돈독(敦篤)하다(도타울 돈,도타울 독) ; (인정이나 마음이)매우 도탑고 신실하다. *도탑다 ; (정이나 사귐이)깊고 많다.

*발로(發露) ; 숨은 것이 겉으로 드러나거나 숨은 것을 겉으로 드러냄. 또는 그런 것.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몽산(蒙山)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인사(人事)사람 사이 지켜야  예의 간주되는 또는 그러 예의 키기 위한 행동.

*삼경(三更) : 二경~四경 (밤 9시~새벽 3시)으로 불가(佛家)의 지정된 취침시간.

*공양(供養)을 청(請)하다 ; 재가신도가 스님들께 공양(식사)을 드리기 위하여 초청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경(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문헌.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견성(見性) : '성품(性)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노선(線)개인이나 조직단체 따위 일정한 목표 향하여 나아가기 위해 따르는 활동 방침.

*가풍(家風) ; 한집안에서 오래 지켜 온 생활 습관이나 규범.

*불조(佛祖) : 부처님과 조사(祖師), 불(佛)은 삼세제불(三世諸佛), 조(祖)는 역대(歷代)의 조사를 말함.

*견처(見處) ; 자기 나름대로 얻은 어떤 생각이나 입장, 견해.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말.

*친증처(親證處) ; 친히 증(證,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다)한 곳.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체중현(법문에서)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37)—정묘년 칠석차례(87.07.07.음)에서. (2분 48초)

체중현(體中玄)으로 보면, 공(空)의 이치에서 보면 어떠헌 공안을 묻되 할(喝)을 해 버려도 맞고, 방(棒)을 해 버려도 맞고, 양구(良久)를 해 버려도 맞고, 닥치는 대로 막 잡아서 아무것이라도 일러도 다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중현(玄中玄) 도리에 있어서는 아무렇게나 일러도 맞지를 않습니다. 그 공안에 여지없이 이(理)와 사(事)에 탁! 맞아떨어지게 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선 한 철, 두 철 열심히 허다 보면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그 공의 이치를 보게 됩니다.

그 공의 이치, 그게 체중현(體中玄)인데, ‘체(體) 가운데에 현(玄)’-체의 이치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공(空)인데, 공의 이치를 보게 되면 경(經)을 봐도 모두가 그 소식입니다. 조사어록을 봐도 모두가 다 그 도리고, 조금도 맥힐 것이 없어. 환하고.

 

그런데 현중현(玄中玄)에서는 그렇지를 않거든.

체(體)의 이치를 본, 겨우 그 이치만 보고 현중현을 못 본 사람은 된장이나 똥이나 마찬가지여. 선과 악이 마찬가지고, 크고 작은 것이 마찬가지고, 부처와 중생이 다를 것이 없고, 내 마누라나 형수가 다 똑같고, 그저 거지나 임금이 다 똑같고, 생과 사가 똑같고, 그러니 오직 쾌활하냐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 가지고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인가(印可)를 허지를 않았습니다. 그것 가지고서는 진리를 바로 봤다고 헐 수가 없어. 그것은 바른 견성(見性)이 아니여.

 

그래서 조사(祖師)는 현중현이라고 허는 관문(關門)을 시설을 해 가지고, 현중현 도리를 보지를 못허면 바로 보았다고 인가를 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현중현 도리는 선지식이 아니면은 그것을 가려내지를 못해.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No.282)—86년 1월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2분 19초)

공안은 그 열쇠가 아니면은 도저히 그 열 수가 없는 아주 이 자물통과 같아서 도저히 그렇게 일러 가지고서는 인가(印可)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속에·진흙 속에 들어가서 무엇이 발을 찔렀는데, ‘뭣이 찔렀다.’ 이래 가지고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찌른 것이 뾰족한 돌멩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슨 나무 꼬타리냐, 사금파리냐, 또는 쇠꼬치냐, 분명하게 딱! 말을 해야 하는 것이지, 막연하게 ‘뭣이 찔렀다.’ 이렇게만 말한 거와 같아서,

 

아! 찌른 거야 사실이지, 사실 아닌 것은 아니여.

그러나 분명하게 쇠꼬치면 쇠꼬치, 사금파리면 사금파리, 돌멩이면 돌멩이를 분명히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학자가 공부를 하다가 자기 나름대로는 반드시 견처(見處)가 있어서 온 것은 사실이나, 불조(佛祖)와 같이 깨닫지 못하면 체중현(體中玄)·구중현(句中玄)·현중현(玄中玄), 현중현 도리를 바로 보지 못하면 스스로 그것에 만족을 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문중(活句門中)에 있어서의 납자(衲子)의 지조(志操)라 할 것입니다.

 

[참고 ❸] 송담스님 법문(No.466)—92년 보살 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에서.(2분 26초)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 그런 소견이나 경계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 소식 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갈라면 중앙청까지 딱 가서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해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버리고 언제나 초학자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 ❹] 송담스님 법문(No.112)—79년 11월 관음재일 법어(79.11.24)에서.(2분 36초)

가끔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는 공안에 대한 조리(條理)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공안에 있어서 이 학자가 깨달은데 있어서 체중현(體中玄) 도리를 보는 사람,

체중현 도리를 보아 가지고 그것으로써 득소위족(得少爲足)하는—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아! 내가 깨달았다’고 하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질까봐,

 

『절대로 이 공안이라 하는 것은 현중현(玄中玄) 도리를 바로 봐야만 그것이 바로 확철대오(廓徹大悟)다.』

그러한 것을 우리에게 깊이 납득을 시키고 철저하게 명심을 하기 위해서 가끔 공안에 대한 말씀을 구체적으로 해주신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법문을 듣고, 어떠한 공안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도 따져보고, 저렇게도 일러보고 해서 ‘혹 이런 것이 아닌가. 저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공부를 지어가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이 공안은 마치 체중현 도리에서 보면 아무렇게 일러도 맞지 아니한 것이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공견(空見)에 빠진 사람, 공견에 빠져가지고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에는 고함을 치나, 욕을 하나, 호령을 하나, 손을 들거나, 발을 구르거나, 무엇이 어떻게 이르건 다 안 맞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 현중현 도리를 본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봐가지고서는 불법을 바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중현 도리는 마치 자물쇠통에 꼭 제 열쇠가 아니면은 열리지 아니한 것처럼, 바로 깨달은 사람만이 바로 이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래선(如來禪)생각과 알음알이가 아주 끊어지지 않아서 말의 자취가 있고 이치의 길이 남아 있는 선.

*공견(空見) ; 공(空)에 집착하여 일으키는 그릇된 견해. 공(空)을 허무론적인 견해로 이해하는 것으로, 이에 따르면 인과(因果)의 도리를 비롯한 모든 것의 존재가 부정된다.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2)

 

*화엄경(華嚴經) ; 본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이 경은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한 깨달음의 내용을 그대로 표명한 경전이다.

3가지 번역이 있는데, 60권은 동진(東晋)의 불타발타라(佛駄跋陀羅) 번역이고, 80권은 당(唐)의 실차난타(實叉難陀) 번역, 40권은 당(唐)의 반야(般若) 번역임.

이 가운데 40권은 60권과 80권의 마지막에 있는 입법계품(入法界品)에 해당하며, 십지품(十地品)과 입법계품(入法界品)만 산스크리트 원전이 남아 있다.

*선재동자(善財童子) ;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나오는 구도자(求道者). 문수보살의 법문을 듣고 발심(發心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하여 그 보살의 가르침대로 오십삼 선지식(五十三善知識)을 차례로 만나 보살도(菩薩道)를 배우고, 보현보살의 행원(行願 서원을 세우고 수행함)을 실천하여 진리의 세계로 들어감.

*문수보살(文殊菩薩) ;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부처의 완전한 지혜를 상징함. 문수사리는 산스크리트어 만주슈리(mañjuśrī)의 음사. 문수시리(文殊尸利),만수실리(蔓殊室利)라고도 쓴다.

‘문수’는 묘(妙, 신묘하다, 훌륭하다), ‘사리’는 길상(吉祥, 상서로움)의 뜻이다. 묘길상(妙吉祥)·묘덕(妙德)·유수(濡首)라 번역. 석가모니불을 왼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권(經卷)을 손에 든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化身).

≪화엄경≫ 속에서도 문수 보살은 보현보살(普賢菩薩)과 함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양쪽 협시 보살(挾侍菩薩)을 이룸.

*선지식(善知識) ; ①정직하고 덕(德)이 있는 벗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상경(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이. ②남녀•노소•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불연(佛緣)을 맺게 하는 사람. ③지식(知識)•선우(善友)•친우(親友)•선친우(善親友)•승우(勝友)라고도 함.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승사(承嗣 받들 승,이을 사) ; 후임자나 후대가 선임자나 선대의 권리나 의무를 뒤이어 물려받음.

*미륵보살(彌勒菩薩)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을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의 미륵이라 한다.

*신근(信根) ; 신(信, 진리에 대한 확신)의 뿌리. 신념(信念, 어떤 사상이나 생각을 굳게 믿으며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의 기초. 신근의 근(根)은, 나무뿌리와 같이 능히 유지시키는 것과 생기게 하는 것을 뜻함.

[참고] 신(信) : ①진리에 대한 확신。 ②신은 마음을 맑게 하고 해태를 막는 정신작용이다。 마치 수정주(水精珠)가 능히 탁한 물을 맑게 하듯이 마음에 신(信)이 있으면 마음으로 하여금 맑게 하는 것이다.

보살본업경(菩薩本業經)에 「만약 일체중생이 처음에 삼보의 바다에 들어오매 신(信)으로써 근본을 삼고 불가에 머무르거든 계(戒)로써 근본을 삼으라」하시고,

지도론(智度論)에 「불법대해(佛法大海)에는 신(信)으로 능입(能入)을 삼고 지(智)로 능도(能度)를 삼는다」하시며, 화엄경에 「신(信)은 도(道)의 으뜸이 되고 공덕의 어머니가 된다(信爲道元 功德母)」하신 것이다.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섭호하다(護-- 도울 섭,보호할 호) ; (부처님이 중생을) 받아들여 보살피다.

*보현보살(普賢菩薩) ;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맡은 보살. 한량없는 행원(行願)을 상징함.

산스크리트어 사만타바드라(Samantabhadra). 삼만다발타라(三曼多跋陀羅)라고 표기. 보현(普賢), 편길(遍吉)이라 한역. 경전을 수호하고 널리 퍼뜨리며, 불법을 펴는 보살.

연화대에 앉거나 여섯 이빨을 가진 흰 코끼리를 타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오른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보현보살은 또 중생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으므로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모든 보살들은 다 각각 부처님 공덕의 어느 한 부분만을 나타내어 그것이 그의 특징이 된다.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삼취정계(三聚淨戒) ; 대승불교 보살(菩薩)이 지녀야 할 계법(戒法, 부처님이 정한 계율의 법)에 대한 총칭. 삼취청정계, 삼취계라고도 한다. 섭률의계(攝律儀戒)·섭선법계(攝善法戒섭중생계(攝衆生戒)로 나뉜다.

 

①섭률의계는 5계·10계·250계 등 일정하게 제정된 여러 규율위의(規律威儀) 등을 지켜 일체의 허물과 악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지악문(止惡門)이라고도 한다.

②섭선법계는 적극적으로 일체의 선을 지혜롭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수선문(修善門)이라고도 한다.

③섭중생계는 자비심으로 일체의 중생을 제도하는 일체의 이타행위를 말한다. 권선문(勸善門)이라고도 한다.

 

①섭률의계 ②섭선법계는 자리(自利)이며, ③섭중생계는 이타(利他)행위이다. 모든 계법은 그 어느 것이라도 이 3가지에 포함되는데, 청정하기 때문에 정계(淨戒)라고 한다. 취(聚)는 집적(集積)의 뜻.

 

원효대사는 삼취정계 가운데 ①섭률의계는 단()의 덕목(德目)이고, ②섭선법계는 지()의 덕목이며, ③섭중생계는 은()의 덕목이기 때문에, 이 삼덕의 과()를 얻으면 그것이 곧 정각(正覺)을 이루는 길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 삼취정계를 간직함에 따라 중생과 자기의 내심에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여래장(如來藏)·본각(本覺)·불과(佛果)를 볼 수 있게 됨을 강조하였다.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

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2. 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3. 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4. 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5. 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6. 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선가귀감](용화선원) p94-95 참조.

*(게송) ‘역력이빈주~’ ; 『청허집(淸虛集)』 ‘贈道能禪子’ 참고.

*역력(歷歷) ; 훤히 알 수 있게 분명하고 또렷함.

*빈주(賓主 손님 빈,주인 주) ; ①손님과 주인. 객관(客觀)과 주관(主觀). 현상세계와 절대의 진여(眞如). ②수행자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음. 제자(賓)와 스승(主).

*형단(形段 모양 형,구분 단) ; ①형태. 형태로 나타나서 보이는 것. ②모양. 외양.

*의심(疑心) :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칠석)2014. 7. 4. 18:12

§(272) (게송)불원공명단원산~ / 몽산법어(蒙山法語), 선가귀감(禪家龜鑑) / (게송)불시물혜조병무~.

「선가귀감」을 보면 불교의 팔만대장경의 골수만을 뽑아놨기 때문에 그 한 권의 책을 잘 정독을 하고 또 정독을 하면 불교 팔만대장경의 근본 진리가 무엇인가를 우리는 파악할 수가 있고, 그런 가운데에도 참선(參禪)에 대해서 핵심적으로 법문(法門)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이 「몽산법어」는 순전히 ‘참선을 어떻게 해야 바르게 할 수가 있는가?’에 대한 법문입니다.


**송담스님(No.272) - 1985년(을축년) 칠석법회(65분)에서. (용272)

 

(1) 약 18분.

 

(2) 약 6분.

 


(1)-----------------

불원공명단원산(不願功名但願山)하고  산중채약기년간(山中採藥幾年間)고
나무~아미타불~
심심송뇌연하리(深深松籟烟霞裏)에  일곡지가만경한(一曲芝歌萬境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원공명단원산(不願功名但願山)하고, 세속에 부귀영화 공명(功名)은 원허지 아니하고 다맛 산만을 원했노라. 세속은 다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여, 다 버려버리고 산중에 들어가서 살기를 원하고,
산중채약기년간(山中採藥幾年間)냐. 그래서 산중에 들어가 가지고 약을 캐기를 몇 년이나 했던가.

심심송뇌연하리(深深松籟烟霞裏)에, 깊고 깊은 솔바람 불고 안개 낀 속에
일곡지가만경한(一曲芝歌萬境閑)이로구나. 한 곡 지초 캐는 노래에 일만 경계가 한가하구나.

세속을 다 버려버리고 이 산중에 들어가서 약초를 캐. 당귀도 캐고 백출도 캐고 지초, 요새 영지버섯이라 해 가지고-요새 많이 사람들이 수명장수를 허기 위해서 또 모든 병을 고치기 위해서,
그런데 그 지초(芝草) 지(芝)라고 허는 것이 영지버섯인데 다 신선들이 차로 대려 먹는 약인데, 이 지초 캐는 노래에 일만 경계가 한가해.

지금 여러분들은 이 속가를 다 버리고 산중에 들어가서 약초를 캐 먹고사는 할아버지를 보신 일이 있는가 모르겠습니다마는 산중에는 그 꼴망태를 짊어지고 그 약초캐는 뾰족한 괭이를 가지고서,
그 설악산·오대산 그런 산중에 다니면서 산삼도 캐고 온갖 소중한 약초도 캐고 해서 자기도 다려먹고 그걸 팔아서 양식도 사고 허는 채락꾼(採藥)이 있습니다.

그 채락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그 먹고 살기 위해서 약을 캐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정말 세속에 그런 시비와 공명과 탐욕과 모다 그런 시기와 질투 그런 생각이 다 떨어져 버리고 그 눈빛이 너무너무 맑고 깨끗하고 샛별 같에서, 그 눈빛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수가 있는데,

그 채락하는 그 할아버지의 눈빛을 보면 정말 참선을 하고 무슨 염불을 하고 허는 그런 냄새도 없이,
그렇게 명산(名山)을 다니면서 약초를 캐는 가운데에 마음의 수양(修養)이 되어서 그런지, 얼굴도 맑고 눈빛도 깨끗허고 말을 시켜보면 그렇게 소박하고 그렇다 그말이여.

출가해 가지고 참선하고 도를 닦는 스님네를 지금 약초캐는 그 할아버지한테 비유해서 지금 읊어진 시라고 생각이 됩니다.
깊고 깊은 솔바람 불고 안개가 낀 그 깊은 산중에서 약초캐는 그 한 곡조에 강산이 한가하다 그말이여.

설사 여러분은 세속에 몸을 담아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먹고 살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고 좀더 잘 살아 보기 위해서 밤잠을 안 자고 가슴을 조이면서 사업을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허시는데,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줄 알고 악착같이 그 속에서 일생을 지낸다면,
그것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참사람’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몸부림치다가 맺힌 한을 풀지 못하고 원망과 원한과 불만만을 가슴에 가뜩 안은 채 이승을 하직(下直)허게 되는데 그렇게 하직을 해가지고 태어날 곳이 과연 어디로 가게 되겠습니까?

다행히 여러분은 세계 50억 인구가 거의 전부가 그러헌 삶을 살고 있는데, 여러분은 불법(佛法)을 만났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났어.

비록 몸은 그런 불구뎅이 속에 담아 있지만, 여러분의 마음은 깊고 깊은 솔바람 불고 안개 낀 그 맑고 신선한 그런 설악산이나 오대산이나 백두산이나 금강산·지리산 이런 명산에 들어가서,
아무 욕심도 없이 도를 닦는 스님네나 약초를 캐는 할아버지와 같은 그러헌 마음가짐으로 여러분은 사실 수가 있게 된 것을 얼마나 흐믓하고 다행스러웁게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너무도 세속이 각박하고 살아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깜빡 깜빡 잊어버리고 거기에 정신을 뺏기고 팔리게 되겠지만, 그때 그때 '한 생각'을 퍼뜩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고,
정법 믿는 마음으로 자기 스스로를 청소하고 참회(懺悔)를 통해서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돌이켜 나간다면, 이 자리에는 승속(僧俗)도 없고 남녀(男女)도 없고 노소(老少)도 없는 법입니다.

오늘 칠석날을 맞이해서 과거의 모든 업장(業障)을 이참(理懺)과 사참(事懺)을 통해서 깨끗이 참회하시고 그래가지고 정법을 믿는 신심을 더욱 돈독히 해서 오늘부터 새로운 각오로 수행을 쌓아 나가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크고 작은 소원을 빨리 성취하는 길이며 모든 장애를 다시는 맞이하지 않고 미연(未然)에 소멸허는 성스러운 길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양력 8월 30일, 음력 7월 15일에는 해제(解制)날이 됩니다.
해제날이며 또 백일기도 회향날이며 그리고 우란분(盂蘭盆)이라 해서 백종(百種)날입니다. 지옥문이 열려서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가 풀려 나오는 날입니다.

그날 이 법보전(法寶殿)에 여러분의 선망부모와 원근친척을 만년위패(萬年位牌)에 모신 분은 말할 것도 없고 설사 모시지 아니한 분도 그날 오셔서 동참(同參)을 하시고 임시위패도 인연따라서 하시고,
그렇게 해서 우리의 선망부모를-지옥에 가신 분도 있을 것이고, 또는 중음신(中陰身)으로 이 허공계에 헤매고 있는 그러헌 영가(靈駕)도 있을 것이고, 원한에 사무쳐서 우리의 주변 우리 가정에 맴돌고 있는 그러헌 영가도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상황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이 백종날을 기해서 그러헌 선망부모와 원근친척의 영가를 위로하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천도재를 올림으로 해서 그 영가도 원한을 다 풀고 업장을 소멸해서 좋은 곳에 빨리 태어나도록 그렇게 발원을 허는 것은 우리 불자로서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참석을 하시고 일가 친척들도 서로 권고해서 오시도록 인도를 허시기를 바라고 또 양력 9월1일에는 일요법회입니다.
9월 첫째 일요법회인데 그때는 어린이 독경(讀經)대회가 있으니 어린이를 가지신 분으로,
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 이 천수다라니를 그날 어린이 독경대회에서 그것을 독경을 해가지고 상을 주어서 표창을 허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 참석할 어린이들은 어쨋든지 열심히 외우고 또 음성도 잘 골라서 공부를 허시면 그날 뽑혀서 좋고 설사 자기보다 더 잘한 사람이 있어서 뽑히지 않는다 허드라도 그것을 외운 공덕으로 업장이 소멸이 되고,
그 자비주(慈悲呪)이기 때문에 그것을 어릴 때부터 외워 놓으면 평생에 액난(厄難)을 면(免)할 것이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불법(佛法)중에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때에 참석을 허기 위해서 열심히 허는 것은 일석이조(一石二鳥)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9월 1일에는 「몽산법어(蒙山法語)」라고 허는 순전히 참선을 올바르게 허는 몽산 스님의 법어를 모은 책을 법보시(法布施)를 허게 됩니다. 이미 이 책이 이렇게 잘 찍혀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날 참석허신 분은 누구를 막론하고 한 권씩을 전부 노나드립니다.

지난 봄에 「선가귀감(禪家龜鑑)」이라고 하는 책을 노나드렸는데 그 「선가귀감」이란 책은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지으신건대, 팔만대장경 속에서 불법에 가장 요긴한 법구절(法句節)을 모아 가지고 그래가지고 한 권의 책을 만들았습니다.

그래서 그 「선가귀감」을 보면 불교의 팔만대장경의 골수만을 뽑아놨기 때문에 그 한 권의 책을 잘 정독을 하고 또 정독을 하면 불교 팔만대장경의 근본 진리가 무엇인가를 우리는 파악할 수가 있고,
그런 가운데에도 참선(參禪)에 대해서 핵심적으로 법문(法門)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이 「몽산법어」는 순전히 ‘참선을 어떻게 해야 바르게 할 수가 있는가?’에 대한 법문입니다.

이 원(元)나라에 몽산 스님이라고 허는 큰스님이 계셨었는데, 그 스님이 허신 법문 가운데에 요긴헌 법문을 뽑아서 만들었는데,
‘누가 만들었냐?’하면은 혜각존자(慧覺尊者)라고 하는-이조때 수양대군 세조대왕이 불법에 신심을 돈발해 가지고 그 왕사인 수미대사(守眉大師)한테 특명을 내려가지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라든지 그 밖에 여러가지 좋은 경을 모다 번역을 하고,
또 참선을 잘허기 위해서 이 「몽산법어」도 뽑아서 번역을 해가지고 간경도감(刊經都監)이라고 허는, 국가의 경(經)을 갖다가 조각을 해서 인쇄해가지고 간행하는 그 간행도감에서 이것을 발간을 한 것입니다.

그때에 한글로 번역된 그 원본이 오늘날까지도 전해 내려오는데 이조(李朝) 기간에 이것이 현재 밝혀진 것만 해도 여덟 차례나 이 「몽산법어」가 간행이 되았습니다.
아직 밝혀지지 아니헌것까지 허면 뭐 열번도 더 넘을랑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 원본-간행도감에서 나오고 또 마지막에 송광사에서 나온 송광사판이 있고 그런데,

그러헌 원본에 입각해서 이것을 용화사에서 현대어로 번역을 해서 또 어려운 낱말에 대해서는 그 주역(註譯)을 붙여서 이렇게 해서 몇 분의 신심이 돈독헌 분의 간청에 의해서 이 책을 인쇄를 해가지고 보시를 허게 되았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양력 9월 초하루 일요법회날 참석을 허시면 이 좋은 책을 「몽산법어」라고 허는 이 책을 노나드리게 됩니다. 이것으로써 오늘 을축년 칠석 법어를 마치고자 합니다.(41분16초~59분16초)

 

 

 



(2)------------------

불시물혜조병무(不是物兮早騈拇)인디  허다명상부하위(許多名相復何爲)리오
나무~아미타불~
관간첩장연라리(慣看疊嶂煙蘿裏)에  무수호손도상지(無鬚猢猻倒上枝)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시물혜조병무(不是物兮早騈拇)여  허다명상부하위(許多名相復何爲)인고,
‘이 한 물건도 아니다’,  ‘이 한 물건도 아니다’헐 때에 이미 '육손이'다 그말이여. '육손이'는 다섯 손가락 밖에 손가락이 하나 따로 붙어있는 그것을 '육손이'라 그러는데, 그것은 군더더기인 것입니다.

그거 하나 붙었다고 해서 글씨를 잘 쓰는 것도 아니고, 뭐 맛있는 걸 잘 집어먹는 것도 아닌 것이고, 남 보기만 흉직허게 생겼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옛날에는 함부로 떼면 안되고 ‘그것이 붙어서 복이 있다’고 해 가지고 평생을 덜렁덜렁 붙은 채 살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마는 요새는 수술법이 발달이 되아서 어릴 때 떼어 버리면 감쪽같은 것입니다마는,

‘이 한 물건도 아니다’ ‘한 물(物)도 아니다’헐 때 벌써 그것이 군더더기 소리다 그말이여.

허다명상부하위(許多名相復何爲)고. 하물며 허다한 명상(名相)은 더군다나 어디다 쓸 것이냐 그말이여.
한 물(物)도 아니라고 해도 그것이 이미 어긋나버린 군더더기인데 하물며 허다한 명상-무슨 이름, 무슨 모양 명상(名相)이야 더 말할 것이 있느냐 그말이야.

관간첩장연라리(慣看疊嶂煙蘿裏)에, 첩첩산중 그 연기 끼고 칡덩쿨 우거진 속에,
무수호손(無鬚猢猻)이 도상지(倒上枝)여. 수염 없는 잔나비가 나무가지를 거꿀로 올라가는 것을 보는구나.

그 깊은 산중에서 수염 없는 잔나비가 나무가지를 거꿀로 올라가는 것을 보는구나. 이 ‘수염 없는 원숭이가 나무를 꺼꿀로 올라간다’니 이게 무슨 도리냐?
‘수염 없는 원숭이가 나무를 꺼꿀로 올라가?’ 이 도리는 말로써 설명할 수가 없고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으로 따져서 이해할 수가 없는 도리인 것입니다.

앞으로 을축년 해제, 칠월 보름날 해제까지 일주일 밖에 남지를 않았습니다.
선방에 정진하는 스님네 또 보살선방에 정진하는 보살님네, 가정에서 또 생활 속에서 정진을 하신 신남신녀 여러분들께서 앞으로 7일 간을 좀더 가다듬어서 끝마무리를 알뜰히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리고,

후원에서 애쓰시는 모다 여러 소임을 맡으신 채공·공양주·별좌를 맡으신 불자들도 남은 일주일 간을 뜨거운 신심으로 외호(外護)를 정성껏 허면서 정진을 알뜰히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41분16초~65분13초)(끝)

 

 

 



-------------------(1)

*(게송) ‘불원공명단원산~’ ; [경허집(鏡虛集)] (명정 역 | 극락호국선원) ‘次採藥商趙氏韻(채약상 조씨 차운)’ p234 참고.
*烟(연)연기,안개,煙과 동자(同字) *霞(하)노을 *裏(리,이)속,가운데 *籟(뢰)퉁소,소리
*공명(功名) ; 공을 세워서 자기의 이름을 널리 드러냄. 또는 그 이름.
*수양(修養) ; 몸과 마음을 갈고닦아 품성이나 지식, 도덕 따위를 높은 경지로 끌어올림.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이참(理懺) ; 진리의 참모습을 관찰하여 참회를 얻는 것. 관찰실상참회(觀察實相懺悔)라고도 한다.
과거와 현재에 지은 죄(罪)라고 하는 것은 자성(自性)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어서, 마음이 본래 공적(空寂)한 것임을 알게 되면 죄도 또한 없어진다(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時罪亦亡).
이 도리를 철저히 믿고 참선을 허면 거기에서 죄가 소멸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죄업의 실상을 관찰하여 죄를 멸하는 것을 이참(理懺)이라 한다.
*사참(事懺) ; 지은 바 행위를 분별하여 그 행위에 대해서 참회하는 것으로서, 몸(身)으로는 부처님께 무수배례(無數拜禮) 절을 하고, 입(口)으로는 부처님을 찬탄하는 게송(偈頌)을 외우며, 마음(意)으로는 부처님의 성스러운 모습을 그리면서, 과거와 현재에 지은 죄업을 참회한다.
법계(法界)의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없는 중생이 부처님의 자비에 의지하여 참회하는 것. 일반적으로 ‘참회한다’하면 이 사참을 뜻한다. ‘수사분별참회(隨事分別懺悔)’라고도 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우란분(盂蘭盆) ; 우란분(盂蘭盆)은 산스크리트어 ullambana의 음사로, 도현(倒懸)이라 번역.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는다는 뜻.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삼보(三寶)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수 없어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의 모친을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동참(同參) ; 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중음신(中陰身) ; 이 생(生)을 끝내고 다음 생(生)을 받을 때까지의 중간 존재 상태.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 ; 「천수경(千手經)」에 나오는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를 말함. 82구(句)의 주문(呪文). 천수관음의 공덕을 말한 것으로, 이것을 외면 모든 죄업이 없어진다고 한다.
대비주(大悲呪), 천수주(千手呪), 천수천안대비심다라니(千手千眼大悲心陀羅尼)라고도 한다.
*악도(惡道) ; 악한 짓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법보시(法布施) ; 남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불서(佛書)를 베풂.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혜각존자신미대사(慧覺尊者信眉大師) ; 본명은 김수성(金守省). 본관은 영동(永同). 아버지는 옥구진(沃溝鎭) 병사였던 김훈(金訓)이며, 동생은 유생이면서도 숭불을 주장했던 김수온(金守溫)이다.

세조 때의 선승(禪僧)인데, 행장은 전하지 않으나 왕실과의 관계 속에서 행해진 불교 중흥의 기록들을 통하여 그 행적을 살필 수 있다. 법주사(法住寺)에 출가하여 사미(沙彌) 시절에 수미(守眉)와 함께 대장경을 읽고 율을 익혔다.

그 뒤 세종 말년에 왕을 도와 불사를 중흥시켰다. 세종은 말년에 2왕자와 왕후를 3년 사이에 잃게 되자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신불(信佛)하였다. 이 때 신미와 김수온은 세종을 도와 내원당(內願堂)을 궁 안에 짓고 법요(法要)를 주관하는 등 불교를 일으키기에 노력하였다. 또한, 세종을 도와 복천사(福泉寺)를 중수하고 그곳에 아미타삼존불을 봉안하였다. 문종은 선왕의 뜻을 이어 그를 선교도총섭(禪敎都摠攝)에 임명하였다.

세조 때는 왕사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세조는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그를 경애하였고, 왕위에 오르자 불교의 중흥을 주관하게 하였다. 1458년(세조 4)에 나라에서 해인사에 있던 대장경 50부를 간행하고자 했을 때 이를 감독하였고, 1461년 6월에 왕명으로 간경도감을 설치하여 훈민정음을 널리 유통시키기 위해 불전(佛典)을 번역, 간행했을 때도 이를 주관하였다.
그의 주관 아래 『법화경』·『반야심경』·『영가집(永嘉集)』 등이 언해되었으며, 함허(涵虛)의 『금강경오가해설의(金剛經五家解說誼)』도 교정하여 간행하는 등 불전의 국역과 유통을 위한 막중한 역할을 하였다.

1464년 2월 세조가 속리산 복천사로 행차하였을 때 그곳에서 사지(斯智)·학열(學悅)·학조(學祖) 등과 함께 대설법회(大說法會)를 열었다. 또한, 같은 해에 상원사(上院寺)로 옮겨 왕에게 상원사의 중창을 건의하였고, 이에 왕은 「오대산상원사중창권선문(五臺山上院寺重創勸善文)」을 지어 이를 시행하도록 하였는데, 이 권선문에는 그에 대한 왕의 존경심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세조는 혜각존자(慧覺尊者)라는 호를 내리고 존경하였다.
*간경도감(刊經都監) ; 조선 시대, 1461(세조 7)년에 불경을 번역하기 위하여 설치한 기관을 이르던 말.

 

 

 

 


-------------------(2)


*(게송) ‘불시물혜조병무~’ ; [경허집(鏡虛集)] (명정 역 | 극락호국선원) ‘題智異山靈源寺(지리산 영원사)’ p226 참고.
*兮(혜)어조사,어조사(語助辭)로 윗말을 완화(緩和)하고 아래의 말을 강조(强調)하는 뜻으로 쓰임. *騈(병) 나란히 하다, 쓸모 없는 것 *拇(무)엄지손가락,엄지발가락
[참고] 騈拇枝指(병무지지) 엄지발가락과 둘째 발가락이 붙어버린 병무(騈拇)나 손가락이 여섯인 육손이(枝指), 쓸모 없는 것, 군더더기란 뜻.
*慣(관)익숙하다,익숙해지다 *疊(첩)거듭,연속하다 *嶂(장)산봉우리 *疊嶂(첩장) 중첩되어 있는 산봉우리. *蘿(라,나)소나무겨우살이,담쟁이덩굴 *鬚(수)수염 *猢(호)원숭이 *猻(손)원숭이 *猢猻(호손)원숭이 *倒(도)넘어지다,거꾸로.
*명상(名相) : 모든 물건이나 일이 다 이름과 형상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이름만 들으면 그 사물의 형상을 생각하게 되는데, 형상이란 것은 바탕과 모양이 있고 없고를 막론하고 공간적으로 있는 형용과 체적(體積)·질량(質量)뿐 아니라, 시간적으로 나타나는 나고 머물고 늙고 죽는 것이나, 시작되고(成) 진행하고(住) 쇠퇴하고(壤) 파멸하는(空)것도 형상이며, 오관(五官)으로 감촉하게 되는 열도(熱度)·소리(音響)·빛(色)·냄새(香)·맛(味) 같은 것도 또한 형상이다.
그러나 이 이름이나 형상은 그 자체가 본래 확실히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망녕된 생각이 지어낸 빈 이름이며, 한 때의 인연을 따라 생겨난 거짓 형상인 것이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별좌(別座) ; 절에서 식사·의복·방석·이부자리 등을 담당하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Posted by 닥공닥정
전제 단제2013. 10. 8. 09:46

§(414) 전강 선사의 단제, 전제의 장점이 융합된 효율적인 정진을 있는 공부법.

 

**송담스님(No.414)—1990 4 첫째 일요법회 법문. (용414)

 

약 11분.

 

 

화두,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화두를 하시는 데에 ()자를어째서 무자(無字)라고 했는고?’ ‘어째서 무자(無字)라고 했는고?’ 아주 , 주먹을 부르쥐고 무릎 위에다가 ! 놓고는 아침부터서 점심, 점심부터 저녁, 저녁부터서 밤에 잠도 주무시지도 않고 그냥,

 

그러다가 예불 시간에 예불을 하시면지심귀명례...”하고 엎드려 가지고는삼계대사 사생자부...” 그냥 엎드려서 잠이 들어 버렸어. “시아본사...”해도 일어나는데 일어나시고 엎드린 예불이 끝날 때까지.

옆에서 쿡쿡 찌르면서일어나라 하니까 입승(立繩) 스님이그거 놔두라. “밤잠 자고 정진하다가 엎드려 있는데 잠시 자게 놔두라.

 

처음에는 수군덕거리고 욕하고 빈정대고, 그렇지만 , 달을 열심히 한결같이 나가니까 대중이 모다보통 애가 아니구나!” 대중 가운데 어린 사람이 그렇게 공부한 것을 보고 모두 사람이 따라서 발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모다 가행정진(加行精進) 하고 그랬다고 그럽니다.

 

그런데어째서 () 했는고?’ 화두를 의심한 것은 대단히 좋은데 조실 스님께서는 불급불완(不急不緩) 묘한 관으로, 의심관(疑心觀)으로 가는 것을 모르셨어.

 

어려서 워낙 발심(發心) 철저히 놓고 분심(憤心) 솟구쳐 오르니까 목숨을 바쳐서 거기에다 아주 용맹스럽게 나가실중만 알으셨지, 불급불완한 () 의관으로 나가는 것을 그걸 선배가 있어서 그것을 일러 주셨으면 되었을텐데 그걸 못하셨어.

 

몽산법어(蒙山法語) 보면 무자(無字) 드는데 가지,

 

하나는 단제, 그냥~~’하고 아무 일체 다른 말은 없이~’만을 항상 들여다 보는 거여.

조주 스님이했으니까~’ 들여다 보는 거여. 숨을 들어마시다 내쉬면서~’

어째서 무라 했는고그런게 아니여, 그냥~’ 들여다 보는 이것을 단제(單提)라고 그러고.

 

전제(全提)어째서 무라고 했는가?’ ‘조주스님은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이렇게 의심을 하는 이것은 전제인데,

~’하고 단제로 하는 데에도 장단점이 있고, 전제로어째서 무라고 했는고~?’하는 데에도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러면~’하는 데에는 무슨 장점이 있느냐 하면,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하고 자꾸 하다 보면 성질이 급한 체질을 가진 사람은 너무 되게 몰아대다가 상기병(上氣病) 생기고, 생각이 끊어지질 않아 점점 어지러운 생각, 복잡한 생각이 일어나거든.

그냥~’하면 생각 생각 그런 복잡한 생각은 일어나지 아니헌데 의심(疑心) 없어. 의심이 없으면 깨닫지 못하거든.

 

의심이 작으면 작게 깨닫고, 의심이 크면 크게 깨닫고, 의심이 없으면 깨닫지 못한다그랬어.

 

그런데~’하고 () 항상 들여다 보면 생각 생각 복잡한 생각은 일어나지 않고 조용해지고 좋기는 좋은데, 까딱하면은 너무 조용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혼침(昏沈) 빠질 우려가 있고 무기(無記) 떨어지거든.

 

무기에 떨어지면 아무리 고요하고 편안하고 맑고 좋다 해도 확철대오(廓徹大悟) 못하는 거여.

 

그러면어째서 무라 했는고~?’하고 의심이 있어야 하는데,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의심이 있어야 크게 깨닫는다』 그랬으니처음부터서 크게 의심을 해야겠다 가지고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고서어째서 무라 했는고?’ 여기다가 그냥 ' ()'자를 쓰고서 몰아대면,

영락없이 피가 넘어오고 상기(上氣) 되어 가지고 눈알이 튀겨져 나올려고 하고 골이 벌어질라 그러고 목이 뻗뻗해져. 이뭣고소리만 하면 벌써 골치부터 아퍼지기 시작하는 거여.

 

그러니 몽산 스님은 처음에는 단제로~’ ‘~’하고 무만 자꾸 들어서 순일해져 순숙해져서,

순숙해진 다음에 2단계에 나아가서어째서 무라 했는고?’하고 의심을 든다면, 전제로 한다면 이것이 가장 단제와 전제를 효율적으로 활용을 해서 폐단없이 깨달음에 나아가는 수행을 수가 있다. 몽산어록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하고 무자만 바라만 보도록, 그렇게 하라고는 조실스님도 가르키시지 않았고 산승(山僧) 그렇게 공부를 하라고는 한번도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대신 처음에는 단제 전제 할것 없이, 처음에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가부좌나 반가부좌 하는 법을 익히고 다음에는 단전호흡(丹田呼吸) 해서 단전호흡이 되도록 익힌 다음에,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내쉬면서어째서 무라 했는고~?’ 이렇게 하라고 지도를 왔습니다.

 

이렇게 가면 몽산 스님이 염려하시는 단제와 전제의 장단점이 융합된 효율적인 정진을 수가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단전호흡을 익히고, 단전호흡을 하되 처음에는 수식관(數息觀)으로부터 들어가 가지고 나중에 수식관이 잘되면은 다음에 전제(全提) 공부를 나가되 탈이 없으리라고 그렇게 보았기 때문에,

 

조실 스님께서도 단제(單提) 대한 것은 말씀을 하시지 않고, 전제(全提) 하도록 많은 설법을 하셨고, 산승도 역시 조실 스님의 뜻을 따라서 그렇게 말씀을 왔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처음에 전제로 공부를 하시되 너무 힘을 가지고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러헌 병이 나셨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실 스님께서도 항상 단전호흡에 대한 법문을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아마 자리에는 앞으로 여름 안거를 위해서 방부(房付) 들이고 갈려고 하는 수좌(首座)님들이 분인가 있을 생각합니다.

따로 내가 만나서 화두를 일러드림사 좋지마는 그러헌 시간이 없으니 법상(法床)에서 이렇게 말씀을 것을 명심해서 듣고, 그렇게 해서 화두를 걸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선방에 가서 정진을 잘하기를 바래고.

 

여기에 참석하신 사부대중 여러분들도 새로 오신 분이나, 오래 전부터서 법문을 들으시고 공부를 하신 분이나, 오늘 조실 스님의 법문이나 또는 산승의 말씀은 앞으로 공부해 나가는 데에도 명심해서 주시기를 바랍니다.(5142~6212)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묘한 의심관(疑心觀) ; 묘관(妙觀). () 의심(疑心) (). 화두를 거각하여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 하는 .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모르는 사람은 힘을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밖에는 없지만,

, , 이렇게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해도 화두가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걸랑,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 하는 거여. 없는 의심의 ()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일은 없는 의단(疑團)만을 잡드리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 () 긴완(緊緩) 득기중(得其中) 해야 . 그것이 묘한 ()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아는 사람은 바로 ()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의심(疑心) ()’으로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관해 나가면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의심의 ()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 막론하고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 2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 , , 3, 5, 10년을 해도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하고, 고대로 하면서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묘한 의관(疑觀)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조정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의심관, ()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생각 없는 생각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활구참선(活句參禪)의심(疑心) 이라야 .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 서산에 지려고 ,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때에,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빨갛고 아름다운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수가 없는데, 해가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해를 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떨어져서 보일 때까지 시간 내지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때까지 관찰하고서, 다음에는 밤새 눈을 감으나 뜨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다시 관을 해서,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밤새 관하고, 이튿날 관하고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일관이라든지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 있는데, 참선도 하나의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이뭣고?’ 해도 없는 의심이해가 봐두었던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 .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역대조사(歷代祖師)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발심(發心) ;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조주(趙州) : (778 – 897) 이름은 종심()이고 속성은 ()씨인데, 산동성(山東省) 조주부(曹州府)에서 났다. 어려서 출가하여 남전(南泉) 보원선사(普願禪師) 법을 받고, 문하에서 이십 동안 있었다. 팔십 세까지 각처로 돌아다니다가(行脚) 비로소 조주(趙州) 관음원(觀音院)에서 학자들을 제접(提接)하기 사십 . 당나라 소종(昭宗) 건녕(乾寧) 4 120세에 입적하였다. <어록(語錄)> 3권이 남았고, 그의 교화가 참으로 커서 조주 고불(趙州古佛)이라고 일컬었다.

*상기병(上氣病 오를 /기운 /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 머리에 치밀게()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 상기병이 생기면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혼침(昏沈 어두울 , 잠길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무기(無記) : [] Avyaksita ()•()•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 말한다.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몽산(蒙山) : ()나라 스님, 생몰 연대 없음. 이름은 덕이(德異), 강서성(江西省) 여릉도(廬陵道) 시양 고안현(時陽高安縣)에서 났다.

고향 시양이 당나라 때에는 균주(筠州)였기 때문에 고균(古筠) 비구라고 일도 있었고, 여릉도 몽산에 있었으므로 몽산화상이라 하며 강소성(江蘇省) 송강현(松江縣) 전산(殿山) 있었으므로 전산화상이라기도 하고, 휴휴암(休休庵) 있었으므로 휴휴암주라기도 하였다. 고산(鼓山)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 법을 이었다.

그의 교화한 시기는 원나라 세조(世祖) 때이며, 우리 고려의 충렬왕 때이다. 그래서 고려의 고승들과 문필의 거래가 많았고, 그의 저서 가운데 <법어약록(法語略錄)> <수심결(修心訣)>등은 이조 중엽에 우리 글로 번역되기까지 하였다.

*몽산법어(蒙山法語) ; ()나라 몽산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하였다.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몽산법어 있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3,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3, 내쉬는 시간은 4~5,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 동안거해제 법문에서.(1분 32초)

 

숨을 들어마실 코로 들어마신다 생각을 하지 말고 뒤에서 들어마셔 가지고,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지고 거기서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내쉰다, 내보낸다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수식관(數息觀); 들숨과 날숨을 세어 산란한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법.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