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존자'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5.09.19 §(245) (게송)다생원채기어친~ / 우란분재, 청제부인 / 인과법, 정업(定業) 난면(難免) / 악업보다 선업을 짓고, 선업보다 최상승법으로 수행해야.
  2. 2015.08.25 §(454) (게송)생애여몽약부운~ / 묵빈대처(默擯對處), 보살 화현 / 목련존자 일화 / (게송)석화광음주~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있어야 바른 공부 / 염지방편(念持方便).
  3. 2015.07.31 §(512) (게송)당하지귀아시수~ / 올바른 방생(放生)이란? 마음을 자비롭게 가져라 / 참선을 하는 뜻은 자기 방생입니다 / (게송)피치삭발유래유~ / (게송)정체종래절성색~.
  4. 2014.09.19 §(761) (게송)거심진속윤회업~ / 해제가 곧 결제 / 백중날–선망부모의 해탈 / 수행자의 본분 / (게송)호향차시명자기~.
  5. 2014.08.16 §(398) (게송)수류상출몰~ / 우란분재(盂蘭盆齋) / 자자일(自恣日) / 몽산 스님 법문 / 부처님의 유산과 제석천왕의 호법 원력(願力).
  6. 2014.08.06 §(105) (게송)노승부작유인의~ / 활구참선법—일석삼조(一石三鳥)의 법문 / 자자(自恣) / 우란분(盂蘭盆)—대중공양 / 생사해탈하는데 있어서 3가지 요건.
  7. 2014.07.23 §(645) (게송)올올무사대청산~ / 백중(百中)날-우란분(盂蘭盆)-목련경(目連經) / (게송)농계유식탕와근~ / 능엄경 변마장(辨魔障) / (게송)사자굴중무이수~.
  8. 2014.07.17 §(181) 백중 - 우란분(盂蘭盆) - 구도현(救倒懸) / (게송)아손자유아손복~ / 보시 공덕(功德)을 쌓아라.
  9. 2014.04.02 §(521) 3능, 3불능 / 정업(定業)은 난면(難免) / 우리가 이 세상에 받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 각본(脚本)을 쓴 것 / 찰나(刹那) 간에 몰록 / 신•분•의(信•憤•疑) 삼요.
인과, 인연2015.09.19 14:00

§(245) (게송)다생원채기어친~ / 우란분재, 청제부인 / 인과법, 정업(定業) 난면(難免) / 악업보다 선업을 짓고, 선업보다 최상승법으로 수행해야.


부처님께서 무량겁(無量劫)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을 갖은 고행(苦行) 겪으면서 육바라밀(六波羅蜜) 닦으시고, 손바닥만한 땅도 중생을 위해서  몸을 희사(喜捨)하지 아니한 곳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수없이 많은 몸을 중생을 위해서 부처님 목숨을 보시를 하셨던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 정법을 뿌리로 해서 서로 맺어진 친한 것이야 친하면 친할수록 모든 업을 소멸하고, 마침내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해서 생사고(生死苦) 해탈할  있는 중요한 인연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중생의 사욕(私慾) 충당하기 위해서, 오욕락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어떤 사람과 알고 지내고 친하게 지내면,  뒤끝은 물어볼 것도 없이 원수로 맺어질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나를 해롭게 하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복수를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인과법(因果法) 깨닫고 자기를 반성하고 참회해서 자비로써 상대하게 된다면, 원수(怨讐) 다시  은인(恩人)으로 변하게  것입니다.

더군다나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과거의 업으로 원수로 만났다 하더라도,  원수가 도업(道業)을 성취하는데 도반(道伴)으로서 만나지게 되고, 스승으로서 만나지게  것입니다.

**송담스님(No.245)—84(갑자년) 하안거해제 법회(84.08.11)


(1) 약 16분.  (2) 약 19분.  (3) 약 9분.


(1)------------------


다생원채기어친(多生怨債起於親)한데   막약다생불식인(莫若多生不識人)이니라

나무~ 아미타불~

증위낭자편련객(曾爲浪子偏憐客)이요   관애탐배석취인(慣愛貪盃惜醉人)이로구나

나무~ 아미타불~


다생원채(多生怨債) 기어친(起於親)이여. 다생(多生), 무량겁(無量劫) 원수가 친한 데에서 일어난 것이다.


막약다생불식인(莫若多生不識人)이라. 그러기 때문에 다생에 사람 아지 아니한 것만 같지 못하다. 사람을 알고 지내면 친해지고, 친해지면 원수가 되기 때문에 원수를 맺고 싶지 않거든 사람을 알고 지내지 아니한 것이 제일이다 그말이여.


증위낭자(曾爲浪子) 편련객(偏憐客)이여. 일찍이 방랑 생활을 해보았기 때문에 치우쳐 () 불쌍히 여긴다.

자기가 직접 고향을 떠나서 타향살이, 방랑자 노릇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객을 보면 지나치게  사람에게 동정심이 가고,  사람을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일어난다.


관애탐배석취인(慣愛貪盃惜醉人)이라. 내가 ! 술을 좋아하고 술을 많이 먹고 과거에 그랬기 때문에 어디에서 술취한 사람을 보면,  사람의 사정을 내가 충분히 이해가 되고 동정이 가더라 그말이여.


부처님께서 무량겁(無量劫)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을 갖은 고행(苦行) 겪으면서 육바라밀(六波羅蜜) 닦으시고, 손바닥만한 땅도 중생을 위해서  몸을 희사(喜捨)하지 아니한 곳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수없이 많은 몸을 중생을 위해서 부처님 목숨을 보시를 하셨던 것입니다.


   동안을,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 동안을 그렇게 많은 고행난행(苦行難行) 겪으면서 성불하실 때까지 그런 경험을 가지셨기 때문에 중생을 보면 무량겁으로부터서 오면서 부처님 자신이 겪었던 일이 있기 때문에,

중생의  윤회(輪廻)하는 모습을 보면, 고해(苦海) 빠져서 몸부림치는 것을 보면 치우치게 지나칠 정도로 불쌍하게 여기시더라 그말이거든.


오늘은 갑자년 7 15 우란분재(盂蘭盆齋) 날입니다.

‘우란분’이라 하는 말은 ‘구도현(救倒懸), 거꾸로 매달린 것을 구제한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꺼꾸로 매달렸느냐?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지옥에서 꺼꾸로 매달린  갖은 고문을 당하고, 하룻밤 하루낮에  번을 죽고  번을 살아나는 그러한 고통을 받고 계시는데  선망부모를 구제해 드리는 날이다 그래서 우란분이라 그래.


'우란분'이란 말은 인도말로써 우리말로는 꺼꾸로 매달리는 것을 해방시켜 주는 날이다.


 오늘  꺼꾸로 매달린 선망부모를 해방을 시켜드리는 날이냐 하면,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 십대제자(十大弟子)가 계시는데,  십대제자 가운데에 신통이 제일가는 목건련(犍連)이라 하는 존자가 계셨는데,  목련존자의 속가의 어머니는 이름을 청제부인이라 했는데,  어머니가 행실이 좋지 못하고  심성이 옳지 못해서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여러분께서 『지옥문』이라 하는 영화를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그리고  목련경(目連經) 보시면은  아시겠지만  청제부인이 행실이 좋지 못하고 심성이 옳지 못하고 살생을 많이 하고, 그래 가지고 결국은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청제부인의 아들 목련존자가 출가해 가지고 신통(神通) 얻어 가지고 어머니가 어디서 무슨 고통을 받고 계신가하고 떠억 ()  보니까, 지옥에 떨어져서 차마 볼 수 없는 그러한 참혹한 고통을 받고 계시다 그말이여. 


그래서 신통력으로 지옥에를  가지고  어머니를 만나서, 목이 마르고 배고픈 데 물을 주면  물이 피가 되고, 밥을 주면 거기서 불이 되어 가지고 목이 훨훨훨훨 타.

아무것을 주어도 아무 효과가 없고 오히려  고통만을 주게 됐더라 그말이여.


그래서 다시 부처님 계신 데로  가지고 부처님께 사정을 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저의 모친이 생존시에 많은 죄업을 짓고, 현재  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고 계시니 저를 생각해서라도  모친을 구제할  있도록  주십시오” 간청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사랑하는 제자 목련의 청을 듣고서,

“네가 모친을 구제하고저 하거든 칠월 백종날—여름 해제하는 , 모든 선원에서 해제를 하고 대중들이  군데 모여서 자자(自恣)회를  때에 그날을 기해서  가지 맛있는 음식과 과일을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에게 공양을 해라. 

그러면 부처님과 청정한 부처님 제자들에게 공양을 올리면  공양을 받아 잡숫고, 그리고 청정한 마음으로 축원을  주시면  공덕으로 지옥의 무서운 고통으로부터 구제를 받을 것이다 이렇게  방법을 일러 주셨던 것입니다. 


목련존자는 그길로 나가서 탁발을  가지고, 그래 가지고  해제날을 기해서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에게  가지 과일과 음식을 공양을 올렸습니다. 

 공덕으로 지옥의 문이 열려서 목련존자의 어머니 청제부인은 지옥고를 벗어나 가지고 천상에 태어나시게 되었다. 

여러분이 목련경을 읽으시면   소상한 내용이 적혀 있는 것입니다.


그날 목련존자가 어머니 청제부인을 천도(薦度) 드리는 그것이 시초가 되어 가지고,

해마다 칠월 백종이 되면 모든 불자들이—동남아나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불교를 믿는 나라에서들은 백종날을 기해서  가지 음식을 공양을 올린다 해서 백종이라 그러거든. 

백종날 이렇게 우란분 천도재를 삼천 년을 두고 오늘날까지 그것을 봉행(奉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에서도 목련존자의 어머니가 천도된 그날을 기해서 일제히 지옥문을 열고서 목에 팔목에 발목에 모다 채워 놓았던 쇠사슬을  풀어주기 때문에,

오늘도 지금  용화사 법보선원 법보전 안에도 우리의 무량겁 선망부모가  법당에 가득히 와서 계십니다.


더군다나  법회가 시작하기 전에 그러한 우리의 선망부모  우주 법계에 가득하신 모든 영가(靈駕)들을   자리에 법으로써 청해 모셨습니다.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은 그러한 여러분의 선망부모를 위해서 모두가  동참을 하셨고,  지극정성으로 천도를 해드리려는  정성이 넘쳐 흐르고,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피(加被) 입어서 그러한 영가들은  천도가 되실 것입니다.


다생에 원수 빚이 친한 데에서 일어나니 사람을 알고 지내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  게송을 여러분들이 들으시고 과연 그렇기는 그렇다. 그러니 어떻게 사람을 알고 지내지 아니할 수가 있을까?

알고 지내면 친해지기 마련이고 친해지면 나중에 언젠가는 원수가 된다니—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을 친(親)이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며, 알고 지내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말이여.


여기서 말하는 친하다 하는 것은 중생의 오욕락(五欲樂) 위한 정으로 얼크러진 친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 정법을 뿌리로 해서 서로 맺어진 친한 것이야 친하면 친할수록 모든 업을 소멸을 하고, 마침내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해서 생사고(生死苦) 해탈할  있는 중요한 인연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중생의 사욕(私慾) 충당하기 위해서, 오욕락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어떤 사람과 알고 지내고 어떤 사람과 친하게 지내면,  뒤끝은 물어볼 것도 없이 원수로 맺어질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맺은  인연으로 금생에 부모 자식 간이 되고, 형제자매가 되고,  부부간이 되고, 친구 간이 되고 이렇게 해서 일가친척이 되고,

그러한 관계가 전부 과거로부터 짓고 심고 맺어온  원인으로 해서 금생에 만나지게 됩니다마는,


과연  맺은 인연이 오욕락, 중생의 정으로 얼크러진 것이냐, 또는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닦아 가는 데에 있어서 그런 청정한 인연으로 맺어졌느냐는 여러분이  관찰을 해 보면 짐작이  것입니다.(처음~1622)



(2)------------------


어떤 사람은 과거에 양친(兩親), 부모를 모시고 있었는데,

 사람이 결혼을 하기 전에는 ! 부모에게 효도를 하고 부모도  자식 밖에는 모르고, 그렇게 해서 살다가  자식을 결혼을 시켰습니다.


결혼을  가지고 며느리를 맞이했는데, 결혼을  가지고도과거에  부모가 자식을 갖다가 너무 귀여워하고 사랑하고, 자식도   가지고서도 항시 어머니 품에서 자고 그러다가 결혼을 하니까,

결혼을  가지고도 자기 아내한테는 잠시 형식적으로 조금 자는  하고는 금방  어머니한테 뽀르르  가지고 어머니 품안에서 자고 그러니까, 


어머니는 결혼을  가지고도 이놈이 마음이 변하지 않고 엄마를 그렇게 사랑하는구나  흐뭇하게 생각을 했지만,

! 신부 입장에서는 결혼을 했는데 자기하고 같이 하룻밤을 정답게 지내지 아니하고, 시간만 있으면 시어머니 방으로 가버리고 가버리고 하니까 혼자 본의 아니게 독수공방(獨守空房) 하게 되니,


이런 도저히 참을  없는 정신적 고통을 받으면서 하루 하루를 살다가, 참다 참다 못해 나중에는 정신병이 걸릴 정도로 정신 쇠약(精神衰弱) 걸려 가지고, 그렇게 거의 미친 사람처럼  울고불고 떠들고 바가지를 긁고 그랬다.


만나기만 하면 부부간에 싸우고 그러니까,  신랑도 마지못해서 달래기 위해서 어머니 방에는 차츰  가고 자기 아내를 위안을  주고 그러는데,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놈이 결혼을 하더니 처음에는  오더니 차츰차츰 계집한테 빠져 갖고 오지도 않는다  가지고는   속에 섭섭하고,


그놈이 에미의 은혜를 잊어 버리고, 에미 애비의 사랑을 배반을 한다  가지고 굉장히 노엽게 생각을 해.

너무 너무 노엽게 생각하고 밤잠을  자고,  아들이 자기 방에만 오면 가슴이 조금 후련하고, 며느리 방에만 가면 주먹 같은 놈이 치밀어 오르면서 잠도  오고 부애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병이 나고, 도대체 이리 가자니 어머니가 안되었고, 저리 가자니 아내가 안되었고 중간에서 진퇴양난(進退兩難) 되었지마는,

그래도 우선 자기 부모는 부모고, 아내는 아내다  가지고, 주로 아내와 생활을 같이 하고 그러는데,

 어머니가 병이  가지고, 공양도  자시고 그러다가 너무 속을 썩어 가지고 중풍이 걸려 가지고는 대소변을 받어 내게 되었다.


그러자 아버지도  병이  가지고,  분이 나란히 누워서 그러니 누가 병수발을 하게 되냐 그말이여.

결국은  아들과 며느리가 병수발을 하게 되었는데, 아들은 자기 부모니까 성의를 다해서 할려고 그러고, 며느리는 은근히 속으로 감정이 좋지 못해 가지고, 처음에는  하는  하더니,


 방만 들어가면 너무 대소변을  이부자리에다가 싸고 그래서 도대체  방만 들어가면 창자가 뒤틀려서 들어갈 수가 없고, 처음에는 억지로 참고  했는데 나중에는 창자가 뒤틀리는 통에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고,


오래 앓게 되면 효자가 없다’고 옛날부터서 그런 말이 있는데,

 ,  ,  , 1, 이태, 3년 하는 동안에  증세는 점점 악화가 되어서 꼼짝을 못하면서, 먹기는 영판 많이 먹고 싸기도 많이 싸고 그런다.


그러니 자연히 그렇지 않아도 별로 효심이 없었던 며느리라 빨리 어떻게 그냥 죽어 버렸으면, 제발  빨리 죽어버렸으면하는 생각을 항시 가지고,

시부모는  듣는 데서 신랑한테도 부애만 나면  죽지도 않고 똥만 퍼싸고 자빠졌다 그러는데,

그것을 어찌 시부모가 병환이 나서 누워있다고 해서   눈치를 모를 것이냐.


어떻게 속이 상하지만 억지로 죽지는 못하는 것이고, 그렇게 아프면서도 암만 먹어도 배는  줄을 모르고 밤낮 배가 고프다. 갖다 주면 그저 쏵쏵 쓸어 먹고 돌아서서 똥을 퍼내고 그러는데,

환자도 여름에 더울  견디기 어렵고, 겨울에는 추워서 견디기가 어렵고, 방에다가 그저 영감님과 할멈이 번갈아 가면서 똥을 싸니 본인들도  견딜 일이고, 자식과 며느리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 나중에는 하도 똥을 치기가 귀찮으니까 밥을 조끔씩 줄여  조끔씩 주는데, 인자는 배가 고파서  살겠어.

너무너무 ,  달을 조끔씩 먹으니까 자기가  똥이라도 먹고 싶을 정도로그렇게 배가 고프다.


그래서  가져 오라고 이년이 나를 굶어 죽일라고 그런다 소리소리 지르고 나중에 북북 기어 나오니까 밖으로 문을 쳐닫고 철창(鐵窓)질을 해서 나오지 못하게 가둬 놓고서,

똥을 싸서 뭉게거나 말거나 내비두고, 구녁으로 밥만 조금씩 넣어주고 ! 이렇게 했다.


그러다가 밥도 형식적으로 조금씩 넣어 주니까 배가 고파서 기진맥진하다가 소리소리 지르다가   쓰러지고, 그리되 가지고 결국은 처음에 영감님이 먼저 돌아가고,  다음에 할머니가 죽었습니다.



죽은 뒤에는 장사(葬事) 아주 거판스럽게 마을 사람 체모(體貌)도 있고 그러니까  지내서 장례를 치뤘는데, 머지않아서  며느리는 태기(胎氣)가 있어서 쌍둥이를 낳는데, 처음에   울음 소리가 없어.

그래서 이것이 벙어리라냐 무엇이다냐? 의심을 했는데, 울음소리는 없었지만 이것이 차츰차츰 젖도 먹고 그래서 쌍둥이를 아주 예쁘게 낳았다 그말이여.


예쁘게 낳아서 ! ‘금이야 옥이야하고, ‘이것   낳는 수고하지 아니하고 한번에  버렸으니  키워야겠다하고, 엄마 아빠가 둘이 서로 하나씩 안고서 너무너무 귀여워서  견디고,

이런 고생 안 하고 진즉 났으면 좋았을텐데 인제사 났다고, 그렇게 부모가 오래오래 고생을 하다 돌아간 것을 아주 그나마도 돌아가셔서 잘되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애들을 기르는데,


!  애가 돌이 지내가도 일어나지를 못하고,  살이 되어도 일어나지를 못하고 마냥 엎드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누워서 버르적거리기만 하지 일어나지를 못하고, 억지로 일으켜서 앉어도 비그르르  쓰러져 버린다 그말이여.


척추가 어떻게 연골동물처럼, 빳빳이 서지를 못하고 마냥 누워서 비글비글 한다. 그것  이상하다하고 아무리 허리를 문질러 봐도 소용없고, 일으켜 세워 봐도 소용없고.

3, 4, 다섯, 여섯, 일곱, 열이 되도록 종래 일어나지를 못하고, 밤낮 1 열두  누워서 똥오줌을 싸고 비글비글 한다.


그러니 사람이라면 돌이 지내가기 전에  일어나 앉기도 하고,  돌이 지나가면서 일어서서 걷기도 하고 그러는 건데, 밤낮 누워서 빈들빈들  뱀처럼 그런다. 그래도 그것을 어떻게 하냐 그말이여.

엄마 아빠가 그나마 항시 들여다 보고만 있어야지, 조금  데로 가서 일을 보거나 한눈만 팔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울고, 도대체 밖에 나가서 일도 못하고, 어디 더군다나  데가 있어도 가지도 못하고 ! 고약하게 되었어.


그래도 그것이 불쌍하기가 그지없지만 자식이라 어떻게 하는 것이냐 그말이어.

죽일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 자식만 쳐다보면은 가슴이 미어질  같이 불쌍하고 가슴이 아프지만  어떻게 하느냐 그말이여.

그놈이 차츰차츰  가지고 10 20 되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성질까지 고약해져 가지고 조금만 비위가 틀렸다 하면, 누워서 온갖 것을  때려 부수고 심술을 부리는데 걷잡을 수가 없다.


그러니 어디서 손님이 와도 챙피하니,  뒷방에다 가둬 놓고  나오게 하고, 그렇게 하면서  자식을 났는데 그땐 아주 좋은 딸도 낳고 자식도 낳고 했는데,

 애들도 나이가 차츰차츰 들어서 혼사 문제도 있고 그러니,  처음에 낳은 쌍둥이 자식 때문에  애들 혼사 관계도 지장이 있을  같고 하니까,

영판 뒷방을 하나 치워 가지고는,  속에다가 무슨 원숭이나 짐승 키우듯이 뒷방에다 가둬 놓고 그것을 키우는데, ! 말로서 표현할  없는 정신적 고통을 받으면서 그것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필시(必是) 누워서 여러 해를 병고(病苦) 생활을 하면서 사랑하는 자식과 며느리로부터 푸대접을 받고, 효도를 받지 못한  고생을 하고, 똥오줌을 싸다가 너무너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품은  숨을 거둔  부모가 죽어 가지고 바로 자기집 자식으로 태어났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원래 고조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제일 인연 깊은 집이 바로 자기집이니까, 자기집에  밑에 손자로 태어나고 또는 손녀로도 태어나고,  때로는 다른 집에 태어나 가지고 며느리나 손주 며느리로   집에 와서 살게도 되고 그러기 마련인 것입니다.

 

노년(老年)에 사랑하는 자식과 며느리로부터서 ! 형용할  없는 불효를 받고 고통을 받고, 죽을  어떻게 해서 죽었냐 하면 앓다가 그냥 죽은  아니라,

너무 음식을 많이 먹을려 그러고, 똥오줌을 한없이 싸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도대체 아들 며느리가 살라야  수가 없어. 밤잠도  자고 그러니까, 너무너무 귀찮고 그러니까 밥을 쪼금씩 주어 가지고 결국은 굶겨서 죽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에 편안한 마음으로 숨을 거두어야지, 너무 깊은 애착에 빠져서 죽거나 원한에 사무쳐서 죽으면 반드시 좋은 곳에 가서 태어나기가 어렵고,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원한 때문에  원한을 풀기 위해서, 원수 복수를 갚기 위해서 다시 태어나 가지고 상대방을 갖다가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갖은 복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친한 데에서 원수가 생긴다』그랬는데, 원한이 깊으면  깊은 원한은 반드시 친한 데에서 생겨.


부모가 어찌 자식을 미워하고 복수를  생각이 있을까마는, 지나치게 배신을 당하고 너무너무 불효를 당하고 너무너무 억울하면,

 억울한 마음으로 이놈! 이년!’ 하고 생각 생각이 속으로  원한을 갖다가 다지고  다져서 그래 가지고 눈을 거두어 보시라 그말이여.

  없이  집에 자식으로 태어나서   살림을 망해 먹거나, 부모 속을 갈기갈기 찢어서 고추가루와 소금을 흩여 놓은 것처럼 그렇게 부모 속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안이 복을 받고  좋은 아들과 딸을 낳고 싶으면,  좋은 며느리를 맞이하고 싶거든 반드시 조상과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그래야  선망부모가  집으로 고마워서 태어날 때에는 효자와 효부로서  집에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은 데  나고  심은 데  나는, 아주 컴퓨터에 넣어도 일호(一毫) 어김이 없을 만큼, 이것은 정확한 인과(因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금생에 지어서 금생에 받기도 하고, 금생에 지어서  다음 생에 받기도 하고, 금생에 지어서    뒤에 가서 받기도 할지언정, 한번 지어 놓은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지 기어코 받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도  가지 능치 못한 것이 있는데,  중의  가지가 지은 업을 면하지를 못한다이것입니다.

정업(定業) 난면(難免)이라 하는데, 이것이 부처님 삼불능(三不能) 하나입니다마는, 하물며 우리 중생이 지은 업을 어떻게 그것을 면할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지어 놓은 죄를 면할려고 하기 보다는 차라리 미리 악업(惡業)을 짓지 아니하고 선업(善業) 짓고, 선업보다도 지은  없는 최상승법(最上乘法) 의지해서 닦아 간다면, 우리는 비로소 영원한 행복을 얻고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1623~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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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에는 상당히 많은 수의 지체 부자유한 어린이와 어른들이 있습니다.

손과 발이 자유롭지 못하거나 척추가 온전하지 못하거나 하고,  언어가 분명틀 못한 그런 사람도 있고, ! 많습니다. 그런 수가 옛날에 비교해서  자꾸 나날이 불어가지 않는가 이렇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국가에서도 그러한 지체가 부자유하거나  척추가 부자유한 사람들을 위해서 많은 신경을 쓰고는 있습니다마는 아무리 신경을 써본들 한번 그렇게 태어난 사람을 어떻게  것이냐 그말이여.


부모에게 불효하고 남에게 억울하게 손해를 끼치고 원한을 심어 놓으면, 어느 집안이고 그런 것이 생겨나지 말라는 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미 생겨난 사람을 어떻게  것이냐? 

그것을 보고 가슴이 아프고 불쌍하고 그러기는 그지없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추호(秋毫)도 미워하는 생각을 갖지  것이며, 원수 같이 생각하지  것이며,  보기에 챙피하게 생각하지  것이다 그말이여.


챙피하게 생각을 할수록에 더욱 좋지 못한 결과가 오는 것이고, 그것을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더군다나 제발  빨리 죽어져 없어졌으면, 그러한 생각을 꿈에도 갖지 말어라 이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면  아이는 먼저 알고 있습니다.

나를 미워하는구나. 나를 죽기를 바래는구나. 내가  집에 있는 것을 챙피하게 생각하는구나  눈치가 빠르기는 육신통  사람보다도  눈치가 빠른 것입니다. 환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생각을 갖는 한에는  사람은 점점  고약하게 굴게 되는 것이고, 점점   죽고 오래 사는 것입니다.

 10년간만 애를 먹이고 가리라 이렇게 마음 먹었다가도, 자기를 미워하고 죽기를 바래고 챙피하게 생각하면 20, 30년으로  나이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 빚을 받으러 왔는데 빚을 기분좋게 갚어 줘야지, 그렇게 기분을 상하게 해주면서—내가 어거지로 돈을 뜯으러  것처럼, 내가 당연히 받을만 해서 받으러  빚을 갖다가 생판 억지 빚을 주는 것처럼 그렇게 하면, 빚을 받어가도 시원치 않다 그말이여.



그래서 참으로  빚을 온전히 갚을라면 그러한 지체가 부자유한 불구(不具)한 가족이 있으신 분은 있는 정성을  거기다 쏟아야 하고, 조금도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갖지 말어야 하고,

오히려 그런 사람을 대할 때마다 있는 정성을  쏟고, 항시 감사한 마음을 갖도록까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냐?

 지체가 자유롭지 못한 불구한  사람을 대할 때마다 자기의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하고,

행여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억울하게  일은 없나? 행여나 내가 사람을 차별 대우를  일은 없나? 부모에게 잘못한 점은 없나? 형제 간이나 이웃에게 잘못한 것은 없나?’

항시 자기를 반성하고 자기를 꾸짖고  채찍질을 해서 자기를 갖다가 인격을 향상시켜 나가는 데에 좋은 스승으로 삼고,


누워서 똥오줌을 싸고, 누워서 신경질을 내고 그것을 보고서 귀찮고 괴롭고 그런 마음을 내지 말고, 오히려 거기서 인내심을 배우고 자비심을 배우고 봉사하는 마음을 배우고, 거기서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마음을 배울  있도록 되어야 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그러한 스승은 있어서 좋은 것이지 없어지기를 바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집안 식구 모두가  애를 보고서 배우고 느끼고 서로 화합하고 그렇게 해서 나날이 향상되어 가고, 그런다면 자연히 모든 식구가  애를 보고서 항시 흐뭇한 눈초리로  애를 지켜보아 주고 감사한 마음으로  애의 시중을 들어 준다면,

 애는 신경질도  부리게  것이고, 아주  집안 식구들의 마음을 편안케 해주면서 인연이 다할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과히 오랫동안  집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원한을  풀어 버리고 좋은 곳으로 가서 태어나게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은 죄가 얼마 만큼 많은가에 따라서 시일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설사 과거에 지은 업이 많고 빚이 많으면 좀더 오래 머물러 있는다 하더라도, 집안 식구가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상대를 하게 된다면 구태여 빨리 죽기를 바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건 내가 도처에서 그런 것을  왔기 때문에,

이러한 오늘  우란분재를 맞이해서가족 인연 관계, 형제간 인연 관계, 부모 자식 간의 인연 관계, 이웃과의 인연 관계가 전부  그러한 원인으로 해서  그렇게 만나지기 때문에,

나를 해롭게 하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복수를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인과법(因果法) 깨닫고 자기를 반성하고 참회해서 자비로써 상대하게 된다면, 원수(怨讐) 다시  은인(恩人)으로 변하게  것입니다.


더군다나 최상승법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과거의 업으로 원수로 만났다 하더라도,  원수가 도업(道業)을 성취하는데 도반(道伴)으로서 만나지게 되고, 스승으로서 만나지게  것입니다.


이렇게  간다면, 이것이 바로  국민이 화합을 하게 되고, 서로 도웁고 사랑할  있는 그러한 한겨레가  것이고, 이러한 정신을 확대해 나간다면  세계도  가정이 되고  가족이   밖에는 없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3521~4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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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多生怨債起於親  莫若多生不識人’ ; 『예수시왕생칠재의찬요(預修十王生七齋儀纂要) (大愚集述) 13 소청명부편(召請冥府篇) 게송 참고(한국불교전서 11).

*(게송) 曾爲浪子偏憐客  慣愛貪盃惜醉人’ ; [금강경오가해] 일체동관분(一切同觀分) 야부도천(冶父道川) 게송 참고.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 ; 도저히 헤아릴  없는  시간을 말한다.

아승지겁(阿僧祇劫) 보살이 부처님이 되기 위해서 수행하는 아주  시간.  수행의 기간을  부분으로 나누어서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이라 한다.

*고행(苦行) ; ①어떤 경지에 이르거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②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육바라밀(六波羅蜜) ; 보살이 열반(涅槃) 이르기 위해서 해야  여섯 가지의 수행.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 이른다.

*희사(喜捨 기쁠 , 버릴 ) ; 보상을 구하지 않고, 기쁘게 재보(財寶) 베푸는 . 정사(淨捨정시(淨施)라고도 .

*고행난행(苦行難行) ; 난행고행(難行苦行).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윤회(輪廻) ;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 육도(三界六道) 생사 세계를 그치지 아니하고 돌고 도는 .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우란분재(盂蘭盆齋); 우란분(盂蘭盆) 산스크리트어 ullambana 음사로 구도현(救倒懸)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 식기의 뜻으로  음식을 죽은 자의 영혼에 바쳐 거꾸로 매달려진 고통을 구한다는 .

석존 당시 목건련(犍連)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제도하기 위하여 음력 7 15일에 백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대중에게 공양한 데서 연유하며 백중(百衆)이라고 한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사람의 선망부모가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 수천만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부모가 바로  사람의 부모고,  사람의 부모가   부모여서,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 하는 것입니다.”

*십대제자(十大弟子) ; 석가모니의 제자  수행과 지혜가 뛰어난 10명을 이르는 .

*목건련 (犍連, 目連) ; 산스크리트어 maudgalyāyana 음사. ()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이라고도 한다. 원명 꼴리따.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  사람.

마가다국(magadha)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사리불(舍利弗) 친하여 어느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사리불이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 여래는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 가르침을 사리불한테 듣고는,

사리불과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사리불과 함께 불교교단의 중심인물이었다.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고, 탁발하는 도중에 외도(外道)들이 던진 돌과 기왓장에 맞아 고통을 겪는 중에, 사리불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붓다에게 나아가 열반에 들겠다고 말씀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마수촌에서 열반에 들었다.

*목련경(目連經) ; 목련 존자(目連尊者)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건진 일을 다룬 경문으로, 음력 칠월 백중날이면  경을 읽고 기도한다.

*신통(神通 불가사의할 /통할 ) : 수행을 ()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 능력.

*자자(自恣 스스로 /마음대로 ) ; 안거(夏安居) 끝나는 날에 수행자들이 한곳에 모여 자신의 잘못을 고백(告白)하고 참회(懺悔)하는 의식.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

*봉행(奉行) ; ①뜻을 받들어 행함. ②제사나 의식 따위를 치름.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 ()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가피(加被 더할·베풀 /입을·두를 ) ; 불보살(佛菩薩)에게 위신력(威神力) 받는 .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 가호(加護) 같음.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소리,향기,,감촉(色聲香味觸)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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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공방(獨守空房) ; ①아내가 남편 없이 혼자 지내는 것. ②혼자서 지내는 것.

*부애 ; 부아(분하고 노여운 마음).

*진퇴양난(進退兩難)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매우 어려운 처지.

*병수발(病수발) ; 병시중(病시중, 병든 사람을 돌보아 ).

*철창(鐵窓) ; 철창(鐵窓)은 ①창살이 쇠로 된 창문 ②'감옥(監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질'은 일부 명사 뒤에 붙어,  행위나 일을 낮잡는 뜻을 더하여 명사를 만드는 .

*내비두다 ; '내버려두다(건드리거나 상관하지 않고 그대로 두다, 돌보거나 보살피지 않다)' 사투리.

*체모(體貌  /얼굴 ) ; 체면(體面). 남을 대하기에 번듯하고 떳떳한 입장이나 면모.

*필시(必是) ; 어긋남이 없이 확실히.

*일호(一毫) ; ' 가닥의 '이라는 뜻으로 극히 작은 정도를 이르는 .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 데 콩이 나고,  심은  팥이 나서,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 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 • () • () • ()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보응(報應)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즉시로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 짓는  즉시에 받지 않고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 있다.

  가지 과보(果報)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多生)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정업(定業) ; 과거에 지은 업에 따라 현세에서 받게 되는 과보(果報).

*난면(難免) : 면하기 어려움.

*삼불능(三不能) ; 당나라 숭악(崇嶽) 원규(元珪) 부처님의 3(三能) 3불능(三不能) 세움.

(1) 3(三能) - 부처님의 3가지 능한 .

①일체 () ()해서 만법을 아는 지혜를 이루는 . ②모든 중생의 성품을  알고, 억겁(億劫) 모든 일을 막힘이 없이  아는 . ③한량없는 중생(무량중생) 제도하는 .

(2) 3불능(三不能) - 부처님의 3가지 능치 못한 .

①무량겁으로부터서 지은 정업(定業) 멸하지 못함. ②인연없는 중생을 제도하지 못함. ③무량중생을 제도하실 수는 있으나 중생계를  제도하지 못함.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 나쁜 행위.

*선업(善業) ;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착한 .

*추호(秋毫 가을 /가는  ) ; ‘추호도’, ‘추호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 비유적으로 이르는 .

*어거지 ; 억지(생각이나 주장을 무리하게 내세우거나,    일이나 해서는   일을 무리하게 기어이 해내려는 고집).

*생판 ; ①아주 낯설고 생소하게. ②터무니없이 무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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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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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하안거 해제, 백종2015.08.25 07:44

§(454) (게송)생애여몽약부운~ / 묵빈대처(默擯對處), 보살 화현 / 목련존자 일화 / (게송)석화광음주~ / 화두에 대한 의심이 있어야 바른 공부 / 염지방편(念持方便).


말 한마디 그렇게 부모에게 욕을 했다고 해서 오백 생을 그렇게 타살을 당하고,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신통제일인 목련존자도 마침내 돌아가실 때에는 외도한테 타살을 당한 것을 보시라 그말이여.

그래서 우리 불법을 믿는 사람은 사부대중이 누구라도 살다 보면 부아가 날 때가 있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런 환경을 당하더라도 그렇게 말 한마디 조심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단(疑團)만을 챙겨 나가야지, 망상이 일어난 것을 누를라고 한다든지 또 맑고 깨끗한 경지를 성성한 경계를 지켜나간다든지, 아무리 성성적적해도 화두를 놔 버리면 그것은 잘못된 경지여.

그래서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 화두에 대한 의심을 잠깐이라도 놓쳐 버리면 그것이 정념(正念)을 잃어버린 것이라, 정념을 잃어버리고서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어.

‘이뭣고?’ 한 번 들어가지고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그 의심을 탁! 관(觀)하는 거야. ‘이뭣고’ 횟수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여. ‘이뭣고?’를 한 번을 하고, 한 번 척 챙겨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그 의심을 관하는 거여.

**송담스님(No.454)—91년 하안거해제 법어(91.08.24)


(1) 약 21분.  (2) 약 21분.


(1)------------------


생애여몽약부운(生涯如夢若浮雲)하고  활계도무절육친(活計都無絶六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유득일쌍청백안(留得一雙靑白眼)하야  소간무한왕래인(笑看無限往來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생애(生涯)는 여몽약부운(如夢若浮雲)이요  활계도무절육친(活計都無絶六親)이다.

인간 세상에 인생살이라는 것이 꿈과 같은 것이요, 뜬구름과 같은 것이여. 그러건만 세상 사람들은 꿈인 줄도 모르고 뜬구름인 줄도 몰라.

그것이 정말 나의 행복인 줄 알고, 그것이 실다운 것으로 착각하고 거기에 집착해 가지고 명예를 얻기 위해서, 권리를 얻기 위해서, 높은 벼슬을 하기 위해서, 큰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 청제 부인과 사촌이 될 만큼 그러한 탐착심(貪着心), 진심(瞋心)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그말이여.


남편을 위하고 처자 권속을 위하고, 그것이 전부 꿈인 줄 알고 뜬구름인 줄 안다면 어찌 그것에 집착할 것이냐 그말이여.


그런데 출가한 스님들은 분명히 그것이 꿈인 줄 깨닫고, 그것이 뜬구름인 줄을 분명히 요달(了達)을 해 버려.

그러기 때문에 청춘을 버리고 인간의 영욕(辱), 득실, 부귀영화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부처님의 뒤를 따라서 부모와 가정과 영화를 버리고 출가를 하셨다 그 말이거든.


그러니 육친(六親)을 다 버려 버려, 인연을 다 끊어 버렸어. 무엇만 남아 있느냐 하면은 한 쌍의 푸르고 흰 눈만을 가지고 있어.(留得一雙靑白眼)

그래서 세상의 명예나 권리나 모든 것을 보기를—천하 없이 벼슬이 높고, 권리가 높고, 명예가 높고 그런 사람을 보기를 푸른 청백안으로 봐. 그리고 아무것도 부러운 것이 없어.


그 푸르고 흰 눈으로 ‘참나’를 꿰뚫어 봐야 해. 아까 ‘상두관을 꿰뚫는다’ 그랬는데, 오직 화두 하나만을 가지고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인연 따라서 수용하면서 참나를 깨닫기 위해서 나의 몸과 목숨을 바치는 것뿐이다 그말이여.

그러한 스님네께 공양을 올려야 선망부모(先亡父母)를 천도(薦度)할 수가 있다 그거거든.


맑고 시원한 물 한 그릇을 공양을 올려도—그 부처님께 올리는 청수(水) 한 그릇을 올리면 부처님께는 그것이 제호(醍醐)가 돼. 제호는 이 세상에서는 최고로 맛있는 음식인데 특수한 우유로 만드는 것이여.

또 맑은 물 한 그릇을 스님네께 공양을 하면 그것은 감로수(甘露水)로 변하는 거고, 십선계(十善戒)를 닦은 십선인에게 그 맑은 물을 올리면은 그것이 갈증을 면하는 거고,

목련존자의 어머니와 같은 그런 죄지은,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는 그런 이에게 물을 올리면 그 물이 훨훨 타는 불이 되고 마는 것이여. 똑같은 물인데 그렇게 다르거든.


그래서 여러분은 절에 가서 불공(佛供)을 드리고 모다 그런는데, 절마다 가면 다 부처님을 모셨어. ‘절은 다 같은 절이지, 뭐’ 다 같은 절, 부처님은 다 같지마는,

어쨌든지 스님도 다 같은 스님이지. 다 스님도 먹물 옷을 입고 머리를 깎고 그렇게 살면 다 같은 스님이지만, 정말 청정한 계를 가지면서 몸과 목숨을 바쳐서 참선을 하는 그런 스님네에 이렇게 공양을 해야,


부처님 당시에는 모두가 다 일대사(一大事), 생사 문제를 위해서 도 닦는 모두가 다 그런 스님이었고, 특수한 육군비구(六群比丘)와 같은 깡패 스님들이 부처님 당시에도 없는 것은 아니고 있었습니다. 그랬어도 부처님은 그것을 그냥 그대로 보셨어요.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과 신통력(神通力)과 덕행으로 얼마든지 그것들을 신통력으로 처벌을 주실 수도 있고, 다 내쫓아낼 수도 있고, 그 감화(化)를 주실 수도 있으련만 그냥 그런대로 보셨어. 


아난존자가 “부처님 돌아가신 뒤에는 어떻게 육군비구를 대우할까요?”하니까 “묵빈대처(默擯對處) 해라”

‘묵빈대처’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은 ‘말을 안 해.’ 봐도 말을 안 하고, 묵빈대처란 문구(句)는 속가에서는 잘 모르고,


형제간끼리나 동서간이나 일가친척간에도 서로 싸우고 난 뒤에는 만나도 인사도 안 하고 말을 안 하지요.

그것을 ‘상조한다’ 그런 말이 있는데, 풀어지면은 말해도 그때까지는 서로 말을 안 하고 지내는 거여. 말을 안 하니까 서로 왕래가 끊어지고, 완전히 남 보듯 하는 거지. 그것을 묵빈대처라 하는데,


이 사찰에서는 도저히 같이 어울려서 화합해서 살 수 없는 그런 스님네는 묵빈대처를 하는 거야. 보고도 본체만체하고 서로 절대로 대화 안 해버리는 거야.

그것이 부처님께서 일러주신 그 육군비구와 같은 못된 스님네는 묵빈대처법이란 것이 있어요.


그런데 그 육군비구가 지금도 아마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몇몇 스님네는 부처님 때도 있었으니까 요새 또 없으란 법도 없고, 그런 몇 분의 스님이 있다고 해서 스님네를 몰아 때려서 다 “에이! 말세다. 요새는 중다운 중이 어디가 있어? 불법이 말세야. 맨 싸움만 하고” 그렇게 혹 보시는 분이 있을는지 모르지마는,

육군비구 가운데에도 나중에 다 아라한이 된 분도 있고, 성현이 된 분도 있고, 천상에 간 분도 있습니다. 


지금 목련존자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그 목련존자가 나중에 사리불존자와 부처님의 왼팔, 오른팔이 되어서 부처님을 모시고 불법을 펴나가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련존자가 마지막 열반하실 때에는 집장외도(執杖外道)의 무리들에게 맞아서 타살을 당했습니다.

그 목련존자가 어떻게 호되게 맞았던지 기절해서 쓰러졌는데,

외도들은 왜 목련존자를 그렇게 타살을 했느냐 하면은 불법(佛法)이 나날이 융성을 하고 자기네 교(敎)를 믿던 사람들이 전부 불교를 믿게 되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자기네 교가 아주 완전히 멸망하게 생겼어.


그래서 그 목련존자와 사리불존자만 없애면 불교가 저렇게 번창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해서 목련존자를 갖다 타살을 했다 그말이여.

그리고 (집장외도들이) 다 갔는데 목련존자가 간신히 정신을 차려가지고 보니 몸뚱이가 말이 아니여.

아주 사지 삼백육십 골절이 성한 데가 없이 살은 터지고 뼈다구는 부러지고 꼼짝을 못하게 됐다 그말이여. 그래도 신통을 써 가지고 신통력으로 돌아왔다 말이여.


첫째 사리불존자를 자기 도반이니까, 찾아가니까 사리불존자가 깜짝 놀래. “왜 신통제일인 목련존자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냐?” “집장외도들이 날 이렇게 팼다”


“그럼 신통술을 써서 피하면 될 텐데 왜 그렇게 맞았느냐?”

“말 마라. 내가 과거에 지은 죄업으로 신통의 ‘신(神)’자도 생각도 안 났는데, 어떻게 ‘통(通)’을 부려 가지고 내가 신통력을 부릴 수가 있겠느냐”


“그대가 무슨 죄가 있어서 그렀단 말이냐?”

“내가 오백 생 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가 장가를 갔는데 어떻게 마누라가 이쁘던지 마누라한테 폭 빠져가지고 어머니한테 등한히 했더니,

어머니가 날마다 꾸지람을 하시고 ‘저놈이 계집을 얻더니 계집한테 빠져 가지고 에미를 우습게 안다’고 어떻게 참 그렇게 하시던지 부애가 나가지고, ‘어떤 장사가 와 가지고 우리 엄마 좀 뚜드려 팼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고약한 욕을 내가 했어.

그 어머니한테 그런 욕한 죄로 오백 생 동안을 내가 이렇게 비참하게 참혹하게 타살을 당했다. 내가 금생에까지 이렇게 오백 생째 내가 이렇게 맞어 죽으니, 내가 지은 죄로 내가 이렇게 받는 것이니 어떻게 할 것이냐”


그래 가지고 이제 곧 숨이 깔딱 깔딱 죽게 되니까 사리불존자가 “아직은 열반에 들지 말고 조금만 참으라”고, “내가 먼저 열반에 들거든 나중에 들으라”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니까 곧 죽게 생겼는데도 신통력으로 꽉 참고 있는데,

사리불존자는 그길로 부처님한테 가서 하직 인사를 하고, 그리고 고향에 돌아가서 모다 가족 친척들한테 설법을 하고 그리고 열반을 하고, 열반하자마자 목련존자도 또 열반에 들었는데,


사리불존자와 목련존자는 왜 그렇게 부처님 앞에서 돌아가셨냐 하면은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그 공경하고 신(信)하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그 광경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먼저 그렇게 돌아가신 것이 준례(準例)라고 그럼니다.


그래서 목련존자가 그렇게 집장외도들한테 맞아 돌아가셨단 말을 듣고서 그 왕이 엄명을 내려 가지고 ‘그 집장외도들을 체포를 해 가지고 불에 태워 죽이라’고 특명을 내렸습니다.


특명을 내려 가지고 그 집장외도를 체포를 해 가지고 죽이려고 하는데, 목련존자가 그 소식을 듣고 “절대로 이건 나를 위한다면 참으로 나를 위한다면은 죽이지 말아 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하니까,

그 왕이 “불법의 자비는 참 훌륭하다” 그러고, ‘그러면 죽이지는 말고 국외로 추방을 하라’고 해서 국외로 추방 명령을 내렸는데,


목련존자의 제자 가운데 마숙(馬宿), 만숙(滿宿)이라고 하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 두 제자가 육군비구(六群比丘)의 비구여.

아까 말씀드린 아주 깡패 중이여. 도둑질하고 강간하고 사람 때려죽이고 뭐 보통으로 하는, 그래 가지고는 육군비구인 그 마숙, 만숙 두 사람이 그 집장외도를 뒤쫓아가 가지고 붙들어 가지고는 몽둥이로 쳐서 때려죽였거든.


자기 스승을 죽인 사람을 가만 놔둘 수가 없다 해 가지고 때려죽여 버렸다 그말이여.

‘부처님 제자가 참 그럴 수가 있을까?’ 하지만 육군비구는 계율이고 뭣이고 그런 데에 얽매인 사람들이 아니야.

그래도 그 마숙이는 죽어서 구렁이가 되었다가, 다시 그 사람을 죽이고 그랬으니 구렁이가 되었어도 용이 되었어. 또 다른 한 사람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고 그랬는데.


왜 그러한 육군비구가 파계(破戒)를 하고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 했는데도 아라한과를 증득을 했느냐?

아마 그러한 막행막식을 한 가운데에도 그 속은 멀쩡하거든. 과거에 보살 화현(化現)이 비구들로 하여금 정신을 차려서 도를 잘 닦게 하기 위해서 『역행(逆行)으로 나타난 보살 화현』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혹 스님네 가운데에 막행막식을 하는 그런 스님네가 있다 하더라도 ‘아! 저분이 바로 보살 화현이로구나, 보살 화현이 말세에 태어나서 정말 다른 스님네로 하여금 정말 발심(發心)을 해서 도를 잘 닦게 하기 위해서 보살 화현으로 저렇게 나타났거니’

이렇게 생각을 하고 불법(佛法)을 비방하지 말고 오히려 신심을 내서 불법을 잘 받들기를 바랍니다.


그런 목련존자가 참 금생에는 그렇게 효심을 내고 신통제일인 부처님의 제자였었지마는,

과거에는 어머니께 그런 참 말 한마디—사람이 그래서 부애가 난다고 해서 함부로 진심(瞋心)을 내 가지고 부모한테, 스승한테 입에 못 담을 욕을 해서는 절대로 아니 된 것입니다.


말 한마디 그렇게 부모에게 욕을 했다고 해서 오백 생을 그렇게 타살을 당하고,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신통제일인 목련존자도 마침내 돌아가실 때에는 외도한테 타살을 당한 것을 보시라 그말이여.

그래서 우리 불법을 믿는 사람은 사부대중이 누구라도 살다 보면 부아가 날 때가 있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런 환경을 당하더라도 그렇게 말 한마디 조심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 목련존자가 과거에 그렇게 그런 인연으로, 금생에는 그렇게 부모에게 효자의 제일인자로서 무간지옥에 떨어지고 아귀도에 떨어지고 축생도에 떨어진 그 어머니를 위해서 그렇게 참 온갖 정성을 다했다 그 말입니다.

결국은 그 어머니를 구제하는 방법이 백중날 참선 수행하신 그러한 청정한 수행 납자(衲子)에게 공양을 올린 그 공덕으로 어머니를 천도했다 그거거든.(30분42초~51분53초)



(2)------------------


여러분들도 그 백중날의 그 뜻을 깊이 명심을 하셔서 해마다 돌아오는 백중날에는 돌아가신 부모와 선망부모와 가족 가운데 비명(命)에 간 영가(靈駕)들을 위해서도 꼭 백중날에는 올바른 방법으로 올바른 도리로써 천도를 잘해 주시고,

여러분은 다시는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영원토록 정법문중(正法門中)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쨌든지 악(惡)한 일을 아니하는 것은 물론 이려니와 정법을 믿고 여러분도 금생에 철저하게 참선(參禪)을 하시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본의 아니게 삼악도에 떨어져서 자손들이 여러분을 구제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여러분 자신이 삼악도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할 수 있도록 금생에 노력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하고  홍안진백두(紅顔盡白頭)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  부유일생사(蜉蝣一生事)니라

나무~아미타불~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하고, 이 세월은 탁! 돌과 돌을 부딪치면 불이 번쩍 하듯이 그렇게 참 세월은 빠른 것이고,

홍안(紅顔)은 진백두(盡白頭)다. 엊그제 빨간 소년이 금방 흰머리가 난 노인이 되고 말아. 지금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들이 생각해 보면 새파란 소년 소녀일 때가 엊그제 같을 것입니다.


인간백년몽(人間百年夢)이, 인간의 백년 세월이라는 것이 꿈같은 것입니다. 일생의 모든 일이란 것이 하루살이 신세 밖에는 안 돼. 잘살 건 못살 건, 잘낫 건 못낫 건, 지내 놓고 보라 그말이여.

백년이라는 게 무엇이여? 그것이 꿈에 지내지 못하고, 하루살이 신세에 무엇이 다를 것이 있느냐 그거거든.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참 많은 도반들이 운집을 하셨고 또 신남신녀 여러분들도 참 이렇게 많이 모였습니다. 조실 스님의 녹음 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법문은 더할 것이 없으나 기왕 이렇게 도반들이 모이셨으니까,


앞으로 해제 동안에 더운 여름도 다 갔고, 서늘한 이 해제 동안에 산철 결제를 들어가던지 또는 그냥 행각(行脚)을 하든지 간에 어쨌든지 정진을 잘 하시되,

흔히 성성(惺惺)하고 깨끗하게 그렇게 정진이 되어가기를 바라는데, 사실은 성성하고 깨끗하고 담담(淡淡)한 그런 경계(境界)만을 자꾸 그런 경계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그러한 경계에 탐착하는 것도 그것도 정념(正念)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거거든.


공부해 나가는 데에는 잠깐 동안도 바른 생각, 정념을 잃어서는 안 되는데, 그 정념을 잃어버리면은 벌써 이단(端)에 떨어지는 거여.

한 생각 삐끗하면은 돌이키기가 어려워. 얼마 동안을, 까딱하면 영원히 잘못 떨어질 수도 있어.


그래서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망상이 일어나고, 물론 그런 것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징징담담(澄澄湛湛),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거, 참 그렇게 하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한 시간, 두 시간뿐만이 아니라 방선 죽비만 안 치면은 4시간도 좋고 5시간도 좋고, 계속 이렇게 앉아 있고 싶을 그러한 경지가 오는데,

그러한 순청절점(純淸絶點), 순수하고 맑고 깨끗한 그러한 경지에 따악 빠져서 그놈을 지키고 앉았는 거, 그것 참 좋은 것 같지만 그것이 정념을 잃어버리는 가장 무서운 경계다 그거거든.


왜 그것이 무서운 경지냐?

능히 강(講)하고, 능히 말하고, 능히 움직이고, 능히 고요하고 그러한 것을, 그런 놈이 바로 이놈이 아니냐.

말할 때는 말하는 놈, 밥 먹을 때는 밥 먹은 놈, 무슨 연설할 때는 연설하는 놈, 일할 때는 일하고, 그런 놈이 바로 이놈이지, 그것 밖에 부처가 어디가 있으며 그것 밖에 나의 주인공이 어디가 있느냐?


‘이것이 바로 깨달은 경지다’ 해 가지고 바른 정진을 해 나가지 않고, 그것을 아주 자기가 한소식 한 것처럼 그것이 바로 바른 경지라고 그렇게 착각을 하는 사람,

그것은 자기의 망식(妄識)이여. 그게 망식, 망령(妄靈)된 식신(識神)을 가지고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라고 착각을 한 것이다 그말이여. 


아까는 ‘맑고 깨끗한, 성성한 그것이 바로 자기의 참 경계’로 한 것은 ‘맑고 깨끗하다’라고 하는 경계에 집착하고 있는 거거든.


또 어떤 사람은 망심(妄心)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써 자기의 참 경계를 삼아. 그것이 바로 정념이라고 그렇게 착각을 하거든.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거, 망상이 일어나면 딱 눌러 버리고 또 무슨 망상이 일어나면 딱 눌러 버리고,

그리고는 딱 그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경계로써 정념을 삼는데, 그것은 상당히 오랫동안 그런 경지가 지속이 되면 조용하고 깨끗하고 편안하고 말할 수가 없지. 그러나 그것은 돌로 풀을 눌러 놓는 거와 같애.


그래서 돌만 떠들면은 다시 터 나오고, 오랫동안 눌러놔도 돌 어느 틈인가 뚫고 다시 (풀이) 노라니 있다 뚫고 나온 거라, 그것도 바른 경지가 아니고 바른 생각이 아니다 그말이여.


또 자기의 몸을 ‘이 몸뚱이는 허공(虛空)과 같은 것이다’ 해 가지고, 허공과 같은 것이니 그래가지고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 해.

아무 생각을 안 일으키고 허공과 같은 경지에서 꼭 그 경지를 벼람빡과 같이, 장벽(牆壁)과 같이 그렇게 따악 그 경계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지켜 나가는 거야.


그래 가지고 그것이 ‘자기의 참 바른 공부다’ 이리 생각하고 그러는 경지로 지켜 나가는 거.

이런 것은 공망(空亡),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다’ 그랬는데, 아무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써 고요한 그걸 들여다보고 앉아 있으면 그것은 아무리 오래 들여다 봤자 그것은 무기공에 떨어지는 것이여.


앞에 말한 것이 전부가 다 ‘왜 그것이 바른 경지(境地)가 아니냐? 바른 공부가 아니냐?’하면은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망상이 일어나도 그것을 누르고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냥 고대로 놔둔 채 화두만을 의심만을 딱! ‘이뭣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하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를 한 분은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단(疑團)만을 탁! 챙겨 나가야지,

망상이 일어난 것을 누를라고 한다든지 또 맑고 깨끗한 경지를 성성한 경계를 지켜나간다든지, 아무리 성성적적해도 화두를 놔 버리면 그것은 잘못된 경지여.


그래서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 화두에 대한 의심을 잠깐이라도 놓쳐 버리면 그것이 정념(正念)을 잃어버린 것이라, 정념을 잃어버리고서는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어.

이것을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사부대중 여러 도반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는 바입니다.


바르게 화두를 잡드리 해 나가면 의심이 더이상 깊을 수가 없고, 더이상 커질 수가 없어.

그러한 가운데에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야 언젠간 툭! 터져서 의단을 타파(打破)하면 자기 면목을 보게 되고, 그때는 반드시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야 하는 거야.



오늘 백중날을 기해서 몇 분의 이름을 밝히지 아니한 불자들이 서로 정성을 모여서 이런 염주(珠), 이거는 중국에서 참 어렵게 도입한 중국 향나무로 만든 염주입니다. 이 염주를 여러분에게 공양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이 염주는 염불(念佛)을 하는데 쓰이는 것인데, ‘염지방편(念持方便)’ 염지(念持)—생각 염(念)자, 가질 지(持)자, 염지는 억념(億念)하는 거야. 항상 생각하고 ‘가질 지(持)’자는 받아 갖는 거야.


잠시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그 한 생각 '나무아미타불' 부르고 또 그 다음에 딴 망념이 거기에 끼어 들어갈 기회를 주지 않고 다시 '나무아미타불' 해서 이렇게 불러 가지고,

마지막 죽을 때 숨 딱 끊어질 때까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해서,


그렇게 하면은 백이면 백, 천이면 천, 숨 딱 끊어지자마자 아미타불(阿彌陀佛)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타고 오셔서 영접을 하러 오신다 그말이여.


그런데에 쓰이는 것이 바로 이 염주여. 긴 것은 천염(千念)도 있지마는 보통 백팔염주고, 반으로 잘라서 54 또 그놈을 반으로 잘라서 27개 이렇게 하고,

또 굵은 것은 10개씩을 꿰매서 이렇게 따그락 따그락 이렇게 돌리는데 그렇게 큰 것은 보통 노스님네나 갖지, 젊은 스님네나 보살님네들이 따그락 따그락 하면 볼쌍 사나워서 못쓰는 거여. 보통 돌리면 108염주를 돌리시는데, 그리고 간편하게는 팔에다가 하는 그런 단주(短珠)도 있고 그렇죠.


그런데 그러한 염불할 때 쓰이는 것이지만 중국에 송나라 이후로는 염불선(念佛禪)이라 해서 한편으로는 염불도 하고 또 참선도 하고 두 가지를 겸해서 닦는 그러한 수행법이 번져서,

우리나라도 참선 하면서도 기도도 하고, 참선 하면서도 아침으로는 경(經)도 읽고, 참선하면서도 또 염불도 하고 그러한 스님네도 있고 또 대부분의 보살님네들도 그렇게 하는 분도 많이 있습니다.


활구참선 하나만을 가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으나 사나 ‘이뭣고?’ 하나만을 가지고 한 그런 스님네는 구태여 염주 돌릴 필요도 없고 그렇지마는,

또 염불 안 하면서도 화두를 들고 참선하면서도 입으로나 마음으로 ‘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전혀 부르지 않고 ‘이뭣고?’ 화두만 들면서도 따그락 따그락 이렇게 단주도 돌리고 염주를 돌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방에 앉아서 따그락 따그락 하면 옆에 분들한테 방해가 되어서 도저히 안 됩니다. 안 되고,

혼자 행각을 하거나, 혼자 토굴에 있거나, 혼자 있을 때는 화두를 들고 ‘이뭣고?’하면서도 염주를 돌려도 괜찮은데, 혹 잘못 알아가지고 염주를 돌리면서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 ..... 이래서는 안 돼.


‘이뭣고?’ 한번 부른 것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 600만 번 부른 공덕보다도 수승하다 그러니까,

오늘부터서 나도 하루에 십만 번씩을 ‘이뭣고’를 하리라, ‘이뭣고’ ..... ‘이뭣고’가 나중에는 ‘먹고 먹고 먹고’ 해 가지고 ‘먹고 먹고 먹고’ 나 그런 분을 봤는데, 절대로 참선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이뭣고?’ 한 번 들어가지고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그 의심을 탁! 관(觀)하는 거야.

‘이뭣고’ 횟수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여. ‘이뭣고?’를 한 번을 하고, 한 번 척 챙겨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그 의심을 관하는 거여.


관하는데, 혼침(昏沈)이 오고 잠이 올 때에는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미간(眉間)에다 탁 놓고 관하는 거여. 그리고 산란심이 일어나고 망상이 일어나고 할 때에는 그 화두를 단전(丹田)에다가 따악 놓고 관하는 거여.


그래서 따—악 그 의심을 관하는 거,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했을 때 알 수 없는 그 의심을 관하는 것이지, ‘이뭣고, 이뭣고’ 글자가 문제가 아니거든.


그것을 착각을 하시지 말고, 아침에 한 번 든 화두가 없어지지 않고 끊어지지 않고 고대로 있으면 점심 먹을 때까지 화두 한 번만 들어도 괜찮은 거야.

그러다가 화두가 없어지거나, 딴 생각이 들어오면 그때 ‘이뭣고?’ 한 번 딱! 들고, 의심이 끊어졌을 때 한 번씩 들고 들고 하는 거여.


이 염주를 노나 드리는데, 여기서 노나 드리면 혼잡하고 복잡하니까 공양 잡숫고 저기 마당 끝에 나가시면 거기서 이렇게 싸놓고 노나 드릴테니까,

염주를 돌리시되, 돌릴 때 마다 108개니까 백팔번뇌(百八煩惱)가 거기서 끊어지고 또 알 수 없는 의단이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 의단 속에서 이렇게 돌리실 수도 있고 또 염불하실 때 돌릴 수도 있고 이것은 참 다목적이고,


항상 이렇게 목에 거시고, 돌리시고 하면은 백팔번뇌가 보리심(菩提心)으로 변하고,

그래서 그러한 수행하는데 염지방편(念持方便)으로—우리의 생각이 끊어지지 않고 항상 염불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화두가 끊어지지 않는 방편으로 이것을 사용하신다면은 이것을 시주(施主)한 그분네들이 소원을 성취하게 될 것이고,

모두가 다 이 인연으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을 하면서 오늘 법문을 마치고자 합니다.


이걸 욕심 사납게 2개씩, 3개씩 가져가시려 하지 말고 한 개씩만 질서 있게 다 가지고.. 충분히 많이 준비를 했으니까 한 개씩만, 오늘 오신 분은 어른이나 애기나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다 노나 드리겠습니다.


오늘 백중일에 우리의 선망부모는 다 좋은 곳으로 해탈도로 나아가시게 될 것입니다.(51분54초~73분7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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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생애여몽약부운~’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탐착심(貪着心) ; 만족할 줄 모르고 사물에 더욱 집착하는 마음.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료/통달할 달)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육친(六親) ; 부모(父母), 형제(兄弟), 처자(妻子)를 통틀어 이르는 말.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제호(醍醐) : 옛날 인도에서 우유로써 만드는 것이 다섯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품질이 좋은 것으로 맛이 제일 좋고, 열병(熱病)에 귀중한 약품도 되는 것이 제호다.

이것은 히말라야 산에 있는 ‘비니’라는 풀만을 먹은 소의 젖으로 만든 것이 더욱 좋다고 한다.

*십선계(十善戒)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 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육군비구(六群比丘) ; 육군(六群)이라는 것은 불제자(佛弟子) 중에, 항상 한무리가 되어 수행자로서 어울리지 않는 일을 행하고, 그 때문에 제계(制戒, 부처님이 제자에 대해 제정한 계율)의 인연이 된 여섯 사람의 악행비구(惡行比丘)를 말한다.

①난타(難陀, 팔리어 Nanda의 음사) ②발난타(跋難陀, 팔리어 Upananda의 음사) ③가류타이(迦留陀夷, 팔리어 kāḷudāyī의 음사) ④천나(闡那, 산스크리트어 chanda, 팔리어 channa의 음사) ⑤아설가(阿說迦, 산스크리트어 aśvaka 팔리어 assaji의 음사. 마숙馬宿) ⑥불나발(弗那跋, 산스크리트어 punarvasu 팔리어 punabbasu의 음사. 만숙滿宿)

*위신력(威神力) ; 부처님이 지닌, 헤아릴 수 없는 영묘하고도 불가사의한 힘.

*신통력(神通力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힘 력) :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力).

*묵빈대처(默擯對處)죄를 지은 수행승에 대한 벌칙으로, 그 수행승과 일체 말하지 않게 한 규정, 즉 묵빈(默檳)으로 조치를 취하는 것.
*묵빈(默擯, 默檳) ; 산스크리트어 brahma-daṇḍa의 번역. 범단(梵檀, 梵壇)이라고도 함. daṇḍa는 벌(罰)·형벌(刑罰)·치죄(治罪)라는 뜻. 죄를 지은 수행승에 대한 벌칙으로, 그 수행승과 일체 말하지 않게 한 규정.
*신통(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준례(準例 모범으로 삼을 준/법식·관례 례) ; 기준이나 본보기가 될 만한 이전의 일.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막행막식(막行막食) ; 수행자의 분에 맞지 않게, 행동이나 음식을 막 행(行)하고 가리지 않고 막 먹는 것.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역행(逆行) ; 보통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나아감.

*부애 ; 부아. 분하고 노여운 마음.

*납자(衲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

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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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증득(證得) ;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함.

*(게송) ‘석화광음주(石火光陰走)~’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西山 休靜) ‘탄세(嘆世, 세상을 탄식함)’ 게송 참고.(石火光陰走 紅顔盡白頭 山中十年夢 人世是蜉蝣)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담담하다(淡淡-- 묽을·담담할 담) ; 동요없이 차분하고 평온하다.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정념(正念) ; 바른 생각. 선종(禪宗)에서의 바른 생각이란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한 생각(叅究一念).

*징징담담(澄澄湛湛 맑을 징/즐길·가라앉을 담) ; 맑고 깨끗한 것.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순청절점(純淸絶點) ; 순수하고 맑고 티끌[點]이 끊어진 것.

*망식(妄識) ; 망(妄)으로서의 식(識). 망령된 사유분(思惟分)에 근거한 진실되지 않은 식(識).

*망령(妄靈) ;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남. 또는 그런 상태.

*식신(識神) ; ①심식(心識). ②분별의식(分別意識). 의식작용을 일으키는 것.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경지(境地 지경·경계 경/땅 지) ; 정신이나 몸이 도달해 있는 어떤 상태.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염불(念佛) ; 부처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과 같은 불•보살님의 이름을 외움. 흔히 어떤 일을 기원하며 ‘나무관세음보살’이나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을 소리 내어 외우는 일을 말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12에서.

(52)念佛者는  在口曰誦이요,  在心曰念이니  徒誦失念하면,  於道無益이니라.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이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염불이니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이익이 없으리라.


(註解)  阿彌陀佛六字法門이  定出輪㢠之捷徑也라.  心則緣佛境界하야  憶持不忘하고,  口則稱佛名號하야  分明不亂이니,  如是心口相應이  名曰念佛이니라.

「나무아미타불」의 육자 법문은 바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잊지 말고,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되 분명하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해야 하니, 이와 같이 마음과 입이 상응하는 것이 염불이다.

*염지방편(念持方便) ; 마음이 흐뜨러지지 않도록 생각을 가다듬고, 참뜻을 알기 위해 쓰는 수단과 방법.

*억념(億念) ; ①기억함. 마음으로 생각하여 간직함. 계속 생각함. 마음 속에 간직하여 잊지 않음. 마음으로 생각하여 늘 생각해 냄. ②생각을 떠올리다. 생각해내다. 과거를 생각해내는 마음 작용.

③특히 마음속으로 아미타불의 공덕을 계속 생각함. 늘 부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이름을 부름. 늘 아미타불을 외움.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아미타불의 오른편 보처(補處). 산스크리트 Mahasthama-prapta  마하살타마발라발다(摩訶薩馱摩鉢羅鉢跢)라고 음역. ‘대정진(大精進)’ ‘대세지’ 또는 ‘득대세지(得大勢志)’라고도 하며 줄여서 그냥 ‘세지(勢至)’라고도 번역.

아미타불에게 자비문, 지혜문이 있는 가운데서, 관세음보살은 자비의 문을 나타내고, 대세지는 지혜의 문을 나타낸다. 이 보살의 지혜 광명이 모든 중생에게 비치어 삼도(三途)를 여의고, 위없는 힘을 얻게 하므로 대세지라 한다. 또 발을 디디면 삼천세계와 마군의 궁전이 진동하므로 대세지라 한다.

형상은 정병이 표현된 보관을 썼으며, 염불하는 수행자를 맞을 때에는 항상 합장을 하는 모습을 한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반야용선(般若龍船) ;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반야(船若, 지혜)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의 극락정토로 중생들을 건네 주는 반야바라밀의 배[船]를 말한다.

*백팔번뇌(百八煩惱)중생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마음 작용을 통틀어 이르는 말.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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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하안거 해제, 백종2015.07.31 11:48

§(512) (게송)당하지귀아시수~ / 올바른 방생(放生)이란? 마음을 자비롭게 가져라 / 참선을 하는 뜻은 자기 방생입니다 / (게송)피치삭발유래유~ / (게송)정체종래절성색~.


방생의 참뜻을 깊이 이해를 하셔서 마음속에 자비심을 가져. 항상 자비심(慈悲心)을 가지고 생명을 죽이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연에게도 자비로운 마음으로 상대하면 그것이 벌써 방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에다 대고 내가 크게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크게 돌아오고, 노래를 부르면 노래가 돌아오고, 좋은 말을 하면 그 메아리는 좋은 말로써 돌아오고, 입에 못 담을 고약한 욕을 퍼부으면 메아리는 그런 무서운 욕으로 내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메아리와 똑같은 것입니다. 서로서로 존중히 여기고 서로서로 따뜻하게 자비롭게 상대하면 상대방도 역시 또 나한테 그렇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집안에서 직장에서 또는 회사에서 사회에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항상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상대하고, 자기 마음속에 자비심을 항상 이렇게 일으키고 자비로운 말, 자비로운 행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자라 천 마리, 만 마리를 사서 물에다 넣어준 것 못지않게 큰 공덕(功德)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팔만사천 묘법(妙法)을 설하셨는데, 그 많은 법문(法門)이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서 종횡으로 팔만사천 가지 방편(方便)을 설하셨지만, 한마디로  『밖으로 치닫지 말고 한 생각 돌이켜서 바로 자기를 찾으라』

**송담스님(No.512)—93년 하안거해제 및 백종, 백일기도회향(93.09.01)


(1/3) 약 22분.  (2/3) 약 20분.  (3/3) 약 18분.


(1/3)----------------


당하지귀아시수(當下知歸我是誰)오  의정거처요분명(疑情擧處要分明)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막파심량중복탁(莫把心量重卜度)하라  혜등호향풍전속(慧燈好向風前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당하지귀아시수(當下知歸我是誰), 당하(當下)에, 즉하(卽下)에 ‘내가 이 누군가?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말이여.

의정거처요분명(疑情擧處要分明)이다. ‘이뭣고?’ 이 의정(疑情) 일어나는 곳에, 화두를 척! 들어 일으키는 곳에, 분명함을 요하느니라.


막파심량중복탁(莫把心量重卜度)하라. 마음으로 헤아리고 이리저리 점치고 따지고 그러지를 말아라.

혜등호향풍전속(慧燈好向風前續)이니라. 지혜의 등불을 바람 앞을 향해서 잘 꺼지지 않도록 이어 갈지니라.



오늘은 계유년 음력 7월 15일 하안거 해제날이고 또 백종날입니다.

하안거 해제는 석 달 동안 안거(安居)를 해서 오늘 해제를 하는데 용주사, 위봉사, 세등선원 각처(各處)에서 정진(精進)을 하던 도반들이 오늘 용화선원에 모여서 함께 이 해제 법요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석 달 동안 그 더위와 혼침(昏沈)과 산란(散亂)과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정진을 한 그 도반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해제 법요식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뜻깊은 날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7월 15일 해제를 기해서 백중(百中) 천도재를 거행하는데,

백중날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 당시 목련 존자(目連尊者)가 그 어머니 청제부인이 생전에 지은 죄로 지옥에 떨어져서 만반고통(般苦痛)을 받고 있을 때 그 어머니를 구제하기 위해서 갖은 정성을 다 했지만,

목련 존자의 그 신통술로도 어찌하지 못해서 그래서 부처님께 간절히 “우리 어머니를 천도(薦度)해 주십시오. 저 무서운 지옥고로부터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간청을 했습니다.


“지옥고에서 백 가지 고통을 받고 있는 그 어머니를 구제하는 방법은 해제날 백 가지 과일과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가지고 해제에 모인 대중 스님들께 공양(供養)을 올려라. 그럼으로써 그 공덕으로 너의 어머니가 지옥고로부터 구제를 받을 수가 있느니라”


이렇게 해서 그때부터서 삼천년이 되도록 인도, 동남아, 중국, 한국, 일본 이렇게 내려오면서 7월 15일 백중날 지옥고에 신음하고 있는 선망부모(先亡父母)를 천도하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용화선원 부처님 앞의 탁자에도 신남신녀(信男信女) 여러분들의 정성 어린 공양구(供養具)가 많이 쌓여져 있습니다.


모르는 분은 영가(靈駕) 위패(位牌) 앞에 많이 차려놓고 영가들을 위해서 영가들 훈감하라고 이렇게 많이 갖다놓은 것으로 착각을 하고 계신 분도 있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첫째, 부처님께 올리고 그 다음에는 대중 스님네께 올리고 또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들도 공양하고, 이러한 공양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7월에는 해제 때를 기해서 전국 각 사암(寺庵)에서 또 방생(放生)을 많이 행하는데, 이 방생이라 하는 것도 대단히 뜻이 깊은 것이어서 ‘죽어가는 생명을 놓아 준다’ 그래서 방생이라 그러는데,

방생에는 흔히 자라나 잉어등 어류(類)를 많이 사 가지고 강물이나 호수나 그런 데다 모다 많이 놔 주고 그러는데,


전강 조실스님께서도 생존(生存) 시에 많은 방생을 하셨습니다.

차떼기로 엄청난 고기를 갖다가 사서 방생을 하시고 몇백 관(貫)씩 이렇게 하셨는데, 마땅히 조실 스님의 법을 신(信)하는 우리로서는 조실 스님의 그런 행하시던 좋은 일을 본받아서 우리 용화선원에서도 방생 법회를 갖음직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조실 스님 열반(涅槃)하신 뒤로는 방생을 안 하고 20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왜 그 방생을 하지 않았냐? 마땅히 그런 좋은 것을 왜 안하고 그러냐? 신도들로부터 종종 요청도 있었고 그런 질문도 받았습니다마는,


원래 방생의 뜻이 죽어가는 사람, 죽어가는 동물—비단 꼭 물고기뿐만이 아니라 육지에서 사는 동물, 하늘에 날으는 새, 무엇이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는 것이어서,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나아가서는 그래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비심, 자비 종자(種子)를 잘 증장을 시키고,


그래서 어떠한 종류의 생명이라도 그 생명 자체는 고귀하고 소중한 것이라 ‘자기도 죽이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죽어가고 있는 그러한 생명을 놔 주자, 죽지 않도록 해 주자’는 데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월 해제라든지 7월 해제를 기해서, 전국 사찰에서 방생을 한다 해 가지고 며칠 전부터 고기 장수에게 부탁을 해 가지고 ‘자라를 200마리, 잉어를 몇백 마리 그리고 미꾸라지를 몇백 관, 이렇게 어김없이 그날 잡아다가 놔라’ 이렇게 미리 계약을 해 가지고,


그 고기 장수는 그날 그만한 양을 대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살로 자라를 찍고, 그물로 고기를 잡고 해가지고 그것을 충당하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그래서 그전에 더러 보면 자라 등어리에 작살이 찍힌 자죽이 있는 자라도 보았습니다.


그 자라들이 입이 있어서 말을 한다면 또는 그런 잉어나 고기들이 사람에게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방생 법회인가 뭐 그것 때문에 이렇게 등어리에 작살을 찍히고 우리는 이렇게 곤욕(辱)을 치르고 있습니다”하고 스님네한테 원정(原情)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우연히 강변에를 갔다든지, 우연히 바닷가를 갔다든지 해서 ‘자라가 잡혀서 죽게 된다 또는 잉어가 죽어가게 되었다’ 이럴 때에 자기에게 있는 돈을 털어서 사가지고 강에다도 놔 주고, 바다에다도 놔 준다면 그건 대단히 좋은 방생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흥부(夫)가 우연히 제비 새끼가 떨어져서 발목이 부러져서 버르적거리고 있는데 그걸 가는 실로 잘 짬매서 약을 발라서 그걸 나꾸어 가지고 날려 주어서 그래서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주어가지고 그렇게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니까,

그 형 놀부는 멀쩡한 제비를 후려잡아 가지고 다리를 부질러 가지고 그놈을 짭매서 날려주어 가지고, 그 참 엄청난... 그 재미있는 내용의 흥부전(傳)을 여러분도 봐서 아시겠지만,


마치 전국 사찰에서 행하는 방생 법회라 하는 것이 놀부가 하는 그러한 식의 방생이 된다면, 방생의 참뜻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조실 스님 생존 시에 제가 조실 스님께도 말씀드렸는데 “그런 고기를 몇백 관씩 차떼기로 해서 방생을 하신 것도 참 좋은 일인데, 우선 대중 가운데 병 있는 대중에게 약을 먹이고 병을 치료해 준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런 말씀을 여쭈었는데,

“누가 아프냐?”

“아무개가 치질로 앓고 있습니다.”

“그럼 진즉 나한테 말하지, 말을 않으니 내가 치질을 앓는지, 치통을 앓는지 내가 알 수가 있냐? 왜 너는 나를 무자비한 사람을 만드느냐” 이렇게 해서 꾸지람을 들은 기억이 지금도 남니다마는,


여러분들도 방생은 7월 백중이나 정월 보름을 기해서 정기적으로, 행사로써 그렇게 방생하는 방생보다는 항상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날짜를 정하지 않고서 언제라도 죽어가는 그런 생명이 있으면 살려주고,

사람도 병들어서 돈이 없어서 죽게 된다든지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럴 때에 우연히 자비심이 발동이 되어가지고 그렇게 행해져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기는 ‘연전(前)에 외국 화물선을 타고 저 남미를 가는데, 갑판에 올라가서 그 선원이 바람을 쐬다가 발을 헛디뎌서 바다에 떨어져서 밤중에 영락없이 죽은 줄로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그 배가 짐을 풀고 다시 돌아오면서 보니까, 저만큼 바다에 까마니 무엇이 떠다닌 것이 보여서 그래 망원경으로 보니까 그 전날 물에 빠져서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물에서 떠다닌다 그말이여.

그래서 가까이 가서 보니까 큰 거북이를 타고 해상에 이렇게 떠돌고 있어서 그래서 건져 냈다. 알고 보니 그 선원의 어머니가 신심이 있어서 항상 방생을 행했다. 자라도 많이 놔 줬다’

이런 이야기도 신문에 난 것을 봤습니다.


그리고 옛날에 어떤 사람은 음식점을 하는데 파리 한 마리도 안 죽였어. 그리고 음식에 혹 파리가 빠지더라도 그것을 좋게 건져서 습기를 제거해 가지고 날려 주고.

그 음식점을 하니 얼마나 많은 파리가 성가시게 했겠습니까마는, 될 수 있으면 한 마리의 파리도 죽이지 않고 그렇게 날려 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떤 죄 혐의로 잡혀 들어가 가지고 영락없이 살인 혐의(疑)를 받아가지고 그렇게 죽게 되었는데, 판사가 사형이라고 이렇게 판결문을 쓸라고 하면 붓끄터리에 파리들이 모여들어서 글씨를 도저히 쓸 수가 없어.

그래서 그 파리를 내키고 다시 쓸라고 하면 또 모여들고 모여들고 그래서 그 사람 보고 “평소에 네가 파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저는 별거 없고 음식점을 하는데 약허 약허 했었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파리 한 마리의 목숨도 소중히 여기고 죽이지 않는 사람이 어찌 사람을 죽였겠느냐? 다시 여러 가지로 심사를 해 가지고 알아본즉 모략에 의한 애매한 혐의로 잡혀왔다는 것을 알아서 석방이 된 그런 일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몸에—요새는 약이 많이 발달이 되어 가지고 이를 구경할래야 할 수가 없지만, 옛날에는 몸에 이가 없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이가 드글드글 했었습니다.

그럴 때에도 이를 죽이지 않고, ‘이도 저도 살라고 이 세상에 나왔는데 그걸 뚝뚝 죽일 수가 있느냐’해서 이도 안 죽이고 항상 가려우면 슬슬 긁고 그렇게 살았는데,


어떤 원결(怨結) 관계가 있어 가지고 그 사람이 자고 있을 때 자객이 칼을 품고 들어가서 그 사람을 죽이려고 보니까, 가슴에 벌거니 벌써 누가 한 걸음 먼저 와서 가슴을 찔러서 죽였다 그말이여. 그래서 칼을 들고 찍을려다가 도로 가버렸어.


그런데 사실은 그 몸 안에 있던 '이'들이 전부 스스로 부딪치고 해 가지고는 몸에 있는 피를 터뜨려가지고 마치 칼에 찔린 것처럼 그렇게 보여서 '이'들이 그 사람의 생명을 보호했다. 그러한 설화도 전해오고.(처음~21분3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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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큰 부자는 집안에 어떻게 쥐가 많던지 창고에도 몇백 마리가 드글드글 끓고, 온 집안에도 쥐 때문에 살 수가 없을 정도로 그렇게 많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쥐덫을 놔라. 쥐약을 놔라’ 모다 그랬지만 “아니다. 저 쥐들도 나와 인연이 있어서 우리집에 와서 사니, 쥐가 아무리 많이 먹는다 해도 사람 먹을 것은 남겠지. 죽이지 말라’ 해 가지고 살렸는데,


하루는 쥐들이 수백 마리가 마당에 모여 가지고 쥐들이 춤을 춘다는 거여. 그래서 온 집안 식구가 나와서 야단이여.

그래서 그 주인도 그걸 구경하러 마당에 나와서 그걸 구경하는데, 나오자마자 대들보가 부러져가지고 집이 왕창 가라앉았다 그말이여.

그 주인이 쥐들의 춤을 구경하기 위해서 나오지 않았으면 영락없이 대들보와 서까래에 깔려서 즉사(死)를 했을 것이다.


그런 쥐들도 자기네들의 생명을 그렇게 죽이지 않았다고 한 것에 대해서 은혜를 갚았다 이거거든.


이런 것으로 보면 쥐나 파리나 또는 몸의 피를 빨아먹는 '이'까지도, 하물며 영특한 자라라든지 용이 되어갈 잉어라든지 그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피를 빨아먹고 사는 '이' 같은 그런 작은 존재도 자기의 생명의 은혜를 알더라 그거거든.


부처님 말씀에 『사람이나 동물이나 저 꿈적꿈적한 준동함령(蠢動含靈)까지라도 다 불성(佛性)이 있다』고 하시는 그 말씀이 이러한 설화를 통해서도 우리는 정말 믿어지는 것입니다.


사람 몸을 빨아먹는 '이'를 죽이고,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 또 변소에 가서 더러운 곳에 앉았다가 그 발에는 균이 드글드글 할 텐데, 그 발로 밥상에 날아와서 앉고, 응당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도 인간에 해를 끼치는 그런 해충을 약을 써서 구제(除)해야 할 수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나,


그러나 그러한 작은 벌레도 자기가 살라고 하는 그 생명력, 스스로 그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런 것은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하리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벌레까지도 차마 죽이지 못하는 그러한 마음이 어찌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법정 스님의 수필집에 보니까, 모기가 가면서 그 며느리 보고 ‘오늘 내가 나가면은 어떤 모진 사람의 손바닥에 맞아서 내가 죽을는지도 모르고, 다행히 그렇지 않은 분을 만나면 다시 살아올는지도 모르나, 하여튼 잘 있거라’ 그리고 나갔다고 그러는데,


모기가 와서 붙어가지고 피를 빨아먹으면 무의식 중에 탁! 쳐 가지고 죽이기도 하고 또 모기가 날랜 놈은 또 피해서 도망가기도 하겠는데,

정말 요새처럼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하게 이렇게 함부로 취급을 당하는 세상은 일찍이 없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교통사고로도 날이면 날마다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무슨 공사장에서도 실수로 많이 죽고, 비행기가 떨어져서 죽고, 기차가 가라앉아서 죽고, 자동차가 접촉 사고로 죽고 또 강도로 죽고, 자식이 애비를 죽이고 일가족을 죽이고 해서 날마다 사람이 죽이고 죽는 그러한 생명을 경시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정말 깊이 반성을 해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자기 목숨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목숨도 소중한 것입니다. 인간의 목숨이 소중하면 동물의 목숨도 소중합니다.

자기의 목숨이 참으로 소중한 줄 안 사람은 남의 목숨도 소중히 여기는 것이고, 인간의 목숨이 소중한 줄 알면 동물의 목숨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하고,

나아가서는 동물뿐만이 아니라 식물, 더 나아가서는 자연환경까지라도 정말 소중히 할 줄 알아야 그것이 바로 문화인이고, 그것이 바로 인간성을 바로 지닌 사람의 행위라고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歸依)해서 정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법보재자(法寶弟子) 여러분!

정말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소중한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게송(偈頌) 속에 ‘안비천말적유사(雁飛天末迹留沙)요, 기러기는 저 하늘갓으로 날아갔는데 기러기가 놀다 간 모래사장에는 발자죽만 남아있고, 사람은 황천(黃泉)에 갔는데 그 이름만 집에 남아있더라’(人去黃泉名在家) 그런 게송을 읊으셨는데,

정말 이 세상이라 하는 것은 명예나 권리나, 재산이나 오욕락(五欲樂)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영원성이 없는 무상(無常)하고도 허망한 물거품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보다 더 자기가 많이 소유하고 갖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짓밟고,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고 이러한 풍조가 만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러면 다른 사람도 또 그렇게 되고 그러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아니하면 다른 사람도 내 생명을 소중히 여겨 주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이 자업자득(自業自得)인 것입니다.


산에다 대고 고함을 지르면 메아리가 돌아오게 되는 것처럼 내가 크게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크게 돌아오고, 노래를 부르면 노래가 돌아오고, 좋은 말을 하면 그 메아리는 좋은 말로써 돌아오고, 산에다 대고 입에 못 담을 고약한 욕을 퍼부으면 메아리는 그런 무서운 욕으로 내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메아리와 똑같은 것입니다. 서로서로 존중히 여기고 서로서로 따뜻하게 자비롭게 상대하면 상대방도 역시 또 나한테 그렇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살고 갈 이 세계를 보다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우리만 살고 갈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손들이 살 이 세계를 보다 더 살기 좋은 세계로 만들어 놓고,

자식들을 위해서 집은 좋은 집을 줄라고 하면서 정말 우리 모두가 살 이 세계는 어찌 피비린내 나는 수라장(修羅場)으로 만들어 놓고 자기집만 잘 단속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입니까.


그래서 오늘 백중날 방생을 할 생각이 있으신 분은—자기 아들이 꼭 외항선을 타는 선원이 된다면 거북이를 사서 바다에다 혹 넣고 싶은 생각이 나실는지 모르나, 방생의 참뜻을 깊이 이해를 하셔서 마음속에 자비심을 가져.

항상 자비심(慈悲心)을 가지고 생명을 죽이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생명을 가진 사람이나 동물이나 자연에게도 자비로운 마음으로 상대하면 그것이 벌써 방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꼭 죽어가는 것을 찾아다니면서 ‘어디 자라 잡아서 죽이는 데 없나? 잉어 잡아서 죽일라는 거 없나?’ 그걸 찾아다닐게 아니라 집안에서 직장에서 또는 회사에서 사회에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항상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상대하고,

자기 마음속에 자비심을 항상 이렇게 일으키고 자비로운 말, 자비로운 행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자라 천 마리, 만 마리를 사서 물에다 넣어준 것 못지않게 큰 공덕(功德)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금생에 태어나서 일생 동안 병치레만 하거나 또는 인생을 제대로 살지도 못하고 단명(短命)하게 죽거나, 본의 아니게 불의(不意)의 어떤 사고로 비명액사(非命死)를 한 거나, 이런 것이 다 우연한 결과가 아니고 과거에 우리가 지은 업(業)에 의해서 그러한 과보(果報)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의 장래에 있어서 또는 저 영원한 내세에까지라도 항상 건강하고 수명이 장수하고 그럴러면,

그리고 그런 비명액사를 당하지 않고 자기의 명(命)대로 행복하게 잘 살라면 방생을—자라나 잉어나 그런 죽어가는 동물을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식의 방생도 하지마는,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의 마음을 자비롭게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꼭 몽둥이나 총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죽이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 미워하고 원망하고 저주하는 마음을 일으킬 때 이미 총칼보다도 무서운 살생(生)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 가지고도 사람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주는 그런 악한 말을 하는 것도 역시 살생에 준하는 것입니다.


몸으로 때리고 치고 찌른 것, 말로써 사람을 그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주는, 근심과 고통과 공포를 주는 그런 말도 역시 마찬가지고, 행동으로는 안 나타냈어도 속으로 미워하고 원망하고 죽일 생각을 하고, 저 사람이 오그라 죽기를 바라고 저주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오늘 우란분(盂蘭盆)의 역사에 최초의 근본은 목련 존자로부터서 시작이 되었는데,

목련 존자는 부부간에 금실(瑟)이 좋아서 참 재미있게 잘살았는데, 목련 존자의 전생 얘기죠.


500생 전생의 이야기인데, 그런데 그 어머니가 ‘이놈이 결혼하기 전에는 어미한테도 곧잘 잘하고 그러더니 장가간 뒤로는 계집한테 빠져가지고 아주 어미한테는 소홀히 하고’ 그렇게 느끼셨던지,

노상 ‘며느리 저년이 들어와 가지고 우리 자식의 마음이 변했다. 그런 여우같은 며느리한테 빠져가지고 어미를 우습게 본다’ 이래가지고 노상 사사건건이 큰 일, 작은 일 할 것 없이 며느리를 미워하고 들볶고 그랬다.


그러니까 목련이 처음에는 여러 가지로 자기 아내 보고 ‘어머니한테 잘해 드려. 어머니한테 잘해 드려’ 이렇게 마누라를 달래기도 하고 또 어머니를 위안을 시켜 드리기도 했는데 세월이 가도 조금도 효과가 없고 점점 집안이 아주 대단히 두 고부(婦) 사이에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그래서 골이 나가지고는 “어떤 기운 센 놈이 와서 저 늙은이 좀 때려죽여 버렸으면 좋겠다” 아! 이런 말을 툭 자기도 모르게 나왔다 그말이여. 그 과보로 500생 동안을 죽을 때는 꼭 맞아 죽었어.


마지막 500생에 출가해 부처님 제자가 되어가지고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 신통제일 목련 존자가 되었는데, 그 효심이 지극해서 지옥에 빠진 어머니 청제부인을 지옥에서 구제를 해 드린 그리고 아라한과를 증득해서 삼명육통(三明六通)과 팔해탈(八解脫)을 증득한 대성현이 마지막 돌아가실 때에 외도들에 의해서 맞아서 돌아가셨다 그말이여.


말 한마디가—어머니한테 한 그 악한 말 한마디가 오백생 동안 맞아 죽는 과보를 받았다 이겁니다. 하물며 행동으로 마음으로 부모에게 불효한 사람은 과연 어떠한 무서운 과보를 받게 될 것인가?


우리의 몸뚱이는 잘났건 못났건, 잘 배웠건 못 배웠건, 부모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건, 얼마나 많은 유산을 받았건 못 받았건, 부모가 아니면 이 몸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를 못했습니다.

반드시 세상에 태어날 때는 부모를 의지하지 않고서는 이 몸뚱이를 받아 날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이만큼 좋은 몸을 받아났고 또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을 만났고, 불법 가운데에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났어.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기 위한 이 정법을 만난 그 근본은 부모님으로 인해서 이 몸뚱이가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러한 좋은 과보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들도 해제 법요식과 아울러 선망부모를 천도하는 대천도 법회를 위해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운집(雲集)을 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21분40초~41분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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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뒤에 선망부모를 정성을 다해서 천도해 드리는 것도 대단히 좋은 일이고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아직 돌아가시지 않은 살아계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더욱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왜 그러냐?


부모에게 불효를 하면 그 부모도 사람이요 감정이 있기 때문에, 그 자식이 불효하면 다른 사람한테 몇십 배 구박을 받은 것보다 더 가슴이 아프고 원통(冤痛)하고 절통(痛)한 것입니다.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저를 어려서부터 어떻게 낳아서 키웠는데 지가 나한테 그럴 수가 있느냐’ 이러한 생각이 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품고 돌아가시게 되면 그 부모가 좋은 곳으로 가시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미워해도 안 되는데, 다른 사람에게 원망을 품어도 안 되는데, 자기 뱃속에서 나온 자식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숨을 거두었다면 그 부모는 좋은 곳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어디로 가냐 하면은 그 자식의 아들이나 손자로 태어나는 것이여.


엊그제 자식이 자기 부친을 죽이고 일가족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이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전생의 원수가 보복을 위해서 자식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자식이 다 부모에게 은혜 갚기 위해서 태어난 것만이 아니여.

웬수가 보복을 하기 위해서 자식으로 태어나가지고 일생 동안을 불효를 하고, 처음에는 지극히 효도를 하다가 막판에 가서는 부모 속을 갈기갈기 찢고 그런 예도 있습니다. 가문을 망치거나 재산을 망치거나 심지어는 부모를 살해하기까지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가족끼리 화목을 해야 하는 거고, 남에게도 생명과 재산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어쨌든지 남을 해롭게 해서는 안 돼. 



석 달 동안 그 무덥고 힘드는데, 서늘한 데에서 목욕을 하고 선풍기 틀어놓고 낮잠도 자고 그러지 않고서 그 방부(房付)를 들이고 더운데 와서 그 등어리에 땀이 줄줄줄줄 흐르는데 두 시간씩, 세 시간씩 앉아서 입선(入禪)을 하고,

새벽같이 일어나고 하루 종일 그렇게 사분정진(四分精進)을 하는 선방의 선객(禪客) 스님들 또 보살님네들, 시민선원의 거사님네들,


참선(參禪)을 하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는 자기의 생사 문제를 해결한다. ‘생사 문제 해결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방생입니다.

맨 처음에 자기가 자기를 방생을 시켜야 남도 죽게 되는 사람을 살려내지, 자기가 쇠사슬에 콱 묶여가지고 다른 사람 쇠사슬을 풀어 줄 수 있겠습니까?


참선을 열심히 해서 우선 자기 방생을 하고, 자기 방생을 하면서도 항상 그 뜻은 보살심(菩薩心), 마음속에 탁! 뜨거운 보살심을 지니고서 열심히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고,

대중 속에서 정진을 하면서 행여나 자기가 하는 행동, 자기가 하는 말 한마디라도 대중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고 대중 공부하는데 폐를 끼치지 않도록 그렇게 정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 돌아가서 또는 직장에 다니신 분은 직장에 나가서도 항상 말 한마디 조심하고, 발 한 걸음 옮길 때에도 조심을 해서 남에게 조그마한 피해도 가지 않고, 더군다나 큰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조금 기분만 언짢게 하는 그러한 정도의 일까지라도 조심을 해야 하는데, 마냥 조심을 하다보면 살기가 대단히 불편할 것 같으나 항상 화두를 들고 정진하게 되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악한 마음이 일어날 수가 없고, 항상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으로 화두를 들고 생활을 하게 되면 저절로 살생은커녕 자비심이 마음속에 넘쳐흐르는 거고,

남의 것을 훔치기는커녕 내 것을 남에게 보시하려는 그런 마음이 나오는 거고,

음행을 하기는커녕 항상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갖게 되고,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기는커녕 항상 진실한 마음을 갖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은 이것이 최상승법이고, 이것을 갖다가 불법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피치삭발유래유(披緇削髮有來由)하되  막향청산공백두(莫向靑山空白頭)니라

나무~아미타불~

사십구년다소설(四十九年多少說)이  종횡위아지귀휴(縱橫爲我指歸休)니라

나무~아미타불~


먹물 옷[緇衣]을 입고 삭발(削髮)을 한, 세속의 모든 것을 버리고 청춘을 다 버리고 출가(出家)해서 도를 닦는 데는 반드시 그럴만한 까닭이 있고 깊은 뜻이 있는 것이어서,(披緇削髮有來由)

막향청산공백두(莫向靑山空白頭)니라. 그런 깊은 원력(願力)과 그러한 뜻이 있어서 출가를 했는데, 어찌 청산 속에 공연히 머리가 희어 가고 있느냐.


정말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해서 먹물 옷을 입고, 머리를 깎아서 수행자로서 나섰다면 정말 철저한 신심과 철저한 분심으로 정진을 해야 할 것입니다.


금년 여름에 용화선원 선방 스님네나 또 용주사 중앙선원이나 위봉사 선원, 세등선원 여러 모다 선방에서 정말 열심히 정진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랬다고 그렇게 알뜰히 열심히 하셨지만,

도반의 입장에서—정말 해제를 하고서도 풀어진 마음으로 살지 말고, 해제 기간일수록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기고, 일거수일투족(足)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결제 중보다도 더 알뜰히 잡드리 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십구년다소설(四十九年多少說)이  종횡위아지귀휴(縱橫爲我指歸休)니라.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팔만사천(八萬四千) 묘법(妙法)을 설하셨는데, 그 많은 법문(法門)이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서 종횡으로 팔만사천 가지 방편(方便)을 설하셨지만,

한마디로 『밖으로 치닫지 말고 한 생각 돌이켜서 바로 자기를 찾으라』는 그 한마디여.


그 한마디만을 철저하게 단속하고 철저하게 잡드리한다면 결제, 해제가 무슨 차등이 있겠느냐.

산으로 가나, 들로 가나, 차를 타나 걷거나, 목욕탕을 가거나 변소에를 가거나, 무엇을 하거나 무슨 상관이 있느냐.


옛날 도인은 장바닥에 가서 공부를 하신 분도 있었고, 노동판에 가서 정진하는 이도 있고, 곡천 선사(谷泉禪師)는 거짓으로 죄를 지어가지고 감옥살이를 하면서 도를 닦으신 분도 있어.



정체종래절성색(正體從來絶聲色)한데  멱즉지군불견종(覓則知君不見蹤)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묘봉정상일전신(妙峰頂上一轉身)하면  시방무처불봉거(十方無處不逢渠)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체종래절성색(正體從來絶聲色)이여. 정체(正體), 바른 진리의 체(體)는 본래 성색(聲色)이 끊어진 자리여. 어떤 말도 거기에는 미치지 못하고, 어떠한 모양도 거기에는 찾아 볼 길이 없는 것이여.

멱즉지군불견종(覓則知君不見蹤)이야. 아무리 눈으로 보려고 하고, 귀로 들을라고 하고, 손으로 만지려고 하고, 생각으로 알라고 해도 그 자취를 볼 수가 없어. 그 자체는 성색(聲色)이 끊어졌기 때문에 그런 거여.


묘봉정상(妙峰頂上)에 일전신(一轉身)하면,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서 거기서 행여나 떨어질까 봐서 그걸 붙잡고 발발 발발 떨지 말고 거기서 턱! 손을 놔 몸을 굴리면,


시방세계(十方世界)에 그를 만나지 아니한 곳이 없을 것이다.(十方無處不逢渠)

온 법계(法界)가 다 정체(正體)가 여여(如如)한 면목이더라.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철저히 참(參)해서 사량복탁(思量卜度)을 하지 말고, 해 갈수록 알 수 없고, 알 수 없는 거기에서 다시 그놈을 되집어서 ‘이뭣고?’

해 갈수록 꽉 막혀서 알 수가 없어야지 ‘하아,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사량분별로 따지고, 알아지고 얻어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참 깨달음이 아니야. 


우리의 선망부모가 오늘 이 백중날을 기해서 석 달 동안 열심히 도를 닦은 청정한 수행자들의 간곡한 신심과 원력과 수행력에 의해서 우리의 선망부모가 오늘 천도가 잘되실 것입니다.

이어서 법요식(法要式)이 진행이 될 것입니다.(41분2초~58분41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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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당하지귀아시수(當下知歸我是誰)~’ ; [무이선사광록(無異禪師廣錄)] 제17권, ‘示蔡聖龍祠部’ ‘示朱羅青民部’ 게송 참고.

*당하(當下)일이 있는  자리또는 그때.

*안거(安居 편안할 안, 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정진(精進) ; ①정성을 다하여 노력해 나아감. ②잡념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깨우치기 위해 수행에 힘씀.

*혼침(昏沈 어두울 혼, 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산란(散亂 흩을 산, 어지러울 란) ; 혼침(昏沈)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마음이 어지러운 것.

*백중(百中)날 ; 음력 칠월 보름날. 석 달간의 하안거(夏安居)를 마치는 날. 하안거를 마친 수행자들에게 공양을 올리어 그 공덕으로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제한 목련존자의 효심을 기원으로 하는, 우리의 선망부모의 영가를 천도하는 법요식을 거행하는 날(우란분회 盂蘭盆會). 백중(百衆)·백종(百種)이라고도 한다.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고려 시대에는 이날 국가적으로 '우란분회'를 열었으나 조선 시대 이후로 절에서만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재를 올리고, 농가에서는 이날 하루 농번기의 피로를 씻기 위해 머슴을 쉬게 하였다.

*목련(目犍連, 目連) ; 산스크리트어 maudgalyāyana의 음사. 대(大)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이라고도 한다. 원명 꼴리따.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사리불(舍利弗)와 친하여 어느 날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사리불이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앗사지(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사리불한테 듣고는,

사리불과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사리불과 함께 불교교단의 중심인물이었다.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고, 탁발하는 도중에 외도(外道)들이 던진 돌과 기왓장에 맞아 고통을 겪는 중에, 사리불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붓다에게 나아가 열반에 들겠다고 말씀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마수촌에서 열반에 들었다.

*존자(尊者) ; ①산스크리트어 āyuṣmat 수행이 뛰어나고 덕이 높은 수행자를 일컫는 말. ②성자. 현자.

*만반고통(般苦痛) ; 갖가지의 모든 고통.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망자의 넋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공양구(供養具) ; 부처님이나 보살님께 바치는 음식물·향·꽃 등의 물건, 또는 그 물건을 바칠 때 사용하는 기구.

*영가(靈駕) ;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위패(位牌) ; 죽은 사람의 위(位)를 모시는 나무패.
*사암(寺庵) ; 절과 암자.
*방생(放生) ; 사람에게 잡힌 물고기나 새, 짐승 따위를 산이나 물에 놓아서 살려 주는 일. 불교도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첫째 계(戒)인 불살생계(不殺生戒)보다 적극적인 선을 실천하는 선행(善行)이다.
*차떼기(車떼기)화물차   분량 상품 한꺼번에 사들이는 . 또는 그렇게 하기 위한 흥정.
*관(貫)무게 재는 단위 나타내는  관은    배로 3.75킬로그램에 해당한다.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곤욕( 괴로움·남처함 곤/욕될 욕) ; 참기 힘든 심한 모욕(辱 깔보고 욕되게 함)또는 그러 .
*원정(原情) ;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함. 또는 억울한 사정.
*흥부(興夫)고대 소설 <흥부전> 주인공부자이며 심술궂은  놀부와는 달리 가난하고 착하며 나중 부자 된다.
*짬매다 ; ‘묶다’의 사투리.
*나꾸다 ; ‘낫우다(고치다, 올바르게 하다)’의 사투리.
*박씨 ; ‘박’의 씨. ‘박’은 박과(科)의 한해살이 덩굴풀의 열매로 삶거나 말려서 바가지를 만들고 속은 먹는다. 인가(人家)의 담이나 지붕에 올리어 재배한다.
*부질다 ; ‘뿌질다(단단한 물체를 꺾어서 부러지게 하다)’의 사투리.
*연전(前) ; 여러 해 전.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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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동함령(蠢動含靈) ; 꿈지럭거리며 움직이는 함령(含靈, 심령心靈을 가지고 있는 것). 모든 생물. 중생(衆生).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구제( 몰 구, 제거할 제) ; 해충 따위 몰아내어 없애 버림.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하늘갓 ; 하늘가(하늘의 끝).

*발자죽 ; ‘발자국(발로 밟은 곳에 남은 흔적)’의 사투리.

*황천(黃泉) ; 저승(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게송) ‘雁飛天末迹留沙  人去黃泉名在家’ ;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36 게송 참고.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자업자득(自業自得)자기[自] 저지른 일의 결과[業] 스스로[自] 돌려받음[得].

‘스스로 저지른 결과’란 뜻으로 많이 쓴다. 과거, 전생의 선악(善惡)의 인연에 따라 뒷날 길흉화복(福)의 갚음을 받게 된다는 뜻의 인과응보(因果應報)에도 자업자득의 뜻이 들어 있다. 자작자수(自作自受), 자업자박(縛)도 같은 뜻이다.

*수라장(修羅場) ; 아수라장(阿修羅場). ①아수라왕(阿修羅王)이 제석천(帝釋天)과 싸운 마당. ②싸움이나 기타의 이유로 혼란에 빠져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된 곳. 또는 그러한 상태.

*자비심(慈悲心)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병치레(病치레) ; 병을 앓아 치러 내는 일.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우란분(盂蘭盆) ; 우란분(盂蘭盆)은 산스크리트어 ullambana의 음사로, 도현(倒懸)이라 번역.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는다는 뜻.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거꾸러 매달려 고통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삼보(三寶)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이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 수 없어서,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의 모친을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금실(琴瑟 거문고 금, 비파 슬) ; 거문고 비파 서로 어울리는 모양처럼  어울리는 부부 사이 두터운 정과 사랑 비유적으로 이르는 .
*십대제자(十大弟子) ; 석가모니의 제자 중 수행과 지혜가 뛰어난 10명을 이르는 말.
사리불(舍利弗) : 산스크리트어 śāriputr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지혜가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 일컬음. 원래 목건련(目犍連)과 함께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인 산자야(sañjaya)의 수제자였으나 붓다의 제자인 앗사지로부터 그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250명의 동료들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다.
목건련(目犍連) : 산스크리트어 maud galyāyan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원래 산자야(sañjaya)의 수제자였으나 사리불(舍利弗)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다.
가섭(迦葉) : 산스크리트어 kāśyap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 출신으로, 엄격하게 수행하여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일컬음. 결혼했으나 아내와 함께 출가하여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그 모임을 주도함.
수보리(須菩提) : 산스크리트어 subhūti의 음사. 사위국(舍衛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공(空)의 이치에 밝아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일컬음. 그래서 공(空)을 설하는 경(經)에 자주 등장하여 설법함.
부루나(富樓那) : 산스크리트어 pūrṇa의 음사. 바라문 출신으로, 설법을 잘 하여 설법제일(說法第一)이라 일컬음. 녹야원(鹿野苑)에서 붓다의 설법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됨. 인도의 서쪽 지방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하다가 거기에 입적함.
아나율(阿那律) : 산스크리트어 aniruddha의 음사.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아난(阿難)·난타(難陀) 등과 함께 출가함. 통찰력이 깊어 천안제일(天眼第一) 이라 일컬음.
가전연(迦旃延) : 산스크리트어 kātyāyana의 음사. 인도의 서쪽에 있던 아반티국(avanti國)의 크샤트리야 출신으로, 왕의 명령에 따라 붓다를 그 나라로 초청하기 위해 찾아갔다가 출가함. 깨달음을 얻은 후 귀국하여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함. 교리에 밝아 논의제일(論議第一)이라 일컬음.
우바리(優波離) : 산스크리트어 upāli의 음사. 노예 계급인 수드라 출신으로 석가족의 이발사였는데, 아난(阿難)·난타(難陀)·아나율(阿那律) 등이 출가할 때 같이 붓다의 제자가 됨.
계율에 엄격하여 지계제일(持戒第一)이라 일컬음.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계율에 대한 모든 사항을 암송함으로써 율장(律藏)의 성립에 크게 기여함.
나후라(羅睺羅) : 산스크리트어 rāhula의 음사. 붓다의 아들.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사리불(舍利弗)과 목건련(目犍連)을 스승으로 하여 출가함. 지켜야 할 것은 스스로 잘 지켜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 일컬음.
@아난(阿難) : 산스크리트어 ānanda의 음사.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난타(難陀)·아나율(阿那律) 등과 함께 출가함. 붓다의 나이 50여 세에 시자(侍者)로 추천되어 붓다가 입멸할 때까지 보좌하면서 가장 많은 설법을 들어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일컬음.
붓다에게 여성의 출가를 3번이나 간청하여 허락을 받음.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아난이 기억을 더듬어 가며 “이렇게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붓다께서는……”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암송하면, 여러 비구들은 아난의 기억이 맞는지를 확인하여 잘못이 있으면 정정한 후, 모두 함께 암송함으로써 경장(經藏)이 결집됨.
*삼명육통(三明六通) ; 부처님이나 아라한이 갖추고 있는 3가지 자유 자재한 지혜[三命]와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六神通].
*팔해탈(八解脫) ;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여덟 가지 선정(禪定).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운집(雲集 구름 운, 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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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冤痛 원통할 원, 아플 통) ; 분(憤·忿)하고 억울함.

*절통(切痛 끊을·몹시 절/ 아플 통) ; 뼈에 사무치도록 분(憤·忿)하고 억울함.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네 번(새벽, 오전, 오후, 저녁)씩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것.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보살심(菩薩心) ; ①스스로 불도(佛道)를 구하고, 타인을 구제하여 깨닫게 하고자 하는 마음. ②발심하여 불도를 수행하는 마음.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게송) ‘피치삭발유래유~’[소요당집(逍遙堂集)] ‘시밀행선자(示密行禪子)’ 게송 참고.

*치의(緇衣 검을·승복 치/ 옷 의) ; ①검은 물을 들인 스님의 옷. ②승복을 입은 사람. 즉 '스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삭발(削髮) ; 머리카락을 깎는 것. 불교에서는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 즉 ‘무명의 풀’로 보기 때문에 삭발은 인간 내면의 무명과 번뇌, 아집과 교만을 잘라 내버리겠다는 새로운 각오와 서원을 의미한다.

*출가(出家) : [범] Pravrajita 집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가정 생활을 떠나서 수도와 포교를 전문으로 하기 위하여, 스님이 되는 것을 말함이다.

그러나 몸 출가(身出家)보다도,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등 삼독(三毒)의 불이 늘 붙고 있는 번뇌 망상의 불집에서 뛰어나오는 마음 출가(心出家)를 하여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32~133.

出家爲僧이  豈細事乎아.  非求安逸也며  非求溫飽也며  非求利名也라

爲生死也며  爲斷煩惱也며  爲續佛*慧命也며  爲出*三界度衆生也니라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  몸의 안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고,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을 면하고,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혜를 이으려는 것이며, 삼계에 뛰어나서 중생을 건지려는 것이니라.

[참고] 송담스님 법문(No.353)—88년 신수기도 회향(88.02.26)에서.

출가(出家)라 하는 말은 말을 바꿔서 말하면 ‘크게 버리는 것’입니다. ‘크게 버리는 것’이 그것이 바로 출가인 것입니다.


출가에도 두 가지 뜻이 있고, 재가(在家)에도 두 가지 뜻이 있는데,

몸뚱이는 세속(世俗)에 있으면서 마음은 출가한—청신사(清信士) 청신녀(清信女)로서 비록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 마음은 모든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을 다 버려 버리고,

청정한 신심으로 불법에 귀의(歸依)해서 항상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그런 분은 바로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한 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속가(俗家)에 가 있는 그러한 출가도 있습니다.

비록 출가해서 염의(染衣)를 입고 머리는 깎았으되 마음이 완전히 오욕락(五欲樂)을 버리고, 탐진치 삼독을 버리고서 청정한 출가인으로서 사문(沙門)으로서 도를 닦지를 못하고,

몸뚱이는 절에 있으면서 마음속에 세속의 명리와 탐심을 버리지 못했다면 이것은 몸뚱이는 출가했으면서도 마음은 출가를 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몸뚱이도 세속에 있고, 마음도 완전히 세속의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빠져서 일생을 그냥 고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몸뚱이도 마음도 세속에 있는 것입니다.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정말 청정한 사문은 바로 그러헌 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또는 순치황제라든지 역대 조사들은 몸도 출가하고, 마음도 출가한 그러한 모범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많은 거사(居士)라든지, 청신녀 가운데에 몸뚱이는 세속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신심이 돈독해서 정법을 믿고 수행을 쌓아서 도를 얻은 분도 인도나 중국, 한국, 일본에 많이,

널리 이름이 알려지지 안 해서 그렇지, 정말 훌륭한 그런 분들도 많이 계시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일거수일투족(足)   들고    옮긴다는 으로크고 작은 동작 하나하나 이르는 .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