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 (게송)보만삼천급대천~ / 중생은 '미(迷)한 부처님', 부처님은 '깨달은 중생' / 바른 믿음을 가져야 / '제행무상~'게송 / (게송)도장칠보시삼천~ / 금강경사구게.

부처님께서 그 많은 경전을 설하셨지만 참으로 부처님의 그 경전의 뜻을 올바르게 체달(體達)을 하고 보면 한 생각 돌이켜서 '참나'를 깨달으는 그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여.
이 도리를 믿는 사람은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사람이고, 이 도리가 믿어진 사람은 최상승법의 인연을 무량겁을 두고 심어온 그러한 상근대지(上根大智)라 할 수가 있어.
바른 믿음을 갖지 아니하면 마구니를 불보살로 착각하기도 하고, 불보살을 마구니로 착각하게 되기 때문에 바른 신심을 가지고 불법을 믿고 수행을 해야 그것을 가려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망상 일어나는 것도 걱정을 하지 말고 「이뭣고?」 화두를 들 것이고, 나를 정신적으로 또는 물질적으로 손해를 뵈인 그러한 미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미움으로써 미운 생각을 일으켜서 미워하지 말고,
빨리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 나간다면 그 미웠던 사람이 바로 불보살의 모습으로 변해질 것입니다.
중생의 번뇌 망상, 인간의 생로병사 속에 대해탈도(大解脫道)는 조끔도 숨김없이 열려져 있다고 하는 사실,
어느 망상, 어느 번뇌 한마디에서도 진리로 통하는 길은 있다고 하는 사실에 명심을 하고, 일어나는 한 생각이 다음 생각으로 번지기 전에 화두를 들도록 노력을 할 것입니다.
이 길 밖에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백천만 억의 불보살이 출현한다 하더라도 중생의 번뇌를 여의고 부처는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04)—83년 6월 첫째 일요법회(83.06.05)


(1) 약 21분.  (2) 약 12분.


(1)------------------


보만삼천급대천(寶滿三千及大千)하고  복연응불리인천(福緣應不離人天)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약지복덕원무성(若知福德元無性)하면   매득풍광불용전(買得風光不用錢)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보만삼천급대천(寶滿三千及大千), 보배가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가득 찬 보배가 있고, 그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그 보배로 보시를 해.
보시를 하면 그 보시의 공덕이 얼마나 많으냐? 하면 하늘나라와 인간의 나라, 인천(人天)에 그 복이 인천에 가득차.(福緣應不離人天)

그 인천(人天)에 가득 찬 복은 어떠한 복이냐 하면, 그것은 무루복(無漏福)이 아니라 유루복(有漏福)에 지내지 않는다. 아무리 하늘나라와  인간 세상에 그 복의 인연이 가득차서 온 천하 것이 전부 자기 것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유루복이다 그말이여. 유루복은 한도(限度)가 있어.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보배로 보시를 해서 아무리 공덕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말이죠. 그래서 그것은 영원한 행복이라 할 수가 없어.

그 복덕성(福德性)이 원래 자성(自性)이 없는 도리를 깨달아야,(若知福德元無性)
이 온 세계에 봄이 오면 잎이 피고 꽃이 피며, 가을이 오면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여름에는 산천초목이 모다 우거져서 무성하게 자라는, 이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 푼도 돈을 들이지 아니하고 온전히 자기가 즐길 수 있는 누릴 수 있는 자기의 정원이 되더라.(買得風光不用錢)

복덕(福德)에 자성이 없는 도리가 무엇이냐?
우리의 한 생각 일어났다 꺼지고 일어났다 꺼지고 좋은 생각도 일어났다가 꺼지고, 나쁜 생각도 일어났다 꺼지고, 그 한 생각을 잘 먹어서 착한 일을 하면은 천당에 가는 원인이 되고, 한 생각을 잘못 먹어서 악한 행동을 하면은 그것이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는 요인이 되는 것이여.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보물로써 보시를 해서 인천의 복락을 누린다 하더라도 그 근원을 더듬어 보면 ‘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여.

‘복덕의 자성이 원래 없는 도리는 어떻게 해서 깨닫느냐’하면 우리 한 생각 일어나는 그놈을 돌이켜서 화두를 관조할 때에 '한 생각이 남이 없는 이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 남이 없는[無生] 이치를 깨닫게 되면 온 삼천대천세계는 바로 자기가 대자유(大自由)로 누릴 수 있는 영원한 자기의 낙원이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부처님께서 그 많은 경전을 설하셨지만 참으로 부처님의 그 경전의 뜻을 올바르게 체달(體達)을 하고 보면 한 생각 돌이켜서 '참나'를 깨달으는 그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여.
이 도리를 믿는 사람은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사람이고, 이 도리가 믿어진 사람은 최상승법의 인연을 무량겁을 두고 심어온 그러한 상근대지(上根大智)라 할 수가 있어.

숙세의 인연이 없는 사람은 이런 말을 해 주어도 뭔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가고, 설사 ‘아하! 그렇구나’하고 이해가 된다 하더라도 철저하게 믿어지지를 않고 설사 알음알이로는 믿어져도 그것을 실천을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듣게만 되는 인연도 장하고, 듣고 믿게만 된 인연은 또 장하고, 믿고 실천을 하는 사람 그것도 쪼끔만 하다가 말아도 그것이 굉장한 깊은 인연의 소치지만, 일생 동안을 목숨을 바쳐서 이 공부를 실천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차는 칠보(七寶)로써 보시를 하는 그 공덕에 몇억만 배, 도대체가 비교가 안되는 것입니다.


여기 이 법보전에 모이신 사부대중 여러분은 숙세의 깊은 인연으로 최상승법을 믿게 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이신 무량겁(無量劫)의 도반이요, 전생의 선배가 금생에는 또 이렇게 위치가 바뀌어져 가지고 또 이렇게 만나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중생(衆生)은 깨닫지 못한 부처님이고, 부처님과 조사와 선지식은 깨달은 중생이다 이렇게 표현을 하면 잘 맞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요. 중생은 「깨닫지 못한 부처님」이고, 다시 미(迷)한 부처님」이고, 「잠깐 미(迷)한 부처님」이고,


마치 보석이 잘못해서 쓰레기통에 빠지듯이, 쓰레기통에 빠져서 먼지가 묻어 가지고 또는 진흙밭에 그 몇천만 원이 나가는 그런 세계적인 그런 보물이 하수구에 빠졌다고 해서 그것이 보석이 아닌 건 절대로 아닌 것은 아니거든. 쓰레기통에 빠졌건 똥통에 빠졌건 그 보석 자체에는 아무 변함이 없어.

그렇듯이 중생의 몸뚱이 속에 중생의 탈을 쓰고 있다고 해서 부처님이 아닌 것은 아니거든. 그래서 중생은 '미(迷)한 부처님'이라 이렇게 표현을 할 수가 있고.

부처님은 딴 사람이 아니여!  어디서 본래 부처님이 따로 있어 가지고 종자가 따로 있고, 혈통이 따로 있고, 어디가 그래 가지고 부처님이 어디서 나온 것이 아니라, 중생이 깨달으면 부처님이 되는 것이니까 내나 중생은 중생인데 '깨달은 중생'이다 이거거든.

그래서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설사 내가 망지(妄知)를 가지고 이렇게 법을 설한다고 해서 꼭 그 불에 내가 타져 죽어야 할 만한 무서운 죄가 있다고 만을 생각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쪼끔 안심이 되기는 합니다.

내나 법문을 들은 여러분도 깨닫지를 못했을망정 여러분도 부처님이고, 설사 망지(妄知)로써 내가 설한다 하드라도 미(迷)한 부처님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에,
‘부처님이 부처님을 향해서 법을 설하고 있다’해도 맞는 말이 될 것이고, ‘중생이 중생을 향해서 법을 설하고 있다’고 해도 맞는 말이 될 것입니다.

요(要)는 나의 죄를 경감하게 하는 데에는 절대적으로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금생에는 내가 내 목숨을 바쳐서 여러분 앞에 말을 하고 있는 그러한 장면이 이 자리에 연출이 되고 있지만, 이 다음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는 나를 위해서 여러분이 또 여러분의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나를 위해서 자비를 베풀어질 때가 또 올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서로 위치를 바꾸어 가며 하나는 앞에서 끌면 뒤에서는 밀면서 따라오고, 한 사람은 뒤에서 밀다가 앞에서 끌고, 앞에서 끌다가 뒤에서 밀면서 우리는 온 세상에 깨달은 중생만이 가득차는 세계가 되고, 깨달은 중생이 가득찬 세계는 바로 극락세계(極樂世界)요 적광토(寂光土)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는 온 세계는 서로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을 위해서 남을 죽이고 자기만을 살려고 하는 아비지옥(阿鼻地獄)이 영원히 사라지게 될 때인 것입니다.

남을 죽이고 자기만 살려고 할 때에는 저 사람도 나를 죽이고 자기만 살려고 하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것이 되고, 남을 죽이는 것이 바로 그것이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고 다른 사람에게 진리의 눈을 뜨기 위해서 자기 손에 든 횃불로 인해서 화상을 입는 희생자가 없다면, 어떻게 이 세계는 암흑세계가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부처님은 삼십이상(三十二相)과 팔십종호(八十種好)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갖추시고 계십니다마는 그러한 원만구족한 부처님은 언제나 우리 중생 눈에 보여 주시지만을 않습니다.
몇천 년만에, 몇억만 년만에 잠깐 모습을 보였다가 열반상(涅槃相)을 보이시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천백억 화신(化身)을 나투시는 것입니다.

발심(發心)을 한 사람에게는 그 천백억 화신을 나투신 그러한 불보살(佛菩薩)의 모습을 도처에서 발견을 할 수가 있을 것이고, 발심을 하지 못한 사람은 코앞에 불보살이 나타나도 그것을 웬수로 보고 그것을 미워하고 몽둥이질을 가하고 욕설을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

불보살은 삼십이상과 팔십종호를 갖추시고 만을 태어나시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은 언제나 명심을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남편이 불보살의 화현(化現)일런지도 모르고, 시부모가 불보살 화현일런지도 모르고, 원수같이 생각했던 며느리나 자식이 불보살의 화현일런지도 모르고, 여러분의 가정에서 일하는 가정부가 불보살의 화현일런지도 모르고, 자주 찾아와서 돈과 밥을 빌러오는 거지가 불보살의 화현일런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금 내가 여기서 설하고 있는 내가 불보살의 화현일는지도 모른다고 하는 말을 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불보살의 모습을 가장을 해 가지고 마구니가 법을 설할 수도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불보살은 마구니의 탈을 쓰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나타나시는 수가 있고, 마구니는 불보살의 탈을 쓰고 여러분을 지옥으로 마군(魔軍)이의 권속으로 끌어갈려고 하는 수가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되,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
바른 믿음을 갖지 아니하면 마구니를 불보살로 착각하기도 하고, 불보살을 마구니로 착각하게 되기 때문에 바른 신심을 가지고 불법을 믿고 수행을 해야 그것을 가려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것을 마구니라고 보지만은 바른 신심을 가진 사람은 마구니가 아니라 불보살의 화신으로 탁! 가려내게 되는 것입니다.

불법은 중생의 망상을 떠나서 깨달음은 있지 않기 때문에, 불법은 일상생활 속에서 찾아야 하고 번뇌 망상을 떠나서 지혜는 얻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번뇌 망상을 버리고 지혜를 찾는 한은 영원히 지혜는 얻어지지 않고, 일상생활을 여의고 진리를 찾는 한에서는 진리는 얻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구니의 탈을 썼지마는 거기에서 불보살을 가려내듯이 번뇌(煩惱) 망상(妄想) 속에서 바로 거기에서 화두를 들을라고 노력을 해야 거기에서 참다운 지혜는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망상 때문에 참선을 못한다. 시끄러워서 참선을 못한다. 남편 때문에 참선을 못한다. 처자권속 때문에 참선을 못한다.’ 이러한 말은 최상승법에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는 말입니다.

망상, 번뇌, 무명, 원수, 미움, 슬픔, 노여움 이것들은 그 속에 부처님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요, 바로 그러한 것들이 전부가 부처님의 나라로 가는 하나하나의 디딤돌이라고 하는 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망상 일어나는 것도 걱정을 하지 말고 「이뭣고?」 화두를 들 것이고, 나를 정신적으로 또는 물질적으로 손해를 뵈인 그러한 미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미움으로써 미운 생각을 일으켜서 미워하지 말고,
빨리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 나간다면 그 미웠던 사람이 바로 불보살의 모습으로 변해질 것입니다.(35분32초~56분41초)


(2)------------------


열반경(涅槃經)에 부처님 과거 인행(因行) 때에 설산에서 고행을 하고 계셨는데, 그렇게 목숨을 바쳐서 고행정진을 하고 있건만은 도저히 깨달음의 눈은 열리지를 안 해.

그러자 어디서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이니라』 하는 그러헌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그런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무상하고, 끊임없이 시시각각으로 변해서 죽어가는 그러한 무상한 것들이다.」 그러한 내용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그래서 눈을 번쩍 뜨고 두리번거리니까 그런 아름다운 목소리가 나올 만한 아무런 것도 발견을 할 수가 없어.
그래 이리저리 찾아보니까 머지않은 곳에 뿔이 달리고 어금니가 사자처럼 날카로운 사람을 생으로 잡어서 씹어 먹고 생피를 빨어 먹는 나찰귀신(羅刹鬼神)이 입을 벌리고 눈을 희번덕이면서 서있다 그말이여.

『이제 곧 그 노래가 네가 읊은 노래냐?』하고 물어봤습니다.
나찰귀신은 시치미를 뚝 따며 『무슨 소리를 합니까? 나는 지금 배가 고파서 죽겠습니다.』

『아니다. 너 밖에는 그 말을 할 아무런 사람이 없는데 네 입에서 그 노랫소리가 나왔다면 그 노래의 후반부가 있을 테니 그 후반부의 노래를 나에게 일러다오. 그리고서 내 몸을 잡어먹어라.』

나찰귀신은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니라. 생멸이 다하면 생멸심이 끊어지면 바로 그것이 적멸(寂滅)의 대안락(大安樂)이니라.』 그러한 노래를 읊었습니다. 거기에서 부처님은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를 했습니다.

당신만 알고 나찰귀신의 밥이 되어버리면 다른 많은 중생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그 노래를 나무에다가 바위에다 손가락을 깨물어서 피로써 거기에다가 글씨를 썼습니다.

그 노래를 쓰고서 나무 위에서 나찰귀신을 향해서 몸을 던졌습니다. 그 찰나에 온 천지에는 하늘나라의 장엄한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나찰귀신은 제석천왕(帝釋天王)의 거룩한 몸으로 변화가 되어가지고 나무에서 떨어지는 부처님을 공경스럽게 받들어 모셨습니다.

목숨을 바쳐서 참다운 신심으로 공부를 해 나가면 나찰귀신에게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법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지 못한,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그러한 사욕(私慾)으로 불법을 믿으면 살아있는 부처님을 친견하고서도 아무 이익을 얻지를 못할 것입니다.

언제나 귀가 따갑게 거듭거듭 말씀을 드린 바지만, 중생의 번뇌 망상, 인간의 생로병사 속에 대해탈도(大解脫道)는 조끔도 숨김없이 열려져 있다고 하는 사실,
어느 망상, 어느 번뇌 한마디에서도 진리로 통하는 길은 있다고 하는 사실에 명심을 하고, 일어나는 한 생각이 다음 생각으로 번지기 전에 화두를 들도록 노력을 할 것입니다.

이 길 밖에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백천만 억의 불보살이 출현한다 하더라도 중생의 번뇌를 여의고 부처는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도장칠보시삼천(徒將七寶施三千)허되  사구친문요상근(四句親聞了上根)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무량겁래제불조(無量劫來諸佛祖)가  종자초출열반문(從玆超出涅槃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천대천세계에 칠보를 가지고 보시를 하는 것보다 금강경의 사구게(四句偈)를 설함으로써 상근(上根)을 요달(了達)한다.

금강경의 사구게는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만약 색(色)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시인(是人)은 행사도(行邪道)여.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삿된 길을 행함이라 부처님, 여래(如來)를 보지를 못한다.(不能見如來)

이러한 사구게 한마디를 설하고, 남을 위해서 설해 주거나, 스스로 그 사구게를 들어서 지니고 또 그것을 실천한 것만 같지 못하다.

왜 그러냐 하면, 칠보로써 삼천대천세계에 보시한 공덕은 인천(人天)의 유루복(有漏福)은 될 것이나, 사구게를 듣고 믿고 실천을 하거나 남을 위해서 해설해 주는 그 공덕은 마침내 대열반(大涅槃)을 얻을 수가 있게 되기 때문에 그렇다.

그 사구게로 인해서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도 열반을 얻고, 바로 거기에서 부처님이 탄생을 하시게 되었더라.

그러면 누구라도 참선을 할 것이 없이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그 게송만 자꾸 외우면 좋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이 사구게의 참뜻을 잘 이해를 못한 사람인 것입니다.

사구게의 그 글귀 문자가 문제가 아니라 그 문자의 뒤에 있는 참뜻에 눈을 떠야 하고, 그 뒤에 있는 참뜻을 실천을 해서 진리의 눈을 떠야지, 그 게송만을 무의미하게 자꾸 독송(讀誦)을 한다고 해서 거기서 부처님이 나온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뜻을 모르고라도 외우고, 뜻을 모르고라도 남에게 자꾸 일러만 줘도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언젠가는 그 씨로 부터서 싹이 트고 열매가 맺게 된다는 뜻에서는 또 뜻이 없다고 할 수가 없지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참뜻은 그러한 범위에서 머무른 것을 원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서 빨리 대해탈도를 증득을 해서 잠시도 끊임없이 훨훨 타고 있는 이 불을 꺼주시기를 다시 부탁을 하면서 말씀을 끝맺고자 합니다.(56분42초~68분10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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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보만삼천급대천~’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야부 게송 참고.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 줄여서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고대 인도인의 세계관에서,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4대주(四大洲)가 있고, 그 바깥 주위를 9산8해(九山八海)가 둘러싸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이며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라 함.
이 하나의 소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소천세계(小千世界)라 부르고, 이 소천세계를 천개 모은 것을 하나의 중천세계(中千世界), 이 중천세계를 천개 합한 것을 하나의 대천세계(大千世界)라 부른다.
이 대천세계(大千世界)는 천(千)을 3번 모은 것이고, 소천•중천•대천의 3종류의 천세계(千世界)로 이루어지므로 3천세계 또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고 한다.
이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가 지은 복(福)으로, 복을 지은 만큼 쓰면 다함이 있다.
*자성(自性) ; 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무생(無生) ; ①생멸(生滅)을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이 없는 도리. 곧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②아라한(阿羅漢) 또는 열반(涅槃)의 번역어. 번뇌를 없앤 경지를 말함.
*체달(體達) ;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달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큰 사람.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함식(含識)• 군생(群生)• 군맹(群萌)•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부처님 : [범] Buddha 음을 따라 한자로 불타(佛陀)•부도(浮圖•浮屠)•부타(浮陀)•발타(勃陀)•몰타(沒駄) 등으로 쓰고, 줄여서 불(佛)이라고만 하는데, '깨친다'는 말이다.
'부처님'이라 함은 '깨친 어른(覺者)'이란 뜻이다。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는 이를 말함이니,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망지(妄知) ; 중생의 망령(妄靈)된 알음알이.
*요(要) ; [주로 ‘요는’의 꼴로 쓰여]사물의 핵심이 되는 가장 중요한 요점이나 골자.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상적광(常寂光). 법신불(法身佛)이 머무르는[住] 정토(淨土).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삼십이상(三十二相) ; 부처님이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의 특징. 몸이 금빛이다, 손가락이 길다,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있다, 발바닥에 두 개의 바퀴 모양의 무늬가 있다 등등.
*팔십종호(八十種好) ; 부처님과 갖추고 있는 80가지의 작은 특징. 얼굴 빛이 화평하여 웃음을 먹음은 것, 목이 둥글고 아름다운 것 등등.
*팔만세행(八萬細行) ; 부처님의 모든 행동은 원만하여 모자라거나 넘침이 없다는 것. 팔만 가지 세세한 행동들이 전부 부처님의 위의(威儀, 훌륭한 행위)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다.
*열반상(涅槃相) ; 부처님의 성도(成道)를 중심으로, 부처님의 일생에 있어서의 8가지의 중요한 사항인 팔상성도(八相成道) 또는 팔상(八相)의 하나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을 말한다. 쿠시나가라성 밖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최후의 설법을 마치고 열반에 드는 모습.
*화신(化身) ;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法身•報身•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변화신(變化身)•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선가귀감(용화선원刊) p64.
*마군(魔軍) ; ①불도(佛道)를 닦는 데 방해가 되는 온갖 악한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석가모니의 득도를 방해한 악마의 군사. ③일이 잘 풀리지 않도록 훼방을 놓는 무리.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번요뇌란(煩擾惱亂)의 뜻.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2)


*열반경(涅槃經) : [범] Mahaparinirvana-sutra  한문으로 번역된 것이 여러 가지가 있어서, 소승부에 속한 것이 세 가지나 되고, 대승부에 속한 것이 남본(南本)과 북본(北本)이 있다.
보통으로 말하는 것은 북본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북량(北凉)의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인데, 13품 40권으로 되어 있다.

내용은 석가여래께서 팔십 년의 한 세상을 마칠 때의 설법과 자세한 사연이 적혀 있으며, 특히 부처님의 금강신(金剛身)은 늘 계시어서(常住不滅) 죽음이 없으며, 부처님의 참 수명은  끝이 없음을 가르치고 있다.
소승의 <열반경>은 주로 역사적으로 기록한 것으로써, 입멸 전후에 걸쳐 유행(遊行) • 발병(發病) • 순타(純陀)의 공양 • 최후의 유훈 • 멸후의 비탄 • 사리 팔분(舍利八分)등을 주요한 것으로 하고,
대승의 <열반경>은 교리를 주로 하여, 열반이란 사실에 불타론(佛陀論)의 종국과 불교의 이상을 말하였다.
*인행(因行) ; ①수행. (부처가 되기 위한) 인(因)이 되는 행(行). 깨달음을 여는 근본이 된다.
②수행에 방해가 되는 외부의 요인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롯이 수행정진하는 것. 보살이 인행(因行)을 닦아서 깨달음의 과보(果報)를 얻는 것을 수인감과(修因感果)라고 한다.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시치미를 떼다[따다] ; (사람이) 매를 훔친 사람이 시치미를 떼어 내고 자기 매인 것처럼 행세한다는 뜻으로, 자기가 하고도 짐짓 하지 않은 체하거나 알고도 모르는 체하다.
'시치미'는 매의 주인를 밝히기 위해 주소를 적어서 매의 꽁지 털 속에 매어 둔 네모난 뿔을 이르는 말.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제석천왕(帝釋天王) ; 불법(佛法) 지키는 수호신. [天神]들의 제왕[] 샤크라〔釋〕라는 . 제석(帝釋), 석제(釋帝), 제석천(帝釋天), 제석왕(帝釋王), 제석태자(帝釋太子), 천주(天主)라고도 한다.

산스크리트어 이름은 샤크라 데바남 인드라(Śakra-devānām Indra). 석제환인다라(釋提桓因陀羅) ·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 · 석가제바인다라(釋迦提婆因陀羅) ·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 등으로 음역하고 줄여서석제환인(釋提桓因, 釋帝桓因) · 제석천(帝釋天)이라 한다.

『법화현찬(法華玄贊)』에서는 범어 석가제바인달라(釋迦提婆因達羅)에서 석가 ()씨이며 ()이라 한역하고, ‘제바 ()’이라 한역하며, ‘인달라 ()’ 한역하니  능천제(能天帝)’ 한다 뜻으로 보면 석가(능히) 제바(하늘의) 인달라(제왕)’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는데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왕으로, 사천왕(四天王)32() 통솔하면서 불법(佛法) 불제자를 보호한다. 도리천에는 33신이 있는데, 제석은  중앙에 있는 선견성(善見城) 안의 수승전(殊勝殿)이라는 궁전에 살고, 나머지 32신은  () 밖의 궁전에서 각각 산다.

제석천은 본래 인도 성전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천신  벼락을 신격화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었으나 불교에수용되어서는 범천(梵天) 함께 호법선신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하여 항상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나타나 법회를수호하고 사바세계 인간의 번뇌와 죄를 다스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는 단군의 할아버지를 석제환인(釋提桓因)이라고 하여 하늘의 주인과 제석천을 동일시하여 숭배하였다.

<잡아함경>에는 제석천이 본래 사람이었으나 수행자에게 음식과 재물, 향과 와구(臥具등불을 베푼 인연으로 제석천이 되었다고 한다. 제석천왕은 신중탱화(神衆幀畵)  손에 금강저(金剛杵) 들고 머리에 보관(寶冠) 쓰는 모습으로 많이 등장한다.

*(게송) ‘도장칠보시삼천~’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의법출생분(依法出生分) 예장종경 게송 참고.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료,통달할 달)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열반(涅槃) : [범] nirvana  [파] nibbana  음을 따라 니반나(泥畔那) • 니원(泥洹) • 열반나(涅槃那)라 쓰고, 뜻으로 번역하여 멸(滅) • 적멸(寂滅) • 멸도(滅度) • 원적(圓寂) • 안락(安樂) • 해탈(解脫) 등이라 한다.
번뇌 망상이 일어나고 꺼짐이 없어져, 지극히 고요하고 깨끗하고 밝고 맑은 경지를 말함이니, 소승법(小乘法)에서는 번뇌를 끊어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열반에 든다 하고,
대승법으로는 번뇌가 본래 없는 이치를 깨치면 생각이 일어나도 일어나는 것이 아니어서, 사바세계의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늘 열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따로 열반에 들고 나고 할 것 없이 무엇이나 다 열반이며 어느 때나 늘 열반이다。이것이 큰 열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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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204) (게송)춘래동견방초록~ / 영지(靈知) 진지(眞知) 망지(妄知) / 원장(院長)이라 하는 굴레 / 불법(佛法)은 많은 말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참선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아는 것이 아니다. 사량분별을 통해서 아는 것은 그것은 깨닫는 것이 아니다. 팔만대장경을 다 외우고 해설을 하고 설할 줄 안다 하드라도 그것은 아는 것이지 깨달은 것이 아니다.
중생의 망령된 알음알이로 아무리 공안을 따져서 그럴듯한 결론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침내 망지(妄知)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그 자체가 깨달음이 아닐 뿐만 아니라 깨달음과는 점점 멀어져 버려.
말로써 공부를 할 수가 있고, 말로써 가르켜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지금 육도(六道)를 윤회하고 있는 중생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진리는 찾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진리는 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위해서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그 길을 안내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고, 여러분은 또한 그것을 듣기 위해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04)—83년 6월 첫째 일요법회(83.06.05)


(1) 약 19분.  (2) 약 17분.


(1)------------------


춘래동견방초록(春來同見芳草綠)하고  추지동견황엽조(秋至同見黃葉凋)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지소이이어인(佛之所以異於人)한대  치연작용무기종(熾然作用無其蹤)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봄이 오면 꽃다운 풀이 푸르른 것을 모두가 다 같이 볼 수가 있어.
추지동견황엽조(秋至同見黃葉凋)로구나. 가을이 오면 이파리가 누렇게 단풍이 져서 시들은 것을 누구라도 다 마찬가지로 볼 수가 있다 그말이여.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 눈에도 다 똑같다. 깨달은 사람이 봐도 그렇고 깨닫지 못한 사람이 봐도 그렇고, 지식이 있는 사람이 봐도 그렇고, 지식이 없는 사람이 봐도 그렇고, 누가 봐도 봄에는 파란 풀이 돋아난 것을 볼 수가 있고, 가을이 오면 모든 이파리가 누렇게 단풍이 져서 떨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더라.

불지소이이어인(佛之所以異於人)은, 그런데 부처님은 우리 중생(衆生)과 무엇이 다르냐? 부처님과 우리 중생은 어떠한 점에서 우리 중생과 부처님은 다르냐?

깨달은 부처님은 중생과 무엇이 다르냐 하면 치연작용무기종(熾然作用無其蹤)이여, 치연(熾然)이 작용을 하고 있으되 그 자취가 없어.

중생은 무얼 보면 보는 데에 끄달리고, 무엇을 들으면 듣는 데에 충격을 받고, 무엇을 얻으면 얻는 데에 마음이 흔들리고, 무엇을 잃으면 잃는 데에 실망을 하고, 얻었다고 기뻐하고, 잃었다고 슬퍼하고,

이 세상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잠시도 고대로 있는 것은 없고 끊임없이 변해 가고 생겨났다가 변해져서 또 사라지고, 생겨났다 변해가 가지고 사라지고,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그러는데,
중생은 그러한 경계(境界)를 당해서, 그 경계를 자기가 주재(主宰)를 하지를 못하고, 그 경계의 노예가 되어 가지고 경계에 따라서 끊임없이 끌려다니고, 얽히고 설켜서 희로애락을 통해서 끊임없이 자취를 남기면서 끌려다닌다 그말이여.

그런데 부처님은 자유자재한 육신통(六神通)으로써 잠시도 쉴 사이 없이 치연하게 치열(熾烈)하게 작용을 해. 일체 중생을 제도(濟度)하시고 잠시도 쉴 사이 없이 설법을 하셔. 그렇게 치열하게 작용을 하고 계시되, 조금도 그 자취가 없는 점이 중생과 다르더라.


아까 조실스님 법문에 ‘참선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아는 것이 아니다. 사량분별을 통해서 아는 것은 그것은 깨닫는 것이 아니다. 팔만대장경을 아무리 육두로 다 외우고 해설을 하고 설할 줄 안다 하드라도 그것은 아는 것이지 깨달은 것이 아니다.
참선을 할라면은 사량분별로 무엇을 알려고 하지를 말고, 다못 말 길도 끊어지고 이치 길도 끊어져서 더듬어 들어가서 아는 그러한 것이 없이, 다맛 대의단(大疑團)으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관조(觀照)해야 한다.’

그러한 요지의 법문이 있었습니다마는 경을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은 천상 그 경에 쓰여 있는 말을 분석하고 따져서 대관절 무슨 뜻인가를 해석을 하고 배우고 가르키고 연구하고, 불가불 강원(講院)에 가면 그렇게 공부를 하기 마련이지만, 참선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참선(參禪)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아는 것이 아니여.
경의 뜻도 참으로 옳게 터득을 하려면 마음을 관조해서 그 말 뒤에 있는 말 없는 뜻을 봐야 하거든, 하물며 참선은 처음부터 말로써 공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깨달은 부처님의 경계에도 ‘알 지(知)’자 '안다'고 할 수가 있고, 이치를 깨달은 선지식도 '안다'고 할 수가 있고, 우리 범부 중생의 번뇌 망념으로 아는 것도 그것도 일종의 '안다'고 할 수가 있는데,

부처님이 아시는 것은 영지(靈知)라 그러거든. 영지(靈知). 신령스럽게 아는 거.
영지는 중생의 분별로써는 그 영지의 경계를 뭐라고 짐작을 할 수가 없는 것이여. 부처님 경지에 가 봐야 부처님의 그 영지의 뜻을 알 수가 있는 것이지, 그 경계에 이르지 못하고서는 영지의 그 경계를 짐작을 할 수가 없는 것이거든.

부처님 경지는 아무리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되, 그 자취가 없는 것이여. 자취가 없이 보시기 때문에 그건 영지(靈知)라 그러거든.

도인(道人)이 깨달은 경지는 어떠냐? 그것은 진지(眞知)라.
‘참 진(眞)’자 진지(眞知)라 그렇게 표현을 할 수가 있는데, 그 진지도 공안(公案)을 타파해서 남이 없는 도리, 무생(無生)의 법을 보아야 그래야 그 진지(眞知)의 뜻을 알 수가 있는 것이여.

중생이 번뇌 망상으로 따져서 짐작하고 느끼고 또 그것을 설명해 줄 수도 있고, 설명하는 것을 듣고 터득을 하고 이러한 것은 모두가 다 망지(妄知)에 속한 것이다 그말이여. 망령(妄靈)된 알음알이에 속한다 그말이여.

화엄경이나 법화경이나 금강경과 같은 그러한 대승경전에 쓰여 있는 부처님 말씀이라 할지라도 중생의 망령된 알음알이로 분석을 하고 해석을 하고 그러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설법이라 할지라도 망지(妄知)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말이여.

그런 경전의 말씀뿐만이 아니라 1700 조사 공안(祖師公案)도—이 조사 공안은 용궁(龍宮)에 있는 장경(藏經)에도 없는 교외별전(敎外別傳) 소식이지만,
그 교외별전의 최상승법, 이 공안도 중생의 알음알이로 따져서 『아! 이것이로구나』 하고 알음알이를 붙이면 알음알이로 따지면 공안이 바로, 최상승법이 찰나 간에 망지(妄知)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말이여.

참선에 있어서 제일 주의해야 할 것은 알음알이로 공안을 따지는 거.
참선을 하다가 알음알이로 어떠한 결론을 얻는 거—얻으려고 하고 또 얻는 것은 모두가 다 모래를 쪄서 밥을 만들려고 하는 거여. 그건 아무리 삶아 봤자 모래지 그것이 밥으로 변하는 법은 없어.

중생의 망령된 알음알이로 아무리 공안을 따져서 그럴듯한 결론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침내 망지(妄知)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깨달음과는 점점 멀어져 버려. 그 자체가 깨달음이 아닐 뿐만 아니라 깨달음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버린 거다 그말이여.


공안을 중생의 사량분별심으로 따져서—「어떤 것이 부처입니까?」하고 묻는데, 「마삼근(麻三斤)이다」  「마삼근이니라」 이렇게 조사(祖師)가 대답을 하셨는데.
「어째서 부처님을 마삼근이라 했는고?」 그것을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하다가 탁! 속으로 어떠한 결론을 얻었어.

『육도법계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전부가 다 비로자나(毘盧遮那) 법신체(法身體)다』 그렇게 경전에 분명히 쓰여 있다 그말이야.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다 비로자나 법신인데 어찌 삼[麻]이라고 해서 부처가 아닐까보냐? 그래서 저 삼[麻]도 바로 부처다.」 이러한 식으로 공안을 따져 가지고 자기도 알았다. 공안을 타파했다.

이렇게 결론을 얻었다면 어찌 그것을 깨달음을 얻었다 할 것이냐 그말이여.

그것은 강사(講師)의 지견(知見)도 못되고, 그러한 식으로 공안을 따진다면 무엇을 처음부터서 ‘하늘 천(天)’ ‘따 지(地)’ 배우듯이 1700 공안을 놓고 다 그런 식으로 해서 배워 버리면 하나도 힘 쓸 것도 없고 간단할 일인데, 뭐하러 그렇게 목숨 바쳐서 고행난행(苦行難行)을 할 필요가 있느냐 그말이여.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뭣고?」 이뭣고 화두를 하는데,
아무리 「이뭣고?」  「이뭣고?」 해 봐도 알 수가 없고, 애를 쓰다 보니까 턱! 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자꾸 하다 보니까, 「이뭣고?」한 놈이 바로 이놈이더라!
그렇게 어떤 사람이 깨달았다 하면, 그거 참 생각해보면 그럴싸하거든. 「이뭣고?」한 놈이 이놈이지, 이놈 말고 무엇이겠느냐 그말이여.

밥 먹고 옷 입은 놈이 바로 이놈이요. 육도윤회를 하는 놈도 바로 지금 「이뭣고?」하고 있는 바로 이놈이요. 성내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놈도 바로 이놈이요. 확철대오해서 깨닫는 놈도 바로 이놈이요. 육도윤회를 하는 놈도 바로 이놈이다. 이놈을 내놓고 무엇이 또 있겠느냐?
그러니 여태 내가 「이뭣고?」「이뭣고?」했는데 바로 「이뭣고?」하는 이놈이더라.

참, 그러한 것을 갖다가 망지(妄知)라 하는 것이여. 망령된 중생의 알음알이다 그거여. 자기 딴은 애써서 했지만 ‘이놈이다’ 할 때는 경전에 있는 말씀과 딱 부합이 되어도, 그것은 벌써 이놈이라 할 때는 그것은 망지(妄知)다 그말이여.

확철대오를 해 가지고도 '깨달았다'고 하는 소견에 떨어지면 찰나 간에 중생이요, 찰나 간에 윤회에 떨어져버린 것인데, 망령된 소견으로 그러한 결론을 얻었다면 그건 물어 볼 것도 없어. 그것은 참선도 아니고 깨달음도 아니여.

부처님께서 금강경에 『내가 설(說)한 바가 있느냐? 설한 바가 있다고 하면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 되고 설한 바가 없다 하면은 법을 비방한 것이 된다』 그러한 말씀이 있습니다.(처음~19분9초)


(2)------------------


산승(山僧)이 오늘 이렇게 입을 벌려서 영지(靈知)와 진지(眞知)와 망지(妄知)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부처님은 설한 바 없이 설하시고, 치연(熾然)히 작용을 하시되 자취가 없으시건만,

산승은 영지(靈知)도 얻지 못하고 진지(眞知)도 얻지 못한, 범부 중생으로 아무리 좋은 부처님의 말씀을 설하고, 아무리 조사의 법문을 고대로 설한다 하더라고 나 자신이 망령된 알음알이를 벗어나지를 못했어.

‘어찌 망령된 알음알이로 법을 설해 가지고 뭇 중생의 눈을 멀리고 스스로 구업(口業)을 짓느냐?’ 이렇게 책망을 하신다면 나는 입을 막고 고개를 들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망령된 알음알이로 법을 설하는 것은 무엇과 같으냐? 하면 ‘눈먼 장님이 훨훨 타는 횃불을 들고 대낮에 길거리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불을 밝혀 줄려고 하는 거와 같다’  이렇게 옛날 조사(祖師) 스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훨훨 타는 횃불을 밤에 가지고 다닌다면 혹 다른 사람들이 그 횃불의 광명을 받아서 그 밝음을 이용해서 구렁텅이에 빠지지 아니하고 바로 길을 찾아가겠지만,
태양이 환히 빛나고 있는 대낮에 횃불을 들고 돌아댕겨봤자 그 밝음은 아무 소용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밝음을 주지를 못하고, 오래오래 그 횃불을 가지고 돌아다니면 결국은 자기의 손과 몸뚱이에 화상을 입고 말 것이다.

그래서 달마스님도 그 혈맥론(血脈論)에 말씀을 하시기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 법을 설하면 법 설한 사람도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것이요. 깨닫지 못한 사람의 법을 듣는 사람도 그 깨닫지 못하고 법을 설한 사람과 마찬가지다. 깨닫지 못하고 법을 설하는 사람은 마왕(魔王)이요. 깨닫지 못한 사람의 법을 듣는 것은 바로 마왕의 백성이다」 이렇게 무서운 법문을 하셨습니다.

산승이 깨닫지 못한 범승(凡僧)으로서 감히 입을 벌린다고 하는 것은 내가 마왕이 되고 여러분을 마왕의 백성을 만드는 죄과(罪過)가 될 것이고, 내 손에 쥐었던 횃불이 내 손을 불사르고, 내 몸을 불사르고, 그 불이 잘못해서 여러분에게 번지게 되면 여러분이 또한 큰 화상을 입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산승은 깨닫지 못한 사람이면서 어째서 이렇게 법상에 올라와서 이렇게 다달이 법회를 갖고 있느냐?

산승이 전생에 죄가 많고 업이 두터워서 피할라야 피할 수 없는 굴레를 쓰게 되었어.
출가해 가지고 자신의 생사 문제가 급하고 급하거늘, 어느 겨를에 입을 벌릴 그러한 여유가 없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몸을 뺄라야 뺄 수 없이 되었습니다.

노예가 마치 자기 마음으로는 추호도 하기도 싫은 그러한 중노동을 쇠고랑을 찬 채 가혹한 매질을 당하면서 피를 흘리면서 무서운 노동을 강요 당하듯이 '용화선원 원장(院長)'이라 하는 굴레를 조실 스님의 열반시의 명령에 의해서 피할 수 없이 이러한 굴레를 쓰고 법회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불이 내 몸에 번지기 전에 여러분은—그 조그만한 반딧불만도 못한 그런 조그만 불이지만,
여러분은 그 불이 꺼지기 전에, 또 내 몸을 태우기 전에, 또 그 불이 여러분의 몸에 번지기 전에 그 밝은 것만을 빨리 잘 이용을 해서 바른 길을 찾아 가시기를 바라는 그러한 마음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내 소원은 설사 그 불이 내 몸에 덩거서 내가 화상을 입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분에게 그 광명이 비춰져서 여러분의 앞길에 바른 법의 문이 열리기를 바라는 오직 그 한 생각 뿐입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발심을 하고 참으로 정법을 믿고 자비가 있으시다면 그 불이 내 몸에 덩구지 않도록 그것을 잘 보살펴 주시고,
그 불은 오래오래만 가지고 있으면은 횃불이 타다가 결국은 불똥이 나한테 튀길 것은 분명한 것이니까 빨리 여러분이 시간을 아껴서 정말 목숨을 바쳐서 열심히 정진해서 내 손에 있던 횃불을 여러분이 달라들어서 그 불을 빼앗아 가시든지, 그 불을 빼앗아서 위험하지 아니한 곳에 버려 주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피차 이 사바세계에 태어났을 때 숙세(宿世)의 깊은 인연으로 같은 시대에 같은 나라에 태어났고, 같은 종교를 믿게 되었고, 같은 법당에서 이렇게 다달이 만나게 된 것입니다.
숙세의 깊은 인연이 아니면 도저히 한 시대에 태어날 수도 없고, 설사 한 시대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같은 장소에서 만나지들 못하고, 또 한 나라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같은 시대에 태어나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고, 같은 나라에 태어나고, 같은 불법에 만나서 이렇게 서로 생사 없는 진리를 향해서 말을 하고 듣게 된 그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말로써 표현 할 수가 없는 부모자식 간의 인연보다도 수백만 배의 깊은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내 손으로 들고 있는 횃불에 의해서 타서 죽게 되는 것을 여러분은 강 건너 불을 보듯이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것이고, 여러분이 어두워서 구렁텅이에 빠지고, 물에 빠지고, 허방에 빠진 것을 나도 또한 보고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진지(眞知)와 영지(靈知)를 조사와 부처님처럼 그런 '참된 지(眞知)'와 '신령스런 지(靈知)'를 얻지 못한 몸이면서 나의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가 죽을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이렇게 법상에 올라와서 부처님과 조실 스님을 대신해서 이렇게 여러분을 위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많은 말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알음알이를 조장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고, 알음알이를 얻는 데에 불법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래가 말이 필요가 없습니다. 말로써 공부를 할 수가 있고, 말로써 가르켜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지금 육도(六道)를 윤회하고 있는 중생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로써는 이 영지(靈知)와 진지(眞知)를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고 사량 분별심으로 들어서 그것을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불보살과 선지식과 모든 스님들이 ‘말로써 설할 수가 없다’해서 입을 다물어 버리고, 우리 같은 그러한 부처님과 같은 확철대오를 얻지 못한 범승이라 해서 법회를 갖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 몸만을 생각하고 입을 다물고 일생을 자기만을 위해서 정진을 하고 있다면,
불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 아직은 불법의 어떠한 점이 좋다고 하는 것에 눈뜨지 못한 사람, 어떤 것이 바른 불법인가에 대해서 분간을 못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서는 누가 말을 할 것이냐 그말이여.

‘원래 '참진리'는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참된 말씀은 입으로 좇아 나오지 않는 것이다’하는 말씀이 있습니다마는,
‘부처님은 그 많은 법을 설하셨건만 한 말씀도 설하신 바가 없다’  ‘무량중생을 제도하시되 한 중생도 제도를 받은 사람이 없다’ 이러한 말씀을 우리는 깊이 마음으로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말로써 설할 수가 없고 귀를 통해서 들을 수가 없지만 그래도 입을 벌려서 부처님은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을 설하셨고, 선문(禪門)에서는 문자를 세우지 아니하고 ‘불립문자(不立文字)하고 직지인심(直指人心)하야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문자를 세우지 아니한다 하시면서도 수없는 조사의 어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입으로 설할 수가 없지만 목숨을 바쳐서 설할 수 밖에는 없고, 중생의 사량분별로 귀를 통해서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지만 목숨 바쳐서 법문을 들어야 하고, 들으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원래 자기에게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다 갖춰 있으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찾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와 우리 중생과의 관계입니다.

진리는 찾아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진리는 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위해서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그 길을 안내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고, 여러분은 또한 그것을 듣기 위해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쳐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으로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출현을 하셔도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부처님도 탄생을 하셨고, 모든 보살님과 모든 조사도 그렇게 해서 탄생을 하셨습니다.

앞으로 우리들도 그만큼 내게 갖춰 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 목숨을 바칠 때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19분10초~35분3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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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춘래동견방초록~’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참고.
*부처님 : [범] Buddha 음을 따라 한자로 불타(佛陀)•부도(浮圖•浮屠)•부타(浮陀)•발타(勃陀)•몰타(沒駄) 등으로 쓰고, 줄여서 불(佛)이라고만 하는데, '깨친다'는 말이다.
'부처님'이라 함은 '깨친 어른(覺者)'이란 뜻이다。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는 이를 말함이니,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함식(含識)• 군생(群生)• 군맹(群萌)•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치연(熾然) ; ①매우 왕성한 상태. ②번뇌의 다른 이름—결(結)·박(縛)·전(纏)·취(取) 등등—가운데 하나이다.
치(熾)는 ‘성하다(盛--, 기운이나 세력이 한창 왕성하다), 맹렬하게 일어남, 횃불이 활활 타오름, 불을 붙여 이글이글 피게 함’의 뜻. 연(然)은 상태를 나타내는 접미사(接尾辭).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주재(主宰 주인 주,다스릴 재) ; ①어떤 일을 중심이 되어 맡아 처리함. ②주재자(主宰者, 어떤 일을 중심이 되어 맡아 처리하는 사람).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은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그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는 것
2. 천안통(天眼通)은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3. 천이통(天耳通)은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것 없이 무슨 소리나 잘 듣는 것
4. 타심통(他心通)은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그 생각하는 바를 다 아는 것
5. 숙명통(宿命通)은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의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다 아는 것
6. 누진통(漏盡通)은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선가귀감](용화선원) p94-95 참조.
*치열(熾烈 성할 채,세찰 렬) ; 기세나 세력 등이 불길같이 맹렬함.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무생(無生) ; ①생멸(生滅)을 벗어난 절대의 진리. 생멸(生滅)이 없는 도리. 곧 불생불멸하는 진여법성(眞如法性)을 알고 거기 안주하여 움직이지 아니함. 무생법인(無生法忍).
②아라한(阿羅漢) 또는 열반(涅槃)의 번역어. 번뇌를 없앤 경지를 말함.
*망령(妄靈) ;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이나 행동이 정상을 벗어남. 또는 그런 상태.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
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
(5)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説者는  爲教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教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教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教)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6)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教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教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教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教外別傳禪旨)가 되리라.
*고행난행(苦行難行) ; 난행고행(難行苦行).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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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혈맥론(血脈論) ; [달마대사 혈맥론(達摩大師血脈論)]이라고도 한다.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 보리달마(菩提達摩 Bodhidharma)의 저술로 전해지고 있다.
문답형식으로 즉심시불(卽心是佛-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 심외무불(心外無佛-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 성불수시견성(成佛須是見性-부처를 이루려면 반드시 성품을 보아야 한다) 등의 말씀이 있다.
혈맥(血脈)은 사자상승(師資相承)이라고도 하며,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주고받아서, 정법(正法)을 상속하는 것. 신체의 혈맥이 서로 연결되어 끊어질 수 없는 것에 비유해서 말함.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살가죽을 벗겨 불 속에 집어넣거나 쇠매〔鐵鷹〕가 눈을 파먹는 따위의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함.
*범승(凡僧) ; 평범한 스님.
*죄과(罪過 허물 죄,허물 과) ; 죄가 될 만한 과실이나 허물.
*덩그다 ; '불이 붙다'의 사투리.
*어피차(於彼此) ; 어차피(於此彼). 이렇거나 저렇거나 귀결되는 바.
*숙세(宿世 지날 숙,세상 세) ;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宿)의 세상(世).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선문(禪門) ; 선종(禪宗). 문자를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선(禪)을 닦아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체득하는 깨달음에 이르려는 종파.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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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