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4.11.27 §(055) 참선법은 자기의 정신혁명을 완수하는 가장 바르고, 빠르고 훌륭한 방법 / 번뇌 망상은 견성성불할 수 있는 좋은 발판.
  2. 2014.11.01 §(251) (게송)사중구의원~ / 지금 이 찰나!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 인생은 나그네, 세상만사 뜬구름 / 중생이 본래 부처다 / 최상승법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 있다.
  3. 2014.07.06 §(455) 계행(戒行) / 단전호흡- 상기병 주의 / 화두 드는 법 / 화두 가운데에 가장 처음, 가장 근원적인 화두가 시삼마(是甚麼) 화두, ‘이뭣고?’
  4. 2014.04.30 §(240) 공부가 안 될때, 그때가 한 계단 올라서려고 하는 중요한 고비다 / 내 뜻에 맞거나 맞지 않거나,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 경계에 속지 말고, 거기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해 나가야 ..
  5. 2014.02.13 §(220) 생사(生死)는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참선법이 바로 이 몸뚱이를 법왕궁(法王宮)을 만드는 것.
  6. 2014.01.04 §(287) 교외별전(敎外別傳) 선지(禪旨) / 깨달을려면 조사(祖師)의 경지에 이르러야. / <사진작가의 ‘참선’ 질문에 대한 ‘풍선’ 법문>
  7. 2014.01.01 §(428) (게송) 법법본래무소주~ / 화두 의심이 되고 안되고 따지지 말고 중단없이 한결같이 해 나가면 순일무잡 타성일편이 되어, 의단을 타파해서 본래면목을 깨닫게 된다.
  8. 2013.10.19 §(세등46) 활구참선(活句參禪)이란? / 묘오(妙悟)는 요궁심로절(要窮心路絕) / 활구참선은 참나를 깨닫게 하는 가장 묘한 법 / 공부는 올바르게 최선을 다해.
참선 (목적)2014.11.27 16:16

§(055) 참선법은 자기의 정신혁명을 완수하는 가장 바르고, 빠르고 훌륭한 방법 / 번뇌 망상은 견성성불할 수 있는 좋은 발판.

참선은 내가 이 몸 이대로 가지고 정신혁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 해서 영원히 생사(生死)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서 성현(聖賢)이 되는 그러한 길인 것입니다.
참선은 어떤 특수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썩어 문드러진 국가일수록 혁명이 요구되듯이, 번뇌와 망상과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빠져서 걷잡지 못한 죄 많은 중생일수록에 정신혁명은 더욱 요구되는 것입니다.
조금도 번뇌와 망상 일어나는 것을 언짢게 생각하시거나 짜증을 내시지 말고, 이놈 때문에 내가 참선을 못한다고 미워하시지를 말고 『일어나는 그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그 방법만을 잘 아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일어나는 그 생각을 없애거나 누를려고 하지 말고 그 생각을 바로 발판으로 해서 그 생각하던 그 생각으로 「이뭣고?」 이렇게 화두(話頭)를 들어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백만 번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그렇게 들어나가면, 일어났던 망상이 나로 하여금 육도윤회를 하게 하는 그러한 고약한 원인이 아니라,
그 망상은 바로 나로 하여금 견성성불할 수 있는 길로 들어서게 하는 좋은 발판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55)—77년 동안거 결제 법문(77.11.25)


 약 21분.



오늘은 정사년(丁巳年) 겨울 결제날입니다. 음력 10월 15일부터 내년 정월 15일까지 석 달 동안 겨울안거인데 그 처음 시작하는 결제(結制)날입니다. 동시에 백일기도 입재(入齋)하는 날입니다.

앞으로 석 달 동안 참선, 특별 참선수행이 시작되는 날로써 그러기 때문에 오늘은 참선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구체적인 법문을 조실스님의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참선(參禪)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정신 혁명(精神革命)』 사업입니다.

한 나라가 부정과 부패로 도저히 겉잡을 수 없는 그러한 상황에 놓여서 정부나 국민이나 온 사회가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기나라를 자기네들이 지켜나갈 수 없게끔 혼란하게 되면은 반드시 외부로부터 침공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할 때에 그 나라에 정신을 바로 가진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분연히 일어서서 썩은 나무둥치를 베어내고 새순을 가꾸어 가지고 다시 그 나무에서 뿌리에서 가지가 뻗고, 잎이 피고, 꽃이 피어서 열매를 맺도록 허는 거와 같이,
그 나라 그 백성을 다 없애버리고 새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그 국토 그 국민으로 하여금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썩은 마음가짐을 버리고, 새로운 정신으로 내 나라 내 민족을 우리 모두가 마음을 합해 가지고 다시 일으키자고 하는 그러한 혁명과 같이,

‘참선’이라고 하는 것은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부처님과 똑같은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낱낱이 우리 모두가 다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으로 인해서 오욕락(五欲樂)에 빠져 가지고,
내가 무량겁, 구원겁 이전부터서 낱낱이 가지고 있는 자성(自性)의, 자기의 청정한 부처를 개발을 하지 못한 채 죄업의 구렁텅이에 빠져 가지고, 썩어 문드러져 가지고, 허는 일마다 앞으로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면서 갖은 괴로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러한 일만을 되풀이하고 있을 때에, 부처님께서 출현하셔 가지고 일대 혁명(一大革命)을 일으켰습니다.

먼저 자신의 마음에 혁명을 일으켜서 성공을 한 다음 그 혁명하는 방법을 우리 모든 중생에게 가르켜 주셨습니다.

그 방법을 삼천 년을 내려오면서 불보살이 화현(化現)을 해 가지고 삽삼조사(卅三祖師) 이래 많은 도인들이 계속해서 출현하셔 가지고 그 방법을 한 등(燈)에서 또 다른 등으로 불을 옮기듯이 등등상속(燈燈相續) 해 가지고, 오늘날에 이르도록 부처님의 그 정법(正法)의 등불이—바꾸어 말하면 자기의 정신혁명을 완수하는 가장 바르고, 빠르고 훌륭한 방법을 오늘에 전해 내려왔습니다.

그 방법이 바로 참선법(參禪法)입니다.

참선은 어떠한 특수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썩어 문드러진 국가일수록 혁명이 요구되듯이 번뇌와 망상과 탐진치 삼독과 오욕락에 빠져서 걷잡지 못한 죄 많은 중생일수록에 정신혁명은 더욱 요구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죄가 많고 근기(根機)가 하열(下劣)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낱낱이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나의 부처, 자기의 부처는 조금도 때묻지 아니하고 썩지 아니한 채 고대로 다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그 나라가 아무리 어지럽고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서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혼란에 빠져 있다하더라도, 온 국민이 어떠한 영도자를 중심으로 해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단합을 한다고 하면은 삽시간에 그 나라는 새 나라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조국에 있어서 근래에 잘 경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눈을 부릅뜨고 눈여겨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나라들은 부러워하고 어떠한 나라들은 오히려 우리들을 두려워하고 우리나라를 배울려고 하고 그러한 나라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이 어디서 새로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우리 삼천 오백만 국민이 옛날에 있던 그 국민이 아니고 없어지고 새로 어디서 생겨난 국민이 아니라, 내나 본래부터 단군 이전에부터서 있었던 그 나라고, 해방 전부터서 있었던 그 국민들입니다.

그 국민들이 정신을 바로 차리지 못할 때에는 자기를 멸망하고 국가를 멸망하고 그러한 보잘것없는 그러헌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생각 돌이켜서 새마을사업, 새마음사업으로 해서 모두가 나와 가정과 국가와 민족과 인류를 위해서 단합을 함으로 해서 우리는 눈부시게 발전을 하고 살기 좋은 나라를 맨든 것입니다.

참선은 내가 이 몸 이대로 가지고 정신혁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 해서 영원히 생사(生死)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서 성현(聖賢)이 되는 그러한 길인 것입니다.

나 한 사람부터 먼저 이 사업에 착수를 하고 열심히 함으로 해서 이웃, 가족, 이웃친지들 한 사람이라도 더 이 사업에 나서도록 손을 이끌어주면서 자기가 앞장서서 나갈 때에 우리 모두는 다함께 불도(佛道)를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까 조실스님께서 하신 법문은 이 자기 정신혁명을 수행해 나가는데 있어서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느냐? 그 실지적인 실천해 나아가는데 있어서 어떻게 해 나가야 헌 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선을 헐랴고 앉았으면은 누구를 막론하고 온갖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이 일어나기 마련인 것입니다.
번뇌와 망상이 한바탕 일어났다가 꺼졌다 일어났다 꺼졌다, 그런 것이 계속하다가 조금 조용해질만하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참 졸다가 눈을 뚝 뜨고 좌우를 둘러본 다음에 스스로 챙피해서 정신을 차려 가지고 허리를 쭉 펴고 화두를 한번 들어봅니다. 들기가 무섭게 또 이 생각 저 생각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혼침(昏沈), 졸음이 일어날 때에는 어떻게 그것을 단속을 해 나가며,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어날 때에는 어떻게 그것을 단속해 나가야 하느냐?’한 문제에 관해서 조실스님께서 30분여에 걸쳐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졸음이 일어날 때에는 허리를 쭈욱 펴고, 언제든지 졸음이 일어날 때는 허리가 꼬부라져 있는 것입니다. 허리가 쭉 폈던 허리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허리가 꾸부러지면서 앞으로 몸이 수그러지는 것입니다.
설사 윗몸은 수그러지지 아니하고 쭉 폈다 하더라도 허리가 딱 꼬부라지자마자 그때부터서 잠이 오는 것입니다. 잠이 올 때는 언제든지 허리가 꼬부라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허리를 쭉 펴고 참선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쭉 폄으로 해서 정신이 단정해지고, 정신이 깨어나면서 혼침이 침노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침이 올 때는 먼저 허리부터 쭉 펴야 허는 것입니다.

펴고서 자기 혼자 헐 때에는 자기가 들고 있는 화두를 소리를 내서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렇게 소리를 내서 두 번을 하라 이렇게 말씀을 허셨습니다.
또는 「이뭣고」를 허신 분은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소리를 내서 두어번 화두를 소리를 내가지고 들어라. 그러면은 졸음이 확 달아날 것이다 이러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모여서 입선(入禪)을 허고 있는 데에서 졸음이 온다고 해서 (소리를 내서) 「이뭣고?」「이뭣고?」 이래서는 아니 됩니다.
혹 이 말씀을 듣고서 죽비를 치고 여러분이 입선 중에 그렇게 허신다고 하면은 그것이 잘못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혼자 댁에서 할 때나 또는 산이나 숲 밑에서 혼자 허실 때에 그렇게 졸음이 오면 소리를 내서 한 두어번 그렇게 화두를 들면은 (졸음이) 달아난다 이런 말씀입니다.

그렇게 해도 졸음이 달아나지 아니할 때에는 가만히 조용히 일어나 가지고 밖으로 나가서 일직선으로 왔다갔다하는 길을 정해놓고서 한 30미터나 40미터 일직선으로 코스를 딱 정해놓고, 그 직선상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왔다갔다하면서 화두를 든다고 하면은 자연히 졸음은 도망가고 정신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그렇게 한 5분 내지 10분 동안 왔다갔다하게 되면 졸음이 달아나게 됩니다. 그러면 다시 자기 자리에 돌아와서 허리를 쭈욱 펴고,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졸음이 깨고 난 뒤에 화두를 떠억 들면은 온갖 생각이 또 일어나죠? 집안생각, 남편생각, 아들생각, 아들 학교 문제, 학교 입학문제, 딸 시집가는 문제, 외손자 생각, 온갖 생각이 꼬리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데, ‘그러한 생각 때문에 도저히 참선을 헐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호소해 온 분이 가끔 계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생각, 그것이 바로 번뇌요 망상인데 그 생각 때문에 공부를 못한 게 아니라, ‘그 생각 때문에 참선이 안 됩니다’하고 생각한 분은 생각을 고쳐 잡숴야 합니다.

‘그 생각 때문에 나는 참선을 할 자격이 있다. 그 생각 그러한 번뇌와 망상 때문에 나는 참선을 통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다’고 생각을 허셔야 합니다.

왜 그러냐?
‘그 번뇌와 망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 가지고 생사고(生死苦)를 받는데, 왜 그 번뇌 망상 때문에 견성성불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은 어폐(語弊)가 있는 말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허실 분이 계시겠지마는, 사실은 그렇지 않고 번뇌와 망상 때문에, 그놈 때문에 우리는 견성성불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번뇌도 일어나지 아니하고, 망상도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혼침도 일어나지도 아니한다면 그런 사람이 어디가 있다면 그것은 나무나 돌로 깎아서 만들어 논 사람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나무나 돌로 깎아서 만들어 논 사람은 정말 석달 열흘을 잠을 안 자도 잠이 오지 않을 것이며, 석달 열흘을 앉혀놔도 번뇌·망상 한번도 일어날 리가 없겠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고단하면 잠이 오기 마련이고, 며칠을 밥을 안 먹으면 배고프기 마련이고, 때리면 아프기 마련이고, 앉았다 보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일어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혼침·산란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살아있는 증거이고, 살아있는 사람이면 참선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도 번뇌와 망상 일어나는 것을 언짢게 생각하시거나 짜증을 내시지 말고, 이놈 때문에 내가 참선을 못한다고 미워하시지를 말고 『일어나는 그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그 방법만을 잘 아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일어나는 그 생각을 없애거나 누를려고 하지 말고 그 생각을 바로 발판으로 해서 그 생각하던 그 생각으로 「이뭣고?」 이렇게 화두(話頭)를 들어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무슨 생각이 일어나던지 그 일어나는 생각이 다음 생각으로 옮아가기 이전에 퍼뜩 「이뭣고?」 심호흡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3초 동안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기 시작하면서 「이뭣고?」
이렇게 호흡과 화두를 함께 합쳐서 들어나간다고 하면은 백만 번 망상이 일어난다 해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백만 번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그렇게 들어나가면, 일어났던 망상이 나로 하여금 육도윤회를 하게 하는 그러한 고약한 원인이 아니라, 그 망상은 바로 나로 하여금 견성성불할 수 있는 길로 들어서게 하는 좋은 발판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높이 뛴다든지 멀리 뛸려면은 좋은 발판이 있어야 합니다. 발판이 짱짱해야 그 발판을 의지해서 높이 뛸 수가 있고 멀리 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뛰는 그 순간에 마지막 발 디딘 곳이 미끄러지거나 또는 질펑거리거나 그래서는 높이 그리고 멀리 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발판이 좋아야 멀리 뛸 수도 있고 높이 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발판이 없으면 우리는 화두를 들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발판이냐?
무엇을 보던지, 무엇을 듣던지, 무엇을 생각하던지, 느끼던지 간에 그것들이 좋은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좋은 발판이 지옥으로 가는 육도윤회하는 발판으로 사용이 되는 것이고,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하는 사람은 그 발판이 바로 견성성불할 수 있는 발판으로 잘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처음~21분1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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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구태의연(舊態依然)하다 ; (생각이나 태도, 방법 따위가)발전하거나 진보되지 않고 예전의 묵은 모습 그대로이다.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 - 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 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을 이른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삽삼조사(卅三祖師) : 삼십삼세 조사(三十三世祖師).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부처님을 대신할 전 교단(全敎團)의 어른을 한 분씩 정하여 내려왔다。그것은 스승되는 어른이 그 제자들 가운데서 빼어난 이를 선택하여 법(法)을 전하고, 그 증거로써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衣鉢)를 전해 주었다
그리하여 인도에서 1.가섭존자, 2.아란존자, 3.상나화수....이렇게 전승되어 28대 되는 달마대사(達摩大師)가 중국에 와서 중국의 초조(初祖)가 되고, 그로부터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대사(慧能大師)로 내려왔는데, 위 33인의 조사를 삽삼조사라 한다.
6조 혜능에 이르러서는 불법을 대중화하기 위하여 정통(正統)으로 내려가는 전례를 폐지하고, 따라서 의발을 전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하열(下劣 아래 하,못할·낮을 렬) ; (행동이나 생각이) 남보다 뒤떨어짐. 수준이 낮음.
*번뇌(煩惱) : 망념(妄念)이라고도 하는데,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어지럽히는 정신작용의 총칭이나, 이곳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 이외의 모든 생각을 말한다.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어폐(語弊 말씀 어,해어질·쓰러질 폐) ; ①적절하지 아니하게 사용하여 생기는 말의 폐단이나 결점. ②남에게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말.
*이뭣고(是甚麼)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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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2014.11.01 17:01

§(251) (게송)사중구의원~ / 지금 이 찰나! '한 생각' 돌이켜서 ‘이뭣고?’ / 인생은 나그네, 세상만사 뜬구름 / 중생이 본래 부처다 / 최상승법은 언제나 우리 가까이 있다.

조실스님 법문 가운데도 들으셨겠지만은 공부가 잘 안 된다고 짜증하거나 번민을 해서는 아니되고, 또 잘된다고 해서 기뻐하는 마음도 내지 말어라.
『일어나는 망상과 번뇌를 버릴려고 그러고, 쫓을려고 그러고, 억누를려고 하지를 말고,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나는 화두만을 턱 추켜 들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지혜롭게 번뇌와 망상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오늘 법문을 들었으니까 오늘은 그럭저럭하고 내일 아침부터 하리라’ 그런 생각을 가지셨다면 그분은 벌써 틀려 버린 것입니다. 지금 이 법당에 앉어 있는 이 찰나! 이 찰나에 생각을 돌이켜야 합니다.
자기가 자기 1찰나, 1찰나를 단속할 때에 자기 생사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지, 왜 그러냐 하면, 생사는 다른 데에서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생각’에서 생사(生死)가 생겨난 것입니다.
‘탐진치(貪瞋癡)’하지마는, 딱! 꼬집어서 말하면 생각이거든, ‘한 생각’이거든.  ‘오욕락(五欲樂)’해도 더 다그쳐 생각해 보면, 그것도 ‘한 생각’이여.  ‘천당’ 그것도 ‘한 생각’에서, 지옥도 ‘한 생각’에서.
‘이뭣고~?’하면, 그 속에 화엄경이 다 들었고, 팔만대장경이 다 들었고, 삼세제불을 친견하는 도리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육도윤회를 갖다가 끊어 버리는 도리도 바로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하는 목적은 꼭 가사가 없어서 가사를 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 가사불사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최상승법을 설해서 믿고 실천하게 해 드리는 데에 궁극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참선을 하는 사람은 가난해도 불행하지 아니하고, 부자가 된다고 해서 그렇게 꺼떡댈 것도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여유있고 느긋하고 멋지게—하나의 그 인생살이를 연극처럼 생각하고,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고 살 수 있는 길이 이 참선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51)—84년 12월 첫째일요법회(84.12.02)


(1) 약 20분.  (2) 약 18분.


(1)------------------

사중구의원(死中求醫員)하고  영해억모심(嬰孩憶母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주공친절처(做工親切處)에  홍일상동령(紅日上東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사중구의원(死中求醫員)하고  영해억모심(嬰孩憶母心)이다.
죽을병든 사람이 의원(醫員)을 구하듯 그렇게 간절하게 하고, 어린 아이가 엄마를 생각하듯 하라. 이 참선(參禪)은 그만큼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做工親切處)

무량겁(無量劫)을 두고 탐진치 삼독에 빠져 가지고, 오직 익히느니 그것만을 익혀 왔는데—탐진치 삼독(三毒)과 오욕락(五欲樂)만 익혀 왔는데,
금생에 그 속에서 그러한 집착과 애착으로부터 벗어나서 ‘참나’를 찾을려고 하니, 탐진치 삼독과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이 오욕락은 무량겁을 익혀 왔기 때문에 안 할려고 해도 그것은 저절로 되어져 버리고,


내가 나를 찾는 이 참선은 할려고 해도, 화두를 아무리 들어도, 들으면서도 금방 딴 생각이 동시에 침범을 해 들어오고 들을 때 뿐이지 금방 없어져 버리고, 한두 번 해본 것도 금방 습관이 드는데 하물며 무량겁을 해온 그 습성이 일조일석(一朝一夕)에 그것이 없어질 수가 없습니다.

글씨를 쓰면, 벼루를 오른쪽에다 놓고 글씨를 쓰다가 한 서너 번 먹을 찍어다 쓰고서 그쪽이 불편하니까 그 벼루를 왼쪽에다 갖다 놓고는 인자 쓰기 시작하면은 글씨 쓰다가 먹을 찍으러 가는데, 자기 손으로 오른쪽에 놨던 벼루를 왼쪽에다 놨는데 금방 먹을 찍으러 가기를 오른쪽으로 가게 됩니다.
아까 몇 번 오른쪽에서 찍어다 썼기 때문에 벌써 그것이 습관이 되어 가지고, 분명 자기 손으로 왼쪽에다 옮겨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 중에 오른쪽으로 먹을 찍으러 간다 그말이어. 밥상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그렇고.

평상시에 자기집을 다니던 사람은 이사를 해서 동쪽에 살다가 서쪽으로 이사를 갔는데도 무의식 중에 간다는 것이 이사 간 줄을 깜박 잊어 버리고 동쪽으로 얼마 동안 가다가 ‘아! 내가 서쪽으로 이사를 갔는데, 내가 어먼 데로 가는구나’ 그런 예를 얼마든지 경험할 수가 있고.

술을 잔뜩 먹어서 완전히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었는데도 그 취중에도 자기집을 찾아 오는 것입니다. 자기집인 줄 알고 남의 집의 침실에 들어가서 실수를 하는 예도 있다고 그럽니다마는, 무의식 중에도 평소에 익혀 놓으면 그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만큼 똑같은 일을 거듭해서, ‘거듭한다’고 하는 것은 나중에 그것이 습관이 체질화가 되고, 체질화가 되면은 무의식 중에 되게 되는 것입니다.
나쁜 업도 익히면 그것이 몸에 젖어서 체질화가 되고, 좋은 것도 자꾸 되풀이 해서 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체질화가 되는 것입니다.


이 화두(話頭)도 처음부터 잘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동 잠이 안 오고 초롱초롱 하다가도 화두만 들고 할려고 하면 혼침(昏沈)이 오고, 아무 생각도 없이 괜찮다가도 화두만 들고 할라면 번뇌(煩惱) 망상(妄想)이 퍼 일어나고 그러거든.

참선을 해본 분이면 누구나 다 경험한 바시겠지마는 이 번뇌와 망상 그리고 혼침, 이것이 참선하는데 있어서 제일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인데,
이 잠이 오는 것과 망상이 일어나는 것만 없으면은, 그냥 화두를 한번 떠억 들면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한다면은 공부하기가 하나도 괴로울 것이 없을 것 같은데,

그것이 처음에는 잘된 듯 하다가 얼마 지나면은 뚝 변해 가지고 영 안 되고, 또 안 되지마는 계속하다 보면 또 잘되고, 잘되었다 안 되었다, 잘되었다 안 되었다 그러면서 수없는 고비를 넘다 보면,

나중에는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망상을 안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망상이 끊어지면서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고 순수해 가지고 앉어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일을 할 때나 밥을 먹거나, 옆에서 떠들고 시끄럽게 하거나 말거나, 고대로 화두가 성성하게 들려진 때가 오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몸이 괴로운 줄도 모르고, 밤새 정진을 해도 괴롭고 피곤한 줄을 모르고 그렇다 그말이어.

그래도 ‘아! 인제 되었다. 참 좋다! 이러다가 빨리 툭 터졌으면’ 그런 생각을 하면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요. 오히려 공부를 갖다가 지지리 아홉 질 탑을 쌓는데, 여덟 질까지 쌓아 놓고 마지막 한 자 남겨 놓고 스스로 자기가 허물어뜨리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정진이 잘되어도 ‘잘된다’는 생각, ‘좋다’는 생각, ‘빨리 깨달았으면’하는 그러한 생각을 일으켜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럴수록에 바다와 같이 깊고 태산과 같이 무거운 마음으로 한결같이 정진을 단속을 해 나가야 하는 게고.

또 공부가 영 잘 안 되고 화두가 잘 안 들리고, 혼침이 퍼 일어나고, 몸이 뒤틀리고, 시간이 5분이 1시간보다 더 지루하게 지내간다 하드라도 짜증내는 마음을 내지 말고,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도 들으셨겠지마는 잘 안 된다고 짜증하거나 번민을 해서는 아니되고, 또 잘된다고 해서 기뻐하는 마음도 내지 말어라.


그러면 망상이 퍼 일어날 때는 어떻게 하느냐?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 망상을 물리치거나 억지로 누를라고 허거나 쫒아낼려고 하지 말고, 그냥 일어나는 대로 고대로 놔둔 채 나는 ‘이뭣고?~’ 이렇게 자기의 화두만을 탁! 들어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놈을 쫓아 버릴려고 그러고, 억지로 누를려고 하면은 화두가 잘 들리기커녕은 ‘누를라고 하는 그 망상’이 하나 더 일어나게 되는 게고,
일어나는 파도를 없애기 위해서 그 파도를 없앨려고 손으로 누르거나 손으로 갖다가 없앨려고 하면은 새로운 파도가 일어나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것이 공부해 나가는데 아주 간단하고도 묘한 방법인 것입니다.
『일어나는 망상과 번뇌를 버릴려고 그러고, 쫓을려고 그러고, 억누를려고 하지를 말고,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나는 화두만을 턱! 추켜 들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지혜롭게 번뇌와 망상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하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아셔야 하고.

혼침(昏沈)이 올 때는 어떻게 하냐?
눈을 힘을 주어서 눈을 부릅떠도 눈텡이가, 눈 위에 껍데기가 천 근이나 되게 무겁게 덮어 누르고, 아무리 손으로 허벅지를 꼬집어 뜯어도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집어 뜯어도 소용이 없다 그말이어.

옛날 도인(道人)들은 졸음이 오면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자명초원(慈明楚圓) 선사 같은 이, 경허(鏡虛) 선사 같은 그런 도인들도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 밤잠을 안 자면서 정진을 하는 말씀도 전해 내려오고 있읍니다마는,

그러한 송곳으로 찌르면서 졸음을 쫓을 만한 그러한 각오가 있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부터서 낱낱이 다 송곳부터 사러 가시지 말고, 졸음이 올 때에는 살며시 일어나서 밖에 가서 포행(布行)을 하시고 세수도 하시고 그러면서, 포행을 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왔다갔다 포행을 일직선으로 정해 놓고 왔다갔다 한 5분 하면, 졸음이 나가면 또 자리에 와서 또 앉고 이렇게 하면서 혼침을 이기도록. 그래도 안 들으면 송곳으로 한번 찔러서라도 한번 해봄즉 한 일이지요. 그러다 잘못하면 또 피가 많이 나면 안 되니까 조심을 하시고.


이 세상에 사람이 태어나서 모양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또 직업도 다르고 다 다릅니다. 각기 다 자기의 소질 따라서 능력 따라서 서로 남녀 간에 결혼을 하고 직업을 가지고 살게 되는데, 다 이것이 일장춘몽(一場春夢)입니다.

과거에 지은 업(業)으로 서로 만나서 부부간이 되고, 부모 자식 간이 되고, 며느리가 되고, 시어머니가 되고, 친구 간이 되고, 형제간이 되어서 이렇게 만나서 사는데, 이건 참! 어찌해 볼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업으로 만나졌기 때문에 인연(因緣)이 다하면 또 헤어지게 됩니다. 생이별(生離別)도 하고 사이별(死離別)도 해서 헤어지는데, 지내 놓고 보면 이것은 분명히 꿈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마치 꿈꾸고 있는 동안에는 호랑이를 보면 진짜 무섭고, 뱀이 달라들면 진짜 무섭고, 어디서 좋은 보물을 얻으면 진짜 기쁘고, 깨어 놓고 보면 허망하기가 그지할 수가 없고, 하나도 무서울 것도 없고, 좋아할 것도 없지만, 실지 그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는 조금도 틀림이 없는 현실입니다.

그와 같이 인생살이도 깨닫기 전에는 분명히 현실입니다. 또 버릴 수도 없습니다. 피할 수도 없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은 충실히 최선을 또 다해야 합니다.
‘꿈이니까, 에이! 그까짓 것 소용없다. 가정도 버려 버리고, 재산도 버려 버리고, 직장도 버려 버리고, 사업도 다 팽개쳐라’ 부처님은 그렇게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특수한 사람에 한해서는, 목숨을 바치고 오직 이 한 일만을 할 각오가 선 사람은 그걸 버리고 출가하실 수가 있지만,
일반 청신사 청신녀는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또는 관리로서 농사짓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각기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충실히 하면서 그 가운데에 자기 마음 닦는 공부를 해라’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신 것입니다.

부애나면 ‘절로 가서 중이나 되어 버릴까’ 몇 번을 생각하다가, 또 부애가 풀어지면 언제 절 생각은 잊어 버리고 ‘여보, 어쩌고...’


도(道)는 꼭 머리를 깎고 출가 해야만 되는 것도 아니고, 속가에 있어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속가에 있으면 있는 대로 할 길이 있고, 출가한 스님은 출가한 스님대로의 수행해 나가는 법이 있어서 각자 자기 있는 자리, 제일 이 도 닦아 나가는데 중요한 것은 ‘지금’이라고 하는 이 찰나(刹那)인 것입니다.

내년에 어떻게 하고, 앞으로 3년 더 있다 어떻게 하고, 내일 어떻게 하고, 한 시간 뒤에 어떻게 하고, 오늘 저녁부터 어떻게 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지금! 지금이라고 하는 이 찰나가 이 참선에 있어서는 제일 소중한 것입니다.

‘오늘 법문을 들었으니까 오늘은 그럭저럭하고 내일 아침부터 하리라’ 그런 생각을 가지셨다면 그분은 벌써 틀려 버린 것입니다. 지금 이 법당에 앉어 있는 이 찰나! 이 찰나에 생각을 돌이켜야 합니다. ‘이뭣고?~’


한 시간도 멀고, 일 분도 멀어요. '지금' 이 찰나, 지금이라고 하는 이 찰나는 우리가 시간으로 딱 찍을 수가 없습니다. 탁! 찍어도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인 것입니다.
번갯불을 갖다가 우리가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잡을려고 해도 번갯불은 지나가 버리고 없는 것처럼, ‘지금’이라고 하는 이 시간도 우리는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잡을 수 없는 그 찰나에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가면,
일어서면서 하고, 걸어가면서 하고, 일하면서 하고, 밥 먹으면서 하고, 차 타면서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하고, 세수하면서 하고, 발 씻으면서 하고, 옷 갈아 입으면서 하고 이런 것이지, 언제 뒤로 미루고... 그 사람은 안되는 거여.

이 한 생각 한 생각, 그 찰나 찰나, 좋은 생각이 일어나거나 나쁜 생각이 일어나거나, 속이 상하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그때 그때, 그 찰나 찰나를 단속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비로소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휴! 너무너무 바빠서 못한다.’  ‘아들 대학 입시 준비 때문에 못한다’  ‘대학만 들어가 놓으면 인제 조금씩 해볼라고 그럽니다’  ‘딸 시집보내 놓고 할랍니다’ 그것 다 틀어져 버리고,  ‘김장이나 해 놓고 할랍니다’ 그것도 틀어져 버리는 거여. 다 틀어져 버리는 거여.

이건 자기가 자기 1찰나, 1찰나를 단속할 때에 자기 생사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지, 왜 그러냐 하면, 생사(生死)는 다른 데에서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생각’에서 생사가 생겨난 것입니다.


‘탐진치(貪瞋癡)’하지마는, 딱! 꼬집어서 말하면 생각이거든, ‘한 생각’이거든. ‘오욕락(五欲樂)’해도 더 다그쳐 생각해 보면, 그것도 ‘한 생각’이여. ‘천당’ 그것도 ‘한 생각’에서, 지옥도 ‘한 생각’에서,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을 가만 놔두면 그놈이 차츰차츰 커 가지고 행동으로 나타나 가지고, 살생도 하고, 도둑질도 하고, 사음도 하고, 거짓말도 하게 되는데,
‘한 생각’ 딱! 일어나서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지기 전에 그때 탁! 돌이켜서 ‘이뭣고?~’해 버리면, 살생도 안 하고 끝나고, 도둑질도 안 하고 끝나고, 사음도 안 하고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 천당을 '한 생각' 돌이킴으로써 미연(未然)에 부셔 버리는 것입니다.(40분43초~60분2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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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러분이 법성게(法性偈)도 보시면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요, 무량원겁(無量遠劫)이 즉일념(卽一念)이다’
이 법성게는 그 80권 화엄경을 갖다가 간단한 몇 줄의 글로써 의상대사께서 지어 놓으신 것인데, 그 법성게의 뜻만 알면 화엄경의 진리가 그 속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 진리가 무엇이냐 하면은 ‘한 생각’이여, 한 생각.

이 한 생각, 이 찰나 속에 십세(十世) 고금(古今)과 시방(十方) 모든 세계와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그 속에 다 들어있고, 육도윤회(六道輪廻)도 그 속에 들어있고, 천당·지옥도 그 속에 다 들어있는 것이다 그말이어.

그러니 ‘이뭣고?’ 한마디, ‘이뭣고~?’하면, 그 속에 화엄경이 다 들었고, 팔만대장경이 다 들었고, 삼세제불을 친견하는 도리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육도윤회를 갖다가 끊어 버리는 도리도 바로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갖다가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시고.

이 ‘이뭣고~?’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이 화두법 이것은 용궁(龍宮)에 있는 대장경 속에도 안 들어있다.

이 사바세계에 있는 경전은 많이 불타서 없어지기도 하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이 일부만이 전해 내려오지, 전부가 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간에 설사 결집(結集)을 해놓았다 하더라도, 외도들에 의해서 많이 소각을 당해 버리고, 전해 내려오는 것은 극 일부에 지내지 못하는데, 용궁에는 부처님이 설하신 모든 법문이 다 거기에는 수장(收藏)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용궁에 있는 장경(藏經) 속에도 ‘정전백수자’ ‘판치생모(版齒生毛)’ 이런 화두법, 최상승법인 화두법은 없다 이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 최상승법, 이 참선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여. 교(敎) 밖에 특별히 전하신,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부처님께서 가섭존자(迦葉尊者)에게 전하신 특별한 최고의 법이여.

그래서 ’이뭣고?‘ 이 한마디 속에는 염불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주력하는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기도하는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있고, 팔만대장경을 다 읽어서 독송하는 공덕도 그 속에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가사불사 회향에 동참하시고 또 일요법회에 참석하신 공덕으로 이러헌 최상승법을 이렇게 듣게 된 것입니다.
가사불사(袈裟佛事)를 하는 목적은 꼭 가사가 없어서 가사를 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 가사불사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최상승법을 설해서 믿고 실천하게 해 드리는 데에 궁극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가사불사 동참했고, 그 얻기 어려운 쪼가리도 가사불사할 때 틈틈이 훔쳐 담고 또 그런데다 오늘 또 이렇게 얻었으니까, ‘나는 이거 딸 줄 것도 있고, 아들 줄 것도 있고, 며느리 줄 것도 있으니까, 인제 아무 걱정이 없다’고 아주 흐믓해 하시겠지만,
정말 ‘이뭣고?’ 한마디 한 것에다 댄다면, 가사불사 해 가지고 쪼가리 가지고 있는 것에다 대겠습니까?

물론 그 쪼가리 가진 공덕도 대단한 것이어서 말로써 다 할 수가 없읍니다마는, ‘이뭣고?’ 한마디를 하시면 천(千) 쪼가리 만(萬) 쪼가리를 몸에다가 열 거듭 백 거듭을 감은 것보다도 더 훌륭하고 더 안전하고 더 편안한 도리가 있는 것입니다.


일신진역려(一身眞逆旅)요  만사개부운(萬事皆浮雲)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조상별후(今朝相別後)에  사군불견군(思君不見君)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신진역려(一身眞逆旅)요, 이 한 몸뚱이, 인간, 이 세상이라는 것은 정말 이 한 나그네 손님이다 그말이어. 잠시 이 사바세계에 나그네로 왔어.
만사개부운(萬事皆浮雲)이여. 만사(萬事)는 다 하늘에 떠있는 흰구름 한 덩어리와 같은 것이다 그말이어.

나그네는 오늘은 이 여관에서 하룻밤 자고 또 그 이튿날 떠나면 또 어느 다른 지방에서 한잠을 자고 해서, 평생 동안을 나그네로 사는 거와 같애.

정말 여자의 몸을 받은 사람은 성년(成年)할 때까지는 그 어머니, 아버지 품안에서 그렇게 자라서 공부하고 그래 가지고 시집가면은 딴 타성바지 집에 들어가서 아내 노릇을 하고 며느리 노릇을 하고 그러는데. 그래 가지고 자기도 또 아들딸을 낳게 되면, 그 아들딸들도 또 장성을 해서 시집을 가고 장가를 가고 하는데.

일평생 동안 그러고 사는 거처도 충청도 살다가 서울로 이사 오기도 하고, 서울 살다가 저 부산으로 이사 가기도 하고, 우리나라 살다가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도 하고 그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은 나그네라고 하는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또 금생에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김 아무개, 박 아무개로 태어난 것 자체가 또 그것도 나그네인 것입니다.
전생에 사바세계에 살다가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한 사람도 있겠고, 전생에는 천당에서 살다가 금생에 인도환생을 해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전생에 개나 돼지나 소로 있다가 금생에 그 탈을 벗어 버리고 사람이 되는 수도 있고, 그러니 이것이 분명히 나그네인 것입니다.

그러면 금생에 왔으면 천년만년(千年萬年) 사느냐 하면, 많이 살아 봤자 백 년이요, 그렇지 않으면 팔십·칠십·육십·오십·사십·삼십, 10살에도 죽고 5살에도 죽고, 낳다가도 죽고, 배안에서 생기다 만 것이 죽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것도 나그네가 분명합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비 맞기도 하고 눈을 맞기도 하고, 차 타기도 하고 걸어가기도 하고, 차가 뒤집어져서 다치기도 하고 배 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참! '인생살이라는 것이 나그네'라고 하는 말이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 만사는 뜬구름과 같다’한 말도 참 적절합니다.
가난하던 사람이 부자가 되고, 부자가 가난해지기도 하고, 엊그제 장관을 하다가 그만두고 평민이 되기도 하고, 천하를 호령하던 그러한 권리를 가지던 사람이 참 하룻밤 새 죽기도 하고 또 감옥에 가기도 하고 동서고금의 역사가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나그네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면 하룻밤 여관에 방이 좀 춥기도 하고 더웁기도 한데, 그렇다고 해서 골낼 것도 없고 불행하다고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자기집에서는 편안하게 살다가 여행을 떠나면 고생이 되는데, 그 고생하는 재미로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바세계의 인생살이를 나그네라고 생각한다면, 고생도 능히 재미로 참을 수가 있고 또 좀 잘 먹고 편안히 잔다고 해서 자기가 금방 뭐 크게 팔자가 핀 것도 아니거든.
사람으로 태어나서 부자로 살고 높은 벼슬을 하고 뭣 좀 권리 좀 있다고 해서 그것을 너무 으시대고 꺼떡거리고 남을 업신여기고 그걸 것도 없는 것입니다.


잘살면 잘사는 대로, 못살면 못사는 대로 좀더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재미스럽게 멋지게 인생을 살아가는 길이 바로 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참선을 하는 사람은 가난해도 불행하지 아니하고, 부자가 된다고 해서 그렇게 꺼떡댈 것도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여유있고 느긋하고 멋지게—하나의 그 인생살이를 연극처럼 생각하고,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고 살 수 있는 길이 이 참선법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산다면 불행이라고 하는 것도 있을 수가 없고, 온 세계도 싸움이라고 하는 것이 없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이 집안에도 그런 마음으로 온 식구가 산다면, 집안은 온통 화기(和氣)가 애애(靄靄)하고 모든 일이 참 재미있고 흐뭇하고 여유있게 살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초의 근본은 ‘한 생각 단속하는 일’이 자기의 일생을 행복하게 하고, 자기의 온 가정을 행복하게 하고, 온 사회·국가를 행복하게 하고, 인류를 행복하게 하고, 그래 가지고 영원한 진리의 세계에서 모든 사람이 서로 만나서 살 수 있는 길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불법(佛法)은 그래서 위대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이 불법을 위해서는 삼세제불과 역대조사가 이 일대사(一大事)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시고, 그리고 거기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세세생생에 수없는 목숨을 바치면서 중생을 이 진리의 세계로 이끌으시는 데에 여념이 없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 같이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이 도를 이루신 다음에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 앉은 자리 더울 겨를이 없이 일평생 동안을 인도 오천축(五天竺)을 갖다가 유행(游行)을 하시면서 중생 교화를 하신 것도 바로 이 도리를 위해서인 것입니다.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濟度)하신다’ 그러는데, 뭐 물에 빠진 걸 갖다가 건져내는 것처럼 그런 것이 아니라, ‘중생도 깨달을 수 있다’, ‘중생이 본래 부처다.’

‘부처니 중생이니, 선이니 악이니’하는, 중생은 그러헌 생각의 쇠사슬에 얽혀 가지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본래 중생과 부처가 다른 것이 아니고, 깨달음과 미(迷)한 것이 둘이 아니라고 하는 그 도리를 깨우쳐 준다면, 거기에서 해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의 그러헌 소견을 씻어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거 씻어준 것이 바로 그것이 중생 교화인 것입니다.

‘최상승법은 언제나 우리와 가까이 있다’고 하는 것.
책도 펴기도 전에 이미 우리 앞에 부처님의 법이 설해져 있는 것입니다. 입을 벌리기 전에 이미 염불이 그 속에 되어져 있는 것이고, 경을 읽고 있는 것이며, 설법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눈을 감으나 뜨나, 언제나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 법문을 듣고, 또 자기 자신도 불법을 설하는 도리가 바로 이 최상승법이라.
이상으로써 일요 법회와 또 가사불사 회향 법어를 마칩니다.


산중하사기(山中何事奇)인고  청산백운다(靑山白雲多)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취적기우자(吹笛騎牛子)여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산중(山中)에 하사기(何事奇)인고  청산(靑山)에 백운다(白雲多)다.
청산에 무슨 일이 기특한고? 무슨 일이 볼 만한 것이 있느냐? 특별히 볼 만한 것이 무엇이냐?

청산(靑山)에 백운다(白雲多)다. 푸른 산에 흰구름이 많느니라.

취적기우자(吹笛騎牛子)여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다.
젓대를 불고 소를 타고 가는 자여. 동서임자재(東西任自在)여. 동쪽으로 가고 싶으면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고 싶으면 서쪽으로 가고, 동서에 자기 마음대로 자유자재하게 왔다갔다 하더라.(40분43초~77분46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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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사중구의원~’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27 ‘벽천선화자(碧泉禪和子)에게’ 게송 참고.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색사(色事)·음식(飮食)·명예(名譽)·수면(睡眠).
*일조일석(一朝一夕) ; 하루아침이나 하루 저녁이라는 뜻으로, 짧은 시일을 이르는 말.
*어먼 : ‘애먼’의 사투리. 애먼:(일의 결과가 다르게 돌아가)억울하게 느껴지는, 엉뚱하게 느껴지는.
*인사불성(人事不省) ; 제 몸에 벌어지는 일을 모를 정도로 정신이 흐리멍덩한 상태.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내동 ; '일껏(모처럼 애써서)'의 사투리.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마음이 시달려서(煩) 괴로워함(惱). 나쁜 마음의 작용.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 ; '길(길이의 단위. 한 길은 여덟 자 또는 열 자로 약 2.4미터 또는 3미터에 해당 또는 사람의 키 정도의 길이)'의 사투리.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자명 초원(慈明楚圓) : (987 – 1040) 속성은 이(李)씨。광서성(廣西省) 계림부(桂林府) 전주(全州)에서 났다.
22세에 출가하여 멀리 분양 선소(汾陽善昭)선사의 회상에 갔었다.
분양은 욕설과 세속의 더러운 말만 할 뿐이므로 하루는 정성을 다하여 간 하였더니, 크게 성내어 『네가 나를 비방하느냐?』하고 내쫓았다。초원이 무엇이라고 변명하려는데, 분양이 손으로 그 입을 틀어막았다。그 바람에 크게 깨쳤다.
뒤에 석상산 숭승사(石霜山崇勝寺)와 담주 흥화사(潭州興化寺) 같은 여러 곳에서 교화하니, 법을 이은 제자가 50인이나 되었다。자명(慈明)은 54세로써 입적한 뒤의 시호(諡號)이고, 석상화상(石霜和尙)이라고도 한다.
*경허선사(鏡虛禪師)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일장춘몽(一場春夢) ; 한바탕의 봄꿈이라는 뜻으로, 헛된 영화나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이뭣고(是甚麼) : 「이 무엇고,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이것이 무엇인가?)」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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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그 경의 핵심을 추려서 7언 30구(210자)의 게송으로 지은 <화엄일승법계도 華嚴一乘法界圖> 또는 <법성게 法性偈>에 나오는 구절.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즉일념 일념즉시무량겁)
한량없는 오랜세월이 한 생각 찰나요, 찰나의 한 생각이 무량한 시간이네.
*십세(十世) ; 화엄종의 교학에 있어서 시간 구분. 과거 현재 미래의 3세(三世)의 각각에 그 위에 과거·현재·미래가 있다고 하고, 이러한 9세(九世)를 포용하는 1세(1념)를 더하여 10세(十世)라고 한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결집(結集) ; 석가모니 부처님의 입멸 후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함께 외어 기억하는 형식으로 모아서 정리한 것.
*수장(收藏) ; 거두어서 깊이 간직함.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 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
(5)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説者는  爲教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教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教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教)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6)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教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教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教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教外別傳禪旨)가 되리라."
*이심전심(以心傳心) ; 진리는 말이나 글이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
*가섭존자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가사불사(袈裟佛事) ; 절에서 가사를 짓는 일.
*(게송) ‘일신진역려~’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16 ‘산을 나가는 영암주(英庵主)를 보내며’, p115 ‘지사(芝師)를 보내며’ 게송 참고.
*역려(逆旅 맞이할 역,나그네 려) ; '나그네를 맞이한다'는 뜻으로 '여관(旅館 일정한 돈을 지불하고 손님이 묵는 집)'을 이르는 말.
*타성바지(他姓바지) ; 자기와 성(姓)이 다른 사람.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화기애애(和氣靄靄)하다(화목할 화,기운 기,아지랭이 애) ; (분위기가)서로 뜻이 맞고 정다운 기운이 넘쳐흐르는 듯하다.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오천축(五天竺) ; 고대 인도에 있던 다섯 개의 정치적 구획. 동천축, 서천축, 남천축, 북천축, 중천축을 이른다.
*유행(遊行) ;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수행함. 행각(行脚).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참고]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게송) ‘산중하사기~’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66 ‘고운(孤雲)의 글자를 모음’, ‘목암(牧庵)’ 게송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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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참선(자세, 호흡)2014.07.06 12:38

§(455) 계행(戒行) / 단전호흡, 상기병 주의 / 화두 드는 법 / 화두 가운데에 가장 처음, 가장 근원적인 화두가 시삼마(是甚麼) 화두, ‘이뭣고?’

단전호흡은 항상 자연스럽게 무리가 없이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정법, 활구참선(活句參禪)은 몸 건강해 가지고 오래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여.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참나’를 깨닫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거든.
참선을 해 나가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잘 여법하게 하면서 화두를 드는데, 이 화두 드는 것이 참선의 요점이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송담스님(No.455)-91년 9월 첫째일요법회(91.09.01)에서.


 약 15분.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는 본참화두(本參話頭)를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간택을 받아 가지고 그 화두를 여법(如法)하게 참구해 나가는 것, 그것 밖에 없지마는, 그래도 공부를 바르게 해 나갈랴면은

첫째, 계행(戒行)을 지켜야 한다. 계행을 지키되 계상(戒相)에 집착함이 없이 계상에 떨어지지 않고 계를 지키고,
또 화두를 참상(參祥)하되, 간절한 의심으로 참구를 한답시고 막 용을 쓰면서 억지로 눈썹 미간을 갖다가 찡그리면서 억지로 파고 들어가면 상기병(上氣病)에 십상(十常) 걸리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하되, 맨 처음에는 폐 속에 들어있는 호흡을 전부 다 내뿜어. 다 내뿜은 다음에 또 스르르르 들어마셔. 들어마셨으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참았다가 또 후~ 하고 다 내뿜어버려. 다 내뿜은 다음에는 또 스르르르 들어마셔.


이렇게 하기를 두 번 내지 세 번을 해서 허파 속에 들어있는 묵은 공기를 다 청소를 해낸 다음에, 그때부터서 본격적으로 단전호흡을 하는데,
들어마시는 호흡 약 3초, 3초 동안에 스르르르 들어마시고, 또 들어마신 다음에 딱 정지를 해. 호흡을 정지하기를 약 3초 동안 정지를 했다가 또 내쉴 때도 약 3초 동안 걸려서 내쉬고,

내쉰 다음에 약 3초 동안 또 정지를 하고, 그렇게 해도 좋지만 내쉬는 시간을 아주 미세하게 조용하게 가늘게 주욱 내쉬다 보면은 한 4초나 5초 이렇게 되니까, 다 내쉰 다음에 특별히 정지할 것이 없이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가늘게, 조용하게 내쉬면 되는 거여.

그래서 다 내쉬면 또 들어마시는 시간 3초, 들어마셔 가지고 정지하는 시간이 3초, 그래가지고 내쉬는 시간은 조용하게 미세하게 길게 내쉬다 보면 내쉬는 시간은 약 4~5초 이렇게 걸리도록.

그런데 처음에 준비 호흡을 할 때에는 더이상 들어마실 수 없을 만큼 가득 들어마시고, 또 정지하는 시간도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참았다가, 또 내쉬는 것도 더이상 내쉴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다 내쉬지만,

이 정식 본(本) 단전호흡에 들어가서는 그렇게 가득 들어마셔도 안 되고, 너무 오랫동안 억지로 참아도 안 되고, 내쉬는 시간도 너무 완전무결하게 다 내쉴라고 해서는 안 돼.

왜 그러냐? 그러면 땀이 나고 무리가 가서 몇 분 안 가서 헛숨을 쉬어야 하고 그러니까, 절대로 이 준비호흡은 그렇게 철저하게 들어마시고 철저하게 내쉬고 하지만,
본(本) 단전호흡에 가서는 8부만 들어마시고 또 3초 동안만 정지했다가 내쉬는 것도 8부 정도만 내쉬어. 더 내쉴 수 있지만 완전히 다 내쉴라고 하면 안 된다.

그것을 잘 알고 해야지, 덮어놓고 무리하게 하면은 너댓 번도 못해서 등어리에 땀이 나고 하는데,
혹 겨울에 너무 춥거나 또 음식을 먹은 것이 소화가 잘 안되고 체했을 때에는 이 준비호흡과 같은 그러한 호흡을 다섯 번 내지 열 번을 하면 등어리에 땀이 나면서 트림이 나오면서 체한 것도 툭 터지는 거여.

그러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전호흡은 항상 자연스럽게 무리가 없이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조실 스님 녹음 법문에 병이 안 나고 참 묘(妙)하게 공부해 나가는 법이 바로 이 단전호흡에 관한 말씀인데 좀 이렇게 자세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단전호흡도 중요하지만은 단전호흡 하나만 하고 화두를 안 하면, 그것은 몸은 건강해지고 정신 집중력도 생기고 여러 가지로 살아가는데 좋고 하지만,
화두가 없이 밤낮 단전호흡만 하면,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신선이 되려고 하는 도교의 그런 사람들이 밤낮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법, 활구참선(活句參禪)은 몸 건강해 가지고 오래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여.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참나’를 깨닫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거든.

‘참나’를 깨달라 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인데,

이 몸뚱이만 가지고 삼백 년... 팽조라는 사람은 칠백 년까지도 살았다고 하는 전설이 있지마는, 이 몸뚱이는 인연 따라서 장수(長壽)한 사람은 장수하고 6~70 살 사람은 살고 그런 것이지, 이 몸뚱이로 오래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돼.

그러나 사는 날까지 건강은 해야 한다 그말이여. 사는 날까지 건강하고, 건강해야 참선도 마음껏 할 수가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 단전호흡을 하기는 같은 방법으로 한다 해도 목적이 다르다 그말이여.

이 참선을 해 나가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잘 여법하게 하면서 화두를 드는데, 이 화두 드는 것이 참선의 요점이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선방에 들어와서 참선을 하는 스님네나 또 보살님 10년 20년씩 선방에 다녀도 이 화두를 여법하게 들 줄 알기가 어렵다.

‘이뭣고?’ 또는 아까 조실스님께서 말씀하신 판치생모(板齒生毛), 무자(無子) 화두나 문헌에 오른 화두만 해도 천칠백 개가 넘는데 그 천칠백 개나 되는 화두 가운데에 가장 처음 화두, 가장 근원적인 화두가 시삼마(是甚麼) 화두여. ‘이뭣고?’

‘이뭣고?’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 부르면 대답할 줄 아는 놈, 욕하면 성낼 줄 아는 놈,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놈, 눈으로 보면은 저것이 꽃이다·새다·나비다, 그 아는 놈.
귀로 들을 줄 알고, 코로 냄새 맡을 줄 알고, 혀로 맛볼 줄 알고, 몸으로 춥고 더운 것을 알고, 그러할 줄 아는 놈이 다 사람마다 다 있다 그말이여. 그것이 나의 주인공(主人公)인데, 그놈을 찾는 것이거든.

그 주인공이 분명히 이 몸뚱이에 딱 주재하고 있으면서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기도 하고, 귀를 통해서 모든 것을 들을 줄도 알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모든 육체적인 작용, 정신적인 작용을 하는...
차로 말하면은 운전사와 같은 그러한 주인공이 있는데, 그것을 찾는 것이여.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인고?’ 맨 처음에는 그렇게 들어.
나중에는 ‘이뭣고?’  ‘이뭣고?’하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 바로 그 ‘이뭣고?’하는 그놈을 다시 되돌려 찾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생각이 그 ‘이뭣고?’하는 놈으로부터서 나오는데, 그 일어나는 생각이 우리의 마음자리로부터 모든 작용이 나오는데, 일어나는 그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나는 그 뿌리를 관조(觀照)하는 것이여.

‘이뭣고?’  ‘이뭣고?’하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 다그쳐 들어가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런데 단전호흡을 안 하고 자꾸 그렇게만 해 나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기(上氣)가 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숨을 스르르르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길게,
또 다 나갔으면 또 스르르르 하니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약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해 나가면 날 새기를 하면서 해도 상기가 되는 법이 없어.

처음에는 숨을 내쉴 때마다 ‘이뭣고?’ 하지만, 나중에는 숨 내쉴 때마다 ‘이뭣고?’ ‘이뭣고?’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
숨을 한번 들어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다 내쉰 다음에 스르르르 들어마시면서도 아까 들었던 그 ‘이뭣고?’ 의심(疑心)이 고대로 있으면, 그 있는 의심을 관(觀)하는 거여.

딱 관(觀)하면서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내쉴 때에도 고대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으면, 내쉴 때 새로 또 화두를 들지 안 해도 되아. 있는 그 의심을 떠억 관조(觀照)하면서 내쉬거든.
다 내쉬면 또 스르르르 들어마시되, 들어마실 때에도 딴 생각이 안 일어나고, 아까 들었던 그 화두의 의심이 고대로 있으면 그 의심을 관조해.

그래서 그렇게 주욱 해 나가다가 어느새 화두가 달아나버리고 없거나 딴 생각이 일어났으면 그때 또 화두를 떠억 한 번씩 챙겨 나가는 거여.

이렇게 해 나가면 망상(妄想)을 안 일으킬라고 할 필요도 없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망상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화두를 들어버리기 때문에 망상을 일부러 쫓아낼려고 할 것도 없어.
이렇게 해 나가면 차츰차츰 망상은 줄어지고 또 이렇게 화두를 들 때 단전호흡을 하면 혼침도 안 일어나는 것이여. 혼침(昏沈)과 산란심(散亂心)을 두 가지를 다 힘 안들이고 내가 잘 다스리는 방법이 바로 단전호흡이다 그말이여.

단전호흡을 하되 항상 들어마시고 내쉴 때 ‘이뭣고?’ 알 수 없는 의심이 성성(惺惺)하게 적적(寂寂)하게 현전(現前)되도록 그렇게 잡두리를 해 나가는 것이다.(7분20초~22분2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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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로 좌선(坐禪) 수행을 말한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계행(戒行) ; ①계() 지켜 수행하는 .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 ②계율과 도덕.

*계상(戒相) ; ①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4가지 분류[계사별 戒四別],  계법(戒法) · 계체(戒體) · 계행(戒行) · 계상(戒相) 하나. 계율을 실천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차별 있는 행동 양상. () 지키거나[持戒] 범한[破戒] 상태, 또는 계를 범한 경우 그에 대한 죄의 가벼움과 무거움 등의 차별된 상.

②계() (). 계율에 대한 생각.  계상(戒相) 청정성, 집착의 여부는 그것을 일으키는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참고] 『화엄경』 60권본 10 14 명법품(明法品)(대정장9. p.460c)  계를 지킨다는 () 일으키지 않으므로 계에 집착함이 없다. 이것을 청정시바라밀이라 한다. 不生持戒相故  於戒無著  是名淸淨尸波羅蜜

*참상(參祥) ; 참구(參究)와 같음.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이 사용된다.
*십상(十常) ; ①열에서 아홉일 정도로 확률이 높다는 말. ②'십상팔구(열에 여덟이나 아홉 정도로 거의 예외가 없음)'에서 온 말.
*헛숨 ; 공연히 내쉬는 숨. 자연스러운 호흡과 상관없이 내쉬는 숨을 이른다.
*8부(八部)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장생불사(長生不死 길 장/날 생/아니 불/죽을 사) ; 오래도록(長) 살고(生) 죽지(死) 않음(不).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안(公案)을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 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 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소소영령(昭昭靈靈)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산란(散亂 흩을 산/어지러울 란) ; 혼침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머트럽고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잡두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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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2014.04.30 12:57

§(240) 공부가 안 될때, 그때가 한 계단 올라서려고 하는 중요한 고비다 / 내 뜻에 맞거나 맞지 않거나,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 경계에 속지 말고, 거기서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해 나가야 한다.

**송담스님(No.240) - 84년 하안거 결제 및 백일기도 입재 법회에서.

약 12분.


처음에는 앉는 자세를 배우고 또 호흡하는 법도 배우고 그래가지고 화두를 드는 법을 배워서 해 가면, 처음에는 곧잘 그런대로 되어가서 ‘이렇게 되어가면 잘 되겠구나’,
그렇게 해서 앉는데 다리가 좀 아프고 허리가 아프기는 허지만 별로 졸음도 안 오고, 생각은 이 생각 저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화두만 자꾸 들고 나가고,
그대로 가면 ‘이거 석 달만 허면 내가 공부에 대해서 기초를 잡을 수 있겠구나.’ ‘이런 식으로 해서 3년만 하면 내가 틀림없이 견성(見性)을 할 거다.’ 이런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대들었는데,

과연 처음에는 졸음도 안 오고 생각만 좀 일어났다 꺼졌다 허는데, 나중에 한 달을 해 가도 별로 공부가 처음 시작한 때보다 무엇이 좀 나아진 것 같지 않고,
두 달을 해도 처음에는 졸음은 안 왔었는데 두 달쯤 허니까 졸음이 또 퍼 일어나고, 졸음에 빠졌다가 졸음에서 겨우 어떻게 정신차려서 졸음이 깰만 하면 그때는 또 망상(妄想)이 퍼 일어나고,
망상을 실컷 하다가 보면은 나중에는 또 졸음이 오고, 그래서 졸음과 망상이 번갈라 가면서 일어나 가지고 도대체 공부가 잘 되는 것 같지를 않고.

나중에는 울화통(鬱火통)이 터질라 허고 가슴이 답답하고, 한 시간이 대여섯 시간처럼 그렇게 지루하게 느껴지고, 가만히 시계를 보면은 ‘앞으로 10분만 지내면 이제 방선(放禪)을 하겠다’하는데 그 10분이 1시간보다도 더 지루하고 길게 느껴진다.
이럴 때 좀 답답할 때 일어나서 밖에 가서 포행(布行)도 좀 하고 바람도 쐬면 좋겠는데, 5분이나 10분 남겨 놓고 자발없이 일어날 수도 없고, 이렇게 해서 한 달•두 달•한철이 지내갑니다.

그런데 그 답답허고 지루허고 그때 그 공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때가 참으로 공부해 나아가는데 중요한 고비다’하는 것을 미리 잘 알고 계셔야 합니다.
공부가 한 걸음 나아갈려면, 그러헌 답답허고 견디기 어려운-이 몸이 뒤틀리고 가슴이 답답하고 시간이 지루허고-그런 고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애기를 길러 본 경험이 있으시면 아시겠지만, 갓난 애기를 길러 보면 무럭무럭 젖 잘 먹고 잘 크다가 설사병이 나기도 하고 어디 병이 나기도 하고 그런데 그 병을 앓고 나면 살은 좀 빠지지만 그전에 아니 하던 새로운 재주를 부리게 됩니다.
재롱을 피우게 되기도 하고, 뭐 이상한 귀여운 짓을 하게 되고, 또 말을 그동안에 한마디도 못하던 애기가 무슨 말도 한마디씩 허기도 허고 그러는데. 병치레하고 나면 푹 크거든. 한 치 가량 푹 크면서, 살은 빠지면서 키는 크고 그러면서 재롱은 늘고 그러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던지 사업을 할 때나, 학문을 하거나 또 이런 참선을 헐 때에도, 한 고비 올라서려고 헐 때에는 반드시 그런 진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답답하고 재미가 없고 공부가 허기 싫어지기도 하고 그런 고비를 만났을 때, 조금도 그것을 짜증을 내거나 ‘내가 이 공부가 안 될려고 업(業)이 두터워서 이 공부 못할 징조인가 보다’ 이런 생각을 갖지를 말고,

「이건 공부를 허다 보면 한 계단 올라설려고 할 때에 이런 증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깊이 명심을 하고,
그러한 경계(境界)가 나타나더라도 오히려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단전호흡을 허면서, 짜증이나 또는 물러서려는 그런 생각을 갖지 말고서,
오히려 좋은 징조라고 하는 것을 알고서 그 고비를 잘 지혜롭게 넘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한결 앉기도 수월하고 공부허기도 수월해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 그렇게 공부가 수월하게 잘 들리고 화두가 잘 들린다 해서 또 좋아하는 마음을 내기가 쉬운데 그 좋아하는 마음도 내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지어가면 우리 공부허는 사람의 주변에는 항시 마군(魔軍)이가 와서 육근문두(六根門頭)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고 그랬습니다.
‘왜 마군이가 와서 기다리고 있느냐?’하면 공부를 해서 도(道)를 이루게 되면 마군이가 살 자리가 영토가 좁아지는 것입니다.

나라도 법도(法度)가 있어서 잘 해 나가면 도둑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듯이, 나라가 법이 문란해지고 경찰이나 군인이나 이런 힘이 모다 분열이 되어가지고 힘이 타락되어 가지고 힘이 없어지면, 곳곳에 깡패가 득실거리고 도둑이 일어나고 그래가지고 일반 사람들이 살기가 어려운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모다 법률에 기강이 서고 그러면 도둑이나 깡패나 모다 사기꾼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도둑이나 깡패나 그런 못된 사람들은 나라가 질서가 잡히는 것을 싫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마군이들도 역시, 공부해 나가는데 있어서 마군이들도 한 수행인이 공부를 열심히 허면 그래가지고 그이가 도(道)를 통하게 되면 자기네 발붙일 곳이 없기 때문에, 항시 주변에서 지키고 있다가 조그마한 틈만 있으면 그 틈을 타서 침입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눈으로도 들어오고, 귀로도 들어오고, 코나 입으로도 들어오고, 몸뚱이로도 들어오고, 생각을 통해서도 들어와서, 그 육근문두에 항시 마군이가 틈을 엿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먹느냐? 그 ‘한 생각’에 마군이가 들어오기도 하고 안 들어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파트나 주택가에 그 틈을 타서 강도나 절도가 들어오는 거와 마찬가지로 집안 문단속을 잘 하면 그런 도둑이 엿보지를 못하겠지만, 도둑은 항시 그런 틈 나오기를 이모저모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결국은 들어오고,
그 주인이 잘 단속을 해도 영리한 도둑은 일부러 그 틈을 맨들어 가지고 갖은 수단을 부려 가지고 틈을 내도록 한눈을 팔도록 맨들어 가지고 들어오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도 닦는 사람에게는 그 점을 명심을 하고, 어떠한 경계를 만나더라도 그 경계에 속지를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군이가 들어올 때에, 마군이가 나를 유혹할 때에는 언제라도 나의 뜻에 맞는 내가 좋아하는 그러한 탈을 쓰고 나에게 접근을 해 온다는 사실. 사기꾼이 어떤 사람을 사기를 칠 때에는 흉악한 그러헌 얼굴을 가지고 나타나지 아니하고, 꼭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써 나에게 접근을 해 오는 것입니다.

돈을 좋아하면 돈벌이가 잘된다고 유혹을 하고, 그이가 색(色)을 좋아하면 그런 것을 가지고 와서 유혹을 하고, 명예나 권리를 좋아하면 명예나 권리 그런 것을 미끼로 해 가지고, 그것을 잘 해 준다고 이렇게 해 가지고 접근을 해 오는 것입니다.

우리 공부해 나아가는 데에도 반드시 그와 같다고 허는 것을 명심을 하고 그러헌 경계에 내가 현혹되지 않도록, 좋은 것을 보아도 거기에서 화두를 들고 더군다나 내 뜻에 맞지 않는 것을 보고는 더욱 더 화두를 들고서 공부를 해 나가야 허는 것입니다.(10분35초~21분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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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울화통(鬱火통) ; [주로 ‘치밀다’나 ‘터지다’, ‘터뜨리다’ 등과 함께 쓰여]몹시 답답하거나 분한 마음이 쌓이고 쌓인 것. ‘울화(鬱火)’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이다.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자발없다 ; (언행이)가볍고 참을성이 없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단전호흡 ; 분류 ‘참선(자세, 호흡)’ 참고.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도(道) ; ①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②깨달음. ③가르침. ④궁극적인 진리. ⑤이치. 근원.
*법도(法度) ; 규칙•법칙•율법•법규•결정들.
*색(色) ; ①인식의 대상이 되는 물질적 존재의 총칭. ②육체. ③집착 또는 색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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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14.02.13 12:47

§ 생사(生死)는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참선법이 바로 이 몸뚱이를 법왕궁(法王宮)을 만드는 것.

**송담스님(No.220) - 1983년(계해년) 동안거결제 법회(57분)에서.

약 18분.


나의 생사 문제는 이 몸 받았을 때 내가 해결하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 대신 이것을 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불보살(佛菩薩)이 자비가 많으시다 하더라도 불보살도 내 대신 해 주시질 못 하고,
스승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제자를 위해서 대신 해 주지 못 하고,
부모가 아무리 자식을 사랑한다 하시더라도 자식을 위해서 대신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금생에 이만큼 몸을 받아서 이만큼 건강하고 여건이 이만큼 갖추어졌을 때, 결정코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생사(生死)는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부처님께서 여러 제자를 모여 놓고, “죽음에 대해서 각기 자기의 소견(所見)을 말해 봐라.”

“죽음은 하루 동안에도 올 수가 있습니다.”
“너는 공부하기가 어렵겠구나.”

또 그 다음 제자가 대답하기를,
“죽음은 밥 한끼 먹을 사이에도 올 수가 있습니다.”
“너도 공부하기가 어렵겠구나.”

또 한 제자가 나와서,
“죽음은 숨 한 번 쉴 사이에도 올 수가 있습니다.”
“음, 너는 공부를 하겠다.”

죽음이 한끼 밥 먹은 사이도 오히려 길고 더군다나 하루밤 24시간을 잡은 것은 참으로 너무 여유를 두고 한 말이어서 정말 우리의 죽음은 숨 한번, 똑딱 1초 동안에 생(生)과 사(死)가 뒤바뀌는 것입니다.

천하에 허망한 목숨을 파리 목숨과 같다고 하지만, 파리란 놈은 파리채로 탁 한 번 치면 금방 날아다니던 것이 꼼짝도 못하고 탁 죽어 버리는데,
‘사람 목숨도 파리 목숨보다 더 믿을 만한 것이냐?’하면 그렇지를 못하고 사람도 금방 1분 전에 1초 전에 이렇게 말을 하고 웃고 성내고 하던 사람이 1초 후에 금방 송장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한번 죽어서 송장이 되어 버리면 이 몸뚱이는 10분 못 가서 벌써 내장이 버글버글 썩기 시작을 합니다.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드는 참선법이 바로 이 몸뚱이를 법왕궁(法王宮)을 만드는 것>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물질로 모여서 배합이 되어 가지고 이렇게 몸뚱이를- 임시 이렇게 이뤄졌으나,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소소영령(昭昭靈靈)한 ‘한 물건’은 이것이 물질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가 없어서 모양이 없어.

빛깔도 없고 모양도 없고 일정한 장소가 없어서 아무리 이 몸뚱이를 의사가 해부를 해 가지고 오장육부(五臟六腑)를 다 갈르고 해부를 해서 찾는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한 ‘이놈’은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렇게 찾을 수가 없고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그러헌 놈인데, 그놈 한 생각을 놓쳐 버리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가 벌써 들어와 가지고 이 몸뚱이 주인 노릇을 하고,
한 생각 돌이켜서 딱 정념(正念)을 가지면 팔만사천 마군이가 자취없이 물러가 버린 것입니다.

정법(正法)을 믿고 정법에 의해서 항시 ‘이놈’을 잘 다스리고 관리를 하면 이 몸뚱이가 바로 정법의 법왕(法王)이 거처하는 궁전이 되는 것이고,
한 생각 놓쳐 버리면은 이 몸뚱이 고대로 있는 채 마왕(魔王)의 거처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를 ‘마왕의 소굴(巢窟)을 만드느냐, 대법왕의 궁전을 만드느냐’하는 것은 오직 한 생각 다스리는 데에 달려 있어.

이 참선법(參禪法)이라 하는 것이 바로 이 몸뚱이를 법왕궁(法王宮)을 만드는 것이고, 극락세계를 만드는 것이고, 모든 부처님의 적멸궁(寂滅宮)을 장엄(莊嚴)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결제(結制)라 하는 것은 앞으로 석 달 동안 이 법왕궁•적멸보궁을 갖다가 탄탄하게 어떠한 외적이나 마군이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단속하는 그런 특별 공사기간이다.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각자 자기의 법왕궁을 이 적멸보궁을 각자 자기 손으로 건설을 해야지 남이 대신 만들어 주지를 못해.
보통 이 사회의 집이나 궁전은 목수를 시켜서 돈을 주어서 만들면 되겠지만, 이 부처님이 거처하는 적멸보궁은 자기가 자기의 것을 지어야지 남이 못 만들어.

그래서 결제 기간 동안은 다른 사람의 시비(是非)를 할 겨를이 없어. 누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고, 그거 시비에 참견하고 시비에 말려들면 자기 법왕이 거처하는 궁전의 대공사(大工事)가 늦어지거든.

금생에 이 공부 할 때에 1분 늦어진 것이, 그것이 몇 겁·몇십 겁·몇백 겁 성불(成佛)이 늦어져 버리는 것이여.

시간은 오후도 있고, 내일도 있고, 내년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지만,
지금 1초가 눈 한 번 깜박하는 1찰나가 수십 백억 겁이 늦어져 버린다. 그르쳐져 버리는 것이다 그말이여.

수행하는 사람은-최상승법을 믿고 이 최상승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은 이 한 생각, 이 1초를 단속을 잘 해야 해. 한 생각에 속지 말아야 하는 거여.

한 생각 속아 갖고 이 법왕궁이 적멸보궁이 마왕의 소굴이 되고, 한 생각 삐끗해 가지고 무량(無量) 생사고해(生死苦海)에 떠내려갈 것을 생각한다면,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두렵고 두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참선하는 사람은 어떻게 우리의 생각을 단속을 하느냐?>
그래서 참선하는 사람은 어떻게 우리의 생각을 단속을 하느냐?

화두를 아무리 들려고 해도 의심이 간절(懇切)히 나지를 않고,
금방 ‘이뭣고~?’해도 입으로는 ‘이뭣고?’ 하면서도, 금방 그 ‘이뭣고?’가 껍데기만 ‘이뭣고?’고 속으로는 온갖 번뇌와 망상이 들어오니 어떻게 이 공부를 하겠습니까?

아마 여기에 앉으신 사부대중(四部大衆)도 대부분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고충을 느끼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불파염기(不怕念起)하고 유공각지(唯恐覺遲)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생각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생각은 망상(妄想)이죠.
좋은 생각이나, 나쁜 생각이나, 슬픈 생각이나, 괴로운 생각이나, 기쁜 생각이나 모든 어떠한 생각이건 생각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각(覺) 더딘 것을 두려워해라.

무슨 생각이든지 그 생각 일어나는 것을 성화를 내지 말고 짜증을 내지 말고, 일어나거나 말거나 일어났다 하면은 그 일어나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갖지 말고,
‘아이고, 또 망상이 일어났구나. 이 놈의 망상 때문에 내가 이 공부를 못 하겠구나’ 그러헌 등등의 생각을 내지 말고,

무슨 생각이든지 일어나면 일어나자마자 퍼뜩 화두를 들어 버려.

깨달은 사람은 바로 그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하도록 턱 단속을 해 가겠지만 우리 깨닫지 못한 사람은 어떤 것이 원각대지(圓覺大智)인지 알 수가 없거든.

다못 우리는 화두를 거각(擧却)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그 화두를 퍼뜩 거각하면 아까 일어났던 그 망상은 간 곳이 없어져 버리거든.

그리고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간절(懇切)한 의심이 턱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무슨 생각이든지 일어날 때마다 화두를 들고 또 화두를 들고,
화두가 간절하고 아니하고 헌 것도 따지지 말고, 화두가 순일(純一)하고 순일하지 못한 것도 따지지 말고,
다맛 들고 또 그 화두가 희미해지면 또 들고, 또 딴 생각이 들어오면 또 들고 그렇게 해서 일구월심(日久月深)하면,

그렇게 화두를 들려고 노력을 해도 화두가 들리지를 않고 간절하지 못하고 순일무잡하지를 못하던 것이,

한결같이 물러서지 아니하고 ‘기어코 나도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는 그러헌 신념과
‘모든 불조가 다 이 문제를 해결을 했는데 나라고 해서 왜 내가 이 문제를 못 할 것인가’
‘불보살은 누구고 나는 누군가. 불보살도 깨닫기 이전에는 나와 똑같은 범부(凡夫)였었는데 나도 정법에 의해서 목숨 바쳐서 한다면 나라고 왜 못 할 것인가’
이러헌 대분심(大憤心)을 가지고 화두를 들고 여법하게 나간다면, 결정코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때가 오고야만 마는 것이여.

과거에 조사(祖師)들은 3년을 그렇게 알뜰히 해서 깨닫지 못하면 내가 거짓말한 것이 되니,
그 거짓말한 죄로 혀를 10리나 빼 늘여 놓고 그 혓바닥을 소 쟁기로 쟁기질을 하는 그런 발설이경지옥(拔舌犂耕地獄)에 내가 떨어지리라. 이렇게 확연하게 보증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불보살(佛菩薩)을 믿고 불보살의 법에 의지해서 공부를 해 나가는 사람이 어찌 그것을 추호(秋毫)라도 의심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참선은 하나도 어렵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여.

눈으로 무엇을 볼 때 ‘이뭣고?’
귀로 무엇을 들을 때에 그 소리가 새 소리가 되었거나, 저 문을 여닫는 소리가 되었거나, 애들이 떠들고 고함 지르는 소리가 되었거나, 기차 소리나 전철 소리가 들렸거나, 무슨 뭐 비행기 소리가 나거나, 공장에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나거나,
무슨 소리를 듣건 바로 그 듣는 바로 거기에서 ‘이뭣고?’
누가 나를 칭찬해서 기쁜 마음이 나더라도 ‘이뭣고?’
누가 나를 억울한 소리를 해서 속에서 이 오장이 뒤집어질려고 하는 그 찰나(剎那)에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괴로울 때도 ‘이뭣고?’

이렇게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색성향미촉법(의 육경六境에 대하여) 여섯 가지 식(六識)이 발동을 할 바로 그 찰나에 화두를 터억 들어보시란 말씀이여.(14분29초~32분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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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이르는 말.
*소견(所見) ; 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펴보고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의견.
*송장 ; 죽은 사람의 몸뚱이.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오장육부(五臟六腑) ; [한의] 오장과 육부, 곧 내장(內臟)을 통틀어 이르는 말. 곧 간장, 심장, 폐장, 신장, 비장의 오장과 대장, 소장, 위, 쓸개, 방광, 삼초(三焦)의 육부를 이른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이 말이 퍽 많다. 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이것을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 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정념(正念) ; 바른 생각. 선종(禪宗)에서의 바른 생각이란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한 생각(叅究一念).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법왕(法王) : [범] dharmaraja  부처님은 진리 곧 법을 가장 밝게 깨치시고, 법을 걸림 없이 쓰시고 법을 널리 가르쳐서 법에 있어 제일 높은 어른이므로, 「법의 임금」이라고 존칭한 말이다。또한 모든 세속 임금들에게도 큰 스승이 되고, 온갖 성인들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므로 법왕이라 한다.
*소굴(巢窟 보금자리•집 소,굴 굴) 나쁜 짓을 하는 도둑이나 악한 따위의 무리가 활동의 본거지로 삼고 있는 곳. 窟-사람이 모이는 곳.
*참선법(參禪法) ; ①선(禪) 수행을 하는 법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적멸보궁(寂滅寶宮) ;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사찰 당우(堂宇) 가운데 하나. 이 불전에는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佛壇)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참고] 적멸(寂滅 고요할 적,다할•끊어질 멸)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 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상(相)을 여의고 있는 것.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궁극의 깨달음, 깨달음의 경지.
[참고] 당우(堂宇) ; 정당(正堂)과 옥우(屋宇)라는 뜻으로, 규모가 큰 집과 작은 집을 아울러 이르는 말.
*장엄(莊嚴 엄숙할•삼가할•꾸밀 장,엄할•공경할•꾸밈 엄) ①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꽃 따위를 부처님께 올려 장식하는 일.
②건립하는 것. 건립. 훌륭히 배치, 배열되어 있는 것.
③장식. 물건을 장식하는 것. 아름답게 장식함. 훌륭한 것. 엄숙하게 장식된 모양, 모습. 장식물.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들어가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들어간다.

*겁(劫) ; (산) kalpa의 음사.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긴 시간.[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〇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〇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함.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무량(無量) ; ①많아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음. ②[불교] 가히 비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화엄경》에 나오는 백이십 수(數) 중 한 수의 이름이다.
*생사고해(生死苦海) ; 삼계(三界)-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킴. 생사와 그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참고]삼계(三界) ;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세 가지 미혹한 세계.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의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말=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원각대지(圓覺大智)가 낭연독존(朗然獨存) ; 원각(圓覺)의 대지(大智)가 밝게 홀로 드러나.
[참고] 원각(圓覺) ; 석가여래의 원만(圓滿)한 깨달음. 진여(眞如)의 체득. 부처님의 지혜.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화두를 든다.
*독로(獨露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 무엇고(이뭣고 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 무엇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참고] <‘참선법 A’ 에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찰나(剎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지극히 짧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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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참선 (목적)2014.01.04 14:23

§(287) 교외별전(敎外別傳) 선지(禪旨) / 깨달을려면 조사(祖師)의 경지에 이르러야. / <사진작가의 ‘참선’ 질문에 대한 ‘풍선’ 법문>

차라리 깨닫지 못하면 말지언정, 깨달을려면 한번 깨달라서 조사(祖師)의 경지에 이르지 아니하면, 차라리 알았다고 하는 생각을 가져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참선, 이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가부좌를 하고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고 이것이 현재 한국에서 지도하고 있는 하나의 그 체계적인 양식이기는 하지만,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그러한 반드시 일정한 양식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고, 진리는 일체처 일체시에 충만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역대 조사와 선지식의 수단과 능력에 따라서 어떠한 방법으로 지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참선은 초학자(初學者)를 위해서, 물론 책에 있는 그런 자세와 호흡하는 법과 화두를 참구하는 그러한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서 잘 지도를 받아서 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참선이라고 하는 것이 워낙 범위가 넓고 자유스러운 것이어서, ‘그렇게 해야만 된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87) - 1986년 2월 첫째일요법회(86.02.02)(63분)에서.

 약 18분.


오늘은 2월 첫째 일요법회 날입니다. 방금 전강(田岡) 조실스님의 녹음 법문을 사부대중이 잘 들었습니다.
이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조실(祖室) 스님께서 15년간을 이곳에 머무르시면서 많은 납자(衲子)를 제접(提接)하시면서 항상 활구참선법, 최상승법을 선양(宣揚)을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출현하셔서 80세를 일기로 열반하실 때까지, 성불을 하셔 가지고 49년 동안을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시는데 그 8만4천 법문을 교(敎)라 한다면,
그 교(敎) 밖에 따로 마음을 전하신 것이 그것이 교외별전(敎外別傳) 선지(禪旨)라 이렇게 말하는데, 그 교외별전 선지가 바로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께서도 잠시 언급하신 바와 같이, 육조(六祖) 스님 이전에는 ‘화두(話頭)’라 하는 말이 없었습니다마는 물론 그러한 체계화된 간화선(看話禪)은 없었지만,
부처님 때부터서 그 부처님의 설법과 중생을 교화하는 그 팔만사천 법문 가운데에는, 일정한 모양이 없는 가운데에 그 법(法)이 자유자재로 구사(驅使)되었던 것입니다.

그랬던 것이 세상이 흐름에 따라서 중생의 근기가 차츰 약해지고 또 영리한 마음은 점점 늘어나 가지고 순박성을 잃어가고, 그러기 때문에 차츰차츰 그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서 역대조사(歷代祖師)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방편을, 중생의 근기 따라서 마련하실 수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육조 스님께서도 ‘화두’라고 하는 말은 거기에 붙이지 아니했지만,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내게 한 물건이 있는데 밝기는 태양과 같고 검기는 옻칠과 같은데, 항상 우리 동용(動用)하는 가운데 있으되 동용(動用)하는 가운데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놈이 무엇이냐?’ 이렇게 제자들에게 물으신 것입니다.

‘화두’라고 하는 말은 안 붙였지만 화두선(話頭禪), 화두를 가지고 참선하는 이 간화선(看話禪)이 체계화되기 시작한 근원을 바로 거기다가 두는 것입니다.

하택신회 선사는 그 물음에 대해서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며 신회지불성(神會之佛性)이로소이다.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며 저 하택의 불성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뭐라고 이름을 붙일라야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뭐라고 모양을 그릴라야 그릴 수도 없는데 어찌 네가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니 신회의 불성이니, 그것이 벌써 이름이 아니냐, 이름이 없다고 그랬는데 왜 이름을 붙이느냐?’ 이렇게 꾸짖으시고서,
‘네가 나중에 열심히 공부를 해서 일가를 이룬다 하더라도 너는 지해종도(知解宗徒) 밖에는 되지 못하겠구나. 사량으로 따지고 이론적으로 따지는 강사와 같은 그러한 무리 밖에는 못되겠구나.’ 이렇게 점검을 하신 것입니다.

그 뒤에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가 육조 스님을 뵈러 와서는 절을 하니까  ‘십마물(麽物)이 임마래(恁麽來)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는 그 물음에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뭐라고 대답을 할 수도 없고 대답을 안 할 수도 없고, 꽉 막혀서 어쩔 줄을 모르고 물러 나와서 8년 동안을 ‘대관절 이 무슨 물건이냐?’
앉어서나, 서서나, 일을 할 때나, 밥을 먹을 때나, 똥 눌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대관절 이 무슨 물건인고~?’하는 그 의심이 꽉 찼던 것입니다.

일부러 ‘이뭣고?’ ‘이뭣고?’ 형식적으로 하고, 또 할 때는 잠시 알 수 없는 생각이 있다가 금방 돌아서면 의심이 없어지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육조 스님의 그 물음 뒤끝에 꽉 막힌 그 의심이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 수 없고, 안할 라야 안할 수가 없고, 저절로 그 알 수 없는 의심이, 꽉 막힌 그 의심이 차오르는데 뭐라고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심(疑心)이 한목 퍼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8년 동안을 그러한 상태에서 하루하루가 지나갔던 것입니다. 8년 만에사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던 것입니다.

활구참선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뭘 이러 저리 좀 하다가, 무슨 경계가 나타난다고 ‘아! 알았다. 내가 알았다.’ 이런 생각을 내고서 무슨 공안을 갖다가 자기 사량분별심으로 따져서 뭐라고 이를라고 하고.
차라리 깨닫지 못하면 말지언정, 깨달을려면 한번 깨달라서 조사(祖師)의 경지에 이르지 아니하면, 차라리 알았다고 하는 생각을 가져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애써서 한 철 두 철 하면 ‘일체가 곧 하나요, 하나가 일체다. 전체가 바로 나요, 나 밖에 이 세계가 어디가 있느냐?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산을 보나 들을 보나 돌을 보나 그것이 모두가 딴 것이 아니고 바로 이것이 내 면목이다.’
이러한 체중현(體中玄)의 그런 공견(空見)이라 하는 것은 한 철 아니면 두 철이면 누구나 그러한 경계는 다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가지고 자기가 깨달랐다고 하는 소견을 내고, 그러한 소견을 가지고 살림을 지어간다면 그 사람은 조그만한 그릇을 하나 만들어 가지고 그것을 자기 그릇으로 평생을 수용하다 가는 것입니다.


<사진작가의 ‘참선’ 질문에 대한 ‘풍선’ 법문>

작년에 세계적인 그 사진작가가, 그분은 우리나라 6.25동란 때 전쟁고아로서 미국에 양자를 가 가지고 그래 가지고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그 사진을 연구를 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는데, 그이가 한번 어느분의 소개로 찾아왔습니다.

이 참선에 대해 항시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참선이란 게 대관절 어떠한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며, 참선을 해 가지고 구경(究竟)으로 도달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 이러한 질문을 해 왔습니다.
그 사람은 한국 사람이면서 한국말을 전혀 하지를 못하고 겨우 자기 이름만을 한글로 서투르게 쓸 정도였습니다. 너무 어려서 갔기 때문에 그런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 말도 잘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 통역을 통해서 그 짧은 시간에 참선에 대한 설명을 해 주기도 어렵고, 그래서 풍선을 하나의 예로써 얘기를 했던 것입니다.

참선, 이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가부좌를 하고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고 이것이 현재 한국에서 지도하고 있는 하나의 그 체계적인 양식이기는 하지만,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그러한 반드시 일정한 양식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고, 진리는 일체처 일체시에 충만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역대조사와 선지식의 수단과 능력에 따라서 어떠한 방법으로 지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세계적인 사진작가니까 그 사진을 찍고, 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사람은 글씨를 쓰고, 또 쇠를 만드는 그러한 그 제철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그 쇠를 녹여서 좋은 쇠를 만드는 그 가운데, 또 백정이 소를 잡는 데에는 소를 잡는 바로 거기에도 참선이 있을 수가 있고 깨달음이 있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얘기를 하고,

그래서 사람마다 각기 자기 나름대로 하나의 풍선을 불고 있다.

금방 그 풍선을 잘못 불면 처음에 조금 훅 불다가 어문 가운데서 툭 터져 가지고 실패해 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상당히 클 때까지 분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러나 개중(個中)에는 이 우주의 법계에 가득 찰 만큼 그러한 큰 풍선을 불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 가지고 터트릴 수 있는, 그렇게 풍선을 불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이 우주, 동서고금에 가장 크고도 좋은 풍선을 분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지 않겠느냐?

그래서 지금 우리는 승려로서 우리 나름대로의 가장 좋은 풍선을 불려고 목숨을 바쳐서 노력을 하고 있지만, 당신은 사진작가로서 당신의 풍선을 잘 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얘기를 했더니 그 사람이, 예술가도 상당한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이런 도(道)나 법(法)에 관해서 얘기를 하면은 서양 사람이나 동양 사람이나 이해를 잘 하는 것을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몇달 후에 그이가 인편에 쪽지를 써서 보냈는데, ‘지금도 풍선을 열심히 불고 있다.’고 하는 그러한 그 전단을 보내왔었습니다.

참선을, ‘꼭 가부좌를 하고 단전호흡을 하고 화두를 타서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참선에 관한 고정된 관념을 가져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고정된 생각을 가지면 '참선이라고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지루한 것이다. 장소가 없으면 못하고 시간이 없으면 못하고 어떠한 특별히 혜택 받은 사람이 아니면 참선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참선 자체를 경원시(敬遠視)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할려고 하니까 지루하고,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프고, 나중에는 졸음이 오고, 아무리 해도 재미가 없으니까, ‘하! 이거 화두가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이냐?’ 또는 내가 공부를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심지어는 나는 참선하고는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냐? 내 근기가 참선을 할 만큼 미치지 못한 것이 아니냐? 차라리 이렇게 아무리 해 봤자 재미도 없고 별 성과도 없는 참선을 이렇게 한다고 해 봤자 허송세월만 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 경(經)을 읽어볼까? 염불(念佛)을 할까? 주력(呪力)을 할까? 그래 가지고 경을 읽다가 염불을 하다, 주력을 하다, 그러다가 보면 또 다시 참선을 하고 싶어서, 또 참선을 하다가 말다가 참 이러한 분을 상당히 많이 겪어봤습니다.

이 참선은 초학자(初學者)를 위해서, 물론 책에 있는 그런 자세와 호흡하는 법과 화두를 참구하는 그러한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서 잘 지도를 받아서 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참선이라고 하는 것이 워낙 범위가 넓고 자유스러운 것이어서, ‘그렇게 해야만 된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망상(妄想)이 일어나서 못한다.' 그러는데, 망상이 일어나고 안 일어나고 한 것이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고, 또 망상이 일어남으로써 오히려 참선을 잘할 수도 있는 그러한 면도 있는 것입니다.(2분7초~20분1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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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田岡) 선사 ;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음)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셨다.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 선사의 법맥을 이으셨다.
33세의 젊은 나이로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 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고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 12월 2일(음)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하시고 앉아서 열반에 드셨다.
그리고 후학(後學)을 위한 700여 개의 육성 법문테이프를 남기셨다.
세수(世壽) 77세, 법랍(法臘) 61세.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납자(衲子 옷을 꿰맴 납/사람 자) ; 남이 버린 헌 옷이나 베 조각들을 기워서 만든 옷을 입은 수행승. 흔히 참선을 하는 스님(禪僧)이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사바세계(娑婆世界);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교외별전(敎外別傳) : 부처님께서 말씀으로써 가르친 바를 모두 교(敎)라 하는데, 교 밖에 따로 말이나 글을 여의고(不立文字) 특별한 방법으로써 똑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성품을 보고 대번에 부처가 되게 하는(直指人心 見性成佛) 법문이 있으니 그것이 곧 선법(禪法)이다. 교는 말로나 글로 전해 왔지마는, 선법은 마음으로써 전하여 왔으므로 이른바 삼처전심(三處傳心) 같은 것이다”
*선지(禪旨) : 선(禪) : [범] dhyana 음을 따라 선나(禪那)• 타연나(駄衍那)라 쓰고, 고요히 생각함(靜慮), 생각하여 닦음(思惟修), 악한 것을 버림(棄惡) 또는 공덕림(功德林) 등으로 번역한다.
진정한 이치를 궁리하고 생각을 안정하게 하여 산란치 않게 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가섭존자가 전한 선법이 널리 퍼지지 못하고 교법만이 유포되었었는데, 달마대사(達摩大師)가 건너온 뒤로부터 선법이 크게 발달되어 이른바 '조사선(祖師禪)'이 완성되었다. 이 글에 말하는 선법은 조사선만을 가리키는 것이다.
*조사선(祖師禪) ; 교외별전(教外別傳) • 불립문자(不立文字)로서 말 자취와 생각의 길이 함께 끊어져, 언어와 문자에 의하지 않고 직접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깨우치는 것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선이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8, p34에서.
(5)世尊이  三處傳心者는  爲禪旨요  一代所説者는  爲教門이라. 故로  曰,  禪是佛心이요  教是佛語니라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教門)이 되었다。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教)는 부처님의 말씀이니라.
(6)是故로  若人이  失之於口則拈花微笑가  皆是教迹이요. 得之於心則世間麤言細語가  皆是教外別傳禪旨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빙긋이 웃은 것(拈花微笑)이 모두 교의 자취(教迹)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 선지(教外別傳禪旨)가 되리라.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구사(驅使 몰 구,부릴 사) ; 말이나 수사법, 기교, 수단 따위를 자유자재로 다루어 씀.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육조(六祖), 하택신회(荷澤神會), 남악회양(南嶽懷讓) ;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참조.
*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이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
*체중현(體中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인 삼현(三玄-體中玄•句中玄•玄中玄)의 하나.
[참고] 선가귀감(용화선원 刊) p207, p212 에서.
[三玄]삼현
體中玄은  三世一念等이요  句中玄은  徑截言句等이요  玄中玄은  良久棒喝等이라
삼현 : 체 가운데 현(體中玄)은 삼세가 한 생각이라는 따위들이고, 구 가운데 현(句中玄)은 지름길 말들이며, 현 가운데 현(玄中玄)은 양구와 방망이와 할 같은 것들이다.
삼현(三玄) : 임제 의현(臨濟義玄)선사가 학인을 제접하는 데 사용한 수단이다.
체중현(體中玄)은 진공(眞空)의 이치를 보는 것이라 학인이 이 이치를 보았다 하더라도 신위(信位)를 여의지 못했으므로 자유의 분(分)이 없다.
구중현(句中玄)은 뜻길이 없는 말로써 그 말에 걸리거나 막히지 않고 도리를 바로 봄을 말함.
현중현(玄中玄), 사(事)에 걸림이 없는 묘유(妙有) 곧 현중현(玄中玄)의 도리를 보아야 인가(印可)를 하는 것이다. 현중현을 용중현(用中玄)이라고도 한다.
*공견(空見) ; 공(空)에 집착하는 그릇된 견해.
*개중(個中) ; 여럿이 있는 그 가운데.
*경원시(敬遠視) ; 겉으로는 가까운 체하면서 실제로는 멀리하고 꺼림칙하게 여김.
*망상(妄想) ; 이치에 맞지 않는 허황된 생각을 함. 또는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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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정진(精進)2014.01.01 11:37

§ (게송) 법법본래무소주~ / 화두 의심이 되고 안되고 따지지 말고 중단없이 한결같이 해 나가면 순일무잡 타성일편이 되어, 의단을 타파해서 본래면목을 깨닫게 된다.

**송담스님(No.428) - 1990년 11월 첫째일요법회(66분)에서.

약 8분.


법법본래무소주(法法本來無所住)허니 어무소주절추심(於無所住絶追尋)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양오작야침서령(陽烏昨夜沈西嶺)터니 금일의연상효림(今日依然上曉林)이구나
나무~아미타불~

법법본래무소주(法法本來無所住)요. 법법(法法)은 모든 법, 법은 사회에서 말하는 형법, 민법, 병법, 그런 걸 다 법이라고 하지만

우리 불가(佛家)에서는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법이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이런걸 다 법이라 그러고 법보(法寶)라고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법이거든.

왜 두두물물이 법이냐 하면 두두물물이 전부 비로자나(毘盧遮那) 법신체(法身體)기 때문에 그런 거여. 그러면 그 법은 본래로 주(住)한 바가 없어. 주(住)한 바는 고정된 것이 아니여. 주착한 바가 없어. 인연 따라서 수시로 변하고 그렇지만.

어무소주절추심(於無所住絶追尋)이요. 주(住)한 바 없는 것을, 그것을 추심(追尋)을 하지 말아라. 머무른 바가 없는데 그것이 고정된 것인 줄 알고, 거기에 집착을 하고 그것을 계속 추구해 나갈라고 그러거든.

참법은 조금도 속인 바도 없고 누가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있는 것이고, 언제나 원만구족(圓滿具足)한 것이여.
나도 법이요, 너도 법이요, 부처님도 법이요, 모든 중생이 법이요, 삼라만상이 다 법이고 그 낱낱이 원래 원만구족하고 부족함이 없는 것이여.

이것은 사량분별(思量分別) 중생의 소견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고, 나름대로 이해됐다 하더라도 그것은 법의 한때의 그림자에 지내지 못한 것이지, 참법이 아니거든.

양오작야침서령(陽烏昨夜沈西嶺), 해는 어제 밤에 서산으로 넘어갔는데,
금일의연상효림(今日依然上曉林)이구나. 오늘 아침 새벽에 저 동산에 솟아오르는구나.

‘이뭣고?’
‘이뭣고?’는 무슨 특별한 제왕(帝王)의 길이 있는 것이 아니여.

‘이뭣고?’ 알 수 없는 의심,
되고 안되고 헌 것도 따지지 말어.

화두가 잘 들리면은 망상도 잘 안 일어나고, 혼침도 잘 안 오고, 몸이 괴롭지도 않고, 1시간이 금방 언제 지나간지도 모르고 지내가고 그리헌 것을 느낄 것입니다마는, 항상 그렇게 되기만을 생각하거든.

그런데 화두가 잘 안 들리고 자꾸 망상(妄想)이 일어나고, 자꾸 혼침(昏沈)이 나고, 시간이 30분이 그렇게 지루하고 10분이 그렇게 지루하고, 몸부림이 쳐지고 영 잘 안 된다. 골이 더럭더럭 하고 눈이 뻣뻣하고.

그러면 고민을 허거든. 아, 어째서 이렇게 공부가 잘 안 되는고.
그래 가지고 몸부림을 치고 고민을 하는데, 그러지 마셔.

공부를 허다 보면 혼침이 오기도 하고, 망상이 일어나기도 하고, 또 화두가 잘 안 들리기도 하고 그런 것인데, 잘 된다고 좋아할 것도 없고, 잘 안 된다고 그렇게 번뇌심을 내지 말어.

잘 되어도 좋아하는 마음 없이 화두를 턱 거각해서 관조해 나가고, 또 그렇게 혼침이 오고 잘 안 들리면 조용히 일어나서 포행(布行)을 좀 하거든.
일직선으로 코스를 정해놓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왔다갔다하면서 화두를 챙기면은 혼침도 달아나고 개운해지면 또 다시 와서 앉고,

이렇게 하면서 지혜롭게-잘 안 되고 그러헌 때를-잘 고비를 넘겨야 하거든.

그 고비를 못 넘기고 짜증을 내고 그래 가지고, 에잇! 이것 못 해먹을 것이라고 그만두고 중단하고 그런 것이 아니여.

글씨도 쓰다 보면 곧잘 되다가 영 안 될 때가 있는데, 그 안 되는 때에도 날마다 중단하지 않고 꾸준히 해 나가면 거기에서 필력(筆力)도 생기고 글씨가 숙달이 되는 것이여.

모든 것이 다 그래.

한참 되어 가다가 또 안 되고, 안 되지만은 꾸준히 밀고 나가면 또 다시 잘 되고 그런 것이여.

그러헌 고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도 중단하지 않고 한결같이 해 나갈 때에,
우리는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툭 터져서 의단(疑團)을 타파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게 되는 것이여.(58분46초~66분20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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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법법본래무소주~’ ; [신심명(信心銘)-벽의해(闢義解)]-중봉 명본선사(中峰 明本禪師) (명정 역주, 극락선원) p61 게송 참고. *(頻伽藏本)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十二之上 信心銘闢義解上 게송 참고.
*追(추)쫓다,구하다 *尋(심)찾다 *上(상)위,오르다 *曉(효)새벽
*양오(陽烏,暘烏 태양 양,까마귀 오) ; 태양(太陽)을 달리 이르는 말. 태양 속에 세 발 달린 까마귀가 살고 있다는 전설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비로자나(毘盧遮那)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으로, 부처의 진신(眞身)을 이르는 말. 비로자나는 법신을 형상화한 것.
*법신(法身) ; 절대적 지혜의 지고한 상태, 즉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빛깔이나 형상이 없다.
*원만구족(圓滿具足)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사량분별(思量分別) ; 생각하여 헤아려서 종류에 따라 나누어 가름.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이치에 맞지 않는 허황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런 생각.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필력(筆力 붓•글씨 필,힘 력) ; 글씨(筆)의 획에 드러난 힘(力).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한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의단(疑團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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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등46) 활구참선(活句參禪)이란? / 묘오(妙悟) 요궁심로절(要窮心路) / 활구참선은 참나를 깨닫게 하는 가장 묘한 / 공부는 올바르게 최선을 다해.


묘오(妙悟) 요궁심로절(要窮心路)이요. 묘한 깨달음은, 정말 참다운 ()다운 깨달음은 마음길(心路) 끊어져야 하는 것이다. 마음길을 어떻게 끊느냐? 일어나는 번뇌와 망상을 어떻게 하면 그것이 끊어지냐? 끊을랴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여.

이뭣고?’ 화두를 하는 사람은 앉아서나 서서나, 일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무슨 소리를 들을 때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이뭣고?’ 오직 앞도 없고 뒤도 없고, 다못 그렇게만 화두를 의심해 따름이여. 그렇게 가면 망상심(妄想心) 끊을랴고 하지 해도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다.

앞으로 부처님과 같은 대성현이 나오셔서 다시 어떠한 우리 중생들에게 맞는 새로운 법을 설하신다면 몰라도 현재까지는 이보다 우리의 중생의 번뇌 망상을 끊어서참나 깨닫게 하는 묘한 법은 없습니다. 활구참선이 아니고서는 세상없이 나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설사 바른 스승을 만나서 올바르게 공부하는 방법을 지도 받아 가지고 공부를 하되,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면 스스로 자기에게 매서운 채찍질을 가하면서 하루 하루를 그리고 시간 시간을, 아니 1 1초를 알뜰히 단속을 해야 것입니다.

망상(妄想)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이러한 말은 아직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는 거여. 일어나는 망상은 조금도 성화 필요가 없거든.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나는 화두만을 챙기면, 화두만을 들어버리면 그것이 가장 쉬웁게 번뇌와 망상을 처리하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세등선원No.46)—계해년 하안거해제 법어(1983.07.17)



약 17분.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활구참선이라 하는 말씀을 하셨는데, 활구참선(活句參禪) 무엇이냐? 참선이면 참선이지, 활구참선이란 대관절 무엇이냐?


화두를 어떠한 선지식(善知識)한테 받아 가지고 화두를 갖다가 참구(參究) 하되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고, 사량분별(思量分別) 따져 들어가고, 이리저리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교리라든지 지식이라든지, 상식이라든지 그런 것으로 이렇게 더듬어 들어가고, 알아 들어가고 그러면 그것이 바로 활구참선이 아닌 사구참선(死句參禪)이다.


알아 들어가는 참선 아무리 깊이깊이 파고 들어가서 알아 들어간다 하드라도, 그래 가지고 그럴싸한 결론에 도달했다 하드라도 마침내 중생심, 분별심, 번뇌(煩惱) 망상심(妄想心) 여의지 못했기 때문에, 번뇌 망상심이요 분별심은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생사심(生死心)이다. 생사심으로 어찌 생사심이 끊어질 것이냐.


미륵불(彌勒佛) 하생(下生) 때까지 찾아 들어가고, 따져 들어가고, 알아 들어간다 하드라도 그것은 종래 깨달음에는 이르지를 못하고 결국은 생사윤회(生死輪廻)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말이여.


묘오(妙悟) 요궁심로절(要窮心路)이요. 묘한 깨달음은, 정말 참다운 ()다운 깨달음은 마음길(心路) 끊어져야 하는 것이다. 마음길을 어떻게 끊느냐? 일어나는 번뇌와 망상을 어떻게 하면 그것이 끊어지냐? 끊을랴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여.


화두를 올바르게 참구를 하면—‘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 화두를 하는 사람은어째서 무라 했는고?’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화두를 하는 사람은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이무엇고? 화두를 하는 사람은 앉아서나 서서나, 일을 때나 밥을 먹을 때나, 무슨 소리를 들을 때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이무엇고?’ 오직 앞도 없고 뒤도 없고, 다못 그렇게만 화두를 의심해 따름이여. 그렇게 가면 망상심(妄想心) 끊을랴고 하지 해도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다 그말이여.(175)


앞으로 부처님과 같은 대성현이 나오셔서 다시 어떠한 우리 중생들에게 맞는 새로운 법을 설하신다면 몰라도 현재까지는 이보다 우리의 중생의 번뇌 망상을 끊어서참나 깨닫게 하는 묘한 법은 없습니다. 활구참선이 아니고서는 세상없이 나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믿는 믿을 있는 바른 깨달음을 이룬 선지식으로부터 화두를 받아 가지고 참선을 하되 처음에는 잘된 같지만, 얼마 보면 의심이 나고 답답하기만 하고 공부가 안되는 것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공부는 처음부터 그렇게 잘될 수도 없고, 갈수록 점점 잘되어 수도 없습니다.


선요(禪要) 보면 참선하는 상황을흘러내려 오는 강물을 거슬러서 배를 밀어 올린 에다가 비유를 하셨습니다. 물은 위에서 밑으로 흘러내려 오는데, 배를 갖다가 물줄기를 거슬러서 거꾸로 상류(上流) 향해서 계속 배를 밀어 올릴 얼마나 힘이 들것이냐 그말이여.

겨우 삿대쯤 밀어 올리면은 삿대쯤 흘러내려 가고, 삿대쯤 밀어 올리면 삿대쯤 흘러내려 가고, 흘러내려 오면 다시 거꾸로 밀어 올리고, 있는 힘을 다해서 밀어 올렸는데 다시 흘러내려서 밑으로 십배나 흘러내려 간다.


그렇게 해서 밀어 올리면 올린 만큼 몇배를 거꾸로 내려가고, 밀어 올리면 거꾸로 내려가고 가지고 배가 상류로 올라가기커녕은 결국은 배가 바다까지 떠내려갔다 그말이여.

바다까지 떠내려갔지만 그래도 쉬지 않고 계속 상류를 향해서 끌어올릴라고 있는 힘을 다하고, 몸과 목숨을 다해서 끌어올릴라고 때에, 더이상 힘을 쓸래야 없고 기량이 다해서 기진맥진해서 기절을 버릴 지경에 이르르면 확철대오(廓徹大悟) 한다 그랬어.(2052)


참선이라는 것이 누구나 제게 있는 것을 찾기 때문에 남녀노소(男女老少) 상관이 없고, 빈부귀천(貧富貴賤) 상관이 없고, 지식(知識) 있고 없는 것도 상관이 없고, 할랴고만 하면세수하다가 만지기 보다도 쉽다이렇게 고인(古人)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실지로 보면 이와같이 배를 물을 거슬러서 밀어 올릴라고 하는 만큼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 위해서는 몸과 목숨을 바쳐야 . 바쳐서 한번 죽었다 깨어나야만, 완전히 죽었다 깨어나야만 확철대오를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 선지식 고인 가운데에는 소시(少時) 그렇게 일찍 깨달은 분도 가끔 있고, 언하(言下) 대오(大悟) 분도 있지만, 그러한 분은 전생(前生) 몸과 목숨을 바치는 그러한 피나는 정진(精進) 있은 인연으로 금생에 일찍 깨달을 있었던 것입니다. 언젠가는 어느 생엔가는 목숨을 바치는 그러한 피나는 정진이 없고서는 일대사(一大事)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금생에 3, 10, 20, 30 내지 일생 동안을 그렇게 고행정진을 해도 마침내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대사를 해결하지 못하고 가는 수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렇다고 해서 일생 동안을 헛되이 보냈냐 하면 그것이 아니여.

올바른 방법으로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은 헛되이 일생을 보낸 것이 아니라, 숨을 마즈막 거둘 때에도 오직 화두 의단(疑團) 독로(獨露)해서 의단이 독로한 가운데 숨을 거둔다면, 사람은 숨을 거두자마자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 해서 다시 정법문중(正法門中)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젊어서 확철대오를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는 바른 스승을 만나서 올바르게 공부를 하되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깨닫고 깨닫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염려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것은바른 스승을 만났느냐, 만났느냐? 올바른 방법으로 공부를 했냐, 했느냐? 그리고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 다하고 있지 않느냐?’ 오직 이것은 항시 자기 자신을 돌이켜 봐야 것입니다.


설사 바른 스승을 만나서 올바르게 공부하는 방법을 지도 받아 가지고 공부를 하되,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면 스스로 자기에게 매서운 채찍질을 가하면서 하루 하루를 그리고 시간 시간을, 아니 1 1초를 알뜰히 단속을 해야 것입니다.(2534)


그렇게 해서 몸이 안정(安定) 되고, 몸이 안정이 되면 눈알이 안정이 되아야 하는 것입니다. 눈동자가 이리갔다 저리갔다, 눈껍데기가 깜박깜박 그러한 것은 눈이 안정이 되얐다 수가 없는 것이여.


눈이 따악 안정이 다음에야 비로소 마음이 안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이 되면 앉아서나 서서나, 밥을 먹을 때나, 옷을 입을 때나, 일을 때나 화두가 독로(獨露)해서, 화두를 들라고 해도 터억 의심이 독로하되,

순수무잡(純粹無雜)해서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도록, 오직 그렇게만 다잽이를 해가면 망상이 일어나는 것도 걱정 것이 없고, 일어나되 억지로 보낼라고 하지도 말고 누를라고 하지도 말고, 성화를 필요가 없어.


다만 화두(話頭)만을 거각(擧却) 버리면, 일어났던 망상은 저절로 자취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서 화두가 독로하되, 그래도 소리를 들으면 그것이 귀로 들어오고 눈으로 뭣을 보면 모양이 눈에 들어오지만, 거기에 내가 끄달리지만 하고 화두만 들어버리면 그런 소리나 모양은 나한테 장애를 주지 아니한 자취가 없어지기 때문에,

망상(妄想)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이러한 말은 아직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는 거여. 일어나는 망상은 조금도 성화 필요가 없거든.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고대로 놔둬 버리고 나는 화두만을 챙기면, 화두만을 들어버리면 그것이 가장 쉬웁게 번뇌와 망상을 처리하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요하고 편안하고 맑고 깨끗한 그러한 경계가 나면, 자칫하면 맑고 깨끗하고 고요하고 그런 데에 취해 가지고 화두를 놓쳐 버리는 수가 있는데, 그것은 대단히 주의를 해야 하는 것이여.


벌써! 고요하다, ! 깨끗하다너무너무 적적(寂寂)하고 성성(惺惺) 경계(境界) 취해 버리면 화두를 놓치게 되는데,

화두를 들면 행여나 맑고 깨끗하고 고요하고 묘한 경계가 흩어질까 두려워서 화두를 들지 아니하고 고요한 빠지게 되면 이것은 확철대오(廓徹大悟)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여.


아무리 고요하고 깨끗하고 그럴지라도 거기에서 화두(話頭) 떠억 챙겨야만 되는 것입니다.(1312~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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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煩惱) ; 나쁜 마음의 작용. 번요뇌란(煩擾惱亂) .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괴롭히는 정신작용.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성냄()•어리석음() 있다.

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망상(妄想 망령될 /생각 ) ; 이치에 맞지 않는 허황된() 생각() . 또는 그런 생각.

*생사심(生死心) ;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마음.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활구참선만이 생각의 기멸(起滅) 끊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날 있게 한다.

*미륵불(彌勒佛) ; Maitreya. 번역하여 자씨(慈氏).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출신으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 천인(天人) 위해 설법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세존의 교화에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석가모니세존의 업적을 돕는다는 뜻으로 보처(補悽) 미륵이라 한다.

*생사윤회(生死輪廻) ; 선악(善惡) 응보(應報)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고락(苦樂)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

*선요(禪要) ; 고봉원묘(高峰原妙) 법어로, 간화선(看話禪) 수행의 요의(要體) 적은 .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수할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수(純粹)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타성일편(打成一片) : 참선할 자타(自他)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경계.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

*성화(成火) ; ①일 따위가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고 속이 , 또는 그런 증세. ②몹시 귀찮게 구는 .

*성화를 대다 ; 자꾸 몹시 귀찮게 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망상(妄想 망령될 , 생각 ) ; 이치에 맞지 않는 허황된() 생각() . 또는 그런 생각.

*적적(寂寂) ; 고요하고 평온함.

*성성(惺惺) ; 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경계(境界) ;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 ③상태 ④범위,영역 

*확철대오(廓徹大悟 /통할 / /깨달을 ) ; 크게 통한 깨달음. 내가 나를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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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