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휴암주좌선문(休休庵主坐禪文) (3/4) 휴휴암주의 좌선문.


**전강선사(No.513)—몽산24-3. 휴휴암주좌선문(3) (갑인74.06.07)

 약 17분.

산승무외물(山僧無外物)이요  유유천년심(惟有千年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장천일성안(長天一聲雁)이요  서산낙일몰(西山落日沒)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본분산승(本分山僧)은 무외물(無外物)이다. 외물이 없어.

외물(外物) 무엇이 있어? 무슨 물건이 있어? 흉중무물(胸中無物)인디 가슴에 () 없는데 뭐가 있어?


세상 무슨 공명, 권리, 지위  그까짓 것은 산승(山僧)은 물론  아니지마는 가슴 가운데에도 뭐가 있어?  마음 가슴 가운데에도 무슨 ?

 모도  지견(知見) 상량(商量) 그런 일체 이치 번뇌까장도  거가서 붙들 못한 것인디, 내외(內外)  외물(外物) 없는  아니라 내무일물(內無一物)이지. 밖에도 아무 물건이 없고 안에도 아무 물건이 없다. 뭐가 있나? 생사가 없는데!


세상에 이러헌 정법, !  , 유유천년심(惟有千年心)이다. 오직 천년심뿐이다.

천년 마음, 천년심(千年心)이면은 천년뿐인가? 백억 천년도 거기  들어 있지.


오직 천년심이다.  무너짐이 없는 마음, 지위 권리가 없는 마음.

 부귀영화(富貴榮華)거그는 부귀영화도 없는 마음인디, 천하에 부귀영화다. 생사가 없으니  생사 없는 상락아정(常樂我淨) 백정낙(白淨樂)이 들어있다 그말이여.



중생, 중생 모도  나를 알지 못한  중생들은 죄만 짓기 마련이다. 나면 죄를  지어 ()이다. 그저 눈만 뜨면 죄업만 짓는 것이다.

 탐심·진심·치심 탐진치(貪瞋痴) 있어 가지고는 그저 죄업만 퍼짓는 것이 중생이다. 과거 그렇게 지어 나온 업(業)도 말로  수가 없는데 금생에  그렇게 자꾸 지어 모은다.


그런데 우리 본분산승들은 발심 출가를  가지고는 도를 닦아 나가는데 과거 죄업을 숙업(宿業)을 자꾸 참회(懺悔)한다.

무량 다생겁래에 지은 죄를 아침마다 이렇게 참회한다 그말이여. 예불(禮佛)이  예경참(禮敬懺)이거든. 예참(禮懺)이거든. 그게 참법(懺法)인데 예참법, 우리 지금 이렇게  나가는 예참법 이외에  있어?


다생겁래(多生劫來) 지은 죄업을 원멸(願滅) 사생육도법계(四生六途法界) 유정다겁(有情多劫)...’ 유정다겁생래(有情多劫生來)에  지은 죄업을  참회하지 않나 그말이여.


 금생에  어디 이렇게 도를 닦으니까 어디 짓는가? 우리가 무슨 살생, 도둑질, 사음질 무슨 어디 그런 것이 있는가?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등이 있는가? 탐심, 진심, 치심 그것이 어디 있어?  짓제.

! 이렇게 닦아 나가는 우리 본분학자(本分學者)여.  만행(萬幸)하고도 경행(慶幸)하도다. () 이상 (以上) 있을 수가 있나.


장천(長天)에는 일성안(一聲雁)이다.   하늘에는  소리 기러기다. 꾸울꿀~ 날라가는 기러기. ! 그놈의 기러기  소리여.

 기러기  소리가 말후일구(末後一句) 그말이여. 말후일구를 그걸 말을 한들  수가 있나?

말후일구는 알지를 못하지. 암만 해논다 한들 깨달라서 내가 ()하기 전에는.

그놈을 갖다 써놨어. 기러기 우는  갖다 그대로  놨어. 말후구(末後句)..


서산(西山)에는 낙일몰(落日沒)이다. 서산에는 ? 낙일몰이다,  떨어진 것이다.

거가 무슨  천만 도리, 천만 이치,  무슨 부유만덕(富有萬德) 탕무섬진(蕩無纖塵),   그런  등등 붙일 것이 없어.



어유차별경(於有差別境) 입무차별정(入無差別定) 위지좌(謂之坐).

좌선에 나가서,  모든 차별경에, 그저 세상 일체 차별(差別)의 경(境)에서  차별정(差別定) 드는 것을, 일체 차별 경계에서 차별정에 든다.    알아들을  있을까?


크면 큰놈, 적으면 적은 , 희면 희고, 검은  그저 내지 두두물물 화화촉촉 일체 경계  차별 가운데에서 차별 없는데 들어가는 ().  차별 중에서 차별이 없지. 차별 그놈을 여의고 떼고 차별 없는  아니여.

 놈은  놈대로 그대로가 본래 ?  () () 아니니,  () () 아니니 () 가히 () 있음이 없으며,  () () 아니니 () 가히 () 있음이 없으며.


! () () 아니지. 그러니  () 있는 유경(有境) 유경(有境) 아니니 거기에 무슨 차별이 있을 리가 있나?  무경계(無境界) 무경계(無境界) 아니니 거기에  무슨 () () 아니니 () 무슨 ? 뭣이 붙어 있나. 일체 경계가  그렇다 그말이여.


차별경계(差別境界)에서 차별경계 없는  들어가는 것을 그것을 () 한다. 참선 하는 ().

어무차별지(於無差別智) 시유차별지(示有差別智) 위지선(謂之禪)이다.

 일체 차별이 없는 데서 차별지(差別智) 보이는 것이 그것이 ()이다.



! 그러면은 가는 놈도 없고, 오는 놈도 없고,  일체 경계가  없어만 버릴  같으면은  () 가지고는 뭐가 있어? 생사(生死)가 없으면, 생사 없는 그것만 가지고는 뭐여?

거기서  인자 있다. 생사가 없다마는 그대로 생사가   있지. 일체 생사 경계에서 생사 경계가 그만 그대로 붙지 못혀.


 우리 참선 정법이라는 것은 『이건   있다,  없다, 역유(亦有) 역무(亦無). 또한 있지마는 또한 없다. 역무(亦無)지만 역유(亦有). 또한 없다마는  있다』 이렇게  경계다 그말이여.


합이언지(合而言之)   같으면은모도 합해서 말할  같으면은 치연작용(熾然作用)이다.


거기에 분별상 망념상, 일체  업상 번뇌상이 () 곳에서 있다.  깨닫지 못한 미한 곳에서 이놈 중생 작업 작용이  업(業)만 짓는 작업 작용뿐이다. 생사 업장(業障)뿐이여. 합해서 말할  같으면.


그놈이 본래 없고, 없는 () 없지마는 유상(有相)까지도, 있는 놈까장도 없다.

하지마는 그대로가 두두물물(頭頭物物) 총가옹(總家翁)이요, 두두물물이  그저 생사 없는  도리가 바로 비유(非有) 비법상(非法相)  도리다. () 아니요 () 아니요 법상(法相) 아닌  도리여.

오직 깨달라서 () 버리면은  도리가 그대로가 그만 우리 본분학자의 근본도리여. 


어디 여의고 있나, 어디 떼고 있나, 우리 부처님께서 그렇게 다겁을 닦아서 신통 변화가 낭연무진(朗然無盡)해서 낭발무애(朗發無碍)해서 말로  수가 없지마는 평생에  신통변화  일이 없어. 변화  일이 없어.


허다가     없어 중생교화  때에는  한번  병을 앞에 놓고 끌어 보아라.” 그런 짓은 부처님이  놓고도 그건 아무 것도 아닌 짓이라는 것이여.

그까짓 짓이 무슨 짓이여?  하나 그거 손가락만한  하나 앞에 놓고,  군중이 몇억 군중이  들어와서 쇠줄을 걸어놓고 댕겨도 꼼짝 요동  했다 그말이여.


그것은 그대로 누진통(漏盡通) () 번질  같으면은 그만 부동 경계에 앉어서는 티끌 하나도 () 않는 도리가 있다 그말이여.

그놈을  무슨 신통에다가 붙일 것이 아니라 그만 무애지경(無碍之境)에다가 붙여 보란 말이여. 걸림 없는  증처(證處)에다 붙여 놓을  같으면  들어맞어. 


정체(正體) 여여(如如)하야,  깨달라 정한 곳이 여여(如如)해서. 여여라는 것은 그건  말을 쎄(혀)를 내룰  없어.

정체(正體)가 여여(如如)해서 종횡득묘(縱橫得妙). 종횡득묘를 . ()으로나 무슨  ()로나, 울로나 아래로나  () 얻어 버렸어. 생사죄가 그대로 없어. 어디가 있나?


이러헌 우리 참선법. 종횡묘득을 해서 사사무애(事事無碍), 일일이 걸림이 없다. 이것이 (). 참말로 ().


 앉은 것이 좌착(坐着)? 가만히만 앉었으면 되아?  앉었는   무엇이여?

참으로 ()라는 것은, 좌선 뜻이 이렇다. 이게 좌선이니라. 앉어서 ()하는 것이 이렇다 그말이여.


약언여시(略言如是)커니와간략히 말할  같으면은 이와 같거니와, 상거(詳擧), 자세히 말을 들어서 하자면은 비지묵(非紙墨)으로 능궁(能窮)이니라. 종이와 먹으로써 다할 수가 없다. 아무리 써서 별걸  해도 다할 수가 없어.



우리는 이러헌 좌선을 해야지. 능묘좌선(能妙坐禪), 능증좌선(能證坐禪) 능히 () 얻고, 능히 ()허는  좌선을 해서 생사해탈을 어서 그대로 ()해야지.

()허지 못허고 견성만  가지고도그거 견성해 가지고는 보림(保任) 못해 놓면, () 못해 놓면 도로 잃어버려. 보배를 얻었다가 잃어버리면은 다시 찾지 못혀.


그건 어떻게  본래 얻지 못헌 보배는 어쩌다가  이렇게 가다오다 뜻밖에 얻을 수는 있지만, 얻은 놈의 보배를 한번 잃어버린 뒤에는 다시  찾는다.

견성을 아무리 했다 하지만 () 못할  같으면은, 도로 그만 오후재미(悟後再迷) 되어 버리면은오후(悟後) () 버릴  같으면은  후회다.  후회고.


이러헌 법이 있는 줄을 바로 알아 가지고 믿기만  놔도 거기는  무진(無盡) 보배 마니주(摩尼珠) 묻혀 있는 줄을  알고 판다. 파면은 틀림없이 거기에서 무진 보배 마니보주(摩尼寶珠) 나온다.


우리가 인자 이러한 법을 알았으니, 『내가  찾는 법』을 알았으니, 알고야   수가 있나?    없다 이말이여.

 다행하고 만행하다. 어쩌다가  법을 우리는 발견해서, 부처님께서 알려 주어서 우리는 이만큼 믿어 행해 나가니,  알뜰히 알뜰히 인자 조심조심 인자 물러가지 말아야 한다. 퇴전(退轉)하지 말아라.


내일 아침 법문에는 인자  나가대정(那伽大定) 법문을 하겠어.(처음~1645)()



[참고] 위에 하신 법문에 해당하는 ‘휴휴암주좌선문’의 원문(原文).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91~92

於有差別境(어유차별경)에  入無差別定(입무차별정)이  謂之坐(위지좌)요  於無差別法(어무차별법)에  示有差別智(시유차별지)가  謂之禪(위지선)이라


차별(差別) 있는 경계에서 차별 없는 () 들어가는 것이 좌(坐)요。 차별 없는 법에서 차별 있는 지혜를 보이는 것이 선(禪)이라.


合而言之(합이언지)컨댄  熾然作用(치연작용)호대  正體如如(정체여여)하야  縱橫得妙(종횡득묘)하야  事事無礙(사사무애)  謂之坐禪(위지좌선)이니라  略言如是(약언여시)커니와  舉(상거)홀진댄  非紙墨能窮(비지묵능궁)이니라


합해서 이를진댄 치연(熾然) 작용하되 정체(正體) 여여(如如)하야 종횡에 묘를 얻어서 일일에 걸림이 없음을 좌선(坐禪)이라 하느니라。 간략히 이르건댄 이렇거니와, 자세히 이를진댄 종이와 먹으로 능히  이르지 못하리라.



---------------------


*(게송) 山僧無外物  惟有千年心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 ‘寄蓬萊子()’ 게송 참고.

*(게송) 長天一聲雁  西山落日沒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 ‘秋江別友 게송 참고.

*본분산승(本分山僧) ; 본색납자(本色衲子), 본분납승(本分衲僧) 같은 말。 새로 닦을  없이 본래 부처라고 하는 도리를 깨달아서 그러한 입장을 견지(堅持)하는 납승. 또는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도리를 깨닫기 위한 수행을 하는 스님.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

*상량(商量 헤아릴 , 헤아릴 ) ; 상인이 물품을 판매할 , 서로  가치를 재서 결정하는 . 변하여  헤아려 생각함.

*부귀영화(富貴榮華) ; 많은 재산과 높은 지위로 누릴  있는 영광스럽고 호화로운 생활.

*상락아정(常樂我淨 항상 /즐거울 / /청정할 ) :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열반(깨달음) 네 가지 ().

열반경(涅槃經) 의하면, 열반의 경지는 생멸 변천함이 없으므로 ()이고, 생사의 고통을 여의어 무위(無爲) 안락하므로 ()이고, 망집(妄執) () 여의고 대자재(大自在) 있는 진아(眞我)이므로 ()이고, 번뇌의 더러움을여의어 담연청정(湛然清淨)하므로 ()이다.

*백정낙(白淨樂) ; 영원하고 한결같은 진여(眞如) (). 열반(깨달음) ().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참회(懺悔 뉘우칠 , 뉘우칠 )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부끄러워할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차례에 걸쳐 ·보살(·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예참(禮懺) ; 예경참(禮敬懺). 부처님이나 보살에게 예배하고 죄를 참회함.

*다겁생래(多劫生來) ; 매우 오랜 세월동안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망어(妄語) ; 거짓말이나 헛된 .

*기어(綺語) ;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

*양설(兩舌) ; 이간질하는 .

*악구(惡口) ; 남을 괴롭히는 나쁜 . .

*본분학자(本分學者)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도리를 깨닫기 위한 수행을 하는 학자.

*만행(萬幸)하다 ; 아주 다행(多幸)하다.

*경행(慶幸) ; 경사스럽고 다행(多幸)한 일.

*말후구(末後句) ; ①말후(末後) 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 . () 언구(言句), 어구(語句), 문구(文句) . 크게 깨달아 구경에 이르러서 하는 . 지극한 글귀. 말후일구(末後一句).

②문장의  끝의 . ③임종의 

*부유만덕(富有萬德) 탕무섬진(蕩無纖塵) ; 청량국사(淸涼國師) 징관(澄觀)이 저술한 『대방광불화엄경소(大方廣佛華嚴經疏)』의 서문(왕복서 往復序)에 나오는 구절.

[참고] 故我世尊이  十身初滿에  正覺始成하야  乘願行以彌綸하시고  渾虛空爲體性하시니  富有萬德이요  蕩無纖塵이로다

그러므로 우리 세존(世尊)께서 십신(十身)이 만족해지자 정각(正覺)을 이루시고, 서원(誓願)과 수행(修行)에 의지하여 법계를 두루 감싸며, 허공과 합하여 체성(體性)을 삼으시니, 부유함에는 만덕(萬德, 無盡之德)을 가지셨고, 텅 비어서 가는 티끌(일체 번뇌, 사량분별)도 없도다.

*두두물물(頭頭物物) ; 온갖 사물과 현상.

*가옹(家翁) ; 집안의 주인(主人). 주인공. 진리.

*() ; 깨달은 바를 다시 한번 점검하여 확인하는 .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①신족통(神足通) ②천안통(天眼通) ③천이통(天耳通) ④타심통(他心通) ⑤숙명통(宿命通) ⑥누진통(漏盡通)- 있는데,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 닦는 외도(外道)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 읽어도   있다. 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 보호임지(保護任持)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보호하여 지킨다 뜻이다.

*오후보림(悟後保任), 장양성태(長養聖胎).

[참고]보조국사 지눌(1158~1210) <수심결修心訣>에서.

頓悟者  凡夫迷時  四大爲身  妄想爲心  不知自性是眞法身  不知自己靈知是眞佛也  心外覓佛  波波浪走  忽被善知識  指示入路  一念廻光  見自本性  而此性地  原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頓悟也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 범부(凡夫) 미혹했을  사대(四大) 몸이라 하고 망상(妄想)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自性)  법신(法身)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靈知) ()부처인  알지 못하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따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홀연히 선지식(善知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생각 돌이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성품(性品)자리에는 원래(原來) 번뇌(煩惱) 없고, 무루(無漏) 지혜 성품이 본래(本來) 스스로 구족(具足)하여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으니 그러므로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라고 한다.


漸修者  雖悟本性 與佛無殊  無始習氣  卒難頓除故  依悟而修  漸熏功成  長養聖胎  久久成聖   云漸修也 比如孩子初生之日  諸根具足  與他無異    其力未充  頗經歲月  方始成人


점수(漸修, 차츰 닦음), 비록 본래 성품(本性)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혀온 습기(習氣) 갑자기 모두 없애기는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 점차로 익혀 () 이루어 성인(聖人) () 길러 양성하면, 오랜 동안을 지나 성인(聖人) 이루게 되므로, 점수(漸修, 점차로 닦음)라고 한다.

비유(比喩)하면,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모든 기관(諸根) 갖추어 있음은 남과 다르지 않지만,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므로 제법 세월(歲月)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른(成人) 되는 것과 같다.

*무진(無盡) ; 다함이 없을 만큼 매우.

*마니주(摩尼珠) ; 마니(摩尼)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ṇi 의 음사(音寫). 주(珠), 보주(寶珠)라고 번역. 보배 구슬을 통틀어 일컬음.

*퇴전(退轉) ; 불교를 믿는 마음을 다른 데로 옮겨 처음보다  밑으로 전락(轉落).

*나가대정(那伽大定) : 나가는  또는 코끼리。 물에서는 용이 제일 힘이 세고 육지에서는 코끼리가 제일 힘이 세기 때문에 부처와 아라한을 나가(那伽) 한다.

나가대정은 대용왕의 대정(大定)이라는 뜻으로 대용왕이 깊은 못에서 장수를 안보(安保)하여 미륵불이 출세함을 만날 원력으로 정에 들어 있는 것。 여기서는 행주좌와(行住坐臥) 관계 없이 깊은 정에 들어 있는 것을 나가대정이라 한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