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동지차례)2015.12.16 06:18

§(224) (게송)외응중연수처적~ / 송광사 구산(九山) 방장 스님 열반 /무상한 허망한 경계 속에서 영원한 진리를 깨달라야 / (게송)도본무언상적멸~.


지혜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절서와 기후, 춘하추동의 변동에 따라서그것은 바로 유위법(有爲法) 세계의 양상이지마는, 생로병사(生老病死) 성주괴공(成住壞空) 그러한 허망한 경계 속에서 영원한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진리의 양상(樣相) 보고도 분별(分別) 망상(妄想) 일으켜서 생사윤회(生死輪廻) 수레바퀴 속에 말려들어 가는 것이고.

동지를 맞이해서 구산 방장 스님의 열반이 결정적으로 우리 중생들을 위해서참으로 무상한 줄을 깨닫고,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하라하는 살아 있는 법문으로 우리는 열반을 받아들여야 것이고, 동지, 기후의 변동을 통해서 우리의 무상한 생사 무대에서, 무상한 생사 속에서 영원을 깨달으라.

**송담스님(No.224)—83 동지법회(83.12.22)


(1) 약 19분.  (2) 약 7분.


(1)------------------


외응중연수처적(外應衆緣隨處寂)하고  내명일적응무휴(內冥一寂應無虧)니라

나무~아미타불~

토리회회여해대(肚裏恢恢如海大)하고  일임천차유여무(一任千差有與無)니라

나무~아미타불~


외응중연수처적(外應衆緣隨處寂)하고, 밖으로는 모든 인연을 ()허되 응하는 그곳을 따라서 적적(寂寂)하고,

내명일적응무휴(內冥一寂應無虧)로구나. 안으로는 적적한 데에 계합해 가지고 뻑뻑이 이지러짐이 없더라.


토리회회여해대(肚裏恢恢如海大)하고, 뱃속은 넓고 넓어서 바다와 같이 크고 큰데,

일임천차유여무(一任千差有與無)로구나. 가지, 가지 모든 있고 없는 차별에 일임(一任) 버리더라.


12 16일날 전라도 송광사 구산(九山) 방장(方丈) 큰스님께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큰스님 분상에는 오고가는 것이 없으시겠지만, 우리 종단이나 우리 국가나 인류를 위해서는 손실이라 아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오늘날처럼 세계가 나날이 위태로운 곳을 향해서 치닫고 있고, 우리 종단도 계속해서 분규가 가라앉지 않고 있는 이때에 그런 큰스님이 계셔야만 육신으로라도 계셔야만, 우리 종단의 쓰러지는 것을 받쳐 주시고, 길을 잃고 헤매는 중생들의 앞길을 비추어 주시고 이끌어 주실 텐데,

아직도 년이나 이십 년을 살으셔야 하고, 살아 계실 있는 그러한 대종사(大宗師) 갑자기 이렇게 사바세계를 하직을 하셨습니다.


삼천 전에 부처님께서도보통 사람의 정명(正命) 살이고, 부처님은 모든 과덕(果德) 구족(具足)하셔서 120세까지는 사실 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말세(末世) 중생이 박복(薄福)해서, 닦는 데에 부족함이 없게 하기 위해서 당신이 수용하실 복을 물려주시기 위해서 미리 열반에 드셨다이렇게 말도 하지마는,


그것보다는 중생들이부처님은 언제라도 우리가 친견할 수가 있고 법문을 들을 수가 있다부처님이 출세(出世)하셔서 살아계신 것을 그렇게 생각을 하고 하루하루를 무섭게 정진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열반에 드심으로 해서 무상을 철저하게 깨닫게 하고,

여래(如來) 그렇게 아무나, 아무데서라도 친견을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하는 경책(警策) 주시기 위해서 돌아가셨다, 열반을 보이셨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구산 대종사의 열반도 또한 그와 같아서아무때라도 친견할 있고, 아무때라도 법문을 들을 수가 있다이렇게 생각하고 무상(無常) 신속(迅速) 망각하고 오늘도 이럭저럭, 내일도 이럭저럭, 허송세월하고 있는 어리석은 우리 중생들을 위해서 발심할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열반을 보이셨는지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미 생사 문제를 요달(了達) 분상(分上)에는 생사를 두려워 것도 없고, 오고가는 것에 얽매일 것이 없겠지만, 생사 문제를 요달하지 못한 분상에는 정말 생사는 두려운 것이며, 무상한 몸뚱이는 믿을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계해년(癸亥年) 동짓날입니다. 동짓날은 중에 밤이 제일 날이고, 낮의 시간이 제일 짧은 날입니다. 기상대 발표에 의하면 금년 동지는 밤의 길이가 낮의 길이 보다 4시간 52분이 길다고 그랬습니다.


옛날부터 동지에는 속가에서도 팥죽을 쒀서 조상 사당(祠堂) 올리고 차례를 젓수고, 중국의 총림 선원에서도 동짓날에는 도량신(道場神) 선망부모(先亡父母) 선사(先師)들의 영단(靈壇) 목욕재계하고 () 올려왔습니다.

금년에 우리 용화선원에서도 이렇게 많은 사부대중이 모인 가운데에 법요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마는, 밤과 낮의 길이가 여름 하짓날에는 낮이 제일 길고 밤이 제일 짧은데, 동지에는 그와 반대로 밤이 제일 길고, 낮이 제일 짧은 날인 것입니다.


춘분과 추분은 길이와 길이가 똑같은 날입니다. 춘분에는 밤낮의 길이가 똑같은데 하루에 분씩 차츰차츰 낮의 시간이 분씩 길어져. 그래가지고 추분이 돌아오면 똑같아졌다가 다시 밤과 낮의 길이가 반대로 분씩 차이가 나다가, 오늘 동지에는 밤이 제일 길고 낮이 제일 짧은 날입니다.

하루에 분씩 길어지다가 더이상 길어지지 못하면 다시 다음부터서는 반대로 분씩이 줄어져 가는 것입니다.


밤과 낮의 길이가 짧아졌다가 길어졌다가 하는 것이 음양(陰陽) 이치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가 있느냐?


추위와 더위도 덥다 덥다 못해서 더이상 더울 수가 없으면 다음부터서는 차츰차츰 서늘해지고, 그래 가지고 차츰차츰 추워지기 시작해 가지고 더이상 추워질 수가 없으면 다시 차츰차츰 따뜻해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춘하추동의 절서(節序) 양상이고,

우리 인생에 있어서도 가난한 사람이 노력을 가지고 차츰차츰 부자가 되어서 더이상 부자가 없을 만큼자기 분상에 부자가 만큼 되면 다시 가난해집니다. 가난해져 가지고 더이상 가난해질 없을 만큼 가난해지면 그때부터서는 차츰차츰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년의 절서와 기후 변동을 통해서 인생 문제를, 인생에 있어서의 지혜를 얻을 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난해졌다고 해서 낙망(落望) 필요도 없고, 부자가 되었다고 해서 교만을 필요도 없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가난하되 기가 죽지 아니하고, 부자로되 교만하지 아니한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사업이 여의치 못해서 실패하고 가난해지면 한탄에 사무쳐서 견디고 실망에 빠져서 자기의 바를 찾지를 못하고,

재수가 있어서 돈을 벌고 남부럽지 않게 살면 오만불손(傲慢不遜)하고 안하무인(眼下無人) 되고, 거만에 빠져서 남을 업신여기고, 이건 어리석은 사람의 취할 바인 것입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절서와 기후, 춘하추동의 변동에 따라서그것은 바로 유위법(有爲法) 세계의 양상이지마는, 생로병사(生老病死) 성주괴공(成住壞空) 그러한 허망한 경계 속에서 영원한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진리의 양상(樣相) 보고도 분별(分別) 망상(妄想) 일으켜서 생사윤회(生死輪廻) 수레바퀴 속에 말려들어 가는 것이고.


오늘 동짓날을 맞이해서 오늘이 밤이 제일 길고 낮이 제일 짧지마는, 내일부터서는 분씩 다시 낮의 길이가 길어지고 밤의 길이가 짧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밖으로 모든 인연을 응하되 곳을 따라서 적적하다(外應衆緣隨處寂). 안으로 적적한 데에 명합(冥合) 되되, 뻑뻑이 이지러진 바가 없는 것이다(內冥一寂應無虧). 모자란 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밤이 길거나 낮이 길거나, 부자가 되거나 가난하거나, 일체처 일체시에 마음속은 넓고 넓어서 바다와 같이 크고(肚裏恢恢如海大), 인간 세상에 생로병사와 희로애락과 성주괴공의 천차만별의 양상 속에 일임해 버리되, 바가 없는 것입니다(一任千差有與無).(처음~1829)



(2)------------------


도본무언상적멸(道本無言常寂滅)한데  호호선양비본심(浩浩宣揚非本心)이라

나무~아미타불~

약지황엽경비전(若知黃葉竟非錢)하면  하용애애측이문(何用獃獃側耳聞)이리오

나무~아미타불~


도본무언상적멸(道本無言常寂滅)이여. ()라고 하는 것은 본래 말이 없어. 항상 적멸(寂滅) 뿐이다 그말이여.

호호선양비본심(浩浩宣揚非本心)이여.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49 동안을 팔만 법문(八萬法門) 설하셨지마는 그것은 본심이 아니여.

설할 것이 있어서 설한 것이 아니여. 그러나 자비로써중생이 () 받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가련해서, 자비로써 설할 없는 곳을 향해서 많은 법을 설하신 것이다.


약지황엽(若知黃葉) 경비전(竟非錢)이면, 부처님께서 설하신 팔만사천 방편 법문이 어린애의 울음을 달래기 위해서 노랗게 물든 단풍잎을 집어 주면서, 여기 있다! 여기 있다!’하고, 그렇게 황엽(黃葉)이라고 하는 것이 돈이 아닌 줄을 알아버린다면,

하용애애측이문(何用獃獃側耳聞)이냐. 어찌 멍청하게 귀를 기울이고 들을 것이 있겠느냐.


동지를 맞이해서 구산 방장 스님의 열반이 결정적으로 우리 중생들을 위해서참으로 무상한 줄을 깨닫고,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하라하는 살아 있는 법문으로 우리는 열반을 받아들여야 것이고,

동지, 낮과 밤이 제일 길고 짧은 기후의 변동을 통해서 우리의 생사 무대, 무상한 생사 무대에서, 무상한 생사 속에서 영원을 깨달으라.


지혜스럽게 관찰하면 일월성진과 산천초목과 생로병사와 성주괴공 속에서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듣거나 언제 어디서라도 위없는 대해탈 법문을 우리는 보고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정태진 영가를 위해서 어느 불자가 대중공양을 올리니, 공양을 드시고 영가의 해탈이 되도록 작관(作觀) 잘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이어서 동지, 우리의 선망부모의 차례 법요식이 계속이 되겠습니다.(5219~5851)()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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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외응중연수처적~’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게송 참고.

*일임(一任) ; 모두 맡김.

*방장(方丈) ; ①선원(禪院) 운영을 주관하는 최고 책임자 스님, 또는 그가 거처하는 .

②선원(禪院강원(講院율원(律院) 모두 갖추고 있는 총림(叢林) 가장 높은 스님.

*종사(宗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조사선법(祖師禪法)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조사(祖師) 같다.

*정명(正命) ; 타고난 수명.

*과덕(果德 나무의 열매·해낼 /좋은 품격·공덕 ) ; 수행의 결과로 얻어지는 공덕.

*구족(具足 갖출 /충족할 ) ; 빠짐없이 두루 갖춤.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 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박복(薄福 엷을·적을 / ) ; 복이 별로 없음. 또는 팔자(八字, 사람의 타고난 운수나 분수) 사나움.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②태어나는 .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③세간을 초월하는 . 출세간(出世間) 준말. 삼계(三界) 나오는 .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의 하나。 범어 Tathagata () () 진여(眞如) 뜻이니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 뜻。  여거여래(如去如來)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경책(警策 깨우칠 , 채찍 ) ; 타이르고 채찍질하여 깨우치게 하는 .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통달할 )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분상(分上 분수 , )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젓수다 ; ①궁중에서잡수다 이르던 . 잡수다-->‘먹다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 (사람이 제사를)차려 올리다.

*도량신(道場神) : 도량(道場) 수호신.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사람의 선망부모가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 수천만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부모가 바로 사람의 부모고, 사람의 부모가 부모여서,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소중히 여기게 되고,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 하는 것입니다.

*선사(先師) ; 돌아가신 스승.

*영단(靈壇) ; 영가의 위패를 두는 ().

*( 재계할 ) ; ‘()’ 본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 3(身口意 三業) 깨끗하게 하여 악업(惡業) 짓지 않아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방식을 의미하였다가, 점차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리며 공덕을 함께하기를 기원하는 불교의식을 일컫는 말로 정착되었다.

또한 법회 스님이나 속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근래에는 특히 돌아가신 영가를 위한 천도재(薦度齋) 널리 행해짐에 따라 보통=천도재 여긴다.

*절서(節序 마디··절기 /차례 ) ; 절기(節氣,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기후의 표준점.15 내지 16일에 번씩 돌아온다) 차례. 또는 차례로 바뀌는 절기.

*낙망(落望) ; 희망을 잃음.

*오만불손(傲慢不遜 거만할 /거만할 /아니 /겸손할 ) ;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고 공손하지 못함.

*유위법(有爲法) ; ①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②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양상(樣相 모양·형태·상태 /서로·모양·바탕 ) ; 사물이나 현상의 모양이나 상태.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망상(妄想 망녕될 /생각 )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 생각() , 또는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생사윤회(生死輪廻 /죽을 /바퀴 /빙빙돌 )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 죽고()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 돌듯이()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명합(冥合 어두울·깊숙할·그윽할 /합할·들어맞을·일치함 ) ; 계합(契合).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들어맞음.



------------------(2)


*(게송) 도본무언상적멸~’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비설소설분(非說所說分), 함허득통 설의(說誼) 게송 참고.

*적멸(寂滅 고요할 /다할·끊어질 ) ; ①번뇌의 불을 완전히 꺼버린탐욕() 노여움() 어리석음() 소멸된마음의 궁극적인 고요함. 적정(寂靜)으로 돌아가 일체의 () 여의고 있는 . ②열반. 부처님의 경지. 깨달음.

*팔만(八萬) ; 팔만사천(八萬四千).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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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법회(동지차례)2015.12.12 11:27

§(026) 동짓날 법회를 하는 이유? / 일체(一切) 유심조(唯心造) / 참선을 해야만 무주상 보시를 수가 있고, 무루복을 닦을 수가 있다.


동지가 돌아오건, 입춘이 돌아오건 그것이 무슨 참선해 나가는데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마는, 그러한 우주의 질서, 천지자연의 섭리를 보고서, 그것을 보고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옛날부터서 그러한 계절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법회(法會) 거행해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주의 변화, 대자연의 섭리 이런 것들이 전부가 뭐라고 표현할 없는 물건 발현인 것입니다.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이 우리의 앞에나, 뒤에나, 머리 위에나, 다리 밑에나, 거울이 거울이, 무한대로 거울이 있는데, 거울에 보인 것이 자기의 얼굴이 보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이, 자기의 모습이 거울에 비추어서 반사되어서 자기에게 돌아온 것이다.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얼마 가면은 타락할 있는 복이다. ‘없을 ()’, ‘ ()’, 무루복은샘이 없는 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지은 복이 영원히 타락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무주상 보시를 수가 있고, 어떻게 해야 무루복을 닦을 있느냐? 거기에 가서 참선을 해야만 무주상 보시를 수가 있고, 무루복을 닦을 수가 있다 말씀입니다.

**송담스님(No.026)—76 동지법문 (76.12.22)


약 15분.


이쪽을 요리 두르고 앉아서 얼굴을 보시고 들으십시오.

오늘은 병진년 11 초이튿날 동짓날입니다. 오늘 동지(冬至) 오전 2 35 동지 () 그렇게 됐지마는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는 시간을 상관하지 아니하고 사시(巳時) 이렇게 법회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동지는 무슨 날인고 하면은 낮의 시간이 제일 짧고 그리고 시간이 제일 날입니다. 그러면 밤이 제일 짧고 낮이 날은 언제냐 하면 하짓날(夏至날)입니다.

하짓날은 낮이 제일 길고서 밤이 짧다가 차츰차츰 하루에 1분씩 낮이 길었던 날이 1분씩, 1분씩 짧아져 가지고, 추분(秋分) 돌아오면은 밤과 낮의 길이 똑같아졌다가 그것이 차츰차츰 반대로 1분씩 짧아져 가지고는 동지가 되면은 하지의 정반대로 낮이 제일 짧고, 밤이 제일 길어집니다.


동지가 지내면서부터 1분씩, 1분씩 낮이 길어지기 시작해 가지고, 이듬해 춘분(春分) 돌아오면은 같아집니다. 밤과 낮이 똑같아졌다가 춘분 이후로 1분씩, 1분씩 길어져 가지고 하지가 되면 제일 길어지고, 이렇게 해서 년을 통해서 그렇게 길어졌다, 같았다, 짧아져 이렇게 됩니다.


지구가 해를 년을 걸려서 자신이 하루에 바퀴씩 돌면서 태양을 바퀴 도는, 일년 걸려서 돌아가지고 다시 제자리에 돌아옴에 따라서 이렇게 낮과 밤의 시간이 차이가 있게 됩니다.


그런데 어째서 동짓날 이렇게 법회를 갖게 되느냐? 다른 절에서는 동짓날 () 새벽에 들었으면 새벽에 팥죽을 쑤어서 올리고 축원(祝願) 하고, 밤에 들었으면 밤에 팥죽을 쑤어서 올리고 축원을 하고 이러느냐?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우주의 모든 질서가 음양(陰陽)으로 노나서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래는 그것이 음양이 없는 것이지마는일단 그것이 본래는 음도 없고 양도 없는 , 뭐라고 표현할 없는 것이지마는,

그것이 아무 바람도 없고, 아무 움직임이 없을 때는 물결이 일다가, 그것이 물결이 일어났다 하면은 물결, 버큼 하나 일어남으로 해서 조용했던 넓은 호수에 파도가 좌악 일기 시작한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물결 일어남으로 해서 일만 물결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본래는 음양도 없지마는 없는 자리에서 음양이 벌어지고, 음양이 팔괘(八卦), 팔괘에서 24, 24괘에서 360도로 이렇게 해서 세계가 벌어지고, 가운데 생로병사(生老病死) 성주괴공(成住壞空) 생주이멸(生住異滅) 벌어져 가지고, 그것을 가리켜서 윤회(輪廻), 결국은 윤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윤회의 물결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자가 가난해졌다가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었다. 부자가 되면 영원히 부자가 것이 아니라, 얼마 동안 가다가 가난해지고 이렇습니다. 한번 부자가 되면 영원히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지마는 시절인연(時節因緣) 도래(到來)하면은 차츰차츰 차츰 가난해지게 됩니다.

가난해져 가지고 영원히 가난하게 살면은 큰일날 텐데 가난한 사람이 차츰차츰 일어나기 시작하면은 국중(國中) 거부(巨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대(當代) 일생 동안 부귀를 누리기도 하고 , 가기도 하고, 대를 가기도 하고, 당신 일대에도 채우지 못하고 금방 말년에 고생을 하는 사람도 있고, 가지 각가지인데,

년에 24계절이 돌아가는 , 그것을 보고서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무상하다 하는 것을 우리는 깨달라야만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지가 돌아오건, 입춘이 돌아오건 그것이 무슨 참선해 나가는데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마는, 그러한 우주의 질서, 천지자연의 섭리를 보고서, 그것을 보고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옛날부터서 그러한 계절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법회(法會) 거행해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주의 변화, 대자연의 섭리 이런 것들이 전부가 뭐라고 표현할 없는 물건 발현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물건이라고도 없는 진여자성(眞如自性) 자리에서 파도가 일어나 가지고 가지가 뻗고, 잎이 피고 하는 것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자기 마음이 바르고, 자기 마음이 편안하고, 자기 마음이 기쁘고 행복한 사람은 하늘을 봐도 희망에 넘치고, 꽃이 피는 것을 보고도 희망에 넘치고, 가을에 단풍이 지는 것을 보고도 조금도 슬퍼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이 고독하고, 자기 마음이 의지할 곳이 없고, 자기 마음이 서글픈 사람은 , 밝고 뚜렷한 가을의 고운 달을 보고도 눈물이 주루루 한숨이 쉬어지고, 곱게 곱게 꽃을 보고도 한숨을 쉬게 되고, 어떠한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도 하나도 아름다운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느냐? 자기 마음과 우주 법계에 삼라만상과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허공이라고 하는 커다란 거울이 있는데, 거울에 자기의 마음이 보인 것이 바로 우리의 눈으로 있는 것들이요, 귀로 들을 있는 것들이요, 코로 맡을 있는 것들이요, 입으로 맛볼 있는 것들이요, 몸뚱이로 촉감으로 감각할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화엄경(華嚴經) 제일게(第一偈)일체(一切) 유심조(唯心造)’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일체(一切) 말은모든 이라 말이예요.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든 것이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마음으로 되았다』 말이예요.

마음으로 되었다 말이 바로 아까 말씀드린자기의 마음이 밖으로 나타나 가지고, 그것이 다시 자기에게 비추어 것이다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이 우리의 앞에나, 뒤에나, 머리 위에나, 다리 밑에나, 거울이 거울이, 무한대로 거울이 있는데, 거울에 보인 것이 자기의 얼굴이 보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이, 자기의 모습이 거울에 비추어서 반사되어서 자기에게 돌아온 것이다.


이것은 여러분이 참선을 하시면서 가슴에 손을 얹고 냉정히 관찰을 보고 반성을 보면 이러한 이치는 분명 여러분이, 과연 그렇구나!’하고 아실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동짓날을 맞이해서 우주 시간, 계절의 변화를 인연해서 자신의, 나의 일신(一身) 따르는 빈부귀천 모든 것이 그와 같다고 하는 이치를 우리는 되돌려서 깊이 뉘우치고, 거기에서참나 발견할 있는 참선법(參禪法) 가일층 정진을 하셔야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조실 스님 법문에는 너무나도 깊은, 그리고 중요한 법문을 여러 가지로 말씀을 주셨습니다. 무주상 보시(無住相布施), 무주상 보시를 해야 사람은 무루복(無漏福) 닦는 것이 된다. 무루복을 닦아야 영원히 타락이 없는 것이다.


유주상(有住相), 내가 누구에게 보시를 하거나, 부처님께 시주(施主) 하거나, 어떠한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희사(喜捨) 하거나, 이것이 보시에 들어갑니다마는,

보시를 하고서내가 이러한 보시를 했다, 이러한 희사를 했다, 이러한 시주를 했다 스스로 마음에 그러한 자랑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장한 일을 했다고 스스로 자부를 하면서, 남에게 자랑을 하고 뽐내고 으시대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은 유주상 보시(有住相布施), 유주상 보시를 하는 것은 무루복이 아니라 유루복(有漏福) 밖에는 되지 않는다.


유루복이라 하는 것은 얼마 가면은 타락할 있는 복이다 그말이여. ‘없을 ()’, ‘ ()’ 무루복은샘이 없는 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지은 복이 영원히 타락이 없다.


우리가 복을 지으면 복의 차이에 따라서  천당에 올라가게 됩니다. 아주 복을 많이 짓게 되면은 아무 괴로움이 없는 천당에 태어나는데, 천당에 태어나면은 영원히 천당에서 살수 있느냐? 하면 그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은 복만큼 복을 누리고 나면은 지상으로 떨어지거나, 또는 축생이 되거나, 또는 그밖의 악도에 떨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루복을 닦은 사람, 무주상 보시를 사람은 천당에 태어나되, 천당에서 복을 누리는 기간이 오래간다 말씀이여.

그런데 무루복 가운데에도 () 없는 복을 닦을려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무주상 보시를 수가 있고, 어떻게 해야 무루복을 닦을 있느냐?

거기에 가서 참선을 해야만 무주상 보시를 수가 있고, 무루복을 닦을 수가 있다 말씀입니다.


금강경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주상(無住相)이라고 것에 대해서 거의 전편(全篇) 걸쳐서 도리를 그렇게 간곡히 말씀을 주셨습니다.

지혜스럽게 닦아야 무주상을 수가 있고, 무루복을 닦을 수가 있어서 영원히 타락이 없는 해탈도에 이르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처음~152)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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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巳時) ; ①지난날에 쓰던 십이시(十二時)가운데 여섯 번째 (). 오전 9시부터 11까지를 말한다. ②지난날에 쓰던 이십사시(二十四時)가운데 열한 번째 (). 오전 9 반부터 10 반까지를 말한다.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 간절히 원하고 .

*음양(陰陽) ; 우주 만물의 서로 반대되는 가지 기운으로서 이원적 대립 관계를 나타내는 . 달과 , 겨울과 여름, 북과 , 여자와 남자 등은 모두 음과 양으로 구분된다.

*버큼 ; ‘거품 사투리.

*팔괘(八卦) ; 중국 상고 시대의 복희씨(伏羲氏) 만들었다고 하는 여덟 가지 (). 양효(陽爻) 음효(陰爻) 이루어진 개의 효를 겹치어 자연 세계의 기본 요소인 여덟 가지의 () 나타내는 것으로 (:, 하늘), (:, ), (:, ), (:, ), (:, 우레), (:, 바람), (:, ), (:, ) 말한다.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4가지 고통. ,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 하는데,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생주이멸(生住異滅) ; 모든 사물이 생기고(), 머물고(), 변화하고(), 소멸함(). 또는 그런 현상.

*윤회(輪廻) ; ①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 의하여 삼계 육도(三界六道) 생사(生死) 세계를 그치지 아니하고 돌고 도는 . ②어떤 사물이 일련의 변화 과정을 단계에 따라 차례로 밟아 가거나 되풀이함.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

*국중(國中) ; 나라의 .

* 물건 ; 일물(一物). 일상(一相). 물건 · 모양이란 불교에서 진여(眞如) 본체를 들어 일컫는 말이다.

*진여자성(眞如自性)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하나. () 머뭄() 없는()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05~106에서.

(46)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아닌 것이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수보리야, 보살은 () 응당히 머문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복덕은 가히 헤아릴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과보가 다하면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布施) 행할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얻는 복이 시방(十方)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없느니라.


일설에 '()' '(넓다)', '()' '(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 보시(眞布施)' 하며,

일설에는 '()' '' 육진 경계(六塵境界)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돌아가서 만법(萬法)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 없는 것이 선법(善法)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없고, 능소심(能所心)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없느니라.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 의해서 내가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