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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17 §(712) 진정신심(眞正信心)을 발해야 한다. 정성심(情誠心)이 안으로부터 발해야 한다 / 선방에서 화주(化主) 금지 / 선방 스님과 외호 스님은 같은 도반.
  2. 2016.02.23 §(777) (게송)일종위배본심왕~ / 최상승법(最上乘法) / 내가 나의 마음의 부처를 찾는 일보다는 더 급하고 요긴한 일은 없다 / (게송)약인정좌일수유~.
  3. 2015.08.09 §(560) (게송)사중구의원~ / ‘이 방법으로 하면 반드시 나도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수가 있다’고 하는 신심 / 선원(禪院)에 모여서 공부하는 까닭.
  4. 2015.07.25 §(405) (게송)산당정야좌무언~ /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것이다” / (게송)천척사륜직하수~ / 깨달음이라하는 것은 척! 보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5. 2014.08.23 §(768)(게송)화불능소수불익~ / (게송)거심진속윤회업~ / 쇳덩어리를 삼킨 것처럼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가슴속에 / 우리는 도반(道伴) / (게송)진로형탈사비상~.
  6. 2014.08.18 §(769) (게송)당하지귀아시수~ / 목련경(目連經)-효도 / 생사 호흡지간-무상(無常)하다 / (게송)전단목주중생상~ / 우리 다같이 영원한 도반으로서 성불합시다.
  7. 2014.07.29 §(337) 화두-본참화두(本參話頭) / 현중현(玄中玄) 도리-인가(印可)-선지식 / 대중처소, 선지식을 여의지 말고 같이 공부해야.
대중 생활2016.06.17 05:24

§(712) 진정신심(眞正信心) 발해야 한다. 정성심(情誠心) 안으로부터 발해야 한다 / 선방에서 화주(化主) 금지 / 선방 스님과 외호 스님은 같은 도반.


오조(五祖) 스님 법문 가운데에정성(情誠) 자내발(自內發)해야 한다. 안으로부터서 정성심이 일어나야 한다 하는 간곡한 말씀이 있습니다.

정성심(情誠心) 안으로부터 발해야 한다 하는 것은 결국은 초단계에 있어서는 대중 법도를 지키면서 최소한도로 다른 대중 스님네에 () 끼치지 않는 범위내에서는 자기 나름대로 노력을 계속 함으로 해서 정성심이 안으로부터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로 터를 바꾸어서 생각한다면은 소임을 보신 스님네나 선방에서 죽비를 치고 정진하는 스님네가 남이 아니고, 다른 권속이 아니고 옛날에 같이 정진하던 도반이요, 선배고 후배일 것입니다.

이것을 안다면은 우리는 아무 불평도 있을 수가 없고,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소임을 열심히 살면서 정진을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때에 선방이 장애가 없이 운영이 것입니다.

**송담스님(No.712)—2007(정해) 하안거 결제 법어.

약 17분.

게송에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 황벽 스님의 게송을 읊었습니다마는 게송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를 못하면 육체를 억압하고 들볶고 무리하게 하는 것을 바로 용맹정진(勇猛精進), 가행정진(加行精進)이라고 착각을 수가 있습니다.

육체를 갖다가 잠을 자지 않고 밥을 굶고 묵언을 하고, 모다 수행자들이 이렇게 해서 육체를 억압을 하는 것으로써 정진을 열심히 것으로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산승도 묵언도 봤고, 단식도 봤고, 잠도 있으면 잘라고 애를 써봤습니다마는, 결과 그렇게 것만이 정말 올바르게 용맹정진한 것이 아니다고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후배 여러분들께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컷 먹고, 실컷 자고, 마음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잡담을 하고 그러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지 참선을 하는 사람은 필요한 외에는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좋고, 잠도 선방에서 지정된 여섯 시간이—9시에 자고 3시에 일어나니까 여섯 시간을 자도록 되어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선방 스님네들은 그렇게 여섯 시간을 수가 없어서 설사 잠잘 시간에도 시간을 잠자지 않고 자고 할라고 애쓰고.

3시에 일어나게 되었지마는 30분이나 시간 자고 일찍 일어나서 조용히 앉아서 정진을 하는 그러한 스님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잠을 잔다던지, 아주 말을 한다던지, 밥도 적당하니 먹어야지 너무 과식을 하면 아니된 것입니다. 과식을 해야 하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너무 밥을 적게 먹어도 그것도 영양이 부족해서 정진을 계속해서 하기 어려우니, 말과 수면과 먹는 것도 지혜롭게 해야 앞으로 꾸준히 정진해 나가는데 장애가 없을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진정신심(眞正信心) 발해야 한다. 진정으로 신심을 내야 한다 그런 구절이 나왔습니다마는 신심이다, 분심이다, 의단이라 하는 것이 억지로 하는 것과 저절로 속에서 일어나는 것과 차등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부득불 억지로 신심도 내고, 분심도 내고, 의심도 내려고 몸부림을 수밖에는 없겠습니다마는, 오조(五祖) 스님 법문 가운데에정성(情誠) 자내발(自內發)해야 한다. 안으로부터서 정성심이 일어나야 한다 하는 간곡한 말씀이 있습니다.


억지로 겉으로 지어서 가지고는 몸만 괴롭히고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고, 안에서부터 정성심(情誠心) 솟구쳐 나오면 억지로 분심을 낼라고 해도 저절로 분심이 나고, 억지로 화두를 낼라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떠억 들어지는 것입니다.

정성심이 안으로부터서 발하면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저절로 잡담을 아니하게 되고, 잠을 억지로 잘라고 해도 저절로 조금만 자도 머리가 개운하고 좋은 것입니다.


정성심(情誠心) 안으로부터 발해야 한다 하는 것은 결국은 초단계에 있어서는 대중 법도를 지키면서 최소한도로 다른 대중 스님네에 () 끼치지 않는 범위내에서는 자기 나름대로 노력을 계속 함으로 해서 정성심이 안으로부터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화사 청규(淸規)에는 완전 묵언을 하지 않도록 규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출을 삼가하라고 했고.

비록 인제 용화사나 여기나 또는 용주사 중앙선원이나 밖에 세등선원・복전암・승련사・화운사, 위봉사・회룡사 이런 선방에서도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조실 스님을 ()하는 대중이므로 청규를 지키면서 정진을 함으로 해서 장애가 일어나지 아니할 것이고, 정진을 하되 병이 일어나지 아니할 것이며, 동안 원만하게 안거(安居) 성취하게 것입니다.



가지 부탁드릴 것은 이것은 보살님네에게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선방에 방부(房付) 들이되, 일부러 어느 절에 불사(佛事) 있는데 불사의 화주(化主) 하기 위해서 방부를 들이고 그래 가지고 정진하면서 틈틈이 화주책(化主冊) 가지고 불사에 시주(施主) 하도록 권고하는 예가 종종 있습니다.

복전암뿐만이 아니고 어느 선방이고 간에 방부를 들이고 정진을 때에는 그런 불사에 대한 생각은 버리고.


어떠한 좋은 목적으로 보살님네한테 찔벅찔벅 가지고 돈을 걷는 수가 있습니다. 돈은 주로 선방 스님네의 약값을 드린다던지 모다 그런 좋은 마음을 가지고 하시리라고 생각이 됩니다마는,

선방에 와서 정진하는 분은 돈이 많은 분도 있지마는 돈이 없이 오직 정법을 믿고 정진하기 위해서 가정일을 두고도 와서 정진하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런 분한데 자꾸 돈을 내라고 하면 마음으로야 내고 싶겠지마는 형편이 되서 못내는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처음으로 얘기한 것이 아니라 삼십 전부터서 선방에 방부를 들이고 정진하는 보살님네들은 화주 행위를 금하고, 어떠한 이유와 목적을 위해서도 돈을 걷지 말라고 당부를 드려왔습니다마는 아직도 그런 것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자기가 법도를 어길 뿐만이 아니라 다른 참선하는 보살님네께도 정진에 방해가 됨으로 해서 이런 일은 아니하도록 간곡히 말씀을 드립니다.


가지 부탁 드릴 것은 용화사나 용주사나 다른 선방에도 마찬가집니다마는 원주・도감・별좌・공양주・채공 이런 소임을 맡은 그런 분들은그분도 얼마든지 선방에 가서 정진하고 싶지마는 선방을 운영하기 위해서 특별히 신심을 가지고 그런 힘든 소임을 맡은 분들입니다. 그러나 일단 맡은 이상은 성의를 다해서 소임을 보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그런 일이 힘들고 어렵다 보면은 불평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선방 스님네는 아무리 잘해 드려도무엇이 먹고 싶다, 무엇이 먹고 싶다이렇게 하실 수가 있습니다. 갑자기 국수가 먹고 싶기도 하고, 찰밥이 먹고 싶기도 하고, 찰떡이 먹고 싶기도 하고 여러 가지 먹고 싶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원주(院主) 스님한테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 나쁘다고 수는 없습니다마는, 선방에서는 드리는 대로 밥이면 , 죽이면 , 찰밥이면 찰밥, 국수면 국수 요기를 때우면 그리고 열심히 정진을 하셔야 것이고,

소임을 보신 원주・도감・별좌・공양주・채공은 성의를 다해서어떻게 하면 스님네가 잡숩고 건강하게 정진을 하실 수가 있을까?’ 그런 정성스런 마음으로 외호(外護) 잘해야 것입니다.


우리가 숙명통(宿命通) 열려서 과거에 내가 어떠한 몸을 받아서 무엇을 했는가를 아시는 분은 알겠습니다마는, 전생에 선방에서 정진을 하다가 금생에 다시 출가해 가지고 이런 소임을 맡을 수도 있고, 전생에 원주・도감・별좌・주지 이런 소임을 맡았던 스님이 금생에 선객(禪客)으로 선방에 나와서 정진하는 그런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니 선방 스님네와 후원에서 외호하는 스님은 절대로 깊은 인연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큼 서로 터를 바꾸어서 생각한다면은 소임을 보신 스님네나 선방에서 죽비를 치고 정진하는 스님네가 남이 아니고, 다른 권속이 아니고 옛날에 같이 정진하던 도반이요, 선배고 후배일 것입니다.

이것을 안다면은 우리는 아무 불평도 있을 수가 없고,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소임을 열심히 살면서 정진을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때에 선방이 장애가 없이 운영이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지 못하면 중간에 선방 스님네가 걸망을 짊어지고 원주실 방을 갖다가 곡괭이로 갖다 뒤집어 버리고 대중이 나가고 그런 불상사(不祥事) 있었습니다.

그러한 일이 있다고 하는 것은 지금 산승이 말씀 드린 내용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사소한 감정으로 그런 일이 일어났으리라고 나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마는, 지금 자리에 모이신 여러 대중 스님네와 소임을 보시는 분과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께서는 이러한 말씀을 명심을 해서 어쨌든지 수행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금생(今生)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이요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하여지이다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금생에 이렇게 산승이 간곡히 말씀 드리는 말을 명심하고 따르지 아니하면, 후세(後世)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하리라. 후세에 마땅히 () 만단(萬端)이나 것이다.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원컨댄 법계(法界) 모든 중생이 너와 나와 일시에 성불(成佛)하여지이다 하는 이런 게송을 읊으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자리에는 참선 선방에 방부 들이신 분과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도 계십니다. 참선을 하시면서도 백일기도에 동참한 기도하는 마음으로 동안을 정진하시고 기도하시고, 이렇게 해서 모두가 건강하시고 가정도 화평하시고 그렇게 해서 백일기도와 정진이 원만 성취하시기를 바랍니다.(17~3356)()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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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진로형탈사비상 긴파승두주일장~’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정성(情誠 진심·성심·참마음 /정성·진실 ) ; 정성(精誠). 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 부술·쓰러질·폐단 ) ; 남에게 끼치는 신세나 괴로움.

*청규(淸規) ; ①선종(禪宗) 사원에서, 여러 승려들이 지켜야 규칙. ②참되고 바른 규칙이나 법도.

*안거(安居 편안할 , 있을 )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인도의 불교도들은 4 15(또는 5 15)부터 3개월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 15일부터 7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 15일부터 다음해 1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 한다.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 알리는 . 법회, 불공(佛供), ()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

*화주(化主) ; ①중생을 교화(敎化)하는 (). 부처님를 말함. ②신도들의 집을 돌며 절에 필요한 양식·물건·비용 등의 시물(施物) 얻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시주(施主 베풀 /주인 )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

*찔벅찔벅 ; 다른 사람을 말이나 행동으로 쿡쿡 찌르거나 건드리는 모양.

*원주(院主) ; 후원(後院, 절에서 부엌을 일컫는 ) 책임지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외호(外護) ; 불법(佛法)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내호와 외호를 합하여 이호(二護)라고 한다.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선객(禪客 참선 /손님·사람 )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 ; ‘처지형편 뜻을 나타내는 .

*(게송)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말을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 갈래나 되리라.

*만단(萬端) ; 수없이 많은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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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최근 법문2016.02.23 09:39




§(777) (게송)일종위배본심왕~ / 최상승법(最上乘法) / 내가 나의 마음의 부처를 찾는 일보다는 급하고 요긴한 일은 없다 / (게송)약인정좌일수유~.


우리는 눈으로 무엇을 보는 데로 쫓아가지 않고, 귀로 무슨 말을 듣더라도 듣는 데에 끌려가지 않고, 코로 냄새를 맡거나, 음식을 먹거나, 속이 상할 때나 기쁠 때나 언제 어디서,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항상 자리를 발판으로 해서 바로 자기를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부처님은 원래 부처님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 자신들이 부처님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혀를 통해서 말하고 음식을 먹고, 몸을 통해서 춥고 더운 것을 느낄 아는 그놈이 바로 우리의 주인공이요, 우리의 마음의 부처인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찾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만 하면 반드시! 자기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유식이나 무식도 상관이 없고, 얼굴이 이쁘고 미운 것도 상관이 없고, 여자나 남자나 전혀 그런 것도 가릴 것이 없습니다. 내가 나의 마음의 부처를 찾는 일보다는 급하고 요긴한 일은 없는 것입니다.

생각 돌이켜서이뭣고?’ 하는 공덕은 이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부처님이 되기 위한 계단을 밟아가는 것이여. 우리가 말세에 태어났어도 최상승법을 만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송담스님(No.777)—2016 동안거 해제(16.2.22)

(1) 약 18분.  (2) 약 9분.

(1)------------------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

나무~ 아미타불~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고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로구나

나무~ 아미타불~


일종위배본심왕(一從違背本心王)하고  기입삼도역사생(幾入三途歷四生),

한번 본심왕(本心王) 등지고 나와서 번이나 삼도(三途) 사생(四生) 겪어왔던가!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하고  수연의구자환향(隨緣依舊自還鄕)이다.

오늘날 번뇌의 모든 생각을 씻어버리고 인연 따라서 옛을 의지해서 스스로 본고향에 돌아왔구나.


고인의 게송을 음미해 보면, 고인의 게송이지마는 현대 우리 낱낱에게 해당이 되는 게송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본래, 본래 부처님이었었고 불보살로서 그렇게 지내다가 어떻게 생각 잘못 먹어 가지고 말세에 사람의 몸을 받아났습니다.


사람의 몸을 받아날 때까지 동안에 지옥 아귀 축생과 사람 축생 아귀 그런 생사 윤회를 겪어서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우리는 과거는 태어날 때부터서 잊어버리고 모르지마는 육신통(六神通) 불보살은 과거 이전의 일도 환히 아신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말세에 태어났지마는 좋은 부모를 만나서 사람의 몸으로 태어났고, 부모로 인해서 교육을 받았고 오늘날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 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다행히 불법을 만나 가지고 최상승법(最上乘法) 접하게 되었습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은불교에는 소승, 중승, 대승이 있는데 최상승(最上乘)이라 하는 것은 남녀노소(男女老少), 빈부귀천(貧富貴賤), 유식무식(有識無識) 막론하고 먹고 입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입으로 먹고, 때로는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우리는 이렇게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살게 되고 오늘날 이렇게 불법을 만나서,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을 만나게 것은 바로 몸을 가지고 몸속에 있는 자성(自性) 부처를 깨닫는 것입니다.


밖에 팔만대장경을 읽고 외우고 해석하고 것은그것도 중요한 불교의 부분이지마는 몸뚱이를 가지고 시청언동(視聽言動) 희노애락(喜怒哀樂) 느끼면서 살아가는 자기의 부처를 찾는 것이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무엇을 보는 데로 쫓아가지 않고, 귀로 무슨 말을 듣더라도 듣는 데에 끌려가지 않고, 코로 냄새를 맡거나, 음식을 먹거나, 속이 상할 때나 기쁠 때나 언제 어디서, 앉아서나 서서나 누워서나 항상 자리를 발판으로 해서 바로 자기를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찾는 것은 가장 쉽고 간단한 문제고,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누구라도 수가 있는 문제입니다.

특히 말세는 과학이 발달해서 살기에는 편리하지마는 보통참나 찾는 그러한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점점 줄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찾아서 자기 속에 있는 나의 부처님을 찾는 것보다 급하고 요긴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

밖으로 지식이 많거나, 재산이 많거나, 권리가 많거나 그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필요한 것이기는 하나, 그것 가지고는 우리 생사(生死)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항상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속이 상할 때나, 앉아서나 누워서나 항상 자기를 찾는이뭣고~?’ ‘어째서 ()라고 했는고?’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 가운데 최상승법이요, 가장 깊고도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권리가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살아가는 일시적인 일에 지나지 못하고, 잘못하면 그런 것을 누리다가 죄를 짓고 윤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행히 말세지마는 사람 몸을 받아났고 불교를 믿게 되고 오늘 산승(山僧) 같이 최상승법, 자기가 자기 마음의 부처를 찾는 이야기를 하게 것을 나는 대단히 감사하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라 하는 것은 많이 살아봤자 팔구십, 백세 살고 대부분 안에 육칠십에 죽기도 하고, 뱃속에서 죽기도 하고, 낳다가 죽기도 하고, 이십 안에 죽기도 하고, 삼십 안에 죽기도 합니다.

언제 죽을 모르는 그러한 허망하고도 무상한 몸을 받아 태어나 가지고 이렇게 내가 마음의 부처님을 찾는 이야기를 하게 인연을 나는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이러한 모임을 자주 갖고,


세속에서 살면서세속에서는 흥망성쇠(興亡盛衰) 여의고 수가 없습니다. 흥망성쇠와 빈부귀천은 어느 것엔가는 얽매여서 살고 그것 때문에 몸부림치기도 하고,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기도 하는데, 바로 사바세계라는 것은 그런 세계지마는,

그러한 속에서 마음의 부처를 찾게 최상승법을 이야기하는 이런 도반(道伴) 것을 대단히 다행하고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래 부처님이시면서 어떻게 생각을 잘못해 가지고 본심(本心) (), 본심의 부처를 망각하고 이렇게 오늘날까지 왔는데 안에 겪어온 일은 우리가 상상 이외의 중대한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가 금생에 불법을 만나지 않았고 내가 마음의 부처를 찾는 공부를 모른다면은 우리는 무량겁을 두고도 윤회를 하고 지은 업에 따라서 지옥에도 가고 축생도 되고, 흥망성쇠 속에서 한없는 여행을 하면서 마지막에 지구가 없어지게 되고 그럴 때에는 우리의 신세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금생에 이렇게 사람 몸을 받아서 오늘 자리에까지 것에 대해서 항상 감사하고 다행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면서이뭣고?’ 놓치지 않고 자기 마음의 부처 찾는 일밖에 그밖에 일은 다음다음 일이고,

앉아서나 서서나, 먹을 때나, 눈으로 무엇을 때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항상이뭣고?’ 도반으로 삼고, ‘이뭣고?’ 자기의 () 직업으로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산다면 비록 말세에 태어났다 하더라고 지금이 바로 정법(正法) 시대요, 부처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원래 부처님이 따로 없습니다. 우리 자신들이 부처님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혀를 통해서 말하고 음식을 먹고, 몸을 통해서 춥고 더운 것을 느낄 아는 그놈이 바로 우리의 주인공이요, 우리의 마음의 부처인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으면서 망각하고 모르고 산다면은 축생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우리가 육도(六途) 중생 가운데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더군다나 말세에 태어나서 불교를 믿고 최상승법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를 하고 듣게 것을 항상 기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1 1초도 화두를 놓치지 않고 화두를 항상 챙기고, 화두를 망각하는 것은 자기의 마음의 부처를 놓고 지낸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는 보통시삼마(是甚)?  이뭣고?’

눈으로 무엇을 때에도이뭣고?’ 귀로 무엇을 듣더라도 그리 쫓아가지 않고이뭣고?’ 슬플 때도 슬픈 데에만 빠져 가지고 자꾸 슬픈 일만 생각하면 점점 슬퍼지는 거고, 속이 상하는 일을 보고나 듣거나 느끼더라도 그것을 따라가면 점점 속이 상하고 슬퍼지고 자기 마음은 점점 황폐해지고 건강도 나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이뭣고?’ ‘ 몸뚱이 끌고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한번 따라서 보세요. ‘이뭣고?’

(대중) ‘이뭣고?’

이뭣고?’

(대중) ‘이뭣고?’


이뭣고?’ 하는 것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이 경상도 사투리로는이뭐꼬(이뭣고)?’입니다. 그래서 참선할 때는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해서이뭣고?’ 옛날부터서 그렇게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 때에 없는 의심!

이것이 무엇인가?’하고 이리저리 이론적으로 따지고 논리적으로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이뭣고?’하고 의문, 의심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따지고 불교 교리적으로 따지는 것은 그것은 참선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교리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이리저리 따지고 분석하고 비교하고 분리하고 그러겠지마는 참선은 이론적으로 따지고 분리하고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슬플 때도이뭣고?’ 앉아서도이뭣고?’ 슬플 때도이뭣고?’ 항상 없는 의심이 앞에이뭣고?’ 없는 의심뿐만으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다 보면 모든 번뇌도 망상도 앞에는 어리대지를 못하게 되고, 그래 가지고 의단(疑團) 독로(獨露) 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그것은 자기가 자기를자기의 마음 부처를 깨닫게 되는 때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에게 있는 것을 찾기 때문에 올바른 방법으로만 하면 반드시! 자기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유식이나 무식도 상관이 없고, 얼굴이 이쁘고 미운 것도 상관이 없고, 여자나 남자나 전혀 그런 것도 가릴 것이 없습니다.

내가 나의 마음의 부처를 찾는 일보다는 급하고 요긴한 일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병신년(丙申年) 1 15 해제날인데 그동안에 선방에서 또는 가정에서 정진하던 도반들이 이렇게 나왔으니 내가 정말 마음속으로 여러 도반들에게 해주고 싶고, 같이 얘기에 대해서 깊이 마음속에 새기고자 해서 말씀을 드린 것이니,

그동안에도 열심히 나름대로 정진을 하셨겠지마는 오늘부터서는 정말 새로운 마음으로 그동안에 그럭저럭 그냥 살아오고 지내왔다 하더라도 오늘부터서는 정말 새로운 마음으로 최상승법의 도반으로서 앞으로 열심히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처음~1751)



(2)------------------


약인정좌일수유(若人靜坐一須臾)하면   승조항사칠보탑(勝造恒沙七寶塔)이니라

나무~ 아미타불~

보탑필경쇄위진(寶塔畢竟碎爲塵)이나   일념정좌성정각(一念靜坐成正覺)이니라

나무~ 아미타불~


약인정좌일수유(若人靜坐一須臾)하면  승조항사칠보탑(勝造恒沙七寶塔)이다.

만약 사람이 고요히 앉아서 잠깐 동안 참선을 하면 항하사(恒河沙) 칠보탑을 조성해서 모신 것보다도 공덕이 수승하다 이말이여.


그러느냐? 보탑(寶塔) 필경쇄위진(畢竟碎爲塵)이나 일념정진(一念精進) 성정각(成正覺)이다.

보배로 칠보탑을 조성한 공덕도 대단히 공덕이 되지마는 물질로 이루어진 보탑이라, (보탑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없어지고 티끌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돌이켜서 정진을 하고이뭣고?’ 하면 공덕으로 정각(正覺) 이루기 때문이다. 정각은깨달음을 이루어서 부처님이 된다 것입니다.


그러니 생각 돌이켜서이뭣고?’ 하는 공덕은 이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부처님이 되기 위한 계단을 밟아가는 것이여.

우리가 말세에 태어났어도 최상승법을 만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계 65 인구가 있다 하지마는 최상승법 참선법을 믿고 수행한 사람은 몇천만분의 일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몸을 낳아주신 부모님에 대해서, 불법을 믿게 되게 주신 부모와 스승에 대해서 하루하루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면서 효심(孝心) 일으키고 부모님을 받들면서 자기가이뭣고?’ 열심히 하면 아들과 딸과 며느리들도 여러분의 믿음과 사상을 따라서 불법을 믿고 착한 사람이 되고, 사람의 모범이 되고 말세에 태어났어도 반드시 지옥 아귀 축생의 삼도(三途) 떨어지지 않고, 가문도 발전을 하고 나라도 발전을 하고 세계도 무상(無上) 깨달음의 세계가 것입니다.


앞으로 동안 해제 기간이 되는데 동안을 가정에서, 각각 자기 처소에서 오늘 산승이 이렇게 간곡히 부탁한 말씀을 항상 잊지 말고 열심히이뭣고?’ 하되,

이뭣고?’ 하는 데는 자세를 바르게 해서 가부좌를 하면 좋고, 반가부좌를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침대에 비겨서 그럭저럭 지내거나 그러지 말고, 항상 앉았다 하면은 방석을 깔고 ! 반가부좌를 하면서 복식 심호흡을 하면서이뭣고?’ 항상 그것이 아주 습관화가 되도록 그렇게 하면서 생활을 나가야 잘못된 길로 나아가지 않고 잘못된 생각을 하고 살게 되고, 저절로 몸과 마음이 부처님 제자로서 말세에 태어난 정법학자로서 인생으로 태어난 최고의 행복을 누리게 것입니다.


이제 해제 기간이니까 여행을 하리라그런 생각을 갖게 되고, 때로는결제 동안에 정진하느라고 애썼으니까 자유롭게 지내자여행도 하고, 불규칙한 생활도 하고, 까닥 잘못하면은 해태하고 잡담으로 그럭저럭 아까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산승과 같이 말하고 듣는 기념(紀念)으로 해제 동안에도 결제 동안에 정진하던 정신과 수행을 해제 동안에도 흐트러지지 않도록 더욱 단속을 하면서 수행을 해야 다음철 여름 결제 때에도 정진하는 이어지게 것입니다.


원공법계제중생(願共法界諸衆生)이요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이니다

나무~ 아미타불~   (1752~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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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일종위배본심왕~’ ; [석문의범(釋門儀範)] 관욕(灌浴) 입실게(入室偈) 참고.

*본심왕(本心王) ; 본래 진여불성(眞如佛性).

*삼도(三途三塗) ; 악한 일을 중생이 과보로 받는다는 3가지 미혹한 생존. 지옥아귀축생의 생존.

*사생(四生) ;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가지 (),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이른다.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없는 것을 헤아림을 ()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이라 한다。이 신통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지마는 흔히 여섯 가지로 말한다

1. 신족통(神足通) 공간에 걸림 없이 왕래하며 몸을 마음대로 변화할 있는

2. 천안통(天眼通)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3. 천이통(天耳通) 멀고 가까움과 높고 낮음을 가릴 없이 무슨 소리나 듣는

4. 타심통(他心通) 사람뿐 아니라 어떤 중생이라도 생각하는 바를 아는

5. 숙명통(宿命通) 자기뿐 아니라 육도(六道) 모든 중생의 전생금생후생의 온갖 생애를 아는

6. 누진통(漏盡通) 번뇌 망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 닦는 외도(外道)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 읽어도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선가귀감](용화선원) p94-95 참조.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이뭣고(是甚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1700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1700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2)


*(게송) 약인정좌일수유~’ ; 보조 지눌(普照知訥) 스님의 [진심직설(眞心直說] 진심공덕(眞心功德) ()에서古頌으로 인용한 게송 참고.

*항하사(恒河沙) ; [불교] 갠지스 (Ganges) 모래라는 뜻으로, 무수히 많은 수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비기다 ; (무엇에) 비스듬하게 기대다.

*기념(紀念, 記念) ; 어떤 뜻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사건 등을 잊지 않고 마음에 되새김.

*(게송) 願共法界諸衆生  自他一時成佛道’ ; ‘원하옵건대 법계의 모든 중생이 같이, 저희 모두  동시에 성불하여지이다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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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신심(삼요)2015.08.09 13:23

§(560) (게송)사중구의원~ / ‘이 방법으로 하면 반드시 나도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수가 있다’고 하는 신심 / 선원(禪院)에 모여서 공부하는 까닭.

‘내가 할 길은 이것 밖에 없다.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고 하는 철저한 신심, ‘이 방법으로 하면 반드시 나도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수가 있다’고 하는 신심.
산이 명산(名山)이라 하는 것은 산이 높고 물이 좋아서가 아니라 거기에 도인(道人)이 살아야만 명산이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조그만한 손바닥만한 이 땅이지만 여기에 최상승법이 있고 불법이 살아있으므로 해서, 불법에 의해서 수행하는 사람이 있음으로 해서, 이 지구는 결코 멸망을 하지 아니하리라고 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송담스님(No.560)—95년 동안거결제 법회(95.12.07)

 약 11분.



사중구의원(死中求醫員)하고  영아억모심(嬰兒憶母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주공친절처(做工親切處)에  홍일상동령(紅日上東嶺)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사중(死中)에 구의원(求醫員)이요  영아억모심(嬰兒憶母心)이다. 환자가 깊은 병이 들어서 죽게 되었다 그말이여.
몸이 쑤시고, 아리고, 아프고, 가슴은 답답하고, 이 약 저 약 먹어봤자 효험은 없고, 어떻게 하면 명의(名醫)를 만나가지고 이 병을 낫을까? 그 좋은 의원을 구하듯이 그러한 간절(懇切)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영아(嬰兒)가 억모심(憶母心)이여. 갓난아기가 그 엄마가 어디를 가서 안 오는데 배가 고파서 울어 싼다 그말이여. 발버둥을 치면서 울어 싸는데 ‘엄마가 언제나 와서 젖을 줄까?’
그 젖 주기를 바래서, 엄마가 오기를 바라는 어린 애기와 같이 그러한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그런 간절한 신심(信心)으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을 하는데 처음에는 별로 재미도 없고, 별로 맛도 없고, 되다말다 하고, ‘이뭣고?’해도 속으로는 온갖 번뇌 망상이 왔다갔다 하고 그렇지만,
‘내가 할 길은 이것 밖에 없다.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고 하는 철저한 신심, ‘이 방법으로 하면 반드시 나도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수가 있다’고 하는 신심,

조급한 생각은 갖지 아니하되, 한 걸음 한 걸음 소걸음처럼 걸어가되 착실히 다져나가다 보면 반드시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어지는 때가 와.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하고 적적하면서도 성성하게, 아침에 들었던 화두가 점심때까지, 점심에 들었던 화두가 저녁때까지,
저녁에 누워서도 화두를 들면서 자는데 언제 잠든 줄 모르고 잠이 들었으되 아침에 눈을 딱 뜨고 보면 어제 들었던 화두가 고대로 있어. 심지어는 꿈에서도 그 화두가 그렇게 성성하게 들어지는 수도 있다 그말이여.

하루를 그렇게 하여, 이틀을 그렇게 하여, 사흘, 나흘, 닷새, 엿새를 그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순수무잡(純粹無雜)하게 그렇게 되어가면 어떠한 찰나에 툭! 터질 때가 온다 그말이여.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이 반드시 될 때가 오는 거다 그말이여.

주공진철처(做工親切處)라는 것이 바로 그거여. 공부를 지어서 친절(親切)한 곳에 이르면, 확철대오하면,
홍일(紅日)이 상동(上東)하다. 어제 서쪽에 졌던 그 붉은 해가 그 이튿날 새벽이 되면 동쪽 산너머에서 떠오를 것이다. 반드시 확철대오 할 때가 올 것이다 그거거든.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비구, 비구니, 사미, 사미니, 행자 또 청신사, 청신녀, 여러 도반들, 오늘부터 내년 정월 보름까지 석 달 동안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말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잘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비록 회룡사나 세등선원이나 또는 위봉사나 그 밖에 크고 작은 절에나 토굴에서 정진하는 도반들도,
‘언제나 한자리에서 우리가 다 같이 도반들이 모이고, 또 조실 스님을 모시고 공부한다’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항상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그렇게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야 정진도 제대로 되고 또 장애도 없는 것입니다.
선지식(善知識)이 안 계신다고 해서 그럭저럭 지내고,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그럭저럭 지내면 반드시 장애가 일어나고, 나도 공부를 못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공부를 못하게 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니까,

우리가 부모와 정든 고향을 다 버리고 또 세속의 모든 오욕락(五欲樂)과 인생과 청춘을 다 버리고, 우리가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청신사(清信士) 청신녀(清信女) 여러분도 모든 것을 다 뒤로 미루고 이렇게 정법을 믿고, 이렇게 정진을 할려고 하는 발심(發心)을 하셨으면 스님네 못지않는 지조와 결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도 청신사나 청신녀들도 얼마든지 도를 이룬 사람들도 역사적으로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이라고 해서 또 우리라고 해서 그렇게 되지 못하라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았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과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났습니다. 한 사람도 낙오자(落伍者)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낙오자가 되어서 잘못되느냐, 끝까지 목적지까지 우리가 가느냐?’하는 것은 우리의 결심에 달려있는 것이지, 여건이 좋지 못하고 환경이 좋지 못하다고 해서 그만 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세상이 시끄럽고 복잡할수록에 정법을 믿는 사람은 더욱 채찍을 가해서 정진을 할 그 길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해야만 불법도 실낱끈 같이 위태로운 이 법등(法燈)도 이어가는 거고, 불법이 멸하지 아니해야 세상도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산이 명산(名山)이라 하는 것은 산이 높고 물이 좋아서가 아니라 거기에 도인(道人)이 살아야만 명산이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조그만한 손바닥만한 이 땅이지만 여기에 최상승법이 있고 불법이 살아있으므로 해서, 불법에 의해서 수행하는 사람이 있음으로 해서, 이 지구는 결코 멸망을 하지 아니하리라고 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만이 아니고 여러 도반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가지고 공부를 한다면,
여기에 불이라 하는 것은 헤쳐 놓으면 꺼져버리고, 숯불이라든지 장작개비라든지 이렇게 모아서 놓으면 불이 붙어서 이 장작에서 난 불은 저 장작에, 저 장작에 난 불은 이 장작에, 해서 거기에서 서로 가열이 되어가지고 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원(禪院)에 모여서 공부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선원에서 지내다 보면 누군가 한 사람은 반드시 정말 불이 붙어가지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는 도반이 있습니다.

그것을 이상한 눈초리로 보고 비웃을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그런 사람이 있으면 자기도 같이 동참(同參)해서 같이 정진을 하고, 또 다른 사람도 거기에 또 발심을 해서 같이 동참을 해서 한 철동안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서 가행정진을 하도록,

그렇게 해서 한 철이 석 달 동안이 어떻게 지내간 줄 모르게 잘 성취가 되도록 그렇게 정진을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법상(法床)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44분6초~54분57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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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사중구의원~’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27 ‘벽천선화자(碧泉禪和子)에게’ 게송 참고.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들 거, 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순수할 수/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수(純粹)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청신사(清信士)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자 신도, 곧 우바새(優婆塞).
*청신녀(清信女)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 곧 우바이(優婆夷).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낙오자(落伍者 떨어질 낙/대오 오/놈 자) ; ①어떤 집단이나 경쟁 상대를 쫓아가지 못하여 뒤로 처진 사람. ②편성된 대열에서 뒤떨어져 처진 사람.
*법등(法燈) ; 부처님의 가르침. 미(迷)한 세계의 캄캄한 마음을 없애는 것을 등불에 비유한 것.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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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법회(성도재)2015.07.25 18:01

§(405) (게송)산당정야좌무언~ /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것이다” / (게송)천척사륜직하수~ / 깨달음이라하는 것은 척! 보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왜 부처님께서는 그 납월 8일 별을 보고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왜 우리는 납월 8일 새벽 하늘의 별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밤마다 번쩍거리는 수없는 별을 보고도 왜 깨닫지를 못할까요?

‘별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는 생각 때문에 별을 보고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여. 척! 보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화두(話頭)에 대한 의단(疑團) 이외의 어떠한 생각도 다 마구니를 불러들일 틈이 되는 것이다.

어찌 하필 부처님처럼 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여.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비로자나 법신(法身)의 체(體)고, 부는 바람 소리, 흐르는 물소리, 개 짖는 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 일체가 다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의 설법(法)이여.

그러니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 두두물물 삼라만상이 다 우리가 자아를 깨달을 수 있는 때요, 곳이다.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한 경지로 나아가야 그 언젠가 탁!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이지,

화두를 놓쳐 버리고 사량분별에 떨어진다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는 데에 끄달린다든지, 귀로 무엇을 듣는데 끄달리고 있는 한은 그러한 경지에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항상 화두를 잡드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가 해야 할 정진이여.

경전도 볼 것이 아니고, 어록도 볼 것이 아니고, 일체처 일체시가 행주좌와 어묵동정 사위의(四威儀)에서 화두만 성성적적(惺惺寂寂) 하게 잡드리해 갈 뿐이여.

**송담스님(No.405)—90년 성도재 법회(90.01.04)

(1) 약 22분.  (2) 약 20분.

(1)------------------


산당정야좌무언(山堂靜夜坐無言)한데  적적요요본자연(寂寂寥寥本自然)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하사서풍동임야(何事西風動林野)한데  일성한안여장천(一聲寒雁唳長天)고

나무~아미타불~


산당정야좌무언(山堂靜夜坐無言), 산당(山堂) 고요한 밤에 말없이 앉았는데,

적적요요본자연(寂寂寥寥本自然)이로구나. 적적(寂寂)하고 요요(寥寥)해. 적적하고 고요한 본자연이로구나.


하사서풍동임야(何事西風動林野), 무슨 일로 서풍이 임야를 흔드는데,

일성한안여장천(一聲寒雁唳長天)고, 한 소리 차운 기러기는 긴 하늘에 우는고.

 

 

오늘 기사년 납월팔일(臘月八日) 성도재(成道齋)를 맞이했습니다.

방금 17년 전, 임자년 납월 8일에 전강 대선사(田岡大禪師)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납월 8일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경청을 했습니다.  


삼천년 전 우리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헌신짝처럼 버리시고 유성출가(踰城出家)해서, 설산에 들어가셔서 6년 고행(苦行)을 하셨습니다. 일찍이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그렇게 무서운 고행을 하시지를 않았습니다.

그러한 피골(骨)이 상접(接)해서—하루에 삼씨 한 알, 좁쌀 한 알 그런 정도로 곡식 알갱이 하나씩 이렇게 잡숫고 6년을 지내셨으니—완전히 고목사회(枯木死灰)처럼 되었어. 완전히 해골(骨)만 남았어.


그러시다가 ‘이렇게 고행을 위한 고행만이 참다운 정진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시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강가로 내려가셔서 맑은 물에 목욕을 하셨습니다.

목욕을 하고 나오시니까 수자타라고 하는 마을의 청신녀가 유미죽(乳糜粥)을 쑤어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부처님께 바치니까 부처님께서 그것을 받아 잡수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부처님을 보호하면서 같이 정진하던 정반왕(淨飯王)이 보낸 다른 다섯 사람들,

실달 태자(悉達太子)와 같이 서로 약속을 하기를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단코 고행을 쉬지 않고 용맹정진을 하자’고 약속을 해 가지고 6년을 고행을 하셨는데,


실달 태자가 수자타가 바친 죽을 받아 잡수신 것을 보고 “아하! 고행을 견디지를 못하고 너무 배가 고프니까 저렇게 죽을 받아 자시니 저런 의지가 박약하고 약속을 깨트리는 사람과 우리가 같이 있을 수가 없다”

그렇게 말을 하고서 교진여(憍陳如) 등 다섯 사람은 녹야원(鹿野苑)으로 떠나버렸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우리 부처님께서 자리를 옮겨서 깨끗하고 쇄락(灑落)한 그리고 참 오랜만에 유미죽을 공양을 하시니 한결 기운이 좋다 그말이여. 맑고 깨끗하고 생기가 도는 그러한 몸과 마음으로 정진을 하셨어.

그러시다가 납월팔일 새벽에 별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시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셨어. 


밤마다 별은 반짝거립니다. 구름이 꽉 낀 날은 안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밤이면 언제나 별은 반짝거립니다. 삼천년이 지난 오늘도 역시 밤에는 별이 빛납니다.

우리도 빛나는 번쩍거리는 그 별을 보고, 삼천년 동안에 아니 수억만 년을 내려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별을 봅니다. 번쩍이는 별을 보지마는 별을 보았다고 해서 다 확철대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그 별빛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셨어.



해마다 제방(諸方)에서는 섣달 초하루부터 납월팔일 새벽까지 만 7일간을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합니다.

그것은 우리 부처님께서 납월 8일에 별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셨기 때문에 그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그 뜻깊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또 그 뜻깊은 날을 우리가 그냥 범연(泛然)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방에서는 용맹정진을 해. 7일 동안을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완전히 앉은 채 그렇게 용맹정진을 합니다.

   

왜 부처님께서는 그 납월 8일 별을 보고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왜 우리는 납월 8일 새벽 하늘의 별을 보고도 깨닫지를 못하고, 밤마다 번쩍거리는 수없는 별을 보고도 왜 깨닫지를 못할까요?

‘별을 보고 깨달았다’고 하는 생각 때문에 별을 보고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별을 보고 깨달아? 별을 보고 무엇을 깨달아?

“바로 그 별을 보는 것이다” 이 간단한 한 말씀 속에 삼천년 전에 부처님께서 별을 보고 깨달으신 바로 그 도리를 단적(端的)으로 설파(說破)하신 것입니다.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한데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하야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 천 자나 되는 긴 낚싯줄을 똑바로 드리우니,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여, 그 낚시가 물에 떨어지자마자 한 물결이 일어나니 일만 물결이 따라서 일어나더라.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 밤은 고요하고 물이 차와서 고기가 그 낚시를 물지를 않아.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로구나. 가득한 배에는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더라.


 

우리 부처님께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출현하셔서 별을 보시고 확철대오를 하셔가지고, 49년 동안을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셨어. 무량 중생을 제도하셨다.


부처님께서 확철대오하신 그 법을 가섭 존자에게 전하시고, 가섭 존자는 아란 존자, 아란 존자는 상나화수 이렇게 해서 28대를 달마 조사까지 전하고, 달마 조사가 중국으로 오셔서 6조 스님까지,  6조 스님 이후로  5종 가풍이 벌어져서 조실 스님까지 77대를 전해 내려왔습니다.

  

볼라야 볼 수 없고, 알라야 알 수 없고, 설할라야 설할 수 없고, 들을라야 들을 수 없는 이 도리를 깨닫고 또 그것을 전하고 받아서 오늘에 이르렀다.

꼭 깨달을 것이 있고, 꼭 전할 것이 있고 또 전해 받을 것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말이 됩니다.


‘깨달을 것이 있고, 전할 것이 있고, 받을 것이 있다’고 그렇게 그 말을 따라서 그렇게 인식하고, 또 자기도 깨달으려고 생각을 하고.


이러한 말에 떨어져서 그렇게 인식하는 사람은—마치 배를 타고 가다가 그 갑판 위에서 칼을 가지고 무엇을 하다가 그 칼을 잘못 놓쳐가지고 바닷물에 빠트렸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이 뱃전에서 칼을 잃어 버렸다’해 가지고, 나중에 그 잃어버린 칼을 찾기 위해서 그 장소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 뱃전을 쪼아 가지고 표(標)를 해 놨습니다.

언제라도 그 뱃전 그 자리에서 떨구었으니까, 그 뱃전에다가 표를 해 놔야 그 뱃전 밑으로 내려가면은 그 밑바닥에 칼이 있을 것이다 이거거든. 

  

또 어떤 사람은 산에서 어느 나무 등걸 밑에서 토끼를 한 마리 보았는데, 그 토끼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래가지고 그 나무 등걸에서 토끼를 발견했다가 놓쳤으니까, 항상 그 나무 등걸에 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토끼가 달아났으니까 여기 가 있으면 그 토끼가 오려니.


그렇게 이야기하면 여러분들은 칼을 잃어버리고 뱃전에다가 표를 한 사람이나, 토끼를 놓치고서 나무 등걸 옆에서 토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퍽 어리석고 바보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시겠지만,

‘부처님께서 별을 보고 깨달으셨으니까 행여나 나도 납월팔일 날 새벽에 하늘에 뜬 그 별을 보면 혹 깨달을란가?’ 이리 생각하고 추운데 새벽에 나가가지고 동쪽에 가장 크게 빛나는 별을 새벽부터 쳐다보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별을 보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바로 별을 보는 것이니라. 보는 놈이니라”(처음~21분43초)



(2)------------------


깨달음이 별로부터 오겠습니까?

  

저 먼산에 연기가 나는 것을 보면 ‘거기에 불이 났구나’ 뻘건 불은 보이지 않지만 하얀 연기만 일어난 것만 보고도 ‘아! 저기에 벌써 불이 났구나’ 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담 밖에 담 너머로 뿔만 지나간 것을 보아도 ‘아! 저 담 밖에 소가 지나갔구나’ 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소 몸뚱이는 담에 가리어서 보이지 않고 뿔 끄터리만 보여도 담 밖에 소 가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말이여.


영리한 사람은 척! 연기만 보고 불인 줄 알고, 뿔만 보고도 소인 줄 알아.


어리석은 사람은 연기를 보고 불인 줄을 모르고, 그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저것이 무엇인가?

뿔 끄터리를 보고 벌써 소인 줄 알아야 할 텐데, 저것이 뾰족한 것이 무엇인가? 저것이 말인가? 개인가? 사람인가? 지게인가? 이러쿵저러쿵 따진다 말이여.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따져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여. 척! 보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용화선원에서는 납월팔일 용맹정진을 그렇게 행사로서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개인 개인이 각자 자기의 신심과 분 따라서 7일 동안을 다른 때 보다는 좀더 마음과 몸을 가다듬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기는 어찌하여 반드시 납월팔일뿐이리오? 결제(結制)한 날부터서 오늘날까지 하루 하루를 바로 용맹정진 가행정진으로 그렇게 정진을 해 오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날마다 용맹정진이요, 날마다 가행정진인데, 특별히 의식적으로 납월 8일을 기해서 그런 의식적인 행사로써 안 했을 뿐인 것입니다.


정진을 열심히 하다 보면 앉아서나 서서나, 밥을 먹을 때나, 화장실을 갈 때나, 세면장에를 가거나, 소지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 하게 되어.


그러면 걸어가되 가는 줄도 모르고, 앉았으되 내가 앉았다는 생각도 없고, 밥을 먹되 밥맛도 모르고, 반찬을 먹되 짠지 싱거운 줄도 모르고, 시간이 한 시간이 지나갔는지 반 시간이 지나갔는지, 오늘이 몇월 며칠인지 시간 날짜 가는 줄도 모르고,

마침내는 이 몸뚱이가 이 세상에 있는 것도 몰라. 다맛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 해.


정진을 애써서 한 사람이면 다 그러한 고비에 이르른 것입니다. 그러한 고비에 이르렀을 때에 항상 육근문두(六根門頭)에는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가 떠억 엿보고 있는 것입니다.

엿보고 있다가 한 생각만 삐끗 ‘딴 생각[別念]’만 일으켰다 하면 바로 그 즈음을 타 가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침입(入)해 들어와!


마치 호위병이, 간수나 수위가 성문을 지키고 있는데 잠깐 한눈을 팔거나, 그 자리를 잠깐 비우면 그 틈을 타서 도둑이나 적이 들어온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순일무잡하고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그러한 경지에서 무슨 마음을 일으키던지 그 일으키는 마음에 따라서, 그 어떠한 마음을 내는가에 따라서 팔만사천 마군이 가운데에 어느 마구니가 침범해 들어와. 

 

어떤 수좌는 저 남해에서 정진을 참 애써서 하는데, 어떤 거룩하게 생긴 모습을 한 사람이 나와 가지고 설법을 하는데 경전에 있는 말씀과 똑같고, 경전에 있는 말씀보다도 더 한 걸음 나아간 그러한 심오한 그런 설법을 막 설한다 그말이여.

그리고 나서 ‘네가 정말 견성성불 하려면은 네 이마를 이 기둥에다가 부딪쳐라’ 막 그냥 그 법문 끝에 막 그렇게 강요를 하니까 거기에 따르지 아니할 수가 없어서 막 기둥에다가 머리빡을 들이받아 가지고 유혈이 낭자해.


그러다가 또 어느 날에는 ‘네가 참으로 견성성불 하려면은 네 고추를 끊어 버려라. 그놈 때문에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를 하고 도를 이루지 못했는데 금생이라도 네가 결정코 도업을 성취하려면 고추를 잘라 버려라’

그 법문을 설하고 나서 막 그것을 짜르라고 하니까 그 말을 안 들을 수가 없어. 그 법문에 감동이 되어 가지고 있고, 도업 성취할 그 생각 밖에 없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안 끊을 수가 없어서 고추를 잘라 버렸어. 유혈이 낭자 해 가지고 참 어렵게 수습을 했다 그말이여.  


이 정진을 애써서 하다 보면 특히 혼자 저 섬이나, 깊은 산중에나 토굴에 들어가서 혼자 공부하다가 흔히 이러한 경계(境界)가 나타나는 거여.


그래서 옛날부터 이 공부는 선지식(善知識) 밑에서 좋은 도반(道伴)들과 같이 정진을 해야지,

선지식이 없는 곳에 또 좋은 도반이 없는 곳에 아직 득력(得力)을 하지 못한 분상(分上)에 혼자 가서 한다는 것은 항상 이런 위험성이 수반(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모다 경계(戒)를 했습니다.


대중처소(大衆處所)에 살면 모두 대중(大衆)의 규칙을 따라야 하고 또 여러 다른 대중을 위해서 항상 조심해야 하고 신경을 써야 하고, 그러니 자기의 성질에는 안 맞아도 대중의 뜻을 따라야 하고, 대중을 조심해야 하니까,

자기 혼자 있으면 그러한 공연히 신경 쓰고 그럴 것이 없이 잠도 않자고 공부하려면 공부하고, 밥도 그저 먹고 싶으면 먹고 안 먹고 싶으면 안 먹고, 그저 뭐 정진도 4시간이고 5시간이고 꼼짝않고 하려면 하고, 잠도 않자고 하려면 하고, 마음껏 할 수가 있겠다.


그러니 대중처소에서 하니까 그런 것을 마음대로 못하고, 더 좀 공부하고 싶어도 시간되면 자야 되고 또 조금 늦게 일어나고 싶어도 시간 되면 일어나야 하고, 밥도 먹기 싫어도 대중과 같이 발우공양(鉢盂供養)을 해야 하고,

그러한 폐단을 피해서 토굴(土窟)에 들어가서 실컷 좀 공부하기 위해서 토굴을 찾고 토굴을 마련하고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마는,


공부에 득력을 하지 아니한 사람이 토굴에 들어가서 하다 보면, 참 그 정진을 애써서 계행을 철저히 지키면서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삐끗하면 이상한 경계가 나타나. 관세음보살이 나타나기도 하고, 부처님이라 해가지고 나타나기도 하고.

그래가지고 아까 저 남해에 가서 공부하던 그 수좌처럼 그러한 경계가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능엄경(楞嚴經) 50상(相) 변마장(辨魔障)에 있는 그러한 경계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말이여.


이러할 때 좋은 도반이 옆에 있거나 선지식이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백이면 백 다 그러한 마(魔)에 섭(攝)하게 되고, 사견(邪見)에 떨어지게 되고, 까딱하면 정신이상(常)에까지 걸려서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르를 수 있는 것이여.


그런데 그 순일무잡한 경계에서 행여나 빨리 깨닫기를 바란다든지, 누가 와서 자기를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란다든지 또는 어떠한 조사의 공안을 가지고 이리저리 분별하고, 분석하고, 따져서 복탁(卜度)을 한다든지 또는 무슨 신통이 나기를 바란다던지,

그러한 『화두(話頭)에 대한 의단(疑團) 이외의 어떠한 생각도 여기에 이르러서는 다 마구니를 불러들일 틈이 되는 것이다』 이 말씀입니다.


 

과거에 부처님께서는 별을 보고 확철대오를 하셨고, 또 어떤 도인은 복숭화 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고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비로 땅을 쓸다가 돌이 와서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도인은 발을 걷어 올리다가 깨닫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시장에서 장꾼들이 싸우는 소리를 듣고 깨닫기도 했다 그말이여.


어찌 하필 부처님처럼 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여.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비로자나 법신(法身)의 체(體)고, 부는 바람 소리, 흐르는 물소리, 개 짖는 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 일체가 다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의 설법(法)이여.


그러니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 두두물물 삼라만상이 다 우리가 자아를 깨달을 수 있는 때요, 곳이다 그말이여.

언제 어디서 무엇을 보다가, 무엇을 듣다가 깨달을는지 그것은 알 수가 없어.


그래서 어떠한 중대한 뉴스를 방송을 한다 할 때, 시간을 잘 모를 때에는 항상 다이얼을 맞춰서 딱 놔두고 기다리듯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깨달을지를 모르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화두를 의단이 독로하도록 잡드리해 나가야 한다 그말이여.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한 경지로 나아가야 그 언젠가 탁! 의단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이지,

화두를 놓쳐 버리고 사량분별에 떨어진다던지, 눈으로 무엇을 보는 데에 끄달린다든지, 귀로 무엇을 듣는데 끄달리고 있는 한은 그러한 경지에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항상 화두를 잡드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가 해야 할 정진이여.

경전도 볼 것이 아니고, 어록도 볼 것이 아니고, 일체처 일체시가 행주좌와 어묵동정 사위의(四威儀)에서 화두만 성성적적(惺惺寂寂) 하게 잡드리해 갈 뿐이여.

밥을 먹을 때도 그렇고, 똥을 눌 때도 그렇고, 오줌을 눌 때도 그러고, 앉아서도 그러고, 서서도 그러고.


이렇게 잡드리해 가지고 안 되는 법이 없어.

고조사(古祖師)들이 ‘그렇게 잡드리해 가지고 안 된다면 내가 너희들을 대신해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아주...


부처님께서는 ‘무엇 무엇이 안 하면 내가 어쩌리라’고 함부로 그러한 막담을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고인(古人)네는 우리 후인(後人)들을 위해서, 그렇게도 무서운 그러한 맹세를 우리를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21분46초~41분4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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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산당정야좌무언~’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적적하다(寂寂-- 고요할 적) ; ①(장소가)조용하고 쓸쓸하다. ②(사람이)홀로 떨어져 있어 심심하고 외롭다.

*요요하다(寥寥-- 쓸쓸할·텅 빌 료) ; ①(장소가)고요하고 쓸쓸하다. ②매우 적고 드물다.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샛별이 뜰 무렵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하(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한다. 일명 성도재일(成道齋日).

*전강 대선사(田岡大禪師)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유성출가(踰城出家) ; 싯다르타(실달) 태자가 인간의 오욕(五欲)의 더러움과 인생의 무상을 본 뒤, 정진하는 마음을 내어 중생을 위하는 자비심의 큰 서원을 일으켜, 수행을 하기 위하여 성을 넘어서[踰城] 집을 나간[出家]것을 말함.

*고행(苦行) ; ①어떤 경지에 이르거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②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피골상접(皮骨相接) ; 살가죽[皮]과 뼈[骨]가 맞붙을[相接] 정도로 바짝 마름.

*고목사회(枯木死灰) ; 말라서 죽어 버린 나무[枯木]와 불기운이 사그라진 다 식은 재[死灰]. 외형은 고목과 같고 마음은 타고 남은 재처럼 되어 생기가 없다는 의미.

*해골(骨) ; ①죽은 사람  전부 썩고 남은 . ② 전부 썩고 남은 죽은 사람 머리뼈. ③몹시 여위어   사람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④생각하는 머리 속되게 이르는 .

*유미죽(乳糜粥 젖 유/죽 미/죽 죽) ; 우유에 쌀을 넣어 만든 죽.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 ; 고대 인도 북부에 있던 카필라(kapila)국의 임금. 석존(釋尊)의 아버지.

*실달(悉達) ; 싯다르타(siddhartha)의 음역어. 목적을 달성한다는 뜻.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가 출가하기 전 태자(太子) 때의 이름. ‘실다(悉多)’, ‘실달다(悉達多)’이라고도 쓴다.

*교진여(憍陳如) ; 산스크리트어 āāta-kauṇḍinya 팔리어 aññā-koṇḍañña의 음사. 요본제(了本際)·지본제(知本際)라고 번역. 오비구(五比丘)의 한 명.
우루벨라에서 싯다르타와 함께 다섯 명이 고행했으나 싯다르타가 네란자라(nerañjarā) 강에서 목욕하고 또 수자타에게 우유죽을 얻어 먹는 것을 보고 타락했다고 하여, 그곳을 떠나 녹야원(鹿野苑)에서 고행하고 있었는데,
네란자라강가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가 이들에게 진리를 전하기 위해 부다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 긴 여행을 하여 그곳을 찾아 설한 중도(中道)의 이치와 팔정도(八正道)와 사성제(四聖諦)의 가르침을 듣고 이들은 곧 붓다에게 귀의하였으며, 교진여는 그 자리에서 아라한(阿羅漢)이 되었다.
*녹야원(鹿野苑) ; 석가(釋迦)가 35세에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교진여(僑陳如) 등 5명의 비구(比丘)를 제도(濟度)하였다.
갠지스 강 중류,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 Benares)에서 북동쪽 약 7㎞ 지점에 있는 사르나트(Sarnath)의 유적이 곧 녹야원의 터. 사슴동산(녹야원), 즉 사르나트(Sarnath)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슴의 왕’을 뜻하는 ‘사란가나타(Saranganatha)’가 줄어든 말이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붓다가야(buddhagayā)에서 녹야원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200㎞됨.
탄생(誕生:룸비니) ·성도(成道:붓다가야) ·입멸(入滅:쿠시나가라)의 땅과 더불어 불교(佛敎) 4대 성지의 하나.

*쇄락(灑落 물뿌릴 쇄, 떨어질 락) ; 기분이나 몸이 상쾌하고 깨끗함.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제방(諸方) ; ①모든 지방 ②모든 종파의 스님.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범연(泛然)히 ;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단적(端的 바를 단/과녁·확실할 적) ; ①(명사)곧바르고(기울거나 굽지 아니하고 곧고 바르다) 명백한 것. ②(관형사)곧바르고 명백한.

*설파(說破) ;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게송) ‘천척사륜직하수~’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지견불생분(知見不生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뱃전 ; 배의 양쪽 가장자리 부분.

*등걸 ; 나무의 줄기를 베어 내고 남은 밑동(나무줄기에서 뿌리에 가까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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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터리 ; '끄트머리(맨 끝 부분)'의 사투리.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 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육근문두(六根門頭) ; 육근(六根-眼耳鼻舌身意)의 문 앞. 육근과의 경계.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딴 생각’ ; 별념(別念).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살자(殺者)•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64에서.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분상(分上 분수 분, 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수반하다(伴-- 따를 수/따를·짝 반) ; ①[자동사](어떤 현상)다른 현상 따라서 더불어 기게 되다. ②[타동사](어떤 일이 다른 현상)  따라서 불어 생기게 하다.

*경계( 경계할 경, 경계할 계) ; ①뜻밖 사고 잘못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심하여 단속함적의 기습이나 간첩 활동 같은 예상하지 못한 침입  위해 일정한 지역 살펴 지킴.

*대중처소(大衆處所) ; 많은 스님, 또는 사부대중이 모여 수행하는 절(도량)을 말한다.

*대중(大衆) ; 많은 스님이나 신도들.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발우공양(鉢盂供養) ; 스님들이 쓰는 밥그릇을 발우(鉢盂)라고 하여, 발우공양은 ‘스님들이 하는 식사’를 말한다. 발우공양을 할 때 《소심경(小心經)》이라는 경전을 외운다.

이 공양은 단순히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이 깨달아 신과 인간의 공양 받기를 원하는 ‘하발게(下鉢偈)’, 부처님 일생의 중요한 4대 성지를 생각하는 ‘회발게(回鉢偈), 보시하는 사람, 보시받는 사람, 보시하는 물건, 삼륜(三輪)이 공적함을 생각하는 ‘전발게(展鉢偈)’

그리고 위로는 부처님, 성인 아래로는 일체 중생 모두에게 공양을 올린다는 ‘봉반게(奉飯偈)’ 음식이 우리 앞에 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이 음식을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하는 ‘오관게(五觀偈)’

그리고 생반게(生飯偈), 정식게(淨食偈), 삼시게(三匙偈), 절수게(絶水偈), 해탈주(解脫呪)를 하면서 모든 중생과 함께 고통을 벗어나 무상도(無上道)를 이루겠다는 서원을 다짐하며 공양하는 수행 의식이다.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능엄경(楞嚴經) 변마장(辨魔障) ; 능엄경 조도분(助道分)에 있는, 수행도상에 있어 나타날 수 있는, 오음(五陰-색수상행식 色受想行識)이 녹아 없어질 때에 나타나는 갖가지 마장(魔障)을 밝혀, 수행자들이 사특한 길에 떨어지지 않게 한 부처님 가르침.

*마섭(魔攝) ; 마(魔)에 포섭(包攝)되다. 마에게 끌려들어 그의 편이 되다.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정신이상(常)신경 정신 계통 장애 비정상적 괴이한 행동 하는 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