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심 자신(自信)2013. 10. 5. 14:33

 

 

§(414) (게송)무변찰해허명경~ / 발심 가운데는 포구발심(怖懼發心)이 제일, 사바세계가 도 닦기에 가장 좋다 / 전강 조실스님의 포구발심 직지사 용맹정진.

 

조실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발심 가운데에는 포구발심(怖懼發心), ', 생사(生死) 정말 무섭구나' 생사에 대한 무서움, 두려운 마음으로 발심하는 , 포구발심이 제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바세계가 닦기에 가장 좋다 하는 것은 천당보다도 하늘나라에 () 받는 천국보다도 사바세계가 닦기에 좋다고 하는 것은, 흥망성쇠와 생로병사와 빈부귀천의 그러헌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그러헌 모습들이 눈으로 있고 귀로 들을 있고 느낄 있고 노상 접할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사바세계는 '참나' 깨닫기 위한, 우주법계에서 가장 좋은 도량이라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사(生死)! 무상한 생사 속에서만이 발심(發心) 수가 있고, 발심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공부는 수가 없습니다. 남이 참선을 하니까, 참선을 하면은 마음이 편안해진다니까그러한 옅은 생각으로 조금씩 흉내내 보고 조금씩 연습해 보고 이래 가지고서는, 그것도 것보다는 나을런지 모르지만 정말 생사 문제를 해결하고 대도를 성취할려면 목숨을 바치는 그러한 대분발심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송담스님(No.414) - 1990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법문에서. (용414)

 

약 17분.

 

 

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인데  적겁매진광미휴(積劫埋塵光未虧)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종래천성부동진(從來千聖不同塵)헌데  하사횡신성색리(何事橫身聲色裏)인고

나무~아미타불~~

 

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이요  적겁매진광미휴(積劫埋塵光未虧)다.

갓 없는 우주법계가 텅 비고 밝은 거울인데, 그 거울이 무량겁 동안 거울에 쌓이고 쌓인 티끌로 그 밝은 빛이 나타나지를 못하는구나.

 

종래천성부동진(從來千聖不同塵)인데  하사횡신성색리(何事橫身聲色裏)인고.

부처님과 모든 보살님과 역대조사와 모든 성현들은 그 티끌에 파묻히지 아니하고 터억 자아를 자각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했는데,

우리 중생들은 무슨 일로, 무엇 때문에 그 소리와 빛깔의 티끌 속에 파묻혀서 헤어나지를 못하는고.

이러한 고인의 게송을 읊었습니다.

 

 

오늘 경오년 4월 첫째 일요법회를 맞이해서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처음에 선방에 나오셔서 직지사(直指寺)에서 첫 철을 공부하시는 그 지경을 들었습니다.

열아홉 살 열여덟 살 한참 그 어리신 나이에 같이 뛰어놀고, 같이 글을 배우고 공부하던 친구가 병이 들어서 죽은 것을 보고 너무도 큰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그 충격을 받고 있는 차에 마치 밤에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그 하룻밤 하루낮에 만 번 죽고 만 번 깨어나면서 만사만생(萬死萬生)하는 그 무서운 피비린내 나는 지옥고(地獄苦) 받는 광경을 보셨습니다.

사람을 세워 놓고 톱으로 머리로부터서 두 쪽으로 썰어 내리고, 또 사람을 수십 명씩 콩나물처럼 그렇게 잡어 가지고 큰 맷돌에다가 넣어서 맷돌로 갈아서 죽이는 모습, 또 그렇게 죽여 가지고 다시 또 살려 내 가지고 또 그와 같은 것을 수없이 되풀이를 하는 그러한 광경들, 그러한 꿈을 또 꾸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생사(生死)라 하는 것은 참으로 무상한 것이다. 어서 빨리 내가 선방에 나아가서 참선을 해야겠다’ 그러한 참 불같은 발심을 해 가지고 직지사로 나오신 것입니다.

 

 

조실 스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발심 가운데에는 포구발심(怖懼發心), '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에 대한 무서움, 두려운 마음으로 발심하는 것, 포구발심이 제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사바세계(娑婆世界)에는 포구발심할 수 있는 많은 상황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해서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실스님께서는 18~9세 어린 나이로 그런 친구의 죽음을 보시고, 지옥고의 꿈을 꾸시고서 포구발심을 하셨어.

 

그런데 우리는 정든 가족이 죽어도, 친구가 죽어도, 도처에서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고, 강도로 인해서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전쟁으로 죽고 그 사람들이 죽는 그런 비참한 광경을 수없이 보면서도 과연 생사에 대한 포구발심을 한 분이 몇 분이나 되십니까?

 

‘사바세계가 도 닦기에 가장 좋다’고 하는 것은 천당보다도 저 하늘나라에 낙(樂)을 받는 천국보다도 더 사바세계가 도 닦기에 좋다고 하는 것은,

흥망성쇠와 생로병사와 빈부귀천의 그러헌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그러헌 모습들이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노상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는 '참나'를 깨닫기 위한, 우주법계에서 가장 좋은 도량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19세의 그 어린 나이로 첫 철에 직지사 선원에 나오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공부를 하시는데 아침공양을 하시고는 자리에 앉아서 참선을—입선(入禪) 방선(放禪)도 상관이 없고, 큰방에서 대중 스님네와 같이 그렇게 하면 입선 시간이 있고, 방선하면 일어서야 하고, 대중과 행동을 같이 해야 하니까,

그러기가 불편하니까 법당 뒤에다가 방석 하나를 갖다 놓고 거기서 공양시간에는 불가불 가서 공양을 드셔야 하니까 그때만 일어서시고 공양만 끝나면은 바로 그 자리에 와서 앉었어.

 

그렇게 하기를 하루, 이틀, 사흘, 열흘, 두 달, 석 달을 한결같이 그렇게 하셨다.

대중이 ‘어린 사람이 첫 철 말뚝 신심이 나 가지고 저런다고 며칠이나 갈까 보냐?’고 모다 수군덕거리고 그랬다고 아까 말씀이 계셨습니다마는 그걸 허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이 한결같이 그렇게 하셨어.

 

그러나 이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는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과 화두를 드는 바른 법을 알고서 하셔야 할 텐데, 누가 그걸 자세히 일러준 분도 없었고, 또 그렇게 자세히 해 놓은 책도 볼 수 없었고,

 

또 그 조실 스님께서는 그때는 제산(霽山) 스님께서 조실로 계신 때인데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을 관(觀)하라.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을 관하라’ 이렇게 화두를 일러 주셨으니,

그것이 도저히.. ‘일념미생전을 관한다’ 어떻게 관(觀)하며, 또 들은 법문에 의하면은 ‘화두는 의심을 관하는 것인데 의심도 없이 한 생각 이전의 상태를 관하라?’

 

도저히 바른 공부가 아닌 것 같아서 단독으로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를 스스로 간택을 해 가지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파고 또 파고 해 가지고 어떻게 간절히 그리고 몹시 알날신심(捺身心)하면서 막 파고 들어갔다.

그러니 마침내는 육단심(肉團心)이 동(動)해 가지고 그렇게 코로 입으로 많은 피를 토하셨다고 그럽니다.

 

결과적으로는 피를 토하셨거나 말았거나 그렇게 무섭게 공부를 하셨기 때문에 결국은 대도를 성취하셨다고 하는 생각이 됩니다마는, 애당초에 바른 자세법과 바른 호흡법과 바른 화두를 드는—어떻게 화두를 들어야 하는가?

그 화두를 드는 그런 가장 불급불완(不急不緩)한, 너무 급하지도 않고 늘어지지도 않는 가장 그 묘한 의심관(疑心觀)으로 해 나가셨다면은 그렇게 피를 토하시지 않고도 도를 이루셨지 않을까? 이렇게도 생각이 들기도 하지마는.

 

하여간 그 어리신 나이로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무서운 신심과 무서운 분심으로 그렇게 밀고 나가 가지고, 병이 난 뒤에도 계속해서 목숨을 거기다 전부 다 바치고 결국은 정진을 중단하시지 않고서 마침내 대도(大道)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정말 친구나 정든 사람의 죽음을 보고 그렇게 철저히 발심을 해서 도를 닦을라고 한 분도 지금도 역시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설사 그렇게 발심을 하신 분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바른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화두를 간택하고 공부하는 방법을 바로 알아 가지고 하신다면은 중간에 무서운 그런 병이 일어나지 않고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조실 스님은 그 어려서 그렇게 피가 넘어오는 그것으로 인해서 많은 세월 동안을 그 병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뒷머리가 툭툭 터져서 머리에 참 많은 흉터가 계셨고, 고생도 참 많이 하셨습니다.

그렇게 무섭게 정진을 하시고 밤잠을 안 주무시고 공부를 하시고 그래서, 스스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무섭게 정진을 하셨기 때문에 평생 동안 후배들을 위해서 후학들을 위해서 참 감동적인 법문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스스로 무량겁 동안을 수행을 하시는 가운데에 수없는 몸을 던지시고 참 무서운 고행정진을 하셨기 때문에 사바세계에 탄생하셔 가지고 그 팔만사천 무상법문을 그렇게 많이 남기신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생사(生死)! 무상한 이 생사 속에서만이 발심(發心)을 할 수가 있고, 발심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 공부는 할 수가 없습니다.

‘남이 참선을 하니까, 참선을 하면은 마음이 편안해진다니까’ 그러한 옅은 생각으로 조금씩 흉내내 보고 조금씩 연습해 보고 이래 가지고서는, 그것도 안 한 것보다는 나을런지 모르지만 정말 생사 문제를 해결하고 대도를 성취할려면 목숨을 바치는 그러한 대분발심이 아니고서는 이룰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처음~16분3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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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 ;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峯和尙廣錄)』 (제14권) ‘別傳覺心’

**복전암 29번에도 이 게송이 있음.

무변찰해허명경(無邊刹海虛明鏡) 가없는 시방세계가 텅비어 밝은 거울인데

적겁매진광미휴(積劫埋塵光未虧) 무량겁 동안 티끌이 쌓여도 그 빛은 이지러짐이 없구나

종래천성부동진(從來千聖不同塵) 종래로 모든 성인은 티끌과 함께 하지 않았는데

하사횡신성색리(何事橫身聲色裏) 무슨 일로 우리는 성색의 티끌속에 죽어가느냐!

*虧 (이지러질 휴) 이지러지다. 손상됨. 그치다. 줄다.  *裏 (속 리) 가운데, 뱃속, 다스려지다. 안에 받아들이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포구발심(怖懼發心 두려워할 포/두려워할 구/일어날 발/마음 심) :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육도윤회(六途輪廻)에서 받을 생사(生死)가 정말 무섭구나. 그 생사의 고통을 매우 두려워(怖懼)하여, 두려운 마음으로 생사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지옥(地獄 땅 지, 감옥 옥) ; ①고통이 가득찬 세계. 현세에 악업(惡業)을 행한 자가, 사후 그 보답을 받는 곳. ②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량(道場) : [범] bodhimandala 도를 닦는 곳이란 말이다。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조주무자(趙州無字) 화두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알날신심(捺身心  누를 알/누를 날/몸 신/마음 심) ; 몸과 마음을 억누르다.

[몽산법어] '몽산화상시총상인(蒙山和尙示聰上人)'에 나오는 구절.

*육단심(肉團心) : [범] Hrdaya  4심의 하나。 심장을 말함。 8판(瓣)의 육엽(肉葉)으로 되었다 한다。 의근(意根)이 의탁한 곳.

*묘한 의심관(疑心觀) ; 묘관(妙觀).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불문곡직하다(不問曲直-- 아니 불/물을 문/옳지 않을 곡/곧을·맞을 직) ; 곡직불문하다. (사람이)옳고 그름을 따져 묻지 아니하다.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