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삼요)'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21.08.28 §((335)) 대신심(大信心), ‘내가 부처다’ / 이 공부는 승속(僧俗)도, 남녀노소도, 빈부귀천도 없다 / (게송)여군동보우동행~ / 바로 지금 이때 공부해야.
  2. 2021.08.21 §((151)) '나도 올바르게 열심히 하면 결정코 이 몸을 가지고 확철대오할 수가 있다' 믿으면 말 한마디에 일대사(一大事)는 끝나고 마는 것.
  3. 2021.06.15 §((411)) 생사 없는 도리가 있다고 믿어 화두 타서 정진 /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음--->보림(保任) 공부--->증(證)--->증(證)한 다음에 용무생사(用無生死).
  4. 2021.05.12 §((472)) 부처님께서는 자기를 이기신 분 / 부처님 과거 용(龍)이었을 때 인욕 / 초파일을 기해 우리도 부처님 같은 대신심과 대원력으로써 새로 태어나야.
  5. 2021.03.26 §((244)) 중국 고봉 스님의 3년 사한(死限) 용맹정진 / 고봉 스님과 같은 맹렬하고 간절한 결심으로 한결같이 밀고 나가야 / 내게 있는 것을 내가 찾는 것.
  6. 2021.03.07 §((117))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화두에 대한 대의정(大疑情), 대의심(大疑心) 삼요(三要).
  7. 2021.01.20 §((190)) 『열반경』에 부처님 과거 인행(因行) 때의 설산동자 '제행무상게(諸行無常偈)' / 간절한 한 생각으로 화두를 들면 마구니가 불보살로 화현(化現)을 한다.
  8. 2020.12.30 §((066)) 참선을 함으로써 지혜의 힘을 얻는 것 / 불법(佛法)은 마음에 모든 생각을 버리는 것. 빨리 버리는 방법은 「이뭣고?」 이 한마디뿐.
  9. 2020.11.28 §((558)) (게송)당당대도혁분명~ / 강아지, 송아지, 도야지 / 구정선사 / 선지식의 한마디, 위법망구 / 참선이라는 것은 배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10. 2019.04.08 §(513) 도를 배우려면 모름지기 다섯 가지 올바른 믿음을 갖추어야 한다.[五種正信]
신심(삼요)2021. 8. 28. 07:18

§((335)) 대신심(大信心), ‘내가 부처다’ 대분심(大憤心), 대의단(大疑團) / 불성(佛性) 자리에 있어서는 남녀의 차별이, 남녀의 구별도 있을 수가 없다 / 이 공부에 있어서는 승속(僧俗)도, 남녀도, 빈부와 노소와 귀천도 없다.
(게송)여군동보우동행~ / 바로 지금 이때를 여의고는 공부할 시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우리도 언제 어느 시각에 터질런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고 간절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해 나갈 때에 깨닫게 되는 것이다.

**송담스님(No.335)—1987년 7월 첫째일요법회(87.07.05) (용335) (신심,삼요)

 

 

약 17분.

 


대분심(大憤心), 대신심(大信心), 대의단(大疑團).

대신심(大信心), ‘내가 부처다’
나도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원래 부처라고 하는 깊은 믿음, 본래 내가 부처이기 때문에 새로 부처를 이룰 것이 없어. 다맛 화두가 독로해서 의단(疑團)만 타파(打破)해 버리면 자기의 불성(佛性)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몸 밖에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마음 밖에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여. 바로 자기가 부처고, 말하고 옷 입고 밥 먹고 울고 웃고 성내고 근심 걱정하는 바로 이놈을 여의지 않고 바로 거기에 부처님이 계시다고 하는 도리를 믿어야 하고.

'왜 과거에 모든 불보살과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를 해결했는데 나는 오늘날까지 무엇을 하느라고 이렇게 캄캄해 가지고 있는가?' 도저히 그 분심이 속에서부터서 끓어올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무서운 그 집념, 훨씬 여성이 남성보다도 더 독하고 모질다고 하는 것입니다. 6.25 동란 때 남자들은 도저히 그러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고생을 이기지 못할 그런 처지에서도 여성들은 다 그것을 참고 견디고 이겨낸 것입니다.
'남자는 뭐 사흘만 굶어도 죽고 여자는 석달을 굶어도 안 죽는다'는 말도 있습니다마는, 그건 왜 그러냐? 자식을 위하는 생각, 남편을 위하는 생각, 그런 무서운 집념이 콱 쩔어 있기 때문에 도저히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이나 부모나 남편이나 재산에 대한 애착도 훨씬 여성이 더 강합니다. 그러한 무서운, 쇠심줄보다도 더 강인한 그러한 결심을 가지고 참선하는 데 동원을 한다면, 남자보다도 훨씬 더 빨리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본래 남성 여성의 그 성품 자리에 있어서는, 불성(佛性) 자리에 있어서는 남녀의 차별이 있을 수가 없고 남녀의 구별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본래부터 남성이 따로 있고 여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업(業)에 따라서 여자의 탈을 뒤집어쓰고 나오면 여자고 또 다음 생에 남자의 탈을 뒤집어쓰고 나오면 남자이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항상 장부(丈夫)의 마음을 가지고 장부의 성격을 쓰고 장부의 행실을 하면은 내생에 장부가 되는 것이고, 여자의 성격을 쓰고 여자의 행위를 하면은 여자의 몸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금생에는 남자가 되어 버렸고 여자가 되어 버렸으니 껍데기는 어찌할 도리가 없으나, 그 남녀가 구별이 없는 그 본성(本性) 자리에 있어서는 자기가 여자라고 해서 뒷걸음질칠 필요도 없고 자포자기할 필요도 없고, 다 같이 부처님의 제자로서 정법(正法)을 믿는 최상승 학자로서 당당하게 선의(善意)의 경쟁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공부에 있어서는 승속(僧俗)도, 남녀도, 빈부와 노소와 귀천도 없는 것이기에 이 문제에 있어서는 선의의 경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과 남한도 언젠가는 선의의 경쟁을 해 가지고 모든 면에 있어서 우위를 가진 사람이 결국은 그이 쪽으로 통일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정치적으로도 또 경제적으로도 모든 문화 · 예술 · 교육 일체 면에서 앞장서서 나아가면 그것이 바로 통일을 앞당기고 통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자분도 그러한 남성보다도 더 크고 무서운 그러한 집념(執念)을 갖다가 발심(發心)하고 도 닦는 데에 돌이킨다면 참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용화사에는 거사(居士)님들이 공부할 수 있는 선원이 아직 마련되지 안 해서 와서 정진하시는 분들이 없습니다마는 그런 선원이 열리게 된다면 거사님네 선방도 잘되지 않을까 이리 생각을 합니다.
물론 직장을 가지고 계신 분은 와서 석달 동안을 정진하시기에는 어렵겠습니다마는, 이 보살님네들은 금년에도 7~80명, 해마다 100여 명을 넘어서 방부를 들이고 모다 정진을 하시고 그러는데, 다 가정의 일이 바쁘시고 모다 그런데도 ‘어떻게 하면은 금생에 이 불법을 만났을 때 다만 조금이라도, 어쨌든지 이 몸뚱이 받았을 때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 해야겠다’ 하는 그 신심이 돈독(敦篤)하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보살님네들이 와서 이렇게 정진을 하시게 된다고 그렇게 믿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도 거사님네보단 보살님네들이 이 법을 믿고 공부하시는 면에서 앞장서 가고 계시지 않는가 이리 생각을 합니다. 내생에 몸을 바꿔서 남자로 태어나시면 그러한 보살님네들은 금방 출가해서 참 큰스님이 되어 가지고 불법을 갖다가 재흥(再興)하는 그러한 역군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군동보우동행(與君同步又同行)하고  기좌상장세월장(起坐相將歲月長)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갈음기손상대면(渴飮飢飡常對面)하고  불수회수갱사량(不須回首更思量)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여군동보우동행(與君同步又同行)이여, 그대와 더불어 함께 걷고 함께 행하며,
기좌상장세월장(起坐相將歲月長)이로구나. 함께 일어나고 함께 앉고 같이 이렇게 지내오기를 세월이 길었다. 몇십 년, 몇백 년, 몇 억겁다생(億劫多生)을 그렇게 같이 걷고, 같이 행하고, 같이 일어나고, 같이 자고, 같이 이렇게 살아왔다 그 말이여.

갈음기손상대면(渴飮飢飡常對面), 목마르면 물 마시고, 배고프면 밥 먹으며 그렇게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항상 같이 해 왔다.
불수회수갱사량(不須回首更思量)이니라. 모름지기 머리를 돌이켜서 다시 생각하지를 말어라.
바로 여읠라야 여읠 수 없고, 앉았을 때는 같이 앉았고, 누울 때도 같이 눕고, 섰을 때도 같이 서고, 걸어갈 때도 같이 걸어가고, 일 할 때 같이 일하고, 일분일초도 여읠라야 여읠 수 없는 그대를, 어디를 머리를 돌이켜서 생각을 해? 머리를 돌이켜서 찾으면 어디가 있을 거여, 그게.

오늘 정묘년 7월 첫째 일요일을 맞이해서 평생 동안 잊지 못할 전강 조실 스님의 그 감동적인 법문, ‘어묵동정(語黙動靜)을 여의고 일러라’ 한 공안(公案)과, 경허 스님의 오도송(悟道頌) ‘야인(野人)이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라 한 구절에 대해서 그 전강 조실 스님 소년 시절에—20여세 된 그 아주 새파란 청년 시대에 그 만공 대선사와 보월 선사와 그 기라성 같은 여러 구참납자(久參衲子)들 앞에서 그 경허 큰스님의 오도송을 그렇게, 참 멋들어지다고 할까? 상쾌하다고 할까? 참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그러한, 영원히 우리가 도업(道業)을 성취할 때까지 잊지 못할 그런 감동적인 법문을 들었습니다.

앞으로 더위가 본격적으로 닥쳐올 것입니다. 여러 선방에 계신 스님네 또 가정에서 정진하시고 또 직장에 나가시는 여러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 그리고 학생 여러분, 이때, 바로 지금 이때를 여의고는 공부할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지금! 앉았을 때는 바로 앉은 그 시각, 섰을 때는 서 있는 그 시각, 밥 먹을 때는 밥 먹는 그 시각, 속이 상할 때는 속이 상한 바로 그 시각을 여의고 따로 내가 도를 닦아서 깨달을 시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인(古人)은 장터에서 '이 자식, 저 자식' 하고 싸우는 그 소리를 들은 그 찰나에 확철대오를 한 분도 있고, 복숭아꽃이 활짝 핀 바로 그것을 보고 깨달은 분도 있고, 빗자루로 뜰을 쓸다가 거기서 튀긴 돌멩이가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분도 있고, 물 흘러가는 소리를 듣고 깨닫고, 닭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닫고, 여름에 발을 갖다가 이렇게 걷어올리다가 깨달은 분도 있고, 자다가 뚝! 목침(木枕)에서 머리빡이 방바닥으로 떨어지는 찰나에 확철대오하신 분도 있습니다.

우리도 언제 어느 시각에 터질런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고 간절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해 나갈 때에 깨닫게 되는 것이지, 화두를 놓쳐 버리고 경계(境界)에 휩싸여서 있다가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화두에 대한 의단이 독로한 상태에서 보다가 터지고, 듣다가 터지고, 앉다가 터지고, 넘어지다 터지는 것입니다.

더웁다고 한 생각 늦추지 마시고, 더위를 정진으로 이겨 나가도록 간곡히 부탁을 드리고 법상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38분30초~55분4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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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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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21. 8. 21. 03:52

§((151)) 최상승법은 대뜸 처음부터 '나도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공부만 하면 나도 결정코 이 몸을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할 수가 있다'고 믿는데 부터서 시작을 해야 하는 것 / 이 최상승법은 목숨 바쳐서 믿고, 목숨 바쳐서 여법(如法)하게 실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으면 말 한마디에 일대사(一大事)는 끝나고 마는 것.

일어나는 한 생각이 두 번째 생각으로 옮기기 전에 퍼뜩 화두를 들을 때에 육도윤회로 빠지는 길은 거기에서 끊어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의 길로 돌아서는 것. 그래서 이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 생사해탈 묘법(妙法)이라 하는 것.

**송담스님(No.151)—1981년 9월 첫째일요법회(81.09.06) (용151) (신심,삼요)

 

 

약 13분.

 


'석가모니 부처님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면서 깨달음을 얻어 가지고 성현 가운데에 성현이 되셨다. 진리와 하나가 되셨다' 한 점에 있어서 우리는 더 부처님을 존경하게 되는데.
우리도 부처님께서 설(說)하신, 부처님께서 전(傳)하신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해서 열심히 도(道)를 닦으면, 목숨 바쳐서 도를 닦으면, 우리도 부처님과 같은 성현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을 믿는 우리 불자(佛子)가 맨 먼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인 것입니다.

'말세(末世)에 태어난 죄 많은 중생이 머리도 나쁘고, 지식도 없고, 몸도 건강틀 못하고, 여자로 태어났고, 우리 같은 사람이 참선을 한들 무슨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겠는가? 그저 금생에는 참선이 좋다 그러고, 선방 토방에 신발만 벗어 놔도 그 공덕으로 지옥에는 안 떨어진다고 그러니 금생에는 인연이나 맺으리라' 이러한 지나치게 겸손한 생각이라고도 할 수가 있지만, 그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최상승법을 잘못 이해한 사람인 것입니다.

최상승법은 대뜸 처음부터 '나도 견성성불할 수 있다,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공부만 하면 나도 결정코 이 몸을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할 수가 있다고 믿는데 부터서 시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고 대든 것하고, 벌써 처음부터서 안 될 줄 알고 하는 것과는 그 결과적으로 결과에 나타난 것은 하늘과 땅 사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참선법뿐만이 아니라 모든 일을 할 때에도 '된다'고 믿고, 된다고 믿어지는 일에 온갖 정성을 쏟아야 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안 될 줄 알고, 실패할 줄 알고, 심심풀이로 시험 삼아서 해 갖고 그 일이 백(百)에 하나도 성공할 가능성은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내가 나를 깨닫는 공부, 범부(凡夫)를 고쳐서 성현(聖賢)을 맨드는 이 공부를 목숨을 바쳐서 해도 어려웁고 어려울 텐데. 처음부터 안 될 것을 알고, 안 될 폭을 대고, 미리서부터서 넘어질 자리부터 보고 씨름을 하려고 하는 사람과 같애서 그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첫째, '나도 하면 된다'고 하는 신념. 그것이 서면 공부는 절반은 해 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공부는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꼭! 성취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내게 있는 것을 내가 찾기 때문에 올바르게만 찾으면 틀림없이 거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떠한 보물이나 물건을 잃어버리고 그것을 찾을려고 할 때에는 혹 찾어지기도 하고, 혹 안 찾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찾는 것은 마치 내 호주머니 속에 있는 어떤 물건을 찾은 거와 같애서 그 호주머니 속에 손만 집어넣으면 거기에 있는 것이여. 그래서 이 공부는 믿고 열심히만 하면 반드시 성취를 할 수가 있다고 단언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찾는다. '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나의 마음, 사람 사람이 다 '마음' 소리를 다 하고, '마음'이라는 것을 다 그 말을 알고 있지만, 사실 그 마음이 무엇이며, 어떻게 생겼으며, 그것을 본격적으로 그 마음에 대해서 알려고 하면은 정말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은 우리 일상생활 속에 단 일 초 동안도 우리로부터 떠나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우리와 같이 있는 것이지만, 이 마음이라 하는 것은 모냥이 없는 것이고, 형상이 없는 것이라 분명히 거기 있는데 찾으면 알 길이 없는 것이고, 보이지를 아니하고 아무리 귀를 기울여 봐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를 않습니다. 아무리 두 손을 이리저리 내저어서 더듬어 봤자 그 마음은 잡히지를 않습니다.

우리는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지만, 모든 것을 보는 그 자체를 볼려고 하면은 보이지를 않습니다. 분명히 눈을 통해서 볼 때 거기에 있었는데, 그 보는 그놈을 돌이켜서 다시 볼려고 하면 자취가 없습니다. 여기에 깨닫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입니다.
"어려워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쉬웁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한 말을 과거에도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찾다가 그르친다. 찾다가 저 죽는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건 깨달음을 100프로 숨김없이 다 표현을 해 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최상승법은 목숨 바쳐서 믿고, 목숨 바쳐서 여법(如法)하게 실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으면 말 한마디에 일대사(一大事)는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과거에 선지식, 도인(道人)들이 '언하(言下)에 대오(大悟)라' 선지식 말 한마디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 버린 분이 참 많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러냐? 여지없이 믿어 버렸기 때문에, 믿으면 말 한마디에 끝나는 까닭인 것입니다.

설사 한마디 말 한마디에 깨닫지를 못한다 하더라도 화두 한마디를 받아 가지고, 여지없이 앞도 생각하지 않고, 뒤도 생각하지 않고, 옆도 생각하지 말고, 오직 그 한마디 화두만을 의심(疑心), 의관(疑觀) 참구(參究)해 가면 조끔도 깨달음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오직 이 한마디 의심뿐인 것입니다.

이 한마디의 의심에 철두철미(徹頭徹尾)해 버리고, '부처님이 나와서 설법을 한다. 깨닫게 해 준다' 해도 솔깃하지 아니하고, '염라대왕이 와서 끌어간다' 해도 조끔도 두려운 생각도 없고, 다못 천불(千佛)이 출세(出世)한 앞에서도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염라대왕이 쇠사슬을 가지고 옥졸이 와서 묶어간다 하더라도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되어 버린다면 그 사람은 깨달음을 기다릴 것도 없는 것입니다.
바로 최상승법이 어려웁고도 쉬웁고, 쉬우면서 어려운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판치생모' 화두뿐만이 아니라 '무자(無字)‘ 화두를 한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시삼마(是甚麼) '이뭣고?' 화두를 하신 분은 '이뭣고?' '이뭣고? 한 이놈이 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일을 할 때에도 '이뭣고?'
밥을 먹을 때에도 '이뭣고?'
똥을 눌 때도 '이뭣고?'
일을 할 때에도 '이뭣고?'
차를 탈 때도, 속이 상할 때에도 퍼뜩 '이뭣고?'

다못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 갈 것입니다.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깨닫기를, 공연히 급한 마음으로 깨닫기를 바랜다고, 바래고 기다린다고 해서 깨달음이 이르른 것이 아닙니다.
하루라도 빨리, 한 시간이라도 빨리 깨달을려면 오직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 갈 따름인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 잠시도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아니한 때가 없습니다. 눈으로 볼 때 일어나고, 귀로 무엇을 들을 때 일어나고, 코로 냄새를 맡을 때 일어나고, 혀로 음식을 맛볼 때 일어나고, 말할 때 일어나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일체처 일체시에 잠시도 생각이 안 일어날 때가 없는데, 일어나는 그 생각이 결국은 육도윤회(六途輪廻)의 원인이 되는 것이여.
그 일어나는 한 생각이 두 번째 생각으로 옮기기 전에 퍼뜩 화두(話頭)를 들을 때에 육도윤회로 빠지는 길은 거기에서 끊어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의 길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이고, 생사해탈 묘법(妙法)이라 하는 것이여.(21분39초~34분2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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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21. 6. 15. 15:57

§((411)) 우리가 '생사(生死) 없는 도리(道理)가 꼭! 있다'고 믿기 때문에 화두를 타 가지고 정진을 한 것이다.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음--->그 깨달은 바에 의지해서 오후(悟後)에 정말 참다운 보림(保任) 공부--->3년, 10년, 20년 하다 보면, 생사 없는 도리를 증(證)하게 되아--->증(證)한 다음에 용무생사(用無生死)여, 생사 없는 도리를 자유자재(自由自在)로 써야 하는 거여. 생사 없는 도리를 자유자재로 써야 그것이 '깨달랐다'고 할 수가 있는 것 / (게송)화소산전누천기~.

**송담스님(No.411)—1990년 동안거 해제(90.02.10) (용411) (신심)

 

 

약 10분.

 


처음에는 생사 없는 도리를 믿다가—우리가 '생사(生死) 없는 도리(道理)가 꼭!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렇게 화두를 타 가지고 정진을 한 것이다 그 말이여.

생사 없는 도리가 있는 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참선(參禪)을 하지도 않을 것이여. 경(經)이나 보고, 염불(念佛)이나 하고, 주력(呪力)이나 하고 그러지, 생사(生死) 없는 도리(道理)가 있다고 한 것을 믿지 못한 사람은 참선 안 합니다. 아무리 참선이 제일이라고 해도 절대로 하질 않습니다.
믿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정진을 하려고 애를 쓰고, 참선을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 믿기 까지도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마는, 일단 믿었을진대는 올바르게 정진을 해야 하거던. 여법(如法)하게 해야 하거던.
큰 깨달음으로써 기약을 삼어야지, 조끔 뭔 소견난 거 그런 것은 챙피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누구한테 물어볼 것도 없이 없었던 걸로 여겨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렇게 알뜰히 해 나가다 보면은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게 되아.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랐다고 해서 그 공부가 거기서 다 된 것이 아니라, 그 깨달은 바에 의지해서 오후(悟後)에 정말 참다운 보림(保任) 공부가 있는 것이여. 그것이 진짜 그때부터서 정진(精進)을 한 것이여.

그렇게 해서 3년, 10년, 20년 하다 보면, 생사 없는 도리를 증(證)하게 되아. 증(證)해야만 다시는 퇴전(退轉)을 않는 것이여.
증(證)한 다음에 거기서 공부가 또 끝나냐 하면은 끝난 것이 아니라 용무생사(用無生死)여, 생사 없는 도리를 자유자재(自由自在)로 써야 하는 거여.
생사 없는 도리를 자유자재로 써야 그것이 참 '깨달랐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지, 겨우 조끔 공부하다가 스쳐가는 그러한 경계를 가지고 '깨달랐다'고 착각하고, 또 공안을 깨달랐다고 해서 그것으로서 공부가 다 된 것처럼 착각을 하고. 그래 가지고서야 어찌 되겄습니까.

하물며 공안을 타파하지도 못하고, 생사 없는 도리를 바로 깨닫지도 못하고서, 함부래 스스로 착각하고 남에게 입을 함부로 벌린다고 하는 것은 자기를 망하고, 불법(佛法)을 망하고,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눈을 멀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제가 이 해제날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 한마디, 한 구절 만 들어도, 한 편 만을 들어도 해제 법문은 그것으로써 충분합니다마는, 이렇게 여러 선원(禪院)에서 도반(道伴)들이 이렇게 모였으니 도반을 위해서 제가 이러한 노바심(老婆心)으로 이런 말씀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앞으로 큰 깨달음을 얻어야만 할, 또 틀림없이 얻게 될 여러 도반들을 위해서 정말 눈물을 머금고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올바르게만 해 가면 반드시 바른 깨달음을 얻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할 것인데, 조그마한 그런 스쳐가는 소견을 가지고 '알았다'는 생각을 가짐으로 해서 공부가 거기서 사견(邪見)에 빠지고, 중도에서 중단되게 될 것을 염려하기 때문에 이러한 말을 하게 된 것을 정말 가슴 깊이 명심(銘心)해 주기를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화소산전누천기(花笑山前漏天機)허고  조가임외화무생(鳥歌林外話無生)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두두자유무궁의(頭頭自有無窮意)하야  득래무처불봉원(得來無處不逢原)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화소산전누천기(花笑山前漏天機)요, 꽃이 피니, 꽃이 산전(山前)에, 산 앞에 활짝 피어 웃으니 천기(天機)를 누설(漏泄)함이요.
조가임외화무생(鳥歌林外話無生)이다. 새가 숲 밖에서 노래하니 무생법(無生法)을 설(說)함이로다.

두두자유무궁의(頭頭自有無窮意)여, 꽃이 웃는 것이나, 새가 노래하는 것이 낱낱이 스스로 다 무궁(無窮)한 뜻을 가지고 있으니,
득래무처불봉원(得來無處不逢原)이다. 그 무궁한 뜻을 바로 봐 버리면, 어디를 가나 무엇을 보나 근본도리(根本道理) 아님이 없도다. 이런 고인(古人)의 게송(偈頌)입니다.

바로 깨닫고 보면 무엇이 부처님이 아니며, 무엇이 부처님의 법(法)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하지 못하고 자기의 면목(面目)을 바로 보지 못했으니,

꽃을 봐도 '이 뭣고?'요,
새 우는 소리를 들어도 '이 뭣고?'요,
차 소리를 들어도 '이 뭣고?'요,
산을 봐도 '이 뭣고?'요,
물을 흐르는 것을 봐도 알 수 없는 '이 뭣고?' 뿐인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꽉 맥힌 의심으로만 나간다면 그 올바르게, 여법(如法)하게, 그리고 알뜰히만 공부를 지어 간다면 결정코 조사(祖師) 스님들이 우리를 속이지 안 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운집하신 여러 형제자매 도반들을 위해서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정말 확철대오(廓徹大悟)와 용무생사(用無生死)에 구경(究竟)에 이를 때까지는, 어떠한 소견(所見)이 나더라도 스스로 부정해 버리고, 정말 알뜰히 정진해 주실 것을 다시 한번 강조에 말씀을 드리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34분35초~44분43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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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21. 5. 12. 14:40

§((472)) 부처님께서는 자기를 이기신 분, 그래서 부처님은 이 세상에 제일가는 대장부(大丈夫)이시고, 왕 가운데 왕이요, 성현 가운데 성현 / 부처님께서 과거 인행(因行) 때, 큰 힘을 가진 용의 몸을 받으신 때의 인욕(忍辱) 일화 / 부처님 오신 날을 기해서, 정말 우리도 부처님과 같은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대원력(大願力)으로써 새로 태어나야.

**송담스님(No.472)—1992년 5월 첫째일요법회(92.05.03) (용472) (신심)

 

 

약 10분.

 


앞으로 머지않아서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 돌아오고 또 결제날도 또 일주일 더 지나가면 또 돌아올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 제일가는 대장부(大丈夫)이십니다. 왕 가운데 왕이요, 성현 가운데 성현이신데, 정말 대장부이시거든.

부처님께서는 장육금신(丈六金身)이여. 그래서 대장부이시냐? 32상(三十二相)을 갖추셨기 때문에 대장부이시냐? 80종호(八十種好)를 갖추셨기 때문에 대장부이시냐?

그게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자기를 이기신 분이여.
어떻게 자기를 이기셨느냐?

과거 인행(因行) 때 부처님께서는 큰 힘을 가진 용의 몸을 받으신 때가 있었어. 어떻게 그 힘이 무섭고 그 안광(眼光)이 아주 태양보다도 더 밝고 그러던지, 담력이 약한 사람이 보면 그 용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하고, 담력이 큰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 번만 보면 자기집에 돌아가서 죽게 되어.
그렇게 무서운 위력을 가진 용인데, 그 용이 날이 뜨뜻하니까 잠이 들었다 그 말이여. 졸았어.
푹 잠이 드니까 아무리 오색이 찬란하고 여의주를 가진 용이라도 잠이 들면은, 보통 잠이 들면 구렁이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법이여.

잠이 푹 들은 상태에서 어떤 포수가 그 잠들어 있는 용을 보았다 그말이여. 보니까 구렁이로 보이는데, 어떻게 그 가죽 빛이 오색이 찬란한데 이 세상에서 그렇게 찬란하고 고운 것을 본 기억이 없어. 그래서 '저 구렁이를 잡아가지고 껍데기를 벗겨서 임금님한테 바쳐서 임금님의 옷을 만들게 하면 자기는 큰 상을 받고 큰 벼슬도 받으리라' 이러한 사견이 났다 그 말이여.
그래 가지고는 그 용을, 구렁이를 갖다가 두 갈래진 작대기로 목을 눌러 가지고 꼼짝을 못하게 딱 해 놓고는 생으로 그 구렁이 가죽을 벗겼어. 그때 그 용이 눈을 떠서 보니 그런 상태에 놓여 있다 그 말이여.

그런데 용이 힘이 장사기 때문에 한바탕 꿈틀거리면 그까짓 작대기로 누른 것이 문제가 아니고, 사람이고 무엇이고 이 지구도 갖다가 그냥 흔들어 놓을 정도로 그런 힘을 가졌지만,
'아서라! 내가 불법(佛法)을 믿는 용으로서 어떻게 내가 이러한 것 하나를 못 참을 수가 있겠느냐. 내가 저 포수도 죽여 버리고 온 세계도 갖다 발탁 뒤집어지고... 내가 한 생각을 참지 못하고 그런다면은 어찌 불법을 믿는다고 할 수가 있겠느냐' 그래 가지고 그것을 꾹 참았어.

참으니까 가죽을 다 벗겼어. 벗기니까 완전히 벌건 살덤뱅이가 되었다 그 말이여. 그러니까 햇빛은 쨍쨍 나지, 개미와 벌레가 달려들어서 뜯어먹기 시작하는데 '만약에 내가 여기서 꿈틀거린다면, 아픈 것을 참지 못하고 꿈틀거린다면 저 벌레들이 다 내 몸에 치어서 죽을 것이다' 그래 가지고 꼼짝을 않고 다 뜯어 먹히고 바짝 말라서 아주 뼈만 남을 때까지 다 참은 거여.
그래 가지고 인욕(忍辱)을 하고 또 살생을 하지 않고, 진심(瞋心)을 내지 않고 그래 가지고 그 용은 결국은 숨이 끊어지자마자 천상(天上)에 가서 태어났어.

그 용이 결국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신(前身)이시고, 그때 그 구렁이를 죽여서 가죽을 벗긴 포수는 조달(調達)이여. 제바달다(提婆達多). 부처님의 사촌으로 태어났지마는 10생(十生)을 따라다니면서 부처님의 라이벌이 되어 가지고 부처님을 갖은 방법으로 해롭게 한 조달(調達)이다 그 말이여.
그리고 부처님 몸뚱이의 피와 살을 빨아먹던 수많은 개미와 벌레들은 부처님이 최초에 녹야원(鹿野苑)에서 교진여(憍陳如)등 오비구(五比丘)에게 법을 설하실 때 그때 팔만의 모든 제천(諸天)이 다 득도를 했는데, 그 팔만사천의 하늘나라에 선신들이었다 그거거든.

부처님께서는 과거 인행 때에 그러한 인욕을 해 가지고 그러한 무서운 일을 당하면서도 조금도 원한심을 품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해가 끼치지 않도록 그것을 신심과 지혜와 자비로써 그런 과정을 능히 성취한 그러한 과보로써 결국은 거룩한 부처님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부처님과 똑같은 존재였으면서 한 생각 미(迷)한 탓으로 이렇게 육도윤회(六途輪廻)를 무량겁을 해서 오늘날에까지 왔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지마는 그래 가지고 이 정법을 듣고 믿고 또 그것을 실천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조그만한 일로 진심(瞋心)을 내고, 탐심(貪心)을 내고, 원한심을 내서 선원에서는 도반(道伴)들에 혐오감을 주고, 도 닦아가는 데 장애를 주고, 그래도 견디지 못해서 걸망을 싸고. 이러한 일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부처님 오신 날을 기해서, 금년 임신년 사월 초파일을 기해서 정말 우리도 부처님과 같은 그러한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대원력(大願力)으로써 새로 태어나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21분4초~30분5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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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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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21. 3. 26. 15:53

§((244)) 중국 고봉(高峰) 스님의 3년 사한(死限) 용맹정진(勇猛精進) / 고봉 스님과 같은 맹렬하고 간절한 결심으로 한결같이 밀고 나가야 / 내게 있는 것을 내가 찾는 것 / 지옥고(地獄苦).

**송담스님(No.244)—1984년 8월 첫째 일요법회(84.08.05) (용244) (신심)

 

 

약 10분.

 


오늘은 8월 첫째 일요법회 날이고, 지금 시절이 중복(中伏) 그 기가 맥히게 무덥고 찌는 날씨인데, 모두 산으로 들로 놀이를 나가고 피서를 나가고 그러는데, 이리 이 법당을 가뜩 이렇게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운집(雲集)을 했습니다.
어찌 여기 모이신 분인들 바다에 가고 싶지 않고 또 산에 가고 싶지 아니하신 분이 있으리오마는, 법회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가 모든 계획을 다 미루거나 취소하거나 포기를 하고서 이렇게 모다 모이셨습니다. 또 바다에 가서 며칠 놀기 위해서 갔다가도 중도 폐지(廢止)를 하고 이렇게 법회에 참석하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분은 과연 얼마만큼 정법(正法)을 신(信)하는 그 신심(信心)이 투철(透徹)한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을 통해서 중국에 고봉(高峰) 스님이 '3년을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만일에 깨닫지를 못하면 죽음으로써 끝을 맺으리라' 이러한 지독한 결심을 하고 정진(精進)을 시작을 했는데, 3년 기한이 얼마 남지를 안 했건마는 도무지 공부가 조끔도 되어 가지를 않는다 그 말이여.

혼침(昏沈)과 산란(散亂), 방석에 앉기만 하면 졸음이 퍼오고, 졸음이 좀 깨면은 번뇌(煩惱)와 망상(妄想)이 퍼일어나고, 번뇌와 망상이 좀 가라앉을만 하면은 또 졸음이 퍼오고. 이 혼침과 산란, 이 두 마구니가 번갈아가면서 방해를 친 통에 방석에는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잠시도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그 말이여.
그래서 방석에서 일어나와서 밖에 나와 가지고 동(東)으로 서(西)로 포행(布行)을 하면서, 하다가 조끔 잠이 깨면은 또 자리 가서 막 앉으면, 앉을라 하면 또 잠이 퍼오면 또 일어서서 포행을 하고. 밤과 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지독하게 애를 썼건마는 3년이 다 되어도 조끔도 공부가 되지를 않는다 그 말이여.

그래서 착잡하기가 이루 다 말할 수 없고, 인자 죽을 날이 며칠 안 남았다 이 말이여. 그러자 꿈속에서 단교(斷橋) 스님이란 스님으로부터서 화두(話頭)를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 일만 법(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가는고?' 하는 그 '만법귀일 일귀하처' 화두를 떠억 받았는데, 그리고서 잠을 깼는데 너무 역력(歷歷)하고 성성(惺惺)하다 그 말이여.
화두를 들라고 안 해도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는데 기가 맥혀. 그 전에는 화두를 들라고 하면은 들을 때뿐이고 의심(疑心)이 걸리지를 않고 잠깐 들었을 뿐이지 일 분도 못 가서 딴생각이 침범을 해 버리고 화두는 간 곳이 없고. 이렇게 3년을 애썼는데, 꿈속에 화두를 떠억 타고 난 뒤부터서는 화두를 들 것이 없어.

확~! 눈을 감으나 뜨나, 밥을 먹으나 옷을 입으나, 똥을 누나 오줌을 누나, 뭐 걸어댕기나 앉으나 서나 뭐 그냥 고대로 의단이 떠억 순일무잡(純一無雜)하고 의단이 독로하는데, 참 그 경계(境界)는 겪어보지 아니한 사람은 알 수가 없더라 그 말이여. 일부러 딴생각을 좀 낼라고 해도 소용이 없어.
대중(大衆) 가운데 있으나, 혼자 있으나 뭐 마냥 똑같고, 옆에서 떠들거나 말거나 전혀 상관이 없더라 그 말이여.

공부 신심(信心)이 돈독(敦篤)하지를 못하니까 옆에서 조끔 뽀스락거리면은 그놈에 신경질을 포르르르 내고, 옆에서 뭔 잡담 조끔 하면은 포르르 하니 신경질을 내고.
참으로 발심(發心)을 해서 의단이 독로해 봐. 옆에서 떠든 것이 무슨 상관 있으며, 문을 처닫으면 무슨 상관이 있으며, 옆에서 좀 부스럭거리면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 말이여.
자기의 신심이 돈독하지를 못하고 자기의 공부가 간절(懇切)하지를 못하기 때문에 문 닫는 소리, 옆에서 좀 뿌스럭거리는 소리, 옆에서 뭔 말 좀 하는 것이 전부 문제가 되고, 공부가 되느니 안 되니 하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렇게 고봉 스님이 의단이 독로해 가지고 순일무잡하기를 6일, 7일이 되었는데 밤낮이 없이 그렇게 되다가 7일 만에 그때 달마 스님 제삿날을 맞이해서 달마 스님 모셔 있는 그 영각(影閣)에 가서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그 진영(眞影)에,

'백년삼만육천조(百年三萬六千朝)에  반복원래시자한(返覆元來是這漢)이다'

백년이면 삼만육천 일인데, '백년, 삼만육천 일에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하는 이놈이 바로 이놈이다' 한 그 게송 써진 것을 보고서 화두(話頭)가 타파(打破)가 되는데, 그 만법귀일(萬法歸一) 화두만 타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조주(趙州) 무자(無字)며,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며, 마삼근(麻三斤)이며, '청주(靑州)에서 적삼 하나를 얻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더라' 한 공안(公案)이 있는데 그 공안이며, 천칠백 공안이 하나도 맥힘이 없이 다 확확 다 터져 버렸다 그 말이여.

이 공부라 하는 것은, 이 참선 공부라 하는 것은 이러한 것입니다.
다른 세속 공부처럼 날마다 하면은 조끔씩 조끔씩 뭣이 되어 가고 알아지고, 얻어지고 보이고 그런 것이 아니고, 하루를 하나, 석 달을 하나, 일 년을 하나, 삼 년을 하나, 마냥 옳게 할수록 꽉 맥히고 답답할 뿐이지, 뭐 한 달 했으니까 조끔 되고, 두 달 하면 조끔 그만큼 더 되고, 석 달 하니까 더 잘되고 이렇게 해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마지막 터질 때 탁! 되는 것이지, 조끔씩 조끔씩 뭐 되어 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안 된다'고 짜증을 낼 일이 아닙니다. 일 년이 되었건... 고봉 스님 같은 그런 대근기(大根機)로도 3년이라고 하는,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용맹정진을 해서 3년 만에사 그러한 경계가 이르렀거든.
하물며 근기가 약한 우리 하근(下根) 중생이야 3년 아니라 7년 아니라 10년, 30년이라도 고봉 스님과 같은 그러한 맹렬하고 간절한 결심을 가지고 한결같이 밀고 나간다면 그것이 어찌 안 될 것이냐 그 말이여. 내게 있는 것을 내가 찾는 것인데, 어째서 그것이 안 될 것이냐 그 말이여.

온전히 신심(信心)이 그렇게 간절하지를 못하고, 한결같이 밀고 나가는 끈기가 없어서 그럴 따름인 것입니다.


날이 이렇게 덥지마는 이렇게 또 며칠이 안 지내면 또 말복(末伏)이 지내고 또 입추(立秋)가 돌아오면 또 서늘바람이 돌아올 것입니다. 덥다고 핑계대고 공부를 안 하고, 덥다고 피서를 간다고 법문을 들으러 안 오고, 그러면 또 서늘하면 서늘하다고 또 설악산으로 어디로 놀러 댕기고, 겨울에 추우면 춥다고 방안에 들어앉고.
핑계 대고 법문을 안 듣고, 핑계 대고 공부를 안 하면은 눈 한번 감으면 내생(來生)인데 내생에 그 하룻밤 하룻낮에 만 번 죽고 만 번 살리는 그런 지옥고(地獄苦)를 누가 내 대신 받아줄 것입니까?(5분9초~15분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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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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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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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21. 3. 7. 16:37

§((117))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화두에 대한 대의정(大疑情), 대의심(大疑心) 삼요(三要).

**송담스님(No.117)—1980(경신)년 신수기도 회향(80.02.24) (용117) (신심삼요)

 

약 3분.

 


기왕 참선을 하실 바에는 첫째, 나도 나이야 많건 적건, 남자건 여자건,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기어코 참나를 깨달을 수가 있다.
나에게도 부처님과 조끔도 차별이 없는 마음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 참선은 시간, 오랜 시간을 걸려야만 하는 게 아니라, 올바르기만 하면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견성(見性)을 할 수가 있는 비약적인 것이기 때문에 '나도 할 수 있다'고 하는 신념(信念), 신념을 첫째 가지고.

두째는 분심(憤心), '어째서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과 역대 선지식(善知識)들은 진즉 나를 깨달라 가지고 견성을 해서 중생을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무엇 하느라고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하면서 금생에 이르도록 나를 깨닫지를 못했을까?' 이 점에 대해서 분심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분심 없이는 아무리 겨울마다 여름마다 선방에 앉아서 시간을 잘 맞춘다 하더라도 나를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첫째는 신념, 두째는 분심.
분심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용기와 직결이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업이고, 어떠한 학문이고, 신념과 용기가 없이는 중도에서 그만두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지지부진(遲遲不進)해서 공부에 진취가 없는 것입니다.

셋째에는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화두에 대한 철저한 의심, '대의지하(大疑之下)에 필유대오(必有大悟)라. 큰 의심 있는 곳에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다' 의심이 빈약을 하면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설사 깨닫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조그마한 소견(所見)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신심과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화두에 대한 대의정(大疑情), 대의심(大疑心)이 이 3가지가 구족(具足)할 때에 우리의 도(道)는 경각간(頃刻間)에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14분50초~17분5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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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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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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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삼요)2021. 1. 20. 14:19

§((190)) 『열반경』에 부처님 과거 인행(因行) 때의 설산동자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 진실한, 간절한 한 생각으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한다면 팔만사천 마구니가 팔만사천의 불보살(佛菩薩)로 화현(化現)을 하는 것.



약 7분.

**송담스님(No.190)—1983년 입춘 법회(83.02.04) (용190) (신심)


여러분이 잘 아신 바와 같이 부처님이 과거 인행(因行) 때에 설산(雪山)에서 고행(苦行)을 하고 계시는데, 잠잘 중도 잊어 버리고 밥 먹을 중도 잊어 버리고 그 설산 속에서 고행을 해 가지고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境地)에 들어갔다.

어데서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제행(諸行)이라는 것은 모든 행이,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모든 존재와 모든 현상이 다 이것이 무상(無常)한 것이요, 무상하기 때문에 이것이 생멸법(生滅法)이다 그말이여. 나 가지고는 없어지고, 나 가지고는 변해서 없어지고 다 이것이 생로병사(生老病死)다—그러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그 말이여.


그 노랫소리가 너무너무 맑고 아름답다 그 말이여. 그래서 눈을 번쩍 뜨고 앞 뒤 옆을 다 전후좌우(前後左右)를 다 살펴봐도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그 훌륭한 노래를 부를 만한 사람이 없어.

그래서 잘 살펴보니까 저만큼 그 왕방울 같은 눈을 부릅뜨고, 손가락은 세 개가 붙은 독수리 손가락을 한, 그리고 뿔이 돋힌, 사람을 생으로 막 잡어먹고 피를 빨아먹는 나찰(羅刹) 귀신이 금방 덮쳐 올 것 같이 무서운 형상을 하고 노려보고 있다 그 말이여.


저런 나찰 귀신의 입에서 그러한 아름다운 목소리, 그러한 훌륭한 법문이 울려 나올 것 같지는 않으나, 그 나찰 귀신 말고는 아무한테도 그럴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행여나 하고 나찰 귀신 보고 물어봤다 그 말이여.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이라 하는 그 노래를 금방 니가 불렀느냐?" 하고 물어보니까,

"뭐라고요? 지금 나는 배가 고파 죽겠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시치미를 뚝 딴다 그 말이여.


"정말 니가 그 노래를 불렀다면 반드시 그 노래의 뒷 구(句)가 있을 테니 그 뒷 구를 한 번 나에게 일러다오" 간절히 청(請)을 했습니다.

그러니 나찰 귀신이 "나는 배가 고파 죽겄다. 나는 당장 너를 잡어먹어야겄어" 그러면서 달라들라고 그러니까,


"좋다! 니가 그 다음 구절만 일러준다면은 내 몸을 너한테 던지리라"

"내가 널 일러주면은 도망가려고 그러지?"


"아니다. 니가 그것이 의심스럽다면은 내 몸뚱이는 다 니 입에다 넣어놓고 내 귀만 내놓고 일러다오"

그러니까 나찰 귀신이,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니라" 생멸(生滅)이 다하면 적멸(寂滅)이 낙(樂)이 되느니라, 아! 그 노래를 부르는데 그 설산동자(雪山童子)가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했어.


'내가 이러한 좋은 법문을 듣고 나만 깨달라 가지고 나찰 귀신의 밥이 된다면은 안될 일이다. 나 말고도 한량없는 중생(衆生)이 있는데 나만 알고 죽어서는 안되겄다'

이래 가지고 바위에다 나무에다 그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라' 그 법문(法門)을 갖다가 막 썼습니다. 손가락을 깨물어서 피로써 그 법문을 갖다가 써 놓고서 나찰 귀신의 입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찰나간(刹那間)에 온 하늘과 땅에서는 장엄(莊嚴)한 하늘나라의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그 무서운 나찰 귀신은 간 곳이 없고, 찰나간에 제석천왕(帝釋天王)의 모습으로 변해 가지고 나무 위에서 뛰어내린 설산동자를 공경스럽게 두 손으로 받들어 모셨습니다.


이 말씀은 『열반경(涅槃經)』에 있는 법문인데, 설산에서 설산동자만이 그러한 경계가 있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도 한 생각 돌이켜서 참 진실한, 간절한 한 생각으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한다면 팔만사천 마구니가 팔만사천의 불보살(佛菩薩)로 화현(化現)을 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여지없이 이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재앙을 만나고 어떠한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때 그 슬픔에 빠지지 말고 가슴 아픈 데에 빠지지 말고, 노여움에 빠지지 말고 그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거각한다면, 그 노여움과 슬픔과 괴로움은 찰나간에 나를 깨달음에 이끄는 불보살의 따뜻한 화현(化現)으로 변할 것입니다.(56분47초~63분5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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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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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삼요)2020. 12. 30. 19:09

§((066)) 관심일법(觀心一法) 총섭제행(總攝諸行) / 참선을 함으로써 지혜의 힘을 얻는 것, 그 지혜를 바탕으로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아야 / 참선은 가장 간단하고도 쉬웁고도 누구라도—지식 유무(有無), 남녀노소, 빈부귀천도 상관없이—언제 어데서라도 공부할 수 있는 방법.

 

무슨 생각이든, 일어나는 생각 바로 그놈을 가지고 「이뭣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라도 누구라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공부에 몸과 목숨을 다 바칠 만큼 절실해야 한다 / 삼요(三要), 신념, 분심, 의심 / 선의(善意)의 경쟁을 하라.

 

활구참선(活句參禪)과 사구참선(死句參禪) / 불법(佛法)은 무엇을 많이 따 담는 공부가 아니라, 그 마음에 모든 생각을 버리는 데에 있는 것. 빨리 버리는 방법은 「이뭣고?」 이 한마디뿐 / 「이뭣고?」 이 한마디가 우리의 팔만사천 마구니를 항복 받고, 팔만사천 번뇌를 굴복 받고, 마구니와 번뇌를 한 생각에 돌려서 팔만사천 묘법문(妙法門)을 만든다.

 

**송담스님(No.066)—1978년(무오년) 신수기도 회향(78.01.09.음) (용066)

 

(1) 약 15분.

 

(2) 약 10분.

 

(1)------------------

 

달마스님 『혈맥론(血脈論)』에 “관심일법(觀心一法)이 총섭제행(總攝諸行)이라. 마음을 관(觀)하는 한 법이 모든 행을 다 섭(攝)한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음을 관(觀)한다' 하는 것은 바로 참선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선만 하면은 일체 행(行)이 그 가운데 다 제절로 갖추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대승(大乘)은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는 것이 대승보살의 과제입니다마는 그 육바라밀이 첫째, 보시(布施)를 할 것, 둘째, 계율(戒律)을 지킬 것, 셋째에 인욕(忍辱)을 할 것, 넷째에 정진(精進)을 할 것, 다섯째에 선정(禪定), 마음을 고요히 할 것, 여섯째, 지혜(智慧)를 닦을 것. 이렇게 육바라밀, 여섯 가지 저 언덕에 건너가는 좋은 법입니다.

그 여섯 가지 중에 무엇이 제일 소중하냐? 전부가 다 하나도 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지마는 그중에 가장 근원적인 것은 맨 끝에 있는 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입니다.

 

지혜는 어디로부터 나왔느냐? 참선(參禪)을 함으로써 지혜의 힘을 얻는 것입니다.

참선을 해서 지혜를 얻어서 그 지혜를 바탕으로 한 보시라야 그 보시는 옳은 보시가 되는 것이고, 그 지혜를 바탕으로 한 계율이라야 그 계율은 참으로 옳은 계율이 되는 것이여. 그 지혜를 바탕으로 한 인욕이라야 그 인욕이 참 바른 인욕이며, 지혜를 바탕으로 한 정진이라야, 지혜를 바탕으로 한 선정이라야 다 옳은 법이 되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마음으로 보시를 했댔자 그것은 유루복(有漏福)에 지내지 못한 것이고, 계율을 지켜도 지혜가 없이 지킨 계율은 천상에는 태어날 수 있지마는 금방 복(福) 다 받으면 다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인욕도 지혜 있는 인욕이라야지, 어리석게 억지로 참기만 위주로 해서 한다면 단박 가슴이 아프고 목이 아프고, 골치가 아프고, 가슴앓이 속병이 생겨가지고 결국은 병만 쳐주고, 그 억지로 참은 것이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 스무 번 일생 동안을 억지로 참다 보면 나중에 여러 번 참다가 그놈이 축적이 되어가지고 터질 때는 무서운 위력을 내가지고 자기 신세 망치고, 집안을 쑥대밭을 맨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환자가 되어가지고 늙발에 한숨으로 세월을 보낼 수밖에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를, 우리에게 급(急)한 것은 그 지혜가 제일 급한 것입니다.

그 지혜를 얻는 가장 간단하고도 쉬웁고도 누구라도 언제 어데서라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참선법입니다. 참선은 지식의 유무(有無)도 상관이 없고, 남녀와 노소와 빈부귀천도 상관이 없습니다.

 

참선(參禪)이라 하면은 '꼭 절에 와서 그래가지고 조용하니 죽비(竹篦)를 치고 앉아야만 참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못하면 참선은 못하는 것이다. 집안에서는 일이 많아서 참선은 못 합니다' 이렇게 노상 그 말씀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마는 참선은 일이 많고 적고 그것도 상관이 없고, 차 속이나 또는 시장 바닥이나 가정이나 또는 절이나 어디서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참선은 앉고 눕고 또는 서서 걸어 다니고 그러한 위의(威儀)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누웠어도 생각은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앉었을 때에도 생각은 이 생각 저 생각이 번갈아 드나들고, 걸어 갈 때도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한 만큼 그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 생각—그 생각이 좋은 생각이건, 악한 생각이건, 과거 생각이건, 무슨 슬픈 생각이건, 괴로운 생각이건, 무슨 생각 이건 상관이 없습니다.

그 일어나는 생각 그놈을, 바로 그놈을 가지고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라도 누구라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괴로운 생각, 억울한 생각, 슬픈 생각 그러한 생각이 속에 꽉 차 가지고 그 생각을 없애야만 참선이 될 텐데, 그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못한다' 이리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아직 참선하는 법을 잘 모르시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슬픈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그 무엇이 들어서 그 슬픈 생각을 하는가? 「이뭣고?」

몸이 아파도—'몸이 아파서 공부를 못합니다'—몸이 아픈 줄 아는 놈이 무엇이냐? 그 말이여. 무엇이 그렇게 아픈 줄을 아는가? 그 아픈 줄 아는 생각만 있으면은 그 사람은 참선을 할 수 있는 충분한 힘과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외롭고 괴롭고 슬프고 노여움이 잠시도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참선을 잘할 수 있는 선택된 사람이라고 나는 단언을 합니다.

슬픈 생각도 없고, 괴로운 생각도 없고, 억울하고 분한 생각도 없는 목석(木石)처럼 그러한 사람은 참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어가지고 그런 사람은 정신병원이나 갖다 놓을까, 아무 쓸데가 없죠?

 

그러나 욕하면 썽낼 줄 알고, 신경질도 잘 내고, 슬픔에 가슴이 꽉 차서 어쩔 줄을 모르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정말 행복이 무엇인 중을 모르고, 육체적으로 온갖 병이 들어 있고 정신적으로 많은 충격을 받아가지고 정말 정신과 육체가 한목 병들어서 죽을 길밖에는 없다고 이렇게 인생을 포기하는 그런 사람일수록에 이 정법(正法)에 귀의(歸依)해서 바른 스승을 만나가지고 죽을 셈 치고 대들기만 한다면 오히려 그러한 사람이 훨씬 더 도(道)를 깨닫기가 쉬웁고 좋은 것입니다.

그만한 인생을 전부를 아주 포기할 그러한 막바지에 도달한 그 사람은 한번 이 문에 들어와서 정법을 만났다 하면 다시는 다른 데에 정신을 빼앗길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것이 이렇게 누구라도, 어떠한 사람이라도 하면 될 수 있는 것이고, 할 자격이 있는 것이지마는 정말 이 몸과 목숨을 다 바치고 다시는 딴 데 한눈을 팔지 아니할 만큼 그만큼 절실한 사람이 아니면 아니 됩니다. 그 점이 하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를 할려면은 첫째, 나도 하면, 나도 옳은 법을 배워 가지고 옳은 방법으로 열심히만 하면 금생에 결정코 깨달을 수가 있다. 내가 지금 울 줄도 알고, 성낼 줄도 알고, 웃을 줄도 알고, 눈으로 볼 줄도 알고, 괴로워할 줄도 아는 바로 이놈이 나의 불성(佛性)이요, 나의 마음자리다. 이것은 모든 불보살(佛菩薩)의 마음과 조끔도 차등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오늘날까지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는 것은 그 법을 바로 만나지 못했거나 만났더라도 열심히 도를 닦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이렇게 생사(生死)에 윤회를 하고 있는 것뿐이다. 나는 다행히 이 법을 알았으니 이제 어디에 이 몸과 목숨을 바칠 곳이 있는가? 오직 나는 이 한 법을 위해서 이 목숨과 이 몸을 다 바칠 수가 있다. 나는 금생에 결정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는 이러한 굳센 신념(信念)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자리에서 아직도 그 신념이 투철하지 못한 분은 이 자리를 기해서 철석(鐵石)같이 그 신념을 가지실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그러한 신념을 가지시기를 저는 간곡히 빌어 마지않습니다. 그 신념이 있은 위에라야 우리의 공부는 바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서 둘째로 필요한 것은 분심(憤心)입니다.

과거에 도인(道人)들, 과거에 부처님과 많은 성현들은 진즉 이 법에 의지해서 생사 문제를 해결을 하셔가지고 중생 교화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어찌 그러한 불보살과 성현들과 똑같은 마음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이렇게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맴돌고 있는가? 이러한 점에 대해서 분심을 낼 줄을 알아야 합니다.

 

어린 국민학교 학생들도 자기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은 분이 나서 집에 와가지고 울면서 숙제를 하고 그래가지고 밤잠을 안 자면서 공부를 해가지고 그다음에 시험 볼 때는 더 잘할려고 발버둥을 치거든, 벌써 아들과 딸을 둘씩, 셋씩, 다섯씩, 여섯씩 나서 키워 가지고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가지고 내가 내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를 만나가지고 분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돈, 이웃집은 돈을 잘 벌고 자기는 잘 못 버는 그런 것을 보고는 입을 삐쭉빼쭉하고 시기를 낼 줄 알면서 내가 나의 영원한 행복을 얻는 이 참선에 대해서 그러한 분심을 느낄 줄 모른다면 이것은 가엾기 그지없는 일인 것입니다.

 

이 참선은 언제나 저는 선의(善意)의 경쟁을 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선방에 방부(房付)를 들이고 공부하시는 보살님네들, 한 분이 잠을 조끔이라도 덜 자고 공부하려고 애를 쓴 분이 있으면 자기도 따라서 공부를 하려고 애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의의 경쟁을 하는 데에서 반드시 공부에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 가정에서 생활하시는 여러분들도 자기의 친구, 이웃, 아는 분들이 시간을 아껴서 그 시간을 쪼개서 정진하려고 애쓰는 분이 있으면 그이를 헐고 뜯고 미워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샘을 좀 내서 '나도 그 사람에게 지지 않고 더 공부를 잘하리라' 하는 이러한 선의의 경쟁심을 내고, 서로 충고하면서 보다 더 공부에 유익하도록 충고하고 노력을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21분7초~35분40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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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신념. 둘째, 분심. 그리고 셋째에 가서는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은 화두(話頭), 화두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간절하고 철저한 의심 덩이[疑團]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참선에는 활구참선(活句參禪)과 사구참선(死句參禪), 두 가지로 노나서 가려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경을 많이 보고, 설교를 많이 듣고 하는 또 다른 또 학식이 있고 그런 사람은 노상 어떠한 문제를 당했을 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상식과 지식을 총동원해 가지고 이리저리 분석해서 그럴싸한 결론을 내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결론을 따져서 결론을 내려야만 결론을 얻어야만 시원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 참선은, 활구참선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어떠한 결론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 참선을 다른, 사회의 어떤 수수께끼나 어떠한 문제들과 같이 이론적으로 따져서 결론을 지을려고 하고 그러한 방법으로 참선을 해 나가고 있는 사람은 활구참선이 아니라 사구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하는 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아무리 따져서 훌륭한 해답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중생(衆生)의 알음알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중생의 알음알이는 아무리 좋은 그럴싸한 알음알이라 하더라도 생사윤회(生死輪廻)에 원인이 되는 것뿐인 것입니다.

 

참선은 쉬웁게 말해서 무엇을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해서 많이 속에다가 따 담는 공부가 아니라, 이미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모든 좋은 생각, 나쁜 생각, 심지어 불교의 교리까지 다 경전에 있는 말씀까지도 깨끗이 내쏟아 버려야 됩니다. 내쏟아 버려야만 그 마음이 정말 청정(淸淨)해지기 때문에 청정한 마음으로 참선을 해야 깨달음에 도달한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금가루도 눈에 집어넣으면 안질(眼疾) 병이 생기는 것뿐인 것입니다. 아무리 부처님 말씀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마음속에다 넣고 이리저리 중생심으로 그것을 따둑거리고 이리저리 뒤적거리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있는 동안에는 중생의 경지, 중생심을 한 걸음도 벗어나지를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그러한 사람은 두고두고 육도윤회를 할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하루빨리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해탈(解脫)하고자 하시는 분은 이론적으로 따지는 버릇을 놔야 합니다.

 

다못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괴로울 때도 「이뭣고?」 몸이 아플 때도 「이뭣고?」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누웠을 때나, 걸어갈 때나, 차를 탈 때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다못 「이뭣고?」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간다면,

슬픈 그 마음도 나로 하여금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위한 하나의 발판이 되어 주는 것이고, 썽내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는 그 찰나에 바로 그 생각으로 「이뭣고?」 이렇게 단속해 나갈 때 불같이 일어났던 그 썽내는 그 한 생각이 나로 하여금 해탈도로 들어가는 하나의 발판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간다면 일구월심(日久月深), 날이 가고, 달이 감에 따라서 그 사람은 차츰차츰 마음이 착해지고 마음이 비워져서, 바로 속에 똥과 오줌과 피와 고름이 가뜩 들어있는 채, 불보살의 경지에 가까와가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무엇을 많이 따 담는 공부가 아니라, 자기에게 있는 것을 자꾸 버리는 데 있는 것입니다.

 

보시(布施)라고 하는 것을 보통 내게 있는 돈과 물질을 남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 보시라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참보시'가 아닙니다. 참보시에 들어가는 껍데기 보시, 초보적인 보시에 지내지 않은 것입니다.

참보시는 물질적인 것보다도 그 마음에 모든 생각을 버리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물론 말 한마디라도 남에게 잘 말을 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에 편안함을 얻게 하고, 부처님의 말씀 한마디라도 아는 대로 일러주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발심(發心)할 수 있는 동기가 되도록 해주는 그런 것도 역시 보시가 됩니다.

그러나 근원적인 보시는 내 마음속에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좋은 생각, 나쁜 생각, 일체 과거 · 현재 · 미래의 모든 생각을 버리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을 버릴려고 한다고 해서 버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러냐?

버릴려고 하는 그 생각 또한 중생의 마음이기 때문에—호수에 물결이 일어나는 물결을 고요하게 만들려면 그 일어나는 물결을 없애려고 손을 대서는 아니 됩니다. 손대면은 다시 새로운 물결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모든 물결을 빨리 없애는 방법은 「이뭣고?」 이 한마디뿐인 것입니다. 이것은 삼천년을 내려오면서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성현들이 부처님의 팔만사천 묘법문(妙法門)에 의지해서 닦고 닦아서 오늘에 전해진 가장 훌륭한 법인 것입니다.

이 법(法), 한 법에 충실히 철저히 믿고 간절한 마음으로 노력을 해 간다면 육바라밀도 그 속에 갖추어 있는 것이고, 팔만대장경을 독파한 읽고 또 읽고 한 그 공덕도 그 속에 바로 갖추어 있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좋은 법을 만나가지고서도 믿지 아니하고 계속 여러 가지 방편, 크고 작은 낡아빠진 배들을 짊어지고 팔도를 돌아다니고 60, 70년 동안을 그 썩어 낡아진 배를 짊어지고 돌아다니는 분이 계시다면은 당장 이 자리에서 그 배를, 그 무거운 짐을 벗어 놓으십시오. 벗어 놓고 간단한 「이뭣고?」 하나를 터억 마음에 간직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 보십시오.

이 「이뭣고?」 이 한마디가 우리의 팔만사천 가지의 마구니를 항복 받고, 팔만사천의 번뇌를 굴복 받고, 마구니와 번뇌를 한 생각에 돌려서 팔만사천 묘법문(妙法門)을 맨들아서 우리는 이 육신으로 대해탈도를 증득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오늘 이 자리를 빌려서 부처님과 많은 성현과 전강 조실스님을 증명으로 모시고 단호히 여러분 앞에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35분43초~45분4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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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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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20. 11. 28. 15:47

§((558)) (게송)당당대도혁분명~ / 강아지(가하지 家下地), 송아지(송하지 松下地), 도야지(도하지 道下地, 도 밑에서 피난을 해라) / 구정선사 / 선지식의 한마디,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 / 참선이라는 것은 배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가하지(家下地)는, 강아지는 집 아래에서 피난을 해라. 송아지[松下地]는 소나무 밑에서 피난을 해라. 되아지(돼지)[道下地]는 '길 도(道)'자, 도 밑에서 피난을 해라.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믿을 수 있는 선지식(善知識), 바른 선지식의 한마디에 자기의 목숨을 바쳐야, 그것을 위법망구(爲法忘軀)라, '법을 위해서 몸을 잊어버린다'

'몸을 잊은다'는 것은 '자기 몸을 생각하지 않는다' 몸도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장래도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목숨까지라도 다 거기다 바쳐 버려야, 그리고 오직 한마디 말씀에 의지해서 자기의 몸과 목숨을 다 바치고, 위법망구의 정신이 되어야 끝장이 나는 거여

 

**송담스님(No.558)—1995년 11월 일요법회 및 추계산철해제(95.11.05) (용558)

 

약 17분.

 

당당대도혁분명(堂堂大道赫分明)하여  인인본구개원성(人人本具箇圓成)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지시연유일념차(只是緣由一念差)로  영겁현출만반형(永劫現出萬般形)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당당대도혁분명(堂堂大道赫分明)헌데, 당당(堂堂)한 대도(大道)가 밝고 분명(分明)하다 그말이여.

인인본구개원성(人人本具箇圓成)이다. 사람마다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어. 낱낱이 다, 뚜렷이 다, 원만히 다 성취되어 있더라 그말이여.

부처님이나 우리 중생이나 조금도 차별이 없고 똑같은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가지고 있어. 진묵겁(塵墨劫) 전에 원만히 다 성취해서, 새로 성불(成佛)할 것이 없이 구족하게 다 갖추어져 이루어져 있다 그말이여.

 

지시연유일념차(只是緣由一念差)로, 다못 한 생각 어긋진 그 탓으로 해서, 영겁현출만반형(永劫現出萬般形)이다. 영겁을 두고 만 가지 모냥을 현출(現出)을 하고 있더라.

당초에 한 생각, 한 생각 일어나는 놈을 단속을 못 해가지고 엄청난 결과를 가지고 오는 것이니라.

 

 

오늘은 을해년 11월 첫째 일요법회 날이고, 아울러서 을해년 가을철 산철 해제 날입니다.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금봉 스님의 임종게(臨終偈)와 조실 스님께서 그 임종게에 화답하는 만사(輓詞), 만시(輓詩)에 대한 말씀도 있었고, 생사해탈하는 최상승법에 대한 법문을 우리는 경청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단히 민족적인 문제에 부딪쳐 있습니다.

고인이 「설후시지송백조(雪後始知松柏操)요, 눈이 온 뒤에라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에 절개를 알 수가 있고, 일이 어려워진 일을 당해 봐야 장부에 마음을 볼 수가 있다(事難方見丈夫心)」 그런 시가 있는데.

눈이 오기 전에는 소나무나 잣나무나 무슨 다른 모든 나무가 다 똑같이 다 푸르르니까 다 똑같이 보이지만, 서리가 내리고 눈이 온 뒤에라사 정말 소나무와 잣나무에 서리와 눈에도 불구하고 푸르름을 변치 않는 그 송백(松柏)에 지조(志操)를 알 수가 있고, 어려운 일을 당하기 전에는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다 같은 사람들로 보이지만, 어려운 일을 딱! 당해 놓고 보면 비로소 그 사람의 인격을 볼 수가 있다 이거거든.

 

옛날에 '가산난리라고 하는 난리(亂離)가 온다'고 모다 예언으로 그렇게 전해 내려왔는데, 그러자 '난리가 왔다!'하고 온 마을 사람들이 소리소리 지르고, 피난 가야 한다고 야단이다 그말이여. 우리나라도 6.25동란 때 모다 그러한 난리 소동을 보았습니다마는.

그때는 가하지(家下地), 강.. 가하지, 잘 붙여 보면 강아지가 되는데, '강아지라야 그 난리를 피할 수가 있다' 그다음에 임진왜란 때에는 송하지다. 송하지(松下地)라고 하는, '송아지의 뜻을 알아야 난리를 피할 수가 있다' 그러고 6.25동란이나 또는 앞으로는 도하지(道下地), 도하지는 잘 붙이면 돼지, 도하지 · 돼지 · 도야지가 되는데.

 

가하지는, 강아지는 집 아래에서 피난을 해라.

송아지는 소나무 밑에서 피난을 해라.

되아지(돼지)는 '길 도(道)'자, 도 밑에서 피난을 해라.

 

그런데 그 '강아지'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가하지(家下地)라는 게—그래서 아무도 그 가하지 뜻을 몰라. 모르고 있는데,

어느 날 그 마을에 두 노인이 있었는데, 그 노인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 난리가 났을 때 우리들 가족을 무난히 피난을 시킬 수가 있는가?' 그것을 서로 의논 끝에 한 집이 '그러면 미리 훈련을 시켜야겠다'해 가지고, 한 집에서는 온 집안 식구들을 마당으로 모이게 해 가지고, "집에서 키우는 소를 저 사다리를 사용하고 뭐 무슨 방법을 사용하던지 지붕 위에다가 끌어올리라" 그렇게 명령을 했어.

그러니까 집안 식구, 아들이고 손자고 며느리고 딸이고 할 것 없이 심지어는 할멈까지도 "미쳤다고 소를 갖다가 지붕 위로 끌어올리느냐, 그러다가 잘못하면 소 다리나 부러지고 사람까지 다치고 할 텐데, 무엇 때문에 지붕 위로 끌어올리느냐"고 온 집안 식구가 전부가 반대하고.

 

"그래도 내가 시키니까, 시키는 대로 한번 들으라"고 강요를 해 가지고 하니까, 마지못해서 사다리도 갖다 놓고, 사다리 위에다가 나무때기도 걸치고 그저 이리 해 가지고는 끌어올리는데, 마음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야지 서로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불평과 불만, 서로 마음이 합해지지 아니하니까,

'끌어올리라'고 영감은, 할아버지는 소리소리 지르고, 그냥 억지로 하다가 소 다리가 사다리 사이로 빠져가지고는 잘못해 가지고 송아지 다리만 부질러 버리고 또 그러다가 또 해 가지고는 온 집안 식구들은 결국은 소를 올리지 못하고 소 다리만 부러 버리고 말아버리고, '할아버지는 죽을라고 노망했다'고 그러고, 온 집안 식구들은 야단이여.

 

그리고는 또 다른 할아버지가 "그러면 우리집에 가서 한번 해 보세"

집안 식구를 전부 모이라 해가지고, "이 소를 지붕 위로 끌어올려야겠는데 어디 한번 해 봐라" 그러니까, 온 집안 식구가 집에 있는 사다리도 가져 오고, 이웃집에 있는 사다리도 빌려 오고, 사다리를 2중 3중으로 이어대고 포개고, 그 위에다가 멍석을 갖다가 덮고, 판대기를 덮고, 새끼로 엮고 해 가지고, 그 소를 목을 짬매고, 몸뚱이를 짬매고 해 가지고, 먼저 사람이 올라가서 끌어올리고 밑에서 밀고 그래가지고는 아! 너끈히 지붕 위에다 소를 끌어올렸다 그말이여.

 

그래 좀 쉬어가지고 "다시 끌어내리자"

끌어내리기가 올리기보다도 더 어렵다 그말이여. 그래도 '이것이 하면 되지, 안 되겠나?'해 가지고, 그걸 위에서 여러 사람이 소를 잡고서 서서히 해 가지고는 또 끌어내렸다 그말이여.

"자네는 되었네" 그렇게 인자 훈련을 했는데.

 

난리가, 가산난리는 무슨 난리냐 하면은 갑자기 폭설이 쏟아져 가지고 눈이 무릎으로, 허리로, 어깨로, 머리 위로 해서 지붕까지 눈이 쌓였어.

그 가산이란 지방이 강원도인지, 함경도인지 내 확실히 모르겠는데, 눈이 많이 와가지고 난리인데, "난리야! 피난가자!" 온 마을 사람들이 하니까, 전부 집안 밖으로 뛰쳐나갔어.

 

그 갑이란 할아버지하고, 을이란 할아버지는 "나가지 말라. 여기 집에 있으라"고 암만 처질러 봤자 "피난 다 가는데 우리만 안 가면 되냐?"고, 소 다리 부지른 집에서는 전 식구가 다 도망가고 손자 하나만 할아버지 손을 잡고 안 죽고.

그 한 할아버지는 미리 줄을 각 사람 몸에 집안 식구대로 줄을 다 묶고 매고, "절대로 이 줄에서 빠져나가지 말고 내가 앞장서서 갈 테니 내 오는 데로만 따라오너라" 그래가지고는 한 시간, 두 시간을 돌다가 "인자 그만 좀 쉬어 가자"

 

그런데 폭설이 와 가지고 갑자기 하늘이 깜깜해졌어. 그 칠흑같이 어두워져 버리고 해도 넘어가고 그래 어두워졌는데, 눈이 지붕 있는 데까지 차올랐는데, 그 할아버지는 그 앞장서서 자기집 처마밑으로만 수십 바퀴를 돈 거여. 돌다 보니 눈은 지붕 위에까지 쌓아 올라갔어.

그래가지고 "우리 쉬어가자" 해가지고 들어가서 찬찬히 보니까 자기집이여. 자기집 부엌으로 들어가고 "우리가 밥을 해서 먹자"해 가지고 밥을 해서 다 먹고 밖을 보니까 눈이 그렇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 가산난리를 무사히 그 집안은 피난을 하고, 한 집 뿐만이 아니라 온 동네 사람들이 눈 속에 들로 산으로 나가 가지고는 눈 속에서 다 얼어 죽었어. 수천수만 명이 다 얼어 죽은 거야.

 

지금 내가 왜 이 얘기를 하냐 하면은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구정선사(九鼎禪師)에 말씀을 하셨고, 96종 공안에 막혀가지고 그런 말씀도 잠깐 비치셨는데, 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믿을 수 있는 선지식(善知識), 바른 선지식의 한마디에 자기의 목숨을 바쳐야, 그것을 위법망구(爲法忘軀)라, '법을 위해서 몸을 잊어버린다'

 

'몸을 잊은다'는 것은 '자기 몸을 생각하지 않는다' 몸도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장래도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목숨까지라도 다 거기다 바쳐 버려야, 그리고 오직 한마디 말씀에 의지해서 자기의 몸과 목숨을 다 바치고, 위법망구의 정신이 되어야 끝장이 나는 거여.

자기의 소견이 붙어 있고, 자기의 사량복탁(思量卜度)이 붙어 있고, 이래저래 의심하고 따지고 그래가지고서는 이 문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거든.

 

배워 가지고 아는 것이 아니어. 참선이라는 것은 배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철저한 신심(信心) 하나로써 오직 꽉 막힌 의심(疑心)으로 나아간 데에서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 가르켜 갖고 되는 것이 아니거든. 그래서 이것은 믿음이 없으면 백날 해봤자 소용이 없는 것이거든.

 

구정선사가, 그 선지식이 '솥을 걸어라' 하는데, 애를 써서 걸어 놨는데 '이따위로 걸었냐'고 확 뒤집어 버리고 '새로 걸어라' 그래. '뭐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으니까 이렇게 고치라' 그게 아니어. 무조건하고 잘못되었다고, 한나절 내 공력을 들여서 솥을 걸어 놨는데 확 뒤집어 버리고 '다시 걸어라'고.

또 해 놓으면 또 그러고 해서, 아홉 번까지 해도 불평불만이 없이 한결같은 신심으로 더욱 정성을 들여서 했다 그말이여. 그만한 끈기와 그만한 인내와 그만한 신심이 아니면은 안 된다 그거거든.

 

할아버지 말을 듣지 않고 온 집안 식구가 불평불만을 하고, 그 집안 식구는 그렇게 해서 가족이 거의가 다 죽고, 소를 지붕 위로 끌어올린 사람은 한 사람도 죽지 않고 가산난리를 무난히 피난을 했다 말이여.(처음~17분1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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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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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신심(삼요)2019. 4. 8. 23:22

§(513) 도를 배우려면 모름지기 다섯 가지 올바른 믿음을 갖추어야 한다.[五種正信]

 

**송담스님(No.513)—93년 9월 첫째일요법회(93.09.06) (용513)

 

약 15분.

 

(첫째는) 신심(信心), 자기 몸 가운데 주인공은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조금도 손색이 없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가지고 있고, 자기 마음속에 진짜 부처님이 들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거야.

부처님은 십 생을 온갖 행하기 어려운 것을 다 행하셨다 그말이여. 삼아승지겁(三阿僧祗劫)을 행하기 어려운 것 당하기 어려운 것을 다 행하고 최선을 다해서 수없는 목숨을 바치면서 끝없는 진리를 위해서 바쳐 왔다 그말이여. 그래서 손바닥만한 땅도 불보살이 중생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지 않는 곳이 없다.

 

우리가 평범한 범부(凡夫)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고, 풀끝에 이슬과 같은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서글프고 비참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몸 가운데에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이 주인공(主人公)은 삼세제불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조금도 손색이 없는 존재라고 믿을 때 우리는 얼마나 든든하고 보람이 있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입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세상의 흥망성쇠가 하나도 마음에 걸릴 것이 없어.

바람이 좀 거센 바람이 지나갈 수도 있고, 시원한 바람이 지나갈 수도 있고, 조금 더운 바람이 지나갈 수도 있고, 차운 바람이 들어갈 수가 있어서 바람 부는데 따라서 더우면 시원한 옷을 입고 추우면 두터운 옷을 입는 거와 같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그말이여.

 

 

둘째는 무량겁래(無量劫來)로 오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하는 모든 일들과,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일과, 누구를 미워하고 미움을 받는 일과, 우리가 익힌 모든 습성과 그런 것들이 전부가 다 한 생각 생사심(生死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들이라, 그 원인이 전혀 다른 사람한테 원인이 없어.

 

다 자기 자신이 지은 업(業)으로 그렇게 된 것이고, 자기의 한 생각으로 인해서 벌어진 모든 것들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아무도 미워할 것도 없고 원망할 것도 없어. 한탄할 것도 없고.

다맛 당장 이 시간부터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만을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세속에서 살라면은 돈도 벌어야 하고, 명예도 얻어야 하고, 권리도 있어야 하고, 예쁜 마누라도 있어야 하고, 자식도 있어야 하고, 별의 별별 호강도 해야 하고, 좋은 차도 좋은 집도 있어야 하고, 너무너무 근심 걱정이 많고 해야 할 일이 너무너무 많은데,

출가해서 떠억 계(戒)를 받고 중이 되면 아무것도 걱정이 없고, 비가 오면은 신발에 물 들어가나 고거 하나만 걱정하면 된다 이거여.

 

끼니때 되면 밥 지어주고, 아무것도 걱..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을 듣고 다 가정을 버리고 '에잇! 나도 중이 되어 버려야겠다' 그러면 안 되고.

여러분도 세속에 살면서 기왕 아버지면 아버지 책임을 해야 되아. 자기가 그렇게 업을 지었기 때문에. 어머니로 있다면은 어머니 책임을 해야 하고, 며느리면 며느리 책임을 해야 하고, 아들이면 아들 책임을 해야 하고, 학생이면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거여. 그러면서 '이뭣고?'만 하면 되어.

 

그러면 세속에서 사는 동안에는 어쩔 수가 피할 길이 없어. 그것이 전부 자기가 과거에 지어 놓은 인연으로 만난 사람이요, 만난 일이기 때문에 다 해야 하는 거여.

그것만 열심히 하면 다 되냐 하면 그게 아니어. 살 수가 없어. 할려고 해도 마음대로 안되기 때문에 살 수가 없는 거여.

 

그걸 이겨내는 힘을 얻어야 하는데 그 힘이 '이뭣고?'에서 나오는 거다 그말이여.

 

'이뭣고?'를 안 하고는 세속에서 아무리 잘살라고 마음을 먹고, 잘할라고 마음을 먹고, 아 미워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이를 악물고 결심을 해도 일에 딱! 부딪치면 안 되는 거여. 속에서 일어나서 안 되는 거여.

'이뭣고?'를 해야 자연히 봄이 돌아오면 반드시 눈이 녹고 얼음이 녹고 뜨뜻해서 파릇파릇한 싹이 돋아나듯이, '이뭣고?'를 해야 맺힌 덩어리가 녹는 거고, '이뭣고?'를 해야 모든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이 생겨. 마구니를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말이여.

 

 

세 번째는, 고인(古人)의, 고불(古佛)과 고조사(古祖師)의 일언반구(一言半句)의 법문이라 하는 것이 마치 긴 칼과 같아서 잘 갈아 논 칼과 같아서 함부로 만지고, 함부로 그놈을 가지고 장난을 하고, 함부로 접근하다가는 손을 베고 몸을 베고 다치는 거다 그말이여. 함부로 그것을 내두르다 멋도 모르고 그놈을 내두르다 보면 여러 사람을 다치게 만들어.

 

그래서 이 참선을 하는 사람은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말씀 가운데에,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가 어떻게 지혜가 있고 혜(慧)가 빠르던지 천칠백 공안을 맥힘이 없이 다 통달을 해 가지고 어느 선지식하고 가서 법담(法談)을 해도 다 인가(印可)를 받았다 그말이여. 오직 원오극근(圜悟克勤) 선사 앞에 가서, 그런데 인가를 받지 못했어.

 

"내가 무슨 공안에 맥혔길래 인가를 안 하십니까?"

"공안에 맥히지 않았다. 네가 깨달은 것이 아니라 공안을 알았기 때문에 너는 인가를 할 수가 없다. 너는 안광낙지시(眼光落地時)에 증험(證驗)을 해 봐라"

 

공안을 가지고 의리(義理)로 따져서 이렇다 저렇다 무슨 문제, 수학 문제 풀듯이 공안을 가지고 이리저리 사량분별로 따져 가지고 알아 봤자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일본에서 나오는 선(禪)에 관한 많은 책들이 한국에도 많이 나오고 번역된 책도 있고 그런데, 행여나 그런 걸 보고 공안에 대해서—자기가 자기의 본참공안에 철저하게 참(參)해 가지고 확철대오를 해서 선지식의 인가를 받았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분상에서 그러한 책 나부랭이 봐 가지고 공안을 사량분별로 따져서 알려고 하지 말아라 그말이여.

 

천칠백 공안을 다 알았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생사 문제 해결하는 데는 조금도 도움이 안 되고, 그러헌 것을 자기가 깨달랐다고 착각을 하면 자기 신세도 망치고, 자기를 추종하는 많은 사람도 그르치게 되고, 나아가서는 불법까지 망하게 될 것이다 그말이여.

 

여러분들이 지금은 잘 못 보지만 옛날에 홍콩 영화에 이소룡이란 사람은 십팔계인가? 태권도인가? 뭘 해 가지고 어떻게 잘해 가지고 풀풀 나는 영화를 많이 찍어 내 가지고 엄청나게 흥행을 했다 그말이여.

영화를 찍을 때에 하는 그것 가지고 실지로 자기에게 그런 태권도 실력이 있는 걸로 착각해 가지고 진짜 태권도 잘하는 깡패하고 대결해 가지고는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사실이 있었는데, 영화는 얼마든지 풀풀 날으는 영화를 찍을 수가 있고 백 번 죽은 사람도 다시 살아나게 찍을려면 찍는 거다 그말이여.

 

공안이라는 것을 사량분별로 따져서 알라고 하지 말아라. 아무 소용없는 거야!

10년, 20년, 30년 내지 평생을 참선을 했어도 한 공안도 짐작이 안 가고 꽉 맥혔다 하더라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것이다 그말이여.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확! 은산철벽(銀山鐵壁)으로 맥혀서 알 수 없는 의단(疑團)으로 나간다면 설사 언젠가는 깨닫게 되고 설사 금생에 깨닫지 못하더라도 내생에라도 그 사람은 결정코 확철대오하고만 마는 거여.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한 것 그 자체가 소중한 것이지, 이리저리 엉터리로 사량분별로 따져서 공안을 열 개, 아니 백 개를 알면 뭐 하는 거냐 말이여.

일본 선원에서는 백 개를 통달하면 조실 자격을 준다나 어쩐다나. 백 개 아니라 천칠백 개를 다 통달해서 조실 노릇하면 뭐 하는 거냐 그말이여.

 

그래서 고인의 일언반구를 마치 큰 칼과 같이 생각하라 이거여. 등한히 그것을 가까이하고 만지고 가지고 흔들다가는 자기 목숨 잃고 남 죽이고 불법을 망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일상생활 속에 항시 간단없이 화두를 챙겨라.

공부를 하되, 하다 보면 앉아서 하다 서면서 잊어버리고, 하다가 눈으로 무엇을 보면 잃어버리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으면 놓쳐 버리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 놓쳐 버리는데,

'놓쳤다 아휴! 이놈의 공부가 왜 안되냐, 좀 할라고 하면 시끄러워서 못 하겠다. 뭣 좀 할라고 하면 전화가 와서 못하겠다' 그러지 말고.

 

귀로 무슨 소리가 나면 오히려 거기서 화두를 한번 더 챙기고, 눈으로 무슨 경계가 나타나면 그때 한번 다시 또 챙기고, 전화가 따르르릉 오면은 거기서 다시 정신을 챙기고, 아들 손자가 "어머니, 할머니"하고 달려들면 "오냐, 오냐"하면서 생각은 탁! 챙기고.

 

일체 경계가 바로 나의 공부를 방해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일체 경계가 바로 나로 하여금 정신차리게 하고, 화두를 들게 하고, 공부 단속하게 하는 채찍으로 생각하라 그거거든.

그렇게 해서 또 들고 또 들고 해서 중단하지 말고 생각 생각이 알뜰히 단속을 해 가시라 이거거든.

 

지금 해제, 가을 산철인데, 더운 여름도 참 정진할려면 힘드는 계절이고, 그런데 그 여름이 지나가서 인자 앞으로 서늘한 때가 되었으니 이러한 좋은 때를 잘 이용을 해서 열심히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섯 번째, 우리의 생각이 생사심이 끝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생사도 또한 끝이 없어. 이 끝이 없는 이 생사가 적은 일이 아니다 그말이여.

다행히 금생에는 사람 몸을 받아서 불법을 만나 가지고 이만하기 천만다행이지만, 금생에 이 몸뚱이 놓쳐 버리면 내생에 어디 가서 무엇으로 태어날는지 모른다 그말이여.

 

비록 금생에 나쁜 일 안 했다고 해서 내생에 꼭 좋은 곳으로 태어나라는 보장은 없어.

금생 말고 전생, 저 전생에, 무량억겁에 무슨 짓을 했는가 한량이 없기 때문에 내생에 무엇으로 또 태어날란가, 어느 삼악도(三惡途)에 태어날란가 알 수가 없거든.

 

그래서 정말 분심을 내고 결정신(決定信)을 가져야 해. 금생에 이만한 환경 속에 태어나고, 이만한 여건 속에 태어난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고 정법에, 활구참선에 철저한 뜻을 거기다 세워라 그거거든.

그래가지고 그렇지 아니하면 무서운 삼악도의 고통을 면하기 어렵다고 하는 철저한 신심을 가져야 한다 그거거든.(29분42초~44분3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峯和尙廣錄)』 (제20권) ‘동어서화속집하(東語西話續集下)’에서. 『동어서화(東語西話)』 (장경각) p129~131.

 

學道須具足五種正信 第一要信自己方寸心中一箇喜怒哀樂底主人翁覿體與三世諸佛不欠一毫髮

도를 배우려면 모름지기 다섯 가지 올바른 믿음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마음속에서 희로애락(喜怒哀樂)하는 주인옹(主人翁)의 본 모습은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한 털끝만큼도 부족하지 않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第二要信從無量劫來與聲色愛憎 染習流注結成一種生死無常 於四大身中念念遷流新新不住

둘째는 무량겁을 두고 내려오면서 바깥 세계[聲色]와 애증에 물들여져서 이루어진 생사(生死)는 무상(無常)해서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몸 가운데 생각 생각 떠돌아 다니느라 한 순간도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第三要信古人垂慈留下一言半句如倚天長劍 等閑拶透端的會斷人命根

셋째는 고조사(古祖師)들이 남겨 놓으신 일언반구(一言半句)가 마치 하늘에 뻗쳐 서 있는 큰 칼과 같아서, 그 고인(古人)의 일언반구에 대해서 등한히 그걸 따진다든지, 알음알이로 그것을 짐작을 해 볼라고 한다든지 이러다가는 그 큰 칼에 나의 목숨이 끊어진다고 하는 것을 믿어야 한다.

 

第四要信日用工夫但恐不做做之不己 念念精專決有透脫之期

넷째는 일용공부(日用工夫)에 있어서 다못 자기가 공부를 짓지 아니한 것 그것을 두려워할지언정, 생각 생각이 정미(精微)롭게 한결같이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면 결정코 생사에서 투철하게 벗어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第五要信生死無常不是小事 若不奮決定志以期獨脫 其三途苦趣曾無自免之方也

다섯째는 생사무상(生死無常), 이 생사 문제가 결정코 적은 일이 아니니, 만약 큰 분심(憤心)을 내 가지고 결정적인 지조를 가지고서 나의 힘으로 칠통(漆桶)을 타파(打破)할 것을 기약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삼도(三途)의 고해(苦海)에서 진실로 벗어날 방도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깊이 믿어야 한다.

 

有三法爲進道之捷徑 一智眼明 二理性通 三志堅固

한편 도에 나아가는 첩경(捷徑)이 될만한 세 가지 법이 있다. 첫째는 지혜의 눈이 밝아야 하며, 둘째는 이성에 통달해야 하며, 셋째는 뜻이 견고해야 한다.

 

智眼明則照破世間身心現量境界一切是非憎愛取舍得失貧富壽夭苦樂等法皆是夢緣了無實義 而不起分別 

‘지혜의 눈이 밝다’는 것은 이 세간(世間)에 태어난 이 몸과 우리의 의식과 우리의 육식(六識)을 통해서 인식할 수 있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이 모든 경계(境界)와 일체 시비(是非)와 증애(憎愛)와 취사심(取捨心), 득실(得失), 빈부(貧富), 수명(壽命), 고락(苦樂) 등이 모두 꿈속의 인연이어서 조금도 그러한 것들이 실(實)다운 것이 아니다. 그렇게 간파(看破)하는 것이다. 그렇게 간파를 하고서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는다.

 

理性通則於從上佛祖所說語言名相 至於三敎聖賢諸子百家差別法要 會歸一源不生異見

‘이성에 통달했다’는 것은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의 설하신 모든 말씀과 유불선(儒佛仙) 삼교(三敎)의 성현의 말씀과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수많은 차별법이 다 한 근원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을 알고 그것에 대해서 다른 소견을 일으키지 않는다.

 

志堅固則從今日至未來際不問近遠 若不徹證決定不休

‘뜻이 견고하다’는 것은 지금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멀고 가까움을 묻지 않고 철저하게 깨닫지 않고서는 결정코 이 공부를 그만두지 않는다.

 

此三法具一而缺二三 只成箇無事漢 具二而缺一三 只成箇伶俐漢 具三而缺一二 只成箇擔板漢

이 세 법 중에서 첫째만 갖추고 둘째와 셋째를 빠뜨리면 한갓 ‘일 없는 사람[無事漢]’이 되며, 둘째만 갖추고 첫째와 셋째를 빠뜨리면 그저 ‘영리한 사람(伶俐漢)’이 될 것이며, 셋째만 갖추고 첫째와 둘째를 빠뜨리면 단지 한쪽으로 치우쳐 전체에 대한 안목이 없는 지극히 우직한 ‘담판한(擔板漢)’이 된다.

 

當知此道如涉千里之脩途 若具一二而缺三 是由九百里而止者 具一三而缺二 終不免其岐泣 具二三而缺一  吾知其觸途成滯必矣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 도는 천리(千里)나 되는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첫째, 둘째만 갖추고 셋째를 빠뜨린다면 9백리 정도 가다가 중지하는 자이며, 첫째와 셋째만 갖추고 둘째를 빠뜨린다면 갈림길에서 어찌할 줄 몰라 우는 신세를 끝내 면하지 못하며, 둘째와 셋째는 갖추었으나 첫째를 빠뜨린다면 그는 가는 길마다 반드시 막히리라는 사실은 나는 분명히 알 수 있다.

 

三法全具雖未動足 敢保其與已到家者不相異也 豈待其重問迷津而再搖鞭影乎

이 세 가지 법을 모두 갖추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서도 이미 깨달음의 집에 도달한 것이나 다름 없으리라는 사실을 내가 보증할 수 있다. 어찌 또다시 미진(迷津)을 묻고, 재차 말채찍의 그림자를 흔들 필요가 있겠는가?

 

*미진(迷津) ; 미혹(迷惑)이라는 나루터[津]. 열반의 피안(彼岸)에 대하여 차안(此岸)과 같은 말이다. 미혹의 경계. 삼계(三界) · 육도(六途)를 말함.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