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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2.28 §(170) 선방에서 결제 또는 가정 속에서 결제 / 기본자세인 좌선을 충실히 해야 생활 속에서도 공부가 잘된다 / 대중의 규칙을 자발적으로 순응, 인욕해야 / 수도 생활의 목적은 생사해탈. 2
  2. 2022.03.04 §(616) 오조홍인(五祖弘忍) 대사의 최상승론(最上乘論) / 입중오법(入衆五法) / (게송)활구참선객~ / 參禪須透祖師關 妙悟要窮心路絶 / 참선 자세와 호흡.
  3. 2021.08.25 §((151)) 법회 때, 그리고 법당에서의 예절.
  4. 2021.07.30 §((301)) 평등심을 가져야 도에 들어갈 수가 있다 / 부처님의 「좋은 도반」 법문 / 발심해서 공부한다면, 도반 선지식(善知識)은 도처에 계시는 것.
  5. 2021.07.16 §((466)) 결혼은 '처옥자쇄(妻獄子鎖), 마누라는 감옥이고, 자식은 자물쇠통’ / 구경각의 경지가 아니면, 초학자 같은 마음으로 여법하게 정진을 해 나가야.
  6. 2021.05.08 §((252)) 하루 결제 / 수행도 할 시기가 있다 / 기름 참선 / 남까지 공부를 못하게 하면 그 죄는 참회할 길이 없다 /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그것에 하심을 하라.
  7. 2021.02.20 §((190)) (게송)막장한학해~ / 한 생각이 진실 간절(懇切)하면 어디에 혼침 · 산란심이 있겠느냐 / 좋은 도반을 얻는 것은 도를 다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
  8. 2021.01.11 §((479)) (게송)일파자동만파수~ / 선방대중 · 외호대중이 다 같이 청정한 한마음이 되어야만, 그 회상이 바로 영산회상이 된다. 이것이 바로 불사(佛事).
  9. 2020.12.23 §((145)) 참선하기 위해 오신 보살님네들은 잡담 · 시비할 겨를이 있을 수가 없다 / 정말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간절하게, 알차게, 일분일초를 아껴서 공부하시라.
  10. 2020.03.22 §(220)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찰나에 화두를 들어라 / 가정에서도 수행자답게 진실하게 생활해 존경을 받아야 / 선방 대중생활 규칙을 잘 지켜라.
대중 생활2024. 2. 28. 09:14

§(170) 선방에 와서 결제 또는 가정 생활 속에서 결제 / 기본자세인 좌선을 충실히 해야 생활 속에서도 공부가 잘된다 / 대중의 규칙을 자발적으로 순응하고 인욕해야 / 수도 생활은 배부르고 편안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닌 지혜(智慧)의 눈을 떠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정진(精進)은 장소와 시간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대중이 모여서 사는 데에는 편의상 시간을 정하고 장소를 정하고 이렇게 해서 질서를 잡아 나가고는 있습니다마는, 실정진(實精進)에 있어서는 시간과 장소와 자세에 얽매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170)—1982(임술)년 하안거 결제 법어(82.04.15.음) (용170)

 

약 18분.

 


오늘은 임술년 4월 15일 하안거 결제날입니다. 오늘 결제(結制)에 들어가면 윤달이 안 들었으면 음력 7월 보름날 해제를 하게 됩니다마는 4월에 윤달이 들어서 음력 6월 15일에 해제(解制)를 하기로 했습니다.
석 달 동안 방부(房付)를 들인 스님네와 방부를 들인 보살님네가 이 법보선원에서 정진을 하시게 되겠습니다. 방부를 들이지 아니하고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청신사 청신녀 여러분도 역시 이 결제하신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설사 이 선방에 와서 입방선(入放禪)을 안 하신다 하더라도 백일기도에 동참하신 분은 가정에서 생활 속에서 결제를 한 것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을 해서 정진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오늘은 이 법회에 참석하신 분들이 다른 법회 때보단 수효가 많이 줄어진 것 같습니다마는 꼭 오실 분이 오셨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백일(百日) 동안 결제 대중만 알맹이로만 딱 뽑아서 이렇게 오신 걸로 생각을 합니다.

정진(精進)은 장소와 시간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대중이 모여서 사는 데에는 편의상 시간을 정하고 장소를 정하고 이렇게 해서 질서를 잡아 나가고는 있습니다마는, 실정진(實精進)에 있어서는 시간과 장소와 자세에 얽매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좌선(坐禪)을 하는 것이 참선하는 데 있어서 기본자세이기는 하지만, 그러기 때문에 기본자세를 시간과 장소가 허락이 되면은 항상 '기본자세에 충실한 것은 대단히 득력(得力)을 하는 데에 요긴(要緊)하다'고 고인(古人)네도 말씀을 하셨고 실지로도 경험을 해 볼 수가 있습니다마는,
그렇다고 해서 좌선 이외의 다니면서 하는 정진, 일하면서 하는 정진, 차를 타면서 하는 정진은 정진이 아니냐 하면은 그게 아니고, 기본자세를 충실히 익히는 것은 응용(應用)에 응용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기본자세를 익히는 것입니다.

좌선(坐禪)을 새벽으로 한 시간 두 시간, 가정에서도 이렇게 착실히 해 놓으시면 그날 하루 동안 살림하면서, 차를 타시면서, 시장에 가시면서 또는 대인잡화(對人雜話)하면서 그런 행동하는 속에서 공부가 잘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본자세를 충실히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참선(參禪)이 꼭 절에 와서 결제(結制)만 해야만 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이 스님이 되고 모든 사람이 절에 와서 결제를 할려고 한다면 용화사(龍華寺)와 같은 이런 절이 수십만 개가 생겨도 다 못 당해 낼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도 난리가 나고 말 것입니다.

가정에서 살림을 하면서 생활하면서 충실히 정진을 할 수 있게 될 때에 정말 살아 있는 불법(佛法)이 될 것입니다. 불법(佛法)이 그렇게 될 때에 이 불법으로 인해서 온 나라가 온 세계가 장엄(莊嚴)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머리를 깎고 오직 정진만을 위해서 일생을 바친 스님네가 계셔야 하고 또 머리는 안 깎았지만 이렇게 절에 와서 방부를 들이고 결제를 하면서 알뜰히 정진을 하는 그러한 보살님도 많이 계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기왕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을 하는 마당에는 대중(大衆)에 규칙이 있는 것입니다. 그 규칙은 형식상으로 볼 때에 대중의 각자의 행동을 구속(拘束)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 구속을 받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방부를 들이고 여기에 모이신 것입니다.
그러한 구속(拘束)이 싫다면 구태여 여기에 방부를 들일 필요가 없고 이 도량(道場)에 모이실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방부를 들이고 여기 모여서 사는 데에는 그 구속을 스스로 원해서 오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방부를 들이시면 대중의 규칙을 아무리 자기 개인적으로는 마땅치 않다 하더라도 대중을 위해서, 선방을 위해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크고 작은 모든 규칙을 신심(信心)으로 환희심으로 자발적으로 그 규칙에 순응(順應)을 해야 하고 솔선해서 모범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대중이 조용해지고 정말 공부하는 데에 아무 시비와 지장(支障)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각자가 규칙을 자발적으로 순응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 공부 잘되도록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기 자신에 공부에도 제일 먼저 도움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불평과 불만을 터트리고,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이 앉아서 시비(是非)를 하고 물의(物議)를 일으키고, 이렇게 될 때에 대중 전체가 소란해지고 공연히 속이 상하고 물의가 일어나면 화두(話頭)도 간 곳이 없고, 속을 상하고 기분이 나빠서 정진도 되지도 아니할 것입니다.

자기 한 사람이 입을 함부로 놀려 가지고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심지어는 선방(禪房) 전체의 분위기를 흐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리해서 여기저기 선방이 중간에 보따리를 싸 짊어지고 선방이 깨지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결제 안거 도중에 몇 사람이 떠나게도 되고, 이렇게 해서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고 자기도 안거 동안에 물의를 일으켰다고 하는 낙인(烙印)을 찍히게 되고, 한 번 낙인을 찍히게 되면 간 곳마다 '저 사람이 저이는 아무 데 선방에 지내다가 중간에 보따리 싸 짊어진 사람이다' 이리해서 낙인이 딱! 찍히게 되어서 다른 선방에 가도 방부를 받기를 꺼리게 되는 것입니다.

석 달 동안 좋으나 궂으나 한 번 방부를 들였으면 인욕(忍辱)을 하고 '내가 여기를 무슨 목적으로 여기를 왔는가? 무슨 편안하고 배부르기 위해서 내가 여기에 왔는가? 또는 무슨 명예나 권리를 위해서 여기를 왔는가?'
명예를 위해서 오는 것도 아니요, 무슨 이끗을 위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 온 것도 아니요, 배부르고 편안하기 위해서 온 것도 아니면 무엇을 위해서 내가 여기를 왔어?

편안하기를 바란다면 각자 가정에서 지내면 누가 뭐라고 그래. 고행(苦行)을 사서 하기 위해서 모두 여기에 모이신 것이다 그 말이여.
고행을 하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몸이 고단하거나 할 때에도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예불(禮佛) 젓수고, 참회하고 축원하고 그리고 정진하고. 하루 이틀이라면 모르지만 석 달 동안을 계속해서 그러한 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이 고행을 극복하고 정진해서 지혜(智慧)의 눈을 떠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데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한 것이지,
만약에 이걸 전혀 할 생각 없는 사람을 강제로 붙들어다가 이런 이 수도(修道) 생활을 시킨다고 하면 정말 이것은 감옥살이에 조끔도 뒤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가고 싶은 데 마음대로 갈 수가 있나, 먹고 싶은 것을 내 멋대로 먹을 수가 있느냐, 하고 싶은 것을 맘대로 할 수가 있나, 하나에서 백까지 규칙에 순응해야 하고, 조끔만 어기면 대중에 지적을 받고 공사(公事)를 당하고 심할 때에는 추방, 쫓겨 축출까지 당하게 된다 그 말씀이여.

그런데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자발적으로 할 때에는 그러한 구속과 고행이 조끔도 불편하지를 않고 조끔도 괴롭지 않고, 아무 불평불만이 없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너무 보람을 느끼고 너무 기쁘고 다행할 수가 없다 그 말이여.

문제는 당인(當人)이 얼마만큼 발심을 했으며, 얼마만큼 신심을 냈으며, 얼마만큼 바르게 정진을 하고 있는가?
발심을 션찮게 했고, 신심 돈발(頓發)이 약하고, 정진에 바른 법을 아지를 못하기 때문에 공연히 트집을 잡고 아무렇지도 않는 일을 가지고 긁어서 부스럼을 내 가지고 불평불만을 하고, 공부에 맛을 모르니까 오히려 좋은 일을 가지고도 트집을 잡아서 풍파를 일으켜서, 자기는 어피차 공부가 하기 싫고 공부 맛도 없고, 아무리 억지로 좀 하려고 해도 되지도 않고 그러니까 공연히 시비를 일으켜 가지고 못 먹는 감 찔러버리는 식으로 내가 공부 안 되니까 남까지 못하게 이리하고, 심한 경우에는 선방을 중간에 깨 가지고 대중을 파괴를 하는 그러한 경우도 있다 이 말씀이여.

죄(罪) 가운데에 무슨 죄가 제일 크냐 하면 대중에 화합(和合)을 깨는 죄, 또 하나는 부처님 몸에 피를 내게 하는 죄, 깨닫지 못하고 깨달랐다고 하고 증(證)하지 못하고 증(證)했다고 하는 죄, 이러한 죄가 대역죄(大逆罪)라, 죄 가운데에는 최고의 대역죄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이신 분 가운데에는 그러한 분이 한 분도 안 계시고, 오직 자발적으로 자기도 공부 잘하고 자기가 공부 잘함으로써 남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그런 모범적인 스님네와 그러한 훌륭한 신도 여러분만이 모이신 걸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한 분들에게 구태여 이런 말씀을 할 필요가 없지만, 이러한 말씀을 함으로써 각자 명심을 해서 더욱 정진을 잘하시기를 바래는 뜻으로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7분50초~25분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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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방부(房付 방·거처 방/줄·부탁할 부)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하는 일.
*청신사(淸信士)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자 신도, 곧 우바새(優婆塞).
*청신녀(淸信女)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 곧 우바이(優婆夷).
*‘한 생각 한 생각을 잘 단속을 해서’ ; 일념단속(一念團束).
*일념단속(一念團束) ; 무슨 생각이든지 한 생각 났다 하면 그 생각이 뿌리를 내려 싹이 트고 잎이 피어 결국은 과보(果報)를 받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즉각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리는 것.
마음 속에 한 생각 일어난 것이 결국 말로 나타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서 그 한 생각 단속을 잘하면 극락에도 가고 부처도 될 수 있는데, 그 한 생각 단속을 잘못해서 죄를 지어 축생도 되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6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대중(大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hā-samgha, mahā-sabhā. 음역하면 마하승가(摩訶僧伽)이다. 많은 사람의 모임이란 뜻으로 참선 수도하는 스님들의 모임 또는 일반적으로 법문을 청하여 듣는 사부대중(四部大衆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을 일컫는다.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전가부좌(全跏趺坐) · 온가부좌(온跏趺坐) ·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좌선(坐禪) ; 단정히 앉아서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단정히 앉아서 선(禪) 수행을 하는 것.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 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참고] 『서장(書狀)』 (대혜종고 著) ‘증시랑(曾侍朗)에게 답함(여섯 번째)’
苟念念에  不退初心하고  把自家心識이  緣世間塵勞底하야  回來抵在般若上이면  雖今生에  打未徹이라도  臨命終時에  定不爲惡業所牽하야  流落惡道하고  來生出頭에  隨我今生願力하야  定在般若中하야  現成受用하리니  此時決定底事라  無可疑者니라.

참으로 생각생각에 초심(初心)에서 물러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마음이 세간의 번뇌와 반연하는 것을 잡아 돌이켜 반야(般若) 위에 이르게 하면, 설령 금생에 (이 일을) 타개(打開)하여 사무치지 못하더라도 임종시에 결정코 악업(惡業)에 이끌리는 바가 되어 악도(惡道)에 흘러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생에 태어나면 나의 금생 원력에 따라 반드시 반야 가운데에 있어 수용(受用)을 현전 성취(現前成就)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결정적인 일이라, 의심할 게 없는 것입니다.

衆生界中事는  不著學하야도  無始時來로  習得熟하며  路頭亦熟이  自然取之에  左右逢其原하니  須著撥置니이다.
出世間學般若心은  無始時來로  背違라  乍聞知識의  說著이어도  自然理會不得하나니  須著立決定志하며  與之作頭抵하야  決不兩立이니다.

중생계의 일은 배우지 않더라도 아득한 옛날부터 익혀서 무르익어졌으며, 인생길에도 역시 익어져서 자연스레 취하여 그 중생계의 일 속으로 들어가니, 마땅히 이 습기를 없애 버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에) 세간을 나와서 반야(般若)를 배운다는 마음은 시작을 알 수 없는 때로부터 등지고 어겨왔으므로 잠깐 선지식의 설법(說法)을 듣는다 해도 쉽사리 이해되지 않습니다. 모름지기 결정(決定)한 뜻을 세워서 더불어 머리를 맞대고 겨루어 나가야 합니다. (습기와 반야는) 결코 양립되지 않습니다. 

此處에  若入得深하면  彼處는  不著排遣하야도  諸魔外道가  自然竄伏矣니이다.  生處는  放敎熟하고  熟處는  放敎生이  政爲此也니  日用做工夫處에  捉著欛柄하면  漸覺省力時가  便是得力處也니이다.

이 곳[般若心]에 깊이 들어가게 되면 저 곳은 (습기를 굳이) 물리쳐 보내지 않아도 모든 마(魔)와 외도가 자연히 항복해 숨을 것입니다. 설은 곳[生處]은 익게 하고, 익은 곳[熟處]은 설게 함이 바로 이 때문이니, 일용에 공부하는 곳에서 요점을 잡고[欛柄] 차츰 힘이 덜어진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때가 힘을 얻는 곳입니다.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장엄(莊嚴 엄숙할•삼가할•꾸밀 장/엄할•공경할•꾸밈 엄) ; ①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꽃 따위를 부처님께 올려 장식하는 일. ②건립하는 것. 건립. 훌륭히 배치, 배열되어 있는 것. ③장식. 물건을 장식하는 것. 아름답게 장식함. 훌륭한 것. 엄숙하게 장식된 모양, 모습. 장식물.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인욕(忍辱 참을 인/욕되다·수치스럽다 욕) : [산스크리트어] Kṣānti  욕(辱)되는—부끄럽고 치욕적이고 불명예스러운—것을 견디어 참는 것이다. 육바라밀(六波羅蜜) 가운데 하나.
무슨 곤란이나 역경을 당하더라도, 남을 원망하거나 성내거나 그 고통과 곤란을 피하려고 하지 않고 기꺼이 받으며 참고 견디어 내는 것이다. 참음으로써 마음을 흐트리지 않고 평안하게 하여 자기의 본래면목을 밝혀 해탈에 이른다.

역경(逆境)뿐만 아니라, 중생이 만나는 경계에는 순경(順境)이 있는데, 순경에 대해서도 삼가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 순경계 · 역경계를 여덟 가지로 분류한 것이 팔풍(八風)인데, 팔풍은 능히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움직여 중생의 바다에 풍랑을 일으키므로 오직 참음으로써 이겨내야 한다.

[참고 ❶]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07-108. (가로판 p112)
若無忍行하면  萬行不成이니라

만약 참는 행이 없다면 만 가지 행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註解) 行門이  雖無量이나  慈忍이  爲根源이니라  古德云,  忍心은  如幻夢이요 辱境은  若龜毛라 하시니라

수행하는 길이 한량없지만 자비와 인욕이 근본이 되느니라. 고덕이 이르되 「참는 마음이 꼭둑각시의 꿈이라면, 욕보는 현실은 거북의 털 같으리라」 하시니라.

[참고 ❷] 『대지도론(大智度論)』 (용수보살 造 | 구마라즙 漢譯 | 석법성 韓譯, 운주사 p338) 제6권, '大智度初品中意無礙釋論(초품 중에 의무애 설명)'
復次有二種忍 生忍法忍 生忍名衆生中忍 如恒河沙劫等 衆生種種加惡心不瞋恚 種種恭敬供養心不歡喜

또한 두 종류의 인(忍)이 있으니, 생인(生忍)과 법인(法忍)이다. 생인은 중생들 속에서 인욕하는 것을 말하니, 갠지스강 모래 수만큼의 겁 동안 중생들이 여러 가지의 악을 가해도 마음은 성냄이 없고, 여러 가지의 공경과 공양을 해도 마음은 기뻐하지 않는 것이다.

復次觀衆生無初 若有初則無因緣 若有因緣則無初若無初亦應無後 何以故初後相待故 若無初後中亦應無

또한 중생을 관해 보면 처음이 없나니, 만약 처음이 있다면 즉 인연이 없는 것이고, 만약 인연이 있다면 즉 처음이 없는 것이다. 만약 처음이 없다면 또한 응당 후(뒤)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과 후(뒤)가 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처음과 후(뒤)가 없다면 중간도 또한 없어야 한다.

如是觀時不墮常斷二邊 用安隱道觀衆生不生邪見 是名生忍 甚深法中心無罣礙 是名法忍

이와 같이 관(觀)할 때 상(常) · 단(斷)의 두 극단에 빠지지 않고, 안온한 도를 사용하여 중생을 관(觀)하고 삿된 견해가 생기지 않는다. 이를 생인이라 한다. 심심법(甚深法 12인연법 혹은 진법)에서 마음은 걸림이 없나니, 이를 법인이라 한다.

*팔풍(八風) : 팔경(八境). 팔풍경계(八風境界). 팔풍은 세상에서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바로서 능히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서 움직이게 하므로 팔풍(八風)이라 함.
—이쇠(利衰 이로울 리/약할 쇠) : 내 뜻에 맞고(利) 내 뜻에 어기는 것(衰).
—예훼(譽毀 기릴 예/비방할 훼) : 나 안보는 데서 나를 찬미하는 것(譽), 나 안보는 데서 나를 비방하는 것(毀).
—칭기(稱譏 일컬을 칭/나무랄 기) : 면전에서 찬미하는 것(稱), 면전에서 비방하는 것(譏).
—고락(苦樂 괴로울 고/즐거울 락) :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것(苦),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것(樂).
『몽산법어』 (용화선원 刊) p155 (가로판 p148)

*팔풍, 팔세법(八世法, attha lokadhamma) : 세간(世間, 중생의 세계) 특유의 여덟가지 어려움. 이득과 손실(利衰), 좋은 평판과 나쁜 평판(譽毀), 칭찬과 비난(稱譏), 고통과 행복(苦樂)<칠각지 p57, 고요한소리 刊> 팔풍경계를 요약하면 결국 역순경계(逆順境界).

*고행(苦行) ; ①천상(天上)에 태어난다든지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주로 단식(斷食)이나 호흡의 제어와 같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②불교 이외의 외도들이 닦았던 수행법으로 깨달음을 얻는데에 목적을 두었지만, 육체에 고통을 줄수록 정신이 더 자유로워진다고 하는 잘못된 믿음에 근거하여 육체에 고통을 줌으로써 본능과 욕망을 끊는 것.
③의식주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몸과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 12두타(頭陀)의 고행이 여기에 상응하며 정진(精進)의 의미를 포함한다.
④중생을 위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치는 것. 또한 이에 상응하는 행하기 어려운 수행을 닦는 것을 말한다.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 · 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禮拜)하는 의식.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11. (가로판 p116)
禮拜者는 敬也며 伏也니 恭敬眞性하고 屈伏無明이니라

예배라 하는 것은 '공경하는 것'이며 '굴복하는 것'이니,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니라.

(註解) 身口意가 淸淨하면 則佛出世니라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면 그것이 곧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것이니라.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③(사람이 제사를) 차려 올리다.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사(公事) ; 대중공사(大衆公事).
*대중공사(大衆公事) ; 사찰에서, 사찰 운영이나 공지 사항 또는 스님의 그릇된 행위에 대한 문책 등이 있을 때, 사찰에 있는 모든 스님들이 모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일.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당인(當人 맡다·주관하다 당/사람 인) ; 어떤 일에 직접 관계가 있는 그 사람.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깨닫지 못하고 깨달랐다고 하고 증(證)하지 못하고 증(證)했다고 하는 죄’ ; 미득위득(未得謂得) 미증위증(未證謂證). 얻음[得]이 없는데 얻었다고 말하고, 증(證)한 것이 아닌데 증했다 말하는 것.
*대역죄(大逆罪 큰 대/거스를 역/죄 죄) ; 예전에, 국가와 사회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크게[大] 거스르는[逆] 일을 저지른 죄(罪). 왕권을 범하거나 임금이나 부모를 죽이는 큰 죄를 이르던 말. 불교에서는 오역죄(五逆罪)에 해당한다.
*오역죄(五逆罪) ; 다섯 가지 지극히 무거운 죄. 다섯 가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음.
①아버지를 죽임. ②어머니를 죽임. ③아라한을 죽임. ④승가의 화합을 깨뜨림. ⑤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함. 이 다섯 가지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지극히 악한 행위이므로 오무간업(五無間業)이라고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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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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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대중 생활2022. 3. 4. 12:26

§(616) 오조홍인(五祖弘忍) 대사의 최상승론(最上乘論) / 입중오법(入衆五法) / (게송)활구참선객~ / 參禪須透祖師關  妙悟要窮心路絶 / 참선 자세와 호흡.

『헤어진 옷을 입고, 거치른 음식을 먹으면서, 요연히 근본 참마음을 지키면서 바보가 되어가지고 알뜰하게 짬지게 정진을 해 나가면 이 사람이야말로 대정진인(大精進人)이다』 이렇게 오조 홍인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화두 의심이 희미해지면 또 들고, 딴 생각이 들어오면은 딴 생각을 없앨라고 하지 말고, 딴 생각 일어나면 일어남 그대로 놔둔 채 터억 화두만 들어버리면 그것이 딴 잡념과 망상 번뇌를 물리치는 최고의 방법이여.


참선이라 하는 것이 1년, 2년, 3년을 내지 7년, 10년을 해도 올바르게만 해 나가면 알아지는 것이 없습니다. 알아질 것도 없고, 얻어질 것도 없고, 무엇이 보일 것도 없고, 해 갈수록 알 수 없을 뿐이거든. 그렇게 공부를 지어나가야 정말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하면은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하고 의단을 타파해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길이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요,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뚫어야 하고, 묘오(妙悟)는 요궁심로절(要窮心路絶)이라 하셨습니다. 진짜 묘한 깨달음은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


**송담스님(No.616)—98년(무인년) 동안거결제 법어(98.12.03)(용616)(대중생활)

 

(1) 약 19분.

 

(2) 약 9분.



(1)------------------

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의 최상승론(最上乘論)에 보면은, 언젠가도 이 말씀을 도반들에게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단능착파의(但能着破衣)하고,  다맛 능히 헤어진 옷을 입고, 손추손(飱麤飱)하며,  거치른 음식을 먹으면서, 요연수본진심(了然守本眞心)하고,  요연(了然)히 근본 참마음을 지키면서, 양치불해어(佯癡不解語)하면,  ‘인(亻) 변에 염소 양(羊)’한 자(字)는 ‘거짓 양(佯)’자인데, 양치(佯癡) ‘어리석을 치(癡)’자, 양치(佯癡)는 거짓 어리석은 척 하는 것입니다.
양병(佯病)하면 실제는 병이 안 났지만은 거짓 병을, 꾀병을 앓는 것을 양병(佯病)이라 그러는데, 설사 속은 환하니 지혜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지마는 완전히 바보처럼 하루하루를 지내라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바보처럼 지내냐?’ 하면은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것처럼 바보짓을 하라 이겁니다. 뭔 말을 하면 전혀 말귀를 못 알아들어. 아주 팔부도 못되는 바보처럼 그렇게 하라는 것이여. 그렇게 하는 것이 최생기력이능유공(最省氣力而能有功)이다. 가장 힘은 적게 들이면서 공부하는데는 가장 효과적이다 그말이야.

선방에 와서 똑똑한 체 하고, 선방에 와서 잘난 척하고, 그래 가지고 꺼떡하면 시비가 일어나고, 그렇게 해 가지고 다른 분한테 공부하는데 폐(弊)를 끼치고 선방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고, 이러한 것은 진짜 똑똑한 사람도 아니요, 진짜 발심(發心)한 사람도 아니요, 선방에 무엇을 하기 위해서 온 사람인가를 알 수가 없는 의심스러운 그러한 행위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도 공부 못하고 남까지 공부를 못하게 되니, 칼을 들고 거리에 나가서 강도질한 것보다도 훨씬 더 큰 죄를 범하고 있다 그말이여. 칼 들고 강도질 해봤자 사람 죽이고 감옥에 가서 징역 살고, 죽어서 지옥에 가면 그 사람 한 사람에 끝나는 거지만, 신성한 선방에 와서 똑똑한 체 하고 잘난 체 하고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다가 정진하는 사람을 마음을 흩어트려가지고 공부를 못하게 하면 감옥에 가는데에만 그치겠습니까?
무간아비지옥(無間阿鼻地獄)에 가 가지고 무량겁토록 헤어날 기약이 없다.

왜 그러냐? 정진을 열심히 해서 성불할 사람을 방해를 쳤으니 사람 생명을 하나 둘 죽이고 재산을 뺏는 죄에다가 비교가 되지를 않는다 그 말씀입니다.

그래서 『헤어진 옷을 입고, 거치른 음식을 먹으면서, 요연히 근본 참마음을 지키면서 바보가 되어가지고 알뜰하게 짬지게 정진을 해 나가면 이 사람이야말로 대정진인(大精進人)이다』 이렇게 오조 홍인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조홍인(五祖弘忍) 대사는 육조혜능(六祖慧能) 선사, 육조 스님에게 법을 전한 대선지식(大善知識)이신 것입니다. 

항상 산승이 여러 도반들에게, 특히 이 보살선방에 계신 보살님네한테도 누누이 말씀을 했지마는, 세속에서는 자기를 과시하고 똑똑한 체 하고, 자기의 역량을 항상 널리 남 앞에 선전하고, 그래야 남이 알아주고, 그래야 자기가 대접도 받고 또 여러 가지 사회활동도 할 수 있고 그러지만, 절이라고 하는 데는 특히 선방에 수행하는 곳이라 하는 것은 거기서 무슨 표를 얻어가지고 국회의원이나 무엇에 당선할라고 모이는 곳도 아니고, 자기가 재산이 많다고 하는 것을 자랑할라고 온 것도 아니고, 학식이 많다고 하는 것을 자랑할라고 온 것도 아니고, 정말 무상(無常)을 깨닫고 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인 자리가 아니냐 이 말이여.

무엇을 물어봐도 ‘잘 모르겠습니다.’ 누가 억울한 소리를 좀 하더라도 ‘예, 제가 잘못됐습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항상 그러한 마음으로 산다면 자기도 장애가 없고 남에게도 피해를 안 주니, 그래서 이 선원에서는 조용하게 말없이 묵묵한 가운데 자기 소임을 하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알뜰하게 화두 단속을 하고, 항상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도록 석 달 동안이 어떻게 지내간 줄 모르는 사이에 하루하루가 그렇게 지내가도록 그렇게 정진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오조 스님께서 최상승론 마지막에다 말씀하시기를, 『내가 분명하게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자기 본 마음 참마음을 지키는 것이 이것이 제일이니라. 만약 부지런히 이렇게 정진을 안 한다면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냐. 내가 이렇게 말해 준 이것이 너희들을 속이는 것이라면 나는 당래(當來)에 18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하늘과 땅에게 맹세하노니 내가 이렇게 간곡히 너희들에게 말해 준 말을 너희들이 믿지 않고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은 너희들이야말로 세세생생에 호랑이한테 물려갈 것이다.』

대단히 무섭고도 엄섬한 말씀으로 끝을 맺으셨는데, 이 오조 스님의 최상승론에 있는 아까 말씀드린 이 요점을 정말 깊이 믿고 일생에 좌우명을 삼도록 간곡히 부탁하는 표현이 이렇게 참 무서운 하늘 땅에 맹세를 하고 말씀을 해 주신 것이니 정말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겹도록 큰 자비에서 나오신 법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율문(律文)에 입중오법(入衆五法)이라고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섯 가지 법이 무엇이냐 하면은 첫째, 대중과 같이 살 때에는 하심(下心)을 하라 그랬습니다. 항상 겸손하고 하심을 해라.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주장을 하지 말고, 항상 하심하고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비심(慈悲心)을 가지라 그겁니다. 어려운 소임은 자발적으로 맡고, 어쨌든지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도록 하지, 자기로 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생활 가운데에 폐를 주지 않도록, 그렇게 말 한마디라도 자비스럽게 하고, 모든 행동을 자비심을 가지고 해라 그거거든.

셋째는 공경심(恭敬心)이니, 항상 다른 스님네를—물론 후배가 선배 스님을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선배 스님도 덮어놓고 후배라고 해서 무시하고 억압을 할라고 그러고, 짓밟을라고 그럴 것이 아니라, 먼저 중이 되었다고 해서 무슨 수행을 얼마나 했가니 덮어놓고 후배를 업신여기고 자기가 목에다 힘주고 그래서는 안되는 거고, 또 후배는 하루를 먼저 되었다 하더라도 항상 선배를 공경히 여겨야 한다 그말이여.

그러다보니 피차 서로 공경을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상대방의 좋은 점만을 보고 잘못된 점을 볼 필요가 없고, 성불(成佛)을 해도 부처님은 중생을 시봉(侍奉)하기 위해서 사시는 것이고, 손바닥만한 땅도 중생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지 아니한 땅이 없다고 할 정도로 불보살은 중생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몸을 바치고 그러시는 것이 불보살의 생애인 것인데, 하물며 우리 출가한—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아서, 생사 없는 해탈도를 목표로 하는—우리야 더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항상 공경하는 마음으로...

넷째는 지차서(知次序)니라. 차서(次序)를 알아라. 행주좌와 중에 공양할 때나, 법문을 들을 때나, 법당에 오르내릴 때나, 도량에서 운력을 할 때나, 항상 차서를 알아서 자기의 분(分)을 알아 가지고 그렇게 차서를 알아야지, 차서를 모르고 마구잡이 그렇게 하면 질서가 문란해져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게 되니 대중의 처소가 시끄럽게 되고 그런 것이니 차서를 알아라.

다섯째는 불설여사(不說餘事)니라. 나무지기 일을 말하지 마라. 나무지기 일이라는 게 무엇이냐? 우리는 자기 소임을 열심히 충실히 살면서 대중의 청규(淸規)를 잘 지키면서 열심히 도만 닦으면, 무슨 딴 얘기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묵언(默言)’이라 하고 묵언표를 달 필요도 없이 하루에 별로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항상 속에는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의심이 충실하고, 무엇을 보나 무슨 소리를 듣거나 그것이 귀에 들릴 것도 없고 눈에 보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뭣고?’뿐이요,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무자(無字) 화두를 한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해서...
그 의심이 희미해지면 또 들고, 딴 생각이 들어오면은 딴 생각을 없앨라고 하지 말고, 딴 생각 일어나면 일어남 그대로 놔둔 채 터억 화두만 들어버리면 그만이여. 그것이 딴 잡념과 망상 번뇌를 물리치는 방법이여. 물리치는 방법이 그대로 놔두고 화두만 딱 드는 것이 그것이 물리치는 최고의 방법이여. 그러다보니 무슨 잡담할 겨를이 있으며, 무슨 시비를 할 겨를도 없고, 내가 시비에 말려들 것도 없다 그말이여. 

입중오법(入衆五法)을, 물론 이 자리에 모이신 도반들은 이렇게 내가 부탁할 것도 없이 다 그렇게 지키고 계신 분이 대부분이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은 간혹 한두 분이 이러한 것을 어기고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에 이번 한 철 만큼은 그런 일이 없도록 해 주십사 하는 말씀입니다.

이 다섯 가지 법을 지키고 보면 자기 자신도 장애 없이 잘 정진을 하게 될 것이고, 해제를 할 때에도 ‘참, 내가 이번 한 철은 내가 너무너무 짬지게 잘 지냈다’ 이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해제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한 철 한 철을 지내고 보면 오조 스님의 그 최상승론에 있는 법문과 저절로 계합(契合)이 될 것이고, 호랑이한테도 안 물어가게 됩니다.

또 오조 스님도 이런 법문을 천지에다 대고 맹세를 하셨는데, 우리 후배 후손들이 그 법문을 가슴 깊이 명심을 하고 알뜰히 정진을 한다면은, 오조 스님을 비롯한 역대 조사와 삼세제불보살(三世諸佛菩薩)들도 다 흐뭇하게 생각하시고 우리가 도업(道業)을 성취할 때까지 정말 자비의 눈초리로 우리를 호념(護念)해 주실 것입니다.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이  하인작득쌍(何人作得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보연천사일(報緣遷謝日)에  염왕자귀항(閻王自歸降)이리라
나무~아미타불~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이여, 하인(何人)이 작득쌍(作得雙)이리요.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선객(禪客)들이, 어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견줄 수가 있겠느냐? 천상천하에 독보(獨步)다 그말이여.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인가? 권리를 추구하는 사람인가? 재산을 추구하는 사람인가? 색(色)을 추구하는 사람인가?
청춘을 버리고 인생으로서 태어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일대사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서 출가 수행하는 사람들이 아니냐 그말이여. 아무도 견줄 수가 없어. 유아독보(唯我獨步)거든.

보연천사일(報緣遷謝日)에, 모든 인연이 다해 가지고 이승을 하직할 때에,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가더라도 염라대왕이 자리에서 일어나가지고 합장 공경을 할 것이다.(閻王自歸降)

이건 조사 스님의 게송(偈頌)인데,(21분31초~40분34초)

 

 

 



(2)------------------

참선이라 하는 것이 1년, 2년, 3년을 내지 7년, 10년을 해도 올바르게만 해 나가면 알아지는 것이 없습니다. 알아질 것도 없고, 얻어질 것도 없고, 무엇이 보일 것도 없고, 해 갈수록 알 수 없을 뿐이거든.
그렇게 공부를 지어나가야 정말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하면은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하고 의단을 타파해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길이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스님께서 읊으신 공안에,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요,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뚫어야 하고, 묘오(妙悟)는 요궁심로절(要窮心路絶)이라 하셨습니다. 진짜 묘한 깨달음은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한다 그랬습니다.

알 수 없는 의단으로 정말...  그 의심이라 하는 것이 눈 미간(眉間)을 찌푸리면서 용을 쓰면서 의심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초심자(初心者)는 간절히 의심을 하라 하니까 용을 쓰면서 ‘이뭣고?’ ‘이뭣고?’하다가 상기(上氣)가 되어 가지고 골치가 아픈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세를 단정히 하면서도 어깨의 힘을 다 빼고, 목의 힘도 다 빼고, 머리끝에 머리카락 하나를 들어 가지고 대롱대롱 하니 이렇게 매달려 있는 것과 같은.. 거기에다 무슨 힘을 어디다 주겠습니까? 그러한 마음..
이건 좀 정진을 많이 해보면 머리카락 하나를 들고—가부좌(跏趺坐)를 하는 그 수행인이 머리카락 하나에 의해서 이렇게 대롱대롱하니 매달린 그 경지를 스스로 이해가 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세인 것입니다. 단정하면서도 모든 힘을 다 뺐어.

그리고서 눈은 감지 말고, 그렇다고 해서 뚝! 부릅뜨지도 말고 평상개안(平常開眼)이여. 그래 가지고 방바닥 보기로 한다면 약 3미터 지점, 3미터 내지 2미터 지점이 요렇게 보일 정도로 눈을 뜨되, 그 지점을 응시(凝視)를 하는 것이 아니여.
눈을 뜨고 볼려고 하면 그 자리가 보일 정도로 자세를 잡으라 하는 것이지, 그 자리에다가 무슨 콩이나 뭐 갖다 놓고 그놈을 들여다보고 있고 그런 짓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서 호흡을 하되, 단전호흡을 하라 하니까 그것을 무리하게 잘 몰라가지고 억지로 하다가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안되고, 오히려 더 상기가 오고, 이런 호소를 하는 분이 가끔 있는데, 단전호흡이라고 해서 무리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하는 호흡으로 다맛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시고 내쉴 때 코로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 배꼽 밑에 아랫배가 약간 볼록하게 하는 그런 기분을 느끼면서 숨을 들어마시고, 또 내쉴 때는 그 아랫배가 약간 차츰차츰차츰 홀쪽한 것을 느끼면서 호흡을 한 것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들어마실 때 너무 가뜩 들어마셔 가지고 억지로 참고 그런 짓 하는 거 아니에요. 칠부나 팔부 정도 조용하니 들어마셨다가 잠시 멎구었다가 또 조용하게 내쉬는데 지극히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여.
조금도 무리가 가는 것이 아니고, 몇 번 하고 나서 ‘허후∼’ 숨을 몰아쉬어야만 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 호흡을 하기 전에 준비호흡이라고 하는 게 있는데, 숨을 급히 빨리 그리고 가뜩 들어마셔. 코로 들어마시되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셔서 참을 수 없을 만큼 참았다가, 내쉴 때는 입으로 ‘후∼’하고 내쉬는데 완전히 가슴을 홀쭉히 하면서 다 내뿜는 거여.
다 내뿜었으면 한번 더 가뜩 들어마셨다가 참을 수 없을 만큼 참았다가 ‘후∼’, 한번 더, 3번을 그렇게 해서 가슴 속에 있는 모든 묵은 공기를 다 뱉어버리는 것이여. 그것이 준비호흡 할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여.

그렇게 하면 기분도 상쾌하고 또 몸의 각 기관에 자극을 주어서 정신이 새로워지는 것이고, 그 준비호흡은 3번 처음에 시작할 때 그렇게 하는 거고.

정식으로 할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여. 자연스럽게 조용하게 코로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코로 내쉬는데 조금도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들어마시는데 약 3초, 머무르는데 3초, 내쉬는데 약 3, 4초 이렇게 해서 그러면 합해서 한 10초 가량 걸리는데,
그런 정도 호흡은 누구든지 할 수가 있고 조금도 무리가 안 가니까 그런 식으로 해서 한 달 두 달 하다 보면은 차츰차츰 호흡이 안정이 되면 한 15초 또 더 잘되면 20초, 이렇게 늘려서 한 30초에 한번씩.. 그것도 무리가 없이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지, 처음부터서 그렇게 해서 무리하게 하는 것은 부작용이 일어나서 못쓴다 이 말씀입니다.

그렇게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이것은 지극히 초학자를 위해서 지금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 이미 단전호흡도 잘되고 화두도 잘되는 분은 해당 사항이 아닙니다.

이렇게 해서 차츰차츰 정진을 길들여 가면 상기병이다 소화불량이다 그런 병이 있는 사람도 낫게 되는 거고, 건강도 좋아지고 정진도 잘 될 것입니다. 

오늘 백일기도 입재도 되고 하니 이 백일기도에 드신 분은 가정에서 정진을 하시되, 가정에서도 항상 조실스님의 녹음법문을 들으면서 가정에서도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고, 그러면 가정이 바로 선방이 될 것입니다.

요새 세상이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복잡하고 어렵지만은 불법을 믿는 사람은 오히려 이럴 때에 더욱 발심을 해서 잘 모든 것을 이겨 나가시면 또 세상이 다시 또 살기 좋게 될 것입니다.(40분35초~49분18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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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五祖) 홍인대사(弘忍大師) ; ‘역대 스님 약력’ 참조.
*최상승론(最上乘論) ; 1권. 5조 홍인대사(弘忍大師)의 저술.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불성(佛性)을 확인하여 잘 지키는 수심(守心)을 강조한 저술.
돈황 출토본 중에 「기주인화상 도범취성 오해탈종 수심요론(蘄州忍和尙導凡趣聖悟解脫宗修心要論)」이 이것과 같은 것으로, 제목은 다르나 '기주 인화상'이 곧 홍인대사이며, 「수심요론」이 우리나라에서 「최상승론」이라는 제목으로 전해왔음을 알 수 있다.
*요연(了然 밝을 요/그럴•명백할 연) ; ①분명(分明)한 모양(模樣) ②명백(明白)한 모양(模樣).
*폐(弊 부술 폐) ; ①어떤 일이나 행동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현상이나 해로운 요소. ②남에게 끼치는 신세나 괴로움.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육조혜능(六祖慧能) 선사 ; ‘역대 스님 약력’ 참조.
*타성일편(打成一片) : 좌선할 때 자타(自他)의 대립이 끊어져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경계.
*당래(當來) ;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난다는 다음 세상을 말한다.
*시봉(侍奉 모실 시/받들 봉) ; ①제자가 스승을 받들어 섬기는 것. 지위가 높은 스님을 가까이 모시고 시중드는 일. ②부모를 모셔 받듦. ③제자.
*차서(次序) ; 둘 이상의 것을 각각 선후(先後)로 구분하여 하나씩 벌여 나가는 순서. 또는 그 순서에서 차지하는 위치.
*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울력'과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분(分) : 분수(分數-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나무지기 ; ‘나머지’의 사투리.
*청규(淸規) ; ①선종(禪宗)의 사원에서, 여러 승려들이 늘 지켜야 할 규칙. ②참되고 바른 규칙이나 법도.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뭣고 화두,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 무자(無字) 화두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계합(契合) ; (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눈초리 ; ①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눈에 나타나는 표정. ②눈꼬리(귀 쪽으로 가늘게 좁혀진 눈의 가장자리).
*호념(護念) ; 불보살이 선행을 닦는 중생을 늘 잊지 않고 보살펴 주는 일.
*(게송) ‘활구참선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대사) (2권) '贈熙長老' 참고.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독보(獨步) ; 남이 감히 따를 수 없을 만큼 혼자 앞서 감. 또는 그런 사람.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2)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때.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일•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 ; [주로 ‘용을 쓰다’의 구성으로 쓰여]단번에 내는 센 힘.
*초심(初心) ; ① 처음으로 깨달음을 구하려고 한 마음. 처음으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고 한 마음. ② 처음으로 수행하는 사람. 수행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 ③ 처음의 결심.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이 사용된다.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평상개안(平常開眼) ; 보통 때 처럼 눈을 뜸.
*응시(凝視 엉길 응/보일 시) ; ①시선을 한곳으로 모아 집중해서 뚫어지게 바라봄. ②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깊이 살핌.

Posted by 닥공닥정
대중 생활2021. 8. 25. 13:18

§((151)) 법회 때, 그리고 법당에서의 예절.

**송담스님(No.151)—1981년 9월 첫째일요법회(81.09.06) (용151) (대중생활)

 

 

약 7분.

 


원래 이 일요법회는 설법하는 시간보다도 다 같이 죽비(竹篦)를 치고 참선을 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그렇게 생각을 해 오고 있습니다.

목탁을 치고 입선(入禪)을 해.
(목탁)


정진(精進).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이 법당을 나가셔서 댁으로 돌아가시는 걸음걸음 사이에도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돌아가시고, 댁에 가셔서도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생활을 해 주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이다음 법회 때에 언제라도 여기에 떠억 법당에 들어오시면 부처님께 참배를 하시고, 그리고서 자리에 앞에부터 차례차례 적당한 자리에 따악 앉으시면, 앉자마자 따악 반가부좌(半跏趺坐) 따악 하고 몸을 단정히 하고서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을 하십시요. 다음 그 바로 법회가 시작할 그 시간까지.

들어오신 대로 차곡차곡 차곡차곡 그렇게 해서 열 분, 스무 분, 백 분, 이백 분, 오백 명, 칠백 명 이렇게 들어오셨더라도 한 분도 안 계신 것처럼 그렇게 조용하게 정진을 하시는 가운데에 법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리시도록.
여기는 극장도 아니고, 무슨 다른 그런 연회석상도 아니고, 이 법당 안에 들어오셨으면 오직 그 경건한 마음으로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떠억 들고서 5분이면 5분, 10분이면 10분, 30분이면 30분, 일찍 오신 분은 한 시간이라도 타악 정진을 하시면 그 시간이 얼마나 참 귀중한 시간이 되겠습니까.

옆에 분하고 주거니 받거니 수근수근수근 잡담을 하면 여기에 오신 본의(本意)도 아니고 또 그 한 분, 여그서 떠들면 저그서 떠들고 해 가지고 이 법당 안이 도대체 너무 복잡하고 시끄러워서, 여기에 오신 분 가운데에는 또 그렇게 제가 말씀을 안 드려도 또 그렇게 정진하시고 있는 분도 계시는데, 그 정진하시는 분에게 방해도 되는 것이고 그러니까.
자기도 열심히 공부하면 남도 공부 잘할 수 있도록 해 드려야 되는 것인데, 자기도 공부를 아니하면서 남의 공부하는 것을 방해를 치는 것은 수행인의 자세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이야기지만, 용화사 선원은 처음 오신 분도 들어오자마자 탁! 스스로 엄숙해지고 경건해지도록 그러한 이 법보선원이 되도록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부처님께 참배(參拜)를 할 때 혹 향을 가지고 오시던지 초를 가지고 오셨을 때, 불이 안 켜졌으면 가지고 오신 촛불을 켜시면 좋고, 또 향불이 안 타고 있으면 또 당신이 가지고 오신 향을 따악 사롸서 꽂고 절을 하시면 좋지만, 이미 촛불이 켜져 있거나 향이 꽂아 있으면 자기가 가지고 오신 것은 탁자 위에 가지론히 딱 놔놓고 그리고서 경건하게 예배만 올리면 되는 것입니다.
이미 촛불이 켜져 있는데, 그놈을 탁! 내려서 끄고 당신이 가져온 것을 꽂고, 향이 이미 꽂아 있는데 거기다 또 두 개 세 개 네 개를 잔뜩 꽂아 놓으면 그 연기가 너무 법당 안에 자욱해 가지고 목이 아프고 또 법당이 또 시커멓게 끄실리게 되면 그것도 안 좋은 것이고.

이 법당에 들어서면 은은한 향기가 감돌아야지, 너무 향을 많이 꽂아 가지고 공장 굴뚝같이 되어 가지고서는 존엄성도 없어지는 것이고 위생상으로도 안 좋은 것이고.
하도 부처님이 연기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다고 그래서 유리로 문을 해 닫았습니다. 부처님은 문을 해 닫아 드려서 아무 말씀이 없지만, 살아 있는 사람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향을 피는 거, 촛불을 켜는 것을 꼭 그렇게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절대로 향을 많이 꽂는다고 해서 부처님이 복을 많이 주시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갖다 놓으시기만 해도 부처님은 다 아시니까 그렇게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여러 말을 했습니다마는 제가 정말 여러분께 하고자 한 말을 못다 했습니다.(59분59초~66분14초) (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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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대중 생활2021. 7. 30. 11:01

§((301)) 평등심(平等心)을 가져야 도에 들어갈 수가 있다 / 내가 좋은 수행인이 되어야 자연히 좋은 도반이 모이게 되는 것 / 부처님의 「좋은 도반(道伴)」에 대한 법문, "좋은 도반을 만나서 같이 도를 닦은 것은 도(道) 전부를 이룬 것이나 다름이 없느니라" / 발심하고 분심 내서 공부를 한다면, 도반 선지식(善知識)은 도처에 계시는 것.

**송담스님(No.301)—1986년(병인년) 하안거 결제 (용301) (대중생활)

 

 

약 10분.

 


앞으로 석 달 동안을 인제 한솥밥을 먹고, 이 한 도량(道場)에서 수행을 하시게 되는데, 모다 팔도에서 성(姓)도 다르고 피도 다르고 한, 그리고 오늘날까지 살아오는 여러 가지 생활 습관도 다르고, 그런 이 그렇게 다른 그러한 도반(道伴)들이 한 방에서 같이 생활을 하시게 되는데,
내 뱃속으로 난 자식,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간도 성격이 각각 다르고, 취미가 다르고, 습관이 다른데, 하물며 이렇게 성이 다르고 혈통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모였으니 무엇이 그렇게 다 마음이 잘 맞겠습니까?
그러나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몸과 목숨을 바쳐서 수행을 해 나가는 일불제자(一佛弟子)여. 그러기 때문에 모든 그러한 다른 것을 다 이해할 수가 있고, 그런 것을 다 초월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같다고 해서 그릇된 생각을 낸 것이 탐심(貪心)이요, 내 마음에 안 맞는 일을 당해 가지고 잘못된 생각을 일으키면 그것이 진심(瞋心)이요,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줄 모르는 생각을 어리석은 마음이라 했습니다마는,
한 방에서 거처(居處)할 때, 자기와 좀 뭣이 맞으면 그 사람하고 지나치게 가까워서 남 보기에 눈꼴 사납게 그렇게 지내고, 조끔 자기 마음에 안 맞으면 그 사람을 허물을 잡아서 이리저리 아주 눈을 흘기면서 '그 사람을 어떻게 하면 몰아낼까?' 이러한 아름답지 못한 생각을 가지고 석 달 동안을 지내게 된다면, 그것은 수행인(修行人)으로서 대단히 부끄러운 마음가짐이고,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석 달 아니라 삼십 년을 지낸들 도에 들어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도(道)는 어쨌든지 평등심(平等心)을 가져야 도에 들어갈 수가 있다 했습니다.
좋은 사람에게도 좋게 하고, 내 마음에 안 맞은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도 좋게 하고, 그래서 모두 평등한 마음, 미워하고 이뻐하고 하는 그러한 차별심(差別心)을 갖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마음으로 서로 도반을 상대하면서 그렇게 해야 합심(合心)이 되고, 화합이 되고 자연히 한 대중이 견성성불한—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이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는, 그래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그래서 도업(道業)을 성취할 그러한 도반이 되고 그러한 도량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도반은—내가 좋은 도반이, 좋은 수행인이 되어야 자연히 좋은 도반이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신심과 분심과 의심이 투철하지 못하고서 그리고서 맨 '도반, 좋은 도반이 없다. 좋은 도반을 만날 수가 없다' 좋은 도반 만나지 못한 것을 그렇게 한탄을 해 봤자 미륵불(彌勒佛)이 하생할 때까지 지내도 좋은 도반을 만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자기가 신심(信心)이 철저하고, 자기가 분심(憤心)이 철저하고, 자기가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여법(如法)하게 수행을 한다면 간 곳마다 좋은 도반이 전후좌우로 모다 모이게 될 것입니다.

좋은 도반을 만나야 공부는 자연히 되어 가는 것입니다.
내가 어쩌다가 습기(習氣)가 동(動)해서 타락을 하거나, 해태굴(懈怠窟)에 빠질 뻔, 그러한 위기가 닥쳐온다 하더라도, 좋은 도반이 앞에 뒤에 옆에 많이 있으면 그 도반이 나를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대번에 충고해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끌고가지 나를 버리고 가겠습니까?

언젠가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아란존자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 좋은 도반을 만나서 공부한 것은 도(道) 절반은 이룬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그것을 여쭈어서 그것을 확실히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부처님께 가서 여쭈어보니, "니 생각이 잘못이다"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래 아란존자는 깜짝 놀랬습니다. '좋은 도반을 얻어서 같이 수행한 것은 절반은 도를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 과했구나' 그리 생각했는데, 부처님께서는 "너의 생각이 잘못이다. 좋은 도반을 얻은 것은, 좋은 도반을 만나서 같이 도를 닦은 것은, 절반 도를 이룬 것이 아니라 도(道) 전부(全部)를 이룬 것이나 다름이 없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시고서 대중을 운집(雲集)을 해서 그 「좋은 도반(道伴)」에 대한 법문(法門)을 하시면서, "너희들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나와 같은 도반을 가졌으니 너희들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이러한 법문을 하셨습니다.

좋은 도반은 자기한테 있습니다. 좋은 도반은 어디에도 있는 것이며, 언제라도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발심(發心)을 못하고, 자기가 여법(如法)하게 수행을 못하기 때문에 자기 눈에 도반이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발심하고 분심 내서 공부를 한다면, 도반은 도처(到處)에 있는 것이고 선지식(善知識)도 도처에 계시는 것입니다.

서리 치는 달밤에 우는 잔나비 소리나, 봄 동산에 피는 울긋불긋한 꽃이 전부 다 부처님에 설법(說法)이요 보살화현(菩薩化現)이며, 온 사바세계에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성주괴공(成住壞空)에 이 무상(無常)한 모든 기멸(起滅) 현상이 전부가 다 나에 도반이요, 나에 선지식이요, 나에 살아계신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병인년 이 석 달을 정말 알뜰하게 정진을 하셔서 다른 도반들을 위해서 내 자신이 좋은 도반이 되어 주고,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말 내 마음을 비우고서 철저하게 정진(精進)을 하고 대중을 위해서 항상 이 봉사하는 마음, 보시하는 마음, 불공(佛供) 드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소임을 다하고, 항상 부처님을 모시고 시봉(侍奉)하는 마음으로 정진을 해 나간다면, 정말 금년 이 병인년 여름 안거야말로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요달(了達)할 수 있는 그러한 뜻깊은 한철이 되어 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24분10초~33분5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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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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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대중 생활2021. 7. 16. 06:31

§((466)) 시집을 안 가고 공부하러 온 보살에게 자꾸 '시집가라'고 말하지 말라 / 결혼은 '처옥자쇄(妻獄子鎖)' 라고 ‘마누라는 감옥이고, 자식을 나면은 그 감옥의 자물쇠통이다’ / 자기가 지어 논 빚은 갚으면서 참선을 해야.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하는 그런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그런 경계는 스스로 그것을 버려 버리고,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마음으로 여법하게 자기의 본참공안을 향해서 정진을 해 나가야 한다.
병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자기가 집착하는 데에서 일어나는 것, 스스로 집착 안 하면 병이 아니여. 없었던 걸로 해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이뭣고?’만 해 가야.

**송담스님(No.466)—1992년 동안거 중 보살선방에서 하신 법문(92.02.02) (용466) (대중생활)

 

 

약 14분.

 


그리고 한 가지 가끔 내가 듣는 소린데, 본인은 아직 시집을 안 가고 나이가 삼십을 넘고 그래도 그냥 처녀로 부처님 불법을 믿고 이렇게 정진하면서 이렇게 살아가는데, 본인이 꼭 안 갈라 한 것은 아닐런지도 모르고 또 좋은 인연이 있으면 갈라고 하는 생각도 있을 수도 있고, 또 그냥 이대로 보살로서 정진하다가 시절이 돌아오면은 출가해서 스님이 될려고 하는 생각도 있는 분도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 생각으로 여기 선방에 와서 방부를 들이고 정진을 하고 그러는데, 자꾸 좌우에서 “시집을 안 가고 죽으면 몽달귀신이 되니까 시집을 가라”고 자꾸 권고를 하신 분이 있다 이것입니다.

시집을 가라고 권고한 것은 절대로 나쁜 마음으로 그러신 것은 아니고, 그래도 이 세상에 여자로 태어났으면 시집을 가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것이 뭐 당연한 것이고, '시집가서 남편과 해로하고 자녀도 낳고 그래야 나중에 늙으면 외롭지 않고 그럴 것이다' 그러한 생각에서, 그것도 때가 있으니까 좋은 인연 있을 때 가라고 권고한 것은 좋은 마음에서 하신 것이지 절대로 뭐 해코자해서 그러신 것은 아닐 테지마는.

억지로 팔자에 시집 갈 팔자를 타고났는데 안 가는 것도 아니고, 갈라고 하는 생각은 있어도 적당한 인연을 만나지 못해서 사주팔자가 되었건, 전생에 지은 인연이 되었건 간에 그런 인연이 닿지 않아서 안 가게 되고, 또 불법에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불자(佛子)로서 참선을 하고, 별로 그렇게 큰 고통이나 불편이 없이 이렇게 살아가는 데 자꾸 몽달귀신으로 협박을 하면서 자꾸 가라고 그러실 것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노처녀로 있다가 계를 받고 스님이 되어서 도를 잘 닦은다면은 그것도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이 되고.

여러분들 다 시집가서 결혼해 가지고 이렇게 50년, 60년, 70년 이렇게 살아보셔서 ‘정말 나는 결혼을 해서 참 행복했다’고 그렇게 생각하신 분도 이 가운데는 계시겠지만, 겪어보시면 결혼 생활이라 하는 것이 아마 출가해서 도 닦은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으리라고 나는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 스님이 되라’고 내가 한 말은 아니고, 본인이 결혼 안 하고 이렇게 출가할 수 있는 사람을 몽달귀신 얘기를 해 갖고 공포심을 느껴서 가기 싫은 시집을 억지로 가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공부하러 오신 이 마당에는 공부에 관한 공부 생각만 해야지 다른 생각은 안 하신 것이 좋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또 공부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좋고 그러니까, 절대로 그 자꾸 '시집가라, 시집가라'—막 좀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 좀 할라고 하면은—자꾸 그 '시집가라'고 그래 쌓으면 마음이 헷갈리거든. '내가 시집을 가야 옳은가? 안 가야 옳은가?' 그 소리가 듣기 싫으니까 한철 나왔다가 안 나와 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 말이여.

혹 집안에 홀아비가 있어서 '참 저 여자하고 짝을 맞춰줬으면 참 좋겠다' 싶어서 자꾸 그러실 수도 있지 않은가 싶은데, 결혼은 참 '처옥자쇄(妻獄子鎖)' 라고, 인자 장가를 가면은 ‘마누라는 감옥이고, 자식을 나면은 그 감옥의 자물쇠통이다’ 그래서 '처옥자쇄(妻獄子鎖)'라 그러는데.
참, 결혼 생활은 여러분도 다 겪어보셨지마는 어쩔 수 없이 다 결혼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 하긴 했지만 결혼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습니까. 육체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
제가 보기에는 솔직히 말해서 대단히 힘든,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생각이 되고, 공부해 나가는 데에는 대보살(大菩薩)이 아니고서는 많은 지장이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지마는 자기가 지어서 받는 업(業)으로 얽혀진 것이니, 전생에 지은 빚으로 만난 것이니 그래도 어쩔 수가 없죠.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 해야 하고. 어머니로서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다 하면서 참선을 해야 하니까 굉장히 힘이 드시겠죠. 그걸 피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지어 논 빚이기 때문에 갚아야 되는 거고.
그놈을 갚으면서도 참선을 해야지, 참선 안 하고 그냥 거기에 빠지면은 그 업(業)으로 인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그런 속에서도 열심히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시고, 정진하면서도 엄마 노릇도 해야 하고, 아내 노릇도 해야 하고, 할머니 노릇도 해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여러 보살님네들은 참 너무너무 갸륵하고 훌륭하고, 참 그렇다고 생각이 됩니다.


끝으로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닌—공부해 나가다가 조금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나 맑음이나 또는 시원함—그런 소견(所見)이나 경계(境界) 그런 거, 구경의 깨달음이 아닌 중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런 경계에 ‘나도 한소식했다. 나도 깨달았다. 이것이 깨달음이 아닌가’ 하고 거기에 머물러 버리면 그 사람은 거기서 끝나는 거죠. 큰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예를 들어서 저 지방에서 서울을 향해 가는데, 대전이나 수원이나—시골 산중에 있던 사람이 거기에 나오면은 굉장하거든, 차도 많고 높은 건물도 많고 하니까 '아 여기가 서울이구나!' 하고 주저앉은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을 향해서 가는 사람은 중간에 좀 볼만한 데가 도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서울로 착각한 거나 마찬가지여.
서울로 가서 중앙청을 갈라면은 중앙청까지 딱 가서 참 대통령을 만나든지 장관을 만나든지 그래야지, 저 중간에 가 가지고 조금 높은 건물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갖다가 서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구경(究竟)의 깨달음이 아니면,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경지가 아니면 중간에 체중현(體中玄) 도리, 중간에 나타나는 보이는 그런 경계는 탁! 스스로 부정을 해 버리고 부인을 해 버리고 거기에 빠져서는 안 돼.
탁! 치워 버리고 언제나 초학자(初學者)와 같은 그런 심경으로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으로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만을 향해서 한결같이 정진을 다그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 보름 남았는데, 또 이틀 후에 정월 초하루가 돌아와서 또 차례(茶禮) 행사도 있고 어수선하겠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항상 마음을 가다듬고 화두를 놓치지 알고 정진하시도록 당부를 드리고, 남은 보름 동안을 정말 알뜰하게 잘 정진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기록되지 아니하고 또 제가 말씀을 안 드린 그런 내용에 어떤 당신 나름대로 느낀 바도 있을 것이고, 물어보고자 한 그런 점을 속으로 가지고 계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낱낱이 여기서 다 말씀을 드릴 수도 없고.

어떠한 경계, 어떠한 느낌, 어떠한 소견이 났다 하더라도 그것이 구경각(究竟覺)이 아닌 확철대오(廓徹大悟)한 조사(祖師)의 경지가 아니면 그냥 스스로 딱! 치워 버리면 그만이여.
없었던 걸로 탁! 놔 버리고, 깨끗한 초학자의 마음으로 화두를 단속해 나가면—조금 어디 아프다고 해서 낱낱이 병원에 쫓아다니면 별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어지간한 것은 자기가 스스로 낫어야 하거든.

마을에서는 병원에 자주 간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런데, 그 병원이라 한 것은 물론 호미로 막아야 할 때 병원에 안 갔다가 가래로 막게 되고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마는,
이 공부는 스스로 집착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딱! 놔 버리고 화두만 들면 낱낱이 병원에 안 가도 돼어. 그것이 기다(그렇다)고 생각하고 집착하면 거기서부터 병이 생기는 것이니까, 그 요점만을 내가 말씀을 드리면 요점만을 잊지 않고 고대로 해 나가시면 어떠한 병도 스스로 고칠 수가 있는 것이여.

병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자기가 집착하는 데에서 일어나는 것이여. 심지어는 확철대오해 가지고도 ‘나는 깨달았다’ 하는 생각을 가져도 벌써 그것이 잘못인데, 깨닫지도 못한 것을 깨달은 것처럼 착각을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거든. 그러니까 그걸 스스로 집착 안 하면 병이 아니여.

뭐 사람 몸뚱이가 환히 보이거나, 내일이나 모레가 어떻게 되고, 사람을 척 보면 전생에 무엇이다 하는 것도 안다 하더라도, 집착하지 않고 그런 소견에 떨어지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면 아무 상관이 없어, 병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데.
그것을 속으로 딱 간직하고, 그걸 자꾸 써먹고, 남에게 자랑하고, 자기가 무슨 도통이나 한 것처럼 착각을 하고, 그런 데에서 병이 되고 결국은 사도(邪道)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니까, 안 떨어지려면 집착하지 않고 없었던 걸로 해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이뭣고?’만 해 가면 그건 괜찮다 그 말이죠.

되었습니다.(26분18초~40분15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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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대중 생활2021. 5. 8. 07:51

§((252)) 하루 결제, 하루 정진 / 수행도 할 시기가 있다 / 기름 참선 / 선방에서 잡담 금지 / 자기도 공부를 아니하면서 남까지 공부를 못하게 하면 그 죄는 참회(懺悔)할 길이 없다 /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그것에 하심(下心)을 하라 / (게송)한산정상월륜고~.

수행(修行)도 발심(發心)을 해서 공부할 때에, 할 그 시기(時機)가 있는 것입니다. 그 시기에 그때에 채찍을 가해서 좋은 도반(道伴)들과 선지식(善知識)의 바른 지도를 받으면서 그 시기에 참 알차게 공부를 해놔야 하는 것이지, 그 시기를 놓쳐 버리면 기름 참선이 되어서 나중에는 늙발에 가서 좀 할라고 해봤자 별 볼 일이 없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252)—1984(갑자)년 동안거 결제 (84.12.07) (용252) (대중생활)

 

 

(1) 약 16분.

 

(2) 약 9분.

 


(1)------------------

비단 중국에 고봉 선사 뿐만이 아니라 역대조사(歷代祖師)들이 다 대도(大道)를 성취하는 데에는 그만한 목숨을 걸고 용맹정진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여러분들도 3년을 기한을 정해 놓고 정진을 열심히 하신 것은 좋으나, 3년 지내고도 깨치지 못하면 꺼떡하면 자살 같은 거 하고 그러한 것을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3년도 길고 하루씩, 항시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3년도 길고 석 달도 길어. 하루씩을 작정을 해라' 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를 딱! 작정을 하고 그날 하루를 짬지게 단속(團束)을 하고 정진을 해서 그날 하루를 딱 결산을 하고. 그 다음날에는 또 하루를 작정을 하고 좀 더 알차게 정진을 하고.
이렇게 해서 하루씩 하루씩을 작정을 해서 여법(如法)하게 해 나가면 열흘이 하루 같고, 한 달이 하루 같고 석 달이 하루처럼 그렇게 단속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중생은 근기(根機)가 약해서 석 달이나 3년 길게 잡아 놓면, 하루 이틀은 괜찮지만 벌써 사흘째 가면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늘어지게 되고 열흘이 지내가면 더 늘어지거든. 또 정신을 차려도 또 며칠 안 가면 또 풀어지고 이러니까 하루씩을 단속을, 작정을 하고 하면 풀어질 수가 없거든.

농사를 지어 보면 곡식이라고 하는 것이 자랄 때가 있는 것입니다. 모자리를, 봄에 일찍이 모자리를 해서 그 모가 잘 자라면은 그것을 하지(夏至) 전에까지 다 심어야 하는데, 될 수 있으면 하루라도 일찍 심을수록에 수확이 더 늘어나고 좋은 것입니다. 아무리 늦어도 하지가 넘어버린 뒤에 심은 것은 농사가 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일찍 심어 가지고 한참 날씨가 뜨겁고 그럴 때에 그때 필요한 만큼 그 벼가 자라게 해 주어야 제대로 수확을 보는 것이지, 그 자라야 할 때에 날씨가 춥거나 너무 오랫동안 비가 많이 와서 햇볕을 보지 못하거나, 또는 너무 비가 오지 안 해서 가물어 가지고 바짝 말라서 논바닥이 갈라지고 해서 수분이 없어서 자라지를 못하거나, 또 비료가 부족해서 자라지 못하거나, 논을 세 번 이상 매 주어야 하는데 논을 매 주지 못해 가지고 잡초 속에 우거져 있거나, 이리해서 자라야 할 그 시기에 자랄 수 있도록 해 주지 아니하면 그 농사는 볼 것이 없습니다.

이 수행(修行)도 발심(發心)을 해서 공부할 때에, 할 그 시기(時機)가 있는 것입니다. 그 시기에 그때에 채찍을 가해서 좋은 도반(道伴)들과 선지식(善知識)의 바른 지도를 받으면서 그 시기에 참 알차게 공부를 해놔야 하는 것이지, 그 시기를 놓쳐 버리면 기름 참선이 되어서 나중에는 늙발에 가서 좀 할라고 해봤자 별 볼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孔子)님도 말씀하시기를 '삼십에 서지 아니하면 그 뒤에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별로 보잘 것이 없는 것이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정진(精進)도 할 시기(時機)가 있어서 그 시기에 발심하고 분심(憤心)이 났을 때 야무지게 단속을 해서 공안을 타파(打破)를 해서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견(徹見)을 해야지, 처음 발심했을 때 시원찮게 다잽이를 해 가지고 그럭저럭 지내버려 놓으면 10년 20년 그럭저럭 별로 소증처(所證處)가 없이 기름 참선이 되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혹 연세가 많으신 보살님네들은, '하이고! 시기가 있다는데 인자 늙어서 선방에 와 봤자 나도 별 볼 일이 없겠구나' 혹 그렇게 자포자기(自暴自棄)를 하셔서는 아니 됩니다.
젊어서 발심한 사람은 젊어서 발심한 대로 시기가 있고, 연령(年齡)이 많아 가지고 선방에 오셔서 발심한 분은 또 연령이 많은 그날부터서 첫 철이니까 한 살인 것입니다. 오십에 들어오시면 오십 세에 들어온 해가 법(法)의 나이로서는 그날이 한 살이고, 육십에 들어오셨으면 육십 살이 이 법의 나이로서는 한 살이여. 그것을 법랍(法臘)이라 그러는데.

한 살 되었으니 세속적(世俗的)인 나이 많은 것을 여기서 따질 것이 못됩니다. 그날 한 살로 생각하고 정말 나이 많은 것도 잊어버리고, 자기가 세속에서 잘사는 것도 잊어버리고, 지식이 많은 것도 잊어버리고, 지나간 세월에 절에 오래 댕겼다고 하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 발심한 그날부터 부처님 제자(弟子)로 새로 태어났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정말 알뜰히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이신 분은 대부분 오래 전부터서 참선법(參禪法)을 믿고 정진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고 또 일부는 참선이 좋단 말은 들었지만 실지로 선방에 와서는 한 번도 지내보시지 아니한 그런 분도 계실 줄 압니다.
이 참선은 꼭 선방에 들어와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 계시면서도, 가정생활하면서도 올바른 방법만 알아 가지고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할 수가 있는 것이고.
또 선방에다 방부(房付)를 들이고 공부를 하시되 시비(是非)나 하고, 사소한 일에 짜증이나 내고, 옆에 사람하고 말다툼이나 하고, 밤낮 앉어서 속 바글바글 썩고 앉어서 제대로 공부를 못하면 참선커녕은 오히려 업(業)만 더 짓게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금년 겨울에 한 팔십여 명이 방부를 들였습니다마는 그분들은 정말 스님네 못지않게, 출가한 스님네 못지않게 이 석 달 동안을 정말 여법(如法)하게 정진을 해주실 줄 생각을 합니다. 그 팔십여 명 가운데에는 칠십을 훨씬 넘은 그런 노보살님네들도 상당수 계신 줄 생각합니다.
칠십 이상 넘어 놓면 몸이 말을 듣지 아니하고, 그 혈압이 높거나 혈압이 너무 낮아서 어지럽기도 하고, 소화도 잘 안되고 귀도 잘 안 들리고 눈도 침침해서 모다 새벽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시고 모다 씻고, 법당(法堂)에 올라오시고 하는데 상당히 어려운 점이 있을 줄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 대중과 더불어 행동을 같이 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줄 생각하지만, 연세가 많다고 누가 나를 위해서 특별히 시봉(侍奉)을 해주는 사람도 없는 것이고, 어쨌든지 몸조심하면서 열심히 정진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사중(寺中) 형편이나, 대중의 규칙 생활상으로는 연세가 많으면은 행동을 같이 따라서 하기가 퍽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마는, 연세가 조끔 많다고 해서 방부를 안 받아 놓면 인자 돌아가실 날이 멀지 아니한데, 모처럼 이런 선방에 오셔서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이 청정한 도량(道場)에서 정진할라고 오신 그 갸륵한 신심이 훌륭해서 연세가 좀 많아도 대중과 같이 생활하는 데 크게 불편이 없기만 하면 연령 가지고는 너무 심하게 하지 않도록 그렇게 배려를 해서 방부를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젊은 사람들보다도 노인일수록에 더 정진을 알뜰히 하셔야 하고, 젊은 사람들이 잡담을 하더라도 '나도 그럭저럭 잡담하다 내가 이렇게 늙어버렸소. 그러니 한 살이라도 덜 먹어서 어쨌든지 공부 열심히 하라'고 이렇게 경책(警策)을 해 주신다면 젊은 분들도 거기서 참 발심(發心)을 해서 감동이 되어 가지고 정진을 잘할 줄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지금 선방이 옛날 지대방을 털어 가지고 큰 방을 만들고, 지대방은 저 뒤채에다가 해 놨으니, 이쪽 선방에서는 아무 잡담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쪽 지대방에서라도 잡담을 하라고 그렇게 방을 넓게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닙니다마는, 여기 공부하러 오셨지 잡담하러 오신 것이 아니거든. 그러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잡담은 해서는 아니 되려니와 특히 이쪽 선방에서는 전혀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방선 시간에, 입선(入禪) 시간에는 말할 것도 없고 방선(放禪) 시간이라도 이쪽 선방에서는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떠억 앉어서 방선 시간이라도 각기 앉어서 묵묵히 화두(話頭)를 들고 정진을 하셔야지, '방선했다' 해 가지고는 대고 벌떡벌떡 드러눕고, 옆에 사람하고 수군순수군수군 뭔 얘기를 하고 그래 쌓면, 정진할 마음을 가진 사람도 옆에서 떠들어 쌓는 통에 정진을, 공부를 못하거든.

자기도 공부를 아니하면서 남까지 공부를 못하게 하면 그 죄는 참회(懺悔)할 길이 없어.
남을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남 목숨을 해롭게 하는 것도 큰 죄가 되는데, 도 닦는 것을 못 닦게 방해한 죄는 사람을 죽이는 죄보다도 더 크다 말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을 죽여 봤자 육체밖에는 죽일 수가 없어서 다시 뭐 새로 몸 받아나면 그만이고, 자기도 살생(殺生)하는 죄의 죄값만 받으면 되지만, 도(道) 닦는 것을 방해를 쳐 가지고 도를 못 닦게 하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할 것을 못하게 한 죄가 되고, 그 사람 한 사람만 못하게 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도를 성취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면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할 그러한 대도인(大道人)이 되고 부처님이 될 텐데, 그것을 못하게 방해를 쳤으니 사람을 몇천만 명 죽인 죄보다도 더 크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어쨌든지 선방에서는 잡담을 하지 말고, 좀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그것을 잘 이해를 하시고 사소한 일에 말다툼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하지를 말고서, 어쨌든지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석 달 동안이 하루처럼 엄숙하고 경건하게 정진을 하시도록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19분38초~35분8초)




(2)------------------

이 선방에, 스님네 선방도 지대방을 털어서 큰 방을 만들고, 그 옆에 작은 방 두 개를 벽을 허물어서 또 합쳐서 거기를 지대방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진하는 스님네에게 좀 더—너무 방이 좁아 가지고 불편하기 때문에 지대방을 그렇게 했으니 정진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한 것이니까 그렇게 이해를 하시고.
어쨌든지 스님네도 열심히 정진을 하시되 '다른 선방에서는 이렇게 안 했는데 여기는 이렇게 한다', '다른 선방은 이러는데 여기는 이렇게 안 한다' 이렇게 해 가지고 꼭 다른 선방과 비교해서 다른 점을 자꾸 들춰내 가지고 불평을 하시지 말고, 이 용화사 법보선원은 법보선원 나름대로에 특성이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선원은 다른 선원 나름대로 그 선방 나름대로에 또 가풍(家風)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어느 선방이나 모든 것이 다 똑같으란 법은 없습니다. 이런 데는 이런 데를 만나면 그 법도(法度)에 따라서 순응하고 적응하면서 그 속에서 정진을 알뜰히 하고, 또 다른 선방에 가면 그 선방 나름대로 법도가 있으면 그 법도에 순응하면서 거기에 적응하면서 정진을 할 따름인 것입니다.
마치 저 남방(南方)에 더운 데에 가면 더운 데에 따라서 옷을 입고, 저 북방(北方)에 추운 데로 가면 추운 데에 따라서 거기에 알맞는 더운 옷을 입으면서 지내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음식도 또한 그렇고 모든 규칙과 법도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불평하기 보다는, 그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그것에 하심(下心)을 하고 자기의 마음을 비우고서 거기에 적응할 때에 이(理)와 사(事)가 한목 병진(竝進)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자세가 그렇게 되어야 어디를 가거나, 동서남북 어디를 가거나 온통 자기 정진에 큰 발전을 가져다 주는 것이고, 마음가짐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아니하면 여러 가지 나를 위해서 좋은 인연을 만나도 거기에서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나아가지를 못하고 오히려 거기서 자꾸 자기는 경계(境界)에 속고 얽매임을 받아 가지고 계속 정진에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한산정상월륜고(寒山頂上月輪孤)헌디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헌디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한산정상(寒山頂上)에 월륜고(月輪孤)한데, 한산 산꼭대기에 둥근달이 밝았는데,
조견청공일물무(照見晴空一物無)로구나. 저 맑은 하늘에 그 달이 밝게 비추어서 한 물건[一物]도 없구나. 구름 한 점 없는 달이 휘황창 밝으니 무엇이 있느냐.

가귀천연무가보(可貴天然無價寶)가, 귀하고 귀한 그 천연에 값없는 보배가,
매재오음익신구(埋在五陰溺身軀)로구나.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이 사대(四大)로 뭉쳐진 육신과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얽혀진 우리의 마음, 이 오음(五陰)의 몸뚱이 속에 그 무가(無價), 값없는 보배가 매장(埋藏)되어 있구나.

우리는 쓰고 쓰고 또 써도 한량(限量)이 없고, 퍼도 퍼도 퍼내도 바닥날 줄 모르는 영원히 다함이 없는 그러한 무가보(無價寶)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무가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잘 활용을 할 줄 모르고, 그것을 발견을 해서 그것을 자유자재로 쓰지를 못하고一그것이 바로 이 육신, 오음색신(五陰色身) 속에, 탐진치 삼독 속에 그놈을 묻어버린 채 끊임없이 업(業)만 짓고 그래 가지고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佛法)을 만나서—부처님 열반(涅槃)하신 지는 삼천년이 되었지마는, 삼천년 동안 역대조사를 통해서, 역대 선지식(善知識)을 통해서—내가 나를 찾는, 그 무가보(無價寶)를 개발을 해서 찾아내는 최상승법을 전해서,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우리는 그 법에 의지해서 공부할 수 있는 인연(因緣)을 가진 것입니다.
금년 삼동(三冬), '어쨌든지 금년 삼동이 첫 철이요, 마지막이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정진해 주시기를 다시 한 번 부탁을 드립니다.(35분13초~44분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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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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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대중 생활2021. 2. 20. 10:54

§((190)) (게송)막장한학해~ / 자기의 한 생각이 진실하고 간절(懇切)하여 참으로 분심(憤心)과 신심(信心)이 돈발한다면 어디에 혼침 · 산란심이 있겠느냐 / 혼자 하기보다는 좋은 도반들과 선지식을 의지해서 모여서 공부를 해야 / 좋은 도반을 얻는 것은 도를 다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

 

약 11분.


**송담스님(No.190)—1983년 입춘 법회(83.02.04) (용190) (대중생활)
(녹음 상태가 좋지 않사오니 양해를 바랍니다)

 

 


어떻게 해야 과연 우리는 올바르게 공부를 해 갈 것인가?

막장한학해(莫將閒學解)하야  매몰조사심(埋沒祖師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막장한학해(莫將閒學解)하야  매몰조사심(埋沒祖師心)이니라.
한가한 알음알이 배우는 것을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알음알이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그러한 공부를 가지고 조사(祖師)의 마음을 묻어 버리지를 말아라.

산승(山僧)이 오늘 입춘 법요식을 당해서 삼재(三災)를 면(免)할 수 있는 법... (녹음불량)... 산란과 혼침을 물리치는 법, 탐진치(貪瞋癡) 삼독심을 돌이켜서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닦음으로써 영원히 삼재를 멸하는 법, 이러한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이것이 모두 엄격하게 말하면, 한가(閑暇)한 학해(學解)를 가지고 조사심(祖師心)을 매몰(埋沒), 묻어 버리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산승이 말하는 것만이 조사심을 묻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산승의 말을 듣는 것도 또한 조사심을 매몰하는 데에 가담한 공범자(共犯者)를 면(免)틀 못할 것입니다.

왕왕(往往)이 자기의 한 생각이 진실하고 참으로 간절(懇切)하지 못한 것을 책망(責望)하지 아니하고, 간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간절하지 못한 것을 책망하지 아니하고—'혼침 산란이 장애가 되어서 도(道)를 닦을 수가 없다'고 걱정을 하는 사람은 마치 뭣과 같으냐 하면 컴컴한 방에 앉아서 '왜 모든 물상(物象)이 훤하게 보이지 않느냐?'고 한탄하는 사람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깜깜한 방에 앉어서 모든 것이, '글자나 모든 물건이 훤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노망했거나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어째서 한 생각 참으로 간절하지 못해 가지고서 (간절하지) 못한 것은 책망을 하지 아니하고 혼침 산란만을 책망을 할까 보냐 이 말이여.

참으로 분심(憤心)과 신심(信心)이 돈발(頓發)한다면 어디에 혼침이 있으며, 어디에 산란심이 있겠느냐 그말이여.


옛날에 도반(道伴)이 죽거나 하면 거기에서 무상(無常)을 느끼고 며칠간은 잠을 안 자고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며칠을 하고, 또 도반 가운데 누가 참선을 잘하거나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면 거기에서 분심(憤心)이 나 가지고 며칠 동안을 모다 온 대중이 잠을 안 자고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하는 그러한 일화도 있습니다.

우리는 근기(根機)가 약해 가지고 혹 어떠한 법문을 듣고서 분심이 좀 나고 어떠한 계기로 인해서 분심이 좀 나도 며칠이 안 가서 비그르르르 허니 용맹심이 가라앉아 버리고, 다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해태심(懈怠心)이 나고 방일(放逸)을 하게 된다 이말이여. 그래서 혼자 하기보다는 좋은 도반(道伴)들과 또 선지식(善知識)을 의지해서 우리가 모여서 공부를 하고 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여러 대중이 모여서 살면 그 가운데는 누군가 반드시 분심과 발심을 해서 가행정진을 하고 있는 분이 있기 때문에, 대중 가운데에 그런 분이 한두 사람만 있어도 여러 대중이 그 좋은 영향을 받아서 따라서 공부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파리란 놈은 아무리 그놈이 몸이 날래서 잘 나른다 하더라도 지가 하루에 천리(千里)를 달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千里馬) 꼬리에 딱! 들어붙어 갖고 있으면, 천리마 꼬리에 떨어지지 않도록 탁! 붙어만 있으면 그 파리도 천리를 하루에 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 힘으로, 지 날개로 날아가지 아니하고 천리마 꽁딩이에만 붙어 갖고 있어서 천리를 가는 것이 옳다면, 저는 공부는 아니하고 선지식이나 어느 도반 꽁딩이만 따라다니면 되겄구나' 이렇게 착각(錯覺)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부처님 말씀에, '좋은 도반을 얻는 것은 도를 다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라' 하셨습니다.
아란존자(阿難尊者)는 생각하기를, '좋은 도반(道伴)을 만나는 것은 도(道)에 절반은 이룬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리 생각을 하고서 그 생각이 옳은가 그른가를 부처님께 가서 판단을 받으러 여쭈어봤습니다.
부처님 말씀은, '니 생각이 틀렸다. 좋은 도반을 만나는 것은 도에 절반을 이룬 거와 같은 것이 아니라 도(道) 전부(全部)를 이룬 거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교정을 해 주신 것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좋은 도반, '선우(善友)'라 하는 말은 도반과 선지식(善知識) · 선각자(先覺者)를 다 포함해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스님네 뿐만이 아니라 여러 청신사(淸信士) 청신녀(淸信女) 여러분도 마찬가집니다. 같이 법문을 들으러 오고 또 자주 만나서 공부에 관한 의논(議論)이나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에 관해서 의논하는 동창생이나 이웃 도반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집니다.
바른 사상을 가지고 바르게 살아가는 그러한 친구를 만나는 것은 인생을 바로 살아가고 법을 바로 믿어 가는 데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32분36초~42분5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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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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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대중 생활2021. 1. 11. 08:21

§((479)) (게송)일파자동만파수~ / 선방(禪房) 대중이나, 외호(外護) 대중이 다 같이 청정(淸淨)한 마음으로 한마음이 되어야만, 그 회상(會上)이 바로 영산회상(靈山會上)이 된다. 이것이 바로 불사(佛事). 불사는 모두를 위한 불사, 일체 중생(衆生)을 위한 불사.


이 법당에 들어온, 또 이 법당에 들어오지 못한 밖에 있는 모든 영가(靈駕)들도 이 법문(法門)을 듣고서 이 불사에 동참을 한 그 공덕으로 다 이고득락(離苦得樂)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백종날, 이 해제(解制) 법회는 다른 법회보다도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또 비명액사한 모든 영가(靈駕)들을 위해서 특별히 마련한 그러한 법회인 것입니다.


**송담스님(No.479)—1992년 하안거 해제(92.08.13) (용479)



약 15분.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허고  사의순환기요기(似蟻循環豈了期)리오

나무~아미타불~

금일여군도할단(今日與君都割斷)하고  출신방호장부아(出身方號丈夫兒)니라

나무~아미타불~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여. 한 물결이 움직이자마자 일만 물결이 따라서 일어나. 고요한 호수에 돌맹이나 낚싯대를 한번 던져 봐라 그 말이여. 그 찰나에 수천수만의 물결이 거기서 끝없이 일어나더라.

우리가 '한 생각' 딱! 돌이키면 될 일을, 한 생각을 돌이키지 못하고 탐진치 삼독으로 뻗어나갈 때에는 온 집안을 흔들어 놓고 온 세상을 꾸정커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의순환기요기(似蟻循環豈了期)리오. 그러한 그 한 생각을 돌이키지를 못하고 끝없이 되풀이를 하니, 마치 개미가 쳇바퀴를 돌듯이 돌고 돌고 또 돌고 해서 한량없이 도는데 언제 끝날 기약이 없더라.


금년에 이 법보선원(法寶禪院)에 선방 · 사무실 · 후원 · 보살선방 해서 이백 명 대중(大衆)이 이렇게 지내는데, 후원에서 행자들과 또 여러 보살님네들이 모다 참 그 더위 속에서 참 많은 애를 쓰셨는데, 그러한 속에서도 서로서로 말을 조심(操心)하고 행동을 조심(操心)하고, 그 가운데에 일을 잘한 사람도 있고 또 서투른 사람도 있고 그래서, 그 아침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석 달 동안을 그렇게 애를 쓰는 가운데에 참 많은 애를 썼지만, 서로서로 충고하고 서로서로 잘 아는 사람은 잘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가르켜주고 이렇게 해서 화합(和合)한 가운데 일을 잘 추려 나갔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패당(牌黨)을 지어서, '니가 잘한다, 내가 잘한다' '내 시킨 대로 해라' 자기의 주장을 앞세우고 상대방을 짓누르고, 그렇게 했다면 어떻게 이 석 달 동안에 무장무애하게 이렇게 해제를 맞이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만에 하나라도 자기의 패당(牌黨)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직접 간접으로 압박을 주고 피해를 주는 그러한 사람이 있었다면, 한 쪽으로는 공덕(功德)을 쌓고 또 한 쪽으로는 공덕을 소멸(消滅)하는 짓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은 공덕(功德)은 좁쌀만큼 짓고 나쁜 업(業)은 산만큼 지어서 그 지은 공덕과 악한 업을 비교하면 비교가 안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말이여.


와서 일을 도운답시고 같이 일하는 대중에 직접 간접으로 피해를 주어서 모처럼 신심(信心)으로 와서 일하는 사람을 그렇게 흔들어 놓고 압박을 주고, 다시 와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도록 한다면 그 한 사람의 행동이, 어떻게 해서 그 사람의 행동을 무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백 명 식구를 석 달 동안 이렇게 외호(外護)를 하고 한다고 하는 것은 한 사람 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다 봉사하는 보살도(菩薩道)를 행(行)하는 그런 원력(願力)을 가진 신심이 아니고서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용화사 후원에서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게 아니라, 어느 선방 어느 후원이라도, 후원에서 그 겨울에는 손이 꽁꽁 얼고 발이 꽁꽁 얼고, 여름에는 아무리 씻고 옷을 갈아입어도 금방 흠뿍 젖고 몸에는 땀띠가 돋고,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말없이 원주(院主) · 별좌(別座) · 공양주(供養主) · 채공(菜供), 그밖에 여러 후원 대중들의 그런 수고가 아니고서는 그 한 철 대중이 정진을 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佛法)이 있는 동안 선방(禪房)이 안 없어질 것이고, 선방이 있는 동안에는 어느 선방이나 후원에서 애쓰는 보살화현(菩薩化現)들이 없이는 선방이 잘 운영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원에서 소임(所任)을 보는 원주 스님이나 도감, 별좌나 공양주나 채공, 또 그걸 돕는 여러 자원봉사(自願奉仕)하는 신남신녀(信男信女)들도 그런 긍지를 가지고 신심으로써 잘 함으로써 한량없는—그렇게 일을 하면서도 화두(話頭)를 들어야 하거든. 일하면서도 화두를 열심히 들면 남에게 피해를 줄 필요가 없고, 또 누가 자기한테 '잘하네 못하네' 말을 한다고 해도 조끔도 중심(中心)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선방(禪房)에서 정진하는 분들이나, 외호(外護)하는 대중(大衆)이 다 같이 청정(淸淨)한 마음이 되어서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만, 그 회상(會上)이 바로 영산회상(靈山會上)이 될 것입니다.

영산회상(靈山會上)이 되어야 그 속에서, 선방에서 정진하는 대중 가운데에도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분이 나올 것이고, 후원에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그 속에서 툭! 터지는 대중이 나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불사(佛事)인 것입니다. 불사는 자기 하나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를 위한 불사여. 일체 중생(衆生)을 위한 불사이기 때문에 불사는 아상(我相)이 없어야 하고, 자존심을 버려야 하고, 아상과 자존심을 버릴 때, 저 사람이 바로 나요, 내가 바로 저 사람이어서 우리가 모두 한 몸뚱이가 되는 것이고 한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큰 불사(佛事)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용화사(龍華寺)가 전강 조실 스님 열반(涅槃)하신 뒤로 17년이 되었습니다마는, 이렇게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불사—법당이라든지 선방이라든지 또 이 각 기타 모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볼 수 있는 불사가 이렇게 잘 이루어지고,

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또 이렇게 신도님네들이 이렇게 많이 또 이 운집(雲集)을 하게 되는 것, 또 많은 분들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그것을 실천하게 되고 해서, 이 용화사 법보선원을 중심으로 해서 최상승법이 온 나라에 이렇게 자꾸 선양(宣揚)이 되고 외국에까지 이렇게 자꾸 선양이 되는 것은 이것이 온통 우리 법보제자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다 그와 같은 마음으로 정진(精進)을 하신, 그와 같은 신심(信心)으로 모든 불사(佛事)에 동참(同參)하신 그 공덕(功德)으로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산승(山僧)은 믿고 있습니다.


이 살아 있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 법보전(法寶殿, 현 대웅전)에 모셔 있는 4만7천 위(位)의 이 법보영가, 우주법계(宇宙法界)에 수없는 우리의 선망부모들도 이 법회(法會)와 불사(佛事)에 모두가 다 동참을 하실 수 있도록 항상 이 법회 때마다 그러한 영가들을 이 법회에 청(請)하는 거량(擧揚)을 한 것입니다.

이 법당에 들어온, 또 이 법당에 들어오지 못한 밖에 있는 모든 영가들도 이 법문(法門)을 듣고서 이 불사에 동참을 한 그 공덕으로 다 이고득락(離苦得樂)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백종날, 이 해제(解制) 법회는 다른 법회보다도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또 비명액사한 모든 영가(靈駕)들을 위해서 특별히 마련한 그러한 법회인 것입니다.

여러 사부대중(四部大衆)들께서도 이 법회의 그러한 특별한 의의(意義)가 있는 법회에 대해서 깊이 인식을 하시고 앞으로 이어지는 천도 법요식(薦度法要式)에 경건하게 임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49분56초~64분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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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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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대중 생활2020. 12. 23. 13:47

§((145)) 참선하기 위해 오신 보살님네들은 잡담 · 시비할 겨를이 있을 수가 없다 / 정말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간절하게, 알차게, 일분일초를 아껴서 공부하시라 /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이 뭣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이 뭣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한 생각 일어나면 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 다른 생각으로 벌어지기 전에 바로 돌이켜서 '이 뭣고?'

 

**송담스님(No.145)—1981년(신유년) 하안거 결제(81.05.18) (용145)

 

약 8분.

 

올 여름 결제에 여러 보살님네들이 방부를 들이셨는데, 해마다 결제 때는 말씀을 드린 바지만, 편안한 가정을 놔두고 절에 오셔서 새벽 3시에면 일어나서,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고, 자고 싶어도 마음대로 자지 못하고, 눕고 싶어도 마음대로 눕지도 못하고, 그러한 대단히 구속(拘束)된 생활을 자진해서 선택을 하셔 가지고 절에 와서 안거를 하시는데 그만한 결심, 그만한 신심을 가지고 고생을 자초(自招)해서 들어오셨다면 정말 단 일 분도 일 초도 잡담할 시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니가 잘했느니 내가 잘했느니’, ‘니가 옳다 내가 옳다’, ‘저 사람은 어떻고 이 사람은 어떻고’, ‘반찬이 어떻고 밥이 어떻고’, ‘이 스님네가 어떻고 저 스님네가 어떻고’, ‘집안이 어떻고 뭐 손자가 어떻고 며느리가 어떻고’, 그러한 시비를 할 겨를이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환갑 잔치에 무슨 놀러가셨다던지, 어디 무슨 관광버스를 타고 어디 관광을 가셨다던지, 놀러가셨다면은 잡담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그저 뭐 춤도 추고 그저 그러시겠지만, 여기 절에 참선을 하시기 위해서 이 결제(結制)에 오셨다면 잡담할 겨를이 있을 수가 없고, 시비를 할 겨를이 없는 것이여.

 

겨우 입선(入禪) 시간에는 죽비를 치고 앉었다가 꾸벅꾸벅 졸다가 망상(妄想)을 끓이다가, 방선(放禪) 죽비(竹篦)만 치면 그저 지대방에 모여서 그저 이러쿵저러쿵 잡담하고, 심한 분은 큰방에 앉아서까지 그저 잡담을 하고, 둘씩 셋씩 넷씩 모여서 잡담을 하고 무슨 남의 시비를 하고. 여러 신도님이 그러신다는 게 아니라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말씀이여.

지난 겨울, 저 지난 여름, 이 참, 해를 거듭할수록 이 선방에 오셔서 공부하신 보살님네들이 점점 모다 규칙을 잘 지키시고 정진을 잘하시고 해서 우리 용화사 선원은 참 잘해 오고 있습니다마는, 이렇게 결제 때는 으레이 더 그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해랐다고 이렇게 이 경책(警策)을 해 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그 잡담도 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저런 말을 한다' 하고 속으로 그 생각을 하실 분이 계실는지 모르지만, 지난철에 또는 저지난철에 스스로 ‘내가 얼마만큼 정진을 열심히 했던가? 정말 한 생각 한 생각을 철저히 단속을 하고 정말 알뜰하게 공부를 했던가?’ 반성(反省)을 해 보시고, ‘금년 여름은 정말 법(法)다웁게, 간절하게, 알차게 공부를 하리라’ 이렇게 결심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댁에서는 다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가 있고, 누구가 이래라 저래라 말을 들으실 분들이 아니지요.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셨으니 정말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분일초를 아껴서 공부를 열심히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여기에 오셔서 즉접 참선을 못하시고 댁에서 공부를 하시는 분들, 설사 절에 와서 하시지는 못하더라도 댁에서 하신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러신 분일수록에 더 야무지게 단속(團束)을 해서, 일하시면서 손자를 보면서 ‘이 뭣고?’, 서서도 ‘이 뭣고?’, 누워서도 ‘이 뭣고?’, 어디 출행(出行)을 하실 때 차를 타면서도 ‘이 뭣고?’, 차를 타고 오면서도 ‘이 뭣고?’,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걸어다닐 때나 머물러 있을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말할 때나 말을 아니할 때나,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간에 '이 뭣고?'

 

무슨 생각이 일어나든지 한 생각 일어나면 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 다른 생각으로 벌어지기 전에 바로 돌이켜서 '이 뭣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또 무자(無字)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18분23초~25분4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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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대중 생활2020. 3. 22. 21:01

§(220) 한 생각 일어나는 그 찰나에 화두를 들어라 / 가정에서도 수행자답게 진실하게 생활해 가족의 존경을 받아야 / 선방 대중생활 규칙을 잘 지켜라 / 선방의 형식상 규칙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면적인 정진이 참으로 중대하다.

 

도봉산 회룡사 대중, 원효사 대중 또 팔정사 대중들도 설사 이 도량(道場)에서 백 리 이상 이렇게 떨어져 있지만 항시 이 한 도량에서 전강(田岡) 조실 스님을 모시고 여러 스님네와 같이 한 도량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하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한 철 동안이 하루와 같이 엄숙하고 근신하는 마음으로 정진을 해 주기를 바랍니다.

 

**송담스님(No.220)—1983년(계해년) 동안거결제 법회(83.11.19) (용220)

 

약 11분.

 

이 참선은 하나도 어렵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여.

 

눈으로 무엇을 볼 때 ‘이뭣고?’

귀로 무엇을 들을 때에 그 소리가 새 소리가 되었거나, 저 문을 여닫는 소리가 되었거나, 애들이 떠들고 고함 지르는 소리가 되었거나, 기차 소리나 전철 소리가 들렸거나, 무슨 뭐 비행기 소리가 나거나, 공장에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나거나, 무슨 소리를 듣건 바로 그 듣는 바로 거기에서 ‘이뭣고?’

 

누가 나를 칭찬해서 기쁜 마음이 나더라도 ‘이뭣고?’

누가 나를 억울한 소리를 해서 속에서 이 오장이 뒤집어질려고 하는 그 찰나(刹那)에도 ‘이뭣고?’

슬플 때도 ‘이뭣고?’

괴로울 때도 ‘이뭣고?’

 

이렇게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색성향미촉법(의 육경六境에 대하여) 여섯 가지 식(識)이 발동을 할 바로 그 찰나에 화두(話頭)를 터억 들어보시란 말씀이여.

 

처음에는 아무 재미도 없고, '이렇게 해 갖고 뭣이 될 것인가?' 그렇게 느껴지지만 한 달, 두 달, 석 달, 일 년, 이태 이렇게 철저한 신심(信心)을 가지고 꾸준히 한결같이 해 나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의 모든 면이 자꾸 자꾸 개선되어 가고,

특히 자기의 그 고약한 성질이 어느새 자꾸 순화가 되어 가고, 옹졸한 생각이 하해(河海)와 같이 커지고, 중생의 그 못된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어느새 불보살(佛菩薩)과 같은 그러한 마음으로 자꾸 승화되어 가는 것을 자기도 느끼고 다른 사람이 봐도 현저하게 자꾸 향상되어 가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는데 무슨 문제냐 하면, 평생을 부처님을 믿고 그렇게 정성껏 불공(佛供)을 드리러 다니고 기도하러 다니고 또 노래(老來)에 와서는 선방(禪房)에 그렇게 철철이 다니고 그래도, 며느리나 아들이나 딸이나 손자들이 볼 때에 영 그 고약한 성질이 고쳐진 것이 눈에 띄지를 안해.

그래 가지고 며느리나 아들들의 눈에 '아,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절에를 다니시고 선방에를 다니시면서 참선을 하시는데 어째서 저 못된 성격이 안 고쳐질까? 참, 불교를 믿어도 헛 믿지 않는가' 이렇게 며느리나 아들딸들이 볼 때에 그렇게 보여진다면 그것은 참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만이 불교를 가장 진실하게 그리고 돈독하게 믿는 것처럼 입만 벌렸다 하면은 ‘부처님, 관세음보살’ 며느리 보고도 ‘관세음보살 불러라’ 아들 보고도 ‘부처님을 믿어라’, 입으로는 부지런히 포교를 한답시고 부처님을 갖다가 입에다가 걸고 사는데,

그 성격 쓰는 것 보면 별로 존경할 만한 것이 못 되어 가지고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불법(佛法)에 대한 회의심(懷疑心)을 품게 하고 오히려 그 자기 어머니, 자기 시어머니 때문에 불교 믿을 생각이 나지 않게 만든다면 그러한 큰 문제, 그러한 큰 죄가 어디가 있겠느냐 그 말씀이여.

 

절에서는 참 신심 있는 보살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 가정에 돌아가면 별로 그렇게 훌륭하게 느껴지지 못한 그런 일이 있다면 잘 반성을 해서 ‘내가 왜 그렇게 된가?’ 그것을 한번 깊이깊이 반성을 해서 고쳐 나가야 할 것이고,

참으로 그 보다도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철철이 빠지지 않고 선방에 방부(房付)를 들이고 참선을 하시는데, 선방에 그 간단한 별로 복잡하지도 않고 간단한 규칙을 지키지를 못 해 가지고 대중 가운데 항상 문제를 야기(惹起)를 시키고 다른 사람 공부를 크고 작고 직접 간접으로 방해를 치는 그러한 분이 계시다면 이것은 참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벌써 입선(入禪) 시간이 돌아오면 한 5분이나 10분 전에 다 화장실이고 어디고 갔다 올 데 다 갔다 와서 따악 자리를 안정을 하고 죽비(竹篦) 칠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지지리 그 방선(放禪) 시간에는 지대방에서 이러쿵저러쿵 잡담(雜談)을 하다가 입선 시간 임박해 가지고 헐레벌떡 밖으로 나가서 이리저리하다가 시간을 못 맞추는 일.

공양(供養) 시간도 제 시간 안에 다 일보고 와서 미리 와서 딱 안정을 해가지고 해야 할텐데, 다 다른 사람 발우(鉢盂)를 펴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사 모다 들어온다든지. 입선만 시켜 놓고는 밖에 나가서 뭣을 가서 목욕탕에 가서 뭣을 씻어 쌓고, 빨래를 해 쌓고 빨래를 만져 쌓고 야단이거든.

 

이러한 그 사소한 일이지만 이것이 벌써 처음 나온 사람도 그러지를 못할 텐데, 몇 철을 나온 구참(久參) 보살이라는 사람이 그러한 식으로 선방 생활을 한다면 그것이 뭣 하기 위해서 선방에 나왔는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금년 겨울철은 보살님네 선방, 내가 좀 철저하게 단속을 해서 ‘정말 용화사 선원에 가면 정말 공부가 저절로 되고 거기를 가야 진짜 참선 정진할 수가 있다’ 할 수 있을 만큼 그러한 한 철이 되도록 좀 철저하게 단속을 할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구 스님네 선방도 해마다 전국에서 좋은 다 청풍납자(淸風衲子) 좋은 선객(禪客) 스님네들이 오셔서 아무 일이 없이 정진들을 잘하고 계십니다마는 잘 못하는 데에도 천차만별이 있지만 또 잘해 나가는 데에도 이만큼만 하면 된다고 하는 한계선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잘한 것처럼 형식상으로도 규칙을 잘 지켜야 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면적인 정진이 참으로 더 중대하다고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이만큼 하면 된다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금년 겨울은 정말 알뜰하게 정진하셔서 일대사(一大事) 문제를 금년 이 삼동(三冬) 철에 아주 바닥을 내도록 결판을 내는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진(精進)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도봉산에 회룡사 대중, 원효사 대중 또 이 팔정사 대중들도 설사 이 도량(道場)에서 백 리 이상 이렇게 떨어져 있지만 항시 이 한 도량에서 전강(田岡) 조실 스님을 모시고 여러 스님네와 같이 한 도량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하는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한 철 동안이 하루와 같이 엄숙하고 근신하는 마음으로 정진을 해 주기를 바랍니다.(30분26초~41분2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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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찰나(刹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剎은 동자(同字).

*육근(六根) ; 육식(六識)이 경계[六境]를 인식하는 경우 그 소의(所依)가 되는 여섯 개의 뿌리.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 곧 심신을 작용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으로서, 눈(眼根) · 귀(耳根) · 코(鼻根) · 혀(舌根) · 몸(身根) · 뜻(意根)의 총칭이다.

산스크리트어 ṣaḍ-indriya 근(根)은 기관 · 기능을 뜻함.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적(六賊), 육문(六門)이라고도 한다.

*육경(六境) ; 육근(六根)의 대상 경계인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을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경(境)은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수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수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맛.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등.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노래(老來 늙을 노/올 래) ; ‘늘그막(늙어 가는 무렵)’을 점잖게 이르는 말.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야기(惹起 이끌•어지러울 야/일으킬 기) ; 일이나 사건 따위를 끌어내어 일으킴.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때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발우(鉢盂 바리때 발/바리•사발 우) ; '발(鉢)'은 (산스크리트어)patra의  음역어인 발다라(鉢多羅)의 준말로 '음식 그릇', '우(盂)'는 그릇을 뜻함. 음역어와 번역어의 합성어로, 수행승들의 식기(食器)를 일컬음.

나무를 그릇처럼 깎아서 칠을 한 스님의 공양(供養, 식사) 그릇. 보통 발우 한 벌은 4개의 그릇으로 이루어지고, 4개의 그릇이 포개져서 하나의 그릇처럼 보관하며, 공양(식사)할 때 4개의 그릇을 펼쳐 놓는다.

*구참(久參) ; 오랫동안 참선 수행한 사람.

*청풍납자(淸風衲子 맑을 청/바람 풍/옷을 꿰맴 납/사람 자) ; 수행을 하여 맑은 기운을 지닌 스님을 청풍(淸風), 맑은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참고] 운수납자(雲水衲子) ; 여러 곳으로 스승을 찾아 도(道)를 묻거나 수행을 하러 여러 곳으로 다니는 스님[衲子]을 머무름이 없는 구름[雲]과 물[水]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납자(衲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도장’으로 읽지 않고 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참고] 송담스님(No.582)—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에서.

보살선방 또는 비구선방, 시민선방 또 후원, 사무실 각자 자기 있는 처소에서 자기 분(分) 따라서 모다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시고, 가정에서도 터억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가정이 바로 자기의 선방(禪房)입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차 안이 바로 선방인 것이고,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이 바로 선방인 것입니다.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에 따질 것 없이 언제나 한 생각 돌이키면은 바로 그 자리가 활구참선 도량(道場)이여.(53분52초~54분41초)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