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구참선, 최상승법'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17.10.05 §(364) (게송)월원불유망~ / 중생의 탐진치 욕심의 무서운 불을 끄는 것이 참선이다 / 재진출진(在塵出塵) 불가잠폐(不可暫廢) / 번뇌의 바다에 들어가야 거기에서 지혜 보물을 얻는다.
  2. 2017.05.30 §(627) 우리 자신이 부처 /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이 딴 데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최상승법 / 번뇌 망상이 일어나는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이뭣고?’ / 극락 가는 연습이 바로 이뭣..
  3. 2017.04.04 §(031) 깨닫는 인연—잠시도 본참화두를 놓쳐서는 안된다 / 5가지의 큰 은혜 / 아난과 조달의 지옥 대화 / 사구참선과 활구참선 / 여섯 마리의 짐승, 육적.
  4. 2017.03.27 §(014) 모든 지식과 학문, 이론을 다 잊어버릴수록 오히려 깨달음에 가까워지는 것 / 유루복 / 최상승 활구참선은 지극히 쉽다 / 일념단속, 생사심 단속.
  5. 2016.10.22 §(630) (게송)당당대도혁분명~ / 육도윤회의 원인은 '한 생각' 어긋진 탓 / 활구참선은 천하에 쉬운 것이다 / 활구참선이라야 올바른 참선.
  6. 2016.07.07 §(299) (게송)묵좌허회독엄문~ / 도의 낙(樂) / 활구참선이란? / 『몽산법어』 / (게송)심사학도별무타~ / 탐진치(貪瞋痴) 삼독심 / ‘참 부처님’이란?
  7. 2016.06.03 §(402) 번뇌(煩惱)의 나무로 지혜의 불을 피워서 열반(涅槃)의 밥을 짓는다. 일어나는 번뇌를 돌이켜서 그 번뇌 일어나는 뿌리를 찾는 것이 참선(參禪).
  8. 2016.03.05 §(577) (게송)일체불유환유견~ / 가정에서도 부페식 식사 / 자업자득(自業自得) 자작자수(自作自受) / 이 땅덩어리, 우리 몸뚱이, 우리의 마음 3가지가 하나.
  9. 2016.01.11 §(422) (게송)정종소식몰자미~ / 마조(馬祖) 스님의 깨달음 / 마조스님과 양좌주 / 어째서 의심만을 일으키라고 하느냐? / 묘관(妙觀), 의심관(疑心觀).
  10. 2015.10.03 §(212) (게송)백운아향만리표~ / 정법(正法)의 위태로움 / 육조 스님의 남악회양 선사 인가. 활구참선 / 네 아내(육신, 재산, 부모형제, 마음)의 비유.

§(364) (게송)월원불유망~ / 중생의 탐진치 욕심의 무서운 불을 끄는 것이 참선이다 / 재진출진(在塵出塵) 불가잠폐(不可暫廢) / 번뇌의 바다에 들어가야 거기에서 지혜 보물을 얻는다.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탐진치의 불, 이 불 때문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다 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 탐진치 삼독의 이 불 때문에 우리는 삼악도(三惡途)의 불구덩이로 결국은 여지없이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어떻게 허면 이 삼악도의 불을 끄고 영원히 청량한 그러한 경지에서 그러한 속에서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게 할 수 있느냐? 이것이 바로 우리 부처님께서 열어 놓으신 불법(佛法)이요,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번뇌 망상 이놈에서 탐진치 삼독의 거센 파도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놈 때문에 지옥에도 가고 축생도 되고 아귀도 되고 그렇지만, 그 파도를 잘 타면서 잘 지혜롭게 저어 들어가면 무량겁을 쓰고도 남을 지혜의 보물을 거기에서 얻을 수가 있더라. 참 기가 막힌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게 정명경(淨名經)에 있는 말씀인데.


**송담스님(No.364)—88년 8월 첫째일요법회(88.08.07)

약 18분.

월원불유망(月圓不逾望)이요  일중위지경(日中爲之傾)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여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월원불유망(月圓不逾望)이요. 달이 둥굴매, 아무리 달이 둥글고 더이상 둥글 수 없이 둥글다 하더라도 보름을 넘지를 못해. 보름이 되면, 보름날이 되면은 그 이튿날부터서는 차츰차츰 이그러져 가고.

일중위지경(日中爲之傾)이다. 해가 정 중천(中天)에 오면 계속해서 그 자리에 있을 수는 없어. 정오가 되면은 되는 그 찰나부터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것이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여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다.

달도 보름을 넘지 못해서 기울어져 가고, 해도 정오를 넘자마자 서쪽으로 기울어져 가건만 오직 뜰 앞에 잣낭기는 독야사시청(獨也四時靑)이다. 홀로 춘하추동 사시(四時)에 푸르른구나.



지금 삼복(三伏) 중에 이 폭염(暴炎)이 최고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일기(日氣)만, 날씨만 이렇게 더운 것이 아니라 온 세계가 불구덩이 속에 훨훨 타고 있는 것입니다.

저 이란과 이라크라는 데는 땅을 한 치라도 더 뺏고 뺏기 위해서 그 피투성이가 되어 가지고 싸우고, 세계 도처에서는 서로 자기 나라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서로 경제적으로 싸우고 있고, 사상적으로 이념적으로 싸우고 있고, 종교와 종교 사이에서는 자기네 종교를 보다 더 펴기 위해서 온갖 꾀를 내 가지고 발버둥을 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 올림픽에 어떻게 하면 이걸 잘 치르느냐? 그리고 우리나라 선수들이 보다 더 메달을 많이 따느냐?’ 이런 문제로 주야불철(晝夜不撤)하고 피땀을 흘리고 있고. 여당과 야당은 자기 당의 세력을 펴기 위해서 당의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이 무더위 속에 그 속에서 불을 태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헌 싸움은 설사 그 싸움에 이겼다 하더라도, 또 이기고 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다 잠정적(暫定的)인 것뿐인 것입니다. 잠시 그러다가 금방 또 기울기 시작하고, 계속해서 이기고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온 세계가 이렇게 용광로처럼, 사방팔방(四方八方) 일체처 일체시에 이렇게 용광로처럼 중생의 욕심의 불이—입으로는 명분을 내세우고, 국가를 내세우고, 민족을 부르짖고, 세계의 평화를 부르짖고 있지만 그 속에는 시커먼 중생(衆生)의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욕심의 불이 훨훨 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욕심의 불이 언제 꺼지느냐?

꺼질 기약이 없습니다. 그 욕심의 불이 타고 있는 동안에는 세계의 평화도, 국가의 민주주의도, 민족의 통일도 행복도 이루어질 가망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삼복더위가 치성을 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 더위에 이기지 못해서 어떻게 허면 이 더위를 좀 피헐 수가 있을까? 산으로도 가고 바다로도 가고 강으로도 가고 이렇게 해서 좀 피헐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지 근본적으로 그 더위를 모면헐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사면(四面)이 이렇게 불이 타 오고 있구나」 이렇게 말씀하시고, 고봉 선사도 「진대지(盡大地)가 이렇게 훨훨 타고 있는 이 불구덩이인데 어떻게 허면 이 불구덩이로부터 살아날 수가 있겠느냐?」 이런 실중삼관(室中三關) 속에 이러헌 공안(公案)을 설하시기도 했습니다.


온 세계가 이렇게 그 태양이 이글이글 이렇게 타므로 해서 이렇게 더운 것쯤은 차라리 바다로도 가고 산으로도 가고 또 선풍기도 돌리고 에어컨도 틀고 해서 부채질도 하면서 그럭저럭 허다 보면, 오늘이 바로 입추입니다마는 입추를 지내고 또 말복이 지내면 금방 처서(處暑)가 오고 해서 조석으로 서늘한 바람이 일기 시작해서 그까짓 것쯤은 별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타 일어나고 있는 이 중생의 탐진치에 욕심의 불, 이것이야말로 정말 무서운 불인 것입니다.


태양이 뜨거워가지고, 물론 비는 오지 아니하고 이렇게 혹서(酷暑)가 계속이 되면 세계 어딘가는 더위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도 없지는 않지만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더위 때문에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말은 아직은 못 들었습니다. 아무리 더워도 그것이 뜨거워서 타 죽지는 여간해서 않습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탐진치의 불, 이 불 때문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다 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 탐진치 삼독의 이 불 때문에 우리는 삼악도(三惡途)의 불구덩이로 결국은 여지없이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어떻게 허면 이 삼악도의 불을 끄고 영원히 청량한 그러한 경지에서 그러한 속에서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게 할 수 있느냐? 이것이 바로 우리 부처님께서 열어 놓으신 불법(佛法)이요, 참선(參禪)인 것입니다.


재진출진(在塵出塵)이요 불가잠폐(不可暫廢)다. 티끌 속에 있으면서 티끌에서 뛰어나며. 그 티끌 속에서 티끌에서 뛰어나는 그 도리, 그것을 불가잠폐(不可暫廢)여. 잠깐 동안도 등한(等閒)히 헐 수가 없어. 정지헐 수가 없는 일이다.


‘티끌 속에서, 티끌 속에 있으면서 그 티끌에서 뛰어난다’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는 전체가 티끌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몸 밖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티끌이고, 우리의 식(識)으로써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전부가 그것이 다 티끌인 것입니다.

티끌 속에서 도저히 우리는 일 초 동안도, 한 걸음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왼발을 들면 오른발이 땅에 닿아 있고 오른발을 들면 왼발이 땅에 들어있어. 공중으로 뛰어 봤자 1미터도 못 뛰고 다시 도로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도 그렇지만, 우리의 생각도 이 생각 저 생각 희로애락 일체 생각이 선 · 악 · 무기(無記)의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그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변해서 그 생각이 또 꺼지자마자 또 다른 생각이 또 일어나고, 이렇게 해서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일어났다 껴졌다 하는데, 이것이 모두 티끌 속에 있는 상황입니다.


그 티끌 속에 있으면서 어떻게 해야 그 티끌 속에서 뛰어날 수가 있느냐? ‘이뭣고?’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갑인년에 설하신, 갑인년이 바로 조실 스님 열반하시던 해인데 지금부터 15년 전입니다. 그해에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마는.


‘이 무엇고?’

잠시도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고, 탐진치 삼독에 번뇌와 망념이 불타듯이 이렇게 훨훨훨훨 타오르고 있는데, 그 일어나는 그 생각 거기에서, 바로 거기에서 그놈을 뛰어나는 방법이 있다.

그놈을 피해가지고 서늘한 데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바로 거기에 즉(卽)해 가지고 거기에서 뛰어나는 도리가 바로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이여.


비유컨대 저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아니허면 그 바다 밑에 무진장(無盡藏)으로 있는 그 무가보주(無價寶珠)를 얻을 수가 없는 것처럼 우리의 번뇌의 대해(大海) 속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파도치는 그 번뇌의 바다 속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일체 지혜의 보물을 얻을 수가 없다. 지혜를 얻을 수가 없다.


번뇌(煩惱) 망상(妄想)이 우리 중생의 본업(本業)이고, 우리의 재산이고, 생명이 있는 동안에는 번뇌와 망상을 여의고 살 수가 없지만, 바로 그 번뇌와 망상 그놈이 없으면 우리는 깨달음을 얻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바다가 큰 바다가 깊고 넓고 파도가 쳐서 그놈 함부로 들어가면, 작은 배를 타고 들어가면 휘떡 엎어져 갖고 그 바다에 빠져 죽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 아니하면 도저히 그 바다 속에 있는 그 희귀한 보물을 얻을 수가 없어.


이 번뇌 망상 이놈 때문에, 아! 이놈에서 탐진치 삼독의 거센 파도가 일어나고 있지만, 그놈 때문에 지옥에도 가고 축생도 되고 아귀도 되고 그렇지만,

그 파도를 잘 타면서 잘 지혜롭게 저어 들어가면 무량겁을 쓰고도 남을 지혜의 보물을 거기에서 얻을 수가 있더라. 참 기가 막힌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게 정명경(淨名經)에 있는 말씀인데.(처음~18분1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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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월원불유망~’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西山 休靜) ‘草堂咏栢(초당영백, 초당에서 잣나무를 읊음)’ 게송 참고.

*중천(中天 속·한가운데 중/하늘 천) ; 하늘의 한가운데.

*잣낭기 ; 잣나무. '낭기'는 '나무'의 사투리.

*삼복(三伏) ; ①일 년 중에서 여름철의 가장 더운 기간. ②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을 아울러 이르는 말.

*폭염(暴炎 사나울·세찰 폭/불꽃·더울 염) ; 폭서(暴暑 매우 심한 더위). 불볕더위.

*일기(日氣) ; 날씨.

*주야불철(晝夜不撤 낮 주/밤 야/아닐 불/거둘·철수할·그만둘 철) ; 불철주야(不撤晝夜). ①어떤 일을 함에 있어 밤낮[晝夜]을 가리지[撤] 않음[不]. ②밤낮없이.

*잠정적(暫定的 잠깐·잠시 잠/정할·머무를 정/대상·것 적) ; ①우선 임시[暫]로 정(定)한 것[的]. ②잠시 동안 그런 것.

*사방팔방(四方八方 넉 사/모·방위·방향 방/여덟 팔) ; ①사방(四方 동, 서, 남, 북의 네 방향)과 팔방(八方 동, 서, 남, 북, 동북, 동남, 서북, 서남). ②모든 방향과 모든 방면.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함령(含靈), 함식(含識), 군생(群生), 군맹(群萌),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부처님께서도 「사면이 이렇게 불이 타 오고 있구나」 이렇게 말씀하시고’ ;

[참고]  『잡아함 시현경(示現經)』에서.

"비구들아,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눈(眼)이 불타고 있고, 물질(色)과 안식(眼識)과 안촉과 안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 즉 괴로운 느낌·즐거운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또한 불타고 있다.


귀·코·혀·몸도 마찬가지이며, 이와 같이 뜻(意)도 불타고 있고, 법(法)과 의식(意識)과 의촉과 의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 즉 괴로운 느낌·즐거운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또한 불타고 있다.


무엇에 의해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로 불타고 있고, 성냄의 불로 불타고 있으며,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의 불로 불타고 있느니라.

*사면(四面) ; 전후좌후의 모든 방면(둘레).

*실중삼관(室中三關) ; '방장실의 3가지 관문' 고봉 스님이 학인을 제접(提接)할 때 사용하던 관문(공안)이라고 하며, 또는 깨달은 뒤 자신의 보림(保任)이라고도 한다.

[참고] 『고봉화상 선요(高峰和尙 禪要)』 (통광 역주 | 불광출판부) p175~176.

室中三關(其二九)

杲日  當空에  無所不照어늘  因甚被片雲  遮却고.  人人이  有箇影子하야 寸步不離어늘 因甚踏不着고.  盡大地  是箇火坑이니  得何三昧하야사  不被燒却고.


돋는 해가 허공에 당도함에 비추지 않는 곳이 없거늘, 무엇 때문에 조각구름에 가리움이 되었는가?

사람마다 하나의 그림자가 있어서 몸에서 조금도 떨어지지를 않는데, 무엇 때문에 밟혀지지 않는가?

온 대지가 하나의 불구덩이이니, 무슨 삼매를 얻어야 불에 타지 않을까?

*실중(室中) ; 실중(室中)은 실내(室內)의 뜻인데, 일반적으로 종사(宗師)가 머무는 곳으로 조실(祖室), 방장실(方丈室)을 가리킨다. 선종에서 전법(傳法)할 때 스승이 제자에게 면밀하고 친절하게 지도하는 장소를 말한다. 또는 스승이 제자에게 구전(口傳)한 가르침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삼관(三關) ; 3가지 관문. 종사가 세 가지 질문(공안)을 설정하여 학인의 수행 정도를 시험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삼관을 제시하는 스님에 따라서 고봉삼관(高峰三關), 황룡삼관(黃龍三關), 도솔삼관(兜率三關), 자운삼관(慈雲三關) 등이 있다.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처서(處暑) ; 일 년 중 늦여름 더위가 물러가는 때. 이십사절기의 하나. 양력으로 8월 23일경이며, 더위가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느껴지며 벼가 익는 시기이다.

*혹서(酷暑 독할 혹/더울·더위 서) ; 몹시 심한 더위.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등한(等閒)히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식(識) ; 오온(五蘊) 중 하나. 십이연기(十二緣起)의 세 번째 지분으로 지각(知覺), 요별(了別)의 의미를 갖는다. 대상을 알게 하는 정신적 작용이다.

이 식에 관하여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6식설(六識說) · 8식설(八識說) · 9식설(九識說)이 널리 채택되고 있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가 모두 채택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6식설은 그 발생 근거에 따라 6가지 식(識)을 열거 한다.


눈[眼] · 귀[耳] · 코[鼻] · 혀[舌] · 몸[身] · 뜻[意] 등 외부의 사물을 인식하는 감각기관인 6근(六根)이, 물질[色] · 소리[聲] · 향기[香] · 맛[味] · 감촉[觸] · 법(法)의 6가지 외부적인 대상인 6경(六境)을 대할 때 생겨나는 6가지 인식작용이 6식(六識)이다.

즉, 눈이 물질을 대할 때 보는 안식(眼識)이 있으며, 귀가 소리를 대할 때 듣는 이식(耳識)이 있으며, 코가 냄새를 대할 때 냄새를 맡는 비식(鼻識)이, 혀가 맛을 대할 때 맛을 감지하는 설식(舌識)이, 몸이 감촉을 대할 때 느끼는 신식(身識)이 있으며, 의(意)가 법(法)을 대할 때 '안다'는 의식(意識)이 있다.

이와 같이, 6근 · 6경 · 6식은 서로 연관 속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그 어느 것도 독립적으로 있는 것은 없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제6식인 의식이 근본이 되어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 전5식(前五識)을 통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意識)을 심왕(心王)이라고도 한다.


전오근(前五根), 곧 안 · 이 · 비 · 설 · 신(眼耳鼻舌身)에 근거하여 발생하는 전5식(前五識)은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은 일종의 감각지각이고, 제6의식(意識)은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는 지각과 언어를 매개로 한 인식 등 두 측면을 모두 갖고 있다.


8식설은 앞의 6식설에 제7 말나식(末那識)과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더한 것이다. 말나식은 제6식의 밑에서 조절하는 강한 자의식(自意識)으로서, 범부가 쉽게 감지할 수 없는 의식이다. 이 말나식은 아치(我癡) · 아견(我見) · 아만(我慢) · 아애(我愛)의 번뇌가 자리를 잡고 있어서 이들을 제거하면 7식이 맑아져서 아공(我空)의 경지를 이룰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제8 아뢰야식은 일반적으로 장식(藏識)이라고 번역된다. 장식이란 곧 여래를 감추고 있는 식이라는 뜻으로, 비록 중생이 생사 속에 있지만 이 감춰져 있는 여래만은 결코 상실되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아뢰야식이 올바로 발현될 때 곧 여래(如來)가 된다고 보고 있다. 이 제8식에 대한 견해는 불교에 여러 학설이 있다.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즉해(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비유컨대 저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아니허면 그 바다 밑에 무진장(無盡藏)으로 있는 그 무가보주(無價寶珠)를 얻을 수가 없는 것처럼~’ ;

[참고]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구마라집鳩摩羅什 역) 제8 불도품(佛道品)

是故當知  一切煩惱爲如來種  譬如  不下巨海  不能得無價寶珠  如是不入煩惱大海  則不能得一切智寶

이와 같이 모든 번뇌야말로 여래가 되는 씨앗임을 알아야 합니다. 비유컨대 넓은 바다 밑까지 들어가지 않으면 무가(無價)의 보주(寶珠)를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번뇌의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곧 일체지의 보배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현장玄奘 역) 제8 보리분품(菩提分品)

又善男子  譬如有人  不入大海  終不能得  吠琉璃等無價珍寶  不入生死煩惱大海  終不能發無價珍寶一切智心  是故當知  一切生死煩惱種性  是如來種性

또 선남자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폐유리 등의 무가(無價)의 진보(珍寶)를 끝내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이, 생사(生死)의 번뇌라는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끝내 무가의 진보인 일체지에 대한 마음을 일으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체의 생사 번뇌의 종성(種性)이 여래의 종성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무진장(無盡藏 없을 무/다할 진/감출·곳집 장) ; ①다함이 없는[無盡] 창고[藏]라는 뜻으로 양적 질적으로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 불교에서는 덕(德)이 광대하여 쓰고 또 써도 다함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②배우고 배워도 다함이 없는 무궁무진한 진리. ③무한량으로 많은 재물.

*무가보주(無價寶珠) ; 값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귀중한 보배구슬이라는 뜻. 불성(佛性), 반야(般若), 일승(一乘) 등과 같은 불교의 요체(要諦)를 비유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무가보(無價寶) · 무가지보주(無價之寶珠) · 무가대보(無價大寶) 등이라고도 한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번/괴로워할 뇌)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라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貪)•성냄(瞋)•어리석음(癡)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곧 눈 앞의 고(苦)와 낙(樂)에 미(迷)하여 탐욕•진심(瞋心)•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혹·업·고(惑·業·苦)의 삼도(三道)로 설명한다. 즉 번뇌[惑]에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를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계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苦]의 과보를 받게 된다.

*망상(妄想 망녕될 망/생각 상) ; 산스크리트어 vikalpa, parikalpa.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妄)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본업(本業) ; ①주가 되는 직업. ②주로 하는 일.

*정명경(淨名經) ; 『유마경(維摩經)』. 3권. 405년(후진 홍치 8년)에 구마라습 번역. 정식 명칭은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또는 『불가사의해탈경(不可思議解脫經)』이라고도 한다.

반야경에서 말하는 공(空)의 사상에 기초한 윤회와 열반, 번뇌와 보리, 예토(穢土)와 정토(淨土) 등의 구별을 떠나, 일상 생활 속에서 해탈의 경지를 체득하여야 함을 중인도 폐사리(吠舍離)에서 거사(居士)로 지내면서 보살행업을 닦아 크게 교화한 유마힐을 중심으로 설한 경.

유마힐(維摩詰)은 범어로 Vimalakirti  음대로 써서 유마라힐(維摩羅詰) • 비마라힐(毘摩羅詰)이라 하고, 줄여서 유마힐 또는 유마(維摩)라고만 한다. 뜻으로 번역하면 정명(淨名) 또는 무구칭(無垢稱)이 되는데, 우리 말로는 ‘깨끗한 이름’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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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627) 우리 자신이 부처 /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이 딴 데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최상승법 / 번뇌 망상이 일어나는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이뭣고?’ / 극락 가는 연습이 바로 이뭣고?


최상승법이라 하는 것은 무처선(無處禪) 무시선(無時禪)이여. 시간도 따로 없는 것이고, 장소도 따로 없는 것입니다. 편의상 입선, 방선의 시간을 두고 선방(禪房)이라고 하는 특별한 조용한 곳을 마련해 가지고 거기에 가서  같이 죽비를 치고 정진하고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본자세를 익히는 것이지 진짜 살아 있는 공부는  선방에 와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어쩌다가 감옥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감옥에서도 탁! 이뭣고?’   있다면 감옥이 바로 선방이요 선불장(選佛場)이요, 부부간에 사랑하고, 싸우고, 생활에 대한 근심 걱정을  바로 그곳이 살아 있는 선원이라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우리는 다시 참선에 대한 관념을 바로 잡아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뭣고?’ 천하에 간단하고 별로 맛은 없지만, 내가 바로 부처요, ‘이뭣고?’ 바로 살아서 극락에 가고, 살아서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연습이고, 바로  생각에 여래(如來)의 경지(境地)에 올라가는 공부.

**송담스님(No.627)—99 6 첫째 일요법회(99.06.06)

약 17분.

우리는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께 공경을 최고의 존경과 공경을 바치고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 불공(佛供)을 드리고 합니다마는,  모든 신앙 생활 가운데에 으뜸이 되고 뿌리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철저히 믿는 데에서부터서 시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인(古人)이 말씀을 하시기를 중생이  부처니, 바로 내가  자신이 부처니 부처를 밖에서 찾지 말아라’하시는 거고.

번뇌(煩惱)가  보리(菩提)이니, 우리 깨닫지 못한 사람은 눈으로 봤다 하면 거기서 번뇌의 물결이 일어나고, 귀로 무엇을 들었다 하면은 번뇌의 물결이 일어나고, 무슨 생각이 일어났다 하면은 번뇌의 생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없는 끝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번뇌를 여의지 않고 거기에 보리가 있다는보리(菩提)는 깨달음이다. 최고의 깨달음을 보리라고 하는데 번뇌를 여의지 않고 깨달음이 거기에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붙어 있다고 하면  어폐(語弊)가 있을는지 모르지마는, 바로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이 딴 데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이것이 바로 대승법(大乘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알기 쉽게 비유를 하자면은 파도가 일어나고 있을 ,  파도는 물이  인연 따라서 움직거리면 그것이 파도인데, 파도는 물을 여의고 존재한 것이 아닙니다. 파도 있는 곳에는 반드시 거기에 물이 있는 거고, 물이 있으면은 물결이 파도가 일어나게  것입니다.


물결을 버리고 물을 찾는 한에는 물속에 들어앉어서도 물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중생을 여의고 부처를 찾을 수가 없는 거고, 번뇌를 여의고 깨달음을 구하는 한에는 깨달음 속에 있으면서 깨달음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참선(參禪)을  것은 깨닫기 위해서 한다’하지만 깨달으려고  필요가 없습니다. 참선 해  사람이면 끊임없이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마는,  번뇌를 여의고 참선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몸뚱이가 바로 부처님 몸뚱이고, 우리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수없는 번뇌가 바로 그것이 깨달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상승법에서는 아까 부처님으로부터 달마 스님까지 인도에서 28, 달마 스님이 중국으로 오셔서 육조 혜능 스님까지 6, 그래서 육조 스님까지 해서 33대를 삽삼이라고 합니다마는 삽삼조사(卅三祖師).

 삽삼조사로 육조 스님  화두(話頭)라고 하는, ‘이뭣고?’라고 하는 것이 나왔다고 하는 것을 금방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는, 그것이 오늘날까지 조사들에 의해서 등등상속(燈燈相續)으로 오늘날까지 최상승법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최상승법은 굉장히 어렵고 복잡하냐 하면 그것이 아닙니다.

부처도   밖에서 찾지  , 참선도 번뇌를 여의고 찾지  ,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내가 바로 부처라고 하는 것을 철저히 믿고.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번뇌를 여의고 참선을 할라고 하지를 마세요. 무슨 망상이 일어나거나 번뇌가 일어나거나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는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이뭣고?’.


탐심이 일어날 때도  탐심이 일어나는 바로 거기에 ! 즉해 가지고 이뭣고?’. 미운 생각이 일어나거나 원망하는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생각을 버리고 따로 참선을 하려고 하지 말고 바로 일어나는 그놈에 즉해 가지고 이뭣고?’

이렇게  나간다면 바로 이렇게 살아 있는 참선을  버릇하면 번뇌가 일어날수록  좋은 것이고, 탐진치 삼독심이 치열하게 일어날수록에 바로 거기에다 발판을 두고 거기에 즉해서 이뭣고?’ 한다면 혼침(昏沈)이 일어날 수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미운 생각이 일어날 때도 이뭣고?’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도 이뭣고?’

그래서  최상승법이라 하는 것은 무처선(無處禪) 무시선(無時禪)이여. 시간도 따로 없는 것이고, 장소도 따로 없는 것입니다.


편의상 입선(入禪), 방선(放禪)의 시간을 두고 선방(禪房)이라고 하는 특별한 조용한 곳을 마련해 가지고 거기에 가서  같이 죽비(竹篦)를 치고 정진하고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본이고 기본자세를 익히는 것이지 진짜 살아 있는 공부는  선방에 와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태권도나 검도나 유도나 기본자세를 철저히 익힘으로 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기본의 살아 있는 응용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기본을 철저히 익힌 것은 대단히 좋은 것이기는 하나, 언제나 기본에만 입각해서  틀어박힌 참선이 그것은 진짜 살아 있는 참선이 아닌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어쩌다가 업(業)에 걸려서 감옥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감옥에서도 탁! 이뭣고?’   있다면 감옥이 바로 선방이요 선불장(選佛場)이요, 부부간에 사랑하고 부부간에 싸우고 부부간에 생활에 대한 근심 걱정을  바로 그곳이 바로 그곳이 살아 있는 선원이라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우리는 다시 참선에 대한 관념을 바로 잡아야 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해서 무척 살기가 교통이라든지 모든 생활이 편리하게는 되었습니다마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정말 행복해졌냐 하면  그렇지는 않은  같습니다. 점점 사는 것이  복잡하고  어렵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교육도 그렇고 일체가  곳마다  복잡해지고 다단해지고 있습니다마는 그러한 때일수록  살아 있는 활구참선(活句參禪) 이것이 아니고서는 우리가 인생을 바로 살기가 어렵고,  어려운 고비를 극복해 나가기가 어렵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금일척제번뇌염(今日滌除煩惱染), 오늘  번뇌의 생각을 깨끗이 씻어 제(除)한다고 하는 것은 활구 참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올바르게 활구참선하는  근본을 딱! 알고 보면 삼도고(三途苦)니, 태란습화(胎卵濕化) 사생(四生)이니 그것 버릴 것이 못됩니다. 버릴 필요가 없습니다.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마는, 지옥은 현실 속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면 형무소 교도소가  지옥이냐 하면 그게 아니고,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이 바로 우리 몸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육도(六途)가 들어있다고 봐야 정말 육도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하고 있다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생각 뒤집어지면 지옥도 되고, 독사도 되고, 아귀도 되는 것입니다.  생각 ! 바로 잡으면 아까까지 지옥에 있었던 사람이  생각으로 인해서 천당에도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죽은 뒤에, 금생에 살아서 악업(惡業)을 지으면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하는  말씀을 나는 믿습니다마는, 살아서 우리가 들어가는 지옥도 있다고 하는 것을 철저히 우리가 인식을 한다면 죽어서 지옥 가는 것은 걱정이 없습니다.

내나 살아서 지옥 가는 연습을  사람이 죽어서 틀림없이 지옥에  것이기 때문에 살아서부터서 지옥에  가는 행위를 한다면 지옥 그렇게 무서워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서 지옥이 무엇인가를 알고,  마음속에 있는 지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확실히 안다면 살아서 지옥  짓을  하게 되고, 살아서부터 지옥 가는 연습을  한다면 죽어서 지옥 것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술을 많이 먹고 술버릇이 고약한 사람은 술을  먹을 때는 성현 군자고 그렇게 착한 사람이 술만 들어갔다 하면은 자기 자신을 자제를 못하고 완전히 고주망태가 되어가지고 어떻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용케도 자기집은 찾아갑니다. 가서 꺼꾸러져도 자기집  앞에 가서 꺼꾸러져 가지고 거기서 쓰러져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가 꺼꾸러져서 잡니다.

 그러냐?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을 항상 자기집을 드나들었기 때문에 술에 취해가지고 완전히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어도 자기집을 찾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지옥에 가는 것도 살아서 지옥 가는 행위를 많이  사람은 틀림없이  몸뚱이를 버리고 영혼이   지옥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살아서 지옥에  가는, 천당에 가는 연습을 많이  사람은  떨어지자마자 천당에 가는 거고, 살아서 극락(極樂) 가는 연습을 많이  사람은  떨어지자마자 쏜살같이 극락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서 극락에 가는 연습, 살아서 도솔천 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가는 연습이 바로 이뭣고?’ 이것입니다.


탐심이 나도 바로 거기서 이뭣고?’  버리면, 탐심의  생각 일어날  그것이 구체화되기 전에 탁! 이뭣고?’  버리면 영락없이 지옥으로  차를 타려다가  타버리고 극락으로 가는 차에 올라탄다면 물어  것도 없이 극락에  거여.


그래서 이뭣고?’ 천하에 간단하고 별로 맛은 없지만, 내가 바로 부처요, ‘이뭣고?’ 바로 살아서 극락에 가고, 살아서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연습이고, 바로  생각에 여래(如來)의 경지(境地)에 올라가는 공부라고 하는 것을 믿고 고대로 실천한다면 세상이 이렇게 복잡하고 혼탁하고 그래도 한탄할  없습니다.

어려운 고비고비 만날 때일수록 더욱 정신을 가다듬고 이뭣고?’ 열심히 한다면 거기서부터서  지상에 극락이 되어가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엄동설한(嚴冬雪寒) 소한, 대한 때는 이대로 가다가는  얼어죽을  같지만  시간에 지혜롭게 건강을 관리하고  하다보면 금방  입춘, 우수가 돌아와서 봄이  거와 마찬가지로,

세상이 이렇게 어렵고 힘들고 그래도 ! 정신만 차리고 이뭣고?’ 열심히 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직장, 자기가 해야  일을 찾아서  속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다보면 머지않아서 우리도 잘살게 됩니다.


 사람 한 사람이 그러한 마음으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어디서 무엇을 하드라도 자기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하다보면 반드시  살아  길이 있습니다.  국민이 그렇게 노력할  우리나라는 잘사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죽을  같지마는  살길이 열리고 좋은 세상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역사는 누가 눈에  보이는 어떤 존재가 있어서 역사를 만든  아니라 내나 인간이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좋은 역사도 만들고, 어려운 시대를 좋은 시대로 맨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세계의 주인이기 때문에 각자 주인이 자기 살림을  돌보고 자기 일을 잘할   집안도 잘되고 회사도 잘되고 사회도 올바르게 되어가는 것입니다.(814~2437)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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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佛供 부처 /이바지할·바칠 ) ; 부처님 앞에 ((·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번뇌(煩惱 번거러울 /괴로워할 ) ; ①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어지럽히고[煩亂, 煩勞, 煩擾] 괴롭혀 고뇌케[逼惱, 惱亂] 하므로 번뇌(煩惱) 표현. 근원적 번뇌로서 탐냄() · 성냄() · 어리석음() 등이 있다.

②나라고 생각하는 사정에서 일어나는 나쁜 경향의 마음 작용.   앞의 () () ()하여 탐욕 · 진심(瞋心) · 우치(愚癡)등에 의하여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몸과 마음을 뇌란하는 정신 작용.

불교는 중생의 현실을 ··(··) 삼도(三道) 설명한다.  번뇌[] 의해 중생이 몸과 마음의 행위[身口意 三業] 일으키게 되면, 이로써 3 6도의 생사윤회에 속박되어 고통[] 과보를 받게 된다.

*보리(菩提) : [] bodhi  () • () • ()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 —> ) ‘보리 읽는다。따라서 보제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것이다.

*깨달음 ; ().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어폐(語弊 말씀 /해어질·쓰러질 ) ; ①적절하지 아니하게 사용하여 생기는 말의 폐단이나 결점. ②남에게 오해를 일으킬  있는 .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 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 '타는 '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삽삼조사(卅三祖師) : 삼십삼세 조사(三十三世祖師).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부처님을 대신할  교단(敎團) 어른을  분씩 정하여 내려왔다。그것은 스승되는 어른이  제자들 가운데서 빼어난 이를 선택하여 () 전하고,  증거로써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衣鉢) 전해 주었다.

그리하여 인도에서 1.가섭존자, 2.아란존자, 3.상나화수....이렇게 전승되어 28 되는 달마대사(達摩大師) 중국에 와서 중국의 초조(初祖) 되고, 그로부터 2 혜가, 3 승찬, 4 도신, 5홍인, 6 혜능대사(慧能大師) 내려왔는데,  33인의 조사를 삽삼조사라 한다.

육조 혜능에 이르러서는 불법을 대중화하기 위하여 정통(正統)으로 내려가는 전례를 폐지하고, 따라서 의발을 전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육조 스님  화두(話頭)라고 하는, ‘이뭣고?’라고 하는 것이 나왔다’ ;

[참고] 송담스님(No.264)—1985 4 첫째 일요법회에서.

흔히 화두하면 이뭣고?’ 시삼마(是甚) 화두를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러냐 하면은 화두 가운데에 최초의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이기 때문에 이뭣고?’ 많이 말씀을 하게 됩니다.


화두(話頭)라고 하는 말은 임제(臨濟) 스님 이후로 임제종에서  화두라고 하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마는, 임제 스님 이전에 육조(六祖) 스님도 화두라고 하는 말은 사용하지 아니했지만,

내게  물건이 있으니,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 위로는 하늘을 기둥하고 아래로는 땅을 떠받치며, 밝기로는 해보다  밝고 검기로는 옻칠보다도  검은데, 항상 동용(動用)하는 가운데 있으되, 동용하는 가운데서 거두어 얻지 못하니,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을 했습니다.


 하택신회(荷澤神會)라고 하는 제자가 터억 앞에 나와서, ‘그것은 제불지본원(諸佛之本源)이며 모든 부처님의 근원이며, 신회지불성(神會之佛性)이로소이다.  하택신회, 저의 불성(佛性)입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육조 스님이 뭐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도 그릴 수도 없다고 내가 그랬거늘, 어찌 불성이니 제불의 본원이니 하고 이름을 붙이는고. 니가 앞으로 공부를 해서 일가(一家) 이룬다 하드라도 너는 지해종사(知解宗師)밖에는 못 되겠다. 불교학자밖에는  되겠다


 불교()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참나 깨닫는 것이 목적인데, ‘앞으로 니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일가를 이룬다 해도 지해종자(知解種子)밖에는 못 되겠다 이렇게 점검을 하셨습니다.


그리자 남악회양(南嶽懷讓) 왔습니다. 와서 터억 절을 하니까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이렇게 육조 스님이 물으셨습니다.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물음에 대해서  맥혀서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어, 몸을  바를 몰랐습니다.

하택신회는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니, 무슨 하택신회의 불성이니 이렇게 즉각  대답을 했는데, 남악회양은 육조 스님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고 묻는데 대해서, 앞이  맥혀 가지고  바를 몰라.  뒤로 8 만에사 확철대오(廓徹大悟) 했습니다.


8 동안을 대관절 이게 무슨 물건인고?’ 앉아서도  생각, 서서도  생각, 밥을 먹으면서도  생각, 일을 하면서도  생각, 똥을 누면서도  생각, ‘대관절  무슨 물건인고?’ 이렇게 하기를 8 만에사 확철대오를 했어.


그래 가지고 육조 스님 앞에 가서 설사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육조 스님이 환가수증부(還可修證否), 도리어 닦아 () 것이 있느냐?’하니,

수증(修證) 즉불무(卽不無)어니와 오염(汚染) 즉부득(卽不得)입니다. 닦아 () 것이 없지를 않지마는 오염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너도 또한 그렇고 나도 또한 그렇다 이렇게 해서 인가(印可) 받게  것입니다.


 참선법, 활구참선법은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량분별(思量分別) 더듬어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남악회양 선사처럼 대뜸 처음부터서  맥혀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캄캄한 밤에 기둥에 이마빡을 부딪친 거와 같은, 갑자기 걸어가다가 기둥이나 벼람박에 이마빡을 부딪쳤을  그때 상황이 어떻습니까? 앞뒷이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다못  맥혀 가지고,   없이 이뭣고?’ 그뿐인 것입니다. 이렇게  맥혀서 앞뒷이 끊어져야  공부를 옳게  나가는 것이지,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 이론, 무슨 철학, 불교 경전에 있는 부처님 말씀, 그것을 갖다가 아는 대로 끌어다가 이렇게 분석을 하고, 종합을 하고, 비교를 하고, 적용을 하고, 이렇게 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6131~6722)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등등상속(燈燈相續) ; () 중생의 무명(無明)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 비유한 ,  진리의 () 스승이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 ; 인과(因果)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즉해서(-- ·즉시 ) ; .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순간 바로. 당장에 ).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 ; 어떤 특정한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체처 일체시에 다못 일여(一如)하게 화두에 대한 의심을 관조해 나가는 ().

[참고] 송담스님(No.299)—1986 5 첫째 일요법회 법문에서.

법문을 듣고 참선을 하신 분은 일체처 일체시가 바로 정진(精進)이여. 그래서 무처선(無處禪) 무시선(無時禪)’이거든. ‘어느 곳이고 () 아닌 곳이 없고, 어느 때고 참선 아닌 때가 없다 그래서 무처선(無處禪) 무시선(無時禪)’이라 하는 것이여.

그래서 걸음 걸음이 미륵부처님이 탄생하신 곳이요, 생각 생각이 석가여래가 탄생하신 곳이어야 한다 그런 것이 바로 이러한 도리를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3019~312)


[참고] 송담스님(No.152)—1981 10 첫째일요법회(참선법B)에서.

견색시증처(見色是證處)  문성시증시(聞聲是證時)니라  염념석가출세(念念釋迦出世)  보보미륵하생(步步彌勒下生)이니라

견색시증처(見色是證處). 어떤 색상을 보는 그때가 바로 참나 깨달을 때요. 문성시증처(聞聲是證處). 어떤 소리를 듣는 그때가 참나 증득(證得) 바로  곳이드라

그렇게  생각  생각을 무엇을  때마다, 무슨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렇게 (화두를 들고) 다져 나가면,  생각 일어날 때마다 그때가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신 때요,  걸음 걸음 걸어가는   걸음  걸음이 바로 미륵 부처님이 하강하시든 바로 그것이더라.(4122~449) - (게송) ‘견색시증처~’ ; [금강경오가해] 정심행선분(淨心行善分) 함허 설의(說誼) 게송 참고.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 ; (산스크리트어:karma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 행위에 따라받는 고락(苦樂)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선불장(選佛場) ; 부처[] 뽑는[] 장소[]라는 . 부처님을 만들어 내는 장소라는 .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 승당(僧堂). 선방(禪房).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 방거사(龐居士) 게송이 다음과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無爲)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 급제하여 돌아가네.’ [고봉화상선요어록] (통광 스님 역주) p37, 46에서.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삼도고(三途苦, 三塗苦) ; 악한 일을  중생이  과보로 받는다는 3가지 미혹한 생존(지옥아귀축생)에서의 고통.

*사생(四生) ;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가지 ().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이른다.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 ( : 의지에 기초한 행위)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 있다.

*고주망태 ; 술을 많이 마셔 취하여 정신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

*인사불성(人事不省 사람 인/일 사/아니·못할 불/살필 성) ; 사람[]으로서 지켜야  [] 살피지[] 못함[]. 정신이 흐리멍덩한 상태.

*극락(極樂) ; 극락세계(極樂世界). 극락정토(極樂淨土). 산스크리트어 sukhāvatī  아미타불이 계시는 청정한 국토로,  세계에서 서쪽(西方)으로 십만억 불토(佛土)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일체의 괴로움이 없고 자유롭고 지극한 즐거움만 있는 세계. 수가마제(須呵摩提, 須訶摩提), 수마제(須摩提) 등으로 음사하고 정토(淨土), 안락(安樂), 안양(安養), 서방정토(西方淨土), 낙방(樂邦) 등으로도 한역한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의 하나。 범어 Tathagata () () 진여(眞如) 뜻이니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 뜻。  여거여래(如去如來)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경지(境地 지경·경계 / ) ; 정신이나 몸이 도달해 있는 어떤 상태.

*엄동설한(嚴冬雪寒 혹독할 /겨울 / / ) ; 혹독하게[] 추운 겨울[] [] 내린 뒤의 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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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031) 깨닫는 인연—잠시도 본참화두를 놓쳐서는 안된다 / 5가지의  은혜 / 아난과 조달의 지옥 대화 / 사구참선과 활구참선 / 여섯 마리의 짐승, 육적.


밥을 먹다가 깨달을는지, 똥을 누다가 깨달을는지, 걸어가다가 깨달을는지, 누워서 깨달을는지, 일을 하다가 깨달을는지, 어디에서 깨달을는지를모르기 때문에 언제 어데서라도 자기의 본참화두를 정신을 바짝 차려서 염념(念念)이 놓치지 아니하고 본참화두에 대한 간절한 의심(疑心)을 놓쳐서는 안된다.

다섯 가지의  은혜를 우리는 받고서 지금 살고 있기 때문에  은혜만 받고서 갚지 아니한다면 우리는 내생에  내생에 무량겁을 두고  빚을갚어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빚을 곱게  갚을 수가 있느냐? 정법(正法)에 귀의(歸依)해 가지고 내가  마음을 깨달어야만  빚은 한푼도 남기지 아니하고  갚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선은 차츰차츰 알아 들어가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결론을 내려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무조건(無條件)입니다. 무조건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이뭣고?’ 다못   없어야만 되는 것이고  맥혀야만 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031)—76 12 관음재일 법문(76.12.24.)

(1) 약18분. (2) 약 12분.

(1)------------------


병진년도 오늘 섣달 관음재(觀音齋)를 마지막으로 해서 법회는 끝나는  같습니다. 금년도 마지막 법회를 기해서 우리는 전강 조실 스님의 신해년에 설하신 참선법(參禪法)에 대한 법문(法門)을 들었습니다.

오늘 법문은 매우 깊고 고준해서 처음 오신 분이나, 여기에 나오신  오래 되시지 아니하신 분은 조금 이해하시기 어려운 대목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조실 스님 설하신 내용을 잠깐 말씀을 드리면은  처음에 임진왜란  승병대장으로 왜적(倭敵)을 물리쳐서 선조 대왕이 의주까지 피난을 가셨던 것을 다시 서울로 환도해 모신 서산대사(西山大師)께서 참선(參禪)을 하시다가 깨달으시고 그리고서 읊으신 게송(偈頌)을  처음에 읊으셨습니다.

서산대사께서는 ‘내가 이제 낮에  우는 소리를 듣고서 장부(丈夫)의 큰 일을 마쳤노라 이러한 내용의 (詩)를 읊으셨던 것입니다. 서산대사는 우는 소리를 듣고서 견성(見性)을 하셨습니다.


과거에 도인(道人)들이 견성을 하실 때에 서산대사는  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으셨지마는 어떠한 도인은 발갛게 복숭아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자 찰나에 깨달으신 도인도 있고,  여름에 발을 쳐 놨는데 그 발을 거두면서 홀연히 깨달으신 분도 계시고,

대빗자리로 마당을 쓸다가 거기에서 튀는 돌멩이가 부딪쳐서 나는 소리를 듣고 깨달으신 분도 계시고, 시가(市街) 지나다가 장꾼들이 멕사리를 잡고 이놈 저놈’하고 욕지거리를 하면서 주먹질을 하고 싸우는  소리를 듣고 깨달으신 분도 계십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개천에서 발을 씻으면서 서로 선객(禪客) 스님네들이 이야기하다가 ‘무무(無無)도 역무(亦無)다’하는 그러한 말이 조실 스님 귀에들어오자마자 대오(大悟)를 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과거 도인이 여러 가지 경우에 깨달으셨느냐. 깨달으신 경우를 여러 가지로 이렇게 말씀을 해드렸냐 하면은 우리도 언제 어디에서 깨달을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에서 깨달을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잠시도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놓쳐서는 아니  것입니다.


밥을 먹다가 깨달을는지, 똥을 누다가 깨달을는지, 걸어가다가 깨달을는지, 누워서 깨달을는지, 일을 하다가 깨달을는지, 어디에서 깨달을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언제 어데서라도 자기의 본참화두를 정신을 바짝 차려서 염념(念念)이 놓치지 아니하고 본참화두에 대한 간절한 의심(疑心)을 놓쳐서는아니 되는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한번 깨달을  있는 기회는 그렇게 날마다 자기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량겁(無量劫)을 통해서  한번 깨달을  있는  인연이 잠깐 한눈파는 바람에 지나간다면 다시 언제 그러한 기회가 자기에게 돌아올는지 그것은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몸이  세상에,  자리에 존재하게 되는데 있어서 우리는 이루  헤아릴  없는 은혜에 의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