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설날차례)2020. 12. 6. 19:11

 

 

§(636) 설날 통알 / 설날차례 / 참다운 차례는 전강 조실 스님의 ‘생사(生死) 없는 최상승(最上乘) 법문(法門)’을 영가께 들려 드린 것 / (게송)월마은한전성원~ / 정중로월(井中撈月) 생사(生死)는 본래 없다 /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

 

영단에 정성으로 올린 여러 가지 음식과 과일을 올려서 앞으로 법요식을 거행하게 되겠습니다마는, 정말 참다운 차례(茶禮)는 전강 조실 스님의 생사 없는 진리의 말씀을 들려 드리므로 해서 우리의 선망부모와 조상께 참으로 소중한 정성이 담긴 차례를 올린 것이다고 산승(山僧)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오늘 정월 초하룻날 왜 이런 생사 문제를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은 사실은 생사 속에 살고 있지마는 ‘생사 없는 진리’가 있기 때문에, 생사 없는 진리를 확실히 깨달을라면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이 대관절 무엇이냐? 생사의 근본이 무엇이냐? 그 근본을 확실히 우리가 이해하고 확실히 믿고, 그 생사 없는 도리를 바른 공부를 통해서 수행을 통해서 확실히 깨닫고 보면, 분명히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해탈도를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이나 산승(山僧)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636)—2000년(경진년) 설날 통알 및 설날차례(2000.2.2) (용636)

 

약 22분.

 

[설날 새벽 예불 때]

 

매년 정월 초하루날 새벽에는 통알(通謁)이라고 하는 의식을 거행해 오고 있습니다.

결제(結制) 중이고 그래서 낱낱이 모든 존경하는 어른들께 세배(歲拜)를 다닐 수가 없기 때문에 자기가 있는, 수도(修道)하고 있는 도량(道場)에서 합동으로 세배 올리고자 하는 어른들께 세배를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랜 전통으로 그렇게 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용화사에서도 옛날부터서 그렇게 해 오고 있는데, 따라서 여기에 있는 모든 스님네나, 보살님네들, 거사님네들도 그렇게 아시고 개별적인 세배를 생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해를 하시고 지금부터서 거행하는 통알에 진심으로 정성스러운 세배를 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설날차례 법요식 때]

 

오늘 새해 설날을 맞이해서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 법보가족 여러분들이 이 법당에 모이셨습니다.

오늘 오신 뜻은 용화사 법보전(法寶殿)에 모신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먼저 가신 가족 · 친지의 영가(靈駕)께 영단(靈壇)에 차례(茶禮)를 젓수기 위해서 모다 참례를 하셨습니다.

 

일반 가정에서는 옛날부터 조상의 신주(神主), 위패(位牌)를 모시고 차례를 젓수고, 그런데 우리는 이 법보전에 우리의 선망부모와 조상들의 영가를 모셨기 때문에 여기서 차례를 올리기 위해서 모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전강 조실 스님의 ‘생사(生死) 없는 최상승(最上乘) 법문(法門)’을 영가께 들려 드리고 또 우리도 그 법문을 다 같이 경청을 했습니다.

 

영단에 정성으로 올린 여러 가지 음식과 과일을 올려서 앞으로 법요식을 거행하게 되겠습니다마는, 정말 참다운 차례(茶禮)는 조실 스님의 생사 없는 진리의 말씀을 들려 드리므로 해서 우리의 선망부모와 조상께 참으로 소중한 정성이 담긴 차례를 올린 것이다고 산승(山僧)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아무리 음식을, 갖가지 음식을 많이 차려놓은들 영가가 얼마나 그것을 잡숫고 생사해탈을 하시게 될는지, 다맛 우리의 정성으로 올린 것뿐이지 그것은 아무도 보증을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마는, 생사 없는 진리의 말씀을 영가께 들려 드리므로 해서, 영가가 생사의 고해(苦海)에서 벗어나서 생사 없는 해탈도(解脫道)로 가신다고 하는 것은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심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미 차례는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우리의 조상들에 대한 차례는 원만히 다 마쳤습니다. 다만 앞으로 요식 행위만이 남아 있습니다.

 

산승이 여기에서 올라와서 앞에 나와서 여러분께 나온 기념으로 게송(偈頌)을 하나 읊고자 합니다.

 

월마은한전성원(月磨銀漢轉成圓)한데  소면서광조대천(素面舒光照大千)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연비산산공착영(連臂山山空捉影)하니  고륜본불낙청천(孤輪本不落靑天)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찰나생멸무상법(刹那生滅無常法)이요  취산순환유루인(聚散循環有漏因)이로다

나무~아미타불~

금오출몰촉년광(金烏出沒促年光)한데  옥토승침최로상(玉兎昇沈催老像)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찰나생멸무상법(刹那生滅無常法)이여. 찰나 찰나는 한 생각 속에 구백생멸(九百生滅)이 있는데, 그 구백생멸의 단위가 일찰나(一刹那)여.

구백 찰나가 모여서 한 생각인데, 1초의 몇천 분의 일이 될는지, 그 시계가 똑딱똑딱똑딱 지내가는 그 사이에 우리의 생명도 그렇고, 모든 중생의 생명도 그렇고, 산천초목도 다 죽음을 향해서 치닫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모였다가 흩어지고, 한 가족으로 한 부부로 만났다가 생이별 사이별하고, 부모자식 간의 인연으로 태어났다가도 부모가 먼저 죽고, 자식이 먼저 죽기도 합니다.

그렇게 만났다가 헤어지고 헤어졌다가 다시 또 내생(來生)에는 인연 따라서 또 인간 세상에서 만날 수도 있고, 천상에 가서 만날 수도 있고, 축생계에서 만날 수도 있고, 지옥에서 만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나되—인연 따라서 만나기는 하지마는, 한 생(生)을 바꿀 때 깨끗하게 전생사(前生事)를 망각을 해 버리기 때문에 무슨 인연으로 만난지도 모르고 또 만나서 가족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런 것이 유루(有漏)의 인연(因緣)이요, 무상법(無常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는 정들었던 부모를 여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들었던 아들과 딸을 여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다 인연 따라서 만나고 인연이 다하면 또 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 가운데에서 생멸(生滅)하고, 취산순환(聚散循環)하는 것이 금오출몰촉년광(金烏出沒促年光)이요, 해가 동쪽에서 떴다가 서쪽으로 지고 또 달이 떴다가 또 달이 지고 하는 이런 것이 우리의 생명을 재촉하는 북소리와 같은 것입니다.

이미 사형(死刑) 언도(言渡)를 받고 사형장으로 끌려가는데, 북을 치면서 계속 가 가지고 마지막에 사형을 당한 거와 같은 그러한 상황에다가 비유할 수가 있고, 현실적으로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죽음이 동시에 판결이 나 있는 것입니다. 다못 어느 날 어느 시에 집행이 되느냐? 그것만 모를 뿐이지 이미 우리는 죽음을, 딱 사형 언도를 받고 있는 처지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정월 초하룻날 왜 이런 생사 문제를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은 사실은 생사 속에 살고 있지마는 ‘생사 없는 진리’가 있기 때문에, 생사 없는 진리를 확실히 깨달을라면 생사(生死)라고 하는 것이 대관절 무엇이냐? 생사의 근본이 무엇이냐?

그 근본을 확실히 우리가 이해하고 확실히 믿고, 그 생사 없는 도리를 바른 공부를 통해서 수행을 통해서 확실히 깨닫고 보면, 분명히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해탈도를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병을 낫을려면은 그 병의 근원을 알아야 거기에 따라서 침을 맞고, 쑥을 뜨고, 약을 먹고 물리치료를 받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원인을 모르고서는 병을 낫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월마은한전성원(月磨銀漢轉成圓)이요. 저 달이 하늘에서 돌고 돌다 보면은 초승달이 차츰차츰 커져 가지고 보름날이 되면은 완전히 둥그런 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둥근 달이, 환하게 쟁반 같은 달이 떠 가지고 온 세계를 다 비춥니다. 대천세계(大千世界)를 다 비춘 것입니다.

 

그런데 잔나비는 어느 날 숲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놀다가 숲속에 있는 샘을 들여다보니까 그 속에 둥근달이 비추거든. 그러니까 하늘에 떠 있는 달이 물에 빠졌다고 야단법석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저 달을 건져서 다시 허공으로 돌려보내야지, 저 물속에 잠겨버리면 온 세계가 어두워지니 어떻게 할 거냐?' 잔나비의 우두머리가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가 팔에 팔을 연결을 해 가지고 저 물속에 빠져있는 달을 건지자'

 

이래 가지고 팔에 팔을 연결해 가지고 수십 마리가, 한 놈은 나무를 붙잡고 팔을 늘이면은 그다음에는 그 팔을 잡고 또 팔을 늘이고 해 가지고, 간신히 수십 마리가 팔에 팔을 연결해 가지고 물에 달락말락 하니까, 그 여러 마리가 매달리니까 그 중에 팔 약한 놈이 손을 갖다가 놔가지고 수십 마리가 물속에 다 빠졌습니다.

그것이 연비산산공착영(連臂山山空捉影)입니다. 산산이가 팔을 연결해 가지고 물속에 있는 달을 건지려고 하나 그것이 건져지겠습니까?

 

고륜본불낙청천(孤輪本不落靑天)이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원래 그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달빛이 물에 비춘 것뿐이라고 이것입니다. 그것을 안다면은 어찌 물속에 있는 달을 건지려고 할 것이냐. 이런 고인(古人)의 게송인데.

 

이건 무엇을 비유해서 한 말이냐 하면은, 우리는 분명히 이 법당 안에 수만의 영가가 봉안(奉安)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우리 눈으로 분명히—이승을 하직(下直)한, 이승에 처자 권속과 부모형제를 놔둔 채 저승으로 떠나신 그런 영가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걸 ‘돌아가셨다’ 그러고, ‘죽었다’하고, 교통사고나 뭐 병고로 모다 그렇게 모다 사실 돌아가셨다고 다 말들을 하는데.

 

아까 조실 스님의 법문 가운데도 있었습니다마는,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죽었다, 태어났다' 그런 것이지, 생사(生死)로 인증(引證)을 하는 것이지,

마치 허공의 달이 허공에 떠 있으면서 달빛만 물에 비춘 거와 마찬가지로, 원래는 이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생사가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이나 산승(山僧)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말씀이지만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이고, 이 공부를 열심히 함으로써 진실한 법보제자(法寶弟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천도(薦度) 차례 법요식이 끝나면은 떡국을 맛있게 잘 끓여 놨습니다. 법요식(法要式)이 끝나면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맛있는 떡국을 잘 잡숫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처음~21분20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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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알(通謁) ; 불교의 신년하례식(新年賀禮式)으로 세알(歲謁)이라고도 한다. 새해 첫날 삼세(三世)의 모든 삼보(三寶 불보살·법보·승가)와 호법신중(護法神衆), 대중에게 세배를 드리는 의식이다.

우선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법보와 승보에게도 삼배를 올린다. 또 현재 살아계신 · 돌아가신 모든 부모, 원근친척 그리고 온 법계의 모든 도반들 또한 함께 참석한 대중들에게 세배를 올리는 것.

 

결재중이고 그래서 낱낱이 모든 존경하는 어른들께 세배(歲拜)를 다닐 수가 없기 때문에 자기가 있는, 수도(修道)하고 있는 도량(道場)에서 합동으로,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이 우리가 세배(歲拜)를 올려야 할 존경할 만한 모든 성현(聖賢)과 모든 어른과 모든 선지식과 모든 도반들에게 이 자리에 서서 세배를 드리는 의식.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세배(歲拜) ; ①섣달그믐이나 설 무렵에 웃어른을 찾아뵙고 절을 함. 또는 그 절. ②세배(歲拜)는 '지난 한 해 동안 크고 작은 모든 좋은 인연과 또 나쁜 언짢았던 인연까지라도 깨끗이 다 청소를 하고 다 풀어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또 한 해를 시작합시다'라는 뜻.

*수도(修道) ; 불도(佛道)를 수행(修行)함.

*불도(佛道) ; ①불과(佛果).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 무상보리(無上菩提)를 말한다. ②불과(佛果)에 이르는 방법. 불과를 성취하여 성불하기 위한 인행(因行, 깨달음의 원인이 되는 행)을 말한다. ③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는 가르침.

*수행(修行 닦을 수/행할 행) ; ①궁극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실천하는 것. 행하는 것. ②오로지 한 생각에만 집중하여, 한결같이 그것을 잊지 않고 그것 외에 다른 생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노력.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법보전(法寶殿, 現 대웅전) ; 법보전(現 대웅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송담스님(No.243)—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영단(靈壇) ; 영가의 위패를 두는 단(壇).

*차례(茶禮) ;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의 낮에 지내는 제사.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③(사람이 제사를)차려 올리다.

*신주(神主) ; 죽은 사람의 위패.

*위패(位牌 지위·높여서 어떤 사람 위/명찰·위패 패) ; 죽은 사람의 위(位 이름 · 지위. 높여서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를 모시는 나무패.

*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사도(四道) ; 번뇌를 끊고 해탈하는 과정을 네 단계로 나눈 것. ①가행도(加行道). 번뇌를 끊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 ②무간도(無間道). 간격이나 걸림 없이 지혜로써 번뇌를 끊는 단계. ③해탈도(解脫道).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④승진도(勝進道). 뛰어난 수행으로 해탈의 완성에 이르는 단계.

*게송(偈頌)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gāthā. 부처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노래 글귀로 찬미한 것.

게(偈)는 게타(偈陀 gāthā 가타伽陀)의 줄임말, 송(頌)은 그 뜻을 한역(漢譯)한 것으로 게송(偈頌)은 범어와 한어를 병칭(倂稱)한 것이다.

*(게송) ‘월마은한전성원~’ ; 『관음예문(觀音禮文)』에 나오는 게송. 舒 펼(서).

*(게송) ‘찰나생멸무상법~’ ; 『관음예문(觀音禮文)』의 무상게(無常偈)에 나오는 게송. 促 재촉할·빠를(촉), 催 재촉할·독촉할(최), 金烏(금오) - '해'를 가리키는 말, 玉兎(옥토) - '달'을 가리키는 말.

*구백생멸(九百生滅) ; 9백번 생겨나고 멸하는 것. 이것은 1소찰나(一小刹那) 동안에 생멸하는 숫자를 나타낸 것이다.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에 (제2 관공품觀空品) '九十刹那爲一念 一念中一刹那經九百生滅' '90찰나가 한 생각[一念]이 되고, 한 생각 가운데 1찰나에 구백생멸이 지난다'

『인왕경소(仁王經疏) 상권(末)』에 (신라 때 원측圓測 지음) ‘以九十小刹那成一大念 一大念中一小刹那 復有九百生滅... 若生滅合論 卽有九百生滅 別論卽有一千八百’ ‘90소찰나(小刹那)는 1대념(大念)을 이루고, 1대념에 속하는 1소찰나에는 다시 9백생멸이 있다. ... 생멸을 합해서 논하면 9백생멸이 있는 것이고 따로 논하면 천팔백번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찰나(刹那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 ; ①지극히 짧은 시간. 75분의 1초(약 0.013초)에 해당한다. ②어떤 일이나 현상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때. 刹과 剎은 동자(同字).

*전생사(前生事) ; ①'전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살았던 삶)'에 있었던 일. ②'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이미 지나간 일'을 일컫는 말.

*유루(有漏) ; ①샘[漏]이 있는[有].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는. ②누(漏)는 마음에서 더러움이 새어 나온다(漏泄 누설)는 뜻으로 '번뇌'를 말함. 번뇌의 더러움에 물든 마음 상태, 또는 그러한 세계. 온갖 번뇌와 망상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차별이나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 ③생존에 집착하는 번뇌.

*인연(因緣) ; ①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관계. ②어떤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연줄). ③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因)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緣).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언도(言渡) ; 선고(宣告). 법정에서 판사가 판결의 결과를 알리는 일. 이로써 재판의 효력이 생김.

*대천세계(大千世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약칭. 삼천세계(三千世界)라고도 함.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정중로월(井中撈月 우물 정/가운데·속 중/잡을·건질 로/달 월) ; ‘우물 속에 있는 달을 건진다’
[참고]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 제7권 (東晉天竺三藏佛陀跋陀羅共法顯譯) ‘明僧殘戒之餘’
佛告諸比丘 過去世時 有城名波羅奈 國名伽尸 於空閑處有五百獼猴 遊行林中 到一尼俱律樹 樹下有井 井中有月影現 時獼猴主見是月影 語諸伴言 月今日死 落在井中 當共出之 莫令世間長夜闇冥 共作議言 云何能出 時獼猴主言 我知出法 我捉樹枝 汝捉我尾 展轉相連 乃可出之 時諸獼猴卽如主語 展轉相捉 小未至水 連獼猴重 樹弱枝折 一切獼猴墮井水中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과거세에 가시(伽尸)라는 나라에 파라나(波羅奈)라는 성이 있었다. 한적한 곳에 오백 마리의 원숭이가 살고 있었는데 숲속을 유행 중에 한 니구율나무 밑에 이르렀을 때, 나무 밑에 있는 우물에 달이 비치고 있었다.
이때 원숭이 무리의 우두머리가 우물 속 달 그림자를 보고 무리들에게 말했다. “지금 달이 우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데 세상이 어두워지지 않게 꺼내줘야 하겠다” 함께 의논했다. “어떻게 해야 꺼낼 수 있을까?”
우두머리가 말했다. “내가 꺼내는 방법을 안다. 내가 나뭇가지를 잡고 너는 내 꼬리를 잡고 그렇게 서로 이어서 늘어뜨리면 꺼낼 수 있다” 원숭이 무리가 우두머리의 말에 따라 서로의 꼬리를 잡고 늘어뜨렸는데 물에 이르기 전에 이어진 원숭이들이 너무 무거워 나뭇가지가 부려져 모두 우물 속으로 떨어졌다.

*잔나비 ; ‘원숭이’의 사투리.

*산산(山山)이 ; 원숭이.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봉안(奉安) ; 죽은 사람의 위패(位牌), 화상(畵像)이나 시신 따위를 모시어 둠.

*이승 ; 지금 살고 있는 현실 세계나 일생 동안을 이르는 말.

*하직(下直) ; ①먼길을 떠날 때 웃어른에게 작별을 아룀. ②'죽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저승 ; 사람이 죽은 뒤 그 영혼이 가서 산다는 세상.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생사가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 생사는 본래 없다[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s]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칠 타/이룰 성/한 일/조각 편) : ①'쳐서[打] 한 조각(一片, 덩어리)을 이룬다[成]'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52분33초~54분46초) [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얼굴·모습).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법보제자(法寶弟子) ; [참고] 89년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여기 (용화선원 대웅전 법보단)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대웅전 법보단, 舊 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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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설날차례)2016. 2. 8. 14:41

 

 

§(378) ‘설날’로 국가공휴일 / 만년위패 제도, 법보가족 / 상대방은 곧 내 마음의 거울 / 아공(我空) 법공(法空) 구공(俱空), 3공(三空) / 세계일화(世界一花).

여기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은 저 사람 마음과 내 마음이 화합이 되고 하나가 되느냐?’ 하는 것은 상대방을 힘으로 누르고 꾀로써 정복을 해 가지고는 하나가 되는 법이 없습니다.
첫째, 내 마음을 비워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비움으로써 내 마음이 맑아지고 깨끗해지고 착해지면 자연히 상대방이 나를 좋게 보고, 좋은 마음으로 또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상대방은 곧 내 마음의 거울이고, 내 얼굴은 상대방의 마음의 거울인 것입니다. 피차(彼此)가 그 거울에 나타난 자기의 모습을 거울을 보고 깨끗이 자기의 얼굴에 묻은 때는 닦을 줄 알면서, 진짜 자기의 마음의 모습이 상대방의 얼굴에 나타난 것인데 그것을 보고는 자기의 마음의 때를 닦을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얼굴에 묻은 때는 닦을 줄 알면서 왜 자기의 마음의 때를 닦을 줄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집안에 미운사람, 이웃의 미운 사람 그 사람 얼굴은 바로 자기 마음의 거울인 것입니다. 그래서 미운 사람을 보고 자기도 성을 내면, 성을 낼수록 그 사람 상대방 얼굴은 점점 더 고약해 질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자기의 마음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뭣고?’로서 자기 마음의 때를 닦고서 고운 마음으로 상대방을 상대하면 상대방의 마음도 굳었던 얼굴이 풀어질 것입니다.


**송담스님(No.378)—89년 설날차례(89.02.06) (용378)

약 20분.



기사(己巳) 새해를 맞이해서 차례(茶禮) 법요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의 대사자후(大獅子吼)로 오늘 차례를 모시게 될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원근 친척과 이 법보단(法寶壇)에 모신 만년위패(萬年位牌) 여러 영가(靈駕)분과 이 도량 내외 우주법계의 무량 법계 영가들이 일시에 도탈(度脫)을 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저 신라 이전부터서 내려오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설날이 양력(陽曆)을 쓰게 됨으로 해서 그 전통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개별적으로 가정에 따라서 차례를 젓수기도 하고 양력설을 쇠기도 하고,
근자에는 민속의 날이니 뭐니 해 가지고 갈팡질팡하다가 금년부터 정식으로 ‘설날’로서 국가적으로 공인하는 우리의 명절을 찾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부터 내려오는 우리 한국에서는 돌아가신 부모님으로부터 저 5대조 부모까지 집안에 사당(祠堂)을 모시고 거기에 위패내지 신주(神主) 가묘를 모시고서 명절에는 차례를 올리고, 제사 때에는 그 가묘와 신주를 모셔다가 제사를 올리고 그래 내려왔었습니다.
시대에 따라서 거의 집안에 사당을 모시는 집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저 시골에나 가면 혹 있을란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들은 발붙일 곳이 없어졌습니다.

조실 스님께서는 용화사 법보전에 만년위패 제도를 개설을 하셔서, 법보단이라고 합니다마는,
법보단을 개설을 하셔서 우리의 선망부모를 편안하게 모시고 조석으로 축원해 드리고 명절 때면 차례를 올리고, 모든 법요식 때마다 그 영가들을 초혼(招魂)을 해서 그 천도(薦度) 법요식에 떳떳하게 초대받아서 감응(感應)을 하시게 해드렸고,
법회 때마다 그 영가들은 우리의 살아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영가의 자리에서 법문(法門)을 듣고 업장(業障)을 소멸(消滅)해서 인연 따라서 좋은 곳으로 환생(還生)하시도록 이러한 참 고마운 그런 제도를 마련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영가들이, 발붙일 곳 없는 그 영가들이 편안한 자리를 마련하고 그렇게 법문을 듣고서 해탈(解脫)해 간 그러한 영가들이 많이 계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가정도 편안하고, 물론 그 영가도 해탈해 가니 좋지마는 그 유족 가정도 편안해지고, 사회도 편안해지고, 온 법계도 편안해질 것입니다.

영가는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마는 살아있는 사람의 이 소소영령한 마음자리, 그 영혼이 이 몸뚱이를 벗어버리면 영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 영가가 지은 업과 인연에 따라서 혹 천상에 태어나기도 하고 혹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도 하고 또는 다시 인도(人途)에 환생하기도 하고,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축생이나 아귀나 지옥에 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탈을 쓰느냐? 뒤집어쓰는 탈만 달랐지, 그 탈 속에 들어 있는 소소영령한 그 영가는 산 사람이나 돌아가신 분이나 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한국에 옛날부터서 내려오는 선현(先賢)들의 옛법에, 돌아가신 조상을 참 살아계실 때보다도 더 경건한 마음으로 사당을 모시고 꼭 받들고 또 산소에도 일 년에 몇 번씩 성묘(省墓)를 들이고 또 산소가 허물어지면은 벌초(伐草)도 하고 사초(莎草)도 해서 그렇게 잘 받들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전통 깊은 그 명절을 금년부터 되찾게 된 것은 대단히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돌아가신 영가를 잘 받드는 데에는 그와 같은 뜻도 있지마는 돌아가신 조상을 잘 받드는 그러한 옛법이 살아계신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나아가서는 이웃 어른, 다른 집 집안의 어른, 모든 어른들을 존경할 수 있는 마음을 거기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잘 받들 줄 모르는 사람은 또 살아계신 부모와 조부모를 잘 받들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은 이 부모에 대한 효사상은 거의 없고 연세가 몇 살 이상 넘으면은 의례히 양로원으로 갖다가 계시게 하는 제도가 발달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근자에 와서 차츰차츰 우리의 전통 의식은 잃어가고 서양풍속이 들어와 가지고 그것도 정립을 하지 못한 채 돌아가신 영가도 발붙일 곳을 잃고, 살아계신 노인들도 발붙일 곳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앞으로는 돌아가신 영가도 잘 받들 뿐만 아니라 살아계신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도 효성스럽게 잘 받들 수 있는 그러한 우리 한국의 전통 예법 사상이 다시 잘 회복을 해서 젊은 사람이나 나이 잡순 분이나 모두가 한 가족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

이 설날은 어렸을 때 그렇게 참 손꼽아서 기다리고 그랬던 기억납니다마는, 무엇이 그렇게 설날을 그렇게 기다렸던가? 참 그렇게 가슴 설레이는 나날을 보내면서 그 그믐날 저녁은 잠을 자지 아니하고 그랬던 것을 우리는 기억을 할 수가 있습니다.

조부모님 또 부모님께 세배(歲拜) 드리고, 이웃 모다 대소가(大小家) 어른들께 세배 드리고, 온 마을에 어른들을 집집마다 새 옷을 입고 다니면서 세배를 드렸고,
그리고 그날 하루는 널도 뛰고 윷도 놀고 연날리기도 하고 그리고서 온 마을이 패를 갈라서 줄다리기를 하고 또 부인들은 상육도 치고 이러면서 정초를 그렇게 참 즐겁게 지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일 년 동안 쌓인 모든 가슴속에 섭섭한 것, 원한 관계 모든 감정을 다 풀어버리고 서로 용서하면은 그래 가지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가족이 단합을 하고 대소가 끼리 화목을 하고, 이웃과 화목을 하면서 또 일 년을 새롭게 출발을 하고 설계를 하고 그렇게 향상해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배할 때에는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복 많이 받으십시오” 또 결혼을 아직 못한 사람은 좋은 베필을 만나도록 또 축복을 해 주고, 공부하는 사람은 또 공부 성취하라 그러고, 아들을 못 난 사람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으라고 또 이렇게 덕담을 해 주고,
그래서 온통 그날은 남 잘되기를, 자기 잘되는 거 보다도 만나는 족족 그 사람 잘되라고 그렇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축복을 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들이 결국은 서로서로 그 상대방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되는 그러한 찰나 찰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과 개인, 가정과 가정 또 이 사회, 국가 이렇게 해서 서로의 서로의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하는 그러한 기회로 승화시키는 그런 효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한 가정도 화합이 깨지면은 가정이 불행해지는 것이고, 어떠한 사회, 어떠한 그 회사라도 그 회사 내에 화합이 깨져서 서로 미워하고 모략하고 하면은 그 회사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도 모든 국민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서로 단합하고 그런 데에서 그 나라의 힘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멸망을 할라면은 간첩을 보내서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그 나라 민족의 민심을 갖다가 분열을 시키고, 이것은 그 전쟁을 이기는 데 절대적인 병법(兵法)인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더 올바르게 발전을 하고 훌륭한 나라가 될려면 어쨌든지 우리의 민족정기를 앙양을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는 서로서로를 믿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단합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부처님의 정법을 선양하는 뜻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은 저 사람 마음과 내 마음이 화합이 되고 하나가 되느냐?’하는 것은 상대방을 힘으로 누르고 꾀로써 정복을 해 가지고는 하나가 되는 법이 없습니다.

첫째, 내 마음을 비워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비움으로써 내 마음이 맑아지고 깨끗해지고 착해지면 자연히 상대방이 나를 좋게 보고, 좋은 마음으로 또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상대방은 곧 내 마음의 거울이고, 내 얼굴은 상대방의 마음의 거울인 것입니다.
피차(彼此)가 그 거울에 나타난 자기의 모습을 깨끗이 거울을 보고 자기의 얼굴에 묻은 때는 닦을 줄 알면서, 진짜 자기의 마음의 모습이 상대방의 얼굴에 나타난 것인데 그것을 보고는 자기의 마음의 때를 닦을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얼굴에 묻은 때는 닦을 줄 알면서 왜 자기의 마음의 때를 닦을 줄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집안에 미운사람, 이웃의 미운 사람 그 사람 얼굴은 바로 자기 마음의 거울인 것입니다. 그래서 미운 사람을 보고 자기도 성을 내면, 성을 낼수록 그 사람 상대방 얼굴은 점점 더 고약해 질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자기의 마음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뭣고?’로서 자기 마음의 때를 닦고서 고운 마음으로 상대방을 상대하면 상대방의 마음도 굳었던 얼굴이 풀어질 것입니다.

사람을 척 보면 인상이 고약하게 생긴 사람이 있습니다. 그 고약한 사람을 보고 나도 위아래 훑어보면서 아니꼬운 표정을 지면서 같잖은 아주 그런 얼굴을 지어 보십시오. 상대방은 점점 험악해질 것입니다.
내가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부드러운 말로 “아, 어디가 안 좋으십니까?” 이렇게 부드럽게 달라들면,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아주 간단한 방법입니다.

이렇게 해서 내 마음을 비우면 상대방의 마음도 비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공(我空), 인공(人空) 그래가지고 구공(俱空)이 되는 것입니다.  아공(인공), 법공(法空), 구공 이것을 3공(三空)이라 그러는데, 이것은 교리적으로 풀어서 얘기하자면 그렇습니다마는 ‘이뭣고?’ 한마디에 아공(인공)과 법공과 구공이 바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와 다른 사람과의 마음이 언제나 하나가 되고 이러한 운동이 가정에서 가정으로 해서 온 세계에 퍼져 나간다면 이것이 국가도 하나가 되고, 세계도 하나가 되어서 세계가 뿌리가 한 뿌리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한 꽃이 되도록 세계일화(世界一花)가 되도록,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거룩한 법(法)인 것입니다.

오늘 기사년 새해를 만나서 이러한 각오를 가지고 새 출발을 해서 모두모두 유루(有漏) 무루(無漏)의 모든 복(福)을 원만성취하시기를 바라면서 새해 인사에 가름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오늘 아침에 예불(禮佛)을 하고 십악참회(十惡懺悔) 하고 그리고서 이 도량에 유숙(留宿)한 우리 사부대중 모두가 다 세배를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새벽에 여기 계시지 못한 여러 신남신녀 여러분들도 우리가 법보가족이기 때문에 오늘 일제히 지금 일어서서 서로 이렇게 맞보고 세배를—목탁에 맞춰서 선 채로 세배를 함으로써 새해를 새 출발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어서십시오. 가운데를 향해서(중앙을 향해서 마주 서주십시오. 목탁에 맞춰서 반배를 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처음~19분23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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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茶禮) ;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의 낮에 지내는 제사.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법보단(法寶壇) ;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인 법보전(法寶殿) 안에 위패를 모신 단(壇).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도탈(度脫) ; ①생사의 고해를 건너 깨달음의 언덕에 이름. ②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남.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남.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③(사람이 제사를)차려 올리다.
*사당(祠堂) ;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셔 놓은 집. 또는 신주를 모셔 놓기 위해 조그맣게 집처럼 만들어 둔 곳.
*초혼(招魂) ; 죽은 사람의 혼을 부름.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감응(感應) ; 감응도교(感應道交). 부처님과 수행자의 마음이 교류하는 것. 중생의 신심, 선근(善根)이 모든 부처님•보살에게 통해서 그 힘이 나타나는 것. 중생의 신심이 진실하게 느껴져, 부처님과 보살이 답하는 것.
중생 기감(機感,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뜨거우면 부처님의 응(應)하는 마음도 또한 깊다. 그쪽과 이쪽이 사이를 두지 않음을 도교(道交)라 한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障礙)가 사라져 없어짐.
*환생(還生) ; 생명체가 윤회하여 다시 태어남.
*해탈(解脫) ;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내나 ; 결국에 가서는.
*선현(先賢) ; 옛날의 현인(賢人 어질고 지혜롭기가 성인에 견줄 만큼 뛰어난 사람).
*옛법 ; 옛 규칙이나 법도.
*사초(莎草) ; 무덤에 떼를 입혀 잘 다듬는 일. 또는 무덤에 입힌 떼.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대소가(大小家) ; 한집안의 큰집과 작은집을 아울러 이르는 말.
*상육 ; 정초나 겨울철에 많이 놀았던 주사위 놀이.
*같잖다 ; ①하는 짓이나 꼴이 제격에 맞지 않고 눈꼴사납다. ②말하거나 생각할 거리도 못 되다.
*달라들다 ; ‘달려들다(어떤 일에 열의를 가지고 끼어들다)’의 사투리.
*아공(我空) ; 인공(人空). 인무아(人無我).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아집(我執)에 대해,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다고 보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아집(我執)은 번뇌장(煩惱障)이라고도 하는데, 번뇌장은 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열반(또는 해탈)을 가로막아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하게 하는 장애라는 의미이다.—위키백과 '공(空)' 항목 참고.
*법공(法空) ; 법무아(法無我). 존재하는 만물 각각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법집(法執)에 대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실체로서의 자아는 없다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법집(法執)은 소지장(所知障)이라고도 하는데, 소지장은 참된 지혜, 즉 보리(菩提)가 발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라는 의미이다.—위키백과 '공(空)' 항목 참고.
*구공(俱空) :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의 경지에 차례로 도달한 후, 다시 그 아공(我空)과 법공(法空)까지도 버려 비로소 제법(諸法)의 본성에 계합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수행에 의해 이러한 경지를 증득한 것을 뜻한다.—위키백과 '공(空)' 항목 참고.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4분42초)
복(福)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有漏福)과 무루복(無漏福)이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유숙(留宿 머무를 류/묵을 숙) ; (사람이 어디에) 여장(旅裝, 여행할 때의 차림)을 풀고 묵음.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설날차례)2015. 2. 19. 14:13

>>> 용화선원 법문 유튜브에서 보고 듣기 --->유튜브로 바로가기


 

§(467) 대승심을 발하라 / 삼재의 원인은 탐진치(貪瞋癡) 삼독심 / ‘감사한 마음으로 살자’ / (게송)철수화개별시춘~ / ‘이뭣고?’로 재앙소멸, 소원성취, 견성성불 하시기를.

 

의상(義湘) 조사의 법성게(法性偈)에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다. 처음 마음 발할[發心] 때가 문득 바로 깨달은 곳이다’ 이러한 구절이 있습니다.

나한과를 증득한 것보다는 대승심을 발해서 도를 쉽게 이루지 못한 채 생사윤회를 영겁을 하더라도 소승심은 발하지 말고 대승심을 발하라 이겁니다. 한 생각 마음으로 소승을 바라면 소승이 될 수가 있고, 대승을 바라보면 성불을 할 수가 있는 것이여.

 

“원숭이 눈에는 원숭이가 보이는 거고, 부처님의 눈에는 부처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깨끗하면 법계(法界)가 깨끗한 것이고 내 마음이 탁하면 법계가 탁한 것입니다.

일체처 일체시에 재앙을 사전에 막고, 항상 자기에게 복이 돌아오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체처 일체시에서 항상 마음을 돌이키는 ‘이뭣고?’를 하시라.

 

본래성불(本來成佛)이 비타득(非他得)이여. 원래로 성불(成佛)이라 하는 것이 다른 데서 오는 것이 아니어. 성불이 꼭 설산(雪山)에만 들어가야만 성불한 것도 아니어.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是道易親)이여. 마음 하나 탁! 돌이켜서 참다우면 도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송담스님(No.467) - 1992년 설날차례, 입춘기도(92.02.04) (용467)

 

(1) 약 21분.

(2) 약 11분.

 

 

 

(1)------------------

 

편안하게 앉으십시오.

 

오늘은 임신년 정월 초하룻날이면서, 임신년 입춘날입니다.

해마다 초하룻날 이전에 입춘이 오기도 하고, 초하룻날이 지난 뒤에 입춘이 오기도 하는데, 금년은 정월 초하룻날이자 동시에 입춘입니다.

 

보통 새해 첫날은 정월 초하루라고 생각을 하지만 24절후(二十四候)로 볼 때, 태양을 기준으로 해서 따질 때에는 입춘날로부터 새해 첫날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계절이 맞아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금년은 음력—달을 기준으로 한 날과 태양을 기준으로 한 날이 한날에서 시작이 되기 때문에 퍽 만나기 어려운 설날이며 입춘날입니다. 

 

의상(義湘) 조사의 법성게(法性偈)에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다. 처음 마음 발할[發心] 때가 문득 바로 깨달은 곳이다’ 이러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고 속담에도 ‘시작이 절반이다’ 그런 말도 있고.

 

수레를 끌고 먼 여행을 떠날 때, 처음 출발할 때에 그 방향을 어디로 잡느냐에 따라서 북쪽으로 갈 수도 있고, 남쪽으로 갈 수도 있고, 동쪽 서쪽으로도 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일이 처음 시작할 그 시간, 그 지점, 시작할 때의 그 방향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대지론(大智論)이라 하는 론(論)에 있기를, 육신통(六神通)을 갖춘 나한(羅漢)님이 사미승(彌僧)과 동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디를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큰스님이니까 발우(盂)와 가사(袈裟)가 든 걸망을 그 사미승에게 지었습니다. 지고서 뒤에 따라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큰스님이 앞서서 걸어가셨는데 큰스님이 마음으로 작관(作觀)을 해 보니까,

그 사미승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하면은 ‘나는 마땅히 대승심(大乘心), 불승심(佛乘心)으로써 대열반(大涅槃)의 경지에 들어가리라’하는 그러한 대승심의 마음을 발하고 있다 그말이여.

 

그것을 나한 큰스님께서 떠억 아시고서 “그 바랑을 내가 지겠다. 바랑을 달라”해 가지고 큰스님께서 걸망을 짊어지고 그 사미승보고 “내 앞에 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미승을 앞세우고 그 큰스님께서는 그 사미승이 지던 걸망을 짊어지고서 뒤에 따라가는데 얼마쯤 가다가 큰스님이 사미승의 그 속마음을 떠억 이렇게 관찰을 해 보니까,

 

‘아유, 나 같은 근기(根機)가 약한 사람이 어떻게 감히 그런 대승심 불승을 바라볼 수가 있겠는가. 너무 어려워서 나는 안될 것이다. 그런 대승심을 발(發)해 가지고 대승 불승을 성취하기란 어렵고,

그러다가는 생사 속에서 무한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니 차라리 소승심(小乘心)을 발해 가지고 빨리 나한(羅漢) 소승 4과(四果)를 증득해서 빨리 열반에 드는 것이 차라리 내 몸 하나만이라도 편안한 것이 좋지,

 

내가 어떻게 그렇게 대승심을 발해 가지고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한 다음에 내가 성불하리라고 하는 이러한 어마어마한 원(願)을 세운 것은 가당치도 않다’ 이러한 생각을 사미승이 품었습니다.

 

그것을 아시고서는 “야야, 이 걸망 다시 네가 지어라” 걸망을 벗어서 사미승한테 짊어 지우고 “내 뒤에 따라오너라”

 

사미승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어찌 큰스님께서는 연세가 많으시니까 어린아이가 된 것 같습니다”

“왜 그러냐?”

“왜 걸망을 나보고 지라고 했다, 큰스님이 지고 앞서가라 그랬다, 뒤에 따라오랬다, 왜 그렇게 자발없이 그러십니까?”

 

“야야, 네가 처음에 대승심을 발하고 불승을 바라보는 원력(願力)을 세울 때에는 벌써 너는 나보다도 더 마음이 앞섰기 때문에 어찌 내가 내 짐을 너보고 지고 뒤따라오라 할 수가 있겠느냐.

그래서 너에게 그 걸망을 내가 지고 너를 앞세우고 내가 모시고 갔지만, 네가 얼마 가다가 생각하기를 스스로 자포자기를 하고,

 

‘감히 내가 어떻게 불승을 바라볼 수가 있겠는가, 차라리 소승심을 발해서 나한과(羅漢果)라도 증득해서 나 한 몸이라도 생사 없는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낫겠다’하는 그런 소승심을 발했기 때문에,

그 생각을 가졌다면 너는 나 따라올라면 멀었다. 그러니 네가 내 걸망을 짊어지고 뒤를 따라와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 사미승은 그 법문을 듣고서 확철대오를 했습니다. 대승심을 발해 가지고 확철대오를 했어.

 

부처님 말씀에 ‘차라리 영겁(劫)을 두고 생사윤회를 할지언정 소승심을 발하지 말아라’

 

소승심을 발해 가지고 나한과를 증득한다고 하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것이지만,

차라리 나한과를 증득한 것보다는 대승심을 발해서 도를 쉽게 이루지 못한 채 생사윤회를 영겁을 하더라도 소승심은 발하지 말고 대승심을 발하라 이겁니다.

 

한 생각 마음으로 소승을 바라면 소승이 될 수가 있고, 대승을 바라보면 성불을 할 수가 있는 것이여.

 

그래서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 신남신녀 법보제자 여러분께서는 임신년 새해를 맞이해서 소승심을 발하지 말고, 나 하나만의 이익을 바라고 나 하나만의 편안함을 바라지 말고, 우리 집 하나만을 생각하지 말고,

항상 대승심이요, 불심을 발해서 도를 이루되 반드시 견성성불해서 부처님이 될 것을 마음속에 명심을 하고,

 

무슨 사업을 하던지 크고 작은 사업이라도 사리사욕만을 생각하지 말고 항상 이웃을 생각하고, 사회와 국가를 생각하고, 내 자식만을 귀여워 할 것이 아니라, 내 자식이 귀여우면 모든 어린아이를 다 귀여워하고,

내 부모가 소중하면 모든 늙으신 분들 노인네들을 소중히 여길 줄 알고, 내 나라가 소중하면 모든 다른 나라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런 대승심을 발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입춘에는 삼재(三災) 기도를 하게 되는데 금년에는 인·오·술(寅·午·戌)생—범띠와 말띠와 개띠, 이 인·오·술(寅·午·戌)생에게 삼재가 들어옵니다. 그러니 인·오·술(寅·午·戌)생은 특별히 마음을 가다듬고 입춘기도를 하시고,

 

또 내일 모레 초삼일부터서는 신수기도가 칠 일간 봉행이 되는데 그 신수기도에도 빠지시지 말고,

특별히 한 가정에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이 삼재에 든 분은 정말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는 그런 말이 옛날부터 전해 내려옵니다.

 

물론 나도 그러한 말을 부정을 하지는 않지마는, 삼재라고 하는 것이 인·오·술(寅·午·戌)생에만 오리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래 삼재는 세 가지 큰 재앙인데, 그 세 가지의 큰 재앙이라고 하는 것은 불교에서 말한 재앙, 일반 세속에서 말한 재앙이 좀 다릅니다마는, 그 재앙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인 것, 육체적인 것, 정신적인 것, 그러한 면으로 타격을 주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면 가장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삼재는 인·오·술(寅·午·戌)생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언제라도 다가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삼재는 무엇 때문에 다가오느냐? 범띠이기 때문에 다가오고, 말띠이기 때문에 다가오고, 개띠를 가졌기 때문에 다가온다. 그것은 하나의 전해 내려오는 민속 신앙에서 오는 말이 아닌가,

또 다른 각도에서는 음양오행, 오행을 보는 그런 주역과 요새는 모다 인생철학이니, 철학관이니 모다 그렇지만 그런 오행에서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

 상생상극 그 원리에 입각해서 그렇게 말이 됩니다마는,

절대로 그것도 덮어놓고 부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산승(山僧)이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한 것은 인·오·술생 뿐만이 아니고 신·자·진생이나, 해·묘·미생이나, 인·오·술이나 무슨 생을 가진 사람이라도 언제라도 삼재는 다가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삼재가 다가오는 원인이 무엇인가를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으로 인해서 삼재의 재앙이 나한테 닥쳐오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탐심(貪心), 탐심이라 하는 것은 물질적인 탐심도 있고, 정신적인 탐심도 있습니다.

명예·권리·재산 또 음식·의복·주택·자손 무엇이고 자기 욕심을 지나친 욕심을 챙기고 남에게 해를 주면서까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고, 다른 가정에 손해를 끼치고, 다른 업체에 손해를 끼치고, 국가 사회에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기의 욕심을 추구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는 반드시 재앙이 닥쳐오기 마련입니다.

 

삼재 뿐만이 아니라 천재(千災), 만재(萬災)라도 다가올 수가 있습니다. 금생 뿐만이 아니라 세세생생에까지도 그런 욕심을 쉬지 않는 한은 재앙을 피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는 진심(瞋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욕심을 부리다가 그것이 자기 뜻대로 안되면 중생은 진심을 내게 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어찌 내 마음대로만 되겠습니까. 자기 마음대로 안되면 속이 왈칵 뒤집어지면서 진심을 내고 남에게 그것을 부애풀이를 한다, 앙심(怏心)을 품는다 그말이여.

 

그러한 진심을 품는 사람에게 어찌 재앙이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한번 욕심을 내고 두 번 욕심을 내고 또 내 마음대로 안되면 한번 진심을 내고 또 진심을 내기를 열 번, 스무 번, 백 번, 천 번, 한 생, 두 생 무량겁을 두고 그렇게 해 내려오고 있기 때문에 생사윤회의 고통은 끊일 날이 없어.

 

그런데 ‘내 마음대로 욕심을 부려서는 안되겠구나!’ 그렇게 스스로 생각하고, ‘진심을 낼 것이 아니라 차라리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깨끗이 해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면 그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인데, 그렇게 마음을 반성하고 참회하고 돌이킬 줄을 모르고 무량겁을 계속을 하니 그 사람을 가리켜서 「어리석은 중생」이라 하는 것이여.

 

어리석기 때문에 끊임없는 탐욕심과 끊임없는 진심을 되풀이 하면서 끝없는 죄를 짓고 그래가지고 스스로 재앙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애착심, 인간에 대한 애착 탐착심, 물질이나 명예 권리에 대한 탐착심, 그것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그것을 이루는데 방해를 치고 자기 마음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미워하고 그래가지고 싸우고 그래가지고 원한이 깊어서 원결(怨結)을 맺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사람이 별로 없고,

 

좋은 사람인 줄 알고 사귀다 보면 나를 해롭게 하고, 저 사람은 믿을만한 사람인가 하고 가까이하고 마음도 허락을 하고 물질적으로도 주다보면 어느새 그 사람은 나를 해꼬자 하는,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원수로 변하는 것이다 그말이여.

 

사람들은 이 세상에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어. 자식도 믿을 수가 없고 형제도 믿을 수도 없고 친구도 믿을 수도 없고 일가친척도 믿을 수가 없어. 한 사람도 믿을 수가 없다.

전부를 다 도둑놈으로 생각하고, 전부를 다 원수로 생각하고 그렇게 일을 많이 겪어보고 사람을 많이 겪어본 사람은 필경에 그런 마음을 먹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 원인이 자기에게 있는 줄을 무르고 전부를 다 도둑놈으로 생각하면 누구하고 살 것이냐 그말이여.

 

그래가지고 차라리 나는 강아지하고 살리라 해가지고 이쁜 강아지를 사다가 씻기고 모다 미장원에 데리고 가서 향수를 치르고 손톱을 다듬고 해가지고 강아지를 품고 잔다 그말이여.

아무리 사람이 나빠도 사람은 사람하고 사는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짐승을 미워할 것은 아니로되 짐승하고 살수는 없는 것이여.

 

모든 사람이 나쁜 것은 자기가 업(業)을 그렇게 지었고, 자기가 청정하지를 못하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마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이지,

자기가 세세생생에 바르게 마음을 쓰고, 자비롭게 쓰고, 지혜롭게 써 와서 모든 사람 만날 때마다 자기가 그런 마음으로 상대하면 다른 사람도 다 좋은 사람인 것을,

 

자기가 그렇지 못해가지고 자기 안경이 빨간 안경을 쓰면 모슨 것이 빨갛게 보이고, 파란 안경을 쓰면 다 파랗게 보이는 거여. 

 

이태조(祖)가 고려 다음에 조선 나라를 세우고 자기가 왕이 되었다 그말이여. 그때 왕사(王師)는 무학 대사(無學大師)여.

나라를 세워 놓고 그러고는 너무너무 좋으니까, “우리 임금이니 신하니 그런 것을 떠나서 탁 터놓고 우리 농담 한번씩 하자” 그래가지고,

 

“그러면 대왕이 먼저 하십시오.”

“대사는 꼭 생긴 것이 늙은 원숭이 같이 생겼구려.” 그러니까, “그러면 대사가 이번에는 할 차례요.”

“예. 대왕은 부처님 같이 생겼습니다.”그러니까,

 

이성계 태조가 “어찌 나는 대사를 원숭이 같이 생겼다고 고약한 소리를 했는데 대사는 어찌 나보고 부처님같이 생겼다고 말을 하오.”

“원숭이 눈에는 원숭이가 보이는 거고, 부처님의 눈에는 부처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아! 그래가지고 대왕이 꼼짝을 못했어. 그래서 마음속 깊이 항상 무학 대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자문을 받고 그랬다고 하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내 마음이 깨끗하면 법계(法界)가 깨끗한 것이고 내 마음이 탁하면 법계가 탁한 것입니다.

사바세계(娑婆世界)는 예토(穢土)고 극락세계(極樂世界)는 정토(淨土)라고 그러지만 깨달은 분에게는 극락세계 뿐만이 아니라 이 사바세계도 정토가 되는 것이여.(처음~20분40초)

 

 

 

 

 

(2)------------------

 

금년 새해에 오늘 입춘을 맞이해서 또 기도하고 또 신수기도를 칠일간 봉행하는데,

첫째, 마음을 소승심을 갖지 말아. 소승심에서 나오는 마음들은 사리사욕과 이기심 밖에는 나올 것이 없는 것이고, 보살도(菩薩道)를 행한 사람은 대승심이 나오는 거고,

항상 모든 사람을 내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고 내 자신의 이익 뿐만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를 생각하는 그런 마음으로 사업을 하면 노사분규 같은 것도 사전에 방지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가정도 화평할 것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자 손녀의 관계, 여러분들도 가정마다 그런 고충이 있을 것이고,

드라마 같은 것을 보더라도 가끔 그런 것을 봅니다마는 손자 손녀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잔소리 듣기 싫고, 할머니 할아버지 방에 가면 늙은 냄새난다고 싫어합니다.

그러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 손자 손녀가 별로 이쁘게 보이지 않을 것이고, 자기의 혈통을 잇고 가문을 이어받을 손자 손녀는 별로 못쓸 것으로 보고, 시집가서 남의 집으로 간 외손자 외손녀는 굉장히 예뻐한다 그말이여.

 

그 예뻐해 봤자 별 볼일 없는데 외손자 외손녀는 예뻐하면서 자기 손자, 자기 손녀는 예뻐하지 않아.

생각해보면 또 어떤 사람은 손자는 예뻐하면서 며느리는 또 안 예뻐한 사람이 있고, 참 그 사람들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여.

 

그 손자가 자기 혈통을 이어받을 손자이기 때문에 뭣을 맛있는 것을 감춰놨다가 먹이는데, 며느리는 또 별로 안 예뻐해. 그 손자가 예쁘며 그 손자가 누구 뱃속에서 나왔냐 그말이여.

그 예쁜 손자를 낳아준 사람이 며느리라면 며느리도 굉장히 소중하고 예쁜 존재고, 생전 사후에 혈통을 이어받고 자기 집안을 갖다가 전통을 이어갈 그런 손자를 낳아준 며느리니 그 며느리를 예뻐하면 손자도 할머니를 좋아할 거다 그말이여.

 

그러면 손자 손녀는 왜 자기 어머니 아버지는 좋아하면서 할머니는 왜 안 좋아하냐? 자기 어머니가 소중하면 자기 어머니를 낳아준 어머니가 누구냐 하면 할머니거든, 할머니 할아버지다 그말이여.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 계셨으면 자기의 어머니도 이 세상에 태어나지를 못했을 것이고, 자기의 부모가 없으면 자기 몸은 어디서 태어났느냐 그말이여.

 

자기 몸이 소중하면 부모가 소중하고, 부모가 소중하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소중하고, 위에서 밑으로 따져 봐도 그렇고 밑에서 위로 따져 봐도 그래.

그러한 이치는 아침이 되면 해가 동쪽에서 뜨고 저녁이 되면 해가 서쪽으로 지는 원리나, 하나에다 하나 보태면 둘이 되고 셋이 되고 열이 되는 이치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어.

그러한 상식인데 그만한 이치를 모르고서 살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새해에는 저번에 첫째 일요법회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살자.」

 

감사한 마음은 어디서 나는냐? 모든 일을 볼 때에 항상 좋은 쪽으로 봐.

밝은 쪽으로 생각하고 좋은 쪽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모든 일을 생각을 하자. 어두운 쪽을 보고 부정적으로 보고 그러지 말고, 그렇게 보면 모슨 사람이 감사해. 

 

할머니 할아버지도 감사하고, 부모님도 감사하고 또 할머니 입장에서 보면 아들도 감사하고 고맙고, 며느리도 고맙고, 손자 손녀도 고맙고,

피차 서로 고맙게 생각한 데에서 이해심이 나오고 용서하게 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러한 마음으로 살 때에 그 집안에 어찌 재앙이 돌아올 것이냐 그거거든.

 

물론 절에 와서 열심히 기도를 하시는 것도 대단히 좋지만 첫째, 「자기의 마음보를 고치자」 이거거든.

여기에 계신 분들이 다 훌륭하고 착하고 복 많은 분들이고 신심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여기에 오셨는데, 그래서 마음보가 나쁜 분은 한 분도 안 계시겠지만,

 

내가 말한 ‘마음보’라 하는 것은 일체처 일체시에 재앙을 사전에 막고, 항상 자기에게 복이 돌아오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체처 일체시에서 항상 마음을 돌이키는 ‘이뭣고?’를 하시라 그겁니다.

 

그것만 열심히 하시다면 이번에 올리는 기도도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실 것이고 일 년 내내 무사(無事)하실 것입니다.

 

 

철수화개별시춘(鐵樹花開別時春)이요  사해향풍종차기(四海香風從此起)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본래성불비타득(本來成佛非他得)이라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是道易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철수화개별시춘(鐵樹花開別時春)이요 사해향풍(四海香風)이 종차기(從此起)이다.

쇠나무—잎이 다 저버리고 써늘한 죽은 나무, 쇠로 된 앙상한 나무에 꽃이 피니, 이 별시춘(別時春)이다. 이 특별한 유난히도 향기로운 봄이로다.

아직 어제도 눈이 뿌렸지만 매화나무에는 꽃이 한 송이 두 송이 벌여졌습니다.

 

사해향풍(四海香風)이 종차기(從此起)여. 사해의 향기로운 바람이 바로 여기에서 부터서 일어나는구나.

무량겁을 두고 탐진치 삼독 속에 살아온 우리의 인생은 앙상한 나뭇가지에 죽은 나무처럼 고목(木)처럼 되어온 시절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앙상한 나무에 향기로운 매화꽃 한 송이, 두 송이 피듯이 철저한 최상승심을 발해 가지고 ‘이뭣고?’를 한다면 거기서 부터서 행복의 봄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

 

본래성불(本來成佛)이 비타득(非他得)이여. 원래로 성불(成佛)이라 하는 것이 다른 데서 오는 것이 아니어. 성불이 꼭 설산(雪山)에만 들어가야만 성불한 것도 아니어.

심약진시도이친(心若眞是道易親)이여. 마음 하나 탁! 돌이켜서 참다우면 도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정월 초하루와 입춘과 또 초삼일부터서 9일 칠일기도, 신수기도 입재와 9일 날 신수기도 회향, 이 네 가지, 네 개의 법회에 드리고자 하는 말씀을 오늘 다 합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새해는 어쨌든지 그렇게 살아가시면 몸도 건강하시고 가정도 화목하시고, 사업·기업 모든 것도 다 무장무애하게 번창하시고,

‘이뭣고?’를 열심히 하신 덕으로 일체 재앙이 다 소멸이 되시고, 소원을 성취하실 뿐만 아니라 다 견성성불(見性成佛)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시민 선원을 개원을 해서 많은 분들이 오셔서 정진을 하시고 잘 이용하시고 활용을 하시고 계시는데,

새해로는 더 많은 분들이 오셔서 그걸 이용을 하셔서 어쨌든지 여기에 직접 방부를 들이고 석 달씩 안 하시더라도 시간 있는 대로 언제라도 오셔서 정진을 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성불하십시오.(20분41초~31분41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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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후(二十四候) ; 태양의 황도(상의  따라   스물넷으로 나눈 절기.

*의상대사(義湘大師) ; 신라의 스님. 15세 전후에 경주 황복사(皇福寺)에 출가하고, 650년에 원효(元曉, 617-686)와 함께 당()으로 가다가 요동에서 고구려의 순찰병에게 붙잡혀 실패하고, 661년(문무왕 1)에 귀국하는 사신의 배를 타고 당()에 가서 종남산(終南山) 지상사(至相寺)의 지엄(智儼, 602-668) 문하에서 화엄학을 배우고, 671년에 귀국함.

676년에 영주에 부석사(浮石寺)창건하여 화엄경과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 중심으로 하여 화엄학을 널리 전파하고, 양양에 낙산사(洛山寺)를 창건하여 관음도량(觀音道場)을 개설함.

692년(효소왕 1)에 승전(勝詮)이 당()에서 귀국하면서 가지고 온 법장(法藏, 643-712)의 저술 7종 29권을 검토한 후 제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배우게 함. 그의 화엄학은 오진(悟眞)·지통(智通)·표훈(表訓)·진정(眞定양원(良圓) 등에게 계승됨.

저서 :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 백화도량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

*법성게(法性偈) ; 통일 신라 시대에,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화엄경을 연구하고 그 경의 핵심을 추려서 지은 7언 30구(210자)의 게송.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대지론(大智論) : 혹은 <대지도경론(大智度經論)> <대지석론(大智釋論)> <대지도론(大智度論)> 또는 <대론(大論)> <석론(䆁論)>이라고도 한다.
용수(龍樹)보살이 지은 것으로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을 해석한 것인데, 후진(後秦)때에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하면서 제일 서품(序品)만은 원문대로 번역하여 34권을 만들고, 그 나머지 제구십 촉루품(囑累品)까지를 간단하게 추려서 전부 100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온전히 번역한다면 천여 권이 되었으리라고, 구마라습의 제자인 승예(僧叡)는 말하였다.
*나한(羅漢) ; 아라한(阿羅漢)의 준말.
*아라한(阿羅漢) ;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응공(應供)•응진(應眞)•무학(無學)이라 번역.
*사미(沙彌) ; 산스크리트어 śrāmaṇera 팔리어 sāmaṇera의 음사. 근책(勤策)·구적(求寂)이라 번역. 출가하여 십계(十戒)를 받고,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비구(比丘)가 되기 전의 남자 수행자.
십계는 살생·도둑질·음행·거짓말·음주뿐만 아니라, 때가 아닌 때에 식사하는 것, 춤과 노래를 보고 듣는 것, 향수를 바르고 몸을 단장하는 것, 높고 큰 평상에 앉는 것, 금은 보물을 지니는 것 등을 금지하는 10가지이다.
*발우(鉢盂) ; 발(鉢)은 (산)patra의  음역어인 발다라(鉢多羅)의 준말로 식기, 우(盂)는 그릇을 뜻함. 음역어와 번역어의 합성어로, 수행승들의 식기를 일컫는다.
나무를 그릇처럼 깎아서 칠을 한 스님의 공양 그릇으로 보통 발우 한 벌은 4개의 그릇으로 이루어지고, 4개의 그릇이 포개져서 하나의 그릇처럼 보관하며, 공양시 4개의 그릇을 펼쳐 놓는다.
*가사(袈裟) ; 스님이 장삼 에,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으로 걸쳐 입는 의().
*대승(大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 이에 반해, 그들은 전통의 보수파를 낮추어 소승(小乘)이라 함.
②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보살, 또는 그들을 위한 붓다의 가르침.
③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존칭. 위대한 가르침.
승(乘)은 '타는 것'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불승(佛乘) ; 붓다가 될 목표로 하는 도. 승(乘)은 '타는 것'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모든 존재를 구제한다는 위대한 유일의 가르침(一乘·大佛乘). 대승과 동일.
성문(聲聞)·연각(緣覺)의 이승(二乘)에 대하여 보살승(菩薩乘)은 진실로 부처님이 될 입장이므로 불승(佛乘)이라고 함. 모든 이들이 붓다가 되게 하는 가르침.
*대열반(大涅槃) ; 뛰어나고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
*바랑 ; 스님이 등에 지고 다니는 자루 같은  주머니.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소승(小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대승(大乘)이라 하고, 전통의 보수파들을 낮추어 일컬은 말.
②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에 분열된 불교 교단의 여러 부파, 곧 부파 불교(部派佛敎)를 말함.
③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수행자, 성문(聲聞)•연각(緣覺) 또는 그들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④열등한 능력이나 소질을 갖춘 자를 위한 붓다의 가르침.
승(乘)은 '타는 것'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사향사과(四向四果) ; 소승불교(小乘佛敎)에서 네 단계의 수행목표[向]와 그 도달경지[果]를 가리키는 말.
수다원(須陀洹 : 預流), 사다함(斯陀含 : 一來), 아나함(阿那含 : 不還), 아라한(阿羅漢 : 無學道)의 넷에 각각 향(向)과 과(果)를 배정하여 수다원향 · 수다원과, 사다함향 · 사다함과, 아나함향 · 아나함과, 아라한향 · 아라한과의 여덟이 된다.
 
수다원향은 일체의 견혹(見惑 : 이론적인 번뇌)을 끊으며, 사다함향 · 아나함향에 의해 일체의 욕계(欲界)의 사혹(思惑 : 情意에 의한 습관적 번뇌)을 끊고, 아라한향에서는 삼계(三界 : 欲界 ·色界 ·無色界)의 사혹을 끊는다.
따라서 삼계의 일체의 견혹 · 사혹의 번뇌가 모두 끊어지면, 이 때에 아라한과(阿羅漢果)가 달성된다.
 
아라한과는 이 이상 배우고 닦을 만한 것이 없으므로 무학도(無學道 아라한)라고도 하며, 그 이전의 일곱은 아직도 상위(上位)가 있어서 배우고 닦을 필요가 있는 경지이므로 칠종유학(七種有學)이라고 한다.
예류(수다원)에서 불환(아나함)까지는 개울의 흐름이나 외갈래길로 상정(想定)하여,
흐름을 타고 있는 자가 예류(수다원), 한 번 뒤로 돌아갈 상태에 있는 자가 일래(사다함), 다시 되돌아가는 일 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상태를 불환(아나함)이라고 할 수 있다.
*자발없다(언행)가볍고 참을성 없다.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본원(本願) : 근본서원(根本誓願)의 준말. 모든 불보살님들이 지난 세상에서 일으킨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결정코 이루려는 맹세(서원). 본원에는 총원(總願)과 별원(別願)이 있다.
①총원(總願)--모든 불보살님들의 공통원, 사홍서원(四弘誓願).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 가없는 중생을 맹세코 다 건지리이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 끝없는 번뇌를 맹세코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 한없는 법문을 맹세코 다 배우리이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 위없는 불도를 맹세코 다 이루리이다.
②별원(別願)--불보살님마다 중생제도의 인연에 따라 세운 원(아미타불48원, 약사여래12원 등등). 별원은 사홍서원의 구체적 표현.
*나한과(羅漢果) ; 아라한(阿羅漢)의 경지.
*영겁(劫) ; 영원한 시간.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 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음양오행(陰陽五行) ; 음·양의 2기(氣)와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의 5행으로 자연현상이나 인간·사회의 현상을 설명하는 사상.
*부애풀이 ; 부아풀이. 분하고 노여운 마음 푼다는 으로엉뚱하 다른 사람이나     이르는 .
*앙심(怏心 원망할 앙,마음 심) ; 원한 품고 앙갚음하려고 벼르는 마음.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이태조(祖)조선 태조() 성씨 붙여 이르는 .
*왕사(王師) ; ①임금의 스승. ②고려 시대덕행 높은 고승()에게 주던 최고 승직().

*무학대사(無學大師)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역할하였고 왕사를 지낸 조선의 스님이다.

법명은 자초(自超), 속성은 박()씨이며 호는 무학(無學) 당호는 계월헌(溪月軒)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陝川郡: 삼기(三岐)) 삼가면에서 출생하였다.

1344년 18세에 출가하여 소지선사(小止禪師)의 제자로 스님이 되어 구족계를 받고, 혜명국사(慧明國師)에게서 불법을 배웠다. 진주(鎭州) 길상사(吉祥寺)·묘향산 금강굴(金剛窟) 등에서 수도하다가, 1353년(공민왕 2) 원()나라 연경(燕京)에 유학하여 그때 원에 와 있던 나옹 혜근(懶翁惠勤)과 인도 스님 지공(指空)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1356년 귀국하여 1373년에 왕사가 된 혜근의 법을 이어받았는데, 1376년 혜근이 회암사(檜巖寺)에서 낙성회(落成會)를 연 때 수좌(首座)로 초청하였으나 사양했다.

고려말 퇴락하는 불교를 비판하였고 이성계를 만나 그가 새로운 왕이 될 것이라 예견하였다. 1392년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조선이 개국하자 왕사가 되어 회암사에서 지냈다. 이듬해 태조를 따라 계룡산과 한양(漢陽)을 오가며 지상(地相)을 보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는데 찬성하였으며 조선 건국 초기 나라가 안정하고 정착하는데 헌신하였다. 유교의 바탕에서 건국된 조선에서 독특하게 불교인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았던 유일한 인물로 평가된다.

1397년(태조 6) 왕명으로 회암사 북쪽에 수탑(壽塔)을 세웠고, 1402년(태종 2) 회암사 감주(監主)가 되었다가 그해 태종 이방원의 청을 받아 함주(함흥)에 머물고 있는 태상왕 이성계를 설득하여 한양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1403년에는 회암사를 삭직하였고 금강산 금장암(金藏庵)에 머물다가 78세에 입적하였다. 저서에 《불조종파지도(佛祖宗派之圖)》, 《인공음(印空吟)》이 있다. (두산백과 참고)

*법계(法界) : [범] dharmadhatu  dharma 곧 법은 온갖 유형 무형의 물질과 모든 일과 어떤 이치이거나를 다 들어 말하고  dhatu는 경계(境界) 또는 범위(範圍)란 말이다。그러므로 온갖 것(萬有)을 총괄하여 하는 말이니, 우주의 전체와 진리의 전체, 법 성품(法性)의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예토(穢土 더러울 예,나라 토) ; ①중생들이 사는 세계. ②번뇌와 망상으로 가득찬 고해(苦海)인 사바세계.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정토(淨土)부처님과 보살() 사는 으로번뇌 구속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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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도(菩薩道) ; ①보살의 수행. 보살이 자리이타(自利利他)를 갖추어 깨달음에 이르는 도. ②대승불교.

*이뭣고(是甚麼)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무사하다(無事--)(무엇)사고 없어서 편안하다.

*(게송) 本來成佛非他得  心若眞是道易親’ ; 중봉명본(中峰明本) 스님의 「天目中峰和尚廣錄」 제29권 ‘寄同參十首’ 참고.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깨달음을 여는 것. 각자가 스스로 무상의 깨달음을 열고, 부처가 되는 것.

④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말함. 석가모니가 수도한 산.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설날차례)2015. 2. 11. 13:55

§(526) 영원한 마음의 고향—용화선원 / 삼재를 멀리하는 방법—삼학(三學)을 닦고 십선계를 지켜야 / 유루복·무루복을 함께 원만성취.

 

기도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정성과 부처님의 자비가 하나가 되도록 하는 그런 법요식(法要式)인 만큼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기도를 하면 반드시 그 감응(感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유루복을 닦고 참선을 열심히 해서 무루복을 닦아서, 유루복·무루복을 함께 우리가 원만히 성취를 한다면, 금생에도 무장무애하게 우리가 행복하게 살고, 우리의 영혼도 동시에 우리 영각지성(靈覺之性)도 지혜와 자비를 원만 성취해서 금생으로부터 영원토록 우리는...

 

**송담스님(No.526)—94년 설날차례(94.02.10) (용526)

 

약 19분.

 

오늘은 갑술년 정월 초하루 설날입니다.

우리나라는 저 신라 이래로 설날에는 부모, 조부모, 돌아가신 조상에게까지도 차례(茶禮)를 잡숫고, 세배를 드리고 하는 아름다운 풍속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설날을 나라에서 공휴일로 제정을 해서 2,600만이라고 하는 대 민족이동이 되는 날입니다. 참 세계 유례가 없는 거창한 경사스러운 날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돌아가신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고, 살아 계신 부모님께 또 일가친척에게 세배를 드리고자 하는 효심과 우애하는 그런 마음의 발로하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향에는 조상님의 산소가 계시고 또 늙으신 부모님과 일가친척이 살아 계십니다.

그러나 자세히 생각해 보면 조상님의 유골이 묻혀 있는 곳 또 우리가 태어난 곳, 우리가 어려서 자라던 곳,

아직도 손이 거친 아버님과 어머님이 살아 계신 곳, 고향하면 그러한 것을 우리는 연상을 하고 일 년에 설날이나 추석 그러한 명절에는 그런 고향을 찾아가고자 하는 그러한 그리운 마음이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고향(鄕)이라 하는 것이 정말 그러한 것이 참다운 우리의 고향인가?

우리가 태어난 곳이 고향이라면 미국에 태어난 사람은—한국 사람으로서 미국에서 어쩌다 태어나면, 그것이 미국을 우리가 고향이라고 할 수가 있는가?

다리 밑에서 우리가 난리 중에, 피난 중에 다리 밑에서 태어났다면 그 다리 밑에가 우리의 고향 일수가 있는가?

 

평소에는 부모님께 대해서 효심도 없이 불효하던 사람이 명절에만 그 어려운 교통 지옥을 무릅쓰고 고향에 찾아감으로써 그것이 참으로 참다운 효심의 발로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인가?

 

이런 저런 일을 생각해 보면, 대전에 1시간 반이면 가는데 이 명절에는 10시간이 넘고, 부산에도 서너 시간이면 가는 데 20시간이 걸려야 부산이나 광주에 도착할 수가 있다 그럽니다. 그렇게 오다가다 많은 사람의 목숨을 잃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법보 가족 여러분은 부산이나 광주나 목포나 지방에 가시지 않고 이 용화선원에 찾아오셨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영원한 마음의 고향을 가지신 분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법보전(法寶殿)에는 여러분의 조상님의 영가가 모셔져 있고, 정든 인연 깊은 영가가 여기에 모셔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정법을 믿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해 주신 조실 스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우리가 생사의 고해(苦海)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광명을 비쳐주신 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처님의 법(法)을 이어받기 위해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해서 우리를 제도해 주시려고 고행(苦行)을 하고 계신 스님네가 계십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시각에서 이 용화선원을 초하룻날 이렇게 추위를 무릅쓰고 이 자리에 참석하셨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다운 고향, 영원한 마음의 고향을 이 용화선원이라고 생각을 하시고 명절 때는 빠짐없이 참석하시고, 법보재에도 참석을 하시고, 조실 스님의 추모재에도 참석을 하시고,

부처님 사대명절(四大名節)에도 참석을 하시고, 겨울철 여름철의 결제에도 참석을 하시고, 일요 법회 때에도 참석을 하시고 언제라도 마음이 내키면 오셔서 부처님께 참배를 드리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우리는 세세생생에 삼악도(三惡途)에는 떨어지지 아니 할 것이며, 영원히 부처님의 진리의 회상(會上)에서 항상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한 사람도 낙오자가 없이 다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서 진리의 세계에서 우리는 자유자재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며칠 전에 우리는 입춘 법요식을 가졌고 또 오늘 이렇게 초하룻날 차례 법요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입춘은 갑술년에 범띠·말띠·개띠, 인·오·술(寅·午·戌)생이 삼재(三災)가 마지막 나가는 해입니다. 삼재는 인·오·술(寅·午·戌)생은 재작년에 삼재가 들어왔다가, 작년에 머물렀다가, 금년 갑술년에 마지막 나가는 해입니다.

 

들삼재, 앉은삼재, 날삼재 이렇게 말합니다마는, 들삼재도 또 앉은삼재도 중대하지만 마지막 금년에 나가는 삼재, 날삼재야말로 참으로 조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속담에 '다 먹은 밥에 코 빠진다'이런 말이 있습니다마는, 날삼재야말로 말도 조심하고, 행동도 조심하고, 마음 씀도 조심해서 탐심과 진심과 치심 이 삼독심을 극진히 조심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삼재를 소멸하는 방법인데 애당초에 그 삼재가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 때문에 삼재를 당하게 되는 것이고 지옥·아귀·축생의 삼악도에도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삼악도를 영원히 들어가지 않고 삼재를 영원히 멀리하려면 우리의 마음속의 있는 탐심과 진심과 어리석은 마음을 돌려서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닦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교리인 것입니다.

 

삼학이 무엇이냐?

부처님께서 설하신 오계(五戒)를 잘 지키고 십선계(十善戒)를 잘 지키며, ‘십선계를 잘 지킨다’고 하는 것은,

몸으로 짓는 살생(殺生)과 도둑질과 사음(邪婬) 그리고 입으로 지키는 망어(妄語)와 기어(綺語)와 양설(兩舌)과 악구(惡口), 마음으로 짓는 탐진치 삼독, 삼악(三惡), 이 십악(十惡)을 범하지 아니하면 그것이 십선(十善)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십선을 잘 지키면 이것이 바로 삼재를 멀리하는 방법이고, 세세생생에 자기가 이 십선법을 어떻게 지키느냐?

 

최고로 잘 지키면 상품(上品)으로 지키고, 중간쯤 지키면 이것이 중품(中品)으로 지키고, 지키기는 지키되 아주 시원찮게 지키면 이것이 하품(下品)으로 지키는데,

하품으로 받아 가지고 하품으로만 지켜도 인간 세상에 태어나거나, 축생도에 떨어지더라도 왕이 되는 것입니다.

 

중품으로 지키면 인간 세상에서 왕이 되는 것이고, 상품으로 지키면 천상(天上)에 태어나고, 아주 상품으로 잘 지키면 성불(成佛)까지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초하루를 맞이해서 우리가 새해에 부처님 앞에 서원(願)을 세워서 이 십선계를 잘 지키고, 나아가서 참선을 잘해 가지고 지혜의 눈을 뜨도록 그렇게 원력(願力)을 세우시고서,

 

앞으로 초삼일부터서 초아흐렛날까지 7일 신수(身數)기도가 있습니다.

이 신수기도에 동참을 하시면, 매일 새벽 3시부터 5시까지 새벽 기도가 있고,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오전 기도가 있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오후 기도가 있고,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저녁 기도가 있고,

하루에 네 번씩, 사분 정근을 해서 9일 날에 초아흐렛날 신수기도 회향을 하게 됩니다.

 

특히 범띠, 말띠, 개띠를 한 집에 세 사람이 있는 사람은 정말 적극적으로 이 기도에 동참을 해서 직접 오셔서 기도를 하시고, 한 사람이나 두 사람만 있어도 동참을 하셔서 될 수 있으면 오셔서 기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기도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정성과 부처님의 자비가 하나가 되도록 하는 그런 법요식(法要式)인 만큼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기도를 하면 반드시 그 감응(感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재를 소멸을 해야지, 무엇이 아무리 잘되어도 삼재에 걸려 놓으면 참 오죽잖은 것이 큰 말썽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건강 문제, 가정의 화합 문제, 직장 문제, 사업 문제, 혼대사 문제 여러 가지 문제가 말썽이 일어날 소지가 있는 것이므로 이 신수기도에 동참을 하셔서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용화사는 주로 참선(參禪)을 위주(爲主)하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인 이 참선법을 선양하는 도량입니다마는,

조실 스님께서는 우리 중생의 근기(根機)와 또 현실 생활에 있어서 대단히 중대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특별히 이렇게 신수기도를 1년에 한번 입니다마는, 신수기도를 행하도록 이렇게 마련을 해 주셨습니다.

 

조실 스님의 법문을 항상 잘 들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우리가 이상으로 하는, 근본 목표로 하는 최상승법, 이것은 눈을 뜨나 감으나 잠깐 동안도 잊어서는 안될 ‘이뭣고?’를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는 생활해 나가야 하지만,

 

현실 세상에 있어서 삼재를 소멸하기 위한 이 신수기도도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극정성으로 이 기도를 동참을 해서 기도를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유루복(有漏福)과 무루복(無漏福)—기도를 통해서 유루복을 닦고 참선을 열심히 해서 무루복을 닦아서, 유루복·무루복을 함께 우리가 원만히 성취를 한다면,

금생에도 무장무애하게 우리가 행복하게 살고, 우리의 영혼도 동시에 우리 영각지성(靈覺之性)도 지혜와 자비를 원만 성취해서 금생으로부터 영원토록 우리는...

 

비록 이 사바세계는 고통이 많은 세계지만, 생사와 흥망성쇠가 치열한 세계지만—그 속에서 우리는 해탈도를 증득할 수 있는 최상승법을 우리는 몸과 목숨을 다해서 열심히 수행을 함으로써,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세세생생에 불회상(佛會上)에 만나서 다 같이 해탈도를 증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그 다음에 축원을 하고, 다음에 우리의 조상 법보영가님께 천도 법요식을 거행 하겠습니다.(처음~18분40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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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茶禮) ;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의 낮에 지내는 제사.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삼계(三界-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법(法) : [범] dharma [파] dhamma 음을 따라 달마(達磨•達摩) 또는 담무(曇無)로 써 왔다.

온갖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이니, 온갖 일과 모든 물질이며, 온갖 이치와 옳은 것(是), 그른 것(非), 참된 것(眞), 거짓된 것(妄)이 모두 이 「달마」에 들어 있다。그러나 흔히 부처님이 가르친 교리만을 법이라고 한다.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고행(苦行) ; ①어떤 경지에 이르거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육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수행. ②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으며 하는 수행.

*사대명절(四大名節) ;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사월초파일(4월 8일), 출가하신 2월 17일, 성도(成道)하신 12월 8일, 열반에 드신 2월 15일.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도병(刀兵-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 채소가 익지 않는 근(), 과일이 익지 않는 황()을 가리키기도 한다.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이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를,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〇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 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〇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〇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〇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삼학(三學) ; 깨달음에 이르려는 자가 반드시 닦아야 할 세 가지 수행.
삼증상학(三增上學)·삼승학(三勝學)이라고도 하는데, 즉 계학(戒學)·정학(定學)·혜학(慧學)의 세 가지를 말한다. 이것을 증상(增上:탁월하다는 뜻)계학 · 증상심학(心學) · 증상혜학 또는 줄여서 계·정·혜라고도 한다.
①계는 악을 저지르지 않고 선을 닦는 계율(戒律), ②정은 심신을 고요히 하고 정신통일을 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하는 선정(禪定), ③혜는 번뇌를 파하고 진리를 증득(證得)하는 지혜를 가리킨다.
*오계(五戒) ; (산스크리트어 pañca-śīla) 재가(在家)의 신도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
①불살생(不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
②불투도(不偸盜). 주지 않은 것을 빼앗지 말라.
③불사음(不邪婬).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
④불망어(不妄語). 거짓말을 하지 말라.
⑤불음주(不飮酒). 취기(醉氣)가 있는 것에 취(醉)하지 말라.
*십선계(十善戒)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악(十惡) ; 몸(身)과 말(口)과 뜻(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〇몸(身)—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婬 삿된 음행).
〇말(口)—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〇뜻(意)—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⓪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상품(上品) ; 상등(上等 정도 수준 높거나 우월한 것)의 품위(品位 질적 수준). 질적 수준이 높은 것.
*중품(中品) ; 중등(中等 정도나 수준이 중간쯤인 것)의 품위(品位 질적 수준). 질적 수준이 중간쯤인 것.
*하품(下品) ; 하등(下等 정도나 수준이 낮거나 뒤떨어지는 것)의 품위(品位 질적 수준). 질적 수준이 낮은 것.
*서원( 맹세할 서,원할 원) ; ()을 세우고그것을 이루고자 맹세하는 .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본원(本願) : 근본서원(根本誓願)의 준말. 모든 불보살님들이 지난 세상에서 일으킨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결정코 이루려는 맹세(서원). 본원에는 총원(總願)과 별원(別願)이 있다.
①총원(總願)--모든 불보살님들의 공통원, 사홍서원(四弘誓願).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 가없는 중생을 맹세코 다 건지리이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 끝없는 번뇌를 맹세코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 한없는 법문을 맹세코 다 배우리이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 위없는 불도를 맹세코 다 이루리이다.
②별원(別願)--불보살님마다 중생제도의 인연에 따라 세운 원(아미타불48원, 약사여래12원 등등). 별원은 사홍서원의 구체적 표현.
*신수(身數)기도 ; 새해를 맞아 정초에 일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법요식(法要式) ; 불사(佛事-제사,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를 할 때 행하는 의식.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감응(感應) ; 감응도교(感應道交). 부처님과 수행자의 마음이 교류하는 것. 중생의 신심, 선근(善根)이 모든 부처님•보살에게 통해서 그 힘이 나타나는 것. 중생의 신심이 진실하게 느껴져, 부처님과 보살이 답하는 것.
중생 기감(機感,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뜨거우면 부처님의 응(應)하는 마음도 또한 깊다. 그쪽과 이쪽이 사이를 두지 않음을 도교(道交)라 한다.
*오죽잖다(사람이나 어떤  따위)예사 정도   만큼 변변하지 못하거나 대수롭지 아니하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위주(爲主)하다 ; (사람 무엇)주된 으로 삼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가 지은 복(福)으로, 복을 지은 만큼 쓰면 다함이 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각지성(靈覺之性)신령스러운 깨달음(靈覺)의 성품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불회상(佛會上) ; 부처님(佛)의 회상(會上). 부처님 계시는 곳.

 

Posted by 닥공닥정
법회(설날차례)2014. 1. 30. 17:11

§(565) 설날 통알 및 설날차례 / 복(福)을 많이 받으려면,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돈도 벌고, 보시를 하여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아야.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용565)

 

약 22분.

 


<새벽예불 후 ‘통알’ 때 하신 말씀>

 

정월 초하루날 새벽에 전국 모든 사찰에서는 통알(通謁)이라 하는 의식을 행하는데,
통할 ‘통(通)’자, 뵈일 ‘알(謁)’자, 통알이라 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이 우리가 세배(歲拜)를 올려야 할 존경할 만한 모든 성현(聖賢)과 모든 어른과 모든 선지식과 모든 도반들에게 이 자리에 서서 세배를 드리는 의식입니다.

첫째는 삼세(三世)의 모든 불보살(佛菩薩), 삼세의 모든 법보(法寶), 삼세의 모든 승가(僧伽)에 대해서 세배를 올리고 그 다음에는 물론 이 용화사 법보선원을 창건하신 전강 조실스님께 세배를 올리고,

또 현재 살아계신 또는 돌아가신 모든 원근 친척, 여기에는 선망부모(先亡父母)도 다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세배를 올리고,

그 다음에, 같이 불법을 믿고 수행을 하는 모든 도반(道伴)들, 비단 이 도량(道場) 안에서 같이 수행하는 동수정업(同修淨業) 대중 말고 전국에 있는 모든 도반, 온 법계에 있는 모든 도반들에게 세배를 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은 삼세니까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분들, 또 멀고 가까운 데에 있는 모든 분들께 이렇게 세배를 올려서-그래서 통할 ‘통(通)’자, 통한다는 것은 걸림이 없고 막힘이 없다고 하는 그런 뜻인 것입니다.

지금부터 세배를 의식에 따라서 거행하겠습니다.

세배(歲拜)의 뜻은 ‘지난 한 해 동안 크고 작은 모든 좋은 인연과 또 나쁜 언짢았던 인연까지라도 깨끗이 다 청소를 하고 다 풀어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또 한 해를 시작합시다.’하는 그런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세배를 하면서도 지난 한 해 동안에 있었던 모든 것을 청산 하지 못하고 세배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참뜻이 못될 것입니다.

방금 우리는 십악참회(十惡懺悔)를 하고 깨끗해진 그 마음으로 다시 새해를 시작하는 다짐의 뜻이 있기 때문에 대단히 좋은 풍속(風俗)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례 법요식 때 하신 말씀>

 

편안하게 앉으십시오.
병자년 정월 초하루 설날을 맞이했습니다. 오늘 법보전에서 설날차례 법요식(法要式)이 거행이 되겠습니다.

법보전에서는 정월 초하루와 정월 대보름과 그리고 8월 추석날 연례행사로 차례(茶禮) 법요식이 있고 그런데, 특히 오늘 정월 초하루 설날의 차례 법요식은 유난히 뜻이 깊은 날입니다.

속가(俗家)에서도 정월 초하루는 옛날부터 조상들 사당(祠堂)에 차례(茶禮)를 올려왔는데,

요새는 옛날과 달라서-옛날에는 한 마을에 살면 몇십 대(代)를 내려가면서 자작일촌(自作一村) 해 가지고,
종갓집에는 사당을 모시고, 5대조(五代祖)까지 모다 신주(神主) 또는 가묘(家廟)를 딱 모셔놓고 차례도 젓수고, 제사날 모다 제사도 모시고 그러는데
지금은 특수한 가정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사당을 모실 수가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보통 사당은 산소를 모시고서도 5대조 이내에서는 집안에서 제사를 모시다가, 5대가 넘어가면 그 신주를 산소에 갖다가 묻고, 집안 제사는 지내지 아니하고 산에서 이제 시사(時祀)를 젓숫고 그러는데,

이 사당이 없으니까 영가(靈駕)가 안주처(安住處)를 갖지 못하고 그렇게 집에 있다가 거리 중천에 떠돌아다니다가 모다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영가를 환히 봐서 얘기가 아니고, 살아있는 사람이나 육체를 버린 영가나 그 이치에 있어서는 똑같은 것입니다.

사람은 육체를 가지고 있는 영가이고, 영가는 육체를 벗어버린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옷을 벗었다고 해서 딴 사람이 되고, 다른 옷을 갈아입었다고 해서 특별한 사람이 되지 아니하고,
목욕탕에서 옷을 벗었거나 목욕을 하고 나서 좋은 옷을 입었거나, 내나 그 사람인 것처럼 영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부모를 잘 받들어 모시는 것도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지만,
돌아가신 부모나 할아버지 할머니·증조부모(曾祖父母)·선망부모(先亡父母)를 잘 모시는 것도 우리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아주 중요하고도 좋은 도리요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등한히 해 가지고서는 가정도 질서가 없어지고, 사회도 질서가 없어져서 혼란이 오고, 나중에는 짐승과 사람의 구별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강 조실스님께서는  이 법보전(法寶殿)에 만년위패(萬年位牌) 제도를 개설을 해서 우리들의 선망부모를 편안하게 모실 수 있도록,
그래서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정이 되어가지고 또 좋은 법문을 듣고, 조석(朝夕)으로 올리는 축원에 의해서 항상 흐뭇하고 기쁜 마음으로 계시다가,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돌아오면은 도솔천(兜率天) 내원궁(內院宮)으로 올라가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법당 부처님 앞과 부처님 좌우에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의 궁전을 본받아서 이렇게 곱게 장엄을 한 까닭도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마을에서는 차례상(茶禮床)에 소고기, 돼지고기로 모다 굽고, 생선을 굽고, 비린내 누린내가 나도록 모다 나름대로 성의를 다해서 차례상을 마련하고, 또 온갖 과일과 떡과 모다 그런 것도 올립니다마는,

절에서는 그런 생선이나 육류 같은 것을 올리지 아니하고 깨끗한 과일과 떡만을 여러분의 정성으로 이렇게 해서 올리고, 조촐하면서도 경건하게 차례 법요식을 거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새해를 맞이해서 이 차례 법요식에 조실스님의 생사(生死) 없는 최상승 법문을 우리도 듣고, 법보전에 모신 우리의 선망부모 여러 영가들께서도 잘 들으셨을 줄 생각을 합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과일이나 떡이나 음식도 그것도 정성의 표현이지만,

조실스님의 법문(法門)이야말로, 영가들로 하여금 법희(法喜)·선열(禪悅)을 일으켜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해서 도솔천으로 올라가실 수 있도록 하는 그러한 법문이야말로 음식보다도 훨씬 더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모이신 우리 법보 가족은 정말 명실공히 영가를 위한, 그리고 우리 가정의 평화를 위한 그러한 차례를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새해를 맞이해서 우리는 간단하게 서로 세배를 주고받았습니다.
새벽에 통알(通謁)이라고 하는 법요식을 올렸습니다마는 결제중이라 낱낱이 웃어른들께 직접 가서 세배는 올릴 수가 없어서,
법당 안에서 단체적으로 이 자리에 선 채로 돌아가신 선망부모, 현재 살아계신 부모, 어른, 스승, 더 나아가서는 모든 선지식(善知識)과 불보살님께도 이 자리에서 전부 세배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세배를 할 때는 덕담(德談)을 하게 되는데, ‘복(福) 많이 받으십시오.’ 모다 그러는데, 복을 많이 받으라고 해서 받게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제석천왕이나 되면은 ‘복 많이 받으라.’하고 수기를 주신다면 혹 또 모르겠는데,
어린아이도 어른보고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저 누구든지 ‘복 많이 받으십시오.’하는데, 생각해보면, 따져보면 좀 그 복 많이 받으라는 소리가 좀 말이 된 것도 같고, 말이 안 된 것도 같은데,
대단히 좋은 풍속이고, 자세히 생각해 보면 그 ‘복 많이 받으십시오.’하는 속에 참 좋은 뜻이 잠겨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복을 많이 받으십시오.’ 복을 많이 받으려면 첫째 복을 많이 지어야 복을 받는 것이지, 지가 복을 받으라고 한다고 해서 받는 것은 아니거든.
그러니까 ‘복 많이 받으십시오.’한 말 속에는 복을 많이 지어서, 그래 가지고 복을 많이 받으라는 뜻이 잠겨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복(福)을 지으면 어떻게 짓느냐?

부처님 말씀에 재보시(財布施). 재물로 물질로 보시를 함으로서 복을 짓는 방법이 하나있고,
그 다음에는 부처님의 법, 진리 법을 설해줌으로 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진리에 나아가도록 하는, 도(道)에 나아가도록 하는 법보시(法布施)가 있고,
또 하나는 무외시(無畏施). 상대방으로 하여금-두려운 공포심에 떨고 있고,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따뜻하고 위로하는 마음-안심할 수 있도록 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서 공포심이 없어지도록 하는,
그것은 이제 형편 따라서 능력에 따라서 여러 가지 수준이 있겠습니다마는, 알기 쉽게 상대방에 두려움을 없게 해주는 무외보시(無畏布施)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복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有漏福)과 무루복(無漏福)이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정월 초하루, 차례 법요식을 만나서 다 같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복 많이 받으십시오.’

‘많이 받으십시오.’했지만, ‘복 많이 받읍시다.’ 그 말이고, 받도록 우리도 다 같이 노력하자는 뜻으로 알으시고, 힘차게 희망찬 병자년 새해를 시작하시기를 다짐하면서 말을 맺고자 합니다.(처음~21분19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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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알(通謁 통할 통,뵈일 알) ; 불교의 신년하례식(新年賀禮式)으로 세알(歲謁)이라고도 한다.
새해 첫날 삼세(三世)의 모든 삼보(三寶 불보살·법보·승가)와 호법신중(護法神衆), 대중에게 세배를 드리는 의식이다.
우선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법보와 승보에게도 삼배를 올린다. 또 현재 살아계신·돌아가신 모든 부모, 원근친척 그리고 온 법계의 모든 도반들 또한 함께 참석한 대중들에게 세배를 올리는 것.
결재중이고 그래서 낱낱이 모든 존경하는 어른들께 세배(歲拜)를 다닐 수가 없기 때문에 자기가 있는, 수도(修道)하고 있는 도량(道場)에서 합동으로,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이 우리가 세배(歲拜)를 올려야 할 존경할 만한 모든 성현(聖賢)과 모든 어른과 모든 선지식과 모든 도반들에게 이 자리에 서서 세배를 드리는 의식.
*세배(歲拜) ; 섣달그믐이나 설 무렵에 웃어른을 찾아뵙고 절을 함. 또는 그 절.
*승가(僧伽) ; 불도(佛道)를 닦는 사람들의 집단·사회.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일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십악참회(十惡懺悔) ; 몸(身)과 입(口)과 마음(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婬),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지은 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풍속(風俗) ; 옛날부터 그 사회에 전해 오는 생활 전반의 습관이나 습속(習俗).
*법요식(法要式) ; 불사(佛事)를 할 때 행하는 의식.
*사당(祠堂) ;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셔 놓은 집. 또는 신주를 모셔 놓기 위해 조그맣게 집처럼 만들어 둔 곳.
*차례(茶禮) ;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의 낮에 지내는 제사.
*자작일촌(自作一村) ; 한집안이나 뜻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서 한마을을 이룸.
*종갓집 ; ①한 문중에서 맏이와 그 식구가 사는 집. ②한 문중에서 맏아들로만 이어 온 큰집.
*5대조(五代祖) ; 고조할아버지의 아버지. *고조할아버지-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신주(神主) ; 죽은 사람의 위패.
*가묘(家廟) ; 조상의 위패를 모셔 놓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집안에 설치한 사당(祠堂).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시사(時祀) ; 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산소에 가서 지내는 제사.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안주처(安住處) ; 편안히 자리잡은 곳.
*증조부모(曾祖父母) ; 증조부와 증조모를 아울러 이르는 말. *증조부-아버지의 할아버지.
*등한(等閑)히 ;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게.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진리를 몸소 구현하신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법보전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전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시기나 때.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일•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조촐하다 ; ①아담하고 깨끗하다. ②행동, 행실 따위가 깔끔하고 얌전하다. ③외모나 모습 따위가 말쑥하고 맵시가 있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법희(法喜) ; ①설법(부처의 가르침)을 듣고 진리를 깨달아 마음속에 일어나는 기쁨이나 환희. ②참된 이치를 깨달았을 때 느끼는 황홀한 기쁨.
*선열(禪悅) ; 선정(禪定)에 들어 느끼는 기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명실공히(名實共히) ; 알려진 내용과 실제의 내용이 똑같게.
*선지식(善知識) ; ①정직하고 덕(德)이 있는 벗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상경(理想境)에 이르게 하는 이. ②남녀•노소•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불연(佛緣)을 맺게 하는 사람. ③지식(知識)•선우(善友)•친우(親友)•선친우(善親友)•승우(勝友)라고도 함.
*덕담(德談) ; 남이 잘되기를 비는 말. 주로 새해에 많이 나누는 말이다.
*보시(布施) ; 자비심으로 남에게 재물이나 불법(佛法)을 베풂.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가 지은 복(福)으로, 복을 지은 만큼 쓰면 다함이 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삼생(三生) ; 과거와 현재, 미래를 뜻하는, 전생(前生), 현생(現生), 후생(後生,來生)을 아울러 이르는 말.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일확천금(一攫千金) ; 힘들이지 않고 단번에 많은 재물을 얻음.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과보(果報)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공투세 ;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남을 원망하며 투덜거림.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공안 또는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