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삼요)2018. 5. 6. 23:30

 

 

§(578) (게송)춘종동해남비석~ / 참선은 모름지기 대신근(大信根), 대분지(大墳志), 대의단(大疑團), 세 가지 요긴한 것을 갖추어야 한다.

 

한번 화두를 탔으면 공부가 되고 안 되고 하는 것을 전혀 따질 필요가 없어. 잘되어도 잘된다고 좋아하는 생각도 낼 것이 없고, 잘 안되어도 잘 안된다고 번뇌심을 낼 필요가 없어. 안될수록에 더욱 그 화두를 향해서 불급불완(不急不緩)하게 한결같이 밀고 나가야 한다.

그래서 이 대신근과 대분지와 대의정은 그 중에 하나만 없어도, 세 다리로 서 있는 솥이 그 중에 하나만 부러져도 솥이 넘어져 버리는 거와 같아서 대도(大道)를 성취할 수가 없다.

 

**송담스님(No.578)—96년(병자년) 동안거결제 법어(96.10.15) (용578)

 

약 16분.

 

춘종동해남비석(春從東海南飛錫)하고  추향서산우북방(秋向西山又北方)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삼백육순장요요(三百六旬長擾擾)하야  부지하일도고향(不知何日到故鄕)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춘종동해남비석(春從東海南飛錫)하고, 봄에는 동해로부터서 저 남쪽으로 주장자(拄杖子)를 날리고,

추향서산우북방(秋向西山又北方)이로구나. 가을이 되면은 서산을 향하고 또 북방을 향해서 다니는구나.

 

삼백육순장요요(三百六旬長擾擾)하야, 삼백육십일을 정처 없이 안착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을 하고 다니드니,

부지하일도고향(不知何日到故鄕)이냐. 아지 못해라, 어느 날에나 고향에 돌아갈 것인가.

 

해제(解制)를 하면 걸망을 짊어지고 저 동에서 남쪽으로 주장자를 들고 가고, 또 가을이 되면은 동결제를 위해서 저 서산을 향할까 가다가 또 북방으로 가고.

걸망을 짊어지고 주장자를 짚고 그리고 선방을 찾아서, 선지식을 찾아서, 도반을 향해서 행각(行脚)을 하는 수좌(首座) 스님들의 거동을 읊은 것입니다.

 

결제 · 해제를 당해서 '이 철에는 어디로 갈까? 다음 철에는 어디로 갈까?' 이렇게 철 따라서 동서남북으로 왔다갔다하는 것은 옛날부터서 지금까지 변함이 없이 행해지고 있는 모습이어서 그것을 꼭 나쁘다고 할 것도 없고.

 

부처님께서는 "한 돌 위에, 한 나무 밑에 사흘 저녁을 자지 말아라"

'한군데서 붙배기로 있게 되면은 거기에 애착심이 생기니까 그렇게 한곳에 집착해서 있지 말라' 그런 뜻으로 말씀을 하시나,

 

어디가 있던지 한 철을 지내건, 두 철을 지내건, 항상 새로 방부(房付)를 들이고, 새로 첫 철로 그 선원에 들어온 것처럼 엄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낸다면 삼 년 내지 십 년을 지낸들 무슨 상관이 있을 것이냐.

한번 딱! 방부를 들이면 옛날 스님네는 그 선지식(善知識)을 믿으면 그 선지식 밑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때까지 십 년이고 내지 삼십 년도 거기를 떠나지 아니하고, 거기서 아주 바닥을 볼 때까지 그 회상(會上)을 떠나지 않고 정진을 한 그런 예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냥 멋으로, 취미로 이리갔다 저리갔다, 으레이 해제하면 걸망짐 싸매 지고 이리갔다 저리갔다 그렇게 뜻 없이 방황한 것에 대한 그것을 경계(警戒)하는 게송(偈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병자년 10월 15일 동안거 결제일입니다.

방금 결제 법어로 전강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최상승(最上乘) 법문(法門)을 녹음을 통해서 우리는 경청을 했습니다. 더이상 결제 법문을 산승(山僧)이 법문이라고 설할 것도 없고, 이미 우리는 조실 스님의 그 천지를 진동할만한 대사자후(大獅子吼)를 들었습니다.

 

산승이 이 자리에 올라와서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새로 선방에 나와서 방부를 들인 초심학자(初心學者)를 위해서 몇 마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고인(古人)이 말씀하시기를, 참선은 모름지기 세 가지 요긴한 것을 갖추어야 한다.

무엇 무엇이 세 가지냐 하면은 첫째, 대신근(大信根)을 가져야 해. 둘째는 대분지(大志)를 가져야 하고, 셋째는 대의단(大疑團)이 있어야 한다.

 

첫째, 큰 신근(信根), 큰 신심이라 하는 것은 무엇을 믿는 것이냐?

내가 바로 부처요, 여법(如法)하게 열심히만 정진을 하면 반드시 깨칠 수 있다고 하는, 고조사(古祖師)와 같이 깨달을 수 있다고 하는 철저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여.

 

왜 내가 고조사와 같이 깨달을 수가 있느냐, 깨칠 수 있느냐.

무량겁 전에는 부처님이나 모든 조사나 우리가 다 같이 원각, 본각(本覺)으로써의 한 존재였었다 그말이여.

 

한 생각 무명심(無明心)이 발동함으로 해서 나는 아직까지도 나의 본각을 잊어버린 채 이렇게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을 뿐이지,

이 오음(五陰),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친 이 오음색신(五陰色身) 속에 분명히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면목을 깨닫기만 하면 언제라도 우리는 바로 본고향(本故鄉)에 돌아갈 수가 있다.

 

그러한 교리상으로도 그러려니와 부처님을 비롯한 모든 조사들이 다 그렇게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한 선례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 법에 의지해서 열심히만 공부하면 왜 나라고 해서 못 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한 대신근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는 대분심(大憤心)인데, 무슨 분심이냐 하면은 '왜 과거에 부처님과 조사들은 진즉 이 문제를 해결해 가지고 확철대오하고 생사해탈을 해서 중생을 교화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삼독 고해(苦海) 속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느냐' 그러한 속에서 끓어오르는 그런 분심을 가져야 한다 그거거든.

그러한 분심이 없고서는 사소한 일에 끄달리고 철저하게 정진할 수 있는 용기가 나지를 않아.

 

분심(憤心)을 갖느냐, 안 갖느냐에 따라서 아무리 신근(信根)이 철저하다 해도 분심이 없고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을 다 발휘할 수가 없는 것이여.

평소에는 도저히 그만큼 무거운 것을 들어 본 적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불이 나면 엄청난 무거운 것을 불끈 들고 문밖으로 나가는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이 분심 때문에 그러거든.

 

처음부터 자신(自信)을 갖지 못하고 분심이 없어가지고 그럭저럭 이렇게 지내면 만날 지내 봤자 삼백육십일을 동서남북으로 걸망짐을 지고 왔다갔다해 봤자, 언제 그렇게 정처 없이 떠돌기만 해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있겠느냐.

분명히 자기 고향이 있는 방향을 알고 그 방향을 향해서 자나깨나 그 목적지를 향해서 부지런히 가야할 것이다.

 

셋째, 대의정(大疑情), 대의단(大疑團)을 가져야 한다.

대의정(大疑情)이라 하는 것은 본참공안(本參公案), 본참화두—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받은 화두(話頭),

화두는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화두인데, 그 화두가 아무리 많다 해도 그 화두를 자기 멋대로 아무거나 하나 추려 가지고 그렇게 해 가지고서는 안된다 그말이여.

 

자기가 마음대로 취택한 화두는 언제라도 공부가 좀 잘 안된 성 싶으면 자기가 또 바꿀 수가 있어서, 자꾸 화두를 이놈으로 했다 저것으로 했다 바꿔 싸면, 마치 우물을 파는데 여기 좀 끌적거려 봐서 물이 안 나오면 저쪽에 가서 끌적끌적 해 보고, 몇십 군데를 파 봤자 정말 좋은 물을 얻을 수가 없는 거와 마찬가지여.

화두를 이놈으로 했다 안되면 저놈으로 하고, 저놈으로 화두 했다 안되면 한 철 만에 바꾸고 두 철 만에 바꾸고 그러면 종내 그 사람은 큰 깨달음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한번 화두를 탔으면 공부가 되고 안 되고 하는 것을 전혀 따질 필요가 없어. 잘되어도 잘된다고 좋아하는 생각도 낼 것이 없고, 잘 안되어도 잘 안된다고 번뇌심을 낼 필요가 없어.

안될수록에 더욱 그 화두를 향해서 불급불완(不急不緩)하게 한결같이 밀고 나가야 한다.

 

그래서 이 대신근과 대분지와 대의정은 그 중에 하나만 없어도, 세 다리로 서 있는 솥이 그 중에 하나만 부러져도 솥이 넘어져 버리는 거와 같아서 대도(大道)를 성취할 수가 없다.

 

그런데 대신심과 대분지와 대의단을—이것은 참선(參禪)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하나도 없어서는 안될 요긴한 것이다—그러한 것을 염두(念頭)에 항상 가져야 할 것인데.(처음~16분2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게송) '춘종동해남비석~'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행각승(行脚僧)' 게송 참고.

*주장자(拄杖子 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들이 좌선(坐禪)할 때나 설법(說法)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걸망 ; 물건을 담아서 등에 질 수 있도록 만든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붙배기 ; '붙박이(어느 한 자리에 고정되어 박혀 있어서 움직임이 없는 상태. 또는 그런 사물이나 사람)'의 사투리.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바닥(을) 보다 ; ①(사람이) 밑천이 다 없어지다. ②(사람이) 어떤 일의 끝장을 보다.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으레이 ; 으레(①거의 틀림없이 언제나 ②두말할 것 없이 마땅히)의 사투리.

*경계(警戒 경계할 경/경계할 계) ; ①뜻밖의 사고나 잘못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여 단속함. ②적의 기습이나 간첩 활동과 같은 예상하지 못한 침입을 막기 위해 일정한 지역을 살펴 지킴.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초심학자(初心學者) ; 발심학자(發心學者 발심한 수행자).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부처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무량겁(無量劫 없을 무/헤아릴 량/가장 긴 시간 겁) ; 헤아릴[量] 수 없는[無] 오랜 시간[劫]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원각(圓覺) ; ‘원만(圓滿)한 신령스러운 각성(覺性)’ 부처님의 원만한 깨달음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원만한 깨달음의 경지인 청정한 본심을 일컬어 원각묘심(圓覺妙心)이라 한다.

일체의 생명에는 본래부터 깨달음[本覺]이 있고 진심(眞心)이 있어서, 체(體)의 입장에서 그것을 표현을 하면 일심(一心)이라 하고, 인과(因果)의 인(因)을 잡아서 표현을 하자면 그것을 여래장(如來藏)이라 표현하고, 인과(因果)의 과(果)로 잡아서 표현을 하면 그것을 원각(圓覺)이라 한다.

*본각(本覺) : 본래 갖추어져 있는 깨달음. 부처님의 본래의 깨달음. 일체 중생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각성(覺性)의 뜻으로서 청정한 심성(心性)을 말함。 이 심성은 허명(虛明)해서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도 아니요 또 자연적인 것도 아니며, 본래 중생의 상념(想念)을 떠나서 법계에 두루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망(迷妄)과 깨달음에 관계 없는 절대적인 경위(境位)이다.

*무명(無明) :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기신론(起信論)』에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육도윤회(六途輪廻)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오음(五陰) ; 오온(五蘊)의 구역(舊譯).*오온(五蘊) : 온(蘊)은 무더기•모임•집합•더미를 뜻함.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의 무더기.

①색온(色蘊) : 몸이라는 무더기. 몸의 감각 무더기 ②수온(受蘊) : 괴로움이나 즐거움등, 느낌의 무더기 ③상온(想蘊) : 대상에 이름을 부여하고, 다양한 개념을 지어내는 생각•관념의 무더기 ④행온(行蘊) : 의도(意圖)하고 지향하는 의지•충동•의욕의 무더기 ⑤식온(識蘊) : 식별하고 판단하는 인식의 무더기.

*오음색신(五陰色身) ; 오온색신(五蘊色身). 오온으로 이루어진 육신[色身 형질을 가진 몸].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의 얼굴·모습).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본고향(本鄕) ; 본향(本鄕). 고향.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불급불완(不急不緩) ; 급하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대도(大道) ; ①부처님의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각(覺). 보리(菩提).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염두(念頭) ; 마음속. 마음의 속.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