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 정진(요중선)2017. 10. 8. 11:41

 

 

§(364) (게송)유록앵전신~ / 탐진치, 사리사욕을 놔 버려라 / (게송)가소세간애~ / 내 인생 바칠 곳은 내 생사 구제하는 길밖에는 없다 / 더위 속을 향해서 피서를 허는 법을 터득해야.

 

인간의 행복도 그 욕심으로 행복을 얻을려고 하는 데에서 점점 재앙만 일어나고 불행만 돌아오는 것이지, 그 탐진치 삼독만 놔 버리면 행복은 바로 그 속에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이여.

 

육바라밀(六波羅密) 속에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이 맨 처음에 있는데, 그 보시라고 허는 것은 버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보시를 허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재산도 보시를 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남에게 베풀고. 보시를 한다고 허는 것은 버리는 법이거든.

 

인간이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고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잠시 번쩍 하다가 사그라져 버리는 그러헌 한 뭉치의 불꽃과 같은 존재에 지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괴로워도 ‘이뭣고?’ 어떠헌 슬픈 일을 당해도 ‘이뭣고?’ 어떠한 어려운 지경에 당하드라도 ‘이뭣고?’ 이놈 하나로써, 이놈을 간절히 거각(擧却)함으로써 모든 난관을 극복해 나간다면 만나는 모든 슬픔과, 만나는 괴로움과, 만나는 어려운 것들이 모두가 다 나로 하여금 깨달음에 나아가게 하는 채찍이 될 것입니다.

 이 무상(無常)하고 허망한 이 세계와 이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거각한다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 수 있는 지혜의 보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송담스님(No.364)—88년 8월 첫째일요법회(88.08.07) (용364)

 

(1) 약 13분.

(2) 약 13분.

 

(1)------------------

 

유록앵전신(柳綠鶯傳信)이요  화홍연소원(花紅燕訴寃)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광음여과객(光陰如過客)이요  아역일소혼(我亦一銷魂)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유록(柳綠)은 앵전신(鶯傳信)이요. 푸른 버들은 꾀꼬리가 전하는 소식이요. 꾀꼬리가 전하는 봄의 소식이요.

화홍(花紅)은 연소원(燕訴寃)이다. 꽃이 붉은 것은, 벌겋게 핀 꽃은 제비가 원한을 호소하는 것이다.

꾀꼬리가 전하는 소식이 무엇이며, 제비가 호소하는 그 원한이 무엇입니까?

 

광음(光陰)은 여과객(如過客)이여. 그 세월은 과객(過客)처럼 그렇게 잠깐 왔다가 스쳐서 지나가 버리는 손과 같어.

아역일소혼(我亦一銷魂)이다. 나도 또한 잠깐 훨훨 타다가 사라져 버리는 하나의 혼백(魂魄)에 지내지 못한다.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하나도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전부가 다 유위법(有爲法)입니다.

봄이 아무리 버들이 푸르르고 아름다운 꽃이 울긋불긋 피었다 하더라도 잠시인 것입니다. 인생으로 태어나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려 봤댔자 잠깐인 것입니다.

부귀영화. 그 참, 인생에 살아가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마치 불과 같아서—불이 없어서는 안 되지마는 그 불을 잘못 다루면 그 불에 집도 타고, 재산도 타고, 내 몸뚱이도 타고 생명도 앗아가 버리고 맙니다.

 

부귀영화. 참, 사람마다 부귀영화를 싫어헌 사람은 거의 없고 모두가 다 부귀영화에 탐착(貪着)을 하고 부귀영화를 위해서 몸을 바치고 생명을 바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어진 것이 과연 자기를 참다웁게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느냐 허면은 그러기커녕은 그놈 좀 어떻게 남보다 더 많이 긁어 담을라다가 그 쇠고랑을 차게 되고, 금생에도 쇠고랑을 차고 내생에도 삼악도(三惡途)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산중에, 저 깊은 산중에 가면은 곰이 살고 있는데, 그 곰이란 놈이 이렇게 슬슬슬 땅도 뒤지고 바위도 뒤지고 허다 보면 바위 속에서 뭐 이상한 맛있는 냄새가 난다 그말이여.

뭐 토끼같은 거, 여우같은 거, 그런 것이 그 바위 굴속에 이렇게 파고 들어가서 거기서 인자 살고 있는데, 그 바위와 바위 사이로 공기통이 있어서 그 공기통으로 그놈들이 숨을 쉬고 있는데, 곰이 그리 지나가다가 돌 틈바구니에서 그 토끼나 여우나 모다 그러헌 짐승의 노랑 냄새가 난다 그말이여.

 

그래서 씩씩씩씩 냄새를 맡다가 그 돌 틈으로 그 곰이란 놈이 손을 집어넣어 가지고 이렇게 꽉! 잡았다 그말이여. 잡었는데, 암만 뺄라고 해도 그놈이 돌 틈바구니에 콱 찡겨 가지고 그놈이 빠지들 않는다 그말이여.

한 시간 두 시간을 갖다가 주먹에서 피가 나오도록 몸부림을 치면서 그놈을 뺄라고 해도 팔이 빠질라고 할지언정 주먹이 안 나온다 그말이여.

 

쥐었던 그놈이 토끼 대가리가 되았던, 여우 배떼기가 되았건, 그놈을 놔 버리면 빠질 텐데, 잡은 놈을 죽어도 안 놓을라다가 결국은 그놈이 콱! 찡겨 가지고 결국은 그놈이 포수한테 앵기면은 총에 맞아서 죽을 것이요, 나무꾼한테 앵겨 놓으면 몽둥이에 대가리가 깨져서 죽을 것이고, 혹 그런 사람을 못 만나면 그놈이 굶어서 죽을 거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놈의 곰이란 놈은 어떻게 미련하던지 아! 그놈을 놔 버리면 손이 빠질 줄을 모른다 그말이여. 그놈만 놔버리면 그냥 수르르르~ 하나도 안 아프게 손이 빠질 텐데, 아! 그 모처럼 만난 그놈을 잡아 갖고 놓칠 수는 도저히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끝끝내 그놈을 놓을 줄을 모르고 억지로 손을 뺄라다가 팔목이 빠져 버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놈이 죽고 말 것이다 그말이여.

 

중생의 욕심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 사욕(私慾), 사리사욕(私利私慾) 그놈만 놔 버리면 온갖 재앙이 다 자기로부터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 사리사욕, 그 탐진치(貪瞋癡), 그 욕심 그것만 놔 버리면 세계 평화도 거기에서 다 이루어질 것이고 민주주의도 정말 뭐 얼마 안 가서 금방 민주주의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여당 야당 모두가 다 그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일어난 그 사리사욕만 놔 버리면 민주주의 하나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 남북 통일도 그것만 양쪽에서 다 놔 버리면 통일이 왜 그것이 어려울 것입니까?

 

인간의 행복도 그 욕심으로 행복을 얻을려고 하는 데에서 점점 재앙만 일어나고 불행만 돌아오는 것이지, 그 탐진치 삼독만 놔 버리면 행복은 바로 그 속에 원만구족(圓滿具足)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이여.

 

깨달음. 도저히 암만 참선(參禪)을 하고 10년, 20년 참선을 그렇게 애를 쓰고 해도 신심(信心)이 안 나고, 분심(憤心)이 안 나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지 못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한다 하지만 아애(我愛), 아만(我慢), 아치(我癡), 중생에 탐진치 사욕만 놔 버리면 어찌 거기에서 신심이 일어나지 아니하며, 분심이 일어나지 아니하며, 의단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육바라밀(六波羅密) 속에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이 맨 처음에 있는데, 그 보시라고 허는 것은 버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보시를 허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재산도 보시를 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남에게 베풀고. 보시를 한다고 허는 것은 버리는 법이거든.

 

자꾸 버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버리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버리고, 일체처 일체시에 자꾸 버리고 또  버리는 가운데에 거기에서 업장(業障)이 다 거기서 떨어져 나가고, 거기에서 번뇌와 망상도 떨어져 나가고, 일체 장애도 거기에서 다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지계(持戒)와 인욕(忍辱)과 정진(精進) 선정(禪定) 그런 것이 다 참되게 닦을 수가 있고, 마침내는 지혜(智慧)의 바라밀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고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잠시 번쩍 하다가 사그라져 버리는 그러헌 한 뭉치의 불꽃과 같은 존재에 지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괴로워도 ‘이뭣고?’ 어떠헌 슬픈 일을 당해도 ‘이뭣고?’ 어떠한 어려운 지경에 당하드라도 ‘이뭣고?’ 이놈 하나로써, 이놈을 간절히 거각(擧却)함으로써 모든 난관을 극복해 나간다면 만나는 모든 슬픔과, 만나는 괴로움과, 만나는 어려운 것들이 모두가 다 나로 하여금 깨달음에 나아가게 하는 채찍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푸른 버들과 꾀꼬리 우는 소리를 듣고도 그것은 바로 나로 하여금 ‘이뭣고?’를 들라고 허는 법문(法門)으로 듣고, 붉은 꽃 노란 꽃을 봐도 그것은 나로 하여금 어서 속히 화두를 들고 깨달음을 얻으라고 허는 불보살(佛菩薩)의 법문으로 듣고,

그러면서 이 무상(無常)하고 허망한 이 세계와 이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한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거각한다면 무상 속에서 영원을 살 수 있는 지혜의 보배를 얻게 될 것입니다.(33분39초~46분14초)

 

 

 

 

 

(2)------------------

 

가소세간애(可笑世間愛)여  빙소와해시(氷銷瓦解時)니라

나무~아미타불~

은다번극한(恩多飜極恨)이요  환극각성비(歡極却成悲)니라

나무~아미타불~

 

가소세간애(可笑世間愛)여. 가히 우습다, 세간(世間)의 애정이여. 빙소와해시(氷銷瓦解時)로구나. 얼음이 녹고 기와가 깨지는 때로구나.

세간의 부모 자식 간의 애정, 부부간의 애정, 모든 그 얽히고설킨 끊을라야 끊을 수 없는 그 애정이 잠깐 사이에 얼음이 녹고 기왓장이 깨지는 거와 같다.

 

얼음이 딱딱하게 얼어져 갖고 있을 동안에는 유리와 같고, 참 그렇지만 금방 영하 0도를 벗어나면은 슬슬슬슬 녹아 버리고 100도가 되면은 그냥 증기로 다 날아가 버린다 그말이여.

기왓장이 그놈이 성할 때에는 하늘에 내리는 비도 막고 그렇지마는 그것이 불이 난다든지 깨져서 바삭바삭 깨져 버리면 그 뭐 기왓장이라고 헐 것이 무엇이냐 그말이여.

 

은다번극한(恩多飜極恨)이요. 은혜. 은혜스럽고 은혜가 많으면은, 참 그 은혜를 많이 입고 은혜를 입으면은 참 좋다고 모다 사람들은 그것을 바래지만, 은혜가 지중(至重)하면 그것이 변해 가지고 원한이 극하게 사무치게 된다.

환극각성비(歡極却成悲)다. 사람은 슬픈 것보단 기쁜 일을 당하면은 모두가 다 당하고 무엇이든지 기쁘기를 바래고 기쁜 일이 끝없이 자기 주변에 일어나기를 바래지마는 그 기쁜 일이 극하면 도리어 슬픈 일로 변하는 것입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이 그 재산을 자식을 위해서 집도 사 주고, 차도 사 주고 엄청난 재산을 물려주면 참, 부모는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고, 한때는 그 자식이 그 부모가 많은 재산을 물려주고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주면은 부모가 고맙다고 좋다고 하지만,

자기의 욕심이 차지를 않고 ‘행여나 형을 더 많이 준가? 동생을 더 많이 준가? 누나를 더 많이 준가?’해 가지고 욕심이 치솟으면 자기 평생 먹을 만큼 받아 놓고도 욕심이 더 끝이 없어서 ‘더 많이 주지 아니헌가?’해 가지고 도리어 부모를 원망하고 형제간에 싸우고 형제간에 죽이기도 하고 재판질을 하고 그러헌 예는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차라리 가난해서 별로 잘 맥이지도 못하고 잘 입히지도 못하고 또 많은 재산을 가 집 한 채도 사 주지도 못하고, 차라리 그런 가난한 집에서는 형제간에 우애하고 또 부모를 위해서 효도를 하고 그러헌 사람이 더러더러 있지마는 돈 많은 사람으로서 효도허는 집안은 내가 별로 보지를 못해.

그래서 자식을 위해서 돈 많이 벌어서 많이 물려줄라고 행여나 그런 짓 하지 말고, 어쨌든지 어지간히 있으면은 돈 많이 벌라 하지 말고 참선을 많이 하고.

 

있는 재산 될 수 있으면은 어쨌든지 유용하게 다 버려야 돼. 보시를 해서, 절에도 보시하고 또 다른 이웃에도 보시를 하고, 양로원 고아원에도 보시해서 자꾸 버려버려.

자식한테는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다’ 그 참다웁게 살아가는 길을 가르켜 주는 것으로써 그것을 유산으로 그것을 물려주면, 지가 노력을 해서 저 먹을 것을 지가 벌게 해야지, 돈 많이 주면 자식은 타락하고 그 자식의 참다운 사는 길을 배울 겨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지 우리가 생명을 바치고 인생을 바칠 곳은 내 생명, 내 생사 구제하는 길밖에는 없어.

‘이뭣고?’ 이 하나로써 더위도 이겨나가고 슬픔도 이겨나가고 고통도 이겨나가는 오직 이 ‘이뭣고?’ 하나밖에는 없는 것이여.

 

더워도 자꾸 선풍기 틀어 놓고 시원한 데만 찾지 말고, 바다로 강으로 헤매지 말고 턱! 가부좌(跏趺坐)를 하고서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이뭣고?’를 해보시라 그말이여.

등어리에 설사 더워서 땀이 줄줄, 저는 흐르라고 놔두고서 ‘이뭣고?’를 간절히 들면 얼마 안 가서 정말 더운 줄을 모릅니다. 더운 줄을 몰라.

 

더움 속에서 더운 줄을 망각해야 더위를 피하는 것이지, 덥다고 부지런히 부채질을 허면은 그냥 더 가슴은 답답허고 그냥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이 아주 그냥 미칠 것 같이 못 견딘다 그 말이야. 섰다 앉았다, 옷을 벗었다 입었다 그냥 안절부절할수록 무장 더 더운 거여.

 

‘지가 더우면 설마 내가 타 죽기 허랴’ 터억 버티고 앉어서 ‘이뭣고?’를 허면서 턱 한번 해보시라 그말이여. 더위는 거기에서 물리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시간 턱 하고 나서 찬물로 등목을 한번 허고, 샤워라도 한번 하고서 그때 가서 부채질을 한번 설설 해보란 말이여. 이것이 참 멋스럽게 피서(避暑)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또 앞으로 복(伏)이 한 일주일 나면 복이 끝나는데, 그동안에 강이나 바다로 가고 싶으면 물에 풍덩 들어갔다 나왔다 허지 말고, 그 뜨거운 모래 속으로 피서를 한번 해 보셔.

머리만 내놓고 모래를 6센티 내지 9센티 가량, 가슴은 너무 많이 덮으면 숨이 가쁘니까 얇게 덮고, 팔다리는 두툼허니 덮고서 얼굴에 우산이나 양산, 수건으로 얼굴만 딱 덮고서, 그 더웁지마는 터억 더운 것을 즐겨 보시라 그말이여.

 

‘지가 더우면 얼마나 더울까?’하고, ‘그 더워 허는 그놈이 대관절 무엇인가?’ 그놈을 탁 관조하면서 있으면 그렇게 따겁든 것이 언제 시원한 것으로 변허는 거여.

몸은 득신득신득신 혈관이 뛰는 것을 느끼면서 그 더운 줄 아는 놈을 그놈을 관조를 허면 하나도 더웁지를 안 해. 시원허다 그말이여. 그 뜨거운 국물을 여름에 훨훨 마시면서도 “아, 시원하다” 그러잖아요?

 

그렇게 화끈화끈화끈 더웁지마는, 그 더워할 줄 아는 그놈을 관조허면 그 더운 것이 시원한 것으로 변헌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신경통도 낮고, 관절염도 낫고, 배안에 모든 숙변도 빠지고, 간장 나쁜 것도 낫고, 위장병도 낫고, 온갖 병이 그 더위 속에서 ‘이뭣고?’로써 피서를 허면서 그 더워할 줄 아는 그놈을 관조허는 속에서,

모래, 그 뜨거운 모래가 모세관 현상으로 해서 그 몸안에 독소를—태양의 그 더위는 땀구멍을 가짓껏 열어주고 또 모래는 모세관 현상으로 해서 몸안에 독소를 흡입을 해내는 거여. 쫙 빨아내. 그래가지고 몸에 독소가 빠지니까 몸이 가벼워지고 병이 다 녹아지는 거여.

 

이렇게 그 '모래찜'에 대해서 말씀을 하니까 또 이것이 좋다하고 가서 너무 무리하게 해 가지고 병이 나선 안됩니다. 한 두어 시간—오전에 한 두어 시간, 오후에 한 1시간 내지 2시간, 자기 체질과 연령에 따라서 적당허니 허면 참 좋은 것입니다.

 

앞으로 남은 더위를 ‘이뭣고?’로써 잘 피서를 허시면 금방 또 찬바람이 올 것입니다.

 

이 더위 속을 향해서 피서를 허는 법은 거기에서 우리는 정말 훌륭한, 이 인생의 고해(苦海)를 고해 속에 바로 파고 들어가서 그 고해에 즉(卽)해서 그 고해를 해탈(解脫)하는, 생사 바다 속에 들어가서 그 생사를 해탈하는 그 생활의 지혜를 여기에서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지혜의 눈을 바로 지금 오늘 이 산승(山僧)의 말 속에서 터득을 한다면은 이 사바세계는 바로 이 적광토(寂光土)로 변조를 할 수가 있는 것이고, 이 더위 속에서 바로 서늘한 이 청량으로 변조하는 이 수단을 우리는 터득을 헐 수가 있을 것입니다.(46분21초~59분16초)(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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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유록앵전신~’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석춘(惜春)’ 참고. 鶯, 鷪, 鸎, 䴍은 모두 같은 글자(꽤꼬리 앵).

*과객(過客 지날·들를·떠날 과/손님·나그네 객) ; 지나가는 나그네.

* ; 손님. 객(客). ①다른 곳에서 찾아온 사람. ②남의 집을 방문한 사람. 남의 집이나 여관 따위에 묵고 있는 사람. ③지나가다 잠시 들른 사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유위법(有爲法) ; ①여러 인연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모든 현상. 여러 인연으로 생성되어 변해 가는 모든 현상. 인연의 모임과 흩어짐에 따라 변하는 모든 현상.

②온갖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형성된 현상. 분별을 잇달아 일으키는 의식 작용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차별 현상. 인식 주관의 망념으로 조작한 차별 현상.

*부귀영화(富貴榮華) ; 많은 재산과 높은 지위로 누릴 수 있는 영광스럽고 호화로운 생활.

*탐착(貪着) ; ①만족할 줄 모르고 탐하고 집착함. 탐하고 구하는 것. 욕심부려 집착하는 것. 집착하는 것. 욕심부리는 것. 욕심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대상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 ②깊이 마음에 두는 것.

갈애(渴愛), 애착(愛著 愛着), 염착(染著), 집착(執着), 탐애(貪愛), 탐욕(貪欲)이라고도 한다.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랑 냄새 ; 노린내(노린 냄새 : 짐승의 고기에서 나는 마음에 거슬리는, 역逆한 기름내).

*앵기다 ; 잡히다. 잡다(붙들어 손에 넣다. 짐승을 죽이다)의 피동사.

*사욕(私慾 사사로울 사/욕심 욕) ;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私] 이익이나 만족만을 탐하는 욕심(慾心).

*사리사욕(私利私慾 사사로울 사/이로울 리/사사로울 사/욕심 욕) ; 사사로운[私] 이익(利益)과 개인적인[私] 욕심(慾心).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원만구족(圓滿具足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갖출 구/충족할 족)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할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아애(我愛) ; 아(我)에 대한 깊은 애착심. 아탐(我貪).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제7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아만(我慢 나 아/거만할·게으를 만) ; ①오온(五蘊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아(我)를 실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우열의 관점에서 남과 나를 차별하여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는 자아관.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제7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아치(我癡) ; 아(我)에 대한 무지(無知). 무아(無我)의 이치를 알지 못하여 일으키는 번뇌. 네 가지 근본번뇌(四根本煩惱, 四惑) 중 나머지 세 가지 번뇌를 일으키는 근본이다.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여섯 가지 수행의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보시(布施) : [범] dana  음을 따라 단나(檀那)라고도 쓴다。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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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가소세간애~’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태희사미귀령(太熙沙彌歸寧)’ 참고.

*세간(世間) ; (산스크리트어 loka) 세(世)는 파괴·변화, 간(間)은 가운데·간격을 뜻함.

① 변하면서 흘러가는 현상계. ② 생물들의 세계. ③ 생물들이 거주하는 자연 환경, 곧 산하대지. ④ 세상. 이 세상. 세속. ⑤ 산스크리트어 saṃsāra 미혹한 세계. ⑥ 육내입처(六內入處), 또는 십이처(十二處)를 말함.

*지중하다(至重-- 이를 지/무거울·소중할 중) ; ①(무엇이)더할 나위 없이 무겁다. ②(무엇이)더할 나위 없이 귀중하다.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〇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1분32초)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무장 ; ‘더욱, 한사코’의 사투리.

*등목 ; 목물(바닥에 팔다리를 뻗고 엎드린 사람의 등에 물을 끼얹어, 몸을 씻고 더위를 식혀 주는 일).

*고해(苦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 개의 세계, 삼계(三界 :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에서 생사의 괴로움이 무한하므로 바다에 비유함.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항상[常] 변하지 않는[寂] 광명[光]의 세계[土]. 부처님의 거처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