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구참선 최상승법2018. 9. 27. 13:57

 

 

§(311) (게송) '역력이빈주~' /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법, 활구참선법 그거 하나를 위해서 여러분은 여기에 오신 것 / 활구참선과 사구참선.

 

요새 참선에 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져 가고 있지마는, 정말 이 활구참선을 지도하고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흔치 않는 것입니다. 참선이면 다 같은 것 같지마는 그렇지를 않습니다.

활구참선은 숙세에 정법(正法)의 씨를 심은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들어도 믿어지지 아니하고, 아무리 권고해도 마음이 쏠리지를 않는 것입니다.

무조건하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렇게만 해 나가는 거여. '판치생모'란 뜻이 무슨 뜻인지 그것도 알 필요도 없고, 다못 ‘어째서 조주 스님이 판치생모라 했나?’ 그렇게만 자꾸 해 나가는 거여.

 

**송담스님(No.311)—1986년 10월 첫째일요법회. (용311)

 

약 20분.

 

역력이빈주(歷歷離賓主)요  요요절색공(寥寥絶色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목전근기취(目前勤其取)하라  산립백운중(山立白雲中)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역력이빈주(歷歷離賓主)요  요요절색공(寥寥絶色空)이다.

역력해서 빈(賓)과 주(主)를 여의었고. ‘역력(歷歷)하다’는 말은 명백(明白)하다 말이여.

요요명명(了了明明)하고 소소영령(昭昭靈靈)해 가지고, 명백해서 주객을 여의었어. '주관이다 객관이다'하는 주객을 여의어 버렸어.

 

요요절색공(寥寥絶色空)이다. 적적(寂寂)하고 요요(寥寥)해서, 고요하고 고요해서 색(色)과 공(空)이 끊어져 버렸다.

 

목전근기취(目前勤記取)하라. 목전(目前)에 부지런히 기취(記取), 정신을 차려서 그놈을 똑바로 봐라.

산립백운중(山立白雲中)이다. 산이 백운(白雲) 가운데 서 있느니라.

 

중생은 무엇을 보던지, 무엇을 듣던지 무슨 생각이 일어나면 반드시 거기에 분별심을 일으켜.

‘좋다 나쁘다, 이것은 니 것이다 내 것이다, 푸르다 누르다' 그러한 분별심을 일으키고. '이것은 색이다 공이다' 그러한 차별심을 일으키기 때문에 벌써 분별심을 내고 차별심을 내면 그것이 바로 주객에 떨어지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공(空) 아니면 색(色)이요, 색(色) 아니면 공(空)에 걸린 것이다 그말이여.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는 사람은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간에,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눈으로 무엇을 보던지, 귀로 무슨 소리를 듣던지, 무슨 한 생각이 일어나던지 다못 목전에 알 수 없는 자기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擧却)해 나갈 뿐이여.

 

 

금방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전강 조실 스님의 활구참선의 법문을 들었습니다마는.

 

여러분들이 이 바쁜 세상에 일주일 동안을 부지런히 일하고 생활을 하다가 일요일이 되면 산이나 들이나 강이나 어디 그런 데 가서 피로를 풀고 하루 동안을 재미있게 부담없이 잘 지내야 피로가 해소가 되고 그래서 또 월요일이 되면은 가뿐한 마음으로 직장에 모두 나가시고 생업에 종사를 하셔야 할 텐데 왜 그러한 재미있는 곳을 버리고 여기를 이렇게 많이 오셨느냐?

재미있는 얘기를 들을라고 오신 것도 아니요, 무슨 어려운 교리를 설명을 듣자고 오신 것이 아니여.

 

재미있기로 말하면 극장에 가서 연극을 보던지, 영화를 보던지 얼마든지 재미있는 곳이 있을 것이고, 어려운 교리 모다 경에 대한 해설을 듣고 싶으면은 여러 군데 다른 절에서도 경에 대한 해설을 하는 곳이 많이 있으니 거기를 가시면 될 것인데, 왜 하필 이 주안(朱安) 염전 가에 이런 절에까지 이렇게 오셨느냐?

 

그것은 오직 내가 나를 깨닫는 법,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그거 하나를 위해서 여기에 오신 것이다.

마침 오늘 전강(田岡) 대선사(大禪師)의 활구참선에 관한 법문을 오늘 듣게 되었습니다.

 

활구참선.

요새 참선에 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져 가고 있지마는, 정말 이 활구참선을 지도하고 활구참선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흔치 않는 것입니다. 참선이면 다 같은 것 같지마는 그렇지를 않습니다.

 

활구참선은 숙세에 정법(正法)의 씨를 심은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들어도 믿어지지 아니하고, 아무리 권고해도 마음이 쏠리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 활구참선은 재미가 없거든.

 

이론적으로 분별해서 일러주고 또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들을 것이 있고 이리해야 가리키기도 좋고 배우기도 좋고 또 고대로 따라서 하면은 할 맛도 나고 그러니 재미도 있고 그럴 텐데, 해 갈수록 꽉 막혀서 알 수 없으니 어떻게 여기에 재미를 붙일 수가 있느냐 그거거든.

 

그래서 숙세의 종자(種子), 바른 종자가 아니면 이것은 발을 붙이지를 못합니다.

전부 다 비방하고 돌아서 버리고, 자기도 아니할 뿐만 아니라 남도 못하게 하는 것이여. '그게 무슨 재미가 있어서 하느냐? 그거 해서 뭐하느냐?'

 

활구선(活句禪)의 상대되는 말이 사구선(死句禪)인데, 이 활구선(活句禪)은 참구(參句)여, 참구. 그리고 사구선(死句禪)은 참의구(參意句)고.

 

참구(參句)라 하는 것은 말 길이 끊어지고, 이치 길이 끊어져서 더듬어 들어갈 것도 없다.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여하시조사서래의(如何是祖師西來意)입니까?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가 무엇입니까?'

달마대사(達摩大師)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셨는데, 인도는 서쪽에 있고 중국은 남쪽에 있으니까, “달마 조사가 서쪽에 있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신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물으니까 조주 스님이 답을 하시기를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이렇게 대답을 하셨어.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오신 뜻이 무엇이냐?’하고 묻는데 대해서 여러 가지로 대답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참선법을 펴시기 위해서 왔다든지, 부처님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심전심(以心傳心)한 그 진리법을 전하기 위해서 왔다든지, 여러 가지 그리고 누구든지 알아들을 만한 대답이 있을 텐데, 밑도 끝도 없이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이렇게 대답을 하셨어.

 

또 다른 학자가 또 조주 스님에게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하파부주(下坡不走)니라. 언덕에 내려서 달아나지 않느니라’ 이렇게 대답하기도 하고.

그 묻는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대답을 하셨는데, 도무지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또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어떻게 따져 볼 수 없고, 따져 봐야 알 수 없는 그러한 대답을 하셨다 그말이여.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이리저리 따지고 분별하고 복탁(卜度)하고 그래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아하! 이런 뜻이로구나’ 이렇게 따져 들어가면서 그래 가지고 그것을 참선을 한 걸로 착각을 하고. 또 그렇게 따져서 그럴싸한 어떤 결론을 얻으면 자기가 그 공안을 깨달았다고 이렇게 착각을 하고 그런데.

 

그러한 식의 참선을 '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그렇게 말하기도 하고, '의리선(義理禪)이다' 이렇게 말하기도 하고, 또 '참의구(參意句)다, 그 뜻을 참상(參詳)한다' 이렇게 말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모다 '죽을 사(死)'자 사구선, 죽은 참선이여. 영원히 따지고 별별스런 결론을 얻어 봤자 참다운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 참선이여.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죽은 참선이라 해서 이것을 사구참선이라, 사구선(死句禪)이라 이러고.

 

무조건하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이렇게만 해 나가는 거여.

'판치생모'란 뜻이 무슨 뜻인지 그것도 알 필요도 없고, 다못 ‘어째서 조주 스님이 판치생모라 했나?’ 그렇게만 자꾸 해 나가는 거여.

 

이것은 남녀노소도 상관이 없고, 무슨 지식의 유무도 상관이 없고, 또 무슨 경전 금강경이나 뭐 법화경이나 반야심경이나 또는 화엄경이나 능엄경이나 그런 경전에 대한 풀이라든지 해석 그런 것을 알고 모른 거도 전혀 상관이 없어.

다못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렇게만 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무어로(無語路)하고 말 길도 없고, 무이로(無理路)하고 이치 길도 없고, 무모색(無摸索)이다. 더듬어 찾을 것도 없어. 거두절미(去頭截尾)여. 머리도 꼬랑지도 없이, 앞도 뒤도 없이 무조건하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뿐이여.

 

이렇게 해 나가면 아무 재미도 없지만, 한 생각이 무슨 생각이 일어났다 하면은 퍼뜩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눈으로 하늘에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면 퍼뜩 나는 생각을 돌이켜서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귀에 들리면 그 자동차가 소리로 따라가지 말고 탁! 생각을 돌이켜서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렇게 해 나가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보거나 좋은 소리를 듣거나 좋은 생각이 나거나 화두를 들고, 슬픈 것을 보아도 나는 화두를 들고, 기쁜 것을 보아도 화두를 들고, 불교의 교리에 관한 어떤 의심이 나거나 세속사에 관한 어떤 의심나는 점이 있어도 나는 화두를 들고.

이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이렇게 단속을 해 가고, 하루하루를 이렇게 공부를 해 가면, 처음에는 화두를 챙기려고 해도 잊어버리고 챙겨도 금방 잊어버리고 자꾸 화두를 놓쳐 버리고 그런데.

 

일구월심(日久月深) 이렇게 애를 써 나가다 보면 나중에는 하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져.

앉아서도 화두요, 서서도 의심이요, 걸어가도 의심이요. 이것이 바로 힘을 더는 것이여. 애써서 안 해도 저절로 되어지니까 그 힘을 더는 것이다 그말이여.

 

공부가 이렇게 차츰차츰 익숙해 가면 자기가 가만히 자기를 가끔 반성을 해 보고 자기를 돌아보거든.

'내 공부가 과연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 나의 신심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 내가 불자(佛子)로서 지금 불교를 믿고 참선을 시작한지가 1년이 되었다든지 또는 3년이 되었다든지 이렇게 되었으니 과연 내가 불자로서 얼마만큼 되어 가고 있는가?' 자기를 한 번씩 반성을 해 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여.

 

참선을 놓아 버리고 세속 일에 얽매여서 그럭저럭 지낸 뒤끝에 생각해 보고.

또 세속 생활, 그 복잡한 생활 희로애락 속에 살면서도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서 한 시간 내지 30분이라도 한결같이 새벽 정진을 하고, 낮에도 생각 생각에 돌이켜서 애를 쓰고 그럴 때 반성을 해 보고.

 

애써서 한 뒤끝에는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생각해 봐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고, 공부를 놓아 버리고 그럭저럭 지낸 뒤끝에 생각해 보면 부끄럽고 죄송하고 또 공연히 불안하고 초조함을 느낄 것입니다.(처음~20분2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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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역력이빈주(歷歷離賓主)~'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著) ‘도능선자(道能禪子)에게’ 참고.

*요요명명(了了明明) ; 요요(了了)하고 명명(明明)하다.

*요요(了了 마칠·깨달을·분명할 요) ; 뚜렷하고 분명한 모양. 명확한 모양. 슬기로운 모양. 현명한 모양. 분명하게 알고 있거나 뚜렷이 드러나는 경계를 수식하는 말이다.

*명명(明明) ; 환히 드러난 모양. 분명한 모양.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적적(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함.

*요요하다(寥寥-- 쓸쓸할·텅 빌 료) ; ①(장소가)고요하고 쓸쓸하다. ②매우 적고 드물다.

*색(色) ; ①인식의 대상이 되는 물질적 존재의 총칭. ②육체. ③집착 또는 색욕.

*공(空) ; ①모든 존재는 여러 인연으로 생겨남으로 항상 독자적으로 불변하는 실체가 없음. 자성이 없음(無自性). 아무 것도 없는 상태를 말하는 일반적인 의미가 불교에서는 존재의 본질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된다.

공은 전혀 없다는 무(無)나, 결국 사라져 덧없다는 허무(虛無)가 아니다. 또 공(空)은 일체개공(一切皆空)이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불변의 실체 · 본질이 아니라, 존재의 무실체성 · 무자성 등을 자각함으로써 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는 지표이다.

공을 허무나 실체로 보는 것은 공에 대한 집착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참된 공[眞空]이 아니라 무기공(無記空) · 편공(偏空) · 악취공(惡取空) 등이라고 한다. 이러한 공의 병[空病]에 대한 약으로 '공도 공'이라고 하는 것이다.

②차별과 분별로써 인식된 대상은 관념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는 뜻. 가치나 감정이 부여된 인식 대상은 인식 주관이 조작한 허구일 뿐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대상은 허구라는 뜻.

③잇달아 일어나는 분별과 망상이 끊어진 상태. 번뇌와 분별이 소멸된 상태. 분별과 차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기취(記取) ; 명심하다. 기억하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참구(參句) ; 언구(言句 화두)를 참상(參祥)하는 것.

화두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가 있다。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參意)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參句)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참상(參祥) ; 참구(參究).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 ; 진리는 말이나 글이 아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

*복탁(卜度 점칠 복/헤아릴·추측할 탁) ; 점치고 헤아림.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