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삼요)2017. 1. 3. 07:09

§(465) 영훈선사와 귀종선사 / 깨달은 것과 아는 것 / (게송)시비해리횡신입~ / 선재동자 /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하는 신심 / 立志發願.

 

네가  부처다”고 하는 데에서 이론을 거치지 아니하고 바로 거기에서 ! 깨달아 버린 거여. 깨달은 것과 아는 것과는 다른 것이여.

아는 것은 설명을 해 줄 수가 있고, 설명을 해 주면 아하 그렇구나!’하고 이렇게 이해하고  수가 있는 것이지만 깨달은 것은 그게 아니어. 이론을 통해서 이해를 해가지고 수긍한 것은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그것은 아는 것이거든.

 

문제는 믿을 ()’, 신(信)이거든. 오직 참선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

염라대왕 앞에 가서 ! 자신 있게 내놓을 것은 이것 밖에는 없어. 내가 내놓기 전에 이뭣고?’ 평생 열심히  사람은 염라대왕 앞에 가더라도 염라대왕이 먼저 알고 자리에 일어나서 합장을 한다 그랬어.

 

법문을 듣고서 들을 때는  정성을 다해서 듣되 듣고 나서는 하나도 속에 남은 것이 없고 오직 화두(話頭)에 대한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되어야  법문을  들은 분이거든.

 

 공부는 첫째, ‘깨닫지 못하면 차라리 말지언정 깨달았다 하면은 고조사(古祖師)와 같은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르르겠다’고 하는 철저한 입지발원(立志發願) 가져야 한다.

 

필경(畢竟)  일대사(一大事) 문제는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정말 자기 자신의 생사(生死) 문제이기 때문에 이건 철저한 발심과 철저한 신심으로, 대의단(大疑團)으로  삼요소(三要素)로써 나아갈 결국은 우리는 허송세월을 아니 하게  것입니다.

 

**송담스님(No.465)—92 2 첫째일요법회(92.02.02) (용465)

 

(1) 약 22분.

 

(2) 약 11분.

 

(1)------------------

 

 부용산(芙蓉山) 영훈(靈訓) 선사라고 하는  선지식이 옛날에 계셨는데,  선사가 최초에 귀종(歸宗) 선사라고 하는 큰스님을 찾아가서 친견을 했습니다.

 

떠억 찾아가서  귀종 선사에게 묻기를 여하시불(如何是佛)이니잇고? 어떤 것이 부처님입니까?” 매우 엄숙하고 심각하게 물었습니다.

귀종 선사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향해서 일러주되 네가 믿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다

 

그러니까 영훈 선사가 말하기를 큰스님께서는 성실한 말씀을 하시는데,  학자를 위해서 정말 성실한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감히 믿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귀종 선사가 가로되 네가  부처니라

 

그러니까 영훈 선사가 어떻게 보림(保任)을 해 가야 되겠습니까?”

귀종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일예재안(一翳在眼)에 공화(空華)가 난타(亂墮)니라.  티끌이 눈에 있으면 공화가 어지러이 떨어지느니라

 

 간단한 대화를 통해서 영훈 선사는 확철대오(廓徹大悟) 해가지고 보림하는 길까지 눈을 떴습니다.

 

 장애가  티끌이 눈에 있으니, 공화(空華)라고 하는 것은 눈병든 사람이 허공을 쳐다보면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도 무슨 꽃이 피어서 이러저리 움직이는 것처럼 서물서물 서물서물 하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거든.

 

그런데 내가 너한테 일러주기는 어렵지 않지만 네가 믿지 않을까 두렵다 그러니까,

큰스님께서 어찌 거짓말 하시는 분이 아니고 성실하게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하니까, “네가  부처니라 거기서 확철대오를 했거든.

 

부처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도 부처님, 부처가 무엇이냐?”하고 물으면 나름대로 삼천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 실달(悉達) 태자  그런 등등 나름대로  말씀하실  있고,

확철대오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한 바로 진리를 깨달으신 진리와 하나가  성현이다 아마 그렇게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그러나 네가  부처다. 영훈이 네가  부처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하고 묻는 바로 그놈이 부처다

이러한 이것은 이론적으로 대답한 것이 아니고 또 영훈 선사는 그것을 이론적으로 수긍을 해서 아하, 바로 내가 부처구나하고 그렇게 아는 것이 아니어.

 

네가  부처다”고 하는 데에서 이론을 거치지 아니하고 바로 거기에서 ! 깨달아 버린 거여.

 

깨달은 것과 아는 것과는 다른 것이여.

아는 것은 설명을 해 줄 수가 있고, 설명을 해 주면 아하 그렇구나!’하고 이렇게 이해하고  수가 있는 것이지만 깨달은 것은 그게 아니어. 이론을 통해서 이해를 해가지고 수긍한 것은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그것은 아는 것이거든.

 

그래서 법문(法門)을 듣되  법문을 자기 나름대로 이리저리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 상식 모다 그런 것을 통해서 나름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지만,

 

 자리에 모이신 법보제자(法寶弟子)는 무슨 법문을 듣던지 바로법문이면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도저히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해도 알아들을 수도 없는 어려운 문자 그런 것만이 아니고,

일상 생활, 말할  있고 들을  있고 평범한 이야기, 무슨 내용의 말이라도  말을  법문을 즉(卽)해서 떠억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을 거각(擧却)을 하고,  본참공안에 대한 의단(疑團)이 터억! 드러난 거기에서 모든 말을 듣는다면 그것이 참으로 법문을 옳게 듣는 것이거든.

 

보통 재미있는 얘기를 하면은 귀가 번쩍해서 눈알이 초롱초롱하고 조끔 재미없는 얘기를 하면 꾸벅꾸벅  시간  졸다가  일어나 가지고 누가   것을 봤나  봤나 뚤래뚤래.

 

그런데  그래서 섣달그믐께 모다 신도님들은 모다 바쁘고 여러 가지로 새해를 맞기 위한 여러 가지 가정사, 회사 공장 모다 여러 가지로 모다 바쁘신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모다 많이 참석을 하셨는데,

사실 바쁜 것은 생사(生死) 문제보다  바쁜 것이 없고, 우리가   일 초 죽음을 향해서 계속 가고 있는데 자기의 생사 문제보단 더 바쁜 것은 없거든.

 

집에서도 일하면서도 얼마든지 참선도   있지만 그래도 법회에 이렇게 한번 떠억 나와서 부처님께 예배도 올리고 축원도 하고 그러고 도반(道伴)들도 만나고 이렇게   아는 소리  하고  하고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도반들이 같이 모여서  이렇게 법회를 갖는 것은   나름대로 뜻이 있는 것이다.

 

 

시비해리횡신입(是非海裏橫身入)하고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막파시비내변아(莫把是非來辯我)하라  평생천착불상관(平生穿鑿不相關)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우리에게는  가지 얻을 수가 없는 것이 있는데, 도저히 어찌해   없이 우리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있어.

 

(첫 번째) 항상 젊고자 해도 그것이 마음대로  되는 거여. 별별  미용원에 가서 다듬고  치르고 바르고 얼굴에다  마사지를 하고 해도 세월이 지내가면 어쩔  없이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에는 흰머리가 생기고.

심지어는 주름살이 생기면 갓을 칼로 자르고 땡겨서 해봤자 잠시는 괜찮은  같아도 별 수가 없어. 무엇을 먹으면 좋다 해가지고  늙고 젊고 힘이 좋다고 해가지고 살아있는  배를 째가지고 웅담을 먹어도 소용이 없어.

 

  번째는 아무리 병이 없고자 약을 먹는다, 운동을 한다, 좋다고  것은  해도 언젠가는 병들기 마련이고.

(세 번째) 영원히 죽지 않고 몇백  살고 싶어도 결국은 죽을 때가 오는 것이다 그말이여. 장수(長壽)하고 싶어도 장수를 맘대로 못하고 저마다  오래 살고 싶지마는 누가 마음대로 되냐 그말이여. 건강하다고 해서  오래 살고  돈이 많다고  먹고 산다고 해서  오래 사는 것도 아니어.

 

 번째는 아무리  죽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어. 별별 좋은 주사를 들여다가 매일 맞아도 별수(別數)가 없어.

 

항상 젊고자 해도 마음대로  되고, 항상 병이 없고자 해도 마음대로  되고, 오래오래 살고 싶어도 그것도 마음대로  되고, 영원히  죽고 싶어도  된다 그말이여.

 

그러한 속에서 우리는 살아갈 수밖에는 없는데, 금년 임신년에도 선거가  번인가 있다고 그러고 온통 모든 사업 경제난이다 뭣이다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시험지를  도둑맞아 가지고 야단이고  구석  구석 날이면 날마다  없는 때가 없어. 그것이 직접 간접으로  우리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고.

 

그런데 시비해리(是非海裏)에 횡신입(橫身入)이여. 시비(是非)의 바다 속에 몸을 옆으로 비껴서 들어간다 그말이여.

사람들이 길이  터진 데는 이렇게 번듯하니 이렇게 활발하게 걸어가지만 사람이 입추(立錐)의 여지(餘地)없이   있는 데는  사이를 뚫고 나갈라면은 옆으로 몸을 요렇게 비껴가지고 이렇게  뚫고 들어가야 하거든.

 

근데  세상은 온통 시비(是非)여. 옳은  아니면 그른 것이요, 그른  아니면 옳은 거여. 시비의 바다 속이여. 시비의 바다요, 시비의 숲속을 우리는 몸을 비껴서 들어가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어.

 

표호군중자재행(豹虎群中自在行)이다. 호랑이와 범의  속에서 거기서 자재하게 행할  있어야 한다 그말이여. 그러면 표호군중(豹虎群中)이 무엇이냐?

시비해리(是非海裏)라 하는 것은 세상에 옳고 그른 모든 일들이  포함된 것이고, 표호군중은 모든 사람이요 모든 일이거든. 경쟁 경쟁을 통해서 이겨야만 살아남는 세상이다 그말이여.

 

옛날에는 누구하고 다툴 것도 없고 경쟁할 것도 없고 자기 논밭 갈아서 심어서 그저 먹고 살면 그만이고 나물 캐서 먹고 그저, 물론 그것도 알고 보면 농사를 지려면 땅이 있어야 하고 땅을 마련하려면은 남하고 경쟁해서 부(富)를 재력을 얻어야 땅을 사는 것이니까,

다맛 옛날과 지금과는  전쟁이 전쟁의  치열한 도가 달라졌을  사바세계(娑婆世界)는 그렇게 경쟁하고 하는데, 경쟁하는 방법 방법이 나날이 잔혹해져 가고 있다.

 

잠시도, 어떠한 기업체를 운영하더라도 멍청하니 하다가는 언제 어떻게 망한지 망한  모르고 망한다 그말이여. 세계가  마찬가지여. 무서운 마치  호랑이와 범과 사자, , 늑대 이러한 무서운 짐승들이 우글대는 속을 여행하는 것처럼 그렇게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그말이여.

 

그런데 어떻게 하면  무서운  표호군중 속에 무사히 지나갈 수가 있느냐?

 

막파시비(莫把是非)를 내변아(來辯我)하라. 시비(是非), 옳고 그른 것을 가지고 와서 나한테 와서 가릴려고 하지 말아라.

평생천착불상관(平生穿鑿不相關)이다. 평생에 그런  따지는 것은 나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까짓  상관 않는다는 고인(古人)의 시(詩)인데.

 

그러면은 옳고 그른 것도 따지지도 않고, 흥망성쇠도 따지지도 않고 일체를  피해 버리고 자기 혼자  닫고 집안에 앉아 그렇게는  세상은 살 수가 없어.

무엇인가 자기가 해야  일거리를 찾아서 자기를 위하고 가정을 위하고  그것이 사회에 이바지할  있는 무슨 일인가는 해야지 우두커니 앉아서 그렇게 살 수는 없어.

 

아주 병들어서 수족이 오그라져가지고 전혀 아무것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무엇인가 일거리를 찾아서 해야 되거든. 꼼질꼼질이라도 해야지,  세상을 살아가는데.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무엇인가 일을 찾아서 해야 .

자기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자기 자신의 수입을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무엇인가 일을 찾아서 함으로써 살아가는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고, 몸도 건강이 유지가 되고 그런 것인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아니라 그렇게 하면서도 시비에 말려들지 않고 표범이나 늑대에 잡혀 먹지도 않고 그러면서 자기의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길이 이뭣고?’거든. ‘이뭣고?’

 

일하면서 이뭣고?’ 무엇인가 하면서도 항상 이뭣고?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이뭣고 하는 이놈이 뭣고?’

 

항상 그놈을 앞세우고 그놈으로써 살아가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좋은 일을 당하면 좋은 . 궂은일을 당하면 궂은일, 슬픈 일을 당하면 슬픈 , 기쁜 일을 당하면 기쁜 ,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가정 일이나 회사 일이나 직장 일이나 국가 일이나 세계 문제나,

무슨 문제를 보거나 듣거나 또는 직면(直面) 하더라도 항상 이뭣고?' ! 그놈으로 기둥을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라. ! 그놈으로 자기의 핵심을 따악 잡은 거기에서 모든 일을 보고 듣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해보라 그거거든.

 

이건 대단히 말은 쉬워도 사실은 어려운 것이여. 어려운 것이 방법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라면은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하는 확실한 신심(信心)이 있어야 .

신심 하나만 철저하게  버리면  공부  할라야   수가 없고, 누가 못하게 해도 막무가내거든.

 

문제는 신(信)—‘믿을 ()’, 신(信)이거든.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고.

아까 말씀드린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가서 ! 자신 있게 내놓을 것은 이것 밖에는 없어. 내가 내놓기 전에 이뭣고?’ 평생 열심히  사람은 염라대왕 앞에 가더라도 염라대왕이 먼저 알고 터억 자리에 일어나서 합장을 한다 그랬어.(16분28초~37분51초)

 

 

 

 

 

(2)------------------

 

선재동자(善財童子) 발심(發心) 해가지고, 문수보살(文殊菩薩)의 법문을 듣고 발심을 해가지고 문수보살의 지시에 따라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가면서 일백십성(一百十城)을 찾아갔어.

 

 일백십성을 넘고 넘어서 가면서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을 친견을 했는데,  선지식(善知識)마다—한 선지식을 친견하고 법문을 듣고 그다음에는  선지식이  아무데 성을 가면 아무 이러이러한 선지식이 계시니 거기를 가거라 그렇게 지시를 하면은 그 지시를 받고  그다음 선지식  그다음 선지식한테 법문을 듣고   선지식의 지시에 따라서 그다음 선지식,

 

이렇게 해서 53선지식을 친견하면서  들었던 법문을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고대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환희심을 가지고 그렇게 53선지식을 친견하는데 마지막에 가서 미륵보살(彌勒菩薩)을 친견을 했어.

 

 미륵보살의 법문을 듣고서 다시 문수보살을 가서 친견을 하라 그렇게 지시를 받고 인자 문수보살을 친견을 하려고 마음속으로  마음을 먹으니까 문수보살이 일백십성을, 오른손을  펴서 일백십성을 건너가지고 선재동자의 이마를 떠억 이렇게 만져주신 거여. 그 찰나에 53선지식한테 들었던 모든 법문을 일시에  잊어버린 거여.

 

법문은, 듣고 환히 주렁주렁주렁  외우고  이야기를 하나도  잊어버리고  알고 있는 ,  기억력이 좋고 한눈을 전혀 팔지 않고 그래가지고 온전히 정성을 다해서 잡념 없이 졸음도 없이 법문을 들으면 또 영리한 사람은  환희  아실 것입니다.   일부를 알고 일부를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법문을 듣고서 들을 때는  정성을 다해서 듣되 듣고 나서는 하나도 속에 남은 것이 없고 오직 화두(話頭)에 대한 의단(疑團)만이  독로(獨露)하도록 그렇게 되어야  법문을  들은 분이거든.

 

 선재동자가 일백십성을 건너면서 53선지식을 친견할   선지식이보면 터억 생김새가 거룩하고 누가 보든지 ! 훌륭하고  그런  아니고,

 선지식 가운데에는 별별 종류의 선지식, 도대체가 신심이 아니고서는 먼저 선지식이 지시를 해주지 않았다면은 봐도 선지식인지 아닌지  수가 없고 저런 것이 도인(道人)인가?’ 꿈에도 생각지도 못할 그런 사람들이거든.

 

 가운데는 귀신도 있고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고 승려도 있고  창녀도 있고 별별 사람이  있거든. 신심으로 신심을 가졌기에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선지식을 친견해가지고 결국은 확철대오를  수가 있었던 것이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신심이 철저해야.

가지가지 공부를 하다보면 온갖 장애를 만날 수가 있거든. 가정적으로도 장애가 있을 수도 있고, 일신상에 건강상에도 장애가 있을 수도 있고, 선방에 나와도 이리저리 걸리고 속상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공부를 하다가 보면은 정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여러 가지 장애가 있을 수가 있어. 혼침(昏沈)이라든지 망상(妄想)이라든지 몸에 병이라든지  능엄경(楞嚴經)에는 53가지의 여러 가지 마경(魔境) 일어날 수도 있다 그말이여.

 

그러한 여러 가지 상황을 만나더라도 조끔도 정법(正法) 믿는 신심이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그럴수록에 더 철저한 신심으로 화두를 들고 정진을 꾸준히 알뜰히 해 나갈수 있어야 그래야만 비로소 도(道)를 이룰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는 첫째, 발원(發願)을 철저하게 해야 . 입지발원(立志發願).

입지발원이 철저해야 하는데 어떻게 입지발원을 해야 하냐?’하면은 깨닫지 못하면 차라리 말지언정 깨달았다 하면은 고인(古人) 고조사(古祖師)와 같은 구경(究竟)의 깨달음에 이르르겠다’고 하는 철저한 입지와 발원을 가져야 한다.

 

공부하다 쪼끔 .. 공부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있는 경계(境界)가 나타나면 또는 어떤 보통 말한 지견(知見)이 나면 그것이 자기 구경의 깨달음에 이른 것처럼 착각을 하고 거기에서 주저앉고 그건 득소위족(得少爲足)이라. 조금 얻은 것을 가지고 만족을 삼는 거라 이것은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있어서는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여.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은 이상한 경계가 나타날 수도 있고 나름대로 어떤 지견이 나타날 수가 있다 그말이여.

그러나 그것이 확철대오한 고조사의 구경각(究竟覺)이 아니면, 불조(佛祖)의 구경각이 아니면 언제라도 스스로 인증을  해야 . 누구 보고 물어볼 것도  것도 없이 스스로 부정을 해버려야 하거든.

 

그리고서 항상 초발심, 초발심자(初發心者)와 같은 깨끗한 마음, 순수한 마음, 물들지 않는, 초발심(初發心)은 대체적으로  뜨겁고 깨끗하고 삿된 견해가  붙거든.

차츰차츰 하다보면  순수성을 잃고 나름대로 자기의 별로 내놓을 만한 것도 못된 그런 것을 살림을 삼고 그러한 것은 대단히 공부 도학자(道學者)에게는 무서운 것입니다.

 

필경(畢竟)  일대사(一大事) 문제는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정말 자기 자신의 생사(生死) 문제이기 때문에 이건 철저한 발심과 철저한 신심으로 대의정(大疑情), 의단으로  삼요소(三要素)로써 나아갈  결국은 우리는 허송세월을 아니 하게  것입니다.

 

세상이 너무 변화가 심하고 그렇지만 그러한 속에서 정말 우리는 발심할  있는 계기를 찾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발심할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3758~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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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 습기(習氣) 제하고 ()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 보호임지(保護任持)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보호하여 지킨다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천진함을 보전하고  자재함을 따른다 뜻이다.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실달(悉達) ; 싯다르타(siddhartha) 음역어. 목적을 달성한다는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 출가하기  태자(太子) 때의 이름. ‘실다(悉多)’, ‘실달다(悉達多)’이라고도 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법보제자(法寶弟子) ; [참고] 89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〇여기 (용화선원 법보전)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수가 있습니다.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법당(법보전) 모셨으니 우리가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 의지해서 도를 닦는   도반(道伴)이면서   가족인 것입니다.

*즉해서(卽해서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없는 생각 ()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게송) 시비해리횡신입(是非海裏橫身入)~ ; [선문염송] (혜심 지음) ‘1 1 도솔(兜率)’ 죽암규(竹庵珪) 게송 참고.

*별수(別數 나누다·구별·따로 달리 별/세다·방법·운수 수) ; ①별다른 방법. ②특별히 좋은 운수. ③갖은 방법.

*입추(立錐)의 여지(餘地)가 없다 ; ‘송곳[錐] 하나 세울[立] 만한 빈[餘] 데[地]도 없다’는 뜻으로, 발 들여놓을 데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꽉 들어찬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 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자가철주(自家鐵柱) ; 자기 스스로 정한 규칙을 쇠기둥(鐵柱) 세워 놓은 것과 같이, 움직임없이 지켜나감을 이르는 .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擧却)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생사도 없고, 버려야  번뇌도 없다 하는 믿음.

④일체처 일체시에 자신의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자가철주(自家鐵柱) 세워 이것 밖에는 내가  것이 없다! 오직 이것만이 내가 바로 살아가는 길이고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고 이것만이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다!’라고 하는 철저하고 확실한 믿음.

*막무가내(莫無可奈) ; ①한번 굳게 고집하면 도무지 융통성이 없음. ②달리 어찌할 수 없음.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 재판하는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 심판하여 벌은 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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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동자(善財童子) ;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 나오는 구도자(求道者). 문수보살의 법문을 듣고 발심(發心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하여  보살의 가르침대로 오십삼 선지식(五十三善知識) 차례로 만나 보살도(菩薩道) 배우고, 보현보살의 행원(行願 서원을 세우고 수행함) 실천하여 진리의 세계로 들어감.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문수보살(文殊菩薩) ;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부처의 완전한 지혜를 상징함.

문수사리는 산스크리트어 만주슈리(mañjuśrī) 음사. 문수시리(文殊尸利), 만수실리(蔓殊室利)라고도 쓴다. ‘문수 ( : 신묘하다, 훌륭하다)  사리 길상(吉祥 : 상서로움) 뜻이다. 묘길상(妙吉祥) · 묘덕(妙德) · 유수(濡首) 번역. 석가모니불을 왼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권(經卷) 손에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化身).

≪화엄경≫ 속에서도 문수보살은 보현보살(普賢菩薩) 함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양쪽 협시 보살(挾侍菩薩) 이룸.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 ; <화엄경>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복성의 동쪽 장엄당사라림에서, 문수보살의 법문을 듣고 남방으로 향하여 차례차례 찾아가서 법문을 들은 선지식.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미륵보살(彌勒菩薩) : []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呾麗耶), 매달례야(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불의 5().

*화두(話頭 말씀 /어조사 )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혼침(昏沈 어두울 /잠길 )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 떨어진 상태.

*망상(妄想 망녕될 /생각 ) ; ①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녕된() 생각() , 또는  생각. ②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

*능엄경(楞嚴經) ; 본이름은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릉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10. () 반자밀제(般刺蜜帝) 번역.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세존과 아난(阿難) 문답으로 시작하여 깨달음의 본성과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하고 여래장(如來藏) 무엇인가를 밝힘.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관음신앙이라 하고 능엄다라니(楞嚴陀羅尼) 설한 다음, 보살의 수행 단계, 중생이 수행하는 과정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번뇌에 대해  원인과 종류를 밝힘.

*능엄경(楞嚴經) 변마장(辨魔障) ; 능엄경 조도분(助道分) 있는, 수행도상에 있어 나타날  있는, 오음(五陰 : 색수상행식 色受想行識) 녹아 없어질 때에 나타나는 갖가지 마장(魔障) 밝혀, 수행자들이 사특한 길에 떨어지지 않게  부처님 가르침.

*마경(魔境) ; () 경계(境界). ()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번뇌를 말한다. ()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발원(發願) ; 원(願)하는 마음을 . 원을 세움.

*() ; 소원(所願). 바라고 원함또는 바라고 원하는 .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깨달음 ; (). 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입지(立志) ; 뜻을 세움.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영역.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 화두(話頭) 준말이다. 간화(看話) 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을 본다[]’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화두를 ()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
구경각(究竟覺) ; 깨달음의 극치. 무명() 사라지고 깨달음의 본체가 나타나는 경지. 마음의 본원을 완전히 알지 못하는 단계에서는 결코 구경각(究竟覺)이라고 말할  없다. 구경각(究竟覺) 여래지(如來地) 또는 불지(佛地) 가리킨다.

*초발심(初發心) ; 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인 보리심(菩提心)을 처음으로 일으킴.

*도학자(道學者) ; () 닦는 사람. 수행자(修行者).

*필경(畢竟 마칠·끝낼 /마칠·마침내 ) ; 끝장에 이르러. 결국에는.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 삶과 죽음,  생사(生死)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이다.

*의정(疑情) ; 의심(疑心).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용465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