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구참선 최상승법2016. 1. 11. 09:59

 

 

 

 

§(422) (게송)정종소식몰자미~ / 마조(馬祖) 스님의 깨달음 / 마조스님과 양좌주 / 어째서 의심만을 일으키라고 하느냐? / 묘관(妙觀), 의심관(疑心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 부딪힐 , 바로 거기에 ()해서 여섯 가지 경계에 끌려가지 않고 바로 경계에 ()하자마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疑心) 거각(擧却)하는 것이다.

 

이뭣고?’ 한번 드는 데에서 눈으로 무엇을 보되 바가 끊어져 버리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되 들은 바가 끊어져 버리고, 무슨 지나간 생각, 미래 생각, 현재 부딪히는 생각이 일어나되, 바로 생각 일어나는 데에 집착한 바가 없이이뭣고?’ 의심을 들어 버리니 무슨 재미날 것이 있으며, 무엇이 알아질 것이 있으며, 무엇이 얻어질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과거의 모든 도인들이 역대조사(歷代祖師)들이 그런 경전을 통달하고도 남는 그러한 대도인들이 말세의 우리 중생들도 그러한 방편설(方便說) 떨어지지 아니하고, 근기가 약한 하근기(下根機)로서도 철저히 정법을 믿고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은 누구나 깨달을 있는 방법!

그것이 바로 화두를 참구(參究)함으로써 참나를 깨닫는 간화선(看話禪), 활구참선인 것입니다.

 

마음을 한군데 모이서, 하나만 한군데에다가 모이고 그놈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망상도 차츰 없어지고, 차츰 마음이 고요해질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깨닫기는 어려워. ‘깨닫는다 하는 것은 조용하게 마음을 () 자리에 집중한다고 해서 그거 깨달은 것이 아니여.

신선도나 외도들은 마음을 ()하게 가지고 () 자리에 떠억 머물러 있는 것으로써 공부를 삼는데, 그렇게 하면 오신통(五神通) 나는 수가 있으나 누진통(漏盡通) 얻는 거여. 누진통은 ! 깨쳐야지, 고요한 경계를 지켜 나간다고 해서 깨달라지는 것은 아니여.

 

참선을 나갈 의심을 하는 것도 묘관(妙觀)이라야 . 불급불완(不急不緩)—너무 급하고 조급하게도 하지 말고 너무 늘어져 처지지도 말게, 불급불완한 () ()이라야 되거던. 묘관(妙觀)! 의심관(疑心觀)이거든.

 

**송담스님(No.422)—90 7 첫째일요법회(90.07.01) (용422)

 

(1) 약 22분.

 

(2) 약 11분.

 

(1)------------------

 

정종소식(正宗消息)은 몰자미(沒滋味)허되  불용여하우약하(不用如何又若何)니라

나무~아미타불~

타파은산철벽거(打破銀山鐵壁去)하면  차시방도사생하(此時方渡死生河)니라

나무~아미타불~

 

정종소식(正宗消息) 몰자미(沒滋味). 활구참선(活句參禪), 내가 나의 면목(面目) 봐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최상승법(最上乘法), 정법(正法) 재미가 없어.

불용여하우약하(不用如何又若何). 여하약하(如何若何) 따지지 말어라.

 

세속의 모든 학문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온갖 지식과 이론을 총동원해서 따지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적용하고, 그래 가지고아하! 그러므로 이렇구나이렇게 알아 들어가고 결론을 내리는데,

활구참선법은 여하약하를 따지는 것이 아니여. 타파은산철벽거(打破銀山鐵壁去). 다만 은산철벽과 같은 대의단(大疑團) 타파(打破) 뿐이여.

 

이뭣고?’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 이놈이 무엇인가?’

다맛 맥힌 의심으로눈으로 무엇을 때나,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나, 혀로 무엇을 맛을 때나, 몸뚱이로 차웁고 더운 것을 느낄 때나, 생각으로 좋고 나쁜 것이 느껴질 ,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 부딪힐 , 바로 거기에 ()해서 여섯 가지 경계에 끌려가지 않고 바로 경계에 ()하자마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본참공안에 대한 의심(疑心) 거각(擧却)하는 것이다.

 

재미가 없어. 무엇이 아는 것이 있고, 알아지는 것이 있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고, 얻어지는 것이 있고, 마음에 합당한 것이 있어야 재미가 있을 텐데, 무조건하고이뭣고?’

 

이뭣고?’ 한번 드는 데에서 눈으로 무엇을 보되 바가 끊어져 버리고, 귀로 무슨 소리를 듣되 들은 바가 끊어져 버리고,

생각에무슨 지나간 생각, 미래 생각, 현재 부딪히는 생각이 일어나되, 바로 생각 일어나는 데에 집착한 바가 없이이뭣고?’ 의심을 들어 버리니 무슨 재미날 것이 있으며, 무엇이 알아질 것이 있으며, 무엇이 얻어질 것이 있느냐 그말이여.

 

그렇게 화두(話頭) 들고 들고 나가면, 아무 재미없는 가운데에 의단(疑團) 독로(獨露).

의심을 자꾸 일으켜서 화두를 들려고 해도 그렇게 끊어져 버리고 달아나 버리고 하던 것이, 놓쳤다 하면 들고, 놓쳤다 하면 들고 자꾸 챙기면, 그렇게 해서 일구월심(日久月深) 가면 어느새 그것이 길이 들고 습관이 들어서 들려고 해도 화두가 터억 현전(現前)하게 된다 그말이여.

 

그러면 그렇게 조용하고 편안하고 맑고 깨끗해. 그렇게 편안하고 맑고 깨끗해지면 화두를 들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 화두를 들면 오히려 고요해진 마음이 흔들릴까 두렵고, 화두를 들면 오히려 맑은 것이 흐려질까 화두를 들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는 수가 있다.

아무리 깨끗하고 맑고 고요하다 하더라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없이 그냥 맹~ 하니 있으면 그것을 무기(無記) 그러는데, 무기의 상태는 지극히 편안하고 맑고 고요하기는 할지언정 무기(無記) () 떨어져 있는 한에는 확철대오는 없어.

 

그러니 공부하는 사람은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그런 고요하고 깨끗한 경계에 이르렀을 화두를 거각해야 하는 거여.

고요한 가운데에도 화두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언젠가는 화두가 ! 터지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깨닫게 되는 것이여. 생사대해(生死大海) 걸음도 옮기지 않고 건너뛰는 것이여.

 

 

오늘 경오년 칠월 초하루 첫째 일요일을 맞이해서 조실 스님의 활구참선법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날씨는 차츰 더워져서 장마철에 접어들고 삼복더위가 닥쳐오고 있습니다.

일요일이라 모처럼 그동안에 비가 개고 일요일이 돌아왔으니 산으로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 많이 있으시겠지만, 그런 데에 놀러가는 것을 그만두고 이렇게 법회에 참석을 하셔서 과연 법보제자(法寶弟子)로서 신심이 어떻다고 하는 것을 수가 있어서 매우 반갑고 감사하게 생각을 합니다.

 

 

당나라 마조(馬祖) 스님이란, 마조도일(馬祖道一) 선사라고 하는 도인이 계셨는데, 육조 스님 다음에 남악회양(南岳懷讓) 선사, 남악회양 선사 다음에 마조도일 선사, 마조도일 선사 밑에 여러 도인들이 백삼십 명이라고 하는 도인들이 밑에서 배출하셨는데,

가운데에도 조주(趙州) 스님이라든지 백장(百丈) 선사, 대매(大梅) 선사, 염관(鹽官) 선사, 조주 스님의 법사이신 남전(南泉) 스님과 같은 그러한 대도인이 나셨고, 밖에도 백삼십 명이라고 하는 엄청난 도인들이 거기서 배출하셨어.

 

그래서 인도에서 지리와 모든 것을 몇백 , 몇천 일을 환히 내다보는 그러한 분이 나와서마구답살천하인(馬駒踏殺天下人)이다. 망아지 새끼가 천하인을 밟아 죽일 것이다 하는 예언을 하셨는데, 바로 마조 스님을 두고 그런 천하인의 혀끝을 끊고 천하인을 밟아 죽이는 그런 망아지 새끼라고 그렇게 비유를 해서 표현을 것입니다.

 

마조 스님은 과연 어떻게 해서 깨달음을 얻었는가?

어쨌든지 좌선, 앉아서 좌선을 많이 해야 확철대오 있을 것이다 가지고 숟갈 먹으면은 앉아서 아주 방석이 몇십 개가 구녕이 나도록 그렇게 좌선을 열심히 하셨어.

 

그때 남악회양 선사, 육조(六祖) 스님으로부터 법을 이어받은 남악회양 선사가 마조 스님이 그렇게 열심히 좌선하는 것을 보고서 마조 스님 좌선하는 앞에 가서 기왓장을 숫돌에다가 벅벅 문질렀다.

아침부터 낮에까지, 낮부터 저녁까지 시간만 있으면 가서 기왓장을 갖다가 숫돌에다 갈고 있으니까 처음에는무슨 필요가 있어서 기왓장을 가는가 보다이리 생각했는데, ! 종일토록 갈고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아니, 헐라고 기왓장을 가십니까?” 여쭤보니까,

거울을 만들라고 그런다

 

, 기왓장을 갈아 가지고 무슨 거울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대는 앉아서 무엇을 하는고?”

 

, 앉아서 견성성불(見性成佛) 할라고 이렇게 앉았습니다

기왓장을 갈아 가지고 거울을 맨들지 못한다는 알면서 어디서 그렇게 앉아 가지고 부처될라고 한단 말이냐?”

 

, 참선을 할라면 앉아서 요렇게 가부좌(跏趺坐) 틀고 좌선을 가지고 그래 가지고 견성성불 하는 것인데, 그러면 앉았지 않고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래. 그렇다면 사람이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때에 수레를 쳐야 하겠는가? 소를 쳐야 하겠는가?”

! 그렇게 묻는데, 마조 스님이 확철대오를 했습니다.

 

소를 쳐야 하느냐? 수레를 쳐야 하느냐?’ 아까 조실 스님 법문에공안(公案) 중생심, 사량분별(思量分別) 따지는 것이 아니다그러셨어.

여러분은 사람이 수레를 타고 때에 소가 가거든 수레를 쳐야 하느냐? 소를 쳐야 하느냐? 여러분 나름대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리저리 생각이 드시겠지만소를 쳐야 한다 , ‘수레를 쳐야 한다 , 중생의 사량분별로 대답해 봤자 어디까지나 분별에 지내지 못한 것이여.

 

 

마조 스님이 계시는 회상(會上) 어느 서산(西山) 양좌주(亮座主)라고 하는 대강사(大講師) 마조 스님을 찾아뵈러 왔습니다.

 

마조 스님이 양좌주라고 하는 강사에게 묻기를 좌주는, 강사는 이십사본경,

이십사본경(二十四本經)이니, 십이부경전(十二部經典)이니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팔만대장경의 아주 대표가 만한 경전을 일컬어서 말이여.

지금 우리가 알기 쉽게 화엄경, 법화경, 원각경, 금강경, 모다 그런 등등의 그러한 중요한 경전 이십사본의 경전을 종횡으로 맥힘이 없이 강의를 만큼 경에 통달한 강사인데.

 

양좌주 보고당신이 그런 여러 가지 경을 설한다며?” 이렇게 물어보니까, 양좌주가천만의 말씀입니다[不敢]” 그렇게 겸손해서 대답을 했는데, 사실은그렇습니다그런 말과 같은 말인데,

감히 큰스님 앞에서, 그렇습니다그렇게 말할 수가 없으니까천만의 말씀입니다이렇게 겸손의 말을 했는데,

 

그렇다면 무엇을 가지고 () 하는고?” 그렇게 마조 스님이 물으니까, 양좌주가 대답하기를마음을 가지고 () 하지요그렇게 대답을 하니까,

 

마조 스님이마음이라 하는 것은 공기아(工伎兒). 마치 인형극을 뒤에서 가지고 이렇게 조종을 하는 사람과 같은 것이고, []이라 하는 것은 조수와 같은 [和伎者]인데 어떻게 마음이 경을 설할 수가 있단 말인고?” 그렇게 물으니까,

양좌주가 대답하기를마음이 () 설할 모른다면 그렇다면 허공이 경을 설한 아닙니까?”하고 이렇게 물었다 그말이여.

 

그렇다. 허공이 () 설한 것이다.” 이렇게 마조 스님이 말씀을 하시니까, 양좌주가 불끈 일어서서 소매를 흔들면서 밖으로 나가.

나가는 뒤에다 대고 마조 스님이양좌주!”하고 부르니까 양좌주가 휘뜩 돌아보니까시십마(是什)? 이것이 무엇인고?”하고 마조 스님이 물으셨어. 거기에서 양좌주가 확철대오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양좌주는 다시 돌아와서 마조 스님 앞에 터억 오체투지(五體投地) 절을 했어.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얼간이 같은 놈이 절을 해서 하는고?” 말에 양좌주가 온몸에 땀이 주루룩 흘렀어.

 

아무 말도 못하고 그길로 자기 절로 돌아가서 자기가 가르키는 학인들을 모아 놓고내가 평생 동안 () 공부를 가지고 감히 땅에 나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고 내가 그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 마조 스님의 한마디에 내가 아주 묵사발이 되어 버렸다. 그동안에 내가 자신만만했던 ()이라는 것이 아무 소용없이 되어 버렸다이렇게 말을 하고서 학인들을 전부 흩어 버렸습니다.

가거라. 너희들 데로 가거라.” 흩어 버리고 서산 깊숙이 들어가서 일생 동안을 세상에 나타나지 않고 자취를 감춰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조사선(祖師禪)이요, 활구선(活句禪) 면목인 것입니다.(처음~2146)

 

 

 

 

 

 

(2)------------------

 

여러분 가운데에는 화엄경도 읽어 보고, 법화경도 읽고 외우고, 금강경도 외우고, 좋은 경전을 많이 읽기도 하고 외우기도 하고, 상당히 많이 알고 있는 분이 계실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런 공부를 할려고 하는 분이 적지 아니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이 어느 하나 훌륭하지 아니한 경이 있으리오마는, () 통해서 해석을 하고, 알고 외우고 그러면 내생에 머리가 좋은 총명을 얻는다고는 했습니다마는, () 중생의 사량분별로 따져서 외우고 해석한다고 해서참나 깨닫는 바른 길이라고 수가 없어.

 

과거의 모든 도인들이 역대조사(歷代祖師)들이 그런 경전을 통달하고도 남는 그러한 대도인들이 말세의 우리 중생들도 그러한 방편설(方便說) 떨어지지 아니하고, 근기가 약한 하근기(下根機)로서도 철저히 정법을 믿고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은 누구나 깨달을 있는 방법!

그것이 바로 화두를 참구(參究)함으로써 참나를 깨닫는 간화선(看話禪), 활구참선인 것입니다.

 

양좌주가 마조 스님과 같은 도인을 만나지 못하고 일생 동안을 경이나 가르치고, 경이나 읽고 있었다면 어찌 확철대오를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이뭣고?’ 재미가 없고 맛이 없다 하더라도 철저하게 활구참선법을 믿고서 여하약하(如何若何) 막론(莫論)하고 따지지 말고, 자기가 무식하건, 남자 여자 , 나이가 많고 적건 그런 따지지 말고 다못이뭣고?’

앉아서도이뭣고?’ 서서도이뭣고?’ 걸어가면서도이뭣고?’ 일하면서도이뭣고?’ 누고 오줌 때도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이뭣고?’ 슬플 때도이뭣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오직 신심(信心) 분심(憤心)으로 의심(疑心)만을 일으켜 () 나간다면 어찌 깨닫지 못하겠습니까.

 

어째서 의심만을 일으키라고 하느냐? 아무 것이고 하나만 생각하고 거기에 우리의 정신을 집중하면, 일심으로 집중하면 깨달을 수가 있지, 의심만 거각(擧却)해야 하느냐?’ 그러한 질문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마음을 한군데 모이서, 하나만 한군데에다가 모이고 그놈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망상도 차츰 없어지고, 차츰 마음이 고요해질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깨닫기는 어려워.

깨닫는다 하는 것은 조용하게 마음을 () 자리에 집중한다고 해서 그거 깨달은 것이 아니여.

 

신선도나 외도들은 마음을 ()하게 가지고 () 자리에 떠억 머물러 있는 것으로써 공부를 삼는데, 그렇게 하면 오신통(五神通) 나는 수가 있으나 누진통(漏盡通) 얻는 거여.

누진통은 ! 깨쳐야지, 고요한 경계를 지켜 나간다고 해서 깨달라지는 것은 아니여.

 

마치 풍선은 계속해서 부는데 풍선에 바늘 구녕만한 쬐그만 구녁이 있어도 풍선은 터지지를 않습니다. 그러냐? 족족 뚫어진 구녁으로 바람이 빠져나가.

사량분별(思量分別) 화두를 참구해 나가는 것은 마치 풍선에 구녁 뚫어진 것과 같애.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따진다든지, 또는 곳을 이렇게 그놈을 지키고 있다든지, 이런 것은 전부 구녁 뚫어진 풍선을 불고 있는 거와 같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고요한 경계만 지켜 나간 것은 불지는 않고 풍선에다 입만 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여. 그래 가지고서야 풍선이 어찌 터질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풍선은 반드시 맥혀야 ! 그러듯이 의심으로써 맥혀야지, 맥히지 않고 무엇인가 알아 들어가는 것이 있고, 따져 들어가는 이치가 있고, 더듬어 들어갈 것이 있고, 문해사상(聞解思想)—들어서 알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참구선(參句禪) 아니여.

 

참의구(參意句),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의리선(義理禪), 참의구(參意句) 그래 가지고,

참의구는 백천만 겁을 따져서 공안마다 그럴싸한 결론을 내려 가지고 환히 자기 나름대로 알고 있어 봤자, 그것은 흑산(黑山) 밑에 귀굴(鬼窟) 속에서 귀신 살림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지, 그래 가지고서는 미륵불(彌勒佛) 하생(下生) 때까지 해봤자 확철대오는 못하는 거여. 정각(正覺) 이룰 수가 없는 것이여.

 

아무리 재미가 없고, 무엇이 되어간 같지 않더라도 철저한 신심과 분심으로써이뭣고?’ 없는 의심, 그렇다고 해서 너무 조급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용을 쓰면서 이마에다가 ()’자를 가지고 이뭣고?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여.

이건 지나치게 용을 쓰면 이것은 깨닫기도 전에풍선이 크기도 전에 처음에 느닷없이 되게 불어 버리면 찢어져 버려.

 

그놈이 불어날 대로 때는 조심스럽게 불어야 하거든. 그래서 더이상 커질 없을 때까지 이만큼 커져 가지고 거기서도 계속 조심스럽게 불어가야 그놈이 커질 대로 커진 다음에 ! 터져야 그놈이 재미가 있지, 쬐끔 요만큼 커질라다 찢어져 . 그거 무슨 풍선 부는 맛이 있는가?

 

참선을 나갈 의심을 하는 것도 묘관(妙觀)이라야 .

불급불완(不急不緩)—너무 급하고 조급하게도 하지 말고 너무 늘어져 처지지도 말게, 불급불완한 () ()이라야 되거던. 묘관(妙觀)! 의심관(疑心觀)이거든.

 

없는 의심관을 불급불완하게 () 나갈 —‘, 옛날 사람은 칠일(七日)에도 깨달랐다 하니까 나도 칠일 안에 이것을 마쳐야겠다 가지고, 밥도 굶고 잠도 자고 그냥 이를 악물고 이레 동안을 보라 그말이여. 그런 아니여.

 

『소한(小限) 칠일(七日)이요 대한(大限) 구순(九旬)이라』 그러니까, 자기 생각해 보니 몸도 튼튼하고 이만하면 나도, ‘그까짓 고인(古人) 했는데 나라고 못할까! 칠일로 가지고 마쳐야겠다

그래 가지고 밤잠을 자고, 밥을 먹고 이를 악물고 칠일 동안 하니까, 골치만 뽀개질라고 아퍼. 눈만 벌거니 살조개 놓은 것처럼 되어 가지고 골치만 더럭더럭 아퍼. ‘ 참선 아무짝에도 못쓴다고 안되거든.

 

그런 것이 아니여. 사소한 것도 선배의 지시를 받고 나가야 실수 없이 나가는 거고, 눈으로 보고 가는 길도 먼저 사람의 안내를 받던지, 아는 사람의 안내를 받아 가지고 그래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지.

그런데 눈으로 보일 수도 없는 마음공부를 갖다가 어거지로 그렇게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이 마구잽이로 한다고 그것이 리가 있겠느냐.(2147~3243)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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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정종소식몰자미~’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6) '贈淳長老' 사명대사 게송 참고.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면목(面目 / )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여하약하(如何若何) ; 이러쿵저러쿵. 이러하다는 저러하다는 자꾸 말을 늘어놓는 모양.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 영령(靈靈) 함께 밝은 . 밝은 모양. 진여(眞如)•법성(法性)•불심(佛心) 의미하는 .

*육경(六境) ; 육근(六根) 대상 경계인 (((((() 말함.

산스크리트어 ṣaḍ-viṣaya () 대상을 뜻함. 육진(六塵)이라고도 한다.

①색경(色境). 눈으로 있는 대상인 모양이나 빛깔. ②성경(聲境). 귀로 들을 있는 대상인 소리. ③향경(香境). 코로 맡을 있는 대상인 향기. ④미경(味境). 혀로 느낄 있는 대상인 . ⑤촉경(觸境). 몸으로 느낄 있는 대상인 추위나 촉감 . ⑥법경(法境). 의식 내용. 관념.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심(疑心) : 없는 생각에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어째서 () 했는고?’ 또는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거각(擧却 ,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하나 /없을 /섞일 ) ; 대상 자체가 순일(純一)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 없음[].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생사대해(生死大海) ;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삼계(三界 :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중생이 생사유전하는 세계를 ' 바다(大海)' 비유함.

*육조 스님, 남악회양 선사, 마조도일 선사, 조주 선사, 백장 선사 ; 분류역대 스님 약력참고.

*구녕, 구녁 ; ‘구멍 사투리.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책상다리할 /앉을 ) ;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 발바닥을, ()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 있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 같은 .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 사리(事理)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바가 아니다라고 .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장소. 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좌주(座主) ; 학덕이 뛰어나, 어느 자리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사람을 말함.

*강사(講師) ; 경론(經論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經과 가르침을 주석·연구·정리·요약한 논論) 가르치는 스님.

*십이부경전(十二部經典)십이부경(十二部經) 부처님의 일대 교설을 경문의 서술 형식 또는 내용을 열두 가지로 분류한 것으로, 십이부경전(十二部經典)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말한다. 팔만사천법문.

*불감(不敢) ; ①감히(敢히, 자신의 신분이나 능력 따위를 넘어섯 주제넘게) 하지 못함. () 없음. ②상대편이 베풀어주는 대우(待遇)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고 황송(惶悚).

*오체투지(五體投地) ; 불교 신자가 교만을 떨쳐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佛法僧) 삼보(三寶) 큰절을 올려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방법.

신체의 다섯 부위를 땅에 닿게 하는 . 먼저 무릎을 꿇고 팔을 땅에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한다. 고대 인도에서 행하여지던 예법 가운데 상대방의 발을 받드는 접족례(接足禮)에서 유래한 것이다오륜투지(五輪投地)ㆍ오륜착지(五輪着地)ㆍ거신투지(擧身投地)ㆍ투지례(投地禮)라고도 한다.

*묵사발 되다 ; 상대방에게 완전히 패하다. -묵사발 : ①심한 타격이나 충격을 받아 뭉개진 상태를 이르는 . ②여지없이 패망항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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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하근기(下根機 아래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소질이나 근성, 능력이 가장 낮은 사람.

*참구(參究 헤아릴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간화선(看話禪) ; () 화두(話頭) 말이다. 간화(看話)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을 본다[]’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화두를 ()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도 말씀하신다.

*막론하다(莫論--) ; 이것저것 따지고 가려 말하지 아니하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한군데 ; 어떤 일정한 .

*오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없는 것을 헤아림을 ()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이라 한다.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있고 변할 있는 능력. ②천안통(天眼通)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있는 능력. ③천이통(天耳通)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있는 능력. ④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 속을 아는 능력. ⑤숙명통(宿命通)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능력.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94-95 참조.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 닦는 외도(外道)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 읽어도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의리선(義理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 이런 의리선(義理禪)사구참선(死句參禪)’이라,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해석하고 설명해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衆生心)이요 사량심(思量心)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흑산(黑山) : 인도의 전설에 대철위산(大鐵圍山) 소철위산 사이에 음양(陰陽) 이르지 못하는 암흑처가 있으니 이곳을 흑산이라고 하며 이곳은 악귀(惡鬼) 서식한다고 한다.

*흑산하귀굴리작활계(黑山下鬼窟裏作活計) ; 귀굴리작활계(鬼窟裏作活計). 수행자가 시끄러운 것을 피하고 고요한 것만 취해서 화두가 성성(惺惺)하지 못하고 눈을 감고 혼혼(昏昏) 경계에 취해서 묵조(默照) 정식분별(情識分別) 잠겨 있는 상태를 비유한 .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 선경어(博山無異禪師 禪警語)’p168~169 참고.

做工夫(주공부)호대  不可避喧向寂(불가피훤향적)하야  瞑目合眼(명목합안)하고  坐在*鬼窟裏作活計(좌재귀굴리작활계)  古所謂(고소위)  *黑山下坐死水浸(흑산하좌사수침)이라하니  齊得甚麼邊事(재득심마변사)리요  只要在境緣上做得去(지요재경연상주득거)하야사  始是得力處(시시득력처)니라

一句話頭(일구화두)  頓起在眉睫上(돈기재미첩상)하야  行裏坐裏(행리좌리)  着衣吃飯裏(착의흘반리)  迎賓送客裏(영빈송객리)  只要明這一句話頭落處(지요명자일구화두낙처)  一朝洗面時(일조세면시)  摸着鼻孔(모착비공)하야  原來太近(원래태근)이니라

 

 공부를 짓되 시끄러움을 피하고 고요함을 향하야 눈을 감고 귀신 속에 앉아 살림살이를 하지 말지니, 고인이 말하기를 「흑산 밑에 앉아 썩은 물에 잠겼다」하니 무슨 일을 이루리오? 다만 경계와 반연 위에서 공부를 지어 가야 비로소 이것이 힘을 얻는 곳이니라.

귀절 화두를 몰록 일으켜 눈썹 위에 두고서 다닐 때와 앉을 때와 입고 먹을 때와 손님을 맞고 손님을 보내는 속에 다만 일구(一句) 화두의 낙처(落處) 밝힐지니, 하루아침에 세수하다가 콧구멍을 만지듯 원래로 너무 가까왔느니라.

*미륵불(彌勒佛) : []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呾麗耶), 매달례야(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불의 5().

*정각(正覺) ; 깨달음. 부처님의 깨달음. 바른 깨달음. 우주의 대진리를 깨닫는 .

*묘관(妙觀) ; 묘한 (). () 의심(疑心) (). 화두를 거각하여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 하는 .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모르는 사람은 힘을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밖에는 없지만,

, , 이렇게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해도 화두가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걸랑,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 하는 거여. 없는 의심의 ()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일은 없는 의단(疑團)만을 잡드리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 () 긴완(緊緩) 득기중(得其中) 해야 . 그것이 묘한 ()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아는 사람은 바로 ()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의심(疑心) ()’으로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관해 나가면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의심의 ()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 막론하고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 2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 , , 3, 5, 10년을 해도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하고, 고대로 하면서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묘한 의관(疑觀)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조정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의심관, ()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생각 없는 생각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활구참선(活句參禪)의심(疑心) 이라야 .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 서산에 지려고 ,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때에,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빨갛고 아름다운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수가 없는데, 해가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해를 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떨어져서 보일 때까지 시간 내지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때까지 관찰하고서, 다음에는 밤새 눈을 감으나 뜨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다시 관을 해서,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밤새 관하고, 이튿날 관하고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일관이라든지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 있는데, 참선도 하나의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이뭣고?’ 해도 없는 의심이해가 봐두었던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 .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역대조사(歷代祖師)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소한(小限) 칠일(七日)이요 대한(大限) 구순(九旬)이라 ; ‘공부하는 기간은 짧게 잡으면 일이요, 길게 잡아야 구십 일이다’ [선요(禪要)] (고봉원묘) ‘結制示衆(其四)’ 참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 ①예기치 못한 말이나 행동을 불쑥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②갑자기 뜻밖의 일을 당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 [같은 속담] 어두운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홍두깨 ; 예전에, 옷이나 옷감 따위를 방망이로 두드려 깔깔하지 않고 윤기가 나도록 매끄럽게 하는 다듬이질을 때에 쓰는, 단단한 나무로 만든 도구(방망이).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