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법보재)2014. 10. 2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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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8) (게송)올올불수선~ / 부처님께서는 우리 중생에게 원하시는 것 / 생각이 일어났다 꺼지는 것이 생사 / (게송)야야포불면~.

영가를 여기다 모셨기 때문에 명절이나 제삿날을 기해서 여기 와서 부처님께 공양도 올리고, 영가를 위해서 제사도 모시게 되고 그러면서 또 조실스님 법문을 듣고 또 정법에 의해서 참선을 하시게 되니, 영가 때문에 영가만 좋을 뿐만 아니라 온 가정, 일가친척이 정법을 믿고 ‘참나’를 닦는 참선을 하시게 되니 어찌 그 영가가 편안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불공도 드리고 부처님께 와서 절도 하지마는 부처님께서는 자기가 자기의 마음을 깨달아서 생로병사(生老病死)에서부터서 해탈해 가지고 여러 중생들이 다 부처가 되기를 제일 좋아하시고 바라시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58)— 2013(계사년) 법보재(04.25)-30분 (용758)

 

(1) 약 22분.

 

(2) 약 9분.

 


(1)------------------

올올불수선(兀兀不修善)이요  등등부조악(騰騰不造惡)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적적단견문(寂寂斷見聞)이요  탕탕심무착(蕩蕩心無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올올불수선(兀兀不修善)이요, 올올하야 선(善)도 닦지 아니하고 등등(騰騰)하야 악(惡)도 짓지 않는다.
적적(寂寂)하야 보고 듣는 것이 끊고, 탕탕(蕩蕩)하야 마음이 착(着)함이 없다.

이 게송은 육조(六祖) 혜능(慧能)스님께서 임종하실 때 마지막에 이 게송을 읊으시고 열반을 하셨습니다.

올올(兀兀)하야 선(善)도 닦지 않는다.
‘올올하다’고 한 것은 태산처럼 동함이 없고 따악 정(靜)해져 갖고 있는 모습입니다.
등등(騰騰)하야 악도 짓지 않는다.
등등한 것도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고 따악 부동한 모습! 그러니 무슨 악을 지을 것이 있으며.

적적(寂寂)하야 견문(見聞)이 다 끊어졌다. 적적한 것은 말 그대로 고요하고 고요해서 보고 듣는 것이 다 끊어졌다 그말이여.
마지막에 탕탕(蕩蕩)하야 마음이 착(着)함이 없다. ‘탕탕하다’는 것은 넓고 넓은 모양을 표현한 것입니다.

올올하고, 등등하고, 적적하고, 탕탕한 모습은 육조스님께서 열반하실 그 장면을 — 그 몸가짐과 마음 상태를 고대로 읊으신 게송인 것입니다.

이 게송 안에는 생사(生死) 없는 모습,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으신 보살 화현(化現)으로서의 마지막 읊으시고 열반에 드신 그 게송인 것입니다.

이 게송을 오늘 계사(癸巳)년 3월 16일 법보재(法寶齋) 날에 읊은 것은, 이 법당에는 수많은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원근 친척과 인연있는 분의 영가(靈駕)가 봉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 영가는 법당앞 전후좌우 사방에 다 모셔져 있는데 — 이 영가는 항상 앞에 부처님을 모시고, 조실스님을 모시고, 우주법계의 모든 불보살과 제석천왕과 신장들이 옹호를 하고 계신 이 법당 안입니다.

이 법당 안에 모셔져 있는 우리의 선망부모, 원근 친척의 영가들은 그러한 장엄한 외호 속에 편안하게 봉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영가들의 마음 상태는 불보살과 모든 신장(神將)의 가호(加護) 속에 아까 읊은,
‘올올하야 선도 닦지 않고, 등등하야 악도 짓지 아니하며, 적적하야 모든 견문이 다 끊어졌으며, 탕탕하야 마음이 착(着)한 바가 없다’고 하는 그러한 상태에 영가들도—육조스님이 열반하실 때의 그 마음과 그 모습 속에 영가들도 그렇게 편안하게 봉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많은 영가들은 성(姓)도 각각이요, 평생 동안 지은 업(業)도 각각이요, 평생 살아온 것도 다 다르지만 일단, 이 법보전(法寶殿) 안에 법보영가로 봉안된 뒤에는 지나간 과거는 하나의 꿈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고,

그 꿈속에서 희로애락과 성주괴공(成住壞空)과 생주이멸(生住異滅) 속에 많은 고통, 슬픔,외로움 모다 그런 한(恨)이 맺힌 영가도 계실 것이고, 비교적 편안하게 잘 사시던 영가도 계실 것입니다마는,
일단 이 법보전에 모시게 되면 그런 것은 다 없어지고 오직 이 육조스님께서 열반하실 때 읊으신 게송과 똑같은 상황 속에서 영원을 사실 것입니다.

이 영가분 가운데에는 이미 극락세계나 도솔천 내원궁이나 또는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하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마는 아직 인연이 있어서 이 법당 안에 고대로 안주하고 계시면서 극락세계나 도솔천 내원궁에 가실 날을 기다리고 계실런지도 모르고,

또는 이 법당 안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조실스님을 모시고 대중들이 조석으로 예불하고 축원하는 이러한 분위기가 너무너무 좋아서 딴데로 갈 생각이 없이 여기서 편안하게 계신 그런 영가도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것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만은 일단 각 가정마다 비명에 간 영가도 있고, 일생을 참 괴로움과 슬픔 속에 사시던 영가도 있고, 또 돌아가실 때 병으로 앓다가 돌아가신 분, 전쟁에 나가서 전사한 그런 영가분,
또는 악연이 있어서 다른 사람한테 죽음을 당한 그런 영가도 있을런지 모릅니다만은 일단 여기에 모시게 되면 그 영가는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여기에 모셔지지 않은 영가는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하고 원한을 품고 세상에 있게 되면 그 영가가 갈 곳이 없어서 자기가 살던 집, 자기가 아는 형제간, 부모, 일가친척,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여가 붙었다 저가 붙었다,
그러면서 고혼(孤魂)으로서 정처가 없는 불쌍한 영가로서 떠돌던 그런 영가들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런 영가들이 집안에 여가 붙었다 저가 붙었다 하고, 이 사람한테 붙었다 저 사람한테 붙었다 하면 집안에 병고액난(病苦厄難)이 끊어지지 않고 일체 관재구설(官災口舌)과 온갖 재난이 끊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실스님께서는 그러한 많은 인연 있는 신도와 그런 불쌍한 영가를 위해서 법보전 안에 법보 영가를 모시는 제도를 마련을 하셨습니다.

일단 여기에 모시게 되면은 영가도 편안할 뿐만 아니라 그 영가를 모신 가정과 가족들도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많은 그 동안에 겪었던 병고액난과 관재구설과 모든 불화가 다 녹아 없어지고, 그 인연으로 결국은 정법(正法)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영가를 여기다 모셨기 때문에 명절이나 제삿날을 기해서 여기 와서 부처님께 공양도 올리고, 영가를 위해서 제사도 모시게 되고 그러면서 또 조실스님 법문을 듣고 또 정법에 의해서 참선을 하시게 되니,
영가 때문에 영가만 좋을 뿐만 아니라 온 가정, 일가친척이 정법을 믿고 ‘참나’를 닦는 참선을 하시게 되니 어찌 그 영가가 편안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부탁할 것은 일단 영가를 모신 분은 항상 여기 와서 법회에도 참석하시고, 제삿날을 잊지 않고 꼭 와서 부처님께 공양도 올리고, 대중공양도 하고 , 또 조실스님 법문도 듣고 이렇게 함으로써,
영가는 ‘아, 내 식구가 와서 오늘 불공(佛供)을 하는구나’ ‘내 죽은 날을 기해서 제사를 지내는구나’ 영가는 환히 다 보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다 영가를 모신 분은 절에를 자주 오셔야 하고, 명절에는 꼭 잊지 않고 참여해서 불공을 올리고, 제사를 올리는 의식에 정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영가로 인한 인연으로 많은 신도들이 정법을 믿고 참선을 함으로써 자기 자신은 육도윤회에서 해탈을 해 가지고 ‘참나’를 깨달아서 견성성불(見性成佛)하게 되는,
그러한 목적으로 이 법당을 창건을 해서 영가를 모시게 해 주신 전강영신(田岡永信) 대종사(大宗師).

여러분이 보시고 계신 이 사진을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만은 이러한 제도가 없으면 ‘불교를 믿는다’고 믿어도 무엇이 불법(佛法)인가를 모르는 것입니다.

‘불법은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 거다’ 막연히 그렇게 알고 절로 왔다갔다 하고, 불공이나 드리고 거기에서 끝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불교는 불(佛) 자가 ‘부처 불(佛)’ 그러지만, ‘부처’라는 게 무엇입니까? ‘깨달은 분’이란 말인 것입니다.

부처님, 석가모니 부처님, 깨달으셨으니까 부처님인데, 그 부처님을 믿는 것은 당연히 우리의 교주이시고 그러니까 당연히 존경하고 믿어야 하지마는 부처님은 당신을 믿고 존경하라고 그것만을 바라시지는 않습니다.

『우리 모든 중생들이 정법을 의지해서 자기가 자기를 닦아서 스스로 부처가 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원하신 것입니다.

불교를 믿으면 부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하는데 부처님은 절에 많는 돈과 쌀을 갖다 주신 것, 그것을 그렇게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스님네는 혹 좋아할런가 모르나 부처님은 그것을 좋아하시지 않고,
불공도 드리고 부처님께 와서 절도 하지마는 자기가 자기의 부처를 깨닫는 — 자기의 마음을 깨달아서 생로병사(生老病死)에서부터서 해탈해 가지고 여러 중생들이 다 부처가 되기를 제일 좋아하시고 바라시는 것입니다.

용화사 이 법보전은 그러한 의미에서 비록 부처님 열반하신 뒤로 삼천 년이 되어서 말세가 되었다 하지마는 법보 제자들은 말법(末法) 속에 다시 정법(正法) 시대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자리에 모이신 비구·비구니·사미·행자·청신사·청신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자기가 자기를 깨닫는 것은 남이 대신 깨달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깨닫는데, 깨닫는 것이 무슨 팔만대장경 어려운 경전을 읽고 외우고 해석하고 그것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경도 공부하고, 외울 경(經)도 있곤하나 그것이 경이라고 하는 것은 다 알고보면 팔만대장경이 다 ‘자기가 자기를 깨달으라’고 하는 말씀을 이러한 각도에서도 말씀하시고 저런 각도에서도 말씀하신 것이라,

경전을 옳게 본 사람은 자기 마음을 깨닫는 공부를 해야만 되는 건데, 중생은 길이 잘못 들었거나 근기(根機)가 약해 가지고 자기 깨닫는 것은 뒷전으로 두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면 소원을 성취한다, 복을 많이 짓는다’ 이러한 정도로 해서 불교를 믿으면서, 일생을 나름대로 ‘나는 불교 신자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분이 참 많습니다마는,

정말 ‘나를 깨닫는 공부’는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무엇을 볼 때 보는 데로 따라가지 말고, 보는 바로 ‘나’ — ‘이놈이 무엇인가?’
귀로 무엇을 들을 때는 듣는 그리 쫓아가지 말고, 바로 ‘이뭣고?’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여기 조실스님 영정(影幀) 옆에
생야시(生也是)  사야시(死也是)  두두비로(頭頭毘盧)  물물화장(物物華藏)

나는 것도 이놈이요, 죽은 것도 이놈이다.
생사(生死)는 보통 육체를 기준으로 해서 이 몸뚱이가 태어나면 생(生)이라 그러고, 살다가 죽으면 그것을 사(死)라고 그러는데,

이 불법 문중에서는 생사는 육체를 기준으로 두기 보다는 우리의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루에도 수백 가지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그 생각 일어나는 것이 바로 생(生)이고, 그 생각이 이리저리 하다가 또 꺼지면 그것이 죽음(死)인 것입니다.

생사(生死), 하루 동안에도 생각을 기준으로 해서 생사를 삼는다면은 우리는 하루에도 몇백만 번을 태어났다 죽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 생각의 ‘죽었다 살았다’ ‘생겨났다 죽었다’하는 것이, 그것이 원인이 되어 가지고 온갖 업(業)을 짓게 되고,
결국은 업 속에서 육체가 죽을 때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이고, 죽은 뒤에는 어디로 갈지 모르는 것입니다.

다행히 착한 일을 하고 좋은 일을 한 사람은 천당에 갈 것이고, 염불도 많이 하고 그런 사람은 또 극락에도 갈런지 모르나,
대부분 살다가 보면 알게 모르게 많은 업을 지어 가지고 지옥에도 안 간다고 아무도 보증을 할 수가 없고, 축생이 될런지 다시 또 인도환생할런지 모릅니다마는,

결정코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한 생각을 단속을 잘하면 지옥에 갈까 걱정할 것도 없고, 축생이 될까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뭔 말을 듣거나, 생각에 무슨 생각이 떠오르거나,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가 바로 내가 나를 챙길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누가 나한테 오장(五臟) 뒤집어지는 억울하고 그런 고약한 말을 하더라도, 그 말로 따라가면은 울화(鬱火)가 치밀어져 가지고 눈에 독이 오르고 얼굴이 변하고 당장 그 사람과 싸움을 하게 되는데,

정법을 믿고 참선하는 사람은 그 말을 듣자마자 숨을 들어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또 ‘이뭣고~?’ 이렇게 자기를 단속하는 참선으로 돌아오게 되면 상대할 아무 원수도 없고 미운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처음~21분28초)

 

 

 



(2)------------------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우리가 태어났지만은 이 정법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과 정법을 믿지 않고 빈부귀천, 성주괴공, 생로병사 속에서 사는 사람과는 세계가 다른 것입니다.

정법을 믿을 줄 모르고 ‘참나’를 찾는 참선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람으로서 태어나 가지고 이 몸뚱이를 가지고 지옥에 가서 지옥고를 받는 중생과 별로 다를 것이 없고,
소나 돼지나 개처럼 겉은 분명히 사람인데 축생처럼 일생을 그렇게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도반 여러분, 법보 가족 여러분!
정말 우리는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아서 태어났습니다. 만나기 어려운 또 불법을 만났습니다.

불법 가운데에서도 이 법보전에 영가를 모신 법보 가족,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은 정말 이 세상에서 극락세계에 태어난 것보다도 천당에 태어난 것보다도 훨씬 더 다행하고 행복한 삶을 사시게 되는 것입니다.


야야포불면(夜夜抱佛眠)이요  조조환공기(朝朝還共起)로다
나~무~아~미~타~불~
욕식불거처(欲識佛去處)인댄  지자어성시(只這語聲是)니라
나~무~아~미~타~불~

이 게송은 포대화상(布袋和尚)이 읊으신 게송입니다.

야야포불면(夜夜抱佛眠)이요, 밤이면 밤마다 부처님을 안고 자고
조조환공기(朝朝還共起)다. 아침이면 아침마다 그 부처님과 함께 일어난다
욕식불거처(欲識佛去處)인댄, 부처님 간 곳을 알고자 할진댄
지자어성시(只這語聲是)다. 다못 이 말소리 이놈이다, 이것이다.

우리는 밤마다 부처님을 안고 자는데 자면서도 부처님을 안고 자는 줄을 모르고, 하루 지나간 일을 이 생각 저 생각 걱정하다가 잠든 줄 모르게 잠이 들고 밤에 꿈도 꾸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부처님과 함께 일어난 줄을 인식을 못하고 그냥 자고 일어나는 것 뿐인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 안에 반드시 자성불(自性佛)이 계신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하고 인식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자리! 우리의 본성(本性)자리는 얼굴이 잘생겼거나 못 생겼거나,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늙었거나 젊었거나 일단 사람으로 태어나면 그 몸안에는 자성(自性)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그 자성이라는 것이 그것이 자기의 마음자리고, 그것이 자기를 지켜주고 살아가는 자기의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 부처님을, 잘 때 따악 부처님과 함께 잠에 드는 거고, 아침에 일어날 때는—이 육체는 송장인데 육체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이 육체 속에 있는 부처님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어나는데 부처님이 어디 계시냐?
눈으로 볼래야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져 볼래야 만져 볼 수 없습니다.

그 부처님은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이것이 나의 부처님이고, 이 말을 듣고 있는 그것이 바로 여러분 자신의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항상 보다가 놓쳐버리고, 듣다가 놓쳐버리고, 골을 내다가 놓쳐버리고, 걸어가다가 잊어버리고.

그런데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항상 ‘이뭣고~?’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가?’

생하는 놈도 이놈이요, 죽은 놈도 이놈이다.
이놈이라는게 우리는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고 아무리 우리의 마음으로 찾아봤자 그것은 ‘아, 이것이로구나!’ 이렇게 알기는 어려운 것이고,

항상 ‘이뭣고~?’
자꾸 그렇게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잊어버리면 또 챙기고 하다보면 나중에는 챙기지 안 해도 항상 알 수 없는 ‘이뭣고~?’한 의문이 마음속에 끊어지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열심히 한 사람에게는 언제 오더라도 그 경계(境界)가 오는 것이고,
그 경계가 와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의심이 끊어지지 않고, 그 의단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유지가 되어가면 반드시 그 사람은 자기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불법을 믿는 것은 이러기 위해서 불법을 믿는 것이고, 부처님께서 나오셔서 49년 동안 팔만사천 법문을 설하신 것은 오직 이 하나를, 이 한마디를 우리 중생들에게 일러주시기 위해서 탄생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 법보재를 맞이해서 우리의 법보 영가의 재사를 모시면서 우리는 다같은 한 가족으로서 일생 동안을 이러한 마음으로 같이 살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또 이러한 정법 문중에서 다시 만나서 또 이 정법에 의해서 ‘참나’를 깨닫고, 이 깨닫는 법을 일체 중생에게 전달을 하고,
그래서 온 우주법계가 깨달은 부처님으로 가득 찰 때까지 우리는 한 형제요, 가족으로 이렇게 살게 되기를 바라면서 법상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박수)(처음~30분33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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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올올불수선~’ ; [육조단경(六祖壇經)] 육조(六祖) 혜능(慧能)대사 임종게(臨終偈).
*육조(六祖) 혜능(慧能)대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법보재(法寶齋) ; 매년 음력 3월 16일에 용화사 법보재자(法寶齋者)와 법보전 만년위패에 모신 선망부모 영가들과 인연 있는 영가들의 무량겁으로부터 지은 업장을 참회 소멸하고,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고, 재자와 영가 모두 진리의 세계에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전강 조실스님께서 개설(1963년)하신 합동 천도재(薦度齋).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신장(神將) ; 불법(佛法)을 보호하는 신장. 또는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법보전(法寶殿) ; 법보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생주이멸(生住異滅) ; 모든 사물이 생기고(生), 머물고(住), 변화하고(異), 소멸함(滅). 또는 그런 현상.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안락국(安樂國)•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무량청정토(無量清淨土)라고도 함.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인도환생(人道還生) ; 인간이 사는 세계로 다시 태어남.
*고혼(孤魂) ; 의지할 곳 없이 떠돌아다니는 외로운 넋.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불공(佛供 부처 불,이바지할·바칠 공) ; 부처님 앞에 향(香)·등(燈)·꽃·음식 따위를 바치고 기원함.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전강영신(田岡永信)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말법(末法) : 부처님의 교법이 세상에 전하여 가면서 중생을 교화하는데 대하여 부처님께서 예언한 바가 있다.
처음 오백 년 동안은 정법(正法) 시기가 되어, 교법이 온전히 있음은 물론 닦아 가는 사람도 많고, 닦는 사람은 대개 깨쳐서 성과(聖果)를 얻게 되지마는,
그 다음 천 년 동안은 상법(像法) 곧 정법에 비슷한 시기가 되어, 교법도 있고 수행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깨치는 사람은 적게 되고, 그 다음 만 년 동안은 말법 곧 쇠잔하고 미약한 교법이 남아 있는 시기가 되어, 수행하는 사람도 별로 없으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 때 인도만을 표준한 말인 듯하다。인도의 불교사는 과연 그대로 되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대답하여 예언하기를, 불교가 중인도에서는 차츰 쇠미하게 되겠으나, 변지(邊地)와 외국에 널리 전파되어 점점 융성하게 되리라고 하였다。과연 불교의 중심이 중인도로부터 북부인도와 세일론으로 옮기었고, 다시 중앙아시아로, 북부아시아로 옮겨가게 되었다.
중국 • 한국 • 일본에 불교가 왕성하고 많은 도인(道人)이 난 것도 다 부처님이 열반한 지 1500년 이후의 일이었다。다시 말하면, 말법이라는 시기가 시작된 뒤의 일이다.
그러므로 세계적으로 불교 교단 전체를 통하여 볼 때에는 말법시기가 일정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파리어(巴利語)로 된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지런히 신(身) • 수(受) •심(心) • 법(法)의 사염주(四念住)를 닦아서 탐욕과 분심을 끊으면 정법은 영원토록 세상에 머물러 빛나게 될 것이나, 수행하지 않게 되면 정법은 곧 소멸하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여러 경전에도 『누구나 부처님 말씀대로 닦으면(如説修行) 다 반드시 견성 성불한다』하였고 조사들의 말씀에는 『참선하는 이가 견성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처럼 아주 쉽고 당연한 일이다』하였으므로, 누구나 공부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다만 우리는 사학(邪學)과 외도(外道)가 번성한 이 시대에 났으므로, 망녕된 알음알이를 내지 말고 줄기차게 정진한다면, 하나도 실패함이 없을(萬無一失)뿐 아니라 정법은 영원히 나아갈 것이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울화(鬱火 답답할 울,불 화) ; 분한 마음을 삭이지 못하여 일어나는 화(火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생기는 노엽고 답답한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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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교화하는 세계. 인토(忍土)•감인토(堪忍土)•인계(忍界)라고 한역.
*(게송) ‘야야포불면~’ ; 만신찬속장경(卍新纂續藏經) 제88책 <거사전(居士傳) 7> 부대사전(傅大士傳) 참고.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경계(境界) ; ①어떤 영역끼리의 한계. 또는 영역끼리의 사이, 접점. ②인식 또는 어떤 세력이 미치는 범위.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한 상태.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