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법 A B C D E2014. 10. 6. 11:21

 

참선법E (전체)

**송담스님(참선법E)(No.013)—76년 1월 관음재일 법문(76.01.24.음).(용013)

 

(1/3) 약 22분.

 

(2/3) 약 21분.

 

(3/3) 약 13분.

 

 

(1/3)------------------

오늘 관음재 법회일을 맞이해서 조실스님의 참선에 관한 법문을 여러 가지 각도에서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해 주신 법문을 다 같이 들었습니다.

이 법문(法門)을 통해서 잘 알아 들으셨겠지마는 이 가운데에는 다른 절에 나가시다가 오늘 처음으로 오신 분도 많이 계시고, 또 전혀 처음으로 이렇게 ‘이 용화사가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참으로 올바른 정법(正法)을 듣고서 공부할 수 있는 그러한 절이다’해서 일부러 이 법회에 처음으로 참석하신 분도 여러 분이 계신 줄로 알고 있습니다.

이 법회에 누차 여러 번 참석하신 분은 오늘 법문을 듣고 하나도 못 알아들으실 분이 없겠지마는,
처음 나오신 분, 또 나오신 지가 얼마 안 되신 분은 대관절 그 ‘이뭣고?’를 하라고 자꾸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 그 ‘이뭣고?’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뭣고?’를 하되 어떻게 하는 것이냐?

도대체 그 ‘이뭣고?’라 하는 것을 해야만 좋다고 여러 차례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구체적으로 이 ‘이뭣고?’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대단히 궁금하고 알 수가 없어서, 그것이 하면 좋다고 하니까 하기는 해야겠는데 어떻게 하는 것인가? 잘 모르시는 분이 계실는지 해서 그 하는 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여러 차례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가장 간단하고 쉬웁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10년 20년 30년 이것을 했다고 하신 분이 사실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분이 계신 것을 제가 보아서 대단히 놀랜 적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간단하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인데, 사실 옳게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냐?

다른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는 길이라면은 팻말도 써 붙여져 있고 가는 곳곳마다 물어 볼 사람이 많아서 찾아가기가 쉬웁지마는, 이 ‘이뭣고?’하는 이 마음 닦는 길은 눈으로 볼라야 볼 수 없고, 귀로 들을라야 들을 수 없어.

또 손으로 만져볼라야 만져볼 수도 없는 그러한 길, 도저히 더듬어 들어갈 수도 없고, 눈을 아무리 크게 뜨고 갈라고 해도 보이지 않는 길이기 때문에, 그리고 묵묵히 앉아서 자기 혼자 자기 길 가는 길이기 때문에,
겉으로 보면은 아주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지마는 실지 속으로는 밖에서 그 사람이 옳게 하고 있는지, 그르게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남이 가르쳐 주기도 어려운 일이고,

또 본인이 꼭 믿을만한 그러한 선각자(先覺者)를 만나서 자주 자주 물으면은 잘못 가는 길을 바로 잡을 수도 있건마는, 그 말 물어 보기가 대단히 어렵고, 누구한테 물어 보아야 할는지 그것도 잘 알 수가 없고 그래서, 겉으로만 열심히 할 뿐이지 속으로는 실상은 맹랑하게 공부를 지어가고 있는 분이 있는 것을 보았어요.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노상 같은 말이지만은 말씀을 드리는 것은 행여나 만나기 어려운 불법 만나서, 하기 어려운 이 참선법(參禪法) 만나 가지고, 기왕 할 바에는 추호(秋毫)라도 그릇됨이 없이 해야만 되기 때문에 누차 말씀을 드린 겁니다.

듣고 또 듣고 한 가운데에 자기의 닦아 가는 길을 자꾸 바로잡아 나간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올바르게 나를 깨닫느냐, 못 깨닫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가 거기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조실스님께서도 법회가 있을 때마다 이 문제에 관해서 그렇게 고구정녕하게 말씀을 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 참선은 외형에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지식이 많이 있다고 해서 잘하는 것도 아니고, 꼭 남자라고만 해서 잘하는 것도 아니고, 젊다고만 해서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말세(末世)라 할지라도 발심(發心)만 철저히 하고, 옳게 지도해 줄 수 있는 지도자만 만나서 본인이 정성껏 그리고 바른 마음으로 열심히만 한다고 하면은 말세도 상관이 없고, 나이가 많아도 상관이 없고, 여자의 몸도 상관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다 죽어가는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마저 이것을 참으로 무상(無常)을 느껴서 할려고 마음먹으면 누워서 똥을 싸면서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일수록에 더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맨 처음에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것은 덮어놓고 ‘이뭣고?’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덮어놓고 ‘이뭣고?’ ‘이뭣고?’ 자나깨나 ‘이뭣고?’만 한다고 해서 되냐 하면 그것이 아니여.

방법을 잘 모르고 열심히 하다 보면은 까딱하면은 공부의 힘은 얻기 전에 몸에 부작용이 일어나서 병만 생겨서 허덕이는 수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차라리 열심히 하지 아니하면 형식적으로 조금 하다가 말고,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말고, 그럭저럭 하면은 병도 안 생기겠지마는, 참으로 이것 밖에는 없다고 하는 간절한 신심이 나서 열심히 하는 사람일수록에 잘못하게 될 때에는 무서운 결과가 돌아오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왕 할 바에는 옳게 해야겠다 이겁니다.



< 올바른 자세 >

 

첫째는 몸을 바르게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하는 것은 몸뚱이가 올바르게 건강하게 유지가 되어야 옳게 살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사상이 바르고 옳은 마음으로 산다 해도 몸이 병이 들어서 건강틀 못하다고 하면은 아무리 지식이 많고 사상이 바르다고 해도 그 사람은 올바른 사람 구실을 못하고 맙니다.

그래서 이 공부도 참선 공부도 할라면은 첫째 몸을 바르게 가져야겠다 이겁니다.

몸을 바르게 갖는 것은—주로 이 참선은 앉아서나 누워서나 걸어다니거나 또는 일상생활하는 가운데에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해야 하는 것이고, 할 수 있는 것이지마는, 가장 효율적이고 또 힘을 얻기 좋은 데에는 ‘앉아서 하는 것(坐禪)’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앉아서 하는 데에는 가부좌(跏趺坐)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부좌는 지금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부처님이 앉아 계신 그 다리 모양이 그것이 가부좌입니다.
그런데 '온 가부좌(結跏趺坐)'를 할라면은 다리가 아프고 힘줄이 댕기고 해서 대단히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반가부좌(半跏趺坐)만 하면 됩니다.

반가부좌는 오른 다리를 먼저 꼬부리고 그 다음에 왼발을 그 위에다 올려놓고, 그 다음에 오른손을 그 위에다가 놓고 그 위에다 왼손을 포개서 놓고, 엄지손 배를 딱 이렇게 맞대서 배꼽 앞에다 갖다 이렇게 댑니다.

그렇게 앉아서 몸은 뒤로 너무 제껴도 안 되고 앞으로 숙이지도 말고, 좌우로 기울지 않도록 반듯이 앉되, 처음에 발과 손을 그렇게 한 다음에는,
궁둥이를 한 번 들어서 몸을 앞으로 제낀 다음에 궁둥이를 한번 쑥 들었다가 딱 놓고, 그 다음에 좌우로 이렇게 너댓 번 이렇게 흔들어서 중앙에다가 중심에다 딱 안정을 시킵니다.

그리고 이는 딱 악물고, 혀는 꼬부려서 입천장에다 딱 붙이고서, 눈은 2미터 가량이 보일 정도로, 평평한 방에 앉았을 때에 2미터 앞이 보일 정도로 눈을 뜨십시오.
너무 눈을 가늘게 뜨면은 졸음에 빠지기가 쉽고, 눈을 너무 뚝 부릅뜨면은 산란심(散亂心)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에 눈은 평상시로 편안하니 그렇게 뜨시되, 눈을 감았다 떴다 눈알이 왔다갔다 하지 않도록 그렇게 하면은 몸을 바르게 하는 것이 됩니다.



< 올바른 호흡 >

 

그 다음에는 무엇을 바르게 해야 하느냐 하면, 호흡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아까 사람이 바르게 살려고 하면은 몸이 건강해야 한다고 했지마는, 몸을 바르게 가져야 하고 그 다음에는 호흡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호흡을 하고 있다, 숨을 쉬고 있다’고 하는 말이 바로 ‘살아있다’하는 말과 똑같은 말입니다. 그만큼 사람에 있어서 호흡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그때부터서 숨을 쉬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죽을 때까지 호흡은 무의식중에도 호흡을 쉬고 있기 마련입니다마는 올바르게 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전부 다 호흡은 허파로 호흡을 하게 되지마는, 이 수행하는 사람은 허파로 숨을 쉬는 게 아니라 단전(丹田)으로 호흡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단전으로 호흡을 한다’고 하는 것은 숨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빵빵하니 아랫배까지 호흡이 들어가는 기분으로 호흡을 들어마셔서, 들어마신 다음에는 그것을 아주 조용히 내뿜어야 됩니다.
코끝에다가 닭 터럭 같은 가벼운 털을 놓아두고 호흡을 쉬어도 그 닭 터럭이 움직이지 아니할 만큼 그렇게 호흡을 조용히 들어마시고 조용히 내뿜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 호흡을 그렇게 깊이 들어마셔서 조용히 내뿜도록 노력을 하다 보면은 혈액순환이 촉진이 되어서 신체 각 분야에 호흡이 활발하게 순환을 하고,
순환을 함으로써—몸안에 오장육부에 모세혈관이 콱 거미줄 엉키듯이 다 엉켜 있습니다마는, 이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함으로써 신체 각 부에 쌓여 있는 노폐물, 찌꺼기를 전부 다 이 호흡으로 실어서 몸 밖으로 전부 내버리게 됩니다.

집안에 쓰레기가 구석구석이 쌓여 있게 되면은 자연히 거기에 균이 발생을 해서 집안이 악취가 나고 모든 질병이 거기서 일어날 수가 있고 파리도 끼고 그렇지마는,
이 쓰레기를 자주자주 치워서 집안을 구석구석이 깨끗이 함으로써 기분도 좋고 악취도 안 나고 균도 발생하지 않아서 건강을 위생적으로 유지할 수가 있는 거와 같이, 이 사람 몸뚱이에도 오장육부 각 구석구석이 잠깐 동안에 이 노폐물이 쌓이게 됩니다.

이것을 복식 심호흡을 해 가지고 혈액순환을 활발히 함으로써 몸안에 있는 노폐물을 그때그때 깨끗하게 소지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학적으로 전부 다 증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복식 심호흡을 통해서 몸안에 있는 노폐물을 깨끗이 소지하고 또 숨을 들어마실 때에는 깨끗한 공기 풍부한 산소와 영양을 실어서 다시 신체 각 부분에 오장육부에 맑은 공기와 영양을 공급해 주고,
내뿜을 때에는 또 노폐물을 실어다가 밖으로 소지해 내고, 이러한 작용을 하는 것이 이 복식 심호흡을 함으로써 얻어지는 직접적인 이익이 있고,

이 복식 심호흡을 함으로써 들뜬 마음이 가라앉고 또 몸이 그렇게 노폐물을 전부 다 소지해 냄으로써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시원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안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참선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학생이건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이건 누구라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 호흡법을 함으로써 육체적인 건강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적인 건강까지도 도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이 참선하는 사람은 첫째 몸이 건강해야 하고, 따라서 건전한 정신과 맑은 정신으로 참선을 해야만 도통(道通)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선하는 사람이 몸이 무겁고 나른하고 또 정신이 흐리터분하고 골치가 아프고 상기(上氣)가 되면은 도저히 아무리 ‘이뭣고?’를 할려고 해도 되어지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참선을 할려면 첫째 이 복식 심호흡을 구체적으로 자세히 알아서 올바르게 함으로써 참선을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회 때마다 이것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드리는 것은 그 까닭이 있고, 조실스님께서도 가끔 이것에 대해서 강조를 하셨고, 제가 30년 경험을 통해서,

또 인도에 5천 년 전부터서 전해 내려오는 요가법이라든지 중국의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신선도(神仙道)가 전부 이 복식 심호흡, 단전호흡, 배로 쉬는—그 깊이 들어마셨다가 조용히 내뿜는—이 호흡법을 근간으로 해서 장생불사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참선법을 하는 것은 장생불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한 육체, 건전한 정신, 안정된 정신, 맑은 정신으로 해야만 참선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이 점점 복잡하고 어려워지고 사람들이 모다 정신 쇠약이라든지 노이로제다 무엇이다 이러헌 병에 많은 사람들이 시달리고 있습니다마는 이러한 병도 이 참선을 함으로써 전부 다 예방할 수가 있고,
이미 그러한 병에 걸려있는 사람도 이 복식 심호흡을 통해서 그것을 근간으로 해서 참선을 하게 되면은 정신이 안정이 되고 맑아지기 때문에 그러한 정신병도 다 낫을 수가 있는 것이고, 고혈압이라든지 중풍 같은 것도 미연에 예방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〇준비 호흡

 

그래서 아까 몸을 바르게 하는 법을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처음에 호흡을 할 때에 될 수 있으면 빨리 그리고 배가 터지도록 잔뜩 코로 들어마셔요.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셔 가지고 얼굴이 벌게지도록 참으세요.
참어 가지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참았다가 ‘후—’하고 호흡을 입으로 내뿜으세요. 내뿜을 때 가슴을 이렇게 조이면서 짜면서 한 점 공기가 안 남도록 다 내뿜어버리고,

다 내뿜은 다음에는 또 수루루루 하니 가슴이 미어지도록 또 들어마셔. 잔뜩 들어마셔 가지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참았다가 ‘후—’하고 몸을 쥐어짜면서 앞으로 숙인 듯 하면서 다 내뿜으셔.
이렇게 2번 내지 3번 하게 되면은 허파 속에 들어있는 묵은 공기 찌꺼기가 전부 다 몸밖으로 다 내쫓기게 됩니다.



〇본 호흡

 

다 내뿜은 다음에 이제는 수루루루~하니 자연스럽게 들어마시세요. 들어마시되 아까처럼 잔뜩 터지도록 들어마시지 말고, 한 팔부쯤만 들어마시세요. 수루루루 하니 조용이 해서 한 80%, 팔부쯤만 들어마셨다가,

아까 처음에 2번 내지 3번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얼굴이 벌게질 때까지 참으라고 했지마는 이제는 그렇게 참는 것이 아니라,
수루루루 들어마셔서 80%쯤 들어마셨으면은 잠깐 머물렀다가—얼굴이 벌게질 때까지 참지 말고—조용하니 코로 내뿜으세요.

아까 2번은 입으로 ‘후—’하고 내뿜었지마는, 이번에는 입으로 내뿜지 말고 코로 조용하니 내쉽니다. 내쉴 때에 배가 차츰차츰 차츰 홀쪽해지도록. 들어마실 때는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뿜을 때는 배가 홀쪽해지도록.

그래서 들어마실 때 한 3~4초 걸려서 들어마시고, 들어마셨다가 한 1초나 2초 잠깐 머물렀다가 내뿜는데, 내뿜는 데는 한 10초 가량 걸려서 내뿜는데, 차츰차츰차츰 내뿜는 족족 배가 홀쪽해져서 등어리가 딱 붙은 기분으로,

그래서 다 내뿜은 다음에는 또 스르르르르 하니 들어마시면은 배가 또 볼록해지도록 들어마시는데,
(준비 호흡)맨 처음에 잔뜩 들어마실 때에는 배로 들어마시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들어마시지마는 2번 지나고, (본 호흡)3번, 4번째부터서는 가슴이 터지도록 들어마시지 말고 배로 들어마셔요, 배까지.

들어마시면 배가 볼록하게 요렇게 눌러보면은 빵빵하도록 들어마셔요. 들어마신 다음에 다 들어마시면은 또 조용하니 내뿜으면 배가 또 홀쪽해지고, 완전히 배가 홀쪽해진 다음에 또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시고.

그래서 한번 들어마셨다가 내뿜는데 시간이 한 15초 가량, 처음에 좀 어려우면 한 10초 걸려도 상관이 없어요.
자기 체질에 따라서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는 사람도 있고 또 그렇게 오래 못 쉬는 사람도 있습니다마는 자기 체질에 맞도록 부담이 없도록 자연스럽게 해야 합니다.

억지로 천천히 하기 위해서 30초, 40초 걸리도록 무리하게 하면은 얼굴이 벌게지고 기운이 위로 올라오니까 그렇게 하지 말고, 처음에는 자기 형편에 맞도록 자연스럽게 편안하도록 부담이 없이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처음~21분20초)

 

 

 


(2/3)------------------

 

< 수식관(數息觀) >

 

그렇게 해서 한번 들어마셨다가 내뿜고 ‘하나’, 또 한번 쑤욱 들어마셨다가 내뿜고 ‘둘’, 또 들어마셨다가 내뿜고 ‘셋’....해서 ‘열’까지 올라간 다음에는,
그 다음에 또 들어마셨다 내뿜고 ‘열하나’하지 말고 ‘아홉’, 그 다음에 한번 들어마셨다 내뿜고 ‘여덟’해서 ‘일곱’ ‘여섯’ ....해서 거꾸로 세어 내려가서 ‘하나’에 도달하면은,

다시 또 ‘하나’에서부터서 ‘둘’ ‘셋’ ....해서 ‘열’, 또 ‘열’까지 가면 ‘아홉’ ‘여덟’ ....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 이렇게 몇 번을 하도록 연습을 하는데,

‘다섯’ ‘여섯’ 올라가다가, 금방 딴 생각을 해 가지고는 ‘아! 내가 아까 몇까지 세었더라?’하고 깜박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는 무조건 ‘하나’에서부터 다시 세어 올라가고,

이렇게 해서 중간에 그런 실수 없이 '열'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고 또 '열'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고 몇 번을 해도 무난히 될 때에는 그 다음에는 '하나'에서 '스물'까지 올라갔다 또 내려오고,

또 '스물'까지 무난히 올라갔다 내려오게 되면은 '서른'까지 하고 해서 ‘백’까지 올라갔다가 ‘아흔 아홉’ ‘아흔 여덟’....해서 ‘하나’까지 내려 올 수 있을 정도로, 중간에 한번도 잊어버리지 않고—잊어버리면은 ‘오십’까지 갔다가도 잊어버리면은 ‘하나’에서부터 다시 올라가야 됩니다.

이렇게 해서 ‘백’까지 올라갔다가 ‘하나’까지 내려올 수 있을 정도로 중간에 실수 없이 되면은 그 사람은 완전히 호흡이 기초가 잡힌 거에요.
그 사람은 그런 정도까지 되면은 노이로제다, 중풍이다, 고혈압이다, 그런 게 걸리지 않게 됩니다. 또 위장병이 있는 사람도 서서히 위장병이 낫게 되고, 골치 아픈 병이 있는 사람도 골치가 안 아프게 됩니다.



< 올바른 생각(삼요 三要) >

 

이러한 정도 된 다음에 참으로 참선(參禪)을 철저히 할라면은 인자 ‘생각을 바르게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생각을 어떻게 해야 바르게 갖느냐? 처음에 몸을 바르게 하는 법 말씀드렸지요? 그 다음에 호흡을 바르게 하는 법을 말씀을 드렸는데, 이번에는 마음, 생각하는 것을 바르게 하는 법을 알아야 됩니다.



〇신심(信心)

 

이 생각을 바르게 할라면은 바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도 부처님과 같이 또는 달마(達摩) 스님이나 서산대사나 사명당이나 그러한 과거의 도인(道人)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올바르게만 이 공부를 하면은 나도 견성성불(見性成佛)할 수 있다고 믿어야 됩니다. 이것을 믿지 않고서는 참선은 성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뭣한 사람들은 “말세는 참선했자 소용없고 아미타불 불러야 좋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마는 그런 말씀은 그 말씀에 해당하는 그 사람에게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부처님의 정법에 입각해서 말씀드린다면은 “올바른 신심으로 올바르게 지도를 받아서 올바르게만 하면은 아무리 말세라 할지라도 다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 있다.”고 부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말세도 상관이 없고, 여자도 상관이 없고, 노인도 상관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 다 부처님과 조금도 차별이 없는 불성(佛性)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올바르게만 그리고 열심히만 하면은 다 이 공부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공부를 하시는 분은 그렇게 믿어야 됩니다.

‘나는 나이도 많고, 인제사 불교에 왔기 때문에 도저히 견성성불은 가망 없고 그저 인연이나 맺었다가 내생에나 하자.’ 이런 생각은 용납이 되지를 않습니다. 결단코 금생에 할 수 있다고 믿어야 됩니다.
또 금생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고 해야 이 공부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지, 그 믿음이 없으면 안 됩니다.

전쟁도 아무리 적군이 많고, 아군이 수효가 적고 무력이 좀 떨어진다 하더라도 죽음으로써 이길 각오를 하고, 만약에 이기지 못하면 죽을 각오를 하고 대들면은 10대 1 밖에는 안 되는, 백 대 1 밖에 안 되는 적은 군사력을 가지고도 능히 전쟁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참선도 전쟁입니다.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이가 눈으로 코로.. 아까 조실스님께서 여섯 가지 도둑놈(六賊)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는, 팔만사천의 도둑놈이 여섯 문(六門)으로 틈만 있으면 침범해 들어옵니다.

우리의 마음을 왕에다 비교합니다. 심왕(心王). 심왕성(心王城)인데, 이 몸뚱이는 심왕의 성(城)인데, 그 성에 여섯 문(六門)이 있습니다.
눈, 코, 귀, 입, 몸뚱이, 의(意) 여섯 가지 문이 있는데, 그 여섯 문을 통해서 팔만사천의 마군이의 군사가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들어와 가지고 이 심왕을 공격해 들어오는 이러한 무서운 전쟁입니다.

그래서 국가와 국가의 전쟁은 군인들이 싸우고, 국민은 그 마음이 단합해 가지고 뒷받침만 하면은 직접 총칼은 안 들어도 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마는, 우리의 마음의 왕을 공격해 들어오는 팔만사천의 마군이 군사는 우리가 직접 싸워야 됩니다. 직접 싸우지 않고 남이 우리의 싸움을 막아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놈을 못 막고 그 팔만사천의 마구니 군사에 진 사람은 결국은 지옥에 가는 것이고, 그놈을 싸워서 끝까지 내가 물러서지 않고 싸워서 이겨낸 사람은 극락에도 가고 견성성불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은 무량겁을 두고 육도윤회를 하다가 조금 착한 일 하면 천당에 갔다가,
악한 일 하면 짐승이 되기도 하고, 성을 많이 내면 독사나 구렁이가 되기도 하고, 또 더 사람을 죽이고 못된 죄를 퍼 지으면은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고,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 참선법은 이 팔만사천 마군이—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여섯 대문으로 쳐들어오는 팔만사천 마군이를 물리침으로서 무량겁으로 윤회하는 생사윤회(生死輪廻)에서 해탈(解脫)하는 것이고, 당장 현세에 그러한 도적놈에게 시달리지 않고 대자유·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최고 방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할 수 있다’고 믿어야 됩니다. 첫째, ‘하면 된다’고 믿어야 됩니다.



〇분심(憤心)

 

둘째에 가서는 무엇 때문에 과거의 부처님과 보살님과 도인들은 이 문제를 진즉 해결을 해서 그런 성현이 되어 가지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해탈하시고 대해탈도를 증득을 했는데, 나는 오늘날까지 무엇 하느라고 이렇게 육도윤회를 하면서 자유를 얻지 못하고 행복을 얻지 못하고, 앞으로 눈 한번 감으면은 지옥에 떨어질런지 축생이 될런지 모르는 이러한 환경에 놓여져 있는가?

생각해 보면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배불리 먹고 호강하고 살면은 그것이 전부가 될는지 모르지마는, 이 인과의 법칙—이 문제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 육도에 윤회할 그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그 이치를 우리가 알고 믿고 느끼는 사람이라면은 나는 왜 오늘날까지 이렇게 해탈을 하지 못하고 윤회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속에서 분통이 나지 아니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 분심(憤心)이 나야 합니다.
이를 악물고, ‘다행히 내가 금생에 이 사람 몸 받아 가지고 이 정법(正法)을 만났다. 늦게 만났지마는 그래도 다행한 일이다. 다행한 마음과 아울러서, 그러니 알고서 안 할 수가 있느냐? 나도 해야겠다’고 하는 용맹심이 속에서 북받쳐 올라야 되는 것입니다.

게을러 빠져가지고, 하거나 말거나 육도윤회를 하거나 말거나, 남이 공부를 하거나 말거나 아무 생각이 없다고 하면은 그러한 사람은 이 공부를 해 봤자 별 수가 없습니다.



〇의심(疑心), 화두 드는 법.

 

용맹심(勇猛心), 분심(憤心), 아까 처음에 신심(信心)이 있는 사람에게는 분심과 용맹심이 없을 수가 없고, 그것이 있어야 그 다음에 이 ‘이뭣고?’ 화두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화두는 의심(疑心)입니다. 의심!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하고 의심하는 거여.

‘이뭣고?’ ‘이뭣고?’하니까 처음 듣는 분은 「이뭣고」가 무엇인가? 그러시겠지마는,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그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 ‘이 뭣고?’ 이거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자(字)지만은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거든.

'사투리'지마는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이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아무리 서울의 본토박이라 하더라도 이 참선할 때에는 불가불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뭣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그러면 「이것」이란 게 뭐냐? “엄마!” 부르면 “왜?” 하고 대답할 줄 알고, “옥자야!” 하면 “예!” 하고 대답할 줄 알고, 또 듣기 싫은 욕하면 성낼 줄 알고, 꼬집어 뜯으면 아픈 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알고,
여기 앉아서도 서울 일이 환하고, 서울역을 생각하면 서울역이 환하고, 또 대전을 생각하면 대전이 환하고, 또 20년 30년 전 어릴 적 일을 생각하면 그때 일이 환하지 않습니까?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때리면 아플 줄 알고, 이 몸뚱이는 차를 타야 가고 걸어가야 가고 또 비행기를 타야 갈 수가 있고 배도 타야 하지마는, 이놈은 뭘 타고 가는 것이 아니거든.
가만히 앉아서도 퍼뜩 번갯불보다도 더 빨리 갔다 올 수도 있고, 아무리 비행기가 빠르다 해도 10년 전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현재 과학으로는.

그렇지마는 이놈은 10년 전도 갔다 올라면 갔다 오고, 50년 전도 갔다 올라면 갔다 오고, 앞으로 10년 뒷일도 생각할라면 생각하고, 백년 뒷일도 생각할라면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이놈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종횡자재(縱橫自在)입니다.

이렇게 조화(造化) 무쌍(無雙)한 놈이 우리의 몸뚱이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놈이 어디에 있는가는 알 수 없지마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 그러한 조화 무쌍한 그런 놈이 있어요.

그것을 보통 ‘그것이 무엇이냐? 마음이지, 그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다 대답하시겠지마는 그건 다 들은 풍월로 하시는 말씀이라, 이 참선하는 데에는 들어 가지고 아는 것은 다 소용이 없습니다.
화엄경에 있는 말씀이건, 법화경에 있는 말씀이건, 금강경에 있는 말씀이건, 그러헌 데에 써 있는 것을 보고 알거나, 남한테 듣고 아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이 참선하는 데에는 다 싹 쓸어서 다 잊어버리고, 다 버리고서 참선을 하셔야 합니다.

많이 보고, 많이 듣고 알고 있는 그러한 것은 하나도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을 알고 있다고 해서 자기는 불교를 참 많이 알고 있다고 자랑하실 분이 있다면은 그 생각을 버리셔야 합니다.
깨끗이 다 씻어 없애 버리고 금방 갓난애기가 아무 생각 없듯이, 그러한 갓난애기와 같은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다못 ‘이것이 무엇인고...?’ ‘이 무엇고...?’ 이렇게만 해 가셔야 됩니다.

이것을 '마음'이니 '성품'이니 그것이 '자성불'이니 그런 생각 여기다 붙여서는 안 됩니다.
일체 그러한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려고 하고, 이리저리 더듬고 이리저리 비교하고, 무슨 경전에서 본 말씀을 여기다가 참조를 해서 비교해 보고, 그러한 것은 중생의 ‘알음알이’라 이 공부에는 하등의 효과가 없습니다. 오히려 공부를 가로막는 병에 지내지 못합니다.

될 수 있으면 빨리 공부를 성취하고자 하시거든, 그동안에 보고 듣고 알고 하는 것은 전부 다 버려야 합니다.
‘버린다’고 하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다못 그런 생각이 나더라도 버릴려고 하지 말고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화두만 들어 버리면 저절로 버려지는 것입니다.

버리는 방법이 몸에 있는 것은 자꾸 손으로 집어 던지면 되겠지만, 이것은 뭐 손으로 던질 수도 없는 것이고, 던질라고 생각냈다 하면은 벌써 던질라고 하는 망상이 하나 더 생겨날 따름입니다.

그래서 던지는 묘방은 다른 게 아니라, ‘이뭣고?’해 버리면 던져지는 거예요. 「판치생모」하시는 분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는고?’ 「이뭣고」하시는 분은 ‘이 뭣고~?’
무슨 근심스러운 생각이 나면은 바로 그 생각 버리지 말고 ‘이뭣고?’하면 버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근심스러운 일이 있거나, 또는 억울한 말을 듣고 성이 나거나, 무슨 기쁜 일을 당하거나,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엇을 듣거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고 했는고?’

이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화두를 들고 또 들고, 들고 또 들고 하는데, 입으로는 들고 있으면서 속으로는 번개보다도 더 빨리 딴 생각이 침범해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들어온 줄 알면 ‘이뭣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그렇게 하시다 보면은 나중에 차츰차츰 익어지게 되어서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되어지는 때가 옵니다.



< 의단독로, 견성성불 >

 

그런 때는 몸도 가볍고 머리도 개운해서 아주 그렇게 상쾌하고 조용하고 기분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마는 그렇다 하더라도 절대로 기뻐하는 마음을 내서는 안 됩니다.
기뻐하는 마음 내면은 벌써 그것이 기쁜 마군(魔軍)이가 쳐들어와 있는 것이 되기 때문에 기뻐하는 마음을 내지 말고, 계속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렇게 공부가 잘 될수록에 화두를 더욱 간절히 들어야 됩니다.

마냥 한번 잘되기 시작하면 계속 잘되면 참 좋겠는데, 내동 어제까지 잘되던 것이 뚝 변해 가지고 영 안되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무릎이 아프고, 몸이 무겁고, 가슴이 답답하고, 골치가 띵하고 해서 도저히 공부가 안됩니다. 그 안 된다고 해서 짜증을 내서는 아니 됩니다.

그렇게 몸이 무겁고 지루하고 그럴 때에는, 그러고 가슴이 답답하고 그럴 때에는, 조용하니 일어나서 밖으로 맑은 공기를 쏘이면서 왔다갔다 포행(布行)을 좀 하면은 가슴도 후련해지고 머리도 개운해지고 몸도 좀 가벼워지면, 그러면 또 가서 방석에 앉아서 또 하시고, 이렇게 해서 그 고비를 지혜스럽게 잘 달래서 그 고비를 넘어야 합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무겁고 지루하고 한 것은 마장(魔障)이 붙어서 공부가 잘 안 될라고 그런 게 아니라, 공부가 한 계단 올라설려고 그러한 상태가 나온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높은 산을 오를 때에, 마지막 봉우리에 올라 설 때에는 매우 다리가 아프고 답답하고 숨이 가쁘고 그러지마는 그 고비 넘겨 놓고 나면은 그 다음부터서는 수월하게 내리막길이 나오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이 공부도 잘되어 가다가 또 답답하고 안되어 가다가, 그러다가 또 그 고비를 어떻게 해서 넘기면은 또 그 다음에 잘 되다 그것을 수십 번, 수백 번 그런 고비를 넘고 또 넘어야 됩니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되면은 나중에는 밥 먹을 때에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똥 눌 때도 들어지고, 걸어가고 일할 때에도, 이 화두를 좀 그만 두고 딴 생각을 할려고 해도 화두가 나타나 가지고 딴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되고, 심지어는 잠을 잘 때 꿈속에서도 이 화두가 들어지게 됩니다.

저녁에 잘 때도 눈을 감고 화두를 들고서 잠이 들 때까지 계속 ‘이뭣고..?’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이렇게 화두를 들면서 누워 있으면은 언제 잠이 온 줄 모르게 잠이 들게 됩니다.
그래 가지고 아침에 눈을 딱 뜨면은 기분에는 한 10분 누웠다 일어난 것 같은데, 시계를 보면은 대 여섯 시간 이렇게 자져 갖고 있단 말씀이에요.

그래 아침에 눈을 딱 뜨는데 새로 화두를 들지 않아도 엊저녁에 들던 그 화두가 고대로 딱 들어져 갖고 있다 그 말이에요.

이러한 지경에까지 오도록 열심히 열심히 하시면은 그 가운데에 무량겁으로 지어온 갖은 팔만사천 가지 업장(業障)은 그 속에서 다 녹아지게 되고, 그러기 때문에 견성성불(見性成佛)하고 육도윤회를 면하는 생사해탈(生死解脫)하게 되는 거예요.(21분21초~42분33초)

 

 

 


(3/3)------------------

 

<참선법—불교의 골수 수행 방법 >

 

이것은 불교의 팔만대장경을 다 추리고 간추려서 골수만 뽑아서 만들어 놓은 수행 방법이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은 믿고 고대로 하셔야 됩니다.

그렇지 아니한다고 하면은 무엇 때문에 조실스님께서 팔십 고령(高齡)에 이르도록 가만히 당신 공부하시고 조용히 지내시면은 편하실 텐데, 팔십 고령에 혈압은 그렇게 이백이 넘나드시면서 여러분들을 위해서 그 피를 토하는 그러한 간곡한 고구정녕(苦口丁寧)한 그런 법문을 마지막 열반하신 날까지 그렇게 해주실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

이 법이 그만큼 중요하고 그렇게 여러분들의 생사해탈하는 데에 유일한 묘방(妙方)이기 때문에 마지막 이 사바세계를 하직하신 그날까지 그렇게 간곡히 말씀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한 큰스님의 법은(法恩)을 갚는 길은 오직 여러분 자신들이 조실스님의 법문(法門)에 의지해서 열심히 공부하시는 길 (법문 끊김) ...묘한 길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첫째, 몸을 바르게 가질 것, 둘째 바른 호흡을 할 것, 셋째에 가서 바르게 생각을 가다듬는데,

생각을 바로잡을려면은 첫째 나도 성불할 수 있다고 믿고, 나도 하면은 부처님과 같이 그러한 성현(聖賢)이 될 수 있다고 믿고,
그 다음에, 무엇 때문에 나는 오늘날까지 이러한 좋은 방법을 몰랐던가? 알고서도 왜 그렇게 철저히 공부를 못했던가? 이것에 대해서 분심과 용맹심을 내시고,

마지막에 가서는 화두에 대한 간절(懇切)한 의심(疑心)을 가지셔야 됩니다. 의심이 간절할수록에 의심이 크고 의심이 클수록에 크게 깨닫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방법은 백 번을 말씀드리고 천 번을 말씀드리더라도 그렇게 해서 여러분이 아주 뼛속에 이것을 새겨야 됩니다. 가슴속 깊이 새겨서 언제, 어디서, 누가 묻더라도 이 참선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으셔야 됩니다.



< 선지식에 대한 믿음 >

 

애매하게 갈팡질팡 이러면 된 것인가? 저러면 된 것인가? 저기 가서 들으면 이렇게 말하고, 여기 와서 말하면 저렇게 말하고 해서, 말하는 사람마다 다르니까 어느 방법이 옳은가 모르겠다. 이렇게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여기 용화사 전강 조실스님께서 말씀해 주신 그 방법이 가장 옳은 방법이고 그렇게 하면 틀림없다고 믿고,
어디 가서 다른 절이나 다른 스님네 법문을 듣더라도 다 좋은 말씀을 하시기 때문에 그 말씀을 정성스런 마음으로 들을지언정, 이 참선해 나가는 방법에 있어서는 여기 와서 듣고 그렇게 조금 해보다가, 또 저기 가면 그대로 해보다가 갈팡질팡 하면 공부가 못쓰게 되는 것이니깐,

공부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여기 조실스님께서 지도하신 대로 아주 딱! 고정을 해서 그렇게만 해 가시고, 다른 법문을 듣거나, 다른 경책(經冊)을 보거나 하는 것은 전부 내 공부해 나가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정성스럽게만 받아들일 뿐이지, 공부하는 방법에 있어서 갈팡질팡 하시면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은 공부해 들어가다가 아주 여태까지 맛보지 못한 그러한 신기하고도 묘한 그러한 싱그러운 경지가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절대로—그리고서 그 나타난 것을 보고서 ‘아! 이것이로구나!’ ‘참! 좋구나!’ ‘바로 이것이 도통이구나’—이런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부처님이 나타나건, 또는 관세음보살이 나타나건, 또는 꿈속에 비몽사몽간에 별별 신기스런 경지가 나타나도 그것은 ‘헛것’이 보인 것입니다. 부처님이 나타나서 뭐라고 설법을 하셔도 그것은 ‘헛것’입니다.

‘환(幻)’—꼭두각시, 환(幻)으로 나타난 것이지 그것이 실상(實相)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나타나더라도 눈 하나 까딱하지 말고 더욱 정신 차려서 화두를 들고 나가셔야 됩니다.

만일에 그러헌 신기한 경지가 나타났다고 해서 거기에서 기쁜 마음을 내 가지고 그놈을 따라가다 보면은 여러분은 영영 헤어나지 못할 마군이의 소굴로 흘러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번 떨어졌다 하면은 그 다음에는 부처님이 출현하셔도 그 사람 병은 고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하시다가 다 한 철 내지 두 철, 세 철 열심히 하다 보면은 자기 나름대로 견처(見處)가 생기는 수가 있습니다.
어떠헌 화두·공안을 보아도 자기 나름대로 가늠이 가지고, 어떠한 공안을 보아도 하나도 의심이 안 나고, 다 자기 나름대로 공안에 대한 낙처(落處)를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믿어지는 때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천하 없이도 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알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알아지는 공부는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요, 중생심으로 중생의 사리(邪理)·상량(商量)으로 알아지는 것은 천하 없는 묘한 것을 알았다 해도 그것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알았다는 생각이 있으면은 언제라도 눈 밝은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점검을 받어야 됩니다.

옛날에는 선지식이 “너 아니다. 그거 옳게 본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은 거기에서 분심을 내 가지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기어코 바로 깨달을려고 노력을 했건만, 지금 세상은 선지식이 아니라고 하면은 그때부터서 그 선지식을 돌아서서 비방하고 자기가 아는 척하고 그러한 폐단이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 >

 

우리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차라리 깨닫지 못한 중생으로써, 초학자로써 숨을 거두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바로 깨닫지 못하고 부처님과 조사(祖師)와 같이 깨닫지 못하고서는 '알았다'는 생각을 갖지 맙시다.

설사 한 공안, 두 공안 보았다 하더라도 자기가 자기 힘을 생각해 보면 압니다.
이러한 소견 가지고 과연 부처님과 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역대 조사와 같은 법력(法力)에 있어서 도력(道力)에 있어서 덕행에 있어서 부처님과 역대 조사에 비교해서 손색이 없겠는가를 언제라도 자문자답을 해 보십시오.

해 봐서 이래 가지고 부처님이라고 할 수가 없고, 부처님과 같다고 할 수 없을 때에는 언제라도 자기의 견처(見處), 자기의 얻은 바를 깨끗이 버리고서 초학자(初學者)의 입장에서 간절히 공부해 나가야만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금 얻은 것을 가지고 족(足)함을 삼으면은 그 공부는 거기에서 중단이 되는 것이고, 얼마 안 가면은 퇴타(退墮)하고 말아 버리는 것입니다.

결단코 이 사상(思想)은,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이 사상 하나는 철저해야 될 줄 압니다.

 

하물며 설사 바른 소견(所見)이라 하더라고 그렇습니다. 그렇거든 바른 소견이 아닌 공부 중에 환(幻)으로 나타난 그런 걸 가지고, 얻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공부에 차질이 생긴다고 하는 것은 그 이상 슬프고 통탄할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부디, 이 공부는 조급한 마음 갖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늘어져 쳐져도 아니 되는 것입니다.
거문고 줄 고르듯이, 기타 줄 고르듯이, 너무 강하게 졸라매도 떨어지면 못 쓰는 것이고, 너무 줄이 늘어지면은 소리가 제 소리가 안 나는 것이고, 가장 적당하게 줄을 골라야만 제 음량이 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공부도 몸과 호흡과 마음을 가장 이상적이고 지혜스럽게 고르게 하고, 단속함으로써 우리의 공부는 나날이 진취하고 급기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라도 이 공부해 나가는 데 있어서 의심이 나거든 다른 큰스님을 찾아가도 좋고, 또 여기에 오시면은 문의를 하시면은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정성스럽게 말씀을 해 드리겠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여기 법회 때마다 참 이렇게 많이 오시는데, 오셔서 이 법당에 들어오시면은 오시는 대로 앞에서부터 차츰차츰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은 오시는 대로 차츰차츰 차츰 뒤로 가시게 되면은 좀 늦게 오신 분이 있다 하더라도 조금도 이 법회장이 소란스러운 일이 없겠습니다.

먼저 오셔서 뒤에 가서 떠억 앉아 계시면은 나중에 오신 분들은 그 사이로 오셔서 앞으로 오시기를 꺼려하시고, 대단히 법회 중에 소란하게 되면은 자기 한 사람으로 인해서 다른 분들이 법문 듣는데 장애가 있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 언제라도 오시는 족족 앞에서부터 차곡차곡 차곡 이렇게 앉으시면은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꼭 그렇게 좀 해주시고.

그리고 이 관음재 법회는 언제라도 10시 반에 딱 시작할 수 있도록 될 수 있으면은 조금 정성스러운 마음을 가지시면은 제 시간에 참여를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늦어지시겠지마는, 늦게라도 참석하신 것은 안 참석하신 것보다는 낫지마는 기왕 참석하실 바에는 제 시간에 참석을 하셔서 앞자리부터서 차곡차곡 이렇게 앉아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이것으로 끝맺겠습니다. 다음에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그 다음에 영단(靈壇)에 간단한 천도식이 있겠습니다.(42분33초~54분58초)(끝)




------------------(1/3)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선각자(先覺者) ; 남보다 앞서 깨달은 사람.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추호도’, ‘추호의’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발심(發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원어)發起菩提心발기보리심, 發菩提心발보리심.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산란(散亂 흩을 산/어지러울 란) ; 혼침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머트럽고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복식 호흡(腹式呼吸) ; 뱃가죽을 한 번 폈다 다시 오므렸다 해서 가로막의 신축에 의하여 하는 호흡.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2/3)

*달마 스님, 서산대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도인(道人) ; 깨달은 사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군(魔軍) ; 많은 수의 악마의 군세(軍勢)를 뜻함.
*팔만사천(八萬四千) : 법수(法數)에는 이 말이 퍽 많다。그것은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또한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이것을 줄여 팔만이라 하기도 한다.
*마군(魔軍) ; 악마의 군세(軍勢).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육적(六賊) ; 번뇌를 일으키는 근원이 되는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의 육근(六根)을 도둑에 비유한 말.

 

*육문(六門) ; 육근(六根,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의근意根)을 말한다.
육식(六識,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이 육경(六境,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인식하는 경우, 그 입구가 되므로 문(門) 또는 뿌리(根)라 하는 것이다.
*심왕(心王) : 의식 작용의 본체。객관(客觀) 대상에 대하여 그 일반상(一般相)을 인식하는 정신 작용。여기에 육식(六識), 팔식(八識), 구식(九識)의 구별이 있다.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해탈(解脫) : [범] Vimoksa ; Vimukta ; mukti  [파] Vimokha ; Vimutta ;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또는 열반(涅槃)의 딴 이름으로도 쓰인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용맹심(勇猛心) ; 용감하고 사나운 마음.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종횡자재(縱橫自在) ; 자기 마음대로 행함.
*조화(造化) ;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신통하게 된 일. 또는 일을 꾸미는 재간.

*무쌍하다(無雙--) ; 서로 견줄 만한 짝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판치생모(板齒生毛), 무자(無字) 화두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내동 ; ‘일껏(모처럼 애써서)’의 사투리.
*포행(布行) ; 스님들이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한가로이 뜰을 걷는 일.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귀신의 장난이라는 뜻으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나타나는 뜻밖의 방해나 헤살을 이르는 말. [참고]헤살;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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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방(妙方) ; 신묘하고 효험이 뛰어난 처방(處方).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환(幻) : 또는 눈꽃(空眼花 • 空華)。근본 무명(根本無明)이 언제 일어났는지 그 시초를 알길 없으므로 '본래부터(從本已來)'라기도 하고, '시작도 없음(無始)'이라고도 한다.
무명이 일어나는 곳도 없고, 또한 그 실상 자체(實相自體)도 없는 것이므로 곡두(환상)같다고도 하고, 눈이 어리어서 허공에서 아물거리는 눈꽃 같다고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허환된 무명에서 나온 바 온갖 것이 또한 모두 환상이며 공화(空華)인 것이다.
*실상(實相) ; ①모든 현상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변하지 않는 진리. ③집착을 떠난 청정한 성품.
*견처(見處) ; 자기 나름대로 얻은 어떤 생각이나 입장, 견해.
*사리(邪理) ; 그릇된 이치나 생각.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①상인이 물품을 판매할 때, 서로 그 가치를 재서 결정하는 것. ②따지고 헤아리는 알음알이.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조사(祖師) : ①1종1파의 선덕(先德)으로서 후세 사람들의 귀의 존경을 받는 스님。 보통은 1종1파를 세운 스님을 부르는 말。 ②선가에서는 달마스님을 말한다。 ③불심종(佛心宗)을 깨달아서 이를 전하는 행(行)과 해(解)가 상응(相應)하는 도인.
*법력(法力) ; ①체득한 달마(法)의 힘. ②가르침의 힘. 불법의 공덕. 불•보살의 위신력(威神力)을 중생에게 떨쳐 이익을 주는 것. 불법수행의 결과 얻은 힘.
*도력(道力) ; ①도의 근본에서 생기는 힘. 도를 얻음에 의하여 나타남. ②지혜의 힘.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영단(靈壇) ; 영가의 위패를 두는 단(壇).

Posted by 닥공닥정